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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목숨으로 일제 항거한 영혼…눈비에도 새벽 열었던 민초…그 역사가 ‘다시 세운’ 도시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목숨으로 일제 항거한 영혼…눈비에도 새벽 열었던 민초…그 역사가 ‘다시 세운’ 도시

    눈 오는 인사동을 걸으려고 일부러 갈 일은 없을 것 같다. 서울 미래 유산 투어의 마지막 일정이 있던 날, 인사동에 함박눈이 쏟아졌다. 곧 얼음 눈과 비로 변하긴 했으나, 특별한(?) 정취를 느꼈다. 충정공 민영환의 자결터에서 나라를 걱정한 조선관리를 보았다. 태화관(태화복지재단)에는 민족 대표 33인 중 29인의 모습을 담은 그림이 걸려 있었다. 상상 속의 독립선언문 낭독은 민족대표가 군중 앞에서 엄중하게 독립을 선언하고 뒤이어 우렁차게 만세를 외치는 모습인데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왜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답사 내내 따라다녔다.천도교 중앙대교당에 다다랐을 때 눈 맞고 비 맞아 손이 무척 시렸는데, 관계자의 배려 덕분에 교당 안으로 들어가서 마음과 몸을 녹일 수 있었다. 종묘 쪽으로 좀더 걸으니 용성 스님이 계셨던 대각사가 나왔다. 만해 한용운과 함께 불교계 대표로 민족대표에 참여하신 스님이라고 한다. 대각사 일주문 꼭대기에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사람들의 모습과 옥살이하는 스님, 그 앞을 지키는 순경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재미있는 발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종묘공원을 지나 세운상가에 다다랐다. ‘다시세운’이라는 카피가 눈에 들어왔다. 세운상가는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첫 주상복합 건물이라고 한다. 종로에서 퇴계로까지 1㎞에 달하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건물이었다. 2014년 도시재생사업으로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세운상가에서 대림상가까지 이어져 있는 공중보행도로를 걸으니 청계천을 따라 공중 부양해서 걷는 기분이었다. 1960년대엔 세간의 부러움이었고, 80년대에 전성기를 누리다 90년대 이후 쇠락해서 2000년대엔 잊히다가 다시 돌아온 세운상가에 시간을 내어 또 와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광장시장과 방산시장은 여전히 북적였다. 종종걸음으로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활기와 젊음이 느껴졌다. 다시 세운 나라는 자결로 망국의 부당함을 고발한 관리, 독립을 자신의 안위보다 우선순위에 둔 각계의 리더들 그리고 삶의 터전에서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새벽을 열었던 민초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세운 나라의 흔적을 기억하고, 발로 밟고, 이야기를 나누는 우리 서울미래유산 답사단을 통해 소중한 역사가 미래로 전승된다는 생각이 들면서 오늘 하루가 소중하게 느껴졌다. 어느새 눈비도 그치고 하늘이 맑게 갰다. 박정아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서울미래유산연구팀
  • [사고] 2018 평창 위하여 ‘해피 뉴런’

    [사고] 2018 평창 위하여 ‘해피 뉴런’

    서울신문사는 2018년의 새해 첫날 2018 해피 뉴런 서울 4대문 10㎞ 마라톤 대회를 개최합니다. 2016년에 이어 두 번째 시행하는 본 대회는 활기찬 새해맞이와 함께 2월 9일 열리는 평창동계올림픽의 성공을 기원하는 대회입니다. 대회가 끝난 후에는 참가자 모두에게 기념품과 새해 떡국을 제공하며 추첨을 통해 다양한 경품을 드립니다. 본 대회를 통해 새해 첫날 소중한 분들과 함께 건강과 멋진 추억을 만드시기 바랍니다.■일시 2018년 1월 1일 오전 9시 출발 ■집결지 서울신문사 앞 서울마당(서울 중구 세종대로 124) ■코스 서울마당~청계천~동대문~청계천~광화문~롯데백화점~남대문~서울마당 ■참가인원 선착순 2018명 ■기념품 LG 포터블 스피커 PH1 ■종목 및 참가비 10㎞ / 3만 5000원 ■후원 종로구 ■홈페이지 run.seoul.co.kr ■문의 서울신문 사업국 (02)2000-9753~7
  • 황준환 서울시의원 “공공기관 장애인 고용, ‘3%’보다 더 늘려야”

    황준환 서울시의원 “공공기관 장애인 고용, ‘3%’보다 더 늘려야”

    서울시의회 황준환 의원(자유한국당, 강서3)은 서울시설공단를 대상으로 실시한 제277회 정례회 서울시의회 교통위원회 행정사무감사 회의에서 보행약자와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을 늘려야 하고 공공기관의 장애인고용을 의무고용률보다 더 많이 늘렸으면 좋겠다고 주장했다. 황 의원이 서울시설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의하면 청계천을 이용하는 보행약자와 장애인 이동편의시설은 계단이 36곳, 경사로가 19곳 엘리베이터가 2개소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보행보조시설(핸드레일)은 경사로 12개소, 계단 18개소에 설치돼 있다. 또한 청계천내 장애인화장실은 총 3곳으로 장애인이 이용하기에는 부족하다고 지적하면서 청계천 주변 개방화장실이 있지만 건물주들의 협조가 부족해 불편을 겪고 있다고 말하면서 노약자와 장애인이 이용하는데 불편이 없도록 시설을 확충해줄 것을 당부했다. 이날 서울시설공단에 대한 행정사무감사에서 황 의원은 “서울시설공단 등 서울시 산하 공기업들이 장애인 의무고용 법정비율을 지키고는 있지만 형식적인 고용이 아닌 사회적 약자 배려 차원에서 다양한 일자리 발굴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황 의원은 “특히 서울시설공단은 다양한 분야의 인프라를 갖추고 있어 다른 분야보다 장애인 일자리가 많다”면서 “법정의무고용율은 3%이지만 「서울시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 지원 조례」 5조에 의하면 최대 5%에 달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는 조항을 예로 들어 서울시 조례 제정 취지에 맞게 장애인 일자리 창출을 늘리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면서 장애인 의무고용에 대해 서울시의 선도적 역할을 주문했다. 현재 서울시설공단에는 총 142명의 장애인이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황 의원은 장애유형에 따라서 시설공단에서 정상인과 큰 차이 없이 일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아내서 의무고용비율을 넘어 지금보다 더 많은 장애인들이 고용되어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있게 노력해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장애인 콜택시 운영에 대해서도 관심을 보이면서 “장애인 콜택시에서 문제가 되는 부분으로 ▲콜택시 예약‧배차 시스템 ▲지역간 이동 불가 ▲운전원의 친절성 등의 문제를 해결해야 장애인 콜택시가 잘 운영될 수 있고, 장애인들도 편안하게 콜택시를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장애인 콜택시 이용객의 불만사항을 관리하고 개선하는 통합시스템의 구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장애인콜택시 관련 민원 중 대기시간에 대한 민원사항이 많음을 지적하면서 출퇴근시간 등 집중시간대에 대한 체계적이고 심도있는 분석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끝으로 황 의원은 “정상인과 차별없이 노약자와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 등을 지속적이고 꾸준히 확충하여 모든 사람들이 더불어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남창진 서울시의원 “가든파이브 무리한 임대로 장기공실 초래”

    남창진 서울시의원 “가든파이브 무리한 임대로 장기공실 초래”

    서울시의회 남창진 의원(송파2)은 지난 13일에 열린 제277회 정례회 서울주택도시공사 2일차 행정사무감사에서 가든파이브 조성사업의 총체적인 운영 및 관리부실에 대해 강하게 질타했다. 남 의원은 “과거 청계천 상인들의 이주상가로 조성된 가든파이브는 현재 약 15%가 공실이며, 특히 툴동의 장기공실로 인한 손해가 매우 큰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툴동의 일괄매각 준비과정을 살펴보면 지난 2015년부터 외부전문가 토론회를 총 10차례 개최하여 오토겔러리를 적합 업종으로 선정했다고 하나, 실제로는 오토겔러리의 입점을 정해놓고 토론회를 추진했으며, 자동차관련 업종이 밀집한 장한평이나 양재, 강남보다도 툴동의 임대료가 비싸다는 전문가의 지적이 있었음에도 오토겔러리의 입점을 무리하게 추진했다”고 말했다. ※ 오토겔러리 : 자동차역사박물관이나 모터쇼, 경매, 슈퍼카, 클래식카 전시 등 자동차를 주제로 한 테마파크의 개념. 남 의원은 “결국 오토겔러리 입점을 정해놓고 일괄매각을 추진했으나 툴동은 현재까지도 공실로 남아있다”며, “지난 5년간 툴동의 공가관리비로만 58억원을 지출했는데, 개인이 소유한 상가라면 이렇게까지 공실로 남겨둘 수 있었을까”라며 서울주택도시공사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끝으로 남 의원은 “2024년까지 신규 상가공급을 완료하고 대형임대상가는 임대계약 만료 시 모두 분양전환 된다는 가정 하에 사업수지를 계산해도 총 15년간의 사업수익은 7억 원 밖에 되지 않는다”며, “툴동의 조속한 매각 또는 부분 임대를 통해 적극적으로 공실을 줄여야 할 것이며, 동남권유통단지 개발사업 전반에 대한 점검을 통해 사업수지 개선에 보다 노력해줄 것”을 당부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씨줄날줄] ‘광화문 육의전’/서동철 논설위원

