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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울산 ‘남구 신정동 대명루첸’ 15일 견본주택 개관

    울산 ‘남구 신정동 대명루첸’ 15일 견본주택 개관

    울산 최적의 입지를 갖춘 신정동에서 오는 15일 ‘남구 신정동 대명루첸’이 분양에 나선다. 이 아파트가 들어서는 신정동은 쇼핑시설이 밀집해 있고 풍부한 문화시설과 여가시설 등이 골고루 갖춰져 있다. 또 우수한 학군이 형성 돼 있어 울산 최고의 주거지로 평가 받는 지역이다. 단지에서 도보거리에 롯데마트가 있다. 또 하이마트, 홈플러스, 뉴코아아울렛, 현대백화점, 롯데백화점 등도 쉽게 이용할 수 있다. 울산대공원, 울산박물관, 울산문화예술회관, 대현체육관, 남구국민체육센터 등 문화시설들까지 풍부하다. 단지 바로 옆으로 여천천이 흘러 여가활동을 즐기기도 좋다. 현재 추진 중인 정비(조성)사업 완공 시 추후 제2의 청계천으로 개발이 되는 만큼, 향후 주거가치는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여천천 정비사업은 약 300억원을 들여 도심 속 여천천을 서울의 청계천처럼 문화하천으로 조성되는 계획이다. 이곳은 꽃대나루 주막과 자전거길, 산책로, 돋질산 생태탐방로, 습지 등이 조성 되며 울산대공원까지 연결될 계획에 있다. 울산의 대표적인 휴식처 울산대공원도 가깝다. 울산대공원은 자연생태공원, 문화광장, 각종 전시관, 동물원, 수영장, 다목적운동장 등 수많은 문화, 체육시설이 갖춰져 있으며 울산의 명소 중에 하나인 선암호수공원도 가까워 가족끼리 나들이를 즐기기 좋다. 신정동은 전통적인 명문학군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신정동은 달동과 더불어 울산대표 학군들이 포진되어 있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울산의 전통적인 명문고로 알려진 학성고와 학성여고, 울산여고 등이 가까이 있다. 사통팔달로 연결된 교통망도 확보하고 있다. 14번 국도와 31번 국도, 남부순환도로를 통해 시내외로 쉽게 이동할 수 있다. 부산~울산간 고속도로를 통해 부산으로 이동하기 용이하다. 또 중앙로, 삼산로, 수암로를 이용하면 울산 각 지역으로 이동이 수월하다. 울산고속버스터미널과 울산시외버스터미널도 가깝다. KTX울산역은 복합환승센터(2016년 완공)로 개발될 예정이다. 복합환승센터는 KTX, 버스, 택시 등의 교통수단과 연계된 환승시설로 개발된다. 대명종합건설의 오랫동안 축적된 기술력과 품질을 바탕으로 ‘남구 신정동 대명루첸’을 명품아파트로 개발한다는 방침이다. 단지 내 지상에 차가 없는 아파트로 조성해 입주민의 안전성을 높였으며 쾌적성과 개방감도 확보하였다. 지하주차장 6개소에는 대명종합건설만의 특유의 기술인 ‘천창설계’를 적용해 채광 및 자연환기기능까지 갖추게 된다. 또 공공보행통로를 조성해 보행자들의 안전을 책임질 예정이다. 평면부터 남다르다. 중소형에 4BAY(83A타입기준)특화평면을 적용한다. 중소형은 좁은 공간으로 인해 4BAY적용이 힘들지만 대명종합건설만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공간의 효율성을 극대화시키고 중소형 4BAY특화평면을 개발했다. 팬트리 수납특화공간도 마련할 예정이다. 3면 개방 270도 파노라마조망을 가능하게 설계해 개방감을 높였다. 북으로는 태화강, 남으로는 선암저수지와 울산대공원까지 조망이 가능하다. 전세대를 남향배치로 채광 및 통풍성을 높였다. 또 모든 동들을 필로티구조로 설계해 쾌적한 보행 동선과 개방감을 확보했다. 입주민들의 편의를 제공할 커뮤니티시설로는 스쿼시룸, 휘트니스센터, 골프연습장, 도서관, 키즈존 등이 갖춰지게 된다. 이 아파트는 지하2~지상29층, 8개 동 규모로 들어서며 총 547가구가 공급된다. 전용면적은 83㎡ 단일형으로만 구성된다. 신정동의 아파트들은 중대형 위주로 공급돼 중소형의 희소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남구 신정동 대명루첸’은 중소형의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실수요자들에게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킬 전망이다. 견본주택은 오는 15일 개관하고 본격적인 분양에 나선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택리지] 풍수 (하)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택리지] 풍수 (하)

    >>> 치산치수·종묘사직 보전 위해… 풍수도 성형 인공산·연못 만들고 돌 하나 나무 한 그루까지 통제 풍수학의 고전 ‘청오경’에 “명당이라는 것은 자연스럽게 조성될 수도 있고 인위적으로 조성될 수도 있다”는 말이 나온다. 완벽하지 않은 땅을 사람과 환경이 조화롭게 공생할 수 있는 땅으로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이를 비보(裨輔)라고 한다. 장승을 마을 어귀에 세우거나 물새를 앉힌 솟대를 물가에 꽂거나 물길이 흘러 나가면서 기가 빠져나가는 것을 막고자 돌탑을 쌓거나 마을이 외부로 훤히 트여 있으면 나무를 심는 당숲 등이 우리가 흔히 보는 신앙 비보 사례다. 물에 관련된 수구(水口) 비보와 연못을 파거나 해태상, 돌거북을 설치해 불길을 누르는 화기(火氣) 비보, 땅의 힘이 부족하거나 훼손되기 쉬운 곳을 가다듬는 산천(山川) 비보, 이름을 바꾸는 지명(地名) 비보 등을 통틀어 비보풍수(裨輔風水)라 이른다. 한국의 비보풍수는 도선 국사(827~898)에게서 비롯됐다. 고려는 산천비보도감, 조선은 관상감이라는 관청을 두고 국가 차원에서 운영했다. 우석대 김두규 교수는 “비보풍수는 국토의 지형 지세를 살펴서 부족한 것을 보완하고자 하는 일종의 국역 조경”이라고 평가했다. 한양은 풍수지리학상 완벽한 도읍이 아니었다. 결점을 보완하고자 나무를 심고 인공산(가산)을 쌓고 연못을 팠다. 한양은 중세 세계 최대 도시 중 하나였다. 인구가 개국 초기 10만명에서 후기 20만명까지 늘어나면서 주택 공급, 생활 하수 처리, 산림 녹지가 급선무였다. 그래서 풍수는 승려나 풍수학인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왕과 성리학자들이 풍수서를 읽고 연구했다. 가장 중요한 국가정책인 치산치수와 종묘사직의 보전이 곧 비보풍수였기 때문이다. 사산금표도(四山禁標圖)란 소나무를 베거나 돌을 캐거나 무덤을 쓰거나 사찰을 짓는 행위를 금한 영역표시 지도이다. 문을 폐쇄하고 소나무를 심고 민가나 사찰을 철거했다. 지맥과 수맥을 보호하기 위해 법제화한 강력한 통제책이었다. 현대적 시각에서는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라고 볼 수 있지만 훨씬 적극적인 개념이다. 금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철거하거나 공사를 해 보존했다. 삼각산(백운대, 만경봉, 인수봉)~보현봉~백악(북악)으로 이어지는 주맥(主脈)을 보호하는 데 힘을 쏟았다. 숙종과 영조에 이어 정조 때도 보현봉에 흙을 쌓았다. 김정호는 ‘수선전도’에서 보현봉 아래를 ‘보토소’라고 표기했다. 북한산 여러 봉우리 중에서 구준봉(구봉) 뒤쪽의 잘록한 고개를 보토고개(보토현)라고 부르는데 이곳이 삼각산~보현봉~백악을 잇는 급소라 하여 중점적으로 관리한 것이다. 사산금표도를 보면 한양의 행정구역이 보인다. 금표 지역과 사대문 밖 성저십리(城底十里) 지역이 거의 일치한다. 성저십리는 도성으로부터 정확하게 10리는 아니었다. 5리도 있고 10리가 넘는 지역도 있었다. 대개 우이동~장위동~석관동~중랑천~전농동~살곶이다리~옥수동~용산~마포~망원동~성산동~역촌동을 잇는 선이다. 남쪽은 한강, 북쪽은 북한산이 경계다. 행정구역상 한강 이북의 6분의5에 해당하며 강남 개발 이전의 서울 면적과 비슷하다. 금산과 금표는 조선 전기 엄격했고 연산군대에 최고조에 오른 이후 느슨해졌다. 왕권과 신권의 헤게모니 쟁탈전이 영향을 미쳤다. 성종실록에는 임금과 신하 간 풍수 기 싸움에서 임금이 패한 이색적인 대목이 등장한다. 성종 12년 창덕궁 뒤편 응봉산 남쪽 기슭에 세도가의 가옥 100여채가 들어서 궁궐을 억누르고 있다는 상소가 올라왔다. 왕이 철거를 명했으나 신하들의 반대가 빗발치자 흐지부지됐다는 내용이다. 오늘날 혜화동쯤인데 이 지역에 사는 권신과 유생들의 조직적 반대에 왕이 한걸음 물러난 것을 의미한다. 서울의 관문에 얽힌 풍수 이야기도 흥미롭다. 서울성곽을 축조할 때 4개의 대문과 4개의 소문을 두었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새 통로에 대한 수요가 생겼다. 물자와 사람이 가장 많이 오가는 한강나루(한남동)에서 도성 안으로 들어가려면 남산을 빙 돌아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그래서 세조 3년 숭례문(남대문)과 광희문 사이에 남소문(南小門)이라는 길을 열었다. 장충단길 국립극장과 반얀트리호텔(옛 타워호텔) 사이쯤이다. 13년 후인 예종 1년에 남소문 폐쇄론이 제기됐다. 황천살(黃泉殺)이 열려 세자가 요절하고 임금도 시름시름 앓는다는 풍수설이었다. 그 후 200여년간 폐쇄된 남소문이 당쟁의 대상이 됐다. 남소문을 열면 남인이 득세하고 닫으면 서인이 권세를 잡는다며 개문파와 폐문파로 나뉘어 다퉜다. 태종 13년 돈의문(서대문)을 경희궁이 있던 남쪽 언덕으로 옮기면서 이름을 서전문(西箭門)이라고 고쳤다. 풍수 최양선이 경복궁의 지맥 보전에 필요하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세종 4년 백성의 통행 불편에 대한 원성이 잇따르자 본래 자리로 옮기고 이름도 되돌렸다. 지금의 강북삼성병원 앞이다. 최양선은 도성의 북쪽 큰 문인 숙정문(숙청문)과 작은 문인 창의문(장의문, 자하문)도 경복궁의 양팔에 해당하므로 지맥 보호를 위해 폐쇄할 것을 건의해 관철했다. 숙정문은 원주 가는 길이지만 산이 높고 길이 험해서 이용하는 사람이 드물었고 주로 혜화문을 통했다. 숙정문을 폐쇄한 이설(異說)이 이규경이 쓴 ‘오주연문장전산고’에 전해진다. “이 문을 열어두면 성 안에 음풍(桑中河間之風)이 불어댄다 하여 폐했다”라고 기록돼 있다. 한양의 세시풍속에 ‘정월 보름 이전에 부녀자들이 숙정문을 세 번 다녀오면 액운이 없어진다’고 하여 부녀자들의 북문 나들이가 성황을 이루자 남자들이 모여들었고 급기야 ‘사내 못난 것 북문에서 호강받는다’는 속담이 생겼다는 것이다. 풍기 문란 탓에 북문을 걸어 잠그게 됐다는 얘기다. >>> 물 확보 위해 ‘공사다망’ 했던 조선의 왕들 광화문 해태상·숭례문 세로현판으로 불기운 막아 조선의 역대 왕들은 물을 얻으려고 끊임없이 공사를 일으켰다. 풍수학의 고전 ‘금낭경’에서 ‘풍수지법(風水之法) 득수위상(得水爲上) 장풍차지(藏風次之)’라 하여 장풍보다 득수를 중시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 경복궁에 물이 부족한 것이 흠이므로 도랑을 파서 물을 끌어들이고(태종), 소격서 골짜기에 못을 조성하고(세종), 숭례문 밖에 못을 파고(세조), 흥인지문 안에 인공산 3개를 조성하고(성종), 동지를 파고 인공산을 쌓고(명종), 관왕묘를 흥인지문 밖에 짓고(선조), 흥인지문 밖에 못을 파고(광해군), 두모포(옥수동)의 채석을 금지(인종)했다. 특히 동지(연지동), 서지(천연동), 남지(숭례문), 북지(삼청동 소격전) 등 4개의 큰 연못을 조성했다. 동지(東池)와 서지(西池), 남지(南池)는 물론 경회루와 성균관 연못, 광화문 앞 해태상, 숭례문의 세로 현판이 모두 불을 막기 위한 풍수 장치였다. 숭례문 밖 남지에 대한 기록은 1629년 이기룡이 그린 ‘남지기로회도’에 잘 나타나 있다. 연못에는 연꽃이 무성했고 버드나무가 보인다. 남지는 지금의 서울역 광장과 대우빌딩 자리쯤으로 어림된다. 1899년 일제가 서울역을 확장하면서 메워 버렸다. 동지는 흥인문 밖과 경모궁 밖에 있는데 두 곳 다 연꽃을 심었다고 ‘동국여지비고’에 기록돼 있으며 김정호의 ‘수선전도’에는 경모궁 앞, 연동 앞, 흥인문 앞 등 3곳에 연못이 그려져 있다. 돈의문 밖 지금의 영천시장 자리에 서지가 있었다. 태종 및 세종실록에는 ‘길이가 100m, 폭 122m의 네모진 못에 낮은 담을 쌓고 버드나무를 심었다’라고 적혀 있다. ‘한경지략’에는 ‘돈의문 밖 서지가에 천연정이 있는데 꽃이 무성해서 여름철 성안 사람들이 연꽃 구경하는 곳으로 제일’이라고 적었다. 경복궁의 명당수 역할을 위한 삼청동 북지(北池)를 제외한 동·서·남지가 백성의 출입이 잦은 큰 문 앞에 자리한 것은 화재 방지용 방화수는 물론 경관 조성을 통한 유희용 등으로 두루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서울의 풍수 개념상 내(內) 명당수인 개천(청계천)을 둘러싼 풍수 논쟁도 끊이지 않았다. 명당수냐 아니면 도시의 배수구냐의 다툼이었다. 세종 26년 집현전 수찬 이선로가 “개천물에는 더럽고 냄새나는 물건을 버리지 못하게 하여 물이 늘 깨끗하도록 해야 하겠나이다”라는 상소를 올렸다. 세종은 중신들과 논의한 끝에 한성부(서울시)가 나서서 개천에 오물을 버리지 못하도록 하고 어기는 자는 사헌부로 하여금 엄벌토록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집현전 교리 어효첨이 개천의 오염은 지리적인 특성과 도시 생활 하수 배출이라는 구조적인 문제로 풍수 논리를 잘못 적용한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세종은 하수구를 잃게 된 백성의 원성을 대변한 어효첨의 손을 들어 줬다. 세종은 “풍수서라는 것은 다 믿을 것이 못 되나 옛 사람들이 다 풍수서를 알고 있으니 이런 사람들에게는 풍수설을 자문할 것이고 어효첨 같은 자는 마음으로 풍수설을 그르게 여기니 그것에는 일하지 말게 하라”는 명을 내렸다. ‘풍수대왕’ 세종이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눈물을 머금고 태조가 정한 명당수를 하수구로 판정한 것이다. 항상 열려 있어야 할 개천(開川)이 복개와 복원을 반복한 통한의 과거사를 상기시키는 문답이다. joo@seoul.co.kr
  • [길섶에서] 마차의 추억/문소영 논설위원

