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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언대] ‘민생치안 파수꾼’ 전·의경에 격려를

    인천경찰청 공보실에서 근무하고 있는 의경이다.공보실의 업무중 하나인 매일 아침 언론에 보도되는 경찰관련 기사를 챙기면서 요즘 전의경의 문제점과 자체사고에 대해 보도되는 기사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 본인 역시 의무경찰로 복무하는 입장에서 같은 동료들이고 동기들인 전국의 전의경들에 대한 좋지 않은 기사를 보며 매우 안타까운 마음을 감출 수 없다.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같은 동료이고 전우라는 사실이 우리 전 의경들의 마음을 더욱더 아프게 한다.연일 이어지는 집회시위의 경비업무와 범죄예방에 불철주야 뛰고 있는 전의경들이 마치 조직폭력집단처럼 국민들의 이미지로 자리잡고 매달 모집하고 있는 의무경찰의 지원율 또한 점차 줄어들고 있는 것이 전의경의 현주소이다. 또한 전의경 역시 국방부 병력들과 마찬가지로 2년 넘게 부모형제와 헤어져 군복무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노고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과 군복무를 편하게 하기 위해 자원입대 한 것처럼 편견을 가지고 바라보는 사람들 또한 많다는 것이다. 한여름 뜨거운아스팔트 위에서 매연에 찌들어 교통정리를 하고 두꺼운 진압복 속으로 비 오듯 땀을 쏟으며 대규모시위집회 상황에 뛰어드는 것이 과연 군복무를 편하게 하는 것인가 하는 스스로에 대한 의문조차 갖게 한다. 또한 전의경하면 과거 군사정권시절 민주화를 외치던 많은 젊은 청년들에게 최루탄과 폭력을 행사하며 무력으로 시위진압을 하던 전투경찰을 떠올리며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국민들이 아직도 적지 않다는 것에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이렇게 현실과 달리 왜곡된 시각으로 전의경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생각 역시 열심히 복무하는 많은 대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근무의욕을 상실케 하며 이러한 것이 자체사고의 원인중 한가지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전의경은 공식적인 명칭으로 ‘전투경찰순경’이라 하며 작전전경(전경)과 의무경찰(의경)로 나뉜다.작전전경은 육군병력중 훈련소에서의 차출이고 의무경찰은 100% 지원제이다.이 때문에 의경은 전경과 달리 지원해서 입대하지 않으면 복무를 할 수 없지만 전경은 무작위 차출이기 때문에 아직 군에 입대하지 않은 장정들은 누구나 전경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전의경 역시 나라의 부름을 받고 국가와 국민에 충성을 다하고 있는 군인이자 민생치안을 위해 밤낮으로 뛰고 있는 우리의 이웃이며 민중의 지팡이이다. 이런 전의경에 대한 국민들의 따뜻한 눈길과 격려로 전의경대원들의 사기 진작은 물론 대원들간의 상호존중으로 구타 및 악습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고 부대내 자체 사고와 문제점 지적으로 아침신문의 일부분을 장식하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반디
  • NGO /관변이미지 벗고 자유·인권·평화운동 전개 자유총연맹 거듭나기

    ‘왕따(집단 따돌림)상담,탈북 청소년 돕기,이라크 난민지원자금 모금,해외 자원봉사활동 등등….’ 대표적인 반공·이념단체였던 ‘자유총연맹’이 자유·민주·인권·평화를 표방하는 NGO로 거듭나고 있다.관변 이미지 탈피가 최종 목표이다. 자유총연맹은 특히 지난해 7월 유엔경제사회이사회(ECOSOC)의 NGO회원으로 가입한 뒤 ‘국민과 함께하는 자유총연맹’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평화운동사업과 함께 빈곤퇴치,자원봉사활동 등 각종 시민운동을 펼치고 있다. 전 세계 978개의 NGO가 활동중인 ECOSOC에는 국내 대표적 시민단체인 환경운동연합도 가입돼 있다. ●관변단체 이미지 벗기 자유총연맹은 지난 54년 아시아민족반공연맹이라는 이름의 반공단체로 출발했다.그동안 정부로부터 20억원이 넘는 국고보조금을 받아온 대표적 관변단체라는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요즘은 사정이 크게 달라졌다.국고보조금은 지난 94년 24억원에서 올해 2억원으로 대폭 줄었다. 정치성을 띤 동원 시위가 주조를 이뤘던 활동내용도 달라졌다.올해의 경우 ▲글로벌 리더 양성 ▲통일준비 교원연수 ▲민족화해 협력사업 ▲청소년 공동체교육 ▲국제교류협력 등을 역점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다른 NGO에 비해 손색이 없을 정도다. 장수근 홍보매체본부장은 “자유총연맹이 과거 ‘완고한 보수’였다면 지금은 ‘개혁적 보수’라고 할 수 있다.”면서 “진보와 보수는 적대적인 관계가 아니라 공존하면서 함께 사회발전을 추구하는 관계”라고 밝혔다. ●대학생 등 젊은 회원 늘어 대학생 등 자발적으로 가입하는 젊은층 회원이 과거보다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는 점도 특징이다. 전국 3728개 조직 50만여명의 회원 가운데 9만 5000여명이 20∼30대 청년층이다.대학생 해외자원봉사활동과 대학생 자원봉사모임 등을 활발하게 펼친 결과다. 지난 26·27일 이틀간 강원도 홍천에서 글로벌 봉사단 대학생 15명과 대학생 멘터(지도교사) 30명에 대한 교육을 실시했다.이들은 오는 8일부터 30일까지 적도의 오지 파푸아뉴기니에서 방역과 의료봉사,한국어 교육 등 봉사활동을 펼칠 예정이다.지난 98년 처음 시작해 몽골과 베트남,라오스,루마니아 등에 이어 올해로 5번째 행사이다. ●국제무대에서 한국위상을 높인다 자유총연맹은 지난해 ECOSOC의 NGO회원으로 가입한 뒤 다른 시민단체들과 긴밀한 유대관계를 맺고 있다.ECOSOC에 가입한 국내 NGO는 환경운동연합과 한국여성단체협의회,굿네이버스 등 10개에 불과하다. 4년에 한번씩 서면으로 ECOSOC 이사회에 상세한 활동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또 현재 2등급인 ‘특별협의 지위’에서 1등급인 ‘일반협의 지위’의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 앞으로 ▲인권사업 ▲사회불평등 개선사업 ▲의료·노인복지사업 ▲교육·청소년사업 ▲평화운동사업 등과 함께 해외 지부망을 확충해 한국의 대표적 NGO로 발돋움한다는 복안이다. ●그래도 갈 길은 멀다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자유총연맹이 과거와 달라졌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시·도지부 사무실의 구민회관 특혜임대와 지방조직에 대한 자치단체 보조금 지원 등 일부에서 제기되는 잡음을 해결해야 거듭나기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또 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는 진정한 NGO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회비납부 활성화를 통해 재정자립도를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자유총연맹이 국내 대표적인 보수단체로서 각종 역할을 활발히 해나가고 있지만 건전한 보수단체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정부로부터 주어진 일부 기득권을 포기하는 등 한계를 뛰어넘어야 한다.”면서 “아울러 다소 폐쇄적인 조직운영에 다양한 의견을 지닌 각계 각층 전문가들의 참여를 활성화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조현석기자 hyun68@
  • “시신 앞에 거짓은 없죠”/ 국과수 ‘홍일점’ 법의관 박혜진씨