    [씨줄날줄] ‘광화문 육의전’/서동철 논설위원

    조선의 도성(都城) 한양은 정치의 거리와 경제의 거리가 분리되어 있었다. 도성 북쪽의 북악산에서는 두 개의 하천이 남쪽으로 흐른다. 서쪽으로는 백운동천이 자하문로를 따라, 동쪽으로는 삼청동천이 삼청로를 따라 이어진다. 두 물길이 합류해 만들어진 것이 청계천이다.백운동천은 세종문화회관 뒤편에 이르러 광화문 사거리 방향으로 크게 곡선을 그린다. 백운동천과 삼청동천 사이 삼각형 모양의 땅이 곧 정치의 거리였다. 북쪽에는 정궁(正宮)인 경복궁이 자리잡았고, 그 남쪽으로는 관청가인 육조(六曹)거리가 들어섰다. 백운동천과 삼청동천을 경복궁과 육조거리를 보호하는 일종의 자연 해자(垓子)로 활용한 것이다. 이 자연 해자 내부 지역은 사실상의 정치의 거리라고 할 수 있다. 태종은 삼청동천 바깥 운종가(雲從街), 곧 오늘날의 종로를 경제의 거리로 만들었다. 개경의 시전을 본떠 이곳에서부터 동대문에 이르는 간선도로의 양옆에 국가 소유로 상인들에게 임대하는 점포인 공랑(公廊)을 지어 재정에 충당한 것이다. 광화문 교보빌딩과 광화문 D타워 사이 삼청동천이 흘러나가는 복개도로가 경계선이었다. 정치의 거리는 특권 계급의 공간이었다. 경복궁 서쪽 영추문과 백운동천 사이에 주거지가 일부 있었지만, 영조가 세자 시절 머물던 창의궁 터의 존재처럼 백성들의 공간은 아니었다. 반면 운종가는 ’높다란 종각 아래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드네’라고 노래한 조선 후기 문인 강이천의 시처럼 활력이 넘치는 서민들의 공간이었다. 실학자 이덕무는 ‘거리 좌우에 늘어선 천 칸 집에 온갖 물화 산처럼 쌓여 헤아리기 어렵다’고 했으니 종로의 육의전(六矣廛)거리를 가리킨다. ‘천 칸’이라는 표현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지금 육조거리와 육의전거리는 모두 옛 모습을 짐작하기 어렵다. 하지만 보존 양상은 조금 다르다. 육조거리는 다양한 이유로 과거 모습을 다시 찾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육의전거리는 초입인 청진동부터 훼손되고 있지만 위태로운 가운데 적지 않은 지하 유구는 살아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엊그제 “광화문광장에 조선시대 육의전을 재현하겠다”고 밝혔다. ‘광화문 육의전’을 활성화하고자 광장 양옆에 2층 한옥을 짓겠다는 구상도 덧붙였다. 하지만 육의전은 육조거리 터가 아닌 육의전 터에 복원하는 것이 역사를 보존하는 올바른 방법이 아닐까 싶다. 광화문광장을 시민에게 돌려주는 방법은 ‘육의전 재현’ 말고도 얼마든지 있다. 무엇보다 육의전 유구는 지금 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사라지고 있지 않은가.
  •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천변풍경’ 속 빨래하던 아낙 모습 절로 떠올린 청계천…뜨끈한 국물·역사 얘기에 몸·마음 채운 용금옥·부민옥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천변풍경’ 속 빨래하던 아낙 모습 절로 떠올린 청계천…뜨끈한 국물·역사 얘기에 몸·마음 채운 용금옥·부민옥

    11월의 첫 주말인 지난 4일 집결지인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 주변은 바람이 찼다. 청계천을 무대로 쓴 박태원 ‘천변풍경’의 빨래하는 아낙들의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일상의 번뇌와 세상 근심을 함께 넣어 두들기고 비벼 빨았을 아낙들은 이 정도의 바람에는 끄떡도 하지 않았으리라.서울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조선시대 석조건물은 태종 때 만들어진 광통교인데, 중구 정릉에 남아 있던 신덕왕후 강씨의 무덤에서 가져왔다는 해설은 듣는 이의 귀를 잡아 두기에 충분했다. 따끈한 국물 생각이 절실했던 차에 1932년부터 시작된 용금옥 추탕의 역사를 듣고 있자니 자연스레 점심 메뉴를 정할 수 있었다. 넉넉하고 푸짐한 인심으로 근방의 정치, 언론인이 즐겨 찾는 음식점이었고, 부민옥도 대파를 넉넉히 넣은 매콤한 육개장 국물이 대표 메뉴라고 했다. 베를린 장벽을 눈으로 직접 보는 진귀한 경험도 했다. 베를린시로부터 기증받은 베를린 장벽은 베를린 곰과 함께 설치돼 있었다. 다들 장벽의 폭과 길이를 재어 보고, 둘레를 돌면서 손으로 밀어 보고 쓰다듬기도 했다.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가 국민이 불과 얼마 전까지 서독과 동독을 가로지르던 콘크리트 장벽을 마주한 소감은 어땠을까. 사람들의 발길이 넘쳐나는 인사동 거리에서 외국인을 만나는 일은 더는 낯선 일이 아니다. 숱한 관광객을 제치고 쌈지길 계단에 모여 천재 시인 이상의 ‘건축무한육면각체’를 들었다. 이상의 시는 기본적으로 난해한 암호 같다. 두 명의 해설사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지역을 나눠 설명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답사 시간 3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미리 준비해 온 사진과 지도 자료가 톡톡히 한몫을 해냈으며, 탐방 코스에 문학이 함께 어우러지니 해설이 더욱 풍성하고 낭만이 흘렀다. 인사동 골목 어귀에 있던 ‘귀천’이라는 작은 찻집 옆에서 천상병 시인의 시를 읽었다.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가는 곳곳마다 소설과 시가 함께 있어 더욱 특별했다. 이지현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서울미래유산연구팀
  •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문중 지킨 종갓집 며느리처럼… 종로, 그렇게 흘러왔구나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문중 지킨 종갓집 며느리처럼… 종로, 그렇게 흘러왔구나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7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22차 ‘서울의 문학2-근대문학거리 여행’ 편이 지난 4일 서울 중구 다동과 종로구 인사동, 운니동 일대에서 3시간 동안 진행됐다.답사단은 박태원의 ‘천변풍경’, 이상의 ‘건축무한육면각체’, 염상섭의 ‘삼대’, 심훈의 ‘그날이 오면’, 임화의 ‘네거리의 순이’, 이호철의 ‘서울은 만원이다’, 박완서의 ‘나목’ 속 서울을 걸었다. 청계천변을 지나 우미관과 한국기원이 자리했던 관철동을 거닐었고, 옛 조선극장과 승동교회, 통문관, 귀천에서 인사동을 느꼈다. 김동인의 ‘운현궁의 봄’의 무대 운니동 운현궁에서 일정을 마무리했다. 너나없이 서울미래유산 로고가 새겨진 빨간색 스카프로 멋을 낸 답사단원들은 문학의 향기를 따라 거리를 누볐다. 황미선, 김은선 두 서울도시문화지도사는 지난 9월 서울숲에 이어 또 한번 콤비를 이뤘다. 김은선 지도사는 무교동에서 관철동까지, 황미선 지도사는 관철동에서 운니동까지 해설을 나눠 맡았다.우리나라 문학과 예술작품 중 서울의 영향을 받고 창작된 것이 많다. 그만큼 문화예술계의 서울 의존도는 깊고 넓다. 서울은 600년 이상 한국인들의 의사 이상향이었다. 토크빌이 “파리는 프랑스 그 자체”라고 말했듯이 ‘서울이 곧 한국’이었다. 문화예술이 서울을 재창조했다. 작가와 작품이 서울의 결을 기름지게 하고 향기를 풍기게 했다.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염상섭의 ‘삼대’에는 황토마루 네거리, 황토현이라는 지명이 등장한다. 오늘의 광화문 네거리가 바로 황토마루 네거리다. 조선 500년 내내 네거리가 아니라 삼거리였다. 일제가 1912년 태평로를 뚫기 전까지 광화문과 숭례문을 잇는 남북도로는 없었다. 인왕산 지맥인 야트막한 고개가 정동과 청계광장을 거쳐 무교동 변에 자리했다. 진작 사라진 황토마루라는 지명을 30~40년대 소설가들이 애타게 부르는 데는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박태원의 ‘천년풍경’에는 아낙들의 빨래하는 모습과 개천을 복개한다는 뜬소문이 묘사되고 있다. ‘간간이 부는 천변바람이 제법 쌀쌀하기도 하다. 그래도 이곳 빨래터에는 대낮에 볕도 잘 들어 물속에 잠근 빨래꾼들의 손도 과히들 시리지는 않은 모양이다.’, ‘청계천을 덮어버린단 말이 있지 않어?…그거 다 괜한 소리, 덮긴, 말이 그렇지, 이 넓은 개천을 그래 무슨 수로 덮는단 말이유?’ 등 거리에 떠돈 소문은 사실이 됐고, 일제가 조금씩 덮기 시작한 청계천을 결국 우리 손으로 지하에 가뒀다. 소설은 역사가 된다. 구보 박태원은 6·25전쟁 때 아내와 3남2녀를 서울에 남겨 둔 채 월북했고, 1988년 해금 때까지 잊힌 작가였다. 천재 시인 이상, 구보와의 관계는 실타래처럼 얽혀 있다. 문학 동지이자 ‘짝패’ 그 이상의 관계였다. 구보의 북녘 부인 권영희는 이상의 애인 권순옥이었다. 월북 소설가 정인택은 권순옥을 흠모해 음독자살을 기도한 끝에 결혼했고, 이상은 이 결혼식의 사회자로 나서 ‘조선팔도의 허리가 휠 희곡’이라는 대사를 남겼다. 구보가 남녘에 남긴 외손자가 영화 ‘괴물’의 감독 봉준호다. 건축가이자 화가였으며, 시인이자 소설가로 27살에 요절한 이상은 이상한 작품을 남긴 이상한 남자가 아니다. 그가 없었다면 서울은 심심하고, 피폐해졌을 것이다. 그는 청진동에 ‘제비’, 인사동에 ‘쓰루’, 광교에 ‘69’, 종로1가에 ‘무기’란 카페를 운영했다. 부인 김향안은 또 다른 절친 화가 구본웅의 이모이며, 화가 김환기의 부인 변동림이 된다. 이 시기 이상, 박태원과 엮이지 않은 문인 예술가는 거의 없었다.골동품과 고서화의 고향을 현대와 연결하는 인사동 쌈지길은 이상의 시 ‘건축무한육면각체’를 연상시킨다. ‘사각형의 내부의 사각형의 내부의 사각형의 내부의 사각형의 내부의 사각형’으로 시작된 한 편의 시는 계단 없이 경사로를 사각으로 이어 붙인 특이한 건물, 형태는 사각형인데 길 따라 돌다 보면 원이고, 옥상 정원에 닿는 묘한 구조의 건물로 현대에 구현됐다. 이호철의 ‘서울은 만원이다’는 1950~60년대 서울을 소설의 주요 무대로 삼은 전후 문학 작품이다. 원산 출신 실향 피란민 이호철은 종로 북촌을 지배하고 있던 서울 토박이, 해방촌에 무리 지어 사는 이북 피란민,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올라온 상경민 등 세 부류의 사람들이 ‘삶의 용광로’ 서울에 터 잡고 사는 세상을 그렸다. 식모살이를 하다가 몸을 파는 통영 출신 길녀는 상경민이다. 소설 속에서 종로는 서울 토박이 동네, 삼청동과 가회동은 부촌, 금호동은 해방촌, 회현동은 여관촌으로 각각 그려졌다. 박완서의 ‘나목’에서도 주인공 이경은 강점기 미스코시백화점이었다가 미군정기 미군PX가 있던 지금의 신세계백화점 초상화부 점원으로 일한다. 이경의 퇴근길은 남대문 백화점에서 중앙우체국, 을지로입구, 화신백화점이 있던 종각을 지나 계동집까지의 행로다. 미군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 박수근과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그린 자전소설이다. 심훈은 ‘그날이 오면’에서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중략)…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라고 노래했다. 나라를 찾기만 한다면 보신각 종을 치다 죽겠다는 격정을 표현했다. 임화도 ‘네거리의 순이’에서 ‘자 좋다, 바로 종로 네거리가 아니냐!’라면서 식민지 물질문명을 상징하는 종로에서 단말마를 토했다. 인사동과 관철동, 운니동을 품은 근대문학의 길 종로는 500년간 유일한 도심이었다가 지금은 여러 도심의 하나로 내려왔다. ‘마치 문중을 지키며 늙어 가는 종갓집 며느리 같다’는 어느 도시학자의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다음 일정 : 서울의 놀거리 (대중문화 1번지, 홍대) ■일시: 11일(토) 오전 10시 홍대입구역 5번 출구 앞 ■신청(무료) : 서울시 서울미래유산 (futureheritage.seoul.go)
  • “역사도시 1번지 종로 ‘자문밖문화포럼’…세계 예술도시로”

