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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석정 유개공 사장(공기업 최고경영자에 듣는다)

    ◎2000년까지 가채매장량 3억배럴 확보/19개사 41개 해외사업 참여… 투자회수율 78%/내년까지 비축량 43일분 확보… 수급안정 자신/대륙붕 개발 경제성 높이게 분지별 탐사로 전환 2기 연임체제에 들어선 한국석유개발공사(유개공) 장석정 사장은 요즘 「산유국의 꿈」을 현실로 구체화시키고 있다.무대는 국내 대륙붕이 아닌 해외 유전.올해부터 해외 유전개발을 가속화,2000년까지 3억배럴의 가채매장량을 확보한다는 야무진 계획을 갖고 있다.이를 위해 내부적으론 경영혁신에 박차를 가하면서 외부적으로는 국내 업체와의 컨소시엄으로 해외유전 개발을 공략하고 있다.장사장을 권혁찬 경제부 차장이 만났다. ­유개공하면 국내 대륙붕개발을 떠올리게 됩니다만‥. ▲대륙붕 개발뿐 아닙니다.유사시에 대비한 석유비축사업과 원유의 안정적 공급을 위한 해외 유전개발사업도 유개공 몫입니다. ○지분매입보다 직접개발 ­공사 경영은 어떻습니까. ▲95년 개발·시추·비축·정보 등 4개 부문별로 경쟁력 제고방안을 마련했고 지난 해부터 비용절감과 수익증대를 두축으로 하는 경영혁신 프로그램을 추진중입니다.석유개발 부문은 이제까지 개발유전의 지분매입 방식에서 벗어나 직접 개발쪽으로 나가고 있습니다.국내 유일의 시추선 두성호도 그동안 적자에서 올해에는 흑자로 돌아섭니다.비축분야는 수익성이 없는 사업이어서 관리유지비 절감에 최선을 다하고 있지요.이같은 노력으로 지난해 매출액이 전년도보다 50%정도 늘어난 2천3백84억원에 달했습니다. ­매출액 증가의 주된 이유는 뭡니까. ▲해외 유전개발 덕분입니다.지난해 3월 공사가 지분취득한 북해 캡틴유전과 국제 입찰로 따낸 페루 광구에서 하루에 1만배럴과 1만1천배럴이 한국 몫으로 떨어지고 있습니다.캡틴유전의 경우 미국 텍사코사 보유지분중 15%를 공사와 한화가 각각 13.5%와 1.5%씩 나눠 총 2억1천만달러에 사들였습니다.페루 8광구는 아르헨티나 회사와 국내 컨소시엄이 공동으로 국제입찰에 참여해 지분의 40%를 획득했습니다.5천만 달러가 들었습니다.국내 컨소시엄 비율은 유개공이 20%,대우와 유공이 20%입니다.두 유전에 참여함으로써확보한 가채 매장량이 6백40만배럴에서 6천7백만 배럴로 대폭 늘어났습니다.유전개발은 비축과 매장량 확보라는 두가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가채 매장량을 확보하면 그 만큼 비축을 덜해도 되기 때문입니다.덕택에 우리나라의 원유자급률은 1.2%에서 2%로 높아졌습니다. ­유전개발자금은 어떻게 마련하고 있습니까. ▲공사의 신용도를 바탕으로 국제금융시장에서 조달하고 있습니다.유개공의 신용도는 AA정도입니다.리보(런던은행간금리)에 0.6%를 가산한 수준으로 상환기간도 8∼10년으로 양호합니다.5억∼6억달러 정도 더 빌릴수 있는 신용여력이 있습니다.메이저들이 유개공에 유전매입 제의를 계속하고 있어 신용도가 허락하는 한 유전을 많이 매입해 나갈 생각입니다. ­국내 업체들은 몇개 회사나 유전개발에 참여하고 있습니까. ▲해외 유전개발은 81년 코데코의 인도네시아 서마두라 유전개발이 시초입니다.지난해말 현재 유개공을 비롯,삼성,현대,대우 등 19개 업체가 17개국에서 41개 사업에 참여중입니다.생산유전이 10곳,개발유전이 2곳,탐사가 29곳입니다.유개공은 생산유전 5곳과 탐사유전 8곳 등 13개 사업에 참여하고 있습니다.우리 업체들이 지금까지 총 17억1천4백만달러를 유전개발에 투자해 이중 13억3천1백만달러를 거둬들였습니다.투자회수율이 77.7%에 달합니다.수익성이 있다는 얘기죠.공사는 올해 탐사광구 2∼3곳,생산유전 1∼2곳을 새로 매입해 2천년까지 총 3억배럴의 매장량을 확보할 계획입니다. ­두성호는 한동안 적자투성이었지 않습니까. ▲맞습니다.84년 시추에 투입된 뒤 지난해까지 90년(2억원 흑자)을 제외하고는 줄곧 적자였습니다.그러나 올 1·4분기중 7억원이 남아 올해는 흑자전환이 기대됩니다.공사가 94년 인수후 베트남 등 동남아지역을 대상으로 적극적 마켓팅 활동을 편 결과입니다.지난해 연간 270일씩 조업하면서 하루 4만5천∼5만5천달러의 용선료를 벌었습니다.올해엔 조업일수가 10일정도 늘 것으로 예상돼 이익도 더 날 겁니다. ○7개 비축기지 내년 완공 ­석유비축량이 턱없이 부족하지 않습니까. ▲바람직한 수준(60여일정도)에는 못미칩니다.현재 2차 석유비축계획(90∼98년)이 마무리 단계에 있고 3차 계획(96∼2002년)이 부지선정과 타당성 검토를 마친 상태입니다.3차 계획이 끝나면 2003년에는 60일분에 이릅니다.1차 계획(80∼86년)완료 이후 88년 66일분까지 올랐던 비축물량은 지난해 23일분까지 떨어졌습니다.유류소비가 증가한 반면 비축이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지요.구리 평택 거제 등 3개 기지가 신설되고 기존 4개 기지가 증설됩니다.내년이면 총 비축물량은 9천1백16만배럴로 43일분에 달합니다.앞으로 2002년까지 총 1조2천3백여억원을 투자해 수도권 강원권 동남권 서남권 등 4개지역에 원유기지 4곳,비축기지 4곳을 건설할 계획입니다.충남 대산지역 등을 대상으로 입지선정을 마쳤습니다. ­기지당 건설·유지비는 얼마입니까. ▲건설비는 지상이냐,지하냐,원유냐,제품이냐에 따라 달라집니다.지하기지의 경우 배럴당 18달러정도 입니다.유지비는 지하기지를 기준으로 대략 연간 배럴당 700원이 됩니다.지하비축기지가 5백만 배럴은 돼야 경제성이 있습니다.1천만 배럴정도의 비축기지를 건설하려면 대략1억8천만달러가 듭니다. ­비축기지 건설에 최대 애로는. ▲주민 민원입니다.곡성기지(제품비축기지)의 경우 94년 10월 입지승인을 받고 다음해 말 착공됐지만 주민궐기대회 6차례,농성 2차례 등 각종 반대로 공사가 지연됐습니다.주민들의 심정은 이해합니다.환경오염,누유,생활불편,지가하락이 기지건설의 반대이유였습니다.다른 비축기지를 견학시키고 지속적인 접촉을 통해 기지의 안전성을 설득시켰습니다. ­국내 대륙붕 유전개발은 이제 끝난게 아닙니까. ▲아닙니다.유개공은 자원연구소 등과 공동으로 지금까지 확보된 기존 탐사자료를 종합적으로 분석,대륙붕 지질구조를 재점검하고 있습니다.석유매장 가능성은 있다고 봅니다.석유는 유기물이 퇴적돼 생기지 않습니까.울산 앞바다 6­1광구에서 가스가 분출된 것은 석유부존을 입증하는 사례입니다.그럼에도 지금까지 주로 외국회사에 탐사를 의존하고 시추공도 얼마 뚫어보지 않은채 경제성이 없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앞으로 광구별 탐사를 분지별 탐사로 전환하고 기초탐사와 상업적 탐사를 병행하면서 경제성있는 유전발굴에 주력할 계획입니다. ○능력주의 인사제 도입 ­경영혁신 차원에서 신인사제도를 도입했다고 들었습니다.어떤 내용입니까. ▲연공서열의 인사고과를 능력주의 평가로 바꿨습니다.개인의 업적을 평가해서 근무평정에 반영하는 것입니다.우선 각 처별로 경영평가를 통해 우수부서에서 10%이내의 우수 사원에게 가산점을 주도록 하고 있습니다.업무개선,제안 및 우수표창을 업적으로 평가합니다.올해 안으로 하위직원이 부장급 직원의 업무능력 및 리더십을 평가하는 상사평가제도도 도입할 계획입니다.아래서 위로,위에서 아래로 입체적 평가가 가능해지는 것이지요.청년이사회제도라는 것이 있습니다.전 부서의 과부장급 위주로 구성돼 회사의 경영,인사제도,채용방법 등의 개선방안을 논의하고 경영층에 건의합니다. 장사장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경제학박사 출신이다.동력자원부에서 자원정책실장과 기획관리실장 등 요직을 지낸뒤 93년 4월 유개공 사장에 취임했다.그는 공사 사장으로는 보기 드물게 2기연임에 성공,경영능력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비축시설 건설 능력은…/지하기지 첨단굴착 공법 해외수출/여천U­1기지 국내 15일 소비물량 저장/원유입출시 오염·사고가능성 완벽차단 석유비축 기지의 규모와 굴착기술에 관한 한 우리나라는 세계적 수준이다.전남 여천시 낙포동에 있는 U-1기지는 우리나라 석유비축 시설의 현주소를 잘 보여준다. 동양 최대의 지하비축 기지인 U-1기지는 2천9백72만 배럴을 저장할 수 있다.하루 국내 소비량을 2백만 배럴로 계산할 때 15일분을 저장할 수 있는 시설이다. 지난해 10월 총연장 9.3㎞에 달하는 동굴공사를 끝내고 현재 기전설비와 입출하 부두공사를 진행중이다.총 공사비는 3천7백74억원.현재 공사진척도는 84.5%로 98년 6월 완공된다.원유 저장은 99년 4월로 예정돼 있다. 연면적 74만평 규모인 이 동굴기지는 LG건설과 현대건설이 1.2공구를 맡아 91년부터 지난 해까지 지하 30∼60m지점에 너비 18m,높이 30m,길이 450∼1천100m의 터널 12개를 뚫었다.깨어져 나온 암반조각만 약 1천만㎥. 비축원유는 동굴 저장시설바닥위 35∼50㎝의 수면위에 저장되고 유면이 천장부근에 다다르면 그위에 또다시 물을 주입,일종의 수봉이 설치돼 외부와 완전 차단된다.물과 기름이 뒤섞이지 않는 원리를 이용하는 것이다. U-1기지에는 서울 장충체육관 내부용적의 60배에 달하는 원유가 들어간다.입출은 2천500마력의 펌퍼 10대에 의해 40인치 송유관을 통해 이뤄진다.선박이 정박하는 원유부두에서 지하비축기지까지는 첨단 제어장치 등이 설치돼 다단계 감시가 이뤄진다. 유개공 관계자는 『U-1기지는 거제도 U-2기지 증설(1천2백만 배럴),평택의 LPG 저장탱크( 20만t 규모) 등과 함께 우리나라 지하 토목굴착공사 기술을 진일보시켜 중국 등 해외에 기술을 수출하는 계기가 됐다』고 자평했다.
  • 개장국집 성업(송화강 5천리:24)

    ◎조선족마을 집집마다 개 길러/흑룡강성 명준촌 개시장에 내몽골산까지 유입/개고기 수요 급증… 도살꾼 신종직업으로/한족들은 풍장풍습따라 양고기 즐겨 길림성 화룡시 용성향 용남촌에 사는 장성(65) 노인은 들에 나갔다가 종이상자 하나를 발견했다.호기심을 가지고 열었더니 갓난아기가 들어있었다는 것이다.포대기를 풀자 아이가 자지러지게 울어댔다.아이를 집으로 데려온 노인은 수소문해서 아이를 버린 집을 찾아냈다.화룡시 임업국에 근무하는 소아무개의 아이었는데,출산 당시 시립병원에서 죽었다는 진단을 받고 다른 사람을 시켜 내다버린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1996년 7월12일의 일이니까 얼마되지 않았다.한족들은 자식이 먼저 가면 불효라고 해서 묻지도 않고 들이나 산에 그냥 버리는 관습이 있다.이 아이도 그렇게 갈 뻔했으나 다행히 살아났던 것이다.요즘은 법에 따라 화장을 하게 되어있지만,관습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내다버린 주검은 들짐승이나 날짐승의 먹이가 될 수 밖에 없었다.심지어는 집에서 키우는 개까지도 달려들었다. 그래서인지 한족들은 개고기를 즐겨 먹지 않는다.중국의 고대소설 「수호지」를 보면 노지심이 개다리를 뜯는 장면이 묘사되었으나,대체로 개고기가 아닌 양고기를 선호했다.그런 탓에 「양머리를 걸어놓고 개고기를 판다」는 야바위속 짓거리를 빗댄 고사도 「수호지」에 자주 나온다.오늘날도 개를 간문구,즉 문지기개로 기를뿐 잡아 먹겠다는 생각은 아예 하지 않는다.담장 높은 한족집을 지나노라면 컹컹 짖어대는 개소리를 언제나 들을수 있다. 그러나 조선족들은 허술한 울타리를 치고 살면서도 개를 문지기로 키운다고 말하기는 어렵다.술 이야기가 나오면,의례히 개소리가 뒤따랐다.비가 구질구질 내리는 날이면 동네청년들이 모여앉아 뉘집 개를 잡아먹을까 하는 의논을 하기 일쑤였다.그래서 조선족 동네의 개들은 2년을 넘기지 못하는 단명이라면,한족 동네 개들은 5∼6년을 넘게 천수를 다했다.그런 까닭에 한족 동네에 가면 파파늙은 개들이 늘 어슬렁댔다. ○한족들 문지기 개로 기를뿐 한어미 뱃속에서 나온 개라도 키운 집에 따라 고기맛이 다르다는 것이다.조선족이 키운 개고기가 한족집에서 자란 개고기에 비해 훨씬 기름지고 맛이 있다고 했다.조선족은 개를 처음부터 잡아먹을 요량을 대고 개죽을 끓여 주지만,한족들은 개가 바깥에 나가 알아서 먹도록 외식을 시킨다는 이야기도 있다.조선족 개가 비싸고 한족 개가 싼 이유 또한 여기 있을 것이다. 계동현 은봉향 명준향은 흑룡강성에서 개고기로 소문난 마을이다.방정현∼호림현,계서시∼밀산시를 잇는 국도가 교차하는 지역인지라,음식점 영업을 하기에 딱 알맞았다.그리고 현 소재지와도 3㎞밖에 안되었다.지난 86년 황성남씨(62)가 처음 개장국집 문을 연 이후 지금은 500m씩 사이를 두고 14군데나 되는 개장국집이 촘촘히 들어앉았다.상표로 등록한 것은 아니나,마치 상표나 되는 것처럼 「명준개고기」는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정도가 되었따.「명준개고기」의 원조뻘인 황성남씨의 말을 들어보면 명준촌개고기 맛이 좋을수 밖에 없다. 『우리 명준촌 개고기가 맛이 있다는 것은 바로 신선도이지비.신새벽에 잡아 가마솥에 앉힌 고기는 당날로 다 팔아치우지 않겠슴둥.다 팔지 못하면 마을 사람들에게 그냥 퍼주어 남는 것이 없지비.그래도 남으면 버리고 만다이…』 명준촌에서 지금까지 축을 낸 개는 어림잡아 4천여마리에 이른다고 했다.개털이 산더미를 이루어 불도저를 동원해서 치웠다고 하니,명준촌 개장국집이 얼마나 성업중인가를 짐작할 수 있다.개장국집 하루 평균수입은 1천여원이고,잘 버는 집은 3천여원의 수입을 올린다는 것이다.개장국집에 얹혀 월 300∼500원을 받는 마을 사람들이 있고,개를 전문으로 잡아주는 이른바 개백정까지 생겨났다.개를 잡아주는 신종직업은 하루 50∼60원의 수입을 보장하고 있다. ○양고기 팔아 돈번 조선족도 개고기 수요가 크게 늘어나면서 개시장,다시 말하면 개전이 열린 명준촌에는 각지의 개가 몰려들었다.먼 청강현은 물론이고 더 멀리 떨어진 내몽골에서도 개가 들어왔다.화물차 적재함에다 3층으로 꾸며놓은 쇠그물 개집에 갇혀 며칠을 실려온 개들을 풀어놓느라면 장터는 시끌법석했다.개 짖는 소리에 장사꾼의 흥정소리가 뒤섞이면 그야말로 개판을 이루었다.동북3성에는 개 먹는 사람이 사는가 하면 양을 먹는 한족이 있기 때문에 양 머리 걸어놓고 개고기를 파는 양두구육을 할 필요가 없다.개 머리 걸어놓고 개고기 팔고,양 머리 걸어놓고 양고기를 팔면 되니까….그런데 양고기를 팔아 재미를 본 조선족이 있다.양고기와는 별 인연이 닿지않은 조선족이 양고기로 돈을 벌었다는 희한한 소식을 듣고 가목사시 조선족 이원학씨(38)를 찾아갔다. 그가 운영하는 양고기꼬치점은 가목시 버스정류장 부근이었는데,손님이 꽤나 많았다.양고기가 주식이나 다름없는 회족과,그런대로 양고기를 즐기는 한족들이 자리를 가득 메웠다.선진국 대열에 낀 한국정신을 몸에 나누어 가진 탓인지는 몰라도 생소한 직업을 스스로 개척하여 성공을 거둔 이원학씨 부부가 대견스러웠다.
  • 지리산서 주체사상 합숙교육/대학가 주사파 암약상과 연대사태 한달

