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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경필 vs 정병국… 與경기지사 ‘절친 맞대결’

    남경필 vs 정병국… 與경기지사 ‘절친 맞대결’

    새누리당의 6·4 지방선거 경기지사 경선이 남경필(왼쪽) 의원 대 정병국(오른쪽) 의원의 양자 대결 구도로 확정됐다. 새누리당 중앙당 공천관리위원회는 7일 서울 여의도 당사 전체회의에서 지난 5~6일 실시한 두 곳의 외부 여론조사 결과 원유철·정병국 의원, 김영선 전 의원 3명 가운데 정 의원이 후보로 압축됐다고 밝혔다. 여론조사 지지율 1위인 남 의원과 컷오프를 통과한 정 의원은 오는 24일 당원과 일반 국민이 참여하는 국민참여 선거인단 방식의 경선을 치르게 된다. 공천위 부위원장인 김재원 의원은 브리핑에서 “여론조사 결과를 합산 평균한 결과 정 의원이 가장 높은 지지율을 얻었지만, 적합도 조사를 실시했고 워낙 미세한 차이였기 때문에 자세한 수치를 밝힐 수는 없다”고 전했다. 탈락한 두 사람의 반발 가능성에 대해서는 “이의 제기하지 않는 것을 전제조건으로 후보자 압축을 했기에 없으리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로써 새누리당 경기지사 후보전은 옛 한나라당 원조 소장파 그룹으로 20년 가까이 각별한 인연을 쌓아 온 남·정 의원의 한판 승부전이 됐다. 두 의원은 2000년엔 각각 재·초선 신분으로 한나라당 소장파 정치인 모임인 ‘미래연대’(미래를 위한 청년연대)를 이끌며 본격적으로 의기투합했다. 17대 국회에서는 ‘새정치수요모임’을 통해 국가보안법 폐지 주장 등 당내 보수·혁신 갈등을 촉발하는 등 비주류 개혁파 이미지를 굳혔다. 이후 2007년 한나라당이 여당으로 복귀한 뒤엔 각자의 길을 걸었다. 정 의원은 이명박 정부 시절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지냈고, 남 의원은 당내 쇄신파 모임인 ‘민본21’을 주도했다. 정 의원은 지난 1월 경기지사 후보 출마 선언을 일찌감치 한 반면 차기 원내대표를 겨냥했던 남 의원은 중진차출론에 의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선거전에 뒤늦게 뛰어들었다. 한편 새정치민주연합 중앙당 공천관리위원회는 이날 원혜영·김진표 의원, 김상곤 전 경기교육감 등 3명을 경기지사 경선 후보로 확정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이보영 ‘신의 선물’ 의문의 문구점주인 오태경 누구? ‘올드보이’의…

    이보영 ‘신의 선물’ 의문의 문구점주인 오태경 누구? ‘올드보이’의…

    드라마 ‘신의 선물’에 짧지만 강한 인상을 남긴 배우 오태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오태경은 지난 3일 방송된 SBS의 새 월화극 “신의 선물(극본 최란, 연출 이동훈 연출)에 첫 등장해 짧지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신의 선물’은 사랑하는 아이를 되살리기 위해 시간 여행을 떠나는 엄마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다. 이번 작품에서 오태경은 순박하고 정이 많아 주변인들의 신임을 받고 있는 장문수 역을 맡았다. 김수현(이보영)의 딸 한샛별(김유빈)이 다니는 학교 앞 문구점을 운영하고 있는 청년이다. 오태경의 소속사 ‘웨이브온엔터테인먼트’관계자는 “오태경이 맡은 ‘장문수’는 회가 거듭될 수록 다양한 스타일의 연기를 소화해야 하는 입체적인 캐릭터”라며 “2년만의 브라운관 복귀인 만큼 좋은 연기를 보여주기 위해 오태경 본인도 많은 준비를 하고 있다. 여러분의 많은 기대 바란다”고 전했다. 오태경은 영화 ‘조난자들’에서 강원도 산골 오지에 고립된 주인공 상진(전석호 분)을 무표정하게 따라다니며 끊임없이 그를 긴장시키는 ‘학수’ 역을 맡았다. 대중들에게 낯익지만 여전히 이름은 생소한 오태경이 가장 널리 얼굴을 알린 작품은 바로 박찬욱 감독, 최민식 주연의 ‘올드보이’다. 극 중 오대수(최민식 분)가 감금되는 데 결정적인 과오를 저질렀던 고등학교 시절 아역을 오태경이 맡았다. 당시 오태경은 능글맞은 반항아면서도 단순한 어린 시절의 오대수를 훌륭히 소화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오태경은 1993년 장선우 감독의 영화 ‘화엄경’에서 주인공 ‘선재’의 어린 시절 역할로 연기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오태경은 드라마 ‘육남매’에서 큰아들 ‘창희’ 역을 맡아 처음으로 연기의 맛을 제대로 깨달았다고 밝혔다. 공포영화 ‘알포인트’에서 어린 병사 역할로 얼굴을 널리 알리기도 했다. 이후 영화 ‘음란서생’, ‘황진이’ 등에서도 꾸준히 대중들과 만나왔다. 이보영 ‘신의 선물’ 오태경에 대해 네티즌들은 “이보영 ‘신의 선물’ 오태경, 오랜만에 봐서 반가웠다”, “이보영 ‘신의 선물’ 오태경, 낯익다 했더니 올드보이, 알포인트 나온 배우구나”, “이보영 ‘신의 선물’ 오태경, 육남매 창희 많이 컸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보영 주연 ‘신의 선물’ 짧지만 강한 인상 오태경은 누구? ‘올드보이’ 최민식 아역

    이보영 주연 ‘신의 선물’ 짧지만 강한 인상 오태경은 누구? ‘올드보이’ 최민식 아역

    드라마 ‘신의 선물’에 짧지만 강한 인상을 남긴 배우 오태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오태경은 지난 3일 방송된 SBS의 새 월화극 “신의 선물(극본 최란, 연출 이동훈 연출)에 첫 등장해 짧지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신의 선물’은 사랑하는 아이를 되살리기 위해 시간 여행을 떠나는 엄마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다. 이번 작품에서 오태경은 순박하고 정이 많아 주변인들의 신임을 받고 있는 장문수 역을 맡았다. 김수현(이보영)의 딸 한샛별(김유빈)이 다니는 학교 앞 문구점을 운영하고 있는 청년이다. 오태경의 소속사 ‘웨이브온엔터테인먼트’관계자는 “오태경이 맡은 ‘장문수’는 회가 거듭될 수록 다양한 스타일의 연기를 소화해야 하는 입체적인 캐릭터”라며 “2년만의 브라운관 복귀인 만큼 좋은 연기를 보여주기 위해 오태경 본인도 많은 준비를 하고 있다. 여러분의 많은 기대 바란다”고 전했다. 오태경은 영화 ‘조난자들’에서 강원도 산골 오지에 고립된 주인공 상진(전석호 분)을 무표정하게 따라다니며 끊임없이 그를 긴장시키는 ‘학수’ 역을 맡았다. 대중들에게 낯익지만 여전히 이름은 생소한 오태경이 가장 널리 얼굴을 알린 작품은 바로 박찬욱 감독, 최민식 주연의 ‘올드보이’다. 극 중 오대수(최민식 분)가 감금되는 데 결정적인 과오를 저질렀던 고등학교 시절 아역을 오태경이 맡았다. 당시 오태경은 능글맞은 반항아면서도 단순한 어린 시절의 오대수를 훌륭히 소화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오태경은 1993년 장선우 감독의 영화 ‘화엄경’에서 주인공 ‘선재’의 어린 시절 역할로 연기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오태경은 드라마 ‘육남매’에서 큰아들 ‘창희’ 역을 맡아 처음으로 연기의 맛을 제대로 깨달았다고 밝혔다. 공포영화 ‘알포인트’에서 어린 병사 역할로 얼굴을 널리 알리기도 했다. 이후 영화 ‘음란서생’, ‘황진이’ 등에서도 꾸준히 대중들과 만나왔다. 이보영 ‘신의 선물’ 오태경에 대해 네티즌들은 “이보영 ‘신의 선물’ 오태경, 올드보이 최민식 아역이었구나”, “이보영 ‘신의 선물’ 오태경, 알포인트에서 봤었지”, “이보영 ‘신의 선물’ 오태경, 연기 잘하는데”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박근혜 대통령 담화문 “청년 일자리 50만개 창출”

    박근혜 대통령 담화문 “청년 일자리 50만개 창출”

    박근혜 대통령 담화문 “청년 일자리 50만개 창출” 박근혜 대통령은 25일 담화문을 발표하고 “청년의 취업 단계별 애로요인을 해소해 청년 일자리 50만개를 창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담화문에서 “고졸 중소기업 재직자를 대상으로 과거 재형저축과 유사한 청년희망키움통장을 도입해 중소기업 근무요인도 강화할 것”이라며 “산업계 수요에 맞게 교육과정을 개편하고 특성화고와 마이스터고 등의 직업교육과정에 참여한 기업에 대해 세제지원을 강화할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은 또 “여성 일자리를 150만개 만들겠다”며 “내년부터 시간제 보육반을 전국으로 확대해 근로유형에 맞는 맞춤형 보육과 돌봄 지원체계를 정립하고 비정규직과 소규모 사업장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육아휴직이 보다 용이하도록 고용보험 지원을 늘리겠다”고 덧붙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육아와 임신, 간병 등으로 근로시간을 단축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전일제 근로자의 시간선택제 전환청구권을 부여하고 추후 전일제로의 복귀를 보장하겠다”고 강조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수출·내수 연결 강화… 기업 해외수주 61조 지원

    수출·내수 연결 강화… 기업 해외수주 61조 지원

    산업통상자원부가 24일 내놓은 올해 대통령 업무보고의 핵심은 ‘수출과 내수의 연결고리 강화’로 요약된다. 지난해 사상 최대 수출액과 무역 흑자를 달성하는 등 우리나라 수출이 규모 면에서나 질적으로 상당한 성과를 내고 있지만 내수와 일자리 창출로 연결되지 못하면서 전반적으로 경제의 활력이 떨어졌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산업부는 이에 대한 해법으로 중소·중견 수출기업의 수를 늘리고 수출 역량을 대폭 신장시키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대기업에 집중된 수출의 저변을 넓혀 ‘고용’과 ‘내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다는 것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예년처럼 올해도 기업에 더 큰 시장, 더 많은 사업 기회를 만들어 주고 국민에게는 더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설명했다. 산업부는 6월까지 해외 소비자를 위한 한국 대표 온라인 쇼핑몰을 구축하고 중소기업 상품의 해외 오픈마켓 등록을 지원할 방침이다. 정부가 수출 계약을 지원하는 정부 간 무역(G2G) 범위도 비(非)방산물자로까지 확대하고, 절충교역 대상을 발굴하기 위해 방위사업청과의 정기채널도 새로 구축하기로 했다. 산업부는 입는 스마트 기기, 자율주행 자동차 등 13대 산업엔진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위해 1조 2000억원 규모의 펀드를 만들고 100대 핵심 장비를 개발하기로 했다. 중소·중견기업이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이 해양플랜트, 헬스케어, 항공산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보유한 1000여개 특허와 상표, 유통망을 싼 비용으로 활용해 상품 개발, 마케팅을 할 수 있도록 산업부와 GE가 양해각서(MOU)를 맺을 예정이다. 출산, 육아 등을 위해 퇴직한 여성 연구·개발(R&D) 인력이 중소·중견기업에 재취업할 때 정부가 1인당 월 80만~100만원의 인건비를 3~6개월간 대 주는 ‘경력 복귀 지원 프로그램’을 도입한다. 기업이 시간선택제 근무로 전환한 여성 연구·개발 직원의 인건비로 정부의 R&D 예산을 쓰는 것을 허용한다. 민간기업의 해외 자원 개발, 해양플랜트 등 대형 사업 수주를 뒷받침하고자 국책 금융기관에서 대출·보험으로 61조원을 지원하고 자원개발펀드에도 2조 5000억원 규모의 보증을 설 방침이다. 우리나라가 아랍에미리트(UAE)에 짓는 원자력발전소 4기의 운영·정비 분야에 2020년까지 국내 청년인력 1500여명을 진출시켜 취업난을 더는 방안을 추진한다. 에너지공기업의 해외 자원 개발 방향은 ‘양적 확대’에서 ‘질적 성장’으로 바꾼다. 이를 위해 해외 투자 심의 과정에 민간 전문가를 참여시키고 투자실명제를 도입한다. 김정은 기자 kimje@seoul.co.kr
  • [경제혁신 3개년 계획]박근혜 대통령 담화문 전문

