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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수조 결혼, 두 사람 어떻게 만났나 봤더니..

    손수조 결혼, 두 사람 어떻게 만났나 봤더니..

    ‘손수조 결혼’ 청년 정치인 손수조 새누리당 부산 사상 당협위원장이 동갑내기 회사원과 결혼한다. 25일 한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손수조 위원장은 오는 2월 14일 오후 2시 사상구청 구민홀에서 결혼식을 가진다. 신랑 김모 씨는 손수조 위원장과 31살 동갑내기로 평범한 회사원이다. 김 씨는 부산 동아고와 서울대학교를 나온 엘리트로 서울에서 IT 회사에 재직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두 사람은 10여 년 전 부산지역 고교 학생회장 신분으로 모임을 하는 등 예전부터 알고 지냈으며, 지난해 지인의 소개로 진지하게 만남을 이어갔고 급속도로 사이가 가까워지면서 결혼을 결정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뉴스팀 chkim@seoul.co.kr
  • 손수조 결혼, 남편은 누구?

    손수조 결혼, 남편은 누구?

    ‘손수조 결혼’ 청년 정치인 손수조 새누리당 부산 사상 당협위원장이 동갑내기 회사원과 결혼한다. 25일 한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손수조 위원장은 오는 2월 14일 오후 2시 사상구청 구민홀에서 결혼식을 가진다. 신랑 김모 씨는 손수조 위원장과 31살 동갑내기로 평범한 회사원이다. 김 씨는 부산 동아고와 서울대학교를 나온 엘리트로 서울에서 IT 회사에 재직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두 사람은 10여 년 전 부산지역 고교 학생회장 신분으로 모임을 하는 등 예전부터 알고 지냈으며, 지난해 지인의 소개로 진지하게 만남을 이어갔고 급속도로 사이가 가까워지면서 결혼을 결정하게 되었다고 밝혔다.뉴스팀 chkim@seoul.co.kr
  • 손수조 결혼, 동갑내기 평범한 회사원..어떻게 만났지?

    손수조 결혼, 동갑내기 평범한 회사원..어떻게 만났지?

    ‘손수조 결혼’ 청년 정치인 손수조 새누리당 부산 사상 당협위원장이 동갑내기 회사원과 결혼한다. 25일 한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손수조 위원장은 오는 2월 14일 오후 2시 사상구청 구민홀에서 결혼식을 가진다. 신랑 김모 씨는 손수조 위원장과 31살 동갑내기로 평범한 회사원이다. 김 씨는 부산 동아고와 서울대학교를 나온 엘리트로 서울에서 IT 회사에 재직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두 사람은 10여 년 전 부산지역 고교 학생회장 신분으로 모임을 하는 등 예전부터 알고 지냈으며, 지난해 지인의 소개로 진지하게 만남을 이어갔고 급속도로 사이가 가까워지면서 결혼을 결정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뉴스팀 chkim@seoul.co.kr
  • 박근혜 대통령 신년기자회견 전문 “김기춘·비서관 3인 교체 이유 없다”

