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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정상회담의 성과와 과제/특별대담

    ◎한·소 관계,「아·태평화의 축」으로 등장/우호조약 제의는 남북한 대등 외교 신호/대미 전통관계 「제로섬」 안되게 조율해야/6·25,KAL기사건등 과거청산 구체언급 없어 아쉬움 한소 제주정상회담은 한반도를 둘러싼 냉전구조를 화해와 평화의 구도로 변경,동북아질서를 재편하는 시발점을 제시하는 등 성공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번 정상회담이 갖는 의미와 앞으로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질서 재정립에 미칠 영향 등에 대해 정종욱(서울대·국제정치학),김유남 교수(단국대·국제정치학)의 특별대담을 통해 분석해본다. ◇김유남 교수=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한국과 소련의 역할 및 위치가 상호 보완적인 관계라는 사실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할 수 있습니다. 경제적인 상호 보완의 관계뿐만 아니라 외교·안보면에서도 상호 보완을 요구하는 파트너임을 인식했다는 것입니다. 이제 이같은 한소 관계의 바탕 위에서 우리의 전통적인 대미 동반관계가 넌·제로섬(NON·ZERO­SUM)게임이 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이뤄져야 한다고 봅니다. 이번 맥락에서 볼 때 앞으로 노 대통령과 미국의 부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이뤄진다면 아시아·태평양지역 평화정착의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될 것입니다. 아무튼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소 관계가 아태지역 평화와 안전의 핵심으로 부각됨으로써 관계증진 방향에 따라 국제질서의 재편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아·태 재편 불가피 ◇정종욱 교수=이번 제주 한소정상회담은 한소 두 정상이 10개월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3번째의 대면을 가졌다는 그 자체가 대단히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고 봅니다. 제주회담에서 합의된 상징적 내용은 몰타체제를 제주에서 싹트게 하고 나아가 한반도와 아태지역의 탈냉전·신질서 정착으로 이어지도록 한소가 적극 노력키로 합의한 사실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반도에서의 긴장해소와 평화정착이 아태지역에서 새질서 형성에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는 것을 확인하고 이를 위해 한소가 계속 공동노력키로 합의한 점을 또한 지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 회담에서 양국 정상간에 대단히 많은 교감이 이뤄졌고 구체적 합의내용도 기대보다 많았다는 평가를 할 수 있지만 발표된 구체적 내용을 넘어 이번 제주회담이 갖는 상징적 의미는 아무리 높이 평가해도 지나치지 않으리라 봅니다. ○중국도 지지 확실 ◇김 교수=이번 회담에서 우리의 유엔가입 문제와 북한의 핵사찰관련 내용을 양정상이 완전한 합의를 본 것 같습니다. 특히 이들 문제와 관련,소련측이 중국과도 사전협의를 거쳤다는 점에서 우리에 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양대 비토세력 모두 우리를 묵시적으로 지지한 것으로 볼 수 있겠지요. 한소우호협력조약 체결약속 역시 소련과 북한간에 지난 61년 맺어진 소조 우호협력·상호원조조약과 연관지어 볼 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소련측이 한반도내의 2개의 코리아와 대등한 협력 파트너관계를 공식확인했다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미국과 동맹관계에 있는 우리나라와 소련의 우호협력조약이 성사되면 그것이 바로 동북아의 새로운 질서구축을 의미한다 하겠습니다. ◇정 교수=김 교수님도 말씀하셨지만 이번 회담에서 도출해낸 구체적 실질문제에 관한 합의는 크게 4가지로 집약해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한국이 금년내에 내게 돼 있는 유엔가입안건에 대해 소련측이 지지를 표시했다는 사실입니다. 소련측에서는 명확한 발표를 안 했지만 「양국 정상이 이 문제를 토의했고 우리측이 만족했다」는 한국측의 발표로 미뤄보아 소련이 우리의 유엔가입에 대해 지지를 표명하겠다는 확실한 약속을 하지 않았나 하는 추측이 가능합니다. 또 발표내용에서 고르바초프가 이 문제에 대해 중국과도 협의를 진행해왔다는 것을 밝힘에 따라 중국도 우리의 유엔가입에 대해 소련과 비슷한 입장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추측해 볼 수도 있습니다. 둘째로 우리의 관심의 초점인 북한의 핵개발에 대해 일소정상회담에 이어 한소 정상이 다시 이 문제를 거론했다는 사실입니다. 소련은 이 문제에 대해 원칙적인 의미에서 우리와 같은 입장을 표명함으로써 소련이 북한의 핵개발을 감시하고 나아가 북한이 국제핵안전협정에 의거한 핵사찰을 받도록 압력을 가하게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세 번째로는 한소 관계증진을 뒷받침하기 위해 양국이 우호협력조약을 체결키로 한 사실입니다. 더욱이 소련측이 먼저 제의,우리가 이를 받아들였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조약이 체결됨으로써 비록 군사적인 의미는 없지만 정치·경제분야 협력이 가속화돼 한소 관계는 새로운 단계로 도약하는 기틀을 마련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또 이 조약이 체결되면 북한과 소련간에 체결된 상호원조우호협력조약이 성격을 달리하게 되는 상황이 전개되리라 봅니다. 넷째로 사할린 유전개발에 한국이 공동참여하는 방안,시베리아 자원개발에 우리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방안 등 구체적 한소 경제협력방안이 합의된 사실입니다. 이로 인해 한소간에 다각적 경제협력이 급진전될 가능성도 열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김 교수=그러나 이번 회담에서 남북관계와 관련한 내용의 언급이 크게 두드러지지 않았다는 점은 다소 아쉽게 느껴집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일본에서는 일·북한간의 관계개선이 빠를수록 좋다고 언급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자주외교급신장 북한에 탈출구를 주고 남북 관계개선에 자극제가 될 수 있도록 미국과 북한과의 관계개선이 이뤄지길 바라는 소련측의 입장전달이 있지 않을까 기대했습니다만 이와 관련한 언급은 없었습니다. 최근 미국과 북한은 북경에서 15차 접촉을 가진 것으로 미국측에 의해 알려지고 있고 또 소련·미국·일본간에 미·북한 관계개선 등에 대한 대화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예상할 때 남북관계와 관련한 구체적인 내용이 지적되지 않은 점은 아쉽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올해 안에 한소,한미정상회담을 한차례씩 더 가질 경우 우리의 자주외교능력을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한반도 관련문제를 논의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한소 경협과 관련해서는 미국·일본이 동반자로 동참하지 않는다면 기술 및 자금동원 등의 제한 때문에 소련측이 기대하는 수준까지 가능할지 우려됩니다. ○미와도 협의 필요 ◇정 교수=이번 회담에서 논의는 됐으나 합의는 안 된 몇 가지 사실을 구체적으로 지적할 수 있습니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아태지역 새경제질서 정착문제 등인데 이미 일본에서 고르바초프가 거론한 바 있는 미·소·일본·중국·인도를 포함하는 5개국 협력회의 제의나 동북아 안보정착을 위한 미·소·일 3각협력체제 제안에 대해 미국 등 우방들이 매우 다른 시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쉽게 이 제안들에 동의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두 정상이 아태 새질서 형성에 공동노력키로 했으나 구체적 합의는 없었다는 점이 앞으로의 지역적 협력에 대한 가능성인 동시에 한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실질적인 수확으로 추가하고 싶은 것은 이번 회담을 계기로 양국간 교역이 빠른 시간내에 급속히 증진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김 교수=과거문제를 씻지 않고 넘어간 데 대해서는 또 다른 측면에서 분석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3차례의 마라톤정상회담으로 이어지면서 과거사에 대한 지적이 있을 경우 양국간 관계증진의 엄청난 거보를 딛는 대화가 껄끄러워질 수밖에 없다는 점도 고려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번 회담이 한반도주변 강대국들에 북한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주는 측면도 있을 것으로 분석됩니다. 이제 북한을 구제하고 재개발할 수 있도록 하는 대상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지요. ○신중한 행보 긴요 ◇정 교수=앞으로 빠른 속도로 관계개선이 되는 상황을 가정한다면 이번 회담에서 과거 청산조치가 취해졌으면 좋겠다고 하는 커다란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를테면 6·25전쟁에서 소련의 역할,그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소련의 사할린동포 강제이주문제,냉전의 비극적 상징인 KAL기 격추 등에 대해 소련측의 명확한 사과표시가 없었다는 점이 불만스럽습니다. 물론 양국 외무장관회담에서 KAL기문제가 다뤄지고 소련측이 유감을 표시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정상회담이니만큼 정상회담에서 이 문제가 다뤄져야 했다고 봅니다. 적어도 유족대표들에 대해 직접적인 따뜻한 위로가 있었더라면 국민감정이 치유됐을텐데 말입니다. 고르바초프의 국내적 입지가 약화된 상태에서 그를 상대로 한 한소관계개선이나 한반도 및 아태지역 탈냉전체제 구축이 잠정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측면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특히 고르바초프는 한반도문제와 관련해군부로부터 대단한 압력을 받고 있습니다. 한소 관계가 상징적 의미에서는 큰 돌파구가 마련됐지만 고르바초프가 제주 도착성명에서 밝힌 것처럼 「한소 관계에 아무런 장애가 없다」거나 노태우 대통령의 표현대로 「한소 관계에 완전한 봄이 왔다」고 단언하기에는 아직 이른감도 없지 않습니다. 봄이 왔다고 하지만 꽃을 피울 단계가 아직 아니라는 점에서 한소 관계는 낙관만은 할 수 없습니다. 특히 소련의 남방외교와 우리의 북방외교의 교차점에서 미국의 시각도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한반도 차원을 뛰어넘는 한소 관계개선은 대단히 신중한 행보를 요구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 일본 소련/「북방섬·경협」 극비흥정 가능성

