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청년 지역 활동
    2026-04-07
    검색기록 지우기
  • 미 캘리포니아
    2026-04-07
    검색기록 지우기
  • 광주전남
    2026-04-07
    검색기록 지우기
  • 삼산경찰서
    2026-04-07
    검색기록 지우기
  • 셰익스피어
    2026-04-07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4,801
  • [지방의회 부활 20돌] “지방 자치 성공적” 51명… “법적한계 여전”

    [지방의회 부활 20돌] “지방 자치 성공적” 51명… “법적한계 여전”

    지방의회가 부활된 지 오는 20일로 스무 돌이 된다. ‘스스로 책임질 줄 안다’는 약관(弱冠)의 나이가 된 지방의회는 풀뿌리 민주주의 정착이라는 사명과 함께 지역 주민의 생활 개선에 제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럼에도 ‘그들만의 리그’가 아닌 살아 있는 민심이 전달되는 제도로 더 발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서울신문은 서울 시·구의원 100명에 대한 설문 조사 결과를 근거로 지방자치 전반에 대해 짚어봤다. “자치 역량은 높아진 반면 자치 환경은 점점 열악해지고 있다.” 서울시의원과 자치구 의원들은 우리나라 지방자치제에 대해 절반 이상인 51명이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내놨다. 반면 ’부족했다’는 평가는 15명에 그쳤다. 보통이었다는 평가는 33명이었다. 성공과 실패에 대한 평가는 의원 개인의 관점에 따라 달랐지만 대체로 자치 역량은 높이 평가한 반면 자치 환경에 대해서는 낮게 평가했다. 성공적이라고 답한 의원들은 풀뿌리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 역량이 높아져 자치 역량 측면에서 높은 점수를 줬다. 반면 실패라는 평가를 내린 의원들은 법적·제도적 제한들이 지방자치를 옥죄고 있다며 낮은 점수를 준 것이다. ●“제도 정비 통해 한 단계 도약해야” 김정태(영등포·민주당) 시의원은 “지난 20년이 지방자치제의 정착 단계였다면 이제부터는 성숙기로 넘어가야 할 것”이라면서 “자치권 보장을 위해 헌법정신을 반영한 지방자치법의 전면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문환(광진·한나라당) 구의원은 “지방의회의 독립성이 매우 중요하다.”면서 “집행부는 의회를 불필요한 압력 단체로 생각하지 말고 의회와 함께 지역 발전을 위해 협력하고 상생한다면 지방자치가 튼튼한 청년으로 성장해 주민을 위해 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방의원들은 한 지역구에서 여러 명의 기초의원과 광역의원, 비례의원을 뽑는 중선거구제도를 손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기판(영등포·민주당) 구의원은 “기초의원 선거를 소선거구제로 전환하고, 광역·기초의원 통합 운영도 고려해야 한다.”면서 “예를 들어 선거구 내에서 상위 득표자가 광역의회에서 일을 하고 득표순으로 기초의회에서 일하는 제도 도입 등 변화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경애(송파·한나라당) 구의원은 “구의원은 한정된 자기 지역만의 의원이 아닌 구 전체를 위한 의원”이라면서 “전체를 바라볼 수있는 폭넓은 활동이 이뤄져야 하고, 너무 지나친 당대당 대결로 가면 안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정부의 지방분권 의지 불만 ‘현 정부의 지방자치(분권) 의지’를 묻는 질문에는 의원 38명이 ‘불만족하다’ 또는 ‘매우 불만족하다’고 답했다. 반면 ‘매우 만족’ 또는 ‘만족’이라고 답한 응답자는 16명에 그쳐 분권에 대해 미흡하다는 평가를 내렸다. 보통이라고 응답한 사람은 45명이었다. 노승재(송파·민주당) 구의원은 “20돌을 맞은 지방자치제가 올바르게 정착될 수 있도록 지방자치에 대한 정부의 의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동영(관악·민주노동당) 구의원은 “지방자치 20년의 시행착오를 극복하고 변화된 현실을 반영하기 위해서는 지방자치법과 지방재정법 전면 개정이 필요하다.”면서 “지방 공기업과 산하기관 등에 대한 인사청문회 도입, 의회 인사권 독립, 행정사무 감사 기간 및 권한 확대, 상시 감사 등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정 활동 독립성과 관련해 가장 영향을 주는 것으로는 ‘유권자’라는 응답이 42명으로 가장 많았지만 ‘소속 정당’이라는 대답도 34명을 차지해 정당이 의정 활동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어 시·군·구 집행부 17명 등의 순이었다. 소속 정당이라고 답한 응답자의 경우 정당공천제와 맞물려 이 같은 답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 김춘수(영등포·한나라당)시 의원은 “정당공천제로 효율적인 의정 활동에 어려움을 느끼고, 집행부와의 소통도 어렵다.”고 말했다. 소남열(관악·민주당) 구의원은 공공선거관리제 도입을 주장했다. 2006년부터 무급제에서 유급제로 전환된 의정비에 대해 36명이 ‘현행대로 유지해야 한다’고 답한 반면, 61명은 ‘의정비 지급을 법률로 명시해야 한다’고 답했다. ‘다시 무보수 명예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응답은 2명에 그쳤다. 의원 활동의 가장 큰 어려움에 대해 의원 33명이 ‘경제적인 어려움’을 꼽았고, 26명이 ‘주민들의 이해관계(민원) 해결’이라고 답했다. 이어 ‘활동의 독립성 부재’ 19명, ‘집행부와의 소통 부재’ 18명, ‘재선에 대한 압박감’ 3명 등으로 답했다. 류정숙(구로·한나라당) 구의원은 “법률로 명시해 주민들 눈치를 보지 않는 떳떳한 유급제를 만들든지 아니면 무보수 명예직으로 다시 환원돼야 한다.”고 말했다. 강대호(중랑·민주당) 구의원과 류은무(금천·한나라당) 구의원은 의정비 법률 명시와 함께 의원 보좌관 도입을 촉구했다. ●전문성 강화 시급 유급보좌관(정책연구원) 제도 도입에 대해서는 71명이 ‘의원 1인당 1명의 정책 연구원’이라고 답했고, 20명은 ‘상임위별로 1명의 정책연구원’이라고 답해 대부분이 유급 보좌관을 원했다. 조재현(양천·한나라당) 구의원은 “의원 개인 사무실도 없는 의회가 태반이며, 조례를 만들 때 보좌할 정책 보좌관이나 법 전문가 등의 보좌가 거의 전무해 조례 만들기가 하늘에 별 따기”라고 하소연했다. ●취재 편집국 시청팀(송한수·문소영·조현석·강동삼·김지훈·이경원기자) ●설문 조사 멀티미디어국 IT개발부 ●취재 협조 서울시의회, 서울시자치구의회의장협의회, 한국공공자치연구원, 한국행정DB센터
  • [강국진 순회특파원 중동을 가다] (1) ‘재스민혁명 150일’ 이집트 현지 르포

    [강국진 순회특파원 중동을 가다] (1) ‘재스민혁명 150일’ 이집트 현지 르포

    2일은 ‘재스민 혁명’으로 일컬어지는 중동의 민주화 운동이 시작된 지 150일이 되는 날이다. 1월 4일 튀니지 수도 튀니스에서 야채 행상을 하던 26세 청년 모하메드 부아지지의 분신 자살로 촉발된 중동의 민주 혁명은 이후 이집트와 시리아, 예멘, 리비아, 바레인 등으로 이어지면서 삽시간에 2011년을 중동 혁명의 해로 만들었다. 특히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의 30년 철권통치를 몰아낸 이집트의 민주 혁명은 중동 지역 전체에 일대 지각변동을 가져왔다. 혁명 150일. 지금 중동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집트 민주화의 성지 타흐리르 광장의 모습을 시작으로 민주화의 새 아침을 열고 있는 중동의 다양한 표정을 현지 르포와 전문가 진단 등을 통해 6회에 걸쳐 짚어 본다. 이집트 민주화 혁명의 성지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 이곳은 지금 두 얼굴이 공존한다. 아니 무슬림의 주일인 금요일과, 금요일이 아닌 나머지 6일의 그것으로 얼굴이 바뀐다.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의 철권독재는 사라졌지만, 민주화는 아직도 오고 있는 중이고, 그 자리를 혼돈이 눙치고 앉아 있었다. 지난 30일 기자가 찾은 타흐리르 광장은 불법주차 차량들로 넘쳐났다. 혁명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풍경이다. 경찰 한 명이 차를 빼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만 곧바로 그 경찰은 수십명의 군중에 둘러싸여 버렸다. 경찰이 노점상과 불법주차 차량을 단속하려 하자 군중들이 거세게 반발하는 모습이었다. 한참을 떠들어도 도저히 안 먹히자 경찰은 결국 지원을 요청했고 곧이어 경찰 서너 명이 더 나타났다. 그러나 경찰과 군중들의 실랑이는 그로부터 한참 더 이어졌다. 옥신각신 끝에 결국 불법주차했던 차 주인이 차를 다른 곳으로 옮기고, 노점상이 물건들을 주섬주섬 거둬들이는 것으로 실랑이는 끝이 났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바로 옆에 불법주차돼 있는 수십대의 차량을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던 듯 경찰은 슬그머니 자리를 떴다. 석달 전 타흐리르 광장을 뜨겁게 달궜던 민주화의 열기는 이렇게 표정을 바꿔 가고 있었다. 독재자를 몰아낸 이 시민의 힘을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하는지, 타흐리르 광장은 아직도 답을 찾지 못했다. 독재는 몰아냈지만 그 자리를 메울 민주적 질서는 아직 찾아오지 않았다. 혁명의 발단이 됐던 식품가격 상승도 여전히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관광객이 줄면서 최대 수입원인 관광산업이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정권퇴진 운동이 정점으로 치닫던 1월 말보다는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치안 역시 불안하다. 관광객들을 다시 불러 모으려면 치안을 안정시켜야 하는데 정작 시민들은 불법주차 단속 같은 정당한 공무집행조차도 경찰 말이라면 일단 반발부터 한다.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의 퇴진과 함께 추락한 공권력의 권위는 이처럼 아직도 바닥을 기고 있었다. 지금 타흐리르 광장은 이집트의 무질서를 상징한다. 사람들은 뭔가 조급해 한다. 차선과 신호등도 없는 곳이 태반인 카이로 시내 도로에선 과속과 난폭운전이 부쩍 늘었다. ●페이스북으로 집회 참석한 학생들 그러나 이것이 타흐리르 광장의 모든 것은 아니다. 이보다 앞서 지난 27일, 즉 금요기도회가 열린 광장은 전혀 딴판이었다. 평소엔 귀청을 울리는 경적소리와 난폭운전으로 난리법석이지만 금요일만은 해방구로 변신했다. 무바라크 퇴진 운동과 함께 시작된 수십만명의 집회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었다. ‘타흐리르’는 아랍어로 ‘해방’이란 뜻이다. 금요일만은 이름값 제대로 하는 광장으로 변신하고 있는 것이다. 광장은 여전히 삼엄했다. 그러나 경비는 경찰이 아닌 시민들이 섰다. 기자가 광장에 들어설 때에도 시민들로 이뤄진 자율대원들의 검문을 받았다. 신분증을 보여주고 한국에서 온 기자라고 하자 환영한다며 길을 내줬다. 10m쯤 더 가자 이번에는 소지품 검사와 몸수색을 한다. 검색이라고 해 봐야 1~2분밖에 걸리지 않지만 이를 통해 위험한 물건이나 수상한 사람들이 광장에 섞여드는 걸 막고 있다. 타흐리르 광장 주변에 모여 있는 대학생들에게 집회에 어떻게 오게 됐는지 물었다. 페이스북을 통해 친구들과 함께 집회에 참가하기로 약속했다고 했다. 이들은 모두 혁명 당시 광장에서 노숙하며 농성을 했다. 한 학생은 당시 친정부 시위대가 휘두른 각목에 맞아 다리를 다치기도 했다. 이들에게 오늘 집회에 왜 나왔느냐고 물었다. “이집트의 미래를 걱정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요구하는 것은 한마디로 이렇다. “무바라크를 감옥에 보내야 한다.” 짧은 검문을 마치자 붓을 든 한 사람이 다가와 왼쪽 팔에 이집트 국기와 숫자 ‘25’를 그려 준다. 검문을 통과했다는 인증인 줄 알고 팔을 내맡기고 그림을 다 그린 뒤 ‘고맙다’고 했더니 “20파운드”라고 했다. 알고 보니 시위대와 무관한 장사꾼이다. 혁명을 상징하는 티셔츠, 국기, 그리고 국기를 팔에 그려 주는 노점상은 타흐리르 광장을 누비며 대목을 한껏 누리고 있었다. 타흐리르 광장 중심부에 들어섰다. 플래카드가 여럿 걸려 있었다. “국민들은 무바라크와 부패 정치인을 재판하길 원한다.” “국민들은 혁명과 언론 자유를 원한다.” “국민들은 군사재판을 원하지 않는다.” 광장 곳곳에 무대를 설치하고 있었다. 이날 집회는 주최 단체가 아예 없다. 자발적으로 모인 시민들로 타흐리르 광장은 금요일에는 언제나 붐빈다. 혁명이 낳은 새로운 풍속도다. 정당이나 단체들은 각자 알아서 무대를 설치하고 연설을 하며 청중들에게 호소한다. 그런 연단이 광장 주변에 다섯 곳이 넘는다. 사람들은 각자 광장 주변을 돌아보며 연설도 듣고 이런저런 피켓과 플래카드도 살펴본다. 그러다 정오가 되면 다같이 기도를 했다. 기도가 끝나고 나면 다시 오전과 똑같은 모습이 저녁까지 이어진다. 연단에서 한 연사가 “아직 혁명은 끝나지 않았다. 혁명은 여전히 원하는 게 많다.”며 열변을 토했다. 연설 뒤에는 구호와 노래가 뒤를 이었다. 2-2-3으로 박자를 맞추는 구호 역시 혁명 전에는 볼 수 없었던 것이라고 했다. 무대에서 울려퍼지는 경쾌한 노래 역시 혁명 와중에 나온 ‘민중가요’다. “이집트 사람이라면 손을 머리 위로 올려라”라는 노래가사에 맞춰 연단 주변에 있던 시민들은 국기를 흔들며 호응했다. ●여성들 ‘보수’ 벗고 화려한 옷차림 광장엔 온갖 사람들로 넘쳐 났다. 다섯 살도 안 된 어린이부터 지팡이를 짚고 있는 노인들까지 각양각색이다. 가족단위 참가자도 흔히 볼 수 있다. 특히 중동권에서 가장 개방적이라는 말이 실감나듯 다양한 복장을 한 여성 참가자들을 볼 수 있었다. 한 가족에게 사진을 찍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히잡을 멋스럽게 머리에 두른 젊은 여성은 손사래를 치며 한사코 사진 찍는 걸 거부했다. 화장을 안 해 사진이 예쁘게 안 나올 것 같다는 게 이유였다. 그녀 말고도 광장 곳곳에서는 다양한 색깔을 한 히잡과 화려한 옷차림으로 멋을 낸 젊은 여성들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물론 부르카를 입은 여성, 머리를 드러낸 여성도 있다. 사실 이집트는 1960년대 이전까지 카이로 시내에선 히잡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이 넘쳐났던 카이로가 50년 가까운 보수화 뒤에 다시 기지개를 펴는 셈이다. 30년 독재를 이겨낸 혁명은 ‘이집트’를 호출하고 있다. 모두가 이집트의 미래를 이야기한다. 자신들의 손으로 독재자를 몰아냈다는 자부심과 결합하면서 ‘우리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쳤다. ‘나는 이집트를 사랑한다’거나 ‘1월 25일’이라고 쓴 티셔츠도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몇 달 전만 해도 국기는 축구 국가대표팀 경기 응원물품에 불과했다. 국기를 파는 한 노점상은 20이집트파운드에 판매하는 국기가 잘 팔린다며 흡족한 표정이다. 오늘 얼마나 팔 수 있을 것 같으냐고 물었더니 70개 정도는 가능할 것 같단다. ●혁명 도화선 식품가격은 여전 콧수염을 멋스럽게 기른 한 중년 남성이 한 손엔 이집트 국기를 들고 젊은 여성과 어린이와 함께 광장으로 향하고 있는 게 보였다. 정부에서 일한다는 것 말고는 자세한 자기소개를 거부한 이 공무원은 시골에 사느라 그동안 집회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딸과 외손자에게 역사의 현장을 보여주기 위해 광장을 찾았다고 말했다. “이집트는 미래가 밝습니다. 우리에겐 우수한 인재도 많고 자원도 많습니다. 잘사는 나라를 만들 수 있습니다.” 광장에서 만난 한 시민은 마흔 살이 넘도록 지금까지 선거에 참여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독재정권을 지지할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었지만 투표를 하더라도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으니까요.” 그랬던 그가 오는 9월 총선과 11월 대선을 손꼽아 기다린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는 선거인데 무척 설렙니다. 이집트를 이끌 지도자를 우리 손으로 뽑는 것이잖아요.” 혁명의 발단이 됐던 식품가격은 여전히 내릴 줄 모른다. 정치 격변 한편에선 극단주의 정당이 활동을 시작했다. 공권력은 무너졌지만 새로운 질서는 아직 자리를 잡지 못했다. 그런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기자 앞을 스쳐가는 한 승용차의 뒤쪽 유리창에 큼지막하게 써붙여진 문구는 이집트인들이 지금 중동의 새 역사를 직접 써가고 있음을 웅변했다. 뒷유리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난 이집트가 자랑스럽다.” 글 사진 카이로 강국진 순회특파원 betulo@seoul.co.kr
  • 새만금 中 자본유치 ‘특화 프로젝트’

    새만금 中 자본유치 ‘특화 프로젝트’

    전라북도가 새만금을 세계적 경제 중심지로 육성하기 위해 ‘중국특화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추진한다. 8일 도에 따르면 최근 삼성그룹의 새만금 신재생에너지산업 투자 결정을 계기로 이곳에 화교자본 등 외국 자본과 관광산업을 유치해 새만금을 중국 진출 전초기지로 개발할 계획이다. 우선 도는 현재 개발 중인 새만금 산업단지와 관광단지, 고군산군도지구 등 경제자유구역 3개 지구를 중심으로 이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이후 대상 지역을 새만금 전 지역으로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주요 사업 계획은 ▲새만금~중국 간 하늘길과 바닷길을 개설하고 ▲중국 등 외국 기업 투자를 위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한편 ▲두 지역 간 지식교류를 통한 정책적 연계의 강화 등이다. 하늘길과 바닷길 개설 사업은 1단계로 2012년에 군산공항과 중국 간 비정기 노선의 국제선을 취항한다. 2단계로 군산공항과 난징, 롄윈항 등 중국 주요 공항까지 확대한다. 바닷길은 현재 주1회 운항하는 군산항~롄윈항 간 여객선 운항 횟수를 내년부터 늘리기로 했다. 또 2014년에는 국제안전기준과 중국의 여건이 마련되면 위그선을 띄울 예정이다. 도는 또 외국 투자기업에 인센티브를 주기 위해 최근 새만금 산업단지 1공구(189만여㎡)를 종합보세지역으로 지정했다. 새만금 매립과 기업입주 진행에 따라 보세지역 지정을 새만금 산업단지 전체로 확대할 방침이다. 이와 함께 조만간 새만금경제청과 중국 톈진 빈해신구의 동강보세구 간 우호협력을 체결하고 새만금에 중국 중심의 외국인 전용공단 조성과 중국투자사무소 개설, 외국인 전용 카지노 설립, 마리나(요트)항 건설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두 지역 간 협력 강화를 위해서는 올해 상반기에 중국 싱크탱크 기관인 중국사회과학원에 새만금 투자가치 용역 의뢰를 추진한다. 베이징청년보 산하 북청그룹에서 부동산 개발사 및 여행사를 대상으로 홍보활동을 하며 이 그룹과 새만금 홍보를 위한 업무협약도 체결할 방침이다. 이밖에도 기술개발과 기술의 상호 교류, 문화·예술·체육 분야의 교류와 공무원 상호 파견 등 정책적 연대도 강화할 계획이다. 이인재 전북도 기획관리실장은 “중국은 미래가 아니라 이미 현실이다. 관광객과 자본, 기업을 먼저 끌어들여 중국 시장을 얼마나 빨리 선점하느냐가 지역 발전의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라며 “‘새만금 대중국 특화 프로젝트’가 새만금을 동북아 경제의 용(龍)으로 비상하게 해줄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허남주칼럼] 진정한 장애인 복지를 생각한다

    [허남주칼럼] 진정한 장애인 복지를 생각한다

    서른한살인 시각장애 1급 문호씨가 피부미용사 자격증에 도전했다. 지난 주말 치른 필기시험 점수가 좋았다며 5월에 있을 실기시험을 준비 중이다. 현재 그의 고민은 눈썹다듬기. 실기 시험 중 눈썹다듬기 항목에서 감점당할까봐 걱정이란다. 멀쩡하게 눈 뜨고도 제 눈썹다듬기란 쉽지 않은데 시각장애인이 눈썹 정리라니…. 이 청년을 도울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연습을 할 수 있게 내 눈썹을 내줘야 하나. 갑자기 내 눈앞마저 막막해진다. 10여년 전 취재를 하다 만난 문호씨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뇌종양 수술을 받으면서 시신경을 잃었다. 그럼에도 친구들의 고민 상담까지 도맡을 정도로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씩씩했다. 특수확대경과 보조기에 의존해 책을 눈앞에 바싹 들이대며 탐독한 끝에 한국사이버대학교 컴퓨터공학부에 수석입학했다. 정보처리산업기사 자격증도 땄다. 그렇게 문호씨의 소식은 늘 인간승리였고 감동이었다. 그러나 성인이 된 지금 그는 ‘장애인용 직업’에 자신을 맞추는 중이다. “제가 부모님 부담을 덜어드리려면 무슨 일이든 해야죠. 잠깐 꿈은 접더라도….” 그는 컴퓨터 관련 일을 포기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사회가 그에게 원하는 일이 있다면 타협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지적장애 3급인 아들을 위해 수도권지역에서 무공해농장을 경영하며 공동체 생활을 꿈꾸는 권은수(56)씨의 아들 준영(32)씨는 10년째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 대형 패스트푸드 가게에서 청소일을 맡아 한다. 권씨는 “어른이 되면 누구나 힘들어도 일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 아들이 다닐 수 있는 직장을 찾았다. 한동안 준영씨는 출퇴근에 4시간이나 걸리는 직장을 다녀야 했고 아직도 월급은 80여만원이다. 상용근로자 평균의 30% 남짓한 액수라는 게 답답하다. 그래서 아들과 또 다른 장애인들에게 경제적 독립기반을 마련해 주는 것이 권씨의 소망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그제 장애인의 날을 앞두고 주례 라디오·인터넷 연설에서 장애인 일자리 창출에 정부와 기업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고의 복지가 일자리라는 대통령의 지적은 장애인과 가족에게는 가슴에 와 닿는 말일 것이다. 지난해 장애인 의무고용 사업체 2만 3249개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장애인 고용률은 2.24%. 전년보다 0.07% 포인트 상승했고,지난 20년간 4배 이상 높아진 수치다. 요즘 같은 불황에 멀쩡한 사람도 직장 구하기가 힘들다는데 괄목할 만한 성과로 보여지기도 한다. 하지만 장애인들이 느끼는 취업 체감도는 여전히 한겨울이다. 취업 장애인들은 단순업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학력을 높여도 적성에 맞고 꿈을 이룰 수 있는 직업을 구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배울수록 직장 찾기가 더 어려워진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래서 애써 배운 것을 모두 버리고 문호씨처럼 새 일을 찾아 나서는 사람도 적지 않다. 장애인 복지비용을 통칭하는 장애급여는 우리나라의 경우 국내총생산(GDP)의 0.2%.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1.2%에 크게 못 미친다. 장애인 가구 월 평균소득 역시 181만 9000원으로 전국가구 평균(337만원)의 54%에 불과하다. 그래서 장애인 가족들은 가장 시급한 서비스로 경제적 지원을 꼽는다. 장애인은 어떤 사람인가. 질병과 사고 등으로 인한 중도 장애가 70%라고 한다. 선천적 장애가 19.3%인 점을 감안하면 답은 금방 나온다. 정상인도 언제든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현재 등록 장애인은 251만여명. 등록되지 않은 숫자까지 합치면 500만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올 들어 정치권에서 보편적 복지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장애인 복지가 맨 앞줄을 차지해야 한다고 본다. 장애인의 취업이 ‘인간승리’로 미화되는 나라가 어찌 선진국인가. 장애인이 일자리를 통해 사회구성원으로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어야 진정 정의로운 사회다. hhj@seoul.co.kr
  • “지진이 ‘무사안일’ 日청년 바꿔놨다”