    [경제혁신 3개년 계획]박근혜 대통령 담화문 전문

    [경제혁신 3개년 계획]박근혜 대통령 담화문 전문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올해 초 신년구상에서 우리 경제의 혁신과 재도약을 위해 ‘경제혁신 3개년 계획’ 추진을 밝힌 바 있습니다. 지금 세계 경제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채 대전환기를 맞고 있습니다. 세계 각국은 구조 개혁을 강화해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통상을 둘러싼 주도권 경쟁도 갈수록 치열해 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닙니다. 지금 도약이냐 정체냐를 결정지을 중대한 기로에 서 있습니다. 우리 경제를 세계 10위권으로 이끌었던 기존의 추격형 전략이 한계에 직면했고, 비정상적인 관행들이 경제의 효율성과 역동성을 저하시키고 있습니다. 수출과 내수, 대기업과 중소기업, 제조업과 서비스업간 불균형 등 해결해야 될 구조적 과제들이 산적해 있고, 인구고령화가 OECD국가 중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되면서 2017년부터는 생산가능 인구도 감소하게 됩니다. 이것은 소리없이 다가오는 무서운 재앙입니다. 그 전에 우리가 경제의 체질을 바꾸고, 비정상적인 관행들을 고치면서 장기간 이어져온 저성장의 굴레를 끊지 못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없을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과거부터 이어져 온 잘못된 관행과 틀에서 과감히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오랜 시간 이런 많은 문제들에 대해 눈을 감고, 본질적인 해결을 피해왔는데 그래선 우리의 병이 깊어질 뿐이고, 점점 고칠 수 없는 고질병이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다시 시작을 해야 합니다. 경제혁신을 강력하게 추진해서 이런 고질적인 관행과 문제들을 해결해야만 국민이 행복해지고, 희망의 새 시대를 앞당길 수 있습니다. 저는 IMF사태 때 대한민국이 뿌리채 흔들리고, 국민들이 큰 고통을 겪는 것을 보면서 정치를 시작했습니다. 앞으로 제 2의 한강의 기적을 이뤄내서 우리 경제를 튼튼한 반석위에 올리고, 국민행복시대를 여는 것이 저의 사명이자 정치 신념입니다. 이번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통해, 2017년에 3%대 초반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잠재성장률을 4%대로 끌어 올리고, 고용률 70%를 달성하고, 1인당 국민소득 3만불을 넘어 4만불 시대로 가는 초석을 다져 놓겠습니다. ‘기초가 튼튼한 경제’ ‘역동적인 혁신경제’ ‘내수·수출 균형경제’ 등 3대 핵심전략을 제가 임기 내내 직접 챙기면서 강력하게 추진해서 성공적으로 이끌어갈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경제의 지속가능한 성장 토대를 마련하고,꺼져가는 성장엔진을 다시 한 번 힘차게 점화해서 모든 국민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기초가 튼튼한 경제’는 비정상적인 제도와 관행들을 바로잡는 일에서 출발합니다. ‘공공부문 개혁’, ‘원칙이 바로 선 시장경제’, ‘사회안전망 확충’은 기초가 튼튼한 경제를 만들기 위한 핵심과제입니다. 우선, 공공부문부터 개혁하겠습니다. 그동안 공공부문은 비정상적인 관행과 낮은 생산성이 오랫동안 고착화되었습니다. 이 오랜 관행과 비리가 국가경제와 국민경제 발전에 더 이상 발목을 잡아서는 안됩니다. 앞으로 철저한 쇄신과 강도 높은 개혁과 체질 변화를 해나갈 것입니다. 상당수 기관들이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충당하지 못하고 있는데도, 부채가 많은 상위 12개 공기업의 복지비가 최근 5년간 3천억원을 넘었습니다. 22조원이 투입된 4대강 사업처럼, 정부 재정 부담을 공기업에 떠넘겨 부실을 키우는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비정상적인 관행의 핵심은 방만경영과 높은 부채비율, 그리고 각종 비리입니다. 방만 경영을 개선하기 위해 공공기관의 경영 비밀을 제외한 모든 정보를 공개할 것입니다. 사업조정, 자산매각과 함께 공사채 발행총량 관리제를 도입하고, 정부정책사업과 공공기관 자체사업을 분리해서 관리하는 구분회계제도를 확대적용해서, 2017년까지 공공기관의 부채비율을 200%로 대폭 낮추겠습니다. 원전비리와 같은 공공기관의 구조적 부패와 불공정행위도 근본적인 고리를 끊어야 할 것입니다. 뇌물수수 등의 입찰비리를 한번이라도 저지른 기관은 입찰업무를 2년간 조달청에 강제로 위탁하게 하는 ‘원 스트라이크 아웃제’를 도입하고, 공공기관 퇴직 임직원이 임원으로 취직한 업체와는 2년간 수의계약을 금지시킬 것입니다. 또 공기업의 계열사 일감몰아주기 등 불공정 행위를 엄단하고 적발된 공기업의 명단을 공개하겠습니다. 부채 증가를 억제하고 방만경영을 바로잡는 것 못지않게 공공기관의 생산성을 높여서 제대로 된 서비스를 낮은 비용으로 제공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 조직 안팎으로 경쟁원리를 과감하게 도입할 것입니다. 철도처럼 공공성은 있으나 경쟁이 필요한 분야는 기업분할, 자회사 신설 등을 통해 공공기관간 경쟁체제를 도입하고 임대주택 등 민간참여가 가능한 공공서비스 분야는 적극적으로 민간에게 개방하겠습니다. 유사.중복사업 통폐합을 통해 정부재정사업을 향후 3년간 600개 이상 감축하고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사학연금 등 3개 공적 연금에 대해서는 내년에 재정 재계산을 실시하여 개선방안을 마련하고 관련 법도 개정하겠습니다. 우리 경제의 기초를 튼튼히 하기 위한 두 번째 과제는 원칙이 바로 선 시장경제를 확립하는 것입니다. 시장이 공정하지 못하고 경제적 강자가 약자의 경제적 과실을 독차지한다면 시장에서 누가 열심히 일하고 창의력을 발휘하겠습니까. 대기업과 중소기업, 고용주와 근로자, 생산자와 소비자 등 경제주체들 간에 서로 원칙을 지키고 땀 흘린 만큼 공정하게 보답받는 사회가 될 때 모두가 최선을 다하게 될 것이고 그러한 최선의 결집이 국가 전체의 경쟁력 향상과 통합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경제구조를 왜곡시키고 민간의 창의적 혁신을 제약하는 대.중소기업간 불공정거래 관행과 칸막이식 규제와 높은 진입장벽을 방패로 현실에 안주하는 행태, 그리고 노동시장의 낡은 제도와 관행을 바로 잡을 것입니다. 지난해에 하도급업자와 가맹점주 등 경제적 약자의 권리를 강화하는 법안들이 역대 어느 때보다 많이 입법화되어 공정거래를 위한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었습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이를 확실히 정착시켜 현장에서 변화가 체감되도록 만드는 일입니다. 앞으로 관련기업, 민원인들과 합동으로 TF를 구성하여 새로운 제도들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6개월마다 실태를 점검하고 그 결과를 공개하도록 할 것입니다. 아울러, 현재 제한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신고포상금제도를 하도급 등 불공정거래 전반으로 확대할 것입니다. 경제적 약자인 임차인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상가 권리금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겠습니다. 권리금 보장보험을 도입하고 분쟁조정기구를 설치하여 임차인이 억울하게 삶의 기반을 잃는 일이 없도록 만들겠습니다. 우리 경제가 한 단계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세계 최하위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노사관계 생산성부터 끌어올려야 합니다. 이를 위해 대립적 노사관계를 대화와 타협의 관계로 바꾸어야 합니다. 임금과 생산성간 연계를 강화하여 정규직과 비정규직간 불합리한 임금격차를 줄이고, 비정규직 해고요건을 강화하여 고용보호 격차를 줄여 나갈 것입니다. 통상임금과 근로시간 단축, 정년연장 등 노사 모두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노동시장 현안들은 모두가 열린 마음으로 서로 머리를 맞대고 해결해야 합니다. 이와 함께, 소비자의 권리보호도 대폭 강화하도록 할 것입니다. 개인정보 유출로 국민들이 불안해하는 일이 없도록 ICT 발전 속도에 부합하는 근본적인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하고, 금융소비자 보호기능을 전담하는 금융소비자보호원 설립도 조속히 추진해 나가겠습니다. 기초가 튼튼한 경제를 만들기 위한 세 번째 과제는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것입니다. 우리 경제를 혁신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어려움을 겪게 되는 분들과 용기있게 도전했지만 실패를 경험한 분들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를 드려야 합니다. 저는 사회안전망을 확충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경제가 여러 충격에도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잡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주춧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사회보험 사각지대와 획일적인 기초생활 보장 등 미흡한 사회안전망은 불안과 저항의 원인이 되어 경제혁신의 동력을 약화시켰습니다. 취업자의 절반 이상이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못하는 비정상적 상황부터 시급히 바로잡아야 합니다. 특수형태 업무종사자는 물론 자영업자와 예술가와 일용근로자까지 고용보험 가입대상을 단계적으로 확대하고, 실업급여 체계도 일을 하는 것이 유리하도록 개편해나가겠습니다. 소득이 적어도 일하는 만큼 재산을 늘려갈 수 있도록 본인저축액만큼 국가도 저축해주는 희망키움통장 대상을 차상위 계층까지 확대하고, 근로장려금(EITC) 지원액도 높여 나갈 것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경제혁신의 두 번째 전략은 역동적인 혁신경제로의 전환입니다. 우리는 7년째 1인당 국민소득 2만불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경제의 기존 성장방식이 한계에 부딪힌 것입니다. 우리가 이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서는 새로운 발상과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저는 그것을 창조경제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한 사람의 창의력과 상상력이 수십만명을 먹여 살리는 시대입니다. 우리 모두는 저마다 다른 소질과 잠재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 경제를 국민 개개인에 잠재된 상상력과 창의력을 최대한 끌어내는 창조경제로 전환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미래가 없고 경제도 살릴 수 없을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창조경제를 통해 신기술, 신산업, 신시장을 개발하여 세계시장을 선도하고 개척하는데 역량을 집중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기존 주력산업도 창조경제로 거듭날 때 경쟁력이 배가될 것입니다. 저는 지난 1월 다보스포럼에서 세계적인 IT기업 CEO들과 만났었는데, 그 분들 모두가 우리의 창조경제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온라인 창조경제타운과 내년까지 전국 17개 광역시도에 설치될 오프라인 창조경제혁신센터는 창조경제 구현의 핵심이 되고 지역사회 발전과 인재양성의 요람이 될 것입니다. 이를 통해 창의적 아이디어가 쉽고 빠르게 창업으로 이어지고 창업이 대박으로 이어지는 성공 사례를 만들어서 세계적인 신화를 써 내려 가시기 바랍니다. 앞으로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지역의 창의적 아이디어를 사업화로 연결시키고 지역 주도의 창조경제 구현에 핵심 역할을 하도록 정부와 민간, 중앙과 지방정부의 역량을 총결집할 것입니다. 벤처·창업기업이 중소·중견기업으로 성장하고 더 나아가 글로벌 전문기업으로 커갈 수 있도록 창업, 성장, 회수 그리고 재도전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지원은 강화하고 규제는 혁파해 나갈 것입니다. 기술은행을 설립하여 대기업 등이 보유한 非활용 기술을 창업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우수 창업자에 대한 연대보증도 폐지할 것입니다. 청년창업과 엔젤투자펀드를 7600억원까지 추가 확충하고, 글로벌 벤처투자회사와 공동으로 국내창업기업에 투자하는 2천억원 규모의 한국형 요즈마 펀드도 조성할 것입니다. 이를 포함하여 창업 벤처생태계 조성을 위해, 향후 3년간 4조원 규모의 재정을 투입하겠습니다. 창조경제의 비타민이라고 할 수 있는 과학기술과 ICT, 문화컨텐츠 등은 우리가 강점을 지닌 분야입니다. 이를 제조업 등 타 산업과 잘 접목한다면 제조업의 혁신은 물론 사물인터넷(IoE), 클라우드 컴퓨팅, 빅데이터 등 새로운 융합산업이 창출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창조경제 비타민 프로젝트를 향후 3년간 120개 사업으로 확대해 나가겠습니다. 역동적인 혁신경제를 이루기 위해서 ‘창조경제’와 함께 ‘미래대비 투자’와 ‘해외진출 촉진’도 핵심과제로 추진해 갈 것입니다. 우리 경제의 혁신을 위해, 선도적인 미래대비 투자가 필요합니다. 창조경제의 기반이 되는 과학기술 역량 강화를 위해, 2017년까지 R&D투자를 GDP의 5% 수준까지 끌어올리겠습니다. 세계 최상위 1% 과학자 300명을 유치하고 해외 우수 신진연구자의 국내성장을 지원하는 ‘Korea Research Fellowship’ 제도를 신설하여 대학의 연구역량도 대폭 강화할 것입니다. 지적재산권 거래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기술이전소득에 조세를 감면하는 제도도 확대하겠습니다. 그리고 지금보다 100배 빠른 기가인터넷, 5세대 이동통신 등 네트워크 인프라 고도화를 위한 투자가 제 때 이루어지도록 해서 인터넷 기반 융합산업의 비약적 발전을 이끌겠습니다. 기후.환경.에너지 등 범세계적인 문제에도 선제적으로 대비하여 새로운 사업을 창출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청정화력과 친환경자동차, 탄소 포집.