    영국을 국빈 방문 중인 박근혜 대통령과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함께 탄 백마 6필이 끄는 금박을 물린 호화로운 마차 사진이 오늘 아침 인상적이었다. 평생을 왕족으로 살아온 영국 여왕 앞에서 한국 대통령도 당당한 느낌이다. ‘영애’로 살았던 박 대통령의 ‘공주’ 이미지가 한몫한 것인가. 17세기 프랑스 작가 샤를 페로의 동화 ‘신데렐라’는 디즈니 만화영화에서 훨씬 재밌게 재현됐다. 통통한 요정대모가 나타나 재투성이 아가씨에게 푸른 드레스와 유리구두를 입히고 신긴 뒤 황금빛 호박 마차에 태워 왕궁의 댄스파티에 보내는 모습은 소년·소녀들의 마음에 강렬하게 환상을 새겨놓았다. 그래서 유리구두가 없더라도 연인들은 뉴욕 맨해튼 센트럴파크나 서울 청계천에서 다소 유치해 보이는 관광용 마차를 타면서 즐거워하는 것이다. 최신형 랩톱 컴퓨터와 스마트폰으로 무장하고 비행기로 이동하는 첨단의 삶을 살면서도 마차를 생각하면 동화를 읽듯 설레는 마음이 있다. 그 마음 오갈 데가 없으니 퇴근길에 포장마차에나 들러볼까.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울산의 부촌 신정동에 중소형아파트 ‘남구 신정동 대명루첸’

    울산의 부촌 신정동에 중소형아파트 ‘남구 신정동 대명루첸’

    대명종합건설은 울산의 전통적인 부촌 신정동에 ‘남구 신정동 대명루첸’을 11월 중 선보인다. 이 아파트는 지하2~지상29층, 8개 동 총 547가구 규모로 들어선다. 전용면적은 83㎡ 단일형으로만 구성된다. 신정동은 과거에 중대형 위주로 공급돼 중소형의 희소성이 강하고 주거선호도도 높아 실수요자들에게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킬 전망이다. 또한 생활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고 명문학군으로 형성돼 있어 울산에서 최적의 주거환경을 갖춘 곳으로 손꼽힌다. 도보거리에 롯데마트가 인접해 있고 하이마트, 홈플러스, 뉴코아아울렛, 현대백화점, 롯데백화점 등 대형쇼핑시설들을 쉽게 이용할 수 있다. 또 울산대공원, 울산박물관, 울산문화예술회관, 대현체육관, 남구국민체육센터 등 문화시설들까지 완벽한 생활편의시설들을 자랑한다. 달동과 더불어 울산대표 학군들이 포진된 신정동은 학성고와 학성여고, 울산여고 등은 전통명문고로 그 유명세가 남다르게 알려져 있다. 사통팔달로 연결된 교통망도 확보하고 있다. 14번 국도와 31번 국도, 남부순환도로를 통해 시내외로 쉽게 이동할 수 있다. 또 중앙로, 삼산로, 수암로를 이용하면 울산 각 지역으로 이동이 수월하다. 울산고속버스터미널과 울산시외버스터미널도 가까워서 부산~울산간 고속도로를 통해 부산으로 이동하기 용이하다. KTX울산역은 복합환승센터(2016년 완공)로 개발될 예정이다. 복합환승센터는 KTX, 버스, 택시 등의 교통수단과 연계된 환승시설로 개발된다. 남구 신정동 대명루첸은 울산의 첫 작품인 만큼, 지역 내 명품아파트로 자리매김하기 위하여 프리미엄급 제품력 확보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건설사 측은 전 세대 남향배치로 풍부한 일조권 확보는 기본, 전동 필로티 계획으로 쾌적한 보행 동선과 개방감을 극대화했다. 단지 내 지상에 차가 없는 아파트로 조성되어 입주민의 안전을 보장했다. 지하주차장 6개소의 천창설계로 채광 및 자연환기기능까지 기대할 수 있다. 공공보행통로를 계획하여 주민들의 안전과 산책동선을 확보하여 주거생활의 쾌적성뿐만 아니라, 스쿼시룸, 휘트니스센터, 골프연습장, 도서관, 키즈존 등 각종 커뮤니티시설들로 입주민들에게 다양한 편의성까지 반영됐다. 내부는 4BAY(83A타입기준)와 팬트리 수납특화공간의 혁신설계, 그리고 3면 개방 270도 조망의 개방감으로 북으로는 태화강, 남으로는 선암저수지와 울산대공원까지 조망이 가능하다(83C타입기준). 단지 바로 옆으로 여천천이 흘러 쾌적한 주거생활이 기대되는 가운데, 현재 추진 중인 정비(조성)사업이 완공 시 추후 제2의 청계천으로 개발이 되는 만큼, 향후 주거가치는 더욱 커질 것으로 부동산관계자는 예상하고 있다. 여천천 정비사업은 약 300억원을 들여 도심 속 여천천을 서울의 청계천처럼 문화하천으로 조성되는 계획이다. 이곳은 꽃대나루 주막과 자전거길, 산책로, 돋질산 생태탐방로, 습지 등이 조성 되여 여가활동을 즐기기 쉬워지며 울산대공원까지 연결된다. 이 외에도 울산의 대표적인 휴식처로서 자연생태공원, 문화광장, 각종 전시관, 동물원, 수영장, 다목적운동장 등 수많은 문화, 체육시설이 갖춰진 울산대공원과 선암호수공원도 가깝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예술이 ‘鐵鐵’… 문래동의 변신

    이곳엔 1930년대 크고 작은 방적공장이 생겨났다. 그래서일까. 문래동 이름은 방적기계의 순우리말인 ‘물레’에서 따왔다고도 한다. 1960년대 말 청계천에서 철공소가 하나 둘 옮겨오며 골목을 바꿔놓기 시작했다. 1970~80년대엔 철강재 판매 1번지로 통했다. 기계소리와 쇳소리가 잦아든 것은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 이후다. 대형 철공소들이 떠나갔다. 아파트가 주변을 둘러쌌다. 여전히 철공소가 1300개를 웃돌았지만 곳곳에 빈 공간이 생겨났다. 슬럼화가 진행됐다. 생기를 되찾은 것은 2000년대 들어 젊은 예술가들이 몰려들면서부터다. 홍대와 신촌 등에서 활동하던 이들은 치솟는 임대료를 피해 문래동으로 들어왔다. 철공 장인들과 예술가들의 공존은 이렇게 출발했다. 영등포구가 오는 9일 문래예술창작촌에서 ‘철부지(鐵阜地)의 날’을 선포한다. 문래동이 철공소 산업과 문화 예술이 조화롭게 숨쉬는 ‘철의 땅’이라는 것을 널리 알리며 지역 경제 활성화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망치와 개미’, ‘기린:수호신’, ‘장도리 벤치’ 등 문래동 곳곳에 새로 설치된 예술조형작품 10개에 대한 제막식도 곁들인다. ‘철부지의 날’은 영등포문화원과 문화예술단체 보노보C 주관 행사로 서울시 자치구 동네관광상품 프로그램에 선정된 사업이다. 선포식에 앞서 다듬이연주, 화관무, 진도북놀이, 부채춤, 신민요 등 전통 문화 공연을 열어 분위기를 돋운다. 선포식 뒤에는 곳곳을 돌며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철부지 투어가 진행된다. 문래예술공장에서는 변사의 구슬프면서도 맛깔스러운 설명과 함께 1970년대 문래동 철공소 이야기를 영상으로 담은 공연 ‘그 시절, 그 쇼’가 펼쳐진다. 조길형 구청장은 “철부지의 날을 철공소 장인과 예술가를 위한 화합과 소통의 행사이자 지역 대표 관광상품으로 발전시키겠다”고 말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꿈쩍않는 전세대란… 뉴타운·재개발·재건축 아파트 노려라!

