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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다운 기업들] 두산-불우이웃 돕기 매년 30억 쾌척

    [아름다운 기업들] 두산-불우이웃 돕기 매년 30억 쾌척

    #사례 1 캐나다 오타와에 가면 의족을 한 청년의 동상이 서 있다. 암으로 잘라낸 한 쪽 다리에 의족을 댄 채 캐나다 전역을 달렸던 테리 폭스의 동상이다. 그는 22살에 세상을 떠났지만 지금도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그의 뜻을 살리는 희망의 마라톤 대회가 열린다. 두산매거진 임직원들은 2005년부터 3년째 이 대회에서 뛰고 있다. 대회 참가를 통해 조성한 기금은 전액 암 퇴치 연구비로 전달한다. #사례 2 올여름 주요 방송사들은 독도에서 수돗물이 콸콸 쏟아지는 장면을 내보냈다. 물이 부족해 빗물을 받아 샤워를 해야 했던 독도 1호 주민 김성도씨 부부와 경비대원들이 함박웃음을 짓는 모습도 함께 전파를 탔다. 두산중공업이 지어 기증해준 담수 설비 덕분이다. 바닷물을 생활용수로 바꿔 주는 이 담수설비는 두산중공업이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한다. 두 가지 사례에서 보듯 두산그룹의 ‘나눔경영’은 모든 계열사의 예외없는 참여를 통한 ‘조직형’, 각 기업의 장기와 사회의 수요를 접목시킨 ‘맞춤형’으로 요약된다. 보여주기식의 형식적인 공헌이 아니라는 얘기다. 두산그룹의 나눔경영은 ▲사회복지 ▲문화예술 ▲학술교육 ▲환경보전 ▲생활체육 ▲산학협동 크게 6개 분야로 나뉘어 진행된다. 그룹측은 “기업 나이가 올해 111살”이라며 “대한민국 최고(最古) 기업에 걸맞게 사회공헌도 체계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 분야를 세분화했다.”고 밝혔다. 110살을 넘기면서 해마다 내는 불우이웃돕기 성금도 액수를 대폭 올렸다.2005년 12억원에서 지난해 30억원을 내놓았다. 올해도 30억원을 맡겼다. 재난 현장에도 한걸음에 달려가 구호활동을 펼친다. 그 중심에는 계열사별 봉사 동아리가 있다.1995년 1월 발족한 두산중공업 큰사랑회는 전체 직원의 80%(4000명)가 회원이다. 아무리 바빠도 한 달에 두 번은 회원들이 번갈아 복지시설들을 돌며 봉사활동을 펼친다. 지난해에는 ‘전국자원봉사대회’에서 우수 단체상을 받기도 했다. 두산건설 여직원 모임인 ‘예지회’와 두산인프라코어의 ‘알뜰살뜰회’도 연말마다 일일 찻집과 떡집을 운영, 이웃돕기 성금을 모은다. 차(茶)를 팔지 않고 배달하기도 한다. 군 부대와 경찰들에게 무료로 차를 보내준다. 벌써 16년째인 ‘사랑의 차 나누기 운동’이다. 지금까지 배달한 차만 2846만 2800잔이다. 두산그룹의 나눔경영이 차별화되는 또 하나의 특징은 각 계열사의 ‘장기(長技)’와 연계시킨다는 점이다. 해수 담수화 설비 부문에서 세계 1위인 두산중공업이 독도에 담수설비를 기증한 것이 대표적 예다. 소주 ‘처음처럼’으로 유명한 ㈜두산의 주류사업부(주류BG)는 소주를 팔아 이웃을 돕는다.1999년부터 소주 한 병을 팔 때마다 10원씩 적립해 왔다. 전북 군산지역 청소년 장학재단에 전달한 8500만원과 지난해 태풍 ‘에위니아’ 수재민에게 전달한 6억 5000만원은 이 10원의 정성이 쌓여 나왔다. 같은 회사의 의류사업부(의류BG)는 지난해 말 유명 브랜드 제품을 팔아 수익금의 일부를 한국유방건강재단에 전달했다. 두산은 암 예방 활동에 유난히 적극적이다. 두산매거진 외에도 잡지 ‘W코리아’는 지난해부터 유방암 캠페인을 시작했다. 유명 연예인들의 손 모양이 찍힌 티셔츠 등을 팔아 유방암 무료검진 차량 구입 및 운행을 지원한다. 그런가 하면 건설 중장비 전문업체인 두산인프라코어는 굴착기 판매대금을 떼어 해외 낙후지역에 ‘희망학교’를 지어주고 있다. 창업주인 고(故) 박두병 회장의 뜻을 기려 1978년 출범한 연강재단은 학술교육 사업에 열성이다. 올해도 100명이 넘는 연강 장학생을 뽑아 총 4억여원을 지원했다. 초·중·고등학교 교사들의 역사탐방과 우수 과학교사들의 해외현장 시찰 사업도 꾸준히 전개하고 있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21일 TV 하이라이트]

    ●TV쇼 진품명품(KBS1 오전 11시) 요즘처럼 놀이문화가 다양하지 못했던 시절, 우리 선조들은 여가시간에 어떤 놀이를 즐겼을까? 삼국시대부터 전래된 쌍륙은 서양의 체스와 비슷한 모양의 쌍륙말 32개와 쌍륙판, 그리고 주사위 2개로 할 수 있는 놀이다. 이와 함께 비사치기 사방치기 등의 놀이를 할 때 사용했던 ‘목대’를 소개한다. ●해피선데이(KBS2 오후 5시30분) 울릉도를 떠난지 4시간. 거센 파도를 뚫고 불빛 한 점 없는 밤바다를 달려 마침내 독도에 도착한 1박2일팀. 대한민국 예능 프로그램 최초로 우리의 땅 독도에 역사적인 첫 발을 내딛는다. 대한민국 독도 경비대가 굳건히 지키고 있는 독도의 정상에서 그 어느 곳에서 보는 것보다 아름다운 일출을 맞이한 1박2일팀. ●시즌드라마 ‘옥션하우스’(MBC 밤 11시40분) 김우찬 화백의 제자이자 친밀한 관계로 유명했던 박인희가 기자회견을 열어 경매에서 고가에 낙찰된 김우찬 화백의 그림이 위작이라는 주장을 한다. 김우찬 화백의 부인은 진품이라고 계속 주장하고 그림을 산 갤러리 측은 재감정을 의뢰하게 된다. 윤재와 연수는 그림의 진위 여부를 추적한다. ●황금신부(SBS 밤 8시45분) 쓰레기 봉투를 내다버리던 한숙은 집 앞에 주차한 차 안에서 영민을 발견한다. 한숙은 결혼 반대가 혹 자신의 처와 관련이 있는지를 영민이 묻자 “정 궁금하면 나한테 물을 게 아니라 당사자한테 직접 물어보라.”고 나무란다. 영민은 “그 얘기는 긍정한다는 뜻이냐?”며 반문하고…. ●명랑주식회사(EBS 밤 9시) 홈패션을 손수 디자인해서 재단, 재봉을 다 하시는 어머니 채혜경씨와 그 옆에서 모든 보조를 하고 있는 아버지 박경원(지체장애5급)씨가 주인공이다.10여년 전 불의의 사고가 연속으로 일어나 절망적이었던 박경원씨 가족. 작년 불굴의 의지로 모든 장애를 극복하고 ‘예튼이불’이라는 홈패션 전문점을 창업했다. ●인사이드 월드(YTN 오전 8시30분) 이스라엘에서는 재활용 캔을 이용해 만든 예술작품에 대한 시상식을 통해 재활용에 대한 대중의 의식 변화를 꾀하고 있다. 스페인 스라소니는 토끼의 개체수가 줄자 멸종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이에 스페인 정부는 토끼의 개체수를 늘리기 위해 노력했고 결국 스라소니의 개체수도 늘어나게 됐다. ●겨울새(MBC 밤 9시40분) 경우 모가 영은의 순결을 거론한 그날부터 경우는 잠자리를 시모의 방으로 옮기고 단 한마디 말도, 아는 체도 않는다. 경우의 돌변한 태도를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영은은 병원으로 찾아가 경우의 오해를 풀어보려고 애 쓰지만, 경우는 여전히 영은을 믿을 수 없다고 한다. 이에 영은은 이혼을 결심하고…. ●한국영화특선 ‘강화도령’(EBS 밤 11시) 강화도에 사는 더벅머리 총각 원범은 산속의 칡뿌리를 캐어 먹고 살아가지만 실은 왕가의 혈통이다. 헌종이 승하하자 동네에서 홀대받던 이 청년은 하루아침에 철종 임금으로 등극한다. 대왕대비와 제조상궁으로부터 궁중의 법도를 배워나가지만….
  • [Local] 전남, 청년 벤처인 창업설명희

    전남도는 9∼23일 광주와 전남지역 대학생을 대상으로 청년 벤처인 창업설명회를 연다. 도는 새로운 사업내용이나 신기술을 갖고 있거나 관광ㆍ농업ㆍ수산 등 지역 자원을 활용한 창업을 유도하기 위해 정보를 제공하고 사례를 발표한다. 지역별 설명회는 9일 동신대(나주),10일 목포대,18일 전남과학대(곡성)와 전남대(광주),23일에는 전남대 여수캠퍼스와 순천대에서 열린다. 설명회에서는 창업 준비, 벤처기업 인증절차와 방법, 자금조달, 기업운영과 전략 등을 알려준다. 강사는 문채우 전남테크노파크 창업발굴팀장이다. 또 도청 과장들이 기업화 방안과 지원시책을, 벤처창업인들이 성공 체험사례를 소개한다.
  • 고졸 CEO 김남주 웹젠 사장 “문제는 실력”

    고졸 CEO 김남주 웹젠 사장 “문제는 실력”

    “학력이 살아가는 데 걸림돌이 된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습니다. 약간의 불편은 있었지만, 대신 같은 또래의 친구들보다 오히려 그만큼의 시간을 더 벌어 경험을 쌓았으니까요.” 어린 시절 만화영화 ‘태권 브이(V)’에 심취해 만화영화 감독을 꿈꾸던 한 소년이 있었다. 이 소년에게 미술시간은 상상의 나래를 활짝 펼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다른 과목에는 관심조차 두지 않다 보니 성적은 늘 꼴찌였고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학생은 실망스러운 존재로 취급받았다. 1992년 청년이 돼 서울예림미술고를 졸업한 이 소년은 “돈을 벌어야겠다.”며 대학 진학 포기를 선언한다. 가족들은 시도조차 해보지 않겠다는 청년의 말에 펄쩍 뛰었지만 그는 조그만 인테리어 회사에 입사했다. 단지 ‘뭔가 미술과 관련이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 때문이었다. 청년은 이 회사에서 인생을 바꾸는 한 프로그램과 만나게 된다. 청년은 “컴퓨터로 ‘캐드(CAD·컴퓨터 지원 설계)’를 이용해 도면을 그리는 동료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면서 “당장 컴퓨터 학원에 등록했고, 그러던 중 내가 바라던 미술과 일의 조화를 현실화시킬 수 있는 컴퓨터그래픽의 세계를 알게 됐다.”고 말했다. 결심은 곧바로 행동으로 이어졌다. 청년은 직장을 그만두고 그래픽 공부를 하다가 학원으로 스카우트됐고, 몇 달 지나지 않아 국내 그래픽 애니메이션 분야의 ‘젊은 대가’로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청년의 꿈은 여기에 머무르지 않았다. 청년은 거대하게 성장해 가는 일본 게임산업에 관심을 가졌고,93년 PC게임으로 명성을 떨치던 미리내소프트에 입사해 뜻을 같이하는 두 명의 동지를 만났다. 2000년 5월, 세 사람은 서울 예술의전당 앞에 조그마한 사무실을 얻고 게임 시장에 본격적인 도전장을 던진다. 무작정 미술이 좋아 공부를 싫어했던 청년 김남주(36) 사장과 전문대를 중퇴한 조기용 부사장, 공고를 졸업한 송길섭 상무까지 창업자 3인방이 모두 고졸인 ‘무모한 도전’이었지만 ‘한국 최고가 세계 최고’인 온라인 게임 시장에서 우뚝 선 ‘웹젠’의 시작이기도 했다. 이들이 선보인 국내 최초의 3D MMORPG(다중접속역할 수행게임) ‘뮤’는 하나의 게임이 아니라 문화가 됐다.‘뮤’ 하나만으로 코스닥과 나스닥을 동시에 정복했다. 국내는 물론 중국, 타이완, 일본, 태국, 필리핀 등 아시아 전역에서 ‘게임 한류’를 주도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학교의 열등생들은 300억원대가 넘는 자산을 가진 사회의 우등생이자 준(準)재벌이 됐다. 최근 한국 사회를 강타하고 있는 ‘학력 위조 논란’을 바라보는 김 사장의 생각은 어떨까. 김 사장은 “사회적 지위가 올라갈수록 주변인들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숨기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은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면서 “그러나 가짜 학력을 이용해 무언가를 얻었다면 그것은 분명히 잘못된 행동이고 마땅히 내놓아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김 사장에게도 고졸이라는 꼬리표가 부담스러운 적이 있었다.‘뮤’의 후속작 ‘썬’이 국내 시장에서 기대치에 못 미치는 결과를 내놓자 투자자들 사이에서 ‘고졸 출신 경영자라 별 수 없다.’는 악평이 나온 적도 있고, 악의적인 언론의 희생양이 되기도 했다. 김 사장은 “부끄러운 마음은 없었지만, 일부의 삐딱한 시선이 부담스러웠다.”면서 “성공한 전작의 후속작을 내놓는 일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사장은 악의적인 보도와 소문이 나올 때마다 본인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주위 사람들은 물론 일반인들까지 변함없는 격려와 신뢰를 보냈고, 이는 김 사장이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을 꿈꾸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김 사장은 “한동안 회사 실적이 정체기였지만, 중국 시장에서 꾸준히 좋은 성과를 내고 있고 9월에는 야심작 ‘헉슬리’도 선보인다.”면서 “웹젠의 저력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만큼 기대해 달라.”고 설명했다. 김 사장에게 지금이라도 대학에 갈 생각이 없는지 물었다. 김 사장은 “내가 세운 꿈과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갈 수 있는 것 아니냐.”면서 “하지만 아직까지 실력이 아닌 학력이 문제가 된다고는 생각해 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김남주 웹젠 사장 약력 ▲1971년 서울 출생 ▲1991년 서울 예림미술고(현 서울미술고) 졸업 ▲1992년 원엔지니어링 인테리어 디자이너 ▲1994년 미리내소프트 리드 디자이너 ▲2000년 웹젠 아트디렉터 ▲2002년 웹젠 대표이사 사장 ▲2004년 세계경제포럼(WEF) 선정 ‘아시아 차세대 지도자’
  • [2단계 기업환경 개선대책] 단국대 서울캠퍼스등 개발 길 터