    “역사도시 1번지 종로 ‘자문밖문화포럼’…세계 예술도시로”

    광화문광장 구조재편, 영동대로 지하공간 통합개발 등 도시의 틀을 바꾸는 대형 계획이 속속 나오면서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도시의 조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쉬면서 그 자체로 사람들에게 자부심을 주고 나아가 그 역사와 문화가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활동을 창출할 수 있는 곳이라고 입을 모은다. ‘강남 같은 강북 개발’을 내세워 때려 부수고 새로 짓는 것보다 역사·문화 콘텐츠 보호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도시 철학이 공감을 얻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서울신문은 ‘역사 도시 1번지’인 종로의 관리자이자 건축가 출신인 김영종 서울 종로구청장과 김수근·김중업 시대 이후 한국 건축계의 큰 산으로 불리는 김원 건축환경연구소 광장 대표의 대담을 통해 우리 역사도시의 현재를 평가하고 미래 방향에 대한 비전을 들어봤다. 대담은 지난달 30일 서울신문 사회2부 주현진 차장의 진행으로 종로구 부암동의 전통문화시설인 ‘무계원’에서 두 시간에 걸쳐 이뤄졌다.→역사·문화 도시의 공간으로 무계원을 추천했는데. -김영종 구청장:서울의 얼굴인 종로는 조선 왕조의 수도였다는 역사성을 정체성으로 삼으면서도 현대화된 도시로 발전시키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이를 보여 주는 대표 사업 중 하나가 무계원이다. 민선 5기 출범 직후인 2010년 10월 종로 익선동에 1910년대 지어진 근대 한옥으로 출발해 1970~80년대 3대 요정 중 하나로 이름을 날린 오진암이 호텔 건립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을 발견했다. 이에 안평대군의 숨결이 깃든 무계정사지 인근에 부지를 확보하고 철거 자재가 팔린 강원도 인재 등으로 찾아가 자재를 되찾아왔다. 숭례문 복원에 참여했던 건축기술자들이 기와, 서까래, 기둥 등 큰 자재는 물론 창호와 같은 부수 자재까지 옮겨와 오진암을 복원해 2014년 3월 무계원을 개관했다. 무계정사의 분위기를 옮겨 온 정원이란 의미로 무계원으로 명명했다. -김원 대표:무계원, 상촌재 등이 있는 서촌에는 조선조 때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바위글씨도 많다. 추사 김정희가 쓴 ‘송석원’이라는 바위 글씨를 비롯해 백사 이항복의 글씨가 남아 있는 ‘필운대’ 등이 있다. 바위글씨는 글씨체도 좋지만 역사적으로 어떤 곳이었는지 증명해 주는 기록물이다. 도시는 이 같은 유적을 소중한 문화재로 보존하는 것은 물론 사람들이 이를 알도록 해야 한다. →역사 도시로서 종로를 평가한다면. -김 구청장:2012년 옥인아파트를 철거하고 인왕산 자락의 수성동 계곡을 겸재 정선의 그림(장동팔경첩 중 수성동 회화)처럼 복원했는데 석축을 쌓을 때도 시멘트를 일절 사용하지 않는 등 풀 한 포기 심는 것도 전통 방식을 고집했다. 시멘트를 걷어내면서 그림에 나오는 돌다리인 기린교도 발견해 보존했다. 종로는 서촌(청운효자동과 사직동 일대)이 역사 인물들의 생가터가 모여 있는 것은 물론 국내 문학과 예술의 거장들이 창작 활동의 무대로 삼아 온 근현대 유적이 풍부한 곳이란 점에 착안해 한옥 보존뿐 아니라 문화·역사 콘텐츠 보존을 중심으로 재정비 사업을 폈다. 버려진 물탱크를 원형 그대로 활용한 윤동주문학관, 구립 박노수미술관, 상촌재 등이 대표적이다. 지역의 역사 문화 콘텐츠를 최대한 활용해 지속가능한 자원으로 만든 결과 서촌은 명승지로 거듭났다. -김 대표:모두 김 구청장이 건축을 공부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철거된 옥인동 아파트는 김현옥 당시 시장 때 지은 것인데 그분이 기초 공사를 제대로 했더라면 기린교는 없어졌을 것이다(웃음). 종로의 복원 노력으로 지금은 서울의 명소가 됐다. 그러나 아직 할 일이 많다. 서촌은 조선시대 역관 등 중인 계급이 모여 살던 곳이다. 당시 중국을 오가면서 선진 문물을 접해 식견이 있고 대를 이어 잘살 만큼 부를 쌓은 데다 시와 그림에도 능했다. 그들의 모임에 이인문, 김홍도, 김정희 등 당대 화가들도 대거 참여했다. 중인 계급들의 문화 성취는 영·정조 시대 조선 왕조의 문화 르네상스를 이룩한 원동력이란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런 배경이 있기에 이상, 윤동주 등 근대 작가들이 이곳에서 살았고 지금도 많은 예술인들이 살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종로는 이 같은 역사 문화 콘텐츠를 더 발굴하고 발양해서 종로구민은 물론 국민 모두의 문화 자부심을 키워야 한다.→종로는 대를 이은 역사·문화의 중심지란 말인데. -김 구청장:세계적인 예술도시로 만들기 위해 평창동·부암동 일대에 ‘자문밖 창의예술마을’을 조성하고 있다. 미술관이 밀집해 있고 수려한 자연경관까지 갖춘 그곳에 작가 이어령 선생 등 문화·예술인만 100명이 넘게 산다. 이분들을 중심으로 ‘자문밖 문화 포럼’을 꾸려 일대를 문화와 예술이 공존하는 문화·예술 마을로 만들려는 것이다. 앞서 구가 직전 시장 재임 때 평창동에 가스 충전소를 만들려던 것을 설득해 내년 착공하는 문화시설인 자문밖 문화 충전소로 짓도록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 대표:그분들과 잘만 협력하면 종로구에 미술관, 문학관 등을 150개도 넘게 지을 수 있다. 다른 지자체에서 미술관을 지어 준다며 돈 들여 예술가를 영입하는 작업을 많이 하는데 작품 활동을 한 지역에 기념관이 들어서는 게 의미가 있다. 미당 서정주 기념관을 설계하다가 보니 예술가 가옥 보존을 위한 국가 차원의 정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종로는 월대 등 역사 복원이 논의되는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 구역이기도 한데. -김 대표:경복궁 앞 월대를 복원하고 현재 세종대로 왕복 6차로를 모두 없애 차 없는 광장으로 만드는 게 최적의 방안이다. 차량 흐름은 최근 확정된 강남 영동대로 지하공간 통합개발 설계처럼 햇빛이 드는 지하도시 조성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 선진국 지하도시에는 이번에 영동대로 지하공간이 추구하는 것처럼 기차나 지하철을 위한 역사는 물론 박물관, 미술관, 도서관 등 공공시설도 들어 있다. 파이낸스빌딩 건물주인 싱가포르투자청이 자기네가 돈을 낼 테니 서울시부터 파이낸스빌딩, 서울신문 등을 거쳐 청계천변까지 연결되는 지하 길을 만들자고 제안했을 정도로 지하도시는 메리트가 있다. -김 구청장: 광화문광장 밑으로 지하도시를 만든다면 종로구청까지 연결되면 좋겠다. 종로구는 앞서 지난해 건물주들을 설득해 공적 비용 없이 민간 빌딩 간 지하 네트워크인 청진지하도 조성사업을 완성한 경험이 있는데 광화문광장 밑으로 대형 지하도시를 조성하게 된다면 종로는 그야말로 현대 도시의 대표 공간,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공존하는 도시가 될 것이다. 다만 광장이 있는 종로 구민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치고 구민 불편을 최소화하는 등 구민이 만족할 수 있는 방식으로 진행해야 한다.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건축가 출신 김영종 구청장 2010년 민선 5기에 이어 6기 4년차를 맞고 있다. 서울시 건축과 공무원 출신으로 1983년 건축사 자격증을 취득한 뒤 26년 4개월간 백화점, 종합병원 등을 설계하며 건축가로 일했다. 2012년 한국건축문화대상 올해의 건축문화인상을 받았다. 조선대 병설공업고등전문학교 건축과(5년제), 서울산업대 건축공학과 등에서 건축을 전공했다. 서촌 마을 조성은 물론, 청진동 일대 빌딩과 지하철역 등을 지하보도로 잇는 ‘청진구역 지하보도 조성사업’을 하면서 발굴된 각종 문화재들을 보존·전시하는 등 역사를 지키면서도 편리한 도시를 만들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도심 역사보존 전문가 김원 대표 독립기념관 마스터플랜(설계 전 계획), 국립국악당, 주한 러시아대사관, 코엑스, 미당 서정주 시문학관, 조정래 태백산맥 문학관, 박완서 문학관 등 종교, 문화 작품을 주로 설계했다. 서울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김수근 건축연구소에서 6년간 일한 뒤 네덜란드 바우센트룸 국제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마치고 귀국해 1976년 건축환경연구소 광장과 도서출판 광장을 설립해 건축과 출판 작업을 병행했다. 도심 속 역사 문화 보존을 위한 종로구 도시공간예술위원회 위원장, 광화문광장 구조개선 사업을 위한 서울시의 광화문포럼 위원장을 맡고 있다.
  • 최판술 서울시의원 “왕십리로 가변차선 폐지-신당역 앞 좌회전 허용”

