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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론] 국보법,정치로 풀어라/김무곤 동국대 신문방송학 교수

    [시론] 국보법,정치로 풀어라/김무곤 동국대 신문방송학 교수

    오래 전 일이지만 필자도 두 번이나 국가보안법 신세를 진 적이 있다. 다행히(?) 두 차례 다 구속되지 않고 혼만 조금 나고 나왔지만 그 때의 열패감, 수치심은 지금도 뇌리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비슷한 일로 끌려가 본 사람은 대개 아는 일이겠지만 자신이 무엇 때문에 잡혀왔는지 어떤 죄를 저질렀는지 가르쳐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스스로 깜깜한 사자우리 속에 내던져졌다는 사실만 뼈저리게 자각될 뿐이다. 감수성이 예민한 청년시절에 실체도 명확하지 않은 공포 앞에 무릎을 꿇어야 했던 경험은 지우개로 지울 수만 있다면 종이가 찢어질 때까지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이 되어 남아있다. 과거 국가보안법 위반 전력으로 인해 졸지에 간첩으로 지목된 열린우리당 이철우의원의 신상발언을 듣던 같은 당 의원들의 눈물은 바로 이런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오직 한 가닥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 되살아왔기 때문이리라. 그렇다. 국가보안법 폐지론자들의 의지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가장 합리적이어야 할 법의 이름을 내건 비합리와 억지, 법 집행의 탈을 쓰고 자행되었던 임의(任意)와 월권, 정적(政敵) 탄압과 인권침해의 기억을 떨쳐버리고 싶은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에게 국가보안법은 법이 아니고 걷어버려야 할 혼돈과 어둠인 것이다. 하지만 국민 모두가 이 법을 없애는데 찬성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전면 폐지에 반대하는 여론이 더 우세하다. 가장 최근에 한국갤럽이 실시한 전국규모 여론조사는 전면폐지에 찬성하는 응답자가 전체의 10%에 미치지 못한다는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대다수 국민들이 인권침해와 탄압을 옹호한다는 말인가? 그것은 아니다. 앞서 언급한 여론조사에서도 ‘일부개정’과 ‘폐지 후 대체입법’을 선호하는 응답자가 합해서 70%를 넘고 있다. 국가보안법 존치론자 중에서도 극히 일부의 시대착오적인 사람들 외에는 3공 5공 시절의 공안정국을 부활시키려는 의도를 가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만 폐지로 인해 미래가 불안해질까 두려운 것이다. 과감하게 상징화하여 말하자면 ‘붉은 완장’ 또는 ‘죽창’의 기억이 전면 폐지 뒤에 올 미래를 공포로 다가오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역설적이게도 국가보안법의 전면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과 그것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의식 속 저편의 원체험은 맞닿아 있다.‘깜깜한 사자우리의 기억’과 ‘죽창의 기억’은 마주보고 달리는 열차처럼 서로를 향해 치닫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두 열차를 움직이는 동력은 다르지 않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공포다. 대다수의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이 공포를 없애주는 일만이 소모적 논쟁으로 치닫고 있는 국가보안법 정국을 풀 유일한 열쇠다. 인권침해 독소조항으로 가득찬 국가보안법을 폐지함으로써 ‘사자우리의 공포’를 씻어주고, 안보 불안을 덜 수 있는 대체 입법을 통해 ‘죽창의 공포’로부터 벗어나게 해야 한다. 그것이 지금 민심이 바라는 정치다. 공포의 기억에 시달리는 사람이 나와 내 동료들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하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다른 성원의 아픈 기억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민족공동체의 유지를 위한 기본 조건이다. 치받는 것이 운동이라면 한 발 물러설 줄 아는 것이 정치다. 이번 보안법 정국을 바라보는 국민들은 열린우리당의 신진의원들에게 ‘운동가’에서 ‘정치가’로 탈바꿈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 한나라당 신진의원들에게는 낡은 색깔시비를 계속한다면 그들에게 더 이상 미래는 없음을 경고하고 있다. 여야당의 지도자들은 지금이야말로 새로운 리더십을 보여줄 기회다. 국민은 누가 잘 싸우는지가 아니라 누가 타협하고 누가 양보하는지를 관찰하고 있다. 김무곤 동국대 신문방송학 교수
  • [무슨 영화 볼까]

    ●오페라의 유령 장르/예매율 뮤지컬·드라마/56.84%(12세) 감독/배우는 조엘 슈마허/제라드 버틀러·에미 로섬·패트릭 윌슨 어떤 줄거리 오페라하우스에 사는 한 남자와 여가수의 사랑 이래서 좋아 화려한 화면과 주옥같은 선율 이래서 별로 뮤지컬을 그대로 따라가다보니 지루하네∼ 홈피 반응은 “각각 장단점이 있지만, 뮤지컬에 한표” ●브리짓 존스의 일기:열정과 애정 장르/예매율 로맨틱코미디/34.17%(15세) 감독/배우는 비반 키드론/르네 젤위거·콜린 퍼스·휴 그랜트 어떤 줄거리 애인 만들기에 성공한 브리짓의 본격 연애담 이래서 좋아 몸을 사리지 않는 연기와 섬세한 유머 이래서 별로 뻔한 신데렐라 스토리에 황당한 마약사건까지 홈피 반응은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나비효과 장르/예매율 스릴러/3.91%(18세) 감독/배우는 에릭 브레스·J. 매키 그루버/애쉬튼 커처·에이미 스마트 어떤 줄거리 과거의 한 순간을 고치면 미래는 바뀌는데… 이래서 좋아 ‘나비효과’이론을 빌린 독특한 소재 이래서 별로 반복 되다보니 점점 떨어지는 긴장감 홈피 반응은 “초반 강추! 뒤로 갈수록 이제 그만” ●노트북 장르/예매율 멜로/2.00%(15세) 감독/배우는 닉 카사베츠/레이첼 맥아담스·라이언 고슬링·제임스 가너 어떤 줄거리 생의 끝자락에 반추해보는 젊은 시절의 사랑 이래서 좋아 클래식한 사랑의 짙은 울림 이래서 별로 그래도 상투적인 건… 홈피 반응은 “가슴이 찌리찌리∼” ●포가튼 장르/예매율 스릴러/0.78%(15세) 감독/배우는 조셉 루벤/줄리언 무어·게리 시니즈 어떤 줄거리 사라진 기억을 좇는 이들과 이를 방해하는 집단의 추격전. 이래서 좋아 모성을 스릴러와 액션으로 포장. 이래서 별로 시작은 좋았는데…. 황당한 결말은 글쎄…. 홈피 반응은 “한니발 이후 드러나는 무어의 카리스마” ●까불지마 장르/예매율 코미디/0.67%(15세) 감독/배우는 오지명/최불암·오지명·노주현 어떤 줄거리 얼떨결에 보디가드로 변신한 노장 건달들의 좌충우돌기 이래서 좋아 중견배우들의 몸사리지 않는 연기에 경의를…. 이래서 별로 캐릭터에 비해 단순한 극적 구성과 상투성 홈피 반응은 “장편 시트콤 등장” ●여선생vs여제자 장르/예매율 코미디/0.59%(15세) 감독/배우는 장규성/염정아·이세영·이지훈 어떤 줄거리 여교사와 여제자가 총각 선생님을 놓고 벌이는 사랑싸움 이래서 좋아 배우 염정아의 새로운 발견 이래서 별로 ‘선생 김봉두’와 너무 비슷해 홈피 반응은 “가볍지만 유쾌하고 감동도 있어요.” ●모터싸이클 다이어리 장르/예매율 드라마/0.41%(15세) 감독/배우는 월터 살레스/가엘 가르시아 베르날·로드리고 드 라 세르나 어떤 줄거리 ‘혁명 영웅’이전의 ‘청년’ 체 게바라의 여행 이래서 좋아 아르헨티나, 칠레 등을 넘나드는 수려한 풍광 이래서 별로 체 게바라의 정치적 면모를 기대했다면 홈피 반응은 “체 게바라를 몰라도 부담없이 볼수 있는 영화”
  • [무슨 영화 볼까]

    ■까불지마(3일 개봉) 장르/예매율 코미디/3.83%(15세) 감독/배우는 오지명/최불암·오지명·노주현 어떤 줄거리 얼떨결에 보디가드로 변신한 노장 건달들의 좌충우돌기 이래서 좋아 중견배우들의 몸사리지 않는 코믹연기 이래서 별로 캐릭터에 비해 단순한 극적 구성과 상투성 홈피 반응은 “장편 시트콤 등장” ■ 이프 온리 장르/예매율 멜로/5.21%(15세) 감독/배우는 길 영거/폴 니콜스·제니퍼 러브 휴잇 어떤 줄거리 연인이 죽고 난 다음날, 어제가 다시 반복되는데… 이래서 좋아 긴장감과 달콤한 감성을 적당히 버무린 솜씨 이래서 별로 사랑하는 사람이 없다면 옆구리가 시릴 영화 홈피 반응은 “올 가을 최고의 데이트 무비” ■ 내머리속의 지우개 장르/예매율 멜로/5.70%(12세) 감독/배우는 이재한/정우성·손예진 어떤 줄거리 알츠하이머 병에 걸린 아내와의 애틋한 사랑 이래서 좋아 그림처럼 아름다운 화면과 정우성의 변신 이래서 별로 눈물 펑펑 쏟는 뻔한 멜로의 감성 홈피 반응은 “가슴 찡해요. 부부나 연인에게 강추” ■ 여선생vs여제자 장르/예매율 코미디/6.68%(15세) 감독/배우는 장규성/염정아·이세영·이지훈 어떤 줄거리 여교사와 여제자가 총각 선생님을 놓고 벌이는 사랑싸움 이래서 좋아 배우 염정아의 새로운 발견 이래서 별로 ‘선생 김봉두’와 너무 비슷해 홈피 반응은 “가볍지만 유쾌하고 감동도 있어요.” ■ 발레교습소(3일 개봉) 장르/예매율 드라마/11.79%(15세) 감독/배우는 변영주/윤계상·김민정 어떤 줄거리 고3 청년, 발레를 배우다 성장하다 이래서 좋아 꾸미지 않은 청춘의 자화상에 가슴이 푹∼ 이래서 별로 별 연관성 없이 얽히는 에피소드들 홈피 반응은 “19살에 봤다면 더없이 좋았을 영화” ■ 포가튼(3일 개봉) 장르/예매율 스릴러/12.18%(15세) 감독/배우는 조셉 루벤/줄리언 무어·게리 시니즈 어떤 줄거리 사라진 기억을 좇는 이들과 이를 방해하는 집단의 추격전. 이래서 좋아 모성은 위대하다는 진리를 스릴러로 포장. 이래서 별로 X파일류로 끝나는 황당한 결말은 글쎄… 홈피 반응은 “한니발 이후 줄리언 무어의 카리스마” ■ 나비 효과 장르/예매율 스릴러/28.19%(18세) 감독/배우는 에릭 브레스·J. 매키 그루버/애쉬튼 커처·에이미 스마트 어떤 줄거리 과거의 한 순간을 고치면 미래는 바뀌는데… 이래서 좋아 ‘나비효과’이론을 빌린 독특한 소재 이래서 별로 반복 되다보니 점점 떨어지는 긴장감 홈피 반응은 “초반 강추!뒤로 갈수록 이제 그만” ■ 노트북 장르/예매율 멜로/20.83%(15세) 감독/배우는 닉 카사베츠/레이첼 맥아담스·라이언 고슬링·제임스 가너 어떤 줄거리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의 긴 회고담 이래서 좋아 생의 끝자락에 반추해보는 사랑의 짙은 울림 이래서 별로 그래도 상투적인 건… 홈피 반응은 “가슴이 찌리찌리∼”
  • [무슨 영화 볼까]

