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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독님 수모 저희가 갚을게요”

    “감독님 수모 저희가 갚을게요”

    지는 건 단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슈팅 수에서 27-4로 압도했다. 상대가 제대로 찬 슈팅은 딱 한번이었다. 그 슈팅이 차상광 골키퍼의 다리 사이로 빠졌다. ‘알까기’였다. 골망이 흔들렸다. 그 실점이 승부를 갈랐다. 금메달을 노리던 청년들은 억울함에 그라운드를 떠나지 못했다. 1994년 히로시마에서 열린 우즈베키스탄과의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준결승전이었다. 우즈베키스탄은 그 기세를 몰아 금메달을 차지했다. 조별리그와 8강전을 거치며 16득점(4실점)을 퍼부었던 한국은 절망했다. 황선홍-홍명보-서정원-유상철 등 ‘최강 전력’으로 불렸던 태극 청년들은 동메달도 못 딴 채 짐을 꾸렸다. 악연일까. 남자축구 8강전(19일) 상대는 또 우즈베키스탄이다. 공교롭게도 당시 고배를 마셨던 홍명보-서정원이 이제는 감독과 코치로 태극마크를 달았다. 16년 전의 아픈 기억을 되갚아줄 절호의 찬스다. 물론, 객관적인 전력에서는 상대가 안 된다. 박주영(AS모나코)과 김정우(광주), 조영철(니가타)·구자철(제주)·윤빛가람(경남)·홍정호(제주)·김영권(FC도쿄)은 A대표팀에도 이름을 올렸다. ‘젊은 피’로 세대교체를 한 조광래호의 든든한 주축. 지난해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 월드컵부터 발을 맞춰 와 짜임새도 좋다. 홍명보호는 북한에 패(0-1)하며 출발했지만, 이후 요르단(4-0)·팔레스타인(3-0)·중국(3-0)을 완파했다. 10득점 1실점. 공수 밸런스가 탄탄하게 잡혔다. 상대들은 극단적인 밀집수비를 들고 나왔지만, 한국은 빠른 선제골로 골 폭탄을 퍼부었다. 박주영·조영철 등 공격진뿐 아니라 구자철·김정우까지 득점원이 다양한 것도 고무적이다. 일주일 사이에 4경기를 치른 만큼 출전시간까지 세심하게 조절했다. 한국식당에서 고기까지 든든히 먹어 체력적인 부분도 끌어올린 상태. 우즈베키스탄은 반대다. 약체 방글라데시에 3-0으로 이겼을 뿐, 홍콩(0-1)과 아랍에미리트연합(0-3)에 무릎을 꿇었다. 조별리그 3위(승점 3·1승 2패), 와일드카드로 겨우 통과했다. 카타르와의 16강전에서도 연장 접전 끝에 1-0으로 힘겹게 이겼다. 이래저래 체력 소모가 크다. 하지만 단판승부인 만큼 상대를 우습게 아는 건 금물이다. 중국과의 16강전이 ‘텃세’와의 싸움이었다면, 우즈베키스탄전은 ‘방심’과의 싸움이다. ☞ [포토] 코리안號 ‘종합 2위 목표’ 순항중 히로시마에서 감독이 당했던 수모를 제자들이 갚아줄 수 있을까. 진짜 승부는 지금부터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전문가 제언] 이종수 연세대 교수 “공정성 관장 인사委 제도화를”

    [전문가 제언] 이종수 연세대 교수 “공정성 관장 인사委 제도화를”

    외교통상부의 특채 사건으로 행정고시에 대한 논의가 방향을 잃었다. 섣부른 정책을 던짐으로써 당위성도 잃고, 대안도 못 찾는 형국이 됐다. 별로 언급되지 않고 있는 세 가지를 상기시키고자 한다. 첫째, 공정성 확보를 위한 시스템을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행정안전부로 특채 관리를 통합함으로써 간단히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통합은 분산과 대조적인 또 다른 단점을 심각하게 보유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공정성을 확보하는 메커니즘은 공무원 채용에서 너무도 중요한 사안이다. 그것이 무너졌을 때, 1881년 미국에서는 대통령이 암살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정부의 공직을 마치 집권자의 전리품처럼 배분하자, 이에 절망한 청년 기토가 워싱턴 기차역에서 제임스 가필드 대통령을 암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미국 사회가 놀라 설치한 것이 중앙인사위원회였다. 영국은 아직도 그것을 유지해 14명의 위원이 활동 중이다. 일본도 유사한 인사원을 설치, 공직의 공정성과 발전방향을 조정하고 있다. 한국은 그것을 도입했다가 9년 만에 현 정부가 출범하며 폐지됐다. 공직의 공정성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인사위원회의 폐지가 아쉽게 느껴질 것이다. 둘째, 교육과의 연계 필요성이다. 지금 대학에서 공무원이 되고 싶어 하는 유능한 학생들은 대거 휴학 중이다. 정상적 수업을 듣는 것보다 휴학하고 고시촌이나 절에 들어가는 것이 합격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정상적 교육과정을 거치며 사회적으로 ‘육성’될 수 있도록 시험을 교육과정과 연계시켜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보다 바람직한 가치와 공직관을 갖 하고, 사회가 요구하는 입체적 역량을 키워갈 수 있을 것이다. 셋째, 고시라는 명칭을 굳이 폐기해 천년의 역사성을 버릴 필요가 있는가 하는 의구심이다. 고시라는 명칭 때문이 아니라 운용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이런 점들을 충분히 고려해 추진하는 고시 개편일지라도 경과기간을 더 충분히 두어야 한다. 정부 정책의 안정성을 높이고, 국민이 무리 없이 수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바라보는 시계(視界)가 좀 더 길어져야 한다. 현재 수험생들의 준비기간이 4년 남짓 되는 점을 고려하면, 5년 정도의 충분한 경과기간을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 [주말 영화]

    ●강철중(OBS 일요일 밤 12시20분) 강동서 강력반 꼴통 형사 강철중(설경구). 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사건 현장을 누비고 다니지만, 15년 차 형사생활에 남은 거라곤 달랑 전세방 한 칸. 잘해야 본전, 잘못하면 사망 혹은 병신이 될 수도 있는 ‘빡쎈’ 형사생활에 넌더리가 난 그는 사표를 제출한다. 하지만 그때 한 고등학교에서 터진 살인사건 때문에 그의 사표 수리는 미뤄지고 이번 사건만 해결하면 퇴직금을 주겠다는 반장의 회유에 말려들어 귀찮은 사건 현장으로 돌아간다. 도무지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던 살인사건은 죽은 학생의 지문이 얼마 전 강동서 관할에서 일어난 도축장 살인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칼에 남겨진 지문과 같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새로운 국면을 맡는다. 강철중은 죽은 피해 학생과 어울려 다녔다는 친구 3명을 만나 단서를 찾기 시작한다. 아이들이 얼마 전 ‘거성’이란 회사에 취업했다는 사실을 알아낸 강철중은 이 사건이 ‘거성그룹’과 관계 있다는 것을 감지하는데…. ●애련의 장미(EBS 일요일 오후 2시40분) 남아메리카의 한 산간 마을을 장악한 부패하고 무능한 군사 정권은 어느 날 이곳의 다이아몬드 광산 개발을 전면 금지하고 이를 어길 경우 광산을 몰수하겠다고 발표한다. 이에 반발한 주민들은 사령부를 찾아가 항의하고 곧 양측 간의 총격전이 벌어진다. 타지에서 온 노인 카스탱과 청년 샤크는 대대적인 규모로 비화한 충돌사태의 주동자로 지목되어 현상수배를 받는다. 이 둘과 카스탱의 딸 마리아, 술집에서 일하는 진, 가톨릭 신부 라자르디 등은 진의 뒤를 봐주는 첸코의 배를 타고 강을 따라 마을을 빠져나간다. 하지만 얼마 후 첸코는 사라지고, 군인들이 이들을 추격하기 시작한다.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 이들은 더럽고 끔찍한 여건 속에서 힘들게 사냥을 하고 불을 피워가며 연명한다. ●라카와나 블루스(KBS1 토요일 밤 12시55분) 뉴욕 주, 라카와나 시의 왓슨가 32번지에는 ‘유모’ 혹은 ‘엄마’로 통하는 레이첼이 운영하는 하숙집이 있다. 레이첼은 오갈 데 없는 흑인들을 도우며 살아간다. 부모가 이혼한 후, 엄마 에일린이 생활비를 벌기 위해 웨이트리스 일을 하게 되자, 어린 루벤은 하숙집 방에 혼자 방치된다. 이를 보다 못한 레이첼은 에일린을 설득해 루벤을 돌봐 주기로 한다. 엄마가 멀리 떠나 버린 후에도 루벤에겐 레이첼이 있어 전혀 슬프지 않다. 레이첼의 하숙집에는 모두 사연이 있는 흑인들이 모여 있었다. 루벤은 이들을 통해, 인종차별의 아픈 과거와 전쟁이 남긴 상처, 연인을 위해 살인까지 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삶을 배워 나간다. 레이첼은 왓슨가 32번지 일대에 사는 모든 이들의 어머니였고, 유모였고, 안식처였다.
  • 난민 1500만명 지구촌 떠돈다

