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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쓰던 물건 사고팔기, 새로운 대학문화로

    쓰던 물건 사고팔기, 새로운 대학문화로

    “명품 백을 메고 반값등록금을 외치는 대학생들을 보며 아이러니함을 느꼈어요. 대학생들의 과시적인 소비문화를 바꾸고 싶어 혼자 벼룩시장을 열었는데 의외로 많은 학생들이 오더군요. 이제는 ‘중고 문화 마켓’을 통해 이를 새로운 대학 문화로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서울대에 전국 최초로 캠퍼스 내 중고 문화 마켓이 상설 매장으로 들어선다. 캠퍼스 중고 문화 마켓 1호인 서울대 ‘마켓인유’(Market in U)의 김성경 대표는 23일 서울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대학 내에 ‘아름다운 가게’처럼 기부나 자원봉사 형식의 가게는 이전에도 있었지만 이윤을 창출하는 지속가능한 사업으로서 캠퍼스에 입점하는 것은 처음”이라고 밝혔다. 다음 달 서울대 언어교육원 지하 1층에 문을 여는 마켓인유는 학생들이 쓰던 물건을 사고팔 수 있고 수익의 2%를 적립, 공유 물건을 구비해 함께 이용할 수 있다. 지난 14일 대학본부가 입찰을 최종 결정하기까지 김 대표는 2년에 걸쳐 끈질기게 노력했다. 서울대 체육교육과 출신인 그는 2011년 졸업을 앞두고 학내에 돗자리를 깔고 처음 벼룩시장을 열었다. 김 대표는 “서로 모르는 학생들이 쓰던 물건을 사고팔면서 친해지는 것을 보고 중고 문화가 새로운 대학 문화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때부터 김 대표는 교내 벼룩시장 ‘스누 마켓’을 만들고 학내에 정식으로 자리 잡기 위해 대학생활협동조합과 본부에 지속적으로 제안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기존에 없던 사업인지라 학교 측을 설득하고 사업의 지속 가능성을 입증해 보이는 데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그는 아름다운 가게와 미국의 프랜차이즈 중고 마켓 ‘버팔로익스체인지’ 등의 수익 방식을 벤치마킹하고 서울 종각과 공덕동에 실험 매장을 열었다. 그 결과 지난해 한국 사회적기업진흥원으로부터 청년 사회적기업 육성 사업으로 선정돼 3000만원의 투자를 받을 수 있었다. 공덕동 매장은 지난 8월 문을 연 이후 수익률이 매월 150% 이상 증가하고 있다. 김 대표는 현재 카이스트에서 사회적기업가 경영학 석사(MBA) 과정을 이수하고 있다. 그는 “온라인에도 중고 장터가 있지만 불신이 만연한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면서 “만남이 없고 편의성만 강조하다 보니 물건의 가치를 전달하기에도, 문화를 형성하기에도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것은 물론 하나의 문화를 형성하고 공동체에 이익이 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글 사진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삶의 가시밭길에 축도를 내려주소서

    삶의 가시밭길에 축도를 내려주소서

    최인호형! 많이 회복되고 있다던 소식을 들은 게 바로 얼마 전인데, 이게 웬말입니까. 그런 낭보는 낭설이 되어 흩어지고 이 사실만이 냉혹하게 우리 옆에 다가온 현실이란 말입니까. 그리하여 그 재기 넘치던 ‘반항아’의 모습도 이제 다시는 볼 수 없게 되었단 말입니까. 그해 1965년 어느 봄날, 대학에 들어간 나는 강의실 밖에서 누군가 찾는다는 전갈을 받고 컴컴한 지하 강의실 복도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최인호라고 밝히는 한 청년과 악수를 나누었습니다. 나는 미리부터 이름을 들어서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 앞으로 잘해 나갑시다.” 그게 형이 나를 찾아온 용건의 전부였습니다. 물론 ‘잘해 나갑시다’의 목적어는 문학이었습니다. 처음 만났음에도 목적어를 생략하고도 말이 전달된다는 이 사실이 앞으로의 우리 관계를 한마디로 요약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형이, 이제 어디론가 갔다는 최형이, 지금도 어두운 복도에서 나를 기다리고 서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아무 용건 없이 찾아와 뜬금없는 말을 던지고 뚜벅뚜벅 걸어간 그것이 전부였으나, 나는 50년 가까이 우리 사이에 가장 뚜렷한 만남으로 그 기억을 간직해 왔습니다. 그리고 어느새 ‘잘해 나가자’는 평범한 말이 가슴에 맹약으로 자리 잡은 지도 오래되었습니다. 머지않아 1967년에 형은 조선일보 신춘에 소설이, 나는 경향신문 신춘에 시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으로써 그 맹약은 지켜지고 있음을 확인하였고, 70년대 중반에 ‘문학과 지성’이 중요한 기획으로 ‘재수록’이라는 형식을 내세우며 창간호를 선보였을 때, 우리 둘은 거기에 나란히 이름을 올렸습니다. 우연이었겠지만 빛나는 동행이라고 해도 누가 뭐라 하겠습니까. 아주 오래전, 전화가 없었을 때 한번은 형이 내게 뜻밖에 엽서 한 장을 보내서 덕수궁 앞에서 만나자는 전갈을 해 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엽서는 약속 날짜를 넘어서야 배달되었습니다. 나중에 형을 만나서 그 얘기를 하려 했으나 웬일인지 나는 입을 닫고 말았습니다. 아예 엽서조차 못 받은 걸로 넘어가버려서 잊혀졌으면 했던 것입니다. 형의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해서였을까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형을 만날 때마다 그날 나를 기다렸을 그 모습이 더욱 커다랗게 다가오며 알 수 없는 죄책감으로 변해 더욱 나를 괴롭혔습니다. 형이 가고 없는 그 뒷자리에나마 이 사실을 고하며 용서를 비는 마음입니다. 처음 만남의 그때부터 내가 형에게 느낀 것은 ‘외로움의 빛남’이라고 정의해 봅니다. 형이 왜 그렇게 외로움에 찌들었는지는, 나 역시 그러했기에, 동병상련의 치부였을 뿐 내가 나누기에는 어려운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공군에 입대하여 제복 차림으로 학교를 찾아온 모습이나, 문명을 드날려 ‘장안의 지가’를 높이고 있었던 모습이나, 이어령 선생님과 종종 만나던 모임의 모습이나 웅크리고 삐딱해 보이긴 해도 언제든지 날아오를 태세의 맹금 같은 그것은 한치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도전과 응전, 응축과 확장을 함께한 긴장이 형의 본태인 것입니다. 요즘도 학생들에게 강의하면서 ‘이건 최인호한테 배운 건데’ 하며 읊는 말이 있습니다. 어디선가 언급했듯이 소설의 첫 시작에 ‘이상한 일이었다’를 쓰라는 것입니다. 직접 쓰지 않더라도 배치해 보라는 것입니다. 지금 나는 그 말을 나 스스로 가져다 쓸 수밖에 없습니다. 형은 어디론가 사라진 게 틀림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옛날 옛적에 어두운 복도에서처럼 그저 저쪽으로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습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형은 뒤돌아보며 50년 전의 그때처럼 말합니다. 우리 잘해 나갑시다! 형이여, 편히 쉬소서. 이토록 잘해온 형이여, 우리 손을 맞들고 헤어지는 이때, 앞으로 잘해 나갈 일이 무엇인지 목적어를 말해 주소서. 부디 평온 가운데 쉬시어, 삶의 가시밭길에 축도(祝禱)를 내려 주소서.
  • “국적은 달라도 한국사에 대한 관심은 한마음이죠”

    “국적은 달라도 한국사에 대한 관심은 한마음이죠”

    지난 4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통일로 동북아역사재단 대회의실이 외국인들로 북적였다. 중국, 일본, 몽골 등 아시아 지역을 비롯해 북유럽 아이슬란드와 남미 에콰도르, 남아프리카공화국까지 다양한 국적을 지닌 외국인 20여명이 모였다. 이들은 동북아역사재단(이사장 김학준)이 이번 가을 학기에 처음 개설한 ‘외국인을 위한 동북아역사 아카데미’ 1기 동기생들. 이날은 입학식과 오리엔테이션을 겸한 첫 만남의 자리였다. 서로 초면인지라 처음엔 약간의 어색함과 긴장감이 흘렀지만 ‘한국 역사에 대한 관심’이라는 공통분모 덕에 분위기는 금방 화기애애해졌다. ‘외국인을 위한 동북아역사 아카데미’는 한국에 유학 왔거나 거주하는 외국인들에게 한국 역사와 문화에 대한 폭넓은 이해는 물론 한발 더 나아가 한국과 동북아시아의 역사와 문화를 서로 연관 지어 이해하도록 돕고자 기획된 프로그램이다. 입학식을 시작으로 12월 11일까지 15주간 매주 수요일 두 시간씩 수업한다. 강의는 역사 이론과 역사 체험 수업으로 구성된다. 이론 수업에서는 현직 초·중·고 교사들이 고대부터 현대까지 한국사와 동북아시아사를 강의하며, 체험 수업에서는 한국어와 한국문화 전공 강사가 이론 수업에서 나온 내용과 연관된 한국문화에 대해 체험 학습을 이끌어 가게 된다. 남산골 한옥마을 투어, 울릉도·독도 답사, 수원 역사 유적지 방문 등 현장 탐방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다. 아카데미를 기획한 재단의 정영미 박사는 “독도체험관 관장으로 일하면서 외국인 방문객들을 많이 만났는데 한국 역사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더라”면서 “그런데 막상 전공을 하지 않는 한 외국인들이 한국사를 배울 곳이 거의 없어 프로그램을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아카데미를 개설하면서 가장 우려했던 건 학생들. 모든 강의가 한국어로 진행돼 한국어 4급 이상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까닭에 첫 학기 20명 정원을 채울 수 있을까 싶었는데 22명이 원서를 냈다. 국적도 11개국으로 다양하다. 아이슬란드에서 온 욘애일(46)은 중국문헌학을 전공한 대학 강사 출신으로, 1년 전 한국에 왔다. 현재 서울대 언어교육원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그는 “앞으로 한국 역사와 동양 역사를 비교하는 공부를 계속하고 싶은데 마침 좋은 기회가 생겨 망설임 없이 지원하게 됐다”고 말했다. 클라센 캐스퍼 헨드릭(25)은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1년째 한국농촌개발을 연구 주제로 석사 과정을 밟고 있는 남아공 청년이다. 조선 초기 ‘농사직설’에 관심이 생겨 유학을 왔다는 그는 “한국 역사를 아는 게 먼저라고 생각해 입학하게 됐는데 앞으로 강의가 기대된다”고 전했다. 일본인 유학생 마쓰다 에미(31)는 “한국 역사에 관심이 많아서 중·고교 교과서로 공부해 볼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면서 “이번 기회에 한국 역사를 제대로 배워 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아카데미 강의에는 동북공정과 독도, 일본 교과서 문제 등 역사 현안에 대한 특강도 마련돼 있다. 중국과 일본 유학생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이에 대해 정 박사는 “되도록이면 역사적 사실 위주로 강의하면서 고구려 유적지를 보여 주거나 독도를 탐방하는 등 체험 학습을 통해 자연스럽게 이해하도록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재단은 내년부터 봄 학기와 가을 학기 두 차례씩 아카데미를 운영할 계획이다. 이순녀 기자 coral@seoul.co.kr
  • [열린세상] 태평양시대의 주축국, 대한민국/김정현 소설가

