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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화와 한민족/노희상 다물민족연구소 이사(굄돌)

    만주 심양에서 기차로 아홉시간을 동쪽으로 달리면 통화에 도착한다.지금은 활발한 철강도시이자 포도주가 일품인 통화는 수량이 풍부한 혼강이 도시 한가운데를 관류하고 있는 기름진 땅,거대한 분지이다. 「삼국사기」제13권 고구려본기 제1절 동명성왕편에 보면,통화는 우리 고대사에 나오는 비류국의 도읍지이다.서기전 37년에 주몽이 환인(졸본성)에 고구려를 세우고 세력을 확장하고자 강을 따라 올라가다 많은 양의 쌀뜨물과 푸성귀조각이 떠내려오는 것을 발견하고 이를 따라가 발견한 곳이 통화지역이었다.주몽이 타고 올라온 강이 흔강,그때 만난 왕이 비류국의 송양왕이다. 연로한 송양왕은 주몽과 궁술을 겨뤄 실력이 월등한 주몽에게 나라를 의탁한다.주몽은 그 땅을 접수하여 「잃어버린 땅을 되찾았다」하여 다물도라 명명하였다(BC35).이후부터 고구려는 옛땅을 찾는 일을 「다물」이라 하였으니 다물의 역사는 올해로 2천31년에 다다른다.따라서 통화는 고구려 건국정신인 「다물정신」이 최초로 구현된 역사적인 터전이다. 한편 일제의 침략이 본격화되던 1909년에 「신민회」소속 이동녕·이희영·장유순 등은 이곳 통화를 중심으로 만주 독립운동기지를 건설하였는데,통화북쪽 유하현 삼원보에 정착하여 한인 자치기관인 「경학사」를 만들었고,아울러 국내에서 몰려드는 청년들에게 구국이념과 항일정신을 고취시켜 조국광복의 중견간부로 양성하고자 신흥강습소를 두었다.그후 신흥무관학교로 이름을 바꿔 1913년부터 본격 활동을 개시,1920년 폐교시까지 3천5백명의 독립군을 양성,배출하여 청산리전투를 비롯,많은 항일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하였으니 통화는 한국독립군 양성의 메카이다.이때 활약한 분으로는 이세영·양규열·윤기섭·이장영·박두희·성준용·백종렬·오상세·원병상·지청천·이범석씨등이 있다. 이런 유서깊은 민족터전에 광복이후 기념비 하나 세우지 못하고 있어 후손으로서 부끄럽기 한량없다.
  • 조선족 이주 역사(송화강 5천리:2)

    ◎30년대 일제이민정책에 1만가구 정착/“주택·식량 제공” 감언이설에 속아 집단이주/「만척」서 안전촌 건립… 항일 세력과 연결 차단/부여국­고구려­발해 고대사 무대… 아직도 조선지명 남아 송화강의 큰 원류는 두 갈래가 있다.이도송화강인 이도백하 말고 두도송화강이 그 원류다.두도송화강은 이도송화강을 이도백하라 하는 것처럼 그냥 두도강이라고도 한다.그런데 두도강은 본래 두갈래 물줄기가 합수하여 강을 이루었다.두도강의 한 갈래는 만주어로 어허러인(액혁낙인)이고,다른 한 갈래는 역시 만주어로 사인러인(새인낙인)이라는 이름를 가지고 있다. 어허러인은 백두산 옥설봉에 쌓인 만년설의 눈이 녹아 험준한 바위산을 지나면서 시작되었다.그래서 낙차 57m나 되는 큰 폭포에서 작은 폭포에 이르기까지 폭포군을 이루었다.물이 급하게 흐를 수밖에 없다.일명 긴강이라는 이유가 여기 있다.이에 비해 사인러인은 완만하다는 뜻을 가졌거니와 강의 흐름도 온화했다.일명 만강이라 한 까닭을 이해할 수 있다. ○부여족 유적 대량 발굴 이들 두 물줄기는 화라자에서 합수했다.바로 두도강인 것이다.두도강은 2백30㎞를 달려서 길림성 화전시 백산진 양강구에서 이도백하를 만나 드디어 합류,장강다운 송화강 물길을 잡아나갔다.송화강유역은 비옥할 뿐 아니라 광활했다.이 풍요로운 땅에 세운 맨 처음의 읍락국가는 해모수를 우두머리로 한 부여국이었다.「자치통감」기록에 나오는 첫 도읍지 녹산지도는 그 어디인가. 오늘날 길림시에는 동단산성과 동단산 평지성,용담산성이 있다.근래 동단산 부근에서는 대량의 부여족의 문물(문화재)이 발굴되었다.금 은 동 철제유물과 도자기 옥석 칠기 등의 유물만 해도 8천여점에 이른다. 또 1978년 동단산 서쪽 서단산 무덤군 돌널무덤에서는 무덤주인공의 머리를 감싼 모직물이 나왔다.양털과 개털을 꼬아 실을 자아내고 이를 천으로 짠 것이다.간단한 직조기를 사용하여 짠 이 모직물은 부여족의 문화가 상당 수준임을 입증했다. 그런데 동단산 일대는 광개토대왕 시기에도 고구려 판도였다.오늘날 길림시내에 남아있는 고구려산성은 용담산성이다.용담산은 산 자체가함지박처럼 중간이 낮고,사방은 높은 산등성이에 둘러싸인 산세를 했다.성은 산세를 이용하여 황토와 자갈로 쌓았다.높낮이는 일정치 않았다.성 서북쪽에 있는 길이 53m,너비 26m에는 용담이라는 못이 있다.이 연못은 1만㎥의 물을 가둘 수 있는 인공 못이라는 것이 고고학자들의 견해다. 용담산성 망루자리에 올라서면 성 아래로 도도히 흘러가는 송화강과 강 양안에 우뚝우뚝 솟은 길림시의 고층건물들이 한 눈에 조망되었다.망루에 올라 문득 역사를 거슬러 뒷걸음질하고 있을때 피맺힌 비명이 들리는 착각에 사로잡혔다.서기 668년 2월 당나라 장군 설인귀의 공격을 받고 울부짖는 고구려군사들의 비명이….고구려는 용담산성에서 패하고 다시 군사 5만을 모아 공략에 나섰으나 실패했다는 것이다. 고구려 이후 한 때는 발해가 용담산성의 주인이 되었다.그러나 역사는 변화하는 것이어서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었다.그 역사의 체취가 배인 송화강유역으로 조선족들이 몰려들기 시작한 것은 압록강유역이나 두만강유역에 비해 훨씬 뒤의 일이다.1922년 「동북3성실황」은 이를 뒷받침했다.당시 두만강유역 화룡,연길,왕청 3개현의 조선족은 44만4천4백20명,송화강유역인 안도,돈화,길림,장춘은 4만5천6백명에 불과했던 것이다.그리고 흑룡강성에는 고작 6백61명의 조선족이 살고 있을 뿐이었다. 송화강유역의 조선족 이주민 유형은 세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두만강과 압류강 이주민들의 재이주,러시아 이주민들의 유입,일제 이민정책에 의한 집단이주 등이 그것이다.이 가운데 절대적인 비중은 일제 이민정책과 맞물린 한반도로 부터의 조선인 집단이주가 차지했다.일제는 중국 동북지방의 항일세력을 소멸하고 동북에다 중국내지와 동남아를 침략하기 위한 병참기지를 만들 목적으로 이민정책을 서둘러 폈다. ○동남아 침략 병참기지화 그들이 1936년 8월 입안한 이민정책에는 2년내에 일본인 1백만가구 5백만명을 이주시킨다는 계획이 포함되었다.이와함께 일본은 1만가구의 조선인 농민들을 동북지방 23개현으로 집단이주시키는 계획을 세우고 1937년 이를 실행에 옮겼다.일본 이주민들도 적지 않게 들어왔으나 큰 성과는거두지 못했다.그러나 한반도에 사는 조선의 가난한 농민들은 일망무제한 북지대륙으로 꾸역꾸역 몰려들었다.가기만 하면 집과 먹을 것을 주고 돈도 벌 수 있다는 조선총독부 속임수에 넘어간 사람들이다.그래서 조선농민들은 이주증을 받기가 무섭게 남부여대하고 고향을 등졌던 것이다. 그 당시 집단이주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더러 길림성에 살고있다.장춘시의 정병남(71)노인도 그런 이주민의 한 분이다.전남 함평군 학교면 학교리 태생인데,당시 사정을 소상히 설명했다. 『우리는 1937년 2월에 길림성 유하현에 도착했습니다.함평군 함평면,대동면,광주 송영리에서 각각 열다섯 가구씩 마흔다섯 가구가 집단이주를 한 것이지요.눈보라가 치는 한겨울에 다시차란 데에 떨어지니 집은 커녕 먹을 식량도 없었어요.언땅에 막을 칠 수밖에….만주척식회사(만척)에서 뜬 수수와 좁쌀을 주어 그나마 배불리 먹었습니다.그냥 준 것이 아니라 변리곡이었지요.일년 내내 뼈 빠지게 일해서 가을에 갚고나면 식량이 없어요.또 만척에서 변리곡을 다시 먹어야 했습니다.빚은해마다 늘고….광복이 나지 않았더라면 일생을 노예로 살았을 겁니다』 유하현 삼원포는 조선독립운동 진원지의 하나였다.1911년에 경학사가 서고 나서 신흥무관학교,1919년에는 대한독립단이 조직되었다.그런데 일제의 수탈기관 만척은 이 일대 땅을 헐값에 사들여 안전촌을 만들었다.경찰을 주둔시키고 무장자위단을 조직했다.마을마다 소총 열자루와 권총 한자루씩을 내주었다.그리고 양민증이 없으면 마을을 드나들지 못했다.항일세력들과 연결고리를 끊기 위해서였다. ○양민증 없이 출입못해 집단이주민 무장화 과정에 나타난 유명한 무장자위단은 1944년에 조직한 풍향의용개척단이다.조선에서 보통학교 고등과를 나온 청년 90명을 모집,유하현 대통구촌 신가가에 이주시켰다.이들은 군복을 입고 무기를 휴대한 군사·농업조직이었다.단장을 비롯,군사교관·청치교원 등의 간부는 모두 일본인이 맡았다.조선인 단원 20명은 뒷날 관동군에 편입되었다.일인 간부와 조선인 단원들은 휴가로 고향에 돌아갔다가 식솔들까지 데려와 살았다. 오늘날 송화강유역에는집단이주민마을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조선족이 있든 없든 간에 한반도 군명에서 따다 만든 마을 이름들이 그대로 전해 내려왔다.유하현에서는 아직도 창성,벽동,가평이라는 이름이 보였다.또 안도현에는 금화,원주,고성,장수,정읍,김제,익산마을이 있다.이밖에 두군의 이름을 딴 청흥(북청·신흥),안산(진안·익산)이 있는가 하면 조선의 양양이라 한 조양마을이 존재했다.이들 마을 이름에서 집단 이주민들의 진한 노스탤지어를 읽었다.
  • 성향·노선·이념(한총련의 실체:3)

    ◎북의 대남적화 혁명노선 그대로 답습/친북 「범청학련」 하급조직… NL계가 장악/현정권 왜곡·매도… 정권타도 투쟁에 비중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은 94년 4월 대의원대회에서 「한총련은 범청학련의 남측본부이며 범청학련은 한총련의 상급조직」이라고 발표했다. 한총련이 친북 통일조직 「범민련」산하 청년학생 조직체인 「범민족청년학생연합」(범청학련)의 남측본부로서 범청학련의 강령과 노선을 따른다는 선언이었다.한총련의 성격을 극명히 보여준다.범청학련 남측본부는 국가보안법에 따라 이적단체로 규정됐다.대법원은 지난 93년 9월28일 이 단체를 반국가단체인 북한의 지령을 받아 북한을 찬양·고무·선동하거나 동조하는 「이적단체」라고 최종 판결했었다. 한총련의 활동이 북한의 대남적화 혁명전략인 민주해방 인민민주주의의 혁명노선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실제 한총련의 핵심 간부들은 친북 통일투쟁을 지지하는 주사파(주사파),즉 NL계(민족해방)가 장악하고 있다. 한총련 의장 정명기군을 비롯,핵심 산하 조직인 조국통일위원회와 학원자주화추진위원회,9개 지역 총련의장 등이 모두 NL계다. 올해 전국 1백68개 대학 총학생회장 선거에서 NL계가 56%에 이르는 94개 대학에서 주도권을 쥐었다. 한총련은 표면적으로는 새로운 지도이념으로 민족자주·민주대단결 사상을 내세우고 있다. 80년대 풍미했던 민주화이념은 민주주의 정착과 함께 국민들의 의식수준 향상으로 더이상 호소력이 없다는 판단에 따라 국민속에 파고들기 위한 속셈이 깔려있다. 그러나 검찰·경찰은 한총련의 이념에 대해 ▲북한의 주체사상을 사람위주·민중중심의 이념으로▲민족 제일주의를 민족자주·민족대단결 사상으로▲근로 인민대중을 민중으로 바꿔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껍데기만 다를 뿐 속은 똑같다는 얘기다. 통일방안도 한총련의 전신인 「전대협」이 주장했던 북한의 연방통일제 방안을 채택했다. 이후 한총련은 줄곧 휴전협정 폐지나 북·미 평화협정 체결,주한미군 철수,국가보안법 철폐,미군기지 반환 등을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다. 더욱이 한총련은 문민정부 후반기를 맞아 현정권을 「거짓개혁 정권」「문민 독재정권」 등으로 매도,정권 타도투쟁에 무게중심을 두고 반미·통일투쟁을 전개하고 있다고 검·경은 분석한다.한총련의 이념과 노선이 북한의 「판박이」라는 결론이다. 실제로 한총련은 북한의 대남 3대투쟁 전략인 자주·민주·통일투쟁 강령을 수용,밀입국·팩스나 서신·전화 등을 통해 북한의 지시와 방침을 받아 실행하고 있다고 공안당국은 밝혔다. 한총련은 93년 4월 출범 이래 범청학련 남측본부 대표자 명분으로 5명을 밀입국시켰다.또 팩시밀리를 이용,24차례에 걸쳐 북한과 서신을 교환했다. 특히 지난 5월7일 강원총련은 북한 「강원도학생위」가 보낸 「국가보안법 철폐,미제 축출투쟁의 선두에 나설 것」등을 내용으로 한 출범식 축하문을 받아 대의원대회에서 낭독했으며 사안에 따라 북한측에 글등을 직접 요구하기도 했다. 한총련은 지역총련 등에 북한방송 청취반을 두고 방송을 청취,방송내용을 삭제없이 유인물로 제작해 집회장소및 주택가 등에 뿌리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1∼4월 부산·대구·수원·광주 등지에 살포된 유인물에는 김영삼 대통령을 비방하는 북한 방송 내용이 그대로 실려 있었다.물론 배포자는 한총련이라는 게 당국의 최종 분석이다. ◎한총련 의장 정명기 어디있나/학생들 “「통일대축전」 참가뒤 잠적” 주장속/경찰 경비에 막혀 참석 못했을 가능성도 「한총련 집행부는 과연 연세대에 들어왔었나」 18일로 한총련 대학생들의 연세대 농성이 일주일째를 맞았다.한총련 핵심간부들의 행방이 묘연한 가운데,이들이 처음부터 「통일대축전」 행사장인 연세대에 없었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돼 주목되고 있다.관심의 초점은 학생들이 이른바 「백만학도의 대표」라고 내세우는 한총련 의장 정명기군(26·조선대 총학생회장). 학생들은 정군 등 집행부 대부분이 지난 15일 통일대축전 폐막식을 마친뒤 교내를 빠져나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경찰은 정군 등이 애당초 연세대에 잠입하지 않았거나 경찰의 경비망에 막혀 못 들어왔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한총련 핵심 간부 가운데 외부에 모습을 「확실히」 드러낸 사람은 「서울지역 대학총학생회 연합」(서총련) 의장으로서 한총련 대변인을 맡고 있는 박병언군(23·연세대 총학생회장) 뿐이다. 지난 14일 통일축전 전야제 때 박군은 『의장님이 13일 학교에 잠입하는데 성공,몇몇 간부들끼리 모여 의장님의 26회 생일잔치를 축하하며 축전의 개최에 대해 논의했다』고 말해 학생들의 환호성을 이끌어 내기도 했었다. 하지만 정군은 이번 행사기간동안 단 한번도 학생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공식행사는 물론 스쳐 지나가는 모습도 목격된 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 89년 임수경양의 방북 때,당시 전대협 의장 임종석군은 경찰의 수배를 받으면서도 수시로 집회장소에 나타나 학생들을 독려했었다.당시 임군은 「변장의 명수」라는 별명답게 여장을 하거나 사장으로 변장,고급승용차를 타고 다니거나 심지어 하수관을 이용해 경찰의 경비망을 뚫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찰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이전 학생운동 지도자와 달리 학생들에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 정군 등이 아예 대회장에 들어오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이번 행사와 관련해 당국이 한총련 와해방침을 세우는 등 파장이 엄청날 것을 예견하고 끝까지 남아 한총련을 사수하기 위해 「사소한」 위험부담을 줄였다는 이야기다.경찰의 경비에 막혀 잠입에 실패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이와 관련,학생 지도부는 『의장이 모습을 나타내면 경찰이 곧바로 교내에 진입,연행할 위험이 커 안에서 배후 지휘만 한 뒤 폐막식 직후 「유유히」 모처로 사라졌다』고 주장했다.
  • 행정에도 「소비자 보호」 필요하다/오석홍 서울대 교수(서울광장)

