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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년사설] 함께 가는 희망의 사회 만들자

    새해 아침이다.희망과 소망을 담은 덕담을 나누며 활기찬 한 해를 다짐할 때다.하지만 올 새해는 좀 유별나다.무거운 마음으로 새해 아침을 맞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지난 연말 역시 연말다운 들뜬 분위기는 없었다.지난해 하반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몰아닥친 경제 한파의 한가운데로 내몰렸거나,심리적으로 위축된 이들이 크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정부나 기업,가계 모두 힘든 위기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가고,더 이상의 추락은 없을지 걱정하고 있다. ●생존이 지구촌 화두가 됐다 요즘 통계를 들여다보면 모든 경제지표가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이후 최악의 상황이다.지난 연말 이미 세계 주요 국가의 경제 성장률은 마이너스를 기록했다.IMF는 얼마 전 ‘제2의 대공황’ 진입 가능성까지 전망했다.이제 어느 나라 가릴 것 없이 화두는 생존 그 자체가 됐다.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연말 “어쩌면 우리는 내년 1·2분기에 마이너스 성장이 될지도 모를 위기에 있다.”고 했다.위기 탈출의 단초가 보이지 않는 세계 경제를 염두에 둔 발언이었다.최악의 상황에 대비하겠다는 의지가 담겼다.글로벌 금융위기의 진원지였던 미국의 지난 4·4분기 성장률이 -6%로 예상됐던 상황이었다.올해 역시 마이너스 성장 전망이 나오고 있다.대통령 발언 얼마 전 내놓았던 정부의 4% 성장 목표가 얼마나 공허하고 장밋빛이었는지 새삼 돌아보게 된다. 실물경제의 침체 역시 빠르고 엄혹하게 우리 곁에 다가왔다.그 골이 얼마나 더 깊어질지 예측조차 어렵다.얼마 전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올 1분기 기업경기전망은 심각했다.1분기 경기실사지수(BSI)는 전분기 79보다 무려 24포인트나 급락한 55였다.외환위기 시절인 1998년 3분기의 61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경제 현장의 불안감의 정도를 읽게 하는 대목이다.수출을 주도했던 컴퓨터·TV 휴대전화의 12월 매출이 전년에 비해 반토막 났고,각종 제조업체의 감산 도미노가 끝을 보이지 않고 있다.올해 얼마나 많은 기업이 무너지고,얼마나 많은 사람이 직장을 잃고,가게가 문을 닫을지 가늠하기 어렵다.또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일자리를 얻지 못해 방황하며 절망속에 살아갈지 걱정이 아닐 수 없다.특히 청년실업은 심각한 사회불안 요소가 되고 있다.“요즘 젊은 세대는 지상의 방 한 칸 못 찾아 떠돌아다니는 피란민 정서가 있다.”는 소설가 김애린의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자신감·위기극복 의지가 중요 하지만 새해 아침부터 지나치게 불안해하거나 절망만 할 수는 없다.어려울수록 단결된 힘과 돌파력을 발휘하는 저력을 보였던 우리가 아닌가.외환위기 극복 등 과거의 사례가 이를 증명한다.비상한 각오로 지금의 위기를 도약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의지를 다질 때다.모든 경제주체가 힘을 합치고 때론 조금씩 양보하면 헤쳐나가지 못할 난관은 없다.자신감과 위기극복 의지가 중요하다.신빈곤층이 양산되고,양극화가 심화되고,갈등과 분열의 골이 심화돼서는 우리 사회는 미래가 없다.어려운 상황일수록 낙오자,이탈자가 최소화되도록 해야 한다.함께 가는 사회를 만드는 데 혼신의 힘을 모아야 한다. 이제 집권 2년차를 맞는 이명박 정부다.지난 1년은 촛불시위 여파와 갖가지 갈등과 정쟁으로 허송하다시피 했다.정부의 리더십 부재,신뢰 상실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공직사회 쇄신,공기업 개혁,공무원연금 개혁 등 어느 하나 순조롭게 처리된 게 없었다.과속,조급증 때문에 낭패를 겪은 정부다.이제라도 국민과 함께 가는 정부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특히 정부와 정책의 신뢰회복이 우선이다.지난해처럼 정부 부처간 엇박자가 거듭되고,말만 앞서는 행태로는 이 정권의 미래를 담보하기 어렵다. 일자리 지키기와 창출은 우리 모두의 최대 관심사가 된 지 오래다.일자리야말로 최선의 복지다.정부는 지난 연말 대규모 재정투입을 통한 일자리 창출 확대를 예고했다.예산만 쏟아붓는 어리석음을 최소화하면서 일자리를 늘리고 경제를 살리는 방향으로 지혜를 모아야 한다.아울러 신뢰를 잃은 내각과 청와대팀의 인사쇄신을 어떤 방향으로 할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개각이나 청와대 비서팀 개편은 정파나 코드를 뛰어넘는 위기 극복,국민 화합의 인사가 되길 주문한다. ●일자리 창출이 최선의 복지 최악의 경제위기 상황에서 정치권이 보이고 있는 최근 작태는 실망을 넘어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딴 세상을 사는 듯한 한심한 행태는 국민들의 혐오증을 부추기고 있다.연말 극한 대결구도 속에서도 대타협의 마무리를 기대했으나 허사였다.국회 무용론이 나온 지 오래다.국민과 함께 가는 국회의 모습을 찾기 위해 여야 가릴 것 없이 뼈저린 반성을 해야 한다. 어려울수록 다시 희망을 만들어야 한다.세계 경제의 빙하기에서 대한민국의 생존을 걱정해주고 도와줄 곳은 어디에도 없다.모두 정신을 가다듬고 함께 손잡고 가는 희망의 사회를 새롭게 만들어 가자.
  • 로또당첨 이후, 그들은 행복했을까

    로또당첨 이후, 그들은 행복했을까

    로또에 당첨돼 하루아침에 ‘돈벼락’을 맞은 사람들.그들은 과연 자신들이 꿈꾸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었을까.3일 오후 11시5분에 방송되는 SBS ‘뉴스추적’에서는 로또 당첨이나 토지보상으로 거액을 만지게 된 사람들을 만나 벼락부자가 된 이후 어떤 삶이 펼쳐졌는지 들어본다. 지난 9월말 한 20대 청년이 특수절도 혐의로 경찰에게 붙잡혔다.그런데 이 남자는 3년 전 로또 1등에 당첨됐던 사람이었다.무려 14억원을 당첨금으로 받았지만 유흥비와 도박 등으로 모두 날려버렸고 결국 범죄자로 수갑을 차게 된 것.그는 왜 인생 대역전의 기회를 잡고서도 허망하게 놓쳐버린 것일까. 3년 전 로또 1등에 당첨된 한 부부 역시 평탄한 생활을 보내지 못하고 있다.당시 27억원을 손에 쥔 부부는 두 사람이 완전히 갈라섰고,현재 당첨금을 두고 서로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며 소송을 거듭하고 있다.그 와중에 부인은 법정구속까지 당했다.중국여성과 국제결혼을 한 남성은 로또 2등 당첨금 3800만원을 모두 날린 경우.그는 중국인 부인과 처가에 속아 돈을 모두 빼앗겼다고 주장하고 있다.하지만 이 남성은 잃게 된 돈보다 사랑했던 아내에 대한 배신감에 분노하고 있다. 제작진이 만나본 적지 않은 벼락부자들은 오히려 돈벼락을 맞고 나서 삶이 불행해졌다고 말한다.물론 불행해진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4년 전 로또 사상 최고금액인 407억원을 받았던 박모씨는 당첨금 중 적지 않은 금액을 자선사업에 희사하는 등 현재 순탄하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이처럼 똑같은 기회가 찾아왔는데도 극과 극의 삶을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프로그램은 벼락부자들의 행운 그 이후의 삶을 들여다보고,진정한 행복의 조건은 무엇인지 조명해본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미네르바 정체 암시’ 글 전문