    ●나비효과 장르/예매율 스릴러/32.76%(18세) 감독/배우는 에릭 브레스·J. 매키 그루버/애시튼 커처·에이미 스마트 어떤 줄거리 과거의 한 순간을 고치면 미래는 바뀌는데… 이래서 좋아 ‘나비효과’이론을 빌린 독특한 소재 이래서 별로 반복되다보니 점점 떨어지는 긴장감 홈피 반응은 “초반 강추!뒤로 갈수록 이제 그만” ●노트북(26일 개봉) 장르/예매율 멜로/14.73%(15세) 감독/배우는 닉 카사베츠/레이첼 맥애덤·라이언 고슬링·제임스 가너 어떤 줄거리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의 긴 회고담 이래서 좋아 생의 끝자락에 반추해보는 사랑의 짙은 울림 이래서 별로 그래도 상투적인 건… 홈피 반응은 “가슴이 찌리찌리∼” ●내머리속의 지우개 장르/예매율 멜로/13.18%(12세) 감독/배우는 이재한/정우성·손예진 어떤 줄거리 알츠하이머 병에 걸린 아내와의 애틋한 사랑 이래서 좋아 그림처럼 아름다운 화면과 정우성의 변신 이래서 별로 눈물 펑펑 쏟는 뻔한 멜로의 감성 홈피 반응은 “가슴 찡해요. 부부나 연인에게 강추” ●여선생vs여제자 장르/예매율 코미디/10.22%(15세) 감독/배우는 장규성/염정아·이세영·이지훈 어떤 줄거리 여교사와 여제자가 총각 선생님을 놓고 벌이는 사랑싸움 이래서 좋아 배우 염정아의 새로운 발견 이래서 별로 ‘선생 김봉두’와 너무 비슷해 홈피 반응은 “가볍지만 유쾌하고 감동도 있어요.” ●이프 온리 장르/예매율 멜로/7.59%(15세) 감독/배우는 길 영거/폴 니콜스·제니퍼 러브 휴잇 어떤 줄거리 연인이 죽고 난 다음날, 어제가 다시 반복되는데… 이래서 좋아 긴장감과 달콤한 감성을 적당히 버무린 솜씨 이래서 별로 사랑하는 사람이 없다면 옆구리가 시릴 영화 홈피 반응은 “올 가을 최고의 데이트 무비” ●귀여워(26일 개봉) 장르/예매율 드라마/4.97%(18세) 감독/배우는 김수현/김석훈·정재영·예지원·장선우 어떤 줄거리 ‘배다른’아들 셋과 아버지, 한 여자를 넘보다 이래서 좋아 지금껏 보지못한 독특한 캐릭터와 발랄함 이래서 별로 … 홈피 반응은 “예고편보다 더 귀여워서 보는 내내 흐뭇했음” ●모터싸이클 다이어리 장르/예매율 드라마/4.91%(15세) 감독/배우는 월터 살레스/가엘 가르시아 베르날·로드리고 드 라 세르나 어떤 줄거리 ‘혁명 영웅’이전의 ‘청년’ 체 게바라의 여행 이래서 좋아 아르헨티나, 칠레 등을 넘나드는 수려한 풍광 이래서 별로 체 게바라의 정치적 면모를 기대했다면 홈피 반응은 “체 게바라를 몰라도 부담없이 볼수 있는 영화” ●택시:더 맥시멈(26일 개봉) 장르/예매율 액션/4.85%(12세) 감독/배우는 팀 스토리/퀸 라티파·지미 팔론·지젤 번천 어떤 줄거리 택시기사와 미녀 은행털이범의 한판 승부 이래서 좋아 입이 떡 벌어지는 택시의 진기명기 이래서 별로 속도에 집착하다보니 드라마는 허술 홈피 반응은 “가볍게 실컷 웃는 시간, 후회 없음”
  • [기고] 일자리 소멸과 직업 재활 훈련/박진서 코아컨설팅 대표

    금년 대졸 취업률은 겨우 50% 정도, 나머지는 절망 상태다.‘밀레니엄’ 졸업생으로 21세기 선두 주자로서의 희망찬 첫발을 내디딘 청년들이 취업 탈락이라는 절망 속으로 빠져 들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뿐이 아니다.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현재 세계노동인구의 30%에 해당하는 약 8억 5000만명이 실업자이거나 실업자에 가깝다. 더 놀라운 것은 해마다 5000만명 정도가 일자리를 잃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실업자가 양산되고 있는가? 한마디로 말해서 기존의 일자리(Job)가 급속히 소멸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연방 노동부 전신애 여성국장은 “현재 직업의 90%는 머잖아 사라진다.”고 말해 충격을 주었다. 한국계 여성으로는 최초로 미 정부의 차관보급에 오른 그녀는 “정보통신과 생명공학의 급속한 발전으로 직종과 직업의 생성·소멸 속도가 예상할 수 없게 빨라지고, 특히 기존 일자리가 사라져 X세대(18∼35세)는 평생 5∼6번 직업을 바꿔야만 되며, 지금까지 일해 온 유사 직종이 아니라 전혀 다른 새로운 직종과 직무에서 일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미국의 저명한 경영컨설턴트인 윌리엄 브리디스는 “2000년대에 들어 가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주 30시간 일하고 나머지는 여가 선용이란 장밋빛 꿈에 젖어 있지만, 그 반대로 머지않은 장래에 주 60시간 이상 일하게 되며 그 대신 전 세계 노동인구의 50%가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우리나라도 IMF후 대기업 일자리가 무려 22만여 개나 줄었고 금년 1·4분기 중 기업의 78%가 채용계획이 전무한 것으로 나타났다(노동부 집계). 이 때문에 직장의 중심이 되어야 할 30대까지 5명 중 1명이 일자리를 잃는 것을 비롯해 20대부터 60대까지 나이를 가리지 않고 일자리를 못 얻거나 쫓겨나고 있다. 특히 e비즈니스의 규모가 기존의 상거래를 간단하게 능가하게 되는 2∼3년 후가 되면 엄청난 고용환경의 변화와 함께 직업이동(Job Shift)과 실업 공황이 가속화될 전망이다. 이러한 일자리 소멸 현상은 경기와 관계없이 영구히 지속될 것이 틀림없기 때문에 정부가 아무리 공권력과 공적자금을 투입해서 고용안정을 추진해도 소용이 없게 된다. 그 이유는 IT의 세계에서 보듯 10년 주기의 변화가 바로 1년 미만으로 단축돼 능력(Career)의 영역을 직격하기 때문이다. 일자리에서 쫓겨나는 거의 모두가 지금까지 종사해 온 직종과 직업이 소멸되거나 축소되어 자신의 미래를 위해 오랫동안 고생하며 노력해서 이룩한 능력이 무용지물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시급히 해결해야 할 것은 일자리 만들기가 아니라 이들에 대한 직업 재활(Career Recycling)훈련이다. 이들이 새로운 직종과 직무에서 일할 수 있도록 능력을 업그레이드시키지 않으면 정부가 아무리 애써도 결국은 영구 실업자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미국의 일자리 상담가들은 “새로운 것을 배울 기회와 자기를 성장시킬 기회가 보이지 않는 직장은 주저없이 떠나라.”고 권고하고 있다. 다행히 IT산업은 다른 직종과 직업을 소멸시키는 반면에 우리가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의 많은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 1980년 후반부터 쇠퇴산업과 부실기업을 과감히 퇴출시키고 정보산업을 비롯한 성장산업으로의 신속한 구조조정을 통해 놀라운 고용창출을 이룩했다. 이러한 고용창출의 주역은 기존기업이 아닌 새로 창업한 신생기업이었는데 정부의 적극적인 직업재활훈련 정책이 빛을 본 것이다. 우리 정부도 해마다 실업대책비로 수조원의 예산을 낭비하지 말고 노사정이 협력해서 전체 근로자의 시장가치를 높여 새로운 노동시장에서 살아 남을 수 있게 직업 능력을 높이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시행해야 한다. 박진서 코아컨설팅 대표
  • 보다 나은 미래를 꿈꾸십니까?

    보다 나은 미래를 꿈꾸십니까?

    17일 오후 3시30분 서울 용산구 한남동 한남직업전문학교 실내디자인과 실습실. 오는 22일로 예정된 실내건축기능사 자격시험에 대비한 모의시험이 한창 진행중이다. 시험시간 종료를 예고하는 지도 교수의 다그침에 학생 40명의 손놀림이 빨라졌다.5시간안에 원룸의 평면도를 비롯해 투시도, 입면도, 천장도 등 4장을 완성해야 한다. 청소년에서 퇴직 가장까지 모두 도면에 숨소리 하나 내지 않고 온정신을 쏟고 있었다. 이들의 눈동자는 경기불황을 극복하려는 창업의지로 반짝였다. ●한남직업전문학교 실내디자인과 인기 한남직업전문학교는 서울시가 취약계층을 위해 무료로 운영하는 4개 직업학교 가운데 하나. 비진학 청소년을 위한 직업교육시설이던 이곳은 지난 2002년 만29세의 연령제한이 풀려 만 지금은 15∼55세의 서울시민이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멀티미디어와 미용, 실내디자인, 조리, 컴퓨터애니메이션, 패션디자인 등이 6개월∼1년 과정으로 개설돼 있다. 지원자 가운데 나이, 가족부양여부, 국가유공자 등을 감안해서 선발한다. 경력 3∼4년이 쌓이면 창업이 가능한 실내디자인과는 평균 2∼3대 1의 경쟁률을 보인다. 제도실기를 비롯해 CAD, 포토샵,3D MAX 등이 주교육 과정이다. 교육을 마치면 산업인력관리공단에서 주관하는 실내건축기능사와 전산응용건축제도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다. 이진영 실내디자인과 주임교수는 “학생 가운데 20세 이하는 50%,30대 45%,40대 이상은 5%”라면서 “주간에는 주부, 비진학청소년, 퇴직자 등 다양하며 야간 과정에는 70∼80%가 직장인”이라고 말했다. ●청소년에서 퇴직 가장까지 새삶 설계 학생 가운데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퇴직자들이 유난히 눈에 띈다. 은행이나 기업에서 정년을 마친 뒤 새 삶을 준비하는 은퇴자들이다. 국민은행 지점장으로 은행원생활 32년을 마감한 심영섭(55)씨는 “지난 3년동안 건축회사를 운영하면서 인테리어쪽으로 겸업하기 위해 배우는 중”이라고 밝혔다. 일반 기업에서 퇴직한 이재전(55)씨도 건축회사에 다니는 아들과 동업하기 위해 합류했다. 내수경기 불황을 타개할 새 활로로 인테리어를 택한 사람도 있다. 청담동에서 7년동안 자동차 딜러를 하던 장필선(44·여)씨는 지난해 4월 경기불황으로 영업소를 접었다. 장씨는 “백지상태에서 시작한 탓에 무척 힘들다.”고 말했다. 레저스포츠 강사 김영진(31)씨도 이직을 결정한 경우. 김씨는 “이 과정을 마치면 외삼촌이 운영하는 인테리어 회사에서 2∼3년 경력을 쌓은 뒤 중국에서 인테리어 사업을 하고 싶다.”고 포부를 드러냈다. ●17세 소녀 조기유학파도 입학 캐나다에서 중학교를 마친 이사벨라(17)양은 건축사인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이곳에 등록했다. 대학 건축학과 진학을 희망하는 이양은 “일반 고등학교에 다니는 불편을 피해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지난 2월 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해 내년 수학능력시험 준비도 병행하고 있다. 구직난에 시달리는 청년실업자에게는 인테리어가 취업을 위한 주특기로 자리잡았다. 지난 2월 모대학 행정학과를 졸업한 최모(23·여)씨는 “공무원 시험을 잠시 미루고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기 위해 시작했다.”면서 “6개월 동안 바쁘게 두가지 자격증을 따야 하기 때문에 어렵다.”고 밝혔다. 이유종기자 bell@seoul.co.kr
  • [무슨영화볼까]