    최판술 서울시의원 “왕십리로 가변차선 폐지-신당역 앞 좌회전 허용”

    서울시가 왕십리로 가변차로를 폐지하고 신당역 교차로 및 구 도로교통공단 사거리 좌회전 신규 설치를 확정했다. 최판술 서울시의원(국민의당, 중구1)은 지난 2일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실시된 교통안전시설심의에서 왕십리로 가변차로 폐지와 신당역 교차로 청계천 방면 좌회전과 구 도로교통공단 사거리 금호동 방면 좌회전 신설안이 수정통과 됐다고 밝혔다. 국내 가변차로는 81년 8월, 소공로(조선호텔~한국은행)에 처음으로 도입된 후 서울시내 총 16개 도로(총연장 19.74km)에 확대 적용되어 운영되었으나, 현재 소공로, 왕십리로를 제외한 나머지 14개 구간은 모두 폐지됐다. 왕십리로 가변차로는 한양공고 앞에서 왕십리역까지 총 연장 2.20km 구간 6차로 도로에 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 오전 07시부터 10시까지 시청방면 4차로, 왕십리역 방면 2차로로 운영 중이고, 그 외 시간대는 양방향 3차로씩 동일하게 운영되고 있다. 최판술 의원에 따르면 지난 2월 ‘중구와 성동구 주민 안전과 편의를 위한 왕십리로 가변차로 폐지와 도로교통공단 사거리 좌회전 신호 신설에 관한 청원’을 소개하였고 서울시의회 교통위원회와 본회의에서 채택되어 지난 3월 서울시로 이송한 바 있다고 밝혔다. 최 의원은 “왕십리로 가변차로 때문에 좌회전 차로 구성이 어렵고, 시간대별 통행 방향을 오인하거나, 차로 폭 감소 등으로 사고 등이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이를 개선해달라는 목소리도 커졌다”고 말하고, “청계천 복원공사에 따라 설치된 왕십리 가변차로로 인하여 중구와 성동구 주민들은 지난 15년간 통행권 제한과 불필요한 비용 발생을 감수해왔다”고 주장했다. 최판술 의원은 “이제라도 왕십리로 가변차로가 폐지되고 신당역 교차로 청계천 방면 좌회전과 구 도로교통공단 사거리 금호동 방면 좌회전이 설치되게 된 것을 환영한다”고 밝히고, “왕십리로를 이용하는 시민들의 교통안전과 지역 접근성이 크게 향상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 의원은 서울시에 확인해 본 결과 왕십리로 가변차로 폐지와 신당역 교차로 및 구 도로교통공단 사거리 좌회전 신설은 실시설계 기간 소요와 한남2고가 철거 및 중앙버스전용차로 공사에 의한 교통혼잡을 고려하여 2018년도에 공사가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초롱초롱해진 청계천… 서울 빛초롱 축제

    초롱초롱해진 청계천… 서울 빛초롱 축제

    ‘2017 서울 빛초롱 축제’를 하루 앞둔 2일 서울 종로구 청계천에서 형형색색 전시등이 불을 밝히고 있다. 올해 아홉 번째로 열리는 빛초롱 축제는 100여일 앞으로 다가온 평창동계올림픽을 주제로 오는 19일까지 열린다. 이호정 전문기자 hojeong@seoul.co.kr
  •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모던 도시’ 경성… 식민시대 지식인의 자조 위에 서다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모던 도시’ 경성… 식민시대 지식인의 자조 위에 서다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7 서울미래유산-랜드투어’ 제21차 ‘서울의 문학-구보씨의 경성기행’ 편이 지난 10월 28일 서울 다동과 소공동, 남대문로 일대에서 진행됐다. 답사단은 구보 박태원(1910~1986)의 자전적 도시탐구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 나오는 주인공의 행적을 쫓았다.대표적인 모더니스트 소설가 박태원이 태어나 자란 청계천변 다동 집과 종로 화신백화점(종로타워)을 지나 구보가 들락날락한 소공동 커피 다방 ‘낙랑파라’ 동선을 따라 걸었다. 당대 유일의 모던 도시이자 근대 문학의 고향 경성의 하루를 체험했다. 웨스틴조선호텔로 둔갑한 환구단과 조만간 호텔로 변할 소공동 대관정터, 맞춤양복점촌을 둘러보면서 사라진 것, 사라질 것에 대한 아쉬움을 느꼈다. 옛 미쓰코시백화점(신세계백화점)과 조선은행(한국은행 화폐박물관), 2층 한옥상가(남대문로4가)를 돌아본 뒤 경성부청(서울시청) 옥상에서 2시간30분의 경성 기행을 마무리했다. 해설을 맡은 최서향 서울도시문화지도사는 쉽지 않은 문학 여정을 능숙하게 이끌었다. 모던보이 구보씨가 하루종일 돌아다닌 1934년 어느 날의 경성이라는 식민도시는 일제강점기 서울의 옛 지명이다. 잊어버리고 싶지만 물리적으로 지워 버릴 수 없는 도시다. ‘도시는 근대성의 산실이자 임상실험실이며 도서관’이라는 글귀처럼 경성은 서울의 모태(母胎)다. 서울은 2000년이라는 세월을 버텨 온 오래된 도시이지만 불과 40년에 불과한 단말마의 짧은 시간이 남긴 자취 위에 서 있다. 경성은 도시계획에 의해 물리적으로 태어난 도시다. 산과 고개 그리고 하천으로 이뤄진 무위자연의 도시 한양은 도로와 상하수도, 전기, 철근 구조물이 지배하는 도시로 개조됐다. 경성은 수도가 아닌 일개 지방도시였다. 경기도의 도청 소재지였다. 그러나 경성은 중국에서 도입되거나 경유하던 선진 문물이 거꾸로 흐른 첫 도시였다. 일본이 도입한 서구문명을 일본화한 뒤 한국으로 역류시킨 것이 경성 모더니즘의 특징이다. 경성은 일본식 서구문명의 충실한 임상실험실이었다. 이 시기 광화문 앞 육조거리와 황토마루가 사라지고 태평로가 개설됐다. 종묘와 창덕궁을 분리 관통하는 오늘의 율곡로가 개설된 것도 이 시대의 도시계획이다. 경성도시계획의 최종 목적은 왕조의 잔재를 없애고, 대륙침략용 병참기지를 건설하는 데 있었다. 일제는 신도시를 외곽에 따로 건설하는 대신 구시가지를 폭력적으로 왜곡해 건설하는 방식을 택했다. 한양도성과 5대궁 등 조선왕조의 상징적 도시 구조와 건축물을 훼손하는 방식으로 방사형 도시 구조를 만들었다. 서울은 경성의 도시계획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기원을 경성에서 찾는 최근 학계의 연구 동향을 부인하기 어렵다. 식민지 자본주의론의 수용 여부를 떠나 중세 성곽도시 한양의 폭발적 팽창은 경성에서 비롯됐다. 경성은 수도를 이르는 보통명사에서 서울을 이르는 지역명으로 선택됐을 뿐이다. 수도를 가리키는 용어는 경도, 경조, 경, 수부, 수선, 도성, 도부, 도, 도읍, 황성, 황도, 왕도, 한도, 사대문안, 경성 등이 두루 쓰였다. 아쉽게도 우리가 늘 입에 달고 사는 서울이라는 지명이 언제, 어떻게 생성되고 사용됐는지 경위를 규명하지 못한다. 서울이라는 순우리말 지명은 한자 기록물에 거의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이라는 지명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수도의 이름이다. 서울이라는 지명의 첫 등장은 1896년 4월 7일 발행된 독립신문 창간호 한글판에 ‘서울’, 영문판에 ‘SEOUL’이라는 기록이다. 서울이라는 수도명이 지명으로 공식화된 것도 1946년 9월 28일 미 군정청에 의해서다. 광복 1주년을 맞아 경기도에서 독립돼 특별시로 승격하면서 받은 기념 선물이었다. 우리 문학사에서 소설가 구보씨는 세 번 등장한다. 1930년대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서 구보씨가 식민 도시 경성의 거리를 거닐던 지식인의 상실과 자조를 보였다면 1970년대 최인훈이 동명 소설을 통해 산업화 시대 서울을 관찰했고, 1990년대에는 주인석이 ‘소설가 구보씨의 하루’라는 작품에서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하루를 정밀 스케치했다.1920~30년대 경성은 외형상 근대적 도시로 변모해 가고 있었다. 가로등과 전차가 등장하고, 기와집과 초가집밖에 못 본 동시대인에게 화강석을 붙인 철근 콘크리트 고층 건물들은 신세계였다. 경성역(서울역), 경성부청, 조선총독부(중앙청), 조선은행, 미쓰코시백화점이 대표적 건축물이었다. 모든 문예사조를 하나로 묶는 경성 모더니즘의 태동이었다. 빗장 풀린 숭례문은 몰락한 왕조의 상징이었고, 화신백화점의 엘리베이터와 미쓰코시백화점의 옥상 정원은 축복이었으며, ‘도회의 항구’ 경성역은 억압에서 벗어날 유일한 출구였다. 두통과 피로를 느끼며 집을 나섰던 구보는 ‘짝패’ 이상과 거나하게 술을 마신 뒤 종로에서 헤어져 새벽 두 시에 집으로 돌아온다. 그의 화두는 “이 식민도시 속에서 어떻게 행복할 수 있을까”였다. 이상으로부터 “좋은 소설을 쓰시오”라는 충고를 받자 ‘참말 좋은 소설을 쓰리라’라고 다짐한다. 불행한 도시 경성을 행복하게 만들려는 식민지 작가의 해법이었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다음 일정 : 서울의 문학 <2> 근대문학거리 여행 ■일시: 4일(토) 오전 10시 청계광장 ■신청(무료) : 서울시 서울미래유산(futureheritage.seoul.go)
  •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나의 서울미래유산 답사기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나의 서울미래유산 답사기