    박근혜 대통령 신년기자회견 전문 “김기춘·비서관 3인 교체 이유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12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취임 후 두 번째로 신년 내외신 기자회견을 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회견에서 새해 국정운영 구상을 먼저 발표한 뒤 각종 현안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답했다. 다음은 기자들과의 질의응답 내용. Q. 우선 청와대 조직개편이 왜 필요하다고 느끼나. 비선 실세 관련 문건 유출이나 민정수석 항명 파동 등도 영향을 미쳤나. 청와대 책임론을 제기하는 쪽은 막연한 인사 개편이 아니라 특정인 교체도 요구한다. 특정인으로 지목된 비서실장과 세 비서관도 개편대상에 포함되는 것인가. 이런 경우 수석비서관급 이상이 일괄적으로 사표를 제출하는 방식도 거론됐는데 가능한가. 내각 개편 문제도 답해달라. 또 사안에 대한 특검, 국조 등도 수용할 것인가. 박 대통령: 문건 파동과 관련해서는 검찰에서 과학적 기법까지 동원해서 철저하게 수사를 한 결과 그것이 모두 허위고 조작됐다는 것이 이미 밝혀졌다. 그래서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사실이 밝혀졌다 하더라도 문건이 일부 직원에 의해 유출됐다는 것은 공직자로서 정말 있을 수 없는 잘못된 처신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해서 국민에게 심려를 끼쳐드린 데 대해서는 대통령으로서 송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이런 일이 또 일어나지 않도록 대책도 마련하고 있다. 청와대 조직개편과 관련해서는 집권 3년차에 국정동력을 최대한 끌어올리고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성공적으로 이끌어야겠다는 생각에서 주요 수석들과 유기적으로 연결이 되면서 일을 효율적으로 해낼 수 있도록 주요 부문의 특보단을 구성하려고 한다. 그런 특보단을 구성해서 국회나 당청 간에도 긴밀하게 소통하면서 정책도 협의해나가는 구도를 만들고 청와대에서 여러가지로 알리고 이런 부분에 있어 부족한 부분을 좀 더 효율적으로 조직을 개편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다 보면 인사 이동도 될 수 있을 것이다. 항명 파동이라 말했는데 저는 이게 항명 파동이라 생각하지는 않고 민정수석이 (자신이 직에) 있지 않았던 과거에 있었던 일에 대해 본인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 (국회에) 나가서 정치 공세에 싸이게 돼서 문제를 키우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서, 그리고 민정 라인에서 잘못된 문서 유출이라 본인이 책임지고 간다는 차원으로 사표 낸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이해는 되지만 그래도 제 입장에서는 개인적으로 ‘국회에 나갔어야 하지 않을까, 얘기를 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그 점은 유감스럽다. 특정인 교체 요구에 대해서 말했는데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은 정말 드물게 보는, 사심이 없는 분이기 때문에 가정에 어려운 일이 있지만 자리에 연연할 이유도 없이 옆에서 도와주셨다. 청와대 들어오실 때도 ‘내가 다른 욕심이 있겠나, 마지막 봉사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겠다’ 하고 오셨기 때문에 자리에 연연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이미 여러 차례 사의 표명도 하셨다. 그러나 당면한 현안이 많이 있어서 그 문제들을 먼저 수습해야 하지 않겠나 해서 그 일들이 끝나고 결정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세 비서관은 교체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검찰은 물론이고 언론, 야당, 이런 데서 무슨 비리가 있나 하고 샅샅이 오랜 기간 찾았으나 그런 게 없지 않았나. 세 비서관이 묵묵히 고생하며 자기 맡은 일을 열심히 하고 그런 비리가 없을 거라고 믿었지만 이번에 대대적으로 뒤집고 그러는 바람에 진짜 없구나 하는 것을 저도 확인했다. 그런 비서관을 의혹을 받았다는 이유로 내치거나 그만 두게 하면 누가 제 옆에서 일하겠나. 누구도 그런 상황이라면 저를 도와 일을 할 수 없을 것이다. 교체할 이유가 없다. 내각 개편 관련해서는 해수부라든가 꼭 개각을 해야할 필요성이 있는 데를 중심으로 해서 검토를 해 나가겠다. 이번 문건 파동과 관련한 특검에 대한 얘기는 사실은 여태 특검이란 것을 보면 어떤 사실에 대한 실체가 있거나 실제 친인척이든지 측근 실세든지 권력을 휘둘러서 감옥에 갈 일을 했거나 엄청난 비리를 저질렀거나 그런 실체가 있을 때 특검했다. 그런데 지금 이것은 문건도 조작으로, 허위로 밝혀졌고 샅샅이 뒤져도 실체가 나타난 것도 없이 누구 때문에 이권이 성사가 됐다든지 돈을 주고 받았다든지 이런 게 없는데 의혹만 갖고 특검을 하면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특검하는 선례를 남긴다. 그러면 얼마나 사회 혼란과 낭비가 심하겠나. 그게 특검에 해당하는 사안인가 의구심을 갖고 있다. Q.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야당에서는 정윤회 씨를 비선실세로 지목했고, 정윤회씨가 문체부 인사에 개입했다는 의혹도 계속 나오고 있다. 현 정부에서 정윤회씨가 실세인가. 아니라면 이런 의혹이 왜 계속 나오는지에 대한 대통령의 생각은 무엇인가.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친인척 관리 잘하겠다고 했는데, 이번에 박지만 회장이 연루된 것으로 드러난 데 대한 입장은. 친인척관리를 앞으로 강화할 것인가 박 대통령: 정윤회 씨는 벌써 수년 전에 저를 돕던 일을 그만두고 제 곁을 떠났기 때문에 국정 근처에도 가까이 온 적이 없다. 분명하게 말씀드리는데 실세는커녕 전혀 국정과 관계가 없다. 또 문체부 인사도 지난번에도 보도가 된 걸로 아는데 터무니없이 조작이 된 이야기가 나왔었다. 말하자면 태권도라거나 체육계에 여러가지 비리가 그동안 쌓여와서 자살하는 일도 벌어지고 이건 도저히 더 이상 묵과해선 안 되겠다 싶어서 이걸 바로잡으라고 대통령으로서 지시했는데 보고가 안 올라오고 진행도 전혀 안됐다. 저는 한번 개혁을 하거나 비리를 바로잡으려면 말을 한 번 하고 그만두는 게 아니라 계속 그게 될 때까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계속 따지니까 거기서 제대로 역할 안한 거다. 그럼 그런 역할을 해야 할 사람이 안 하면 당연히 책임을 물어야죠. 그 사람들이 그 일을 갖다가 대통령의 지시이고 관심을 갖고 바로잡고자 하는데 왜 자기 역할을 못 하느냐, 그럼 책임져야 하지 않느냐 해서 (그렇게) 된 건데 이게 둔갑해서 체육계 인사에 다른 사람, 전혀 관계 없는 사람이 관여됐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우리 사회가 이렇게 돼선 안된다. 혼란스럽고 그게 아니라면 사실을 바로잡아야 하는데 계속 논란을 하고, 우리가 그런 여유 있는 나라인가. 그렇게 돼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실세나 야니냐 답할 가치도 없다. 국정 근처에 온 적도 없다. 실세가 될 수도 없고 오래 전에 떠난 사람이다. 친인척이나 측근의 권력 남용 문제와 관련해서는 역대 정부에서 얼마나 그런 일이 많았나. 이권에 개입하고 엄청난 비리들이 계속 터져나오고 역대 정권마다 그랬는데 그걸 보면서 저렇게 돼선 안 되지 않겠나, 그래서 공약한 게 있다. 친인척을 관리하는 특별감찰관제도를 도입하겠다고 했다. 국회에서 아마 그런 게 통과될 거고 특별감찰관제가 시행되면 아마 이런 일이 일어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외에 그런데도 실세이고 뭐고 전혀 관계가 없는데 그렇게 일어나냐 그래서 제가 조작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개인적인 영리를, 욕심을 달성하기 위해서 전혀 관계 없는 사람과 관계 없는 사람의 중간을 이간질시켜서 어부지리를 노리는 그런 데에 다 말려든 게 아니냐. 그런 바보같은 짓에 말려들지 않도록 정신 차리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너무나 터무니없는 일로 세상이 시끄러웠다는 것은, 그래서 국민께 송구하지만, 확인 안 된, 말도 안 되는 일로 논란이 되는 것은 정말 우리 사회가 건전하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Q.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과 관련, 대화를 위한 대화, 이벤트성 대화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어떤 조건과 환경이 갖춰져야 하나. 조건이 일부라도 충족될 경우 올해 내라도 정상회담을 추진할 의사가 있나. 올해가 분단 70주년인데, 남북관계 발전과 통일준비를 위해 대북특사 파견이나 5·24 조치를 해제할 생각이 있나. 박 대통령: 저는 어떤 우리나라가 분단이 돼 고통을 겪지 않나. 그 고통을 해소하기 위해서 또 평화통일의 길을 열기 위해 필요하다면 누구라도 만날 수 있다. 남북 정상회담도 도움이 되면 할 수 있다. 전제조건은 없다. 그러나 이제 이런 대화를 통해 이런 문제가 해결되기 위해선 열린 마음으로 진정성 있는 자세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비핵화 같은 것이 전혀 해결이 안 되는데, 이것이 전제조건은 아니지만, 이게 해결이 전혀 안 되는데 평화통일을 얘기할 수 없다. 남북관계든지 다자협의를 통해 대화로 이 문제도 풀어나가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조건이 충족되면 올해라도 (정상회담을) 추진하느냐, 그 문제 관해선 답을 드린 거라 생각한다. 5·24 조치 해제와 관련해선 5·24 조치가 사실 남북 교류협력을 중단시키기 위해 이런 조치가 생긴 게 아니라 북한 도발에 대해 보상이란 잘못된 관행을 정상화하기 위해 이 조치가 유지됐다. 5·24 조치 문제도 남북 당국자 간 만나서 서로 그 부분을 얘기를 나눠야 접점을 찾을 수 있지 않겠느냐. 북한에 대화하자고 여러분이 요청하는데도 북한이 소극적인 자세로 대화에 응하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 5·24 조치를 얘기하는데, 북한은 5·24 조치를 얘기할 게 아니라 우리가 여러 번 대화를 제의했으니 적극적으로 나와서 당국자 간에 정상회담도 그렇고 5·24 조치도 그렇고 당국자가 만나 얘기해야 뭐를 원하고 어떤 접점을 원하는 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북한에 대화에 적극적으로 응해달라, 그런 얘기를 하고 싶다. Q. 기업인 가석방 여부 질문드린다. 가석방을 주장했던 최경환 부총리나 황교안 법무부장관도 참석했지만, 역차별이다 아니다 특혜다 찬반 논란이 있다. 청와대는 가석방은 법무부장관 고유 권한이라는 입장을 밝혔지만, 곧이곧대로 믿는 국민은 없다. 대통령은 어떤 견해를 갖고 있나. 더불어 기업인이나 정치인 특사를 엄격하게 제한하겠다는 기존 입장에 변함은 없는지. 박 대통령: 기존에 갖고 있는 입장에서 변함이 없다. 그러나 기업인 가석방 문제와 관련해서는 기업인이라고 해서 어떤 특혜를 받는 것도 안 되겠지만 또 기업인이라서 역차별 받아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런 가석방 문제는 국민의 법감정, 또 형평성 이런 것을 종합적으로 감안해서 법무부가 판단하면 될 거라고 생각한다. Q. 두 가지 질문이다. 대통령의 ‘개헌 블랙홀’ 발언에도 국회나 시민사회에서 개헌을 추진하고 있고, 개헌 방향과 관련해 지방분권 이야기도 있다, 대통령의 개헌에 대한 입장은 무엇인가. 대통령 소속 지방자치발전특위에서 지방발전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국민 기대가 큰 반면에 걱정하는 목소리도 크다. 이유는 중앙 사무를 지방에 넘겨야 하는데 법 개정이라든지, 지방재정 확충 문제는 중앙정부 협조와 국회 입법 노력이 병행돼야 하기 때문이다. 지방발전 분권 위한 구상을 말씀해달라. 박 대통령: 개헌은 사실 국민적인 공감대, 또 국민의 삶에 도움이 돼야 하는 것이 전제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 경제상황을 잘 아시지 않나. 우리가 오죽하면 경제에 있어 골든타임이라고 하겠는가. 마음으로 ‘이 때를 놓치면 큰일나겠구나’하는 절박함을 갖고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마련했고, 올해 1차 예산이 반영된 거니까 적극 추진하려고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이 골든타임에 경제혁신을 활성화시키고, 민생을 안정시키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우리 경제를 발목잡는 여러가지 구조개혁, 경제의 근본 체질을 바꾸고 튼튼하게 하는 이런 노력들 지금 안 하면 안 된다. 그래서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의 구호도 ‘3년 개혁으로, 3년 혁신으로, 30년의 성장을 내다본다’는 것이다. 이 골든타임이라는 게 몇 년간의 문제가 아니라 이때를 놓치면 세계 속에서 경쟁력을 잃어서 30년 성장을 못 한다는 엄청난 결과를 갖고 온다. 모든 역량을 거기에 집중해야 하는데 개헌 논의가 시작하면 어떻게 논의하는지 보지 않아도 자명하다. 계속 갈등 속에서 경제문제, 시급한 여러 문제는 다 뒷전으로 가버리고, 그것만 갖고 하다보면 우리나라가 어떻게 되겠느냐. 결과가 너무나 자명하다. 지금은 그걸 해서는 안 되지 않느냐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 지금 개헌을 당장 하지 않는다고 해서 국민의 삶에 어떤 영향을 크게 미치고, 국민이 불편할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 경제를 살리지 못하면, 그래서 개헌으로 모든 날을 지새우면서 경제활력을 찾지 못하면 그 피해가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는 거다. 그리고 지방자치, 분권과 관련해서 저는 지방이 잘할 수 있는 건 지방에 다 넘기고, 그런 뒷받침도 해주는 방향으로 간다. 지방 일은 그 지역에서 제일 잘 알 수 있기 때문에 거기서 계획을 세우면 중앙에서 그걸 뒷받침해서 협의해 나간다는 큰 원칙에 따라 지방발전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 물론 입법적 노력, 중앙정부 협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위원회가 있지 않냐. 거기를 중심으로 해서 어떤 노력을 할 것인가, 입법을 어떻게 할 건가 잘 논의해서 한걸음 한걸음 나가도록 노력하겠다. Q. 국제유가가 급락하고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0%대로 전망돼 한국경제 디플레이션 논란이 있다. 어떻게 보는가. 자영업자나 가계, 청년실업자가 IMF 경제위기때보다 어렵다는 고충도 있다. 해법은 뭔가. 한국경제가 일본의 저성장 저물가 쇠락의 길에 들어섰다는 우려가 있다. 돈 풀기나 기준금리 인하 통한 대출자 부담을 덜어주는 정책 필요하다는 말도 있다. 박 대통령: 우리나라 물가가 낮은 수준이기는 하지만 1%대의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전문가들도 디플레이션으로까지 가진 않을 거라고 판단하는 것으로 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이 계속 떨어지고 있고 실제 성장률도 잠재성장률을 밑도는 문제가 심각하다고 본다. 그래서 어떻게든지 이 시점에서 해야 할 최대 과제는 경제 활력을 되찾는 것이다. 그게 시급한 과제다. 돈 풀기와 관련해 작년에 46조원 규모의 재정금융 정책 패키지를 추진했고 올해 예산도 최대한 확장적으로 편성했고 상반기에 조기 재정을 실시하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재정도 조기에 집행하고 확대 예산도 편성하고 하는 노력을 했지만 우리가 이런 저성장 퇴락으로 가지 않으려면 역시 경제혁신 3개년 계획에 있는대로 구조개혁하고 잠재성장률을 넘는 경제활력을 이루는 데 집중해서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내수 살리는 방안 등을 망라해서 말씀드렸는데 다시 말씀 안 드려도 그런 경제혁신 3개년 계획 추진을 위해 기초를 튼튼히 하고 역동적인 경제를 만들고 균형잡힌 내수와 수출로 경제에 온기가 돌게 하는 정책을 부지런히 실시하게 되면 우리가 3.8% 성장률을 달성할 수 있다고 본다. 그 대신 정부 혼자 뛰어선 안 되고 이걸 위해 같이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서 함께 노력할 필요 있잖나 생각한다. 금리 인하와 관련해서는 거시 정책을 담당하는 기관과 잘 협의해서 시기를 놓치지 않고 적기에 대응해나갈 수 있도록 하겠다. Q. 노동시장 구조개혁과 관련, 현재 정부가 제안한 비정규직 종합대책안이 노사 양측에서 비판받고 있다. 노사정위원회에서 올해 3월까지 합의안 도출이 어려워 보인다. 올해 선거가 없는 해로 구조개혁의 적기라고 했는데 노사정위에서 합의안을 도출하지 못한다면 집권자로서 어떻게 이를 돌파해나갈 것인가. 정부가 공무원연금과 함께 사학연금, 군인연금 개혁안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가 여당 반발로 하루 만에 발을 뺐다. 사학 군인연금을 어떻게 추진할 계획인가. 박 대통령: 비정규직을 생각하면 참 마음이 무거워진다. 비정규직은 열심히 고생해서 일하고도 정규직의 3분의 2 수준의 월급밖에 못 받고, 막상 계약기간이 끝나면 일자리를 잃지 않을까 해서 가슴을 졸이게 되고, 참 어려운, 반드시 풀어내야 하는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불합리한 차별, 임금차별이 없어지는 것이 중요하고, 두 번째는 사회안전망의 보호를 계속 받아야 되고, 세 번째는 이 일이 상시적이고 지속적인 일일 경우 고용이 안정되게 해줘야 한다. 이 세 가지는 꼭 이뤄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로 의견이 달라서 해결하기 어렵지 않겠느냐고 말했는데, 그렇다고 하더라도 지금 노사정위원회의 대표들께서 뭔가 이거는 우리가 사회적 책임을 분담해야 한다, 이런 자세를 그분들이 갖고 있고, 또 노동시장 구조 개선을 하지 않고는 정말 우리나라의 지속가능한 발전이 없다는 인식을 하고 계시기 때문에, 서로 사회적 책임감을 느끼는 마당에서 같이 조금씩 양보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하면 뭔가 합의를 도출하고 서로 ‘윈윈’하는 대타협안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고, 정부로선 원활히 이런 논의가 잘 이뤄지게 최대한 지원해 나가려 한다. 잘 되야 한다. 또 사학연금과 군인연금 개혁에 대해서 말했는데 지금은 공무원연금개혁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그래서 사학연금이나 군인연금은 지금 생각을 안 하고 있는데 그게 잘못 알려진 거 같다. 그래서 조금 소동이 있었지만, 지금 그걸 하겠다는 것은 아니고 사학연금과 군인연금은 그 직역의 특수성이나 연금의 재정건전성을 종합적으로 보면서 관련 기관이나 전문가들이 하나하나 차분차분 검토를 해나갈 추후의 일이라 보고 있다. Q. 지난 연말 헌정사상 처음으로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결정이 내려졌다. 이를 놓고 종북세력을 척결한 박근혜 정부의 최대 치적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사법탄압이란 지적도 있다. 우리사회의 이념 갈등이 어디까지 용인될 수 있을지, 통진당 해산에 대한 대통령의 생각을 직접 듣고 싶다. 민간단체의 대북전단 살포가 남북관계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지적이 있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대북전단 살포를 막을 의향이 있나. 박 대통령: 통진당 해산결정에 대한 저의 생각은 지난번에 언론에 발표한 그대로다. 그리고 지금 우리 사회의 이념갈등을 어디까지 용인할 수 있느냐, 그런 질문을 했는데, 헌법재판소에서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을 저는 어떻게 이해하냐면, 정치적 활동의 자유도 헌법 테두리 안에서 인정이 되는 것이다, 이런 생각에서 그런 결정이 내려졌다고 이해한다. 물론 진보 보수간 서로 상대를 인정하고 의견을 교환하면서 조화롭게 가는 노력도 분명히 필요하지만, 그런 노력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지키는 범위 내에서 해야 되는 것이 아니냐. 분단 후 우리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헌법가치를 실천하면서 북한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자유를 누리고 변영했다.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게 한 가치이다. 북한은 아직도 우리를 위협하고 있고, 남북이 대치상황에 있지 않나. 물론 대화를 노력한다고 하더라도, 이런 상황에서 우리 정체성까지도 무시하고 북한을 추종하는 세력은 용인, 용납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전단 살포와 관련해선 사실 정부에서 조정하고 있다. 하나는 표현의 자유는 국민의 기본권인만큼 기본적으로 민간단체가 자율적으로 알아서 할 일이라는 점이 있지다. 그렇지만 또 지역 주민 간 갈등이 생기거나 지역 주민의 신변이 위협받아서는 안되지 않느냐. 그 기본권 문제와 주민들의 갈등을 좀 최소화하고 신변에 위협을 느끼는 것을 없애야 되는 두 가지를 잘 조율하면서 관계기관들과 얘기하면서 몇차례 자제도 요청했다. 그런 식으로 지혜롭게 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한다. Q. 취임 전 소통을 강조했지만 취임 후에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나고 하고 싶은 말만 한다는 지적이 많다. 신년 설문조사에서도 소통이 안 된다는 지적이 60% 넘었다. 세월호 유족 안 만난 것도 소통의지 부족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대통령은 소통이 잘 된다 하고 국민은 아니라는 인식의 괴리가 문제의 출발점인 듯하다. 소통지수 100점 만점이라면 몇점 주겠나. 점수가 낮다면 개선 방법은 무엇인가. 대통령 다른 생각하는 국민과 더 많이 만나고 귀 기울이고 더 소통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는데, 구체적 복안이 있다면. 박 대통령: 세월호 유족은 여러 번 만났다. 반대의견도 있었지만 진도도 내려가고, 팽목항도 내려가고, 그 분들과 이야기도 하고 애로사항도 듣고 이야기하다 주변에서 제지도 했지만 그러지 말라고 해 끝까지 다 듣고 애로사항 적극 반영도 하고, 또 청와대에서 면담도 갖고 그렇게 했다. 그런데 지난 번에 못 만났던 이유는 국회에서 법안이 여야 간 합의를 이루기 위해서 논의되고 있는데 대통령이 거기 끼어들어서 왈가왈부하고 그러는 것은 일을 더 복잡하게 하고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만나지 못한 것이다. 또 소통 관련해서 국민과의 소통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래서 지난 2년 동안 민생현장이나 정책현장 등 직접 가서 정말 터놓고 이야기도 듣고 의견도 듣고 제 생각도 이야기하고 그렇게 했다. 또 청와대로도 그런 각계각층 국민을 많이 초청해서 이야기도 듣고 정말 활발한 것을 많이 했다. 또 정치권과는 여야의 지도자 이런 분들을 청와대에 모셔서 대화도 할 그런 기회를 많이 가지려고 했는데 제가 여러 차례 딱지를 맞았다. 초청을 거부하는 일도 몇 차례 있었다. 앞으로 어쨌든 여야, 국회하고 더욱 소통이 되고 여야 지도자들하고 더 자주 만남을 가질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해가려고 한다. Q. 한일관계에 대해 질문드리겠다. 현 정부 출범 이후 만 2년이 다 돼 가지만 한일정상회담이 안 열린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 문제에 대한 일본의 퇴행적 과거사 인식이 걸림돌이지만, 일각에선 우리 정부가 과거사에 포커스를 맞춰 운신의 폭을 좁혔다는 인식도 있다. 일본이 구체적으로 어떤 입장을 내놓아야 한일정상회담이 가능한가. 과거사에 대해 전향적 입장을 내놓지 않으면 어떻게 한일관계를 풀어갈 것인가. 박 대통령: 사실 올해가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는, 일본으로서나 우리로서나 뜻깊은 해이기 때문에 올해는 올바른 역사인식을 바탕으로 해서 양국이 새로운 미래를 향해 새로운 출발을 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정상회담도 못할 이유는 없는데, 정상회담을 하려면 정상회담을 해서 의미있고 앞으로 나아가는 정상회담이 돼야 한다. 과거에 보면 정상회담이 돼서 기대는 부풀었는데 관계는 후퇴하는 일도 있었으니 그래선 안 되지 않나하고 생각한다. 여건을 잘 만들어서 의미가 있는, 한발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는 정상회담이 돼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다. 그러려면 일본 측의 자세 변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국장급 협의를 통해서 어떻게든 합의를 이뤄내기 위해 노력을 해왔는데, 아직까지 여건이 충분히 조성되지 않아서 안타깝게 생각한다. 특히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경우에는 연세가 상당히 높으셔서 조기에 해결책이 나오지 않으면 영구미제로 빠질 수 있다. 그것은 한일관계뿐만 아니라 일본에도 무거운 역사의 짐이 될 거다. 생존해 계시는 동안 문제를 잘 푸는 게 중요하다. 일본으로서도. 작년 APEC 회담에서 아베 총리를 만났을 때 공식협의를 적극적으로 잘 해서 좋은 안을 도출해내도록 양국에서 총리와 대통령이 실무진을 독려하자고 약속했다. 그렇게 하겠다고 했는데도 아직 좀 그렇긴 한데, 어쨌든 이것이 풀리지 않으면 참 어려운 상황이고, 그래서 올해도 계속 협의를 적극적으로 추진해나갈 생각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합의안이 나와도 국민 눈높이에 안 맞으면 아무 소용이 없지 않나. 국민 눈높이에 맞고 국제사회도 수용 가능한 안이 도출되도록 지속적으로 노력을 지금도 하고 있고, 해나가려고 한다. Q. 주말에 미국 시민(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한국에서 미국으로 강제 출국된 재미동포 신은미 씨)이 한국으로부터 출국당했고 외국인 기자에 대한 (청와대의) 법적 소송도 있었다. (이와 관련해) 언론 자유가 제한되는 게 아닌가 하는 목소리가 있다. 미국 국무부도 국가보안법을 언급하며 일부 규정이 모호해 남용의 여지가 있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지금이 국가보안법을 재검토할 적절한 시기 아닌가. 박 대통령: 각 나라마다 사정이 똑같을 수 없다. 미국의 사정이 있고 중국의 사정이 있고 한국의 사정이 있다. 국가의 취약한 부분에 대해서는 그 나라에 맞는 법이 있을 수밖에 없다. 한국에 필요한 법이 미국에는 필요 없을 수도 있지 않겠나. 한국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이 헌법재판소에서 난 것도 재판관들이 충분히 우리나라 헌법에 대해 연구하고 우리나라의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나온 결정인 만큼 우리나라에 필요한, 남북이 대치하는 특수한 사정에서 우리나라의 안전을 지키고자 필요한 최소한의 법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거기에 맞춰서 법이 진행되고 있다는 걸로 이해를 하시면 좋겠다. Q. 여당인 새누리당 일각에서는 청와대가 당의 일에 너무 개입한다는 불만이 있다. 바람직한 당청 관계에 대한 생각은 무엇인가. 특히 김무성 대표와 청와대의 관계가 좀 소원하다는 인식들이 있다. 지난 연말 친박(친박근혜) 의원이 청와대 만찬을 가진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고, 이후 김무성 대표와 친박 진영의 갈등이 커지는 양상인데, 김 대표를 별도로 만날 계획은 없나. 박 대통령: 당청 간에 오직 나라 발전을 걱정하고 또 경제를 어떻게 하면 살릴까 그런 생각만 한다면 서로 어긋나고 엇박자 날 일은 전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는 여당은 국정을 같이 해 나가야 할 정부의 동반자라고 생각하고, 같이 힘을 합해야만 여러 가지 어려움을 이겨나갈 수 있다고 생각해서, 당에 너무 개입하고 그러지 않느냐고 그러는데 그렇지 않다고 본다. 오히려 당의 의견을 존중하고 또 당의 협조를 구하기 위해서 많이 노력하고, 그렇게 그동안 해 왔다. 그리고 새해 들어서 앞으로 더욱, 아까 조직개편 말씀도 드렸지만, 더 긴밀하게 협력해나갈 수 있게 앞으로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친박 만찬’이라고 그랬는데, 지금도 자꾸 친박 뭐 그런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는 게 좀…(웃음) 이걸 언제 떼내 버려야 할지 모르겠는데, 그때 그분들이 ‘한번 식사를 같이했으면 좋겠다’고 대통령에게 요청해왔다. 그래서 ‘그럼 뭐 한번 오시라’ 그렇게 했는데, 그게 12월 19일이 되다보니 그날을 위해 한 게 아니냐고 하는데 실제는 우연히 그렇게 됐다. 저도 일정이 잘 안 나오고 그래서 이번에 하려다가 ‘그럼 3~4일 늦춥시다’ 그러고, 그쪽에서 안 맞으면 늦추고 하다가 (회동)한 게 기가 막히게 12월 19일이 돼서 더 그렇게 생각할지는 모르지만, 그분들이 한번 식사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요청해서 그 모임을 가졌다. 김무성 대표는 언제든지 만날 수 있다. 만나겠다. Q. 지난 대선 때 대통령께선 책임장관제를 언급한 적 있다. 책임장관제의 핵심은 인사권이다. 장관들에 인사권을 줘야 일을 책임있게 힘있게 추진할 수 있다. 산하기관장 인사는 물론 국장급 인사까지 청와대가 쥐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장관이 올린 인사가 일부 뒤바뀐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인사권을 장관에 위임할 생각이 없나. 장관과의 독대·대면보고 자리가 적지 않느냐는 지적도 있다. 청와대와 내각 간 소통을 방해한다는 지적들이다. 독대와 대면보고를 늘릴 의향이 없냐. 규제완화와 관련해 지난해 말까지 대통령이 규제개혁 장관회의를 두 차례 주재했고, 눈에 보이지 않는 ‘손톱 밑 가시’는 상당히 해소됐다. 그러나 기업투자와 직결된 덩어리 규제가 남아있다. 올해 수도권 규제 완화에 대해 추진할 의향이 있나. 박 대통령: 우리 장관 여러분들은 법률이 정한 대로 충분한 권한과 책임을 갖고 자기 역할을 하고 계시다. 사회부총리제를 도입한 것도 내각에서 조정을 해서 좀더 책임있게 할 수 있도록 그런 것도 신설한 것이다. 인사권 갖고 말했는데, 각 부처의 국장 그런 인사의 임명권자는 대통령이지만, 사실은 고위공무원의 적격성 검증을 제외하곤 실질적으로 전부 장관이 실질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그게 뒤바뀐 게 있다, 그게 뒤바뀔 수도 있죠. 적격성을 검증하는데 장관도 모르는 그런 일들이 있을수 있다. 이러면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게 아니냐. 그런 걸 발견하고도 무조건 다 넘길 순 없죠. 그러나 실질적으로 적격성, 그거에만 관심이 있지 나머지는 장관들이 실질적으로 권한을 법이 정한 대로 하고 있다. 대면보고를 더 늘리라…. 사실 옛날엔 대면보고만 해야되지 않았느냐. 전화도 없었고 이메일도 없었고. 지금은 여러 가지 그런게 있어서 대면보고보다 전화 한 통 할 때가 더 편할 때가 있다. 대면보고 하고 독대도 하고 전화통화도 하고 여러 가지 다양하게 하고 있는데, 앞으로 그런 부분도 더 늘려가도록… 대면보고가 그리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대면보고를 좀더 늘려나가는 방향으로 하겠지만, (장관들 여러분도) 그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웃음) 대면보고해서 의논했으면 좋겠다면 언제든지 만나서 얘기 듣고 그래요. 이렇게 말씀 드려야만 그렇다고 아시지. 청와대 출입하면서 내용을 전혀 모르시네. (웃음) 규제완화, 이게 덩어리 규제, 관심이 큰 규젠데 지난해에 규제 단두대에 올려서 좀 과감하게 풀자, 조금씩 해선 한이 없다, 그래서 규제 단두대 과제로 올라온 건이다, 수도권 규제가. 이것은 종합적인 국토정책 차원에서 의견을 수렴하고 합리적인 방안도 수렴을 통해 만들어서 이 규제 부분도 좀 해결을 올해는 할 수 있도록 하겠다. Q. 인사 문제와 관련해 장·차관 등 정부 요직과 청와대 참모진의 일부 지역 출신 쏠림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10년 넘게 청와대를 출입했지만 지금처럼 인사 편차가 심한 경우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인사 소외 지역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대통령이 지난 대선 때 공약한 국민대통합 차원에서 앞으로 인사 대탕평책을 펼칠 생각은 없는지 말씀해달라. 박 대통령: 능력 있고 도덕적으로 문제 없는 그런 인사들의 도움을 받아야 제가 이 힘든, 어려운 국정을 그래도 해결해 나갈 수 있지 않겠나. 그래서 누구보다 능력 있고 도덕성에 있어 국민의 손가락질을 받지 않는 그런 인재를 찾는 데 있어서 저만큼 관심 많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전제조건 하에 적재적소에 인재를 배치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그래서 예를 들면 특정 지역이라고 해서 유능하지도 않고 감당이 안 되는데도 특혜를 받는다는 것도 말이 안 되고, 유능하고 감당이 되는데도 특정 지역이라고 해서 차별받아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떻게든 지역과 관계없이 최고 인재를 얻는 것에 대해 가장 큰 관심을 갖고 있는데,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어쨌든 그런 말씀을 하실 정도로 뭔가 편차라든가 이런 게 생겼다면 다시 한번 전체적으로 검토하고 살펴보도록 하겠다. 어떤 때는 이쪽, 어떤 때는 저쪽, 일부러 골고루 한다는 것까지는 생각을 못할 때도 있다. 왜냐하면 인재 위주로 하다보니 그렇다. 그렇더라도 전체적으로 어떻게 되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Q. 대통령은 지난해 말 많은 논란 속에 개봉된 할리우드 영화 ‘인터뷰’를 보신 적이 있나 궁금하다. 또 이와 관련해 소니픽처스 해킹 사건을 계기로 오바마 정부에서 새로운 대북제재 행정명령을 내렸는데, 이런 조치가 계기가 돼 북미관계의 긴장 고조가 최근 개선 움직임을 보이는 남북대화 국면에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이에 대한 대통령의 생각은. 박 대통령: 미국이 북한의 해킹에 대해서 이번에 취한 것은 적절한 대응조치라고 생각한다. 북한도 국제사회를 상대로 도발을 하거나 그렇게 해서는 안 되고, 국제사회에 신뢰를 보여주는 행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것이 말하자면 일부러 그런 긴장을 만든 게 아니라, 그렇게 원인을 제공하니까 미국으로선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모든 상황이 꼭 이래야만 된다고 바라는 바가 있고, 뭔가 긴장이 자꾸 풀리고 그렇게 돼야 한다고 하지만, 상대가 있다 보니 이쪽에선 이런 대응을 안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가는 것도 북한이 지혜롭게 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쪽이 긴장됐다고 해서 남북대화가 어떻게 되느냐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우리대로 원칙을 갖고 북한에 대해 ‘대화에 응해 이런 현안 문제를 풀어보자’고 죽 하는 것이다. 미국은 그런 상황을 당했기 때문에 그런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으나, 결국 우리가 목표로 하는 것은 그런 저런 과정을 전부 거쳐 상충되지 않고 북한이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으로 나와 대화하고 현안을 자꾸 풀어가는 쪽으로 모든 것을 이끌어 가려는 목표는 같다고 생각한다. ’인터뷰’ 영화는 직접 보지는 못 했고, 언론에 내용 많이 보도돼서 이런 내용의 영화구나 하는 것은 알고 있다. Q. 올해로 집권 3년차를 맞는다. 앞으로 3년의 시간이 현 정부의 성공과 실패를 가를 매우 중요한 시기다. 올해 광복 70년 맞는다. 앞서 건국 대통령, 근대화 대통령, 민주화 대통령, 국민 통합의 대통령 등 그 시대의 과제를 해결하는 데 앞장 선 여러 대통령이 있었다. 대통령은 앞으로 3년간 가장 하고 싶은 과제가 무엇이고 훗날 어떤 대통령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박 대통령: 어떤 대통령으로 남고 싶다 하는 것보다도 제가 임기를 마치고 나면 나라가 가는 방향에 있어 ‘바른 궤도에 올라서서 가는구나’ 해서 걱정을 안 하고 살 수 있으면 좋겠다 하는 게 제 첫 번째 소망이다. 대통령마다 시대가 주는 사명이 있다. 제게 시대가 주는, 국민이 바라는 사명은 무엇인가.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내걸었듯이 잠재성장률, 활력이 떨어지는 경제를 다시 일으켜서 30년간 성장할 수 있게 경제 활성화, 경제부흥을 반드시 이루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평화통일의 기반을 잘 닦겠다는 것. 그게 제 사명이고 국민과 함께 이룰 이 시대의 일 아닌가 생각한다. 그것을 잘 완수해서 나라가 밝은 앞날로 나아가고 국민이 더 잘 사는 데 기여하고 싶은 생각이 가득하다. 이 일을 하는 데는 저도 노력하고 부족한 데 더 힘쓰겠지만 대통령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언론인도 도와주셔야 하고 국회도 물론이고 국민도 이 시대에 ‘한 번 이뤄보자’ 해서 우리도 자랑스러운 세대가 돼야 하지 않겠나. 그런 것은 다 같이 마음을 모아야지, 혼자 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다 함께 힘을 모아주실 것을 다시 부탁 드린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씨줄날줄] ‘현봉학 리스트’/구본영 논설고문

