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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 집회 등 세월호 1주년 서울 곳곳 집회 충돌…유민아빠 연행

    광화문 집회 등 세월호 1주년 서울 곳곳 집회 충돌…유민아빠 연행

    ’광화문 집회’ ‘세월호 1주년 서울 곳곳 집회’ 광화문 집회에서 집회 참가자들이 경찰과 충돌하는 등 세월호 1주년 서울 곳곳 집회가 열렸다. 이 과정에서 세월호 유가족 등 21명이 연행됐다. ’세월호 1주년’ 이후 첫 주말인 18일 오후 서울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세월호참사 범국민대회’ 참가자들이 광화문 누각 쪽으로 이동하려다 이를 막는 경찰과 충돌했다. 경찰은 이날 차벽트럭 18대를 비롯해 차량 470여대와 안전펜스 등을 동원해 경복궁 앞, 광화문 북측 광장, 세종대왕 앞, 세종로 사거리, 파이낸셜빌딩 등에 6겹으로 저지선을 쳤다. 또 차량과 경력을 동원해 청계광장에서 광교 넘어서까지 청계천 북쪽을 길게 막아섰다. 이에 따라 이날 오후 4시 30분쯤 서울광장에서 범국민대회를 마친 유가족과 시민 등 참가자 1만여명(경찰 추산)은 광화문 광장으로 바로 가지 못하고 청계천변을 따라 걸어간 뒤 낙원상가 방면으로 좌회전해 안국역에서 광화문 쪽으로 이동을 시도했다. 그러나 종로경찰서 앞 차로도 경찰에 막히자 집회 참가자들은 흩어져 지하철 등을 타고 광화문 광장 쪽으로 이동했다. 오후 6시 20분쯤 광화문 광장에 모인 집회 참가자 6000여명은 세종대왕상 인근 경찰 저지선을 뚫는 과정에서 경찰과 몸싸움을 벌였다. 참가자들이 세종문화회관 인도 쪽을 통해 광화문 광장 북쪽으로 이동하자 경찰은 캡사이신을 분사하고 물대포를 쏘며 이를 저지했다. 광화문 북측 광장에 모인 시위대는 경찰 버스를 흔들거나 넘어뜨리려고 시도하고 차량에 스프레이로 낙서하기도 했다. 일부는 경찰 차량에 올라가 깃발을 흔들기도 했다. 앞서 경찰은 이날 오후 3∼5시 광화문 누각 앞 도로를 점거한 유가족과 시민 등 11명, 경찰 버스 위에서 시위하던 ‘유민 아빠’ 김영오씨 등 5명, 북측 광장에서 도로를 점거한 시민·유가족 등 5명을 합쳐 모두 21명을 연행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광화문 집회 등 세월호 1주년 집회 충돌…유가족 등 21명 연행

    광화문 집회 등 세월호 1주년 집회 충돌…유가족 등 21명 연행

    ’광화문 집회’ 광화문 집회에서 집회 참가자들이 경찰과 충돌, 세월호 유가족 등 21명이 연행됐다. ’세월호 1주년’ 이후 첫 주말인 18일 오후 서울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세월호참사 범국민대회’ 참가자들이 광화문 누각 쪽으로 이동하려다 이를 막는 경찰과 충돌했다. 경찰은 이날 차벽트럭 18대를 비롯해 차량 470여대와 안전펜스 등을 동원해 경복궁 앞, 광화문 북측 광장, 세종대왕 앞, 세종로 사거리, 파이낸셜빌딩 등에 6겹으로 저지선을 쳤다. 또 차량과 경력을 동원해 청계광장에서 광교 넘어서까지 청계천 북쪽을 길게 막아섰다. 이에 따라 이날 오후 4시 30분쯤 서울광장에서 범국민대회를 마친 유가족과 시민 등 참가자 1만여명(경찰 추산)은 광화문 광장으로 바로 가지 못하고 청계천변을 따라 걸어간 뒤 낙원상가 방면으로 좌회전해 안국역에서 광화문 쪽으로 이동을 시도했다. 그러나 종로경찰서 앞 차로도 경찰에 막히자 집회 참가자들은 흩어져 지하철 등을 타고 광화문 광장 쪽으로 이동했다. 오후 6시 20분쯤 광화문 광장에 모인 집회 참가자 6000여명은 세종대왕상 인근 경찰 저지선을 뚫는 과정에서 경찰과 몸싸움을 벌였다. 참가자들이 세종문화회관 인도 쪽을 통해 광화문 광장 북쪽으로 이동하자 경찰은 캡사이신을 분사하고 물대포를 쏘며 이를 저지했다. 광화문 북측 광장에 모인 시위대는 경찰 버스를 흔들거나 넘어뜨리려고 시도하고 차량에 스프레이로 낙서하기도 했다. 일부는 경찰 차량에 올라가 깃발을 흔들기도 했다. 앞서 경찰은 이날 오후 3∼5시 광화문 누각 앞 도로를 점거한 유가족과 시민 등 11명, 경찰 버스 위에서 시위하던 ‘유민 아빠’ 김영호씨 등 5명, 북측 광장에서 도로를 점거한 시민·유가족 등 5명을 합쳐 모두 21명을 연행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광화문 집회 등 세월호 1주년 서울 곳곳 집회 충돌…유가족 등 21명 연행

    광화문 집회 등 세월호 1주년 서울 곳곳 집회 충돌…유가족 등 21명 연행

    ’광화문 집회’ ‘세월호 1주년 서울 곳곳 집회’ 광화문 집회에서 집회 참가자들이 경찰과 충돌하는 등 세월호 1주년 서울 곳곳 집회가 열렸다. 이 과정에서 세월호 유가족 등 21명이 연행됐다. ’세월호 1주년’ 이후 첫 주말인 18일 오후 서울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세월호참사 범국민대회’ 참가자들이 광화문 누각 쪽으로 이동하려다 이를 막는 경찰과 충돌했다. 경찰은 이날 차벽트럭 18대를 비롯해 차량 470여대와 안전펜스 등을 동원해 경복궁 앞, 광화문 북측 광장, 세종대왕 앞, 세종로 사거리, 파이낸셜빌딩 등에 6겹으로 저지선을 쳤다. 또 차량과 경력을 동원해 청계광장에서 광교 넘어서까지 청계천 북쪽을 길게 막아섰다. 이에 따라 이날 오후 4시 30분쯤 서울광장에서 범국민대회를 마친 유가족과 시민 등 참가자 1만여명(경찰 추산)은 광화문 광장으로 바로 가지 못하고 청계천변을 따라 걸어간 뒤 낙원상가 방면으로 좌회전해 안국역에서 광화문 쪽으로 이동을 시도했다. 그러나 종로경찰서 앞 차로도 경찰에 막히자 집회 참가자들은 흩어져 지하철 등을 타고 광화문 광장 쪽으로 이동했다. 오후 6시 20분쯤 광화문 광장에 모인 집회 참가자 6000여명은 세종대왕상 인근 경찰 저지선을 뚫는 과정에서 경찰과 몸싸움을 벌였다. 참가자들이 세종문화회관 인도 쪽을 통해 광화문 광장 북쪽으로 이동하자 경찰은 캡사이신을 분사하고 물대포를 쏘며 이를 저지했다. 광화문 북측 광장에 모인 시위대는 경찰 버스를 흔들거나 넘어뜨리려고 시도하고 차량에 스프레이로 낙서하기도 했다. 일부는 경찰 차량에 올라가 깃발을 흔들기도 했다. 앞서 경찰은 이날 오후 3∼5시 광화문 누각 앞 도로를 점거한 유가족과 시민 등 11명, 경찰 버스 위에서 시위하던 ‘유민 아빠’ 김영오씨 등 5명, 북측 광장에서 도로를 점거한 시민·유가족 등 5명을 합쳐 모두 21명을 연행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선체 인양” vs 경찰 차벽… 또 부딪친 세월호 광장