    도쿄 국제기독교대학 2학년에 재학 중인 아키코 가라키는 최근 일주일 동안 학교에 가는 대신 지진 피해 지역으로 봉사활동을 다녀왔다. 주변에선 ‘놀랍다.’는 반응이었다. 아키코는 허핑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다들 ‘진짜 가는 거야’라고 물어댔죠.”라고 말했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눈에 띄는 변화 중 하나는 젊은이들이 좀더 적극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한다는 점이다. 11일 국제전략연구소(CSIS)의 일본 전문가인 마이크 그린에 따르면 일본 젊은이들은 뚜렷한 목표나 야욕이 없고 게으르며 ‘섬 안에 갇힌’ 세대다. 일례로 2009년 미국에 유학간 일본 학생은 2만 4842명으로 2000년 4만 6497명에서 절반으로 줄었다. 기업들은 국제 경쟁력을 원하지만 젊은이들은 우물 안 개구리처럼 현실에 안주하고 있는 것이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메이와쿠(迷惑)는 피하려 하지만 동시에 남을 도울 줄도 모른다. 하지만 이들이 달라지고 있다. 도쿄에서는 대지진 복구를 위한 학생 자원봉사 단체 ‘유스 포 3·11(Youth for 3·11)’이 꾸려졌다. 이 단체를 통해 매주 수백명이 도호쿠 지방을 찾는다. 봉사 활동을 조직하고 있는 겐타로 와타리는 “미야기현 도메를 다녀온 학생들은 울음을 터뜨렸다.”면서 “자신들의 행동이 자랑스웠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지진은 그들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블룸버그 칼럼니스트 윌리엄 페섹은 젊은이뿐 아니라 일본인 전체가 이번 위기를 통해 안일함에서 벗어나 다시 뛸 동력을 확보했다고 지적했다. 1955년 대지진이 도쿠가와 시대 종식과 일본 개방을 가져온 것처럼 이번 지진은 일본인이 자신감을 되찾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얘기다. 변화가 장밋빛 일색은 아니다. 기업의 어려움으로 취업난은 더 심해졌다. 지난 1일 도요타 신입사원 입사식도 우울한 분위기 속에서 열렸다. 일본의 에너지 정책과 전지구적인 기후 변화 대응에도 빨간 불이 들어왔다. 일본은 내년에 끝나는 교토의정서 적용 대상에서 빼달라고 요청했다. 의정서 주최국인 일본이 예외를 인정 받으면 의정서의 근간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日 70여년째 국제사회 지원… 88개국 앞다퉈 “日 돕겠다”

    ①한발 앞선 ‘공공외교’ 비록 지난해 중국에 추월당해 ‘넘버3’로 내려앉았지만 일본은 여전히 초경제대국이다. 초유의 국가적 재난을 당했지만, 경제력만으로 따지면 어느 나라보다 강한 복원력을 지닌 나라인 것이다. 그럼에도 전 세계 88개 국가가 일본을 돕겠다며 앞을 다투고 있다. 적어도 미국과 중국을 제외한 나머지 86개국은 일본보다 경제력이 뒤진다. 그중에는 아프가니스탄처럼 오랜 전쟁을 겪고 있는 나라들도 적지 않다. 이들이 지원 대열에 줄을 선 것은 바로 일본이 지닌 국제적 위상, 그리고 소프트파워의 힘이다. 일본이 수십년 동안 펼쳐온 국제사회에 대한 기여가 이번 지진·쓰나미 위기 속에 도움의 손길로 되돌아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바로 일본 ‘공공외교’의 힘이다. 그동안 센카쿠 열도를 놓고 일본과 영유권 갈등을 빚어온 중국 네티즌들 사이에선 “쓰촨 대지진 때 보여준 그들의 행동이 고마워 일본을 미워하지 않는다.”며 신속히 일본을 지원하라고 촉구하는 글이 인터넷에 올랐다. 중국 정부도 적극적인 지원에 나섰다. 일본은 중국과 긴장 관계 속에서도 쓰촨 대지진 구호뿐 아니라 1979년부터 공적개발원조(ODA)를 통해 중국에 도움을 줬다. 1979년부터 2009년까지 유상자금협력이 3조 3160억엔, 무상자금협력 1544억엔, 기술협력이 1704억엔 등에 이른다. 지난해만 해도 인재육성 장학계획이란 이름으로 4억 9200만엔을 지원했다. 기존 외교가 전문외교관 대 전문외교관 중심이라면 공공외교는 장기적인 국가이익을 목표로, 정부를 포함한 상대국 대중을 대상으로 한다. 수행 주체도 외교관이 아니라 정부, 개인, 비정부기구 등을 포괄한다. 공공외교에는 국제사회 대중의 요구를 이해하고, 자국의 관점을 제시하고, 자국과 국민에 대한 오해를 교정하고, 국제사회의 공통된 대의에 참여하고, 리더십을 키우는 일과 같은 광범위한 영역이 포함돼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 출범에 즈음해 미국의 ‘소프트파워위원회’가 제시한 5대 전략목표 가운데 세 번째가 바로 공공외교였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소프트파워위원회에 따르면 공공외교의 목적은 “한 나라의 ‘정부’가 아닌 ‘국민’과 소통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일본의 공공외교는 아시아에서 가장 오랜 역사와 다양한 노하우를 자랑한다. 일본의 공공외교는 1934년 국제교류진흥회를 세우고 해외 문화단체와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일본을 소개하는 등의 활동을 시작한 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40년 아시아 국가로는 최초로 체코 프라하에 일본 정보문화원을 개설한 것도 특기할 만하다. 일본의 공공외교는 1970년대에 골격이 형성됐다. 개발도상국의 문화와 교육 활동을 지원하는 정부 원조가 본격화된 것도 이때부터다. 1978년 아세안(ASEAN) 문화기금을 설립하고 대규모 지원을 시작했고, 1980년에는 아세안 국가의 차세대 젊은이들을 후원하는 청년장학금제도도 마련했다. 1980년대부터는 일본국제교류기금을 중심으로 일본어 보급 사업도 본격화했다. 1990년대부터는 NHK 월드 등을 통한 미디어 공공외교로 확장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②‘메이와쿠’는 없다 사재기·새치기·울부짖는 사람 거의 없어 지진이나 태풍, 화재 등 국가 재난이 발생하면 흔히 범죄와 약탈, 무질서와 폭동이 횡행한다. 사재기도 판을 친다. 하지만 도호쿠 대지진이 일어난 지난 11일 이후 일본에서는 이런 모습을 찾아 볼 수 없다. 길게 늘어선 줄에서 차례를 기다리다 자신에게 순서가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새치기를 하거나 다른 이를 밀치는 사람도 없다. 실제로 지진 이후 신오쿠보에서 목격된 장면은 일본인의 질서의식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코리아타운 내 슈퍼마켓에서 근무하는 한 직원(24·여)은 “11일 지진이 발생했을 때 많은 사람이 놀라서 모두 밖으로 몰려 나가는데, 계산대에 있던 일본 사람들은 끝까지 기다리다 계산을 마치는 모습이 특이했다.”면서 “우리 같으면 계산이고 뭐고 일단 바구니 던지고 뛰쳐나갈 텐데 참 대단했다.”고 말했다. 사재기가 없는 것도 ‘이방인’의 눈에는 특이했다. 대지진 첫날에는 주택가나 사무실 주변 슈퍼마켓 등에서 라면과 빵 등 비상 생필품을 사려는 사람들이 간혹 눈에 띄었지만, 4일째인 14일에는 그런 모습이 거의 자취를 감췄다. 주택가 슈퍼마켓에는 다시 라면과 빵, 음료수가 쌓이고 있다. 일본 사람들의 질서의식은 어릴 때부터 몸에 밴 ‘메이와쿠(迷惑) 회피 정신’에서 나오는 것이다. 메이와쿠는 ‘남에게 끼치는 폐’를 뜻한다. 일본의 가정과 학교에서는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고 수시로 교육한다. 이런 뜻인 ‘메이와쿠 가케루나’를 아예 가훈으로 삼는 집도 적지 않다. 또 일본 학교에는 ‘인내하는 힘’(耐える力)이라는 캐치프레이즈가 붙어 있는 곳이 많다. 단체생활을 위해 개인은 참고 순응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일본인들은 꾸준하고 일관된 재해 대처 교육을 유치원 때부터 받는다. 책상 옆에는 늘 재해에 대비한 방재 두건이 걸려 있다. 이러한 철저한 재해 예방 교육은 메이와쿠 정신과 함께 대형 재해에 침착하게 대응하게 하는 비결이 된다. 재해를 당한 일본인들이 크게 흐느끼거나 울부짖는 일도 거의 없다. “내가 그런 행동을 하면 나보다 더 큰 피해를 당한 이들에게 폐가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도쿄전력이 제한 송전에 나선 14일 예상치보다 전력 수요가 많지 않아 오전 6시 20분부터 오전 10시까지 송전을 제한하려던 제1그룹에 대해 송전 제한 계획을 취소한 것에서도 다른 사람을 위해 내가 전기를 아껴 쓰겠다는 일본인의 고통분담 정신을 확인할 수 있다. 대지진과 쓰나미, 원전의 방사능 유출로 인해 일본이 초토화되고 있지만 일본인들이 무서울 정도로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이런 배려 정신의 발로인 셈이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③세계 최고 지진경보 체제 세계 1000개 관측소 연계 “전국민에 지진 1분 전 경보” 지난 11일 일본을 강타한 지진은 인간의 힘으로 막기엔 너무나 무시무시한 재앙이었다. 그럼에도 일본이 입은 피해는 재앙의 크기에 비해서는 약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철저한 사전 대비를 제도화한 시스템의 힘으로 열악한 자연환경을 극복한 셈이다. 차분한 준비와 침착한 대처에 세계 외신들도 감탄을 금치 못했다. AP통신은 “일본이 세계 최고 수준의 대비를 한 덕분에 2004년 인도네시아 쓰나미와 지난해 아이티 지진 때보다 피해가 훨씬 적었다.”고 보도했다. 규모 7.0이었던 아이티 대지진 사망자는 30만명이 넘었고 인도네시아 쓰나미 사망자는 약 23만명이었다. 일본의 지진 경보 시스템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이번 지진은 이마저도 뛰어넘을 정도로 강력했다는 점에서 불가항력이었던 점도 있었다. 일본 기상청이 동북부 해안에 쓰나미 경보를 내린 것은 11일 오후 2시 49분. 높이 10m의 쓰나미가 해안을 덮친 건 오후 3시 정각 무렵이었다. 해안가 주민들은 대피할 겨를도 없었다. 그러나 기상 전문가들은 “일반적인 재난상황을 감안했을 때 이번 지진경보가 늦었다고 보기는 힘든 상황이었다.”고 지적했다. 외신에서도 일본의 사전 경보 시스템에 대한 찬사가 이어졌다. AFP통신은 “일본 국민 수천만명이 지진경보 시스템을 통해 진동이 발생하기 약 1분 전에 지진이 발생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서 “이는 전 세계 1000여곳의 지진관측소와 연계된 일본의 정교한 재해경보 시스템 덕분”이라고 평가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도 “철저한 준비 덕분에 최악의 사태를 면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고 보도했다. 다만 일본 정부가 지진이 잦았던 도쿄 남서부를 중심으로 지진 대비책을 준비하고 별다른 지진이 없었던 도호쿠 지역에 대한 대비는 상대적으로 등한시했다는 지적은 뼈아픈 대목이다. 뉴욕타임스(NYT)는 “평소 쓰나미에 대한 경계심과 대피 훈련 덕분에 피해자를 줄일 수 있었다.”고 전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김흥광 NK지식인연대 대표

    [김문이 만난사람] 김흥광 NK지식인연대 대표

    #상황1. 2008년 3월 1일. 북한 당국은 ‘김정은 청년대장 동지의 위대성을 체득시키자.’는 제목의 긴급 전문을 각 시·도당에 내려보냈다. 일반 주민들이 아닌 당 간부들만 보도록 하는 전문이라는 점에서 비밀 문건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문건의 주요 내용은 ‘김정은의 영도 업적을 깊이 학습시키기 위해 토론과 강연을 체계적으로 준비하라.’는 것이었다. 당 차원에서 ‘김정은’이란 이름 석자가 처음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이날 저녁 일본의 NHK 방송은 국내의 한 소식통을 인용해서 이 같은 사실을 보도했다. #상황2. 2009년 11월30일 오전 10시. 북·중 국경지역의 통신원으로부터 남한의 한 지인에게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가 걸려왔다. ‘오늘 낮 12시를 기해 화폐개혁을 실시한다.’는 것이었다. 아울러 북한의 국가안전보위부 요원들이 주민들의 동향파악과 함께 화폐개혁 단행으로 인한 불평 불만자들을 색출하라는 명령까지 받았다고 했다. 너무나 큰 뉴스거리여서 지인은 한 시간동안 국내의 몇몇 단체를 통해 황급히 크로스체크를 했다. 북한의 정권기관과 연줄이 닿는 다른 통신원들에게 확인해 본 결과 ‘중대발표’가 있을 것임을 감지할 수 있었다. 지인은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이날 오후 1시에 북한의 화폐개혁과 관련된 소식을 독점뉴스로 올렸다. 하지만 오보이면 어떡하나 싶어 30분 후 그 소식을 내렸다. 결국 이날 오후 3시 북한방송을 직접 청취한 중국내 통신원을 통해 확인한 뒤 종합적으로 다시 올려 화폐개혁 사실을 국내외에 알렸다. 위 ‘상황1’과 ‘상황2’에 등장하는 ‘국내의 한 소식통’과 ‘남한의 한 지인’의 주인공은 바로 김흥광(51·전 북한공산대학 컴퓨터강좌장) NK지식인연대 대표이다. 그는 북·중 국경지역에 있는 통신원들로부터 전해들은 북한 내의 따끈따끈한 소식을 시시각각 인터넷 등을 통해 국내외에 알리고 있다. 또한 계간지 ‘탈북 지식인들이 말하는 북녘마을’을 통해 북한 내의 생활뉴스를 계절별로 종합해 전하고 있다. 2003년 10월 탈북한 그는 북한 이탈주민 중에 컴퓨터 전문가와 석·박사급 인사를 주축으로 2년 전 ‘사단법인 NK지식인연대’를 설립했다. 아울러 서울 구로동에서 ‘삼흥학교’라는 탈북 청소년 대안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이 학교는 이달 초 문을 열었다. 지난 9일 오전 구로동 사무실에서 김 대표를 만났다. 인터뷰 도중에도 미국과 중국 등 여기저기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느라 분주했다. 우선 북한 소식을 전해주는 통신원은 어떤 사람들로 이루어졌는지 물었다. “대개 북한과 중국의 국경지역을 오고 가는 상인들이나 비즈니스맨들입니다. 주로 휴대전화를 통해 연락을 받고 있지요. 자원봉사자도 있고 중국으로 출장 나온 북한의 관리나 유급 당일꾼도 더러 있습니다.” 그렇다면 북한 내에서는 어디까지 휴대전화 통화가 가능하며 통신원의 활동범위는 어느정도일까. “두만강과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반경 5㎞ 내에서는 중국 기지국을 이용해 얼마든지 통화가 가능합니다. 통신원들은 신의주를 포함 수개 지역에서 은밀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각자의 권한과 범위안에서 휴대전화를 이용해 소식들을 그때그때 전하고 있지요. 국경지역을 중심으로 직·간접적으로 운용되는 휴대전화 숫자는, 통신원들이나 또 통신원들과 평소 알고 지내는 제2, 제3의 여러 파트너(북한주민 등)들 것까지 모두 합쳐 아마 5000대 정도 되지 않을까 추산합니다. 물론 여기에는 다른 단체나 조직에서 운용하는 통신원들과 그 파트너들도 포함되겠지요. 정보내용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극비자료나 중앙당에서 하급당으로 내려보내는 지시사항 등도 있지만 주로 일상의 정보가 많습니다.” 김 대표는 수시로 이들과 통화를 하면서 북한의 바닥부터 상급기관에 이르기까지의 정보를 수집한다. 고급정보인 경우 한달에 10여건이며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열린 북한방송’ 등의 단체와 양해각서(MOU)를 맺어 정보를 서로 체크한 뒤 2~3건을 선별해 인터넷에 올리고 있다. 하지만 고민도 많다. 정보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는 것도 그렇지만 북한 당국에서 일부러 역정보를 흘려 통신원을 잡아들이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2년 전에는 한 남자 통신원이 이 같은 공작에 걸려들어 모진 고문을 받았다고 했다. 그저 단순한 사람들의 얘기를 전했을 뿐인데 북한 당국에서 간첩으로 몰아세웠다는 것. 김 대표는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가슴이 미어진다고 했다. 최근들어 통신원들이 전해오는 김정은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생각은 어떠한지를 물었다. “북한 주민들의 정서는 김일성 왕조라는 체제 아래에서 3대세습까지 가는 것에 대한 논의자체에는 별 관심이 없지만 ‘왜 하필이면 장남이 아닌 3남이냐.’는 얘기를 종종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요즘 북아프리카와 중동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시민혁명 소식을 북한 주민들이 어느정도 알고 있을까. “국경 안쪽의 내륙지방 주민들은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평양은 좀 다릅니다. 외화벌이꾼들은 일반 상인들과는 달리 머리회전이 아주 빠르지요. 군부대 외화벌이꾼도 있고 정권의 외화벌이꾼도 있습니다. 따라서 평양에서는 북아프리카와 중동의 소식을 많이 알고 있습니다. 북한에서 ‘중동’이라고 하면 이집트의 무바라크와 리비아의 카다피를 대표적으로 떠올립니다. 김일성 주석 당시부터 가까운 친구의 나라로 여기고 있지요. 이집트와 리비아는 북한보다 잘사는 나라로 알고 있는데 그 나라에서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 독재자를 무너뜨렸다면 그보다 훨씬 못한 북한은 어떻게 되느냐 하는 의구심을 갖는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면서 김 대표는 북한이 북아프리카나 중동에서 일고 있는 시민혁명의 불길을 차단하기는 쉽겠지만 만약 중국의 국경도시에서 민주화 운동이 일어난다면 북한으로의 확산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중국이 북한보다 훨씬 잘사는 나라로 인식하는데다 국경을 수시로 드나드는 유동인구가 많기 때문이다. 화제를 바꿨다. 북한에서는 남한의 TV프로그램이나 영화를 즐겨본다는 얘기가 있는데 어느 정도인지 궁금했다. 지체없이 김 대표의 대답이 돌아온다. “한해에 탈북자가 3000명이 됩니다. 이들이나 북한주민에게 남한의 영화를 봤느냐고 물어보면 시대에 뒤떨어졌다며 우습게 여깁니다. ‘요새 무슨 영화봤니.’ ‘어느 배우를 좋아하니.’라고 물어보는 것이 유행이지요. 작년에는 ‘천국의 계단’(2004년 2월 종료된 SBS 수·목 드라마)이 인기를 끌었으며 올해에는 ‘풀하우스’(2004년 9월 종료된 KBS2 수·목 드라마)를 즐겨보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북한주민들은 요즘 ‘풀하우스’에 나오는 송혜교를 가장 좋아하는 배우로 여기고 있지요. 이전에는 송승헌을 꼽았습니다. 북한에 ‘소년장수’라는 인기 애니메이션이 있는데 여기에 나오는 주인공이 송승헌처럼 눈썹이 짙고 잘생겼기 때문이지요.” 북한에서는 어떤 경로로 남한 영화나 드라마를 접할 수 있을까. 북한 주민들이 실시간으로 남한의 방송을 볼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김 대표의 대답이 흥미롭다. “중국과 북한 국경지역에서 CD나 DVD의 밀거래가 성행합니다. 예를들어 두만강이나 압록강가에서 주로 이루어지는데 중국쪽에서 CD나 DVD를 비닐봉지에 담아서 끈을 길게 매달아 북한 쪽으로 던져줍니다. 물론 국경 경비병들 몰래 은밀하게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이지요. 옛날에는 중국에서 싸구려 CD플레이어를 엄청나게 들여보냈고 지금은 DVD플레이어가 공급되고 있습니다.” 이때였다. ‘통신원’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잠시 후 전화를 끊은 김 대표가 내용을 간략히 설명해준다. “요즘 외국 영화나 드라마에 대한 통제는 어느 정도인가 하고 물었더니 통제가 심해지고 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CDR집’에서 은밀히 볼 수 있다고 합니다. ‘CDR집’은 간판을 달지 않고 몰래 영업하는 집을 말합니다. 그곳에서 드라마나 영화를 본다고 하는군요. 주로 어떤 것을 보는가 하고 물었더니 70부작으로 된 ‘영웅시대’(2005년 3월 종료된 MBC 월·화드라마)를 많이 본다고 합니다. 맨 밑바닥에서 최고의 기업가로 커가는 과정에 많이 흥미를 느끼는 것 같습니다.” 계속 걸려오는 전화로 더 이상의 인터뷰는 무리였다.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그는 “우리 NK지식인연대는 북한 소식을 생생하게 국내외에 알리면서 북한에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어 개방을 촉진시키고 기아위기에 빠져 있는 무고한 주민들을 구하는 일을 계속하겠다.”면서 “매년 늘어나는 탈북자 자녀들이 우리 사회에 적응을 잘 할 수 있도록 대안학교를 통해 프로그램을 운용하겠다.”고 다짐했다. 편집위원 km@seoul.co.kr ●김흥광은 누구 1960년 함흥에서 태어나 1984년 평양 김책공업종합대학에서 컴퓨터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함흥 컴퓨터기술대학에서 9년동안 컴퓨터를 가르쳤고 1994년부터 탈북 직전인 2003년 8월까지 함흥 공산대학 컴퓨터강좌장(학과장)을 지냈다. 공산대학에서 한국 드라마 CD, 외국 도서들을 단속하는 조직에서 기밀자료 관리를 맡았다가 회수물품 몇 개를 친구에게 빌려준 것이 적발돼 집단농장으로 쫓겨나면서 그는 탈북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2003년 10월 두만강 쪽 국경을 넘어 탈북해 중국에서 3개월 동안 지내다가 남한으로 와 한신대에 출강하면서 경남대북한대학원에서 경제·IT분야 석사과정을 마쳤다. 2006년 (재)북한이탈주민후원회에 몸담으면서 그는 북한의 민주화를 앞당기려는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탈북자 중에서 고등교육 수료자들을 만나 동참을 호소했고 2008년 12월 500여명의 회원들을 모아 탈북학술단체인 ‘NK지식인연대’를 출범시키는 데 앞장섰다. NK지식인연대에는 현재 수학, 철학, 과학 등 다양한 전공자 250여명이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 공덕동에 북한 전통음식점 ‘류경옥’을 사회적 기업형태로 운영하고 있는 그는 최근 탈북자 청소년학교인 ‘삼흥학교’도 열었다. 같은 연령대의 학생들과 정규교육을 받을 수 없는 아이들, 한국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인성교육은 물론 음악, 미술, 태권도 등의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현재 기숙형태의 학생만 33명이며 교사진은 상근 교사 외에 자원봉사자들이 다수 참여하고 있다. 저서(공저)로는 ‘북한 엘리트들이 보는 10년후의 북한’(2006, 한울)이 있으며 부인과 함께 슬하에 1녀를 두었다.
  • [주말 기획] 장애인 실업 일반인 2배 IT분야 취업자는 단 17명