    놀랐다.임신 6개월째 불룩 솟은 배가 거추장스러울 법도 한데 사진기자의 요청에 망설임없이 자연스러운 포즈를 취했다.거침이 없었다.말로는 법의학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지원에는 옹색한 현실,사건현장을 제대로 보존하지 않는 후진 수사관행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꼬집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홍일점 법의관인 박혜진(朴彗鎭·34)씨는 사람을 기분좋게 놀래키는 재주를 가졌다.레지던트 때 잠잘 시간을 쪼개 딸을 둘이나 낳았다고 거침없이 털어놓는 박씨를 2일 만났다. ●오전 9시10분 부검대 앞에 선다 법의관은 전국에 모두 18명.서울 국과수에 10명,대전의 중부분소,부산의 남부분소,전남 장성의 서부분소에 모두 8명이 근무한다.이 가운데 여성은 박씨가 유일하다. 법의관 한 명이 한 번에 시신 4∼5구씩 일주일에 두 차례 부검을 한다.사인(死因)을 쉽게 파악할 수 있는 ‘평범한 시신’은 20∼30분이면 끝나지만,경우에 따라서는 오래 ‘헤매기도’ 한다고 했다. 최근에는 송곳에 찔려 죽은 40대 남성의 시신을 부검하면서 무려 2시간30분을 끙끙앓았다.“피부에 작은 구멍이 엄청 나 있는데,도무지 어디로 들어갔는지 모르겠더군요.결국 2시간 동안 샅샅이 뒤져서 송곳 구멍 30개를 찾아냈지요.” 이처럼 예리한 흉기에 찔려 내장기관이 상처를 입은 경로를 파악하고,표피에 남은 상처로 범행도구를 밝혀내는 것도 모두 법의관의 몫이다.부검팀은 박씨처럼 전문의 자격증을 가진 법의관 1명과 보조 연구사 2명,사진사 등이 한 조를 이룬다. 부검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감정서’를 작성하는 일이다.부검 직후 대략적인 사인은 알려주지만,보고서 형식으로 자세하게 문서를 만드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고 박씨는 설명했다. ●숨길 테면 숨겨봐,꼭 밝혀낼 거야 박씨는 법의부검이 사건의 ‘진실’을 푸는 중요한 열쇠라고 강조했다.집단으로 구타당해 숨졌다고 신고된 한 청년의 시신을 ‘열어보니’ 그는 교통사고로 장기에 손상을 입고 숨진 상태였다. 부검에 참석한 강력반 형사는 ‘교통사고사’라는 박씨의 설명을 듣자마자 전화를 걸어 “야,그거 우리것 아니야.‘뺑반’이래.”라고 했다.‘뺑소니사고 전담반’ 형사에게 사건이 넘겨지는 순간이었다. “두 명이 차를 타고 가다가 사고를 당해 한 명만 살게 되면,남은 사람은 운전을 안했다고 우겨요.그런데 다른 사람의 시신을 살펴보면 모든 게 명확해져요.”운전석의 안전벨트 방향,차가 어딘가에 부딪힐 때 가슴에 남는 운전대 자국 등 결코 ‘지울 수 없는’ 사건 현장의 증거가 고스란히 남기 때문에 “시신 앞에 거짓은 없다.”는 것이 박씨의 지론이다. ●남이 ‘가지 않는 길’을 택했다 그는 이화여대 의과대학 89학번으로 예과·본과 6년을 거쳐 인턴,레지던트로 대학병원에서 5년 동안 공부했다.전문의로 첫 발을 내디딜 무렵,박씨는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선택하기로 결심했다.해부병리학을 전공하면서 레지던트 때 국과수 부검현장을 지켜본 기억이 떠올랐다. “목숨을 잃게 한 결정적인 경로를 쫓다보면 추리 소설을 읽는 것보다 더 흥미진진하지요.” 지난 2001년 4월 특채로 국과수에 들어간 박씨는 행정자치부 소속 5급 공무원 신분으로 부검대 앞에 선다.박씨는 “처우가 열악한 것이 사실”이라며 외국의 법의관은 평균 수준 이상의 전문의 대우를 받는다고 귀띔했다.적절한 보상이 곁들여져야 인재가 법의학에 뛰어들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국가차원의 재난관리시스템 필요해 지난 2월 대구 지하철 참사는 안타까운 인재(人災)였고 정부는 후진적인 방법으로 사후처리를 했다고 박씨는 꼬집었다.사고현장부터 깨끗하게 ‘물청소’를 했다는 것이 충격이었다.박씨는 퇴근도 미루고 경찰·대책본부 등에서 연락이 오기만 기다렸는데 결국 그날은 아무도 국과수에 자문을 구하거나 부검을 의뢰하지 않았다고 안타까워했다.그는 “큰 사고가 날 때마다 우왕좌왕하지 말고 평소에 노하우를 쌓아온 전문가로 ‘재난관리시스템’을 구성,만일의 사고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국과수 통계로는 1년 반에 한 번씩 대형 사고가 터집니다.평소 준비를 하지 않으면 다음에도 마찬가지겠죠.누군가는 물청소를 하고,유족은 혼절하고….” ●국과수가 혐오시설이라니 법의학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단순 부검뿐 아니라,각종 사고현장의 감정의뢰도 잇따라 늘고 있다.기자가 국과수를 찾았을 때도 앞마당 주차장에는 교통사고를 당한 승용차가 늘어서 있었다.사고 경로와 원인을 밝히기 위해 증거물로 채택한 것이었다.업무가 늘면서 국과수 건물도 비좁아지고 있다. “자투리 공간에 새 건물을 지으려고 했더니 이웃 아파트와 연립주택 주민들이 몰려와 ‘피켓 시위’를 하더군요.혐오시설이라구요.” 대형 사고 때마다 궂은 일은 도맡아하지만 시신 확인이 늦다고 유족의 항의를 받는 국과수.그러나 직원들에게는 이 일이 ‘천직’이라고 했다. 죽은 사람만 대하니 태교에 좋지 않겠다고 말했더니 “내가 즐겁게 일하면 아기도 잘 이해할 것”이라고 되레 활짝 웃었다.변호사인 남편 이동기(38)씨,두딸 지우(5)·지원(4)이와 도란도란 행복한 삶을 가꾸고 있다는 박씨는 “법의학을 더욱 파고들어 이 분야의 대가가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글 박지연기자 anne02@ 사진 이언탁기자 utl@
  • 한총련 출범식·여중생 범대위 집회 경찰, 100개 중대 1만여명 병력 배치 / 주말 충돌 비상

    서울 도심에 비상경계령이 내려졌다. 한총련 11기 출범식 행사와 새만금 간척사업 찬반 집회,반전 페스티벌 등 수만명이 참석하는 대규모 집회가 신촌 연세대 주변과 광화문,시청 앞에서 31일 잇따라 열린다.30일 오후부터 연세대에 집결한 한총련 소속 대학생 5000여명은 주말 오후 반전 촛불집회 등에 합류할 예정이어서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그러나 30일 밤 한총련이 연세대에 집결하는 과정에서 한때 경찰과 대치하기도 했지만 경찰의 탄력적인 대응으로 우려했던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한총련 출범식 전야행사 이날 밤 연세대 노천극장에서는 전국에서 모인 대학생 5000여명과 시민·사회단체 회원 등이 ‘한총련 출범 10주년 기념대회’와 ‘청년학생 통일 한마당’ 행사를 열었다.송영길 민주당 의원 등 전대협 동우회 회원 30여명도 참가했다.경찰은 오후 들어 학생들이 연세대에 모여들자 27개 중대를 주변에 배치,검문검색을 실시했다. 일부 대학생들은 이날 오후 도심 진출을 시도하다 경찰과 맞섰다.서총련 소속 대학생 350여명은 경기대에서집회를 가진 뒤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 앞을 거쳐 연세대로 행진하는 도중 2시간여 동안 대치했다. 또 밤 10시쯤 남총련 소속 학생 700여명이 전세버스 14대에 나눠 타고 연세대로 들어가려다 경찰과 1시간 가량 대치했고,경찰이 깃발을 압수하는 과정에서 실랑이가 벌어졌다.그러나 경찰과 학생 모두 충돌을 피하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경찰,“탄력적으로 대응” 경찰은 당초 한총련 집회를 원천봉쇄할 것인지를 놓고 고민하다 결국 유연하게 대응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출범식을 완전히 봉쇄하려다 학생들이 도심 곳곳으로 흩어져 산발적인 시위를 벌이는 결과를 빚어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합법화를 추진하고 있는 한총련 지도부도 행사가 강경 일변도로 흐르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우대식(27) 한총련 대변인은 “이번 행사의 기본방침은 공권력과 물리적인 마찰 없이 평화적으로 대회를 마치는 것”이라고 말했다.그러나 이적단체인 한총련이 대규모 집회를 열었는데도 경찰이 지나치게 여론의 추이를 의식,경비에 미온적이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최기문 경찰청장은 “학내 행사에 공권력을 행사하는 것에 신중을 기하자는 데 김두관 행자부장관과 의견이 일치했다.”고 밝혔다. ●오늘이 고비 새만금 간척사업에 반대하며 ‘삼보일배(三步一拜)’ 행진을 하고 있는 수행단은 31일 청와대와 세종로 정부중앙청사를 거쳐 오후 2시 시청 앞에서 ‘새만금 사업 반대 범종교인 기도회’를 갖는다.또 여중생 범대위는 오후 7시 광화문 일대에서 1만 5000명이 참석한 가운데 ‘반전·평화 페스티벌’이라는 이름으로 대규모 촛불 추모집회를 연다.한총련 소속 대학생들도 가세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경찰은 31일 신촌과 광화문 등에 100여개 중대,1만여명의 경찰병력을 배치해 돌발적인 불법시위에 대응하기로 했다. 장택동 이영표 이두걸기자 taecks@
  • 保·革진영 새달 ‘100만 시위’ 맞대결/相生의 ‘톨레랑스’ 어디에

