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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국체전 통해 본 서울 체육의 오늘

    전국체전 통해 본 서울 체육의 오늘

    곧 90회를 맞는 전국체육대회는 몇해 전까지만 해도 나라의 잔치였다. 줄임말로 ‘체전’이라 부르게 된 언저리에는 ‘체력은 국력’이라던 시절의 개인보다도 국가 명예를 최고로 치던 잔영이 남아 있다. 군화발이 득세할 무렵인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 전후로 체육이 도색영화, 성(性)산업과 더불어 3S(Screen·Sports·Sex) 정책으로 국민들을 도취시키기도 했다. 스포츠에 매력이 숨었다는 얘기도 된다. 그러다 프로스포츠가 인기를 누리는 등 격변기를 맞아 체전은 물론 아마추어 대회는 시들해져만 갔다. 어떤 이들은 전국체전을 두고 ‘그들만의 잔치’라고 비아냥거리기까지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체전은 누구에게든 아련한 추억을 안겨주고 있다. 고향의 마을 어귀엔 아무개 아들이나 딸이 체전 대표로 뽑혔다느니, 무슨 메달을 땄다느니, 몇등을 했다느니 하는 빨간 글씨가 적힌 큼직한 현수막이 오가는 길손들을 맞이하고 있을지 모른다. 복잡하기 그지없는 거대도시 서울에서 전국체전이라고 해봐야 귓전으로 흘려 들을 정도로 더 싸늘해졌다. 하지만 역시 골목 골목에서는 ‘우리 동네 아무개, 우리 학교 아무개가 몇등을 먹었다.’는 식의 입소문이 환영 플래카드와 함께 들리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14일부터 20일까지 일주일 동안 ‘신화의 도시’로 불리는 울산에서 제86회 전국체전이 펼쳐졌다.1792명이 뛴 서울시 선수단은 총점수로 순위를 가름하는 대회 방식에 따라 경기도의 장벽을 넘지 못한 채 2위로 돌아왔지만 금메달 숫자는 114개로 가장 많이 따왔다. 서울 체육을 보면 한국 스포츠가 보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만큼 스타들도 많이 몰린 곳이 바로 서울이다. 인구 1000만이 사는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스포츠에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살짝 들여다본다. ■ 장대높이뛰기 1인자 김유석 “내 아버지가 백만장자라 해도 내 삶은 장대 높이뛰기에 걸었다.” 세살 때 엄마 아빠의 손에 이끌려 태평양을 건너갔던 한 꼬마가 어엿한 청년으로 되돌아와 체육계를 들뜨게 만들고 있다. 그 보물단지는 다름아닌 서울시 체육회 소속, 그것도 한국 스포츠에서 황무지라 할 육상 종목에 있다. 지난 8월초 시청에 입단했다. 더욱이 지위의 높고 낮음을 떠나 이민을 가거나 원정 출산까지 감행하는 게 한국의 요즈음 세태다. ●“날아가는 멋에 살죠.” 김유석(23). 서울시 육상단 선수로 뛰고 있는 그는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만큼은 자연을 이용해 가장 멀리 날아가는 사람으로 불린다. 현재 장대 높이뛰기 최고기록 보유자이기 때문이다. 김씨는 흔히 버거운 살림살이에 쫓겨 아들 딸에게 책을 쥐어주기는 고사하고 운동으로 ‘계층 상승’을 겨냥하기 쉬운 우리 현실과는 다르다. 최소한 학업과 경제사정을 따지면 아쉬울 게 도무지 없는 편이라 그를 바라보는 체육계의 눈은 ‘기대 반, 부러움 반’이라고 할 만하다. 미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UCLA(캘리포니아 주립대학) 경제학과 출신이다. 고등학교도 미국의 5대 명문 사립재단인 디어필드 아카데미(Deerfield Academy)를 나왔다. 고교를 졸업한 뒤에는 역시 명문 중에서도 명문인 UPEN(University of Pensylvania)에 스카우트될 정도로 뛰어난 학업성적을 보였다. 하지만 장대높이뛰기 종목을 육성하는 UCLA를 선택하기 위해 1년을 기다리는 고집까지 보였다. 한국 육상을 말하자면 몇몇 굵직굵직한 스타들을 낳은 마라톤 정도가 전부라 하겠기에 더욱 그렇다. 김씨는 전국체전을 다녀온 뒤 약간은 실망스러운 가운데 다음 기회를 벼르며 다시 각오를 되새기고 있다. 올 4월 미국 시애틀에서 열린 MPSF(Mountain Pacific Sports Federation) 육상대회에서 5m61㎝로 한국 최고기록을 일궈낸 그는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기는 했지만 대회 신기록에 머물고 말았다. 그가 한국 기록을 갈아치운 것은 세번째였다.2003년 5월 미국 PAC-10 선수권대회에서 세운 5m55㎝, 지난해 6월 전미 대학육상선수권대회에서 세운 한국기록 5m60㎝를 1㎝,5㎝씩 끌어올렸다. 지난 15일 남자 일반부에 출전,5m36㎝를 뛰어올랐다. 웬만한 이들 같으면 대회신만 해도 기쁘기 이를 데 없는 성적일 수 있는 것이다. ●마이 웨이 UCLA 2학년 때인 2002년 국가대표에 발탁돼 줄곧 육상계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실력에 못잖게 조국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하다. 지금까지 20여년을 이국에서 지내오면서도 단 한번도 국적을 바꿔보지 않은 그의 가족들이다. 세 글자가 뚜렷한 이름도 마찬가지다.3년 전 아버지가 한국을 위해 뛰어야 한다며 대한육상경기연맹에 아들 실력을 봐달라고 연락해온 데서도 알아볼 만하다. 이같은 사실을 보란 듯 증명해주는 사례는 또 있다. 육상연맹 홍순모(46) 이사는 이렇게 말한다. “2000년 칠레에서 세계 주니어 선수권대회가 열렸는데, 이 때 유석이를 처음 만났지요. 시드니올림픽을 치러낸 나라라는 거드름에 들뜬 오스트레일리아 육상선수들이 한국 선수들을 ‘미개인’ 운운하며 놀려댔지 뭡니까.” 오징어에 고추장, 된장 등 냄새를 풍기는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고 시비를 걸어온 것이란다. 그런데 김씨가 한발짝도 망설이지 않고 나섰다. 스포츠를 하는 사람들이 그러면 못쓴다며 무례하게 군 점에 대해 사과하는 뜻으로 무릎을 꿇으라고 해 항복(?)을 받아냈다고 홍 이사는 덧붙였다. 고교 때 동급생들 사이에 최고의 실력을 뽐내던 김씨는 한국 국가대표로 나선 2002 대구 유니버시아드와 지난해 그리스 아테네올림픽에선 뜻밖의 부진을 보였다. 대회참가 직전에 훈련하다가 봉이 부러지는 바람에 손목 부상을 입고도 끈질긴 투혼을 보였다는 대목은 그가 장대 높이뛰기라는 운동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잘 말해준다. 디어필드 아카데미 2학년에 올라가면서 뉴잉글랜드 사립고등학교대회 기록을 갈아치우면서 내리 3년간 챔피언이 되었을 정도의 실력이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한수 아래였던 친구들이 요즈음 들어 (5m)70∼90㎝대까지 기록하는 데 대해 자존심이 상한 상태라고 한다. 이를 바꾸어 말하자면 장래성이 무궁무진하다는 점이라고 육상인들은 입을 모은다. ●“머잖아 해내고 만다.” “장대 높이뛰기에서만 경험하는 하늘을 나는 그 기분, 그 환희. 그보다 좋은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지요. 저는 장대 높이뛰기를 사랑하게 됐습니다.” 김씨는 고교 동창생이기도 한 형이 의무학점인 스포츠 종목으로 장대높이뛰기를 하는 모습을 보고 뒤따라 배우다 푹 빠지게 됐다. 형은 하버드를 나와 미국에서 사업가로 주목받고 있는 반면, 성적이 더 뛰어나다던 동생은 아예 직업으로 바꿔버린 셈이다. 운동이냐, 전공을 살리느냐를 놓고 고민에 휩싸였을 때 “네 길을 걸어가라.”며 격려를 아끼지 않은 이들도 그의 가족이다. 선수이면서 학생회 임원, 학년 대표를 지낼 정도로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고 선수라 해서 수업이나 과제, 시험에서 예외일 수 없는 환경에서 한치도 모라람이 없는 재목이었다.191㎝ 84㎏의 건장한 한국청년은 외모도 빼어나 영화에 출연하고 모델 제의도 받은 적 있다. “더 좋은 대학교를 마다하고 운동을 한다고 덤볐을 때 부모님이 하신 말씀은 삶의 원동력이 됐습니다.” 운동 선수에게는 UCLA보다 더 좋은 대학은 없다, 좌우명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사는 사람의 행복 이상은 없다.’며 어깨를 두드려줬다는 것이다. 김씨는 27일 미국으로 떠났다. 세계 각지에서 열리는 육상 대회에 차례로 나가며 힘을 기르기 위해서다. 대한민국과 서울을 대표하는 ‘장대높이뛰기 사절’인 셈이다. 세계기록 보유자인 우크라이나의 부브카를 지도한 얼 벨 코치와 84년 로스앤젤레스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인 마이클 톨리 코치가 그를 주목해 단련시키고 있다는 점은 미래를 밝혀주는 사실이다. 독일인 매니저가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한국 출신의 월드스타 탄생을 예감케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핏줄을 바라보는 마음가짐이 언젠가 큰 일을 벌일 것이라고 육상인들은 한목소리로 말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방학만 되면 모국으로 건너와 한국어를 배운 정신과 스포츠맨으로 제1 덕목인 반듯하고 절제할 줄 아는 태도 때문입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땀으로 일군 ‘스포츠 서울’ ‘아우 먼저, 형 먼저’ 하는 쌍둥이 메달리스트에서부터 방망이 든 프로배구 감독의 아들, 야구 감독의 핏줄을 이어받은 다이아몬드 유망주까지…. 수도 서울의 명예를 걸고 땀을 흘린 전국체전 선수단에는 여러가지 사연을 가진 선수들이 많다. 마지막 금메달의 주인공도 서울시 여자축구단이었으니 “막판에 웃는 자가 진짜 승자”라는 자부심에 들뜰 만하다. 이들 가운데 레슬링에 출전, 메달을 따낸 쌍둥이 형제가 남들의 부러움을 샀다. 쌍둥이 아니랄까봐 군에도 나란히 입대한 국군체육부대 김종대·종태(25)형제가 그 주인공이다. 둘은 일란성 쌍둥이로 10분 먼저 태어난 김종대가 형이다. 형제는 중랑중 1학년 때 나란히 레슬링에 발을 들여놓았지만 형은 이듬해 손을 뗐다. 두명 모두 운동을 시킬 수는 없다는 부모님 반대 때문이었다. 그러나 레슬링을 잊지 못하던 차에 3학년 때 다시 매트에 올랐다. 이 때 생긴 공백 탓일까. 동생이 그레코로만 1위를 한 반면 형은 자유형 3위로 동메달을 차지하는 데 그쳤다. 몸무게가 55㎏으로 같지만 서로 매트에서 다투는 일만은 피할 수밖에 없어 세부종목만 나눴다. ‘상무’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진 국군체육부대에 뽑힌 것만으로도 실력을 알아줄 만한데 당당하게 메달까지 따냈으니 경사가 아닐 수 없다. 차세대 황영조로 불리는 육상 꿈나무 전은회(17·배문고)는 남고부 5000m와 10㎞에서 우승해 장거리 유망주로서의 기대를 한껏 부풀렸다. 전은회는 지난 5월 전국 고교대회 10㎞에서 29분 27초로 황영조(35·국민체육진흥공단 감독)가 강원도 명륜고 시절인 89년 세운 기록 29분 31초를 4초나 앞당겼다. 이어 지난 6월엔 5000m 레이스에서도 허장규(22·삼성전자)가 갖고 있던 고교 최고기록 14분 17초 93을 12초나 앞당긴 14분 05초 44를 기록해 제2의 황영조라는 별명을 얻었다. 고교부 야구에서 우승한 신일고엔 왕년의 배구스타 아들이 눈길을 끌었다.2학년 강성호(16)군은 아버지 강만수(50) 전 현대캐피탈 감독의 뒤를 이어 중3 때까지 배구를 하다가 야구로 전향(?)한 사례다. 프로야구 LG트윈스 2군 사령탑을 맡고 있는 김인식(52) 감독의 아들 김준(20·고려대 2년)군도 서울시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를 누볐지만 아쉽게 메달을 놓쳤다. 이밖에 대학부 검도에서는 허동찬(21·성균관대 3년), 동진(19·성균관대 1년) 형제가 5명씩 겨룬 단체전에서 금메달 못지않은 은메달을 따내 ‘칼 솜씨’를 뽐냈다. 서울 대표팀은 신기록도 쏟아냈다. 한국신기록 42개 가운데 5개, 대회신기록 165개 가운데 28개를 낚았으니 체면을 구기지 않은 셈이다. 특히 4관왕에 오른 6명 가운데 수영의 박태환(16·경기고 1년)은 대회 마지막날 최우수선수(MVP)의 영예를 안아 서울을 빛냈다. 여자축구 결승전에서는 국제축구연맹(FIFA)으로부터 올해의 선수 후보에 뽑힌 ‘여자 박주영’ 박은선(19)을 앞세워 경남대교를 2대0으로 물리쳐 이름값을 톡톡히 해냈다. 동작구청 씨름단 주현섭(27), 강남구청 체조단 박경아(19)와 최미선(25), 성북구청 펜싱팀 남현희(24) 등 서울시 기초자치단체 선수들이 따낸 메달 28개도 색깔을 떠나 어려운 여건에서 건져낸 것들이어서 박수를 받을 만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儒林 속 한자이야기] (92)符信(부신)

