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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儒林(683)-제6부 理氣互發說 제2장 四端七情論(29)

    儒林(683)-제6부 理氣互發說 제2장 四端七情論(29)

    제6부 理氣互發說 제2장 四端七情論(29) 퇴계가 임금 선조에게 고봉을 ‘성리학을 깊이 연구해서 그 견해가 유학에 정통하다.’라고 서슴없이 추천하였던 것은 일찍이 두 사람 사이에 오간 격렬한 논쟁에 따른 결과 때문이었다. 우리나라 유학이론의 발전에 있어서 하나의 분수령이 된 퇴계와 고봉간의 논쟁은 이른바 ‘사단칠정논변’이라고 불린다. 이는 유학이론의 발전에 있어 분수령이 된 논쟁이었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 역사상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철학적인 대격돌이었던 것이다. ‘사단칠정논쟁’을 줄여서 ‘사칠논변(四七論辯)’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 논쟁 역시 고봉이 퇴계에게 먼저 강력한 의문점을 제기함으로써 점화되었던 대사건이었다. 만약 고봉의 이러한 이의제기가 없고 강력한 도전이 없었더라면 퇴계는 그의 대표적 사상인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을 정립하지 못했을 만큼 퇴계에 있어서 고봉과의 만남은 운명적인 해후였던 것이다. 두 사람의 격렬한 ‘사칠논변’의 발단은 고봉이 32세 때인 명종13년 가을, 과거를 보기 위해 서울로 올라왔다가 마침 서울에 와있던 퇴계를 찾아가 대뜸 논쟁을 던진 것으로 시작되었다. 이미 고봉은 서울로 올라가는 길에 큰 학자로 이름이 높았던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와 이항(李恒)을 잇따라 만나 ‘태극도설’을 비롯한 성리학의 중요한 주제들을 놓고 격론을 벌일 만큼 열혈청년이었는데, 퇴계는 그해 겨울 식년 문과 을과에 장원급제하였으나 아직 서생에 불과하였던 고봉이 나이가 26살 차이가 났으나 물리치지 않고 하나의 대학자로서 존중해 주었던 것이다. 고봉은 편지에 자신이 고백하였던 대로 ‘거친 성정’을 가진 사람이었으므로 퇴계를 만나자마자 퇴계가 주장하였던 ‘사단칠정론’에 대해 직격탄을 날린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퇴계는 손자 제자뻘에 해당되는 고봉의 직격탄에 대해서 열린 자세로 받아들였다. 이러한 사실은 고봉이 다녀간 다음날 퇴계가 고봉에게 쓴 편지에 자상하게 나타나고 있다. 두 사람 사이에 오고간 100여 통이 넘는 편지 중의 제일 먼저 시작된 편지가 고봉이 아니라 퇴계로부터 비롯된 사실은 ‘만약 배울 것이 있으면 세 살 난 어린아이에게도 배울 것이다.’라는 참된 유자로서의 태도를 엿보게 하는 명장면이며,‘세 사람이 길을 가면 그중에는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 그들에게서 좋은 점은 가려서 따르고 옳지 못한 점은 거울삼아 고치기 때문이다.’라는 공자의 가르침을 따른 감동적인 장면인 것이다. 두 사람 사이에 오간 최초의 편지는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기선달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편지를 씁니다.” 퇴계가 쓴 선달(先達)이란 용어는 문무과에 급제하였으나 아직 벼슬하지 아니한 사람을 가리키는 명칭으로 이를 보아 알 수 있듯이 그 무렵 고봉은 과거에는 장원급제하였으나 아직 벼슬에 오르지 않은 백면서생에 불과하였던 것이다.
  • [여성&남성] 예비 신랑·신부 “결혼전 이것은 꼭… ”

    ‘싱글의 끝을 잡고∼.’ ‘행복 끝, 불행 시작’까지는 아니어도 결혼하고 나면 이것저것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결혼을 앞둔 남녀들이 이런저런 충동과 욕구에 휩싸이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행동으로 옮기기 힘들거나 그 자체로 비현실적이라해도 예비 신랑·신부의 마음 한쪽을 흔들어 놓는 소원들, 어떤 게 있을까. 결혼을 앞둔 여성과 남성들의 얘기를 들어봤다. ■ 여성-영화같은 연애·이별하기 외국인·연하의 ‘남친’ 만들고 나홀로 여행·독립생활 꼭… 열차에서 우연히 만난 미국 청년과 프랑스 아가씨의 하루 동안의 로맨스를 그린 영화 ‘비포 선 라이즈’. 내년 봄,2년간 사귄 남자친구와 결혼에 골인하는 배모(29)씨가 결혼을 앞두고 마음에 품고 있는 ‘판타지’다. 순정만화를 즐겨 읽어온 그는 현실에서는 자신에게 헌신적으로 잘 해주는 남자와 결혼하지만 한편으로는 영화같은 연애를 꿈꾼다. ●색다른 연애를 꿈꾼다 결혼을 앞둔 여성의 상당수가 배씨와 비슷했다. 나만을 바라보는 남자와는 결혼을, 조금은 평균에서 벗어난 상대와는 마지막으로 사귀는 것을 꿈꾼다. 내년쯤 결혼할 계획인 양모(28)씨는 결혼 전 외국인과 연하 남자친구를 만들고 싶다. 그동안 이른바 ‘일탈’이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는 그는 연애 역시 평범한 수준으로 해왔다.“성격상 결혼하면 틀에서 벗어나는 일은 절대 하지 않을 것 같아요. 그러니 결혼 전엔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그런 일탈을 한번쯤 꿈꿀 수 있지 않을까요?” 올해 말쯤 결혼할 이모(24)씨는 소개팅이나 맞선을 못해본 게 아쉽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사귄 선배와 지금껏 연애해 결국은 결혼까지 하기 때문이다. 그는 “나이트클럽에서 ‘부킹’도 해본 적 없다.”면서 “낯선 사람과 차 마시고 영화보면서 긴장하는 그런 기분도 느껴보고 싶다.”고 했다. 결혼을 1년 정도 앞둔 회사원 신모(25)씨의 결혼 전 바람은 ‘바람 피우기’. 요즘 기준으로는 어린 나이에 결혼하려고 하니 억울한 기분이 든다. 마지막으로 가슴 설레는 연애를 해보고 싶다. 손잡고 걷기만 해도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기분이 들고 화장이 조금만 지워져도 다시 고쳐서 예쁘게 보이고 싶은, 그런 사람을 만나다가 결혼 전에 이별을 고하고 싶다. ●홀로 떠나는 여행 10월 말 결혼하는 정혜영(28)씨는 프랑스 여행이 소원이다. 대학시절 그 흔한 유럽 배낭여행도 못해보고 취직한 후에도 친구들과 국내 여행을, 친언니와 싱가포르를 여행한 게 전부다.“파리 샹젤리제의 노천카페에 혼자 앉아 책 읽는 상상을 해왔는데 결혼하면 아무래도 힘들겠죠?” 연애에 대한 아쉬움도 많았지만 정씨처럼 ‘혼자일 때 이곳저곳 많이 다녀라.’라는 주위의 조언을 무시했던 것을 후회 하는 경우도 많았다. 6년차 회사원 이모(29)씨는 결혼 전에 꼭 ‘나홀로 여행’을 떠나고 싶다. 대학 졸업 후 바로 직장 생활을 시작했고 입사 후에도 혼자서 휴가를 보내본 적이 없다. 막상 결혼을 앞두고 보니 결혼이라는 ‘굴레’를 쓰고 나면 혼자 떠나는 여행은 불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답답하다. ●나도 혼자 살고 싶다 9월에 결혼하는 유모씨도 독립생활을 꿈꾼다.27년 평생 부모님과 살아왔기 때문에 결혼하면 이혼하지 않는 이상 홀로 사는 생활은 꿈일 뿐이다. 가족과 따로 살아 귀가시간 등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친구들을 보면 늘 부러웠다. “여행은 지금껏 남자친구와 다녔기 때문에 결혼 뒤에 합의만 잘 하면 혼자갈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독립생활, 하다못해 친구랑 자취라도 꼭 해보고 싶었는데 아쉽네요.” 나길회 이재훈기자 kkirina@seoul.co.kr ■ 남성-아련한 첫사랑 만나기 비자금 미리 챙겨 놓기 ‘부비부비’에 부킹 한번만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은밀한 일탈의 기쁨. 오는 9월 여자친구와 결혼행진곡을 울리는 회사원 이모(30)씨는 결혼 전 꼭 나이트클럽에 가서 ‘부킹’을 하거나 홍대 앞 클럽에 가서 ‘부비부비’ 춤을 춰보고 싶다. 결혼 후에는 다른 여자에게 곁눈질하면 안된다는 의무감이 들어 다시 그런 곳에 갈 수 없다고 생각하니 살짝 아쉬운 기분이 든다. 막상 클럽 앞에 가게 되면 실제로 행동에 옮기게 될지는 의문이지만 마지막으로 용기를 내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품는 일탈의 꿈 한 여자에게 평생을 바치기 직전 솔로로서 가질 수 있는 ‘최후의 자유’. 예비 신랑들의 머릿속은 결혼 전 짧은 기간에 이뤄야 할 마지막 일탈에 대한 공상으로 복잡하다. 내년 1월 결혼하는 박모(29)씨의 별명은 ‘바른생활맨’. 교회에서 신부와 만난 박씨는 취직한 친구들이 ‘좋은 곳’에 데려간다고 해도 선뜻 나서지 않았을 만큼 ‘화류계’와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막상 결혼을 앞두니 그동안 너무 얌전하게 지낸 것 같고 특별히 충동적으로 뭔가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아 아쉽다.“결혼 전에 뭔가 젊은 혈기에만 할 수 있는 사고를 치고 싶어요. 바람을 피고 싶다는 건 아니고 한 1주일 정도 잠적한다든지 하는 돌출행동을 해보고 싶은 거죠.” 이달 말 회사에서 만난 동갑내기와 결혼하는 또다른 박모(27)씨의 바람은 첫사랑과의 만남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만나 3년간 사귄 첫사랑은 “나도 좀 다른 사람을 만나보고 싶다.”며 그를 떠났다. 고등학교 동창들이 결혼식에 대거 참석할 예정이지만 첫사랑은 그와 헤어진 뒤 단 한 번도 모임에 나온 적이 없어 7년째 얼굴조차 보지 못했다.“결혼할 사람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그래도 내가 생애 처음으로 ‘얘랑 결혼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던 상대라 그냥 한번 만나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미련은 전혀 없어요.” ●“과거를 알고 싶어”…“비자금 미리 조성” 양모(32)씨는 결혼할 여자친구의 과거를 속속들이 파악하고 싶다.1년 넘게 사귀어 왔지만 여자친구에 대해 모두를 알지 못하는 게 내심 불만이다. 여자친구의 과거를 알고 이전 남자들과 헤어진 이유를 알면 결혼생활에서의 시행착오도 줄일 수 있을 것 같다.“여자친구를 믿고 안 믿고의 문제가 아니라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의 성격을 알 수 있듯 과거를 알면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내년 봄 결혼 예정인 자영업자 김모(34)씨는 2000만원 가량의 비자금을 마련해 두고 싶다. 평소 사람들과 만나는 자리를 즐기며 인맥 관리에 남다르게 신경을 써온 김씨이기에 결혼 뒤 아내에게 받을 용돈으로는 관계 유지 비용을 충당하기 힘들다. 인맥 관리뿐만 아니라 신부에게 깜짝 생일선물을 해주려 해도 어느 정도의 돈은 필요하다는 게 김씨의 생각. ●마지막으로 내 부모에게 효도 일탈의 꿈은 뒤에 두고 효도로 솔로 생활을 정리하려는 예비 신랑도 많았다. 회사원 오모(31)씨는 평생 바깥구경 한 번 못하신 부모님을 비행기에 태워드리는 게 소원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번듯한 직장에 취직해 이제 막 보은을 시작하려 했지만 결혼을 하게 되면 아무래도 내 생각만으로 돈을 쓰기는 쉽지 않을 터.“언젠가 시간이 지나고 여유가 생기면 또 기회가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그때까지 부모님이 건강을 유지하실 수 있을지 걱정됩니다.” 이재훈 나길회기자 nomad@seoul.co.kr
  • 儒林(616)-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52)

    儒林(616)-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52)

    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52) 마치 인류가 낳은 최고의 성인이었던 노자와 공자의 만남을 연상시키는 퇴계와 율곡의 만남을 통해 우리나라가 낳은 위대한 사상가가 벌인 이 이중창의 대화는 짧지만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1세기를 맞는 우리민족에게 가장 중요한 사회문제는 바로 교육. 굳이 아리스토텔레스의 ‘국가의 운명은 청년의 교육에 달려 있다.’는 금언이 아니더라도 교육이야말로 국가의 먼 장래를 내다보고 계획을 세우는 백년대계(百年大計)인 것이다. 그러한 백년지계인 교육정책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 흔들리고 있는 이즈음 퇴계와 율곡이 나눈 마지막 대화를 통해 우리가 나아가야 할 교육의 지표를 설계하는 것은 매우 현명한 일일 것이다. 즉 ‘위기주의자’로서의 퇴계와 ‘위인주의자’로서의 율곡의 대화는 앞으로 나아가야 할 우리의 교육이 남과의 경쟁에서 이기고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한, 명예와 권력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공자가 주장하였던 ‘옛날에 배우고자 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위하여 공부하였다.(古之學者爲己)’라는 군자학에서 비롯된 ‘위기지학’임이 명백하게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퇴계가 율곡의 간곡한 청원에도 불구하고 임금의 장례가 끝나기도 전에 결연히 고향으로 낙향하였던 것은 이러한 ‘위기지학’으로서의 학문적 태도를 극명하게 드러내 보인 태도인 것이다. 우리교육의 목표가 남을 이기기 위한 경쟁과 명예를 높이기 위한 도구로서의 공명주의에서 벗어나 자기의 인격, 학식, 덕행의 향상과 증식을 목적으로 하는 ‘위기지학’의 원론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오늘날의 교육적 위기는 자연스럽게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퇴계와 율곡이 16세기의 현실에 맞추어서 나눴던 짧은 대화가 오늘날 우리의 현실이 가진 통시성과 일치되는 것을 발견하고 그 속에서 역사적 교훈을 얻을 수 있다면 이는 위대한 철인이 남긴 위대한 유산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 것이다. 감히 비교할 순 없겠지만 퇴계가 뛰어난 성리학자였으면서 대정치가였던 율곡보다 한층 더 위대한 사상가라고 평가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위기주의자’로서의 면모 때문이었던 것이니, 퇴계는 그로부터 4년 뒤인 선조4년 70세의 나이로 숨을 거둔다. 이때 율곡도 병환으로 벼슬을 사직하고 잠시 처가가 있는 해주의 야두촌으로 돌아가 야인생활을 하고 있었는데,1570년 12월 퇴계가 별세하였다는 부고가 오자 율곡은 신위를 만들어 놓고 곡을 하였다. 소대(素帶)를 차고 외실에서 거처하였으며, 동생 우를 시켜 제문을 바치도록 하는 한편 머리에 흰 띠를 두르고 심상하였다. 비교적 자대하는 면이 있어 고집이 세고 남을 비평하기를 잘하여 여간해서는 타인을 대단하게 평가하지 않았던 율곡이었는데, 유독 퇴계만은 존경하고 높이 평가하여 평생동안 스승으로 섬겼던 것이다. 그러한 스승 퇴계가 마침내 70세의 나이로 유명을 달리하였던 것이다. 율곡은 제문에서 퇴계를 일러 ‘천지사이에 뛰어난 기질을 모아서 타고나 은연함이 옥과 같고 모습이 순박하다.’고 칭송하였으며,‘행실은 가을 물처럼 맑고 깨끗하다.’고 표현하였다. 또한 스승의 학문에 대해서는 ‘뭇 학설에 서로 다른 점을 절충하여 하나로 모으되 주자를 스승으로 하였다.’고 추모하였던 것이다.
  • [인간시대] 서울 중구 장애인상담센터 염경순 소장