    ◎「자주대오」를 한총련의 모태로 간주/정치·간부학교 세워 좌경투사 양성 지난달 「제6차 범청학련 통일대축전」 강행으로 촉발돼 9일동안 계속된 「한총련」 소속 대학생들의 연세대 점거·시위 사태가 12일로 한달을 맞았다. 학생 통일논의의 급진성과 폭력성을 일반시민들에게 일깨워 준 연세대 사태를 계기로 당국은 「주사파」 세력에 의해 장악된 「한총련」 와해작업을 활발히 진행 중이다.대학 당국도 학생지도에 주력하고 있다. 「한총련」 지도부 등 운동권 학생들은 당국의 눈길을 피해 수면 밑으로 숨는 등 과격시위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검찰과 경찰은 연세대 사태와 관련,단일 사건으로는 사상최대인 4백62명을 구속했다.대부분을 기소할 방침이다. 또 「한총련」의 정책방향을 좌우하는 「자주계열」 학생들에 대한 검거와 조직와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한총련」 안에는 「자주계열」과 「사람 사랑」 등 양대 계열이 있으나 「자주계열」이 상대적으로 강경하다. 경찰이 11일 발표한 서울대 「애국청년」과 부산외대 「자주대오」의 주사파 검거도 이같은 맥락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해석된다. 경찰발표에 따르면 「한총련」의 모태라고 주장하는 「자주대오」의 경우,제4기 정명기군(전남대·23)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한총련」 의장을 배출하며 운동권을 장악해왔다. 이들은 자주대오는 「모」,총학생회는 「자」로 설정,총학생회는 모체인 자주대오에 대하여 충성하고 조직 목적을 수행해 왔으며 총학생회의 집합체인 「한총련」도 이들 지하조직에 의해 조종돼 왔다고 밝혔다. 이들은 특히 「정치학교」 「간부학교」를 운영하면서 북한의 주체사상을 실천하는 직업적 투사를 길러내는데 주력해 왔으며,심지어 방학중에는 지리산에서 합숙을 하면서 사상교육을 받는 등 학생운동의 수위를 넘어선 활동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한편 각 대학에서는 학교측과 학생간의 마찰 등 후유증이 이어지고 있다.대부분의 대학들은 총학생회로의 자금유입을 차단하기 위해 수익사업을 금지했고,운동권의 근거지가 되고 있는 교내 학생회관 및 이념동아리방에 대한 출입제한에 나서는 등 좌경 운동권을 뿌리뽑는데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몇몇 대학들은 한총련 편향적인 교내 학보의 제작·배포를 중지시켰다. 학생들 사이에서도 면학분위기 손상,이미지 실추 등에 대한 자성 및 비난의 소리가 커지고 있다. 때문에 한총련 시위를 주도한 「민족해방」(NL)계열의 운동이 퇴조하고 「민중민주」(PD)계열의 부상 등 기존 운동권 세력판도의 재편과 함께 새로운 학생운동 조직탄생도 예상된다.이는 올 10,11월로 예정된 단과대학 학생회장 및 총학생회장 선거에서 NL계의 대거 낙선이라는 형태로 반영될 공산이 크다. 연세대 사태를 통해 한총련은 자신들의 힘과 주장을 대외적으로 과시하고 선전했다기보다는 오히려 과격폭력시위를 통해 좌경이념조직에 대한 여론을 악화시키면서 스스로 설 땅을 잃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학생운동의 뼈대가 되는 여론이 외면한 이상,당분간 과격 학생운동은 발붙이기 힘들 것이라는 대체적인 전망이다.
  • 조선족 이주 역사(송화강 5천리:2)

    ◎30년대 일제이민정책에 1만가구 정착/“주택·식량 제공” 감언이설에 속아 집단이주/「만척」서 안전촌 건립… 항일 세력과 연결 차단/부여국­고구려­발해 고대사 무대… 아직도 조선지명 남아 송화강의 큰 원류는 두 갈래가 있다.이도송화강인 이도백하 말고 두도송화강이 그 원류다.두도송화강은 이도송화강을 이도백하라 하는 것처럼 그냥 두도강이라고도 한다.그런데 두도강은 본래 두갈래 물줄기가 합수하여 강을 이루었다.두도강의 한 갈래는 만주어로 어허러인(액혁낙인)이고,다른 한 갈래는 역시 만주어로 사인러인(새인낙인)이라는 이름를 가지고 있다. 어허러인은 백두산 옥설봉에 쌓인 만년설의 눈이 녹아 험준한 바위산을 지나면서 시작되었다.그래서 낙차 57m나 되는 큰 폭포에서 작은 폭포에 이르기까지 폭포군을 이루었다.물이 급하게 흐를 수밖에 없다.일명 긴강이라는 이유가 여기 있다.이에 비해 사인러인은 완만하다는 뜻을 가졌거니와 강의 흐름도 온화했다.일명 만강이라 한 까닭을 이해할 수 있다. ○부여족 유적 대량 발굴 이들 두 물줄기는 화라자에서 합수했다.바로 두도강인 것이다.두도강은 2백30㎞를 달려서 길림성 화전시 백산진 양강구에서 이도백하를 만나 드디어 합류,장강다운 송화강 물길을 잡아나갔다.송화강유역은 비옥할 뿐 아니라 광활했다.이 풍요로운 땅에 세운 맨 처음의 읍락국가는 해모수를 우두머리로 한 부여국이었다.「자치통감」기록에 나오는 첫 도읍지 녹산지도는 그 어디인가. 오늘날 길림시에는 동단산성과 동단산 평지성,용담산성이 있다.근래 동단산 부근에서는 대량의 부여족의 문물(문화재)이 발굴되었다.금 은 동 철제유물과 도자기 옥석 칠기 등의 유물만 해도 8천여점에 이른다. 또 1978년 동단산 서쪽 서단산 무덤군 돌널무덤에서는 무덤주인공의 머리를 감싼 모직물이 나왔다.양털과 개털을 꼬아 실을 자아내고 이를 천으로 짠 것이다.간단한 직조기를 사용하여 짠 이 모직물은 부여족의 문화가 상당 수준임을 입증했다. 그런데 동단산 일대는 광개토대왕 시기에도 고구려 판도였다.오늘날 길림시내에 남아있는 고구려산성은 용담산성이다.용담산은 산 자체가함지박처럼 중간이 낮고,사방은 높은 산등성이에 둘러싸인 산세를 했다.성은 산세를 이용하여 황토와 자갈로 쌓았다.높낮이는 일정치 않았다.성 서북쪽에 있는 길이 53m,너비 26m에는 용담이라는 못이 있다.이 연못은 1만㎥의 물을 가둘 수 있는 인공 못이라는 것이 고고학자들의 견해다. 용담산성 망루자리에 올라서면 성 아래로 도도히 흘러가는 송화강과 강 양안에 우뚝우뚝 솟은 길림시의 고층건물들이 한 눈에 조망되었다.망루에 올라 문득 역사를 거슬러 뒷걸음질하고 있을때 피맺힌 비명이 들리는 착각에 사로잡혔다.서기 668년 2월 당나라 장군 설인귀의 공격을 받고 울부짖는 고구려군사들의 비명이….고구려는 용담산성에서 패하고 다시 군사 5만을 모아 공략에 나섰으나 실패했다는 것이다. 고구려 이후 한 때는 발해가 용담산성의 주인이 되었다.그러나 역사는 변화하는 것이어서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었다.그 역사의 체취가 배인 송화강유역으로 조선족들이 몰려들기 시작한 것은 압록강유역이나 두만강유역에 비해 훨씬 뒤의 일이다.1922년 「동북3성실황」은 이를 뒷받침했다.당시 두만강유역 화룡,연길,왕청 3개현의 조선족은 44만4천4백20명,송화강유역인 안도,돈화,길림,장춘은 4만5천6백명에 불과했던 것이다.그리고 흑룡강성에는 고작 6백61명의 조선족이 살고 있을 뿐이었다. 송화강유역의 조선족 이주민 유형은 세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두만강과 압류강 이주민들의 재이주,러시아 이주민들의 유입,일제 이민정책에 의한 집단이주 등이 그것이다.이 가운데 절대적인 비중은 일제 이민정책과 맞물린 한반도로 부터의 조선인 집단이주가 차지했다.일제는 중국 동북지방의 항일세력을 소멸하고 동북에다 중국내지와 동남아를 침략하기 위한 병참기지를 만들 목적으로 이민정책을 서둘러 폈다. ○동남아 침략 병참기지화 그들이 1936년 8월 입안한 이민정책에는 2년내에 일본인 1백만가구 5백만명을 이주시킨다는 계획이 포함되었다.이와함께 일본은 1만가구의 조선인 농민들을 동북지방 23개현으로 집단이주시키는 계획을 세우고 1937년 이를 실행에 옮겼다.일본 이주민들도 적지 않게 들어왔으나 큰 성과는거두지 못했다.그러나 한반도에 사는 조선의 가난한 농민들은 일망무제한 북지대륙으로 꾸역꾸역 몰려들었다.가기만 하면 집과 먹을 것을 주고 돈도 벌 수 있다는 조선총독부 속임수에 넘어간 사람들이다.그래서 조선농민들은 이주증을 받기가 무섭게 남부여대하고 고향을 등졌던 것이다. 그 당시 집단이주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더러 길림성에 살고있다.장춘시의 정병남(71)노인도 그런 이주민의 한 분이다.전남 함평군 학교면 학교리 태생인데,당시 사정을 소상히 설명했다. 『우리는 1937년 2월에 길림성 유하현에 도착했습니다.함평군 함평면,대동면,광주 송영리에서 각각 열다섯 가구씩 마흔다섯 가구가 집단이주를 한 것이지요.눈보라가 치는 한겨울에 다시차란 데에 떨어지니 집은 커녕 먹을 식량도 없었어요.언땅에 막을 칠 수밖에….만주척식회사(만척)에서 뜬 수수와 좁쌀을 주어 그나마 배불리 먹었습니다.그냥 준 것이 아니라 변리곡이었지요.일년 내내 뼈 빠지게 일해서 가을에 갚고나면 식량이 없어요.또 만척에서 변리곡을 다시 먹어야 했습니다.빚은해마다 늘고….광복이 나지 않았더라면 일생을 노예로 살았을 겁니다』 유하현 삼원포는 조선독립운동 진원지의 하나였다.1911년에 경학사가 서고 나서 신흥무관학교,1919년에는 대한독립단이 조직되었다.그런데 일제의 수탈기관 만척은 이 일대 땅을 헐값에 사들여 안전촌을 만들었다.경찰을 주둔시키고 무장자위단을 조직했다.마을마다 소총 열자루와 권총 한자루씩을 내주었다.그리고 양민증이 없으면 마을을 드나들지 못했다.항일세력들과 연결고리를 끊기 위해서였다. ○양민증 없이 출입못해 집단이주민 무장화 과정에 나타난 유명한 무장자위단은 1944년에 조직한 풍향의용개척단이다.조선에서 보통학교 고등과를 나온 청년 90명을 모집,유하현 대통구촌 신가가에 이주시켰다.이들은 군복을 입고 무기를 휴대한 군사·농업조직이었다.단장을 비롯,군사교관·청치교원 등의 간부는 모두 일본인이 맡았다.조선인 단원 20명은 뒷날 관동군에 편입되었다.일인 간부와 조선인 단원들은 휴가로 고향에 돌아갔다가 식솔들까지 데려와 살았다. 오늘날 송화강유역에는집단이주민마을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조선족이 있든 없든 간에 한반도 군명에서 따다 만든 마을 이름들이 그대로 전해 내려왔다.유하현에서는 아직도 창성,벽동,가평이라는 이름이 보였다.또 안도현에는 금화,원주,고성,장수,정읍,김제,익산마을이 있다.이밖에 두군의 이름을 딴 청흥(북청·신흥),안산(진안·익산)이 있는가 하면 조선의 양양이라 한 조양마을이 존재했다.이들 마을 이름에서 집단 이주민들의 진한 노스탤지어를 읽었다.
  • 짐 호글랜드 일지 기고(해외논단)

    ◎“정보혁명시대 국가기밀 위협받는다”/인터넷 통해 정책·비밀 누출… 폭탄제조법도 나돌아/각국정부 뒤늦게 “비상”… 모든정보 암호화 추진도 정보혁명으로 국가기밀이 위협받고 있으며 인터넷을 통해 새로운 자유의 시대가 열릴 수도 있다고 미국의 워싱턴 포스트지 칼럼니스트 짐 호글랜드가 그의 칼럼에서 주장했다.일본 마이니치신문 25일자에 실린 그의 칼럼을 요약한다. 정부의 비밀,법률의 벽을 뛰어넘는 것이 가능하게 된 컴퓨터와 모뎀이 지금 세계를 작은 지구촌으로 만들고 있다.알제리 테러리스트가 제공한 폭탄제조법이 미국의 인터넷에 떠돌아다니고 아르헨티나 청년은 미국 국방부의 비밀정보를 훔쳤다.유럽 인터넷엔 미국의 포르노가 흘러다니고 독일의 바이에른주는 이를 단속하겠다고 경고하고 있다. 세계 각국 정부는 빠르게 발전하는 정보 혁명으로 외교정책과 국가기밀을 처리하는데 새로운 어려움을 겪고 있다.왜냐하면 세계의 정부는 국경관리와 세관이라는 계층적 구조로 위험한 것들의 반입을 제어하도록 조직돼 있으나 인터넷의 경계는 고정돼 있지않고 형태도 없기 때문이다.그 경계는 정부의 명령보다는 모뎀의 성능과 소프트웨어,인공위성기지,암호화한 데이터 처리기술의 비용등으로 결정된다. ○미 국방부 정보 도난 인터넷의 위험은 프랑스가 샌디에이고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이슬람 과격파를 엄격히 단속해주도록 미국정부에 요청한 사건에서도 실감할 수 있다.이슬람 과격파들은 파리 지하철 폭탄사건에서 사용된 것과 같은 종류의 폭탄제조방법을 인터넷에 띄웠으며 워싱턴에서 열린 국제테러대책회의에 참석한 프랑스 고위관리들은 그 제조방법으로 만들어진 폭탄테러의 목표가 되지않을까 두려워했다고 한다.테러의 선동은 전자언론의 자유로부터 분명히 구별되지않으면 안된다. 미국 수사당국은 또 지난달 인공위성과 에너지 관련 공학등의 비밀자료를 입수하기 위해 미국 국방부등의 컴퓨터에 불법 침입한 아르헨티나 학생을 적발했다고 발표했다.그러나 양국간의 조약은 국가기밀에 관한 죄를 포함하고 있지않아 그의 신병은 미국에 인도되지 않았다.정보화시대를 맞아 국경과 대양을 넘나들며 행동하는 개인이나 집단은 국가의 안전과 사업을 관리·통제해온 관료기구에 잠입하여 활동하고 있다.각국 정부들은 이제 겨우 그러한 활동에 눈뜨고 있다. ○테러선동 우려까지 중국은 전통적인 국영 보도기관에 대해 이미 실시하고 있는 엄격한 검열을 해외로부터 유입되는 경제 데이터에도 적용,정보를 독점하려 하고 있다.그렇지만 팩스와 모뎀에 연결된 국제전화망이 있는 한 중국지도부가 기피하고 싫어하는 말과 사실은 정부통제가 이루어지기전에 빠르게 전국적으로 퍼져나갈 것이다.중국은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될지 모른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정보통제를 강화하려 한다면 세계경제와 그 혜택으로부터 거리가 멀어질 것이다. ○중 정보통제 역효과 전통주의자들은 정보화 혁명으로 인한 무정부상태와 퇴폐를 우려한다.하지만 낙관주의자들은 오웰이 예측한 독재자에 의한 국민의 능력별 분류와 텔레비전을 통한 대중세뇌가 전혀 빗나간 좋은 사회의 도래를 예상한다.그러나 현실은 어떻든 매우 복잡하다. 각국 정부는 컴퓨터혁명의 관리에 대해 논의를 시작했다.미국 국방부는 최고의 군사력을 확보하는 수단으로 정보고속도로를 연구하고 연방수사국(FBI),국세국(IRS),중앙정보국(CIA)은 정보를 암호화하고 있다. 정보혁명의 장래의 방향을 제어해야 한다는 논쟁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관료기구는 정보혁명에 최대의 위협을 느끼지만 여전히 강력한 대응력을 갖고 있다.인터넷을 통해 새로운 자유의 시대를 연다는 전망은 있을 수 있지만 아직 보증은 없다.그러한 새로운 자유의 시대를 열 수 있느냐 하는 것은 지금부터의 문제다.〈정리=이창순 기자〉
  • 극점 치닫는 북한체제의 모순/사토 가쓰미(해외논단)