    지난 2008년 7월, 물류회사에 다니던 26살의 아프가니스탄 청년 사예드 알리 얀은 와닥 지역의 외국계 회사에 석유를 배달하러 길을 떠났다. 카불의 집에서는 임신한 어린 아내 샤이다가 부모가 함께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그들에게 찾아든 건 사예드가 아니라 끔찍한 불행이었다. 어디선가 나타난 탈레반 무리가 귀갓길의 사예드를 끌고가 가둬 버린 것이다. 영문도 모른 채 두 달 동안 갇혀있다가 간신히 탈출해 집에 돌아온 그를 맞은 것은 아내의 유산과 아버지의 사망 소식뿐이었다. 탈레반은 탈출한 사예드를 계속 쫓았고, 그는 아프간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집을 팔아 1만 4000달러(약 1700만원)를 마련한 부부는 파키스탄에서 말레이시아로 밀입국했다. 허름한 여관에서 아내는 다시 임신했고, 딸을 낳았다. 최종 목적지인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로 향하는 작은 배를 타기 위해 여권과 시계, 휴대전화까지 모두 내놓아야 했다. 미국 시사주간 타임이 27일(현지시간) 전한 전 세계 망명자들의 상황은 참혹했다. 사예드 가족이 머물고 있는 자카르타 외곽의 망명자 수용소는 이미 움직일 틈조차 없을 정도로 꽉 차있다. 종교단체와 유엔의 도움으로 사예드 가족은 방 한 칸을 얻고 딸을 병원에 보낼 수 있었지만, 수중에는 이미 한 푼도 없다. 사예드는 “미리 알았다면 차라리 아프간에 남아서 죽는 길을 택했을 것”이라고 한탄하곤 했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지난해에만 전 세계에서 1500만여명이 넘는 난민들이 발생했고, 이 가운데 82만 6000명이 망명을 위해 떠돌고 있다. 타임은 “이들 중 절반 이상이 아시아인이고, 22%는 아프리카인”이라며 “이들의 정부는 경제적, 정치적으로 국민을 보호할 능력이 부족하고 내전에 시달리고 있다.”고 전했다. 당초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흩어진 유럽인들을 고국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만들어진 UNHCR은 이제 가난과 유혈참사를 피해 도망치는 수백만명을 돌보는 역할을 맡고 있다. 이탈리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일부 국가는 밀려드는 망명자들로 인해 포화상태를 맞고 있으며 이들 국가 국민 대부분은 더 이상 망명을 받지 않기를 원하고 있다. 타임은 “망명자들이 제3국에서 새로운 인생을 얻는 것은 정말 어려운 꿈이 되고 있다.”면서 “2008년 1050만명의 망명 희망자 중 고작 8만 8000명만이 망명에 성공했다.”고 분석했다. 망명 허가를 받기 위해 5년 이상 기다리는 것은 흔하고, 알제리 등 일부 국가에서는 30년 넘게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실낱같은 희망을 잡는 사람들도 있다. 자카르타의 사예드 가족도 며칠 전 인도네시아 정부에서 망명 허가를 받았다. 인터뷰 약속조차 잡지 못하고 절망하던 이들에게는 뜻밖의 행운이었다. 타임은 “극히 일부만이 이처럼 기쁜 소식을 들을 수 있다.”면서 “한 가족에게는 즐거운 시작이지만, 선택받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끝을 알 수 없는 지옥이 계속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통곡은 시로 절망은 소설로 피어나다

    통곡은 시로 절망은 소설로 피어나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고립 말살 정책은 현재진행형이다. 21세기 지구상에서 끊이지 않는 전투와 학살, 폭력이 난무하는 곳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이 사실상 유일하다. 그러나 처참함과 절망, 야만의 살육 속에서도 문학은 피어난다. 자식을 잃고 아랫입술을 곱씹는 어미의 통곡은 시가 됐고, 스무살 피끓는 청년이 허리에 폭탄을 두르기까지 주거와 이동이 막히고, 취업을 하지 못하고, 친구가 이스라엘군의 총에 죽음을 당하는 등 이야기는 그대로 소설이 됐다. 아시아문화네트워크는 2일 펴낸 계간 문예지 ‘아시아’ 여름호를 아예 팔레스타인 문학 특집호로 꾸몄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구호물품을 실은 선박에서 민간인을 살상한 직후여서 더욱 눈길을 끈다. ‘아시아’는 근대 아랍시의 창시자로 꼽히는 마흐무드 다르위시(1941~20 08)와 근대 아랍소설 창시자 갓산 카나파니(1936~1972), 세계적인 석학으로 꼽히는 비교문학 이론가 에드워드 사이드(1935~2003) 등에 대한 평가와 이들이 팔레스타인 문학에 미친 영향, 팔레스타인 문단의 현주소 등을 다뤘다. 자신을 ‘저항시인이기 이전에 시인이다.’라고 천명했던 다르위시의 시 ‘여권’, 카나파니의 단편소설 ‘난민촌의 총’, 사이드의 문학평론 ‘문학과 문자주의’, 팔레스타인의 민담 ‘초록새’ 등 다양한 장르의 글을 소개했다. 팔레스타인과 한국의 문학·문화 등을 소개하고 교류하는 예술가 등의 모임인 ‘팔레스타인을 잇는 다리’ 회원인 소설가 오수연이 팔레스타인 현지에서 젊은 작가들과 나눈 지상 대담은 팔레스타인 언어와 문학의 깊이, 작가들의 생생한 고민을 엿보게 해 흥미롭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박지성 에세이 출간, ‘더 큰 나를 위해 나를 버리다’

    박지성 에세이 출간, ‘더 큰 나를 위해 나를 버리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산소탱크’ 박지성이 4년 만에 팬을 들었다. 박지성은 ‘더 큰 나를 위해 나를 버리다’라는 제목의 에세이 출간을 앞두고 있다. 2006년 멈추지 않는 도전’에 이은 두 번째 에세이로 월드컵을 한달 남짓 남겨둔 상황이라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박지성은 이번 책을 통해 자신이 성공할 수 있었던 진짜 비결에 대해서 말한다. 어린 시절 평발과 왜소한 체격 때문에 실력에 비해 주목받지 못하는 선수였던 박지성이 세계 최고 명문 클럽에서 활약할 수 있기까지 절망과 성공의 이야기들을 담았다. 박지성의 성공 비결로 흔히 체력과 승부 근성, 팀 정신을 이유로 든다. 하지만 박지성 스스로 이 책을 통해 말하는 성공의 비결은 책 제목대로 ‘더 큰 나를 위해 지금의 나를 버리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축구스타 박지성의 화려한 모습이 아닌 청년 박지성의 도전과 개인적 고민, 내면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사진=책 표지 서울신문NTN 이재훈 기자 kino@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열린세상] 천안함 이후 플랜 B는 있는가/부경희 광운대 미디어영상학 교수

    [열린세상] 천안함 이후 플랜 B는 있는가/부경희 광운대 미디어영상학 교수

    요 즘 천안함 사건에 매일 가슴이 조여든다. 희생자들의 마지막 순간이 자꾸 다가와서다. 그들이 겪었을 공포와 절망의 순간이 너무나 생생하게 느껴져서이다. 이제 막 20년 남짓 산 그들이 바로 내 학생들이기 때문일까. 청소년기 내내 공부에 찌들려 살다 대학에 들어와 꿈에 부풀어 남다른 열정을 보이는 많은 복학생들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찬란할 미래를 송두리째 빼앗긴 그들이 눈에 밟혀서일까. 매일 가슴에 화가 솟구친다. 그들에게 그렇게 큰 짐을 지우고는 우린 왜 그렇게 아무 준비가 없었던가. 사고 그 자체는 고사하고라도, 왜 우린 사건 이후 20여일이 지난 이제야 그들을 건져내었나. 버뮤다 삼각지대도 아니고, 열대우림의 깊은 계곡도 아닌 바로 옆에 가라앉은 그 젊은이들을, 그것도 단 20분도 안 되어 알게 된 침몰에 우린 왜 어떤 준비도 대책도 없었던가. 3주나 되는 긴 시간 동안 왜 온 나라가 단체로 바보들처럼 우왕좌왕했나. 지난 며칠 진행된 순발력과 집중력이 왜 처음부터 재빠르게 발휘되지 않았을까. 정전이 되면 격실 창이 닫히지 않는다는 건 처음부터 전문가들을 동원해 물으면 알 수 있었던 일 아니던가. 또 다른 희생을 막을 수 있지 않았나. 그 시간에 더 빠른 구조를 모색해볼 수 있지 않았을까. 아니, 애초에 정전이 되면 보조 전원이 작동되도록 하는 플랜(Plan) B가 있었더라면, 사고 시 긴급 구조할 수 있는 플랜 B 시스템이 근처 있었더라면, 멀리서 구조장비가 오는 며칠을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온통 마음이 아프다. 학생들에게 자주 묻는다. ‘플랜 B는?’. 무슨 일이든 어떤 예측하지 못할 상황이 생길 때를 대비해 반드시 보완적인 방법이나 계획을 세우라고 강조하기 위해서다. 삼풍 사고 후에도, 성수대교 침몰 후에도, 씨랜드 화재사건 후에도, 대구 지하철 사고 후에도, 몇 시간을 나열할 수 있을 만큼 많은 사고들 뒤에, 항상 그 플랜 B는 없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어떤 장치도, 교육도 없었다. 그리고 여전히 우리 청소년들은 안전장치 없이 수학여행에 나서고 있으며, 결국 제 2의 씨랜드 화재가 얼마 전 또 일어났다. 여전히 우리에겐 플랜 B가 없다. 우 린 아직도 ‘설마’를 반복하며 그저 또 이렇게 준비 없이 살아가려나 보다. 소 잃고 외양간이라도 고쳐야 다른 소를 잃지 않을 텐데. 아니, 우린 아직도 원시인처럼, 베개 세우면, 밤에 손톱 깎으면 도둑 들고, 아프다는 태도로 이런 재난을 나쁜 운에 돌려버리고 만다. 실제 우린 차가운 바다에 그 꿈 많은 청년들을 두고도, 원인에 대한 수많은 추론과 미신에 가까운 음모론에 시간을 낭비하고 있지 않았는가. 사실 이런 현상은 단지 우리 사회에만 있는 건 아니다. 미국의 9·11사건 후 나돌았던 각종 추론과 음모는 가히 수십 편의 영화가 나올 법한 것이었다. 그건 어쩌면 인간의 기본적 욕구이기 때문이다. 원시시대부터, 주변파악을 위해 우리 인간은 어떻게든 ‘왜냐하면’에 답했어야 했다. 그래서 작은 단서 몇 개만으로 이야기를 만드는 탁월한 능력이 생겼고, 이를 빗대어 심리학자들은 ‘초보적 과학자(naive scientist)’ 라고 말한다. 수백 번의 실험을 통해서가 아닌, 몇 개의 현상을 가지고 바로 그럴듯한 이론을 만들어내곤 한다. 원하는 것만 선택적으로 보는 우리 인간은 아직 재난이나 사고를 한 번의 재수 없는 일로 돌리고, 선택적 정보로 그럴듯한 시나리오를 만든 후 잊어버리는 초보 과학자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우린 천안함 사고 후 또다시 많은 이야기를 만들 것이다. 정치적, 구조적 문제로 돌리고 치워둘 것이다. 그리고 또다시 플랜 B는 숙제로 남길 것이다. 정작 필요한 것은 어설픈 원인추론 시나리오 그 자체가 아니라, 희생을 아파하고 준비하는 바로 그 플랜 B인데도 말이다. 요즘 큰 기업들은 10년 미래 시나리오를 만들고 있다. 다양한 위기에 대처할 플랜 B가 들어 있다, ‘만약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에 대한 세세한 대책과 전략이다. 푸른 꿈을 가진 수많은 나의 미래 복학생들을 다시는 희생시키지 않을 플랜 B는? 그런 줄도 모르고 일찍 군대에 다녀오라고 말해왔던 나의 무책임함에 가슴이 또 답답해진다.
  • 최승자 병마딛고 11년만에 새 시집 출간