    [인간시대] 서울 중구 장애인상담센터 염경순 소장

    낯선 남녀를 소개한 뒤 이들이 서로 사랑하고 결혼하도록 돕는 일, 서울 중구 장애인상담센터 염경순(59) 소장이 맡은 일이다. 사설 결혼정보업체가 호황이라지만 장애인 남녀의 결혼상담을 무료로 해주는 곳은 드문 터라 전국에서 상담이 쏟아진다. 남성 회원만 800명이 넘는다.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여성 회원들 “대부분 40대 이상입니다. 나이 든 부모가 찾아와 아들이 가정을 갖는 모습을 보는 게 소원이라며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일흔이 넘은 한 할아버지는 하반신이 마비된 몸이지만, 할머니를 만나 여생을 보내고 싶다고 등록했다. 할아버지는 신혼집을 차리려고 평생 3000만원을 모았다. 그러나 여성을 찾기란 하늘에 별따기다. 등록 회원이 30명에 불과한 데다 그들도 그리 적극적이지 않단다. 염 소장은 “우리나라에서 결혼이란 여성에게 훨씬 많은 희생을 요구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남편을 돕고 가사 일까지 도맡는 걸 두려워한단다. 중매로 만난 남성과 사랑의 감정을 키울 수 있을지도 걱정이다. ●‘국제 커플´ 최근 들어 증가 추세 최근에 남성 장애인들은 베트남이나 필리핀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다. “필리핀에서 만난 한 여성이 장애인과 결혼하고 싶다고 해서 소아마비를 앓던 청년을 소개했습니다. 이메일을 오랫동안 주고받더니 결혼하더군요.” 장애인이나 외국인이란 겉모습을 뛰어넘어 만남이 이뤄진 셈이다. 염 소장의 노력으로 10여쌍이 가정을 이뤘다. 결혼이 성사되면 염 소장은 ‘웨딩플래너’로 변신한다. 결혼식장을 예약하고 신부화장과 웨딩드레스도 맞춘다. 장애인들이 대부분 생계가 어려운 터라 도움이 절실하다. 미용기술이 탁월한 그의 친구 김정원씨가 힘을 보탠다. 염 소장이 장애인과 인연을 맺은 것도 김씨 덕분이다. 미용실을 운영하던 김씨는 1970년대부터 복지원을 찾아다니며 노인과 장애인들의 머리를 예쁘게 손질해 줬다. 친구를 돕는다고 무거운 미용 도구를 날라주던 염 소장도 자연스럽게 자원봉사에 빠져들었다. “누군가에게 행복을 준다는 게 신기하고, 재미있었습니다.” ●주말엔 목사로 선교 활동 1969년부터 검찰 직원으로 활동하던 그는 97년 명예 퇴직을 하자마자 심리상담과 가정폭력, 사회복지를 두루 공부했다. 그리고 2002년 평택 신학전문대를 졸업, 목사의 길에 들어섰다.‘제2의 인생’을 시작한 것이다. 염 소장은 그해 중구 장애인상담센터 소장을 제의받았다. 장애인과 하루종일 몸을 부대끼는 일이었다. 결혼, 직업, 교육 등 다양한 얘기를 나누고,80여명에게 매일 점심을 챙겨주며 체력단련실, 샤워실, 휴게실 등 장애인 편의시설도 관리해야 한다. “망설였지요. 쉬운 일이 아닌 데다 잘할 수 있을지 겁이 나더군요.” ●비장애인과 똑같은 인격체로 바라봐야 남편이 ‘어려운 사람을 섬기겠다.’던 약속을 실천한 기회라며 응원해줘 힘을 얻었다. 염 소장은 주중에는 중구 상담센터 소장으로, 주말에는 송파구 문정동 한샘교회에서 선교 목사로 활동하고 있다. 염 소장은 “장애인은 불편한 몸이 아니라 사회적 편견 탓에 고통받는다.”고 강조했다. “장애인 가족들이 찾아와 결혼 상담을 하며 ‘장애인이라도 찾아달라.’‘청각장애인이면 좋겠다.’고 말하면 버럭 화를 냅니다. 왜 장애인에게 ‘라도’라는 말이 붙어야 합니까. 장애인을 비장애인과 똑같은 인격체로 바라보는 것이 복지사회로 향하는 첫걸음입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이현세 만화경] 표범, 그 위대한 인내심과 품격

    [이현세 만화경] 표범, 그 위대한 인내심과 품격

    어느새 친구의 아들들이 군에 가는 나이가 되었다. 가끔 술자리에 모이면 군대 얘기가 안주가 된다. 군에 보내서 기어코 고생을 시키겠다고 호언장담하던 어제의 육군 병장들이 막상 때가 되니 걱정되는 모양이다. 이래저래 걱정도 되고 궁금도 해서 얼마 전에 만화학과 제자들과 함께 전방 GOP 경계체험을 갔다. 한마디로 군대는 좋아졌다. 내무반은 일인침대와 휴게실로 꾸며져 쾌적했고, 목욕탕과 도서관도 만족스러웠으며 구타는 없어졌다. 이 세상 어떤 조직보다 사고율만 따져도 아들을 맡기기에는 가장 안전한 곳이 군대였다. 하지만 그래도 젊은이들에게 군대는 여전히 힘들고 괴로운 곳이다. 몇 년 전에 군대를 소재로 한 만화 ‘까치병장’을 제작한 적이 있었다. 군대얘기를 소재로 한 대부분의 영화·연극·드라마·문학 작품들이 그렇듯이 내가 그린 ‘까치병장’ 역시 낯선 조직과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야기되는 갈등관계가 주요 소재였고, 이를 풀어가는 과정에 교훈을 담아냈다. 그런데 이번 GOP 경계체험에서 경계근무도 같이 서고, 대화시간도 가지면서 두가지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그 하나는 여태껏 ‘문화상품의 소재로 주목받을 수 없었던 극적인 생활양식의 발견’이다. 영하 20도의 야밤, 전방의 철책선은 웅웅대며 울고 있었고, 가로등의 희뿌연 불빛 사이로 함박눈은 쏟아졌다. 이곳에서 GOP 근무 장병들은 해지기 전에 경계근무에 투입되어 날이 밝을 때까지 겨우 서너시간 쪽잠을 자가며 매일 똑같은 일상을 일년이나 반복한다. 이 장병들의 생활이야말로 젊은 시절 가장 혹독하고도 가장 극적인 삶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지금까지 군인들에게 요구되는 최고의 덕목은 대개 충성과 명예, 용기 등이 차지했지만 이것은 어쩌면 극적인 소재만을 좇는 대중문화가 만들어 낸 순위 조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군인의 자질을 가진 병사는 누구인가? 이 질문에 대다수의 작가들은 서슴없이 ‘네팔의 구르카 용병’을 꼽는다. 강철처럼 단련된 신체, 올빼미에 견줄 만한 시력, 거기에다 물불 가리지 않는 용맹성까지. 그러나 대다수 작품들이 놓치고 있는 구르카 용병들의 가장 우수한 자질은 ‘인내심’이다. 한번 매복을 명 받으면 폭우가 쏟아지는 속에서도 몇날 며칠이고 움직이지 않고 적의 움직임을 찾아 전방을 주시한다. 이 인내심이야말로 구르카 용병을 최고라고 칭하게 하는 최고 요인이지만 이 덕목은 극적 요소로 전환이 어려워 작품화되기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군인의 최고 덕목은 인내심이고,GOP의 장병들은 극한의 인내심을 요구 받는다. 반대로 사회에서 소위 조직폭력에 몸 담았던 자원이 대체로 군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한다는 통계가 있었다. 그 이유는 체력이나 용기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지루한 일상을 견디지 못하는 ‘인내력 부족’이었다. 또 한가지 발견은 군에 오기 전에 입시 위주의 교육으로 인하여 문화 예술을 접하기 어려웠던 병사들이 군에 와서도 문화적 인프라 부족 탓에 역시 문화예술과는 담 쌓고 사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젊은 장정들에게 주고 싶은 소프트웨어는 너무나 많지만 도서관이나 공연장, 전시장 같은 하드웨어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곳이 병영이었다. 장병들은 우리 모두의 젊은 아들들이며 ‘군복 입은 시민’이다. 우리사회의 미래는 청년들의 몫이고, 입시 위주의 교육으로 인한 왜곡된 가치관과 문화적 미성숙이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존재한다고 생각한다면 이를 바로잡을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는 병영에서 모색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젊은 피와 탄력있는 육체를 가진 장병들을 생각하며 눈을 감으면 아름다운 표범이 보인다. 표범이라면 흔히 아름다운 점박이 무늬와 잘 빠진 몸매, 그리고 앙칼진 성격과 날카로운 발톱을 생각하고 가끔은 제 덩치보다 더 큰 사슴을 나무 위까지 물고 올라가는 힘을 떠올린다. 그러나 나는 표범을 생각하면 먼저 단 한번의 사냥에 모든 것을 걸고 몇날 며칠을 위장하고 풀숲에 숨어서 먹이를 노리는 표범의 노란 눈이 생각난다. 내게는 바람도 숨을 죽이고 있는 그 침묵의 인내심이 표범이다. 그리고 아무리 배가 고파도 하이에나처럼 썩은 고기를 먹지 않는 그 우아한 품격이 표범이다. 한때 한국의 모든 야산을 주름잡고 포효하던 표범은 지금은 철책선 남방 아래에는 한 마리도 없다. 옛날 표범과 함께 살았던 우리 조상 중 누구 하나가 표범의 종말을 알았을까. 앞으로 군을 소재로 한 작품을 할 기회가 있다면 군의 덕목 중에는 인내심이 최고라고 얘기하고 싶다. 그리고 ‘범국민운동’으로 병사들이 좀더 많은 문화·예술 환경을 접할 수 있도록 시설을 확충해야겠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었으면 좋겠다. 분명 GOP의 장병들은 ‘극한의 인내심’속에 생활하고 있고 병영체험을 하러간 학생들은 그 인내심을 경이와 존경의 눈으로 봤다. 장병들은 단절된 바깥세상의 문화예술을 그리워했고, 나와 함께 간 학생들은 집중력과 인내심을 배우고 왔다.
  • [주말에 뭘 보러갈까]

    [연 극] ■ 3월의 아트 23~4월30일 학전블루 소극장. 그림 한 점때문에 생긴 오해를 풀어가는 세 남자들의 이야기. 알 듯 모를 듯 기묘한 남자들의 우정이 적나라하게 파헤쳐진다. 야스미나 레자 작, 황재헌 연출, 송승환 정원중 김일우(화목토)김석훈 오용 이성민(수금일)출연.(02)764-8760. ■ 그린 벤치 23∼3월12일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자폐적인 가족의 일상을 섬세하게 그린 수작. 재일교포 작가 유미리의 소설을 각색했다. 이성열 연출, 예수정 이지하 등 출연.(02)745-0308. ■ 복어 6월11일까지 아리랑소극장. 세금도, 병역의 의무도 없는 새로운 세상 ‘신천지공화국’에서 생긴 일. 김태수 작·차태호 연출, 김태훈 함건수 등 출연.(02)747-5016. [뮤지컬] ■ 그리스 3월23일까지 충무아트홀 대극장. 브로드웨이 배우들의 춤과 노래로 만나는 뮤지컬의 고전.1970년대 미국 청소년들의 풋풋한 사랑과 젊음을 재기발랄하게 그려냈다. 서울 공연에 이어 성남, 대구에서도 공연한다.(02)501-7888. ■ 벽을 뚫는 남자 28∼4월2일까지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자유자재로 벽을 드나들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된 소심한 남자의 인생 역전기. 임도완 연출, 박상원 엄기준 등 출연.1588-7890. ■ 빨래 4월23일까지 상명아트홀1관. 좁은 달동네 골목길, 그 안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의 가슴 따뜻한 이야기. 추민주 작·연출, 한정림 음악, 김영옥 박은영 출연.(02)762-9190. ■ 미스터 마우스 4월2일까지 사다리아트센터 네모극장. 뇌수술로 천재가 된 청년의 고통과 좌절. 대니얼 키스 작·이현규 연출, 서범석 김태한 임강희 출연.(02)747-2050. [미 술] ■ 멈춤 27일까지. 서울 관훈동 노화랑. 천연 옷감에 보일 듯 말 듯 그림을 그리고 한지를 여러 겹 붙여 퇴색된 느낌을 표현하는 한국화가 백원선씨의 개인전. 소박하면서도 정갈한 우리 여인네들의 삶의 자락을 섬세한 가락으로 재구성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이번 작품들은 특히 정지해 있는 말(馬)을 이미지를 차용해 ‘멈춤’ 의미를 극대화시킨다.(02)732-5491. ■ 가위바위보 27일부터 다음달 18일까지, 서울 청담동 ‘3story’. 가죽을 도화지처럼 조각 조각 내 새로운 의미를 만드는 작가 홍승수와 점토로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김정호, 회화작가 이찬호씨의 공동전시다.(02)549-7767. ■ 박승범 개인전 3월3일까지 서울 서초구 갤러리 우덕. 돌의 표면을 형상화해 독특한 세계를 표현하는 작가의 6번째 개인전 ‘잃어버린 공간을 찾아서’가 열린다. 작가는 수수하게 생긴 크고 작은 돌들에서 영감을 얻어 인간 내면, 본연의 세계, 우주의 탄생과 소멸을 그렸다. 박승범 아트 스튜디오 (031)923-3688, 갤러리 우덕 (02)3449-6071. [어린이] ■ 봄의 소리 왈츠 26일 오후3시,6시 서울열린극장 창동. 어린이를 위한 오케스트라와 발레의 만남.(02)578-7193. ■ 노을의 소원 28일까지 아트홀스타시티. 잔소리꾼 엄마를 없애달라는 소원을 빈 노을이 진정한 엄마의 사랑을 깨닫는 성장스토리.(02)745-0308. [무 용] ■ 한국의 명인명무전 24일까지 오후 7시30분 서울 서초동 국립국악원 예악당.17년째 이어져온 전통춤과 소리 무대. 살풀이춤, 승무, 태평무 등 공연. ■ 트러스트무용단 창단 10주년 공연 25,26일 오후 6시 아르코예술극장(구 문예진흥원 예술극장) 대극장. 자체 제작한 신작과 유럽에서 활약중인 단원들의 작품 공연. [클래식] ■ 투란도트 25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사랑의 위대함을 노래한 이탈리아 작곡가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 공연. 평일 7시30분, 토요일 오후 4시. ■ 토스카 3월 2∼5일 오후 7시30분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한국오페라단의 올 시즌 개막작.‘토스카’는 ‘라보엠’‘나비부인’과 함께 푸치니 3대 걸작으로 꼽히는 오페라. ■ 소프라노 김미화 독창회 3월6일 오후 7시30분 세종문화회관 소극장. 홍난파 곡 ‘봉숭아’, 조두남 곡 ‘또 한 송이 나의 모란’ 등 한국 가곡의 밤.
  • 儒林(543)-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33)

    儒林(543)-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33)

    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33) 지난 이틀 동안 계속 내린 봄비로 계당 앞의 시냇물은 성난 뱀의 모가지처럼 부풀어 있었다. 봄이라곤 하지만 아직 춘3월이어서 계상 앞 뜨락에 심은 매화나무의 철골(鐵骨)처럼 묵은 등골은 기고(奇古)한 검붉은 용틀임으로 굽이쳐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이틀 내린 봄비로 그 싸늘한 가지 끝에도 어느덧 꽃망울이 부풀고 있어 꿈결 같은 향기를 내뿜고 있었다. 퇴계와 율곡은 좁은 계상의 방안에서 마주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의 짧은 만남은 이제 날이 밝아 내일 아침이면 끝이 날 판이었다. 퇴계는 율곡에게 며칠을 더 묵어가라고 권유하였지만 강릉으로 먼 길을 가야 하는 율곡으로서는 서둘러 길을 재촉할 수밖에 없음이었다. 두 사람이 마주 앉은 계상은 이미 낡아 양이 적은 봄비에도 지붕에서 물이 새고 있었다. 물이 새는 곳에는 종지하나를 놓아 두고 물이 가득 고이면 뜨락으로 물을 던져버릴 만큼 초라한 초당이었다. 퇴계는 51세 때 지은 계상서당에서 10년 동안 학문에 정진하면서 제자들을 가르쳤지만 계상서당은 좁고 허술하고 비바람이 잠자리에 밀려들 만큼 누옥(陋屋)이었다. 퇴계는 계당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을 정도였다. “…처음 내가 계상의 터를 가려 시내에 다다라 두어 칸의 초가집을 얽어 책을 저장하고 못난 마음을 기르는 곳으로 정하였는데, 이윽고 그곳에서 세 번이나 이사를 하게 되자 갑자기 비바람에 무너지게 되었고, 또 계상이 너무 막히고 적적하여 가슴을 열어주기에는 부적당하였다.” 퇴계 자신이 표현하였던 대로 계상은 ‘비바람을 피할 수 없을 만큼 초라한 초가집이었고, 막히고 적적하여 가슴을 열어주기에는 부적당한 곳’이었다. 그러나 바로 이곳에서 23세의 청년 율곡과 58세의 노학자 퇴계는 운명적인 지우(知遇)를 하게 되었으니, 이로 인해 이 초라한 장소야말로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뛰어난 두 철인(哲人)들이 운명적인 만남을 펼친 성지라 불릴만한 것이다. 두 사람은 서로 말을 끊고 쉴 새 없이 내리는 봄비가 소록소록 매화꽃잎 사이로 스며드는 적요(寂寥)한 정적을 귀 기울여 듣고 있었다.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청년 율곡이었다. “한 가지 묻겠습니다, 스승님.” 지난 이틀 동안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율곡은 쉴 새 없이 퇴계에게 묻고 또 물었다. 그러할 때마다 퇴계는 율곡의 말을 신중하게 경청하였고, 그리고 율곡의 질문에 성의를 다하여 대답해 주었었다. 처음 퇴계를 찾아왔을 때에는 율곡의 표정은 어둡고 상심에 가득 차 있었다. 퇴계는 율곡을 만나기 전부터 이미 율곡의 명성을 잘 알고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 퇴계가 지은 화답시에 ‘높은 명성에 헛된 선비 없음을 이제 알겠구려. 지난날의 공경치 못한 몸가짐 부끄럽구려.(始知名下無虛士 堪愧年前闕敬身)’라는 구절이 나오고 있음을 통해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 儒林(541)-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31)