저장(CCS) 등에 기술개발 투자를 확대하여 민간의 혁신활동을 지원하고, 소각장, 매립지 등 기피시설을 ‘親환경 에너지 타운’으로 조성하는 시범사업도 금년부터 시작해서 점차 확대시켜 나갈 것입니다. 우리 경제의 역동성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해외로 진출하여 새로운 시장을 지속적으로 개척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우리 경제의 수출의존도가 높은데도 불구하고, 전체 중소, 중견기업 가운데 2.7%만이 수출을 하고 있고, 이 기업들이 우리나라 전체 수출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내수중심의 중소기업들을 수출 역군으로 육성한다면 우리 수출의 무한한 잠재력을 폭발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미국, EU 등과 체결한 9건의 FTA를 발효 중이고, 2건의 FTA도 최종 마무리 단계에 있습니다. 한중 FTA는 물론 영연방 3국과 인도네시아.베트남 등과의 FTA도 조기에 마무리해서 2017년까지 우리 FTA 시장규모를 전 세계 GDP 대비 70% 이상으로 확대되도록 하겠습니다. 매년 7~8%씩 늘고 있는 해외 건설.플랜트 시장 진출 확대도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 100억불 규모의 외화 지원제도를 도입하고, 2017년까지 수출금융기관의 자본금과 출연금 2조 3천억원을 확충해서, 수출기업 등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겠습니다. 대외경제협력기금 등 원조자금과 연계한 지원체제도 구축해 나갈 것입니다. 많은 한류콘텐츠가 해외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은 우리 콘텐츠산업의 수출 경쟁력을 방증하고 있습니다. 우리 콘텐츠산업의 수출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향상시키기 위한 수출금융과 현지 마케팅 지원도 강화해 나가겠습니다. 경제혁신을 위한 세 번째 전략은 “내수와 수출의 균형성장” 입니다. 우리 경제가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발전해 나가기 위해서는 내수와 수출, 제조업과 서비스업, 대기업과 중소기업, 수도권과 지방 등 모든 부문이 균형있게 성장해서 그 결실이 국민 모두에게 골고루 돌아가야 합니다. 균형경제는 ‘내수기반 확대’와 ‘투자여건 확충’ ‘청년·여성 고용률 제고’의 3대 과제를 중심으로 추진해 갈 것입니다. 내수기반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소비를 짓누르고 있는 가계부채와 전세값 상승 문제를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우선 가계부채부터 확실하게 관리해 나갈 것입니다. 주택담보대출은 선진국처럼 고정금리, 장기, 원리금 분할 상환 방식으로 지속적으로 전환해가고, 이를 위해 세제혜택과 장기주택자금 공급을 확대하겠습니다. 저소득층의 채무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영세자영업자 바꿔드림론 등 서민금융 상품의 지원한도를 확대하고 지원요건도 완화할 것입니다. 이를 통해 2017년까지 가계부채 비율을 지금보다 5%p 낮춰서 처음으로 가계부채의 실질적 축소를 이뤄내겠습니다. 가계부채 증가와 소비 위축의 주요한 원인이 되고 있는 전세값 상승도 잡아내겠습니다. 주택매매 활성화를 위해 민간택지에 건설하는 민영주택에 대한 전매제한을 완화하고 민영주택 청약가점제와 청약자격 요건 등 청약제도를 개선해서 신규주택 수요에 대한 진입 장벽을 낮출 것입니다. 주택시장 상황 등을 고려하여 ‘내집마련 디딤돌 대출’, 공유형 모기지 등 주택구입자금 지원도 강화할 것입니다. 또한, 공공임대 리츠 등 민간 자본 참여를 통해 공공임대 공급주체를 다양화하고, 쾌적하고 다양한 형태의 공공 임대주택을 공급하도록 하겠습니다. 아울러 임대소득 과세방식을 합리화해서 장기 민간 임대공급을 확대해 나가겠습니다. 월세가 확대되는 상황에 맞춰 주택임대시장의 패러다임도 바꿔 나갈 것입니다. 월세에 대한 소득공제를 대폭 세액공제로 전환하고 지원대상도 중산층까지로 확대하여 월세 부담을 대폭 낮추도록 할 것입니다. 내수활성화를 통해 균형경제를 이루기 위해서는 투자여건을 확충해야 합니다.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투자를 늘릴 수 있는 방법은 규제개혁 뿐입니다. 투자의 가장 큰 걸림돌인 규제를 반드시 혁파하겠습니다. 한 건 한 건씩 하는 규제 개선을 넘어 앞으로는 규제의 시스템 자체를 개혁해 나갈 것입니다. 규제를 신설하거나 강화할 경우에는, 반드시 그 만큼의 기존 규제를 폐지하거나 완화토록 하는 규제총량제를 도입하여 규제가 늘어날 수 없도록 할 것입니다. 모든 규제를 원점에서 재검토하여 불필요한 규제는 없애고 남아 있는 규제는 네거티브 방식으로 전환시킬 것입니다. 네거티브로의 전환마저 어려운 규제가 있다면, 존속기한이 끝나는 즉시 자동으로 효력이 상실되는 자동효력상실제를 도입하려고 합니다. 아울러, 지난 1월에 구축한 ‘규제정보 포털 사이트’를 통해 모든 규제의 상세한 현황과 정부의 규제개선 노력의 결과들을 한 곳에 모아 공개해서 국민들이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의견을 제시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이 모든 규제개혁의 과정 하나하나를 제가 규제장관회의를 통해 직접 챙겨 나갈 것입니다. 서비스산업에 대한 투자가 확대되고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그동안 제조업 중심으로 이루어진 재정과 R&D, 금융지원을 서비스산업에도 제조업 수준으로 적극 확대해서 서비스산업이 획기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하겠습니다. 특히, 청년들이 선호하는 일자리이면서 투자수요가 많은 보건.의료, 교육, 금융, 관광, 소프트웨어 등 5대 유망 서비스업은 민관합동 T/F를 통해 규제를 전면 재검토하고, 인허가부터 실제 투자가 이루어지는 전 과정에 걸쳐 불편이 없도록 원스톱 서비스를 지원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보건.의료 분야의 경우 경제자유구역 내 투자개방형 병원 규제를 합리화하고, 의료기관의 해외진출 활성화를 위한 종합적인 서비스 제공과 함께, 원격의료도 활성화할 것입니다. 상대적으로 침체되어 있는 지역투자를 살리기 위해 투자의 걸림돌을 과감히 제거하겠습니다. 우선 농지&산지 등에 대한 입지규제는 물론, 건설.유통.관광 등 지역 밀착형 산업에 대한 규제를 획기적으로 완화할 것입니다. 첨단.특화산업단지 조성과 노후산단 리모델링을 본격화하고, 지역에 대한 재정.금융 지원뿐만 아니라 지역 소재 기업들에 대한 인력과 연구 개발 등의 인센티브도 확대해 갈 것입니다. 경제 분야를 중심으로 중앙정부의 포괄보조사업도 대폭 확대하겠습니다. 내수활성화를 위한 핵심과제는 일자리 창출입니다. 특히, 선진국과 비교해 크게 취약한 청년과 여성의 고용률을 확실히 끌어 올려야 합니다. 먼저 청년의 취업 단계별 애로요인을 해소하여 청년 일자리 50만개를 창출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학벌보다 능력이 중시되는 사회를 만들겠습니다. 우선 금년말까지 800여개 모든 직무에 대해 국가직무능력표준(NCS) 개발을 완료하고, 현재 일부 기관에서 시행 중인 직무능력평가제를 단계적으로 확대해 가도록 하겠습니다.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취업할 수 있고, 취업 후에도 원하는 대학에 가서 공부할 수 있다면 청년실업문제가 많이 해소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위해 일과 학습 병행제도 참여기업과 학교에 대한 인센티브를 확대해서 선취업 후진학을 정착시키겠습니다. 선취업한 학생이 향후 학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전문대학 중 일부는 평생직업교육기관으로 전환을 유도하고 대학진학에서의 재직자 전형, 계약학과 등도 확대해 나갈 것입니다. 이와 더불어, 산업계 수요에 맞게 교육과정을 개편하고 특성화고와 마이스터고 등의 직업교육과정에 참여한 기업에 대해 세제지원을 강화할 것입니다. 산업단지별로 기업과 학교간 대화체계를 구축하여 시범사업을 시작하고 이를 단계적으로 늘려갈 것입니다. 아울러 청년 일자리 미스매치를 완화하기 위하여 청년층이 선호하는 서비스분야 일자리 확대와 함께 산업단지를 청년 친화적 근무환경으로 바꾸어 나갈 것입니다. 특히, 고졸 중소기업 재직자를 대상으로 과거 재형저축과 유사한 청년희망키움통장을 도입하여 중소기업 근무 유인도 강화할 것입니다. 우리 경제의 지속성장을 위해서는 여성 인력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관건입니다. 경력단절 문제만 해결되어도, 우리 경제는 10%의 여성 인적자원을 더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우수한 여성들이 출산과 육아로 경력단절을 겪지 않도록 생애주기별로 약한 고리를 해소하여, 여성 일자리를 150만개 만들겠습니다. 내년부터 시간제 보육반을 전국으로 확대하여 근로유형에 맞는 맞춤형 보육.돌봄 지원체계를 정립하고, 비정규직과 소규모 사업장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육아휴직이 보다 용이하도록 고용보험 지원을 늘리겠습니다. 육아휴직과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 활용을 촉진하기 위해 대체인력 뱅크를 확충하고, 활용기업에 대한 인센티브를 확대해 나갈 것입니다. 또한, 여성에 적합한 일자리 확산을 위해서는 시간선택제 일자리 활성화가 급선무입니다. 육아.임신.간병 등으로 근로 시간을 단축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전일제 근로자의 시간선택제 전환청구권을 부여하고 추후 전일제로의 복귀를 보장하겠습니다. 시간선택제로 채용된 근로자도 원하면 전일제로 전환할 수 있도록 전일제 근로자 신규 채용시 우선 고용기회를 확대해 나갈 것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신년기자회견에서 ‘통일은 대박’이라고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내년이면 한반도가 분단된 지 70년이 됩니다. 너무 오랜 시간 우리는 분단의 아픔과 고통을 안고 살아 왔습니다. 이번 이산가족 상봉을 통해서 보셨듯이 분단의 비극이 사랑하는 가족과의 천륜을 끊고, 만난 후에 또 다시 헤어져야 하는 뼈저린 아픔과 고통을 느끼게 하였습니다. 이제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와 대한민국의 대도약을 이루기 위해서는 새로운 한반도 시대를 여는 통일을 준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보다 먼저 통일을 이룬 독일도 오래전부터 하나씩 준비해 나가서 성공적인 통일시대를 열었습니다. 저는 앞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초석을 다지고 반드시 한반도의 통일을 이뤄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대통령 직속으로 통일준비위원회를 발족시켜 체계적이고 건설적인 통일의 방향을 모색해나가고자 합니다. 이곳에서 한반도의 통일을 준비하고 남북간의 대화와 민간교류의 폭을 넓혀갈 것입니다. 외교·안보, 경제·사회·문화 등 제반 분야의 민간 전문가들과 시민단체 등 각계 각층이 참여할수 있도록 하여 국민적 통일 논의를 수렴하고, 구체적인 ‘통일 한반도’의 청사진을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이를 통해 남북간, 세대간의 통합을 이루어 새로운 시대의 대통합을 이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국민 여러분,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은 우리 대한민국이 다시 한번 대도약하기 위해서 반드시 이뤄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제대로 실천한다면, 청년들은 교육.의료.금융.관광.컨텐츠 등 선호하는 서비스분야에서 일할 기회가 늘어날 것이며, 취업을 위한 스펙쌓기에서 벗어나서 선취업 후진학과 일.학습을 병행할 수 있는 기회가 확대되는 등 취업여건이 크게 나아질 것입니다. 여성들은 경력단절 걱정 없이 일할 수 있게 되고, 맞춤형 보육 확충으로 일과 가정이 양립될 수 있는 환경 속에서 안정적으로 직장을 다닐 수 있을 것입니다. 각 가정들도 그동안 어깨를 무겁게 해온 가계부채.주거비 부담이 덜어지게 될 것입니다. 벤처기업과 창업자들은 창의적인 아이디어만 있으면 이를 사업화하여 창업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될 것이며, 중소기업은 공정거래 환경 속에서 성장의 사다리를 타고 중견기업, 대기업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우리 국민들은 과거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고,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희생과 헌신으로 이 나라를 반석위에 올려놓았습니다. 이제 다시 한번 국민들의 역량과 지혜를 모아 경제 혁신에 함께 나서주시길 부탁드립니다. 3개년 계획을 아무리 촘촘히 준비했다 하더라도 정부 노력만으로는 실현하기 어렵습니다. 사회 각계각층의 적극적 지지와 동참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서로 조금씩 어려움을 나누고 작은 이득을 조금씩 내려놓고 공생과 상생의 길을 걸어가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특히 노동시장의 과제들은 노사정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상생하는 합의를 이뤄야만 가능합니다. 기업들도 정부의 규제개혁 보폭에 호응하여 보다 적극적으로 투자를 늘려 주시기 바랍니다. 국회의 협력도 필요합니다. 관련 법안이 적기에 통과되도록 간곡히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앞으로 정부는 혼신의 힘을 다하여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차질없이 진행하여 국민 행복시대를 열어 나가겠습니다. 3개년 동안 연차적으로 계획을 국민들에게 투명하게 알려서 모든 국민들의 이해와 관심 속에서 차질없이 해 나가겠습니다. 미래의 대한민국이 지금 세대와 후손들에게도 떳떳하고 자랑스런 나라. 경제적으로 윤택한 나라가 될 수 있도록 국민 여러분들이 힘을 모아주시고, 함께 나서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시간제 일자리 길을 묻고 답을 찾다(7)] 푸스카리에·타임크레디트 정착으로 근로시간 단축