    [주말 기획] 장애인 실업 일반인 2배 IT분야 취업자는 단 17명

    ‘13%’. 장애인 경제활동인구 가운데 젊은 층인 15~29세의 실업률이다. 같은 연령대 전체 인구의 실업률이 6.4%인 것과 비교하면 청년 장애인의 실업률은 두 배나 높다. ‘17명’. 지난해 4분기 정보통신과 관련한 직종에 취업한 장애인 숫자다. 이 기간 전체 장애인 취업자 중 0.25%에 불과한 규모다. 신형진(28·연세대 컴퓨터공학과졸)씨가 앞으로 전공을 살린다면 말 그대로 험난한 취업 환경을 극복한 또 하나의 ‘인간승리’나 다름없다. 4일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장애인고용정보시스템을 통해 분석한 ‘장애인 구인·구직 취업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10~12월 장애인 취업자 수는 6612명으로 나타나 전년 같은 기간(4424명) 대비 49.5%가 증가했다. 취업자는 늘었지만 직종별로는 주로 저임금 일자리에 장애인들이 몰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환경·인쇄·목재·가구·공예 및 생산 단순직 취업자가 1057명으로 가장 많았고, 경영·회계·사무 관련직이 746명, 경비·청소 관련직이 708명으로 뒤를 이었다. 이에 비해 정보통신 관련직은 17명, 금융·보험 관련직은 5명에 불과했다. 학력별로는 고교졸업이 52.3%(3459명)로 가장 많았고 대학졸업은 16.5%(1090명)에 불과했다. 전체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열악한 장애인 고용실태가 여실히 드러났다. 서울신문이 처음으로 입수한 ‘2010년 장애인 경제활동 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만 15세 이상 등록장애인은 237만명으로 이 중 경제활동인구는 91만 5217명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는 고용노동부와 장애인고용공단이 지난해 국내 최초로 실시한 것으로 2010년 5월 15일을 조사기준 시점으로 15세 이상 등록장애인의 경제활동현황을 분석한 것이다. ●40~49세 女장애인 실업률 18% 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인의 경제활동참가율은 38.5%였고 고용률(생산가능인구 대비 취업자 비중)은 36%였다. 전체 인구의 경제활동참가율이 61.9%, 고용률은 60%인 것과 비교하면 각각 약 20%포인트나 낮았다. 반면 장애인 실업자는 6만 59명, 실업률은 6.6%였다. 전체 인구의 실업률이 3.2%였던 것과 비교하면 2배 이상 높은 수치다. 연령대별로는 청년층의 실업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년층인 30~54세 장애인의 실업률은 7.2%, 고령층인 55세 이상은 5.1%였지만 15~29세 실업률은 13%로 월등히 높았다. 전체 인구의 청년층 실업률은 6.4% 수준이다. 가장 활발히 노동시장에 뛰어들어야 할 젊은이들이 장애라는 사회적 편견에 부딪히고 있다는 의미다. 전체 인구와 비교해 실업률 격차가 가장 큰 연령대는 고용시장의 중심축인 40대였다. 40~49세 장애인의 실업률은 8.9%로 전체 인구(2.2%)보다 4배 이상 높았다. 성별로는 여성 장애인의 고용 환경이 더욱 열악했다. 여성 장애인의 경제활동참가율은 24.6%로 48.4%인 남성 장애인보다 크게 열악했다. 남성 장애인의 경제활동참가율 역시 전체 인구 여성(50.5%)과 비교하면 더 낮은 수준이다. 실업률은 남성이 6.1%, 여성 7.8%였다. 특히 40~49세 여성 장애인의 실업률은 18.1%로 나타나 성별·연령을 불문하고 가장 높았다. 같은 연령대 여성 인구의 실업률은 1.8%에 불과하다. ●장애인 고용 외면하는 수도권 대부분 장애인들이 소규모 사업장에서 근무한다는 일반적인 생각은 이번 조사에서도 통계로 확인됐다. 종사자 규모별로는 전체 취업자의 84.7%가 50인 미만 사업장에 종사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이 중 1~4인 사업장 종사자의 비율이 53.2%로 절반을 넘었다. 취업자가 몸담고 있는 직장을 산업별로 보면, 농업·임업·어업 및 광업이 19%로 가장 많았고 제조업(14.6%), 도·소매업(11.5%) 등의 순이었다. 또 지역별로는 임금근로자의 경우 수도권 근무자가 46.4%, 광역시권 19.4%, 기타 중소도시가 34.3%였다. 전체 인구보다 수도권 근무자는 6.3%포인트 적었지만 중소도시 근무자는 오히려 7.4%포인트 높았다. 일자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수도권에서 장애인들이 직장을 얻지 못하고 외면받고 있는 셈이다. 장애인 임금근로자의 최근 3개월간의 월평균 임금은 134만 2000원으로 조사됐다. 정규직은 194만 7000원, 비정규직은 100만 4000원이었다. 사회보험가입 여부와 관련, 임금근로자 중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않았다’는 답변은 정규직이 9%, 비정규직이 50.3%, ‘건강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는 답변은 정규직 2.7%, 비정규직 14.5%였다. 고용보험은 정규직은 22.4%가, 비정규직은 57.6%가 각각 ‘가입하지 않았다’고 답해 사회보험의 사각지대임이 드러났다. 또 장애인 중 구직을 단념한 것으로 조사된 사람은 6만 4895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비경제활동인구의 4.4% 수준이며 구직단념자를 실업자에 포함한 실업률은 12.7%에 이른다. 김동범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사무총장은 “자영업 등에 종사하는 장애인이 적지 않지만 그동안 이에 대한 정확한 통계가 없었다.”면서 “이번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향후 창업 융자금 지원 등에서 대상자 선정과 예산 배분이 실질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안석기자 ccto@seoul.co.kr
  • CIA 테러첩보 치중 ‘민주화정보 공백’

    CIA 테러첩보 치중 ‘민주화정보 공백’

    세계의 경찰국가를 자임하는 미국 정보기관들의 정보 수집 및 분석 능력이 최근 일련의 중동 반정부 시위를 겪으면서 도마에 올랐다. 30년간 장기 집권해 온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하야를 불러온 이집트의 민주화 열망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하는가 하면, 사임 거부 연설을 하기 수시간 전 미 정보기관 책임자가 의회 청문회에 출석해 무바라크 대통령이 사임할 것이라고 보고하는 등 이번 중동사태는 최고로 평가되던 미국의 정보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계기가 됐다. 한해 약 90조원(약 801억 달러)의 예산을 쏟아부으면서 과연 이에 걸맞은 정보들이 생산되는지, 내부 시스템에는 허점이 없는지에 대해 자성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높다. 미 국가정보국(DNI)의 발표에 따르면 2010회계연도(2009년 10월~2010년 9월)에 미 중앙정보국(CIA) 등 16개 정보기관과 군의 정보활동에 쓰인 예산은 총 801억 달러(90조원)에 이른다. 이는 국토안보부(DHS)의 예산 426억 달러, 국무부 및 해외지원 예산 489억 달러를 훨씬 초과하는 것이며 2009년 통과된 경기부양 예산의 10%에 해당한다. 9·11테러 이후 미국 정보기관들의 주요 관심 대상은 테러 관련 정보를 사전에 수집해 테러 발생을 사전에 막는 데 있다. 중동 지역은 테러뿐 아니라 석유와 이스라엘 때문에도 미국의 정보기관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지역이다. 물론 CIA는 지난 한해 동안 중동 지역의 불안 요소들과 관련된 450개의 정보보고서를 작성했다. 지난해 12월 중순부터 미국의 정보기관들은 중동 및 북아프리카와 관련해서는 1만 5000건의 보고서를 작성하는 등 정보의 홍수를 이뤘다. 하지만 이처럼 많은 정보 보고서들에도 불구하고 정권 교체를 가져온 튀니지와 이집트의 반정부 시위 가능성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냈다. 일부 비평가들은 CIA가 이슬람 과격주의자들에 대응하기 위해 아랍 국가들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지면서 실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청년들을 결집시킨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는 자성도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미 정보당국이 이집트 등 아랍권에서 대(對)테러 첩보에 주력하느라 반정부 세력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데 소홀히 해왔기 때문에 이번과 같은 ‘정보 공백’이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리언 파네타 CIA 국장은 지난 16일 미 상원 정보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35명 규모의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대중들의 감정과 군부의 충성도, 인터넷의 역할 등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겠다고 대책을 밝혔지만 얼마나 효과적일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워싱턴 김균미특파원 kmkim@seoul.co.kr
  • “중동서 이란 입김 커질 듯… 美 정책기조 수정 불가피”

    “중동서 이란 입김 커질 듯… 美 정책기조 수정 불가피”

    30년 철권통치를 끝낸 이집트인들의 혁명 열기가 뜨겁다. 호스니 무바라크가 물러난 이집트는 과연 앞으로 어떤 길을 걷게 될 것인가. 튀니지에서 시작돼 이집트의 독재정권마저 무너뜨린 아랍 민주화의 물결은 이제 어디로 향할 것인가. 중동 전문가인 서정민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와 황병하 조선대 아랍어과 교수의 긴급 지상대담을 통해 코샤리 혁명 이후의 이집트와 중동의 앞날을 짚어 본다. ●무바라크 퇴진이 갖는 역사적 의미는 뭔가. 서정민 교수 가장 먼저 짚어 봐야 할 대목은 이집트인들이 5000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시민혁명을 성공시켰다는 점이다. 이집트가 아랍권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감안한다면 아랍 현대사를 다시 쓰는 전환점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다. 상황을 좀 더 지켜봐야 한다. 지난 10일 밤 무바라크가 퇴진을 거부하고 나서 하루 동안 무슨 일이 있었나 봐야 한다. 1952년 쿠데타로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정을 채택했지만 그것이 민주화는 아니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정치와 경제에서 기득권을 누려온 군부가 얼마나 개혁조치를 취할지 의문을 제기하는 시선이 적지 않다. 한마디로 이집트인들은 이제 민주화로 가는 첫걸음을 내디딘 셈이다. ●무바라크 퇴진 이후 군부가 실권을 장악했다. 황병하 교수 이집트 헌법은 대통령이 물러날 경우 국회의장이 권력을 승계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이번 사태에서는 군 최고위원회가 권한을 이어받았다. 군부는 나세르 전 대통령이 주도한 쿠데타 당시부터 이집트 정치에서 핵심 역할을 해 왔다. 역대 대통령이 모두 군부 출신이다.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과 무함마드 탄타위 국방장관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군부는 지금 적지 않은 불안감을 느낄 것으로 생각된다. 상황이 원하는 대로 흘러온 게 아니기 때문이다. 1952년 나세르 혁명도 군부 고위장교들이 왕정을 지지하며 기득권에 안주할 때 자유장교단을 중심으로 한 하위직 청년 장교들이 나세르 혁명을 이끌었다. 이번 시위에 일부 청년 장교들이 가담했던 점을 감안하면 군부가 실권을 장악한 것은 군부 내부결속을 다지는 것과 함께 무바라크를 옹호하는 쿠데타와 그를 축출하려는 쿠데타 모두를 사전에 차단하려는 조치였다는 의미를 동시에 갖는다. 또 다른 측면에서 접근한다면, 군부가 오랜 이집트 통치 경험을 바탕으로 상당한 자신감을 갖고 있다는 측면도 존재한다. 무바라크가 아들 가말에게 권력을 세습시키려 했지만 술레이만 당시 정보국장과 탄타위 국방장관이 끝까지 반대하는 바람에 결국 뜻을 이루지 못했을 정도다. 군부는 앞으로도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킬 수 있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에 무바라크를 퇴진시키기로 한 것이 아닐까 싶다. ●앞으로 이집트 정국을 전망한다면. 서 교수 한국이 1987년 경험했던 6월항쟁과 비슷한 경로로 갈 가능성이 높다. 현 정부가 국민들 요구를 수렴하는 선에서 양보하되 권력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가는 모델이 가장 유력할 것이다. 그게 사실 미국 등이 가장 바라는 시나리오이기도 하다. 물론 자유로운 총선과 대선은 보장할 것이다. 다만 당초 계획대로 오는 9월에 대선을 치를 가능성은 많이 낮아졌다. 1년 이상 늦어질 가능성이 있다. 선거 일정에 따라 이집트 정세가 안정으로 갈지 혼란으로 갈지 판가름 날 것이다. 무바라크 측근들을 단죄해야 한다는 요구가 없는 건 아니지만 군부가 권력을 장악한 상황에서 쉽지는 않을 것이다. 향후 정국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집단은 무슬림형제단이다. 가장 큰 득표력을 갖고 있다. 이번 혁명은 민족적·세속적 성격이 강했고 무슬림형제단이 주도한 것도 아니지만 앞으로 의회에서 굉장히 약진할 것이다. 2005년 총선 때 무소속으로 출마했는데도 전체 의석의 20%를 차지한 경험이 있다. 향후 총선에선 최소한 3분의1의 의석 확보가 가능할 것으로 본다. 무슬림형제단은 군부와 대화 채널을 유지하면서 캐스팅보트 역할도 하게 될 것이다. 황 교수 무바라크가 퇴임한 건 상징적인 의미가 크지만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기존의 공동목표를 달성한 이상 이제부터는 각자 소속 정파와 조직 목표에 따라 다양한 요구가 터져나올 것이다. 현재 야권세력은 외형상으로는 크게 4·6청년운동, 변화를 위한 이집트운동(키파야), 무슬림형제단으로 나눌 수 있다. 4·6 청년운동과 키파야 등은 암르 마무드 무사 아랍연맹 사무총장을 지지한다. 변화를 위한 민족연합(NAC)은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 사무총장과 파루크 아흐마드 술탄 대법원장을 지지한다. 무슬림형제단이 대선 후보를 내지 않겠다고 한 것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대선 승리가 아니라 의회에서 의석을 최대한 확보해서 이집트 민주화와 선거에서 주도권을 장악하겠다는 전략인 듯하다. 전체 인구의 40%가 하루 2달러가 안 되는 돈으로 생활할 정도로 열악한 상황에서 경제문제는 가장 첨예한 쟁점이다. 무슬림형제단은 빈곤구제 등 사회활동에서 보여준 오랜 경험과 열정으로 서민들의 신뢰를 쌓아 왔다. 앞으로 만만치 않은 영향력을 보여줄 것이다. ●중동에 미칠 영향이 만만치 않을 것 같다. 황 교수 튀니지에서 벌어진 민주화 열기가 이집트로 옮겨 왔지만 이집트와 튀니지를 단순 비교하는 건 무리다. 튀니지는 서구나 다름없는 국가지만 이집트는 관광산업을 빼고는 그동안 철저히 고립된 상황이었다. 그런 면에서 이집트는 말 그대로 혁명을 경험하고 있다. 하지만 이집트 혁명이 곧바로 중동에 영향을 미치기는 쉽지 않다. 만약 이집트에서 이슬람 정당을 허용했다면 지금처럼 급격한 변화를 겪진 않았을 것이란 말도 있지만 요르단만 해도 이슬람 정당을 인정하고 정부에 참여시킴으로써 완충작용을 한다. 예멘이 불안하다고는 하지만 4개 유력부족 대표가 대통령과 협의하면서 운영하는 이 나라에서 이집트식 혁명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페르시아만 인근 산유국들도 막대한 자금력으로 정부에 대한 불만을 흡수할 충분한 여력이 있기 때문에 일부 개혁은 가능하겠지만 이집트식 혁명은 힘들다. 서 교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중동에서 이란의 영향력은 커질 것이고 이스라엘은 어느 정도 어려움에 처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슬람에서 시아파와 수니파 사이에 벌어지는 갈등은 종교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정치적인 성격이 강하다. 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수니파의 대표주자였던 이집트가 격랑에 싸였다. 그동안 이란과 국교까지 단절했던 이집트에서 발생한 정치변화는 이란에 대한 단일전선을 흔들게 되고 이는 중동 전체 정치 역학에서 이란 영향력 확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는 곧 이스라엘의 입지가 줄어든다는 것을 뜻한다. 사실 그동안 이집트는 중동에서 가장 이스라엘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온 국가였다. ●이번 혁명이 ‘쇠퇴하는 미국 헤게모니’를 다시 한번 보여줬다는 평가도 있다. 서 교수 미국은 중동에 대한 정책기조를 바꿔야 한다. 미국은 그동안 입만 열면 중동 민주화와 인권을 외쳤지만 사실 지역 안정을 가장 중시했다. 그러다 보니 이집트에서 발생한 혁명 국면에서 상황을 주도하지 못했다. 겉보기엔 공개적으로 언급했던 대통령 퇴진을 이끌어냈으니까 외교적 승리라고 할지 모르지만 무바라크가 사임을 거부했다가 번복하는 약 24시간 동안 미국이 별다른 역할을 못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미국은 그동안 중동에 대해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고 자부했지만 무력으로 후세인 정권을 교체하는 건 가능할지 몰라도 국내 정치에 미치는 힘은 제한적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무바라크가 그동안 적극적으로 미국과 보조를 맞춰온 대표적인 친미 인사라는 점도 미국엔 부담이다. 무바라크에 대한 역풍 때문에 이집트가 과거처럼 친미정책을 펼 여지도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무바라크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황 교수 군부가 지켜주는 한 무바라크가 이집트를 떠날 가능성은 낮다. 무바라크가 머물고 있는 샤름 엘셰이크는 이집트 국내에서 무바라크에게 가장 안전한 곳이다. 독재자 단죄에 있어서는 수니파와 시아파의 전통적인 차이를 살펴봐야 한다. 시아파는 지도자가 잘못하면 법적인 책임을 포함해 끝까지 책임을 묻지만 수니파는 역사적으로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는다. 비록 각종 부정부패와 탄압에도 불구하고 일단 사임한 이상 무바라크 쪽에서 볼 때 수니파 정부가 무리한 요구까지 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거기다 군부도 자존심이 있기 때문에 무바라크를 마냥 내칠 수 없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이광재 강원지사 대법 판결전 본지 격정토로 “면직 슬픈게 아니라 현실이 눈물난다”

    이광재 강원지사 대법 판결전 본지 격정토로 “면직 슬픈게 아니라 현실이 눈물난다”