     21일 인터넷 경제 대통령 ‘미네르바’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네티즌의 글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날 새벽 2시쯤 포털사이트 다음의 논쟁 사이트인 아고라에 ‘read me’란 필명의 네티즌은 “‘미네르바’는 이름이 널리 알려진 기업인 K씨”라고 글을 올렸다.  ●다음은 read me가 다음 아고라에 남긴 글의 전문  오늘같은 밤,  겨울의 입구에서 불어오는 시린 바람은  런던의 워털루역 앞 길고 어둡고 지린내나는 지하보도의 벽에  낙서처럼 남겨진 이름 모를 시(詩)를 생각나게 한다.  I am not afraid as I descend,  step by step, leaving behind the salt wind  blowing up the corrugated river...  (우리는 저 암흑으로 내려간다 하더라도 두려워 않으리...) 사실 미네르바 개인에 대해서는 더 이상 글을 안 쓰려 했다.  그런데...  어떤 누구에게서 한밤중 전화가 걸려왔다.  다짜고짜 K란 이름을 아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왜?  극비사항인데... K가 바로 아고라의 미네르바 라는군...    K... 01001011...    모교 동기 중에 그런 이름의 희미한 얼굴이 스쳐갔다.  삼십년도 훨씬 넘은 오래 전의 추억이다.  내 자신 이십여년 넘게 외국생활을 했고,  K 또한 오랫동안 해외에서 일했다는 말을 얼핏 들었다.  아마 런던 시티 어디에선가 마주칠 기회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점심 때면 외로운 이방인이 영란은행 앞 킹 윌리암 거리를 따라 내려와  캐논 거리 코너에 있는 맥도날드에서 다이어트 코크를 빨대로 마시며  진로 소주를 병 째 빨아대던 그 겁없던 시절을 그리워했는지도 모른다.  근처 다이와 보험회사에서 쏟아져 나오는 일본인 젊은 무리들을  동경 반 경멸 반 흘려보며 한국인으로서의 소외감을 잊으려고  로이터 터미널에 빠져들려 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샌드위치 하나 싸들고 런던 브릿지 위에서  남쪽 강변의 미네르바 하우스를 바라보며 미래를 꿈꿨는지도...  내가 워털루 다리 밑 사우드 뱅크의 노점에서 헌 책을 뒤적이고 있을때  K는 사우드와크 다리 양쪽 LIFFE와 FT에서  텔렉스와 컴퓨터와 마이크로필름과 싸우고 있었을 것이다.  런던의 두 에트랑제가 아마 그 시간 테임즈 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십 수년이 또 지나고...  나는 아직도 부(富)란 무엇이냐는 형이상학의 질문에서  수도원의 늙은 유폐자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K는 그동안 대한민국 재계의 유명인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막대한 재력과 그에 걸맞는 막강한 영향력을 휘두를 수 있는  그런 자리에 그가 올라가 있다고 했다.  또 그는 훌륭한 사회활동도 많이 하여 존경받는 기업인이라고 했다.  나는 그를 만나지 못했고 그러지도 않았다.  구태여 그래야 할 이유나 핑계도 없었다.  동창이란 것 외에 우리의 관심이나 특히 처지는 너무나 달랐다.  나는 옛 친구들과 만날 기회를 일부러 피하며 살았지만,  그는 옛 친구들을 만날 시간도 없이 그렇게 쫒기며 살았을 것이다.    그러던 날들...  아고라에서 미네르바의 화신을 만난다.  십 수년 전...  테임즈 강변 사우드와크의 미네르바 하우스를 떠올린다.  아테나의 파르테논을 연상시키기에는  너무나 소비에트적인 현대식 건물과 우중충한 거리.  의미도 모른 채 예쁜 이름이 참 안 어울리는구나 생각했다.  마치 낡은 화력발전소 속에 숨어있는 테이트 모던 미술관처럼  무엇인가 어울리지 않는 것들의 갈등과 타협이 이해할 수 없이 얽혀진  그런 모순의, 그런 도시의, 그런 건축의, 그런 이름 이구나...  라는 느낌을 흘려 버리고 지나갔다.  그런 불가사이의 미네르바를 여기 아고라에서 다시 만난다.  좌절과 희망과 평화와 복수와 수학과 역사가 동시에, 모두,  엄청난 파괴력으로 폭발하는 그의 글을.    K는 이제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 지혜와 용기의 수호신이었다.    삼십여년전 그의 모습을 떠올리려 애써본다.  어린 시절 6년의 긴 시간을 같이 부대끼며 지냈겠지만,  말 한마디 나눠본 기억도 별로 없다.  이른바 명문학교의 얼마 안되는 수의 학생들 사이에서도  그는 너무나 얌전하고 조용한 아이였다.  아마 다른 아이들보다는 나이가 좀 더 많았던지,  좀 더 촌구석에 살았던지,  좀 더 생활이 어려웠던지 (당시는 모두 못살았지만), 아뭏든...  무척 어른스러운 아이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가 아는 K를 미네르바의 암호에서 해독한다.  토끼처럼 유순했던 아이가 어느날 외로운 늑대가 되어 돌아왔다.  비밀의 가면 뒤에서 그러나 화려한 조명 아래서  현란한 검술을 뽐내는 몽테 크리스토 백작...  또는 고탐 시의 억만장자 흑기사 뱃트맨이 어울릴까.  무엇이 그를 정의의 분노에 불타게 했을까.  지금 그 나이와 그 명성에...  뭇 사람들이 선망과 질시를 함께 느껴야 할  지금 그처럼 높은 사회적 경제적 지위에서...  그가 속한 하이 소사이어티의 남들은  탐욕의 절정에서 더 많은 돈 더 많은 힘을 가지기 위해  금력과 권력을 휘둘러 힘없는 자를 탄압하며 갈취하고 있는데,  그는 그 모든 풍요와 안락의 유혹을 내던지고,  그가 말하는 저 아래 천민의 편에 서서 저 아래 천민을 위하여  자기가 그 정점에 앉아 있는 자기 발 아래의 피라미드를 부수고 있다.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정열과 노력으로...  왜?  모든 것을 가져본 자의 한낱 변덕일까?  청년 시절 하지 못한 초로의 때늦은 반항일까?  아니면...  - 슘페터가 말했듯이 -  자본주의 시장경제 진화의 극대점에서 드디어  마르크스적 사회주의의 이상치에 도달했기 때문일까?  체제 내적 모순의 변증법적 완성일까?  자기 자신을 불살라 없애는 생산적 에로스의 충동일까?  생명의 원죄를 드디어 깨달은 종교적 속죄 의식일까?  아니면... 저 멀리 아마존 숲 속 한 마리 나비의 날개 짓이 슈퍼 컴퓨터 미네르바의 프로그램에 삑. 삑.. 삑...치명적인 버그를 일으키기라도 했단 말일까?    왜 K는 자기가 있는 이너서클의 고리를 스스로 끊으려 할까?    70년대 폭압과 혼돈의 대학시절,  민주와 자유의 선구적 외침 속에서 나는 K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다.  아마 그의 이상주의는 철저한 현실주의 밑에 가려져 있었을 것이다.  아마 그는 나와 같이 영원히 무능한 회색인은 아니었을 것이다.  삼십여년의 세월이 지난 후 이제, 우리의 아이들이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나이가 된 이제, K는 미네르바가 되어 돌아왔다.    우리는 중학입시를 경험한 세대이다.    나는 국민학생의 - 당시에는 국민학교라 불렀다 - 어린 나이에  밤 12시까지 중학교 입학시험 준비에 시달리는 내 또래 소녀의 어두운 포토 리포르타쥬를, 어른들이 보는 신동아에서 읽은 적이 있다...  때는 바야흐로 비틀즈와 월남전과 두브체크와 꽁방디를 거쳐 오일쇼크와 검은구월단과 아라파트와 바더 마인호프와 그리고 딥퍼플과 마리화나가 대변하는 해방의 시대였다.  그러나 대한민국이라는 식민주의 사회의 이른바 자유경쟁은 우리를 능력 껏 뛰게 해주는 자유가 아니라 발을 얽맨 노예의 사슬이었고 시험은 우리에게서 상상과 비판을 박탈하는 강제노동이었다.  차라리 군사교육 교련은 운동장에 나와 공기를 마시고 동무들과 장난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감옥은 오히려 자유에의 투지를 키우는 장소이며 전체주의는 내일에의 희망을 지울 수 없다.  우리들의 작은 꿈, 커서 어른이 되면 좋은 나라 만들거야...  우리의 아이들이 이런 지옥같은 세상에서 살게 하지 않을 거라고.  전쟁도 없고 독재도 없는 나라,  미군 트럭 뒤를 쫒아 뛰며 지아이에게 기브 미 껌,  쵸콜렛 냠냠 손 내밀지 않는 나라,  저 하늘에도 슬픔이 영화 속의 이윤복 같은 어린이가 없는 나라,  언젠가 우리는 그런 나라 만들어 행복하게 살거야 라고.    우리 세대가 지난 삼십여년간 이룬 것은 그러나 어린 시절의 꿈나라가 아니었다.  더 살벌한 경쟁과 더 잔인한 교육과, 더 오만하고 더 탐욕스런 부자들과,  더 가난하고 더 불쌍해진 아이들과 노인들이, 아파트라 불리우는 콩크리트와 플라스틱의 쓰레기 속에서 생존의 무자비한 쳇바퀴를 돌리고 있는 변태의 사회.  정치인들은 더 추해졌으며, 공직자들은 더 썩었으며,그 부정과 부패를 교활히 감추기 위해 온갖 위선적이고 기만적인 법과 규제와 관습과 편견이  도저히 풀 수 없는 고르디아스의 매듭처럼 인간적인 사회의 발전을 얽어맨 그런 세상.  어느날 삼십년간 잊어왔던 내 모습을 봤을 때 거울 앞에 서있는 것은 비겁하고 무식한 돼지였다.    누구를 위해서 우리는 살아왔나... 과연 무엇을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에게 좋은 세상을 남겨주겠다는 거짓 희망과 거짓 지식으로 우리 자신을 속여왔다.  현실주의의 미명 아래 힘을 휘두르는 자에게 아부하고 높은 자에게 가까이 붙기 위해 그들에게 조공을 바치며 그들의 권위와 폭정을 강화시키는 것이  우리 모두를 노예사회에 종속시킴을 뻔히 알면서도, 마치 그것이 나라 사랑이요 나라 발전에 이바지함이며 장차 우리 아이들에게 남겨줄 유산이라 믿으려 해왔다.  그러나 나의 애국은 나의 가장 탐욕스런 이기일 뿐이었다.  나라의 성장은 내 신분상승과 재산형성의 핑계였을 뿐이었다.  우리가 만들었노라고 자랑스러이 보이고 싶어한 이 사회는 결국 거대한 분뇨 덩어리였다.    불행하게도 개인의 부의 총합은 국가의 부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개인의 부란 더해질 수 있는 어떤 스칼라 량(量)이 아니며, 그것을 더하려는 행위 자체가 궤변이다.  - 플라톤, 데카르트, 로크, 케네 -    미네르바는 오늘 나를 거울 앞에 서게 한다.  거울 앞에 서있는 모습은 미네르바이다.  나는 삼십년전으로 돌아가 그의 이름을 불러본다.    K...  넌 2반이었지, 이과반.  담임이 오래 전 돌아가신 수학 선생님...  난 문과반이었지만 제일 좋아하던 분이었지.  제일 좋아하던 과목이었고...  넌 기억나니, 그 시절이?  * * *  이것이 내가 아는 미네르바이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가장 비밀한 곳에서 들려오는 소문이다.  미네르바가 노란 토끼의 미래를 이곳에 예언해야 했듯이  나는 미네르바의 과거를 이곳에 증언한다.  왜?  미네르바의 현재는 판도라의 상자임을 알려주기 위해서.    만일 미네르바의 신분이 이 정권에 의해 폭로된다면, 그것은 바로 이명박 강만수와 그 수하 한나라당이 내세워왔던 모든 정치 경제 사회 데올로기가 그 순간 몰락하며,이 정권 자체가 파멸의 헤어날 수 없는 소용돌이에 빠져버리게 된다는 사실을 말한다.  왜?  K는 이 정권의 존립이유와 권력유지의 동인으로 삼았던 1% 상위층 중의 상위에 속하는 0.1% 극상위층이기 때문이다.  극상위층의 대표적인 인물 K가 미네르바의 필명으로 일부 상위층에게 특혜를 줌으로써 경제를 살리겠다는 수탈주의 정책은 정책이 아니라 완전한 개.사기이며 날.강도질임을 증명하고 있다.  따라서 그런 이데올로기의 정강 위에 세워진 한나라당 세력의 정치적 존재 자체는 허구일 뿐 아니라 국민 전체와 국가에 대한 죄악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절대왕조와 중금주의의 야합에 불과한 소위 공급주의 친기업정책,  무한경쟁 약탈경제를 내세운 시대착오적 신자유주의,  교육의 상업화와 룸펜 부르조아지들의 천박한 귀족화,  복지와 후생과 군비의 감소,  그에 따른 국론의 분열과 국력과 국방의 쇠퇴,  실용주의를 빙자한 맹목적이고 고립적인 사대주의,  게다가 오만한 독재와 언론의 독점...  이 모든 것은 국가 파괴를 구성하는 죄목일 뿐이다.    소망교회 장로정권이 절대 충성과 복종을 맹세했던 돈의 신(神)들 중에서도  가장 풍요하고 가장 지혜로운 신 미네르바가 나를 향한 너희의 거짓 예배는 신성모독일 뿐이라며 분노한다.  너희의 주인인 0.1% 부자는 너희들 아랫 것 0.9% 졸부들의 패악한 정치를 부정한다.  너희가 경제를 빙자하여 국민에게서 강탈한 장물들을 나에게 뇌물로 바치려들지 말라. 그것은 나를 위함이 아니며, 기업가를 위함도 노동자를 위함도 국부를 위함도 국민을 위함도 아니며, 다만 국가를 욕되게 함이라.    기회주의 기득권자들이 국민을 경쟁의 구렁텅이로 몰아가서 그들이 영구독점하는 시장의 노예로 만들기 위해 내세울 그 누구보다도 완벽하며 이상적인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얼굴 K,  일류학교 일류직장 일류기업의 일류코스를 모두 밟은 초글로벌 리더 최고선진 CEO의 얼굴인 K는 이제 기생충 계급의 일류선진국 데마고지가 숨기고 있는 음모를 폭로하기 위해 얼굴 없는 미네르바로 돌아왔다.  이 정권이 미네르바의 가면을 벗기려 함은 이 정권 스스로의 손으로 아포칼립스 제7의 봉인을 뜯어 한 때 마리 앙뜨와네트의 가증스런 무식을 단두했던 그 시퍼런 날이 정권의 목 위에 떨어지도록 자초하는 짓이다.    그러므로 이 정권이 택할 길은 오직 하나...  미네르바와 국민들 앞에서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는 것이다.  무조건 잘못했으니 살려만 달라고 무릎 꿇고 애원하는 것이다.  오만과 아집이 과연 목숨보다도 소중하지는 않겠지.  국민의 안녕과 따라서 정권의 생명이라도 부지하려면  이명박과 강만수는 국가의 부도를 맞기 전에 정권의 부도를 자백해야 한다.  숙주(宿主)가 죽는다면 기생충도 따라 죽어야 된다는 상식 쯤은 물론 알고 있겠지.  이 정권의 추종자들이 자기 생존의 본능까지 버릴 정도로 최소한의 이성 마저 잃고, 감히 미네르바와 국민들에게 대항하리라고 상상할 수 없지만...  그래도 소망교회 이명박 강만수 광신장로들이 성서의 억지해석을 바탕으로 패륜목사들의 꾐에 혹하여 운명을 그르칠까봐 조금 염려스럽기는 하다.    그러나 나는 이 사악하고 탐욕한 장로정권의 자멸에의 충동을 구태여 막으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A Dieu!    출처 - 다음 아고라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396246&hisBbsId=best&pageIndex=7&sortKey=regDate&limitDate=-30&lastLimitDate= 인터넷서울신문 최영훈기자 taiji@seoul.co.kr
  • 창비장편소설상 한재호씨

    창비에서 제정한 창비장편소설상의 제2회 수상자로 한재호(30)씨가 선정됐다. 수상작은 ‘슬로우 잼’. 창비 측은 “우리 시대의 첨예한 사회적 현안 가운데 하나인 청년실업 문제를 재기발랄한 착상과 경쾌한 어조로 그려낸 작품”이라며 “초월과 구원의 가능성이 봉쇄된 요지부동의 현실에 섣불리 분노하거나 쉽게 체념하지 않으면서도 이 현실을 있는 그대로 승인하지 않고 자신만의 스타일로 전유해내는 능력은 이 작품만의 개성적인 미덕”이라고 평했다. 시상식은 20일 오후 7시 서울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다.
  • [열린세상] 지도자의 크기가 나라의 크기다/박성민 정치컨설팅그룹 민기획 대표