    ◎「국경선협상」 통한 해결책 제시할듯/소/「양보안」 걸맞는 경협규모 관심거리/일/고르비­가이후 대좌의 뒤안 일·소간 최대 현안인 북방영사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3차 정상회담은 배석범위를 통역 등 7명에만 국한,사실상 고르바초프­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 양자의 대좌형식으로 전개되었다. 쌍방은 이미 16일의 제1차 정상회담때부터 이 문제에 관한한 협의내용을 공표않기로 합의했기 때문에 3차회담의 내용도 알길은 없다. ○소,「영토문제」 첫 거론 그러나 이 회담에서는 결론이 내려지지는 않았지만 4차회담에서 상당한 「흥정」이 이루어질 것이며 지금 당장 북방 4개섬 전부가 반환되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해결의 실마리가 예상보다 빨리 잡힐 것이 아닌가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것은 소련이 최후의 카드를 준비하고 있으며 정석대로의 수순을 밟아 정치 레벨에서 결정할 의도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 같은 조짐은 1차회담 때부터 나타났다. 3시간에 걸쳐 행해진 제1차 정상회담은 그 절반을 영토문제에 할애,이 문제에 협의의중점이 두어지고 있음을 입증했다. 이 자리에서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영토문제」라는 표현을 여러 번 사용했다. 소련은 지금까지 『일·소간에는 영토문제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공식입장에서 「영토」라는 직접적인 표현은 피해왔다. 따라서 이날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영토」라고 분명히 밝힌 것은 처음이며 이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제1차 정상회담의 내용은 다음 4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영토문제의 협의내용 비공표,둘째 일·소관계의 근본적 개선,셋째 일본 병사의 시베리아 억류사죄,넷째 경제협력 등이다. 이들 내용은 그 어느 것이나 영토문제와 직결된다. 이렇게 볼 때 제1차 일소 정상회담은 쌍방이 극히 솔직하게 속마음을 털어놓고 논의했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이 자리에서는 그 어떤 양보나 제안은 없이 자신의 주장만을 개진,접점을 찾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제1차 회담에서 이러한 궤적을 밟았다는 것 자체가 소련측도 일소간에 영토문제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증거이며 해결의 돌파구를 찾은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17일 상오 사회당의 도이 다카코 위원장과의 조찬석상에서도 이 문제에 관해 응수했다. 도이 위원장은 『북방 4개섬의 주권확인이 일본 국민의 여론』이라며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정치적 결단을 촉구했다. ○일,협상발판은 마련 이에 대해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일본의 여론도 있으나 소련의 여론은 반대하고 있다』며 국민여론을 토대로 검토하겠다는 자세를 보였다. 이 같은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일련의 발언과 그의 행동의 「의외성」에 비춰볼 때 4차 정상회담에서는 소련측으로부터 그 어떤 「양보안」이 제시될 것으로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동행한 소련의 한 소식통은 17일 북방영사문제에 관해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갖고 있는 몇가지 제안중에는 어떤 섬을 반환하겠다고 직접 제안하는 대신 「국경획정의 대상지역」을 명시함으로써 섬을 돌려주는 방안이 포함되어 있다고 밝혔다. 이것은 「대상지역」에는 어떤 섬이 포함되는가를 명확히 하고 이 지역에서의 국경획정은 쌍방이 계속 협의해나가는 가운데 합의점을 찾는다는 것이다. 이 안은 영토문제에서 대폭 진전을 기대하고 있는 일본측과 국내사정 때문에 이번 방일에서 명확한 선을 제시할 수 없는 소련측과의 타협안으로서 마련된 고육지책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 같은 여러가지 상황에 비춰볼 때 18일 하오 발표예정인 일소 공동성명에는 일본측 희망대로 「영토문제」라는 표현을 삽입,앞으로의 대소 교섭에서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당초 일본측은 영토문제 해결은 비관적인 것으로 보고 있었다. 그러나 제1차 정상회담에서부터 이 문제를 정면으로 거론,예상 이상의 효과를 올렸다. 그 배경은 말할 것도 없이 소련의 경제사정이다. 현재의 국내 정치상황에 비추어 외국방문이 곤란한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이 시기에 일본과 한국을 방문하는 것은 이를 계기로 태평양지역 진출의 발판을 삼아 미국의 극동전략에 쐐기를 박겠다는 정치적 노림수도 있겠으나 그것보다는 역시 「경제협력」에 주안점이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세계에서 소련에 경제협력을 할만한여력을 가진 나라는 일본과 한국밖에 없다. 이들 국가에서 경제·기술협력을 받아 소련경제를 부흥시킴으로써 위기에 처한 고르바초프 자신의 국내 정치기반을 공고히 하려는 것이라고 관계자들은 지적한다. 이를 위해서는 일본에 대해 영토문제에 관한 어떤 「언질」이 필요하다. 과연 짐작대로 소련측의 양보안이 제시됐을 경우 앞으로는 일본측이 얼만큼의 경제협력을 해야하는 가라는 정치결단을 내려야 할 차례라고 도쿄의 외교가는 보고 있다.
  • 미 「최후통첩」과 소·이라크의 입장

    ◎“「중동지분」 못나눈다”… 부시의 “독주선언”/「완전항복」 덧붙여 전쟁피해 배상 요구/미국/후세인 업고 미의 패권장악 견제 속셈/소련/“항전뒤 궤멸”·“무조건 굴복” 진퇴양난/이라크 걸프전의 끝마무리를 두고 미국과 이라크 그리고 소련의 막바지 줄다리기가 숨가쁘게 벌어지고 있다. 이라크는 지난 15일 전쟁후 처음으로 쿠웨이트철수 용의를 표명했다가 다국적군에 의해 즉각 거부당했다. 미국의 중동제패를 늘 초조한 마음으로 지켜보던 소련은 이에 18일 8개항으로 이뤄진 걸프전 평화중재안을 다국적군과 이라크측에 제시하고 이라크의 회신을 기다렸다. 이라크는 이 안마저도 다국적군측에 의해 거부당하고 종전의 입장에 비춰 굴욕적인 내용이 언론에 흘러나가기 시작하자 21일 갑자기 전쟁불사 결의를 천명했다가 22일 아지즈 외무장관을 모스크바에 보내 소련의 평화중재안 8개항을 받아들였다. 이 안의 골자는 이라크가 쿠웨이트로부터 유엔결의에 따라 즉각 철군하되 종전후 이라크의 정체는 위협받지 않으며 유엔의 각종 제재조치는해제된다는 것이다. 이라크가 거의 백기항복에 가까운 소련의 8개항 제안을 받아들인 것은 그나마 미국의 주장보다는 훨씬 유리한데다가 종전후 정권유지와 회생을 기약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미국은 8개항 제안마저도 유엔의 결의안에 담긴 무조건 철군의 뜻을 수용하지 않는 등 요구수준에 미달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못박고 24일 새벽2시(한국시간)까지 철군을 시작하든가 아니면 지상전을 각오하라고 최후통첩했다. 미국으로서는 소련과 이라크가 합의한 8개항 평화안이 여러가지 조건을 달고 있는데다가 이라크의 군사력이 그대로 살아남는다는 점,전쟁피해에 대한 보상에 대해 언급이 없다는 점,쿠웨이트 합법정부의 복귀에 대해 확실한 언급이 없다는 점 등에 강력한 불만을 표시하고 여하튼 전쟁의 끝마무리에 소련이 끼어들거나 이라크의 체면을 살려주는 일은 결코 않겠다는 의지를 과시한 것이다. 이라크는 미국이 8개항마저 거부하면서 최후통첩을 발하자 국가 최고기관인 혁명평의회의 성명을 통해 이를 모욕적인 것으로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미국을 비난했지만 소련과 다시 6개항의 수정안을 마련,다국적군측에 제시했다. 하지만 수정 6개항과 미국의 요구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상존하고 있다. 첫째로 즉각 무조건 유엔결의 606호에 따라 이라크군이 쿠웨이트로부터 철군한다는 점에서는 양측의 입장이 완전 일치하고 있다. 둘째로 철군시기에 대해 소련과 이라크는 휴전 다음날 시작한다고 규정한 반면 미국은 24일로 구체적 시한을 제시하고 있다. 셋째로 이라크는 쿠웨이트시로부터는 4일 이내에,그리고 쿠웨이트 전역으로부터는 21일 이내에 철군하겠다고 제의한 반면 미국은 쿠웨이트시로부터는 2일,쿠웨이트 전역으로부터는 1주일 이내에 완전 철군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철군에 주어지는 시간의 차이는 단지 양적인 차이가 아니다. 미국의 요구는 이라크에 거의 모든 장비는 쿠웨이트에 버려두고 몸만 빠져나가라는 이야기인 반면 이라크는 쿠웨이트에 배치해 놓은 T­72탱크 등 최신 장비를 모두 회수하겠다는 희망을 담고 있는 것이다. 이는 한걸음 더 나아가 미국은 이라크를 군사적으로 최대한 무력화시키고 중동에서 패권을 장악하겠다는 뜻을 갖고 있는 것이고 이라크는 가급적 군사력을 온존시켜 중동에서의 강자로 남으며 소련으로서는 이라크의 힘을 남겨 미국의 중동제패를 견제하겠다는 계산이다. 이라크와 소련은 이라크가 철군하면 다른 유엔결의는 효력을 잃는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미국은 이라크가 모든 유엔결의를 이행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차이는 전쟁피해에 대해 이라크에 배상을 요구하느냐(미국측 요구) 아니냐이다. 이라크는 전쟁포로를 적대행위 종식 72시간안에 석방하겠다고 제의한 반면 미국은 전쟁포로와 제3국인을 48시간내에 석방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라크와 소련은 철군감시를 적대행위에 직접 가담하지 않은 나라에 맡기자고 한 반면 미국은 다국적군이 종전절차를 관장하겠다고 요구하고 있다. 한번 꼬리를 내린 이라크를 코너로 계속 밀어붙이고 있는 미국은 그러나 8개항 제안에 이어 수정 6개항마저도 불충분하다며 추가로 쿠웨이트왕정의 복귀와 전쟁피해에 대한 배상문제도 요구하고 있어 「굴욕적인 완전 항복」을 받아내고자 하고 있다. 23일 하룻동안 양측은 숨쉴 틈조차 없이 제의와 거부,수정제의와 추가요구제시를 주고 받았다. 현재로서는 이라크가 반응을 보일 차례. 이라크가 굴욕적이지만 미국의 제안을 받아들일 것이냐 아니면 미국의 최후통첩을 무시하고 소련과의 합의대로 철군을 행할 것이냐,이도저도 아니면 미국의 요구를 조금 더 수용한 새 수정안을 내밀어 볼 것인지 이라크의 반응이 주목을 끌고 있다. ◎“이라크군 1주내 완전 원대복귀해야” ○미의 최후통첩 9개항 ①이라크는 23일 GMT 17시(워싱턴 23일 정오,한국시간 24일 상오2시)까지 쿠웨이트에서 대규모 철수를 시작해야 한다. ②이라크는 이 시한으로부터 1주일안에 쿠웨이트에서 철수를 완료하여 모든 이라크군을 작년 8월1일 현재의 진지로 복귀시켜야 한다. ③철수시작후 48시간내에 이라크는 쿠웨이트 시티(쿠웨이트 수도)로부터 모든 이라크군을 철수시켜 합법적 쿠웨이트 정부가 즉각 복귀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④같은 48시간안에 이라크는 사우디아라비아­쿠웨이트 국경과 사우디아라비아­이라크 국경지대,부비얀도와 오라브도,쿠웨이트의 루마일라 유전에서 준비해둔 모든 방어시설을 철거해야 한다. ⑤이라크는 국제적십자와 협력하여 모든 전쟁포로와 타의에 의해 억류되어 있는 제3국 민간인들을 석방하고 사망한 군인들의 유해를 송환하되 이들 조치는 철수시작과 더불어 즉각 시작되어 48시간내에 끝내야 한다. ⑥이라크는 쿠웨이트 석유시설에 장치한 폭발물과 위장 폭탄을 포함한 모든 폭발물과 위장 폭탄을 제거하고 지뢰 및 기뢰를 부설한 위치에 관한 모든 자료 등 이라크군의 철수와 관련된 세부 시행사항에 관해 쿠웨이트군 및 다른 다국적군과 협력할 이라크군 연락장교들을 지명해야 한다. ⑦이라크는 쿠웨이트 국외로 군대를 수송하는 수송기를 제외하고는 전투용 항공기의 이라크 및 쿠웨이트 상공비행을 중지하며 쿠웨이트 전체 영공에 대한 다국적군 항공기들의 독점적인 통제와 이용을 허용해야 한다. ⑧이라크는 쿠웨이트의 시민과 재산을 침해하는 모든 파괴적행동을 종식하고 억류한 쿠웨이트인 전원을 석방해야 한다. ⑨이라크군의 철수가 위에서 언급한 지침에 따라 진행되고 다른 나라에 대한 이라크의 공격이 없는 한 미국과 다른 연합국은 그들의 군대가 철수하는 이라크군을 공격하지 않고 자제할 것임을 다짐한다. ○이라크­소 수정 6개항 ①이라크는 쿠웨이트로부터 무조건적이고도 즉각적인 철군을 요구한 유엔결의 6백60호를 이행한다. ②이라크군은 휴전발표 하루뒤부터 쿠웨이트에서 철수를 시작한다. ③이라크군의 철수 작업은 21일내에 완료한다. ④철군 완료후 이와 관련된 유엔안보리의 모든 결의들의 의의는 사라지며 취소된다. ⑤전쟁포로는 휴전후 72시간내에 석방한다. ⑥유엔안보리가 정한 평화유지군이 이라크군의 철수작업을 감독한다.