    儒林 (442)에는 ‘符信’(부절 부/믿을 신)이 나온다. 이것은 ‘나뭇조각이나 두꺼운 종이에 글자를 기록하고 證印(증인)을 찍은 뒤, 두 조각으로 쪼개어 한 조각은 상대자에게 주고 다른 한 조각은 자기가 가지고 있다가 나중에 서로 맞추어서 證據(증거)로 삼던 물건’을 말한다. ‘符’자는 옛날 행정 사무의 證據나 信標(신표)로 삼기 위한 대나무 쪽을 가리킨다. 후에 ‘도장’‘맞다’ 등의 뜻이 派生(파생)하였다.活用(활용) 예로는 符合(부합:符信이 꼭 들어맞듯 사물이나 현상이 서로 꼭 들어맞음),符號(부호:일정한 뜻을 나타내기 위하여 따로 정하여 쓰는 기호) 등이 있다. ‘信’자는 본디 ‘성실하다’는 뜻을 나타내기 위해 考案(고안)되었다.‘人’과 ‘言’(말씀 언)을 組合(조합)하여 사람의 말과 성실성은 不可分(불가분)의 關係(관계)에 있음을 暗示(암시)한다.‘信念(신념:굳게 믿는 마음),信賞必罰(신상필벌:상과 벌을 공정하고 엄중하게 하는 일을 이르는 말),信實(신실:믿음직하고 착실함)’ 등에 쓰인다. 交通手段(교통수단)과 情報(정보) 媒體(매체)가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는 符信이 신분확인을 위한 요긴한 수단이었다. 용도와 종류에 따라 發兵符(발병부)·通符(통부)·宣傳標信(선전표신)·木馬牌(목마패)·大將牌(대장패) 등 다양하였다. 符節(부절)도 일종의 符信으로 볼 수 있는데,符信과의 차이점은 글자와 證印이 없다는 것이다.三國史記(삼국사기)에는 高句麗(고구려) 建國始祖(건국시조) 高朱蒙(고주몽)이 短刀(단도)를 符節로 삼아 親子(친자)를 確認(확인)한 崎嶇(기구)한 事緣이 전한다. 주몽은 큰 뜻의 실현을 위해 姙娠(임신)한 예씨 부인과 작별하면서,“아들을 낳거든 일곱 고개, 일곱 골짜기의 돌 위 소나무 밑에 간직되어 있는 물건을 찾아 가지고 오라.”는 말을 남겼다. 예씨 부인은 出産(출산)한 아이의 이름을 琉璃(유리)라고 하였다. 얼마간의 세월이 흐른 뒤 유리는 일곱 모난 주춧돌 아래서 발견한 칼 한 쪽을 들고 주몽을 찾아갔다. 주몽은 지니고 있던 조각난 칼을 꺼내 맞추어 보고 자신의 아들임을 確認(확인)한다. 三國史記에는 新羅(신라) 眞平王(진평왕)때의 사랑 이야기가 전한다. 경주에 사는 설씨(薛氏)는 늙은 홀아비로 오직 딸 하나만 데리고 살았으나, 변방지역의 警備(경비)에 나아가라는 通報(통보)를 받는다. 그때 沙梁部(사량부)에 사는 嘉實(가실)이라는 청년이 兵役(병역)을 대신하겠다고 나선다.感泣(감읍)한 父女(부녀)는 가실과의 婚姻(혼인)을 約條(약조)하고 거울을 반으로 갈라 信標(신표)로 나누어 가진다.6년 만에 다시 설씨 부녀 앞에 나타난 가실의 行色(행색)은 알아볼 수도 없을 만큼 초라하였다.破鏡(파경)을 꺼내 맞추어 보고서야 가실임을 確認할 수 있었다. 漢(한)나라 高祖(고조) 劉邦(유방)은 諸侯(제후)를 分封(분봉)하면서 丹書鐵券(단서철권)을 나누어 주었다. 약칭 鐵券(철권)이라 하는 이 물건은 오늘날의 任命狀(임명장)에 해당한다. 쪼갠 칼이나 거울, 세트로 만들어진 鐵券이 모두 符節에 속한다. 여기서 ‘節’은 마디라는 뜻이니 끼워 맞춘다는 의미를 含蓄(함축)하고 있으며,‘符’란 符合(부합)한다는 뜻이다. 김석제 경기 군포교육청 장학사(철학박사)
  • 위민넷 ‘커리어 구축 전략’

    “생화학을 전공한 대학원생으로 졸업이 이제 한 학기 남았어요. 제 전공 분야에서 커리어를 구축하고 싶습니다.”(27세 여성),“전공은 경영학이며 제화회사에서 상품기획을 2년 담당했습니다. 홈쇼핑의 MD로 취업하고 싶지만 현실이 만만치 않습니다.”(25세 여성) 가을은 본격적인 취업시즌. 졸업을 코앞에 둔 여대생과 이직을 꿈꾸는 커리어우먼까지 청년 실업이라는 거대 장벽 앞에 속도 새까맣게 타들어간다. 여성가족부가 운영하는 위민넷(www.wom en-net.net)이 제공하는 ‘성공으로 가는 취업 여행-커리어 익스프레스’를 통해 여성 커리어 구축의 전략을 들어본다. 이달 20일까지 진행되는 커리어 구축 서비스를 통해 1000명에 대한 무료 직무적성검사, 직종별 연봉 검색, 전문가의 컨설팅 등도 받을 수 있다. 위민넷에서 활동하는 커리어 코치 전문가들은 무엇보다도 “자신만의 경쟁력을 파악하고 여성만의 장점을 적극 어필하라.”고 조언한다. IBK컨설팅그룹 구정완 상무는 “여성이라면 취업에 있어서도 핑크 칼라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핑크 칼라’는 여성화·고급화된 현대 사회를 의미하는 조어. 지식 기반인 핑크 칼라 사회일수록 섬세한 여성성에서 나오는 리더십과 동시에 남성 못지않은 근성도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섬세하면서도 터프한 여성이라고 할까. 구 상무는 “대학 졸업생이라면 도전 정신을, 경력이 부족한 대학원생이라면 실무 능력을, 이직을 준비하는 커리어우먼이라면 여성의 섬세한 리더십을 더욱 부각시켜야 한다.”고 설명한다. 한국코치협회 서복선 기획부장은 지피지기(知彼知己) 전략을 강조한다. 서 부장은 “최근 기업의 채용 경향은 맞춤형 인재 선발에 있다.”면서 “왜 이 기업에 지원하는가를 스스로에게 먼저 자문하라.”고 조언한다. 이는 해당 기업의 정보를 사전에 탐색하고 그 기업에 맞는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갖추는 것이 절대적이라는 것이다. 서 부장은 “출산 전까지 일단 들어가고 보자는 취업 인식을 가진 여성이 의외로 주위에 많다.”면서 “자신의 적성과 흥미를 파악해 5년후 10년후까지 내다보는 장기적인 커리어 전략을 세우는 게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남한여성 평양서 딸낳다

    남한여성 평양서 딸낳다

    평양 문화유적 참관차 10일 오전 방북한 남한 주민 황선(31)씨가 북한에서 아기를 출산했다. 분단 이후 처음있는 일이다. 민간단체인 통일연대의 대변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황씨는 북한 노동당 창건 60돌 기념일인 10일 밤 10시 북한 최고의 산부인과 ‘평양산원’에서 제왕절개 수술을 통해 둘째 딸을 낳았다고 민간단체인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관계자가 11일 전했다. 전례가 없는 일에 직면한 통일부는 신생아의 국적 문제 등에 관해 법률자문을 하는 등 분주한 움직임을 보였다. ●2주간 산후조리 체류연장 고려대 법학과 신영호 교수는 “우리나라는 속인주의를 채택하고 있고 북한 국적법도 북한 주민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기한테만 북한 국적을 부여하고 있기 때문에 황씨의 딸은 당연히 한국 국적이다.”고 설명했다. 통일부는 황씨의 산후 조리를 위해 평양 체류를 2주 정도 더 허용키로 했고, 육로로 귀환토록 배려했다. 일각에서는 황씨가 1998년 평양에서 열린 8·15 통일대축전에 한총련 대표로 불법 입북한 혐의로 징역 2년의 처벌을 받은 경력이 있는 데다, 출산일이 임박해 만삭의 몸을 이끌고 방북한 점을 들어 내심 ‘방북 출산’을 희망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황씨는 평양으로 떠나기전 “산통이 오면 평양에서 출산했으면 좋겠다.”는 언급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준비된 출산” “통일둥이” 양론 첫 딸도 제왕절개로 출산한 황씨는 당초 오는 17일 제왕절개 수술 일정을 잡아놔 방북 일정이 무리가 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시부모와 함께 방북 길에 올랐다고 한다. 그러나 비행기로 평양에 도착한 황씨는 가벼운 진통을 느껴 북측 의료진으로부터 진찰을 받았으며 이후 저녁 8시부터 5·1경기장에서 아리랑 공연을 관람했다. 결국 공연 중인 9시30분쯤 다시 진통이 엄습, 평양산원으로 옮겨졌다. 황씨는 지난해 2월 서울 덕성여대에서 경찰의 원천봉쇄 속에 조국통일범민족청년학생연합(범청학련) 남측본부 의장 윤기진(31)씨와 결혼식을 치렀다. 남편 윤씨는 1997년 7기 한총련 의장으로 지명수배된 이래 현재까지 수배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장애인의 性과 결혼] “결혼이오?…총각딱지 떼는게 평생 소원이죠”

    #1 7년 전 추락사고로 전신이 마비된 이양신(33·여)씨는 타고난 여성성을 박탈당할 뻔했다. 입원상태에서 생리를 하자 어머니는 이를 없앨 방법을 찾았고, 이씨도 “이제 결혼도 못 할텐데.”라는 생각에 남성호르몬제 투여에 동의했다. 그러나 부작용으로 한달 동안 하혈만 하다 그만뒀다. 5년쯤 지나자 어머니는 아예 자궁 적출 수술을 권했다. 장애인에게 성이란 귀찮고 사치스러운 것이란 인식이 깔려 있었다. 이씨 자신도 현실적인 어려움을 감안, 수술을 생각해보기도 했다. 지금도 ‘감각이 없는데 섹스하고 싶은 생각은 드냐.’ ‘임신도 할 수 있느냐.’는 어처구니없는 얘기를 듣곤 한다. ●“결혼도 못할텐데” 생리하자 자궁적출 #2 뇌성마비 1급 장애인 김광태(가명·33)씨는 한달에 한번꼴로 성매매 여성들을 찾는다. 물론 “오빠, 그 몸으로 섹스할 수 있겠어.”라는 얘기를 들은 적도 많다. 시간이 갈수록 “이렇게 불법적인 방법으로 죄 짓듯 욕구를 해결해야 하나.”라며 자조해 보기도 하지만 어차피 이 길 외에는 방법이 없는 게 현실이다. 그래도 자기는 낫다며 온몸을 꼼짝 못해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자위행위를 하는 친구 이야기를 들려줬다. 김씨는 “먹고 자는 것과 마찬가지로 성욕도 인간의 본능”이라면서 “강아지도 발정이 나면 접붙여줄 생각을 하면서 장애인의 성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시한다.”고 울분을 토했다. ●“그몸으로…” 윤락업소서도 기피 #3 중증 정신지체 장애인인 딸이 성욕을 못 이겨 온 몸을 자해한다. 보다 못한 아버지는 돈뭉치를 들고 거리에 나가 청년들을 붙들고 통사정을 한다.“제발 우리 딸과 한번만 자 달라.”고. 미친 사람 취급을 받고 경찰서에 잡혀가기도 하지만 그의 지상과제는 ‘남들과 똑같은’ 욕망을 표출하는 딸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이다. 결국 아버지는 자기 스스로 나서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야 만다.(독립영화 ‘아빠’의 줄거리-감독 이수진) ●‘무성(無性)적 존재’로 인식 장애인의 성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장애인들이 성기능은 물론 성욕도 없을 것이라는 편견, 먹고 살기도 힘든데 성은 사치라는 인식, 불편한 몸으로 결혼해 아이를 낳아봤자 키울 수나 있겠냐는 동정 등이 바탕에 깔려 있다. 그러나 시각·청각장애 등은 물론 뇌성마비·전신마비 장애인들도 대개 비장애인과 똑같은 성기능과 성욕구를 갖고 있다. 감각과 운동신경이 마비된 척수손상 장애인 역시 성욕구가 크게 다르지 않고, 임신·출산도 가능하다. 하지만 이성과의 만남을 통해 자연스럽게 성을 익히고 결혼으로 가정을 꾸민다는 것은 요원한 꿈이다.8년 전 교통사고로 불완전 전신마비 장애인이 된 이전형(38)씨는 지난 겨울부터 지역신문에 배우자를 구하는 광고를 냈다. 몇번의 만남 끝에 올 4월 한 여인과 결혼식을 올렸지만 패물을 노리고 접근한 사기결혼이었다. 이씨는 “장애인도 똑같이 성욕이 있고 평범한 결혼생활을 하고 싶어 한다.”면서 “하지만 기본적으로 사람 만날 기회 자체가 적고, 경제적인 문제가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숨지었다. ●교류의 장·경제력 없어 걸림돌 이런 문제는 결국 장애인의 이동권, 교육권, 노동권의 총체적인 문제에서 비롯된다는 지적이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이수지 간사는 “중증 장애인의 경우 이동 자체가 불편하기 때문에 학교에도 다니지 못하고 당연히 직업활동도 하지 못해 사회에서 소외된다.”면서 “비장애인에 비해 이성을 만날 기회 자체가 차단되고 경제력도 갖지 못하면서 성과 결혼의 문제가 원천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장애인연맹 김미선 부회장은 “장애인의 성 문제가 사회적으로 한번도 공론화되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면서 “장애를 개인이 아닌 사회적 책임으로 인식하는 것과 장애인의 자기 결정권을 인정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장애인의 성 문제를 ‘인간의 기본적 욕구’의 문제로 인정하고 장애의 종류와 개개인의 상태에 따라 세심한 제도를 논의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이효용 나길회기자 utility@seoul.co.kr
  • [장애인의 性과 결혼] 성폭력 시달리는 정신지체자