    [시간제 일자리 길을 묻고 답을 찾다(7)] 푸스카리에·타임크레디트 정착으로 근로시간 단축

    벨기에 이동통신 시장의 44%를 차지(업계 1위)하고 있는 벨가콤은 1995년 민영화됐다. 여전히 정부가 50% 이상의 지분을 갖고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긴 해도 유로넥스트(Euronext) 주식시장에 상장(2004년)된 엄연한 민간기업이다. 이 회사의 1만 3968명(2013년 기준) 정규직 근로자 가운데 완전 전일제로 일하는 근로자는 현재 82.9%(1만 1586명)다. 전체 정규직 근로자의 17.1%인 2382명은 근로시간을 20~80% 줄여 파트타임(2288명)으로 일하거나 아예 휴직(94명)했다. 휴무 비율은 상대적으로 휴직이 쉬운 우리나라 공무원 휴직률(5~6%)보다도 높다. 4일 브뤼셀 벨가콤 본사에서 만난 세르게 피터스 인사담당 부사장은 그 비결에 대해 “벨기에에는 푸스카리에(pause-carrire, Career Break)와 타임크레디트(Time Credit)라는 제도가 있다”면서 “이 제도 때문에 근로자들은 쉽게 휴직을 하거나 근로시간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푸스카리에는 이른바 일자리 나누기 제도라고 할 수 있다. 벨기에의 실업률이 11%에 달했던 1985년 도입됐다. 근로자들은 별다른 이유 없이도 최소 3개월에서 최장 6년까지 쉬거나 일을 줄일 수 있게 됐다. 기업이 그 자리에 대체인력을 고용하도록 해, 실업자나 미취업 청년들에게 일자리와 직무훈련 기회를 주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였다. 타임크레디트는 민간기업에 다니는 근로자가 휴가 기간을 은행 잔고처럼 쓸 수 있도록 한 제도로 근로자들은 직장에 다니면서 재직 중 한 번(1년)은 아무 이유 없이 회사를 쉬거나 일을 반으로 줄일 수 있다. 그는 “비록 우여곡절이 있긴 했지만 두 제도로 근로자들의 복지 수준이 크게 향상됐고 눈치 안 보고 휴가를 내거나 근로시간을 줄일 수 있게 됐다”면서 “덕분에 일자리가 늘어나 고용률 향상에도 도움이 됐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벨기에 노동부에 따르면 푸스카리에나 타임크레디트를 활용한 근로자의 수는 도입 초기인 1986년엔 2019명에 불과했다. 그는 “내가 1993년 벨가콤에 입사했을 때만 해도 사람들이 푸스카리에를 쓰는 데 망설였고, 거의 쓰지 못했다”면서 “지금은 일이 많은 부서에 있어도 망설이지 않고 쉬겠다고 말한다”고 밝혔다. 푸스카리에로 근로시간을 줄이거나 장기휴가를 떠난 근로자 수는 2001년 11만 1194명, 2012년 27만 2016명으로 급증했다. 벨기에 중앙정부와 각 지방정부는 이렇게 쉬는 근로자에게 개인이 처한 상황에 따라 300~760유로(약 45만~110만원)의 ‘용돈’까지 지급하면서 휴가를 권장했다. 피터스 부사장은 “푸스카리에 제도가 도입될 당시에는 해고자가 많았는데, 정부의 강도 높은 유도책으로 제도가 안정화됐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정부는 기업이 근로자 한 명을 해고하면 해당 근로자가 평생 그 회사에 다니면서 받을 수 있는 모든 휴일수당을 한꺼번에 지급하게 하는 등 근로자 해고 요건을 강화했다. 이에 기업들은 해고 대신 근로자에게 휴가를 주거나 근로시간을 줄이게 됐다. 피터스 부사장은 “비유하자면 정부가 회사를 이혼한 못된 남편 취급하면서 거액을 위자료를 물도록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런 제도에도 벨기에의 고용률은 좀처럼 높아지지 않았다. 1992년 61.3%였던 고용률은 1998년 62.7%로 소폭 올랐지만 유럽연합(EU) 평균인 65.5%(1998년)에도 못 미쳤다. 피터스 부사장은 “기술 발전으로 노동력은 점점 덜 필요해졌고, 몇 년씩 쉬던 사람들은 아예 집에 눌러앉아 버리게 됐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결국 수년간의 논란 끝에 2002년 벨기에 정부는 푸스카리에를 공공영역에만 남겨 놓고 민간영역에는 타임크레디트라는 새 제도를 도입했다. 타임크레디트를 통해 일을 쉬거나 노동시간을 줄인 근로자는 정부로부터 500유로의 ‘용돈’을 받는다. 또 5년 한도에서 일을 최대 20%까지 줄일 수 있게 됐다. 다만 민간기업이라도 고령자 일자리 확대를 위해 50세 이상은 노동시간을 최대 80% 줄일 수 있도록 보장했다. 피터스 부사장은 “출산이나 가사에 시간을 할애하도록 하면서도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유도한 정책”이라면서 “벨기에 고용정책 기조가 일과 가정의 양립, 고령자 고용률 높이기로 바뀐 결과”라고 설명했다. 2002년 타임크레디트 제도 도입 당시엔 현재 우리나라와 비슷한 65.0%였던 벨기에의 고용률은 2008년 68.0%로 6년 새 3.0% 포인트 높아졌다. 하지만 2012년부터 벨기에 정부는 국가 부채 증가 등에 따라 타임크레디트를 크게 축소하는 정책을 내놨다. 출산이나 가족의 와병 등 적절한 이유가 있어야만 타임크레디트 사용이 가능해진 것이다. 다만 2011년 11월 28일 이전 회사에 들어온 사람은 여전히 이전 정책의 혜택을 받는다. 피터스 부사장은 “선거 때마다 일하지 않는 근로자에 대한 과도한 혜택을 줄여야 한다는 의견들이 제시되지만 결국 한번 늘린 복지를 줄이는 일은 쉽지 않다”고 말했다. 32년째 벨가콤에서 일하며 현재 주 4일 파트타임 근로를 하고 있는 앤 로지스(55·여)씨는 1985년 푸스카리에가 막 시작됐을 때 2년, 1990년대 둘째가 태어났을 때 2년 등 총 4년 동안 아예 쉬거나 50~80%만 일했다. 그는 “파트타임으로 일하다 언제든지 풀타임으로 복귀할 수 있다”면서 “현재 벨기에는 아주 높은 직급으로 올라가지 않는다면 마음만 먹으면 직장을 가질 수 있고 마음 편하게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점 때문에 벨기에에서 비자발적으로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근로자 비중은 10.7%(2012년 기준)다. EU 평균(27.7%)에 비해 낮다. 특히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인 2008~2012년 유럽의 비자발적 파트타임 근로자 비중은 상승 추세(25.3→27.7%)인 반면, 벨기에의 비자발적 파트타임 근로자 비중은 같은 기간 14.4%에서 10.7%로 떨어졌다. 글 사진 브뤼셀 김양진 기자 ky0295@seoul.co.kr
  • [열린세상] 2014년에는 희망을 이야기하자/정재훈 한국산업기술진흥원장

    [열린세상] 2014년에는 희망을 이야기하자/정재훈 한국산업기술진흥원장

    연말연시 소외계층을 위한 기부 현황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서울 광화문 ‘사랑의 온도탑’의 온도가 얼마 전 100도를 넘겼다. 목표액인 3110억원을 훌쩍 돌파해 역대 최고 금액을 달성했다고 한다. 겨울 날씨에 움츠러든 사람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해주는 소식이다. 기업들의 꾸준한 선행도 선행이지만, 그 이상으로 넉넉하지 않은 개인들의 참여 비중이 부쩍 늘어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연달아 전해지는 얼굴 없는 천사들의 고액 기부 행진 속에서 우리는 따뜻한 공동체의 희망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 그러나 늘어나는 기부금으로 우리 사회의 저변을 추스르기에는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이 녹록지 않다. 저출산·고령화 추세는 오래전 고착화됐고, 저성장 경제구조도 막기 어려운 흐름이다. 이미 구조화된 청년실업 문제 역시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따라서 이 시대의 진정한 희망 찾기는 결국 ‘반듯한 일자리’로 직결된다. 기부가 돈이나 물건의 형태로 사랑을 나누는 행위라면, 일자리는 장기적인 자립 기반이다.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것은 더 적극적인 형태의 사회공헌 활동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일자리는 곧 가족 모두의 ‘희망’이다. 고용의 불안정은 곧 정치·사회의 불안정으로 이어진다. 정부가 고용률 70% 달성을 위해 다각도로 노력하는 것도 일자리가 궁극적으로 튼튼한 복지망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반듯한 일자리는 어떻게 해야 많이 만들 수 있을까. 지금처럼 저성장 구조에서 누구든지 가고 싶어하는 좋은 일자리 찾기란 어려운 일이다. 원론적으로는 새로운 고용 엔진으로 떠오르고 있는 중소·중견기업 가운데 글로벌 전문기업의 꿈을 키워가는 기업들에서 반듯한 일자리가 나올 가능성이 가장 크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의 틀을 바꾸어 보면 분명히 여러 갈래의 길이 있다. 우선 출산 및 육아 부담으로 말미암은 여성인력 경력단절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할 필요가 있다. 특히 산업기술 연구개발(R&D) 분야에 종사하는 여성 인력은 일반 직장여성에 비해서도 일터로의 복귀율이 더욱 저조한 편이다. 경영자나 여성 경력 단절자 모두 시간제 일자리를 활용하면 중소기업의 연구 인력난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비수도권에서도 낙후지역이라고 낙담만 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 창조경제는 앞선 하이테크 산업을 통해서만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공예, 식품가공, 관광코스 등 각 지역만의 특징 있는 전통산업도 고민하고 활용하면 얼마든지 고용 창출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고 본다. 또한, 일자리 ‘만들기’ 만큼이나 일자리를 ‘찾아서 맺어주는 것’도 중요하다. 청년 실업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일자리 미스매치를 바로잡는 것이 출발점이다. 정부는 그 과정에서 구인 기업과 구직자들이 정보 탐색에 드는 비용과 시간을 줄여주는 한편, 원하는 조건의 기업과 구직자들이 서로 만날 수 있도록 중매인 역할을 충실히 하면 된다. 지역별, 대학별로 아주 작게 온·오프 모임부터 시작하는 게 좋을 것이다. 필자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지인들과 직원들에게 ‘우리가 가진 시간의 단 1%라도 따뜻한 공동체 실현을 위해 할애하자’고 강조한다. 그 밑바탕에 있는 정신은 사랑, 나눔, 희망, 이른바 ‘사·나·희’다. 사랑은 일에 대한, 가족에 대한, 그리고 지역공동체와 주변의 젊은이에 대한 애정이다. 그리고 나눔은 꼭 거액의 기부여야 할 필요가 없다. 작은 물건이라도 기왕이면 사회적 기업·장애인기업 제품을 구매하는 것, 자신의 지혜, 재능을 주변과 나누는 것, 잘 아는 기업과 젊은 학생을 연결해주는 것도 큰 의미다. 이 같은 사랑과 나눔의 실천은 곧 희망을 실현하는 밑천이 된다. 아무리 작은 노력과 행동이라도 그 소중한 행동이 씨앗과 불씨가 돼서 나중에 임계치에 도달하면 사회 전체적으로 미치는 효과는 엄청나리라 생각한다. 이제 곧 설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능력을 활용해 ‘사·나·희’를 실천할 방법은 없는지 관심을 두고 주위를 둘러보아야 할 때다. 모두가 어려운 시기이지만 그래도 2014년에는 희망을 꿈꾸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누구나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 신 나게 일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길 소망해본다.
  • [격동의 동북아-석학에게 길을 묻다] 데라시마 지쓰로 일본총합연구소 이사장

