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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순국선열 위패 용산공원에 모신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초개처럼 바친 순국선열들의 위패를 모시기 위한 대규모 봉안시설이 서울 용산가족공원에 마련된다. 그동안 사실상 방치됐던 순국선열의 위패를 정부가 직접 관리한다. 14일 국가보훈처와 서울시, 광복회, 순국선열유족회 등에 따르면 이들은 서울 서대문독립공원 내 독립관에 안치된 순국선열 위패 2835위를 용산가족공원의 태극기광장으로 이전하기로 최근 합의했다. 이들은 이를 계기로, 독립운동 관련 훈·포장을 받은 1만 1766명을 포함한 2만여위의 위패를 모두 한 곳에 모아 관리할 계획이다. 이를 위한 봉안 시설인 ‘추모의 공원(가칭)’ 건립 비용 300여억원은 국비로 지원되며, 새 위패 봉안시설에 대한 기공식은 내년 광복절에 가질 예정이다. 차창규 광복회 사무총장은 “위패봉안시설 건립은 일제 강점기에 조국 광복을 위해 헌신한 2만여 독립유공자들의 공헌을 항구적으로 기리기 위한 것”이라며 “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분들에 대해 국가가 끝까지 책임을 지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광복회를 비롯한 독립운동 관련단체들은 현재 순국선열의 위패가 안치된 서대문독립공원이 애초 청나라 사신들의 만찬장소였다는 점을 들어 위패 봉안장소로 부적절하다고 지적해왔다. 게다가 위패 관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정부에 위패봉안시설을 확장·이전해줄 것을 줄기차게 요구해왔다. 하지만 그때마다 정부는 예산부족을 들어 이를 거절해 왔다. 그러자 광복회가 정부의 의지 부족을 문제삼아 지난해 열렸던 순국선열의 날(11월17일) 행사에 불참하면서 위패 관리 문제가 공론화됐다. 결국 한승수 총리가 “국가가 나서서 위패 관리에 나서겠다.”고 밝혔고, 서울시도 이를 위한 부지 제공을 약속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순국선열회 측이 위패 이전을 반대하고 나서면서 1년 가까이 뚜렷한 결론을 내지 못하고 표류해 왔다. 순국선열유족회의 한 관계자는 “아무도 돌보지 않던 위패를 지금까지 관리해오던 우리를 제쳐두고 다른 단체들이 주도적으로 나서는 게 서운했다. 하지만 ‘순국선열들의 위패는 개인이나 단체가 아닌 정부가 직접 나서 관리해야 한다.’는 원칙을 수용해 위패의 용산 이전에 동의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팔대산인’ 그림, 中최고가 ‘150억원’ 낙찰

    ‘팔대산인’ 그림, 中최고가 ‘150억원’ 낙찰

    중국서 열린 경매에서 그림 한 점이 한화 약 150억 원에 달하는 높은 가격에 팔렸다. 청나라 초기에 활동한 승려 화가인 팔대산인(八大山人, 1624~1703)의 ‘방예운림산수’(仿倪雲林山水)가 지난달 26일 베이징에서 열린 경매에 모습을 드러냈다.  ‘방예운림산수’는 팔대산인의 명작 중 하나로, 상징적 수법과 독특한 화풍이 고스란히 남아있어 전문가들의 연구가 끊이지 않는 작품이다. 경매에 나온 이 작품은 1100만 위안으로 시작해 순식간에 8400만 위안까지 가격이 올랐다. 특히 이번 그림은 지금까지 국내외에서 팔린 중국 회화 중 가장 높은 금액에 팔렸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을 받았다. 예상치 못한 낙찰가에 전문가들도 놀랐다. 경매를 주최한 베이징쾅스(北京匡時)경매회사의 한 관계자는 “경매 전 1200만~1400만 위안 정도로 예상했지만, 이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 팔려 매우 놀랐다.”고 전했다. 이어 “이 같은 결과에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놀랐다.”며 “고가에 그림을 매입한 수집가의 신분은 밝혀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방예운림산수’가 이같이 높은 가격에 팔린 이유는 팔대산인의 작품수가 워낙 적어 희소가치가 높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경제전문지 ‘중국경제주간’의 대표 둥궈창(董國强)은 “팔대산인은 중국 회화를 대표하는 명인 중 하나다. 그러나 지금까지 남아있는 그의 작품은 많지 않다.”면서 “얼마 남지 않은 고대 화가의 작품을 원하는 수집가들이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팔대산인은 1664년 명나라가 멸망한 뒤 승려가 되어 작품 활동을 했으며, 당시 거짓 미치광이 생활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그림은 형식을 무시하고 탈세속적인 특징을 가지며, 현실을 풍자하는 작품으로 사랑을 받았다. 사진=163.com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세계적 의학서 ‘동의보감’의 가치 조명

    세계적 의학서 ‘동의보감’의 가치 조명

    ‘동의보감’의 세계기록유산 등재가 유력한 가운데, 의학서로서의 가치를 조명하는 프로그램이 방송된다. KBS는 30일과 새달 6일 오후 10시에 특집 2부작 ‘동의보감’(연출 표만석)을 통해 현대의학에도 여전히 유효한 동의보감의 처방과 그 효능을 과학적으로 분석해본다. 30일 1부 ‘동의보감, 세계적 의학서적이다’편은 출간 당시 한·중·일·베트남 등지에서 큰 인기를 누렸던 동의보감의 발자취를 추적해 본다. 책은 중·일 지역에서는 30여차례나 출간될 정도로 꾸준히 주목을 받았고, 최근 베트남에서도 번역 출판을 기획하고 있다. 취재진은 중국국립도서관에 소장된 청나라시대 동의보감 필사본과 일본 에도막부 시대 동의보감 필사본의 모습도 직접 카메라에 담는다. 또 국가적 프로젝트였던 동의보감의 제작 과정을 밝히고, 400년이 지난 지금도 루게릭병 치료 등 현장에서 활용되는 동의보감 처방을 소개한다. 세계적인 의학자들의 인터뷰도 담는다. 영국 옥스퍼드대 생물학 교수 데니스 노블은 “동의보감은 시스템생물학에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하며 현대의학에서도 과학성이 입증된다.”고 말한다. 이와 함께 동의보감에 따라 만든 경옥고와 공진단 등 환약을 비롯, 특선 건강요리도 재현해본다. 새달 6일 2부 ‘동의보감, 그 의학적 진실은’편은 동의보감에서 제시하는 암치료법의 효능을 의학적으로 따져본다. 또 한방치료의 표준화 및 현대화의 방안을 제시하고, 현대 한의학의 활약상도 정리한다. 제작진은 “동의보감의 세계기록유산 등재 결정을 앞두고 세계적인 우리 의학문화유산을 제대로 알리고 싶었다.”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그 효과를 입증해 온 국민이 동의보감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했으면 한다.”고 기획의도를 밝혔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진시황 이래 中 황실 성생활 보고서