    儒林(541)-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31)

    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31) 서림사(西林寺)는 여산(廬山)에 있던 사찰로 한때 주자가 머물면서 학문에 정진하던 곳. 따라서 시 속에 나오는 ‘주자를 스승으로 삼아 도를 배우러 암자(禪林)에 들렀다.’는 내용은 퇴계 자신도 스승 주자의 도를 배우기 위해서 불교의 선림에 들었음을 암시하고 있음인 것이다. 그렇다면 주자는 어째서 불교적 사찰에 머물면서 자신의 도를 이루었음일까. 실제로 퇴계가 스승으로 삼고자 하였던 주자는 한때 불교에 심취한 적이 있었다. 연보에 의하면 ‘처음 선생(주자)이 배울 때 일정한 스승이 없이 경전에 드나들었고, 노자와 석가를 두루 넘나든 것도 이미 여러 해가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주자 자신도 직접 ‘내 나이 15,16세 때 일찍이 선에 마음을 두었었다.’고 고백하고 있을 정도였던 것이다. 주자가 살았던 송대에는 불교의 교의는 모두 쇠퇴하고 오직 선종만이 성행하고 있었다. 반야(般若), 유식(唯識) 같은 인도의 교의와 천태(天台), 화엄(華嚴) 등 중국불교의 교의는 모두 쇠퇴하고 중국인의 사유방식에 맞게 중국화된 선종만이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시기였으므로 높은 벼슬아치와 모든 지식인들 중 선학에 물들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였던 것이다. 따라서 연보에 기록된 대로 뚜렷한 스승이 없었던 주자도 한때 선에 마음을 두어 불교에 정진하였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주자는 15세의 어린나이 때부터 선학에 심취하여 그 도리를 강구하였으며, 선학에 대한 이해와 자부심은 하늘을 찌를 듯이 비상하였다. 이러한 주자의 선에 대한 이해수준은 당대 최고의 선걸이었던 도겸(道謙)으로부터 선문답을 주고받은 후 다음과 같은 인증을 받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주자의 선은 소소명명(昭昭明明)하다.” 소소명명. 모든 것이 밝게 드러나 한치의 의혹도 없이 명백함을 나타내는 말. 당대 최고의 선사였던 도겸으로부터 ‘소소명명’하다고 인증을 받았다면 이미 주자의 깨달음의 경지는 상당한 경지에 이르렀음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그뿐인가. 주자는 도겸의 의견으로 유학의 교리를 불교적으로 풀이함으로써 과거시험에까지 합격하는 영광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때 주자의 나이는 19세.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청년시절 주자는 가히 선의 천재였다는 점인 것이다. 주자의 선학에 대한 탐구는 주자의 나이 24세 때 이연평(李延平:1088∼1158)을 만나 가르침을 받을 때까지 거의 10년을 넘게 지속되고 있었다. 그러나 마침내 이연평을 만나게 된 이후로 주자의 학문의 방향은 불교적 선학에서부터 유학으로 방향을 전환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주자의 사상형성 과정에서 이연평과의 만남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이연평의 가르침을 통하여 젊은 시절 불교를 넘나들던 사상적 방향에 종지부를 찍고 유학에 관한 연구로 자신의 학문방향을 설정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연평은 주자에 있어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어준 참스승이었던 것이다.
  •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태광그룹-故 이임용 창업주家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태광그룹-故 이임용 창업주家

    태광그룹은 겉의 화려함보다 내실을 추구한다. 재벌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사옥도 초라하기 그지없다. 서울 중구 장충동 옛 동북고등학교 교사(校舍)를 30년여년 동안 그룹 사옥으로 사용하고 있다. 여타 재벌과 달리 초고층 호화 사옥에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다. 재계 서열 30위권이면 서울 광화문 한복판이나 강남에 번듯한 빌딩을 사옥으로 가질 수 있다. 하지만 그룹 관계자는 “6층짜리 학교 건물이지만 아직 쓸 만하다.”고 말한다. 겉보다 속을 중시하는 태광의 사풍이 여실히 읽혀진다. 이같은 경영철학은 국내 재벌 가운데 재무구조가 가장 탄탄한 그룹의 반열에 오르게 했다. 이는 창업주인 고(故) 이임용 회장 때부터 관통하는 ‘내실경영’이 면면히 이어진 결과다. ●대쪽 같은 선대 회장의 결혼과 창업, 그리고 성장 창업주인 고 이 회장은 지난 1921년 경북 영일군에서 중농이었던 부친 이우식씨와 모친 정막랑씨 사이의 3남1녀 중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이 창업주는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간조(簡井)실업학교를 졸업한다. 그는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기습 등으로 일본의 정세가 혼란스러워지자 이듬 해인 42년 귀국길에 오른다. 이후 부친의 권유로 당시 22세 청년이던 그는 동네에 사는 이선애씨와 혼례를 올렸다. 신부 이씨는 이 창업주의 부친과 친분이 두터웠던 한동네 유지인 이송산씨의 맏딸이다. 민주당 총재를 지낸 이기택씨와 ‘창업 동지’ 이기화(태광그룹 회장까지 지냄)씨는 이씨의 남동생이다. 이기화씨는 부산고·서울대 화공과를 졸업한 뒤 이 창업주와 오늘의 태광그룹을 일궜다. 이 창업주는 야당 거물이던 이기택씨와 처남매부지간이란 이유로 군사정권 시절 여러차례 세무조사를 받는 등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처남이 유명한 정치인이었던 게 이 창업주에게는 결코 득이 아니었던 셈이다. 그는 “기업은 절대 정치와 연결돼선 안 된다.”며 사업 외에는 한눈을 팔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찍히면 죽던 서슬퍼런 군사정권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도 정경 분리를 평생의 신조로 삼았기 때문이다. 베테랑 세무조사 요원들을 투입, 몇 날 며칠을 털어도 먼지 하나 나오지 않았다는 것은 한국 기업사에 전례없는 일이다. 이씨와 중매 결혼한 이 창업주는 공직(면사무소) 생활을 하며 단란한 가정을 꾸린다. 그러던 그에게 결정적인 전환점이 찾아왔다. 바로 6·25전쟁이다. 1951년 공직을 접은 이 창업주는 전쟁 이듬해인 1954년 부산 문현동에 모직 공장을 차리고 태광산업사를 설립한다. 이 회사가 바로 태광그룹의 모체다. 이후 1961년 전 삼호그룹 조봉구 회장과 동업을 시작했으나 동업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 창업주는 조 회장과 결별한 뒤 부산 가야동에 새로운 공장을 신설하며 태광산업사를 주식회사로 출범시킨다. 초기 태광은 이 창업주와 이선애씨가 함께 일궈냈다고 해도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이선애씨가 부산에서 소규모 직물공장에 손을 댔고 기업이 커지면서 이 창업주는 공무원 생활을 그만두고 기업경영에 합류했다. 이후 태광은 섬유를 기반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한다. 박정희 정권이 경제 개발과 수출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면서 아크릴을 생산하던 태광은 눈부신 호황을 누렸다. 당시 아크릴은 양모 대체품으로 수요가 많았고 경쟁업체가 적어 태광의 고속 질주를 견인했다. 이 창업주는 스판덱스·나일론 등으로 품목을 다양화했다. 섬유 호황기인 1970년대까지 내놓은 제품마다 시장의 돌풍을 일으켜 국내 최대의 섬유업체로 성장했다. 태광은 이 시기에 동양합섬, 고려상호신용금고, 흥국생명, 대한화섬, 천일사 등을 잇달아 인수하며 몸집을 불려 나갔다. 화섬·석유화학에 금융이 붙으면서 태광은 본격적인 성장과 함께 그룹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도약기를 맞은 셈이다. ●휴일에도 은행 이자는 큰다 태광그룹은 은행돈을 거의 안 쓰는 기업으로 유명하다. 타계한 이 창업주의 근검절약과 소탈함은 재계에서도 정평이 나 있다. 타계하기 전까지 이 창업주가 살던 서울 장충동 2층 양옥집은 지금도 부인 이선애(78)씨가 지키고 있다. 이 집에는 30∼40년 된 옛 가구들이 그대로 있다. 회사 관계자는 “현대 정주영 회장에 버금갈 정도로 검소했다.”고 이 창업주를 회고한다. 그는 해외이든 국내이든 출장길에는 새로 지은 고급 호텔을 이용하는 법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수십년 동안 단골로 다닌 낡은 호텔을 고집했다는 것이다. 점심도 설렁탕 한 그릇으로 후다닥 끝낼 정도로 무척 소탈했다. 이 창업주는 “은행돈을 빌리면 토·일요일 등 은행이 쉬는 동안에도 이자는 불어난다.”며 무차입 경영을 추구했다. 돈을 빌려 문어발식으로 확장하지도 않았다. 번 만큼 투자한다는 기조를 유지했다. 매출 규모 1조 3000억원인 모기업 태광산업의 부채 비율이 거의 제로인 것도 이같은 경영철학에서 비롯됐다. 절약 경영과 남의 돈을 빌려 쓰지 않고 수익만큼 투자하는 실속경영은 그룹을 더욱 튼튼하고 알차게 만들었다. 인수한 부실기업도 얼마 지나지 않아 건실한 기업으로 탈바꿈시켰다. 이 창업주는 또 외부에서 전문경영인을 영입하지 않고 공채 출신을 키워 경영진으로 기용했다. 기획력과 업무 추진력을 인정받은 그의 처남 이기화씨는 이 창업주의 사후 태광그룹 회장에까지 올랐다. 또 공채 출신인 류석기·강석명·최운형씨 등이 중용됐다. 그의 이런 원칙적이고 대쪽 같은 성품은 자녀들의 혼사로도 이어진다. ●화려한 혼맥…‘연애결혼은 없다´ 이 창업주는 생전에 모두 6명의 자녀를 뒀다. 그러나 그는 자녀들의 연애결혼을 절대 허용치 않았다. 그는 평소 사대부가의 유교적인 면을 강조해와 전통 관습을 무척 중시했다. 재벌가의 혼사가 연애결혼보다 중매에 무게를 두고 있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3남3녀를 하나같이 중매결혼시켰다는 것은 가풍을 짐작케 한다. 이 창업주는 집안 어른이나 친지들이 지체 있는 가문의 훌륭한 배우자를 찾아내 중매를 넣어 혼사를 성사시키는 방식으로 자녀들의 혼사를 치러왔다. 이처럼 중매 일변도로 자녀 혼사를 치른 것은 중매야말로 좋은 가문의 좋은 배우자를 폭넓게 고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생각했기 때문일 것으로 여겨진다. 때문에 태광그룹 2세들의 혼맥은 서민의 가계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울 정도로 격이 높고 화려하다. 태광의 사돈가가 사람들은 당시에 내로라 하는 정·관·재계의 유력 인사다. 하지만 이 창업주는 자녀들 혼사로 정·관·재계의 거물들과 사돈이 되었지만 이들을 경영에 끌어들이는 법은 결코 없었다. 지금도 모기업인 태광산업의 사장은 태광 신입사원 출신인 이화동(62)씨다. 이 창업주는 이선애씨와의 사이에 식진(사망)·영진(사망)·호진(44) 3형제와 경훈(52)·재훈(50)·봉훈(48) 세 자매를 뒀다. 이 창업주의 개혼(開婚)인 식진씨의 혼사는 비교적 평범한 집안과 이뤄졌다. 그러나 이후로는 모두 유력 인사와 사돈을 맺는다. 이 창업주는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태광산업 영업과장으로 있던 장남 식진씨를 1975년 개인사업을 하던 진재홍씨의 맏딸 임순(54)씨와 결혼시켰다. 식진씨는 태광산업 부회장까지 역임했다. 식진씨의 장인 진씨는 면방업체인 경방에서 일하다 독립했다. 서울대 공대 출신으로 공대 동창회장을 맡기도 했다. 식진씨 부부는 정아·성아·원준 등 1남2녀를 뒀다. 장녀 정아(31)씨는 결혼했다. 연세대 상대를 나온 차남 영진씨는 어머니 이선애씨 친구의 중매로 장상준(전 동국제강 회장)가의 4남2녀 중 막내딸인 옥빈(54)씨와 1976년 결혼했다. 태광산업에 입사한 뒤 계열사인 대우파일, 흥국생명, 고려상호신용금고 등에서 중역으로 활동했다. 이들 사이에는 성준·성은 남매가 있다. 현재 그룹 회장을 맡고 있는 호진씨의 부인 신유나(42)씨는 롯데 신격호 회장의 동생인 신선호(71·일본 산사스식품 회장)씨의 맏딸이다. 호진씨는 대원고·서울대 경제학과(81학번)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코넬대 경영학석사(MBA), 뉴욕대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슬하에 현준·현나 남매가 있다. 이 창업주의 세 딸은 모두 재원으로 꼽힌다. 그러나 특이한 것은 세자매 모두 이화여대 선후배이라는 점이다. 이는 유교적 관습을 중시하는 이 창업주의 독특한 자녀 교육관이 스며들어 있다고 봐야 한다. 태광의 혼맥은 이대 출신의 세 딸을 출가시키면서 보다 화려하게 뻗어 나간다. 장녀 경훈씨는 진주의 대지주이자 LG그룹의 창업 멤버인 허만정가의 막내 며느리가 됐다. 경훈씨의 남편은 유통전문기업 GS리테일 대표인 허승조(56)씨다. 이들의 결혼은 경훈씨 친척 할머니의 중매로 이루어졌다. 이임용가에서 허만정가로 이어가면 조홍제-송인상-신덕균가와 만난다. 이연두-박치현-김준성-김우중가와도 연결된다. 경훈씨는 남편 허승조씨와의 사이에 지안·민경 자매를 두고 있다. 이 창업주는 차녀 재훈씨를 양택식 전 서울시장의 장남 원용(56)씨와 결혼시켰다. 원용씨는 현재 경희대 의대 교수로 있다. 이 창업주는 재훈씨를 양택식가로 출가시키면서 정·관계 유력인사와 연결된다. 양택식가를 통해 홍진기-노신영-정주영가로 연이 닿는다. 김한수-김복동가로도 이어진다. 특히 이 창업주는 이 결혼을 통해 업계의 라이벌인 한일합섬의 창업주 김한수가와 한 다리 건너 사돈이 된다. 재훈씨 부부는 서윤·서정·서인·혁준 등 1남3녀를 두고 있다. 3녀 봉훈씨는 한국베링거인겔하임 한광호가의 외아들 태원(49·한국베링거인겔하임 회장)씨와 결혼했다. 이들 사이에는 동우·상우·정우 3형제가 있다. ●뉴미디어·금융으로 21세기를 준비 태광은 1996년 일대 전환기를 맞는다. 그 해 11월 창업주인 이 전 회장이 75세를 일기로 타계하면서 3남 호진씨가 경영 전면에 부상한다. 호진씨는 이 창업주가 그룹의 후계자로 일찍 점찍어 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1997년 태광산업 사장에 이어 2004년 태광그룹 회장에 취임한 이호진 회장은 섬유가 주력인 태광의 업종에 메스를 댄다. 추진력에 관한 한 부친 못지않은 ‘신형 엔진’ 이 회장은 ‘조용한 기업’ 태광에 거센 변화의 바람을 불어 넣었다. 변화의 추동 세력은 MSO로 표현되는 종합유선방송과 금융 등 두 갈래다. 이 회장은 미래 태광의 신성장 동력이 여기에 있다고 확신한다. 따라서 1조 5000억원 수준으로 알려진 막강한 현금 동원력을 바탕으로 과감한 인수·합병(M&A)에 나서고 있다. 이는 섬유와 화학 중심에서 뉴미디어와 정보기술(IT), 금융기업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미디어 기업으로의 급성장이다. 이 회장은 케이블TV 회사인 ‘태광 티브로드’를 세웠다. 티브로드는 태광, 미래, 통신 등의 앞글자 ‘T’와 브로드 캐스팅, 브로드 밴드의 ‘브로드’를 합성해 지은 이름이다. 티브로드는 지역 케이블TV 20개를 거느리고 있다. 가입자 300만명, 시장 점유율 24∼25%로 명실상부한 국내 1위다. 아직까지는 많은 수익을 내고 있진 못하지만 뉴미디어는 태광의 미래를 밝혀줄 한 축임에 틀림없다. 이 회장이 2003년 이후부터 미디어 부문에 집중 투자하는 이유도 이런 이유에서다. 뉴미디어는 진헌진 티브로드 사장과 이상윤 안양방송 및 수원방송 사장이 이끌고 있다. 진 사장은 서울대 상대 출신으로 이 회장의 대학교 동창이다. 2002년 이 회장이 직접 스카우트했을 정도로 신임을 받고 있다. 금융 쪽도 더욱 살을 붙여야겠다는 게 이 회장의 전략이다. 현재 흥국생명, 고려상호저축은행, 태광투자신탁운용으로는 아무래도 무게가 떨어진다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쌍용화재와 예가람상호저축은행, 피데스증권 등의 인수작업을 활발히 벌이고 있다. 태광산업은 지난달 쌍용화재와 신주인수계약을 체결했다. 이로써 태광산업은 쌍용화재 지분의 50% 이상을 확보했다.‘흥국생명+쌍용화재’를 통해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이의 근거는 생명보험·손해보험 상품의 교차 판매다. 태광은 쌍용화재 인수 열기가 식기가 무섭게 피데스증권 인수에 나섰다. 피데스증권은 현재 주식거래 업무만 하는 중소형 증권사지만 태광은 이 회사를 인수해 종합 증권사로 변신시킬 계획이다. 예가람상호저축은행은 서울·경남에 기반을 둔 저축은행이다. 이들 기업의 인수작업이 순조롭게 매듭지어지면 태광그룹은 생보, 손보, 증권, 투신운용, 저축은행까지 아우르는 종합금융그룹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금융 쪽은 류석기 흥국생명 부회장과 김성태 흥국생명 사장의 투톱 체제다. 김 사장은 씨티은행 출신으로 LG증권 사장을 지냈다. 태광산업 출신인 오용일 흥국생명 전무도 눈여겨 볼 전문 경영인이다. 이호진호(號)의 태광은 대변신을 꿈꾼다. 현재의 청사진이 조만간 구체화되면 태광그룹은 화섬 석유화학, 금융, 미디어, 레저(태광관광개발), 육영재단(일주학술문화재단, 일주학원)으로 새 틀을 짜게 된다. ykchoi@seoul.co.kr ■ 정도·신의는 기업의 생명 ‘정도’와 ‘신의’.50여년 전 부산의 한 작은 시장에서 출발해 오늘의 태광그룹을 일군 창업주 고 이임용 회장이 금과옥조처럼 여긴 명제다. 이를 지키지 않는 거래처와는 두번 다시 거래를 이어가지 않았을 정도다. 정도와 신의를 기업의 목숨이자 기업의 자격이라고 늘 강조했던 이 전 회장은 한눈 팔지 않고 기업 경영에만 충실했던 기업인이다. 태광은 이 전 회장의 타계 10주년을 맞아 그의 기업·국가관 등을 조명하기 위한 자서전 출간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특히 어록 정리에 신경쓰는 눈치다. 그의 어록에서는 경영관이 그대로 묻어난다. 지난 1973년 단 닷새 만에 흥국생명을 인수한 이 전 회장은 첫 임원회의에서 “보험회사의 재산은 보험가입자의 재산”이라며 “흥국생명의 돈을 태광에서 가져다 쓰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리고 이 약속은 지켜졌다. 이 전 회장은 ‘오래된 만남’을 중시했다. 태광의 주거래 은행은 조흥은행. 양자의 관계는 5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오직 하나의 은행만을 고집한 이 전 회장은 1975년 대한화섬 인수 후 많은 임원들이 복수은행 거래를 건의했지만 “새 친구 열 명을 사귀기 위해 헌 친구 한 명을 안 버린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신용은 이임용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자신의 입으로 말한 약속은 반드시 지켰으며 계약서는 단지 둘 사이에서 오고 간 이야기를 정리해 놓은 종이에 불과했다. 타계 몇해 전 신입사원 특강에서 신용의 중요성을 이렇게 강조했다.“닷새 만에 서는 장에 못가는 사람이 장에 가는 친구에게 무엇 무엇을 사다 달라고 부탁을 한다. 부탁을 받은 사람은 혹 자기 물건 사는 것은 잊어버리더라도 결코 친구의 부탁을 잊어서는 안된다. 만일 그 물건이 제수용품이었다면 남의 집 제사를 망치는 격이 돼 옛날 말로는 사람 같지 않은 꼴이 된다. 그래서 약속은 무서운 것이고 지켜야 하는 것이다.” ykchoi@seoul.co.kr ■ 베일에 싸인 오너一家 재계에서 태광그룹만큼 외부에 노출되는 것을 꺼리는 ‘오너 일가’도 없다. 창업주인 이임용 전 회장은 물론 후계자인 이호진 현 회장 역시 언론에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취재를 위해 이 회장 면담을 요청했으나 ‘불가하다.’는 단호한 한마디였다. 오너 일가가 이처럼 몸을 꽁꽁 숨기는 데에는 격동기를 헤쳐온 태광그룹의 기업사와 유교적 관습이 맞물려 있다. 태광에 있어 정치는 짐이었다. 창업주인 이 전 회장은 야당의 거목인 처남(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을 두면서 박정희·전두환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군사정권으로부터 강도 높은 세무사찰을 받았다. 고속성장을 질주한 태광이었지만 그럴수록 기업경영만큼은 살얼음판을 걷듯이 할 수밖에 없었다. 한눈 팔면 죽는다는 것을 절감한 이 전 회장은 정치는 물론이고 언론에도 자연히 몸을 사릴 수밖에 없었다. 유교적 관습을 중시하는 이 전 회장의 짙은 보수성도 중요한 부분이다. 이는 태광 일가의 여성들에게서 쉽게 발견된다. 태광가(家)의 여성들에게서는 다른 재벌가와 달리 우먼파워를 찾아볼 수 없다. 여성으로서 적합한 문화계나 학술계에는 진출해 있을 법도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누구도 외부에 노출되지 않았다. 이 전 회장의 세 딸도 그렇고 며느리도 마찬가지다.3형제 못지않게 똑똑한 것으로 알려진 세 딸 중 남녀공학 대학을 나온 사람은 한 명도 없다. 큰딸 경훈과 둘째 재훈, 막내딸 봉훈씨 모두 이화여대를 졸업했다. 이들 모두 다른 대학은 생각지도 못한 게 아닐까. 경훈·봉훈씨는 남편이 재계의 실력자들이지만 외부활동 대신 살림을 하고 있다. 태광가의 며느리들도 전혀 노출돼 있지 않다. 삼성·현대가 등 재벌들의 며느리들이 문화·재계의 저명인사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것과 극명하게 대비된다.40대 중반인 이 회장도 전경련 활동조차 하지 않을 정도로 외부 노출을 기피하고 있다. 선친 스타일을 빼닮았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그래서 ‘은둔의 경영자’라는 칭호를 얻었다. 하지만 이 회장은 현장에 매우 충실한 CEO다. 캐주얼 차림으로 불쑥 현장을 찾아 임직원들을 놀라게 한다. 이 회장은 기업경영 못지않게 예술에 조예가 깊다. 서울 광화문 흥국생명 사옥도 사실상 이 회장 작품이다. 바닥재부터 인테리어, 사무실 소품 등에 이르기까지 이 회장의 손때가 묻지 않은 것이 없다. 회사 관계자는 “CEO가 안됐으면 예술가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ykchoi@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박건승 부장(반장) 정기홍·류찬희·최용규 차장 이기철·강충식·주현진·류길상·김경두·서재희 기자
  • 儒林(514)-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4)