    꿈쩍않는 전세대란… 뉴타운·재개발·재건축 아파트 노려라!

    8·28 부동산 대책 발표에도 전셋값이 고공행진을 이어가자 양도세 감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재건축·재개발 아파트 단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수도권에서는 뉴타운·재개발·재건축 등 정비사업을 통해 분양된 아파트의 미분양분 판매가 지난 9월 이후 증가하면서 도심에 있는 대단지 미분양 브랜드 아파트가 주목받고 있다. 권일 닥터아파트 리서치팀장은 “올 연말까지 미분양주택 구입 시 양도세뿐 아니라 취득세 감면 혜택도 기대할 수 있다”며 “정비사업은 대단지이거나 교통, 편의시설이 잘 갖춰진 입지가 대부분이고, 특히 브랜드 선호도가 높은 단지도 많아 입주 후에도 지역 내 랜드마크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서울에서 주택 수요자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재개발 단지로는 성동구 왕십리뉴타운 1구역과 마포구 아현동 아현3구역 등이 있다. 현대산업개발과 삼성물산, GS건설, 대림산업 등 4개사가 공동 시공한 서울 성동구 하왕십리동 왕십리뉴타운 1구역 ‘텐즈힐’은 전용면적 59~148㎡, 총 1702가구로 구성됐다. 왕십리뉴타운은 광화문까지 5.4㎞, 강남구 역삼동까지 7.8㎞로 반경 10㎞ 이내 주업무지구로 이동할 수 있어 직장인들이 선호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서울지하철 2호선 상왕십리역, 1·2호선 신설동역, 2·6호선 신당역 등을 모두 걸어서 이용할 수 있다. 또 지하철2·5호선·중앙선·분당선이 교차하는 왕십리역도 인근에 있다. 또한 성수대교, 올림픽대교, 강변북로 등 주요 간선도로와 대교로의 접근성이 좋아 도심권 및 수도권 전 지역으로 이동이 편하다. 삼성물산과 대우건설이 서울 마포구 아현동 아현3구역을 재개발한 ‘아현 래미안 푸르지오’도 분양 중이다. 전용면적 59~145㎡, 총 3885가구의 대단지 아파트다. 서울지하철 2호선 아현역, 5호선 애오개역을 걸어서 이용할 수 있으며 광화문, 서울시청 일대 업무지구와 여의도 방면 출퇴근이 편리하다. 또 계약금 정액제(1000만원), 발코니 무료확장, 중도금 일부의 잔금 시 납부의 다양한 혜택 등으로 실수요자의 초기 부담금이 적다. 삼성물산과 두산건설이 서울 전농동 답십리 16구역을 재개발한 ‘답십리 래미안 위브’는 전용면적 59~140㎡, 총 2652가구의 대단지 아파트다. 서울지하철 5호선 답십리역, 2호선 신답역을 도보로 이용할 수 있다. 생활편의시설로는 롯데백화점, 홈플러스, 이마트, 동대문구청 등이 있고 답십리초가 인접해 있다. 청계천 및 배봉산근린공원, 답십리공원 등 녹지공간도 풍부하며 단지와 접해 축구장 1.5배 크기의 대형 근린공원이 조성돼 내 집 정원처럼 이용할 수 있다. 또 삼성물산이 경기 부천시 원미구 중동에서 분양 중인 ‘래미안 부천 중동’은 전용면적 59~84㎡, 총 616가구로 서울지하철 7호선 신중동역에서 가깝다. 현대건설이 서울 은평구 응암동 응암7·8구역을 재개발한 ‘백련산 힐스테이트’는 전용면적 59~141㎡, 총 3221가구로 바로 입주 가능하다. 이 단지도 서울지하철 6호선 응암역과 새절역을 통한 접근이 편리하다. 현대산업개발이 서울 종로구 무악동 무악연립2구역을 재건축해 분양 중인 ‘인왕산2차 아이파크’는 전용면적 84~112㎡, 총 167가구로 인근 인왕산아이파크1차(810가구)와 더불어 아이파크 대단지를 이룬다. 서울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을 걸어서 이용할 수 있으며 통일로, 사직로 등을 통해 기업, 관공서가 몰려 있는 광화문, 시청일대 중심업무지역 접근성이 높다. 이 밖에 현대건설이 경기 성남시 중원구 중앙동 삼남, 삼창 아파트를 재건축해 분양 중인 ‘중앙동 힐스테이트’는 전용면적 59~120㎡, 1107가구로 바로 입주 가능하다. 서울지하철 8호선 신흥역을 걸어서 이용할 수 있어 서울 송파일대 및 강남권으로 진입하기 쉽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택리지] (17) 풍수(상)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택리지] (17) 풍수(상)