  • “미흡”­“흡족” 양론속 조심스레 종전기대

    ◎“유엔결의 완전이행엔 불충분”… 신중 검토/영·불·일/“중동평화 첫 걸음”… 다국적군에 수용 촉구/이란·요르단/「모스크바합의」를 보는 각국의 시각 이라크가 쿠웨이트에서 철수할 준비가 돼 있다는 모스크바 합의내용이 발표돼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가운데 프랑스와 중국·예멘·쿠바·에콰도르 등을 포함한 상당수의 안보리이사국 대사들은 이번에 발표된 내용이 전쟁종식을 향한 전향적인 조치가 될 것으로 평가했다. 다음은 이라크의 쿠웨이트 철수 발표에 대한 각국 반응이다. ▷영국◁ 존 메이저 영국 총리는 소련의 평화중재안이 『확실한 진전이지만 아직은 충분치 않다』고 말했다. 메이저 총리는 21일(현지시간) 하오 늦게 각료들과 함께 중재안을 세밀하게 분석할 것이라고 말했다. ▷프랑스◁ 롤랑 뒤마 프랑스 외무장관은 22일 『지금은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책략을 쓸 때가 아니며 걸프전 종전을 위해 마지막 노력을 경주할 때』라고 말했다. 뒤마 장관은 이날 기자들에게 『사담 후세인이 책략을 쓸 시간은 이미 지났다』고 말하고 『외교적 사태해결 노력은 계속돼야 하겠지만 그것이 군사행동을 대신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밝혔다. 뒤마 장관은 특히 소련이 제시한 중재안 조항 가운데 이라크군의 쿠웨이트 철수 조항에 관해 언급,『이라크의 쿠웨이트 철수는 즉각적이고 신속하게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EC◁ 유럽공동체(EC)는 소련의 종전안에 신중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자크 푸스 룩셈부르크 외무장관이 22일 밝혔다. 그는 룩셈부르크 라디오방송을 통해 이 종전안이 유엔결의 12개항 가운데 이라크의 무조건적인 철수를 요구하는 6백60호만을 다루고 있으며 쿠웨이트 주권의 완전회복과 같은 다른 결의들은 무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 일본정부는 걸프전 휴전에 관한 소련과 이라크간의 합의내용을 면밀히 검토하는 한편 미국측의 장차 대응에 관심을 쏟고 있다. 가이후(해부준수) 총리는 22일 열린 각의에서 『평화적인 해결기미가 보이지만 이라크의 진의를 몰라 결코 낙관할 수 없다』고 신중한 자세를 보이면서 주미 대사관을 통해 자세한 정보를 수집토록 지시했다. 그는 전각료에게 소·이라크 합의사항을 메모로 전달,사태추이를 지켜본 다음 일본측의 공식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말했으며 이날 새벽 있은 후세인 대통령의 연설에 실망감을 나타냈다고 정부 소식통이 전했다. 한편 외무성 당국은 다국적군의 폭격 등으로 도로가 파괴된 점을 고려하면 이라크군이 쿠웨이트로부터 완전 철수할 때까지는 적어도 10일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 보았다. ▷독일◁ 한스 디트리히 겐셔 독일 외무장관은 22일 소련­이라크간에 합의된 걸프전 종전안은 수용 이전에 8개항이 담고 있는 조건들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뒤따라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겐셔장관은 이날 의회에 보낸 성명에서 『이라크의 쿠웨이트 철수의사 표명은 조기 종전을 바라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희망을 증진시켜 주었다』고 조심스런 논평을 하기도 했다. 21일밤 제임스 베이커 미 국무장관을 비롯,영·불 외무장관과 전화대화를 나눈 것으로 알려진 겐셔장관은 소련의 평화중재안 가운데 어느 조항에 대한 설명이 필요한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밝히지 않았다. ▷이란◁ 이라크가 소련의 평화안을 수락함으로써 이제 전쟁을 계속하는데 대한 정당성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이란의 한고위관리가 22일 말했다. 혁명수비민병대의 최고위 관리중의 한 사람인 모하마드 에라기는 이날 테헤란대학에서 열린 주례 회교기도회에 참석,『이라크가 유엔 결의안 6백60호 및 소련이 제안한 8개항의 평화안을 받아들임으로써 이제는 피비린내 나는 살상행위를 계속할 어떤 정당성도 어떤 구실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이라크가 만약 걸프전에서 군사력에 손상을 입지않고 살아 남고 또 사담 후세인이 여전히 권력을 장악하게 되면 평화에 대한 위협은 잔존하게 될 것이라고 이츠하크 샤미르 이스라엘 총리가 22일 말했다. 그는 유대계 미국인들의 대표단에게 『만일 후세인이 권좌에 남아있고 강력한 이라크군의 상당부분이 별 손상을 받지 않고 남아있게 된다면 이는 우리에게 매우 해롭고 위험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우리는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의 정책을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말했다. ▷PLO◁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유엔 수석대표도 모스크바 합의발표를 『매우 훌륭한 것』이라고 환영했다. ▷요르단◁ 요르단정부는 22일 이라크가 소련의 평화안을 수락하고 쿠웨이트로부터 무조건 전면 철수의사를 밝힌데 대해 환영의 뜻을 표시하고 이로써 걸프위기가 평화적으로 종식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외무부의 한 고위관리는 요르단은 소련의 평화안이 유엔 결의들을 존중하고 그 기틀안에서 마련된 것으로 이해하고자 하며 따라서 다국적군에 가담하고 있는 국가들을 포함한 세계는 이 평화안을 거부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집트◁ 암레 무시 주유엔 이집트 대사는 이라크가 무조건 철수를 수락한 것은 『극히 중요한 첫발』이라고 말했다. ▷사우디◁ 샤미르 시하비 주유엔 사우디아라비아 대사는 『무조건 철수에 따라붙는 조건들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중국◁ 리 다오유 유엔주재 중국대사는 21일 쿠웨이트에서 이라크군을 철수시키겠다는 소련­이라크간 합의 내용이 발표된 직후 기자들에게 이라크의 긍정적인 반응은 걸프전의 종결에 『밝은 전망을 보여주는 것으로 신중하게 고려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번 발표에는 이라크의 쿠웨이트 철수문제와 미국과 유엔 안보리 회원국들이 그동안 거부해왔던 중동평화회의 개최 등 다른 요구사항과의 연계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고 밝히면서 이는 좋은 징조라고 덧붙였다. □소·이라크 평화안과 유엔결의안 비교 ●소·이라크 평화안 ①이라크,쿠웨이트로부터 무조건 전면철수. ②이라크군의 철수는 휴전 다음날부터 시작. ③이라크군의 철수는 확정된 일정에 따라 진행. ④전병력의 3분의 2 이상 철수하면 유엔의 대이라크 경제제재는 효력 정지. ⑤이라크군의 쿠웨이트철수가 완료되면 유엔 안보리결의 효력 상실. ⑥휴전 직후 모든 전쟁포로 즉각 석방. ⑦이라크군의 철수는 걸프분쟁 직접관련국이 아닌 나라중 유엔 안보리가 위임한 국가가 감시. ●유엔결의안 ①(660호,90년 8월2일) 이라크군의 무조건 즉각철수 요구. 이라크·쿠웨이트가 양국간 견해차해소를 위한 협상 즉각 시작.(662호,90년8월9일) 이라크의 쿠웨이트 합병 무효화 선언. ②휴전과 철수일정에 관한 언급은 없음. ③ 〃 ④(661호,90년 8월6일) 이라크군의 즉각·무조건·완전철수 및 쿠웨이트 합법정부 복원을 이라크측이 실행토록하기 위해 이라크에 경제제재. ⑤(678호,90년 11월29일) 이라크군이 91년 1월15일까지 쿠웨이트에서 철수하지 않으면 모든 필요한 수단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 ⑥전쟁포로에 관한 언급이 없음. ⑦철군감시 조항이 없음 ◎미,이라크 외교관 1명 또 추방/걸프전 22일 상황 ▷상오1시30분◁ 미 백악관,후세인 대통령의 선언에 실망을 나타내며 「쿠웨이트 해방」은 계속될 것이라고 발표. ▷상오5시52분◁ 타리크 아지즈 이라크 외무장관 소련의 종전안에 대한 이라크측 답신을 갖고 모스크바에 도착. ▷상오9시23분◁ 미 백악관,이라크의 소련 종전안 수락에 즉각적인 논평을 회피한채 백악관회의 개최. ▷상오10시48분◁ 부시 대통령,소련의 종전안에 우려를 나타내며 연합국들과 이 문제를 논의할 것이라고 발표. ▷상오11시10분◁ 미국,워싱턴에 남아있는 이라크 외교관 4명 가운데 1명을 간첩혐의로 추방. ▷하오4시25분◁ 미국관리,소련의 평화안은 이라크의 무조건 철군을 요구하는 유엔 결의안을 충족시키지 못한다고 논평. ▷하오4시40분◁ 존 메이저 영국총리,소­이라크의 평화안은 충분치 못하다고 논평. ▷하오5시20분◁ 베스메르트니 소련 외무장관,아지즈 이라크 외무장관과 회담. ▷하오7시50분◁ 이라크 관영 INA통신,다국적군이 이날 하오3시15분 지상전을 시작했다고 보도.