    선진민주국가들에 비해 우리 국민은 많은 입증책임을 견디고 거기에 시달려가며 살고 있다.정부와 국민이 맞서는 경우 대부분의 입증책임은 국민에게 전가된다.관청의 입증책임주의는 우리에게 생소한 것이다. 얼마전에 있었던 은행지점장 납치사건은 입증책임에 관한 많은 문제를 생각케 한다.괴청년들이 나타나 조사할게 있으니 잠깐 가자는 요구에 순응하며 따라나선 것이 납치로 이어졌다고 한다.다른 어떤 직장인들도 그와 비슷한 상황에서는 그런 처신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우리에게는 관청우위의 오랜 전통이 있다.조선조의 절대군주체제,왜정의 폭압체제,그리고 해방후 오래 이어졌던 권위주의적 정부 밑에서 살면서 관청의 지시에 고분고분 따라야 살 수 있다는 문화를 구축했다. 이런 전통 탓인지 행정법제도 관청우위의 지향성을 강하게 지니고 있다.정부와 시민의 거래에서 입증책임은 원칙적으로 시민에게 전가되어 있으며 입증이 없으면 시민에게 불이익이 되도록 해석·처리하는 절차상의 원리가 굳게 자리잡고 있다.시민의 권리입증에 대한 행정기관의 협력은 소극적이다.행정처분의 위법성 또는 부당성을 들어 그 취소를 요구하는 시민은 특히 무거운 입증책임을 지는 것이 현실이다.행정행위의 공정력을 적법성의 법적추정으로 이해하여 입증책임을 원고(시민)에게 미루는 구시대적 관행이 그대로 남아있다.이러한 제도하에서 관청과 다투는 것은 여하간 피곤한 일이다. 체제화된 부패의 유산도 「잠깐 조사하겠다」는 말에 사람들을 약하게 만든다.법률자체가 부패한 경우가 있을 정도로 부패가 제도화되면 어지간한 사람들은 대개 크고작은 부정을 저지르며 산다.털어서 먼지안날 사람이 없는 세상을 사는 것이다.세무조사와 같은 단순조사행위가 엄청난 처벌처럼 이해되고 있는 딱한 세상을 우리는 사는 것이다.고분고분하면 눈감아주지만 밉보이면 언제나 먼지를 털어 혼내줄 수 있는 세상에 감히 누가 조사에 불응하거나 하다못해 조사의 이유인들 물을 수 있겠는가. 수사기관들의 월권과 인권유린까지도 비호하던 권위주의정권이 물러간지 얼마되지 않는다.고문전문가로 지목되었던 경찰관의 체포소식은 10여년이 지나도록 감감하다.수사기관과 마찰을 일으키는 일이 얼마나 부질없으며 해로운 일인가를 국민은 오랜 경험으로 학습하였다. 개발연대의 행정팽창은 좀처럼 시정되지 않고 있다.민간부문의 정부의존적 성장,정부주도의 사회개혁,무소부재의 행정간여와 규제 등등이 파놓은 피동화의 늪에서 국민이 빠져나오는 일은 아주 어렵다.행정이 국정을 쥐락펴락하는 행정국가의 관주도체제 아래서 국민은 주눅이 들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 도입된 현대법의 체계는 다분히 외래적인 것이어서 법과 현실의 심한 괴리를 안고 있는 경우가 많다.준법질서의 생활화를 이룩하지 못한 사회적 여건은 외래적 법령과 현실의 괴리를 더욱 크게 하였다.행정시책도 비현실적인 경우가 많다.이러한 이유로 우리 사회에는 법령위반,법령불일치의 상태가 미만되어 있다.제도의 잘못으로 빚어진 잠재적 범법상태도 국민을 약하게 만든다.이것은 국가적 병리이며 불건강상태인 것이다. 우리는 작은 일에서도 큰 이치를 깨닫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사태의 포괄적연관성을 이해해야 한다.미시에서 거시로 눈을 돌릴줄 알아야 한다.문제의 근원에 있는 복잡한 원인을 규명할 줄 알아야 한다. 앞으로 행정에 대한 소비자보호운동에 배전의 박차를 가해야 한다.기필코 비부패시대를 열어가야 한다.법위반상태의 만연을 어떻게든 시정해야 한다.정부의 고객에 대한 의존도를 높여야 한다.관청입증책임주의를 정착시켜야 한다.관청의 군림적 행태를 시정해야 한다.사법절차의 비밀주의를 불식하고 합법적·불법적 인권침해를 막아야 한다.
  • 신한국·국민회의·민주·자민련(4·11총선 4당 수뇌 출사표)

    ◎신한국/“안정속 개혁으로 지역주의 깨겠다” 결전의 날이 가까워졌다.여야 4당은 15대 총선 후보등록일을 하루 앞둔 25일 선대위의장 또는 당총재 기자회견 등을 통해 본격적인 득표활동을 겨냥한 「출사표」를 던졌다. 이회창 선대위의장의 25일 기자회견은 당체제를 전면적인 총선체제로 전환하는 신호탄이라고 볼 수 있다. 이의장은 이날 회견에서 여당의 과반수 안정의석 확보의 당위성을 역설하면서 인물중심의 선택을 해달라고 유권자들에게 호소했다.즉 집권여당의 과반수 의석 확보를 바탕으로 지속적인 경제,사회적 발전이 가능하다는 논리를 폈다.특히 여당의 압승으로 끝난 대만 총통선거와 최근 북한동향을 예로 『그 어느 것보다 우선해 정치가 안정되어야만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상대당에 대한 비방은 극력 자제했다.이를테면 여당으로서 악재랄 수 있는 장학노씨 사건에 대한 야측의 공세에도 불구하고 야권의 공천헌금 비리 등을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이는 야당에 대한 공격으로 반사이익을 얻기보다는 가능한한 신한국당의 개혁의지를설파하는 「포지티브 게임」으로 총선기조를 이끌겠다는 의지의 표시로 이해된다. 다른 한편 장씨 사건에 대해서는 『변화와 개혁이라는 문민정부의 전체흐름에 역행하는 불상사』라는 등 구조적이 아닌 개인비리로 간주했다.그러면서도 유감과 엄정한 사법처리 의지를 표시했다.즉 『철저히 진실을 밝혀 엄정하게 처리하면 국민들도 정부의 도덕성에 신뢰를 보낼 것으로 생각한다』며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겠다는 자세를 분명히 한 것이다. 이처럼 신한국당으로선 장씨 수뢰사건에 대해선 정공법으로 대응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고 보는 듯하다.이는 박찬종 수도권선대위원장이 이날 광명갑 등의 필승대회에 참석,『신한국당은 장학로식 비리를 용납하지 않고 싸우기 위해서 존재한다』고 선언한데서도 감지된다. 신한국당은 지역주의 구도를 여하히 깨느냐가 안정의석 확보의 관건이라고 보고 있다.이의장이 이날 국민회의와 자민련을 겨냥,『특정지역만을 기반으로 하는 정치세력으로는 국민통합을 이뤄낼 수 없다』고 강조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다시 말해 『전국 2백53개 선거구에서 후보자조차 전부 내놓지 못한 정당이 어떻게 국민의 힘을 한군데 모으겠느냐』는 반어법으로 신한국당 지지를 호소한 셈이다.신한국당이 26일 전국구의원 명단발표에 이어 같은 시간대에 일제히 2백53개 지역구후보들의 등록을 하기로 한것도 유일한 「전국당」임을 천명하기 위한 수순이다.〈구본영 기자〉 ◎국민회의/“1백석 확보 못하면 정국 대혼란 올것” 국민회의 김대중총재는 이날 기자회견을 갖고 그동안 지구당을 돌며 강조했던 견제를 위한 3분의1 의석 확보,경제제1주의 실현,비자금 진실규명,청년에게 희망을 주는 정치,여성에게 기회를 주는 정치를 5대 쟁점으로 종합 정리하는 식으로 출사표를 던졌다.이는 이번 총선에 임하는 국민회의의 선거운동 기법을 가늠하게 하는 잣대이기도 했다. 김총재는 이날 『젖먹던 힘까지 보태면 1백석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면서 이제부터 당력을 총집결,전력투구할 뜻임을 분명히 했다. 그는 이에 대한 고리로 여권과 일부 야권의 내부에서 거론되고 있는 정계개편론을 적절히 활용할 심산임을 내비쳤다.김총재가 『우리당이 1백석을 확보하지 못하면 내각제 논의로 정국은 커다란 혼란 속으로 들어가고 이합집산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언급한 대목에서 이를 읽을 수 있다.또 최근 국민회의 폭로로 불거진 장학노씨 부정폭로사건도 이와 연계,여권에 대한 「공격카드」로 구사할 방침임을 시사했다. 그러면서도 여권의 반격을 경계하는 듯한 인상을 강하게 풍겼다.『김대통령이 맞대응의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면서도 김대통령의 책임론을 제기,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은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김총재는 일단 이번 총선에서 수도권과 호남말고 취약지역에서의 교두보 확보가 어렵다는 점을 솔직히 토로했다.그러면서도 『취약지역에서 비록 의석은 얻지 못하더라도 전국구 몇석에는 기여할 것으로 본다』고 말해 강원과 충청,제주는 기대를 걸었다.김총재가 『전국구 14번을 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언급한 점도 이를 반증하는 대목 가운데 하나다.〈오일만 기자〉 ◎민주/“3김과의 대결… 수도권바람 일으킬 터” 홍성우·이중재 선거대책위원장이 상오 마포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총선에 임하는 당의 각오와 선거전략,총선후 예상되는 정계개편에 대한 구상 등을 밝히는 것으로 포문을 열었다.주요 당직자 10여명이 배석한 가운데 당사 5층 회의실에서 가진 회견에서 홍공동위원장은 『이번 총선은 지역주의를 기반으로 한 3김정당과 국민정당인 민주당의 대결』이라며 『민주당은 70석의 의석을 확보,총선후의 정계개편을 주도하겠다』고 밝혔다.다시 말해 이번 선거를 3김(김)과 민주당의 대결로 몰고가겠다는 의지의 천명이다. 홍위원장이 『일부 여론조사가 민주당이 열세인것으로 전하고 있으나 사실과 다르다』면서 『본격 선거전에 들어가면 수도권을 중심으로 민주당 바람이 일것』이라고 자신한 부분도 같은 맥락이다.즉 선거전이 시작되면 부동표에 민주당 바람이 일것이라는 기대의 표현인것이다. 이중재 공동위원장도 『장학노씨 사건은 3김정치의 부패실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며 『유일하게 깨끗한 정당인 민주당에 대한 지지가 급상승할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부영 최고위원,제정구총장,이철총무,노무현 전 부총재,홍기훈 총선기획단장,박계동 의원 등 당내 「스타급」인사 18명으로 구성된 「새정치주체선언」그룹도 별도의 기자회견에서 적극적인 대여공세를 펴겠다고 밝혔다.이들은 「반신한국당 선언」을 통해 『신한국당은 한국정치의 위기와 혼란의 원천』이라면서 『김영삼 대통령의 대선자금을 공개하지 않는한 김대통령과 신한국당은 역사청산의 대상에서 제외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이들은 또 『신한국당은 총선이후 김대통령의 통제가 불가능해지면서 해체의 위기를 맞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새주체그룹이 총선이후 정치개편을 주도할것』이라고 밝혔다. ◎자민련/“보수안정층 공략… 캐스팅 보트 잡겠다” 김종필 총재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총선결과 「캐스팅 보트」를 행사할 수 있는 의석을 확보할것』이라며 총선에 임하는 각오를 밝혀 자민련 바람에 시동을 걸었다. 김총재는 『캐스팅 보트는 소수당의 전유물이 아니라 제1당이나 2당도 행사할 수있는것』이라고 강조한 뒤 『선거기간 동안 특별한 이벤트는 만들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실상을 보여줘 국민들로부터 현명한 선택을 받겠다』는 식으로 선거전략을 피력했다. 김총재는 이례적으로 『공명선거를 정착시키기 위해 대통령과 야당 총재가 한 자리에서 만나 각당의 입장을 밝히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야영수 회담을 제의했다. 김총재는 이 이유로 『지방자치 시대에는 야당도 국정의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영수회담의 형식과 관련,『본격적인 선거가 시작되는 26일쯤 각당의 총재가 TV에 출연,정책과 비전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TV좌담회 형식을 시사해 여당과의 차별화를 시도하려는 공세적인 태도를 취했다.김총재가 야당총재와의 영수회담에는 별 비중을 두지않은 것도 이러한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총재는 장학노씨 사건 와중에 영수회담을 제의하는 것은 오해의 소지가 있지 않느냐는 지적에 『다르게 해석할 이유가 없다』며 일축한 뒤 『정치인들이 흑백논리에 빠져 「전부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니다」고 생각하는데 민주주의는 건설적이고 합리적인 타협을 하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특히 전구구 공천과 관련,김총재가 『우리는 겸손하게 20여명선에서 후보자를 낼것』이라고 언급한 부분은 자민련에 대한 보수안정층의 지지를 노린 이미지 작업의 하나라는 지적이다.〈백문일 기자〉
  • 정신대 할머니 “눈물의 망향가”/중국거주 칠순의 이춘도씨

    ◎15살때 갖은수모… “죽기전 고향 가봤으면…”/국내단체 초청… 가족·친지없어 허가 안나 일제때 중국에 정신대로 끌려간 열다섯살 조선 처녀가 고희의 노인이 돼 귀국을 갈망하고 있다.그러나 고향으로 가는 길은 50년 전처럼 순탄치 않다. 중국 신강성 합밀시에 사는 이춘도 할머니(69).어릴 적 이름은 금순이.경기도 수원에서 태어나 15살이던 44년 수원역 뒷산에서 나무를 하다 일본군에게 끌려갔다. 기차로 만주에 도착한 뒤 몇차례의 탈출시도가 실패로 끝나고 무한으로 옮겨졌다.일본군 34군과 제5야전보충부대·병기공장 등에서 모진 수모를 겪었다. 고통을 참다 못해 동료 4명과 자살을 결심했다.서로 상대방의 가슴과 팔에 자기이름을 새겨넣고 강물에 몸을 던졌지만 혼자만 살았다. 『죽는 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팔뚝에 당시 숨진 4명 가운데 가장 친했던 「이옥주」의 이름이 남아 있다. 1945년 일제의 패망과 함께 자유의 몸이 됐다.하지만 고향으로 돌아갈 길을 몰랐다.식모살이와 농사일로 근근이 살아가다 중국 청년과 결혼했다.중국정부의 변방지원정책에 따라 신강성으로 이주,정착하면서 새 삶을 꿈꾸기도 했다. 하지만 일제가 남긴 상처는 가시지 않았다.아이를 가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끝내 이혼을 당하고 조선족인 장금자씨(54·여)의 도움을 받으며 지금껏 홀로 살아왔다. 이 사정을 접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지난 연말 2주일의 일정으로 이할머니를 초청했다.하지만 당국은 신청서를 반려했다.국내에 가족이나 친척이 없다는 이유였다. 정대협측은 『지난해 5월 이할머니와 같은 처지인 강묘란할머니(73·중국 상해시)가 국내로 초청돼 영주귀국절차까지 밟고 있다』며 정부의 일관성 있는 정책을 요구한다. 이할머니는 오욕으로 얼룩진 과거를 회상하는 증언의 말미에 이렇게 호소했다.『죽기 전에 한번이라도 고향에 가보고 싶습니다.』
  • 민주당 「청년 프론티어」 발족/젊은층 겨냥한 히든카드