    진시황 이래 中 황실 성생활 보고서

    중국은 하(夏)왕조가 세워진 이래 1911년 동안 군주제도를 택해 왔고, 진(秦)나라부터 황제제도가 시작됐다. 이런 전제군주 시대를 관통한 통치이념은 유가사상. 유가는 충효를 연구하는 학문이고, 특히 효의 핵심은 대를 잇는 것이기 때문에 자식을 낳지 못하는 것을 가장 큰 불효로 여겼다. 효는 대대로 같은 성을 가진 자들이 나라를 통치해야 하는 황제 가문에서는 더욱 절실하고 중요했다. 중국의 역대 제왕들이 10대 중반부터 성적 쾌락과 여색에 빠져 산 것은 이같은 이념 아래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오기도 한다. ‘황궁의 성’(시앙쓰 지음, 허동현 감수, 강성애 옮김, 미다스북스 펴냄)은 중국 진시황 이래 중국 역대 왕조와 그 왕조를 구성해온 걸출한 황제들의 성생활과 애정행각에 관련된 보고서다. 1962년생인 저자 시앙쓰는 중국 고궁박물관 연구원 및 도서관 부관장으로, 고서에서 황제와 황후의 성생활과 관련된 부분을 모조리 찾아내 책으로 펴냈다. 원래 제목이 ‘후궁의 금지옥엽’이란 점을 감안하면 이 책의 주인공들은 황제라기보다도 이른바 당나라 현종의 양귀비, 한나라 성제의 조비연, 당나라 고종의 측천무후, 한나라 유방의 부인 여치, 청나라 자희태후 등이다. 후궁이란 황후와 비빈들이 거처하던 곳이니 말이다. 하지만 후궁은 부제로 달린 ‘치정과 암투가 빚어낸 밤의 중국사’처럼 한숨과 질투, 배신, 치정, 음모, 살인 등이 난무하는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였다. 이를테면 진나라 혜제의 가남풍 황후는 불임이었는데, 임신한 궁녀를 보면 날카로운 창으로 사정없이 찔러 죽였다. 측천무후는 자신이 여제가 되기 전 왕 황후를 모함하기 위해 자신이 낳은 딸을 죽여 버리기도 했다. 한나라 혜제는 자신의 조카(장 황후)와 결혼을 했는데, 원래부터 귀여워하던 조카와 잠자리를 끝내 피해, 장 황후는 마흔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처녀였다. 한나라 헌제의 생모 왕씨는 헌제를 낳은 뒤 독살됐다. 선비족들이 세운 북위는 태자를 옹립하기 전에 반드시 생모를 죽여야 한다는 규정도 있었다. 외척의 발호를 막기 위해서였다. 명나라에서는 영종 이전의 비빈들은 왕이 죽으면 순장됐다. 순장되는 날은 차마 눈 뜨고 보지 못했다고 한다. 선종 주첨기는 재위 10년째 되던 해 시녀 곽애를 빈으로 봉했다. 그러나 입궁한 지 20일이 지났을 때 선종이 붕어했다. 부귀영화를 누리지도 못한 채 순장돼야 했던 곽애는 ‘절명사’란 애절한 시를 남겼다. 순장하기 전 비빈들은 진수성찬이 차려진 연회에서 배불리 먹은 뒤 연회가 끝나면 어두운 불빛이 비치는 대전 앞 대들보 밑으로 가 머리를 풀고 목을 매 자살했다. 중국의 어린 황제와 태자는 사춘기에 접어들기 전에 춘궁도(春宮圖)로 불리는 춘화나 환희불(歡喜佛)이라 불리는 조각상 등을 통해 성교육을 받았다는 대목도 재밌다. 때로 태자들은 직접 시녀들과 실습도 했다고 한다. 또한 황궁에서는 강아지와 고양이를 기르면서 동물들의 본능적인 모습을 보여 줬다고 한다. 궁사(宮詞)에 ‘계집종은 매일매일 군왕을 섬긴다.’는 구절이 있는데, 여기서 계집종은 암고양이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이 책의 미덕은 아주 강한 디테일에 있다. 우리가 거의 모르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진시황의 출생 비밀이나, 당현종과 양귀비의 숨겨진 사랑 이야기들이 불쑥불쑥 나타난다. 현종은 뚱뚱한 양귀비가 술 취한 모습을 가장 좋아했다. 또 현종은 이지적이고 숙녀였던 매비를 사랑하면서도 양귀비를 안록산의 난이 날 때까지 끊지 못했다. 책 구석구석에서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받아들인 조선왕조 500년과 비슷한 대목들이 나타난다. 3만 2000원.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국립중앙박물관 중국실 개편

    국립중앙박물관 중국실 개편

    국립중앙박물관의 아시아관 중국실이 훨씬 재미있고 흥미로워진다. 21일 새롭게 문을 여는 중국실의 전시품 100여점 중 70점 이상이 지금까지 한 번도 공개되지 않은 것들로 채워진다. 목재로 만든 사천대왕, 신석기시대 토기, 명대의 화려한 도자기와 회화 등등. 이번 전시는 ‘권력의 상징-중국 예기’, ‘고대 중국인의 생활-명기와 도용’, ‘중국인의 고대종교-불교’, ‘흙의 신비-중국도자’ 및 ‘선의 예술-중국회화’ 등 모두 5개의 주제로 구성된다. 특히 우리나라 비슷한 시기의 문화 예술과 비교 설명하면서 관람의 재미를 한층 더했다. 예컨대 농사의 고단함과 수고로움을 표현한 작자미상의 청나라 시대에 제작된 ‘빈(주나라의 옛이름)풍칠월도’는 모두 24폭의 두루마리 그림으로서, 한 해 농사를 짓는 동안 겪는 즐거움과 수고로움을 표현한 조선시대 농가월령가의 모체가 된다. 또한 실제 성인 남성의 키에 가까운 165㎝ 높이의 ‘증장천왕’(사천왕상 중 남쪽을 지키며 불법을 수호하는 역할)은 국내 사천왕상에서 보기 드물게 목재로 만든 작품이다. 국내에서는 화재와 전쟁 등으로 대부분 토기로 만들어져 있는 것들만 남았다. 이밖에 네 번째 마당 ‘흙의 신비’에서는 중국의 대표적 문화재인 도자기를 생산지역 가마터 별로 분류해서 시대적, 지역적 특징을 그대로 보여줬다. 이를테면 월주요, 요주요, 정요 등이다. 아울러 고려청자, 조선백자의 기원이 될 수 있는 도자기도 함께 전시해 한국과 중국의 도자기 문화관계에 있어 통시적, 공시적 이해를 높였다. 박물관 아시아부 관계자는 “2005년 처음 문을 연 뒤 두 번째로 개편한 중국실 전시를 통해 중국 문화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 및 한국 문화와의 관계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장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도시와 산] (15) 수원 광교산