    ‘민주항쟁의 달’이자 ‘호국보훈의 달’인 6월을 맞아 한반도가 또 한번 보·혁 대립의 격랑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진보진영과 보수진영은 6월 중 ‘100만 시위’를 각각 준비하면서 벌써부터 ‘전의(戰意)’를 불태우고 있다.노무현 대통령이 최근 보수적 경향으로 돌아서면서 진보-보수 진영은 대정부 투쟁 수위에 혼선을 겪고 있다.그러나 상대를 향한 적대감은 더욱 깊어지는 느낌이다.양측이 모두 자제하지 않을 경우 최근 국가기강 해이 등과 맞물려 사회 전체가 큰 혼란에 빠질 수도 있다.한·미 정상회담 결과에 대한 시각차도 확연해 외교적 파장도 우려된다.‘톨레랑스’의 정신으로 상대의 주장을 인정하는 풍토 확립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100만 대 100만의 세대결 새달 13일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사망 범국민대책위원회’(범대위)는 여중생 사망 1주기를 맞아 서울 시청광장을 비롯한 전국에서 촛불 대행진을 계획하고 있다.이에 맞서 한국자유총연맹 등 보수단체와 종교단체 역시 일주일 뒤인 21일 같은 장소에서 ‘반핵·반김(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및 6·25,6·29(서해교전) 전몰자 추모대회’를 기획 중이다.양측 모두 100만명 참가를 공언하고 있다. ▶관련기사 4·5면 범대위측은 ‘100만 촛불대행진’을 위해 10만명 준비위원을 모집하고 있으며,25일 현재 3만 2000여명이 등록했다고 밝혔다.‘사대 굴욕외교 노무현 정권 규탄’과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개정 요구’ 등이 대회 슬로건으로 준비되고 있다. 보수측에서는 한국자유총연맹·재향군인회·성우회를 비롯한 114개 단체와 순복음교회·광림교회 등 5개 대형교회가 합동으로 21일 대회를 준비하고 있다.한·미 정상회담에 대한 지지결의도 할 예정이다. ●극단적 태도가 문제 지난달 19일 서울 시내에서는 보수·진보단체의 젊은이들이 주최하는 집회가 동시에 열렸다.‘반핵·반김 자유통일 4·19청년대회'와 ‘4·19반전평화 청소년 행동의 날' 행사였다.각각의 행사에 참여한 청소년들의 입에서 ‘빨갱이’-‘미국의 주구’란 극단적 용어와 고함,삿대질이 오갔다. 진관 스님은 “이 국토에 양키만 없으면,통일이 된다면우리에겐 노숙자 없지.”라는 시구로 범대위 사이트의 네티즌들에게 촛불 대행진 참여를 호소하고 있다.반면,보수진영 단체들은 김정일 정권을 ‘적이자 악’이라고 보는 자세에서 한치도 양보하지 않고 있다. 김수정기자 crystal@ 톨레랑스란 ●프랑스의 필립 사시에가 지은 ‘왜 톨레랑스(tolrance)인가.’라는 책이 번역돼 나오면서 인용되기 시작했다.‘톨레랑스’(관용)란 상대방이 내 생각과 다를 때,그의 생각을 뜯어 고치기 위해 강제와 폭력을 동원하는 대신 차이를 용인하는 태도를 말한다.저자에 따르면 진리의 이름으로도 오류를 무찌르려 해서는 안된다.그러면 세상은 순식간에 피바다에 빠지기 십상이다.다만 톨레랑스의 사회를 위협하는 앵톨레랑스(불관용)까지 관용해서는 안된다는 것.
  • 사회플러스 / 기자폭행 시위자 체포안해 물의

    집회 참가자들이 집회장을 지나가던 기자를 집단 폭행하고,경찰이 용의자를 체포하지 않아 물의를 빚고 있다. 지난 19일 오후 3시쯤 ‘반핵 반김 자유통일 국민연대청년본부’(본부장 신혜식) 주최로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반핵 반김 자유통일 4·19 청년대회’에 참석한 30여명의 시위대가 극심한 차량 정체를 항의하던 스포츠서울 김진욱 기자에게 폭언과 함께 집단 폭행을 가했다.이에 김 기자는 머리가 찢겨지고 전신에 타박상을 입는 부상을 당했다. 그러나 현장에 있던 서울경찰청 특수기동대와 을지로1가 파출소 소속 경찰들은 “관할이 아니다.”,“본인이 폭행 사실을 부인한다.”며 용의자들을 현장에서 체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 시민단체 ‘파병 취소’ 헌법소원

    이라크전 파병안의 국회 통과에도 불구,파병에 반대하는 시민·사회단체의 반발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참여연대와 민변,민주노동당 등은 3일 파병결정 취소를 요구하는 헌법소원과 파병안의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헌법재판소에 제출했다.또 사회·문화·여성계 등 원로 442명으로 이뤄진 ‘반전평화 비상국민회의’는 이날 오전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모임을 갖고 미국제품 불매운동과 12일 전국 동시다발 반전집회에 참여해 줄 것을 호소하는 ‘국민행동지침’을 채택했다.비상회의는 다음주를 ‘반전평화주간’으로 선포하는 한편 지역별 집회와 반전콘서트 등을 열어 반전열기를 높여 나가기로 했다. 서울대 등 대학별 총학생회가 주축이 된 청년학생반전위원회는 4일을 ‘대학인 행동의 날’로 정해 집회와 거리시위를 벌일 예정이다. 한편 이라크 현지에서 반전평화 활동을 펼치다 이날 오전 귀국한 한국 이라크반전평화팀의 배상현·임영신씨는 “국군을 파병하면 망명이나 다른 국적을 취득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주장했다. 이세영기자 sylee@
  • [화제의 사이트] 독립신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옹호하는 것을 두고 ‘극우’라고 부른다면 우린 ‘극우의 똘마니’란 비난도 기꺼이 감수하겠습니다.” 인터넷 ‘독립신문’(www.independent.co.kr)은 사이버 세계의 ‘섬’같은 공간이다. 지난해 7월 창간 이후 ‘오마이뉴스’,‘프레시안’ 등 진보 성향의 매체들이 주도하는 인터넷 언론의 주류 질서에 대항해 ‘보수적 애국주의’라는 메시지를 ‘고독하게’ 전파해왔다.창간 당시 수백명에 불과하던 방문자 수는 지난해 대선과 최근 북핵위기를 거치며 7만∼8만명으로 급증했다. ‘독립신문’의 이념은 기사선택과 편집에서 잘 드러난다.5일자 신문은 ‘외신이 본 김대중의 5가지 실패’란 제목으로 김 전 대통령을 비판한 인도 신문의 기사전문을 번역해 실었다. 또 ‘이제는 청년들이 나설 때’란 기사를 통해 보수단체가 주도한 3·1절 집회 뒷얘기를 상세히 소개했다. 대표 신혜식(사진·35)씨는 “급진적인 주장이 판을 치는 인터넷 공간에서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젊은 애국자들의 목소리를 담고 싶다.”고 밝혔다. 웹디자이너 출신인 신씨는 지난 99년부터 최근까지 ‘안티DJ’ 사이트를 운영했고 ‘민주참여네티즌연대’란 단체를 만들어 주한미군 지지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서울 종로구 강북삼성병원 인근 한 오피스텔을 사무실로 쓰고 있는 ‘독립신문’에는 신씨를 포함,5명의 기자가 활동하고 있다.운영비는 대부분 신씨의 홈페이지 디자인 아르바이트로 충당하고 있다. 신씨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핵심은 다양성”이라면서 “비난과 경제적 어려움에 굴복하지 않고 상식과 합리성에 입각한 보수의 목소리를 담아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세영기자 sylee@
  • [발언대] 자본논리 앞세운 도심건축 유감

    서울 도심에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건물이 둘 있다.하나는 이제 곧 철거 운명을 기다리는 동대문운동장 앞 15층짜리 계림빌딩이고,다른 하나는 13층까지 골조가 올라간 덕수궁과 경희궁 사이에 18층 규모의 오피스텔이다. 도대체 어떤 사연의 건물일까.계림빌딩은 노장년층에는 계림극장하면 얼른 떠오른다.계림극장은 1946년부터 1992년 1월 말까지,한국전쟁 이래 70년대까지 청년시절을 보낸 이라면 누구나 이곳에 추억 한 두가지는 묻었을 것이다.영화산업 침체가 원인이 돼 1993년 이 극장부지에 지상 15층,지하 4층의 건물이 신축됐지만 10여년 만에 다시 철거된다고 한다.이유는 계림빌딩이 포함된 대지에 대규모 패션센터가 신축될 예정이기 때문이다.물론 이 빌딩의 철거를 놓고 서울시 관련심의위원회에서도 논란은 있었다.그러나 자본논리와 법적으로 철거에 문제가 없는 것도 현실이다.동대문패션시장은 계속 침체하는데 10여년밖에 안 된 건물을 철거하면서 대형패션쇼핑센터를 건립하는 사실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한편으론 덕수궁 근처인 종로구신문로2가 106 일대에 연말에 입주하는 지상 18층,지하 7층짜리 오피스텔 공사가 지금 한창이다.미대사관 부지에서 약 130m,덕수궁에서는 200여m 떨어진 곳이다.이곳에 건축허가가 나 공사가 진행되자 덕수궁과 정동길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당혹케 한다. 지난해 말 이 부지에 아파트 70가구와 오피스텔 214가구가 분양을 시작했다.그러나 이 역시 현행법으로는 규제할 수 없는 사안이다.문화재보호법에 의한 국가지정 문화재(덕수궁)로부터 100m 이내에 건축할 때 적용하는 앙각 규정에 따른 높이제한도 할 수 없다.오래전 도심재개발구역으로 지정됐고 사업승인과 건축허가도 1994년에 받아 강화된 문화재보호법을 적용할 수도 없다.또 오피스텔 부지는 덕수궁에서 200여m 떨어져 있어 문화재 경관보호 심의대상 자체가 안 되며 덕수궁터가 아니기 때문에 유물 유적 확인도 필요하지 않은 지역이다. 그러나 우리는 2001년 캐나다대사관 부지에 지상9층의 대사관신축을 분명 반대하지 않았던가.외교적 상호주의에 따른 결례를 무릅쓰고 반대한 것이다.지난해에는 미대사관내 15층짜리 건물신축을 거국적으로 반대하지 않았던가.새로 들어설 오피스텔은 덕수궁에서 볼 때,캐나다대사관보다도 직선거리로 20여m가 가깝다.외국인들이 이를 풍자해 “한국인이 하면 로맨스이고 외국인이 하면 불륜”이라 말할까 두렵다.이 건물이 완공된 뒤 미 대사관에는 또 어떤 명분으로 15층 건축불가를 요구할 것인가. 두 가지 소망이 있다.외국에서와 같은 방법으로 계림빌딩을 존치시키면서 새로운 쇼핑센터를 건립하는 방안을 재검토할 수는 없는가.그리고 정동의 오피스텔을 9층으로 제한하고 손실부분은 시민사회와 지자체·정부가 공동 배상하는 방법은 없는가. 유 상 오 녹색연합 녹색도시위원장
  • 인터넷 물결타고 ‘反戰 들불’ 본격화되는 반전 운동