    LS전선은 1996년부터 10년에 걸쳐 경기도 군포 공장을 전북 전주시의 산업단지로 이전했다. 하지만 군포에 있는 25만 7000여㎡(7만 7800여평)의 부지는 아직까지 처분하지 못하고 있다. 군포시가 공장의 용도 변경을 허용하지 않아 매각이 번번이 무산됐기 때문이다. ●학교·공장부지 개발 가능…이전 촉진 정부는 인구집중유발시설의 지방 이전을 적극 권장하고 있지만 현실은 전혀 따로 놀고 있다. 공업지역과 학교시설로 묶이면 용도 전환이 쉽지 않고 때문에 활용가치가 떨어져 매각은 어렵다. 부지가 팔리지 않으면 지방으로 가고 싶어도 막대한 이전 비용 때문에 못간다. 정부는 25일 발표한 대책에서 3만㎡ 이상의 공장이나 학교 등이 지방으로 이전할 경우 용도전환할 수 있게 했다. 서울 시내 공장이나 학교 부지를 아파트나 근린상업시설 등으로 개발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서울에만 4년제 대학이 50개에 이른다. 지금까지 지방이전 기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법인세 감면, 취득·등록세 면제, 재산세 감면 등 세제혜택뿐이었다. 게다가 지자체들은 기업 이전이 지역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과 용도전환 때 특혜시비에 휘말리지 않을까 해서 비협조적이었다. 예컨대 경기도 안양시의 D기업은 내년까지 3만 9000㎡의 공장을 충북 충주로 이전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안양시는 “공장을 옮긴다면 용도 변경을 해주지 않겠다.”고 반대했다. 부지가 팔려야만 1000억여원의 이전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D기업으로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정부는 수도권 내 과밀억제권역에서 성장관리권역으로 학교 등이 이전할 경우에도 용도전환을 허용할 방침이다. 따라서 14년째 끌어온 단국대 한남동 캠퍼스의 주택개발사업도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단국대는 올해 경기도 용인 죽전으로 본교를 이전하지만 기존 부지가 학교 시설에서 해제되지 않아 초고층 아파트 건설계획을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 ●하반기 공사 발주 내년 생산 예정 정부는 수도권 규제의 상징적 사례로 꼽힌 하이닉스반도체 이천공장의 구리공정 전환을 사실상 허용했지만 신·증설과는 별개라고 밝혔다. 오염 물질을 추가로 ‘방류’하지만 않는다면 공정전환은 환경부 고시의 개정만으로도 가능하다는 판단이다. 현행법상 상수원보호구역에서 구리·납·카드뮴 등 유해물질 19가지를 배출하는 공장은 세울 수 없다. 하이닉스는 일단 구리 공정 전환을 허용해준 것을 반긴다. 하반기 공사를 발주해 내년에는 생산에 들어갈 예정이다. 하지만 하이닉스가 진짜 바라는 것은 12인치(300㎜ 웨이퍼) 구리 공정의 신·증설이다. 이천 공장의 알루미늄 공정 옆에 짓고 싶어한다. 올해 착공한 충북 청주의 1차 공장 증설은 예정대로 진행한다. 하지만 이천 2차 공장 증설은 쉽지 않다. 정부는 이미 폐수 등 오염물질의 ‘배출’ 문제로 증설은 불허한다는 방침을 통보했다. 설령 하이닉스가 ‘무방류 시스템’ 등을 내세우더라도 또 다른 벽은 수도권 규제다. 수도권정비계획법상 이천은 자연보전권역에 지정돼 공장 증설이 어렵고 수도권 과밀해소 목적에도 맞지 않다. 다만 정부가 지난 1월 “차기 정권에서 상수원 주변지역의 공업입지에 관한 규제를 합리적으로 개편하겠다.”고 밝혀 증설 가능성은 있다. 그럼에도 고쳐야 할 법은 수두룩해 여론 수렴에만 2∼3년은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관계 부처간 조율도 완벽하지 않다. 환경부는 상수원보호구역에서 구리 등 오염물질 배출공장에 대한 규제에는 한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있다. 하이닉스는 당초 올해부터 2009년까지 비수도권(청주)-이천-제3의 지역에 순차적으로 4조 5000억원씩 총 13조 5000억원을 들여 3개 공장을 짓겠다고 제시했다. 하지만 2010년까지는 청주를 제외하곤 신·증설이 어려워 보인다. 때문에 하이닉스는 청주에 1층이 아닌 2층 구조로 2차 공장까지 증설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세제·환경규제등 105개 개선과제 담겨 ‘2단계 기업환경개선 종합대책’은 기업들의 사기를 높이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산업현장의 애로사항을 반영한 세제, 수도권 환경규제, 벤처금융 등 105개 개선과제가 제시됐다.1단계 종합대책과 달리 과제의 80%가 올해 말까지 완료돼 체감도는 높을 것으로 보인다. 주요 대책을 짚어 본다. ●계획관리지역 내 소규모 공장 허용 전국 계획관리지역에서 소규모(1만㎡ 이하) 공장 설립이 원칙적으로 허용된다. 계획관리지역은 옛 준농림지 가운데 택지 등으로 개발이 가능한 곳이다. 현재는 지자체의 도시계획조례에서만 예외적으로 허용한다. 정부는 국토계획법상 시행령을 개정해 공장 설립을 일반적으로 허용하되, 필요시 도시계획조례를 개정해 금지하는 ‘네거티브 방식’을 채택하기로 했다. 폐수를 내보내지 않는 비공해 기업의 경우 상수원보호구역 상류지역에 공장설립이 가능하도록 하는 방안이 내년까지 마련된다. 현행 농업용저수지 상류방향 5㎞ 내 공장설립을 금지하는 규제도 도시지역 및 계획관리지역에서는 거리제한기준이 2㎞ 내로 완화된다. ●1조원 벤처 펀드 조성 정부는 산업은행이 올 하반기에 1조원 규모의 ‘글로벌스타 육성펀드(가칭)’를 새로 조성하도록 해 창업 초기 단계인 혁신형 중소기업을 지원할 방침이다. 기술력 있는 중소기업이 대상이며, 창업한지 7년 미만이면 우대받는다. 대출, 출자, 회사채 인수 등 다양한 방식으로 지원하며, 금리도 실행금리에 비해 최고 1%포인트까지 우대해준다. 상호저축은행의 벤처펀드 출자도 허용된다. 올 하반기 금융감독위원회의 감독규정을 개정해 자기자본의 10%나 펀드의 10% 등 일정한도에서 출자를 허용하기로 했다. 창업 초기인 중소기업에 대한 취득세·등록세 면제기간도 현행 2년에서 4년으로 연장된다. ●자동차 배출가스 미국제도 도입 자동차 배출가스 규제 방식이 미국 캘리포니아주가 운영하는 ‘평균 배출량 제도(FAS)’로 바뀐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따른 조치다. 연료별·차종별 배출가스 농도 규제는 사라지고, 제작업체는 정부가 제시한 ‘평균 배출량 기준’ 내에서 다양한 배출등급의 차량을 생산할 수 있다. 경유차 환경개선부담금 제도도 개선된다.2006년 이후 강화된 허용기준을 충족하는 경유차와 그 이전 생산된 차량 간의 형평성을 맞출 방침이다. ●짓고 있는 건물도 담보 설정 건축 중인 건물도 건조 중인 선박 처럼 저당권을 설정할 수 있는 ‘저당권 등기제도’가 도입된다. 현재 건축 중인 건물은 초기에는 동산으로, 기둥·지붕·주벽이 만들어지면 부동산으로 인정받아 양도 담보권자의 권리가 정확히 보장되지 못한다. 이에 금융기관이 담보로 인정하지 않거나 담보가치를 낮게 평가해 중소기업이 공장을 신설·증설하는 과정에서 자금융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공고 졸업생 중소기업 재직시 입영 연기 공고 졸업생이 중소기업에 취직한 뒤 최대 4년까지 입영을 연기할 수 있게 된다. 현재는 2년 연기할 수 있다. 청년 실업자, 고령자, 장애인 등 계층의 취업 촉진과 중소기업의 인력난 감소를 꾀하는 ‘신규고용촉진장려금’ 제도의 시행기간도 당초 올해 9월에서 2010년까지로 연장된다. ●직장보육시설 운영 부담 경감 사업주의 직장보육시설 운영 부담이 줄어든다. 저출산에 따른 직원들의 자녀 수 감소로 정부 지원 기준을 충족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정부는 올해 안에 고용보험법시행규칙을 개정해 사업장 소속과 관계없이 고용보험 피보험자 자녀 수가 보육아동 수의 2분의1을 넘으면 지원해줄 방침이다. 또 외국인근로자의 취업기간(3년) 만료 3개월 전부터 고용허가 신청을 허용해 기업의 근로인력 공백을 최소화하기로 했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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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 MOVIES 07:00 그레이스톡 타잔 09:00 그렘린2 11:00 쥐라기 공원2 13:00 개그야 14:00 황금어장 17:00 B형 남자친구 20:00 죠스 22:00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Dramax 07:30 천하제일 외일구단 09:30 앙코르 쟁반극장 13:40 쟁반노래방 베스트 17:40 무한도전 19:45 헤이헤이헤이 22:00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 24:15 스몰빌 시즌3 ●CBS TV 08:00 광림의 말씀 09:00 사랑의 말씀 10:00 지구촌강단 12:00 음악은 샘물처럼 13:00 명성어린이 예배 14:00 명성의 말씀 15:00 중문의 말씀 16:00 수호천사 사랑의 달란트를 나눕시다 ●WOW 한국경제TV 13:00 생방송 창업정보센터 14:00 실전매매 주식 서바이버 15:00 증시카페 전문가와 함께 하는 아름다운 특강 ●RTV 13:00 아시아로의 초대 14:00 독립영화극장 15:00 달리는 대학 청년을 말한다 16:00 열린영상 시민의 눈 19:00 심층 인터뷰 ●현대홈쇼핑 10:20 Digital Zoom-in 12:20 뷰티스페셜16:50 뷰티카페 18:20 온가족 건강관리 19:20 더 골프 ●KBS N SPORTS 08:00 다시보는 월드컵 감동의 순간들 2006 독일 월드컵 11:00 2007 월드리그 배구 13:20 2007 삼성 파브 프로야구 현대:삼성 ●EBS플러스1 09:30 EBS 기본과 특별한 과학 10:20 EBS 내신 6감 물리 12:00 EBS 포스(재) 고전문학, 수학Ⅰ 13:40 EBS 기본과 특별한(재) 국어(상) 17:00 수능특강 고3(재) 한국 근·현대사 18:00 EBS 탐스런(재) 한국 근·현대사 19:00 수능특강 고3(재) 물리Ⅰ 22:00 수능특강 고3(재) 수리영역 수학Ⅰ ●EBS플러스2 07:30 주택관리사 시험대비 강좌 08:00 TV 중학 3학년 국어, 수학9-가 09:20 중학 3학년 퍼펙트 체크업 국어 10:00 TV 중학 1학년 국어, 수학7-가 12:00 TV 중학 2학년 국어, 수학8-가 14:00 중학토탈 15:00 중학3학년 난제공략 9-가 17:00 초등학교 3·4·5·6학년 국어 19:00 TV중학 1학년(재) 국어, 수학7-가
  • [씨줄날줄] 저가항공 시대/함혜리 논설위원

    선명한 오렌지색 로고가 트레이드 마크인 이지제트는 유럽 저가 항공사의 선두주자다.1995년 그리스 출신의 청년 실업가 스텔리오스 하지-이오아노가 보잉 737기 두대로 출발한 이 회사는 현재 100여대의 항공기로 유럽내 230개 노선을 운항 중이다. 이 회사의 최대 강점은 가격 경쟁력이다. 대형 항공사들보다 평균 30% 싼 가격을 제시한다. 노선이나 거리, 예약시기에 따라 최대 80%까지도 할인해 준다. 노하우는 간단하다. 항공사 특유의 허세와 거품을 없애고 이를 원가 절감하는 데 반영해 고객들에게 낮은 가격을 제시하는 것이다. 저가 항공사의 효시는 미국의 사우스웨스트 항공이다. 사우스웨스트 항공의 공동 창업자이자 1978∼2001년 CEO였던 허브 켈러허는 저가항공 업계의 신화적 인물이다. 그는 항공산업의 오랜 ‘게임의 법칙’을 파괴하고 새 규칙을 만들었다. 대륙간 장거리 운항이나 시장점유율에 집착하지 않고 국내 단거리 노선을 집중 공략한다. 비행기는 가격협상 우위와 안정적인 정비 품질 등을 고려해 한가지 기종으로 통일한다. 제2공항을 이용해 비행기의 공항 체류시간을 최소화하면서 높은 수익성에 초점을 맞춘다. 기내식·음료 제공 등의 서비스는 제거하고 단거리 고객이 요구하는 높은 안전성, 정시 발착, 낮은 요금에 주목한다는 것이다. 켈러허의 전략은 저가 항공사들에 금과옥조가 되고 있다. 항공수요가 중산층 가족 단위 여행객으로 확산되면서 세계적으로 저가 항공사의 인기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미국과 유럽 항공시장의 20%를 저가 항공사들이 차지하고 있고, 중국·동남아에서도 확장세를 보인다. 국내에도 저가 항공사가 속속 문을 열고 있다. 기존 한성항공과 제주항공 외에 군산·부산·인천에 연고를 둔 저가 항공사들이 순차적으로 운항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한다. 대한항공도 이르면 2∼3년내 계열사를 통해 국내선과 일본·중국 등 중·단거리 노선에 저가항공편을 운항한다는 계획이다.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것은 수요자 입장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다. 문제는 안전성이다.‘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을 듣지 않을 수 있다면 저가 항공사의 성공은 보증수표를 받은 거나 다름없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깐깐한 덕수씨’