    <원고지 89장 분량 인터뷰 전문 수록> 이광재 강원도지사는 대법원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확정 판결로 지사직을 잃은 27일 강원도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재판 절차와 결과에 실망스럽다.”면서 “지사직을 잃어서 슬픈 것이 아니라 현실이 가슴 아프고, 도민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이 지사는 판결 바로 전날인 26일 서울신문과 단독 인터뷰를 가졌다. 이 지사는 인터뷰에서 대법원 판결과 참여정부에 대한 평가, 정치 현안, 2012년 대통령 선거 등에 대해 견해를 밝혔다. 이 지사는 참여정부가 출범한 2003년 이후 언론과의 인터뷰를 자제해 왔으며, 지난해 6월 강원도지사에 당선된 뒤에도 도정과 관련한 인터뷰만 해 왔다. 정치 현안 전반에 대해 구체적으로 의견을 밝힌 것은 처음이다. 인터뷰는 서교동에 자리잡은 강원도 서울사무소 5층 회의실에서 이도운 정치부장과의 대담으로 오전 11시부터 1시간 40분동안 이어졌다. ●대법 상고심 결과 →대법원 판결이 이 지사의 정치적 운명을 결정한다고 보나. -지금까지도 백척간두 위에서 한 걸음 더 내딛는 심정으로 살아왔다. 다 잘될 거라 본다. 불교 경전에 나오듯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이 상황을 더 잘 극복할 거라 생각한다. →‘정치적 탄압’이라고 말하고 싶나.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누구를 미워하거나 원망하거나 상처내는 일을 하고 싶지 않다. 한 세상 살다 가면서 선한 생각만 가져도 세상을 구제하지 못하는데 남을 해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참여정부의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이 됐을 때 수많은 제보가 쏟아져 들어왔다. 이런 저런 정보들이 많았지만 사람을 해할 수 있는 건 하지 말자고 했다. →10년 동안 피선거권을 갖지 못하게 된다. 정치인 이광재의 미래는 어떻게 되나. -항상 새로운 미래에 도전했고 시련도 많았지만 좋은 일도 많았다. 내 운명에 대해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편이다. 항상 웃는 그런 나를 보고 근거 없는 낙관주의자라고 얘기하는데, 나중엔 내 말이 맞았다. →이번 판결을 맡은 박시환·신영철·안대희 대법관과 개인적인 인연이 있나. -없다. →박시환 대법관을 만난 적이 있나. -없다. 기본적으로 의회·행정·사법 등 삼권이 분리돼 있고 내 처지로 볼 때 공정하게 가는 게 맞다고 본다. →엄기영 전 MBC 사장이 강원도지사 직에 도전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엄 사장이 당선될 것으로 보나. -내가 알 수가 있나. 어쨌든 엄 사장한테 내가 인간적으로, 정치적으로 도울 수 있는 최선의 길을 가야 될 것 같다. 그런데 그 분이 나에게는 정치를 안 한다고 했는데. 언론인의 길을 가고 싶다고 그렇게 말했다. ●참여정부와 노무현 대통령 →참여정부는 성공했다고 보나 실패했다고 보나. -절반의 성공이 있었고, 절반의 실패가 있었다. →성공했다고 보는 것은 어떤 부분인가. -깨끗한 정치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 또 서민 대통령이었고, 권위주의를 타파했고, 지역균형발전도 이뤘다. 무엇보다 높이 평가하는 것은 ‘자기 지지자와 싸울 수 있는 대통령’이었다는 점이다. 지지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고, 대추리 문제를 극복하고, 수십년간 적체됐던 방폐장과 천성산 터널 문제도 해결했다. →실패한 절반은 무엇인가. -당시 우리가 갖고 있던 세력에 비해 너무 큰 어젠다를 가졌고, 그러다 보니 너무 큰 상처가 났다. 예를 들어 행정중심복합도시만 해도 세번의 선거 동안 내건 공약이었는데도 헌법재판소까지 갔다가 뒤집혀 다시 국회로 왔다. 우리나라 대통령이 실제로 바꿀 수 있는 부분은 작다. 국가의 5% 정도밖에는 바꿀 수 없다고 본다. →노 대통령과 참여정부의 적통을 잇는 정치인은 누구라고 생각하나. -아… 그런 사람이 또 있을까. 노 대통령은 노 대통령이고, 또 다른 사람은 또 다른 사람이다. 제3의 무엇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정치인은 진화해야 한다고 본다. →참여정부의 정부 조직시스템을 현 정부가 많이 바꿨다. 무엇이 잘됐고, 무엇이 잘못됐나. -현 정권 들어 항상 인사 문제가 불거지고, 위기관리에서도 허점을 드러냈다. 그러다 홍보수석, 인사수석, 위기관리 시스템도 다 복구했다. 기존 것을 인정하고 잘할 수 있는 것에 매달려서 임기를 마치는 게 올바른 태도라고 본다.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가장 큰 이유가 뭘까. -내가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 이유와 같은 게 아닐까 싶다. 인간의 얼굴을 한 대통령, 봉사하는 태도,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 그게 가장 좋았다. 보통 사람들의 정서를 잘 이해했다. 노 전 대통령은 ‘자기 원고를 스스로 쓸 수 있는 사람이 지도자가 된다’고 했다. 노 전 대통령이 그런 사람이었고,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노 전 대통령은 임기 내내 ‘투쟁’하는 정치인이었다. 가장 힘들었던 싸움은 무엇이었다고 보나. -언론과의 관계가 가장 힘들었던 게 아닌가 싶다. 참 가슴 아픈 일이었다. 그런 말도 있지 않나. 언론과 부인과 성직자와는 싸우지 말라고…, 그러나 그걸 알면서도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한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이 어려워지니 열린우리당 사람들도 다 돌아섰다. 그때 심정이 어땠나. -노 대통령은 스스로를 ‘경계인’이라 했다. 변호사로 기득권층에 진입했지만 사건을 맡기 어려워 직접 찾아가는 인권변호사가 됐고, 호남 가면 영남 사람, 영남 가면 배신자라고 했다. 항상 빈 들에 서 있는 노무현을 봤다. (믿었던 사람들이 돌아선 것은) 마음 아픈 일이다. 노 대통령을 비판하다가 서거하고 나서 국민적인 열기가 있으니까 또다시… 정치가 좀 담백했으면 좋겠다. →참여정부에 많은 386세대들이 참여했다. 그 당시 386들은 국가를 경영할 준비가 돼 있었다고 보나. -노 대통령 정부가 아마추어 정권이라 폄하하기 위해 그런 말들을 만들어낸 측면이 있다. 노 대통령도 50대 중반이었고 386이라 해 봐야 전체 수석비서관 중에 나와 천호선 둘 정도였다. 1958년 개띠가 12명이나 됐다. 그렇게 따지면 김종필 총재도 30대에 정권의 2인자가 아니었나. 미국 대통령 나이가 평균 53.1세다. 미국 역사의 전환기 당시 대통령은 루스벨트, 케네디, 클린턴이 있었는데 모두 40대 초반이었다. 내적 역량이 강한가 그렇지 않은가가 중요한 것이다. →386 정치인들에게 여전히 공통된 지향점이 남아 있나. -세대의 에너지라는 것이 있다. 김영삼·김대중 대통령이 주창한 40대 기수론이 먹혔던 이유가 뭔가. 그 세대들은 한참 감수성이 예민할 때 8·15와 6·25를 겪었다. 그러니 생명력이 얼마나 강하겠나. 386세대도 마찬가지다. 데모를 하고 안 하고를 떠나 80년대에 광주가 얼마나 가슴 아팠나. 척박한 현실에서 몸으로 앞서 나가고 마음으로 동조한 세대가 386이다. 목숨을 걸고 한 시대를 타개하려 했던 강력한 에너지를 가진 사람들이다. ●안희정, 유시민, 김두관, 문재인 →김두관 경남지사가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참여정부의 지분 가운데 60%는 노 대통령이, 나머지 40%는 안희정·이광재 지사가 반반씩 갖고 있다고 했다. 동의하나. -과분한 말이다. 나는 오히려 빚을 많이 갚아야 할 처지에 있는데 지분이 어디 있겠나. →참여정부의 부채를 떠맡기 싫어서 지분을 안 가지려는 건 아닌가. -의리가 제일 중요하다고 본다. 사랑했기에 대통령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 생각에 변함이 없다. 386세대에 미안한 것은 나를 많이 사랑했던 분들에게 내가 모자란 점이 많다는 것이다. 갚아야 한다. →이 지사와 안 지사, 김 지사,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문재인 전 비서실장 중에서 노 대통령이 인간적으로 제일 좋아했던 사람은 누구였나. -문재인 실장이다. 그러니까 민정수석도 시키고, 비서실장도 시켰지.(웃음) →문 실장이 언젠가 정치를 할 거라고 보나. -(30초 넘게 고심을 하다가) 잘 모르겠지만, 문재인 실장이 손학규 대표와 대통령 후보 경선을 했으면 좋겠다. 물론 정세균·정동영 최고위원도 함께했으면 좋겠지.(웃음) →유시민 전 장관은 참여정부의 지분이 없나. -그렇지 않다. 노 대통령이 각별한 애정을 가졌던 분이다. 다만 지금은 민주당이 아니니까. →다섯분 가운데 정치 지도자로서의 재능이나 역량은 누가 가장 낫나고 보나. -여태까지는 노 대통령의 그늘 속에 있었고, 이제 처음으로 안희정·김두관 지사도 시험대 위에 오른 거다. 중요한 건 본인의 비전과 경영능력이다. 지금은 평가를 하기에는 이른 시기다. →안희정 지사와는 협력 관계인가, 경쟁 관계인가. -안 지사나 김 지사나 나나 실질적으로 의미 있는 결과를 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모든 걸 다 걸고 전력투구해야 할 시기 아닌가. ●정치현안과 2012년 대선 →개헌 얘기가 계속 나온다.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 -개헌은 해야 하지만, 시점을 놓쳐 버렸다. 이미 권력 후반기가 아닌가. 어떤 개헌이 필요한 가는 진지하게 준비해야 한다. →개헌 이슈가 한동안 갈 것으로 보나. -한나라당 원희룡·남경필 의원 등 60년대생 정치인, 시·도 지사들과 여야를 떠나 대한민국의 문제에 천착하는 모임을 만들어 보고 싶다. 내년은 세계사적으로, 특히 동북아 지역의 명운을 가르는 해다. 남북 정세 변화와 에너지·자원 문제를 둘러싼 극동의 관리를 어떻게 운영하느냐가 향후 10~20년을 좌우할 것이다. 이 문제에 정치권 전체가 몰두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지금 개헌 문제로 지지고 볶아서야 되겠나.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50%를 웃돈다. 이 지사는 몇점을 주겠나. -이미 대통령인데, 지지율이 70%면 어떻고 30%면 어떤가. 남북 정상회담이 필요한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또 서민경제가 어렵다. 이 대통령이 임기 마지막까지 이 두 가지 문제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이 지사 본인에게는 몇점을 주고 싶나. -나는 지사 업무 수행한 지가 얼마 되지 않았다. 한 50점쯤 주겠다. 강원도에서 나의 지지율도 그 정도다. →이명박 대통령의 정책 중에 가장 아쉬운 것은 무엇인가. -포용과 통합이다. 국민통합은 정치적 수사가 아니고 생존의 전략이다. →2012년 대선의 가장 중요한 어젠다는 무엇일까. -일자리, 교육, 복지라고 본다. 또 동북아 평화와 물류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박근혜 대세론’이 강하다. 야당이 박 전 대표를 넘기 어렵다고 보나. -박 전 대표는 지난 2007년 경선 패배를 깨끗하게 승복하고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하는 순간 이미 지도자 반열에 올랐다고 본다. 앞으로 대통령의 비즈니스 역할이 커져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영국에서 공부도 했고, 도지사·장관도 했고, 비교적 안정감 있고 예측가능한 후보라 생각한다. 박 전 대표와 손 대표가, 문재인 실장도 경선에 나설지 모르겠지만, 멋진 승부를 벌이지 않을까 싶다. →박 전 대표는 무리 없이 한나라당 후보가 될 거라 보나. -한나라당에서는 박 전 대표가 되는 게 순리가 아닐까 싶다. 예측가능한 정치를 해야 한다. →현재 박 전 대표와 1대1로 붙을 때 가장 경쟁력 있는 후보는 누구라고 보나. -그걸 말할 수 있나. 나도 강원도지사 선거에서 지지율 23%포인트까지 뒤졌다가 13%포인트 차이로 이겼다. 결국 말을 많이 듣는 사람, 애정을 가진 사람이 승리자가 된다고 본다. ●정치인 이광재 →이념적으로 진보인가, 보수인가. -나는 이데올로기를 믿지 않고 진화를 선택했다. 오류를 빨리 극복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는 게 진정한 진화다. →정치권이 좌파와 우파로 나뉘었는데, 이데올로기가 없으면 정치 기반을 무시하는 것 아닌가. -경제만 봐도 신자유주의부터 소련체제, 복지국가 모델이 정부 발전을 이끌고 왔는데 어떻게 어느 하나가 옳을 수 있나. 공존하려는 통합의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 정치에서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는 황당한 얘기다. →공무원들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할 때 각 부처 최고의 엘리트들과 일한 경험이 있다. 공무원들은 유능하고, 문제 해결 능력이 있다. 그런데 처음에 무슨 얘기하면 안 된다고 한다. 다시 한번 취지를 잘 설명하면 반드시 답을 찾아온다. →불교신자다. 본인의 종교가 정치 활동에 영향을 미치나. -로마의 멸망 원인 중 하나가 종교 탄압이다. 인도와 무굴제국이 가장 왕성한 때는 종교를 모두 허용했을 때다. →참여정부 때 실세여서 강원도에 예산을 많이 주도록 했다는데, 사실인가. -그렇다. 많이 따려고 노력했다. 다만 나는 예산 딸 때 사무관, 과장부터 일일이 다 설득한다. 정치적으로 결정하면 그때뿐이다. 정권이 바뀌면 가위표가 된다. 생명력과 일관성 있게 정책을 유지하려면 주무 사무관과 과장의 확신을 얻어내야 한다. →강원도분들이 보수적인데 왜 작년에 민주당 후보인 이 지사를 선택했다고 보나. -첫째, 강원도를 위해 일을 잘할 것 같다는 것. 둘째,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해봐서 국가도 좀 알고, 국회의원도 두번 해서 국회도 안다는 점. 셋째, 그래서 도지사 시켜 일하게 한 다음 강원도를 대표하는 인물로 키워야겠다는 거 아니겠나. →강원도지사 선거 때 공언한 대로 10년 후 대통령 선거에 나올 건가. -난 정말 강원도민에게 큰 신세를 졌다. 강원도지사로 최선을 다해서 성과를 내고 싶다. 안희정·김두관 지사도 성공해서 나중에 대통령 선거 후보 경선에 나와 멋있게 경쟁하고, 멋있게 후보 단일화하고, 그것도 멋진 일이다. 대담 이도운 정치부장 정리 구혜영·강주리기자 koohy@seoul.co.kr ■ 이광재 격정토로 인터뷰 전문 (200자 원고지 89장) 이광재 강원지사가 27일 대법원 상고심에서 유죄를 선고받고 지사직을 잃었다. 2년만에 막을 내린 박연차 게이트의 종착역에서 끝내 내리지 못한 채 “선고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 도민들께 죄송하다.”며 고개를 떨궜다.  이 인터뷰는 선고 전날 진행됐다. 이 지사는 서울신문과 인터뷰에서 우여곡절 많았던 취임 이후의 소회와 정치관,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관계, 2012년 대선 등 정치 전반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인터뷰는 이도운 정치부장과 대담 형식으로 서울 서교동 강원도민회관 4층 회의실에서 1시간 30분 동안 진행됐다. ●강원지사 강원지사가 중앙 정치권에서 크게 주목받는 자리가 아니다. 그런데 이 지사가 당선되고 나서 관심이 높아진 것 같다. 얼마나 중요한 자리인가. -강원도는 대륙 국가로 가는 전진기지다. 올해 23개국을 다룬 ‘세계 흥망사’라는 책을 내려고 한다. 2025년이 되면 우리나라도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하게 된다. 결국 한반도 평화체제와 남북을 관통하는 철도 문제, 중국·러시아의 자원과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때 신성장 동력이 나온다. 서울 중심의 서쪽으로 기울어진 배가 동쪽으로 균형을 잡는 극동아시아 시대가 온다. 지금은 강원도의 역사가 부상하는, 매우 중요한 시기다. 국가 및 강원도의 발전 전략이 일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치권에서 흔한 말로 ‘호남은 푸대접, 강원도는 무대접’이라고 한다. 현 정권의 내각과 청와대 수석에 강원도 출신 없다. 도민들이 지역 차별을 느끼나.  -있는 것 같다. 참여정부만 해도 강원도 출신 장·차관들이 많았는데 현 정권에는 아무도 없어 안타까움이 많은 것 같다. 1년에 9000만여명이 강원도에 온다. 우리가 더 잘하면 그 분들이 강원도를 더 사랑할 수 있게 된다. ●대법원 상고심 27일 대법원 판결이 이 지사의 정치적 운명을 결정한다고 보나.  -잘 될거라 본다. 기본적으로 불교 경전에 나오는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이 상황을 더 잘 극복할 거라 생각한다. 증거가 없고 , 궁박한 처지에 있는 한 사람 말에 따라 유·무죄 결정이 났는데 이미 그중에서도 절반 정도가 무죄가 난 상황이다. 여당 의원들은 무죄가 났고, 나는 절반의 혐의에 대해 무죄가 났다. 더 결정적으로는 재판정에 박연차 씨가 나와 진술하겠다고 밝혔는데도 재판장이 불러주지 않은 것도 문제다. 더군다나 한 차례가 아니고, 대여섯 차례에 걸쳐 돈을 10억원 넘게 거절한 건 내가 유일한 사람이다. 잘 될 거라 본다. 어떤 판결이 나오더라도 수용할 건가.  -백척간두 위에서 항상 진일보하는 인생을 살아왔고 잘 될 거라 본다. 원하는 결과가 나오면 털고 지사직에 전념할 건가, 아니면 ‘정치적 탄압’이라는 부분을 짚고 넘어갈 건가.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불리한 상황이 극복되기를 희망한다. 누구를 미워하거나 원망하거나 상처내는 일을 하고 싶지 않다. 한 세상 살다가는 건데 내가 선한 생각만 갖고 살아도 세상을 구제 못하는데 남을 해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참여정부의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됐을 때 수많은 제보가 쏟아졌다. 이런 저런 정보들이 많았지만 사람을 해할 수 있는 건 하지 말자고 했다. 유죄가 확정되면 10년 동안 피선거권을 갖지 못한다. 정치인 이광재의 미래는.  -정치인 이광재까지는 모르겠지만 잘 풀릴 거라 본다. 항상 새로운 미래에 도전했고 항상 시련도 많았지만 좋은 일도 많았다. 내 운명에 대해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편이다. 항상 웃는 그런 날 보고 근거없는 낙관주의자라고 얘기하는데, 나중엔 내 말이 맞았다. (유죄 파기환송될 경우) 시한부 임기인데 도정의 안정성을 해치는 건 아닌가.  -그렇지는 않다. 나는 기본적으로 무죄를 확신한다. 취임 이후 직무가 정지되는 어려운 와중에서도 짧은 기간 동안 빠른 속도로 도정이 안정됐고 변화됐다는 것을 읽을 수 있었다. 도정 업무는 훨씬 더 강화되고 추진 속도가 붙을 거라고 본다. 언론에서 박시환 대법관과 이 지사의 관계를 부각시키는데 어떤 의도가 있다고 보나.  -모르겠다. 박시환·신영철·안대희 대법관과 개인적인 인연은.  -없다. 박시환 대법관과 만난 적은.  -없다. 기본적으로 의회·행정·사법 등 삼권이 분리돼 있고 내 처지로 볼 때 공정하게 가는 게 맞다고 본다. 엄기영 전 MBC 사장이 열심히 지역을 돌고 있다는데 어떤가. 엄 사장이 당선가능성 있나.  -내가 알 수가 있나. 어쨌든 엄 사장한테 내가 인간적으로, 정치적으로 도울 수 있는 최선의 길을 가야될 것 같다. 그런데 그 분이 나에게는 정치를 안 한다고 했는데. 언론인의 길을 가고 싶다고 그렇게 말했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구제역 판결이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 영향을 주게 되나. 아니면 동계올림픽 유치가 판결에 영향을 줄까.  -그건 모르겠다. 오는 7월 6일에 평창 동계올림픽이 유치돼야 한다. 연평도 사건도 그렇고 서민들의 생계도 어려워 국민들이 힘 빠져 있다. IMF 구제금융 당시 박세리 선수가 우승해 희망을 줬는데 이번에 평창이 희망을 줄 필요가 있다. 강원도는 이미 두 번이나 울었다. 이번에는 강원도 ‘감자바우’들이 하는 일도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신화를 써야 자신감을 갖고 살아가지 않을까. 꼭 될 거라고 본다. 이건희 삼성회장이 유치활동에 얼마나 큰 도움을 줬나.  -IOC위원회에서 워낙 평이 좋으시고 결정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 이건희 회장은 IOC내 존경받는 분이고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구제역 발생으로 고심이 많은데 강원도 민심은 어떤가.  -구제역 현장을 돌아보면서 느끼는 건 이제 우리나라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 돼야 할 단계에 왔다는 거다. 첫째, 앞으로 질병이 위기관리 시스템 차원에서 관리될 필요가 있다. 둘째, 아직 구제역 연구소조차 없다. 미국은 케네디대통령이 1961년에 만들었는데 우리는 백신조차 만들어내지 못하고 영국에 연락해서 공급받고 백신 자체도 모자란다. 구제역 연구소를 국가 차원에서 만들 필요가 있고 전반적인 정비를 해야 한다. 셋째, 가축을 키울 때 근본적인 전환책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오스트리아에 가보니 동물을 일정 기간 이상 가둬서 키우지 않았다. 초지에서 방목하고, 불가피하게 가둬놓고 키우면 철저히 관리한다. 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하다.  한편으로는 구제역을 막는 것과 시장을 활성화 시켜 농민에게 도움을 주는 건 다른 문제다. 강원도는 빨리 출하할 수 있도록 조치를 했다. 다들 재래시장에 못 나와 물건을 못 파니까 어렵다. 어차피 제수 상품을 사야 하니까 도청 공무원 월급의 일정액을 떼서 대대적인 상품권 구매운동을 벌여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아직 우리는 선진국이라고 말할 수 없다. 새끼가 젖을 물면 1분 이내에 쓰러지는데 오랫동안 버티다 쓰러지는 소를 보며 또 한번 생명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했다. 이제는 한 단계 도약할 때가 왔다는 걸 절실하게 느낀 사건이었다. ●참여정부와 고 노무현 대통령 참여정부는 성공했다고 보나 실패했다고 보나.  -절반의 성공이 있었고, 절반의 실패가 있었다. 절반의 성공은.  -깨끗한 정치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 서민 대통령이었고 권위주의 타파했고, 지역균형발전도 이뤘다. 무엇보다 높이 평가하는 것은 ‘자기 지지자와 싸울 수 있는 대통령’이라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문제에 대한 대응을 아주 높게 평가한다. 용산 미군기지를 이전시키면서 대추리 문제를 극복하고 수십년간 적체됐던 방폐장 문제도 박수 받고 해결했다. 천성산 터널 문제도 해결됐다. 모든 것은 자기 지지자들과 했던 싸움이다. 자기 지지자와 싸우지 않고 어떻게 대통령이 될 수 있나. 진보라고 진보의 정책을 다 쓸 수 없고, 보수라고 보수의 정책을 다 쓸 수 없다. 대통령은 중간을 가게 돼 있다. 내가 청와대 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방폐장 문제 다음 정권에 넘기자, 약체 정권인데 지지자들과 싸워서 별로 얻을 게 없다’라고 했다. 그러자 노 대통령이 ‘그럴 바에 왜 대통령을 하나. 내가 있을 때 어려운 문제를 하나씩 돌파해야 나라가 진전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자기 지지자와 싸우는 것, 이것이 가장 의미있다고 본다. 절반의 실패는 무엇인가.  -우리가 갖고 있던 세력에 비해 너무 큰 어젠다를 가졌고, 또 너무 상처가 났다. 행정중심 복합도시만 해도 세번의 선거 동안 내건 공약이었는데도 헌법재판소까지 갔다가 뒤집혀 다시 이번 국회로 오게 됐다. 노 대통령은 정치가보다 사상가적인 측면이 있었다고 본다. 자신의 힘에 비해 너무 거대한 어젠다를 세웠다.하지만 행복도시를 통해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거대한 화두의 일부를 내보였다. 물론 이 부분에 대한 평가는 반반이다. 노 대통령과 참여정부의 적통을 잇는 정치인은.  -아, 그런 사람 또 있을까. 노 대통령은 노 대통령이고, 또 다른 사람은 또다른 사람이다. 노 대통령을 좋아하고 사랑했던 사람들이 있는 건 사실이다. 적통이라기 보다 제 3의 무엇이 있지 않을까. 결국 진화하는 것이라고 본다. 참여정부가 만들었던 청와대와 정부 조직시스템을 현 정부가 많이 바꿨다. 잘했거나, 잘못했다고 생각한 부분은.  -참여정부가 했던 시스템을 현 정부가 다 반대하다가 다시 돌아갔다. 홍보수석 폐지했다가 다시 만들고, 인사수석·위기관리 시스템도 다 복구했다. 존재하는 건 다 이유가 있어 존재한다. 과거가 없는 현재는 없다. 노 대통령은 밀어붙이는 스타일이긴 하지만 공직자와 수많은 논의를 통해 합리적으로 의사를 결정한다. 그렇기에 그런 시스템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현 정권 들어 항상 인사 문제가 불거지고, 위기관리 체제에서도 허점을 드러냈다. 그런 문제 볼 때마다 아쉬움이 있다.  나도 전임 도지사를 절대 비판하지 않고 다 안고 있다. 차차 점진적인 변화를 시도한다. 인사는 보수적으로 하고 일은 혁신적으로 한다. 책을 쓰면서 23개국을 연구해 보니 몇 가지 공통점은 제조업이 강하고 기술이 강해야 나라가 강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학과 정보통신부가 없어지는 걸 보며 가슴 아프게 생각했다. 결국 다시 되돌아가고 있다. 정권은 유한하지만 나라는 무한하다는 생각이 필요하다.  앨빈 토플러가 ‘미국 대통령 되면 미국을 얼마나 변화시킬까. 5% 정도다’라고 말했다. 실제 많은 걸 못 바꾼다. 오히려 기존 것을 인정하고 내가 아주 잘할 수 있는 한두 가지에 매달려서 임기를 마치는 게 올바른 태도다. 노 대통령을 추모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어떤 이유라고 보나.  -요즘 주말이면 봉하마을에 1만명이 온다고 한다. 놀랍다. 노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야 되겠다고 결심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인간의 얼굴을 한 대통령, 인간의 얼굴을 한 정치, 서민 대통령. 