    [도시와 산] (15) 수원 광교산

    북한산은 단위 면적당 가장 많은 탐방객(175명/㎢)이 찾는 국립공원으로 기네스북에 올라 있다. 수도권 어디에서든 접근하기 쉬워서다. 북한산보다 3.4배(591/㎢)나 더 많은 등산객이 찾는 곳이 경기 수원시의 광교산이다. 수원·용인·의왕시에 걸쳐 있는 광교산(해발 582m)은 도시와의 경계가 애매모호할 정도로 도심에 가깝다. 빼어난 경관은 아니지만 부드럽고 완만한 산세에 등산 코스가 다양해 주말에는 하루 5만여명이 찾는다. 백두대간에서 갈라져 나온 한남정맥 700여리 중간지점에 있는 광교산은 한남정맥의 수많은 산 가운데 가장 높고 덩치 또한 가장 크다. 경기남부권을 포용하고 있는 진산(鎭山)으로 꼽히는 광교산은 후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격동의 민족사를 간직하고 있다. 광교산의 원래 이름은 광악산(光嶽山)이었으나 서기 928년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평정, 후삼국 통합의 뜻을 이루고 귀경하던 중 이 산에서 광채가 솟구치는 모습을 보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주는 산”이라 해 ‘광교(光敎)’라고 붙였다고 한다. ●후삼국~조선 격동의 민족사 간직 이곳에는 신라시대부터 불교 성지로 평가받을 정도로 수많은 사찰이 있었다. 이 가운데 고려시대 진각국사와 현오국사가 머물던 창성사가 있었다고 한다. 진각국사는 우리나라 고건축물 중 최고로 꼽히는 경북 영주의 부석사 무량수전을 건축했다. 고려 우왕 12년 진각국사를 추모하기 위해 창성사 경내에 세운 진각국사탑비는 현재 수원시 팔달구 매향동 동공원에 보존돼 있다. 역사탐방연구회 염상균 이사는 “광교산은 지리적인 위치나 특성으로 볼 때 주민들에게 시대를 초월한 신앙의 대상이었다. 불교가 들어오기 전에는 산신이었을 것이고, 불교 전래 이후에는 불교문화가 꽃핀 현장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임진왜란 때는 전라 순찰사 이광이 지휘한 삼남근왕병 6만명이 왜군 총수 우키다 히데이의 기병 1600명에 충격적으로 패배했다. 경기도 기념물 제38호로 지정된 ‘김준용 장군 전승비’도 대표적인 역사문화유산이다. 비로봉(490m)에서 10분 정도 내려가면 샛길 안쪽의 자연암반에 김준용(1586~1642년) 장군의 전공이 새겨져 있다. 김 장군은 병자호란 때 광교산 골짜기에서 청 태종의 사위인 양고리를 비롯한 청나라 군사를 크게 무찔렀다. 세계문화유산인 화성은 광교산 자락이 흘러내린 곳에 조성됐다. 창룡문 4거리에서 남수문에 이르는 곳과 방화수류정에 이르는 줄기가 모두 광교산의 맥이다. ●다양한 생태계·등산코스 인기 정조가 사도세자 묘인 융릉을 참배할 때 머물던 화성행궁도 광교산과 가까운 곳에 세워졌다. 공교롭게 고려 궁터와 백제 온조왕의 숙소인 백제행전도 광교산에 있었다고 전해진다. 백제, 고려, 조선에 이르는 행궁이 한 장소에 있었던 셈이다. 광교산에서 발원한 수원천은 수원의 들판을 살찌우는 젖줄이다. 시내를 가로질러 황구지천에 모여 안성천에 합류하고 아산만을 통해 서해로 향한다. 광교산에 눈이 쌓인 모습을 일컫는 광교적설(光敎積雪)은 수원 8경 중 제1경으로 꼽힌다. 광교산은 수많은 등산객이 찾고 있음에도 생태계가 비교적 잘 보존돼 있다. 98과 301속 455종의 식물이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호랑버들, 가능장구채, 터리풀, 조팝나무, 노랑갈퀴, 병꽃나무 등 6종의 한국특산종이 자생하고 있으며 낙지다리 등 희귀식물도 자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류는 해오라기, 중대백로, 왜가리, 외오리, 말똥가리, 직박구리 등 26종, 포유류는 고슴도치 두더지 너구리 족제비 삵 멧돼지 고라니 등 16종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수원시 정남채 산림휴양팀장은 “광교산을 찾는 사람들이 급증하면서 환경 훼손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산림생태계 보존과 이용의 조화를 맞추기 위해 휴식년제를 실시하고 훼손된 곳은 친환경 복구 등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등산용품점 호황… 지역 경제에 한몫 광교산이 서울 근교의 산 못지않게 등산객들이 많이 찾는 것은 버스나 승용차에서 내리면 바로 산에 오를 수 있어 접근성이 좋기 때문이다. 경기대 정문 또는 반딧불이 화장실 앞을 시작으로 형제봉~시루봉~통신대~지지대까지 13㎞에 이르는 장거리 코스에서부터, 청년암~한마음광장~거북바위~광교헬기장(6.5㎞), 상광교 버스종점~사방댐~토끼재(1.6㎞) 등 10개의 코스가 있다. 최정상인 시루봉에 오르면 멀리 남산과 북한산이 눈에 들어온다. 수원 영통에 사는 윤석두(49·자영업)씨는 “광교산의 매력은 다양성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강·약 코스와 함께 50분~5시간30분 소요되는 장단 코스가 있어 노약자부터 전문 산악인까지 이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산은 도시민들의 취미생활을 바꿔 놓으며 지역 경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광교산 덕분에 수원은 ‘산악자전거’ 이른바 MTB 동호회가 활성화돼 있다. 동호회 20여곳이 조직돼 있으며 100~300명씩의 회원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수원시가 지정해준 청년암~통신대 구간에서 산악자전거를 즐긴다. 등산용품 업소도 호황을 누린다. 수원에만 백화점이나 대형할인매장 18곳에 각 5~10개의 등산용품매장이 입점하고 있다. 등산용품 전문점을 운영하고 있는 김모(45·수원시 인계동)씨는 “주 5일제 근무 영향도 있지만 수원에는 광교산 덕분에 등산인구가 많아 다른 지역보다 등산용품점들이 많고 장사도 잘되는 편이다.”라고 말했다.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반딧불이·다슬기·항아리’ 광교산 명물, 명품 화장실 경기 수원 광교산의 또 다른 명물은 화장실이다. 산 입구에 설치한 ‘반딧불이 화장실’은 1999년 제1회 아름다운 화장실 콘테스트에서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당시 아파트 가격보다 3.3㎡당 100여만원 비싸게 건축돼 화제를 모았다. 화장실에 들어서면 은은한 클래식 음악이 나오고 대리석 바닥은 신발을 신고 들어가기가 민망할 정도로 흙 먼지 하나 없이 청결하다. 장애인이나 노약자, 어린이 및 유아들을 동반한 가족들을 위한 배려차원에서 비데, 위생시트, 베이비 시트 및 부스, 파우더 실 등 위생 기기들을 설치했다. 좌변기에 앉으면 창밖을 통해 광교저수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화장실 밖에는 20여평 크기의 휴식공간이 마련돼 있어 커피 한잔을 마시며 미술작품 등을 감상하거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하루 평균 2200명이 화장실을 찾는다. 등산객 이필근(47·회사원·수원시 장안구 정자동)씨는 “가족들과 함께 광교산 등산을 자주 하는데 공중화장실을 이용할 때마다 집 화장실보다 깨끗하고 시설도 좋아 기분이 상쾌해진다.”고 말했다. 광교산에는 반딧불이 외에도 다슬기, 항아리 화장실을 갖추고 있다. 상광교 버스종점에 위치한 다슬기 화장실은 고급 별장에 온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개나리를 연상시키는 노란빛과 연한 오렌지색의 외관으로 은은함을 더해준다. 내부 벽면은 친환경 목재를 사용해 친근함을 안겨주고 창밖으로는 광교산 전경이 펼쳐진다. 반딧불이 화장실은 우리나라 화장실문화 운동의 출발점이 됐다. 수원시는 지난 1997년부터 아름다운 화장실가꾸기 사업을 벌여 지역마다 특색있는 공중화장실 40여개를 설치했다. 봉화대, 바람개비, 수롱이, 솔밭산 등 시설 못지않게 이름도 아름다워 시민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국내는 물론 해외 지방자치단체의 벤치마킹이나 관광코스 대상이 되기도 한다. 1999년에는 월스트리트저널에 수원의 공중화장실이 표지 모델로 등장한 바 있다.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씨줄날줄] 위구르족/함혜리 논설위원

    위구르인의 조상은 몽골에서 시베리아까지 넓은 지역에 산재해 있던 고대 튀르크계 유목민이다. 중국인들은 이들을 가오처(高車)라 불렀다. 천막을 옮기기 위해 소가 끄는 수레에서 유래했다. 철 수레를 만들어 사용했을 정도로 금속문화가 발달했던 이들의 역사는 744년 바스밀, 카를룩 등의 부족과 함께 후돌궐 제국을 멸망시키고 위구르 제국을 세우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몽고와 중앙아시아의 광대한 영토를 지배하며 유목문화를 버리고 점차 정착 농경사회로 탈바꿈했으나 840년 다른 튀르크계 민족인 키르기스에 의해 멸망한다. 위구르의 난민들은 중앙아시아 각지로 흩어졌다. 위구르 제국의 동쪽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세운 간수 왕국은 870년부터 1036년까지 지속됐다. 이들의 후손이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거주하는 위구르인이다. 실크로드의 요충지인 우루무치, 고대 무역의 중심지인 카슈가르 등을 중심으로 무역과 목축업, 농업이 발달했으며 중국과 대체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던 신장지역은 1760년 청의 지배를 받게 되면서 피의 역사가 시작된다. 위구르족은 42차례나 반란을 일으킨 끝에 1864년 동투르키스탄이라는 독립 왕국을 세웠지만 청나라는 1884년 ‘새로운 영토’라는 뜻의 신장성을 설치했다. 1944년 재봉기해 동투르키스탄을 세웠지만 중국은 1949년 공산당 정권 수립 후 이곳을 다시 병합했다. 1955년 10월 신장 위구르 자치구가 됐지만 분리독립 요구는 옛 소련 붕괴 이후 한층 거세졌다. 위구르 문화는 튀르크 문화와 한문화, 아리아계 문화가 혼합된 형태로 문학과 예술, 특히 음악 분야에서 분명한 역사적 정체성을 자랑하고 있다. 우루무치를 둘러싼 신장의 면적은 164만 7000㎢. 중국 전체 면적의 6분의1, 한국의 16배나 되는 광활한 지역에는 엄청난 석유, 천연가스가 매장돼 있다. 그러나 위구르인들은 한족의 이주와 중국 정부의 지배로 전통 문화가 사라지고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신장 위구르의 전체인구 1900만명 가운데 위구르족은 800만명에 이른다. 뿌리 깊은 종족 갈등이 다시 유혈사태로 번져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불행한 역사가 언제쯤 끝날지 걱정이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태안 앞바다서 보물선 2척 ‘햇빛’

