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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달픈 인턴세대] (중) 채용박람회 가보니

    [고달픈 인턴세대] (중) 채용박람회 가보니

    “일자리를 놓고 아버지 세대와 싸워야 하다니….” 지난 13일 농림수산식품부가 과천 한국마사회 컨벤션홀에 마련한 39개의 ‘agro green job fair’(농림수산식품분야 채용박람회) 부스에는 일자리를 구하려는 20~30대의 ‘인턴세대’와 40~50대 장년층으로 북적댔다. 언뜻 보기에는 이들은 서로 다른 직종에 지원할 것 같았지만 사실은 같은 일자리를 두고 ‘쟁탈전’을 벌였다. 정부가 뽑는 행정인턴은 만 29세 이하라는 나이제한이 있어 청년층만 몰렸다. 하지만 인턴 경쟁률이 너무 높아 청년층은 나이제한이 없는 기간제 일자리에도 눈을 돌렸다. 김모(49)씨는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이 뽑는 기간제 일자리인 농업품질관리원 채용 면접을 끝낸 뒤 잔뜩 기대하는 눈치였다. 농업품질관리원으로 고용되면 2월부터 10개월간 원산지 표시 단속 보조원 등으로 일하게 된다. 김씨는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로 기울어진 회사 사정 때문에 2002년 퇴직했다. 이후 개인사업을 하다가 2007년 도산했다. 하지만 그는 같은 일자리에 지원하려고 길게 줄을 선 젊은이들을 보고 금세 얼굴이 굳어졌다. 김씨는 “기간제 일자리를 놓고 젊은이들과 경쟁해야 한다니 허탈하다.”면서 “젊은이들이 이런 일까지 하려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날 농업품질관리원에 지원한 81명 중 20~30대는 24명으로 30%였다. 국립수의과학검역원에서 뽑는 기간제 일자리에는 15명이 지원했는데, 20~30대가 11명이나 됐다. 10년간 일용 잡부일을 해온 이모(55)씨는 한 곳에도 지원하지 못했다. 청년들과의 경쟁에서 이길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씨는 자신보다도 중소기업에서 인턴을 하고 있는 자식 걱정을 늘어놓았다. 그는 “우리 집은 부자가 기간제 근로자인 셈”이라면서 “둘 중 한 명이라도 빨리 안정적인 직장을 잡아야 생계가 유지될 텐데, 이곳에 와서 보니 젊은 세대의 형편이 더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한 청년구직자는 “행정인턴이나 기간제근로나 보조업무를 한다는 것에서 다를 게 없다.”면서 “어디라도 붙어야 할 것 아니냐.”고 말했다. 지난해 2월 대학을 졸업한 오모(28)씨는 농촌진흥청 등 3곳의 행정인턴에 지원했다. 오씨는 “대기업 기획부서에서 일하고 싶은데 백수기간이 길어지니 불안해 10개월간 행정인턴으로 시간을 벌면서 구직활동을 할 요량이다.”고 말했다. 농식품부와 산하 기관들은 이번 박람회를 통해 행정인턴과 기간제근로자 등 7277명을 뽑을 예정이다. 하지만 1년 미만의 단기 일자리가 5135개로 전체의 70%를 넘었다. 이경주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일 찾는 청년들 “배달원이라도…”

    일 찾는 청년들 “배달원이라도…”

    경기 성남의 한 중국음식점에서 배달원으로 일하던 김모(25)씨는 지난달 초 3년간 해오던 일을 그만뒀다. “이러다 배달 일을 하며 늙어 죽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고 김씨는 말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당구장 아르바이트, 나이트클럽 ‘삐끼’ 등을 전전해 오던 그였다. 불안한 미래에 대해 고민하다 김씨는 결국 사장에게 그만두겠다는 말을 했다. “11월치 월급을 달라.”는 김씨에게 사장은 “그동안 먹여 주고 재워 준 게 얼만데 뻔뻔하게 돈을 요구하느냐.”며 돈을 주지 않았다. 김씨는 근로계약서를 쓴 적도, 4대 보험에 가입된 적도 없다고 했다. 그저 사장이 “내일부터 나와라. 월급은 얼마 주겠다.”고 하면, 나가서 10시간이 되든, 12시간이 되든 배달을 할 뿐이었다. 이런 근로조건은 다른 배달원들도 마찬가지다.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노동조건은 하나도 지켜지지 않는다. 그런데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청년들은 자꾸만 배달원을 하려고 몰려든다. 대졸 청년들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허덕이는 판국에, 대부분 고졸인 이들에게 선뜻 일자리를 내주는 곳은 그나마 배달업계인 탓이다. 실업계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2007년까지 5년간 중국음식점 배달 일을 했던 김모(24·서울 노원구)씨는 최근 다시 중국집 배달 아르바이트 일을 알아보고 있다. “배운 것도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밖에 없다.”는 것이 이유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부모가 이혼한 이후 김씨는 혼자 힘으로 돈을 벌어야 했다. 2002년 처음 일을 시작할 때는 오전 10시부터 저녁 8시까지 10시간 일하고 4만원을 받았다. 애초에 계약서가 없었으니 초과근무수당 같은 규정도 아예 없었다. 보험은 차라리 사치였다. 오토바이 운전면허가 없는 배달원도 많아 사장은 아예 보험을 들지 않았다. 가장 큰 문제는 사고가 날 때 생긴다. 마음 좋은 사장을 만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엔 혼자 책임을 뒤집어써야 한다. 김씨도 2003년 골목길에서 불쑥 튀어나온 자동차와 부딪쳤다. 오른쪽 팔이 부러져 한 달 동안 깁스를 했고, 치료비가 80만원이 나왔는데 사장이 50만원을 내줬다. 사장은 “이번이 처음이고, 그동안 열심히 일을 했기 때문에 특별히 내주는 것”이라고 했다. 사장이 부르는 값이 월급이고, 하루에 12시간 이상 중노동에 시달리며, 보험혜택도 못받지만 그들 힘으로 근로 조건을 개선할 엄두는 내지 못한다. 대부분 배운 것 없고 가난한 사람들인 탓에 어디서 어떻게 바꿔야 할지 모르고 관행에 순응해 버린다. 전문대를 졸업하고 5년간 중국집 배달을 한 박모(28·서울 강북구)씨는 “대부분의 배달원들이 스스로를 낙오자로 생각해 열악한 환경을 감수한다.”고 했다. 업주들도 바꿀 생각이 없다. 서울 구로구에서 중국집을 운영하는 최모(43)씨는 “배달원들은 어차피 다 밑바닥 사람들이기 때문에 보험 혜택 받자고 월급에서 몇 만원 빠지는 것을 싫어한다.”고 말했다. 서울 용산구에서 피자집을 운영하는 김모(37)씨도 “워낙 아르바이트생이 자주 바뀌다 보니 매번 보험 서류를 꾸미는 게 귀찮다.”면서 “힘들다고 2~3개월 일하고 그만두다 보니 보험을 드는 게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취약계층이 배달원만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업종별로 대책을 세우는 게 힘들다.”면서 “구두계약서, 4대보험 미가입 등 위반 사항에 대해서는 사업장 감독을 할 때 반영하겠다.”고 말했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다른 기사 보러가기] “환자가 돈?”…‘노인 빼가기’ 막가는 요양기관 “마지막 촛불 수배자를 잡아라” 경찰 필사적 혼자먹기도 아까운 매생이를 ‘미운 사위놈’에? 여자체조 박은경은 국내서 유일하게 □□를 한다 미네르바 박모씨 “학벌이 글 쓰는 데 무슨 상관?” ’학동마을’ 전군표에 가기까지 오리무중
  • “81번 버스 안의 그녀에게 전달되길 바랍니다”

    “81번 버스 안의 그녀에게 전달되길 바랍니다”

    지난 11일 부산에 사는 이 청년은 81번 시내버스 안에서 밝은 분홍색 반코트를 입고 함초롬히 앉아있는 한 여성을 보고 가슴이 방망이질치기 시작했다.오전 11시40분부터 20분 남짓 부산 서면쪽으로 가는 이 버스 안에서 청년은 줄곧 그녀를 훔쳐보았지만 차마 먼저 말을 걸 용기를 내지 못했다.그리고 중앙시장 정류장에서 먼저 내리고 말았다.  그리고 13일 ID를 ‘좋은날’이라고 한 이 청년은 포털 다음의 토론 사이트 ‘아고라’의 ‘이야기 글쓰기’ 코너에 ‘그녀에게 전달 되길 바랍니다’란 제목으로 글을 올렸다.제법 솜씨가 느껴지는 스케치와 함께.  좋은날은 그녀가 3대7 가르마에 약 50㎜ 길이의 머리핀을 꽂고 있었고 약간 무늬가 들어간 패브릭 재질의 갈색 구두를 신고 있었다고 인상착의를 자세히 묘사했다.이틀 가까이 지났는데도 구두 굽이 거의 없었다는 점까지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처음으로 용기내서 다음에 글을 올려본다.’며 ‘단지,이 용기가 조금이나마 의미를 가질 수 있도록 한 번이라도 그녀가 봤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썼다.’합주를 하기 위해’ 이 버스를 탔다고 밝힌 것을 보면 음악도임에 분명한 그는 ‘부산진역 즈음에서 그녀가 승차하는 것을 얼핏 보고 너무 심장이 뛰어서 그녀를 쳐다볼 수가 없을 정도였다.’고 수줍게 고백했다.  노약자석에 앉아 있던 그는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그녀가 앉아 있는 출입문 근처에 서있는 자신을 발견했다.아래를 힐끗 보던 그는 ‘손을 모으고 다소곳하게 앉아있는 모습을 본 순간’ 말을 걸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좋은날은 그녀를 ‘따라 가고 싶었지만,다른 팀원들을 생각해서 아쉬움을 뒤로 하고 그만 하차하고 말았다.’며 ‘하루 종일 용기를 내지 못한 그 순간을 후회하다가 예전에 여기에서 사람을 찾는 글을 본 적이 있었던 것 같아 이렇게 글을 올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혹시 사랑하는 누군가의 사람이 아니라면’이라고 전제를 달고 ‘꼭 이 글이 그녀에게 전달 되길 바란다.’고 간절한 속내를 드러냈다.마지막으로 남겨진 전화번호 010-85XX-71XX와 함께.    누리꾼들은 13일 오전 8시30분 전에 올려진 것으로 보이는 이 글에 오후 2시 현재 1만 3000건이 넘는 조회수와 많은 댓글로 다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물론 꼭 만나길 바란다.성공해 후기를 남겨주고 영화로도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성원이 많은 수를 차지했지만 쓰디쓴 현실을 지적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prince’는 ‘20년 전 고속버스에서 우연히 발견한 그녀가 생각나는군요.지금도 가끔 그 때의 모습이 선하게 각인되어 기억이 떠오르곤 합니다.첫눈의 반함은 이해가 되지만 현실은 영화같은 사연이 늘 있는 것은 아니지요, 용기는 가상합니다만 제 생각엔 그냥 첫 느낌 그대로 마음만 가졌으면 합니다.’라고 조언했다.  또 ‘부채질’은 ‘사연과 글이야 좋지만서도....전번은 어떻게 감당하실려고....전번까지 남길 용기였다면 그냥 그때 그분께 전번을 드리지...장난전화 장난이 아니실건데....그중에 나도 있을라나.’라고 장난스럽게 적었다.’븅~ 버스떠나고 손흔드네...ㅋㅋㅋ’라면서 놀려대는 이(’깐따삐야’)도 있었다.  하지만 정작 이 여성의 존재를 확인하거나 전번을 제보하거나 하는 이는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미네르바 논란’으로 시끄러운 아고라지만 이런 얘기도 담길 수 있는 곳이다.  인터넷은 그런 곳이다.  인터넷서울신문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서울신문 다른기사 보러가기] ☞“첫눈에 반한 그녀를 찾습니다” 中서 이색 지하철광고 ☞[2030] 불안한 미래… 점집 찾는 청춘들 ☞유학생 타메르 “가자 참상에 관심을” ☞임산부들 K은행에 분노하는 이유
  • 유학생 타메르 “가자 참상에 관심을”

    유학생 타메르 “가자 참상에 관심을”

     “사나흘에 한 번씩은 가족과 통화했는데,요즈음은 매일 수십 차례 시도하는데도 잘 안 돼요.”  팔레스타인에서 한국으로 유학온 타메르 아부메드(26)의 말입니다.그의 가족은 가자지구 안의 칸 유니스란 도시에 살고 있습니다.이스라엘군과 이 지역을 사실상 통치하고 있는 무장정치조직 하마스가 첫 교전을 벌인 가자시티에서 자동차로 30분 거리에 있습니다.이스라엘군의 침공 이후 한시라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고향 땅에 가족들이 있는 이 청년을 지난 9일 인천 인하대학교 앞 커피숍에서 만났습니다.그는 2년 전부터 이 학교에서 IT(정보통신)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데 전액 장학금에 매월 60만원 정도의 생활비를 대학으로부터 지원받고 있다고 소개했습니다.  아랍계 특유의 길고 짙은 눈썹에 커다란 눈동자가 인상적인 그는 가족들과 언제 마지막으로 통화했느냐는 질문에 “그저께 겨우 한 번 통화했어요.”라고 답했습니다.  ●수십번 전화 걸어 한번 통화될까 말까  현재 가자지구는 이스라엘군의 폭격으로 인해 전기와 수도는 물론 통신시설까지 거의 마비됐습니다.그나마 아직까지는 휴대전화 기지국이 몇 남아 있어 다행이지만 세계 각국에 흩어져 있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가족들의 안위와 친구들의 안부를 묻기 위해 한꺼번에 몰리는 관계로 통화가 잘 이뤄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타메르도 10여번 시도하면 한 두번 겨우 통화에 성공하곤 한다고 털어놓았습니다.  다행히도 가족들은 마지막 통화 시점까지 아무 일 없었다고 합니다.교사인 아버지(55)와 역시 교사직에서 은퇴한 어머니(50), 3명의 남동생과 2명의 여동생이 있는데 남동생들은 각각 24, 22, 20세이고 여동생은 각각 23,19세라고 했습니다.남동생 한 명과 여동생 한 명은 가자에서 대학을 다니는데 각각 영어와 IT(정보통신)를 전공한답니다.평소 같으면 기말고사 기간인데 이스라엘의 만행 때문에 학교가 문을 열지 않아 시험을 치르지 못하고 있고 아버지 역시 출근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통화 때는 바로 집 근처에서 포탄이 터졌다는 가족들의 전언에 요즈음 그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틈날 때마다 인터넷을 접속해 혹시 가족이나 친지,친구들의 소식이 들려오지 않을까 검색하곤 한답니다.  간간이 이뤄진 전화 통화도 언제까지 계속될지 몰라 타메르의 가슴은 새까맣게 타는 듯했습니다.이미 그의 집이 있는 칸 유니스에도 지난 6일 이스라엘군이 진입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이역만리 먼 곳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은 기도를 하는 것과 인터넷을 들여다보는 일 뿐이라고 했습니다.  2년 전 한국에 온 타메르는 떠나기 1년 전부터 사귀었던 여자친구 목소리를 최근 들을 수 있어서 너무 기뻤다고 했습니다.그러나 그 말 끝에 “우리 이웃들이 많이들 죽었다.지금 상황이 더 나빠졌는지 그렇지 않은지 잘 모르겠다. 나는 가자의 미래에 대해 매우 걱정하고 있다.”고 침울하게 말했습니다.  ●우리 안의 팔레스타인,팔레스타인 속의 우리  기자는 이날 타메르를 만나기 전 서울 이태원에 들렀습니다.매주 금요일 무슬림들의 합동예배(줌마)가 있는 이슬람 서울성원에서 팔레스타인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였습니다.하지만 그곳에서도 직접 그들의 말을 듣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그렇기에 기자는 인천에 있는 타메르를 수소문해 찾아가 만난 것입니다.  기자는 인천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많은 생각을 거듭하며 질문거리를 정리했습니다.묻고 싶은 게 많았습니다.하지만 정작 그에게 던진 질문은 몇 개 되지 않았습니다.영어가 ‘짧은’ 것도 하나의 이유였겠지요.하지만 가자지구의 역사를,이스라엘과 하마스의 관계를 자세히 설명하는 그의 말을 중간에 자를 수 없었던 탓도 있습니다.  우리 안의 팔레스타인에 대해서도 아직 이렇다하게 정확하게 정리된 것이 없어 보입니다.국교도 없는 상태에서 들어온 그들의 숫자가 얼마인지조차 그들 스스로도 정리가 안 된 것 같아 보였기 때문입니다.누구는 100명이라 했고 누구는 그보다 훨씬 적다고 했습니다.타메르의 경우 같은 대학에 다니는 친구와는 이런저런 얘기도 나누고 하지만 유학생 신분인 다른 3명과는 어쩌다 들려오는 소식을 듣는 정도라고 했습니다.  타메르는 부패 때문에 총선에서 심판받아 쫓겨난 파타 대신 하마스가 통치하게 됐다며 이를 이유로 이스라엘이 침공 행위를 정당화하는 것은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며 매우 불공정한 처사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2시간여 진행된 인터뷰에서 그가 가장 많이 한 말은 ‘자유’와 ‘평화’였습니다.그가 바라는 건 그리 큰 게 아니었습니다.가족의 안녕을,친구들의 안전과 건강을 바랄 뿐이라고 했습니다.  ●타메르 “자유와 평화를 위한 행진에 함께 해달라”  나와는 상관없다고,남의 나라 이야기라고 치부해버리면 그만일지도 모르겠습니다.함께 공부하는 한국 학생들은 ‘한국이 보탬이 되지 못해 유감이다.미안하다.’ 뭐 이런 얘기들을 한답니다.  한국 정부가 가자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알고 있는지 12일 전화를 통해 물어보았습니다.타메르는 “일단 한국은 가자와 너무 멀고 정치적으로도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지 않나.그래서 별로 관심이 없는 듯하다.이런 현상은 한국뿐 아니고 전세계의 문제다.전세계가 가자에 대해서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그러는 동안 가자에서 공격은 계속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라고 말했습니다.그에 따르면 가자지구에는 일단 외교관계가 수립돼 있지 않아 대사관도,기업 등의 현지 법인도 없습니다.주민들은 국내 기업의 제품들을 사용하고 있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하지만 삼성이나 LG 등 한국 기업 브랜드를 모르는 주민은 거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근래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가자지구 돕기 모금운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도 물었습니다.그는 “전세계적인 연대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전세계 정부는 무관심하지만 시민들은 매우 액티브하다.주로 아랍사람, 유럽사람들이 활동을 많이 하는데 한국 웹사이트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인터넷을 사용하는 게 매우 효과가 크다고 느낀다.인터넷을 통해 연대와 저항을 표출할 수 있어서”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날 타메르는 기자에게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한국 정부나 국민들이 가자지구에 인도주의적인 도움을 줬으면 좋겠다.무엇보다 식품과 약품,교육에 대한 도움이 있기를 바란다.’고 알려왔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이라면 한 가지는 알아뒀으면 좋겠습니다.지금 가자지구에서는 너무나도 많은 생명들이 사그라들고 있다는 사실을요.거리에서 뛰놀던 아이들이,남편의 밥을 준비하던 아낙들이 굉음과 함께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요.  이 짧은 글에 담긴 그의 메시지가 팔레스타인에,이스라엘에 그리고 당신에게 닿기를 기도해 봅니다.그리고 팔레스타인인들의 고통과 희망에 함께 하시고자 하는 분은 팔레스타인 평화연대 홈페이지(http://pal.or.kr)를 꼭 한 번 찾아주시기 바랍니다. 글 인터넷서울신문 최영훈기자 taeji@seoul.co.kr 영상 나우뉴스팀 김상인VJ bowwow@seoul.co.kr [서울신문 다른기사 보러가기] ☞임산부들 국민은행에 분노하는 이유 ☞[20&30] 불안한 미래에 점집 찾는 청춘들 ☞미네르바 말 한마디에 딜러들 달러 사쟀다? ☞발가벗은 동상에 옷 입혀준 사람을 찾습니다
  • [염주영 칼럼] 패자부활전이 없는 사회