    [열린세상] 태평양시대의 주축국, 대한민국/김정현 소설가

    일본 도쿄가 2020년 하계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됐다. 과거사 문제와 우경화에 대한 세계 대다수 나라의 따가운 시선이 무색할 지경이다. 국익을 우선으로 ‘대’(帶)를 형성하는 세계시장의 경쟁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그간 일본의 과거사 문제와 관련한 미국의 태도는 일정 수준 단호했다. 그러나 1943년 진주만공격에 대한 기억이 명료함에도 미국은 일본의 우경화 정책에는 오히려 동조적이었다. 태평양에서 일본을 동맹으로 하지 않고는 중국을 견제하며 패권을 유지할 수 없다는 현실적 판단 때문일 것이다. 일본은 국토 면적 약 37만 8000㎢에 인구는 1억 3000만명가량이다. 한반도는 전체 면적 22만 1000㎢에 남북한을 합한 인구가 약 7500만명으로 비슷한 중급 규모이다. 국민총생산(GNP)이나 과학기술 등 일부 분야에서는 아직 (한·일 간)큰 차이가 있다. 최근 만난 중국의 저명한 정치학자는 과거에 아시아는 중국과 일본이 주축이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단언했다. 부끄럽고 배알이 뒤틀리는 이야기였지만 부인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미국이 일본의 배후가 되는 까닭이다. 엊그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만남에서 부산에서 시베리아횡단철도(TSR)를 통해 유럽으로 연결되는 유라시아철도에 대한 열망을 밝혔다. G20 회원국으로서의 국격에 대한 간절한 소망이었을 것이다.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통일을 이뤄내 일본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태평양시대의 주축국이 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두 개의 정치체제를 인정하는 가운데 남과 북이 힘을 합쳐 태평양시대 주축국으로서 역할을 하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안보분야에서 강력한 인적 시스템을 구축하고, 신뢰 프로세스에 대한 의지를 거듭 밝히는 함의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남북한이 하나가 됨은 상상만으로도 짜릿한 일이다. 실제 가용하는 국토면적이 배로 늘어나고 인구는 절반 넘게 늘어난다. 언어와 기본적 문화 바탕이 같으니 소통이 자유롭고, 역할을 나누어 경제를 살려 간다면 일본의 GNP를 따라잡는 것도 요원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당장 세계적 당면과제인 일자리 문제 해결도 수월할 것이다. 자본력도 그렇지만 앞선 경험은 청년뿐 아니라 노년층의 일자리도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열차를 타고 대륙을 횡단해 지구를 절반 이상 누빌 수 있다는 것은 지금껏 해보지 못한 경험으로 새로운 창조적 상상력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유엔개발계획(UNDP)도 한반도와 러시아, 중국을 잇는 대륙횡단철도와 시베리아 가스관 연결 등 다양한 분야에서 폭넓고 깊이 있는 연구를 거의 끝낸 것으로 안다. 문제는 북한이다. 그런데 이전과는 뭔가 좀 달라진 것 같다. 개성공단 문제를 다루는 과정에서 갑자기 변한 태도도 그렇고, 이산가족 상봉 문제를 대하는 자세도 그렇다. 최근 우리 사회를 달구는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피의사건에도 말은 거칠어도 자신들은 엮이기 싫다는 반응을 노골적으로 밝혔다. 물론 언제 변할지 모르는 다른 속내를 의심해야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의심 때문에 머뭇거리기에는 태평양의 파고가 너무 높고 시간이 아쉽다. 왕조국가의 본질은 땅은 왕의 것이요, 사람은 왕의 백성이다. 모든 게 오직 한 사람의 것이지 궁극적으로 개인이 지킬 수 있는 것은 없으니 근본적인 변화가 불가능한 구조이다. 그러나 대부분 백성이 지킬 수 있는, 지켜야 할 내 것이 분명하게 생기면 이야기는 근본적으로 달라지게 될 것이다. 왕 또한 그런 백성의 열망이 보편적이 되면 스스로 변하지 않을 수 없음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어쭙잖은 짐작은 미뤄두겠다. 그렇지만, 비슷한 중급 규모의 나라로서 과거로부터 너희는 주축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는 더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 수천년 가난의 질곡을 벗어나고 민주화의 성과도 이룬 나라이다. 국격은 G20에 들었고 문화적 역량은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태평양시대이든 아시아시대이든, 당당히 한 파트너로서 러브콜을 받는 나라가 된다면 과거사의 멍에도 벗지 않은 채 또 고개를 치켜드는 이웃의 버르장머리는 고칠 수 있으리라.
  • 터키 유혹한 경주의 아름다움

    터키 유혹한 경주의 아름다움

    ‘이스탄불-경주세계문화엑스포2013’이 터키 이스탄불에서 지난달 31일(현지시간) 개막해 오는 22일까지 23일 동안 열린다. 경주엑스포가 해외에서 열리는 것은 2006년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이후 두 번째다. ‘길, 만남 그리고 동행’을 주제로 한 이번 행사에서는 각종 전시와 공연, 체험, 특별행사 등 8개 분야의 46개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경북도와 경주시, 이스탄불시가 공동 주최하고 양국의 문화관광부와 유네스코, 국제연합 세계관광기구(UNWTO) 등 19개 기관이 후원한다. 개막식에는 정홍원 국무총리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총리, 이스탄불-경주엑스포 공동조직위원장인 김관용 경북도지사와 카디르 톱바시 이스탄불시장 등 1만여명이 참석했다. 한·터 합동 공연단은 축하 공연 ‘오랜 인연 꽃이 되다’로 개막식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했다. 신라 여인과 터키 청년이 맺은 인연이 터키의 한국전쟁 참전과 2002 한·일 월드컵, 한·터 자유무역협정(FTA), 이스탄불-경주엑스포로 이어지며 꽃을 피운다는 이야기를 담아냈다. 1일 아야소퍄 박물관 앞 특설무대에서는 우리나라 공연 예술의 진수를 알리는 ‘한국의 소리 길’이 펼쳐졌다. 박범훈(총지휘), 김일륜(가야금), 김덕수(사물놀이), 안숙선(창), 서경욱(독무), 국립국악관현악단의 협연으로 환상의 무대를 연출했다. 행사 기간 내내 이스탄불 전역에서 신라를 비롯한 한국 문화를 알리는 각종 전시회와 공연 등의 행사가 열린다. 대구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사설] 청와대·재계, 현 경제위기 엄중히 인식하길

    박근혜 대통령이 내일 청와대에서 10대 그룹 회장들과 오찬 회동을 갖기로 한 것은 우리의 경제 상황이 그만큼 심상치 않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일 게다. 박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중소기업중앙회와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에 이어 방미·방중 때는 대기업 총수들과 만난 적이 있다. 다음 달 러시아와 베트남 순방 때 역시 적잖은 기업인들이 동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모레는 중견기업 회장단과의 만남도 예정돼 있다. 박 대통령과 기업 회장들의 이번 만남이 의례적인 요식 행사에 그치지 않고 투자의 물꼬를 트는 계기기 되길 기대한다. 박 대통령은 어제 수석 비서관 회의에서 “하반기에는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 그리고 민생 안정에 총력을 다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생회담과 관련해서는 언제든지 여야 지도부와 만나 논의할 생각이 있다고 밝혔다. 재계에는 투자를 통한 고용 확대를, 정치권에는 취득세 인하와 전월세 문제 등 부동산 대책 후속 조치를 위한 민생 법안의 신속한 처리를 각각 촉구하는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여겨진다. 재계는 경제민주화 법안에 이어 최근에는 상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공동 성명을 발표하는 등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는 분위기다. 각종 규제 때문에 투자가 위축된다는 재계의 주장에 귀 기울일 필요는 있다. 그러나 재계가 규제 탓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경영권 방어에만 급급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투명 경영을 하는 것이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 성장할 수 있다는 인식을 갖기 바란다. 정부는 하반기엔 경제민주화보다는 경제 살리기에 주력하겠다는 입장을 이미 밝혔다. 재계는 불평만 쏟아내지 말고 기업가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 경제 여건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도전정신을 발휘할 때 국민들로부터 존경을 받을 수 있다. 올 상반기 10대 그룹 투자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8%가량 줄었다. 투자를 늘린 곳은 3개 그룹뿐이다. 투자와 고용을 늘릴 테니 규제를 완화해 달라는 식의 립서비스만의 회동이 재연돼선 안 된다. 올 1분기 고용률은 63%로 지난해 말에 비해 2% 포인트 낮아졌다. 고용률은 34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21위에 머물고 있다. 청년과 여성 고용률은 최하위 수준이다. 미국의 양적완화 중단과 신흥국 위기 등 대외 여건은 불투명하기만 하다. 정부는 대기업만 쳐다보는 구태에서 벗어나 중소기업 부흥에 더욱 매진해야 할 것이다.
  • [주말 인사이드] 모래찜질·해수욕 뜨거운 낮… 늑대와 여우 탐색전 뜨거운 밤