내가 노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1988년 5공 비리 청문회를 준비하는 과정이었다. 그 때 노 대통령은 어쨌든 법 테두리 안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법을 배워야 한다, 리걸 마인드가 있어야 한다면서 아침 7시에 불러 헌법 공부를 시켰다. 집이 인천이라 국회 근처에 방을 잡고 밤새며 일을 했다. 청문회에서 대단한 국민적 사랑을 받았다.  노 대통령의 연설이나 글은 굉장히 쉽다. 어디서 이렇게 보통 사람이 살아가는 언어를 배웠냐고 물었다. 노 대통령은 ‘변호사들이 판·검사를 접대하는 문화가 있었는데 그걸 하지 말자고 했다. 그 뒤 사건이 안 들어와서 직접 상담을 했다’고 말했다. 상담을 하다 보니 ‘인생이 말야, 남녀가 모든 걸 버리며 사랑하다가도 막상 헤어지고 나면 1만원짜리 하나 갖고 싸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말 듣고 확 와닿는 느낌이 있었다. 처음 대정부 질의 원고가 굉장히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러면서 ‘자기 원고를 스스로 쓸 수 있는 사람이 지도자가 된다’고 하더라. 그 말을 들으면서 이 사람은 참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이 사람이면 대통령을 만들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 갖고 있다가 1992년 김대중 대통령이 대선에서 패하면서 호남 사람들 이 의원회관실로 울며 전화하더니 애를 더 낳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노 대통령은 ‘내가 영남 사람이지만 이렇게 나라가 분열되면 안 된다’고 했다. 내가 노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 걸 말씀드렸고 민주당 최고위원 선거에 나가자고 하니 나가도 되겠냐고 되물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대선을 치르면서 최고위원 선거 준비했고 대선 나간다고 계획 세웠다. 1993년 12월 결혼하고 신혼여행 가서 완전히 생각을 굳혔다. 갔다 와서 안희정 씨를 만나 노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총선에서 낙선한 처지라 현역 국회의원 대상으로 계보 만들기가 어려우니 지방자치 실무연구소를 만들고 싱크탱크를 만들자고 했다.  노 대통령에게 가장 감동을 받은 건 인간의 얼굴을 한 정치인이고 권력을 행사하기 보다는 봉사하는 태도,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 그게 가장 좋았다. 노 대통령은 계속 투쟁하는 정치인이었다. 가장 힘들었던 싸움은.  -아마 언론과의 관계가 가장 힘들었던 게 아닌가 싶다. 참 가슴 아픈 일이었다. 이런 농담이 있다. 언론과 부인과 성직자와는 싸우지 말라는. 양면성이 있다. 분노는 사랑에서 나온다. 노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에 노동자와 서민을 변호하는 활동을 많이 했다. 국민을 대표하는 의원이 노동자와 서민을 대표하는 사람이냐고 비판을 많이 받았다. 그랬더니 노 대통령이 ‘나도 대한민국 사법고시에서 50명 뽑을 때 된 사람이다. 판사도 됐고 기득권 세력이다. 그러나 국회라는 게 뭐냐, 나같은 사람이 나서서 노동자들의 편을 들어줘야 균형을 잡는 거 아니냐’고 했다. 그러면서 ‘나는 뭐 쉬운 길을 가냐. 나는 뭐 좋냐. 내가 무슨 바보냐’고 했다. 항상 유대인에 관한 얘기를 많이 했다. 처음에 공산주의자 나치가 공산주의자 선언할 때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기에 가만 있었다, 그러나 나치가 나를 체포하러 왔을 때는 아무도 없었다는 말을 강연에서 많이 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정세분석 하지 말라고 했다. 참모들은 참아야 기회가 온다고 조언하는데 ‘내가 왜 도구가 되겠다는 생각은 안 하냐’고 따졌다. 이러면 참모들은 힘들다. 1995년 부산시장 선거, 15대 총선 종로에서 떨어지고 정말 막막했다. 두 번 떨어지고 나서 내가 노 대통령에게 종로로 가자고 말했다. 여론조사를 해보니 이명박·이종찬 후보에게 다 지는 걸로 나왔다. 그러나 이기고 지는 게 전부는 아니지 않나, 대한민국 정치 1번지에서 의미있는 전사를 해도 정치인은 살 수 있는 거 아니냐고 그랬다. 천신만고 끝에 현역이 됐다. 그 뒤에 부산에 가겠다는 거다. 왜 거기로 가느냐고 했다. 그랬더니 ‘사람은 무엇이 되는 걸 생각하는데 도구가 된다고 생각하라’고 했다.  나는 사람을 사랑한 한 남자를 사랑했고 그 분이 계속 어려우니까 떠날 수가 없었다. 사람이 좋을 때 떠나지, 어려울 때 못 떠난다. 계속 같이 있다 보니 내가 세속적인 출세를 한 거다. 내가 큰 역량이 있어서가 아니다. 인터뷰하러 오면서 택시 기사가 하는 말이 ‘노 대통령이 어려워지니 사람들이 다 돌아서더라. 열린우리당 사람들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 때 심정이 어땠나.  -노 대통령은 스스로 ‘경계인’이라고 했다. 변호사로서 대한민국 기득권에 진입했지만 인권변호사가 됐고, 경상도 사람으로 민주당에 소속돼 호남 가면 영남 사람, 영남 가면 배신자라고 했다. 이런 얘기할 때 가슴 아팠다. 항상 빈 들에 서 있는 노무현을 봤다. 제일 중요한 게 의리라고 생각한다. (믿었던 사람들이 돌아서는 것은) 마음 아픈 일이다. 그렇게 노 대통령을 비판하다 서거하고 나서 국민적인 열기가 있으니까. 좀 정치가 담백했으면 좋겠다. ●386과 486 참여정부에 많은 386세대들이 정권에 참여했다. 국가를 장악할 준비가 돼 있었나.  -두 가지 측면이 있다. 노 대통령 정부가 아마추어 정권이라 폄하하기 위해 그런 말을 만들어낸 측면이 있다. 노 대통령도 50대 중반이었고 386이라 해봐야 전체 비서관 중에 나와 천호선 비서관 둘 빼면 58년 개띠가 12명이나 됐다. 이 사람들이 주력 부대였다. 수석이 대체로 50대 중반, 노 대통령과 같거나 조금 많거나 적었다.  또 김종필 총재가 30대에 공화당 의장하지 않았나. 미국 대통령 나이가 평균 53.1세다. 미국 역사에서 큰 전환점이 세 번 오는데 공황기, 동서 냉전기, 신자유주의 물결이 들어서기 직전이다. 한번은 루즈벨트, 한번은 케네디, 한번은 클린턴이 있었는데 모두 40대 초반의 대통령이다. 나이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얼마만큼의 준비가 돼 있느냐, 내적 역량이 강한가 그렇지 않은가가 중요한 것이라고 본다.  정리하자면 너무 과하게 폄하하려 하는 의도 속에서 본질에 맞지 않는 비난이 있었고, 나이만으로 모든 걸 얘기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사회 변화 속도가 빨라 신구 조화가 필요하다. 당시 나쁜 배합 아니었다. 386 정치인들은 현재 공통된 지향점이 있나.  -세대 에너지가 있다고 본다. 김영삼·김대중 대통령이 주창한 40대 기수론이 먹혔던 것은 그 당시 세대들은 한참 감수성이 예민할 때 8·15와 6·25 전쟁을 치렀다. 석회석과 다이아몬드는 성분이 똑같다. 그런데 어떤 압축과 고열과정 겪느냐에 따라 석회석이 되기도 하고 다이아몬드가 되기도 한다. 6·25 전쟁과 8·15 해방을 겪으면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생명력이 얼마나 강하겠나. 그 에너지가 있었기에 40대 기수론이 가능했고 살아가는 힘이 있었기에 전쟁의 잿더미에서 살아보자는 열망이 가능했다. 박정희라는 지도자도 있었지만 그 때문에 경제 발전도 가능했다.  데모를 하고 안하고를 떠나 80년대 광주가 얼마나 가슴 아팠나. 데모를 하든 안 하든 척박한 현실에 몸으로 앞서 나간 사람, 마음으로 동조한 세대가 386이다. 수백만이다. 학생운동 한 사람은 극히 소수다. 386으로 폄하될 일이 아니라 목숨을 걸고 한 시대를 타개해 나가려 했던 강력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중에 학생 운동 한 사람들은 소수였다. 당시 70만명씩 대학갈 때다. 80년대 학번부터 87년까지 보면 490만명의 대졸자를 갖고 있다. 취직을 많이 못해서 문화운동을 이끈 사람들도 이 주류들이다. 강한 386에너지가 있다. 운동만 한 386이 아니고, 80년대라는 군사독재 시절을 살아간 강력한 에너지가 존재한다. 이제 486이라고 하는데 용어는 어떤가. 386 상징성 때문에 쓰는 게 낫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본다. 세대 에너지를 좀더 얘기하자면 68년도에 유럽의 학생운동을 이끈 6·8세대들이 다 유럽의 대통령이 됐다. 그만큼 세대 에너지가 강하다고 본다. 존중될 필요가 있다. 다만 나처럼 못난 사람이 정치하게 되면서 정치권에 대해 조금 안 좋은 이미지를 갖게 되는데 부채 의식을 느낀다. 그러나 386 세대는 충분히 의미있는 세대다. 40대가 우리 경제의 주류 아닌가. 회사의 과장, 부장으로 일하면서 사회와 경제를 끌고 가는 강력한 세대다. 내가 그 세대가 갖고 있는 에너지 만큼 못한 게 미안하다. 올해 70세 넘은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영화제위원장을 강원도 문화예술제전 이사장으로 모셨다. 김 위원장은 1년 반을 해외에 있었다. 20대 청년에 절대 뒤지지 않는다.  세대간 벽을 두기보다 신구 조화를 강력히 꾀해야 할 때다. 중국이란 나라의 역동적 힘은 젊은 사람을 키워주고 권력자들은 전 정권 권력자들과 협력하고 타협하는 데서 나온다. 난 이것이 오늘날 중국의 강력한 동력이라 본다. ●친노세력 김두관 경남지사가 서울신문과 인터뷰에서 참여정부의 지분 60%은 노 대통령에게, 나머지 40%는 안희정·이광재 지사가 반반 가지고 있다고 했다. 동의하나.  -과분하다. 내가 노 대통령과 가장 오래 있었고, 노 대통령의 가족과 영원히 함께 해야 하는 게 내 숙제다. 참여정부에 빚을 많이 지고 있다. 빚을 많이 갚아야 할 처지에 있는데 지분이 어디 있겠나. 부채를 떠맡기 싫어서 지분을 안 가지려는 건 아닌가.  -사람이 사는데 의리가 제일 중요하다고 본다. 사랑했기에 대통령을 만들어겠다고 생각했고 또 그건 변함없다. 386세대에 미안한 것은 나를 많이 사랑했던 분들에게 내가 모자란 점이 많다는 것이다. 갚아야 한다. 이 지사, 안희정 지사, 김두관 지사, 유시민 전 장관, 문재인 비서실장 중에서노 대통령은 누구를 인간적으로 제일 좋아했나.  -문재인 실장이다. 그러니까 민정수석도 시키고, 비서실장도 시키지(웃음) 문 실장은 언젠가 정치를 할 거라고 보나.  -(한참을 생각하다)잘 모르겠지만 손학규 대표와 문재인 변호사가 잘 경선했으면 좋겠다.(웃음) 정세균·정동영 최고위원도 함께 경선했으면 좋겠다. 김두관 지사 말을 들어보면 유시민 전 장관은 참여정부의 지분 없나.  -그렇지는 않다. 노 대통령이 각별한 애정을 가졌다. 특별한 애정 가졌던 분이다. 지금 민주당은 아니니까. 지사 제외하고 나머지 분 중 정치적인 지도자로서 재능이나 역량은 누가 낫나.  -여태까지는 노 대통령의 그늘 속에 있었고 이제 처음으로 안희정·김두관 지사도 시험대 위에 오른 거다. 중요한 건 본인의 비전과 경영능력에서 시작되는 거다. 지금은 평가를 하기에는 이른 시기라고 본다. 2012년 대통령 선거에 5명 가운데 누가 대표 주자로 출마하면 좋을까. 문재인 실장인가.  -손 대표, 문 실장, 정동영 최고위원도 하겠지. 안희정 지사와는 경쟁 관계인가.  -둘다 의미있는 결과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일자리, 교육, 복지 세 가지 영역에 지사직을 걸었다. 안 지사나 김 지사나 나나 실질적으로 의미있는 결과를 내야 한다. 정치가는 희망을 파는 상인인데 국민들은 너무 위대하고 똑똑하다. 실질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 모든 걸 다 걸고 전력투구해야 할 시기 아닌가. 그래야 정치를 얘기할 수 있다. 난 분명히 그렇게 할 거다. ●정치 현안 개헌 얘기가 계속 나온다. 이 지사의 생각은.  -도 지사가 그런 얘기도 해야 하나(웃음). 개헌은 해야 하지만 노 대통령이 개헌하자고 했을 때 해야 했는데 그게 아쉽다. 노 대통령이 하자고 했던 시기에 했으면 전체 대통령의 임기나 여러가지 의미가 있었을텐데 시점을 놓쳐버렸다. 이미 권력 후반기다. 국회의원 임기도 얼마 안 남았다. 어떤 개헌 방향이 필요한 것인지 진지하게 성찰하고 준비해야 한다. 지금은 시기를 놓쳐버렸다. 그런데도 여당에서 개헌을 계속 추진하는 이유는 뭐라고 보나.  -(고개를 저으며) 모르겠다. 개헌 이슈가 한동안 갈 것 같나.  -광저우 아시안게임 개막전 보면서 거대한 힘이 밀려오는 느낌을 받았다. 한나라당 원희룡·남경필 의원 등 60년대생 시도 지사들과 여야를 떠나 진짜 대한민국 문제에 천착하는 모임을 만들어 볼 생각이다. 지금 굉장히 중요한 시기라고 본다. 내년은 세계사적으로 명운을 가르는 해다. 북한은 권력 교체기고 우리는 대통령 선거다. 중국 지도자가 바뀐다. 러시아와 미국의 대통령 선거 있다. 아시아 전반에도 남북 문제를 둘러싼 큰 틀의 변화가 오는 시기다. 남북 문제를 어떻게 푸느냐가 대한민국 명운을 끌고 갈 거라고 생각한다.  중국의 장길도 계획이라는게, 나진선봉으로 바다로 나오는 것이다. 내년 10월되면 푸틴 대통령이 만든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가 블라디보스톡에서 열린다. 얼마 전에는 몽골의 석탄을 한·중·러가 철도를 놔주는 조건으로 입찰에 참여했다. 몽골 자원이 동해안으로 나오게 된다. 지구 온난화 때문에 캄차카 반도 위로 북극 항로가 100~120일 열린다. 남북 정세 변화와 에너지 자원 문제를 둘러싼 극동의 관리를 어떻게 운영하느냐가 한국 10~20년을 좌우할 것이다. 이 문제에 정치권 전체가 천착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동계올림픽 유치에 전력 투구하고 여야를 떠나 내년 10월 APEC 의제는 단연코 남북의 정세를 어떻게 하고 어떻게 관리할 거냐, 북한을 경유하는 철도는 어떻게 될 거냐, 몽골·북한의 엄청난 광물 자원 어떻게 가져갈 거냐, 북한 물류 변화를 어떻게 만들어 낼 거냐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 극동아시아의 변화에 여야를 떠나 모든 정파가 외교에 진력해야 한다. 130년 전 구한말 상황이 온 것이다. 강원도가 여기에 한 축이 있다. 지사직을 걸었다.  무상복지 논란을 얘기를 많이 하는데 복지 하면 무상이다. 그런데 성장 없는 복지가 어디 있고, 복지를 생각하지 않는 성장이 어디 있나. 지금처럼 주택 문제, 사교육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2020년 저출산 고령화 상황에서 성장률이 떨어지는 건 불 보듯 뻔하다. 그 동안 성장동력 만들어야 한다. 어려운 서민들을 어떻게 할 건가를 놓고 머리 맞댈 일이지 지금 개헌으로 지지고 볶아서야 되겠나.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 50%를 웃돈다. 100점 만점에 몇점 정도 주겠나.  -글쎄. 난 통일보단 평화를 원한다. 남북정상회담이 필요한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서민경제 부분에 집중해줬으면 한다. 지금 서민들이 살기 너무 어렵다. 고용없는 성장과 거대한 눈부신 지표는 존재하는데 서민 삶은 거기에 없다. 임기 마지막에 두 가지를 집중해야 한다. 대통령 지지율이 70%면 어떻고 30%면 어떤가. 어차피 대통령인데. 물론 국민 원성 사면 안 되지만 너무 인기에 연연하지 말고 자기가 잘할 수 있는 한두 가지를 역사와 승부하면서 자기 지지자와 싸우는 게 중요하다.. 평화보다 통일 원하는 거 맞나.  -그럼, 당장의 통일보다는 평화가 중요하다. 자신에게 점수를 매긴다면. 지지율 조사하면 어느 정도.  -한 50% 나올 거다. 이명박 대통령의 정책 중에 가장 잘못하는 것 하나를 꼽는다면.  -시오노 나나미가 쓴 로마이야기에 로마의 번성 요인에 관한 글이 있는데 하나는 포용이다. 로마가 일어났던 건 이민족에 대한 포용, 로마인이 아닌데도 시민권을 주고 외부 사람도 황제가 될 수 있게 했다. 두번째 통합이다. 국민통합이란 건 정치적인 수사가 아니고 생존의 전략이다. 그래야 이 나라가 잘 되고 서민경제가 잘 된다. 내년 10월 APEC 정상회담을 반드시 국가의 전 역량을 모아야 한다. 틀의 변화는 임기 후반기에 있다. ●민주당 전적으로 공감한다. 민주당의 3대 무상 정책에 찬성하나.  -일자리, 교육 문제를 통해 건강한 중산층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게 국가 전체적으로 복지다. 이를 어떻게 끌고 갈 거냐의 문제와 또 하나는 진짜 어려운 사람들을 어떻게 도와주는가의 문제를 같이 생각해야 한다.  강원도는 이렇게 정했다. 일자리를 만드는 기업투자, 들어오는 기업에 특혜를 확실히 주겠다는 게 내 주장이다. 상장 회사 3개를 유치했다. 일자리 만드는 부분을 해 나가는 거다. 교육 분야는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영어와 중국어를, 강릉 영동지역은 영어와 러시아를 시범학교를 정해 집중할 생각이다. 연세대학교 초·중·고를 원주에 만든다든지 해서 교육 부분을 굉장히 강화하려 한다. 복지 예산은 늘었는데 많은 걸 못한다. 시범사업을 해보는 거다. 시범사업을 해서 내 가설이 맞으면 확대하고 국가 전체적으로도 확대할 수 있다. 2018년 돼야 연금시대 열린다. 2018년에 연금 받을 정도로 연세드신 분은 노후 준비가 안돼 있다. 경로당에 집중하자. 복지의 인프라라고 생각하면 경로당 사업을 강화해야 한다.  소 한마리에 200만원, 키우면 한 달에 1만 5000원을 준다. 100마리를 키우면 150만원인데 이걸 경로당 짓는데 쓰자. 소가 새끼 낳으면 소 한마리 800만~1000만원 하는데 그 돈으로 경로당을 도와줄 수 있다. 3년 지나면 소를 팔고 송아지 한 마리가 생긴다. 증식의 모델을 만드는 거다. 농촌형 복지다. 이걸 시범사업으로 해서 사회적 참여를 이끌어야 한다.  부모가 있으면 세액공제를 받는다. 그러지 말고 효도통장을 만들어 부모님에게 일정액을 자식 월급에서 10만원 떼 주자.  노인들 쓰레기 줍는거 말고 유럽처럼 꽃을 가꾸게 하고, 도시형 같은 경우 할아버지들이 도시의 쓰레기, 명함 등을 수거해오면 계산해서 주고 경로당 운영비를 주고 그렇게 해보면 어떨까.  논쟁할 때 서로 존중할 필요있다. 인간이 제도로 만들어낸 게 투표(정치)와 화폐(경제)다. 성장과 불평등은 쌍둥이 자식이다. 경제에서 성장은 미덕이다. 그러나 결과는 불평등이 존재한다. 그걸 해소하려는 게 평등이고, 그게 정치다. 인간이 완전하지 않기에 서로 닮으려고 한다. 이기적, 이타적 유전자가 큰 논란을 일으키는데 성장과 복지라는게 그런 측면이 있다. 지혜를 모아야 한다. 철학적인 답변이다. 손학규 대표, 박지원 원내대표 리더십에 만족하나.  -내가 그것까지 얘기할 건 아닌 것 같은데.(웃음) 가급적 일에 몰두하는 편이고 강원도 일에 성과를 내는 게 도리인 것 같다. 여의도와 정치판을 기웃거리지도 않는다. 그래서 정보도 없다. ●2012년 대선 2012년 대선의 가장 중요한 어젠다는.  -도정의 목표이기도 하지만 일자리, 교육, 복지라고 본다. 국가 전체적으로 보면 동북아의 평화 정세와 물류 문제에 생각을 많이 해야 한다. 극동아시아가 천연가스 50%를 갖고 있다. 북한도 그렇다. 철길, 뱃길로 어떻게 연결해서 해나갈 건가를 생각해야 한다. 이것이 한국 신성장 동력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대선 후보 선호도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다. 대세론이 강한데 야당이 박 전 대표를 넘기 어렵다고 보나.  -박 전 대표는 좋은 분이다. 지난 번 경선에서 졌을 때 깨끗하게 승복하고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할 때 이미 지도자 반열에 올랐다고 본다. 국민 마음 속에 섰다. 앞으로 점점 더 비즈니스 대통령의 역할이 커져야 한다. 국민들은 예측가능한 미래와 예측가능한 대통령을 원하고 세계 속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대통령을 원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손학규 대표는 영국에서 공부도 했고 도지사도 했고, 장관도 했고, 비교적 안정감 있고 예측가능한 미래의 좋은 후보라 생각한다. 박 전 대표와 손 대표(문재인 실장도 경선에 나설지 안 나설지 모르겠지만) 두 분의 멋진 승부가 되지 않을까 싶다. 박 전 대표는 무리없이한나라당 후보가 될 거라 보나.  -박 전 대표가 되는 게 순리가 아닐까 싶다. 박 전 대표와 일 대 일로 붙어 가장 경쟁력 있는 후보는.  -그걸 말할 수 있나. 하지만 이런 것 같다. 내가 지지도 마이너스 23%였다가 플러스 13%로 이겼다. 박연차 게이트로 찜찜한 게 있으면 국회의원 안 나갔다. 내가 감옥갔을 때 강원도민들이 사랑으로 모든 걸 거는 거라는 느낌을 받았다. 결국은 말을 많이 듣는 사람, 애정을 갖고 있는사람이 승리자가 된다고 본다. 거기서 에너지가 나온다. 선거를 예단할 수 없다. 내가 이길 거라고 누가 봤겠나. 노 대통령을 찍었던 사람들이 다음 대선에서 공통된 표심을 가질 수 있을까.  -분명한 건 노 대통령을 지지하는 분들이 많은 건 사실이다. 누가 됐든 대통령 후보로 나오는 사람은 이젠 예측가능한 미래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정치인 이광재 이념적으로 진보인가, 보수인가.  -나는 이데올로기를 믿지 않고 진화를 선택했다. 난 항상 오류가 있다. 오류를 빨리 극복할 수있는 시스템을 갖는 게 진정한 진화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정치판이 온통 좌파 우파니 하는데 이데올로기를 믿지 않으면 정치 기반을 무시하는 것 아닌가.  -경제 발전만 봐도 갈라놓고 싸우는 게 얼마나 웃기는 일인가. 1950년대 소위 소련 체제가 경제발전을 획기적으로 이뤘다. 미국이 과학자 양성을 위해 수월성 학교교육으로 완전히 바꿨다. 70년대 들어 유럽형 복지모델이 얼마나 강력한 성장모델 됐나. 제 3세계 아시아의 용들은 독재국가라는 비판받으면서도 얼마나 성장했나. 미국 경제도 신자유주의가 얼마나 융성했나. 그러나 이제는 서서히 어려움을 겪지 않나. 경제 발전만 봐도 이렇듯 신자유주의부터 소련체제, 복지국가 모델이 경제발전을 이끌고 왔는데 어떻게 이것이 옳다고 하나. 역사가 말하지만 진보 보수 관점이 중요한 게 아니고 공존하려는 통합의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 미국 경제사 이론을 보더라도 국가의 시장 개입이 진보였는데 한때는 개입하지 않는 게 진보였다가 지금은 또 개입하려고 하지 않나. 위대한 사상가들은 모르겠지만 정치로 얘기하면 진보 보수, 좌파 우파는 황당한 얘기다. 개인적으로 아주 공감한다. 언론관은 노 대통령과 같나.  -극도로 언론 노출을 피해왔다. 내가 노 대통령을 모시는 사람이었는데 모시는 사람은 자기 일이 없는 거다. 노 대통령 모실 때 문고리 잡고 인의 장막을 치지 않았다. 많은 사람을 소개했지만 내 스스로 인터뷰한 적이 없었다. 청와대에서도 근무했는데 공무원과 사이는 어땠나.  -잘 지내는 편이다. 국정상황실장 할 때 부처 고시 성적 최고였던 분들과 일했다. 공무원들은 유능하고 문제해결 능력이 있다. 그런데 공무원들은 처음에 무슨 얘기하면 안 된다고 한다. 다시 한 번 취지를 잘 설명하면 반드시 답을 찾아온다. 유능하다. 인사는 보수적으로, 일은 혁신적으로 하는데 사람을 너무 자주 바꾸는 건 옳지 않다. 에너지를 어떻게 끌어 올리느냐가 중요하다. 아침 운동을 과장이랑 걷고, 국장이랑 밥을 먹고, 한 사람씩 알아가고 있다. 조직은 마음으로 일하는 거지 명령으로 일하는 게 아니다. 공무원들에게 나한테 충성하지 말고 강원도민에게 충성하라고 한다. 종교가 불교다. 정치에 영향을 미치나.  -잘 모르겠다. 로마의 멸망 원인 중 하나가 종교 탄압이다. 인도와 무굴제국이 가장 왕성한 때는 다른 종교를 모두 허용했을 때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이유가 있다. 프란체스카 수도사가 한 말이 너무 와닿는다. 5세기 때 쓴 책인가. ‘수도원의 역사’란 책에서 넌 왜 풀이나 바위와 나무에 영혼이 없다고 생각하느냐, 왜 인간만 영혼이 있다고 보냐. 나무에도 산에도 생명이 있다는 말이 있다. 칭기스칸 아들은 신이 10가지 손가락을 준 이유는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고, 다른 종교를 핍박하지 말라는 뜻이라고 했다. 참여정부 실세라 강원도 예산이 많이 늘었다고 하는데 동의하나.  -그렇다. 많이 따려고 노력했다. 국회 와서 처음한 게 내가 담당하는 산하기관을 전부 돈 것이다. 예산 딸 때 사무관, 과장부터 일일이 다 설득한다. 그래서 예산을 따는 거다. 물론 힘이 든다. 담당 사무관이 제일 중요하다. 수백대 일의 경쟁력을 뚫은 공직자를 설득해야 생명력을 갖고 일할 수 있다. 정치적으로 결정하면 정권이 바뀌면 가위표가 된다. 생명력 있게 일관성 갖고 정책을 유지하려면 주무 사무관과 과장의 확신을 얻어내야 한다. 강원도가 보수적인데 왜 이 지사를 유권자들이 선택했다고 보나.  -강원도를 위해 일을 잘할 것 같다는 것과 또 하나는 청와대의 국정상황실장을 해봐서 국가도 좀 알고 국회의원도 두번 해서 국회도 알고 그래서 도지사 시켜 강원도를 위해 일 시킨 다음에 강원도를 대표하는 인물을 키워야겠다는 거 아니겠나. 내가 선거 때 마지막 연설에서 ‘청와대 국정경험, 국회의원 경험 살려서 10년이 지나면 대통령에 나가겠다’고 한 연설이 시청률 20%까지 올라갔다. 10분짜리 연설인데 나도 놀랐다. 인구는 적은데 적이 없는 데가 강원도다. 이광재를 키워 대통령까지 가보자는 열망이 컸던 거 같다. 10년 후 대통령 나올 건가.  -도 지사를 잘해야 한다. 난 정말 강원도민에게 큰 신세를 졌다. 강원도지사로 최선을 다해서 성과를 내고 싶다. 그것 외에는 뭐. 대통령을 옆에서 많이 봤고 그 자리가 얼마나 외로운 자리인지 안다. 자리를 탐할 일은 아니다. 지금은 강원도 일에 욕심을 내겠다. 박지원 원내대표가 도지사 선거 때 이광재 지사가 정말 연설을 잘하더라고 하더라. 얼마 전에도 차기 대선에서 이광재는 왜 안 되고 김두관은 왜 안되겠느냐고 하더라. 10년 약속이 5년으로 당겨질 수도 있나.  -나는 산에서 잘 잔다. 산에서 자면 바람소리가 들린다. 바람도 다 자기 가는 길이 있다. 큰 배가 가는 바다에도 길이 있다. 넓은 창공 같지만 두루미도 가는 길이 있다. 너무 삶에 애달복달 말고 주어진 일에 하루하루 살면서 그 길을 가는 거다. 내가 너무 노 대통령과 어렸을 적부터 큰 일을 하다보니 세상 사는 게 담담해졌다고나 할까. 만약 이 지사가 대통령이 되면 노 대통령 같은 사람 될까.  -왜 그러나. 강원도를 위해 일해야 한다. 안희정·김두관 지사도 성공해서 나중에 대통령 선거 나와서 멋있게 경쟁하고, 멋있게 후보 단일화하고, 그것도 멋진 일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은 지사 일을 잘해야 한다.  정리 구혜영·강주리기자 koohy@seoul.co.kr
  • 이광재 격정토로 인터뷰