    윤제균 감독의 ‘국제시장’이 숱한 화제와 논란을 부르면서 1000만 관객 돌파를 눈앞에 뒀단다. 영화의 전체적 완성도에 대해선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평론가들도 도입부의 흥남 철수 장면의 스펙터클에 관한 한 후한 점수를 주는 것 같다. 6·25 전쟁 당시 흥남 부두의 숨막힐 듯한 순간을 잘 재현했다는 점에서다. 중공군에 밀려 후퇴하는 미군들과 피란민 수만 명이 뒤엉킨 그 아수라장을 말이다. 이 장면에서 역사에 길이 남을 인물이 나온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아들 고윤(본명 김종민)이 단역을 맡아 가십 기사를 제공한 현봉학(1922∼2007)이 바로 그다. 그는 영화 초반부 10분가량의 흥남 철수 신에서 불과 1∼2분 등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25라는 현대사의 비극에서 살아남은 수많은 한국인들이 그에게 마음의 빚을 지고 있다고 본다. 영화에서도 보듯 그는 미군과 군수품을 싣기에도 빠듯한 상선 ‘메러디스 빅토리호’에 피란민 1만 4000여명을 태우는 데 성공한다. 망설이는 아몬드 미 10단장과 그의 참모인 에드워드 포니 대령을 상대로 “이대로 철수하면 저 사람들은 다 죽는다”고 읍소, 그들의 마음을 돌린 것이다. 다만 영화에서처럼 실제로 ‘메러디스 빅토리호’가 탱크와 같은 무기를 몽땅 버리고 피란민들을 태웠는지 여부는 고증이 더 필요한 대목이다. 비록 ‘단일 선박으로 가장 큰 규모의 구조 작전을 수행한 배’라고 기네스북에도 등재돼 있긴 하지만, 이 배 이외에도 193척에 달하는 수송선이 동원됐다는 기록도 있기 때문이다. 세브란스 의전을 마친 후 미 버지니아주립 의대를 다니던 현봉학은 6·25가 터지자 해병대 문관으로 참가했다가 아몬드 소장과 운명적 만남을 갖게 된다. 버지니아주 출신인 아몬드가 그를 통역을 맡을 민사고문으로 스카우트하면서다. 물론 아몬드 소장과 현봉학의 개인적 인연이 피란민 구조에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에도 논란은 있을 수 있다. 분명한 것은 그의 진심이 통했다는 점이다. 사실 소아마비를 앓아 군 면제 대상인 그는 군의관으로 자원 입대했다. 청진기와 메스를 놓고 통역을 맡았지만 사람부터 살려 놓고 봐야 한다는 휴머니즘이 무려 9만 8000여명의 목숨을 구해 낸 셈이다. 히틀러 치하에서 독일 기업인 오스카 쉰들러는 사재를 털어 1만 2000명의 유대인들을 살려 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쉰들러 리스트’에서 본 바처럼. ‘흥남 철수’는 세계 전사를 통틀어 가장 많은 민간인을 탈출시킨 작전으로 기록돼 있다. 목숨을 건 탈북 대열이 꼬리를 물고 있는 요즘 현봉학의 선택이 위대했음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그런데도 쉰들러는 알지만 현봉학은 모르는 세태라면? 청년 세대를 오도한 신은미·황선씨의 ‘토크 콘서트’ 여진을 보면서 걱정이 앞서는 이유다.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도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했다는데…. 구본영 논설고문 kby7@seoul.co.kr
  • 이준 열애설 부인, 2년째 동창생과 만남? “열애 부끄럽지 않지만..” 해명보니

