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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ATE 검색어로 본 e세상 톡톡] 한나라당 돈봉투·디도스 ‘광클’ 고수 결혼·박지성 열애설 ‘시끌’

    [NATE 검색어로 본 e세상 톡톡] 한나라당 돈봉투·디도스 ‘광클’ 고수 결혼·박지성 열애설 ‘시끌’

    흑룡의 기운이 샘솟는 2012년 1월 둘째 주, 유난히 시끌벅적한 이슈가 많았다.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 수사와 학교 폭력 사건 등 정치·사회 이슈부터 박지성 열애설, 고수 결혼과 같은 대중 스타들의 소식까지 다양한 부분의 이야기들이 네티즌들의 눈길을 끌었다. 1위는 검찰의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봉투 수사와 관련, ‘박희태 전 비서 수사’가 차지했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 11일 박희태 국회의장의 전 비서 고명진씨의 경기 일산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앞서 한나라당 고승덕 의원이 전당대회 전 검은 뿔테안경을 쓴 고씨가 찾아와 ‘박희태’라고 적힌 명함과 300만원이 든 돈 봉투를 주고 갔다고 폭로한 것과 관련, 검찰은 고씨를 상대로 돈 봉투를 전달한 경위 등을 조사할 방침이다. 고 의원이 돈을 되돌려준 뒤 전화를 걸었다는 박 의장 측 인사도 곧 소환해 조사할 계획이다. 2위는 ‘대학가 디도스(DDos) 시국 선언’이었다. 서울대, 고려대, 카이스트와 연세대, 성균관대, 국민대, 중앙대, 중부대, 제주대, 서경대, 광운대, 충북대, 한성대 등으로 이루어진 전국대학교총학생회 모임이 10·26 재·보궐선거 당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디도스 테러 사건에 대한 시국 선언을 한 것과 관련, 지난 12일 건국대와 이화여대 학생들도 서울 대한문 앞에서 시국 선언에 동참했다. 3위는 최근 불거진 중고생 왕따 사건 등과 관련, ‘학교폭력 신고전화 117’이 차지했다. 정부와 한나라당은 최근 사회문제로 부각된 왕따 문제와 관련, 학교 폭력 신고전화를 ‘117’로 통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11일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한 협의결과를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4위에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 구글 회장의 환담이 올랐다. 9일 안 원장은 미국 실리콘밸리 내 구글 본사를 방문, 에릭 슈밋 구글 회장과 환담했다. 또한 안 원장은 자신의 기부 재단 모델로 생각하는 세계 최대의 기부 재단을 세운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빌 게이츠 회장을 만나고 돌아와 이달 말 안철수 기부 재단의 윤곽을 발표할 예정이다. 5위는 이준석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이 10일 트위터를 통해 공개한 하버드 대학교 졸업장이 차지했다. 그간 이 위원은 타진요 운영자 왓비컴즈와 강용석 의원으로부터 학력과 관련한 의혹을 받아 왔다. 6위는 진보신당 청년학생위원회가 제기한 병장 최저임금 소송이었고, 축구선수 박지성이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한 미스코리아 출신 재일교포 사업가와의 열애설이 7위, 지난해 7월 해병대 2사단의 인천 강화군 해안초소에서 총기를 난사해 상관 등 4명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김모 상병의 사형 선고 판결이 8위, 인기 배우 고수와 11세 연하의 미술학도 김모씨의 결혼 소식이 10위에 각각 올랐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민주화 운동의 대부’ 김근태 위독…“오늘이 고비”

    ‘민주화 운동의 대부’ 김근태 위독…“오늘이 고비”

    ‘민주화 운동의 대부’ 김근태(64)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위독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29일 한반도재단 관계자에 따르면, 김 이사장은 뇌정맥혈전증으로 서울대병원에 입원 치료중이었지만 몸 상태가 급격히 안 좋아져 중환자실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김 상임고문이 판정 받은 뇌정맥 혈전증은 뇌의 정맥이 막히면서 피가 역류하는 희귀 질환이다. 동맥으로 들어온 피가 정맥으로 제대로 빠져나가지 못한 탓이다. 마비·출혈·경련·의식장애를 비롯해 심하면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다. 이 관계자는 ”의료진에게 ‘뇌가 관할하는 장기들의 기능이 급격히 떨어져 위독한 상태에 빠졌다’고 전해 들었다.”고 밝혔다. 강금실 전 법무장관도 이날 트위터를 통해 “김근태 선배님이 위독하다십니다.”라면서 “오늘이 고비일 듯하답니다.”라고 전했다. 김 상임고문은 민주화운동 당시 겪었던 고문의 후유증으로 오랜 기간 병을 앓아왔다. 전두환 정권 시절, 청년학생 운동조직인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의 초대 의장을 맡았던 그는 민청련이 이적단체로 규정된 뒤 1985년 9월 검거돼 23일 동안 하루 5~6시간씩 전기고문·물고문 등 살인적인 고문을 10차례 이상 받았다. 이후 김 상임고문은 정치활동을 하는 중에도 파킨슨병, 뇌질환으로 투병하는 등 끊임없이 후유증에 시달려왔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34) 하얀 피부와 사후강직이 일러준 토막살인의 진실 전철역 화장실에 유기된 30대女의 시신 33) 억울한 10대 소녀의 죽음…두줄 상처의 비밀 추락에 의한 자살? 몸을 통해 타살 증언하다 32) 살해된 20대女의 수표에 ‘검은 악마’의 정체가 담기다 완전범죄를 꿈꾸던 엽기 살인마 31) 최악의 女연쇄살인범 김선자, 5명 독살과 비참한 최후 청산염으로 가족, 친구 무차별 살해 30) 동거女 잔혹하게 살해한 30대, 시신이 물속에서 떠오르자… 살인후 물속으로 던진 사건 그후 29) 살인자가 남기고 간 화장품 향기, 그것은 ‘트릭’이었다 강릉 40대女 살인사건의 전말 28) 소리없이 사라진 30대 새댁, 알고보니 들짐승이… 부러진 다리뼈가 범인을 지목하다 27) 40대 여인 유일 목격자 경비 최면 걸자 법최면이 일러준 범인의 얼굴 26) 목졸리고 훼손된 60대 시신… 그것은 범인의 속임수였다 ‘파란 옷’ 입었던 살인마 25) 그녀가 남긴 담배꽁초 감식결과 놀라운 사실이 살인 현장에 남은 립스틱의 반전 24) 택시 안에서 숨진 20대 직장女 살인범은 과연… 돈 버리고 납치한 이상한 택시 강도 23) 살인현장에 남은 별무늬 운동화 자국의 비밀 60대 노인의 치밀한 트릭 22) 70% 부패한 시신 유일한 증거는 ‘어금니’ 억울한 죽음 단서 된 치아 21) 자다가 갑자기 세상을 뜨는 젊은 남자들…누구의 저주인가? 청장년 급사증후군의 비밀 20) 아파트 침대 밑 女 시신 2구…잔인한 ‘진실게임’ 결과는? 누명 벗겨준 거짓말 탐지기 19) 자살이라 보기엔 너무 폭력적인 죽음…왜? 가해자·피해자는 하나였다 18) 헤어드라이어로 조강지처 살해한 50대의 계략… 몸에 남은 ‘전류반’은 못 숨겼네 17) 물속에서 떠오른 그녀의 흰손…토막살인범 잡고보니 바다에서 건진 시신 신원찾기 16) 이태원 옷집 주인 살인사건…20대 여성이 지목한 범인은? 찢어진 장부의 증언 15) 무참히 살해된 20대女…6년만에 살인범 잡고보니… 274만개의 눈이 잡은 연쇄살인범의 정체 14) 백골로 발견된 미모의 20대女, 성형수술만 안 했어도… 가련한 여성의 한 풀어준 그것 13) 車 운전석에서 질식해 숨진 그녀의 주먹쥔 양팔 12) 불탄 시신의 마지막 호흡이 범인을 지목하다 화재사망 속 숨어있는 타살흔적 증거는 11) 자살한 40대 노래방 여주인, 살인범은 알고 있었다 생활반응이 알려준 사건의 진실 10) 소변 참으며 물 마시던 20대女, 갑자기 몸을 뒤틀며… 생명을 앗아가는 ‘죽음의 물’ 9) “그날 조폭은 왜 하필 남진의 허벅지를 찔렀나?”… 칼잡이는 당신의 ‘치명적 급소’를 노린다 8) 변태성욕 30대 살인마의 아주 특별한 핏자국 혈흔속 性염색체의 오묘한 비밀 7) 정자가 수상한 정액…씨없는 발바리’ 과학수사 얕봤다가 정관수술까지 한 연쇄 성폭행범 6) 천안 母女살인범, 현장에서 대변만 보지 않았더라도… ‘미세증거물’ 속에 숨은 사건의 진상 5) 강간 후 살해된 여성, 그리고 부검의 반전 죽을 때까지 여성이고 싶었던 여성의 사연 4) 살해당한 아내의 눈속에 담긴 죽음의 비밀… 흔해서 더 잔인한 위장 살인의 실체는 3) 친구와 함께 차안에서 아내에 몹쓸짓 한 남편 …사고로 위장한 최악의 선택 2) 죽음의 性도착증 ‘자기 색정사’ 혼절직전의 성적 쾌감 탐닉…‘질식에 중독되다’ 1) 데이트 강간을 위한 ‘악마의 술잔’ 한모금에 블랙아웃…24시간내 검사 못하면 미제사건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전체 시리즈 목차보기 (클릭)
  • 김근태 고문 뇌정맥혈전증… 딸 결혼식 참석 못해