    1980년대를 지나는 문학청년들에게 시인 최승자(58)는 하나의 아이콘이었다. 첫 시집 ‘이 시대의 사랑’이 보여준 어두운 내면 침잠과 자기 모멸적 시어들은 교묘한 매력으로 독자들의 가슴에 새겨졌다. 그러다 1999년 ‘연인들’ 이후 시인은 문득 펜을 놓는다. 작품에서 보여준 절망적 자폐가 시인의 심신에도 옮아 병상에 몸을 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11년. 그는 병상에서 일어나 여섯 번째 시집을 내놓았다. “오랫동안 아팠다. 이제 비로소 깨어나는 기분이다.”라는 시인의 말처럼 시집 ‘쓸쓸해서 머나먼’(문학과지성사 펴냄)은 오랜 침묵 뒤에 찾아온 변화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내 시는 지금 이사 가고 있는 중이다 / 오랫동안 내 시밭은 황폐했었다 / 너무 짙은 어둠 (중략) 이젠 좀 느리고 하늘거리는 / 포오란 집으로 이사 가고 싶다’(‘내 시는 지금 이사가고 있는 중’)처럼 시인은 “상처받고 응시하고 꿈꾼다.”고 했던 지난 시간들을 이제 관조의 시선으로 돌아보고 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가족에게 받은 사랑 어려운 이웃에 돌려줄래요”

    “가족에게 받은 사랑 어려운 이웃에 돌려줄래요”

    자폐증 청년이 어머니의 사랑으로 절망의 나락에서 벗어나 당당히 대학에 합격했다. 힘겨운 성취를 격려하는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상까지 받아 기쁨이 더했다. 화제의 주인공은 어려서부터 자폐증을 앓는 발달장애 1급의 이승준(19)군. 이군은 자신의 병 때문에 스스로를 세상과 단절시켜 지금까지 누구와도 친하게 지내지 못했다. 6살 때까지 어머니 품에 안겨 살았으며, 이후에도 좀처럼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했고, 집밖으로 나가면 울며 보채거나 까무러치기 일쑤였다. ●등산하며 마음 열어… 백두산도 올라 그의 삶을 바꾼 것은 모정(母情)이었다. 어머니 김은숙(50)씨는 걸핏하면 경기(驚氣)를 일으키는 승준이를 데리고 박물관과 영화관, 도서관 등 사람과 어울릴 수 있는 곳을 닥치는 대로 찾아다녔다. 아이가 떼를 쓰면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기를 반복했다. 학교에서는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거나 얻어맞고 오기 일쑤였고, 그때마다 김씨는 새까맣게 가슴이 타들어 갔다. 그래도 김씨는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방에 가둬 두면 병만 키운다.”며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매사에 웃음으로 대응하는 법을 가르쳤다. 또래 애들에게 맞설 수 없는 승준이가 가질 수 있는 무기는 웃음뿐이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승준이가 중학생이 되자 손을 끌고 산을 타기 시작했다. 김씨는 “산 꼭대기에 올라 성취감을 맛보면 세상과 더 쉽게 소통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처음 오른 산이 마을 인근인 전북 익산의 회문산이었다. 놀란 승준이는 “119를 불러달라.”며 손을 뿌리치고 거부했지만 김씨는 자신과 아이의 몸을 끈으로 묶고 눈물을 삼키며 산을 올랐다. 횟수가 거듭되자 승준이도 차차 산에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모자는 이렇게 내장산·덕유산·지리산·소백산은 물론 백두산까지 올랐다. ●노인 수발 들며 봉사… 당당히 대학 합격 산의 도움이었을까. 한사코 자신만의 세계에 담을 쌓던 승준이가 변하기 시작했다. 노인요양원에서 6개월간 노인들의 수발을 들며 즐거워하는 승준이는 어느 새 자폐를 이긴 건강한 청년이 되어 있었다. 지난 10월에는 그렇게 바라던 한일장신대 신학부 수시1차 전형에 사회봉사 및 리더십 우수자로 합격하는 기쁨까지 누렸다. 이군은 “참을성을 기르려 산을 올랐고, 이젠 무엇이든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내 안에 생겼다.”면서 “가족과 함께 등산하고, 사랑으로 껴안으면서 비로소 세상의 일원이 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1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체청소년성취포상제 시상식에서 복지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이군은 “가족에게 받은 사랑을 어려운 이에게 돌려주고 싶다.”는 소감을 밝혀 박수를 받았다. 글 사진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사회 현안에 원로들 목소리 낼것”

    각계 원로 전문가 23명이 8일 서울 중구 달개비(옛 세실레스토랑)에서 ‘반성하는 시니어 모임(반시모)’을 발족하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반시모 최연장자인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는 발족식에서 “사회 중요현안에 대해 원로들의 생각을 모을 것”이라며 “정치에 휘둘리지 않고 신중히 내린 결론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좌장인 손봉호 명예교수와 김윤환 전 고려대 교수, 이해익 리즈경영컨설팅 대표, 이재윤 중앙대 명예교수, 이필상 고려대 교수 등 각계의 원로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60대 이상의 전문가 가운데 중도적 인사로 구성된 반시모는 1년에 1~2차례 사회 현안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인터넷 홈페이지도 개설해 회원 글을 올릴 예정이다. 반시모의 간사를 맡은 이해익 컨설턴트는 “사회를 꾸짖기 전에 스스로 돌아보면서 반성하는 자리를 마련하고 청소년 의식, 일자리, 위장전입, 다운 계약서 등 사회 전반에 대해서도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이필상 교수는 “청년실업 문제로 젊은이들이 희망을 잃고 절망에 빠져 있다.”며 “우리 세대가 젊었을 때 가졌던 희망을 건네주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 ‘반지하에서 꿈을 이뤘습니다’