    이광재 격정토로 인터뷰

    이광재 강원지사가 27일 대법원 상고심에서 유죄를 선고받고 지사직을 잃었다. 2년만에 막을 내린 박연차 게이트의 종착역에서 끝내 내리지 못한 채 “선고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 도민들께 죄송하다.”며 고개를 떨궜다.  이 인터뷰는 선고 전날 진행됐다. 이 지사는 서울신문과 인터뷰에서 우여곡절 많았던 취임 이후의 소회와 정치관,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관계, 2012년 대선 등 정치 전반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인터뷰는 이도운 정치부장과 대담 형식으로 서울 서교동 강원도민회관 4층 회의실에서 1시간 30분 동안 진행됐다.   ●강원지사 강원지사가 중앙 정치권에서 크게 주목받는 자리가 아니다. 그런데 이 지사가 당선되고 나서 관심이 높아진 것 같다. 얼마나 중요한 자리인가.  -강원도는 대륙 국가로 가는 전진기지다. 올해 23개국을 다룬 ‘세계 흥망사’라는 책을 내려고 한다. 2025년이 되면 우리나라도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하게 된다. 결국 한반도 평화체제와 남북을 관통하는 철도 문제, 중국·러시아의 자원과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때 신성장 동력이 나온다. 서울 중심의 서쪽으로 기울어진 배가 동쪽으로 균형을 잡는 극동아시아 시대가 온다. 지금은 강원도의 역사가 부상하는, 매우 중요한 시기다. 국가 및 강원도의 발전 전략이 일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치권에서 흔한 말로 ‘호남은 푸대접, 강원도는 무대접’이라고 한다. 현 정권의 내각과 청와대 수석에 강원도 출신 없다. 도민들이 지역 차별을 느끼나.  -있는 것 같다. 참여정부만 해도 강원도 출신 장·차관들이 많았는데 현 정권에는 아무도 없어 안타까움이 많은 것 같다. 1년에 9000만여명이 강원도에 온다. 우리가 더 잘하면 그 분들이 강원도를 더 사랑할 수 있게 된다. ●대법원 상고심 27일 대법원 판결이 이 지사의 정치적 운명을 결정한다고 보나.  -잘 될거라 본다. 기본적으로 불교 경전에 나오는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이 상황을 더 잘 극복할 거라 생각한다. 증거가 없고 , 궁박한 처지에 있는 한 사람 말에 따라 유·무죄 결정이 났는데 이미 그중에서도 절반 정도가 무죄가 난 상황이다. 여당 의원들은 무죄가 났고, 나는 절반의 혐의에 대해 무죄가 났다. 더 결정적으로는 재판정에 박연차 씨가 나와 진술하겠다고 밝혔는데도 재판장이 불러주지 않은 것도 문제다. 더군다나 한 차례가 아니고, 대여섯 차례에 걸쳐 돈을 10억원 넘게 거절한 건 내가 유일한 사람이다. 잘 될 거라 본다. 어떤 판결이 나오더라도 수용할 건가.  -백척간두 위에서 항상 진일보하는 인생을 살아왔고 잘 될 거라 본다. 원하는 결과가 나오면 털고 지사직에 전념할 건가, 아니면 ‘정치적 탄압’이라는 부분을 짚고 넘어갈 건가.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불리한 상황이 극복되기를 희망한다. 누구를 미워하거나 원망하거나 상처내는 일을 하고 싶지 않다. 한 세상 살다가는 건데 내가 선한 생각만 갖고 살아도 세상을 구제 못하는데 남을 해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참여정부의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됐을 때 수많은 제보가 쏟아졌다. 이런 저런 정보들이 많았지만 사람을 해할 수 있는 건 하지 말자고 했다. 유죄가 확정되면 10년 동안 피선거권을 갖지 못한다. 정치인 이광재의 미래는.  -정치인 이광재까지는 모르겠지만 잘 풀릴 거라 본다. 항상 새로운 미래에 도전했고 항상 시련도 많았지만 좋은 일도 많았다. 내 운명에 대해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편이다. 항상 웃는 그런 날 보고 근거없는 낙관주의자라고 얘기하는데, 나중엔 내 말이 맞았다. (유죄 파기환송될 경우) 시한부 임기인데 도정의 안정성을 해치는 건 아닌가.  -그렇지는 않다. 나는 기본적으로 무죄를 확신한다. 취임 이후 직무가 정지되는 어려운 와중에서도 짧은 기간 동안 빠른 속도로 도정이 안정됐고 변화됐다는 것을 읽을 수 있었다. 도정 업무는 훨씬 더 강화되고 추진 속도가 붙을 거라고 본다. 언론에서 박시환 대법관과 이 지사의 관계를 부각시키는데 어떤 의도가 있다고 보나.  -모르겠다. 박시환·신영철·안대희 대법관과 개인적인 인연은.  -없다. 박시환 대법관과 만난 적은.  -없다. 기본적으로 의회·행정·사법 등 삼권이 분리돼 있고 내 처지로 볼 때 공정하게 가는 게 맞다고 본다. 엄기영 전 MBC 사장이 열심히 지역을 돌고 있다는데 어떤가. 엄 사장이 당선가능성 있나.  -내가 알 수가 있나. 어쨌든 엄 사장한테 내가 인간적으로, 정치적으로 도울 수 있는 최선의 길을 가야될 것 같다. 그런데 그 분이 나에게는 정치를 안 한다고 했는데. 언론인의 길을 가고 싶다고 그렇게 말했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구제역 판결이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 영향을 주게 되나. 아니면 동계올림픽 유치가 판결에 영향을 줄까.  -그건 모르겠다. 오는 7월 6일에 평창 동계올림픽이 유치돼야 한다. 연평도 사건도 그렇고 서민들의 생계도 어려워 국민들이 힘 빠져 있다. IMF 구제금융 당시 박세리 선수가 우승해 희망을 줬는데 이번에 평창이 희망을 줄 필요가 있다. 강원도는 이미 두 번이나 울었다. 이번에는 강원도 ‘감자바우’들이 하는 일도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신화를 써야 자신감을 갖고 살아가지 않을까. 꼭 될 거라고 본다. 이건희 삼성회장이 유치활동에 얼마나 큰 도움을 줬나.  -IOC위원회에서 워낙 평이 좋으시고 결정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 이건희 회장은 IOC내 존경받는 분이고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구제역 발생으로 고심이 많은데 강원도 민심은 어떤가.  -구제역 현장을 돌아보면서 느끼는 건 이제 우리나라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 돼야 할 단계에 왔다는 거다. 첫째, 앞으로 질병이 위기관리 시스템 차원에서 관리될 필요가 있다. 둘째, 아직 구제역 연구소조차 없다. 미국은 케네디대통령이 1961년에 만들었는데 우리는 백신조차 만들어내지 못하고 영국에 연락해서 공급받고 백신 자체도 모자란다. 구제역 연구소를 국가 차원에서 만들 필요가 있고 전반적인 정비를 해야 한다. 셋째, 가축을 키울 때 근본적인 전환책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오스트리아에 가보니 동물을 일정 기간 이상 가둬서 키우지 않았다. 초지에서 방목하고, 불가피하게 가둬놓고 키우면 철저히 관리한다. 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하다.  한편으로는 구제역을 막는 것과 시장을 활성화 시켜 농민에게 도움을 주는 건 다른 문제다. 강원도는 빨리 출하할 수 있도록 조치를 했다. 다들 재래시장에 못 나와 물건을 못 파니까 어렵다. 어차피 제수 상품을 사야 하니까 도청 공무원 월급의 일정액을 떼서 대대적인 상품권 구매운동을 벌여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아직 우리는 선진국이라고 말할 수 없다. 새끼가 젖을 물면 1분 이내에 쓰러지는데 오랫동안 버티다 쓰러지는 소를 보며 또 한번 생명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했다. 이제는 한 단계 도약할 때가 왔다는 걸 절실하게 느낀 사건이었다. ●참여정부와 고 노무현 대통령 참여정부는 성공했다고 보나 실패했다고 보나.  -절반의 성공이 있었고, 절반의 실패가 있었다. 절반의 성공은.  -깨끗한 정치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 서민 대통령이었고 권위주의 타파했고, 지역균형발전도 이뤘다. 무엇보다 높이 평가하는 것은 ‘자기 지지자와 싸울 수 있는 대통령’이라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문제에 대한 대응을 아주 높게 평가한다. 용산 미군기지를 이전시키면서 대추리 문제를 극복하고 수십년간 적체됐던 방폐장 문제도 박수 받고 해결했다. 천성산 터널 문제도 해결됐다. 모든 것은 자기 지지자들과 했던 싸움이다. 자기 지지자와 싸우지 않고 어떻게 대통령이 될 수 있나. 진보라고 진보의 정책을 다 쓸 수 없고, 보수라고 보수의 정책을 다 쓸 수 없다. 대통령은 중간을 가게 돼 있다. 내가 청와대 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방폐장 문제 다음 정권에 넘기자, 약체 정권인데 지지자들과 싸워서 별로 얻을 게 없다’라고 했다. 그러자 노 대통령이 ‘그럴 바에 왜 대통령을 하나. 내가 있을 때 어려운 문제를 하나씩 돌파해야 나라가 진전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자기 지지자와 싸우는 것, 이것이 가장 의미있다고 본다. 절반의 실패는 무엇인가.  -우리가 갖고 있던 세력에 비해 너무 큰 어젠다를 가졌고, 또 너무 상처가 났다. 행정중심 복합도시만 해도 세번의 선거 동안 내건 공약이었는데도 헌법재판소까지 갔다가 뒤집혀 다시 이번 국회로 오게 됐다. 노 대통령은 정치가보다 사상가적인 측면이 있었다고 본다. 자신의 힘에 비해 너무 거대한 어젠다를 세웠다.하지만 행복도시를 통해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거대한 화두의 일부를 내보였다. 물론 이 부분에 대한 평가는 반반이다. 노 대통령과 참여정부의 적통을 잇는 정치인은.  -아, 그런 사람 또 있을까. 노 대통령은 노 대통령이고, 또 다른 사람은 또다른 사람이다. 노 대통령을 좋아하고 사랑했던 사람들이 있는 건 사실이다. 적통이라기 보다 제 3의 무엇이 있지 않을까. 결국 진화하는 것이라고 본다. 참여정부가 만들었던 청와대와 정부 조직시스템을 현 정부가 많이 바꿨다. 잘했거나, 잘못했다고 생각한 부분은.  -참여정부가 했던 시스템을 현 정부가 다 반대하다가 다시 돌아갔다. 홍보수석 폐지했다가 다시 만들고, 인사수석·위기관리 시스템도 다 복구했다. 존재하는 건 다 이유가 있어 존재한다. 과거가 없는 현재는 없다. 노 대통령은 밀어붙이는 스타일이긴 하지만 공직자와 수많은 논의를 통해 합리적으로 의사를 결정한다. 그렇기에 그런 시스템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현 정권 들어 항상 인사 문제가 불거지고, 위기관리 체제에서도 허점을 드러냈다. 그런 문제 볼 때마다 아쉬움이 있다.  나도 전임 도지사를 절대 비판하지 않고 다 안고 있다. 차차 점진적인 변화를 시도한다. 인사는 보수적으로 하고 일은 혁신적으로 한다. 책을 쓰면서 23개국을 연구해 보니 몇 가지 공통점은 제조업이 강하고 기술이 강해야 나라가 강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학과 정보통신부가 없어지는 걸 보며 가슴 아프게 생각했다. 결국 다시 되돌아가고 있다. 정권은 유한하지만 나라는 무한하다는 생각이 필요하다.  앨빈 토플러가 ‘미국 대통령 되면 미국을 얼마나 변화시킬까. 5% 정도다’라고 말했다. 실제 많은 걸 못 바꾼다. 오히려 기존 것을 인정하고 내가 아주 잘할 수 있는 한두 가지에 매달려서 임기를 마치는 게 올바른 태도다. 노 대통령을 추모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어떤 이유라고 보나.  -요즘 주말이면 봉하마을에 1만명이 온다고 한다. 놀랍다. 노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야 되겠다고 결심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인간의 얼굴을 한 대통령, 인간의 얼굴을 한 정치, 서민 대통령. 내가 노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1988년 5공 비리 청문회를 준비하는 과정이었다. 그 때 노 대통령은 어쨌든 법 테두리 안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법을 배워야 한다, 리걸 마인드가 있어야 한다면서 아침 7시에 불러 헌법 공부를 시켰다. 집이 인천이라 국회 근처에 방을 잡고 밤새며 일을 했다. 청문회에서 대단한 국민적 사랑을 받았다.  노 대통령의 연설이나 글은 굉장히 쉽다. 어디서 이렇게 보통 사람이 살아가는 언어를 배웠냐고 물었다. 노 대통령은 ‘변호사들이 판·검사를 접대하는 문화가 있었는데 그걸 하지 말자고 했다. 그 뒤 사건이 안 들어와서 직접 상담을 했다’고 말했다. 상담을 하다 보니 ‘인생이 말야, 남녀가 모든 걸 버리며 사랑하다가도 막상 헤어지고 나면 1만원짜리 하나 갖고 싸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말 듣고 확 와닿는 느낌이 있었다. 처음 대정부 질의 원고가 굉장히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러면서 ‘자기 원고를 스스로 쓸 수 있는 사람이 지도자가 된다’고 하더라. 그 말을 들으면서 이 사람은 참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이 사람이면 대통령을 만들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 갖고 있다가 1992년 김대중 대통령이 대선에서 패하면서 호남 사람들 이 의원회관실로 울며 전화하더니 애를 더 낳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노 대통령은 ‘내가 영남 사람이지만 이렇게 나라가 분열되면 안 된다’고 했다. 내가 노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 걸 말씀드렸고 민주당 최고위원 선거에 나가자고 하니 나가도 되겠냐고 되물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대선을 치르면서 최고위원 선거 준비했고 대선 나간다고 계획 세웠다. 1993년 12월 결혼하고 신혼여행 가서 완전히 생각을 굳혔다. 갔다 와서 안희정 씨를 만나 노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총선에서 낙선한 처지라 현역 국회의원 대상으로 계보 만들기가 어려우니 지방자치 실무연구소를 만들고 싱크탱크를 만들자고 했다.  노 대통령에게 가장 감동을 받은 건 인간의 얼굴을 한 정치인이고 권력을 행사하기 보다는 봉사하는 태도,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 그게 가장 좋았다. 노 대통령은 계속 투쟁하는 정치인이었다. 가장 힘들었던 싸움은.  -아마 언론과의 관계가 가장 힘들었던 게 아닌가 싶다. 참 가슴 아픈 일이었다. 이런 농담이 있다. 언론과 부인과 성직자와는 싸우지 말라는. 양면성이 있다. 분노는 사랑에서 나온다. 노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에 노동자와 서민을 변호하는 활동을 많이 했다. 국민을 대표하는 의원이 노동자와 서민을 대표하는 사람이냐고 비판을 많이 받았다. 그랬더니 노 대통령이 ‘나도 대한민국 사법고시에서 50명 뽑을 때 된 사람이다. 판사도 됐고 기득권 세력이다. 그러나 국회라는 게 뭐냐, 나같은 사람이 나서서 노동자들의 편을 들어줘야 균형을 잡는 거 아니냐’고 했다. 그러면서 ‘나는 뭐 쉬운 길을 가냐. 나는 뭐 좋냐. 내가 무슨 바보냐’고 했다. 항상 유대인에 관한 얘기를 많이 했다. 처음에 공산주의자 나치가 공산주의자 선언할 때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기에 가만 있었다, 그러나 나치가 나를 체포하러 왔을 때는 아무도 없었다는 말을 강연에서 많이 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정세분석 하지 말라고 했다. 참모들은 참아야 기회가 온다고 조언하는데 ‘내가 왜 도구가 되겠다는 생각은 안 하냐’고 따졌다. 이러면 참모들은 힘들다. 1995년 부산시장 선거, 15대 총선 종로에서 떨어지고 정말 막막했다. 두 번 떨어지고 나서 내가 노 대통령에게 종로로 가자고 말했다. 여론조사를 해보니 이명박·이종찬 후보에게 다 지는 걸로 나왔다. 그러나 이기고 지는 게 전부는 아니지 않나, 대한민국 정치 1번지에서 의미있는 전사를 해도 정치인은 살 수 있는 거 아니냐고 그랬다. 천신만고 끝에 현역이 됐다. 그 뒤에 부산에 가겠다는 거다. 왜 거기로 가느냐고 했다. 그랬더니 ‘사람은 무엇이 되는 걸 생각하는데 도구가 된다고 생각하라’고 했다.  나는 사람을 사랑한 한 남자를 사랑했고 그 분이 계속 어려우니까 떠날 수가 없었다. 사람이 좋을 때 떠나지, 어려울 때 못 떠난다. 계속 같이 있다 보니 내가 세속적인 출세를 한 거다. 내가 큰 역량이 있어서가 아니다. 인터뷰하러 오면서 택시 기사가 하는 말이 ‘노 대통령이 어려워지니 사람들이 다 돌아서더라. 열린우리당 사람들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 때 심정이 어땠나.  -노 대통령은 스스로 ‘경계인’이라고 했다. 변호사로서 대한민국 기득권에 진입했지만 인권변호사가 됐고, 경상도 사람으로 민주당에 소속돼 호남 가면 영남 사람, 영남 가면 배신자라고 했다. 이런 얘기할 때 가슴 아팠다. 항상 빈 들에 서 있는 노무현을 봤다. 제일 중요한 게 의리라고 생각한다. (믿었던 사람들이 돌아서는 것은) 마음 아픈 일이다. 그렇게 노 대통령을 비판하다 서거하고 나서 국민적인 열기가 있으니까. 좀 정치가 담백했으면 좋겠다. ●386과 486 참여정부에 많은 386세대들이 정권에 참여했다. 국가를 장악할 준비가 돼 있었나.  -두 가지 측면이 있다. 노 대통령 정부가 아마추어 정권이라 폄하하기 위해 그런 말을 만들어낸 측면이 있다. 노 대통령도 50대 중반이었고 386이라 해봐야 전체 비서관 중에 나와 천호선 비서관 둘 빼면 58년 개띠가 12명이나 됐다. 이 사람들이 주력 부대였다. 수석이 대체로 50대 중반, 노 대통령과 같거나 조금 많거나 적었다.  또 김종필 총재가 30대에 공화당 의장하지 않았나. 미국 대통령 나이가 평균 53.1세다. 미국 역사에서 큰 전환점이 세 번 오는데 공황기, 동서 냉전기, 신자유주의 물결이 들어서기 직전이다. 한번은 루즈벨트, 한번은 케네디, 한번은 클린턴이 있었는데 모두 40대 초반의 대통령이다. 나이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얼마만큼의 준비가 돼 있느냐, 내적 역량이 강한가 그렇지 않은가가 중요한 것이라고 본다.  정리하자면 너무 과하게 폄하하려 하는 의도 속에서 본질에 맞지 않는 비난이 있었고, 나이만으로 모든 걸 얘기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사회 변화 속도가 빨라 신구 조화가 필요하다. 당시 나쁜 배합 아니었다. 386 정치인들은 현재 공통된 지향점이 있나.  -세대 에너지가 있다고 본다. 김영삼·김대중 대통령이 주창한 40대 기수론이 먹혔던 것은 그 당시 세대들은 한참 감수성이 예민할 때 8·15와 6·25 전쟁을 치렀다. 석회석과 다이아몬드는 성분이 똑같다. 그런데 어떤 압축과 고열과정 겪느냐에 따라 석회석이 되기도 하고 다이아몬드가 되기도 한다. 6·25 전쟁과 8·15 해방을 겪으면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생명력이 얼마나 강하겠나. 그 에너지가 있었기에 40대 기수론이 가능했고 살아가는 힘이 있었기에 전쟁의 잿더미에서 살아보자는 열망이 가능했다. 박정희라는 지도자도 있었지만 그 때문에 경제 발전도 가능했다.  데모를 하고 안하고를 떠나 80년대 광주가 얼마나 가슴 아팠나. 데모를 하든 안 하든 척박한 현실에 몸으로 앞서 나간 사람, 마음으로 동조한 세대가 386이다. 수백만이다. 학생운동 한 사람은 극히 소수다. 386으로 폄하될 일이 아니라 목숨을 걸고 한 시대를 타개해 나가려 했던 강력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중에 학생 운동 한 사람들은 소수였다. 당시 70만명씩 대학갈 때다. 80년대 학번부터 87년까지 보면 490만명의 대졸자를 갖고 있다. 취직을 많이 못해서 문화운동을 이끈 사람들도 이 주류들이다. 강한 386에너지가 있다. 운동만 한 386이 아니고, 80년대라는 군사독재 시절을 살아간 강력한 에너지가 존재한다. 이제 486이라고 하는데 용어는 어떤가. 386 상징성 때문에 쓰는 게 낫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본다. 세대 에너지를 좀더 얘기하자면 68년도에 유럽의 학생운동을 이끈 6·8세대들이 다 유럽의 대통령이 됐다. 그만큼 세대 에너지가 강하다고 본다. 존중될 필요가 있다. 다만 나처럼 못난 사람이 정치하게 되면서 정치권에 대해 조금 안 좋은 이미지를 갖게 되는데 부채 의식을 느낀다. 그러나 386 세대는 충분히 의미있는 세대다. 40대가 우리 경제의 주류 아닌가. 회사의 과장, 부장으로 일하면서 사회와 경제를 끌고 가는 강력한 세대다. 내가 그 세대가 갖고 있는 에너지 만큼 못한 게 미안하다. 올해 70세 넘은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영화제위원장을 강원도 문화예술제전 이사장으로 모셨다. 김 위원장은 1년 반을 해외에 있었다. 20대 청년에 절대 뒤지지 않는다.  세대간 벽을 두기보다 신구 조화를 강력히 꾀해야 할 때다. 중국이란 나라의 역동적 힘은 젊은 사람을 키워주고 권력자들은 전 정권 권력자들과 협력하고 타협하는 데서 나온다. 난 이것이 오늘날 중국의 강력한 동력이라 본다. ●친노세력 김두관 경남지사가 서울신문과 인터뷰에서 참여정부의 지분 60%은 노 대통령에게, 나머지 40%는 안희정·이광재 지사가 반반 가지고 있다고 했다. 동의하나.  -과분하다. 내가 노 대통령과 가장 오래 있었고, 노 대통령의 가족과 영원히 함께 해야 하는 게 내 숙제다. 참여정부에 빚을 많이 지고 있다. 빚을 많이 갚아야 할 처지에 있는데 지분이 어디 있겠나. 부채를 떠맡기 싫어서 지분을 안 가지려는 건 아닌가.  -사람이 사는데 의리가 제일 중요하다고 본다. 사랑했기에 대통령을 만들어겠다고 생각했고 또 그건 변함없다. 386세대에 미안한 것은 나를 많이 사랑했던 분들에게 내가 모자란 점이 많다는 것이다. 갚아야 한다. 이 지사, 안희정 지사, 김두관 지사, 유시민 전 장관, 문재인 비서실장 중에서노 대통령은 누구를 인간적으로 제일 좋아했나.  -문재인 실장이다. 그러니까 민정수석도 시키고, 비서실장도 시키지(웃음) 문 실장은 언젠가 정치를 할 거라고 보나.  -(한참을 생각하다)잘 모르겠지만 손학규 대표와 문재인 변호사가 잘 경선했으면 좋겠다.(웃음) 정세균·정동영 최고위원도 함께 경선했으면 좋겠다. 김두관 지사 말을 들어보면 유시민 전 장관은 참여정부의 지분 없나.  -그렇지는 않다. 노 대통령이 각별한 애정을 가졌다. 특별한 애정 가졌던 분이다. 지금 민주당은 아니니까. 지사 제외하고 나머지 분 중 정치적인 지도자로서 재능이나 역량은 누가 낫나.  -여태까지는 노 대통령의 그늘 속에 있었고 이제 처음으로 안희정·김두관 지사도 시험대 위에 오른 거다. 중요한 건 본인의 비전과 경영능력에서 시작되는 거다. 지금은 평가를 하기에는 이른 시기라고 본다. 2012년 대통령 선거에 5명 가운데 누가 대표 주자로 출마하면 좋을까. 문재인 실장인가.  -손 대표, 문 실장, 정동영 최고위원도 하겠지. 안희정 지사와는 경쟁 관계인가.  -둘다 의미있는 결과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일자리, 교육, 복지 세 가지 영역에 지사직을 걸었다. 안 지사나 김 지사나 나나 실질적으로 의미있는 결과를 내야 한다. 정치가는 희망을 파는 상인인데 국민들은 너무 위대하고 똑똑하다. 실질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 모든 걸 다 걸고 전력투구해야 할 시기 아닌가. 그래야 정치를 얘기할 수 있다. 난 분명히 그렇게 할 거다. ●정치 현안 개헌 얘기가 계속 나온다. 이 지사의 생각은.  -도 지사가 그런 얘기도 해야 하나(웃음). 개헌은 해야 하지만 노 대통령이 개헌하자고 했을 때 해야 했는데 그게 아쉽다. 노 대통령이 하자고 했던 시기에 했으면 전체 대통령의 임기나 여러가지 의미가 있었을텐데 시점을 놓쳐버렸다. 이미 권력 후반기다. 국회의원 임기도 얼마 안 남았다. 어떤 개헌 방향이 필요한 것인지 진지하게 성찰하고 준비해야 한다. 지금은 시기를 놓쳐버렸다. 그런데도 여당에서 개헌을 계속 추진하는 이유는 뭐라고 보나.  -(고개를 저으며) 모르겠다. 개헌 이슈가 한동안 갈 것 같나.  -광저우 아시안게임 개막전 보면서 거대한 힘이 밀려오는 느낌을 받았다. 한나라당 원희룡·남경필 의원 등 60년대생 시도 지사들과 여야를 떠나 진짜 대한민국 문제에 천착하는 모임을 만들어 볼 생각이다. 지금 굉장히 중요한 시기라고 본다. 내년은 세계사적으로 명운을 가르는 해다. 북한은 권력 교체기고 우리는 대통령 선거다. 중국 지도자가 바뀐다. 러시아와 미국의 대통령 선거 있다. 아시아 전반에도 남북 문제를 둘러싼 큰 틀의 변화가 오는 시기다. 남북 문제를 어떻게 푸느냐가 대한민국 명운을 끌고 갈 거라고 생각한다.  중국의 장길도 계획이라는게, 나진선봉으로 바다로 나오는 것이다. 내년 10월되면 푸틴 대통령이 만든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가 블라디보스톡에서 열린다. 얼마 전에는 몽골의 석탄을 한·중·러가 철도를 놔주는 조건으로 입찰에 참여했다. 몽골 자원이 동해안으로 나오게 된다. 지구 온난화 때문에 캄차카 반도 위로 북극 항로가 100~120일 열린다. 남북 정세 변화와 에너지 자원 문제를 둘러싼 극동의 관리를 어떻게 운영하느냐가 한국 10~20년을 좌우할 것이다. 이 문제에 정치권 전체가 천착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동계올림픽 유치에 전력 투구하고 여야를 떠나 내년 10월 APEC 의제는 단연코 남북의 정세를 어떻게 하고 어떻게 관리할 거냐, 북한을 경유하는 철도는 어떻게 될 거냐, 몽골·북한의 엄청난 광물 자원 어떻게 가져갈 거냐, 북한 물류 변화를 어떻게 만들어 낼 거냐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 극동아시아의 변화에 여야를 떠나 모든 정파가 외교에 진력해야 한다. 130년 전 구한말 상황이 온 것이다. 강원도가 여기에 한 축이 있다. 지사직을 걸었다.  무상복지 논란을 얘기를 많이 하는데 복지 하면 무상이다. 그런데 성장 없는 복지가 어디 있고, 복지를 생각하지 않는 성장이 어디 있나. 지금처럼 주택 문제, 사교육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2020년 저출산 고령화 상황에서 성장률이 떨어지는 건 불 보듯 뻔하다. 그 동안 성장동력 만들어야 한다. 어려운 서민들을 어떻게 할 건가를 놓고 머리 맞댈 일이지 지금 개헌으로 지지고 볶아서야 되겠나.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 50%를 웃돈다. 100점 만점에 몇점 정도 주겠나.  -글쎄. 난 통일보단 평화를 원한다. 남북정상회담이 필요한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서민경제 부분에 집중해줬으면 한다. 지금 서민들이 살기 너무 어렵다. 고용없는 성장과 거대한 눈부신 지표는 존재하는데 서민 삶은 거기에 없다. 임기 마지막에 두 가지를 집중해야 한다. 대통령 지지율이 70%면 어떻고 30%면 어떤가. 어차피 대통령인데. 물론 국민 원성 사면 안 되지만 너무 인기에 연연하지 말고 자기가 잘할 수 있는 한두 가지를 역사와 승부하면서 자기 지지자와 싸우는 게 중요하다.. 평화보다 통일 원하는 거 맞나.  -그럼, 당장의 통일보다는 평화가 중요하다. 자신에게 점수를 매긴다면. 지지율 조사하면 어느 정도.  -한 50% 나올 거다. 이명박 대통령의 정책 중에 가장 잘못하는 것 하나를 꼽는다면.  -시오노 나나미가 쓴 로마이야기에 로마의 번성 요인에 관한 글이 있는데 하나는 포용이다. 로마가 일어났던 건 이민족에 대한 포용, 로마인이 아닌데도 시민권을 주고 외부 사람도 황제가 될 수 있게 했다. 두번째 통합이다. 국민통합이란 건 정치적인 수사가 아니고 생존의 전략이다. 그래야 이 나라가 잘 되고 서민경제가 잘 된다. 내년 10월 APEC 정상회담을 반드시 국가의 전 역량을 모아야 한다. 틀의 변화는 임기 후반기에 있다. ●민주당 전적으로 공감한다. 민주당의 3대 무상 정책에 찬성하나.  -일자리, 교육 문제를 통해 건강한 중산층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게 국가 전체적으로 복지다. 이를 어떻게 끌고 갈 거냐의 문제와 또 하나는 진짜 어려운 사람들을 어떻게 도와주는가의 문제를 같이 생각해야 한다.  강원도는 이렇게 정했다. 일자리를 만드는 기업투자, 들어오는 기업에 특혜를 확실히 주겠다는 게 내 주장이다. 상장 회사 3개를 유치했다. 일자리 만드는 부분을 해 나가는 거다. 교육 분야는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영어와 중국어를, 강릉 영동지역은 영어와 러시아를 시범학교를 정해 집중할 생각이다. 연세대학교 초·중·고를 원주에 만든다든지 해서 교육 부분을 굉장히 강화하려 한다. 복지 예산은 늘었는데 많은 걸 못한다. 시범사업을 해보는 거다. 시범사업을 해서 내 가설이 맞으면 확대하고 국가 전체적으로도 확대할 수 있다. 2018년 돼야 연금시대 열린다. 2018년에 연금 받을 정도로 연세드신 분은 노후 준비가 안돼 있다. 경로당에 집중하자. 복지의 인프라라고 생각하면 경로당 사업을 강화해야 한다.  소 한마리에 200만원, 키우면 한 달에 1만 5000원을 준다. 100마리를 키우면 150만원인데 이걸 경로당 짓는데 쓰자. 소가 새끼 낳으면 소 한마리 800만~1000만원 하는데 그 돈으로 경로당을 도와줄 수 있다. 3년 지나면 소를 팔고 송아지 한 마리가 생긴다. 증식의 모델을 만드는 거다. 농촌형 복지다. 이걸 시범사업으로 해서 사회적 참여를 이끌어야 한다.  부모가 있으면 세액공제를 받는다. 그러지 말고 효도통장을 만들어 부모님에게 일정액을 자식 월급에서 10만원 떼 주자.  노인들 쓰레기 줍는거 말고 유럽처럼 꽃을 가꾸게 하고, 도시형 같은 경우 할아버지들이 도시의 쓰레기, 명함 등을 수거해오면 계산해서 주고 경로당 운영비를 주고 그렇게 해보면 어떨까.  논쟁할 때 서로 존중할 필요있다. 인간이 제도로 만들어낸 게 투표(정치)와 화폐(경제)다. 성장과 불평등은 쌍둥이 자식이다. 경제에서 성장은 미덕이다. 그러나 결과는 불평등이 존재한다. 그걸 해소하려는 게 평등이고, 그게 정치다. 인간이 완전하지 않기에 서로 닮으려고 한다. 이기적, 이타적 유전자가 큰 논란을 일으키는데 성장과 복지라는게 그런 측면이 있다. 지혜를 모아야 한다. 철학적인 답변이다. 손학규 대표, 박지원 원내대표 리더십에 만족하나.  -내가 그것까지 얘기할 건 아닌 것 같은데.(웃음) 가급적 일에 몰두하는 편이고 강원도 일에 성과를 내는 게 도리인 것 같다. 여의도와 정치판을 기웃거리지도 않는다. 그래서 정보도 없다. ●2012년 대선 2012년 대선의 가장 중요한 어젠다는.  -도정의 목표이기도 하지만 일자리, 교육, 복지라고 본다. 국가 전체적으로 보면 동북아의 평화 정세와 물류 문제에 생각을 많이 해야 한다. 극동아시아가 천연가스 50%를 갖고 있다. 북한도 그렇다. 철길, 뱃길로 어떻게 연결해서 해나갈 건가를 생각해야 한다. 이것이 한국 신성장 동력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대선 후보 선호도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다. 대세론이 강한데 야당이 박 전 대표를 넘기 어렵다고 보나.  -박 전 대표는 좋은 분이다. 지난 번 경선에서 졌을 때 깨끗하게 승복하고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할 때 이미 지도자 반열에 올랐다고 본다. 국민 마음 속에 섰다. 앞으로 점점 더 비즈니스 대통령의 역할이 커져야 한다. 국민들은 예측가능한 미래와 예측가능한 대통령을 원하고 세계 속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대통령을 원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손학규 대표는 영국에서 공부도 했고 도지사도 했고, 장관도 했고, 비교적 안정감 있고 예측가능한 미래의 좋은 후보라 생각한다. 박 전 대표와 손 대표(문재인 실장도 경선에 나설지 안 나설지 모르겠지만) 두 분의 멋진 승부가 되지 않을까 싶다. 박 전 대표는 무리없이한나라당 후보가 될 거라 보나.  -박 전 대표가 되는 게 순리가 아닐까 싶다. 박 전 대표와 일 대 일로 붙어 가장 경쟁력 있는 후보는.  -그걸 말할 수 있나. 하지만 이런 것 같다. 내가 지지도 마이너스 23%였다가 플러스 13%로 이겼다. 박연차 게이트로 찜찜한 게 있으면 국회의원 안 나갔다. 내가 감옥갔을 때 강원도민들이 사랑으로 모든 걸 거는 거라는 느낌을 받았다. 결국은 말을 많이 듣는 사람, 애정을 갖고 있는사람이 승리자가 된다고 본다. 거기서 에너지가 나온다. 선거를 예단할 수 없다. 내가 이길 거라고 누가 봤겠나. 노 대통령을 찍었던 사람들이 다음 대선에서 공통된 표심을 가질 수 있을까.  -분명한 건 노 대통령을 지지하는 분들이 많은 건 사실이다. 누가 됐든 대통령 후보로 나오는 사람은 이젠 예측가능한 미래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정치인 이광재 이념적으로 진보인가, 보수인가.  -나는 이데올로기를 믿지 않고 진화를 선택했다. 난 항상 오류가 있다. 오류를 빨리 극복할 수있는 시스템을 갖는 게 진정한 진화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정치판이 온통 좌파 우파니 하는데 이데올로기를 믿지 않으면 정치 기반을 무시하는 것 아닌가.  -경제 발전만 봐도 갈라놓고 싸우는 게 얼마나 웃기는 일인가. 1950년대 소위 소련 체제가 경제발전을 획기적으로 이뤘다. 미국이 과학자 양성을 위해 수월성 학교교육으로 완전히 바꿨다. 70년대 들어 유럽형 복지모델이 얼마나 강력한 성장모델 됐나. 제 3세계 아시아의 용들은 독재국가라는 비판받으면서도 얼마나 성장했나. 미국 경제도 신자유주의가 얼마나 융성했나. 그러나 이제는 서서히 어려움을 겪지 않나. 경제 발전만 봐도 이렇듯 신자유주의부터 소련체제, 복지국가 모델이 경제발전을 이끌고 왔는데 어떻게 이것이 옳다고 하나. 역사가 말하지만 진보 보수 관점이 중요한 게 아니고 공존하려는 통합의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 미국 경제사 이론을 보더라도 국가의 시장 개입이 진보였는데 한때는 개입하지 않는 게 진보였다가 지금은 또 개입하려고 하지 않나. 위대한 사상가들은 모르겠지만 정치로 얘기하면 진보 보수, 좌파 우파는 황당한 얘기다. 개인적으로 아주 공감한다. 언론관은 노 대통령과 같나.  -극도로 언론 노출을 피해왔다. 내가 노 대통령을 모시는 사람이었는데 모시는 사람은 자기 일이 없는 거다. 노 대통령 모실 때 문고리 잡고 인의 장막을 치지 않았다. 많은 사람을 소개했지만 내 스스로 인터뷰한 적이 없었다. 청와대에서도 근무했는데 공무원과 사이는 어땠나.  -잘 지내는 편이다. 국정상황실장 할 때 부처 고시 성적 최고였던 분들과 일했다. 공무원들은 유능하고 문제해결 능력이 있다. 그런데 공무원들은 처음에 무슨 얘기하면 안 된다고 한다. 다시 한 번 취지를 잘 설명하면 반드시 답을 찾아온다. 유능하다. 인사는 보수적으로, 일은 혁신적으로 하는데 사람을 너무 자주 바꾸는 건 옳지 않다. 에너지를 어떻게 끌어 올리느냐가 중요하다. 아침 운동을 과장이랑 걷고, 국장이랑 밥을 먹고, 한 사람씩 알아가고 있다. 조직은 마음으로 일하는 거지 명령으로 일하는 게 아니다. 공무원들에게 나한테 충성하지 말고 강원도민에게 충성하라고 한다. 종교가 불교다. 정치에 영향을 미치나.  -잘 모르겠다. 로마의 멸망 원인 중 하나가 종교 탄압이다. 인도와 무굴제국이 가장 왕성한 때는 다른 종교를 모두 허용했을 때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이유가 있다. 프란체스카 수도사가 한 말이 너무 와닿는다. 5세기 때 쓴 책인가. ‘수도원의 역사’란 책에서 넌 왜 풀이나 바위와 나무에 영혼이 없다고 생각하느냐, 왜 인간만 영혼이 있다고 보냐. 나무에도 산에도 생명이 있다는 말이 있다. 칭기스칸 아들은 신이 10가지 손가락을 준 이유는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고, 다른 종교를 핍박하지 말라는 뜻이라고 했다. 참여정부 실세라 강원도 예산이 많이 늘었다고 하는데 동의하나.  -그렇다. 많이 따려고 노력했다. 국회 와서 처음한 게 내가 담당하는 산하기관을 전부 돈 것이다. 예산 딸 때 사무관, 과장부터 일일이 다 설득한다. 그래서 예산을 따는 거다. 물론 힘이 든다. 담당 사무관이 제일 중요하다. 수백대 일의 경쟁력을 뚫은 공직자를 설득해야 생명력을 갖고 일할 수 있다. 정치적으로 결정하면 정권이 바뀌면 가위표가 된다. 생명력 있게 일관성 갖고 정책을 유지하려면 주무 사무관과 과장의 확신을 얻어내야 한다. 강원도가 보수적인데 왜 이 지사를 유권자들이 선택했다고 보나.  -강원도를 위해 일을 잘할 것 같다는 것과 또 하나는 청와대의 국정상황실장을 해봐서 국가도 좀 알고 국회의원도 두번 해서 국회도 알고 그래서 도지사 시켜 강원도를 위해 일 시킨 다음에 강원도를 대표하는 인물을 키워야겠다는 거 아니겠나. 내가 선거 때 마지막 연설에서 ‘청와대 국정경험, 국회의원 경험 살려서 10년이 지나면 대통령에 나가겠다’고 한 연설이 시청률 20%까지 올라갔다. 10분짜리 연설인데 나도 놀랐다. 인구는 적은데 적이 없는 데가 강원도다. 이광재를 키워 대통령까지 가보자는 열망이 컸던 거 같다. 10년 후 대통령 나올 건가.  -도 지사를 잘해야 한다. 난 정말 강원도민에게 큰 신세를 졌다. 강원도지사로 최선을 다해서 성과를 내고 싶다. 그것 외에는 뭐. 대통령을 옆에서 많이 봤고 그 자리가 얼마나 외로운 자리인지 안다. 자리를 탐할 일은 아니다. 지금은 강원도 일에 욕심을 내겠다. 박지원 원내대표가 도지사 선거 때 이광재 지사가 정말 연설을 잘하더라고 하더라. 얼마 전에도 차기 대선에서 이광재는 왜 안 되고 김두관은 왜 안되겠느냐고 하더라. 10년 약속이 5년으로 당겨질 수도 있나.  -나는 산에서 잘 잔다. 산에서 자면 바람소리가 들린다. 바람도 다 자기 가는 길이 있다. 큰 배가 가는 바다에도 길이 있다. 넓은 창공 같지만 두루미도 가는 길이 있다. 너무 삶에 애달복달 말고 주어진 일에 하루하루 살면서 그 길을 가는 거다. 내가 너무 노 대통령과 어렸을 적부터 큰 일을 하다보니 세상 사는 게 담담해졌다고나 할까. 만약 이 지사가 대통령이 되면 노 대통령 같은 사람 될까.  -왜 그러나. 강원도를 위해 일해야 한다. 안희정·김두관 지사도 성공해서 나중에 대통령 선거 나와서 멋있게 경쟁하고, 멋있게 후보 단일화하고, 그것도 멋진 일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은 지사 일을 잘해야 한다.  정리 구혜영·강주리기자 koohy@seoul.co.kr
  • [부고] 前 광복회장 애국지사 안춘생 선생