    김근태 고문 뇌정맥혈전증… 딸 결혼식 참석 못해

    ‘민주화 운동의 대부’ 김근태(64) 민주당 상임고문이 뇌정맥혈전증으로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 김 상임고문이 이사장을 맡고 있는 한반도재단은 8일 “김 이사장이 지난달 29일 서울대병원에서 뇌정맥혈전증 진단을 받고 약물치료 중”이라면서 “빠르게 회복 중이며 예후가 좋은 편”이라고 밝혔다. 안정을 취하기 위해 면회는 사절하고 있다. 김 상임고문은 한 달 전 심하게 감기 몸살이 난 뒤 차도가 없어 병원에서 검사를 받다가 뇌정맥혈전증 진단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측근은 “몸 움직임이 다소 불편하지만 인지 능력은 정상”이라면서 “한 달 정도 입원 치료가 끝나면 퇴원 후 통원치료를 받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10일 딸 병민씨의 결혼을 앞두고 불필요한 소문이 도는 것을 막기 위해 투병 사실을 알렸다고 한반도재단 측은 전했다. 한 시민사회단체에서 일하는 병민씨는 서울 종로구 부암동의 하림각에서 박선숙 민주당 의원실의 비서로 일하는 김동규씨와 결혼식을 올린다. 두 사람은 경희대 동문이다. 주변에선 그의 투병이 민주화운동 당시 겪었던 고문의 후유증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전두환 정권 시절, 청년학생 운동조직인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의 초대 의장을 맡았던 그는 민청련이 이적단체로 규정된 뒤 1985년 9월 검거돼 23일 동안 하루 5~6시간씩 전기고문·물고문 등 살인적인 고문을 10차례 이상 받았다. 이후 1995년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 활발한 정치활동을 벌이면서도 시간이 지날수록 손이 떨리고 한여름에도 콧물 때문에 고생하는 등 심각한 고문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다 2007년 대선 직전엔 파킨슨병 진단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한 측근은 “지역(서울 도봉갑) 조기축구회에서 열심히 운동하고 19대 총선 출마를 준비해 왔다.”고 말했다. 최근엔 야권 통합에 주력하며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을 만나고, 올 초에는 당내 민주화 운동 출신 정치인과 486 인사들이 결합한 ‘진보개혁 모임’을 발족하며 대표로 활동했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민청학련’ 최권행 교수 ‘무죄’

    지난 197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실형이 확정됐던 최권행(57) 서울대 불어불문학과 교수와 백영서(58) 연세대 사학과 교수가 재심을 통해 37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서울고법 형사11부(부장 강형주)는 1974년 서울대 재학 중 민청학련 사건으로 내란 음모와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실형을 받았던 최 교수와 백 교수 등 4명에 대한 재심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고 29일 밝혔다. 재판부는 “최 교수 등이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킬 것을 모의했다고 단정할 만한 증거는 없다.”고 밝혔다.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 경찰 ‘친북 게시물’ 한총련홈피 폐쇄

    경찰청이 수천 건의 친북 게시물이 게재된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홈페이지(http://hcy.jinbo.net/)를 폐쇄했다고 26일 밝혔다. 경찰청 보안국은 “‘선군 태양 김정일 장군’ 등 5417건의 이적 문건이 게시된 한총련 홈페이지를 지난 6월 23일 방송통신위원회에 폐쇄 요청한 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지난달 26일 폐쇄했다.”고 밝혔다. 국내에 서버가 있는 사이트를 친북 게시물을 이유로 폐쇄한 것은 지난해 7월 ‘조국통일범민족청년학생연합 남측본부’ 홈페이지 이후 두 번째다. 경찰은 “이 홈페이지에 올라온 이적 문건이 누리꾼에게 그대로 전파되면서 북한 체제를 찬양하거나 선전하는 도구로 이용돼 폐쇄하게 됐다.”면서 “홈페이지 관리자나 운영자가 명확하지 않아 누가 친북 성향의 글을 올렸는지 조사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진보네트워크센터는 기존 한총련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한총련이 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라는 이유로 홈페이지조차 이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중대한 인권침해”라고 주장했다. 백민경기자 white@seoul.co.kr
  • [中 공산당 90주년] 中 청년들이 본 ‘90세’ 공산당