     열다섯살에 부모를 잃고 어린 동생들을 돌봐온 한 사람의 성공 스토리가 심금을 울리고 있다.  네티즌 ‘빈배’는 지난 3일 밤 8시쯤 다음의 아고라 게시판에 ‘반지하에서 꿈을 이뤘습니다.’란 제목으로 글을 올렸다.이 글에는 20여년전 부모를 잃고 어린 동생들과 남겨진 뒤 삶이 어려워 자살까지 생각했던 그가 어엿한 집을 장만하기까지 내용이 담겨있다. ☞원문 보러가기  그는 부모를 여읜 뒤 친척집 등을 전전하다가 지하도에서 노숙생활도 했다.당시에 대해 이 네티즌은 “편히 쉴 방 한 칸조차 없는 설움과 개뼈다귀 마냥 세상에 내버려진 것같은 절망,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결국 부모없는 고아들이라는 슬픔 등이 가슴속에서 울부짖기 시작했고 삶을 포기하고 싶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마음을 고쳐먹고 생활정보지를 통해 직장을 구한 뒤 회사 지하창고에 스티로폼을 깔고 숙식을 해결하게 되면서 생활은 안정되는 듯했다.하지만 그는 “동생들과 함께 잘 수 있는 작은 행복조차도 신이 질투를 한 것 같다.”며 회사가 부도가 나 그곳에서 쫓겨나와야 했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그동안 모은 약간의 돈으로 8평(약 26m²) 반지하 원룸에 들어갈 수 있었다.작긴 하지만 바깥 세상을 볼 수 있는 창문도 있는 천국같은 곳이었다.  이 때부터 그는 집의 소중함을 깨닫고 집 장만을 인생의 목표로 삼았다.구체적인 목표액은 1억원.  동생들에게 빈병·폐품 등을 주워 팔라고 교육시켰고 그 역시 어떤 일이라도 상관하지 않고 다했다.이 때를 두고 이 네티즌은 “꿈에서 조차도 일을 하며 돈을 모았다.”고 말했다.하루 서너시간씩만 자면서 일을 했다.그는 “모질게 사느라 영화 한편 보지않았다.마지막으로 본 게 ‘영웅본색’”이라고 전했다.결국 그는 10년이 채 안 돼 8000만원을 마련해 다가구 주택을 얻는 데 성공했다.  그 후 그는 집주인의 입장이 돼 세입자들과 실랑이를 벌인 일,세입자에게 오히려 은혜를 입고 눈물을 흘렸던 일 등을 거론하며 글을 풀어갔다.다음 주 일요일 이사를 앞두고 있는 그는 “부끄럽게도 내 최종 학력은 중졸”이라며 “이사하면 검정고시를 준비해서 고등학교 졸업장도 따고 싶고 대학도 가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 글은 올라간지 이틀 정도가 지난 5일 오후 5시 현재 6만 4000건이 넘는 조회수와 470개의 댓글이 달리며 관심을 받고 있다.  대부분 네티즌들은 “너무나 가슴아픈 얘기에 눈물이 났다.”며 감동을 표했다.일부 “소설같다.”는 의견도 있지만 “소설이라고 해도 눈물이 핑돌만큼 감동적”이라는 반론이 많다.  ’빈배’는 부모님들을 향한 메시지로 글을 끝냈다.  마지막에 새겨진 몇 개의 말줄임표에 고통의 세월을 인내한 그의 삶이 녹아있는 것 같다. “엄마….어느새 내가 서른네살 청년이 됐지만 여전히 난 엄마의 철없는 아들이고 싶어.먼훗날 내가 그 곳에 가게 되면 엄마 품에서 맘껏 울고 싶고 그때가 되면 내가 살아온 이야기 들려줄게. 엄마….보고 싶어….” 인터넷서울신문 최영훈기자 taiji@seoul.co.kr
  • 주인공이 된 작가, 죽음의 공포속 희망찾기

    김도언의 소설은 보여지는 대로 허투루 읽어도 된다. 소설가가 적극적으로 소설에 들어가서 ‘나’를 이야기하고, ‘나의 얘기’를 풀어내니 소설가에 대한 환상과 소설의 모호함 따위는 배제한 채 읽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김도언의 소설은 삶의 비의(秘意), 문학의 근원적 기능을 염두에 두고 접근하면 달라진다. 소설을 읽는 내내 한없이 뻐근해지는 두 어깨와 함께 가슴 언저리를 짓누르는 답답함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그가 여러 차례 ‘권태’라고 표현한 절망 또는 우울함은, 간절히 희구한 구원의 손길에 대한 역설이다. 김도언이 새 소설집 ‘랑의 사태’(문학과지성사 펴냄)를 내놓았다. 자신의 소설집 ‘악취미들’(2006)처럼 파격적인 상황과 인물이 등장하곤 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장편소설 ‘이토록 사소한 멜랑꼴리’(2008)에서의 너저분한 일상의 현실에 대한 세밀한 고백에 익숙한 독자, 또는 한 달 전에 내놓은 ‘미치지 않고서야’에서의 미친 듯 연애편력을 일삼던 여자 소설가를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랑의 사태’가 또 다른 생소함으로 다가온다. 무엇보다 작품 곳곳에서 김도언이 계속 등장한다. 9편의 단편작품 중 소설적 서사를 품고 있는 작품은 ‘내 생애 최고의 연인’, ‘전무후무한 퍼스트베이스맨’ 정도에 그친다. 세 번째 작품 ‘어느 위대한 소설가의 자술 연보’에서 한국이 일본에 통합 흡수된 가운데 사회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고픈 김도언은 자신을 슬쩍 내비치는가 싶더니 ‘다큐멘터리 가족극장’, ‘안으로 나가고 밖으로 들어가는 방법에 대한 고찰’, ‘다크블루, 시간의 풍경’에서 작가 그 자체로 보이는 주인공을 내세우며 유년, 소년, 청년의 시간과 그 속의 사건들을 재구성하고 있다. ‘권태주의자’와 표제작 ‘랑의 사태’에서는 세상에 뜨악한 표정을 짓고 한 걸음 물러선 채 공포와 불안의 실체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자신을 들여다보고 타인들에게도 넌지시 이해를 구한다. 하지만 끊임없이 죽음에 대한 공포, 불안과 절망을 얘기하면서도 김도언은 희망의 끈을 아예 놓아버리지는 않는다. 소설 맨 마지막 작품인 ‘백하동 가는 길’에 등장하는 전직 고교 교사는 학생을 체벌해 학교에서 쫓겨나고 아내에게도 쫓겨나다시피 별거 상태이다. 하지만 비슷한 처지에 있는 좌절하는 친구 두 명과 함께 희망과 재기를 위해 찾아간 백하동에서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가 났으나 모두 멀쩡하다는데 안심한다. 그리고 아내에게 화해를 청하고, 체벌했던 학생에게 용서를 구하는 이메일을 보내며 끝을 맺는다. 앞으로 ‘김도언 없는 김도언 소설’이 기대되는 대목이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특파원 칼럼] 우루무치의 비극/박홍환 베이징특파원

    [특파원 칼럼] 우루무치의 비극/박홍환 베이징특파원

    위구르 처녀 누르지안의 깊은 눈은 금세 눈물로 가득 찼다. 생소한 위구르어를 섞어 가며 하소연했지만 내용은 대충 알아들을 수 있었다. “도대체 왜 아무런 잘못 없는 아빠와 오빠를 잡아갔나요?” 목소리에는 절망감이 가득했다. 중국 언론들이 위구르인들의 사연에 대해 침묵하고 있는 까닭에 수천㎞ 떨어진 이국에서 온 기자를 그녀는 마지막 희망으로 여기는 듯했다. 그날 오후 한(漢)족들의 표정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손에는 몽둥이와 쇠파이프, 심지어 서슬퍼런 칼까지 들려 있었다. 이틀전 위구르인들에게 당한 피해를 고스란히 되갚아 주겠다는 결의가 서려 있었다. 동료들과 위구르인들을 찾아나섰다는 한족 청년 쉬웨이민(許爲民)은 “이런 식으로라도 가족들의 생명을 지켜야 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우루무치(烏木齊)의 비극은 끝나지 않았다. 사회는 급속히 일상으로 돌아가겠지만 깊게 파인 위구르족과 한족간 갈등의 상처는 결코 쉽게 치유될 수 없을 것처럼 보인다. 우루무치 거리에 일제히 걸린 ‘민족단결’ 플래카드는 공허한 메아리처럼 들려왔다. 현지에서 만난 많은 위구르 사람들과 한족 사람들 사이에는 인식의 차이가 극명했다. 서로 믿지 못하고, 서로에 대해 분노하고, 서로를 무서워하는 두 집단의 공존. 우루무치의 비극은 거기서부터 잉태된 것이 아닐까. 156명의 생명을 앗아간 유혈시위 사태 당시 위구르인들의 최초 집결지였던 인민광장. 시위진압을 위해 파견된 무장경찰 부대의 지휘본부가 차려진 이곳에는 10여m 높이의 거대한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중국 인민해방군 진군 신장 기념’이라는 금색 글씨가 선명하다. 1949년 인민해방군의 진군으로 신장 지역 통합에 성공한 중국은 이후 우루무치를 비롯한 신장 지역 곳곳에 중국 문화, 한족 문화를 심는 데 주력했다. 베이징과 지리적으로 두 시간의 시차가 남에도 불구하고 ‘베이징 시간’을 강요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위구르인들은 이슬람 사원에서의 예배 등 자신들의 행사에는 저녁 8시가 돼도 해가 지지 않는 베이징 시간 대신 ‘신장 시간’을 고집한다. 시차를 인정하지 않는 베이징의 의식이 바뀌지 않는 한 우루무치의 통합은 요원해 보인다. 그래서일까. 한족으로 뒤덮어 우루무치를 억지로 통합하겠다는 생각인 듯 우루무치를 한족의 도시로 만들어 버렸다. 현재 인구 200만명인 우루무치의 한족과 위구르족 비율은 75%대 24%. 위구르족과 몽골족 등 10여개 소수민족의 도시였던 우루무치는 60년 사이에 한족의 도시로 바뀌었다. 우루무치에서 만난 위구르인들은 평등과 자유를 갈망했다. 중국 정부는 부인하지만 그들은 취업 등에서 차별을 받고 있다고 얘기했다. 시장에서 양꼬치 가게를 운영하는 30대 중반의 위구르인 메메티장은 “위구르인들이 취업할 수 있는 곳이라곤 신장 요리 전문점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학생들도 미래에 대한 절망감으로 가득했다. 우루무치 의과대학에서 만난 아리무장은 “많은 위구르 대학생들이 졸업후 대학원에 진학한다.”며 “대학원은 취업이 안 되기 때문에 선택하는 일종의 도피처”라고 말했다. 중국 정부는 민족 문제에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한쪽이 무너지면 도미노처럼 50여개의 소수민족으로 파급될 수 있다며 민족 문제에 관한 한 강경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이 직접 나서서 이번 사태 주동자들에 대한 엄벌을 강조했을 정도이다. 하지만 강경대응으로 과연 민족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그들의 요구가 무엇인지, 무엇을 갈망하는지 귀를 열지 않는 한 민족 문제는 중국의 영원한 딜레마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우루무치 취재에서 내린 결론이다. 박홍환 베이징특파원 stinger@seoul.co.kr
  • [2030] 청년백수 이래서 힘들다

