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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41) 경주이선생 가장결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41) 경주이선생 가장결

    “지난 60년은 그만두고 양류목운(楊柳木運)의 해에는 갑자기 군대가 소요를 일으켜 여(女)군주가 도망을 칠 것이다. 만일 동남쪽에서 반란이 일어나면 나그네가 도리어 주인 행세를 하게 되리라. 나라의 태공은 푸른 바다에 외로운 그림자가 되어 신세가 처량해질 것이나 아무도 찾지 않을 것이다. 살아 있는 백성들은 달아나 숨기 바쁘니, 삼강오륜이 끊어지도다. 하늘 재앙 혹독해 벌레의 독을 무어라 형언하랴. 부자가 먼저 죽나니 후회해도 소용없도다.”(경주이선생 가장결) ‘정감록’의 일부로 돼 있는 ‘경주이선생’의 첫 대목이다. 정치적 격변을 알리는 끔찍한 예언이 쏟아져 나온다. 그 내용을 일일이 살피기에 앞서 우선 거기에 보이는 연도 표기방식이 특이해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 ‘양류목운’이라고 했다. 음양오행설에 입각해 임오년과 계미년의 운세를 말한 것이다.‘경주이선생’은 조선 후기에 정착된 편년체 예언이 분명한데, 특히나 음양오행설로 육십갑자를 푼 셈이다. ●한국의 운세를 나무에 빗대는 이유 먼저 말하고 싶은 것은 한국이란 나라의 운세는 나무 운세(木運)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는 점이다. 까마득히 먼 옛날부터 그랬다. 다들 우리나라를 나무(木)로 상정했다. 그 기원은 지금부터 약 650년 전인 고려 공민왕 6년(1357)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때 음양오행에 달통해 사천소감 벼슬에 있던 우천흥이란 일관(日官)이 있었다. 그는 공민왕에게 올린 글에서 이렇게 주장했다.“도선국사가 지은 ‘옥룡기’(玉龍記)란 예언서를 보면, 우리나라의 지맥은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지리산에서 끝난다고 했습니다. 그 지세가 물(북쪽)은 뿌리요, 나무(남쪽)는 줄기가 됩니다.” 우천흥은 도선이 한 말이라며 자신의 견해에 권위를 부여하려 애쓴다. 과연 이 주장이 도선에게서 비롯됐는지는 증명할 길이 없지만,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는 백두산을 뿌리로 삼아 지리산까지 줄기가 뻗친 한 그루의 나무로 이해된 사실만은 틀림없다. 역사 기록을 좀 더 살펴보면 그보다 200년쯤 앞서 고려 인종 때도 비슷한 인식이 존재했음이 증명된다. 알다시피 묘청은 도읍을 서경으로 옮기자고 주장했는데, 그 역시 고려란 나라를 한 그루 나무로 보았다. 묘청이 서경에 새 궁궐터로 잡은 곳이 ‘대화세’(大華勢), 즉 큰 꽃봉오리 형상의 명당이었다. 그는 나라 전체를 커다란 나무로 인식했고, 그 중에서 지세가 강한 여러 명당을 꽃으로 간주했다. 대화란 그 가운데서도 가장 큰 꽃 즉, 최고의 길지를 뜻했다. 한국이 음양오행으로 보면 나무에 해당한다는 주장은 고대 중국에서 비롯된 듯하다. 한반도는 중국의 입장에서 볼 때 동쪽에 위치하는데, 나무가 바로 동쪽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먼 옛날부터 중국 사람들은 우리나라를 ‘동국(東國)’ 또는 ‘진단(震檀)’이라 불렀다. 동쪽 나라를 뜻하는 ‘동국’이야 다시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만,‘진단’의 진(震) 역시 팔괘의 하나로 동쪽을 가리킨다. 단(檀)은 우리나라의 시조가 단군이라서 덧붙여진 것이다. 우리나라를 동쪽 나라라 하고 그래서 나무 운세로 보는 것은 중국 중심의 세계관이 표현된 것이다. 지구가 둥근데 하필 우리나라를 동쪽으로 볼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정약용이나 홍대용과 같은 조선 후기 실학자들은 마침내 지구가 둥글다든가 자전하는 줄을 알게 돼 중국적 세계관에 본격적으로 이의를 제기하게 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우리나라를 동쪽 나라로 생각하고 있다. 인습의 뿌리는 정말 끈질기다. 빠뜨릴 수 없는 또 한 가지 이야기가 역시 ‘고려사’에 실려 전한다. 한국 고대 풍수지리의 아버지라 할 도선국사가 고려 태조 왕건이 태어날 집터를 정할 때의 전설이다. 그 때도 나무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도선은 왕건의 아버지 왕륭과 함께 곡령 고갯 마루에 올라 지맥을 두루 살폈다. 위로 천문을 보고 아래로는 시수(時數)를 살핀 다음 그는 이렇게 말했다.“이곳 지맥은 임방(壬方:북쪽)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물을 어머니(水母)로 삼은 나무(동쪽)가 줄기인데, 말머리 명당에 이르러 멈춰선 형세입니다. 공 역시 물의 운명이오니 마땅히 물의 대수(大數·물의 수는 1과 6으로 6이 대수다)에 따라 집을 지어야 합니다. 대수인 6에 6을 곱하면 36구가 되는데 이것이 천지의 대수에 부응합니다. 제 말대로 하시면 내년에는 반드시 성스러운 아들(미래의 임금)을 낳게 될 것이오니 이름을 부디 왕건이라 하십시오.”(고려사 세계 7) 도선은 태조 왕건의 운세를 나무로 보고, 그 아버지는 나무를 살리는 물이라 여겼다. 마찬가지로 송악 명당이 있게 한 뿌리는 백두산인데 북쪽의 임방에 위치하므로, 오행으로 풀이해 물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비해 송악 명당을 낳은 금강산과 태백산 등 백두대간은 송악에서 바라보면 동쪽에 위치해 나무로 간주됐다. 따지고 보면 송악 역시 그 나무의 꽃 또는 열매에 해당해 근본적으로는 나무로 파악됐다. 도선의 머릿속에서 송악과 고려 태조 왕건은 나무로 동일시되었다. 나무인 왕건이 태어나서 자랄 집은 당연히 물이라야 하므로 대수 36구가 길하다는 결론이 나왔으며, 송악에는 푸른 소나무가 많아야 한다는 것이 도선의 처방이었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한국의 운세는 늘 나무로 파악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壬午와 癸未가 楊柳木이 되는 이유 오행상생설로 보면 나무를 살리는 것은 다름 아닌 물(水), 죽이는 것은 불(火)이다. 따라서 나무인 한국에게 물의 해는 길하고 불의 해는 흉하다는 식의 운세 풀이가 나오게 된다. 흉한 해 즉, 불(火)로 정의되는 해는 말(午)의 해요, 그 뒤를 이은 양(未)의 해도 좋지 않은 것으로 점쳐진다. 그런데 한국의 운세는 말과 양 등 십이간지(十二干支)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육십갑자를 구성하는 열 개의 천간(天干)이 또 있어서다. 나무에 해로운 불은 병정(丙丁) 둘이며, 이로운 물이 또 두 가지이다. 임(壬)과 계(癸)가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임과 계년이라면 나라 운세가 보통은 아주 좋다. 하지만 십이간지인 말과 양의 해가 나무와 상극인 관계로 임오년과 갑신년의 운세는 상생과 상극이 맞부딪쳐 어정쩡해진다. 비유하자면 어린 나무(柔木)다. 역술가들은 임오년과 계미년의 국운을 흔히 양류목(버드나무) 운세라 부른다.‘경주이선생’도 예외가 아니어서 버드나무 운세라는 말로 두 해의 운세풀이를 시작한다. 하고 많은 나무 가운데서 버드나무란 또 무엇일까? 옛 사람들은 버드나무라면 으레 생명력이 끈질기다고 생각했다. 조선의 명유(名儒) 하서 김인후는 귀양 가는 친구에게 뜰 앞의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주기도 했는데, 버드나무가 정든 임을 상징하기도 했지만 생명력이 있기 때문이었다. 버드나무는 가늘고 긴 가지가 특별하다. 축 늘어진 모양은 마치 미인이 긴 머리를 풀어헤친 듯도 하려니와 하늘하늘한 여인의 허리를 연상케 한다. 낙락장송의 꼿꼿한 기개는 아닐지라도 유려함과 생명의 활기가 느껴지는 나무다. 버드나무는 봄이 오면 가장 먼저 물이 올라 푸르름을 선사하기도 한다. 부드러움 속에 강인한 생명력이 깃들어 있다. 따라서 ‘양류목’ 운세는 다소 불리한 가운데도 끝내 죽지 않고 다시 살아날 가능성을 가진다. 말과 양의 해라면 나무가 죽을 수이고, 특히 큰나무가 해를 많이 입을 운이다. 다행히 임과 계년이라서 다 죽지는 않는다. 산불 때 그렇듯 큰 나무는 힘없이 쓰러지되 작은 나무는 도리어 살아남을 운세다. ●임오군란과 양류목운 다시 맨 앞에서 인용한 ‘경주이선생’의 첫 대목을 상기해보자. 고종19년(1882) 임오년의 정세와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참 많다. 첫째, 군대의 소요가 일어난다는 예언이 있는데 그 해에는 실제로 임오군란이 일어났다. 당시 정국은 대원군을 중심으로 한 수구파가 개화파와 대립하는 형세였다. 개화파는 사실상 국왕 고종과 명성황후가 손수 이끌다시피 했다. 왕이 개화를 지지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개화파 관료가 점차 조정에 많이 임용되었다. 고종18년(1881)에는 신식군대인 별기군까지 창설되었는데, 소외감을 느낀 구식 군인들은 그것을 왜별기(倭別技)라 부르며 분통을 터뜨렸다. 과거 대원군이 집권하던 시절만 해도 구식 군인들에 대한 대우는 좋았다. 하지만 개화정책이 추진되면서 사정이 많이 달라져 그들은 봉급이 13개월치나 밀리는 등 어려운 처지로 내몰렸다. 재정을 담당하는 선혜청 당상이자 병조판서였던 민겸호야말로 이런 사태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는 것이 구식 군인들의 믿음이었다. 마침 그해 6월, 전라도에서 올라온 세미(稅米)가 서울에 도착하자 구식 군인들에게도 1개월분의 급료가 지불되었다. 그런데 선혜청 담당 관리들의 농간으로 겨와 모래가 섞인 쌀이 지급되자 구식 군인들은 분노를 참지 못해 무장폭동을 일으켰다. 그들은 평소 불신하던 민겸호의 집에 난입했고, 장차 민씨 일파의 보복이 있을까 염려한 나머지 반대파인 대원군에게 의지했다. 대원군은 몰래 심복을 보내 구식 군인들을 통솔했고 이 사태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자신의 재집권을 꾀했다. 그 바람에 구식 군인들의 폭동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었다. 군인들은 무기고를 털어 무장을 강화한 뒤 명성황후의 측근들과 개화파 주요 관리들의 집을 차례로 습격했다. 대원군의 밀명에 의해 그들은 친왕적이고 개화정책에 우호적이던 대신들을 죽이거나 다치게 했다.“부자가 먼저 목숨을 잃는다.”는 ‘경주이선생’의 예언처럼 부와 권세를 부리던 사람들이 상해를 입었다. 개화파의 군사적 기반인 별기군 병영도 무사하지 못했다. 구식 군인들은 일본인 교관 호리모토 레이조(堀本禮造)를 살해했고, 일본 대사관에도 침입해 13명의 일본인 목숨을 빼앗았다. 둘째, 예언서 ‘경주이선생’에는 여 군주가 도망친다고 돼 있는데, 실제로 실권을 행사하던 명성황후가 충주로 도피하는 사태가 일어나고 말았다. 