    [장애인의 性과 결혼] 성폭력 시달리는 정신지체자

    장애인 중에서도 정신지체자의 성 문제는 특히 심각하다. 자기방어 능력이 없는 탓에 이에 맞춘 성교육이 절실한데도 이들을 성적 존재로 보지 않는 편견이 심해 성교육이 사실상 전무하다. 성폭력이나 근친상간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경우도 많다. 정신지체장애인 시설 ‘나눔의 집’ 원장 유찬호 신부는 “지적 능력에 장애가 있더라도 신체적인 발육이나 성적 욕구는 비장애인과 다르지 않다.”면서 “성교육을 받지 못하고 단편적으로 받아들인 성에 대한 정보나 경험에 의해 아무 곳에서나 자위행위를 한다든지 하면서 더 쉽게 성폭력에 노출되곤 한다.”고 지적했다. 정신지체 3급인 오모(27·여)씨는 10대 중반부터 아버지 친구와 동네 청년들로부터 지속적으로 성폭행을 당했다. 이후 오씨는 가출과 외박을 일삼으며 처음 보는 남성과도 거리낌 없이 성관계를 맺었고 성격도 거칠고 폭력적으로 변해 갔다. 정신지체 2급인 박모(34·여)씨는 어렸을 때부터 성폭력을 당하며 성에 눈을 떴고 그것이 지금까지 정기적인 가출로 이어지고 있다. 정신지체 3급 유모(27·여)씨는 양아버지로부터 지속적으로 성폭행을 당해 3명의 아이를 출산했다. 양아버지는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 물론 그 지경이 되기까지 성교육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이같은 문제의 배경에는 ‘지적 발달이 어린아이 수준이니 성적인 관심도 없을 것’이라는 오해가 깔려 있다. 또 성 충동을 조절하기 어려울 테니 아예 성적인 자극이 될 만한 것은 가르치지도 보여주지도 말아야 한다는 주장도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유찬호 신부는 “성욕은 인간의 본능이며, 지금같이 성이 범람한 사회에서 이같은 주장은 어불성설”이라면서 “지체장애인일수록 성교육을 통해 성에 대한 바른 인식과 방어능력을 키워 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아직까지 부모의 암묵적 동의로 정관수술이나 자궁적출 수술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면서 “정신지체 장애인의 성이나 결혼을 무조건 덮어 버리려 할 것이 아니라 그들도 성적 욕구를 갖고 있음을 인정하는 데서 문제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효용기자 utility@seoul.co.kr
  • “늙은게 죄인가” 한탄

    “늙은게 죄인가” 한탄

    “이렇게 사지가 멀쩡한데 빈둥대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쥐꼬리만한 봉급을 준대도 정말 일을 하고 싶습니다.” 29일 오후 2시 서울 송파구 한국지역사회교육회관내 새이웃소극장. 조기퇴직을 종용당해 강제로 일터에서 밀려난 ‘나정정’씨의 서러운 하소연이 시작됐다. 그는 “수명은 길어지는데 늙었다는 기준을 나이로 정해 놓고 일할 기회를 빼앗는 것은 억울하다.”고 말했다. 또 “돈을 덜 받더라도 나도 사회의 일원이라는 ‘구속감’을 다시 느껴보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무대는 대한은퇴자협회가 ‘나이 먹는 게 죄냐!’라는 제목으로 마련한 모의재판. 강제로 일터에서 밀려난 중장년층과 기업·정부간에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다. ●“저출산 고령화 대비 노인인력 활용대책 서둘러야” ‘나정정’씨에 이어 교사로 정년퇴직한 뒤 재취업을 하려다 연령차별을 당했다는 ‘기산려’씨가 원고석에 앉았다. 그는 “패션 디자인을 배워 보려고 나라에서 무료로 가르쳐 준다는 곳에 갔는데 나이가 많다고 받아주지 않았다.”면서 “내 몸 하나 건사해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고 싶을 뿐인데, 늙은 게 죄일 뿐”이라고 울먹였다. 원고측 변호인은 “노년층의 복지는 물론이고 저출산·고령화 사회에 다가올 인력난을 생각해서라도 노인 인력을 활용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피고석에 앉은 회사경영주 ‘기업가’씨는 “정부에서 청년실업을 구제하라며 제도를 그렇게 정해 놓으니 경력있는 노년층을 고용하고 싶어도 어쩔 수 없었다.”고 항변했다. 역시 피고로 나온 정부 관계자 ‘노여론’씨는 “기업들이 임금을 아낀다며 우리더러 그렇게 해달라고 했다.”고 변명하다 결국 ‘기업가’씨와 멱살잡이를 하기도 했다. 이들의 변호인은 “당장 청년실업이 심각한데 젊은 인재를 교육시켜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바로 사회복지를 향상시키는 길”이라고 맞섰다. ●“청년실업과 노인실업은 문제의 본질이 다르다” 1시간 남짓한 공방이 끝나고 재판부의 판결문 낭독이 시작됐다. 판사는 “자기에게 일자리가 없어 생긴 청년실업과 나이에 맞게 갈 수 있는 직종이 없는 노인실업은 문제의 본질이 다르다.”며 원고측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노년층에게 조기퇴직을 종용해 곧 불어닥칠 인력난을 고려치 못한 ‘기업가’씨에게 ‘한치 앞을 보지 못한 죄’를 물어 ‘세대통합 운동’ 3만 6500시간을 선고했다. 사태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여론에 끌려다닌 ‘노여론’씨에게는 ‘이리저리 눈알 굴린 죄’를 물어 제도적으로 조기퇴직 종용 금지, 연령차별 금지, 정년연장 법제화를 위한 적극적인 역할 수행을 주문했다. 이번 행사를 위해 은퇴자협회는 1개월간 중장년층 고용피해 사례를 수집하고, 법률전문 시민단체의 자문을 받았다. 무대연기에는 홍익대와 광운대 극예술연구회 학생들이 자원봉사로 나섰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씨줄날줄] 금욕세/육철수 논설위원

    인구는 많아도 골치요, 적어도 걱정인가. 산아제한이 엄격한 중국에서는 아이를 둘 이상 낳으면 ‘인두세’가 하도 무거워 웬만한 가계는 파산날 지경이다. 그래서 호적 없는 아이(헤이하이쯔:黑孩子)가 수천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출산율이 1.16명으로 세계 최저여서 인구 불리기에 적극 나선 우리 처지에는 그런 중국이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그렇다고 어떤 나라처럼 강제적 세금으로 인구를 늘릴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안타깝다. 세금으로 출산율을 높이려다 낭패본 대표적인 나라는 루마니아다.1960년대 중반, 당시 공산주의 국가였던 루마니아에서는 ‘금욕세(禁慾稅)’라는 황당한 세목을 만들어 아이 안 낳는 젊은 여성들을 괴롭혔다. 공산당 서기장 차우셰스쿠는 “태아는 사회의 재산”이라며 “아이를 낳지 않는 사람은 국가의 영속성에 반기를 드는 배신자”라고 엄포를 놓았다. 낙태와 피임은 물론이고 성교육까지 금지시켰다. 일명 ‘월경(月經) 경찰’로 불리는 공무원들이 직장을 돌며 여성들의 임신검사를 했다. 여성이 임신에 두세번 실패하면 가차없이 ‘금욕세’를 중과했다. 덕분에 이 나라의 출산율은 세금이 두려웠던 중산·서민층을 중심으로 1년만에 2배로 증가했다고 한다. 그런데 특이한 점 하나. 이 때 태어난 아이들이 1989년 차우셰스쿠 몰락 때 청년으로 성장해 독재정권 축출에 앞장섰다니, 비참한 최후를 맞은 차우셰스쿠가 저승에서 통탄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탈리아에서도 무솔리니 통치시절 ‘독신세’라는 게 있었다. 결혼을 권장하려고 만든 이 세금은 25∼30세의 총각·처녀에겐 연간 3파운드,30세 이상은 2파운드를 부과했다. 미국도 초기 식민지시대 메릴랜드주 의회가 19세 이상 독신남성에게 연 5실링의 세금을 물렸다고 한다. 해마다 신생아가 10만명씩 감소하는 마당에 연간 인공 임신중절이 35만건에 이르는 게 우리나라다. 저마다 사유가 있을 테지만, 인구감소와 고령화로 아이 하나가 아쉬운 국가 입장에서는 보통일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정부가 불임부부 지원책을 내놓고 저출산 타개용 세원(稅源) 확보에 나선다는데, 혹여 멀쩡한 처녀·총각이나 부부가 아이를 안 낳는다고 세금까지 물리는 ‘불상사’는 제발 없기를….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옴부즈맨 칼럼] 저출산문제를 보는 언론의 ‘눈’/진정회 성균관대 경제학 4학년

    대학 졸업반이 되면서 “결혼은 언제 할 거냐, 남자친구는 있느냐?” 등의 질문을 부쩍 많이 받는다. 반면 “결혼 안 할 건데요.”라고 말하는 내 용기는 부쩍 줄었다. 결혼은 미친 짓이라고 부르짖는 순간, 국가 경제성장의 둔화를 불러오는 저출산의 원흉으로 지목되어 사회적 비난을 받을 것 같은 두려움이 생긴 것이다. 젊은 여성으로서, 요즘 쏟아져 나오는 저출산 시대를 진단하는 기사를 읽으면 기분이 좋지 않다. 저출산 문제를 “한국 여성의 출산기피 풍조가 심화되었다.”고 단정지어 말함으로써 문제의 원인을 ‘가족보다 일을 택하는 이기적인 젊은 여성’의 탓으로 돌리는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년실업이 50만명에 달하는 이 시대에 졸업 후 바로 취업하기도 힘들지만, 취직이 된다 해도 맞벌이를 얼마나 해야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룰 수 있을지 까마득하다. 또 설령 정부의 8·31 부동산대책이 성공해 집값이 잡혀본들 아이 사교육비를 대려면 등골 휘는 것은 예약된 일이다. 마침 아이가 예체능에 두각을 드러내기라도 하면 눈앞이 캄캄할 것이다. 사회안전망이 미흡한 데다 아이 키우는 일이 여전히 엄마의 몫으로 인식되는 우리 사회에서 젊은 여성들이 출산을 거부하거나 미루는 이유는, 사실 신문을 조금만 살펴보면 다 나와 있다. “암울한 미래를 예고하는 국가적인 재앙”이라고 저출산 고령사회의 심각성을 강조했던(8월26일자 사설) 서울신문은 저출산 문제의 원인과 대책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서울신문은 출산·육아복지 등 ‘대책’에 초점을 맞춘 기사를 여러 차례 다루었다.“출산 기피풍조 심화” “출산 파업” 등의 표현으로 젊은 여성에게 이유 없는 죄책감을 안겨준 다른 신문에 비하면 분명 반가운 일이다. 지방자치단체의 다양한 출산장려정책을 소개했는가 하면(8월27일자 8면 ‘전남 지자체 출산장려 팔 걷었다’) 여군·여경의 출산과 육아고민을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로 담아내기도 했다(8월31일자 25면 “제복입은 여성들 ‘임신이 겁나요’”). 저출산이 심각한 문제라는, 호들갑스러울 정도의 강조에 비해 정작 출산과 양육의 부담을 거의 홀로 지다시피 하는 여성 당사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려는 노력을 찾아보기 힘든 현실에서, 특수 직종에 있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직접 반영된 이 기사는 더욱 돋보였다. 같은 지면 인터뷰에서 여성장군 1호 양승숙 예비역 준장이 “여군의 임신과 출산, 육아 정책을 수립할 때 가장 먼저 실행되어야 할 것으로 임신과 육아기간 동안 업무를 대신할 충분한 인력의 확충”을 꼽은 것은 정책 당국이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여성이 자기 사정에 맞게 근무시간을 조정하면서도 고용 안정성을 보장하는 ‘정규직 파트타임제’는 아일랜드의 여성 고용률을 높인 정책으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복지가 저출산 문제의 유일한 해답일까. 성공회대 김동춘 교수는 최근 한 강연에서 “현재 우리 사회는 양극화와 기업지배로 인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이것이 현상적으로 나타난 것이 세계 최저의 출산율”이라며 저출산은 “이런 사회에서는 아이를 키울 수 없다는 여성들의 사회적 저항”이라고 말한 바 있다. 정확한 분석이다. 사랑하는 내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평생 동안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기보다 기업이 원하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 아등바등 살아가야 하리라는 것이 뻔히 보이는데, 이런 인생을 살도록 예정되어 있는 아이를 세상에 또 하나 내놓고 싶겠는가. 젊은 여성들이 아이 낳기를 거부하는 것은 그들이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그다지 행복하지 못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복지 미흡도 저출산문제의 한 원인이다. 하지만 복지 대책만으로 사상최저·세계최저 수준이라는 저출산 문제가 해결되기는 어렵다. 저출산에 대한 우려나 탓을 하기에 앞서 젊은 부부, 젊은 여성들에게 직접 이야기를 들어보려는 언론의 노력이 아쉽다. 진정회 성균관대 경제학 4학년
  • 잡코리아, 기업 성향분석

