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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한성’은 어디에 있는가/김기섭 한성백제박물관 추진단 전시기획팀장

    [기고]‘한성’은 어디에 있는가/김기섭 한성백제박물관 추진단 전시기획팀장

    성남·광주·하남시의 통합안이 일단 국회에서 보류되었다고 한다. 얼마전 주민 여론조사에서 통합시의 이름으로 ‘한성’이 유력해졌다는 소식에 은근히 걱정이 앞섰던 터였다. 행정의 효율성을 강조하고 있는 만큼 통합작업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주민들과 관계자들이 어색하게만 들리는 ‘한성’에 얽힌 문제점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된 셈이다. 가장 가까운 시기, 통합시의 이름은 광주(廣州)였다. 너른(廣) 고을(州)이라는 이름이 말해주듯 예부터 매우 너른 고을이었다. 1963년 지금의 서초구~강남구~송파구~강동구에 이르는 한강변의 너른 들판을 모두 서울특별시에 떼어주고, 1973년에 성남시, 1989년에 하남시를 각각 독립시키는 등 분리와 축소를 거듭하고서 남은 것이 지금의 광주시이다. 서울시 송파구는 본래 백제의 500년(BC18~AD475) 도읍으로서 위례성, 한성, 한산 등으로 불렸다. 475년 고구려가 백제의 수도 한성을 무너뜨리고 한강유역을 차지한 뒤에는 고구려의 한산군(漢山郡)이 되었으며, 553년 신라 땅이 되어 북한산에 진흥왕 순수비가 세워진 뒤로는 신주(新州), 한주(漢州) 등으로 불렸다. 광주라는 이름은 고려 초에 생겼는데, 신라 때의 한주 곧 ‘큰고을’을 다르게 표현한 듯하다. 983년에는 중앙관리를 파견할 주요도시 12목의 하나로 꼽혔다. 고려 후기에는 전국을 5도(道) 양계(兩界)로 나누면서 양광도(楊廣道)를 설치하였는데, 한강 북쪽의 양주와 한강 남쪽의 광주를 중심으로 편성한 대단위 행정구역이었다. 조선시대에도 광주는 내내 수원과 함께 경기도의 대표도시였다.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에는 인조가 광주 남한산성에서 청나라에 항전한 일도 있다. 우리가 갓 태어난 아이에게 이름을 지어줄 때 성씨를 두고 고민하지는 않는다. 누대에 걸쳐 물려받은 역사와 전통이 있기 때문이다. 하물며 여러 사람이 오랫동안 함께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행정구역 이름이야 더욱 그러지 않겠는가? 한성은 백제 왕도의 이름이었으며 조선시대 도읍의 이름이기도 했다. 지금 서울시가 송파구에 한창 건립 중인 박물관의 이름도 ‘한성백제박물관’이다. 2011년 말이면 문을 열 한성백제박물관에서 내·외국 관람객은 서울이 유서 깊은 고도임을 ‘한성’이라는 이름을 통해 깊이 각인하게 될 것이다. 비록 최근 서울을 세계인이 모두 똑같이 발음할 수 있도록 ‘首爾(?)’(수이얼)라는 새로운 한자를 더 채용하였지만, 중화권에서는 여전히 서울을 ‘漢城’(한청)으로 통칭하고 있어 2000년 고도 서울 이미지를 한성백제박물관에서 유감없이 발휘하기 위해 한창 준비 중이다. 백제 때의 한성 중심지는 서울시 송파구, 조선시대 한성 중심지는 서울시 종로구이다. 그런데 성남·광주·하남 통합시가 광주·한주·한산 등 지역 정체성과 관련 깊은 역사적 명칭은 다 제쳐두고 이웃지역의 이름 ‘한성’을 선호한다니, 자칫 이웃집안 할아버지 이름이 멋있다고 다른 가문의 선조이름을 차용해 쓰는 격의 비판을 받지 않을까 걱정된다. 지역주민과 통합시 준비위원회 등이 통찰력을 발휘, 통합시의 새 이름이 지역의 역사·문화적 정체성을 훼손하거나 향후 지역문화사 등 역사이해에 혼란을 야기하는 경우가 없기를 진심으로 빈다.
  • 모순된 시대 가운데 선 비운의 세자

    모순된 시대 가운데 선 비운의 세자

    아주 오래전 갓 스무 살의 나이에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던 김인숙(47)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안다. 기성의 성(性) 인식 굴레에 갇혀 있던 사랑과 자유, 도덕의 문제를 그가 얼마나 감각적인 문체로 능수능란하게 풀어냈는지 말이다. 그러나 당시 여성잡지 등에서는 ‘여대생의 성애 소설’로만 주목하며 난리를 피웠다. 오죽했으면 당시 심사위원조차 “통속소설 작가로 빠질 수 있으니 주의하고, 또 정진하라.”고 그에게 덧붙였을까. 우려와 기대 속에 등단한 김인숙은 이후 시대의 요구를 외면하지 않으며 민중문학 작가로 ‘변신’한다. ‘79~80 겨울에서 봄 사이’, ‘함께 걷는 길’, ‘하나 되는 날’ 등을 발표한다. 굳이 전태일 문학상 수상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1980년대 후반 당시 방현석, 안재성 등과 함께 민중문학 작가로 활약한다. 그리고 1990년대에는 인간의 문제, 관계 속 소통의 문제 등을 천착하는 작품으로 한국일보문학상, 현대문학상, 이상문학상, 이수문학상, 대산문학상 등 주요 문학상을 받았다. 김인숙이 다시 한 번 새로운 곳으로 발을 내디뎠다. 수백년 전 역사 속 인물과 그의 고독, 번민, 불안을 지금 이곳으로 불러들인 역사 장편소설이다. ‘소현’(자음과모음 펴냄)은 병자호란 뒤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가 8년을 지내고 환국한 지 두 달 만에 세상을 떠난, 인조의 아들 소현세자 이야기다. 그중에서도 삶의 마지막 2년 동안 겪어야만 했던 조선의 비극, 권력의 암투 속에 방치되는 백성, 시대의 혼란 등에 대한 이야기다. 소설의 얼개는 이렇다. 조선을 침략한 청이 명에 승리해야 모국으로 돌아갈 수 있지만, 그렇게 되면 조선의 굴욕은 계속된다. 이 모순된 상황이 소현의 몫이다. 청은 승리했고, 소현은 돌아온다. 하나 인조와 신하들은 청의 신임까지 업고 돌아온 소현을 권력을 위협하는 대상으로 삼을 뿐이다. 소현은 조선왕조실록 등 사료에서는 ‘학질’로, 많은 사학자들의 평가로는 ‘비공식 암살’로 눈을 감는다. 김인숙은 ‘친청파’로 남은 소현의 고뇌와 갈등을 그릴 뿐 아니라 아들을 삶 저편으로 보내야만 하는 아비로서 인조의 고뇌와 갈등을 예의 섬세하면서도 객관의 문체로 풀어낸다. 마치 건조하면서도 간결한 김훈의 문장을 보는 듯 때로는 몰아치고, 때로는 훈훈하게 기록한다. 김인숙은 “역사를 소설화하는 것은 실존 인물과 사건에서 한 걸음 떨어져 새롭게 상상할 수 있다는 점 등에서 굉장히 매력있는 작업”이라고 첫 역사 장편소설에 대한 감회를 밝혔다. 이어 “현대소설의 스타일과 달리 역사소설인 만큼 의도적으로 객관적이고 간결한 문장을 구사하기 위해 애썼다.”면서 “이것 또한 역사소설이 주는 재미있는 것 중 하나였다.”고 말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한류 스타, 중국 영화 진출이 ‘대세’