    [염주영 칼럼] 패자부활전이 없는 사회

    신년 화두는 경제위기의 극복에 모아지고 있다. 올해 경제가 그만큼 어렵다는 반증일 것이다. 혹자는 ‘제2의 대공황’이 될 것이라고 하고, 어떤 경제학자는 ‘100년 만에 한번 올까 말까한 위기’라고도 한다. 그러나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우리 앞에 닥친 위기가 경제위기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경제위기 못지않게 사회공동체 위기에도 노출되어 있다. 사회공동체 위기를 잘 극복하지 못하면 경제가 살아나더라도 사회는 여전히 불안해질 것이다. 계층구조가 악화되고 갈등지수가 높아져 사회안정을 위협하게 될 것이다. 경제위기 극복의 절박성에 우리 모두가 공감한다. 하지만 사회공동체 위기는 관심권 밖이다. 그래서 경제위기가 극복된 이후에도 사회공동체 위기는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우려된다. 11년 전의 외환위기 때도 그랬다. 당시에 우리나라는 2년 만에 경제성장률을 9.5%까지 끌어올리며 조기에 외환위기를 극복했다. 모범적인 외환위기 극복 국가로 세계의 부러움을 샀다. 그러나 수치로 표시되는 외환위기 극복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전혀 다르다. 사회공동체 위기는 더 심각해졌다. 수많은 기업이 도산하고, 자영업체가 문을 닫았다. 이보다 훨씬 많은 수의 직장인들이 실업자 대열에 합류했다. 아예 취업의 기회조차 봉쇄된 청년실업자들은 부지기수로 많았다. 취업자의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으로 강등됐다. 많은 사람들이 신용불량자가 되었고, 일부는 노숙자가 되기도 했다. 이들에게 한번의 패배는 영원한 패배였다.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패자부활전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그 대신 ‘IMF 낙오자’라는 낙인이 찍혀 신빈곤층을 형성했다. 외환위기는 극복되었지만 그들 대부분이 제자리로 복귀하지 못했다. 우리나라의 소득불평등도(지니계수)는 외환위기 전후 2년간에 0.2830에서 0.3204로 높아졌다. 1996년에는 인구 열 명 중 한 명이 가구당 소득이 평균치의 절반에 못미치는 빈곤층에 속했다. 그러나 빈곤층 인구비율은 외환위기를 거치며 급격히 높아져 2006년에는 인구 다섯 명 중 한 명꼴로 불어났다. 외환위기 극복은 ‘그들만의 리그’였으며, IMF 낙오자들에겐 ‘그림의 떡’이었다. 물론 소수의 부자들은 더 많은 부를 쌓을 수 있었다. 하지만 중산층이 대거 몰락해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계층의 하향이동이 연쇄적으로 일어났다. 양극화가 심화되었다. 이런 변화는 지난 10년을 총체적 갈등의 시대로 만들었다. 빈부갈등·이념갈등·노사갈등·여야갈등 등 모든 분야에서 갈등이 증폭되었다. 지난 20여일 동안 여의도 의사당을 전쟁터로 뒤바꿔 놓은 여야간의 극단적인 대치는 정치권의 당리당략이 직접적인 원인이지만, 한편으론 사회내의 증폭된 갈등의 단면을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올해 또다시 생존경쟁에서 밀려난 패배자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대량으로 쏟아져 나올 것이다. 이번 경제위기가 성공적으로 극복된다 해도 그들 대부분이 원래 있던 자리로 되돌아갈 수 있을까. 이들이 경제위기 극복과 함께 제자리로 원대복귀할 수 있도록 국가가 사다리를 놓아 주어야 한다. 패배의 역경을 딛고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패자부활전의 기회를 제도적으로 보장해 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갈등을 치유하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할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패배자에 대한 배려가 턱없이 부족하다. 이사대우·멀티미디어본부장 yeomjs@seoul.co.kr
  •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청구서/안재승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청구서/안재승