  • 미,「이라크 종전안」 거부/부시 연설

    ◎“내일 새벽2시까지 철군” 최후통첩/“후세인 불응땐 지상군 공격”/이라크,소와 합의한 「8개항」 제시 【워싱턴 AP AFP 연합특약】 조시 부시 미국 대통령은 22일 상오(한국시간 23일 0시30분)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은 23일 정오(한국시간 24일 새벽2시)까지 쿠웨이트로부터 즉각적이고 무조건적인 철수를 시작해야 한다고 최후통첩했다. 그는 이날 백악관에서 발표한 성명을 통해 이같이 말하고 『후세인이 이를 준수하지 않을 경우 치명적인 다국적군의 지상공격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부시대통령은 또 이라크군이 철군에 앞서 쿠웨이트의 유전시설 파괴를 포함한 초토화정책을 펴고 있다고 비난했다. 부시대통령은 이날 하오중 걸프전 종식을 위해 이라크가 충족시켜야될 조건의 기준을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라크는 후세인대통령이 결사항전의 뜻을 밝히는 한편 아지즈외무장관이 조건부철수를 제의하는 등 모순된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고 거듭 비난했다. 이에 앞서 이라크와 소련 양국은 이라크가 쿠웨이트로부터 완전히 무조건 철수하는데 동의한 것을 비롯해 모두 8개항의 종전안에 합의했다고 비탈리 이그나텐코 소련 대통령 대변인이 22일 발표했었다. 이그나텐코 대변인은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과 소련의 평화안에 대한 후세인 대통령의 회신을 휴대하고 방소중인 타리크 아지즈 이라크 외무장관간의 2시간여에 걸친 회담이 끝난뒤 그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라크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고 말했다. 이그나텐코 대변은 이라크군의 철수는 적대행위가 종식된 다음날부터 시작될 것이며 이라크군의 철군은 유엔의 위임하에서 걸프전쟁에 직접적으로 관련되지 않은 국가들에 의해 감시를 받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그나텐코 대변인은 이라크군 병력의 3분의 2가 철수한 뒤에는 이라크에 대한 경제제재가 끝날 것이라고 밝히고 이라크가 지난해 8월2일 쿠웨이트를 침공한 뒤에 발효된 유엔의 결의들을 취소하기 위한 준비도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합의에 대해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은 소련의 평화안의 몇개 조항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품고있으며 이에 대해 추가적으로 대응을 취하기에 앞서 미국의 동맹국들과 협의를 가질 것이라고 백악관이 발표한바 있다. 말린 피츠워터 백악관 대변인은 소련과 이라크의 평화안 합의사실이 발표된지 2시간후에 있는 백악관의 뉴스 브리핑에서 소련의 평화안에 대한 미국의 첫 공식반응을 표명하고 미국은 전쟁을 계속하면서 협의를 진행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예브게니 프리마코프 소련대통령 특사는 22일 걸프전을 종식시키려는 소련측의 계획이 정말로 구체화되고 있으며 지상전을 감행해 이를 짓밟을 경우 미국이 주도하는 다국적군이 책임을 지게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앞서 사담 후세인 이라크대통령은 21일 하오 바그다드 방송을 통해 발표된 35분간의 대국민연설을 통해 이라크는 결코 항복하지 않을 것이며 다국적군에 대한 결사항전을 계속할 것이라고 거듭 선언하고 미국 등 다국적군측의 무조건 철군 요구를 거부했다. ◎안보리 소집 【워싱턴 유엔본부 AP AFP 로이터연합】 유엔소식통은 소련측의 평화안을 논의하기 위해 22일중(현지시간)에유엔안보리가 소집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소·이라크 합의 8개항 ①이라크는 이라크군의 완전하고 무조건적인 쿠웨이트 철군 ②철군은 적대행위가 중지된 뒤 이틀째부터 시작 ③철군은 정해진 일정에 따라 실행 ④쿠웨이트 주둔 이라크군의 3분의 2가 철군한 뒤 이라크에 대한 경제제재조치 해제 ⑤이라크군의 쿠웨이트 철군이 완료된 뒤에는 이와 관련된 유엔 안보리 결의들의 의의는 사라지며,그러한 결의들도 효력정지 ⑥전투행위가 중단된 뒤 모든 전쟁포로들은 즉각 석방 ⑦이라크군의 철수는 이 분쟁에 직접 관련되지 않았고,유엔 안보리의 위임을 받은 국가들의 감시 ⑧세부사항을 결정하기 위한 작업 계속 이 작업의 최종결과는 2월22일 유엔 안보리에서 발표
  • 자제하는 이스라엘… 분열되는 아랍권

    ◎“종교전쟁 유도”… 후세인 기도 빗나간다/“이스라엘 자위권 인정”… 「보복」 방관 확실시/사우디·이집트/“성전아닌 대리전” 명분·실익 사이서 주저/시리아·요르단/리비아 제외한 마그레브소국들만 “적극 참여” 공언 걸프전쟁 개전 4일째인 20일 아랍국가들의 수도에서는 이라크 지지시위가 잇따랐다. 이에 화답하듯 사담 후세인 이라크대통령은 회교 형제국가들에 성전을 호소하고 나섰다. 얼핏보아 걸프전쟁을 계기로 아랍세계가 똘똘뭉쳐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듯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오히려 그 반대임이 한눈에 드러난다. 이번 전쟁으로 아랍세계는 갈등과 분열의 폭이 더욱 확대·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파리주재 한 아랍국의 대사는 이제 더 이상 「아랍세계」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대신 그는 복수개념의 「아랍세계들」이라는 용어를 쓴다. 그는 사담 후세인의 분열책동으로 더이상 하나의 아랍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정했다. 지정학적인 상황이나 국내의 정치·경제적 어려움은 이들 아랍국가들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전체를 쉽게 포기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를 포함한 걸프주변의 왕정국가들은 주저없이 미국의 그늘에 안주하는 쪽을 택하고 있다. 카타르 바레인 아랍에미리트 등이 이 범주에 속한다. 이들 국가는 이스라엘이 이라크에 보복공격을 하더라도 강건너 불보듯 할게 분명하다. 아랍국가중 유일하게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맺고 있는 이집트 정부도 마찬가지이다. 반이라크 대열에 참가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사담 후세인이 애써 강조하고 있는 형제국의 범위에도 들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은 이스라엘의 반격이 시작되면 유엔의 기치아래 걸프사태에 개입하고 있는 현재의 자세를 재고하려할 것이다. 그는 이미 『이스라엘이 공격을 받으면 당연히 반격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해왔으며 이스라엘은 다른 나라와 같이 합법적으로 국가안전을 위한 행동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견해를 공개적으로 표명해 왔다. 모든 시선은 요르단의 처신에 쏠리고 있다. 왜냐하면 만일 걸프전이 이스라엘­이라크 전쟁으로 발전되면 두나라 사이에 끼여있는 요르단은 타의에 의해 전장으로 바뀌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담 후세인과 가까운 후세인국왕은 확전의 기미가 보이자 일찌감치 『영공을 침범하는 행동은 좌시하지 않겠다』고 엄포,이스라엘의 행동반경을 죄고있는 중이다. 오래전부터 자국내의 팔레스타인 인들에 대한 평등정책을 써오고 있는 후세인국왕은 「아랍형제국」에 대한 연대감은 국민들보다 오히려 한수 뒤져 있는 셈이다. 때문에 국민들의 눈치를 봐서도 이라크편을 들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시리아의 입장도 비슷하다. 지난 17일 다국적군의 첫 공격이 있은 뒤 시리아정부 대변인은 이스라엘이 이라크를 공격할 경우 아랍국가들과 행동을 같이 할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19일 이라크가 텔아비브에 미사일 공격을 한뒤 시리아의 한 신문은 한사람이 아무런 혐의도 없이 전쟁을 일으키고나서 우정이니 아랍정신이란 이름으로 다른 나라를 전쟁의 수렁으로 밀어 넣으려는 것을 어떻게 수긍할 수 있겠느냐면서 『시리아는 그러한 즉흥적인 전쟁에 참여할 준비도 되어있지 않고 인명과 장비의 손실을 감수할 자세도 갖추어져 있지 않다』고 지적,이라크편에 서는데 대한 반대의견도 만만치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시리아인들은 이스라엘과의 세차례의 전쟁을 기억에서 지워 버릴 수 없다. 이스라엘이 합병해 버린 골란고원도 되찾아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하지만 이번의 전쟁에 끌려들어가 과거의 원한을 갚고 실지를 회복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확신을 할수 없는 상황이며 그 때문에 시리아는 사담 후세인의 성전참여 요구에 머뭇거리고 있는 것이다. 북아프리카의 회교국가들,즉 마그레브지역 주민들의 반응은 한결 신경질적이다. 특히 알제리에서는 반미와 반이스라엘의 구호가 한층 격렬하다. 알제리 정부는 이라크에 이어 상주특파원을 제외한 외국기자들을 모두 내쫓고 있다. 총선을 앞둔 알제리에서는 선거운동의 영향 때문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정부와 정당들이 부채질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로서는 사담 후세인의 가장 강력한 지원국이며 그의 요구대로 성전에 참여할 의사를공언하고 있다. 튀니지 역시 이라크편에서 움직일 가능성이 있는 국가이다. 회교도의 영향력이 막강한 모로코는 지금까지는 사우디아라비아를 지지하는 입장이었지만 차츰 태도를 바꾸어 가고 있다. 하산국왕은 『모로코 국민들의 마음은 이라크쪽으로 향하고 있다』고 역설하고 있다. 이같이 마그레브 지역은 사담 후세인의 동원요구가 가장 잘 먹혀들 수 있는 곳이다. 다만 리비아의 카다피는 계속 입을 다물고 있다. 