    한류 스타, 중국 영화 진출이 ‘대세’

    중국이 2010년 한국 배우들의 새로운 슬로건으로 등극하고 있다. 중국계 미국 영화감독 웨인왕의 영화를 촬영 중인 전지현을 비롯, 중화권 톱배우 양자경과 오우삼 감독의 작품에서 호흡을 맞춘 정우성, 왕가위 감독의 러브콜에 응한 송혜교 등은 중국을 발판으로 세계 영화팬들과 만날 전망이다. 또 김희선은 성룡과 함께 한 2005년작 ‘신화’ 이후 두 번째로 중국 영화 출연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먼저 중국과의 랑데부를 알린 배우는 정우성이다. 지난해 9월 허진호 감독의 영화 ‘호우시절’에서 중국 여배우 고원원과 호흡을 맞추기도 한 정우성은 “오우삼 감독의 무협 액션 영화 ‘검무강호’ 출연을 고려중이다.”고 밝혔다. 정우성은 ‘검무강호’에서 월드스타 양자경과 액션은 물론 로맨스 연기까지 펼친다. “중국 로케이션 전문 배우”라고 자칭한 바 있는 정우성은 고원원 외에도 ‘무사’의 장쯔이 등 중화권 여배우들과의 호흡에 익숙하다. 최근 모든 촬영을 마친 ‘검무강호’는 올 8월 전 세계 동시 개봉을 추진하고 있다. 전지현은 웨인 왕 감독의 ‘설화와 비밀의 부채’를 차기작으로 택하고 19세기 중국을 배경으로 한 영화 속으로 뛰어들었다. 지난해 영화 ‘블러드’로 세계 영화 시장의 문을 두드린 전지현은 흥행 면에서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월드스타로서의 가능성을 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중국계 미국 작가 리사 시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설화와 비밀의 부채’는 청나라 여인들의 사랑과 우정, 전족 풍습과 삶의 애환 등을 그린다. 이번 영화에서 전지현은 ‘중국 4대 천후’로 불리는 톱스타 리빙빙, 할리우드 배우 휴 잭맨 등과 호흡을 맞출 예정이다. 또 송혜교는 중화권의 대표 감독인 첸카이거와 왕가위의 러브콜 쟁탈전으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지난 2월 중국 언론들은 송혜교가 첸카이거 감독의 ‘조씨고아’에 캐스팅됐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송혜교 측은 이에 대해 오보라고 일축했다. 송혜교는 ‘조씨고아’ 대신 왕가위 감독의 ‘일대종사’를 택했다. 이소룡의 스승인 엽문의 일대기를 그린 이 영화에서 송혜교는 양조위와 장쯔이, 장첸 등 중화권 톱스타들과 호흡을 맞추게 된다. 최근 촬영에 들어간 ‘일대종사’는 2011년 하반기에 개봉될 것으로 알려졌다. 김희선의 스크린 복귀 역시 중국 작품을 통해 이뤄질 것이라는 소식도 들려오고 있다. 영화 ‘신화’에서 월드스타 성룡과 호흡을 맞춘바 있는 김희선은 5년 만에 중국 영화 ‘전국’에 특별 출연을 심사숙고하는 중으로 알려져 시선을 모은다. 사진 = 서울신문NTN DB / 사진설명 = (왼쪽부터 시계방향) 전지현·정우성·김희선·송혜교 서울신문NTN 박민경 기자 minkyung@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KBS 드라마 ‘추노’ 사실인가 허구인가