    ▶등장인물: 어머니,아들,딸,아버지(1인1역),외교통상부 관계자,무장단체 요원들,기자들,시민들,각 단체 대표들(해병전우회장,기독교단체장,시민단체장),동시통역사(이상 1인다역) ▶시간 및 공간: 현대,대한민국 ▶무대: 이 극은 장면의 전환이 많다.따라서 기본적으로 빈 무대를 사용하며,사건이 벌어지는 장소의 분위기를 상징할 수 있는 최소한의 소품들을 사용한다. 1장 방 세 개짜리 반 지하방의 거실.한밤중.붉은 색,취침등이 켜져 있다.정적을 깨는 전화벨 소리.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는다.잠시 후,다시 울리는 전화벨.거실 한 구석에서 토막잠을 자던 어머니,잠에서 깨어 전화기 쪽으로 엉금엉금 기어와 손을 뻗는다.어머니,전화를 받을까 말까 망설인다.전화벨이 끊어진다.잠시 후,다시 시끄럽게 울려대는 전화벨 소리.딸이 방문을 열고 화가 난 듯한 표정으로 나온다. 딸 에이 씨! 어머니 그들일까? 딸 시끄러워.빨리 받아. 어머니,쉽게 전화를 받지 못한다.아들,방에서 나온다.어머니,망설임 끝에 전화를 받는다. 어머니 여보세요? 외교통상부 (소리)여기 외교부인데요! 어머니 (말을 자르며)어디요? 외교통상부 외교통상부요! 어머니 무슨 일이시죠? 외교통상부 (소리)조금 전에 주 파키스탄 대사관에 이 전화번호하고,김만수씨를 인질로 잡고 있다는 무장단체의 메시지가 전달됐는데요.저희도 이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인을 해야 해서요.김만수씨 집에 계시면 좀 바꿔주시죠. 어머니 제 남편요?그럼요.지금 방 안에서 자고 있는걸요.잠깐만요. 어머니,남편의 방 문 앞에 가서 문을 두드린다. 어머니 나와서 전화 좀 받아봐요! 정적.아무런,인기척이 없다.어머니,남편의 방문을 다시 두드린다. 딸 그냥 열어! 어머니 항상 잠겨 있잖니. 딸,아버지 방의 문고리를 거칠게 돌린다.쉽게 열린다.어두운 방 안에는 아무도 없다.아버지의 방은 파키스탄 어느 민가로 전환된다.환영처럼,어둠 속,눈이 가려지고 양 손이 결박당한 채 의자에 앉아 있는 아버지의 모습.아버지의 뒤로 소총을 들고 얼굴에 복면을 한 무장 단체 요원들.무장 단체 요원 중 한 명이 커다란 아랍 칼을 들어 아버지의 목을 베는 듯한 시늉을 한다.옆에서 다른 요원이 아랍어로 된 성명서를 읽으려 하는 도중,무대 밝아진다.거실,가족이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어머니 언제 없어진 걸까?(사이)너하곤 종종 얘길 하지 않았니. 아들 옛날 얘기예요. 딸 정확히 3년 전이야!내가 연기학원을 그만둔 날이었으니까. 아들 저녁을 먹는데 느닷없이 ‘난 파산했다.’고 말했죠. 딸 처음엔 장난치는 줄 알았지. 어머니 ‘양심적으로 갚으려고 했는데.이젠 돌려막기도 한계에 다다랐구나.더 이상 버틸 수 없다.’고 얘기했어. 아들 침묵.한참 후에 엄만 ‘그럼 우린 이제 어떻게 살죠?’라고 물으셨죠. 어머니 니 아빤 ‘산 입에 거미줄이야 치겠니?’라고 대답했고. 딸 방 안으로 들어가 버렸어. 아들 그 이후,우리가 있을 땐 절대 방 밖으로 나오지 않았죠. 어머니 산 입에도 거미줄을 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도. 딸 우리가 빚더미에 올라앉아 있다는 사실을 통보받았을 때도. 아들 절대 방 밖으로 나오지 않았죠. 딸 어쩌다 가끔 소리는 들려왔어. 아들 아직 살아 있구나를 확인할 수 있는. 가족들의 기억에 따라,아버지의 방 너머에서 다양한 소리들이 들려온다. 어머니 한참을 누군가와 애기하는 듯했지. 아들 알 수 없는 중얼거림. 딸 끙끙 앓는 신음소리. 어머니 다친 짐승이 울부짖는 소리. 아들 무서운 비명소리. 딸 귀신이 곡하는 소리. 어머니 깊은 한숨소리. 아들 누군가의 인기척이 느껴지면 소리가 시작되었죠.우리가 들어주길 바라는 것처럼. 어머니 아주 서툰 연기였지. 아들 동정을 바랐겠죠.아니면 자기 역시 힘들다는 걸 알리고 싶었거나. 딸 TV 볼륨을 높이면 더 크게 소리를 내.소리를 죽이면 멈추고.마치 우리를 조롱하는 것처럼. 아들 우리의 일과에 맞춰,늘 정해진 시간에 시작해서 정해진 시간에 끝이 났죠. 침묵.소리,사라진다. 딸 유령 같았어.살아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워질 정도로. 아들 방 안에서 도대체 뭘 했던 걸까요? 어머니 시간을 죽였겠지. 딸 바깥의 상황을 살피며 어떡하면 더 불쌍하게 보일까 궁리했든가. 아들 우리가 나가고 나면? 어머니 밥을 먹거나,TV를 보거나.살아 있다는 흔적을 남기듯이. 아들 외출은? 어머니 가끔 신발의 위치가 바뀌어 있긴 했는데.먼지가 그대로인 걸 봐서는 멀리 다녀온 것 같지는 않더라. 침묵. 어머니 신음 소리를 마지막으로 들은 게 언제였더라? 아들 (사이)이주 전쯤 이었을 거예요.아버진 누군가와 얘길 하고 있었어요.누군가와 비밀스런 대화를 하듯,‘이브라힘!’이라는 말을 반복했죠.미친 게 아닐까 의심했어요.제 인기척이 느껴지자 급하게 전화를 끊더라고요.그러곤 다시 신음소리를 내기 시작했죠.늘 그랬던 것처럼.갑자기 짜증이 밀려 왔어요.그래서 제가 한마디를 했죠.(사이)에이! 씨발.조용해지더군요.평화가 내려앉은 것처럼. 어머니 네가 좀 심했구나. 아들 씨발.아버지가 즐겨 내뱉던 단어죠.침묵을 제외한 유일한 단어. 딸 아빤 언제나 화가 나 있었어. 아들 늘 긴장해야 했지요. 어머니 말을 안 하니까 더 불안했지. 딸 그래도 얼굴엔 다 쓰여 있었어.알아서 기어라! 아들 복종과 침묵의 룰.일종의 계약이었죠. 딸 누구 맘대로? 아들 아빠 맘대로. 딸 왜? 아들 그야,이 집의 가장이니까. 사이.어머니,갑자기 하품을 한다. 어머니 이러면 안 되는데….자꾸 졸음이 오는구나. 딸,크게 하품을 한다. 어머니 니 아빠가 지금 잡혀있는 곳이 어디라 했지? 아들 파키스탄요. 어머니 거긴 어떤 곳이니? 아들 끝없는 모래사막 주변으로,깎아놓은 듯한 높은 산이 병풍처럼 둘러쳐 있어요. 어머니 경치가 무지 좋겠구나. 딸 이런 홀가분한 기분 정말 오래간만인 것 같아. 아들 신경 써야 할 무언가가 없다는 거. 딸,바닥에 눕는다.하품이 전염된다.아들 역시 하품을 한다.아들도 바닥에 눕는다.어머니도 하품을 한다.어머니,졸음을 참는다.어머니,갑자기 무엇인가 생각난 듯 자리에서 일어나 서랍을 뒤진다. 아들 왜요? 어머니 오늘이 이자 내는 날이구나. 딸 에이-씨.기분 잡치게 그딴 소린 왜 해. 어머니 미뤄달라고 사정 좀 해볼까? 아들 말도 안 되는 소리 좀 그만 하세요! 아들과 딸,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방으로 들어간다.어머니,고민한다. 어머니 근데 니 아빠는 왜 거길 간 걸까?(사이)진짜 아버질 죽일까?(사이)이자는 어떻게 마련하지? 무대 천천히 어두워진다.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밝아지는 무대.그 소리에 잠에서 깨는 어머니.조심스럽게 현관으로 걸어가 소리의 정체를 확인하려고 애쓴다.누군가 밖으로 난 거실의 창문을 열려는 시도를 한다.어머니,아들의 방으로 도망치듯 들어간다.어머니,아들을 앞세워 걸어 나온다.현관문과 거실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어머니 이번엔 확실하지? 아들 그냥 아무도 없는 척해요. 시끄러운 소리에 잠에서 깬 딸,부스스한 모습으로 방문을 열고 나온다. 딸 (소리를 지르며)에이-씨!왜 이렇게 시끄러워! 어머니와 아들,원망스러운 눈초리로 딸을 바라본다.조금 전보다 더 격렬하게 현관문과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딸 뭐야? 어머니 그들. 딸 아빠,파키스탄으로 도망갔다고 해. 아들 그럼 우리가 갚아야 돼. 딸 왜? 아들 가족이니까. 딸 더 이상은 아니라고 해.아버지는 우릴 버리고 떠났다.그래서 우리도 기억에서 아버지를 죽였다.그러니까 아무런 관계도 아니다. 딸,현관문을 벌컥 연다.일제히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아들,딸을 밀쳐내고 문을 닫는다.딸,화장실로 뛰어간다. 어머니 뭐였니? 아들 기자들. 어머니 왜? 아들 인터뷰하러. 어머니 뭘? 아들 우리. 어머니 왜? 아들 테러리스트에게 가장을 인질로 잡힌 가족,극적이잖아요. 딸,화장실에서 나온다.세수를 하고 나온 얼굴이다.급하게 화장품을 바른다. 딸 에이 씨,쌩얼이었는데.인터넷에 엽기사진으로 돌아다닐 게 분명해. 아들 이 상황에 그딴 소리가 입 밖으로 나오니? 딸 내 미래가 걸린 심각한 상황이니까. 아들 미친년! 어머니 (소리를 지르며)그만. 아들과 딸,각자의 방으로 들어간다.갑자기 굳게 닫혀있던 창문 틈 사이로 머리 하나와 마이크가 불쑥 들어온다. 기자1 김만수씨는 왜 파키스탄에 간 겁니까? 어머니 (당황해서)몰라요. 기자1 짐작 가는 거라도 있으신가요? 어머니 정말 몰라요.한 달 간 방안에 틀어박혀 나오질 않았으니까. 기자1 암중모색! 기자1의 얼굴이 사라지고,기자2의 얼굴이 들어온다. 기자2 와신상담!그렇다면 어떤 큰 결심이 있으셨단 얘기군요.최근 평상시와는 다른 특별한 말이나 행동은 없었나요? 어머니 늘 신음소리와 한숨소리뿐이었죠. 기자2 고뇌에 찬 인간의 탄식!집에선 주로 어떤 생활을 하셨죠? 어머니 유령처럼 살아있다는 작은 흔적만 남겼어요. 기자2의 얼굴이 사라지고,기자1의 얼굴이 들어온다. 기자1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기 위한 수양!그리고요? 어머니 가끔 TV를 봤어요. 기자1 어떤 프로그램이었죠? 어머니 동물의 왕국. 기자1,안간힘을 다해 버틴다.기자1의 얼굴이 사라지고,기자3의 얼굴이 들어온다. 기자3 저희 방송사의 인기 프로그램이군요.인터뷰를 종합하면 김만수씨는 한 달 동안의 칩거를 통해 생태계의 문제에 대한 깨달음을 얻고 그 뜻을 펼치고자 파키스탄에 가신 거네요? 기자3의 얼굴이 사라진다.창 밖에서 기자들이 다투는 소리가 들려온다.무대 점점 어두워지고,주변사람들이 아버지에 대해 증언한다.증언자의 기억에 따라,아버지의 모습이 다양하게 재현된다. 여성 그 아저씨,특별했어요.전 한 무리의 고양이들이 아저씨네 집 창문 앞에 모여 있는 걸 자주 봤어요.‘야옹!야옹!’고양이들이 선창을 하면,‘야옹!야옹!’아저씨는 화음을 넣었죠.합창하듯이.무언가 교감이 이루어지는 듯했어요.그걸 지켜보는데 온 몸에 소름이 돋더라고요. 청년 마치 축지법을 연마하는 도인 같았어요.매일 아침,계단을 뛰어 올라오는 소리와 함께 아저씨의 수련이 시작되죠.발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빠른 걸음으로 제 창문 앞을 스쳐 지나가요.‘사-삭!사-삭!’지면과 발바닥의 마찰이 없는 것처럼.잠시 후 다시 ‘사-삭!사-삭!’제 창문 앞을 스쳐지나,집으로 들어가면 수련이 마무리됐죠.아저씨 손에는 언제나 수련의 징표가 들려있었죠.요 앞 지하철역에서 나눠주는 무가지요. 무대 밝아오면,거실에 심각하게 앉아 있는 가족. 딸 에이 씨!아빠가 무슨 사이비 교주라도 되는 것처럼 떠들어대잖아.내 미니홈피는 온통 악플로 도배야.(엄마에게)도대체 무슨 말을 한 거야? 아들 사실이 아니라고 밝히면 되지. 딸 진실이라 해도 안 믿어. 아들 거짓말이라도 해서 믿게끔 만들어야지. 딸 난 결백하다,자살이라도 해야 겨우 믿을 걸? 아들 이런 건 어때?예를 들어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서 파키스탄에 갔다고 하든가,국가적 사명을 가지고 갔다고 하든가.그러면 악플 달 이유가 없는 거잖아. 딸 (비아냥거리며)아빠가 틈만 나면 욕을 퍼붓든 두 가지네. 아들 조작하면 어때?직접 확인할 수도 없는데. 어머니 있잖니….아버지 말이다.예전에 교회를 다녔다는 얘기를 들은 것도 같구나.결혼하기 전에.해병대에서. 딸 (화를 내며)그게 뭐 어쨌다고! 아들 해병대와 교회!완벽한 알리바이야!(사이,아들 부산을 떤다)엄마는 아빠 서랍장에서 해병대 군복을 찾으세요.그리고 넌 십자가 목걸이 가져오고.빨리!지금부터 우리 집 가훈은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예수천국 불신지옥!’아버진,신의 부름을 받고 귀신을 잡기 위해 파키스탄에 간 거야! 무대 점점 어두워진다,해병대 군복을 입은 해병전우회장(이하 해병)이 성명서를 발표한다. 해병 김만수 해병이 왜 파키스탄에 갔느냐?호랑이는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잡아요.네!김만수 해병은 귀신처럼 숨어있는 테러리스트를 소탕하기 위해 스스로 인질로 붙잡힌 겁니다.세계 평화를 위한 김만수 해병의 희생을 우리가 헛되이 하면 되겠습니까?테러리스트를 쓸어버리고 김만수 해병을 구합시다,여러분! 이에 질세라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는 띠를 두른 한 기독교 단체 대표(이하 기독교)가 성명서를 발표한다. 기독교 할렐루야!김만수 신도는 하나님의 뜻을 전하기 위해 홀로 미개한 땅 파키스탄에 간 것입니다.배고픔과 병으로 죽어가는 파키스탄을 어린 영혼들을 천국으로 인도하기 위해,사탄과 악마의 소굴로 몸소 걸어 들어간 것입니다.김만수 신도,죽으면 천국 갑니다.하나님의 뜻을 전파하다 죽은 자,반드시 하나님의 땅에서 영생을 누립니다.하지만 김만수 신도는 반드시 살아 돌아와서,하나님의 뜻으로 사는 자는 사탄의 총칼 앞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음을 간증해야 합니다,여러분! 암전. 2장 무대 밝아지면,다시 거실.아버지의 방문에는 빛바랜 해병대 군복이 훈장처럼 걸려 있다.군복엔 반짝이는 십자가 목걸이가 걸려 있다.아들과 딸,인터뷰를 하고 있다. 아들 아버지는 언제나 해병대 정신과 기독교 정신을 실천하며 사셨지만,단 한 번도 저희들에게 그것을 강요하시진 않았습니다.저희에겐 언제나 관대하셨죠.그래서 저희 가족은 교회에 나가지 않은 거고,저도 해병대에 가지 않은 겁니다.하지만 자신에게만큼은 엄격하셨습니다.항상 먹고사는 문제로 인해 세계평화와 전도에 자기 한 몸을 바치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하셨죠.(동생에게)그렇죠? 딸 (대답하지 않는다) 아들 감사합니다.여기까지 하죠. 일상의 거실로 되돌아온다. 딸 오빠,거짓말 진짜 잘하더라. 아들 다 우릴 위해서야.(답답하다는 듯)그래,너 연기하고 싶어 했잖아.그냥 지상 최대의 연속극에 주인공으로 캐스팅된 거라 생각해. 딸 지상 최대의 사기극이겠지. 아들 사기라니?이건 아버지,어머니,그리고 너의 생명이 달린 중대한 문제라고. 딸 그럼 오빤? 아들 나는 예비 법관으로서의 양심을 팔고 있잖아.법조인으로서의 내 인생은 오늘로 끝이라고.후회는 안 해.가족을 위해 나 스스로 포기한 거니까. 딸 그토록 바라던 게 이루어졌네. 아들 신문에 니 얼굴이 대문짝만 하게 실릴 걸.졸지에 대중의 관심을 받는 스타가 되는 거지.넌 그냥 내 계획대로만 따라와.그럼 모든 게 잘 될 테니까. 딸,자신의 방으로 들어간다.아들,자리에 눕는다.TV를 튼다.TV에선 코미디 프로그램이 방송되고 있다.아들,잠시 웃는다.그때,TV에서 뉴스 속보가 흘러나온다. 소리 뉴스 속봅니다.조금 전 파키스탄에 납치된 김만수씨에 관한 새로운 소식이 입수되었습니다.인질범들의 구체적 협상 조건이 담긴 테이프가 몇 시간 전 알 자지라 방송국에 우편으로 전달되었다는 사실이 알 자지라를 통해 보도됐습니다. 무대 어두워지면,어둠 속,눈이 가려지고 양 손이 결박당한 채 의자에 앉아 있는 아버지의 모습.아버지의 몸엔 폭탄으로 보이는 물체가 매달려 있다.폭탄을 두른 아버지의 뒤로 소총을 들고 얼굴에 복면을 한,한 명의 무장 단체 요원이 아랍어로 된 성명서를 읽는다.인질 석방을 위한 본격적인 협상이 진행된다.외교통상부 관계자,해병전우회장,기독교단체장,무장단체 요원이 나온다.동시통역사가 진행자의 역할을 수행한다.과장된 무장단체 요원의 몸짓을 따라하며 통역을 하는 동시통역사.가족들도 토론의 장에 불려 간다.이들은 토론에 참여한 방청객으로,패널의 말을 듣고 반응한다. 동시통역사 우리는 김만수와 관타나모 수용소에 수용되어 있는 탈레반 인질 10명의 맞교환을 요구한다. 외교통상부 인질범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 것이 국제사회의 철칙입니다.테러리스트의 석방이라니요?국제사회의 비난이 불 보듯 뻔합니다. 해병 일단 교환합시다.교환하고 나서 아예 싹쓸이해 버리자고요.해병 1개 연대면 초토화시킬 수 있습니다. 기독교 하나님은 김만수 형제를 사랑하십니다.잘못된 길로 빠진 테러범들도 사랑하십니다.일단 저들의 요구를 들어주고,테러범들이 하나님 앞에 참회할 시간을 주어야 합니다. 무장단체 요원,무언가를 말한다. 동시통역사 요구조건을 들어주지 않으면,몸에 감긴 폭탄을 터뜨리겠다. 기독교 오,지저스!당장에 저들의 요구를 들어주십시오. 해병 저런 사지를 찢어죽일 놈들. 외교통상부 인질 맞교환은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미국 정부와의 합의가 전제되어야……. 기독교 세계는 모두 하나님의 나라입니다.미국도 하나님의 나랍니다.우리는 형제입니다.형제의 생명을 구하는 일이라면 미국은 어떤 조건도 내세우지 않을 겁니다. 해병 미국은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하는 나랍니다.국민들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군사작전도 불사합니다.안보문제라면 해병 전우회라도 특공대로 보냅시다.해병대는 예비역도 귀신 잡습니다. 무장단체 요원,황당한 표정이다.한참을 고민한 끝에 무언가를 말한다. 동시통역사 협상시한은 내일 낮 12시! 기독교 자,우리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김만수씨의 무사 생환을 촉구하는 예배를 올립시다.다 같이 일어나십시오!기도합시다!(손뼉을 치며,찬송가를 부른다.) 해병 전우여,해병의 힘을 보여줍시다.김만수 해병,우리가 구해옵시다.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반동에 맞추어 ‘팔각모 사나이’를 부른다.) 상대에게 질세라,목청 높여 노래한다.무장단체 요원,어이없다는 표정이다.가족들,무언가를 말하려 하지만 발언권이 주어지지 않아 제지당한다.무장단체 요원,무언가를 말한다. 동시통역사 다만……. 모두 숨을 죽인 채,통역이 되기를 기다린다. 동시통역사 미화 100만달러를 지불한다면,인질을 석방할 용의가 있다. ‘와~’,기독교 단체와 해병전우회가 서로 끌어안고 환호한다. 기독교 기적입니다!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해병 저 놈들,겁먹은 거야!해병대의 패기에 얼어버린 거야! 그때,시민단체장(이하 시민단체)이 나타난다.젊은 여성이다. 시민단체 국민의 혈세를 함부로 낭비할 순 없습니다! 해병 지금 사람 생명보다 돈이 중요해! 기독교 하나님은 그 무엇보다도 인간의 생명이 중하다 말씀하십니다. 시민단체 도대체 그 많은 돈을 어디서 마련합니까!외교부 예산에서 마련하시겠습니까?아니면 국방예산에서 마련할까요?종교인에게 세금을 거둘까요? 침묵. 해병 솔직히 100만달러면 바가지 아니야? 기독교 목사님들,항상 베풀기 때문에 배고픕니다. 해병 정부가 나서서 협상금 내려야 하는 거 아니야? 기독교 자,우리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김만수씨의 협상금을 낮추는 예배를 올립시다.다 같이 일어나십시오!기도합시다! 해병 전우여,해병의 힘을 보여줍시다.김만수 해병 협상금,우리 깡으로 깎아봅시다.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 시민단체 잠깐!왜 팔각모 사나이죠?여해병도 있는데!이건 남녀 차별이에요! 서로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느라 바쁘다.참다 못 한 어머니,토론장으로 뛰어들어 말한다. 어머니 사람 목숨 가지고 지금 뭣들 하시는 거예요!그 돈,우리가 갚을 테니,일단 살리고 봐요! 침묵. 외교통상부 정부는 인질 석방을 위해 미화 100만불을 지불할 용의가 있음을 무장단체 측에 공식적으로 통보합니다.단,추후 김만수씨 가족에게 협상 과정에서 들어간 비용 일체를 청구하되,도의적 차원에서 이자는 받지 않겠습니다.이상.기자회견을 마칩니다. 가족만 남기고 모두 사라진다.어머니를 노려보는 딸과 아들. 딸 에이- 씨! 아들 도대체 왜 나서서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요! 침묵. 아들 젠장 무덤에 들어가서도 청구서 받게 생겼군. 딸 둘이 알아서 잘 해봐.그 돈 갚느라 내 청춘 낭비하고 싶지는 않아. 아들 니 청춘은 금값이고,내 청춘은 똥값이냐? 딸 오빤 장남이잖아. 어머니 니들은 걱정 말아라.내가 갚으마.일을 하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아들 뭐 생명보험이라도 들어놓은 거 있어? 그때,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아무도 문을 열려 하지 않는다.문을 두드리는 소리.마지못해 딸이 현관문을 연다. 딸 에이 씨!누구야! 얼굴을 내미는 검은 양복의 대부업체 직원. 대부업체 여기가 김만수씨 댁이죠? 아들 인터뷰 안 해요.그냥 가요. 아들,문을 닫으려 한다.대부업체 직원,필사적으로 문을 막아서고 안으로 들어온다. 대부업체 (주머니에서 계약서를 꺼내 들이밀며)하지만 계약서상에는……. 아들 약속 취소합시다. 대부업체 그러면 법적인 문제가……. 아들 기자양반.기자 양반이 양심이 있어야지.아무리 특종이 밥 먹여 준다 해도,당사자가 원치 않는 취재를 하면 쓰겠어! 대부업체 기자라니요?전 희망캐피탈에서 나왔는데요,김만수씨 대출금 관계로. 아들의 표정이 굳어진다.대부업체 직원 얼굴에 미소를 띠고,친절하게 말한다. 대부업체 경황이 없을 줄은 압니다만,국가에서 청구한 돈을 먼저 갚으시느라 연체 이자가 산처럼 불어나는 상황에 처하게 되시는 건 아닐까 걱정이 돼서 찾아왔습니다.상환일은 앞으로 삼일.만약에 그 기한 내에 갚지 못하시면,김만수씨의 협상금 중 일부를 차압할 계획입니다.뭐,확실히 돈을 갚으시겠다는 약속만 해주시면 도의적인 차원에서 일주일정도 기한 연장을 해드릴 수 있습니다. 암전. 3장 어머니가 가사도우미를 하는 아파트의 베란다이다.의자 위에 올라가 창과 창틀을 닦는다.매우 힘겨워 보인다.허리가 아파 쉬는 어머니.크게 하품을 한다.어머니,다시 창을 닦는다.창을 닦는 속도가 느려지고 어머니,꾸벅꾸벅 존다.그 모양이 위태롭다.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는 어머니.초겨울 낮의 나른한 햇살에 평화롭게 잠든 어머니.잠시 후,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들려온다.어머니,그 소리에도 아랑곳없이 존다.누군가 현관문을 다급하게 두드리는 소리.그 소리에도 아랑곳없이 존다.휴대전화가 울린다.휴대전화 소리에 놀란 어머니,균형을 잃고 창문 밖으로 떨어질 뻔한다.다시 균형을 잡고 전화를 받는 어머니. 어머니 여보세요. 아들,무대 오른쪽에 나타난다. 아들 나예요! 어머니 웬일이니.아침밥은 챙겨먹었니? 아들 지금 그게 중요해요? 다급하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 어머니 잠깐만…….누가 왔나보다.조금 있다가 다시……. 아들 문 열면 안 돼요. 어머니 왜? 아들 경찰이에요. 어머니 경찰? 아들 아래를 봐요. 어머니,아래를 내려다본다.무대 왼쪽,고개를 쳐들어 위를 바라보고 있는 일군의 사람들. 어머니 어디 구경거리라도 있니? 아들 엄마. 어머니 나를 왜? 아들 자살하려는 줄 아니까요. 어머니 (큰 소리로)저기요!전 죽으려고 하는 게 아니라……. 아들 미쳤어요?당장 죽을 것처럼 행동하세요. 어머니 왜 그런 거짓말을 하니. 아들 우리를 살리는 거짓말이니까요.아버지 얘기를 해요.사람들의 동정심을 유발해서,돈을 모으는 거예요. 딸,무대 왼쪽에 나타난다. 딸 (비명을 지르며)엄마!죽으면 안 돼!내려와 제발! 사람들,딸을 쳐다본다. 어머니 (창 밖을 내다보며)저 아래서 소리 지르는 애,미애 아니니? 딸,실신한다.사람들,딸의 얼굴에 물을 붓고,뺨을 때린다. 어머니 어머,쟤 왜 저래.어디 아픈 거 아니야? 아들 연기하는 거예요. 어머니 내려가 봐야겠구나. 아들 가만히 계세요.제가 그러라고 시킨 거예요.극적 효과를 위해서.모든 게 제가 짠 시나리오예요.얘기를 시작하세요.더 이상 시간이 없어요.사람들 관심은 그렇게 오래가지 않으니까요.일단 제가 시키는 대로만 하세요. 어머니 도대체 이게 뭐하는 건지. 아들 (화를 내며)잔말 말고 시키는 대로 좀 하세요.이게 우리에겐 마지막 기회고 희망이에요.(사이)저는! 어머니 (작은 목소리로)저는. 아들 크게!그래서 저 사람들한테 들리겠어요? 어머니 (큰 소리로)저는. 사람들,딸을 내팽개쳐 둔 채,고개를 쳐들어 어머니를 바라본다. 아들 파키스탄에 피랍되어 있는 김만수의 아내입니다. 어머니 (큰 소리로) 파키스탄에 피랍되어 있는 김만수의 아내입니다. 아들 제발 제 남편 좀 살려 주세요. 어머니 (큰 소리로) 제발 제 남편 좀 살려 주세요. 사이.사람들,웅성거린다. 아들 저는 죄인입니다. 어머니 (큰 소리로)저는 죄인입니다. 아들 협상금을 마련할 돈이 없어,차라리 남편이 죽기를 바랐습니다. 어머니 (큰 소리로)협상금을 마련할 돈이 없어,차라리 남편이 죽기를 바랐습니다. 아들 이젠 우세요. 어머니 (큰 소리로)이젠 우세요. 아들 (화를 내며)진짜 울라고요! 어머니의 실수에 사람들 동요한다.실눈을 뜬 채 상황을 지켜보던 딸,갑자기 일어나 소리를 지른다. 딸 (비명을 지르며)엄마!죽으면 안 돼! 사람들,딸을 쳐다본다.어머니,우는 시늉을 한다. 아들 더 크게 울어요. 어머니,대성통곡을 한다.사람들,고개를 쳐들어 어머니를 바라본다. 아들 좋아요.사람들 반응이 오기 시작했어요.자 이번엔 발을 하나 밖으로 빼세요. 어머니,망설인다. 아들 뭐 하세요!빨리요! 어머니,발을 하나 뺀다.중심을 잃고 휘청거린다.사람들 웅성거리며,눈을 가린다. 아들 아주 좋아요!어,잠깐….저게 뭐지?큰 일이에요.옥상에서 구급대원들이 내려와요.(사이)그냥,뛰어내려요.안전 매트 때문에 죽지는 않을 거예요! 어머니 여기서? 아들 여기서 끝나면 해프닝이지만,뛰어내리면 충격이 돼요.남편들은 남편을 살리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던지려 한 어머니를 보며 잠시나마 사라졌던 자신의 존재감을 되찾을 수 있겠지요.주부들은 가슴 속에서 싸늘하게 식어버린 남편에 대한 순수한 사랑의 불씨를 되살릴 수 있을 거고요.그리고 그런 기회를 준 어머니에게 기꺼이 자신들의 지갑을 열겠지요.따지고 보면 모두에게 좋은 일이에요. 어머니,망설인다. 아들 어머니!빨리요!그들이 와요! 어머니,뛰어내린다.딸,비명을 지르며 실신한다.암전. 4장 거실.어둠 속,아들과 딸이 나란히 앉아 컴퓨터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다. 아들 얼마야? 딸 기다려. 딸,조심스럽게 클릭을 한다. 아들 (손으로 자릿수를 셈하며) 9억 5천 백……. 딸 7십 4만 5천원. 아들 (환호하며)됐어.성공이야. 딸 (아들을 기쁘게 끌어안으며)지금도 계속 들어와. 아들 (감격에 겨워)고생 끝났다. 딸 이게 다 오빠 아이디어 덕분이야. 아들 니 연기가 큰 몫을 했지.(비명 지르며 쓰러지는 흉내를 내며)아! 딸 근데 솔직히 아깝다.협상금을 다 모은 걸 알게 돼도,사람들은 계속 돈을 보내줄까? 아들 그 사람들이 어떻게 알겠어?계좌추적 해 보는 것도 아니고. 딸 더도 말고 한 5억만 더 들어왔으면 좋겠다. 아들 우선 집 한 채 사고,작은 가게 하나 내고,남으면 차 한 대 사고…. 딸 왜 집하고 가게야?그냥 똑같이 반으로 나눠. 아들 가게해서 돈 많이 벌면,너 시집갈 때 한 몫 단단히 챙겨줄게. 딸 그럼 가게는 내가 할게. 아들 널,뭘 믿고. 딸 오빤,뭘 믿고? 어머니,현관문을 열고 들어온다.아들,어머니를 보며 반가워한다. 아들 다녀오셨어요. 딸 다녀오셨어요. 어머니,말이 없다.넋이 나간 사람 같다.어머니,외투를 벗어들고 딸의 방으로 들어간다. 아들 (은밀하게)어머니한테는 돈 얘기 하지마.괜히 신경 쓰시게 하지 말자고. 딸 남은 돈,모두 돌려주라고 할까봐 그러지? 아들 그렇게 되면 어머니나 너한테도 안 좋은 일이잖아. 어머니,옷을 갈아입고 나온다.아들,어머니를 부축해 자리에 앉힌다. 아들 (어깨를 주무르며)피곤하시죠. 어머니 일은 잘 처리됐니? 딸 아직 많이 모자라요. 아들 그래도 협상금 정도는 모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머니 한 시름 놨구나. 딸,조용히 방으로 들어간다. 어머니 큰일이다.일,그만 나오라는구나.협상금은 해결됐다고 해도,당장 사채 갚을 일이 막막하네. 아들 걱정마세요.이제 일 그만두셔도 돼요.어머닌 이제 대중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스타잖아요.잡지 인터뷰도 줄을 이을 거고,방송출연 요청도 쇄도할 거예요. 침묵. 어머니 남 속이는 일은 그만하자. 아들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마세요. 어머니 나중에라도 진실을 알게 되면 어떡하니. 아들 용서하겠지요.모두를 위한다는 명분이면,모두 용서되는 시대니까요. 침묵. 어머니 뉴스에 니 아버지 소식은 없었냐? 아들 만날 똑같은 뉴스의 반복이죠.가능한 모든 노력을 다하고 있다. 침묵. 어머니 니 아버진 벌써 죽은 게 아닐까? 아들 아버진 그렇게 쉽게 죽을 사람이 아니에요.의지가 강한 분이잖아요.평생을 자기 뜻대로만 살아오신 분이에요.심지어는 우리들까지도 자기 뜻대로 만드셨죠. 어머니 그래서 걱정되는구나.테러범들한테까지 제 고집 부릴까봐. 아들 걱정하지 마세요.(사이)도장 좀 주세요.일단 돈 좀 찾아서 아버지 협상금부터 보내야겠어요. 어머니 네 침대 밑에 있어. 아들 제 침대요? 어머니 거기가 제일 안전할 것 같아서. 침묵. 아들 그럼 쉬세요. 어머니 법아. 아들 네? 어머니 아니다. 어색한 침묵.아들,자기 방으로 들어간다.어머니,자신의 주머니에서 카드 명세표를 꺼내 본다.한동안 아들 방을 쳐다보다,고개를 푹 숙인다.그때,방문을 열고 뛰쳐나온다. 딸 큰 일 났어. 아들,자기 방에서 뛰어나온다.딸,TV의 전원을 켠다. 소리 다시 한 번 전해드립니다.무장단체에 피랍된 김만수씨와 관련된 새로운 동영상이 유튜브에 게시되었습니다.이 동영상은 알자지라에 의해 공개된 테이프의 원본으로 보이는데요.아마도 누군가가 테러범들의 컴퓨터를 해킹해 인터넷상에 올려놓은 것이 아닐까 짐작됩니다. 무대 어두워지면,눈이 가려지고 양 손이 결박당한 채 의자에 앉아 있는 아버지의 모습.아버지의 뒤로 소총을 들고 얼굴에 복면을 한 두 명의 무장 단체 요원들. 한 명의 무장 단체 요원,커다란 아랍 칼을 들어 아버지의 목을 베는 듯한 시늉을 한다.옆의 다른 요원,아랍어로 된 성명서를 읽는다.아버지의 목에 칼을 대고 있던 무장단체 요원,칼을 떨어뜨리고,성명서를 읽던 무장단체 요원의 말이 꼬인다.그 순간,아버지가 피식하고 웃는다.갑자기,해병전우회장과 시민단체장이 무대 위에 난입해 설전을 벌인다. 해병 생명의 위협을 받는 순간에 미소라?이게 바로 해병대 정신입니다. 시민단체 돈 뜯어내려고 연기하다 실수하니까,지들끼리 히히덕거리는 거 아닙니까.이건 명백한 대국민 사기극입니다.정부가 얼마나 물러 터졌으면,이런 사기를 칩니까. 해병 해병대는 오로지 악입니다. 시민단체 진실이 명백하게 밝혀졌는데,아직도 사기꾼을 우상화하실 작정입니까? 해병 해병대는 오로지 깡입니다. 시민단체 속아서는 안 됩니다.어젠 김만수 부인이 국민을 상대로 쇼를 벌이더군요.누가 봐도 어설프지 않습니까?실제 자살하려는 사람은 그렇게 말이 많지 않아요!김만수 부인이 떨어진 건 의도된 거라고요.뒷조사를 해봤더니,김만수씨 빚이 조금 있더군요. 해병 그게 뭐요?요즘 은행 빚 없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시민단체 다 사채빚이라는 게 문제지요.여기 증거자료가 있습니다. 해병 뒷조사는 불법 아니에요?정의니 어쩌니 떠들어 대더니 다 가식이구먼? 시민단체 (당당하게)어쨌든지 결과가 이렇게 나오지 않았습니까!이건 다 정부의 무능 때문이에요.정부가 일을 확실하게 했다면,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거 아닙니까?뭐,가족은 진실을 알겠죠.내일 12시,외교통상부에 나와서 가족들이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할 것을 강력하게 건의합니다. 해병 네,해병대 정신으로 당당하게 진실을 밝히세요. 두 사람,사라진다.가족들,둘러앉아 있다. 딸 에이- 씨.좀 어떻게 좀 해봐.다 오빠가 벌인 일이잖아. 아들 (화를 내며)나도 지금 생각중이야. 어머니 솔직하게 이야기하고,돈 돌려주자. 아들 미쳤어요? 어머니 나쁜 의도로 그런 게 아니니까,용서해 줄 거야. 아들 그럼 나랑 미애는?평생 빚쟁이한테 시달리면서 살라고? 딸 차라리 죽어버리지! 침묵. 아들 일단 아버지가 왜 웃었는지만 밝히면,어머니가 벌인 자살소동에 대한 의심은 사라질 거예요.아버진 도대체 왜 웃었을까? 딸 저번처럼 그냥 모른다고 할까? 아들 오히려 더 의심할걸? 딸 모르는 게 사실이잖아. 아들 사실보다 더 사실 같은 거짓을 말해야 믿는 게 사람들이잖아.(사이)이건 어때?아버지는 무서우면 웃는 버릇이 있다. 딸 그러면 해병은 겁쟁이가 아니라고 말하겠지. 아들 그럼 이건?아버지는 지금 납치범들의 행동을 비웃는 것이다.웃음은 의지의 표현이다. 딸 그러면 시민단체에서 의심하겠지.그렇게 의지가 있는 사람이 사채를 끌어다 썼느냐고. 아들 (화를 내며)에이- 씨! 사이,가족들 생각한다.딸,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난다.문갑 위,작은 액자를 들고 온다. 딸 이게 언제지? 어머니 아버지 생일파티 같구나. 딸 여기 날짜가….내가 여덟 살 때네? 아들 난 케이크 자르는 칼을 들고 있고. 딸 난 그 앞에서 편지를 읽고 있고. 아들 아버진 웃고 있어. 어머니 얼마 후,니 아버진 친한 친구에게 사기를 당했지.그 친구를 잡겠다고 전국을 헤매다가 정작 할머니가 돌아가시는 걸 보지도 못했고. 아들 그때부터였어.아버지가 웃지 않은 건.아버진,그때를 생각하고 있었던 걸까? 딸 죽을 거라고 생각해서? 어머니 마지막으로 웃었던 그때를? 그때,아들 휴대전화의 벨이 울린다.아들,전화를 받는다. 아들 여보세요. 무대 한 쪽,이브라힘의 모습이 나타난다.한국어를 제법 구사한다. 이브라힘 안녕하세요. 아들 누구시죠? 이브라힘 이브라힘이다. 아들 (잘 못 알아듣는다)누구요? 이브라힘 만수형님 같이 일하던 이브라힘이다.집에도 몇 번 갔다. 아들 이브라힘? 이브라힘 그래 이브라힘이다.지금 옆에 누구 있냐? 아들 가족들요. 이브라힘 노 폴리스? 아들 네. 이브라힘 만수형님,나랑 같이 있다. 아들 뭐라고요? 이브라힘 걱정 말아라.만수형님 다 좋다. 아들 무슨 소리예요?아버지가 왜 당신이랑 있죠? 이브라힘 믿어라.내가 만수형님 목소리 들려준다. 이브라힘,수화기에 녹음기를 가져다 댄다.아들,전화를 모두가 들을 수 있게 스피커폰으로 전환한다. 아버지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라.모든 건 다 내가 꾸민 일이다.대충 모든 게 내 계획대로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 같구나.협상금이 전달되면,나는 협상금의 3분의1을 이브라힘 몫으로 떼어주고,나머지를 해외 계좌에 송치해 둔 채 한국으로 들어갈 거다.그 돈이면 내가 진 빚 갚고도 넉넉히 남으니까,사업도 다시 시작할 수 있을 듯하다.(사이)일단 이브라힘한테 빌린 돈으로 그럭저럭 지낸다.솔직히 음식도 입에 안 맞고 잠자리도 불편해 죽겠다.빨리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구나.(사이)메시지 받거든,그곳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이브라힘한테 좀 전해라.꼭! 어머니,전화를 끊어버린다.긴 통화대기음,암전. 5장 외교통상부 내의 작은 방.작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가족이 앉아 있다.긴 침묵. 어머니 지금 몇 시니? 아들 7분 남았어요. 딸 시간, 뒤로 미뤄. 아들 무슨 꿍꿍이냐고 더 의심할 걸? 딸 그럼 빨리 결정하든가?뭐 그렇게 어렵게 생각해.난 아까 결정했어. 어머니와 아들,딸을 쳐다본다. 딸 난 우릴 속였다는 게,용서가 안 돼. 아들 그래서? 딸 협상금 주지 마. 어머니 그럼 아빤? 딸 어떻게 되겠지. 아들 이브라힘이 순순히 보내줄까? 딸 알아서 해결하겠지. 어머니 그래도 그럴 순 없다. 딸 왜? 어머니 니들 아버지니까. 딸 아버지다워야 아버지지.다 늙어서 그나마 엄마 대접 받고 살려면,엄마도 결정 잘해.어떡할 거야? 엄마,충격을 받은 듯 무너진다. 딸 에이-씨!시간 없어.빨리 결정해!아니면 나가서 내 맘대로 말한다! 딸,문을 열고 나가려 한다. 아들 아버지가 돌아오면 어떻게 될까? 딸 모든 게 예전으로 돌아가겠지.난 더 이상 그렇게는 못 살아.그나마 아버지한테 빚이 있었으니까,우리가 숨이라도 쉬면서 살았던 거 아니야?아마 빚 갚고 나면 그 빌어먹을 가장의 권위를 내세워서 다시 우리 숨통을 조일 거야.우리가 빚이라도 진 것처럼 끊임없이 무언가를 청구하겠지. 아들 그래도 아버지는 돈은 잘 벌어 왔잖아.그걸로 우리도 한동안 먹고살았고. 딸 결정적인 순간엔 아버지 편드는 걸 보니까,오빠도 별 수 없는 남자구나. 아들 누구 편을 들어!솔직히 너한테 들어가는 돈이 나보다 몇 배는 많았잖아. 딸 돈을 주니까 그게 사랑인 줄 알았고.하지만 지금은 그게 사랑이 아닌 건 알아.난 그냥 먹이를 주면 반사적으로 꼬리를 흔드는 개랑 다를 바 없었어. 아들 네 허영심을 채우려면 돈이 필요하니까,그래서 꼬리친 건 아니고? 딸 마약이라도 발라 놓으셨는지,끊어버리기엔 너무 달콤하더라고. 아들 그 돈이 아깝다.내가 그 돈을 가지고 장사를 했으면 재벌 됐겠다. 딸 나도 더러워서 진즉에 독립하려 했어.근데 빌어먹을 집구석이 당장에 원룸 마련해줄 돈 한 푼 없는데 어떻게 해!우리 협상금 나눠 갖고,여기서 다 갈라서자.아빠야 그냥 납치범들한테 죽었다고 생각하면 되지.사실 우리한테 아빤 죽은 거나 다름없었잖아.그리고 엄마한테 한 가지 충고하는데,이 새끼한테 밥 얻어먹을 생각 하지도 마.말하는 본새가 아빠랑 똑같아. 어머니,딸의 뺨을 때린다. 아들 그 년 잘 맞았다!계집애가 주둥아리를 함부로 나불대더라고.어디 오빠한테 대들어! 어머니,아들의 뺨을 때린다. 어머니 이놈의 종자들 다 지긋지긋해.애비나 새끼나 다 돈 생각뿐이야.돈이 가족보다 중요해?(사이)그럼 나도 이참에 엄마 딱지 버리고,돈 한 번 밝혀볼까?(사이)앞으로 모든 일은 내가 알아서 해.토 달면 알몸으로 확 내쫓아버리는 수가 있으니까,조심해! 어머니,아들의 전화기를 빼앗아든다.이브라힘에게 전화를 한다. 어머니 여보세요?이브라힘?나야.김만수 아내.남편한테 전해.협상금이고 뭐고 땡전 한 푼 보내 줄 수 없으니까,알아서 오든지 거기서 살든지 맘대로 하라고. 뭐?난 모르는 일이니까,빌려준 돈은 알아서 받아! 무대 한 쪽,단상이 마련되고 누군가가 문을 두드린다.어머니,아들의 가방에서 협상금이 담긴 통장을 꺼내든다.그리고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기 위해 단상에 오른다. 어머니 우선 제 남편 일과 관련해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안겨드린 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저희 가족은 남편이 왜 목에 칼이 들어온 순간에 웃었는지 모릅니다.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어머니 솔직히 전 남편의 얼굴도 잘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예전에는 먹고사는 게 바빠서 얼굴을 볼 시간이 없었고,먹고살 만하니까 더 잘살아 보겠다고 바빠서 얼굴을 볼 시간이 없었고,욕심 부리다 쫄딱 망해먹고 나선 가족 볼 면목이 없다고 방에서 나오질 않아서 얼굴을 볼 수 없었습니다.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어머니 남편이 왜 파키스탄에 갔느냐를 두고 말이 참 많았습니다.듣고 있으면 하나같이 다 그럴듯합니다.근데 자기들 맘대로 사람을 살렸다 죽였다 합니다.하긴 그게 직업이니까,먹고살려면 어쩔 수 없겠지요.그래도 이건 아닙니다.먹고사는 게 사람 목숨보다 중요합니까?먹고살자고 하는 짓이라고 해서 다 용서가 됩니까?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어머니,통장을 단상 위에 놓는다. 어머니 남편은 지금 무장단체에 붙잡혀 있는 게 아닙니다.같이 일하던 파키스탄 노동자가 임금체불에 대한 대가로 사기극에 가담해 달라고 협박한 모양입니다.네,베란다 사건은 다 쇼입니다.남편이 진짜로 붙잡힌 줄 알고, 사기를 친 겁니다.다들 엄청난 돈을 보내주셨더군요.‘이 끔찍한 땅에도 아직까지 온정이란 게 살아있구나.’라고 느꼈습니다.남편의 협상금에 보태라고 보내주신 돈,여기 그대로 있습니다.한푼도 건드리지 않았으니 다들 찾아가세요.하지만 이유야 어찌 됐든 제가 국민여러분을 기망했으니 책임을 져야죠.저를 사기 미수죄로 처벌하십시오.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어머니 욕 하실 분들,실컷 욕하십시오.하지만 저도 기왕에 이렇게 된 거 욕 좀 해봅시다.자기만 배불리 먹겠다고 돈 떼어 먹은 최동렬,돈 제때 갚지 못한다고 인질 협상금까지 차압하겠다는 희망캐피탈,니들 그렇게 사는 거 아니야! 카메라 플래시가 터진다.무대 서서히 어두워진다. 에필로그 어머니와 가족,거실에 둘러앉아 있다.어머니,상 위에 장부를 펼쳐놓고 있다.그 옆에서 아들은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딸은 컴퓨터 앞에 앉아 인터넷 검색창을 띄워놓고 있다. 아들 일이 잘 해결되어서 다행이에요.사기 미수죄는 처벌할 수 없다는 거,정말 기막힌 아이디어였어요. 딸 덕분에 떼인 돈도 받아낼 수 있었고,사채이자도 탕감 받을 수 있었고.정말 연기가 죽여줬어요. 어머니 니들만 잘난 줄 알았지?니들이 누구 배에서 나왔는데! 아들과 딸,웃는다.어머니의 표정은 냉담하다. 아들 근데 아버지는 왜 안 돌아오세요? 어머니 그 인간 고생 좀 할 거야.이브라힘한테 돈 부쳐주면서 그랬지.그 인간 정신차릴 때까지 한 달 정도 파키스탄에서 일 좀 시키라고 했거든. 딸 그래도 좀 심한 거 아니에요? 어머니 그 인간이 한 거에 비하면 새발의 피야.그건 그거고,계산을 마저 끝내 볼까? 아들 근데 꼭 이렇게까지 해야 돼요? 어머니 사랑을 돈으로 환산하는 거,이게 너희들 사고방식 아니니?싫으면 집 나가시든가. 아들 어디까지 했죠? 어머니 부부생활 항목. 아들 섹스를 하는데 들어가는 노동 비용을 20~24세 도시 근로자 평균 임금……. 어머니 니 아버진,평균에도 못 미쳤다.최저로 계산해. 딸 (자판을 두드리며)시간당 최저 임금은 삼천 칠백 칠십 원이야! 아들 그럼 반올림해서 시간당 사천원.칼로리 소모가 보통 노동의 10배는 될 테니까 시간당 4만원을 잡고……. 어머니 1시간까지 가본 적은 없는데?보통 30분 안에 끝났어. 아들 그럼 최저 임금의 이분의 일인 이만 원에 한 달 평균 20회 정도 관계를 맺는다고 치고……. 어머니 스무 번은커녕 열 번도 채 안 됐어. 아들 그럼 열 번으로 계산하면 40만원,그 대가로 얻게 되는 쾌락의 비용을 성매매를 하기 위해 지불하는 최소비용 회당 7만원……. 어머니 내가 칠만 원짜리밖에 안 돼 보이니?십만 원으로 해. 아들 거기에 엄마가 얻게 되는 쾌락의 비용을 오만 원 정도 더하고……. 어머니 난 절정에 다다른 적이 없었어.기껏해야 다섯 번에 한 번 정도? 아들 그럼 쾌락의 비용을 만원으로 계산하고,모두 더하고 빼면 대략 한 달에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지불해야 할 돈이 오십만 원,일 년이면 육백만 원.어머니가 결혼한 지 30년이 됐으니까……. 어머니 솔직히 너 중학교 들어간 이후로는 관계를 안 했다. 아들 그럼 14년치만 계산 하면,총 팔천사백만 원. 어머니,장부에 기재한다. 어머니 자,다음 항목은 가사 노동에 대한 미지급분에 대한 피해보상 청구. 딸 (자판을 두드리며)전업주부의 가사노동은 시급 이만 오천 원에서 5만원 사이래. 어머니 시급 사만 원 정도가 적당하겠구나. 아들 하루 평균 15시간의 가사노동을 했다고 가정하고……. 어머니 깨어 있는 동안은 다 가사노동 아니야?난 평균 5시간도 채 못 잤어! 아들 그러면 계산이……. 어머니 이리 내.넌 대학까지 나온 놈이 뭐 그렇게 계산이 느려.들인 돈이 아깝다.이러다 너랑 미애 청구서는 오늘 안에 만들지도 못하겠네. 암전.
  • [신년사설] 함께 가는 희망의 사회 만들자