아마도 그는 지난 86년 자신을 직접 겨냥했던 미국 공습때의 일을 되새기고 있는지 모른다. 당시 사담 후세인은 이 곤경을 모른채 외면했었다. 확전의 가능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지만 실제로 이스라엘­이라크 전쟁으로 옮겨갈 경우 과연 몇나라가 대이스라엘전에 참여할 것인지는 아직 예측하기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아랍세계의 분열과 갈등의 심화로 사담 후세인의 계산대로 시오니스트와 전체 회교도의 대전으로까지는 번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걸프전 21일 상황/터키서 발진한 미 전투기 이라크 공습/미,원격조정 신형 슬램미사일 첫 발사 ▷상오6시◁ 이라크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다란에 3발의 스커드미사일을 발사했으며 미군은 즉각 패트리어트미사일로 응사,요격했다. ▷상오9시◁ 이라크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인 리야드에 4발을 비롯,동부지역 등에 7발의 스커드미사일을 발사했으며 미군은 패트리어트미사일로 이 가운데 6발을 요격했으며 1발의 스커드미사일은 다란 부근의 해상에 떨어졌다. ▷상오9시30분◁ 터키남부의 인키리크 미 공군기지를 이륙한 수십대의 미 전투기들이 이라크 공습에 참가했다. 목격자들은 하룻동안 이 공군기지로부터의 대이라크 공습이 4번 있었다고 말했다. ▷상오11시40분◁ 압둘 레자크 알 하시미 주불 이라크대사는 영국의 BBC 방송과의 인터뷰를 통해 『다국적군 정부가 공식적으로 그들의 포로를 인정하면 다국적국의 포로들은 인도적인 대우를 받을 것』이라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했다. ▷낮12시◁ 미 해군은 홍해상의 잠수함에서 이라크를 향해 크루즈(순항)미사일을 발사했으며 처음으로 걸프전에서 신형인 원격조정 슬램미사일을 발사했다. ▷낮12시5분◁ 미 국무부는 미군 포로들에 대한 이라크의 가혹한 행위를 비난하며 이런 행위는 제네바협정 위반이라고 밝혔다. ▷하오1시10분◁ 유엔주재 이라크대사는 성명을 통해 『다국적군의 포로들은 인도적인 대우를 받고 있으며 전장에 있는 것보다 오히려 좋은 여건속에 있다』고 반박했다. ▷하오2시30분◁ 짐 볼거 뉴질랜드총리는 『뉴질랜드는 영국의 요청으로 걸프에 보다많은 군의료진을 파견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하오4시◁ 댄 숍론 이스라엘군 참모총장은 이스라엘 라디오와의 회견을 통해 『미국 주도의 다국적군이 이스라엘에 대한 위협을 쉽게 제거할 것이라는 기대에도 불구하고 이라크의 미사일 공격이 앞으로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하오7시30분◁ 이라크는 20여명의 다국적군 포로들을 이라크내의 주요시설에 분산시켜 다국적군의 공격에 대한 인간방패로 이용하겠다고 밝혔으며 이에대해 체니 미 국방장관은 『이라크가 군사목표가 될 가능성이 있는 지역으로 다국적군의포로들을 이동시키는 것은 전쟁포로에 관한 제네바협정 위반』이라고 비난했다.
  • 「범죄와의 전쟁」선진국은 어떻게 하고 있나(질서있는 사회로:9)

    ◎“민ㆍ관 한마음”… 자경활동에 「검은 주먹」움츠려/미국/한해 2만명 피살… 우범지역 통금도 검토/폭탄테러등 사형… 새 강력퇴치법안 제정 미 하원은 10월초 강력한 내용의 새로운 종합 범죄퇴치법안을 압도적으로 가결,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사형에 처할 수 있는 범죄 항목에 20개를 새로 추가하고 ▲사형수의 재심 청구를 대폭 제한하며 ▲피고인의 헌법상 권리를 침해하는 방법으로 수집한 증거는 채택하지 않는다는 이른바 「위법수집증거 배제원칙」을 완화하는 것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 법안은 또 수입이 불허되고 있는 자동무기에 대해 미국내 조립도 금지시키고 스테로이드의 불법 사용에 1년 징역을 과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법안이 사형 대상에 추가한 범죄는 항공기 및 열차 폭파테러,우편 폭탄을 이용한 살인,마약관련 살인 및 살인미수,대통령과 부통령에 대한 암살기도,간첩행위 등이다. 딕 돈버그 법무장관은 이 법안에 대해 『모든 미국인의 첫번째 민권인 가정 거리 사회에서의 안전을 보장하는데 있어 경찰과 검찰을 돕는 중요한 조치』라고 환영했다. 사형 집행절차의 획기적인 변화,특히 사형수들이 판결의 법적효력에 대해 헌법적인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절차인 인신보호 영장제도의 제한은 미 의회가 1973년 이래 추진해온 것으로 이번에 비로소 실현된 것이다. 지금까지 사형수들은 주 차원의 여러가지 상소와 연방법원을 상대로 한 청원을 이용하여 형집행을 10년 이상 지연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입법으로 사형수에 대한 형집행의 촉진이 가능해져 그만큼 사회정의실현에 효율을 기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1977년 미국에서 사형제도가 부활된 후 지금까지 1백29명의 사형이 집행됐으며 2천4백여명이 사형집행을 기다리고 있다. 미국의 많은 전문가들은 범죄에 대한 인식 전환과 형사처벌 제도의 변화가 없을 경우 미국은 1960년대처럼 광범한 도시 소요와 높은 범죄율에 다시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의회의 새로운 범죄퇴치법 제정은 이같은 위기 의식의 산물이다. 「살인 수도」라는 오명이 붙은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서 얼마전 주말 이틀밤 사이에 9건의 살인 사건이 연발,거리를 피로 물들였다. 경찰은 즉각 특별기동대를 발족시켜 순찰을 강화했고 한때 마약을 피우다가 현장에서 체포당해 미 전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메리온 베리 시장은 앞으로 수주안에 경찰이 이 사태를 막지 못하면 우범지역에 야간통행 금지를 시행하고 시방위군을 소집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워싱턴 시의회는 두번에 걸쳐 18세 이하에 대한 야간통금을 시도했다가 헌법위반이라는 법원의 판시로 시행에 옮기지 못했다. 베리 시장이 이번에 언급한 통금안은 나이에 제한을 두지 않는 광범위한 것으로서 그는 이 통금안이 시행될 수 있는 방안의 연구를 법률가들에게 요청했다고 밝혔다. 올들어 워싱턴에서 살인사건으로 희생된 사람은 무려 3백80여명에 달한다. 이 숫자는 연말까지 작년의 4백38명을 상회할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에서 일어나는 살인사건의 60%는 마약과 관련된 것이다. 살인사건 발생률은 워싱턴 뿐만 아니라 뉴욕 시카고 로스앤젤레스 보스턴 뉴올리언스 덴버 등 주요 대도시에서 모두 증가했다. 지난 8월 미 상원법사위가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금년도의 피살자는 2만3천2백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강간사건은 80년의 8만3천건이 88년에 9만2천5백건으로 늘어났으나 강도의 경우 80년의 56만5천건이 88년엔 54만3천건으로 줄어들었다. 미국의 장래를 위협하는 공적 1호로 간주되는 마약은 미 국민의 15%가 상용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2억정 이상으로 추정되는 민간인 소지 총기는 살인등 강력사건의 주범으로 지적되고 있다. 거의 모든 주가 교도소의 포화상태로 인해 수감자를 조기 석방하거나 수용시설을 서둘러 확장해야 할 판이다. 뉴욕주의 경우 6년전 44개 교도소에 3만2천명이 수용돼 있던 것이 지금은 63개 교도소에 5만5천명이 수용돼 있다. 미 연방정부와 의회는 1960년대부터 범죄 예방을 위해 큰 노력을 기울여 왔다. 범죄예방 및 수사 등의 치안활동은 원칙적으로 주정부 및 하부 지방자치단체의 소관사항이나 60년대 중반 의회가 각 주의 치안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LEAA(법률집행지원처)를 설립함으로써 연방정부로 하여금 범죄퇴치를 선도케 하는 새시대를 열었다. LEAA는 12년간 존속하면서 약 75억달러의 재정보조금을 각 주에 지급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의회는 80년대에 3개의 범죄단속법을 통과시켰다. 84년의 종합범죄단속법은 연방정부의 형사처벌 체제를 정비한 것이었고 86년과 88년의 2개 마약추방법은 마약범죄의 형량을 높이고 중앙과 지방정부의 마약단속업무에 대한 재정지원을 규정한 것이다. 작년까지 이 2개법을 통해 나간 지원비는 1백억달러가 넘는다. 부시 대통령은 작년 5월 폭력범죄와 싸우기 위한 ▲법규강화 ▲범인 체포 및 기소율 제고 ▲교도소 증설 등의 종합계획을 발표한후 작년 9월 특별연설을 통해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부시는 또 금년 1월 「마약통제전략보고서」를 발표하고 마약추방업무를 위해 새 예산안에 전년도 보다 12% 증가된 1백6억달러를 계상했다. 전문가들은 미국 사회의 범죄가 교육ㆍ교통ㆍ의료문제 등 도시 체제와 핵가족의 쇠퇴를 반영하는 것으로서 사회적 고질인 마약ㆍ총기ㆍ폭력,그리고 정책과 예산의 나태상이 뒤얽힌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모든 문제의 해결을 정부에만 의존한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범죄문제는 더욱 그렇다』 최근 미국 사회에는 이같은 인식과 함께 『경찰이 범죄를 막을 수 없다면 우리 스스로가 맡아야 한다』면서 자경체제가 확산되고 있다. 미국의 직업 경찰관은 75년의 40만명에서 88년엔 60만명으로 늘어났다. 같은 기간중 민간분야의 자체 경비원 숫자는 40만명에서 1백40만명으로 늘어난 사실이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프랑스/86년 「반테러」선포,외인비자 면제 폐지/“마약박멸 최우선”… 「특수부대」 곳곳 순찰 요즘 갈수록 확산되고 있는 프랑스 고교생들의 시위 구호에는 하나같이 치안확립을 요구하는 내용이 들어있다. 『무서워서 못살겠다』고 직설적인 표현을 쓴 것이 있는가 하면 프랑스혁명 이후 국시가 되어온 자유 평등 박애를 변형시켜 『자유 평등 안전』을 내걸기도 했으며 『내게 최우선은 안전』이라고 강조하는 문구도 보인다. 