    잡코리아, 기업 성향분석

    전국에 16개 지사를 두고 있는 수입판매업체 H사는 사원을 뽑을 때 반드시 지원자의 거주지를 고려한다. 집이 회사에서 가까운 사람을 선호한다. 인사담당 이모씨는 “집이 먼 것이 큰 결점은 아니지만 멀리서 통근하는 직원에게는 야근이나 특근을 시키기가 부담스럽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유명 건설업체인 A사도 최종면접에서 지원자들에게 희망근무지를 묻는다. 사는 곳과 희망근무지가 일치하는 쪽이 더 좋은 평가를 받는다. 결혼·출산 등 인생의 변화가 많은 30세 전후 신입사원들의 경우 사는 곳과 일하는 곳이 멀면 쉽게 직장을 떠나기 때문이다. ●신입·경력 선발때 거주지역 고려 크게 늘어 5일 온라인 리크루팅업체 ㈜잡코리아가 올 상반기(1∼6월) 직원채용 공고 18만 7948건을 분석한 결과, 전체의 24.0%인 4만 5114건이 외국어능력, 회사인근 거주 등 우대조건을 제시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지난해 9∼12월(채용공고 16만 8431건)의 우대조건 제시비율 19.4%에 비해 크게 늘어난 것으로 청년 취업난이 심해지면서 지원자가 급증하고 있는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됐다. 기업들이 제시한 우대조건은 ‘외국어능력 우수’가 34.8%로 가장 많았고 ‘인근지역 거주’가 31.4%로 두번째를 차지했다. 하지만 인근지역 거주자에 대한 기업의 선호도는 올 들어 큰 폭으로 늘었다. 지난해 9∼12월 분석에서는 인근 거주자 우대 비율이 26.3%에 불과했으나 올해에는 5%포인트 가량 늘어났다. 반면 외국어 우수자에 대한 우대는 지난해 39.1%에서 올해에는 4%포인트 남짓 떨어졌다. 이밖에 올해 국가유공자에 대한 우대는 5.5%(지난해 4.6%), 해외연수자 4.0%(4.4%), 군 전역간부 2.1%(3.0%), 학점우수자 2.1%(2.2%)로 각각 지난해와 비슷했다. ●경력직 공채가 신입사원 공채의 4배 신입사원 공채보다 경력사원 공채 횟수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경력직 채용공고 수가 전체의 36.5%를 차지한 데 반해 신입직은 8.9%로 경력의 24.4%에 불과했다. 경력과 신입을 상관하지 않는 채용공고는 전체의 54.7%였다. 신입직 채용공고에서는 회사 인근 거주자와 외국어 가능자에 대한 우대가 각각 34.3%와 34.2%로 거의 같았으나 경력직은 외국어 42.6%, 인근거주 28.3%로 큰 차이를 보였다. 특히 경력 채용공고 중에는 MBA(미국경영학석사) 1.3%(신입 0.3%)나 해외연수 4.5%(3.5%)에 대한 우대가 신입보다 두드러졌다. 영어 가능자 선호 비중이 전체 외국어 우대 2만 5535건의 57.6%(1만 4708건)로 가장 많았고 일어와 중국어도 각각 23.0%와 17.5%를 기록했다. 지난해 하반기에도 각각 영어 57.5%, 일어 23.4%, 중국어 17.4%로 올해와 비슷했다. 잡코리아 정유민 상무이사는 “이미 검증된 사람을 채용해서 초기 투자비용을 줄이고 실질적인 결과를 빨리 얻기 위해 경력사원을 채용하는 기업이 꾸준히 늘 것”이라면서 “이런 경향은 앞으로 우리나라 기업문화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밝혔다.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 [일본을 다시본다] (13) 일본경제 회생의 원동력 렌고

    [일본을 다시본다] (13) 일본경제 회생의 원동력 렌고

    |도쿄 특별취재팀|일본 도쿄도(都) 치요다구(區)에 있는 도쿄전력 본사. 국영기업에서 민영화된 지 오래된 알찬 기업이지만, 올해 직원(3만 8950명)들의 임금을 삭감했다. 지난 3월 노사는 올해 연봉을 지난해에 비해 1인당 평균 3000엔 가량 줄이는데 합의했다. 액수는 크지 않지만,4년째 내리 삭감했다는 점에서 적잖은 의미를 지닌다. 독점적 산업에서 경쟁업체들이 속속 생겨나면서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사측의 요구를 노조가 뿌리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신 사측은 오래 전에 사원 전용병원을 설립해 직원들이 싸게 이용할 수 있게 하고, 회사 소유 주택도 임대해 주는 등 후생복지에 적극적이다. 도쿄전력의 예에서 보듯이 일본의 노사화합은 철저히 회사는 직원을, 직원은 회사를 위하는 ‘상생의 노사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여기에 렌고(連合·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가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렌고는 회원수 765만여명으로 일본에서 규모가 가장 큰 노조연맹.61곳의 크고 작은 노동조합이 가입해 있다. 도쿄전력에 들른 뒤 인접해 있는 렌고 본부를 찾았다. #렌고의 탄생은 노사 갈등의 산물 취재에 응한 다다요시 구사노 사무국장은 “렌고는 노사 갈등의 후유증을 이겨내기 위해 노동조직끼리 자연스레 의기투합해 형성된 이익단체로 규정할 수 있다.”며 “일본이 ‘잃어버린 10년’을 무난히 버텨내고 새로운 경제활력을 되찾아 가는 이면에는 렌고의 역할이 컸다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렌고는 총평, 동맹, 신산별, 중립노련 등 4개의 중앙 노동조직이 통합돼 1989년 출발했다.50년대초부터 시작된 노사의 극한 대립구도로는 노동자도, 회사도 생존하기 어렵다는 점을 깨달은 게 작은 출발점이었다. 이후 생산성본부가 만들어진 계기가 됐다. 지금의 사회경제생산성본부의 효시다. 생산성본부는 당시 ▲노사협의 충실화(사전협의) ▲생산성 향상(경제적 효과) ▲기업의 성장을 통한 고용증가 등 3대운동을 줄기차게 펼쳤다. 렌고가 힘을 얻으면서 매년 5월쯤이면 노조의 연례행사처럼 등장하는 춘투(春鬪)가 차츰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한 업체가 노사협상을 위해 투쟁전선을 형성하면 다른 업체들이 잇따라 모방하는 춘투(春鬪)는 ‘쓸모없는 유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일본 경제단체연합회(경단련) 노동정책본부의 쓰네유키 다나카 기획조사그룹장은 “일본에서 춘투는 매스컴에서 가끔 등장하는 용어에 불과하다.”며 “지금의 노사관계는 서로 토론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춘토(春討)’로 자리매김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같은 현상은 일본의 각종 통계자료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2003년 연합총합(連合總合) 생활개발연구소가 민간기업에 근무하는 노동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노동조합에 관한 의식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노조와 회사의 관계에 대해 ‘조합이 양보하고 있다.’는 응답이 49.2%였다. 반면 ‘회사가 양보하고 있다.’는 응답은 8.0%,‘어느 쪽도 양보하는 것이 없다.’는 17.0%였다. 노조가 회사를 위해 더 많이 양보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말해 주고 있다. 도쿄전력 노조의 다카시 가와타 중앙서기장은 “일본 노사는 협력관계의 틀이 잘 짜여져 있다.”며 “다만 노조가 회사를 위해 어디까지 양보할 수 있느냐의 문제는 앞으로 고민해야 할 대목”이라고 말했다. #春鬪→春討로… 다음 목표는‘고용과 사회복지’ 하지만 노사화합은 더 이상 렌고의 목표가 아니다. 일본의 실업률은 2%대에서 5%대로 높아지고 있고, 고령화 문제로 사회가 골머리를 앓고 있어서다. 그런 맥락에서 렌고가 고용과 사회복지를 향후 과제로 삼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렌고는 4년 전부터 실업자 140만명의 일자리찾기 운동을 전개해 오고 있다. 이 운동에는 경단련도 적극 동참하고 있다. 렌고는 아울러 2002년 10월 ‘21세기 사회보장 비전’이란 보고서를 마련해 출생에서 성장기에는 아동복지를, 취업·결혼·출산 등을 위해서는 의료·육아지원 등 각종 복지와 고용보험 등을, 퇴직 이후에는 연금으로 생계를 꾸려갈 수 있는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정부측과 협의를 통해 차근차근 밟아가고 있다. 사회보장기금 신설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노사화합의 공생관계 모델 구축을 통해 일본경제 회복의 원동력이 됐던 렌고. 이제는 새로운 일자리 창출과 노동자의 실질적인 사회복지를 통한 ‘일본의 새로운 10년’의 중추역을 자임하고 있다. bcjoo@seoul.co.kr ■ 고민하는 렌고 |도쿄 특별취재팀|렌고가 요즘 드러내 놓고 고민하는 문제가 바로 비정규직이다. 일본의 비정규직 비율은 1997년 24.6%(1260만 5000명)에서 2004년 34.5%(1690만 2000명)로 약 10%포인트 상승했다. 숫자로는 430만명 증가했다. 반면 정규직은 75.4%(3854만 2000명)에서 65.5%(3208만 8000명)으로 645만명 줄었다. 앞으로 적절한 정책 대응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수년내 비정규직이 전체 고용자의 50%에 육박할 것으로 렌고는 추정하고 있다. 비정규직 가운데 골칫거리가 이른바 ‘프리터’(FREETER·대학을 졸업했지만 뚜렷한 직장없이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와 니트족(NEET:Not in Employment,Education or Training·교육이나 기술습득은 물론 구직활동도 하지 않으려는 사람). 일본 국민백서에 따르면 프리터는 98년 182만명(가사노동 포함)에 불과했으나, 이후 줄곧 늘어 2003년말에는 450만명으로 급증했다. 이는 청년층(15∼34세)의 약 20%에 해당되는 숫자다. 니트족의 문제도 심각하다. 일본 총무성의 노동력조사 연구에 따르면 1995년 29만 4000명이던 것이 2000년에는 75만 1000명(청년층 인구의 2.2%),2005년에는 87만 3000명(2.7%)으로까지 늘어날 전망이다.2010년쯤에는 98만 4000명(3.4%),2015년 109만 3000명(4.1%),2020년 120만 5000명(4.8%)으로 추산되고 있다. 일본 사회경제생산성본부 관계자는 “니트 인구 및 비정규직의 증가는 직접적으로는 노동 투입을 감소시키는 한편 간접적으로는 자본투입에도 영향을 미쳐 잠재성장률의 저하요인으로 작용할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일본 제일생명경제연구소는 니트족의 증가에 따라 잠재성장률이 2000∼2005년 0.25% 포인트,2005∼2010년 0.28% 포인트 줄어들고 2020년쯤에는 잠재성장률(1.47%)이 0.72%로 반감될 것으로 추산했다. bcjoo@seoul.co.kr ■ 구사노 렌고 사무국장 |도쿄 특별취재팀|“산업(업종)별로 키울 것은 키우고, 줄일 것은 줄여주는 역할을 렌고가 해야 합니다. 기업의 경쟁력이 확보되지 않고는 개인이 잘 될 수 없습니다.”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렌고)의 구사노 다다요시 사무국장은 “앞으로 노동시장이 유연해지면서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사람이 많아질 것”이라며 “대기업-중소기업, 정규직-비정규직의 양극화를 줄이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말했다. 구사노 사무국장은 도쿄대를 졸업한 뒤 1953년 닛산자동차에 입사해 당시 노조원으로 100일간의 임금투쟁에 참여하는 등 노조활동에서 강성 인물이었다. ▶일본의 노사관계를 평가해 달라. -전체적으로 협력관계가 정착됐다. 하지만 민간기업과 달리 공무원노조는 노동기본권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아직도 대립적 요소가 강하다. ▶일각에서는 ‘렌고의 비투쟁성을 빗대 일본 노조는 죽었다.’는 얘기도 하는데. -렌고가 업종별 임금상승안도 내놓지 않고 뭐하느냐는 비난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노동자의 기본생활을 보장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게 렌고의 생각이고 역할이다. 지난해부터 대기업보다 임금이 적은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임금기준을 금액까지 정해 주고 있다. ▶앞으로 렌고의 역할은. -사회보장제도와 고령화 사회에 대비해야 한다. 이는 노조만으로는 안된다. 정부도 적극 나서야 한다. 고이즈미 총리는 시장경제 지상주의에 빠져 있다. 시장에 맡기면 모든 게 해결된다는 식이다. 하지만 약육강식의 사회를 가속화시키면 약자만 더 어렵게 되고, 그렇다고 경제상황이 하루아침에 크게 나아지지도 않는다. bcjoo@seoul.co.kr
  • [CEO칼럼] ‘住託복합 아파트’로 가족 되찾자/이해익 리즈경영컨설팅 대표