    ◎김부겸 부대변인 등 「모래시계세대」 40명 참가/거리행사 집중 개최 「청년정당」 이미지 부각 6일은 민주당에게 우울한 날이다.계획했던 총선출정식을 돈이 없어 취소한 날인 것이다.갈수록 왜소해 지는 듯한 당세에 사기마저 크게 떨어져 있다. 이런 가운데서 민주당은 이날 당내 30대 출마자들로 「청년 프론티어」를 구성,전세반전을 꾀하고 나섰다.「유일한 희망」인 20∼30대 젊은 층을 껴안기 위한 히든카드를 뽑아 든 셈이다. 6일 아침 국회에서 발대식을 가진 「청년 프론티어」는 당내 30대 후보 40명으로 구성됐다. 77년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됐던 김부겸 부대변인(38·경기 과천·의왕)과 87년 6·10항쟁을 주도한 이재경씨(31·서울 강남을)등 80년대 학생운동을 이끌던 이른바 「모래시계」세대가 주축. 「30년 3김정치 30대가 바꿉니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워 기성정치권에 정면도전을 선언했다.이들은 특히 법정선거비용 지키기와 책임있는 공약 제시,인신공격·지역감정호소 배제등의 행동강령을 통해 4·11총선을 공명선거 정착을 위한 정치실험의 장으로 삼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민주당은 이 「청년 프론티어」를 단순히 당을 장식하는 포장에 그치지 않고 당의 이미지를 「깨끗하고 참신한 정당」으로 통일하는 전위대로 삼는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오는 9일 대학로에서의 「웰컴 민주당 희망물결 축제」를 시작으로 서울과 수도권에서 이들을 내세운 거리행사를 집중 개최,「청년정당」의 이미지로 젊은 유권자들의 시선을 끌어 모을 생각이다. 아울러 각 후보들이 지역구에서 각개약진하는 대신 「개미군단」을 형성,집단적으로 선거활동에 나서는 선거전략을 강구하고 있다.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3김구도가 강화되는 현실에서 뾰족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민주당은 이들의 활약에 절대적인 기대를 걸고 있다. 이들의 성패가 곧 민주당의 사활을 가른다는 절박한 판단인 것이다.
  • 귤 한쪽·커피 한잔도 바라지 말자(선거풍토 개혁 내손으로:4)

    ◎불법 자체보다 「못본척」이 더 큰 문제/스스로 꾐에 빠졌어도 고발의 용기를 『인천 학익동에 사는 주부인데 「1일 무료사용」이라는 안내문을 보고 동네 찜찔방에 갔더니 40∼50명의 아주머니들이 한치회와 귤을 공짜로 나눠먹고 있었다』 서울 종로구에 있는 시민단체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공선협)사무실에는 요즘 하루 평균 10여통씩 제보전화가 걸려온다.불법·탈법 선거운동을 고발하는 전화가 대부분이다. 제보 내용도 상당히 구체적이다.지난주에는 동대문구에 사는 한 주민이 『하오 7시에서 8시사이에 옆동네 청년·여성회장들이 「국·국회를 의미)」자가 겉포장에 새겨진 과자세트를 나눠받았다』고 알려왔다. 공선협은 지난 3일 최근 접수된 제보가운데 혐의가 확실한 4건을 선관위를 통해 검찰에 고발조치했다.총선날짜가 다가올수록 고발 건수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권재경간사는 『다음달 쯤이면 제보전화도 하루 1백여통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귀띔했다.별도로 전화만 받는 임시직원을 여러명 채용해야 할 판이다.김성수사무처장은『과거 권력형 부정부패의 대표적인 예가 선거부정이었다』면서 『그러나 문민정부들어 관권 개입이 줄고 선거법이 획기적으로 개정되면서 이에 용기를 얻은 시민들의 고발정신이 어느때보다 활발하다』고 지적했다. 서울시 선거관리위원회에도 요즘 밤늦게까지 전화가 쇄도하고 있다.유권자들의 「눈」을 의식한 후보자측이 특정 사안에 대해 불법인지를 미리 확인하려는 내용이 부쩍 늘었다.그만큼 시민의식이 높아졌다는 반증이다. 지역 선관위등에는 『후보자가 친구와 함께 다방에 가서 찻값을 내려하는데 시민이 고발하면 처벌대상이 되는가』에서부터 『후보자측 인사가 집들이를 2∼3차례 나눠서 하면 단속대상이 되느냐』에 이르기까지 생활주변에 관한 문의가 적지않다.선관위관계자는 이같은 문의를 하는 사람중에는 후보진영에 기술적으로 접근,조그마한 이익이라도 챙겨보려는 검은 양심도 적지않다는 분석이다.나름대로 탈법,불법의 기법을 익혀 후보진영등에 접근하는 선거꾼들이 아직도 여기저기서 기회를 노린다는 지적이다. 유권자들의 불법 불감증도 문제다.주부 K모씨(49·송파동)는 『지난 14대 총선때는 모당 후보로 부터 케이크등을 받았는데 이번엔 아직 특별한 선물을 받지 못했다』고 실토하고 『간단한 선물을 받은게 선거법위반이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공선협 김사무처장은 『후보가 유권자를 타락시키는 예도 있지만 정반대의 경우도 많다』면서 『주변의 꾐에 빠져 어쩔 수 없이 불법행위를 저질렀다 하더라도 용기있게 제보할 수 있는 시민정신이 구태의연한 선거관행의 답습을 치유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강조했다. 서울시선관위 노경섭단속계장은 『공명선거에 대한 시민의식은 분명 향상되고 있다』고 전제한뒤 『특히 6·27지방선거 이후 최근들어 시민제보가 활발해지면서 후보진영은 물론 시민들의 금품요구등의 불법사례등에 대한 적발이나 제보도 크게 늘어날 전망』이라고 밝혔다. 서울대,연세대 등 다른 대학들도 동참할 움직임이다.각 단과대 사무실이나 하숙촌 주변에 전화기에 부착할 수 있도록 공선협이 만든 「불법선거 고발스티커」를 돌릴 예정이다.선거부정 고발창구의 전화번호(02­747­9898)가 적힌 고발스티커는 이달중 대학가뿐만 아니라 전국 사무실과 주택가를 중심으로 2백만장이 뿌려진다.불법행위를 보고도 못본체 하는 것은 부정을 저지르는 것보다 더 나쁘다는 인식을 심어 공명선거를 정착시킨다는 의도이다. 15대 총선을 앞두고 정계에 첫발을 들인 신한국당 서울 관악을 지구당 박홍석위원장은 지역내 노인정이나 새벽 약수터에서 유권자들의 「매서운」 눈초리에 놀랐다고 한다.하다못해 귤이라도 몇쪽 권하려 해도 선뜻 『그러지 말라』고 「충고」한다는 것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박병옥정책실장은 『시민들의 감시·고발정신이 올바로 자리잡는다면 개인적인 이해를 벗어나 정책과 사람을 보고 한표를 행사하는 성숙된 선거문화가 뿌리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 「6대 국정운영과제」 부처별 실천계획

    ◎민생치안 확립/파출소 3부제 운영/면단위에 112 순찰차 국무총리실이 그동안 취합해 온 부처별 국정운영과제와 실천계획을 16일 국무회의에 보고함으로써 올해 국정의 윤곽이 드러났다.정부의 올해 국정운영계획은 김영삼대통령이 지난 9일 국정연설에서 밝힌 「6대 국정운영 과제」를 중심으로,각 부처가 그 실천방안을 마련하는 형태로 짜여졌다. ▷남북관계 개선 노력◁ ▲화해와 협력 증진방안=북한 사회의 개방화를 통한 남북간 평화공존체제 구축이 당면목표다.그러나 북한은 현재 내부통제 강화를 위해 남북 당국간 대화를 거부하고 군사력 증강 등 긴장국면을 지속하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북한의 태도변화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경수로 공급협정 후속조치 이행을 남북관계 개선계기로 활용하고,남북한 민간차원의 교류와 협력은 신중히 하면서 북한의 태도변화가 있을 때 남과 북이 함께 번영하는 「민족발전공동계획」차원에서 협조·지원한다. ▲통일교육 강화 방안=초·중등학교의 통일교육 방향과 내용을 재정립하고,안보 현실과 북한 실상에 대한 새로운 감각의 첨단홍보를 실시하며,주요 이슈 발생 때 정부 입장을 신속·정확하게 홍보할 수 있도록 학자·전문가등 영향력 있는 인사 중심의 네트워크를 구축한다. 초·중등학교의 통일교육 방향과 내용을 재정립하는 한편 대학 통일문제연구 활동과 북한학 강좌를 적극 지원한다. ▲안보태세확립=돌발적인 위기 및 모험적 도발을 대비,확고한 국방태세를 구축한다.이를 위해 군사대비 태세를 완비하고 장병 정신전력을 강화하는 한편 군의 사기를 고양시킨다.또 예비전력을 정예화하고 군수지원능력을 향상시킨다. 급변하는 안보환경에 대응,대내외 군사관계를 발전시킨다. ▷선진경제 기틀 확립◁ ▲4.5%내의 물가안정 대책=97∼98년에 3%대인 선진국형 저물가구조 정착을 목표로 물가안정시책을 꾸준히 추진한다.단기적으로는 공공요금의 조정을 최소화하고,조정시기도 분산해 불필요한 물가 불안정심리 발생소지를 제거한다.수입다변화 품목을 축소하고 병행수입을 허용해 경쟁촉진을 통해 공산품 가격의 인하를 유도한다.▲중소기업과 영세사업자에 대한 구조조정 지원방안=올해 당초 계획보다 1조원 늘어난 2조원을 6천개 중소제조업에 구조개선사업비로 지원하고 올 1·4분기중에 대출 추천을 완료한다.재래시장의 재개발과 소규모 점포의 현대화를 위해 올해 재래시장 및 소규모점포의 시설현대화에 1천3백억원을 지원한다.2월말까지 중소기업청을 신설한다. ▲현장중심의 농정개혁 지속 추진=농어업인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는 상향식 농정을 추진한다.농어촌구조조정 등을 위해 투자하고 있는 총57조원의 투자사업이 농어민의 피부에 와 닿도록 내실화한다. ▲식품위생관리 강화대책=식품기준과 위해요소 허용치 등을 선진국 수준에 맞도록 개선하고 제조공정별로 위해요소를 분석,중점관리한다.식품에 대한 사후관리체계로 명예식품감시원을 확대하고 주민신고방법을 제도화하며 업자 스스로 불량식품을 폐기하는 리콜제를 실시한다.위해식품 제조·판매자에 대한 벌칙을 강화한다. ▷핵심제도의 지속개혁◁ ▲금융·부동산 실명제의 정착=서명에 의한금융거래를 확대하고 신용카드 이용률을 높이는 등 금융거래관행의 선진화를 유도하고,부동산이 실권리자 명의로 등기하는 관행이 정착되도록 정책적 노력을 지속한다. ▲부정부패 척결을 위한 제도개혁=행정규제완화와 정보공개제도 도입으로 비리발생 요인을 제거하고 취약분야 등에 점검반을 수시가동,복무점검을 강화한다.승진 적체 완화를 위해 복수직급제를 확대하고 하위직 정원을 상위직으로 넘겨 조정한다. ▲공명정대한 15대 총선관리 대책=지방자치단체장들에게 장관 공한을 보내 선거개입 금지 등 공명선거실천을 당부한다.시·도,시·군·구,읍·면·동 등 전국 4천46개 기관에 불법선거신고센터를 개설하고 2백36개 경찰서에 선거사범 전담반을 설치한다.112신고전화를 선거사범 신고센터로 활용하고 선거경비 상황실 운영 등을 통해 불법선거운동을 단속한다. 2월 한달동안 허위신고자와 위장전입자를 가리기 위해 주민등록을 일제정비하고,내무부와 각 자치단체에 국회의원 선거관리지원단을 구성·운영한다. ▲경제사회 부문 규제의 적극 완화=정부·연구기관 합동으로 경제행정규제작업반을 구성,업계에서 제기하는 금융·대출 등 자금조달과 토지이용및 개발,법정의무고용제도 등을 중심으로 규제완화작업을 추진한다.법령 제·개정 때 새로운 규제에 대해서는 비용과 효과분석을 실시하고 규제입안자를 공개하는 규제실명제를 활성화한다. ▷복지추구 생활 개혁◁ ▲안전문화의 확립=내무부를 중심으로 국가재난관리 종합계획을 수립하여 체계적인 안전관리를 도모한다.재난위험시설을 지정,책임관리와 안전점검 체계를 세운다.재난을 예방하기 위해 안전관련 법령을 정비·보강한다.건설제도를 개혁,부실공사요인을 근본적으로 시정한다.지방자치단체의 재난관리기구와 인력을 보강하고 중앙과 지방의 119구조대를 확고히 구축한다. ▲민생치안의 확립=경찰서 3개와 파출소 9개 등 신도시및 인구 격증지역의 경찰관서를 신·증설하고 치안부담이 과중한 대도시 파출소에 3부제를 실시한다.112순찰차를 면단위 파출소까지 배치하고 휴대용 조회 컴퓨터등 첨단장비 보급을 늘린다.국립과학수사연구소 서부분소를 전남 장성에 설립을 추진하고 유전자분석실을 확대 개편,강력범죄 검거율을 높인다. ▲중·장기 국민보건 청사진=생활보호대상자에 대한 생계비 지원금과 노인·장애인 수당을 인상하고 98년까지 취약계층에 대한 최저생계비를 1백% 보장한다.의료보험 급여기간을 2백10일에서 2백40일로 연장하고 도시자영업자와 65세 이상 노인 등에 대한 연금확대모형을 개발한다.민간의 복지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세제지원 등 제도를 개선한다. ▲문화체육시설의 대폭확충=시·군·구 단위로 문예회관을 건립하고 시·도 단위 국·공립미술관 및 대중공연장을 각 1개소 건립하며 인구 10만명당 1개의 공공도서관을 건립하고 자연사박물관도 세운다. 읍·면·동 단위 동네체육시설을 1개 이상 설치하고 시·군 단위 운동장과 체육관 및 수영장을 각 1개 건립한다.군단위 농어민문화체육센터를 건립하고,시·구 단위 주민체육센터를 새로 세운다.농어촌출신 도시유학생 기숙사를 9개 신설하고 관광숙박시설을 10년안에 5만실 증설하며 노인휴양촌을 5개 조성한다. ▷사회간접시설 확충◁ ▲초고속 정보통신 기반구축 사업의 추진=전국 주요도시간 초고속국가망을 80개 도시를 대상으로 완료하고,기간통신사업자 공중망의 고도화를 추진해 4백20개 구간,1천3백㎞의 광케이블망을 구축한다.또 일정자격을 갖춘 민간기업을 초고속망사업자로 승인,공업단지와 항만·공항 등에 초고속망을 우선 구축한다.원격의료 및 교육 등 초고속망에 의한 실제 서비스 제공을 위해 법령을 정비한다. ▲공공부문의 정보화 추진=96년 1·4분기중 2000년까지 시행될 정보화촉진기본계획을 수립하고,4월말까지 부처별 시행계획을 확정한다.정보화추진위원회를 활용하여 부처간 협조체제를 구축한다. ▲물류기본시설의 확충=한반도를 21세기 동북아 교통·물류의 중심지역으로 발전시킨다는 장기계획 아래 2003년까지 물류비용을 선진국 수준으로 낮추는 중장기대책을 추진한다.수도권과 부산권·중부권 등 5대 거점별로 복합화물 터미널을 확충하고,지역별로 대규모 유통단지를 개발한다.물류업무의 신속한 처리를 위하여 종합물류정보망을 구축하고 물류시설 및 시설의 표준화를 적극 추진한다. ▷세계질서 능동참여◁ ▲미·일 등 우방국 및 제3세계와 실질적 협력관계 확대방안=미국과는 장기적으로는 통일과정 및 통일후를 대비한 동맹관계를 발전시킨다.단기적으로는 북한문제와 관련한 공조체제를 강화하고 안보군사협력을 증진하며,주둔군 지위 협정을 개정한다.일본과는 미래지향적 선린관계를 구축한다.정상회담 및 외무장관회담을 추진하고 가칭 역사공동연구위원회를 구성한다.중국과는 전면적이고 다각적인 관계발전을 도모한다.단기적으로는 APEC와 안보리활동 등을 통한 우호협력관계를 구축하고 미개척분야의 교류를 활성화한다.러시아 및 CIS국가와는 건설적이고 상호보완적 동반자 관계를 강화한다.네덜란드·노르웨이·스페인 등의 정상을 방한초청하고 유럽연합(EU)과 기본협력협정 및 공동정치선언을 조기채택한다.제3세계와의 외교협력분야에 있어서는 중동지역의 평화정착과보스니아 복구과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한다.개도국에 무상원조를 늘리고 청년봉사단,국제협력요원을 파견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진입및 이에 따른 국내제도 정비=경제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금융·투자·해운 등 관련 제도를 개편한다.환경보호·소비자 안전 등 국민생활의 질적 수준을 높일 수 있는 제도개선을 추진한다.우리 경제의 대응체제 구축을 위해 분야별 OECD 전문인력을 양성하고 전담조직의 설치를 추진한다.정부내에 OECD 관련 정보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체계를 구축한다.우리 경제에 대한 회원국 및 사무국의 이해를 높이기 위해 노력한다. ▲새로운 국제무역질서와 변화하는 세계경제환경의 대응방향=출범 2년째를 맞는 세계무역기구(WTO)체제의 본격 가동에 철저히 대비하기 위해 보조금 지적재산권 등 관련 국내제도를 정비하고,원산지 규정 등 우루과이라운드 후속협상에 주도적으로 참여한다.APEC 무역·투자자유화 이행계획에 우리의 실리를 반영하고 무역진흥,산업과학 및 기술협력 등 주요 협력사업을 주도한다.권역별 거점국가를 선정하여 잠재력있는 신시장을 적극 개척한다.
  • 대흥구 중국 심양(세계속 한인촌 탐방:3)