    [격동의 동북아-석학에게 길을 묻다] 데라시마 지쓰로 일본총합연구소 이사장

    지난해 말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강한 일본’을 표방한 아베 정권은 올해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강력 드라이브를 걸 것으로 보여 한국·중국과의 관계에 먹구름을 한층 드리우고 있다. 데라시마 지쓰로(67) 일본총합연구소 이사장으로부터 2014년 ‘아베호’가 이끄는 일본의 운명과 동북아 정세에 대한 전망을 들었다. 데라시마 이사장은 일본 내에서도 손꼽히는 글로벌 감각을 지닌 석학이다.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그야말로 전격적이었다. 한국·중국·미국이 모두 적어도 올봄까지는 참배가 없을 것이라고 봤지만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일본인들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제2차 세계대전의 전승국이 갖는 공통의 역사 인식이 있는데,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이란 것이다. 일본은 도쿄 재판을 받아들이고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맺으며 국제사회에 복귀했다. 야스쿠니 신사에 A급 전범이 합사돼 있는 한 “일본의 속내는 예전의 일본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 아니냐”는 시선이 있을 수밖에 없다. 국가의 최고지도자가 “나는 평화를 사랑하고,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미국의 워싱턴포스트도 언급했지만 야스쿠니 신사는 알링턴 국립묘지가 아니다. 지난해 10월 ‘미·일 안전보장협의위원회(2+2)’에 참석하기 위해 방일한 존 케리 국무장관과 척 헤이글 국방장관이 미국 고위 관리로는 처음으로 지도리카후치 전몰자 묘역에 참배한 것은 “우리는 야스쿠니 신사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메시지인 것이다. 일본인에게는 그런 감각이 없지만,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마치 독일의 지도자가 히틀러 묘역을 참배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아베 총리는 국회에서 “A급 전범 중에 일본인은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제2차 세계대전 전승국은 점점 불안해진다.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다면 A급 전범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필요하다. 또 아베 총리가 국가의 지도자로서 ‘존숭의 염’을 표한다면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돼 있는 4만 9000명의 한국·타이완인에 대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존숭의 뜻을 나타낼 것인지도 생각해야 한다. 일본인 참전자들은 유족 연금 등 일정한 배상을 받고 있지만 그들은 잊혀졌다.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한 것은 올해 자신의 본색을 전면에 드러내겠다는 의지로도 읽히는데, 아베 총리가 최종 목표로 삼고 있는 헌법 개정은 이뤄질 것으로 생각하나. -헌법을 절대로 고쳐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도 자주 헌법을 수정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전후 일본이 평화 국가로서 쌓아 온 헌법은 확실히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본은 지금 전후 민주주의의 시련을 겪고 있다. 전후 태생이 전체 인구의 80~90%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질문받고 있다. 다음 세대의 아이들에게 어떤 일본을 물려줄 것인지가 중요하다. 헌법을 개정해 옛날의 일본으로 회귀시키고 싶다고 생각하는 일본인이 많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헌법을 개정해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들자는 생각은 분명히 좌절될 것이라고 본다. 전후 일본을 짊어지고 온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다. →외부적으로도 중국이 대국화를 진행하고 있고, 미국은 ‘아시아 중시 외교’에도 불구하고 예전만큼의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등 동북아의 상황이 안정적이지는 않다. 올해 한·중·일과 미국에 대한 전망은 어떤가. -일본은 중국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과 연대한다는 생각이 강하지만, 미국은 일본을 위해 자국 청년의 피를 흘려 가며 중국과 전쟁을 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미국은 일본으로부터의 기대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열도가 일본의 실효 지배를 받고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중국의 입장도 배려하기 위해 영유권과 관련된 중국의 입장을 부정하지도 않는다. 이런 미국과 일본의 온도차는 지난해 말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설정 논란에서 훌륭하게 입증됐다. 미국이 유사시에 일본을 지켜 줄 것이라는 생각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다. 한국의 대통령 역시 경제적으로 이해관계가 있는 중국 편에 서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외교를 하고 있다고 보는데, 과도한 기대와 과도한 의존은 어느 나라에도 실수라는 것을 한국도 곧 알게 될 것이다. 최근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도 저서를 통해 같은 내용을 얘기했다. 지금 일본에서는 ‘미·중 신냉전시대’가 오기 때문에 미국과 손을 잡을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그런데 미·중 대립의 시대가 온다는 인식은 매우 어설프다. 미·중은 서로를 필요로 한다. 중국은 미국과의 관계를 심화함으로써 자신의 힘을 돋보이게 하고, 미국 역시 중국과의 관계를 강화함으로써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힘을 확대하려는 것이다. 지금 세계는 냉전시대의 미·소 양강 구조나 미국의 1강 지배,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의 다극화 구조 등으로 설명할 수 없다. 세계는 ‘무극화’되고 있다. →그렇다면 ‘무극화’되는 상황에서 한국과 일본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한·일은 상호 네트워크형 발전의 틀 안에 있다고 생각한다. ‘상호의존’이다. 삼성, LG 등 대기업은 일본의 소재나 기술을 기반으로 하면서 여기까지 성장했다. 일본도 주변에 한국, 타이완 같은 산업국가가 있었기 때문에 발전할 수 있었다. 유럽과 미국에서 보면 한국과 일본, 타이완은 상호 의존의 네트워크 안에 있다. 서로 적대하면서 에너지를 낭비할 게 아니라 상호 협력해야 한다. ‘단계적인 접근법’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겠는데, 부정적인 얘기로 부딪치는 것이 아니라 시너지 효과가 나는 사안부터 힘을 합치는 식이다. 유럽에서 배울 점이 많다. 프랑스와 독일도 오랜 기간 동안의 증오로 절대 화해할 수 없다고 했지만,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에서 출발해 지금은 유럽연합(EU)으로 통합하지 않았나. →2014년 동북아의 키는 누가 쥐고 있나. -러시아다. 러시아가 태평양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한·중·일 삼각 구도에 러시아가 가세해 게임이 더 복잡해졌다. 러시아는 지난해 3월 약 380조원을 투입하는 극동 및 바이칼 지역 개발 프로그램을 승인했으며 극동 시베리아 송유관 개발방안 등을 통해 동북아 에너지 통합 노력을 하고 있다. 일본만 해도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가 현재 원유·LNG 전체의 10%를 넘어섰고, 2020년까지 20%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 정세는 어떻게 될 것으로 보나. -한국 언론에는 처음 말하는 것이다. 독일의 헬무트 슈미트 전 총리와 6~7년 전에 만났을 때 그가 “북한 문제는 별것 아니다”라고 말했다. 냉전 시대 북한은 뒤로는 중국과 소련을 두고 있었고, 김일성 주석의 사상에 공명하는 세계의 젊은이가 있었다.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나 체 게바라처럼 세계 젊은이의 마음을 설레게 하며 ‘정당성’을 부여하는 메시지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냉전이 끝나고 20년 동안 북한은 급속하게 정당성을 잃었다. 2014년 북한은 점점 정당성을 잃고 부유하고 있다. 따라서 어쩔 수 없이 중국의 영향력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군사 독재국가의 방향으로 향하는 지금 북한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지원이 없어서는 안 된다. 국제사회의 시각으로 보면 중국의 주변 국가가 되고 있다. 글 사진 도쿄 황성기 특파원 marry04@seoul.co.kr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데라시마 지쓰로는 일본을 대표하는 비평가 중 한 명이다. 다마대학 학장, 미쓰이물산 전략연구소 회장 등을 겸임하고 있고 방송과 신문 등을 통해 현안을 명쾌하게 풀어 주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1947년 홋카이도에서 태어나 와세다대 정치학과 학·석사를 수료하고 1970년대 엘리트들이 몰렸던 종합상사 미쓰이물산에 입사했다. 뉴욕 본점 정보담당 과장과 워싱턴 사무소장을 지내며 1990년대 대부분을 미국에서 보냈다. 미국 근무를 마치고 1998년 ‘국가 논리와 기업 논리’라는 책을 펴내 주목받았다. 2009년부터 다마대학 학장, 2010년부터 일본총합연구소 이사장을 맡아 활동하고 있다.
  • [2013년 뜬 별·진 별] 샛별보다 화려한 OB의 귀환… 정치·경제·외교 ‘엄마 리더십’

    [2013년 뜬 별·진 별] 샛별보다 화려한 OB의 귀환… 정치·경제·외교 ‘엄마 리더십’

    ■ 별들이 떴다(국내) 올해는 ‘올드보이’의 귀환이 도드라진다. 정치권뿐 아니라 수많은 스타들이 자고 나면 사라지는 가요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우선 ‘가왕’ 조용필이 눈에 띈다. 올해 데뷔 45주년을 맞는 조용필은 10년 만에 19집 앨범 ‘헬로’(Hello)를 발표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수록곡 헬로와 ‘바운스’(Bounce)는 이례적으로 음원차트 1위를 휩쓸었고 앨범은 지난 4월 발매 이후 25만장 넘게 판매됐다. 조용필은 바운스로 23년 만에 지상파 방송사 가요 프로그램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걸그룹 크레용팝도 ‘빠빠빠’로 뜨거운 한 해를 보냈다. 헬멧을 쓰고 직렬5기통 춤을 추며 빌보드 K팝 차트 1위에 올랐다. 정치권에서는 장강의 물결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70대 인사’들이 눈길을 모은다. 지난 8월 청와대 입성 이후 ‘기춘대원군’으로 자리 잡은 김기춘 비서실장이 주인공이다. 박근혜 대통령을 자문하는 원로그룹 ‘7인회’의 멤버였던 김 비서실장은 박 대통령을 가까운 거리에서 보좌하며 막강 실세로 군림하고 있다. 친박계 좌장이자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 대표 출신인 서청원 의원도 10·30 재·보선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당내 최다선(7선)이자 박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인 그의 정치 일선 복귀는 ‘원로 측근정치’의 서막을 예고했다. 19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은 물론 차기 당 대표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올해 국민의 사랑과 지지를 받은 사람으로 권은희 서울 송파경찰서 수사과장도 꼽을 만하다. 올해 정치권의 최대 이슈였던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 의혹 사건과 관련해 경찰 수뇌부의 은폐·축소 지시를 폭로했다. 이에 대해 국민들은 권 과장에게 편지와 꽃, 빵, 치킨 등을 보내며 열렬한 성원을 표시했다. 재계에서는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이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으로 취임하며 비상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별들이 떴다(국외) 올 한 해 국제무대에서는 정치·경제·외교 분야에서 여성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2005년 독일 최초의 여성 총리이자 최연소 총리에 이름을 올린 앙겔라 메르켈(60) 총리가 9월 총선에서도 승리해 3선 연임을 달성했다. 이변이 없다면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를 제치고 유럽 최장기 여성 총리가 된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발판 삼아 독일을 유럽 최강국에 올려놓았고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한 ‘엄마(Mutti) 리더십’으로 유럽연합(EU)을 지배하는 여제(女帝)가 됐다. 칠레에서는 장군의 딸, 유엔 여성기구 총재, 남미 최초의 직선 여성 대통령 등 화려한 이력을 가진 미첼 바첼레트(62)가 ‘피노체트 독재정권의 딸’ 에벨린 마테이를 제치고 정권을 되찾았다.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 등과 함께 ‘남미 ABC’(아르헨티나·브라질·칠레)를 이끄는 중도좌파 여성 지도자로 떠올랐다. ‘세계 경제 대통령’이라 불리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연준) 의장에는 재닛 옐런(67) 연준 부의장이 임명됐다. 올해로 100년째인 연준 역사상 여성 의장은 최초다. 물가 안정보다 고용 확대를 더 중시해 ‘매보다 매서운 비둘기’로 불리는 옐런 예정자는 내년 1월 31일 임기가 끝나는 벤 버냉키 의장의 뒤를 이어 4년간 연준을 이끌 예정이다. 여성의 교육받을 권리를 주장하다 탈레반 무장대원의 총에 맞은 파키스탄의 말랄라 유사프자이(16)는 영국에서 청소년 운동가로 새 삶을 이어가며 건재를 과시했다. “총으로 침묵을 강요할 수 없다”는 유엔에서의 명연설로 다시 주목을 받은 말랄라는 유럽의회가 주는 최고 권위의 사하로프 인권상을 받았다. 최재헌 기자 goseoul@seoul.co.kr ■ 별들이 졌다(국내) 다사다난했던 2013년이 저물어간다. 우리와 함께 호흡해 왔던 스타들이 사고 혹은 지병 등으로 우리 곁을 떠났고 뜻하지 않게 명예가 추락한 인물도 있었다. 문화계에서는 한국 추상화의 대가인 이두식 홍익대 회화과 교수가 2월 23일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40년 넘게 한국 추상미술의 맥을 이어온 그는 우리 고유의 정서가 담긴 화려한 오방색(적·청·황·백·흑)을 사용해 밝고 역동적인 작업을 펼쳐온 것으로 유명하다. 영화계에서는 박철수 감독이 2월 19일 음주운전 차량에 치이는 비극적인 사고로 유명을 달리해 안타까움을 안겼다. ‘오세암’(1990년), ‘301, 302’(1995년), ‘학생부군신위’(1996년), ‘녹색의자’(2003년) 등 그의 영화는 소재도 장르도 다르지만 그만의 실험정신이 스며들어 있었다. ‘영원한 청년’인 소설가 최인호는 지병인 침샘암과 투병하다 9월 25일 ‘별들의 고향’으로 돌아갔다. ‘고래 사냥’, ‘겨울 나그네’, ‘깊고 푸른 밤’ 등 그의 작품은 드라마와 영화 등으로 제작돼 사랑을 받았고 그를 ‘청년 문화의 기수’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방송가에서도 안타까운 소식이 이어졌다. ‘국민 DJ’ 이종환은 5월 30일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별이 빛나는 밤에’, ‘지금은 라디오시대’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전 국민을 울리고 웃겼다. ‘드라마계의 거장’ 김종학 PD는 7월 23일 스스로 목숨을 끊어 충격을 안겼다. 정치 분야에서는 ‘인턴 성추행’ 사건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첫 해외순방 성과를 퇴색시킨 윤창중 전 대변인이 ‘진 별’로 꼽힌다. 이 사건은 해외 토픽에 소개되면서 윤 전 대변인의 명예를 추락시켰을 뿐만 아니라 나라까지 망신시켰다. 재계에서는 재계 서열 38위의 동양그룹 현재현 회장이 사기성 회사채 발행과 고의적인 법정관리 신청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으며 불명예를 얻었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별들이 졌다(국외) 올해는 전 세계인의 존경을 받거나 현대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던 인물들이 대거 타계해 아쉬움을 줬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남성 지도자들에게도 암울한 한 해였다. 유럽 첫 여성 총리, 영국 헌정 사상 세 차례 연임 기록을 세우며 1979년부터 1990년까지 영국을 이끈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전 총리는 오랜 기간 지병을 앓다가 4월 8일(현지시간) 87세를 일기로 서거했다. 신자유주의를 표방한 ‘대처리즘’을 도입해 고질적인 ‘영국병’을 고쳤다는 업적과는 별개로 과도한 민영화로 사회불평등을 심화했다는 상반된 평가를 받았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46년 아파르트헤이트(흑인차별정책)를 무너뜨린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도 폐렴 합병증으로 고통받다 12월 5일 영면했다. 퇴임 후 화해와 포용을 몸소 실천하며 전 세계로부터 존경을 받은 만델라를 기념해 유엔은 그의 생일인 7월 18일을 ‘만델라의 날’로 지정했다.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완전 무상의료·무상교육 정책을 펼쳐 ‘빈민의 영웅’으로 추앙받았던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도 유명을 달리했다. 중남미 반미좌파 동맹의 맹주로서 조지 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을 향해 “악마, 살인자”라고 일갈했던 그는 암으로 숨이 끊어지기 전 “제발 죽지 않게 해 달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겼다. 20년간 세 번이나 총리직에 오르며 이탈리아 정치사에 한 획을 그었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77)도 초라한 말년을 맞게 됐다. 지난 11월 세금 횡령 혐의로 대법원 유죄 확정 판결을 받자 동료 이탈리아 상원은 즉각 그의 의원직을 박탈해 버렸다. 불체포특권을 상실한 탓에 미성년자 성매매 등 다른 형사재판 결과에 따라 감옥행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최재헌 기자 goseoul@seoul.co.kr
  • [장성택 처형]장성택 사형집행에 딸 ‘장금송’ 자살사건 부각

