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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내여행 | 마음이 뻐근해지는 DMZ 시간여행

    국내여행 | 마음이 뻐근해지는 DMZ 시간여행

    끊어진 국토의 허리는 우리 민족이 50년 넘게 앓고 있는 요통이다. 그러나 욱신거릴수록 주무르고 두들기며 관심을 쏟아야 하는 법. 철원 백마고지역으로 향하는 DMZ 트레인이 치유의 몸짓인 이유다.시간을 달리는 기차 기차가 ‘현재’를 출발했다. 2014년 여름, 도심의 고층빌딩숲과 아파트촌을 지나 북으로, 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기차가 철로를 휘감으며 질주하자 시간의 태엽도 뒤로 감기기 시작했다.경원선의 시간은 1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14년 8월14일에 서울에서 원산元山까지 223.7km를 개통했다. 그러나 분단과 함께 허리가 끊겼고, 이후 용산에서 신탄리역까지만 운행했다가 2012년 11월에 백마고지역이 신설되면서 용산역-백마고지역까지 94.4km를 운행해 왔다. 그리고 이번 경원선 DMZ 트레인의 개통으로 운행 구간이 조금 더 늘어나게 됐다. 끊어진 북쪽 구간(백마고지역에서 평강까지 총 31km)에서도 조금씩이라도 운행구간이 늘어나면 좋겠는데, 세월만 고속열차보다 빨리 달리고 있다.가장 애가 타는 곳은 월정리역이다. 경원선의 간이역 중 하나였던 월정리역에는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멈춰선 이후 다시는 달리지 못하게 된 열차 하나가 슬픔에 겨워 철로 위로 무너져 가고 있었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열차의 유언이 먹먹하다. 현실은 슬프고도 삼엄하다. 월정리역은 비무장지대 남방한계선 철책에 근접한 곳이라 조금이라도 렌즈 방향이 금지된 곳을 향하면 군인들이 다가와 카메라를 확인한다. 역사의 아픈 장면들도 그렇게 쉽게 ‘Delete’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전쟁, 분단으로 멈춰 버린 것은 경원선뿐이 아니었다. 1931년에 완공된 금강산철교 역시 일만이천봉 금강산을 그리워하며 기다리고 있다. 한때 이 교량은 철원에서 내금강까지 운행했던 전철이 수많은 물자와 관광객을 싣고 지나갔던 길이었다. 잠깐, 기차가 아닌 전철이 맞느냐고? 그렇다고 했다. 철원 문화관광해설사 김미숙 선생이 거듭 강조한 말이다. 1930년대에 금강산으로 가는 전철은 하루 8번 출발했는데 요금이 당시 쌀 한가마 값인 7원56전이나 됐다. 연간 15만4,000여 명(1936년 통계)이 전차를 이용했을 정도로 1930년대 철원은 번화한 남북 교통의 요지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금강산철교(등록문화재 112호)는 허리춤에 ‘끊어진 철길!, 금강산 90키로’라는 문구를 두른 채 한탄강을 내려다볼 뿐이다.사실 전쟁의 비극은 기차나 교량을 넘어선다. 전쟁 전의 철원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철원과 전혀 다른 도시였다. 10세기 초 궁예가 태봉국의 도읍으로 지정하고 청주 사람 1,000여 호를 이주시켜 건설했다는 도시. 궁예도성, 태조 왕건의 사저가 있던 곳이다.이후 남북을 잇는 중심 도시로 번성했는데 (구)철원역사, 철원군청 옛터, 제2금융조합 건물터(등록문화재 137호), 농산물검사소(등록문화재 25호), 얼음창고(등록문화재 24호), 철원제일감리교회 등이 건물 일부로, 혹은 그 터로만 남아 있다.쏟아지는 폭격, 한국전 사상 가장 치열했다는 철의 삼각지 전투 등은 철원의 모든 것을 파괴했다. 그나마 가장 원형을 가장 잘 유지하고 있는 근대건축은 노동당사다. 1946년 주민들을 강제동원하고 모금까지 해서 지었다는 노동당사는 연건평 1,900여 평방미터 규모의 큰 건축물이다. 공산당에 협조하지 않는 이들을 끌고 와서 취조하고 고문했던 잔혹한 현장이기도 하다.소중한 것들은 사라지고 남겨진 것은 지뢰들이다. 철원 시가지는 남쪽으로 이동해 새로 건설됐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신시가지에 살면서 구철원의 농경지로 출퇴근을 하며 살아간다. 딸이 아기였을 때 아장아장 걸어서 지뢰밭으로 들어갔었다는 해설사님의 체험담은 듣기만 해도 아찔했다. 1968년 대북 심리전을 위해 조성된 두루미마을은 황무지를 일구어 낸 이주민들의 결실이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한 지붕 아래 2가구씩이 살고 집집마다 무기가 지급되었었다는 이야기는 낯설지만 엄연한 현실이다.그러나 멸공OP에서 바라본 북녘 땅은 끝까지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커튼에 가려져 있던 전면의 통유리창이 병사의 프리젠테이션이 끝나는 동시에 활짝 공개되는 ‘극’적인 전개 때문에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휴전을 앞두고 그 보이지 않는 선을 쟁탈하기 위해 수많은 젊은 목숨이 고지 위에 흩뿌려졌고, 종종 그 선을 넘는 자들은 죽음을 맞이했으며 지금도 이 땅의 많은 젊은이들이 서로를 적이라 부르며 그 선을 사수하고 있는 서글픈 현실도 영상처럼 스쳐갔다. 얼어붙은 시간을 초월해 자유로운 것은 자연뿐. 지금의 철원은 철새들의 낙원이다. 날개를 펼치면 몸길이가 2~3m나 되는 두루미들이 겨울마다 이곳을 찾아 장관을 이룬다고 했다.하루 동안의 철원 안보여행을 마치고 기차는 다시 온 길을 더듬어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 사이 차창 밖의 풍경도 과거에서 현재로 바뀌고 있었다. 백마고지에서 분단 상태로 얼어붙어 있던 시간이 해동되어 지난 50년 동안 눈부시게 발전한 대한민국 서울의 한복판으로 승객들을 내려놓았다. 그러나 여전히 허리께가 뻐근하다. DMZ가 그렇게 내 몸에 각인되어 버렸다.글·사진 천소현 기자 취재협조 코레일 www.korail.comDMZ트레인평화열차 DMZ트레인은 두 곳으로 달려간다. 도라산역까지 가는 경의선은 지난 5월4일 개통했고, 백마고지역까지 가는 경원선은 8월1일부터 운행을 시작했다. DMZ트레인은 총 3량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객실별로 테마가 있다. 철도·전쟁·생태 사진을 감상할 수 있는 사진 갤러리도 있고, 카페석, 전망석도 있다. 열차의 앞뒤 풍경을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영상모니터로 승무원들이 깜짝 이벤트도 실시한다. 카페에서는 군용건빵, 주먹밥 등도 판매한다.경원선 DMZ 트레인은 서울역-백마고지역 구간 기준으로 1만2,400원(주말 1만2,800원). 1일간 왕복 이용할 수 있는 경원선 DMZ Pass는 성인 2만3,000원, 시니어와 청년은 1만6,000원이다. 문의 및 예약 | 철도고객센터 1544-7788 www.letskorail.com철원 안보관광 & 시티투어철원 안보관광에서는 두루미마을 시골밥상 및 반공호 체험, 노동당사, 백골부대 멸공OP, 금강산철교, 월정리역, 백마고지전적지를 방문한다. 안보관광에서는 신분증이 필요하며 민간인 통제구역에서는 사진을 촬영할 수 없다. 철원 시티투어는 고속정, 승일교, 송대소, 백마고지전적지 등을 둘러보게 된다. 철원 안보관광 033-452-3030 1만1,000원 철원 시티투어 033-455-8275 1만1,000원☞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흔들리는 교회… 안으로부터의 개혁하자”

    “흔들리는 교회… 안으로부터의 개혁하자”