    [2030] 청년백수 이래서 힘들다

    ‘싸구려 커피를 마신다/미지근해 적잖이 속이 쓰려온다/눅눅한 비닐장판에 발바닥이/쩍 달라붙었다 떨어진다….이제는 장판이 난지 내가 장판인지도 몰라/해가 뜨기도 전에 지는 이런 상황은 뭔가.’ 청년 백수의 일상을 실감나게 그린 가수 장기하씨의 노래 ‘싸구려 커피’는 20~30대 젊은이들에게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왔다. 청년실업 문제가 남의 일이 아닌 너와 나의 일이 된 탓이다. 그만큼 청년 백수들은 같은 아픔을 공유하고 있다. 돈, 연애, 미래 걱정까지…. 청년 백수들이 토로하는 ‘백수생활의 어려움’을 들어봤다. 지난해 2월 대학을 졸업하고 1년3개월째 백수생활 중인 김모(24)씨는 “백수의 서러움 중 8할은 돈 문제”라고 잘라 말한다. 취업공부하고 사람 만나다 보면 최소한의 생활비는 들게 되는데 월급받을 곳이 없는 백수다 보니 항상 돈에 쪼들리게 된다는 것이다. 김씨는 “돈만 있으면 안 될 게 없는 우리 사회에서 돈이 없다는 건 곧 자존심이 없다는 것과 같다. 돈 때문에 자존심 상하고 위축되는 게 한두 번이 아니다.”며 김씨는 거의 울먹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용돈은 벌었지만 지난해부터 경제 위기가 오면서 그나마 두 개 정도 하던 과외도 다 그만두게 됐다. “지금은 부모님에게 생활비 50만원을 받아 쓰지만 그마저도 눈치가 보여 계속 받을 수는 없을 것 같다.”고 김씨는 말했다. 돈에 울고… “백수 서러움 중 8할은 돈” 공기업 회사원 박모(32)씨는 1000원짜리 소시지와 콩나물이라면 질색이다. 백수시절 아픈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경남 진주에서 고등학교까지 졸업하고 서울로 대학진학하면서 자취를 시작했다. 2003년 대학을 졸업할 무렵, 과일가게를 하던 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지면서 가세가 급격히 기울기 시작했다. 보증금 2000만원짜리 자취방도 내놓아 아버지 치료비에 보태야 했다. 대학원 진학을 꿈꿨던 박씨는 취직 준비를 시작했다. 넓은 방을 쓰는 친구 집에 얹혀 살았다. 한 달에 10만원을 내는 대신 청소와 빨래 등 집안일을 전담한다는 조건이었다. 집에서 용돈이 올라오기는커녕 치료비를 보태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박씨는 과외 2개를 하면서 50만원을 벌었다. 그 중 30만원을 떼어 집에 부치고 집세 10만원을 빼면 남은 생활비는 10만원이었다. 술과 담배를 끊고 밥은 집에서 해먹었다. 가장 싼 식재료인 1000원짜리 분홍색 소시지와 1500원어치 콩나물은 밥상 위의 단골 메뉴였다. 그렇게 6개월을 지내면서 취업공부를 했고 그해 겨울 공기업에 당당히 합격했다. 박씨는 “눈물 젖은 소시지를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백수 생활을 논할 자격이 없다. 사람이 되기 위해 100일 동안 쑥과 마늘을 참고 먹었던 곰이 된 심정이었다.”며 쓰린 과거를 돌아봤다. 백수를 괴롭히는 다른 요인은 바로 ‘마인드 컨트롤’이다. “저 나이 먹도록 놀고 먹는구나.”라는 주변의 따가운 시선도 그렇지만 나 자신과의 싸움이 가장 힘들다. 사법고시 준비를 그만두고 일반 기업체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정모(29)씨는 요즘 통 공부에 집중할 수 없다고 말했다. 책상 앞에만 앉으면 온갖 고민들이 떠오르는 탓이다. 형제 중 장남인 정씨는 빨리 취업해서 부모님도 모시고 가정을 꾸려야겠다는 책임감이 부쩍 강하다. 그러나 취업이 말처럼 쉽지가 않아 안정된 생활을 꾸리게 되는 시간이 자꾸만 늦춰져 불안하다는 게 정씨의 고민이다. 정씨는 “사법고시를 포기하기까지 정말 고민이 많았다. 1차는 붙는데 2차까지 가는 게 어려웠다.”면서 “조금만 더 하면 길이 보이는데 하는 생각에 몇년을 붙들고 있다가 미련을 떨친 게 얼마 전이다. 남들보다 늦은 만큼 빨리 취직해야 할텐데 나이도 있고 정말 앞날이 막막하다.”고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올해 초 중견기업 홍보실로 입사한 박모(30)씨의 지난 3년도 번뇌와 고민으로 점철됐다. 박씨는 2006년 서울의 한 사립대학을 졸업했다. 회사에서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 선호하지 않는 인문학을 전공했다. 대학 때 학과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중국, 미국으로 어학연수도 다녀왔다. 그러나 번번이 낙방했다. 초조한 마음으로 졸업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의기소침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하는 희망을 품고 기업에 원서를 접수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역시나’였다. 박씨는 긴 좌절의 시절로 접어들었다. 세상과 담을 쌓은 ‘백수’의 나날이 이어졌다. 그러던 중 대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사귄 남자 친구와도 헤어졌다. 남자 친구는 2007년 졸업과 동시에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에 입사했다. 남자친구와 함께 있으면 자신이 초라해 보였다. 왠지 남자친구가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박씨는 자격지심을 이기지 못해 결국 남자친구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불안감에 울고… “앞날 생각하면 막막” 이후 고등학교, 대학 친구들과도 연락을 끊었다. 집에만 틀어박혀 지냈다. 그러던 어느날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을 너무 쉽게 포기해 버리려는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박씨는 지난해 말부터 편의점 아르바이트부터 시작했다. 호프집, 마트 등 여러 곳에서 일하며 사회와 정면으로 부딪치기로 했다. 잃어버렸던 자신감을 되찾은 박씨는 올해 초 당당히 입사했다. 박씨는 “지난 3년 같은 세월은 다신 되풀이하지 않겠다. 절망의 끝을 본 만큼 이젠 희망을 향해 달려가겠다.”고 다짐했다. 한창 불타는 사랑을 경험할 20~30대지만 백수에겐 그것조차 녹록지 않다. ‘백수=낙오자’라는 사회적 낙인 때문에 스스로 위축돼버려 좀처럼 사랑을 시작하기 힘들다고 백수들은 입을 모아 하소연했다. 언론사 입사 시험을 2년째 준비하는 이모(25)씨는 얼마 전 스터디 모임을 탈퇴했다. 그 스터디 모임에 속해 있던 한 남자 때문이다. 스터디가 결성된 것은 3개월 전. 인터넷 카페를 통해 모인 4명의 남녀는 1주일에 두 번씩 모여 상식 문제를 같이 풀고 논술과 작문을 연습했다. 모임 첫날 이씨는 그곳에 나온 한 남성에게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자신보다 세 살 많은 그 남자는 쾌활하고 유머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같은 언론고시를 준비하다 보니 말도 잘 통하고 생각도 비슷했다. 딱 이씨의 이상형이었다. 이씨는 남몰래 그에 대한 호감을 키워나가고 있었다. 그러기를 3개월. 적극적인 성격의 이씨는 먼저 그에게 고백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언제까지나 그가 고백을 해오길 기다릴 수는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스터디 모임 때문에 간혹 그에게만 문자 메시지를 보낼 때가 있었는데 그 때마다 즉각 답신이 오는 것으로 봐서 그도 자신에게 호감이 있다는 자신감도 어느 정도 있었다. 사랑에 울고… 자격지심에 남친과 이별 마침 스터디 사람들끼리 술을 마실 기회가 있었다. 이씨는 2차 술자리가 끝난 뒤 “더운데 바람이나 쐬러 가자.”며 그와 단둘이 있는 자리를 만들었다. 용기를 내 고백한 이씨에게 그 남성은 “노”라고 했다. 자신도 이씨에게 호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지금은 연애할 때가 아니라 취업 준비에 매진해야 할 때인 것 같다는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서로 격려하면서 취업 준비를 하면 되지 않느냐는 이씨의 매달림에도 그 남자는 꿈쩍하지 않았다. 결국 이씨는 스터디를 탈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떤 백수들은 움츠리고만 있지 않는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1년간의 백수 생활을 ‘취업’이 아닌 ‘취집(취업 대신 시집가기)’으로 해결한 양모(26)씨도 그런 경우다. 5년 전 지방대학을 졸업한 양씨는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침 일찍 도시락을 싸들고 동네 도서관에 가서 인터넷 강의를 듣고 공부를 하다가 해질녘 집에 돌아오는 생활을 한 달쯤 하자 점점 싫증이 났다. 행정법은 이해가 안 되고 영어 단어는 도통 외워지질 않았다. 안 하던 공부를 하려니 의자에 앉으면 하품이 나고 좀이 쑤셨다. 도서관에 가지 않고 친구들을 만나서 놀고 쇼핑하는 횟수가 점점 잦아졌다. 보다 못한 엄마는 “그렇게 공부할 거면 아예 접고 시집이나 가라.”며 양씨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아버지 역시 “싹수가 안 보이니 아버지 회사에서 경리 일이나 도와주면서 맞선을 보라.”며 엄마 말에 맞장구를 쳤다. 양씨 스스로도 경쟁률이 100대1이 넘는 공무원 시험을 통과할 만큼 자신의 실력이 뛰어나지 않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양씨는 과감히 방향을 전환해 맞선 시장에 진출하기로 했다. 비록 직업이 없고 학력도 보잘 것이 없는 양씨지만 키가 크고 서글서글한 인상 때문에 남성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집안 조건도 꽤 괜찮은 편이라 선 자리는 꾸준히 들어왔다. 양씨는 6개월 동안 7차례 정도 선을 봤다. 은행원, 한의사, 사업가 등 면모도 쟁쟁했다. 그중 양씨는 가장 마지막에 만난 네 살 위 대기업 회사원과 만난 지 3개월 만에 결혼했다. 그리고 양씨는 2년 전 아들을 낳아 아이 엄마가 되었다. 그는 “맞선을 보지 않고 공무원 시험을 계속 준비했다면 여전히 백수 신세를 면치 못했을 것”이라면서 “‘취집’도 색안경만 쓰고 볼 게 아니라 하나의 선택지로 여겨야 한다.”고 말했다. 유대근 오달란 박성국기자 dynamic@seoul.co.kr [서울신문 다른 기사 보러가기] 긴장 속에 지샌 6·10대회 前夜 여의도 금융가 불안에 떨게 하는 이것 나경원 의원 패션모델로 전업? 홍석현 회장 법정 서는 이유 유시민 “가해자가 헌화하는 가면무도회” 유인촌 1인시위 학부모에 “세뇌되신 거예요”
  • ‘新밴드’ 메이트, 스웰시즌도 반한 세 남자 (인터뷰)

