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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31 광역단체장 후보 지상탐구] (1) 인천시장

    [5·31 광역단체장 후보 지상탐구] (1) 인천시장

    ■ 우리당 최기선 “일자리 30만개 만들것” 열린우리당 최기선 후보는 인천시장을 3차례 지낸 인물이다. 출마를 고사한 그에게 열린우리당이 끈질기게 구애한 것은 이런 경력을 평가했기 때문. 최 후보는 1945년 경기도 김포시 통진면 가난한 농민 가정에서 태어났다. 누나 여섯에 남동생이 하나인 집안의 장남이었다. 그는 64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한 뒤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었고 이듬해 제적돼 69년 복학했다. 입학 10년 만인 73년 졸업했다. 은행과 건설회사 등 직장생활을 거쳐 1979년 김영삼(YS) 당시 신민당 총재의 외신 담당 비서로 정치권에 입문한 그는 YS의 총애를 받았다. 뛰어난 영어실력과 성실성 등을 평가받았다고 한다.88년 총재비서실장에 임명됐고 그해 총선에 나가 13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 들어 관선 인천시장에 부임했고 민선 1·2기 시장선거에서 잇따라 당선됐다. 최 후보는 94년 터진 인천 북구청 세무비리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시장직을 사퇴했다. 사퇴 직후 부인과 사별하는 아픔도 겪었다. 천주교 모임에서 만난 김영애(50)씨와 재혼한 것은 2002년의 일이다. 2002년 인천시장 당시 지방선거를 앞두고 “인천을 발전시킬 새 사람에게 시정을 열어주고자 한다.”며 불출마를 선언한 그는 4년 만에 다시 선거판에 돌아왔다. ▶왜 다시 시장이 되겠다는 것인가. -지금 인천은 실업률이 전국 광역단체 중 2위, 재정자립도는 꼴찌다. 경제자유구역 외국자본 유치는 부진하다. 위기다.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외환위기 시절 송도신도시에 127억달러의 외자를 유치하고 인천 경제자유구역 지정을 이끌었다.4년간 후퇴한 인천을 다시 전진하게 하겠다. ▶핵심 공약인 경제자유구역 특별자치단체화는 국회에서 법안이 통과돼야 가능한데. -이미 지난해 재정경제부가 추진하려던 것이다. 안상수 시장이 “인천을 둘로 쪼개는 것”이라고 몰고 가 시민들의 반감을 조장하고 본질을 외면하게 했다. 정부가 의지를 갖고 있고 여당이 법안을 당론으로 추진할 예정이다. ▶일자리 30만개를 만들겠다는데, 현실성 없다는 비판이 있다. -인천형 뉴딜정책을 통해 가능하다. 영종 경제자유구역내 혁신사업지구 조성을 통해 10만개 일자리가 나온다. 기존 공단을 디지털산업단지화하면 6만개를 만들 수 있다. 또 송도유원지를 문화산업지구로 조성,4만개를 만드는 등 세부 계획이 있다. ▶여론조사에서 안 후보에게 많이 뒤지고 있다. 박근혜 대표 사건 여파도 있는데. -선거운동 한 지 겨우 4주 됐다. 안 후보는 4년 됐다. 박 대표 피습으로 여론이 반응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구체적으로 어떤지는 모르겠다. 여론조사에서 20%가량 안 후보와 차이 나는 것으로 나오지만 부동층이 45∼50%나 된다. 또 실제로 체감하는 지지율 차이는 많지 않다. ▶과거 민자당과 신한국당, 자민련 등을 거쳤다. 열린우리당과는 정체성이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다. -과거 민주화운동 경력이나 서민경제를 중시하는 성향은 열린우리당의 정체성과 가장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황장석기자 surono@seoul.co.kr ■ 한나라 안상수 “네거티브 선거 안통해” 한나라당 안상수 인천시장 후보는 지난 4년간 시정을 맡아 일해 오면서 151층짜리 인천타워를 비롯해 유엔 산하 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이사회 정보통신개발센터(UN ESCAP APCICT), 국제학교, 연세대 등을 유치했다는 사실을 새삼 부각시키고 있다. 안 시장은 특히 버스무료환승제를 실시하고, 녹지확보율을 높이는 등 시민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성과들을 집중 제시하며, 최고경영자(CEO) 출신 시장으로서의 이미지를 홍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그는 최근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상대 후보들에게 압도적인 우위를 보이며 선두를 굳건히 고수하고 있다. 이같은 지지율은 선거대책본부장을 맡고 있는 조모 전 의원의 부동산 투기 의혹에도 불구하고 흔들리지 않고 있다. 안 시장은 24일 이에 대해 “예비후보 등록 때부터 일관되게 인천이 경제자유구역을 성공시키고 동북아 중심도시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세계 경제흐름을 한눈에 꿰뚫고 있는 CEO 출신 시장이 필요하다는 점을 알려온 게 주효한 것 같다.”고 자평했다. 그러면서 “유권자들도 후보자가 제시하는 정책과 비전에 관심을 갖지 더 이상 네거티브 선거운동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다.”고 표심(票心)에 대한 분석도 곁들였다. 이어 “근거없는 비방이나 흑색선전이 난무하고 있지만 선거 끝까지 최선을 다해 깨끗한 정책대결을 해 나갈 생각”이라고도 다짐했다. ▶열린우리당 최기선 후보와 8년 만에 리턴매치를 갖게 된 심경은. -지난번엔 도전자로서, 이번엔 챔피언으로서 선거를 치르지만 선거를 치르는 심정은 어떤 상황이든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이번 선거는 지난 4년간의 시정에 대한 시민들의 평가를 받는 자리인 만큼 지난번보다 더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경쟁 후보들의 장단점을 얘기한다면. -열린우리당 최 후보의 경우, 저에 앞서 10년 동안 인천시장으로 재직하며 많은 일을 하신 분이고, 민주당 신경철 후보는 인천시의회 의장을 하실 만큼 인천에 대해 큰 애정을 가진 분이며, 민주노동당의 김성진 후보는 오랫동안 인천의 소외된 분들을 위해 일해오신 분이다. 다들 훌륭한 분들이지만 지금 인천에는 경제를 잘 알고, 국제적인 비즈니스를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공약 중 특히 역점을 두는 게 있다면. -2014년 인천·평양 아시안게임 공동 유치다. 아시안 게임을 유치하면 아시아뿐 아니라 세계 속에서 인천의 브랜드 가치가 높아져 명실상부한 동북아 중심도시로 발돋움하게 된다. 경제적으로는 7조 2000억원의 생산 및 부가가치 유발 효과와 함께 14만 8000명의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다. 특히 평양과의 공동 개최가 성사된다면 한반도 평화시대를 열어가는 데 인천이 중심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지난 4년간의 도정을 평가한다면. -다른 광역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됐던 인천의 구조적 틀을 개선하고 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하루도 쉬지 않고 일에 전념했다. 인천을 위해 누가 더 많은 일을 할 것인지, 시민들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민노당 김성진 “서울에 종속된 인천 되찾겠다” 민주노동당 김성진(46) 인천시장 후보는 인천지역 시민사회운동의 ‘대부’로 불린다.1988년 인천민주청년회 초대 회장을 비롯, 굵직한 대표 이력만 10여개. 이 과정에서 인천 앞바다 핵폐기장 건설 문제와 부평 미군기지 되찾기 운동, 수인선 지상건설 등 지역현안을 해결하는 데 시민들과 마음을 모아왔다. 이 때문에 이번 선거에서 ‘인천을 위한 인천’을 만드는 일이 출마를 결심하게 만든 본질적인 고민이다. 김 후보는 “모든 것이 서울에 종속돼 있다. 인천의 정체성을 되찾고 싶다.”며 출사표를 올렸다.‘지역사회 연대기금 1000억원 조성’과 ‘부평미군기지 인수위원회 구성’,‘주민참여조례 제정’ 등 주요 공약도 인천을 복지도시,‘풀뿌리 진보도시’로 만들고자 하는 의지가 엿보인다. 다른 후보들이 경제자유구역 문제에 ‘올인’하는 모습에 대해서도 단호하다. 그는 “인천경제자유구역 건설에 그동안 1조 6000억원 이상을 들였지만 인천시민들에게 돌아온 혜택은 극히 적다.”고 지적했다. 지지율 10%대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는 김후보는 “서민을 위한 복지정책을 강화해 고정표를 다지겠다.”고 다짐했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민주당 신경철 “재래시장등 골목경제 활성화” 인천 시의원을 3차례 역임한 민주당 신경철 후보는 ‘토박이’란 사실을 강점으로 내세운다. 그는 안산 대부도와 화성에서 보낸 초등학교 중학교 때를 제외하곤 줄곧 인천에서 살았다.1953년 대부도 태생으로 호적에 기재돼 있지만, 아버지 본적을 따른 것일 뿐 실제론 인천 송림동 태생이라고 한다. 그가 이번 선거에서 던진 화두는 ‘골목경제 활성화’다. 토착상인과 기업인을 살리기 위한 재래시장활성화 대책을 주요 공약으로 들고 나왔다. 지방정부 자치법규 등을 정비하고 대형 할인점을 규제하는 등의 방안을 내놨다. ‘아시안게임 유치’,‘경인전철 인천 구간 지하화’ 등 상대 후보들의 주요 공약에 대해선 “당선된다 해도 본인들 임기 내에 실현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그는 “박근혜 대표 피습 이후 선거 분위기가 가라앉고 시민들이 냉담해진 것 같다.”고 걱정하기도 했다. 한나라당 당적을 갖고 있다가 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으로 옮긴 데 대해서는 “인천시장은 시민의 미래를 책임지는 자리로 당적은 큰 의미가 없다.”고 했다. 황장석기자 surono@seoul.co.kr
  • 김오남·유진오등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제

    민족문학작가회의와 대산문화재단이 주최하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후원하는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가 12일 서울 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열린다.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작가는 강경애(소설가), 김오남(시인), 엄흥섭(소설가), 유진오(소설가·평론가), 이정호(아동문학가), 이주홍(아동문학가), 이하윤(시인·영문학자), 조종현(시조시인), 최정희(소설가) 등 9명. 조종현은 ‘태백산맥’의 작가 조정래의 선친이며, 김오남은 ‘남으로 창을 내겠소’의 시인 김상용의 여동생이다. 문학제의 주제는 ‘주변에서 글쓰기, 상처와 선택’.1931년 만주사변을 전후로 등단해 카프(KAPF·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가 맹위를 떨치던 시기에 청년기를 보낸 이들은 대부분 문학의 주변에 머무르며 친일문학과 카프 사이에서 상처받고 선택을 강요당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김인환 고려대 교수의 총론으로 문을 여는 심포지엄에서는 이들 작가들의 삶과 문학이 집중적으로 재조명된다. 이중 1930년대 여성문학을 대표하는 강경애와 최정희에 대해 기존에 논의됐던 평가와는 다른 각도에서 접근한 작가론이 발표될 예정이어서 주목을 끈다. 김경수 서강대 교수는 일제시대 최고 사실주의 작가이자 여성주의 문학으로 높은 평가를 받아온 강경애의 소설에 내재한 가부장적 세계관의 한계를 지적하고, 방민호 서울대 교수는 최정희의 소설이 여성의 내면적 드라마를 문학적으로 풍부하게 묘사해 자립적 가치를 드러냈다는 새로운 평가를 내린다. 심포지엄에 이어 유가족과 제자들이 참여하는 ‘문학의 밤’행사가 열린다. 조정래가 아버지를 회고하며 쓴 글이 공개되고, 문인들이 참여하는 낭송회와 연극, 노래 공연 등이 마련된다. 근대문학 100여년의 성과를 정리하는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는 올해 6회째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여야 5·31지방선거 공약 분석

    여야 5·31지방선거 공약 분석

    여야는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유권자들의 호응을 얻을 만한 차별화된 정책 공약을 내놓기 위해 당력을 쏟고 있다. 이 과정에서 여야 공히 실현 가능성 없는 선심성 공약을 남발하고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 우리당 열린우리당은 교육과 복지정책에 주력하는 동시에 지방권력 부패 청산을 내걸고 한나라당을 압박하는 양면 정책을 구사할 계획이다. 이광재 전략기획위원장은 5·31 지방선거를 겨냥한 정책 공약과 관련,“5·31 지방선거에서 교육과 복지, 주민소득 증대라는 세 가지 원칙을 관철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교육분야에서는 현행 0.2%대에 머무르고 있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1%대까지 확대해 지자체의 교육지원 활성화를 꾀한다는 방침이다. 청년실업 해소를 위해 방과 후 학교를 확대하고 산학협력을 활성화하는 방안도 시급한 과제로 꼽고 있다. 이와 함께 복지분야에서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를 늘리고 노인들의 요양시설과 일자리를 확충할 방침이다. ‘지방권력 부패 청산’은 한나라당의 지방권력 독점구조 타파를 최우선 목표로 삼고 있다. 특히 지방자치단체가 관리하는 100조원 규모의 예산체계를 혁신하는 등 종합적 지방제도 개선책을 제시할 방침이다. 이 위원장은 “광역·기초단체장 관사를 어린이집과 주민복지센터로 전환시키고, 지자체 재정 5%를 교육예산으로 사용토록 하는 법안을 제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한나라당 한나라당은 참여정부의 정책 실패를 집중적으로 부각시키는 동시에 정부·여당과는 차별화된 부동산·교육·조세 등 다양한 분야의 정책 대안을 제시할 방침이다. 당 고위 관계자는 “주택공급을 확대해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고, 지속적인 감세정책으로 서민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동시에 대학교육비를 절반 수준으로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정부·여당의 지난해 8·31 부동산대책과 최근 제시한 3·30 후속대책을 최대 실정으로 규정하고, 주택공급 확대를 주요 내용으로 한 정책 대안을 제시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위해 수도권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를 체계적으로 재정비, 대규모 신도시와 렌털타운(임대전용신도시)을 조성하는 방안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분야에선 국·공립 대학 교육비를 절반 수준으로 낮추고, 대학 기여입학제를 허용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또 강북지역에 9∼20개의 자립형 사립고를 설립하고, 저소득층 자녀의 자립형 사립고 입학시 장학금을 전액 지원토록 하는 방안도 추진할 것으로 전해졌다. 전광삼 구혜영기자 hisam@seoul.co.kr
  • 영하의 거리를 맨발로 다니는 철학도