    그것은 ‘정치집회’라기보다 일종의 ‘카니발’이었다. 지난 15일 전 세계 600여개 도시에서 벌어진 이라크전 반대시위에 맞춰 국내 최대규모의 반전집회가 벌어진 서울 대학로.집시풍의 하모니카 선율에 맞춰 춤추는 젊은이들 사이로 ‘화관(花冠)’을 쓴 아이들의 천진한 미소가 눈부셨다. ●“용기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이들은 ‘차이’와 ‘부조화’마저도 얼마든지 아름다울 수 있음을 역설하는 듯했다.무지개 깃발 아래 모인 동성애자들,갈색 눈의 외국인 노동자들과 홍대앞이 놀이터인 일군의 ‘무정부주의’ 청년들도 ‘반국가단체’ 한총련의 대학생들과 함께 ‘반전’과 ‘평화’를 외쳤다. 파키스탄계 캐나다인 파르한(29)씨는 “신과 전 세계 시민 앞에서 전쟁 반대 의지를 보여주겠다.”면서 “우리를 자유롭게 만드는 것은 우리의 용기”라고 강조했다. 광화문 촛불시위에도 참가했다는 김소형(16·동부여상 1년)양은 “지금은 전쟁을 걱정할 때가 아니라 전쟁을 막기 위해 적극 행동할 때”라고 말했다. 이날 대학로에는 3000여명의 시위대가 모였다.런던의 100만명에 비해 턱없이 적었지만 400여명이 모였던 지난해 10월 반전시위때 보다는 눈에 띄게 늘었다.집회 관계자들은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시작되는 주 토요일에 갖기로 한 반전집회에는 1만명 이상이 참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반전 단일이슈 최초집회 국내 반전운동은 2001년 9·11 테러 직후 미국의 아프간 보복 공격이 가시화되면서 본격화됐다.평화네트워크와 평화인권연대,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등 평화운동을 전문적으로 표방하는 단체들도 잇따라 생겨났다.이들은 경실련,참여연대 등 700여개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전쟁반대 평화실현 공동실천’을 구성,지난해 10월 서울 인사동에서 국내 최초로 ‘반전’을 단일이슈로 내건 집회를 열었다. 올해에는 여성단체연합과 녹색연합 등 여성·환경단체들의 활동이 활발하다.‘다함께’ 등 전통적인 좌파 반전운동 단체와 민주노동당·사회당 등 진보정당들도 적극 결합할 태세다. 국내 반전평화운동의 ‘싱크탱크’격인 평화네트워크의 정욱식 대표는 “사회의 민주화와 인터넷 등 전자네트워크의 발달로 국내 반전운동도 새로운 발전의 계기를 맞고 있다.”면서 “특히 촛불시위와 대선을 거치며 사회개혁의 중추로 떠오른 네티즌들이 활력과 가능성을 불어넣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15일 집회에서는 ‘네모성(www.cyberaction.or.kr)’ 등에 소속된 ‘자생적’ 반전 네티즌들이 록음악 공연과 반전 퍼포먼스를 펼쳐 눈길을 끌었다. ●‘공통분모’찾아 ‘진입장벽’을 낮춰야 현재 반전시위에 참여하는 구성원들의 이념적 스펙트럼은 자유주의적 성향의 네티즌부터 진보적 민족주의자,극단적인 반세계화론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대중의 더욱 많은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목표를 구체화하고 방식을 온건화해 ‘진입장벽’을 낮춰야 한다고 지적한다. 연세대 사회학과 김호기 교수는 “국내에도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고 대북 강경책에 불만을 갖고 있는 사람이 광범위하게 존재한다.”면서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가운데 최대한의 합의가 가능한 공통의 목표를 찾아나가려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세영기자 sylee@kdaily.com ◆평화실현 공동실천은 2001년 9월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에 반대하는 경실련,참여연대,민주노총 등 700여개 시민·사회 단체가 모여 만든 국내 최초의 한시적 반전 평화네트워크.지난해 가을 미국의 임박한 이라크 공격에 반대하기 위해 활동을 재개했다. 현재 서울 221개,부산·경남 133개,인천·경기 99개 단체 등 전국 10개 권역에 걸쳐 731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하고 있어 ‘단일이슈’를 내건 연대조직으로는 가장 규모가 크다.
  • [마당] W세대 정치문화 낙관 이르다

    젊은세대, 정치를 문화로 인식 20대 여전히 정치에 무관심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지 한 달이 되어가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이번 선거 결과에 관심을 놓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결과를 승리로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나 패배로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나,국민경선으로부터 노무현씨의 당선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이 그 어떤 드라마보다도 더 극적이며 충격이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어 보인다. 대선 결과 평가에서 가장 자주 들을 수 있는 것은,이번 선거가 유례없는 세대간 대결 양상을 보였으며 20,30대의 변화 욕구가 결과를 가름했다는 분석이다.일부에서는 이에 대해 지극히 우려 섞인 반응을 보인다.정치가 세대간 대결로 치닫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표면적인 주장이지만,그 속내를 들여다 보면 젊은 세대 특유의 자유분방한 에너지가 사회를 움직이는 힘으로 등장한 현실이 못내 불안하고 불만스럽다는 시각이 깔려 있다. 좀 더 드러내놓고 말한다면,정치는 사회적 주류를 차지한 사람들의 것이어야지 ‘멋모르는’ 젊은이들의 감성적 판단에 맡겨놓을 수없다는 생각이다.그러나 이는 분명히 잘못됐다.무엇보다도 이번 대선은 결코 세대간 ‘대결’이나 ‘대립’이 아니었다.연령대별로 일정한 정도로 지지도 변화가 나타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세대간 대결이라기보다 세대에 따라 정치에 대한 인식이 자연스럽게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사람들의 정치의식은 당연하게도 그들이 성장한 시대의 산물이다.40대 후반 이상 세대의 정치의식이,한국사회가 병영사회적 틀을 벗어나지 못한 상황에서 형성된 것인 반면 그 이하 세대는 사회변화의 과정을 겪으며 좀 더 민주적인 생활문화 속에서 정치에 대한 의식과 감각을 형성했다.기성세대에게 정치가 여전히 무겁고 딱딱한 좁은 의미의 정치일 뿐이라면,젊은 세대로 갈수록 정치는 일상이며 문화이며 축제이다.‘붉은 악마’에서 ‘노사모’,그리고 ‘촛불시위’에 이르는 일련의 사건들은 새로운 세대가 기성세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다시 말해 좀 더 일상적이며 문화적인 차원에서 정치를 받아들이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그들은 적어도 상대적으로 이념의 억압이나 국가주의의 맹목으로부터 자유롭다.이제야 비로소 우리 사회는 정치를 일상과 문화의 차원에서 바라볼 수 있는 세대를 갖게 된 것이며,이는 명백한 발전의 징후이다. 나는 오히려 이번 대선 결과에서 젊은층의 문화적 에너지가 아직도 충분히 정치화하지 못했다는 측면에 좀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젊은층의 변화 욕구와 문화적 에너지가 노무현 승리의 원동력이 되었음은 틀림없지만 여전히 그 힘을 낙관하기는 어렵다.그것은 20,30대의 낮은 투표율에서 잘 드러난다. 특히 47.5%에 불과한 20대의 투표율은,여전히 반수 이상의 20대가 정치적 무관심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말해준다.보수 담론이 여전히 압도적인 상황에서 젊은층의 정치적 무관심은,일부 문화주의자들이 주장하듯 기성사회로부터의 ‘탈주’가 아니라 그저 기성사회의 ‘보수’일 뿐이다.앞으로 우리사회의 개혁과 변화가 성공하는가 못하는가는 이 정치적 무관심의 감옥에 갇힌 젊은 세대의 문화적 에너지를 어떻게 끄집어내어 사회적 힘으로 전화하는가에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 막 시작된 청년문화운동을 새롭게 추슬러야 할 때라 믿는다.무관심이 아니라 참여를 통해 일상과 문화의 차원에서 정치를 실천하는 젊은 세대의 힘을 만들어내는 운동 말이다. 김 창 남
  • 原電 재가동→NPT 탈퇴 수순 예상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 추방령을 내리는 등 ‘준비된 프로그램’을 착착 진행하고 있다.이에 따라 국제사회는 북한이 취할 다음 수순에대해 큰 우려를 던지고 있다. 북한은 미국의 대북 중유공급 중단에 맞서 ‘전력난 해소’라는 명분으로지난 12일부터 핵동결 해제선언-핵시설 봉인과 감시카메라 제거 요구-5㎿e원자력 발전소 봉인제거 및 감시 카메라 폐쇄-방사화학실험실 봉인제거-핵연료봉저장시설 봉인 제거-IAEA 사찰단 추방 명령까지 ‘준비된 수순’을 밟아왔다. 그 결과 국제사회에서는 북한에 핵개발 중단을 요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북측의 이러한 조치들이 당장 핵개발에 착수하겠다는 의도라기보다 미국에 대화를 촉구하는 행동이라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미국이 계속 북한의 이같은 의사를 묵살한다면 지난 94년 제네바합의 당시에 견줘봤을 때 예상되는 북한의 다음 수순은 IAEA 사찰단 추방 강행-5㎿e원자력 발전소 및 방사화학실험실 가동 선언-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플루토늄 재처리 움직임 등이 될 것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북한의 지금까지 조치들이 IAEA 사찰단의 체류를 허용하며 관찰하게 하는 등 ‘시위적 성격’을 띠었다면 31일 사찰단이 추방된 이후에는 5㎿e원자력발전소 재가동 및 건설 중단된 영변의 50㎿e 원자로의봉인제거 등 ‘실질적 조치’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물론 북한은 여전히 핵무기 개발을 공개적으로 천명하지는 않고 있으며 미국과의 대화를 희망하고 있다. 노동신문은 29일 “미국의 압력이 강할수록 민족의 존엄과 자주권을 지키기위한 대응조치도 강화될 것”이라면서 “조선반도에서의 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려는 것은 우리 공화국 정부의 시종일관한 입장”이라고 밝혔다. 북측 입장에서 핵동결시설 해제 및 일련의 조치는 여전한 협상용 카드이며실제로 가동한다고 하더라도 ‘전력 생산용’이라는 명분을 쌓고 있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지난 28일 평양시 청년공원에서 양형섭 최고인민회의 부위원장 등 고위 인사들이 참가한 가운데 여중생 사망 사건과 미국의 반북 적대 정책을 규탄하는 대규모 군중집회를 열었다. 이를 통해 대화를 통한 해결을 원하지만 짐짓 전쟁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강한 내부 결속력을 과시하며 이번 핵개발 파문 상황의 장기화에 대비하고있음을 내비쳤다. 미국이나 북한 양측에 선택의 폭은 더 좁아지고 있으며,대화를 통한 해결의 방법은 점점 꼬이고 있다.북한의 다음 수순과 함께 미국의 대응 조치에도관심이 주목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박록삼기자 youngtan@
  • [젊은이광장]‘사람’이 중심되는 2003년을