    [주말 인사이드] 모래찜질·해수욕 뜨거운 낮… 늑대와 여우 탐색전 뜨거운 밤

    찜통더위에 해수욕장을 찾는 피서 인파도 끊이지 않는다. 태양이 내리쬐는 드넓은 백사장과 탁 트인 바다가 손짓한다. 역동적이다. 델 듯한 뙤약볕과 해 질 녘 낙조, 바다가 만들어 내는 시원한 해조음은 여름철 바닷가에서만 만끽할 수 있는 특권이다. 해수욕장의 낮과 밤 풍경 역시 사뭇 다르다. 뜨겁게 달구어졌던 백사장은 밤이면 젊음의 열기로 꽉 찬다. 줄 잇는 축제와 공연은 피서객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한다. 전국 최대 자연 물놀이장인 부산 해운대구 우1동 해운대해수욕장의 속살을 살짝 들춰 봤다. 광복절 휴일인 지난 15일 해운대해수욕장에선 환경미화원들이 힘차게 하루를 열었다. 어둠이 어스레히 묻어나오는 동트기 직전의 오전 4시. 이들은 밤새 백사장에 묻혀 있다가 반쯤 얼굴을 내민 컵라면 용기, 담배꽁초, 페트병, 맥주병, 비닐봉지 등을 치우느라 바쁘게 움직인다. 비치 클리너 차량도 백사장을 고르고 쓰레기를 치우는 데 힘을 보탰다. 청소에는 평일 100여명, 주말과 휴일 150여명이 투입된다. 하루 수거량은 3~5t에 이른다. 이수섭 해운대구 청소계장은 “늦어도 오전 7시까지 새벽 청소를 끝낸다”며 “좋아진 기초질서 의식 덕택으로 배출량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지만 여전히 많다”고 말했다. 환경미화원들은 4교대로 24시간 해수욕장을 지킨다. 작업이 끝날 무렵 ‘원반의 불기둥’이 저만치 바다밑을 박차고 솟구친다. 날이 훤해지자 아침 운동과 산책에 나선 간편복 차림의 사람들로 북적댄다. 인근 식당들도 문전성시를 이룬다. 한 업주는 “피서철엔 아침 식사 손님이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이어 빨강·노랑·파랑 등 형형색색의 파라솔이 해변을 가득 덮으면서 본격적인 손님맞이 채비에 나선다. 3000여개가 일제히 들어선다. 진짜(?) 물놀이가 시작되는 정오부터 햇볕에 달궈진 백사장은 모래만큼이나 많은 인파로 빼곡해진다. 이날 해운대 백사장을 찾은 인파는 50만명을 웃돌았다. 임해행정봉사센터 관계자는 “이어진 무더위에 휴일이라 평소보다 많다”고 말했다. 물살을 가르며 신바람을 일으키는 제트스키는 보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를 저만치 날려 보낼 만했다. 모래찜질을 하는 아저씨·아줌마, 비키니 차림의 여성, 곁눈질하는 청년, 물놀이가 마냥 즐겁기만 한 아이들…. 일부 젊은이들은 열심히 가꾼 구릿빛 몸을 한껏 뽐내며 이리저리 백사장을 왔다 갔다 한다. 검게 탄 피서객들은 짠물을 뒤집어써도 마냥 즐겁기만 하다. 상인들도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연방 흐르는 이마의 땀을 훔쳐 내면서도 잔뜩 웃음을 머금고 있다. 한 파라솔 대여업자는 “최근 매출이 껑충 뛰었다”며 웃었다. 동네 사람도 눈에 띈다. 이도인(37·해운대구 우동)씨는 “가까이 살아 도시락과 과일, 음료수 등 먹을거리를 챙겨 왔다”고 말했다. 어스름 어둠이 찾아들면 해수욕장은 밤의 열기 속으로 빠져든다. 시원한 바닷바람에 몸을 맡긴 피서객들은 한낮의 열기에 복수라도 하듯 밤을 한껏 즐긴다. 백사장 곳곳에 돗자리를 깔고 자리한다. 가족, 친구, 연인, 대학 동아리 등 다양하다. 젊은 남자들은 부나방처럼 짝을 찾아 나선다. 오가는 여성들을 보는 눈초리가 예사롭지 않다. ‘늑대와 여우’들의 탐색전이 치열하다. 동그랗게 모여 앉은 여성들 주변에는 항상 두세 무리의 ‘늑대’들이 어슬렁거린다. 한 늑대는 “적금도 넣고 보험도 들고 있습니다”라는 멘트를 날리며 건전한 직장인임을 강조하며 접근했다. 살포시 웃는 여우 또한 호감을 보이면서 즉석 만남이 이뤄졌다. 김모(25·회사원)씨는 “해운대에서 좋은 추억을 만들려고 한다”며 지나가는 여성들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인근 호텔과 호프집, 노래주점과 클럽 등에서도 바깥 못잖은 질펀한 놀이가 이어진다. 더러는 추태로 눈살을 찌뿌리게 한다. 백사장에 돗자리를 깔고 술판을 벌인 이들은 술에 취해 고성방가를 일삼는가 하면 바닷물에 뛰어들기도 해 안전사고 우려도 키웠다. 술병, 안주, 포장지 같은 쓰레기도 이곳저곳에 나뒹굴었다. 노점상 등도 해수욕장의 무질서를 부추긴다. 술, 젊음이 어우러지다 보니 갖가지 충돌도 발생한다. 해운대 바다경찰서 관계자는 “술에 취해 싸움을 하다 연행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밝혔다. 그렇다고 해운대해수욕장에 무질서와 혼란만 난무하는 건 아니다. 백사장 곳곳에서는 음악 동아리들이 연주와 마술 공연 등으로 피서객들의 귀와 눈을 즐겁게 한다. 입추를 한창 넘겼지만 아직 한여름인 해운대해수욕장은 낭만과 젊음, 열망과 환희뿐만 아니라 무질서와 추태도 따뜻하게 감싸며 어루만지고 있다. 인고의 세월을 겪어 온 넉넉한 어머니 같은 바다에게 못난 자식이나 잘난 자식이나 소중하기는 다 마찬가지다. 많은 것을 감춰 주고 새로운 것을 잉태한다. 글 사진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데스크 시각] 박인비는 이미 전설이다/최병규 체육부 차장

    [데스크 시각] 박인비는 이미 전설이다/최병규 체육부 차장

    ‘골프’(Golf)란 단어는 스코틀랜드의 오래된 말로 ‘치다’는 뜻의 ‘고프’(Gouft)가 어원이다. 옛날, 영국 스코틀랜드 지방 북쪽 해안에는 링크스라 불리는 높낮이가 불규칙한 초원이 널려 있었는데, 멋진 잔디와 잡목이 우거진 작은 구릉이 이어진 모양새가 골프 코스로는 아주 그만이었다. 당시 링크스에 서식하고 있던 수천 마리의 들토끼들이 잔디를 갉아 먹은 뒤 짧고 평평해져 녹색의 풀빛이 뚜렷해진 부분을 ‘그린’이라 불렀고, 이 그린과 그린 사이에 양떼들이 밟고 지나가 평탄해진 넓은 길을 ‘페어웨이’라고 칭했다. 전설 같은 이야기지만, 스코틀랜드의 세인트 앤드루스 링크스는 사실 전설의 땅이다. 특히 이곳에 품은 7개 골프장 중에서도 1552년 만들어진 올드코스는 신비로 가득한 곳이다. 전·후반 각 11개홀의 왕복플레이가 2홀이 줄어 전체 18홀 1라운드의 표준이 된 것은 1764년. 첫 골프대회인 ‘디 오픈’은 우리나라로 치면 조선시대 철종 11년인 1860년에 시작돼 고종 13년인 1873년 올드코스로 옮겨졌다. 잔디 뿌리의 나이만 헤아려도 450년을 넘긴 올드코스에서 지금 또 다른 전설이 쓰여질 참이다. 박인비. 그가 올해 벌써 미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6승을 올리고 이제 7승째로 메이저 4연승, 지금까지 누구도 일궈내지 못한 ‘그랜드슬램’을 눈앞에 두고 있지만 사실 연승 행진에 불을 지핀 첫 승은 ‘전설’처럼 다가왔다. 지난 2월 혼다 LPGA 타일랜드대회. 아리야 주따누깐이 17번홀까지 선두를 달리며 태국인 첫 LPGA 챔피언이 되는 듯했지만 18번홀 벙커에서 3타를 잃어 눈물이 가득한 우승컵을 박인비에게 넘겨줬다. 골프의 절반은 ‘멘털’이다. 칭찬은 골프채도 춤추게 만든다. 올해 박인비가 그랬다. 그러나 그는 2008년 US여자오픈에서 투어 첫 우승 뒤 “이후 끝도 없는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느낌이었다”며 슬럼프를 기억하고 있다. 필드의 초록색만 봐도 겁에 질릴 정도였고, 대회에 나가는 건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의 느낌이었다니 고통스러운 나날이 짐작된다. 그러나 그는 지금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와 그 선대의 남자 선수들조차 일구지 못한 대기록을 정조준하고 있다. 몇 안 되는 골프 영화 ‘지상 최대의 게임’에서 실존 인물이자 1913년 US오픈 첫 아마추어 챔피언이었던 당시 20살 청년 프란시스 위멧이 던진 말이 그에게 딱 들어맞는다. “골프는 교훈을 준다. 그 가운데 첫째는 어떠한 불운도 감수하고 헤쳐나가는 미덕이다.” 올드코스와 박인비의 만남은 두 번째지만 고통의 세월이 있었기에 6년 전과는 사뭇 다르다. 전설은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수백 년 먼지가 켜켜이 쌓였다고 해서 모두 전설이 되는 건 아니다. 거센 비와 바람, 어쩌지 못할 정도의 찌르는 아픔을 견뎌낸 뒤 비로소 전설은 만들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올드코스와 박인비, 이 둘이 가진 전설의 본질은 같다. 8월의 첫날 오후 3시 3분, 박인비가 브리티시여자오픈 1라운드 티박스에 올라섰다. 골프팬들뿐 아니라 국민 전체가 그랜드슬램 달성 여부에 목을 빼고 있다. 그러나 전설은 이미 이루어졌다. 박인비로 하나가 된 대한민국, 이게 바로 올드코스의 잔디 뿌리보다 더 깊고 진한 전설이다. cbk91065@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문단데뷔 40년 영원한 청년작가 박범신