    [열린세상] 지도자의 크기가 나라의 크기다/박성민 정치컨설팅그룹 민기획 대표

    내머릿속에는 지워지지 않는 한 장의 사진이 있다. 꽤 오래 전에 본 것인데도 지금 손에 들고 있는 것처럼 선명하다. 친구로 보이는 두 명의 청년이 나무 한 그루를 배경으로 찍은 지극히 평범한 사진이다. 원주에 있는 가나안농군학교의 어느 건물 1층에 있던 여러 사진들 틈 속에 그 사진이 있었다. 유독 그 사진이 눈에 띈 것은 사진 속 나무에 붙어 있던 인상 깊은 글귀 때문이었다. 그들이 붙였으리라. 사진 속 두 청년은 가나안농군학교를 세운 김용기와 몽양 여운형의 동생 여운혁이었다. 기억이 맞다면 시기는 30년대 말이다. 나는 그 사진을 보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나라 잃은 식민지 청년들의 애국심과 기개가 세월을 뛰어넘어 순식간에 내게로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조국이여 안심허라’ 죽는 날까지 잊을 수 없는 호연지기가 거기에 있었다. 한 나라의 이미지는 여러 가지 요소들로 결정된다. 역사, 문화, 경제, 영토, 기질, 제도, 기업, 예술, 스포츠, 종교, 언론 등등이 다 중요하게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뭐니 뭐니 해도 역시 ‘사람’이다. 사람들은 사람들로 그 나라를 기억하는 것이다. 미모의 배우, 노벨상을 받은 작가, 전설적인 스포츠 스타, 세계적인 기업인, 전쟁을 이끈 영웅, 수많은 어록을 남긴 정치인, 불멸의 예술인, 존경받는 종교 지도자, 권위 있는 학자, 통찰력 있는 언론인 등의 수준이 그 나라의 이미지를 결정한다. 아무리 대중의 지위가 과거와 달라진 시대라 해도 한 나라의 수준은 여전히 그 나라 지도자들의 수준이 결정하는 것이다. 역사를 돌이켜보라. 그리고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보라! 위대한 지도자 없이 위대한 나라가 된 사례가 있는지. 지도자의 크기가 나라의 크기다. 처칠의 크기가 영국의 크기고, 드골의 크기가 프랑스의 크기고, 덩샤오핑의 크기가 중국의 크기인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대한민국의 크기는 어떠한가. 대한민국의 크기도 영토의 크기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지도자들의 생각과 행동이 크면 큰 나라가 되는 것이고 지도자들의 생각이 작으면 딱 그만큼 작은 나라가 되는 것이다. 정치인, 기업인, 종교인, 언론인, 예술인, 학술인들이 어떤 수준의 말을 하고, 글을 쓰고, 행동을 하는가에 따라 우리의 수준이 결정된다. 지도자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니다. 높은 지위에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아는 것이 많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가진 것이 많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지도자는 세 가지가 있어야 한다. 첫째, 통찰력이 있어야 한다.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지 못하면 어제의 경험만 이야기 할 수밖에 없다. 미래와 싸울 실력이 없으면 과거와 싸우게 된다. 우리가 어디에 서 있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설명하지 못하면 지도자 아니다. 둘째, 용기가 있어야 한다. 아무리 옳은 길을 안다고 하더라도 두려워서 말을 못하면 지도자가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 대중이 두렵고, 언론이 무서운 사람이 어찌 나라를 이끌 수 있겠는가. 정치컨설턴트로서 내가 정치인에게 제일 먼저 던지는 질문은 “무엇과 싸우고 싶습니까?”이다. 그 질문은 그가 ‘무엇에 분노하는가’를 알기 위한 질문이다. 답을 들으면 그가 지도자감인지 단박에 알 수 있다. 그가 싸우고자 하는 ‘적’을 보면 그의 모든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존경을 받아야 한다. 용기 없는 자는 존경 받을 수 없고, 존경 받지 못하는 자는 리더십이 있을 수 없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리더십이 없는 자가 어찌 지도자가 될 수 있겠는가. 아무리 위대한 성취를 자랑해도 그것이 자기를 위해서 한 것이라면 존경을 받을 수 없다. 존경은 남을 위해 얼마나 위대한 일을 했는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희생과 헌신 없는 존경은 없다. 2008년 가을, 세계를 뒤흔든 금융위기와 불안정한 한반도의 정세를 보면서 70년 전의 흑백 사진 속의 그들 같은 지도자가 그리워진다. 박성민 정치컨설팅그룹 민기획 대표
  • [사설] 사시합격 시각장애인의 인간승리

    법전의 글씨 한자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최영씨가 사법시험 61년사에서 시각장애인으로는 처음으로 2차 시험에 합격해 진한 감동을 주고 있다. 그가 인내로 일군 5전6기의 인간승리 드라마는 온통 어두운 소식만 이어지는 우리 사회에 모처럼 밝은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준다. 28세 청년이 엮어낸 시련과 도전, 그리고 극복의 스토리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에게 꿈을 버리지 말라고 일깨워 준다. ‘망막색소변성증’에 걸려 눈앞의 사물만 겨우 분간할 수 있을 정도로 시력이 떨어진 그가 난관을 극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동력은 시련에 굴복하지 않은 강한 의지였다. 아울러 일용직 노동을 하면서도 신림동 고시촌으로 꼬박꼬박 생활비를 보내준 부모님의 사랑, 곁에서 공부를 도와주고 격려해 준 친구들의 우정도 큰 몫을 했다. 고난에 쉽게 포기하고, 혹은 세상에 분노를 표출하며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이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우리가 희망을 가져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 그러나 최씨가 국내 최초 시각장애 법조인이 되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높다. 우선 11월 3차 관문을 통과해 사법연수원에 들어간다 해도 공부할 여건이 조성돼 있지 않다. 판사나 검사, 변호사가 되어서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재판 기록물이 점자를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소장이나 판결문도 시각장애인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는 상황이다. 최씨는 “꿈을 이루려는 장애인들을 위해 사회적·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했다. 제2, 제3의 최영이 나올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것은 사회의 몫이다.
  • ‘초등생 동영상’ 네티즌 “전여옥, 버릇 고치겠다”

    ‘초등생 대통령 욕설 동영상 파문’과 관련,해당 UCC를 인터넷에 올렸던 네티즌이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을 고소하겠다고 밝혔다. 네티즌 ‘아름다운청년’은 “나는 단순히 인터넷에 동영상을 게재했을 뿐인데,전 의원은 나를 해당 UCC 제작자로 규정하며 아이들에게 욕설을 강요한 것처럼 명예훼손을 했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그는 전 의원이 지난 5일 해당 동영상에 대한 글을 홈페이지에 올리며 “추악한 범법자”등의 표현을 한 것을 문제삼았다. 전 의원은 “조계사에서 농성하고 있는 ‘촛불시위 수배자’인 자칭 ‘아름다운 청년’”,“추악하고,절대로 용서받지 못할 일을 했다.”,“아이들에게 욕을 쓰라고 부추겼다.”,“철없는 아이들에게 욕설을 하도록 연출·제작 했다.”,등의 표현을 써가며 이번 사건을 나름대로 규정했다. 이에 해당 네티즌 ‘아름다운청년’은 지난 7일 다음 아고라에 쓴 글을 통해 “나는 단지 우연히 이 동영상과 글을 발견하고,‘모두 정신차리자.’라는 의미로 퍼다 올렸을 뿐”이라고 말한 뒤 “과자를 미끼로 철없는 아이들에게 욕설을 하도록 연출했다고 한 전 의원을 고소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다음 주에 정식으로 고소장을 접수할 것”이라며 “명예훼손과 정신적 피해에 대한 위자료 청구도 하겠다.”고 알렸다. 그는 “당신의 더러운 주둥아리와 안하무인격인 언동을 참을수가 없어서 당신의 책 ‘일본은 없다’를 박박 찢어버렸다.”고 글에 덧붙였다. 이에 그치지 않고 그는 전 의원 개인 홈페이지에 “카페 게시판에서 퍼왔다고 분명 밝혔었는데 왜 내가 동영상을 제작했다는 헛소리를 하는가.”라며 “이번 기회에 그 더러운 주둥이 놀림,버르장머리를 고쳐주마.”라며 강한 분노감을 표했다. 전 의원측은 이에 대해 “고소를 하겠다고 밝힌 것은 알고 있다.”면서도 “자세한 답변은 현재로서는 어렵다.”고 말했다. 한편,네티즌들은 아름다운청년의 반발에 대해 대부분 “당신의 용기있는 행동을 지지하며 박수를 보낸다.”고 응원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저격수’라는 네티즌은 “국회의원이라는 공인의 신분으로 팩트(사실 여부)도 모르고 까발린 이 사건을 보고 있자니 과연 국회의원이 맞나 의문스럽다.”며 “100% 승소 가능성이 보인다.”고 법적 분쟁 결과를 예상하기도 했다. 인터넷서울신문 최영훈기자 taiji@seoul.co.kr
  • [31일 TV 하이라이트]

    ●춘자네 경사났네(MBC 오후 8시15분) 정연은 분홍이 아이를 데리고 출근한 사실을 의도적으로 영애에게 흘린다. 한편 춘자는 도로 한복판에서 고장난 차를 몇 시간째 손수 수리하고 있는 대팔이 답답하기만 하다. 돈이 아까워서 서비스 인력을 못 부르겠다고 하는 대팔에게 버럭 짜증을 내고, 결국 둘은 레커차에 실려 간다.   ●워킹맘(SBS 오후 10시) 재성은 은지와 통화하며 그렇게 쳐들어올 거면 귀띔이라도 해줘야 하지 않았느냐고 따지지만, 재성은 가영이 막무가내인 줄 몰랐느냐며 맞받아친다. 한편, 은지는 복실과 주몽, 현주에게 재성이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털어놓으며 자신이 가만히 있어도 달라붙는데 어떻게 하느냐고 푸념한다.   ●사미인곡(KBS1 오후 7시30분) 키 187㎝에 몸무게 130㎏. 전도유망한 유도선수였던 23세 청년이 무대에 선다. 그런데, 유도복이 아닌 드레스 차림이다. 쇼걸 ‘뽀뽀’로 통하는 그는 트랜스젠더. 여자 목소리를 낼 수 없어 립싱크를 해야 하는 처지이지만, 다시 태어나겠다는 의지 하나로 당당히 제2의 삶을 개척하는 그를 만난다.   ●글로벌 코리안(YTN 오전 10시35분) 한국과 태국의 수교 50주년을 맞아 태국의 명문대학 출라롱컨 대학에서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알리는 행사가 열렸다. 한국 음식을 먹고 한복으로 맵시도 뽐내본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학생들의 관심사는 요즘 태국에서 유행하는 한국가요로 바뀐다. 또 양국의 교육발전에 관한 국제학술대회도 열렸다.   ●난 네게 반했어(KBS2 오전 9시) 민서는 은석으로부터 효진이 경아의 외도와 죽음에 어떤 책임이 있는지 듣게 되고, 분노한다. 효진은 현자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려 하고, 현자는 그런 효진의 유혹에 조금씩 넘어가기 시작한다. 민선은 드디어 예지가 우진에게 보낸 편지를 읽게 되고, 예지의 맹랑함과 당돌함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세계테마기행(EBS 오후 8시50분) 베트남 최고의 해변 나트랑. 나트랑 앞바다의 히든 아일랜드를 찾아 떠난다. 이름만큼이나 아름다운 섬, 문 아일랜드에서 즐기는 수중 다이빙.5000마리가 넘는 야생 원숭이들의 천국 원숭이섬을 찾아간다. 마마린을 타고 돌아본 베트남 나트랑의 해변은 말 그대로 지상낙원이다.
  • 태안주민들 ‘3중고’에 부글부글

    지난겨울 최악의 기름유출 사고를 경험했던 태안 지역 주민들이 올여름 턱없이 적게 지급된 방제작업 인건비와 급감한 관광객, 삼성중공업의 이중적인 태도에 ‘3중고’를 겪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방제작업에 집중하며 피서철 호황을 계기로 태안이 되살아나기만을 기대했던 주민들은 “이대로라면 조만간 폭동이 일어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국제유류오염보상기금(IOPC)의 중간사정 결과 1,2월분 방제 인건비가 청구액(작업일당 남성 7만원, 여성 6만원)에 크게 못 미치게 지급되자 태안 주민들은 동요하고 있었다. 만리포는 청구액의 15%(작업일당 남성 1만 500원, 여성 9000원)만 지급됐다. 모항1리 주민들은 1,2월 44일 동안 방제 작업의 대가로 여성은 55만 4400원, 남성은 64만 6800원을 받게 됐다. 소원면과 원북면, 이원면 주민들은 턱없이 부족한 인건비 수령을 거부하고 청구액 전액 지급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하고 있었다. 소원면 만리포 이장 이희열(59)씨는 “사고 후 벌이도 없이 방제 인건비와 피해보상이 나올 것만 믿고 빚으로 생활하면서 피해복구에 매달려 왔다.”면서 “빚 갚을 때가 됐는데, 인건비가 쥐꼬리만큼 나오자 ‘당장 청와대나 국회로 가자.’는 주민들에게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고 설득하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만리포 종합관리사무소의 한 직원은 “여섯달이 지나서 나온 1,2월분 방제비가 그 모양이니 주민들은 3,4월분 인건비와 피해보상에 대한 기대도 접는 분위기”라면서 “여름철 피서객이라도 많으면 살아나겠지만, 지난해 파라솔 설치할 자리도 없었던 만리포를 찾는 사람들은 요즘 하루에 50명도 안 된다.”고 말했다. 어촌인 소원면 모항1리에서 평생 고기잡이를 하며 살아온 서모(74)씨는 “그나마 만리포는 여름장사가 있어 막연한 기대라도 있다.”면서 “고기를 잡아도 팔리지 않고, 어선 기름값도 없는데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하다.”고 한숨을 내뱉었다. 어촌계장 구본춘(43)씨는 “수산업과 비수산업에 대한 피해보상 얘기는 아직 나오지도 않는다.”면서 “마을 청년회장은 자기 한 몸 태워 제대로 보상받게 해주겠다며 기름통을 차 트렁크에 싣고 다닌다.”고 말했다. 주민들을 대하는 삼성중공업의 행태도 분노를 가중시키고 있었다. 원북면 신두리에서 펜션을 운영하는 선모(55)씨는 “삼성중공업이 죗값을 한다고 펜션을 20% 할인해 예약했는데, 갑자기 35만원짜리 방을 20만원 이하로 해달라고 했다.”면서 “사고 책임자들이 오히려 우리 가슴에 불을 지르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모항리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허모(46)씨는 “삼성중공업이 전화해 ‘특별히 당신 가게에 가서 회식을 하겠다.’고 했다.”면서 “올 거면 공평하게 우리 동네 모든 가게를 찾아오라며 거절했다.”고 말했다. 태안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김규리 인턴기자(건양대 공연미디어학과 3학년)
  • ‘대통령 탄핵서명’ 네티즌 “난 당당하다”