    총리실 간부 A:근로자 보호대책 관련 개정안을 마련 중이고 청년실업대책 특위에서도 대책을 준비 중 입니다.한덕수 총리:작년 10월에 하기로 했던 개정안이 아직도 안 됐습니까? 노동부는 6개월이 지나도록 뭘하고 있는 겁니까? 조만간이라는 게 언제죠? 진행 상황을 구체적으로 정해서 매주 보고해주세요. 담당자들이 너무 느긋해요. 주변에 실업자가 없어서 그럽니까? 간부 B:고용지원센터는 비용과 부지를 마련하는 데 어려움이 있어서…. 한 총리:빌딩 1채를 사기 어려우면 5군데를 임대하면 되잖습니까. 소상공인 창업금융지원 같은 경우도 하겠다, 앉아서 말로만 하지 말고 네이버·다음 등 인터넷 사이트에 적극적으로 홍보하세요. 농촌 방문은 의미가 있는 만큼 널리 알려지도록 각별히 홍보에 신경써 주시고 기자들도 많이 참석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최근 열린 총리실 확대간부회의의 한 장면이다. 한덕수 국무총리의 깐깐한 업무 스타일에 요즘 총리실 간부들이 진땀을 빼고 있다. 책상머리 지시가 아니라 구체적인 날짜와 추진 방법 등을 제시하며 세세하게 챙기는 바람에 간부들은 회의를 준비하는 시간이 배로 늘었다. 부하 직원들에게 “총리가 워낙 꼼꼼한 분이니 구체적인 방안들까지 마련해 보고에 넣어라.”고 따끔하게 당부하는 모습이 눈에 띄기도 한다. 한 총리는 애착을 가지고 있는 규제개혁·일자리 창출 등 민생 현안에 대해서는 직접 나서서 일일이 챙긴다.‘콘텐츠’는 물론이고 ‘스피드’까지 요구하는 한 총리의 주문에 간부들은 정신을 못차릴 지경이라는 전언이다. 특히 국무조정실장과 국장급 위주의 티타임이 사라진 대신 한 총리가 국조실 조정관회의를 주재하는 바람에 조정관들은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형편이다. 총리실의 한 간부는 “‘루틴’한 업무도 많은데다가 요즘엔 총리님 일정도 많아 회의 한번 하고 나면 진이 빠진다.”고 혀를 내둘렀다. 또 다른 간부는 “본인이야 앞서 있으니 여러 방향으로 마음대로 갈 수 있지만 뒤에서 쫓아가는 사람은 어디로 갈지 알 수없어 챙기기 힘들다.”고 털어놓기도 했다.임창용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신연숙 대기자의 금요 초대석] 대한민국 최고 과학기술인 권욱현 서울대 교수

    [신연숙 대기자의 금요 초대석] 대한민국 최고 과학기술인 권욱현 서울대 교수

    올해 과학의날 기념식에는 변대규 휴맥스 사장을 비롯한 벤처기업인들이 다수 얼굴을 드러냈다. 은사인 권욱현(64) 서울공대 전기컴퓨터공학부 교수의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 수상을 축하하기 위해서였다. 보통 학자라면 제자들이 주로 대학 교수지만, 권 교수는 좀 다르다. 석·박사 제자들 중 벤처기업 창업자가 12명이나 된다. 그만큼 이론에 더하여 실용을 강조한 교육과 연구를 했기 때문이다. 국제학회와 대학 등에 거액을 기부하여 화제가 되기도 해온 권 교수를 서울대 관악캠퍼스 자동화연구소에서 만났다. ●과학기술인상으로 받은 상금 사회환원 ▶정년을 1년 앞둔 연세에 최고 권위의 상을 받았는데, 너무 늦은 게 아닌지요. “상에 대한 욕심이 없어요.10년 전 대한민국 학술원상을 받은 것도 선배들의 강요에 의한 것이었죠. 또 공학은 자연과학과 달리 응용분야입니다. 특정한 연구보다는 축적된 기술 속에서 업적이 나오니까 내 나이 때쯤 받는 게 맞는 것 같기도 합니다.” ▶시상식에서 상금 3억원을 부인께 수여하던데 바로 부인께 갔습니까. “그건 증서고 상금은 다음날 온라인으로 오던데요. 사실 아내는 별 감흥이 없었을 겁니다. 모든 상금은 전액 사회에 기부하기로 약속이 돼 있거든요.” 지방 출신인 권 교수는 대학입학 이후 집에서 돈을 받은 기억이 없다. 입학금부터 어느 독지가가 신문사에 내놓은 장학금으로 해결했고, 그후 미국 유학을 마칠 때까지 각종 장학금 덕을 보았다. 기부는 이때 사회에 진 빚을 갚기 위한 것이다. 사재도 털어넣는데 명예와 함께 덤으로 받는 상금은 당연히 전액 기부다. 젊었을 때 최초로 받은 상금 300만원부터 기부했으니 돈이 많아 기부를 시작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번 상금도 서울대에 전액 기부할 작정이다. ▶상금이 엄청난 과학상이 많이 생겼지만 과학기술자 위상이 예전 같지 않습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사회분위기가 중요합니다. 저는 공학이 뭔지도 모르고 선택했어요. 당시 분위기가 최고 인재는 공대를 가는 것으로 돼 있었거든요. 그런데 IMF 이후 평생직업으로서 매력을 잃으면서 달라졌죠. 지금도 국가경쟁력은 과학기술에 달렸다고 말은 합니다. 사회적 합의가 그렇다면 우수인력이 많이 올 수 있어야지요. 그런데 지방 의대까지 다 채우고 난 뒤 나머지 인재가 이공계에 온다니, 이 모순을 극복 않곤 안 돼요.” 권 교수는 과학기술자들의 대우와 직업안정성 개선, 과학기술자들의 공직진출 확대, 학생선발제도 개선 등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학생들에게 공과대는 개인 연구보다는 국가 산업 발전을 위해 기여해야 한다고 가르쳤다지요. “공학은 기초과학을 응용하여 인류에 유익한 것을 만드는 게 목적입니다. 이것을 수행하는 것은 산업입니다. 따라서 공과대는 산업연관 기초교육을 해야지요. 그런데 공과대 학생들 90%가 장래 희망이 대학교수예요. 교수들도 산업계 경험자가 적고, 산업계 기여를 무시합니다. 사실 뭔가를 만든다는 것은 괴롭고 귀찮은 일이죠. 그러나 공학에서 공부는 수단이지 목적은 아니에요. 저는 학생들이 절반 정도는 공부가 아니라 벤처사업가나, 연구원이 되도록 마인드를 바꾸는 데 주력했어요.” ●제자들 벤처기업 12곳… 年매출 1조원 권 교수는 특히 연구팀장의 역할을 강화하고 학생들에게 팀워크 훈련을 많이 시켰다. 제자들이 만든 벤처기업 12개는 대부분 석·박사과정 연구팀장이 사장이 되고, 팀원이 합류한 형태다. 이들 회사의 연간매출 총액 합계가 1조원쯤 된다. ▶서울 공대가 미국 대학 10위권 수준이라는 자체평가가 있었는데 과연 그렇습니까. “평가기준이 중요하지요. 기업은 돈을 얼마나 벌었냐로 분명하게 평가가 나오지만, 대학은 논문수, 입학성적, 연구비 등 잣대가 다양해요. 세계적으로 유명한 학자 수가 10위권인가, 우수한 외국 학생 유학이 10위권인가, 세계적인 특허가 10위권인가 하면 아니거든요. 솔직히 저는 못믿어요. 또한 국내 1위면 다른 곳 1위와 비교해야지 평균적으로 10위권 수준이라는 것도 의미가 없고요.” ●인재키울 교육혁신 정부역할 막중 ▶그렇다면 실질적인 경쟁력 향상 방안은 무엇이겠습니까. “원칙은 기업과 같습니다. 철저한 평가와 인센티브제 확대, 국제적인 활동을 통한 발전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잘하는 사람은 격려해 주고 실적이 나쁘면 탈락시킬 수 있어야지요. 요즘 교수 평가가 까다로워졌다고 하지만 실제로 탈락하는 사람은 없잖아요. 문제는 대학 지배구조입니다. 총장직선제로는 과감한 경영을 할 수가 없죠. 하루빨리 이를 폐지해야 합니다.” 한 곳에서 탈락하면 다른 곳에서 채용이 안 되는 사회구조도 문제다. 미국은 가령 MIT에서 탈락하더라도 우수한 교수는 다른 대학에서 채용이 된다. 권 교수는 “서울대와 KAIST가 시범적으로 30명의 교수를 탈락시켜 다른 곳으로 보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도 사석에서 있었다.”고 소개했다. ▶요즘 과학기술계는 10년후 뭘로 먹고 살아야 할지, 차세대 성장동력을 찾는 게 고민입니다. 로봇 등 자동화분야 전문가로서 아이디어가 있다면 소개해 주십시오. “그건 우리나라 최고기업 CEO도 모르겠다더군요. 그럼 현재 먹고사는 기술을 10년 전에 알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라고 해요. 그럼 길은 무엇인가, 우수한 인력을 키우는 거라는 거지요. 우수인재는 적응을 잘하며, 적어도 5년은 내다볼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런 점에서 교육혁신 등 정부역할이 막중합니다. 그리고 연구지원은 무조건 신규 분야만 찾기보다는 기존 분야 중에서 발전 아이디어 찾기를 병행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정부 주도보다는 기업 수요가 중요하고요.” ▶정운찬 총장시절 교수평의원회 의장으로서 통합논술고사 문제로 정부와 맞서기도 했지요. “사회를 리드하는 것은 평균적인 인재가 아니라 최고 우수한 인재입니다. 정 전 총장과 내 생각이 같은데, 수능시험은 과외로 점수 올릴 수 있지만 과학올림피아드는 과외받는다고 아무나 풀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본고사 도입하면 사교육 극심해지리라는 논리는 수긍이 안 되고, 또 그렇다 하더라도 경쟁은 불가피하다고 봅니다.” 권 교수는 내년 2월이면 은퇴하지만 지금까지 주력해 온 공학연구와 국제활동 등 계획이 많다. 특히 15년 전부터 개발해 온 과학기술소프트웨어 ‘셈툴’을 완성하여, 비 영어권국가 범용 소프트웨어는 국제무대서 성공할 수 없다는 통념을 바꾸겠다고 했다. 천진한 표정이 영낙없는 청년이었다. ■ 그는 누구 1943년 경북 포항 출생. 경기고 서울공대 대학원을 거쳐 미국 브라운대학교에서 전기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1977년 서울공대 교수로 부임, 이듬해 계측제어과를 창설했다. 로봇 기술 등에 쓰이는 자동제어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로 2005년부터 국제자동제어연맹(IFAC) 회장 직을 맡고 있다. 최적화 문제에서 ‘이동구간제어’ 개념을 최초로 창안하여 특성을 규명하였고, 이를 체계적으로 기술한 영문교과서도 갖고 있다. 실용적인 공학교육을 강조하여 벤처기업인들을 많이 육성한 것으로 유명하다. 현재 기업 수가 12개나 된다. 개도국 공학자 학술활동지원비로 IFAC에 5억원, 서울대 발전기금 3억원 등 활발한 기부활동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한국공학한림원 부회장을 거쳐 과학기술한림원 부원장 직도 맡고 있다. 제42회 대한민국 학술원상, 제1회 매경 신지식인상, 미국 브라운대학 최우수 동문상 등을 수상했다. yshin@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일자리 창출로 젊은 변호사 표심 잡을 터”

    젊은 변호사들의 표심을 잡아라. 대한변호사협회(변협) 회장 선거가 사실상 1주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후보들 간에 ‘실용’ 대결이 한창이다. 언론 등을 통해 진보로 분류됐던 후보는 홍보지에 “민변측 후보가 아니다.”는 말을 적시하는 등 경쟁적으로 이념보다는 일자리 창출을 최우선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사시합격 1000명 시대’ 7년째를 맞아 젊은 변호사들이 선거 당락의 큰 변수로 작용하면서 생겨난 새로운 풍경이다. ●29일 변협 회장 사실상 결정 변협 회장은 다음달 말 총회 대의원 투표로 선출되지만 당락은 오는 29일 판가름난다. 변협 전체 대의원의 3분의2 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서울변호사회가 변협 회장 단일 후보를 뽑는 선거를 치르기 때문이다. 회장에는 이진강(64·사시 5회)·임동진(64·사시 8회) 변호사가 출마했다. 이 변호사는 수원지검 성남지청장을 지낸 검사 출신으로 1999년부터 2년간 서울변호사회 회장을 지냈다. 임 변호사는 서울민사지법 판사를 끝으로 법원을 나와 서울변호사회 총무이사 등을 지냈다. ●“젊은 표심을 유혹하라” 홍보전 사시 합격생이 몇 년 사이 기하급수적으로 늘면서 최근 7년간 개업한 변호사(사법연수원 29∼35기) 수가 2600명을 넘어섰다. 서울변호사회 소속 개업 변호사 5222명의 절반 수준이다. 이들은 대부분 90년대 이후 대학을 졸업해 이념에 얽매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생존의 길을 모색해야 하는 세대다. 이번 선거의 당락이 젊은 변호사들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공약을 내세웠느냐 여부에 달렸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 후보는 신진 변호사들을 위한 공약으로 ▲변협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직위 신설 ▲창업지원센터 개설·운영 ▲선배 변호사와의 1대1 자매결연으로 사무실 운영 등을 지도받는 ‘멘토링 제도’ 도입 등을 내세웠다. 그는 “미국 청년변호사위원회를 벤치마킹했다.”면서 “첫 발을 내딛는 후배들이 겪을 재정적 어려움과 불안감을 선배들이 감싸주는 지원단을 구성토록 하겠다.”고 밝혔다. 임 후보는 ▲의사·회계사 동업 허용으로 ‘블루오션’ 창출 ▲삼성 등 대기업과 지방자치단체의 변호사 시장 개척 ▲공판 중심제에 따른 논리·언변 개발 제공 등이 공약이다. 임 후보는 “젊은 변호사들이 법원 앞에만 있도록 하는 규제를 과감하게 없애 새로운 영역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임광욱기자 limi@seoul.co.kr
  • [서울광장] 일자리가 희망이다/우득정 논설위원