    ■ 쉘 위 댄스 장르/예매율 드라마/1.92%(12세) 감독/배우는 피터 첼섬/리처드 기어·제니퍼 로페즈·수전 서랜든 어떤 줄거리 춤을 통해 인생을 재발견하는 중년남 이야기 이래서 좋아리처드 기어의 ‘스텝’솜씨도 볼만하네∼ 이래서 별로 일본 원작영화를 너무 베껴 식상할 수도 홈피 반응은 “일본판만 못해도 유쾌한 영화” ■ 레지던트 이블2 장르/예매율 SF·액션/2.17%(18세) 감독/배우는 알렉산더 윗/밀라 요보비치·시에나 걸로리 어떤 줄거리 거리로 쏟아져나온 좀비들과 앨리스의 전투 이래서 좋아SF의 음울함, 액션의 화려함, 공포물의 오싹함이 동거 이래서 별로 쌀쌀한 초겨울에 보기에는 좀. 홈피 반응은 “새 정보가 있어서 속편임에도 신선해요.” ■ 모터싸이클 다이어리 장르/예매율 드라마/6.66%(15세) 감독/배우는 월터 살레스/가엘 가르시아 베르날·로드리고 드 라 세르나 어떤 줄거리 ‘혁명 영웅’이전의 ‘청년’ 체 게바라의 여행 이래서 좋아아르헨티나, 칠레 등을 넘나드는 수려한 풍광 이래서 별로 체 게바라의 정치적 면모를 기대했다면 홈피 반응은 “체 게바라를 몰라도 부담없이 볼수 있는 영화” ■ 하나와 앨리스 장르/예매율 멜로/10.39%(12세) 감독/배우는이와이 슈운지/아오이 유우·스즈키 안·가쿠 도모히로 어떤 줄거리 한 선배를 좋아하는 두 친구의 엉뚱한 사랑 이래서 좋아 여고생들의 섬세한 감정이 잘 살아난 감각 영상 이래서 별로 … 홈피 반응은 “슈운지 영화 다운…” ■ 여선생vs여제자 장르/예매율 코미디/12.46%(15세) 감독/배우는장규성/염정아·이세영·이지훈 어떤 줄거리여교사와 여제자가 총각 선생님을 놓고 벌이는 사랑싸움 이래서 좋아 배우 염정아의 새로운 발견 이래서 별로 ‘선생 김봉두’와 너무 비슷해 홈피 반응은 “가볍지만 유쾌하고 감동도 있어요.” ■ 이프 온리 장르/예매율 멜로/13.92%(15세) 감독/배우는 길 영거/폴 니콜스·제니퍼 러브 휴잇 어떤 줄거리 연인이 죽고 난 다음날, 어제가 반복되는데… 이래서 좋아 긴장감과 달콤한 감성을 적당히 버무린 솜씨 이래서 별로 사랑하는 사람이 없다면 옆구리가 시릴 영화 홈피 반응은“올 가을 최고의 데이트 무비” ■ 나비효과 장르/예매율 스릴러/26.78%(18세) 감독/배우는 에릭 브레스·J. 매키 그루버/애쉬튼 커처·에이미 스마트 어떤 줄거리과거의 한 순간을 고치면 미래는 바뀌는데… 이래서 좋아 ‘나비효과’이론을 빌린 독특한 소재 이래서 별로 반복 되다보니 점점 떨어지는 긴장감 홈피 반응은 “초반 강추!뒤로 갈수록 이제 그만” ■ 내머리속의 지우개 장르/예매율 멜로/22.89%(12세) 감독/배우는 이재한/정우성·손예진 어떤 줄거리알츠하이머 병에 걸린 아내와의 애틋한 사랑 이래서 좋아그림처럼 아름다운 화면과 정우성의 변신 이래서 별로 눈물 펑펑 쏟는 뻔한 멜로의 감성 홈피 반응은 “가슴 찡해요. 부부나 연인에게 강추”
  • [2004 美대선] 부시-케리 공약대신 공포대결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열흘 앞으로 다가온 미국의 대통령 선거가 최선이 아닌 ‘차악의 후보’를 선택하는 대결로 흐르고 있다. 초박빙의 승부가 예상되는 가운데 선거운동도 미래에 대한 비전 대신 상대방에 대한 공포심을 자극하는 네거티브전 양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그러나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존 케리 민주당 후보의 지지율은 여전히 오차 범위 내에서 등락하는 가운데 퓨 리서치 센터는 “막판에 부동표가 쏠리면서 한 후보가 압승할 수도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케리가 되면 테러 나고, 부시가 되면 사회보장 없어진다? 딕 체니 부통령은 20일(현지시간) “미국에 핵을 이용한 테러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케리가 대통령이 될 경우 이에 맞서 싸울 힘이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또 공화당 캠프는 케리 후보가 20년 동안 상원의원을 지내면서 98차례나 세금인상에 투표했다면서, 그가 대통령이 되면 중산층의 세금을 크게 늘릴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케리 후보측은 최근 “부시가 재선되면 징병제가 부활된다.”는 이른바 ‘1월의 충격설’로 군대에 끌려가기 싫어하는 청년들의 표심을 자극해 재미를 보고 있다. 이와 함께 “부시가 재선되면 의료보험 등 사회보호 정책을 모두 민영화할 것”이라는 주장을 통해 노년층의 불안감도 자극하고 있다. 부시 후보는 두 가지 모두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지만 해당자들의 불안심리는 가라앉지 않고 있다. 존 에드워즈 부통령 후보는 최근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독감예방주사 백신의 부족사태를 들어 “백신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서 화생방전에 어떻게 대비하겠느냐.”고 부시 행정부를 힐난했다. ●이슬람단체들 ‘비판적 지지’ 미국의 주요 이슬람 단체들은 21일 “미국 이슬람 신자들은 2류 시민 취급을 당하고 있다.”고 부시 행정부에 불만을 표시하면서 “신자들은 케리 후보에 투표하라.”고 독려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영화 ‘슈퍼맨’의 주인공 크리스토퍼 리브의 미망인 데이너 리브도 이날 케리 지지를 선언했다. 리브는 케리의 오하이오주 유세에 참석해 부시 대통령의 줄기세포 연구 금지 정책을 비난하며 “부시 대통령이 남편과 같은 척수 부상 환자 등에게서 희망을 빼앗아갔다.”고 주장했다. 한편 하버드대 정치연구소는 지난 7∼13일 전국의 대학생들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 케리 후보가 52% 대 39%로 13%포인트차로 부시 대통령을 앞선 것으로 21일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여학생의 경우 58% 대 34%로 차이가 더 벌어졌다. ●선거인단의 반란? 부시가 웨스트 버지니아주에서 승리할 경우 선발되는 선거인단 5명에 포함될 리치 롭 사우스 찰스턴 시장은 “부시가 주에서 이겨도 케리나 딕 체니 부통령 등 다른 사람에게 표를 던지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부시 대통령의 경제정책에 반대한다면서 “선거인단이 꼭 자기당 후보에게 투표해야 한다는 명백한 의무는 없다.”고 주장했다. 일부 주에서는 선거인단이 소속 주에서 승리한 후보에게 투표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이를 위반해 처벌된 사례는 없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 선거에서 271대 270 한 표 차이로 승리했기 때문에 롭 시장이 자칫 부시의 선거를 망칠 수도 있는 상황이다. dawn@seoul.co.kr
  • [삶과 경영 이야기] (30) 너무나 한국적인 외국인 솔로몬 메트라이프생명 사장

    [삶과 경영 이야기] (30) 너무나 한국적인 외국인 솔로몬 메트라이프생명 사장

    참 많이 웃었다. 영어 인터뷰에 대한 부담은 그가 한국말을 한국사람보다 더 잘한다고 귀띔받았을 때 이미 떨쳐 버렸지만 이 정도로까지 유쾌하게 대화를 나누게 될 줄은 예상 못했다. 우리 나이로 57세. 하지만 연방 터지는 웃음이 안 그래도 젊어뵈는 얼굴에서 나이를 열살쯤 더 덜어낸다. 가장 한국적인 외국인 최고경영자(CEO)라는 스튜어트 솔로몬 메트라이프생명 사장. 옛 도자기와 고가구의 훈기가 가득한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사무실에서 지난 34년간 한국, 그리고 한국인과 맺어온 삶과 경영 얘기를 들어봤다. ●평화봉사단으로 시작한 34년 인연 -1995년 10월 초 김포공항에서 바라본 가을하늘은 잉크처럼 파랬고, 가을공기는 더없이 상쾌했다.17년 만에 찾아온 세번째 한국근무. 첫번째는 대학을 갓 졸업하고, 두번째는 사회 초년병으로, 이번에는 보험회사 임원. 서울 거리는 80∼90년대 급성장으로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다. 하지만 지하철에서 어른들에게 자리를 내주는 젊은이들의 마음씨나 콩비지·순두부의 깊은 맛은 예전 그대로였다. 그로부터 또다시 만 9년이 흐른 지금, 한국과의 인연은 내 나이의 3분의2를 채워가고 있다. -뉴욕 시러큐스대(생리학)를 졸업하고 의대 진학을 준비 중이던 71년, 우연찮게 평화봉사단(Peace Corps)에 자원하게 됐다. 전세계 개발도상국에서 2년간 봉사활동을 하는 일이었는데, 그게 ‘코리아’와 인연의 시작이었다. 대개 영어 가르치는 일이 맡겨졌던 다른 봉사단 친구들과 달리 나는 대학전공 때문에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에 배치됐다. 각지의 보건소를 돌며 결핵 예방과 치료, 의료장비 이용교육을 하는 일이었다. 생소한 나라였지만 전국 방방곡곡을 도는 동안 애정과 호기심이 싹터갔다.“이렇게 작은 나라에서 이렇게 말투와 음식, 생활방식이 다를 수가 있을까.”북한산 정상에서의 점심요리, 시골 다방마담과의 커피 한잔, 야간 통행금지로 고생했던 에피소드 등은 지금도 고스란히 남아 있는 청년시절의 추억이다. -당시 나는 서울 연희동에서 하숙을 했는데 하숙집 아줌마와의 인연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재미 있는 것은 당시 예뻐했던 아줌마의 서너살짜리 아들이 지금 우리 회사의 프로영업조직(FSR)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현재 ‘100만달러 원탁회의’(MDRT·실적 높은 설계사들의 전세계 모임) 회원이다. -73년 평화봉사단 활동을 마치고 고향에 돌아가 외환은행 뉴욕지점에 잠깐 있다가 이듬해 다시 한국으로 나왔다. 미국 기계부품회사의 바이어로 부산 사상공업단지에서 일했는데, 퇴근 후 해운대에서 수영을 하고 먹었던 막걸리와 홍합의 맛은 절대로 못 잊을 것 같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간 것은 79년. 부산에서 알게 된 외환은행 지점장의 제의로 외환은행 뉴욕지점에 재입사했다. 자산운용을 담당했는데 당시 급성장하던 수출한국의 최일선이자 무역결제가 집중됐던 이곳은 나에게 금융에 대한 눈을 뜨게 해 주었다. 근무 17년째인 95년, 한국에서 일할 임원을 뽑고 있던 메트라이프 본사에 지원서를 냈다. 보험인으로서 출발점이었다. ●“세종대왕은 정말 대단한 양반” -많은 사람들이 내 한국말 실력에 놀라곤 한다. 이미 결혼식 주례도 몇차례 섰다. 사실 이건 순전히 한국말이 가진 매력 때문이다.‘살갑다’‘아침햇살’‘보듬다’ 같은 말을 보라. 은근한 정과 풍부한 감성이 느껴지지 않는가. 한글은 과학적이기도 하다. 정말 세종대왕은 대단한 양반인 것 같다. -도자기는 내 생활의 일부다. 나이 들수록 더 도자기에 미쳐가는 것 같다. 한국 도자기의 단순함과 편안함은 중국·일본 도자기가 절대로 범접할 수 없는 맛을 지녔다. 도자기 동호회인 ‘문월회’에 외국인으로는 유일하게 가입해 활동하고 있다. 이천, 강진, 여주 등의 도요지는 물론이고 중국내 고구려 유적지에도 다녀왔다. 특히 도자기를 알아가는 과정은 한국의 역사를 배워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도자기와 함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고가구다. 도자기는 반닫이 같은 것이 뒷받침돼야 제격이다.(사무실 곳곳에 놓인 도자기와 고가구를 가리키며)내 개인 소장품들이다. 한남동 작은 아파트에 더 이상 놓을 데가 없어 사무실로 들고 나왔다. 이제 그만 도자기 사는 걸 자제할 때도 된 것 같은데, 그게 안 된다. 옛날 한국사람들은 정말로 작품에 혼을 담았던 것 같다. 하지만 정작 한국사람들이 그걸 모른다. 박물관에 들어가도 사람이 없다. 내년에 새 국립박물관이 완성되면 그때는 많이들 가려나. 서울 가회동 등 일부지역을 빼놓고는 한옥이 거의 사라져 버린 것도 비슷하다. 서양에서는 옛 건물들을 이렇게 무분별하게 없애지 않는다. 발전도 중요하지만 장구한 역사를 너무 쉽게 버리는 것은 아닌지. 조깅도 빼놓을 수 없는 취미다. 지금도 동호회원들과 매주 문산, 오산 등 서울근교를 찾아다니며 조깅을 한다. 보통 5㎞쯤을 뛰는데 그러는 동안 그 지역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된다. 뛰고 나면 맥주를 한잔씩 하는데, 사실 이 맛에 뛴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 같다. -미국에 가면 열흘 정도는 괜찮은데 그 이상 지나면 김치 생각에 통 식사를 못한다. 다행히 고향집이 있는 뉴저지에 한국식당이 많다. 제일 먼저 찾는게 곰탕과 김치다. 지금도 점심식사때 직원들과 회사 맞은 편 먹자골목을 답사하듯 돌아다닌다. 얼마전에는 사내 맥주파티 자리에서 “백김치는 너무 싱거워서 고들빼기 김치가 더 좋다.”고 했더니 직원들이 “사장님 전생은 한국사람이었던 것 같다.”며 웃었다. 나로서는 유쾌할 따름이다. 한국음식은 대개 건강식품이다. 콩비지, 삼계탕, 비빔밥, 쌈밥, 된장찌개, 김치찌개, 순두부 같이 맛도 좋지만 몸에도 좋은 음식들이 널려 있다. 홍어회, 곱창은 물론이고 사철탕까지 먹어 봤다. 어차피 세상 한번 사는 건데 어떤 음식이 어떤 맛인지는 느껴봐야 하지 않겠나. -회사에서 석달에 한번씩 맥주파티를 연다. 신입사원 신고식도 하고 장기자랑도 한다. 한잔씩 서로 따라주며 마시다 보면 금세 친해진다. 젊었을 때 소주 두병은 가볍게 마셨던 술 실력이다. 내 방문은 항상 열려 있다. 아이디어나 개선사항, 불만이 있으면 말하라는 것이다. 나는 ‘예스맨’을 굉장히 싫어한다. 상사가 시키는 대로 하는 시대는 지났다. 영어실력을 테스트해 보고 싶을 때에도 내 방으로 오라고 한다. 직원에게는 물론이고 나에게도 도움되는 일이다. ●“미래에 대한 최고의 투자는 교육” -97∼98년 외환위기는 한국도 그렇지만 나로서도 난생 처음 겪는 고통이었다. 당시 우리 회사는 튼튼한 채권만 갖고 있었기 때문에 크게 불안할 게 없었지만 아무래도 최악의 사태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의 피말랐던 경험 때문에 지금도 우리 회사는 위험한 채권에 절대 손을 안 대는, 철저한 안전위주 자산운용을 하고 있다. -교육이야말로 미래에 대한 최고의 투자다. 미국 본사 외에 중국, 인도 등 아시아 현지법인간에도 긴밀하게 교육프로그램을 운용하고 있다. 대주주가 미국회사다 보니 영어실력도 중요하다. 회사에서 매주 3∼4회 아침·점심으로 영어교육을 시킨다. 또 모든 업무교육이 인터넷을 통해 동영상으로 제공된다. 우리의 노하우가 집적된 자산이어서 외부에는 구체적인 내용이 비밀에 부쳐져 있다. 종합자산관리사(AFPK), 국제공인재무설계사(CFP) 등 업무관련 시험을 준비하는 비용도 회사가 부담한다. 우리 회사의 합격률이 업계에서 가장 높은 이유다. -한국사회는 예나 지금이나 너무 급하다. 항상 ‘빨리빨리’다. 다들 성공하고 싶어하지만 일정한 선을 넘어서면 개인도 기업도 넘어지게 된다. 지금의 대규모 신용불량 사태가 이를 잘 보여주지 않는가. 자기가 처한 상황을 잘 알고 분수에 맞게 살지 않으면 큰코 다치게 된다는 것을 사랑하는 한국사람들에게 꼭 말해주고 싶다. 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 솔로몬 사장은 누구 스튜어트 솔로몬(56) 메트라이프생명 사장은 2001년 6월 취임 이후 줄곧 ‘한국적 영업’을 강조해 왔다. 이는 메트라이프라는 글로벌기업을 국내에 빠르게 연착륙시킨 원동력이 됐다. 물론 솔로몬 사장 자신이 한국문화와 정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메트라이프생명은 미국 최대 생보사(보유계약고 기준)인 메트라이프의 한국내 자회사.1989년 코오롱-메트생명으로 출발했으나 98년 코오롱그룹 지분을 모두 사들여 지금의 경영체제가 됐다. 이듬해인 99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 연속 흑자를 냈고, 그 사이 전국 지점 수는 40개에서 94개로 늘었다. 업계 최초로 보험금 청구당일 지급을 시행했고, 현재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변액유니버설보험을 지난해 국내 최초로 선보였다. 직원들에 대한 대규모 교육투자로 올해 변액보험 판매자격 시험에서 업계 평균(37%)의 두배인 74%의 최고 합격률을 기록했다. 최근 메트라이프는 SK생명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인수가 마무리되면 시장점유율 4%대로 국내 생보업계 4위를 다투게 된다. 지난 8월에도 세이에셋코리아자산운용을 인수하는 등 확장경영을 가속화하고 있다. 기업윤리를 기반으로 고객·직원·주주 등 3자를 모두 만족시키는 회사를 목표로 하고 있는 그는 “직원들이 너무나도 열심히 일해주는 게 고마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 터프해진 ‘우리 형’ 원빈