    ‘新밴드’ 메이트, 스웰시즌도 반한 세 남자 (인터뷰)

    ”이소라, 이적, 김동률의 천재 세션, 메이트” (유희열, KBS ‘유희열의 스케치북’ 중) ”김동률이 모던록 밴드를 결성했다면, 이런 음악일 것” (이대화, 대중음악평론가) 지난 22일 KBS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출연한 뒤 ‘장기하와 얼굴들’에 이어 또 한번 주목받는 신예밴드가 있다. 모던락 밴드 메이트(Mate, 정준일·임헌일·이현재)다. ’모던락’이라는 생소한 장르에, 그것도 요즘 가요계에서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100% 어쿠스틱 밴드’를 추구한다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 메이트의 차별성은 처음부터 음악색을 분명히 하고 나왔다는 점이다. 첫 앨범 부터 ‘정규 앨범’이라니 신예밴드로서 맹랑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자신감은 세 멤버 모두가 작곡 및 작사, 편곡, 연주까지 가능한 싱어송라이터라는 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실제로 첫 앨범명 ‘비 메이트(Be Mate)’는 이들의 음악적 고집과 방향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영어적 해석 그대로 ‘메이트가 되겠다.’ 혹은 ‘동료 같은 음악을 하겠다.’는 뜻이죠. 저의 메이트 고유의 음악색이 확실히 하되, 늘 친구(프렌드)보다 가까운 동료(메이트) 같은 음악으로 대중 곁에 함께 하고 싶다는 것이 저희의 음악적 목표입니다.”(정준일) 두 번째 트랙이자 타이틀 곡 ‘그리워’는 멤버 임헌일이 작사 작곡한 곡으로 이별 후 사랑하는 이를 꿈에서 만난 슬픔을 그려낸 곡이다. 소박한 도입부와 달리 점층적으로 전개돼 고조된 감성이 폭발하는 듯한 후반부가 인상적이다. ”메이트가 추구하는 음악색을 가장 잘 담고 있는 곡이라는 점에서 타이틀곡으로 선정했어요. 넓은 의미에서 대중성도 중요하지만, 시류에 치우치지 않는 밴드가 되자는 게 저희의 고집예요. 밴드 음악에 갈증나 있는 분들에게 ‘소장가치 있는 앨범이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임헌일) 세 사람이 음악에 있어 ‘한 방향’을 바라볼 수 있는 이유는 절박한 시기에 기적적으로 찾아낸 ‘음악적 메이트’기 때문이다. ”솔로 음반의 기회가 두번 무산된 뒤, 그야말로 삶의 절망을 맛봤어요. 결국 ‘인디 음악’ 부터 다시 시작하자는 마음으로 돌아섰을 때, 이 두 사람을 만나게 된거죠. 기타(임헌일)와 드럼(이현재) 치는 모습을 봤는데 소름이 확 돋는 거예요. 첫 느낌이요? ‘니들이면 되겠다!’싶었죠.”(정준일) 특히 선이 고은 외모와 달리 드럼 앞에 앉으면 야성적 매력을 뿜어내는 막내 이현재의 모습은 강한 인상을 남겼다. ”현재는 드럼 앞에선 감춰진 야성미가 드러나요. 밴드를 결성하기 전 같은 학교 실용음악과에서 만났을 때도 심상치 않다는 생각을 했죠. 물론 잘생긴 외모도 한 몫 했고요.”(정준일) 서구적인 마스크를 지닌 이현재가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한국 사람이냐’는 말. 알고 보니 이현재는 친할아버지가 미국인이셨지만 부모님은 두 분다 한국 분이시라고. ”성장하면서 굉장히 많이 들었어요. 외모에 친할아버지 영향이 있지만, 시골에서 자란 순수 한국인이랍니다.(웃음)” 메이트의 음악적 역량은 외국 유명 뮤지션으로 부터 먼저 인정받았다. 영화 ‘원스’의 주인공 그룹 스웰시즌(The Swell Season)의 내한공연에 두 차례에 걸쳐 초대된 메이트(Mate)는 서울 세종문화회관의 대형 무대에서 ‘이프 유 원트 미’(If you want me)와 타이틀곡 ‘그리워’를 선보여 뜨거운 박수를 받기도 했다. 국내외의 주목을 받으며 화려한 신고식을 치렀지만 막상 ‘꿈’을 묻자 너무도 소소한 답변을 돌아왔다. ”다음 앨범을 꾸준히 낼 수 있는 정도의 여유, 또 저의 음악을 언제든 들려드릴 수 있는 적당한 크기의 공연 장소만 있으면 되요. 저희 셋은 ‘스타’가 아닌 ‘음악을 하고 싶은 20대 청년’일 뿐이니까요. 메이트의 음악 기대해 주세요.” 사진 제공 = 젬 컬쳐스 서울신문NTN 최정주 기자 joojoo@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백수 청년들 2주 인턴 농장취업 도전기

    청년 실업 100만 시대, 취업의 블루오션으로 농촌이 뜨고 있다. 최근 농촌에는 수억원의 순이익을 올리는 농장주들도 생겼으며, 이에 농촌 취업에 관심을 가지는 젊은이들도 늘었다. EBS 리얼실험 프로젝트X ‘농촌 주식회사 취업기’편(연출 김민)이 17일과 27일 오후 8시50분에 2회에 걸쳐 농장 취업에 도전장을 낸 젊은이들의 취업투쟁기를 그린다. 이번 실험은 20대 초반부터 30대 중반까지 현재 구직 중인 청년들을 대상으로 이뤄진다. 실험 전 기초 농업 지식을 알아보기 위한 테스트를 거쳐 6명의 지원자들은 농장 두 곳으로 나눠 배치돼 각각 농장 생활을 경험한다. 제작진은 이들이 2주 동안 농장에서 겪는 생생한 노동 체험을 소개한다. 생활 첫날부터 실험자들은 온몸에 힘이 빠진다. 강원도 한 산골에 있는 곤충농장에 간 실험자들은 작업복도 준비해 오지 않아 농장주에게 핀잔을 듣고, 곤충을 기르기 위한 통나무를 다듬고 옮기는 작업을 하면서 벌써 녹초가 된다. 경북 울진 미나리 공장에 간 실험자들도 마찬가지다. 오자마자 미나리에 삼겹살을 구워주며 환대하는 농장주를 보며 안심하지만, 그곳이 휴대전화도 터지지 않는 외진 곳이란 사실을 알고는 좌절한다. 둘째날 아침, 해가 뜨기도 전 새벽부터 시작되는 농장일에 실험자들은 괴로워한다. 이들은 몸에 밴 백수생활 때문에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조차도 쉽지가 않다. 더구나 한번도 농촌 일을 해본 적 없는 그들에게 농장주들은 인내심을 시험한다며 강도 높은 일거리를 계속 던진다. 결국 실험자들의 불만은 쌓이고, ‘농사 지어선 먹고살기 힘들다.’는 동네 어른들의 말에 절망하기도 한다. 힘든 생활에 실험자 서로 간에 다툼도 인다. 힘든 생활을 다 견뎌낸다 해도 그 중 취직이 되는 사람은 단 한명뿐이다. 이런 상황에 실험자들은 서로 일하는 스타일 때문에 다투기도 하고, 힘든 일은 자기만 하는 것 같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한다. 하지만 2주간 농업 인턴 생활에 물론 고통만 있는 건 아니다. 제작진은 힘든 농촌 생활 속에서도 즐거워하는 실험자들의 모습도 함께 그린다. 그들은 신선한 재료로 만든 새참 한 끼에도 즐겨워하고, 분신 같았던 휴대전화의 구속에서도 벗어나게 됐다. 또 농업도 배우고 끊임없이 연구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사실도 온몸으로 알아간다. 방송은 새롭게 변화하는 농촌과 현대의 농업 기술도 함께 보여준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열린세상] 지하생활에 빛이 있어야 한다/김현식 한양대 사학과 교수