    새해 아침이다.희망과 소망을 담은 덕담을 나누며 활기찬 한 해를 다짐할 때다.하지만 올 새해는 좀 유별나다.무거운 마음으로 새해 아침을 맞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지난 연말 역시 연말다운 들뜬 분위기는 없었다.지난해 하반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몰아닥친 경제 한파의 한가운데로 내몰렸거나,심리적으로 위축된 이들이 크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정부나 기업,가계 모두 힘든 위기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가고,더 이상의 추락은 없을지 걱정하고 있다. ●생존이 지구촌 화두가 됐다 요즘 통계를 들여다보면 모든 경제지표가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이후 최악의 상황이다.지난 연말 이미 세계 주요 국가의 경제 성장률은 마이너스를 기록했다.IMF는 얼마 전 ‘제2의 대공황’ 진입 가능성까지 전망했다.이제 어느 나라 가릴 것 없이 화두는 생존 그 자체가 됐다.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연말 “어쩌면 우리는 내년 1·2분기에 마이너스 성장이 될지도 모를 위기에 있다.”고 했다.위기 탈출의 단초가 보이지 않는 세계 경제를 염두에 둔 발언이었다.최악의 상황에 대비하겠다는 의지가 담겼다.글로벌 금융위기의 진원지였던 미국의 지난 4·4분기 성장률이 -6%로 예상됐던 상황이었다.올해 역시 마이너스 성장 전망이 나오고 있다.대통령 발언 얼마 전 내놓았던 정부의 4% 성장 목표가 얼마나 공허하고 장밋빛이었는지 새삼 돌아보게 된다. 실물경제의 침체 역시 빠르고 엄혹하게 우리 곁에 다가왔다.그 골이 얼마나 더 깊어질지 예측조차 어렵다.얼마 전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올 1분기 기업경기전망은 심각했다.1분기 경기실사지수(BSI)는 전분기 79보다 무려 24포인트나 급락한 55였다.외환위기 시절인 1998년 3분기의 61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경제 현장의 불안감의 정도를 읽게 하는 대목이다.수출을 주도했던 컴퓨터·TV 휴대전화의 12월 매출이 전년에 비해 반토막 났고,각종 제조업체의 감산 도미노가 끝을 보이지 않고 있다.올해 얼마나 많은 기업이 무너지고,얼마나 많은 사람이 직장을 잃고,가게가 문을 닫을지 가늠하기 어렵다.또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일자리를 얻지 못해 방황하며 절망속에 살아갈지 걱정이 아닐 수 없다.특히 청년실업은 심각한 사회불안 요소가 되고 있다.“요즘 젊은 세대는 지상의 방 한 칸 못 찾아 떠돌아다니는 피란민 정서가 있다.”는 소설가 김애린의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자신감·위기극복 의지가 중요 하지만 새해 아침부터 지나치게 불안해하거나 절망만 할 수는 없다.어려울수록 단결된 힘과 돌파력을 발휘하는 저력을 보였던 우리가 아닌가.외환위기 극복 등 과거의 사례가 이를 증명한다.비상한 각오로 지금의 위기를 도약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의지를 다질 때다.모든 경제주체가 힘을 합치고 때론 조금씩 양보하면 헤쳐나가지 못할 난관은 없다.자신감과 위기극복 의지가 중요하다.신빈곤층이 양산되고,양극화가 심화되고,갈등과 분열의 골이 심화돼서는 우리 사회는 미래가 없다.어려운 상황일수록 낙오자,이탈자가 최소화되도록 해야 한다.함께 가는 사회를 만드는 데 혼신의 힘을 모아야 한다. 이제 집권 2년차를 맞는 이명박 정부다.지난 1년은 촛불시위 여파와 갖가지 갈등과 정쟁으로 허송하다시피 했다.정부의 리더십 부재,신뢰 상실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공직사회 쇄신,공기업 개혁,공무원연금 개혁 등 어느 하나 순조롭게 처리된 게 없었다.과속,조급증 때문에 낭패를 겪은 정부다.이제라도 국민과 함께 가는 정부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특히 정부와 정책의 신뢰회복이 우선이다.지난해처럼 정부 부처간 엇박자가 거듭되고,말만 앞서는 행태로는 이 정권의 미래를 담보하기 어렵다. 일자리 지키기와 창출은 우리 모두의 최대 관심사가 된 지 오래다.일자리야말로 최선의 복지다.정부는 지난 연말 대규모 재정투입을 통한 일자리 창출 확대를 예고했다.예산만 쏟아붓는 어리석음을 최소화하면서 일자리를 늘리고 경제를 살리는 방향으로 지혜를 모아야 한다.아울러 신뢰를 잃은 내각과 청와대팀의 인사쇄신을 어떤 방향으로 할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개각이나 청와대 비서팀 개편은 정파나 코드를 뛰어넘는 위기 극복,국민 화합의 인사가 되길 주문한다. ●일자리 창출이 최선의 복지 최악의 경제위기 상황에서 정치권이 보이고 있는 최근 작태는 실망을 넘어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딴 세상을 사는 듯한 한심한 행태는 국민들의 혐오증을 부추기고 있다.연말 극한 대결구도 속에서도 대타협의 마무리를 기대했으나 허사였다.국회 무용론이 나온 지 오래다.국민과 함께 가는 국회의 모습을 찾기 위해 여야 가릴 것 없이 뼈저린 반성을 해야 한다. 어려울수록 다시 희망을 만들어야 한다.세계 경제의 빙하기에서 대한민국의 생존을 걱정해주고 도와줄 곳은 어디에도 없다.모두 정신을 가다듬고 함께 손잡고 가는 희망의 사회를 새롭게 만들어 가자.
  • 내년 경제 최대복병 가계·기업 도산