    개인적으로 2002년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월드컵 한국 대표팀을 응원하면서 ‘Be the Reds’라고 쓰인 붉은 티셔츠를 입고 광화문에서 거리응원을 펼쳤던 일,서울 도심에서 효순이·미선이의 죽음에 분노하며 촛불시위를 벌였던 일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찐한’ 감동을 안겨 주었다. 처음으로 투표에 참여해 대통령을 내 손으로 직접 뽑았던 일,금강산에서 열린 남북청년학생통일대회에 우연히 참가할 기회를 얻어 북측 대학생을 만났던 일도 잊혀지지 않는다. 평범한 대학생으로 살아가던 나에게 새로운 충격과 기회를 선사한 한해였다.말 그대로 다사다난하고 숨가빴다. 1년전 2002년을 맞이하며 얼마나 많은 사람이 걱정을 했던가.그러나 월드컵과 아시안게임,대통령 선거 등 많은 국가적 행사를 무사히 치러냄으로써 우리는 한해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게 됐다. 그 과정에서 ‘국민 전체의 자발적 참여를 통한 민주주의 의식의 성장’이라는 ‘옥동자’도 낳았다. 분단사상 처음 국민의 자발적 의지와 힘으로 반미 촛불시위가 일어났고,네티즌과 젊은층의 참여로 새 대통령을 당선시킨 점 등은 우리 사회가 본격적으로 자유민주주의의 틀을 갖추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특히 5%의 소수가 주류가 되고,95%의 다수가 비주류가 되는 사회를 개혁해 보자는 다수의 열망은 대선과 촛불시위 등 일련의 사건을 통해 젊은이를 새로운 주류로 탄생시켰다. 그러나 이러한 시민의식의 성장은 우리 스스로에게 많은 과제를 안겨주고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개혁과 변화를 주도해야 할 16대 대통령의 임기가 시작되는 2003년을 기점으로 낡은 시대로부터의 탈피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자주적 한·미관계 수립,부패정치 청산,분배정의 실현 등 수많은 개혁과제는 대통령 당선자의 어깨를 무겁게 내리 누를 것이다. 그동안 당선자는 “갈등과 분열의 시대에서 대화와 타협의 시대로 나아가자.”고 여러차례 역설했다. 감히 새로운 시대의 철학으로 한가지 제안한다면,춤추는 자본의 시대를 그만 끝내고 사람이 중심이 되는 세상을 만들었으면 한다. 대학은 매학기 초마다 등록금 인상문제로실랑이를 벌인다.등록금이 천정부지로 오르는 것은 사람을 키우는 교육이 사회의 중심에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대학은 차라리 하나의 기업이 되고 말았다. 철학과 역사를 탐구하는 기초학문은 무너지고 학생들은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안정적인 직장을 찾으려고혈안이 돼 있다.56%가 비정규직인 기형적인 경제 구조,속칭 ‘일류대’ 출신만 채용하는 학벌 중심의 사회이기에 학생들만 탓할 수는 없다. ‘기득권’과 사회의 모순에 대항하는 운동권 학생은 사람의 생각을 재단하려는 국가보안법에 의해 매년 수백명씩 수배자가 되고 있다. 권력과 돈의 복마전인 정치권에서도 자생적인 혁신을 단행하고 있는 때이다.언론마다 떠들고 있는 낡은 시대로부터의 탈피와 새로운 시대의 수립을 당선자에게만 바라고 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만들 수 있고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이미 지난 한해모두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아마도 2002년 한해 동안 가장 많이 외치고 들었던 단어는 바로 ‘대한민국’이었을 것이다.줄다리기를 할 때 ‘영∼차’하고 구령을 외치듯이 다함께힘모아 ‘대∼한민국’을 외치며 2003년의 문을 활짝 열자. 김주희 건국대신문사 편집장
  • [386세대가 본 W세대]20대·30대의 ‘화해’

    16대 대통령선거를 한 지난 19일 신촌에서 친구들과 폭음을 했다.30대 중반인 친구들은 진지하게,자신이 20대에 겪은 1987년 13대 대통령 선거의 좌절을 얘기했다.노란 풍선을 든 옆자리 20대들은 16대 대통령 선거의 승리를 환호하다가 자지러지곤 했다.30대는 시종 진지했고,20대는 기쁨에 난리를 쳤다.이야기 내용은 비슷한데 분위기가 이처럼 사뭇 달랐다. 이렇게 다른 20, 30대는 그러나 광화문에만 모이면 세대를 가리지 않고 똑같아졌다.촛불시위를 할 때 그들은 한목소리로 외친다.20대가 가볍다고 비판하는 30대와,30대가 무게 잡는다고 비웃는 20대는,차이를 뛰어넘어 과연 화해한 것일까. 올해 광화문에 나타난 두 차례의 피플파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그것은20대와 30대의 세대간 화해이자,이해를 통한 상호침투이기 때문이다.6월의거리에서 펼쳐진 월드컵 ‘대∼한민국’의 전설,그리고 12월 겨울 추위를 녹인 ‘효순·미선양을 추모하는 촛불시위’과정은 대한민국과 우리 스스로를 변화시킨 피플파워다.20대의 수단과 방식이 30대의 가치와 만나휘발성을 띠며 합쳐져 폭발했다.주거니받거니 하며 서로를 독려한 것으로 해석된다.그리고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인 ‘노무현 열풍’도, 지역적으로 광화문에서 일어나진 않았지만 같은 상징코드로 보인다. 자기가 속한 정당에서 제대로 지지받아본 적이 없는 아웃사이더 노무현,한국을 전혀 모르는 이방인 히딩크,인터넷 바다의 이름 없는 네티즌 ‘앙마’(광화문 촛불시위의 제안자 ID).이들은 모두 ‘즐거운 저항’을 상징한다. 노무현은 정치의 낡은 권위를 깨고 새로운 시대를 갈망한 젊은이들을 대변했다.히딩크는 스포츠의 구질서를 몸으로 혁파했다.앙마는 누구든지 뜻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의 시대를 표현했다.이 피플파워의 모든 과정에서 주역은 단연 20대와 30대였다고 단언한다.저항적 비판에 익숙한 30대는 20대에게서 꿈을 능동적으로 찾아 축제로 변화시키는 ‘마술’을 배웠고,자신의 것에 집착하던 20대는 보편적 가치에 합류함으로써 스스로 ‘몸값’을 드높였다. 그들은 밀실 타협한 것이 아니라,광화문에서 대화하고 소통했으며,열정을불태웠다.선명성을 내세워 분열한 것이 아니라,서로의 가치를 존중하면서 하나가 되는 긍정적이고 능동적이며 역동적인 시대를 열었다.단언컨대 이러한흐름은 20대의 기존권위에 대한 부정,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한 무한한 긍정에서 시작된 것이다. 20, 30대의 화해는,단절을 통해 성장한 역사적 경험과의 비교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젊은 세대는 늘 윗세대를 부정함으로써 자신의 성장을 도모해 왔다. 뒤돌아보면 서른살이 되는 것이 참 두려웠던 것 같다.윗세대의 변절을 경멸했으나,다른 한편 그들이 소유한 부와 권위 등 보편적 성취를 부러워했다.그래서 30대가 된 386세대마저 미래를 선택할 때,청년정신을 버리고 수동적이고 방어적인 선택을 해온 것같다.지금의 스무살이 서른살이 될 때,그들의 선택은 무엇이 될까 이제 자못 기대된다. 유민영 모아이 커뮤니케이션 기획실장
  • ‘1월의 문화인물’ 안확 선생