프랑스의 치안상태를 엿볼 수 있게 하는 단면이다. 학교주변 심지어는 교내에서까지 빚어지고있는 폭력강도 부녀자폭행 등 각종 범죄의 증가 현상이 이번 고교생들의 시위발단의 중요원인의 하나가 되고 있다. 그들의 구호가 표현하듯 치안불안 때문에 등하교길의 공포는 물론 수업분위기마저 흐려지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 따라서 학생들은 생활지도 전담교사의 증원,보호감시체제의 확충 등을 주요 요구조건으로 내걸고 있다. 80년에는 총범죄발생 건수가 모두 2백62만7천5백8건으로 인구 1천명당 49건에 머물렀으나 87년에는 3백17만9백70건으로 1천명당 57건으로 늘어났다. 파리를 처음 여행하는 사람들은 잇따라 귀청을 때리는 경찰차의 사이렌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곤 한다. 아마도 파리는 사이렌소리를 가장 자주 들을 수 있는 도시중의 하나일 것이다. 거리 요소 요소에는 폭동진압 특수부대원(CRS)들이 행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일일이 감시한다. 주민이든 여행자이든 가릴 것 없이 수시로 실시되는 불심검문에 응해야 한다. 범죄의 증가 추세는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그것이 크게 사회문제화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데는 바로 이같이 철저한 예방경찰활동이 한몫을 하고 있다. 프랑스는 경찰국가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치안행정체계가 확립되어 있다. 내무부 산하에 경찰총국이 있는 것은 우리나라와 같지만 경찰관서는 최하급기관까지 철저히 기능별로 분리 독립되어 있다. 수사경찰서와 형사경찰서가 따로 있으며 특수범죄의 진압과 수색 등을 담당하는 전경대가 별도로 설치되어 있어 기능과 활동의 중복을 피하도록 되어 있다. 프랑스에서도 대 범죄 선전포고가 내려졌던 일이 있다. 86년 9월 자크 시라크 당시 총리의 대 테러전쟁 선포가 그것. 그전해 12월부터 시작된 폭탄테러는 정부의 강경조치가 나오기까지 9개월동안 파리에서만 11건이나 발생했고 모두 7명이 목숨을 잃고 2백50여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이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의 하나였던 파리는 공포의 도가니로 변했고 관광객의 발길마저 주춤해지는 등 심각한 양상으로 빠져들었다. 프랑스 정부의 대 테러 전쟁선포에 따라 파리시내의 사람이 많이 모이는 극장 백화점 영화관 큰식당 등에는 사복경찰이 배치되어 출입하는 사람들의 가방을 일일이 조사했으며 거리에서도 불심검문이 강화됐다. 또 외국인에게 비자를 면제해주던 제도를 폐지,EC국가와 스위스를 제외한 모든나라 사람들은 입국비자를 받도록 했다. 국경과 공항 항만에 1천명의 군대를 배치,경계를 강화했다. 프랑스 전체를 뒤흔든 연속테러사건은 살인죄로 복역중인 동료의 석방을 노리는 아랍정치범동맹이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는데 시라크 총리는 이들의 테러확대 협박에도 불구하고 『프랑스가 전시상황에 처했으며 모든 프랑스 국민은 수상한 일을 즉각 경찰에 연락,반테러전쟁에 협력해 줄 것』을 호소하는 등 강경자세로 일관했다. 이때부터 수상한 사람을 신고하는 사람들의 제보가 경찰에 줄을 이었고 불심검문과 신분증 휴대조치에도 시민들이 솔선해서 적극 협조했다. 이때의 강경대책에는 치안법을 고쳐 신분검사 조항을 새로 마련하는 법적조치가 선행됐었으며 경찰관의 증원과 장비의 보강 등이 뒷받침됐음은 물론이다. 그리하여 더 이상의 테러는 일어나지 않았다. 프랑스 정부의 강경대응과 국민들의협조가 대 테러전쟁에서 승리를 가져다 준 것이다. 아직도 코르시카섬의 분리주의자들이나 브레타뉴지방의 「독립당」 또는 극렬 반정부단체인 악시옹 디렉트 등에 의한 폭탄 테러 요소가 잠재해 있기는 하지만 「전쟁」에서의 승리 이후 파리는 테러에 관한한 평온을 되찾았다. 최근 학생시위가 잇따르자 프랑스 정부는 즉각 1천개의 감시초소를 만들고 3천명의 요원을 중고교주변에 배치하겠다고 약속하는 등 범죄예방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이같이 문제가 표면화됐을 때 행동력이 수반된 적극적인 자세가 범죄의 증가추세 속에서도 프랑스 사회를 건강하게 지켜주는 보루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일본/“치안 우수”… 한밤에도 맘놓고 다닐 수 있어/「인ㆍ금ㆍ물」단속전략으로 조직폭력을 발본 일본은 세계에서도 치안질서가 가장 잘 확보되고 있는 나라중의 하나이다. 북미에서 캐나다의 토론토가 밤거리를 마음놓고 활보할 수 있는 도시라고 한다면 동양에서는 도쿄(동경)가 그런 곳으로 꼽힌다. 근본적인 이유는 사회 전체가윤택하며 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일본 사회에 범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조직범죄,참혹한 범죄가 발생하는 것은 일본도 마찬가지이다. 더구나 일본인의 잔인성에 기인하는 범죄는 많다. 이러한 현상을 한마디로 설명하기는 힘들다. 다만 인간사회에는 어디나 범죄가 있을 수 있으며 세계 최대의 경제대국이라고는 하지만 신주쿠(신숙)역 니시구치(서구) 지하통로에는 언제나 10여명이 넘는 거지들이 자리잡고 누워있는 것과도 같은 현상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일본 사회에서 범죄는 끊임없이 일어난다. 지난 25일 상오 8시20분쯤에는 나고야시(명고옥) 도쿄은행지점 지하주차장에서 현금수송차가 잠복해 있던 2인조 강도에게 탈취당했으나 펑크가 나서 차를 버리고 도주하는 바람에 현금등 2천8백30만엔은 회수됐다. 범인들은 탈취 당시 단총 2발을 발사,손쉽게 현금수송차를 뺏을 수 있었다. 또 지난해 11월 요코하마(횡빈)에서 발생한 변호사 일가족 3명의 실종사건은 1년이 넘도록 단서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일본은 특히 과격파와 야쿠자의 무법이문제로 되어 있는 사회이다. 가지야마 세이로쿠(미산정육) 법상과 오쿠다 게이와(오전경화) 국가공안위원장은 지난 23일 과격파 대책에 관한 이례적인 성명을 발표했다. 이 성명은 범죄집단에 대해 범죄행위의 즉각 중지를 촉구하고 검거되는 자에 대해서는 「파괴활동 방지법」적용도 불사하겠다고 경고했다. 이것은 물론 오는 11월12일의 일왕 즉위식 및 일련의 왕실행사를 앞두고 발표된 것이기는 하나 최근의 일본에 「법질서에 도전,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범죄」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안조사청의 집계에 따르면 올들어 발생한 과격파 게릴라 활동은 56건으로 지난해 27건의 2배에 달하고 있다. 이처럼 게릴라활동은 건수가 많을 뿐만 아니라 그 수법이 날로 흉악화하는 특징을 보인다. 예컨대 시한발화장치를 하는 경우 현관과 뒷문에까지 장치,집안에 있는 사람들이 도주하지 못하도록 할 정도로 악랄하다. 지난 4월 가나가와현(신내천) 가마쿠라시(겸창시)에 있는 항공기회사 전무집에서 이같은 시한발화장치가 폭발,부인이 도피로를 찾지 못해 희생됐다. 사용무기도 시한발화장치로부터 폭탄 및 박격포탄까지 다양하다. 보다 강력한 폭탄 및 박격포의 개발로 비거리가 6∼8㎞에 이르는 가공할만한 것도 생겨났다. 일본은 특히 야쿠자폭력이 만성화되어 있는 사회이다. 경찰청 형사국 통계에 따르면 지난 연말 현재 폭력단체수는 3천1백97개,조직원수는 8만6천5백52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2개 이상의 도ㆍ도ㆍ부ㆍ현에 걸치는 조직을 갖고 있는 소위 「광역폭력단」에 속하는 단체는 2천8백40개,구성원수는 6만9천3백81명이다. 특히 이 광역폭력단 가운데서도 상위 3대조직에 속하는 자는 단체수로 1천3백97개단체,구성원수로 3만4천4백92명이나 된다. 이들 야쿠자조직에 의한 피해는 2가지로 대별된다. 첫째는 폭력단끼리의 대립항쟁으로 인한 시민생활의 불안이다. 지난 84년 이후 5년간 일본 전국에서 발생한 조직폭력단끼리의 싸움은 9백35건에 달했으며 이 가운데 7백67건은 총기를 사용한 싸움이었다. 이로 인한 사망자는 77명이었고 부상자는 3백38명에 달했다. 이들이 총기를 휘두르며 무법을 연출하는 지역의 주민들은 불안할 수 밖에 없다. 야쿠자조직에 의한 또다른 피해의 하나는 시민생활에의 직접 침투이다. 주식시장에의 개입,지가조작,빌딩입주자들의 추방 등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이같은 조직폭력단에 대해 일본 경찰은 「인ㆍ금ㆍ물」의 3갈래로 단속을 계속 해오고 있다. 「인적」단속은 폭력단원의 대량적인 반복검거이며 「금」은 자금원활동에 대한 단속이고 「물적」단속은 총기 등의 단속을 의미한다. 일본의 경찰은 무서울 만큼 강하다. 표면상 거리에서의 활동은 눈에 띄는 것 같지 않으나 그 추적의 철저함은 일제시절 항일투사들의 「단속」에서 보여준 「고등계 형사」들의 활동을 연상하면 된다. 그러나 일본이 오늘의 안정사회를 구축하고 있는 것은 경찰을 비롯한 관공서의 활동결과에 의한 것만은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시민의 힘이 더욱 크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폭력추방 히로시마(광도)현민회의」 및 「가나가와(신내천)현 폭력추방추진회의」등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이들은 충분한 재정적 뒷받침과 전담직원을 확보하고폭력단 배제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밖의 지역주민들도 업소에는 「폭력단원 출입 사절」의 팻말을 붙이거나 민관일체가 되어 폭력ㆍ범죄 추방운동을 벌인다. 지난 한햇동안에는 전국에서 모두 2백53개소의 폭력단 사무소가 지역사회에서 추방됐다. 또 건설업ㆍ부동산업ㆍ공영경기장 등 직역별 추방활동도 활발하다. 관과 일체가 된 시민의식의 활성화가 범죄로부터 사회를 보호하고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 「대결청산」방안 서울ㆍ평양 시각차 여전