    1930년대 암울한 현실 화려한 도시문화 공존 ‘구보’는 행복 찾았을까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속 경성 여행을 떠났다. 1930년대 일제 치하의 암울하면서도 화려한 도시문화가 시작됐던 그 시대의 경성은 어떠했을까. 박태원의 자전적 소설을 따라 산책하듯 떠나는 여행은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이탈리안 레스토랑인 ‘라칸티나’와 박태원이 살았던 동네의 ‘무교동 북어국집’에서 탐방이 시작됐다. 청계천 복개로 인해 지금은 남아 있지 않은 박태원의 집터 다옥정 7번지 근처에서 박태원의 호 ‘구보’의 배경, 박태원의 삶, 그의 절친 이상 등에 대한 설명을 듣고 여기에 시각 자료, 소설의 한 대목이 더해지면서 참가자들은 어느새 1930년대 경성으로 돌아가 있었다.엘리트 백수였던 구보가 어머니의 걱정, 근심을 피해 서 있었다는 광교다리 모퉁이를 거쳐 종로 네거리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화신백화점’(종로타워)을 바라보며 실제로 화신백화점에 대한 추억을 가지고 있는 참가자들은 깊은 감회에 젖었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전차가 다녔던 경로를 따라 걸었다. 오래된 벽돌조 건물 ‘광통관’(우리은행)을 지나 등록문화재 1호로 지정된 ‘경성전기’(한국전력), 구보가 전차에서 내렸다는 ‘조선은행’(한국은행) 앞까지 걸음은 계속됐다. 소공동과 남대문은 근대 금융의 중심지이자 1930년대 경성에서 가장 화려하고 모던한 거리였던 곳이다. 조선은행 앞에 도착한 전차에서 내려 장곡천정(소공동)으로 향하는 구보를 따라 일행은 바쁘게 움직였다. 소공로 골목에서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해창양복점’을 볼 수 있었다. 양복점은 이전하고 간판만이 남아 있었다. 커피 한 잔이 간절히 생각나는 그때 구보도 ‘낙랑파라’(화가 이순석이 운영한 최초의 커피 다방)에 들러 차도 마시고 옛 친구도 만났다고 한다. 경성에서 나고 자란 구보의 도시적 속성이 지금과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이다. 일행은 구보가 바라봤던 ‘대한문’을 바라보고, 소설의 한 부분을 들으며 구보가 느꼈던 식민지 국민이자 지식인으로서의 느낌을 같이 헤아려 본다. 소공동길을 따라 서울광장으로 향하는 길에 웨스틴조선호텔 속에 둘러싸인 황궁우를 지나 남대문로 4가에 있는 2층 한옥 상가로 향했다. 일제강점기의 일본 상인 틈에서도 끝까지 조선인이 소유했기에 남았다는 해설을 듣고 가슴이 뭉클해졌다. 일행은 마지막 코스인 서울도서관으로 향했다. 구보가 하루 종일 경성을 돌아다니며 생각했던 ‘행복’의 의미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지 생각했다. 김미선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서울문화유산팀
  • [이 가을 담고 싶다… 이 마을 걷고 싶다] 중구 기억의 순례길

    [이 가을 담고 싶다… 이 마을 걷고 싶다] 중구 기억의 순례길

    서울 중구는 지역의 주요 천주교 성지와 역사적 장소를 돌아볼 수 있는 도보 탐방 코스인 ‘순례역사길’을 새롭게 선보인다고 31일 밝혔다.올해로 지어진 지 120년이 된 순수 고딕 양식 건축물인 명동대성당을 출발해 이벽의 집터, 좌포도청·의금부·전옥서·우포도청 터,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 성당, 경기감영 터, 서소문역사공원, 중림동 약현성당까지 10개 지점을 지난다. 모두 조선 후기 사회변혁을 꿈꾼 이들의 흔적과 이야기가 남아 있는 곳이다. 명동대성당은 통역관 김범우의 집이 있던 자리에 세워졌다. 김범우는 1785년 신앙 집회를 하다가 형조 관원에게 발각돼 압송된 명례방 사건으로 순교했다. 이 자리에 명동대성당이 들어선 것이며 성당 지하에는 성인 5명, 순교자 4명의 유해가 안치돼 있다. 청계천 수표교 북측 인근에 있는 이벽의 집터는 1784년 우리나라 최초 영세를 받은 이승훈이 이벽, 정약용 등에게 첫 세례를 했던 곳으로 알려졌다. 코스의 종착지인 약현성당은 우리나라 최초의 교회이자 최초의 벽돌조 건물이다. 1892년 완공돼 명동대성당보다도 6년 앞섰다. 성당은 야트막한 언덕 위에 지어졌는데 이 같은 입지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다고 한다. ‘약현’은 고개 이름인데 예전에 약초밭이 많아 붙여진 이름이다. 도보 탐방 코스는 6㎞로 전부 돌아보는 데 2시간가량이 소요된다. 매주 수·토요일 오전 10시에 출발하며, 4명 이상이면 해설사를 배정받을 수 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소속 현양안내자 18명이 순례역사길 해설사로 나선다. 모두 2년 이상 경력을 갖고 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마천루 즐비한 ‘부촌 강남’… 60년 초고속 성장의 자화상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마천루 즐비한 ‘부촌 강남’… 60년 초고속 성장의 자화상

    서울신문이 서울시 및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7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20차 ‘서울의 가을 단풍 빨강-강남 세계가 즐기다’ 편이 지난 21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과 청담동, 삼성동 일대에서 진행됐다. 미래투어 참가자들은 압구정역 2번 출구에서 집결, 도산공원과 압구정 패션거리, K스타거리, 청담동 명품거리를 따라 걸으며 ‘강남 중의 강남’을 느꼈다. 삼성동 청담배수지공원에 올라 남산부터 잠실까지 한강 강폭에 담긴 서울의 가을을 감상한 뒤 3시간에 가까운 일정을 마무리했다. 답사에 동참한 금융전문가 엄길청 경기대 교수는 강남 자본의 흐름을 짚는 즉석 10분 특강을 보너스로 제공해 박수를 받았다. 해설을 맡은 이기훈 서울도시문화지도사는 청담동에서 나고 자라며 겪은 실감나는 경험담에 버무린 진짜 강남 이야기를 들려줬다.서울은 전통적으로 남과 북으로 분화하는 이중 도시의 경향성을 보인다. 조선 500년 내내 청계천을 경계로 북촌과 남촌으로 갈라졌으며, 일제강점기에는 종로통 조선인 거주지와 본정통(충무로) 일본인 거주지로 심화됐다. 서울의 확장과 한강 개발을 계기로 급기야 강북과 강남 2개의 도시로 양분되기에 이르렀다. 서울의 전통적 남북 경계선이 청계천에서 한강으로 남하한 셈이다. 강북은 구도심, 강남은 신도심이 오래된 도시의 서구식 개념이다. 구도심은 궁궐과 한옥 위주 옛 모습으로 유지되고, 신도심에 빌딩과 아파트가 들어서야 했다. 그러나 서울로 몰리는 일극주의는 구도심을 내버려 두지 않았다. 도심 재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강북 역사 도심은 길을 잃었고 강남이 현대 서울이 됐다. 강남 속에 또 다른 강남이 존재한다. 강남은 탄천과 양재천을 따라 동서로 나뉘는 자연지형을 갖고 있지만 인간이 그린 강남 개발 계획선은 강남대로와 테헤란로를 따라 십자(十)형으로 강남을 분리했다. 경부고속도로를 따라 동서로 이어지는 강남대로와 달리 테헤란로는 한강 쪽 평지와 대모산(290m), 구룡산(308m) 쪽 구릉지를 남북으로 가른다. 강남역사거리에서 송파구 잠실동 삼성교까지 4000m 이어지는 테헤란로가 강남을 다시 한번 남북으로 절단하는 모양새를 이루고 있다. 이른바 ‘테북’(테헤란로 북쪽 지역)과 ‘테남’(테헤란로 남쪽 지역)이라는 부동산 업계발 신조어는 문화사회학과 경제지리학 용어로 진화했다. 테북은 압구정동과 청담동, 삼성동, 신사동, 논현동, 학동 등을 말한다. 일찌감치 자리잡은 터줏대감 격 부촌이다. 반면 테남은 역삼동, 대치동, 개포동, 도곡동 등 자녀 교육을 위해 강남으로 이주한 자수성가형 전문직 종사자들의 거주 공간이다. 같은 강남이지만 주민 구성과 생활환경, 교육 방식에서 차이를 보인다. 조선시대 노론 권력자의 거주지 청계천 위쪽 북촌과 청계천 아래쪽 남인·무반 거주지 남촌을 상기하게 한다. 무엇이 테북을 강남 중의 강남으로 만들었나. 본래 강남은 오늘의 서초구인 영동1지구 개발에서 시작돼 지금의 강남구인 영동2지구로 확장됐다. 영동1지구는 반포, 잠원 등 고층 아파트 단지가 대부분이다. 영동2지구인 압구정동, 논현동, 학동, 청담동에는 공무원아파트와 시영주택 등 저층이 들어섰다. 손쉽게 고급주택, 빌라, 백화점, 플래그십 스토어로 변신할 수 있었다.강남 개발사에서 가장 유명한 어록은 “강남 땅에서 장래성이 있고, 투자가치가 있는 땅은 어디인가”라는 박정희 정권의 초실세 경호실장 박종규의 1970년 1월 질문이다. 도시계획을 짠 실무자 윤진우 당시 서울시 도시계획과장의 화답은 “탄천을 경계로 그 서부 지역 일대”였다. 박종규는 탄천 서쪽을 집중 매입한 뒤 되팔아 5000억원이 넘는 대선 자금을 마련했다. 탄천 서쪽은 1988년 서초구가 분구했을 때 오늘의 강남구로 남았다. 조선시대 서울 밖 지세를 살피려면 고산자 김정호의 경조오부도를 펼치면 된다. 지도에서 한강 남쪽 강남 땅에 적힌 지명은 봉은사, 압구정, 사평리(신사동), 상림(잠원) 등 4개뿐이다. ‘영등포의 동쪽’에 있다는 이유로 영동이라고 불린 것처럼 1963년 강남이 서울로 편입되기 전까지 서울에서 한강 이남은 영등포가 유일했다. 한적한 농촌, 강남의 옛 지명은 논고개(논현), 학마을(학동), 청숫골(청담), 말죽거리(역삼), 독부리(도곡), 한티(대치), 개펄(개포)처럼 소박했다.한강을 바라보면서 한명회의 압구정 정자가 있던 옛 한강을 상상하는 일은 부질없다.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72동 앞이 옛 압구정 터다. 표석과 돌비석이 남아 있다. 72동은 단지 상가와 구정초등학교의 중간쯤에 있다. 단지 안에 들어가 보면 아파트를 짓기 위해 한강을 얼마나 많이 메웠는지 실감할 수 있다. 경조오부도에 기록된 봉은사는 절 이름이 아니다. 오늘의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무역센터, 아셈타워, 공항터미널, 옛 한국전력 부지 33만㎡(약 10만평)를 포함한 지명이다. 삼성동이라는 지명은 봉은사와 저자도, 무동도 세 마을을 합쳐 하나의 행정구역이 됐다는 뜻에서 붙였다. 강남은 불과 60년 만에 이룩한 초고속 성장의 빛과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한국 사회의 자화상이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다음 일정 ▶ 서울의 문학1(구보씨의 경성기행) ■일시 : 28일(토) 오전 10시 시청역 5번 출구 앞 ■신청(무료) : 서울시 서울미래유산(futureheritage.seoul.go)
  • 文 “노동계 다 함께 못해 아쉬워”…김주영 ‘노발, 대발’ 화답