    KBS 드라마 ‘추노’ 사실인가 허구인가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도망간 노비와 이를 쫓는 노비 사냥꾼의 숨막히는 추격전을 그린 KBS 수목 드라마 ‘추노’. 이 작품은 그동안 궁중 사극에서 잘 다루지 않았던 노비를 소재로 내세워 신선함과 호기심을 동시에 자아냈다. 그렇다면 ‘추노’에 그려진 노비들의 삶은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허구일까. 실제로 이 드라마가 방영된 후 한국고전번역원의 한국고전종합데이터베이스에서 ‘추노’나 ‘노비’ 등의 단어를 검색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최근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자료센터는 홈페이지(www.kostma.net)에 이와 관련한 코너를 개설하고 관련 분야의 전공 학자들이 직접 궁금증을 풀어준다. 이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을 ‘Q(질문)&A(대답)’로 발췌했다. Q1. 노비 얼굴 낙인은 진짜일까? A1. 드라마 ‘추노’에 등장하는 노비들의 이마나 가슴팍에는 신분의 굴레를 뜻하는 ‘노(奴)’자나 ‘비(婢)’자가 새겨져 있다. 죄인의 얼굴이나 몸에 먹물로 죄명을 새겨 넣는 것은 조선시대의 법전인 ‘경국대전’에도 실려 있다. ‘조선왕조실록’에도 도적질한 자 가운데 그 죄가 무거운 자에게 ‘도(盜)’자 등을 새기는 자자(刺字)형이 기록됐고, 공물을 사사로이 훔친 자에게 이 형벌을 내린 사례가 간혹 전해진다. 또 1506년(연산군12)에는 도망친 노비에게 ‘도노(逃奴)’ 혹은 ‘도비(逃婢)’를 새기게 하라는 왕명이 내려져 실제로 그러한 형이 시행되기도 했다. 그러나 자자형은 영원히 회복될 수 없는 가혹한 형벌이었으므로 잘 쓰이지 않는 등 유명무실화되었다가, 1740년(영조16)에 폐지됐다. 따라서 도망노비에게 노비의 낙인을 찍는 것은 형벌로서 한때 존재하기는 했지만, 실제 시행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Q2. 도망간 노비를 어떻게 찾았을까 A2. 도망간 공노비는 효종 때부터 도망간 노비들을 찾는 전담기구인 ‘추쇄도감(推刷都監)’을 설치해서 찾았다. 그러나 개인 소유의 사노비를 관리하는 것은 소유주가 사적으로 해결해야 했다. 도망간 노비의 소재를 파악하는 일은 다른 노비를 시켜 비교적 쉽게 했지만, 노비를 잡아오는 일은 관청에 기대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노비를 잡으러 갔다가 현 주인과 분쟁에 휘말릴 수 있고, 노비가 거세게 저항해 봉변을 당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1427년(세종 9) 경기도 양주에 살았던 장전의 부인 신씨는 도망간 계집종의 소재를 조사해 경상도 순흥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밝힌 뒤, 경상도 도관찰출척사에게 자신의 노비를 잡아달라는 내용으로 청원문서를 올리기도 했다. Q3. 누가 노비가 되었는가 A3. 고려 때부터 물려받은 노비제도를 가지고 있었던 조선시대에는 ‘노비로 태어나는 자’가 노비의 주종을 이루었다. 아버지나 어머니 중 한 명이라도 노비였다면, 그 자식 또한 노비가 되는 것이 민간의 관행이었다. 드라마 ‘추노’의 송태하(오지호)처럼 노비로 태어나지 않았어도 노비로 전락한 경우도 있었다. 반역과 같은 중죄를 저질러 노비로 전락한 이들이 그들이다. 조선시대 법전에는 강도의 처와 자식을 노비로 만드는 처벌규정이 실려 있다. 또 전란이나 흉년으로 인해 생계가 막막했던 백성들은 목숨을 구하기 위해 부잣집에 스스로를 팔아 노비가 된 자들도 있었다. Q4. 노비의 인생 역전은 가능했을까 A4. 드라마 ‘추노’에서 노비 출신인 언년이(이다해)는 병자호란을 틈타 양반과 혼인해 김혜원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신분을 벗어던졌지만, 결혼 첫날밤 도망친다. 이처럼 한번 낙인 찍힌 노비의 인생 역전은 가능한 것일까. 실제 노비로 태어나 신분을 숨긴 채 과거에 급제한 뒤, 벼슬을 지내다 다시 노비가 된 극적인 삶을 산 인물이 있었다. ‘영조실록’ 1745년(영조 21년) 5월26일자 기록에 따르면 영조는 엄택주라는 인물에 대해 진노하면서 흑산도로 유배해 노비로 삼고, 과거 합격 기록을 삭제하라는 명을 내린다. 엄택주의 본명은 이만강으로 전의현 관청의 노비였다. 그는 신분을 감추고 엄씨 행세를 하며 1719년(숙종 45)에 사마시에 합격해 생원이 됐으며 6년 후인 1725년(영조 1)에는 문과에 합격했다. 급제 후 연일현감 등을 지내다 벼슬을 그만뒀지만 결국 원래 신분이 드러났다. Q5. 상전을 죽이기 위한 비밀결사가 있었는가 A5. 드라마 ‘추노’에는 밤마다 잔혹한 노비 소유주를 살해하는 은밀한 조직이 그려지고 있다. 실제로 견고한 유교적 신분 질서가 흔들리기 시작한 조선 후기에는 그러한 이야기의 소재가 될 만한 사건들이 발생했다. ‘살주계(殺主契)’, ‘검계(劍契)’, ‘향도계(香徒契)’ 등으로 불린 사회적 불만세력들의 모임이 나타난 것이다. 서울 도심에서 횡행한 살주계·검계는 노비들이 상전을 죽이기 위해 결성한 조직이다. 도심지역에서 활동해 익명성을 유지하기가 용이했다. 하층민의 정치 조직인 향도계는 본래 장례절차를 도와주고 분묘를 조성해 주는 ‘상두꾼’의 모임으로, 하층민의 조직이었다. 이들은 양반 전체를 대상으로 테러를 감행, 재산을 약탈하고 부녀자를 겁탈할 뿐만 아니라 남인, 서인 등 당시 정치세력과도 손을 잡고 있었다. Q6. 소현세자는 독살됐을까 A6. 드라마 ‘추노’에서 소현세자가 독살됐음을 암시하듯이 소현세자 독살설은 계속 제기돼 왔다. ‘인조실록’에는 소현세자가 사망한 이후 약물에 중독된 듯한 증상이 나타났다는 기록이 있어 아버지인 인조에 의해 독살됐다는 설이 제기됐다. 당시 인조는 청나라에서 자신을 폐하고 친청파인 소현세자를 왕위에 올릴까 두려워했다. 세자에게 침을 놓은 이형익을 처벌하지 않았고, 세자의 장례를 지나치게 간소하게 치른 점 등 실록에 나타난 여러 정황은 독살설에 무게를 싣는다. 그러나 실록과 달리 ‘승정원일기’나 ‘심양일기’ 등에는 세자가 귀국하기 전부터 이미 병들어 있었다고 나와 독살된 것이 아니라 병사했다는 해석도 있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윤성호-오지헌, ‘제중원’ 카메오 출연

    윤성호-오지헌, ‘제중원’ 카메오 출연

    개그맨 윤성호와 오지헌이 SBS 월화드라마 ‘제중원’에 카메오로 나선다. 드라마 ‘제중원’의 제작사 측은 “내달 3일에 방송되는 ‘제중원’ 18부에 윤성호는 청나라 군인 역으로, 오지헌은 일본 군인으로 각각 깜짝 출연할 예정이다.”라고 전했다. 윤성호와 오지헌는 각기 다른 캐릭터를 살릴 것으로 기대된다. 저잣거리에서 만나 서로 길을 비키라며 시비가 붙어 싸우는 장면, 긴장되는 액션 장면을 코믹하게 풀어나가는 모습 등 재치 넘치는 끼를 드러낼 예정이다. 제작진은 “KBS ‘개그콘서트’에서 꿀두피, 두피엠으로 한창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윤성호는 변발한 청나라 군인 역으로 분했다.”며 “개성 넘치는 얼굴 표정이 일품인 오지헌은 일본인 말투를 아주 잘 소화해내 스태프들로부터 극찬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출연 배우들 역시 두 개그맨 덕분에 웃으면서 즐겁게 촬영을 할 수 있었고, 이들은 쉬는 시간에도 재미있는 입담으로 지루하지 않게 분위기를 후끈 달궈놓았다는 후문이다. 사진 = SBS 제공 서울신문NTN 김경미 기자 84rornfl@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영화리뷰] 공자-춘추전국시대