    “선체 인양” vs 경찰 차벽… 또 부딪친 세월호 광장

    세월호 참사 1주년인 16일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추모제에 참석한 5만여명(경찰 추산 1만명)의 시민들이 행사가 끝난 오후 9시부터 세종대로를 가득 메운 채 행진을 벌이며 밤늦게까지 서울시내 곳곳에서 경찰과 격렬하게 충돌했다. 경찰이 광화문 4거리에 경찰버스로 차벽을 세우고 50여m 앞인 청계광장 앞 16차선 도로에 높은 장벽을 세워 행진을 막자 일부 유가족들과 주최 측인 4·16국민연대, 시민들은 청계천으로 우회해 삼일교 등을 거쳐 광화문광장 쪽으로 접근했다. 일부 유가족과 시민들은 경찰버스 위로 올라가 ‘세월호 즉각 인양’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 폐기’ 등을 외쳤다. 경찰은 두 차례 이상 “불법집회를 즉각 해산하라”는 경고방송을 내보낸 뒤 캡사이신 최루액을 뿌리며 시민들을 제지했다.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과 가수 김장훈 등은 “무엇이 두렵기에 추모의 발걸음을 막느냐”며 강하게 항의하기도 했다. 앞서 오후 7시부터 서울광장에서 열린 추모제 ‘4·16 약속의 밤’에 참석한 시민·학생들은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고, 정부 측에 세월호 선체 인양과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 폐기를 촉구했다. 행사에는 안산 정부합동분향소에서 출발한 세월호 유가족들과 낮부터 각지에서 집회와 문화제를 열었던 시민단체 회원과 대학생 등이 참석했다.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한 손에 엄마를 붙들고, 다른 손에 국화꽃을 든 어린이들도 눈에 띄였다. 추모제에 참석한 취업준비생 김지원(여·24)씨는 “다시는 세월호 참사가 되풀이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아버지와 동생 등 가족과 함께 참석했다”면서 “하루빨리 세월호를 인양하고 참사의 원인이 밝혀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남 장성에서 딸과 함께 참석한 윤두병(70·농업)씨는 “어른으로서 사람답게 사는 나라를 만들지 못한 것이 죄스럽다”면서 “있는 그대로 진실을 밝히면 되는 것뿐인데 그게 안 되고 있다”며 고개를 저었다. 전명선 4·16가족협의회 위원장은 “진상규명을 제대로 해서 안전한 사회를 만들자는 것과 온전하게 세월호를 인양해 실종자를 끝까지 찾아주겠다는 대답을 기다렸지만 끝내 답변을 듣지 못했다”면서 “대통령은 우리 가족들을 피해 팽목항에 잠시 머물렀다 대국민 담화문 발표만 하고 해외로 떠났다”고 비판했다. 분향소가 설치된 광화문 광장에는 오후부터 분향 행렬이 이어졌다. 김영인(32)씨는 “오늘 1주년 추모제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일부러 과천에서 광화문까지 분향하러 왔다”고 말했다. 앞서 서울 도심 곳곳에서는 대학생들과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행진과 퍼포먼스, 집회가 잇따랐다. 15개 대학 총학생회·단과대학생회 등으로 구성된 ‘세월호 대학생 대표자 연석회의’ 소속 1000여명은 각각 경희대·이화여대·남영3로터리·마로니에공원 등에서 오후 4시 16분 출발해 청계광장까지 행진한 뒤 추모집회를 열었다. 이화여대에서 출발한 서울 서부지역 대학생들은 단원고 2학년 1∼10반을 나눠 맡아 세월호 희생자·실종자 304명의 기억을 담은 피켓을 들고 행진했다. 서울역 광장에서는 오후 4시 16분 민주노총의 율동 퍼포먼스가 진행됐고,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는 오후 5시 추모 연극제가 열렸다.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세월호 추모제, 참가자 계란 투척에 경찰 최루액까지 ‘아찔한 현장’

    세월호 추모제, 참가자 계란 투척에 경찰 최루액까지 ‘아찔한 현장’

    세월호 추모제, 참가자 계란 투척에 경찰 최루액까지 ‘아찔한 현장’ 세월호 추모제, 광화문 세월호 참사 1주기인 지난 16일 서울 시청광장에서 세월호 추모제가 열렸다. 추모객들은 광화문 광장 방향으로 행진하려다 이를 막는 경찰과 곳곳에서 충돌했다. 경찰은 경찰버스 50여대를 동원해 동아일보 사옥∼동아면세점, 세종로사거리 누각∼새문안교회, 안국동사거리, 공평사거리, 동십자사거리, 경복궁역사거리, 종로1가 등지에 차벽을 설치했다. 경찰은 차벽을 파손하려 하거나 경찰관에게 격렬히 저항한 집회 참가자 10명을 연행했다. 기동대 소속 경찰관 한 명도 갑자기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되기도 했다. 집회 주최측 추산 5만명(경찰 추산 9000명)의 시민들은 이날 오후 9시 15분쯤 추모제가 끝나자 국화꽃을 들고 세월호 유가족과 함께 ‘세월호를 인양하라’, ’시행령을 폐기하라’, ‘박근혜는 물러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광화문 광장으로 행진을 시작했다. 차벽에 막힌 추모제 참가자들은 차벽을 밀거나 들어 올려 넘어뜨리려고 시도하다 일부가 청계천 우회로로 진입했으며, 9시 50분쯤에는 광교와 장통교, 삼일교 등지에서 경찰에게 계란 등을 던지며 격렬하게 대치했다. 경찰은 캡사이신 최루액을 뿌리며 대응했다. 이어 수표교를 통해 종로로 진입한 시위대 6000여명(경찰 추산)은 오후 10시 20분쯤 종로2가 사거리를 점거하고 광화문 방면으로 이동하다 YMCA 앞에서 차벽과 병력 등으로 막아선 경찰과 맞서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한편, 광화문 광장 분향소 주변에 있던 유가족 50여명은 오후 10시 40분쯤부터 광화문 누각 앞에서 밤샘농성을 시작했다. 17일 오전 1시쯤 소강상태가 됐지만 여전히 900여명의 시민들이 광화문 광장 진입을 시도하다 경찰의 저지를 받았다. 연행자 중에 세월호 참사 유족은 없다고 경찰은 밝혔다. 앞서 16일 오후 7시 서울광장에서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과 관련 시민단체, 일반 시민들이 참가한 가운데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대규모 추모제가 열렸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세월호 추모제, 참가자 계란 투척에 경찰 최루액까지 ‘아찔’

    세월호 추모제, 참가자 계란 투척에 경찰 최루액까지 ‘아찔’