    내년 경제 최대복병 가계·기업 도산

    국내 경제연구소 대표들은 내년도 한국경제의 최대복병을 ‘가계·기업의 도산 및 구조조정’으로 꼽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25일 이같은 내용의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한국경제연구원,삼성경제연구소,현대경제연구원,한국개발연구원(KDI),산업연구원(KI ET) 등 14개 민관경제연구소 대표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다. 경제연구소 대표들은 ‘내년도 우리 경제의 복병이 뭐냐.’는 설문에 대해 ‘가계·기업의 도산 및 구조조정’을 최대 복병이라고 응답했다.‘국내 및 세계 경제 성장률 하락’,‘실물경기의 침체’,‘글로벌 금융위기의 지속’,‘고용불안 속의 대량실업’이 2~5위였다.이어 ‘소비·투자 위축’,‘미국경제붕괴(경착륙)’,‘금융시장불안’,‘부동산시장 침체’,‘중국경제 경착륙’이 6~10위였다. 경제연구소 대표들은 내년도 우리 경제의 성장률(최대 및 최소값 제외)은 2.2%로 전망했다.4.99%였던 지난해에 비해 2.7%포인트 이상 낮게 잡아 경제전문가들도 현재의 경제위기를 매우 심각하게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내년도 원·달러 환율은 1190원,유가(WTI 기준)는 배럴당 평균 56달러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응답자 전원은 특히 내년도 우리 경제가 ‘매우 악화’ 또는 ‘악화’될 것으로 전망했다.응답자 10명 중 7명은 “내년 하반기나 돼서야 글로벌 금융위기가 해소될 것이며,국내경기는 이보다 좀 늦은 2010년 상반기에나 회복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내년에 역점을 둬야 할 정부의 최우선 경제정책 과제로는 단연 ‘경기부양책 마련’을 첫 번째로 꼽았다.이어 ‘금융시장 안정’,‘글로벌 금융위기 후폭풍 차단’,‘일관되고 선제적인 경제정책 추진’,‘일자리 창출’ 등의 순이었다.6~10위는 ‘경제리더십 회복’,‘규제완화 등 기업경영환경 개선’,‘빈곤층 지원방안 강구 등 사회안전망 구축’,‘부동산시장 안정’,‘환율안정’ 순이었다. 한편 올해 우리 경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뉴스에 관한 조사에서는 단연 ‘글로벌 금융위기’를 톱뉴스로 꼽았다.2위는 원·달러 환율 폭등(원화가치 하락),3위는 금융시장 혼돈,4위는 유가 등 국제원자재가 급등락,5위는 실물경기 침체 등이었다.6∼10위는 이명박 정부 출범,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당선,청년실업 등 고용불안,부동산가격 급락 등이 차지했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서울광장] 지금은 고용의 질보다 양이다/우득정 논설위원

    [서울광장] 지금은 고용의 질보다 양이다/우득정 논설위원

    일자리에 비상이 걸렸다.글로벌 경제위기 여파로 하루 15개 기업이 문을 닫는다.기업의 투자 위축과 보수적인 인력운용으로 신규 채용 여력은 크게 줄어들었다.내년 상반기에는 전례없는 ‘고용빙하기’가 도래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한국은행은 지난 10월과 11월 10만개 이하로 떨어진 일자리 창출 규모가 내년 상반기에는 마이너스 4만개로 곤두박질할 것으로 추정한다.정부가 ‘신빈곤층’ 양산을 막기 위해 고용유지 지원금과 근로시간 단축지원금,대체인력채용 장려금 등을 대폭 확대하기로 한 것은 이러한 비관적인 전망에 근거한 것이다. 경기침체의 충격은 영세 자영업자와 임시·일용직 등 저소득층을 생존의 벼랑 끝으로 내몬다.1년새 자영업주와 무급가족종사자 16만 4000명,임시·일용직 15만 9000명이 일자리를 잃은 데서 확인된다.경기침체 골이 깊어지면 중소사업체는 말할 것도 없고 대기업 정규직도 일자리가 없어지지 않는다고 장담하지 못한다.그래서 정부와 재계는 고통분담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로 고용위기를 타개하려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4일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와의 조찬회동에서 “금융기관과 공기업에서 고임금을 받는 분들이 자발적으로 임금을 삭감토록 해 그 여유분으로 일자리를 잃은 분들,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청년을 위해 일자리를 나누는 정책을 시도할 것”이라면서 과도한 근로보장,여러 불필요한 조건들에 대한 개혁의 고삐를 죌 때라고 강조했다.정부가 그제 발표한 ‘4차 공공기관 선진화 추진계획’에서 69개 공공기관 총 정원의 13%에 해당하는 1만 9000명의 감원계획을 제시하면서 “임금을 줄여 일자리를 유지하면 구조조정한 것으로 인정하겠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이에 앞서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경기가 어렵다고 사람을 내보내서는 안 된다.”면서 “그래야 나중에 성장의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삼성그룹은 인위적인 구조조정이 없을 것이라고 천명했고,최태원 SK그룹 회장은 “경제위기 상황이 끝났을 때에 대비해 경영계획을 짜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외환위기 때 감원으로 대응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고용한파로 신빈곤층이 쏟아져 기존의 빈곤층과 합세하면 ‘촛불정국’ 못지않은 사회불안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인식이 정부 당국자들 사이에서 감지된다.이 대통령이 신빈곤층 대책에 각별히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이기도 하다.외환위기 때에도 실업자가 170만명을 웃돌자 ‘200만명을 넘어서면 민란이 일어날 수 있다.’는 위기감에서 10조원에 가까운 실업대책 재원을 쏟아부은 바 있다.인력 구조조정은 살아남은 자에게도 씻기 힘든 상처를 남긴다는 ‘학습효과’도 작용한 듯하다. 청년 인턴 10만명 채용이나 대규모 토건사업,비정규직 사용기간 확대 등을 ‘비정규직 양산’‘고용조건 후퇴’라고 비판한다.소중한 자원을 성장잠재력 확충과 공급능력 확대 등 경제체질 강화에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맞는 말이다.하지만 지금은 비상국면이다.고용의 질을 따지기엔 일자리 증발속도가 너무 가파르다.사실상 ‘백수’가 317만명이나 된다.게다가 일자리를 만들어낼 정책수단도 마땅치 않다.따라서 불황의 터널을 건널 때까지는 원칙을 벗어난 대응도 용인해야 한다.주요 선진국들도 위기 타개를 위해 시장 룰을 뛰어넘고 있다.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열린세상] 정부는 ‘하멜른 시장’이 되려는가/신은종 단국대 경영학과 교수