    [영화리뷰] 공자-춘추전국시대

    인류가 낳은 가장 위대한 사상가 가운데 한 사람인 중국 노나라 출신 공자(BC 551~BC 479). 점잖을 빼는 모습일 것이라는 상상은 영화 ‘공자-춘추전국시대’에서 보기좋게 빗나간다. ‘논어’의 구절들이 대사로 인용되지만, 사상가라기 보다 지략가의 모습이 역력하다. 세 치 혀를 놀리는 것만으로도 노나라가 이웃 강대국 제나라에 빼앗겼던 땅을 되찾아 온다. 절대적인 수적 열세에 몰린 순간 100대의 우마차를 앞세워 500대의 전차를 물러나게 한다. 공자가 명궁으로 불려도 손색이 없을 만큼 빼어난 활솜씨를 자랑하는 모습도 흥미롭다. 52세의 공자가 노나라 대사구(법무부장관)로 발탁되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노나라 제후 노정공이 당시 세도가였던 계손씨·숙손씨·맹손씨 이른바 ‘삼환’(三桓)에게서 왕권을 회복하기 위해 공자를 발탁한 것. 공자는 탁월한 전술로 이웃나라의 침략 야욕도 물리치고 내부적으로는 논리정연한 언변과 카리스마로 개혁을 단행하지만, 노정공은 공자의 강경함에 불안함을 느낀다. 결국 공자는 삼환의 우두머리 격인 계손사의 계략으로 노나라를 떠나 방랑을 거듭하게 된다. 중국 역사를 다룬 블록버스터라고 해서 스펙터클한 전쟁 장면을 기대하면 실망할 수도 있다. 화살비가 쏟아져내리는 장면이나 수많은 병사들이 드넓은 대지를 가득 메운 장면도 나오지만 입맛을 다시게 하는 수준이다. 영화는 10여년 동안 펼쳐진 공자 말년의 ‘고난의 행군’에 초점을 맞춘다. 공자의 인간적인 면모가 부각되는 부분이다. 제자들을 이끌고 집도 절도 없이 천하를 떠도는 모습은 그런데, 중국 사람이 아닌 다른 국적의 관객들이 보기에는 큰 울림이 없는 것 같다. 공자, 나아가 중국 자체를 홍보하고 중국인들의 자긍심과 애국심을 높이려는 인상이 드문드문 느껴지기 때문이다. 극적인 감동을 보태려고 그랬는지, 공자가 애제자 안회와 자로를 잃는 부분은 알려진 역사와는 다소 다르게 각색됐다. 액션 영화에서의 모습은 전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공자 역할을 맡은 저우룬파(周潤發 가운데)의 연기가 인상적이다. 지적인 모습이 의외로 잘 어울린다. ‘황후화’(2007)와는 달리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지는 않다. 공자의 정적인 계손사 역할을 맡은 중국 본토 출신 천졘빈(陈建斌)의 연기도 볼만하다.  연출은 맡은 후메이(胡玫)는 여성 감독으로, 장예모(張藝謀), 천카이거(陳凱歌) 등과 더불어 중국 5세대 감독군으로 분류된다. ‘옹정황제’, ‘한무대제’ 등 청나라와 한나라 시대에 가장 중요한 황제인 옹정제와 한무제가 주인공인 대하드라마를 연출한 것으로 널리 알려졌다. 중국 대하사극 전문인 셈이다. 108분. 12세 관람가.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한류스타, 해외진출 가속화… “한국이 좁다”

    한류스타, 해외진출 가속화… “한국이 좁다”

    이병헌과 ‘지.아이.조: 전쟁의 서막’(이하 지아아조), 비와 ‘닌자어쌔신’ 전지현과 ‘블러드’ 등, 2009년은 국내 배우들의 해외 진출이 두드러졌던 해였다. 2010년에도 이들에게는 국내 무대가 좁다. ‘지아이조’ 2편을 통해 할리우드의 문을 다시 두드리는 이병헌을 비롯, 중국 대작 영화에 출연하는 전지현과 송혜교, 정우성 등이 팬들의 시선을 모으고 있다. ◆ 이병헌·전지현 “월드스타, 원 모어 타임” 이병헌은 지난해 개봉한 할리우드 액션 블록버스터 ‘지아이조’에 이어 속편인 ‘지아이조2’에도 출연을 확정지었다. 이병헌은 지난해 8월 전 세계적으로 개봉한 ‘지아이조’에서 주조연급 악역 스톰 쉐도우로 분해 자연스러운 영어 실력과 화려한 액션 연기를 선보였다. 이에 ‘지아이조’의 제작자 로렌조 디 보나벤츄라는 이병헌에 대해 “스크린을 장악하는 배우”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지아이조2’는 이병헌 외에 다른 배우들의 캐스팅과 감독, 시나리오가 확정되는 대로 빠르면 올 여름에 크랭크인을 할 전망이다. 김지운 감독의 ‘악마를 보았다’를 먼저 시작하는 이병헌은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세부 사항을 조율하고 촬영을 시작할 예정이다. ‘지아이조2’의 제작사 파라마운트픽쳐스 측은 2012년 개봉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블러드’로 할리우드 등 세계 영화 시장의 문을 두드린 전지현은 흥행 면에서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월드스타로서의 가능성을 보였다. 차기작을 웨인 왕 감독의 ‘설화와 비밀의 부채’로 선택한 전지현은 지난 2일부터 촬영을 시작해 다시 한 번 세계로 발걸음을 옮긴다. 중국계 미국 작가 리사 시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설화와 비밀의 부채’는 비밀 문자를 통해 우정과 사랑을 나눴던 19세기 청나라 여인들의 전족 풍습과 애환 등을 그린다. 극중 설화 역을 맡은 전지현은 ‘중국 4대 천후’로 불리는 톱스타 리빙빙, 할리우드 배우 휴 잭맨 등과 호흡을 맞출 예정이다. ◆ 정우성·송혜교 “중국 대륙 정복 초읽기” 또 한류스타로 아시아에서 팬층을 거느리고 있는 정우성과 송혜교도 나란히 중국 대륙 정복을 외친다. 먼저 정우성은 중국의 오우삼 감독이 제작하는 무협 액션 영화 ‘검우강호’에서 월드스타 양자경과 호흡을 맞춘다. 스스로 “중국 로케이션 전문 배우”라고 말한 바 있는 정우성은 ‘무사’에서 장쯔이, ‘호우시절’에서 고원원 등 중화권 여배우들과의 호흡도 익숙하다. 정우성은 명나라를 배경으로 액션과 로맨스가 공존하는 ‘검우강호’를 촬영하기 위해 지난해 11월부터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촬영을 시작했다. 중국과 대만을 오가며 영화 촬영을 진행하는 정우성의 ‘검우강호’는 올해 개봉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송혜교는 홍콩의 유명 감독 왕가위의 신작 ‘일대종사’에 출연을 결정했다. 지난해 12월 송혜교의 소속사 이든나인엔터테인먼트는 “송혜교가 왕가위 감독의 작품에 출연하기 위해 광둥어와 무술을 배우고 있다.”고 밝혔다. 이소룡의 스승인 엽문의 일대기를 그린 ‘일대종사’는 송혜교를 비롯, 양조위와 장쯔이, 장첸 등 중화권 톱스타들이 총출동하는 영화로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 영화는 지난달부터 본격적인 촬영에 돌입했다. 사진 = 서울신문NTN DB, 영화 ‘블러드’·‘지아이조’ 스틸이미지 서울신문NTN 박민경 기자 minkyung@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전지현, 중국 영화서 파격 ‘올누드’ 도전