    한국 개신교계의 진보적 교회 연합체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창립 90주년을 맞아 ‘안으로부터의 개혁을 통한 재도약’을 사회적으로 선포했다. ‘연합과 일치’라는 NCCK의 창립 근본이념에 충실해 그동안 모아진 힘을 바탕으로 생명과 정의, 평화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전력할 것을 약속했다. 18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구세군빌딩에서 90주년 기념예배를 연 데 이어 오는 11월 24일 총회에서 100주년 기념사업을 중심으로 한 ‘비전 선포식’을 가질 예정이다. 18일 90주년 기념예배는 NCCK의 지난날을 반성하고 향후의 길을 다잡는 회개와 다짐의 자리로 열렸다. 특히 한국 교회의 위기를 헤쳐나가기 위한 안으로부터의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NCCK 관계자를 비롯해 국내외 에큐메니칼(교회일치)운동 인사며 신학대 교수, 기독교학교 교사 등 500명이 참석한 예배의 주제도 ‘흔들리는 교회, 다시 광야로’였다. 심각한 위기에 처한 한국교회의 현실을 반성하고 하나님의 약속, 광야 시절의 첫 언약을 회복하자는 공의를 모아 택한 주제다. 이들은 기도문에서 “90주년을 기념하고 새로운 10년을 힘차게 살아내어 100년을 맞을 희망으로 이 자리에 섰다”며 “하지만 우리가 사는 이곳은 여전히 아파서 신음하며 정의는 무너졌고 평화는 소실되었을 뿐만 아니라 돌봄도 사라졌고 나눔은 끊어졌다”고 개탄했다. 참석자들은 특히 NCCK에 대해서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어렵더라도 정의의 길에 서야 했지만 스스로 무기력에 빠지고 말았다”며 “이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정의로운 평화를 밝히는 등불이자, 세상이 생명을 키우는 요람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이날 예배에는 세월호 유족과 밀양 송전탑 주민, 이주노동자들이 함께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이 시대 고난받는 이들의 대표로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특송을 부르고 세월호·밀양송전탑·강정 해군기지 등 현장에서 받은 엽서에 기도화 헌실을 담아 봉헌하는 의식도 있었다. NCCK 강석훈 목사는 “그분들의 현장을 공유해 현장성을 하나님께 드리고 그 응답을 나눠주자는 뜻에서 마련한 행사”였다고 귀띔했다. NCCK는 먼저 교회 안으로부터의 개혁에 박차를 가하면서 약자와 소외된 자들의 편에 더 다가선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예배 이후 엽서로 답지한 다양한 목소리들을 모아 오는 11월 24일 비전 선포식에 반영키로 했다. 이와 관련, NCCK 김영주 총무는 예배에서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을 마지막 기회라는 각오로 교회 연합과 갱신에 노력하고자 한다”며 “교회 안으로는 교회개혁의 기치를 들고 교회 밖으로는 사회를 향해 약자와 소외된 자들을 위하는 일에 최선의 노력을 다해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NCCK는 1924년 재한개신교선교부연합공의회와 조선예수교장감연합협의회를 통합해 창설된 조선예수연합공의회(NCC)가 모태. 일제강점기 끝 무렵 10여년 전 해체됐다가 해방과 함께 조선기독교연합회로 다시 태어났다. 197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과 1975년 긴급조치 9호에 저항하고 민주화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1988년 ‘88선언’으로 불리는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을 내놓으며 한국기독교의 통일운동을 주도했다. 현재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기독교대한감리회, 한국기독교장로회, 한국구세군, 대한성공회, 기독교대한복음교회, 한국정교회,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기독교한국루터회 등 9개 교단과 CBS를 비롯한 5개 연합기구가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 시민의 승리!… 흑인 소요 퍼거슨市 ‘경찰 개혁’

    흑인 청년 사망으로 소요 사태가 일었던 미국 미주리주 퍼거슨시가 경찰과 법원 개혁안을 발표했다. 경찰 조직을 감시할 수 있는 시민 심의위원회를 만들고, 법원이 마구잡이로 부과하던 벌금을 줄인다는 계획이다. 미국 일간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CSM)는 9일(현지시간) 퍼거슨시가 시위대의 요구를 받아들였다고 보도했다. 흑인 청년 마이클 브라운이 백인 경찰 대런 윌슨의 총에 맞아 사망한 지 꼭 한 달 만인 이날 퍼거슨시 의회는 첫 회의를 열고 개혁안을 논의했다. 퍼거슨시는 먼저 경찰을 상시 감시할 수 있는 시민 심의위원회를 설립하기로 했다. 위원회는 경찰이 집행하는 모든 행정적 절차를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또한 법원이 부과하는 교통 범칙금과 각종 벌금도 줄인다. 퍼거슨시 법원의 각종 벌금 수입은 지난해 260만 달러에 달해 시 재정의 14%를 차지했다. 지난 10년간 3배 늘어난 수치다. 저소득층 흑인 상당수는 벌금을 내지 못해 교도소에 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AP통신은 보도했다. 전문가들은 법원이 마구잡이식으로 벌금을 남발하는 것이 흑인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고 지적해 왔다. 마크 바이른 시의회 의원은 “경찰과 법원의 투명성을 높이고, 지역사회의 신뢰를 향상시키기 위해 개혁안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첫 회의가 열린 이날 일부 시위대는 개혁안에 반대하는 뜻을 밝혔다. 시위대는 “의회가 뻔한 방법으로 사건을 덮으려 하고 있다”면서 “대런 윌슨을 체포하라”고 주장했다. 인구 2만 1000명의 퍼거슨시는 70%가 흑인이지만 전체 53명의 경찰 중 흑인은 3명에 불과하며 시장과 시의회 의원도 모두 백인이다. 뉴욕타임스(NYT)는 미국 소도시에 흑인 등 소수 인종 경찰과 소방관 수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보도했다. NYT가 연방 경찰 조사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경찰관 100명 이하인 400개 마을에서 백인 경찰 비율이 백인 인구 비율보다 50% 포인트 많은 것으로 밝혀졌다. 한 도시의 백인 인구가 20%라면 백인 경찰은 70%가 넘는다는 것이다. 퍼거슨시뿐만 아니라 오하이오주 메이플헤이츠, 일리노이주 벨빌 등도 흑인 경찰이 턱없이 부족했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데스크 시각] 이주영과 에릭 홀더/이창구 국제부 차장

    [데스크 시각] 이주영과 에릭 홀더/이창구 국제부 차장

    3년 전 정치부에 근무할 때 당시 한나라당 정책위 의장이던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과 저녁 식사를 몇 번 한 적이 있다. 다른 중진 의원들과 달리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판사 출신이라서 그런가 싶었다. 회사 동료가 입원한 어느 날 병문안을 갔다가 막 병실을 나서려는데 이 장관이 나타나 깜짝 놀랐다. 짧게 문병하고 조용히 자리를 뜨는 모습을 보며 ‘사람 챙길 줄 아는 정치인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장관을 다시 눈여겨보게 된 것은 지난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할 때부터다. 구조자 수조차 파악하지 못해 허둥대는 모습에 많은 이들이 ‘무능한 정부’의 전형이라고 비난했다. 분노한 유족들에게 5시간 넘게 둘러싸여 쩔쩔매는 모습도 보였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유족들의 슬픔과 분노를 듣는 것뿐이었다. 지방선거와 재·보선, 유병언 검거 호들갑으로 국민의 시선이 팽목항에서 멀어졌을 때에도 그는 야전침대에서 새우잠을 자며 팽목항을 지켰다. 그 사이 하얀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랐다. ‘쇼’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유족들이 서서히 그에게 마음을 열고 있다는 얘기도 들렸다. 세월호가 한국의 병폐를 그대로 드러낸 참사라면 지난 9일 미주리주 퍼거슨시에서 발생한 ‘마이클 브라운 사건’은 미국의 구조적인 흑백차별을 여실히 드러낸 사건이었다. 비무장 상태의 흑인 청년 브라운이 머리 위로 손을 들었는데도 백인 경관이 총을 난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흑인사회가 들고 일어났다. 결국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는 흑인 법무장관 에릭 홀더를 현지로 급파했다. 홀더 장관은 먼저 유족에게 달려가 그들의 요구를 들었다. 총격 현장, 음식점, 대학에 가서 시민들을 만났다. 그리고 분명하게 말했다. “나도 흑인이다. 진실을 반드시 밝히겠다. 법무부는 당신들 편이다.” 그의 진정성은 서릿발처럼 차고 날카로웠던 시위대의 가슴을 녹였고, 사태는 진정됐다. 이주영과 에릭 홀더는 모두 진심으로 경청했다. 차이점이 있다면 이 장관은 듣기만 했다는 것이다. 특별법을 둘러싼 대립이 극단으로 치닫고, ‘유민 아빠’의 목숨 건 단식이 43일째 되던 날 이 장관은 유족에게 아무런 말도 없이 수염을 깎았고, 해수부장관 ‘고유 업무’를 재개하기 위해 일본 출장길에 나섰다. 애초 이 장관이 무슨 역할을 해주길 기대한 사람은 별로 없다. “교통사고 아니냐”, “노숙자들 같다”며 유족을 조롱한 동료 여당 의원들을 생각하면 묵묵히 팽목항을 지킨 것만도 용하다. 유족들의 면담 요구를 끝내 뿌리친 대통령도 이런 모습 때문에 경질 대상 1호였던 그를 유임시킨 게 아니었을까. 그래서 하는 말이다. ‘쇼’가 아닌 ‘공감’의 상징이었던 그 수염을 왜 하필이면 가장 절실할 때 정리했느냐 말이다. 만약 이 장관이 여-야-청와대-유족 사이에서 메신저 역할을 했으면 어땠을까. ‘유민 아빠’의 ‘아빠 자격’이 도마에 올라 난도질당할 때 그가 “4월 16일 그날의 마음으로 돌아가자”고 했으면 어땠을까. 최근 몇몇 미국 언론이 홀더 장관을 향해 ‘이미지 정치로 소요를 진압했다’고 평가했다. 이에 홀더는 이렇게 말했다. “이 사건이 잊혀져도 나와 법무부는 퍼거슨시와 함께할 것이다.” 이 장관에게서 듣고 싶던 말이 바로 그것이다. “이 참사가 잊혀져도 나는 세월호와 함께할 것이다.” window2@seoul.co.kr
  • 교황이 남긴 메시지, ’평화와 치유’

    교황이 남긴 메시지, ’평화와 치유’