    儒林(514)-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4)

    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4) 그렇다면 퇴계와 율곡은 2박 3일 동안 도대체 무슨 얘기를 나누었던가. 무슨 얘기를 나누었기에 율곡은 훗날 스승 퇴계와의 만남을 ‘가시밭길의 거친 들에 있다가 방향을 고쳐서 옛길로 돌아오게 되었으니 이는 실로 퇴계선생의 계발에 힘입은 바이다.’라고 회고하고 있음일까. 훗날 퇴계는 명종이 ‘어진 사람을 불러도 오지 않음을 크게 탄식하노라’는 제목을 주고 글을 쓰도록 하자 도산서당 주위의 자연을 노래한 ‘도산12곡’을 써 올린다. 이 12곡의 잡영을 명종은 그림과 글을 쓰게 하여 병풍으로 만들어 자신이 거처하는 방에 걸어놓고 퇴계를 그리워하였다. 이 12곡의 시 중에 9번째 시는 특히 유명한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고인도 날 못 보고 나도 고인을 못 뵈었으니 고인을 못 뵈었어도 가던 길 앞에 있네. 가던 길 앞에 있거늘 아니 가고 어쩔꼬.” 퇴계가 쓴 시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이 시조는 비록 자신이 마음속으로 공경하는 공자와 맹자, 그리고 주자와 같은 고인(古人)들은 비록 뵈올 수는 없지만 그들이 남긴 ‘가던 길’은 앞에 있으므로 그 길을 끝까지 좇아가겠다는 학자로서의 결연한 의지를 나타내보인 명시인데, 율곡이야말로 퇴계를 만남으로써 잠시 잃어버렸던 ‘고인들이 가던 옛길’을 발견한 셈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율곡은 무엇 때문에 학문의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었던 것일까.23세의 청년 율곡은 참스승 퇴계에게 무슨 고민을 털어놓고 자문을 구하였음일까. 두 사람이 서로 무슨 얘기를 나누었던가 하는 구체적인 내용은 지금까지 전혀 알려진 바가 없다.2박 3일의 짧은 만남 이후 두 사람은 또다시 만난 적도 없다. 두 사람은 헤어져 퇴계가 죽을 때까지 12년간 서로 편지를 나누고 있었을 뿐이었다. 주로 율곡이 편지를 써서 퇴계에게 보내면 퇴계는 답서형식으로 된 편지를 보냄으로써 총 10통의 서찰을 남기고 있다. 이 내용을 통해 간접적으로 추정해보면 율곡은 퇴계에게 우선 자신이 학문의 길을 잃고 불교에 귀의하였던 것을 고백하고 이에 대한 자문을 구하고 있었던 듯 보인다. 특히 율곡이 퇴계에게 올린 첫 번째 편지는 본문은 없어지고 별지만이 전해지고 있는데 그 내용은 자신이 한때 불교에 빠진 일에 대해서 반성하는 내용이었던 것이다. 퇴계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내용의 답신을 보낸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율곡이 ‘불교서적을 읽고 거기에 꽤 중독되었다.’고 비난하고 있지만 오히려 그 실상을 감추려 하지 않고 그 잘못을 충분히 인정하고 있으니, 도에 함께 나갈 만하다고 아니할 수 있겠는가.” 또한 퇴계는 상심해하는 율곡을 따뜻하게 격려한다. 이 내용은 율곡 자신이 지은 ‘쇄언(言)’에 비교적 상세히 나오고 있다. ‘쇄언’이란 ‘자질구레한 말들’이란 뜻으로 율곡이 겸양하게 쓴 잡기 중의 하나이다. 글의 내용은 그가 23살의 약관시절에 예안에 복거하고 있는 퇴계를 방문하여 여러 가지 학문에 관해 토론한 것들과 작별 후 강릉으로 간 뒤 서로 서신을 통해 유학을 논한 것들이 수록되어 있어 퇴계와 율곡 사이의 학문적 친분관계를 이해하는 좋은 자료인 것이다.
  • [일요영화]

    [일요영화]

    ●대마법사 멀린 1,2부(KBS2 오후 11시15분) 아서 왕 이야기는 국내에서도 각종 출판물이나 영상으로 널리 알려졌다. 아서 왕 하면 원탁의 기사, 엑스칼리버, 카멜롯 외에도 영원한 도우미 마법사 멀린이 떠오른다. 이 작품은 특이하게도 멀린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TV용 영화이지만, 샘 닐, 이자벨라 로셀리니, 룻거 하우어, 헬레나 본햄 카터, 마틴 쇼트, 미랜다 리처드슨 등 국내에도 익숙한 인기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 판타지 영화를 제작해온 홀마크 엔터테인먼트가 1998년 만들었다.90분짜리 2편으로 이뤄진 작품을 KBS가 4편으로 나눠 2주 동안 방영한다. 1부 ‘악마의 후계자’와 2부 ‘아서 왕의 승리와 멀린의 복수’에서는 멀린의 성장기와 아서 왕과의 만남, 그리고 아서 왕의 죽음을 다룬다. 멀린(샘 닐)은 악의 여왕 맵(미랜다 리처드슨)이 어둠의 세계를 이끌어갈 지도자로 만들기 위해 창조한 마법사다. 열일곱 살까지 평범한 인간으로 자란 멀린은 어느 날 니무에(이자벨라 로셀리니)를 구하려다 자신에게 마법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멀린은 자신에게 억지로 마법을 강요하는 맵과 갈등을 일으킨다. 멀린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맵이 지원하는 볼티건(룻거 하우어)에 맞서 유서 왕을 돕는다. 멀린은 유서 왕의 혈육인 아서(폴 커런)를 훌륭한 청년으로 성장시키고 그에게 신검 엑스칼리버를 주며 브리튼의 왕위에 오르게 하는데…. ●호랑이를 구하라(EBS 오후 1시50분) 국내에서는 ‘록키’(1976)로 유명한 존 G 아빌드슨 감독이 연출했다. 또 유명한 코미디 배우 잭 레먼이 진지한 연기를 보여주며 말론 브랜도, 알 파치노, 로버트 레드포드 등 쟁쟁한 배우들을 제치고 당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몰락 위기에 처한 의류 사업가가 보내는 하루 반나절의 이야기를 스크린에 담았다. 반전 운동과 흑인 운동으로 기성세대와 신세대가 격한 갈등을 겪었던 1970년대 미국의 자화상을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방직 공장을 운영하는 사업가 해리 스토너(잭 레먼)는 자금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또 가족들과는 화목하지 못하고 2차 대전 당시 전우들은 모두 죽고 자기 자신만 살아남았다는 자책감에 시달리고 있다. 거래처의 압박 등 숨막히는 현실은 덤이다. 해리는 우연히 만난 여인 마이라와 잠시 즐거운 시간을 갖기도 하지만, 곧 냉혹한 현실로 돌아가게 된다. 그는 사업유지를 위해 보험금을 타려고 자신의 공장에 불을 지르려 하는데….1973년작.99분.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儒林(513)-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3)

    儒林(513)-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3)

    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3) 월천 조목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퇴계는 율곡을 만나기 전에 이미 율곡이 아름답게 문장을 꾸미기를 지나치게 좋아하는 재기가 승한 청년이란 소문을 전해 듣고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그뿐인가, 청년 율곡을 만난 후에는 ‘후생이 두려울 만하다’는 옛 성현의 말씀을 인용할 만큼 율곡을 법기(法器)로 꿰뚫어 보았음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젊은 후배들은 두려울 만하다’는 뜻의 ‘후생가외(後生可畏)’란 말은 일찍이 공자가 학문과 덕행에서 가장 뛰어난 제자 안회를 두고 한 말. 공자는 안회를 보고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고 논어의 ‘자한편(子罕篇)’은 기록하고 있다. “젊은 후배들은 두려울 만하다. 장래에 그들이 지금의 우리들을 따르지 못하리라고 어찌 알 수 있겠는가. 그러나 40,50세가 되어도 세상에 이름이 나지 않는다면 이를 두려워할 바가 없느니라.” 그러므로 비록 2박 3일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퇴계가 율곡을 ‘장래에 그들이 지금 우리를 따르지 못하리라 어찌 알 수 있겠는가.(焉知來者之不知今也)’하고 인정하고 율곡을 ‘후생가외’라고 평가하였던 것은 그만큼 율곡의 재능을 평가하고 있음인 것이다. 퇴계는 율곡을 본 순간 그를 꿰뚫어 보았던 것이다. 그러한 사실은 율곡으로부터 헌시를 받자마자 퇴계가 다음과 같은 화답시를 읊은 것에서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병든 나는 문 닫고 있어 봄을 미처 못 보았는데 그대가 와서 이야기하자 내 마음은 상쾌해졌네. 이름난 선비에는 헛된 명성이 없다는 것을 비로소 알겠지만 지난날에 공경치 못한 몸가짐 심히 부끄럽구려. 좋은 곡식에는 강아지풀을 용납할 수 없고 먼지는 갈고 닦은 거울을 더럽힐 수 없네. 정에 겨워 과분한 표현의 말들은 모두 지워버리고 노력하고 공부하여 날로 새로워집시다.” 이 시를 보면 퇴계가 율곡이 이름난 선비라는 소문에 대해서 익히 전해 듣고 있었음을 잘 알 수 있으며, 율곡이 ‘밝고 쾌활하며 기억하고 본 것이 많고 자못 유학에 뜻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퇴계는 율곡을 ‘좋은 곡식에는 강아지풀이 있을 수 없고, 먼지는 갈고 닦은 거울을 더럽힐 수 없다.(嘉穀莫容熟美 游塵不許鏡磨新)’라고 평가함으로써 율곡을 열매가 많이 달린 상스러운 벼인 가화(嘉禾)로 비유하였을 뿐 아니라 무엇이든 비출 수 있는 갈고 닦은 법경(法鏡)으로 비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나라가 낳은 최고의 철인 퇴계와 율곡의 만남은 마치 부처가 꽃을 들었을 때 오직 제자 가섭만이 미소를 지었던 것처럼 이렇듯 한순간에 서로가 서로를 알아본 이심전심의 염화미소(拈華微笑)와 같은 극적인 장면인 것이다.
  •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23)한국 차문화의 다양성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23)한국 차문화의 다양성