    ‘대통령 탄핵서명’ 네티즌 “난 당당하다”

    온라인을 통해 ‘이명박 대통령 탄핵서명 운동’을 주도,경찰이 신원조사에 나선 한 네티즌이 자신의 입장을 밝힌 글을 올려 화제가 되고 있다. ‘안단테’란 아이디의 이 네티즌은 포털사이트 다음의 ‘아고라’ 게시판에 ‘국회에 이명박 대통령 탄핵을 요구합니다’라는 청원글을 올린 당사자이다.이 청원은 15일 현재 130만여 명의 네티즌들이 서명하는 등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지난 13일 경찰은 ‘이명박 대통령 탄핵 서명 운동’ 관련자와 ‘광우병 쇠고기 반대 촛불문화제’ 주최자의 신원확인에 착수했으며,이들을 명예훼손 혐의로 사법처리 할 것이라고 밝혔다.이 신원확인 대상에 ‘온라인 탄핵 서명’의 발의자 ‘안단테’가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지자 이에 분노한 네티즌들의 항의성 ‘자수’가 이어지기도 했다. 자신을 경기도 모 고등학교 2학년 이라고 밝힌 ‘안단테’는 지난 14일 포털사이트 다음 토론 게시판에 ‘난 당당합니다’란 글을 올려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그는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조금이라도 거짓과 잘못은 없다고 생각한다.”며 “정의를 정의라고 말하고,진실을 진실이라고 말하는 것이 무엇이 창피한가.”라고 말했다. 이 네티즌은 “오히려 거짓과 유언비어로 국민을 속이려 하고 심지어 국민을 탄압하는 정부가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 정부는 잘못한 것은 누구나 인정하기 때문에 나는 당당하다.”며 “나는 잘못한 것이 없으니 잡아갈 테면 잡아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경찰을 향해 “나의 신원이 궁금하면 직접 메일을 보내라.상세하게 알려주겠다.”라며 자신의 이메일 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 글이 올라온 후 네티즌들은 “‘안단테’의 당당함이 자랑스럽다.”(목우),“그에게서 80년대 청년학도의 기개가 보인다.”(정현주),“이런 학생들이 있어 한국의 미래는 어둡지 않다.”(감정치유) 등 지지와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또 다음 ‘아고라’ 청원 게시판에는 ‘인권변호사 여러분 안단테를 구해주세요’라는 청원이 개설되면서 네티즌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네티즌들은 “변호사비를 모금한다면 동참하겠다.”(하이핑구),“털끝 하나라도 건드리면 가만있지 않겠다.”(Pilot Fish) 등의 글을 올리고 있다. 한편 ‘안단테’를 비롯한 탄핵 서명 관련자들의 처벌은 법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블루캐슬’이란 네티즌은 법률 전문 신문 기사를 인용해 “법률가들도 처벌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고 주장했다. 검찰의 인터넷 수사에 대한 법조계 반응을 다룬 이 기사는 법조계 인사들의 말을 빌려 “전기통신기본법과 명예훼손 혐의를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인터넷서울신문 맹수열기자 guns@seoul.co.kr
  • 中시위대 난동에 네티즌들 아우성

    중국인 유학생들이 주축이 된 친 중국 시위대를 향한 네티즌들의 분노가 잇따르고 있다.특히 온라인상에서는 시위대를 항한 분노가 중국 전체로 이어져 반중감정으로 번질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네티즌들은 지난 27일 베이징 올림픽 성화봉송이 이뤄진 서울 시내 곳곳에서 중국인 시위대의 폭력행위가 벌어졌다는 언론보도가 있은 이후 시위대에 대한 분노를 쏟아내는 한편 경찰의 안이한 대응을 질타하고 있다. 이날 친 중국 시위대 약 7000여명(경찰추산)은 성화가 지나가는 장소마다 위치하며 중국의 티베트 정책에 항의하는 인권단체 및 시위대와 물리적 마찰을 빚는가 하면 이를 제지하던 경찰에까지 폭행을 가했다. 한국일보 보도에 따르면 이날 오후 서울 올림픽공원의 평화의 문 광장에서 중국인 유학생들이 주축이 된 친 중국 시위대와 우리나라 인권단체간의 물리적 충돌이 있었다.친 중국 시위대는 인권단체를 향해 돌·각목·스패너·쇠파이프 등을 던지며 폭력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취재중이던 한국일보 홍모 기자가 각목을 맞아 머리가 찢어지는 부상을 당했다.또 최용호 자유청년연맹 대표가 중국인 시위대 쪽에서 날아온 스패너에 가슴을 맞는 등 부상자가 속출했다 또다른 중국인들은 반 중국 시위대와 경찰을 가리지 않고 오성홍기 깃대 등으로 마구 폭행을 가했다. 서울 시청앞 광장에서는 중국 인권문제에 항의하기 위해 ‘티베트 자유’라는 글씨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나온 미국·캐나다인들이 중국인 시위대에게 폭행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중국인들은 경찰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일행에게 물병을 던지고 깃대를 휘두르는 등 폭력을 행사해 타박상을 입혔다. 이같은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은 중국과 중국인들에 대해 강한 분노를 쏟아내고 있다. 특히 ‘다음’ 등 포털사이트를 중심으로 ‘폭력 올림픽 보이콧’,‘중국인들을 추방하자’와 같은 게시물이 줄지어 올라오며 반 중국여론이 고조되고 있다. 네티즌들은 이날 친 중국 시위대의 폭력사태가 언론 보도보다도 훨씬 더 과격했다며 폭력 장면이 담긴 사진과 동영상들을 올리고 있다. 포털사이트 다음에는 ‘뺌이다’란 아이디의 네티즌이 ‘성화봉송 중 중국인들의 티베트인 폭행장면’이란 제목의 동영상을 올렸다. 이 동영상은 서울시청 앞 한 호텔 로비에서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를 몸에 두른 수십 명의 중국 시위대가 반 중국 시위자를 가방·깃대 등으로 때리고 발로 밟는 등 무자비한 폭행을 가하는 장면이 담겨 있다. 이들은 경찰과 호텔 경비의 제지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경찰을 구석으로 밀어내기도 했다. 이 동영상은 유튜브 한국어 서비스 등 인터넷을 통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이 외에도 다음 ‘아고라’ 게시판에는 한 친 중국 시위대원이 자전거를 끌고 지나가는 시민을 향해 발길질을 한 후 발로 밟는 장면을 담은 사진이 여러장 올라와 있다. 이 사진을 올린 ‘양파링’이라는 네티즌은 “바로 옆에 경찰 진압대가 지나가고 있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들은 그저 쳐다만 보고 있었다.중국인들에게 우리 시민이 무자비한 폭행을 당하고 있는데도 경찰은 멀뚱멀뚱 쳐다만 보고 있었다.”며 분노를 표출했다. 네티즌들은 포털사이트 외에도 청와대 국민마당 게시판,경찰청 홈페이지,서울시청 자유게시판 등을 이용해 경찰의 안일한 대응을 전방위적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자신을 ‘유원형’이라고 밝힌 네티즌은 청와대 게시판에 “중국인들이 그렇게 무자비하게 난동을 부렸는데 경찰은 (중국인들을) 한명이라도 체포했나.”라고 물으며 “중국 정부에 공식 항의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외에 “이 나라에 공권력이 있기는 한 건가.”(전주홍),“다른 나라 눈치를 보기 전에 자국민부터 챙겨라.”(김재동)와 같은 의견이 있었다. 서울시청 자유게시판과 경찰청 홈페이지 역시 시위대의 무법행위를 통제하지 못했다는 비판글로 도배질되다시피 했다. 네티즌들은 “대한민국의 심장부인 서울에서 중국인들이 난동을 부리는 동안 서울시는 방관만 했다.”(변웅섭),“국민을 위한 경찰이 아닌 외국인을 위한 경찰”(박영우),“경찰의 직무유기”(이정효)와 같은 비난글이 잇달았다. 한편 다음 청원 게시판에는 ‘폭력 시위-중국 대사관은 입장을 표명하라’라는 제목으로 이번 폭력사태를 규탄하는 서명운동이 벌어지고 있어 네티즌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끌고 있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친부모 찾는 한국계 벨기에인 기타리스트 드니 성호

    친부모 찾는 한국계 벨기에인 기타리스트 드니 성호

    어머니는, 음악을 닮았을 거예요. 취재, 글 박혜란 기자 ┃ 사진 한영희 무대에 설 때마다 그는 기대와 두려움으로 몸을 떨었다. 오늘 연주하는 이 곡이 삶을 뒤흔들 운명의 서곡이 되는 건 아닐까. 지금 객석 어디에서 친부모님이 내 연주를 숨죽여 듣고 있는 건 아닐까. 연주가 끝나고 그분들이 다가와 “우리가 네 엄마, 아빠란다” 하고 말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클래식 기타리스트 드니 성호(34세, 신성호)는 유럽에서 재능을 인정받고 있는 연주자이다. 2004년 유럽 콘서트홀 연맹이 ‘라이징 스타’로 지목하여, 뉴욕 카네기홀, 암스테르담 콘서트헤보우, 빈 무지크페라인,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같은 세계 유명 콘서트홀에서 연주회를 가졌다. 그런 그가 한국으로 날아와 크고 작은 무대를 가리지 않고 기타를 연주하는 것은 자신을 낳아준 부모를 찾게 될지 모른다는 희망 때문이다. 1975년 1월 부산에서 태어난 그는 생후 사흘 만에 고아원에 보내졌다. 그리고 돌이 되기 전 ‘좋아하는 것은 우유이며, 그 밖에 신체적 특성은 없다’는 문서 한 장을 발급받고 벨기에로 입양되었다. 다시 한국 땅을 밟게 된 것은 2006년 한민족문화공동체대회의 초청을 받고서였다. 갓난아기는 그 사이 서른 넘은 청년이 되어 있었다. 벨기에 국적을 가지고 프랑스어를 모국어로 썼다. 하지만 서울 거리에서 마주치는 청년들보다 더 한국적인 생김새를 지니고 있었다. 젓가락질을 잘했고, 김치와 곱창을 즐겨 먹었다. “열여덟 살까지 살았던 곳은 수도 브뤼셀에서 두 시간 정도 떨어진, 벨기에 남부의 아름다운 시골 마을이었습니다. 동양인이 거의 없는 그곳에서 ‘보름달’이다 ‘밥공기’다 놀리는 소리를 들으며 내가 그들과, 부모님과도 다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춘기 때는 친부모에게서 버림 받은 것에 대한 분노로 어설픈 반항아가 되기도 했고, 4년 넘게 정신과 상담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원망과 미움도 다 버렸습니다. 나는 행복하다고, 어머니를 이해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혼란과 방황 속에서 그의 삶을 이끌어준 등대는 기타였다. 양부모님은 클래식 음악에 흥미를 보이는 어린 아들에게 피아노를 사주고 싶었지만, 형편이 여의치 않아 대신 기타를 사주었다. 여덟 살 때 처음 기타를 잡은 그는 자기 손으로 소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기타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제2의 목소리였고,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나만의 세계였다. 그곳에서는 자신이 벨기에인인지, 한국인인지, 중국인인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사랑 없이는 살아도 기타 없이는 못 살아요.” 기타가 그의 정체성이었다. 어떻게 하면 기타를 잘 칠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끝없이 연습하고, 자신의 길을 찾으라”고 답한 적이 있다. 그것은 연주자로서 자기 자신에게 하는 다짐이기도 하다. “공허함과 상실감이 늘 따라다니기에, 입양인들은 행복해지기 위해서 남들보다 더욱 노력해야 합니다. 놀랍도록 큰 행복이 찾아오리라 믿지 않아요. 그보다는 평범하고 평온한 삶의 순간순간이 소중하다는 생각입니다.” 은 ‘테크닉은 뛰어난데 영혼이 부족하다’고 평하는 유럽 음악계에서 그는 남보다 더 많이 노력해야 했다. 수련을 하듯이 꾸준히 연습하고, 자신의 내면과 끊임없이 싸울 것. “그것은 내가 누구인지 묻고, 나를 알아가고, 나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자신과 자기 음악의 뿌리를 찾고 싶은 것은 그 때문인지 모른다. “양부모님은 음악과는 거리가 먼 분들이지요. 친부모님에게서 음악적 재능을 물려받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그의 양아버지는 체육 교사였고, 양어머니는 화원을 운영했다. 소박하고 따뜻한 분들이었고, 언제나 그의 뜻을 존중하는 든든한 후원자였다. 그는 기타 케이스 안에 양부모의 사진을 지니고 다녔고, 한국에 머무는 동안 자주 안부 전화를 했다. 자신의 내면을 파고들던 날선 감성은 이제 조금씩 세상을 향해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연초에는 충남 서산의 한 시골 보육원에서 연주를 하기도 했다. “호기심 어린 눈망울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그날 아이들이 본 것이 희망이었길 바랍니다.” 마치 동생들에게 처음으로 큰형 노릇을 한 사람처럼 그는 뿌듯해했다. 현을 튕기는 그의 오른손 손톱은 길고 날카로운 삼각형이다. 현을 눌러야 하는 왼손 손톱은 바짝 깎아 동그랗다. 그렇게 서로 다르게 생긴 양손으로 그는 영혼을 울리는 연주를 할 수 있다. 같은 것과 다른 것, 얻은 것과 잃은 것, 슬픔과 기쁨을 모두 껴안고 그는 묵묵히 현을 고르고 있다. 드니 성호는 열네 살 때 벨기에 청소년 음악경연대회에서 1위를 차지하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 파리 알프레드 코르토 음악학교와 벨기에 왕립음악원에서 수학했다. 클래식기타 이중주단으로 유명한 세르지오 오다이르 아사드 형제의 수제자이기도 한 그는 탱고와 같은 남미음악을 주로 연주한다. 세 장의 앨범을 내고 유럽 각지에서 활발한 연주 활동을 벌이고 있다.
  • [씨줄날줄] 혐오범죄단체/ 황성기 논설위원