    영하의 거리를 맨발로 다니는 철학도

      이 한겨울에 맨발의 청년이 출현했다. 작년 여름에 길다란「오버」를 입고 다닌 김인범(金仁凡)(19·서울문리대 철학과 2년)군. 본인은 입고 싶을 때 입고 벗고 싶을 때 벗는 것이라고 계절과 세상의 공론에 초연하지만 그「초연」의 저변은 궁금하기만 하다. 차디찬 콘크리트 바닥에 맨발로 서서 유유히 미술전을 감상 그의 그런 모습은 이미 서울 명물의 하나인지도 모른다. 68년 12월 28일, 더 정확히 말하면 하오 2시 정각. 따뜻한 날씨라지만 바람은 역시 동짓달 바람이다.「오버」는 분명히 입고 있었다. 그런데 벗은 것이 있었다. 신발과 양말. 모든 사람이 옷을 벗을 때 외투까지 입고, 남들이 애써 두텁게 입고 낄 때 맨발이 됐다. 그는 그 차림으로 신문회관화랑으로 들어갔다. 거기서는 이화여중·고교 학생들의 그림전시회(12월 26~30일)가 열리고 있었다. 입구를 지키던 여학생이며 그림을 보러 온 사람들이 수군수군 하기 시작했다. 그는 유유히 약 30분간 그림감상에 몰두했다. 옆구리에 대학「노트」한 권과 책 두 권을 끼고 있다.「칸트」의『순수이성비판』의 영어판. 그리고 또 한 권은 조가경(曺街京)교수의『실존철학』. 젊은 낭만의「데먼스트레이션」치고는 괴로운 고역같이 보는 것은 남들의 무책임한 수작이다. 이 인범군이 새해에 진갑을 맞는 아버지 김소운(金素雲·수필가)씨와 서울시내 무교동 S다방에서 우연히 부딪쳤다. 인범군은 여름에 입었던 아버지의 불하품인 그 외투에, 맨발의 천사.「父」와「子」는 오래도록 한 자리에 만나 별로 할 말이 없었다. 인범군이 고개를 한번 꾸벅하더니 그 자리에 섰다. 아버지는 아들의 아래위를 한번씩 훑어보았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거기 앉아라』 아들이 머뭇머뭇 의자에 앉았다. 『너 이놈, 요즘은 맨발로 다닌다지. 오늘은 날씨가 따뜻하지만』 우연히 만난 아버지는 쓴 입맛 다시는데 아들은 말없이 씩 웃고 아버지는 쓴 입맛만 다셨다. 아들은 그저 고개를 숙이고 묵묵부답. 그러다가 고개를 들고 씩 한번 웃었다. 아버지는 무연(撫然)한 표정으로 외면한 채 줄담배만 피웠다.「가경(佳景)」이었다. 갖은 괴벽과 기행으로 젊음을 얼룩지게 한 수필가도 아들에게는 그것을 바라지 않는 눈치다. 이때 소운선생은 혹시 젊었을 때의 자기를 생각하고 있었을까? 그 다방을 나올 때 아버지는 아들에게 무엇인가 주의를 주면서 용돈 얼마를 건네는 눈치였다. 부자회견 후 인범군에게 감상을 물었다. - 아버지가 놀랐겠는걸요. 젊은이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뭘요, 그 정도로 놀랄 아버님이 아닌 걸요』 기자는 김군과 다른 다방으로 옮겨 마주앉았다. - 미쳤다는 소리를 듣겠군요. 씩 웃는다. 『그런 말을 속삭이는 사람들이 있죠. 저는 황송스러운 말씀이라고 부득이 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 왜? 『사전을 보면 두 가지 뜻이 있어요.「정신이상」과「도달」. 미치지(狂) 않고 미치기(達)는 쉽지 않은 법입니다. 어느 예술의「장르」나, 학문의 정상에 도달했다고 알려진 사람들은 대개 거기에「미치게」마련이죠. 그러한 찬사(讚辭)는 제게 과분입니다』 “뜻밖이라 아버지가 놀랐겠는데요”엔 “그 정도론 놀라지 않을 분” - 여름에 외투를 입는다는 것은 그래도 참을 수가 있겠지만 겨울에 신발을 벗으면 동상에 걸리지 않겠어요? 『오늘 정도의 날씨면 까딱 없어요. 선생님도 한번 벗어 보세요. 영하 10도쯤 돼야 동상에 걸려요.』 - 그러면 영하 10도 아래가 돼도 벗고 다니겠어요? 대답 없이 다만 웃었다. 미치기는커녕 누구보다도 똑똑한 청년이다. 키 173cm의 헌칠한 미남. 경기중학을 졸업, 서울문리대 철학과에 입학했다. 68년 10월에 서울문리대에서 각 학과의 학생 4명씩이 선수로 출전해서 주선(酒仙)대회가 열렸을 때 철학과 대표의 한 사람으로 나갔다. 그 때의「인사이드·스토리」로는 국문학교수 전광용(全光鏞)씨가 그를 우승자의 하나인 주선(酒仙)으로 적극 추천했다는 소문이다. 겨울에 신발을 벗고 대로를 활보하는 뜻은 자유스러워지고 싶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편 인범군의 이 색다른「데먼스트레이션」을 그의 아버지 김소운씨는「구린내 나는 자기 현시욕(現示慾)」이라고 타박이지만 죄는 그의「피」에 있을 듯하다. 김소운씨는『젊었을 때는「바이론」의 흉내를 내기 위해 오릿길을 일부러 절룩거리면서 걸었다』고 어떤 책에 썼다. 그뿐 아니다. 김소운씨의 자전적「에세이」『어느 하늘 끝에 살아도』라는 근저(近著)를 보면 아들 인범군 못지 않을 고집과 기행이 드러난다. 아버지 김소운씨는 일본에서 일부러 하얀 바지 저고리를 입고 다녔단다.「父와 子」의 성격의 유전을 느끼게 하니 흥미롭다. 그 책에 의하면 어려서 일본에 건너갔을 때 김소운씨는 일본에서 고의로 하얀 바지 저고리를 입고 다녔다. 소년의 객기(客氣)만이 아니었다고. 일부러 눈에 띄는 그런 옷차림으로 나다니면서『여기「조센징」이 있다. 어느 놈이고 한번 덤벼 보아라』그런 기분이었다고 한다. 그 아버지의 상식을 초월한 괴벽 기행(奇行)이 점철되어 흥미롭다. -「데이꼬꾸쯔싱」에 사표를 내고 하숙비가 밀렸던 여관에 이부자리며 행장을 맡긴 채 육로를 걸어서 서울에서 부산까지 내려갔다. 열 나흘 걸렸다. 노자를 아껴서 도보로 천릿길을 가자는 것은 아니다. 주머니에는 그래도 부산행 차표 네 다섯 장은 살만한 돈이 있었다. 자기 자신을 어디다 부딪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충동이 장거리「하이킹」을 시켰단다. 이 여행으로 김소운씨의 발바닥은 물론 부르텄다. 그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은 인범군이다. 더욱이 가정교사와 장학금으로 당당한 자립생활을 하는 청년이다. 아마도 그 고집은 청출어람(靑出於藍)격인지도 모를 일이다. [ 선데이서울 69년 1/12 제2권 제2호 통권16호 ]
  • [큐! 아름다운 노년] ⑧전문가에게 듣는다-끝

    [큐! 아름다운 노년] ⑧전문가에게 듣는다-끝

    서울신문은 기획시리즈 ‘큐! 아름다운 노년’ 시리즈의 마지막 순서로 좌담회를 마련했다. 공공정책부 유진상 차장의 사회로 진행된 좌담에는 안창영 보건복지부 노인지원과장, 고수현 금강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장종원 국민연금관리공단 노인인력운영센터 소장이 참석해 고령자일자리 창출과 관련한 문제점과 향후 대책 등에 대해 진단했다. 사회 서울신문이 노인들의 다양한 문제를 시리즈로 다뤘습니다. 평가부터 해주시죠. 장종원 소장 고령화사회를 맞아 노인복지문제를 7회에 걸쳐 시리즈로 게재, 문제점을 지적하고 정책대안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특히 고령화사회에서의 노인 일자리사업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아름다운 노년을 주제로 한 소재들은 신선감은 물론 시사하는 바가 컸습니다. 고수현 교수 현대사회는 인구 고령화 현상과 맞물려 다양한 노인문제를 양산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서울신문의 노인기획시리즈는 비교적 짜임새가 있고 시의 적절한 주제 선정이었습니다. 그러나 노인이 더 이상 우리사회에서 의존적인 대상이 아니라 그들의 근로능력이나 경험을 바탕으로 주체적인 사회구성원이 될 수 있다는 공감대 형성에는 다소 미진했습니다. 노인문제 전반을 다루다 보니 신문의 지면 한계성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여겨집니다. 안창영 과장 아쉽다면 노인 일자리사업 우수사례를 좀더 상세히 소개했더라면 하는 점입니다. 노인들이 일을 함으로써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는 자긍심과 건강이 유지돼 활기찬 노후생활이 보장될 수 있다는 자긍심을 갖게 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와 같은 사회분위기 조성에 언론이 앞장서주길 부탁드립니다. 사회 노인인구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2050년에는 노인인구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을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대책마련이 시급한데요. ●“노인취업은 사회적부양비 절감 효과 커” 안 과장 경제적 안정을 위해서는 노인들은 취업이 필요하고, 노인들도 강한 취업 욕구를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취업을 희망하는 노인에게 취업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노인 개개인에게는 노후의 경제적 자립을 가능케 합니다. 뿐만 아니라, 사회적 부양비를 절감시켜 국가의 재정지출감소, 나아가 중요한 사회문제의 하나인 노인문제를 경감시키는 가장 바람직한 방안입니다. 정부는 노인문제를 사회문제로 인식하고 노후소득보장, 취업기회 확대, 노인요양보호 등 제도적 틀을 고령화 시대에 맞게 개선해야 합니다. 고 교수 고령화사회의 가장 시급한 문제는 늘어난 노인인구에 대한 사회적 부양의 부담문제입니다. 이미 우리나라의 노인인구는 2000년에 339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7.2%를 넘어섰고 올해는 9.1%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것을 노인부양지수(노년부양비)로 보면 현재 생산가능 인구층이 비교적 두꺼운 대전시와 경기도에서도 20년 후에는 2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전남과 전북지역은 거의 생산가능 인구 1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해야 한다는 연구결과도 나와 있습니다. 따라서 국가는 부양부담을 갖게 되는 생산가능인구와 부양을 받게 되는 세대·계층간의 갈등문제 해결에도 나서야 할 것입니다. 사회 노인일자리 대부분이 한시적이어서 실속이 없다고 지적되고 있습니다. ●“과거경험·경륜 살릴 수 있는 일자리를” 장 소장 현재 노인일자리가 농·어업이나 경비 등 단순 직종에 집중돼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따라서 이에 대한 해결방안으로 예비 노인들을 대상으로 은퇴 후를 대비한 교육과 현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직업 전문교육, 재취업교육 등이 필요합니다. 또 과거의 경험과 경륜을 살릴 수 있는 일자리를 적극적으로 개발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특히 풀타임 근무가 어렵다면 낮은 임금으로라도 조별 파트타임 근무 등 다양한 근무형태 도입도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고 교수 지적한 대로 현정부의 노인복지부문 핵심국정과제로 시작되었던 노인일자리사업은 지난해 1월29일에 설치된 ‘노인인력운영센터’가 총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방향설정에서 문제가 있고 실속이 없다고 봅니다. 대부분의 노인일자리창출 프로그램이 노인들의 근로능력을 바탕으로 그에 맞는 사전교육과정이 없이 단순한 영역에 치우쳐 있습니다. 공익강사형, 인력파견형, 시장참여형 등으로 시작했다가 최근에는 공익형, 교육복지형, 자립지원형으로 유형화하고 있지만 과거 정부의 ‘취로사업’형태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건비도 월 20만원 이내로 5개월 정도에 한정돼 있습니다. 청년실업도 문제지만 고령화사회에 걸맞은 지속적인 방향설정이 요구됩니다. 사회 고령자 일자리 창출과 관련 기업의 역할이 매우 중요할 텐데요. 장 소장 기업은 노동인구 감소에 대비해 노동인구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으로 재교육과 재취업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활성화해야 합니다. 영국과 같이 정년 퇴직자를 위한 노인전용공장을 운영하고 사회공헌차원에서 노인 사회적 일자리 복지프로그램에 대한 기금을 지원하는 것도 좋은 방안입니다. 이럴 경우 기업홍보 및 이미지 제고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임금피크제 등 통해 고용연장을” 고 교수 제도적인 접근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제는 기업이 스스로 자사직원들의 노동복지를 강화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적극적 대응책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임금피크제나 점진적 퇴직제를 과감하게 도입하는 것이 노동복지 차원에서 시급합니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근로환경이 노인층에게는 불리하므로 고령자가 일하기 편한 작업환경을 구축해야 합니다. 물론 이에 대한 정부의 세제지원도 요구됩니다. 사회 노인일자리에 대한 올바른 정책방향은 어떤 것입니까. 안 과장 평균수명의 지속적 연장과 고령화로 인한 노동인력 감소에 대비해 계속고용제도가 유지될 수 있도록 정년연장, 임금피크제, 고용에 있어서의 연령차별금지 등을 도입해야 합니다. 국민연금수령 연령과 퇴직연령을 연관시켜 정년을 연장해야 하고 기준고용률(3%)을 권장사항에서 의무고용률로 개선하는 한편, 노인적합직종도 법으로 명시, 의무고용토록 하는 등 어느 정도 규제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경쟁시장에서 취업하기 어려운 노인들에게는 정부와 민간이 연대하여 공공부문(보건·의료, 사회복지 분야 등)을 중심으로 사회적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취업알선·인력파견직종 지속 개발” 장 소장 노인일자리 개발과 일자리창출은 노인의 경제상태와 근로능력 및 개별욕구에 따라 그 접근방법을 달리 해야 합니다. 우선 60세 미만의 경우 노동부를 중심으로 지속적인 공용유지 프로그램 개발과 전직활용 및 새로운 직무교육 등을 통한 전직지원이 돼야 합니다. 60세 이상자 중 경제적 문제 또는 지속적인 근로욕구가 강한 사람들에게는 취업알선과 함께 인력파견직종을 지속적으로 개발하여 연계하고 취업교육도 병행시켜 나가야 합니다. 경제적 문제는 없으나 더불어 함께하는 사회참여를 원하는 계층은 적극적인 사회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실비지원의 자원봉사 프로그램이 많이 개발돼야 합니다. 사회 안정적인 노후를 위해서는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요. ●“자기계발 위해 평생학습교육” 안 과장 퇴직 및 노화에 따르는 변화를 자연스럽게 인정하는 사회분위기 형성이 우선돼야 합니다.‘젊은 사람도 먹고 살기 힘든데 노인이 뭘∼’이라는 식의 사고는 곤란하다는 얘기죠. 노인들은 노후를 ‘제2의 인생’으로 생각하고 관계형성이나 역할을 만드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자기계발을 위해 평생학습이나 직업교육 프로그램 등을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고 교수 안정적인 노후는 결과적으로 소득보장·의료보장과 사회복지서비스에 의한 사회보장에서 찾아야 합니다. 저소득층 노인들에게는 공공부조를 통한 소득과 의료보장이 확충되고, 중산층 노인들에게도 사회보험제도 등을 통한 노후지원 체계가 마련돼야 합니다. 국가는 건강한 노후생활을 위한 대책과 고령화 사회에서 유병장수하는 노인들을 위해 요양보험제도도 시급히 도입돼야 합니다. 사회: 유진상 공공정책부 차장 정리 강충식기자 chungsik@seoul.co.kr 후원 : 보건복지부 협찬 : 국민연금관리공단
  • ‘정년퇴직 반대’ 전세계 확산