    [부고] 前 광복회장 애국지사 안춘생 선생

    안중근 선생의 당질인 애국지사 전 광복회장 안춘생 선생이 26일 오후 4시 23분 서울 보훈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9세. 1912년 8월 황해도 벽성에서 출생한 선생은 1909년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하얼빈 의거 뒤 계속된 일제의 탄압으로 1918년 가족과 함께 만주로 망명했다. 일제의 만주 침략이 본격화되자 남경으로 가서 1936년 중앙군관학교를 졸업하고 중국군에 임관해 중국군 제2사단에 배속, 대일전에 참전했다. 이어 1939년 10월 중국군 육군 소령으로 군정부 감호대대에서 복무하다가 1940년 6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무부에서 산서 지역에 군사특파원으로 파견돼 군사활동을 전개했다. 고인은 광복 이후 민족청년단 훈련부장으로 청년운동에 헌신하다 1949년 육군사관학교를 제8기로 졸업하고 육군사관학교 교장, 육군 제8사단 사단장, 국방부 차관보 등을 역임하고 나서 1961년 중장으로 예편했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 1976년 국민훈장 동백장, 1987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1남 1녀가 있다. 오는 30일 발인하며 영결식은 오전 10시 남산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 치러져 국립 서울현충원에 안장된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기술창업] “트렌드 읽고 작은 불편 고치니 블루오션” 청년창업 대안

    [기술창업] “트렌드 읽고 작은 불편 고치니 블루오션” 청년창업 대안

    해마다 수많은 인재가 배출되지만 공공기관, 대기업 등 구직자의 눈높이에 맞는 일자리는 한정돼 있다. 자연히 청년 실업 문제가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로봇을 만들어 지구를 지키겠다.”는 어릴 적 꿈을 되살려보는 것은 어떨까? 구조적인 청년 실업자 해소와 지속적인 성장 동력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대안으로 ‘청년 창업’이 떠오르고 있다. 취업이라는 레드오션에서 벗어나 창업을 통해 블루오션을 개척하는 청년들. ‘꿈은 이루어진다’를 외치며 힘찬 걸음을 내디딘 청년 기업인들을 만나본다. 20~30대의 기술창업이 활발하다. 24일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지난해 1~10월까지 30세 미만이 창업한 법인이 2661개나 된다. 1인 창조기업 육성 정책이 도입되고 스마트폰 시장이 확대되면서 새로운 장이 조성된 영향도 크다. 청년 청업자들은 ‘성공은 꿈꾸는 자의 것’임을 믿고 있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치열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진리도 간과하지 않는다. ●필요가 발명을 낳는다 바이오·의료기기 등을 생산하는 딜라이트 김정현 대표는 경영학을 전공하는 학생(4학년생)으로 지난해 7월 서울에서 창업했다. 사회적 기업 연구 모임에서 활동하면서 국내 노령층의 난청 문제를 접하고 보청기 사업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65세 이상 노령자의 25%, 75세 이상 노인의 50%가 난청을 겪지만 유일한 대안인 보청기는 150만원으로 고가이다 보니 사용자가 많지 않다는 점에 착안했다. “가격이 낮고 품질이 뛰어난 보청기가 있으면 좋겠다.”는 순진한 생각으로 3명이 의기투합, 18개월 동안 시장조사와 제품 연구에 나섰다. 고가인 원인이 대면 판매와 주문 제작 방식이라는 점도 파악했다. 김 대표 등은 표준화 보청기 제작에 나섰고, 세대별·성별·지역별 특성을 반영해 500여명의 귓구멍 크기를 측정해 평균값을 구했다. 온라인 유통망도 구축해 구매자가 청력검사 정보를 전송하면 보청기를 제작해 택배로 배달한다. “그게 가능하냐”는 의문 속에 34만원의 딜라이트 보청기가 탄생했다. 34만원은 정부 보조금으로 보청기를 구입할 수 있는 금액이다. 김 대표는 “한달에 300대 정도 생산하는데 현재 100대 정도 주문이 밀려 있다.”면서 “저소득층 노인의 치아 건강과 의료 보조기구 등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청년 창업가 권승철(37) 대표는 “수업 시간에 들은 내용을 정리만 잘해도 될 텐데….”라는 평소 생각을 아이템으로 2009년 교육용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인 한국문제은행을 설립했다. 석사과정에 있는 본인이 수차례 경험했던, 공부한 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는 것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되었다. ‘시험 점수=수업+정리+연습’이라는 공식을 실천할 수 있는 공간을 사이버상에 구현했다. 연필로 쓰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화한 것이 특징. 인터넷 강좌 등 교육 프로그램은 많지만 필요한 정리와 연습 서비스가 없는 틈새도 확인했다. ‘내노트닷컴’의 오답노트와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만의 맞춤 만점 문제집이 만들어졌다. 2009년 1월 문을 연 웰빙 주방가전업체 자이글의 이진희(42) 대표는 식당(삼겹살) 개업을 준비하다 제조업체를 창업했다. 식품 및 외식업계에서 근무해 식당업에 자신이 있었던 그는 냄새와 연기가 나지 않는, 깨끗하고 안전한 조리기를 고민하다 ‘자이글’을 완성했다. “왜 불은 밑에서만 나올까? 위에서 나오게 하자”는 역발상이 더해졌다. 고난의 연속이었다. 실효성과 안전 인증부터 제품 무게·크기·디자인까지 생각을 현실화하는 데는 엄청난 노력과 비용이 들어갔다. 이 대표는 올해 매출 목표를 전년 대비 6배 올려 잡고 있다. “사용해 본 사람은 반드시 찾는다.”는 품질에 대한 자신감이 깔려 있다. 지난해 첫 수출 후 선주문도 확보했다. 3월부터 후속 제품이 출시되고 하반기에는 업소용에 대한 반응 점검에도 나설 계획이다. 스마트폰 콘텐츠 개발 업체인 엠피아이 엄원호(28) 대표는 2009년 휴학하고 부산에서 창업했다. 창업동아리에서 활동하던 중 휠체어를 타던 친구의 “불편하고 힘들다.”라는 하소연을 들으며 휠체어용 전자지도 개발을 고안했다. 고령자와 지체장애인 등 보행 약자들이 좀 더 편리하고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는 기반 구축에 힘을 보탠 셈이다. 대구에 있는 유바이오메드는 2009년 대구에서 창업한 의료기기 및 의료분석기기 전문 업체다. 엄년식(40) 대표는 마이크로 니들(needle) ‘톡톡’을 개발, 출시했다. 두피와 피부 등에 약물 전달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직접 약물 전달 장치다. 각종 약물을 바를 때 흘러내리고 필요 이상의 양을 사용해 효율이 떨어지는 점에 착안했다. 모기침이 통증이 없다는 엄 대표의 아이디어가 더해졌다. 세계적으로 마이크로 니들에 관한 연구는 많지만 실용화 된 것은 ‘톡톡’이 처음이다. ●앞선 생각을 실천한 ‘얼리버드’ 고윤환(39·여) 캘커타 커뮤니케이션즈 대표는 2009년 8월 아이폰 국내 출시에 앞서 한국형 앱스토어 서비스를 준비한 ‘얼리버드’다. 웹 사이트에 있는 데이터를 모바일 서비스 플랫폼으로 확장해서 쓸 수 있도록 하는 모바일 웹 솔루션을 개발했다. 포털에서 제공하는 자료실 서비스를 스마트폰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앱 랭킹’은 준비 중인 앱과 유사한 앱, 그리고 경쟁사 앱의 매출 현황 등을 실시간 확인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이다. 소프트웨어 개발 업체인 아이티에이치의 대표 상품은 국내 최초 대화형 미니 블로그 ‘TOCPIC’과 기업용 소셜 고객관계관리(CRM) 서비스인 ‘소셜 보드’다. 김범섭(33) 대표는 “톡픽은 한국형 트위터, 소셜보드는 담당자가 고객 문의를 처리하고 제안을 검토하며 마케팅·홍보·모니터링을 한번에 처리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소개했다. 퓨런티어는 카메라의 후공정 테스트인 포커스와 화상검사 등 자동조립평가장비를 생산한다. 배상신(40) 대표는 카메라 수요 증가와 가치를 간파해 2009년 5월 회사를 창업했다. 후발업체로서 기존 업체와 차별화될 수 있도록 자동검사 소프트웨어를 1년간의 연구 끝에 개발했다. 시장은 수동공정이 대세였지만 제품의 고기능화와 고해상도화가 가속화되고 업체 간 가격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자동검사의 필요성을 감지했다. 공학도로서 시장의 흐름을 읽고 준비한 결과다. 서승원 중소기업청 창업벤처국장은 “기술·지식을 활용한 청년층의 손쉬운 창업과 성장을 지원하는 제도가 마련돼 있다.”면서도 “창업에는 용기와 도전정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전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 [사설] 개신교의 이슬람권 공개선교 만용 아닌가