    文 “노동계 다 함께 못해 아쉬워”…김주영 ‘노발, 대발’ 화답

    만찬 메뉴 추어탕·전어 나와 수국·꿀 섞은 평창 홍보용 茶 노동계 인사들에게 첫 대접 한국 노동계의 상징적 존재인 고 전태일(1948~1970) 열사가 즐겨 먹었던 콩나물밥, 그가 치열하게 살아온 청계천에서 80년간 추어탕의 팔아온 ‘용금옥’의 추어탕, 전어무침으로 청와대는 노동계를 위한 밥상을 차렸다.문재인 대통령은 24일 취임 후 처음으로 한국노총을 비롯한 노동계 인사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존중과 화합의 의미를 담아 식사를 대접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추어탕은 청계천을 중심으로 서민의 가을 보양식으로 발전해온 공동체 음식이자 상생과 화합의 대표적 음식”이라고 소개했다. 전어는 ‘전어 굽는 냄새에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말처럼 대화의 자리, 즉 노사정위에서 함께 만나길 바란다는 의미를 담아 마련했다. 식전 차로는 ‘평창의 고요한 아침’이란 이름의 평창동계올림픽 홍보용 차를 올렸다. 세계 정상들에게 선물하려고 평창의 수국과 동서양의 허브 꿀을 섞어 특별 제작했는데 노동계 인사들에게 가장 먼저 대접한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블렌딩 홍차를 올린 이유에 대해 “서로 다르더라도 갈등과 반목하는 게 아니라 더 좋은 향을 만들어 가는 재료로 활용되도록 하자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음식 하나하나에 의미를 담은 만찬 식탁이었지만 노동계의 양대 축인 민주노총이 참석하지 않아 모처럼 마련한 노동계와 정부 간 화합의 자리는 ‘반쪽’으로 진행됐다. 문 대통령은 만찬에 앞서 “오늘 만남이 많이 기다려지기도, 조금 설레기도 했고 한편으론 노동계와의 만남이 너무 늦어지는 것 같아 초조하기도 했다”면서 “그런데 노동계가 다 함께하지 못해 아쉽다”고 서운한 마음을 표시했다.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은 참석자를 대표해 “대한민국 절반에 가까운 노동자들의 행복해야 대한민국이 행복하다”면서 “한국노총은 그 길에 동참해 대한민국이 한 단계 더 성숙하고 나아가길 희망한다”고 화답했다. 문 대통령이 건배사를 청하자 김 위원장은 “노동자가 발전해야 대한민국이 발전한다. 노총이 발전해야 대통령도 발전한다”면서 앞글자를 딴 ‘노발, 대발’이란 건배사를 했고 좌중에는 폭소가 터졌다. 만찬은 1시간 20분간 진행됐으며, 만찬 전 45분의 비공개 간담회를 포함해 문 대통령과 노동계는 2시간가량 대화를 나눴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文대통령 만난 한노총 위원장 ‘노발대발’ 소리지른 이유

    文대통령 만난 한노총 위원장 ‘노발대발’ 소리지른 이유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 건배사로 ‘노발대발’문 대통령,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 만들겠다”“노동계와 정부 간 국정파트너 관계 복원 시급”민노총 지도부 불참에 “노동계가 다 함께하지 못해 아쉽다” 24일 문재인 대통령과 노동계가 만난 자리에서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이 ‘노발대발’을 외쳤다.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과 만찬석상에서 “대한민국 절반에 가까운 노동자들이 행복해야 대한민국이 행복하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하며 “노동자가 발전해야 대한민국이 발전하고 노총이 발전해야 대통령도 발전한다”는 뜻의 건배사로 ‘노발’을 선창하고 다른 참석자들이 ‘대발’을 외치게 했다. 이날 문 대통령과 노동계 참석자들은 청와대 본관 접견실에서 오후 5시 30분부터 45분간 비공개 환담을 가졌다. 노동계 인사들과 만난 접견실은 대통령이 정상급 외빈을 만날 때 사용되는 장소로 알려져 있다. 티타임에는 ‘평창의 고요한 아침’이라는 이름이 붙은 평창동계올림픽 홍보용 차로 평창의 수국과 동서양의 허브 꿀을 섞어 만든 차로 노사의 갈등과 반목을 없애자는 뜻이라고 청와대 관계자는 설명했다. 티타임을 마친 뒤 문 대통령과 참석자들은 만찬장으로 자리를 옮겨 환담을 이어갔다. 문 대통령은 “노동계와 처음 만나는 이 자리가 많이 기다려졌고 조금 설레기도 했는데 한편으로는 노동계와의 만남이 늦어지는 것 같아 초조하기도 했다”고 운을 띄웠다.곧이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지도부가 만찬 참석을 거부한 것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노동계가 다 함께 하지 못해 아쉽다”고 서운해 했다. 문 대통령은 한국노총이 노사정 ‘8자 회의’를 통해 사회적 대화를 복원하자고 제안한데 대해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노사정위원회와 노사정 대표자회의 등을 통해 사회적 대화가 진척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은 “오늘 대통령과의 대화가 사회적 대화 복원을 위해 제안한 한국노총의 8자회의 취지를 받아들인 것으로 이해한다”며 “한국노총은 사회적 대화를 통해 노동문제 뿐만 아니라 주거, 교육, 사회안전망 등 우리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선언하며 “노동계와 정부 사이에 국정 파트너로서의 관계를 복원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0년 정도 우리 노동은 아주 소외되고 배제됐으며 국정 파트너로 인정받지 못했다”며 이 같이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노동 정책이 정부에 의해 일방향으로 추진돼 왔다”며 “그 때문에 노동조합 조직률이 많이 떨어졌고 노동자 개개인의 삶도 나빠지면서 경제적 불평등이 심해졌고 양극화도 격심해 졌다”고 평가했다. 문 대통령은 “새 정부는 우리 사회를 비정상적으로 만든 적폐를 청산하고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자는 것을 최우선 국정 목표로 하고 있다”며 “노동분야에서 국정 목표는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노동이 존중받는 세상은 대통령과 정부의 의지만으로는 어려운 만큼 노동계가 함께 해줬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문 대통령은 “노동계와 정부는 함께하고 협력을 얻어야만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라는 국정 목표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다”며 “오늘 만남은 노-정이 국정 파트너로 관계를 회복하는데 중요한 출발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한편 이날 만찬의 메인메뉴로는 서울 청계천 옆에서 80년 넘게 운영돼 온 용금옥 식당에서 공수해 온 추어탕과 전태일 열사가 즐거 먹은 것으로 알려진 콩나물밥이 차려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청계천은 노동계의 뿌리이고 정신인 곳으로 전태일 열사 등 노동계 인사들이 치열하게 살았던 곳”이라며 “이곳에서 공수한 서민의 가을철 보양식 추어탕은 정부와 노동계의 상생과 화합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홍차·추어탕·콩나물밥·복분자주…노동계와의 靑만찬 메뉴