    서울은 풍수에 의해 선택됐고, 풍수에 의해 조성됐으며, 풍수에 의해 유지·관리된 도시이다. 심하게 얘기하면 풍수의, 풍수에 의한, 풍수를 위한 도시였다. 불교를 버리고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 ‘유교의 나라’ 조선의 풍수의존도가 이다지도 높았던 이유는 뭘까. 조선은 유교를 국교로 정했지만, 겉과 속이 달랐다. 왕에서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생활양식은 유교를 따랐지만, 생각은 불교식으로 했다. 급한 일이 생기면 풍수나 굿 같은 무속신앙을 찾았다. 살아서 집터를 구하고, 죽어서 묏자리를 정하는 일은 철저하게 풍수에 따랐다. 깐깐한 유학자(선비)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주유야풍’(晝儒夜風)이라 하여 낮에는 성리학, 밤에는 풍수를 바탕으로 살았다. 겉으로는 근엄했지만 속으로는 자유분방한 풍류(風流)를 즐겼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풍수 논쟁을 읽다 보면 정도전, 하륜, 권근, 황희, 정인지 같은 대유학자들도 예외 없이 풍수학의 대가였다. 이들에게 풍수학이란 전통적인 지리학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고 합리적인 설명이 불가능하지만, 경험상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현상’을 거스르지 않음으로써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고자 한 것이다. 그래서 어느 외국학자는 “한국이라는 나라를 이해하려면 유교적 시각에서 접근해야 하고, 한국인의 기질을 알려면 불교와 무속신앙을 연구해야 한다”고 했다. 지도를 보면 서울은 내사산(백악-남산-낙산-인왕산)이 서울성곽 18㎞를 이어 사대문을 이룬다. 내(內)명당수인 개천(청계천)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면서 도성 내부를 관통한다. 또 외사산(삼각산-관악산-용마산-덕양산)이 도성 밖 4㎞(城底十里)를 빙 둘러싸고 있으며 외(外)명당수인 한강이 전체를 감싸고 도는 구조이다. 이른바 바람(氣)을 갈무리하고 물을 얻는 지형이다. ‘풍수’(風水)가 ‘장풍득수’(藏風得水)의 줄임말이고 보면 서울 풍수의 큰 윤곽을 알 만하다. 그렇다면 서울은 흠잡을 데 없는 천하의 명당일까. 결코 그렇지는 않다. 조선왕조실록에 서울은 명당수가 부족하고, 경복궁의 좌우 지맥(地脈)이 허약하고, 동쪽의 지형 지세가 낮으며, 물이 흘러나오는 출구(水口)가 열려 있어 문제라는 지적이 숱하게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양은 명당수가 부족했다. 세종 때 황희가 “궁궐 좌우의 물줄기가 끊임없이 흐르지 않는 것이 흠”이라고 인정했다. 개천도 물이 마르기 일쑤였다. 이를 보완하고자 궁성 안팎에 못을 파서 도랑을 냈고, 도성 사방에 동지·서지·남지·북지라는 4개의 인공연못을 각각 조성했다. 특히 서울을 둘러싼 풍수 논쟁의 핵심은 주산(眞山)과 수구(水口)였다. 주산은 임금이 정사를 보는 최고의 명당자리(明堂穴)가 어디냐는 것이다. 주산이 백악이냐, 무악산이냐, 인왕산이냐, 응봉이냐에 따라 명당자리가 달라서 논쟁이 끊이지 않았다. 백악을 주산으로 하면 경복궁 근정전이요, 무악을 주산으로 하면 지금의 신촌 연세대가 왕궁 자리이다. 인왕산을 주산으로 하면 경복궁은 마찬가지이나 궁의 위치가 동쪽으로 기울어서 ‘군주는 남쪽을 보고 정사를 본다’는 제왕남면(帝王南面)의 원칙에 맞지 않다. 응봉(성균관대 뒷산)을 주산으로 하면 창덕궁 인정전이 명당이 된다. 임진왜란 때 불탄 경복궁을 300년 가까이 재건하지 않고 법궁(正宮)을 아예 창덕궁으로 사용한 것은 국란을 겪은 이후 ‘응봉 주산론’이 득세한 탓도 컸다. 청계천의 수구막이(수구맥이)도 논쟁거리였다. 물의 출구(水口)로 기가 새나가지 않도록 막으려고 인공산(假山)을 쌓거나, 나무를 심거나, 사당을 지었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좋은 땅의 제1조건으로 수구가 닫혀 있어야 한다”고 하였고, 홍만선은 산림경제에서 “수구는 잘록하여야 한다”고 했다. 실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훈련원(동대문역사문화공원) 동북쪽에 인공산을 쌓았으니 땅의 기운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함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선조 31년 흥인문 밖에 중국 후한 시대 명장 관운장을 모신 남관왕묘를 세웠다. 임진왜란 때 조선에 출병한 명나라 장군들이 은자를 내 조성한 것이다. 관우를 군신(軍神)으로 모신 관왕묘는 수구로 기가 빠져나가는 것을 막으려면 사당을 지어야 한다는 풍수에 따른 것이다. 관왕묘는 한양의 좌청룡에 해당하는 낙산이 너무 낮아 허약한 기운을 돋우는 역할을 했다. 사대문 가운데 유독 동대문만 옹성(성문 앞 작은 성곽)을 두른 이유도 동대문의 지대가 낮아 청계천 범람 때마다 물에 잠긴 것에 대한 보완책이다. 백악과 인왕산, 남산에서 각각 발원한 개천은 한양의 생활용수이자 자연하수도였다. 한양의 인구가 조선 초기 10만명에서 조선후기 20만명까지 늘어나면서 개천의 오염과 물난리가 큰일이었다. 산업혁명 이전인 17세기 프랑스 파리인구가 10만명, 영국 런던이 15만명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한양도성의 인구 밀집도와 이로 말미암은 하수처리의 심각성을 짐작할 수 있다. 대대적인 하천 준설공사가 수시로 이뤄졌다. 태종 때 5만 2000명이 동원됐고, 영조 때 20만명을 동원해 57일간 양안에 석축을 쌓고 수로를 직선으로 바꾸는 대역사를 실행했다. 왕도 풍수의 신봉자였다. 태조의 한양 천도 풍수, 세종의 주산 풍수, 광해군의 인왕산 풍수, 영조의 개천 풍수, 정조의 보현봉 풍수 등 조선 초기부터 후기까지 풍수가 조정을 풍미했다. 단군 이래 최고의 명군으로 칭송되는 세종 15년에 조선 초기 최대의 풍수사건이 터졌다. 한양의 주산(主山)은 백악이 아니라 응봉이어야 하는데 잘못 잡았다는 것이다. 당시 왕조를 대표하던 최고의 풍수 최양선이 불러일으킨 이 풍수 논쟁은 무려 9년이나 끌었다. 황희, 정인지 등 당대의 유학자들도 논쟁에 가세했다. 세종이 친히 백악에 올라 현장을 검증할 정도로 끓어올랐다. 이 와중에 오간 군신 간의 문답을 보면 조선 풍수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다. 예조 좌참판 권도는 “공자님이 하신 말씀도 아닌 한낱 풍수를 가지고서 지금 조정 안이 술렁거리고 있음에 심히 걱정됩니다. 어찌 국가의 이해관계가 궁궐이 명당인가 흉당인가에 따라 달렸다고 볼 수 있겠습니까.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런 이단설을 집현전 학자들에게 연구케 하여 국가경영에 참고하라고 어명까지 내렸다 하니 심히 부당합니다. 바라건대 풍수와 같은 망령된 학문을 물리치시고 집현전에서의 공식적인 풍수강론 토의는 금지해 주옵소서”라고 상소를 올린 것이다. 세종의 답이 흥미롭다. “태조께서 나라를 세우고 도읍을 정하는 데 풍수를 살펴서 정하시고, 태종께서는 ‘풍수를 쓰지 않는다면 몰라도 만일 그것을 쓴다면 정밀히 하여야 한다’고 하시었다. 더구나 건원릉(태조왕릉)도 모두 풍수를 써서 정하였는데 유독 궁궐 짓는 데에만 풍수를 버리는 것이 옳겠는가. 권도의 말은 임금을 위한 것이나 잘못되었다. 그러나 그대로 두고 논하지는 말라”고 답했다. 풍수를 이단설로 몰아붙인 젊은 유학자의 생각은 틀렸지만 역사(실록)에 남기되 잘잘못을 가려 처벌하지는 말라는 세종다운 해법이었다. 세종은 또 영의정 황희, 좌의정 맹사성, 우의정 권진과 국사를 논하면서 “경복궁의 오른팔은 대체로 모두 산세가 낮고 미약하므로 남대문 밖에다 못을 파고 문 안에다가 지천사(支天寺)를 둔 것이다. 나는 남대문이 이렇게 낮고 평평한 것은 필시 당초에 땅을 파서 평평하게 한 것이었으리라고 생각한다. 이제 높이 쌓아 올려서 그 위에다 문을 설치하는 것이 어떻겠는가”라고 하문했다. 이에 모두가 “좋습니다”라고 머리를 조아렸다. 임금이 풍수로 북치고 장구 치는 격이다. 이때 남대문의 지대를 높여서 남산과 인왕산의 지맥과 연결해 오늘날의 모습을 갖췄다. 도읍을 정할 때부터 주산을 놓고 이설(異說)이 난무했다. 하륜이 ‘무악 주산론’을 주장했으나 터가 협소하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인왕산 주산론’과 ‘백악 주산론’은 불교와 유교의 정면 대결 양상이었다. 결국 정도전에게 밀린 무학이 “신라 의상대사의 산수비기(山水?記)에 따르면 ‘도읍을 정할 때 승려 말을 들으면 태평성세를 누릴 것이지만 정(鄭)씨 성을 가진 자가 이에 시비하면 5세(五代)가 되기 전에 왕위 찬탈의 화가 일어날 것이요, 200년 내외에 나라가 탕진될 위험이 있다’고 했다. 내 말을 따르지 않으면 크게 후회할 것이다”라고 예언했다. 정씨 성을 가진 자는 정도전을 이르며 실제 5대(태조-정종과 태종-세종-문종-단종)를 지나자마자 세조의 왕위찬탈이 있었고, 정확하게 200년 후에는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이것이 ‘인왕산 왕기설’로 과장돼 이 말을 들은 광해군이 인경궁을 짓도록 어명을 내렸다는 것이다. 주산풍수 논쟁은 고려 때 도선국사(827~898)가 송도를 왕궁으로 잡은 산세와 궁궐 입지가 당시 한양도읍 입지와 같다는 모든 속설을 잠재우는 권위 있는 풍수설이 나올 때까지 계속됐다. 우리나라 풍수의 창시자인 도선은 ‘다음 왕은 이씨이며 한양에 도읍을 정한다’라고 도선비기를 통해 예언한 바로 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joo@seoul.co.kr
  • 깊어가는 가을 ‘서울 등축제’ 데이트 하실래요

    깊어가는 가을 ‘서울 등축제’ 데이트 하실래요

    ‘서울등축제’ 개막을 하루 앞둔 31일 저녁 서울 종로구 청계천에 미리 밝혀둔 3만여개의 등불을 배경으로 시민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이번 축제의 주제는 ‘한성백제 천년의 꿈’으로 오는 17일까지 청계광장~삼일교 구간에서 열린다.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 잠깐, 식당·화장실에서 본 시구절은 공짜일까

    잠깐, 식당·화장실에서 본 시구절은 공짜일까

    [사례1] 서울 강남의 한 대형 식당이 화장실에 고은 시인의 시를 액자로 내걸었다가 이달 초 형사 소송을 당했다. 지난 5월 익명의 제보자가 사진을 찍어 한국문예학술저작권협회에 알린 것. 이후 협회는 해당 식당에 다른 저작물도 사용했는지 자료를 요청하고 사용료를 협의하자고 알렸다. 하지만 식당 측이 5개월이 다 되도록 연락이 없자 결국 협회 측이 고소장을 내는 ‘최후의 수단’을 쓴 것이다. [사례2] 2011년 8월. 도종환 시인의 ‘담쟁이’와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 등 시 두 편이 청계천 산책로에 무단으로 동판에 새겨져 있다는 제보가 협회에 들어왔다. “저작권 사용료를 왜 내야 하느냐”고 반발하는 관계 기관을 한 달간 설득한 끝에 협회는 사용료 200만원을 받아냈다. [사례3] 지난해 4월 서울 강남의 한 주점은 천상병 시인의 ‘막걸리’를 홀에 내걸었다가 협회에 60만원의 사용료를 냈다. 5년간 무단으로 사용했지만 주인이 직접 만든 게 아니라 주류회사에서 제공한 것이라는 점을 감안, 협회는 통상치보다 금액을 낮춰줬다. 모두 한국문예학술저작권협회의 레이더망에 걸린 문학 작품 저작권 위반 사례들이다. 식당이나 화장실, 공원, 지하철 등에 시를 내거는 데도 저작권자의 허가를 받고 사용료를 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아는 개인이나 단체는 아직 드물다. 정구성 한국문예학술저작권협회 법무팀장은 “아직도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자리 잡지 않아 법을 위반한 주체에 사용료를 내라고 하면 깡패들을 데려오거나 언론 플레이를 하겠다고 협박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소설가, 시인, 화가, 교수 등 회원 3600여명의 저작권 관리를 맡고 있는 한국문예학술저작권협회가 매년 적발하는 저작권 침해 사건 가운데 20%는 공원, 건물 외벽 등에 전시하는 사례들이다. 무단 사용이 적발되면 사용료를 물린다. 15%의 수수료를 뗀 뒤 매월 25일 저작자에게 사용료를 지급한다. 협회 측은 “황순원, 박완서, 조세희 등 교과서에 작품이 실려 있는 유명 문인 대부분은 회원이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현재 도서 출판을 통한 복제·배포의 경우 시 한 편당 사용료는 6만 3530원. 지하철역 플랫폼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시들도 저작권 사용료를 지급한 것이다. 지하철역은 홍보 효과가 높아 문인들이 작품 전시를 가장 선호하는 장소로 꼽힌다. 때문에 지하철에서의 작품 편당 사용료는 기준가보다 낮은 5만 2500원으로 책정돼 있다. 반면 문인들이 작품 전시를 가장 꺼리는 곳은 화장실이다. 화장실협회를 통해 작품 사용 신청이 들어와도 그런 이유로 계약이 무산되기도 한다. 라디오나 TV 프로그램에서 시나 소설이 낭독될 때도 협회 회원의 작품이면 사용료가 징수된다. 공중파 3개사는 매년 이를 지급하고 있지만 케이블방송사는 아직 응하지 않고 있다. 지난 4일부터는 교육 사이트에서 문학 작품을 읽거나 보여줄 때도 전송사용료를 내는 것으로 법이 개정됐다. 요즘 협회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포함, 네티즌들이 인터넷상에 문학 작품을 게재하면서 발생하는 저작권 침해에 대응할 방안을 마련하느라 고심하고 있다. 협회가 지난해 8월 보름간 네이버, 다음, 네이트 등 국내 주요 포털사이트들을 대상으로 천상병의 ‘귀천’, 김춘수의 ‘꽃’ 등 국내 대표시 10편에 대한 불법 게시물을 모니터링한 결과 저작권 침해 건수가 2964건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정구성 팀장은 “온라인 게재는 법적 기준이 없어 어디까지를 공정 이용(저작권 침해가 되지 않는 기준과 범위 내의 이용)이라고 봐야 할지 판단하기 어렵다”며 “사적인 이용은 숨통을 터 줘야겠지만 소설 전문이나 시 전편을 올리는 경우 등은 엄연한 저작권 침해이므로 허용 범위를 놓고 고심 중”이라고 밝혔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야박하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출판저작물 역시 음원이나 특허 등과 마찬가지로 최소한의 보호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청계천 못잊어?… 가을 속 여름 철새