    짧다면 짧은 4박 5일의 방한 기간이었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 사회에 보여 준 말과 행동이 남긴 반향은 끝이 없다. 지난 14일 세계 유일의 분단국인 한국에 첫발을 내디딘 교황은 “한반도 평화를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왔다”는 말을 시작으로 방한 내내 평화와 화해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평소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보여 준 성품대로 수차례 세월호 유족과 장애인 등 우리 사회의 상처받고 소외된 이들을 만나 따뜻한 손길로 이들의 아픔을 어루만졌다. 아기들에게는 인자한 할아버지처럼 환하게 웃으며 입을 맞추고 축복을 빌어줬고, 급속한 성장으로 혼란을 겪는 젊은이들에게는 용기와 희망을 가지라고 북돋워주면서 동시에 사회에 만연한 물질주의와 개인주의를 경계했다. ◇ “평화는 ‘정의의 결과’” 공식 방한 목적은 사목이었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입국 순간부터 한반도의 평화를 언급하면서 아시아 첫 방문지이자 즉위 후 세 번째 해외 방문지로 한국을 선택한 이유를 분명히 했다. 교황은 방한 첫날 청와대에서 한 연설을 통해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정의의 결과’”라며 “정의는 과거의 불의를 잊지는 않되 용서와 관용, 협력을 통해 불의를 극복하라고 요구한다”고 말했다. 또 “평화란 상호 비방과 무익한 비판이나 무력시위가 아니라 상대방의 말을 참을성 있게 들어주는 대화를 통해 이뤄질 수 있다는 확고부동한 믿음에 바탕을 둔다”며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한 면담에서는 “한반도는 점차 하나가 될 것이므로 이를 위해 기도하겠다”고도 했다. 교황은 15일 아시아청년대회에서 즉흥 연설을 통해 “한 가족이 둘로 나뉜 건 큰 고통이지만 한국은 하나라는 아름다운 희망이 있다”며 “그중 가장 큰 희망은 같은 언어를 쓰는 한 형제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을 떠나기 전 서울 명동성당에서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를 집전한 교황은 남북한이 서로 진심 어린 대화로 평화와 화해를 위한 노력에 나설 것을 주문했다. 교황은 미사 강론에서 “주님은 ‘형제가 죄를 지으면 일곱 번이나 용서해줘야 하냐’고 베드로가 묻자,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며 “죄 지은 형제들을 아무런 남김없이 용서하라”고 조언했다. 방한 기간 교황의 평화를 향한 메시지는 한반도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교황은 방한길에 중국 영공을 지나면서 시진핑 국가주석과 중국인에 대해 축복 메시지를 전한 데 이어 17일 아시아주교단을 상대로 한 연설에서는 “아직 교황청과 완전한 관계를 맺지 않는 아시아 대륙의 몇몇 국가들이 모두의 이익을 위해 주저 없이 대화를 추진해 나가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연설에서 직접 국가명을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중국 뿐 아니라 북한, 베트남, 미얀마, 라오스 등 교황청과 관계를 맺지 않은 아시아 다른 국가를 포괄하며 아시아 지역의 평화를 기원한 것이다. ◇ 교황의 가슴에 달린 ‘노란 리본’ 프란치스코 교황은 100시간을 30분 단위로 쪼개 움직이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네 차례에 걸쳐 세월호 참사 유가족을 만나 이들의 아픔을 달래고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방한 첫날 성남 서울공항에서 마중나온 세월호 유가족 4명을 소개받고는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있다. 가슴이 아프다.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있다”며 이들의 아픔에 공감했다. 15일 성모승천대축일 미사를 집전하러 대전월드컵경기장에 입장하다 세월호 유가족 30여명이 모인 곳을 지나자 차에서 내린 교황은 울먹이는 이들의 손을 잡아줬으며, 미사 전 제의실 앞에서도 생존학생 2명과 유가족 8명을 만나 이들의 얘기를 경청했다. 앞서 세월호 유가족 등으로 구성된 도보순례단이 전달한 ‘세월호 십자가’는 직접 로마에 가져가겠다는 뜻을 밝혔고, 이날 미사 삼종기도에서는 “세월호 침몰 사건으로 생명을 잃은 모든 이들과 이 국가적 대재난으로 인해 여전히 고통받는 이들을 성모님께 의탁한다”고 말했다. 당초 명단에는 없었지만 세월호 유가족의 요청을 받아들여 16일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한국 천주교 순교자 124위의 시복식에 유가족 400여명이 함께 하기도 했다. 교황은 시복식 미사에 앞서 광화문 광장에서 카퍼레이드를 하다 세월호 유가족이 모인 곳에 다다르자 차에서 내려 이들에게 다가갔다. 이 역시 예정에 없던 일이었다. 딸 김유민양을 잃고 34일째 단식 중인 김영오씨의 두 손을 따뜻하게 감싸 쥔 교황은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게 특별법이 제정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 세월호를 절대 잊지 말아달라”는 김씨를 바라보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김씨가 건넨 노란 봉투에 담긴 편지를 직접 자신의 주머니에 넣기도 했다. 17일에는 세월호 사고로 숨진 안산 단원고 학생 이승현 군의 아버지 이호진 씨에게 직접 세례를 줬다. 이씨의 세례명은 교황과 똑같은 프란치스코다. 교황은 세례식을 마친 뒤 배석한 수원교구 김건태 신부를 통해 가족의 시신을 찾지 못해 진도 팽목항에 머무는 세월호 실종자 가족에게 위로 편지와 묵주를 전달했다. 교황은 자필로 직접 서명한 한글 편지에서 “직접 찾아뵙고 위로의 마음을 전하지 못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10명의 실종자 이름도 한 명씩 모두 열거하고 이들이 부모와 가족 품으로 돌아오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의미가 담긴 ‘노란 리본’은 세월호 유가족이 ‘노란 리본’을 전달한 순간부터 교황이 한국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내내 교황의 왼쪽 가슴에 달려 있었다. ◇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의 벗’ 인간적이고 따뜻한 모습은 방한 기간 내내 모두에게 감동을 선물했다. 낮고 겸손한 자세로 임하는 소탈한 모습은 사회의 구석구석을 환하게 비췄다. 첫날 성남 서울공항에서 교황을 맞이한 환영단이 세월호 사고 희생자 유가족과 새터민, 이주노동자, 장애인 등 우리 사회에서 소외받고 상처받은 ‘보통 사람들’로 꾸려진 것을 시작으로 교황의 소탈한 행보는 계속 됐다. 16일 충북 음성군 꽃동네를 방문한 교황은 장애인과 함께하는 50여 분의 시간 내내 의자에 앉지 않았다. 올해 78세로 고령인데다 빡빡한 일정 탓에 지칠 법한데도 전혀 피곤한 기색도 없었다. 대신 인자하고 따뜻한 눈길로 그 자리에 참석한 장애인 한명 한명을 바라봤다. 다소 서툴지만 성심을 다해 율동 공연을 준비한 장애 아동들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워보이고 품 안에 꼭 껴안아줬고, 두 팔을 머리 위로 올려 하트 모양을 그리는 이들에게는 같이 두 팔로 하트 모양을 그려 화답하기도 했다. 손가락을 빨고 있던 갓난아기의 입에는 한동안 자신의 손가락을 대신 물려 주고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는 교황의 모습에 웃음꽃이 피어났다. 당초 예정된 시간보다 지체됐지만 교황은 아랑곳하지 않고 몸이 불편해 휠체어에 앉아있거나 침대에 누워 있는 장애인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일일이 어루만지고 축복을 빌어줬다. 아이들에 대한 각별한 애정도 어김없이 드러났다. 교황은 카퍼레이드 도중 아이들만 보이면 차를 멈추게 한 뒤 아이의 얼굴을 쓰다듬거나 이마와 볼에 입을 맞추며 강복했다. 그러다 깜짝 놀라 울음을 터트리는 아이들을 보며 재미있다는 듯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머금기도 했다. 교황의 경호원들은 본업인 경호보다 아이들을 발견해 재빨리 교황에게 데려오고 도로 부모에게 데려다 주는 ‘부업’을 하느라 바빴다. 교황은 방한 내내 교황의 상징인 금제 십자가 목걸이 대신 20년간 착용해 온 낡은 철제 십자가 목걸이를 목에 걸고 있었다. 낡은 검은색 구두도 그대로였다. 이동 중에는 한손에 직접 자신의 검은색 가방을 들었다. 방탄 차량 대신 국산 소형차 ‘쏘울’을 의전 차량으로 택했고,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자 지붕이 없는 무개차(오픈카)를 이용했다. ◇ “젊은이여 깨어나라!” 프란치스코 교황은 방한의 주목적이었던 아시아청년대회에 두 차례 참석해 아시아청년들을 만났다. 평소 젊은이에 대한 관심이 많은 교황은 아시아청년대회 폐막미사에서 성경 시편 구절을 인용해 “잠들어 있는 사람은 아무도 기뻐하거나, 춤추거나, 환호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특히 청년대회 참석자들을 ‘사랑하는 젊은 친구 여러분’으로 부르며 젊은이들이 교회와 사회의 미래라는 점을 상기시키고 그들 역할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앞서 15일 충남 당진 솔뫼성지에서 아시아 청년들과 만난 자리에서는 연설문을 읽던 중 갑자기 말을 멈추고 영어로 “피곤하십니까”라고 물은 뒤 즉흥 연설을 통해 청년들의 고민에 답을 하기도 했다. 일반 신자와 젊은이들에게는 더없이 인자하고 자상한 할아버지의 모습이었지만 성직자들과의 만남에서는 원칙을 강조하는 엄격함과 근엄함도 보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6일 한국 수도자들과 만나 “부자로 살아가는 봉헌된 사람들(수도자)의 위선이 신자들의 영혼에 상처를 입히고 교회를 해친다”며 청빈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수도 생활이 교회와 세상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또 17일 아시아 주교단을 상대로 한 연설에서는 “공감하고 진지하게 수용하는 자세로, 상대방에게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열 수 없다면 진정한 대화란 있을 수 없다”면서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갈수록 극으로 치닫는 개인주의와 물질주의를 경계하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교황은 방한 첫날 청와대 연설에서 “경제적 개념이 아니라 사람을 중심으로 공동선과 진보, 발전을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5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방한 후 처음으로 집전한 첫 대중미사에서는 “올바른 정신적 가치와 문화를 짓누르는 물질주의의 유혹, 이기주의와 분열을 일으키는 무한경쟁의 사조에 맞서 싸우기를 빈다”며 인간 존엄성을 모독하는 문화를 경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오늘의 눈] 인종차별 ‘노 모어’/백민경 국제부 기자