    제2의 태안 보물선일까. 충남 태안 앞바다에서 보물선으로 추정되는 고선박 2척이 발견됐다.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소장 성낙준)는 2일, 올 4월부터 지난달까지 진행한 태안 마도 해역의 수중발굴조사 과정에서 바다밑에 매장된 2척의 선체를 확인하고 도자기 380여점을 인양했다고 밝혔다. 이번 조사는 2008년 조사한 ‘I구역’과 올해 3월 유물이 나온 ‘II구역’으로 나눠 수중촬영 및 탐사가 진행됐다. 그 결과 I구역에서는 배밑 5단과 좌우 외판 2단만 남은 채로 바다밑에 매몰돼 있던 선체가 발견됐다. 연구소측에 따르면 여기에는 청자잔 60여점이 선적돼 있었고, 석탄 덩어리와 볍씨 등도 나왔다. 또 수중발굴로는 처음으로 죽간(竹簡·글씨를 쓴 대나무판)이 출토됐으나 판독은 어려운 상태다. 특히 II구역에서 시대와 국적이 다른 도자기 300여점이 나왔다. 이곳에서는 11~14세기 후반의 다양한 고려청자는 물론 15세기 분청사기, 17~18세기 백자 등 조선시대 도자기도 발견됐다. 또 명나라 청화도자기를 비롯, 청나라 백자발(白磁鉢) 등 송대부터 원·명·청대에 이르는 당시 도자기도 나왔다. 이들 중 일부에는 묵서명(默書名)이 남아 있다. II구역에서 발견된 고선박도 역시 외판 2단만 남아 있을 뿐이지만, 닻에 매달아 사용했던 닻돌이 5개나 발견됐다. 연구소측는 이 다량의 닻돌이 선박 난파가 잦았던 곳임을 알려 주는 자료라고 설명했다. 이 밖에 뱃사람들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작은 항아리와 철제 솥, 맷돌, 수저 등도 발견됐다. 연구소 수중발굴과 진호신 학예연구사는 “이 지역은 역사적으로 계절풍을 이용한 여송민간무역은 물론 사신선이 자주 다니던 곳”이라면서 “이번 발굴로 이곳이 동북아 무역의 중심지이자 종합적인 국제 무역의 중간 기착지라는 사실이 입증됐다.”고 밝혔다. 마도 주변 지역의 옛별명은 ‘난행량(難行梁)’으로 빠른 조류에 안개, 암초, 게다가 조석간만의 차도 큰 탓에 선박 침몰 사고가 빈번했다. 신안 앞바다에 이어 최근 문화재의 보고로 떠오른 태안 앞바다에서 2007년 고려청자 2만여점과 함께 보물선이 발굴된 사례는 있었지만, 마도 지역에서 고선박이 발견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문화재청은 앞으로 선체 인양작업 등을 통해 보물선의 베일을 벗겨낼 예정이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Let´s Go] 전통과 현대 공존하는 中 상하이

    [Let´s Go] 전통과 현대 공존하는 中 상하이

    │상하이 박록삼특파원│‘창장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낸다.(長江後浪推前浪)’ 역사 발전의 필연적 합법칙성을 얘기할 때, 혹은 후대에 대한 경외와 자기 성찰을 요구할 때 중국에서 흔히 쓰는 속담이다. 하지만 상하이(上海)를 꼼꼼히 보고 나면 이 속담은 조금 바뀌어야 할 것 같다. ‘창장의 뒷물결은 앞물결에 섞여서 함께 흐른다.’ 정도로 말이다.창장(長江)의 지류가 흐르는 중국 상하이의 첫 인상은 ‘최첨단 과학문명의 총아’와 함께 시작된다. 푸둥국제공항에서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는 시속 431㎞의 자기부상열차를 타면 지하철 2호선 룽양루(龍陽路)역까지 30여㎞를 8분 만에 주파한다. 그럼에도 화려한 마천루가 뒤덮고 있는 중국의 메트로폴리스 상하이에 오면 몸을 바짝 낮추고 눈길을 낮은 곳에 둬야 한다. 수백년의 역사와 교감하기 위해서, 또 보이는 것 이상을 보기 위해서다. 상하이의 내밀한 속살은 그런 곳에 감춰져 있다. 상하이 곳곳에 감춰진 전통과 과거의 흔적을 따라가 본다. ●박제화되지 않은 역사가 숨쉬는 곳 1년이면 한국 관광객 수십만명이 상하이를 찾는다. 그리고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명(明)나라 시대의 정원 위위안(豫園)을 찾아 ‘부모를 위해 20년 동안 지은 효심의 정원’이라는 설명에 고개를 주억거린다. 또 해질 무렵이면 황푸장(黃浦江)의 강변 광장이라 할 수 있는 와이탄(外灘)과 유럽 또는 홍콩 어딘가를 방불케 하는 신톈디(新天地) 등을 들러 상하이 젊은이들의 놀이 문화를 엿본 뒤 둥팡밍주(東方明珠) 468m 꼭대기에 올라가 상하이의 어마어마한 스카이라인을 둘러본다. 여력이 있는 이들이라면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를 물어물어 찾아가 그 방치된 듯한 모습에 실망하거나 아쉬움을 나타낸다. 그렇게 하루 이틀 상하이에서 묵은 뒤 쑤저우(蘇州), 항저우(抗州), 난징(南京) 등을 찾아 바쁜 발걸음을 재촉한다. 상하이에 와서 필수적으로 들러야 할 곳들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오랜 시간 흔하게 널린 간접 정보들에 노출된 탓인지 뭔가 아쉽거나 식상하다. 2001년 이곳을 방문했던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표현처럼 이미 ‘천지 개벽’한 데다 내년 엑스포 행사를 준비하느라 더욱 화려해지고 있는 도시다. 번쩍거리는 불빛이나 뉴욕 못지않은 화려함보다 오히려 전통과 과거를 껴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발견하는 재미가 더욱 쏠쏠하다. 특히 그 모습들은 박물관처럼 박제화되지 않았기에 더욱 반갑다. 과거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상하이의 낡은 골목길인 눙탕(堂)과 상하이에서 1시간도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있는 1700년 고도(古都)인 주자자오(朱家角)에서 물과 벗하며 살아가는 이들은 전통과 현대가 어떻게 접목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중국의 인사동 혹은 홍대앞’ 타이캉루 눙탕은 중국 남방식 골목길을 일컫는다. 홍콩 영화에서 흔히 봤던 좁고 추레한 모습과 흡사하다. 세 명 정도가 함께 지나치려면 어깨가 스칠 듯하다. 머리 위로는 낡은 옷가지며 헤진 이불, 대충 쥐어짠 행주 등이 걸려 나부낀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여전히-중국 당국은 지난해 올림픽 이전부터 이를 단속해 왔다- 웃통을 벗고 있거나 러닝셔츠만 걸친 채 골목길 한편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며 지나는 사람의 발걸음을 무심하게 좇는다. 상하이의 눙탕은 많이 사라져가고 있다. 이제 두어 곳밖에 남지 않았지만 입에서 입으로 소문이 나며 서양 관광객들과 국내의 일부 배낭여행자들이 가장 많이 찾고 있다. 가장 흥성한 곳이 바로 타이캉루(泰康路)의 눙탕이다. 중국 서민들이 살아왔던 역사와 생활을 엿볼 수 있음은 물론 화랑과 골동품·공예품 등을 파는 상점들이 모여 있다. 중국적 도시 문화 속에서 각국의 음식 문화, 예술 문화가 모여 있는 곳이기도 하다. 심지어 북한의 그림, 포스터만을 전문적으로 모아놓은 카페 ‘코뮤니스트’도 있다. 한국 사람이라면 반가운 한글을 보고 들어섰다가도 섬뜩한 문구의 나열에 흠칫 놀랄 수도 있다. 카페 주인은 호주 사람이라나. 이런 골목길이 미로처럼 끊임없이 이어진다. 술렁술렁 목적 없이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를 찾으려 한다면 필연적으로 다람쥐 쳇바퀴 돌듯 헤매거나 아예 길을 잃기 십상이다. 얼핏 홍대 앞의 자유분방함도 느낄 수 있고 인사동의 국적불명의 전통도 느껴진다. 하지만 이곳은 청대의 봉건지배부터 서구 열강의 아귀다툼, 국민당, 공산당 등 역사의 도저한 흐름 속에서 권력의 변화를 묵묵히 지켜보며 자신들만의 생존법을 익혀온 중국의 기층 인민들이 지내온 엄연한 생활의 터전이다. 가장 가까운 지하철 1호선 황피난루(黃陂南路)역에서도 꽤 떨어져 있다. 직접 찾기는 쉽지 않다. 그냥 택시를 타고 기사에게 ‘타이캉루’를 외쳐야 한다. 중국어 성조가 익숙하지 않으면 그냥 한문으로 써주자. 상하이 택시기사는 친절하기로 유명하다. 주자자오는 한국 관광객들에게 아직 낯설다. 최근 들어 여행상품에 많이 포함되면서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 수상 도시 저우좡(周庄)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저우좡이 마치 반질반질 닳았지만 손에 넣기 어려운 큰 돌덩어리 같다면 주자자오는 울퉁불퉁하지만 볼수록 매력 있는 조약돌과 비슷하달 만큼 오밀조밀하다. 최근 국내 한 드라마(‘카인과 아벨’)를 이곳에서 촬영하면서 서서히 입소문을 타고 있다. 차오강허(漕港河)를 큰 줄기로 해서 작은 샛강이 얼기설기 이어져 다뎬(大淀)호수로 흘러간다. 물길 사이에는 36개의 돌다리들이 놓여 명나라, 청나라 상업거리의 풍모, 뱃길의 정취 등을 다양하게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청나라 때 만들어진 우체국 다칭유쥐(大淸郵局)는 중국 동부에서 유일한 우체역사기념관이다. 우체국 뒤편에는 우편배달 배들이 묶인 채 지금이라도 당장 편지와 소식들을 가득 싣고 떠나려는 듯 물결에 출렁거리고 있다. 또한 1912년에 지어진 커즈위안(課植園)은 중국식 건축물과 서양식 건축물이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정원이다. 울울한 나무들 속에서 지친 다리쉼을 하기에 제 격이다. 이밖에도 벼농사전시관, 현대조각예술갤러리, 당삼채미술관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주자자오는 상하이에서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다. 저우좡이 2시간 남짓 걸리는 데 반해 주자자오는 1시간 거리에 있다. 상하이체육관(上海?育館) 전철역 1번 출구로 나오면 상하이여행센터(上海旅游中心)가 있다. 여기에서 주자자오로 가는 표를 판다. 영어는 안 통하니 지명을 미리 한문으로 준비해 두자. 주자자오 입구에 도착하면 인력거꾼들이 비둘기떼처럼 몰려온다. 이 도시가 매우 넓으니 자기네 인력거를 타고 투어하라는 얘기다. 못 알아들으면 다행이지만 설령 말이 잘 통하더라도 무조건 ‘부야오!(不要)’를 외쳐라. 바가지 요금이다. 주자자오는 걸으며 쉬며 구경하며 돌아보기에 딱 좋은 정도의 크기다. 글ㆍ사진 youngtan@seoul.co.kr ●여행수첩 ▲이동 방법 푸둥 공항에서 자기부상열차를 탈 때는 꼭 비행기 티켓을 보여주자. 편도 티켓 50위안을 40위안으로 할인해 준다. 시내에서 이동할 때는 지하철이 좋다. 체험이 될 수도 있지만 상하이의 공포스러운 교통지옥을 피하는 유용한 수단이기도 하다. 요금은 거리에 따라 2~6위안이다. ▲묵을 곳 호텔이 아니라도 싸고 깨끗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곳은 많다. 바로 대학에서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다. 영어가 곧잘 통하는 데다 교통이 편리하고 가격이 저렴하다. 또한 중국의 대학생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도 된다. 상하이사범대학(6432-2236) 또는 둥제(東街)대학(6598-2500), 화둥(華東)사범대학 등이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한다. 100위안 안팎으로 묵을 수 있다.
  • “백두산 할양설 사실과 다르다”