구식 군인들은 돈화문을 통해 창덕궁 궐내로 난입했다. 그들은 개화파의 우두머리라며 명성황후를 제거할 계획이었다. 두 말할 나위도 없이 수구파의 우두머리인 대원군의 조종을 받은 것이었다. 목숨이 위급해진 왕후는 무예별감 홍재희의 도움을 얻어 충주 장호원에 있던 친척집으로 피신했다. 셋째, 국태공이 납치된다는 예언도 적중해 대원군이 청나라로 납치되었다. 국왕인 고종은 임오군란으로 벌어진 정치적 난맥상을 진정시키기 어렵다고 판단해 일단 대원군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다시 정권을 장악하는 데 성공한 대원군은 왕의 의지에 상반된 조치를 연달아 취했다. 대원군은 그동안 실시돼온 개화정책을 거의 모두 파기했다. 별기군을 혁파하고 구식 군대인 5군영을 복구하였으며, 신식 정부기관인 통리기무아문을 없애고 3군부를 설치했다. 대원군은 최대의 정적인 명성황후의 실종을 서둘러 사망으로 단정하고 국상을 치렀다. 개화파로서는 큰 타격이었다. 그러자 개화파는 톈진(天津)에 주재하던 영선사 김윤식을 통해 청나라에 군사적 후원을 부탁했다. 청나라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한국에 대규모 군대를 파견했다. 오장경(吳長慶)이 이끈 청나라 군대 4500명이 서울로 급파됐다. 그는 군대를 앞세워 한국의 내정에 직·간접으로 간섭하였고, 자신을 찾아온 대원군을 불법 체포해 톈진으로 압송했다. 한국 내에서 청나라의 입지를 강화시킬 방안에서였다. 이로써 나는 새도 떨어뜨릴 듯하던 ‘호랑이’ 대원군은 권좌에서 영원히 축출되었다. 예언대로 되고 만 것이다. 이밖에도 ‘양류목운’의 예언은 적중했다.“손님이 주인행세를 할 것”이라 했는데 과연 오장경이 지휘하는 청나라 군대가 멋대로 주인행세를 한 것이 사실이었다. 한마디로, 임오년은 ‘경주이선생’이 말하듯 숱한 사건이 터졌다. 그러나 그것으로 나라가 아주 망하지는 않았다. 일단은 충주로 피난한 명성황후도 무사했고, 불시에 청나라로 붙잡혀간 대원군도 다시 귀환할 수 있게 된다. ●갑신정변까지 ‘경주이선생’에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경주이선생’에는 고종21년(1884)에 일어난 갑신정변도 정확히 예측돼 있다.“정중수운(井中水運)은 자미(북두성) 자리에 저녁 무지개가 뜬 형국이다. 그러다 다시 동쪽으로 달아나리라. 나라에 변고가 일어나 죽음이 참혹하구나. 남북 군사들이 부딪쳐 화가 점차 심한 불길처럼 번져나갈 것이다.”자미성이라면 천자 또는 임금을 가리킨다. 그 자리에 무지개가 뜨는 것은 무척 흉하다. 무지개는 하늘에 보이는 벌레로 해석되기 때문에 변란이 일어난다는 예언이다.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친다고 한 것도 불길하며, 변란의 주체가 동쪽으로 달아난다고 한 것도 심상치 않다. 더구나 이 사건을 계기로 남과 북의 세력이 더욱 심각한 양상으로 대립한다고도 했으므로 후환이 두렵다. 이 예언대로 한 해가 흘러갔다 해도 지나침이 없다. 김옥균과 박영효를 비롯한 개화파 청년 인사들이 그 해 10월17일 갑신정변을 일으켰다. 그들의 정변은 일단 성공했으나 지지기반이 미약했던 탓에 정권이 오래 가지 못했다. 겨우 사흘밖에 집권하지 못해 ‘삼일천하’란 다소 비웃는 듯한 표현까지 등장하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갑신정변의 역사적 의의는 크다. 한국역사상 최초로 실시된 위로부터의 근대적인 개혁이라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김옥균 등 정변의 주체세력은 그들 스스로가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 양반 출신이었지만, 오랜 사회적 악습으로 남아 있던 문벌 타파를 실천하고자 했다. 개화당 인사들은 능력 본위로 인재를 등용하자며 평등권을 부르짖었다. 아쉽게도 정변은 실패로 돌아갔고 후유증도 심각했다. 서울에 와 있던 청나라 장수 위안스카이의 무력 공세에 밀린 김옥균과 박영효 등은 후일을 기약하며 일본으로 망명했다. 이 사건 이후 한국은 일본과 청나라의 세력관계에 따라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불쌍한 처지에 놓인다. 청·일 양국은 그 이듬해인 1885년 4월 18일, 톈진조약을 체결해 장차 한국에서 중대 사건이 발생할 경우 두 나라가 동시에 군대를 파견하기로 약속하기에 이른다. 과연 갑신정변이 일어 난지 정확히 10년 뒤인 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다. 그러자 청·일 두 나라는 톈진조약에 의거해 한국에 동시 출병했고, 마침내 한국을 독점하기 위해 청·일전쟁을 벌인다. 이 전쟁은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의 승리로 돌아갔다. 이로써 일본은 장차 한국을 병합할 기초를 다진다. 불행의 씨앗은 이미 오래 전부터 준비되고 있었다. ●더 이상 안 맞는 ‘경주이선생’ 갑신정변을 분기점으로 잘 맞아 들어가던 ‘경주이선생’도 틀리기 시작해, 고종 23년(1886) 이후의 예언은 완전히 빗나간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유는 무척 간단하다. 맞고 틀리고는 ‘경주이선생’이 저술된 시기와 직접 관계가 있다. 나는 이 예언서가 1884년 갑신정변이 끝나자마자 쓰였다고 본다. 이미 다 알고 쓴 것이라서 1880년대 초반의 일은 그야말로 귀신이 곡할 정도로 딱딱 들어맞는다. 하지만 듣지도 보지도 못한 1886년 이후를 무슨 수로 맞히겠는가? 맞는 예언서는 이미 예언서가 아니다. 그것은 술사를 비롯한 민중의 역사적 인식이 기록된 일종의 역사서일 뿐이다. 그 때 있었던 모든 사건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민중의 주된 관심사만을 한데 주워 담은 역사 말이다. 예언은 사실 미래를 대상으로 한 것인데, 뜻밖에도 거기에 민중의 역사적 기억이 집적돼 있다.‘경주이선생’에는 특히 민중이 바라본 정치와 경제 이야기가 많다. 당연한 일이지만 지금도 우리는 밥상머리에서 권력과 돈의 향방을 따진다. (푸른역사연구소장)
  • [선택 4·15] “한표를…” 5당 대국민 호소문

    제1당 경쟁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는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은 4·15 총선을 하루 앞둔 14일 각각 ‘거여(巨與) 견제론’과 ‘거야(巨野) 부활론’을 펴면서 지지를 호소하는 출사표를 던졌다.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와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은 각각 대국민선언문을 통해 지지표 결집과 부동층 흡수에 나섰다.선거결과는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의 앞날은 물론 박 대표와 정 의장의 정치운명과도 직결돼 있다. 민주당은 최근의 지지율 상승세를 감안하면 원내교섭단체 구성도 가능하다는 주장을 하면서 막판 지지표 훑기에 나섰으며,자민련과 민주노동당은 두 자릿수 의석 확보에 목표를 두고 지지층 결속을 시도했다.주요 정당 지도부는 공식 선거전 마지막날인 이날 특히 부동층이 많고 접전 양상이 치열한 서울 등 수도권을 돌며 지지를 호소했다. ■박근혜 한나라대표 “이번이 저희 한나라당에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결코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14일 출사표에서 이같은 절박함을 피력한 뒤 “이번 총선에서 국민 여러분께 드린 약속을 반드시 지키겠다.”고 강조했다. 박 대표는 “각별한 각오로 하루하루 가파른 언덕 길을 오르고 또 올랐다.”며 선거운동기간 13일 동안을 회고했다.그리고 “여의도 벌판의 천막으로 당사를 옮겼을 때,저희들 마음은 한강 너머 텅빈 하늘처럼 막막하기만 했다.새로운 각오로 신발 끈을 동여매면서도 허물이 많은 저희가 국민 여러분께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지 참담하고 두려운 심정이었다.”고 말을 이었다. 박 대표는 “그러나 어두운 과거를 반성하고 새롭게 거듭나려는 간절한 몸짓과 호소에 조금씩 마음을 열어주시는 국민 여러분을 보면서 힘과 용기를 얻었다.”고 심경을 밝혔다.그는 “선거에서 비방하지 않고,싸우지 않겠다는 약속을 드렸는데,힘들었지만 끝까지 지켰다.”면서 “앞으로도 싸우지 않는 정치로 국민의 사랑에 보답하겠다.”고 약속했다.그러면서 “국민들 먹고 사는 문제와 경제살리기에 모든 당력을 집중하고 깨끗하고 새로운 정치,싸우지 않는 정치로 사랑에 보답하겠다.”고 다짐했다. 박 대표는 “우리 역사는 말 많은 소수가 아니라 조용한 다수의 땀으로 이끌어 왔고,말은 없지만 누구보다 나라를 사랑하는 여러분의 애국심을 보여줄 때”라면서 “15일은 국민을 위해 일할 일꾼을 뽑는 날이다.거대 여당을 견제할 수 있는 야당이 서는데 힘을 보태달라.”고 거듭 당부했다. 박 대표는 이날로 이틀째 서울과 수도권 유세에 집중했다.한 유세장에서 10분쯤 얼굴을 내비친 뒤 곧바로 다른 유세장으로 이동하는 릴레이식 유세를 펼쳤다.그러나 “부산이 흔들리고 있다.”는 보고를 접한 뒤 오후 늦게 예정에 없던 부산으로 급히 향했다. 이지운기자 jj@seoul.co.kr ■추미애 선대위원장 민주당 추미애 선대위원장은 14일 D-1 막판 유세를 모두 서울에서 소화했다.서남 벨트를 출발,강북으로 갔다가 밤 늦게 종로에서 마무리짓는 초강행군. 추 위원장은 오전에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민주당에 다시 기회를 주시면 평화와 번영,정치 개혁,당내 개혁,경제 회생,청년 일자리 창출을 책임지고 해 내겠다.”고 출사표를 던졌다.김종인·손봉숙 공동 선대위원장과 박준영 선대본부장,김강자 전 총경 등과 오랜만에 손을 맞잡고 필승을 다짐하는 여유도 보였다. 그는 “거대 야당과 무책임한 정신적 여당이 서로 견제하겠다는 투전판식 선거에 민생과 외교 등 정책이 실종됐다.”면서 특히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을 겨냥해 “어른 세대에 투표장에 가지 말라는 무책임한 말을 던져 놓고 다시 탄핵 정국으로 막판 세몰이를 하는 것은 국민을 상대로 한 떼쓰기 정치의 전형”이라고 비난했다. 추 위원장은 이어 서울 지역 14개 선거구를 돌며 민주당의 50년 전통을 지켜달라는 읍소로 유세장을 뜨겁게 달구었다.그는 “내일은 민주당의 부활절이 될 것”이라며 “실업자를 양산한 노무현 정부와 1당이 아니면 경제를 책임지지 못하겠다고 단식하는 열린우리당을 심판해 달라.”고 목청을 높였다. 추 위원장은 자기 지역구인 광진을도 안정권이 아닌 탓에 오후 늦게 찾았다.TV에서만 얼굴을 보여 섭섭해 하던 지역민들이 거리로 대거 나와 선대위 일행을 환대했다.그는 이날 종횡무진 일정에도 불구,하이힐을 신어 눈길을 끌었다.3보1배 할 때 나지막한 단화에서 출발해 엊그제 3㎝ 높이의 굽으로 갈아 신더니 급기야 7㎝까지 올라갔다. 당 관계자는 “지지도가 그만큼 오른다는 뜻 아니겠느냐.”고 너스레를 떨었다. 