    홍차·추어탕·콩나물밥·복분자주…노동계와의 靑만찬 메뉴

    청와대에서 25일 오후 문재인 대통령과 노동계 인사들과의 만찬 테이블에 오를 나올 음식이 눈길을 끈다.청와대가 정상급 외빈 접견 때 사용하는 본관 접견실을 사전환담 장소로 선정했을 정도로 노동계를 예우하겠다는 뜻을 밝힌 만큼 메뉴도 크게 신경을 썼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청와대에 따르면 사전환담과 만찬 사이에 진행되는 티타임에 문 대통령이 내놓을 차는 ‘평창의 고요한 아침’이라는 이름의 홍차다. 청와대 관계자는 기자들을 만나 “평창 수국과 동서양의 허브 꿀을 조화시켜 블렌딩한 차”라면서 “평창동계올림픽 홍보를 위해 특별히 제작 중인 차”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이 세계 정상들을 만났을 때 선물하고자 만들고 있는 차인데 그에 앞서 이날 티타임에서 첫선을 보임으로써 노동계를 존중한다는 뜻을 우회적으로 나타내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어서 진행되는 만찬의 메인메뉴는 추어탕이다.추어탕은 청계천 옆에서 80년 넘게 운영돼 온 ‘용금옥’에서 공수할 예정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청계천은 노동계의 뿌리이고 정신인 곳으로 전태일 열사 등 노동계 인사들이 치열하게 살았던 곳”이라며 “이곳에서 공수한 서민의 가을철 보양식 추어탕은 상생과 화합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전태일 열사가 즐겨 먹은 것으로 알려진 콩나물밥도 식탁에 오른다. 만찬 메뉴에는 전어도 포함됐다.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한다’는 가을 전어에는 ‘대화의 장소에서 만나길 소망한다’는 뜻이 담겼다고 청와대는 설명했다. 음식에 곁들일 술은 복분자주인 ‘선운’이다. 전북 고창 지역에서 난 복분자로 만들어 황토 토굴에서 발효해 숙성시킨 술이다. 2016 대한민국 우리술 품평회에서 과실주 부문 대상을 받은 술로 2005년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때 공식 만찬용 술로 쓰인 바 있다. 연합뉴스
  •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숲과 물 사이 헤매던 뚝섬…서울숲이 살려낸 공간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숲과 물 사이 헤매던 뚝섬…서울숲이 살려낸 공간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7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18차 ‘서울의 물길-중랑천 물초록이야기’ 편이 지난달 23일 성동구 서울숲에서 진행됐다. 한강과 중랑천 사이에 조성된 약 49만 6000㎡(약 15만평)에 이르는 천혜의 숲에서 초가을 피톤치드를 맘껏 들이마실 수 있는 힐링의 시간이었다. 참가자들은 이날 서울숲 방문자센터에 집결, 옛 뚝섬 승마장을 거쳐 은행나무길을 따라 걷다가 사슴 방사장과 나비정원에서 잠시 동심에 잠겼다. 이어 성수구름다리에 올라 멀리 성수대교참사위령탑을 조망한 뒤 수도박물관에서 투어를 마무리했다. 서울숲의 정체성에 어울리게 숲과 물이라는 2개의 주제로 나눠 진행했다. 1부는 김은선 서울도시문화지도사가 서울숲을, 2부는 황미선 서울도시문화지도사가 중랑천과 수도박물관을 각각 맡았다. 참가자들은 보다 전문성 있고 개성 있는 해설을 즐겼다.공자는 논어에서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이름부터 바로잡아야 한다”라고 정명(定名)을 설파했다. 사람의 이름을 인명(人名)이라고 한다면 땅의 이름은 지명(地名)이다. 지명이란 사람을 제외한 모든 자연과 삼라만상의 이름을 일컫는다. 사람의 지리적, 역사적, 민속학적, 유전학적, 문화적 특성이 지명에 깃들어 있다. 지명은 무언의 역사이다. 지명은 땅의 내력과 곡절을 숨죽여 외친다. 서술되지 않은 미지의 역사를 알려주는 열쇠이다. 우리에겐 서울숲이라는 지명보다 뚝섬(뚝도)이라는 지명이 익숙하다. 서울숲이라는 지명이 우리 곁에 온 지 이제 겨우 10여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새 지명이 공간을 지배하려면 더 많은 시간과 변화가 필요할 것이다.뚝섬이라는 지명은 어떻게 생성됐을까. 뚝섬은 서울 사대문을 가로질러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른 청계천이 동대문을 지나 중랑천과 만난 뒤 한강과 합류하는 지점에 형성된 저지대 범람원이다. 불과 45년 전 지금의 동호대교 아래 한강에는 저자도라는 36만평에 이르는 큰 섬이 떠 있었다. 3면이 하천에 둘러싸인 뚝섬에 서서 주위를 둘러보면 왜 옛 사람들이 이곳을 섬으로 인식했는지 체감할 수 있다. 한양을 드나들려면 조선에서 가장 긴 돌다리인 살곶이다리를 건너거나 배를 타야 하는 경계의 땅을 섬이라고 인식한 셈이다. 지금도 동부간선도로와 강변북로, 성수대교, 용비교, 내부순환도로가 복잡하게 교차하는 이곳에서 뭍과 섬을 분간하기란 쉽지 않다. 성저십리(城底十里)란 사대문 밖 서울을 이른다. 북쪽으로 우이천, 서쪽으로 모래내(사천), 남쪽으로 한강, 동쪽으로 중랑천을 사방 자연경계선으로 삼았다. 이 중 동대문 밖에서 아차산까지 드넓게 펼쳐진 동쪽 벌판이 동교(東郊)였다. 농사와 목축이 주로 이뤄졌고 사냥터로도 쓰였다. 팔도를 향해 육로와 수로가 열린 교통의 요충지였다. 2개의 역(청파역, 노원역)과 4개의 원(전관원, 이태원, 홍제원, 보제원) 중 동남쪽 관용 숙소인 전관원이 지금의 성동교 옆 행당중학교쯤에 있었다. 중랑천과 청계천이 만나는 한양대 앞 살곶이다리(전관교)는 한양과 뚝섬의 결절점이었고 뚝섬은 광나루, 송파나루의 길목이었다.역사적 시간과 지리적 경관은 서로 얽혀 생성되고 소멸한다. 지역성은 시간과 장소가 결합돼 나타나는 관성의 산물이다. 경상·강원·충청 3도 물산의 종착지이자 군마가 질주하던 뚝섬 강변에 정수장이 생기고, 경마장이 깃든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다. 유통이 원활한 곳에 사람이 꼬이는 법이다. 중랑천 바깥에서 아차산 안쪽까지 땅의 통칭이 뚝섬이었다. 1946년 서울시가 서울특별시로 승격되면서 오늘의 성수동1~2가, 화양동, 송정동, 모진동, 능동, 중곡동, 군자동, 면목동, 구의동, 광장동, 자양동, 신천동, 잠실동이 서울로 편입됐다. 1970년대 한강개발사업으로 강남이 되기 전까지 잠실도 뚝섬의 일부였다. 뚝섬의 지역사는 말(馬)의 역사와 궤를 함께한다. 조선은 목축이 금지된 병자호란 이전까지 전국 말목장에서 4만~5만 마리의 말을 길렀고 이 중 뚝섬은 최대 목축지였다. 말의 조상에게 제사를 지낸 마조단(馬祖壇)이 한양대 캠퍼스 안에 남아 있고, 말에서 유래한 마장동·자양동·면목동·송정동·장안평이라는 지명이 건재하다. 왕의 군마 시찰과 사냥용 누정인 낙천정(자양동), 화양정(화양리)이나 마장동 축산시장도 흔적이다.1908년 준공된 뚝도정수장은 서울 최초의 근대적 상수도 수원지였다. 서울시민 3명 중 1명이 뚝섬물을 먹었다. 제방이 세워지고 농경지 개간이 본격화됐다. 1930년부터 경성궤도주식회사가 운영한 동대문~뚝섬 구간 13.6㎞의 뚝도선이 변화를 몰고 왔다. 동대문에서 왕십리까지는 전차로, 왕십리에서 뚝섬까지는 기동차라는 특이한 이름으로 불린 이 협궤열차는 1966년 운행이 중단될 때까지 채소와 곡물 그리고 숯과 석탄을 실어날랐다. 1960~70년대 뚝섬은 피서지의 추억으로 남았다. 하루 평균 10만명, 최대 20만명의 인파가 강수욕과 물놀이를 위해 몰렸다. 1986년 한강종합개발로 사라질 때까지 광나루, 우이동, 정릉과 함께 피서의 대명사였다. 성수동 경동초등학교가 옛 뚝섬유원지의 여름경찰서 자리다. 뚝섬의 오명은 성수동이 뒤집어썼다. 군사가 주둔하던 진터마을의 무예수련 장소인 성덕정(聖德亭)의 성(聖)자와 수원지(水源池)의 수(水)자를 합성한 새 지명인 성수동은 성수동 공업단지, 중금속오염하천 성수천, 성수대교 붕괴 등 비호감 이미지로 점철됐다. 그나마 서울숲이 자리를 잡으면서 군마가 갈기를 휘날리며 내달리던 드넓은 들판과 한강변 숲이 어우러진 뚝섬이라는 공간의 역사성이 되살아나는 듯하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다음 일정 <서울의 가을 - 호수와 공원으로 가을여행> ■일시: 14일 오전 10시 잠실역 11번 출구 앞 ■신청(무료) : 서울시 서울미래유산(futureheritage.seoul.go)
  • 예술로 물드는 서울...추석 연휴 거리에서 놀아볼까