    청계천 못잊어?… 가을 속 여름 철새

    22일 서울 청계천에서 여름 철새 왜가리가 날갯짓을 하며 겨울 철새 갈매기 곁에 내려앉고 있다.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 [국감 하이라이트] “경기 펑크난 곳간 숨기려 꼼수” 질타…서울시선 ‘박시장 주장 거들기’ 집중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의 경기도 국정감사에서는 재정위기의 원인과 대책에 대한 여야 의원과 김문수 지사 간의 공방이 벌어졌다. 김 지사는 무상보육과 관련해 대통령의 책임론도 거론했다. 신장용 민주당 의원은 22일 경기도 국감에서 “재정보전금 등 법정경비 7204억원을 분식회계하고 교육청에 전출할 예산 2811억원을 유용하는 등 ‘펑크난 곳간’을 숨기고자 불법 부당한 꼼수를 부렸다”며 “지방재정법과 지방자치법 위반이며 김문수 도지사의 예산 운용의 무능”이라고 비판했다. 같은 당 신기남 의원은 “부동산 경기 침체 등으로 재정이 많이 어려워졌지만, 그것만으로 재정난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며 정책 실패를 지적했다. 김관영 민주당 의원 역시 “도 재정 상황은 사실상 모라토리엄(채무지불유예) 수준”이라며 “공기업 부채가 취임 당시 5조 1000억원에서 10조 5000억원으로 늘어났다. 도의 독자적인 문제를 김 지사가 회피하려는 것”이라고 질책했다. 이장우 새누리당 의원은 “도시공사의 부채 문제가 심각하다”며 “지방자치단체가 개발사업을 하려다 보니 이런 현상이 빚어지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같은 당 이종진 의원도 “도의 부채 규모가 산하 공공기관까지 포함하면 13조원이 넘는다”며 “재정건전화를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재정난과 관련, 김 지사는 “재정위기의 심각성에 대한 인지가 부족했던 제 책임이 크다”면서도 “재정이 있어야 복지를 한다. 교육감이 무상급식을 약속했는데 저희가 부담한다”고 토로했다. 그는 “무상보육에 대해 대통령이 지방에 떠넘기기한 것도 잘못됐다”며 “공약이행 책임 실명제를 해 교육감이 공약하면 교육감이, 대통령이 하면 대통령이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내년 시장 선거 전초전으로 관심을 모았던 서울시에 대한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국정감사는 맥빠진 분위기였다. 여권의 공격은 날카롭기보다 사납기만 했고, 야권은 쟁점을 발굴하기보다 박원순 시장의 주장을 거들어 주는 데 집중했다. 진선미 민주당 의원은 이날 국정원의 ‘박원순 제압 문건’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했다. 진 의원은 2011년 당시 원세훈 국정원장이 전 부서장 회의에서 특정한 언급을 한 뒤 박 시장 대책 문건이 만들어졌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 박 시장 비난 글을 집중적으로 올린 트위터 아이디와 국정원 직원의 것으로 추정되는 아이디 등도 공개했다. 특히 윤석열 수사팀이 내놓은 공소장 변경 신청 가운데 박 시장 관련 내용을 추려 뽑아 보여주면서 이에 대한 서울시의 대응을 주문했다. 박 시장은 “그래도 1000만 시민의 선택에 의해 선출된 사람에 대해 국가기관이 그런 행태를 보였다는 것에 대해 동의할 수 없다”고 언급했다. 또 무상보육 국고보조율 문제도 도마에 올랐다. 김현 민주당 의원이 “무상보육을 정착시킬 수 있는 과제가 무엇이냐”고 멍석을 깔자 박 시장은 “보육은 국가 책임이라는 것이 박근혜 대통령의 후보 시절 공약이었고, 심지어 당선인 시절 시도지사협의회가 이 얘기를 꺼내자 중앙정부가 책임지겠다는 뜻을 나타냈다”고 말을 이었다. 윤재옥 새누리당 의원은 박 시장의 현장시장실을 높이 평가했다. 윤 의원은 “현장에서 1박 2일 머물면서 지역 현안을 잘 살피려는 뜻은 좋으나 새누리당 소속 구청장이 있는 곳은 아직 없다”면서 “이러면 반쪽짜리에 머무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김영주 새누리당 의원은 청계천 등축제가 진주 남강유등축제를 표절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거론했다. 김 의원은 지적재산권 침해까지 거론했으나 박 시장은 “진주시의 일방적인 주장”이라면서 “오히려 서울 것을 베껴 간 경우도 많았다”고 적극 해명했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맑은 물 따라 걷는 송정둑·중랑천…문화와 함께 보는 삼청동·덕수궁

    ‘도심 단풍길에서 가을 정취와 낭만을 즐겨볼까.’ 서울시는 ‘아름다운 단풍길’ 81곳(148.54㎞)을 선정하고 21일부터 새달 중순까지 낙엽을 쓸지 않고 관리할 계획이라고 20일 밝혔다. 시는 물을 따라 걷는 단풍길로 송정둑, 동대문구 중랑천 둑길, 우이천 둑길을 소개했다. 송정둑은 울창한 수림이, 중랑천 제방길은 왕벚나무와 느티나무 단풍이, 우이천 둑길은 쭉 뻗은 플라타너스 단풍이 유명하다. 도봉구 중랑천 둑길, 서대문구 홍제천길, 안양천 산책로, 여의도 윤중로도 추천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삼청동길과 덕수궁길, 이태원로, 청계천길은 맛집, 문화공연, 쇼핑 등을 함께 즐기며 나들이하기 좋은 단풍길로 꼽혔다. 공원 속 단풍길도 빼놓을 수 없다. 서울의 대표 산책로인 남산 북측산책로는 유모차나 휠체어도 접근하기 쉽다. 양재시민의 숲은 거대한 메타세쿼이아 단풍길이 인상적이다. 송파나루공원(석촌호수), 올림픽공원, 뚝섬 서울 숲, 월드컵 공원도 가볼 만한 곳이다. 등산을 좋아한다면 아차산생태공원에서 워커힐호텔까지 이어지는 워커힐길과 북한산길, 서대문 안산 산책로를 추천한다. 기상청은 올해 북한산 단풍 절정기를 이달 27일께로 예상했다. 서울 도심은 이보다 늦은 다음 달 초순이다. 홍혜정 기자 jukebox@seoul.co.kr
  • [서동철의 시시콜콜] 경복궁 자연 해자(垓子)의 복원을 위하여

    [서동철의 시시콜콜] 경복궁 자연 해자(垓子)의 복원을 위하여

    조선은 왕조를 열면서 지금의 충남 계룡시 3군사령부 터를 도읍으로 점찍고 궁궐공사를 시작한다. 하지만 곧 한양의 북악산 아래로 수도의 위치를 바꾸게 된다. 풍수지리를 공부했다는 사람 가운데 몇몇은 이 과정에 오류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계룡산을 버리고 한양을 택한 것이 잘못이고, 인왕산을 버리고 북악산을 택한 것도 잘못이라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조선의 서울이 계룡산 어귀였다면 지금쯤 우리나라와 중국의 국경선은 임진강쯤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렇다 해도 수도의 위치 문제는 생각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한양을 설계한 사람들이 궁궐 자리를 북악산 아래로 선택한 것은 그들이 옳았다고 본다. 흔히 경복궁은 해자가 없는 것이 특징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해자란 외적의 방어를 위해 성의 둘레를 파놓은 시설이다. 중국 베이징의 쯔진청(紫禁城)과 일본 도쿄의 왕궁에는 모두 해자가 있다. 반면 지금 경복궁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해자는 찾을 수 없다. 그것이 아쉬운 듯 경복궁 금천을 일종의 해자라고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지만, 담장 안에 있는 것을 해자라고 할 수는 없겠다. 하지만 경복궁에는 자연의 조화를 거스르지 않고 실용성이 뛰어난 자연 해자가 있었다. 궁궐 동쪽의 중학천과 서쪽의 백운동천이다. 중학천은 삼청동에서 발원해 경복궁 담장과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뒷길을 따라 흐르다 청계천과 합류한다. 백운동천은 자하문터널 쪽에서 시작해 자하문로와 세종문화회관 뒷길을 지나 역시 청계천과 합쳐진다. 이것을 20세기 후반 개발 와중에 복개해 버린 것이다. 삼청동길과 자하문로 아래로는 지금도 중학천과 백운동천이 흐른다. 도성을 설계한 사람들은 풍수지리에 합당해야 하는 것은 물론 궁궐을 효율적으로 방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에 충실했다. 그 결과 북쪽은 북악산이 가로막고, 동쪽과 서쪽의 하천은 남쪽에서 합류하며 세 방향에서 자연 해자 역할을 할 수 있는 자리에 경복궁을 앉힌 것이다. 궁궐 아래로는 정부기관을 한데 모은 육조 거리도 조성했다. 자연 해자의 보호를 받는 곳에 국가의 중추기관을 집중시킨 것이다. 복개가 이루어지기 전 중학천 사진을 보면 바닥은 깊고, 호안은 적이 오르기 어렵도록 돌로 쌓은 수직 벽이다. 궁궐을 감싸는 해자의 역할이라는 인식이 분명했음을 알 수 있다. 중학천과 백운동천을 옛 모습대로 복원하는 계획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서울시는 청계천 복원의 연장선 상에서 되살리고자 했지만, 길이 사라진다는 현실적 어려움에 부닥쳐 광화문 교보문고 뒤편의 중학천 일부만 상징적으로 복원했다. 앞으로 복원은 정부가 주도해야 할 것이다. 경복궁 복원을 위한 구상의 하나로 해자 복원 계획도 세워야 한다. 물론 복원은 쉽지 않다. 하지만 언젠가 ‘해자까지 살아나야 경복궁 복원의 완성’이라는 인식이 국민 사이에 뿌리내린다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라고 믿는다.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씨줄날줄] 관광경찰/박현갑 논설위원