    ◎엘리트층 망명 속출­지도부 대립 표면화/천문학적 군비지출로 경제난 타개 난망 김정일의 전처를 시작으로 북한엘리트층의 망명사건이 이어지고 있다.또 평양중심가,그것도 노동당 중앙위 건물을 마주보는 러시아대사관 내에서 총격전이 일어나는 등 주변국가의 긴장된 눈길이 이 나라에 쏠리고 있다. 북한이 식량·에너지 부족으로 위기를 맞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식량부족 소식이 처음 들린 것은 85년.그 이유는 84년의 수해 때문이라는 것이다.그 뒤 주의해서 보면 매년 수해의 정보가 들어오고 있다. 매년 수해가 발생하는 것은 76년 김일성의 명령에 따른 경지 확대운동으로 전국에 대규모 계단식 경작지를 조성한 때문이다.계단식 경작지에 토사저류지를 만들지 않아 비가 내리면 토사가 하천으로 흘러들어 하상을 서서히 상승시켰고 84년부터 하천의 범람이 시작됐다.지난해에는 강우량이 많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천재라기보다는 김일성 농업정책 실패에 따른 인재인 것이다. 게다가 김정일은 서울올림픽에 대항해 89년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을 거행했다.그들의 발표에 따르면 체육관,경기장,도로등 제반 시설 건설에 47억달러가 들었다고 한다.이 해 북한의 무역수출액은 15억6천만달러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생산을 저하시킨 것은 재생산에 전혀 기여하지 못하는 천문학적 군사비다.한국 통일원 등의 시산에 따르면 군사비가 북한의 GNP(국민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60년부터 오늘까지 가장 적었을 때가 20%,최고가 25%에 이른다.김일성부자정권은 한·미가 침략해올 것이라고 말해왔지만 사실은 적화통일하려는 군사력이다.그것은 노동당 공식문헌으로부터 쉽게 입증된다.또 그것을 구체적으로 증명하는 것이 한국에 대한 게릴라와 테러행위다. 이밖에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개선문과 주체사상탑 등 재생산과 관계가 없는 분야에 거액을 낭비해 왔다.구소련과 중국으로부터 눈밖에 난 것은 십수억달러 이상으로 추정되는 소련에의 차관을 갚지 않고 중국에도 때때로 무역대금을 지불하지 않으면서 추악한 콘크리트 대형건물을 잇따라 건설하고 있기 때문이다.그 결과 농업,공장,철도,도로,통신,발전소,송전선,광산,항만 등의 시설이 노후화돼 대부분이 사용할 수 없는 상태에 빠져든 것이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는 경제에 구조적 문제가 있어 이것이 식량문제로 나타났다는 점이다.구조적 문제의 핵심은 무엇인가.권력자 김일성의 언동에 오류가 없어 2천만 국민이 김일성의 지시대로 움직이면 공산주의국가가 실현된다고 하는 전근대적인 개인신격화의 정치체제에 있다. 토사저류지가 없는 계단식 경작지를 만들면 토사가 하천에 유입된다는 것은 농업토목의 전문가는 물론 농민은 전부 알고 있다.하지만 이같은 의견을 말하면 「반혁명분자」로 강제수용소에 집어넣어지거나 살해되기 때문에 아무것도 말할수 없게 된다.이런 공포상황이 전분야에 걸쳐 반세기동안 계속된 것이다.이같은 개인신격화 체제의 타파없이는 경제의 재건도 인간의 해방도 있을 수 없다. 엘리트층의 망명 및 지도부간의 대립도 공공연화하고 있다.이는 북한체제의 모순이 정점에 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독재국가가 붕괴할 때 폭력은 피하기 어렵다.문제는 폭력이 안으로 향하는가 밖으로 향하는가에 있다. 어느쪽이더라도 위기관리를 서두르지 않으면 안된다.북한군이 폭발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결코 없기 때문이다.
  • 대흥구 중국 심양(세계속 한인촌 탐방:3)

    ◎황무지를 옥토로… 딴 농촌의 3배 소득/5천여명 정착… 우리말·전통풍습 그대로 간직/된장국·김치 담그기 등 가르쳐 중국인을 조선화/「새마을 공장」 4백여곳 유치… 산업화 앞장도 중국 북동부 3개 성의 심장격인 심양.요령성의 성도이자 우리에겐 봉천으로 널리 알려진 이곳 중심가에서 서쪽으로 1시간가량 달리다보면 「대흥구육성」이란 큰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초·중학교 우리말 수업 추수가 끝난 텅 빈 논을 배경으로 서 있는 이 보신탕집 간판으로부터 2차선 찻길을 따라 조선음식점 1백여개가 줄지여 들어서 있다.심양∼대련 사이 고속도로가 곁에 있는 이곳은 심양시 우홍구의 「대흥향」.찻길 따라 음식점과 상점이 늘고 있지만 여전히 시 교외의 농촌이다.1만5천여명의 주민 가운데 3분의 1인 5천여명이 조선족인 우리동포 자치지역이다.명칭은 「대흥 조선족자치향」. 『20년대초까지 논은 찾아볼 수 없는 황무지였다.물이 부족해 농사가 어려웠고 극소수 밭농사를 지을 수 있는 지역이 있을 뿐이었다.그런 황무지를 송화강의 지류인 훈하를끌어들여 물길을 낸 뒤 논농사를 시작,궁핍에서 벗어나게 한 게 바로 조선족이었다』고 48년말부터 30여년동안 이곳 공산당간부로 일해온 지역지도자 이성일·67·전당서기)씨는 회고한다.길지 않은 이민역사와 한족에 비해 적은 인구에도 불구,조선족자치지역이 된 것은 『조선족 손으로 이곳을 개발했기 때문』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19세기말∼20세기초 가난과 일제침략을 피해 고향을 등진 사람이 모여 이룬 이곳은 우리말과 생활풍습을 고스란히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아이의 백일잔치,노친네의 환갑은 물론 전통양식을 보존한 제사풍습 등등.설날이면 이웃집에 세배다니고 농사일과 궂은 일이 있으면 몰려가 품앗이를 하는 등의 끈끈한 유대의식도 변치 않았다.순 우리말로만 수업하는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있는 것은 물론이다.이곳 조선족은 절대로 한족학교에 아이를 보내지 않는다.행여 자식이 한족과 결혼하려 하면 필사적으로 말리는 것도 다른 지역에 사는 동포와는 약간 다른 풍습이다. ○연변 등 외지동포 이주 오히려 중국인을 「조선화」시켰다.노인등 어른에 대한 깍듯한 예절,논농사를 모르는 이들에게 쌀재배법을 전파시켰고 적잖은 이 지역 중국인이 김치를 담그고 된장국을 끓여먹는다는 데서도 대흥 조선족의 영향력을 엿볼 수 있다.가옥도 이웃 사이에 담장이 따로 없는 개방형 농가다.아이를 조선식 포대기에 들쳐업고 다니는 새색시.조금 어색하긴 하지만 치마저고리에 면사포를 쓰는 동·서혼합 결혼식.집안에 들어서면 구들방이 보이고 크고 검은 무쇠가마솥이 눈에 띄는 곳.안타까운 것이라면 국가규정 때문에 전통적인 무덤(토장)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문화혁명후 토장이 금지돼 화장한 뒤 죽은 이의 유골을 황해로 흐르는 훈하에 뿌리는 전통이 생겼다.죽어서라도 고향으로 가야 한다면서. 1910년말부터 평안도에서 일가친지 모두가 이주해온 황성출(65·전대흥향 공업책임자)씨는 『처음 이주자들은 몇년만 있다 고향으로 가겠다는 생각이었지만 1917년 오강소학교란 조선학교를,20년엔 기독교 예배당를 세우며 차차 정착하게 됐다』고 말했다.그러나 30년대초까지도 추수때면 한족 지주등에게빚갚고 나면 빗자루 하나만 남는다는 말이 돌 정도였다고 전했다.허일벽(72·전대흥향 정부농업조리)씨는 한때 1만여명 가까운 조선족이 모여 살기도 했지만 해방직후와 59∼60년 대약진운동의 실패여파로 상당수 북한으로 이주해갔다고 설명한다. 연변지역등의 조선족마을이 최근 도시이주등으로 급속히 붕괴하고 있는 것과 달리 이곳은 지난해 역시 연변과 흑룡강성등 외지에서 이주해온 동포 가구로 1백호가량 늘었다.이곳 인구는 5천명정도지만 심양시 서탑지역,동릉구 혼하찬지역과 함께 10만 심양지역 조선족사회를 지탱하는 기둥이다.해마다 9월초면 열리는 조선민속·운동절에 약 5만명 대부분이 가족별로 참가한다. 한·중 두 나라의 급격한 관계발전을 타고 이곳도 한국행 열풍엔 예외가 없다.4살때 평안도에서 왔다는 흥성촌의 김응석(69)씨의 세 아들중 두명은 한국에서 3년 넘게 일하고 있다.비자등 법규에 대해 알지 못하는 김씨는 『아이들이 한국에서 돈 많이 번다』며 자랑한다.김씨집은 산업화이전의 초가집이고 부엌엔 무쇠가마솥이 걸려 있다.해질녘에 불쑥 들른 취재진에게 『저녁은 꼭 먹고 가야 한다』며 붙드는 것이 이제는 사라진 우리의 옛 정서를 느끼게 한다. 한집 건너 김미영(33)씨 집 역시 남편이 지난해부터 한국서 일하고 있다.농토는 연변에서 온 조선동포에게 맡겨 임대수입을 받는다는 김씨는 남편을 보러 꼭 한국에 다녀오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공단인접한 교통요지 개혁개방이 진전되면서 대흥향은 농공산업단지로 탈바꿈하려는 안간힘으로 한창이다.동북 최대공업단지 철서공단에 접해 있고 북경∼장춘∼하얼빈을 잇는 교통요지인 점도 산업화를 향한 행보를 재촉한다.우리 새마을공장격인 향진기업은 모두 4백6곳.지난해 공업생산은 4억위안(5천만달러)으로 농업생산액 1억위안을 앞섰다.피혁·의복·방직·장식재료등을 중심으로 외자기업의 유입이 늘고 있다.정명수 향정부 판공실주임은 『지난 91년부터 올해까지 외자기업의 총투자액은 7백60만달러』라며 『총생산액으로 볼 때 외자기업의 비중이 지난해 공업생산의 절반가량인 2억위안에서 올해는 2억8천만위안으로 증가할 것』이라며 밝은 전망을 소개했다. ○종업원지주제 첫 실시 이곳의 월 평균소득은 여타 농촌지역보다 3배가량 높은 7백∼8백위안정도.한 관계자는 한국 가서 일하고 부치는 노무소득·관광객안내비등을 합치면 실제소득은 훨씬 많다고 귀띔한다.향 행정책임자인 김재만 향장은 심양 조선족제1중학(고교과정)과 심양 정법대를 나온 35살의 청년이란 것도 이곳의 활력과 미래를 상징한다.김향장은 투자유치가 자신의 주임무이며 한국기업의 투자를 주민과 함께 기대하고 있다고 소개했다.최근 한국의 삼우금속과 합자로 총자본금 11억규모 심양 흥우금속제품공사설립을 계약했다고 설명한다.중국 공무원하면 경직된 행정관리가 연상되지만 김씨는 자칭타칭 「세일즈맨」임을 자랑으로 여긴다. 김향장은 『대흥향은 내년부터 중국 최초로 기업고정재산의 30%한도내에서 종업원지주제를 실시하는 기업개혁실험에 들어간다』며 밝은 대흥향의 미래를 자랑삼아 밝혔다.전통적으로 북한의 영향이 강하던 이곳에서 이들은 이제 한국의 존재는 우리민족의 자랑이라고 말한다.이들은한국을 모델삼아 공업화된 농촌속의 도시를 만들겠다는 경제발전의 꿈에 부풀어 있다. ◎장승균/“조선족은 문화수준 높아”/동북부 지역 벼농사 전파… 개발 한몫 중국 조선족은 역사적으로 항일전쟁 및 해방전쟁(국민당과의 내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훌륭한 전통을 지니고 있다.특히 중국 동북부지역을 개간,수도작문화,즉 벼농사를 전파시켜 경제수준을 한단계 높이는 데 크게 공헌했다. 조선족은 또 교육을 중시,문화수준이 높고 노래와 춤등 예술성이 풍부하며 호방하면서도 엄격히 예절을 지키는 민족으로 정평이 나 있다. 조선족은 60년대까지 대부분 농민이었으나 개혁개방후 각 방면으로의 진출,계층분화현상이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연변지역등 농촌에 모여 살던 조선족의 도시이주가 최근 늘면서 일부 집성촌의 해체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북경상주 조선족은 현재 1만여명에 달하고 임시거주등의 인구까지 따지면 모두 3만여명 이상으로 추산되고 있다.조선족의 전체인구는 공식통계로는 1백92만3천여명으로 집계돼 있지만 조사연도(90년)와 전중국의 인구증가률 1.4%보다 낮은 1%가량의 인구증가율을 고려할 때 2백만명가량으로 늘었을 것으로 추산된다. 조선족의 한국방문 및 장기체류는 상대방 국가의 법률만 준수한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한국정부가 민족연관성을 배경으로 조선족에 대해 특혜정책을 실시하더라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게 중국정부의 방침이다.
  • 우즈베키스탄공 타슈켄트(세계속 한인촌 탐방:2)