    ◎황무지를 옥토로… 딴 농촌의 3배 소득/5천여명 정착… 우리말·전통풍습 그대로 간직/된장국·김치 담그기 등 가르쳐 중국인을 조선화/「새마을 공장」 4백여곳 유치… 산업화 앞장도 중국 북동부 3개 성의 심장격인 심양.요령성의 성도이자 우리에겐 봉천으로 널리 알려진 이곳 중심가에서 서쪽으로 1시간가량 달리다보면 「대흥구육성」이란 큰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초·중학교 우리말 수업 추수가 끝난 텅 빈 논을 배경으로 서 있는 이 보신탕집 간판으로부터 2차선 찻길을 따라 조선음식점 1백여개가 줄지여 들어서 있다.심양∼대련 사이 고속도로가 곁에 있는 이곳은 심양시 우홍구의 「대흥향」.찻길 따라 음식점과 상점이 늘고 있지만 여전히 시 교외의 농촌이다.1만5천여명의 주민 가운데 3분의 1인 5천여명이 조선족인 우리동포 자치지역이다.명칭은 「대흥 조선족자치향」. 『20년대초까지 논은 찾아볼 수 없는 황무지였다.물이 부족해 농사가 어려웠고 극소수 밭농사를 지을 수 있는 지역이 있을 뿐이었다.그런 황무지를 송화강의 지류인 훈하를끌어들여 물길을 낸 뒤 논농사를 시작,궁핍에서 벗어나게 한 게 바로 조선족이었다』고 48년말부터 30여년동안 이곳 공산당간부로 일해온 지역지도자 이성일·67·전당서기)씨는 회고한다.길지 않은 이민역사와 한족에 비해 적은 인구에도 불구,조선족자치지역이 된 것은 『조선족 손으로 이곳을 개발했기 때문』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19세기말∼20세기초 가난과 일제침략을 피해 고향을 등진 사람이 모여 이룬 이곳은 우리말과 생활풍습을 고스란히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아이의 백일잔치,노친네의 환갑은 물론 전통양식을 보존한 제사풍습 등등.설날이면 이웃집에 세배다니고 농사일과 궂은 일이 있으면 몰려가 품앗이를 하는 등의 끈끈한 유대의식도 변치 않았다.순 우리말로만 수업하는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있는 것은 물론이다.이곳 조선족은 절대로 한족학교에 아이를 보내지 않는다.행여 자식이 한족과 결혼하려 하면 필사적으로 말리는 것도 다른 지역에 사는 동포와는 약간 다른 풍습이다. ○연변 등 외지동포 이주 오히려 중국인을 「조선화」시켰다.노인등 어른에 대한 깍듯한 예절,논농사를 모르는 이들에게 쌀재배법을 전파시켰고 적잖은 이 지역 중국인이 김치를 담그고 된장국을 끓여먹는다는 데서도 대흥 조선족의 영향력을 엿볼 수 있다.가옥도 이웃 사이에 담장이 따로 없는 개방형 농가다.아이를 조선식 포대기에 들쳐업고 다니는 새색시.조금 어색하긴 하지만 치마저고리에 면사포를 쓰는 동·서혼합 결혼식.집안에 들어서면 구들방이 보이고 크고 검은 무쇠가마솥이 눈에 띄는 곳.안타까운 것이라면 국가규정 때문에 전통적인 무덤(토장)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문화혁명후 토장이 금지돼 화장한 뒤 죽은 이의 유골을 황해로 흐르는 훈하에 뿌리는 전통이 생겼다.죽어서라도 고향으로 가야 한다면서. 1910년말부터 평안도에서 일가친지 모두가 이주해온 황성출(65·전대흥향 공업책임자)씨는 『처음 이주자들은 몇년만 있다 고향으로 가겠다는 생각이었지만 1917년 오강소학교란 조선학교를,20년엔 기독교 예배당를 세우며 차차 정착하게 됐다』고 말했다.그러나 30년대초까지도 추수때면 한족 지주등에게빚갚고 나면 빗자루 하나만 남는다는 말이 돌 정도였다고 전했다.허일벽(72·전대흥향 정부농업조리)씨는 한때 1만여명 가까운 조선족이 모여 살기도 했지만 해방직후와 59∼60년 대약진운동의 실패여파로 상당수 북한으로 이주해갔다고 설명한다. 연변지역등의 조선족마을이 최근 도시이주등으로 급속히 붕괴하고 있는 것과 달리 이곳은 지난해 역시 연변과 흑룡강성등 외지에서 이주해온 동포 가구로 1백호가량 늘었다.이곳 인구는 5천명정도지만 심양시 서탑지역,동릉구 혼하찬지역과 함께 10만 심양지역 조선족사회를 지탱하는 기둥이다.해마다 9월초면 열리는 조선민속·운동절에 약 5만명 대부분이 가족별로 참가한다. 한·중 두 나라의 급격한 관계발전을 타고 이곳도 한국행 열풍엔 예외가 없다.4살때 평안도에서 왔다는 흥성촌의 김응석(69)씨의 세 아들중 두명은 한국에서 3년 넘게 일하고 있다.비자등 법규에 대해 알지 못하는 김씨는 『아이들이 한국에서 돈 많이 번다』며 자랑한다.김씨집은 산업화이전의 초가집이고 부엌엔 무쇠가마솥이 걸려 있다.해질녘에 불쑥 들른 취재진에게 『저녁은 꼭 먹고 가야 한다』며 붙드는 것이 이제는 사라진 우리의 옛 정서를 느끼게 한다. 한집 건너 김미영(33)씨 집 역시 남편이 지난해부터 한국서 일하고 있다.농토는 연변에서 온 조선동포에게 맡겨 임대수입을 받는다는 김씨는 남편을 보러 꼭 한국에 다녀오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공단인접한 교통요지 개혁개방이 진전되면서 대흥향은 농공산업단지로 탈바꿈하려는 안간힘으로 한창이다.동북 최대공업단지 철서공단에 접해 있고 북경∼장춘∼하얼빈을 잇는 교통요지인 점도 산업화를 향한 행보를 재촉한다.우리 새마을공장격인 향진기업은 모두 4백6곳.지난해 공업생산은 4억위안(5천만달러)으로 농업생산액 1억위안을 앞섰다.피혁·의복·방직·장식재료등을 중심으로 외자기업의 유입이 늘고 있다.정명수 향정부 판공실주임은 『지난 91년부터 올해까지 외자기업의 총투자액은 7백60만달러』라며 『총생산액으로 볼 때 외자기업의 비중이 지난해 공업생산의 절반가량인 2억위안에서 올해는 2억8천만위안으로 증가할 것』이라며 밝은 전망을 소개했다. ○종업원지주제 첫 실시 이곳의 월 평균소득은 여타 농촌지역보다 3배가량 높은 7백∼8백위안정도.한 관계자는 한국 가서 일하고 부치는 노무소득·관광객안내비등을 합치면 실제소득은 훨씬 많다고 귀띔한다.향 행정책임자인 김재만 향장은 심양 조선족제1중학(고교과정)과 심양 정법대를 나온 35살의 청년이란 것도 이곳의 활력과 미래를 상징한다.김향장은 투자유치가 자신의 주임무이며 한국기업의 투자를 주민과 함께 기대하고 있다고 소개했다.최근 한국의 삼우금속과 합자로 총자본금 11억규모 심양 흥우금속제품공사설립을 계약했다고 설명한다.중국 공무원하면 경직된 행정관리가 연상되지만 김씨는 자칭타칭 「세일즈맨」임을 자랑으로 여긴다. 김향장은 『대흥향은 내년부터 중국 최초로 기업고정재산의 30%한도내에서 종업원지주제를 실시하는 기업개혁실험에 들어간다』며 밝은 대흥향의 미래를 자랑삼아 밝혔다.전통적으로 북한의 영향이 강하던 이곳에서 이들은 이제 한국의 존재는 우리민족의 자랑이라고 말한다.이들은한국을 모델삼아 공업화된 농촌속의 도시를 만들겠다는 경제발전의 꿈에 부풀어 있다. ◎장승균/“조선족은 문화수준 높아”/동북부 지역 벼농사 전파… 개발 한몫 중국 조선족은 역사적으로 항일전쟁 및 해방전쟁(국민당과의 내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훌륭한 전통을 지니고 있다.특히 중국 동북부지역을 개간,수도작문화,즉 벼농사를 전파시켜 경제수준을 한단계 높이는 데 크게 공헌했다. 조선족은 또 교육을 중시,문화수준이 높고 노래와 춤등 예술성이 풍부하며 호방하면서도 엄격히 예절을 지키는 민족으로 정평이 나 있다. 조선족은 60년대까지 대부분 농민이었으나 개혁개방후 각 방면으로의 진출,계층분화현상이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연변지역등 농촌에 모여 살던 조선족의 도시이주가 최근 늘면서 일부 집성촌의 해체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북경상주 조선족은 현재 1만여명에 달하고 임시거주등의 인구까지 따지면 모두 3만여명 이상으로 추산되고 있다.조선족의 전체인구는 공식통계로는 1백92만3천여명으로 집계돼 있지만 조사연도(90년)와 전중국의 인구증가률 1.4%보다 낮은 1%가량의 인구증가율을 고려할 때 2백만명가량으로 늘었을 것으로 추산된다. 조선족의 한국방문 및 장기체류는 상대방 국가의 법률만 준수한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한국정부가 민족연관성을 배경으로 조선족에 대해 특혜정책을 실시하더라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게 중국정부의 방침이다.
  • 「미완의 혁명」 4·19(새로 쓰는 한국현대사:47)

    ◎「3·15마산시위」로 촉발… 한국현대사의 분기점/「혁명」·「의거」·「민중항쟁」 등 시각따라 평가 달라 1960년 4월19일 국민은 자유당 독재정권에 저항해 분연히 일어서 일주일만에 이승만 대통령을 권좌에서 쫓아냈다.비록 1년여 뒤에 일어난 「5·16」군사쿠데타로 그 꿈은 좌절되지만 「4·19」가 민주주의를 추구해 온 한국 현대사에서 뚜렷한 분기점을 이루었다는 사실은 아무도 부인하지 않는다. 「4·19」는 「3·15」부정선거와 이에 따른 「3·15 마산시위」로 직접 촉발됐다.그러나 이와 관련된 학생시위는 2월28일 대구에서 처음 발생했다.학생들이 반정부시위를 벌인 것은 광복이후 처음이었다.28일은 민주당 장면 부통령후보가 대구유세를 가진 날로 일요일이다.집권세력은 학생들의 유세장 참석을 막으려고 일요일인데도 고교생들을 모두 등교시키기로 했다.명목은 학교에 따라 달랐다.경북고교는 학기말시험 일정을 이날로 앞당겼고 대구고교는 전교생이 토끼사냥을 한다고 했다. ○대구서 첫 반정부 시위 학생들은 반발했다.28일 등교한 경북고생 8백여명은 하오 1시5분쯤 교문을 나서 시내 중심가를 돌며 1시간50분동안 시위를 벌였고 대구고·경북여고 학생들도 뒤를 이었다.이날 학생 2백50여명이 연행되지만 정부는 시위학생 처벌이 민심에 어긋날까 염려해 그날로 모두 석방했다. 학생시위는 3월5일 서울에서 다시 불붙었다.장면후보가 서울운동장에서 정견발표를 마친 뒤 종로4가까지 카퍼레이드를 벌이자 학생이 대부분인 군중 1천여명이 뒤따랐다.퍼레이드를 끝낸 하오 5시10분쯤 시위가 시작됐다.경찰은 경찰봉을 휘두르는 한편 기마경찰을 동원,곧바로 시위대를 해산시켰다. 이어 8일에는 대전에서,10일에는 수원과 충주,12일에는 부산·청주,13일 서울,14일에는 서울·부산·인천·포항에서 학생시위가 벌어지는등 자유당정권에 대한 저항은 전국 곳곳에서 자연스럽게 표출됐다. 제4대 정·부통령선거가 실시된 3월15일 무장경찰이 거리거리를 지키는 가운데 동이 텄다.당시 인구 15만 정도인 남녘의 항구도시 마산은 어느곳보다 시끄러운 아침을 맞았다.상오 7시 투표가 시작됐지만 민주당참관인은 대부분 투표소에 들어갈 수 없었다.자유당원,경찰,반공청년단등 친정부세력이 야당 참관인의 출입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불만은 시민들 속에서도 터져나왔다.많은 마산시민들이 투표용지조차 받지 못해 선거를 할 수 없었다. 시민들은 자연스레 오동동 민주당사무실로 모여들었다.상오 10시30분 민주당 마산시당은 스스로 「선거포기」를 선언했다.그날 저녁 민주당사 앞에 시민들이 몰려 있을 때 반공청년단원 10여명이 차를 타고 몰려와 마구 몽둥이질을 하고는 달아났다.분노한 시민·학생들은 시위대로 돌변했다.시위대가 남성동파출소 앞에 이르자 소방차에서 물벼락이 날아왔고 시위대는 돌을 던졌다.이윽고 총성이 터지면서 앞선 학생이 쓰러졌다.하오 8시쯤이었다.시위대는 일단 흩어졌지만 『경찰이 학생을 쏘아 죽였다』는 소식이 시내에 퍼지면서 격분한 시위대와 총을 쏘는 경찰간에 유혈충돌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다음날 마산시내에서는 일대 검거선풍이 불었다.경찰은 시위를 민주당 마산시당이 사전계획한 「폭동」으로 몰아붙이는 한편공산간첩이 개입됐다는 쪽으로 몰고갔다.이기붕 부통령당선자가 『총을 줄 때는 쏘라고 준 것』이라고 말해 문제가 된 것도 이 무렵이다. ○마산시위서 10명 희생 하지만 마산사건은 곧 정치쟁점으로 떠올랐다.민주당은 물론 국회와 대한변호사협회,심지어 자유당까지 자체 조사단을 파견해 진상을 조사했으며 검찰도 수사팀을 현지에 보냈다.경찰이 주머니에 불온삐라를 만들어 숨진 학생 주머니에 집어넣었다든지,북마산파출소 방화범을 조작한 사실들이 속속 드러나 3월26일 발포·고문 경찰관 5명이 구속됐다. 어느정도 분위기가 잦아들던 4월11일 김주열(당시 17세)군의 시신이 마산시청 뒤 중앙부두 앞바다에서 발견됐다.전북 남원 태생인 김군은 마산상고 입학시험을 치르고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었다.3월15일 밤 김군은 형과 함께 시위행렬에 가담했다가 행방불명됐다. 그 김군이 오른쪽 눈에 최루탄이 박힌 참혹한 모습으로 바다에 떠오르자 다시 전국에 분노의 물결을 불러일으켰다.마산에서는 이날 저녁 시위대 3만여명이 시청·파출소·소방서등 공공기관을 습격했다.하오 9시30분쯤 마산경찰서 앞에서 경찰이 또다시 총을 쏘았다.1·2차 마산시위에서 희생된 사람은 모두 10명이었다. 전국에서 시위가 잇따른 가운데 4월18일 서울에서 고대생들이 시위에 나섬으로써 「4·19」에 불을 지핀다.18일 낮 교문을 나선 고대생 3천여명은 경찰의 저지를 뚫고 태평로 국회(현 서울시의회)앞까지 진출했다.학생들은 도로에 연좌해 『3·15 부정선거를 철회하라』며 농성을 벌였다.시청·광화문등 주변에는 시민·고교생등 1만여명이 모여 이들을 격려했다.고대생들이 유진오 총장의 설득으로 4시간 반만에 농성을 풀고 학교로 돌아가는 도중 동대문시장 앞에서 정치깡패 이정재 일당이 이들을 습격했다. 고대생들이 깡패들에게 당한 사실이 보도된 4월19일 아침 서울은 분노로 들끓었다.서울대를 비롯한 10여 대학 학생들이 상오중 시위에 들어갔고 고교생들이 뒤를 이었다.시위군중은 순식간에 10만명을 넘어서 하오1시40분쯤 경무대(현 청와대)앞 저지선에 다다랐다.경찰의 일제 사격에 군중은 잠시 흩어졌지만 수는 더욱불어났다.정부는 바로 계엄을 선포했다. ○이승만 하야로 새 국면 이어 정국은 숨가쁘게 돌아갔다.21일 국무위원 일괄 사퇴를 시작으로 23일 임기가 남은 장면부통령이 사임했다.24일에는 이기붕이 일체의 공직에서 사퇴한다고 발표했다.25일 하오 3백여 대학교수들이 「이승만하야」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자 이승만은 26일 드디어 하야성명을 냈다.제1공화국은 이로써 막을 내렸다.「4·19」전기간에 걸쳐 전국에서 1백86명이 숨지고 6천여명이 부상했다. 「4·19」는 혁명인가,의거인가,아니면 민중항쟁인가.발생 35년이 지났지만 「4·19」에 대한 평가는 아직 분명하게 내려지지 않았다.따라서 「4·19」를 부르는 이름도 「4월혁명」「학생의거」「4월민중항쟁」등 다양하다.독재정권을 무너뜨렸다는 의미에서 혁명이라고 주장하는 한쪽에선 학생들이 주도해 우연히 일어난데다 실제 이룬 것이 없다고 보아 의거라고 해석한다.또 「4·19」가 반독재투쟁을 거쳐 「반외세 민족통일」을 제기했다고 비중을 두는 쪽은 「민중항쟁」이라는 주장을 편다. 이처럼시각이 엇갈리는 까닭은 「4·19」가 지금도 우리 사회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당대의 큰 사건이기 때문이다.결국 「4·19」는 어느 시점까지 미완의 혁명으로 남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4·19」엿새 뒤인 25일 하오 서울시내에서 「이승만 하야」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는 대학교수들.이승만이 다음날 하야를 발표함으로써 제1공화국은 막을 내린다. ◎미 CIA 「한국정세 보고서」/미 “장면정권 2년이상 못 버틴다” 예측/군사쿠데타 발생가능성엔 회의적/“서방과의 연대는 지속할 것” 전망 우리의 현대사에서 「4·19」와 「5·16」으로 이어지는 60년대 초는 격동의 시기였다.독재를 거부한 국민의지가 열매를 맺는가 싶더니 1년여만에 군사쿠데타로 뒤집혔다.미국은 이 무렵 한국 상황을 어떻게 판단했을까.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은 최근 비밀해제된 미국 정부문서 가운데 중앙정보국(CIA)이 작성한 「한국 정세에 관한 예상 보고서」를 발굴했다.1960년 11월22일자로 된 이 보고서는 이후 몇년동안 전개될 한국의 정치상황을 내다본 것이다. CIA는 먼저장면정권이 2년이상 버티기 힘들 것으로 전망했다.국회에서 다소 우위에 있긴 하지만 당면한 숱한 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하리라고 보았다.또 60년 3∼4월에 활동을 개시한 「혁명세력」도 아직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따라서 정치적 균형이 새로 정착되기 전에 지도력의 변화와 세력 재배치가 있을 것이며,이러한 변동은 보수정당 우위에서 얼마간 벗어나 사회주의 세력의 신장을 가져오리라고 예측했다. 보고서는 이어 『서울정부가 대중의 열망에 부응하지 못하면 불안한 상태가 유지돼 권위적,또는 혁명적 지도자들에게 이용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그러나 군사쿠데타 가능성에 대해서는 『한국 내 상황이 두드러지게 악화돼야만 군부가 민간정권을 대체하려 들 것』이라고 분석한 뒤 『현재로선 쿠데타가 발생하지 않으리라고 확신한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한국인들이 공산주의자들의 침략 방어와 경제력 유지를 위해 미국등 서방과 연대해야 한다는 국민적 합의를 이어갈 것으로 자신했다.그러면서도 ▲민족주의 감정 대두 ▲통일에 대한 열망 ▲냉전체제 아래 한국의 허약한 위상에 대한 분개심등이 중립주의에 대한 관심을 높일 것이라고 풀이했다. 이밖에 장면정부가 일본과 적극적으로 새로운 접촉을 시도하고 있지만 한일관계가 정상화되기까지는 수많은 장애물이 있으며,특히 『한국 대중의 새롭고 약간은 과민한 민족적 자존심이 이를 복잡하게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4·19」와 「5·16」이라는 역사적 사건의 중간시점에서 작성된 미 CIA 보고서는 미국의 한국에 대한 정책 결정에 활용됐다는 점에서 가치가 뛰어난 자료이다. □특별취재반 ▲황규호 문화부부국장급 ▲이용원 〃 차장 ▲김성호 〃 기자 ▲김영중 조사부 〃
  • 우즈베키스탄공 타슈켄트(세계속 한인촌 탐방:2)