    “백두산 할양설 사실과 다르다”

    “백두산은 북한 국경이 아니라 우리 한민족의 국경이라는 인식을 갖고 적극적으로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고구려연구 전문가인 서길수(65) 서경대 교수가 백두산의 국경 문제를 집중적으로 분석한 ‘백두산 국경 연구’(여유당)를 펴냈다. 단군조선에서 현재까지 백두산을 중심으로 한반도의 국경사를 통사적으로 집대성한 책이다. 9일 서울 동교동 개인 연구실에서 만난 서 교수는 “1990년 백두산을 처음 접한 이래 지금까지 30번쯤 오르내렸고, 압록강과 두만강도 수없이 다녔다.”면서 “20여년 간 역사 유적을 답사하며 직접 보고 듣고, 수집한 자료들을 정리한 결과물”이라고 설명했다. ●60년대 조·중 국경조약 원문 분석 가장 주목할 부분은 1960년대 북한과 중국이 맺은 조·중 국경조약의 내용을 전면적으로 분석한 것이다. 1962년 조약을 체결하고, 이를 바탕으로 1964년 국경을 확정했지만 지금까지 북한과 중국 어디에서도 조약문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이나 검토는 이뤄지지 않았다. 서 교수는 “50년이 지나도록 북한과 중국이 조약 내용을 완전히 공개하지 않은 탓에 우리 국민의 북쪽 국경에 대한 인식은 ‘6·25 참전 대가로 북한이 백두산을 중국에 넘겨 줬다’는 백두산 할양설 수준에 머물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 교수는 수년 전 중국 옌볜의 헌 책방에서 중국어로 된 조·중 국경조약문을 입수했고, 이번에 원문 전문과 번역문을 수록했다. 이종석 전 통일부장관, 포항공대 박선영 교수 등이 조약의 일부를 연구에 반영한 적이 있지만 원문을 전부 분석한 건 처음이다. 서 교수는 조약문을 토대로 압록강과 두만강에 있는 451개 섬의 85.5%가 북한에 귀속돼 있다는 사실을 밝혀 냈다. ●간도협약 때 면적보다 조금 줄어 또 백두산 일대 28개 국경 좌표의 위치를 확인해 지도에 표시한 결과 1909년 간도협약 당시에 비해 줄어든 면적이 많지 않을 걸로 미뤄 볼 때 ‘백두산 할양설’은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서 교수는 올해 100년이 된 간도협약에 대한 연구도 좀더 깊이있게 다뤄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 간도협약 연구가 일본의 약탈을 부각시키는 데 집중되다 보니 청나라가 얼마나 치밀하게 준비했는지에 대한 연구는 미흡했다.”면서 “앞으로 우리가 상대할 대상은 일본이 아니라 중국이란 점을 인식하고, 동북공정에 맞설 대응논리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청, 간도협약 치밀하게 준비” 1994년 고구려연구회를 창립해 2007년까지 이사장직을 맡으며, ‘고구려 역사유적답사’, ‘대륙에 남은 고구려’ 등 다수의 고구려 관련 서적을 집필해 온 서 교수는 올 8월 정년퇴임을 계기로 그동안 매진해온 모든 역사 연구에서 손을 뗄 계획이다. “오랫동안 염두에 둬온 일인 데 3년 정도 산에 들어가 죽고 사는 문제를 공부하려고 합니다. 남은 과제들은 후학들에게 맡겨야지요.” 그는 “고구려성을 찍은 사진만 3만장이 넘는다. 필요한 기관에 자료를 기증하고 싶은데 관심을 갖는 곳이 없어 창고에나 묵혀 둬야 할 판”이라며 씁쓸해했다. 글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문체반정은 정조의 사상탄압 정책인 듯”

    지난 2월 일부가 공개돼 큰 파장을 일으킨 정조의 비밀어찰 297통 전부가 책으로 묶여 나왔다.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은 어찰의 실물 자료 사진과 탈초(정자체로 쓰기), 번역문, 해제를 덧붙인 ‘정조 어찰첩’ 도록(2권)과 실물 사진을 뺀 보급판 단행본을 18일 공개했다. 정조의 비밀어찰은 정조가 1796년부터 1800년까지 노론 벽파 핵심 인물인 심환지에게 보낸 것으로, 정조 말년 정국 동향의 비밀스러운 전개과정과 정조의 인간적인 면모를 들여다볼 수 있는 희귀 자료로 관심을 모았다. 지난 2월 언론 공개 당시엔 299건으로 알려졌으나 날짜별로 다시 정리한 결과 2건이 줄어 297건으로 확인됐다. 정조어찰첩은 여론정치와 막후정치에 능한 정조의 제왕적 리더십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어찰첩 공개를 주도한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는 “노론과 남인, 시파와 벽파 등 각 정파의 핵심 인물과 사적으로 정보망을 구축해 자신과 반대편에 있었던 세력을 견제하는 데 활용했다.”면서 “마치 청나라의 강희제가 지방 권력을 견제하고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지방관과 비밀 문서를 주고받았던 주접(奏摺)제도와 흡사하다.”고 설명했다. 정조가 시행한 문체반정에 대한 새로운 해석도 제기됐다. 문체반정은 순정치 못한 소설체와 소품문을 순정한 고문의 문체로 바꾸도록 강제한 것으로,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가 대표적인 문체반정 대상으로 지목됐다. 정조는 하지만 어찰에서 구어체와 속담, 욕설에 가까운 비어 등 문체반정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표현들을 적극적으로 구사했다.진재교 성균관대 교수는 이에 대해 “노론 벽파를 견제하려는 정치적 의도도 없지 않으나 그보다 사대부들의 자기검열을 통해 사상을 탄압하려는 매우 정치적인 정책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반 대중의 가장 큰 관심을 끌었던 정조의 사망 원인은 정조어찰첩을 근거로 볼때 기질과 지병에 따른 병사의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됐다. 한편 어찰 입수 경위에 대해 안 교수는 “30년 전 심환지의 후손이 채무 청산 조건으로 어찰을 한 소장자에게 넘겼고, 소장자 사망 뒤 지금은 자제들이 공동 소유하고 있다.”며 “여러 기관에서 어찰 매입을 희망하고 있으나 소장자측에선 별다른 반응이 없다.”고 전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글로벌 시대] 한중일은 열린 민족주의를 지향해야/남상욱 유엔공업개발기구 서울투자진흥사무소 대표