    ‘Tourist Police.’ 우리말로 관광경찰이다. 그제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관광경찰 발대식이 있었다. 101명의 한국관광 지킴이들이다. 이들은 명동, 이태원, 인사동, 청계천 등 서울시내 외국인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관광지를 순찰한다. 업무는 관광지 범죄예방 및 기초질서 유지, 외래 관광객 대상 불법행위 단속·수사, 외래 관광객의 관광불편사항 처리 등이다. 외래 관광객들은 바가지 요금이나 환불 거부 등 불합리한 상황에 처하게 될 경우, 가까이 있는 관광경찰에게나 관광 안내전화(1330)로 신고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관광경찰은 영어·일본어·중국어 등 외국어에 능통한 사람들로 구성됐다. 경찰청은 내년에는 부산, 제주, 인천 등지로 관광경찰 도입을 확대할 예정이란다. 지난해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 관광객이 1100만명을 돌파했다. 외래 방문객이 500만명이었던 2000년에 비해 곱절 이상 늘어난 셈이다. 2015년 무렵엔 1500만명에 이를 전망이다. 우리나라도 영국, 프랑스 등 유럽 관광대국처럼 관광을 산업자원으로 활용한 기본 토대는 구축된 셈이다. 그런데 외국 관광객들을 ‘봉’으로 인식하는 수준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2009년 468건이었던 외국 관광객 상대 범죄는 지난해엔 897건으로 늘었다. 지난 5년간 외래 관광객 불편신고 중 환불 거부, 가격표시제 미실시 등 쇼핑과 관련한 불편신고도 해마다 증가했다. 2008년 23.6%에서 2012년에 34.7%로 늘었다. 택시 바가지요금, 콜밴 불법 영업 등 교통 불편사항도 해마다 전체 불편신고의 15~ 20%를 차지한다. 이러한 불편사항은 우리나라 관광에 대한 만족도를 떨어뜨리고 결국 재방문을 기피하게 하는 요인이다. 관광경찰은 이런 연유로 도입됐다. 관광산업은 ‘굴뚝 없는 산업’이다. 또 외화획득, 고용창출, 투자촉진 등 다양한 파급 효과를 유발하는 고부가가치산업이다. 게다가 사람의 관심사가 물질적 풍요뿐만 아니라 문화, 레저 등 정신적 영역으로 확대되면서 더 주목받고 있다. 교통과 정보통신 발달로 관광산업을 둘러싼 각 국 간 경쟁도 치열하다. 말레이시아의 경우 1985년부터 관광경찰을 운영해 오고 있다. 태국의 휴양지 푸껫에서도 관광경찰이 ‘1155’라는 관광객 안내전화로 관광객 안전을 도모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50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만큼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사회적 자산은 그 어느 나라 못지않게 풍부하다. 관광경찰이 코리아 이미지도 개선하고 관광산업을 활성화하는 데 작은 주춧돌이 되기를 바란다. 박현갑 논설위원 eagleduo@seoul.co.kr
  •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택리지] 한강(중)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택리지] 한강(중)

    ■한강 잔혹사 무동·백마도 10여개 섬, 택지 조성 위해 훼손 ‘양화진의 절경’ 선유봉, 깎이고 깎여 ‘섬’ 신세로 한강에는 10여개의 크고 작은 섬(하중도)들이 명멸(明滅)했다. 한강 2000년사 속에서 실재했던 뭇 섬들은 불과 50년 전에 뭍으로 변하거나 사라졌다. 큰 섬을 꼽으라면 팔당 하류부터 당정섬(미사리 섬), 석도(무학도), 잠실도(잠실섬), 뚝섬, 저자도, 율도(밤섬), 여의도, 난지도를 들 수 있다. 부리도, 무동도, 반포도(서래섬), 노들섬(중지도), 백마도도 당당했다. 이 중 석도, 무동도, 부리도, 저자도, 백마도는 한강변을 메워 택지를 조성하는 모래로 쓰이면서 파괴됐다. 밤섬과 당정섬도 같은 운명이었지만 20여년 만에 되살아나고 있다. 잠실도와 뚝섬, 서래섬, 여의도, 난지도는 이름만 섬(도)일 뿐 육지가 됐다. 밤섬과 함께 ‘강의 기적’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당정섬은 경기 하남시 산곡천과 한강이 만나는 팔당대교 하류 미사리 조정경기장 옆에 있다. 석도는 고덕천과, 잠실도와 부리도는 성내천과 탄천이 한강에 합류하는 지점에 각각 형성됐다. 잠실도와 부리도는 별개의 섬이었지만 합쳐져 육지가 되었다. 무동도는 탄천이 흘러나오는 지금의 청담동쯤에 있었다. 반포 서래섬은 이름이나마 남았지만 무동도는 무자비한 채취에 흔적도 없다. 저자도는 청계천과 중랑천, 여의도와 밤섬은 만초천(욱천)과 봉원천, 난지도는 한강 이남의 안양천과 한강 이북의 홍제천과 불광천이 맞닿는 곳에 있었다. 노들섬은 1917년 한강인도교(한강대교) 건설 당시 이름이 없던 모래 언덕에 둑을 쌓으면서 만들어졌다. 노들이란 ‘백로(鷺)가 노닐던 징검돌(梁)’이라는 뜻이며 강 건너편 노들나루(노량진)의 이름을 딴 것이다. 오페라하우스를 건립키로 했으나 한강대교를 오가는 차량이 내는 소음과 예산문제로 백지화되고 나서 텃밭으로 쓰이고 있다. 난지도는 이집트 기자의 피라미드보다 33배나 더 큰 거대한 쓰레기 산이 됐다. 난초와 지초 향기가 진동하던 섬이 쓰레기 침출수의 악취를 풍기는 인공산이 된 셈이니 비극이 따로 없다. 백마도는 김포대교 아래 모래섬이었지만 신곡수중보 공사로 가라앉았다. ‘한강 잔혹사’는 섬을 없애기도 했지만 새로운 섬을 생성시키기도 했다. 선유도와 세빛둥둥섬이 새롭게 태어난 인공 섬이다. 선유도는 본래 높이 40m의 선유봉이었다. 지금의 합정동 절두산(잠두봉)과 마주 보고 서 있었으며 18세기 겸재 정선의 실경산수화 ‘선유봉’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양화진의 절경이었다. 한강제방 축조와 여의도 윤중제 조성용 골재로 조금씩 깎여 나가기 시작해 결국 섬 신세가 됐다. 1390억 원을 들여 반포한강공원에 지어진 3채의 세빛둥둥섬은 세계최대의 인공 섬이다. 강물에 휩싸여 떠내려가지 않도록 쇠사슬로 고정한 유리성(琉璃城)이다. 인간이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없앤 자연섬에게 바치는 레퀴엠(진혼곡)인지도 모른다. 자연을 훼손한 대가가 얼마나 비싼지 생각게 한다. ■뚝섬 과거사 경상·충청·강원도 연결하는 도성 동남쪽 관문 다리 건너고 배로 한강 넘어야 닿아 섬으로 인식 한강 제방이 생기기 전 한강 강폭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넓었다. 제2차 한강종합개발이 완료된 1987년 이후 한강의 강폭은 최대 900m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한강제방이 없었던 1960년대 이전의 한강은 서울~원산 간 경원선(지금의 중앙선 구간) 철길이 경계선을 이뤘다. 홍수 때면 여의도, 이촌, 신사, 잠원, 반포, 압구정, 뚝섬, 잠실 등 한강 양안이 물바다가 되기 일쑤였다. 홍수기 한강의 넓이는 평균 1800~2000m였고, 잠실섬을 중심으로 현재의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석촌호수 남단까지를 측정했을 때 최대 3500m에 이르렀다. 갈수기에는 한강대교를 기준으로 노량진과 흑석동 쪽에 붙어 흐르는 50~100m의 가느다란 물줄기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백사장이었다. 옛사람들은 왜 뚝섬을 섬으로 여겼을까. 긴 다리를 건너고 배를 타야 닿을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뚝섬은 한양인 듯하지만 한양이 아니었다. 도성 밖 성저십리(城底十里)의 경계지점이자 도성의 동남쪽 관문이었다. 1751년에 제작된 도성삼군문분계지도(都城三軍門分界之圖)를 보면 뚝섬을 섬으로 그리지 않았다. 다만 살곶이다리를 건너 뚝섬, 광나루, 송파나루로 향하는 지점에다 ‘뚝섬’이라는 지명을 적어 놓았다. 중랑천을 건너서 다시 배를 타고 한강을 넘어 경상도, 충청도, 강원도로 연결되는 뚝섬을 섬으로 여긴 까닭이다. 당시 강원도 가는 길은 경기도 광주를 거쳐 북한강을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충청도와 경상도를 가려면 남한강 줄기를 따라 내려갔다. 3도의 물산이 모이는 광나루와 송파나루가 흥청대기 마련이다. ‘광주 가는 나루’라고 해서 광나루라는 이름이 붙었다. 한양도성을 나서면 광희문~왕십리를 거쳐 개천(청계천)과 중랑천이 한강본류와 만나는 살곶이다리(箭串橋)를 건너야 뚝섬에 닿았다. 함흥에서 도읍으로 돌아오던 태조가 왕자의 난을 일으켜 왕위에 오른 태종에게 화살을 날렸던 바로 그 장소이며 조선에서 가장 긴 돌다리였다. 중랑천을 따라 도봉천과 만나는 지점까지 이어지는 동부간선도로를 생각해 보면 옛사람들이 뚝섬을 섬으로 여길 만했다. 뚝섬(纛島)이라는 지명은 태조 때 왕을 상징하는 깃발인 독기(纛旗)가 떠내려온 장소라고 하여 생겼다. 처음에는 독도라고 부르다가 이후 둑섬, 둑도, 뚝도를 거쳐 뚝섬으로 굳어졌다. 장안평이나 전관평(살곶이벌)처럼 넓은 벌을 형성하는 비옥한 땅이어서 한성부의 배후 농업지대 역할을 했다. 마장동(馬場洞)이나 면목동(面牧洞)이라는 지명에서 알 수 있듯이 말을 키우고 사냥을 하던 드넓은 목장이었다. 이곳에 경마장과 골프장이 생겼다가 없어지고 현재의 서울숲이 조성된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뽕밭 변천사 홍수방지 제방쌓기서 택지·도로 조성으로 변질 잠실섬·부리도 육지화… 금싸라기 땅으로 개발 한강의 섬은 어떻게 없어졌으며 강변 백사장은 어디로 다 사라졌을까. 물난리에서 벗어나기 위한 제방을 쌓는 것이 1960년대 제1차 한강 개발의 주목적이었지만 차츰 택지조성과 제방 둑에 도로를 개설하는 사업으로 목적이 변질됐다. 이름하여 공유수면 매립공사로 불린 한강 제방쌓기가 이권사업으로 등장한 탓이다. 1960~1970년대 동부이촌동, 흑석동, 서빙고, 반포, 압구정동, 구의, 잠실 등이 주 대상지역이었다. 국유하천인 한강을 막아 제방을 쌓고 택지를 조성했다. 모래와 골재는 한강에 지천으로 널린 모래섬과 강변 암벽을 폭파해 메웠다. 그 결과 섬은 사라졌고, 한강제방에는 강변도로와 올림픽대로가 생겼고, 한강변은 아파트 단지가 됐다. ‘땅 짚고 헤엄치기 식’ 공유수면 매립공사를 수주한 건설업체들은 재벌이 됐다. 잠실섬은 본래 광진구 자양동에 붙어 있던 땅덩어리가 ‘아득한 옛날’ 홍수 때 허리가 잘려나가 섬이 됐다고 한다. 이때 새로 흐르게 된 북쪽 물길이 신천(新川)이다. 또 잠실섬 서쪽에 부리도가 있었는데 갈수기에는 하나의 섬이었다가 강물이 불면 딴 섬이 되었다. 행정적으로 잠실섬은 고양군 뚝섬면, 부리도는 광주군 중대면으로 갈렸다. 잠실에는 16세기 무렵까지 뽕나무가 무성했지만 잦은 홍수로 피폐해졌다. 지금의 서초구 잠원동이 잠실의 역할을 대신했다. 1960년대 말까지 서울의 끝은 뚝섬과 광나루였다. 잠실섬의 존재를 거의 인식하지 못했다. 1969년 경기도 광주에 조성한 300만평 규모의 광주대단지(성남)에 집단이주한 주민 10만명의 교통불편 민원과 서울에서 소외됐다는 불만을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강북의 기존 시가지와 광주대단지를 연결하는 방안이 검토됐다. 잠실 공유수면 매립과 잠실섬의 육지화, 잠실대교의 개설이 최대 현안으로 부각됐다. 1971년 4월 한강 남쪽 본류인 삼개나루(삼전도) 쪽 흐름을 차단하는 물막이공사가 완료됐다. 잠실섬이 뭍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북쪽 지류인 신천 쪽을 막지 않고 남쪽 본류인 삼전도 쪽을 막은 것은 택지를 더 많이 조성하기 위해서다. 서울에서 유일한 호수인 석촌호수는 이때 막은 강물이다. 롯데는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대비한다는 명목 아래 이 땅에 동서 390m, 남북 265m, 바닥면적 합계 56만㎡의 엄청난 건물을 지었다. 이렇게 탄생한 잠실 롯데월드는 여의도 63빌딩이나 삼성동 코엑스보다 4배 가까이 큰 덩치를 자랑한다. 석촌호수를 가로지르는 송파대로 좌우 동호(東湖)와 서호(西湖) 중 서호를 20년 장기 대여해 실외테마파크를 운영하고 있다. 동호 남쪽에 이곳이 옛 송파나루터였음을 알리는 표지석이 서 있고, 서호 옆에는 1639년 병자호란 때 세운 삼전도비(大淸皇帝恭德碑)가 있다. 상전벽해(桑田碧海)란 뽕밭이 푸른 바다로 변한 것을 이른다면 잠실의 변화는 ‘상전금지’(桑田地)란 신조어를 낳을만하다. 뽕밭이 금싸라기 땅(地)이 되었으니 말이다. 1972년 7월 잠실대교와 송파대로가 준공돼 서울과 성남시가 이어졌다. 1978년 잠실매립이 마무리되자 75만 평이 생겼다. 여기에 국유지와 시유지를 주축으로 대대적인 토지구획정리사업을 벌이자 무려 340만 평에 이르는 신생 도시 한 개가 생겼다. 이른바 잠실지구이며 올림픽유치의 꿈을 이룰 잠실 메인스타디움이 깃들 기회의 땅이었다.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을 지낸 손정목 서울시립대 명예교수에 따르면 매립 당시 토사가 부족하자 개발업체 측이 ‘몽촌토성 언덕을 헐어 사용하면 어떻겠느냐’라는 제안을 했으나 서울시가 수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한성백제의 역사를 한순간에 허물어 버릴 수도 있었던 아찔한 순간이었다. joo@seoul.co.kr
  • [DIY 행정] 성동구 마장동 , 주민자치 시범지역… 안전·복지 등 주도적 운영