    [장성택 처형]장성택 사형집행에 딸 ‘장금송’ 자살사건 부각

    [장성택 처형]장성택 사형집행에 딸 ‘장금송’ 자살사건 부각 북한 정권 2인자로 군림했던 장성택이 13일 사형집행을 당한 뒤 딸 ‘장금송’ 자살사건이 부각되고 있다. 장성택은 사형집행으로 형장의 이슬이 되기 전 김일성 주석의 맏딸이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여동생인 김경희의 남편이 되면서 인생이 바뀌었다. 장성택은 1972년 김일성종합대학 시절부터 연애한 김경희와 결혼, 최고지도자의 가문에 발을 들여놓았다. 장성택은 이날 사형집행으로 운명을 달리했지만 당시에는 당에서 출세가도를 달려 청년사업부장과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등 요직을 꿰찼다. 장성택은 김정일 위원장 시절인 2004년에는 ‘분파행위’를 이유로 업무정지 처벌을 받기도 했지만 2년 만에 복귀해 2인자의 자리를 다시 굳혔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집권 이후에는 국방위 부위원장, 당 행정부장, 인민군 대장 등 화려한 직함을 걸치고 김 제1위원장의 ‘후견인’ 노릇을 했다. 하지만 부인 김경희와의 사이는 좋지 않았다. 약 30년간 별거생활을 할 정도로 거의 남남이나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의 사이가 갈라진데는 딸의 죽음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늘씬한 몸매로 서구적 미인의 모습을 한 장성택의 딸 장금송은 2006년 8월 29살의 나이로 프랑스 파리의 한 빌라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해외 보도에 따르면 장성택의 딸 장금송은 집안에서 “출신 성분이 나쁘다”며 사랑하는 남자와의 결혼을 반대하고 평양 귀환까지 독촉받자 이를 비관해 자살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면제를 과다복용한 장금송은 사망 이틀 만에 그를 보살피던 운전기사와 가정부에게 발견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풍운아’ 장성택 마지막 모습은…초라한 사형수

    ‘풍운아’ 장성택 마지막 모습은…초라한 사형수

    ’풍운아’ 장성택 마지막 모습은…초라한 사형수 북한 김정은 정권의 ‘2인자’로 불렸던 장성택의 마지막 모습은 너무나 초라했다. 군사재판 피고인석에서 양손을 포승줄에 묶이고 국가안전보위부원으로 보이는 2명에게 목과 팔을 잡힌 채 선 초라한 모습은 그가 북한 정권의 실세였던지를 의심케 할 정도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13일 공개한 재판정 사진들을 보면 장성택은 남색 인민복 차림에 평소처럼 검은빛이 도는 안경을 꼈지만,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수행하며 공개활동을 하던 모습과 비교하면 머리숱도 많이 줄고 눈에 띄게 수척해졌다. 고개와 허리를 약간 숙인 채 눈을 감은 얼굴은 모든 것을 체념하고 처형만 기다리는 영락 없는 사형수의 모습이었다. 장성택의 맞은 편에는 그에게 사형 선고를 내린 재판관 3명이 인공기를 배경으로 근엄한 표정으로 나란히 앉아 있었다. 이들의 앞에는 서기 1명 앉아 재판 내용을 기록했다. 북한에서 40여 년 동안 2인자로 군림하던 장성택은 이렇게 초라한 모습을 남긴 채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장성택은 1972년 김일성종합대학 시절부터 연애한 김일성 주석의 맏딸이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여동생인 김경희 노동당 비서와 결혼하면서 인생이 바뀌었다. 최고지도자의 가문에 발을 들여놓은 그는 당에서 출세가도를 달려 청년사업부장과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등 요직을 꿰찼다. 김정일 위원장 시절인 2004년에는 ‘분파행위’를 이유로 업무정지 처벌을 받기도 했지만 2년 만에 복귀해 2인자의 자리를 다시 굳혔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집권 이후에는 국방위 부위원장, 당 행정부장, 인민군 대장 등 화려한 직함을 걸치고 김 제1위원장의 ‘후견인’ 노릇을 했다. 그러나 결국 조카인 김 제1위원장에 의해 ‘국가전복음모죄’로 몰려 모든 직무에서 해임되고 출당·제명된 지 나흘 만에 처형됐다. 그야말로 ‘풍운아’의 삶이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장성택 사형집행…딸 장금송 자살 ‘파란의 가족사’

    장성택 사형집행…딸 장금송 자살 ‘파란의 가족사’

    장성택 사형집행…딸 장금송 자살 ‘파란의 가족사’ 북한 정권 2인자로 군림했던 장성택이 13일 사형집행을 당한 뒤 딸 ‘장금송’에 대해 네티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장성택의 사형집행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딸 장금송과 30년 동안 사실상 남남처럼 지냈던 부인 김경희 등 파란의 가족사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 장성택은 사형집행으로 형장의 이슬이 되기 전 김일성 주석의 맏딸이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여동생인 김경희의 남편이 되면서 인생이 바뀌었다. 장성택은 1972년 김일성종합대학 시절부터 연애한 김경희와 결혼, 최고지도자의 가문에 발을 들여놓았다. 장성택은 이날 사형집행으로 운명을 달리했지만 당시에는 당에서 출세가도를 달려 청년사업부장과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등 요직을 꿰찼다. 장성택은 김정일 위원장 시절인 2004년에는 ‘분파행위’를 이유로 업무정지 처벌을 받기도 했지만 2년 만에 복귀해 2인자의 자리를 다시 굳혔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집권 이후에는 국방위 부위원장, 당 행정부장, 인민군 대장 등 화려한 직함을 걸치고 김 제1위원장의 ‘후견인’ 노릇을 했다. 하지만 부인 김경희와의 사이는 좋지 않았다. 약 30년간 별거생활을 할 정도로 거의 남남이나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의 사이가 갈라진데는 딸의 죽음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늘씬한 몸매로 서구적 미인의 모습을 한 장성택의 딸 장금송은 2006년 8월 29살의 나이로 프랑스 파리의 한 빌라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장성택의 딸 장금송은 집안에서 “출신 성분이 나쁘다”며 사랑하는 남자와의 결혼을 반대하고 평양 귀환까지 독촉받자 이를 비관해 자살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면제를 과다복용한 장금송은 사망 이틀 만에 그를 보살피던 운전기사와 가정부에게 발견됐다. 장성택은 평소 여자 문제로 김경희와 관계가 좋지 않았다. 여기에다 장금송은 두 사람의 무남독녀였기 때문에 두 사람은 회복할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달았을 것으로 보인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2014 브라질월드컵 조 확정] 이번엔 감독으로… 홍명보 - 빌모츠 16년만에 리턴매치

    [2014 브라질월드컵 조 확정] 이번엔 감독으로… 홍명보 - 빌모츠 16년만에 리턴매치

    ‘홍명보와 빌모츠, 16년 전 프랑스월드컵의 데자뷔?’ 벨기에는 아홉 차례나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한국과 조별리그에서 세 번째 경기에서 만나게 될 팀이다. 한국과 조별리그를 치렀거나 예정된 곳은 모두 22개팀. 벨기에와는 어떠했을까. 홍 감독의 역대 전적은 1무1패. 1990년 이탈리아, 98년 프랑스대회 때 만났다. 이탈리아대회 조별리그 E조 첫 경기에서 한국은 0-2로 완패했지만 8년 뒤 역시 E조의 프랑스대회 조별리그 세 번째 경기에서는 1-1로 비겼다. 당시 피끓던 동갑내기 청년이었던 홍명보와 마르크 빌모츠(이상 44)도 두 차례의 대결에 모두 참가했다. 16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이들은 양국 대표팀 감독이다. 둘은 각각 공격과 수비의 ‘새별’이었다. 이탈리아대회 당시 홍 감독은 선발 출전해 풀타임을 뛰었지만 빌모츠 감독은 벤치를 지켰다. 맞대결이 펼쳐진 건 8년 뒤인 프랑스대회 때. 그러나 한국은 1차전에서 멕시코에 1-3으로, 네덜란드에 0-5로 패하면서 차범근 전 감독이 중도에서 경질돼 한국으로 불려 들어왔다. 벨기에는 한국을 2점차 이상으로만 제치면 조 2위로 16강에 오르게 될 상황이었다. 벨기에는 사활이 걸린 마지막 경기에서 시작 7분 만에 선제골을 넣어 승기를 굳히는 듯했다. 태극전사들은 ‘투지’로 버틸 수밖에 없었다. 수비수 이임생이 머리에서 피가 나 붕대를 감으면서도 부심에게 “빨리 다시 그라운드에서 뛰게 해달라”고 울부짖으며 재촉하던 모습은 지금도 축구팬들의 기억에 남아 있다. 결국 후반 27분 하석주의 왼발프리킥을 유상철이 오른발로 차넣어 동점골. 유상철의 움직임을 간파하지 못했던 빌모츠의 실수 덕이었다. 자신의 실수로 16강을 날린 빌모츠는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고, 중앙 수비수로 나선 홍 감독은 추가 실점을 막기 위해 쉴 새 없이 뛰고 또 뛰었다. 빌모츠 감독은 4년 뒤인 한·일 월드컵에서야 16강의 꿈을 이룬 뒤 이듬해 독일 분데스리가 샬케04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이후 정계에 진출했지만 떠돌다 축구계로 복귀, 대표팀 감독에 올랐다. 홍 감독은 2002월드컵에서 4강신화를 쓴 뒤 빌모츠 감독보다 1년 늦게 은퇴, 행정가의 길을 걷는가 싶더니 우여곡절 끝에 대표팀을 이끌게 됐다. 20년이 넘게 이어진 두 사람의 축구 인연. 홍 감독은 세 번째 만남을 어떻게 마무리할까. 두 감독은 브라질대회에서도 16강의 갈림길이 될 수도 있는 조별리그 H조 마지막 경기에서 또 만난다. 최병규 기자 cbk91065@seoul.co.kr
  • 실각한 장성택은 누구?…北 2인자에서 실각하기까지(종합2보)

    실각한 장성택은 누구?…北 2인자에서 실각하기까지(종합2보)