    [中 공산당 90주년] 中 청년들이 본 ‘90세’ 공산당

     1921년 창당 당시 57명에 불과했던 중국 공산당원은 지난해 말 현재 8029만 9000명으로 90년 만에 140만배 이상 늘었다. 전체 중국인 17명당 1명꼴로 공산당원인 셈이다. 35세 이하 당원 비율이 아직 24.3%에 불과하지만 매년 300만명 이상씩 늘어나는 신규 당원의 81.8%가 35세 미만이고, 40%가 대학생이라는 점에서 중국 공산당은 오히려 점점 젊어지고, 고학력화되고 있다. 중국 교육부는 최근 베이징, 상하이 등 전국 15개 성·시, 140개 대학, 2만 5000명의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조사 대상자의 80%가 공산당 입당을 희망했다고 밝혔다. 90회 생일을 맞은 중국 공산당은 이런 조사 결과에 고무돼 있다. 신화통신 등 관영언론들은 신세대들이 개혁·개방 이후 공산당의 주도로 놀라운 발전을 이루고 있는 모습에 감동하고 있으며, 이것이 청년학생들을 공산당으로 끌어들이는 흡인력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실제 같은 조사에서 89%가 넘는 대학생들은 공산당의 집정 능력이 더욱 강화될 것이라는 것을 낙관했다.  중국인민대 대학원생 천레이(陳雷)는 “유사 이래 전체 중국 인구를 먹여 살린 정권은 공산당뿐”이라면서 “공산당은 대약진운동이나 문화대혁명 등의 과오도 저질렀지만 개혁·개방을 통해 중국을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시켰다.”고 공산당의 국가경영 능력을 높게 평가했다. 정식 입당을 기다리고 있는 예비당원인 가오젠(高健)은 “중국 공산당은 중국에서 가장 수준 높은 조직”이라고 평가한 뒤 “많은 당원들이 입당 전에는 열심히 당과 국가의 개혁 문제에 대해 공부하지만 일단 입당하면 나태해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바로잡기 위해 당원들의 학습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애정을 담아 충고했다. 상당수 젊은이들은 ‘공산당이 없었다면, 신중국도 없었다’(沒有共産黨, 沒有新中國)는 공산당의 구호처럼 현재 중국에 공산당을 대체할 대안이 없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일부 젊은이들은 체제 내 점진적 개혁이 빈부격차 등 현재의 모순을 해결하는 유일한 방안이라고 주장했다. 대학원생 팡자웨이(房佳僞)는 “중국의 많은 문제는 성장 과도기의 불가피한 진통이지 공산당 집권에 따른 문제가 아니다.”라면서 “젊은이들은 체제를 비판만 하기보다 체제 안에 들어가 중국의 발전을 도모하는 쪽으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방자웨이의 친구인 천위레이(陈聿雷)도 “농민공 등의 문제는 빨리 해결돼야 한다.”면서도 “중국의 발전은 공산당의 영도하에 계속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산당에 대한 쓴소리도 흘러나온다. 베이징 지역의 한 명문대생은 중국 공산당의 의사결정 시스템에 대해 ‘대충 생각해서 결정한 뒤, 가슴을 탕탕 쳐 가며 보장하지만, 결국 다리를 탁 친 뒤 후회하고, 엉덩이를 때리며 집으로 돌아간다.’며 ‘중국 특색의 의사결정시스템’이라고 조롱하기도 했다. 법치나 민주주의 의사결정이 아니라 후진적인 인치(人治)시스템에서 모순이 돌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베이징사범대 4학년생인 류젠궈(劉建國)도 “중국 공산당은 권력과 돈이 특정계급에 집중되면서 국민들의 불신이 쌓여가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면서 “기득권층이 아닌 새로운 개혁주도 세력이 나와야 할 때”라고 꼬집었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주링허우(90後·1990년대 이후 출생자) 세대 가운데 상당수는 공산당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베이징 시내 외국계 기업에서 근무하고 있는 허스원(何世文)은 “지금 중국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것이 돈”이라면서 “정치나 공산당에는 관심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中 공산당 90주년] 공산당을 이끈 10명의 주역

    ●천두수(陳獨秀·1879~1942) 공산당 초기 지도자. 청년 시절 반청(反淸) 활동에 몸담고, 5·4운동 후에는 마르크스 사상에 심취. 베이징대 교수 시절 ‘매주평론’ 등 사상지 발간. 상하이 지역 공산당 조직 결성. 제1차 당대회에 불참했지만 초대 중앙국 서기에 선임되는 등 5차 때까지 중앙국 서기, 중앙국 집행위원장, 총서기 등 역임. ●마오쩌둥(毛澤東·1893~1976) 두 말할 필요 없는 중국 공산당 역대 최고지도자이자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주역. 자신이 결성한 후난성 공산당 조직을 대표해 제1차 당대회 참석.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며 무장봉기 주도. 대장정 도중인 1935년 1월 ‘준이(尊義)회의’에서 당권 장악. 신중국 건국 후 당과 국가의 전권을 장악.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 등의 대오류에도 불구하고, 건국의 아버지로 신격화. ●저우언라이(周恩來·1898~1976) 혁명운동 때부터 사망할 때까지 마오쩌둥과 평생을 함께한 동지이자 영원한 2인자. 건국 후 초대 총리(외교부장 겸임)를 맡아 사망할 때까지 27년간 역임. 탁월한 정치적, 외교적 수완과 함께 고도의 청렴성으로 사망 후에도 중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역대 총리로 추앙받음. ●주더(朱德·1886~1976) 중국 10대 원수 가운데 한 명. 독일 유학 중 저우언라이의 추천으로 중국 공산당 가입. 소련에서 군사학을 전공한 뒤 귀국해 국민당군에 합류. 1928년 병력 1만명과 함께 마오쩌둥의 징강산 해방구에 가담. 제2차 국공합작 때는 8로군 총사령관으로 항일전쟁을 지휘. 건국 후 인민해방군 총사령관, 국가부주석, 중앙군사위 부주석 등을 역임. 문화대혁명 때 물러났다가 1971년 복권. ●펑더화이(彭德懷·1898~1974) 6·25전쟁에 인민지원군 총사령관으로 참전한 중국 10대 원수 가운데 한 명. 1928년 입당해 항일전쟁 때 부총사령관으로 주더 총사령관을 보필. 건국 후 국방위원회 부주석, 국무원 부총리, 국방부장 등을 역임하며 군 현대화 추진. 1959년 루산회의에서 마오쩌둥의 대약진운동 실패 등을 지적하다 실권. ●덩샤오핑(鄧小平·1904~1997) 중화인민공화국 제2세대 지도자. 개혁·개방의 총설계사. 두 차례 실권됐다가 복권된 ‘오뚜기’. 항일전쟁 및 내전 시기에는 정치공작, 건국 후에는 국정에 참여. 실용주의 노선을 주창해 마오쩌둥 추종자들과 대립. 마오쩌둥 사후 화궈펑(華國鋒)과의 권력투쟁 끝에 실권 장악. 개혁·개방 선도하며 중국의 발전 견인. “자본주의에도 계획이 있고, 사회주의에도 시장이 있다.”며 ‘사회주의 시장경제’ 도입. ●후야오방(胡耀邦·1915~1989) 개혁파 지도자. 1989년 4월 사망하자 청년학생들이 그를 추모하기 위해 톈안먼(天安門) 광장에 모여들면서 ‘톈안먼 사태’ 촉발. 1928년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에 가입한 뒤 홍군의 일원으로 대장정 참여. 건국 후 공청단 제1서기 등으로 공청단 업무 주관. 1980년 2월 당 총서기로 선출된 뒤 개혁 및 실용주의 정책을 펼쳤으나 1987년 대학생 시위에 미온적으로 대처했다는 이유 등으로 실각. ●장쩌민(江澤民·1926~ ) 제3세대 지도자. 상하이교통대 재학 시절인 1946년 입당. 건국 후 공장 관리자 및 공업연구소 책임자 등으로 일하다 문화대혁명 때 공직에서 축출. 복권된 뒤에는 상하이시 당서기 등으로 승승장구하면서 핵심인물로 부상. 1989년 자오쯔양(趙紫陽) 총서기가 실각하자 총서기로 선출됨. 1990년 4월 덩샤오핑의 마지막 공직이었던 국가중앙군사위원회 주석에 선출되면서 당·정·군 전권 장악. 재임 중 한·중 수교,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등 성사. ●후진타오(胡錦濤·1942~ ) 제4세대 지도자. ‘퇀파이’(團派·공산주의청년단 출신)의 대부. 칭화대 수리공정학과 졸업 후 학교에 남아 정치보도원으로 후배들의 정치교육 담당. 문화대혁명 때 간쑤성 수력발전소 노동자로 하방됐지만 승진을 거듭해 덩샤오핑에 의해 4세대 지도자로 낙점돼 1992년 최연소로 정치국 상무위원에 선출됨. 이후 2002년 당 총서기, 2003년 국가주석, 2004년 중앙군사위 주석에 선출되면서 당·정·군 장악. ‘과학발전관’을 주창. ●시진핑(習近平·1953~ ) 후진타오의 뒤를 이을 5세대 핵심지도자. 아버지는 국무원 부총리 등을 역임한 시중쉰(習仲勳)으로 ‘태자당’(당·정·군 혁명원로들의 자제그룹) 계열. 문화대혁명 때 아버지의 실각 등으로 중학교 재학 중 산시성 오지로 하방. 10번이나 입당이 거부될 정도로 시련을 겪었으나 경력을 쌓고, 저장성 당서기 등을 거쳐 2007년 상하이시 당서기에 오른 뒤 같은 해 제17차 당대회에서 정치국 상무위원에 선출됨. 이듬해 국가부주석, 지난해 중앙군사위 부주석에 선출돼 후계 입지 공고화.
  • [차 한잔 하실까요] 고재득 성동구청장