    터프해진 ‘우리 형’ 원빈

    영화 ‘우리형’을 보고 깨달은 게 있다면,원빈이 지금껏 어떤 한 작품을 주도할 만큼 도드라지는 캐릭터를 맡은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우리 시대 최고의 스타라는 이름값과 달리,그는 언제나 작품 속의 여러 캐릭터 가운데 하나였다.영화 ‘킬러들의 수다’에서는 네 킬러 중 막내였고,‘태극기 휘날리며’에서는 장동건보다 한 수 아래인데다 거대한 스펙터클 속에 캐릭터는 묻혔다. #원빈 캐릭터가 가장 도드라지는 첫 영화 하지만 이번 영화는 다르다.‘원빈의 영화’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그의 캐릭터가 전반적인 분위기를 이끈다.꽃미남 스타가 아닌 ‘배우 원빈’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기쁨이 영화를 보는 즐거움의 전부라고 해도 좋을 만큼.연기에 자신감이 붙어서 이제야 전면에 나선 걸까.“아니요.주인공을 꼭 하고 싶어서라기보다는,그냥 그런 역할을 하고 싶어서…” 내성적이라는 소문대로 눈앞에서 말꼬리를 흐리며 수줍게 웃는 그와 달리 ,영화 속 원빈은 말끝마다 욕설을 내뱉는 ‘학교 짱’이다.내성적이며 공부도 잘 하는 형(신하균)과 반대로,발길질도 서슴지 않는 강한 역할로 지금껏 품어왔던 여린 미소년의 티를 확 벗겨내는 것. 하지만 영화를 못 본 관객들은 ‘왜 또 동생을?’이라는 궁금증을 가질 만하다.“‘태극기‘에 이은 동생 역이어서 작품 선택에 고민이 많았습니다.하지만 드라마 ‘꼭지’의 명태 같은 역할을 영화에서 보다 자유롭게 펼쳐보이고 싶었죠.” 겉으로는 삐뚤어졌고 더없이 거칠지만,속내는 깊고 순수한 캐릭터.아마도 원빈이란 배우를 세상에 드러나게 한 배역이라 애착이 더 가는 것일 테다. 그래도 “종현은 ‘꼭지’의 명태와는 또 다른 강한 캐릭터”이기 때문에 그는 캐릭터 연구에 더 골몰했다.강원도 정선에서 2남3녀의 개구쟁이 막내로 자란 그는,그래서 이번 캐릭터가 편하긴 했지만 역시 곱상한 외모가 걸림돌이었다.“외적·내적으로 모두 강한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내적인 모습은 연기로 표현되지만 외적인 얼굴은 바꿀 수 없잖아요.”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머리의 칼자국.“머리에 흉터 하나쯤 있으면 더 캐릭터가 잘 살아날 것 같았죠.” 안권태 감독도 “원빈은 항상 ‘왜’라는 질문을 갖고 캐릭터를 연구하는 배우여서 연기 코치를 전혀 안했다.”고 말할 정도니 그의 연기에 대한 욕심을 알 만하다. #“나의 연기는 100%가 노력의 산물” 인터뷰 내내 질문 하나하나에 오랜 뜸을 들이며 차근차근 짧은 ‘정답’만을 고르는 그에게서 스타 특유의 ‘끼’란 찾아보기 힘들었다.“끼가 없기 때문에 나의 연기는 100% 노력”이라는 그의 말은 거짓이 아닌 듯했다. 아직도 개인교습으로 연기지도를 받는다는 그는 “난 아직도 신인”이라고 강조했다.그만큼 그에게는 가능성이 열려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배우로서 새로운 계기를 마련해줬다.”는 ‘태극기‘에 이어 “이제는 그 발판을 딛고 일어섰다.”는 ‘우리형’.그리고 또 다음 작품은 어떤 연기의 색깔을 보여줄 수 있을까.“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정해놓고 미래를 계획하진 않아요.아직 많은 작품에 참여하지 않아서 더 도전할 수 있는 캐릭터가 많다는 게 장점이죠.” 사실 ‘태극기‘에서는 틀에 박힌 연기 탓에 각종 TV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성대모사로 패러디되기도 했다.봤느냐고 슬쩍 물으니 “2번정도 봤는데 재밌었다.”면서 “‘우리형’에서도 그렇게 따라했으면 좋겠다.”는 ‘순진한’대답을 했다.어찌됐든 이번 영화에서는 인정사정 안 봐주는 핏기 선 얼굴,첫 사랑에 설레는 풋풋한 표정,형에 대한 북받치는 감정 표현 등 입체적인 연기로 일취월장했으니 따라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모든 사람이 ‘배우다.’라고 말할 수 있는 배우로 남고싶다.”는 그의 소망대로 이제는 ‘배우 원빈’이라고 불러도 좋을 때가 온 걸까.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사진 강성남기자 snk@seoul.co.kr ●충성! 꼭 가겠습니다 배우의 길이라는 긴 마라톤 경주에서 이제 막 첫걸음을 뗀 것 같다지만,그는 몇 걸음을 걷기도 전에 군대라는 큰 벽을 맞았다.온갖 병역비리로 연예계가 얼룩진 때인 만큼 그의 거취가 궁금했다. “군대는 꼭 가야 된다고 어릴 때부터 생각해왔어요.아쉽고 불안한 마음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담담한 편이에요.그 사회에서 또 다른 나를 쌓아갈 수 있겠죠.” 원빈은 병무청의 입대 영장을 기다리고 있다.올해 연말이나 내년 초쯤에는 통보가 올 예정.하지만 연기에 한창 물이 오른 때문인지 가능하다면 한 작품 정도 더 참여한 다음에 가고 싶단다.“아직 ‘우리 형’의 일본 프로모션이 남아 있어서 그 사이 다른 작품을 출연할 수 있다면 하고 싶어요.” 그는 군대에 가기 전에 “책도 많이 보고 여행도 하고 운동도 실컷 하고 싶다.”는 평범한 청년다운 소망을 비쳤다.그래도 일단은 ‘푹’쉬고 싶단다.아마도 ‘우리형’의 연기가 만만치 않은 노동이었을 테니.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26) 영원한 이상향,‘우산민국’ 울릉도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26) 영원한 이상향,‘우산민국’ 울릉도