    세월호 추모제, 참가자 계란 투척에 경찰 최루액까지 ‘아찔’ 세월호 추모제, 광화문 세월호 참사 1주기인 지난 16일 서울 시청광장에서 세월호 추모제가 열렸다. 추모객들은 광화문 광장 방향으로 행진하려다 이를 막는 경찰과 곳곳에서 충돌했다. 경찰은 경찰버스 50여대를 동원해 동아일보 사옥∼동아면세점, 세종로사거리 누각∼새문안교회, 안국동사거리, 공평사거리, 동십자사거리, 경복궁역사거리, 종로1가 등지에 차벽을 설치했다. 경찰은 차벽을 파손하려 하거나 경찰관에게 격렬히 저항한 집회 참가자 10명을 연행했다. 기동대 소속 경찰관 한 명도 갑자기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되기도 했다. 집회 주최측 추산 5만명(경찰 추산 9000명)의 시민들은 이날 오후 9시 15분쯤 추모제가 끝나자 국화꽃을 들고 세월호 유가족과 함께 ‘세월호를 인양하라’, ’시행령을 폐기하라’, ‘박근혜는 물러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광화문 광장으로 행진을 시작했다. 차벽에 막힌 추모제 참가자들은 차벽을 밀거나 들어 올려 넘어뜨리려고 시도하다 일부가 청계천 우회로로 진입했으며, 9시 50분쯤에는 광교와 장통교, 삼일교 등지에서 경찰에게 계란 등을 던지며 격렬하게 대치했다. 경찰은 캡사이신 최루액을 뿌리며 대응했다. 이어 수표교를 통해 종로로 진입한 시위대 6000여명(경찰 추산)은 오후 10시 20분쯤 종로2가 사거리를 점거하고 광화문 방면으로 이동하다 YMCA 앞에서 차벽과 병력 등으로 막아선 경찰과 맞서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한편, 광화문 광장 분향소 주변에 있던 유가족 50여명은 오후 10시 40분쯤부터 광화문 누각 앞에서 밤샘농성을 시작했다. 17일 오전 1시쯤 소강상태가 됐지만 여전히 900여명의 시민들이 광화문 광장 진입을 시도하다 경찰의 저지를 받았다. 연행자 중에 세월호 참사 유족은 없다고 경찰은 밝혔다. 앞서 16일 오후 7시 서울광장에서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과 관련 시민단체, 일반 시민들이 참가한 가운데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대규모 추모제가 열렸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세월호 1주기 광화문, 유가족·집회 참가자들 경찰과 충돌

    세월호 1주기 광화문, 유가족·집회 참가자들 경찰과 충돌

    세월호 1주기 광화문, 유가족·집회 참가자들 경찰과 충돌 16일 서울 시청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1주기 추모제 참석자들이 광화문 광장으로 이동하려다 이를 막는 경찰과 충돌했다. 집회를 마친 유가족·참가자 주최측 추산 5만명(경찰 추산 9000명)은 오후 9시 15분쯤 세월호 유가족을 앞세우고 ‘세월호를 인양하라’, ‘시행령을 폐기하라’, ‘박근혜는 물러나라’ 등 구호를 외치며 시청 앞에서 동아일보 본사 앞까지 행진했다. 경찰은 광화문사거리에서 종로-충정로 방면 차로만 남기고 동아일보 앞과 교보생명 앞에 경찰 버스로 차벽을 쳐 이들을 막고, 2차례 해산명령을 내렸다. 이에 집회 참가자들은 차벽을 밀거나 들어올려 넘어뜨리려고 시도하다 청계천 우회로로 진입했으며, 9시 50분쯤 캡사이신 최루액을 뿌리며 행진을 막는 경찰과 장통교·삼일교 앞에서 격렬하게 대치했다. 광화문 광장 쪽에 남아있던 세월호참사 국민대책위 인파들도 교보생명 앞 차벽 사이를 뚫고 길을 만들려다 경찰과 마찰을 빚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세월호 1주기 광화문 집회, 경찰 충돌 “격렬한 몸싸움, 최루액 살포”

    세월호 1주기 광화문 집회, 경찰 충돌 “격렬한 몸싸움, 최루액 살포”

    세월호 1주기 광화문 집회 세월호 1주기 광화문 집회, 경찰 충돌 “격렬한 몸싸움, 최루액 살포 16일 서울 시청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1주기 추모제 참석자들이 광화문 광장으로 이동하려다 이를 막는 경찰과 곳곳에서 충돌했다. 집회를 마친 유가족·참가자 주최측 추산 5만명(경찰 추산 9000명)은 오후 9시15분께 세월호 유가족을 앞세우고 ‘세월호를 인양하라’, ‘시행령을 폐기하라’, ‘박근혜는 물러나라’ 등 구호를 외치며 시청 앞에서 동아일보 본사 앞까지 행진했다. 경찰은 광화문사거리 동아일보 앞과 교보생명 앞에 경찰 버스로 차벽을 쳐 이들을 막았다. 이에 집회 참가자들은 차벽을 밀거나 들어올려 넘어뜨리려고 시도하다 일부가 청계천 우회로로 진입했으며, 9시 50분쯤 캡사이신 최루액을 뿌리며 행진을 막는 경찰에게 계란 등을 던지며 광교·장통교·삼일교 앞에서 격렬하게 대치했다. 이어 수표교를 통해 종로로 진입한 이들은 오후 10시 20분쯤 종로2가 사거리를 점거하고 광화문 방면으로 이동하다 YMCA 앞에서 차벽과 병력 등으로 막아선 경찰과 맞서 몸싸움을 벌였다. 일부 시위대는 경찰버스 위로 올라가 ‘세월호를 인양하라, 진실을 인양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 과정에서 일부 경찰이 경찰버스로 올라서려다 시위대에 제지당해 떨어지기도 했다. 경찰은 이들에게 3차례 해산명령을 내리고 현행범으로 체포하겠다는 경고 방송을 한 뒤 11시 2분쯤 캡사이신 최루액을 수차례 살포하는 등 강경하게 대응했고 참가자 3명을 종로경찰서로 연행했다. 한편 유가족 50여명을 포함한 시위대 100여명은 오후 11시 10분쯤 광화문 앞에서 철야농성을 시작했다. 경찰은 이날 집회에 차벽트럭 10대 등 모두 40∼50대가량의 차량을 동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세월호 추모제, 경찰 vs 시민 대치…최루액 살포

    세월호 추모제, 경찰 vs 시민 대치…최루액 살포

    세월호 참사 1주년인 16일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추모제에 참석한 5만여명(경찰 추산 1만명)의 시민들이 행사가 끝난 오후 9시부터 세종대로를 가득 메운 채 행진을 벌이며 밤늦게까지 서울시내 곳곳에서 경찰과 격렬하게 충돌했다. 경찰이 광화문 4거리에 경찰버스로 차벽을 세우고 50여m 앞인 청계광장 앞 16차선 도로에 높은 장벽을 세워 행진을 막자 일부 유가족들과 주최 측인 4·16국민연대, 시민들은 청계천으로 우회해 삼일교 등을 거쳐 광화문광장 쪽으로 접근했다. 일부 유가족과 시민들은 경찰버스 위로 올라가 ‘세월호 즉각 인양’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 폐기’ 등을 외쳤다. 경찰은 두 차례 이상 “불법집회를 즉각 해산하라”는 경고방송을 내보낸 뒤 캡사이신 최루액을 뿌리며 시민들을 제지했다.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과 가수 김장훈 등은 “무엇이 두렵기에 추모의 발걸음을 막느냐”며 강하게 항의하기도 했다. 앞서 오후 7시부터 서울광장에서 열린 추모제 ‘4·16 약속의 밤’에 참석한 시민·학생들은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고, 정부 측에 세월호 선체 인양과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 폐기를 촉구했다. 행사에는 안산 정부합동분향소에서 출발한 세월호 유가족들과 낮부터 각지에서 집회와 문화제를 열었던 시민단체 회원과 대학생 등이 참석했다.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한 손에 엄마를 붙들고, 다른 손에 국화꽃을 든 어린이들도 눈에 띄였다. 추모제에 참석한 취업준비생 김지원(여·24)씨는 “다시는 세월호 참사가 되풀이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아버지와 동생 등 가족과 함께 참석했다”면서 “하루빨리 세월호를 인양하고 참사의 원인이 밝혀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남 장성에서 딸과 함께 참석한 윤두병(70·농업)씨는 “어른으로서 사람답게 사는 나라를 만들지 못한 것이 죄스럽다”면서 “있는 그대로 진실을 밝히면 되는 것뿐인데 그게 안 되고 있다”며 고개를 저었다. 전명선 4·16가족협의회 위원장은 “진상규명을 제대로 해서 안전한 사회를 만들자는 것과 온전하게 세월호를 인양해 실종자를 끝까지 찾아주겠다는 대답을 기다렸지만 끝내 답변을 듣지 못했다”면서 “대통령은 우리 가족들을 피해 팽목항에 잠시 머물렀다 대국민 담화문 발표만 하고 해외로 떠났다”고 비판했다. 분향소가 설치된 광화문 광장에는 오후부터 분향 행렬이 이어졌다. 김영인(32)씨는 “오늘 1주년 추모제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일부러 과천에서 광화문까지 분향하러 왔다”고 말했다. 앞서 서울 도심 곳곳에서는 대학생들과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행진과 퍼포먼스, 집회가 잇따랐다. 15개 대학 총학생회·단과대학생회 등으로 구성된 ‘세월호 대학생 대표자 연석회의’ 소속 1000여명은 각각 경희대·이화여대·남영3로터리·마로니에공원 등에서 오후 4시 16분 출발해 청계광장까지 행진한 뒤 추모집회를 열었다. 이화여대에서 출발한 서울 서부지역 대학생들은 단원고 2학년 1∼10반을 나눠 맡아 세월호 희생자·실종자 304명의 기억을 담은 피켓을 들고 행진했다. 서울역 광장에서는 오후 4시 16분 민주노총의 율동 퍼포먼스가 진행됐고,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는 오후 5시 추모 연극제가 열렸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세월호 추모제, 경찰과의 충돌 장면 보니 ‘아찔’