    [열린세상] 정부는 ‘하멜른 시장’이 되려는가/신은종 단국대 경영학과 교수

    “들끓는 쥐를 없애만 준다면 원하는 만큼의 돈을 드리지요.” 하멜른 시장(市長)이 말했다.사나이는 거리를 돌며 피리를 분다.쥐들은 피리소리에 춤을 추며 사나이를 뒤따랐다.이윽고 다다른 강.사나이의 피리소리는 강물을 넘고,강물 속으로 쥐들이 사라진다.피리소리도 차츰 낮아진다.하멜른에는 다시 평화가 왔다.모두가 어제의 일을 잊고 일상으로 돌아갔다.돈을 주겠다던 약속도 쥐가 없어진 하멜른엔 남아 있지 않다.사나이는 다시 피리를 분다.이젠 아이들이 뒤따르고 사라진다.아이들이 사라진 하멜른엔 희망도 사라졌다.브라우닝의 독백의 묘미가 살아나서일까.그의 동화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가 전하는 1284년에 사라진 아이들의 경고가 새롭다. 또다시 위기다.위기라는 말이 초라할 만큼 지금의 곤란은 크고 깊다.내수침체로 영세 상인은 끼니를 걱정하고,대기업의 하청구조에 묶인 중소기업은 휘청댄다.비정규직은 점점 늘어 모두가 비정규직이 될 판이다.청년들은 일자리가 없어 졸업을 미룬 채 기업 입맛에 맞는 ‘스펙’을 갖추느라 학원을 전전한다.공기업 구조조정을 시작으로 감원의 공포가 사회의 근간인 삼사십대 노동자들을 위협한다.가족이라는 부양시스템이 이미 해체된 상황에서 고령노동자들은 최소한의 생계를 위해 허드렛일이라도 찾아나서야 한다. 위기의 역사를 돌아보면,고통을 짊어진 이도,이를 극복한 이도 노동자·영세상인·중소기업가와 같은 서민들이었다.해마다 2000시간이 넘는 노동을 감당했고,500만명이 넘는 비정규직은 고용불안을 감내했다.중소기업가들은 대기업의 횡포에도 묵묵히 제조현장을 지켜냈다.위기라는 쥐를 몰아내기 위해 나름의 피리를 열심히 불어댄 그들이 있었기에 위기는 극복되고 또 극복됐다.지난 대선에서는 경제대통령을 자처한 후보에게 자신의 한 표를 기꺼이 내놓았다.부자를 꿈꾸어서가 아니다.알뜰히 산다면 소박하지만 평화로운 삶,그것이 이들의 희망이었을 게다.경제를 살리겠다던 경제대통령의 약속을 믿고 나름대로 열심을 다해 살아온 그들이었다. 그러나 위기에 대한 정부의 대책은 어리둥절하다.대기업과 부자만을 위한 감세를 신앙처럼 되뇐다.세금을 줄이면 투자가 촉진돼 고성장을 이룰 수 있단다.미국 발 금융위기가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침체의 늪으로 밀어 넣는 판에 감세가 얼마나 투자로 이어질지 의문이다.더구나 양극화를 심화시킨다면 위기극복의 기반인 사회적 합의는 물 건너간다.고용대책에도 노동자는 없다.비정규직으로라도 일자리를 채우려는지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1~2년 더 연장할 모양이다.내수부족이 곤궁한 비정규직의 증가에서 비롯됐을 터인데 더 늘려서 무얼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애써 합의한 엉성한 기준마저 내동댕이쳐질 마당이니 정규직의 꿈을 또 한 번 접어야 하는 비정규직의 맘은 어떠할까.최저임금제 ‘개선’도 그렇다.예순이 넘는 노동자의 몇 푼 안 되는 돈마저 깎아내리면 정말 일자리가 늘어날 거라고 기대하는가. 지금 정부의 모습이 하멜른 시장 꼴이다.늦지 않았다.세금을 줄인다는 둥,하천을 정비한다는 둥 허튼 데 돈 쓸 궁리하지 말고 위기극복의 주역인 서민들을 보상하라.사회보장지출과 공공부문 일자리를 확충해 내수를 진작시키고 연구개발과 교육훈련에 투자해 성장 동력을 다져라.그러지 않으면 이들이 피리를 불며 떠날지 모른다.피리소리를 따라 ‘희망’이라는 아이들이 사라질지 모른다. 그 뒤 절망의 쥐들이 창궐한다면 어쩔 셈인가. 신은종 단국대 경영학과 교수
  • [서울광장] 1달러1표 對 1인1표/황진선 논설위원

    [서울광장] 1달러1표 對 1인1표/황진선 논설위원

    출범 10개월을 맞은 이명박 정부의 지지도가 바닥권에서 좀처럼 오를 줄 모른다.세계적인 경제위기의 한파로 가계와 기업의 어려움이 가중된 탓이 크다.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신자유주의적 성장정책에 집착해 민주주의와 민주적 절차를 가벼이 여긴 탓도 작지 않은 것 같다. 돌이켜 보자.지난 5∼7월의 촛불집회는 한·미 쇠고기협상 졸속 타결이 도화선이었다.미국 의회가 “쇠고기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비준 동의안을 통과시켜 줄 수 없다.”고 하자,30개월 이상된 쇠고기의 수입을 허용하는 독소조항을 덜컥 받아들인 때문이었다.국민의 불안은 생각하지 않고 자유무역협정 비준이 우리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매몰된 탓이다. 이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는 근·현대사교과서 수정 파동,우편향 인사 현대사 특강,‘4·19 데모’ DVD 배포로 이어지며 논란에 논란을 불렀다.이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대한민국 건국 60년은 성공의 역사,발전의 역사,기적의 역사였다.”며 ‘광복절 대 건국절’논란에 불을 지폈다.야당과 시민사회단체는 이데올로기를 초월하는 광복절의 의미는 축소하고,1948년 이승만 정부수립과 그 이후의 경제발전에만 더 의미를 부여해,대한민국을 뿌리부터 우익국가로 규정하려는 의도라고 비판했다.군의 ‘불온도서’ 목록 지정,교육과학기술부의 ‘좌편향’ 고교 근·현대사 교과서 수정 지시,서울시교육청의 고교생들을 상대로 한 우익인사들의 현대사 특강도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새로 세워야 한다는 연장선상에 있다. 최근 교육부가 1만여 초·중·고교에 현대사 교육 보조교재로 배포한 ‘기적의 역사’ DVD는 이념과잉의 ‘백미’라고 할 만하다.‘기적의 역사’는 1960년대 영상에서 ‘4·19 데모’라는 제목으로 4·19 혁명의 폭력성을 부각시켰다.4·19는 박정희 시대조차도 ‘의거’로 치켜세운 민주화의 이정표가 아니던가.1950∼1970년대는 이승만·박정희 대통령의 경제발전 치적으로만 채웠다.또한 80년 광주민주화운동과 87년 6월항쟁,남북화해 노력 등은 빼놓고 청계천 복원 사업을 집어넣었다.한마디로 경제발전과 법치에만 집착해 민주화 및 통일 노력은 넣지 않은 것이다.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는 선진화로 나아가기 위한 두 축이다.하지만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의 장하준 교수는 저서 ‘나쁜 사마리아인들’에서 신자유주의적 발전론자들의 전가의 보도인 자유시장과 민주주의가 상호보완적이 아니라고 설명한다.“민주주의는 1인1표의 원리에 따라 움직이고 시장은 1달러1표의 원리에 따라 움직인다.당연히 전자는 한사람 한사람에게 동일한 비중을 둔다.후자는 돈을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더 큰 비중을 둔다.따라서 민주적인 결정은 대개 시장의 논리를 뒤엎는다.” 장 교수는 근본적인 차원에서 충돌하는 양자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는 이미 신자유주의의 거센 파도 속에 비정규직이 크게 늘어나고,88만원 세대가 등장했으며,청년실업이 줄지 않아 2003년부터 20대의 자살이 교통사고를 제치고 사망원인 1위에 올랐다.통계청에선 얼마전 전국 상하위 가구의 소득격차가 통계 작성 이후 가장 크게 벌어졌다고 발표했다.신자유주의를 맹신하면 양극화가 가속될 수 있다.이명박 정부는 장 교수의 지적대로 경제발전뿐 아니라 민주주의를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된다. 황진선 논설위원 jshwang@seoul.co.kr
  • 원 장관의 “그건 이렇습니다”

    ■ 대졸인턴제 임시직 확대 아니냐 “공직진출 길 막는 것보단 나아” 올 한 해 동안 공직사회 전반에 대한 조직개편으로 사실상 구조조정이 단행됐다.여기에 내년도 공무원 정원이 동결돼 신규채용 여력은 대폭 위축된 상황이다.반면 청년실업을 해소하고 구직활동을 지원한다는 취지로 정부기관별로 대졸 미취업자를 대상으로 전체 정원의 1%에 해당하는 행정인턴을 채용할 계획이다.언뜻 보면 안정적인 정규직 일자리를 축소하는 대신,불안정한 임시직 일자리만 확대하는 모양새다. 원세훈 행정안전부 장관은 “구조조정이 공직사회의 경쟁력 등을 높이기 위한 거시적 접근이라면,행정인턴 등 일자리 창출은 취업기회 감소를 해결하기 위한 미시적 대책”이라면서 “구조조정을 통한 예산 절감이 선행되지 않았다면 공직 진출 확대기회 자체를 줄 수도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지금은 장기적·안정적 정책보다는 단기적·파격적 조치가 필요한 위기 상황”이라면서 “공직사회에 대한 구조조정과 청년실업자를 위한 일자리 확대를 앞으로도 병행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지방의원 무용론에 대해 “입법권 부여 권한·책임 병행해야” “권한을 줘야 책임도 물을 수 있습니다.”원세훈 행정안전부 장관은 5일 최근 고위공무원제 개편에 따른 각 부처 장관의 인사권한 강화와 지방자치단체의 자율권을 언급하며 이같이 강조했다. 원 장관의 기본적인 정책운영의 방침은 ‘권한’과 ‘책임’은 병행한다는 것.내년 정책의 우선순위를 묻는 질문에 원 장관은 지방분권을 으뜸으로 꼽았다. 원 장관은 “지방의원을 욕하고 하지만 실제로 무슨 일을 하려고 해도 실질적인 권한이 없으니까 할 수가 없다.”면서 “지역 특색에 맞게 조례 등 법을 세울 수 있도록 입법권을 지방에 주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게 맞다.”고 목소리를 높였다.최근 각 부처 장관의 인사 자율권을 강화한 고위공무원단제 개편도 마찬가지다.원 장관은 “고위공무원단에 들어갈 과장과 국장을 잘 아는 사람은 소속 장관”이라면서 “권한을 주겠다는 건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도 지울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인사권자에게 권한과 책임을 동시에 물으려면 해당 부처장관에 인사를 맡기는 게 낫다.”고 역설했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구내식당 휴무제 일과성 아니냐 “전시행정도 수요자 입장선 필요” 행정안전부는 지난달부터 매출 감소로 어려움을 겪는 정부청사 주변 음식점을 위해 ‘구내식당 휴무제’(매월 셋째주 금요일)를 도입했다.매주 목·금요일 정부청사 로비에서는 ‘농산물 직거래 장터’도 열고 있다.이에 대해 말이 많다.일과성·전시성 행정이라는 지적도 나오고,공무원노조 등에서는 휴무제 등을 철회해 달라는 불만섞인 목소리도 적지 않다.원세훈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공무원처럼 일자리가 안정된 사람들이 너무 자기 목소리만 내는 것 같다.”면서 “공무원이 아니라,영세 음식점 주인이나 농민 입장에서 보면 전시 행정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원 장관은 현재 유니세프와 한국뇌성마비복지회,어린이재단 등에 매월 50만원씩 기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또 행안부 직원 가운데 상당수는 월급에서 1000원 미만 우수리를 떼 내 ‘행복드림 봉사뱅크’를 설립,자원봉사 활동에도 나서고 있다. 그는 “공무원들도 내년도 임금이 동결돼 어렵겠지만,이보다 훨씬 더 어려운 국민들이 많다.”면서 “공무원들이 사회에 대한 보다 따뜻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일자리 창출 묘책 없나”… 깊어가는 정부 시름

    “일자리 창출 묘책 없나”… 깊어가는 정부 시름

    경기가 바닥을 향해 내달으면서 일자리 확충이 절실해지고 있지만 딱 부러지는 대안이 없어 정부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초유의 전세계적 경기 침체를 맞아 지금까지와는 다른 차원의 고강도 처방이 요구되지만 과거에 썼던 수준의 대책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은 데다 ‘2인3각’으로 정부 정책을 뒷받침해야 할 기업들의 사정 또한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중·장기적이면서 효과는 당장 나는 대책? 정부가 내년에 못해도 2%대 후반의 성장률은 이뤄내야 한다는 강박증을 갖고 있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일자리 때문이다.기획재정부 관계자는 2일 “연간 성장률이 2.5% 밑으로 떨어지면 일자리가 지금보다 줄어들 수 있다.”면서 “정부가 정책 목표를 담아 내년 성장 전망을 4% 안팎으로 고수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라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그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단기적인 것 말고 장기적으로 꾸준하게 일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방향으로 고용 대책을 추진하라.”고 강조해 왔다.과거와 같은 공공근로 형태의 머릿수 채우기식 대책은 더 이상 쓰지 말라는 얘기다.하지만 그러기에는 현재 상황이 너무 급박하다.결국 오래 가면서 당장 효과가 나타날 고용 대책을 찾아야 한다는 데 정부의 고민이 있는 것이다.지금까지 정부가 내년 예산안과 몇차례의 대책 발표를 통해 내놓은 방안들을 종합하면 사회간접자본(SOC) 건설과 연구개발 등 부문에 나랏돈을 대거 풀어 고용을 유발하고 청년인턴제 등을 통해 젊은층에 일자리를 마련하는 한편 사회적 기업을 육성해 관련 인력을 흡수한다는 것 등이 핵심이다. ●토목 투자의 효과는 어디까지 정부는 우선 SOC 사업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재정부 관계자는 “직·간접으로 총 235만명의 일자리가 건설에서 나오는데 지금은 실질적으로 4만 5000개가 줄어든 상태”라면서 향후 건설투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하지만 효과가 기대만큼 크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건설업계 관계자는 “SOC는 주로 대형 기계를 이용하는 토목사업이 많아 건물을 쌓아 올리는 건축과 달리 고용 창출 효과가 떨어지는 데다 여기에 민간이 호응해 직접 사업에 뛰어들어야 하는데 지금 같은 여건에서 얼마나 적극적으로 나설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청년인턴제 부작용 없을까 정부가 통상 임금의 절반을 보조하는 청년인턴 제도 역시 일자리의 수요자(청년)와 공급자(기업)의 인식 차이를 들어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온다.실제 청년층 인력을 필요로 하는 곳은 중소기업이지만 청년들이 취업을 원하는 곳은 주로 대기업이어서 수급의 불일치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특히 청년인턴제가 기존 인력의 고용 불안을 유발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인턴사원을 받는다는 이유로 기존 직원들을 해고해서는 안 되도록 법에 명시돼 있지만 기업들이 이를 지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경기 침체로 업무 자체가 줄어 기업들이 청년인턴을 원하지 않는 상황도 예상된다. 오는 2013년까지 해외취업 5만명,해외인턴 3만명,해외봉사 2만명을 키운다는 ‘글로벌 청년리더 10만명 양성’ 계획도 전세계적 경기 침체로 해외에서 고용 수요가 얼마나 나올지 알 수 없다.역시 2013년까지 양성하기로 한 연구개발인력,핵심고급인력,산업전문인력 등 ‘미래산업 청년리더 10만명’도 당장의 실물경제 충격에 대응해 단비를 뿌리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많다. 유경준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정부 고용정책은 개인들의 경쟁력을 키우면서 동시에 당장의 취업 기회를 주는 것이 핵심이 돼야 한다.”면서 “효과가 검증된 사업 위주로 실제 효과를 높이려면 정교하고 세밀한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제대로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 ‘에이트’ 출신 백찬 “어머니 생각하면 눈물만…”

    ‘에이트’ 출신 백찬 “어머니 생각하면 눈물만…”