    눈의 향기를 맡아본 적이 있는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눈에는 아스라한 차 향기처럼 포근한 향기가 넘쳐난다. 허공을 타고 내려오는 눈은 인간과 자연을 연결해주는 한줌의 눈속에도 생멸이 있다. 멀리서 뚝뚝 끊어지는 설해목의 비명소리가 마치 눈속에 꺾여 비닐하우스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하늘을 원망하는 농심(農心)소리 같다. 무너지는 눈의 산(山)이 마치 무너지는 농심 같다. 그래서 아프다. 자연은 늘 인간의 삶속에 고통을 주기도하고, 때로는 희망을 주기도 한다. 삶이란, 차의 길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현실의 삶속에서 고통스러운 여정을 다스리고 위안하고 친구처럼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다. 그속에는 희망도 있고 절망도 있고 고통스러운 아픔도 있다. 차는 희로애락(喜怒哀樂)의 고통스러운 길을 가는 중생들의 위안처요 친구인 것이다. 우리곁에 차 문화는 과연 있는가. 있다면 어디까지 와있는가. 매우 궁금한 대목이다. 비공식적이지만 차 인구 700만 시대를 돌파하고 , 차 도구를 만드는 장인들의 전시회는 봇물처럼 이어지고, 차를 생산하는 농가와 다인들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뿐만 아니다. 차를 애용하고, 차를 공부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2000년 초입 한국에는 우후죽순처럼 국적 없는 차 문화가 생성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문화란 원래 잡식성이 강하다. 여러 갈래와 흐름이 합쳐지고 그 합쳐짐 속에서 어떤 주도권이 생겼을 때 그것은 하나의 문화로 일상에 향유되기 시작한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차 문화는 마치 백가쟁명의 시대처럼 다양한 문화적 코드가 생성되고 결합되고 있다. 급속하게 변화되고 있는 디지털시대 차 문화 역시 다양한 문화적 영역과 충돌하고 하나의 문화코드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그 방향성이 없더라도 정신의 고전이랄 수 있는 차와 현대문화의 버전들이 급속하게 변형·결합되는 것은 너무도 반가운 현실이다. 먼저 가장 큰 변화는 몇몇 대학에 다도학과가 생겼다는 것이다. 하나의 학으로서 차 교과목이 개설된 것은 결코 아니다. 그냥 일반과정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학점을 이수할 정상적인 교과목으로서 다도학은 차가 중장년층의 문화에서 청장년층의 문화로 학습되기 시작했다는 또 하나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디지털대학의 다도학과도 풍요로울 정도로 다양하게 개설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남는다. 급속하게 늘어나는 차 인구를 교육할 교육자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차교육의 핵심은 형식과 내용 그리고 그것을 담아내는 그릇인 정신을 가르치는 것이다. 현대인들의 필수품인 교양의 한 방법론으로서 차 교육은 절대적으로 지향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차 교육자의 양성 역시 절대적으로 필요한 과제중 하나다. 한 사람의 차인이 교육자의 길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인격적인 성숙이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 일상의 차인으로 차의 형식과 내용은 한계가 있다. 결국 궁극적인 지향점은 차인으로서 정신성에 대한 담보가 얼마만큼 확보되어 있는가에 그 관건이 있는 것이다. 미래지향적이고 개인주의적이며 디지털적인 청년들에게 차는 하나의 호사일 수가 있다. 그같은 선입견을 불식시키고 역동적인 움직임을 정적인 움직임으로 변환 시킬 수 있는 절제의 문화로 바꾸어 주어야 한다. 현대 차인들의 산실일 수 있는 차 대학원과 모임들, 즉 차인회다. 전국을 포괄하고 있는 대규모 차인회 그리고 각 지역을 담당하고 있는 차인회등 전국에는 수천개의 차인회가 존재한다. 뿐만 아니다. 차인회는 오늘 한국차를 있게 한 산증인들이자 산실들이다. 기라성 같은 차인들이 차를 교육하고 제다하고 음용하는 것이다. 이들은 척박한 한국 차문화를 한단계 성숙시킨 원동력들이다.80년대 초반 1세대 차인들의 교육을 받은 이들은 차 생산지를 돌아보고 차인들의 역사를 복원하고 차를 학습하고 교육시키는 데 크게 일조했다. 그들은 1세대들과 마찬가지로 오로지 차에 대한 열정 하나로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해냈다. 지금 각 지역에서 차인회를 이끌고 있는 이들은 1.5세대 차인들로 불려질 만하다. 다음은 오늘의 차 문화를 이끌고 있는 하나의 힘이 있다. 바로 종교 차인회가 있다. 차의 본산이랄 수 있는 불교를 비롯, 기독교, 천주교 등에서 차회는 계속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차는 각 종교에서 명상차원이나 교양차원에서 하나의 교육 프로그램으로 자리잡고 많은 종교인들의 마음과 손을 사로잡고 있다. 종교차회는 차에 관심이 없는 일반인들을 깊고 깊은 차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차는 또한 문화적 변형을 과감하게 실시하고 있다. 명상, 음악, 공연, 음식 등 젊은이들의 문화적 코드와 결합돼 활발하게 변형이 이루어지고 있다. 먼저 음악분야다. 차음악은 명상음악과 함께 다악(茶樂)이란 이름으로 대중들에게 어필하고 있다. 수년전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다악공연은 설치미술과 만나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이루어냈다. 그리고 대중적으로도 많은 관심과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차와 음악의 결합은 아직까지 매우 실험적이다. 하나의 장르로 정착되기에는 아직은 매우 요원하기 때문이다. 그 다음은 많은 이야깃거리를 낳고 있는 행다공연이다. 행다공연은 전국에서 교육의 장을 맡고 있는 차인회의 핵심행사 중 하나다. 접빈다례, 궁중다례, 헌공다례, 들차회 등 다양한 다례를 일반대중들에게 시현하는 것이다. 많은 차인회에서는 행다공연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자기 차회(茶會)만의 독특한 행다 아니면 전통적으로 해석된 행다 등 다양한 행다를 일반대중들을 위해 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병폐 또한 만만치 않다. 앞서 언급했듯이 한국의 차 문화는 마치 형식만 있는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많은 차인들이 행다공연을 위해 헌신한다. 오랜 시간을 걸쳐 똑같은 동작을 수없이 반복한다. 그러나 그같은 형식은 대중들의 구미를 채워주지 못한다. 행다를 공연수준으로 끌어올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내용의 보완이 절실한 것이다. 공연예술로서 행다를 하기 위해서는 무대, 조명, 음악, 시나리오 등 가장 기본적인 절차나 형식들을 갖추어야 한다. 그러나 그런 형식은 많은 재원과 그에 필요한 스태프들이 필요하다. 동호회나 차인회에서 행다공연은 차 문화의 성장이란 측면에서 볼때 원천적으로 재검토되어야 한다. 그러나 차인회와 차인회, 아니면 차인회 내의 행다공연이나 겨루기는 장려되어야 마땅하다. 행다는 또한 차 문화의 뿌리를 갖출 수 있는 조건이란 점에서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들차회는 행다문화의 새로운 접점을 찾는다는 점에서 매우 유의미할 수 있다. 들차회는 봄과 가을 특정날을 선택해 차인회 내에서 각기 연습한 행다 겨루기를 축제형식으로 치르는 것이다. 물론 그 차인회만 참가할 수 있는 폐쇄된 들차회가 아닌, 모든 사람들이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열린 차회로서 진행되어야 한다. 1년동안 각자 배웠던 행다를 보여주고, 음식을 함께 나누고, 또한 노래도 함께 부르며 내면에 쌓인 번뇌의 찌꺼기를 대중들 속으로 날려보낼 수 있는 들차회는 그런 점에서 매우 바람직한 행다문화의 새로운 풍속도로 제기되어볼 만하다. 초의차문화연구원의 들차회는 그런 점에서 매우 상징적이다. 초의차문화연구원의 들차회는 가을에 열린다. 돌부처님이 아름다운 곳인 운주사를 비롯해 전국의 아름다운 사찰을 찾아 들차회를 1년에 한차례씩 갖는다. 서울 광주 부산 대구 등에서 공부해오던 각 지회 차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그 자리를 방문한 일반관람객들과 하나가 되어 찻자리를 즐기는 것이다. 노래도 하고 시도 함께 읊고 자신들이 연마한 행다의 기량도 한껏 선보이는 계기가 된다. 열린 공간에서 열리는 차 축제인 들차회는 그런 점에서 향후 차인들의 행다 시연에 많은 시사점을 남기고 있다. 가장 빠르게 응용되고 있는 것은 차의 먹을거리화이다. 한국대중 차를 선도해온 거대기업에서 도심에 만든 차 카페는 매우 중요한 문화적 접점을 시사하고 있다. 젊은이들의 거리라는 명동에 자리잡고 있는 이 카페는 젊은층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다양한 차 먹을거리와 인테리어를 갖추고 있다. 반응 역시 매우 폭발적이다. 이 카페에서는 차로 만든 케이크, 차로 만든 아이스크림, 차 국수, 차 비누, 차 샴푸 등 다양한 차 관련 상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심지어 차와 우유의 만남을 통해 차라떼는 젊은이들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한다. 차의 문화적 상품화의 변형은 한발짝 더나아가고 있다. 차를 이용한 벽지, 차를 이용한 속옷 등 웰빙상품으로서 차는 다양한 영역으로 파고들고 있다. 차와 웰빙은 이제 하나의 문화상품으로서 그 변형의 끝이 어디까지랄 수 없을 정도로 광범위하게 응용되고 있다. 차는 지금 현대인들의 일상 속으로 깊숙이 파고 들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의 웰빙상품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우려를 낳고 있다. 차의 기본정신은 인간의 건강한 정신적 삶의 추구를 통한 체용(體用)의 일체화다. 체용이란 정신과 육신의 건강을 함께 추구하고 일상을 건강하게 살아가는 삶의 문화적 양식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이같은 차의 본질을 외면하고 하나의 건강상품으로서 차가 일반대중들에게 인식되는 것은 크게 경계해야할 일이다. 세상이 온통 눈이다. 마치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눈이 거침없이 쏟아지고 있다. 앞산도, 뒷산도, 일지암도 온통 눈에 파묻혀버렸다. 바람이 마치 칼처럼 대지를 휩쓸고 지나간다. 눈이 마치 폭풍처럼 일어났다 안개처럼 허공을 감싸며 사라진다. 시끄럽고 활활타는 세상을 식히는 듯하다. 설잠 김시습의 ‘간설’(看雪)이란 시가 생각난다. “여섯 모 가진 꽃이 공중으로부터 내리는데/ 창을 열고 누워서 보니 낮게 맴도누나/ 천상의 향기 없는 꽃을 전해줄줄 알아. 인간에 심지 않은 매화를 피워주네/ 동곽은 가난을 안고 길을 따라 돌아가고/ 자유는 흥겨워서 배를 타고 돌아오네/ 늙어가며 일이 없이 화롯가에 둘러앉아/ 도공의 차 한잔을 달여 마시네” ■ 일상화 된 차 명상 조선시대의 유명한 고승 서산 스님의 시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스님 대여섯 사람이/내 암자 앞에 집을 지었네/새벽 종 치면 함께 일어나고/저녁 북 울리면 같이 자네/한 시냇물 속의 달 그림자 밟으며/물 길러 차 달이매 그 푸른 연기 나는데/날마다 무슨 일 의논하는가/염불과 참선일세” 차는 자신의 내면을 수행할 수 있는 보조도구로서 매우 훌륭한 도반이기도 하다. 최근들어 차 명상이 많은 대중들로부터 환영을 받고 있다. 차 명상, 이른바 선다(禪茶)는 삶을 풍요롭게 하고 참 행복을 만들어내는 훌륭한 방법이다. 차 명상센터가 서울을 비롯해서 각 지방에서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있다. 차 명상은 차의 정신을 통해서 지친 마음에 휴식과 활력을 주고 정서적 평온을 체험하며 차 마시기와 주변 일상생활을 명상화하여 마음을 정화하고 올바른 삶의 자세를 가꾸어주는 일련의 정신훈련과정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쳐 ‘다선일미’(茶禪一味),‘중정청경(中正淸境)’ ‘화경청적’(和敬淸寂) 등 차 정신을 실현함과 동시에 참 행복을 열어가는 것이 목표이다. 차 명상은 사념처 팔정도 수행을 기본으로 하여 자각력·집중력·통찰력을 계발하고 강화시키는 데 있어 일상에서 활용하기 쉽도록 차 마시기와 일상생활 속의 친숙한 행위들을 명상의 주요한 실천 도구로 이용한 명상법이다. 차를 마시는 행위는 복잡하지 않고 일정하고 체계적인 동작이기 때문에 명상의 도구로 쓰기 좋으며, 적절한 행위 변화가 지속되기 때문에 지루해지지 않고 꾸준히 명상을 이어갈 수 있다. 또한 정신적 긴장속에서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이 일상에서 쉽게 실습할 수 있으며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이론을 바탕으로 원리와 방법을 쉽게 이해하고 터득할 수 있다. 또한 일상 속에서 혹은 다른사람들과의 만남속에서도 명상을 응용할 수 있는 것이 차 명상의 장점이다. 차를 통해서 기본적으로 예와 절제를 배우고 건강을 도모할 수 있으며 동시에 명상으로서 활용하게되면 자기 이해와 발전을 가져오고 육체적·정신적 건강도 함께 도모할 수 있다. 차명상은 차와 일상생활을 통해 명상을 실현하기 때문에 따로 시간을 낼 필요가 없고 익숙한 우리의 행동양식을 활용하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부담감을 덜 느끼게 된다. 차뿐만 아니라 커피·음료수·냉수와 같은 것들도 모두 활용되며 일상생활에서는 걷기, 서있기, 청소하기, 씻기, 누워있기, 앉아있기 등 우리가 흔히하는 행동들에서 명상을 체험하게 된다. 차 명상은 일상에서 우리를 괴롭혀온 모든 번뇌 즉, 스트레스를 일상 속에서 해소해낸다는 점에서 권해볼 만한 명상법으로 보여진다. 차뿐만 아니라 차명상 역시 참 행복으로 들어갈 수 있는 또 하나의 문임을 명심해볼 일이다.
  • 종교와 문화의 ‘따뜻한 만남’

    종교와 문화의 ‘따뜻한 만남’

    지난 4일 경기도 고양 어울림극장에서는 작지만 뜻 있는 문화행사가 열렸다. 김포시 고촌감리교회가 15년 전 시작한 교육선교 프로그램을 통해 악기 연주를 배운 청소년 60여명이 결성한 ‘김포 체임버 오케스트라’가 정기연주회를 개최한 것. 매주 토요일 교회에 모여 연습해온 실력으로 클래식은 물론 캐럴까지 연주해 갈채를 받았다. 연말을 맞아 종교와 문화가 만나는 훈훈한 행사들이 잇따라 열리고 있다. 대부분이 자선공연 형식으로 진행돼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고, 선교에도 효과가 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선교에는 영화가 최고’ 문화선교연구원은 오는 12∼16일 서울 종로 서울아트시네마 등에서 ‘생명·소통·평화’라는 주제로 ‘제3회 서울기독교영화축제’를 연다. 경쟁부문인 단편영화제를 비롯, 애니메이션 상영, 특별기획전, 세미나 등으로 이뤄지며 기독교 관련 영화 20여편이 상영될 예정이다. 개막작으로 전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부흥의 역사현장 조명을 통해 부흥의 본질적인 풍경을 찾아 떠나는 여정을 그린 ‘부흥’(김우현 감독)이 선보인다.(02)743-2535. 앞서 지난달 30일 서울 노량진 CTS아트홀에서 꿈이 있는 교회(담임 하정완 목사) 주관으로 열린 ‘수요영화예배 아이즈’ 행사에는 수험생과 일반인 등 500여명이 몰려 성황을 이뤘다. 연극과 찬양공연, 영화 ‘주먹이 운다’ 상영 등과 함께 설교·영화묵상이 곁들어진, 새로운 형식의 예배가 이뤄진 것. 하 목사는 “청년 신자들이 줄어드는 추세에서 영화·연극 등 다양한 문화요소들을 예배에 적용, 교회의 문턱을 쉽게 넘기 위한 시도”라면서 “매월 마지막주 수요일마다 영화예배 행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음악회에서 패션쇼까지 다양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대표회장 옥한흠)는 오는 22일 오후 7시 서울 저동 영락교회 베다니홀에서 모자가정을 위한 자선음악회 ‘One 母 Time’을 개최한다. 불의의 사망 등으로 남편을 잃고 아이들과 함께 살아갈 경제적 능력이 없어 가정해체의 위기를 겪고 있는 모자가정을 향한 관심을 촉구하는 행사다. 성악가 오현명 한양대 명예교수,CCM가수 소리엘 등 다양한 분야의 음악가들이 공연을 펼친다. 기독교 선교단체인 한시미션 코이디아연대는 9일 숭실대 한경직기념관에서 경남 함양군 어린이들을 초청, 자선 콘서트인 ‘제17회 다해사랑 콘서트’를 연다.‘피아노 치는 변호사’의 저자 박지영 변호사와 아침·김도현·타루·이어픽·티어즈 등 CCM·국악공연팀이 출연한다.(02)552-2449. 유니세프는 오는 13일 밀레니엄서울힐튼호텔 컨벤션센터에서 친선대사를 맡고 있는 영화배우 안성기씨의 사회로 ‘에이즈 고아를 위한 2005 유니세프 자선의 밤’ 앙드레김 특별패션쇼를 개최한다. 탤런트 이영애·김래원 등과 주한 외교사절 부인 등이 모델로 특별 출연한다.(02)735-2310. 앞서 한국불교종단협의회는 6일 서울 리틀엔젤스예술회관에서 ‘2005 대한민국 불교음악 페스티벌’을 열고, 창작 찬불가를 선보였다. 크리스챤 뉴스위크는 1∼4일 서울 교육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싱가포르 최고 마술쇼인 ‘매직오브러브’ 초청공연을 개최, 호평을 받았다. 천주교 서울대교구도 4일 서울 혜화동 동성고 강당에서 휘성·장우혁·서지영·코요테 등 인기가수들이 공연을 펼치는 ‘생명의 밤’ 행사를 열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장애인의 性과 결혼] “결혼이오?…총각딱지 떼는게 평생 소원이죠”