    조선 영조 연간에 대역사건이 터졌는데,그 경위는 다음과 같다.‘삼봉도가 동해 가운데 있으며,둘레가 심히 크고 사람도 많으나 예부터 나라의 교화를 벗어나 도망친 사람들이 만든 섬이다.빈한하고 미천한 자를 위하여 망명 역적인 황진기가 장군이 되어 정 진인을 모시고 울릉도에서 나오고 있다.청주와 문의가 먼저 함락되고,서울이 함락될 것이매,이씨 대신에 정씨가 들어서서 가난없고 귀천없는 새 세상을 만들 것이다.’ 이씨 왕조가 무너진다는 이런 내용의 유언비어는 괘서와 투서로 널리 퍼져서 당시 경기·충청도의 백성들을 동요시켰다.삼봉도는 이미 15세기 말인 성종 연간에도 운위된다.도망친 무리가 1000명이 넘게 살고 있다는 기록이 그것이다.토지가 비옥하고 풍요로우며,청명한 날이면 경흥에서 바라보이며 회령으로부터 동쪽으로 7주야를 가면 도달한다고 하였다. 조정에서는 수차례나 이 무리를 뿌리뽑으려고 노력했으나 뱃길이 험하고 위치도 불명확하여 실패한다.세금을 내지 않는 자유스러운 땅으로 회자되어 민심을 유혹하므로 그곳에 다녀왔다는 자는 극형에 처하여 백성들에게 경고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된다. 삼봉도는 유토피아의 땅이니,실제의 울릉도이면 어떻고 아니면 어떠랴.성종실록에는 영흥 사람 김자주가 삼봉도를 발견한 대목이 나오는데,그는 아마 독도를 삼봉도로 간주한 듯하다.실존 여부와 무관하게 민중들에게 오랜 이상향으로 알려져 왔으며,그만큼 먹고 살기에 요족한 섬이 동해에 있다는 믿음의 증거다.오죽하면 고려 현종 9년(1018) 동북 여진이 먼 울릉도까지 침범했을까. ●3만 헤아리던 인구 8000명으로 줄어 “참으로 살 만한 곳이지요?”“무슨 말입니까? 먹고 살 길이 막막해요.”섬목선창에서 만난 어부에게 이상향 운운하는 고상한 말을 건넸더니 대뜸 막막하다는 대답이 되돌아온다.그 옛날 이상향의 지금 모습은 강파르기만 해 3만을 헤아리던 인구가 8000명으로 줄었다.오징어 흉년에다가 주업인 약초재배도 중국산이 범람해 막을 내리는 중이다. 이 땅의 역사 기록은 ‘이사부’로부터 시작된다.신라 22대 지증왕 13년(512) 이사부로 하여금 우산국을 정벌케 하였다.인심이 사나워서 무력으로는 항복시키기 어려우니 계책으로 항복케 하리라 하고 목우사자로 위협하여 굴복시킨 뒤 매년 신라 조정에 조공을 바치도록 했다.이 기사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우산국 우해왕(于海王)이 대마도 공주와 결혼했다는 전설이 현재까지 전승된다.울릉도와 대마도가 해상을 통해 상통하였다는 증거다.‘말을 잘 듣지 않는’ 우산국은 항복은 하였으되 반독립적 상태를 장기간 지속했음 직하다.학자에 따라서는 해상 강국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울릉도 ‘거주 금지’와 ‘육지 소환’은 육지로부터의 ‘독립성’을 중앙 통치권력에의 도전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울릉도 개척은 조선조 고종 19년(1882)의 개척령 반포에 이르러서야 공식 윤허된다.그렇다하여 개척령 이전에 잠행하는 도민이 없었던 것은 결코 아니었으리라.개척령이 가난한 이들에게 울릉도행 배를 타게 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만은 분명하다.동해안의 강원·경상도민뿐 아니라 멀리 전라·제주에서까지 들어왔다.지금도 곳곳에서 개척이란 단어를 많이 듣게되며,주민의 뿌리도 각양각색이다. “개척 당시,겨울을 지내면 식량이 바닥나곤 했지요.굶주림에 시달릴 때 눈 속에서 명이가 올라오는 거예요.그걸 캐다가 연명했대요.명(命)을 잇게 한다고 이런 이름이 붙은 나물입니다.” 저동항에서 작은 음식점을 경영하는 이정례(49)씨 식탁에도 틀림없이 이 명이가 올라온다.귀한 반찬이다.산마늘을 뜻하는 말로,울릉도 나리분지의 특산물이다.남획으로 줄어들기는 했으나 부지깽이 삼나물 고비 땅두릅 산마 더덕 미역취 도라지 등과 더불어 여전히 울릉도의 특산물에 속한다.도민의 대부분이 비탈밭에서 나물농사를 짓거나 자연채취로 생계를 꾸려갈 정도다. 섬이기는 하지만 어업 못지않게 농업이 중요하다는 증거다.사실 횟감보다도 산나물이 더 잘 알려져 있다.풍족한 비와 적설량,대마난류권의 따스한 연중 기온,제주 화산토와는 다른 강한 지력(地力) 등은 이곳을 산채 및 약초의 본향으로 만들었다.화산섬이란 특수한 자연 조건이 만든 결과이다. ●땅과 바다의 힘이 맞서 탄생한 화산섬 미국의 저명한 생태학자 레이철 카슨은 화산섬을 ‘지속적이며 격렬한 산고의 결과물’로서,‘창조하려 애쓰는 땅의 힘과 거기에 저항하는 바다의 힘이 맞선 결과로 탄생한다.’고 하였다.지금도 세계의 바다 속에서는 끊임없이 화산 폭발이 진행돼 섬들이 흥망성쇠를 거듭하고 있다.울릉도 역시 폭발 이후에 누적된 바다의 침식과 풍뇌우설의 공격으로 깎이고 다듬어져 오늘에 이르렀다.분화구였던 나리분지에는 물이 고이고 고여 기름진 토양의 원천이 되었다. 1787년 서양인 최초의 울릉도 탐사기라 할 수 있는 ‘라 페루즈 항해기’에는 울릉도를 ‘다주레’라고 명명한 기록이 남아 있다.‘경사가 굉장히 심했고,산정에서 물이 있는 곳까지 좋은 수목으로 뒤덮여 있다.상륙 가능한 7곳의 모래로 된 조그만 만(灣)을 제외하고는 벽처럼 수직으로 노출된 암벽이 섬 주위를 둘러쌌다.’ 지금이라고 이 기록과 크게 다를 바 없다.울릉도의 시원지인 현포,연락선이 닿는 도동,어업 전진기지 저동,아름다운 천부항,신항이 건설되는 사동 등을 제외하면 가파른 암벽투성이다.울릉도가 신비롭다 함은 그만큼 산세가 험하다는 의미다.고종 29년(1892)에 창작된 정처사술회가(鄭處士述懷歌)에도 개척민의 고난과 험준한 도로사정이 잘 그려져 있다.현포에 상륙해 바닷길을 따라 귀암을 거쳐서 천부동에서 나리동을 올라가 거기에서 다시 저동으로 내려와 도동을 거쳐 사동으로 가는 고단한 노정이었다. 나리분지의 투막집과 너와집은 이런 고난의 개척사를 여실히 증명해 준다.최병용(36) 북면 청년회장이 원시림 속의 산신령 약수터로 잡아끈다.“성인봉 아래에서 솟는 이 물 자시고 가면 천년을 살지요.” 마셔 보니 과연 물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천연기념물이 된 울릉국화와 섬천리향이 곳곳에서 자라고 있으니 나리분지야말로 울릉도의 중핵이다.지금은 일부에만 후박나무와 향나무 숲이 남았지만 예전에는 조밀한 숲이 우거져 선박건조용으로 남벌됐다.일본은 물론이고 러시아까지 벌채권을 확보하여 이곳 나무를 베어갔다.강원도 관초(關草·1886)에 따르면,일본인들은 대규모 선단으로 출몰하여 아예 도동에 점포까지 설치했다고 한다. 송곳같이 솟은 추산 자락에서 고비와 도라지농사를 짓는 주민 서영필(전 북면 면장)씨는 이곳을 ‘해중보배’로 표현한다.“관음도는 원래 깍새섬이라고 했지요.고기가 없던 개척 당시에 그 깍새 고기로 영양을 보충했고요.” 깍새는 슴새를 말한다. 지금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슴새나 멧비둘기들이 모두 훌륭한 단백질원이었다.산세는 거칠지만 조금만 움직이면 먹을 것이 지천이다.“그러나 해중보배라도 교통 불편은 어쩔 수 없습니다.”실제로 섬을 헤짚고 다니는 차는 모두 사륜구동이다.일반 승용차로는 어림없다. 석포에 오르니 독도가 먼 발치에 떠있다.고 이종학옹이 자료를 내놓고 삼성이 지원하여 독도박물관을 지은 것까지는 좋았는데,하필이면 바다도 보이지 않는 계곡에 지은 것이 영 불만스럽다.코 아래로 죽도가 보이고 쾌청한 날이면 독도까지 보이는 석포야말로 독도 관해(觀海)의 명당임은 필자만의 생각일까.토박이 박태철(73)옹도 “물마루에 떠오르는 독도는 혼자 보기 아까운 풍경”이라며 거든다. 육지와 섬 사이에 간극이 있다면,울릉도에도 도동을 중심으로 한 관청 중심지와 북면 등의 오지 사이에 간극이 존재한다.일주도로가 관음도 바로 앞의 섬목에서 끊겨 반드시 배를 타야만 도동이나 저동으로 나올 수 있다.섬 안에 또 하나의 섬이 존재하는 셈이다. ●따스한 기온 기름진 땅에 후덕한 인심까지 지금의 조건만으로도 울릉도는 충분히 ‘이상향’이다.맑은 공기,따스한 기온,기름진 땅,게다가 후덕한 인심까지 더해진다.섬이라는 조건에 부합하고 백년을 내다볼 수 있는 장기적 비전이 아쉽고 절실하기만 하다.울릉도는 울릉도다워야 한다.‘육지 따라 배우기’를 거부하는 고집스러운 해양생태적 사고만이 울릉도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으리라. 이곳의 옛 길과 임도(林道)를 살린다면 어떨까.가령 길이 끊긴 내수전~섬목 구간은 옛길로 얼마든지 갈 수 있다.작은 섬에 수천 대의 차량이 나다닐 필요가 있을까.친환경적인 자전거도로를 거미줄처럼 엮어놓는다면 그 자체가 장관 아니겠는가.‘자전거의 섬’이 완성된다면 현재의 차량 물결에 비하랴.덧붙여,포항 배편 같은 독점 노선은 언제나 말썽이다.교통문제 해결없이는 현실적으로 이상향은 어렵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한다. 용출수만으로도 수력발전을 할 수 있는 섬,죽도와 삼선암을 비롯한 천혜의 자연풍광으로 유혹하는 신비의 섬,우산국은 사라졌어도 여전히 ‘우산민국’인 섬,그 섬에서 돌아오는 뱃전에서 연방 울릉도 호박엿을 먹고 있었다.이상향이 될 조건은 여전히 충분한데,그 이상향이 현실 속에서도 이 호박엿만큼이나 달콤했으면 오죽 좋으랴.
  • [씨줄날줄] 실업률의 두 얼굴/우득정 논설위원

    얼마 전 노무현 대통령은 연간 38%에 이르는 수출증가율,5%를 웃도는 성장률,200억달러를 넘어선 경상수지 흑자 등을 들어 우리 경제가 결코 위기가 아니라고 단언했다.그러면서 위기론의 진원지로 일부 언론을 지목했다.한 고위 당국자는 이에 덧붙여 한국에서 경제위기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하면 외국의 경제학자들은 정신이상자로 취급한다고 지적했다.세계 12위인 경제 규모에서 그만한 실적을 내고 있다면 위기가 아니라 기적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정부에 비판적인 일부 언론과 경제학자들의 해석은 사뭇 다르다.좀체 살아날 줄 모르는 소비와 투자,상승세가 꺾이기 시작한 수출,물가상승 압력 등을 열거하며 위기는 아닐지라도 위기국면에 접어든 것만은 틀림없다고 반박한다.경제는 한 단면을 보고 판단할 게 아니라 추세를 봐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운다.그러면서 위기를 위기라고 인정하지 않는 오기가 더 큰 문제라고 정부를 몰아붙인다. 이처럼 통계란 어떤 시각에서 보느냐에 따라 상반된 해석이 나오기도 한다.외환위기 이후 국민계정의 끝 부분에서 주요 지표로 부상한 실업통계도 마찬가지다.낙관적으로 본다면 지난달에는 실업률 증가세가 멎었다.게다가 미래 고령화사회를 짊어질 청년층(15∼29세)의 실업률은 0.3%포인트나 줄어들었다.올 들어 신규 채용 규모를 크게 늘린 기업의 노력과 정부의 독려 덕분으로 돌릴 수 있다. 그러나 비관적인 시각에서 본다면 해석은 전혀 달라진다.전체 실업자 80만 1000명 가운데 직장을 갖고 있다가 실직한 전직(前職) 실업자가 97.3%인 77만 9000명이나 된다.특히 전직 실업자 중 85.2%가 1년 내 직장을 잃었고,실직 사유의 48%가 직장 휴·폐업이나 명예퇴직,정리해고 등 비자발적 실업인 점을 감안하면 경기침체 장기화에 따른 기업의 구조조정이 본격화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30대 실업률이 0.1%포인트,40대 실업률이 0.3%포인트 상승한 것이 이를 방증한다. 따라서 문제는 해석이 아니라 해법이다.그리고 유일한 해법은 일자리 창출이다.대통령부터 국민에 이르기까지 모든 가치의 기준을 일자리 만들기에 둔다면 통계를 둘러싼 상반된 해석은 얼마든지 뛰어넘을 수 있다고 본다.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서울광장] 떠나고 싶은 한국/손성진 논설위원