    전지현, 중국 영화서 파격 ‘올누드’ 도전

    배우 전지현이 파격 올누드에 도전한다. 전지현은 당초 중국배우 장쯔이 주연으로 알려졌던 중국영화 ‘설화와 비밀의 부채’에 여주인공으로 낙점됐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전지현이 이번 영화에서 과감한 노출신에 도전한다는 것. 뿐만 아니라 전지현은 전신누드를 비롯해 파격적인 동성애 연기를 펼쳐 기대를 모으고 있다. 영화 ‘설화와 비밀의 부채’는 여성들이 억압 받던 중국 청나라를 배경으로 부채에 비밀문자와 시, 글을 주고받으며 남다른 우정을 나누는 두 여인의 이야기를 그렸다. 이 영화의 연출은 홍콩 출신 미국인 웨인 왕 감독이 맡았으며 미국계 중국인 리사 시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했다. 전지현의 소속사 사이더스HQ의 관계자는 “웨인 왕 감독은 영화 ‘엽기적인 그녀’ 때부터 전지현을 관심 있게 지켜보다 몇 번의 러브콜 끝에 이번 작품에서 함께 일하게 됐다.”라고 전했다. 한편 이번 영화에는 할리우드 스타 휴 잭맨도 캐스팅돼 화제를 모으고 있다. ‘설화와 비밀의 부채’는 지난 2일 첫 촬영을 시작했다. 사진 = 서울신문NTN DB 서울신문NTN 김경미 기자 rornfl84@nate.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中우표한장 8억2200만원 경매사상 최고가

    中우표한장 8억2200만원 경매사상 최고가

    │베이징 박홍환특파원│중국 청나라 광서제(光緖帝) 때 발행된 1위안짜리 우표가 전 세계 우표 경매사상 최고가인 552만홍콩달러(약 8억 2200만원)에 팔렸다. 홍콩 경매회사인 인터아시아 옥션 주최로 30일 파크 레인 호텔에서 열린 ‘홍콩·중국·아시아 우표 및 서한’ 경매에서 1897년 2월 발행된 우표가 이 같은 가격에 거래됐다. 이 우표에는 흰색과 붉은 색이 섞여 있는 문양 위에 발행관청인 ‘대청우정(大淸郵政)’, ‘당일원(當壹圓·한점당 1원이라는 뜻)’ 그리고 ‘1dollar’라는 검은색 글씨가 새겨져 있다. 한번도 사용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뒷면의 고무액도 거의 원형 그대로라는 게 주최 측의 설명이다. 경매 예정가는 250만~300만홍콩달러였다. stinger@seoul.co.kr
  • 中우표 한장, ‘8억원’에 낙찰돼 세계新

    우표 한 장이 무려 8억 원이 넘는 고가에 낙찰돼 눈길을 모으고 있다. 1897년 중국 청나라 11대 황제인 광서제 때 발행된 1위안짜리 우표는 흰색 바탕에 붉은색 문양과 함께, 검은색으로 ‘대청우정’(大淸郵政), ‘1 dollar’ 등이 새겨져 있다. 지난 달 30일 홍콩의 경매회사인 인터아시아 옥션이 주최한 우표 경매에서 이 우표는 522만 홍콩달러(약 8억 2200만원)에 최종 낙찰됐다. 이날 우표경매에는 중국과 홍콩, 일본 등 아시아지역의 우표 1,800여점이 선보였으며, 이중 광서제 시절 발행된 우표가 전 세계 우표 경매사상 최고가를 기록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인터아시아 옥션의 한 관계자는 “보관 상태가 워낙 양호한데다, 당시 발행된 우표가 거의 남지 않아 낙찰가가 더욱 높아졌다.”면서 “우표를 사간 사람의 신원은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이전 최고가 기록은 지난 해 11월, 368만 홍콩달러에 낙찰된 ‘전국산하일편홍’ 우표다. 중국의 문화대혁명시기에 중국 전역의 성(省)·직할시 혁명위원회 수립을 기념하기 위해 디자인 된 이 우표는 작품성과 더불어 중국의 특별한 역사를 기록했다는 점 때문에 높게 평가됐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우산꽂이, 알고보니 10억짜리 청나라 유물

    50년 동안 더러운 신발장 한 켠에 세워둔 채, 아무렇게나 방치했던 우산꽂이가, 청나라 시대의 유물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영국 도시의 한 오래된 가계에서 발견된 한 도자기가 영국판 ‘진품명품’ TV쇼에서 반세기 만에 진가를 인정받았다. 1740년 경 중국 청나라 황제인 건륭시대에 만든 것으로 추정하는 이 도자기는 표면에 푸른색의 수려한 산수화가 그려져 있으며, 아래에는 건륭시대에 만들어졌음을 알리는 낙관이 찍혀있다. 이 도자기를 소유한 부부는 50여 년 전 지인에게서 우연히 선물 받은 뒤, 줄곧 창고에 대충 보관하다가 십 여 년 전부터는 우산꽂이로 활용해왔다. 이를 본 전문가는 “예사롭지 않은 산수화와 낙관을 자세히 관찰한 결과, 청나라 때 건륭제에 만들어진 도자기가 틀림없다.”고 결론지었다. 험한 환경 속에서도 꿋꿋이 ‘목숨’을 부지한 이 도자기는 표면에 큰 상처가 없고 보존이 잘 되어있으며, 산수화가 건륭제 집권 당시 유행한 전통양식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 최소 50만 파운드(한화 9억 3600만원)의 가치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했다. 도체스터 경매센터의 담당자 매튜 데니는 “보존상태가 양호해 기존 책정가(50만 파운드)보다 2배는 더 높은 가격에 팔릴 가능성이 높다.”면서 “특히 표면에 그려진 산수화가 매우 수려하고 역사적인 가치가 높아 눈독을 들이는 수집가가 많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도자기의 주인은 “내가 살고 있는 집보다 더 비싼 도자기를 곁에 두고 몰랐다. 나와 아내는 그저 모조품을 선물로 받았다고 생각했다.”며 기쁜 내색을 감추지 못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민석, 조선시대 ‘엣지남’으로 변신