    [차 한잔 하실까요] 고재득 성동구청장

    “무상급식은 국민 식생활 개선, 비만 대책 등과 맞물려 실시해야 할 국가적 사업입니다. 급식은 농산물의 유통과 검사, 보관 등 체계적인 시스템과 연계해 이뤄져야 하기 때문에 단체장이나 교육감이 의욕을 갖고 한다고 될 사업이 아닙니다. 국가가 할 사업을 지방자치단체에 떠넘기다 보니 갈등을 빚게 됐죠. 용어도 무상급식이 아니라 ‘의무급식’으로 하는 게 맞습니다.” 전국에서 유일한 4선 민선 기초단체장은 11일 서울시와 시의회 간의 무상급식 갈등에 대한 해법을 묻자 이렇게 잘라 말했다. 고재득(65) 성동구청장 얘기다. 1995년 초대 때 당선된 뒤 2006년까지 12년 동안 구청장을 지냈다. 3선 출마 제한 때문에 4년을 쉬었지만 지난해 6·2 지방선거에서 다시 구청장에 올랐다. 현재 서울시 구청장협의회장을 맡아 초선 구청장들의 ‘멘토’(mentor·조언자) 역할을 한다. “초대 때보다 살림이 더 어려워졌어요. 정말이지 지방자치제가 고사 위기에 놓였습니다. 고령화 사회로 진행되면서 복지 수요는 크게 늘어나는데 자주(自主) 재원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25개 구청을 아울러야 할 그는 지난달 열린 ‘지방재정 위기 극복 토론회’에 대한 이야기부터 꺼냈다. “자치구 재정 규모는 초대 때보다 커졌지만 구청장이 재량권을 가지고 운영할 수 있는 예산은 점차 줄어 현재 전체의 5%도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서울시와 자치구 간의 불편한 관계도 털어놨다. “서울시 전체 예산은 30조원에 가까운데 자치구 지원금은 25곳을 다 합쳐도 6억~7억원뿐입니다. ‘시민만 있고 구민은 없는’ 정책이 나올 수밖에 없는 셈이지요. 무조건 사업만 자치구에 떠넘길 게 아니라 예산까지 따라와야 지방자치가 정착될 수 있죠.” 구청장이라는 직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다른 것은 해보지 않아 잘 모르겠다.”며 미소를 지었다. 그는 “구는 직원만 1200명이 넘는 거대한 조직이라 직원들이 힘을 모으면 못 할 게 없다.”면서 “상당히 우수한 인력들이라 재정적인 여유만 있다면 훨씬 더 많은 정책을 펼 수 있을 텐데 아쉽기만 하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뉴타운 사업에 대해서도 “살고 있는 사람이 더 잘 살도록 해야지 쫓아내는 개발이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동시다발적인 재개발로 34만 명이던 구 인구가 30만 명으로 줄었다.”며 순환 개발을 주장했다. “동네별 소규모 재개발을 추진해 잠시 옆 동네에서 전세를 살다 다시 돌아와 정착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해야 합니다. 또 천편일률적인 아파트 위주의 재개발이 아니라 단독주택을 유지하는 개발도 필요합니다.” 시내 25곳 중 18곳이 초선 구청장이다 보니 고 구청장은 이들의 멘토 역할도 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당선이 발표된 직후 초선 구청장들을 국회 귀빈식당으로 불러 모았다. 그는 “구청장 10년을 해도 모르는 것이 적잖다.”며 “일과 주민들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덤벼야 한다.”고 말했다. “조금 안다고 마음을 놓거나 자만심을 가지면 실패할 수 있습니다. 모르는 것은 8~9급 공무원들에게도 물어봐야 합니다. 아는 체만 해서는 발전이 없습니다.” 취임 1년을 앞둔 초선 구청장들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냐고 묻자 그는 “의욕이 넘치고 진취적이다. 아이디어도 저보다 훨씬 많다. 지금은 오히려 그분들의 정책을 벤치마킹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런 그에게도 멘토가 있었다. 특히 김성순 전 송파구청장과 정영섭 전 중랑구청장, 김동일 전 중구청장, 조남호 전 서초구청장 등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한다. “함께 구청장을 시작했던 그분들은 전에 관선 구청장 등 행정 경험을 쌓았던 터여서 수시로 전화해 물어봤습니다.” 그와 성동구의 인연은 4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4년 민청학련(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사건으로 수배를 받았을 때 한양대에 다니며 행당동 철길 인근에 살던 친구 집에서 숨어 지냈다. 그 뒤 1급인 국회 정책연구위원으로 있다가 조세형(1931~2009) 전 국민회의 의원의 권유로 구청장에 나서게 됐다. 그는 지역을 인정이 넘치는 동네로 만드는 게 꿈이라고 했다. “시골 마을처럼 빈대떡을 부쳐 이웃과 나눠 먹는 도시 속의 시골, 그런 곳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아이들도 그렇게 커야 지역에 애정이 생깁니다.” 그는 주민들에게 동마다 수영장과 도서관을 만들어 주고 싶다고도 했다. “도서관 바닥에 장판을 깔아 그 위에서 아이들이 책을 보며 뒹굴고 잠도 자고 하는 편안한 도서관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래야 아이들이 책과 더 친숙해질 수 있습니다.” 고 구청장은 “‘위정자는 많고 적음이 아니라 고르지 못함을 탓한다’는 말처럼 주민들이 고르게 잘 살 수 있도록 하는 목민관이 되겠다.”며 말을 맺었다. 글 사진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법원 “민청학련 피해자 등 31명에 71억 배상”

    민청학련 사건의 피해자들에게 국가가 71억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6부(부장 임범석)는 이강철(64)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비서관 등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 피해자 3명과 가족 등 31명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고 13일 밝혔다. 재판부는 ▲수사관이 이 전 수석 등을 체포·구속할 때 적법절차를 어긴 점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 점 ▲밤샘수사·고문·협박으로 허위 자백을 받은 점 ▲법원에서 증명력이 없거나 부족한 증거에 따라 유죄가 확정된 점 등을 고려할 때 국가가 이들이 입은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가 지급을 명한 배상액은 원금 25억원에 1974년 무렵부터 연간 5% 비율로 줘야 하는 지연이자 46억원을 합쳐 71억원에 이른다. 이들은 반국가단체인 민청학련을 조직, 공산비밀지하조직인 옛 인민혁명당과 일본계 조총련의 배후 조종을 받아 폭동을 유도해 국가보안법과 대통령 긴급조치 위반, 내란예비음모 및 내란선동, 반공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돼 1975년 4월 8일 대법원에서 징역 15년, 자격정지 15년이 확정됐다.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 “과거사 피해 손해배상 항소심 변론 종결시점”