    [글로벌 시대] 한중일은 열린 민족주의를 지향해야/남상욱 유엔공업개발기구 서울투자진흥사무소 대표

    1792년 영국왕의 사절 조지 매카트니가 청나라의 건륭제를 만나러 수만리 바다를 건너 황제의 여름 휴양지 열하에 도착했다. 황제를 배알하려는데 굴욕스러운 의전 문제가 생겼다. 황제에게 세 번 엎드리고 아홉 번 절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천하의 중심으로 여기던 중국의 위세는 그러나 오래가지 않았다. 반세기 후 영국은 사절 대신 군함과 대포를 앞세우고 중국을 유린했다. 중국은 서구열강의 도도한 동진정책에 밀리고 심지어 오랑캐로 여기던 일본에마저 참패해 열강의 식민지로 전락해 갔다. 더불어 중국인의 자존심도 무참히 허물어졌다. 중국의 민족주의는 이런 몰락과정에서 자주독립과 자존심을 되찾자는 운동으로부터 출발했다. 한편 명치유신 이래 서구의 기술과 제도를 도입하여 급속히 근대화를 이룩한 일본은 식민정책도 모방해 조선과 중국을 삼키려 했다. 일본의 민족주의는 망해가는 중국과 달리 욱일승천하는 국력을 배경으로 일본 중심의 아시아·태평양을 건설(대동아공영권)하자는 도전적 열기로부터 배태되었다. 21세기에 접어든 오늘날 중·일의 민족주의는 확연히 새로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중국이 백년의 잠에서 깨어나 다시금 비상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현재 미국, 일본, 독일 다음 세계 4위인 중국의 경제규모가 2040년쯤 미국을 앞지를 것으로 예측했다. 중국의 군사력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최근 칭다오에서 개최된 해상 열함식은 세계로 뻗어 가는 중국의 군사력을 상징한다. 일본의 민족주의도 우경화 경향을 보이는 전후세대를 중심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전후세대는 과거사를 반성하기보다 오히려 히로시마 원폭과 같이 자신도 과거사의 희생자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들은 일본도 정상적인 국가, 즉 정치대국으로 방향전환을 해야 하며, 필요하다면 군사력도 증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북한 핵문제와 로켓 발사는 일본 우익의 재무장 요구에 기름을 부은 격이다. 문제는 부상하는 중국과 경제대국 일본의 민족주의가 경쟁 내지 대립의 추세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일 사이에는 과거사문제, 일본의 우경화와 군비증강, 중국을 겨냥한 미·일 동맹, 타이완문제, 댜오위다오 영토분쟁, 일본의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진출 문제 등 난제가 수북하다. 이 모든 근저에는 21세기 아·태지역의 패권을 둘러싼 치열한 경쟁이 도사리고 있다. 중·일 민족주의와 관련, 우선적으로 경계해야 할 두 가지 위험변수가 있다. 첫째, 중국 정부가 중화민족주의를 대내외 정책의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외적으로 동북공정의 예와 같이 국제이슈에 민족주의 이념을 투입함으로서 장차 국제분쟁을 자초할 우려가 있다. 대내적으로 중화민족주의와 공산당 장기집권의 당위성을 교묘히 엮어서 통치의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장차 민족주의의 열기가 정부 통제를 벗어난다면 예상치 않은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 둘째, 일본 집권당의 우경화와 민족주의를 국내정치에 이용하려는 태도다. 전후 장기집권해온 자민당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면서 온건, 중도세력은 점차 도태되고 우익인사가 당의 전면에 나서고 있다. 우익은 국내 인기저하를 만회하기 위해 과거사, 군사재무장 등을 거론함으로써 민족주의를 자극하고 있다. 두 강대국 사이에 위치한 한국으로서 중·일 민족주의가 대립하거나 충돌하게 되면 악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한국으로서는 중·일 양국의 민족주의가 폐쇄적 중화나 대동아공영권 식으로 흐르지 않고 호혜평등과 근린협력에 입각한 열린 민족주의로 발전해 나가도록 중간자적 역할을 다해야 할 것이다. 또한 한국 역시 민족주의 문제에서 자유롭다고 할 수 없는 만큼 우리 스스로 열린 마음으로 세계를 포옹해 나가야 할 것이다. 남상욱 유엔공업개발기구 서울투자진흥사무소 대표
  • “한민족의 기원 화폭에 담았습니다”

    “한민족의 기원 화폭에 담았습니다”

    지난달 25일부터 광주광역시 광주문화예술회관 전시관(옛 시립미술관)에서 ‘그림으로 보는 역사 이야기’라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6월28일까지 이어진다. 전시회를 여는 작가의 이름에 시선이 꽂힌다. 만몽(卍夢) 김산호 화백. 50년 전 스무 살의 나이에 SF 만화 ‘라이파이’를 탄생시키며 당시 청소년들의 가슴을 뜨겁게 만든 작가다. 청소년들은 22세기를 배경으로 빛보다 빠른 제비호를 타고 5대양 6대주를 누비며 악의 무리를 처부수는 라이파이의 영웅담에 열광했다. 한국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암울했던 시절, 희망과 용기를 주었던 까닭일 것이다. 라이파이의 아버지가 역사화를? 20년 동안 그가 그려온 역사는 어떤 것일까. 광주에 갔다. 전시관에서 만난 김 화백은 그림을 먼저 보라고 권한다. 1200㎡가 넘는 공간을 가득 채운 거대한, 그리고 크고 작은 아크릴화, 유화 350여점을 찬찬히 눈에 담는 시간도 꽤 걸린다. ●치우천황의 밝달 국·단군의 대쥬신제국·밝지·실라 생생하게 신라 박제상이 썼다고 알려진 ‘부도지’의 마고주신 신화와, 기원전 8세기부터 3300여년 동안 이어졌다고 하는 국, 이제는 일반인에게도 익숙한 치우천황이 활약했던 1500여년의 밝달(배달)국, 그리고 단군이 세운 대쥬신제국(고조선), 부여, 위가우리(고구려), 밝지(백제), 실라(신라) 등의 모습이 생생하다. “제가 그리는 역사는 대한민국사가 아니라 한민족사입니다. 대한민국은 한민족사의 파편일 뿐이에요. 한민족의 뿌리가 어디에서 왔고, 또 어디로 갔는지 복원하는 작업이죠.” 낯설어하는 모습을 보이자 김 화백은 재차 전시관으로 손을 잡아끌며 여러 그림을 다시 보여준다. “요나라 시조는 야율 아보기(阿保機)인데, 아보기는 우리말로 치면 아버지예요. 중국 발음으로도 아버지이고. 우리와 같은 민족이 아니라면 쓸 수 없는 말이죠. 마의태자와 함께 신라 재건을 위해 싸우던 유민들이 북쪽으로 올라가요. 김함보라는 사람이 있는데 나중에 여진을 통일하죠. 신라 김씨예요. 이 사람의 8대손이 금나라를 세운 김아골타 황제입니다. 후금(청나라) 시조는 누르하치 황제인데 성(姓)이 애신각라(愛新覺羅)입니다. 신라를 사랑하고 잊지 않는다는 뜻으로 신라의 핏줄이 분명합니다. 청나라 건륭제의 칙명으로 지어졌던 ‘만주원류고’에는 만주족은 쥬신족이라고 서술돼 있죠. 바이칼 호수 인근에 부리야트족의 자치공화국이 있는데 부리야는 다름 아닌 부여입니다.” 그의 그림 속에서 한민족의 선조들은 바이칼 호수에서부터 만주, 산둥 반도, 한반도, 그리고 일본에 이르기까지 말을 달린다. 그는 한민족 벨트라고 했다. 사대 사상이나 식민 사관을 빼고 우리를 중심으로 우리 민족의 역사를 바라보자는 민족사학, 재야사학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에 정통사학(강단사학)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 그는 “제도권 사학이 완전히 틀렸다는 것은 아니에요. 다만 바라보는 방향이 다른 것이죠. 제도권 사학이 앞면만 보고 있다면 저는 뒷면을 보고 거기에 나타난 다른 모습을 그리는 겁니다.”라고 설명했다. 김 화백은 만리장성 바깥의 역사를 이민족의 것으로 여겼던 중국이 이제 동북공정을 통해 자신의 역사라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 안타깝다고 했다. 예전에는 괴물로 묘사하던 치우천황까지 자신들의 조상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고조선이나 고구려마저도 중국의 지방 정부 가운데 하나로 만들려 한다고 성토했다. “최근 중국 동북지방에서 황하문명보다 오래된 홍산문명 유물들이 나오고 있어요. 그곳은 바로 고조선이 활약했던 한복판입니다. 우리 스스로 한반도에 갇혀 우리 민족사를 배척하는 동안 중국은 조금씩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역사는 한 번 빼앗기면 찾을 수가 없습니다. 잃어버린, 숨은, 알려지지 않은 우리 민족사를 널리 소개하는 것, 그것이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작업입니다.” ●직접 그린 역사화 2000여점 상설 전시관 세우는 게 꿈 민족사 복원 작업에 매달리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김 화백은 1966년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만화 외에 패션 및 관광 사업에 도전했다. 사이판과 제주도에 있는 잠수함 관광이 그의 작품이다. 1978년 중국 정부의 초청으로 개방되기 전인 만주를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 그곳에 남아 있는 고구려 풍습과 문화를 만나며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가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깨닫게 됐다고 했다. 1988년부터는 아예 사업을 접고 북만주에서 타클라마칸 사막 등 중국 각지는 물론 몽골, 러시아를 드나들며 한민족의 흔적을 찾기 시작했다. ‘대쥬신제국사’와 계속 발간되고 있는 ‘대한민족통사’ 시리즈는 그 결과물이다. 한국 만화 재평가 작업의 흐름을 타며 지난해 만화가로서는 일곱 번째로 문화훈장을 받았던 김 화백. 6월 말까지 예정된 이번 전시회가 끝나면 한국 만화 100주년과 겹쳐진 라이파이 50주년 기념 행사가 그를 기다리고 있다. 박재동 화백이 회장으로 있는 라이파이 팬클럽과 함께 팬미팅 겸 전시회를 서울에서 가질 예정이다. 국립현대미술관, 부천만화정보센터,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도 라이파이 관련 기념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미국의 준리 사범, 멕시코의 문대원 사범 등 한국을 빛낸 태권도 그랜드 마스터의 삶을 담은 500페이지짜리 만화책을 다음달 즈음 출간할 예정이다. 직접 그린 역사화 2000여점에 대한 상설 전시관을 만드는 게 소원이라는 김 화백은 “제 호가 만몽인데, 수많은 꿈을 지니고 있다는 뜻입니다.”면서 “만화를, 그림을 그리는 자체가 꿈이에요. 언제나 꿈을 꾸고 그 꿈을 실현하고 있죠.”라고 웃음 지었다. 글 사진 광주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中 건륭황제 옥새 29억원에 낙찰