    ◎30년대 연해주서 이주… 8만여명 정착/근면은 타민족 본보기… 80%가 농업 종사 옛소련 땅의 한인최대밀집지역인 우즈베키스탄공화국의 타슈켄트주에 있는 한 목화농장.초로의 황 스타니슬라브씨(53)가 이곳 치르치크구역내의 국민학교와 중·고등학교 학생으로 구성된 목화수확반의 작업을 일일이 지켜보며 독려하고 있었다.다른 한쪽 켠에서도 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인을 비롯해 10여종족으로 구성된 종업원들이 그의 감독하에 목화송이를 거둬들이느라 여념이 없다. 불과 2년전까지만해도 황씨는 국영기업에 가까운 콜호스의 농장장에 불과했다.하지만 이제 그는 회장님이라 불린다.우즈베키스탄정부의 민영화방침에 따라 국영농장(콜호스)이던 이 목화밭이 주식회사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국영농장 회장이 한인 황회장의 오늘은 아버지 황만금씨(74)의 후광이 컸다.아버지 황씨는 지난 30년간 이 목화농장을 옛소련지역 최고의 콜호스로 이끈 장본인이다.극동의 블라디보스토크 빈농가에서 태어난 아버지 황씨는 지난 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정책에 따라선친과 함께 당시 황무지나 다름없던 이곳에 내던져졌다.타슈켄트 교외 사막 허허벌판에 던져진 이들 부자는 10년동안 막노동과 농업전선을 전전했다.그러던 1947년,특유의 한인기질인 성실성과 총명함이 돋보여 황만금씨는 한인으로서는 처음으로 한 콜호스의 관리위원장에 선출됐다.지금의 목화농장 관리위원장으로 뽑힌 것은 53년.이후 30년간 그는 이 농장을 옛소련의 모델농장으로 끌어올렸다.목화재배에 과학영농기법을 도입,다른 지역 콜호스 생산량의 최고 10배까지 달성하기도 했다.58년 노동영웅칭호를 시작으로 그는 3번의 레닌훈장과 10월혁명훈장,소련인민위원회 계관칭호 등 더이상 받을 상이 없을 정도로 모든 상을 휩쓸었다. 이곳에 사는 문 피요트르씨(64)는 『그는 어려울수록 한국인 특유의 부지런함을 발휘한 콜호스의 상징이자 한국인의 상징』이라고 치켜세웠다.황씨의 바통은 90년대초반 아들이 이어 받았다.그가 아버지의 농업철학을 계승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며 비닐하우스 재배기법을 우즈베키스탄에 도입한 장본인이라는 점이 발탁의이유였다. 황회장의 경영능력도 아버지 못지않다.이른바 새 콜호스건설에 신사고를 일으킨 아버지에 이어 그는 요즘 토지의 유상분배와 인센티브제의 도입,컴퓨터농정에 큰 관심을 쏟고 있다.황회장은 『일을 시켜보면 역시 한인들은 우수한 민족』이라면서 『한때 도시로 빠져나갔던 한인들이 다시 농촌으로 돌아오고 있어 기대가 크다』고 했다. 이러한 역유입은 나름의 배경이 있다.주 요인은 바로 언어문제.한인들 가운데는 소련시절 공용어인 러시아어는 하면서도 현지어인 우즈벡어는 제대로 구사할줄 모르는 이가 많다.그런데 올해부터 우즈벡정부가 우즈벡어를 공용어로 채택,우즈벡어를 모르면 공공기관 취업을 금지하는 정책을 펴고있기 때문이다.이에따라 대도시에서의 공공기관 취업이 힘들어진 것이다. 우즈베키스탄에 사는 한인들은 22만 2천여명.이중 8만 9천여명이 타슈켄트주에 살고 있다.타슈켄트주에 거주하는 한인들 가운데 60%가 농업에,나머지가 사무직에 종사하고 있었다.그러던 것이 최근들어 농업종사자수가 80%이상으로 다시 늘어났다.따라서 최근들어 한인들 사이에는 우즈벡어를 배우려는 노력이 한창이다.특히 40대이하 청년층가운데는 우즈벡어를 배우는 부담때문에 우리말을 배우지 못해 우리 말을 할줄 아는 교포가 전체의 3%도 안된다는 지적도 있다. ○유명 변호사도 배출 이런 어려운 여건속에서도 현지인들에게 본보기가 되는 한국인이 많다.김 블라디미르씨(62)도 그가운데 한사람이다.타슈켄트시에서 80㎞ 떨어진 타슈켄트주 아쿠르간 마을.마을 전부라야 2백50호정도밖에 되지않는 아담한 전원마을에 위치한 김씨의 주택에는 하루종일 이웃주민들의 발길이 북적거린다.취직문제에서부터 한인지위에 관한 문제에 이르기까지 교포「민원인」들의 발길이다.남의 집을 빈손으로 찾지못하는 한인들의 기질탓인지 이들은 과일을 담은 비닐백같은 선물꾸러미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교포들이 이처럼 그의 집을 찾는 것은 김씨부자가 우즈베키스탄 변호사동맹의 소문난 변호사이기 때문이다.아들 보로니야씨(38)도 변호사다.김씨는 다민족으로 이뤄진 타슈켄트사회에서 동포들의 억울한 일들을대변,사건해결사 혹은 인권변호사로 지내오기가 올해로 꼭 40년째다.그 역시 37년 극동의 연해주지역에 살다 삼촌과 함께 카자흐스탄땅에 버려졌다.아버지는 일본스파이라는 누명과 함께 시베리아로 끌려갔다.삼촌의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그는 7살때 우즈베키스탄의 한 고아원에 들어갔다.고아원을 전전하며 대학을 졸업한 해인 55년.시민권도 없던 그는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변호사자격을 따냈다. ○조선인 자치지역 건의 그는 지난 89년 고르바초프대통령때 『연해주를 조선인자치지역으로 돌려달라』는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이 문제는 당시 상무위원회에 보고돼 대통령에 직접 전달됐으나 고르비가 『기다려보라』는 답신을 한뒤 얼마되지 않아 실각해 문제제기에 그치기도 했다. 지난 90년때의 일.당시 우즈베키스탄인과 투르크메니스탄인사이에 종족갈등이 폭력사태에까지 이르자 우즈벡공화국정부는 「24시간안에 모든 소수민족은 우즈벡을 떠나라」는 포고령을 내렸다.투르크메니스탄인 등 다른 소수민족들은 대거 국경을 넘어갔다.하지만 한인들만은 모두 마을을 고스란히 지켰다.『연해주에 이어 또다시 조선사람들의 일터를 버리고 갈 수 없다』는 간곡한 그의 청원이 큰 작용을 했다는 후문이다. 비록 타슈켄트의 한인들이 언어에는 어려움을 겪고있지만 문화·풍습은 나름대로 보존해가고 있다.우즈벡인의 70%가 이슬람교도로 이슬람식 일상풍속의 영향이 강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 전통문화를 보존한다는 것은 1%의 한인소수민족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다.그런데도 이곳 한인들은 주로 「고려인문화센터」를 중심으로 문화·풍습을 보존해 나가고 있다.현재 우즈벡공화국내에 24곳의 한인문화센터가 있다.이곳에서는 우리말을 가르치거나 우리 전통예술보존을 위한 전시회활동 등도 벌이고 있다.한인들의 춤과 가락을 계승하고 있는 고려악단·청춘가무단·금붕어아동무용단·한인합창단 등 예술단체만도 20여개소나 된다.이곳 한인들의 최대 명절은 역시 추석.우즈벡인들이나 한인마을에 함께 사는 다른 소수민족들도 아예 이날을 자기들의 명절로 인식할 정도다. 황씨의 목화농장에 살고 있는 30대의한 교포주부는 『설날이나 명절때 한인들은 구역별로 모여 음식을 차리고 잔치를 벌인다』면서 『결혼식과 돌·환갑잔치도 빼놓을 수 없는 한인들의 유대의식의 장』이라고 했다.하지만 그녀는 명절에 한복을 입는 것,윷놀이 등은 잘 알지못한다고 했다. ◎라술로프 카리드라슬로비치 대통령 자문위원장/“한민족은 역사와 전통을 중시”/개인보다 남을 생각하는 지혜 돋보여 무려 1백40여민족이 살고 있는 우즈베키스탄에서 한인들은 정치·경제·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특출난 민족이라고 생각한다. 우즈베키스탄민족을 포함해 가장 훌륭한 민족이 한인이다.특유의 부지런함과 화합하며 사는 법,개인보다는 집단을 생각하며 사는 것이 지혜롭게 보인다. 한민족은 역사와 교육·전통을 중요시 여기는 민족이다.한인들은 특히 언어와 종교,기질 등이 틀리지만 다른 민족과 쉽게 잘 화합해왔다.소수민족가운데 우즈베키스탄어를 가장 잘 구사하는 민족도 한인들이다.소련에서 독립한 뒤 우즈베키스탄에는 명절이 많이 생기게 됐는데 한인의 추석명절을 다른 민족이 본받아 함께 쇠기도 한다. 한민족은 이곳에서 예술분야에서도 단연 다른 민족들을 압도한다.최근 타슈켄트에서 열린 우즈베키스탄 유명화가 초대전에 20명의 우즈베키스탄화가가 초대됐는데 놀랍게도 이 가운데 18명이 한인들이었다.우즈베키스탄이 독립된 뒤 각국에 파견하는 경제·문화사절단도 때때로 거의 한인으로 채워지기도 한다.그러한 한인들의 단점은 별로 없는 것 같다.
  • 꿈과 도전의 21세기… 50인을 주목하라(서울신문 50돌 특집)