    [서울광장] 일자리가 희망이다/우득정 논설위원

    지난해 우리 경제는 30만개에도 미치지 못하는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데 그쳤다. 전년도에 비해 성장률이 1%포인트 높았다면 과거 경험치로 볼 때 2005년의 29만 9000개보다 9만 6000개가량의 일자리가 더 생겨야 한다. 하지만 일자리는 2005년 수준에 머물렀다. 성장잠재력이 위축되고 가계 빚 증가로 소비 여력이 줄어들면서 내수가 얼어붙은 결과다. 그래서 정부는 연초마다 40만개 내외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던 목표치를 올해에는 30만개로 낮췄다. 경제성장에 따른 자연적인 증가분 26만개 외에 일자리 한 개당 1500만원 정도의 재정을 투입해 창출하겠다는 사회서비스 일자리 4만개를 합친 숫자다. 이 정도의 일자리는 매년 새로 경제활동인구에 편입되는 46만여 산업 예비군을 소화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게다가 새로 생겨나는 일자리는 고용의 질 측면에서 함량 미달이다. 신규 일자리의 75%가량이 서비스업 분야에서 생겨나지만 임금수준이나 근속연수에서 모두 평균을 밑도는 사회·사업 서비스 분야다. 흔히 ‘괜찮은 일자리’로 불리는 제조업 일자리는 2005년 5만 6000개, 지난해에는 6만 7000개가 줄었다. 의료·법률·교육·문화·관광·사업컨설팅 등 서비스업 분야의 양질의 일자리는 규제의 벽에 막혀 답보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양질의 일자리 공급이 줄어들다 보니 정규직은 비정규직으로, 비정규직은 생계형 창업에 나섰다가 빚만 진 채 폐업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한국의 미래를 짊어져야 할 청년층의 일자리는 훨씬 더 심각하다. 통계청의 2005년 경제활동인구 자료에 따르면 20대 임금근로자 385만 4000명 중 비정규직인 임시직과 일용직이 각각 144만 5000명,32만 3000명으로 전체의 45.9%에 이른다.20대의 고용의 질이 평균치(전체 비정규직 비중 35.5%)를 밑돌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11월까지 청년층 일자리가 15만여개나 사라진 탓이다. 그 결과 구직 단념자 12만 5000명을 포함, 실업의 경계선상에서 ‘그냥 노는’ 비경제활동인구 126만여명의 절대 다수가 청년층이다. 이들의 경제활동 포기는 20대 취업비중 격감에서도 확인된다. 전체 취업자 중 청년층의 비중은 2000년 23.1%에서 2005년 19.5%,2006년 18.4%로 가파르게 떨어지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4대 그룹 총수들과 만난 자리에서 대기업이 앞장서 20대 일자리를 만들어 달라고 당부했다. 방법론으로 대기업이 벤처시장에 적극 참여해 달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대통령 신년사에서는 부동산 문제에 가려 일자리 문제가 실종됐다. 더구나 노 대통령은 지난 4일 경제점검회의를 주재하면서 “일자리 문제가 사회적 이슈화되고 있는데 우리는 오히려 일할 사람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라며 1주일 만에 사뭇 다른 진단을 내놓았다. 연 10%의 고도성장을 구가하고 있는 중국조차도 요즘 대졸자의 60%가 ‘백수’로 전락할 정도로 청년 실업은 세계적인 현상이며, 각국의 공통된 고민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외환위기 이후 재정을 동원한 사회적 일자리를 공급하고 있으나 일시적으로 청년실업률을 낮추는 이상의 역할은 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렇다면 방법은 정공법밖에 없다. 개방과 규제 완화를 통해 신규 서비스업을 발굴하고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그래야만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제조업의 경쟁력도 높이는 길이다.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구청 주부대학 가면 제2의 인생이 보여요”

    “구청 주부대학 가면 제2의 인생이 보여요”

    맞벌이를 위해 취업과 창업전선에 나서려는 주부들이 늘면서 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주부대학을 100% 활용하는 ‘열혈 아줌마’들도 늘고 있다. 서울 강서구에서 운영하는 주부여성교양대학을 통해 1년4개월간 무려 4개의 조리사 자격증을 따낸 억척주부 고정순(45)씨의 성공 스토리를 들어봤다. ●주부대학은 펀드보다 좋은 투자(?) “한 학기에 12만원을 투자해 자격증을 따고 직장도 얻는다면 잘 나가는 펀드보다 좋은 투자 아닌가요.” 강서구 화곡7동에 사는 주부 고정순씨의 하루는 짧기만 하다. 내발산동과 목동을 오가며 식당 2곳의 음식 맛을 책임져주는 일 외에도 매주 2차례 아파트 주부들을 대상으로 출장요리법을 강의한다. 겨울방학이라 잠시 쉬고 있지만 3월부터는 강서구 화원중학교에서 특별활동 요리교사로 활약할 예정이다. 월수입은 200만원이 조금 넘는 정도. 하루 종일 발품 파는 것을 생각하면 많다고는 하기 어렵겠지만 웬만한 대졸 대기업 입사자의 초봉 수준이다.20년 주부의 야무진 일솜씨에 손맛까지 소문나면서 여기저기서 스카우트하려는 음식점도 많다. 청년실업자 100만명에, 실업급여 신청자만 60만명이 넘는 시대를 살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고씨는 40대 중반에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셈이다. ●주방 아줌마에서 요리사로 업그레이드 “돈도 돈이지만 제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서 특별활동 교사로 일하는 것이 가장 보람 있어요. 아이도 자랑스러워하는 눈치고요.” 고씨는 자칭 주부대학 마니아다. 불혹이 지난 중년의 삶을 변화시킨 것이 바로 구청 주부대학이라는 생각에서다.2005년 8월부터 지난해 12월 말까지 1년4개월여 동안 한식부터 양식, 중식, 일식까지 연달아 모두 4가지 공인 조리사자격증을 땄다. 우연히 구청신문을 보고 주부대학 ‘출장요리반’에 등록한 것이 계기가 됐다. “10년간 분식집과 도시락 전문점을 운영한 경험이 있었지만 자격증도 따고 음식도 제대로 배워 보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수업시간에 배운 음식은 손이 기억할 정도로 집에서 연습했다. 공중보건부터 식품위생, 식품관련 법까지 필기시험준비를 위해 늦깎이 공부도 해야 했다. 중·고교생 자녀 2명을 뒷바라지해야 하는 엄마로서 쉽지 않은 일이다. 자격증이 생기면서 여기저기 일거리도 생겼다. 대우도 달라졌다. “월급, 주방에서 담당하는 일, 업무시간까지 확 달라졌어요. 주방 아줌마에서 요리사로 업그레이드한 거죠.” ●싸다고 결석하면 치명적 자치구마다 연평균 1000명이 넘게 수강하는 주부대학. 하지만 수료한다고 누구나 성공담을 쓰는 것은 아니다. 고씨는 몇 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우선 적성에 맞는 과목을 고르고 자격증이나 창업 등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그럴듯해 보이는 과목보다는 실용성을 우선 판단하시고요. 싸다고 결석하는 분들이 많은데 학기가 짧은 만큼 결석은 치명적입니다.” 최종목표는 ‘전문 출장 요리강사’다. 이를 위해 지난해 말에는 연세대 여성인력개발연구원에서 진행하는 ‘푸드 코디네이션’ 과정도 수료했다. 그는 “아직은 아줌마의 힘을 다 보여준 것이 아니다.”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날렸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seoul in] 새달 9일 ‘광진 JOB페스티벌’

    광진구(구청장 정송학) 다음달 9일 광진구청 대강당에서 취업박람회 ‘2006 광진 JOB페스티벌’을 연다. 이 행사엔 관내 우수 중소기업과 벤처,IT업체 등이 참여한다. 지난해에는 93개 업체가 모두 660명을 모집했는데 288명이 여기서 일자리를 구해 취업률 43.6%를 기록했다. 청년과 중장년층 뿐만 아니라 여성층과 장애인층 등 소외 계층도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 또한 컨설팅관에서 취업과 창업에 대한 정보를 구할 수 있다.450-1365.
  • 스웨덴 복지모델 마침표 찍나

    스웨덴 복지모델 마침표 찍나

    높은 세금(소득세율 30∼55%)으로 질 높은 공공 서비스와 복지 혜택 제공, 사회주의적 시장경제 체제와 자본주의 기업의 절묘한 결합, 중앙집중화된 임금 교섭, 피고용자의 30%가 공공 부문에 종사할 정도로 ‘큰 정부’ 지향….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조차 부러워해 온 스웨덴의 복지국가 모델이 중대한 기로에 놓여 있다.65년간 집권해온 사회민주당(SDP) 주도의 중도좌파연합이 17일 총선에서 우파중도연합에 정권을 내줄지도 모르는 위기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현재 선거 판세는 어느 쪽 승리도 장담할 수 없는 박빙이다. 영국 BBC는 “스웨덴 모델의 미덕이 기로에 서있다.”고 지적했다. ●좌우파 엎치락 뒤치락 계속 지난주 여론조사에서 보수당, 자유당, 중도당, 기민당의 우파연합은 47.7% 지지율로 예란 페르손(57) 총리가 이끄는 좌파연합(46.7%)을 앞서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조금 앞서 실시된 조사에선 사민당, 녹색당, 좌파당의 좌파연합이 0.7%포인트 차로 우파를 앞선 것으로 집계됐다. 선거 막판에 자유당 운동원들이 SDP의 선거 전략이 들어있는 컴퓨터를 해킹한 사실이 들통나 자유당 당수가 사임하는 등 홍역을 치르고 있는 것이 변수가 될지 주목된다. 좌파연합의 실권 위기가 초래된 것은 높은 실업률 탓이다. 올해 전반기 실업률은 5.7%로 집계됐지만 직업훈련 프로그램에 종사하는 이들의 2.7%가 누락된 것이라고 BBC는 전했다. 야당은 실업률이 20%에 육박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매킨지 글로벌 연구소는 15% 수준이라고 짚었다. 여기에 에릭슨, 이케아, 볼보 등 뛰어난 글로벌 기업들이 명맥을 이어가고 있지만 이 나라 50대 기업 가운데 1970년 이후 창업한 것이 한 군데에 불과할 정도로 세금과 각종 규제 때문에 기업 활동이 위축됐다는 것이 선거 쟁점이 되고 있다. 24세 이하 청년들이 복지 시스템을 믿고 취업을 하지 않아 그 부담이 그대로 납세자에게 전가되고, 조직률이 80%나 되는 노동조합이 너무 쉽게 파업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한 노동 관련 법률을 뜯어고쳐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고 BBC는 덧붙였다. ●우파연합 승리해도 노선 보정(補正) 그칠 듯 따라서 우파연합의 기치는 당연하게도 ‘시장 개혁’으로 모이고 있다.370억크로네(약 4조 7500억원) 규모의 세금 감면안을 제시하고 과감한 민영화를 통해 기업 효율성을 제고하겠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복지 모델의 근간이 위협받게 된다. 그러나 우파연합이 승리하더라도 영미식의 대폭 감세와 과감한 민영화로 이어지기는 힘들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고 BBC는 전했다. 우파연합 스스로도 4년 전 총선에서 급진 개혁을 내걸다 표심을 잃은 기억 때문에 중도 성향을 강화하는 데 신경을 쏟고 있다. 즉 좌파적인 복지 모델의 근간은 유지하면서 정부와 기업의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식으로 유권자를 설득하고 있다. 이에 3기 연임을 노리는 페르손 총리는 250억크로네(2조 9500억원)의 재정지출 증가를 통해 실업보험금과 육아비, 의료비 보조를 늘릴 것이라고 밝혔다. 언론인 프레드릭 카렌은 “유권자들은 세금을 그렇게 걱정하지는 않으며 다만 변화를 원하고 있다. 그 변화는 복지센터, 학교, 병원 등에서의 선택권을 넓혀 달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 기업인은 “스칸디나비아에서 자유주의 혁명은 있을 수 없으며 영미식 개혁에 휩쓸릴 수도 없다. 다만 약간의 변화가 필요한데 많은 이들이 기업을 새로 시작하거나 일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책꽂이]