    [서울광장] 떠나고 싶은 한국/손성진 논설위원

    지금 한국을 떠나고 싶은 사람은 손을 들라고 하면 얼마나 될까.어느 신문에서 최근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 20대의 47%,30대의 42%가 한국을 떠나고 싶다고 했다.10명중 4명꼴인데 주위를 둘러봐도 수긍이 가는 조사다.하긴 신용불량자 400만명이 다 한국을 떠나고 싶다면 그것만 해도 10% 아닌가. 이민을 왜 가려느냐고 물으면 첫째가 경제불황이고 두번째가 자녀교육 문제 때문이라고 한다.비관적,비애국적으로 생각한다면 한국은 염증나는 나라다.한달에 몇백만원을 들여 과외를 시키지 않고는 좋은 대학에 보낼 수도 없는 만성적인 ‘사교육병’,어쩔 수 없는 선택인 ‘일류 대학병’,수업 시간에 학생들이 잠을 자도 교사가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는 무너진 교실,학교에 재미를 붙이지 못하고 놀 곳도 없어 노래방이며 오락실을 전전하는 학생들-교육의 문제점만도 다 열거하기 어렵다. 대학을 졸업해도 무려 12.3%에 이르는 체감 청년실업률로 대변되는 지옥같은 취업 전쟁이 기다린다.직장인들도 하루하루 불안감에 살고 한창 일할 나이에 쫓겨나면 무능력한 ‘고령인구’ 취급을 받게 된다.아이 하나 마음 놓고 맡길 곳 없는 무책임한 안전불감증 사회.몇해 전 시랜드 화재사건으로 아들을 잃은 뒤 훈장을 반납하고 뉴질랜드로 이민간 전 필드하키 국가대표선수 김순덕씨의 마음은 오죽했겠는가.백화점이 무너져 500명씩 떼죽음을 당하고 거대한 다리가 몇번씩이나 붕괴된 일이 있는 나라 아니던가.더하여,정쟁만 일삼는 정치가 그나마 남은 나라에 대한 애정을 식게 만든다.천문학적인 돈을 빼돌린 전직 대통령은 그렇다 치고 몇억원쯤은 뇌물도 아닌 듯 비리가 만연하고 투자자의 전 재산을 주식 사기로 털어가는 현실 앞에서 한국을 떠나고 싶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여기에 연줄문화나 지역감정,무질서한 교통까지 합치면 총체적인 질병,‘한국병’이 된다.경제적인 면에서 본다면 이민을 원하는 사람들은 두 부류다.부유층의 경우 높은 세율과 투자할 의욕을 꺾는 기업 정책 등이 이유일 것이요,반대로 치솟는 집값,빈부 격차,실직과 같은 현실적인 이유로 이민을 고려하는 이들도 있다.이유는 달라도 인력과 자본이 대거 한국을 빠져나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병이 무서워 다 떠난다면 누가 병을 고칠 것인가.‘한국병’은 우리가 만들었고 고치는 것도 우리 책임이다.정부와 국민이 손을 맞잡고 풀어야 할 숙제다.부자들이 돈을 투자하고 쓸 여건을 만들어 국부가 해외로 빠져 나가는 일도 막는 한편으로 빈곤 문제를 해결하고 일자리를 창출하고 저소득층을 지원하는 양면책이 필요하다.그런저런 고통을 감내하며 이땅에 남아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도 있다.그들은 어쩌면 이민을 시도할 여건이라도 되는 사람들을 선택받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1903년 1월13일 새벽,하와이 호놀룰루항에 첫발을 디딘 102명을 필두로 한 한국인의 이민들은 억척같은 삶을 살며 세계 이민사에 징표를 남겼다.조국을 등지고 더 나은 삶을 찾아 떠난 그들은 지금도 조국을 그리워하고 있다.그들이 이 정도의 여건에서만 태어났다면 조국을 지켰을 것이다.비관적인 면만 보면 모든 게 비관적이다.국가경쟁력이 세계 36위라도 우리보다 낮은 곳도 많이 있고 끌어올릴 능력은 우리에게 충분하다.땀흘려 일하면 경제는 회복될 것이고 교육제도는 민관이 머리를 맞대고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조금씩 개선하면 된다.환경 탓,남의 탓만 하는 것은 옳지 않다.선진국에도 사교육병은 있고 마약과 폭력,왕따도 있다.당장 싫다고 떠날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해 힘을 모을 일이다.한국은 여전히 아름답고 살 만한 땅인 것이다. sonsj@seoul.co.kr
  • 韓國號 ‘1만弗 늪’에 빠졌다

    韓國號 ‘1만弗 늪’에 빠졌다

    한국경제에 대한 우울한 통계와 전망들이 연일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안팎으로 비틀거리는 우리 경제의 ‘종합검진’ 결과가 나와 충격을 주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13일 서울 여의도 산은캐피탈 강당에서 ‘경제 재도약을 위한 10대 긴급제언’ 심포지엄을 열고 한국경제가 새로운 성장동력의 부재,고령화·노사갈등 등으로 잠재성장률이 4.8%에서 2004∼2010년 4%로 하락,구조적인 저성장 국면에 진입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또 9년 동안 허우적대고 있는 ‘마의 1만달러’ 장벽이 더욱 장기화될 공산이 커 선진국 진입은커녕 영원히 ‘2류국’으로 전락할 가능성마저 있다고 경고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외환위기 이후 소득격차가 늘고 있는데다 정치적 세대교체에 따른 이념대립이 심화되고 있고,과도한 이념대립으로 실질적인 미래의 준비는 방치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소는 한국 경제가 현재 경기침체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고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격차,소득 양극화가 심각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또 금융시스템의 불안정성과 고임금·고비용 구조도 한국 경제의 아킬레스건이라고 지적했다. 내수침체의 주요 원인인 가계부채는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청년층 고용률은 30.8%로 미국(53.9%),일본(40.3%) 등 선진국에 비해서도 심각한 상황이다.소득격차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1990∼1997년 0.286에서 1998∼2003년 0.315로 악화됐다. 향후 전망은 더욱 암울했다. 우리의 세계 시장 점유율 1위 품목이 2002년 77개인 반면 중국은 787개로 증가했고,생산거점의 탈한국 러시 현상도 계속될 전망이다.반도체와 휴대전화의 뒤를 이을 신산업에 대한 해답도 준비되지 않았다. 고령인구 비중은 2020년 15.1%로 늘어나고 고령화 등 인구요인만으로도 잠재성장률이 2030년이면 3%로 낮아질 전망이다.세계경영개발원(IMD)에 따르면 한국의 노사관계는 조사대상 60개국 가운데 최하위였고 출자총액제한,부채비율 200% 등 각종 규제는 기업의 투자의욕을 떨어뜨리고 있다. 연구소는 향후 경제정책의 기본방향을 통해 현 정권의 ‘경제관’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이념대립을 넘어 ‘정치의 계절’에서 ‘경제의 계절’로 전환해야 하고 정부의 직접적 개입보다 자율적 경쟁 환경이 필요하며,‘나눠먹기식’ 분배정책 대신 기업가가 모험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삼성경제연구소 윤순봉 부사장은 “한국이 마의 1만달러를 돌파하고 분배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분배정책보다 성장이 효과적”이라면서 “경제주체간의 ‘발목잡기’를 벗어난 사회적 합의,역량의 집중,과감한 위험감수 등으로 우리의 환경에 걸맞은 강소국형 성장전략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같은 전망에 대해 재정경제부 이승우 경제정책국장은 “잠재성장률이 계속 떨어지는 추세지만 정부가 보는 잠재성장률 공식수치는 여전히 ‘5%내외’”라고 말했다. 안미현 류길상기자 ukelvin@seoul.co.kr
  • [삶과 경영이야기] (25) ‘미래형 CEO’ 하나로텔레콤 윤창번 사장

    [삶과 경영이야기] (25) ‘미래형 CEO’ 하나로텔레콤 윤창번 사장

    윤창번(50) 하나로텔레콤 사장은 1년전 통신업계에 혜성처럼 나타난 최고경영자(CEO)다.그가 소리소문 없이 통신시장 바닥에서 영역을 넓히는 사이 업계는 그를 ‘옹골찬 미래 기업가’로 평가하고 있다.그는 국책 통신연구원장에서 통신 대기업 사장으로 변신을 했다.그를 만난 이들은 한국의 ‘앨빈 토플러’(제3의 물결 저자)를 찾았다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내로라하는 통신업계 CEO들을 제쳐두고 그를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해박한 통신지식과 정연한 논리,카리스마와 인간미가 녹아 있다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스스로 “기업경영을 한번 해보고 싶었다.”는 말을 할 정도로 이젠 자신감에 차 있다. ●“잘 노는 수재였다” 윤 사장은 경기중·고와 서울대를 나와 세칭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하지만 그가 전한 학창시절은 ‘사고뭉치’였다.하지만 인생을 삐딱하게 보는 ‘반항아’가 아니라 친구가 좋고 운동이 좋은 자유분방한 ‘문제아’였다. 양친이 모두 대학교수인 학자집안이었지만 중학교 때부터 담배를 피우면서 주먹질을 해대는 생활이었다.어머니가 “창피하니 집에서만 담배를 피우라.”며 담배 한 보루를 손수 사다가 방에 넣어 주면 재밌게 피워 대던 그런 청년이었다.오죽했으면 경기고 시절 문과도 이과도 아닌 ‘무과(武科)생’이란 별칭을 얻었을까. 작은외삼촌과의 에피소드 하나를 들려 줬다.그의 작은외삼촌은 정근모(전 과학기술처 장관) 한림원 원장이다.어릴 때 잠깐만 놓아두면 밖에 나다녀 정 원장이 줄로 묶어둘 정도였다고 한다.윤 사장은 이를 어릴 때 자랐던 외가의 영향이라고 했다.혜화초등교 교장이었던 외할아버지에게 드나드는 손님이 많아 이때부터 사람과 부대끼고 정을 붙이는 성격이 생긴 것 같다는 것이다. 윤 사장은 이런 성격에 지금도 사람 복이 많다고 했다.좌중에서 편안한 분위기로 상대방을 ‘띄워 주는’ 언변은 최고란 찬사를 받는다.그는 한번 만나면 인연을 소중히 여긴다.만남이 좋기에 좋은 점만 본다고 했다.‘상대방을 좋게 보지 않으면 그도 나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갖지 않는다.’는 말을 금언으로 삼고 있다. ●인생수업,외삼촌들에게 배웠다 윤 사장의 인생 진로에 절대적인 영향을 준 사람은 외삼촌 정근모씨였다.정씨는 23살 때 박사 학위를 받아 당시 장안에서 천재로 불렸다.“외삼촌은 고등학생이던 내게 대학은 공대로 가라고 권했습니다.기술을 배우고 대학원은 상대로 가서 경영공부를 하라고 누차 말했습니다.” 하지만 고교 때 너무 논 탓에 윤 사장은 난생 처음 쓴맛을 본다.서울대 시험을 치렀으나 보기좋게 낙방했다.양친이 음대 교수로 있던 한양대 공대에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지만 포기하고 재수 끝에 서울대 산업공학과로 진로를 택했다. ●유학길은 사고의 전환점 그에게도 긴 방랑길을 접게 한 계기가 왔다.대학 3학년 때 취리히 스위스항공사에서의 6개월간 인턴생활은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게 한 거울이었다. “스위스항공사가 블랙박스란 AIDS시스템을 개발했었죠.이륙과 착륙 등에 360개 변수가 들어가는 시스템인데 이때 처음 선진 기술과 기업을 봤습니다.또 이곳에서 독일 대학원생들이 4개 국어를 유창하게 하는 걸 보고 큰 자극을 받았습니다.” 이 두 가지가 그의 인생관을 바꾸게 한 단초 구실을 했다.윤 사장은 정신을 차리자고 마음을 먹고 죽기 살기로 영어 실력을 닦았다.그의 영어 실력은 자타가 공인한다. 졸업 후엔 당시 가장 인기있던 종합상사 대우실업의 문을 두드렸다.김우중 회장과의 직접 면담을 거쳐 77년부터 기계 수출분야에서 일했다.하지만 이것도 2년뿐이었다. 대학 1학년 때부터 ‘알고 지내던’ 정구부 후배인 부인과 결혼에 골인한 79년,그는 명문 미국 컬럼비아대로 유학길에 올랐다.노스웨스턴대에서는 박사학위 공부를 마치고 86∼87년 휴스턴 대학에서 교수로 있다가 외국 생활을 접고 귀국했다.이후 산업연구원에서 연구위원(교수)을 거쳐 89년 정보통신정책연구원에 입사했다.36살에 기획조정실장의 중책을 맡기도 했다. ●하나로통신,전권을 잡다 윤 사장은 14년간의 정보통신분야 연구를 접고 지난해 8월 하나로통신(현 하나로텔레콤)에서 경영자로서 새 둥지를 튼다.많은 지인들이 말렸지만 늘 언젠가는 한번 CEO를 해보겠다고 마음을 먹어 왔던 터라 아무도 그의 고집을 꺾지는 못했다.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2002년 말 주변에서 요청이 왔을 때 거절을 했다.이듬해 설때 신윤식 당시 회장이 “자신의 역할을 대신해 달라.”며 직접 요청하기도 했다. 그해 3월말 하나로통신에 경영 공백이 왔다.LG,삼성,SK 등 주요 주주들이 모인 이사회에서 그를 다시 불렀다.당시 그에겐 대학 학장,대학원장,법무법인 고문 등의 요청이 잇따를 때였다. 연구원에게 대기업 경영을 부탁한 게 얼른 와닿지 않는다는 물음에 “정책연구원에서 200명의 연구원을 거느리며 경영 경험을 제대로 했다.”고 밝혔다. 예산 확보와 인사,연구 마케팅을 많이 해봤다고도 말했다.통신업계 바닥을 속속들이 꿰뚫고 있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정보기술(IT)산업의 흐름을 오랫동안 깊게 봤다는 말이다. ●전문 경영진을 누르다 지난해 LG와 하나로통신의 하나로통신 경영권 뺏기 싸움으로 말머리를 돌렸다.엎치락뒤치락하던 싸움을 고작 연구원장 출신 신참 CEO가 어떻게 이겼을까.“이돈 저돈 가릴 것 없습니다.돈에 색깔이 있습니까.”당시 유동성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선 살아남는 쪽을 선택해야 했던 긴박감의 소회였다.그는 결국 ‘소액주주 위임장’이란 비장의 카드를 골랐다.당시 10.4%인 외국인의 소액지분을 우호세력으로 만들기 위한 은밀한 행보를 했다.이 싸움의 마침표를 찍은 소액주주를 포섭하기 위해 영국,미국,싱가포르 등을 두루 돌았다.9.1%의 외국인 위임장을 받아내 ‘골리앗 LG’와의 막판 싸움에서 이겼다.당시 LG측은 윤 사장의 이같은 ‘외국 행보’를 나중에야 알게 됐다. 하지만 윤 사장은 이 와중에도 하나로통신 사장으로 밀어준 1대 주주인 LG 등 대주주와 끊임없이 경영 정상화 방안을 논의했다고 밝혔다.하나로텔레콤은 AIG-뉴브리지로부터 유치한 11억달러로 현재 제2의 창업을 서두르고 있다. ●“변화는 기회” 입버릇 처럼 강조 하나로텔레콤은 지금 모든 게 변신 중이다.외자유치전과 소액주주 쟁탈전에서 승리해 조직이 뭉쳐 있다.대범한 사람보다는 꼼꼼한 사람이 성공한다는 그의 지론이 담긴 전략이 만든 결집력이다. 그는 일부에서 술렁거리는 조직 분위기를 추스르고도 있다.묵은 하나로통신의 찌꺼기를 걸러내기 위한 작업이다.영입한 젊은 임원들은 전면에 포진돼 젊은 기업을 만드는 데 앞장 서 있다. 그는 “change(변화)에서 g를 c로 바꾸면 chance(기회)가 된다.”고 직원들에게 입버릇처럼 강조한다.변화를 넘어 기회로 만들자는 뜻이다.그가 처한 통신시장 현실은 KT와 하나로텔레콤의 격차만큼이나 어둡다.시내전화는 95대 5 정도다.하지만 ‘사고를 칠 테니’두고 보란다. 이런 현실에서 뭘 갖고 큰소리를 칠까.KT보다 좋은 품질을 자랑하는 초고속인터넷으로 승부를 걸겠단다.초고속인터넷은 24%를 점유하고 있다.이를 기반으로 KT가 당분간 신경을 쓰기 힘든 결합 서비스를 내놓아 시장을 넓혀 가겠다는 전략이다. 두루넷 인수,휴대인터넷 사업권 확보,케이블TV 업체들과의 협력 등을 통한 멀티미디어사업을 하나로텔레콤의 미래로 보고 있다.매각을 추진 중인 두루넷도 제값을 주고 꼭 인수하겠다고 다부지게 말했다. 윤 사장은 “지금은 큰 기업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빠른 기업이 이긴다.”는 말로 숨겼던 비수를 끄집어 낸다. ■ 윤창번 사장은 윤창번 사장은 소탈하면서도 적극적이다.‘박학다식’하지만 상대방에게 머리를 숙일 줄 안다.생활에 감각과 멋을 갖췄다고나 할까.인터뷰 말미에 선술집에서 삼겹살에 소주 한잔 하자고 제안했다.“그것 좋죠.꼭 한번 해야죠.”그는 흔쾌히 응했다.만나는 사람마다 자기 사람으로 만드는 재주를 가진 사람이다.임·직원들과 스스럼없이 호프 자리와 노래방 모임을 갖기도 한다.그의 18번은 윤도현 밴드의 신곡들이다.젊은 가수인 김범수,왁스의 노래도 즐겨 부른다.젊은 감각이 관리 능력에 바탕이 되고 있다.운동을 아주 좋아한다.테니스,야구,축구 등 못하는 운동이 없다.골프는 한때 1오버파를 기록했다고 한다.핸디는 12로 알려져 있지만 요즘은 일이 바빠 제대로 못한다.가족 관계는 원로 음악가인 윤용석 교수가 부친이고,원로 피아니스트이자 한양대 음대 교수를 지낸 정은모 여사가 모친이다.이 때문인지 클래식 음악을 즐기고 CD 수천장을 소장하고 있다.재즈도 무척 좋아한다.김신배 SK텔레콤 사장과는 처남 매부간이다.서울대 다닐 때 여동생을 김 사장에게 소개해 줬다.남동생도 SK텔레콤 자회사인 SK텔레텍 상무로 있다. 정기홍기자 hong@seoul.co.kr
  • [사설] 사상 최대 신규 채용하는 삼성