    꿈과 도전의 시대인 21세기가 다가오고 있다. 21세기의 주역으로 기대되고 있는 각계의 유망주 50인을 서울신문이 뽑아 소개한다. ▷정계◁ ◎강삼재 민자당 사무총장 43세.부인과 1남1녀.경희대 총학생회장을 지냈고 신문기자를 거쳐 12대부터 내리 당선한 3선의원.문민개혁 완성을 위해 내년 총선에서 승리하고 97년 대선에서 민자당 정권을 재창출하겠다는 포부. ◎손학규 민자당 대변인 49세.부인과 2녀.서울대 정치학과를 나와 영국 옥스포드대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은 뒤 서강대교수를 지낸 초선의원.선진정치 문화를 이룩하고 통일을 준비하기 위한 첨병이 되는 것이 포부. ◎이인제 경기도지사 46세.부인과 2녀.서울대 법대를 나와 대전지법 판사를 지냈다.13·14대 재선의원을 거쳐 6·27 지방선거에서 경기도지사에 당선됐다.충실한 지방살림꾼으로 지방자치의 초석을 다지는 것이 포부. ◎강재섭 민자당 국회의원 48세.부인과 1남1녀.서울법대를 나와 서울고검 검사,청와대 비서관을 지낸 재선의원.만성적인 지역감정을 해소하고 법치가우선하는 정치문화 정착이 포부. ◎박종웅 민자당 국회의원 42세.부인과 1남1녀.서울대 법대를 나와 청와대 민정비서관을 지낸 초선의원.건전한 청소년문화 정착과 환경보존에 힘써 통일조국 기반조성에 기여하는 것이 포부. ◎이철 민주당 원내총무 47세.부인과 2녀.서울대 사회학과를 나와 3선개헌반대투쟁 전국학생대표를 지냈으며 민청학련사건으로 군사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던 3선의원.변화와 개혁으로 신뢰받는 정치인이 되겠다는 포부. ◎이석현 국민회의 국회의원 46세.미혼.서울법대를 나와 전국 카톨릭학생총연합회장과 평민당부대변인을 지낸 초선의원.계층,지역간 차별을 해소하는 조세제도로 경제정의를의 실현하고 정치권의 자정을 이루겟다는 것이 포부. ◎신계륜 국민회의 국회의원 41세.부인과 2남.고려대 법대 재학시 총학생회장을 맡았으며 전민련 민중1위원장을 지낸 초선의원.세대간,지역간,계층간 대립을 극복하는 「열린 정치」와 「통합정치」를 이루겠다는게 포부. ◎허대만 포항시의원 26세로 지방의회에 진출한 경북도 최연소의원.포항지방자치연구소의 정책실장을 맡아 지방의회발전방향 연구.포항 대동고와 서울대 정치학과 졸.경실련의 서울대 대표및 포항시 집행위원으로도 활동. ▷관계◁ ◎유재웅 공보처 방송행정과장 38세.고려대 신문방송학과졸.정부안에서 방송실무에 관한한 최고 전문가.지난해 지역민방 선정과 통합방송법 제정의 산파역을 했다.방송선진화에 미력이나마 다하겠다는 것이 포부. ◎김영목 경수로기획단국제협력부장 43세.서울대 불문과 졸.73년 외무부에 들어왔다.외시 10회.경수로 건설 사업과정에서 미국·북한과의 협상 업무를 맡고 있다.신포에 한국형 경수로를 완공하는 것이 가장 큰 희망사항. ◎조현 외무부 통상기구과장 38세.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57년부터 외무부에 몸을 담았다.외시 13회.WTO출범 과정에서부터 우리 통상외교를 맡고 있는 실무 주역.WTO에서의 영향력을 더욱 확대해나가는 것이 포부. ◎송영무 합동참모본부 해상작전과장 47세.부인과 2녀.대령·해사 27기로 해군작전사령부 작전기획과장과 해군본부 작전상황실장·호위함 함장등을지낸 작전통.통일 이후 영국이나 일본에 못지않은 해양국으로 발돋움하는 데 이바지 하는 것이 포부. ◎추경호 재정경제원 사무관 35세.고려대 경영학과 졸업.행시 25회.재정경제원 종합정책과에 근무.신경제5개년계획의 추진 및 각종 경제운용 계획 수립에 중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경제정의를 바탕으로 한 활력 넘치는 경제사회 실현이 꿈. ◎정승일 통상산업부 행정사무관 31세.서울대 경영대를 나와 미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행정학 석사학위를 받았다.행시 33회.통산부 미주통상과에서 근무하고 있다.자율화 시대에 부합되는 새로운 정책개발이 포부. ◎맹병렬 서울송파경찰서 수사과 27세.충남 천안출신으로 경찰대학 7기.법학은 물론 사격·운동 등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해 전교 5등으로 졸업.경찰의 위상을 높이고 국민과 가까운 조직으로 만들겠다는 차세대경찰의 기대주. ▷사회◁ ◎김진학 사회복지전문요원 37세.중앙대 사회개발대학원 사회복지학 석사.보건복지부 공채 1기.사회복지전문요원 동우회회장.현인원은 3천명.국민소득 1만달러시대에 걸맞는 사회복지수준을 일구겠다는 포부. ◎최예용 환경운동연합정책실장 30세.서울공대 산업공학과 졸.91년 페놀사건,지난해 낙동강 식수오염사태 조사활동.그린피스와 시베리아 산림과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핵발전소 답사.지방자치와 통일시대에 걸맞는 환경정책 개발과 시민운동이 꿈. ◎박찬운 변호사 35세.인권변호사.서울변협의 당직변호사제도 운영규칙 입안주도.대한변협 기획실장 및 성폭력상담소·소비자보호원 법률자문위원.「알기 쉬운 인권지침」 「국제인권원칙과 한국의 행형」등 저서 다수. ◎정유성 인간교육실현학부모연대 사무국장 39세.교육운동가·공동육아연구회운영위원·연세대강사·독일 뮌헨대학 교육학박사.학부모와 학생이 주도하는 민간교육운동을 이끌어갈 인물.학부모 프로그램인 「학부모 아카데미」 개설. ◎이정식 한국노총조사부장 35세.서울대 경제학과 졸.86년부터 노총 정책연구위원으로 활동.노동문제나 임금문제에 정통한 노동계의 이론통이자 행동가.학계·법조계·언론계를 망라한 21세기 노사관계연구회 주도. ◎최헌규JC대전지구회장 36세.한남대 지역개발대학원졸.7년째 청년운동을 이끌고 있다.변화와 개혁을 제시하며 지역감정을 없애고 국민대화합을 실천하는 데 앞장.지방의 청년활동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키는 것이 포부. ◎김경호 경실련 부정부패추진위간사 29세.91년 연세대 법학과 졸.시민의 민원과 고발,진정사항을 검토하고 정부기관에 제도개선을 요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경실련의 포괄적인 시민운동을 보다 전문화·구체화시키겠다는 포부. ▷학계◁ ◎성영철 포항공대 생명과학과 부교수 39세.분자생물학자.연세대 생화학과를 거쳐 미국 미네소타 대학에서 이학박사,하버드 의과대등에서 연구.만성 간질환의 주요원인인 C형 간염 유전자 백신 개발에 이어 에이즈 바이러스를 연구중. ◎최무영 서울대 물리학과 조교수 38세.한국 과학계의 자존심인 이론물리학 연구그룹을 형성하고 있는 소장 학자.서울대 물리학과를 나와 미국 스탠퍼드대학에서 박사학위,오하이오주립대에서 연구.인간 뇌의 물리학에 도전중. ◎이성환 고려대 전산학과 조교수 33세.인공지능 연구자.서울대 계산통계학과를 나와 한국과학기술원에서 공학박사.종이 위에 휘갈겨 쓴 글씨를 읽을수 있는 필기체 인식 컴퓨터 개발이 전공.사람 닮은 똑똑한 로봇을 만들겠다는게 꿈.▷경제계◁ ◎김병기 삼성전자 소프트웨어팀 과장 32세.서강대 전자계산학과 졸.85년 입사, 이후 소프트웨어 개발과 신규 프로젝트 기획 등을 맡아왔다.유망 분야중 하나로 꼽히는 멀티미디어 CD롬 타이틀을 기획,제작하고 있다. ◎차인규 현대자동차 연구개발팀 과장 36세.성균관대 기계공학과 졸.베스트셀러카인 쏘나타Ⅱ의 외장 부품을 설계했고 엘란트라 프로젝트를 관리.벤츠와 도요타 등 유명한 자동차 업체의 엔지니어를 능가하는 것이 꿈. 나인용 기아자동차 디자이너 33세.홍익대 대학원 제품디자인과 졸업.크레도스와 프레지오 디자인을 맡았다.앞으로는 강한 개성을 추구하는 스포츠 쿠페의 디자인을 맡고싶어 한다.교통난을 해결할 차세대 교통기기 개발의 꿈. ◎김석규 한국투자신탁 펀드매니저 35세.서울대 국제경제학과 및 동 대학원 졸.미국 오리건주립대 경영학석사.13개 펀드 운용.연간 운용 총자산규모 3천8백억원으로 국내 펀드매니저중 최상급.국제적 펀드매니저로 이 분야의 명저서를 남기는 것이 꿈. ◎김두별 대우 기계부품부 사원 26세.고려대 경제학과 졸.21세기 무역거래의 새로운 패턴으로 자리잡을 3국간 거래 전문가로 활약 중.3국간 거래가 활발한 중동지역을 집중 연구,중동 전문가로 활약이 기대됨. ◎전진한 포항제철 기획조정실 26세.한양대 정외과 졸.포철의 심장부 투자기획파트에서 활약.사내 어학연수에서 1위를 차지하는 등 어학에 발군의 실력.포철의 해외영업파트에서 전문가로 성장하는 것이 희망. ◎조윤제 한국과학기술원선임연구원 31세. 암 정복에 도전하고 있는 구조생물학자. 서울대 식품공학과 졸. 코넬대에서 박사학위. 30세때 코넬대 의대 부속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암센터에서 쓴 논문이 세계적인 과학잡지인 「사이언스」지에 표지에 소개. ◎최흥섭 대한항공 선임연구원 33세.연세대 대학원 기계공학과 졸·공학박사.항공기의 중요부품을 가볍고 강한 복합재료로 바꾸는 세계적인 추세에맞춰 이 분야의 기술개발을 하고 있다.국산 항공기가 세계 하늘을 누비는 것이 희망. ◎이지희 오리콤크리에이티브 디렉터 34세.84년 한양대 신방과를 졸.(주)오리콤 입사.중앙일보 광고상 공모부분 대상,한국일보 신인부 대상 수상(84년).오리콤의 유일한 여성 CD.기억에 남을 좋은 광고를 만드는 게 꿈. ◎오충렬 외환은 외화자금부대리 33세.연세대 경영학과 졸.88년 외환은행에 입행,2년8개월동안 일선 은행업무를 익힌후 4년2개월동안 외환딜러로 근무.3개월간 미국 시카고 금융선물중개회사에서 연수.한국 제1의 데리버티브(파생금융상품)딜러가 꿈. ▷문화예술◁ ◎이병헌 연기자 25세.한양대 불문과졸.91년 KBS 탤런트 14기로 데뷔.드라마 「사랑의 향기」 「아스팔트의 사나이」 「해뜰 날」등에 출연.신선한 감각에 연기력도 우수하다는 평.차세대스타로 가장 유망. ◎신경숙 소설가 32세.85년 「문예중앙」신인문학상 당선으로 작품활동 시작.소설집 「겨울우화」 「풍금이 있던 자리」,장편소설 「깊은 슬픔」 「외딴방」 출간.삶의 속내를 들추는 우수젖은 문체의 미학 보여줌. ◎이미경 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 45세.이화여대 영문과와 대학원 정외과를 나왔다.87년 여성단체연합 태동때부터 살림을 도맡아왔다.가정·일터에서의 불평등을 제도적으로 해결,여성도 당당히 주체가 되는 사회를 일구겠다고. ◎최용훈 극단 「작은 신화」대표 32세.서강대 철학과를 나온 연극연출가.「황구도」 「매직 아이스크림」 「쿠데타」등 연출.창작극 활성화와 신인작가 발굴을 위한 「우리연극만들기」운동주도.우리연극의 모델을 정립하는 게 꿈. ◎조덕현 서양화가 38세.서울대 회화과와 대학원 서양화과졸.이화대 미대 교수.대한민국미술대전 특선(89년)·동아미술전 대상(90)을 수상.90년대 이후 미국화단에서 활발하게 작품을 발표,국제무대에 알려진 젊은 작가. ◎백혜선 피아니스트 30세.예원중 재학중 도미,뉴잉글랜드 콘서바토리 아티스트 디플롬과정 졸업.94년 차이코프스키국제콩쿠르 피아노부문에서 1위 없는 3위로 입상,올해 서울대 교수로 발탁.국내 음악계의 기대주. ◎박호빈 무용가 29세.서울예술전문대학을 졸업하고 중요무형문화재 제17호 봉산탈춤을 전수받았다.94년 젊은 무용가을 대상으로 하는 「신세대 신작무대」대회에서 현대무용부분에서 대상을 받았다. ◎박은주 김영사대표 38세.미혼.이화여대 수학과를 나와 83년 김영사에 입사.편집장 때 뛰어난 기획능력을 보여 베스트셀러를 많이 냄.89년 출판사 대표취임.전문지식의 대중화,대중의 고급화를 이루는 게 꿈. ◎이광모 영화사 「백두대간」대표 34세.고려대 영문과를 졸업한 뒤 미 UCLA에서 영화연출 전공.한국 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객원교수로 재직.예술영화 보기운동을 통해 상업영화에 물든 우리 영상문화를 바로잡는 것이 포부. ▷체육계◁ ◎현주엽 고려대 농구선수 20살.키 195㎝와 체중 103㎏.고무공같은 탄력을 바탕으로 한 몸싸움,호쾌한 덩크슛에 경기의 흐름을 읽는 감각까지 탁월.지난 5월 「청소년 월드올스타」로 뽑혔다.세계적인 농구지도자가 되는게 꿈. ◎박세리 공주금성여고 골프선수 18살.여자 프로골프계 「천하통일」을 노리는 신예.올시즌 아마추어 3개대회와 프로대회 4개대회 우승.1라운드 평균타수 71·1타.내년 2월 여고 졸업과 함께 프로 진출을 결심,삼성물산과 후원계약을 맺었다. ◎전미라 군산 영광여고 테니스선수 17살.94년 윔블던 주니어테니스대회에서 「황색돌풍」을 일으키며 준우승한 「무서운 샛별」.내년 여고를 졸업하고 현대해상 테니스팀에 입단 예정.세계 50위권내에 진입하겠다는 야심에 차있다. ◎주형광 프로야구 롯데 투수 19살.프로 최연소 완봉 및 완투 신기록을 보유한 고졸 2년생.배짱과 마운드 운용이 뛰어난 10대 투수 가운데 선두주자.한·일 슈퍼게임에 최연소 대표로 선발됐다.최고 왼손투수가 되는 게 꿈. ◎이경출 상무 양궁선수 25살.경남 복산국교 4학년 때 처음으로 양궁과 인연을 맺은 뒤 15년째인 올해 세계선수권 2관왕에 오른 늦깎이 남자 양궁 희망주.승부욕이 뛰어나다.세계적인 지도자가 되는 게 꿈.
  • 평화집회장 덮친 3발의 총성/라빈 암살 이모저모