    “진짜 주민 손으로 하는 주민자치가 무엇인지 기대하시라!” 성동구는 안전행정부 ‘주민자치회 시범 운영 지역’으로 선정돼 눈길을 끈 마장동 주민자치회의 위원 위촉식을 18일 갖는다고 밝혔다. 지방자치 실시와 함께 주민자치 문제가 끊임없이 거론됐으나 주민들을 내세우고도 실제로는 공무원들이 일을 추진하기 십상이었다. 안행부는 이를 제대로 시행하기 위해 지난 4월 전국 3400여개 읍면동을 대상으로 주민자치를 해 볼 곳을 공모했고 마장동이 서울 대표 지역으로 꼽혔다. 이번에 구성될 마장동 주민자치회는 행정기관에서 진행하던 안전마을, 지역복지, 마을기업 사업들을 주도적으로 진행하게 되며 여기에 필요한 업무 협의, 위탁, 자치 업무 전체를 도맡는다. 주민 30명으로 구성되는 자치회는 4개 분과위원회로 나뉘어 위원회별로 맡은 업무를 진행한다. 마장동이 이런 사업을 추진하게 된 것은 “자기 동네 일을 스스로 하는 주민자치야말로 지방자치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늘 강조하는 고재득 구청장의 의지 때문이다. 앞서 마장동이 지역 정체성 찾기 사업을 열정적으로 벌였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오래 거주한 지역민들의 협조를 얻어 마장동 우시장, 왕십리 내연발전소, 연탄공장, 청계천변 등의 오랜 역사에 대한 사진과 얘깃거리를 한데 모은 책자 ‘추억과 흔적들, 마장동 이야기’를 펴내 학교, 단체에 보급했다. 또 조선 태조 이성계가 서울 지형을 살폈다는 왕좌봉(王坐峰)터에다 표지판을 설치했다. 최근 주민자치회가 직접 추진해 경영까지 도맡는 마을기업 카페 ‘마주보고’도 만들었다. 고 구청장은 “주민들 스스로 지역 문제를 논의하고 해결하는 새로운 개념의 주민자치회를 통해 주민자치의 롤모델을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행정·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실력파 싱어송라이터 진호현, 싱글앨범 발매

    실력파 싱어송라이터 진호현, 싱글앨범 발매

    가수 진호현이 11일, 싱글앨범<청계천 로맨스∙별꽃나무>를 발매했다. 이번 싱글앨범은 정반대인 것만 같으면서도 묘하게 맞닿아 있는 ‘사랑’과 ‘허무’를 테마로 하며, 총 2곡의 노래로 이루어졌다. 싱어송라이터 진호현은 이번 데뷔 음반에서부터 작사, 작곡은 물론, 음반 총괄 프로듀싱, 편곡, 연주, 코러스 등과 뮤직 비디오 제작 및 출연까지 모두 책임진 것으로 알려졌다. 타이틀곡 ‘청계천 로맨스’는 서울 한복판에 있는 청계천에서 한밤중에 펼쳐지는 러브 스토리를 그린 아름다운 서정곡이다. 두번째 곡 ‘별꽃나무’는 그 때 그 순간이 아니면 다시는 이룰 수 없이 지나가 버리는 모든 것들에 대한 독백을 담은 노래이다. 한편 현재 진호현의 공식 페이스북에서는 설레는 가을을 맞아 로맨스 이벤트가 진행 중이다. 이벤트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진호현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Jinhohyun.official)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택리지] 한강(상)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택리지] 한강(상)