박정경기자 olive@ ■정동영 우리당의장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은 14일 “긴 절망의 터널을 벗어나 희망의 정치로 전진할 수 있는 선택의 날이 다가왔다.”면서 “국민의 위대한 힘으로 역사를 변화시켜 달라.”고 말했다. 정 의장은 이날 아침 영등포 중앙당사에서 단식농성중 기자회견을 갖고 “부패 탄핵세력이 원내 제1당이 될 위기에 처했다.”며 이같이 호소했다.정 의장은 “대통령을 탄핵한 193명이 또다시 국회를 장악한다면 그들은 탄핵소추가 정당했다고 강변하면서 헌법재판소에 압력을 가할 것이고 대통령은 돌아오지 못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주장했다. 이어 “열린우리당이 대통령 탄핵을 무효화시키고 경제를 일으킬 수 있도록 힘을 보태달라.”며 “우리당이 다수당이 된다면 싸움의 정치를 끝내고 국민을 믿고 국민에 의지하며 국민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정 의장은 “4·15총선에서 ‘3·12 의회쿠데타’로부터 한국민주주의의 후퇴를 막고 전진시키기 위한 참여의 폭발을 기대한다.국민의 참여가 이뤄지면 탄핵세력이 물러난다.”고 강조했다. 기자회견을 끝낸 뒤 정 의장은 바로 중앙선관위를 방문,본인의 비례대표후보 사퇴서를 직접 제출했다.정 의장은 제출 후 기자들에게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탄핵한 야3당이 과반수를 넘을지 모를 위기상황을 알리기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며 “원내국회 중심의 17대에서 의원직 포기가 갖는 의미를 잘 알지만,한국 민주주의 부활에서 명분을 찾겠다.”고 말했다. 정 의장은 저녁 7시에는 인파가 많이 몰리는 명동 밀리오레 앞에서 마지막 지원유세를 갖고 전폭적인 지지를 호소했다. 김근태 원내대표도 서울·경기 지역을 돌며 부동표 흡수에 주력했다.김 대표는 “신(新)지역주의가 대구에서 일어나서 부산으로,서울로 올라오고 있다.지역주의에 의해 한나라당이 다시 살아나는 것이 두렵다.”면서 “지역주의와 차떼기 부패정당을 심판해 달라.”고 호소했다. 김상연 박지윤기자 carlos@ ■김종필 자민련총재 자민련 김종필(JP) 총재는 14일 서울에서 마지막 지지를 호소했다. 오전 마포 중앙당사에서 17대 총선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한 뒤,곧바로 서울 도봉을·노원을·중랑갑·동대문을 지역을 돌아 다니며 지지를 거듭 요청했다. 김 총재는 대국민 호소문에서 “자민련은 우리나라 정통 보수정당으로,계승해야 할 옛 것은 지키고 새로움을 계속 추구하면서 내일을 개척하는 정당”이라며 “오로지 국가와 후손의 내일을 생각하는 자민련에 힘을 보태 달라.”고 호소했다.이어 서울지역 릴레이 유세에서 “차떼기 부패정당인 한나라당과 정체불명의 열린우리당,잡다한 요인이 혼재된 민주당을 또 다시 지지하겠느냐.”며 “이제 그런 정당은 다시는 이 땅에 발을 붙여서는 안된다.”고 자민련 지지를 거듭 촉구했다. 그는 원내진입이 유력하게 거론되는 민주노동당에 대해 “지구촌이 우경화되고 있는데 반대로 왼쪽에 서서 우리 조국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만큼 절대 힘을 줘서는 안된다.”며 “그렇다면 남은 정당은 자민련뿐”이라고 주장했다.자민련은 JP의 충청권 집중유세로 24개 선거구 가운데 15곳 이상에서 승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박현갑기자 eagleduo@ ■권영길 민노당대표 민주노동당은 선거운동 마지막날인 14일 꾸준히 치솟는 당 지지율을 실제 득표로 연결시키는데 주력했다.서울·수도권과 영남권을 중심으로 비례대표 후보들을 전원 가동해 ‘진보야당론’을 내세우며 ‘2004년 원내교섭단체 구성,2008년 제1야당,2012년 집권’이라는 야심찬 중장기 계획을 쏟아냈다. 권영길 대표는 이날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집권여당의 실정과 무능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부패하지 않은 야당이 있어야 한다.”며 “그 역할을 진보야당인 민주노동당이 할 수 있도록 전폭적 지지를 몰아달라.”고 호소했다. 권 대표는 “이번 선거는 대통령 탄핵으로 마감한 16대 국회 4년의 부패와 노무현 정부의 지난 1년의 실정을 심판하는 장”이라고 전제,“민주노동당은 이번 선거에서 최소 15석에서 최대 20석 이상의 의석을 얻어 교섭단체를 구성해 17대 국회에서 열린우리당,한나라당과 더불어 국정운영의 한 축으로서 기존 보수 정당들의 부패와 무능을 감시하고 질책하는 강력한 선도자가 되겠다.”고 밝혔다. 권 대표는 기자회견을 마치고 자신의 선거구인 창원으로 내려갔고,천영세 선대위원장,노회찬 선대본부장,심상정 비례대표 후보(1번) 등은 서울·수도권의 표몰이에 나섰다.이영순·강기갑 비례대표 후보 등은 울산·거제 등 영남권에서 ‘진보야당론’ 전파에 힘을 쏟았다. 한편 민주노동당은 지난 2002년 대선 투표 하루 전날 ‘정몽준 지지 철회 쇼크’로 인해 지지표가 빠지는 등 톡톡히 혼이 났던 ‘악몽’을 떠올리며,열린우리당 유시민 의원의 ‘민주노동당 후보 투표는 사표’ 발언의 파장을 차단하는데 주력했다. 김종철 대변인은 “민주노동당 후보를 찍으면 ‘민주노동당 집권’의 씨앗이 된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고 있다.”고 말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 사진 오정식 최해국 남상인기자 ˝
  • [후보자 채점합시다-참여인사 릴레이제언]②어수영 선거학회장

    “입법 활동을 책임질 국회의원은 무엇보다 후보자의 도덕성과 전문성,정책을 기준으로 뽑아야 합니다.그러나 이번 총선은 모든 것이 ‘탄핵’으로 점철되는 바람에 선거판 자체가 왜곡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국선거학회 회장인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어수영(65) 교수는 4일 “서울신문과 반부패국민연대가 공동으로 벌이는 ‘후보자 채점’의 10가지 항목 중에서 정책을 묻는 문항과 인물을 꼽는 문항에 유권자들은 특히 중점을 둘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그러면서 “탄핵 정국의 여파로 정책은 실종됐고,후보자 개인을 평가할 시간도 부족한 것이 이번 총선의 특징”이라고 우려했다. 어 교수는 “지역구 국회의원을 뽑을 때는 납세·국방의 의무 등에 충실했는지의 ‘도덕성’과 국회에 들어가 제대로 입법활동을 할 ‘전문성’을 갖췄는지를 따져야 한다.”면서 “사회를 발전시킬 수 있고,실현가능한 정책을 내놓는 정당에 투표해야 이번에 처음 도입되는 비례대표제의 의미도 살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과거 그 정당이 어떤 정책을 펴왔고,어떻게 입법활동을 벌였는지도 꼼꼼히 따져 투표에 참고해야 한다.”고 주문했다.그러나 “선거를 열흘 앞둔 시점에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만 종합정책을 발표할 정도로 정책이 실종된 것이 큰 문제”라면서 “결국 ‘탄핵 바람’ 하나만 놓고 투표를 하게 돼 우려가 된다.”고 지적했다. 어 교수는 이어 “기성 정치판에 대한 국민 염증이 높아지면서 정당마다 대규모의 ‘물갈이 공천’을 단행했다.”면서 “전국 243개 지역구에 출마한 전체 후보자 가운데 14%만이 현역 의원일 정도로 신인이 대거 정계에 진출해 제대로 검증할 시간조차 부족한 것도 문제”라고 꼬집었다.이에 “지역케이블TV를 통해 지역구에 출마한 후보자가 정견을 발표하고,자유롭게 토론도 벌이도록 하면 짧은 시간이라도 유권자가 후보자를 검증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또 “민주주의의 축제인 선거를 제대로 치르기 위해 탄핵 찬·반여부와 보수·진보의 구분 등 편가르기에서도 탈피하자.”고 강조했다. 어 교수는 “청년실업·탄핵정국의 잘잘못을 가리기 위해 20,30대가 대거 투표에 참여할 것으로 예상돼 전체 투표율은 16대 때에 비해 크게 높아질 것”이라면서 “박빙 승부가 예상되는 지역구에서는 젊은층의 표심이 큰 변수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각 정당 대표가 감성 정치로 표심을 움직이려고 하더라도 총선은 지역일꾼을 뽑는 선거라는 점을 잊지 말고 후보자 개인의 인물과 정책으로 판단하자.”고 거듭 강조했다. 박지연기자 anne02@˝
  • ‘셔틀콕 황제’ 박주봉 씨

    “박주봉 선수죠? 사인 좀 해 주세요.” 지난달 29일 말레이시아의 수도 콸라룸푸르 ‘코리아타운’ 근처의 한 호텔 로비.40대의 중국계 말레이시아 남성이 미소년처럼 마냥 즐거워하며 전 배드민턴 국가대표 선수인 박주봉(40)씨 곁에 다가서 있다.물론 메모지와 볼펜을 들고 있다.이 남자의 딸인 듯한 10세 남짓한 아이도 양볼이 상기된 채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20년 전,영국 버밍엄 국립체육관에서 세계 최고 권위의 전영오픈배드민턴대회 우승컵을 끌어안었던 약관의 청년은 어느새 흰머리가 듬성듬성한 불혹의 중년이 돼 있었다.‘셔틀콕 황제’ 박주봉이다.역시 황제 칭호를 얻은 골프의 타이거 우즈와 농구의 마이클 조던도 이곳 동남아시아권에서는 그의 명성을 결코 능가하지 못한다.개인 최다인 국제대회 71회,세계선수권 7회 우승으로 기네스북에 이름을 올린 그는 배드민턴이 국기인 말레이시아에서 ‘살아있는 신화’다. ●국제대회 71회, 세계선수권 7회 우승 그가 말레이시아에 정착한 것은 지난 1999년.97년 1월부터 영국에서 배드민턴 국가대표 코치를 맡고 있다 연봉 2억원에 고급 주택과 승용차가 제공되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말레이시아 대표팀 수석 코치로 스카우트됐다.2000년 말부터 대표팀을 떠난 2002년 12월까지는 총감독까지 지냈다. 그러나 말레이시아행에는 한국에서 겪은 비인기종목의 설움이 결정적인 몫을 했다.“우리나라에서는 금메달을 딴 직후 반짝 뜨고,수개월 뒤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냉랭해지는 악순환의 연속”이었다며 “배드민턴 코치의 한마디가 신문의 스포츠 1면을 장식하는 이곳이야말로 배드민턴인들의 천국”이라고 말한다.한국인으로서 국위 선양의 자긍심도 크다고 덧붙인다. 하지만 언제나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는 법.대표팀이 ‘박주봉 체제’로 변화한데 따른 말레이시아 국민들의 지나친 기대와 관심이 그의 어깨를 짓누른 것이다.결국 2000시드니올림픽과 2002부산아시안게임에서 ‘노메달’의 수모를 겪으며 ‘박주봉호’는 일단 닻을 내렸다. 그는 현재 말레이시아 배드민턴협회 자문위원이다.아직도 배드민턴계에서는 막강한 입김을 행사한다.지난해 초부터 배드민턴광인 화교 사업가와 손잡고 스포츠센터 ‘박주봉 아카데미’사업을 추진중이다.다만 사업허가가 늦어지는 게 고민이다. 그는 “계속 말레이시아에 남아 있느냐,대표팀 감독직을 제안한 캐나다 미국 등으로 떠나느냐를 두고 숙고하고 있다.”