    ●세상을 변화시킨 리더들의 힘(무굴 판댜 등 지음, 신문영 옮김, 럭스미디어 펴냄) 월마트의 창업자 샘 월튼은 자린고비였다.1930년대 미국을 휩쓴 대공황을 경험한 부모 밑에서 성장한 그로선 당연한 결과인지 모른다. 그의 아버지는 주택담보 대출 상품을 파는 제2금융권 회사에서 빚을 갚지 못하는 농민들의 재산을 몰수하는 일을 담당했고, 어머니는 젖소 몇 마리를 가지고 우유를 짜서 파는 일을 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몸에 밴 절약정신이 훗날 월마트의 초석이 됐다. 허버트 켈러허 사우스웨스트항공사 창업자, 제프 베조스 아마존닷컴 창업자, 리처드 브랜슨 버진그룹 창업자 등 비즈니스 리더 25인의 이야기.1만5000원.●한여름 밤의 꿈, 잉카(김동완 등 지음, 지성사 펴냄) 체 게바라가 라틴아메리카 대륙을 여행하면서 혁명의 씨앗을 품었듯이, 이 책을 지은 남미대학생 탐사대원들 역시 새로운 ‘그 무엇’을 품어보기 위해 라틴아메리카로 떠났다. 노예들의 슬픈 삶이 어린 카포에이라(브라질의 전통무예)를 추고, 해발 3000m가 넘는 쿠스코(잉카제국의 옛 수도)의 고산병 증세를 코카차(코카 잎으로 만든 차)로 달래고 신체포기각서를 쓰고서야 이들은 비로소 잉카의 아침을 맞이할 수 있었다. 뜨거운 태양의 땅 라틴아메리카 탐사여행의 후일담.1만 3000원.●세상에 못 갈 곳은 없다(바버라 호지슨 지음, 곽영미 옮김, 북하우스 펴냄) 전설적인 하렘(harem, 동양 특히 회교권의 여자방) 구역에는 여자들만 입장할 수 있었다. 그들은 중동의 관능적인 아내들, 그리고 돈 많은 파샤와 베이(터키의 문무고관에 대한 존칭)들의 노예들의 퇴폐적인 삶을 훔쳐볼 수 있었다. 터키 하렘의 비밀을 서구에 처음 알린 여성은 레이디 메리 워틀리 몬터규였다.17∼19세기 시대가 요구하는 여성상을 거부하고 나를 벗어던진 여행을 감행한 여성들의 이야기.1만 1800원.●두바이 기적의 리더십(최홍섭 지음,W미디어 펴냄) 아라비아 반도의 동쪽 끝에 자리잡은 UAE(아랍에미리트연합)의 두바이. 인구가 30만명도 채 되지 않는 두바이는 중동 지역이면서도 볼 만한 역사유적지 하나 없는 불모의 나라였다. 그러나 두바이는 ‘중동의 싱가포르’로 자리매김하면서 전 세계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오늘날 두바이의 힘은 바로 천재적인 CEO형 지도자 셰이크 모하메드의 리더십과 상상력에서 나온 것이다. 모하메드의 비전과 리더십을 살폈다.1만원. ●아프리카에서 온 메신저, 말리도마(말리도마 파트리스 소메 지음, 박윤정 옮김, 정신세계사 펴냄) 서부 아프리카의 숨겨진 나라 부르키나파소에서 태어난 저자는 주술사이자 다가라 부족 전통방식의 치유사다. 네 살때 프랑스 선교사에 의해 납치돼 선교학교와 신학교에서 양육된 저자는 극적으로 고향에 다시 돌아가 입문식을 비롯한 일련의 영적 체험을 통해 부족 고유의 지혜를 터득한다. 이 책에는 문명에 납치된 아프리카 청년이 태초의 지혜를 되찾아가는 생생한 기록이 담겼다. 아프리카의 ‘미개한’ 얼굴 뒤에 숨어 있는 지혜와 신비, 가장 자연스럽고 원형적인 그래서 가장 진보적일 수 있는 그들의 삶을 보여준다.1만 5000원.●생활의 발견, 파리(황주연 지음, 시지락 펴냄) 이집트 국적의 영화배우 오마 샤리프는 어느날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파리 사람들은 이기적이고 잘못 컸습니다. 그래서 나는 파리 사람들을 정말 좋아합니다.” 파리 사람들은 남이 뭘 하든 어떻게 살든 별로 관심이 없는 ‘이기주의자들’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신경쓰지 않고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살아보지 않곤 알 수 없는 파리 이야기.9800원.
  • 서민용 사회연대은행 ‘말뿐’

    서민용 사회연대은행 ‘말뿐’

    최근 법무부가 이자제한법을 부활할 계획을 밝히자 경제 관련 중앙 부처와 금융기관들은 일제히 “불법 사채시장만 더 키울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자 상한선이 낮아지면 제도 금융권의 문턱을 넘지 못한 서민들이 사채 시장으로 흘러갈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이들은 은행, 저축은행, 카드사 등 제도권에서 외면당한 서민을 위한 해법으로 무담보 소액대출(마이크로 크레디트)과 같은 대안금융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유일의 대안금융 기관인 사회연대은행은 ‘고립무원’ 상태다. 정부, 금융기관, 전문가들이 모두 입만 열면 “대안금융을 육성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실질적인 지원에는 나몰라라 한다. 사회연대은행으로서는 금융 양극화 현상을 해소할 유일한 희망으로 떠오르는 게 오히려 부담스러울 정도다. ●실질적인 지원없이 말만 요란 지난 2002년 8월 창립돼 NGO(비정부기구) 형태로 운영되는 사회연대은행은 기업체·금융기관으로부터 기금을 받아 신용불량자 등 서민에게 무담보 소액대출을 해줘 창업의 길을 터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4년 동안 사회연대은행에 들어온 기금은 30억 5500만원에 불과하다. 삼성그룹과 국민은행의 기금이 각각 10억원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KT(2500만원), 옛 조흥은행(1억원), 산업은행(6억원), 금융감독원(2000만원), 신한금융지주(3억원), 연세대(1000만원) 등도 기금을 내놓았지만 액수가 적다. 금융 양극화가 사회적 쟁점으로 떠오른 올해 들어서는 산업은행만이 5억원을 기부했을 뿐이다. 사회연대은행 임은의 팀장은 12일 “그나마 대안금융에 관심을 가져주는 기업체와 금융기관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면서 “현재로서는 자발적인 기부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특히 사상 최대의 순익을 내고 있는 제도 금융권의 무관심이 큰 문제다. 국민, 우리, 신한, 하나, 외환 등 5대 시중은행은 지난해 각각 1조원에 육박하는 순이익을 냈다. 카드사와 저축은행, 리스·캐피털회사도 수백억∼수천억원의 순익을 내고 있다. 고객의 돈을 만지는 금융기관치고 이익을 내지 못하는 회사가 없지만, 그 이익을 금융 소외계층에 재투자하려는 움직임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방글라데시만도 못하다 대안금융이 활성화되려면 금전적인 지원은 물론 제도적인 뒷받침도 필요하다. 미국 등 선진국들은 대부분 금융회사의 순익 중 일정 부분을 지역사회와 금융 소외층에 재투자하는 ‘지역재투자법’을 통해 ‘돈의 선순환’을 유도하고 있다. 우리보다 경제력이 훨씬 떨어지는 방글라데시에도 1100여개에 이르는 지점을 거느린 대안은행인 ‘그라민 뱅크’가 있다. 미국의 액시온, 영국의 GRF, 프랑스의 ADIE 등이 모두 영세기업, 빈곤여성, 청년실업자 등에게 무담보 신용대출을 해주는 대안금융 기관들이다. 이들은 모두 법으로 정해진 기부금, 휴면예금, 재정자금, 예수금 등을 통해 재원을 마련한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겨우 휴면예금 사용을 법제화해 대안금융 기관을 키우자는 논의가 있었지만 정치권과 금융권은 아직 아무런 결론도 내지 못하고 있다. 사회연대은행이 서울에 편중된 활동을 전국적으로 확대하기 위해서는 ‘광역도시 거점화’ 등 인프라 구축이 절실하지만 재원은 국민은행이 제공한 인프라 구축 기금 5억원이 고작이다. 나머지 기금은 모두 창업 지원 등 목적에 맞는 사업에만 지출해야 한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카메라 열정’ 하나로 해외시장 진출

    ‘카메라 열정’ 하나로 해외시장 진출

    얼마나 암담했던지요. 남들은 좋은 직장 들어가서 자리 잡아 나가는데, 저는 음침한 도서관만 전전했지요. 취직한 친구들을 만나면 괜스레 나만 못났다는 생각에 잠도 안 왔습니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로 했어요. 바로 카메라 가게를 차리는 것이지요. 드넓은 중국 대륙을 헤집고 다녔습니다. 기차로만 꼬박 30시간 걸리는 곳에 가는 것도 신났어요. 그곳에 가면 카메라가 있으니까요. 이제 웬만한 카메라 동호인들은 우리 물건을 제법 알아준답니다. 자, 가슴을 펴고 하늘을 보세요. 누구 말대로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으니까요. 글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사진 김명국기자 daunso@seoul.co.kr ‘청년실업 50만명 시대’에 해외 시장에 진출해 창업에 성공한 젊은이가 있다. 주인공은 인터넷 쇼핑몰 ‘레드카메라(www.redcamera.co.kr)’의 김주섭(34)씨. 클래식 카메라, 토이 카메라, 폴라로이드 카메라, 바늘구멍 사진기 등 톡톡튀는 카메라를 취급한다. 2001년 중국에 있는 친구로부터 카메라를 공급받아 판매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집에서 일했지만, 이제는 서울 중구 신당동에 40평짜리 사무실을 마련했다. 김씨는 어엿한 사장님이고, 친구는 중국 지사장. 이들을 포함해 모두 6명이 레드카메라를 이끌고 있다. ●눈칫밥 백수생활 굿바이 원래 김씨의 꿈은 해운업계의 ‘마도로스’였다. 전공을 바꿔 다시 대학에 입학, 무역학을 공부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외환위기로 어렵던 1999년 학교를 졸업해도 김씨가 일할 곳은 없었다. 토익 점수도 그리 좋지 않은 데다 학교 성적도 뛰어나지 못했다. 열정만으로는 모자랐다. “도서관을 전전하면서 부모님 보기에도 부끄러웠지요. 남들은 좋은 직장 들어가서 자리잡아가고 있는데, 저는 공부도 늦게 시작해 일자리도 못구하고…. 결국 뉴질랜드로 어학연수를 떠났지만 그곳에서조차 제 자신이 못났다는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었어요.” 그러던 어느날 중국에 교환학생을 가있는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중국·러시아 카메라에 관심을 갖게 됐는데 돈벌이가 되지 않겠냐는 것. 카메라 하면 죽고 못사는 김씨였기에 친구의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김씨는 고교 시절 1년 넘게 어머니를 졸라 수동 카메라를 산 뒤 언제 어디를 가나 카메라를 갖고 다녔다. ●중국 샅샅이 뒤지며 사들여 국내서 판매 김씨는 뉴질랜드에서 한국으로 돌아와 짐만 풀고, 다시 중국으로 떠났다. 일단 친구를 만났다. 베이징, 상하이, 쿤밍, 광저우 등 중국을 헤집고 다니면서 카메라를 사들였다. 기차로만 꼬박 2박3일 걸리는 곳에 가는 것도 두렵지 않았다. 어딜 가도 카메라가 있기 때문이었다. “중국 시장이 어마어마하게 큰 만큼 카메라에 대해서도 새로운 세상이 열렸습니다. 중국을 다니면서 ‘그래, 취업은 포기하자. 내 사업을 해서 부모님께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자. 보란 듯이 성공하겠다.’는 생각이 마구 솟구쳤지요.” 중국에 친구를 남겨두고 김씨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홈페이지를 만들어 현지에서 사온 카메라를 하나씩 하나씩 팔았다. 친구가 물건을 보내주면, 김씨가 홈페이지에 사진을 올리고 되파는 방식이다. 상호는 ‘레드 카메라’로 정했다. 주력 상품이 러시아·중국·동독 등 공산권 카메라이고, 공산권 국기 색이 빨간색이어서 붙인 이름이다. ‘틈새시장’을 뚫은 덕분인지 카메라 한 종류당 1000만원어치가 팔려나가는 등 ‘대박’이 났다. 김씨를 볼 때마다 혀를 끌끌 차던 어머니의 잔소리도 줄어들었다. ●발품+성실로 불황 타개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이용자 집단도 한정돼 있고 유사 업체도 생겨나면서 판매세가 주춤했다. 더욱이 중국 위안화 절상으로 가격 경쟁력도 떨어지기 시작했다. 새로운 전략이 필요했다. 우선 대형업체에 납품하기로 마음먹었다. 쉽지 않았다. 기존에 물건을 공급한 업체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야말로 ‘계란으로 바위치기’였던 셈. 남들이 팔지 않는 상품을 대량 공급하는 것으로 전략을 수정했다. 중국에서는 발품을 더 팔아 보다 독특한 카메라를 발굴했다. 문제는 한국에서 제품을 사들일 돈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 “은행에 대출받으려고 했더니 담보를 요구했어요. 집은커녕 자동차도 없는데 대출 받는 것 자체가 무리였던 셈이지요. 그런데 서울신용보증재단에서 영세 사업자를 위한 특별대출을 해준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덕분에 담보·보증 없이 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고, 점찍어 뒀던 카메라를 사들일 수 있었습니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인터넷 쇼핑몰에서는 한 달이 지나지 않아 상품이 모두 동나게 됐다. 이를 바탕으로 대형 업체에도 납품을 하기 시작했다. 한 군데 판로를 뚫으니까 다른 곳에도 판로가 생겼다. 김씨는 현재 이마트, 코즈니,10X10 등에 카메라를 공급하고 있다. 또 하나의 전략은 인터넷 쇼핑몰에 사진을 띄우는 일. 제품인 카메라 사진만 올리는 것이 아니라 카메라로 찍은 사진도 홈페이지에 올려서 카메라에 대한 관심을 끌어내는 것이었다. 좋아서 찍기 시작한 게 먹고 살기 위해 찍는 것으로 변한 셈이었다. 자동카메라와 달리 수동카메라는 색감이 예쁘게 나와서 매력이 있었다. ●취업보다 나은 창업 선택 김씨에게 취업보다 창업이 더 나은 선택이었는지 물었다.49%는 아쉬운 마음이지만,51%는 여전히 잘한 결정이었다고 답했다. 중소 업체인 만큼 대형 업체에 물건을 공급하면 60일이 지나서 대금을 받는 등의 애로사항도 있다. 생각만큼 물건이 안 팔릴 때면 머릿 속은 복잡하기만 하다. 일단 딸린 식구들의 월급은 꼬박꼬박 챙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김씨는 자신이 일궈낸 만큼 성취감도 크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말했다. “조건 좋은 회사라면 누구도 마다하지 않겠지만 그런 곳에 들어가는 게 현실적으로 힘들 수도 있지요. 번듯한 직장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습니다.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다면 더 없이 행복할 수 있을 겁니다.”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20일 TV 하이라이트]