    ◎30년대 연해주서 이주… 8만여명 정착/근면은 타민족 본보기… 80%가 농업 종사 옛소련 땅의 한인최대밀집지역인 우즈베키스탄공화국의 타슈켄트주에 있는 한 목화농장.초로의 황 스타니슬라브씨(53)가 이곳 치르치크구역내의 국민학교와 중·고등학교 학생으로 구성된 목화수확반의 작업을 일일이 지켜보며 독려하고 있었다.다른 한쪽 켠에서도 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인을 비롯해 10여종족으로 구성된 종업원들이 그의 감독하에 목화송이를 거둬들이느라 여념이 없다. 불과 2년전까지만해도 황씨는 국영기업에 가까운 콜호스의 농장장에 불과했다.하지만 이제 그는 회장님이라 불린다.우즈베키스탄정부의 민영화방침에 따라 국영농장(콜호스)이던 이 목화밭이 주식회사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국영농장 회장이 한인 황회장의 오늘은 아버지 황만금씨(74)의 후광이 컸다.아버지 황씨는 지난 30년간 이 목화농장을 옛소련지역 최고의 콜호스로 이끈 장본인이다.극동의 블라디보스토크 빈농가에서 태어난 아버지 황씨는 지난 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정책에 따라선친과 함께 당시 황무지나 다름없던 이곳에 내던져졌다.타슈켄트 교외 사막 허허벌판에 던져진 이들 부자는 10년동안 막노동과 농업전선을 전전했다.그러던 1947년,특유의 한인기질인 성실성과 총명함이 돋보여 황만금씨는 한인으로서는 처음으로 한 콜호스의 관리위원장에 선출됐다.지금의 목화농장 관리위원장으로 뽑힌 것은 53년.이후 30년간 그는 이 농장을 옛소련의 모델농장으로 끌어올렸다.목화재배에 과학영농기법을 도입,다른 지역 콜호스 생산량의 최고 10배까지 달성하기도 했다.58년 노동영웅칭호를 시작으로 그는 3번의 레닌훈장과 10월혁명훈장,소련인민위원회 계관칭호 등 더이상 받을 상이 없을 정도로 모든 상을 휩쓸었다. 이곳에 사는 문 피요트르씨(64)는 『그는 어려울수록 한국인 특유의 부지런함을 발휘한 콜호스의 상징이자 한국인의 상징』이라고 치켜세웠다.황씨의 바통은 90년대초반 아들이 이어 받았다.그가 아버지의 농업철학을 계승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며 비닐하우스 재배기법을 우즈베키스탄에 도입한 장본인이라는 점이 발탁의이유였다. 황회장의 경영능력도 아버지 못지않다.이른바 새 콜호스건설에 신사고를 일으킨 아버지에 이어 그는 요즘 토지의 유상분배와 인센티브제의 도입,컴퓨터농정에 큰 관심을 쏟고 있다.황회장은 『일을 시켜보면 역시 한인들은 우수한 민족』이라면서 『한때 도시로 빠져나갔던 한인들이 다시 농촌으로 돌아오고 있어 기대가 크다』고 했다. 이러한 역유입은 나름의 배경이 있다.주 요인은 바로 언어문제.한인들 가운데는 소련시절 공용어인 러시아어는 하면서도 현지어인 우즈벡어는 제대로 구사할줄 모르는 이가 많다.그런데 올해부터 우즈벡정부가 우즈벡어를 공용어로 채택,우즈벡어를 모르면 공공기관 취업을 금지하는 정책을 펴고있기 때문이다.이에따라 대도시에서의 공공기관 취업이 힘들어진 것이다. 우즈베키스탄에 사는 한인들은 22만 2천여명.이중 8만 9천여명이 타슈켄트주에 살고 있다.타슈켄트주에 거주하는 한인들 가운데 60%가 농업에,나머지가 사무직에 종사하고 있었다.그러던 것이 최근들어 농업종사자수가 80%이상으로 다시 늘어났다.따라서 최근들어 한인들 사이에는 우즈벡어를 배우려는 노력이 한창이다.특히 40대이하 청년층가운데는 우즈벡어를 배우는 부담때문에 우리말을 배우지 못해 우리 말을 할줄 아는 교포가 전체의 3%도 안된다는 지적도 있다. ○유명 변호사도 배출 이런 어려운 여건속에서도 현지인들에게 본보기가 되는 한국인이 많다.김 블라디미르씨(62)도 그가운데 한사람이다.타슈켄트시에서 80㎞ 떨어진 타슈켄트주 아쿠르간 마을.마을 전부라야 2백50호정도밖에 되지않는 아담한 전원마을에 위치한 김씨의 주택에는 하루종일 이웃주민들의 발길이 북적거린다.취직문제에서부터 한인지위에 관한 문제에 이르기까지 교포「민원인」들의 발길이다.남의 집을 빈손으로 찾지못하는 한인들의 기질탓인지 이들은 과일을 담은 비닐백같은 선물꾸러미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교포들이 이처럼 그의 집을 찾는 것은 김씨부자가 우즈베키스탄 변호사동맹의 소문난 변호사이기 때문이다.아들 보로니야씨(38)도 변호사다.김씨는 다민족으로 이뤄진 타슈켄트사회에서 동포들의 억울한 일들을대변,사건해결사 혹은 인권변호사로 지내오기가 올해로 꼭 40년째다.그 역시 37년 극동의 연해주지역에 살다 삼촌과 함께 카자흐스탄땅에 버려졌다.아버지는 일본스파이라는 누명과 함께 시베리아로 끌려갔다.삼촌의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그는 7살때 우즈베키스탄의 한 고아원에 들어갔다.고아원을 전전하며 대학을 졸업한 해인 55년.시민권도 없던 그는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변호사자격을 따냈다. ○조선인 자치지역 건의 그는 지난 89년 고르바초프대통령때 『연해주를 조선인자치지역으로 돌려달라』는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이 문제는 당시 상무위원회에 보고돼 대통령에 직접 전달됐으나 고르비가 『기다려보라』는 답신을 한뒤 얼마되지 않아 실각해 문제제기에 그치기도 했다. 지난 90년때의 일.당시 우즈베키스탄인과 투르크메니스탄인사이에 종족갈등이 폭력사태에까지 이르자 우즈벡공화국정부는 「24시간안에 모든 소수민족은 우즈벡을 떠나라」는 포고령을 내렸다.투르크메니스탄인 등 다른 소수민족들은 대거 국경을 넘어갔다.하지만 한인들만은 모두 마을을 고스란히 지켰다.『연해주에 이어 또다시 조선사람들의 일터를 버리고 갈 수 없다』는 간곡한 그의 청원이 큰 작용을 했다는 후문이다. 비록 타슈켄트의 한인들이 언어에는 어려움을 겪고있지만 문화·풍습은 나름대로 보존해가고 있다.우즈벡인의 70%가 이슬람교도로 이슬람식 일상풍속의 영향이 강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 전통문화를 보존한다는 것은 1%의 한인소수민족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다.그런데도 이곳 한인들은 주로 「고려인문화센터」를 중심으로 문화·풍습을 보존해 나가고 있다.현재 우즈벡공화국내에 24곳의 한인문화센터가 있다.이곳에서는 우리말을 가르치거나 우리 전통예술보존을 위한 전시회활동 등도 벌이고 있다.한인들의 춤과 가락을 계승하고 있는 고려악단·청춘가무단·금붕어아동무용단·한인합창단 등 예술단체만도 20여개소나 된다.이곳 한인들의 최대 명절은 역시 추석.우즈벡인들이나 한인마을에 함께 사는 다른 소수민족들도 아예 이날을 자기들의 명절로 인식할 정도다. 황씨의 목화농장에 살고 있는 30대의한 교포주부는 『설날이나 명절때 한인들은 구역별로 모여 음식을 차리고 잔치를 벌인다』면서 『결혼식과 돌·환갑잔치도 빼놓을 수 없는 한인들의 유대의식의 장』이라고 했다.하지만 그녀는 명절에 한복을 입는 것,윷놀이 등은 잘 알지못한다고 했다. ◎라술로프 카리드라슬로비치 대통령 자문위원장/“한민족은 역사와 전통을 중시”/개인보다 남을 생각하는 지혜 돋보여 무려 1백40여민족이 살고 있는 우즈베키스탄에서 한인들은 정치·경제·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특출난 민족이라고 생각한다. 우즈베키스탄민족을 포함해 가장 훌륭한 민족이 한인이다.특유의 부지런함과 화합하며 사는 법,개인보다는 집단을 생각하며 사는 것이 지혜롭게 보인다. 한민족은 역사와 교육·전통을 중요시 여기는 민족이다.한인들은 특히 언어와 종교,기질 등이 틀리지만 다른 민족과 쉽게 잘 화합해왔다.소수민족가운데 우즈베키스탄어를 가장 잘 구사하는 민족도 한인들이다.소련에서 독립한 뒤 우즈베키스탄에는 명절이 많이 생기게 됐는데 한인의 추석명절을 다른 민족이 본받아 함께 쇠기도 한다. 한민족은 이곳에서 예술분야에서도 단연 다른 민족들을 압도한다.최근 타슈켄트에서 열린 우즈베키스탄 유명화가 초대전에 20명의 우즈베키스탄화가가 초대됐는데 놀랍게도 이 가운데 18명이 한인들이었다.우즈베키스탄이 독립된 뒤 각국에 파견하는 경제·문화사절단도 때때로 거의 한인으로 채워지기도 한다.그러한 한인들의 단점은 별로 없는 것 같다.
  • 노태우씨 비리 수사­「한양」의 의혹

    ◎90∼92년 노씨에 2백억 전달­배종렬씨/이권사업 대가로 공공연히 뇌물 제공/민자 연수원 불하도 특혜시비로 무산 검찰이 배종렬 전한양그룹회장(67)을 소환·조사하기로한 것은 6공화국 당시 각종 이권사업을 챙기는 대가로 노태우씨에게 거액의 비자금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검찰은 지난 93년6월 한양종업원에 대한 임금체불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배씨가 수백억원의 비자금을 조성,이 가운데 일부를 노씨에게 건네준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최근의 계좌추적조사결과 노씨가 받은 비자금의 규모는 90∼92년 사이 4차례에 걸쳐 50억원씩 모두 2백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이 돈 가운데 상당액이 이권사업의 대가로 건넨 「뇌물」인 것으로 보고 배씨에게 이 부분을 집중 추궁한다는 계획이다.6공화국 당시 배씨와 노씨의 「유착」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는 서울 가락동의 민자당 정치연수원 부지불하사건이 꼽힌다. 이 사건은 92년4월 민자당이 서울의 마지막 금싸라기 땅인 가락동 정치연수원부지 1만8천5백여평을한양측에 매도하기로 가계약을 맺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불거져 나왔다. 당시 야당은 한양이 그해 3·24총선에 수백억원의 정치자금을 제공한 대가로 정치연수원 부지를 넘겨받는 특혜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또 가계약서 상의 매도가격은 1천2백87억원이지만 실제 시가는 2천5백억원을 넘는다든가,당시 모은행이 정치권의 부탁을 받고 「부실기업」의 하나인 한양에 수백억원을 대출해줘 이 돈이 총선 자금으로 유입됐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이 사건은 결국 한양이 정치 교육원부지매입을 포기하면서 일단락됐으나 그때 한양과 민자당의 가장 주요한 연결고리로는 배씨와 대통령인 노씨가 꼽혔었다. 따라서 이번에 배씨를 소환하는 것도 당시에 소문으로만 나돌던 노씨에 대한 비자금 제공 의혹을 확인하기 위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 이와 함께 배씨는 당시 유력 국회의원 여러명에게 각각 수천만원씩을 정치자금명목으로 제공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검찰은 지난 93년6월 임금체불 등의 혐의로 배씨를 구속할 당시,배씨가 매형 정모씨 명의로 되어있는 서울 구기동 2백32평짜리 「별채안가」를 정치권의 인사들과 연회를 갖고 로비를 벌이는 장소로 이용해왔다고 밝혔었다. 배씨는 이밖에도 일산 신도시 건설,인천의 LNG 기지공사수주 등 각종 건설사업과 관련해 수백억원의 정치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배종렬 전 한양회장은 누구/로비력 출중… 수차례 경영위기 타개 배종렬 전한양회장은 정경유착형 기업인의 전형으로 알려진 인물이다.건설업계에서는 그를 근로자들의 임금을 체불하며 회사공금을 빼돌려 개인치부를 해온 「부실 기업인」「악덕 경영주」라고 부른다.정권이 바뀔 때마다 권력과 밀착해 경영위기를 넘기거나 특혜를 통해 부를 축적하는 수완을 발휘한 「로비의 귀재」이기도 하다.그가 창업한 (주)한양은 상업은행에 1조원에 가까운 부실채권을 안겨준 정경유착형 부실기업의 표본이었다. 그는 지난 67년 나이 29세 때 영등포에 대동목재를 설립,청년 실업인으로 재계에 입문했다.2년만에 한양목재로 간판을 바꿔달고 초기 아파트 건설붐을 타고 삼익주택 진흥기업 등에 납품하며 성장가도를 달렸다.73년에는 (주)한양의 전신인 한양주택개발을 설립,아파트건설에 진출했고 창업 3년만에 해외건설업 면허를 따고 서광토건을 인수해 업계를 놀라게 했다.
  • 신세대 시각(21세기 한­일 새 지평:5·끝)