    ◎강영훈총리 기조연설 요지/“상호 실체인정… 도와주고 도움받는 관계로”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서로 상대방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하며 상대방 내정문제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합의의 토대가 이룩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와 같은 토대위에서 교류협력과 정치 군사적 신뢰구축,그리고 균형있는 상호 군축을 실행하고 민족화해와 평화정착을 이룩하고자 한다. 남북 쌍방은 다각적인 교류협력 분야 중에서도 1천만 이산가족들의 문제해결에 특히 관심을 가져야 한다. 또한 남북 쌍방은 남북간의 물자교류와 경제협력을 적극 추진해 나가야 한다. 남북간에 통행ㆍ통신 및 경제교류 협력에 관한 합의서가 하루빨리 채택되어야 함을 강조하면서 이에 대한 우리측의 제안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남북통행에 관한 제안=①남북의 주민이 육로ㆍ해로ㆍ공로를 통하거나 또는 외국을 경유하여 남북을 왕래하는 절차와 준수해야 할 의무 등 필요한 사항을 정한다. ②남북을 왕래하는 자는 자기측 당국이 상대지역 방문을 허가하는 증명서와 방문지역의 당국이 발행한 방문허가증명서를 소지한다. ③남북의 당국은 통행을 위하여 쌍방의 합의에 따라 통과지점 및 통행로를 지정한다. 육로의 경우 우선 「장단」과 판문점을 통과지점으로 하며 경의선 철도와 문산ㆍ개성간의 도로를 연결한다. ④상대측 지역을 방문하는 자는 방문하는 동안에 필요한 물품과 일정한 한도를 초과하지 아니하는 선물을 휴대할 수 있다. ⑤남북의 당국은 자기측 관할지역에 들어오는 인원에 대한 교통수단을 제공한다. ⑥상대측 지역을 방문하는 자는 상대측의 질서와 안내에 따른다. ⑦남북의 당국은 자기측 지역을 방문하고 있는 자에게 불의의 사고가 발생하면 긴급 구제조치를 취한다. ⑧남북의 당국은 자기측 지역을 방문하고 있는 자에게 허가된 목적 수행을 위한 활동을 보장하고 신변안전과 무사귀환을 보장한다. ⑨통행에 따르는 제반문제를 협의ㆍ조정하기 위하여 남북통행위원회를 설치ㆍ운영한다. ⑩통행에 따르는 실무문제를 관장하며 행정지원 및 연락업무 수행과 남북통행위원회로부터 위임된 사무를 처리하기 위하여 서울 평양 판문점에 공동연락사무소를 설치ㆍ운영한다. ◇남북(통신)에 관한 제안=①남북간 상호 우편ㆍ전기통신의 교류에 필요한 사항을 정한다. ②남북의 우편당국은 상대측의 주민이 수신으로 되어 있는 우편물을 수집하여 상대측에 전달하며,우편물을 전달받은 측은 자기측의 정상적인 방법으로 수신인에게 배달한다. ③남북한 우편물의 교환장소는 판문점으로 하고 주1회 교환을 원칙으로 하되 필요한 때에는 남북의 당국간 합의로 따로 정할 수 있다. ④남북의 당국은 남북간 전기통신 교류를 원활히 하기 위하여 필요한 시설을 갖추어야 하며 남북간 전화통화는 교환대를 통하여 연결하고 이를 점차 자동화한다. ⑤남북으로 교환되는 우편 전기통신 요금은 남북 당국이 협의하여 결정한다. ⑥남북의 당국은 남북으로 교류되는 우편 전기통신에 대하여 비밀을 보장하며 어떠한 경우에도 이를 정치적 군사적 목적에 이용하지 않는다. ⑦남북간 통신교류에 수반되는 제반문제를 협의ㆍ조정하며 남북간 통신교류의 확대ㆍ발전을 도모하기 위하여남북통신위원회를 설치ㆍ운영한다. ⑧남북간 우편ㆍ전기통신 교류의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고 남북간 통신기술의 통일적 발전을 도모하며 남북통신위원회로부터 위임된 사무를 처리하기 위하여 남북통신기술단을 설치ㆍ운영한다. ⑨남북의 당국은 우편ㆍ전기통신 교류에 관한 국제적 협약을 존중한다. ◇남북경제교류 협력에 관한 제안=①남북 당국은 상호간의 물자교류 및 경제협력 사업을 원활하게 추진하기 위해 필요한 사항을 정한다. ②남북간의 물자교류 또는 경제협력사업의 당사자는 품목별 또는 사업별로 쌍방이 각각 지정하는 해당기관으로 한다. ③교류대상 품목은 상호보완의 원칙에 따라 정한다. ④교류양은 쌍방의 수급사정을 감안하여 연간 교류규모를 조정한 후 품목별로 교류당사자간 상담을 통해 결정한다. ⑤교류물자의 가격은 국제시장가격을 고려하여 교류당사자간 합의에 의하여 결정한다. ⑥거래방식은 청산결제 방식으로 하되 경우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할 수 있다. ⑦결제사무는 쌍방이 지정하는 남과 북의 은행이 직접 담당하도록한다. ⑧결제통화는 스위스 프랑화로 한다. ⑨상호간의 물자교류는 민족내부교역 차원에서 추진하며 관세를 부과하지 않는다. ⑩교류물자의 수송방법은 교류물자의 특성ㆍ중량ㆍ운송비 등을 감안하여 교류당사자간에 상호 협의하여 정하되 철도ㆍ자동차ㆍ선박ㆍ항공기를 합리적으로 이용한다. ⑪남북간에 자원의 공동개발ㆍ합작투자 등 제반경제협력을 실시하며 경제분야에서의 공동대외 진출과 공동대외협력 사업을 추진한다. ⑫경제협력사업의 규모,실천방법 및 조건,실시시기 등에 관하여는 경제협력사업의 당사자간의 협의를 통하여 정한다. ⑬남북간의 물자교류와 경제협력을 실현하며 경제적 유대를 회복하고 민족경제의 공동발전을 도모하기 위하여 쌍방의 부총리급을 위원장으로 하는 남북경제협력 공동위원회를 설치ㆍ운영한다. 이상과 같은 다각적인 교류협력 실시와 정치 군사적 대결상태 해소방안에 대한 협의를 진전시키기 위하여 부문별 협의회를 구성ㆍ운영할 것을 제의한다. 합의된 의제에 따라 교류협력협의회와 정치 군사협의회의 두 부문별협의회를 구성ㆍ운영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다음과 같은 3개항의 당면과제에 대해 귀측의 성의있는 태도 표시가 있기를 거듭 촉구한다. 첫째로 조국의 평화와 평화통일을 앞당기기 위해서는 남북 관계개선과 화해협력의 새시대를 열어야 한다. 둘째로 분단으로 야기된 민족적 고통을 하루속히 덜어주어야 한다. 셋째로 남북 동포들이 다같이 잘살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평화통일이 이룩되기 이전이라도 남북이 공존공영을 도모해야 한다. ◎연형묵 총리 기조연설 요지/“분열지향 자세 벗어나 주체통일 모색을” 제1차 회담 때에 제기된 쌍방의 제안들을 비교하여 보면 근사한 점도있고 차이점도 있다. 근사하다고 하는 것은 첫째로 의정과 관련된 기본문제 토의에 앞서 서로 공동의 기초로,출발점이 될 수 있는 원칙적인 문제에 대하여 합의를 보자는 점이다. 둘째로 의정에 따르는 방안들을 기본적으로 정치ㆍ군사ㆍ다방면적인 협력과 교류의 세가지로 구분하여 제기하고 있는 점이다. 셋째로 근사한 점은 매개 방안들에 전개되어 있는 부분적인 항목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쌍방의 제안들에는 이상과 같은 근사한 점들이 있는 반면 신중한 토의를 요하는 본질적인 차이점들도 있다. 첫째로 문제해결의 선후차와 관련된 것이다. 즉 우리는 정치 군사적 대결상태를 해소하는 문제에 선차성을 부여하면서도 이와 병행하여 다방면적인 협력과 교류를 실현해 나갈 것을 제기하고 있는 반면에 귀측은 협력과 교류문제에 선차성을 부여하면서 군축문제를 차후의 과제로 제기하고 있다. 둘째로 군사문제 해결의 단계설정과 관련된 문제이다. 즉 우리는 군사문제들의 해결을 하나의 통일적 과정으로 보고 있으나 귀측에서는 군사적 신뢰구축 단계와 군축단계를 서로 구분하고 있다. 셋째로 미군과 그의 핵무기의 철수와 관련된 문제이다. 넷째로 쌍방의 제안들이 부분적인 근사점은 있으나 총체적으로는 그 성격이 다르다는 것이다. 쌍방이 차이점을 극복하는 데서 중요한 문제는 첫째로 나라의 통일문제 해결에서 주체를 철저히 세우는 것이다. 둘째로 우리들의 제안에서 나타나고 있는 차이점을 극복해나가는 데서 중요한 것은 쌍방이 다같이 통일지향적인 자세를 가지는 것이다. 셋째로 중요한 것은 북남 사이의 불신에 대해서 같은 인식을 가지고 그 해결 방도를 바로 찾는 것이다. 우리는 「민족대교류」니 「60세 이상 노부모들의 고향방문」이니 하는 일시적 미봉책으로 갈라져 사는 겨레의 간절한 염원을 달래려고 할 것이 아니라 정치 군사적 대결상태를 해소함으로써 호상 불신을 근원적으로 제거하고 인도주의문제와 협력ㆍ교류문제도 적극적으로 철저히 해결해야 한다. 넷째로 중요한 것은 통일문제 해결의 가장 가깝고도 합리적인 길을 모색하는 것이다. 상대방을 없앨 것을 전제로 하는 단일제도에 의한 통일의 길이 아니라 서로 먹거나 먹히우지 않고 통일하는 길,두 제도,두 지역 정부를 그대로 두고 하나의 국가,하나의 민족으로 통일하는 길을 택해야 한다. 쌍방의 제안 가운데서 보다 전진적이고 실천적 의미가 있는 합의문서를 작성ㆍ발표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며 그러한 역사적인 문건으로서 다음과 같은 남북 불가침에 관한 선언을 채택ㆍ발표할 것을 제의한다. ◇북남 불가침에 관한 선언(초안)=북과 남은 조선반도에 조성된 긴장상태를 가시고 전쟁을 방지하며 나라의 평화와 평화통일을 이룩하려는 일치한 염원으로부터 출발하여 7ㆍ4 공동성명에 밝혀진 자주ㆍ평화통일ㆍ민족대단결의 조국통일 3대원칙을 재확인하고 철저히 준수하며 상대방에 존재하는 사상과 제도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상대방의 내부문제에 간섭하지 않을 데 대하여 합의하면서 다음과 같이 엄숙히 선언한다. 제1조,북과 남은 하나의 민족으로서 어떠한 경우에도 상대방을 반대하여 무력을 사용하지 않으며 무력으로 상대방을 침해하지 않는다. 제2조,북과 남은 있을 수 있는 의견상이와 분쟁문제들을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평화적으로 해결한다. 제3조,북과 남 사이의 불가침 경계선은 1953년 7월27일부 조선군사 정전에 관한 협정에 규정된 군사분계선으로 한다. 제4조,북과 남은 호상 불가침에 관한 약정을 확고히 담보하기 위하여 군비경쟁을 중지하며 무력을 단계적으로 축감한다. 제5조,북과 남은 당면하여 우발적인 무력충돌과 그 확대를 방지하기 위하여 쌍방 군사당국자 사이에 직통전화를 설치ㆍ운영한다. 제6조,이 불가침선언은 북과 남의 합의에 의하여 수정 보충할 수 있다. 제7조,이 선언은 북과 남이 각각 발효에 필요한 절차를 거쳐 이를 상대방에게 알리는 통고문을 교환한 날부터 효력을 발생하며 어느 일방이 폐기를 통고하지 않는 한 조국통일이 실현되는 날까지 효력을 가진다. 다음으로 이번 회담에서 우리들이 결속을 짓고 넘어갈 문제는 우리가 제1차회담에서 긴급문제로 제기한 바 있는 유엔 대책문제와 「팀스피리트」 합동군사연습 중지문제,방북인사 석방문제이다. 첫째로 쌍방은 남북고위급회담 본회담과 대표접촉에서 유엔 대책문제를 통일위업에 이롭게 협의ㆍ해결 하기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한다. 둘째로 쌍방은 본회담과 대표접촉에서 유엔 가입문제와 관련한 합의를 이룩할 때까지 그에 대한 토의를 계속한다. 셋째로 쌍방은 남북고위급회담에서 유엔 대책문제를 합의하기 전에는 어느 일방도 먼저 유엔에 가입하지 않는다. 방북인사 석방문제도 남북대화 분위기에 맞게 시급히 해결되어야 한다.