    ●글로벌 코리안(YTN 오전 10시25분) 중고차 수입을 전면 개방한 베트남에 한국 중고차의 진출은 한류의 영향으로 비교적 유리한 편. 그러나 한국차도 외국브랜드와 똑같은 세금이 매겨져 상대적으로 불리할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딜러들은 저렴한 가격, 뛰어난 성능, 디자인 등 한국차에 대한 높은 인지도로 인해 승산이 있다는 분석인데….   ●책 읽어주는 여자, 밑줄 긋는 남자(EBS 오후 11시55분) 마냥 쉽고 행복하기만 한 인생은 없다. 어려울 때엔 누군가의 따뜻한 한마디를 필요로 한다. 당신의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는 무엇이었나? 고건 전 총리, 배우 최주봉, 하모니스트 전제덕. 지금의 위치에 서기까지, 삶이 흔들릴 때마다 그들을 굳게 잡아준 말 한마디를 들어본다.   ●청년 성공시대(SBS 오후 7시5분) 섬세한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한국음식. 음식의 손맛을 내기 위한 요리사의 섬세함을 시험한다. 살코기부터 내장까지 총 120여가지로 분류되는 한우의 분류 작업을 보고 최고 1등급 한우 분류 작업을 시도한다. 등심, 목심, 양지, 사태 등 쇠고기의 10가지 부위의 질감을 본 후에 부위를 구별한다.   ●가족愛 발견(MBC 오후 7시20분) 일란성 쌍둥이 슬우와 슬찬이는 자폐성 발달장애 2급. 쌍둥이의 장애를 인정한 그 순간부터 아이들에게 씩씩한 엄마로 살아가겠다고 다짐한 인순씨. 하지만 작은 체구로 쑥쑥 커가는 슬우, 슬찬이를 통제하기란 점점 힘이 든다. 가족들은 쌍둥이 형제의 장애를 극복하고 진정한 가족애를 찾을 수 있을까?   ●641가족(KBS2 오후 6시10분) 인터넷을 많이 하던 요한은 학교 홈페이지에 장난삼아 자신이 불우한 친구인양 컵라면이라는 이름으로 새엄마가 자신을 구박하고, 아버지는 아프고, 누나는 먹을 것을 빼앗아 먹는다고 쓴다. 글이 학교 전체로 퍼지면서 달래, 유미, 성민과 아이들이 컵라면 돕기운동을 펴는 등 일이 확산되자 요한은 당황한다.   ●별난여자 별난남자(KBS1 오후 8시25분) 석현은 자신의 병이 심각하다는 것을 알고 나라를 찾아가지만, 나라는 모진 소리로 석현을 내쫓는다. 유정은 기웅이 억울하게 지방 발령 받은 걸 알고 나라를 찾아가 따지고, 기웅은 창업 준비와 도시락 상품 개발로 바쁜 나날을 보낸다. 종남은 석현이 사표를 냈다는 재만의 전화에 놀라는데….
  •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풍림산업 이필웅 회장家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풍림산업 이필웅 회장家

    1981년 이후 30위권에 들었던 건설업체 가운데 대주주의 변동 없이 시공능력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업체는 풍림, 대림 등 8개뿐이다. 나머지 업체는 주인이 바뀌었거나 30위권 밖으로 밀려났거나 아예 공중분해된 경우도 있을 정도다. 국내 건설산업의 한 획을 긋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기에 충분하다. ●기업 보국 신념으로 창업 국내 건설업 20위권으로 성장한 풍림의 뿌리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창업 초기부터 다른 기업과 달리 바깥에 기업을 알리기보다는 내실에 충실한 경영을 했기 때문이다. 풍림의 역사를 거슬러 오르면 국내 굴지의 건설사인 대림산업과 뿌리를 같이한다. 대림산업의 창업주이자 사장이었던 이석구(작고) 선대 회장이 1960년 군별 공사 제한을 극복하기 위해 작은 공사를 수주할 수 있는 2군 업체인 풍림산업(전신·전일기업·1954년 설립)을 인수, 오늘날 풍림으로 키웠다. 이석구 창업주는 1939년 20대 후반에 목재상인 ‘부림상회’를 설립했는데 이것이 오늘날 대림산업과 풍림산업의 모태가 됐다. 이석구는 사업이 번창하면서 경기도 시흥(현재 군포 산본)의 지주이자 외삼촌(이규응)으로부터 사업 자금을 빌려쓰는 대신 한 가지 제안을 받는다. 둘째 아들(재준), 즉 외사촌 동생과 함께 사업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부림은 이 때부터 두 사람의 노력으로 나날이 번창했고 해방 후 1947년 상호를 대림산업으로 바꾸면서 건설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된다. 이 창업주의 기업 이념은 ‘기업보국(企業報國)’이었다. 나라를 일본에 빼앗긴 채 고통스러워하는 현실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민족과 나라를 살리는 길은 사업을 열심히 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기업의 성장을 통해 국가를 살리자는 기업가 정신이 투철했던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이 창업주는 1962년 과로한 탓에 병세가 악화돼 병원에 입원하게 되는데, 이를 계기로 대림산업의 경영권을 내놓고 투병 생활을 하다가 결국 병석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만다. 이후 대림산업 경영권은 함께 일하던 이재준 사장이 맡아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무위·무심경영으로 풍림 육성 이석구 창업주의 기업정신은 맏아들 이필웅(64) 현 풍림산업 회장이 물려받았다. 이 회장은 63년 선대 회장이 경영하던 대림산업에 입사, 경리일을 배우면서 기업인이 된다. 군대를 다녀온 뒤 대림산업에 다시 입사, 영업부에 배치돼 경영수업을 착실히 쌓기 시작했다. 이 때의 경험이 훗날 풍림산업의 최고 경영자로서 자질을 갖추는 데 큰 도움이 됐다. 풍림은 당시 경제개발 붐을 타고 각종 공사를 따내면서 커왔다. 해외공사를 활발히 펼치는 동시에 경영관리와 조직정비를 통해 기업을 현대화하는 데 주력했다. 초기 대림산업의 공사를 하청받는 형태에서 벗어나 어느새 중견건설사로 우뚝 성장했다. 풍림의 제2창업은 이필웅 회장이 대림산업 부사장을 역임한 것을 끝으로 1981년 7월 풍림이 대림으로부터 완전 분리, 독립경영을 하면서 시작됐다. 본래 선대 회장이 창업한 대림산업은 동업자인 이재준 사장에게, 창업주의 맏아들인 이 회장은 계열사로 있던 풍림을 맡게 된 것이다. 이 회장이 풍림산업 경영 일선에 나서면서 그를 중심으로 한 경영체제가 구축되기 시작했다. 경영 쇄신을 단행, 국내외 조직을 개편하고 관리 인원을 줄이는 한편 전문 하도급 업체를 육성하는 등 공사 전문화를 추진했다. 그러나 풍림에도 위기는 찾아왔다.2차 석유파동에 이은 경제불황, 이로 인한 건설수요 급감은 풍림의 수주 신장률을 꺾는 치명타를 입혔다. 수주 경쟁이 치열해져 낙찰률이 떨어졌고, 자금조달 능력 부족으로 민간 공사 및 자체 사업 진출은 더디기만 했다. 해외공사 역시 다른 건설사와 마찬가지로 일감 수주가 어렵고 적정 이윤 확보가 쉽지 않아 무턱대고 진출할 수만은 없는 형편이었다. 결국 1986년 경영 쇄신에 들어간다. 본사 유사 조직을 통폐합하고 인력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경영의 효율성을 올리는 동시에 원가 절감 등으로 허리띠를 졸라맸다. 직접 관리인을 줄이는 대신 협력업체를 키워 공사 전문화를 유도했다. 동시에 교육훈련을 강화하고 우수 인재를 확보하는 등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오늘날의 풍림으로 성장하게 된다.86년 4월에는 강남 테헤란로의 명물 풍림산업 사옥을 준공한다. 풍림빌딩에는 최근까지 특허청이 입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특허청 빌딩으로 더 유명했다. 최근에는 이 건물 주변으로 고층 빌딩이 빼곡히 들어서고 복잡해져 찾기 어렵지만 오랫동안 테헤란로의 랜드마크 역할을 했다. 풍림의 성장 동력에는 이 회장의 경영 마인드가 크게 작용했다. 그는 기업을 지혜와 자제심으로 이끌어야 한다고 믿는다. 경영의 리더는 조직이 잘 운영되도록 작용하고, 최대한 순리에 따라야 한다는 철학을 지녔다. 바로 ‘무위(無爲)와 무심(無心)의 경영’이 이 회장의 경영철학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따르는 사람이 많았고, 도전과 성취 욕구가 강한 인재들이 몰려들었고 어려운 시기를 맞아 조직이 하나로 뭉칠 수 있었던 힘이 됐다. 이 회장은 현재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 중이며, 동생 이필승(56) 풍림산업 사장과 지난해 승진한 장남 이윤형(35) 상무가 그를 돕고 있다. 이 사장은 83년 3월에 풍림산업 자금부에 입사해 이후 경리·자재·총무·기획실 등을 두루 거쳐 99년 1월 사장으로 취임한 전문 경영인이다. 현재 풍림은 향후 50년을 어떻게 전개해야 할지 새로운 선택의 시점에 서 있다. 우선 풍림은 철저한 수익성 위주의 경영을 통해 안정적 성장기반을 공고히 하는 데 주력할 것이다. 기업의 경쟁력 확보는 우수 인재 확보에 있다는 것을 잘 알기에 핵심 기술 확보 등에 매진하고 있다. 민간 건설 시장 위축, 최저가낙찰제 확대 등으로 공공시장 수주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틈새시장 개척에 주력하고 있다. 자체 보유 부동산이 많지 않기 때문에 개발 사업을 대대적으로 펼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오히려 땅 소유 부담에 따른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따라서 높은 아파트 브랜드 인지도를 내세워 수익성 있는 민간 발주 아파트 공사를 적극 수주할 방침이다. 해외건설은 엑슨 모빌이 발주한 러시아 항만 접안시설 및 부대시설 공사와 쉘이 발주한 가스 파이프라인 가압공사 진출을 계기로 해외사업을 강화할 채비를 갖췄다. ●두꺼운 인맥, 단출한 혼맥 이 창업주는 주변에 많은 사람이 따랐다. 풍림을 거쳐간 이재순, 이면훈, 허필은 사장 등이 창업주와 함께 초창기 대림과 풍림을 키운 전문 경영인들이다. 술은 한 모금도 못했지만 술자리에는 빠지지 않았다고 한다. 건설업 특성상 술자리도 자주 참석해야 하던 시절이었지만 술 한 모금 못하면서 영업에는 귀재였다고 한다. 공사를 따내기 위해 당시 정주영 현대건설 회장 등과 선의의 경쟁을 벌이면서 건설업의 과당 경쟁 풍토를 정비하고 건설업 발전을 도모하는 등 국내 건설산업의 기초를 세우는 데 공헌한 인물로 꼽힌다. 또 해야 할 일을 쌓아두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부림상회 시절 주문이 들어오면 이 창업주는 소달구지에 목재를 가득 싣고 직접 배달을 가기도 했다. 소달구지 직접 모는 사장으로 통할 정도로 소탈하고 일에 대해 열정적이었다. 그는 사람 다루기를 잘했던 것 같다. 회사에서 가장 부지런한 사람은 사장이라고 할 정도로 앞에서 뛰었다. 형제가 많지만 가족들이 경영에 참여하는 것은 한정됐다. 풍림산업 경영에 참여하는 가족으로는 이 사장과 장남 이 상무가 전부다. 부지런함은 가족들에게 그대로 물려줬다. 이 회장이나 이 사장이 현장을 자주 찾고 새로운 사업 구상과 투명경영 추구는 사풍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회장은 지금도 매일 역삼동 사옥으로 아침 일찍 출근해 주요 업무를 직접 챙길 정도다. 이 사장 역시 아침 7시면 출근할 정도로 부지런하다. 이 회장의 집안은 형제 자매가 10명인 대가족이지만 혼맥은 단출하다. 다른 기업과 달리 굳이 정계·재계 집안과 결혼을 고집하지 않았다. 대부분 집안 어른 소개로 평범한 집안과 혼인했다. 주변 사람들은 풍림의 단출한 혼맥을 놓고 한국 건설업계의 초석을 다지며 50년 이상 성장한 회사답지 않게 복잡하지 않다고 말할 정도다. 이 회장의 큰 누이 필선씨는 일반적인 가정의 자녀 임대철씨와 결혼했고, 바로 윗누이 역시 평범한 가정의 권철주씨와 혼인했다. 매부들이 서울 공대 출신으로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관련 기업에 근무했을 정도다. 셋째인 이 회장도 중매로 결혼했다. 이영자 여사 역시 평범한 집안이었다. 이 여사는 몇년 전 갑작스럽게 세상을 달리했는데, 임직원들이 모두 아쉬워한다. 임원들을 직접 집으로 불러 떡국을 끓여줄 정도로 자상하고 가정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여사를 사별한 뒤 장현덕(47) 여사와 재혼했다. 이 회장은 자식들 결혼 역시 일상적인 가정의 자녀들과 맺어줬다. 큰딸 정민씨는 이동한씨와 혼인했다. 이동한씨는 일본에서 공부하고 국내에 진출한 일본 기업에 근무하던 중 반 중매 반 연애결혼했다. 국내 굴지의 회사 자녀이지만 결혼식은 조용하게 치렀다. 두 아들 역시 결혼 과정이 평범하고 소리나지 않는다. 큰 아들인 윤형(35)씨는 한양대를 나와 미국 시러큐스대에서 MBA 과정을 밟던 중 알게 된 오유진씨와 연애결혼 했다. 유진씨의 부친은 고려대 교수이다. 작은아들 주형(34)씨는 지난 2001년 말 역시 미국에서 유학 중 만나 사귄 최수현씨와 결혼했는데 사돈 집안은 평범한 가정이다. 이런 풍토는 이 회장의 다른 동생들도 마찬가지다. 이필승 사장은 대학때 사귄 평범한 집안의 딸 강환량씨와 연애결혼에 골인, 가정을 꾸렸다. 나머지 동생들 역시 본인이 원하는 배우자를 만나 결혼하는 등 보기 드물게 단출한 혼맥을 유지하고 있다. chani@seoul.co.kr ■ 젊은 아이디어의 산실 ‘영 보드’ 눈길 풍림산업은 젊은 기업으로 통한다. 군더더기가 없다.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조직을 재정비하고 신속한 의사결정이 이뤄지도록 변신했기에 가능했다. 급변하는 경영환경 속에서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기획기능을 강화, 각 부문별 경영전략 모색을 통한 신속한 의사소통과 현장의 소리를 듣기 위해 기획담당 제도와 ‘Young Board(청년경영자회의)를 운영하고 있다. 2001년부터 운영되고 있는 기획담당 회의는 각 사업부(본부)의 부·차장급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평소 현업을 수행하며 교육을 받거나 정보를 수집하고, 격월 1회 정도 전체 임원회의에서 부문별 시장동향, 부문별 전략 등을 브리핑한다. 이들이 브리핑한 내용은 임원들이 즉시 검토, 경영에 반영하고 있다. 풍림의 청년경영자회는 1987년부터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는데 대리, 과장급 10여명 정도로 구성되며 임기는 2년이다. 이들은 평소 현업을 수행하며 업무 관련 아이디어나 회사경영에 건의할 사항을 준비해 매달 1회 자체회의를 연다. 회의 결과는 사장과 면담을 통해 직접 건의하는 형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청년경영자들은 차세대 경영자가 되기 위한 경영관련 교육을 받고 있는 셈이다. 이들은 또 고아원, 장애인시설 등 방문 등 회사의 자원봉사활동을 주도적으로 펴나가고 있다. 이필승 사장은 “기획담당 제도와 영보드회의 활성화로 열린 경영을 추구하고 의사결정이 빠른 경영 풍토를 마련할 수 있었다.”며 “풍림산업이 외환위기를 겪으면서도 살아남고 지속적으로 성장·발전한 원동력이 되고 있다.”고 칭찬했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지난 50여년 오직 한 길, 건설에만 매달려온 풍림산업. 작은 묘목이 모여 울창한 수풀을 이루듯 풍림은 건설업계 20위, 매출액 1조원대의 굴지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회사 이름은 목재회사를 시작으로 한 부림상회(富林商會)와 연결된다. 인천 부평역 앞에서 작은 가게를 얻어 문을 연 부림상회는 이후 국내 굴지의 건설회사인 풍림산업과 대림산업으로 발전,‘풍요로운 울창한 숲(豊林)’을 이루고 있다. 초기 기업가들이 다양한 분야로 사업영역을 넓혔던 것과 달리 풍림은 오직 건설 전문기업으로 한 우물만 파고도 그룹 건설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곁눈질하지 않고 건설만 고집하다 보니 회사가 대그룹으로는 성장하지 못했지만, 오히려 몸집 부풀리기에 치중한 기업들이 힘없이 쓰러진 것과 비교해 어려운 경제환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이기도 하다. ■ ‘엄격한 경영수업’ 풍림의 家風 풍림가는 엄격한 경영수업으로 유명하다. 장자 중심으로 경영권을 물려주고, 여자 형제의 경영참여를 허락하지 않는 것도 다른 기업과 다르다. 몸소 뛰고 정도를 고집하는 것이 가풍(家風)이자 사풍(社風)이다. 창업주 본인이 주문받은 물건을 직접 배달하고 현장을 확인한 뒤 작업을 지시할 정도로 부지런했다. 대림산업이 어느 정도 성장했을 때도 일감을 따내기 위해 사람들을 찾아다녔고, 국내외 건설현장을 직접 밟았다. 창업주 자신이 검소하고 한눈 팔지 않았을 뿐 아니라 2세,3세 역시 혹독한 경영수업을 받도록 하고 있다. 이 회장 역시 대림산업에 입사, 경리 업무부터 배웠다. 이후 각 분야에 근무하면서 경영인의 자질을 키웠다. 특히 풍림산업을 이끌면서 국내외 현장을 누벼 국내 대형 업체 반열에 올려놓았다. 이런 경영수업은 3세에게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 이 회장은 장남인 이 상무가 보다 체계화된 기업에서 일을 배우도록 하기 위해 바로 풍림에 입사시키지 않고 삼성전자와 대림산업에 밑바닥부터 일을 배우도록 했다. 호랑이가 새끼를 강하게 키우기 위해 바위 밑으로 떨어뜨리는 과정이라고 보면 된다. 또 선진 경영기법을 배우도록 미국 시러큐스대로 유학을 보내 MBA 과정을 밟도록 했다. 이후 풍림에 입사한 뒤에도 다양한 업무를 익히도록 하고 있다. 개발사업부에서 경영수업을 받던 이 상무는 지난해 승진하면서 조달본부 담당 임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자리는 구매·계약 업무를 총괄하면서 건설업의 모든 과정을 두루두루 꿰뚫어보고 실전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곳이다. 경영이라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니고, 최고경영자 역시 쉽게 올라갈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몸소 깨달으라는 뜻이다. 풍림 관계자는 “지난해 이뤄진 이 상무의 승진도 경영 수업을 착실히 쌓기 위한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이필승 사장도 조카인 이 상무의 경영수업에 대해 “엄격하게 제대로 경영수업을 받아야 기업을 이끌 수 있고, 탈이 없는 것”이라며 “(엄격한 경영수업이) 풍림의 전통”이라고 말했다. chani@seoul.co.kr
  •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환그룹-최종환 명예회장家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환그룹-최종환 명예회장家