    ◎한일 공존을 위해 풀어야할 숙제들/우월의식·불신 제거로 과거치유를/상호신뢰 넓혀 「갈등 역사」 청산/청년층 격의없이 자주 만나야/김홍진 ▲75년생 ▲서울대사범대 국민윤리교육과 2년 1995년 8월15일.우리는 「광복」이라 하고,현해탄 건너 일본에서는 「패망」이라고 부르는 사건이 일어난 지 만 50년이 되는 날이다.하지만 일본의 식민지배가 남긴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은 채 남아 있다. ○과거책임은 분명 우선 분단과 통일의 문제를 생각지 않을 수 없다.식민지배가 낳은 분단이라는 고통은 여전히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근대적 민족국가 건설을 원천적으로 봉쇄당한 민족의 불행과 주권상실의 아픔을 하나의 유전형질로까지 간직하게 된 우리는 까닭도 모르는 채 분단이라는 비극도 떠맡아왔다. 그동안 각자의 길을 달려온 남과 북은 이제 민족의 동질성 회복마저 운운해야 하는 정도까지 이르렀다.36년간 이어진 일본 제국주의의 지배를 힘겹게 떨치고 난 후에도 아득한 절망과 끊임없는 도전 속에서 살아온 것이다. 참된 광복은 통일이라는 주장은 그래서 타당성을 갖는다. 과거청산도 아직 풀리지 않는 역사적 과제로 남아 있다.한민족의 지난 50년은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청산의 역사인 반면 우리에게 빚을 진 일본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만해져만 갔다.해방 이후 한·일 역사는 마뜩한 뒷풀이가 없었다는 것을 삼척동자도 알 것이다. 이처럼 식민지배와 분단으로 왜곡된 역사를 바르게 풀어나갈 주체와 방향은 어떤 것일까. 기나긴 역사에 비해 인간의 삶이 제한적인 만큼 식민지배의 고통을 직접 당한 기성세대가 일본의 죄값을 추궁하는 역사가 언제까지나 이어질 수는 없다.이제는 청년학생이 주축이 되어 한·일관계의 새 지평을 열어나가야 할 때다. 앞으로 한·일관계의 새로운 장을 열어나갈 청년은 「신세대」로 불린다.일본도 이미 80년대에 기존세대와 가치관의 단절을 고한 「신인류」의 출현을 맞이했다. 신세대 혹은 신인류가 오도된 역사를 바로잡는 역할을 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앞으로의 역사도 알력과 대립으로만 점철돼서는 안될 일이다.다가올 세기는 하나된 한반도의 젊은이와 국제사회의 중추로 자리잡은 섬나라 젊은이의 공존의 시대이어야 한다. ○젊은이 역할 중요 이를 위해서는 두 민족간의 오랜 원한과 그릇된 우월의식,상호신뢰를 허무는 어줍잖은 영웅의식,이를 기반으로 등장하는 극단적 민족주의,공동이익을 저버리는 일방적인 국가행위 등을 극복해야 한다. 한반도와 일본의 정황은 아직도 이같 기대를 충족시킬 만큼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한반도는 아직 불안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상태이고 일본도 이같은 긴장상태가 지속되기를 바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제국주의자의 망언은 최근까지 계속되면서 한·일관계를 이간질하고 있다.최근에는 자위대증강,핵물질보유 등 군사력 신장과 극우파의 창궐로 『일본에서 군국주의가 부활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마저 불러일으키고 있는 실정이다. 국민감정도 아직 완전히 치유되지는 않았다.일본에서는 얼마전 염한론이 한창 회자됐다.『얼마나 더 사과해야 되나』『이제 한국이라면 지긋지긋하다』는 소수 일본국민의 반한감정이 드러난 형태였다. 우리 국민도 대일감정을 묻는다면 열에 아홉은 싫다고 말한다.그것은 과거에 대한 혐오일 수도 있으나 일본이 보여주는 반성의 태도에 수긍할 수 없다는 불만 때문이기도 하다.그들이 보여주는 지나친 민족우월의식은 거부를 넘어 두려움의 대상이기까지 하다. ○영웅의식 극복을 이같은 현실을 극복하고 한·일관계의 새 지평을 열기 위해 정부는 좀더 대범하고 적극적인 대일외교를 수행,한국과 일본 양국이 헌법에서 밝힌 바대로 인류공영에 이바지하는 역사적 대의에서 주도권을 쥐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일본도 제국주의의 꿈을 버리지 않은 채 지역패권을 추구,공존해야 할 이웃국가에게 수고를 끼친다면 이는 21세기를 살아가는 방법이 아닐 것이다. 아울러 한·일 양국이 다가올 세기의 공존과 번영을 이끌어갈 청년학생에 대한 투자도 잊지 않았으면 한다.양국의 청년이 바른 역사관을 세우고 양국의 미래를 생각할 수 있는 꾸준한 만남의 장이 조속히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참 공영의 미래향한 선결과제/상대 바로알기가 선린우호 첫 걸음/무지·몰이해서 오해·마찰 비롯/교육·문화 등 교류확대 급선무/나카가와 도시히코 ▲71년생 ▲일 무사시대 사회학과 4년 「한국은 도대체 어떤 나라인가」라는 질문을 받고 「이런 나라다」라고 답할 수 있는 일본의 젊은이들은 어느 정도나 될까. 김치,치마저고리,메이드 인 코리아 운동화·T셔츠 등으로 밖에 이미지를 떠올리지 못하는 지식의 모자름.나 자신 이런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가까운 나라이면서도 알려지지 않은 먼 나라.왜 그런가.그 답을 찾기 위해 올해 봄 한달 반동안 한국에 단기 유학했다. ○부정적 생각 깊어 솔직히 말해서 한국에 대해서는 좋은 인상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그저 누님 내외가 서울에 살고 있다는 관계밖에 없었다.좋은 인상을 갖고 있지 않았던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알지 못한다」.이 한 마디로 집약되는 것이 아닐까. 역사 문화 그리고 말.고대 불교와 유교의 전래,고려청자와 이조백자가 일본의 도예에 기초를 제공했다는 것,도쿠가와 막부와 조선의 교류 등 일본에 문화적 영향을 주어왔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지고 있는 전쟁책임에 따른 부채를 의식하고 있기 때문일까,아무래도 한일관계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되고 말았다. 종군위안부문제 등 전후처리에 관련된 일도 잘 이해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현실감을 갖지 못한 채 「전후책임」이라는 네글자가 눈 앞을 그냥 지나쳐 「부채」라는 프레셔만이 남아 있는 것이다.그래서 나는 한국에 대해서 막연한 혐오감을 안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언어와 문법에 대해서는 상당한 정도로 닮았다는 것을 유학에 임해서 처음 알았다. 또 이러한 문제이전에 한국인을 잘 알지 못했고,한국인들이 속마음으로 일본인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도 몰랐다. 서울에 머무르는 동안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씨의 강연에 찾아가 볼 기회가 있었다.예상이상으로 관심이 높았기 때문에 나는 강연장에 들어갈 수 없어서 포기하고 돌아갈까 할 때,입장을 할 수 없었던 한국인은 대단히 사납게 주최자측에 따지고 들어 어떻게 해서든 강연장에 들어가려고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고 있었다.조금이라도 빈틈이 있으면 문을 향해서 밀려 들고 밀려나오면 또 나아갔다. ○서로의 고민토로 혼잡을 빚는 사람에 시달리면서 나는 한국인의 과격함에 압도당해 강연의 건은 아무렇게 돼도 좋게 됐다. 또 한국에 가기 전 내가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혐오감을 받게 되지 않을까하고 내심 불안했지만 그것은 지나친 생각이었다.특히 같은 세대의 한국 젊은이들과 해외의 문화의 유입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서양문화를 모방하는데 지나친 것은 아닐까라고 서로 닮은 고민을 말할 수 있었던 것이 대단히 기뻤다. 그러나 지하철에서 일본어 책을 읽고 있을 때 나이 많은 남자가 일본어로 나에게 「일본과 한국의 관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 물어와 나는 이 질문에 대해 명확한 생각을 말해 줄 수가 없었다.그 남자가 너무 유창한 일본어를 말하고 있어서 「일본은 한국에 대해 거듭 전쟁책임을 져야한다」등등 가볍게 말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앞으로 서로 나라를 짊어지고 나아가는 것은 우리들 세대다.서로 알지 못하고 있는데도 알고 있는 듯이 하면서 전후 50년의 문제를 한번에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문화가 다르면 이런저런 부분은 받아들여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이 허용하기 어려운 부분을 줄여나가는 것부터 시작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교육 문화교류 등 방법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깊은 이해심 필요 다른 나라와의 오해와 마찰은 상대국에 대한 지식부족,무이해로부터 생긴다.일본인도 노력이 부족하지만 한국의 국민들도 일본이라는 나라를 다양한 각도에서 보아주기를 바란다. 한일 양국민은 감정적으로 의미도 없이 서로 혐오하기보다는 오히려 서로를 잘 안 뒤에 양자가 이르지 못한 부분을 서로 지적할 수 있도록 하는 편이 우호관계를 지속될 수 있도록 하게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부터 우선 한일관계에 무엇이 있었는가를 배우는 것부터 시작하고 싶다.
  • 전환기 맞은 조선족(두만강 7백리:21)

    ◎「경제특구」로 변신한 하구… “산업화 몸살”/방천지구에 연40만톤 처리 부두 건설/우수노동력 대도시 몰려 연변은 인력난/목돈쥔 교포들 흥청망청… 기업투자 외면 새 바람의 경제 훈춘시 경신향에서 두만강 하구를 바라보노라면 변화의 바람을 체감할 수 있다.이 두만강 하류 삼각지대는 다국 경제기술합작개발구다.오는 20 10년까지 50만 인구를 포용한 국제화 도시가 들어설 계획이다. 그러고 보면 연변의 조선족은 역사적 전환점에 서 있다.조선족이 도약할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라는 점에서 반갑기는 하다.그러나 민족문화가 스러질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남과 북이 다 교포라고 불러주는 조선족이 이 기회를 어떻게 포착할 것인가.전통사회가 현대사회로 탈바꿈하는 시대를 맞이한 조선족들은 분명히 어떤 숙제를 안고 있다. ○주인의식 갖는게 중요 최근 북경에서 조선족 청년들이 참가한 가운데 「21세기를 대비한 우리의 자세」를 주제로 열린 학술토론회는 이 숙제에 대한 어느 정도의 해답이 아닌가 한다.흑룡강신문사 박문봉기자의 주제발표는 우리 조선족들에게 큰 의미를 던져주었다. 『우리 선조들은 맨주먹으로 동북땅을 개척 했습니다.그리고 항일전쟁에서 이룩한 불멸의 업적은 우리 민족의 위치를 확립한 것도 사실입니다.우리는 한국인과 조선인,한족과도 구별됩니다.우리는 또 중화민족의 일원으로서의 현실적인 존재와 고국이 있는 코리안의 일부분이라는 본체적인 존재를 동시에 지닌 모순체이기도 합니다.현재 한국에 체류하는 2만여 조선족들은 불법으로 낙인 찍혀 있으며 앞으로 통일이 되더라도 2백만 조선족은 절대 받아줄 수 없을 것입니다.그래서 우리는 이 땅에 주인의식을 갖는 독립적 존재로 부상해야 됩니다』 연변은 중국 조선족의 본거지다.두만강 연안의 농촌은 조선족이 집중되었고 우리 문화를 집약적으로 대할 수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그런데 연변 조선족 이민1세들은 떠돌이 품팔이꾼 의식에 젖어있다.밀수에서 목돈을 쥔 사람들은 장구책 보다 하루살이식으로 돈을 물쓰듯 하는 경향을 종종 본다.농촌 청년들 조차 배가 불러지면서 하찮은 일까지도 한족을 고용해서 맡긴다.조선족은 돈을 쓰기 위해서 벌고 한족은 모으려고 번다는 말도 생겼다.어떻든 조선족은 씀씀이가 헤프다. 도문시 한옥희씨는 우진공업무역총공사를 경영했던 인물이다.연간 연인원 2만3천명을 고용하고 3억6천2백64만원의 매출실적을 올릴 정도였다.그래서 살기를 황제처럼 살았다.기업경영 보다는 부화한 생활을 즐겼기 때문에 결국은 재산을 모두 탕진해버렸다.조그마한 구멍가게라도 혼신을 다해 운영하는 한족들의 근면성과는 사뭇 대조를 이룬다.따라서 연변의 조선족들은 다가오는 시대에는 생산적 기풍을 추구하는 가치관 확립이라는 과제를 안고있는 것이다. 연변대 박승헌교수가 제시하는 경제개발 모델은 설득력이 있다.그리고 그가 평가하는 오늘날 연변의 실정을 들어보면 아직 멀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과학기술인재 태불황 『연변은 지정학적으로 전략적 위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제약하는 요소들이 많았디요.냉전시기 연변은 제국주의와 수정주의를 반대하는 전초진지로 군사변방 또는 정치변방의 측면이 강조되었을뿐이었댔습네다.이제 동북아경제권의 중심지역으로 부상되어 민족경제 도약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긴 했어도 동해로 진출하는 통로를 마련하지 못한다면,지리적 이점을 발휘할 수 없을 거입네다.그리고 연변의 경제발전 모델은 자원집약형이 주체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자원개발과 수출가공업이 서로 결합하는 방향으로 나가야디요.더구나 우리는 과학기술 인재의 부족은 물론 첨단기술 영역은 공백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네다』 대학입시가 부활된 이후 조선족 학생들 중에서 특수한 인재들이 속출했다.그래서 전국 일류대학으로 진학했고,더러는 미국과 일본으로 유학을 간 경우도 있다.하지만 유학을 갔다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그들을 받아들일 만한 여건도 사실상 갖추지 못했다.그리고 대도시에서 일류대학을 나왔다.돌아온 인재는 물론 연변에서 길러놓은 우수한 인재들은 모두 북경과 같은 대도시로 떠나버렸다.게다가 근래에는 연해주에 진출한 한국기업들이 연변지역 우수 노동력을 싹 쓸어가고 있다.자그마치 2만명이나 되는 우수노동인력이 빠져나갔다는 것이다. 오늘 날 연변에서 우리 문화에 대한 새로운 조합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그것은 이민시기에 이루어진 좁은 울타리 안에서의 조합이 아니라 동북아 경제권을 향한,또 세계를 향한 문화의 조합이다.특히 두만강 삼각주 개발을 계기로 중국 각지의 인재들이 흡인될 것이다.그 때의 연변문화는 조선족문화가 주체일 수 없다는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기 때문에 새로운 문화조합은 필연적이다.그러니까 주체성을 얼마만큼 지니고 문화를 가꾸어 나갈 것이냐가 문제인 것이다. ○우리문화 관심가져야 이 시대는 문화가 많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밀려났는지도 모른다.합리주의라는 미명 아래서….중국사회과학원 장춘식 선생의 말을 들어보면 연변의 조선족문화는 틀림없이 위기를 맞고 있다. 『우리 문화를 끌어안고 고민하지 않으면 안됩네다.공업화 내지 사회분화의 가족화가 이루어낸 오늘의 현대사회를 합리주의 사회라고 하는 모양입네다 만은 나는 그런 합리주의에 의문을 갖디요.한국의 경우를 보면 물질만을 추구하기 보다는 정신을 추구하는 쪽으로 서서히 회귀하고 있다고 기래요.뒤는 돌아다 보지 않고 앞만을 향해 뛰어온 세월을 반성한다고나 할까….우리가 한국 사람들을 대하면 이질감을 느낄 때가 있습네다.이를테면 야비함과 인색함,또 기회주의적 사고방식 등등….그러나 이해하고 깊이 살펴보면 오늘의 한국으로 발전하기 위해 치른 대가라는 생각이 들디요.우리 조선족들은 한국의 전철을 밟지 않고 선진문화를 접목시키는 지혜를 찾아야 할 것입네다』 연변의 경제발전은 의외로 빨리 진행될 수도 있다.심천이나 해남도 못지 않게 인구유입이 급증할 것이다.두만강 하구 방천에 연간 40만톤의 화물을 수송할 부두가 건설된다고 한다.또 4백톤급 선박이 접안하는 항구로 발돋움한다는 것이다.그 배의 키는 누가 잡을 것인가.한 여름이 되면서 무산으로 흘러 내려오는 뗏목은 뜨고 있지만 이민 1세들을 실어나르던 눈물 젖은 두만강의 쪽배는 없다.이제 연변의 조선족들은 그 쪽배 대신 두만강 하구를 빠져 동해로 나가는 화물선을 부려야 할 때가 되었다.
  • 줄어드는 조선족(두만강 7백리:20)