면서도 해외 생활을 청산하고 귀국해 시드니올림픽에서의 한국 ‘노골드’의 부진을 터는 데 일조하고 싶다는 생각도 내비쳤다. ●셔틀콕 즐긴 전직 대통령들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등 전직 대통령들은 배드민턴을 즐겼다.실력도 평균치를 웃돈다. 이들 가운데 배드민턴에 각별히 애정을 쏟은 이는 전씨.국내에서 열리는 국제대회인 코리아오픈에 빠짐없이 모습을 드러낼 정도였다. 박주봉은 이종동서가 전씨의 비서관이었던 게 인연이 돼 가깝게 지냈다.“92바르셀로나올림픽 이후 무려 7년간 서울 연희동 전씨 집 인근의 외국인학교에서 주말이면 경기를 함께 했다.”고 회상했다. 전씨와 유사하게 권위주의적인 지도자로 오명을 남긴 마하티르 전 말레이시아 총리도 박주봉을 좋아했다.마하티르 전 총리의 부인이 배드민턴협회 고문이었던 점도 크게 작용했다.총리 관저를 종종 방문했고,마하티르 전 총리는 그때마다 경호원도 없이 직접 관저를 안내하며 격의없이 대해줬다. 반면 똑같은 배드민턴 애호가지만 김영삼 전 대통령은 체육인들 사이에서 별로 인기가 없었다.박주봉은 “김씨는 호탕했던 전씨와는 달리 체육계에 별 관심이 없었다.”고 말했다. 박주봉은 최근 한국 아마추어스포츠 침체에 대해서도 격앙된 목소리를 냈다.그는 “정부가 사회체육 육성은 커녕 한국의 국가이미지 제고에 가장 효과적인 올림픽에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이라며 체육정책의 실종이 체육계 침체로 이어졌다고 질타했다. ●배드민턴 중흥 돕는 지도자 될 터 오랜 외국생활 탓일까.그의 가슴 속에는 어느덧 향수병이 깊이 자리하고 있다.한국 사람이 별로 없는 영국 생활 대신 말레이시아를 ‘제2의 고향’으로 택한 데는 콸라룸푸르의 비교적 큰 코리아타운도 한몫했다.콸라룸푸르 생활 내내 코리아타운 근처를 벗어난 적이 없을 정도로 한국을 그리워했다. 그는 두 아이를 둔 한국인 답게 교육열 또한 남다르다.일찍부터 국제 대회에 출전하면서 언어의 장벽을 절감한 탓이다.초등학교 교감을 지낸 부친 박명수(72)씨가 ‘공부도 잘해야 운동도 잘한다.’는 믿음을 굳게 가졌기 때문에 중학교 시절 과외까지 받았다.캐나다 등 미주행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는 것도 현대판 ‘맹모삼천지교’의 일환이다.그는 “처음에는 외국 생활을 끔찍이 싫어하던 아내(이수진·35)가 요즘은 아이들 교육 때문에 더 적극적”이라고 쓴웃음을 지었다. ‘셔틀콕 황제’의 인생이었지만 좌절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요즘은 누구나 다 치는 배드민턴도 20여년 전에는 생소한 종목이었다.때문에 중학교에 진학하기 전 테니스로 ‘이직’할 뻔 했다. 팀 후배인 김동문 길영아와 맞붙은 96애틀랜타올림픽 혼합복식 결승전에서의 패배도 아쉬운 기억이다. 후배들을 꺾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며칠 동안 연습 한 번 못했다.결승전 전날 가볍게 몸이라도 풀기 위해 웨이트트레이닝 장에 내려갔다가 후배에게 “얼라들이랑 할 건데 뭐하러 왔느냐.”는 핀잔까지 들었다.그는 “작전도 없이 경기에 나선 데다 운도 안 따랐다.”면서 “생전 지는 것을 못본 아내가 눈물을 많이 흘려 가슴이 아팠다.”고 씁쓸해했다. 그는 평생의 절반 가까운 15년 동안 ‘태극마크’를 달고 살아왔다.때문에 “고국에 받은 만큼 되돌려줘야 한다.”는 의무감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다.98년 안락한 한국체대 ‘교수님’ 자리를 박차고 영국행을 결정한 것도,정체된 생활 대신 유럽이라는 스포츠의 중심지에서 지도자 수업을 받고 싶어서였다.어느 나라에서 대표팀을 맡게 되건,박사 과정을 마치는 게 일단의 목표다.현장과 이론의 접목을 위해서다.박씨는 “정신력을 중시하는 우리 풍토에 외국의 합리적인 선수 지도 방법이 결합된다면,세계 체육계를 선도할 새로운 지도법이 창출될 것”이라면서 “선수로서의 영광은 다 누렸으니,이제는 지도자로 한국 배드민턴 중흥을 위해 일할 수 있으면 더 바랄 게 없겠다.”며 밝게 웃었다. 글 콸라룸푸르(말레이시아) 이두걸특파원 douzirl@ ■ 그가 걸어온길 ▲1964년 12월 5일 전북 전주 출생 ▲ 80년 전주농고 1년때 국가대표 발탁 ▲ 82년 덴마크오픈 복식 우승 ▲ 85년 캘거리세계선수권·전영오픈 우승 ▲ 86년 서울아시안게임 3관왕 ▲ 88년 서울올림픽 혼합복식 우승(시범종목) ▲ 91년 전영오픈 3연패,국제대회 복식 71회 우승, 세계선수권 7회 우승으로 기네스북 등재 ▲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남자복식 우승 ▲ 94년 한체대 전임강사 ▲ 96년 애틀랜타올림픽 혼합복식 준우승 ▲ 97년 영국대표팀 수석코치 ▲ 99∼2002년 말레이시아 대표팀 수석코치,총감독 ˝
  • “일자리 만들기 최우선해야”경영학과교수 400명 성명

    한국경제학회 등 전국 대학의 경제·경영학과 교수 400여명은 19일 일자리 창출을 촉구하는 성명을 채택했다. 이들 교수는 이날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제는 경제’라는 제목의 성명을 내고 “정부의 경제 리더십 실종과 기업가들의 추락,실업문제 악화,가계부채와 신용불량자 문제로 우리 경제는 무너질 위기에 처해 있다.”면서 “현재의 경제위기 타파를 위해 무엇보다 먼저 투자활성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이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특히 “경제 리더십이 있어야 할 자리엔 변덕스러움과 이기적인 이해단체의 투쟁,인기영합주의 정책이,국가경제시스템을 고민해야 할 자리에는 아마추어적 열정이 있을 뿐”이라며 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질타했다. 이들은 이어 “청년실업과 가계부채 등으로 점철된 현 경제위기의 해결을 위해서는 미래의 성장잠재력을 높이는 투자확대와 현재의 소득을 늘리는 일자리창출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박지연기자 anne02@
  • 대한매일 선정 2003 10대뉴스-국내

    盧대통령 취임… ‘코드인사' 논란 ‘젊은’ 노무현 대통령이 2월25일 제16대 대통령에 취임했다.정부와 청와대의 핵심 포스트에 노 대통령과 ‘코드’가 맞는 인사들이 전면 포진해 ‘코드인사’ 논란이 불거졌다.노 대통령은 권위주의를 없애려고 했지만,대통령 권위까지 깎아내린 게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대통령직 못해먹겠다.”거나,“재신임을 묻겠다.”라는 말은 적절치 않았다는 게 국민들의 대체적인 평가였다. 대구지하철 참사 192명 사망 2월18일 오전 9시35분 대구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에서 방화로 인한 화재가 발생, 192명이 사망하고 148명이 부상을 당했다.전동차 불량 내장재와 지하철공사 직원들의 직무 태만과 교육·훈련 부족 등 안전불감증 결여가 결국 대참사로 이어졌다.참사 후 정부는 2005년까지 전국 도시철도 차량 4208량의 내장재를 불연성으로 교체키로 하는 등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격의 지하철 안전대책을 내놓았다. 부안사태 6개월 원점 재검토 원전수거물관리시설 유치를 놓고 빚어진 부안사태는 반핵시위가 6개월째 계속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빚었다.정부는 김종규 군수폭행,고속도로점거,방화,촛불집회 등 격렬한 시위가 이어지자 지난 10일 부안 원전센터사업을 사실상 원점에서 재검토키로 해 정책의 신뢰도를 스스로 떨어뜨렸다.최근에도 찬·반 양측이 세몰이 양상을 보여 새해에도 부안사태는 계속될 전망이다. ‘대북송금' 특검… 정몽헌회장 자살 현대가(現代家)의 후계자 정몽헌 현대아산이사회 회장의 자살은 재계를 충격 속에 몰아넣었다.정 회장의 죽음의 이면에는 ‘대북송금’이 있었다.송두환 특검팀은 남북정상회담 직전 정부와 현대가 북한에 현금만 4억 5000만달러를 줬다고 발표했다.정 회장은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에게 150억원을 준 사실도 드러났다.그의 자살은 이런 사실을 검찰에 털어놓은 부담감 때문으로 추정된다. 대선자금 수사 정치권 ‘빅뱅' 서민들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거액의 불법자금이 지난 대통령 선거 때 재벌기업에서 여야에 전달된 것으로 밝혀져 온 나라를 뒤흔들었다.한나라당에만 500억원대,민주당에는 수십억원이 건네진 것으로 드러났고 아직 수사가 진행중이다.정치권에서는 이번 사건을 정치개혁의 계기로 삼겠다고 했지만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형평성 시비를 제기하며 내년에 특검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강남 아파트값 폭등 극약 처방 서울 강남 아파트에서 시작한 집값 폭등으로 서민들의 내집마련 꿈이 더욱 멀어진 한해였다.강남 재건축 아파트는 무려 30∼40% 폭등하기도 했다.이를 막기 위해 정부는 연초부터 강도 높은 투기억제정책을 발표했으나 땜질식으로 끝나 집값을 잡는데 실패했다.마침내 주택거래 규제와 세금중과 조치 등이 포함된 ‘10·29대책’이라는 극약처방을 동원,투기 심리를 누그러뜨렸다. 태풍 ‘매미' 강타 131명 숨져 지난 9월12일 오후 한반도를 강타한 태풍 ‘매미’는 사망·실종 131명,4조 2000여억원의 재산피해와 6만여명의 이재민을 냈다.순간 최대풍속 60m의 강풍과 해일을 동반한 매미는 우리나라 기상관측사상 최대의 위력을 지닌 태풍으로 제주도 통과 후 12시간여 만에 전 국토를 유린했다.정부는 전국 156개 시·군·구를 특별재해지역으로 선포,복구에 나섰지만 수재민들의 시름은 가시지 않았다. 뜨거운 공방끝 이라크 파병 결정 미국이 올해 두차례 이라크 파병을 요청했고,이 과정에서 보수와 진보세력이 충돌하는 ‘아픔’을 겪었다.노무현 대통령은 한·미동맹관계와 북핵문제 해결 등 국익의 관점에서 파병하기로 어렵게 결정했으나,특히 노사모를 비롯한 노 대통령 지지층들의 반대는 만만치 않았다.건설공병과 의무부대 파병을 수용한 1차때보다는 전투병도 포함된 3000명의 추가파병을 결정하는 게 더 쉽지 않았다. 청년실업 급증… 신용불량자 양산 올 들어 신용불량자가 기하급수적으로 쏟아져 나오면서 청년실업률이 급등했다.‘이태백’(이십대 태반이 백수)이란 신조어가 나왔을 정도다.지난해 말 263만여명이었던 신용불량자는 올 11월말 364만여명으로 11개월새 101만여명이나 늘었다.다섯명중 한 명은 10대나 20대였다.경기침체까지 겹쳐 15∼29세의 청년실업률은 11월 기준 8.0%(39만 4000명)로 치솟았다.전체 실업률(3.1%)의 두 배가 넘는다. 조류독감 확산… 육류 소비 ‘뚝' 연말연시 육류 특수를 앞두고 닭과 오리 등에 주로 감염되는 고(高)병원성 가금(家禽)인플루엔자(일명 조류독감)가 12월에 발생,때아닌 ‘먹을거리 공포’가 확산됐다.전염성이 매우 강하고 홍콩에선 8명이 목숨을 잃었기 때문에 26일까지 120만마리의 닭과 오리가 매몰처분됐다.닭고기 등을 불에 조리하면 사람에겐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육류 소비는 뚝 떨어졌다.