    세월호 추모제, 경찰과의 충돌 장면 보니 ‘아찔’

    세월호 추모제, 경찰과의 충돌 장면 보니 ‘아찔’ 세월호 추모제, 광화문 세월호 참사 1주기인 지난 16일 서울 시청광장에서 세월호 추모제가 열렸다. 추모객들은 광화문 광장 방향으로 행진하려다 이를 막는 경찰과 곳곳에서 충돌했다. 경찰은 경찰버스 50여대를 동원해 동아일보 사옥∼동아면세점, 세종로사거리 누각∼새문안교회, 안국동사거리, 공평사거리, 동십자사거리, 경복궁역사거리, 종로1가 등지에 차벽을 설치했다. 경찰은 차벽을 파손하려 하거나 경찰관에게 격렬히 저항한 집회 참가자 10명을 연행했다. 기동대 소속 경찰관 한 명도 갑자기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되기도 했다. 집회 주최측 추산 5만명(경찰 추산 9000명)의 시민들은 이날 오후 9시 15분쯤 추모제가 끝나자 국화꽃을 들고 세월호 유가족과 함께 ‘세월호를 인양하라’, ’시행령을 폐기하라’, ‘박근혜는 물러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광화문 광장으로 행진을 시작했다. 차벽에 막힌 추모제 참가자들은 차벽을 밀거나 들어 올려 넘어뜨리려고 시도하다 일부가 청계천 우회로로 진입했으며, 9시 50분쯤에는 광교와 장통교, 삼일교 등지에서 경찰에게 계란 등을 던지며 격렬하게 대치했다. 경찰은 캡사이신 최루액을 뿌리며 대응했다. 이어 수표교를 통해 종로로 진입한 시위대 6000여명(경찰 추산)은 오후 10시 20분쯤 종로2가 사거리를 점거하고 광화문 방면으로 이동하다 YMCA 앞에서 차벽과 병력 등으로 막아선 경찰과 맞서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한편, 광화문 광장 분향소 주변에 있던 유가족 50여명은 오후 10시 40분쯤부터 광화문 누각 앞에서 밤샘농성을 시작했다. 17일 오전 1시쯤 소강상태가 됐지만 여전히 900여명의 시민들이 광화문 광장 진입을 시도하다 경찰의 저지를 받았다. 연행자 중에 세월호 참사 유족은 없다고 경찰은 밝혔다. 앞서 16일 오후 7시 서울광장에서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과 관련 시민단체, 일반 시민들이 참가한 가운데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대규모 추모제가 열렸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세월호 추모제, 경찰 vs 시민 대치…최루액 살포

    세월호 추모제, 경찰 vs 시민 대치…최루액 살포

    ‘세월호 1주기 추모행사’ ’세월호 추모제’ 세월호 추모제에 참석한 시민과 경찰이 밤늦게 곳곳에서 충돌했다. 세월호 참사 1주년인 16일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추모제에 참석한 5만여명(경찰 추산 1만명)의 시민들이 행사가 끝난 오후 9시부터 세종대로를 가득 메운 채 행진을 벌이며 밤늦게까지 서울시내 곳곳에서 경찰과 격렬하게 충돌했다. 경찰이 광화문 4거리에 경찰버스로 차벽을 세우고 50여m 앞인 청계광장 앞 16차선 도로에 높은 장벽을 세워 행진을 막자 일부 유가족들과 주최 측인 4·16국민연대, 시민들은 청계천으로 우회해 삼일교 등을 거쳐 광화문광장 쪽으로 접근했다. 일부 유가족과 시민들은 경찰버스 위로 올라가 ‘세월호 즉각 인양’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 폐기’ 등을 외쳤다. 경찰은 두 차례 이상 “불법집회를 즉각 해산하라”는 경고방송을 내보낸 뒤 캡사이신 최루액을 뿌리며 시민들을 제지했다.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과 가수 김장훈 등은 “무엇이 두렵기에 추모의 발걸음을 막느냐”며 강하게 항의하기도 했다. 앞서 오후 7시부터 서울광장에서 열린 추모제 ‘4·16 약속의 밤’에 참석한 시민·학생들은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고, 정부 측에 세월호 선체 인양과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 폐기를 촉구했다. 행사에는 안산 정부합동분향소에서 출발한 세월호 유가족들과 낮부터 각지에서 집회와 문화제를 열었던 시민단체 회원과 대학생 등이 참석했다.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한 손에 엄마를 붙들고, 다른 손에 국화꽃을 든 어린이들도 눈에 띄였다. 추모제에 참석한 취업준비생 김지원(여·24)씨는 “다시는 세월호 참사가 되풀이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아버지와 동생 등 가족과 함께 참석했다”면서 “하루빨리 세월호를 인양하고 참사의 원인이 밝혀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남 장성에서 딸과 함께 참석한 윤두병(70·농업)씨는 “어른으로서 사람답게 사는 나라를 만들지 못한 것이 죄스럽다”면서 “있는 그대로 진실을 밝히면 되는 것뿐인데 그게 안 되고 있다”며 고개를 저었다. 전명선 4·16가족협의회 위원장은 “진상규명을 제대로 해서 안전한 사회를 만들자는 것과 온전하게 세월호를 인양해 실종자를 끝까지 찾아주겠다는 대답을 기다렸지만 끝내 답변을 듣지 못했다”면서 “대통령은 우리 가족들을 피해 팽목항에 잠시 머물렀다 대국민 담화문 발표만 하고 해외로 떠났다”고 비판했다. 분향소가 설치된 광화문 광장에는 오후부터 분향 행렬이 이어졌다. 김영인(32)씨는 “오늘 1주년 추모제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일부러 과천에서 광화문까지 분향하러 왔다”고 말했다. 앞서 서울 도심 곳곳에서는 대학생들과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행진과 퍼포먼스, 집회가 잇따랐다. 15개 대학 총학생회·단과대학생회 등으로 구성된 ‘세월호 대학생 대표자 연석회의’ 소속 1000여명은 각각 경희대·이화여대·남영3로터리·마로니에공원 등에서 오후 4시 16분 출발해 청계광장까지 행진한 뒤 추모집회를 열었다. 이화여대에서 출발한 서울 서부지역 대학생들은 단원고 2학년 1∼10반을 나눠 맡아 세월호 희생자·실종자 304명의 기억을 담은 피켓을 들고 행진했다. 서울역 광장에서는 오후 4시 16분 민주노총의 율동 퍼포먼스가 진행됐고,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는 오후 5시 추모 연극제가 열렸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세월호 추모제…경찰, 추모객들에 최루액 뿌리고 차벽으로 광화문 막아 ‘충돌’