    ◎연변자치주에 85만… 주인구의 39% 차지/20년대엔 80.5%선… 광복이후 급격히 감소/60년대 한족들 대거 이주… 조선족마을 “점령”/인구증가율 가장 낮아 소수민족 전락… 한족동화 가속 백두산 줄기의 푸쿠리산에서 발원하여 먼 물길을 달려온 두만강.중국 길림성 훈춘시 경신향 방천촌을 왼쪽에 끼고 막 돌아내려오면 러시아 땅에 이른다.그 두만강 하류 오른쪽은 북한의 함북 은덕군 두만강시다.그러니까 두만강물이 하구로 흘러흘러 내려와 3국 국경에 이르는 것이다. 그 두만강물이 하구를 벗어나면 동해를 만나고,이내 염분 섞인 바닷물에 동화되어 버린다.나는 중국쪽 국경지대이자 두만강 하구 방천촌 국경초소에서 저 멀리의 동해를 바라보았다.그리고 연변의 조선족 미래를 생각했다.13억 인구를 가진 중국에서 조선족은 넓은 바다에 버려진 좁쌀 한알에 불과한 창해일속이라는 생각을….조선족이 비록 연변땅에 못자리판을 이루었을 지라도 어디까지나 소수민족이라는 사실을 새삼 느껴야 했다. ○한족인구 1천여명 오늘날 연변 자치주의 조선족 숫자는 85만4천4백68명으로 집계되어 있다.이는 전체인구의 2백13만8천3백97명과 대비하면 고작 39.5%에 지나지 않는다.조선족의 비율이 한껏 높았던 지난 1926년 80.5%와 비교하면 천양지판이다.조선족의 비율은 광복과 더불어 급격히 떨어져 1948년 63.3%,19 79년 40.6%를 기록했다.지난 70년대까지 한족이 단 1가구도 살지 않았던 숭선진에 지금은 1천여명을 헤아리게 되었다.이는 한족의 번창을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그리고 조선족 마을이 한족마을로 뒤바뀐 사례도 허다하다.화룡시 숭선진 하천과 원봉,노과진 치마대,닥화진 차창고산과 차창,용정시 평정 등은 조선족 마을이었다.그런데 지금은 한족들이 주인으로 들어앉았다.그 속에는 쌀의 뉘처럼 조선족들이 더러 끼어있지만,자식들을 한족학교에 보낼 정도로 동화하고 있는 것이다.말이 연변조선족자치주일 뿐 주내에서도 조선족은 소수민족으로 전락했다. 한족마을을 지나다 보면 한뼘은 내려온 듯 싶은 코를 훌쩍훌쩍 들어마시는 아이들이 버글대고 있다.그러나 조선족마을에서는 아이들 울음소리 마저거의 뚝 그쳐버릴 정도가 되었다.왜 그런고 하면 조선족에게는 아이를 둘씩 낳아도 좋다는 생육우대정책을 거들떠 보지도 않기 때문이다.그저 아이 하나면 만족하는 경향이다.오히려 하나밖에 낳지 못하도록 정책으로 묶여있는 한족들은 아이들을 무 뽑듯이 쑥쑥 낳아 슬하에 자녀들이 주렁주렁하다. 한족들에게 아이 하나를 낳도록하는 산아제한을 중국에서는 계획생육이라고 부른다.이 제도는 도시에서 강력하게 적용되어 혼쭐이 날 때가 많다.지난해 요령성 단동시(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신의주와 마주한 옛 안동)정부의 한 고위간부가 아이 하나를 더 낳았다가 큰 피해를 당한 일이있다.그는 10만원의 벌금을 물고 부부의 공직은 물론 당원자격까지 박탈당했다.그러나 연변 산골에서는 계획생육제도를 무시하기 일쑤다.따라서 아이를 낳고도 호적에 올리지 않은 이른바 망류들이 자꾸 늘어나고 있다. ○다산하는 조선족 줄어 연변에서 한족이 늘어나는 또 다른 요인은 외부인구의 유입이다.지난 1960∼63년까지 북경의 중앙정부 정책에 따라 산동성에서 지변청년(변방에 나가 살기를 지원한 젊은이 그룹)들이 대거 연변에 들어왔다.그들은 자리를 잡고 친척은 물론 친구와 이웃들을 불러들여 화룡시 장살령의 경우 한 마을에 1백가구나 되는 산동사람들이 살고 있다.또 문화대혁명시기에 장춘과 같은 대도시에서 하방한 지식청년들도 아예 연변에 자리를 잡고 눌러산다.그들도 물론 가족들을 연변땅으로 데려왔다. 조선족들의 한족화는 옛날에도 있었다.화룡시 덕화진 용연촌 허치영은 일찍 상투를 자르고 호복을 입어 10㏊의 밭을 얻었다고 한다.광복전에 화룡의 이영춘은 한족의 양아들로 들어가 부자가 되었다.그러나 일제통치하에서는 한족이 조선족에 동화되는 사람이 많았고 조선말도 열심히 배웠다. 조선말을 잘못 배워 망신한 호족의 이야기는 지금 들어도 재미있다.왕수찬이라는 지주가 살았다.그는 조선족 소작인에게 돈 많고 위풍당당한 사람이 자기자신을 남에게 소개할 때 조선말로 무엇인가를 물었다.소작인은 『고토리 올시다』라고 가르쳐주었다.그 한족은 조선족 소작인을 만나면 의레 『고토리올시다』라는말로 거드름을 피웠다.그래서 조선족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다.왜냐하면 「고토리」는 함경도 방언으로 어른의 성기를 가리키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은 우리말을 유창하게 구사하는 한족들이 많다.조선족들이 모여사는 백금촌이나 삼합등지의 한족들은 말 뿐 아니라 집과 음식까지도 조선족 풍습을 따르고 있다.하지만 조선족들이 한족에 동화될 차례가 되었다.한족이 지배하는 나라에서 살다보면 어쩔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그 동화속도가 빠르고 해괴망측한 꼴도 종종 보게되었다. ○한족학교에 자식 보내 평정촌에 사는 곽해부(51)라는 한족의 형은 장춘에서 돈으로 여자를 사와서 아내로 맞았다.그 이후 형이 죽자 곽해부는 형수를 아내로 삼았다.한족들에게 형수를 아내로 품에 끼고 사는 것은 별 흉이 아니다.그런데 요즘 조선족 사회에도 사촌형수 정도를 아내로 맞는 일이 가끔 있는 모양이다.몇년전 백금촌의 이종혁(45)은 친구와 아내를 맞바꾸는 새 풍속을 만들어냈다.두 집이 지금은 연길에서 사는데,어른들은 물론 아이들도 서로 친하게 내왕한다는 것이다. 조선족과 한족 사이의 통혼은 아직 흔치 않다.특히 한족처녀와 결혼하는 조선족총각은 손을 꼽을 만큼 적다.용케도 조선족이 한족 며느리를 본 부부를 만날 수 있었다.그런데 일상의 풍습 차이에서 오는 갈등이 심했다.이를테면 시아버지가 낮잠 잘 요량으로 목침을 베고 누워있노라면 그 위를 한족 며느리가 예사로 넘어다닌다는 것이다.처녀들은 심심찮게 한족 총각들과 짝을 짓는다.조선족 처녀들의 변명을 들어보면 허풍은 떨고 까닭없이 여자를 깔보는 조선족 남자들보다 한족남자가 더 좋아서라고 말한다. 어떻든 연변의 조선족들은 줄어들고 자아의 뿌리마저 흔들리고 있다.어느 나라에 살든,또 환경이 열악하든 간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세계각지의 중국화교들과 비교하면 부끄러운 마음이다.특히 인구증가율은 중국 전체의 각 민족 가운데 가장 낮다.다음 세기의 연변은 요령성이나 흑룡강성처럼 잡거구가 될 것이다.?
  • 중국 주재원·여행객 “안전비상”/이상봉씨 피살 계기로 본 현지실태

    ◎유랑인구 대거 유입… 대도시 치안 실종/“달러 많다” 소문에 한국인이 범죄표적 23일 상해시 홍교빈관(강교빈관­호텔)에서 발생한 삼호물산 대리 이상봉씨 피살사건은 중국의 치안 악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이 사건은 한국인의 중국방문 및 체류자가 늘고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도 크게 늘어난 가운데 발생,우려를 더하게 한다. 현지경찰은 이번 사건을 금품을 노린 강도살해 사건으로 보고 있다.금품과 관련,중국에 체류하던 한국인이 피살된 사건은 지난 4월 흑룡강성 하얼빈시에서 식당을 경영하던 서인석씨에 이어 올들어 두번째.그러나 이상봉씨 피살 사건은 호텔내 객실에서 대낮에 발생했다는 점에서 중국체류 국내 주재원들과 여행객들의 걱정은 더 크다. 지난 9월초 길림성 연길시에서 여행중이던 국내여행사 안내원이 술집에서 술에 취해 나오다 조선족등에게 납치,돈을 빼앗기고 머리를 크게 다친 일도 한국 여행자가 중국에서 당할 수 있는 전형적 사건중 하나다.중국주재 상사원 사이에선 술집과 술집 주위에서 걸어오는 시비,특히 조선족청년들의 시비에 주의해야 한다는 것은 이미 상식.흑룡강성·길림성 등에선 한국에 대한 조선족 동포들의 감정이 상당히 악화돼 있어 주의해야 한다. 중국에 체류하는 국내 주재원들은 중국의 치안이 악화되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고 말한다.요즘에는 예전과 달리 총을 휴대한 무장경찰이 사이카를 타고 야간순찰을 돌고 있다. 치안악화의 가장 직접적 원인은 유동인구의 확대.개혁개방의 진전에 따라 엄격하게 이루어지던 거주이전에 대한 통제가 크게 완화됐기 때문이다.치안문제 제로지대라던 북경·상해 등의 대도시에 농촌 등에서 수백만명의 직업없는 「유랑인구」가 유입되면서 이들에 의한 각종 강도사건이 빈발하고 있다.한 중국인은 북경조차도 최근에는 밤거리에서 부녀자들과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강도사건이 빈발한다고 귀띔한다.한국인은 특히 달러를 많이 갖고 있는 것으로 소문나 있다.술집에서 많은 팁을 내놓는 한국인 여행자들이 이런 명성을 더 높이고 있다. 중국 공안당국도 연안지역에서의 범죄가 크게 늘고 있다며 올 하반기들어 광동·심천 등 남부의 치안불안 지역을 포함,전국적 범죄퇴치 활동을 벌이고 있다.불법무기류의 유통과 급속히 늘고 있는 범죄조직도 중국정부가 당면한 골칫거리중 하나.지난 2년간 39만정의 불법무기류를 압수했다는 공안부의 발표(9월)에도 불구,불법무기를 이용한 떼강도와 열차강도가 근절되지 않고 있다.또 대만과 홍콩의 폭력조직이 개방과 자유화 물결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고 매춘과 마약밀매 등에도 조직적으로 관여하는 등 일반시민들의 생활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중국주재 대사관의 한 관계자는 한국 여행자들이 중국내 범죄조직과 범죄자들의 표적이 되고 있다며 혼자 여행하는 것은 가급적 삼가는 등 중국의 치안악화에 따라 여행객들의 주의가 각별히 요구된다고 말하고 있다.
  • 정치행태 변화(금융실명제 1년:5)

    ◎「깨끗한 정치」 가능성 8·2보선서 확인/「검은돈」 유입 차단… 지출감축 부심/선거운동 개선 비상… 후원회 급증 「8·2보선」은 금융실명제가 정치개혁에 접목됐음을 보여주는 사실상의 첫 시험대였다.그리고 그 결과는 일단 「돈 안쓰는 선거의 정착」이라는 좋은 평점을 받았다. 이번 보선의 첫 과제는 새로 만든 통합선거법이 뿌리를 내릴 수 있을 것인가에 있었다.그러나 새 선거법의 모태는 금융실명제라고 할 수 있다.금융실명제가 출발점이 돼 공직자들의 제도적인 재산공개가 이뤄졌고,새 선거법을 포함한 정치개혁 관계법들이 완성될 수 있었다.금융실명제는 결국 부패와 타락,과열과 혼탁으로 얼룩졌던 우리의 정치,선거 문화에 대변혁을 부른 주춧돌이 된 셈이다. 김영삼대통령의 결단으로 마련된 금융실명제는 정치권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검은 돈이 난무하면서 정·경유착의 시비로까지 이어졌던 정치상황이 근본적으로 바뀐 것이다. 무엇보다 「검은 돈」의 유입이 차단되면서 여야는 정당이든,정치인 개개인이든 빠듯해진 정치자금에 익숙해지기 위해 끈임없이 변화를 모색해야 했다.지난 날의 정치행태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고서는 실명제시대의 정치상황에 적응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국회 법사위의 박희태위원장(민자)은 이같은 정치환경을 『노인 노아웃』(no in,no out)이라고 표현했다.정치자금이 들어오지도 않고 나가지도 않는다는 것이다.민자당의 한 의원은 『영수증까지 발급하는 공식적인 후원회비마저 현금으로 가져온다』고 말한다.이 의원은 또 『명절이나 휴가 때 인사치레로 보내던 뒷돈도 없어졌고 쓸돈이 없다 보니 계파끼리 유대를 다지는 모임도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정당 차원에서는 경상운영비에도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지난 날에는 선거 때는 물론 평소에도 막대한 자금을 끌어다 소속 의원등에게 이른바 「오리발」을 나눠주는등 「기름칠」을 했었으나 이제는 합법적인 자금 밖에는 쓸 수가 없게 됐다.중진급 의원들로 말하면 이리저리 조성한 자금으로 계보를 관리해왔으나 이제 그 길도 막혀 탈계보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정치권에 이처럼 음성적 자금의 공급루트가 끊기자 합법적인 공급확대를 위해 소액다수주의의 후원회가 부쩍 늘어났다.2백99명의 국회의원 가운데 금융실명제 전까지 1백50명에 그쳤던 후원회 보유 의원들이 지금은 2백14명으로 늘어났다.특히 신진의원들의 후원회 구성이 눈에 띄었다.중앙당 및 지구당,시도지부까지 합치면 후원회는 모두 3백54개로 엄청나게 급증했다.그러나 후원회의 모금액으로만 정치비용을 충당하기에는 아직도 어려움이 많다.후원금의 상한액이 1억5천만원으로 늘어났지만 상한액까지 모이는 의원들도 그리 많지 않아 대부분 최소한의 경비를 대는데도 안간힘을 써야 한다. 따라서 정당이나 의원들은 자금수요를 줄이는 것만이 실명제시대에서 살아남는 길이라는 것을 체감하게 됐다.민자당은 지구당에 대해 사무국장과 조직부장만 유급당원으로 인정하고 여성부장 청년부장 등은 지구당 위원장의 재량에 맡겼다.의원들은 씀씀이를 줄이기 위해 당원수련대회 등 지역구 행사나 친목회,결혼식등에 보내던 각종 선물이나 조화,부조금 등을 끊을 수 밖에 없게 됐다.이 과정에서 의원들은 마땅히 해야 할 도리를 다 하지 못하는 것같은 생각이 들어 상당히 애를 먹었다고 털어놓고 있다.개인사무실을 내고 있던 일부 인사들은 이를 아예 폐쇄하거나 유급직원을 줄이고 있다. 그대신 의원들은 틈만 나면 「발」로 뛰어야 한다.특히 선거에서는 설령 돈이 있더라도 법이 정한 한도액을 넘어 쓸 수가 없기 때문에 「돈」 대신 「발」로 표를 모아야 한다.처음에는 지역구에 내려갈 때마다 최소한 수백만원씩 풀던 의원들이 돈쓰기를 갑자기 중단한데 대해 일부에서 불만을 토로,곤혹스러운 일도 당했다. 그러나 실명제로 시작된 정치개혁에는 아직 현실적인 장애도 적지 않다.「8·2보선」에서 나타났듯 「돈」이 투입되지 않자 공조직이 움직이지 않는 현상이 야기돼 의원들을 압박하고 있다.유급운동원 대신 자원봉사자제도를 도입했지만 그것도 뿌리를 내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 미,「쿠바난민 유입」 차단 비상/“입국땐 전원체포 검토”

    ◎쿠바선 사상 최대 유혈사태… 36명 사상 【워싱턴·아바나 AP 로이터 연합】 빌 클린턴 미행정부는 7일 쿠바수도 아바나에서 지난주 발생한 최악의 반정부 유혈소요의 정치적 파급효과를 극소화하고 쿠바난민의 대규모 미국유입사태 재연을 막기 위한 비상대책 마련에 나섰다. 미정부는 특히 지난 80년 정신박약자와 범죄자 등 12만5천명의 쿠바인들이 마리엘을 떠나 플로리다남부 해안으로 대거 몰려들었던 집단 난민유입 사태의 재연을 방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서둘러 밝혔다. 리온 파네타 백악관비서실장은 이와 관련,NBC방송의 「언론과의 만남」 프로에 출연,쿠바난민들의 미국 집단유입을 막기 위한 구체적 방법은 밝히지 않은채 『우리는 카스트로에게 미국의 이민정책에 간섭할 수 없으며 마리엘 난민사태의 재발위협을 좌시할 수 없음을 분명히 밝혔다』고 설명했다. 이에앞서 6일 백악관에선 샌디 버거 국가안보담당 부보좌관의 주재로 쿠바사태 대책회의가 열렸다.참석자들은 이 자리에서 마리엘사태와 유사한 위기가 발생할 경우 관계당국의 대응방안을 적시한 연방정부의 비상계획을 검토한 것으로 전해졌다.비상계획과 관련,마이애미헤럴드지는 봉쇄된 해상로를 통해 미국으로 입국하려는 쿠바난민들을 모두 체포하는 방안등이 포함돼 있다고 7일 보도했다. 한편 쿠바언론들은 지난 5일 아바나의 연안부두에서 발생한 민간인 시위대와 경찰진압병력의 충돌로 1명이 사망하고 경찰관 10명을 포함해 모두 35명이 부상했다고 전했다.쿠바공산청년동맹 기관지인 후벤투드 레벨데지는 시위에 가담한 주요단체 지도자들이 구금돼 있으며 이들은 재판에 회부돼 중형에 처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 대학 자판기수익금 한총련 뒷돈으로