    올 상반기 30대 그룹의 신규 인력채용 규모는 지난해 수준을 밑돌았다.게다가 그마저도 대부분 경력직 채용에 그쳤다.그래서 연초에 일자리 창출에 앞장서겠다고 했던 대국민 약속이 빈말이 아니었나 하는 비난 여론도 적지 않았다.이런 상황에서 수출과 내수를 선도하는 삼성그룹이 지난해보다 1000여명이 많은 8000여명의 대졸 신입 사원을 채용하겠다고 공표한 것은 ‘사업입국’이라는 기업의 사회적 책무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한다. 10년 전에 비해 국내총생산(GDP) 10억원당 취업자 수가 절반으로 떨어질 정도로 ‘고용 없는 성장’은 세계적인 추세다.더구나 신규 채용 인력의 70%가 경력직일 정도로 산업현장의 수요와 동떨어진 대학교육을 받은 미숙련 신입 인력에 대한 기업의 선호도는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그 결과,청년실업률은 전체 실업률의 2배에 달하면서 미래의 성장 잠재력이 급속도로 추락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심각하게 제기됐다.노무현 대통령이 올해 국정 최우선 과제로 일자리 창출을 들고 나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그러나 기업들은 지난해 상반기보다 2배나 많은 이익을 올렸음에도 규제와 반기업 정서 등 외부 환경을 탓하면서 투자와 인력 수혈에는 소극적이었다.오히려 공장 해외 이전 등으로 국내 일자리를 줄이는 방향으로 내달렸다.우리 경제가 지금 심각한 내수 부진과 소비 침체에 직면한 것도 기업의 이러한 움직임과 무관하지 않다. 수차 지적했듯이 반기업 정서를 해소하려면 기업이 먼저 사회적 책무에 솔선수범해야 한다.그 첫걸음이 일자리 창출이다.그래야만 기업도 살고 국가경제도 살아난다.이것이야말로 시장경제의 선순환 구조다.삼성의 일자리 창출 노력이 다른 대기업으로 확산되기를 기대한다.
  • [2004 美대선] 공화 뉴욕全大 셋째날

    |뉴욕 이도운특파원|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시의 매디슨스퀘어 가든에서 계속된 공화당 전당대회의 사흘째 행사는 ‘기회의 땅’이라는 주제를 내걸었지만,그보다는 존 케리 민주당 대통령 후보를 집중 공격하는 데 초점을 맞춘 날이었다. 부통령 후보 지명을 수락한 딕 체니 부통령은 “케리 후보는 국가안보에 역행하는 표결을 해왔다.”면서 “상원의원은 20년 동안 실수를 해도 국가에 큰 영향이 없지만 대통령은 결코 실수를 해서는 안 된다.”고 케리 후보를 부적격자로 몰아붙였다.대의원들은 ‘이랬다저랬다 하는 사람(Flip-flopper)’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케리 후보 비판에 동참했다. ●체니 부통령지명 수락 연설 민주당원으로서 공화당 전당대회에 참석한 젤 밀러 조지아주 상원의원은 케리 후보가 매사추세츠주 상원의원으로서 지금까지 해온 표결을 일일이 거론하며 “미국 총사령관으로서는 부적격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그는 “내 가족의 미래가 내 당의 미래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이 자리에 섰다.”고 변신의 이유를 밝히면서 “테러의 위협으로부터 내 가족을 지켜줄 사람은 부시 대통령밖에 없다.”고 말했다. ●식전 행사서 10여명 반부시 시위 이에 앞서 이날 아침에 열린 청년 행사에서 앤드루 카드 백악관 비서실장이 연설하는 도중 무대 근처에 있던 10여명이 부시 대통령을 비난하는 구호를 외치고 ‘에이즈 근절’ 등의 플래카드를 펼쳐 보이며 시위를 벌였다. 이에 대항해 대의원들이 “4년 더” 등 부시 대통령 지지구호를 외치고 일부는 시위자들의 플래카드와 피켓을 빼앗기 위해 몸싸움을 벌이면서 무대 근처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경찰은 현장에서 10명의 시위자를 체포해 수갑을 채운 뒤 연행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이날 밤늦게 뉴욕에 도착해 소방관들과 만나 9·11을 회고한 뒤 숙박했다.한편 최근 지지율 하락으로 고민하고 있는 케리 캠프에서는 핵심 참모들을 교체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등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dawn@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16) 서귀포 보목항의 자리잡이배 테우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16) 서귀포 보목항의 자리잡이배 테우