    민석, 조선시대 ‘엣지남’으로 변신

    영화 ‘헬로우 마이 러브’의 주인공 민석이 OCN 8부작 드라마 ‘조선 추리 활극 정약용’을 통해 조선시대 최고 엣지남으로 변신한다. 민석은 OCN 8부작 드라마 ‘조선 추리 활극 정약용’의 일곱 번째 이야기 ‘늪’에서 청나라 유학을 다녀온 황대감댁 막내아들 ‘황현’을 맡았다. 황현은 조선시대 최고 엣지남으로 여성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뿐만 아니라 민석은 극중 서천(인도의 옛 이름)에서 가져온 염색료를 이용해 여성의 등에 타투를 그려주며 그림 실력을 선보일 예정이다. SBS 금요드라마 ‘아들 찾아 삼만리’, 아침드라마 ‘사랑도 미움도’를 통해 2007년 SBS 연기대상 ‘뉴스타상’을 받으며 연기력을 인정받은 민석은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를 통해 다재다능한 끼를 선보였다. 사진=웰메이드 스타엠 서울신문NTN 김진욱 기자 action@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전지현, 中에서 웨인왕과 극비리 영화 촬영

    전지현, 中에서 웨인왕과 극비리 영화 촬영

    전지현이 중국계 미국인 웨인왕(Wayne Wang)감독의 영화 ‘설화와 비밀의 부채’ 를 중국에서 극비리에 촬영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전지현은 주연 배우 장쯔이와 호흡을 맞추고 있으며 영화 출연에는 해외 파트너인 빌콩의 조력이 상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해 ‘블러드’ 로 처음으로 할리우드 문을 두드린 전지현으로서는 또 다른 방식으로 미국영화 시장을 노크하게 된 셈이다. 19세기 중국 후난성 지방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영화는 어려서부터 함께 자란 친구 ‘설화’(장쯔이 분) 와 ‘백합’ 의 인생역정을 통해 전족 여인들의 동성애와 애환을 다룰 예정이다. 현재 전지현이 맡은 역할은 비밀에 붙여져 있지만, 사랑과 우정을 넘나드는 청나라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룬 만큼 동성애 연기를 펼칠지에도 이목이 쏠리고 있다. 중국 매체 강서오락망(江西娛樂Q)에 따르면 영화 ‘설화와 비밀의 부채’ 는 웨인 왕 감독의 첫 번째 중국영화로써, 장쯔이는 웬디 머독(Wendi murdoch), 플로렌스 슬로(Florence sloan)와 함께 제작자로도 참여했다. 특히, 그 시대 속박 속에 살았던 부녀자들의 경직된 문화규범을 반영한 이 영화는 원작 소설의 구성이 기묘해 세계 유일의 여성문자체계이자 중국의 독특한 문화현상인 ‘女書(여서)’ 를 서구에 소개한다. 미국계 중국인 리사(Lisa See)의 동명 원작 소설을 스크린에 옮긴 영화 ‘설화와 비밀의 부채’ 는 영화 ‘네브라스카의 공주’ 에서 웨인 왕 감독과 손을 잡았던 마이클 레이가 웨인 왕 감독과 공동 집필했다. 사진 = 서울신문NTN DB 서울신문NTN 백영미 기자 positive@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씨줄날줄] 아편전쟁/김성호 논설위원

    문화사학자들은 흔히 인류 역사를 도취와 중독의 점철로 본다. ‘실낙원’의 선악과부터 시작해 서구문화사엔 술과 아편에 취해 창조적 영감을 구한 문학·예술가들이 숱하다. 그래서 계몽적 합리주의에 반기를 든 19세기 낭만주의 시기는 ‘도취의 시대’로 통한다. 악마파 시인 보들레르는 ‘인공의 낙원’을 통해 아편 도취를 묘사했었다. 도취의 영감은 낭만주의 예술가들을 관통해 20세기 전위적 아방가르드와 지금 대중문화까지 닿는다. 오죽하면 독일 문학평론가 알렉산더 쿠퍼는 그 일탈과 도취를 ‘신의 독약’이라 했을까. 문화사가들이 들여다보는 도취와 중독은 ‘자유로운 존재’ 측면의 인간 해방일 것이다. 그럼에도 도취와 중독은 해악의 그림자 탓에 빛이 바래기 일쑤다. ‘죄의 씨앗’이자 ‘영혼의 파괴적 도피’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 몰아세웠다는 마르크스의 경계도 종교가 가진 광기에 앞서 영혼타락과 오염의 집중부각일 것이다. 도덕·이성적 일탈로서의 도취, 중독의 꺼림이다. 도취며 중독과 관련해 나라끼리 피를 뿌린 세계사의 또렷한 흔적은 1840년의 그 유명한 ‘아편전쟁’이다. 아편무역을 통해 이윤창출을 노린 영국과, 이에 반발한 청나라의 전쟁. 당시 우수한 옷감 제조술을 가졌던 중국에 대한 영국산 방직물 공세가 여의치 않자 영국이 대안으로 들이민 게 바로 아편이다. 하층민 사이에 아편이 광범위하게 번져가자 중국은 마약상들을 홍콩으로 추방했고, 영국이 무역항 확대 명분을 내세워 일으킨 게 아편전쟁 아닌가. 전쟁에 패한 청나라는 홍콩을 영국에 빼앗겼고 지난 1997년에야 돌려받았다. 마약을 중국에 밀반입한 영국 남성이 그제 결국 사형을 당했다. 신장위구르자치구 우루무치에서 헤로인 4㎏을 소지한 혐의다. 총리까지 나서 선처를 호소하는 6개월간의 구명운동이 무위로 끝나자 영국이 ‘섬뜩하다.’는 표현까지 써가며 날 선 비난을 퍼붓고 있다. 자국 실정법 조치에 대한 ‘내정간섭’이라 반박하는 중국 입장도 잘못은 아닐 터. 그래도 중국에서 유럽인이 사형된 게 58년만이라니 보통 일은 아니다. 아편전쟁의 험한 기억이 작용했을까. 도취와 중독의 핏빛 전철을 또 밟지 않기를.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추노(推奴)’ 아이리스 인기몰이 이어갈까