    오슬로대 교수인 박노자는 ‘박노자의 만감일기’란 책에서 ‘러시아에 스킨헤드라는 망종이 생긴 까닭’을 세가지 정도 꼽고 있다. 구 소련 몰락 이후 러시아가 급격히 ‘우향우’한 점, 체첸 침략 등 소수 민족의 독립투쟁에 대한 가혹한 탄압, 파시즘이 소련식 사회주의보다 좋았다는 학교 교육. 고향이 상트페테르부르크인 박노자는 자본화 물결 속에 퍼져가는 “히틀러가 레닌보다 나았다.”는 소시민들의 극우 분위기가 스킨헤드라는 러시아식 파시즘의 탄생을 키운 토양이라고 진단한다. 미국의 월 스트리트 저널의 보도에 따르면 올 들어 러시아에서 지난 3개월간 스킨헤드족의 살인범죄는 41건이나 발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00% 증가했는데 희생자들은 비백인 러시아인이거나 구 소련의 아시아·아프리카계 이민자들었다. 이들 잔인무도한 스킨헤드에 의해 지난해 2월 한국인 유학생이 모스크바에서 살해됐는가 하면 2006년에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한인이 러시아 청년들에게 무차별 공격을 받고 사망하기도 했다. 빡빡머리를 했다고 해서 붙여진 스킨헤드의 뿌리는 영국이다.1960년대 말 항만 청년노동자 계급의 하위문화를 이뤘다. 백인에 자메이카 출신 흑인들도 섞여 있었는데 처음부터 인종차별적 배타성과 폭력성을 지닌 것은 아니었다.70년대 들어 외국인 노동자가 대거 유입되고 백인 실업률이 높아지면서 분노한 이들이 백인우월주의로 포장한 극우의 지류를 형성하고 좌·우익을 아우르는 스킨헤드족이 유럽으로 증식해갔다. 경찰청이 ‘세계의 혐오 범죄단체 현황’이란 자료를 냈다. 스킨헤드를 비롯한 인종차별·혐오범죄 단체의 상징 문양을 일목요연하게 식별해 놓았다. 숫자로 구분 가능한 것도 있는데 가령 ‘88’은 신나치주의자들의 암어다. 편지의 인사말, 마무리말 혹은 이메일 주소의 일부로 쓰이는데 ‘하일 히틀러’의 약어인 HH의 알파벳 순서를 뜻한다. 한해 출입국자가 4000만명에 육박한다. 인종·혐오 범죄에 의한 한국인 피해도 늘어가고 있다. 경찰청이 이 책자를 550부만 돌렸다는데 홈페이지에 띄우면 해외여행자들의 경계심을 더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황성기 논설위원 marry04@seoul.co.kr
  • 이동건 동생, 쳐다본단 이유로 中 청년들이 살해

    이동건 동생, 쳐다본단 이유로 中 청년들이 살해

    지난 20일 새벽 1시 호주 시드니에서 중국계 청년들이 한국인 2명에 흉기를 휘둘러 한 명이 사망하고 한 명은 중태에 빠졌다. 사망한 한국인이 탤런트 이동건의 친남동생으로 밝혀져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호주 언론에 따르면 “20일 시드니 리버풀 스토리트의 월드 스퀘어 골목에서 한국인 학생 2명이 중국계 학생이 휘두른 흉기에 찔렸다”고 보도했다. 이동건은 20일 동생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부모와 함께 호주로 떠났다. 이동건은 공항으로 가던 중 지인들에게 눈물을 흘리며 동생의 사망 소식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동건은 방학마다 한국을 찾는 동생과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등 형제애가 각별했다고 한다. 한편 네티즌들은 “이동건씨 가족들이 힘을 냈으면 좋겠다” “이동건이 슬픔을 딛고 밝은 모습으로 돌아오길 바란다”며 동생의 애도와 이동건에게 위로 말들을 전했다. 반면 분노한 네티즌들은 “중국이란 나라는 왜 그러냐” “중국은 올림픽을 해서는 안된다”며 중국을 비난했다. 특히 나이가 18세 전후로 알려진 이들 용의자들이 이씨와 송씨에게 “왜 째려보느냐”며 시비를 건 뒤 갑자기 흉기를 휘두른 것으로 알려져 더욱 충격을 주고 있다. 한편 우리 정부는 현지 공관을 통해 호주 뉴사우스웨일스 경찰 측에 신속하고 공정한 수사와 추가 정보 제공을 요청한 상태다. 사진 = 9NEWS 방송화면 캡쳐 기사제휴/스포츠서울닷컴@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라오서 장편소설 ‘낙타샹즈’

    중국 대륙에서 가장 사랑 받고 있는 작가들은 누굴까? 이에 대한 답은 ‘아큐정전’ 루쉰(魯迅·1위),‘홍루몽’ 조설근(曹雪芹·2위),‘가(家)’의 바진(巴金·3위), 무협소설가 진융(金庸·4위),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5위), 공자(孔子·7위), 여성 수필가 위추위(余秋雨·9위), 신세대 작가 한한(韓寒·10위), 라오서(老舍·11위) 등이다. 중국 최대 포털 시나닷컴이 네티즌 216만명을 대상으로 한 투표에서 ‘현대 독자들이 가장 사랑하는 100명의 작가’를 선정한 결과이다. 라오서가 사망한 지 40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중국인들의 가슴속 깊이 남아 있는 것이다. 라오서의 대표작인 ‘낙타샹즈(駱駝詳子’(황소자리 펴냄)가 다시 나왔다.1936년 발표한 이 작품은 베이징에 사는 인력거꾼 샹즈의 처절한 인생 역정을 그렸다. 폭력적인 시대에 건실한 청년 샹즈의 꿈과 인생이 어떻게 짓밟히는지를 통해 하층민의 삶과 사회부조리를 날카롭게 비판한 문제작이다. 줄거리는 이렇다. 고아인 샹즈는 비록 배운 것과 가진 것이 없어 ‘밑바닥 인생’ 인력거꾼으로 흘러들었지만 부지런한 성품과 건장한 신체에 의지해 밝은 미래를 꿈꾼다. 자신의 인력거를 갖겠다는 일념으로 앞만 보고 달려온 샹즈는 3년 만에 꿈에 그리던 인력거를 마련한다. 하지만 그 행복은 오래가지 못한다. 전쟁 통에 피땀 어린 소중한 인력거를 빼앗기고, 그것도 모자라 군대에 끌려가는 신세가 된다. 이에 분노한 그는 병사들 낙타 세마리를 훔쳐 가까스로 탈출, 낙타를 팔아 인력거를 장만하겠다는 희망에 부풀었지만 인력거를 사기에는 턱없이 모자란다. 이 일로 ‘낙타’라는 별명을 얻은 샹즈는 다시 인력거를 갖기 위해 애면글면 안간힘을 쓰지만 거듭되는 불운 속에 영혼과 육체가 망가져 간다. 샹즈의 운명은 인간을 위해 짐을 나르고 젖을 제공하지만 한번 쓰러지면 일어서지 못하는 낙타와 흡사하다. 자신의 의지에 상관없이 외적 환경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허약한 인간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1만 3000원.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최종찬기자의 시드니 뒤집어보기] (10) 호주 언론에 비친 한국