    항일기의 국학자 안확(安廓·1886∼1946)선생이 2003년 ‘1월의 문화인물'로 선정됐다. 안확 선생은 1910년 일본에 국권을 빼앗긴 뒤 지식인들이 서구문명 우월주의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여,민족문화의 장점을 발견하는 것이 곧 독립의 길이라는 신념으로 국학 연구에 몰두했다. 선생은 서울에서 태어나 1910년 마산 창신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다,1914년일본으로 건너가 니혼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했다.1916년 돌아온 뒤 조선국권회복단 마산지부장으로 3·1운동의 마산시위를 주동했다. 1921년에는 서울로 올라와 조선청년회 기관지 ‘아성’(我聲)의 편집인으로 일했으며,1928년부터는 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에서 촉탁으로 일하며음악 및 국문학 관계의 방대한 왕실 소장 자료들을 연구했다. 선생은 이런 연구 활동의 결과 ‘조선문법’(1917)과 ‘조선무사영웅전’(1919),‘자각론’(1920),‘조선문학사’(1922),‘조선문명사’(1923),‘시조시학’(1940) 등의 저서와 ‘조선어의 가치’(1915) 등 140여편의 논문·논설을 남겼다. 문화관광부는 안확 선생의 문화인물 선정을 기념하여 내년 1월24일 오후 2시 대우학술재단과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에서 학술대회를 여는 등 기념행사를 펼친다. 서동철기자 dcsuh@
  • 교수·변호사도 “SOFA 개정”고려,중앙대 551명 7개단체 등 “”한미관계 재정립””성명

    미군 장갑차에 치여 숨진 두 여중생을 추모하는 촛불시위가 열흘째 계속된9일 고려대와 중앙대 교수 551명,전국교수노동조합 등 7개 교수단체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등 국내 지식인을 대표하는 교수,변호사들도주한미군지위협정(SOFA) 개정을 강력 요구하고 나서는 등 불평등한 한·미관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교수노조와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등 7개 교수단체는 이날 미 대사관 앞에서 ‘평등한 한·미관계의 재정립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여중생 사망사건 책임자 처벌과 SOFA 재협상 등을 요구했다. 장하성·하종호·이기수 교수 등 고려대 16개 단과대를 대표한 교수 231명도 이날 오후 성명서를 내고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직접 사과 ▲한국정부의 당당한 대미 대처 ▲SOFA 즉시 개정을 촉구했다.이정춘 교수 등 중앙대 교수 320명도 성명을 내고 여중생 사건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했다. 인권변호사들의 모임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도 을지로 국가인권위원회 강당에서 ‘2002 한국인권 보고대회’를 갖고 SOFA의 전면개정 등을 요구하는 특별결의안을 채택했다. 한국기독청년협의회도 신자 9명이 ‘SOFA개정과 부시 미 대통령 직접 사과를 위한 기독청년 릴레이 금식기도’에 들어갔다. 이들은 13일까지 이어지는 금식기도회 기간에 매일 정오부터 한시간 동안 미 대사관 정문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일 계획이다. 특히 방한 예정인 리처드 아미티지 미 국무부 부장관이 북핵문제에 대한 강경대응과 대 이라크 전쟁에 한국군 파병을 주문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관련단체가 강력 반발하는 등 긴장이 더욱 고조되고 있다. ‘여중생 살인사건 범국민대책위’는 서울 광화문 미 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아미티지가 방한하는 10일 고(故) 심미선·신효순양의 유족들이미 대사관에 직접 항의서한을 전달 하겠다고 밝혔다.범대위는 이어 청와대앞에서 집회를 갖고 졸속적인 SOFA 개선운용 방침을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 한편 인권운동사랑방은 여중생 사망사건과 장애인들의 인권위 점거농성 등을 올해의 인권 10대뉴스로 뽑았다.여중생 사건은 80.5%의 응답자에 의해 올해의 뉴스 1위로 선정됐다. 추모와 항의의 물결은 인터넷에서도 이어졌다.한 네티즌은 사이버범대위 게시판에 올린 글을 통해 “세계인권의 날인 10일 미군에 의해 기본적인 인권조차 사라져버린 현실에 항의하는 조기를 달자.”고 제안,네티즌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이세영기자 sylee@
  • [젊은이 광장]청년실업의 고통과 해결책

    지난 2월 졸업한 선배가 아직까지 취업을 하지 못하고 있다.선배는 인문계에 비해 취업의 문이 넓다는 이공계를 졸업했고 나이도 아직 젊다.토익 점수도 나쁘지 않았고,대학 성적도 평균 이상이었다. 하지만 이곳저곳에 이력서를 제출하고 면접을 보러 다니면서 “취직하면 크게 한턱 내겠다.”고 말한 선배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진 지 오래다.최근학교에서 우연히 마주쳤을 때도 선배는 취업에 필요한 학사 서류를 준비하고 있었다.“요즘 1년 정도 취업을 하지 못하는 것은 별 것 아니다.”며 애써웃음짓는 선배가 안쓰럽게 느껴졌다.문득 “나도 졸업하면 비슷한 처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당혹감이 밀려왔다. 어떤 친구들은 “대학 시절에는 ‘점수’에 연연하지 않고 젊음과 학문의자유를 만끽하겠다.”고 호기를 부리지만 매학기 성적표를 받아볼 때는 표정이 어두워진다.학업에 충실하고 공부를 열심히 한 선배들도 취업을 하지 못하는 현실을 감안하면,나 자신도 ‘먹고 살’ 걱정을 떨쳐버릴 수 없는 게솔직한 심정이다. 1학년 때부터 교사 임용고시를 준비하고,밤낮으로 어학원에 다니며 영어를배우는 모습도 캠퍼스에서는 이미 낯선 풍경이 아니다. 지난 97년 환란사태 이후 언론에서는 앞다퉈 ‘저주받은 97학번’이라며 경기침체기의 취업대란을 우려했다.그리고 연말이면 어김없이 시사 주간지 표지를 허탈한 표정으로 담배를 물고 있는 청년 실업자의 일그러진 얼굴이 장식했다. 하지만 예고된 청년 실업문제를 해소할 명쾌한 대책은 지금까지 나오지 않고 있다. 대학 졸업생이 취업대란을 겪는 현실에서 “잘못된 교육정책이 대학을 취업 양성소로 전락시켰다.”거나 “대학 서열화를 조장하는 입시위주의 교육정책이 문제다.”라고 비판하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취업문제를 해결해야 교육개혁도 가능한 것이다. 다음달 19일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의 청년실업 해결 공약도 설득력이 떨어진다.이회창(李會昌) 한나라당 후보와 노무현(盧武鉉) 민주당 후보는 모두 앞으로 5년간 25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해 청년실업의 고통을 해소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하지만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대안은 찾아보기 힘들다.고작 “산학 연계활동을 지원하겠다.”“효율적인 진로지도가 이뤄지도록 하겠다.”“생산과교육에 집중 투자하겠다.”는 등의 구호성 공약만 난무하고 있다. 최근 친구들끼리 “졸업하고 뭐 할 거니.”라는 질문을 자주 주고 받는다.막막한 앞날에 대한 걱정과 불안감을 조금이라도 덜어 보려는 심산이다. 내가 몸담고 있는 대학신문에서는 항상 “취업의 전진기지로 전락한 대학의 현실을 대학인 스스로 바꾸자.”고 역설하지만,졸업이 가까워질수록 취업에 대한 두려움은 커져만 간다. 대학 시절 원대한 포부와 꿈을 키우지는 못할망정 취업 걱정에 매달리는 소시민의 생활에 너무 일찍 젖어드는 것 같아 안타깝다는 감상은 어쩌면 사치일지 모른다.사정이 그러니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후배들에게 선뜻 “소신과적성에 따라 학교와 학과를 선택하라.”고 충고하지도 못한다. 청년 실업 문제는 청년만의 문제가 아니다.대학생은 우리 사회를 이끌어갈주역이라는 점에서,청년 실업으로 인한 모순과 문제점은 바로 미래의 자화상일 수 있다.나라를 책임지겠다는 대선 후보들이 정교하고 총체적인 청년실업 극복 프로그램을 제시하기를 기대해 본다. 변 휘 한양대신문사 편집장
  • [젊은이 광장] ‘장갑차 재판’ 대학가 유감