    [김문이 만난사람] 문단데뷔 40년 영원한 청년작가 박범신

    그의 집은 ‘와초문학뜰’이다. 뜰 바로 아래에는 조용히 출렁이는 탑정호(塔亭湖)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잔디 마당에는 조각가 류훈의 작품 ‘오늘 저녁 술 한잔 어때요’가 있다. 이 조각은 세 명의 인간형상이다. 하나는 담배를 피우며 시름에 빠진 중년의 노동자이고 나머지 둘은 서로 떠들다가 ‘술 한잔 하자’는 자세를 취하며 어른을 바라보는 젊은 노동자이다. 집 뒤에는 작은 정자가 있다. ‘흐르고 머무니 사람이다’(流留亭)라는 문패가 그럴듯하게 걸려 있다. 그가 직접 쓴 글씨로 새겨넣었다. 얼핏 보아도 붓글씨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그의 부인은 10년 동안 서예공부를 했다. 부인이 그가 쓴 ‘흐르고 머무니~’를 보더니 “10년 공부한 사람보다 더 잘쓰면 어떡하느냐”며 한동안 삐쳤다(?)고 한다. 정자 바로 앞에는 앙증맞은 작은 계곡이 있다. 물이 졸졸 흐르고 붕어새끼들이 이리저리 뛰놀기에 딱이다. 정자에서 몇 발짝 걸어가면 텃밭이 있다. 상추와 고추 등 푸성귀들이 자라고 있다. 글을 쓰다가 소일거리로 잠깐씩 들러 자라는 식물과의 대화를 통해 생명의 소중함을 새삼 느끼는 곳이다. 시간과 공간이 흐르는 곳,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홀로 가득 차고 따뜻이 비어 있는 집’이다. 이 집은 팬들을 위해 ‘행복한 만남’이라는 제목으로 1년에 봄, 가을 두 번 공개한다. 그럴 때면 전국 각지에서 200여명이 찾아온다. 글을 써서 인세로 장만한 집일까. “논산시에서 임대해 준 것이고 임대료는 내지 않고 있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집필실은 1층과 2층에 있다. 1층은 정자가 바라보이는 곳이고 2층은 호수가 내려다보인다. ‘영원한 청년작가’ 박범신. 최근 ‘와초문학뜰’에서 문단 데뷔 40년이 되는 해에 40번째 장편소설 ‘소금’을 썼다. ‘은교’ 이후 홀연히 고향 논산으로 내려간 그가 2년여의 침묵 끝에 발표한 작품이다.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와 ‘비즈니스’로 연결되면서 자본의 폭력성에 대한 ‘발언’을 모아 펴낸 3부작 중 마지막 작품이기도 하다. 거대한 자본의 세계 속에서 가족들을 위해 ‘붙박이 유랑인’으로 살 수밖에 없는, 그래서 가출할 수밖에 없는 아버지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지난달 26일 고향에서 첫 작품을 쓴 박씨와 와초문학뜰에서 만났다. 늘 그렇듯이 편하고 허름한 옷차림이다. 마당에서 만남이 이루어지다 보니 정자 얘기부터 먼저 나왔다. “원래는 마음 심(心)자를 써서 ‘심유정’이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뻥이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음이 머무는 적은 없어요. 그래서 흐를 유(流)자로 바꿨더니 뻥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지요. 원래 붓글씨를 배워 본 적이 없는데 제가 직접 먹을 갈고 화선지에 쓰고 현판에 새겨 달아놓았습니다.” 머물고 흐르는 것이 곧 마음에 있는 것은 아닐까. 그는 잠시 후 배도 고픈데 식당으로 가자고 했다. 미리 와 있던 두 명의 손님과 함께 인근 민물고기 매운탕집으로 옮겼다. 식당 주인이 그를 단골손님처럼 반긴다. 그는 자리에 앉으면서 주인 아주머니에게 ‘닭도리탕’과 ‘매운탕’을 주문하고 “막걸리 두 병과 소주 한 병 주세요”라고 했다. 주종과 주량을 물었더니 “오늘은 속이 별로 안 좋아 막걸리 두어 잔만 하겠다”고 말한다. 술은 많이 마시지 못하지만 잠자기 전 소주 반 병 정도나 과실주를 주로 마신다고 했다. 2년 동안 고향에서 어떻게 지냈을까. “원래는 고향으로 내려올 생각을 안 했는데 하루는 40대의 젊은 시장이 ‘형님, 고향으로 오시죠’라고 해요. 그 형님 소리가 듣기 좋더라구요. 그래서 결정했습니다. 여기에서 2년 동안 살면서 금강문화권을 다시 공부했습니다. 탑정호수 건너편에 황산벌이 있습니다. 계백이 깨진 곳이지요. 이 금강문화권은 또 백제와 후백제의 멸망, 그리고 동학군이 최후를 맞이한 곳이기도 합니다. 원혼이 많아 한밤중에 귀신이 자주 나타나는 곳이기도 합니다.” 하루는 이런 일이 있었단다. 밤에 술을 마시고 마당에 앉아 있는데 누가 절뚝거리며 다가오더라는 것. 누구냐고 했더니 ‘계백 장군 똘마니 장수’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왜 안 가고 그러고 있느냐고 재차 물었더니 장수는 ‘계백 장군을 버리고 갈 수 없어서’라고 했단다. 얘기를 흥미롭게 듣다가 웃으면서 패망한 군인들의 원혼과 함께 있어서 외롭지 않겠다고 했더니 “뼛골만 있어도 생명을 불어넣고 그런 것이 작가가 아니냐. 너무나 많은 이야기가 묻혀 있는 곳이다. 2년 동안 고향사랑을 많이 했다”고 말한다. 술 한 잔을 마시고 담배 한 대를 입에 문다. “어린 시절 가난했던 추억만 가지고 있어서 고향에 오기가 싫었는데 지금은 아니다”라며 잠시 창밖을 바라본다. 40번째 장편소설 ‘소금’에 대해 얘기한다. “과거에는 어머니들이 희생했다면 요즘은 아버지들입니다. 베이비부머 시대의 아버지들이 쓸쓸하고 외롭습니다. 가부장의 권위도 해체되고, 아버지는 늘 자식을 위해 과실을 따오고 30대의 장성한 자식조차 여전히 아버지 등에 빨대를 꽂아 과실을 빨아들이고 있습니다. 거대한 소비문명이 자식들을 빼앗아 갔습니다. 이것은 건강하지 못한 사회입니다. 이 시대의 아버지들은 어디에서 부랑하고 있는지, 지난 반 세기동안 무엇을 얻었고 잃었는지 묻고 싶었습니다. 아버지들이 젊었을 때에는 자식을 위해 수시로 돈을 뺄 수 있는 통장 역할을 하고 나이 들어서는 보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말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이 소설은 가족을 버리고 끝내 ‘가출하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거대한 폭력과 쓸쓸함을 비판하면서 특정한 아버지가 아닌 동시대를 살아온 ‘아버지1~아버지10’을 다루고 있다. 애당초 젊은이들에게 읽히고 싶어 시작한 소설인데 정작 젊은이들에게 반발을 일으킬까 봐 걱정되기도 한다며 웃는다. ‘은교’의 경우 시간의 반란을 그리기 위해 남자 주인공을 원래 77세로 설정했다. 그런데 출판사에서 젊은이들이 읽지 않는다며 65세로 해달라고 했다. 겨우 타협점을 찾은 것이 70세. 뚜껑을 열었더니 예상과 달리 20대 여자들이 책을 많이 본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이번에 쓴 ‘소금’은 그렇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소금’은 지금까지 7만부를 찍었다. “요즘 글을 쓰는 사람은 많고 독서 인구는 그에 비해 적어요. 예를 들어 문학책이 10만부가 팔렸다고 할 때 문학을 알고 사는 사람은 2만명, 나머지 8만명은 사회적 이슈이거나 자극적인 데서 책을 구입합니다. 5만 독자를 유지한다는 것은 행복입니다.” “문학은 작업”이라고 말하면서 우리 수준이 문화적으로 높아져야 잘못된 제도에 압력을 가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아울러 소설이란 마라톤과 같으며 빈틈없는 전략으로 뒤집기를 잘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요즘 작가들은 스타트는 좋으나 체력이 문제라면서 “소설이란 걸어갈수록 강력한 힘을 발휘해야 하며 달의 뒷면, 어두운 면까지 가는 것이 문학”이라고 설명한다. 정신적인 끈기와 투지가 있어야 하며 작가의 뒷심이 약하면 시대를 바라보는 뒷심 또한 약한 것이라고 한다. 요즘 젊은 작가들은 정보에 의존해 쓰다 보니 이야기를 확실히 장악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지적한다. 그는 신문을 잘 안 본다고 했다. 나머지 인생을 굳이 정보에 의존해서 살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한순간 달의 뒷면을 볼 수 있는 직관력으로 살아가려고 한단다. “30대에는 사랑받고 싶어 넓이에 정체성을 두고 글을 썼고 40대를 넘기면서 깊이를 추구했습니다. 치열하게, 그리고 정직하게 글을 써오는 동안 벌써 40년 연애한 것처럼 세월이 지나갔습니다. 저 자신에게 아직도 순정주의 문학이 남아 있습니다. 지금도 연애한다고 생각하니 행복합니다.” 그는 히말라야 등정을 15차례나 했다. 존재의 등반이다. 자신의 내면 속으로 걷기, 초월적인 세계를 실감하기, 인간의 갈망이 있는 그곳에서 불멸과 순간, 현세적 삶과 초월적 삶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그의 작품 ‘비우니 향기롭다’, ‘나마스테’, ‘촐라체’ 등이 이 같은 산악 세계에서 비롯되고 있다. 지금도 걷는 것은 누구보다도 자신있어 한다. 앞으로 그의 ‘문학적 걷기’는 어떻게 될까. “여기 올 때 고전소설 몇십 권을 가져왔는데 다시 틈틈이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밀란 쿤데라 작품도 읽어봤고, 아마 다음은 역사소설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조선 후기 노론의 기반이 되는 곳이 바로 논산이거든요.” 인터뷰를 마치면서 생활의 모토에 대해 물었더니 ‘가난한 밥상’과 ‘쓸쓸한 배회’라고 했다. 달랑 물에 만 밥과 김치를 먹으며 육체와 정신의 기름기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선임기자 km@seoul.co.kr ■ 박범신은 누구 1946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났다. 원광대 국문과와 고려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여름의 잔해’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78년까지 소외된 계층을 다룬 중·단편 소설을 발표하며 문제작가로 주목받았다. 1979년 장편소설 ‘죽음보다 깊은 잠’, ‘풀잎처럼 눕다’ 등이 베스트셀러가 됐다. 1981년 ‘겨울강 하늬바람’으로 ‘대한민국문학상’을 수상했다. 이 밖에 주요 장편소설로는 ‘불의 나라’, ‘더러운 책상’, ‘나마스테’, ‘촐라체’, ‘고산자’, ‘은교’,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 ‘비즈니스’ 등이 있다. 김동리문학상(2001년), 만해문학상(2003년), 한무숙문학상(2005년), 대상문학상(2009년) 등을 수상했다. 현재 상명대 석좌교수로 있다.
  • [행복한 100세를 위하여] (3부)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 ⑨ ‘뉴시니어’ 등장

    [행복한 100세를 위하여] (3부)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 ⑨ ‘뉴시니어’ 등장