    ◎교육부,“차단,지시 계기로 본 자금줄실태/각대학 학생회비 거둬 일정비율 「상납」/문구점 수입·앨범사 찬조금도 상당액 한총련의 자금줄이 도마위에 올랐다. 주사파 운동권 학생들에 대한 비판을 계기로 각 대학들이 학사관리를 강화한데 이어 교육부가 28일 각 대학에 공식·비공식적인 자금줄을 차단하라고 지시함으로써 그동안 비밀리에 이뤄져 오던 한총련의 자금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우선 표면적으로 나타난 한총련의 자금은 각 대학의 총학생회가 거둬들이는 총학생회비로 운영된다. 이를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대학별로 학생 1명당 연간 5천원에서 1만5천원까지 거두고 있어 이를 평균 1만원으로 잡을 경우 전국 1백만 학생으로부터 거둬들이는 돈은 연간 1백억원정도. 그러나 실제로 거둬들이는 회비는 60∼70%선에 그치고 있다는 게 대학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이 때문에 한총련은 출범식·시위등 각종 행사와 집회를 치르는 데 드는 막대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나름대로 자금줄을 확보하고 있다는 게 당국의 분석이다. 이를 위해 한총련 산하총학생회측은 공식적인 총학생회비 외에 다양한 형태로 자금을 비공식적으로 조달하고 있다.그러나 한총련의 개인계좌를 통해 유입되는 돈의 출처는 파악이 불가능한 실정이다. 각 대학 총학생회가 자금을 비공식적으로 조달하는 방법은 학교구내의 수익사업을 통해 일차적으로 이뤄지고 있다.총학생회 산하의 복지부·학생복지위원회·소비자협동조합 등에서 교내의 커피자판기·문구점을 운영해 남는 수익금의 일부를 한총련에 뒷돈으로 제공하는 것을 대표적인 사례로 들수있다. 이화여대의 경우 총학생회 산하에 소비자협동조합을 만들어 여기서 나오는 이익금가운데 연간 1천만원의 장학기금을 내고 나머지는 총학생회명의의 계좌에 적립되고 있으나 그 금액은 베일에 가려져 얼마의 돈이 한총련으로 건네지는지 모를 일이다. 또 다른 비공식적인 방법은 한총련행사와 관련해 거래업체로부터 받아 챙기는 찬조금이다. 구내의 복사·인쇄점,단체로 계약해 일괄 구매하는 졸업앨범대행사,그리고 한총련 행사에 따른 음식업체 등이 모두 한총련의 찬조대상업체들이다. 예컨대 총학생회 간부출신들이 다수 속해 있는 한총련의 「개구쟁이」라는 모임의 역할에서 그 단면을 찾을수 있다. 서울 장충동의 한총련지원사업단인 「개구쟁이」는 졸업후에도 계속적인 유대관계를 맺고 각종 이권사업을 대행해 주고 있다. 한총련은 자체활동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각종 행사때 학생운동관련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목걸이·모자들을 이곳을 통해 구입하면서 그 대가로 리베이트를 챙겨 이를 활동자금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당국은 보고있다. 지난해 10월 숭실대가 학교축제행사인 대동제때 「유관단체」에서 티셔츠를 일괄구입한 것이 한 예이다. 또한 일반학생들에 대한 자체모금활동도 한총련의 자금원에 한몫을 하고있다.한총련의 집회가 잦은 한양대가 집회시 모금활동을 벌이고 지난 6월 한총련간부에 대한 검거령이 내렸을때 이들의 생활비 조달 모금이 대표적 사례.이와는 별도로 한총련은 베를린의 범청학련(조국통일 범민족청년연합)의 지원을 위해 전대협 사진집을 해외학생들에게 팔아 활동비로 쓰고있는 것으로 알려졌다.특히 김현준한총련의장은 자신의 한달 활동비가 약 3백만원이며 자신을 전문적으로 보좌해 주는 학우들이 이를 대주고 있다고 밝히고 있으나 출처와 규모는 베일에 싸여있다.
  • 이산가족 문제:상/정상회담으로 여는 새국면(남·북한 화해시대:5)

    ◎「김·김회담」 성패가를 실질적 최대이슈/두정상 결심하면 “가시적 성과”/북 소극적입장 견지… 속단 불허 분단 반세기만에 처음 열리는 이번 남북정상회담에 걸린 국민적 기대는 엄청나다. 그 중에서도 이산가족 문제의 가시적 해결이야말로 1천만 이산가족을 포함한 온국민의 으뜸가는 소망이 아닐 수 없다. 이는 남북정상회담 개최가 합의된 이후 통일원과 대한적십자사,국내 민간 이산가족 상봉중계단체들에 실향민들의 문의전화가 빗발치고 있는 데서 고스란히 감지할 수 있다. 따라서 이산가족문제는 의제에 대한 사전조정없이 열리는 이번 정상회담의 가장 큰 이슈의 하나로 떠오를 전망이다. 우리측은 이산가족문제 해결이 비단 인도적 차원에서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할 과제일 뿐만 아니라 이번 정상대좌의 성패를 가름하는 관건이라는 점에서 적극적으로 문제제기를 한다는 방침이다.이를 위해 통일원 등 정부내 실무진에선 최근 김영삼대통령이 김일성주석에게 건넬 이산가족 관련 대북 제의의 방향과 관련자료들을 정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측은 지금까지 이산가족의 대종을 이루는 월남민들이 북한체제를 피해 남쪽으로 내려갔다는 점을 내세워 이산가족은 없다는 식으로 강변해왔으며 이 문제 해결에 극히 소극적인 입장을 유지해 왔다.하지만 김주석도 국내외적인 이목이 집중된 이번 정상회담에 이산가족간의 생사확인,서신교환,상호방문 등 인도적인 문제에 반대할 명분은 없을 것이다.때문에 김대통령이 이 문제를 제기할 경우 일단 논의에는 적극적으로 응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산가족문제에 관해 가시적 합의를 이룰 수 있을 지에 관해서는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우선 이산가족문제는 양측 정상이 상대적으로 손쉽게 얘기를 꺼낼 수 있는 소재라는 점이 긍정적 기대를 갖게 하는 요인이다.북한핵 투명성 보장이나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 등 여타 복잡한 정치·군사적 문제에 비해 이산가족 문제는 두 정상이 마음먹기에 따라 회담의 성과를 구체적,가시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사안인 것이다.이같은 맥락에서 김대통령은 이산가족문제가 인도적 차원에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이며 남북관계 개선의 상징적 징표라는 점을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산가족문제는 오랜 시간을 끌어온 현안이기 때문에 이번에도 낙관만 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분단 이후 제3국에서의 상봉을 제외하고 양쪽 당국간의 합의에 의한 이산가족 교류는 지난 85년의 1차 고향방문단(1백명) 교환과 93년 3월의 이인모노인 북한송환이 전부일 정도이다. 이처럼 북측이 이산가족 교류에 소극적인 자세로 임해온 까닭은 남한사정이나 외부사조의 유입에 따른 체제동요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정상회담을 앞둔 현상황에서도 북측의 내부사정은 이같은 우려가 불식될 만큼 호전되기는 커녕 식량난과 경제적 곤경으로 더욱 악화된 실정이다. 다만 북측도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남한과의 경협이나 미­일과의 관계개선 등을 추구하기 위한 분위기 조성에 주력할 것으로 분석된다. 때문에 북측이 우리의 이산가족 교류제의를 마냥 거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그래서 김주석이 카터 전미대통령의 방북시 언질을 준 것으로 알려진 소규모 고령자 고향방문단 교환 등 최소한의 성의표시를 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남북정상회담 중국동포 반응/“조국에 화해의봄은 오는가” 흥분/남·북에 흩어진 친척 동시상봉 기대 남북정상회담이 열린다는 뉴스가 중국에 전해지자 조선족 동포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과연 김영삼대통령과 김일성주석이 만난단 말이냐』며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을 정도로 이들에겐 엄청난 뉴스였다.정상회담을 위한 예비회담이 판문점에서 열릴 것이라는 소식이 들릴 때까지만 해도 『또 말장난이나 하다가 그치겠지』하던 이들이 단 한 차례의 예비회담으로 정상회담이 합의되자 의외라며 놀라고 있는 것이다. 역시 가장 감상적인 사람들은 작가들인 것 같다.조선족 작가로 작가협회 부서기인 한창희씨는 『드디어 한반도에도 화해의 봄은 오는가』하고 흥분하면서 이 지구상에서 가장 늦게나마 진정한 데탕트 기미가 있는데 대해 찬사를 보낸다고 했다. 학자들은 남북정상이 만난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사회과학원 동북아실장인 한진섭 교수는 『50년 동안 대좌 그 자체를 꺼리던 남북정상들이 자리를 같이 한다는 사실은 어떤 구체적 결실보다도 더 중요할 수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드디어 한반도가 긴장완화 단계로 진입하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그는 이번 회담에서 어떤 구체적 성과들이 터져 나오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지만 무엇보다도 만났다는 사실 그 자체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이에 대해 중앙방송의 김형직 기자는 『당장 큰 수확을 기대하기는 어렵다.아직도 남북간에는 제도가 다르고 경제수준이 판이하며 생각하는 게 서로 달라서 획기적 성과를 올리기는 어렵다』고 전제하고 『그러나 50년만에 이뤄진 정상들의 모임인 만큼 어떤 돌파성적인 제안과 합의가 이뤄지지 말란 법도 없다』며 기대를 떨쳐 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일반 주민들이 남북정상회담에 거는 기대는 좀더 현실적이다.외문출판사에서 부역심으로 근무하는 김광렬 씨는 『중국에 사는 2백만 조선동포들은 대개 남과 북에 친인척을 두고 있다.하루빨리 통일이 되어 자유롭게만나고 왕래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하면서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쓸데없는 군사경쟁을 그만두도록 합의함으로써 『그토록 막대한 군사비를 국민생활 수준을 높이는데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그는 남북 어느 쪽이 주도하든 통일만 되면 그만이고,통일형식이 사회주의든 자본주의든 또 양체제가 존속하는 연방제든 이곳 조선족 동포들은 크게 괘념치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젊은 층은 대체로 뿌리의식이 약하다.그래서 남북한 어느 한쪽을 조국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고 그들의 조국은 중국이라고 말한다.이번 정상회담을 보는 시각도 대체로 객관적이고 냉정하다.그들은 북한핵 문제는 어차피 미국­북한간에 풀어야 할 문제이므로 이번 남북 정상회담에서는 핵문제보다는 통일과 관련해 뭔가 물꼬를 터놓아야 한다고 주장한다.30대의 회사원인 서준씨는 『요즘 조선족 청년들은 모이기만 하면 어떻게 해서 돈을 벌 수 있는가가 큰 화제』라면서 남북정상회담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서로 만나봐야 아무런 성과가 없었는데 정상이 만난다고 해서 당장 큰 결실이 나오겠느냐』고 회의적이었다.
  • “북 청소년 이성교제 높은 관심”(“살양말 신어보는게 꿈”:상)

    ◎함흥처녀 여금주양이 전하는 북녘젊은이 생활상 지난달 30일 귀순한 여만철씨 일가의 맏딸 여금주양.16일 서울에서 성년의 날을 맞은 꽃다운 이 함흥처녀는 요즈음 북한청소년들이 진절머리나는 사상학습은 뒷전으로 미루고 돈 버는 일과 이성교제등에 더 많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갓 피어난 꽃봉오리처럼 풋풋한 금주양은 유년기와 사춘기의 많은 추억들이 남아있는 북한에서의 생활을 서울신문과 가진 회견에서 담담하게 털어놓았다.그녀가 밝힌 북한 청소년들의 생활상등을 수기형식으로 3회에 걸쳐 연재한다. ◎연애편지 성행… 데이트할땐 아파트뒤서/여자는 화장품·남자는 가죽구두를 선망/“팬티스타킹 하나가 내월급의 절반… 구입은 엄두도 못내” 사선을 넘어 북조선을 탈출한 우리식구는 지난달 30일 마침내 꿈에 그리던 서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긴장감이 풀리면서 피로가 몰려왔다.눈을 감았다.내가 태어나 20년간 살아온 북한에서 있었던 이런 저런 일들,그리운 친구들의 모습이 하나씩 머리를 스쳐갔다. 사연많은사춘기를 함께 보냈던 김순남,여정애,이은혜,햇빛고등중학교에서 무리지어 다니며 우정을 쌓은 가장 친한 친구들이다. 나는 74년 10월12일 함흥 용성구역(평양 용성구역과 이름이 같아 90년 해안구역으로 바뀌었다)에서 태어났다. 그곳의 도시경영사업소 유치원 원장이자 탁아소 소장으로 어머니가 근무한 덕분에 보살핌도 잘 받고 남들보다 간식도 많이 먹을 수 있었다. ○어린시절에는 풍족 내가 태어났을 때만 해도 사회안전부 특무상사로 제17호공장(함흥화학공장) 안전부장 운전사였던 아버지는 이듬해 안전부 경비소대장(소위직급)이 됐다.별을 달고 다니는 안전부원은 급료도 한달에 1백20원이 넘었고 어디서나 잘 통했기때문에 어린시절은 이래저래 풍족하게 보냈다. 그후 아버지의 전근으로 기차로 1시간가량 떨어진 사포구역 충성인민학교에서 3학년까지 다녔다.엄마가 출퇴근이 힘들어 유치원을 그만두고 밀가루 공장에 취직한 것도 그때였다.회상구역의 정성인민학교로 옮겨 졸업한 뒤 송북여자고등중학교를 다녔으나 89년 혼합(남녀공학)반 방침이 내려와 햇빛고등중학교로 옮겼다.남녀합반으로 고등중학교 5,6학년을 보냈다. 어려서부터 남자같은 성격이었던 나는 톡톡 쏘는 말을 잘해 남학생들과 잘 싸웠다.우리 학교는 각 학년 4개반이었고 우리반은 남자 18명 여자 16명이었는데 한창 사춘기에 접어들 나이여서 서로 티격태격 하기 일쑤였다. 한번은 순남이의 노어책이 없어진 것을 두고 남자애 몇명과 우리 여학생 4명이 크게 다툰적이 있다.남자애들은 키 크고 곱게 생긴 이정철이란 남학생이 주동이었다.순남이의 노어책을 감춘것을 알고 「다리 부러진 노루새끼 한구덩이 몰린다」고 비아냥댔고 남자애들은 우리에게 방석을 집어 던졌다. ○사상공부엔 진저리 그런 이정철이 졸업후 순남이에게「좋아한다」고 고백했지만 순남은 안들은 척하고 그냥 군대에 가버렸다.순남은 무용소조에서 단련된 매끈한 몸매와 체력덕분에 군대체력검사에 합격,모두의 부러움을 샀다. 북한에서는 남자,여자 할 것없이 학교를 졸업하고 군대에 들어가는 것을 제일로 꼽는다.배급도 꼬박꼬박 나오고 월급도 많기때문이다.우리 학교는 다른 학교와 달리 봉건(규제)이 좀 심해 남녀교제가 엄격한 편이었다.겉으로는 아옹다옹했지만 졸업하자 마자 남자애들이 「이리떼」같이 여자에게 심정을 고백하곤 했다.동창생모임에서도 친하게 지냈다. 북한의 청소년들은 대부분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는다.더욱이 사상공부엔 진절머리를 내고 있다.해 봐야 먹고 사는데 큰 도움이 안되기때문이다. 생활이 너무나 고달프고 제대로 먹을 것을 먹지못하기 때문에 어떻게하면 당장에 배불리 잘 먹을 수 있는지가 가장 큰 문제이다.그 다음 관심사는 이성교제다. 대부분 고등중학교 5∼6학년때(17∼18세)부터 이성교제에 관심을 갖는다.영양상태가 나쁜 탓에 남한에 비해 좀 늦다.여학생들도 고등중학교 5∼6학년이 돼서야 첫 생리를 한다. 북한에서는 여기에서처럼 「데이트」라는 말은 쓰지 않는다.가깝게 만나는 이성을 보통 「그 동무」「그 사람」「우리 사람」이라고 표현하는데 보통 친구애인한테는 「니네 그 동무 잘있니?」라고 안부를 묻는다.남한에서는 텔레비전 제목에서부터 사랑이라는말이 넘쳐 흐르는데 북한에서는 어른들도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이 감정을 최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얼굴 갸름해야 미남 음악소조,무용소조 등 각종 소조활동을 하는 학생회관에서 마음에 드는 학생들이 있으면 말을 걸기도 하고 친구들끼리 소개를 해주기도 한다. 소개에도 여러가지 유형이 있다.교제를 빌미로 뜯어먹기 위한 것을 「쪼임선」,재미삼아 하는 것을 「재미선」,결혼까지 할 양으로 만나는 것을 「당대선」이라고 부른다. 남자애들은 얼굴도 예쁘고 신체가 건강한 여자를 좋아한다.여자애들은 키가 크고 얼굴이 희고 갸름한 남자를 미남으로 친다. 아무개에게 「그 사람」이 생겼다는 것이 알려지면 친구들끼리 재미삼아 책으로 점을 봐 주기도 한다.학생들 사이에 돌아다니는 점보는 책은 연필로 베껴 쓴 것을 또 베껴 쓰고 한 것이다.누가 어디에서 처음에 알아왔는지 모르고 명칭도 없다.그냥 「생일있는 그 책」으로 통한다.띠나 생일로 상대방의 성격이 어떤지,장래에는 어떻게 될 것인지,궁합은 잘맞는 지를 알아보는데 『이거 맞갔어?』하면서도 모두들 꽤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가까운 사이일 경우 대부분 보충수업이 끝나는 하오 6시 이후 아파트 뒤에서 만나 그날 있었던 일을 이야기 하다 헤어진다.함흥시내 호랑천 둑은 가장 즐겨 찾는 주말의 데이트장소로 꼽혔다. 영화관은 소란스러워 이성교제하는 남녀는 잘 가지 않는다.남녀학생들의 교제는 보통 연애편지하는 정도로 순진한 편이다. 좀 심한 애도 있긴 있다.우리학교에 노기옥이라는 여자애는 같은 또래 남자친구를 사귀는 것이 아니라 불량청년들과 상습적으로 사귀었다.안전부 「구류장」(감옥)에도 갔던 그 애는 졸업후 악기공장에 취직했는데 제버릇 남 못준다고 그곳에서도 열스런(부끄러운)소문이 파다했다. ○신상옥 영화 화제 하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남자 여자가 껴안는 장면만 봐도 「와­붙었다!」고 호들갑을 떨며 얼굴을 붉히고 어색해 한다. 80년대 신상옥감독이 북한에 와서 만든 영화 「철길따라 천만리」가 당시 함흥에서 최대의 화젯거리였다.남녀가 노골적으로 입맞춤하는 장면이 처음으로 나왔던 것이다.그것도딱 한 장면 나오는데 그 영화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원래 그 영화에는 입맞춤하는 것이 여러장면 나오는데 가위질했다』면서 신감독이 『북한의 예술은 틀에 짜여서 재미가 없다』고 했다는 말까지 떠돌아 다녔다.그만큼 표현의 자유가 없다. 나는 영화보기를 참 좋아한다.영화관은 학교에서 사상교육을 위해 의무적으로 하는 단체관람이나 친한 친구들끼리 떼지어 찾는다. 희극배우 김세영이 나오는 대가족의 이야기 「우리집 문제」는 모두 봤고 신상옥감독이 만든 신필림 영화도 많이 봤다. 하지만 신상옥감독의 모든 영화는 신상옥·최은희부부가 남한으로 돌아간뒤 상영이 중단됐다. 영화는 주로 구역마다 하나씩 있는 문화회관에서 상영하는데 새로 나온 영화는 2원,전에 보던 영화는 70전이다. 이성교제에 관심이 높다보니 외모에 대해서도 신경을 많이 쓴다. 여자애들은 화장품을 가지고 싶어 하고,남자애들은 그럴듯한 가죽구두를 갖고 싶어 한다.『여자는 얼굴이 고와야 하고 남자는 구두가 좋아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여자를 볼때 가장 먼저 보는 것이 얼굴이고 여자는 소개 받을 때 고개를 숙이면서 남자의 구두에 가장 먼저 눈길을 주기때문이다. 생필품들은 주로 중국에서 유입되는 것들로 장마당(시장)에서 밀매되고 있지만 비싼 편이라 웬만해선 엄두를 못낸다.눈썹연필이 10원,입술연지가 15원씩 한다.한번은 3백원하는 중국제 아이섀도도 봤다.그 돈이 있으면 쌀을 사먹지…. 살양말(스타킹)도 갖고 싶어 하는 품목으로 꼽힌다.함흥지역 여성들이 살양말(스타킹)을 신기 시작한 것은 89년 임수경언니가 온후로 기억된다. ○옷은 집에서 만들어 임수경언니가 사리원 농업대학을 방문해 『왜 발 건사를 잘 해야하는 여자들이 맨발에 샌들을 신는지 모르겠다』며 북한여성의 교양수준에 대해 지적했다고 한다. 그때부터 중국제 살양말이 장마당에 선보이기 시작했고 처녀 언니들은 거금을 들여 사 신기도 했다. 무릎까지 오는 것은 20원,허벅지까지 오는 것은 30원,허리까지 오는 것(팬티스타킹)은 40원이나 한다.팬티스타킹 하나가 교양원인 내 월급(98원)의 절반 가까이 되니 꿈도 못꾼다. 북한 여학생들은 바느질솜씨 하나는 세상 어느나라에 내놓아도 좋을듯 싶다.가슴띠(브래지어),블라우스,달린옷(원피스)등을 모두 집에서 만들어 입기 때문이다.가슴띠는 고등중학교 5∼6학년부터 사용하기 시작하는데 면이나 테토론을 끊어다 만들어 사용한다.
  • 병무청의 징병행정 과학화(국정탐방)