    ◎이 경찰 “범인 라빈·페레스 모두 쏘려했다”/레바논 회교게릴라들 총쏘며 축제 벌여 ○…이츠하크 라빈 총리가 3발의 총성과 함께 저격당하는 순간 집회행사장인 「이스라엘의 왕」광장은 혼돈의 아수라장으로 돌변했다.4일 하오 10시쯤 이곳에서 평화협상 지지집회를 마치고 대기중인 그의 전용 리무진에 막 타려할때 잇따라 총성이 울려퍼졌다.라빈은 복부를 움켜잡고 그대로 앞으로 쓰러졌고 경호원들은 그를 차안으로 재빨리 밀어넣었다.라빈의 전용차는 쏜살같이 이칠로프 병원으로 질주했으며 집회장에 남아있던 수천명의 군중은 공포와 경악속에 총성이 난 곳으로 몰려갔다. ○…병원에 실려온 지 1시간쯤 지난 후 라빈의 사망소식이 발표되자 병원문밖에 서 있던 젊은 여성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으며 일부는 서로 껴안고 눈물을 흘리기도. 그러나 극우파의 젊은 청년 수명은 병원 문밖에서 『라빈은 살인자』라고 외치며 반라빈 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의해 쫓겨 나기도. ○…라빈을 태운 차가 병원으로 떠난 직후 푸른 셔츠 차림의 범인이 정복경찰관들에게 붙잡혀 인근 쇼핑센터 벽면에 밀어붙여진 뒤 경찰차에 태워졌다.이갈 아미르로 알려진 이 남자는 경찰에게 자신이 단독범이며 냉정하게 범행을 계획했다고 진술.범인은 라빈에게 3발을 쏘고 난 뒤 경호원들이 달려들자 또 다시 2발을 발사해 경호원 한 명을 쓰러뜨리기도.목격자들은 그가 정확하게 라빈을 향해 총을 조준했다고 전언.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총리를 암살한 이갈 이마르(25)는 시몬 페레스 외무장관이 라빈 총리와 함께 텔아비브에서 열린 평화집회장을 떠났더라면 두사람 모두를 암살하려했다고 모세 샤할 경찰청장관이 5일 밝혔다. 샤할 장관은 이날 노동당 간부들에게 이마르에 대한 신문결과를 토대로 『만약 라빈 총리와 페레스 장관이 함께 행사장을 떠났다면 암살자는 둘 모두에게 총을 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라빈 총리와 페레스 장관 모두를 쏘려했다고 말했다.그는 사태가 「악화」되는 것을 중단시키기 위해 범행했으며 라빈 총리 정부가 하는 일은 또 다른 속죄의 날을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샤할 장관은 설명. ○“신은 위대하다” 외쳐 ○…팔레스타인과 회교계 레바논 게릴라들은 4일 밤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 암살소식이 전해진 직후 공중으로 총을 쏘면서 축제를 벌였다고 소식통들이 전했다. 한 소식통은 베이루트와 시돈 등 대도시에서 요란한 공포탄 총성이 들렸다고 말했다.특히 반이스라엘 헤즈볼라 단체의 본거지인 베이루트의 남부 외곽에서는 대공포에서 발사된 것으로 보이는 총탄 불빛이 밤하늘을 수놓았다고 .베이루트의 헤즈볼라 그룹 대변인은 『사람들은 자동차의 경적을 울리며 시내를 돌아 다녔으며 「알라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를 외쳤다』고 전했다. ○…요르단강 서안지역을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넘겨주는데 반대하는 한 유태인 율법사(랍비)는 한달 전 천사들에게 이번 주에 라빈을 죽이도록 호소하는 저주를 퍼부었다고 예루살렘 리포트지가 사건 발생 전에 보도. 이 잡지는 반아랍단체 「카치」의 운동원인 예루살렘의 한 랍비가 유태교 최대의 명절인 「욤 키푸르」(속죄일) 전날 라빈의 집 바깥에서 그의 이단적인 정책에 반대해 「불의 채찍」을 내려 주도록 저주했다고 밝혔다. 이 랍비는 이같은 저주가 보통 30일내에 효력을 발휘한다고 장담했었다고. ○장례 6일 예루살렘서 ○…라빈 총리의 장례식은 6일 하오(현지시간) 치러질 것이라고 이스라엘 군방송이 4일 보도.이 방송은 유태 풍습으로는 사망 하루만에 장례를 치르도록 되어 있으나 외국 지도자들이 장례식에 참석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장례식을 하루 더 연장,2일장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장례식에는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후세인 요르단 국왕등 각국의 정상들이 참석할 예정. ○5∼6일 국민애도일로 ○…이스라엘은 5일과 6일 이틀간을 고(고)이츠하크 라빈 총리의 국민애도일로 선포했다. 이스라엘은 이에따라 라빈 총리의 장례식이 거행되는 6일 하오2시(현지시간)를 기해 전국적으로 2분간 애도 사이렌을 울리며 이때 전국민은 모두 일어서 애도묵념을 하게된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모든 정부기관에는 반기를 게양하고 유흥업소가 문을 닫으며 전국의 각급학교도 하룻동안 임시 휴업한다고 이스라엘방송은 보도했다. ◎범인 아미르/바르일라대서 법학전공하는 「에얄」 단원/라빈총리 암살계획 두번실패 끝에 범행 라빈총리 암살 혐의로 체포된 이갈 아미르(27)는 텔아비브의 바르 일란대학에서 법학과 정보기술을 전공하고 있는 유태인 청년.성경 필경사인 아버지와 유아원 보모인 어머니의 8남매중 두번째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평화협정에 반대하는 우익들의 거점으로 유명한 바르 일란대학에 입학한 아미르는 곧바로 극우단체의 하나인 「에얄」(EYAL·유태인투쟁기구)에 들어가 서안지구 헤브론의 유태인 정착촌 건설을 조직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폈다.아미르가 라빈암살을 계획한 것은 이번에 세번째.이스라엘인 22명을 숨지게한 지하드 자살폭탄테러사건 1주년 기념식이 열린 지난 1월22일에 처음 라빈을 살해하려 했고 또 몇주전 텔아비브 고속도로 인터체인지 개통식 때도 마찬가지였다.두번 모두 기념행사가 열리기 직전,경찰의 삼엄한 경비망때문에 계획을 포기했었다. 그러나 이날만큼은 반드시 성공하리라 다짐했던 아미르는일찌감치 행사장에 들어가 연단과 가까운 시청 발코니 부근에 앉아 있다가 라빈이 발코니에서 내려와 승용차에 타려는 순간 권총 3발을 발사했다.
  • 일본에선…/민단과 조총련(한국속의 일본,일본속의 한국:5)

    ◎“흔들리는 조총련”… 이탈자 해마다 급증/사회주의 붕괴·김정일 체제 불안감 큰 몫/이탈 「제3세력」 포용하는 민단노력 절실/남북화해 물결따라 두 단체 교류 조짐도 재일동포 2세 전월선(36·여)씨는 일본에서 화려한 각광을 받고 있는 오페라 가수다.그녀는 지난해 비제의 「카르멘」으로 한국무대에도 데뷰했다.그러나 전씨의 화려한 무대 뒤에는 둘로 갈라진 재일동포 사회가 안고 있는 분단의 아픔이 짙게 깔려 있다. 청중들의 열광적 박수소리를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그녀는 남·북으로 국적이 갈린 가족과 만나야 한다.그녀의 가족은 일본사회의 민족차별과 함께 또 하나의 비극인 민족분단의 비극 속에 살아가고 있다.전씨의 국적은 처음에는 조선(북한)이었다.그러나 지난 93년 한국으로 바꾸었다.그녀의 아버지도 한국 국적이다.그러나 어머니와 동생들의 국적은 조선이다.한 가정에서 조차 국적이 남·북으로 갈라져 있다. 재일동포 사회는 그녀의 가족과 같이 재일본 대한민국민단과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로 나누어져 있다.민단자료에 따르면 현재 68여만명의 재일동포중 민단계는 49만여명,조총련계는 18만여명으로 나타나 있다.그러나 조총련계가 24만여명이라고 추산하는 사람들도 있다. 재일동포사회는 당초 1945년10월 「조선인연맹」이라는 하나의 단체로 출발했다.그러나 1946년 「조선건국촉진 청년동맹」과 「신조선건설동맹」을 비롯 20여개의 산하단체가 공산주의자에 의해 독점됐던 조선인연맹을 탈퇴,새로운 단체를 구성함으로써 둘로 나뉘었다.냉전의 이데올로기 대립이 재일동포 사회도 이처럼 둘로 갈라놓았으며 오늘도 그러한 대립과 갈등은 청산되지 못하고 있다. 민단은 초창기 재일동포에 대한 세금투쟁,외국인등록령 반대투쟁 등을 시작으로 재일동포의 권익옹호와 민생안정를 위한 여러가지 민족차별 철폐 투쟁을 해왔다.83년에는 지문날인제도 철폐를 위해 1백80여만명의 서명을 받았으며 64년 도쿄올림픽과 88년 서울올림픽 때는 한국선수단을 지원했다. 민단은 75년7월 조총련계 동포들의 모국방문을 위한 성묘단 사업을 추진,많은 호응을 받았다.성묘단 사업을 계기로 조총련중 민단으로 전환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며 당초 조총련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인구 비율이 역전됐다. 그러나 민단은 고질적 파벌싸움과 재일동포에 대한 권위주의적 태도 등으로 적지 않은 비난을 받고 있다.이름을 밝히기 거부한 한 재일동포는 민단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아주 싫어한다』고 잘라말했다.그는 『민단은 단비만 받고 재일동포를 위해 하는 일도 별로 없으며 지나치게 권위주위적』이라고 혹평했다.민단 관계자들도 민단에 대한 무관심과 비난을 어느정도 인정하고 있다.신용상 단장은 『봉사하는 민단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재일동포사회의 또하나의 세력인 조총련은 더욱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냉전 종식과 사회주의 붕괴와 함께 북한에 대한 실상이 알려지며 이탈하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져 조총련은 지금 크게 흔들리고 있다. 조선학교 교장과 조총련의 주요 직책을 맡았던 박로호 모국방문추진도쿄위원회 부위원장(70)은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에 대하여」라는 책을 통해 사회주의의 모순을 깨달은 후 조총련에 대한 깊은 회의를 가졌었다』고 말한다.그후 조총련을 탈퇴한 박부위원장은 『조총련의 중요한 지지 기반인 지식인들의 갈등이 특히 심각하다』고 지적한다. 북한의 경제 지원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조총련계 상공인들도 많은 지원에도 불구하고 북한 경제가 날로 악화되는데 실망,크게 흔들리고 있다.지난해에는 조선상공연합회 부회장을 비롯 조총련계 상공인 1백40여명이 집단 탈퇴하기도 했다. 조총련은 한덕수의장이 88세의 고령에다 병을 앓고 있어 허종만 책임부의장 체제로 전환하려 하고 있으나 이에 대한 반발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북한도 외화공급원인 조총련을 끌어안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김정일에 대한 인식이 김일성과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 외교관은 말한다. 조총련은 사실 당초 민단보다 지식인이 많았고 잘 조직됐었으며 지금도 경조사와 경제 문제 해결 등을 적극 지원하는 등 강한 조직관리를 하고 있다.그러나 사회주의 몰락이라는 시대의 큰 흐름과 북한의 모순과 어려운 실상을 깨달은 많은 사람들은 조총련을 떠나고 있다.최근에는 매년 5천∼6천여명이 탈퇴했으며 지난해 이탈자는 6천2백여명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조총련을 떠난다고 해서 그들이 민단에 가입하는 것은 아니다.대부분이 민단에도 가입하지 않고 있다.조총련도 민단도 아닌 「제3의 세력」이 늘어나는 것이 오늘의 재일동포 사회 현실이다.그런 가운데 민단과 조총련의 화해 움직임과 교류도 조금씩 많아지고 있다.하지만 본격적인 화해는 아직은 미래의 일로 남아 있다.세계적 이념의 대결 시대가 막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민족 내의 이념적 대립은 한반도 뿐아니라 이국땅에서도 아직 끝나지 않고 있다. ◎인터뷰/민단 중앙본부 신용상 단장/재일동포 권익보호·생활안정에 최선/“참정권 획득,민족차별 철폐 앞장/권위주의 탈피 봉사단체로 일신” 재일본 대한민국민단 중앙본부의 신용상단장은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민단은 앞으로도 재일동포들의 권익보호와 안정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하며 『지금의 최대 현안은 재일동포들의 지방참정권 획득』이라고 말했다. 세금은 같이 내면서도 재일동포라는 이유로 지방자치단체에서조차 참정권이 인정되지 않는 것은 반드시 바뀌어야 합니다.참정권문제 등 민족차별철폐와 함께 재일동포들의 인식도 이제는 일본 영주로 정착되고 있으며 민단도 이러한 흐름을 반영,지난해 4월 당초 이름에서 임시로 머문다는 의미의 「거류」라는 말을 빼고 재일본 대한민국민단이라고 바꾸었습니다. 재일동포들의 의식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민단에 대한 관심도 줄어들고 있어 우려됩니다.조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민단에 계속 관심을 갖고 있으나 민단에 신세질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한신(판신) 대지진때의 위로금 분배를 민단에서 맡아 했듯이 재일동포를 위해서는 조직이 반드시 필요합니다.민단은 일본정부에 대해서도 중요한 압력단체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그러나 민단은 권위주의적이라는 비난을 겸허하게 반성하고 봉사하는 단체의 역할을 해야 하며 그러한 방향으로 나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파벌의 알력과 후계자문제,계속 늘어나는 귀화현상 등 많은 어려운 점이 있지만 결코 비관하지는 않습니다.한국정부도 재일동포들이 한국에서도 사업을 하거나 불편없이 생활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북한 공산정권 수립(새로쓰는 한국 현대사:26)

    ◎대의원 선거 흑백함 놓고 전형적 공개 투표/북노당 출신 당권장악 하자 남노당측 불만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출범하자 38이북의 공산주의자들도 자체 정권 수립을 서두른다.단독정부 반대,통일정부 수립이란 명분을 내세워 유엔한국임시위원단 입북과 5·10총선거를 거부했던 그들로서는 자체 정부 수립을 더이상 늦출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정권수립을 일찍부터 준비해온 만큼 막상 그 과정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7월달 초에 이미 결정 1948년 8월25일 북한 전역에서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가 실시되었다.이 날짜는 7월9·10일 열린 북조선 인민회의 제5차 회의에서 이미 결정난 것이었다.8·25선거는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방식으로 진행되었다.먼저 「친일분자 제외」라는 명목아래 반대세력의 선거권·피선거권을 빼앗아버렸다.또 인구 5만명에 하나꼴인 2백12개 선거구의 출마자를 미리 지정하고 이에 대해 찬반을 묻는 흑백함선거를 실시했다.흑백함선거란 투표장에 흑백 2개의 투표함을 설치해 찬성자는 흰 함에,반대는 검은 함에용지를 넣는 전형적인 공개투표 방식이다.더욱이 주민들을 직장·마을별로 집단 동원한데다 병자·노약자에게는 투표함을 들고 찾아가 투표를 시켰다.말하자면 투표를 하지 않을 자유마저도 박탈한 비민주적인 선거였다.따라서 유권자 4백52만6천65명 가운데 99.97%인 4백52만4천9백42명이 참가해,98.49%가 찬성표를 던진 어처구니 없는 결과가 나왔다. 어쨌든 2백12명의 대의원이 선출됐고 여기에 해주 인민대표자회의에서 미리 뽑은 남쪽의 대의원 3백60명을 합쳐 제1기 최고인민회의가 구성됐다.「해주회의」는 북한정권이 남한 주민의 의사까지 모두 수렴했다는 주장을 내세우기 위해 마련한 행사였다.48년 7월 남한 각지에서는 인민 대표를 뽑는다는 지하선거가 남로당 주도로 실시됐다.여기서 선정된 대표들은 해주에서 8월21일 대회를 열어 최고인민회의 남쪽 대의원을 선출했던 것이다. 9월2일 최고인민회의가 개막돼 의장에 허헌 남로당 위원장,부의장에 김달현(천도교청우당 위원장)과 이영(근로인민당 부위원장)을 각각 선출했다.둘째날에는 대의원 5백72명에 대한 자격심사 결과를 발표했다.대의원 가운데 여자는 69명으로 12.1%이고,연령은 30∼40대가 2백32명으로 가장 많았다.성분별로는 농민(34%),사무원(26.7%),노동자(20.9%)순이었으며 특이하게도 전지주가 1명 있었다. ○각본대로 선거 연출 한편 해주 인민대표자회의와 8.25선거를 각본대로 연출하며 순조로운 출발을 보인 북한정권 수립 작업은 그러나 곧 암초에 부딪힌다.내각 구성을 놓고 북로당과 남로당 사이에 권력투쟁이 시작된 것이다.남쪽에서도 내각이 구성된 뒤 불만을 품은 한민당이 야당으로 돌아선 일이 있지만 북쪽 사정은 훨씬 심각했다.내각의 주도권을 잡는 것이 바로 정권장악과 직결되었기 때문이다. 공산주의자들은 연일 회의를 열어 내각 구성을 논의했다.먼저 각 성의 상(장관)을 어떤 비율로 나누느냐를 놓고 격론이 벌어졌다.남로당은 대의원 숫자를 감안,남북이 6대 4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결국 남북이 절반인 10명씩 맡기로 결정했다.그러나 실제 남로당과 북로당이 차지한 자릿수는 크게 차이가 났다.북쪽을 완전 장악한 북로당은 지분 가운데 9석을 가졌지만 남로당은 남쪽지분 중 5석을 확보하는데 그쳤다.나머지 5석은 기타 정당들이 나눠가졌다.내각 구성에서 북로당은 남로당을 압도한 셈이다. 비율이 정해진 뒤 구체적인 인선에 들어가자 갈등은 증폭됐다.내각 수상은 소련에서 점지한 김일성으로 이미 정해졌고 부수상 3명도 남의 박헌영과 홍명희,북의 김책 등으로 쉽게 결정됐다. 정작 문제가 된 자리는 사법상이었다.남로당은 최용달을 사법상으로 추천했다 북로당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히자 다시 이승엽을 내세웠다.이에 대해 북로당은 『이승엽이 남쪽에서 할 일이 많으므로 무임소상이 알맞다』고 주장했고 남로당은 『그가 남로당 현지 지도부를 맡았던 지도자이므로 권위있는 자리를 줘야 한다』고 맞섰다. 외무상 자리도 논란의 대상이 됐다.북로당은 주영하를,남로당은 북조선인민위원회 외무국장을 지낸 남한출신 이강국을 각각 추천했다.양쪽은 외무상이 남쪽 지분임을 인정,부수상 박헌영이 겸직한다는 선에서 타협했다.주영하는 교통상으로 자리를 바꿨고 신진당 출신 이용이 도시경영상으로 결정됐다.내각 구성 논의는 「인민공화국」선포 하루전까지 계속됐고 몇몇 자리는 김일성에게 인선을 위임했다.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에는 김두봉이 내정됐다. ○주로 연안파가 득세 북한 공산정권의 첫 내각과 주요 직책 명단은 다음과 같다.(★표는 남쪽 출신) ▲수상 김일성 ▲부수상 박헌영(★) 홍명희(★) 김책 ▲국가계획위원장 정준택▲민족보위상 최용건▲국가검열상 김원봉(★) ▲내무상 박일우 ▲외무상 박헌영(★) ▲산업상 김책 ▲농림상 박문규(★) ▲상업상 장시우 ▲교통상 주영하 ▲재정상 최창익 ▲교육상 백남운(★) ▲체신상 김정주 ▲사법상 이승엽(★) ▲문화선전상 허정숙 ▲노동상 허성택(★) ▲보건상 이병남(★) ▲도시경영상 이용(★) ▲무임소상 이극로(★) ▲최고재판소장 김익선 ▲최고검찰소장 장해우 ▲법제위원회 위원장 허헌(★). 내각이 구성되자 남로당은 큰 불만을 품게 된다.숫적으로도 열세인데다 비교적 힘있는 자리들을 대부분 빼앗겼기 때문이다.특히 연안파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비롯,내무·재정·문화선전상 등을 거머쥔 것에도 못미친다고 판단했다.이같은 불만은 정권 수립후 여러 형태로 노출됐고 드디어는 김일성과 박헌영 간의 전면전으로 확대돼 남로당파의 몰락을 불러오게 된다. 9월8일 최고인민회의 5일째 회의에서는 「인민공화국」헌법을 승인하고 즉시 「전조선 지역에서 인공헌법을 실시한다」고 공표했다.이어 ▲그동안 북한을 통치해온 북조선인민위원회의 정권이양 선언 ▲최고인민위원회의를 이끌 상임위원회 위원장 및 위원 선출 ▲새 수상에 김일성 선출 및 조각 위임등 각종 요식절차를 끝냈다. 1948년 9월9일 상오 10시.평양 모란봉극장에서는 최고인민회의 6일째 회의가 열렸다.김일성이 등단해 조각 결과를 발표하자 대의원들은 박수로 승인했다.김일성은 곧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수립을 정식 선포했으며 그 자리에 모인 남북의 공산주의자들은 열렬히 환호했다.일제로부터 벗어난지 3년,남쪽에서 대한민국이 출범한지 25일만에 북쪽에는 공산주의자들이 세운 별도의 정권이 들어선 것이다.◎노동당중앙위 출당 결정서/반대세력은 현 일·반동지주로 몰아 숙청/당 추천 국비생 부친 경력까지 면밀 분석/「반공」 혐의 드러나면 “파렴치범” 추가시켜 북한 공산주의자들은 광복과 함께 38이북 지역을 장악하면서 정치적 반대세력들을 친일분자니 반동지주니 갖은 구실을 붙여 무자비하게 숙청했다.따라서 1948년 8월25일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를 할 당시 이렇다 할 반대파는 북한에 존재할 수 없었다.설사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사람일지라도 그 마음을 드러낼 수 없는 분위기였다.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이 워싱턴 미국국립공문서보존관리국(NARA)에서 찾아낸 한장의 출당 결정서는 당시 실정을 실감나게 보여준다.「19 47년 10월29일 북조선노동당 중앙검열위원회 상무위원회」명의로 작성되고 「절대비밀」 도장이 찍힌 이 결정서는 한재련(당시 25세)이라는 청년당원을 쫓아내는 이유를 밝혔다. 한재련은 당시 25세로 김일성대학 역사문학부 철학과 1학년이었다.당의 추천을 받은 국비생이었고 민청 중앙위원,당세포책임자를 맡은 촉망받는 공산주의자였다.그런 그가 쫓겨난 이유는 간단하다.출신성분이 나쁘다는 것이다. 결정서는 먼저 한경련이 ▲해방후 한달동안 신민당에 몸담은 적이 있으며 ▲부친이 일제 때 10년동안 형사로 활동했음을 지적했다.결국 공산주의에 반대한 신민당 입당 경력이나 친일파의 아들이라는 성분을 뒤늦게 알게 돼 쫓아낸다는 뜻이다. 결정서는 이와 함께 「학습에 태만하고 음주 방탕하였으며」,「학교 공금 1천5백원을 횡령했다」는 등의 이유도 덧붙였지만 이는 한경련을 파렴치범으로 몰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출신성분이 좋지 않으면서도 국비생에 당의 중책까지 맡은 사람이라면 개인적인 약점을 잡히지 않으려고 더욱 노력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경련은 유명한 인물이 아니어서 출당후 그가 어떻게 살아갔는지 알 길은 없다.다만 해방이후 6·25전쟁 때까지 수백만의 북한 동포가 공산정권을 피해 남쪽으로 내려왔듯이 그도 어느땐가 위험을 무릅쓰고 38선을 넘어 대한민국 땅에 정착했을 것으로 짐작될 뿐이다. □특별취재반 황규호 문화부 부국장급 이용원〃 기자 김성호 〃 〃 김경운 조사부 〃
  • 광양시/여야 문중대결에 무소속 낀 3색전(기초장 격전지)