    [오늘의 눈] 인종차별 ‘노 모어’/백민경 국제부 기자

    “양손을 들었으니 쏘지 마(Hands up don´t shoot).”, “더 이상은 안 돼(No more).” 미국에서 어른 키 반만 한 어린 꼬마도, 대학 신입생도, 같은 지역 주민들도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지난 10일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카운티 퍼거슨시의 외할머니 집 근처에서 사망한 흑인 청년 마이클 브라운(18)을 위해서였다. 그는 대학 입학을 며칠 남겨둔 상태였다. 뚜렷한 혐의조차 없었다. 양손을 머리 위로 들고 항복 의사까지 밝힌 상태였다. 그런데도 경찰은 그를 향해 수차례 총을 난사했다. 쓰러지고 나서도 쐈다. 불과 몇 주 전, 미국 한복판에서 일어난 일이다. 멀쩡한 청년을, 그것도 공격 의사가 없는 이를 경찰이 죽였다. 며칠도 지나지 않아 이번엔 LA 남부에서 변이 생겼다. 이젤 포드라는 20대 흑인 남성이 ‘수색을 위한 정지명령’을 받고 차를 정차한 뒤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는 과정에서 또 총에 맞아 숨진 것이다. 그의 모친은 포드가 당시 땅바닥에 누워 있는 상태로 등에 총알을 맞았다고 주장했다. 잇단 흑인 사망에 미국은 들끓고 있다. 흑인들도, 심지어 백인들도 분노하고 있다. 흑인이 대통령인 나라에서 버젓이 자행되는 인종차별에 항의 시위는 좀처럼 식지 않고 있다. 비단 남의 나라 일일까. 피부색이나 나라를 두고 사람을 차별하는 악습은 한국에서도 낯익은 소재다. 팔려오 듯 국제결혼을 하고, 고된 시집살이와 폭력에 멍들고, 직장과 학교에서 도구 취급당하는 이들은 아직도 적지 않다. 지난달엔 한 야구 해설자가 도미니카공화국 출신 타자에 대해 얘기하며 “밝은 옷을 입지 않으면 밤에 자동차를 몰고 갈 때 구분이 잘 안 된다”며 생각 없는 발언으로 물의를 빚기도 했다. 영화 ‘초능력자’에서 한국말을 유창하게 구사해 눈길을 끌었던 가나 출신의 청년은 성적표와 추천서를 보고 긍정적으로 반응했던 의과 대학 관계자들이 그의 얼굴을 보고 마음을 바꿔 의대 진학이 좌절된 사연을 털어놓기도 했다. 부끄러운 현실이다. 17일은 2004년 8월 시행된 ‘외국인 고용허가제’가 10주년을 맞는 날이다. 외국인 근로자에게 취업비자를 줘서 국내 근로자와 똑같은 대우를 보장해 주려고 만든 제도이지만 이주·인권단체들은 이를 현대판 노예제라고 부른다. 쉽게 직장을 옮길 수 없는 점을 악용해 고용주들이 일부러 임금을 체불하거나 퇴직금을 주지 않는 사례가 잇따른다. 아직도 우리가 가야 할 길이 멀다는 증거다. 조금씩 우리가 바꿔나가야 한다는 현실이다. 피부색은 차이일 뿐 차별의 이유가 돼서는 안 된다. 차별은 또 다른 차별을 만들고, 계급을 만들어 누군가를 억압하는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일하러 왔다고 해서,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에서 왔다고 해서, 무시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면 간단하다. 타국에 나가면 우리 역시 외국인일 뿐이다. 유색인 일 뿐이다. 아시아의 작은 나라 출신일 뿐이다. 오늘날 미국의 인종차별 사건에 더 분노하고 ‘노 모어’를 외쳐야 하는 이유다. white@seoul.co.kr
  • 프란치스코 교황 서울공항 통해 방한 “세월호 희생자들 기억하고 있다…가슴 아프다”

    프란치스코 교황 서울공항 통해 방한 “세월호 희생자들 기억하고 있다…가슴 아프다”

    프란치스코 교황 서울공항 통해 방한 “세월호 희생자들 기억하고 있다…가슴 아프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14일 오전 10시 16분 쯤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공항에서 마중 나온 박근혜 대통령과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강우일 주교,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 등의 영접을 받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공항에 도착해 “한국을 방문하게 돼 기쁘다”고 밝혔다. 교황은 공항에 마중 나온 박근혜 대통령의 영접을 받고 “나도 한국에 오게 돼 기쁘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도 한국인들과 좋은 관계를 맺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교황 방한 계기로 따뜻한 위로가 전해지고 분단과 대립의 한반도에 평화와 화해의 시대가 열리길 바란다”고 말했고, 교황은 “마음 속에 깊이 간직하고 왔다”고 답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영접 나온 세월호 유족들과 인사하면서 손을 맞잡고 “마음 속에 깊이 간직하고 있다. 가슴이 아프다.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항 환영행사에는 한국 사회에서 위로와 치유가 필요한 이들을 비롯한 천주교 평신도 32명도 함께 교황을 맞아 눈길을 끌었다. 환영단에는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 4명을 비롯해 새터민, 필리핀과 볼리비아 출신 이주노동자, 범죄피해자 가족모임 해밀 회원, 장애인, 시복대상자 후손, 외국인 선교사, 수도자 대표 등이 포함됐다. 또 결혼을 앞두고 세례를 받으려는 예비신자들과 중고생, 가톨릭노동청년, 어르신 대표들도 공항에서 교황을 만나는 영예를 누렸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날 청와대에서 박 대통령과 면담하고 공직자들을 대상으로 연설한다. 이어 중곡동 한국천주교 주교회의를 방문해 한국주교단을 만나는 것으로 방한 첫날 일정을 마무리한다. 교황은 4박5일의 방한 기간에 아시아 가톨릭청년대회와 천주교 순교자 124위 시복식 등 4차례 미사를 집전하고 세월호 참사 생존자와 희생자 가족,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등을 만날 예정이다. 네티즌들은 “프란치스코 교황 서울공항 통해 방한, 너무 멋지시다”, “프란치스코 교황 서울공항 통해 방한, 세월호 희생자를 잊지 마세요”, “프란치스코 교황 서울공항 통해 방한, 감격스럽다”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자원봉사자 4400명 ‘교황과 함께’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 기간 중 긴장과 흥분으로 그 누구보다 밤잠을 설칠 사람들이 있다. 교황 방한준비위원회에 신청을 마친 4400명의 자원봉사자들이다. 행사장에서 교황을 따라 그림자처럼 움직일 이색 봉사자들을 소개한다. ●윤태웅 안토니누스(33·배우) 88서울올림픽 개막식 ‘굴렁쇠 소년’으로 유명하다. 꾸르실료 교육에 참가했다가 봉사자 모집 소식을 접하고 지원했다. 광화문 시복식 행사에서 소그룹을 이끄는 ‘청년리더’ 역할을 맡았다. “구체적으로 일을 배정받진 못했지만, 교황님 방한 중 어디에서든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길 바란다.” ●김승현 데레사(34·직장인) 외국계 제약회사 정보기술 부서에서 근무하는 회사원. 2012년부터 한 달에 한 번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무료진료소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휴가를 반납하고 메인 프레스센터에서 취재진 지원업무를 담당한다. “원하는 것만 하려 함은 봉사의 마음이 아님을 느꼈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잘 쓰이길 바란다.” ●변무근 마르첼리노(24·군인) 공군 제15특수임무비행단에서 부사관으로 복무하는 현역 군인. 서울 상도동본당 청년연합회에서 활동하는 등 다양한 봉사활동에 참여해 왔다. 연휴를 이용해 봉사활동에 참여한다. “좋은 기회가 주어진 만큼 교황님 가까이에서 일한다는 설렘을 안고 봉사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오명옥 마리아(52·간호사) 사회복지법인에서 장애인들을 위해 일하는 현직 간호사. 한국청년대회 참가자 중 최연장자이다. 대회에 참가한 청년들의 건강을 책임진다. “이렇게 많은 젊은 친구들과 함께하는 것은 처음이다. 이런 기회가 주어져 정말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고희주 카타리나(31) 교황 방한 때 봉사할 자원봉사자들을 관리하는 방한준비위원회 스태프. 어린 시절 뉴질랜드로 이민을 떠났다가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던중 교황 방한을 앞두고 봉사활동에 뛰어들었다. 시복식 당일 현장에서 발로 뛴다. “하느님의 뜻이 있으셔서 나를 쓰고 계신 것 같다. 교황 방한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 [열린세상] 지역주민의 손으로 여는 주민행복시대/정재훈 한국산업기술진흥원장