    과거사 피해자에게 국가가 손해배상을 할 때는 이들이 처벌받은 때가 아니라 손배소송 항소심 변론이 종결된 시점을 기준으로 지연손해금을 산정해야 한다는 새로운 판결이 대법원에서 나왔다. 이에 따라 현재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과거사 피해자들의 배상금이 지금보다 크게 줄어들게 됐다. 대법원 3부(주심 박시환 대법관)는 13일 북한에 동조한 혐의로 사형당한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의 유족 및 피해자 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한 원심을 파기했다. 재판부는 “국가가 유족 및 피해자들에게 2010년 3월 16일부터 이날까지 연 5%의 지연손해금 지급을 명한 부분을 초과한 국가 패소 원심 판결은 모두 취소한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이 하급심 판결을 파기한 뒤 원심 재판부에 돌려보내지 않고, 직접 재판하는 파기자판(破棄自判)을 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재판부는 또 아람회 사건과 울릉도 간첩단 및 납북어부 사건 피해자 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도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같은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가 이들 사건 원심을 파기한 이유는 “지연손해금 산정을 수긍할 수 없다.”는 것. 조용수 사장의 경우 원심 재판부는 국가가 조 사장 유족 및 피해자에게 각각 1억 9700만~3억 5000만원을 배상하고, 이와 별도로 조 사장이 사형당한 1961년부터 매년 연 5%의 지연손해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아람회 사건 등도 피해자들이 처벌됐던 1975~1984년을 기준으로 지연손해금 지급을 명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원고들이 과거 불법으로 처벌받은 시기를 기준으로 지연손해금을 산정하면 물가와 국민소득 수준 등의 영향으로 현저하게 많은 배상금을 허용하게 된다.”며 “지연손해금은 손배소송 항소심 변론이 끝난 날부터 산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로 과거사 피해자들이 받을 수 있는 배상금은 지금보다 크게 줄어들게 됐다. 수십년 전 ‘억울’하게 처벌받았던 과거사 피해자들은 청구한 손해배상액보다 지연손해금이 많은 경우가 종종 있는데, 앞으로는 지연손해금을 거의 못 받게 되는 것이다. 조용수 사장 유족 등은 서울고법에서 99억여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났지만, 대법원 선고로 인해 29억여원으로 줄어들었다. 아직 확정 판결이 나지 않은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피해자 등도 향후 상급심에서 배상액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 [부고] ‘인권운동 대부’ 이돈명 변호사

    유신 시절 시국 사건의 변론을 도맡아 한국 인권운동의 대부로 알려진 이돈명 변호사가 11일 오후 서울 대치동 자택에서 별세했다. 89세. 고인은 조선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고등고시 사법과(3회)에 합격해 판사로 근무하다 1963년 변호사로 개업했다. 1974년 4월 발생한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의 변론을 맡으면서부터 시국 사건의 단골 변호인이 됐다. 이어 인혁당사건, 김지하 반공법 위반 사건, 청계피복 노조사건, 크리스천아카데미 사건, 광주 민주화운동 등 1970년대 이후 주요한 시국 사건에 빠지지 않고 활약해 황인철·조준희·홍성우 변호사와 함께 ‘인권 변호사 4인방’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1986년에는 인권 변호의 취지에 공감하는 인사들과 함께 ‘정의 실현 법조인회(정법회)’를 결성했는데 이 모임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으로 이어졌다. 고인은 조선대 총장, 상지학원 이사장, 천주교 인권위원회 이사장 등을 지냈고 최근까지 법무법인 덕수 대표변호사로 재직했다. 유족으로는 아들 영일(전 한국은행 국장), 동헌(전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장), 사헌(미국 거주)씨와 딸 영심, 영희씨가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발인은 15일 오전 8시다. (02)3410-6914.
  • 36년만에 ‘법원의 사죄’

    36년만에 ‘법원의 사죄’

    “영광입니다.” 1974년 7월21일 군사재판(비상군법회의) 법정. 대통령긴급조치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된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김병곤(당시 21세·1990년 작고)씨는 검찰이 사형을 구형하자 이렇게 외쳤다. 변론을 맡았던 강신옥 변호사는 “차라리 피고인 석에서 그들과 같이 재판을 받는 게 편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가 법정모욕죄로 구속됐다. 우리 사법사상 가장 ‘치욕스러운 날’로 남은 이날에 대해 법원이 36년 만에 사죄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부장 홍승면)는 30일 대통령긴급조치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돼 유죄가 확정됐던 이철(62) 전 한국철도공사 사장 등 12명에 대해 무죄 또는 면소를 선고했다. 무죄를 선고받은 이들 중에는 검찰의 사형 구형에 “영광입니다.”라고 응수한 김씨도 포함돼 있었지만, 부인이 대신 선고를 들었다. 이미 20년 전 작고했기 때문이다. 군부의 서슬이 시퍼렇던 1974년 서울대에 재학 중이던 김씨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에 반대하는 운동을 펼치다 “공산주의자들의 조종을 받아 인민혁명을 시도했다.”는 누명을 뒤집어썼다. 그의 나이 고작 21세. 비상군법회의 검찰부가 구속 기소한 180명 중 가장 어렸다.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김씨는 상급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고, 이듬해 형 집행정지로 풀려났다. 하지만 민주화를 향한 ‘투쟁’은 멈추지 않았고, 무려 6번이나 더 옥살이를 했다. “군사 독재를 결코 대물림하지 않겠다.” 야학교사를 하다 김씨의 반려자가 된 박문숙(55)씨는 그가 항상 입버릇처럼 했던 말을 전했다. 두 딸이 태어났지만 ‘옥살이’ 탓에 실제 얼굴을 본 적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김씨가 안동교도소에 수감돼 있던 어느 날 가족과 특별면회가 주어졌다. 박씨는 두 딸과 함께 비행기에 올랐지만, 문득 어린 딸들이 ‘자랑스러운’ 아버지를 이상하게 여길까 걱정됐다. 결국 “지금 미국에 있는 아버지를 만나러 간다.”며 딸들을 데려가야 했다. 김씨는 1990년 12월 위암으로 37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김씨는 20년이 더 지나고 나서야 ‘삶’을 인정받았다. 민청학련 사건 재심을 맡은 재판부는 “법원은 부당한 공권력 행사로부터 국민을 보호해야 할 사명이 있음에도, 민청학련 사건에서는 재판 그 자체가 인권침해 수단이었다.”고 사죄했다. 또 “30년이 넘도록 이를 바로잡지 못한 것도 법원의 잘못”이라며 “피고인들의 용기와 희생으로 민주화가 이룩된 만큼 국민의 자유와 권리 수호라는 사명을 다시 한번 되새기겠다.”고 다짐했다. 김씨가 “영광입니다.”라고 응수했던 일화가 전해지자, 시인 김지하는 ‘고행 1974’라는 글에서 이렇게 적었다. “분명히 사형은 죽인다는 말이다. 그런데 ‘영광입니다’. 확실히 그렇다. 우리는 드디어 죽음을 이긴 것이다. 병곤이 한 사람, 나 한 사람이 이긴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집단적으로 이긴 것이다.”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 [北 김정은 3대세습 공식화] “거리마다 환영현수막·깃발… 대회장 인근엔 검은 세단 수백대”