    45년을 외교관의 아내로, 두 자녀의 어머니로 살아온 이오영(69·경기 수원시)씨. 지난해 1월부터 모델 활동을 시작하면서 인생이 확 달라졌다. 매주 수요일 오후 2시면 떨리는 마음으로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 ‘뉴시니어 라이프’ 모델 연습실로 향한다. 자신이 짠 대본에 맞춰 워킹 연습을 하고 후배 시니어(senior·연장자) 모델들에게 노하우도 알려 준다. “새로운 환경에서 일하고 새로운 사람들과 사귀는 게 좋아요. 자신만만해질 수 있고 자식, 손주들도 아주 좋아하네요.” 이씨의 좌우명은 ‘남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자’이다. “있는 듯 없는 듯한 사람이 아니라 눈에 띄는 사람이 돼서 사람들이 나를 찾아와서 의논하고 싶게끔 만들자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수동적인 노인의 모습에서 벗어나 이씨처럼 적극적으로 자기 자신을 가꾸면서 살아가는 50~60대를 ‘뉴시니어’ 혹은 ‘액티브 시니어’라고 부른다. 굳이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신개념 연장자’, ‘적극적인 연장자’쯤 되지 않을까 싶다. 안신현 삼성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뉴시니어의 특징을 ▲젊고 ▲향수에 이끌리고 ▲자아실현 욕구가 강한 것으로 요약했다. 안 연구원은 “전통적인 어르신들은 은퇴 후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이미지인 데 비해 뉴시니어는 과거의 감성과 가치를 향유하면서도 젊어지려고 노력하고, 창의적이며 사회활동도 열심히 하는 특징을 갖는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다른 세대와의 공감능력’이 뉴시니어의 특징에 추가됐다. 63세의 가수 조용필이 지난 4월 19집 음반 ‘헬로’(hello)를 내면서 ‘조용필 신드롬’이 일었다. 발매 두 달 만에 음반 판매량이 22만장을 넘어서 국내 음반 차트에서 연간 음반 판매량 1위에 올랐다. 샤이니·소녀시대를 넘어선 기록이다. 올 5월 시작된 전국 콘서트 티켓은 가는 곳마다 매진 기록을 세우고 있다. 김윤수 유니버셜뮤직 과장은 “몇 년 전 쎄시봉 열풍이 1970~80년대 향수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지금 조용필 신드롬은 젊은 세대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또 다른 현상”이라면서 “콘서트에 오는 관객의 80% 이상이 20~40대라는 점을 보면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5월 31일~6월 2일 서울에서 열린 조용필 콘서트의 연령대별 예매 상황을 보면 50대 이상(13.6%)보다도 40대(29.0%), 30대(27.6%), 20대(25.5%)가 훨씬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런 특성의 배경에는 시대상이 자리 잡고 있다. 이들이 청년기였던 1960~70년대는 해외 대중문화가 유입됐고, 유현목 감독의 영화 ‘오발탄’이나 ‘신중현과 엽전들’ 같은 대중문화가 융성했다. 또 1970~2000년은 연평균 국민총생산(GDP) 성장률이 19.6%에 달했던 고도 성장기였다. 안 연구원은 “10~20대 때 다양한 문화를 접했고, 이후 경제적으로 급격한 성장을 경험하고 견인한 세대는 지금의 50~60대가 유일하다”면서 “앞으로도 이런 세대는 나오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또 “지금 이 세대가 문화적 향수를 누릴 수 있는 건 그간 자기 문제를 주변 도움 없이 스스로 해결해 왔고 가시적 성과를 낸 경험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든든한 재력도 과거와 달라진 특징이다. 지난해 말 통계청이 발표한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 5분위(소득 상위 20%) 중 60대 이상 가구주 가구의 평균 소득이 1억 359만원으로 5분위 중 가장 높았다. 50대가 1억 358만원으로 뒤를 이었다. 이 때문에 올 초 통계청은 은퇴한 부유층 대상 사업을 ‘블루슈머’로 선정하기도 했다. 여기에 발 빠르게 대응하는 곳이 유통업계다. 롯데백화점은 최근 들어 구매액 상위 20% 이상 고객 중 60대 이상만을 별도로 관리한다. 롯데백화점에 따르면 여기에 해당하는 고객 수는 2008년 5만 6000명에서 지난해 10만 2000명으로 거의 2배가 됐다. 1인당 연간 구매액도 750만원 정도로 4년 사이 20% 정도 늘었다. 온라인 쇼핑에서도 시니어들이 주 타깃층으로 자리 잡았다. 소셜커머스에 따르면 지난해 50대 이상 고객의 1인당 구입 단가는 12만 7432만원으로 20대(8만 3193원), 30대(11만 2644원)를 웃돌았다. 이 때문에 50대 이상 고객을 위한 전용 인터넷 쇼핑몰도 나왔다. GS샵의 ‘오아후’(오십대부터 시작하는 아름답고 후회 없는 삶을 위한 쇼핑몰)가 대표적이다. 기존보다 홈페이지 글자 크기를 키우고 상품 사진도 2배 확대했다.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시니어의 비중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신세계백화점 문화센터의 경우 2001년에는 50대 이상 수강자의 비중이 전체의 0.5%(668명)에 불과했지만 2006년 2.4%(3212명)에 이어 지난해에는 18.9%(5710명)로 커졌다. 이에 따라 2001년 14개에 불과했던 강좌 수도 지난해 251개로 크게 늘었다. 류미란 신세계백화점 문화팀 과장은 “요즘 시니어들은 자기 계발을 중시하고 새로운 만남에 대한 욕구가 강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사회 진출도 활발해졌다. 50대 취업자 수는 2000년 289만 9000명에서 2007년 409만 3000명, 지난해 535만 3000명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2007년부터는 20대 취업자 수(399만 2000명)를 추월했다. 60대 이상 취업자 수도 2000년 196만 3000명에서 지난해 310만 8000명으로 크게 늘었다. 이를 반영해 올 4월에는 노년 세대 노동조합인 ‘노년 유니온’이 출범하기도 했다. 노년층의 정치세력화도 눈에 띈다. 지난해 대선 때 박근혜 대통령을 당선시킨 주역도 50~60대였다. 당시 50~60대 투표율은 20~30대에 비해 11% 포인트 이상 높았다. 안 연구원은 “일하고 싶어 하는 노인들은 늘고 있지만 그들이 일할 만한 곳은 아직 많지 않다”면서 “사회 일원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정부 등의 적극적인 노인 역할 발굴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양진 기자 ky0295@seoul.co.kr
  • 주말 영화

    주말 영화

    ■와일드 카드(OBS 일요일 밤 10시 15분) 사건 발생 신고를 받은 강남서 강력반 형사 오영달(정진영·왼쪽)과 방제수(양동근)는 즉시 수사에 착수한다. 인적 없는 지하철 역에서 발견된 중년 여인의 시체는 이렇게 세상을 떠날 수는 없다는 듯 그들을 바라보고 있다. 반드시 억울하게 죽은 이의 원한을 풀어 주리라 다짐한 그들은 밤낮으로 탐문과 잠복을 계속하며 비상체제에 돌입한다. 한편 정보원들을 통해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나가는 사이, 비슷한 수법으로 살해당한 또 다른 희생자들이 발견된다. 더 이상 희생자가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 오영달과 방제수는 급기야 조폭 도상춘의 조직을 접수하고, 이제 형사들은 조직 폭력배의 조직망을 총동원해 수사에 나선다. 드디어 결전의 날. 범인들이 모이는 현장을 덮치기 위해 강력반 전체가 총출동한다. ■독립영화관-사랑의 화신 외(KBS1 토요일 밤 1시 5분) 주인공 영민은 첫 월급을 타서 애인대행으로 신혜를 만난다. 영민은 애인대행을 하면서 헤어진 여자 친구와 함께하지 못했던 데이트를 하려고 한다. 그들의 하루 동안 데이트는 점점 특별해지고 둘은 관계를 맺는다. 한 달 후 영민은 경찰에게서 전화를 받는다. 영민은 경찰에게 신혜와 가졌던 감정이 사랑이라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사랑의 화신). 열람실에서 우연히 남의 휴대전화를 받게 된 취업준비생 성모. 낯선 여자는 실수로 전화를 받게 된 성모에게 그 휴대전화를 들고 다짜고짜 자신과 만나 달라 사정한다. 낯선 영지와의 만남도 잠시. 그녀에게서 의혹을 느끼게 된 성모는 휴대전화를 넘기지 않게 되고, 영지가 총장의 비서라는 사실만을 접하게 된다(Keep Quiet). ■태양은 가득히(EBS 일요일 오후 2시 30분) 일확천금을 꿈꾸는 청년 톰 리플레이는 고등학교 동창이자, 방탕한 부잣집 외아들 필립의 아버지로부터 부탁을 받는다. 바로 로마에 간 그의 아들 필립을 데리고 오면 5000달러를 주기로 한 것이다. 학창시절부터 필립에게 항시 괄시를 받아온 톰은 필립을 만나 돈과 지위를 위해 참고 필립의 하인 노릇을 하면서 따라다닌다. 한편 둘은 요트를 타고 어촌 몬지베로에서 나폴리로 와 필립의 애인 마르쥬를 태우고 항해를 즐긴다. 필립은 톰이 두 사람의 방해물이라 생각해 인간 이하의 취급을 한다. 결국 사소한 시비 끝에 필립은 톰을 구명보트에 매달고 달리다, 그만 구명보트를 잃어버리게 된다. 그렇게 되돌아가 톰을 구출하지만, 햇볕 때문에 톰은 심한 화상을 입고 마르쥬의 간호를 받게 되는데….
  • [미주통신] 소녀 납치해 영웅 되려다 살인자로 전락한 청년

    [미주통신] 소녀 납치해 영웅 되려다 살인자로 전락한 청년

    15세 소녀를 유혹해 납치했다가 마치 자신이 발견한 것처럼 일을 꾸며 영웅이 되려고 했던 청년이 소녀가 숨지는 바람에 살인자로 전락하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고 미 언론들이 30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미국 메인주에 사는 카일 듀브(20)는 다른 사람의 명의를 도용하여 가짜 페이스북을 만든 후 15살 소녀인 니콜 케이블을 유혹해 만남을 가졌다. 듀브는 케이블을 만나자마자 그녀의 입을 테이프로 봉한 뒤 아버지 소유의 트럭 짐칸에 몰아넣었다. 한참이 지난 뒤 듀브는 소녀가 질식해 숨져 있는 것을 발견하였고 그녀를 인근 숲 속에 버린 채 도망쳤다. 경찰 조사 결과, 사건 현장에서 듀브의 것으로 보이는 DNA가 발견되었으며 듀브는 살인과 사체 유기 등 중범죄 혐의로 체포되었다. 경찰은 현재 듀브가 케이블과 성관계를 가지려고 했다는 친구들의 진술을 확보하고 자세한 사망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케이블의 사망으로 듀브의 허황된 계획은 일순간에 물거품이 되었으며, 그는 혐의가 인정될 경우 종신형이 불가피하다고 언론들은 전했다. 사진=현지 지역 신문(BDN) 캡처 다니엘 김 미국 통신원 danielkim.ok@gmail.com
  • [지금 대전청사에선] 특허청 ‘맞춤형 소통’ 눈길

    정부 부처들이 온라인을 활용해 국민과 직접 소통을 강화하는 가운데 특허청의 행보가 유독 눈에 띈다. 특허청은 지식재산의 가치와 역할을 적극 알려 숨겨진 젊은 층의 ‘발명 DNA’를 이끌어 낸다는 취지로 행아웃과 팟캐스트, 현장콘서트 등을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정책에 무관심한 젊은 층을 ‘포섭’하려는 특화전략이다. 첫 사업으로 24일 구글플러스를 활용한 인터넷 영상대담 ‘김영민 행쇼(행아웃쇼)’가 선을 보였다. 오세일 변리사의 사회로 김영민 특허청장과 청년 창업가, 대기업 임원, 돈버는 학생 발명가, 발명교사 등 5명이 참가해 ‘창조경제의 핵심은 지식재산’이란 주제로 30분간 진행됐다. 이날 영상대담은 유튜브로도 생중계됐다. 특허청은 정기적으로 특정 주제를 정해 행쇼를 진행키로 했다. 구글플러스 영상대담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미국의 특허개혁을 설명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면서 유명해졌다. 5월 초에는 여성 발명을 주제로 한 팟캐스트 방송인 ‘e발소’(e색적인 발명을 소개합니다)를 시작한다. 여성 특허심사관 세 명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으로 이색 발명가 및 발명에 관련된 뒷얘기 등을 소개할 계획이다. 이어지는 현장 콘서트 ‘청바지’(청년들이 바라보는 지식재산)에서는 청년들과의 직접 만남을 통해 특허행정의 개선방향을 모색한다. 또 유튜브(당신의 아이디어는 Money)에 지식재산과 비즈니스의 다양한 사례도 제공키로 했다. 김용선 특허청 대변인은 “언론을 활용한 정책 소개와는 별개로 타깃층을 겨냥한 맞춤형 홍보를 도입하는 등 온·오프라인을 통해 정책 스킨십을 강화할 계획”이라면서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특허행정에 적극 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전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고향에서 산후조리 받는 것 같아요”

    “고향에서 산후조리 받는 것 같아요”