  • NGO / NGO ‘총리·장관 재평가’ 바람

    노무현 대통령 재신임 파문과 맞물려 연말쯤 단행될 가능성이 있는 개각을 앞두고 참여정부 1기 내각에 대한 시민단체들의 평가가 줄을 잇고 있다. 행정전문 시민단체인 ‘행정개혁시민연합(행개련)’을 비롯해 참여연대와 경실련,환경운동연합 등 주요 시민단체들이 시민과 행정 전문가 등을 대상으로 장관들에 대한 국정운영 능력과 자질 검증 작업에 착수했다.일부 시민단체는 개혁정책을 소홀히 해온 장관들에 대한 적극적인 퇴진운동마저 전개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참여연대의 ‘인터넷 폴(Pool)’처럼 시민단체의 장관 평가가 정책과 자질에 의한 것이라기 보다는 네티즌 투표를 통한 여론몰이식 ‘인기도 조사’라는 비난도 적지 않아,평가와 관련해 적지 않은 논란이 예상된다. ●개혁소홀 장관 퇴진운동 벌여 참여정부의 행정개혁과제를 평가하고 감시활동을 펴고 있는 행개련은 연말까지 시민과 전문가 등을 대상으로 각 부처 장관 평가를 준비 중에 있다. 행개련은 조석준 공동대표(서울대 명예교수),박동서 정부개혁연구소 이사장(서울대 명예교수)을 비롯해 강성철(부산대)·하태권(서울산업대)·남궁근(서울산업대)·김동욱(서울대)·송희준(이화여대)·강철준(계명대)·표창원(경찰대)교수,서원석 한국행정연구원 인적자원센터 소장 등 100여명의 각 분야 행정 전문가를 통해 참여정부 개혁의 방향에 맞는 국정수행능력과 청렴성,부처 운영능력,행정철학,정책 리더십 등에 중점을 두고 평가에 나설 방침이다.이는 국무조정실 심사평가조정관실과 평가 방식이 비슷하지만,시민의 눈으로 장관을 평가하는 것이어서 내용은 크게 다르다. 서영복 행개련 사무처장은 “국정을 책임진다는 측면에서 고위 공직자의 도덕적 자질은 대통령과 국회의원,자치단체장 등 투표를 통해 선출하는 공직자 못지 않게 중요하다.”면서 “무엇보다 대통령 재신임 문제의 취지를 살려 장관을 평가하고,개혁능력을 검증해 나가는데 주력할 것”이라고 평가 방향을 밝혔다. 반면 참여연대는 직접 시민속으로 뛰어들었다.참여연대는 지난 11일부터 ‘참여정부 장관 19인의 재신임을 묻는다.’는 주제로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네티즌들을 상대로 ‘인터넷 폴’에 들어갔다. 17일 현재 네티즌이 뽑은 ‘교체해야 할 장관’ 1위에는 전체 투표 참가자 1만 1511명 중 19.4%인 2235표를 얻은 김진표 경제부총리가 올랐으며,이어 최종찬 건설교통부 장관(12.2%·1404명),조영길 국방부 장관(9.1%·1048명),윤덕홍 교육부총리(7.7%·881명),김화중 보건복지부 장관(7.3%·843명) 등의 순이었다. 김 부총리와 최 장관은 부동산시장 안정화대책에 대한 불신과 청년실업증가,빈부격차 확대 등 가중되는 서민들의 고통 등이 반영됐다는 분석이다.또 윤 부총리는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문제로,조영길 장관은 이라크 파병문제 등으로 네티즌들의 미움(?)을 샀다.고건 국무총리는 1783명 중 65.1%인 1160명이 교체돼야 한다고 답했다.참여정부 1기 내각의 ‘수장’으로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는 게 네티즌들의 평가 같다. 퇴진운동에 나선 단체도 있다.경실련과 건강세상네트워크 등 6개 시민단체들은 지난 12일 “포괄수가제 시행 후퇴 등 정부의 보건복지 분야 개혁정책이 실종됐다.”며 김화중 복지부 장관의 퇴진을 요구했다.보건복지분야 개혁 비전의 부재와 신빈곤 문제에 대한 무대책,공공의료 확대 공약 불이행,국민연금법 개악안 국회 발의,보육업무 여성부 이관에 대한 돌출 결정,동북아 중심병원 설치 및 내국인 진료 문제에 대한 정책 혼선 등이 이들 단체가 내세운 퇴진 이유다. 환경운동연합은 지난 9월 30일 부안 원전수거물관리시설 선정에 대한 책임을 물어 윤진식 산업자원부 장관 해임요구 기자회견을 갖기도 했다.환경운동연합은 “윤 장관이 현금보상이나 대통령 별장건설 계획 등 실현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국민들을 현혹시켰다.”며 해임을 촉구하기도 했다. ●“여론몰이식 인기도 조사” 경계해야 그러나 시민단체들의 장관 평가에 대한 부정적인 목소리도 적지 않다. 정부정책을 수행하는 장관의 일부에 국한된 단면의 평가가 될 수도 있고,정책이 아닌 장관 개인의 ‘인기도’에 의한 평가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인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참여연대의 네거티브 방식 투표에 대한 문제제기도 있었다. 참여연대 게시판에 글을 올린 한 네티즌은 “잘못하는 장관만 지적해야 하는 투표가 어떻게 공정성을 띨 수 있느냐.”면서 “찬성하는 사람의 입장도 표현할 수 있는 여론조사가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부처 관계자는 “장관이 정책을 특정 단체가 아닌 국민을 위해 올바른 정책을 펴기 위해서는 비난도 감수해야 한다.”면서 “장관이 소신있게 정책을 펴지 못하고 시민단체나 일부 네티즌들의 인기에 영합하거나 ‘눈치보기식’ 정책을 편다면 그것 또한 문제가 아니냐.”고 반박했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인터넷 폴 방식으로 네티즌들에게 직접 장관의 재신임을 묻는 것은 국민들에게 많은 호응을 얻을 수 있겠지만,인기도 위주의 조사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현석기자 hyun68@
  • 전망 및 현안 점검 / 여당 없고 각당 총선대비 대정부 난타전 예고 국감 곳곳 ‘지뢰밭’

    16대 국회 마지막이자 참여정부 들어 처음인 이번 국정감사는 그 어느 때보다 정부에 대한 강력한 공세로 점철될 전망이다. 원내 과반의석(149석)의 한나라당이 전·현 정권의 권력형 비리 의혹을 파헤치는 데 전력투구하기로 한 데다 민주당 분당에 따른 집권 여당의 ‘실종’ 사태가 대(對)정부 국회 난타전을 예고하고 있다.더욱이 개별 의원들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이번 국감에서 어떻게든 두각을 나타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있어 소속 정당과 계파에 상관 없이 공세적 태도를 취할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한나라 공조 쉽지 않을듯 먼저 복잡한 ‘여당’ 구도가 이래저래 민생 국감을 뒷전으로 미뤄놓을 것 같다.야당인 한나라당과 자민련(10석)뿐 아니라 ‘법적 여당’인 민주당(64석)까지 대정부 공세에 가담할 공산이 크다.이에 ‘정치적 여당’을 자임하는 통합신당이 전체 273석의 5분의1도 안되는 42석의 의석을 갖고 어떻게 대응할지 주목된다. 신당 창당에 참여한 민주당 전국구 의원 7명과 한나라당 김홍신 의원,개혁국민정당의 김원웅·유시민 의원이 돕더라도 수적 열세는 극복하기 어렵다.게다가 이들 신당 세력이 과거처럼 정부를 무작정 옹호할 만한 ‘스타일’도 아니다.김근태 원내대표는 “우리는 법적으로는 야당”이라며 “신당의 정치일정은 주말로 미루고 주중에는 국감에만 전념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민주당이 한나라당과 공조(?)해 정부를 대놓고 공격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한나라당의 공격 소재가 노무현 대통령과 신당에만 국한돼 있지 않고 현대 비자금과 북한 핵문제 등 범여권 관련이 많기 때문이다. ●한나라당,권력형 비리에 초점 한나라당은 특히 양길승 전 청와대 부속실장의 향응 및 ‘몰카’ 사건을 비롯해 노 대통령 주변의 측근과 친인척 의혹에 초점을 맞추고 관련 증인 출석을 추진하고 있다.박진 대변인은 “정권의 비리의혹과 경제정책 실패를 조목조목 따지고 서민경제와 청년실업 대안을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 盧대통령 6개월 진단 / 노사대타협 경제동력 살려야

    ■경제·노동분야 이필상 고려대 교수(경영학) 경제가 심각한 불황국면에 처해 있다.소비심리는 실종되고 기업투자는 마비상태와 다름없다.여기에 청년실업은 늘고 가계부채는 쌓여 국민들의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니다.이런 상황에서 참여정부는 3가지 경제과제를 부여받았다. 우선 정부는 시장개혁을 과감하게 추진하여 비리구조를 청산하고 건전한 시장 질서를 구축해야 한다.또 신산업을 개발하고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경제의 새로운 동력을 창출해야 한다.무엇보다도 정부는 노사대타협을 이루어내 갈등과 분열을 극복하고 국민적 힘을 모아야 한다. 참여정부는 이러한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갖가지 정책을 내놓았다.그러나 현실적 대안의 부족으로 아직 가시적인 성과가 없다.오히려 추경편성과 금리인하 등 경기부양정책을 펴 투기만 확산시키고 위기를 방치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첫째,정부는 재벌개혁은 흥정의 대상이 아니라고 천명하고 증권집단소송제,상속증여세 완전포괄주의,총액출자제한강화 등의 개혁정책을 제시했다.효율적인 시장제도를정착시키기 위한 핵심적 시장 개혁정책이다.그러나 이러한 정책들은 불황이 날로 악화되자 기업의욕을 떨어뜨린다는 논리에 밀려 후퇴하고 있다. 둘째,정부는 동북아중심경제건설을 목표로 물류,금융,첨단산업의 발전 계획을 제시했다.이 계획은 미래 우리 경제의 생존수단을 찾는다는 차원에서 중요한 과제이다.그러나 문제는 논의만 많을 뿐 구체적 방안이 제시되지 않고 있다.오랜 산고 끝에 인천의 송도,영종,청라 지구를 경제특구로 지정하여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했다.그러나 규제,노사,조세 등에 있어서 기업하기 힘든 나라인 우리나라에 외국인 투자가 얼마나 들어올지 미지수이다. 한편 정부는 2008년까지 국민소득 2만달러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기술혁신,시장개혁,문화혁신,동북아 중심,지방화 등 5대 과제를 추진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그러나 이 역시 논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 셋째,정부는 노사간 힘의 불균형을 시정하여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노동 정책은 갈등의 연속이다.