    ‘고령화 사회’에 들어서면서 정년퇴직에 대한 반대여론이 전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가 11일 보도했다. HSBC가 여론조사기관 해리스 인터액티브에 의뢰해 미국, 일본, 중국, 인도, 프랑스, 브라질 등 10개국의 1만 1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80%의 응답자가 ‘연령에 상관없이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답했다. 또 출산율은 낮아지고 평균수명은 늘어나면서 점점 증가하고 있는 사회적 부담을 줄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퇴직 연령을 높이는 것’이라는 의견이 45%로 가장 많았다. 세금을 올리자는 응답은 26%, 연금수령액을 낮추자는 의견은 15%에 불과했다. 응답자의 71%는 은퇴에 대비해 준비를 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노후에도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답한 사람은 14%에 머물렀다.‘이상적인 노후생활’을 묻는 질문에는 60% 이상이 일과 여가를 함께 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존 본드 HSBC 회장은 “고령화 사회에 따른 문제를 피하기 위해서 각국 정부와 기업, 금융기관들은 이런 새로운 추세를 이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노후생활을 바라보는 관점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에 큰 차이를 보였다. 인도에서는 생존을 위해 노후에도 일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고, 중국에서는 노년층은 노후를 휴식기간으로 여기지만 청년층은 더 나이가 들어도 일을 하고 싶어하는 경향이 강했다. 반면 일본인들은 건강과 가정생활에 깊은 관심을 나타냈다. 미국인들의 64%는 은퇴를 ‘새로운 기회’로 인식했다. 장택동기자 taecks@seoul.co.kr
  • 재보선 앞두고 표심 유혹 공약 만발

    재보선 앞두고 표심 유혹 공약 만발

    오는 30일 치러지는 재·보궐선거를 위한 선거전 양상이 점차 뜨겁게 달궈지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네 곳의 선거구 기초의회 의원을 새롭게 뽑는 서울에서는 모두 14명의 후보자가 나서 3.5대1의 치열한 경쟁을 벌이게 됐다. ●2개 선거구는 같은 당 후보 두명씩 출마 광진구 구의3동과 서대문구 홍은2동은 같은 당 소속 후보가 맞붙어 눈길을 끈다. 현행 선거법상 기초의회 선거에서는 정당 공천 없이 출마하게 돼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중앙당 내부에서 출마희망자들중 ‘내부 공천(내천)’이라는 형식으로 후보를 가려낸 뒤 당 차원에서 측면 지원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는 정당의 최하부 조직이 기초의회 의원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데다 이들의 의정활동이 구정(區政)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천이라는 절차는 정당 내부에서만 의미가 있을뿐 선거법상 필수조건이 아니기 때문에 이에 불복하더라도 선거에 나설 수 있다. 따라서 같은 당에 속한 여러 명이 입후보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선거운동 과정 내내 ‘정당 내부공천’ 운운하며 상대후보를 공격하고 이에 불복해 출마하는 행태는 기성 정치판과 다르지 않고 ‘구태’를 벗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전직 구의원이 지난해 열린 시의원 선거에 당선돼 자리가 빈 광진구 구의3동에서는 모두 세명의 후보가 나섰다. 세 후보 모두 지역내 공영주차장 확충 문제와 한강둔치로의 진입로를 만들겠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세무공무원 출신인 기호1번 김찬경 후보는 재산세율 인하와 테크노마트·동서울터미널·골목상가간 연계망 형성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보육시설 갖춘 동사무소 신축도 기호2번 정대교 후보는 홍보물을 통해 김 후보를 제치고 한나라당의 정식 내천을 받았다는 점을 집중부각하고 있다. 여성인 기호3번 박삼례 후보는 홍보물을 통해 구의원 선거에는 정당공천이 없음을 꼬집으며 경로당내 공기청정기를 설치하겠다는 신선한 아이디어를 공약으로 제시했다. 전직 구의원이 선거법 위반으로 물러난 서대문구 홍은2동에서는 네명의 후보가 격돌한다. 홍은2동 재개발사업 추진을 돕고 낙후된 도로망을 확충하도록 노력하겠다는 점은 공통된 공약이다. 기호1번 한상열 후보는 새마을운동에 18년간 참여한 경력을 바탕으로 ‘노인공경 으뜸마을’을 만들고 지역내 국공유지 무단점유자들이 국가에 지불해야 할 변상금을 인하하는 것을 공론화할 것을 다짐했다. 포방터시장 번영회장을 역임한 기호2번 정용래 후보는 북한산 자락에 맞닿은 주택가에 산책로를 겸한 산불방지턱을 만들고 재래시장 활성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재개발 관련 건축회사에서 잔뼈가 굵은 기호3번 정금섭 후보는 보육시설 등을 갖춘 동사무소를 신축하고 부족한 경로당 수를 크게 늘리겠다는 점을 제시했다. 기호 4번 홍길식 후보는 자신이 한나라당의 정식 내천을 받았고 같은 당 소속인 기호1번 한 후보가 무리하게 출마했다며 불만을 나타냈다. 홍 후보는 정두언 전 서울시 부시장실에서 근무했다는 경력을 들며 행정전문가라는 점을 부각했다. ●‘터줏대감’이냐 ‘굴러온 돌’이냐 전직 구의원이 지병으로 숨져 공석이 된 성동구 성수2가1동에서는 모두 네명의 후보가 나섰다. 동네에서 나고 자라 ‘터줏대감’격인 후보가 두명 출마한 가운데 타 지역출신 후보 2명이 ‘박힌 돌’을 빼내기 위해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 지역 후보들은 뚝도시장 활성화와 도로확충 등에는 비슷한 공약을 제시했다. 5대째 이 지역에서 살아온 기호1번 신동욱 후보는 청년실업문제 해결을 위해 구내 취업안내센터를 새로 만들고 노인체육시설을 확충하겠다고 약속했다. 역시 이 지역에서 나고 자란 기호2번 최천식 후보는 차상위계층과 중소기업을 자생 시민단체와 연결해 자립기반을 찾도록 하는 연계 프로그램을 개발하겠다고 나섰다. 상대후보에 비해 지역기반이 약한 기호3번 박영천 후보는 지역내에서 인쇄공장 노동자로 일한 경험을 십분활용할 방침이다. 이 지역에 보건분소를 유치하고 작은기업을 활성화하는 방안을 소속당인 민주노동당과 찾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 지역에서 통장을 10년 이상 지내고 성동구민대상 봉사상을 수상해 ‘터줏대감’ 못지않은 지역기반을 가진 기호4번 김호진 후보는 자신은 서울숲과 이 지역을 잇는 문화관광벨트 추진을 제시했다. ●보궐선거에 이은 재선거 강동구 길1동은 지난해 6월 보궐선거를 치렀지만 당선자가 후보등록 당시 지역 선거관리위원을 사퇴하지 않은 점이 문제가 돼 법정공방을 벌이다 재선거를 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입후보한 세명의 후보는 모두 길동시장 현대화와 길1동 균형발전촉진지구 지정 등에 대해서는 공감대를 가지고 있다. 구의원으로 활동하다 재선거를 치르게 된 기호1번 홍익표 후보는 지역내 초등학교 교육환경개선과 길동 문화센터를 증축하겠다고 다짐했다. 홍 후보는 이부영 열린우리당 전 의장으로부터 측면지원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성후보인 기호2번 김행자 후보는 길동역 에스컬레이터 설치와 탁아시설·노인정 확충을 주요공약으로 내세웠다. 지난 2002년에 이어 구의원 선거에 재도전하는 기호3번 이육재 후보는 대규모 공영주차장을 확보하고 장애인 결식지원, 경로당 현대화 등을 약속했다. 고금석기자 kskoh@seoul.co.kr
  • 이명박 시장 홈페이지 글 전문