    전남에서 민주당의 아성을 뚫고 민자당이 승리를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지역이다.제철공화국(유권자 1만1천7백37명)·컨테이너 부두건설 등 상대적으로 혜택을 받은 태인·황금동을 비롯한 신시가지 6개동 유권자(제철포함 3만6천5백67명)들 덕택에 전남도 의원 72명 중 유일하게 민자당이 이 곳에서 한 석을 건졌다. 민자당은 김보현 전 농림수산부 장관과 같은 집안인 김영일씨(51·전 농수산부 사무관)를 후보로 내세웠다. 순천고와 한양대를 나와 농림수산부에서 18년을 근무한 농어촌 전문가다. 광양지구당 부위원장,이 지역 순천중·고 동문회 부회장,미래연구소 이사 등 직·간접으로 인연을 맺은 6개 단체를 바탕으로 표밭을 일구고 있다. 안정과 균형이 조화된 도·농간 발전을 위해 2차 산업의 부가가치를 농촌으로 되돌린다는 공약으로 최근 민주당의 공천 과정에서 빚어진 내분과 돈봉투 사건 등을 꼬집으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민주당의 후보는 김 전 장관의 친동생으로 공직 30여년의 행정관료인 김옥현씨(61·전 정책보좌관)다.여·야의 문중대결인 셈이다. 고려대를 졸업,고흥·화순·나주의 군수와 도 농어촌개발국장 등을 거쳤다. 오는 2010년 10선석 완공으로 전국 1위로 발돋움할 컨테이너 부두의 조기 완공 및 제철 관련 2차 산업을 유치,산업도시의 면모를 갖춘다는 청사진을 내걸었다. 무소속 박양표씨(56·전 광양읍장)는 다압·진상면 등 7개 읍·면에서 9년,8년6개월 동안 광양읍장을 지내며 맺은 인맥을 바탕으로 승리를 장담하고 있다.광양읍에서 태어나 순천고를 나온 토박이로 신시가지 출신인 양 당 후보가 가문대결을 벌이는 점을 이용,소외감을 느끼는 광양읍 유권자(4만6천4백89명)들의 자존심을 부추기며 어부지리를 노리고 있다. ◎고흥군/민주·무소속 접전속 맹추격 인구 13만으로 도내에서 군세가 가장 크다.전체 유권자(8만2천4백3명)의 절반을 차지하는 대표적 성씨인 신·송·유씨 문중에서 무소속과 민주당으로 출사표를 던져,정책보다는 종중의 대결로 치달을 전망이다. 민주당 후보로 유력시되던 신강식씨(53·도의원)가 의외로 밀려난 뒤 무소속 출마를 선언,민주당 유상철씨(60·정책보좌관)와의 2파전으로 압축된 상태.뒤늦게 민자당 김원석씨(61·전 마포경찰서장)가 추격하고 있다. 민자당의 김씨는 영남면이 고향으로 점암동·남양국교를 거쳐 조대부중·고와 조대 법정대를 졸업,지난 60년 국무원 사무처 공채1기(4급)로 공직에 발을 디딘 뒤 치안본부 종합상황실장·전북도경 경비과장과 이리·용인·마포서장(89년) 등을 거쳤다. 저서인 「복종과 거역」에서 명령을 따라야 하는 경찰관임에도 부당함에 항거했던 「용기」를 강조하며 참된 일꾼을 가려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민주당의 유씨는 전남대 법대와 서울대 행정대학원을 마치고 지난 61년 문교부에서 공직을 시작,농수산부와 산림청을 거쳤다.77년 전남 민방위국장을 맡은 뒤 고흥군수와 여천시장 등 30여년의 행정경험을 쌓았다. 조직과 능력을 겸비한 인물이 고향발전의 적격자라며 전통적으로 야당세가 강한 당조직과 고흥 유씨의 몰표를 기대하고 있다. 무소속의 신씨는 고흥 동국교·서중·광주고와 건대 법경대를 마치고 고향에 정착,연간 15억원대의 소득원인 축산업을 일으킨 경력으로,고향을 지킨 사람이 제대로 일할 수 있다고 내세우고 있다. 가문표 외에 신형식 전 건설부장관(작고)의 친동생이라는 사실과 청년회장·새마을금고 이사·민주지구당 부위원장을 거쳐 후반기 도의회 운영위원장 등 탄탄한 지역기반이 최대 강점이다.
  • 시라크 대통령 되던날/“「의회와 밀월」얼마 못 갈것”불 언론

    ◎미와 긴밀한 협력 기대/클린턴/“독과 현안 해결 공조를”콜 총리 7일 실시된 대통령선거 2차결선투표에서 자크 시라크 파리시장(63)의 당선이 확정되자 파리 중앙의 콩코드광장에 모여 있던 수천여명의 지지자는 샴페인을 터뜨리고 『우리는 승리했다』 『사회주의이념 14년은 끝났다』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축제분위기에 빠져들었다. 이중 2백∼3백여명의 청년지지자는 『시라크대통령』을 연호하고 손으로 승리의 표시인 「V」사인을 하며 샹젤리제를 향해 시가행진을 시작. ○당선소감 피력 유보 ○…시라크 시장은 당선이 확정된 뒤 부인과 함께 검은 색 리무진을 타고 시청청사를 떠나 느린 속도로 센강 건너편의 선거본부로 향했으며 오토바이를 탄 카메라맨이 따라붙어 이를 생생히 촬영. 시라크는 당선소감을 묻는 기자들의 요청에는 묵묵부답으로 조심스러운 반응이었고 선거본부에 도착해,「시라크 대통령」을 외치며 환호하는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며 답례. ○조스팽에 위로 전문 ○…퇴임하게 될 미테랑 대통령은 이날 시라크 대통령당선자와패배한 사회당동료인 조스팽 후보에게 각각 축하와 위로전문을 전달. ○당선축전 속소 도착 ○…빌 클린턴 미대통령은 시라크 대통령당선자에게 개인적인 당선축하메시지를 보내 『프랑스와 미국은 긴 역사를 가진 동맹국으로서 현재는 북대서양조약기구 강화와 옛 유고지역의 평화정착노력 등에 공동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전제하면서 『이들 분야 외에 다른 분야에서도 시라크 당선자와 협력이 계속될 수 있기를 고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헬무트 콜 독일총리도 당선을 축하하고 『당면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양국과 양국 국민 사이의 긴밀한 우정관계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는 당신의 믿음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 해외봉사단(외언내언)

    이란 내륙 한 읍지역에서 영국청년이 급성맹장염에 걸렸다.한밤중에 불려나온 진료소 당직은 전염병 병균을 가리는 기초임상병리사였다.청년은 의서를 들추며 지시하고 병리사는 이리저리 양쪽배를 다 째고 나서도 한참을 헤매다 맹장을 찾아 병소를 도려 냈다. 봉합때는 한쪽을 마무르면 다른쪽이 밀려나오곤 하여 청년과 병리사가 번갈아 움켜쥐며 장시간 고투했다.80년 초 이란에 파견된 영국 자원봉사 청년이 사경을 넘었던 현지 경험이다.이 청년은 한국을 거쳐 동남아로 가서 봉사하다 귀국했다. 한국에도 66년부터 81년까지 미국 평화봉사단원 1천7백35명이 들어와 사회봉사 활동을 폈다.이들은 한해 30여명에서 1백여명씩 51차례에 나뉘어 입국, 우리정부 배정으로 산간벽지에서 결핵과 나병관리 모자보건사업을 거들고 중소도시에서 직업재활 장애자특수교육 영어교사로도 활동했다.60년대 후반 우리사회 위생환경이나 생활수준이 말이 아닌때 이들은 농어촌 오지 민가에서 자취하며 한국인이 사는 대로 먹고 자며 전염병도 걸리고 다치기도 했지만 열정적으로 봉사했다. 특히 당시 한국인들도 기피하던 전국 46개 나환자정착농원에서 함께 기거하며 7천4백여명의 환자를 치료하고 소록도 국립 나병원에서 간호사 상담봉사자로 헌신적인 활동을 펴 나환자에 대한 사회인식을 바꾸는데 크게 기여했다.당시 미국 봉사원들중 일부는 한국에 남아 결혼,정착하기도 했다. 우리도 90년부터 지난해까지 11개국에 2백43명의 한국청년봉사단을 파견해 왔다.농림수산 간호보건 기술직업훈련,교육문화 부문에서 일하며 봉사해 왔다.2년의무기간후 희망하면 1년연장하기도 했다.올해는 파견국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파라과이 베트남까지 17개국으로 넓히고 인원도 1백여명으로 늘렸다.연령도 60세까지로 완화 했다. 영 미 일에 앞선성과로 우리의 세계화에 도움될수 있게 해야 한다.
  • 제주/아홉달 성적표/작년4월 시범실시… 배출량 45% 줄어

    ◎주민 자율감시단 결성… 무단투기 색출 「하루 쓰레기배출량 7백21t에서 3백99t으로 45% 감소」,「재활용품수집량 하루 44t에서 70t으로 60% 증가」 전국에서는 처음으로 지난해 4월1일부터 도전역에 걸쳐 쓰레기종량제를 실시하고 있는 제주도의 종량제 시행 9개월의 성적표다. 제주도가 분석한 종량제성과중에는 또 「규격봉투사용률 97%」「과태료 부과액 4천67만7천원」이라는 경이로운 기록도 나온다. 올들어 쓰레기종량제가 전국에 확대실시되면서 파생된 갖가지 문제점이 제주도에서도 그대로 표출됐지만 자치단체와 의회가 앞장서고 주민이 적극 동참해 이뤄낸 「쓰레기문화」의 개가다. 제주도는 쓰레기종량제 시행초기인 4∼5월 2개월동안 종량제를 제주도정 최우선 역점사업으로 삼아 대주민홍보는 물론 ▲공무원 지역감시책임제 ▲쓰레기투기 특별기동단속반 운영 ▲재활용품 수집경진대회 ▲환경공무원 1일 미화원제 등을 실시하는 등 심혈을 쏟았다. 특히 쓰레기 무단투기자에 대한 단호한 대처의지를 보이기 위해 야산이나 하천등에 쓰레기를버린 사람에게는 최고 1백만원까지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등의 조치도 병행했다. 제주시의회의 경우는 3개월동안 시가 규격봉투를 무상지원해 종량제를 정착시킨후 본격 시행토록 의결하는 지혜를 짜내기도 했다. 당국과 의회의 이러한 집요하고도 강력한 움직임에 급기야 읍·면·동청년회등이 중심이 된 「주민자율 환경오염감시단」이 발족돼 쓰레기줄이기와 무단투기 감시활동에 나서기 시작했다.일부 주민은 소유차량을 동네 쓰레기처리에 동원하는 열의까지 보였다. 제주도는 종량제와 관련,주민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해 그 결과를 토대로 지난해 7월부터는 투명한 규격봉투를 반투명재질로,봉투두께도 0.02㎜에서 0.03㎜로 개선하는 한편 봉투입구를 묶을 수 있도록 디자인도 바꿨다. 정원을 갖고 있는 4천5백여 가정에는 음식물찌꺼기 퇴비화용기(콤포스트용기)를 지원하고 규격봉투판매업소도 1천4백72곳에서 1천5백56곳으로 늘리는 등 기회있을 때마다 개선작업을 벌여왔다. 지난 연말에는 ▲시·군별 봉투가격통일 ▲규격봉투 공급체계일원화 ▲공동주택 종량제참여 ▲과태료스티커 현장발부제 ▲관광유원지에서의 종량제봉투사용 의무화등의 새로운 개선사항을 발굴,올 연초부터 시행하고 있다. 제주도와 지역주민이 초기의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쓰레기종량제를 정착시키기 위해 보여준 지혜짜기와 실천노력은 전국으로 확대실시된 종량제정착에 분명 좋은 「교과서」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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