    ‘추노(推奴)’ 아이리스 인기몰이 이어갈까

    KBS 특별 기획 드라마 ‘추노’ 가 시청률 고공행진을 했던 인기작 KBS 2TV ‘아이리스’ 의 기세를 이어갈 수 있을까. 수목드라마 1위를 고수하던 ‘아이리스’ 는 이병헌, 김태희, 김승우 등 스타군단과 가상의 정보기관 NSS를 내세워 사랑과 운명을 가미, 인기 미드 ‘24’ 를 연상시켰다. 또 광화문에서의 대규모 총격신 등 풍성한 볼거리로도 시청자의 시선을 붙잡는데 성공했다. 스케일이 큰 액션 첩보 드라마 ‘아이리스’ 에 이어 KBS는 다음 달 6일 새로운 액션 사극 ‘추노’ 를 방영한다. ‘추노’ 는 도망친 노비를 쫓는 추격자의 이야기로 역시 브라운관을 압도하는 영상과 탄탄한 스토리 전개로 2010년에도 팬들을 안방극장으로 끌어모은다는 계획이다. ‘추노’ 는 안방극장의 새로운 영상 혁명을 예고하고 있다. 방대한 스케일 뿐만 아니라. HD급 영상을 뒤어넘는 입체적이고 화려한 영상을 화면에 담아낸다. 특히, 한국 드라마 사상 최초로 HD 300만 화소의 무려 4배의 화질에 달하는 1200만 화소의 고화질 영상을 선보인다. ‘추노’ 는 병자호란 직후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갔던 소현세자의 귀국 후를 배경으로 사랑과 운명을 교차시켰다. 양반출신 조선 최고의 추노꾼 대길(장혁)과 도망노비가 된 조선최고의 무장 태하(오지호), 대길의 첫사랑이자 태하의 마지막 사랑인 혜원(이다해)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흥미진진한 스토리도 주목할 만하다. 60억원이 투입된 ‘추노’ 는 지난 8월 촬영에 돌입, 현재 10부 분량 촬영을 마친 상태이며 MBC ‘선덕여왕’이 오는 22일 종영 하면서 이탈리아 레스토랑을 배경으로 한 요리사들의 이야기 ‘파스타’ 와 격돌한다. 사진 = KBS 서울신문NTN 백영미 기자 positive@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연행도는 김홍도 작품 화성 건설과 직접 연관”

    “연행도는 김홍도 작품 화성 건설과 직접 연관”

    단원 김홍도의 연행도(燕行圖)는 수원 화성 건설용? 지난 4월 세간에 알려진 조선시대 사행(使行·사신 행차) 그림 연행도가 김홍도의 작품이 확실하며, 정조가 공을 들였던 화성 건설과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연행도는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이 소장품을 정리하던 중 발견해 올봄 공개했다. 공개 당시 단원의 그림으로 추정됐으며 조선시대 사행그림 가운데 최고 수작으로 평가받았다. 정재훈(43)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는 이 같은 내용의 ‘연행(燕行) 길에서 본 중화(中華)문명’이란 논문을 17일 서울대 신양인문학술정보관에서 열리는 인문연구 심포지엄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정 교수는 논문을 통해 “연행도가 김홍도의 작품일 뿐 아니라 그가 정조 13년(1789년) 연행사(조선이 청나라에 보낸 사신단)를 따라간 것 자체가 정조의 명령에 의해 수행되었고, 당시 최고 현안이었던 화성 건설과 직접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정 교수는 그 근거로 13폭짜리 연행도의 주된 소재가 명의 멸망, 청의 등장과 관련된 역사적 장소라는 점과 조선 사신들이 주로 방문한 곳에 대해 상세히 묘사하고 있는 점 등을 들었다. 그림에 나오는 조양문이나 산해관, 동라성, 정양문 등은 모두 성곽 제도와 관련된 장소다. 즉 화성 건축에 필요한 정보와 그에 관련된 곳을 상세하게 그렸다는 것이 정 교수의 주장이다. 정조 13년은 사도세자의 묘 ‘영우원’을 화성으로 옮기는 천장(天藏)이 결정된 해다. 김홍도가 동지사행에 포함되기 한달 전의 일이었다. 따라서 새로 읍성을 옮겨야 하는 시급한 상황에서 중국의 성곽 건축에 대한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정 교수는 “실제 수원 화성은 김홍도가 그려온 산해관의 동라문이나 조양문과 매우 유사한 형태를 띠었고, 벽돌을 활용해 지은 것도 중국성의 특징을 받아들인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결국 김홍도의 중국행은 알려진 것처럼 서양화법에 대한 연구목적보다 화성 건설에 앞서 중국 베이징(북경)을 참고하기 위한 정조의 의도가 반영됐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당시 김홍도가 정조의 특별화원으로 규장각(자비대령화원)에 속해 있으면서 정조가 요구하던 그림을 그린 사실을 염두에 두면 충분히 예측가능한 일이었다는 설명이다. 정 교수는 “동지사행에 참여하기 바로 전 해인 정조 12년 가을, 정조의 특명으로 금강산 등 관동지방을 유람하며 ‘금강사군첩’을 남긴 것은 동지사행의 사전 작업이었다고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淸의 260년 중화지배는 팔기제 덕분”

    ‘북쪽 오랑캐’에 지나지 않았던 만주족이 어떻게 260여년간 ‘위대한 중화’를 지배할 수 있었을까. 그것도 350분의 1이라는 적은 인구로 말이다. 학자들은 보통 그 이유로 이런 설명을 붙인다. 청나라를 세운 만주족은 한인에 동화됐기 때문이라고. 만주족 지배층은 자신들의 상무정신 대신 한인의 통치이념인 주자학을 받아들였기에 한인들의 지지를 받아 국가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많은 학자들은 설명한다. 정설처럼 굳어진 이 학설에 역사학자 마크 C. 엘리엇은 정면으로 반박한다. ‘만주족의 청제국’(이훈·김선민 옮김, 푸른역사 펴냄)에서 그는 이러한 해석은 “중화주의적 시각에 따른 판단일 뿐”이라고 지적하면서, 청나라는 만주족 역사의 연장선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만주족이 적절한 방법을 통해 자신들의 민족 정체성을 유지했고, 이를 국가 통치에 활용했다고 본다. 그 ‘적절한 방법’ 중 가장 유효한 것으로 든 예가 ‘팔기제(八旗制)’다. 청태조 누르하치(1559~1626)가 만주족을 통일하며 1601년에 창시한 팔기제는 만주족 사회를 유지하는 강력한 사회제도였다. 만주족은 여덟 개의 집단 중 어느 하나에 소속돼 있었으며, 후에는 만주화된 한인, 조선인 등도 팔기에 포함됐다. 팔기는 기본적으로 17세기 만주족 확장의 바탕이 됐던 군사 조직이지만, 만주-비만주를 가르는 일종의 신분제 역할을 하며 정치·사회·경제에 폭넓은 영향을 미쳤다. 마크 엘리엇은 이 팔기를 통해 구성원들에게 민족정신이 계속해서 주입되고, 이로써 만주족의 정체성이 청나라에서도 유지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한인 문화와의 습합(習合)으로 문화적 원형을 지킬 수 없는 상황에서 팔기는 마지막 정체성 유지를 위한 제도적 방어막 역할을 한 셈. 엘리엇은 이 때문에 청황실은 습관적으로 팔기를 ‘국가의 근본’이라고 불렀다고 전한다. 그는 이 청사 연구를 위한 주요 자료로 만문(滿文)사료를 받아들였다. 기존 청사 연구는 주로 중국사 연구의 연장선에서 한문사료만을 근거로 했다. 하지만 한문사료와 만문사료는 같은 역사적 사건을 기술하는 데에도 첨예한 인식 차이를 보인다. 그런데도 기존 연구자들은 만주어·만문 습득의 어려움 등을 이유로 만문사료를 청사 연구에서 제외해 왔다. 일본·유럽 자료까지 포함한 폭넓은 자료와 색다른 시각으로 ‘만주족의 청제국’은 2001년 처음 출간 당시부터 학계의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반발도 심했다. 우선 근대의 산물인 민족성 문제를 전근대 시기인 청나라에 접목할 수 있느냐였다. 하지만 엘리엇은 이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민족성 성립이 청대로 거슬러 올라가 적용할 수 있다는 견해를 제기했다. 그러나 만주족 뿐 아니라 뒤에 한족, 몽골족, 티베트족, 위구르족 등 주변 민족까지 모두 참가한 팔기제를 비단 만주족 정체성 문제로 환원해 볼 수 있느냐 문제는 지금도 계속 논란이 되고 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국내最古 한글성서본 발견