    세월호 추모제…경찰, 추모객들에 최루액 뿌리고 차벽으로 광화문 막아 ‘충돌’

    세월호 추모제…경찰, 추모객들에 최루액 뿌리고 차벽으로 광화문 막아 ‘충돌’ 세월호 추모제, 광화문 세월호 참사 1주기인 16일 서울 시청광장에서 세월호 추모제가 열렸다. 추모객들은 광화문 광장 방향으로 행진하려다 이를 막는 경찰과 곳곳에서 충돌했다. 경찰은 경찰버스 50여대를 동원해 동아일보 사옥∼동아면세점, 세종로사거리 누각∼새문안교회, 안국동사거리, 공평사거리, 동십자사거리, 경복궁역사거리, 종로1가 등지에 차벽을 설치했다. 경찰은 차벽을 파손하려 하거나 경찰관에게 격렬히 저항한 집회 참가자 10명을 연행했다. 기동대 소속 경찰관 한 명도 갑자기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되기도 했다. 집회 주최측 추산 5만명(경찰 추산 9000명)의 시민들은 이날 오후 9시 15분쯤 추모제가 끝나자 국화꽃을 들고 세월호 유가족과 함께 ‘세월호를 인양하라’, ’시행령을 폐기하라’, ‘박근혜는 물러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광화문 광장으로 행진을 시작했다. 차벽에 막힌 추모제 참가자들은 차벽을 밀거나 들어 올려 넘어뜨리려고 시도하다 일부가 청계천 우회로로 진입했으며, 9시 50분쯤에는 광교와 장통교, 삼일교 등지에서 경찰에게 계란 등을 던지며 격렬하게 대치했다. 경찰은 캡사이신 최루액을 뿌리며 대응했다. 이어 수표교를 통해 종로로 진입한 시위대 6천여명(경찰 추산)은 오후 10시 20분쯤 종로2가 사거리를 점거하고 광화문 방면으로 이동하다 YMCA 앞에서 차벽과 병력 등으로 막아선 경찰과 맞서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한편, 광화문 광장 분향소 주변에 있던 유가족 50여명은 오후 10시 40분쯤부터 광화문 누각 앞에서 밤샘농성을 시작했다. 17일 오전 1시쯤 소강상태가 됐지만 여전히 900여명의 시민들이 광화문 광장 진입을 시도하다 경찰의 저지를 받았다. 연행자 중에 세월호 참사 유족은 없다고 경찰은 밝혔다. 앞서 16일 오후 7시 서울광장에서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과 관련 시민단체, 일반 시민들이 참가한 가운데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대규모 추모제가 열렸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예술이 된 섬…꿈을 짓다

    예술이 된 섬…꿈을 짓다

    제주시 구도심에 10년째 방치돼 있던 낡은 모텔 건물이 아라리오미술관 동문모텔Ⅱ로 환골탈태했다. 1975년 지어진 옛 대진모텔 건물은 2005년 폐업한 채 방치돼 있다 산뜻한 붉은색으로 새 단장하고 현대 미술 전문 전시공간으로 문을 열었다. 영화관과 상업건물, 모텔로 사용됐던 건물을 리모델링해 지난해 10월 문을 연 아라리오 뮤지엄 탑동시네마와 탑동바이크샵, 동문모텔 Ⅰ에 이은 아라리오의 네 번째 제주 미술관이다. 인근에 위치한 동문모텔 Ⅰ이 성인용 게임방과 모텔들 사이 골목 안에 들어선 것과 달리 대로변에 위치해 접근성이 좋은 동문모텔Ⅱ는 1층에 아트숍과 커피숍, 2~5층은 모두 전시공간으로 꾸며졌다. 창의적이고 실험성 높은 젊은 작가들을 위한 기획전시 중심으로 운용될 동문모텔Ⅱ에서는 개관기념전으로 ‘공명하는 삼각형’을 주제로 전시회를 열고 있다. 삼각형 자투리 땅에 지어진 건물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다는 의미의 전시에는 영상, 사진, 조각, 사운드아트 설치 작품이 각 층에 선보이고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으로 잘 알려진 작가 박경근(37)이 만든, 2010년 선보인 영상작품 ‘청계천 메들리’를 5채널 작품으로 확장하고 철골 구조물에 영사하는 ‘청계천 메들리 아시바’를 볼 수 있다. 청계천 뒷골목의 주물공장과 한국의 산업화 과정을 보여주는 10~20분 분량의 영상물들이 비닐 재질의 화면을 비춘다. “할아버지가 일제시대에 고철 장사를 해서 많은 돈을 벌었다”는 작가는 “디지털 세대인 내가 보는 청계천을 통해 할아버지부터 아버지 세대로 이어지는 한 가족의 역사를 보여 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정소영(36)은 실제 미술관 리모델링 공사현장에 놓였던 시멘트, 벽돌, 바닥재 등을 활용한 설치작품을 선보였다. ‘라이트 컬렉터’(Light Collector)는 벽돌 무늬가 새겨진 유리를 걸어 놓고 조명을 비추도록 설치한 것과 바닥에 검은 나무와 거울들을 빛이 부서지는 모양으로 설치한 작품이다. 작가는 “모텔이 미술관으로 용도가 바뀌면서 열려 있던 창문이 벽돌로 막히는 것을 보면서 차단된 공간에 과거의 빛을 담고 싶다는 생각으로 구상했다”며 “과거와 미래가 뒤바뀌면서 애잔함과 기대라는 상반된 감정이 교차했다”고 말했다. 국악기 전공자들로 이뤄진 3인조 연주그룹 잠비나이는 사운드 아트를 통해 공연장이 아닌 전시공간에 처음으로 예술적 영감을 펼쳤다. 믹스된 기존의 음악을 해체한 뒤 거문고와 해금, 전기기타에 망치와 공구를 결합해 진동하도록 설치했다. 미술관의 가장 위층인 5층에는 사진작가 이주영(44)이 동문모텔Ⅱ의 변신 과정을 담은 기록사진들을 전시하고 있다. ‘층위의 균형잡기’라는 제목으로 기존의 벽에 남아 있던 긁힘과 페인트 자국, 철거 작업 중의 가림막, 작업 인부들의 움직임 등을 작품으로 구성했다. 제주시 탑동로의 아라리오뮤지엄 탑동시네마와 탑동바이크샵도 이달부터 새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회화 거장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탑동시네마 5층 전시실에서는 한국 추상미술을 대표하는 윤명로 작가의 개인전 ‘정신의 흔적’이 열리고 있다. 1950년대 말부터 현재까지 50년의 화업을 통해 독창적인 추상회화를 개척한 작가가 1990년대 제작한 거대한 서사적 풍경화 ‘익명의 땅’을 비롯해 2015년 작품 ‘균열’‘얼레짓’ 등이 전시됐다. 탑동시네마의 뒤편 골목 안에 있는 탑동바이크샵에서는 가벼운 사진조각으로 일찍이 작가적 정체성을 각인시킨 권오상의 개인전이 열린다. ‘구심점들’이란 타이틀로 각 층마다 작가의 대표적인 시리즈를 선보인다. 1층은 르네상스와 바로크의 고전조각을 차용해 최근 완성한 거대한 인체조각을, 2층에서는 2005년부터 제작한 더 스컬프처 시리즈, 3층은 다양한 포즈를 취한 인물들과 사물들을 보여주는 작가의 대표적인 연작 ‘데오도란트 타입’ 으로 구성했다. 지하공간에는 작가의 작업세계를 깊이 있게 들여다볼 수 있는 아카이브도 마련했다. 모든 전시는 오는 9월 6일까지 계속된다. 제주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탑골공원 안 일제 비석 90년 만에 박물관 이전