    동두천 미2사단 군사법정에서 눈물나는 ‘사기극’이 벌어지고 있다. 경기도 양주의 두 여중생을 치어 숨지게 한 미군 장갑차 관제병과 운전병이 ‘주한미군 법정’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법적인 책임을 교묘하게 피해가고 있다. 두 피고인과 같은 2사단 소속 현역 군인들로 이뤄진 배심원단,맥빠진 공방만 형식적으로 주고받는 검찰과 변호인,그리고 ‘피해자는 있는데,가해자는 없는’ 기막힌 현실 앞에서 우리 국민은 다시 한번 분단 이후 굴곡된 현대사의 아픔을 되씹고 있다. 그나마 군사법원은 언론을 제외한 일반인에게는 재판 방청마저 거부했다. 관제병인 페르난도 니노 병장의 무죄 평결 직후 미 8군사령관이 미리 준비한 듯 언론 인터뷰를 통해 “공정한 재판이었다.”고 강조했다는 말을 전해듣고 허탈감을 넘어 분노가 치밀었다. 많은 전문가가 지적하듯 재판권을 한국 법정에 이양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미군의,미군에 의한,미군을 위한 재판’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동두천 캠프 케이시 앞에서 여중생사망사건 범국민대책위원회 회원과 시민 등이 불평등한 미군 재판에 목청 높여 항의할 때 대학가에서는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변함없는 일상이 반복되고 있었다. 올 들어 여러차례 학내 집회를 통해 한·미행정협정(SOFA)의 개정을 요구했던 일부 학우들도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캠퍼스에는 이번 재판 결과를 반박하고 청년 학생의 혈기를 토해내는 대자보 한장 붙지 않았다. 학내 어느 곳에서도 미 군사법정을 화제에 올리거나 재판결과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듣기 힘들다.동두천 캠프 케이시 현지에서 규탄 시위를 하는 사람들 중에도 대학생은 기껏해야 몇십명밖에 되지 않는다. 암울한 군사정권 시절에 시대와 역사를 고민하며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던 학생운동이 부끄러워진다. 지난 1980년 광주 민주화 항쟁을 계기로 들불처럼 번졌던 반미운동의 핵심은 바로 청년 학생이었다.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을 시작으로 미국과 주한미군의 본질을 민중에게 알린 것도 바로 우리의 선배들이다. 그러나 2002년 대다수 국민이 공분하는 비극의 현장에서 사회의 모순에 맞서 투쟁을 이끌던 젊은 대학생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은 안타깝고 서글픈 일이다.적어도 관제병인 니노 병장이 무죄평결을 받은 직후에는 재판권이양에 무기력한 정부를 성토하고 SOFA 개정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대학가에서 흘러 나왔어야 했다. 물론 최근들어 대학가의 최대 관심사는 총학생회 선거이다. 실제 학생운동에 참여한 학우들에게는 이번 선거 결과가 앞으로 1년의 활동 방향과 학내 사업을 가름하는 분수령이 되기 때문에 정신적으로나,시간적으로나 여유가 없다는 점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학생들이 평소 소신과 명분 없이 당리당략에 매달린다고 비판하는 정치인과 다른 모습을 보이려면 선거기간이라고 해도 청년 학생의 사회적 역할과 소임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단순히 자리와 영역다툼에 연연할 것이 아니라 학내 선거를 미 군사재판 문제 등 굵직한 사회의 이슈를 알리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계기로 삼았어야 한다는 비판과 질책을 청년 학생 모두 경청해야 할 것이다. 김주희 건국대신문사 편집장
  • [열린세상] 남미의 납치산업

    라틴아메리카에서 유일하게 고속 성장하는 산업은 납치산업이다.11월12일에 라틴아메리카주교단회의(Celam)의 의장을 맡고 있는 콜롬비아의 대주교 히메네스가 게릴라 조직인 콜롬비아혁명군(FARC)에 의해 납치되었다고 한다.게릴라 세력은 잡혀 있는 동료들과 교환하기 위해 고위 성직자를 노린 것이리라.벌써 올해만 해도 칼리의 대주교가 암살당했고,7명의 사제가 납치당했다.콜롬비아에서는 교회도 폭력의 소용돌이에서 자유롭지 않다.메데인 카르텔의 전설적인 두목인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사라졌지만,마약 관련 폭력도 여전히 극성이다.칼리나 메데인에서 남자가 20대를 넘기기 쉽지 않다는 말은 오래된 이야기이다.경제가 망가진 이 나라에서 유일하게 불황을 타지 않는 산업은 판유리 업계라고 한다.폭탄테러로 자주 빌딩의 유리창들이 날아가기 때문이다. 삼바 축제로 잘 알려진 리우 데 자네이루에서도 조직폭력의 명성이 자자하다.지난 10월1일 리우 시가지는 공휴일처럼 텅 비었다.아이들은 등교하지 않았고,슈퍼마켓은 문을 열지 않았다.조직폭력의 경고때문에 누구도 감히 바깥으로 나가려하지 않았다.조직폭력을 척결하겠다는 노동자당 출신 시장의발언에 조직폭력 세력이 “해볼 테면 해봐라.”는 식으로 시위한 것이었다.파벨라(빈민가)는 완전히 조직폭력이 지배하는 해방구이다.경찰들도 얼씬거리길 거부하는 그런 곳이다. 상파울루 시에도 납치산업이 활황세를 타고 있다.작년에 30건에 불과하던 유괴사건이 올해 9월까지 251건으로 증가했다.최근에는 광고업계의 거부 와싱톤 올리베투가 유괴되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부자들이나 고위 경영자들은 납치 위험을 줄이기 위해 헬기를 타고 출퇴근하고,도심을 이동할 때에는 경호원이 붙은 방탄자동차만 탄다.경영주가 매월 1인당 지출하는 경호비용은 평균 4000달러 정도.헬기 한대 값은 50만 달러에서 200만 달러에 이르지만 상파울루 상공은 헬기 운항이 가장 빈번한 5대 도시에 속한다.방탄조끼도 방어용 무기도 불티나게 팔린다.덕분에 민간보안업체들은 연 20억 달러의 매출액을 올린다. 콜롬비아,브라질을 뒤잇는 나라는 멕시코이다.경영인단체 코파르멕스에 따르면 2000년 393건의 납치사건이 발생했다고 한다.범죄추방 국민운동 본부장에 따르면 납치된 사람 수는 981명 이상이라고 한다.그러나 전문가들은 이건수보다 3배가량이 되리라 추정한다.피랍자 세 사람 가운데 두 사람은 두려워서 신고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도좌파 출신의 멕시코 시장 로페스 오브라도르는 날로 증가하는 조직범죄를 소탕하기 위해서 뉴욕시장 출신인 줄리아니를 치안책임자로 최근에 영입했다.자국민들 가운데 그토록 믿을 만한 사람이 없는 것일까? 하기야 716건의 절도사건 가운데 66건이 전·현직 경찰관이 관련되어 있다고 하고,대부분 납치단은 경찰과 검찰에 끈을 대고 있다고 하니 이해될 법도 하다. 라틴아메리카의 납치산업은 불평등과 빈곤이 만들어낸 기형적인 산업이다.실제로 납치나 절도,강도 사건은 경제적 호황이 지속되면 줄어들다가 침체국면으로 바뀌면 다시 증가한다.성장률과 폭력 수준은 반비례하는 것이다.고용기회를 빼앗긴 청년들은 쉽게 조직폭력단의 유혹에 넘어간다.어느날 갑자기 검정색 고급 양복에다 빳빳한 달러 뭉치를 들고 애인 앞에 나타나 으스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폭력산업은 브라질의 경우 연 4만명의 젊은 피를 먹고 자라는 독버섯이다.그리고 경제적으로도 큰 손실이다.40년을 더 일할 수 있는 이들이 20대에 죽는다고 가정하면,약 GDP의 10%가 유실되는 것이라고 미주개발은행은 분석한다.멕시코의 경우 치안불안의 비용은 GDP의 12%나 된다고 한 연구결과가 보고한다.적어도 성장률이 5∼6%는 되어야 노동시장의 압력을 어느정도 흡수할 수 있다고 하지만,칠레를 제외한 대부분 나라들의 실적은 이에 훨씬 못미친다. 이성형 세종연구소 초빙연구위원
  • 후진타오의 中國/ 茶상인 아들서 ‘13억 리더’로 우뚝