    [최종찬기자의 시드니 뒤집어보기] (10) 호주 언론에 비친 한국

    호주 언론에서 한국 관련 기사를 보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상도 한 이유이겠지만 호주의 주류사회에서 바라보는 한국은 주요 관심대상이 아닌 것 같다. 기사의 절대적인 양도 매우 적다. 반면 중국 관련 기사는 상대적으로 넘친다. 호주 내에 중국인이 많기도 하지만 초강대국으로 무섭게 커가고 있는 중국의 국력과 비례한다. 중국 최대명절인 춘제(春節) 관련 기사는 몇 주 전부터 신문과 방송에 오른다. 호주 사람들도 중국 음식을 즐기고 중국문화에 많은 관심을 표명한다. ●노대통령 방문도 거의 보도안해 그런데 지난해 호주 언론에서 이례적으로 한반도에 대해 대서특필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한국이 아닌 북한 핵 관련 소식이었다. 호주는 특히 북한에 대해서는 적대적인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미국과 정치적 행보를 같이하는 존 하워드 정권은 북한이 지난해 10월9일 핵실험을 단행하자 호주 주재 북한 대사를 불러 강력히 항의했다. 호주 주요 언론들도 ‘김정일 핵도발’ ‘북한 첫 핵실험후 공포, 분노 만연’등의 선정적 제목과 함께 1면 머리기사로 다뤘다. 이렇듯 한국이 호주 미디어의 사정권 바깥에 있다 보니 노무현 대통령이 작년 말 호주를 국빈방문했을 때 호주 신문이나 방송은 노대통령의 동정을 거의 보도하지 않았다. 시드니대 곽기성 교수는 “호주 언론이 한국을 보는 눈은 치솟는 임금, 빈번한 노조 파업, 외국인의 부동산 소유에 대해 복잡하고 까다로운 법규 때문에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면서 “한국 관련 기사는 중국과 일본의 3분의1에도 못 미친다.”고 말했다. 가뭄에 콩 나듯 한국 관련 기사가 나와도 십중팔구 부정적 내용이다. 그나마 지난해 대대적으로 보도된 임시취업비자의 경우 우리 교민사회의 부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저임금에 인권침해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한국인이고 악덕 고용주로 비춰진 사람도 한국인이기 때문이었다. 올 들어 한국 관련 소식이 긍정적인 측면에서 크게 보도된 것은 평양에서 열린 2차 남북 정상회담과 ‘수영천재’ 박태환 선수의 멜버른 세계수영선수권 자유형 400m 우승 정도다. 남북 정상회담에 대해 호주 언론들은 10월6일자 외신면 등에서 ‘한반도 지도자들 냉전 종식 합의’ ‘김정일 냉전 무대에서 나오다’ 등의 비교적 긍정적인 제목으로 처리했다. 특히 박태환 선수가 폭풍 같은 막판 스퍼트로 자유형 400m에서 호주영웅 그랜트 해켓을 제치고 우승하자 호주언론들은 3월26일자 스포츠면 머리기사로 ‘호주 400m 왕조 몰락’이란 제목으로 일제히 보도했다. 시드니대 판카지 모한 교수는 “호주인들이 한국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지만 호주의 신문과 방송 등 매스컴들의 시선은 요즘 중국에 집중돼 있고 한국에 주목하지 않는다.”면서 “북한 핵문제나 남북 정상회담 등 호주의 국가안보 환경과 직접 관련된 뉴스를 소개하고 있지만 호주 언론에는 한국의 다이내믹한 모습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은 특징없는 나라 인식 뉴사우스웨일스대 신기현 교수는 “일반 호주인한테 한국은 특징이 없는 나라”라면서 “한국이 경제 등 여러 방면에서 급성장했지만 아시아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고정관념을 확인시켜주는 보도가 많다.”고 말했다. 채스트우드에 살았던 김호성씨도 “한국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다.”면서 “지난해 북핵문제가 불거진 이후 북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을 때도 6자회담의 당사국인 한국에 대해 언급한 내용들은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한국이 호주의 4대 수출국이며 연간 20만명 이상의 한국인 관광객과 4만여명의 청년층이 호주에 체류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도 호주의 중요한 파트너 가운데 하나다. 호주 언론은 한국 관련 기사를 이런 양국 관계에 걸맞은 수준으로 처리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 정부의 적극적인 홍보 노력이 요구된다. 신기현 교수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볼 시점이다.“아직도 호주에는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딱히 정립돼 있지 않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국가홍보 슬로건을 보자. 예컨대 ‘한국, 유쾌한 놀라움!´(Korea,a pleasant surprise´)으로 해봄직하다. 그동안의 ‘역동적인 한국’(Dynamic Korea)이 훌륭한 이미지라는 것은 한국인들만의 생각이다. 한국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던 사람들에게 새로운 관심을 가지게 하는 이미지는 아니다.” siinjc@seoul.co.kr ■조창범 駐濠 한국대사 “취업 이민땐 높은 세율 염두에 둬야” “호주는 경제호황 속에 전문인력 구인난을 겪고 있어 우리 전문 직종이나 기술인력의 이민 전망이 매우 밝습니다. 하지만 호주는 언어와 생활, 제도 면에서 우리와 차이가 많아 이에 관한 이해나 사전준비가 없으면 낭패를 보기 쉬워요.” 조창범(61) 주 호주 한국대사는 호주 이민이나 유학을 고려하고 있는 국민들에게 22일 이렇게 조언했다. ▶호주가 언어, 생활, 제도면에서 우리와 차이가 많다고 했는데. -호주는 서구적 시각을 가진 영어권 사회다. 한국과는 다른 관습과 제도가 있다. 예컨대 지난해 서부 호주로 이민온 우리 용접공들이 연봉에 비해 많은 근로소득세, 사회보장보험 부담으로 예상보다 낮은 실질소득, 언어 장벽, 복잡한 노사관계와 근로조건 때문에 정착에 어려움을 겪다가 중도 귀국하거나 고용주와 분쟁을 겪은 일이 있다. ▶호주가 최근 이민정책을 대폭 강화했는데. -지난 9월1일부터 기술이민 비자를 신청하는 유학생의 경우 과거보다 높은 수준의 영어 실력과 업무 경험을 증명해야 비자를 취득할 수 있다. 호주 언론들은 기술이민자 및 유학생 졸업자의 영어 실력 부족으로 직장 내 원활한 의사소통이 방해받고 사소한 오해나 이해부족으로 노동 분쟁이 발생하고 있다고 자주 지적해왔다. 영어의 경우 생활에 기본적인 의사소통 수단이므로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 실력을 높일 필요가 있다. ▶호주 주재 다른 국가 대사관과의 협력관계는. -각국 국경일 행사, 리셉션, 호주 정부기관 초청 행사 등을 통해 120개국 공관원과 접촉하며 주요 관심현안이나 주재국의 주요 정세와 정책동향에 관해 정보를 교환하고 업무적으로 긴밀히 협력해 나간다. 최근 남북관계의 진전에 따라 북한대사관 사람들과도 만나 한반도 문제 등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기도 한다. ▶호주 교민사회를 진단하면. -교민사회가 40년이란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외국계 공동체 중 규모 6위를 차지할 정도로 착실하게 성장했다. 특히 교민 1.5세대 및 2세대를 중심으로 회계사, 변호사, 의사, 교수 등 전문직과 공직 진출자가 증가하고 있다. 호주 주류사회에 성큼 다가서고 있는 것이다. ▶교민에게 다가가는 행정의 구체적인 사례는. -순회영사 서비스, 영사협력원제도, 온라인 영사서비스(e-consul), 사건·사고 출장지원 등이 있다. 순회영사 서비스는 공관에서 먼 멜버른, 애들레이드, 퍼스 등지의 교민들을 위해 영사가 출장을 가서 여권, 호적, 병무, 공증, 영사확인 등의 민원을 현장 처리해주고 교민 간담회를 통해 교민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영사협력원은 사건·사고가 많은 지역의 교민들을 지원하기 위한 제도로, 현재 멜버른과 퍼스에 1명씩 두고 있다. 올해 4건의 교민 사망사고 중 3건을 영사가 출장 지원했다. ▶호주대사관의 주요 업무와 역점 사업은. -북핵 등 한국의 한반도정책에 대한 호주의 지지를 지속적으로 확보해 나가는 데 중점을 둔다. 또한 안정적인 자원 공급국으로서 호주와 협력 확대를 위해 적극 노력하고 있다. 이와 관련 올 봄 한국석유공사와 호주 우드사이드사(社)간 동해 조광계약 체결, 한국가스공사와 호주 ALNG사간 LNG 연장공급계약을 체결했다. 호주 우드사이드사의 LNG 수송선 2척(약 5억달러 규모) 수주업체로 우리 기업이 선정됐다. ▶양국의 무역규모는. -지난해 교역액은 약 160억달러로 전년보다 17% 늘었다. 한국은 자동차, 휴대전화,TV, 석유화학제품 등 공산품을 중심으로 47억달러를 수출했고 LNG, 원유, 철광석, 석탄, 쇠고기 등 113억달러를 수입했다. 올 상반기 기준으로 한국 기업의 대 호주 투자는 총 408건 31억달러에 달하며, 호주기업의 경우 메콰리뱅크 등 총 285건에 16억달러를 한국에 투자했다. siinjc@seoul.co.kr
  • 난곡 겉은 바뀌었지만 속은 그대로

    난곡 겉은 바뀌었지만 속은 그대로

    ‘난곡’(蘭谷)이라고도 했고,‘낙골’(落骨)이라고도 했다.‘난초 향기 그득한 골짜기’라 부르기도 했고,‘굴러 떨어진 해골’이라 칭하기도 했다. 조선시대 유배지에 갇힌 강홍립이 난초를 많이 길렀다고 해서 ‘난곡’이었고, 청소차에 실린 도시 철거민들이 뼈 굴러다니는 공동묘지에 쓰레기처럼 내던져졌다 해서 ‘낙골’이었다. 서울 관악구 신림7동은 그렇게 향기롭고도 자조적인 별명으로 불렸다. 최근 난곡의 마지막 판자촌이 철거됐다. 문학작품 곳곳에 발자국을 남겼던 난곡이 희미한 흔적마저 지우고 있다. 작가 조경란은 단편 ‘나는 봉천동에 산다’(소설집 ‘국자이야기’에 수록, 문학동네 펴냄)에서 난곡을 “폐허”라고 썼다. 대규모 철거가 이뤄진 2003년의 난곡을 “태풍 루사가 지나간 것 같았다.”고 묘사했다. 조경란에게 난곡은 “사람들이 집을 잃고 있는 곳”이었고,‘달동네지만 추석 보름달을 볼 여유를 빼앗긴 곳’이었다.“봉천동 주택개발 사업 때 봉천동 산동네에서 떠밀려나간 사람들 중 일부가 옮겨간 곳”이 난곡이었지만, 난곡이 철거돼도 봉천동으로는 돌아올 수 없는 사람들이 난곡에 있었다. 봉천동 옥상에서 허물어지는 난곡을 바라보며 소설의 ‘아버지’는 ‘나’에게 말한다.“집은 사라져도 거기 살았던 사람들에 대한 기억까지 모두 잊어서는 안 되느니라.” ●“낙골에서도 굴러 떨어지면 어디로…” 신림7동 산94번지. 철거되지 않고 남았던 마지막 판자촌이 사라졌다. 벽이 무너지고 지붕이 뚫린 공가(空家)가 완전히 헐렸고, 이달 1일 건설사는 재개발 아파트 기공식을 마쳤다. 포클레인이 땅을 다졌고, 골조를 세울 준비도 끝냈다.2003년 철거 당시 산94번지는 1종 일반주거지역이었다. 수익성이 없다는 이유로 재개발에서 제외됐다. 올초 관악구는 2종 일반주거지역으로 바꿨다.2009년 9월이면 지하 2층, 지상 7층의 주상복합건물 2개동이 들어선다. “낙골에서도 굴러 떨어지면, 이젠 어디로 더 떨어질 거여?” 철거가 시작된 지난 5월, 이삿짐을 싸던 세입자 신동석(가명·63)씨는 말했다.“난곡 꼭대기에 살다가 아파트 들어서면서 밑으로 내려왔는데, 이젠 여기서도 나가래.” 세입자 신씨에게 아파트 재개발은 또 다른 이주를 뜻할 뿐이었다.1960년대 말 대방동, 청계천, 동부이촌동, 남대문, 용산 등지에서 떠밀려온 도시 철거민들은 구청에서 횟가루로 선을 그어주면 그 안에 집을 짓고 살았다.2003년 17만 1770㎡에 대한 재개발이 시작됐고, 지난해부터는 신축 아파트가 새 주인을 맞았다. 주인은 주로 외지인들이었다. 임대아파트에 입주한 난곡 세입자는 일부에 지나지 않았고(산101번지의 경우 전체 세입자의 34.6%), 입주한 이들도 비싼 임대료를 못내 아파트를 내줘야 했다. 난곡 세입자들은 인근의 지하방과 옥탑방을 떠돌고 있고, 콧잔등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혔던 서씨도 지금 난곡 아래쪽 어딘가로 떠나갔다. 과거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할수록 높은 곳에 살았으나, 이젠 부유할수록 높은 곳을 찾는다. 달동네 주민들은 달과도 멀어졌다. 판자촌은 사라졌으나, 판자촌 주민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난곡을 찾은 6일, 온종일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바라보고, 분노하고, 기억하던 곳 구충씨(김영종 다큐 소설 ‘난곡 이야기’ 주인공, 청년사 펴냄)는 누가 잘해준다고 해서 감사할 줄 아는 인간이 아니다. 눈빛은 꼿꼿해서 누군가 담배 한 보루 소주 한 병을 사주면 ‘카악∼’ 하고 가래 한번 끌어올리면 그만이다. 관의 우두머리가 “만일 처방을 잘못하거나 치료를 늦추면 이 구충으로 인해 생명을 잃게 된다.”고 선언하자, 서울 시민들은 국가 최고 의료기관이 조제한 관중환을 일제히 먹고 구충을 전멸시켰다. 난곡 주민 구충씨는 마치 박멸해야 할 박테리아와도 같았다. 김영종은 난곡을 온정적 눈길로 보는 시선을 경계했다. 향수나 감상을 불러일으키는 ‘가난담론’, 타인의 가난에 대한 책임을 연민이나 동정과 바꾸려는 시도에 분노했다. 난곡이 눈앞에서 사라지면 가난도 없어질까, 난곡을 보며 맘 불편했던 사람들도 안도할 수 있을까. 김영종은 단호히 아니라고 말한다.“세상에 구충이 살아진 뒤로 구충의 망령은 서울의 구석구석을 떠돌고” 있고,“거리거리, 빌딩 숲, 아파트, 급기야 나의 마음 속”까지 구충이 틈입한다. 사실 난곡에도 판자촌이 다 없어진 건 아니다. 박멸해도 박멸되지 않는 구충처럼, ‘산93번지 2´의 7가구는 마지막 재개발에도 끼지 못했다. 개울을 옆에 끼고 일렬로 늘어선 집 구조상 개발이 힘들다는 이유였다. 부동산 업자들이 “웬만해선 사람이 살 수 없는 집”이라 말하는 곳에서, 그들은 또다시 섬으로 남고 말았다. 이웃 주민 중 누구는 “이대로 놔두면 난곡에서 그 사람들만 매장되고 만다.”고 하고, 누구는 “저 집 판 돈으로 어디 가서 살겠냐.”며 “그냥 눌러 앉아 있는 게 편할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홀로 루푸스병을 앓으며 개 두 마리를 가족 삼아 사는,‘산93번지 2´의 끝머리 최수희(가명·39)씨 집 앞엔 채 영글지 못한 어린 감들이 때리는 빗방울을 견디지 못하고 떨어져 나뒹굴었다. “23살에 걸린 병, 부모에게 짐 되느니 혼자 죽는 게 낫다.”며 최씨는 막소주를 들이켰다. 소설가 황석영은 한국전쟁 때 부모님을 따라 거처를 자주 옮겨 다녔다. 황석영은 “나중에 관악산 나가는 길목에 임시 거처를 옮겼는데 그곳은 ‘나꿀’이었다.”고 추억했고,“이곳도 나중에야 신림동 외곽의 난곡이라는 걸 알았다(‘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고 기억했다. 조경란처럼 바라봐주고, 김영종처럼 분노해주고, 황석영처럼 기억해주는 것. 난곡을 기록하는 문학의 한 방식이었다. 이제 작가들이 바라보고, 분노하고, 기억해야 할 난곡의 판자촌은 사라졌다. 난곡을 오르는 길 양쪽으로 아파트만 우뚝우뚝 가파르다. 폐허의 겉은 바뀌었으나, 폐허의 속은 바뀌지 않았다.‘난곡’은 바뀌었을지 모르나,‘낙골’은 바뀌지 않았다. 이제, 보이는 폐허가 아닌 보이지 않는 폐허를 고발할 숙제를 문학은 안게 됐다. 글 사진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디워’는 전쟁 중…1000만돌파 가능할까?