    탑골공원 안 일제 비석 90년 만에 박물관 이전

    일제가 만든 서울 중학천 복청교 교명주(다리 이름을 새긴 기둥)가 90년 만에 탑골공원 밖으로 이관된다. 서울역사박물관은 1926년 일제가 만든 복청교 교명주를 이관해 박물관에서 전시할 계획이라고 5일 밝혔다. 복청교는 조선시대 태종 당시 삼청동에서 청계천으로 흐르는 중학천에 만들어진 ‘혜정교’를 일제가 개축하면서 새로 지은 이름이다. 높이 112㎝, 너비 25.9㎝인 교명주의 전면에는 한자로 ‘복청교’(福淸橋)라고 음각돼 있다. 교명주는 1986년 탑골공원 내에 산책로를 조성하기 위해 공사를 진행하다 원각사비 앞 지하 1m 지점에서 발견됐다. 박물관 측은 “일제 강점기에 개축된 다리의 교명주를 1919년 3·1 독립선언서 낭독 장소이자 항일운동의 본거지인 탑골공원 내에 놔두는 것은 부적합하다는 비판이 계속 제기돼 왔다”고 설명했다. 박물관은 교명주를 가져와 현재 사라진 중학천에 대한 실물 자료로서 서울의 물길에 대한 연구 자료로 활용할 계획이다. 또 7월 조선시대부터 복원 이후 현재까지 청계천의 역사적 가치 등을 살펴볼 수 있는 청계천상설전이 재개관하면 전시자료로 활용할 예정이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서울, 거리 공연 상설화 문화도시로

    노래하며 예술을 꿈꾸는 영화 ‘원스’의 주인공 버스커(거리의 악사)처럼 거리 예술가의 다양한 공연을 서울에서도 감상할 수 있게 된다. 서울시가 활력 넘치는 도시를 만들고 서울만의 관광자원으로 거리 무료 공연을 제공하기로 한 것이다. 시는 올해 시내 200곳을 ‘거리예술존’으로 선정, 운영한다고 1일 밝혔다. 또 노래와 악기연주, 마술, 마임, 국악 등 거리예술 공연을 선보일 ‘거리예술단’도 공개오디션으로 선발한다. 거리예술가에게는 문턱 낮은 공연 무대를, 시민들에게는 쉽고 편하게 예술을 접할 기회를 제공한다. 시는 이달 구의취수장에 문을 여는 ‘서울 거리예술창작센터’와 함께 거리예술존과 거리예술단을 운영해 거리예술을 서울의 대표 문화상품으로 키워나갈 계획이다. 우선 시는 상반기에 거리예술존 100곳을 선정하고 나머지 100곳은 하반기 지정하기로 했다. 서울광장을 비롯한 광장과 공원, 세종대로·청계천로·덕수궁길 같은 보행전용 거리, 망원·통인시장을 비롯한 전통 시장 등이 해당된다. 또 오는 10일까지 공연팀(개인 포함) 지원 신청을 받아 100개 팀을 선정해 거리예술단을 꾸린 뒤 다음달부터 공연을 시작한다. 각 팀은 1회 공연(60분 기준)에 15만원을 지원받으며 최대 연 12회 공연할 수 있다. 이창학 시 문화체육관광 본부장은 “거리예술존은 예술가들에겐 발표 무대, 시민들에겐 다채로운 음악 등을 감상할 수 있는 문화산업의 발판”이라면서 “거리예술존과 거리예술단을 통해 거리예술을 서울의 대표적 문화상품으로 키워 나가겠다”고 말했다.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 [4·29 재보선 D -30 관전포인트] “어차피 1년짜리… 누가 되든 제대로 일하겠나”

    [4·29 재보선 D -30 관전포인트] “어차피 1년짜리… 누가 되든 제대로 일하겠나”

    “어차피 1년짜리 의원 뽑는 것 아닌감요” 지난 27일 경기 성남시 상대원 재래시장, 반찬가게 주인 류모(57)씨는 퉁명스럽게 말을 내뱉으며 갓 만들어진 반찬들을 연신 담아냈다. 류씨는 “물가랑 인건비는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데 밥값, 반찬값은 도통 올릴 수가 없다. 우리 같은 영세상인은 신용카드 수수료 대는 것도 벅찬데 의원님들이 아는지 모르겠다”고 손사래를 쳤다. 그는 “지금 뽑아봤자 내년이면 또 선거하는데 무슨 일을 하겠나. 여당이 되든 야당이 되든 누가 되든 똑같다”고 했다. 옆에서 거들던 다른 상인들은 “성남은 호남 텃밭인데 신상진 새누리당 후보가 민심은 잘 다져놓은 것 같더라”고 덧붙였다. 옆 생선가게 주인 최승한(54)씨는 “집사람도 나도 무조건 민주당인데 이번은 고민”이라며 고무장갑을 벗었다. 최씨는 “노동자당이 국회 들어가서 한번 잘해보라고 지난번 총선 때 통진당을 찍었다. 그런데 그 당이 국회 들어가서 뭘 했는지 모르겠다”면서 “서민들은 불경기에 배 곯는데 종북 얘기 하느라 날 다 샜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우리한테는 먼 나라 놀음밖에 안 됐다”고 혀를 찼다. 최씨는 “새정치민주연합도 능력이 있어야 여당 된다”면서 “새누리당 후보는 그동안 지역을 누벼서 얼굴이라도 아는데 야당은 낙하산 공천해서 생판 모르는 사람을 찍으라고 하니 불안하다”고 말했다. 가게 안의 손님들은 “대통령이 김영란법 말고는 잘한 게 하나도 없더라. 부정부패부터 없애 버리라”고 한마디씩 해댔다. 통합진보당 해산으로 4·29 재보선을 치르게 된 성남 중원은 18대 지역구 의원이었던 신상진 새누리당 후보가 앞서나가는 가운데 새정치민주연합 정환석 지역위원장, 무소속으로 나선 김미희 전 의원이 추격전을 벌이는 형국이다. 호남 출신 인구가 많고 통진당의 핵심인 경기동부연합의 거점지역이지만, 주민들에게선 야당 후보에 대한 미련과 야권연대에 대한 불안감이 중첩돼 있었다. 2012년 19대 총선 때 김 전 의원에게 654표 차 석패했던 신 후보는 지역일꾼론, 정 후보는 여당심판론, 김 후보는 야권 대표후보론으로 민심에 호소하고 있다. 일명 ‘달나라’라고 불리는 은행동 일대는 청계천 판잣집 철거민들이 이주해 오면서 만들어진 달동네다. 언덕배기에 있는 자혜로 64번길 연립주택 골목길에서 만난 주민 황모(68)씨와 곽삼금(75)씨는 “야당은 아무리 찍어줘도 단합이 안돼 매번 진다”며 답답해했다. 전북 남원에서 상경한 후 35년째 살고 있다는 황씨는 “저번에 통진당을 찍어줬더니 당선되고 나서는 코빼기도 안 비치더라”면서 “당이 없어지고 나니 동네 교회에 찾아와서 억울하니 탄원서에 이름 적어달라고 하는데 괘씸해서 안 적었다. 아쉬울 때 닥치니 그제서야 뒤늦게 찾아오는 게 무슨 소용이야”라고 반문했다. 곽씨는 “이제는 새정치연합도 영남당 아닌가. 당 대표도 영남이고, 새누리는 호남 사람들에게는 자리 안 주고…”라고 했다. 황씨는 “당이 해산될 빌미를 만들어준 게 잘못이다”고도 했다. 젊은 층에서는 집권여당의 국정운영에 대한 불신도 흠씬 묻어났다. 단대 5거리역 근처의 대형마트에서 만난 주부 고윤영(35)씨는 “누가 되든 솔직히 관심 없다”며 못마땅한 기색부터 보였다. 그러면서 “박근혜 정부가 제대로 한 게 없으니 여당에 페널티를 줘야 하는데 야당은 후보를 잘 몰라서 고민”이라며 “이재명 성남시장이 무상 산후조리원을 지원한다는 것도 솔깃하긴 하나 포퓰리즘 같아 분간이 잘 안 된다”며 반신반의했다. 여성 판매사원인 장모(46)씨는 “신 후보가 의원 시절 구설에는 안 올랐던 것 같다. 의원 떨어지고 난 뒤에도 지역일꾼 노릇을 했다. 정 후보도 젊은 이미지로 문재인 당대표가 나서서 지원사격을 해주는 걸 보면 뭐가 있지 않겠나”라고 비교했다. 중원구청 근처에서 만난 40대 여성 택시기사는 “나는 민주당을 지지했어도 박근혜 대통령을 찍었다. 그런데 하는 게 영…”이라면서 “갈수록 정 후보의 추격전이 되살아나지 않겠나. 선거 막판에 야권후보가 사퇴하거나 해서 표가 결집 되면 판세가 흔들릴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성남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씨줄날줄] 동대문디자인 건물과 치성/정기홍 논설위원