    “출산 후 결혼 이주 여성들이 느끼는 외로움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거예요.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따뜻한 고향의 손길이 아닐까요.” 결혼 이주여성의 산후 고충을 돕고자 소매를 걷어붙인 이들이 있다. 청년 기업 ‘맘마미아’의 여덟 청년이 그 주인공. 이들은 결혼해 아이를 낳은 이주 여성들에게 같은 나라 출신 이주여성을 산후 관리사로 연결해 주는 일을 한다. 산모들은 친정 식구와 같은 보살핌에 모국의 음식 등을 먹으며 산후조리를 받을 수 있다. 사업을 시작한지 석달, 맘마미아를 거쳐 간 산모는 일본인 4명과 중국인 1명이다. 맘마미아를 접한 산모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맘마미아를 통해 둘째 아이의 산후 관리를 받은 중국인 예퉁(오른쪽·31)씨는 “첫째 아이를 낳았을 때 한국인 산후관리사와 말이 통하지 않아 매우 힘들었다”면서 “홀로 한국땅에 있으니 고향 음식과 고향 사람이 그리웠는데 둘째 아이 때에는 맘마미아를 통해 친언니에게 도움을 받는 것처럼 따뜻함을 느꼈다”고 했다. 2011년 성균관대 경영학회 사회공헌 소모임에서 뭉친 이들은 다문화 여성의 취업을 돕기 위한 봉사 활동으로 첫 만남을 가졌다. 단기 프로젝트로 끝날 것 같았지만 2012 수원시 소셜벤처 경진대회에서 최우수상과 인기상을 받으면서 본격적인 운영을 마음먹었다. 지난 1월 말에는 수원시에 작은 사무실도 꾸렸다. “장기적으로는 다문화 여성들 스스로 맘마미아를 운영하게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My soul is dark” 김수영 시인 고백에 반해서 그 지독한 주사 다 견뎠지

    “My soul is dark” 김수영 시인 고백에 반해서 그 지독한 주사 다 견뎠지

    “동공은 빛을 잃었고 귀에선 피가 흘렀습니다. 그렁그렁 가래 끓는 소리만이 숨이 붙어 있음을 알려줬습니다.” 1968년 6월 16일, 새벽 5시쯤. 47년의 짧은 생애를 마친 김수영(왼쪽) 시인은 조각처럼 희고 단정한 얼굴로 ‘무’(無)의 세계에 들었다. 선불로 받은 번역료로 친구들과 술판을 벌이고 귀가하던 시인은 서울 마포구 구수동의 인적이 드문 길에서 인도로 뛰어든 버스에 받혀 풀잎처럼 쓰러졌다. 20년 가까이 동고동락했던 김현경(오른쪽·86) 여사는 김수영 시인의 마지막 모습을 이렇게 떠올렸다. 그는 지난 두 달간 구술로 김수영의 삶을 풀어놨다. 원고는 조만간 자전적 에세이 ‘김수영의 연인’(실천문학사 펴냄)으로 빛을 보게 된다. 에세이에는 생전 김수영이 탈고했던 시구 속에 숨은 창작 배경과 일화가 오롯이 담겨 있다. 김수영은 평소 집에서는 술을 한 방울도 마시지 않고, 말수도 별로 없었다. 그런 그가 술만 취하면 무궁무진한 애교로 웃음을 자아냈다. 장기는 무성영화의 변사 역할, 레퍼토리는 ‘수일과 순애’였다. 하지만 비위가 거슬려 술을 마신 날이면 주사가 심했다. 이혼 얘기가 입에 오르내리고 열흘간 별거까지 했다. ‘당신이 내린 결단이 이렇게 좋군’으로 시작하는 김수영의 시 ‘이혼 취소’는 이런 부부의 삶을 말해 준다. 몸도 돌보지 않고 폭주를 하는 날이면 시인은 자유당과 이승만 전 대통령에게 욕을 퍼붓곤 했다. 4·19 직후 부정 선거에 대한 칼럼 청탁을 받고 동아일보에 원고를 보냈는데, 지면에는 김수영 이름 석자만 있고 휑하니 비어 있었다. 김수영은 “멋있잖아, 이런 게 저항이지”라며 오히려 신이 나 했다고 한다. 김현경은 진명여고 2학년이던 1942년 5월 김수영을 만났다. 만남을 주선한 이는 이종구(1990년 사망)로, 광산을 경영하던 김 여사 부친의 첩의 남동생이었다. 이종구와 김수영은 선린상고 2년 선후배로 일본 도쿄에서 함께 유학한 사이였다. 김 여사는 6살 차이인 김 시인을 ‘아저씨’라 부르며 따랐고, 이후 일본에 유학 중이던 시인과 편지로 사랑을 나눴다. 일제 패망 직전인 1944년 귀국한 김수영은 ‘마이 솔 이즈 다크’란 한마디 영어로 사랑을 고백한다. 1949년 서울 성북구 돈암동에 신접살림을 차렸지만 이번엔 6·25전쟁이 둘의 사이를 갈라놓았다. 김 여사는 부산 피란살이 기간 동안 이종구와 동거한 뒤 김수영과 재결합했다. 이렇게 정착한 곳이 서울 성북동집. 김 여사는 “원래 거부 백낙승의 별장이었는데 내가 그곳에 세를 얻었다”면서 “정원 한쪽에 비가 오면 폭포가 되는 절벽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시 ‘폭포’를 썼다”고 회고했다. 1968년 발표한 절명시 ‘풀’은 그해 5월 29일 바람이 몹시 불던 날 무성한 풀들이 바람에 이리저리 나부끼는 모습을 보고 지었다. 김수영의 삶 속엔 현대사의 비극이 담겨 있다. 1950년 8월 인민군에 끌려가 의용군으로 징집된 김수영은 총살 현장에서 구사일생으로 도망쳐 거제 포로수용소에 수용된다. 8남매 중 가장 총명했던 넷째 수경은 의용군에 자원 입대했고, 셋째 수강은 우익단체인 대한청년단 단장을 하다 납북됐다. 여동생 김수연씨 내외도 1969년 KAL기 납북 때 북쪽으로 끌려갔다. 김 여사는 현재 경기 용인시의 한 아파트에 살며 김수영의 육필 시를 정리하고 있다. 그는 “살아생전 ‘김수영문학관’을 짓는 게 꿈”이라고 전했다. 문소영 기자 symun@seoul.co.kr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日 극우 대연합 초읽기… 탄력받는 아베 개헌

    日 극우 대연합 초읽기… 탄력받는 아베 개헌

    일본 정치권에서 우익 연대가 가시화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중의원(하원) 선거에서 압승한 자민당과 제3당으로 부상한 일본유신회 집행부가 최근 만남을 자주 가지면서 이 같은 관측이 나오고 있다. 두 당은 평화헌법을 개정하는 것을 비롯해 자위대를 국방군으로 전환하고, 집단적 자위권을 허용하는 것을 당론으로 정하고 있는 우익 정당들이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지난 17일 일본유신회 간사장인 마쓰이 이치로 오사카부 지사를 만났다. 오는 7월 참의원(상원) 선거 이후의 정세에 대한 의견 교환뿐 아니라, 아베 신조 정권과 일본유신회 간의 제휴를 협의했다고 아사히신문이 18일 보도했다. 앞서 지난달 11일에는 아베 총리와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이 만나 평화헌법 개정에 뜻을 같이하는 전략적 제휴를 도모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다 최근 일본유신회가 민나노(모두의)당과의 제휴에 나서고 있어 자민당을 비롯해 일본유신회, 민나노당 등 우익 연대의 실현성을 높게 점치는 예상이 잇따르고 있다. 이에 따라 아베 총리는 평화헌법을 바꿔 군대를 보유하기에 앞서 개헌안 발의 요건부터 완화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유신회와 민나노당은 헌법 96조 개헌 원안을 6월 정기국회 회기 중에 마련하기로 합의했다. 일본 헌법 96조는 개헌안 국민투표 발의 요건을 ‘중·참의원 각각 3분의2 이상 찬성’으로 규정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이를 ‘중·참의원 각각 과반수 찬성’으로 바꾸자고 주장하고 있다. 우선 헌법을 바꾸기 쉽게 만들어야 ‘군대 보유와 전쟁 금지’를 규정한 헌법 9조를 손댈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아베 총리는 일단 경제 회복에 집중한 뒤 참의원 선거 후에 자민당과 일본유신회, 민나노당과 손잡고 ‘96조 개헌’에 나선다는 구상이다. 중의원에서 자민당은 294석, 일본유신회 54석, 민나노당 18석으로 이를 합치면 366석이다. 총 420석 중 개헌이 가능한 320석을 훌쩍 뛰어넘는다. 문제는 참의원이다. 아직 민주당이 87석으로 제1당을 유지하고 있다. 자민 83석, 민나노 11석, 일본유신회 3석 등 97석에 불과하다. 총 242석 중 과반수에도 못 미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아베 총리는 참의원 선거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일본유신회, 민나노당과의 연대 등으로 압승하면 평화헌법 개정 등 각종 우익 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시마네현은 오는 22일 열리는 이른바 ‘다케시마(독도의 일본식 명칭)의 날’ 행사에 현역 국회의원 18명이 참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는 2011년의 13명을 넘은 역대 최다 인원이다. 자민당에서는 호소다 히로유키 간사장 대행과 고이즈미 신지로 청년국장 등이 참석할 예정이다. 일본 정부는 이날 행사에 현직 참의원(상원) 의원이자 차관급인 시마지리 아이코 내각부 정무관을 파견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도쿄 이종락 특파원 jrlee@seoul.co.kr
  • 수치 “변화 길목에 선 민주시민, 권리·의무간 균형시각 필요”

    수치 “변화 길목에 선 민주시민, 권리·의무간 균형시각 필요”

    미얀마의 민주화 운동 지도자인 아웅산 수치(68) 여사가 29일 이명박 대통령 예방을 시작으로 첫 방한 공식 행보를 내디뎠다. 지난 28일 방한한 수치 여사는 국제스페셜올림픽위원회(SOI)와 2013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 초청으로 다음 달 1일까지 5일간 한국에 머무른다. 31일엔 광주 국립 5·18묘지를 방문한 뒤 당일 오후엔 서울의 한 호텔에서 배우 안재욱씨를 포함한 한류 스타들과 만찬을 가질 예정이다. 다음 달 1일엔 김대중도서관을 찾아 이희호 여사를 예방한다. 수치 여사는 이날 전 세계 지적장애인 스포츠의 최대 축제인 2013 평창동계스페셜올림픽에 참석했고, 이에 앞서 이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박원순 서울시장을 예방했다. 최열 환경재단 대표 등과도 만나 환경운동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청와대를 찾은 수치 여사는 이 대통령에게 “한국에 미얀마 노동자들도 더 많이 진출할 수 있으면 좋겠다”며 양국 간 인적자원 협력 확대를 요청했다. 또 “교육 기회를 받지 못한 미얀마 실업 청년들이 많아 직업 교육이 절실하다”면서 “대학 진학과 같은 수준의 자기 기술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기술자를 양성하고 싶다”고 밝혔다. 수치 여사는 박 당선인을 예방한 자리에서는 “버마(미얀마)가 민주화를 진전함에 따라 버마 국민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 사는 국민들에 대해서도 노력할 수 있게 되길 희망한다”며 “저희가 평화와 번영이라고 얘기할 때 이것은 버마 국민들뿐 아니라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당선인은 수치 여사에게 “개인의 행복을 포기하고 국민을 가족 삼아서 사는 인생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다”면서 “더 자유롭고 행복한 세계와 아시아를 만들기 위해 함께 힘을 합해 노력해 나가자”고 말했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여성 지도자로서 미래 비전과 굴곡진 개인사에 대한 동감을 표시한 것이다. 수치 여사는 박 시장과의 만남에선 시민의 권리와 의무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민주화에 첫 발을 뗀 미얀마에서 시민의 의무를 소홀히 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으로 보인다. 수치 여사는 “변화의 길목에서 사람들은 본인의 권리뿐만 아니라 의무까지도 잘 인식해야 한다”면서 “권리와 의무 간 균형 잡힌 시각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저 또한 특히 시민의 권리 의무에 대한 평생교육을 강조하고 있다”면서 “시민의 의무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으로 취임 이후 인권위원회를 만들어 시민 옴부즈맨을 두고, 시정의 인권 측면을 감독해 잘못된 점을 발견하면 지적해 바로잡을 수 있도록 했다”고 답했다. 수치 여사는 민주화 운동과 관련 “저 자신을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라고 여겨본 적이 없고 민주화 일꾼이 되길 바랐을 따름이며, 다른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희망이나 영감을 줄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우리에게 매우 소중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수치 여사는 또 환경재단 관계자들을 만나 “환경 운동가들이 인간과 자연의 조화뿐 아니라 사람 사이의 조화도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넓은 마음, 다양한 시각을 가지고 실용적이고 지속 가능한 모델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인간끼리 싸워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환경재단은 이 자리에서 미얀마에 태양광 전등 1000개(2억여원 상당)를 지원하기로 했다. 김경두 기자 golders@seoul.co.kr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빈자의 등불’로 33년… 뉴질랜드 출신 안광훈 신부