    [열린세상] 지역주민의 손으로 여는 주민행복시대/정재훈 한국산업기술진흥원장

    ‘빅토리녹스’(Victorinox)라는 회사명은 익숙지 않지만, 맥가이버 칼이라고 하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인다. ‘스위스 아미 나이프’로 우리에게 더 익숙한 빅토리녹스는 1884년에 설립된 기업으로 스위스 중부 슈비츠주 이바흐 지역에 본사를 두고 있다. 창업자 칼 엘스너는 스위스 군용 칼을 독일에서 수입하는 것에 착안해 빅토리녹스를 설립했다. 특히 그는 ‘지역사회와의 공존’을 위해 지역에서 일자리를 창출하길 원했다. 당시 스위스는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고, 스위스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아 미국, 캐나다, 호주 등지로 대거 이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맥가이버 칼이 유명세를 타면서 지역 매출이 급증한 것은 물론이고, 주변 지역의 관광 산업까지 발달하게 됐다. 2014년 현재의 빅토리녹스는 그 지역에서뿐만 아니라 스위스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한 부분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으며, 시대를 뛰어넘어 지역민의 삶과 밀착된 동반자 역할을 하고 있다. 빅토리녹스는 창업주의 뜻을 계승해 현재까지도 해외에 생산 공장을 두지 않는다고 한다. 전라북도 임실군은 치즈로 유명한 곳이다. 1967년 벨기에 출신 디디에 세스테벤스(한국이름 지정환) 신부가 생활고에 시달리는 지역민의 소득을 올리기 위해 가내수공업 형태의 치즈 제조를 시작했다. 이 치즈를 바탕으로 임실은 치즈 산업 발달에 따라 우유를 생산하는 1차산업(낙농업), 2차(우유가공업) 및 3차 산업(유통·관광사업)도 더불어 성장하는 6차산업의 모델이 되고 있다. 지역 특산물이 갖고 있는 경쟁력을 살려 주민의 수익을 높이고 지역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은 두 사례다. 또한 지역이 어떻게 자생적인 생태계를 만들어가야 할지에 대한 바람직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는 단기간에 초고속으로 압축 성장을 했지만 그 결과 인구와 산업 등 모든 자원이 수도권으로 집중되고 도농 격차는 갈수록 벌어졌다. 지역 간 불균형을 극복하려고 우리 정부는 1995년부터 다양한 지역산업 육성정책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그동안의 지역정책은 수도권 기능 분산에 주력하거나 지역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행정구역끼리 묶어 추진했기 때문에 지역에 실질적인 활력과 생기를 불어넣는 데 한계가 있었다. 이제는 지역정책도 주민들의 현재 생활 패턴을 고려해 수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행정구역은 다르더라도 지역 주민 간 교류가 활발해서 사실상 공동의 생활권이 형성돼 있는 곳이라면 이러한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는 얘기다. 박근혜 정부 들어 지역정책 수립 방향이 중앙정부 주도의 하향식에서 지자체 주도의 상향식으로 바뀌고 정책단위 역시 과거 광역경제권에서 ‘지역행복생활권’으로 재구성된 배경이 여기에 있다. 현재 지역산업 체계는 경제협력권사업(시·도 연계), 지역주력사업(시·도), 지역전통사업(시·군·구) 등 3개로 구성됐다. 시·도 간 경계를 허물어서 새로운 부가가치를 발굴했던 기존 지역정책의 장점은 계승·흡수하면서도 이전보다 지자체 역할이 커졌기 때문에 지역공동체와 주민 참여를 활발하게 이끌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 중에서도 지역전통사업은 지역 내 특색 있는 자원을 발굴하고 여기에 첨단기술을 융합하여 지역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형태기 때문에 지역주민이 체감하는 일자리 창출이 기대되는 분야다. 지역자원과 지역민들의 창조적 잠재능력을 효과적으로 활용해 삶의 질 향상과 일자리·소득 창출을 이끌어내는 지역사업은 현 정부의 정책기조인 창조경제 생태계 조성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특히 지역의 특색 있는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해 지역경제 활성화를 이끌어낸 앞의 두 사례처럼 우리나라의 지역정책 구도도 지자체 중심으로 재편된 만큼 앞으로 관련 예산이 더욱 늘어난다면 다양한 성공사례가 많아질 것이다. 국가의 목표는 점차 경제성장에서 삶의 질 향상으로 옮겨가는 중이다. 지역산업 육성이 활성화되면 수도권으로 나가지 않아도 지역민들이 집 근처에서 문화·여가·일자리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되고 결국 삶의 질도 향상될 것이다. 지역사회의 자생적 경쟁력을 기르고 밀착형 행복생활권을 형성해 국민 행복 체감도를 높이는 지역산업이 앞으로도 적극적이고 활발하게 추진되기를 기대해 본다.
  • 코이카 설립당시 자료 국가기록물 지정

    정부 무상원조 전담기관인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설립 당시 남겼던 주요 자료들이 국가기록물로 지정됐다. 국가기록원은 ‘공공기관 기록물 중장기 수집계획’에 따라 국가적으로 보존 가치가 높은 코이카 소장 자료 가운데 한국 국제협력 사업의 초기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제1기 한국 청년해외봉사단 파견 관련 사업 평가 보고서’(1991년) 등 6점을 주요 국가기록물로 채택했다. 코이카와 국가기록원은 11일 경기 성남시 수정구에 있는 나라기록관에서 이들 기록물을 옮기는 이관식을 연다. 이관하는 기록물은 우리나라의 국제협력사업 동향과 관련된 토론회와 연구자료 등을 모은 ‘정부개발 원조’(1991년), ‘한국형 국제협력방안 모색’(1992년) 등이다. 또 1966년부터 1992년까지 파독 광부·간호사들의 연도별 진출 현황을 파악할 수 있는 ‘해외이주 통계철’(1991년)도 포함됐다. 코이카는 1991년 파독 광부·간호사들의 인력 송출을 담당했던 기관인 ‘한국해외개발공사’를 승계해 설립됐다. 이승용 코이카 전문관은 “앞으로도 우리나라의 국제협력 사업과 관련된 역사적 가치가 높은 기록물을 지속적으로 수집·발굴해 국가기록물로 지정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단체장 발언대] 고재득 성동구청장

    [단체장 발언대] 고재득 성동구청장

    주민들에게 지자체의 국제 교류는 좋은 기회다. 영어권 선호 분위기 탓에 지자체들은 대개 선진국과의 교류를 원한다. 성동구는 2007년 미국 애틀랜타 코브카운티와 자매결연을 맺었다. 케너소대학 학생들이 방학 중 홈스테이를 통해 영어 교육 봉사를 하고 우리 직원들도 매년 어학연수에 참가한다. 그러나 미래 세대를 고려하면 후발 주자와의 결연 또한 중요하다. 성동구엔 이주민이 꾸준히 늘고 있다. 베트남 출신은 서울시 자치구 중 단연 많다. 공장과 중소기업이 많아서다. 개인적으로는 청년 때 베트남에 대해 갖게 된 부채의식 때문에 베트남은 유난히 아픈 손가락이었다. 그것이 2012년 우리 구와 베트남 뚜이호아시의 자매결연으로 이어졌다. 주민 대표와 지역 경제계 인사로 구성된 방문단은 돌아와서도 두곳의 이름을 딴 S&T라는 모임을 만들어 협력 방안을 줄곧 모색했다. 그러다가 현지의 열악한 교육 환경에 눈길이 쏠렸다. 어린이집 설립에 입을 모으고 기금을 내놓기로 뜻을 모았다. 구립어린이집연합회에서도 바자회와 수익 사업으로 돈을 보탰다. 이렇게 지난해 12월 착공한 ‘뚜이호아-성동 우정 어린이집’이 베트남에서 문을 열었다. 나아가 후원하겠다는 사람들이 나서서 아이들에게 교구와 옷, 신발 등을 전달하기도 했다. 단체장이 바뀌면 유야무야되는 사업이 있는데 교류도 마찬가지다. 단발성 이벤트로 치부되는 경향 때문이다. 그러나 교류는 성격상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없다. 상호 공동 발전을 위한 밑그림을 그리려면 인사치레의 단발성 교류로는 어림도 없다. 이걸 해낼 수 있는 게 바로 주민의 목소리다. 진정한 결연과 교류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풀뿌리 행정처럼 풀뿌리 외교가 되는 것이다. 시작은 두 기관 간이었을지라도 주민들의 뜻과 생각이 덧대어지면 교류의 패러다임이 바뀐다. 뚜이호아-성동 우정 어린이집에서 자란 아이들이 성동구, 서울 그리고 대한민국을 기억할 것이다. 두 나라의 꿈나무들이 미래를 이끌어 가는 기둥으로 만나는 즐거운 상상을 해 본다. 성동구와 뚜이호아 간 교류의 또 다른 시작은 이제부터다.
  • 선거 참패 佛 올랑드 총리 교체로 국면전환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총리를 교체하며 국면 전환에 나섰다. 신임 마뉘엘 발스(52) 총리는 잘생긴 외모와 개혁적 성향으로 ‘프랑스의 토니 블레어’로 불리는 인물이다. 올랑드 대통령은 31일(현지시간) TV 연설에서 “다시 시작할 때다. 발스에게 프랑스 정부를 이끌어 갈 임무를 부여한다”고 발표했다. 2012년 5월 올랑드 취임 때부터 내각을 이끌어 온 장 마르크 에로 총리는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전날 지방선거에서 여당인 사회당은 150여개 선거구를 야당인 대중운동연합(UMP)에 넘겨줬다. 올랑드 대통령은 “국민의 명확한 메시지를 들었다”면서 “변화가 부족하고 너무 느렸으며, 일자리가 충분하지 못해 실업률이 높았고, 세금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고 자성했다. 프랑스의 지난해 4분기 실업률은 10.2%로 금융위기 당시보다 더 나빠졌고, 25세 미만 청년 실업률은 25%대로 유로존 평균(24%)보다 높다. 그는 친기업정책 기조와 사회보장부담금을 줄이는 정책을 유지하고, 2017년까지 개인 세금을 낮추는 ‘연대 협약’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신임 발스 총리는 조만간 내각 개편 작업에 착수할 예정이다. 경기 회복에 실패한 재무부 등 경제 관련 부처 장관이 교체될 가능성이 크다. 발스 총리는 1962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나 만 20세에 프랑스에 귀화했다. 2011년 사회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갔다가 올랑드 후보 지지를 선언했고, 올랑드 대선 캠프에서 일하다 내무장관으로 기용됐다. 내무장관 시절 치안 문제에 강경책을 펼쳤고, 불법 이주민 강제추방을 단행하며 인권침해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국민의 인기를 얻고 있지만 우파적 성향을 띠고 있어 사회당 내에서는 인기가 없다. 차기 대선 주자로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한국 50대 이상 근로자 40% ‘워킹푸어’