    [CEO칼럼] ‘住託복합 아파트’로 가족 되찾자/이해익 리즈경영컨설팅 대표

    세상이 변한 만큼 주거양식도 참 많이 변했다.30여년 전만 해도 서울의 아파트는 이촌동 일대와 반포가 고작이었다. 일찍 깬(?) 일부 시민만 아파트에 들어가 살았다. 시민 대다수는 층층 겹겹이 사는 아파트를 ‘닭장’이라고 비아냥대기도 했다. 또 땅기운을 쐬지 못한다며 거부하기도 했다. 손바닥만한 마당이지만 담장 밑에 채송화라도 몇 그루 심고, 한 여름에는 수도꼭지를 틀어 시원한 물을 뒤집어쓰며 등목을 즐기는 집을 선호했던 것이다. 물론 불편한 점도 있었다. 아침 출근과 등교시간 전 장독대와 연탄 저장창고 옆에 붙은 재래식 화장실에서 서로 먼저 볼 일을 보겠다는 식구들의 실랑이가 대표적인 사례였다. 그러면서도 작은 집에서 3세대 6∼7명이 티격태격하면서 용케도 잘 살았다. 그러다가 분가가 시작되고 핵가족화가 급격히 번졌다. 집의 수요가 폭발했고, 아파트가 불가피하게 확산됐다. 아파트는 도시화의 대세가 됐고 또한 편리함에 주부들은 열광했다. 편리함을 맛 본 고객은 더욱 달콤한 편리함을 추구하게 마련이다. 아파트 단지에 별도로 있는 상가를 아예 아파트 동으로 끌어들였다. 이것이 주상(住商)복합아파트다. 강남의 주상복합아파트는 각종 시설과 고급 인테리어를 무기로 평당 3000만원을 넘나들며 인기리에 분양되고 있다. 한창 치솟는 부동산 열기가 건설회사나 주상복합아파트 분양자 모두 ‘누이 좋고 매부 좋고’다. 핵가족들이 편리하고 부유해진 만큼 ‘가족’들은 갈 곳이 막막해졌다. 얼마 전 80대 노인이 7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는 자주 “자식들한테 짐만 된다.”며 한탄을 했다고 한다. 노인 자살이 급증하는 것은 연금 등 사회 안전망이 미흡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가족 해체 현상으로 자녀들의 노인 봉양 역시 기대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한국의 평균 수명 증가율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0개국 중 최고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2년 한국 남성은 73.4세, 여성은 80.4세로 증가했다. 결혼은 하되 아이는 낳지 않겠다는 이른바 ‘딩크족’도 급증하고 있다. 출산포기는 육아부담 때문이다. 현재의 출산율은 1.17명으로 OECD국가 중 최저라고 한다. 저출산과 고령화라는 2중의 충격이 한국의 미래를 위협하고 있다. 그래서 정부는 신혼부부 주택마련 모기지제 도입과 육아휴직제 등 연구에 부산을 떨고 있다. 노인문제와 출생육아는 눈앞에 닥친 과제다. 연금이나 양육비 지원과 같은 돈 만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연금도 눈덩이처럼 커지는 부담을 당해 낼 재간이 없다. 양육비보조도 그렇다. 육아휴직제도 그만큼 노동력 공급을 저해한다. 따라서 주거와 상가라는 편리를 합친 주상복합아파트와 같은 발상으로 복지를 더해야 한다. 아파트에 탁아소와 병약한 노인을 맡기는 탁노소(託老所)가 함께 하는 ‘주탁(住託)복합아파트’가 나올 차례다. 이를 테면 지하실과 3∼4층까지는 상업공간과 함께 탁아소·탁노소를 의무적으로 짓도록 한다. 아이와 병노인은 집 가까이 맡기는 게 편하고 안심이다. 어린이 동산과 노인들의 오락과 건강 시스템을 보태는 것은 당연지사다. 탁아소와 탁노소가 많이 생기면 넘치는 청년실업자와 장년실업자의 고용창출에도 대단히 보탬이 된다. 여기에 지역사회와 교육기관의 자원봉사 시스템을 덧붙이면 금상첨화다.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에게는 일정시간 봉사토록 한다. 그래서 재정부담을 덜고 청소년들이 삶의 체험 현장에서 지혜를 습득할 수 있도록 해주면 나라의 미래가 밝아진다. 돈과 편리성보다 ‘가족’을 되찾아야 한다. 이해익 리즈경영컨설팅 대표
  • [시론] 저출산대책, 공염불 되지 말아야/박은태 인구문제연구소 이사장

    [시론] 저출산대책, 공염불 되지 말아야/박은태 인구문제연구소 이사장

    인구성장의 단계를 보면 1965년 농경사회의 우리나라는 해방 이후 만주와 일본 등지에서 귀환한 동포와 1950년 한국전쟁 이후 베이비붐으로 인한 증가로 합계 출산율은 6에 달해 인구성장은 2.8%를 넘었다. 1980년대 개발경제를 거쳐 산업사회에 진입한 우리의 인구환경은 변화하기 시작, 출산율은 3으로 줄었고 선진국에서 100여년 동안 경험한 다산다사(多産多死)의 인구구조에서 소산소사로 전환하는 변천기를 맞게 됐다. 오늘날 후기산업사회의 디지털시대를 맞은 우리의 출산율은 OECD 회원 국가 평균출산율 1.5보다 낮은 1.19의 최하위권 출산율을 나타내고,2005년 통계는 1.15를 밑돌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와 같은 급격한 저출산은 고령화로 진행되어 인구정책의 일대 전환이 요망되고 있다. 한국의 인구성장은 2019년에 정점에 이른 뒤 하강국면으로 돌아서서 인구성장은 감소추세로 반전돼 노인인구는 현재의 9.1%에서 20%를 상회해 고령사회로 진입함으로써 생산성의 저하로 국제경쟁력이 약화될 것이 우려된다. 현재의 출산율이 지속되면 2019년의 인구는 약 5000만명에 도달한 후에 인구성장은 정지 내지 하락추세로 전환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인구통계는 2050년에 4100만명으로 인구가 감소하고 50년 주기로 인구의 20%가 감소해 400년 내에 멸종위기에 처할 것이란 예상이다. 저출산대책은 프랑스와 같이 경제주체인 기업, 노동자, 소비자와 정부가 만장일치의 합의하에 중·장기의 출산장려 5개년계획을 수립해 2020년까지 출산율을 현재의 1.19에서 대치출산율 2.1로 높이는 특단의 정책실천이 수행돼야 한다. 출산·양육·교육의 종합정책 예산은 향후 15년간 약 750조원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현재의 국방비 지출보다 많은 GDP의 약 5%에 달하기 때문에 민·관협조체제의 지원책이 모색되어야 한다. 우리의 고령화 진도는 서구에서 100여년간 형성된 과정이 불과 30여년 만에 진전돼 서구처럼 제도화된 노인복지의 준비기간을 갖지 못했다. 이에 따라 우리사회는 속수무책의 난감한 처지에 있고, 설상가상으로 IMF 사태후 청년실업과 조기 명퇴의 영향으로 노인문제는 사회인식의 열외대상으로 전락했다. 현재 65세 이상의 노인인구는 418만명으로 경로연금 수혜자는 15%에 불과하다. 급격한 고령화 현상은 저출산과 연계되어 이미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 특히 호남·충북과 경북 등 산업시설이 열악한 농경지역에는 노인인구가 14%를 상회하여 이미 고령사회로 진입돼 고령화 문제에 대한 종합대책이 시급한 실정이다. 또한 고용문제를 장기적으로 타개하기 위한 산업인구정책으로 고용유발효과가 큰 산업체제로 개량이 필요하다. 경제대국인 미국·일본·독일·영국·프랑스 등은 무역의존도가 GDP의 30% 미만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73%로 고용과 해외경제에 민감하여 경제안보에 취약점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외수의존형 경제에서 선진국형으로 전환, 인구흡수력이 큰 산업육성이 필요하다. 출산기피는 자녀의 양육과 교육, 고용 불안 때문으로 산업인구의 인프라 구축이 시급하다. 저출산, 고령화대책을 실효성있게 추진하기 위해서는 프랑스의 가족법을 참작하여 법을 제정하고 인구대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프랑스의 가족법 성공요인은 지속성에 있다. 지금이라도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국가가 지속적으로 지원을 해준다는 믿음을 심어줘야 한다. 박은태 인구문제연구소 이사장
  • [월드이슈] 지구촌 ‘백색중독’ 실태·폐해

    [월드이슈] 지구촌 ‘백색중독’ 실태·폐해

    “우리는 지금 마약이라는 ‘괴물’과 싸우고 있습니다.” 유엔 마약범죄국(UNODC)의 안토니오 마리아 코스타 국장은 지난달 ‘2005 세계 마약보고서’를 발표하면서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처럼 강조했다.2003년 기준으로 전세계 마약 복용자 수는 성인 인구의 5%인 2억명을 넘어섰으며 전년에 비해 1500만명가량 늘어났다. 이번 조사대상 국가 가운데 44%는 마약 복용이 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된 반면 줄어든 국가는 25%에 그쳤다. 세계 전체 마약 시장규모는 연 3220억달러(약 335조원), 마약 생산량은 약 4만t에 달했다.2003년 각국 정부가 압수량 마약의 총량은 1985년에 비해 4배나 늘어났다. 코스타 국장은 “모든 지표를 종합해 볼 때 마약시장이 더 확대될 것은 분명하다.”면서 “마약 밀매가 인류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헤로인 늘고 필로폰 줄어 세계적으로 가장 폐해가 심각한 마약 종류는 헤로인과 코카인이라고 보고서는 지적했다.2003년 헤로인 복용자는 1060만명, 코카인은 1370만명으로 집계됐다. 남미지역에서는 전체 마약치료자 가운데 코카인 중독자가 58.5%를 차지했고, 유럽과 아시아 지역에서는 헤로인 등 아편류 복용자가 전체 마약치료자의 약 62%였다. 특히 코카인은 복용자가 전년보다 조금 줄어든 반면 헤로인은 전년보다 140만명이나 늘어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은 탈레반 정권 붕괴 이후 전세계 아편류의 87%를 생산하는 거대한 아편생산 공장으로 변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이 때문에 미얀마와 라오스 등 동남아시아에서 아편류 생산량이 크게 줄었는데도 2003년 전체 아편류 생산량은 2%, 원료인 양귀비 경작면적은 16% 늘었다.2003년 아편류 압수량은 110t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코카인의 경우 전세계 생산량의 절반을 차지하는 최대 생산국인 콜롬비아에서 생산량이 줄고 있는 반면 볼리비아와 페루에서 코카인의 원료인 코카 재배가 늘고 있어 우려를 낳고 있다. 미국에서 코카인 수요가 줄지 않고 있으며, 유럽에서는 최근 수요가 늘고 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반면 ‘한국 대표마약’인 필로폰(메스암페타민) 등 암페타민계 마약 복용자는 2620만명으로 전년보다 340만명 줄어들었다. 이는 2002년 태국에서 암페타민류 마약생산 공장에 대한 일제 단속을 벌인 것이 효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됐다. 암페타민계의 일종인 엑스터시 복용자는 약 790만명으로 나타났다. ●마약복용자 80%가 대마류 복용 대마초(마리화나)와 대마수지(해시시) 등 대마류는 상대적으로 다른 마약보다 중독성이 약한 것으로 평가되긴 하지만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사람이 복용하는 마약이다. 2003년 대마류 복용자는 1억 6090만명으로 전년보다 1000만명 정도 늘었다. 대마류 복용자는 전체 마약 복용자의 약 80%를 차지하고 있으며 전체 마약 압수량 가운데 52%가 대마류다. 마약 치료를 받은 사람 가운데 아프리카는 63.8%, 북미에서는 45.1%가 대마류중독자였다. 2003년 마리화나의 시장 규모는 1131억달러, 해시시는 288억달러로 대마류 전체는 1400억달러를 넘어섰다.1990년말에 비해 대마 중독으로 치료를 받는 사람은 북·남미와 오세아니아, 유럽, 아프리카 등 세계 거의 전지역에서 늘고 있다고 보고서는 분석했다.2003년 대마류 전체 생산량은 전년보다 25% 늘어났다. 마리화나는 세계 전역에서 광범위하게 생산되고 있는 반면 해시시의 경우 세계 전체의 80%를 생산하는 모로코에 집중돼 있다. ●마약주사기 통한 에이즈감염 급증 마약의 확산은 에이즈 확산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보고서는 HIV바이러스에 감염된 주사기를 마약투약에 사용하고, 이런 방식으로 에이즈에 감염된 마약 복용자가 성관계를 가지거나 출산을 하는 방식으로 마약 투약이 에이즈 확산을 촉진시킨다고 밝혔다. 마약 주사기를 통해 에이즈에 감염된 사람이 전체 에이즈 감염자 가운데 5∼10%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주사기를 통한 에이즈 감염 위험성은 에이즈 감염자와의 성관계보다 6배나 높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더욱이 헤로인 중독자는 보통 하루 1∼3차례 주사를 맞고 코카인 중독자는 더 자주 투약하기 때문에 그만큼 위험도는 더 높아진다. 마약중독자 집단 가운데 1명이 에이즈에 걸리면 다른 사람들에게 1∼2년 안에 감염될 가능성이 50∼60%나 된다. 보고서는 “아직 분석자료가 충분하지는 않지만 마약 투약이 에이즈 확산을 촉진한다는 사실은 확실하다.”면서 “특히 성매매여성이 마약을 투약하고 에이즈에 걸릴 경우 에이즈 확산 속도는 더욱 빨라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장택동기자 taecks@seoul.co.kr ■ ‘마약과의 전쟁’ 나선 중국 |베이징 오일만특파원|중국은 지금 ‘마약과의 전쟁’을 수행 중이다. 지난 78년 개혁·개방의 기치를 든 이후 선전이나 주하이 등 일부 경제특구로 스며들었던 마약이 수년전부터 빠른 속도로 전국으로 퍼지고 있어서다. 도시 유흥가에 머물렀던 마약이 최근 청소년과 대학생, 심지어 가정주부들로까지 파급되고 있다. 필로폰이나 케타민 같은 약물은 손쉽게 구할 수 있을 정도로 보편화돼 있다는 것이 중국 언론들의 지적이다. 아편 확산으로 청나라 몰락을 지켜봤던 중국 공산당은 마약을 ‘망국병’의 원흉으로 지목, 대대적인 근절을 선언한 것이다. ●작년 3만여명 마약중독 사망 지난해 말까지 중국의 마약 중독자는 공식적으로 79만 1000여명이다. 종류별로는 헤로인 중독자가 전체의 85.8%인 67만 9000명으로 가장 많다. 국가마약단속위원회는 최근 마약 중독자가 전년 대비 6.8% 늘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통계에 잡히지 않는 마약 중독자가 상당수 누락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마약 확산 속도와 비례해 중국 당국의 단속도 강화되고 있다. 지난해 마약 밀매 조직원 6만 7000명을 구속하고 헤로인 10.8t을 압수했다. 압수된 엑스터시도 300만개로 전년보다 8배나 늘었다. 지난달 푸젠(福建)성 마약 밀매조직원 10명을 공개 처형하고 전국적으로 ‘마약 추방대회’를 갖는 등 대중 운동의 성격으로 전환을 꾀하고 있다. 마약으로 인한 피해는 천문학적으로 늘고 있다. 지난해 마약으로 인한 사망자는 3만 3975명으로 집계됐다. 마약 중독으로 인한 손실은 지난해 3조 5000억원을 초과했고 매년 30% 이상씩 늘어나는 추세다. 베이징(北京) 마약금지위원회 피이쥔(皮藝軍) 박사는 “에이즈 감염자 8만 9067명 가운데 마약 중독자가 41.3%를 차지했다.”며 “중국 노동 교도소에 마약투약 혐의로 수용된 재소자는 58만여명에 달한다.”고 심각성을 토로했다. ●마약중독자 70%가 35세이하 청년층 중국 마약 문제의 심각성은 청소년층은 물론 실업자와 농민들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79만명의 마약 중독자 가운데 35세 이하 청년층이 70%를 차지했다. 실업자와 농민이 각각 45%,30%로 집계됐다. 좌절한 실업자와 농민들이 마약의 유혹에 빠져들고 마약을 사기 위해 범죄자로 전락하는 악순환이 거듭되는 상황이다. 마약 단속이 허술한 농촌으로의 빠른 파급은 안그래도 파산 직전인 농촌 사회의 해체를 가속화시킬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중국 당국은 지난해부터 2008년까지 5년 동안 마약과의 ‘인민전쟁’을 선포했다. 마약과의 전쟁은 ‘5대 전선’을 통해 수행하고 있다.▲청소년 등에 대한 방어전략 ▲마약 중독자에 대한 대대적인 적발·보호 ▲국경 유통지역 차단 ▲불법 경로 차단 ▲중국 전역 타격 등이다. 중국으로 들어오는 주요 마약 루트는 동남아 지역의 ‘황금 삼각지대’와 중앙아시아 ‘황금의 초승달 지역’ 그리고 한반도 등 3개 통로이다. 윈난(云南)과 광시(廣西) 등 동남아 국경지역 등 산악루트와 광둥(廣東) 푸젠성 해안루트를 집중적으로 단속하고 있다. 양펑루이(楊鳳瑞) 국가마약단속위원회 상무 부주임은 “사방에서 마약이 유입되고 있으며 특히 황금 삼각지대에서 유입되는 것이 치명적”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는 “마약 문제는 아주 복잡하고 심각하다”면서 “이 때문에 정부는 마약과의 대규모 ‘인민 전쟁’을 벌이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유엔 마약협약´ 가입… 신고땐 거액포상 이런 맥락에서 중국은 지난 2002년 ‘유엔 마약협약’에 가입하고 필리핀과 말레이시아 태국 등 동남아 국가들과 마약 근절을 위한 공조 체제를 강화하는 등 국제 협력체제 구축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당국은 시민들의 상시 고발 체제를 구축했다. 장쑤(江蘇)성의 경우 마약 범죄자를 신고할 경우 최고 10만위안(1300만원)의 포상금을 지급하고 있다. 지난 4월 상하이 푸단(復旦)대에서 처음으로 청년 마약예방 봉사단이 설립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oilman@seoul.co.kr
  • [사설] 성장동력 회복 여성인력에 달렸다