    1860년 약탈된 청나라 건륭황제의 옥새가 프랑스 파리에서 실시된 경매에서 168만유로(29억원)에 낙찰됐다고 중국 반관영 통신인 중국신문사가 30일 보도했다. 프랑스 경매회사인 보상 르페브르가 청나라 건륭황제 옥새 ‘구주청안지보’를 경매에 부쳤고 다섯 차례나 호가를 높이며 치열한 경합을 벌인 끝에 이름 밝히기를 거부한 한 중국인에게 낙찰됐다.
  • 화해모드 中·佛 또 경매 파동

    │베이징 박홍환특파원│프랑스 경매회사가 또 다른 위안밍위안(圓明園) 유물을 경매에 부치기로 해 중국내 여론이 들끓고 있다. 겨우 회복 기미를 보이던 중국·프랑스 관계에도 찬물을 끼얹을 전망이다. 프랑스 경매회사인 보상 르페브르는 29일 파리 드루아호텔에서 중국 청나라 건륭제(乾隆帝) 때의 옥새를 경매에 내놓을 예정이라고 중국의 반관영통신인 중국신문사 등이 28일 보도했다. 높이 9㎝, 가로·세로 각각 10.9㎝의 정방형인 옥새는 위쪽에 두마리의 용이 조각돼 있고 바닥에는 중국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보물임을 뜻하는 ‘구주청안지보(九州淸安之寶)’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감정업계 전문가는 이 옥새가 건륭제(1736~1795년) 때 만들어져 위안밍위안에 보관돼 있던 황실의 보물이라고 설명했다. 경매가는 30만유로(약 5억원) 정도로 예상되고 있다. 소장자는 1860년 제2차 아편전쟁 당시 청나라 황실의 여름 별궁인 위안밍위안 약탈에 참여한 프랑스 군대 지휘관의 후손으로 알려졌다. 중국내 반발이 지난번 이브생로랑 소장품 경매 때보다 더 큰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더욱이 건륭제는 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역대 황제 가운데 한 명이다. 네티즌들은 “프랑스의 후안무치가 극에 달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다. 군대를 파견해 프랑스 유물을 빼앗아 오자.”며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위안밍위안의 토끼머리와 쥐머리 동상 경매 파문이 여전히 ‘진행형’인 가운데 또 위안밍위안 유물이 경매 대상에 오름으로써 겨우 봉합되려던 중국과 프랑스 관계는 다시 중대한 위기를 맞게 됐다. stinger@seoul.co.kr
  • “연행도는 1790년 무렵 김홍도 작품”

    “연행도는 1790년 무렵 김홍도 작품”

    중국 연경(燕京·현 베이징)으로 간 조선 사절단이 둘러본 세밀한 풍경 묘사가 돋보이는 ‘연행도’(燕行圖)의 작가와 제작 연대에 대한 구체적 연구 보고서가 나왔다. 도화서 화원으로서 연경 사절단과 함께 간 단원(檀圓) 김홍도(金弘道·1745~?)가 1790년을 전후해서 그렸다는 것. 이 연행도는 연행 노정의 경물(景物)과 행사 장면의 화면 포착이나 회화적 기법과 수준에서 최고의 작품으로 꼽혀왔다. 한국기독교박물관 최병현 관장은 21일 “연행도를 영인본으로 제작, 발간하기 위해 정밀 연구 조사를 벌인 결과 정조 13년(1789) 조선에서 청나라로 파견한 동지사(冬至使) 연행사절단으로 연경을 다녀온 김홍도가 그린 작품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사절단이 육로로 왕래하는 풍경과 공식 행사 장면 등을 1폭의 발문(跋文)과 함께 13폭의 그림에 담은 것으로 지금까지 2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작자 미상의 1760년대 작품’으로 분류됐었다. 조선시대에 연경 사절단을 보낼 경우 도화서 화원이 동행해 사행 여정을 기록화로 남기고, 때로는 지도와 같은 금지 품목을 모사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연행도 전문가이며 이번 영인본 발간 작업에 참여한 한국학중앙연구원 정은주 박사는 “연행도 제10폭에 담긴 ‘벽옹’(?雍)은 청나라 건륭제(乾隆帝)의 명에 의해 1784년 겨울 이륜당(彛倫堂) 앞에 완공된 것으로 연행도 역시 1784년 이후에 제작됐다는 사실을 밝혀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홍익대 박효은(조선후기 미술사 전공) 강사는 1790년대 김홍도가 그렸던 궁중행사와 관련된 그림과 비슷한 기법에 주목했다. 화성능행도병(華城行圖屛), 각종 금강산도(金剛山圖), 화성추팔경도(華城秋八京圖) 등과 비교해 봤을 때 연행도를 김홍도가 그린 것이 확실하다는 주장을 뒷받침했다. 그는 특히 화성능행도병의 건축물의 지붕이나, 서까래, 공포 등 세부 표현 기법들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한국기독교박물관은 최근 실물과 똑같은 크기로 영인본을 제작했고, 오는 10월 ‘한국기독교박물관 소장 연행도와 김홍도’를 주제로 제6회 매산기념강좌를 개최할 예정이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김용상 첫 역사소설 ‘별궁’ 출간

    언론인 출신의 작가 김용상이 소현세자빈 강씨를 주인공으로 한 첫 역사소설 ‘별궁의 노래’(생각의 나무 펴냄)를 내놓았다. 병자호란이 끝난 뒤 소현세자와 심양(베이징)에서 8년 동안 볼모살이를 한 소현세자빈을 청나라와 조선의 무역을 주도한 여성 기업인이자 외교관으로 묘사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9일 TV 하이라이트]