    ●행정수도에 관해 저 이명박이 말씀드립니다. -수도분할을 중지하고 통일을 대비해야 합니다.- 대통령께서 인터넷에 띄우신 “행정수도 건설을 결심하게 된 사연”은 잘 읽어보았습니다.그 글에서 “행정수도 건설을 반대하는 사람도 꿈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그렇습니다.저 이명박에게는 꿈이 있습니다.저의 꿈은 통일수도입니다.대통령께서는 ‘분할된 수도’를 꿈꾸고 계시지만,저는 ‘통합 된 수도’를 꿈꾸고 있습니다. 충청권과 수도권뿐만 아니라 온나라가 함께 잘사는 나라,남한과 북한이 하나 되고 함께 잘사는 나라,남북한 7천만 겨레가 합의하는 통일수도를 꿈꾸고 있습니다. 대통령께서 개혁과 국가발전을 위해 애쓰고 계신 것에는 힘찬 박수를 보냅니다.하지만 수도분할은 아닙니다.개혁도 아니고,균형발전도 아닙니다. 사실 수도이전 논의는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공약으로 나온 것이어서,저는 선거가 끝나면 당연히 국민의 의사를 물어 재고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대통령께서는 ‘수도이전 공약으로 재미 좀 봤다.’,‘한나라당에서도 재미좀 보라.’,‘정권의 명운을 건다.’,‘지배세력 교체를 위해 천도해야 한다.’,‘수도이전에 반대하는 것은 정권 흔들기다.’라고 말씀하시는 등 국가대사를 극단적으로 정치쟁점화하는 것을 보고,국가의 중대사인 수도이전을 오직 정치적 계산에서 추진한 것이지,국가균형발전이나 수도발전을 위해 오래전부터 심각하게 고민하여 추진한 것이 아님이 명백해졌습니다. 그럼에도 정부에서는 신행정수도 예정지를 발표하고 후속 조치를 일사천리로 진행시켰습니다.국민이 원하지 않는 정책은 성공한 예가 없다고 역사는 가르치고 있습니다.정부가 무리하게 추진했던 수도이전은 지난해 대다수 국민의 반대와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결국 무산되었습니다.저는 그때 국민과 함께 ‘국력낭비를 막았다.’면서 안도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수도이전이 수도분할의 망령으로 되살아나 또다시 정치에 남용되고 있고,국민을 괴롭히고 있습니다.수도이전보다 더 나쁜 수도분할에 많은 국민이 분노하고 있습니다. 정부·여당은 성난 민심을 의식하여 “수도권 후속대책”을 쏟아내고 있고,국무총리는 ‘수도권발전대책협의회’를 만들어 수도분할을 기정사실로 몰아가고 있습니다.수도분할로 충청권 주민을 현혹하더니,이제는 선거를 앞두고 수도권 주민을 현혹하려 하고 있습니다.정말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수도분할은 수도이전보다 더 나쁩니다. 제17대 국회는 2005년 3월 2일 수도를 분할하는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특별법’을 통과시켰습니다.대통령과 6부는 서울에 남고,국무총리와 12부4처는 충청남도 연기·공주로 이전한다고 합니다.대통령은 3월 18일 이 법률을 공포했습니다. 정말 통탄할 일입니다.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수도를,그것도 행정부를 갈라 나누어 놓은 예는 없습니다.수도분할은 국정운영의 비효율과 국력 낭비,그리고 국가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것이 명백합니다. 요즘은 치열한 국제경쟁 시대입니다.국정운영의 효율은 국가경쟁력의 기초입니다.대통령과 국무총리,장관들이 서로 120km나 떨어진 장소에서 근무해서는 국정운영이 효율적으로 이뤄질 수 없습니다.원만한 부처간 협의도,신속한 위기관리도 어려워집니다.수도분할은 국가정체성과 통치의 근본을 쪼개는 것으로서,수도이전보다 더 나쁩니다. 수도이전과 수도분할에 정략적으로 담합한 정치권은 책임을 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제16대 국회는 2003년 12월 ‘신행정수도건설을위한특별법’을 통과시켰습니다.그때 저는 이 법률의 통과를 막기 위해 수도이전을 반대하는 국민과 함께 사방으로 뛰어 다녔으나,여·야 정치권은 저의 호소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다행하게도 우리의 입헌민주주의는 살아있었습니다.헌법재판소가 2004년 10월 21일 수도이전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림으로써,정의를 바로 세울 수 있었습니다.대의민주주의의 타락에 경종을 울리는 역사적 순간이었고,대한민국 헌정사에 한 획을 긋는 잊지 못할 사건이었습니다. 그때 한나라당은 위헌 결정을 환영하면서,수도이전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였습니다.그러나 한나라당의 일부 의원들이 또다시 수도분할에 동조했습니다.수도를 두 동강내는 결정에 동조했던 정치권은 역사에 공동 책임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중앙정부는 서울시와 단 한번의 사전·사후협의 없이 수도이전을 일방적으로 추진하였습니다. 수도이전은 건국 이후 최대의 국책사업입니다.그런데도 중앙정부는 사전에도,사후에도 서울특별시장의 의견을 구하거나,협의를 요청한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작은 프로젝트의 경우에도,이해당사자나 전문가와 오랜 기간 기술적·경제적으로 치밀한 사전 검토와 충분한 협의를 거쳐 추진합니다.이것은 최소한의 예의이며,필수적인 절차입니다.수도이전은 작은 프로젝트가 아니라 국가 대사입니다.그럼에도 정부에서는 이러한 최소한의 예의와 절차도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하였습니다. 정치적 담합으로 수도분할을 기정사실화 해놓고,“후속대책을 마련한다.”는 빌미로 사후적으로 지방정부를 불러 무조건 따르라고 요구하는 것은 ‘참여민주주의’가 아닙니다.민주주의가 아니라 권위주의의 부활이며,참여를 가장하여 지방자치를 억누르는 ‘참여권위주의’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는 지방자치의 헌법정신을 존중하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해야 합니다.시대에 역행하는 ‘권위주의’ 방식의 모양 갖추기에는 결코 승복할 수 없습니다. 수도분할 반대는 수도권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지역이기주의가 아니라 통일한국의 미래를 위한 것입니다. 제가 수도분할에 반대하는 것은 수도권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반대가 아닙니다.나라와 민족의 장래를 위한 충정에서 비롯된 것입니다.국가균형발전은 충청권으로의 수도이전이나 수도분할로 이룰 수 없습니다.만일 제가 충청권 시·도지사였을지라도,수도이전의 문제점을 똑같이 지적했을 것입니다. 수도이전 문제는 통일을 대비해서 국민의 뜻에 따라 정해나가야 한다는 것이 저의 믿음입니다. ●해양수산부 이전 반대 이유는 지금도 타당합니다. 노무현 대통령께서는 해양수산부장관 재직 시에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에 반대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지금 보아도 아주 잘하신 판단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통령께서는 “해양수산부가 부산으로 가면 서울에 따로 사무소를 두어야 하고,장관은 거의 서울에 있어야 한다.”,“장·차관이 매주 국무회의에 참석해야 하고 국회에도 출석해야 하는데,서울에서 지역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으면 업무 효율이 떨어진다.”,“지방으로 이전하면 결재 등 업무효율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부처이전보다는 실질적인 업무와 권한을 지방에 대폭 이양해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을 하신 것으로 압니다.참으로 올바른 지적이며,지금도 타당한 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때나,지금이나 사정이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그런데도 대통령께서는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것이 문제라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중앙정부의 “수도권 후속대책”은 국민을 호도하고 있습니다. 정부·여당이 내놓은 “수도권 후속대책”은 심각한 문제점을 갖고 있습니다.서울시가 이미 계획했거나 추진하는 사업을 자신들이 새롭게 수립한 것인 양 발표하여 사실을 왜곡하고 있습니다.아무런 사전상의도 없이 서울시의 정책을 복사하여 발표한 것은 명백한 표절입니다. 중앙정부의 뚜렷한 역할이나 예산지원이 없음에도 불구하고,여당에서는 “서울시 청사를 광화문네거리에 대형 건물로 짓겠다.”고 하고,정부에서는 “대학로 발전방안”까지 발표했습니다. 대학로를 꾸미는 일은 기초자치단체인 종로구가 추진하고 있는 고유 업무이며,“청계천 역사문화벨트 조성”은 서울시가 추진하는 역점사업입니다.그런데도 이러한 사업들을 마치 중앙정부가 마련하고 주도하는 것처럼 발표한 것은 어이가 없는 일이며,그간 준비가 안 되어 있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정부·여당에 “파사현정(破邪顯正)”을 촉구합니다. 정부·여당은 수도분할로 텅 비게 될 정부청사에 “벤처단지 조성”과 “초고층 업무빌딩 유치”를 검토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수도권과밀 해소를 위해 수도분할을 한다면서,그 후속대책으로는 오히려 수도권과밀을 부추긴다면,이는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입니다.정부부처가 떠난 자리에 기업을 유치하겠다면,처음부터 연기·공주에 유치하는 게 훨씬 더 낫습니다. 수도이전과 수도분할은 ‘국가균형발전’과 ‘수도권과밀 해소’를 이유로 추진되어 왔습니다.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저의와 진실이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선거 때마다 이용하려는 정치책략임을 모든 국민이 알게 되었습니다.그래서 국민들은 더욱 분노하고 있는 것입니다. 선심 쓰듯이 “후속대책”을 급조하고 남발하는 것은 잘못된 수도분할을 더욱 잘못되게 하는 일이며,충청권과 수도권,나아가 국민을 두 번 속이는 일입니다.국민을 두려워한다면,국가균형발전을 원한다면,이제는 진정으로 지방을 도와주는 방안을 고민해야 합니다. 수도분할과 “수도권 후속대책”은 바른 길(正道)이 아닙니다.국민의 행복보다 정파의 이익을 앞세우는 그릇된 길(邪道)입니다.정부·여당은 지금이라도 통일한국과 7천만 겨레의 앞날을 걱정하는 바른 길로 돌아와 ‘파사현정(破邪顯正)’의 길로 가기를 호소합니다. ●국가균형발전을 위해서는 진정한 지방분권과 재정지원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참여정부가 진정으로 국가균형발전을 이루려고 한다면,중앙정부에 집중되어 있는 권한과 재원을 과감히 지방으로 이양해야 합니다. 정부와 여당은 서울집중을 막기 위해 백약을 다 썼으나 무효였다고 하고 그래서 수도이전을 하자는 것이라고 주장하지만,실은 백약 중 가장 효험이 있을 약은 제쳐두고 있었습니다.그것은 대통령과 중앙정부의 권한과 재원을 지방에 나누어 넘겨주는 일,즉 진정한 ‘분권’입니다. 중앙집권의 낡은 틀을 그대로 둔 채,수도이전이나 수도분할을 한다고 해서 지방이 잘 살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국가균형발전의 길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지방에 실질적인 결정 권한과 재원을 주면,지방정부는 지역특성에 맞는 발전을 이뤄 나갈 능력이 있습니다.세원이 많은 곳에서 세금을 더 거두어,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역에 적극 지원해야 합니다.수도분할에 소요되는 막대한 재원의 일부를 지방에 지원해야 합니다.그러면 지역별로 특색에 맞는 발전을 이루어 지역균형발전은 빨라질 것입니다. 정부가 중앙행정기관을 인위적으로 강제 배분하는 방식은 구시대적 발상이며,지방발전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서울의 과밀은 해소되고 있습니다. 참여정부가 표방하는 수도이전 또는 수도분할의 가장 큰 이유는 수도권 과밀 해소 및 국가균형발전입니다.수도이전으로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는 경제·산업·교육의 기능을 분산시키고,지역균형발전을 도모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세계화와 개방화의 시대입니다.수도권의 기능을 억제한다고 해서,이것이 곧 비수도권 지역의 발전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왜냐하면 자본과 시설,사람이 외국으로 나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지난날 수도권정책이 수없이 반복되었어도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시대흐름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수도권 집중을 인위적으로 억제해서 그 반사이익이 상해,동경 등 다른 경쟁도시의 몫으로 돌아간다면,그것은 오히려 서울과 지방을 공멸시키고 국가전체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우려가 있다고 하겠습니다.수도권 집중을 억제해도 비수도권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면,비수도권의 발전은 그 지역 스스로 경쟁력을 강화하도록 하는 게 최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께서는 수도분할의 이유를 들면서 국가균형발전보다 수도권 과밀을 걱정하셨는데,이것은 인식의 차이에서 나온 결과라고 생각합니다.현재 수도권은 과밀화 진행 단계를 지났습니다.서울의 인구는 줄고 있고,서울의 교통,환경,주거 여건은 점점 좋아지고 있습니다. 1970∼80년대에는 인구과밀을 걱정했으나,1990∼2000년대에는 인구의 과소를 걱정할 단계에 이르고 있습니다.서울시는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실제로 구체적인 성과를 착실히 이뤄가고 있습니다.서울에 세계의 첨단기업이 모여들고 있는 것은 그 증거입니다. ●공장의 위치보다 일자리 창출이 더 중요합니다. 정부는 지금 수도권규제완화를 거론하고 있습니다.그렇습니다.일부 규제는 필요하겠지만,수도권의 경쟁력을 위해 불필요한 규제는 없애야 할 것입니다.그간 서울시는 수차례에 걸쳐 지나친 수도권규제를 완화해 달라고 중앙정부에 건의했으나,반영된 사례가 거의 없습니다. 요즘은 세계화 시대입니다.세계 각국이 자본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수도권에 공장을 짓지 못하게 하면,지방으로 가는 게 아니라 외국으로 나갑니다. 공장의 위치가 수도권에 있느냐,지방에 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일자리 창출이 중요하고,청년실업을 해소하는 것이 시급합니다. 수도이전과 수도권규제 완화는 흥정의 대상이 아닙니다. 수도이전과 수도권규제 완화는 별개의 사안입니다.흥정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참여정부는 ‘신행정수도 건설을 전제로 공장총량제 등 수도권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히고,대통령께서는 “행정수도이전 정책과 수도권규제 개선은 수도권과 지방의 정치적 빅딜로서 함께 윈-윈할 수 있는 정책”이라고 주장하셨습니다. 이는 수도이전과 수도권규제 완화를 “맞교환하자.”는 주장인데,목적과 수단을 혼동하는 근본적인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수도이전은 국가의 명운을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국가대사로서,수도권규제 완화와는 그 성격과 비중이 다릅니다. 수도이전을 합리화하기 위해 수도권의 규제 완화가 가능하다는 것은,마치 ‘정치적 흥정’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습니다.수도이전을 해도,지금의 수도권에 대한 규제가 합리적이라면 그 자세를 일관되게 유지해야 옳을 것입니다.마찬가지로 수도이전을 하지 않더라도,수도권 규제가 합리적이지 않으면 이를 철폐해야 할 것입니다. 그간 서울시가 수도권규제 완화와 수도권발전을 줄기차게 주장해 왔지만,중앙정부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수도분할에 대한 수도권주민의 분노가 들끓자,이를 달래려는 ‘사탕발림’ 식으로 수도권발전을 거론하고 있습니다.국가경영에는 원칙이 있어야 합니다.시류에 따라,정치 분위기에 따라 오락가락해서는 안 됩니다.중앙정부가 진정으로 수도권발전을 원한다면,서울시가 꾸준히 건의해 온 방안을 검토하기를 바랍니다. ●서울은 지방이 아니라 세계와 경쟁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동북아중심국가’를 비전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이러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라도 서울의 경쟁력은 필수입니다.국경 없는 무한경쟁의 시대입니다.대도시의 경쟁력이 곧 국가경쟁력이 되고 있습니다. 서울은 주변 강대국의 주요 도시들과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습니다.동경,북경,상해,싱가포르 등 경쟁도시들과 한판 승부를 벌어야 하고,이겨야 합니다.그래야 대한민국의 국력이 커질 것입니다.그런데 멀쩡한 수도를 두 동강낸다면,서울과 대한민국의 경쟁력은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입니다. 일본 도쿄도 수도이전을 추진했던 적이 있습니다.오랜 세월 검토하다가,지난 2003년에 수도이전 논의를 중단했습니다.오히려 도쿄의 도시경쟁력을 키워주고 있습니다.2002년 7월 “수도권·기성시가지의 공업 및 제한에 관한 법률”을 폐지하여 동경의 경쟁력이 곧 일본의 국가경쟁력이라는 인식을 토대로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유럽의 국가들도 20세기에는 국토균형발전을 위해 분산정책을 취했습니다.하지만 21세기에 들어와서는 대도시의 경쟁력을 육성하는 새로운 국가전략을 채택하고 있습니다.런던,파리,로마,프랑크푸르트,베를린,그리고 브뤼셀 등 유럽 각국의 수도들은 유럽연합(EU)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강력한 집중전략을 다시 펴고 있습니다. ‘수도이전이 국가균형발전과 무관하다’는 사실은 대통령께서도 잘 아시고 계실 것입니다.서울은 부산,대구,대전,광주 등 지방도시와 경쟁하지 않습니다.동북아시아의 주도권을 놓고,도쿄,상하이,베이징,홍콩,싱가포르 등 대도시들과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습니다.아시아 주요 도시와의 경쟁에서 서울이 이겨야 중앙정부가 표방하는 ‘동북아중심국가’도 성공할 것입니다. ●서울과 지방은 상호보완 속에 함께 발전해야 합니다. 국가균형발전은 획일적인 형평성을 지향하는 ‘하향평준화’가 아닙니다.국가 전체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상향일류화’가 되어야 합니다.그러자면,수도권과 지방이 상호보완을 이루어,나라 전체의 파이를 키우는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정부는 서울과 지방을 분열시키지 않아야 합니다.서울과 지방은 서로 돕는 보완관계에 있습니다.예를 들어,전라남도의 관광단지가 발전하면 서울의 시민들이 가서 보고,지방의 무공해 농산물은 수도권시민이 이를 소비합니다. 수도를 약화시켜 다른 지방을 발전시킨다는 전략은 성공한 예가 없습니다.수도를 여러 개 만들어서는 안 되며,서울·대구·광주는 각자 특색 있게 발전시켜 상호보완의 네트워크를 구축하도록 해야 합니다. ●수도이전에 쓸 재정이 있다면 통일비용으로 아껴 두어야 합니다. 수도이전은 ‘평화통일’이라는 민족의 염원과 통일한국의 장래를 염두에 두고 구상되어야 합니다. 북한은 국제적으로 고립되어 있고,경제난이 겹쳐 체제가 내구력을 상실해 가고 있습니다.이러한 정세를 감안할 때,통일이 언제 실현될 지는 누구도 단정할 수 없습니다.그러나,정부가 수도를 분할하여,새로운 행정도시를 완성하는 시기 이전에 통일이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수도를 온전히 지키는 일은 “통일 다음으로 중요한 이 시대의 애국과제”라고 생각합니다.그 이유는 수도가 국정수행의 중심이자,국가정통성을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통일한국과 7천만 겨레,그리고 후손들의 행복을 생각한다면,수도를 두 동강내서는 안 됩니다. 국가경영에는 우선순위가 있습니다.수도분할은 시급하지 않습니다.지금은 수도분할이 아니라,민족통일에 힘을 모아야 할 때입니다.수도이전이나 수도분할에는 막대한 재원이 소요됩니다.남·북한이 통일 후 공동 번영을 이루려면 엄청난 규모의 재정이 필요할 것인데,이렇게 한가하게 국력을 낭비할 때가 아닙니다.수도분할에 사용할 재정이 있다면,통일시대를 대비하는 재원으로 아껴 두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100만 명에 이르는 젊은 실업자가 있습니다.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젊은이에게 일자리를 주는 것입니다.수도이전에 쓸 돈이 있다면,차라리 그 비용으로 100만 개의 일자리를 만드는 게 더 현명합니다. ●국익을 위해 결심을 바꾸는 것은 지도자의 진정한 용기입니다. 국가지도자는 결심을 하고 집행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때로는 결정을 취소하고 결심을 바꾸는 용기도 필요합니다.개인적인 차원의 명분보다 국가의 명운이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노 대통령께서 지도자로 높이 평가한 박정희 전 대통령이 70년대 말에 추진했던 ‘행정수도이전계획’은 수도의 영구이전이 아닌 임시 행정수도로의 이전계획이었습니다. 이는 당시 미국의 카터 대통령이 미군 철수를 언급하여 한미관계가 어려워지고 안보불안이 커진 상황에서,북한의 미사일 사정거리 밖으로 벗어나기 위한 국가안보상의 필요에서 추진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현재는 그 때와 모든 국내외 상황과 여건이 판이하게 달라졌습니다.동서냉전 시대가 가고 남·북 긴장이 완화되었으며,이제 세계는 경제적으로 국경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북한의 기습공격을 대비해야 했던 30년 전에는 수도이전이 논의될 만 했을지라도,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라 세계와의 경쟁에 나서야 할 때입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66년에 ‘제6회 아시안게임’을 유치했다가,경제여력이 없다는 이유로,그리고 소요 재원을 국가적으로 더 시급했던 산업발전에 쓰기 위해 이를 반납했던 적이 있습니다. 행정중심도시는 어차피 성공하지 못할 일입니다.저는 젊어서부터 열사의 나라 중동에서부터 동토의 시베리아까지 전 세계를 누비며 일해 왔습니다.그러나,세계 어느 곳에서도 수도를 분할한 사례를 본적이 없고,브라질·호주·말레이지아 등 수도이전을 추진했던 나라의 경우에도 수도이전에 성공한 사례를 본적이 없습니다.결국에는 정부가 추진 중인 수도분할도 국력낭비로 이어질 것이 명백합니다.사정이 이런데도 꼭 해야겠다고 고집하는 이유를 납득할 수 없습니다. 국가지도자는 단순히 정책을 수립했다는 사실만으로 평가받는 것은 아닙니다.때로는 국익을 위해 기존의 정책을 바꾸거나 포기하는 지도자가 더 높은 평가를 받을 때도 있습니다.자신보다 나라를 먼저 걱정하는 혜안과 용기에 찬사를 보내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지도자의 결단은 역사의 물줄기를 바꿀 수 있습니다.대통령께서는 국가와 민족의 미래를 위해,수도분할을 재고해 주시기를 바랍니다.만약 생각을 바꾸신다면,우리국민들은 은퇴 후에 성공한 대통령으로 평가할 것이라 믿습니다. 2005년 3월 24일 서울특별시장 이명박
  • ‘홍대앞 사이버마을’ 7월 뜬다