두산중공업 사태에서 무노동 무임금원칙이 무너졌다.철도청의 민영화는 노조의 반발로 무산되었다. 또 화물연대의 (1차)파업사태도 정부의 양보로 타결되었다.이렇게 되자 재계는 투자를 못하고 해외로 나갈 수밖에 없다는 극한적 반발에 나섰다.현대자동차의 노사 협상이 노조의 주장을 대폭 수용하는 선에서 이루어지자 재계는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는 배수진을 치고 주5일 근무제의 정부안을 수용하는 등 적극적 대응에 나섰다.이 가운데 화물연대는 다시 파업에 돌입하여 곳곳에서 물류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앞으로 우리 경제는 어디로 갈 것인가? 현재 우리 경제는 개혁과 변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혼란과 갈등이 극심한 상태이다.여기서 정부가 중심을 잡고 노사대타협을 이루어낸 후 개혁과 동력 회복이라는 양면작전을 효과적으로 펴야 우리 경제는 새로운 희망과 질서를 찾을 수 있다. 그리고 기업들은 기술개발과 투자의 활력을 되찾고 경제영토인 시장 확대를 위해 세계무대로 나선다.그러나 정부가 기본 기조를 잃고 우왕좌왕할 경우 우리 경제는 난파선위에서 편을갈라 싸움을 벌이는 결과를 초래한다.그리하여 경제를 구조불능의 침몰상태로 몰고간다. 출범 6개월을 맞은 참여정부에 경제현실을 직시하고 올바른 정책을 펴는 강력한 의지와 소신을 촉구한다. ■언론정책분야 김민환 한국언론학회 회장(고려대 교수) 일부신문 여론 과점 집중견제 갈등 공영방송 소유구조등 재정비 시급 새 정부가 들어서면 언론은 최소한 몇 달 동안 정부를 흔들지 않는 것이 선진국의 관행이다.우리나라에서도 이 관행이 점차 뿌리를 내리는가 싶었는데,노무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정부와 신문은 정권출범 초기부터 적대의식을 숨기지 않은 채 대립하고 있다. 우리 신문은 대체로 가족소유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그런데다 몇 개의 신문이 여론형성과정을 지배하고 있다.이들 신문은 전통적으로 보수성향을 바탕으로 개혁세력에 대해 비우호적인 태도를 보여 왔다.주요 신문이 이런 정파성을 지양하지 않는다면,그리고 정부가 언론의 소유구조나 시장구조를 바꾸어 언론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쳐 놔야 한다는 의지를 포기하지 않는다면,정부와 언론의 갈등은 앞으로 더 심화될 개연성이 있다. 노무현 정부의 언론 관련 행적을 살펴보면 몇 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첫째,이른바 조·중·동이 여론형성 과정을 과점하는 시장구조를 방치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곳곳에서 드러난다.대통령이 동아일보나 조선일보가 아니라 한겨레신문을 방문한 것이나,첫 인터뷰를 인터넷 신문과 한 것에서 이런 의지를 읽을 수 있다.청와대의 기자실을 폐쇄하고 브리핑제를 도입한 데에도 주류 신문을 견제하려는 전술적 의도가 숨어있다고 볼 수 있다.오보를 내는 신문에 대한 제소도 주류 신문에 집중되고 있다. 최근 들어 노무현 정부는 일부 신문의 과점 상태를 시정하려는 의지를 반영한 두 가지 조치를 취했다.그 하나가 공동배달제의 검토이다.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은 마이너신문이 판매망의 취약성을 극복할 수 있도록 공동배달제 시행에 관한 연구를 지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다른 하나는 신문고시의 개정이다.정부는 이 고시를 개정해 거대신문이 자전거 등 고가의 경품을 내걸고 독자를 유인하는 불공정행위에 대해 정부기구가 직접 단속할 수 있게 했다. 둘째,신문의 소유구조 개혁에 관하여는 아직까지는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이 문제는 법 개정이 따라야 하기 때문에 여소야대 상황에서는 접어둘 가능성이 크다. 셋째,방송에 관한 개혁정책 역시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고 있다.공영방송의 소유구조나 방송 3사의 과점 문제도 쟁점이 되기에 충분하다.통신과 방송의 융합에 관한 정책을 재정비하는 것도 시급하다. 넷째,언론에 관한 담론이나 정책이 주무부서인 문화관광부가 배제된 채 주로 대통령이나 청와대 주변에서 제기되고 있다.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초에 국제문제나 경제문제 등 큰 문제에 집착하고 작은 일은 내각에 맡기겠다고 밝힌 바 있다.언론에 관한 한 주무부서가 제자리를 찾게 해야 한다. 다섯째,언론 문제에 관한 대통령의 발언이 표현 방식이나 용어 등에 있어 적절한 것인가에 대한 논란이 빈번히 일고 있다.최근에 청와대는 일부 신문이 정부에 대해 막말 수준의 비판을 하고 있다고 불평한 바 있지만 언론계에서는 대통령이 언론에 대해 부적절한 어법을 구사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와 언론은 “건전한 긴장관계”를 벗어난 지 오래다.이런 갈등으로 언론도 신뢰도에 심대한 타격을 입었지만 정부 역시 얻은 게 없다.정부는 언론개혁을 위해 정부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원점에서 다시 생각하여 미래지향적인 정책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정부개혁분야 오석홍 서울대 명예교수(행정학) 정부개혁에 관한 노무현 대통령 정부의 방향 설정과 기초 작업은 건강해 보인다.개혁의 기조는 현시대의 세계화된 개혁원리에 충실한 것이다.개혁의 청사진은 행정개혁학 원론처럼 평이하고 친근하다. 노무현 정부 출범기의 정부개혁 또는 그 계획을 긍적적으로 평가하게 하는 여러 징상(徵狀)들이 있다.참여와 대화의 강조는 소비자시대·국민중심주의 시대의 요청에 부응한다.탈권위주의적 변화는 이미 체감되는 성과이다. 공직자들을 개혁세력화하려는 노력도 돋보인다.지방화의 결의도 주목할 만하다.인사행정의 투명화,그리고 지역주의 타파에도 희망이 보인다.공직임용에서의 여성차별·이공계 차별을 없애려는 정책 역점도 한층 강해 보인다.공직에 비혜택 집단을 대표시키려는 의지가 분명하다. 반부패시책의 효력도 앞으로 현저히 커질 것 같은 조짐이 보인다.어둠 속에서의 ‘짜고 해먹기’는 예전 같지 않을 것이다. 노무현 정부가 하지 않은 것들의 가치를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된다.집권 초기에 으레 해오던 공무원 숙청과 기구 개편을 하지 않았다. 민심을 얻고 개혁하는 것 같이 보일 수 있는 아주 뚜렷한 호재를 버린 용기는 대단한 것이다.장관을 자주 바꾸지 않기로 한 방침도 같은 줄거리의 이야기이다. 민심수습·국면전환·희생양 지목·감투배분 등을 위해 요긴하게 쓸 수 있는 장관경질은 통치지도자에게 너무 큰 유혹이다.이를 뿌리친 것은 높이 평가해야 한다. 노무현 정부는 개혁정책을 뒷받침해 줄 중요한 자산들을 가지고 있다.기성제도들의 피로 또는 파탄,신세대·비혜택계층의 조직화,세계화된 개혁물결 등을 그 예로 들 수 있다.정치적 흠결이 적은 사람들이 정부를 주도하는 것도 큰 자산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앞으로 갈 길이 수월한 것은 물론 아니다.신질서의 추진은 다수에 대한 소수의 싸움이다.거대한 저항이 기다리고 있다. 논리가 아니라 감정 때문에 저항하는 감정적 저항자들과의 화해는 아주 어려울 것이다.말과 생각이 다른 문화지체자들과의 논쟁도 힘들 것이다.변동이 몰고 올 미지의 세계에 대한 불안 때문에 떠는 많은 인구를 달래는 것도 난제이다. 개혁추진세력은 개혁을 향한 강한 신념과 의지 그리고 탁월한 창의력을 가지고 의표를 찌르는 모험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무릇 모든 인간사에서 처럼 개혁에도 숙성기간이 필요하다.졸속이나 건너뛰기는 금물이다.개혁을 하려면 기성 질서를 해체하는 혼돈의 단계를 피할 수 없다. 혼돈이 없으면 개혁은 기회를 얻지 못한다.개혁의 전주(前奏)인 혼돈은 완전한 무질서가 아니라 질서 있는 무질서이다.무질서의 측면밖에 못 보는 많은 사람들의 불평에 대응하는 방책이 있어야 한다. 무엇을 개혁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도대체 예전 같지가 않다,총체적 위기다 등등의 불만을 늘어놓는 사람들을 위무하는 방책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숙성기간을 거쳐 급진적 개혁을 성공시키려면 개혁추진자들은 상당기간 ‘관리된 혼돈’을 이끌어가야 할 것이다.그에 이어 개혁실현 그리고 개혁정착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거기까지 가면 대체로 임기 말이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 오피니언 중계석/‘왜 청소년 참여인가’ 세미나