    어제 세계 인구의 날을 맞아 통계청이 내놓은 ‘세계·한국 인구 현황’ 자료를 보면 세계에서 가장 가파르게 떨어지고 있는 한국의 출산율이 어떤 참극을 불러올지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당장 가장 왕성하게 일할 노동층인 25∼49세 인구가 2007년부터 감소세로 돌아선다. 범위를 넓히면 경제활동인구인 15∼64세 연령층도 2016년을 고비로 줄어들기 시작한다. 그 결과,2050년이면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령국가로 올라섬과 동시에 경제활동인구 1명이 15세 미만 또는 65세 이상 고령인구 1명을 먹여살려야 한다. 한마디로 암울한 미래를 예고하는 국가적 재앙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한 국가가 건전하게 성장·발전하려면 핵심 노동층이 지속적으로 공급·유지돼야 한다. 하지만 생산요소의 핵심인 노동의 역량이 우리나라처럼 하향곡선을 그린다면 미래 성장잠재력은 추락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최근 3년간 내수침체와 투자 부진이 겹쳐지면서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은 4% 내외로 떨어졌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터다. 따라서 추락하는 출산율과 치솟는 고령화 비율을 제어할 수단이 없다면 활용 가능한 다른 수단을 찾아야 한다. 성장잠재력 추락은 바로 청년층 일자리 창출 및 국가의 지속 가능성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상황에서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지난 1994년 47.8%에서 2003년에는 48.9%로 1.1%포인트 상승에 그친 점에 주목한다. 주요 선진국이나 경쟁국에 비해 여성의 경제 참가율이 15∼20%포인트 낮다는 뜻이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을 선진국 수준으로 높일 수 있다면 저출산율 충격을 상당 기간 상쇄할 수 있다는 해답이 나온다. 보육시설이나 육아 및 가족간호휴가제 확충 등 인프라 구축이 시급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與 “이젠 민생 매진” 野 “票지고 민심 얻어”

    與 “이젠 민생 매진” 野 “票지고 민심 얻어”

    ● “이젠 민생 구할것” 열린우리당은 7,8월을 민생정책 활동기간으로 삼아 현장 실천 운동에 매진한다는 계획이다. 지도부는 이 기간 소속 의원에게 외유 자제를 촉구했다. 한 핵심 당직자는 1일 “해임건의안 부결로 정국 운영의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다.”면서 “민생정책활동 추진단을 구성, 국민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실질적 성과를 마련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소속 의원을 분야별 10개팀으로 나누기로 했다. 자영업자 지원대책, 사회적 일자리 창출 대책, 청년 실업 대책, 농어촌 삶의 질 향상, 신빈곤층 지원, 기초 생활 보장 대책, 저출산 극복 대책, 고령사회 대책, 대기업과 중소기업 양극화 해소 대책, 비정규직 노동자 대책 등이다. 민생활동이 ‘반짝 이벤트’에 그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각 팀별로 현장 방문과 간담회, 정책토론회, 제도·입법화 과제 선정 등을 거쳐 8월 말 의원 워크숍에서 보고토록 할 예정이다. 또 오는 11일 문희상 의장의 취임 100일을 맞아 1박2일간 금강산을 방문, 화합을 다지고 정국 운영 방안을 논의키로 했다. 문 의장을 비롯, 상임중앙위원과 시·도당 위원장, 소속 의원 등 100여명이 참가한다. 한편 윤광웅 국방장관은 이날 국방부 차관보급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병영문화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국방개혁을 차질없이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票지고 민심 얻어” 한나라당 지도부는 ‘표결’엔 졌지만 ‘민심’은 얻었다고 투표 결과에 애써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당의 전반적 분위기는 약간 가라앉아 있어 보인다. 비주류 일각에서는 지도부의 느슨한 대응 전략을 비판하면서 책임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강재섭 원내대표는 주요 당직자 회의에서 “노 대통령이 오기 정치로 윤 국방장관을 구하는 데 성공했지만 엄청난 민심을 잃었다.”며 “정치는 지는게 곧 이기는 경우도 있을 수 있고, 또 이기는 것이 사실은 지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맹형규 정책위 의장은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의 야합에 의해 통과된 정부조직법 수정안, 윤 장관 해임건의안 부결은 원천적으로 무효”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지도부의 전략 부재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전재희 의원은 “여권의 부당한 정책 방향을 알린 의미는 있지만 근본적으로 잘못한 것을 견제하는 야당의 책무에 충실하지는 못했다.”며 “정부조직법 개정안의 경우 막으려면 확실하게 막았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이상배 의원도 “대응 자세가 조금 부족했다.”면서 “인사를 다루는 해임건의안을 제일 먼저 의결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반면 불가피론도 있다. 박형준 의원은 “강경 주장을 했던 분들은 불만이겠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지도부의 리더십이 흔들릴 만한 상황은 아니다.”고 지도부를 지원 사격했다. 박찬구 이종수기자 ckpark@seoul.co.kr
  • ‘정년퇴직 반대’ 전세계 확산

    ‘고령화 사회’에 들어서면서 정년퇴직에 대한 반대여론이 전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가 11일 보도했다. HSBC가 여론조사기관 해리스 인터액티브에 의뢰해 미국, 일본, 중국, 인도, 프랑스, 브라질 등 10개국의 1만 1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80%의 응답자가 ‘연령에 상관없이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답했다. 또 출산율은 낮아지고 평균수명은 늘어나면서 점점 증가하고 있는 사회적 부담을 줄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퇴직 연령을 높이는 것’이라는 의견이 45%로 가장 많았다. 세금을 올리자는 응답은 26%, 연금수령액을 낮추자는 의견은 15%에 불과했다. 응답자의 71%는 은퇴에 대비해 준비를 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노후에도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답한 사람은 14%에 머물렀다.‘이상적인 노후생활’을 묻는 질문에는 60% 이상이 일과 여가를 함께 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존 본드 HSBC 회장은 “고령화 사회에 따른 문제를 피하기 위해서 각국 정부와 기업, 금융기관들은 이런 새로운 추세를 이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노후생활을 바라보는 관점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에 큰 차이를 보였다. 인도에서는 생존을 위해 노후에도 일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고, 중국에서는 노년층은 노후를 휴식기간으로 여기지만 청년층은 더 나이가 들어도 일을 하고 싶어하는 경향이 강했다. 반면 일본인들은 건강과 가정생활에 깊은 관심을 나타냈다. 미국인들의 64%는 은퇴를 ‘새로운 기회’로 인식했다. 장택동기자 taecks@seoul.co.kr
  • [방현석교수의 테마로 읽는 호찌민] ③ 호찌민의 친구들