    그룹 8eight(에이트)의 랩퍼 백찬(23)이 보컬리스트로 변신, 솔로 가수로 거듭났다. 이수영과 듀엣 호흡을 맞춘 타이틀 곡 ‘무슨 사랑이 그래요’는 첫 선을 보인지 2주만에 각 방송사 음악순위 10위권 안에 진입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동일 인물인지 헷갈릴 정도다. 외모도 음악도 모두 변했다. 에이트의 히트곡 ‘사랑을 잃고 난 노래하네’, ‘렛미고’ 등 에서 보여줬던 개구진 표정의 랩퍼 백찬은 온데간데 없었다. 기름 발라 반듯하게 빗어넘긴 머리, 동그란 은테 안경…. 일명 ‘모던보이’를 콘셉트로 한 백찬의 첫인상에서는 ‘귀하게 자란 도련님’ 이미지가 풍겼지만, 겸손한 말씨와 매 답변마다 정성을 다하는 모습은 ‘반듯한 청년’이란 수식어가 더 어울렸다. “아직도 믿겨지지가 않아요.” 자신의 이름을 내건 첫 싱글 앨범을 조심스레 건네는 백찬의 목소리는 감격에 젖어 있었다. ◆ “첫 싱글, 어머니께서 가장 기뻐하셨죠” “타이틀곡 ‘무슨 사랑이 그래요’의 좋은 반응에 누가 가장 기뻐하고 있느냐?”고 묻자, 한참을 망설이던 백찬은 ‘어머니’라는 세 글자를 꺼냈다. 백찬은 2남중 장남이다. 동생이 군복무 중인 탓에 어머니는 홀로 고향 부산에 계신다. “가수 활동으로 서울에 올라온 후 늘 마음이 안좋아요. 어머니는 부산에, 동생은 군대에 있으니까요. 그래도 제가 장남인데…” 성공을 위한 ‘독립’이었다고 해도 서울살이를 시작한 백찬의 마음은 편한 날이 없었다. “어머니를 위해 해드릴 수 있는 일이 없었어요. 아들 두 녀석은 외지에 가 있고… 외로움이 얼마나 크시겠어요. 어머니가 혼자 계신 시간을 달래 줄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고민을 거듭하다 서울 오기 전, 인터넷을 가르쳐 드렸죠.” 지난 6일 생애 첫 솔로 앨범 ‘더 아날로그맨 인 디스 디지털 월드’를 발매했지만 초조한 마음이 앞섰다. 복잡한 심경의 백찬은 결국 제일 먼저 기쁜 소식을 알리고 싶었던 어머니께 선뜻 연락을 건네지 못했다. “과연 잘 될까, 에이트 멤버 중 첫 테잎을 끊는 건데…. 어머니가 보실텐데 잘 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컸어요. 그런데 어느 늦은 밤, 어머니께 먼저 전화가 걸려 온 거예요!” 백찬에게 인터넷을 배우신 어머니는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실 때면 늘 컴퓨터 앞에서 아들을 찾으셨던 것. “검색창에 열번이고 백번이고 제 이름을 치셨나 봐요. 그러다 제 기사를 보시게 된거죠. 아직 기뻐하기엔 이르지만 너무 대견스러우셨나봐요. 전화 너머 ‘엄마는 괜찮아’라는 말씀이 뼈 속까지 스며 드는 것 같았어요.” ◆ 어머니, 그가 노래하는 이유 어머니 얘기를 하던 백찬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넉넉치 않았던 가정 환경으로 인해 갖은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가수의 꿈을 키워왔던 백찬에게 어머니는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남들처럼 지원해 주지 못하기에 백찬이 ‘가수’보다 확실한 미래가 보장되는 안정된 직업을 택하기를 바라셨던 탓이다. “지금은 제 노래에 제일 기뻐하시는 분도 어머니, 제 기사에 제일 기뻐하시는 분도 어머니세요. 성공하겠다는 욕심으로 뛰어든 건 아니였어요. 하지만 이제는 정말 ‘열심히 하고픈, 열심히 해야만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세상 가장 행복한 웃음을 선물하고 싶어요. 효도하겠습니다! ‘어머니’ 당신이…, 제가 오늘도 노래하는 단 하나의 이유 입니다.” 서울신문NTN 최정주 기자 joojoo@seoulntn.co.kr / 사진 = 한윤종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이명박 대통령 국회 시정연설 전문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그리고 김형오 국회의장과 국회의원 여러분!    저는 오늘 참으로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며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전 세계를 쓰나미처럼 휩쓸고 있는  전대미문의 금융위기로 인해 국민들께서 얼마나  불안해하고 고통을 받고 계신지 잘 알고 있습니다.  금리 부담이 늘어나 가계 부담에 한 숨 짓는  서민의 어려움을 이해합니다.  불경기에 힘들어 하는 상인들,가지고 있는 주식 값이 폭락해 실의에 빠진  개인 투자자들, 자금 부족 때문에 여기저기를  전전하는 중소기업인의 심정을 압니다.  지금 다니는 직장이 어떻게 되지 않을까 하는 직장인의 걱정과 일자리를 찾지 못한 젊은이들의 좌절감도 안쓰럽습니다.    국민들의 고통은 저에게도 뼈저린 아픔입니다.  그럴수록 저는 이 어려움을 반드시 극복해야 한다는  소명을 한 시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번 위기를 10년 전 외환위기와 비교합니다.  하지만 단언컨대, 지금 한국에 외환위기는 없습니다.  구제 금융을 받아야 했던 10년 전과는 상황이 판이합니다.  10년 전에는 한국을 위시한 아시아의 금융위기였습니다만  지금은 미국과 유럽에서 시작된 금융위기가  전 세계로 파급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결과 전 세계 주식시장이 동시에 폭락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무역 의존도가 매우 높은 우리가 더 걱정하는 것은  세계 금융 위기가 실물 경제의 침체로 파급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진국에서 촉발된 지금의 금융 위기가  더욱 심각하게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해법도 10년 전과는 달라야 합니다.  국제 공조에 적극 나서면서, 유동성을 충분히 공급하고,  내수를 활성화해야 합니다.  이 위기를 올바로 극복하면, 한국 경제는 크게 살아날 것입니다.  이번 위기가 끝나면 각국의 경제력 순위가 바뀔 것이고  대한민국의 위상도 높아질 수 있습니다.  이런 신념을 가지고 냉철하고 단호하게 이 상황에 대처할 것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국회의장과 국회의원 여러분!    과연 우리가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에 대해 저는 분명히 말씀 드리겠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    우선 외화 유동성 문제는  지금 보유한 외환으로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금년 1월에서 9월까지 유가 폭등과 외국인의 주식 매도로  경상 수지 자본 수지가 모두 적자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외환보유고는 2600억 달러에서 2400억 달러로  약 8% 감소하는 데 그쳤습니다.    4/4분기부터 경상수지가 흑자로 돌아서면  외환 상황은 훨씬 호전될 것입니다.  작년에 600억 달러에서 금년에 1,000억 달러로  원유 수입에만 약 400억 달러가 더 쓰였습니다.  이것이 경상수지 적자의 주요한 원인이었습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지금 유가와 원자재 가격이 내리고 있고,  만일 내년에 이런 수준이 유지된다면  상당한 국제수지 개선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원화 유동성도 마찬가지입니다.  금융통화당국이 얼마든지 대처할 수 있습니다.  금융회사든 일반 기업이든 흑자 도산하도록  내버려두지는 않을 것입니다.    정부는 시장이 불안에서 벗어날 때까지  선제적이고(preemptive) 충분하며(sufficient)  확실하게(decisive) 유동성을 공급할 것입니다.    문제는 오히려 심리적인 것입니다.  실제 이상으로 상황에 과잉 반응하고 공포심에 휩싸이는  것이야말로 경계해야 할 가장 무서운 적입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세계 대공황 이후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라고 말했습니다.  10년 전 외환위기 당시  주식이 가장 낮은 가격이었을 때 두려움 없이 산 사람들,  특히 외국인들이 엄청난 수익을 올렸던 기억을  떠올릴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저력을 믿어야 합니다.  이 저력을 믿고 고통 분담과 협력하는 자세로  침착하게 행동 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희망의 출구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존경하는 국회의원 여러분!    정부는 세계적 실물 경제 침체에 대비해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을 확대하고자 합니다.  예산 지출을 과감하게 확대하고,  수출 증가 둔화에 대응해 내수를 활성화하는  선제적 대책을 마련할 것입니다.  최근 국제통화기금도 실물 경제 위축에 대응하기 위해  세계 모든 나라에게 감세 및 재정 지출 확대를 권고한 바 있습니다.  사회간접자본 투자를 늘리고,  고용 효과가 큰 중소기업과 서비스 산업 지원도 늘릴 것입니다.    감세는 경기 진작의 일환으로 필요합니다.  세계는 지금 ‘낮은 세율이 국가 경쟁력’이라는 인식으로  세율 인하 경쟁을 펼치고 있습니다.  올해에만 영국, 독일, 이탈리아, 캐나다 등  선진국은 물론 중국, 홍콩, 말레이시아 등 신흥국들도  세금을 내렸습니다.  감세에 소극적이던 일본까지 합류했습니다.  내년에 13조 원 수준의 감세를 통해  가처분 소득을 늘리고 투자를 촉진할 것입니다.    정부의 이런 재정 기능 강화에  국회도 적극 호응해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이번 예산안은 금융위기가 본격화되기 전에 마련됐습니다.  그로 인해 작은 정부 기조에서  다소 긴축적인 방향으로 예산이 편성되었습니다.  내수 활성화를 위한 적극적 재정정책 기조에 따라  국회 예산심의과정에서 세출을 늘려주실 것을 요청드립니다.    불을 끌 때도 초기에 충분한 물을 부어야  단시간에 진화가 가능합니다.  이번에 국회에 제출한  금융기관간 외화차입금 보증 한도 1000억 달러는  사실상 다 쓰일 가능성이 매우 희박합니다.  하지만 이런 선제적 조치를 취하면  우리 은행들이 돈 구하기도 쉽고 금리부담도 줄어듭니다.  반면 금융기관들은 중소기업들이 돈 구하기 쉽고  금리부담을 줄이는데 힘써 주시기 바랍니다.    존경하는 국회의원 여러분!    안에서의 이러한 노력과 함께 우리는  바깥으로 글로벌 공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지난 주말 아시아 유럽 정상회의에서 저는  신국제금융질서에 대해 적극적인 의견을 개진하였습니다.    기존의 금융체제로는  더 이상 위험을 사전에 예방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유사시에 대응할 능력도 미흡합니다.  사전 사후 감시 및 감독 기능을 강화하고  신금융질서가 필요하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11월 15일 워싱턴에서 긴급히 개최될  20개국 세계금융정상회의에서도 저는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의 개편을 포함해  전향적인 방향으로 국제공조가 이루어지도록 앞장 설 것입니다.  아울러 한중일을 비롯해 동북아의 공조체제 구축을 위해서도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입니다.    세계 각국이 유례없는 금융 위기와 실물경제 위축에 대해  긴밀한 공조체제의 필요성에 뜻을 같이 했습니다.  이제 합의가 이루어져 실천에 옮겨지면  어쩌면 예상했던 것보다 빨리  세계 경제가 회복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적극적인 경제외교를 통해 새롭게 형성될  국제금융질서에서 한국의 역할을 강화하는 것은  국익에 크게 기여할 것입니다.    이번 위기를 계기로  세계 각국이 보호무역을 강화해선 결코 안 됩니다.  1929년 세계 대공황 이후 각국이 관세장벽을 높여서  세계 경제가 더 악화되고  회복이 늦어졌던 잘못을 반복해선 안 됩니다.  자국 방어에만 치중해  축소 균형 쪽으로 세계 경제가 옮겨가는 사태는 막아야 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국가들의 의견이 일치하고 있습니다.  온 세계가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대한민국은 시련과 도전을  도약과 웅비의 자양분으로 삼아 발전해 왔습니다.  우리 국민은 시련 앞에 강하고, 도전 앞에 용감합니다.    대한민국만큼 어려움 앞에서 모두가 힘을 합친  아름다운 전통을 가진 나라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외환위기 때 장롱 속의 금붙이를 꺼내 나왔던 그 손,  방방곡곡에서 몰려들어 검은 태안반도를 씻어낸 그 손이  바로 대한민국을 구해냈습니다.    품앗이와 십시일반(十匙一飯),  나아가 위기를 만나면 굳게 뭉치는 것은  우리 민족의 유전인자입니다.  지금이야말로 다시 한 번 우리의 힘과 지혜를 모을 때입니다.    존경하는 국회의원 여러분!    현재에 매몰되면 미래가 없습니다.  위기를 핑계로 내일을 위한 숙제를 미뤄서는 안 될 것입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오히려  내일을 대비하는 지혜와 의지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반드시 선진일류국가의 꿈을 이루어야만 합니다.  이것은 선택이 아니라 소명입니다.  후손들을 위한 역사적 숙명입니다.    이럴 때 나라 체질을 개선하고  사회시스템의 효율을 높여야 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규제개혁과 저탄소 녹색성장,  지방행정체제 개편과 공기업 선진화 등은  흔들림 없이 추진되어야 합니다.    과감한 규제개혁은 경제 난국을 극복하는 지름길입니다.  규제가 줄어야 투자가 늘어나고 일자리가 생겨납니다.  세계표준과 동떨어진 낡은 규제와 결별해야 합니다.  이른바 ‘국민 정서’를 빌미로 아직도 성역으로 남아있는  ‘덩어리규제’를 과감하게 풀어야 합니다.    일각에서는 이번 국제금융위기를 맞아  금융규제를 강화하자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건전한 감독 기능의 강화를  무조건 규제 강화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모든 위험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는 배는  결코 출항할 수 없습니다.  몸 부풀리기에 급급한 일부 금융권의 행태도 문제지만,  그렇다고 위험 회피만을 위한  전당포식 금융관행에 안주해서도 안 됩니다.    경제규모에 비해 경쟁력이 뒤떨어진 금융산업을 방치할 순 없습니다.  진입장벽을 낮추고 경계를 허물어야 합니다.  그 대신 옥석을 제대로 가리는 신용평가기능과  자산의 건전성에 대한 감독을 강화해야 합니다.  위험이 두려워 규제를 풀지 말자는 것은  선수 다칠까봐 경기에 내보내지 말자는 이야기와  다를 바 없습니다.    정부는 좋은 규제와 나쁜 규제를 엄밀히 구분할 것입니다.  경쟁을 촉진하고 민간의 창의를 북돋우는 규제개혁은  흔들림 없이 추진할 것입니다.  반면에 국민의 안전과 건강,  금융위험관리와 사후감독에 관한 규제는 보강해 나가겠습니다.    건국 60주년을 맞아 제시한 저탄소 녹색성장도  착실히 추진하겠습니다.  녹색성장은 자원빈국이자 에너지 다소비국인 우리가  반드시 가야만 하는 길입니다.  환경위기와 자원위기에 대응하면서,  이를 경제발전의 계기로 삼는 일석이조의 슬기를 발휘해야 합니다.    녹색성장은 환경을 개선하고,  나아가 환경을 새로운 경제발전의 동력으로 삼는  선순환의 성장을 지향합니다.  녹색성장은 단순히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환경정책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신기술과 신산업을 육성해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경제정책입니다.  우리의 국제적 위상과 브랜드를 높이는 외교정책이기도 합니다.  나아가 국토와 도시, 건축과 교통,  국민의 일상생활과 의식주를 바꾸는 생활혁명입니다.    녹색성장은 선진국들이 이미 들어선 길이기도 합니다.  지난 주 ASEM 정상회의에서도  국제금융위기 대책과 함께 녹색성장이 의제로 다루어졌습니다.  비록 산업혁명의 탄소시대에는 뒤졌지만,  환경혁명의 수소시대만큼은 원천기술개발로  우리가 앞서갈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해야 합니다.    지금의 지방행정체제는 구한말 농경문화시대에  그 골격이 짜였습니다.  그 결과 행정구역과 생활권의 불일치 등  많은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등 선진국들은  행정계층을 줄이고 자치단체를 통합해 괄목할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우리도 인구규모와 구조 변화, 교통․통신발달 등을 반영해  지방행정체제를 다시 짤 때가 됐습니다.    그동안 지방행정체제의 개편에 관해서는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되었다고 봅니다.  다만 정치적 이해관계와 지역 정서의 차이로 인해  말만 무성했을 뿐 실천은 뒤따르지 않았습니다.    이번만큼은 국민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행정체제 개편에 대한 논의가 마무리되기를 기대합니다.  정파 이익을 초월해 백년대계를 내다보는 밑그림을  조속히 마련해 주시기 바랍니다.  정부도 적극 뒷받침하겠습니다.    존경하는 국회의장, 그리고 국회의원 여러분!    정부는 지난 8개월 동안 100대 국정과제를 확정짓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600여 건의 개혁법안을 열심히 만들었습니다.  그 중 150여 건의 법안은 이미 국회에 계류 중입니다.  나머지 450여 건은 조만간 국회에 제출될 것입니다.    이러한 개혁법안들은 ‘경제살리기, 생활공감, 미래준비,  그리고 선진화’ 등 4대 부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번 정기국회는 새 정부가 정성껏 준비한 법안들을  심사하는 사실상의 첫 국회입니다.  국정과제를 실천하려면 법제의 정비가 불가피한 만큼,  4대 개혁법안들이 하루빨리 처리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국정과제의 추진에는 예산의 뒷받침도 필수적입니다.  정부가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의 규모는  209조 2천억원으로 올해보다 7.2% 증가한 수준입니다.  내년도 기금 규모는 78조 8천억원으로  올해보다 5.8% 늘어나게 됩니다.    내년도 예산안은 ‘일자리 창출과 성장능력 확충’,  ‘서민생활 안정과 삶의 질 선진화’, ‘녹색성장과 안전한 사회 구현 등 미래대비 투자’에 중점을 두고 짰습니다.    예산안의 각 분야별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일자리 창출을 위해 올해보다 22.7% 늘어난 4조 2천억원을 편성하였습니다.  벤처기업의 창업에 대한 지원을 늘렸습니다.  2013년까지 글로벌 청년리더와 미래산업 청년리더 각 10만명 양성을 위한 직업훈련 지원도 강화하였습니다.    둘째, 미래 성장동력을 확충하기 위한 R&D 투자에 올해보다 10.8% 늘어난 12조 3천억원을 편성하였습니다.  R&D 투자는 2012년까지 GDP의 5% 수준으로 늘려 나가겠습니다.    셋째, 지역발전과 사회간접자본 확충을 위하여 올해보다 7.9% 늘어난 21조 1천억원을 배정하였습니다.  특히, 광역경제권 활성화를 위한 30대 선도 프로젝트에는  내년부터 모두 50조원을 투입할 계획입니다.    넷째, 교육예산은 올해보다 8.8% 늘어난 38조 7천억원을 편성하였습니다.  고등학생 이하는 학자금을 낼 수 없는 경우 전액 지원하는 등, 돈이 없어 교육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없도록 할 것입니다.    다섯째, 맞춤형 복지예산은 올해보다 9.0% 늘어난 73조 7천억원을 배정하였습니다.  무상보육과 기초노령연금, 장기요양보험을 각각 확대했습니다. 어려울수록 정부는 서민 생활을 세심하게 배려하는 데 힘을 쏟을 것입니다.    여섯째, 지속가능한 발전과 녹색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올 해보다 23.7% 늘어난 3조 8천억원을 편성하였습니다.  그린․신재생에너지 기술 개발․보급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어려운 경제 여건을 감안해 공무원 보수와 정원을 모두 동결하였습니다.  이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공무원부터 솔선수범하자는 강력한 의지를 담은 것입니다.  이처럼 정부는 국민의 소중한 세금을 한 푼이라도 아낄 수 있도록 나라살림을 알뜰하게 꾸려 나가겠습니다.    예산이 확정되어야 재정집행계획도 세울 수 있습니다.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해  조속히 예산을 확정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존경하는 국회의장과 국회의원 여러분!    저는 대통령으로서 이 엄중한 상황을 헤쳐 나갈  역사적 책임을 통감하고 있습니다.  난국을 슬기롭게 돌파하는 데 저의 모든 것을 바치겠습니다.    여기 계신 여러분도 한 축을 담당해주셔야 합니다.  정파의 차이를 넘어 국익을 중심으로 힘을 모아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야만 국민들도 기꺼이 동참할 것입니다.    지금 세계 각국은 금융위기에 초당적으로 기민하게 대응하는  성숙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우리도 10년 전 외환위기 때  여와 야가 흔쾌히 힘을 합친 전례가 있습니다.    이번 정기국회도 한 달여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국회가 처리해야 할 일은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이 밀려 있습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이번 정기국회의 남은 회기를  ‘비상국회’의 자세로 임해 주시길 간곡히 호소합니다.    18대 국회가 훗날, 세계적인 경제위기를 도약의 기회로 이끈  위대한 국회로 길이 기억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대합니다.  저와 정부도 비상한 각오로 온 힘을 다하겠습니다.    위대한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나라의 어려움 앞에서 늘 그러셨듯이  다시 한 번 힘과 지혜를 모아주십시오.    지금이야말로 국익을 먼저 생각할 때입니다.  중소기업과 대기업은 동반자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노와 사의 화합만큼 더 소중한 것도 없습니다.  수도권과 지방은 상생의 길을 찾아야 합니다.  시민사회와 종교계도 갈등 해소에 적극 나서야 합니다.  언론의 역할 역시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합니다.    지금은 모두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결코 희망의 끈을 놓으면 안 됩니다.  억수같이 장대비가 퍼부어도 구름 위에는  언제나 찬란한 태양이 빛나기 마련입니다.    이 고비를 대도약의 전환점으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위기를 딛고 발전해 온  우리 역사의 원동력이었습니다.  대한민국 60년의 자랑스러운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제가 가장 무거운 짐을 지고 앞장서겠습니다.  서로 믿고, 자신감을 가지고, 다함께 힘차게 나아갑시다.    감사합니다.       2008. 10. 27.    대통령 이 명 박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열린세상] 지도자의 크기가 나라의 크기다/박성민 정치컨설팅그룹 민기획 대표