    협상적(協商的) 민주주의가 있고,성찰적(省察的) 민주주의가 있다고 한다.이해 당사자들이 모여 각각 목소리를 높일 때 협상으로 정리하는 것이 협상적 민주주의라면,사회 구성원들이 전체의 공동선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토론하는 과정속에서 공통분모를 찾아가는 것이 성찰적 민주주의라는 것이다.한국청소년단체협의회가 ‘왜,청소년 참여인가?’를 주제로 30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컨벤션센터에서 청소년 정책 연구 세미나를 연다.기조강연에 나설 박세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청소년의 참여가 성공하려면 질서와 전통을 존중하는 평화적 과정이어야 하며,자신들의 주장과 사회전체의 공동선을 조화시키려는 성찰적 내용이어야 한다.”고 말한다.박 교수의 충고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면,김형주 청소년단체협의회 연구위원은 청소년뿐 아니라 정책 당국에 할 말이 많다.‘청소년의 참여의 정당성과 필요성’이라는 김 연구위원의 주제발표 내용을 요약한다. 참여정부의 주요 정책들은 지난 연말 대통령 선거를 통해 분출된 새로운 사회로의 요구들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청소년관(觀)이나 청소년정책에서 특히 두드러진다고 해야 할 것이다.청소년정책은 유감스럽게도 참여정부의 주요 국정과제에 포함되어 있지 않고 분산되어 있는 청소년 부서들의 눈치보기 속에서 실종되고 있거나 청소년 정책 또한 증보판으로 부분 보완되거나 그것도 밀실에서 급조되고 있는 형편이다. 이 땅의 청소년의 인권과 복지의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청소년 참여’라는 세계적 추세이자 시대정신을 반영하지 않는 지나간 청소년 정책의 증보판은 더 이상 청소년의 권익 증진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또 한번의 실패한 정책으로 귀착될 수밖에 없다. ‘연령차별’이란 용어는 서구에서는 1969년에 처음 사용된 이래 청소년들의 직무나 경험에 대한 토론에서 자주 등장하였다. 청소년들은 ‘전(前)정치적’ 존재로 이해되며 너무도 자연스럽게 서구에서는 18세 이하,우리 나라에서는 20세 이하의 청소년 참정권을 박탈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어떠한 정당도 청소년정책에 관심을 갖거나 청소년의 이해를 대변하려 하지 않게 만드는 꼴이 된다.청소년들이 직무환경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게 한다.청소년 차별은 작업장에서의 불이익을 주며 이는 청년실업의 장기화가 잘 말해준다. 연령차별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집단 행동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청소년들은 스스로를 정치적으로 조직할 필요가 있다. 가령 필요하다면 20세 이하의 납세자들이 연대하여 참정권을 주지 않으면 납세하지 않을 것을 결의할 필요도 있다.의무는 있으되 권리는 없는 ‘불법적 국가’에 대한 시민의 불복종은 이 시대의 정신이요 진보이기도 한 것이다.청소년을 우리 사회의 구성원의 일부로 볼 때에만 청소년 정책은 실효성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청소년 지도자들은 정부와 정치권에 청소년의 권익증진에 대해 보다 많은 관심을 가져줄 것을 요청하고 새로운 시대정신에 맞게 청소년 참여를 진작하는 청소년정책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청소년들에게 자신의 권리를 증진할 수 있는 인권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제공하는 일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아울러 노무현 대통령의 청소년 분야 공약사업이 실현되도록 주목하고 감시하는 일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이다.이 기회에 분산되어 있는 청소년 업무가 집중될 수 있도록 유도하여야 할 것이며,공약사업 중에 특히 ‘대통령 청소년 특별회의’를 실현시켜 청소년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증폭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청소년들도 스스로의 권익을 증대하기 위해 연대해 나가야 한다.청년실업 문제나 ‘선거연령 18세 인하’문제뿐 아니라 대중매체의 연령차별에 대한 감시활동과 지방자치단체에 ‘청소년의회’를 설치하여 청소년 참여의 기회를 증대해 줄 것을 요구하는 활동도 필요하다.무엇보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에 있어 청소년 관련 예산이 늘어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홍보하는 사업도 결국 청소년들의 몫이다. 정리 서동철기자 dcsuh@
  • 6·13 지방선거 ‘시민후보’ 340명 당선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는 녹색자치,주민자치의 기치 아래 시민·환경·농민단체 등이 내세운 시민후보 340명이 기초·광역의원에 진출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소중한 씨앗을 뿌리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시민후보들은 이번 선거 과정에서 위험수위를 넘은 후진적 정치문화의 폐해도 뼈저리게 실감했다는 분석이다.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느꼈다는 것이다. 자치와 분권,환경과 농업 등 다양하고 전문화된 시민후보들이 지방선거 사상 가장 많이 당선돼 생활정치와 지방자치를 실현할 교두보를 마련한 것은 큰 성과로 평가된다.반면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냉소주의와 불신을 극복하지 못한 것은 한계였다. ●성과= 환경운동연합 등 환경단체가 내세운 ‘녹색후보’를 비롯,YMCA,전국지방자치개혁연대,한국청년연합회,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등이 내세운 후보들이 기초의회에 대거 진출했다. 환경운동연합은 회원 및 지역 환경운동가 50명을 ‘녹색후보’로 추천,적극적인 당선운동을 벌여 모두 15명의 기초의원을 배출했다.이들은 지역의 난개발을 막고 지속가능한 생태환경을 위한 의정활동을 펼쳐 녹색정치의 모범을 만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고양지역 시민·환경단체로 구성된 고양자치연대는 “러브호텔과 유흥업소로 망가진 고양시를 ‘녹색도시’로 만들겠다.”며 16명의 녹색후보를 내세워 기초의원 8명을 당선시켰다.고양시의회의 정원이 35명인 것을 감안하면 눈부신 성공이다. 녹색소비 실천을 목표로 YMCA가 운영하는 ‘녹색가게’도 운영위원 3명을 내세워 백해영(서울 구로4동 구의원)씨와 이현주(서울 양천구 목6동 구의원)씨 등 2명을 당선시켰다. 풀뿌리 지방자치를 통해 정치혁명을 이뤄내겠다며 목소리를 높였던 전국지방자치개혁연대는 162명의 후보를 내 기초단체장 1명과 기초의원 39명을 당선시켰다.특히 대구광역시의 이재용 후보와 광주광역시의 정동년 후보는 거대 정당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나주시장으로 당선된 신정훈(38)씨는 최초의 농민시장으로 기록되게 됐다. 32명의 청년후보를 내세운 한국청년연합회(KYC)도 기초의원 7명을 보유하게 됐다.농어민후계자들로 구성된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는 광역의원 15명,기초의원 253명을 지방의회에 진출시켰다. 한국청년연합회 천준호 사무처장은 “다양한 시민후보들은 진보적 시민세력과 네크워크를 형성해 진정한 지방자치를 실현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계 및 과제= 시민후보들은 기초의회에서는 의미있는 성과를 거뒀지만 단체장 당선은 극히 저조해 기성 정치의 높은 벽을 실감케 했다.또 개혁을 바라는 젊은 유권자들을 투표장으로 끌어들이는 데도 실패했다.따라서 정치적 희망과 감동을 찾지 못한 채 정치혐오증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젊은층에게 새로운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유권자 10만인 위원회’를 구성해 유권자운동을 펼친 서울YMCA 심상용 시민사업팀장은 “이번 선거를 통해 우리나라의 후진적 정치문화가 전면으로 드러났다.”고 진단했다.지방선거가 대선의 전초전으로 성격이 규정되면서 지방의제가 실종됐으며,지역할거주의에 호소하는 당리당략이 지배했고,유례없는 비방전과 불법선거가 기승을 부렸다는 것이다. 시민운동세력이 지방자치를 올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이같은 중앙정치의 폐해와 후진성이 지방으로 확산되는 것을 차단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경실련 고계현 정책실장은 “자치단체장의 20%가 구속되는 현재의 후진적 정치행태를 차단하기 위해서는 주민들이 투표 이후에도 단체장을 견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면서 “주민소환제,주민소송제,주민청구 지방의회 해산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
  • [사설] 세사람이 남긴 시대의 아픔

    세 사람의 죽음이 우리 시대의 아픔을 다시 일깨워 주었다. 그리고 우리가 풀어 나가야 할 무거운 과제를 던져 주었다. 일본 군대 위안부로 끌려 갔다가 이국 땅에서 한 많은 삶을마감한 ‘훈 할머니’ 그리고 미국 유학 중 유럽 여행을 갔다가 납북된 한 청년의 사망 소식에 이어 엄혹했던 군사독재시절 실종된 한 노동 운동가가 10년 만에 유골로 신원이 밝혀진 사실 등이 바로 아픔의 사연이다. 18살에 위안부로 끌려가 캄보디아에서 파란만장한 일생을보낸 훈 할머니의 한 서린 삶에도 불구하고 일본 대사관 앞에서는 ‘정신대 시위’가 9년째 계속되고 있다.일본에는 아직도 일제의 침략 전쟁을 부인하고 일본군 위안부 기술을 삭제하는 등의 역사를 왜곡한 교과서가 제작되고 있다.한·일양국의 과거사는 몇푼의 보상이 아니라 진정으로 일본이 역사 앞에 참회할 때 해결의 길이 열리는 것이다.14년 전 납북됐던 이재환씨는 가족들의 송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산가족의 생사 확인 과정에서 사망 사실이 확인됐다.그 부모들의오열은 바로 이 시대 분단의 아픔이자 이데올로기 대결의 비극이기도 하다.다시는 이같은 아픔을 우리 후손들에게 유산으로 남겨서는 안된다.남북 화해협력정책을 추구하는 것도분단의 아픔을 우리 세대에서 끝내게 하기 위해서다. 지난 1992년 8월 실종된 노동 운동가 박태순씨는 실종된 것이 아니고 열차에 치어 사망한 행려병자로 처리돼 벽제묘지무연고 묘역에 묻혔다가 1998년에 화장된 사실이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 의해 밝혀졌다.특히 이 사건은 사망 당시 지문채취 과정에서 관계기관이 박씨임을 확인하고도 ‘신원불상자’로 처리한 과정이 매우 불투명하다.의혹 투성이인 그의죽음에 대해서는 역사의 진실 규명 차원에서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세 사람이 남긴 이 시대의 아픔은 바로 비극적인 우리 현대사의 단면을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다.다시는 이같은 굴곡된역사의 희생자가 없도록 하기 위해서는 한·일 과거사 정리,남북 화해의 실현,민주·인권국가 건설 등의 과제를 하루빨리 완수해야 할 것이다.