    한국 50대 이상 근로자 40% ‘워킹푸어’

    우리나라 근로자 4명 중 1명이 일을 해도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비중이다. 특히 ‘워킹푸어’(일해도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저임금 근로자) 10명 중 7명은 저임금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반복 저임금 근로자(근로소득이 중간값의 3분의2 미만인 근로자)였다. 특히 중고령층의 워킹푸어 비율이 절반을 넘어 대책이 시급하다. 6일 OECD와 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저임금 근로자 비율은 25.1%로 미국과 동률 1위다. 우리나라의 저임금 근로자는 평균 근속 기간이 24.7개월로 비저임금 근로자(80.6개월)보다 크게 짧았다. 여성 중 저임금 근로자 비중은 37.1%로 남성(15.3%)의 2배를 넘었다. 특히 노동패널조사 결과 우리나라 저임금 근로자의 75.3%가 6년 이상 저임금 근로자였다. 근로자뿐 아니라 자영업자까지 포함해도 70.5%가 6년 이상 저임금 근로자 상태를 경험했다. 저임금 수렁에 빠지면 헤어나올 수 있는 사다리가 제대로 구축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저임금 근로자 비율이 높은 선진국은 여성, 청년, 이주민 그룹에서 저임금 근로자 비율이 높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고령층에서 특히 저임금 근로자 비율이 높다. 근로소득 외에는 생계유지를 위한 다른 선택이 여의치 않아서다. 우리나라에서 55세 이상의 저임금 근로자는 39.2%로, 영국(23.8%)은 물론 스페인(8.8%), 이탈리아(6.8%), 덴마크(3.4%)보다 월등히 높다. 2002년부터 10년간 전체 저임금 근로자 비중은 23.2%에서 24.8%로 1.6% 포인트 늘었다. 15~49세는 20.1%에서 19.9%로 20% 정도에서 유지된 반면 50세 이상은 39.9%에서 40.5%로 40% 정도였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공부에 지쳐 쓰러진 학생들… 친해질 시간 없었어요”

    “공부에 지쳐 쓰러진 학생들… 친해질 시간 없었어요”

    “‘시험’이 ‘교육’의 전부는 아닌데 학생들이 모두 지쳐 쓰러진 교실을 보면서 안타까웠어요.”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드폴대에 재학 중인 에릭 카밤(22)은 3년 전 부산 남산고에서 1년간 교환학생으로 공부했던 경험을 이렇게 떠올렸다. 당시 에릭은 국제로터리클럽에서 주관하는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지원했고, 추첨에 의해 한국에서 공부할 기회를 가졌다. 타임·뉴욕타임스 등에 기고하는 어맨다 리플리는 지난달 발간한 세계 교육강국 탐사보도 서적 ‘무엇이 이 나라 학생들을 똑똑하게 만드는가’에서 에릭의 한국 교육 체험기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책에서 어맨다와 에릭은 한국 교육을 언제 터질지 모를 ‘압력밥솥’에 비유했다. 교육 체계가 학생들의 좋은 성과를 위해 지나친 압박을 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에릭은 23일 서울신문과 가진 페이스북 인터뷰에서 “시험을 잘 보고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게 ‘교육’의 전부라면 한국 교육은 목표에 맞게 최적화된 세계 최고의 시스템”이지만 “하루 24시간을 온통 공부에 빼앗긴 10대들의 희생은 엄청난 것 같다”고 말했다. 에릭은 자신이 졸업한 미네소타주 미네통카 고교와 한국 고교의 가장 큰 차이로 ‘과외활동’과 ‘에세이’(논문 형태 과제물)를 꼽았다. 미네통카 고교는 아이스하키, 연극, 축구, 합창 등 다양한 과외활동을 강조한다고 했다. 연극반이던 에릭은 해마다 뮤지컬 2편, 연극 1편의 공연을 완성하기 위해 오후 2시 40분쯤 수업이 끝나면 두세 시간 동안 연극과 뮤지컬 연습에 매진했다. 에릭은 “한국 학생들이 학원에서 공부하는 동안 미국 학생들은 과외 활동으로 친구를 사귀고 또 다른 적성을 발견하며 스트레스를 푼다”고 설명했다. 그는 “24시간을 쪼개 공부하는 한국 학생들이 시험성적은 뛰어날지 모르지만 과외활동은커녕 친구 사귀기조차 쉽지 않은 듯 보였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한 “한국의 고교과정에서 글쓰기의 비중이 놀랄 만큼 적었다”면서 “미네소타에서는 모든 수업시간에 글쓰기를 하고, 고교 졸업 시즌에는 에세이를 제출해 통과하지 못하면 학교를 더 다녀야 한다”고 말했다. 교환학생을 하는 동안 한국 학생들이 학업에 치여 친해질 기회를 얻지 못했다는 에릭은 “홈스테이 가정에서 좋은 후견인들을 만나 한국 문화를 좋아하게 됐지만, 한국 고교생에게 주어진 과업은 숨막힐 정도였다”고 전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주말 인사이드] 63빌딩 기둥부터 동해 가스전까지… “이 손에서 나왔소이다”

    [주말 인사이드] 63빌딩 기둥부터 동해 가스전까지… “이 손에서 나왔소이다”