    #1 7년 전 추락사고로 전신이 마비된 이양신(33·여)씨는 타고난 여성성을 박탈당할 뻔했다. 입원상태에서 생리를 하자 어머니는 이를 없앨 방법을 찾았고, 이씨도 “이제 결혼도 못 할텐데.”라는 생각에 남성호르몬제 투여에 동의했다. 그러나 부작용으로 한달 동안 하혈만 하다 그만뒀다. 5년쯤 지나자 어머니는 아예 자궁 적출 수술을 권했다. 장애인에게 성이란 귀찮고 사치스러운 것이란 인식이 깔려 있었다. 이씨 자신도 현실적인 어려움을 감안, 수술을 생각해보기도 했다. 지금도 ‘감각이 없는데 섹스하고 싶은 생각은 드냐.’ ‘임신도 할 수 있느냐.’는 어처구니없는 얘기를 듣곤 한다. ●“결혼도 못할텐데” 생리하자 자궁적출 #2 뇌성마비 1급 장애인 김광태(가명·33)씨는 한달에 한번꼴로 성매매 여성들을 찾는다. 물론 “오빠, 그 몸으로 섹스할 수 있겠어.”라는 얘기를 들은 적도 많다. 시간이 갈수록 “이렇게 불법적인 방법으로 죄 짓듯 욕구를 해결해야 하나.”라며 자조해 보기도 하지만 어차피 이 길 외에는 방법이 없는 게 현실이다. 그래도 자기는 낫다며 온몸을 꼼짝 못해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자위행위를 하는 친구 이야기를 들려줬다. 김씨는 “먹고 자는 것과 마찬가지로 성욕도 인간의 본능”이라면서 “강아지도 발정이 나면 접붙여줄 생각을 하면서 장애인의 성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시한다.”고 울분을 토했다. ●“그몸으로…” 윤락업소서도 기피 #3 중증 정신지체 장애인인 딸이 성욕을 못 이겨 온 몸을 자해한다. 보다 못한 아버지는 돈뭉치를 들고 거리에 나가 청년들을 붙들고 통사정을 한다.“제발 우리 딸과 한번만 자 달라.”고. 미친 사람 취급을 받고 경찰서에 잡혀가기도 하지만 그의 지상과제는 ‘남들과 똑같은’ 욕망을 표출하는 딸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이다. 결국 아버지는 자기 스스로 나서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야 만다.(독립영화 ‘아빠’의 줄거리-감독 이수진) ●‘무성(無性)적 존재’로 인식 장애인의 성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장애인들이 성기능은 물론 성욕도 없을 것이라는 편견, 먹고 살기도 힘든데 성은 사치라는 인식, 불편한 몸으로 결혼해 아이를 낳아봤자 키울 수나 있겠냐는 동정 등이 바탕에 깔려 있다. 그러나 시각·청각장애 등은 물론 뇌성마비·전신마비 장애인들도 대개 비장애인과 똑같은 성기능과 성욕구를 갖고 있다. 감각과 운동신경이 마비된 척수손상 장애인 역시 성욕구가 크게 다르지 않고, 임신·출산도 가능하다. 하지만 이성과의 만남을 통해 자연스럽게 성을 익히고 결혼으로 가정을 꾸민다는 것은 요원한 꿈이다.8년 전 교통사고로 불완전 전신마비 장애인이 된 이전형(38)씨는 지난 겨울부터 지역신문에 배우자를 구하는 광고를 냈다. 몇번의 만남 끝에 올 4월 한 여인과 결혼식을 올렸지만 패물을 노리고 접근한 사기결혼이었다. 이씨는 “장애인도 똑같이 성욕이 있고 평범한 결혼생활을 하고 싶어 한다.”면서 “하지만 기본적으로 사람 만날 기회 자체가 적고, 경제적인 문제가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숨지었다. ●교류의 장·경제력 없어 걸림돌 이런 문제는 결국 장애인의 이동권, 교육권, 노동권의 총체적인 문제에서 비롯된다는 지적이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이수지 간사는 “중증 장애인의 경우 이동 자체가 불편하기 때문에 학교에도 다니지 못하고 당연히 직업활동도 하지 못해 사회에서 소외된다.”면서 “비장애인에 비해 이성을 만날 기회 자체가 차단되고 경제력도 갖지 못하면서 성과 결혼의 문제가 원천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장애인연맹 김미선 부회장은 “장애인의 성 문제가 사회적으로 한번도 공론화되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면서 “장애를 개인이 아닌 사회적 책임으로 인식하는 것과 장애인의 자기 결정권을 인정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장애인의 성 문제를 ‘인간의 기본적 욕구’의 문제로 인정하고 장애의 종류와 개개인의 상태에 따라 세심한 제도를 논의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이효용 나길회기자 utility@seoul.co.kr
  • [서울이야기(24)] 문화로 청계천 읽기

    [서울이야기(24)] 문화로 청계천 읽기

    ●문화로 가득찬 청계천 “눈부신 햇살이 아름다운 거리에/오고가는 사람들 흥겹게 노래한다./사랑하는 사람들이 여기모여 웃음꽃 피우네./푸른 가로수 길가에는 그대 희망찬 발걸음이/불빛 가득찬 청계천에 우리의 소망이 피었네.” 조용필이 부른 ‘청계천’의 모습이다. 눈부신 햇살과 불빛, 푸른 물과 가로수, 아름다운 다리가 있는 청계천, 그곳엔 흥겹게 노래하고 웃음꽃 피우며, 꿈과 희망과 소망을 일구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의 사랑과 기쁨과 미소가 충만해 있다. 청계천은 아름다운 물리적 공간뿐만 아니라, 다리에 얽힌 역사가 있고, 미소와 기쁨을 자아내는 예술이 있으며, 꿈을 일구고 흥겹게 즐기는 사람들의 삶이 있다. 이러한 청계천은 어느 한 사람이 만든 사유물이 아니라, 시민 모두가 함께 참여해 만들고 또 만들어가는 공공공간이다. 그래서 청계천은 ‘역사’,‘예술’,‘삶’,‘참여’의 문화적 키워드가 공존하는 문화공간이다. ●청계천은 역사다 ‘하천’시대(조선시대∼1950년대),‘복개’시대(1960∼1990년대),‘복원’시대(2000년대)의 역사적 숨결이 담겨있는 청계천. 우선, 자연하천이자 서민의 생활터전이었던 하천시대의 역사를 더듬어 보자. 다리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곳곳에 스며 있다. 상류층에서 일반 백성에 이르는 사회계층들의 삶의 흔적도 찾아볼 수 있다. 도성 최대의 다리로서 어가와 사신의 행렬이 지나가는 교통로이자, 정월대보름이면 수천명의 민초들이 다리밟기를 행하던 ‘광통교’, 중인과 상인계층들의 삶터로서 수심을 측정했던 수표와 보물 제838호 수표교의 옛터이자 겨울이면 서민들의 연날리기 명소였던 ‘수표교’에 이르기까지 곳곳에 사연과 역사가 담겨 있다. 물론, 하천시대의 역사는 아직 온전히 복원되지 못했다. 광통교는 원위치에 자리잡지 못했고, 정조가 수원화성에 행차하는 모습을 담은 길이 192m의 세계최대 도자벽화 ‘정조대왕능행반차도’에서나 그곳의 자취를 연상해 볼 수 있다. 수표교도 복원되지 못한 채 그 터만 남아 있다. 서민들의 생활터전으로서 청계천의 모습 또한 다산교와 영도교 사이의 ‘청계빨래터’와 징검다리 속에서만 더듬어 볼 수 있다. 수표교 근처 ‘준천사터’등 천변 곳곳에 위치한 유적 기념비들과 함께, 앞으로 더 복원해야 할 하천시대 청계천의 역사를 성찰하고 그 모습을 꿈꿔보는 것, 그 자체도 청계천에서 만날 수 있는 역사가 아닐까. 다음으로, 산업화·근대화의 엔진이자 도심산업문화의 정점이었던 복개시대의 역사를 만나 보자. 복개시대의 대표적 상징물인 ‘삼일고가’,‘삼일빌딩’,‘삼일아파트’를 우선 들 수 있다. 삼일고가는 무학교 아래에 세 개의 ‘존치교각’으로 남아 있다. 건축당시 서울의 최고층 빌딩이었던 삼일빌딩은 삼일교 앞에 건재하고, 다산교에서 황학교 사이에 포진한 역시 건립당시 최고의 아파트였을 삼일아파트는 위층이 모두 헐린 채 2층의 영업공간으로 남아 있다. 복개시대의 역사는 무엇보다 여전히 청계천을 지키고 있는 도심산업문화의 자취들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수표교 부근의 공구, 세운교 부근의 전자·조명, 배오개다리 부근의 시계귀금속, 오간수교 부근의 신발도매, 맑은내다리 앞 관상어 상가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예전과 달리 깔끔한 디자인으로 통일된 간판들의 모습에서 새롭게 태어나려는 상인들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새벽다리를 사이에 둔 한국 최초의 근대시장 광장시장과 건자재 종합시장 방산시장, 마전교에서 다산교 사이의 평화시장들, 영도교 앞 황학동 도깨비시장, 고산자교 부근의 마장동 축산시장 등 상인과 서민들의 삶터이자 만남과 소통의 공간이었던 시장들도 여전히 복개시대 청계천의 정서를 담고 있다. 이러한 도심산업문화를 창출한 역사의 기저에는 노동자의 인권을 위해 평화시장 앞에 생을 바쳤던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 있다. 그의 분신장소 앞에는 과거의 낡고 초라한 표석 대신 늠름한 모습의 동상이 건립되었고, 동상이 위치한 버들다리는 전태일 다리로, 부근의 패션의 거리는 전태일 거리로 다시 태어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복개시대의 역사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일부 상권이 옮겨지고, 주변지역이 개발되고, 시장이 타운으로 변모하고, 허름한 간판과 골목이 새로운 이미지 통합(CI)과 더불어 정비되고는 있지만, 청계천은 여전히 생태공원이나 여가공간의 차원을 넘어선 상인들과 노동자들의 생계공간이자 삶터다. 생태환경 복원에 이어 삶의 공간으로서 문화복원이 이루어지도록 복개시대의 자취들을 꼼꼼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 이젠 문화도시 서울을 견인할 복원시대의 역사를 체험해보자. 복원공사를 하면서 경험했던 다양한 사건과 자료와 꿈들, 청계천의 과거·현재·미래를 이제는 마장동 두물다리 앞에 위치한 1728평의 복합문화공간인 ‘청계천문화관’에서 만나볼 수 있다. 청계천 시점부에 조성된 2100여평의 ‘청계광장’은 서울광장과 연계해 광장 문화의 새 역사를 선언하고 있다. 삼일교 앞에 조성된 ‘베를린 광장’ 역시 분단극복과 평화통일의 임무를 우리에게 상기시키고 있다. 공사기간에 영업이 어려운 황학동 벼룩시장 노점상들의 생계공간으로 마련된 ‘동대문 풍물벼룩시장’은 이제 동대문의 명물이 되었다. 청계천이 중랑천과 만나 한강으로 흐르는 곳에 위치한 35만평의 ‘서울숲’은 복원시대를 상징하는 핵심 랜드마크 가운데 하나다. 복원시대는 이제 막 시작됐다. 그만큼 복원시대의 역사는 앞으로 청계천에서 우리 모두가 만들어내는 문화를 통해 겹겹이 쌓여갈 것이다. ●청계천은 예술이다 청계천에서는 예술적 혼과 정신의 편린들을 만날 수 있다. 광통교와 수표교, 오간수문의 건축양식에서는 그 시대의 장인정신을,‘정조대왕능행반차도’에서는 김홍도를 비롯한 정조시대 최고의 화가들의 혼을 느낄 수 있다. 창덕궁 후원의 옥류천을 형상화한 마전교의 ‘옥류천’, 자연과 환경을 주제로 한 현대미술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오간수교의 ‘문화의 벽’, 청계미니어처와 프로그램분수, 만남과 화합을 상징하는 8도석이 마련된 청계광장, 물과 어우러진 다양한 조각품과 미술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장통교 앞 관철동의 젊음의 거리는 ‘피아노 거리’로 변모해 건반 모양의 돌벤치에 앉아 거리아티스트의 공연을 즐길 수 있다. 청계천의 삶이 예술과 결합되는 다양한 축제들 또한 만날 수 있다. 무교·다동 음식문화축제와 동대문패션축제 등 상권활성화와 화합을 도모하는 지역축제를 비롯, 다리밟기를 현대화한 답교 퍼레이드 등 다양한 천변 민속축제들이 펼쳐질 것이다. 이제 막 복원된 청계천에서 만날 수 있는 예술은 아직은 협소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청계천에는 다양한 예술적 사건들이 흐를 것이다. 정서와 감수성을 풍요롭게 해주는 삶과 사람과 예술을 청계천에서 만들어 보자. ●청계천은 삶이다 청계천은 그속에서 생계를 꾸리고 인생을 가꾸는 상인과 기업들의 삶터다. 또한 청계천은 그곳에서 여가를 즐기는 사람들의 쉼터이자 놀이터다. 따라서 청계천의 삶과 사람, 그에 얽힌 다양한 스토리들 그 자체가 청계천의 문화다. 준설사업을 시행했던 암행어사 박문수, 천변에서 호랑이를 맨손으로 잡았던 남이장군, 수표교 밑에서 그림을 그렸던 천재화가 장승업을 만날 수 있다. 복개시대 이 곳의 주인이었던 광장시장 거리의 악사 백연화, 청계천 설치미술가 설승순, 황학동 만물시장의 시인 홍이종, 청계천 하구에서 빈민운동을 했던 제정구,4단밥상 배달 아줌마 박호순, 전태일의 동료였던 재단사 배강일 등도 이곳의 살아 있는 역사다. 영도교 앞 20년 전통 멸치국수 포장마차와 곱창골목의 상인들, 광장시장에 있는 삼류 ‘바다극장’과 오간수교 부근의 ‘뉴서울카바레’에서도 청계천 상인들의 멋과 낭만이 배어 있다. 이제 새롭게 복원된 청계천변에는 어떤 사람들이 둥지를 틀고 삶을 일구어갈까. 어떤 사람들이 이 곳에서 새로운 추억과 사건들과 이야기들을 만들어갈까. 그 삶들을 함께 지켜 보자. ●청계천은 참여다 청계천은 함께 만들었다. 청계천을 만든 ‘7인’ 혹은 ‘20인’ 등 언론에서는 특정인들을 조명하고 있지만, 열린 물길을 접하러 그곳을 찾은 수백만의 시민들, 그들의 문화적 욕망이 청계천 복원의 실질적 힘이다. 황학교와 비우당교 사이 50m 길이로 조성된 ‘소망의 벽’에는 2만여 명의 소망과 염원이 담겨 있다. 버들다리 위의 전태일 동상과 4000개의 기념동판에는 “시민의 힘으로 만들자.”를 외치며 수년간 싸워온 청계천전태일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와 전태일 열사의 뜻을 기리는 시민들의 성금이 녹아 있다. 서울문화재단이 주관하는 청계천 아티스트 프로그램은 매주 문화달리기를 통해 얻은 기금과 시민들의 청계천 문화의 다리 성금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앞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칠 ‘청아람’ 등의 자원봉사단도 청계천을 문화공간으로 만드는 심부름꾼이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공사초기부터 생존권 수호를 외쳤던 청계천상권수호대책위원회,‘청계천은 차별천’이라 외치는 장애인이동권쟁취시민연대, 청계천의 불편함을 호소하는 시민들, 폭력없는 사회를 외치는 ‘청소년 맑은물 축제’ 참석자들, 그들의 목소리는 청계천을 인권천이자 문화공간으로 만들어가는 중요한 참여의 소리가 될 것이다. 인근의 기업들도 ‘오천팔백미터 사람, 자연, 문화의 어울림, 희망이 흐릅니다’ 등 다양한 플래카드를 내걸며 청계천 복원에 참여하고 있다.01번 청계천 순환버스, 지하철과 함께 하는 청계천 나들이,2개 코스의 도보관광 등 공공기관도 청계천 문화에 쉽게 접근하도록 도와주고 있다. ●청계천은 미래고 꿈이다 청계천 문화, 이제부터 시작이다. 문화는 명사가 아니라 동사이기에 시민들이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이제 갓 물리적으로 복원된 청계천에서 역사와 예술과 삶을 감동으로 조우하기엔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와 문화기획들이 산재한다. 그래서 본격적인 문화복원과 문화창출은 지금부터다. 우리는 청계천에서 어떠한 문화를 발견하고, 어떠한 문화를 심을 것인가. 서울시에서는 주변의 문화벨트(북촌, 대학로, 정동, 남촌, 장충, 돈화문길, 서울숲)와 연계해 ‘청계천문화벨트’를 조성한다고 한다. 또한, 청계천 브랜드 개발, 문화공간 및 시설 조성, 관광상품 개발, 축제이벤트 전략 등을 골자로 하는 ‘청계천 장소마케팅 전략’도 구상 중이다. 전태일기념관건립추진위에서는 ‘전태일 광장과 기념관’을 추진하고 있고, 구보학회에서는 ‘박태원 천변테마파크’를 구상하고 있다. 장애인인권단체에서는 장애인이동권을 찾고자 하고, 청계천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청계천포럼을 만들고 있다. 개발업자들은 천변에 초고층 빌딩을 기획하고 있다. 청계천은 역사·예술·삶이 있는 도심의 문화갯벌이 돼야 한다. 이를 위해 지속적으로 청계천을 탐색하고, 즐기고, 성찰하고, 싸우고, 만들어 보자. 청계천엔 문화가 흐르고 미래가 흐를 테니까. 이무용 서울시정개발연구원 도시사회연구부 부연구위원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동부그룹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동부그룹