    중국공산당 16대 전국대표대회를 계기로 4세대 인맥이 전면 부상하고 있다.13억의 중국인을 다스릴 최고 권력이 장쩌민 주석 겸 당총서기의 3세대에서 후진타오로 대표되는 신진 세대로 이양되는 것이다.원로세대의 전면퇴진으로 특징지워질 이번 세대교체는 자본가의 입당으로 대변되는 ‘시장주의 공산당’을 이끌어가야 할 힘겨운 과제를 안고 있다.후진타오와 함께 중국공산당의 새 지도부를 구성할 주요 인물을 소개한다. [베이징 오일만특파원] 21세기 중국의 새 지도자로 떠오른 후진타오(胡錦濤·60).중국 지도부가 10여년간이나 공들여 키운 후계자지만 여전히 베일에 싸인 인물이다. 가난한 차(茶)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중국 최고 지도자로 우뚝 솟은 후진타오의 정치철학과 인생관은 21세기 중국의 내일을 알 수 있는 바로미터일 것이다. ◆유연함 뒤에 숨은 강철 의지 1988년 10월,당시 중국은 대학생들의 민주화 시위로 뜨겁게 달아올랐던 시기였다.후진타오가 당 서기로 있던 구이저우(貴州)성도 시위 물결에 휩쓸렸다.후야오방(胡耀邦) 당 총서기가 시위에 온건하게 대처했다는 이유로 실각한 이후라 위기감을 느꼈다. 후 주석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고 다짐한 후진타오는 대규모 경찰을 배치한뒤 즉각 현장으로 달려갔다.경찰 진압에 앞서 최종적으로 학생들을 설득하기 위함이다.살벌한 시위 현장에서 시위대와 얼굴을 마주한 후진타오는 끝까지 인내심을 잃지 않고 이들의 주장을 경청했다.“시위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나를 믿고 학생의 본분으로 돌아가라.”며 설득,극적으로 사태를 반전시켰다. 호랑이 굴로 들어가 성난 호랑이 새끼들을 진정시킨 것이다.이 사건을 계기로 당은 후진타오에 대해 ‘돌발사건의 해결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내린다. 88년 12월 28일,구이저우성 당서기로서 합격점을 받은 후진타오는 티베트로 달려가야 했다.독립 기운이 절정기에 오른 티베트의 당 서기로 발령을 내린 것이다.정치생명이 걸린,일생일대의 위기였다. 티베트 독립운동 진압은 후진타오의 숨겨진 진면목을 드러낸 사건이다.89년 3월5일,1만명의 승려들과 티베트인들이 수도 라사 거리를 점거,사태는최악으로 치달았다. 후진타오는 무장부대에 즉각 진압을 명령,총알 세례를 받은 시위대는 눈깜짝할 사이에 아수라장이 됐다.당시 후진타오는 철모를 쓰고 진압을 진두지휘,우아하고 고상한 외모 아래 숨겨진 강철 의지를 드러냈다. ◆당 지도부의 모범생으로 후진타오는 42년 12월 상하이(上海)에서 가난한 차(茶)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아버지 후쩡위(胡增玉)는 안후이(安徽)성 출신이다.후는 4살 무렵 인근 장쑤(江蘇)성 타이저우(泰州)에서 유년기를 보냈지만 아버지는 사업에 실패하고 어머니는 7살 때 사망,어렵고도 힘든 생활을 감내해야 했다. 하지만 타고난 성실성과 총명함으로 후진타오는 늘 상위권을 유지했고 남들보다 두살 어린 17살 때 명문 칭화(淸華)대 수리공정과(水利工程科)에 입학했다.하지만 착취계급(자본가)의 아류인 소업주(小業主)로 분류돼 일류학과의 꿈을 접는 아픔도 있었다. 대학시절 최우수 학생 그룹에 속했고 공청단(공산주의 청년단) 지부 문화선전대를 이끌며 사교춤과 노래를 즐기는 등 개방적 면모도 보였다.평생의 반려자인 류융칭(劉永淸)도 이 당시 만났고 졸업 직전인 65년 4월 공산당에 입당한다. ◆문화혁명 소용돌이 한발 비껴 서 대학을 떠나기 직전에 닥친 문화혁명(1966∼1976)은 그의 정치 사상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출신 성분이 소업주인 데다 칭화대 당위원회 간부였던 그는 보황파(保皇派)로 낙인찍혀 ‘화장실 청소’ 등의 수모를 당한다. 하지만 그는 흥분하지 않고 냉철한 눈으로 문혁의 광풍(狂風)을 지켜보면서 소요파(消遙派·좌·우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자유롭게 행동하는 집단)가 된다.그가 몇번의 정치적 격동기를 거치면서 자기 색깔과 계파를 드러내지 않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도 문혁기의 생생한 체험일 것이다. ◆쑹핑의 눈에 들어 출세가도로 68년 간쑤(甘肅)성 수력발전소 건설공사장으로 하방(下放)된 후는 힘든 노동일을 겪으면서도 특유의 성실함과 친화력으로 한 단계씩 승진을 거듭한다. 그러던 중 79년,후는 그의 운명을 바꿔놓는 ‘정치적 스승’,쑹핑(宋平) 전 상무위원을 만난다. 당시 간쑤성 당서기로 있던 쑹핑은 성 위원회 설계관리처에서 일하던 후진타오의 브리핑을 받는다.‘간단명료하고 조리있는’ 후의 답변에 깊은 인상을 받은 쑹핑은 자연스럽게 칭화대 후배인 후진타오를 주목하게 된다. 중앙무대로 진출한 쑹핑은 혁명 전우인 후야오방 당총서기에게 후진타오를 추천,82년 40살의 최연소 중앙위원이 됐고 후에 자신의 권력 기반이 된 공청단 제1서기에도 오른다. ◆덩샤오핑이 차기 재목으로 점지 후진타오는 쑹핑과 후야오방의 정성어린 지원을 받지만 4세대 리더로서의 등극은 덩샤오핑의 점지로 이뤄진다.92년 봄 남순강화(南巡講話)에 나선 덩은 “혁명화,연소화,전문화의 표준에 의거해 덕망과 재능을 겸비한 인재를 발탁하라.”고 지시한다.본격적으로 후계그룹을 키우겠다는 선언이다. 정치적 후원자인 쑹핑은 기민하게 움직였다.당시 정치국 상무위원이었던 쑹핑은 자신의 자리를 후진타오에게 물려주는 조건으로 권력 실세인 차오스와당 원로인 보이보(薄一波) 등을 설득,분위기 조성에 들어갔다. 92년 9월 14대 전대 직전,권력의 핵인 상무위원 최종 심사에 ‘후진타오 파일’이 올라갔고 최고지도자 덩샤오핑은 “내 보기에도 이 사람은 괜찮은 것 같더군.”이라며 OK 사인을 했다.지방의 당서기에서 무려 3단계나 도약,4세대 후계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이다. ◆친화력과 조직관리의 귀재 그에게는 중국인의 사랑을 받는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의 풍모가 느껴진다.사람을 대하면서 인정(情)과 이성(理),사무(事) 등 3개 요소를 적절하게 조화시켰다.원만한 리더십과 친화력으로 조직의 활력을 불어넣는 스타일이다. 공청단 시절 부하들은 “후진타오의 태도는 늘 겸손하고 붙임성이 있으며 성실했다.”고 회고한다.85년 구이저우성 당서기 시절 특유의 지방색과 배타성에 직면한 그는 지역의 원로 간부들을 맨투맨으로 접촉,‘자기 사람’으로 만들었다. 단결과 협력의 분위기를 조성한 그는 경제건설에 전념,부임 2년만에 귀주성의 1인당 GDP를 418위안(元)에서 794위안으로 무려 94%나 늘렸다.당시 경제성장률을 감안하더라도 평균 수치를 훨씬 웃도는 성과였다. ◆철저한 2인자의 처세술 후진타오는 자신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언제나 자신을 낮추고 공적을 자랑하지 않는다.겸손은 그의 처세술의 백미다. 92년부터 후는 10년 동안 권모술수가 난무한 중난하이(中南海) 시절을 보냈다.덩샤오핑(鄧小平) 시대의 후야오방과 자오쯔양(趙紫陽),마오쩌둥 시대의 류사오치,린뱌오(林彪) 등 2인자의 비참한 말로를 지켜본 그로서는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이었을 것이다.기자들을 만나면 “나를 선전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여러분이 나를 선전한다면 이는 곧 나의 정치생명을 단축시킬 뿐이다.내가 아직 젊다는 것을 이해해 달라.”고 당부한다.이 때문에 그의 정치 기록에도 일관되게 장쩌민의 부하로서 장을 떠받들고 있다.정적들이 장쩌민과 후진타오를 이간질하는 어떤 자료도 찾아보기 어렵다. oilman@ ■인맥/ 共靑團이 ‘오른팔' 후진타오 국가부주석의 인맥은 장쩌민 국가주석 등 제3세대 지도부의 바로 아래인 제4세대의 젊고 참신한 인물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공산당 전위조직인 공산주의청년단(共靑團) 출신과 칭화(淸華)대 인맥,간쑤(甘肅)성 군단 등이 후 부주석의 대표적인 인맥으로 꼽히고 있다. 후 부주석이 1980년대 공청단 중앙서기처 서기로 일하면서 맺은 공청단 인맥은 그의 ‘오른팔’ 역할을 하고 있다.왕자오궈(王兆國) 통일전선부장,리커창(李克强) 허난(河南)성장,쑨자정(孫家正) 문화부장,장푸썬(張福森) 사법부장,쑹더푸(宋德福) 푸젠(福建)성 당서기,첸윈루(錢運錄) 구우저우(貴州)성 당서기,리즈룬(李至倫) 감찰부 부부장,주산칭(朱善卿) 공산당 대외연락부부부장,류성위(劉勝玉) 중앙당교 부교장,위유쥔(于幼軍) 선전시장,저우창(周强) 공청단 제1서기 등으로 정치세력의 주력부대인 셈이다. 칭화대 인맥 중에는 후 부주석이 재학중이던 60년대 초반 처음 인연을 맺은 이후 40여년 동안 이어지면서 스스럼없이 흉금을 터놓고 얘기할 동지들이 가장 많다.우방궈(吳邦國) 부총리와 우관정(吳官正) 산둥(山東)성 서기,자춘왕(賈春旺) 공안부장,왕수청(汪恕誠) 수리부장,톈청핑(田成平) 산시(山西)성 당서기,천칭타이(陳淸泰) 국무원 발전연구센터 부주임 등은 칭화대 동기이자 입당 동지들이다.더욱이 자 공안부장과 천 부주임은 같은 기숙사에서 생활했던 동창이다. 이밖에 후 부주석의 인맥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지원세력으로 간쑤성 군단이 있다.그가 60년대 후반 간쑤성에서 근무하면서 사귀어 신뢰감을 쌓아온 정치인들이다.이들은 후 부주석을 중앙 정계로 발탁한 뒤 정치적 대부 역할을 한 쑹핑(宋平) 전 공산당 조직부장을 ‘모시고’ 있다. 원자바오(溫家寶) 부총리를 비롯해 자즈제(賈志杰)·천광이(陳光毅)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大) 상무위원과 장우러(張吾樂) 국가유색금속공업국장·옌하이왕(閻海旺) 인민은행 부행장 등이 간쑤성 군단의 핵심 인물들이다.특히 이들은 대부분 정부 행정부처에서 뛰어난 역량을 발휘함으로써,후 부주석의 정치권력을 탄탄하게 받쳐주고 있다. 김규환기자 kh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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