    이준 열애설 부인, 2년째 동창생과 만남? “열애 부끄럽지 않지만..” 해명보니

    이준 열애설 부인, “연애 부끄럽지 않지만..” 과거 스캔들은 누구랑? ‘이준 열애설 부인’ 그룹 엠블랙 출신 이준이 열애설에 휩싸인 가운데, 소속사가 이를 부인했다. 8일 한 매체는 이준이 학창시절 동창인 일반인과 2년째 열애 중이라고 보도했다. 해당 매체에 따르면 이준은 일반인 여자친구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 조심스럽게 만나고 있는 중이며 자신으로 인해 평소 생활에 있어 피해를 받지 않도록 배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엠블랙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던 시절의 동료 멤버들도 여자친구의 존재를 알았지만, 그 신상에 대해서는 자세한 사항을 알지 못할 정도로 이준은 조용한 연애를 유지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준 열애설 보도가 나간 후 이준의 소속사 프레인TPC는 8일 공식입장을 통해 “이준은 예술고등학교에서 무용을 전공해서 동성 친구들보다 이성 친구들이 많다. 말 그대로 다 친한 친구들일 뿐, 연인관계는 아니다”라고 열애설을 부인했다. 이어 “배우 본인도 연애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되면 누군가의 입을 통해서가 아니라 저희가 먼저 전해드리도록 하겠다. 아직은 열애보다는 열연을 하고 싶은 청년이다. 앞으로의 연기 활동에 많은 응원 부탁 드린다”고 전했다. 한편 이준 열애설 보도가 화제를 모은 후 과거 포미닛 현아와의 스캔들에 네티즌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지난 2014년 이준은 현아와 비행기 내에서 스스럼 없는 스킨십을 했다는 소문이 불거지며 열애설에 휩싸였으나 이를 부인한 바 있다. 사진=서울신문DB(위 기사와 관련 없음)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새해만큼 새로운 성북 신년회

    “딱딱하고 지루한 붕어빵 같은 신년인사회 대신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활용한 창작뮤지컬을 통해 모든 세대가 음악으로 함께할 수 있길 바랍니다.” 8일 성북구 신년인사회에 참석한 김영배 구청장은 “올해가 광복 70주년인 만큼 좀 더 성숙된 지역문화를 일궈내야 할 때”라고 역설했다. 오후 2시부터 시작한 신년인사회의 백미는 구의 스토리텔링 발표 최우수작인 동선동 카페몽당과 전국 주민자치회관 프로그램 경연 대상을 받은 정릉2동의 창작뮤지컬 공연이었다. 창작뮤지컬 ‘태평가’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정릉을 널리 알리기 위해 주민들이 직접 제작한 작품이다. 태조 이성계와 신덕왕후의 운명적 만남과 사랑, 이별과 그리움을 담은 ‘태평가’를 새롭게 해석했다. 구에 거주하는 최고령 독립운동가 이윤장(92) 선생에게 꽃다발을 주는 행사도 열렸다. 이윤장 선생은 구에 등록된 85명의 광복회 회원 중 유일한 생존자다. 광서성 유주에서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입대해 항일투쟁 계몽 및 선전활동을 했으며 1945년 광복군 제2지대에 편입돼 산서·하남 지구에서 일본군 와해 공작활동 등을 펼쳤다. 그는 이 공로로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다. 이범석 장군 등이 함께 활동했으며 현재 돈암2동에 거주하고 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아쉬움 다 털고, 희망을 맞이하자] 아듀 2014… 해넘이 명소

    [아쉬움 다 털고, 희망을 맞이하자] 아듀 2014… 해넘이 명소

    세월호 침몰사고와 경기침체 등으로 힘겨웠던 갑오년 한 해가 저물고 있다. 한 해의 아쉬움을 훌훌 털어 보내는 해넘이 행사가 인천 정서진, 해남 땅끝마을 등에서 다채롭게 열린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희망찬 새해를 맞기 위한 해넘이 행사가 갑오년 마지막 밤을 뜨겁게 달굴 예정이다. 전남 해남군은 한 해를 마무리하고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기 위한 ‘제19회 땅끝 해넘이·해맞이 축제’와 ‘2015년 북일면 오소재 해맞이 행사’를 개최한다. 일출과 일몰을 한 곳에서 감상할 수 있는 ‘제19회 땅끝 해넘이·해맞이 축제’는 31일 오후 5시 땅끝전망대에서 올리는 해넘이 제례와 해넘이 관람으로 막을 연다. 오후 7시부터 밤 12시까지 땅끝마을 주차장에 설치한 주무대에서 땅끝 송년 페스티벌과 관광객 노래자랑, 각설이 품바 공연, 촛불의식, 달집 태우기 등 다양한 행사가 5시간 동안 이어지며 갑오년의 마지막 밤을 뜨겁게 달구게 된다. 인천의 해넘이 명소는 서구 정서진, 송도 석산, 장화리 낙조마을, 왕산해수욕장 등이 유명하다. 국민 해넘이 명소가 된 서구 정서진은 해돋이로 유명한 강릉 정동진과 대비되는 곳이다. 정서진은 서울까지 탁 트인 경인아라뱃길의 시작점인 아라인천여객터미널 부근에 있다. 정서진은 석양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한양에 과거를 보러 가던 선비가 잠시 묵던 주인집 딸과 사랑에 빠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정서진 해넘이 축제’는 31일 오후 3시 정서진 아라빛섬 광장에서 ‘희망을 노래하는 소년소녀 합창단’의 무대를 시작으로 인순이, 크레용팝, 박현빈 등 인기가수의 공연과 함께 화려한 불꽃축제가 이뤄질 예정이다. ‘별그대’의 운명적인 만남과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송도 석산도 해넘이 명소다. 강화도 장화리 낙조마을은 꾸미지 않은 대자연 앞에서 숙연해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곳이다. 31일과 1월 1일 장화리 해넘이 테마공원에서는 송년음악회, 희망풍선 날리기, 사진촬영대회 등 다채로운 행사가 열린다. 해넘이를 보고 난 후에는 동막 해수욕장 인근을 중심으로 조성된 스파펜션에서 느긋하게 피로를 풀거나 강화갯벌센터에서 세계 5대 갯벌로 꼽히는 강화 갯벌의 아름다움도 만끽할 수 있다. 인천국제공항 인근 왕산 해수욕장은 조용하게 한 해를 마무리할 수 있는 곳이다. 바다를 품에 안은 듯 만의 형태를 하고 있어 포근한 느낌을 주는 왕산 해수욕장은 2014 인천아시아경기대회 요트경기장으로도 유명하다. 주변 오토가족캠핑장에서 바다도 보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바비큐를 만들며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 볼 수 있다. 충남 태안군은 2014년을 마무리하고 새해를 힘차게 맞이하기 위한 ‘해넘이·해맞이 행사’를 31일과 새해 첫날 태안반도 곳곳에서 다채롭게 펼친다. 우선 할미·할아비바위 낙조로 전국적인 일몰명소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안면도 꽃지해수욕장에서 태안반도 안면청년회 주관으로 ‘제13회 안면도 저녁놀축제’가 열려 희망풍선 날리기, 노래자랑 및 축하공연, 떡국 나누기, 불꽃놀이 등 다양한 행사가 펼쳐진다. 또 연포해수욕장에서는 연포해수욕장 번영회가 주최하는 ‘해맞이 행사’가 열릴 예정으로 바다를 붉게 물들이며 희망차게 떠오르는 새해를 맞이할 수 있다. 울산 박정훈 기자 jhp@seoul.co.kr
  • [뉴스 플러스]

    온라인 환경수출 도우미 가동 국내 환경기업에 환경 정보와 무역거래 기법 등을 지원하는 온라인 환경수출 도우미(www.eishub.or.kr)가 26일부터 가동됐다. 해외 진출을 일괄 지원하는 포털이다. 기업은 해외 진출에 필요한 정보를 요청할 수 있고 사이버무역관을 통해 환경제품·기술 홍보, 무역컨설팅 등을 거쳐 수출계약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 환경부는 연말까지 시범 운영과 의견수렴 등을 거쳐 내년 2월 정식 가동할 계획이다. ‘K무브’ 멘토·멘티 만남의 날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은 26일 서울 영등포구 그랜드컨벤션센터에서 청년 해외취업 지원(K무브)을 위한 멘토·멘티 만남의 날 행사를 가졌다. K무브를 통해 전 세계 17개국에서 취업한 40명이 참가해 해외진출 희망자 150여명에게 생생한 경험담과 노하우를 전했다. 한편 고용부는 이날 해외진출의 다양한 경험과 노하우를 갖춘 해외전문가 100명을 K무브 멘토로 위촉했다. 내년에는 이를 200명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읽어라, 청춘] 어머니 죽자 1년간 승려 생활… 9번 장원급제 ‘천재 관료’

    조선 중기 학자이자 정치가, 철학자인 율곡 이이(1536~1584, 중종 31~선조 17)는 아버지 이원수와 신사임당의 4남 3녀 중 3남으로 외가인 강릉에서 태어났다. 이이의 집안은 요절했던 조부를 제외하면 대대로 관직에 나갔다. 그의 호 율곡(栗谷)은 집안의 농장이 있는 경기 파주 파평면 율곡리의 이름을 딴 것이다. 이이의 생애는 사상 형성과 관련해 성장기, 수련기, 모색기, 정립기로 나누는 것이 일반적이다. 성장기는 이이가 19세에 절에 들어가 승려가 되기까지의 시기이다. 이이는 어려서 외가에서 살다가 6세 이후에는 한양과 파주를 오가며 산다. 그는 13세 때 진사 초시에 합격함으로써 일찌감치 신동으로 불렸다. 그러나 16세에 어머니가 죽자 충격을 받고 금강산에 들어가 승려가 된다. 승려로 지낸 기간은 1년 정도였지만, 이 일은 평생 그를 괴롭히는 이력으로 따라다닌다. 수련기는 29세 때 과거에 급제하기까지의 시기이다. 이때는 이이가 관직 진출을 준비하던 시기다. 절에서 나온 후 이이는 20세인 1555년에 자경문을 지어 승려가 되었던 일을 반성하고 과거 공부에 전념해 벼슬길에 나아갈 것을 결심한다. 이이는 1558년 도산에 들러 당시 58세였던 이황(李滉)과 이틀 동안 강론을 한다. 이 만남을 계기로 이이는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이황의 철학적 입장을 확인하게 된다. 26세에는 아버지의 상을 당한다. 삼년상을 마친 이이는 1564년 7월에 생원과 진사에, 8월에는 명경과에 급제해 호조좌랑을 제수받는다. 아홉 차례의 과거에 모두 장원으로 합격해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으로 불렸다. 모색기는 36세 때까지로 이이가 청년 관료로 활약하면서 사상적으로는 방향을 찾던 시기다. 이이는 이때 어느 정도 시간적 여유를 얻어 철학적 탐구에 몰두해 자신의 입장을 확립하게 된 듯하다. 정립기는 이이가 37세에 성혼과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비로소 자신의 철학을 정립한 이후부터 49세로 죽기까지다. 이때 이이는 철학자로서, 정치가로서 눈부신 활약을 보인다. 저술로는 ‘성학집요’, ‘동호문답’, ‘경연일기’, ‘천도책’, ‘격몽요결’, ‘만언봉사’, ‘육조계’, ‘시폐칠조책’ 등이 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만경봉호 출항지 니가타에서 韓·日-北·日 관계를 논하다