    [열린세상] 지하생활에 빛이 있어야 한다/김현식 한양대 사학과 교수

    알 게 된 이래, 싫어했던 책이 있다. 소주 한 두병의 그저 그런 페시미즘에 빠져 들 때, 자꾸만 까만 수렁을 떠올려 잊으려던 소설이 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 생활자의 수기´. 속속들이 어두운 글. 출구도 없는 심연으로 끌어 내리는 책. 첫 구절부터 자못 불쾌하다. “나는 병적인 인간이다. 나는 심술궂은 인간이다. 나는 남의 호감을 사지 못하는 인간이다.” 병, 심술, 비호감. 마지막부터 이야기해 보자. 이 무명(無名)의 지하 생활자는 확실히 남의 호감을 사지 못한다. 그것도 그저 그런 정도가 아니라, 아예 송두리째 무시된다. “나는 그들이 상대해 주지 않아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걸 보이려고 애썼다. 그래서 이따금 일부러 구둣발소리를 내기까지 했다. 그러나 허사였다. 그들은 끝내 나한테 주의를 돌리지 않았다. 나는 여덟시부터 열한시까지 그들이 앉은 맞은편 벽 밑을 쉬지도 않고 왔다 갔다 했다.” 이처럼 “아무런 가치도 없는 더러운 파리” 취급을 받기에, 지하 생활자는 “참을 수 없는 굴욕의 괴로움” 에 젖어 든다. 그는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까에 전적으로 매달리며, “웃음가마리가 되는 것을 병적으로 두려워” 하기 때문이다. “나는 지하실에서 40년 동안 당신들의 말을 문틈으로 몰래 엿듣고 있었다.” 하지만 참으로 역겨운 것은 이 ´모욕과 냉소에 짓밟힌 생쥐´의 ´냉랭하고 독기 찬 증오´ 이며 ´악의 가득한 복수심´ 이다. 그는 홍등가에서 만난 여인을 철저하게 파괴한다. 너는 노예라는 둥, 영혼을 팔고 있다는 둥, 싸구려 술집을 전전하다 마침내 홀로 병들어 죽게 될 거라는 둥 연민을 가장한 사악한 말로, 한 여인을 수치와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트린다. 그리고 힘들면 찾아 오라는 말을 믿고 자신의 집을 방문한 그 여인을 돈 주어 내쫓음으로써, 그녀의 영혼을 완전히 매장해 버린다. “넌 내가 실제로 원했던 게 뭔지나 알아? 너 같은 건 세상에서 없어져 버리라는 거야!” 읽을 때마다 치미는 구토. ´저주스러운 벌레´ 의 ´형언할 수 없이 메스꺼운´ 이야기. 도 스토예프스키의 책은 분명히 허구의 극단이다. 40년 동안 ´구석진 곳에 틀어 박혀 돈도 없이 모든 현실과 인연을 끊은 채, 지하의 세계에서 증오와 원한을 쌓아 올린´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참으로 섬뜩한 것은 이 책의 실현 가능성이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15~29세의 청년 실업자는 36만 명으로, 전체 실업자의 40%를 차지한다. 여기에 취업준비생과 아르바이트생, 일자리 찾기를 포기한 구직단념자 등을 포함하면, 사실상의 ‘청년 백수’는 100만 명을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른바 청년실업 대란이다. 이들 대부분이 지하·반지하 생활자라는 것이다. 대학가 주변을 돌아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듯이, 수많은 대학생들과 ‘청년 백수’들이 어둡고 좁고 습기 찬 지하·반지하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들은 지상으로의 탈출을 꿈꾸며, 공무원시험 공부를 하거나 학비·학원비를 벌기 위해 각종 열악한 아르바이트를 감내한다. 그러나 내일이 없다면! 일할 미래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그래서 영원히 지하세계에 머물러야 한다면! 최근 씁쓸한 기사를 읽었다. 공무원시험 준비를 하라며 딸을 ‘폭행’한 어머니와 이를 ‘가정 폭력’으로 신고한 딸의 이야기. 딸은 “엄마가 대학생활 내내 공무원시험 준비를 강요하고, 최근 취직한 친구들까지 거론하며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며 강력한 처벌과 함께 ‘100m 접근금지 처분’까지 요구했다. 누군가에겐 이 일이 어처구니없는 황당한 사건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딸의 말과 행동에서, 나아가 수많은 청년 실업자들의 한숨과 눈빛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저 음습한 지하 생활자가 시나브로 느껴진다면, 이는 나만의 망상일까. 빛이 있어야 한다. 굴욕감과 자학심이 더 커지고, 증오와 복수심이 더 깊어지기 전에, 단연코 지하생활에 빛이 있어야 한다. 김현식 한양대 사학과 교수
  • “독도는 우리땅” 전파 목숨건 열혈청년들

    “독도는 우리땅” 전파 목숨건 열혈청년들

    우리에게 독도는 어떤 땅일까.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구호에만 남아 있는, 바다 건너 저 멀리 있는 작은 섬일 뿐일까. 우리땅 독도의 영토주권을 전세계에 알리기 위해 목숨까지 바친 열혈 청년들이 있다. 12일 오후 7시30분 방송되는 KBS 1TV 휴먼다큐 사미인곡 ‘독도가 달린다’편(연출 이제헌·정병권)은 독도지킴이 열혈청년단 ‘독도레이서’를 소개한다. 서울대생 6명과 체육교사 1명으로 구성된 독도레이서는 전 세계 40여개국을 종단해 달리며 독도 홍보 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기나긴 여정의 첫 시작이 ‘독도가 달린다 in 서울편’이었다. 서울에서 포항까지 380㎞ 길을 48시간 동안 7명의 멤버들이 릴레이로 달려 독도에 도착한다는 계획이었다. 독도 레이스는 멤버마다 50~60㎞를 쉬지 않고 달려야 하는 살인적인 스케줄이다. 하지만 국민들의 바람을 담아 전세계에 독도문제를 알리고 독도를 지켜내겠다는 염원으로 이들은 힘차게 길을 떠난다. 그런데 기나긴 레이스의 끝이 보일 때쯤 이들은 갑작스럽게 일어난 불의의 사고로 멤버를 잃는다. 누구보다 가장 열정적으로 레이스에 참여했던 멤버 도건이의 죽음 앞에 이들은 모두 절망한다. 결국 독도 레이스는 마지막 목적지 포항을 30㎞ 앞두고 중단된다. 하지만 이들이 그토록 가고 싶어했던 독도를 꼭 밟아 달라는 도건이 어머니의 요청으로 독도레이서들은 다시 움직인다. 친구를 잃은 슬픔과 독도 문제를 전세계로 알려야한다는 염원을 등에 지고 레이서들은 다시 독도를 향해 발걸음을 뗀다. 제작진은 일주일간 독도레이서와 함께 하며 독도로 향하는 이들의 여정을 카메라에 담았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실업대란속 중등 교원 채용도 ‘최악’

    실업대란속 중등 교원 채용도 ‘최악’

    극심한 청년실업 속에 2009년도 교원 신규 채용을 위한 임용고시 합격률이 최저를 기록했다. 16개 시·도 교육청의 80%가 선발 정원을 축소하면서 3년 만에 중등 교원 공채 합격률은 8%에서 5%로 추락했다. 1년 만에 임용고시 지원자는 1만명 이상 늘고, 합격정원은 700명가량 줄었다. 특히 교원 부족에 허덕이는 초중등 특수학교 교원은 아예 충원을 하지 않는 등 수급 현황이 심각해 특수교육 파행이 우려된다. ‘선생님’을 꿈꾸던 사범대 졸업생들은 기업에서조차 ‘기피대상 1호’로 지목되면서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경기도 합격률 3.9% 가장 낮아 16일 서울신문이 교육과학기술부와 16개 시·도 교육청에 ‘2007~2009년 초중등 교원 임용고시 현황’을 정보공개 분석한 결과, ‘중등교원’ 임용고시 합격률은 2007년 8.3%에서 2009년 5.5%로 수직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도 교육청 16곳 가운데 13곳(서울·전남·경남 제외)이 많게는 400명 이상 선발인원을 감축했다. 교원임용 현황에 따르면 2009년도 중등임용고시 지원자수(응시인원)는 7만 7022명에 달한 반면 합격자는 5.5%인 4267명에 불과했다. 이는 전년(6만 6993명) 대비 지원자는 1만명 이상 늘고, 합격자는 697명(합격률 8.3%)이 줄어든 수치다. 중등 교원 공채는 2007년에도 6만 6672명이 지원, 3년 연속 지원자가 상승했다. 반면 합격자 수는 2007년(5520명)보다 1253명이나 급감했다. 특히 2만 4000여명이 몰린 경기도(935명 선발)는 합격률이 3.9%로 가장 낮았고, 서울은 5.4%, 대구·울산 5.6%, 부산·경남 6%로 합격인원이 적었다. ●특수학교 채용 급감…교육 파행 우려 특히 장애인 등을 위한 특수학교는 정원 감축의 직격탄을 맞았다. 그나마 한두 명 뽑는 자리도 아예 없애 버려 특수교육 파행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까지 나온다. 전북과 울산은 2008년 초등교원 임용에서 특수학교 교원을 각각 30명과 23명 뽑았으나 2009년에는 한 명도 뽑지 않았다. 인천(중등)은 10명에서 2명으로, 충북(중등)은 14명에서 4명, 대전은 12명에서 5명, 서울(초등)은 39명에서 16명으로 줄였다. 3명을 선발하던 제주(초등)도 이번 선발에서는 특수교육 교원을 제외시켰다. 이는 장애학생들을 일반학생들과 통합교육시키는 최근 흐름과 정반대되는 양상이다. 지난해 말 교과부는 ‘교육복지대책’을 통해 장애학생의 교육을 위한 일반학교 내 특수학급을 2595억원의 예산을 들여 1500개 증설하기로 했다. ●예비 선생님들 절망…“사범대가 싫어요” 유례 없는 채용 축소에 사범대 졸업생 등 수험생들은 절망에 빠진 상태다. 지난해 교원 명퇴 급증으로 숨통이 트일까 기대했던 터라 충격이 더 크다. 게다가 이들은 특히 대기업과 학원 등에서마저 외면받고 있다. 올해 졸업을 앞둔 지방 국립 B대 사범대생 신모(28)씨는 “기업과 학원에선 임용시험에서 탈락한 낙오자로 보거나 임용되면 곧 이직할까봐 채용을 꺼리고 있다.”면서 “회계·기술 등의 지식이 없는 데다 공인영어점수 준비도 하지 않은 상태라서 취업하기가 더욱 어렵다.”고 답답해했다. 임용고시 삼수생 이모(29)씨는 “임용 적체가 심해 80~90%는 3년간 임용고시를 준비한다. 그 외 선택의 폭이 거의 없다.”고 한숨쉬었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야생초 이야기] 앉은부채