    예술로 물드는 서울...추석 연휴 거리에서 놀아볼까

    추석 황금연휴 기간 평소보다 한산해진 서울 거리는 세계 예술가들의 퍼포먼스가 꽉 채운다. 가수 이승환 밴드의 공연부터 가을 하늘을 수놓는 불꽃쇼까지 다양한 공연을 무료로 감상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서울문화재단은 서울시와 함께 5~8일 서울광장과 도심 일대에서 ‘서울거리예술축제 2017’을 연다. 영국, 스페인, 아르헨티나, 스위스 등 해외 작품 총 16편을 포함해 총 8개국 48편이 150회에 걸쳐 진행된다. 특히 지난 겨울 광화문 광장의 감동을 전하기 위해 이번 축제의 주제를 ‘유쾌한 위로’로 정하고 남녀노소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작품들을 준비했다.개막작인 ‘무아레’는 스페인과 아르헨티나 배우들로 구성된 퍼포먼스팀 보알라가 음악에 맞춰 하늘을 날아오르는 공중 퍼포먼스다. 이승환 밴드의 ‘물어본다’, ‘세상에 뿌려진 사랑만큼’, ‘어떻게 사랑이 그래요’와 영국 록밴드 뒤샹 파일럿의 음악이 어우러진다. 5일과 6일 오후 8시 서울광장에서 볼 수 있다.광화문광장에서는 프랑스 그룹 랩스의 설치 작품인 ‘키프레임’을 볼 수 있다. 사람의 신체 동작과 움직임을 본떠 디자인된 캐릭터들이 ‘달리기와 점프’, ‘클래식 댄스’, ‘빛의 판타지’, ‘태권도 격투’ 등 6가지 테마에 따라 반짝인다. 8일까지 오후 7시부터 하루 4시간씩 감상할 수 있다. 할머니 모습의 로봇 인형이 청계천로와 무교로를 오가며 폐지를 줍는 오브제극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지난해 서울문화재단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 거리예술창작지원 선정작인 ‘고물수레’는 고물 수레를 끌고 폐지를 줍는 로봇 할머니의 모습을 통해 우리 이웃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한다. 6~8일 오후 5시 30분(8일은 6시)부터 50분간 공연된다.거리에서 펼쳐지는 특변한 무용 공연도 시민들을 만난다. 프랑스 얀 뢰르 무용단의 ‘그래비티.0’은 트램펄린과 구조물 위에서 구르고 뛰어다니거나 기어오르고 추락하는 등 중력에 몸을 맡긴듯한 다양한 동작을 보여준다. 한 공간에서 함께 살아가는 구성원들이 어떻게 개성을 유지하며 조화롭게 살아가는지 표현한 작품이다. 5일 오후 9시, 6일 오후 7시 광화문광장 북측광장에서 공연된다. 2001년 창단 이후 다양한 실험작을 선보여 온 LDP무용단의 ‘룩 룩’은 6일과 7일 오후 6시에 서울광장에서 펼쳐진다. 다양한 옷을 의상과 오브제로 동시에 활용해 나는 타인에게 어떻게 보여지고 우리는 남들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개인의 정체성에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이외에도 더 높이, 더 널리 날고 싶은 동시대 청년들의 이야기와 고민을 담은 프랑스 예술단체 컴퍼니 아도크의 이동형 거리극 ‘비상’, 훈련받은 시민 공연자 8명이 거리의 마사지사가 되어 공연을 관람하는 시민들에게 종이 마사지를 해주는 거리예술 단체 비주얼씨어터 꽃의 ‘마사지사’, 커다란 나무 기둥을 세우는 과정을 통해 가정을 지탱하는 가장들을 위로하는 스페인 호안 까딸라의 ‘기둥’ 등 현대인들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는 작품들도 주목할 만하다. 축제의 마지막 날인 8일 오후 7시부터 스페인의 데브루 벨자크와 한국 예술불꽃 화랑의 불꽃쇼가 펼쳐진다. 스페인팀이 세종대로부터 서울광장까지 이동하며 50분 동안 퍼포먼스를 선보이면 이어 한국팀이 서울광장에서 다양한 리듬에 맞춰 높낮이가 변하는 거대한 불기둥과 함께 30분간 공연한다. 2015년 KBS ‘탑밴드3’ 우승팀인 인디밴드 아시안체어샷의 무대가 이어진다. 축제 시간표와 공연별 자세한 문의 사항은 서울거리예술축제 홈페이지(www.festivalseoul.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문의 전화는 (02)3290-7090.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개발로 생긴 공간 ‘섬 아닌 섬’…철학책 같은 공원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개발로 생긴 공간 ‘섬 아닌 섬’…철학책 같은 공원

    40m 높이 신선 노닐던 봉우리 선유봉 홍수 방지·비행장·도로건설 위해 훼손 한강 개발로 섬 만들고 식수공장 설치 하류 오염되자 생태공원으로 재탄생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7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17회 ‘서울의 물길-한강 선유도공원 이야기’ 편이 지난 16일 서울 영등포구 343 선유도공원에서 진행됐다. 초행길 참석자들은 평소 선유도에 한 번쯤 와 보고 싶었지만 접근이 어려울 거라는 선입견에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나 양화대교와 선유교를 통해 너무 쉽게 집결 장소인 선유도 방문자 안내소에 도착했다. 합정동과 양평동을 잇는 양화대교를 가슴 위에 얹은 길고 잘룩한 섬에서 바라본 서울 풍광은 한강다리나 유람선에서는 접하지 못할 황홀경이었다.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 단위 참석자까지 삼삼오오 도착하면서 가을 야유회는 막이 올랐다. 전날 다리를 다친 최서향 서울도시문화지도사는 횔체어를 타고 이동하는 악전고투를 치르면서 성심껏 투어단을 안내했다.한양의 으뜸 명승은 뭐니 뭐니 해도 한강 풍광이었다. 중국에서 사신이 오거나, 시골 선비가 상경하거나 모임이 있으면 으레 찾는 곳이 한강이다. 강변 정자에서 경치를 구경하고, 배에 몸을 싣거나 봉우리에 오르는 여러 방법으로 즐겼다. 최고 절경은 선유도의 서호(西湖)와 저자도의 동호(東湖)였다. 서호는 오늘의 마포 하류 양화진 일대로 서강(西江)이라고도 불렀다. 선유봉과 잠두봉 두 개의 봉우리가 한강을 남북에서 마주 보는 지점이었다. 양화나루가 지척에 있었다. 그 선유봉이 선유도로, 잠두봉이 절두산으로 이름과 쓰임새가 변했다. 400년 전 잠두봉계회도, 250년 전 정선의 선유봉, 불과 50년 전 사진에 남아 있던 절세의 풍경은 전설이 됐다. 굽이치는 한강을 호수로 미화한 옛 사람들의 풍류마저 냉혹한 현실 세계가 됐다. 한강은 강이 아니라 잠실과 신곡 2개의 수중보에 갇힌 호수 신세로 전락했다. 옛 한강은 사람과 어우러지는 인문적 공간이었지만 지금의 한강은 도로와 다리로 차단된 격리 공간이 됐다. 두 차례의 한강 개발은 선유도라는 기형아를 낳았다. 신선이 노니는 선유봉은 40m 높이의 봉우리였고 주변은 10만평 가까운 모래벌이어서 양화리와 양평리를 걸어서 건넜다. 선유봉의 비극을 우리 손으로 쓰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다.선유봉 참수는 1925년 을축년 대홍수에서 비롯됐다. 일제는 남대문을 넘어 청계천까지 침범한 한강의 범람을 막고자 선유봉 머리를 잘라 둑을 쌓았다. 또 여의도비행장 건설용 자갈과 모래로 사용했다. 해방 이후 미군정 당국 역시 도로 개설용으로 계속 파헤치면서 몸통도 허물어졌다. 선유봉의 최후는 우리 손으로 마무리했다. 1965년 제2한강교(양화대교)를 놓으면서 세상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진 선유봉은 1968년 제1차 한강개발사업 이후 섬이 됐다. 선유봉과 양화진 사이 모래를 퍼내 강변북로 제방을 쌓은 것이다. 당당했던 봉우리는 콘크리트 옹벽에 둘러싸인 볼품없는 납작섬으로 둔갑했다. 1978년 영등포 공단 지역에 식수를 공급하기 위한 정수장이 건설됐다. 3만 3000평의 콘크리트 옹벽이 쳐진 선유정수장은 20여년 동안 금단의 영역이었다가 한강 하류의 오염으로 식수원 사용이 어려워지면서 2002년 공원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땅의 역사는 되풀이되는 것인가. 천하절경 봉우리였다가, 골재 채취로 평평해져 섬이 됐다가 식수 공장으로 변신했던 기구한 운명은 생태공원으로 마무리됐다. 공장에서 공원으로의 전환이 드라마틱하다. 이집트 기자 피라미드보다 33배나 큰 거대한 쓰레기산이 됐다가 공원으로 되돌아온 난지도처럼 여의도 땅을 메우느라 1968년 폭파됐다가 20년 만에 기적처럼 되살아난 밤섬처럼 땅의 본성은 속일 수 없는 법이다. 땅의 귀환이다. ‘한강의 기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명멸한 섬들의 변화를 더듬어 보면 한강 서울 시계에는 백마도, 난지도, 여의도, 밤섬(율도), 노들섬, 반포섬(기도), 저자도, 뚝섬, 부리도, 잠실섬, 무동도, 무학도(석도) 등 모두 12개의 섬이 실재했다. 이 중 난지도, 여의도, 뚝섬, 잠실섬 같은 4개의 큰 섬은 한강 개발 과정에서 육지가 됐고 백마도, 밤섬, 저자도, 부리도, 반포섬, 무동도, 무학도 같은 7개의 비교적 작은 섬은 물밑으로 사라졌다. 큰 섬을 육지로 만드는 과정에서 희생당했다. 밤섬, 선유도와 함께 이름 없는 밋밋한 모래언덕에 한강대교(한강인도교)가 놓이면서 돋워진 노들섬이 섬으로 이름을 올렸다. 반포섬을 없앤 대신 서래섬이라는 인공섬을 만들기도 했다. 무려 1400억원을 들인 세빛섬이라는 세계 최대 규모의 플로팅아일랜드가 생겼다. 12개에 이르는 한강의 섬 중 4개(여의도, 난지도, 뚝섬, 잠실)는 육지로 변했고, 5개(백마도, 저자도, 무동도, 부리도, 무학도)는 완전히 사라졌으며 1개(밤섬)는 되살아나 현재 한강에는 3개의 섬(밤섬, 선유도, 노들섬)과 2개의 인공섬(서래섬, 세빛섬) 등 모두 5개의 섬이 존재한다. 건축가 정기용은 “선유도 공원화는 해방 이후 시행된 공간계획 중 최초의 걸작품이자 철근콘크리트 구조물의 향연”이라고 절찬했다. 건축가 조한은 “선유도공원은 한 권의 철학책 같다. 시간의 변화 속에서 내가 어디에 있는지 묻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건축가 최준석은 “선유도공원엔 시계가 없다. 건축적 풍경이 돼 버린 과거, 현재, 미래가 있을 뿐”이라고 읊었다. 선유도는 파괴와 멸실의 암흑기를 거쳐 재생과 복원의 회복기를 맞고 있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다음 일정 <송파구 잠실 몽촌토성과 석촌호수 일대> ■일시:10월 14일 오전 10시 잠실역 11번 출구 ■신청(무료):서울시 서울미래유산(futureheritage.seoul.go) ※추석 연휴 토요일인 9월 30일과 10월 7일에는 투어 일정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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