    [北 김정은 3대세습 공식화] “거리마다 환영현수막·깃발… 대회장 인근엔 검은 세단 수백대”

    제3차 조선노동당 대표자회가 열린 28일 북한 평양에서 각종 관련 행사가 펼쳐져 축제 분위기를 연출했다고 중국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반면 북한 매체는 이날 당 대표자회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당 총비서로 재추대됐다는 소식 이외에 다른 보도를 전혀 내놓지 않았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당 대표자회 개최를 알리는 현수막과 플래카드, 깃발 등이 평양 전체를 뒤덮은 가운데 도심 주요 거리는 곱게 차려입은 여성들로 가득차 대표자회 성공적 개최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평양역과 평양대극장 등 공공시설 주변에서는 다양한 야외공연이 마련돼 근처를 오가던 평양 시민들의 주목을 끌었다. 대회장소로 추정된 만수대 의사당에서 멀지 않은 4·25 문화회관 밖에서는 경찰이 교통을 일부 통제한 가운데 버스 수십대가 주차된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인근 인민문화궁전 밖에도 검은색 세단 수백대가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신화통신은 또 평양의 주요 거리에는 붉은 색깔의 인공기들과 노동당기, 소형 인공기들이 어우러져 붉은 물결을 이뤘다고 전했다. 이른 아침부터 평양 시민들이 몰려 나와 거리 청소를 하고 도로 주변 가로수를 정비했다. 김일성광장에는 수천명의 학생들이 소형 인공기를 흔들며 각 지역 대표들을 환영하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반면 조선중앙TV 등 북한 매체들은 이날 오후 2시 ‘중대 방송’을 통해 김 위원장의 총비서 추대를 전했을 뿐 다른 내용은 함구했다. 조선중앙통신은 밤 늦게 김 위원장의 노동당 총비서 재추대를 축하하는 평양시 청년학생들의 경축무도회가 평양체육관과 개선문 광장 등에서 열렸다고 보도했으나 당 대표자회 진행 관련 보도는 없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붉은악마, 오늘(21일) 밤 봉은사서 ‘북한대표팀’ 응원

    붉은악마, 오늘(21일) 밤 봉은사서 ‘북한대표팀’ 응원

    북한 축구대표팀의 월드컵 선전과 한반도 평화를 기원하는 거리 응원전이 서울 강남구 봉은사에서 열린다. 20일 봉은사와 시민단체 진실을알리는시민들 측은 “21일 저녁 8시 30분 북한과 포르투갈의 월드컵 경기에 맞춰 봉은사 사찰 내 주차장 마당에 대형 멀티비전을 설치해 경기를 관람할 예정이다. 응원가로는 ‘오~피스 코리아!’(Oh, Peace Korea!)를, 응원 도구로는 한반도 그림이 그려진 단일기를 사용한다.”고 밝혔다. 이번 봉은사에서의 응원전은 영화배우 문성근 씨와 대학시절 세계청년학생축전 참석차 방북했던 임수경 씨 등이 운영하는 인터넷방송 ‘라디오21’ 측의 제안으로 성사됐다. ’라디오 21’ 측은 “월드컵을 진정한 평화의 축제로 만들자.”며 행사를 추진하게 된 취지를 밝혔다. 이에 종로 보신각에서 북한-포르투갈전 거리응원전을 준비하던 시민단체 진실을알리는시민들 측은 장소를 바꿔 봉은사에서 함께 응원을 하기로 결정했다. 이들은 “시민들의 합의로 장소를 바꿔 봉은사 응원전에 참여하기로 했다. 단지 축구응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인 북한 축구팀을 응원하면서 평화의 메시지를 세상에 알리고자 한다.”고 전했다. 이와같은 북한팀의 월드컵 거리응원을 두고 네티즌들은 “정대세가 한 골 넣었으면 좋겠다.”, “요즘 북한과 분위기가 안 좋은데 이번 일을 계기로 동족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으면 한다.”고 호응했다. 한편 이번 응원전을 위해 봉은사와 진실을알리는시민들 측은 30대의 텔레비전과 빔프로젝트 등의 장비를 동원할 예정이다. 사진 = 피파(FIFA) 홈페이지 서울신문NTN 김민경 인턴기자 cong@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日 조선학교 무상교육 논란

    │도쿄 이종락특파원│일본에서 조총련계 조선학교(고교과정)를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일본 정부가 추진하는 고교 무상교육 대상에 조선학교를 포함할지가 논란의 핵심이다.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총리가 지난달 25일 “조선학교가 뭘 가르치는지 모르겠다.”고 언급한 뒤 일본 보수·진보 세력이 모두 나서 조선학교를 두고 입씨름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문부과학성은 조선학교를 포함한 외국계 학교 고교과정을 학비무상화 대상에 포함할지 여부에 대한 최종 검토를 거쳐 이달중 정부 방침을 발표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일본 언론은 조선학교가 무상화 대상에 포함되는지 여부를 놓고 상반된 보도를 하는 등 초미의 관심을 보이고 있다. 조선학교를 무상교육 대상에서 빼야 한다는 말을 꺼낸 건 나카이 히로시 납치문제담당상이었다. 북한의 일본인 납치문제를 고려해 조선학교를 제외해 달라고 가와바타 다쓰오 문부과학상에게 요청한 사실이 지난달 21일 언론에 보도됐다.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가 이를 일본의 재일한국인 차별 문제로 접근하는 사실이 전해지면서 논란이 불붙기 시작했다. 사민당 의원들에 이어 중의원(하원) 문부과학위원회 의원들이 도쿄에 있는 조선학교를 찾았다. 조선학교는 매년 지방자치단체에 수업·재무 상황을 보고하고 있고 학생 중에 조선국적(법률상 무국적 취급)을 가진 이들은 41%에 불과하고 한국 국적(51%)이나 일본·중국 국적자도 다닌다는 점을 강조하며 적극 반발했다. 재일조선청년학생협의회는 11일과 12일 전국 주요 도시 29곳에서 규탄가두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언론의 보도도 엇갈리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12일 조선학교를 무상화 대상에서 일단 제외한다는 방침을 굳혔다고 보도했다. 반면 산케이신문은 전날 조선학교가 여전히 교실에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사진을 걸어 놓고 수업을 하는데도 정부가 조선학교 학비 무상화 대상에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하토야마 총리는 11일 밤 “전혀 결정된 것이 없다.”며 정부의 방침이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공식 확인했다. jrlee@seoul.co.kr
  • 장영달 등 민청학련 8명 재심서 ‘내란음모’ 무죄

    서울고법 형사4부(부장 김창석)는 11일 내란음모와 대통령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기소돼 유죄가 확정됐던 장영달 전 민주당 의원 등 민청학련(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관련자 8명의 재심에서 내란음모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하고, 긴급조치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면소 판결했다. 이는 현재 서울고법에 계류 중인 민청학련 재심 사건 네 건 가운데 첫번째 판결로 관련 사건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1974년 유신정권은 민청학련 명의로 정권에 반대하는 유인물이 배포되자 이해찬 전 국무총리와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 장영달 전 의원 등을 주동자로 지목한 뒤 180명을 구속 기소하고 8명에게 사형을 선고했었다. 이 사건은 2005년 국가정보원 과거사건진실규명을통한발전위원회의 재조사를 통해 학생운동 탄압이라는 진상이 드러났다. 재판부는 내란음모 혐의에 대해 “이들이 당시 유신헌법 반대 및 긴급조치 철폐를 목적으로 폭동을 모의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면서 “정권교체 위한 활동을 하는 것은 내란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 “대통령 긴급조치는 1980년 10월 유신헌법이 폐지되면서 이미 효력을 잃었다.”고 덧붙였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시위대 극형… 피해자엔 1억위안 보상