    ‘홍대앞 사이버마을’ 7월 뜬다

    오는 7월부터는 홍대앞에 직접 가야만 구할 수 있었던 독특한 모양의 수공예 목걸이, 팔찌 등 액세서리와 젊은 작가들의 실험적 공예품, 그림 등 각 종 예술품을 인터넷을 통해 감상도 하고, 구매도 할 수 있다. 서울 마포구는 3일 ‘홍대앞 소극장’‘홍대앞 미술학원’‘홍대앞 라이브클럽’‘홍대앞 카페’등 홍대만의 독특한 문화적 특징을 갖춘 180여개 시설을 한 데 모아 ‘홍대앞 사이버마을’(가칭 ‘홍 스토리’)을 구축한다고 밝혔다. 이 곳에는 홍대앞을 문화활동의 거점으로 하는 300여명의 젊은 작가와 작품도 모두 담게 된다. 박홍섭 마포구청장은 “마포구 실업극복재단에서 4000만원을 지원하는 등 이 사업에 총 1억 2800여만원의 예산을 투입하게 된다.”면서 “창의적인 젊은 작가들에게 꿈을 펼 수 있는 장(場)을 마련해 준다는 점에서도 의의를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180개 시설·300여명 작품 담아 구는 이 사업을 지난해 12월부터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미 홍대앞의 독특한 문화 콘텐츠를 이용해 ‘돈벌이’를 하려던 여러 인터넷 기업들의 시도가 있은 후였다. ‘홍대앞 문화예술인 협동조합(홍문협)’조윤석 대표는 “마포구의 제안이 있기 전에도 몇몇 기업에서 홍대문화 포털사이트를 만들자는 적극적인 제안을 했었다.”면서 “처음에는 홍대문화를 보존하고 키운다는 측면에서 공감대를 이루는 듯 보였으나 갈수록 상업적 측면만 강조하게 돼 결국 포기했다.”고 밝혔다. 구는 ‘홍대문화’를 육성·보존하고 동시에 젊은 작가들의 경제적 자립을 보장하는 범위내에서 ‘홍 스토리’를 운영할 계획이다. 이준범 마포구 문화체육과 팀장은 “마포구 실업극복재단에서 거액을 지원하는 것만 보더라도 이 사업이 마포의 청년실업극복에도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다.”면서 “‘홍 스토리’에는 독창적인 작품들을 판매하는 쇼핑몰도 운영된다.”고 말했다. ●자립기반 위한 쇼핑몰도 운영 ‘홍 스토리’ 웹사이트 구축을 맡고 있는 ㈜케이씨인터렉티브 강민호 대표는 “현재 홍문협 등 홍대앞 문화 관계자들과 콘텐츠를 수집하고 있다.”면서 “워낙 ‘제멋대로’인 홍대앞 문화 콘텐츠를 확보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이달까지 수집을 완료하면 웹사이트 구축은 50∼60% 이상 진행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밝혔다. ‘홍 스토리’에는 회화작품, 수공예 작품, 음원·음반, 도서, 사진, 일러스트레이션, 디자인 등 홍대앞의 모든 것이 총망라된다. 특히 기존 온라인 쇼핑몰과는 달리 음원, 사진, 일러스트레이션 등 예술가들의 디지털 콘텐츠 등도 거래된다. 홍대앞 사이버마을 구축을 담당하는 마포구청 관계자는 “‘홍 스토리’는 기술적으로 홍대지역 예술가들의 개인 블로그나 웹사이트 기능까지 겸하게 할 방침”이라면서 “여기에 쇼핑몰 기능까지 더하게 되면 ‘홍 스토리’는 홍대앞 문화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전초기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시말해 오프라인에 공간마련이 쉽지 않은 영세 작가들에게 인터넷 상으로 작품을 전시할 공간을 마련해 주는 셈이다. 여기에 작품 판매까지 가능하게 만들면 홍대문화는 자연스럽게 유지·발전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홍대앞을 온라인에서 느낀다.” 갤러리, 소극장, 인디밴드, 라이브 클럽, 댄스 클럽, 출판사, 미술학원 등 홍대문화를 보여주는 180여개 업체에 대한 자세한 정보도 각 분야별로 제공된다. 특히 공예, 음악, 카페, 사진 등 각 분야마다 홍대문화를 잘 이해하고 있는 이 지역 전문가를 위촉해 콘텐츠의 독창성을 최대한 살릴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홍 스토리’에는 홍대앞을 주요 문화활동의 거점으로 하는 300여명 이상의 작가들에 대한 포트폴리오 및 인력풀 사이트도 구축된다. 이렇게 되면 ‘홍 스토리’를 방문한 사람들은 작가를 쉽게 검색할 수 있는 동시에 이들의 작품들을 감상·구매할 수 있다. ●‘우유각소녀’등 성공사례도 있어 마포구는 ‘홍 스토리’의 성공을 나름대로 확신하고 있다. 인터넷을 통한 상공사례가 여럿 있기 때문이다. 홍대지역에서 활동하다 홈페이지 ‘우유각소녀’(www.hakpage.net)를 개설, 젊은 층의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드로잉 아티스트 홍순학 씨가 그 예다. 그는 재미있고 신나는 낙서풍의 그림들을 홈페이지에 선보이면서 ‘우유각소녀’라는 예명을 널리 알릴 수 있었다. 인기를 반영이라도 하듯 ‘우유각소녀’는 지난해 9월 책을 출간하기도 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우유각소녀’ 홍순학씨 외에도 인터넷을 통해 이름이 알려진 몇몇 젊은 예술가들은 젊은 마니아들을 확보하고 있다.‘델로스’‘안티’ 등의 브랜드는 이미 인터넷 상에서 다양한 판로를 개척, 활동 중이다. 개인적인 활동 뿐만 아니라 홍대앞 놀이터를 중심으로 생성된 ‘예술시장’은 급속도로 전국에 퍼져가고 있다. 광주의 ‘모난돌’, 대전 ‘궁동별난장’, 대구 ‘깨비예술시장’, 부산의 ‘문화소통숨’ 등이 그 예다. 마포구는 장기적으로 ‘홍 스토리’와 이들 전국의 예술시장을 연계해 ‘홍대앞 예술시장 네트워크’를 구축함으로써 홍대가 문화와 예술이 공존하는 세계적인 예술시장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민­관 협력 최선… 세계적 명물로 가꿀것” “공무원의 입장에서 처음엔 홍대앞 예술인들의 마인드를 전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들과 2년 남짓 함께 일하면서 저 스스로도 열린 사고를 갖게 된 것 같아요.” 마포구청 문화체육과의 이준범 팀장은 홍대앞 사이버마을 ‘홍 스토리’를 만드는 데 가장 큰 역할을 담당했다. 주로 전산팀에서 근무했던 이 팀장은 2003년 4월 ‘마포희망시장’홈페이지 구축 때부터 홍대앞 문화예술인들과 지속적인 접촉을 해 왔다. “2003년 4월부터 12월까지 약 8개월 동안 우리구에서는 전산팀과 지역경제팀이, 민간에서는 희망시장 관계자들이 참가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홈페이지 구축은 예산조차 없는 ‘보잘것 없는’사업이었습니다.” 이 팀장은 자신이 전산팀에 있으면서도 홈페이지 구축에 콘텐츠가 얼마나 중요한지 몰랐다고 털어놨다. 그는 “홈페이지 내용의 참신함을 통해 구민들에게 도움이 되려고 하기보다는 ‘보여주기 식’행정에 익숙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스스로 반성하기도 했다. 예산도 없던 첫번째 사업을 ‘무사히’마치고 이 팀장은 다시 홍대앞 ‘Hope Place’홈페이지 구축사업을 시작했다. 지난해 4월부터 7월까지 4개월간 진행된 이 사업에는 마침내(?) 280만원의 최소 예산이 배정되기도 했다. 그는 “특히 이 사업을 진행하면서 홍대의 문화예술인과 깊은 신뢰를 쌓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홍대 희망시장 운영자와 서강대 창업보육센터와 합동으로 사업을 진행하면서 홍대의 희망시장과 프리마켓을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독특한 홍대문화와 역사, 대안문화, 독립예술 등 홍대앞 특징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었다. 동시에 홍대앞 예술인들은 이 팀장과 같은 공무원에게 홍대문화의 중요성을 알릴 수 있었고, 저작권 등과 같은 민감한 부분에 대한 법률적 자문도 받을 수 있었다. 민·관의 ‘윈윈전략’이었던 셈이다. 이 팀장은 마지막으로 “‘홍 스토리’는 민·관 협력의 모범적 모델”이라면서 “세계적 명소로 자리매김한 싱가포르의 프리마켓과 파리의 방브벼룩시장처럼 인터넷 ‘홍 스토리’를 통해 전세계를 상대로 홍보를 하면 마포구의 홍대앞 예술시장도 세계적 명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민중예술가서 문화CEO로 김명곤 국립극장장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민중예술가서 문화CEO로 김명곤 국립극장장

    비워야 채워지고 버려야 얻어진다고 했던가. 한 청년, 독문학도였다. 어느 여름날 시골의 느티나무 아래였다. 청년은 차마 못볼 것을 보고 말았다. 또 아니 들었던 것을 듣고야 말았다. 그곳에 한 여인이 있었다. 여인은 속세의 풍진을 훌훌 털어냈다. 번뇌도, 욕심도 없다. 끊어질 듯하면 이어진다. 점점 눈이 부신다. 귀가 떨린다. 쿵쾅쿵쾅, 가슴이 요동친다. 어쩔거나, 어쩔거나. 늪이다. 헤어나올 수가 없다. 인간사 삼세번,3일 동안 꼼짝할 수 없었다. 결국 청년은 고독한 ‘소리꾼’의 길로 들어섰다. 김명곤(53) 국립극장장. 영화 ‘서편제’에서 주인공 소리꾼으로 열연한 장면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딸(오정해)에게 약을 먹여 장님이 되게 한 후 소리를 가르치는 ‘아버지’는 더 깊숙이 각인되어 있다. ‘김명곤’ 하면 평소 1980년대 민중예술계를 대표하는 배우·연출가·판소리 이수자 등으로 꼽힌다. 지금은 문화CEO로 실력 발휘를 하고 있다. 국립극장 사상 처음으로 공채(2000년)로 극장장에 임명된데다 연임의 기록까지 세운 것이 이를 입증해준다. 이밖에 ‘광복60돌60인위원회’ 위원을 비롯, 올 11월에 열릴 APEC행사의 예술총감독을 맡았다. 춥고 배고픈 재야 연극인 생활을 할 때를 생각하면 이래저래 격세지감을 느끼고 있을 터이다. “오는 4월이면 국립극장이 개관 55주년을 맞이합니다. 이에 맞춰 국립극장은 지난해 10월 해오름극장에 이어 나머지 극장시설에 대한 리모델링 작업이 완전히 끝납니다. 모두 176억원의 공사비가 투입됐지요. 예쁜 새옷을 입고 좀더 편한 모습으로 국민들과 호흡하겠습니다.” 그의 집무실, 탁자 위에 놓인 글귀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잃어버린 나, 그리고 잊었던 우리와 다시 만나는 그런 무대를’ ‘무대와 친숙하지 않은 소외된 대중 속으로 더 가까이 더욱 뜨겁게’ 어떤 철학으로 극장을 운영하는지 짐작이 갔다. 글의 주인공은 한승헌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장. 극장의 단골고객이며 평소에도 친분이 두터운 사이라고 귀띔했다. 그는 국립극장장에 처음 취임할 때 모든 것을 (기존과)반대로만 하자고 다짐했단다. 즉 권위와 폐쇄, 관료적인 국립극장에서 탈권위적인 국민 속의 극장으로 개혁시키고자 했던 것. 스스로 많은 성과를 이루었다고 자평했다. 우선 공연장 명칭만 하더라도 대극장을 ‘해오름’, 소극장을 ‘달오름’, 실험극장 ‘별오름’ 등 부드럽게 변화시켰다. 또 무지개 길과 은하수 쉼터 등의 공간을 만들어 시민들이 언제든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그랬더니 기존의 연평균 관객 30만에서 50만명으로 늘어났다. 수입도 3배 가까이 증가해 재정자립도를 7%에서 18%까지 끌어올렸다. 해외 유명 국립극장의 재정자립도가 대부분 15∼25%인 점을 감안하면 이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끌어올린 셈이다. “국립극장은 6·25 발발 두달 전에 처음 출발했습니다. 국립극장의 역사를 보면 우리나라 굴곡의 현대사나 다름없습니다. 어쨌든 올 한해는 우리 것을 널리 알리기 위해 해외로 쭉쭉 뻗어나가게 할 생각입니다.” 화제를 돌렸다. 진보성향이라는 질문을 자주 받지 않느냐고 했다. 그는 약간 웃으며 “대학시절, 순수지향적 사회운동이 시작될 때 동료가 잡혀가는 것을 보고 예술과 현실사회 사이에서 무척 많은 고민을 했다.”면서 “당시 임진택·채희완·김석만씨 등과 함께 민족극 운동1세대에 뛰어들었다.”고 회고했다. 그의 진보적 행보는 1986년 극단 ‘아리랑’을 창단하면서 본격적으로 넓힌다. 연극 ‘갑오세 가보세’ ‘점아점아 콩점아’ ‘인동초’ 등 민족민중극을 연달아 선보였다. 주로 인권과 평등, 분단의 아픔을 고민했다. 예술에의 집착도 이같은 신념에서 비롯됐다. “가난한 연극인으로 진보적인 문예운동을 펼칠 때 다섯가지 마귀, 즉 주마(酒魔), 병마(病魔), 수마(垂魔), 궁귀(窮鬼), 색마(色魔)에 시달리느라 좌절도 많이 겪었습니다.” 서울대 독어교육학과 2학년 때 연극반에 들어갔다. 연극반은 아예 먹고 자는 곳이었다. 첫 역할은 데모하는 학생을 데려다가 두들겨패는 정보과 형사였다. 교수의 첫째딸 역을 맡은 여학생이 예뻐서 더욱 신났다. 특히 연극이 끝나면 라면과 소주가 나왔다. 밤새 친구들과 소주마시며 얘기하다가 그대로 쓰러져 잤다. 아침에 선배가 머리맡에 갖다놓은 도시락으로 아침을 대신했다. 세수는 늘 학교 우물가. 그런 생활이 계속됐다. 주마의 결과는 곧 병마로 돌아섰다.2학년 말 폐결핵이 찾아왔다. 그러다보니 약을 먹고 매일 잠만 잤다. 이제는 수마가 시작된 것. 이때만 하더라도 그는 아르바이트를 해야 입에 풀칠할 수 있던 처지였다. 하지만 꼼짝조차 하기 싫었다. 오죽했으면 별명이 ‘방안퉁소’(방안에서 하루종일 퉁소만 부른다는 뜻)로 불렸을까. 결국 약도 못 사먹는 궁귀의 상태로 빠졌다. 색마에 대한 설명으로 그는 “연극을 하다 보면 늘 여성과 어울리게 된다.”며 웃는다. ●명창 박초월선생에 판소리 배워 대학 3학년 때 판소리를 처음 접하고 깊은 충격에 빠진다. 몸이 안 좋아 휴학 중이던 여름날. 전북 김제에서 친구를 만났다. 전북대 영문과에 재학 중인 그는 판소리를 배우고 있었다. 심심해서 친구를 따라나섰다. 시골의 큰 느티나무아 래의 정자. 한 여인이 아이들 4∼5명을 앞에 앉혀놓고 북을 치며 판소리를 가르치고 있었다. 여인의 소리는 마디마디 가슴을 파고들었다. 아, 이런 것이 있었단 말인가. 사흘동안 그렇게 정자에 있었다. 그의 인생을 확 바꾸는 계기가 됐다. “그때만 해도 음악이란 오페라나 가곡이 전부인 줄 알았죠. 난생처음 판소리를 듣고 왜 학교에서 한번도 안 배웠는지 충격으로 다가오더군요.” 서울로 올라오자마자 종로3가의 단성사 건너편에 위치한 명창 박초월 선생의 학원을 찾았다. 학원비를 겨우 마련한 뒤 등록했다. 두어달 후 학원비가 바닥났다. 사정을 안 박 선생은 그냥 다니라고 했다. 대신 전화도 받고 학생들의 가사를 받아쓰는 일 등을 했다. 나중에 박 선생은 그를 친자식처럼 여겼다. 이렇게 광대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또한 마당극과 민요 등을 어떻게 하면 창작극에 잘 접목시키고 삽입시켜야 하는지를 연구했다. ●기자·교직 거쳐 연극의 길로 대학 졸업 후 ‘뿌리깊은 나무’의 기자가 된다. 하지만 연극과 판소리의 끼는 버리지 못했다. 배화여고 독일어 교사로 일단 자리를 옮겼다. 방학 때면 연극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독일어과목 첫 수업 때 김 극장장은 “너희들이 독일어를 왜 배우냐, 먼저 우리것을 잘 알아야 한다.”며 ‘사랑가’를 멋들어지게 불렀다. 한 여제자가 이에 쏙 반해버렸다. 둘은 결혼에 골인했다. 다행히 15년 앓아오던 폐결핵은 아내의 헌신적 간병 덕분에 결혼 2년만에 말끔히 나았다. 지금도 이는 기적이라고 여긴다. “국립극장장이 됐을 때 아내는 이제야 월급을 받을 수 있게 됐다며 무척 좋아했지요.” 어릴 적 그의 집은 전주시 중앙동. 하지만 어머니가 운영하는 미장원이 기울어지면서 큰 집에서 작은 집, 중앙에서 변두리쪽으로 자꾸 밀려나갔다. 아버지는 한학을 공부한 낚시광이었다. 김 극장장은 모진 세월을 이겨내는 어머니와 인내심의 아버지를 닮았다고 했다. 그는 괴테의 ‘파우스트’가 좋아 독일어를 택했다. 가난한 배우생활을 하면서도 한번도 ‘파우스트’를 잊어본 적이 없다. 올해가 극장장 연임의 마지막해. 내년에 다시 실업자가 된다는 그는 “자유로워지면 꼭 파우스트 같은 작품을 쓰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52년 전주 출생 ▲76년 서울대 독어교육학과 졸업 ▲77년 뿌리깊은나무 기자 ▲78∼79년 배화여고 교사 ▲86년 극단 아리랑 창단대표 ▲98∼99년 전국민족극운동협의회 회장 ▲99년 9∼12월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객원교수 ▲2000년1월∼현재 국립극장장 ▲2000년11월∼현재 문화관광부 지역문화추진위원회 위원 ▲저서=광대열전, 점아점아콩점아, 꿈꾸는 퉁소쟁이 등 ▲연극=장산곶매, 나의살던 고향은, 장사의 꿈 등 ▲영화=일송정 푸른솔, 바보선언, 나그네는 길에서 쉬지 않는다 등 ▲상훈=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서편제), 자랑스런 서울시민상(1994), 제1회 현대연극상 연출상(배꼽춤을 추는 허수아비).
  • [여성&남성] 한·일 2030 결혼관