    >>한강 왜, 어떻게 달라졌나 옛 한강은 오늘의 한강과 어떻게 다르며, 무엇이 달라졌을까. 한강은 한성 백제가 위례(풍납·몽촌토성)에 터 잡은 이후 2000년 동안 한민족의 젖줄이었다. 조선의 500년 도읍지 한양(한성부)의 식수원이자 하수구였으며 명승지였다. 한성부를 도읍지로 정하게 한 장풍득수(藏風得水)의 큰 축이었으며 어느 한 곳 빼어나지 않은 곳이 없는 풍광을 뽐냈다. 조선시대 한강의 이름은 경강(京江)이었다. 서울의 중심부인 삼전도(송파)에서 양화진(합정) 구간을 경강이라고 했다. 그중 남산 기슭을 흐르는 강을 한수(漢水)라고 불렀는데 이것이 한강이 됐다. 한(큰) 가람(강)이라는 우리말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설득력 있다. 그런 한강이 불과 100년 만에 천지개벽을 했다. 근대기로 접어들면서 사람들의 인식과 쓰임새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물난리를 막아 보겠다는 치수(治水)에 대한 집착과 인구의 광적인 서울 집중에 따른 택지 제공, 교통로의 필요성이 개발을 불렀다. 게다가 휴전선이라는 인공 장애물이 한강의 서해 출구를 가로막으면서 안보적 측면도 겹쳤다. 아라뱃길을 새로 뚫은 까닭이다. 한강의 변화에는 어느 정도 불가피한 시대적 요청이 있었다. 가장 큰 변화는 섬(河中島)이 사라지면서 모래톱과 습지도 더불어 자취를 감춘 것이다. 강이 마치 활주로 같다. 유럽이나 중국, 일본의 중세도시를 흐르는 크고 작은 자연하천과 비교해 보면 대조적이다. 19세기 초만 해도 매년 1만 척을 헤아리는 황포 돛배가 사람과 물자를 싣고 광나루(광진), 삼밭나루(삼전도), 뚝섬나루, 한강나루, 동작나루, 마포나루, 노들나루(노량진), 양화나루를 오갔지만 흥청거리던 뱃노래는 사라졌다. 그 자리에는 29개의 다리가 덩그러니 놓였고 나루는 다리 이름으로 남았다. 골재 채취용으로 폭파했으나 20년 만에 되살아난 밤섬(율도)을 제외하고 강폭이 최대 900m에 이르는 넓디넓은 강이 텅 비었다. 여울과 소(沼)마저 사라져 생명력과 자정력을 잃었다. 강변에 60㎞에 이르는 콘크리트 호안이 일사불란하게 펼쳐진 곳이 오늘의 한강이다. 한강에 대한 역사적 고찰은 한강이 삼국사기에 처음 등장하는 2000년 전 백제의 하남 위례성 시대와 삼국의 한강 유역 쟁탈 시기에서 출발한다. 또 1392년 조선 건국, 1925년 을축년 대홍수 이전과 이후도 의미 있다. 서울 숭례문 입구까지 물에 잠기게 한 을축년 대홍수는 땅밑에 숨었던 암사동 신석기 유적지를 드러나게 했지만, 제방 구축용 골재로 쓰려고 선유봉(선유도)을 폭파하는 빌미가 됐다. 결정적인 변화는 1967년 제1차 한강개발과 1982년 제2차 한강종합개발이 몰고 왔다. 1차 한강개발은 여의도를 육속화하면서 서울의 경계를 사대문 안에서 남산 성곽을 넘어 한강변까지 확장했다. 여의도개발은 한강개발의 출발점이자 강남개발의 전초기지였다. 아파트공화국을 알리는 나팔소리였다. 여의도 제방을 쌓으려고 밤섬과 선유봉을 폭파한 원죄가 있지만 한강 상류에 팔당댐을 만들어 한강 수량을 조절했고, 한강 제방을 완성해 서울 시민들을 물난리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했다. 여의도, 동부이촌동과 반포지구에 대단위 아파트 택지를 제공했으며 서울은 이때부터 사대문 중심 일핵도시에서 다핵도시로 나아갔다. 한강 제방은 워커힐호텔~김포공항을 잇는 강변북로를 부산물로 남겼다. 동호대교 아래 저자도는 압구정 아파트 단지를 만드는 데 온몸을 바치고 사라졌다. 제2차 한강개발 이후 오늘의 모습이 갖춰졌다. 홍수기를 제외한 대부분의 시기 맨살을 드러낸 채 가늘게 흐르던 한강이 365일 물로 가득 찬 사실상의 호수가 된 것이다. 두 개의 수중보가 한강을 수심 2.5m의 인공호수로 만들었다. 잠실대교 아래 잠실수중보와 김포대교 아래 신곡수중보가 물을 가두고 있다. 상전(桑田) 잠실섬을 강남 쪽으로 인위적으로 붙이면서 한강의 본류를 바꿔 놓았다. 이때 삼전도 나루 앞을 흐르던 한강 물길은 석촌호수가 됐다. 강남 쪽 한강 제방에는 올림픽대로가 개설됐다. 2007년 한강 복원을 외쳤지만 바뀐 물길과 사라진 섬, 습지와 백사장 그리고 파괴된 봉우리와 누정은 되찾을 수 없었다. >>한강의 옛 모습은 어땠나 옛 사람들은 한강을 강이 아니라 호수로 여겼다. 동호(東湖), 서호(西湖), 남호(南湖) 등 3개의 호수로 나눠 부르면서 풍류를 즐겼다. 강물이 하중도를 중심으로 잔잔하게 굽이치는 장면이 그들의 눈에는 호수처럼 보였으리라. 동호에는 저자도와 독서당, 입석포(선돌개), 두모포(두뭇개), 제천정과 천일정(한남동의 정자), 압구정 같은 명승지가 즐비했다. 동호대교라는 지명이 동호에서 유래했다. 서호는 용산으로부터 마포와 선유봉, 양화진 잠두봉(절두산)을 아우르는 지역을 일렀는데 서강(西江)이라는 지명도 널리 쓰였다. 조선왕조실록에 실린 신도팔경도(新都八景圖)에 ‘서강조박’(西江漕泊)이 포함될 정도였다. 남호는 용산강의 다른 이름이다. 여의도와 밤섬을 품고 멀리 관악산과 청계산을 조망할 수 있는 동작진과 노량진 구간이다. 옛 한강은 산수화와 지도를 통해 상상할 도리밖에 없다. 그림이라고 가벼이 여겨선 안 된다. 사진 뺨치게 정밀한 진경(眞景) 산수화여서다. 실경(實景) 산수화라고도 한다. 물길이 뱀처럼 구불구불 굽이치는 곳에 퇴적물이 쌓여 형성된 하중도에서 금빛으로 반짝이는 모래와 바람에 나부끼는 수양버들, 갈대가 지천인 그런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또 개화기 이후 선교사들이 남긴 낡은 사진과 개발기의 각종 사진을 통해 20세기 이후 한강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강수욕을 즐기던 백사장, 나룻배와 나루터, 얼음 캐는 채빙(採?)과 스케이트 타는 사람들의 모습이 정겹다. 이 같은 한강의 풍광이 지금도 남아 있다면 청계천이나 광화문 광장에 인파가 붐비겠는가. 중국이나 일본 사신들에게 한강 유람은 필수 코스였다. 대개 동호변 제천정에서 시작해 저자도 일대의 풍경을 감상하고 서호쪽 양화진으로 내려오면서 음주가무를 즐겼다. 제천정은 왕실 소유의 정자로 서울에서 경치 좋은 열 곳(京都十詠) 중 한 곳으로 꼽혔다. 달 구경의 으뜸 명소였다. 사신들은 다녀간 흔적을 글이나 그림으로 남겼다. 한강승경 그림을 요청해 선물로 받아 가기도 했다. 한강은 조선시대 시인 묵객들의 문화공간이자 교류의 장이었다. 18세기 진경 산수화의 대표화가 겸재 정선(1676~1759)은 ‘경교명승첩’과 ‘양천팔경첩’에 한강 풍광 수십 점을 남겼다. 저자도는 잃어버린 섬이다. 닥나무가 많다고 해서 이 이름이 붙여졌으며 중랑천과 한강이 만나는 지점에 삼각주를 형성하고 있었다. 경관을 파악할 수 있는 그림이나 사진이 전해지지 않는 것이 아쉽다. 저자도 서북단의 독서당을 그린 ‘독서당계회도’와 저자도 남단의 압구정을 그린 ‘압구정도’, 저자도 북단의 살곶이다리를 그린 ‘진헌마정색도’를 통해 윤곽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다행스럽게도 1922년에 인쇄된 실측지도 ‘경성도’에 등고선과 초지 및 모래벌판이 표시돼 있다. 시인들은 저자도를 한강 유람의 백미로 여겼다. “저자도 작은 섬이 완연히 물 가운데 물굽이 언덕을 두르고 있으니 흰 모래 갈대 숲 그 경치가 매우 좋다”(15세기 정인지가 살곶이다리 인근 낙천정에서 내려다본 저자도의 풍경), “봄꽃이 만발하여 온 언덕과 산을 뒤엎었네”(15세기 강희맹의 저자도도(楮子島圖)의 발문), “봉은사는 저자도에서 서쪽으로 1리쯤에 있다”(16세기 심수경이 독서당에 머물던 중 봉은사를 다녀오면서 남긴 글)는 글들이 남아 있다. 조선 개국 초 저자도는 왕들의 휴식처였다. 태종이 상왕이자 형님인 정종과 낙천정에서 술잔을 나눴고, 세종이 대마도 정벌을 떠나는 이종무를 격려하고 환송한 장소였다. 고종 등 왕이 집전하는 기우제 장소 중 한 곳 이었다. 왕실 재산으로 조선의 마지막 부마(철종의 사위) 박영효 소유였다. 동서 2000m, 남북 885m 길이에 넓이가 118만㎡에 이르는 모래벌판이었다. ‘신선이 노닐던’ 선유도는 섬이 아니라 산이었다. 선유봉은 지금의 마포구 합정동 절두산(잠두봉)을 마주 보는 높이 40m의 작은 봉우리였다. 두 산은 나란히 서 있었다. 선유봉은 홍수가 나면 봉우리만 물 위에 떠 있었다. ‘예조낭관계획도’ 등 잠두봉을 그린 16세기 후반의 실경 산수화 10여 점이 빼어난 경관을 보여 준다. 정선은 ‘선유봉’ ‘양화환도’ ‘소악후월’ ‘금성평사’ 등 4점의 그림을 통해 선유봉을 묘사했다. T S 엘리엇은 “역사란 언제나 동떨어진 원인에서 기묘한 결과를 가져온다”고 설파했다. 옛 선비들은 한강을 호수로 미화해 풍류를 즐겼으나 어느덧 세월이 흘러 한강은 사실상 인공호수로 변했다. 역사의 아이러니라 하지 않을 수 없다. joo@seoul.co.kr
  • 서울 중심 왕십리뉴타운 2구역, 단지 내 상가 관심 주목

    서울 중심 왕십리뉴타운 2구역, 단지 내 상가 관심 주목

    부동산경기 침체 속 상가들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테마형 상가 등이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반면 배후세대가 풍부한 초대형 단지 내 상가의 인기는 상한가를 달리고 있는 것이다. 실제 LH공사가 지난 8월, 7개 단지 내 상가 36개 점포를 분양한 결과 최초입찰에서 100%의 낙찰을 기록하는 등 인기를 모았다. 판교에서 최근 분양한 단지 내 스트리트형 상가도 관심을 끌었다. 이런 가운데 왕십리뉴타운2구역 단지 내 대형 스트리트 상가가 청약을 시작해 주목을 받고 있다. 왕십리뉴타운의 배후수요는 약 7천 세대로 청계천 완공, 분당선 연장, 왕십리 민자역사 등의 주변의 잇따른 개발로 기대를 모아온 곳이다. 왕십리뉴타운 2구역 단지 내 상가는 서울시 성동구 상왕십리동 12-37번지 일대에 들어서며, 전체 연면적 25,506.98㎡ 1개 동 1~2층 총 208개 점포로 구성되어 있는 스트리트형 단지내 상가 다. 배후수요로는 고정수요 약 7천여 세대를 기본으로, 하루 유동인구 10만 명을 확보하고 있다. 특히 문화관광특구 청계천 바로 앞에 있어, 쇼핑인구의 유입이 기대된다. 또 반경 1km내 13만 여 세대의 풍부한 수요를 거느릴 것으로 예상된다. 뛰어난 교통환경도 강점으로 꼽힌다. 왕십리뉴타운2구역 단지 내 상가는 1•2호선 신설동역, 2•6호선 신당역, 2호선 상왕십리역 등 트리플 역세권 프리미엄을 누릴 수 있는 입지다. 서울 및 수도권의 마지막 황금노선인 분당선과 인접해 있어 강남접근성도 탁월하다. 여기에 GS건설•현대산업개발•대림산업•삼성물산이 공동 시공하여, 고품격 브랜드 상가라는 이미지까지 갖추고 있다. 인근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는 “왕십리뉴타운2구역 단지내 상가의 투자가치는 매우 밝은 편”이라면서 “외부 유동인구까지 흡수할 수 있는 스트리트형 단지내상가로 풍부한 유동인구와 배후수요 확보에 따른 투자가치가 부각되고 있다”고 전했다. 분양홍보관은 왕십리뉴타운2구역 현장에 위치하고 있으며 입주는 2014년 2월이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서울 플러스]

    2일 중장년 일자리 박람회 마포구(구청장 박홍섭) 2일 오후 1시부터 구청 1층 로비에서 ‘50플러스 중장년 일자리 박람회’를 연다. 중소기업중앙회와 함께 하는 이번 행사는 장년 인력 채용 계획이 있는 44개 우수 중소기업, 보육시설, 노인복지시설 등이 참여할 예정이다. 일자리를 알선해준 뒤 채용기간 동안 일정액의 인건비를 지원해주는 ‘장년인턴제’ 방식이다. 일자리진흥과 3153-8672. 지적재조사사업 추진 중랑구(구청장 문병권) 1910년 일제 이후 처음으로 지역 전 구역에 대한 지적재조사사업이 추진된다. 지난 5월 지적재조사TF팀이 구성된데 이어 지적불부합지 7개지역 943필지 가운데 상봉동 일대가 우선사업지로 지정된데 따라 15일 주민설명회가 상봉1동주민센터에서 열린다. 부동산정보과 2094-1496. 5일 목동 로데오 문화축제 양천구(구청장권한대행 전귀권) 오는 5일 5호선 목동역 부근 로데오거리에서 ‘2013 목동로데오 패션거리 문화축제’를 연다. 연중 할인이 진행되는 목동로데오지만 축제일인 5일은 할인에 할인을 더해주는 의류특가판매와 사물놀이단의 흥겨운 풍물놀이, 비보이 등의 공연이 펼쳐진다. 또 행운권 추첨을 통해 김치냉장고 및 TV 등 푸짐한 경품도 나눠준다. 일자리경제과 2620-4808. 의학 명사 초청 특강 개최 강서구(구청장 노현송) 동의보감 발간 400주년을 맞이해 구민회관에서 ‘의학 명사 초청 특강’을 개최한다. 첫 강의는 2일 오전 10시 자생한방병원 신준식 이사장이 강사로 나서 ‘1일 2회 3분 척추건강법’ 등을 이야기한다. 8일 오후 7시30분에는 서울경희한의원 신준식이사장이, 10일 오후 7시 30분에는 강남대동한의원 박희수 원장이 강연을 한다. 2600-6455. 9일 청계천서 한글 전시회 중구(구청장 최창식) 오는 9일 567돌 한글날을 맞아 오는 7일부터 11일까지 중구문화원 내 예문갤러리와 청계천 한화그룹 본사 사옥 앞 광장에서 한글전시회 ‘ART와 사랑나누기’ 행사를 연다. 2013 청계천 예술제 두 번째 기획전으로 ‘한글나라 상상마당’, ‘한글 멋짓전’ 등 한글의 다양한 볼거리를 전시한다. 775-3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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