    [김문이 만난사람] ‘빈자의 등불’로 33년… 뉴질랜드 출신 안광훈 신부

    희망찬 새해가 밝아도 한파는 계속되고 있다. 거리의 노숙인들은 얼마나 추울까. 쪽방촌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달동네 가족들은 따스한 온기라도 제대로 느끼며 살아갈까. 대체적으로 빈민은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지킬 수 없으며 사법 체제에 권리를 요구할 기회를 갖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가 자포자기 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이 때문에 올바른 사회적 장치와 주위의 도움이 절실하다. 알다시피 도시 빈민은 경제 성장정책의 희생양으로 양산됐다. 주거권을 비롯해 고용, 의료, 교육 및 환경 등 여러 가지 구조적 모순에서 생겨났다. 가난에는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경제적 가난, 정신적 가난, 자발적 가난이다. 경제적 가난은 강요된 가난으로서 빈민, 또는 빈곤이라 한다. 정신적 가난은 청빈이라고 하고, 자발적 가난은 가난한 이들과 연대하기 위한 투신이다. ‘빈민사목’이다. ‘빈민을 위한 우선적 선택’의 정신을 가지고 있다. 이는 가톨릭 사회 교리의 핵심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 천주교의 사회 빈민운동은 1980년대 초 서울 목동 철거민 사태로 본격화됐다고 할 수 있다. 뉴질랜드 출신 안광훈(72·본명 브레넌 로버트 존) 신부는 우리나라에서 33년째 빈민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다. ‘자발적 가난자’로서 도시 빈민들과 함께 지내며 그들의 권리와 주장을 열심히 도와주고 있다. 25살 때 한국에 와 청춘을 바쳤고 세월이 지나 70대의 할아버지가 됐다. 본격적인 빈민운동은 33년째이지만 한국에서의 47년 삶은 오롯이 가난한 자와 함께해 오고 있다. 지난 3일 서울 성북구 동소문동에 있는 성골롬반 외방선교회 사무실에서 안 신부를 만났다. 그는 강북구 삼양동 달동네에 살면서 일주일에 두 차례 이곳에 나와 재정 담당 일을 보고 있다. 그 외에는 삼양동 재개발 지역 주민의 기쁨과 희망, 슬픔과 고통을 같이 나누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정진석 추기경의 허락으로 삼양동에 머무르면서 보좌 신부 노릇도 하고 있다. 그의 대표적인 직함은 ‘삼양 주민연대 대표’이지만 강북구 실업자사업단 주거복지센터 운영위원, 서울대교구 빈목사목위원 등 10여 가지 직함을 가지고 빈민을 위한 여러 가지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 이러한 ‘빈자의 등불’로 지난 보신각 제야의 타종 행사 때 시민대표 중 한 사람으로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하여 먼저 제야의 타종 행사와 관련된 얘기부터 나왔다. 오랫동안 한국에 살아서인지 한국말은 비교적 능숙한 편이었다. 말쑥한 사제복이 아닌 편안한 평상복 차림이다. 나이보다 훨씬 젊게 보였다. “뉴질랜드에는 종이 없습니다. 처음 종을 쳤습니다. 종 치는 행사에 참석해 보니 아주 재미있더군요.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국에 있는 절에 여러 번 가보았습니다. 고요하면서도 깊은 느낌이 있어 좋습니다. 제가 정선에 있을 때 스님들과 많은 대화도 가졌지요. 불교는 좋은 종교라고 생각합니다. 부처님 오신날에는 제가 절에 가고 성탄일에는 스님들이 교회에 찾아오곤 하지요.” 틈틈이 시간 날 때 불국사 등 큰 절을 찾는 즐거움 또한 각별하다고 말한다. 이어 빈민운동으로 화제를 돌렸다. 그가 달동네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81년 서울 목동 성당 주임신부를 맡으면서였다. 목동 신시가지 계획이 발표되고 안양천변에 살던 사람들이 용역 깡패들에게 쫓겨나는 모습을 생생하게 지켜보면서 매우 가슴 아파했다. 그래서 아무런 보상도 없이 쫓겨나는 철거민들을 위한 철거반대운동을 시작했다. 철거민들에게 본당 건물 사용과 함께 물적·심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000만원을 선뜻 기부해 100가구 정도의 목동 철거민들이 시흥시 목화마을을 구성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이러한 정신적 배경에는 자신의 첫 부임지인 강원도 삼척 사직동 성당에 있을 때 지학순 주교와의 만남이 있다. 그는 1966년 한국에서 뜻있는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처음 입국했다. 2년 뒤 당시 원주교구장이었던 지 주교는 안 신부를 가난한 탄광지대인 사직동 성당으로 파견했고 안 신부는 1년 동안 빈자들과 함께 생활했다. 그러면서 한 달에 한 번꼴로 지 주교와 만나 정신적 유대관계를 형성했다. 이후 정선 본당으로 옮겨 11년 동안 주임신부로 지내면서도 자주 만났다. 군사정권 시절 원주 시내의 주교좌 성당인 원동 성당 등에서 신변의 위협을 느껴 가며 열었던 시국 관련 기도회며, 미사 중 주교회의 선언문 발표 때면 어김없이 지 주교가 옆에 있었다. 정선 본당 시절을 잠시 회고하던 그는 30명이 100원씩 출연한 3000원으로 1973년 정선신협을 설립했고 지금은 400억원이 넘는 규모로 성장했다고 말했다. 농협이 있었지만 가난한 농민들이 대출을 받지 못해 치료비, 전기료, 아이들 교육비가 없어 고통받는 것을 보고 정선신협 설립을 결심했던 것이다. 이와 함께 1975년 정선 주민들을 위한 성프란치스코 의원을 건립했다. 정선 본당도 그가 세운 성당이다. 초대 춘천교구장 구(具)토마스 주교가 미8군에서 얻어 쓰던 철근 콘크리트 건물을 헐고 교인 바자회와 교구청, 뉴질랜드 주교들의 도움을 받아 성당을 세웠다. 당시 그는 “교회는 세상 사람과 지역 주민 전체를 위한 도구나 제도, 조직이어야 한다”고 늘 강조했다. 그렇게 강원도 산골에서 청년 시절을 보냈다. 이후 그가 본격적으로 빈민운동에 눈을 돌린 것은 전두환 정권이 들어선 1981년 안양천변의 목동 철거민 투쟁 때부터였다. 당시 목동 성당 앞은 거의 논밭이었다. 구로공단에서 흘러드는 폐수에 오염된 물로 길러낸 곡식으로 연명하는 철거민이 대다수였다. “철거민들이 가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주거권이란 말도, 보상이란 말도 그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지요. 저로서는 무엇이든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돈을 모금하고 종잣돈을 털어 그들이 살 만한 임시 시설이라도 준비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시흥에 목화마을을 마련하게 됐습니다. 5년 동안 목동 성당 주임신부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입니다.” 이후 그는 성신여대 입구 부근의 골롬반 신학원 원장을 6년간 맡는다. 이때 김수환 추기경을 만나 “빈민 사목에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뜻을 전했고 그의 진심이 받아들여져 곧바로 미아6동 달동네에 전셋방을 얻어 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빈민운동은 순조롭지 않았다. 개발 바람이 불어 세 번이나 집에서 쫓겨났다. 미아7동, 정릉4동, 삼양동 등으로 집을 옮겨야 했다. 이때마다 달동네 주민들과 함께 살면서 철거반대 운동, 실직자 대책 마련 등에 앞장섰다. 또한 주거복지센터를 만들어 소액대출 운동을 함께 벌여 나갔다. 2000년에는 독거 노인과 새터민을 위한 봉사단체 ‘강북 자활센터’를 만들었다. “철거할 때면 대부분 용역 깡패들이 등장합니다. 그때마다 ‘외국인이 한국에 와서 뭐하는 거냐,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등의 욕을 많이 먹었습니다. 심지어는 제가 집에 없을 때 우리 집에 불을 지른 적도 있었습니다.” 그는 지난해 9월 서울시 복지대상을 수상했고 10월에는 명예시민권을 얻었다. 내친김에 영주권을 신청해 놓은 상태다. 빈자의 등불로 한국에서 47년 동안 살아오는 동안 늦게나마 존재 가치를 인정받는 것 같다며 쓴웃음을 짓는다. 그는 뉴질랜드 오클랜드의 전화 기술자 아버지와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어머니 사이에서 3남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집으로 배달되는 골롬반 선교지를 보며 자랐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자연스럽게 성골롬반 외방선교회에 입회했고 신학교를 졸업한 1966년 한국으로 온 그는 서울에서 2년 동안 한국어를 배운 다음 정선으로 향했다. 그에게 처음 입국 당시와 지금의 변화상을 물었다. “제가 한국에 처음 올 때에는 나라 전체가 가난했습니다. 서울 인구가 300만명에 불과하고 도시 전체가 전쟁의 후유증을 겪고 있었습니다. 1970년대부터 생활 수준이 올라갔지만 오히려 빈부격차는 심화됐습니다. 재벌은 성장하고 맨 밑바닥에 사는 사람들은 더욱 소외됐습니다. 재개발한다면서 가난한 사람들을 쫓아내고 그런 일이 아주 많았지요. 세상은 다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는데 말이죠.” 세월이 지나 10년 전부터는 복지의 중요성이 정책적으로 강조되고 있지만 아직도 복지시설이 취약하고 특히 노인을 위한 시설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교육제도 또한 고쳐야 할 것들이 많다고 지적한다.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더니 “41년생 뱀띠”라고 웃으면서 올해는 더 많은 활동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대답이 돌아온다. 또한 “빈자들은 나의 친구다. 함께 기쁨을 누리고 더 좋은 생활을 찾는 것”이라고 덧붙인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왜 안광훈이라는 한국 이름을 지었느냐고 물었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서울대 다니는 친구들을 사귀고 지냈는데 술자리에서 그들이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저보다 먼저 한국에서 활동한 선배가 ‘브레넌’이라는 성을 썼는데 그분이 ‘안’이라는 한국 성을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안(安), 이름은 광훈(光薰)이라고 했습니다. 지금도 가끔 당시 친구들과 만납니다.(웃음)” 뉴질랜드에는 93살 된 노모가 요양원에서 혼자 지내고 있다며 잠시 고향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가 새해에는 빈자들을 향한 따스한 손길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선임기자 km@seoul.co.kr ■안광훈 신부는 1941년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태어났다. 1959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골롬반 외방선교회에 들어갔다. 1965년 시드니 신학대를 졸업하고 사제직을 받았다. 1966년 한국에 와 2년 동안 서울에서 한국어를 배웠다. 1968년 원주교구 삼척 사직동 주임신부가 됐다. 1969~79년 정선 본당 주임신부로 활동했다. 1981년 서울 목동 성당 주임신부가 되면서 철거민들과 함께 투쟁했다. 1985~91년 골롬반 신학원 원장을 지냈다. 1992년 서울 강북구 미아5동 성당에 부임하면서 달동네 생활을 시작했다. 지난해 보신각 제야의 타종 행사 때 시민대표로 참석했다. 현재 삼양동 다세대 주택 전셋방에 살면서 도시 빈민을 위한 운동을 펼치고 있다. 삼양 주민연대 대표, 강북 주거복지센터 운영위원, 빈민사목위원 등의 직함을 가지고 있다.
  • 영상편집 전문가 꿈꾸는 장애인청년