    [야생초 이야기] 앉은부채

    미국발 금융위기가 급기야는 이 머나먼 한국 땅의 경제도 꽁꽁 얼려놓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 사상 유례 없는 청년 실업자 수를 기록하는 가운데 더러는 그 어려움을 견뎌내지 못하고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도 생겨나고 있다. 아이엠에프보다 더 춥고 긴 겨울이라고 한다. 이곳 지리산에는 지난 11월 말부터 높은 능선에 눈이 내리기 시작하여 온 산이 이불처럼 눈에 덮여 있다. 등산로엔 간간히 겨울 산행객이 지나긴 하지만 골짜기엔 고라니나 산토끼 같은 짐승 자국밖에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의 흔적을 찾기 어렵다. 적막만이 눈처럼 겹겹이 쌓여 있다. 간간히 들려오는 박새나 오목눈이 같은 새소리도 오히려 그 적막을 거들 뿐이다. 나무나 풀들도 고요히 깊은 잠에 빠져 있다. 나뭇가지에 꽃눈이나 잎눈이 새봄을 기약하며 맺혀 있긴 하나 아직 눈을 틔우기엔 너무도 이르다. 마른 풀잎들은 지난여름 혹은 가을에 뽑아 올렸던 꽃대궁들로 지난날의 영화를 아스라이 떠올리고 있다. 해가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살아 있는 꽃을 이 겨울산에서 찾아본다는 것은 난망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 눈 속에 피어 있는 꽃이 없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바람이 그리 매섭지 않은 골짜기, 물기가 촉촉한 비탈엔 제 스스로 눈을 녹이며 고개를 내미는 꽃이 있다. ‘앉은부채’가 그것이다. 이 식물은 뿌리에 저장해놓은 녹말을 분해하며 열을 내뿜어 저를 덮고 있는 언 땅과 눈을 녹이며 자라나 꽃을 피운다. 보통은 이르면 2월 중순 넘어서 3월, 4월에 본격적으로 꽃을 피우지만, 성질 급한 놈은 이렇게 늦은 1월이나 이른 2월에도 더러 만날 수 있다. 앉은부채의 꽃은 불염포라 불리우는 휘장을 두르고 그 안에 숨어 있다. ‘불염’이라 함은 부처의 후광을 둘러싸고 있는 불꽃 모양을 이른다. 꽃을 싸고 있는 계란 모양의 잎새를 ‘포’라고 하는데 이 앉은부채의 꽃을 둘러싸고 있는 그것이 부처를 두르고 있는 불염과 같으니 불염포(佛焰苞)라 이르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꽃의 이름은 ‘앉은부채’가 아니라 ‘앉은부처’이어야 옳다. 발음이 와전되어 고착한 것이리라. 아닌 게 아니라 그 불염포 안을 들여다보면 부처의 머리와 같은 꽃차례가 나타난다. 꽃이라 해서 모두 아름답거나 화려하거나 앙증맞진 않다. 이 꽃은 그렇듯 일반적인 꽃과 다르다. 화려한 꽃잎도 꽃받침도 없다. 그러나 분명 꽃이다. 꽃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잠시 바꿔야 한다. 둥근 구슬 모양의 꽃대에 암술과 수술이 노랗게 박혀 있을 뿐이다. 꽃이 식물의 생식기관이라면 이 암술 수술이면 꽃에겐 충분하지 않은가? 꽃은 아름다워야 한다는 것, 향기로워야 한다는 것은 어쩌면 인간의 이기적인 판단이 작용한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자기 꽃가루를 자기가 받게 될 것을 염려하여 암술부터 발육하고 암술이 제 기능을 다하면 그 다음에 수술이 발육한다는 것이다. 오랜 진화의 결과 체득한 지혜라고 하겠다. 어찌 꽃을 미추라는 기준으로만 바라볼 것인가? 이 앉은부채는 무엇보다 냄새가 썩 좋지 않다. 그래서 서양에선 스컹크 양배추(skunk cabbage)라 부른단다. 그러나 그 냄새로 하여 딱정벌레와 같은 벌레들이 모여들게 되고 벌도 나비도 아직 깨어나지 않은 추운 겨울에 꽃가루받이가 가능한 것이다. 물론 앉은부채가 스스로 열을 내다보니 그 온기를 좇아 곤충들이 꾀기도 할 것이다. 만화방창 꽃들이 세상을 가득 채운 봄날에 꽃 같지도 않은 이 꽃을 벌, 나비가 찾아나 줄 것인가? 그러니 일찌감치 눈 속에 피어, 향기 아닌 썩은 냄새라도 피워 곤충을 모아 꽃가루받이를 하는 것이다.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는 지혜가 예사롭지 않다. 하등식물이라고 우습게 볼 일이 아닌 것이다. 서양 사람들은 냄새나는 방귀쟁이 동물 스컹크 이름을 붙여주었으나 우리 조상들은 이러한 갸륵한 식물에게 부처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현상만 바라보는 얕은 서구적 사고와는 달라도 한참 다른 것이다. 부처라는 이름으로 거룩하게 앉아 절망과 좌절에 빠져 있는, 열악한 외적 조건만을 탓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설법을 하고 계신지도 모른다. 예쁘고 화려해야 다 꽃이 아니듯 사람도 그렇지 않겠는가? 극한의 조건 속에서도 제 스스로 열을 내어 땅을 뚫고 눈을 녹이며 피어나는 앉은부채를 본다. 벌, 나비가 없는 추위 속에서도 강인한 제 유전자를 천손만대에 이어가려는 눈물겨운 의지를 읽는다. 사람이 이 꽃보다 못해서야 되겠는가? 꽃보다 아름답다고 하는 것이 사람일진대. 어찌 보면 봄이 와서 꽃이 피는 것이 아니라 꽃이, 그것도 이 앉은부채가 피어 봄을 부르는 것인지도 모른다. 봄을 알려주는 꽃이 아니라 봄을 불러오는 꽃이다. 우리 인간 세상의 봄도 그러하리라 생각해 본다. 모질고 혹독한 시기를 희망을 잃지 않고 버텨내는 사람들이 있어 우리 사회가 훈훈해지고 더 살 만해지는 것 아닌가 싶다. 작으면 작은 대로 초라하면 초라한 대로 생명에게 주어진 소명을 다하며 스스로를 꽃 피우는 일이 저 꽃에게나 사람에게나 다를 바가 없다. 워낙 추운 날씨에도 피어 그렇지 그렇게 보기 드문 꽃은 아니다. 자료를 보면 전남, 강원, 경기, 함남 지방에 분포한다고 하나 여러 가지 종류가 다양하게 전국에 걸쳐 분포하는 것으로도 소개되고 있다. 색깔도 다양하여 순노랑색을 띄는 것도 있고 자주빛깔을 띄는 것도 있다. 이 앉은부채는 이렇게 일찍 피었다가 져가면서 잎이 피어나게 되는데 그 잎은 30~40cm 정도로 넓게 퍼져 자란다(반대로 ‘애기앉은부채’는 잎이 먼저 피어 다 자란 후 6~7월에 핀다). 앉은부채 잎은 나물로도 식용하며 진정제, 이뇨제 등의 약재로도 쓰인다 하니 인간에게도 이로운 식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 뿌리에는 독성이 있다. 천남성과 식물이 대개 그렇다. 저도 스스로를 지킬 무기는 있어야 하겠지. 하지만 이 독성을 약재로 사용하는 처방도 있어서 앉은부채를 채취하는 손길이 많아져 지켜보는 마음이 안타깝기도 하다. 글 복효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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