    [방현석교수의 테마로 읽는 호찌민] ③ 호찌민의 친구들

    1931년, 호찌민은 영국 식민지였던 홍콩에서 체포됐다. 베트남의 빈 지방법원이 궐석재판으로 호찌민에게 이미 사형을 선고했기에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영국 식민지 당국이 그를 프랑스에 넘기지 않고 추방조치만 취해도 호찌민은 대기 중인 프랑스의 인도차이나 총독부로 넘어가게 되어 있었다. 일단 인도차이나 총독부 손에 넘어가면 살아남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이때 호찌민에게 행운의 밧줄을 던진 사람은 영국인 변호사 프랭크 로스비였다. 변론을 맡은 그는 호찌민을 빅토리아 감옥에서 빼내 보원로드 병원으로 옮겼다. 호찌민이 병원에서 결핵으로 사망했다는 소문을 퍼뜨린 다음, 영국 식민지 당국과 협상을 통해 호찌민이 싱가포르로 빠져나갈 수 있도록 수완을 발휘한 것도 로스비였다. 그러나 싱가포르에 도착한 호찌민은 세관 관리들에 의해 체포되어 곧바로 홍콩으로 되돌려 보내졌다. 프랑스의 정보망을 따돌리고 호찌민을 탈출시키기 위해 이번에는 로스비의 부인까지 나섰다. 그녀는 친구인 라벤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홍콩 부총독의 부인으로 시인이기도 했던 라벤스는 지적이고 당당하며, 예의바른 식민지 청년에게 깊은 호감을 느꼈다. 호찌민이 영국 당국자의 호위를 받으며 몰래 상하이로 빠져나갈 수 있었던 것은 로스비와 라벤스 덕분이었다. 이것은 대단한 행운이었다. 그러나 우연한 행운이 아니었다. 호찌민은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강한 매력을 지닌 인물이었다. 적들조차도 그를 직접 겪었던 사람은 거의 예외 없이 그의 옹호자가 되었다.1945년 베트민의 근거지 떤자오에서 호찌민과 함께 지냈던 미국 공군 필런 중위는 훗날 호찌민을 아주 ‘온화하고 착한’ 사람이었다고 회고했다. 비슷한 시기에 프랑스군 정보관으로 인도차이나에서 일했던 장 라쿠튀는 ‘이 시대의 혁명가로서 이 정도 강한 인내로, 감히 힘의 질서에 도전할 수 있었던 사람이 달리 있었느냐.’고 되물었다. 1955년부터 1963년까지 호찌민을 수행하며 기록영화를 찍었던 안선(An Son) 감독은 1957년 호찌민의 해외순방 시절을 잊지 못한다.11개국을 연쇄방문 중이던 호찌민이 어느 날 아침 수행하고 있던 일행들에게 어려운 일이 없느냐고 물었다. 모두 없다고 대답했는데 26세로 막내였던 안선이 당돌하게 손을 들었다. “아저씨가 너무 빨리 걸어서 찍기가 너무 힘듭니다.” 호찌민은 유난히 걸음이 빨랐다. 더구나 안선은 좋은 그림을 얻기 위해 덩치가 큰 외국 기자들과 몸싸움을 벌이며 뛰어야 했다. “신문 기자들은 수첩 하나, 사진 기자들은 사진기 한 대만 들고 다니지만 전 카메라에 녹음기, 배터리까지 하면 10㎏을 넘게 메고 뛰어야 합니다.” 다른 수행원들이 모두 나무라는 눈길로 안선을 흘겨보고 호찌민의 눈치를 살폈다. 안선도 아차 싶었는데 정작 호찌민은 환하게 웃으며 알았다고 했다. 그날 호찌민은 자주 안선의 위치를 확인하고 걸음을 늦추어 주었다. 그래도 쉬지 않고 매일 밤 11시까지 계속되는 일정은 안선을 녹초로 만들었다. “침대에 눕자마자 잠이 들었죠. 그런데 잠결에 누군가 이불을 덮어주는 것이 느껴지는 거예요. 잠결에 얼핏 눈을 뜬 저는 깜짝 놀랐어요.” 벌떡 일어나려는 안선의 어깨를 호찌민은 지그시 눌렀다. 그리고는 이불을 목까지 끌어올려 덮어주고는 가만히 손을 흔들며 방을 나갔다. “정작 나는 그리고 나서 한숨도 자지 못했어요. 나는 일행 중에서 가장 어린, 아무 배경도 없는 촬영기사, 그것도 남부에서 올라온 사람일 뿐이었어요. 밤새 생각해보았는데 친아버지도 내게 그래 준 적이 없었어요.” 안선이 결혼해 아이를 얻은 다음이었다. 라오스국왕이 베트남을 방문해서 환영 연회가 열렸다. 연회가 끝난 다음 촬영장비를 챙기고 있는데 배웅을 나갔던 호찌민이 되돌아왔다. 그리고는 테이블 위에 남아 있던 사탕을 집어서 그의 주머니에 슬그머니 넣어주었다. 안선이 돌아보자 호찌민은 빙긋이 웃었다. “‘깜 험’ 가져다 줘.” 호찌민은 안선의 3살 난 딸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 지도자가 호 아저씨였어요. 아저씨 가까이 있었던 사람들 누구나 이런 비슷한 기억을 가지고 있어요. 내가 죽기 전에는 내 심장 속에서 아저씨를 빼낼 수 없을 거예요.” 올해 일흔 넷의 백발 노인이 되었는데도 호찌민을 회상하는 안선의 상기된 얼굴은 소년처럼 해맑았다. 호찌민 주변의 인물들을 만나면서 가장 의외였던 것은 혁명 운동의 전 기간을 통해서 호찌민이 다수파였던 적이 별로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인맥과 세력을 형성해서 정치를 했던 지도자가 아니었다. 권력을 앞세워 인맥을 구축하고 명분을 내세워 다수파가 되려고 하지 않은 드문 정치가가 호찌민이었다. 그렇다고 호찌민이 카리스마가 없는 지도자는 아니었다. 그 반대였다. 그는 아주 강력한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가진 지도자였고, 그의 곁에 포진한 매우 충성스럽고 유능한 인물들에 의해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훼손되지 않고 지켜질 수 있었다. 호찌민의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호위하며 베트남을 이끌어온 사람들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셋 있다. 쯩 찐과 팜 반 동, 보 응우옌 잡이 그들이다. 쯩 찐은 1941년 호찌민이 베트남에 돌아와 주재한 제8차 당 전체회의에서 총서기장을 맡은 인물이다. 호찌민은 그 자리를 맡아달라는 요청을 정중하게 사양하고 쯩 진에게 그 자리가 돌아가도록 했다.1920년대에 혁명청년회에 가담해 일찍 감옥생활을 한 그는 사교적이지 않았지만 원칙에 아주 충실한 사람이었다. 팜 반 동은 행정과 재정에 관한 능력이 탁월한 인물로 호찌민이 주석과 겸직하던 총리 자리를 넘겨주었다. 그는 베트남 정부를 수립하고 체계를 잡아가는 데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다. 특히 그의 ‘청렴’은 호찌민 정권의 위신을 높이고 대중의 신뢰를 얻는 데 기여했다. 보 응우옌 잡은 호찌민의 진영의 가장 출중한 군사 전략가였다.1944년 12월22일,34명의 대원으로 ‘베트남해방무장선전대’를 창설한 그는 1975년 사이공 함락작전을 성공시킬 때까지 무려 30년간의 저항 전쟁을 총지휘했다. 이 세 사람과 호찌민의 관계를 베트남 사람들은 ‘한 다리로 서 있는 학의 세 발가락’이라고 불렀다. 학이 베트남이라면 그 학을 받치고 선 한 다리는 호찌민이다. 그리고 그 다리를 견고하게 지탱하고 있는 세 발가락이 쯩 찐과 팜 반 동, 보 응우옌 잡이다. 그 중에서도 보 응우옌 잡은 호찌민의 가장 충실한 동지이자 제자였다.1940년 신혼이었던 잡은 호찌민의 호출을 받고 아내와 태어난 지 몇 달 되지 않은 첫 딸을 남겨두고 중국으로 갔다. 그가 떠난 다음 아내 우옌 티 꽝 따이는 프랑스 당국에 체포되어 고문을 받다가 죽었다. 아내의 언니인, 우옌 티 민 카이도 사이공의 군사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총살형을 당했다. 잡의 아버지도 훼에서 프랑스군에 체포되어 이빨이 다 뽑히는 고문을 당한 끝에 죽었다. 호찌민은 악명 높은 꼰다오 감옥에서 갓 출감한 팜 반 동과 함께 쿤밍으로 온 잡에게 옌안으로 가서 군사과학을 공부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여행허가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했다.1940년 6월22일 프랑스가 독일에 항복하자 호찌민은 두 사람에게 베트남으로 돌아갈 것을 명령했다. “우리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고국으로 돌아가서 이 상황을 이용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군사학을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베트남으로 돌아와 무장투쟁의 책임자가 된 잡의 활약은 눈부신 것이었다.34명의 대원으로 베트남해방무장선전대를 창설한 그는 이틀만에 프랑스군 초소를 공격하여 완승을 거두었다. 그 공격을 통해 무장선전대는 프랑스군의 무기로 무장하고 다음 공격에 나서, 다시 승리를 거두었다. 잡은 군대를 눈덩이처럼 불리며 북부 국경지대에 해방구를 확보해나갔다. 프랑스를 내쫓고 베트남을 삼킨 일본이 연합군에게 항복을 선언한 이튿날인 1945년 8월16일, 잡은 5000명으로 늘어난 해방군을 이끌고 하노이를 향해 진격했다. 하노이를 접수하고 1954년 디엔비엔푸에서 프랑스를 궤멸시키면서 잡은 세계적인 전략가로 명성을 얻었다. 군사전문가도 아닌, 일개 역사교사 출신에 불과한 잡에게 군대를 맡긴 이유를 묻는 외국기자들에게 호찌민은 대답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졸업장이나 증명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실재일 뿐이다.” 그래도 군단급 병력도 없는데 대장 계급은 지나치지 않으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호찌민은 명쾌하게 대답했다. “우리 베트남에서는 소장과 싸워 이기면 소장을 주고, 중장과 싸워 이기면 중장을 준다. 웨스트모어랜드 장군도 대장 아니었나. 이긴 잡도 당연히 대장이다.” 잡이 진정한 호찌민의 제자라는 사실은 디엔비엔푸 전투의 승리에서가 아니라 전술 변경 과정에서 확인됐다. 잡이 디엔비엔푸 전선에 간 것은 전투개시가 임박해서였다. 전선을 직접 확인한 잡은 ‘조기공격, 신속승리’ 전술이 중대한 오류임을 금방 발견했다. 프랑스군의 화력, 장비가 베트남을 압도하고 있었고, 포병과 공군까지 확보하고 있었다. 그러나 공격개시는 기정사실이 되어 있었고, 병사들은 결사항전의 결의로 불타고 있었다. 작전을 연기할 경우 최고조로 끌어올려 놓은 병사들의 사기가 땅바닥으로 떨어질 수 있었고 또 우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나 잡은 중국 군사고문이 지지하는 ‘조기공격, 신속승리’ 전술을 ‘완벽한 준비, 완전한 승리’ 전술로 바꾸자고 제안했다. 반발이 없을 수 없었다. 잡은 사령관이었지만 무조건 명령하지 않고 토론에 붙였다. 토론에서는 언제나 선명한 명분이 힘을 발휘한다. 잡은 인내심을 가지고 반대의견을 설득하고 공격을 연기했다. 그런 다음 병력을 대거 충원하고, 야포를 맨손으로 산꼭대기까지 끌어올렸다. 이 ‘조기공격, 신속승리’ 작전수립에 참여했던 32사단장 레쫑똔은 만약 그 때 잡이 와서 전술 변경을 결단하지 않았으면 베트남은 결코 프랑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라고 고백했다. 전선의 정치위원이던 팜 응옥 목의 의견도 다르지 않았다. “잡이 일단 멈추고 준비하자고 말했을 때 나는 옷을 벗어던지고 싶을 만큼 속으로 기뻤다.‘조기공격, 신속승리’ 전술에 따르면 자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면 죽음을 두려워하는 겁쟁이로 평가받을까봐 입을 열지 못했다. 아무도 하지 못하는 말을 잡이 했다.” 보 응우옌 잡은 디엔비엔푸의 전술 변경이 자신의 ‘지휘인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이었다고 최근에야 밝혔다. 명분 때문에 진실을 외면하고, 개인의 영예를 위해 인민을 희생시키지 않는 호찌민의 노선을 그는 언제나 견지했다. 호찌민이 운명한 다음 살아있는 지도자들 중에서 베트남인의 가장 큰 존경을 받는 그는 지난 4월30일에 열린 승전30주년 기념행사에서도 직접 연설을 하고, 전쟁 희생자들을 챙겼다. 그러나 그는 한 번도 자신의 스승이자 동지인 호찌민을 가리려고 하지 않았다.1975년 4월30일, 사이공의 대통령궁을 접수하고 가장 먼저 잠든 호찌민에게 찾아가 그 사실을 보고했던 잡. 자신의 공적에 대한 질문을 받은 그의 대답은 올해도 변함이 없다. “나는 호 아저씨의 노선과 방침을 직접 적용하고 실행해온 지휘관이었을 뿐이다.” 1983년 그가 ‘국가출산계획위원회’ 위원장에 내정됐을 때 거절할 것으로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다. 일본과 프랑스, 미국, 중국과 싸워 베트남을 지킨 전쟁영웅에게 그 자리는 모욕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태연히 자신에게 부여된 임무를 받아들였고, 지금도 그것에 대해 말이 없다. 베트남이 지금까지 권력의 암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은 잡과 같은 호찌민의 사람들이 호찌민 정신을 자신의 삶으로서 지켜내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방현석 교수 bang80@jowoo.co.kr ●자료 사진을 협조해주신 주한베트남대사관과 베트남통신사(VNA) 관계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특히 애써주신 베트남통신사 부 주이 흥 서울지국장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 [박근혜대표 본지 단독 인터뷰] “당권·대권 조기분리 논의 비례대표의원 확대해야”

    [박근혜대표 본지 단독 인터뷰] “당권·대권 조기분리 논의 비례대표의원 확대해야”