    올해로 건설 외길 60주년을 맞는 삼환기업은 현재 남아 있는 유일한 1세대 건설기업이다. 대림산업·삼환기업·삼부토건 3개사만 명맥을 잇고 있지만 창업주가 살아 있는 곳은 삼환뿐이다. 대부분의 건설기업은 90년대 말 IMF 외환위기 전후에 부도가 나 좌초됐다. 삼환에 대한 평가는 극단으로 갈린다.70∼80년대 국내에서 내로라 하는 빌딩을 지은 주인공이자 중동에 처음 진출해 중동 붐을 일으킨 기업이지만, 최근엔 80년대에 비해 해외 수주액이 급감하는 등 예전보다 인지도가 많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부침이 심한 건설업계에서 꾸준한 수익성을 유지하며 ‘환갑’의 값진 전통을 이어간다는 데 이견이 없다. 삼환은 올해 창업 60년을 맞아 국내외로 외형을 확장, 건설 명가로서 제2의 도약을 꾀하고 있다. ●창업 60년 맞아 제2의 르네상스 꿈꾸는 삼환 삼환기업은 올해를 제2 해외 르네상스의 원년으로 삼고 있다. 최근 사우디아라비아 제다공항 확장공사 입찰에서 최저가를 써 1순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돼 계약을 협의 중이다. 건축비가 지난해 삼환기업 해외 매출(600억원)의 4배 규모인 2500억원이다. 해외유전 사업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연 100억원대 수익을 올린 마리브 유전 투자에 이어, 지분투자(4.9%)로 참여한 베트남 가스전 개발사업이 올해 하반기부터 수익을 낸다. 이밖에 지분투자(1.6%)를 한 예멘 마리브 LNG 개발사업도 오는 2009년부터 수익을 낼 전망이다. 국내에서는 3조원대 규모의 대우건설 인수전에도 참여, 건설기업 전통 명맥을 잇기 위해 전력을 쏟고 있다. 창립자인 최종환(82) 삼환그룹 명예회장은 1924년 12월29일 최상림씨와 김림자씨의 5남2녀 중 4남으로 서울 종로에서 태어났다. 종로의 종(鍾)자에 돌림자인 환(煥)자를 붙여 지은 이름이다. 양반이 광화문 중심에서 사대문 밖으로 쫓겨나 사는 것을 몰락으로 여기던 시절이었다. 사대부 출신인 그의 집안은 가세가 기울면서 광화문 중심에서 다동으로, 이어 효자동, 종로4·5가 등으로 밀려났고 그는 종로 4가에서 태어났다.‘종환’이란 이름에는 사대문 안은 벗어나지 않았다는 안도의 뜻이 담겨 있다는 회고다. 훗날(1980년) 창덕궁이 내려다 보이는 종로구 운니동에 20층 규모의 삼환사옥을 세운 것을 두고 그가 남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제 점령기에 초등학교(어의보통학교·현 효제초등학교)를 다닌 그는 글재주가 뛰어나 졸업할 때까지 각종 작문 대회에서 1등을 휩쓸었지만 학업에 뜻을 두진 못했다. 열 살이 되던 해에 궁핍한 살림에 아버지마저 사망하자 일찌감치 생업 전선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건설업과 인연을 맺은 것은 그의 형들과의 연관이 깊다. 큰 형인 고 명환씨와 둘째 형인 고 영환씨가 졸업 이후 수도·난방공사 자재를 생산·시공하는 스기야마 제작소에 들어갔는 데 회사에서 쓰다 남은 자투리 파이프를 집에 가져와 가공, 다시 납품하는 식으로 돈을 벌면서 1933년 경동기계제작소를 설립했다. 그는 어의보통학교에 이어 2년제 경성직업학교 기계과를 졸업한 뒤 18세가 되던 1940년 형들의 회사인 경동에 합류했다. ●약관의 나이에 창업…미군 공사로 국내 기반 삼환은 설립 이후 60년대 초반까지 줄곧 주한미군에서 수주한 공사에 전념했다.1945년 해방과 함께 미국 공병대에서 크고 작은 공사를 발주했는데 토목·수도·난방 등 업종별로 공사를 따로 주지 않고 한 업체에 모든 공사를 맡기는 식이었다. 그는 경동기계제작소안에 공사부를 설립해 영업부장으로 뛰며 미군 공사를 수주했다. 한발 더 나아가 하청업체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물 한 살이던 1946년 3월15일 오늘의 삼환그룹 효시인 삼환기업공사를 설립했다. 큰 형과 둘째 형, 그리고 최 명예회장 삼형제가 합심해 만든 회사란 뜻에서 지은 이름이지만 실질적인 소유주나 최고경영자는 최 명예회장이다. 회사 설립후 8개월 동안 이룬 공사실적만 총 26건 130만원이다. 당시 공무원 월급이 1만원인 것을 감안하면 상당한 액수다.1948년 가을 을지로 2가 119번지 53호를 매입해 신사옥도 마련했다. 1949년에 착공한 강원도 영월 등 7개 광산지역의 미국인 광산기술자용 주택공사는 당시 업계의 부러움을 산 초대형 공사였다.1950년 6·25로 공사는 중단됐고 건물은 불에 타버렸지만 이 공사는 훗날 새옹지마격으로 그에게 전쟁 이후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주는 계기가 됐다. 서울 수복후 미군 공사 관계자는 그를 반도호텔(현 롯데호텔)로 불러내 큰 궤짝 하나를 내놓았는데 그 속에는 당시 2000만원이 들어 있었다. 불에 타버려 흔적조차 사라진 건물의 공사비를 뒤늦게 받은 것이다. 주식회사로 전환한 것은 전란 이후 1952년 9월의 일이다. 서울 수복후 전후 복구공사에 힙입어 사세를 키워나가던 중 삼환은 당시 주주 10명이 총 주식 2만주를 발행하면서 주식회사가 됐다. 그 중 최 회장이 1만주, 둘째 형 영환씨가 5000주, 큰 형 명환씨가 500주를 가졌다. ●국내 ‘중동 붐’ 조성…횃불신화로 국제 명성 쌓아 1961년 ‘5·16’은 새 전기를 가져왔다. 수의계약으로 이뤄지던 관급공사가 경제개발계획과 함께 신문에 종종 입찰공고가 나는 일이 생겼고 삼환은 국내 주요 공사를 맡는 ‘건설 명가’로 부상하기 시작했다.5·16 이후 삼환이 따낸 최초의 관급 공사는 1962년 발주한 서울 광진구 광장동 워커힐 호텔이다. 이어 경부·호남·영동·남해·동해고속도로 등 각종 토목 공사에 참여했고, 국립극장, 삼일빌딩, 조선·프라자·신라 호텔, 지금은 사라진 남산외인아파트, 여의도 전경련 회관, 국립묘지 현충탑, 포항제철(현 포스코) 공장 등을 지으며 주택·오피스빌딩·토목·플랜트 등 각 분야에서 사세를 확장해 나갔다. 삼환은 국내사업에 만족하지 않았다. 해외진출 가능성을 계속 탐색하던 최 명예회장은 1963년 월남 사이공(호찌민)에 지사를 설립하면서 첫 해외 진출을 시도했다. 정국 혼란으로 4개월 만에 철수했지만 이후 1968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한국 업체 최초로 지사를 설립한 데 이어 1973년 국내 업계 최초로 중동 사우디아라비아에 진출했다. 삼환은 사우디에서 네번 연거푸 고배를 마신 뒤 다섯번째 카이바∼알울라고속도로(175㎞) 입찰에서 2400만달러 규모의 공사를 따내며 국내 중동 진출 1호 기업이 됐다. 완공 때까지 3년간 자재 공급난, 종교 문제 등 시행 착오로 적자를 면치 못했다. 그러나 이어 사우디 최대 규모인 제다시(市) 전체를 뜯어고치는 미화사업을 맡으면서 행운을 잡았다. 미화공사를 메카순례기간 전까지 끝내기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횃불을 켜놓고 야간공사를 강행하던 것을 파이잘 국왕이 보고 감동을 받은 것이다. 이를 계기로 삼환은 6000만달러 규모의 대형 공사를 수의계약하게 됐고 ‘횃불신화’라는 말을 남기며 국내 건설업체의 중동 진출 붐을 조성하는 등 명성을 널리 알리는 개가를 올렸다. ●해외 프론티어의 꿈…정체된 90년대 80년대 들어서는 해외시장에 더 집중했다.1978년 미수교국이던 예맨에 진출했고 이를 계기로 1984년 북예맨 마리브 유전개발에 참여하면서 원유사업을 시작했다. 이어 요르단, 파푸아 뉴기니아, 알래스카, 방글라데시, 사할린 등 시장을 개척했다. 국내 기술을 해외에 알리기 위해 국제 모임에 적극 참여,1982년 아시아 서태평양 건설연합회인 아이포카(IFAWPCA) 5대 회장에 추대됐고 재임시절 세계건설인대회도 제창했다.1990년대 들어서는 회사 일 보다 민간 외교에 시간을 쏟았다.1992년 한·소 경제협력회 2대 회장으로 선임됐고 재차 연임됐다. 러시아의 정치·경제 여건이 성숙되지 않아 성과를 이루지 못한 점은 두고두고 회한으로 남아 있다. 이런 탓에 90년대 들어 삼환의 해외 실적은 급감했다. 건설협회에 따르면 삼환의 해외공사 수주액은 1982년 당시 5억 8834만 8000달러(한화 6000억원)였지만 10년 후인 1992년에는 10분의1 수준인 624만 4000달러에 그쳤다. 국내 건설 업계의 주요 테마인 아파트 실적도 많지 않다.90년대 후반부터 업계가 경쟁적으로 환상을 담은 아파트 브랜드와 광고에 집중하며 수주전에 열을 올릴 때에도 삼환은 아파트 광고를 하지 않았다. 최 명예회장은 오히려 당시 시류에 대해 자서전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 없이’를 통해 “안쓰럽다.”는 평을 내놓았을 뿐이다. 한 때 9개에 달하던 계열사는 현재 6개로 정리됐다. 키친아트로 유명한 양식기 제조업체 경동산업(60년)과 코카콜라 등 청량음료 제조업체인 우성식품(69년)은 모두 1990년대 말 정리됐다. 태양관광(관광·77년)은 삼환엔지니어링(기술용역·76년)에 통합돼 삼환기술개발이 됐지만 설계 업무는 거의 하지 않고 관광업도 계열사 직원 출장을 위한 발권 업무 정도만 한다. 이밖에 우성개발(67년), 삼환까뮤(78년), 삼환종합기계(79년), 신민상호신용금고(78년), 회현상사(78년) 등은 명맥을 잇고 있다. 그러나 건설 명가로서의 국내 입지와 안정적인 매출은 줄곧 유지하고 있다. 건설 계열사를 가진 한화그룹의 1000억원대 대한생명 리모델링 공사를 지난해 수주했고,2007년 준공되는 건축비 595억원 규모의 팬택계열 서울 상암동 R&D센터도 짓고 있다. 삼환기업은 2005년 기준 매출 6612억원, 당기순이익 500억원을 기록했다. 올해 종합 수주액은 1조 5000억원 규모다. 삼환그릅 기준 2005년 매출은 1조 1000억원, 당기순익은 650억원이다. ●교사 부인과 1남1녀의 단촐한 가정 1947년 봄. 