    [여성&남성] 한·일 2030 결혼관

    지난해 말 일본 정부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일본인의 57%는 한국에 우호적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답했다. 비슷한 시기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서도 한국인 4명 가운데 1명은 일본에 친밀감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에서 ‘욘사마’로 대표되는 한류열풍이 불고 있고, 한국에서는 일본의 생활문화가 거의 실시간으로 유행을 타고 있을 만큼 두 나라의 정서적 공감대는 어느 때보다 넓어졌다. 하지만 비슷하면서도 확연히 다른 것이 두 나라 사회의 가치관. 한국은 결혼과 출산이 갈수록 줄고 있고, 일본은 이미 ‘독신 사회’ 혹은 ‘소자(少子) 사회’로 불릴 만큼 진전되어 있다. 두 나라 젊은이의 결혼관은 어떻게 닮았고, 어떻게 다를까. 2005년 ‘한·일 우정의 해’를 맞아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일본의 결혼정보회사 오네트와 공동으로 두 나라의 수도권에 사는 24∼33세 미혼남녀 1033명을 대상으로 결혼관을 조사했다. 이번 조사에는 한국에서 504명, 일본에서 529명이 참여했다. ●4명중 3명 “결혼하고 싶다” 두 나라의 미혼남녀 4명 가운데 3명은 ‘결혼하고 싶다.’고 답했다. 그럼에도 ‘아직 결혼을 하지 못한 이유’를 묻자 ‘적당한 상대를 만나지 못해서’라는 응답이 한국 젊은이의 49.6%, 일본 젊은이의 40.3%를 차지해 똑같이 1위에 올랐다. 그러나 2위는 두 나라가 확연히 달랐다. 한국은 42.3%가 ‘결혼자금 부족’을 꼽은 반면 일본은 36.7%가 ‘아직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라고 대답한 것. 한국은 심각한 경제불황 속의 청년실업을, 일본은 비혼 풍조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혼자가 늘어나는 이유’(복수응답)는 두 나라 모두 ‘여성의 결혼관 변화’와 ‘여성의 경제적 자립증가’를 들었다. 두 나라 모두 여성의 사회적 위상변화를 주지하고 있음을 반영한다. 하지만 ‘여성의 변화’ 다음으로 한국은 ‘불경기’, 일본은 ‘부모에게 의지하는 독신자의 증가 때문’이라고 답해 차이를 보였다. 29∼33세 여성들이 독신을 유지하는 이유로 ‘자유로운 생활’을 든 것은 여성의 급격한 결혼관 변화를 실감케 한다. 특히 자유로운 생활을 갈구하는 목소리가 일본에서 45.5%에 그친 반면 한국에서 60.6%로 훨씬 많은 것도 특기할 만하다. ●불황 탓에 결혼을 미루는 것은 공통 경제불황은 두 나라 젊은이들의 결혼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한국은 경제불황에 시달리고 있고, 일본은 장기불황의 그늘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의 84.9%와 일본의 68.8%는 ‘경제불안 때문에 결혼을 미룬다’고 했다. 특히 한국은 5명중 1명꼴로 ‘불경기로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약해졌다.’고 밝혔다. 불황은 결혼조건도 변하게 만들었다. 남성은 자신의 조건을, 여자는 상대의 조건을 더 따지게 됐다.‘불경기 이후 어떤 결혼조건을 더 고려하게 됐는지’를 놓고 이전보다 중요해진 3가지 항목을 꼽은 결과 남성은 한국의 71.5%, 일본의 46.6%가 ‘자신의 경제력’을 꼽았다. 또 한국의 68.7%, 일본의 41.0%는 ‘자신의 생활설계능력’이라고, 한국의 61.4%, 일본의 38.6%는 ‘자신의 직종·직업’이라고 응답했다. 반면 한국 여성은 81.9%가 ‘상대의 경제력’,75.8%가 ‘상대의 생활설계능력’,68.5%가 ‘상대의 직종·직업’이라고 답한 반면 일본 여성은 58.1%가 ‘상대의 생활설계능력’,57.4%가 ‘상대의 경제력’,51.6%가 ‘자신의 생활설계능력’을 꼽았다. 남녀 모두 한국은 여성의 능력보다는 남성의 경제력이 결혼의 중요한 조건이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 여성은 전문직, 일본 여성은 회사원 선호 결혼상대로 한국 여성은 87.9%가 의사나 변호사 같은 전문직을 원했다. 하지만 일본 여성은 92.6%가 기술직 회사원을 선호한다고 답했다. 상대적으로 한국 여성은 일본 여성보다 우선적으로 소득이 많은 남자를 결혼상대로 고르고 있는 셈이다. 한국 남성의 90.7%가 ‘공무원·교사’를 선호한 것도 경제적인 안정을 원한다는 점에서 여성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일본 남성의 85.3%는 ‘사무직 회사원’을 원한다고 했다. 학력도 한국이 더 까다로웠다. 학력과 소득이 비례하는 현상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남성의 84.6%와 여성의 96.0%가 ‘4년제 대졸자’를 희망했다. 하지만 일본 남성은 ‘고교졸업자이면 괜찮다.’는 의견이 78.9%에 이르러 학력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여성도 일본은 4년제 대졸자를 원하는 응답은 79.5%로 한국여성보다 낮은 수치를 보였다. ●일본 남성 79% “배우자감 고졸도 괜찮다” 두 나라 모두 결혼조건으로 성격과 애정을 1,2위로 꼽았지만 그 다음 조건은 조금 차이를 보였다. 한국 남성은 건강, 이해, 협력, 부모·친구와의 관계 등을 꼽아 ‘이해심 있는 아내’를 원했지만, 한국 여성은 건강, 장래성, 일의 능력이라고 ‘능력있는 남편’을 추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남성은 이해, 협력, 가사·육아에 대한 능력 등을 중시하지만 여성의 학력, 수입, 직업 등은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일본 여성은 건강, 이해, 협력, 능력 등을 주요조건으로 뽑았다. ‘결혼·이혼 경력’은 한국의 젊은이들은 82%가 ‘중요하게 본다.’고 답한 반면, 일본은 48.3%만이 그렇다고 답해 커다란 차이를 보였다. 박지윤기자 jypark@seoul.co.kr
  • [열린세상] 공교육의 유효경쟁을 강화하라/김장호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원장

    필자가 근무하는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은 대규모 패널조사결과를 바탕으로 여러 가지 의미있는 교육관련 통계를 며칠전 발표하였다. 그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가정배경이 좋고 소득수준이 높은 부모를 가진 학생일수록 학업성취도와 수능점수가 높고 세칭 일류대학 진학률이 높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항간의 소문이나 개인적 경험을 통하여 현재의 학교 교육체계가 계층상승보다는 계층재생산 기능이 강하다는 점이 여러 채널을 통하여 주장되어 왔다. 이번 직능원의 발표는 이러한 주장이 통계적으로 사실임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가난한 집의 자식이 공부를 잘한다는 속설은 이제 현실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있으며,‘개천의 용’이 갈수록 옛말이 되고 있다. 다시 말해 이제 더 이상 교육이 신분상승의 주요한 기제로 작용하지 못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우리의 현행 학교교육제도는 건전한 인격체 양성과 시민정신의 함양이라는 교육의 본원적 목적달성에 결코 성공적이라고 평가하기 어렵다. 그뿐만 아니라 오늘날 지식사회에 적극적으로 부응하는 인적자원도 제대로 양성 공급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청년층의 직업기초능력의 저하현상은 여러 측면에서 입증되고 있다. 전체 고등학생의 30%를 점하고 있는 실업계 고교의 직업교육기능은 거의 유명무실한 실정이다. 학교에서 체득하는 지식과 기술이 직업세계에서 요구되는 것과의 불일치가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효율성 측면에서의 교육실패와 더불어 학교교육제도의 또 다른 주요 기능인 교육의 계층이동기능도 크게 위축되고 있다는 사실이 통계적으로 입증되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이러한 교육부실의 원인을 모두 학교교육에만 돌릴 수는 없다. 넓게 볼 때 가정과 사회 전체가 교육과 학습의 주요 공간이다. 교육부실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서는 우리 사회 전체의 성숙이 동시에 필요하다. 그러나 우선적으로 현행의 교육체제, 특히 공교육체제의 기본 틀과 관행, 그리고 그 역할구도의 변화와 개혁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밖에 없다. 먼저, 교육세습화의 주 요인의 하나인 사교육 의존도를 대폭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공교육의 내실화와 충실화가 핵심적 관건이다. 공교육의 충실화의 필요성은 그 동안 학계나 정책입안자에 의해 꾸준하게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에 정면으로 도전하기보다는 변죽을 울리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그 정책성과가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필자는 수월성과 형평성을 동시에 담보할 수 있는 공교육충실화의 기본방향은 학교간, 그리고 학교 내에서의 다양한 방식의 유효경쟁의 기반구축과 활성화에서 찾아야 한다고 본다. 유효경쟁은 제한된 수의 시장 참여자가 일정한 준칙에 따라 경쟁함으로써 경쟁의 장점과 공동체적 강점을 일정한 수준에서 조화시키는 모형이다. 현행의 경직적 평준화제도는 경쟁의 이점을 거의 살리지 못하는 데서 공교육 실패의 단초가 주어지고 있다. 교육자치의 확대, 학생의 학교선택권 확대, 특목고 및 자립형학교의 확대 등은 학교간의 유효경쟁을 촉진할 수 있는 주요대안이다. 수준별 수업의 활성화는 학교내부에서의 유효경쟁을 제고하는 방안이다. 이러한 대안들은 모두 현행의 평준화의 기본 틀을 유지하면서도 도입이 가능하다. 유효경쟁의 전제조건으로는 교사를 포함한 각 학교의 교육내용과 성과에 관한 모든 정보의 공개이다. 학교교육에 크게 영향을 주는 대학입시도 대학에 맡기는 것이 유효경쟁의 활성화를 위해서 필요하다. 수능시험도 미국의 SAT제도처럼 자격소양시험 성격으로 바뀌어야 한다. 일년에 한번밖에 시행하지 않는 현행의 수능제도는 우연의 요소가 작용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각 대학도 좋은 학생을 선발하기 위해서 다양한 전형제도의 도입을 위해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 하버드 등 미국의 주요 일류대학은 다양한 전형방법을 통해 우수학생을 선발하고, 등록금은 부모의 부담능력에 따라 차등화하고 있다. 교육의 세습화 문제가 심화되고 있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장호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원장
  • [국감 초점] 복지위 “국민연금 생계비 대출을”

    18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국민연금관리공단에 대한 국정감사에서는 이미 낸 돈을 돌려주는 제도(반환일시금)를 부활하거나, 국민연금에서 생계자금을 빌려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열린우리당 이상락 의원은 “청년실업자가 80만명에 육박하는 등 최악의 불황시대를 맞고 있다.”면서 “월 임금 100만원 이하의 임시 인턴직 청년들에게는 사회적으로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한시적이라도 연금납부를 예외로 해주거나, 낮춰주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문병호 의원도 “경기악화로 신용불량자가 지난 8월 현재 370만명에 달하고, 전기세를 못낸 가구만도 89만에 달한다.”면서 “국민연금 가입자 중 실업자 등 긴급생활자금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국민연금에서 가계대출을 해줘야 한다.”고 가세했다. 야당도 반환일시금제도의 부활에는 같은 목소리를 냈다. 한나라당 전재희 의원은 “국민연금 납부액을 돌려받으면, 국민연금 납부액이 빚(신용불량금액)보다 많은 16만 4000여명은 신용불량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서 “경기가 계속 바닥을 치고 있는데 더 이상 주저말고 과단성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같은 당 곽성문 의원은 “외환위기 당시 한시적으로 도입해 실효를 거뒀던 반환일시금 제도를 부활할 용의는 없느냐.”고 물었다. 장석준 이사장은 이에 대해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이 보험료를 일시적으로 안 내도 되는 것은 허용됐지만, 과거에 낸 돈을 돌려주는 것은 제도적으로 어렵다.”고 답변했다. 민주노동당 현애자 의원은 “신용불량자에게 지급된 국민연금이 계좌에서 신용카드 회사로 곧바로 압류되어 신용불량자의 수급권이 침해되고 있다.”면서 “국민연금법은 연금급여에 대해 압류 등이 금지돼 있는 만큼 현행 국민연금 지급방식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열린우리당 유시민 의원은 “국민연금은 과거에 약속한 것을 줄 수 없기 때문에 국민에게 욕먹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된 책임은 과거 정부와 국회에 있다.”며 비난의 화살을 다른 데로 돌렸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길섶에서] 아름다운 노후/이목희 논설위원

    김영삼 전 대통령 정부에서 청와대수석비서관을 지낸 M씨는 공직을 떠난 직후 낙향했다.검찰에서도 고위직을 지냈지만 변호사 업무 또한 사양했다.고향도 아닌 강원도 해변 도시에 자그마한 서민 아파트를 얻었다.“가끔 서울을 오가면서 손주들에게 용돈 줄 정도만 있으면 되지 않겠나.” 큰 욕심을 안부리는 삶이 오히려 풍요롭게 보였다. 회사에서 모셨던 K선배는 모든 일에 열정적이다.중앙아시아의 한 나라에 심취했다.한국과 친선협회를 만드는 문제,개발투자하는 문제 등 관심사가 남다르다.일주일에 한번은 대학 강의를 나가 청년들과 호흡한다.젊어 보일 수밖에 없다. 가을이 깊어지면서 인연을 맺었던 얼굴들을 떠올려 본다.‘아름다운 노후’를 보내고 있는 분들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진다.언젠가 닥칠 노후가 나쁘지 않게 비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숙고해 봤다.자식 교육·결혼과 자립지원,은퇴 후 생활비….돈으로는 도저히 계산이 나오지 않았다.결국 ‘아름다운 노후’를 보내는 분들의 공통점을 따르기로 했다.욕심을 버리고,무슨 일이든지 진취적으로 하자고….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오일만특파원 베이징은 지금] “미국의 구두쇠 정신 본받자”