    │우루무치 박홍환특파원│중국 정부의 우루무치 유혈시위 사태 수습책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 참석을 포기하고 귀국한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은 귀국 직후인 8일 밤 정치국 상무위원회 회의를 긴급 소집, 시위사태 주동자들을 엄중처벌할 것을 지시했다. 후 주석은 회의에서 “이번 사건을 모의하거나 배후조종한 핵심분자와 폭력을 행사한 범죄분자는 반드시 법률에 의거해 엄중 처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이들의 선동에 넘어가 시위에 참여한 일반 군중에 대해서는 교육관리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언급, 민족단결에 대한 대대적인 홍보활동을 예고했다. 중국 정부 수습책의 핵심은 ‘채찍’과 ‘당근’이다. 곧 시위 주동자에 대한 대대적 탄압이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8일 우루무치에 급파돼 현장을 지휘하고 있는 멍젠주(孟建柱) 공안부장은 “해외 분열세력이 선동하고, 국내 분열세력이 실행에 옮긴 계획적·조직직 폭력사건”이라고 이번 사태의 성격을 규정한 뒤 “주동자들에 대해 절대 관용을 베풀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분리주의 운동이 극렬한 카스(喀什) 등 남부 신장지역 위구르 운동가들에 대한 예비검속도 이미 시작됐다. 리즈(栗智) 우루무치시 당서기는 기자회견에서 “많은 청년들을 살인 혐의로 구금하고 있다.”고 말해 위구르족 청년학생들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이 예상된다. 한편 당근책도 제시되고 있다. 후 주석은 “당 간부들은 사망자 유가족이나 부상자, 재산상의 손해를 입은 피해자들을 직접 찾아가 위문을 하고 보상과 지원에 적극 나서라.”고 지시했다. 보상액은 1억위안(약 180억원)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중앙 정부 차원의 신장위구르자치구 지원책이 곧 발표될 것이라는 소문도 돌고 있다. 여기에는 위구르인들에 대한 취업지원 등도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우루무치는 속속 정상화되고 있지만 산발적인 시위가 이어지고 있어 완전한 정상화까지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특히 이번 주말의 상황이 장기화 여부를 결정지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위구르 분리운동이 워낙 극렬한 데다 카스 등의 상황이 여전히 심상치 않아 시위 사태가 언제든 재현될 수 있다는 게 현지 주민들의 생각이다. stinger@seoul.co.kr
  • [4일 20돌 맞는 中 톈안먼 사태]쇠울타리로 광장 봉쇄… ‘톈안먼’ 여전히 금기

    [4일 20돌 맞는 中 톈안먼 사태]쇠울타리로 광장 봉쇄… ‘톈안먼’ 여전히 금기

    │베이징 박홍환특파원│마오쩌둥(毛澤東) 주석은 여전히 엷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양 어깨에는 ‘중화인민공화국 만세’ ‘세계인민 대단결 만세’라는 엄청난 구호를 짊어진 채 그는 여전히 톈안먼(天安門) 광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톈안먼 사태 20년, 지금의 톈안먼에는 20년전 광장을 가득 메웠던 청년학생들의 민주화 열기는 온데간데없고, 중국 전역과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관광객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톈안먼 사태 20주년 기념일을 나흘 앞둔 지난 31일 오후, ‘혹시나’ 하는 기대와 함께 향했던 톈안먼 광장행은 ‘역시나’로 막을 내렸다. 20년전인 1989년 5월의 마지막날 중국의 청년학생들은 중난하이(中南海·중국 고위관리 집무 지역)를 향해 민주개혁을 요구하는 뜨거운 목소리를 토해 내고 있었다. 하지만 2009년 5월의 마지막날 톈안먼 광장에는 함성은커녕 조용한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깃발’을 따라 움직이는 국내외 관광객들은 ‘그날’의 의미를 되새기기보다는 톈안먼에 내걸린 마오쩌둥 초상화를 배경으로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단오절 연휴를 맞아 후난(湖南)성 창사(長沙)에서 올라왔다는 왕청(王誠·24)은 톈안먼 사태를 지칭하는 ‘6·4’에 대해 물어보자 “들어보긴 했지만 아주 어릴적 일이라 잘 알지 못한다.”며 손사래를 쳤다. 지금 중국에서 ‘톈안먼’은 철저히 봉쇄돼 있다. 광장 전체를 쇠울타리로 둘러치고, 출입자에 대한 삼엄한 소지품 검사를 진행하는가 하면 곳곳에는 공안(경찰)과 무장경찰이 배치돼 눈을 번득이며 수상한 거동자를 찾기에 여념이 없다. 톈안먼 사건은 이미 금기어로 지정돼 있다. 인터넷 검색어로 ‘톈안먼 사건’과 ‘6·4’를 입력하면 “검색 결과 법규와 정책에 맞지 않아 보여줄 수 없다.”는 메시지만 뜬다. 하지만 강요된 침묵은 오래갈 수 없고, 원천봉쇄 역시 있을 수 없는 법이다. 중국의 네티즌들은 ‘6521공정’(건국 60주년, 티베트 봉기 50주년, 톈안먼 사태 20주년, 파룬궁 금지 10주년을 지칭) ‘20주년’ 등의 검색어를 이용해 관련 내용을 찾아볼 수 있고, 진실을 알리려는 배달부들은 그 허점을 파고들고 있다. 지난달 10일 베이징에서는 톈안먼 사태 재평가와 관련된 학술토론회가 비공개로 열렸다. ‘6·4 민주운동 토론회’로 명명된 이날 토론회에는 베이징대와 중국사회과학원 교수, 작가, 유가족 등 수십명이 참석했다. 마침 당일은 중국의 ‘어머니날’이기도 해 참석자들은 토론회 시작에 앞서 모두 일어나 20년전 소중한 아들딸을 잃은 어머니들에 대한 위로의 마음을 담아 3분간 묵념했다. 첫번째 발표자로 나선 베이징대 첸리췬(錢理群) 교수는 “20년전 많은 학생들이 중국 민주화를 위해 목숨을 바칠 때 교수로서 그들을 보호하지 못한 것이 지금까지 큰 한으로 남아 있다.”며 “정치가들은 ‘6·4’를 재평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학자들이 나서서 ‘6·4’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사회과학원의 쉬유위(徐友漁) 연구원은 ‘1989년부터 2009년까지’라는 제목의 발표 논문에서 “당대 중국 역사와 정치, 그리고 사상의 분수령이었다.”고 톈안먼 사태를 평가한 뒤 “비록 중국의 정치제도를 바꾸지는 못했지만 정치제도 변화를 준비하는 사상적 조건에 대해 말한다면 ‘6·4’는 정치제도 변화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날 발표된 논문들은 블로그를 통해 비밀스럽게 인터넷상에서 유통되고 있다. 강요된 침묵을 비집고 솟아나오는 이런 ‘반발력’을 중국 정부가 과연 끝까지 통제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stinger@seoul.co.kr
  • [노무현 前대통령 서거] 박희태대표 등 한나라 지도부 조문 못하고 돌아가