    만경봉호 출항지 니가타에서 韓·日-北·日 관계를 논하다

    “북한에 의해 납치된 일본인 문제가 상당 부분 진전되기 전에는 일본 정부의 의미 있는 대북한 제재 해제는 생각하기 어렵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 때처럼 몇 명의 납북자를 일본으로 돌려보낸다고 해서 제재를 누그러뜨리지 않을 것이다.” 히라야마 이쿠오 전 니가타현(縣) 지사는 지난 10일 구천서 미래재단 이사장을 만난 자리에서 이같이 말하면서 “일본 정부와 사회가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문제의 보다 철저한 해결을 요구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대담은 히라야마 이쿠오 전 주지사가 총장으로 있는 니가타 국제정보대학(NUIS)에서 이뤄졌다. 구 이사장이 이날 탈북 청년 12명 등 미래재단의 통일지도자아카데미 8기 회원 및 관계자들과 함께 NUIS를 방문했다. 두 사람은 일본인 납치 및 북·일 관계, 종군 위안부 문제 및 한·일 관계, 동북아공동체 구상 등을 논의했다. 구천서 이사장 지난 5월 스웨덴 스톡홀름 북·일 회담에 이어 9월 말 베이징회담, 10월 말 일본 외무성 대표단의 평양 방문 등이 이어지면서 납치자 문제 해결과 양국 관계가 개선의 가닥을 잡은 듯했었다. 그러다 최근 다시 납북 사망자 문제 등을 둘러싸고 걸림돌에 걸린 분위기다. 히라야마 이쿠오 총장 북한은 일본에 ‘납치자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 요구에 응할 테니 제재를 풀어 달라’며 접근했다. 그러나 그들은 일본인 납북자 의혹 사건에 대해 더 새로운 사실을 밝히지 않아 일본 측을 다시 실망시켰다. 메구미 사건은 일본인 납치 문제를 상징한다. 일본은 북한이 그녀와 관련된 모든 정보를 제공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녀가 사망했다’며 다른 사람의 유골을 보내오는 등 다시 우리를 속여서는 안 된다. 메구미가 살아 있을 것으로 희망한다. 구천서 지사를 세 번 연임하면서 납북자 문제에 관여해 왔고, 피해자 가족과 남다른 인연도 있는 것으로 안다. 북한에 의해 1977년 이곳 니가타에서 납북된 메구미의 사망설이 최근 일부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일본은 납치 문제에 대해 어떻게 접근하고 있나. 한·일 공조 강화도 필요하다고 본다. 히라야마 인도주의 사안인 납치 문제에 대한 국제 공조 강화를 환영한다. 그러나 일본과 다른 나라들의 이 문제에 대한 중점과 우선순위는 다를 수밖에 없다. 북한은 이 문제를 갖고 흥정하려고 했지만 흥정 대상은 될 수 없다. 일본은 채찍을 들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엿’(당근의 일본식 표현)을 흔들 수도 있지만 한계가 있다. 납북자 가운데 상당수는 니가타 지역에서 납치됐다. 메구미의 아버지는 일본은행에서 나와 같이 근무한 옛 직장 동료다. 그는 니가타 일본은행 지점장으로 근무할 때 딸인 메구미의 납치를 겪었다. 같은 납북자로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방북 후 2002년 일본으로 귀환한 하스이케 가오루는 나의 고교 후배다. 현 지사를 두 번째 맡던 1992년 납치 문제가 불거졌는데 피해자 가족들이 일본 정부에 도움을 요청하고, 증거들이 나오면서 사회적인 쟁점이 됐다. 구천서 일본이 북한에 줄 수 있는 ‘엿’, 유인책은 무엇인가. 남북 관계가 나빠지고 금강산 관광 등에서 얻던 현금 확보 길이 막힌 상태에서 국제적인 대북 제재 공조가 더욱 조여져 왔다. 북한은 경제가 더 어려워지자 대일 관계 개선을 통해 숨통을 틔워 보려고 했다. 국제 공조를 허물기 위해 일본을 대북 공조 체제에서 떼어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전략도 엿보인다. 일본 정부는 모든 납치 피해자의 전원 귀국, 북한 측의 납치 피해 진상 규명, 납치를 실행한 공작원의 일본 인도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일본은 ‘납치 피해자 문제의 해결 없이는 국교 수립은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히라야마 그렇다. 그러나 일본의 대북 제재 효과는 제한적이다. 한국, 일본, 중국 세 나라가 한 박자가 돼 북한을 압박해야 효과가 나는데 그게 힘들다. 중국은 나름대로 제재에 참가하고 있다고 하지만 ‘북한 목을 세게 조르지는 않고 있다’는 것이 일본 내 평가다. 에너지와 식량은 중국이 공급하는 가운데 일본은 의약품과 사치품, 하이테크 제품 및 기술협력이라는 지렛대를 갖고 있다. 북한에 영향력이 제일 큰 나라 역시 중국이다. 구천서 그래도 일본의 대북 제재로 북한 지도층이 상당한 고통을 겪지 않았나. 일본은 북한의 탄도 미사일 발사 이후인 2006년부터 만경봉호의 니가타항 입항을 금지했다. 히라야마 총장께서도 당시 지사로서 대북 제재에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 납치자 구출 모임의 첫 후원회장 역할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구출 모임은 납치 문제 해결을 위해 1000만명의 서명을 받기도 했다. 히라야마 만경봉호의 니가타항 입항이 금지되자 ‘최대 희생자는 김정일’이라는 뼈 있는 농담이 유행했다. 김정일은 멜론 등 니가타 지역의 과일을 즐겨 먹었는데 입항 금지로 과일과 일본 술의 직수입이 불가능해져 매우 낙담했다는 말이 돌았었다. 사치품의 수입 금지도 북한 지도층에는 타격이었다. 만경봉호로 북한을 왕래하던 조총련 인사들과 조총련계 재일 조선인 학생들의 수학여행 및 방북 금지도 경제적·전략적으로 적지 않은 타격이 됐다. 해마다 4000명에서 1만여명이 만경봉호를 타고 방북했다. 납치자 문제의 완전 해결은 북한 체제가 바뀌어야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이 문제의 진전 없이는 의미 있는 대북 제재 해제 등 북·일 관계 진전은 불가능하다. 이런 입장이 최근 일본 내에서 더 강화됐다. 납치자 구출 모임에는 지금도 참여하고 있다. 구천서 일본인 납북자 문제도 한·일 협력과 공조의 필요성을 다시 확인케 한다. 두 나라의 협력은 동북아시아 경제 번영과 정치 안정을 위해서도 절실하다. 그런데 일부 일본 정치지도자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위안부 문제 등 역사를 거스르는 행보가 관계 진전을 흔들고 있다. 한·일 관계 개선을 원하는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히라야마 1급 전범들이 함께 묻혀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정치인과 국가 지도자들이 참배하러 가는 것에는 나도 반대한다. 영토 문제와 관련해선 현상을 건드리지 않는 그대로 놓아 두는 현상유지책이 중요하다. 일·중 관계에서도 일본은 센가쿠열도의 지위 변화 등 문제를 일으켰다. 많은 한국인들이 그러하듯 한·일 관계 개선을 일본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원한다. 우리는 서로 필요로 한다. 협력 강화는 양측에 이득과 번영을 가져다 줄 것이다. 그렇지만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과 관련, 일본 내 인식과 한국 등 국외의 인식에 많은 격차가 있다. 당초 한·일 간에 독도 문제가 가장 큰 갈등 거리였는데 이제는 위안부 문제가 더 큰 쟁점이 됐다. 인식 차가 더 벌어졌다. 일반 국민들의 감정과 태도는 일본 정부보다 한국 측의 인식과 거리가 더 크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구천서 정치 지도자들의 역할과 공감대 형성 노력이 필요하다. 미래를 위해 무엇이 바람직한지를 판단해 국민을 설득하고 공감대를 이뤄 나가야 한다. 일반 국민들의 관심도가 그리 높지 않을 수 있다. 문제를 풀어 가는 정치인들과 여론주도층의 적극적 역할이 절실한 시점이다. 히라야마 동감한다.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점은 한·일 두 나라가 고노 담화 수준에서 이를 정치적으로 타결해 매듭 짓고, 이에 기초해 후속 작업이 이뤄졌어야 했다. 한국도 고노 담화 수준에 만족하지 못했고,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실천하지 못했다. 일본에선 이런 한국 태도에 불만이 높아졌고, 아베 신조 총리에 대한 지지로 이런 감정이 일부 전환됐다. 위안부 문제와 관련, 정부 관여와 강제성을 입증할 확실한 증거와 문서를 찾기 힘들다는 게 일본 측 시각이다. 살아 있는 피해자의 증언, 탄광 노동자 등 강제 징용 피해자들의 증언에 신빙성을 제기하는 의견도 있다. 구천서 꽃다운 청춘을 희생당한 당사자들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살아 있는데 더 확실한 증거를 어디서 찾겠나. 물론 이와 관련한 일본학계 내 논의 등에는 주목하고 있다. 일본 내 여론 가운데 ‘60여년이 지났는데 언제까지 사과만 요구할 건가’라는 주장을 듣고 있다. 계기가 있을 때마다 독일의 총리와 정치지도자들이 과거에 국가가 저지른 죄악의 책임을 반성하는 행동이 국격과 국제사회에서 지도력을 높였다는 사실은 일본에도 본보기가 될 수 있다. 미래는 올바른 과거 인식에서 출발한다. 히라야마 동감이다. 역지사지의 정신으로 임해야겠다. 탈북 청년 등 한국 청년들이 구 이사장과 함께 우리 학교를 찾아와 줘서 고맙다. 우리 학교 학생 40여명과 한국의 젊은이들은 저녁을 함께 하면서 바로 친해졌다. 몇 시간의 만남 뒤에 서로 헤어지는 것을 아쉬워하며 우정을 나누는 것을 지켜보면서 한·일 관계의 희망을 발견했다. 탈북 청년 등 이곳에 온 한국 젊은이들은 한국의 통일과 화해를 상징하는 희망이다. 한·일 젊은 세대의 교류를 더욱 확대해 나가자. 50년, 100년을 보고 나아가야 한다. 구천서 니가타는 많은 상념에 잠기게 하는 곳이다. 1959년부터 1984년까지 9만 3339명의 재일교포와 그 가족들이 니가타 항구를 통해 북송됐고, 북한 요원들에 의해 무구한 일본 소년 소녀와 양민들이 납치된 곳이기도 하다. 바다 너머가 바로 한반도다. 이번에 일본을 찾은 한국 젊은이 가운데는 어머니가 이곳 니가타에서 1960년대 초 만경봉호를 타고 북송됐던 재일교포의 딸도 포함돼 있다. 과거 한국인과 일본인의 고통과 절망을 상징했던 니가타가 협력과 화해, 번영과 평화를 위한 동북아시아 공동체의 허브 지역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데 대해 뜻깊게 생각한다. 히라야마 니가타는 바다를 사이로 한국, 북한, 러시아 등을 마주 보고 있다. 지사를 세 차례 연임하면서 이곳을 남북한과 중국, 러시아 등 동북아 국가들의 교류 중심으로 키우려고 노력했다. 한반도와 니가타 사이의 바다를 화해와 번영의 내해(內海)로, 지역공동체의 거점으로 키워 나가려는 노력이 한·일 양측에서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다. 내년이면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을 맞는다. 두 나라가 관계 발전의 좋은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힘을 모을 때다. 정리 니가타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구천서 이사장 1950년생(64). 충북 보은 출생, 고대 경제학과 졸업, 15·16대 국회의원,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공동의장,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 베이징대 박사, 현 한반도미래재단 이사장 및 한·중경제협회 회장 ■히라야마 이쿠오 前 지사 1944년생(70). 니가타현 출생, 요코하마국립대 경제학과 졸업, 일본은행 니가타지점장, 니가타현 지사(3선),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명예박사, 현 니가타 국제정보대학(NUIS) 총장
  • 마침내 노래하는 양희은

    마침내 노래하는 양희은

    통기타를 둘러메고 ‘아침 이슬’을 간절히 부르던 양희은(62)은 1970년대 청년문화의 아이콘이었다. 한동안 라디오 DJ와 방송, 공연으로 팬들을 만나 온 그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전설적인 포크 가수로 회자됐다. 그런 그가 다시 새로운 모험에 나섰다. 8년 만에 새 음반을 발표한 것으로도 모자라 난생처음 뮤직비디오를 찍고 ‘레옹’으로 분장했다. LP 시대에 활동했던 그가 디지털 싱글을 발표하는가 하면, 라이브 카페에서 쇼케이스도 열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제가 ‘웃기는 아줌마인데 노래도 잘한다’ 정도로 알더라고요. 젊은 PD들이 저를 취재해도 제 70, 80년대 노래를 잘 모르고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44년 차 가수의 여유는 고스란히 묻어났다. “가수가 살아 있는 건 노래를 통해서입니다. 이제는 기지개를 켜고 최선을 다해 (음악 인생을) 잘 마감하자는 생각입니다.” 19일 공개되는 새 음반 ‘2014 양희은’은 한 곡 한 곡이 저마다 다른 색깔을 뿜어낸다. ‘나영이네 냉장고’는 잔잔한 듯 경쾌한 스윙 리듬을 기반으로 한 포크 재즈, ‘서른 즈음에’ 작곡가 강승원과 호흡을 맞춘 ‘당신 생각’은 감미로운 팝 발라드의 듀엣곡이다. ‘내 생에 가장 아름다운 말’은 기타와 피아노, 첼로 단 세 악기로만 편곡된 잔잔한 발라드, 뮤지컬 ‘식구를 찾아서’의 두 넘버를 편곡해 듀엣곡으로 만든 ‘넌 아직 예뻐’는 동생 양희경과 주거니 받거니 하는 보컬이 뮤지컬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한다. 양희은의 풍부하고 여유로운 보컬은 굳이 변화를 주지 않아도 다양한 장르의 모든 곡에 맞춤옷처럼 들어맞는다. 장르만큼이나 노래들에 담긴 메시지도 다채롭다. ‘나영이네 냉장고’에서는 ‘아침밥을 먹어야 든든하다’며 자식들의 엉덩이를 토닥거리고 ,‘참 좋다’에서는 삶의 찬란한 아름다움에 감탄한다. ‘하루만’에서는 삶에 대한 열망을, ‘나는 사랑할 거야’에서는 뜨거운 자기애를 노래한다. 위로와 격려, 삶에 대한 성찰과 관조 등 예순두 살의 가수가 전하는 이야기는 우연인지 필연인지 공감과 위로를 추구하는 최근의 대중문화계 트렌드와도 포개진다. 젊은 세대와의 소통을 갈구하듯 그는 후배들과의 작업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한철, 육중완(장미여관), 한동준, 강승원 등 함께 작업한 뮤지션 중에는 난생처음 얼굴을 마주한 이들도 있었다. 후배 연예인들과 격의 없이 어울리며 완성한 ‘나영이네 냉장고’ 뮤직비디오는 파격에 가깝다. 개그우먼 송은이가 메가폰을 잡은 뮤직비디오에서 그는 우스꽝스러운 선글라스를 끼고 젊은이들을 타이르는 등 코믹 연기에 도전했다. 그는 “나이가 들면서 신선한 발상이 달린다”며 “젊은 후배들과 함께하면 기를 받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음반 발매와 별개로 그는 ‘뜻밖의 만남’이라는 프로젝트도 이어 가고 있다. 후배 뮤지션들과 공동 작업한 곡을 하나씩 디지털 싱글로 공개하는 것으로, 지금까지 윤종신과 이적이 참여했다. 그는 다음달 11~14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백양콘서트홀에서 새 음반 발매 기념 콘서트를 연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김경란·김상민 결혼 “경란씨는 누가 뭐래도 평강공주” 닭살 애정