    [열린세상] 지도자의 크기가 나라의 크기다/박성민 정치컨설팅그룹 민기획 대표

    내머릿속에는 지워지지 않는 한 장의 사진이 있다. 꽤 오래 전에 본 것인데도 지금 손에 들고 있는 것처럼 선명하다. 친구로 보이는 두 명의 청년이 나무 한 그루를 배경으로 찍은 지극히 평범한 사진이다. 원주에 있는 가나안농군학교의 어느 건물 1층에 있던 여러 사진들 틈 속에 그 사진이 있었다. 유독 그 사진이 눈에 띈 것은 사진 속 나무에 붙어 있던 인상 깊은 글귀 때문이었다. 그들이 붙였으리라. 사진 속 두 청년은 가나안농군학교를 세운 김용기와 몽양 여운형의 동생 여운혁이었다. 기억이 맞다면 시기는 30년대 말이다. 나는 그 사진을 보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나라 잃은 식민지 청년들의 애국심과 기개가 세월을 뛰어넘어 순식간에 내게로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조국이여 안심허라’ 죽는 날까지 잊을 수 없는 호연지기가 거기에 있었다. 한 나라의 이미지는 여러 가지 요소들로 결정된다. 역사, 문화, 경제, 영토, 기질, 제도, 기업, 예술, 스포츠, 종교, 언론 등등이 다 중요하게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뭐니 뭐니 해도 역시 ‘사람’이다. 사람들은 사람들로 그 나라를 기억하는 것이다. 미모의 배우, 노벨상을 받은 작가, 전설적인 스포츠 스타, 세계적인 기업인, 전쟁을 이끈 영웅, 수많은 어록을 남긴 정치인, 불멸의 예술인, 존경받는 종교 지도자, 권위 있는 학자, 통찰력 있는 언론인 등의 수준이 그 나라의 이미지를 결정한다. 아무리 대중의 지위가 과거와 달라진 시대라 해도 한 나라의 수준은 여전히 그 나라 지도자들의 수준이 결정하는 것이다. 역사를 돌이켜보라. 그리고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보라! 위대한 지도자 없이 위대한 나라가 된 사례가 있는지. 지도자의 크기가 나라의 크기다. 처칠의 크기가 영국의 크기고, 드골의 크기가 프랑스의 크기고, 덩샤오핑의 크기가 중국의 크기인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대한민국의 크기는 어떠한가. 대한민국의 크기도 영토의 크기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지도자들의 생각과 행동이 크면 큰 나라가 되는 것이고 지도자들의 생각이 작으면 딱 그만큼 작은 나라가 되는 것이다. 정치인, 기업인, 종교인, 언론인, 예술인, 학술인들이 어떤 수준의 말을 하고, 글을 쓰고, 행동을 하는가에 따라 우리의 수준이 결정된다. 지도자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니다. 높은 지위에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아는 것이 많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가진 것이 많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지도자는 세 가지가 있어야 한다. 첫째, 통찰력이 있어야 한다.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지 못하면 어제의 경험만 이야기 할 수밖에 없다. 미래와 싸울 실력이 없으면 과거와 싸우게 된다. 우리가 어디에 서 있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설명하지 못하면 지도자 아니다. 둘째, 용기가 있어야 한다. 아무리 옳은 길을 안다고 하더라도 두려워서 말을 못하면 지도자가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 대중이 두렵고, 언론이 무서운 사람이 어찌 나라를 이끌 수 있겠는가. 정치컨설턴트로서 내가 정치인에게 제일 먼저 던지는 질문은 “무엇과 싸우고 싶습니까?”이다. 그 질문은 그가 ‘무엇에 분노하는가’를 알기 위한 질문이다. 답을 들으면 그가 지도자감인지 단박에 알 수 있다. 그가 싸우고자 하는 ‘적’을 보면 그의 모든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존경을 받아야 한다. 용기 없는 자는 존경 받을 수 없고, 존경 받지 못하는 자는 리더십이 있을 수 없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리더십이 없는 자가 어찌 지도자가 될 수 있겠는가. 아무리 위대한 성취를 자랑해도 그것이 자기를 위해서 한 것이라면 존경을 받을 수 없다. 존경은 남을 위해 얼마나 위대한 일을 했는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희생과 헌신 없는 존경은 없다. 2008년 가을, 세계를 뒤흔든 금융위기와 불안정한 한반도의 정세를 보면서 70년 전의 흑백 사진 속의 그들 같은 지도자가 그리워진다. 박성민 정치컨설팅그룹 민기획 대표
  • [2009년 예산·기금 편성안] 성장 지향형…통일·문화 비중은 낮아

    [2009년 예산·기금 편성안] 성장 지향형…통일·문화 비중은 낮아

    세제 개편안(9월 1일)과 세입 예산안(26일)에 이어 30일 세출 예산안이 확정되면서 이명박 정부의 첫번째 나라살림의 얼개가 완성됐다. 수입에 감세(減稅) 철학이 반영됐다면 지출에는 실용 중심의 성장지향 편성이 두드러진다. 이런 기조는 올해 전년 대비 예산 증가율이 4.4%에 불과했던 사회간접자본(SOC) 분야가 내년 7.9% 증액되는 데 반해 올해 15.6%로 가장 높았던 통일외교 분야 증가율이 가장 낮은 2.2%로 내려앉은 데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예산편성의 전제가 되는 내년도 경제상황이 미국발 금융쇼크가 본격화하기 전에 예측된 것이어서 앞으로 상황에 따라 큰 폭의 수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건설현장과 연구실험실에 지원 늘려라 예산을 구성하는 12개 부문 중 연구개발(10.8%), 보건복지(9.0%), 교육(8.8%),SOC(7.9%), 국방(7.5%)이 전년대비 증가율 1∼5위를 차지하며 전체 평균(7.2%)을 웃돌았다. 지난 노무현 정부에서 연 평균 2.5% 증가에 그쳤던 SOC 예산은 8%가량 늘어난 21조 1000억원이 배정됐다. 지난 6월 해당 부처가 제출한 요구안이 올해보다 2.4% 줄어든 19조 1000억원이었지만 오히려 증가하는 이례적 상황이 발생했다. 재정부 관계자는 “정부의 SOC 지출이 늘어나면 민간의 참여를 자극하기 때문에 실제 경제에 미치는 효과는 예산 증가율을 훨씬 웃돌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개발(R&D) 분야에는 12조 3000억원이 투입된다. 글로벌 청년리더 10만명과 미래산업 분야의 인재 10만명을 키우기 위해 2000억원을 들이는 것은 단기적 효과보다는 임기말을 겨냥한 기술기반 확충과 인적 자원 양성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보건복지는 현 정부가 성장에 정책지향점을 두면서 삭감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지만 73조 7000억원으로 9.0%나 늘었다. ●공무원 허리띠 졸라매고 통일예산도 아껴라 반면 통일외교(2.2%), 문화·체육·관광(3.4%), 일반공공행정(3.5%), 농림수산식품(4.1%), 공공질서·안전(4.4%)은 경상성장률에 크게 못미치는 증가율로 전체 비중이 축소됐다. 참여정부 때 덩치가 커졌던 통일 예산의 경우 비핵화 진전, 경제적 타당성, 재정부담, 국민합의 등 대북경협 4대 원칙에 입각해 타당성 높은 사업 중심으로 내실을 기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남북협력기금은 1조 7000억원이 요청됐지만 1조 1000억원만 반영됐고 비핵화 조치에 드는 3000억원이 6자회담 공전으로 잘려나갔다. 공무원 보수도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동결됐다. ●성장률 밑도는 증가율…물가 감안 정부는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내년 경상성장률을 7.4%로 예측하면서 총지출은 6.5%, 예산은 7.2% 늘어나는 것으로 계획을 짰다. 재정부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지출 증가율이 성장률보다 높았으나 이번에는 그 이하로 편성했다.”면서 “균형재정을 지향함과 동시에 재정지출이 물가상승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기조가 제대로 유지될지는 알 수 없다. 미국발 금융위기와 선진국 경제 둔화 등으로 실물경기에 대한 부담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인위적인 경기부양을 해야 할 상황이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년 경제성장률을 너무 낙관적으로 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은 “내수 경기가 부진한 점을 감안할 때 일자리 창출과 성장동력 확보, 그리고 서민생활 안정 등에 중점을 두기로 한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라면서도 “미국발 세계 경제 불안이 확산될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5% 내외의 경제성장률을 기준으로 예산을 설정한 것은 과도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 ‘수영 말아톤’ 진호의 청년일기

    ‘수영 말아톤’ 진호의 청년일기

    2005년 폴란드 세계지적장애인 수영대회 금메달리스트.IQ 47에 7살짜리의 지적능력. 상식을 깨는 돌출행동. 자폐 수영선수 김진호(23)씨 앞에 달린 수식어다.3년전 ‘일요일 일요일밤에’를 통해 시청자들과 친해진 진호 씨는 요즘 어떻게 지낼까. ‘휴먼다큐 사랑’시리즈와 최근 ‘MBC스페셜’을 통해 엄지공주의 감동적인 출산과정을 보여준 유해진 프로듀서가 이번엔 진호씨에게 렌즈를 들이댔다.19일 오후 9시55분 방송되는 ‘MBC스페셜-진호야, 힘을 내’에서다. 지난 8월 10일, 세간의 관심은 온통 박태환의 베이징올림픽 수영경기에 쏠려 있었다. 그도 이날 세 살 어린 태환의 경기에 온통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 역시 8일 뒤 열릴 폴란드 세계지적장애인 수영대회에서 금메달의 꿈을 꾸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호의 성적은 2005년 이후 줄곧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유해진 PD는 이번 프로그램에서 풋내나는 소년에서 어엿한 청년으로 자란 그의 변화와 자폐의 벽을 스스로 허물어가는 과정을 포착했다. 강도높은 훈련과 새로운 환경에 대한 불안감으로 수영을 포기했다가 거듭 강행하는 그의 갈등과, 그런 아들을 24시간 가슴 졸이며 지켜보는 엄마의 심경이 긴장을 빚어낸다. 16일 열린 시사회에서 유 PD는 “이번 다큐멘터리가 자폐에 대한 인식의 폭과 이해의 깊이를 더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휴먼다큐멘터리 분야에서 자신만의 브랜드를 구축한 유 PD는 “자폐아를 둔 가족들의 심적인 변화와 극적이고 감동적인 부분을 담아내는 것이 휴먼다큐만의 매력”이라고 덧붙였다. 진호씨가 가장 좋아하는 연예인으로 꼽은 탤런트 하희라가 내레이션을 맡아 그의 일상풍경을 한층 다감하게 풀어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우린 모두 지구별에서 왔잖아요”

    “우린 모두 지구별에서 왔잖아요”

    “우린 모두 ‘지구’라는 별에서 왔죠. 그래서 이주노동자도 슬픈 영화를 보면 눈물을 흘린답니다.”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인 15일 오후 경기도 안산 외국인주민센터에서 ‘이방인’들의 특별한 영화제가 열렸다. 고향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안산 지역 200여명의 외국인근로자들이 한곳에 모여 자신들의 삶 이야기, 고향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를 보며 향수를 달랬다. 불법체류자 신분 때문에 늘 단속과 강제송환의 두려움을 안고 있지만 이날만은 영화와 음악을 즐기며, 자신의 감정을 진솔하게 드러냈다. 안산 네팔공동체가 주관한 ‘제3회 이주노동자영화제’의 마지막 날인 이날 상영작인 ‘마야 거르추(Maya Gurchew·‘너를 사랑해’라는 뜻)’는 관객들의 마음을 단박에 낚아챘다. 외국인근로자들은 봉제공장에서 함께 일하는 한국인 동료에게 연정을 품고 있는 네팔인 푸르자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언어도 피부색도 다른 그녀에게 자신의 감정을 쉽게 표현하지 못해 주저하는 영화 주인공 푸르자. 한국에서 5년 넘게 일하면서도 변변한 한국인 친구 하나 사귀기 힘들었던 푸르자는 바로 관객, 그들의 얘기였다. 파키스탄 소녀를 사랑한 한국인 소년의 성장기를 그린 ‘소년은 자란다’는 소녀의 아버지가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잡혀가는 장면으로 막을 내렸다. 끝날 무렵에 관객들의 눈가는 촉촉하게 젖었다. 이주노동자 밴드 ‘스탑 크랙다운’과의 만남을 그린 ‘어둠 속의 등불’과 순박한 네팔 청년의 사랑을 그린 ‘두르베(Dhurbhya)’ 등 4편의 영화가 끝날 때까지 관객들은 자리를 뜰 줄 몰랐다. 이날 외국인근로자들은 네팔의 전통 민속춤과 노래를 함께 부르고, 미리 챙겨온 각국의 민속음식과 송편을 나눠 먹으며 명절 연휴 마지막을 즐겼다. 방글라데시에서 한국에 온 지 11년된 다즐리 슬람(36)은 “비록 늘 불안한 상황이지만 이런 문화행사를 통해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면서 “예술이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지구라는 별에서 태어난 사람들에게는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외국인이주노동자 인권을 위한 모임’의 석원정 소장은 “재작년 제1회 영화제에 나온 한국의 외국인근로자들에 대한 영상물은 2개 정도에 불과했지만 이번에는 총 26편의 영상물 중 13편이 한국 이주자들의 삶을 그린 것”이라면서 “이번 영화제를 위해 상영작 공모를 할 정도로 지난 몇 년간 외국인근로자들의 문화영역에 놀랄 만한 변화가 있었다.”고 전했다. 다음달에는 서울과 경기도 마석에서 방글라데시 출신 근로자들과 한국인이 함께하는 연극제가 열린다. 글 사진 안산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 [열린세상] 백수, 우리시대 보통의 젊은이다/ 황기돈 한국고용정보원 연구개발본부장

    [열린세상] 백수, 우리시대 보통의 젊은이다/ 황기돈 한국고용정보원 연구개발본부장

    청년실업의 원인 분석과 대안 모색 과정에서 자주 나오는 비판이 “요즈음 젊은이들은 일할 의욕이 없거나, 좋은 일자리만 찾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의 눈높이를 낮추거나, 일할 의욕을 고취할 방편이 대책으로 논의되곤 한다. 물론 마음에 들지 않는 일자리에서도 열심히 일하는 젊은이들과 비교하면 이런 비판을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들이 처음부터 일하기 싫어한 것이 아니라, 하고 싶어도 할 일이 없어 일하기를 포기한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그 원인은 주로 사회적인 것에서 찾아야 한다. 기업, 특히 대기업은 신입직원 교육훈련 비용을 아끼고, 현업에 바로 투입할 인력을 채용하기 위해 경력자를 선호하는 채용관행이 정착되었다. 졸업 후 1년 이상이 지난 경우, 서류전형이나 면접 등에서 문제가 있지 않은가라는 의심의 눈초리를 경험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불경기에 민간의 채용이 줄어들 경우 공공부문이 채용을 확대해 완충작용을 해주는 것이 경기변동의 진폭을 줄이는 효과적인 방안이라는 것은 경제학의 기본이지만, 민간이 어려운 시기에 공공부문도 고용을 동결하거나 줄여야 한다는 게 정책 담론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게다가 학생들에게 적극적인 조기 진로지도를 실시하는 학교가 예외이며, 이런 학교에서조차도 일자리가 없을 경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가르쳐주지 않는다. 이러한 교육 여건 하에서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만들어 갈 능력을 배양하지 못한 젊은이가 주어진 일에 몰입하고, 이를 통해 삶의 보람을 찾을 수 있는 능력은 또 어디서 배울까? 그래서 많은 젊은이들이 양질의 일자리만 찾아 장기간의 취업준비에 몰입하거나 극단적인 경우 취업을 포기하기도 한다. 일자리를 구한 젊은이들도 직장을 옮기기 위해 밤늦게 혹은 새벽부터 학원가를 메우고, 기업은 신입사원의 퇴사를 막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청년실업 문제 해결은 이들을 ‘문제아’로 보는 관점을 바꾸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한 세대 전만 해도 정상이었던 졸업 후 즉시 취업이 이제는 비정상이 되었다는 사실을 직시한다면 청년실업자가 취업도 못한 문제아가 아니라,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함께 살아가야 할 보통의 젊은이라는 게 분명해진다. 실제로 졸업 후 직업훈련, 취업준비, 아르바이트 등 다양한 종류의 임시직 일자리, 실업 등 다양한 경험을 하는 청년들의 숫자가 200만명에 가깝고, 갈수록 늘어가고 있다. 심지어 대졸자도 졸업 후 첫번째 일자리를 찾기까지 평균 11개월 정도 걸린다는 것이 각종 조사통계의 일치된 결과다. 졸업에서 취업까지 다이내믹한 과정은 젊은이들이 이후의 삶의 여정에 도움이 되는 수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이자, 삶의 희망을 놓아버릴 위기이기도 하다. 따라서 청년고용정책은 전자의 경우 기존의 다양한 지원책을 강화해 졸업과 취업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각종 리스크를 줄여주고, 후자와 관련해서는 불안정한 고용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한 지혜를 체계적으로 교육시키고, 보다 많은 고용 및 직업정보를 제공해주어야 한다. 이는 정부의 주된 과제이지만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 사회의 주요 구성원이 자신의 과제로 인식하고 행동에 나서야 한다. 우선 기업은 채용시 청년실업자들이 졸업과 취업 사이에 겪은 다양한 경험을 보통의 젊은이들이 겪는 경제적·사회적·인적 자본의 축적과정으로 보고 긍정적으로 평가해주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언론, 특히 TV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청년실업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를 위한 노력은 물론 일자리 찾아주기 사업을 지속적으로 펴나갈 것을 검토해보자. 일자리를 제공할 기업이 TV에 신청하고 이를 TV에서 소개할 경우 일자리 정보의 확산은 물론 해당 기업에는 긍정적인 광고효과도 나타날 것이다. 불안정한 고용이 일상화되어가는 시대에 꼭 필요한 방송의 공익성은 이런 게 아닐까. 황기돈 한국고용정보원 연구개발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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