    ◎설비 첨단화/징병검사 등 과학화로 공정·신뢰성 높인다/종합병원급 정밀신검장비 확충/민원ARS 5개 직할시로 확대 병무청은 한때 『부조리의 온상』이라는 오명으로 불리기도 했다.『돈 있고 빽 있으면 군대 안가도 된다』는 말이 유행처럼 나돈때도 있었다. 그런 병무청이 지난해 「병무부조리 제로」라는 기록을 세웠다.창설 23년만의 일이니 대단한 경사로 쳐줄만도 하다. 국민들 입장에서 보면 당연한 일인데도,부조리 척결이 그만큼 어려웠다는 얘기도 된다.그래서인지 요즘 병무청 직원들의 어깨가 활짝 펴진 느낌이다.. 부조리가 없어지게 된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그중 첫째는 뭐라해도 직원들의 척결의지였을 것이다. ○23년만에 첫 기록 그러나 의지가 아무리 강하다해도,그를 뒷받침해주는 것들이 필요하다.병역의무자와 그 가족들의 인식전환·제도개선·장비확보등등…. 이 모든 것이 부조리를 없앤 요소들이다.이중 특히 병무행정의 과학화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병무청이 지난 2년동안 전산화에 투입한 예산은 고작 1백10억여원에 지나지 않는다.앞으로 투입액이 더 늘어날 것이지만,적은 돈으로 효과를 극대화시킨 것이라 하겠다. 아직 완벽한 시스템이 구축된건 아니지만,예비군업무·징병검사·현역입영·방위소집·국외여행허가자 관리등 거의 모든 업무가 전산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산·과학화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게 아니다.이를 다루는 사람이 얼마나 엄정한가도 중요하다. 병역문제의 시발점이랄 수 있는 징병검사가 병무행정의 핵심이 되기 때문이다.징병검사는 크게 3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신체검사 담당군의관을 비롯한 징병검사 종사원,검사 시설및 장비,그리고 병역의무자와 가족이 그것이다. 즉,군의관은 군에서도 모범적인 전문의로 엄선돼야 한다.검사종사원도 마찬가지다. 서울청에만 우선 설치되었지만 뇌파·병리검사기등 최신의료장비도 검사의 공정성과 신뢰성 확보에 큰 보탬이 된다. 여기까지 잘 되더라도,병역의무장정이나 그 가족이 판정결과를 믿으려들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병역판정기준의 적극공개로 믿음을 줘야할 필요가 있다. 병무부조리가 없어졌다는 것은 이들 3요소가 박자를 잘 맞췄다는 걸 의미한다. 병무청의 전산업무는 컴퓨터로 병역자원을 관리하고,통지서를 발부하는 단순한 차원을 뛰어 넘어야한다. ○모든 업무 전산화 징병검사 결과의 판정,입영일자와 입영부대의 결정,병력동원 소집대상자의 지정과 소집통지서 작성등 핵심적 일들까지 처리돼야 한다. 이에따라 전지방병무청의 컴퓨터를 본청 중앙전산망으로 연결시켰다.그래서 지방병무청간의 병적조회·병적이관등의 업무가 빨라졌다. 또 군복무필자도 각종 증명서를 떼려할 경우,굳이 본적지까지 가지 않더라도 아무 지방병무청에서도 발급받을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지난해 우선 서울청에 병무민원 자동안내전화(ARS)를 설치,서울에 병적이 있는 사람이면 전국 어디서든 02-754­3911만 누르면 24시간 연중무휴로 입영일자등 궁금사항을 안내받을 수 있다. 이 전화는 설치 이후,폭발적 인기를 얻어 월평균 16만건 이상 벨을 울려댄다.병무청은 올해 이를 부산 광주 대구 인천 대전등 직할시 지역병무청에 설치할 계획. 올해 징병검사를 받게되는 대상자는 만19세가 되는 74년생들.검사는 오는 26일부터 전국적으로 일제히 시작되어 11월30일까지 계속된다. 이들 50여만명은 「지난해 선배」들보다 더 큰 공정성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병무부조리 제로」를 기록한 병무청이,신바람 나서 더욱 공정성·엄정성을 내세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징조는 여기저기서 나타난다.우선 정밀검사를 위해 일일검사인원을 축소,지난해 2백50명 수준이던 것을 올해엔 1백50명∼2백명으로 끌어내린다. 또 징병검사장수준을 종합병원급으로까지 높인다는 「욕심」아래,직할시지역 병무청에 각종 최신의료장비를 설치한다. ○판정기준 등 공개 병무행정의 공개와 관련해서는 ▲질병정도에 따른 판정기준이 수록된 「징병검사 이렇게 합니다」라는 팸플릿 60만부를 징병검사통지서에 동봉·배포하고 ▲신문·방송·잡지등에 검사판정기준을 완전공개해 병역의무자 주변의 악덕브로커 접근을 차단하며 ▲병역판정에 불만이 있을 경우,판정현장에서 징병관에게 이의를 제기하면 전원 재정밀검사를 받도록 해두었다. 여하튼 적은 예산으로 과학화를 이뤄 23년간의 고질적 부조리를 없애버린 병무청의 경우는,한때 유행했던 말처럼 「성공사례」라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정부부처에서 일부 발견되는 「2000년대의 ○○행정 구현」이라는 낡은 표어는,병무청에선 굳이 필요없어 보였다. ◎병역특례제/산업체 인력난 덜게 편입자격 대폭 완화/올부터 농어민후계자도 4천여명 혜택 병역특례제에 대한 관심이 높다. 이는 병역의무에 대한 과거의 「부조리」때문이다.한마디로 누구는 군대에 가고,누구는 안가느냐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 86년부터 특례제를 시행했다.그동안 어려움은 물론,오해도 많이 샀다. 정부 부처간 갈등도 많았다.예컨대 국방부는 현역이 많이 들어오길 바랐지만,교육·상공·노동부등은 인력확보 차원에서 견해를 달리 했다. 『후진외국의 저급노동인력까지 유입되는 판에,고급화된 국내인력까지 꼭 군대에 가야되는 것이냐』는 논리였다. 그래서 정작 병력을 동원해야하는 병무청은,그동안 특례보충역 확대를 위해 관계부처와 티격태격할 수 밖에 없었다.이는 날로 심각해지는 산업체 기능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해서였다. 특례제란 한마디로 군소요 병력충원에 지장이 없는 범위내에서,산업체 기능인력을 지원하는데 중점을 두는 것. 병무청은 지난해 병역특례법을 손질,기능요원 특례보충역의 편입자격을 대폭 완화했다. 이와관련,병무청 신용욱징모국장(사진)은 『한국과학기술원등 특정연구기관의 육성과 기초과학연구집단및 광부·선원·농어촌후계자등 근무여건이 열악한 계층들을 지원하는데 역점을 두었다』고 말했다. 신국장의 말처럼 실제 특례업체는 지난 90년까지 평균 6백50여개이던 것이 91년 1천4개,92년 3천7백63개로 늘어났고 올해는 무려 4천9백75개로 확대됐다.채용실적 또한 지난 91년까지 연평균 3천여명에 지나지 않았으나 92년엔 1만3천2백여명으로 엄청나게 늘어났다. 특히 농어민후계자등을 특례보충역에 포함시키는 내용의 개정법안이 올부터 시행됨에 따라 4천7백여명이 혜택을 받게된 것은 특기할만 하다. 병무청은 앞으로도 과학기술의 진흥,국가산업의 육성등을 위해이 제도를 더욱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그러나 예·체능분야등 특정분야의 병역특례 요구는 들어주지않을 방침이다. ◎“병무부조리 제로 영속화”/기피의심사 2천명 별도관리/이대희 병무청장(인터뷰) 서울 후암동 병무청장실은 별 꾸밈없이 수수하다. 소파와 원탁테이블, 자스민과 난이 한분씩 있을 뿐 흔한 표어같은 것도 걸려있지 않다.방주인의 성격이 방분위기를 그렇게 만들어 놓았다. 병무행정의 과학화·공개화를 조용히 추진해온 이대희청장의 마음은 넉넉해 보였다. ­취임 2년을 넘기셨는데,새해 병무행정을 어떻게 펼치실 작정입니까? 특히 「병무부조리 제로」라는 지난해의 기록에도 불구하고,아직 사회일각에선 「돈과 권력만 있으면 군대 안가도 된다」는 생각이 없어지지 않고 있는데요…. 『병무행정의 근간은 현역·면제등의 병역처분을 하는 징병검사인데,이 징병검사가 잘되느냐 못되느냐에 따라 병무행정의 성패가 좌우되는 것입니다.군특명검열단장 재임시의 경험을 살려 「단 한점의 의혹도 없애겠다」는 각오로 그간 문제가 많았던 방위병제를 폐지하고,병역판정 기준을 공개하는등 나름대로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일부 유명연예인과 프로운동선수의 무릎수술등 말썽이 있었잖습니까? 『솔직히 재임2년간 가끔 제친구들을 만나도 병무청을 「부조리의 온상」으로 인식하고 있어 불쾌하기 짝이 없었습니다.하물며 국민일반은 어떠했겠습니까? 그래서 현재는 소위 선망직종으로서 병역면탈기도가 우려되는 사람들 2천1백여명에 대해서는 별도명부를 작성,계속 추적관리를 하고 있습니다.아무튼 올해는 기필코 「병무부조리」라는 단어가 병무행정사에서 지워지는 원년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징병검사의 공정성 확보를 위한 구체적 방안은 무엇입니까? 『우리 모두가 바라는 이상적 징병검사란 군에서 엄선한 훌륭한 군의관들이 최첨단 의료장비를 이용해 정확하게 신체검사를 실시,공정한 판정을 하고 병역의무자나 그 가족이 판정을 적극 신뢰하는 상태를 말합니다.이를 위해 지난해에 우선 서울청에 초음파·뇌파·병리검사기등 최신의료장비를 도입한데 이어 앞으로 이를 전지방청에 설치할 계획입니다』 ­우리의 징병검사제가 아직은 선진국에 비해 낮은 수준 아닙니까? 『그렇습니다.모든게 예산과 직결됩니다만,우리가 현재 노력을 경주하는 것도 선진국과의 격차를 최소화하자는 것이지요.유럽국가는 하루 30명꼴이지만 우리는 현재 하루 징병검사인원이 2백50명이나 됩니다.올해는 이를 최소 2백명 수준으로 끌어 내리고,최신장비 구입도 점차 늘려 징병검사를 진료차원으로 시행할 작정입니다』 ­병역의무자들에게 하고싶은 말씀이 있습니까? 『일부 젊은이는 군생활을 마치 「허송세월」또는 「잃어버린 시간」으로 인식하지만 이는 근시안적 생각입니다.긴 인생여정을 놓고 볼 때,군복무기간은 참으로 값진 체험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것입니다.저는 국가관을 강조하지 않겠습니다.자립심과 인내심·협동심을 갖춘 튼튼한 청년­그것이 군생활을 마친 우리들 젊은이의 모습 아니겠습니까?』
  • 막판 금품살포 철저 차단/정당 사조직·청년단체 불법 감시 강화

    ◎선거관계장관회의 정부는 11일하오 정부종합청사 회의실에서 현승종국무총리 주재로 제8차 공명선거관리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종반전에 접어든 각당및 무소속 후보들의 선거운동이 과열화될 것에 대비해 김권·타락선거운동과 기업자금의 선거유입을 차단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정부는 특히 막판의 집중적인 금품살포를 막기위해 남은 1주일동안 전행정력과 검·경찰력을 총동원해 각 정당 산하의 사조직과 청년단체및 관련기업을 집중적으로 감시키로 했다. 내무·재무·법무·총무처·공보처·정무1장관과 서울시장·청와대및 총리실 관계자등이 참석한 이날 회의에서 현총리는 『대규모 금품살포와 흑색선전등에 대해 검·경찰뿐아니라 가용공무원을 선관위에 최대한 지원,24시간 현장감시,단속활동을 전개하라』고 지시했다. 현총리는 일부 정치권의 「편파수사」주장과 관련,『구체적인 위법사례가 있을 경우 즉각 수사해 공정하고 일관되게 신속히 사법처리하라』며 『최근의 타정당 사무실무단침입및 절취등 불법행위도 엄정히 조치하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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