    엊그제 예멘 사나에서 우리 개신교 청년들이 선교활동을 하다가 한국대사관 직원들에게 제지당했다. 정정이 극도로 불안한 이슬람 국가의 수도, 그것도 최고 번화가 한복판에서 버젓이 기타를 치면서 찬송을 불렀다고 한다. 대사관 직원의 만류가 없었다면 이들은 어떤 봉변을 당했을지 모를 일이다. 현지 우리 대사관이 이런 공개선교를 만류하고 나선 게 이달 들어서만 벌써 세 번째란다. 2007년 분당 샘물교회 피랍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위험한 행태가 아닐 수 없다. 분당 샘물교회 피랍 사태 후 우리 개신교 주요 교단과 정부는 나름대로 이슬람권 지역의 무모한 선교를 차단하려는 노력을 기울여 왔다. 위험지역에 대한 선교사·신도들의 파송 제한이며 사전교육이 그것이다. 하지만 개신교계엔 이런 단속의 노력들이 별 효과가 없다는 이야기가 파다하다. 암암리에 제3국을 통한 이슬람 나라들에의 밀입국이며 봉사·구호활동을 위장한 선교사·신자들의 선교가 공공연히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슬람 테러단체들이 한국인을 표적 삼겠다고 공개 선언한 게 한두번이 아니다. 공격의 이유로 자주 거론되는 게 바로 선교에 대한 응징이다. 그런데도 위험지역을 굳이 파고드는 무모한 선교가 횡행하고 있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땅끝까지 말씀을 전하라.’는 복음은 자비·관용의 종교적 본질을 살릴 때 유효하고 더 빛이 날 것이다. 선교를 법과·교리로 엄단하는 이슬람 나라에서 대놓고 ‘내 종교를 믿으라.’는 무모함은 만용을 넘어 종교의 가치를 스스로 깨는 모순이다. 국내 개신교계는 “교리와 신앙 차 탓에 해외선교를 막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변명 대신 봉사와 상생의 본질적 가치를 먼저 다져야 할 것이다. 만약 분당 샘물교회 피랍사건과 같은 일이 또 생긴다면 국민의 거센 비난은 물론 교회의 존재 자체가 위협받는 사태를 맞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해야 할 것이다.
  • [주민에 의한! 주민을 위한! 행정의 달인 29인을 말하다] (3) 보건위생 분야

    [주민에 의한! 주민을 위한! 행정의 달인 29인을 말하다] (3) 보건위생 분야

    지방행정의 달인에 대한 국민들의 열기가 갈수록 뜨겁다. 서울신문에서 지난 10일자 행정분야 달인을 시작으로 17일자 시설환경분야 소개에 이어 3회인 이번에는 보건위생 분야 달인을 소개한다. 매회마다 쏟아지는 댓글을 보면서 바른 행정, 열정의 행정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을 느낀다. 4회인 공간개선 분야 달인들은 오는 31일자에 소개된다. ■‘치매관리 으뜸’ 서울시 양천구 지역보건과 팀장 이순례 씨 치매상담 ~ 진료 원스톱… 전문병원급 서비스 “오늘이 몇월 며칠이죠, 식사는 언제 하셨습니까?” 한 간호사가 80대 노인에게 질문을 한다. 나이가 몇이며, 아침 식사는 무엇을 했으며,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등 너무나 사소한 내용이다. 그런데 80대 노인의 답변은 어눌하기 짝이 없다. 조금전에 물었던 것을 다시 물으면 답도 조금씩 달라진다. 간호사는 서류에 무언가를 적은 후 할아버지를 옆방으로 모셔간다. 옆 방에서는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신경과 전문의가 할아버지를 직접 진료하기 시작했다. 지난 21일 보건행정분야 ‘달인’을 만나기 위해 방문한 서울 양천구 신월2동 ‘양천치매센터’는 마치 치매전문병원 같았다. 간호사는 최근 행정안전부와 서울신문사가 공동 선정한 보건위생분야 달인 이순례(54·간호 6급) 양천구 지역보건과 팀장이었다. 전문의는 이화여자대학교 의료원(이대목동병원)의 신경과 최경규 교수였다. 보건소 간호팀장과 대학병원의 전문의가 보건소가 운영하는 치매센터에서 환자를 진료하고 있었던 것. 전국 대부분의 자치단체가 치매센터를 운영하지만 치매 상담에서 전문의 진료까지 원스톱으로 해결하는 곳은 전국에서 이곳뿐이다. 매주 3일은 병원이 아닌 치매센터에서 환자를 직접 진료하는 최 교수는 “양천구의 치매관리 체계가 제도적으로는 최고 선진화된 것”이라고 말했다. 양천치매지원센터가 이처럼 치매예방에서 전문치료까지 원스톱시스템을 갖추게 된 것은 이 팀장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이다. 이 팀장은 25년째 구청의 간호직으로 근무하면서 치매지원센터 원스톱 시스템의 산파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보건 서비스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인 공로를 인정받고 있다 . 그는 2008년 6월부터 지역협력 의료체계를 구축해 환자와 가족들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고 효과적인 치매예방관리에 도움을 주고 있다. 지역의 의료기관인 이대 목동병원에서 사용하고 있는 진료 전산시스템을 도입해 치매의 원인분석과 치매진료, 건강상담, 검사비 지원, 진료비 감액서비스 등을 일괄 처리해주고 있다. 가족이 없거나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건강관리에 소홀한 저소득층 노인일수록 치매에 걸릴 확률도 높다. 이 때문에 그는 보건소를 찾는 노인들을 대상으로 초기 치매증세를 식별해내는 데 관심을 쏟아왔다. 보건소나 치매센터를 찾는 노인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고 그들의 편에서 치료방법을 찾아 주게 됐다. 초기단계의 치매 의심환자로 생각될 경우 곧바로 전문의로부터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치매진행을 지연시키거나 치료를 위한 각종 정보를 가족들에게 제공해 준다. 특히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을 일일이 찾아 건강을 체크해주는 방문보건활동 중에도 치매 의심환자가 생기면 가족처럼 이들을 보살피고 치매진행을 늦추는 데 자식같은 역할을 해주고 있다. 이렇게 그를 통해 치매선별 검진을 받은 주민만 그동안 1만 9000여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788명은 치매환자로 확인돼 관리 및 치료를 받고 있다. 고위험군 570명은 이 팀장을 비롯한 5명의 간호사들로부터 치매진행을 지연시키는 전문 교육과 관리를 받고 있다. 양천구 보건소 이효춘 과장은 “비슷한 일을 해도 담당공무원의 관심도에 따라 결과는 큰 차이를 낸다.”고 이 팀장의 노력을 설명했다. 이 팀장의 역할은 치매관리에만 머문 것이 아니다. 방문보건사업, 결혼이민자 돌보미, 장애인 재활치료 사업 등 여느 보건소가 하는 일은 모두 하고 있다. 요즘은 지역내에 1170여명에 이르는 새터민을 위한 방문보건사업도 준비하고 있다. 지역 주민들이 그를 ‘치매 수호천사’ 또는 ‘장애인 수호천사’ 등으로 부르는 것은 당연하다. 할아버지와 함께 매주 2~3번 치매센터를 찾는 양천구 신월2동 주민 최봉신(66) 할머니는 “손을 잡아주고 등을 쓰다듬어 주는 등 자식처럼 대해준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주민들을 대하는 그의 친절과 헌신은 생활 속에서 배어나온 것.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그는 자녀들에게도 “배려하는 삶”을 강조한다고 한다. 새벽 5시면 기도와 함께 일과를 시작한다. “오늘도 병들고 힘든 주민이 있다면 나로 하여금 조금이라도 더 행복해 질 수 있도록….” 이동구기자 yidonggu@seoul.co.kr ■’응급처치 넘버원’ 광주광역시 동부소방서 소방교 방정수 씨 인공호흡 등 7년간 1만3600건… 6명 살려내 “인공 호흡 등 간단한 조치로 꺼져가는 생명을 구할 수 있습니다. 응급조치의 현장 경험과 노하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응급처치의 달인’으로 뽑힌 광주광역시 동부소방서 방정수(32·소방교)씨는 “인명 구조와 관련, 항상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대처하는 능력을 갖추는 데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심장이 갑자기 멈춘 환자는 4분이 지나면 뇌손상이 오고, 10분 이상이 경과하면 뇌사에 이를 확률이 높아진다.”며 “구급·구조활동은 시간과의 싸움”이라고 덧붙였다. 이 때문에 방씨는 요즘도 출근하자마자 심폐소생술 장비인 제세동기의 배터리부터 점검한다. 최근 계속된 한파로 응급장비가 구조현장에서 제대로 작동되지 않을까하는 우려 때문이다. 119구급대원으로서 매일 정신무장을 새롭게 하는 것도 일과의 하나로 자리잡았다. 이처럼 항상 긴급 출동에 대비하고 있는 방씨는 소방관으로 특채된 2003년부터 최근까지 모두 6명의 생명을 구해냈다. 2009년 성탄절에 급성 심근염을 앓던 27세의 청년을 심폐소생술을 통해 극적으로 살려냈다. 또 모텔 투숙 중에 심장이 정지된 40대 남자도 제세동기와 기도삽입관 처치로 되살려 가정으로 돌려 보냈다. 앞서 2007년 1월에는 갈비탕을 먹다가 고깃덩이가 목에 걸려 호흡곤란을 일으킨 할머니를 기도 폐쇄처치술과 후두경·마질겸자 등을 이용해 기도에 걸린 이물질을 제거한 뒤 심폐소생술로 되살려내는 등 ‘하트 세이버’로서 이름을 떨쳤다. 이로써 최근엔 행정안전부로부터 ‘응급처치의 달인’인 ‘대한민국 최고기록공무원’으로 인증 받았다. 또 기관내 삽관 등을 이용한 인공호흡 512건, 심장질환·당뇨 등 급성질환자응급처치 8059건,교통·산악사고 등 외상환자 응급처치 5058건 등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그가 이처럼 현장 상황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것은 반복된 훈련과 실습 덕택이다. 그는 119구급대에 들어오기 전 지방의 한 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할 당시 신경외과 전문의로부터 응급처치술을 배웠다. 또 응급 상황에 직면하기 쉬운 당뇨·심장병 등 주요 질환에 대한 공부도 병행했다. 저혈당 환자에게 포도당을 투여하거나 외상환자의 지혈과 부목고정 등의 응급 처치도 늘 그의 몫이다. 이런 노력과 현장 경험으로 그가 시행하는 기도삽관 방식의 응급처치 기술은 전문의에 버금갈 정도이다.촌각을 다투는 구급 현장에서 환자의 입 안쪽 성문(Vocal Cord)을 통해 정확히 관을 밀어넣고 기도를 유지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 때문에 그는 요즘도 이 처치법의 숙련도를 높이기 위해 매일 마네킹을 이용,기도에 플라스틱 튜브를 삽입하는 연습을 반복한다. 그는 누구나 배우면 쉽게 따라할 수 있는 응급처치법을 대중화하고 구급 장비 개선에도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지난해부터 일부 휴대폰에 기본 메뉴로 탑재된 ‘심폐소생술 동영상’은 그가 낸 아이디어이다. 이 동영상은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주위 사람이 즉시 119에 신고한 뒤 흉부압박법 등을 통해 환자에게 기도를 유지해주는 내용이다. .그는 이 제안으로 2009년 ‘생활공감 정책’ 분야의 국무총리상을 수상했다. 또 구급차에 설치된 들것에 온풍 순환시스템을 장착해 심장이 일시 멈춘 환자가 대형 병원으로 이송되는 동안 체온을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아이디어 역시 광주시소방본부가 모든 장비에 채택하도록 결정했다. 그는 최근 ‘행정의 달인’으로 선정되면서 여러가지 변화를 맞고 있다. 현재 재학 중인 동신대 대학원(소방행정학과)은 최근 그를 현장전문교수로 위촉했다. 그는 이 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구급·구조 방법 등을 가르친다.지방공무원교육원의 강의 요청도 쇄도하고 있다. 그는 “모든 국민들이 응급조치법을 익혀 상황 발생시 당황하지 않고 대처했으면 좋겠다.”며 “응급처치에 대한 홍보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다짐했다. 글 사진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울진-영덕, 대게 이어 원전유치 신경전

    대게 원조 논쟁을 벌여 왔던 경북 영덕과 울진이 이번에는 원자력발전소 유치 문제를 놓고 신경전을 벌여 양 지역 간의 미묘한 감정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30일 울진군번영회연합회 등에 따르면 새해 1월 초 10개 읍·면 이장협의회 및 노인회, 청년회 등 지역 30여개 관변·사회단체 회원들이 참가하는 ‘울진 신규 원전 추진위원회(가칭)’를 구성, 본격 유치 활동에 나서기로 했다. 또 울진군과 울진군의회 등의 동참도 적극 이끌어 낼 작정이다. 앞서 울진지역 10여개 사회단체는 최근 회원들을 대상으로 신규 원전 유치를 희망하는 서명을 받아 군에 전달했다. 단체들은 그동안 상대적으로 원전 지원금의 혜택이 적었던 원자력발전소 주변 바깥지역(원전 5㎞)인 근남면 산포리와 평해읍 직산리에 신규 원전 4~6기를 유치한다는 것. 평해읍번영회 이세진 회장은 “현재 울진지역에는 원전 10기가 가동 또는 건설 중이지만 원전지원금 혜택은 울진읍과 북면, 죽변면에 집중돼 지역 균형발전이 어려웠다.”면서 “이번 신규 원전 유치가 성사되면 울진군 전체가 경제적 발전의 호기를 맞게 될 것”이라고 신규 원전 유치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지난달부터 신규 원전 6기 유치 운동에 나선 영덕군과 지역 사회단체들은 울진지역의 이 같은 원전 유치 움직임에 대해 매우 못마땅해하는 분위기다. 영덕의 한 사회단체 관계자는 “정부가 지난달 신규 원전 부지 공모를 낼 당시만 해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던 울진지역에서 뒤늦게 신규 원전을 유치하겠다는 이유를 도저히 모르겠다.”면서 “울진이 영덕의 원전 유치 훼방꾼이 돼서는 절대 안 될 것”이라고 반발했다. 군 관계자도 “정부는 신울진 1~4호기 건설을 울진군 북면에 확정하면서 울진지역에는 더 이상의 원전시설을 건설하지 않기로 했다.”면서 “울진군과 지역 사회단체들은 이를 직시하고 자중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울진·영덕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동 주민센터서 취업상담 하세요”

    “동 주민센터서 취업상담 하세요”

    구로구가 관내 15개 동 주민센터에 취업상담 창구를 설치하고, 주민들의 일자리 창출에 본격적으로 나선다. 구는 29일 “구직을 희망하는 주민들을 돕기 위해 새해부터 동 주민센터에 취업상담 창구를 설치하고, 전문 취업상담사를 배치해 취업 상담과 알선 활동을 펼친다.”고 밝혔다. 주민들과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주민센터를 통해 동네 구직 희망자들에게 신속하고 알찬 맞춤형 구직 정보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필요한 인력을 제때 구하지 못해 애를 먹는 지역 회사의 구인난을 해결하는 등 구인·구직의 미스매치를 해소하는 효과도 기대된다. 구직자나 구인업체가 인근 주민센터를 방문해 구인 또는 구직 신청을 하면 구직정보는 3개월, 구인정보는 2개월 간 고용안정정보망 워크넷(www.work.go.kr)과 서울일자리 플러스센터(job.seoul.go.kr)에 공유된다. 취업상담은 구청에서도 할 수 있다. 구청 별관에 위치한 취업정보은행을 지난달 본청으로 이전해 접근성을 더욱 높였다. 취업정보은행에서는 취업전문가 3명이 상주해 ▲취업알선망 구축으로 원활한 취업 지원 ▲청년·여성·고령자·장애인 등에 대한 집중적인 지원 ▲구인난 해소 등을 목표로 활발한 취업상담활동을 펼치고 있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나눔을 실천하는 기업들] 현대기아자동차

    [나눔을 실천하는 기업들] 현대기아자동차

    현대기아자동차는 ‘자동차를 통한 인류의 행복 추구’라는 경영이념을 바탕으로 ‘함께 움직이는 세상’이라는 슬로건 하에 사회공헌활동을 펼치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안전한 교통문화 확산(세이프무브) ▲장애인 이동편의 증진(이지무브) ▲환경보전(그린무브) ▲임직원 자원봉사와 글로벌 청년인재 양성(해피무브)을 4대 사회공헌 중점분야로 정하고 환경, 청소년, 인재양성, 지역사회 발전 등을 그룹사별로 지원하고 있다. 현대기아차가 서울시와 공동으로 설립한 ‘키즈오토파크’는 어린이 대상 교통안전 체험 교육시설이다. 3000㎡의 부지에 오토 가상체험시설, 면허시험장, 오토 부스 등 다양한 교육시설과 각종 부대시설 등 최신 인프라를 갖추고 있으며 연간 1만 2000명의 어린이가 이용할 수 있는 국내 최대 규모의 시설이다. 현대기아차는 또 2003년부터 교통사고 피해자의 의료비와 교통사고 유자녀 장학금 등으로 총 12억여원을 지원해 왔다. 교통사고 장애인 재활 지원 프로그램은 뺑소니사고 피해자나 자기 과실로 보험혜택을 받지 못하는 저소득자를 대상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와 함께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10억 3000만원의 기금을 조성, 장애인복지단체를 통해 장애인의 자유로운 이동권 확보와 장애아동의 활동공간 마련 등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하고 있다. 장애아동을 위한 놀이터 ‘아이마루’는 제주 장애인종합복지관, 광양시장애인종합복지관 등 전국 5곳에서 운영되고 있다. 환경보전 사업으로는 중국 사막을 초원으로 되살리기 위한 ‘현대 그린존’을 2012년까지 추진한다. ‘해피 무브 글로벌 청년봉사단’은 현대기아차가 글로벌 청년 리더를 양성하고자 연간 1000명 규모로 2회에 걸쳐 대학생을 해외봉사활동에 보내는 프로그램이다. 2008년 7월부터 시작됐으며 인도, 중국 등 세계 곳곳에서 지역·환경·의료 봉사를 펼치고 있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김구 선생 증손자 김용만 씨 “4대째 나라위한 봉사는 당연”

    김구 선생 증손자 김용만 씨 “4대째 나라위한 봉사는 당연”

    1944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에 선임된 백범 김구(1876∼1949) 선생은 일본으로부터 나라의 독립을 찾아오는 데 일생을 바쳤다. 하지만 남북한 통일의 꿈은 이루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둘째 아들 김신 前공참총장 지내 그의 둘째 아들 김신(88) 전 공군참모총장은 우리 군의 공군 조종사로 6·25전쟁에 참전해 자유를 지켜냈다. 그는 1960년 8월 38살의 젊은 나이로 제6대 공군참모총장에 올라 우리 공군의 발전에 힘을 기울였다. 김구 선생의 손자이자 김신 장군의 아들인 김양 국가보훈처장은 6·25전쟁이 끝날 무렵 태어났다. 그는 1979년 9월 공군 중위로 전역했다. 이후 방위산업에 몰두했다가 2005년 상하이 총영사를 시작으로 다시 국가에 봉사하는 삶을 시작했다. 2008년 국가보훈처장에 임명돼 우리 나라 독립역사를 쓴 분들과 6·25전쟁에서 자유를 지켜낸 영웅들, 국가를 위해 헌신한 이들과 그들의 가족들을 위한 보훈정책의 최고 책임자로 근무하고 있다. 그리고 김구 선생이 세상을 떠난지 61년이 지나 그의 증손자도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길에 오른다. 김 처장의 아들 용만(24)씨가 그 주인공. 용만씨는 29일 공군 장교후보생 125기 임관식에서 소위로 첫 발을 내딛게 된다. 용만씨는 올해 5월 미국 조지워싱턴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귀국해 9월 공군 장교후보생으로 입대했다. 공군 교육사령부에서 3개월간의 교육을 끝내고 29일부터 3년간 정보장교로 근무하게 된다. 용만씨가 공군 장교로 임관하게 됨에 따라 할아버지 김신 장군과 아버지 김처장의 뒤를 이어 3대째 공군 장교의 길에 들어서게 됐다. 증조 할아버지 김구 선생과 함께 4대가 모두 나라를 위해 봉사하는 셈이다. 진정한 위국헌신(爲國獻身) 명문가의 탄생이다. ●손자 김양 국가보훈처장 역임 방배중학교 2학년 시절 미국으로 유학길에 오른 용만씨는 2005년 미국 하와이 주 미드퍼시픽 중고교(Mid-Pacific Institute)를 졸업하며 거의 모든 과목에서 A학점을 받았다. 빈민층 지역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봉사활동에도 적극 참여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최우수 학생 표창장(Outstanding Academic Excellence Awards)을 받기도 했다. 용만 씨는 당시 “대학을 졸업한 뒤 공군 참모총장을 지낸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공군장교로 복무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앞으로 열심히 공부해 증조부께서 염원하셨던 민족 통일에 이바지하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19세 청년이 자신이 증조부에게 다짐한 약속을 모두 지킨 셈이다. 보훈처 관계자는 “대한민국의 큰 어른 김구 선생의 증손자이지만 나라를 위한 봉사가 너무나 당연하다는 가족들의 생각에 홍보계획조차 잡지 않았다.”고 전했다. 29일 임관식에는 김신 전 공군참모총장과 김 처장 등 가족들이 모두 참석할 예정이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