    국내 가장 오래된 한글 성서본이 발견됐다. 강순애 한성대 인문과학연구원장은 “최근 입수한 ‘예수셩교 요안내복음젼서’가 청나라 연호 광서 8년(1882년)에 제작된 것으로 기존에 알려진 1883년본보다 더 오래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강 원장은 이 책을 지난 8월 서울 인사동의 한 고서점에서 발견했다. ‘예수셩교 요안내복음젼서’는 영국인 존 로스(1842~1915년) 목사가 이응찬, 이성하 등과 함께 중국 봉천에서 발간한 것으로 1882년과 1883년에 발간했다는 기록이 있다.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발 못 크게하는 중국 최후의 ‘전족’ 마을

    중국 최후의 전족마을이 현지 언론에 소개돼 관심을 모았다. ’전족’은 천으로 여성의 발을 묶어 작고 뾰족하게 만드는 것으로, 10세기 초부터 약 1000년간 지속된 풍습 중 하나다. 5세 전후로 시작하는 이 풍습은 여자아이의 발을 붕대로 단단히 감아 성장을 막고 형태를 변형시키며, 이 과정을 거치면 발 크기는 10~15㎝를 넘지 않는다. 전족은 발을 묶어서 뼈를 부러뜨리거나 근육을 파괴하기 때문에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어서, 전족을 행할 당시에는 중국 각지에서 어린 아이들의 비명과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특히 전족을 하지 않으면 훌륭한 혼인자리를 마련할 수 없다는 풍습 탓에 ‘울며 겨자 먹기’로 전족을 하는 여성들이 많았다. 청나라 말기, 전족폐지운동이 일어나면서 이 같은 풍습은 점차 사라졌지만 전족은 아편 등과 함께 중국의 악습 중 하나로 꼽힌다. 이런 전족이 마지막으로 실존하는 곳은 중국 남부의 윈난성이다. 류이(六一)촌에는 전족 할머니가 20여 명 정도 살고 있는데, 78세의 왕 할머니도 이중 한명이다. 5살 때 전족을 시작한 탓에 할머니의 발은 이웃집 할머니와 확연히 다르다. 세치 크기로 작게 오므라든 발이 꼭 연꽃을 연상시킨다고 해서 ‘세치 금련’(金蓮)이라 부르는 전족은 할머니에게 한 평생 고통을 가져다 줬다. 전족이 성행할 당시에는 전족만을 위한 신발이 많이 생산됐지만, 현재는 쉽게 구할 수 없어 대부분은 직접 만들어 신는다. 왕 할머니도 예외는 아닌지라 직접 발의 크기를 재고, 천을 재단하고, 수를 놓아 신발을 만들어 신는다. 하지만 할머니의 발은 예쁜 신발과 정 반대로 험한 세월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류이촌에 사는 전족여성은 300명에 달했지만, 지금은 10분의 1까지 줄어들었다. ‘최후의 전족마을’로 알려진 류이촌은 네티즌들로부터 큰 관심을 모았으며, 전족으로 고통받은 여성들을 위로한다는 내용의 댓글이 줄을 잇고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英서 69억원 낙찰 ‘건륭제 옥새’ 짝퉁?

    │베이징 박홍환특파원│최근 영국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356만파운드(약 69억원)에 낙찰된 중국 청나라 건륭제의 옥새가 모조품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중국 장쑤(江蘇)성의 문화재 감정 전문가인 리루핑(李路平) 교수는 “감정 결과, 옥의 품질, 전각 등 여러가지 점에서 가짜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정했다고 쓰촨(四川)성 성도 청두(成都)에서 발행되는 성도만보가 13일 보도했다. 30년 넘게 전각 등을 연구해온 리 교수는 현재 장쑤성 서화감정그룹의 주임위원을 맡고 있다. 경매에 나온 옥새가 가짜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크게 4가지 이유에서다. 우선 옥의 질이 최상급이 아니라는 것. 옥기 제작의 최전성기였던 건륭제 당시에는 황제의 옥새를 신장(新彊) 허톈(和田)의 최상급 청옥으로 만들었는데 경매에 나온 옥새는 어둡고, 버들무늬 등의 잡무늬가 많아 부자연스럽다는 것이다. 새겨진 글자의 각도가 부정확하고, 활기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도 의혹이라고 지적했다. 리 교수는 “가짜를 만든 사람이 전각을 새기는 방법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 인주의 흔적이 남아 있는 점, 조각이 정밀하지 못한 점 등을 고려하면 가짜일 가능성이 훨씬 높아진다는 게 리 교수의 주장이다. 중국내 반응은 두가지로 나뉜다. “빨리 진짜를 찾아 돌려받자.”는 반응과 함께 “실물 없이 어떻게 가짜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느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팔정모념지보’라는 이름의 이 옥새는 1790년 건륭제 재위 55주년과 80세를 축하해 만든 것으로 건륭제가 가장 아낀 보물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있다. 지난 5일 소더비 경매에 이 옥새가 등장하자 “약탈 문화재를 공개적으로 사고파는 것은 중국인들의 자존심을 짓밟는 것”이라며 중국내 여론이 들끓었다. stinger@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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