    김경란·김상민 결혼 “경란씨는 누가 뭐래도 평강공주” 닭살 애정

    김상민 의원 “김경란은 평강공주…스펙·돈 인생 기준 아냐”[입장 전문] KBS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 김경란(37)이 새누리당 김상민(41) 의원과 결혼한다. 두 사람은 지난 7월 한 행사에서 만나 인연을 이어오다,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 두 사람 모두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며, 봉사활동에도 관심이 있는 등 공통점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은 이미 양가 상견례도 마친 것으로 전해졌다. .김경란의 소속사 라인 엔터테인먼트 측은 26일 “내년 1월 6일 결혼한다”면서 “7월에 교제를 시작해서 10월에 양가 상견례를 마쳤다”고 밝혔다. 두 사람의 신혼집은 김 의원의 고향인 수원 장안구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상민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연인 김경란 아나운서와의 만남에 대해서 솔직한 감정을 털어놨다. 김 의원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란 사람이 결혼이란 걸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소위 비인기 종목이라 할 수 있는 정치 분야에 몸담고 있는 처지에다 오랜 시간 청년들과 NGO 운동 하겠다며 제 한 몸 잘 건사하지도 못하며 살아온 인생이기에 결혼은 제게 사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 제가 경란씨와 결혼을 한다니 온통 인터넷이 떠들썩합니다. 어찌 저 같이 부족한 사람이 경란씨 처럼 오랜 시간 좋은 회사에서 프로페셔널하게 일하고 대중들로부터 사랑받는 사람과 결혼하게 되었을까? 저도 믿겨지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고 전했다. 김 의원은 “제가 만나온 경란씨는 사람을 환경이나 배경으로 평가하지 않는 사람이었다”면서 “흔히들 말하는 스펙, 돈 많고, 집안 좋고, 잘 나가는 그런 것들이 인생의 중요한 기준이 되는 사람이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나에게 경란씨는 누가 뭐래도 평강공주”라면서 “열정과 간절함으로 들끓기만 했던 내 삶에 단단하지만 여유롭고 많은 사람들을 품으며 살아가는 삶을 알려주었다.반의 반쪽 인생도 못살아온 나에게 경란씨가 온전한 한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출발을 하게 해주고 있다”고 했다. 김경란은 1977년생으로 2001년 KBS 27기 공채 아나운서로 KBS 뉴스 9, ‘열린음악회’, ‘사랑의 리퀘스트’, ‘스펀지’, ‘영화 완전정복’, ‘생생 정보통’등 인기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2012년 봉사활동을 이유로 KBS를 퇴사한 뒤 방송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프리 선언 뒤에도 ‘토크&시티’, ‘신세계’, ‘더 지니어스’, ‘연애전당포’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활동하고 있다. 김 의원은 1973년생으로 청년 비례대표로 19대 국회에 입성했다.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 캠프 청년특보, 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청년특별위원장 등을 지냈다. 새누리당 경제민주화실천모임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네티즌들은 “김경란 김상민 결혼, 너무 예쁜 커플”, “김경란 김상민 결혼, 역시 김경란 씨 사람 됨됨이가 다르네”, “김경란 김상민 결혼, 예쁜 아기도 낳고 알콩달콩 예쁘게 사세요”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다음은 김상민 의원 페이스북 글 전문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란 사람이 결혼이란 걸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소위 비인기 종목이라 할 수 있는 정치 분야에 몸담고 있는 처지에다 오랜 시간 청년들과 NGO 운동 하겠다며 제 한 몸 잘 건사하지도 못하며 살아온 인생이기에 결혼은 제게 사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제가 경란씨와 결혼을 한다니 온통 인터넷이 떠들썩합니다. 어찌 저 같이 부족한 사람이 경란씨 처럼 오랜 시간 좋은 회사에서 프로페셔널하게 일하고 대중들로부터 사랑받는 사람과 결혼하게 되었을까? 저도 믿겨지지 않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제가 만나온 경란씨는 사람을 환경이나 배경으로 평가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흔히들 말하는 스펙 돈 많고, 집안 좋고, 잘 나가는 그런 것들이 인생의 중요한 기준이 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저 같은 사람과 결혼하려하지도 않았겠지요. 저는 오랜 시간 동안 저 처럼 평범한 집안, 특별한 배경이 없는 사람들도 이 세상에서 희망을 가지고 살 수 있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고 또 간절히 바라며 살아왔습니다. 꿈은 크고 마음은 간절했지만 뭐하나 제대로 가진 것 없었던 제가 그저 유일하게 할 수 있었던 일은 같은 꿈, 뜨거운 피를 가진 몇몇 젊은 친구들과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NGO단체들을 만들며 어렵고 힘든 사람들 편에 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주변의 일들을 하나하나씩 하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살아온 저의 삶을 경란씨는 누구보다 크게 평가해주고 인정해주었습니다. 좌충우돌 부족하기만 했던 저의 의정활동에도 지혜로운 조언자가 되어주었습니다. 무엇보다 약자와 어려운 사람들 편에서 어떤 힘과 권력에도 굴하지 말고 용기 있게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줄 것을 당부해주었습니다. 나에게 경란씨는 누가 뭐래도 평강공주입니다. 열정과 간절함으로 들끓기만 했던 저의 삶에 단단하지만 여유롭고 많은 사람들을 품으며 살아가는 삶을 알려주었습니다. 반의 반쪽 인생도 못살아온 저에게 경란씨가 온전한 한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출발을 하게 해주고 있습니다. 경란씨를 통해 저의 얼굴, 표정, 목소리, 마음, 행동까지 모든 것이 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제가 변했다구요. 그런 경란씨를 제가 어찌 사랑하지 않을수가 있겠습니까? 경란씨를 평생 지키고 사랑하며 함께 어렵고 힘든 사람들의 편에 서서 그들의 목소리가 되어줄 수 있는 인생을 살아가려합니다. 어린 시절 티브이 속 예쁘고 단정한 아나운서들을 보면서 그저 먼 곳에 있고 짝사랑이나 할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했었고, 가까워지는 건 저에겐 결코 오지 않을 현실일거라 단정하며 살아왔는데 그 한 사람이 오늘 저와 함께 이렇게 활짝 웃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도 이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여러분도 언젠가 멀리 바라보기만 했던 창문 밖의 풍경이 여러분의 현실로 꼭 다가오는 날이 오길 진심으로 바라고 기도합니다. 갑작스러운 소식으로 놀라신 분들도 많으실텐데 큰 격려와 축복으로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경란씨를 더 사랑하고 잘 지키며 행복하게 살아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상민 드림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경란 김상민 결혼 “누가 뭐래도 평강공주” 김상민의원 반한 이유보니

    김경란 김상민 결혼 “누가 뭐래도 평강공주” 김상민의원 반한 이유보니

    김상민 의원 “김경란은 평강공주…스펙·돈 인생 기준 아냐”[입장 전문] KBS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 김경란(37)이 새누리당 김상민(41) 의원과 결혼한다. 두 사람은 지난 7월 한 행사에서 만나 인연을 이어오다,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 두 사람 모두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며, 봉사활동에도 관심이 있는 등 공통점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은 이미 양가 상견례도 마친 것으로 전해졌다. .김경란의 소속사 라인 엔터테인먼트 측은 26일 “내년 1월 6일 결혼한다”면서 “7월에 교제를 시작해서 10월에 양가 상견례를 마쳤다”고 밝혔다. 두 사람의 신혼집은 김 의원의 고향인 수원 장안구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상민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연인 김경란 아나운서와의 만남에 대해서 솔직한 감정을 털어놨다. 김 의원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란 사람이 결혼이란 걸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소위 비인기 종목이라 할 수 있는 정치 분야에 몸담고 있는 처지에다 오랜 시간 청년들과 NGO 운동 하겠다며 제 한 몸 잘 건사하지도 못하며 살아온 인생이기에 결혼은 제게 사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 제가 경란씨와 결혼을 한다니 온통 인터넷이 떠들썩합니다. 어찌 저 같이 부족한 사람이 경란씨 처럼 오랜 시간 좋은 회사에서 프로페셔널하게 일하고 대중들로부터 사랑받는 사람과 결혼하게 되었을까? 저도 믿겨지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고 전했다. 김 의원은 “제가 만나온 경란씨는 사람을 환경이나 배경으로 평가하지 않는 사람이었다”면서 “흔히들 말하는 스펙, 돈 많고, 집안 좋고, 잘 나가는 그런 것들이 인생의 중요한 기준이 되는 사람이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나에게 경란씨는 누가 뭐래도 평강공주”라면서 “열정과 간절함으로 들끓기만 했던 내 삶에 단단하지만 여유롭고 많은 사람들을 품으며 살아가는 삶을 알려주었다.반의 반쪽 인생도 못살아온 나에게 경란씨가 온전한 한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출발을 하게 해주고 있다”고 했다. 김경란은 1977년생으로 2001년 KBS 27기 공채 아나운서로 KBS 뉴스 9, ‘열린음악회’, ‘사랑의 리퀘스트’, ‘스펀지’, ‘영화 완전정복’, ‘생생 정보통’등 인기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2012년 봉사활동을 이유로 KBS를 퇴사한 뒤 방송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프리 선언 뒤에도 ‘토크&시티’, ‘신세계’, ‘더 지니어스’, ‘연애전당포’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활동하고 있다. 김 의원은 1973년생으로 청년 비례대표로 19대 국회에 입성했다.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 캠프 청년특보, 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청년특별위원장 등을 지냈다. 새누리당 경제민주화실천모임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네티즌들은 “김경란 김상민 결혼, 너무 예쁜 커플”, “김경란 김상민 결혼, 역시 김경란 씨 사람 됨됨이가 다르네”, “김경란 김상민 결혼, 예쁜 아기도 낳고 알콩달콩 예쁘게 사세요”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다음은 김상민 의원 페이스북 글 전문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란 사람이 결혼이란 걸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소위 비인기 종목이라 할 수 있는 정치 분야에 몸담고 있는 처지에다 오랜 시간 청년들과 NGO 운동 하겠다며 제 한 몸 잘 건사하지도 못하며 살아온 인생이기에 결혼은 제게 사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제가 경란씨와 결혼을 한다니 온통 인터넷이 떠들썩합니다. 어찌 저 같이 부족한 사람이 경란씨 처럼 오랜 시간 좋은 회사에서 프로페셔널하게 일하고 대중들로부터 사랑받는 사람과 결혼하게 되었을까? 저도 믿겨지지 않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제가 만나온 경란씨는 사람을 환경이나 배경으로 평가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흔히들 말하는 스펙 돈 많고, 집안 좋고, 잘 나가는 그런 것들이 인생의 중요한 기준이 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저 같은 사람과 결혼하려하지도 않았겠지요. 저는 오랜 시간 동안 저 처럼 평범한 집안, 특별한 배경이 없는 사람들도 이 세상에서 희망을 가지고 살 수 있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고 또 간절히 바라며 살아왔습니다. 꿈은 크고 마음은 간절했지만 뭐하나 제대로 가진 것 없었던 제가 그저 유일하게 할 수 있었던 일은 같은 꿈, 뜨거운 피를 가진 몇몇 젊은 친구들과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NGO단체들을 만들며 어렵고 힘든 사람들 편에 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주변의 일들을 하나하나씩 하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살아온 저의 삶을 경란씨는 누구보다 크게 평가해주고 인정해주었습니다. 좌충우돌 부족하기만 했던 저의 의정활동에도 지혜로운 조언자가 되어주었습니다. 무엇보다 약자와 어려운 사람들 편에서 어떤 힘과 권력에도 굴하지 말고 용기 있게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줄 것을 당부해주었습니다. 나에게 경란씨는 누가 뭐래도 평강공주입니다. 열정과 간절함으로 들끓기만 했던 저의 삶에 단단하지만 여유롭고 많은 사람들을 품으며 살아가는 삶을 알려주었습니다. 반의 반쪽 인생도 못살아온 저에게 경란씨가 온전한 한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출발을 하게 해주고 있습니다. 경란씨를 통해 저의 얼굴, 표정, 목소리, 마음, 행동까지 모든 것이 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제가 변했다구요. 그런 경란씨를 제가 어찌 사랑하지 않을수가 있겠습니까? 경란씨를 평생 지키고 사랑하며 함께 어렵고 힘든 사람들의 편에 서서 그들의 목소리가 되어줄 수 있는 인생을 살아가려합니다. 어린 시절 티브이 속 예쁘고 단정한 아나운서들을 보면서 그저 먼 곳에 있고 짝사랑이나 할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했었고, 가까워지는 건 저에겐 결코 오지 않을 현실일거라 단정하며 살아왔는데 그 한 사람이 오늘 저와 함께 이렇게 활짝 웃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도 이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여러분도 언젠가 멀리 바라보기만 했던 창문 밖의 풍경이 여러분의 현실로 꼭 다가오는 날이 오길 진심으로 바라고 기도합니다. 갑작스러운 소식으로 놀라신 분들도 많으실텐데 큰 격려와 축복으로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경란씨를 더 사랑하고 잘 지키며 행복하게 살아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상민 드림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상민 의원 “김경란은 평강공주…스펙·돈 인생 기준 아냐”[입장 전문]

    김상민 의원 “김경란은 평강공주…스펙·돈 인생 기준 아냐”[입장 전문]

    김상민 의원 “김경란은 평강공주…스펙·돈 인생 기준 아냐”[입장 전문] KBS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 김경란(37)이 새누리당 김상민(41) 의원과 결혼한다. 두 사람은 지난 7월 한 행사에서 만나 인연을 이어오다,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 두 사람 모두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며, 봉사활동에도 관심이 있는 등 공통점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은 이미 양가 상견례도 마친 것으로 전해졌다. .김경란의 소속사 라인 엔터테인먼트 측은 26일 “내년 1월 6일 결혼한다”면서 “7월에 교제를 시작해서 10월에 양가 상견례를 마쳤다”고 밝혔다. 두 사람의 신혼집은 김 의원의 고향인 수원 장안구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상민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연인 김경란 아나운서와의 만남에 대해서 솔직한 감정을 털어놨다. 김 의원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란 사람이 결혼이란 걸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소위 비인기 종목이라 할 수 있는 정치 분야에 몸담고 있는 처지에다 오랜 시간 청년들과 NGO 운동 하겠다며 제 한 몸 잘 건사하지도 못하며 살아온 인생이기에 결혼은 제게 사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 제가 경란씨와 결혼을 한다니 온통 인터넷이 떠들썩합니다. 어찌 저 같이 부족한 사람이 경란씨 처럼 오랜 시간 좋은 회사에서 프로페셔널하게 일하고 대중들로부터 사랑받는 사람과 결혼하게 되었을까? 저도 믿겨지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고 전했다. 김 의원은 “제가 만나온 경란씨는 사람을 환경이나 배경으로 평가하지 않는 사람이었다”면서 “흔히들 말하는 스펙, 돈 많고, 집안 좋고, 잘 나가는 그런 것들이 인생의 중요한 기준이 되는 사람이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나에게 경란씨는 누가 뭐래도 평강공주”라면서 “열정과 간절함으로 들끓기만 했던 내 삶에 단단하지만 여유롭고 많은 사람들을 품으며 살아가는 삶을 알려주었다.반의 반쪽 인생도 못살아온 나에게 경란씨가 온전한 한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출발을 하게 해주고 있다”고 했다. 김경란은 1977년생으로 2001년 KBS 27기 공채 아나운서로 KBS 뉴스 9, ‘열린음악회’, ‘사랑의 리퀘스트’, ‘스펀지’, ‘영화 완전정복’, ‘생생 정보통’등 인기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2012년 봉사활동을 이유로 KBS를 퇴사한 뒤 방송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프리 선언 뒤에도 ‘토크&시티’, ‘신세계’, ‘더 지니어스’, ‘연애전당포’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활동하고 있다. 김 의원은 1973년생으로 청년 비례대표로 19대 국회에 입성했다.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 캠프 청년특보, 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청년특별위원장 등을 지냈다. 새누리당 경제민주화실천모임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네티즌들은 “김경란 김상민 결혼, 너무 예쁜 커플”, “김경란 김상민 결혼, 역시 김경란 씨 사람 됨됨이가 다르네”, “김경란 김상민 결혼, 예쁜 아기도 낳고 알콩달콩 예쁘게 사세요”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다음은 김상민 의원 페이스북 글 전문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란 사람이 결혼이란 걸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소위 비인기 종목이라 할 수 있는 정치 분야에 몸담고 있는 처지에다 오랜 시간 청년들과 NGO 운동 하겠다며 제 한 몸 잘 건사하지도 못하며 살아온 인생이기에 결혼은 제게 사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제가 경란씨와 결혼을 한다니 온통 인터넷이 떠들썩합니다. 어찌 저 같이 부족한 사람이 경란씨 처럼 오랜 시간 좋은 회사에서 프로페셔널하게 일하고 대중들로부터 사랑받는 사람과 결혼하게 되었을까? 저도 믿겨지지 않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제가 만나온 경란씨는 사람을 환경이나 배경으로 평가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흔히들 말하는 스펙 돈 많고, 집안 좋고, 잘 나가는 그런 것들이 인생의 중요한 기준이 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저 같은 사람과 결혼하려하지도 않았겠지요. 저는 오랜 시간 동안 저 처럼 평범한 집안, 특별한 배경이 없는 사람들도 이 세상에서 희망을 가지고 살 수 있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고 또 간절히 바라며 살아왔습니다. 꿈은 크고 마음은 간절했지만 뭐하나 제대로 가진 것 없었던 제가 그저 유일하게 할 수 있었던 일은 같은 꿈, 뜨거운 피를 가진 몇몇 젊은 친구들과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NGO단체들을 만들며 어렵고 힘든 사람들 편에 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주변의 일들을 하나하나씩 하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살아온 저의 삶을 경란씨는 누구보다 크게 평가해주고 인정해주었습니다. 좌충우돌 부족하기만 했던 저의 의정활동에도 지혜로운 조언자가 되어주었습니다. 무엇보다 약자와 어려운 사람들 편에서 어떤 힘과 권력에도 굴하지 말고 용기 있게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줄 것을 당부해주었습니다. 나에게 경란씨는 누가 뭐래도 평강공주입니다. 열정과 간절함으로 들끓기만 했던 저의 삶에 단단하지만 여유롭고 많은 사람들을 품으며 살아가는 삶을 알려주었습니다. 반의 반쪽 인생도 못살아온 저에게 경란씨가 온전한 한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출발을 하게 해주고 있습니다. 경란씨를 통해 저의 얼굴, 표정, 목소리, 마음, 행동까지 모든 것이 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제가 변했다구요. 그런 경란씨를 제가 어찌 사랑하지 않을수가 있겠습니까? 경란씨를 평생 지키고 사랑하며 함께 어렵고 힘든 사람들의 편에 서서 그들의 목소리가 되어줄 수 있는 인생을 살아가려합니다. 어린 시절 티브이 속 예쁘고 단정한 아나운서들을 보면서 그저 먼 곳에 있고 짝사랑이나 할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했었고, 가까워지는 건 저에겐 결코 오지 않을 현실일거라 단정하며 살아왔는데 그 한 사람이 오늘 저와 함께 이렇게 활짝 웃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도 이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여러분도 언젠가 멀리 바라보기만 했던 창문 밖의 풍경이 여러분의 현실로 꼭 다가오는 날이 오길 진심으로 바라고 기도합니다. 갑작스러운 소식으로 놀라신 분들도 많으실텐데 큰 격려와 축복으로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경란씨를 더 사랑하고 잘 지키며 행복하게 살아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상민 드림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상민 의원 “스펙 좋고 돈 많은 것이 인생 기준 아냐…김경란 때문에 내가 변해”[입장 전문]