    ‘디워’는 전쟁 중…1000만돌파 가능할까?

    심형래 감독의 ‘디 워’(D-War)가 개봉하고 나서 극장가는 전쟁터로 변했다. 착한 이무기와 악한 이무기가 여의주를 놓고 싸우는 ‘드래곤워’(Dragon War)가 아니라 심형래 감독과 충무로의 영화인. 평론가. 언론. 그리고 일반 관객과 네티즌들이 전쟁터에 뛰어들어 ‘난투극’을 벌이고 있다. 각각의 주장이 워낙 뚜렷해 어느 한편은 크게 상처를 입을 수도 있는 상황이 됐다. 역대 한국 영화 가운데. 최소한 ‘대박 영화’의 부류에 넣을 수 있는 영화 중에서 이렇게 엄청난 소용돌이에 휘말린 영화는 없을 듯싶다. 과연 ‘디 워’에는 어떤 ‘문제’가 있고. 어떤 ‘매력’이 있기에 이토록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일까? ◇충무로 vs 심형래 일부 영화인들이 ‘디 워’와 심형래 감독에 대해 강한 비판의 칼날을 들이대면서 ‘심형래 죽이기’ 논란이 촉발됐다. 독립영화 ‘후회하지 않아’를 만든 이송희일 감독은 ‘디 워’에 대해 “영화가 아니라 70년대 청계천에서 마침내 조립에 성공한 미국 토스터기 모방품에 가깝다”고 비판했다. 청년필름의 김조광수 대표도 자신의 블로그에서 “영화를 잘 만들어서 승부하라. 심형래 감독은 겸손했으면 좋겠다”며 쓴소리를 했다. 이에 심 감독과 ‘디 워’의 열성팬들이 분노해 강력하게 항의하면서 두 영화인은 곤욕을 치렀다. 일부 언론은 이런 현상을 ‘심형래 죽이기’와 ‘충무로 길들이기’의 시각으로 다뤘다. 마치 충무로 영화인 전체와 심형래 감독의 팬들이 싸우는 양상으로 비쳤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디 워’에 대해 비판적인 일부 영화인들이 있기는 하지만 전체 영화인들이 심 감독의 능력과 ‘디 워’의 완성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애국심 마케팅 이 부분도 논란이 됐다. 우리의 전통 음악인 ‘아리랑’을 엔딩곡으로 사용하고. 영화 곳곳에 한국적인 요소를 넣은 것을 놓고 “국민의 애국심을 이용한 애국주의 마케팅”이라는 혹평이 나왔다. 영화 마지막 부분에 심형래 감독의 개인적인 스토리를 넣은 것에 대해서도 ‘동정심 마케팅’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이러한 ‘트집 잡기’ 식 비난에 대해 관객들의 반응은 냉정했다. “할리우드 영화에 물결치는 성조기와 미국식 영웅주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반박했으며 개봉 일주일만에 400만명이 넘는 관객이 ‘디 워’를 관람하면서 심형래 감독의 손을 들어줬다. ‘애국심 마케팅’이든. ‘동정심 마케팅’이든 관객의 정서를 자극하는데 큰 효과를 봤고. 흥행의 중요한 발판으로 작용했다. ◇1000만 돌파 가능할까? ‘디 워’의 관객 동원 추세는 한국영화 역대 최고 흥행작인 ‘괴물’(1300만명)과 엇비슷하다. MBC 시사프로그램 ‘100분 토론’이 ‘디 워. 과연 한국영화의 희망인가?’라는 주제로 ‘디 워 신드롬’을 다룰 정도로 폭발적인 관심을 모으고 있다. 개봉 전. 심형래 감독의 학력위조 논란에서 시작해 최근 한 방송사가 엔딩 장면을 무단으로 촬영해 방송하면서 물의를 일으킨 것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화제의 중심에 섰고. 이런 면이 흥행 속도에 탄력을 주는 요소로 작용했다. 극명하게 엇갈리는 시각들이 부딪히면서 흥행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름을 붓는 격이 됐다. 극장 관계자들은 “이런 추세라면 1000만 관객 돌파는 무난할 것 같다”며 “‘괴물’의 기록을 깨는 문제는 뒷심을 얼마나 발휘하느냐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의 흥행은? ‘디 워’는 원래 미국에서 먼저 개봉한 뒤 국내 개봉을 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쇼박스 측이 미국내 배급사와 협상하면서 전략을 수정했다. 개봉을 앞두고 “국내 흥행에 실패하면 김이 빠져 미국에서도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도 나왔다. 그러나 국내에서 흥행가도를 달리면서 그러한 우려감은 일단 떨쳐냈다. 1500~1700개의 스크린을 확보했고. 미국 개봉 때 뚜렷한 블록버스터 경쟁작이 없다는 점. 미국내 대도시에 있는 다수의 교민 관객 등을 고려할 때 미국에서도 일정 수준의 흥행성적은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스포츠서울 제휴/이평엽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내 맘속에 초대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내 맘속에 초대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글 홍승범(본지 편집장) | 사진 한영희 2005년 4월호 장영희 교수로부터 2007년 7월 가수 이은미까지, 그간 ‘초대’에는 총 스물여섯 분이 참여하여 진솔한 대화를 나눠주셨습니다. 바쁜 일정 속에 있는 분들을 한 자리에 초대하는 일은 매회 산고를 안겨주었지만, 돌아보면 그 시간들은 모두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제 릴레이 인터뷰 ‘초대’가 충전의 시간을 갖습니다. 잠시 숨을 고른 이후 더 풍성하고 실팍한 내용을 담아 돌아올 것을 약속드립니다.이번 호에는 그간 ‘초대’에 등장했던 대담자의 면면과 어록을 살펴봅니다. 장영희(영문학자, 서강대 교수) 희망을 버리는 것은 죄악이다 장영희-김점선(화가) 관능의 힘이 그대를 이끈다 김점선-신희섭(뇌 과학자) 단순함의 아름다움 신희섭-정말로(재즈 보컬) 꽃잎 날리네, 햇살 속으로 / 머물다 가네, 꽃그늘 아래 정말로-이외수(소설가) 고독한 산보자의 꿈 이외수-류승완(영화감독) 유쾌하고 정직한 분노의 방식 류승완-최일도(목사) 지상의 양식 최일도-인요한(의사) 1백 년 린튼 가의 ‘조선 살림, 한국 사랑’ 인요한-최불암(탤런트) 홀로 안으로 익어가면 / 그게 남자요, 아버지요 최불암-한준호(한국전력 CEO) 한 가지 마음으로 한길을 걸어가다 한준호-문국현(유한킴벌리 대표) 청년의 꿈을 청산에 심다 문국현-김후란(시인) 재능이 아니다, 열정이다 / 인간을 움직이는 것은 김후란이병훈(유니베라 대표) 꿈은 현실보다 힘이 세다 이병훈-한젬마(화가) 그림 밖으로 걸어나와 세상 속으로 들어가기 한젬마-유인촌(서울문화재단 대표) 내 꿈은 그대를 꿈꾸게 하는 것 유인촌-장미희(배우) 여름, 보리울의 길목에서 장미희-홍세화(한겨레신문 시민편집인)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홍세화-정혜신(정신과 전문의) 다시, 인간에 대한 예의로부터 정혜신-한비야(국제 NGO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 내 어여쁜 사람아, 일어나 함께 가자 한비야-박경철(시골의사) 쓸모없음보다 두려운 것은 없다 박경철-공병호(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 행복한 자유주의자와의 대화 공병호-심재명(엠케이픽처스 사장) 모든 평범한 삶은 특별하다 심재명-장윤주(모델) 날 한 번이라도 본 적 있나요? 장윤주-배한성(성우) “친구, 인생은 더빙이 안 된다구” 배한성-정관용(KBS 심야토론 진행자) 대한민국의 정중앙에 서다 정관용-이은미(가수) 화려하고 쓸쓸하게, 그러나 지나치지 않게. 장영희 행복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절대 행복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의문은 갖고 있습니다. 행복에 관한 한 우리는 참으로 변덕꾸러기라서 손에 넣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행복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행복은 영원이 아니라 순간적인 것이고, 그래서 진정한 가치와 행복은 위대한 성취의 이면이 아니라 스쳐 지나가는 일상의 작은 순간들 속에 숨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김점선 상대적으로 둔하고 끈질긴 예술가들만 남게 돼. 너무 예민하면 죽어. 무시도 이겨내야 하고, 운명 같아. 조물주가 작가 하나를 만들 때 일부러 굳센 의지를, 뚝심을 심어 놓지. 스무 살에 빛나지 않고 육십, 칠십에 빛나게 아주 조금씩 키워갈 수 있는 씨앗만을 집어넣지, 누구나 한눈에 알 수 있는 그런 조숙하고 완성된 재능을 넣지는 않아. 그렇게 되면 타락하기 쉬워. 시들어 버린다니까. 신희섭 어떤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않으면서 그 일을 쉽게―다른 사람이 보기에―잘 해내는 사람을 우리는 전문가라고 부른다. 그는 그 일이 몸에 배어 있는 사람이다. 정확하게는 ‘뇌에 배어 있다’가 맞는 표현이다. 뇌에 배어 있는 기능이 몸을 통하여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하루하루 일상의 전문가이다. 자는 일, 먹는 일, 걷는 일 하나만 해도 우리가 얼마나 오랜 연습 끝에 이룩한 기능인가? 정말로 진실과 맞닥뜨리려면 얼마간의 불편을 감수해야 해요. 입맛에 맞는 달콤한 음악을 하기는 쉽지만 나 자신을 속일 수는 없잖아요. 재즈가 좋은 건, 음악과 나 사이의 공간에 거짓이 존재할 틈이 없다는 거예요. 거칠지만 그만큼 진솔하니까. 이외수 험, 험. 하던 얘기 마저 합시다. (담배 하나 물고) 옛날에 내가 심산유곡에 들어가 문장공부를 했거든. 겨울에 냉방에서 자고, 밥할 때만 불 떼고. 눈이 첩첩이 쌓여있으니 나무 구하기가 힘들어 아예 달밤 같은 때는 문 열어놓고 닫으나 여나 춥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면서 밖을 내다보는데, 아! 그 달빛 속의 나무가 너무 거룩해 보이는 거요. 이렇게 추운데, 저자는 홀딱 벗고서 홀로 서서 겨울을 나는구나.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면서 저렇게 초연하게 겨울을 날까. 딱 보면 내 신세 같은데… 그러다가 문득 그와 내가 하나가 되는 일체감을 얻은 겁니다. 그때부터 문장도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묘사하고 설명하는 문체가 아니라 그 사물의 마음으로 말을 하게 된 거지. 류승완 자칭 걸작 시나리오를 쓸 준비가 되어 있다는 사람들을 가끔 만납니다. 그러나 만나고 보면 그들은 시나리오 한 편을 처음부터 끝까지 써본 적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저는 제가 직접 만든 단편 영화를 가지고 대한민국의 모든 영화제에 출품해서 모조리 떨어져 봤습니다. 영화학과 시험에도 빠짐없이 낙방을 경험했고요. 데뷔하기 전까지 열한 편의 장편 시나리오를 썼는데, 한 번도 공모에 당선되지 못했고 영화사에도 팔지 못했습니다. 재능은 극복할 수 있지만 열정은 극복할 수 없어요. 시쳇말로 중요한 것은 펀치가 아니라 맷집이 세야 한다는 겁니다. 최일도 어느 날, ‘밥퍼’ 현장에서 진지를 드시던 할아버지 한 분이 신문을 보시다가 저를 부르시더라고요. 어이, 최 목사! 또 책을 냈구먼. 아, 네. 졸작을 냈습니다. 부끄럽습니다. 부끄러운 건 아는구먼. 예? 무슨 말씀…. 이 사람아, 예수는 책 한 권 낸 적 없는데, 그 제자라는 사람이 뭔 책을 그리 많이 내? 아, 예. 그래서 늘 부끄럽습니다. 내고 싶어 낸 게 아니라…. 지난번에 저쪽에서 냈으니 이번엔 이쪽에서 내달라고 하도 졸라서…. 아, 시끄러워! 어쨌든 당신이 냈잖아. 이것 봐. 우리는 말 잘하고 글 잘 쓰는 목사 말고 예수님처럼 사는 목사를 기다리는 게야…. 인요한 가난과 역경에 맞닥뜨려도 웃으면서 헤쳐나가는 것이 조선 사람의 본래 얼굴입니다. 결핵에 걸려 죽음을 눈앞에 둔 한 주민이 해외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몹쓸 병에 걸렸지만 어쩌겠어요. 열심히 끝까지 싸워봐야죠.” 너무나 의연한 자세로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고 용기 있게 맞서는 모습에 경외감마저 들었습니다. 그런데 우린 지금 어떻습니까? 걸핏하면 한강에 풍덩, 목숨을 버리는 풍조가 생겨났어요. 병원에 와 보세요. 살고 싶어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목숨은 선물인데, 그런 나약한 태도는 원래 우리의 모습이 아니에요. 비겁한 도피예요. 최불암 요즘 들어 내가 주례를 많이 보는데, 아버지가 울면 딸이 울고, 딸이 울면 반드시 아버지가 울어요. 그런데, 아버지는 손으로 눈물을 닦지 않아요. 마치 흘린 적 없다는 것처럼 눈만 껌벅거릴 뿐. 그래서 결혼식장에서는 아무도 아버지의 눈물을 볼 수 없고 다만 딸이 그것을 느끼게 되는 거지요. 내 사무실에 여직원이 하나 있었는데 아주 어렵게 자란 친구예요. 시집갈 때 내가 주례를 봤는데 그이 아버지도 역시 눈물을 떨구고 있더라구. 신부는 화장 지워가면서 같이 울고…. (아들? 그때는 어머니가 울지) 한준호 북한 현지 KEDO발전소 건설 당시 작업에 참여한 현지 인력 4백 명 가량을 강당에 모아 놓고 교육을 시켰어요. 그런데 하루는 그중 한 사람이 와서 강당 불이 밝아 글을 볼 수가 없다고 하는 겁니다. 전등의 삼분의 이를 끄고 나머지만 켰더니 그제야 눈이 편하다고 했답니다. 우리 눈에는 너무나 익숙한 불빛이 다른 어떤 사람들에게는 눈이 부실 만큼 밝다는 사실…. 이것은 우리가 지금 어떤 문명을 경험하고 있는지에 대한 방증이라 할 겁니다. 문국현 언젠가 피터 드러커 선생을 만나 뵈러 갔을 때의 일입니다. 비가 막 쏟아지는 날인데, 아흔다섯의 연세에 다리가 불편하셔서 워커에 의지하시면서도 식사를 굳이 나가서 하자시는 겁니다. 아! 선생님, 도대체 이 도전하는 정신의 정체는, 그 정열은 어디서 나오는 겁니까, 여쭈었더니 답이 명쾌했습니다. “인생은 긴 달리기이고, 사람은 모름지기 젊게 살아야 해! Life is long running, people must keep young!”. 김후란 미래는 현재다, 이 말을 가슴에 담아두고 살아요. 미래가 현재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현재가 미래로 달려가는 것이잖아요. 이병훈 일터는 우리가 하루 3분의 2 이상의 시간과 정력을 쏟는 곳입니다. 당연히 자아성취의 장이 되어야 합니다. 자아라는 건 개인과 기업의 꿈이 하나 될 때 성장하니까 가능하면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이 모여야 합니다. 그래서 제게는 10조짜리 회사를 만들겠다는 욕망이 없습니다. 다만 그들이 함께 일하는 ‘참 좋은 회사’ 하나를 만들고 싶다는 소망이 있습니다. 한젬마 잘 어울려서 내 몫만큼 살고 가는 것. 그게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일 거라고 생각해요. 나이 들면서 모난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아요. 그건 제가 정말 싫어하는 거예요. 젊은 나이에는 잘 모르고 달려드는 패기도 좋고 날카로움도 좋지요. 하지만 나이 들어 그러는 것은 부담스러워요. 너무 공격적이거나 강한 것도 싫고요. 조용하고 침착하고 내면의 힘이 느껴지는 사람이 좋아요. 유인촌 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계층에 있는 사람들, 예술에 대해 별로 인식이 없어. 말로는 뭔 소리 못 해. 하지만 옷 벗고 속에 있는 얘기 다 끄집어내다 보면 예술을 하찮게 생각해. 문화를 해야 한다, 그래야 선진국이다 떠들지만 말 뿐이야. 결국 예술가들이 그이들의 머리를 깨우쳐줘야 하는데 부끄럽게도 대부분 역량이 부족해. 예술가? 딴따라? 그 역할 너머냐, 안쪽이냐로 구분하면 돼! 장미희 언제 어디서든 당당한 배우들이 있어요. 하지만 저는 못 그래요. 전날 밤 준비하고, 고민하고, 그러고도 막상 나가야 할 때가 닥쳐오면 “정말 싫어!” 혼자 떼를 써요. 요즘도 공적인 자리에 가면 “말 시키지 않았으면 좋겠어, 편안히 놔주었으면 좋겠어” 중얼거리면서 귀퉁이에 숨어요. 아직도 저는 왜 배짱이 요만할까, 혼자 고민하지요. 홍세화 한국으로 돌아가면 땅을 많이 밟아보리라, 파리에 있을 때 다짐을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들어와 보니 자동차가 사람을 밀어내고 있었습니다. 위로 가라, 밑으로 가라 아니면 건물 속으로 들어가라…. 사람의 길이 없구나, 길이 없어서 사람들이 길을 찾지 않는구나, 나는 독백을 했습니다. 정혜신 ‘인간은 자기가 아닌 만큼만 인간일 수 있다.’ 2차 대전 당시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았던 한 유태인 정신과 의사가 이런 말을 남겼어요. 인간은 자기를 초월할 수 있는 만큼만 인간이라는 거고, 본능을 뛰어넘을 수 있는 인간의 자의식 속에서만 진정한 이성적 존재가 나타난다는 거죠. 한비야 생각하는 사람thinker도 있고, 행동하는 사람actor도 있어요. 저는 가슴이 시키는 대로 어떻게든 손발을 움직여야 하는 사람이니 후자이겠죠. 생각해보세요. 목욕탕 가서 생각보다 뜨거운 물에 들어갔어요. 견딜 수 없죠? 튀어나가야 하죠? 그게 절박감이에요. 난 그게 뭐가 됐든지 일단 ‘필’이 오면 100도까지 끓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어요. 성에 안 차! 박경철 죽어서 아버지를 만나서는 “그래, 잘했다” 칭찬을 받아야 하고, 아픔을 함께해준 친구에게는 언제든 힘이 되어주어야 해요. 그리고 나를 믿어주는 아내에게도 실망을 줄 수 없으니 결국 이들이 저를 하루 24시간 감시하고 격려하는 거죠. 당연히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다짐할 수밖에요. 공병호 안분지족, 나는 노! 입니다. 인간은 자신이 도달할 수 있는 것보다 좀 더 높은 목표에 에너지를 쏟고 그것에 몰입할 때 행복을 느낍니다. 일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은 절반의 행복에 지나지 않습니다. 일이 항상 좋을 수는 없겠지만, 마찬가지로 사람도 항상 행복할 수 없습니다. 중요한 건 행복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일을 하면서 행복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심재명 재테크요? 문외한이에요. 성격이요? 직관적이고 감성적이랄까, 지레짐작해서 일을 그르친다고 남편에게 늘 주의를 받아요. 화나는 일이요? 영화 잘 만들 고민을 하지 않고 잘 살아남을까만 궁리하는 사람을 마주 보는 일. 화를 자주 내냐고요? 못내요. 좌우명이요? 음,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말자. 성공이요? 그런 걸 꼭 생각해야 하나요? 나이에 따라 현명하게 자신을 변화시켜가면서도 의미 있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면 그게 성공 아닐까요? 장윤주 리허설 백 번 하고 관객 앞에 딱 한 번 서면 그만인 게 쇼예요. 하루 만에 끝날 거 할 짓 없어서 이렇게 준비하나, 회의가 들기도 하지만 한 번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 되풀이하지 않는 비장한 올인이 멋있잖아요. 예전에는 쇼가 끝나고 나면 아쉬운 기분에 맥주도 한 잔씩 했는데, 이제는 박수를 뒤로하고 무대를 내려와 본래의 나 자신으로 돌아오는 모습도 너무 좋아요. 쿨하게 안녕히 계세요, 하면서 총총 발걸음을 돌리는 그런 내 몸짓들이 진짜 멋있다, 완전 카리스마다, 스스로 감탄하기도 해요. 배한성 방송 잘하는 법 궁금하시죠. 책 나와 있어요. 조금 두꺼운 게 흠이긴 한데, 읽다가 지치면 훌쩍 뛰어넘어 맨 뒤를 봐도 좋아요. 거기 아마 이런 이야기가 쓰여 있을 거예요. 여태껏 얘기한 건 이론이다, 방송은 타고나는 것이다. 그럼 도대체 뭘 타고나느냐, 재능? 아니, 끈기. 정관용 토론 문화가 성숙하지 못한 것은 교육에도 큰 문제가 있습니다. 사지선다 주입식 학습의 폐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한 거죠. 정운찬 총장 재직 시 서울대학교에 기초교육원이 만들어졌습니다. 거기서 뭘 가르칠까요. 말하기와 글쓰기랍니다. 공부 열심히 해서 서울대에 들어온 우수한 학생들이 정작 학문을 위한 기본 소양을 갖추지 못했다는 겁니다. 이은미 남 모르는 아픔과 고민 갖지 않은 사람 누가 있겠어요. 그런데도 제 주변에는 세상이 다 그런 거다, 너 혼자 고민하는 것 아니다, 코웃음 치는 사람이 없었어요. 늘 한 발짝 뒤에서 지켜주기만 하는 그런 진짜 사랑을 받고 있었는데, 정작 제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거예요.
  • 佛 ‘방리유 사건’은 현재진행형이다