    ●걸작다큐(KBS1 밤 12시35분) 중국 고유의 독특한 공연예술인 경극. 19세기에 등장한 경극은 연극과 음악, 노래, 춤, 무술 등이 합쳐진 종합예술로, 중국 고전이나 전설을 소재로 한다.베이징의 한 경극학교에는 전국에서 모인 200여명의 학생들이 8년 과정을 공부하고 있다. 경극학교의 학생들을 만나보고 그들의 하루를 들여다본다. ●아내와 여자(KBS2 오전 9시) 아름이네의 이사일이 다가오자 웅기는 아름이와의 이별을 아쉬워하고, 창하네와 자경네는 송별회와 운동회 준비에 여념이 없다. 준하는 여진의 아이들에게 간식을 챙겨주고 아이들은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연다. 한편 희수는 연하가 자신을 돌보는 이유를 의아해하고, 종미는 기억을 되찾으라며 희수를 자극한다. ●돌아온 일지매(MBC 오후 9시55분) 큰 상처를 입고 사경을 헤매던 일지매는 진선미 자매의 간호로 눈을 뜨게 되고, 누워있던 동안에 전쟁이 끝났다는 얘기를 듣고 분통해 한다. 청나라로 끌려온 포로들을 구해 조선으로 돌려보내는 활약을 하던 일지매는 볼모로 청나라에 머물던 소현세자와 친분을 맺게 되고, 드디어 조선으로 돌아오게 된다.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SBS 오후 8시50분) CCTV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괴현상이 나타난다. 보름 전 공장에 설치한 CCTV에 매일같이 의문의 물체가 찍힌다고 한다. 화면에 또렷이 나타나는 가늘고 긴 빛줄기. 뿐만 아니라 빛줄기 안에는 알 수 없는 원이 회전하고 있었다. 온 동네를 발칵 뒤집어 놓은 이 물체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하나뿐인 지구(EBS 오후 11시10분) 신라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경주. 이곳에 오직 과거의 자취만 존재한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불국사와 석굴암 등 크고 작은 사적지와 더불어 불교 문화재보다 더 다양한 생태라는 현재가 경주국립공원에 오롯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사적과 생명이 공존하는 땅, 경주국립공원으로 떠나본다. ●글로벌 코리안(YTN 오전 10시35분) 캘리포니아의 한 초등학교에서 실시하는 한국어-영어 이중언어 수업이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학부모들은 자녀가 빠른 속도로 한국어를 배워가자 이중언어 교육의 열렬한 지지자가 됐고, 함께 수업을 듣는 미국인 학생들의 학부모에게도 한국어-영어 몰입수업은 인기 만점이다. 이 프로그램은 방송사 사정에 따라 바뀔 수도 있습니다. KBS 02-781-1800 MBC 02-780-0015 SBS 02-2113-3190 EBS 02-526-2000 YTN 02-398-8000
  • [김문 전문기자 인물 프리즘] ‘세계 문화유산 약탈사’ 펴낸 김경임 전 튀니지 대사

    [김문 전문기자 인물 프리즘] ‘세계 문화유산 약탈사’ 펴낸 김경임 전 튀니지 대사

    영국의 비평가 겸 사학자 토머스 칼라일(1795~1881)은 “역사는 문명을 창조했지만 침략자는 문화재를 약탈했다.”고 말했다. 서구의 역사는 살상과 약탈, 정복으로 얼룩져 있음을 비유한다. 지난달 프랑스 크리스티 경매장에 청나라 황제의 여름 별궁 원명원(圓明園)에서 약탈된 동상 2점이 출품됐다. 발끈한 중국은 경매 중단을 요청했고, 프랑스 법원은 이를 기각하는 등 양국간 한바탕 신경전이 벌여졌다. 최근 미국에서는 ‘인도 독립의 아버지’ 마하트마 간디의 유품이 경매에 나와 인도 국민을 분노케 했다. 이처럼 중국과 인도를 비롯해 그리스, 이집트 등 불법 반출된 문화재를 둘러싼 피탈국들의 반환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안견의 ‘몽유도원도’나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직지심체요절’ 등 일본, 프랑스, 미국 등 국외로 유출된 문화재는 모두 7만 6000여점에 이른다. ●15년동안 세계 돌며 자료 모아 1978년 외무고시 첫 여성 합격자이자 여성 2호 대사를 지낸 김경임(61) 전 튀니지 대사. 15년 동안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약탈 문화재에 대한 자료를 샅샅이 뒤졌다. 여기에 30년 문화 외교관으로 재직하면서 얻은 경험을 녹여 최근 ‘세계 문화유산 약탈사-클레오파트라의 바늘’(홍익출판사)이라는 책을 펴냈다. 문화재 환수의 해법을 어느 정도 제시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세계 최초의 약탈 문화재 ‘함무라비 법전’과 인류 최초의 인권문서 ‘사이러스 칙령’, 그리고 덴마크로 유출됐다가 아이슬란드로 반환된 ‘레기우스 필사본’ 등 흥미로운 내용들이 담겨 있다. 그는 “문화재를 약탈해간 유럽은 피탈국들의 반환 요구에 대해 오랫동안 반대논리를 개발해왔다. 우리는 그 논리의 허점을 기술적으로 잘 파고들어야 한다.”면서 “각국의 대응과 반환사례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세계 문화재 약탈사를 다루게 됐다.”고 했다. 또한 올해 말에는 우리나라 문화재 약탈사를 다룬 제2권을 펴내는 등 앞으로 우리의 문화재 환수운동에 적극 나서겠다고 밝혔다. →언제부터 이 분야에 관심을 두게 됐습니까. -1990년대 파리 유네스코 주재 한국대표부에 근무하면서였지요. 국제사회가 문화재 반환청구국과 반대국가로 양분돼 치열한 외교전을 치르며, 자국의 문화재 수호에 전력을 다하는 것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반면 우리의 경우 이러한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을 실감하면서 자료를 수집하고 틈틈이 집필을 했지요. ●“일본의 약탈 관행·입장 등 간파해야” →문화재를 찾기 위한 해법은 어떤 것인가요. -요즘 국제사회는 문화재의 윤리성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약탈의 경우 불법성과 비윤리성 때문에 반환운동에 도덕성이라는 강인한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지요. 프랑스는 외규장각 의궤를 인류공동의 문화재라는 논리를 펴고 있지만 그게 말이 됩니까. 프랑스가 조선왕실의 의식과 행사를 기록한 문서를 해독하고 연구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 논리의 모순을 지적하며 반환요구를 계속해야 합니다.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린 그들의 약탈 관행이나 현재 입장 등을 간파하면서 적절히 대처해 나가야 합니다. →문화재 반환운동은 어떻게 전개해야 합니까. -그리스는 180년 넘게 문화재 반환운동을 해오고 있습니다. 단기간이 아닌, 대를 이어서 하는 것입니다. 문화재란 그 나라 국민들의 인격체입니다. 잘려지고 흩어진 것들을 원래대로 합치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문화재가 경매로 나와 흩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도 아주 중요하지요. 그는 1974년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한 뒤 미 오하이오주립 애크론 법대에서 수학했으며, 1978~2007년 도쿄·뉴욕·파리·뉴델리·브뤼셀 등지에서 외교관 생활을 했다. 지금은 문화재 반환문제와 관련된 초청 강의를 틈틈이 나가고 있다. km@seoul.co.kr 사진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 ‘청동상 경매 갈등’ 이번엔 佛이 반격

    │파리 이종수특파원│“쥐·토끼 머리 청동상은 원래 내것이었기에 내게 돌려줘야 한다.” 고(故) 이브 생로랑 소장품 경매에 내놓은 청나라 황제의 여름별궁 위안밍위안(圓明園)의 쥐와 토끼 머리 청동상을 둘러싼 프랑스와 중국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이브 생로랑의 연인이자 동업자로서 이번 경매에서 자신의 소장품을 함께 내놓았던 피에르 베르제는 2일(현지시간) 청동상 2점을 전화로 낙찰받은 중국인 문화재 수집상 차이밍차오(蔡銘超)가 낙찰 대금을 지불하지 않겠다고 밝히자 즉각 반박에 나섰다. 그는 이날 일간 르 피가로와의 인터뷰에서 “(낙찰 대금을 지불하지 않으면) 청동상은 내게 돌려줘야 한다.”며 “가장 아끼는 소장품인 피카소 작품 옆에 두 청동상을 두고서 그것들과 함께 내 집에서 살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사태가 두 청동상의 가격을 떨어뜨린 뒤 중국 당국이 몰래 되사려는 의도로 벌어진 것이라면 나는 동의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베르제는 또 낙찰자가 중국인이라는 것에 반대한다는 시선을 의식한 듯 “낙찰자가 프랑스인이나 미국인이 아니라는 점 때문에 영향을 받지도 않았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헛수고”라고 덧붙였다. 그의 이같은 주장은 프랑스 상법 ‘L321-14’조에 근거해 나온 것으로 보인다. 이 조항에 따르면 경매인이 대금을 지불하지 않으면 원래 소유자가 다시 팔 수 있다. 그리고 재경매 가격이 애초 낙찰가보다 낮으면 대금을 지불하지 않은 낙찰자(중국인 차이밍차오)가 차액을 지불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법률상의 해석이지 중국측이 계속 반발할 경우 청동상을 둘러싼 두 나라 사이의 갈등을 풀 수 있는 해법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viele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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