    영상편집 전문가 꿈꾸는 장애인청년

    20대는 어떤 수식이나 가감 없이도 그 자체로 빛나고 아름다운 한때임에 틀림없다. 이지훈(24)씨는 2년 전 사고로 찬란한 이 시기에 갑자기 두 다리를 쓰지 못하게 됐다. 군 제대 100일을 앞두고 장갑차 사고로 양쪽 다리 전체를 절단한 지훈씨. 2년 전의 사고가 지금도 꿈처럼 느껴진다고 담담히 말한다. 갑작스러운 불행이 거짓말처럼 느껴질 만큼 미소가 싱그러운 지훈씨. 8일 밤 12시 5분에 방송되는 EBS ‘희망풍경’에서는 24살 장애 청년 지훈씨의 청춘 응원가를 소개한다. 그는 2년 전 발생한 군 생활 중의 장갑차 사고로 하루아침에 지체 장애 1급이 됐다. 180㎝가 넘는 훤칠한 키의 지훈씨는 이 사고로 휠체어 없이는 이동하기 어려운 장애인이 되었다. 무려 11번의 수술 끝에 엉덩이 아래로는 다리의 흔적이 전혀 남지 않게 됐다. 선천적 장애인보다 중도장애인의 경우 자신의 장애를 받아들이는 것이 훨씬 더 힘들다고 한다. 갑자기 몸의 일부가 사라지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게 된 충격을 이겨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훈씨는 놀라울 정도로 당당하게 장애를 인정하고 극복해 가는 중이다. 장애인이 되기 전 이탈리아 음식 요리사가 꿈이던 지훈씨는 새로운 꿈을 찾았다. 앉아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사진과 영상편집이라는 분야가 바로 그것이다.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정진하게 된 데에는 김정식 목사와의 만남이 큰 역할을 했다. ‘밥풀떼기’로 유명했던 전직 코미디언 김정식씨는 이제는 화려한 연예계 생활을 뒤로하고 장애인들의 수호천사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처음 지훈씨와의 만남에서 “너는 장애인도 아니네!”라고 말했다는 김 목사. 지훈씨는 “장애가 없는 사람처럼 스스럼없이 대해준 김 목사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라면서 “사진과 영상편집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 나 같은 중도장애인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존재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로이킴을 닮은 준수한 외모에 유머감각까지 겸비한 지훈씨는 인기가 많다. 지금도 그의 곁에는 장애인이 아닌 그냥 친구로 변함없이 대해 주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현관문을 열어줄 때 휠체어를 이용하는 그가 문턱이 번거로울까 봐 집의 비밀번호를 알려준 친구들만 열 명이 넘는다. 고마운 친구들이 지훈씨에게는 잃어버린 다리와 같은 존재다. 방학을 맞아 오랜만에 친구들과 제부도로 여행을 떠난 지훈씨. 바다 앞까지 오랜만에 와 본다는 그의 얼굴에는 해맑은 미소가 가득하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국제질서 속 좌절된 자력독립 ‘혁명의 러시아’를 희망 삼다

    국제질서 속 좌절된 자력독립 ‘혁명의 러시아’를 희망 삼다

    ‘일요일 도착 예정. 만남에 필요한 조치 요망. 박철환.’ 죽산 조봉암(1899∼1959)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1925년 6월 17일 모스크바로 보낸 전보다. 식민지 조선의 출판인이자 지식인이었던 27살의 조봉암은 왜 박철환(朴鐵丸)이라는 가명을 썼으며, 모스크바로 갔던 것일까. 성균관대 임경석 사학과 교수가 최근 쓴 ‘모스크바 밀사’(푸른역사 펴냄)는 조봉암을 주인공으로 ‘1925~1926년 조선공산당의 코민테른 가입 경위와 여정을 담은 실화’다. 누구도 연구하지 않았던 영역에 도전한 성과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세세한 자료까지 꼼꼼히 챙겼다. 일본 경찰의 추적과 이를 피하려는 조선 독립운동가들의 피 말리는 활동은 탐정소설을 방불케 할 정도로 박진감 있게 펼쳐진다. 조봉암은 1925년 5월 말쯤 조선공산당의 전권대표 조동호의 보좌역이자 고려공산청년회의 대표 자격으로 모스크바로 파견됐다. 박철환이란 가명은 ‘쇠로 만든 총알과 대포알’이란 뜻으로 조선의 혁명을 가로막는 장벽이 있다면 깨뜨리는 선구자가 되겠다는 조봉암의 결심이 내포된 것이다. 조봉암의 모스크바 파견은 전보를 치기 2개월 전인 4월 17일의 조선공산당 창당과 관련 있다. 이날 서울 시내 황금정 1정목에 위치한 중국요리점 아서원에서는 인텔리풍의 청장년 19명이 모여 ‘제1차 당대표회 비밀결사’를 했다. 19명은 조선의 마르크스 혁명가 130명을 대표하는 사람들이었다. 또 19명 중 11명은 3·1만세운동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최소 9개월에서 최대 3년의 징역형을 살고 나온 사람들이었다. 이들의 형기를 모두 합치면 20년가량 됐다. 임 교수가 “3·1만세운동은 조선사회주의 운동의 모태다. 이 운동이 없었으면 조선사회주의 운동은 존재할 수 없었다”고 말하는 이유다. 하루 뒤인 4월 18일 밤 12시에는 박헌영(1900~1955)의 살림집이 있던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고려공산청년회 창립대표회’가 결성됐다. 이들은 “조선공산당의 지도에 복종하며 국제공청에 가입할 것”을 결정했다. 1925년 4월 창당한 조선공산당은 조선 사회주의운동의 중심이 간도와 연해주, 만주, 러시아 등으로 망명했거나 이민해 활동하고 있던 해외 독립운동가에서 조선 내부로 들어왔다는 데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명망가 중심의 운동에서 대중운동 단계로 넘어가는 것으로 임 교수는 판단했다. 조봉암처럼 1920년대 조선의 20~30대 젊은 지식인들은 사회주의 이론에 급속히 빨려 들어간다. 왜 그랬을까. 임 교수는 “3·1만세운동은 고종이 승하한 1919년 1월이 계기였지만, 시선을 넓히면 1919년 세계 1차대전이 끝난 뒤 국제질서가 재편되는 과정에서 조선의 독립을 서구 열강에 촉구하는 시위였다. 그런데 전후 세계질서를 재편하는 국제회의, 즉 파리강화회의(1919년 1월 18일)나 워싱턴회의(1921년 11월)를 거치면서 국제정치질서 안에서 조선의 독립은 완전히 좌절된다. 러일전쟁까지 이긴 일본과 싸워 조선이 자력으로 독립을 취할 수 없는 절망적 상황에서 희망을 준 세력이 있으니 1917년 혁명으로 새롭게 태어난 러시아(소련)였다”고 했다. 파리강화회의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표로 김규식(1881~1950)이, 워싱턴회의에는 이승만(875~1965)이 참가했지만, 외교적 성과는 없었다. 미국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1918년 민족자결주의 원칙을 발표했지만 1차대전 승전국에는 영국의 동맹국인 일본이 포함돼 있었기 때문에 일본의 조선 강제 점령 문제는 묵인됐다. 이때 신성처럼 나타난 소련이 식민지로 신음하는 아시아 국가들의 민족해방운동을 정치적·경제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나섰으니, 절망을 뚫는 희망의 돌파구가 필요했던 젊은 독립운동가들이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듯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임 교수는 ‘모스크바 밀사’가 기존 역사학계의 통설을 정정하는 데 큰 의미를 두고 있다. 통설은 코민테른은 조선 문제의 의사결정에서 조선 대표자를 배제한 채 권위주의적으로 결정했고, 조선공산당이 코민테른에 종속적이었다는 주장들이다. 1925~26년을 살펴보면 꼭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시 코민테른은 조선공산당의 가입에 조건부 승인을 하는 ‘9월 결정서’를 내놓았다. 당 강령, 규약, 결정과 관련한 서류를 제시할 때까지 가입은 유보했지만, 조선공산당의 지위는 인정했고, 유학생 파견 등 경제적 지원을 약속했다. 노선으로 해방된 조선의 미래로 소비에트공화국을 제시하자 조봉암이 조선의 실정을 무시한 급진적이고 좌경적인 목표라고 지적하며 민주공화국 설립 안을 내놓았다. 또 1925년 조선공산당이 진행한 ‘반종교·반기독교운동’을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그 요구는 1926년부터 실현됐다. ‘모스크바 밀사’는 역사 전문 출판사 푸른역사가 올바른 역사의 해석과 대중화를 위해 한국역사연구회(1988년 설립)와 함께 기획한 문고판형 한국사 시리즈 100권의 첫 간행물로 시리즈 세 번째 책이다. ‘한국역사연구회 역사 책장’이란 시리즈의 1권은 ‘고려의 부곡인, 경제인으로 살다’(박종기 글), 2권은 ‘고구려 고분 벽화 연구 여행’(전호태 글)이다. 박혜숙 푸른역사 대표는 “고민하지 않는 사회, 사유하지 않는 사회와 국가에는 미래가 없다. 입시에 시달리는 중고등학생과 스펙 쌓기에 열 올리는 대학생, 연봉과 승진에 목을 매는 직장인들에게 역사를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자리를 마련하고 싶었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문소영 기자 symu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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