    “한겨울에 난로 하나로 꽃을 피우지 못합니다.”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4일 서울신문 구본영 정치부장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이런 비유를 경제해법으로 제시했다. 이어 “400조원이 훨씬 넘는 시중 부동자금만 쓸 수 있게 하면 경제가 살아날 수 있다고 봐요.”라고 진단했다. 경제를 살리려면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는 분위기부터 조성해야 한다는 논거였다.‘4·30 재보선 대첩’을 이끌어낸 여장(女將)에게 소회를 묻자 이런 경제론으로 연결지었다. 재보선 뒷얘기와 당 안팎의 주요 정치 현안에 대한 견해를 들어봤다. 다음은 문답 요지. 이번 선거에서 느끼신 점은. -국민들이 경제난의 원인을 다 알고 있어요. 현 정권에 있다는 것을 알아요. 정부와 여당이 민생과 상관없는 국가보안법과 과거사법 같은 것에만 전력을 쏟다보니 거기에 대한 실망감이 이번 선거를 통해 표출된 것이라고 생각해요. 지원유세를 할 때 그 말만 하면 박수가 나오더라고요. 경제 살리기를 위해 시급한 과제가 있다면. -부동자금이 자연스럽게 투자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해야지 정부가 어거지로 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에요. 중소기업과 대기업이 떨어져서는 살 수 없는 만큼 공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힘을 합해 신바람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해요. 투자가 돼야 청년실업이나 신용불량자 문제도 풀 수 있다고 봐요. 이번 재보선이 어렵지 않았나요. -유권자들이 후보라든가 국회의원 개개인의 역량, 평소 노력, 나라 일이나 지역 일 열심히 보느냐에 대해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는 것 같았어요. 너무 힘든 선거를 치르다 보니 전우애가 싹텄다고 하더라고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었다면. -나이 드신 분들만 저를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20대 젊은이들과 10대 초등학생들까지 휴대전화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걸 보고 기뻤습니다. 젊은이들과 사진도 많이 찍었어요. 어떤 초등학생은 ‘한수진 한수진’ 하면서 이 다음에 커서 한나라당으로 갈테니 자기 이름을 잘 기억해달라고 하더군요. 6곳 중 5곳에서 승리했다고 하나, 앞으로 호남지역에서 재보선이 이뤄진다면 선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꾸준히 노력하고 있어요. 호남에서도 후보를 내려고 애를 많이 쓰고 있는데 그동안에는 신청자도 없고 해서 아직 후보를 못내고 있는데…. 앞으로는 호남에서도 후보를 낼 수 있도록 더 노력할 겁니다. 여야 모두 그렇지만, 한나라당의 공천시스템에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인데. -그동안 밀실공천이라든가 그런 얘기들이 많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새로운 시스템에서 공천심사위에 모든 것을 맡겼는데 그 나름대로 성과가 있었다고 봐요. 하지만 과연 주민의 뜻을 제대로 반영했느냐 하는 점에서 일부 문제점도 나타났어요. 앞으로 부족한 점을 보완해 나가면 될 거라고 봐요. 일각에서는 지역주의를 깨기 위해서라도 비례대표 국회의원 수를 늘려야 한다고 하는데요. -지역주의를 깨는 것보다는 국민 생활과 외교·안보 등 국내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초첨을 맞춰야 한다고 봐요. 직능별 정책전문가들이 많이 활동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비례대표 늘리는 것은 찬성해요. 우리 사회는 여전히 이념적 성향상 진보·보수로 나눠져 있고, 한나라당이 시대 변화나 젊은 층의 정서를 읽는 데 둔감하다는 지적도 있는데요. -진보·보수 싸움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낡은 틀은 시대가 지난 일이고, 그런 것을 갖고 국민을 가르고 분열시켜서는 안된다고 봐요. 한나라당에서는 ‘공동체 자유주의’를 새로운 이념적 좌표로 택했어요. 공동체 안에서 개인에게 최대한의 자유를 보장하고, 개인의 경쟁을 통해 국가경쟁력을 높이자는 취지예요. 경쟁에서 밀려나는 개인을 국가 차원에서 책임지고 돌봐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공동체 자유주의는 제3의 길일 수 있습니다. 최근 대선에서 세번 패배하지 않겠다고 말했는데 이번 선거를 통해 자신감을 얻고 가능성을 느낀 건가요. -국민들이 원하는 대로 꾸준히 바뀌어야 합니다. 하루 아침에 사랑을 받을 수는 없다고 봐요. 당 혁신이나 재보선 이런 것들이 쌓여서 국민들의 지지를 받게 되는 거고요. 공식적으로는 대선 출마를 선언한 적이 없지만 사실상 대권 주자로 각인된 상황인데. -민생이라든가 외교안보라든가 당장 해결해야 할 현안이 너무 많아요. 그런 현안부터 해결하는 게 야당 대표의 도리 아닐까요. 박 대표를 제외하고 어떤 분이 유력 대선 주자로 부상할 것 같나요. -(박 대표는 웃음으로 대신한 뒤) 저도 당연히 꿈이 있고요. 이런 나라의 모습이 되었으면 좋겠다하는 그 꿈을 이루고 싶은 거죠. 저도 제가 꿈꾸는 그런 나라에 살고 싶어요. 국민들이 편안하고 잘사는 나라를 만들고 싶다는 꿈 때문에 정치를 하고 있어요. 최근 민간정부 집권과정에서 독자적으로 정권을 창출한 정당은 없었다. 한나라당도 차기 대선에서 특정 정파와 연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리는데. -지금은 그런 얘기를 한다는 게 의미 없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우리가 어떤 가능성을 차단하고 할 필요는 없지만 그것도 다 국민의 뜻과 같이 가야 합니다. 눈앞의 이익을 위해 정치논리나 당리당략으로 그런 것을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요. 어떻게 전개될 지 모르는 일이지만 지금은 그런 계획이나 생각하는 것 없어요. 북핵 문제가 계속 꼬이는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과거 북한 김정일 위원장을 만난 적도 있는 것으로 아는데 대북 특사를 맡을 의향은 없습니까. -마다할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돌아가는 상황이 하루가 지날수록 꼬이고 있거든요.3년전 북한에 갔을 때 김정일 위원장에게 북한도 국제사회의 일원이 돼야 하고,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고 얘기했어요. 그러기 위해선 남한이나 국제사회에 한 약속을 꼭 지켜달라고 했어요. 결혼은 안하실 생각인지.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이 오고 가는 것이라고 하든데 시집가고 장가가고 시집오고 장가오고…(다소 당혹스러웠던 듯 겸연쩍은 미소와 함께 수줍어하는 모습도 내비쳤다.) 박 대표를 보면 박정희 전 대통령이나 육영수 여사를 떠올리게 되는데 정치인 박근혜의 독자적 이미지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나요. -아이구, 이젠 그런 말 그만할 때가 안됐나요. 저는 독자적으로 어떻게 하겠다고 생각하며 정치한 적이 없어요. 다만 시대에 맞는 정치, 국민에게 도움되는 정치를 하고자 했을 뿐이죠. TV 드라마 ‘제5공화국’에서 박 대표 역할하는 탤런트를 봤나요. -시간이 없었어요. 선거를 치르느라 밤에 늦게 들어오고 새벽에 나가고, 민박하고 하느라 한번도 못봤어요. 교육문제에 대한 관심도 큰 것으로 아는데. -우리나라는 사람만이 자산이라고 봐요. 자녀들을 훌륭하게 키워야만 국가경쟁력도 생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념 과잉, 하향 평준화, 극심한 관치 등에서 빨리 벗어나야 하고, 학교와 교사에게 자율권을 많이 줘야 한다고 봐요. 그런데 현 정부의 교육방향은 밑으로 같이 끌어내리는 쪽으로 가는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지난번 결혼한 동생 지만씨 부부로부터 조카가 생기게 되셨는데. -동생의 결혼으로 기뻤고 출산을 기다리고 있어요. 딸·아들 구분하지 않습니다. 대담 구본영 정치부장 kby7@seoul.co.kr 정리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박근혜대표 인터뷰를 마치고 4·30 재보선의 열기가 채 가라앉지 않은 가운데 4일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를 만났다. 여의도의 한 음식점에서였다. 유세전에서 강행군하느라 감기 기운이 있다고 참모들이 귀띔했다. 하지만 승자의 여유 때문일까,1시간40분여 동안의 인터뷰 내내 꼿꼿한 자세였다. 이 때문인지 사진으로만 본 박정희 전 대통령의 강단있는 표정과 육영수 여사의 단아한 이미지의 편린이 약간씩겹쳐져 느껴졌다. 문득 거물 정객이었던 고 김윤환(허주) 전 의원이 초선 의원 때의 그를 두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즉 “국가경영 수업 면에서 퍼스트레이디 1년 경험이면 금배지 3번 다는 것 이상이다.”라는 언급이었다. 박 대표가 적지 않는 기간동안 퍼스트레이디 역을 수행한 경험의 잠재력을 평가한 것이겠지만, 기자는 당시 솔직히 귀담아 듣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번 유세장에서 그는 “10대 소녀들로부터도 악수나 카메라폰 공세를 받았다.”고 토로한 데서 짐작되듯 만만찮은 대중성을 보여줬다고 한다. 그 대중성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부모의 ‘후광’에만 기인하는 것인지, 다른 ‘무엇’에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한나라당이 재보선 등 전투에는 강하지만 전쟁(대선)에는 약한 이유는 뭐라고 보는가.”,“영화 그때그사람 등의 기획의도가 뭐라도 보나.”라는 등 거북해할 만한 질문을 연거푸 던져보았다. 하지만 얼굴 표정이나 매무새는 별반 흐트러지지 않았다. 대신 “나는 (당략이나 개인적 이익 등)정치공학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국가에 이익이 되느냐를 기준으로 정치를 할 것”이라는 원칙론을 또박또박 피력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어수선한 가운데서도 일행 중 의자를 가장 반듯이 정리하고 자리를 뜨는 뒷모습을 보고 다시 한번 허주의 언급을 곱씹어 보았다. 구본영부장 kby7@seoul.co.kr
  • [문화마당] 종교가 해야 할 일/강주헌 펍헙에이전시 대표· 번역가

    1997년 우리 경제가 IMF의 관리를 받기 시작하면서 출판계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이른바 성공학에 관련된 실용서가 많이 팔리기 시작했고, 출판계가 큰 불황에 빠진 지금도 실용서는 꾸준히 팔린다. 이같은 실용서들의 뿌리에서 읽히는 정신은 무엇인가. 개인의 경쟁력 강화가 곧 국부의 근간이며, 시스템이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개인의 변화가 없으면 그 훌륭한 시스템도 무용지물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자기계발을 장려하는 책은 영국인 새뮤얼 스마일스(Samuel Smiles)의 ‘자조론’이 원조로 평가되지만 본격적인 시작은 한 세기 이상 전에 미국에서 시작되었다.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미국은 깊은 불황에 빠졌고, 현재의 우리처럼 수많은 청년이 일자리를 잡지 못하고 실업자로 지내야 했다. 그리고 많은 미국인이 실의에 빠졌다. 이렇게 좌절감에 빠진 미국인들에게 희망의 불꽃을 던져준 사람들은 기독교의 한 종파인 유니티교파였다. 그들은 ‘신사고 운동’을 펼쳤다. 종교의 교리보다 삶과 행복에 대한 실질적인 철학을 가르쳤고 긍정적 사고방식을 강조하면서 생각이 갖는 무한한 힘을 강조했다. 이런 가르침은 데일 카네기를 거쳐, 우리나라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된 ‘생각하라! 그러면 부자가 되리라’의 저자인 나폴레온 힐까지 이어졌으며 요즘의 실용서들에서도 면면히 이어진다. 우리나라 기독교 교리의 기준에서 유니티교파가 이단종파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 한 종파의 가르침이 오늘날의 미국을 만들어가는 데 큰 역할을 해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교세의 확장을 목표에 두지 않고 좌절에 빠진 미국인들에게 희망을 불어넣는 데 역점을 두었다. 그들이 책을 쓸 때마다 빠뜨리지 않았던 가르침이 그 증거다. 수입의 10%는 가난한 사람를 위해서 쓰라고 가르쳤다. 교회에 그 만큼을 헌금하라고 가르치지 않았다. 미국의 기부 문화는 여기에서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추론이 맞다면 미국의 기부 문화는 100년의 전통이 만들어낸 결실인 셈이다. 100년 이상의 시간이 지났고 지리적 공간도 다르다. 우리는 청년실업을 비롯한 온갖 사회적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고령화사회로 접어들었다는 염려는 있지만 그 해결책은 눈에 띄지 않는다. 저출산 문제로 미래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고, 저출산의 원인으로 육아비용과 과도한 사교육비가 거론되지만 대책이라고는 출산 장려금이 전부이다. 고등학교 1학년들은 내신평가방법에 불만을 품고 집단시위까지 계획하며 자살이란 단어를 서슴없이 거론하지만 교육부는 딴청이다. 교사들은 교원평가제에 원칙적으로 찬성하지만 그들의 요구를 먼저 들어달라고 고집을 피운다. 속시원하게 해결되는 것이 하나도 없는 실정이다. 한 세기 전 유니티교파가 미국에서 그랬듯이 우리 종교계는 그런 일을 해낼 수 없을까? 우리나라에서 꽤나 유명한 사람들에게 종교가 뭐냐고 물으면 기독교이거나 불교이다. 하여간 종교가 없는 사람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둘 중 하나이다. 이렇게 풍부한 자원을 가진 우리가 기적을 이뤄내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들이 기꺼이 시간을 내어 교회나 절을 근거로 제2의 교육자가 된다면, 목사나 스님이 그들에게 교회나 절을 교육의 장으로 기꺼이 개방해준다면 수능시험을 앞두고는 내 교회, 내 절에 다니는 학생들을 위해 앞다퉈 기도회를 갖는 외식적 행위보다 훨씬 나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으리라. 하지만 우리 교회나 절을 들여다보면 회의적이다.“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라는 예수의 가르침이나,“모든 사람들을 부처님으로 섬기며 공양하라.”는 불교의 가르침은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경계를 짓지 말고 남을 공경하라고 가르치고 있지만 전혀 그렇지 못하다. 예수와 부처는 스스로 고행의 길을 택했지만 지금의 성직자들은 호의호식에 길들여진 듯하다. 두 분은 결코 이름을 얻는 데 힘쓰지 않았지만 지금의 성직자들은 이름을 남기려 안간힘을 쓰는 듯하다. 경전의 가르침과 다른 삶을 사는 그들을 누가 믿고 따르겠는가. 그들부터 변할 때, 한 세기 전 유니티교파가 지금의 미국을 강대국으로 만드는 데 일조를 했듯이 우리 종교계도 대한민국을 진정한 소강국으로 키워가는 데 큰 역할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강주헌 펍헙에이전시 대표·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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