    김상민 의원 “스펙 좋고 돈 많은 것이 인생 기준 아냐…김경란 때문에 내가 변해”[입장 전문]

    김상민 의원 “스펙 좋고 돈 많은 것이 인생 기준 아냐…김경란 때문에 내가 변해”[입장 전문] KBS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 김경란(37)이 새누리당 김상민(41) 의원과 결혼한다. 두 사람은 지난 7월 한 행사에서 만나 인연을 이어오다,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 두 사람 모두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며, 봉사활동에도 관심이 있는 등 공통점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은 이미 양가 상견례도 마친 것으로 전해졌다. .김경란의 소속사 라인 엔터테인먼트 측은 26일 “내년 1월 6일 결혼한다”면서 “7월에 교제를 시작해서 10월에 양가 상견례를 마쳤다”고 밝혔다. 두 사람의 신혼집은 김 의원의 고향인 수원 장안구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상민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연인 김경란 아나운서와의 만남에 대해서 솔직한 감정을 털어놨다. 김 의원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란 사람이 결혼이란 걸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소위 비인기 종목이라 할 수 있는 정치 분야에 몸담고 있는 처지에다 오랜 시간 청년들과 NGO 운동 하겠다며 제 한 몸 잘 건사하지도 못하며 살아온 인생이기에 결혼은 제게 사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 제가 경란씨와 결혼을 한다니 온통 인터넷이 떠들썩합니다. 어찌 저 같이 부족한 사람이 경란씨 처럼 오랜 시간 좋은 회사에서 프로페셔널하게 일하고 대중들로부터 사랑받는 사람과 결혼하게 되었을까? 저도 믿겨지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고 전했다. 김 의원은 “제가 만나온 경란씨는 사람을 환경이나 배경으로 평가하지 않는 사람이었다”면서 “흔히들 말하는 스펙, 돈 많고, 집안 좋고, 잘 나가는 그런 것들이 인생의 중요한 기준이 되는 사람이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나에게 경란씨는 누가 뭐래도 평강공주”라면서 “열정과 간절함으로 들끓기만 했던 내 삶에 단단하지만 여유롭고 많은 사람들을 품으며 살아가는 삶을 알려주었다.반의 반쪽 인생도 못살아온 나에게 경란씨가 온전한 한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출발을 하게 해주고 있다”고 했다. 김경란은 1977년생으로 2001년 KBS 27기 공채 아나운서로 KBS 뉴스 9, ‘열린음악회’, ‘사랑의 리퀘스트’, ‘스펀지’, ‘영화 완전정복’, ‘생생 정보통’등 인기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2012년 봉사활동을 이유로 KBS를 퇴사한 뒤 방송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프리 선언 뒤에도 ‘토크&시티’, ‘신세계’, ‘더 지니어스’, ‘연애전당포’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활동하고 있다. 김 의원은 1973년생으로 청년 비례대표로 19대 국회에 입성했다.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 캠프 청년특보, 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청년특별위원장 등을 지냈다. 새누리당 경제민주화실천모임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네티즌들은 “김경란 김상민 결혼, 역시 김경란 씨가 대단한 인물이었네”, “김경란 김상민 결혼, 결혼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잘 사세요”, “김경란 김상민 결혼, 두 사람 정말 잘 어울려요. 앞으로 결혼한다니 너무 부럽다”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다음은 김상민 의원 페이스북 글 전문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란 사람이 결혼이란 걸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소위 비인기 종목이라 할 수 있는 정치 분야에 몸담고 있는 처지에다 오랜 시간 청년들과 NGO 운동 하겠다며 제 한 몸 잘 건사하지도 못하며 살아온 인생이기에 결혼은 제게 사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제가 경란씨와 결혼을 한다니 온통 인터넷이 떠들썩합니다. 어찌 저 같이 부족한 사람이 경란씨 처럼 오랜 시간 좋은 회사에서 프로페셔널하게 일하고 대중들로부터 사랑받는 사람과 결혼하게 되었을까? 저도 믿겨지지 않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제가 만나온 경란씨는 사람을 환경이나 배경으로 평가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흔히들 말하는 스펙 돈 많고, 집안 좋고, 잘 나가는 그런 것들이 인생의 중요한 기준이 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저 같은 사람과 결혼하려하지도 않았겠지요. 저는 오랜 시간 동안 저 처럼 평범한 집안, 특별한 배경이 없는 사람들도 이 세상에서 희망을 가지고 살 수 있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고 또 간절히 바라며 살아왔습니다. 꿈은 크고 마음은 간절했지만 뭐하나 제대로 가진 것 없었던 제가 그저 유일하게 할 수 있었던 일은 같은 꿈, 뜨거운 피를 가진 몇몇 젊은 친구들과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NGO단체들을 만들며 어렵고 힘든 사람들 편에 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주변의 일들을 하나하나씩 하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살아온 저의 삶을 경란씨는 누구보다 크게 평가해주고 인정해주었습니다. 좌충우돌 부족하기만 했던 저의 의정활동에도 지혜로운 조언자가 되어주었습니다. 무엇보다 약자와 어려운 사람들 편에서 어떤 힘과 권력에도 굴하지 말고 용기 있게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줄 것을 당부해주었습니다. 나에게 경란씨는 누가 뭐래도 평강공주입니다. 열정과 간절함으로 들끓기만 했던 저의 삶에 단단하지만 여유롭고 많은 사람들을 품으며 살아가는 삶을 알려주었습니다. 반의 반쪽 인생도 못살아온 저에게 경란씨가 온전한 한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출발을 하게 해주고 있습니다. 경란씨를 통해 저의 얼굴, 표정, 목소리, 마음, 행동까지 모든 것이 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제가 변했다구요. 그런 경란씨를 제가 어찌 사랑하지 않을수가 있겠습니까? 경란씨를 평생 지키고 사랑하며 함께 어렵고 힘든 사람들의 편에 서서 그들의 목소리가 되어줄 수 있는 인생을 살아가려합니다. 어린 시절 티브이 속 예쁘고 단정한 아나운서들을 보면서 그저 먼 곳에 있고 짝사랑이나 할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했었고, 가까워지는 건 저에겐 결코 오지 않을 현실일거라 단정하며 살아왔는데 그 한 사람이 오늘 저와 함께 이렇게 활짝 웃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도 이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여러분도 언젠가 멀리 바라보기만 했던 창문 밖의 풍경이 여러분의 현실로 꼭 다가오는 날이 오길 진심으로 바라고 기도합니다. 갑작스러운 소식으로 놀라신 분들도 많으실텐데 큰 격려와 축복으로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경란씨를 더 사랑하고 잘 지키며 행복하게 살아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상민 드림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경란·김상민 의원 결혼 “경란씨는 누가 뭐래도 평강공주” 닭살 애정

    김경란·김상민 의원 결혼 “경란씨는 누가 뭐래도 평강공주” 닭살 애정

    김상민 의원 “김경란은 평강공주…스펙·돈 인생 기준 아냐”[입장 전문] KBS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 김경란(37)이 새누리당 김상민(41) 의원과 결혼한다. 두 사람은 지난 7월 한 행사에서 만나 인연을 이어오다,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 두 사람 모두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며, 봉사활동에도 관심이 있는 등 공통점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은 이미 양가 상견례도 마친 것으로 전해졌다. .김경란의 소속사 라인 엔터테인먼트 측은 26일 “내년 1월 6일 결혼한다”면서 “7월에 교제를 시작해서 10월에 양가 상견례를 마쳤다”고 밝혔다. 두 사람의 신혼집은 김 의원의 고향인 수원 장안구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상민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연인 김경란 아나운서와의 만남에 대해서 솔직한 감정을 털어놨다. 김 의원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란 사람이 결혼이란 걸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소위 비인기 종목이라 할 수 있는 정치 분야에 몸담고 있는 처지에다 오랜 시간 청년들과 NGO 운동 하겠다며 제 한 몸 잘 건사하지도 못하며 살아온 인생이기에 결혼은 제게 사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 제가 경란씨와 결혼을 한다니 온통 인터넷이 떠들썩합니다. 어찌 저 같이 부족한 사람이 경란씨 처럼 오랜 시간 좋은 회사에서 프로페셔널하게 일하고 대중들로부터 사랑받는 사람과 결혼하게 되었을까? 저도 믿겨지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고 전했다. 김 의원은 “제가 만나온 경란씨는 사람을 환경이나 배경으로 평가하지 않는 사람이었다”면서 “흔히들 말하는 스펙, 돈 많고, 집안 좋고, 잘 나가는 그런 것들이 인생의 중요한 기준이 되는 사람이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나에게 경란씨는 누가 뭐래도 평강공주”라면서 “열정과 간절함으로 들끓기만 했던 내 삶에 단단하지만 여유롭고 많은 사람들을 품으며 살아가는 삶을 알려주었다.반의 반쪽 인생도 못살아온 나에게 경란씨가 온전한 한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출발을 하게 해주고 있다”고 했다. 김경란은 1977년생으로 2001년 KBS 27기 공채 아나운서로 KBS 뉴스 9, ‘열린음악회’, ‘사랑의 리퀘스트’, ‘스펀지’, ‘영화 완전정복’, ‘생생 정보통’등 인기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2012년 봉사활동을 이유로 KBS를 퇴사한 뒤 방송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프리 선언 뒤에도 ‘토크&시티’, ‘신세계’, ‘더 지니어스’, ‘연애전당포’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활동하고 있다. 김 의원은 1973년생으로 청년 비례대표로 19대 국회에 입성했다.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 캠프 청년특보, 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청년특별위원장 등을 지냈다. 새누리당 경제민주화실천모임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네티즌들은 “김경란 김상민 결혼, 너무 예쁜 커플”, “김경란 김상민 결혼, 역시 김경란 씨 사람 됨됨이가 다르네”, “김경란 김상민 결혼, 예쁜 아기도 낳고 알콩달콩 예쁘게 사세요”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다음은 김상민 의원 페이스북 글 전문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란 사람이 결혼이란 걸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소위 비인기 종목이라 할 수 있는 정치 분야에 몸담고 있는 처지에다 오랜 시간 청년들과 NGO 운동 하겠다며 제 한 몸 잘 건사하지도 못하며 살아온 인생이기에 결혼은 제게 사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제가 경란씨와 결혼을 한다니 온통 인터넷이 떠들썩합니다. 어찌 저 같이 부족한 사람이 경란씨 처럼 오랜 시간 좋은 회사에서 프로페셔널하게 일하고 대중들로부터 사랑받는 사람과 결혼하게 되었을까? 저도 믿겨지지 않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제가 만나온 경란씨는 사람을 환경이나 배경으로 평가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흔히들 말하는 스펙 돈 많고, 집안 좋고, 잘 나가는 그런 것들이 인생의 중요한 기준이 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저 같은 사람과 결혼하려하지도 않았겠지요. 저는 오랜 시간 동안 저 처럼 평범한 집안, 특별한 배경이 없는 사람들도 이 세상에서 희망을 가지고 살 수 있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고 또 간절히 바라며 살아왔습니다. 꿈은 크고 마음은 간절했지만 뭐하나 제대로 가진 것 없었던 제가 그저 유일하게 할 수 있었던 일은 같은 꿈, 뜨거운 피를 가진 몇몇 젊은 친구들과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NGO단체들을 만들며 어렵고 힘든 사람들 편에 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주변의 일들을 하나하나씩 하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살아온 저의 삶을 경란씨는 누구보다 크게 평가해주고 인정해주었습니다. 좌충우돌 부족하기만 했던 저의 의정활동에도 지혜로운 조언자가 되어주었습니다. 무엇보다 약자와 어려운 사람들 편에서 어떤 힘과 권력에도 굴하지 말고 용기 있게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줄 것을 당부해주었습니다. 나에게 경란씨는 누가 뭐래도 평강공주입니다. 열정과 간절함으로 들끓기만 했던 저의 삶에 단단하지만 여유롭고 많은 사람들을 품으며 살아가는 삶을 알려주었습니다. 반의 반쪽 인생도 못살아온 저에게 경란씨가 온전한 한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출발을 하게 해주고 있습니다. 경란씨를 통해 저의 얼굴, 표정, 목소리, 마음, 행동까지 모든 것이 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제가 변했다구요. 그런 경란씨를 제가 어찌 사랑하지 않을수가 있겠습니까? 경란씨를 평생 지키고 사랑하며 함께 어렵고 힘든 사람들의 편에 서서 그들의 목소리가 되어줄 수 있는 인생을 살아가려합니다. 어린 시절 티브이 속 예쁘고 단정한 아나운서들을 보면서 그저 먼 곳에 있고 짝사랑이나 할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했었고, 가까워지는 건 저에겐 결코 오지 않을 현실일거라 단정하며 살아왔는데 그 한 사람이 오늘 저와 함께 이렇게 활짝 웃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도 이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여러분도 언젠가 멀리 바라보기만 했던 창문 밖의 풍경이 여러분의 현실로 꼭 다가오는 날이 오길 진심으로 바라고 기도합니다. 갑작스러운 소식으로 놀라신 분들도 많으실텐데 큰 격려와 축복으로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경란씨를 더 사랑하고 잘 지키며 행복하게 살아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상민 드림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상민 의원 “김경란은 평강공주” 커플 사진 보니…