    “청년들을 보면 ‘장이 정신’이 부족합니다.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3D’ 업종이 아니라 무한한 도전이 가능한 세계라고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대한민국 명장’인 이주형(54) 현대중공업 해양사업부 제관팀장의 목소리는 에너지로 가득했다. 제관은 도면을 보고 양복을 만드는 작업과 같다. 도면을 보고 철판에 그림을 그려 용접한 뒤 철 구조물을 만든다. 천 대신 철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손끝 기술’이 필수적이다. 명장의 반열에 오르기 힘든 이유다. 이 팀장은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979년에 입사해 35년간 한 직장에서 같은 일을 했다. 그는 “중간에 일반직으로 전환해 설계실에서 근무하지 않겠느냐는 제안도 있었지만 거절했다”며 “생산직으로 들어왔으니 한 우물만 파겠다는 결심이 있었다”고 밝혔다. 그의 경력은 지난 30년간 우리나라 산업 역사와 맥을 함께한다. 1980년대 미국 거대 정유사인 엑손이 발주한 ‘하모니 헤리티지 자케트’(해양 석유시추 구조물)에 참여했다. 102층 높이의 4만t짜리 구조물로 당시 세계 최고 규모였다. 이 팀장은 “고(故) 정주영 회장이 ‘해 봤어?’라고 묻는 광고에 나오는 배경이 바로 이 구조물”이라면서 “처음 입사해서는 20세기 최고 역사(役事)라 불리던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 산업항 공사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1985년에는 63빌딩의 기둥을 만드는 데 참여했다. 1994년 붕괴된 성수대교를 복구하는 데 참여했고, 2002년에는 이어도 과학기지 및 동해 가스전의 구조물을 만드는 공사에도 참여했다. 이후 대형 선박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이 팀장은 2008년 대한민국 명장 칭호를 받았다. 그는 “1970~1980년대 오일달러를 많이 벌어들인다는 자부심이 있었다”면서 “하지만 처음에는 제관 일을 배우기 위해 장비에 손을 댔다가 뺨을 맞기 일쑤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장이 근성’이라고 불렀다. 당시 선배들은 자신 이외에 그 누구도 기술을 가져가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는 출근 시간인 오전 8시보다 2시간 먼저 출근했다. 장비 청소를 하고, 끝나면 막걸리도 대접했다. 이 팀장은 “1년 정도를 이렇게 지내자 선배들이 마음의 문을 열었다”면서 “열심히 하는 것 말고는 왕도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밤 10시에 회사 일을 마치면 바로 잔 뒤에 새벽 3~4시에 일어나 공부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회사 생활이 쉬운 것만은 아니었다. 그는 “대졸 중심인 사무직에 비해 생산직은 승진이 잘 안 되는 경우도 있었다”며 “지금은 노사분규가 거의 없지만 1987년 노사분규가 터졌을 때는 조업파와 비조업파가 나뉘어 직원들 사이에 갈등이 심했는데 가장 힘들었던 시기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후배들에게 기술을 전수하는 것이 요즘 이 팀장의 주요 업무 중 하나다. 그는 “지금은 3D 업종이라고 해 조선업보다는 서비스업이나 정보기술(IT)로 많이 간다”면서 “하지만 힘든 일을 하며 자신을 발전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장이 정신’을 갖추려는 청년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팀장 같은 대한민국 명장은 96개 직종에 547명이다. 대한민국 명장은 숙련기술장려법에 따라 정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인정한 해당 분야 최고 권위자다. 해당 직종 경력이 15년 이상이어야 하고 최고의 숙련 기술을 보유해야 한다. 대한민국 명장으로 뽑히면 일시장려금 2000만원이 지급된다. 계속 같은 직종에 근무할 경우 연수에 따라 계속종사장려금(연 167만~357만원)을 받는다. 기술 선진국 산업 시찰 기회가 주어지고 숙련 기술 관련 행사 심사위원 위촉, 산업 현장 교수단·청소년 직업진로지도 강사 초빙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대부분 기업 내에서 먼저 명장 후보에 선발돼야 한다. 한 명장은 “2003년부터 도전했는데 다섯 번째인 2011년에야 명장에 선발될 수 있었다”며 “회사와의 관계도 선발에 중요한 요소”라고 말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대한민국 명장 설문 결과(2013년 8월 19일~9월 27일)에 따르면 213명의 대한민국 명장 중 남성이 91.5%(195명)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또 자기 사업을 하는 명장이 34.3%(73명), 기업 종사자가 65.7%(140명)였다. 명장들은 대부분 어려운 유년 시절의 경험을 갖고 있는 ‘자수성가형’이었다. 우선 가난한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전체 중 36.2%(77명)가 부모의 소득 수준이 하류층이었고 중하층이 29.6%(63명)으로 뒤를 이었다. 상류층이었다고 답한 이는 2.3%(5명)에 불과했다. 부모의 직업은 농업이 66.7%(142명)로 가장 많았다. 형제자매 수는 평균 5.3명이었다. 경쟁이 숙명이었던 셈이다. 남자 명장 중 장남이라고 답한 이는 46.1%였다. 집안에서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는 이들이 많았던 것이다. 일을 시작한 나이는 10대 후반이 47.4%(101명)로 가장 많았다. 10대 초반에 일을 시작한 명장도 4.7%(10명)였다. 일을 시작할 당시 학력은 고졸이 53.1%(113명)로 절반을 넘었다. 중졸은 24.4%(52명)였다. 초졸 이하는 16%(34명)로 전문대졸 이상(6.6%·14명)보다 많았다. 거주지의 경우 직장에 근무하는 명장은 영남권 출신이 절반을 넘어 경부고속도로를 중심으로 한 산업화 과정을 반영했다. 자기 사업을 하는 명장은 수도권 거주자가 절반 이상이었다. 기술은 바로 위 선배를 통해 배웠다는 이가 45.7%(64명)로 가장 많았지만, 스스로 익혔다는 사람도 35.7%(50명)로 꽤 많았다. 선배들이 후배를 잠재적인 경쟁자로 인식해 기술을 잘 가르쳐 주지 않던 1970~1980년대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또 선진국 기술의 유입으로 혼자 습득해야 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기업 근무 명장과 자기 사업 명장 모두 기능을 배운 이들에게 가장 크게 얻은 것은 ‘손끝 기술’이었지만, ‘자세와 태도’가 뒤를 이어 기본 인성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후배에게 아쉬운 점은 작업에 임하는 태도나 자세가 부족하다는 응답이 절반을 넘어 가장 많았다. 기본 인성과 끈기 측면에서 요즘 젊은 세대가 미흡하다고 인식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명장들은 어떤 인성적 특질을 가지고 있을까. 첫째는 ‘꾸준한 학습과 부단한 노력’이다. 또 책임감과 자긍심이 강했다. 한 명장은 “다른 회사에서 3배의 봉급을 준다고 했지만 의리가 있어 안 간다고 했다”며 “내가 크고 가족을 먹여 살린 회사를 떠나는 것은 용납이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업적주의도 이들의 특징이다. 남들과 다른 업적은 현장에서 학력과 신분의 장벽을 넘어서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또 승진을 위한 거의 유일한 발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명장들이 가장 큰 장점으로 꼽는 것은 사실상 은퇴가 없다는 점이었다. 은퇴 후 평생 몸을 담은 회사의 계열사에 취직하거나 경력을 바탕으로 각종 강연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조성재 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여성 명장들의 경우 자기 사업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후배에게 기술을 전수하거나 경력 개발 경로가 분명하지 않은 것, 장인적 기술을 이용한 작품의 상품화가 힘든 점 등을 어려움으로 제시하고 있다”며 “정부가 정책적으로 도움을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시간제 일자리 길을 묻고 답을 찾다] 불황 따른 고용 부진… 비자발적 시간제 양산 ‘악순환’

    [시간제 일자리 길을 묻고 답을 찾다] 불황 따른 고용 부진… 비자발적 시간제 양산 ‘악순환’

    프랑스 파리의 한 꽃집에서 일하는 크리스텔 솔롱(25·여)은 매주 22시간을 일하고 한 달에 800유로(약 115만원)를 받는다. 번화가인 샹젤리제 거리 인근에 위치한 이 꽃집에 근무하는 직원은 모두 4명. 이 중 세 명은 정규직이고 솔롱만 시간제 근로자다. 정규직들은 초과근무를 포함해 주당 42시간 정도를 일하고 솔롱의 두 배 수준인 1500유로(약 216만원)를 가져간다. 솔롱의 소망은 더 많은 시간을 일하는 정규직 전일제가 돼서 안정적으로 월급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는 “같은 에콜(직업학교)을 졸업한 친구들 중에서 정규직이 된 사람은 거의 없다”면서 “대부분 정규직 전일제 일자리를 원하지만 어쩔 수 없이 생계를 위해 시간제로 일하고 있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한때 정치·경제·사회 등 모든 면에서 유럽의 맹주를 자처했던 프랑스의 경제와 대외적 위상은 지속적인 하락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웃 독일과 네덜란드가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인 데 비해 농업과 서비스업 중심인 프랑스는 터키, 중국 등의 성장으로 점차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특히 일자리·복지 개혁에도 실패하면서 사회 전반이 침체된 분위기다. 경기침체는 고용시장에도 직접적인 타격을 주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시간제 근로자를 지난해 말 현재 420만여명으로 집계하고 있다. 정규직 전일제 근로자의 월평균 소득이 1997유로인 데 비해 시간제 근로자 평균은 996유로, 이 중 50% 이상은 월수입 850유로 미만이다. 시간제 근로자 중 32%는 생계가 곤란해 당장 정규직 전일제 전환이 시급한 상황으로 분석된다. 근로 의사가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실업률 역시 10%(2010년 기준)로 유럽연합 평균(9.6%)보다 높고 25세 이하 청년층의 경우에는 22.4%에 육박한다. 특히 전체 시간제 근로자 중 77.8%가 정규직 전일제 전환에 대한 기약이 없는 무기시간제 근로인데, 한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시행하고 있는 시간제 근로자의 고용전환 보장제도 등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 시간제 근로가 환영받지 못하는 것은 독일이나 스웨덴, 네덜란드 등 유럽 내 다른 나라들이 시간제 근로를 사회통합 차원에서 정책적으로 설계해 육성한 것과 달리, 경제상황 악화에 따라 정규직 전일제 근로자 대신 시간제 근로자가 어쩔 수 없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1982년 전체 근로자의 8.2% 수준이던 프랑스 시간제 근로자는 2005년 17.9%로 급증했고, 현재는 20% 수준이다. 노동 전문가들은 프랑스 시간제 근로 문제의 가장 핵심 원인을 지나치게 높은 수준의 고용보호 제도에서 찾고 있다. 민간고용서비스회사인 아데코는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서 “프랑스의 경직적인 고용보호법제는 청년층 비정규계약의 급증을 가져왔고,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의 전환도 어렵게 하고 있다”면서 “시간제 또는 비정규직이 정규직 전일제로 전환되는 데는 10년 이상이 소요되는데 이는 유럽 내에서 가장 긴 시간”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2007년 프랑스 통계청에 따르면 시간제 근로자는 20~24세가 가장 많고, 나이가 들수록 완만하게 줄어드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프랑스 청년들이 이 같은 일자리 상황을 피해 여건이 좋은 다른 나라로 대량 이주하는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40세 이상 프랑스 청년층 중 현재 런던에만 30만명 이상이 거주하고 있고, 인구수로만 따지면 런던은 프랑스에서 여섯 번째로 큰 도시다. 프랑스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파리에 거주하고 있는 김혜진씨는 “아주 오랜기간 동안 프랑스에서 ‘역동성’이라는 이미지는 전혀 찾아볼 수 없게 됐다”면서 “경제상황이 좋지 않고, 개선될 가능성이 보이지 않으니 전반적으로 사회가 지쳐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물론 프랑스 정부가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올해 1월 1일부터 프랑스에서는 시간제 근로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새 고용법이 발효됐다. 고용주 또는 기업은 주 24시간 이상으로 근로계약을 맺어야 하는 ‘법정최저노동시간’이 도입됐다. 지난해 전체 시간제 근로자들의 주 평균 노동시간은 23시간 20분이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재 한국대표부 측은 “시간제 근로자들의 노동시간을 24시간으로 상향조정해 법으로 규정한 것은 저소득층에 대한 보호정책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법정최저노동시간제 역시 합의를 거치고 반대 진영의 논리를 반영하면서 수많은 예외조항을 가진 누더기가 됐다. 베이비시터, 가사도우미, 26세 미만의 학생 시간제 근로자, 여러 고용주들과 계약을 맺고 있는 프리랜서 등은 최저노동시간이 적용되지 않는다. 또 ‘근로자 측이 요구할 경우’에는 모든 업종에서 법정최저노동시간제를 적용하지 않아도 된다. 파리에서 플로리스트로 일하는 장유진(33·여)씨는 “일자리가 절실한 사람의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고용주의 요구대로 최저노동시간 예외를 원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반대로 중소기업이나 상점들 같은 경우에는 최저노동시간 규정이 경제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 사진 파리 박건형 기자 kitsch@seoul.co.kr
  • 공존 vs 추방… 유럽 ‘1000만 불청객’ 집시문제 골머리