    국내 10대 그룹이 대부분 1930∼1940년대 출범한 것과 달리 동부는 이보다 한 세대가량 늦은 산업화시대인 1969년, 대학생인 김준기 회장이 세운 후발기업이었다. 선발 창업 기업은 사업참여 기회가 많았지만 동부는 후발기업이어서 사업참여에 어려움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대우·율산 등 60년대 말을 전후해 함께 등장했던 기업들이 부실 문제로 몰락한 것과 달리 동부는 성장과 안정을 기치로 삼아 꾸준히 사세를 키워 현재 재계 순위 12위까지 끌어올렸다. ●사우디 최초·최대의 사업단지인 주베일에서 신화를 창조하다 “나는 죽고 싶었다. 아니 죽으려 했다. 공사도 시작하기 전에 나라에 큰 손해를 끼친다는 죄스러운 마음에서 눈앞이 깜깜했다. 중동 진출 꿈은 날아가고 동부건설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피사의 사탑 앞에서 양주를 한병이나 마셨다. 이 탑에 올라가 뛰어내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죽으려니 그동안의 고생이 너무 아까웠다. 이탈리아 말도 모르면서 이탈리아 귀신들 속에서 고생할 것 같다는 쓴웃음도 나왔다. 그리고 죽더라도 고국에 돌아가서 죽자고 마음을 바꿔 먹었다. 죽기로 마음 먹으니 다시 한번 부딪쳐 보자는 각오가 섰다.” 1974년. 동부의 중동 진출 시발탄인 주베일 해군기지 공사를 내정가에도 못 미치는 가격에 입찰받자 회사와 국가에 큰 손해를 끼치게 했다는 자책감과 함께 김 회장은 일생일대의 위기를 맞게 됐다. 유복한 집안에서 고생 없이 자란 덕에 김 회장의 창업은 밥벌이와 무관했지만 그렇다고 그룹을 이루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는 죽는 대신 죽을 각오로 다시 일어섰다. 발주처를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재입찰을 성사시키면서 동부의 중동시대를 본격 개막했다. 김 회장이 현장 반장이 되어 섭씨 50도가 넘는 사막을 전세 택시로 오가며 말뚝을 박고 공사를 지휘했다. 사우디 최대의 산업단지인 주베일에 한국 건설 업체로서는 최초로 동부건설이 대형 복합공사(4800만달러)를 따냈고, 그 이후 1억달러 이상의 대형 공사를 수주했다. 사우디 제다 해군기지, 사우디 국방부 청사, 리야드 국제공항 등 중동지역 공사를 잇따라 따냈다. 그 때 벌어들인 돈이 오늘날의 동부를 일군 종자돈인 일명 ‘오일 머니’다. 건설사 창업 10년도 안돼 도급 순위가 1978년 6위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부강한 미국에서 착안한 기업가의 길 고려대 경제학과 4학년에 재학중이던 1969년. 만 24세의 나이로 직원 셋을 데리고 동부그룹의 전신인 ‘미륭건설’을 창업했다. 군제대 후 선진국 시찰단의 일원으로 40일간 미국을 돌아보고 그는 자본주의의 위대성과 시장경제체제의 합리성에 눈뜨게 된다. 좋은 기업을 만들어 국가와 사회에 기여하겠다는 젊은 포부에서 동부의 창업 이념은 ‘좋은 기업’이다. 건설업은 리스크가 크고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나 설비없이 시작할 수 있다는 이점을 살려 창업 업종으로 삼았다. 당시 회사 이름은 아름답게 솟아오른다는 뜻의 ‘미륭’. 오늘날 동부의 전신이다. 창업자금 2500만원은 여러 친지들을 설득해 간신히 꾼 돈이다. 아버지 김진만(87) 전 의원은 대학 재학중인 어린 아들이 사업하는 것을 반대했다. 1954년 제3대 민의원으로 정치 인생을 시작한 아버지 김 전 의원은 김 회장이 창업한 1960년대 후반, 여당의 당 4역으로 활약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동부의 창업 과정에 아버지의 후광 이야기가 운운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7선 의원인 김 전 의원은 지금도 민족중흥동지회장이란 직함으로 활동 중이다. 동부그룹 관계자는 “김 회장은 동부그룹을 창업하는 과정에서 아버지로부터 도움을 받지 않았겠느냐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정치는 후광으로 가능하지만 기업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평가받는다는 평범한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해”라고 말한다. 김 전 의원은 1972년 항명파동으로 당권의 핵심에서 멀어져 간 인물이고, 오늘날 동부그룹을 이룬 결정적 기반은 1975∼1983년 중동에서 벌어들인 외화였기 때문이다. 1980년 전두환 군부 정권은 권력에 의존해 축재 혐의가 있는 정치인을 조사, 재산을 몰수했다. 이 과정에서 김 전 의원으로 인해 동부건설 계열 3사가 연루된 적도 있다. 아들인 김 회장은 조사를 받았지만 무혐의로 풀려났다. 동부건설 계열 3사가 직면한 일대 위기였지만 결과적으로 동부의 창업 과정과 김 전 의원이 무관하다는 점을 입증한 계기가 되기도 했다. 동부그룹 관계자는 “동부(당시 미륭)를 창업한 1969년 당시 이미 600여 선발 업체들이 포진한 상태였고 도급 순위에 따라 수주 한도가 정해졌기 때문에 미륭은 정부 발주 공사는 넘보지도 못했다.”며 후광설을 일축했다. 그는 또 “그래서 요즘 말로 우리만의 틈새시장인 이른바 ‘블루오션’을 개발해 성공한 케이스”라고 설명했다. 예컨대 영국대사관·독일문화원·용산미군기지와 같은 주한미군 공사·연세대 이공대 건물 등 외국인 및 민간 발주 공사를 집중 공략했다. 특히 이는 국제적인 공사 표준이 엄격하게 요구되던 사우디 건설시장에서 성공 신화를 이룬 밑거름이 됐다고 덧붙였다. ●계획된 사업다각화로 재계 10위권 진입 5남3녀 가운데 장남인 그는 서울 경기 중·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김 회장 일가는 경기고와도 인연이 깊다. 광복후 청년운동을 펼쳤던 그의 숙부 고 김진팔씨가 경기고 27회, 김 회장이 60회, 그의 아들 김남호(30)씨가 90회 졸업생으로 3대가 경기고를 졸업했다. 지난 6월 말 서울 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아들 남호씨의 결혼식에는 김 회장 재학 당시 화학 선생님이자 남호씨의 교장 선생님으로 재직했던 송길상씨가 주례를 맡기도 했다. 고등학교 동창 중 사업을 가장 크게 하고 있는 사람 역시 김 회장이다. 동창들은 김 회장에 대해 “고등학교 시절에 공부도 잘했지만 술·담배는 물론 주먹도 무지 센 친구였다.”고 회고한다. 김 회장의 경기고 동기동창 중에는 고려대학교 어윤대 총장, 포스코 이구택 회장, 최창영 고려아연 회장, 최경원 전 법무장관, 원정일 전 법무차관, 송옥환 전 과학기술부 차관, 양수길 전 OECD 대사, 한남규 전 중앙일보 부사장, 손욱 전 삼성SDI 사장, 이연수 전 외환은행부행장 등 쟁쟁한 유명인사가 많다. 동부그룹에서는 김 회장에 대해 “일밖에 모르는 탁월한 기업가” 라고 정의한다. 일을 위해 그 좋아하던 술·담배도 끊고 걸음걸이까지 바꿨다. 다양한 분야에 걸쳐 독서를 즐기고 골프는 거의 치지 않는다. 주요 사업현안에 대해 합리적인 결론을 얻을 때까지 임직원들과 마라톤 회의를 벌인다. 논리에서 밀리지도 않고 지독하다 싶을 만큼 마음 먹은 일은 꼭 이뤄내고 마는 성격이다. 70년대 말까지만 해도 건설·운송사업에 머물던 동부가 10위권 그룹으로 거듭난 것도 동부가 중동신화를 창조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의 강한 집념, 탁월한 전략, 추진력, 리더십의 결과라는 평이다. 반대를 무릅쓰고 중동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부실 기업들을 속속 인수해 경영을 정상화시킨 주인공이 바로 김 회장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업다각화는 초기부터 큰 밑그림을 갖고 계획적으로 추진되었다. 예컨대 1984년 ‘장영자 사건’ 여파로 부도가 난 일신제강을 인수,4000여억원을 투입해 민간 최대의 냉연강판회사로 탈바꿈시켰다. 이어 1998년 1조 3000억원을 들여 아산만에 제2 냉연공장을 건설, 오늘날 동부제강을 세계적인 냉연철강회사로 탈바꿈시켰다. 80년대에는 울산석유화학·영남화학을 인수, 양사를 합병해 동부화학(현 동부한농화학)으로 출범시켰고,1983년에는 만년 적자인 한국자동차보험(현 동부화재)을 인수해 오늘날 손해보험업계 ‘빅3’인 동부화재로 거듭나게 했다. ●형제들의 화려한 혼맥 어머니에 대한 사랑도 일에 대한 열정만큼 극진하다.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에 있는 어머니 고 김숙자씨의 묘소 옆에 별장을 지어놓고 수시로 다녀가고 있다. 사업 구상이나 고민에 빠질 때도 그가 찾는 곳은 늘 어머니 곁이다. 어머니 김씨는 서울 명성여학교에서 유학, 일제시대 삼척 송정국민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최초의 여교사다. 전형적인 현모양처였다는 평이다. 동부는 80년대 중동 경기가 악화되기전 이미 중동에서 철수했다. 사우디에서 벌어들인 ‘오일머니’로 회사를 속속 설립, 인수하면서 그룹 시대를 열었고 몇 안 되는 친인척들은 이무렵 동부그룹에 들어왔다. 정치인 아버지 슬하에서 이뤄진 혼사들이라 화려하다는 인상을 주기도 하지만 연애 결혼도 이외로 많다. 누나인 김명자(63)씨의 남편인 임주웅(65)씨는 결혼과 함께 김 회장의 권유로 동부에 합류해 한국자동차보험 이사, 동부생명보험 사장 등을 지냈다. 누나 김명자씨는 김 회장을 대신해 가족들의 대소사를 챙기는 역할을 맡고 있다. 매형인 임 전 사장의 아버지는 한국 최초의 치약 제조회사였던 동아특산약화학의 창업자인 고 임형복씨다. 임 전 사장의 형인 임주용(71)씨는 동국제강 고 장상태 회장의 막내 동생인 장복혜씨와 결혼했으며 중앙투금 부사장을 지냈다. 임 전 사장의 아들 준석(37)씨의 장인 윤호중씨는 흥아해운 창업주인 고 윤종근씨의 아들이다. 김 회장의 큰 동생이자 김진만 옹의 차남인 김택기(55)씨는 90년대 동부화재 사장을 지내면서 만년 적자이던 한국자동차보험(현 동부화재)을 흑자 전환시켰다. 그러나 정계 진출을 위해 사표를 내고 2000년 4월 16대 민주당 의원(강원 태백 정선)으로 당선됐다.17대 총선에는 낙선했지만 그룹으로 돌아올 계획은 없다는 것이 측근들의 전언이다. 요즘은 강원대 초빙교수로 출강하며 지역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있다. 아버지의 정치가 피를 이어받은 사람은 동생 택기씨란 평이 나오는 이유다. 부친과 절친했던 이철승(83) 전 의원의 딸인 이양희(49) 성균관대 아동학과 교수와 결혼해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 김 회장의 둘째 남동생인 김무기(52)씨는 80년대 초반 동부그룹에 합류했다. 동부제강 상무, 동부증권 부사장 등을 역임하다 1990년대 말 벤처 창업을 위해 회사를 떠났다. 지금은 IT전문 경제지인 서울디지털경제의 발행인 겸 편집인으로 활약 중이다. 성격이 호방한 데다 주량이 세고 입담이 뛰어나 그룹 내에서는 일명 ‘핵무기’로 통했다. 자유연애로 만난 부인 이지은(46) 씨는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서울대 문리대 학장을 지낸 고 이종진씨의 딸이다. 친구의 소개로 만났으며 금실이 좋기로 유명하다. ●가족·친지·동업자의 동반없이 재계 정상에 오르다 동부는 창업에서부터 궤도에 오르기까지 가족·친지·동업자의 동반없이 사업을 했고, 창업자 단독으로 그룹을 일궈낸 보기 드문 사례다. 그룹을 이루는 과정에서 한때 일했던 매형과 동생들은 모두 각자의 길로 떠났다. 남아 있는 사람은 김 회장의 오른팔 역할을 하는 동서지간인 윤대근 동부아남반도체 부회장과 제조부문 회장을 지낸 외삼촌 김형배(71) 고문 둘뿐이다. 김형배 고문은 상공부(현재의 산업자원부 전신)에서 기획관리실장, 경공업 차관보를 거친 경제관료 출신으로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 등을 거쳐 1994년 김 회장의 권유로 동부에 합류했다. 동부제강, 동부한농화학, 동부전자 등 동부 주력 제조업체들의 경영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동서인 윤 부회장은 문교부(현재의 교육부 전신) 장관과 서울대 총장을 지낸 고 윤천주씨의 아들이다. 김 회장의 부인인 김정희(57) 여사의 여동생 김정림(56)씨의 남편이다.70년대 초반 미국 유학 당시부터 그룹 일을 도와 가장 먼저 그룹에 참여한 친·인척으로 꼽히기도 한다. 측근들은 김준기 회장과 윤대근 부회장은 코드가 통해 지금도 손발을 맞추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동부그룹 관계자는 “소머리 국밥집에서 냄비에 눌어붙은 누릉지를 긁어먹길 좋아하는 등 두 사람의 소탈함이 닮았다.”고 전했다. 김 회장은 윤 부회장에 대해 “인척관계를 떠나 사업상 고락을 함께 해온 동지”라고 표현할 정도로 정이 돈독하다. 김 회장과 윤 부회장의 장인은 고 김상준 삼양염업사 명예회장이다. 고 김 명예회장은 김상하 삼양그룹 회장의 형이다. 고 김 명예회장의 2남3녀 중 둘째 딸과 셋째 딸이 나란히 김 회장과 윤 부회장에게 시집간 것이다. 지난 7월 김 회장의 아들 남호씨의 결혼식 당시 식장 맨 앞에 있던 신랑 가족석 옆에 삼양그룹 사람들을 위한 별도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했다. 지난 2004년 9월 고 김 명예회장이 별세했을 당시 두 사람이 시종 빈소인 고려대병원을 지키기도 했다. 김 회장의 결혼은 친지의 중매로 이뤄졌다. 동부 관계자는 “창업 이후 사업 확장에 여념이 없던 김 회장에게 중매가 들어왔는데 신부 후보가 알고 보니 김 회장과 중·고등학교 동기인 김병휘(현 한양대 수학과 교수)씨의 동생이었다.”면서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여서인지 자연스런 만남이 지속됐고 혼사도 순조롭게 이뤄졌다.”고 말했다. 연세대 기악과 출신의 김정희(57)씨는 김상준 전 삼양염업 회장의 2남3녀 중 차녀다. 주례는 당시 동아일보 고재욱 사장이 맡았다. 이밖에 다른 형제들은 그룹에 관여한 경험조차 없다. 여동생 김명희(58)씨는 ‘여성의 전화’ 창립맴버로 여성운동에 몸담아 왔다. 김희선 열린우리당 의원 등 여성계 인사들과 친분이 두텁다. 대한변호사협회 사무총장을 지낸 김평우(60) 변호사와 사이에 1남1녀를 두고 있다. 김 변호사의 양친 모두 유명한 소설가인 고 김동리 선생과 고 손소희 여사다. 김평우 변호사는 김준기 회장과 고등학교 동기이기도 하다. 김흥기(46)씨는 여동생인 희선(45)씨의 소개로 이화여대 수학과 출신인 오남선(46)씨를 만나 연애 결혼했다. 흥기씨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뒤 가방을 만들어 수출하는 무역업에 종사하다 지금은 미국에서 개인사업을 하고 있다. 김희선씨는 농심 신춘호(75) 회장의 둘째 며느리이자 신동윤(47) 율촌화학 사장의 아내다. 이화여대 음대 재학시절 자신이 소개해 오빠의 부인이 된 오남선씨의 주선으로 남편 신 사장을 학교 축제에서 만나 결혼했다. 막내인 김현기(39)씨는 부산에서 개인 사업을 하고 있다. 상지대 경영학과를 졸업했으며 아직 미혼이다. 동부그룹 관계자는 “현재 동서인 윤 부회장과 외삼촌인 김 고문 이외에 다른 어떤 친인척도 동부그룹에 몸담고 있지 않다.” 면서 “다른 재벌들과 달리 동부는 아무리 가족이라도 능력이 없으면 경영에 참여시키지 않는 전통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 핵심경영인들 김 회장이 직접 스카우트 김준기 회장은 미국의 철강왕 카네기 묘비명에 적힌 “자신보다 훌륭한 사람을 부리다가 간 사람, 여기 누웠노라.” (Here lies a man who was able to surround himself with men far cleverer than himself.)를 자주 인용한다. 대학 시절 카네기의 ‘부의 복음’을 읽고 그의 경영철학과 인재관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이 묘비명이 자신처럼 치열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경영자의 참모습을 간결하면서도 적절하게 표현했다고 생각하고 ‘사람’중심의 경영철학 및 인재관에 관한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 김 회장은 전문경영인들에게도 이를 실천할 것을 독려한다. 2001년 입사한 이명환(61) 현 ㈜동부 부회장의 경우 김 회장이 여러 차례 만나 자신의 기업관 등을 설명하며 동부 합류를 끈질기게 설득해 영입한 케이스. 이 부회장은 67년 삼성에 입사해 삼성전자 종합기획실장, 삼성 비서실 인사담당, 삼성SDS 사장 등을 지냈다. 효성 생활산업 사장, 현대건설이 출자한 인천국제공항철도사업단 사장도 역임했다. 이미 70년대부터 김 회장과 손발을 맞춰 온 백호익(62·건설·물류분야) 부회장, 윤대근(58·소재분야) 부회장은 물론 90년대 말 이후 합류한 장기제(금융분야) 부회장, 신영균(61·화학분야) 부회장 등 오늘날 동부를 이끄는 핵심 전문경영인들 모두 이런 과정을 거쳤다. 이밖에도 2004년 6월 김순환 동부화재 사장(전 삼성화재 부사장), 같은 해 12월 임종성 동부아남반도체 부사장(전 삼성전자 전무), 지난 2월 김홍기 동부정보기술 사장(전 삼성SDS 사장) 등이 삼성에서 영입됐고, 지난 3월 GS건설 출신의 황무성 부사장이 동부의 토목부문 사장으로,4월 GS건설 주택사업본부장을 지낸 김용화씨가 개발부문 사장이 됐다. 이어 5월에는 세계적인 반도체회사 미국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의 최고기술책임자(CTO) 출신인 오영환 동부아남반도체 사장, 대림산업 부사장 출신인 하진태 동부건설 부사장, 대림산업 출신인 김용식 동부건설 부사장 등이 영입된 바 있다. jhj@seoul.co.kr ■ ’후계자’ 김남호씨 MBA 유학중 동부의 후계구도는 단순 명확하다.김준기 회장의 승계자가 1남1녀 중 아들인 김남호(30)씨로 일찌감치 정해졌기 때문이다.180㎝나 되는 건장한 체구에 겸손한 태도가 눈에 띈다. 남호씨는 최근 부인 차원영(26)씨와 함게 미국으로 건너갔다.내년 1월부터 뉴욕대학에서 MBA과정을 밟기 위해서다.원영씨는 차경섭(86) 차병원 이사장의 손녀(차광열 포천중문의대 교수 딸)로 지난 6월 남호씨 누나인 주원(32)씨 후배의 소개로 만난지 1년만에 결혼에 골인했다.남호씨는 MBA과정을 끝낸 뒤에도 서울로 돌아오는 대신 한동안 일본에 머물며 공부를 계속할 계획이다.경기고를 졸업한 뒤 미국 웨스트민스터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귀국해 군복무를 마쳤고 지난 2002년부터 외국계 경영 컨설팅 그룹인 AT커니 한국지사에서 최근까지 근무했다. 서울예고 출신의 원영씨는 영국에서 ‘유니버시티 오브 런던’ 수학과를 나온 재원.그룹의 예비 안주인으로서 자리매김하기 위해 향후 남호씨 뒷바라지에 전념중이다. 2,3세에 대한 지분 이양 과정에서 ‘편법 증여’ 등 의혹이 제기되는 일부 재벌들과 달리 동부의 경우 온전히 증여세를 내고 정당하게 지분을 넘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지분 이양은 대부분 이뤄졌지만 남호씨가 경영에 참여하는 것은 아직 멀었다고 그룹측에선 진단한다. 동부그룹측은 “남호씨 본인이 공부를 하고 싶어 하는데다 김 회장도 평소 남호씨에 대해 국내외 경제 흐름에 대한 보다 전문적인 지식과 국제적인 안목을 쌓길 바라고 있다.”면서 “경영 참여는 전혀 급할 것이 없다.”고 말했다. 경영권 승계 작업은 진작에 끝났다.김 회장은 1990년대 중반부터 2002년에 이르기까지 아들 남호씨에게 꾸준히 지분을 넘겼고,그 결과 지난 2002년 10월 남호씨가 동부그룹의 지주회사격인 동부화재 최대주주가 됐다.동부화재가 최대주주로 있는 회사들인 동부생명,동부증권,동부저축은행,동부투신운용 등 금융계열사들과 동부건설 및 동부아남반도체의 경영권도 확보하고 있다. 또 2004년 8월 김 회장이 아들 남호씨에게 자신이 갖고 있던 동부정밀화학 지분을 증여함으로써 남호씨는 동부정밀화학,동부증권,동부제강 등 주요 계열사에서 개인 최대주주 지위를 확보해 사실상 지분 승계 작업을 마무리했다. 딸 주원씨는 동부화재,동부정밀화학,동부제강 등에 대한 지분을 일부 갖고 있으나 경영 참여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 그룹측 설명이다.친구 소개로 만나 1997년 9월 당시 해동화재 김동만(96) 회장의 손자인 김주한(35)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지금은 미국 애틀랜타에서 두 아들과 함께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김주한씨는 메릴린치증권 애틀란타 지사에서 자산운용가로 일하고 있다. jhj@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베트남 통역사와 한국청년의 사랑