삼환기업공사의 30대 청년 사장으로 뛰면서 당시 숙명여학교 교사이던 고 채광영 여사와 2년여 열애 끝에 1949년 4월 결혼했다. 최 명예회장은 부인을 만났을 당시 “‘아!이 여자다.’라는 느낌이 퍼뜩 들어 프러포즈를 했다.”고 언론을 통해 회고한 바 있다. 부인 채씨는 그를 홀로 남겨둔 채 1999년 노환으로 먼저 세상을 떠났다. 부인과의 사이에 1남1녀를 두고 있다. 가업을 승계한 외아들 최용권(56) 회장은 동갑내기로 고 한정대 전 대한페인트잉크(DPI) 회장의 3녀인 봉주(56)씨와 1974년 결혼해 슬하에 2남2녀를 두고 있다. 경기고를 졸업하고 미 보스턴대를 나온 용권씨는 미 유학중 같은 유학생 신분이던 봉주씨를 만나 결혼했다.1975년 삼환기업 기획조정실장으로 입사해 8년 만인 1982년 32세 나이에 삼환기업 사장에 취임했다. 이어 삼환이 창립 50주년을 맞은 1996년 9월 회장으로 등극,2세 경영 체제를 굳혔다. 선친인 최종환 명예회장은 ‘바늘로 찌를 구멍’은 있어 보였던 데 비해 최용권 회장은 ‘찌를 구멍’조차 없는 사람이란 평이 임원들 사이에서 나온다. 최 명예회장의 손녀이자 최용권 회장의 장녀 영윤(31)씨는 이준용 대림산업 회장의 며느리가 됐다. 이 회장의 3남 해창(35)씨와 1999년 3월 결혼하면서 국내 두 전통 건설기업은 사돈관계를 맺게 된 것. 대림의 창업주인 고 이재준 선대 회장과 최 명예회장은 건설 1세대로 각별한 관계를 유지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해창씨는 현재 대림산업 계열사인 종합물류회사 대림H&L의 이사로 재직 중이다. 아는 사람 소개로 만나 2년여 교제끝에 결혼했다. 다른 손녀·손자들은 아직 모두 학생이다. 장손주 최제욱(29)씨는 예일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컬럼비아대에서 MBA 과정을 밟고 있고, 최지연(26)씨는 세계 최고의 미술대학 중 하나로 꼽히는 미국 RSID에서 공부 중이다. 막내 최동욱(22)씨도 콜롬비아대에서 학부 과정을 밟고 있다. ●형제들과의 인연…삼환에 친인척 1명도 남아 있지 않아 삼환은 인척들의 경영 참여 과정에서 불협화음이 없었던 것을 자랑스럽게 내세우지만 친·인척이 맡았던 경동산업과 우성식품은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그리고 지금은 친·인척 중 단 한 명도 삼환에 적을 두는 이가 없다. 맏형 고 최명환씨는 6·25 당시 자신이 설립한 삼환기업의 모체인 경동기계가 잿더미로 변하자 동생 최 회장과 함께 삼환기업공사를 설립한 뒤 주주와 이사로 활동했다. 그의 아들인 동국대 출신의 용근(67)씨는 계열사인 우성식품 이사, 삼환기업 사장 등을 맡다가 1996년 삼환까뮤 사장직을 끝으로 삼환을 떠났다. 둘째 형인 고 최영환씨는 국내 최초 강관회사인 한국강관의 3인 발기인으로 참여하면서 삼환을 떠났는데 한국강관의 부회장까지 맡은 바 있다. 이대 영문과를 졸업한 그의 차녀 계자(64)씨는 18대 과학기술부 장관을 지낸 권숙일씨와 결혼했다. 장남 용재(56)씨는 1993년 삼환의 계열사로 지금은 사라진 키친아트 등 양식기를 제조했던 경동산업의 사장을 맡은 바 있다. 차남 용진(53)씨는 ㈜유창 사장으로 삼환과는 무관한 사업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셋째 형 고 최경환씨는 1958년 삼환의 관계사로 설립된 양식기 제조업체인 경동산업의 대표이사 회장을 지냈다. 이 회사가 정리되기 직전인 1999년까지 재직했다. 그의 아들 최용철(60)씨도 이 회사 대표이사 부회장을 지냈다. 경동산업은 인건비 상승과 경쟁 심화로 자금난을 겪다 94년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2000년 다시 법정관리 퇴출 명령을 받으면서 정리됐다. 그의 장녀 최형인(57)씨는 한양대 인문과학대 연극영화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고 최경환씨의 사위이자 최형인씨의 남편이 삼성의 반도체 신화를 이끌어온 이윤우(60) 삼성전자 기술총괄부회장이다. 막내 동생인 최정환(73)씨는 삼환이 코카콜라 부산·경남지역 판매권을 가진 우성식품을 1969년 창립하면서 이 회사 사장으로 취임했다. 연간 매출 1300억원대로 한 때 부산지역 대표 식품회사로 명성이 높았지만 방만경영과 과다 부채를 이유로 회사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최정환씨는 형인 최 명예회장으로부터 1997년 4월 경질됐다. 이 회사는 1997년 코카콜라 부문을 매각한 뒤 같은해 말 부도처리됐다. 최정환 전 회장은 서울대 상대, 산업은행을 거쳐 1968년 삼환에 입사했다. 이 회사 사장을 지낸 최정환 회장의 장남 최용석(47)씨는 회사가 문을 닫은 뒤 새천년민주당 창당발기인으로 활동하는 등 한 때 정치에 뜻을 두기도 했지만 지금은 정리하고 지성산업 대표이사로 재직 중이다. 장녀 영혜(45)씨는 건설부 장관, 상공부 장관을 지낸 고 장예준씨의 차남 동욱(48)씨와 결혼했다. jhj@seoul.co.kr ■ 故 정주영 명예회장과 ‘형님-아우’ “아, 이리도 황망히 가셨습니까? 아직도 회장님이 하셔야할 일이 많이 남아있는 데 무얼 그리 급히 가셨습니까? 여든 여섯의 춘추가 적은 것은 아니지만 우리 경제의 영원한 등불로 언제나 함께하시기를 기도했는데 이리 가시니 이별의 안타까움과 아픔이 너무도 시리게 느껴집니다. 정주영 회장님.” 최종환 명예회장은 2001년 3월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이 타계한 직후 당시 서울신문을 통해 이같은 조사를 남긴 바 있다. 두 사람은 생시에 형님-동생으로 서로를 부르며 경쟁보다는 조언을 구하고, 돕고 의지하는 형님과 아우로서의 정이 돈독했다. 그는 건설 1세대 중에서도 특히 고 정 명예회장, 고 이재준 대림산업 명예회장, 그리고 조정구 삼부토건 명예회장을 존경하면서도 가깝게 지낸 인물로 꼽았다. 자서전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없이’에서 고 정 명예회장에 대해 “타고난 능력과 자질 이외에 뛰어난 판단력과 결단력, 저돌적인 돌파력에 감탄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고 평했다. 고 정 명예회장은 전경련 회장으로 재직하면서 최 명예회장에게 부회장을 역임토록 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을 최 명예회장에게 처음 소개시켜준 사람도 고 정 명예회장이라고 덧붙였다. 고 조정구 삼부토건 회장에 대해서는 “나는 상대방의 잘못이 보이면 즉석에서 쏘아대는 성격이지만 그 분은 어떤 경우에도 참고 있다가 나중에 조용한 목소리로 상대방이 스스로 깨닫도록 설명해 주는 등 깊은 인내의 미덕을 갖춘 분”이라고 회고했다. 고 조 회장이 건설협회 회장을 맡을 때 최 명예회장은 이사로 그를 도왔다. 최 명예회장은 이들과 함께 황무지나 다름없던 이 땅에서 건설업을 일궈냈다. 그러나 지금은 마지막 남은 건설 1세대로 원로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서울 가회동 자택에서 지내고 있으며, 건강이 예전같지 않다. 수십년간 매일 30분씩 해온 ‘대나무 밟기’를 건강 비결로 소개했던 그였지만 요즘은 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진다.1996년 아들에게 모든 경영을 물려주고도 일주일에 최소한 사흘은 회사에 나왔지만 올들어선 일주일에 병원가는 날 하루 정도만 오전에 회사에 들른다. 평상시처럼 직원들과 지하 구내 식당을 찾는 등 검소한 모습은 그대로라는 평이다. ■ ’60년전통’ 삼환을 만든 사람들 삼환이 60년 건설 명가의 전통을 지켜올 수 있었던 데에는 전문경영인들의 공이 컸다는 평이다. 최종환 명예회장이 꼽는 최고의 CEO는 경성공업학교(현 경기공고) 출신의 고 이창호 사장이다. 부사장직으로 순직한 뒤 사장으로 추서됐고, 최 명예회장으로부터 ‘고락을 함께한 벗’으로 불리기도 했다. 최 명예회장은 지난 1977년 회사장으로 치러진 고 이 사장의 영결식 조사에서 “지금 내 오른팔이 떨어져 피가 흐르고 여며드는 것만 같은 아픔이 밀어 닥치는군요. 그러나 당신의 유지를 받들어 나는 기어코 우리 삼환을 세계 속의 삼환으로 만들고야 말겠습니다.”라며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격무로 일관하다 신병을 갖게 되어 휴양을 하다가도 중동 현장으로 달려가는 등 투철한 사명감은 지금도 귀감이 되고 있다. 그가 사망한 이듬해에는 ‘회사를 위해 노력한 사원에게는 응분의 보상이 꼭 있어야 한다’는 취지로 연금제도와 사원주택단지조성사업이 시작되기도 했다. 전동진(74) 사장도 삼환에서는 전설로 불리는 CEO중 한 사람이다.1975년 월남이 패망할 당시 월남지사장으로 근무하던 중 하청업자 공사대금 지불 등 잔무 처리를 위해 남아 있다 8개월간 공산 치하에 억류된 일화는 두고두고 회자된다. 육군사관학교 출신으로 1968년 육군 소령으로 예편한 뒤 삼환기업 중기부 과장으로 입사한 이후 1996년까지 삼환기업·삼환엔지니어링·삼환까뮤 등 계열사 사장을 두루 역임했다. 지금은 삼환의 육영재단인 우성문화재단에서 이사로 재직중이다. 행정고시 출신의 최석원(75) 고문은 내무부 치안본부장, 노동청장, 부산시장, 건설부 차관 등을 역임한 뒤 삼환의 해외사업이 꽃을 피우던 1982년 사장대우 상임고문으로 영입됐다. 지금도 우성문화재단 이사장으로 재직하며 노년까지 삼환과의 인연을 지키고 있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박건승 부장(반장) 정기홍·류찬희·최용규 차장 이기철·강충식·주현진·류길상·김경두·서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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