    [노무현 前대통령 서거] 박희태대표 등 한나라 지도부 조문 못하고 돌아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3일째인 25일 빈소가 차려진 경남 김해 봉하마을은 전날의 어수선한 분위기와 달리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 빈소를 찾은 조문객들은 낮 최고 29도까지 오르는 뙤약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분향소 입구부터 길게 늘어서 차례를 기다렸다. 장의위원회측은 “이날 20만명 넘게 다녀가는 등 3일간 40만명을 넘었다.”고 밝혔다. 경남 통영시에서 왔다는 제천모(39) 목사는 북한의 핵실험과 관련, “북한이 조전을 보내 놓고, 한편으론 핵실험을 했다.”며 “나라가 상중인데 어이가 없다는 말밖에 못하겠다.”고 말했다. ●대통령 조문, 불미스러운 상황 우려 장의위원회 고문을 맡은 이해찬 전 국무총리는 이날 봉하마을 임시 기자회견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조문은 노 전 대통령의 시신이 여기에 있기 때문에 당연히 여기에서 조문하는 것이 맞지만 밖의 상황이 장례위가 통제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어서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며 “이 대통령은 영결식날 서울에서 조문을 하면 좋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또 “서울에서 영결식을 하게 된 것은 장례가 국민장으로 됐고, 추모객의 불편을 주지 않기 위해서다.”라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의 사저에는 종일 무거운 침묵만 흐른 것으로 전해졌다. 사저에는 가족과 가까운 친척 외에는 접근이 철저하게 차단됐다. 간간이 사저와 빈소를 오가는 노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씨와 딸 정연씨는 눈이 퉁퉁 부은 표정이었다. 그래도 상주 건호씨는 분향소 설치와 제례의식 등을 거행하며 비교적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 한 측근은 “유가족이 모두 노 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서거로 심한 충격을 받은 데다 자책감도 상당한 실정이지만 어떻게 해서든 장례는 깔끔하게 마무리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실상 악으로 버티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노 전 대통령의 측근들은 벌써 장례 후에 유가족들을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깊은 고민에 빠졌다. 다른 측근은 “노 전 대통령은 지난 3월 형 건평씨가 구속되자 그때부터 많이 우울해했고, 건강도 눈에 띄게 안 좋아졌다.”며 “유서에 나온 ‘글을 읽을 수도 쓸 수도 없다.’는 말을 그때도 하셨다.”고 밝혔다.이 관계자는 노 전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이던 10여년 전 김해영농경영회장 신분으로 처음 만났다고 말했다. ●조문객들, 부엉이바위도 찾아 봉하마을 안내센터 인근에 있던 방명록 작성 장소는 조문객들이 급증하자 분향소 인근과 행렬 주변 곳곳에 마련됐다. 부산에서 왔다는 전종찬(55·자영업)씨는 “큰형님을 잃은 것 같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오전에 (문상)하고 출근하려고 아침 일찍 찾아 왔다.”며 “1시간 이상 줄서 기다린 끝에 조문하고 돌아간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흔적을 찾기 위한 듯 부엉이바위를 찾는 조문객들도 부쩍 늘었다. 현장을 찾은 추목객들이 간간이 눈물을 훔쳤으며, 이승에서 마지막으로 찾았던 담배를 두기도 했다. 일부는 사진을 찍거나 손으로 바위 등을 가리키는 등 깊은 관심을 나타냈다. ●자갈치 아줌마, 민주열사 부모도 조문 2002년 대선 당시 노 전 대통령의 찬조연설을 맡은 부산 자갈치시장 이일순(65)씨도 이날 모습을 드러냈다. 대통령 당선 일등공신으로 불린 이씨는 영정에 국화꽃 한송이를 바쳤다. 그는 “지난 23일 시장에서 장사하고 있는데 주변 상인들이 웅성거리는 소리를 들었다.”면서 “처음에는 거짓말로 넘겼지만 뉴스를 보고 사실을 확인한 뒤 충격으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고 말했다. 1989년 당시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대표로 평양 ‘세계 청년학생 축전’에 참가했던 임수경씨도 빈소를 찾았다. 임씨는 “노 전 대통령이 종로구에서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했을 때 인연이 좀 있고, 최근엔 제가 해인사에 머물고 있는데 대통령 내외분이 위로해 주셨다.”고 회고했다. 고(故)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인 박정기씨와 고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씨도 빈소를 찾았다. ●자원봉사자 사흘째 조문객 지원 자원봉사자와 마을주민 등 500여명은 조문객을 맞느라 바쁜 시간을 보냈다. 황순선(62·여·김해시 진영읍)씨는 “엄청난 양의 음식을 해 내느라 힘들지만 존경하는 분의 마지막 가는 길을 보러 오는 문상객들에게 밥 한 그릇이라도 대접하려고 이렇게 힘을 보태고 있다.”고 말했다. 김원웅 전 의원은 이날 노 전 대통령의 빈소에 도착하기 직전 모친이 별세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발길을 돌리지 않고 노 전 대통령을 추모했다. 김 전 의원은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은 채 차분하게 조문을 끝냈고, 이같은 소식을 알게 된 이해찬 전 국무총리는 김 전 의원을 배웅하며 위로의 뜻을 깍듯하게 전했다. 한편 박희태 대표를 비롯, 정몽준·허태열·공성진·박순자 최고위원 등 한나라당 지도부는 이날 낮 노 전 대통령의 빈소가 마련된 봉하마을을 찾았으나 노 전 대통령 지지자들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조문을 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 김해 김정한 김상화 유대근기자 jhkim@seoul.co.kr
  • [부고] 北 ‘혁명 1세대’ 박성철 정치국 위원 사망

    북한의 박성철 정치국 위원 겸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명예부위원장이 28일 ‘오랜 병환’으로 사망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9일 전했다.96세. 경북 경주 출신인 박성철은 ‘혁명 1세대’로 김일성 주석과 함께 항일투쟁을 하다 광복 후 북한에 들어가 인민군 15사단장, 노동당 국제부장, 외무상, 정무원 총리, 국가 부주석 등을 지냈다. 김 주석의 유일사상체계 및 노동당 유일지도체계 구축에 기여한 최측근 중 한 사람이다. 그는 1972년 7·4남북공동성명 성사의 주역으로 참여했다. 당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의 평양 방문에 이어 북한의 김영주 노동당 조직지도부장을 대신해 서울을 방문, 이 부장과 회담했다. 특히 7·4공동성명에 따라 설치된 남북조절위원회 북측 위원장인 김 부장 대신 같은 해 12월 서울을 다시 비공개로 방문해 박정희 대통령을 면담했다. 1994년 7월 김 주석이 사망했을 때 국가장의위원회 서열 5위, 이듬해 오진우 인민무력부장 사망 때는 서열 4위에 오를 정도로 최고위직을 역임했다.1998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명예부위원장에 선임되면서 사실상 은퇴했다.‘공화국 영웅’(1992년) 칭호와 ‘김일성 훈장’(1993년)을 받았다. 1989년 평양에서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이 열렸을 때 “이제는 인민들의 먹고사는 문제에 힘을 써야 할 때”라며 행사 개최에 불만을 표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관계가 껄끄러워졌다는 일각의 분석도 있다. 북한은 박성철의 장례를 30일 국장으로 치르기로 했으며 김 위원장이 빈소에 조화를 보냈다고 북한 매체들은 전했다.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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