  • 지역감정 난무…정책대결 실종

    일부 정당이 총선 득표율을 높이는 방법으로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등 초반선거전이 혼탁해지는 가운데 여야가 당초 공약한 정책대결이 실종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새천년의 첫 총선이라는 역사적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각 당이 정책선거를도외시함으로써 총선시민연대의 강력한 반발 등 유권자들의 저항에 부딪히는것은 물론 심각한 총선 후유증도 예상된다. 민주당은 지역감정 문제는 아예 거론치 않기로 하고 정책대결로 승부한다는입장이나 야당이 적극 호응할 가능성이 적어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민주당의 고위당직자는 6일 “정책선거가 외로운 길이라 하더라도 결국 국민들이 현명한 판단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그러나 민주당의 잇따른 정책발표에 선심성 공약이란 지적도 있다. 한나라당은 애초 이번 선거를 정책대결로 몰고 가겠다는 의지를 보였으나시간이 흐를수록 흐지부지되고 있다.이날 발표한 관치경제·금융타파,교육혁명 등의 공약도 큰 방향만 제시했을 뿐 구체적인 알맹이가 없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문제해결보다는 ‘비판을위한 비판’이라는 것이다. 자민련은 거의 매일 1건씩의 정책공약을 내놓고 있지만,야당 변신을 선언한입장에서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거나 해당 정부부처에서 발표한 내용을 재탕·삼탕하는 수준에 그쳐 총선용으로 급조한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민국당은 영남지역 지역감정을 유발,득표력을 높이는 쪽으로 내부 총선전략을 마련한 것으로 보여 본격적 정책대결은 기대하기 어려운 분위기다. 특히 국가보안법 등 일부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이념과 노선이 제각각인지도부의 입장 차이로 ‘통일된 목소리가 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총선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각 정당이 지역주의 총선 전략을 노골화하고 있다고 판단,지역감정을 추방하고 정책대결을 유도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총선연대는 이날 서울 명동성당에서 ‘정치개혁 국민광장’ 농성을 해제하면서 기자회견을 갖고 ‘지역감정 추방을 위한 특별 결의문’을 통해 “지역감정 조장 후보에 대해 낙선운동은 물론 당선된 뒤에도 당선 무효소송과 국민소환운동을 전개해 끝까지 응징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지역감정 선동 발언자 신고센터를 마련하고 지역주의자를 낙선대상자 명단에 추가하기로 했다.총선연대 대표단의 권역별 버스 투어와 정책자문교수단의 권역별 토론회도 갖고 지역감정 추방을 위한 지역별 조직도 구성하기로 했다. 아울러 낙선운동에 국민이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청년·여성·종교 등 각계 각층의 유권자 행동 서약운동 및 표결집 운동을 펴기로 했다. 한종태 장택동 이랑기자 jthan@
  • ‘행복의 나라’ 한대수(금지문화 금지인생 이제야 말한다:5)

    ◎“물좀 주소 물좀 주소 목마르오/시대의 갈증 노래했는데…”/68년부터 명동·대학가 활동/통기타·청바지 문화 선도/2집 앨범 “체제전복” 낙인찍혀/75년 渡美… 음악활동 계속/지난달 일시 귀국 에세이 출간/“개인무대 갖는게 작은 소망” 1975년 한 해를 마감하는 분위기가 무르익어갈 무렵인 12월 어느날 김포공항 대합실.긴 머리에 청바지 차림의 한 청년이 초췌한 모습으로 뉴욕행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고 있었다.한국 가요계에 파문을 일으키며 청년문화를 주도하던 가수 韓大洙(50)였다.미국 유학후 숨가쁘게 살았던 한국에서의 생활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쳐지나갔다.자신의 음악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 땅의 분위기가 한스럽기만 했다.채 피어나기도 전에 꺾여진 꽃처럼 자신의 음악을 가슴에 묻은 채 한대수는 그렇게 훌쩍 한국을 떠났던 것이다. 짧은 활동기간에 비해 뚜렷한 인상을 남긴 이색적인 경력의 싱어 송라이터.통기타와 자유의 청년문화를 생겨나게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당시 트로트와 사랑타령 일색이던 대중가요를 뿌리째 뒤흔들며 젊은이들의 우상이 됐던 가수 韓大洙.그는 왜 한국을 떠나야만 했을까. 어린시절부터 남달리 굴곡이 많은 개인적인 삶을 살았던 그였다.핵 물리학자인 아버지의 실종으로 7살때부터 줄곧 조부모와 함께 살았다.10살때 미국으로 이주해 3년간 미국생활을 한뒤 돌아와 한국에서 중학교를 마쳤다.17세때 미국에 사는 아버지의 소재가 확인돼 다시 미국으로 옮겨 고교를 다녔지만 적응하지 못한채 방황의 10대를 보냈다.韓씨의 재능은 이때 발견된다.상담교사의 도움으로 시와 노래를 쓰기 시작했다.나중에 국내에서 히트했던 ‘행복의 나라’‘그날까지’‘옥의 슬픔’같은 노래들이 모두 이때 쓴 것이다.고교졸업후 뉴햄프셔 대학 축산과에 진학했으나 적성이 맞지않아 중퇴,뉴욕 사진학교를 다녔다. 그리고 귀국한 게 1968년 초.이때 한국의 가요사는 다시 쓰이게 된다.당시 국내 가요계는 트로트가 지배하던 시기.국내에선 처음으로 싱어 송라이터로 데뷔한뒤 발로뛰는 음악인의 생활로 접어든다.서울 무교동의 ‘세시봉’과 명동의 ‘오비스캐빈’에서 청바지,가죽장화 차림에 통기타 하나들고 포크록을 소개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이듬해인 69년 이렇다할 공연무대에 서기엔 아직 무명가수였던만큼 대학가를 돌기 시작했다. 총학생회장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공연을 의뢰해 축제기간중 이화여대와 서울대,서강대,부산대 강당공연을 통해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이때 언더그라운드 가수로 인상지워지게 됐다.그리고 그해 겨울 그 유명한 서울 남산 드라마센터 공연.그때만해도 드라마센터는 고상한 장르의 유명인들에게만 공연이 허용되던 곳.무명의 대중가수가 무대에 오른 것 자체가 화제거리였다.평소 韓씨의 음악에 매료된 팬들이 어렵게 마련한 데뷔 콘서트였다. 벼르고 별렀던 무대였던 만큼 혼신을 다한 공연이었다.이틀 공연 모두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대성공이었다. 74년 군에서 제대하고 나니 유명해져 있었다.자신이 곡을 쓰고 金敏基가 부른 ‘바람과 나’,楊姬銀이 부른 ‘행복의 나라’가 인기곡으로 불려지고 있었다.신세계레코드사에서 앨범제작 의뢰가 들어왔다.그래서 만든 첫 앨범이 ‘멀고 먼 길’이다.너무나도 반가운 제의라 하루만에 녹음을 모두 마쳤다.‘물좀 주소’‘행복의 나라’‘바람과 나’등 수록곡들이 대학가를 중심으로 들불처럼 번져갔다.그리고 1년도 채 안돼 시련이 닥쳐왔던 것이다. 75년 가을 두번째 앨범을 만들었다.코리아헤럴드 기자로 재직중일 때였다. 기자로 일하면서 오후엔 남모르게 레코드 취입을 하느라 코피를 쏟기가 일쑤였다.마침내 레코드가 나왔다.이제 자신의 음악을 인정받는 뿌듯함에 마냥 들떠 있었다.기쁨은 채 2주가 못돼 좌절로 바뀌었다.당시 문공부에서 레코드 수거령이 떨어졌다.체제전복적 음악이란 낙인이 찍혔다.첫 앨범 ‘멀고 먼 길’도 함께 묶였다. “‘물좀 주소’등 히트곡들이 대학생들 사이에 번져가면서 정치·사회상 황에 맞물려 당국의 곱지않은 시선을 받았던게 사실입니다.당국이 ‘물좀 주소’에선 물고문을 연상했던 것 같아요.두번째 앨범은 표지가 문제였지요.녹슬은 철조망에 고무신이 걸려있는 모습인데 한국적 정서와 민중을 상징한 것이지요.죄수(철조망)가 흰 고무신을 신으니 박해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었지요” 동양방송과 기독교방송 음악프로 출연도 막혔다.어쩔 수 없이 명륜동 자취방에서 직접 노래하고 녹음한 테이프를 만들어 매장에 내다 팔았다.테이프는 열악한 음질에도 불구하고 불티나게 팔려나갔다.이 테이프는 첫 앨범 취입 전부터 하나 둘씩 만들었던 것으로 이렇게 만든 테이프만도 100여개가 넘는다.하지만 그것도 잠시뿐.감시망이 좁혀지면서 테이프 제작도 할 수 없게 됐고 더이상 설 땅이 없어졌다.마침내 미국행을 결심했다. 이후 줄곧 뉴욕에서 살면서 시·사진·음악활동을 계속했다.89년 ‘무한대’,90년 ‘기억상실’,91년 ‘천사들의 담화’ 등 레코드도 세 집을 냈다.종전의 분위기와는 달리 자신의 삶을 담은 노래들이다.지난해 가을엔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록그룹 10개가 참가한 록페스티벌에도 참가했다.80년 일시 귀국해 남산 드라마센터에서 약식 공연을 가진지 17년만의 무대였다.그리고 지난달 잠시 귀국해 자전적 에세이집을 냈다.자신의 모든 것을 담은 기록이다. 75년을 결코 잊을 수가 없다는 韓씨는 이렇게말한다.“그 시대 정책 자체에 반감을 가진 적은 없습니다.어느 나라나 국가정책과 예술가들의 자유로운 정신은 엇갈리기 쉽지요.당시 정부의 목적의식을 흐리는 활동이 제재받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지요.문화예술인들이 심한 갈증을 느끼는건 당연했구요. 오랫동안 나를 못봐온 팬들을 위해 개인무대를 갖고 싶습니다” ◎사연들/장막을 걷어라 너의 좁은 눈으로 이세상을 더 보자/철조망 유신압제 상징 이유/‘고무신’·‘첫 앨범 잇따라 판금/‘행복의나라’ 희망 메시지 가득한데 68년 귀국후 세시봉과 오비스캐빈에서 시작된 韓大洙의 국내 음악활동은 불과 7년만에 종지부를 찍게 된다. 귀국전 미국 생활에서 반문화운동(카운터 컬쳐 무브먼트) 경향의 포크록에 심취했던 만큼 국내에서의 활동도 자연스럽게 자유와 젊음으로 대변되는 이 음악으로 시작됐다.미국 고교시절 답답한 생활을 노래에 담은 노래들이 70년대 사회 분위기와 맞물려 금지곡이 된 것은 우연의 일치다.대학가를 돌면서 언더그라운드 가수로 인상지워지고 금지문화의 한 주역이 된 것도 사실상 노래말의 상징성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물좀주소’와 ‘행복의 나라로’는 그의 대표적인 노래.“물좀 주소 물 좀 주소/목마르요 물좀 주소/물은 사랑이요 나의 목을 간질며/놀리면서 밖에 보내네/아 가겠소 난 가겠소/저 언덕위로 넘어 가겠소/여행도중에 그 님 만나 본다면/난 살겠소 같이 살겠소”(물좀 주소).“장막을 걷어라/나의 좁은 눈으로 이세상을 더 보자/창문을 열어라/춤추는 산들바람을 한번 또 느껴보자/가벼운 풀밭 위로/나를 걷게 해주세/봄과 새들의 소리/듣고싶고 울고 웃고 싶소/내마음을 만져줘/나는 행복의 나라로 갈 테야”(행복의 나라로) 유신정권의 압제 아래서 자연스럽게 현실 비유적인 내용으로 인식될 수 있었고 대학가에선 더욱 인기가 좋았다.물은 갈증을 해결하는 그 무엇이며 행복의 나라는 답답한 상황으로부터의 탈출과 희망의 의지가 역력한 상징임에 틀림없다.특히 金敏基 楊姬銀 등 사회성짙은 노래를 주로 불렀던 이들에 의해 불려지면서 자연스럽게 화살이겨냥됐고 마침내 철조망과 흰 고무신을 표지 사진으로 쓴 ‘고무신’ 앨범으로 피할 수 없는 족쇄가 채워진 것이다.‘자유의 길’‘병든 고아’‘술 취한 여자’‘물좀 주소’ 등 노래마다 일일이 검열을 당했고 레코딩까지 허락됐던 앨범 몰수는 韓씨를 떠나게 만들고야 말았다. ◎그의 길 ▲48년 부산출생. ▲64년 부산 경남고교 입학. ▲65년 미국 롱아일랜드 고교로 전학. ▲66년 뉴햄프셔 대학 수의학과 입학. ▲67년 뉴욕 사진학교에서 사진 전공. ▲68년 귀국.작사·작곡가·가수로 데뷔. ▲69년 드라마센터 공연. ▲70년 군입대. ▲74년 첫 앨범 ‘멀고 먼 길’ 발표. ▲75년 두번째 앨범 ‘고무신’ 발표,금지.미국으로 돌아감. ▲89년 ‘무한대’ 발표. ▲90년 ‘기억상실’ 발표. ▲91년 ‘천사들의 담화’ 발표. ▲98년 현재 뉴욕에서 사진작가및 창작활동중.자전적 에세이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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