    중국 4세대 지도부의 최근 화두는 ‘절약과 검소’로 집약된다.급속한 경제성장으로 과소비 풍조가 사회 전반에 흐르고 빈부격차와 상대적 빈곤감이 중국 사회를 분열로 몰아간다는 위기 의식이 팽배해 있다. 중국 정부는 이 때문에 1일 건국 55주년을 맞아 ‘국경절(國慶節)’ 행사의 간소화를 선언했다.‘건국 55주년 국경 영도소조’는 최근 회의를 통해 ‘절약 속에서 내실 있는 행사를 치른다.’는 원칙을 정했다. 베이징은 물론 대륙 전역에서 폭죽을 터트리는 대형 경축활동을 자제하고 매년 대규모로 이뤄졌던 인민해방군의 열병 행사도 금지시켰다. 절약정신은 일회성 행사에 그치지 않는다.원자바오(溫家寶) 총리는 지난달 24일 국무원 4차 학습강좌에서 ‘절약형 사회 건설’을 구체적인 목표로 결정했다.원 총리는 “지속적인 경제발전과 샤오캉(小康) 사회 건설을 위해 자원 절약을 우선 순위에 놓아야 한다.”고 지시했다. 물론 중국 정부의 검약주의가 하루아침에 생겨난 것은 아니다.후진타오(胡錦濤) 당총서기 겸 국가주석의 통치이념인 친민(親民)과 ‘이민위본(以民爲本·인민을 근본으로 함)’의 정신과도 맥이 닿는다. 후 주석은 취임 직후부터 지도급 인사의 외국 방문시 관례로 여겨졌던 대규모 환송행사를 없앴다.지난해에는 마오쩌둥(毛澤東) 시대부터 비밀리에 행해졌던 링다오(領導·지도층 인사)들의 베이다이허(北戴河) 휴양지 회의도 폐지했다.불필요한 전시성 행사를 과감하게 폐지하고 실사구시(實事求是)적 사고를 갖자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4세대 지도부들의 솔선수범에 따라 중국 언론들은 ‘미국의 구두쇠 정신을 본받자.’는 구호를 제창하고 있다. 베이징 청년보는 중국 ‘소황제’들의 무분별한 소비행태를 지적하면서 “자수성가한 미국의 부자들은 일부러 자식들에게 아르바이트를 시켜 자립심을 기르게 한다.”고 중국의 소비문화를 꼬집었다.이 신문은 ‘부자는 3대를 넘지 못한다’는 속담을 인용하면서 중국인들은 빈곤선을 넘어서면 즉시 부자들의 과시성 소비를 모방하지만 이는 천박한 ‘빈곤문화’의 연장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oilman@seoul.co.kr
  • 소년소녀가장 주축 청소년봉사단 동심단

    소년소녀가장 주축 청소년봉사단 동심단

    “도움만 받던 불우청소년들에게 자신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기회를 제공해 자신감과 자립심,긍지를 키워주고 싶습니다.” ‘동심(同心)청소년봉사단’ 출범의 산파역을 맡았던 청년여성문화원 진민자(60·여) 이사장의 말이다. 지난달 27일 서울 용산구 한남1동 동사무소 앞.여름방학을 맞아 오전 8시부터 모인 20여명의 ‘동심청소년봉사단’(단장 최세진) 단원들은 4시간 동안 거리를 청소하며 구슬땀을 흘렸다.봉사활동을 마친 뒤에는 곧장 ‘생업’을 위해 해산했다.최세호(18·동호정보공업고 3년)군 등 단원 전원이 소년가장 등 불우한 환경 탓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최군은 “도움을 받던 처지에서 마음만 먹으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몸으로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동심청소년봉사단은 용산구 관내의 소년소녀가장,한부모가정 청소년이 주축이 된 국내 최초의 불우청소년 자원봉사단이다.여성운동가로 이름난 진 이사장이 용산구청과 사회복지공동모금 후원으로 중·고교생 50여명을 모아 지난 99년 발족했다.처음에는 용산구에서 주로 활동했지만 이제는 전국을 돈다.해마다 10여차례의 정기봉사활동과 5차례의 문화체험 등 다양한 문화교육활동을 펴고 있다. 진 이사장은 “사회봉사와 그를 통한 인성교육,이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것이 목표”라면서 “저도 1·4 후퇴때 아버지를 잃은 편모가정 출신으로,받기만 하는 입장의 괴로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밝혔다.동심단을 운영하면서 느끼는 가장 큰 어려움도 사회의 편견과 이에 따른 당사자의 심리적 위축이라고 했다. 그는 “처음엔 쭈뼛대던 아이들이 봉사활동을 하면서 자신감을 붙여가는 모습을 보는 게 가장 큰 기쁨”이라면서 “평소 포기했던 옷 매무새를 고치거나 바깥의 평가에 신경을 쓰려는 모습을 볼 때면 기분이 좋다.”고 털어놨다.단원 모두가 힘들게 생활하지만 봉사활동에 빠지는 일은 거의 없다.오는 14일에는 서울지역 노인요양시설 봉사활동이 예정돼 있다.21일에는 장애우요양시설을 방문한다. 진 이사장은 1967년 이화여대 과학교육학과를 졸업한 뒤 이화여대,숭의여대,배화여대 등에서 여성학을 강의하는 등 다양한 여성활동을 폈다.진 이사장은 “아직은 동심단의 규모,활동 등이 그리 크지 않지만 전국 각 지역에 동심단을 결성해 활동의 폭을 넓혀나갈 생각”이라며 밝게 웃었다. 채수범기자 lokavid@seoul.co.kr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28)인간이 평등할 수 있을까?-백정해방운동 (上)

    20세기 세계를 움직인 100대 사건 중 하나는 1923년 진주에서 일어난 형평사운동이었다.여러 세기에 걸쳐 인간 이하의 천민으로 분류되어 수탈과 탄압,능멸과 죽임의 공포 속에서 살아온 백정(白丁)들도 인간이라는 백정해방운동을 형평사운동이라 불렀다.일본의 부락민(部落民),유대인 차별 정책인 게토,인도의 최하층민 수드라,노예시장의 매매물건인 아프리카 흑인들과 같이,1923년 이전 한국의 백정들도 인간이 어찌 평등할 수 있느냐는 조선시대 정치이념의 제물로 희생된 우리의 이웃이었다. 형평사운동을 계획하고 탄생시켰으며,그후 십여년 동안 한국사회에서 억압받는 사람들의 인권문제를 줄기차게 제의했던 사람들 중에서 강상호(姜相鎬)와 장지필(張志弼) 두 사람을 꼽을 수 있다. ●진주 형평사운동은 ‘백정해방운동’ 장지필은 대물림한 백정 집안 후손이었다.그의 부친 장덕찬(張德贊)은 경남 의령의 백정인데 상당한 재력가였다.백정의 주된 사업인 도살업,육류판매,피혁의 건조와 가공,쇠기름(牛脂)의 생산 판매,소피(牛血)를 이용한 식품의 제조와 판매,가축의 내장과 뼈의 판매,이를 이용한 음식점의 독점적 운영은 오랫동안 백정 계급만의 전용물이었다. 이 사업은 이윤이 많이 남기로 유명한 데다 국가로부터 세금 징수의 대상도 아니었기 때문에 일찍부터 생각이 깊었던 이들은 큰 재산을 모을 수도 있었다.19세기 후반 이후 서울과 지방의 토호들은 백정들의 전유물이었던 도축장 경영권을 빼앗는 농간을 부렸다.많은 백정들은 토호들의 자본에 흡수되어 신분의 억압 외에 다시 경제적 수탈 대상이 되었고,이중의 인권유린에 시달렸다. 장덕찬은 대구의 김경삼,부산의 이성순,마산의 이상윤과 박유선,진주의 이학찬 등과 함께 대한제국을 대표하는 백정출신 부호였다.당시에는 재력가라 하여도 백정신분으로 서당이나 향교 같은 교육기관에 나가 공부할 수 없었다.백정들은 평민들과 같은 자리에 머무는 것은 물론이고 공공장소에 얼씬거리는 것도 금지되었으며,교회 설립 초기에는 일반인과 백정이 함께 예배보는 것도 문제가 되었다.장덕찬은 집에 독선생을 초빙해 자식들에게 공부를 시켰는데,장덕찬의 아들 장지필은 요즘식 가정교사 밑에서 공부하여 일본 메이지대학까지 유학하였다.행운아였던 셈이다. ●‘장지필’은 백정 출신의 부호 장덕찬은 평생토록 백정 해방을 꿈꾸며 투쟁하였다.그는 1887년 무렵 경상도 관찰사에게 백정도 패랭이를 벗고 망건을 쓸 수 있게 해 줄 것을 요구하며 경상도 71개 군에 있던 백정공동체인 도중(都中)들을 모아 시위를 벌였다.그 과정에서 곤장을 맞고 고문도 당했지만 요구를 끝까지 외쳐 경상도 백정들에게 큰 용기를 불어넣었다.장덕찬에게 곤장을 가하며 백정들의 요구를 거부했던 경상도 관찰사는 이호준(李鎬俊·1821∼1901)인데 그의 아들이 한일합방을 주도한 이완용이다. 관찰사와 담판을 벌였을 만큼 재력과 식견을 갖추었던 장덕찬은 아들에게 백정 해방을 위한 투쟁정신을 물려주었다.아버지의 뜻을 잇는 장지필은 세상의 두터운 차별의식과 싸우기 위해서는 재력과 신학문을 동시에 갖추어야 한다고 믿어 동경유학을 감행했고,귀국하여 백정해방 운동에 전력을 다한 백정 해방 이론가이자 실천가였다. ●‘강상호’ 양반신분으로 독립운동 헌신 반면 강상호는 당시 진주사회의 대표적인 지성인 중 한 사람으로 양반신분이며 부유한 집안의 큰아들이었다.일제 식민지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모든 국민이 문맹에서 눈을 떠야 한다며 학교 세우기와 신식교육을 장려했고,직접 기미년 만세시위운동에 참여하여 옥고를 치르기도 한 행동하는 지성이었다.애국계몽운동의 하나로서 동아일보 창간 주주로 참여했고,신간회활동 등 일제에 문화적으로 항거했던 인물이다. 따라서 장지필과 강상호가 지향하는 백정해방운동의 목표는 서로 달랐다.강상호는 민족운동과 사회주의운동이 미분화된 상태에서 순진하다 할 수 있는 민족운동노선을 따른 데 반하여,장지필은 백정 고유의 산업에 일반인들이 진출하지 못하게 하여 백정계급의 경제적 토대를 지키고 장차 백정들의 삶을 향상시키고자 하였다.관념적인 백정해방운동은 성공할 수 없으며,중요한 것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 천한 신분인 백정들이 경제적으로 자립하는 것뿐이라고 믿었다.경제적 자신감이 있어야만 백정해방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두 사람이 믿는 바는 달랐지만,1923년이라는 시대상황은 한국역사상 최초의 인권해방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장지필과 강상호가 함께 움직일 수 있게 하였다. 1919년 기미만세운동 이후 조선총독부는 문화통치를 표방하였다.민중 활동이 비교적 자유로워진 것이다.국내에는 다양한 사회운동 조직이 생겨났고,각 조직은 민족해방운동의 뜻을 폈다.겉으로는 조직 회원들이나 민중의 계몽을 표방했으나 궁극적으로는 민족해방을 바란 것이다. 민족해방운동은 크게 세 가지 갈래로 나뉘었는데,첫째는 일본에 무장 투쟁하여 국권을 회복하고자 한 민족독립운동으로 만주와 중국을 중심으로 일어났으며,애국주의 이상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 치중했다.두 번째는 대종교,보천교 등의 종교단체를 중심으로 한 운동이었고,세 번째는 3·1운동을 이끈 세력이 주도한 문화 계몽 운동이었다. 강상호가 문화 계몽 운동에 매진하고 있던 중에 진주의 대표적인 부자 백정 이학찬이 새집을 장만하여 강상호의 이웃으로 이사하였다.강상호는 이학찬의 이사를 계기로 백정들과의 교류를 시작하게 된다. 원래 진주 지방에는 여느 행정 관청이 있는 주요 지방 도시와 마찬가지로 관청 관할 아래에 백정들의 거주지가 정해져 있었다.이른바 백정마을 혹은 백정놈 동네였다. 경국대전에서 규정한 백정단취(白丁團聚) 조항에 따라 거주이전이 금지되었고 죽는 날까지 한 곳에 머물러 살았다.혹 거주지를 이탈하면 엄하게 처벌받았는데,마을 밖으로 여행하기 위해서는 관청에서 발행한 통행 증명서가 필요했다.통행증명서에는 목적지와 여행 기간이 적혀 있어서 이를 어길 때에도 무거운 처벌이 내려졌다. ●개도살 요구 거절한 백정, 매질당해 죽어 그러나 1863년 고종임금이 즉위하면서 실시한 특별사면으로 백정마을에서 살던 백정들은 거주이전의 자유를 얻게 된다.거주이전 금지 규정이 해제되자 전국의 백정들은 숙명 같았던 옛 거주지를 벗어나 일반인들이 사는 마을 가까이로 옮겨가기 시작했고,재력 있는 백정은 마을 안으로 옮겨가기도 했다. 백정들과의 교류를 통해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강상호는 기미 독립만세 시위 이후 어느날 충격적인 사건을 목격하였다.진주공원에서 청년들에 의해 백정이 죽임을 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청년들은 백정마을에 사는 백정을 강제로 데려와 개를 잡으라고 강요하였다. 그러나 그 백정은 청년들의 요구를 완강하게 거절하였고,결국 매질을 견디지 못해 죽었다.이후 백정들이 청년들을 고소하였지만 죽은 백정은 호적이 없으므로 그를 죽인 청년들에게 살인죄를 적용할 수 없다는 일본 경찰의 판결이 내려졌다.살인죄가 성립하려면 죽은 자의 신원이 확인되어야 하는데 아무런 법률적 증거가 없으므로 산짐승이나 벌레를 죽인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었다.이 사건은 강상호가 백정해방운동에 적극 관여하는 계기가 되었다.˝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28)인간이 평등할 수 있을까?-백정해방운동 (上)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28)인간이 평등할 수 있을까?-백정해방운동 (上)