    개장 직후부터 혹평과 찬사가 엇갈렸던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가 어느덧 1년을 맞았다. DDP는 ‘디자인 서울’을 내건 오세훈씨가 서울시장 재임 때 ‘건축물 없는 건축가’로 불리는 세계적 건축가인 자하 하디드에게 설계를 맡긴 건물이다. 무려 5000억원을 투입했다. ‘비정형 건축물’답게 품평은 극단적이었다. 외형이 우주선과 같아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다거나 랜드마크가 될 미래형 건물이란 논란을 거듭해 왔다. 유동인구가 50만명에 이를 정도로 관심을 받고, 패션의 중심지로 자리 잡고 있다니 다행스럽다. 논란이 궁금해 두 번을 찾았다. 세련된 바깥 모습은 인근의 투박한 건물들과 어울리지 않아 생뚱맞다. 건물의 안도 미로와 같아 많이 헷갈렸다. 곡면 알루미늄 4만 5000여장을 연결했다니 한두 번의 방문으로 그 속을 알 수 없지 싶다. 처음 방문할 땐 사전 연구와 가이드의 설명이 필요해 보였다. 다만 타원형 구조인 잠실종합운동장 옆에 지었다면 ‘따돌림 건물’ 논란이 커지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발길을 잡는 건 DDP가 아닌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이다. DDP 공사 과정에서 일제가 성곽을 없애면서 묻혔던 유물과 유적들을 발견해 복원해 놓은 곳이다. 한양도성과 부속시설인 치성(雉城), 이간수문(二間水門), 오간수문(五間水門) 등이다. 지대가 낮아 적의 침입에 불리한 지형 여건을 반영해 성의 일부를 바깥으로 돌출시켰다는 치성의 이야기는 흥미롭다. 이른바 ‘꿩의 성’으로, 몸을 잘 숨기고 주변을 잘 보는 꿩의 습성을 원용했다. 동대문~광희문 간에 5개가 더 있을 것으로 학계는 보고 있다고 한다. 석축인 이간·오간수문도 보기 드문 구조다. 남산 쪽에서 흘러온 물을 흥인지문~광희문 사이로 흐르게 한 뒤 도성 바깥의 청계천으로 물을 빼내기 위한 시설이다. 석축의 양쪽에 구멍을 내 목재를 두개와 다섯개를 걸친 차이고, 침입자의 방어용으로도 활용했다. 수문의 모양이 무지개와 같아 홍예문(虹霓門)으로 부른다. 개장 1년을 맞은 DDP가 향후 엄청난 생산 및 고용 효과를 가져올 것이란 거창한 논리를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곳에는 역사가 있고 숨어 있던 이야기들이 있다. 우리의 스포츠 역사를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한복에 짚신발로 진흙탕 운동장에서 공을 차고 1960~70년대 고교야구의 전설적인 추억이 깃든 곳이다. 소개 글은 ‘응원의 함성으로 절규를 대신하던 시절 매 끼니가 공포이던 피난민의 절박함, 삼류 극장에 어슬렁거리던 사춘기의 위태로움, 홈런 한 방에 잠 못 들던 삶의 열정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고 적고 있다. 인근 숭의·창신동 골목에서 생산된 옷가지들, 이를 평화시장 등으로 실어나르는 오토바이의 행렬, 이를 사려는 중국 관광객 유커들의 북적임은 가치 있는 관광 상품이다. 지금은 논란을 내려놓고 옛것과 새것이 어우러진 이야기 상품을 찾아 내놓아야 한다.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세계유산 서울 정릉 재실 복원 25일 공개

    세계유산 서울 정릉 재실 복원 25일 공개

    문화재청 조선왕릉관리소는 1960년대 없어졌던 서울 정릉(貞陵)의 재실(齋室·제사를 준비하는 곳)을 3년에 걸쳐 복원해 25일 일반에 공개한다. 정릉은 조선왕조 태조 이성계의 계비(繼妃)인 신덕왕후 강씨(1356~1396)의 능이다. 원래는 도성 내 지금의 서울 중구 정동에 있었고 규모도 현재보다 크고 화려했다. 정동이라는 현재의 지명도 여기서 비롯됐다. 이성계는 신덕왕후를 극진히 아껴 그의 소생인 방석을 왕세자로 책봉(1392년)한 데 이어 왕비가 죽자 지금의 정동에 능 자리를 웅장하게 조성하고 그 옆을 자신의 묏자리로 점찍기도 했다. 하지만 태조의 정비(正妃)였던 신의왕후 한씨 아들인 이방원이 태종으로 즉위(1400년)하고 상왕으로 있던 이성계마저 승하(1408년)하면서 1409년 성북구 소재 현재의 자리로 내몰렸고, 규모도 대폭 축소됐다. 정자각은 해체돼 중국 사신단을 영접하던 태평관을 짓는 데 쓰였고 병풍석은 홍수에 무너진 청계천 광통교 복구에 사용되는 등 온갖 수난도 겪었다. 폐허처럼 방치되던 정릉은 우암 송시열 등의 주도로 1669년(현종 10년) 비로소 정비됐다. 1899년 신덕왕후가 신덕고황후로 추존되면서 이듬해 재실도 다시 지었지만 초석만 남은 채 1960년대 멸실됐다. 문화재청은 “재실이 어떻게 없어졌다는 기록이 없어 정확한 멸실 경위는 파악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문화재청은 2009년 정릉을 포함한 조선왕릉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면서 능제(制·능의 기본 시설) 복원 차원에서 재실을 복원키로 하고 2012년 그 터에 대한 발굴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과정에서 1788년 발간된 ‘춘관통고’(春官通考) 기록과 일치하는 6칸 규모의 재실 터와 건물 배치 등 유구(遺構·옛 건축물의 흔적)를 확인했다. 발굴조사 결과와 사료를 근거로 2012년부터 3년간 재실 본채와 제기 보관 창고인 제기고, 행랑, 협문(3곳)과 담장 등을 15억원을 들여 복원했다. 문화재청은 “재실 복원을 통해 정릉의 진정성을 회복하고 역사성과 정체성도 확고히 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방황하는 청춘들 SNS에서 길 잃다