    1985년 10월4일,제주도 화북의 해신당에서는 도항제(渡航祭)가 열렸다.‘고대 제주항로 테우 조사단’이 화북을 출발했다.원초적인 고기잡이 배 테우를 복원하여 옛 뱃길에 도전함으로써 ‘한반도~제주도’의 고대 항로를 규명해보려는 시도였다.탐라와 육지부의 교류경로,해로 변천사와 유배길 조사도 이루어졌으니,배이름도 격에 맞게 ‘물마루’로 명명되었다.노르웨이 탐험가 T 헤위에르달이 남미에서 폴리네시아군도를 향하여 전통배를 타고 떠난 콘티키(Kontiki)호의 대탐험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테우를 활용한 최초의 모험이리라.물마루호는 서귀포시 보목동에 남아 있던 여섯척 중에서 선발되었다. ●테우와 자리잡이의 원조, 보목동 8월 중순 제주도를 찾아,‘서귀포칠십리 바다사랑회’를 이끌면서 수중탐사와 환경보존에 애쓰는 이원석 회장에게 테우와 자리 조사 안내를 부탁하였더니 약속이나 한 듯 보목동으로 이끈다.보목동이야말로 테우와 자리잡이의 원조이기 때문.대부분의 제주도 포구에서 테우로 자리를 잡아왔겠지만 보목만큼 그 전통을 이어가려는 곳은 보지 못하였다. 보목에서는 매년 테우로 자리를 잡는 ‘자리돔큰잔치’를 열어왔다.보목의 자리돔큰잔치는 관광객은 물론이고 인근 주민들도 사라져간 테우가 그리워서라도 몰려든단다.청년들의 보존 움직임도 활발해서 ‘보목섶섬 수중환경보호지킴이’(회장 강대환)를 조직하여 테우도 복원하고 전통어법 재현에도 힘쓰고 있다.덕분에 보목동에 가면 언제든지 테우를 볼 수 있다.그러나 한라산의 귀한 구상나무로 만들던 테우는 사라졌고 일본산 삼나무 테우들로 대체되어 조금은 안타깝다. 몇년 전의 일.제주도민들이 감귤을 들고서 북한을 집단방문한 적이 있었다.일찍이 북에 정착하게 된 제주 출신 노인 한 분을 만나게 되어 말문을 트다가 제일 먹고 싶은 것이 무언가를 물었다고 한다.그런데 노인은 허다한 먹을거리를 제치고 ‘자리젓이 그립다.’고 하였다.초년의 입맛은 일생을 간다고 하였으니 자리젓의 아른한 향취가 50년 넘게 이어진 셈이다. 사실 ‘자리강회’,‘자리물회’,‘자리구이’ ‘자리젓갈’ 등 자리 없는 제주도 식단은 왠지 빈자리 같다.활기 넘치는 강진국 마을회장은 우리 일행에게 “자리를 좋아한다니 절반은 제주사람으로 인정해 줍세.”라고 너스레를 놓았다.자리를 모르고서 제주도 먹을거리를 논하지 말지어다! ●고향을 지키는 고기, 그래서 이름도 ‘자리’ 오키나와에서 한반도 남해안 일부에까지 여기저기서 발견되는 아열대성 자리는 붙박이로 한군데서 일생을 마친다.서귀포 외돌개에서 보목 앞의 섶섬에 이르는 난류대를 특히 좋아한다.보목에서는 ‘겨울에 눈이 오면 개가 죽는다.’는 속담도 있다.모든 물고기가 자유롭게 먼바다를 나돌고,모든 새가 먼하늘을 나돌 것 같지만 그런 상상은 시나 노래에서나 가능하다.자리에게도 엄연히 따스한 집이 있고 그리운 고향이 있다.자리는 자신이 태어난 따스한 곳에서 가능한 한 떠나질 않는다.그래서 이름도 ‘자리’다. 보목에서는 앞의 섶섬 동쪽에 동군자리,서쪽에 서군자리,서쪽 해변에 리알자리,지귀섬의 자귀자리,쇠소각 냇물이 흘러나오는 쇠소각자리 등의 ‘자리밭’이 유명하다.어민들은 이들 자리밭을 정확하게 포착하여 테우를 들이밀어 자리를 낚는다.경계없는 바다같지만 엄연히 바다밭이 경계를 가른다.섶섬 주변에서는 섬그늘에 모여든다면,민물이 흘러들어 기수대를 형성하는 쇠소각에서는 감미로운 민물을 마시려고 몰려든다.그래서 똑같은 바다이지만 매양 동일한 바다는 없다.문전옥답만 강조하는 육지중심 사고와 다르게 기름진 바다밭의 해양중심 사고로 바라본다면 바다마다 전혀 다른 색깔을 연출하며 다가올 수밖에 없다. 밭이 다르면 같은 배추종자도 맛이 다르기 마련.보목과 우도의 자리가 같을 수 없으며,고산의 자리는 성산의 자리와 다르다.같은 보목 내에서도 여(암초)의 상태에 따라 자리의 색감과 생김새,심지어 맛까지 다르다.절기에 따라서도 알이 찬 알찬자리,자잘한 쉬자리,산란하고 난 다음에 잡히는 거죽자리 등등 이름도 다르고 맛도 다르다.조류가 센 곳에서 노는 가파도자리는 뼈가 굵어 물회용에는 어울리지 않아 구이용에 적합하다.뼈가 부드럽고 맛이 고소한 보목의 자리는 구이보다도 물회나 강회에 어울리니 같은 제주도 내에서도 제각각인 셈이다. ●더위 푸는 덴 물회, 술안주엔 구이 얼마전 경남 삼천포에서 자리구이를 맛보았다.횟집 주인 왈,“수온이 높아지니 여기까지 자리가 찾아드네요.”라고 했다.이제 자리는 차츰 북상을 하여 남해 해안가에서도 자신들의 자리를 마련한 것 같은데 남해안의 자리가 어떤 격식을 갖추고 있는가는 아직 감이 덜 잡힌다. 자리는 먹는 취향과 장소,시간에 따라서 맛도 다르다.복중의 더위풀이에는 시원한 자리물회가 그만인데 자리구이는 술안주로도 맞춤이다.자리젓국은 멸치젓과 더불어 제주민이 가장 보편적으로 먹는 젓갈.그런데 제주도 바깥에서는 똑같은 자리물회라도 당최 제맛이 나지 않는다.독특한 향을 내는 제피잎을 잘게 썰어넣어야 국물이 한결 시원해지는데 싱싱한 제피잎을 구할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독특한 맛을 내는 제피잎 없는 자리물회는 사실 정통식이 못된다. 한때 구두미포구,서래포구,큰개머리,배개포구 등 전통적인 포구에서 25척에 이르는 테우들이 국자같이 생긴 국자사둘로 자리를 잡았다.자리만으로도 충분히 생계가 유지되었다.1명이 수경으로 물밑을 감시하면 2명이 그물을 드리워 조류에 떠들어오는 자리를 낚았다.배를 타지 않고 갯바다밭의 ‘덕’에서 자리를 잡는 덕자리사둘,동그란 모양의 사둘을 도르래의 힘으로 드리우거나 올리며 낚아가는 가장 보편적인 어법이었던 동고락사둘도 행해졌다. ●자리잡이·해초 채취… 전천후 다목적 배 그러나 GPS로 바뀌면서 배도 발동선으로 바뀌었으니 전통 테우 자리잡이도 한폭의 사진으로만 남은 셈이다.‘자리 삽서(사세요).’라고 외치며 마을길을 나다니던 아낙들의 외침소리도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되었다.전통어법은 사라졌으나 자리잡이의 경제적 이득은 여전히 높아서 지금도 보목의 살림살이를 살찌우게 한다. 테우는 자리잡이에만 쓰였던 배가 아니다.전천후,다목적이었으니 해초 채취에도 요긴했다.바다마을 사람들은 기름진 해초 없이는 푸석푸석한 화산토에서 농사를 지을 수가 없었다.해초 채취에 테우가 더할나위 없이 요긴했으니 해초를 그득 싣고 돌아오는 풍경 역시 화학비료에 떠밀려서 저 멀리 사라지고 말았다. 테우는 물마루호의 실험에서도 확인되었듯이 제주민의 해상교통에 절대적인 수단이었다.탐라의 고대 대외교류도 테우에 의존하였다.삼국지동이전에 이르길,“배를 타고 왕래하면서 물건을 사고판다.”고 하였으니,테우를 이용한 교역이 일찍부터 이루어졌다.독일인 겐테(S.Genthe)는 ‘제주도탐험과 동해 중국에서의 표류’란 표류기에서,테우의 위력을 이렇게 묘사하였다. ●어떤 파도에도 끄떡없는 이음새 영접하기 위해 보낸 배는 이상한 배였다.보트도 아니고,카누나 속을 파낸 통나무도 아니었다.뱃전이나 배의 구조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는 거대한 뗏목이었다.거센 파도라는 어쩔 도리 없는 조건 때문에 적응법칙에 따라,예컨대 동인도의 마드라스 해안의 파도 때문에 불가피하게 만들었던 것과 비슷하게,기상천외의 물건이 만들어졌음이 이내 밝혀졌다.거칠고 격렬하게 출렁이며 크고 육중하게 굴러오는 사나운 파도가 끊임없이 그 선박을 덮쳤다.막힌 보트라면 금방 물이 가득 차서 뒤집힐 것 같았다. 그러나 튼튼한 이음매의 큼직한 틈새가 있어서 부딪치는 파도의 위력을 무력하게 만드는 큼직한 통나무들로 엮어 만든 듬성듬성한 이 선대(船臺)는 어떤 경우에도 물이 차서 뒤집힐 리가 없었다. 제주도는 두말할 것도 없이 섬이다.중요 물자는 배로 움직였다.전통시대에 일주도로·관통도로가 없었음은 당연한 일.‘한국전쟁의 기원’을 쓴 미국의 브루스 커밍스도 광복 당시의 빈약한 교통로를 이렇게 말했다.“ 섬을 둘러싼 좁은 도로가 있었을 뿐이다.1940년대 당시 제주시에서 섬을 횡단하여 서귀포로 가는 도로는 부설되지 않았다.” 조선시대의 사정은 더욱 어려웠으리라. ●맥 잇는 마을 있어 그나마 위안 테우는 사라졌어도 테우를 복원해서 끝내 이어가겠다는 마을이 있음은 일말의 위안이 된다.신혼여행객도 태우고,문화관광특구도 만들어 당찬 마을로 가꾸겠다는 결의에 가득찬 것을 보니,법고창신(法古創新)의 의연한 길을 모색하는 듯하여 감개무량이다.비록 배는 낡고 덜 효율적이지만 전통을 살려서 미래의 바다로 가꾸어 나간다는 바다살림의 의지는 바로 문화적 종다원성을 지키려는 안간힘이기도 하다. 해변가로 유별나게 솟구친 가파른 ‘제지기오름’에 오르니 보목포구가 한눈에 들어온다.절대보호구역인 섶섬의 자연경관적 가치에 관해서는 무엇을 더 논하랴.관광객에게는 눈요기에 불과한 섶섬이지만 자리돔에게는 대를 이어 살아가고 있는 ‘붙박이 자리’임을 애써 기록하고 돌아온다.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하고 동분서주하면서 유목민의 삶을 살아가는 도시민에게 섶섬의 자리들은 제 자리를 찾아갈 것을 가르치는 것만 같다.
  • [책꽂이]

    ●선방(禪房) 가는 길(정찬주 지음,열림원 펴냄) 소설가 정찬주가 전국의 선방과 암자를 탐방하고 쓴 명상산문집.신록에 잠긴 선방 사진들,향기 그윽한 법어 등 심산(深山)의 고즈넉한 아취를 물씬 피워 올리는 책은 여행 길라잡이로도 훌륭하다.1만 1000원. ●외롭고 높고 쓸쓸한(안도현 지음,문학동네 펴냄) 1994년 초판 출간 이후 꾸준히 독자층을 넓혀온 안도현 시인 대표작품집의 개정판.20대 청년기를 통과하던 무렵의 열정이 스민 ‘서울로 가는 전봉준’도 개정판으로 함께 나왔다.각권 7000원. ●체 게바라의 빙산(아리엘 도르프만 지음,김의석 옮김,창비 펴냄) 칠레 출신의 세계적인 작가 아리엘 도르프만의 신작장편.피노체트 군부정권 퇴각 이후를 배경으로,칠레 혁명 2세대의 눈에 비친 칠레의 현실과 미래.1만 3000원. ●안녕 내 사랑(레이먼드 챈들러 지음,박현주 옮김,북하우스 펴냄) 미국 대도시에서 활약하는 사립탐정 필립 말로를 주인공으로 세운 추리소설.정의롭지만 냉소적 영웅이란,틀에 박힌 분위기에서 벗어나 순수한 로맨스를 엮는 말로의 캐릭터가 신선하다.9500원. ●최배달의 세계격투기행(최배달 지음,자음과모음 펴냄) 극진 가라테를 창안한 전설의 무술인 최배달이 직접 쓴 세계격투 평정기.뉴욕 갱단과 맞선 일화 등 죽음의 문턱을 넘나든 극한상황들이 사실감 넘치게 묘사된 자서전.9700원. ●영원의 다리(상·하)(리처드 바크 지음,공보경 옮김,현문미디어 펴냄) 베스트셀러 ‘갈매기의 꿈’으로 알려진 작가의 1984년작 소설.이혼과 재혼을 겪은 작가의 실존적 경험,윤회사상에 바탕한 동양철학적 접근법이 국내 독자들에게 익숙한 글맛을 안겨줄 듯.각권 9000원. ●기쁨 아니면 슬픔(칼릴 지브란 지음,조성범 엮음,지현 펴냄) 레바논의 철학자이자 명시 ‘예언자’를 남긴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적 성찰이 돋보이는 시 모음.7000원.
  • [사설] 일자리 창출 약속 빈말이었나

    통계청과 노동부가 발표한 실업관련 통계와 분석자료를 보면 경기 침체의 그늘이 고용부문에 짙게 드리워져 있음을 알 수 있다.실업률이 5개월만에 상승세로 돌아선 가운데 건설 현장이 직격탄을 맞았다.강력한 투기억제책의 여파로 7월 중 건설 현장에서 줄어든 일자리가 전체 일자리 감소분 7만 2000개보다 7000개나 많았다.게다가 청년층 실업자는 지난해 말에 비해 외형적으로는 4만 6000명 줄었다지만 취업준비생 등 ‘청년 백수’까지 합치면 실업률은 최고 9.8%에 이른다고 한다. 청년층의 고실업률은 선진국의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하지만 우리와 단순 비교할 바는 아니라고 본다.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전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소득 1만달러의 덫에서 벗어나려면 역동성 있는 젊은 인력들이 우리의 산업현장에 꾸준히 공급돼야 한다.그래야만 침체의 늪에 빠진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 미래의 성장동력도 확충할 수 있다.바로 이런 이유로 정부도 연초부터 일자리 창출을 국정 최우선 과제로 설정했고,재계에 대해서도 일자리 창출을 독려했다. 하지만 10대 대기업들은 작년 상반기보다 2.2배나 많은 15조원의 순이익을 남겼음에도 신규 고용인력은 공공부문과 엇비슷한 1만명 수준에 그쳤다.국가 경제와 미래 세대를 위해 일자리 창출에 앞장서겠다고 공언했던 재계의 약속이 빈말이었음을 확인시켜주는 대목이다.재계는 당장 써먹기 편한 경력직만 선호한 것으로 드러났다.그러면서 재계는 여전히 청년층의 비현실적인 ‘눈높이’와 공급인력 과잉의 탓으로 돌렸다. 10년에 걸친 장기 불황을 겪은 일본의 제조업체들은 최근 첨단분야를 중심으로 국외 생산시설을 국내로 이전하는 등 국내 생산을 강화하고 있다고 한다.자본과 기술,인력 유출이 장기불황을 가속화시켰다는 반성에서다.재계도 일본의 이러한 움직임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그 출발점은 투자 확대와 일자리 창출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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