    공존 vs 추방… 유럽 ‘1000만 불청객’ 집시문제 골머리

    독일 뒤스부르크 외곽에 자리한 집시 거주촌은 쓰레기와 들쥐가 들끓는 대표적인 슬럼가이다. 현지인들은 이곳을 ‘문제의 집’, ‘공포의 집’으로 부른다. 지난해 1월부터 9월까지 이곳에 사는 집시들이 일으킨 절도, 강도 등의 범죄 건수는 277건에 달했다. 극우파 단체의 페이스북에 올라온 ‘집시촌을 폭발시키자’, ‘불태우자’는 글에는 ‘좋아요’ 클릭수가 수천건에 이른다. 그만큼 집시를 증오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다. 반면 일부 극좌파 행동주의자들은 경찰들이 쳐들어왔을 때 쇠막대기와 후추 스프레이로 이들을 보호해 주기도 했다. 이곳에 살고 있는 니코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수 있고, 재활용품을 수거해 슈퍼마켓에 팔아 돈을 벌 수 있다”면서 “어차피 우리가 살던 루마니아에는 아무것도 없다. 여기가 좋다”고 말했다.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지난 7일(현지시간) ‘유럽이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란 제목으로 유럽 대륙 전역에서 핍박받고 있는 집시(로마족)의 불안한 삶을 재조명했다. 집시는 1000년 넘게 유럽을 떠돈 민족으로 유엔 등 국제기구에서는 ‘순례자’라는 의미의 ‘로마(족)’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슈피겔은 이러한 현상이 루마니아와 불가리아에 대한 유럽연합(EU) 내 이주 제한 철폐로 더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루마니아와 불가리아에는 각각 190만명, 75만명의 집시가 살고 있다. 실제 지난 1일부터 루마니아와 불가리아에 대한 이주 제한 조치가 풀리면서 독일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한스 페터 프리드리히 전 독일 내무부 장관은 심지어 “집시들을 빨리 몰아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독일 정부는 집시에 대한 사회보장혜택을 줄일 계획이다. 유럽에는 대략 1000만~1200만명의 집시가 거주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집시 거주촌 해산 작업으로 치열한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다. 영국 플리머스, 뉴포트, 치체스터, 버크셔 등지에서 집시 거주촌을 두고 분쟁이 벌어졌고, 프랑스 북부에 자리한 루베는 지난해 9월 집시 거주촌을 해산시켰다. 집시의 고향과도 같은 동유럽 국가에서도 차별과 박해는 계속되고 있다. 불가리아에서는 지난해 ‘안티 집시’ 시위가 벌어졌다. 헝가리에서는 지난해 8월 집시 8명을 살해한 인종주의자가 유죄 판결을 받았다. 헝가리 집권당인 청년민주동맹의 공동 설립자 졸트 바예르는 “집시는 함께 살기에 적합하지 않다. 이들은 동물이며 동물처럼 행동한다”고 말해 물의를 빚었다. 헝가리의 일부 마을에선 아이를 낳지 말라고 강요하는 사례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국가는 집시와 공존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영국 북부의 달링턴과 노샐러턴은 집시 거주촌을 해산시키지 않고 인정해 주기로 결정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살로네 지역에 컨테이너 박스로 집시 거주촌을 건설할 계획이다. 프랑스 파리도 이번 겨울 동안 집시들이 시내 빈집에서 지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속보] 남수단 반군, 한빛부대 주둔 보르로 진격 중

    [속보] 남수단 반군, 한빛부대 주둔 보르로 진격 중

    남수단 사태가 국제 사회의 중재 노력에도 수만 명의 무장 반군이 우리나라 한빛부대가 주둔한 보르로 진격하면서 또다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28일(현지시간) 프랑스 뉴스채널 ‘프랑스 24’와 AP통신 등 외신은 반군이 마체테(날이 넓은 긴 칼), 몽둥이, 자동소총 등으로 무장한 채 남수단 종글레이주(州) 주도인 보르로 진격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남수단 정부의 한 관리는 2만 5000명의 무장한 청년으로 구성된 ‘백색군대(White Army)”가 정부군이 지난 24일 재탈환한 보르를 향해 진군하고 있다고 밝혔다. 벌레를 퇴치하려는 목적으로 온몸에 흰색 재를 발라 ‘백색군대’로 불리는 이들은 리크 마차르 전 부통령을 지지하는 누에르 족 출신이다. 무장 반군은 살바 키르 남수단 대통령의 정부군이 지난주 반군을 몰아내고 재탈환한 보르를 공격할 태세를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클 마쿠에이 루에트 남수단 정보장관은 백색군 내부 연락책으로부터 “그(마차르)가 그의 부족 이름으로 청년들을 소집하기로 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고 밝혔다. 그는 전날 저녁 보르에서 50Km 외곽까지 진격한 이들이 조만간 보르시에 도착할 것으로 내다봤다. 남수단에서는 지난 2주간 분쟁으로 1000명 이상이 숨지고 12만여명의 난민이 발생한 가운데 국제사회가 분쟁 종식을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중재에 나선 동아프리카 주변국 정상들은 지난 27일 남수단 정부가 마차르 전 부통령이 이끄는 반군에 ‘적대적 행위’를 중단하기로 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마차르는 양측 대표단에 의해 휴전이 논의돼야 하며 협상의 전제조건으로 구금된 동지 정치인들의 석방을 요구하고 나서 협상에 진척이 더딘 상태다. 앞서 보르 지역에서는 지난주 2천 명의 무장한 누에르족 청년이 아코보에 있는 유엔캠프에 난입해 유엔군 병사 3명이 숨졌다. 또 누에르족의 습격을 피해 숨어 있던 딘카족 주민 수십 명이 살해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이너프 프로젝트’의 남수단 애널리스트인 악샤야 쿠마르는 “지난 2주간 두차례나 충돌을 겪은 보르 주민들은 더는 견뎌내기 어려울 것”이라며 “주민들의 생명이 위태로운 지경”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아코보에서 보았듯이 이번에도 유엔 평화유지군이 이들의 공격을 막아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남수단 반군 한빛부대 향해 진격하다 대부분 해산”

    유혈 분쟁에 휩싸인 남수단의 한빛부대 주둔지인 종글레이주(州) 주도 보르로 향하던 반군 민병대가 29일(현지시간) 진군을 멈추고 흩어졌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남수단 정부 대변인인 마이클 마쿠에이 루에트 공보장관은 이날 보르 외곽 50Km까지 진격한 누에르족 출신 반군 민병대인 ‘백색군대’(White Army)가 부족 원로들의 충고를 받아들여 “대부분 집으로 돌아갔다”고 밝혔다. 그러나 반군 측으로부터는 백색군대가 실제 철군했는지가 즉각 확인되지 않았다. 앞서 루에트 장관은 전날 2만5천명의 전사들로 구성된 백색군대가 지난 24일 정부군이 탈환한 보르를 향해 진군하고 있다면서 대규모 전투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백색군대란 명칭은 누에르족 전사들이 벌레를 쫓기 위해 신체에 소똥을 태워 만든 흰색 재를 바른 데서 유래한다. 루에트 장관은 “우리 소식통에 따르면 누에르 부족의 족장들이 청년들을 설득했다. 누군가 다시 소집하지 않는다면 사태가 진정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앞서 유엔은 휴전을 이끌어 내려는 국제사회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민병대 진격 소식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남수단에서는 정부내 반대파 간 총격전으로 촉발된 지난 2주간 분쟁으로 1000명 이상이 숨지고 12만여 명의 난민이 발생한 가운데 국제사회가 분쟁 종식을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다. 중재에 나선 동아프리카 주변국 정상들은 지난 27일 남수단 정부가 마차르 전 부통령이 이끄는 반군에 ‘적대 행위’를 중단하고 대화에 나서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마차르는 그러나 양측 대표단에 의해 휴전이 논의돼야 한다면서 협상의 전제조건으로 구금된 정치적 동지들의 석방을 요구하고 나서 협상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남수단 반군, 한빛부대 주둔지로 진격”

    남수단 무장 반군 수만명이 한빛부대가 주둔한 보르로 진격하면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AP·AFP통신 등에 따르면 28일(현지시간) 남수단 반군은 자동소총과 긴 칼, 몽둥이 등으로 무장하고 남수단 종글레이주(州) 주도인 보르로 진격 중이다. 남수단 정부 관리는 2만 5000명의 무장한 청년으로 구성된 ‘백색군대’가 정부군이 지난 24일 재탈환한 보르를 향해 진군하고 있다고 밝혔다. 벌레 퇴치를 위해 흰색 재를 온몸에 발라 백색군대로 불리는 이들은 리크 마차르 전 부통령을 지지하는 누에르족 출신이다. 무장 반군은 살바 키르 남수단 대통령의 정부군이 지난주 반군을 몰아내고 재탈환한 보르를 공격할 태세를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클 마쿠에이 루에트 남수단 정보장관은 백색군 내부 연락책으로부터 “그(마차르)가 그의 부족 이름으로 청년들을 소집하기로 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고 밝혔다. 그는 전날 저녁 보르에서 50㎞ 외곽까지 진격한 이들이 조만간 보르시에 도착할 것으로 전망했다. 남수단에서 지난 2주간 분쟁으로 1000명 이상이 숨지고 12만여명의 난민이 발생하면서 국제사회가 분쟁 종식을 위한 중재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중재에 나선 동아프리카 주변국 정상들은 지난 27일 남수단 정부가 마차르 전 부통령이 이끄는 반군에 ‘적대적 행위’를 중단하기로 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마차르는 양측 대표단에 의해 휴전이 논의돼야 하며 협상의 전제조건으로 구금된 동지 정치인들의 석방을 요구하고 나서 협상에 난항을 겪고 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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