    방황하는 청춘들 SNS에서 길 잃다

    20대들의 눈에 비친 세상은 기가 막힌 곳이다. 끊임없이 경쟁을 강요한다. 학교 성적, 학벌, 직장 유무, 정규직 여부 등으로 승자와 패자를 나눈다. 과연 승자가 진짜 존재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패자는 곳곳에서 존재하고 발견된다는 사실이다. 이들에게 싸늘한 시선이 쏟아짐은 물론이다. 88만원 세대, 삼포(연애·결혼·출산 포기) 세대를 양산하는 세상이다. 그러더니 일각에서는 절망하고 좌절한 이들을 ‘달관 세대’라며 짐짓 한눈을 감으려 든다. ‘포기’의 다른 이름이 ‘달관’이라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는 것이다. 또한 소수의 달관하는 이들이 나오기 전까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극단적인 포기가 존재하는 세상임도 외면한다. 누구나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망을 갖고 있다. 젊은 세대들이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시스템(SNS)을 즐기는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SNS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세상에 치인 이들이 찾아들었건만 거기에서조차 인정받고자 하는 그들의 욕망을 쉬 허락하지 않는 게 현실이다. 독립영화 ‘소셜포비아’가 출발하는 지점은 바로 이곳이다. 영화는 노량진을 주요 공간 삼아 시작한다. 추리닝 바람으로 컵밥 먹으면서 딱 9급 공무원이 되는 것만큼의 꿈만 허용되는 젊은이들의 공간이다. 첫 화면에 무장 탈영병이 자살했다는 뉴스에 대한 네티즌들의 반응이 잇따라 이어진다. 그 와중에 악플을 지속적으로 쏟아낸 한 20대 여성 네티즌 ‘레냐’는 온라인상에서 젊은 남성들에게 공분의 대상이 된다. 급기야 그의 신상이 모두 털리게 되고, 인기 BJ의 생중계로 즉석 모집된 ‘현피’(현실에서 만나 싸움을 벌이는 행위) 원정에 경찰 지망생 지웅(변요한)과 용민(이주승)도 가담하게 된다. 레냐는 현피 원정대가 집으로 몰려들기 전까지 채팅으로 설전을 벌였지만, 문을 연 순간 컴퓨터 랜선으로 목을 감고 매달린 모습으로 발견된다. 마녀사냥을 벌여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는 도덕적 비난에서 타살 의혹까지 쏟아지며 지웅과 용민 등 현피 원정대는 궁지로 몰린다. 이들은 스스로 ‘네티즌 수사대’를 자처해 사건 속으로 깊숙이 들어간다. 익명 뒤에 숨어서 독한 말을 쏟아내며 상처를 주는 사람이 있고, 거기에 가슴 깊이 상처를 받는 사람이 있다. 가해자는 익명 뒤에 숨지만, 피해자는 개인의 신상이 낱낱이 공개되며 도망갈 곳을 찾아야 한다. 상처받은 이는 용민이처럼 이름을 바꾸거나, 심지어 레냐처럼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아니면 갚음을 해야 할 또 다른 대상을 찾아 자신이 받은 것 못지않은 상처를 준다. 영화 속 현피 원정대에 참가한 네티즌들 역시 악플에 상처받은 뒤 그 못지않은 악플을 쏟아 낸다. SNS 공간의 폐해는 누구나 말할 수 있지만, 자신이 이미 그 폐해의 생산 주체이면서 서로 상처를 주는 악순환의 고리에 들어가 있음은 자각하지 못한다.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은 이미 SNS에서 구현되고 있는 셈이다. 독립영화를 꾸준히 만들어 온 홍석재(32) 감독의 첫 장편이다. 2010년 단편영화 ‘필름’으로 신상옥청년국제영화제 우수작품상을 받는 등 탄탄한 연출력을 쌓아 왔다. ‘소셜포비아’는 우리 시대 젊은이들이 현실에서 느끼는 소외와 절망이 그들이 도피해 간 온라인 공간에서도 해소되지 못함을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 구조 속에서 풀어낸다. ‘들개’, ‘까마귀 소년’ 등 독립영화계의 히어로 변요한과 ‘청계천의 개’, ‘방황하는 칼날’ 등의 이주승이 핍진한 연기력을 선보이며 몰입도를 높인다. 12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김기종 “김일성 20세기 훌륭한 지도자” 찬사…경악

    김기종 “김일성 20세기 훌륭한 지도자” 찬사…경악

    김기종 김기종 “김일성 20세기 훌륭한 지도자” 찬사…경악 경찰이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를 흉기로 공격한 김기종(55)씨로부터 압수한 서적 등 10여점에 대해 이적성이 있다고 보고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입증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미국 대사 피습사건 수사본부(본부장 김철준)는 9일 오전 브리핑에서 “김씨에게서 압수한 서적과 간행물 중 30점을 외부 전문가 집단에 감정을 의뢰한 결과 10여점에 대해 이적성이 있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9일 밝혔다. 경찰은 지난 6일 김씨의 집 겸 사무실에서 압수한 물품 219점 중 이적성이 강하게 의심되는 북한원전 등 30점에 대해 감정을 의뢰한 바 있다. 일부는 아직 감정 결과가 마무리되지 않았다. 여기에는 김정일이 쓴 영화예술론과 주체사상 교육용으로 많이 쓰이는 정치사상강좌 유인물 등의 사본과 원본이 포함돼 있다. 김두연 서울경찰청 보안2과장은 브리핑에서 “이적성이 확인된 만큼 앞으로 소지의 목적성 등을 입증하고, 이적 표현물 소지로 국보법 혐의 적용을 검토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씨는 지금까지 경찰 조사에서 “김일성은 20세기 민족 지도자라고 생각한다”면서 “일제하에 항일운동을 했고 3·8선 이북을 접수한 후 자기 국가를 건설해 잘 이끌어온 것을 봤을 때 20세기 훌륭한 지도자라고 생각한다”고 진술했다. 이같은 진술은 경찰이 김씨를 상대로 범행동기와 행적 등을 조사하는 과정 중 나온 것이다. 김씨는 남한에는 훌륭한 대통령이 있느냐는 질문엔 “없다”고 답했다. 김씨는 우리나라와 북한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우리나라는 반식민지 사회이지만 북한은 자주적인 정권이라고 생각한다”고도 진술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앞서 경찰은 김씨가 1999∼2007년 7차례 방북한 전력과 2011년 대한문 앞에 김정일 분향소를 설치한 사실, 북한 관련 토론회를 수차례 개최한 사실 등을 확인했다. 경찰은 공범과 배후, 자금지원 통로 등이 있는지 다각적으로 분석, 구체적인 혐의를 찾아내면 검찰과 협의해 종로서에 보관중인 압수품 중 국보법 관련 증거품에 대해 재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또한, 경찰은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미국 연방수사국(FBI)과 수사 공조를 적극적으로 벌여,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미국에 서버를 둔 SNS에서 김씨가 활동한 내용을 살펴보고 있다. 김씨는 그러나 “북한 관련 서적이나 표현물 등은 집회나 청계천 서점 등지에서 구했다”고 진술했다. 김씨는 또한 “지난 2010년 일본대사를 콘크리트 덩어리로 공격했을 때 별로 위협적이지 않아 (이번에) 칼을 준비하면 더 위협적일 것 같아 과도와 커터칼을 준비했다. 절제력을 잃어 범행했지만 살해의도는 없었다”고 진술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경찰은 “목격자 진술을 토대로 김씨가 최소 2회 이상 대사를 가격한 것으로 판단되며, 대사 상처부위가 깊고 범행도구로 함께 준비한 커터칼 대신 위험성이 높은 과도를 선택한 점 등으로 미뤄 살해의 고의성이 인정된다”고 말했다. 경찰은 수사를 마무리 하고 늦어도 13일까지 검찰에 사건을 송치할 계획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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