    김상민 의원 “김경란은 평강공주” 커플 사진 보니…

    김상민 의원 “김경란은 평강공주…스펙·돈 인생 기준 아냐”[입장 전문] KBS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 김경란(37)이 새누리당 김상민(41) 의원과 결혼한다. 두 사람은 지난 7월 한 행사에서 만나 인연을 이어오다,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 두 사람 모두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며, 봉사활동에도 관심이 있는 등 공통점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은 이미 양가 상견례도 마친 것으로 전해졌다. .김경란의 소속사 라인 엔터테인먼트 측은 26일 “내년 1월 6일 결혼한다”면서 “7월에 교제를 시작해서 10월에 양가 상견례를 마쳤다”고 밝혔다. 두 사람의 신혼집은 김 의원의 고향인 수원 장안구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상민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연인 김경란 아나운서와의 만남에 대해서 솔직한 감정을 털어놨다. 김 의원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란 사람이 결혼이란 걸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소위 비인기 종목이라 할 수 있는 정치 분야에 몸담고 있는 처지에다 오랜 시간 청년들과 NGO 운동 하겠다며 제 한 몸 잘 건사하지도 못하며 살아온 인생이기에 결혼은 제게 사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 제가 경란씨와 결혼을 한다니 온통 인터넷이 떠들썩합니다. 어찌 저 같이 부족한 사람이 경란씨 처럼 오랜 시간 좋은 회사에서 프로페셔널하게 일하고 대중들로부터 사랑받는 사람과 결혼하게 되었을까? 저도 믿겨지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고 전했다. 김 의원은 “제가 만나온 경란씨는 사람을 환경이나 배경으로 평가하지 않는 사람이었다”면서 “흔히들 말하는 스펙, 돈 많고, 집안 좋고, 잘 나가는 그런 것들이 인생의 중요한 기준이 되는 사람이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나에게 경란씨는 누가 뭐래도 평강공주”라면서 “열정과 간절함으로 들끓기만 했던 내 삶에 단단하지만 여유롭고 많은 사람들을 품으며 살아가는 삶을 알려주었다.반의 반쪽 인생도 못살아온 나에게 경란씨가 온전한 한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출발을 하게 해주고 있다”고 했다. 김경란은 1977년생으로 2001년 KBS 27기 공채 아나운서로 KBS 뉴스 9, ‘열린음악회’, ‘사랑의 리퀘스트’, ‘스펀지’, ‘영화 완전정복’, ‘생생 정보통’등 인기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2012년 봉사활동을 이유로 KBS를 퇴사한 뒤 방송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프리 선언 뒤에도 ‘토크&시티’, ‘신세계’, ‘더 지니어스’, ‘연애전당포’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활동하고 있다. 김 의원은 1973년생으로 청년 비례대표로 19대 국회에 입성했다.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 캠프 청년특보, 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청년특별위원장 등을 지냈다. 새누리당 경제민주화실천모임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네티즌들은 “김경란 김상민 결혼, 너무 예쁜 커플”, “김경란 김상민 결혼, 역시 김경란 씨 사람 됨됨이가 다르네”, “김경란 김상민 결혼, 예쁜 아기도 낳고 알콩달콩 예쁘게 사세요”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다음은 김상민 의원 페이스북 글 전문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란 사람이 결혼이란 걸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소위 비인기 종목이라 할 수 있는 정치 분야에 몸담고 있는 처지에다 오랜 시간 청년들과 NGO 운동 하겠다며 제 한 몸 잘 건사하지도 못하며 살아온 인생이기에 결혼은 제게 사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제가 경란씨와 결혼을 한다니 온통 인터넷이 떠들썩합니다. 어찌 저 같이 부족한 사람이 경란씨 처럼 오랜 시간 좋은 회사에서 프로페셔널하게 일하고 대중들로부터 사랑받는 사람과 결혼하게 되었을까? 저도 믿겨지지 않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제가 만나온 경란씨는 사람을 환경이나 배경으로 평가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흔히들 말하는 스펙 돈 많고, 집안 좋고, 잘 나가는 그런 것들이 인생의 중요한 기준이 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저 같은 사람과 결혼하려하지도 않았겠지요. 저는 오랜 시간 동안 저 처럼 평범한 집안, 특별한 배경이 없는 사람들도 이 세상에서 희망을 가지고 살 수 있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고 또 간절히 바라며 살아왔습니다. 꿈은 크고 마음은 간절했지만 뭐하나 제대로 가진 것 없었던 제가 그저 유일하게 할 수 있었던 일은 같은 꿈, 뜨거운 피를 가진 몇몇 젊은 친구들과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NGO단체들을 만들며 어렵고 힘든 사람들 편에 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주변의 일들을 하나하나씩 하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살아온 저의 삶을 경란씨는 누구보다 크게 평가해주고 인정해주었습니다. 좌충우돌 부족하기만 했던 저의 의정활동에도 지혜로운 조언자가 되어주었습니다. 무엇보다 약자와 어려운 사람들 편에서 어떤 힘과 권력에도 굴하지 말고 용기 있게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줄 것을 당부해주었습니다. 나에게 경란씨는 누가 뭐래도 평강공주입니다. 열정과 간절함으로 들끓기만 했던 저의 삶에 단단하지만 여유롭고 많은 사람들을 품으며 살아가는 삶을 알려주었습니다. 반의 반쪽 인생도 못살아온 저에게 경란씨가 온전한 한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출발을 하게 해주고 있습니다. 경란씨를 통해 저의 얼굴, 표정, 목소리, 마음, 행동까지 모든 것이 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제가 변했다구요. 그런 경란씨를 제가 어찌 사랑하지 않을수가 있겠습니까? 경란씨를 평생 지키고 사랑하며 함께 어렵고 힘든 사람들의 편에 서서 그들의 목소리가 되어줄 수 있는 인생을 살아가려합니다. 어린 시절 티브이 속 예쁘고 단정한 아나운서들을 보면서 그저 먼 곳에 있고 짝사랑이나 할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했었고, 가까워지는 건 저에겐 결코 오지 않을 현실일거라 단정하며 살아왔는데 그 한 사람이 오늘 저와 함께 이렇게 활짝 웃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도 이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여러분도 언젠가 멀리 바라보기만 했던 창문 밖의 풍경이 여러분의 현실로 꼭 다가오는 날이 오길 진심으로 바라고 기도합니다. 갑작스러운 소식으로 놀라신 분들도 많으실텐데 큰 격려와 축복으로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경란씨를 더 사랑하고 잘 지키며 행복하게 살아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상민 드림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경란·김상민 결혼 “7월에 첫 만남” 연인사이로 발전한 지 3개월에 초고속 결혼 왜?

    김경란·김상민 결혼 “7월에 첫 만남” 연인사이로 발전한 지 3개월에 초고속 결혼 왜?

    김경란·김상민 결혼 “7월에 첫 만남” 연인사이로 발전한 지 3개월에 초고속 결혼 왜? KBS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 김경란(37)이 새누리당 김상민 의원(41)과 결혼한다. 두 사람은 지난 7월 한 행사에서 만나 인연을 이어오다,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 두 사람 모두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며, 봉사활동에도 관심이 있는 등 공통점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은 이미 양가 상견례도 마친 것으로 전해졌다. .김경란의 소속사 라인 엔터테인먼트 측은 26일 “내년 1월 6일 결혼한다”면서 “7월에 교제를 시작해서 10월에 양가 상견례를 마쳤다”고 설명했다. 이어 “속도위반은 절대 아니다. 둘의 사랑과 믿음이 확실해서 서두르게 됐다”고 덧붙였다. 김경란은 1977년생으로 2001년 KBS 27기 공채 아나운서로 KBS 뉴스 9, ‘열린음악회’, ‘사랑의 리퀘스트’, ‘스펀지’, ‘영화 완전정복’, ‘생생 정보통’등 인기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2012년 봉사활동을 이유로 KBS를 퇴사한 뒤 방송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프리 선언 뒤에도 ‘토크&시티’, ‘신세계’, ‘더 지니어스’, ‘연애전당포’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활동하고 있다. 김 의원은 1973년생으로 청년 비례대표로 19대 국회에 입성했다.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 캠프 청년특보, 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청년특별위원장 등을 지냈다. 새누리당 경제민주화실천모임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네티즌들은 “김경란 김상민 결혼, 잘 어울리는 것 같은데 결혼식 기대된다”, “김경란 김상민 결혼, 빨리만 하면 속도위반인가. 나이도 있으니 그냥 결혼할 수도 있지”, “김경란 김상민 결혼, 좋은 결정했어요. 알콩달콩 잘 살아보아요”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상민의원 “스펙 좋고 돈 많은 것이 기준 아냐” [입장 전문]

    김상민의원 “스펙 좋고 돈 많은 것이 기준 아냐” [입장 전문]

    김상민 의원 “스펙 좋고 돈 많은 것이 인생 기준 아냐…김경란 때문에 내가 변해”[입장 전문] KBS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 김경란(37)이 새누리당 김상민(41) 의원과 결혼한다. 두 사람은 지난 7월 한 행사에서 만나 인연을 이어오다,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 두 사람 모두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며, 봉사활동에도 관심이 있는 등 공통점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은 이미 양가 상견례도 마친 것으로 전해졌다. .김경란의 소속사 라인 엔터테인먼트 측은 26일 “내년 1월 6일 결혼한다”면서 “7월에 교제를 시작해서 10월에 양가 상견례를 마쳤다”고 밝혔다. 두 사람의 신혼집은 김 의원의 고향인 수원 장안구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상민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연인 김경란 아나운서와의 만남에 대해서 솔직한 감정을 털어놨다. 김 의원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란 사람이 결혼이란 걸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소위 비인기 종목이라 할 수 있는 정치 분야에 몸담고 있는 처지에다 오랜 시간 청년들과 NGO 운동 하겠다며 제 한 몸 잘 건사하지도 못하며 살아온 인생이기에 결혼은 제게 사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 제가 경란씨와 결혼을 한다니 온통 인터넷이 떠들썩합니다. 어찌 저 같이 부족한 사람이 경란씨 처럼 오랜 시간 좋은 회사에서 프로페셔널하게 일하고 대중들로부터 사랑받는 사람과 결혼하게 되었을까? 저도 믿겨지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고 전했다. 김 의원은 “제가 만나온 경란씨는 사람을 환경이나 배경으로 평가하지 않는 사람이었다”면서 “흔히들 말하는 스펙, 돈 많고, 집안 좋고, 잘 나가는 그런 것들이 인생의 중요한 기준이 되는 사람이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나에게 경란씨는 누가 뭐래도 평강공주”라면서 “열정과 간절함으로 들끓기만 했던 내 삶에 단단하지만 여유롭고 많은 사람들을 품으며 살아가는 삶을 알려주었다.반의 반쪽 인생도 못살아온 나에게 경란씨가 온전한 한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출발을 하게 해주고 있다”고 했다. 김경란은 1977년생으로 2001년 KBS 27기 공채 아나운서로 KBS 뉴스 9, ‘열린음악회’, ‘사랑의 리퀘스트’, ‘스펀지’, ‘영화 완전정복’, ‘생생 정보통’등 인기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2012년 봉사활동을 이유로 KBS를 퇴사한 뒤 방송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프리 선언 뒤에도 ‘토크&시티’, ‘신세계’, ‘더 지니어스’, ‘연애전당포’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활동하고 있다. 김 의원은 1973년생으로 청년 비례대표로 19대 국회에 입성했다.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 캠프 청년특보, 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청년특별위원장 등을 지냈다. 새누리당 경제민주화실천모임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네티즌들은 “김경란 김상민 결혼, 역시 김경란 씨가 대단한 인물이었네”, “김경란 김상민 결혼, 결혼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잘 사세요”, “김경란 김상민 결혼, 두 사람 정말 잘 어울려요. 앞으로 결혼한다니 너무 부럽다”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다음은 김상민 의원 페이스북 글 전문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란 사람이 결혼이란 걸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소위 비인기 종목이라 할 수 있는 정치 분야에 몸담고 있는 처지에다 오랜 시간 청년들과 NGO 운동 하겠다며 제 한 몸 잘 건사하지도 못하며 살아온 인생이기에 결혼은 제게 사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제가 경란씨와 결혼을 한다니 온통 인터넷이 떠들썩합니다. 어찌 저 같이 부족한 사람이 경란씨 처럼 오랜 시간 좋은 회사에서 프로페셔널하게 일하고 대중들로부터 사랑받는 사람과 결혼하게 되었을까? 저도 믿겨지지 않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제가 만나온 경란씨는 사람을 환경이나 배경으로 평가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흔히들 말하는 스펙 돈 많고, 집안 좋고, 잘 나가는 그런 것들이 인생의 중요한 기준이 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저 같은 사람과 결혼하려하지도 않았겠지요. 저는 오랜 시간 동안 저 처럼 평범한 집안, 특별한 배경이 없는 사람들도 이 세상에서 희망을 가지고 살 수 있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고 또 간절히 바라며 살아왔습니다. 꿈은 크고 마음은 간절했지만 뭐하나 제대로 가진 것 없었던 제가 그저 유일하게 할 수 있었던 일은 같은 꿈, 뜨거운 피를 가진 몇몇 젊은 친구들과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NGO단체들을 만들며 어렵고 힘든 사람들 편에 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주변의 일들을 하나하나씩 하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살아온 저의 삶을 경란씨는 누구보다 크게 평가해주고 인정해주었습니다. 좌충우돌 부족하기만 했던 저의 의정활동에도 지혜로운 조언자가 되어주었습니다. 무엇보다 약자와 어려운 사람들 편에서 어떤 힘과 권력에도 굴하지 말고 용기 있게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줄 것을 당부해주었습니다. 나에게 경란씨는 누가 뭐래도 평강공주입니다. 열정과 간절함으로 들끓기만 했던 저의 삶에 단단하지만 여유롭고 많은 사람들을 품으며 살아가는 삶을 알려주었습니다. 반의 반쪽 인생도 못살아온 저에게 경란씨가 온전한 한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출발을 하게 해주고 있습니다. 경란씨를 통해 저의 얼굴, 표정, 목소리, 마음, 행동까지 모든 것이 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제가 변했다구요. 그런 경란씨를 제가 어찌 사랑하지 않을수가 있겠습니까? 경란씨를 평생 지키고 사랑하며 함께 어렵고 힘든 사람들의 편에 서서 그들의 목소리가 되어줄 수 있는 인생을 살아가려합니다. 어린 시절 티브이 속 예쁘고 단정한 아나운서들을 보면서 그저 먼 곳에 있고 짝사랑이나 할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했었고, 가까워지는 건 저에겐 결코 오지 않을 현실일거라 단정하며 살아왔는데 그 한 사람이 오늘 저와 함께 이렇게 활짝 웃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도 이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여러분도 언젠가 멀리 바라보기만 했던 창문 밖의 풍경이 여러분의 현실로 꼭 다가오는 날이 오길 진심으로 바라고 기도합니다. 갑작스러운 소식으로 놀라신 분들도 많으실텐데 큰 격려와 축복으로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경란씨를 더 사랑하고 잘 지키며 행복하게 살아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상민 드림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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