    북한 내 2인자로 알려졌던 장성택(67)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군부와의 권력 다툼에서 밀려나 실각한 것으로 3일 알려졌다. 장성택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여동생 김경희의 남편으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고모부다. 함경남도 문천군 출신으로 김일성종합대학 정치경제학부를 졸업하고 1969년에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유학하는 등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김경희와는 대학 때 만나 1972년 결혼했다. 최근 실각 이전까지 북한 내 2인자로 권력 핵심에 있었지만 장성택의 정치적 위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김경희와 결혼 전 김일성 주석이 교제를 반대해 장성택을 원산 농과대학으로 쫓아낸 적이 있었다. 그러나 끝내 김경희와 결혼하면서 장성택은 북한의 외화벌이를 담당했다. 장성택이 세계 각국에 주재 중인 북한 대사관에 외화벌이를 독촉하면서 외교관들이 마약 거래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장성택은 1978년 동평양의 외교부 초대소에서 자신의 측근을 모아 연회를 열다 강선제강소로 쫓겨난 적도 있다. 당시 김정일은 “니(장성택)가 뭔데 내 흉내를 내느냐”고 불같이 화를 내면서 장성택을 강선제강소 작업반장으로 쫓아냈다. 장성택을 구원해준 것은 김정일의 장남 김정남의 어머니인 성혜림으로 1980년 김정일의 생일날 장성택을 불러와 “용서해달라”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장성택이 다시 실세가 된 것은 1989년 평양세계청년학생축전 전후다. 장성택은 평양 재건설 사업을 맡아 기일 내 공사를 마쳤고, 김정일은 그를 ‘노력 영웅’으로 칭하며 3대혁명소조부장(1989년),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1995년) 등으로 중용했다. 장성택은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다가 2004년 초 측근의 호화 결혼식에 참석한 것이 발각되면서 ‘분파 조장’ 혐의로 실각했다. 실각 혐의는 ‘권력욕에 의한 분파행위’, 즉 사적 파벌을 형성했다는 이유로 업무정지 처벌을 받았다. 당시 측근이었던 최룡해 현 군 총정치국장 등도 장성택과 함께 처벌을 받았다. 이 때의 실각은 리제강 북한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의 견제 때문이라는 속설이 있다. 이에 리제강이 2010년 6월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그의 죽음이 장성택이 꾸민 ‘사고로 위장한 암살설’이 떠돌기도 했다. 실각했던 장성택은 2006년 당 제1부부장으로 복귀, 2007년 당 행정부장으로 승진하면서 다시 북한 권력 핵심을 차지했다. 이와 관련 김정일이 말년에 김정은의 후계 체제를 다지기 위해 친척들과 ‘혁명 2세대’(김일성 측근 후손)를 중용하는 경향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는 게 국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김정일 사망 직후 장성택이 명실상부한 ‘북한 내 2인자’임을 증명하는 모습이 여럿 포착됐다. 김정은이 김정일의 시신에 참배할 때 대장 군복을 입고 나와 총참모장인 리영호 옆에 서 있었고, 영결식에서도 김정은의 바로 뒤에서 영구차 행렬을 호위했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공식 행사에서 군복 차림으로 김정은 바로 옆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이후 가장 큰 라이벌인 조선인민군 총참모장 리영호가 모든 공직에서 해임되자 군부와의 파워 게임에서 장성택이 주도권을 잡은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 특히 지난 2012년 장성택이 50여명의 대표단을 이끌고 중국을 방문하자 북한을 사실상 장성택이 이끌어가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까지 나왔다. 그러나 김정은 집권 2년차인 올해 장성택의 공개 활동은 지난 7월 기준 27회로 급감했고, 특히 아내 김경희의 위독설이 대두되면서 더욱 눈에 띄게 줄었다. 결국 장성택은 이용하·장수길 등 최측근이 공개처형되고 실각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북한 내 권력지형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강서 주민들의 마음 열기 위해 생활정치를 열다

    강서 주민들의 마음 열기 위해 생활정치를 열다

    노현송 강서구청장이 자신의 정치인생을 되돌아보는 책 ‘가슴을 열면 마음이 보인다’를 펴냈다. 출판기념회는 20일 구민회관에서 열린다. 민선 2기 강서구청장을 지내고서 17대 총선 도전장을 던져 국회에 입성했던 노 구청장은 2011년 지방선거에서 5대 강서구청장에 당선돼 구정에 복귀했다. 노 구청장은 이번 책에서 자신이 겪었던 정치적 역경과 보람을 가감 없이 털어놓는다. 총 4부로 나뉜 책의 1부에서는 40대 젊은 구청장의 모습이 그려진다. 주민 참여를 통한 생활행정을 기치로 시민들 삶 속으로 스며들어 가는 청년 구청장의 패기가 느껴진다. 화곡동 주민들의 숙원이었던 가로공원길 고압송전탑 철거를 성사시키기까지의 여려운 과정을 설명하는 동시에 난제를 해결했을 때의 뿌듯함을 알린다. 제2부는 17대 국회의원으로서 벌인 각종 입법 활동이 주를 이룬다. 자치단체 간 재정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한 ‘지방세법 개정 국회의원’ 노현송의 이력이 펼쳐진다. 제3, 4부에는 민선 5기 구청장의 이력이 담겨 있다. 마곡 개발과 고도제한 완화, 그리고 지하철 2호선 신정지선 노선 연장, 방화대로 조기개통 등 구의 지속적 성장을 가능케 할 도시인프라 구축을 위한 노 구청장의 땀과 열정이 돋보인다. 구의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기대받는 ‘의료문화관광벨트’ 조성을 위한 포부로 대미를 장식한다.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 신세계그룹 정용진 부회장, 일자리 창출에 앞서

    신세계그룹 정용진 부회장, 일자리 창출에 앞서

    신세계그룹 정용진부회장은 올해 시간 선택제 일자리 1000여 개를 새로 창출한다고 밝혔다. 신세계그룹은 올해 초 이마트 진열 전문사원과 패션상품 판매사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한 데 이어 시간제 일자리를 대거 신설키로 결정한 것이다. 시간 선택제 일자리는 자신의 의지에 따라 자유롭게 풀타임 또는 파트타임 근무를 선택할 수 있는 제도다. 정규직과 비교해 임금•복리후생에 차별이 없고 정년까지 근무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앞서 정 부회장은 올 하반기 투자 계획을 발표하면서 기존 정규직 외에 시간제 정규직 등 7000명을 추가로 채용하겠다고 전한 바 있다. 신세계그룹은 상반기에만 1만 7000명을 새롭게 뽑았다. 신세계그룹은 우선 스타벅스 매장 점장 및 부점장 출신 가운데 출산•육아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들을 대상으로 워킹맘 재고용 프로그램을 도입한다. 이를 통해 재입사하는 워킹맘들에게는 정규직과 동일한 복리 후생 혜택을 제공된다. 이들 워킹맘들은 사내 콘도 및 영랑호 리조트를 이용할 수 있고, 의료비•학자급 등의 지원 혜택도 정규직과 동일하게 받게 된다. 이와 함께 기본 급여 외에 상여급과 성과급도 받을 수 있다. 다만 일하는 시간에 비례해 적용된다. 이번 재고용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스타벅스 점장 및 부점장 출신 여성인력은 100명 수준이다. 스타벅스커피코리아는 신규점을 중심으로 기존에 근무하고 있는 바리스타 등 800명을 시간 선택제 일자리로 신규 채용할 계획이다. 이외에 풀타임 근무가 어려운 다양한 계층을 위해 시간 선택제 일자리를 확대할 방침이다. 앞서 이마트는 최근 캐셔직(계산원) 정년 퇴직자 20명 가운데 직장 복귀를 원하는 12명을 시간 선택제 일자리로 다시 고용한 바 있다. 현재 이마트에서는 1500여명이 시간제 일자리로 근무하며, 정규직과 같은 복리 후생 혜택을 받고 있다. 이마트는 올해 4월 진열 전문사원 9100명을 정규직으로 전환시켰고, 이어 5월에 패션상품 판매사원 1600여명을 정규직으로 뽑았다. 신세계그룹 관계자는 “시간 선택제 일자리에 대한 혜택 범위를 지속적으로 넓힐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면서 “특히 여성•청년•고령자의 고용지원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지속해 나갈 계획”이라고 전했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
  • [영화 프리뷰] ‘잡스’ 인간 잡스만 있고, 천재 잡스는 없네

    [영화 프리뷰] ‘잡스’ 인간 잡스만 있고, 천재 잡스는 없네

    2011년 10월 스티브 잡스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뒤 국내 서점가에서도 그의 전기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는 잡스 열풍이 불었다. 이번엔 영화다. 애플의 창립자이자 혁신의 아이콘으로 통하는 스티브 잡스의 삶을 조명한 ‘잡스’(29일 개봉)를 영화 팬들이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결론부터 말하자면 영화는 최첨단을 달린 IT 천재의 이야기를 다뤘으나 화면이나 스토리텔링은 아날로그적이면서도 감성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스티브 잡스를 신화적인 인물이 아닌, 평범했지만 다름을 추구하며 도전과 좌절을 거듭했던 청년으로 담담하게 그려냈다. 그가 대학을 자퇴하고 히피와 불교문화에 심취해 인도로 여행을 떠나는 과정, 작은 차고에서 세계적인 기업 애플이 탄생하게 된 계기, 때로는 독불장군 같지만 놀라운 사업수완을 발휘하는 예상외의 모습 등 영화는 20~40대의 잡스를 묘사함으로써 그가 세계적인 사업가로 성장한 배경을 에둘러 웅변한다. 감정을 고양시키는 극적인 장치는 없지만 느린 화면과 배경 음악이 강조된 감각적인 영상으로 한편의 다큐멘터리를 연상시킨다. 다소 늘어지는 듯한 전개가 탄력을 받는 것은 잡스가 자신이 영입한 인사들의 결정에 오히려 회사에서 쫓겨나는 과정부터다. 지나친 완벽주의로 수익성이 악화되자 결국 이사회에서 퇴사를 종용받는 과정에서 그가 겪은 인간적인 고뇌와 상처가 부각된다. 이후 11년 만에 애플에 복귀하는 대목 즈음에서 영화는 절정에 치닫는다. 호들갑스럽지 않게 잡스의 삶을 찬찬히 복기하려는 영화의 의도는 좋았다. 전화번호부의 맨 앞에 나온다는 이유로 회사 이름을 ‘애플’로 붙이게 된 일화나 보이지 않는 컴퓨터의 회로까지 철저하게 챙기는 모습, ‘어떤 기기든 사용자의 일부’라고 여긴 그의 경영철학까지 영화는 잡스의 삶과 철학을 성실하게 녹여낸다. 하지만 지나친 단순화를 지향했던 탓일까. 영화는 그가 아이팟을 내놓기 직전에 막을 내린다. 그가 아이폰, 아이패드 등을 개발하며 전 세계적으로 영향을 끼친 부분은 생략했다. 거창한 영웅담을 지양하고 세련되게 그리려는 의도였겠지만 요령부득이다. 청년 잡스에게 담담히 시선을 던지는 것으로 승부를 건 드라마는 아무래도 뒷심이 달린다. 지나치게 진지한데다 교훈적인 메시지가 강요된다는 인상을 떨치기 어렵다. 그럼에도 청년부터 중년까지 잡스를 재연한 할리우드 스타 애쉬튼 커처의 연기를 보는 맛은 쏠쏠하다. 잡스의 트레이드 마크인 안경과 청바지를 입고 구부정한 자세로 걷는 모습까지 똑 닮았다. 100시간이 넘는 분량의 영상을 뒤져가며 잡스를 연구했다는 주인공답게 심리 변화에 따라 눈동자가 흔들리는 섬세한 연기까지 흠결 없이 소화했다. 잡스의 절친이자 애플의 핵심 두뇌인 스티브 워즈니악을 비롯해 초기 애플 시절의 실제 동료들 사진이 배우들의 얼굴과 오버랩되는 마지막 시퀀스는 뭉클한 감동과 함께 오래오래 곱씹을 여운을 길어올린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정전협정 60년] 현재진행형 비극 (하) 참전 군인들 인터뷰