    ●하노이 신부(SBS 19일 오전 10시25분) 베트남 종전 30주년인 올해.SBS는 추석을 맞아 특집 드라마로 ‘하노이 신부’(연출 박경렬 극본 박언희)를 준비했다. 해체되어가는 현대 가족상을 짚어보며 그 소중함을 돌아보던 종래 명절 특집극 소재에서 탈피한 점이 특징. 동시통역사인 베트남 처녀와 의료봉사를 위해 베트남을 찾은 한국 청년이 만남을 통해 삶과 사랑의 참된 의미를 깨달아 가는 과정을 그린다. 방송 드라마로는 처음으로 지난 3일부터 5일 동안 베트남 하노이와 하롱베이 등에서 촬영, 이국적인 풍광을 화면에 담기도 했다. 드라마 ‘부모님전상서’ 등으로 얼굴을 알리고 있는 이동욱과, 영화 ‘여고괴담 4’에서 목소리를 잃어가는 귀신을 연기해 깊은 인상을 남긴 김옥빈이 남녀 주인공 은우와 티브역을 맡았다. 베트남 인민배우인 투게와 코미디언 바흐리엔이 출연하는 점도 눈에 띈다.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코드로 읽는책]세계종교로 보는 죽음의 의미/조 바우커 지음

    죽음을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의 끝에는 종교가 있다. 종교는 일반적으로 죽음을 부정하고 영원한 생명을 제시하는 것으로 존재의 의미를 찾는다. 죽음과 불멸에 대해 종교가 가장 많은 말을 해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현대의 대표적인 종교학자인 조 바우커가 쓴 ‘세계종교로 보는 죽음의 의미’(청년사 펴냄, 박규태·유기쁨 옮김)는 종교의 기원이 죽음을 부정하는 것으로 시작됐다는 통상적인 이해를 뒤집는다. 그동안 종교학자들이 펴낸 죽음에 관한 책들과 맥을 달리하는 것. 저자는 종교가 영원한 생명을 제시한다는 ‘보상설’을 반박하고, 새로운 시각에서 죽음에 대한 세계종교의 해석들을 보여준다.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 힌두교, 불교의 교의와 의례에 대한 꼼꼼한 분석을 통해 죽음에 대한 세계종교의 해석들이 마르크스나 프로이트 등 사상가들이 주장한 보상설로 환원될 수 없을 만큼 풍부하고 다양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저자가 던지는 질문은 ‘과연 죽음이 없다면 종교도 없었을까.’이다. 이같은 문제의식은 종교의 기원과 맞닿아 있다. 따라서 각 종교의 뿌리에 무엇이 놓여있는지 탐색하고 죽음의 궁극적인 의미를 성찰한다. 저자는 희브리 성서와 초기 불교, 신·구약성서, 힌두교 베다 등은 결고 보상이나 사후세계의 실체를 말하지 않았음을 입증한다. 오히려 사후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장 오래된 종교사는 종교의 기원이 사후의 가치 있는 삶을 제공하는 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고 결론짓는다. 여기에서 종교의 기원을 이론적으로 일반화해 탐색해온 마르크스와 프로이트 이론의 맹점이 드러난다고 주장한다. 종교로부터 사후 보상을 제거해야만 죽음에 대한 본질을 알 수 있다는 것. 그렇다면 저자가 말하는 죽음의 본질은 무엇일까. 오래된 종교적 시도들은 보상개념보다는 ‘희생’에보다 근본적인 의미를 둔다고 강조한다. 유대교 경전은 ‘피흘림’을, 기독교 신약성서는 ‘그리스도의 희생’을, 불교는 민속신앙의 희생 제의를 탈바꿈시켜 일찍이 희생이라는 범주를 죽음과 연결시켰다. 저자의 또다른 질문은 죽음에 대한 세속적인 해석과 종교적인 해석이 어떻게 만나는지다. 이를 풀기 위해 많은 현대과학 담론을 끌어들이고 고고학과 인류학·현상학 등 인접 학문의 다양한 죽음담론을 펼친다. 이 결과 저자는 ‘희생’이야말로 양쪽 해석이 만나는 지점이라고 주장한다. 결국 두 해석은 생명의 필요조건인 죽음에 높은 가치를 부여해 서로를 강화한다는 것이다. 종교와 죽음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만남과 동시에 동서양 종교 전통의 해박한 지식 속에 빠져들게 하는 책.1만 8000원.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인간시대] ‘시인 공무원’ 서울 송파구청 이규종씨

    [인간시대] ‘시인 공무원’ 서울 송파구청 이규종씨

    ‘…꽃송이마다 하얗게 흔들리며 퍼가나는 은은한 바람소리. 죽사리 일만 해오다 먼길을 떠난 내사랑이 운다. 피자마자 꽃대가 잘려진 국화꽃들이 운다.’(‘국화꽃들이 운다’ 中) ‘왕십리 역에서 버스를 타려는데 어느 노파가 배가 고프다며 손을 벌리기에 버스비까지 털어주고 서대문 사거리까지’(‘루게릭병과 싸우는 별을 위하여’ 中) 상실감은 인간의 가장 보편적인 정서다.‘이란성 쌍둥이’인 사랑과 함께 예술의 오래된 소재이다. 특히 가족을 잃은 슬픔은 세대의 간극을 뛰어넘는다.‘생사의 길은 예 있으매 머뭇거리고’로 시작되는 향가 ‘제망매가’가 천년의 시간을 넘어 가슴에 와 닿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최근 한 공무원이 형의 죽음을 추모하며 시집을 냈다.‘서울 하늘은 별빛을 기다린다’라는 이름의 시집 안에 형과 이웃에 대한 사랑과 슬픔을 오롯이 새겨 놓았다. 서울 송파구청 세무2과 이규종(47·세무 7급)씨가 애달픈 사형가(思兄歌)의 주인공이다. ●필명 ‘이훈강´으로 더 잘 알려져 이씨는 문단 데뷔 3년차의 시인 공무원이다.2003년 ‘월간 한국시’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했다.2002년 11월에는 1집 시집 ‘사랑보다 더 먼 곳에 있는 아픔’을 냈다. 이씨는 필명 ‘이훈강(李暈江)’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햇빛을 머금은 강물’이라는 뜻이다.300여명의 회원을 거느린 인터넷 포털 다음 카페 ‘시인의 나라 이훈강 시인과의 만남’(cafe.daum.net/narakang)의 운영자로 온라인 상에서는 이미 인기 작가다.1집은 별다른 광고도 없이 회원들과 팬들의 입소문만으로도 2만여권 가까이 팔렸다. 지난달 발간된 2집 ‘서울 하늘은’은 지난해 11월 발병 7개월 만에 루게릭병으로 작고한 친형 이선종(48)씨를 떠나 보낸 슬픔과 그리움을 담았다. ●“2집은 형님의 마지막 선물” 이씨의 형님은 공사를 다니던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그러나 주위의 고통에 함께 아파하는 ‘시인의 삶’을 살았다. ‘왕십리 역에서 버스를 타려는데 어느 노파가 배가 고프다며 손을 벌리기에 버스비까지 털어주고 서대문 사거리까지’(‘루게릭병과 싸우는 별을 위하여’ 中) 걸어올 정도였다. 그의 형이 루게릭병을 앓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4월. 이씨는 2집 출판일까지 미뤄 가면서 형의 병상을 지켰다. 하지만 인명(人命)은 재천(在天)이었다. 사람의 정성으로 불치병을 뛰어넘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결국 가을 바람에 형을 저 세상으로 떠나보냈다. 이씨는 “원래 불우이웃 돕기에 쓰려던 두번째 시집의 수익금은 조카를 위해 쓰기로 했다.”면서 “이번 시집은 외롭고 지친 이들의 벗이었던 형님이 내게 마지막으로 남긴 선물”이라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이씨의 ‘객관적’인 삶은 문학과는 거리가 멀다. 체계적으로 문학 수업을 받은 것도 아니다. 덕수상고를 졸업한 뒤 대기업을 전전하다가 공직에 들어와 경기대 회계학과를 졸업했다. 그러나 그는 고교 시절 소설 습작을 시작한 ‘문학청년’이었다. 고 3때 대학 영문과 진학에 실패해 중도 포기했지만 오래지 않아 문학에 대한 갈망은 가슴 깊숙한 곳에서 고개를 쳐들었다. “서른 후반까지 숫자만 보고 사니까 인생에 대한 허전함이 밀려왔습니다. 함몰되는 내 삶이 보이기 시작한 거죠. 시를 쓰지 않으면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다행히 퇴근 뒤 시간을 낼 수 있는 공무원이라 집에 오면 줄곧 시에만 매달렸지요.” ●한국시의 대중화를 향해… 한번 봇물이 터진 그의 시상(詩想)은 막힐 줄 몰랐다. 어느새 1000여편이나 쌓였다. 그의 시는 일반인은 물론 평론가들에게도 호평을 받았다. 품위와 의식을 갖췄으면서도 난해하지 않고 누구나 감동할 수 있는 시어를 써 온 덕분이었다. 이씨는 이번 달 말부터 동국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과 석사 과정에 다닌다. ‘한국시의 대중화’라는 그의 목표에 한 걸음 더 다가선 셈이다. 이씨는 “유행가 노랫말같이 일반인들이 쉽게 외울 수 있는 시를 쓰는 게 희망”이라면서 “외롭고 고단한 이들을 위해 내 시가 작은 위안이 된다면 더 바랄 게 없다.”고 밝게 웃었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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