    20세기 세계를 움직인 100대 사건 중 하나는 1923년 진주에서 일어난 형평사운동이었다.여러 세기에 걸쳐 인간 이하의 천민으로 분류되어 수탈과 탄압,능멸과 죽임의 공포 속에서 살아온 백정(白丁)들도 인간이라는 백정해방운동을 형평사운동이라 불렀다.일본의 부락민(部落民),유대인 차별 정책인 게토,인도의 최하층민 수드라,노예시장의 매매물건인 아프리카 흑인들과 같이,1923년 이전 한국의 백정들도 인간이 어찌 평등할 수 있느냐는 조선시대 정치이념의 제물로 희생된 우리의 이웃이었다. 형평사운동을 계획하고 탄생시켰으며,그후 십여년 동안 한국사회에서 억압받는 사람들의 인권문제를 줄기차게 제의했던 사람들 중에서 강상호(姜相鎬)와 장지필(張志弼) 두 사람을 꼽을 수 있다. ●진주 형평사운동은 ‘백정해방운동’ 장지필은 대물림한 백정 집안 후손이었다.그의 부친 장덕찬(張德贊)은 경남 의령의 백정인데 상당한 재력가였다.백정의 주된 사업인 도살업,육류판매,피혁의 건조와 가공,쇠기름(牛脂)의 생산 판매,소피(牛血)를 이용한 식품의 제조와 판매,가축의 내장과 뼈의 판매,이를 이용한 음식점의 독점적 운영은 오랫동안 백정 계급만의 전용물이었다. 이 사업은 이윤이 많이 남기로 유명한 데다 국가로부터 세금 징수의 대상도 아니었기 때문에 일찍부터 생각이 깊었던 이들은 큰 재산을 모을 수도 있었다.19세기 후반 이후 서울과 지방의 토호들은 백정들의 전유물이었던 도축장 경영권을 빼앗는 농간을 부렸다.많은 백정들은 토호들의 자본에 흡수되어 신분의 억압 외에 다시 경제적 수탈 대상이 되었고,이중의 인권유린에 시달렸다. 장덕찬은 대구의 김경삼,부산의 이성순,마산의 이상윤과 박유선,진주의 이학찬 등과 함께 대한제국을 대표하는 백정출신 부호였다.당시에는 재력가라 하여도 백정신분으로 서당이나 향교 같은 교육기관에 나가 공부할 수 없었다.백정들은 평민들과 같은 자리에 머무는 것은 물론이고 공공장소에 얼씬거리는 것도 금지되었으며,교회 설립 초기에는 일반인과 백정이 함께 예배보는 것도 문제가 되었다.장덕찬은 집에 독선생을 초빙해 자식들에게 공부를 시켰는데,장덕찬의 아들 장지필은 요즘식 가정교사 밑에서 공부하여 일본 메이지대학까지 유학하였다.행운아였던 셈이다. ●‘장지필’은 백정 출신의 부호 장덕찬은 평생토록 백정 해방을 꿈꾸며 투쟁하였다.그는 1887년 무렵 경상도 관찰사에게 백정도 패랭이를 벗고 망건을 쓸 수 있게 해 줄 것을 요구하며 경상도 71개 군에 있던 백정공동체인 도중(都中)들을 모아 시위를 벌였다.그 과정에서 곤장을 맞고 고문도 당했지만 요구를 끝까지 외쳐 경상도 백정들에게 큰 용기를 불어넣었다.장덕찬에게 곤장을 가하며 백정들의 요구를 거부했던 경상도 관찰사는 이호준(李鎬俊·1821∼1901)인데 그의 아들이 한일합방을 주도한 이완용이다. 관찰사와 담판을 벌였을 만큼 재력과 식견을 갖추었던 장덕찬은 아들에게 백정 해방을 위한 투쟁정신을 물려주었다.아버지의 뜻을 잇는 장지필은 세상의 두터운 차별의식과 싸우기 위해서는 재력과 신학문을 동시에 갖추어야 한다고 믿어 동경유학을 감행했고,귀국하여 백정해방 운동에 전력을 다한 백정 해방 이론가이자 실천가였다. ●‘강상호’ 양반신분으로 독립운동 헌신 반면 강상호는 당시 진주사회의 대표적인 지성인 중 한 사람으로 양반신분이며 부유한 집안의 큰아들이었다.일제 식민지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모든 국민이 문맹에서 눈을 떠야 한다며 학교 세우기와 신식교육을 장려했고,직접 기미년 만세시위운동에 참여하여 옥고를 치르기도 한 행동하는 지성이었다.애국계몽운동의 하나로서 동아일보 창간 주주로 참여했고,신간회활동 등 일제에 문화적으로 항거했던 인물이다. 따라서 장지필과 강상호가 지향하는 백정해방운동의 목표는 서로 달랐다.강상호는 민족운동과 사회주의운동이 미분화된 상태에서 순진하다 할 수 있는 민족운동노선을 따른 데 반하여,장지필은 백정 고유의 산업에 일반인들이 진출하지 못하게 하여 백정계급의 경제적 토대를 지키고 장차 백정들의 삶을 향상시키고자 하였다.관념적인 백정해방운동은 성공할 수 없으며,중요한 것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 천한 신분인 백정들이 경제적으로 자립하는 것뿐이라고 믿었다.경제적 자신감이 있어야만 백정해방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두 사람이 믿는 바는 달랐지만,1923년이라는 시대상황은 한국역사상 최초의 인권해방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장지필과 강상호가 함께 움직일 수 있게 하였다. 1919년 기미만세운동 이후 조선총독부는 문화통치를 표방하였다.민중 활동이 비교적 자유로워진 것이다.국내에는 다양한 사회운동 조직이 생겨났고,각 조직은 민족해방운동의 뜻을 폈다.겉으로는 조직 회원들이나 민중의 계몽을 표방했으나 궁극적으로는 민족해방을 바란 것이다. 민족해방운동은 크게 세 가지 갈래로 나뉘었는데,첫째는 일본에 무장 투쟁하여 국권을 회복하고자 한 민족독립운동으로 만주와 중국을 중심으로 일어났으며,애국주의 이상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 치중했다.두 번째는 대종교,보천교 등의 종교단체를 중심으로 한 운동이었고,세 번째는 3·1운동을 이끈 세력이 주도한 문화 계몽 운동이었다. 강상호가 문화 계몽 운동에 매진하고 있던 중에 진주의 대표적인 부자 백정 이학찬이 새집을 장만하여 강상호의 이웃으로 이사하였다.강상호는 이학찬의 이사를 계기로 백정들과의 교류를 시작하게 된다. 원래 진주 지방에는 여느 행정 관청이 있는 주요 지방 도시와 마찬가지로 관청 관할 아래에 백정들의 거주지가 정해져 있었다.이른바 백정마을 혹은 백정놈 동네였다. 경국대전에서 규정한 백정단취(白丁團聚) 조항에 따라 거주이전이 금지되었고 죽는 날까지 한 곳에 머물러 살았다.혹 거주지를 이탈하면 엄하게 처벌받았는데,마을 밖으로 여행하기 위해서는 관청에서 발행한 통행 증명서가 필요했다.통행증명서에는 목적지와 여행 기간이 적혀 있어서 이를 어길 때에도 무거운 처벌이 내려졌다. ●개도살 요구 거절한 백정, 매질당해 죽어 그러나 1863년 고종임금이 즉위하면서 실시한 특별사면으로 백정마을에서 살던 백정들은 거주이전의 자유를 얻게 된다.거주이전 금지 규정이 해제되자 전국의 백정들은 숙명 같았던 옛 거주지를 벗어나 일반인들이 사는 마을 가까이로 옮겨가기 시작했고,재력 있는 백정은 마을 안으로 옮겨가기도 했다. 백정들과의 교류를 통해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강상호는 기미 독립만세 시위 이후 어느날 충격적인 사건을 목격하였다.진주공원에서 청년들에 의해 백정이 죽임을 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청년들은 백정마을에 사는 백정을 강제로 데려와 개를 잡으라고 강요하였다. 그러나 그 백정은 청년들의 요구를 완강하게 거절하였고,결국 매질을 견디지 못해 죽었다.이후 백정들이 청년들을 고소하였지만 죽은 백정은 호적이 없으므로 그를 죽인 청년들에게 살인죄를 적용할 수 없다는 일본 경찰의 판결이 내려졌다.살인죄가 성립하려면 죽은 자의 신원이 확인되어야 하는데 아무런 법률적 증거가 없으므로 산짐승이나 벌레를 죽인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었다.이 사건은 강상호가 백정해방운동에 적극 관여하는 계기가 되었다.
  • [씨줄날줄] 캥거루족

    1997년 말 들이닥친 외환위기 이후 가장 익숙해진 단어는 ‘실업’인 것 같다.한때 한집 건너 한사람이 실업자일 정도로 우리 사회는 일순간 ‘완전 고용’에서 ‘대량 실업’으로 탈바꿈했다.일자리가 넘쳐나던 시절 ‘산업예비군’임을 자부하며 ‘산업일꾼’을 동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던 치기는 어느덧 아득한 추억이 됐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영화 ‘라이터를 켜라’에서 300원짜리 라이터에 목숨을 거는 봉구는 영화 속의 주인공일 뿐,이 시대를 살아가는 백수의 자화상이 아니다.요즘 백수에게는 봉구처럼 맞부딪쳐 대적할 상대도 없다.끝없는 좌절뿐이다.그러니 봉구처럼 ‘대박’의 기회도 찾아오지 않는다. 청춘의 초침이 아무런 의미를 남기지 못한 채 30대를 향해 숨가쁘게 움직이고 있음에도 남의 애타는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캥거루족’이라는 별칭까지 나붙었다.바늘구멍보다 좁은 취업 문턱을 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휴학과 대학원 진학이라는 전략적 후퇴 또는 우회를 하고 있음에도 부모의 고혈을 빨아먹는 흡혈귀쯤으로 취급한다.수능 입시생 자살은 동정을 받지만 취업 재수생의 죽음은 사회 낙오자의 당연한 퇴출 정도로 치부된다. 사회학자나 심리학자들이 어떤 식의 잣대를 들이대든 자립해야 할 나이에 부모에게 손을 들이밀어야 하는 캥거루족의 운명은 슬플 수밖에 없다.지난 7월 한 은행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20대의 48%가 캥거루족이라고 했다.LG경제연구원 조사에서는 지난 2000년 말 현재 20∼34세 467만명이 캥거루족의 비속어인 ‘기생독신자’라고 했다.하긴 프랑스 청년실업자의 80%가 부모에게 빌붙어 살고,일본 젊은층 1000만명이 비슷한 부류라고 하니 기생독신자 문제는 우리만의 고민은 아닌 것 같다. 통계청이 최근 내놓은 고용동향에 따르면 10월의 청년실업률이 7.3%로 치솟았다고 한다.캥거루족들이 취업 문을 두드리면서 경제활동인구로 편입됨에 따라 실업률이 높아진 탓도 있지만 결코 반갑지 않은 현상이다.대학을 졸업하고도 제 밥벌이를 못해 한없이 위축되고 있는 우리 젊은이들의 기를 살려줄 방법은 없는 것일까.하루속히 국가와 기업,대학이 머리를 맞대고 해법을 찾아야 한다. 우득정 논설위원
  • NGO/ NGO ‘재충전의 계절’

    시민사회단체들이 올 한해를 정리하는 ‘내실 다지기’와 내년도 활동을 준비하는 ‘재충전’을 위해 분주한 11월을 보내고 있다. 10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과 참여연대,환경운동연합,한국비영리학회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이달 들어 각종 캠페인,연대투쟁 등 대외활동을 줄이는 대신 회원과 활동가에 대한 실무교육,단체의 방향 재정립을 위한 학술대회와 심포지엄을 개최하는 등 회원과 활동가들의 역량 강화에 역점을 둔 다양한 프로그램을 펼치고 있다. ●지금은 내실을 다질때 경실련은 2년 임기를 마친 신철영 사무총장에 이어 경실련의 14년 전통을 이어갈 신임 사무총장을 뽑고 있는 중이다. 경실련은 지난 3일 2년 임기의 제 7대 사무총장 모집 공고를 냈다. 12일까지 후보 등록을 받은 뒤 오는 29일 중앙대의원대회에서 신임 총장을 선출할 예정이다. 경실련 관계자는 “임기를 마친 신 사무총장의 연임도 가능하지만 새로운 후임자들을 위해 출마를 고사하고 있다.”면서 “현재 몇몇 내·외부 인사들이 신청서를 낸 상태”라고 밝혔다.아울러경실련은 다음달 2일까지는 내년도 예산심의 납세자 모니터단을 모집,국회 예결위 활동 모니터링에 들어갈 계획이다. 세계청년봉사단(KOPION)은 내년에 활동할 10기 해외봉사단원을 모집 중이다. 아프가니스탄과 캄보디아 등 20여개국에서 유아교육과 컴퓨터교육,한국어교육 등의 봉사활동을 행하고 있는 KOPION은 지난 5∼7일 수원 경희대와 대전 한남대,광주 동구자원봉사센터에서 설명회를 열었으며,오는 17일과 18일 서울 숙명여대와 부산 부경대에서 설명회를 각각 개최한다. KOPION 금창태 총재는 “지난 1999년 사업을 시작한 이래 매년 두차례씩 지금까지 400여명의 청년 봉사단원들을 20여개국에 파견해 왔다.”면서 “제10기 단원은 내년 1월중 교육을 실시한 후 2월 중순쯤에 파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밖에 대구 청년연합회는 내년 1년동안 보호관찰처분 대상 청소년들과 친구가 돼 선도봉사활동을 펼칠 봉사자들을 모집하고 있다.‘한반도 평화운동본부’도 평화운동 활동과 국제학술회의 보조업무 및 자료정리 등을 할 외국어 봉사자를 모집 중이다. ●회원 재교육도 활발 회원과 활동가들이 가장 큰 ‘재산’인 시민단체들의 회원 재교육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환경운동연합은 침팬지들의 어머니이자 생명사랑의 전도사로 널리 알려진 제인 구달 박사를 초청,11일 한국프레스센터 20층에서 ‘생명사랑의 십계명’ 행사를 갖는다. 환경운동연합 강혜정 팀장은 “지난 77년부터 야생동물 연구·교육·보호를 위한 제인 구달 연구소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는 제인 박사의 육성 강연을 ‘환경지킴이’들이 직접 들어봄으로써 자신의 역할을 되짚어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자원봉사단체인 ‘볼런티어21’도 오는 14일 자원봉사 지도자와 실무자 80명을 대상으로 ‘자원봉사지도자 네트워크 대회’를 개최한다. 자원봉사 리더십 강화와 노인·주민조직화·청소년 등 분야별 워크숍도 열 예정이다. 또 대부분의 시민사회단체들이 회원들의 역량 강화를 위해 올 한해동안 사회적인 이슈가 됐거나 내년도 이슈가 될 만한 내용을 주제로 학술대회와 세미나,심포지엄 등을 잇따라 준비하고 있다. 한국해외원조단체협의회는 13일 한국국제협력단(KOICA) 후원으로 서울 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아시아의 개발 NGO 프로젝트’라는 주제로 향후 아시아의 발전을 위한 논의를 벌일 예정이다.또 11일과 12일에는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주최로 ‘농업의 구조조정과 WTO협상 대응전략’ 정책토론회와 ‘주한미군이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 정책토론회가 계속해서 열릴 예정이다. 한국비영리학회는 오는 14일 이화여대 학생문화관 강당에서 ‘비영리단체의 재정자립과 재정의 투명성’에 관한 학술대회를 연다.행사에는 아름다운재단과 사회복지공동모금회,함께하는 시민행동,녹색연합,동서문제연구원 등 회원들이 참석해 비영리단체의 투명성과 우수사례를 발표한다. 한국비영리학회 박태규 회장은 “재정자립은 시민단체의 비전과 사명을 효과적으로 완수하기 위해서는 가장 필수적”이라면서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기획주제에 대한 이론적 접근만이 아니라 국제적 동향의 소개,나아가 단체의 사례 발표 등을 통해 한국 비영리단체의 재정자립에기여하고 투명성을 높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현석기자 hyun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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