    [정전협정 60년] 현재진행형 비극 (하) 참전 군인들 인터뷰

    ■윌리엄 웨버 ‘한국전 미군참전용사 기념재단’ 회장 “참전 증인들 사라져가 안타까워” “세월이 흐름에 따라 생존한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습니다. 한국전쟁에 대해 가장 직접적인 지식을 갖고 있는 우리가 모두 사라져 버리면 한국전쟁이 미국인의 의식에서 완전히 실종될 것만 같아 걱정입니다.” 인생 거의 전부가 ‘한국전쟁의 역사’인 노병(老兵)은 자신의 사후(死後)에 한국전쟁의 역사가 겪게 될 운명을 벌써부터 걱정하고 있었다. 한국전 정전 60주년을 맞아 서울신문이 만난 윌리엄 웨버(87·예비역 대령) ‘한국전 미군 참전용사 기념재단’ 회장은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전 참전용사다. 해마다 6월 25일이 다가오면 그는 언론들의 1순위 인터뷰 대상이 된다. 한국전에 참전했다가 한쪽 팔과 다리를 잃은 그의 외모 때문만이 아니다. 그 누구보다 한국전쟁을 기억하고 한국을 사랑하는 일에 대한 열성이 그를 특별하게 하고 있다. 그는 워싱턴의 한국전 참전기념비 옆에 서 있는 19명의 미군 병사 조각상 가운데 하나의 실제 모델이기도 하다. 지난 5월에는 미국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을 직접 만나기도 했다. 웨버 회장은 1943년 17살의 나이에 직업 군인으로 미 육군에 입대해 2차대전에 참전했다. 이어 1950년 8월 육군 187 공수 낙하산부대 소속 대위로 인천 상륙작전과 함께 한국 땅을 처음 밟았다. 서울 수복 후 그는 평양 등 북한 내 요충지 곳곳에서 벌어진 전투에 참여해 승전보를 울렸다. 하지만 중공군의 개입으로 중부전선까지 밀린 그는 1951년 1월 격전지 강원도 원주에서 북한군의 수류탄에 오른쪽 팔꿈치 아래와 오른쪽 무릎 아래를 잃고 말았다. 이 부상으로 그는 전선과 이별했다. 지난달 24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열린 북핵 문제 관련 세미나에 의족에 의지한 몸을 이끌고 나타난 그에게 ‘20대 젊은 나이에 소중한 팔다리를 잃은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유감스럽지 않다. 한국전에서 정규군으로 복무한 것은 내게 무한한 영광”이라며 마치 젊은 현역 군인처럼 우렁차게 답했다. 정전 60주년을 맞는 소회를 물었더니 그는 이렇게 답했다. “지난 60년간 또 다른 전쟁이 없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참전용사들이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죽어 가고 있다는 것이 슬프다. 앞으로 15년 뒤에는 정전 75주년 기념식이 열린 텐데 그때는 극소수의 참전용사만 살아 있을 것이라는 얘기를 우리 참전용사들끼리 하곤 한다. 왜냐면 지금 가장 어린 참전용사가 80살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전쟁은 ‘알려지지 않은 전쟁’에서 ‘잊혀진 전쟁’이 돼 가고 있는데 앞으로 완전히 미국 역사에서 실종될까 걱정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2차대전에 참전해 일본군과 싸울 때만 해도 한국과 중국, 일본 사람은 모두 똑같은 줄 알았지만 1950년 한국 땅에 처음 왔을 때 한국인은 일본인과 완전히 다른 문화를 가진 다른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면서 “그런 한국인들을 위해 싸운 것은 더없이 가치 있는 일이자 영광, 특권이었다”고 힘주어 말했다. ‘한국 정부가 참전용사들에게 충분히 보답하고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그건 말할 필요도 없다. 진심을 다해 끊임없이 미국에 감사를 표하는 나라는 세계에서 한국밖에 없다”고 했다. ‘다시 한국전이 일어난다면 참전하겠느냐’는 질문에 그는 단 1초의 머뭇거림도 없이 “당연히 참전할 것이다. 그건 물어볼 필요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면 다 할 것이다. 바로 1950년에 나는 그렇게 했다”고 답했다. 웨버 회장에게 한국전은 박제된 역사가 아니다. 90세를 바라보는 고령임에도 그는 미국에서 ‘한국전 알리기’의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는 워싱턴의 링컨기념관 앞에 있는 한국전 기념비 옆에 미군과 카투사 전사자들의 이름을 모두 새긴 ‘한국전 추모벽’ 건립을 위해 백방으로 뛰는 중이다. 2002년 참전 이후 51년 만에 한국을 방문한 이후 올해 세 번째이자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한국행을 계획하고 있는 웨버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이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올해가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원주를 꼭 한 번 가보고 싶습니다.” 글 사진 워싱턴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 중국인민지원군 출신 자빙수 전 中인민공안대 교수 “美의 침략 언론보도 믿고 참전” “한국전은 중국에서 ‘항미원조’(抗美援朝·미국에 대항해 조선을 돕다)로 표현한다. 이 말과 같이 한국전은 중국이 미국의 침략에 맞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북한을 도와 목숨 바쳐 싸운 정의로운 전쟁이라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그로 인해 남북이 분단됐는데 한국전쟁 정전일인 7월 27일이면 항미원조 승리 운운하며 자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중국 인민지원군 출신의 자빙수(査秉樞·81) 전 중국인민공안대 교수는 매년 7월 27일을 ‘한반도정전기념일’로 고쳐 불러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지난 5일 베이징 무시디(木?地) 자택에서 만난 그는 “세월이 지나면서 언론 등을 통해 한국전쟁은 북침이 아닌 남침이란 사실을 알게 됐다”면서 “하지만 중국 인민지원군은 미군이 턱밑까지 치고 올라온 탓에 나라를 구하기 위해 전쟁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며 전쟁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자 전 교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1949년 신중국 건국과 함께 자원 입대했다. 타이완을 수복해 통일을 이루려는 국가정책에 따라 인민해방군 25군 75사 소속으로 푸젠(福建)성 최전방에 배치됐다. 그러나 이듬해인 1950년 6월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이후 미군이 단둥(丹東) 변경을 폭격했다는 등 미군의 침략에 초점이 맞춰진 언론 보도로 미국이 타이완 국민당 정부를 도와 중국을 칠 것이란 위기감이 고조됐다. 부대 전환 배치를 신청해 한국전에 참여한 데는 이 같은 국내 분위기가 작용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전투로는 1952년 7월 13일부터 14일 동안 강원도 상감령 동북쪽 남대천에서 벌어진 ‘금성(城) 반격전’을 꼽았다. 중국 입장에서는 원래 북의 땅에 침입한 미군을 물리쳤다는 의미에서 이 전투를 반격전이라고 부른다. 그는 “이 전투만 버텨 내면 미국과 정전협정을 체결해 전쟁이 끝날 것이라는 말을 듣고 우리는 죽을 힘을 다해 싸웠다”고 회고했다. 미군을 상대로 중국 인민지원군 25만여명이 참가한 이 전투에서 그는 오른쪽 다리와 허리를 다쳤다. 그는 정전 이후에도 북한 재건 사업에 투입되며 1953년 10월부터 황해남도로 배치돼 1년간 고 유옥례씨 집에서 지냈다. 당시 14세이던 유씨의 딸 김영희로부터 조선인민군진군가, 조선국가, 아리랑, 봄노래, 샘물터의 노래, 푸른 하늘의 노래 등 27개의 북한 노래를 배웠다. 한국 노랫말을 중국어로 표기해 적어 둔 노래 연습장과 유씨 가족의 사진을 보며 지금도 그 시절을 회상한다. 영희씨와 주고받은 100여통의 편지도 간직하고 있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은 탓에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두 나라 언어로 적어 가며 수십년간 소통의 끈을 이어 갔다.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오라버니’라는 문구 등 편지 내용 곳곳에 깊은 우의가 배어 있다. 문화대혁명 등의 시기를 제외하고 영희씨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줄곧 연락을 주고받았다. 의료품, 식료품, 의류 등을 북에 보내 주기도 했다. 그는 “중국은 참전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만약 참전하지 않았더라면 남북은 분단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외세의 개입 없이 남북이 자체적으로 통일하도록 돕는 것이 중국이 (한국에) 진 빚을 갚는 일”이라고 말했다. 글 사진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재일학도의용군 동지회’ 부회장 김완기씨 “조국의 전쟁 소식에 태극기 혈서 쓰고 참전” 1950년 6월 25일. 22살의 청년은 아침을 먹으며 라디오를 듣다 자신의 귀를 의심하는 소식을 접한다. 현해탄 건너 조국에 전쟁이 발발했다는 것이다. “어쩌다 같은 민족끼리 총칼을 들이대게 됐나”라는 참담한 심정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던 청년은 개전 3일 만에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했다는 소식을 듣고 참전을 결심한다. 그후 63년이 속절없이 흘렀고, 청년의 얼굴엔 주름살이 내려 앉았다. 재일학도의용군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한 김완기(85)씨를 지난 3일 만났다. 충남 공주에서 태어난 김씨는 12살 때인 1940년 공부를 하기 위해 부모님과 함께 큰아버지가 있는 구마모토현으로 갔다. 대학에 진학해 엘리트가 되라는 부모님의 바람과 달리 광복 이후 진학을 포기하고 민단 소속으로 조직 활동에 앞장섰다. 전쟁이 터지자 김씨를 포함한 642명의 재일학도의용군은 태극기에 혈서로 참전 의사를 밝히고 조국으로 향했다. 미군 부대에 배치돼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을 시작으로 김씨는 전쟁의 참상을 온몸으로 경험했다. “고막이 터져 육군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일본에서 함께 배를 타고 참전한 친구들을 그곳에서 만났는데 동상 때문에 손발이 잘린 전우들이 수두룩했다”고 김씨는 회고했다. 미군의 순환배치 방침에 따라 1·4 후퇴 즈음인 1951년 1월 일본으로 복귀한 김씨는 “이대로 그만둘 수는 없다”며 다시 입대를 자원했다. 100여명이 지원해 58명이 국군에 재입대하게 됐고, 김씨는 1952년 6월까지 전선에 머물렀다. 이후 김씨는 일본으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일본 정부가 “허락 없이 참전했고 일본 거주도 불확실하다”며 입국을 막았다. 결국 부산 소림사에서 재일학도의용대(현 재일학도의용군 동지회의 전신)를 만든 뒤 정전 후인 1953년에는 서울 종로구 인사동 탑골공원 뒤편에 사무실을 꾸렸다. 그곳을 본적으로 등록하고 1961년까지는 수용대기소에서 생활했다. 국내 안착도 일본 귀환도 아닌 애매한 생활의 연속이었다. 그 사이 일본에 있던 김씨의 가족은 전쟁통에 모두 유명을 달리했고, 공주에 남아 있는 가족들도 정전 이후에야 겨우 연락이 닿았다. 현재 동지회 부회장으로 일하고 있는 김씨는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국민들이 학도의용군의 존재를 모르는 게 가장 안타깝다”고 말했다. 정부는 종전 후 10년 뒤인 1963년에야 일본에 안치돼 있던 전사자 53명의 유해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했고, 1968년 재일학도의용군을 국가유공자로 인정했다. 글 사진 김민희 기자 haru@seoul.co.kr
  • 최대석·윤창중·한광옥 거취는?

    최대석·윤창중·한광옥 거취는?

    제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22일 해단식을 열고 48일간의 활동을 마무리한 가운데 김용준 인수위원장을 비롯한 인수위원들의 향후 거취에도 관심이 쏠린다. 당장은 희비가 엇갈리는 것처럼 비쳐진다. 전체 인수위원 26명 중 진영(보건복지부 장관) 부위원장과 윤병세(외교부 장관) 외교국방통일분과 인수위원, 서승환(국토교통부 장관) 경제2분과 인수위원, 김장수(국가안보실장) 외교국방통일분과 간사, 유민봉(국정기획수석) 국가기획조정분과 간사, 최성재(고용복지수석) 고용복지분과 간사, 모철민(교육문화수석) 여성문화분과 간사 등 7명(26.9%)만 내각 또는 청와대행을 확정했다. 현역 국회의원인 강석훈 국정기획조정분과 인수위원과 안종범 고용복지분과 인수위원, 류성걸 경제1분과 간사, 이현재 경제2분과 간사, 김현숙 여성문화분과 인수위원 등은 국회로 돌아갈 것으로 예상된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국정과제를 추진하려면 국회 차원의 도움도 절실하다는 판단이 깔려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교수 신분인 박효종 정무분과 간사와 이승종 법질서사회안전분과 인수위원, 안상훈 고용복지분과 인수위원(이상 서울대), 장훈 정무분과 인수위원, 홍기택 경제1분과 인수위원(이상 중앙대), 옥동석 국정기획조정분과 인수위원(인천대), 이혜진 법질서사회안전분과 간사(동아대), 장순흥 교육과학분과 인수위원(KAIST) 등도 현업에 복귀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들은 모두 새 학기에 대비해 강의 배정까지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들은 박 당선인의 핵심 인재풀인 만큼 취임 후 단행될 후속 인선이나 임기 5년 동안 이뤄질 추가 인선에서 강력한 후보군에 이름을 올릴 가능성이 높다. 과거 정부 인수위원들도 시기만 다를 뿐 대부분 요직에 진출했다. 사퇴 배경을 놓고 여전히 궁금증이 풀리지 않는 최대석 전 외교국방통일분과 인수위원, 인수위의 ‘입’ 역할을 했던 윤창중 대변인 등의 거취 문제도 관심사다. 인수위원은 아니지만 유정복(안전행정부 장관) 대통령취임준비위 부위원장과 조윤선(여성가족부 장관) 당선인 대변인, 방하남(고용노동부 장관) 고용복지분과 전문위원, 윤성규(환경부 장관) 법질서사회안전분과 전문위원, 이정현(정무수석) 당선인 대변인 정무팀장, 곽상도(민정수석) 정무분과 전문위원 등 6명도 ‘박근혜호’에 탑승했다. 이 밖에 국민대통합위원회(위원장 한광옥)와 청년특별위원회(위원장 김상민) 참여 인사들도 새 정부에서 역할을 이어 갈 것으로 예상된다. 장세훈 기자 shja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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