    2005년 10월27일. 프랑스 파리의 방리유(banlieue, 도시외곽지역) 클리시부아에서 아프리카 이민자 2세 소년 두 명이 경찰의 불심검문을 피하다가 감전사했다. 이들은 경찰의 추격을 피해 송전소의 담을 넘다가 변압기에 떨어져 사고를 당했다. 사건이 발생하자 프랑스 언론들은 일제히 “주변에 일어난 절도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이 이들을 용의자로 보고 검문하려 했을 뿐 추격전은 없었다.”는 경찰쪽 주장을 그대로 보도했다. 그러나 이날 주변 지역에서 절도사건은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분노한 방리유의 청년들은 이내 차량과 건물에 불을 지르는 등 일어섰고, 이는 이른바 ‘프랑스 방리유 소요사태’라는 이름으로 전세계에 전파를 탔다. ‘공존의 기술:방리유, 프랑스 공화주의의 이면’(이기라·양창렬 등 지음, 그린비 펴냄)은 이 방리유 사건의 의미와 원인, 파장을 다양한 각도에서 분석하고 진단한 책이다. 현재 프랑스에 체류 중인 필자들은 프랑스 내 또다른 이방인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이들은 자신들이 체험하고 목격한 프랑스라는 나라의 본색을 보다 실감나게 전한다. 이들의 통찰은 비단 방리유 사건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우리 시대 주변인, 소수자, 이방인에 대한 안목까지 넓혀준다. 책은 먼저 1990년대 이래 뚜렷한 적이 사라진 상태에서 프랑스가 사회 통제를 위해 강화하기 시작한 ‘치안논리’에 주목한다. 필자인 이기라씨는 “최근 20여 년 동안의 치안논리와 그에 기반한 낙인과 처벌의 정치가 소외지역 청년들의 절망과 증오를 누적시켰다.”면서 “치안담론은 주권을 재정당화하고 권력강화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통치기술로 사용돼 왔다.”고 지적한다. 또 다른 필자인 양창렬씨는 ‘시테의 야만인’이란 장에서 1889년 파리 지방 선거의 한 후보자가 사용한 뒤 널리 퍼지게 된 ‘방리유자르’라는 호칭에 주목한다. 방리유 주민을 일컫는 이 용어는 16세기부터 도시민들이 방리유 주민들에 대해 가져온 ‘무례’‘야만적임’ 이라는 이미지가 여전히 통념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양씨는 “방리유자르는 프랑스 문화에 완전히 동화되어 있지만, 프랑스 정부에서는 그들이 아직 동화되지 않았다며 끊임없이 유예시키고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은 무엇보다 ‘자유·평등·박애’라는 혁명정신과 ‘톨레랑스’라는 보편적 가치의 나라로 알려진 프랑스의 그늘을 조명함으로써 방리유 소요가 단지 일회적 사건이나 예외적 사태가 아님을 보여준다는 데 의미가 있다. 2007년 3월27일 파리 북역에서 무임승차한 청년을 연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소요나 니콜라 사르코지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 전국적으로 벌어진 시위 등에서도 볼 수 있듯이 ‘방리유 사건’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 책은 방리유 사건이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세계 어디에나 이같은 가능성이 잠재해있다고 알려준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대대적인 불법체류 단속 이후 외국인 노동자 수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차가운 거리에서 얼어 죽었다. 또한 이주노동자정책은 아직도 근본적인 개선안을 마련하지 못한 채 미봉책에 그치고 있다. 우리 사회의 방리유와 화해하고 공존하려면 어떤 기술이 필요한 걸까.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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