  • 한반도에 「교차승인」 기운 감돈다/북한·일본 급속접근의 파장

    북한이 27일 일본에 국교정상화 협의를 제의,일본은 물론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가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지금까지 일본과의 수교는 「2개의 조선」을 인정,분단을 고착화시킨다는 이유로 반대해온 북한이 갑작스레 태도를 돌변,수교협상을 제의하고 나온 데 대해 갖가지 추측이 쏟아지고 있다. 소련과 중국이 한국과 접근하고 있는 데서 오는 고립감 탈피가 가장 중요한 이유로 꼽히고 있으나 그렇다면 과연 북한이 「2개의 조선」 반대정책을 포기했느냐는 점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북한의 태도변화를 바라보는 한국과 일본의 시각을 정리해본다. ◎도쿄의 반응/“수교 앞세워 경협흥정 치중” 의구심/한·소 수교 견제 전술적 전환 시각도 북한의 전격적인 대일 수교제의는 일본에도 큰 충격파를 던졌다. 전혀 「예상밖의 사태」로서 각계가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이번 제안의 배경에는 어떤 판단이 작용했는가,일본 외무성을 비롯한 관계전문가들은 그 저의 분석에 골몰하고 있다. 외무성은 자민·사회 양당 북한방문단과 동행한 가와시마 유타카(천도유) 아시아국 심의관으로부터 상세한 귀국보고를 들은 뒤 대응책을 결정할 방침이다. 27일 평양에서 개최된 북한·일본간의 사상 첫 정부레벨 접촉인 외교 실무담당자 협의에서의 제안 당시 상황은 다음과 같다. ▲천용복(북한 외교부 부부장)=곧바로라도 국교정상화 교섭을 개시하자. ▲가와시마 유타카=그렇다면,(북한의) 방침이 변했다는 것이냐. ▲천=그렇다. ▲가와시마=지금까지 한반도에 2개의 국가를 인정하는 것은 분단을 고착화시킨다고 반대해오지 않았는가. 동·서독은 분단국가이면서도 통일국가가 되었다. 게다가 북과 남을 2중 승인하고 있는 국가가 84개국이나 되지 않는가. 일본 외무성은 이같은 북한의 대일정책 전환의 요인으로서 다음 3가지를 꼽고 있다. 첫째 한국의 활발한 북방정책에 의한 소련·동구제국과의 눈부신 관계진전에 압도되어 있는 점. 둘째 어린이들의 영양부족마저 지적되고 있는 심각한 경제적 궁핍. 셋째 지난 9월 초순 평양을 방문한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장관으로부터 한국과의 국교수립방침을 통고받고 충격을 받았다는 점 등이다. 북한의 정책전환에 대해 일본 외무성 수뇌는 27일 밤 『북한의 지금까지의 공식발언으로 미루어볼 때 예상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북한은 김일성 주석의 주체사상을 기초로 자주·자립노선을 견지하고 있으며,일본 정부의 한반도정책에 대해 『한국 일변도로 북한에 적대정책을 취하고 있다. 분단고착화를 위한 한·미군사동맹에 가담하고 있다』는 등 격렬하게 비판해왔다. 이번 일본의 북한방문단이 평양에 도착한 당일인 지난 24일 밤 조선 로동당 주최 환영연에서도 국제부장인 김용순은 인사말을 통해 「2개의 조선」을 합법화하는 것에 의한 한반도 분단고착화는 결코 허용할 수 없다며 종전의 원칙론을 고수하고,한국과의 국교수립을 서두르고 있는 소련을 격렬히 비난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대일 국교정상화 제안이 나오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같은 북한이 일본측에 대해 국교정상화 교섭을 제의한 것은 더이상 국제사회에서 고립될 수 없다고 판단을 내린 한편,『통일의 깃발은내리지 않지만 당분간 정책을 변경,경제중심으로 힘을 쌓아 한국에 대항하려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여기에 김일성 주석의 78세라는 나이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자신이 건재해 있을 때 정책을 전환하겠다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김 주석이 이달 중순 중국을 방문했던 것도,한국과의 경제관계를 착실하게 확대해나가고 있는 중국에 대해 『최소한 중국만은 배신하지 않도록 못을 박아두려 했던 것』(외무성 간부)이 아닌가 보고 있다. 북한에 있어서 「2개의 조선」 불인정은 「국시」와 같은 것이다. 그 근간에 영향을 미치는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문제와 대일 국교정상화는 응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북한은 남북대화가 진행되고 있던 다나카(전중) 내각시절인 지난 72년을 계기로 『한·일기본조약의 파기가 북한·일본 국교정상화의 전제』라는 방침을 완화,일본과의 국교정상화에 유연한 자세를 취했던 일도 있다. 그러나 그후 관계개선은 기대했던 것 만큼 진전되지 않았으며,78년 일본 사회당의 아스카다 이치오(비조전일웅) 위원장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는 국교정상화를 거부,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이제와서 느닷없이 국교정상화를 제의한 배경에 대해 일본 외무성 관계자는 『한·소 국교수립을 앞두고 한국을 견제하겠다는 의미가 있다』고 본다. 「전술적 전환」이라는 것이다. 30일 뉴욕에서 개최될 예정인 한·소외무장관회담에서 양국의 국교수립은 결정적인 사실로 되어 있으며,북경아시안게임을 계기로 한국과 중국과의 경제교류도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같은 상황에서 어느 정도의 「균형감각」을 취해 서방측과의 관계개선에 나서지 않으면 국제적 고립은 더욱 심화되고,후계자인 김정일에의 정권이양이 원활하게 될 수 없다는 고도의 정치판단이 작용한 것이 아닌가라는 견해도 유력하다. 또 외무성에는 『북한측에는 제18후지산마루(부사산환)호 석방과 때를 맞춰 일본측으로부터 배상·청구권 문제 등 경제협력의 구체적인 내용을 조속히 끌어내려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차가운 시선도 없지 않다. 게오(경응)대오고노기 마사오(소차목정부) 교수는 이렇게 분석한다. 『북한의 진의는 일본과의 국교정상화 교섭을 시작함으로써 배상을 빠른 시일내 받아내려는 것이 아닌가. 일본은 국교정상화가 안된 상태에서는 북한에 보상금을 지불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으며,정상화 교섭 없이는 대규모 경제협력을 얻기도 힘들다. 따라서 우선 국교수립을 목표로 한다는 형식을 내놓았다고 본다. 그러나 북한이 통일을 전제로 하지 않고 일본과 국교를 맺는다는 것은 생각하기 힘들다. 한편 시즈오카(정강)대학 이즈미 겐(이두견원)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북한은 지난 연초부터 줄곧 일본과의 관계개선 준비를 해왔다. 일본의 국내정치가 당시 안정되지 못해 시간이 걸렸던 것뿐,의외성은 없다. 북한측은 배상 문제를 해결하려면 국교수립이 전제가 된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다. 북한의 논리로는 일본과 국교를 수립하더라도 「2개의 조선」을 인정하는 것으로는 되지 않는다. 일본이 북한을 적시하지 않고 한반도 통일에 반대하지 않는다면 지금까지라도 국교를 맺는 것은 가능했다.북한은 기본자세를 변치 않고 있다. 일본이 통일을 방해하고 있다는 「오해」가 풀린다면 분단고착화가 아니라 통일을 위한 국교수립이라는 것이 된다. 다만 교섭은 쉽사리는 진전되지 못할 것이다. 우선 배상 문제에 대해 일본 국내의 합의조성이 필요한데,거기에는 꽤 시간이 걸린다. 일본 정부는 또 한국의 반응에도 배려하며 교섭을 진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의 대응/핵협정 가입 등 평화보장장치 선결/남북한 대화 고려,속도조절을 희망 한소 양국이 30일 외무장관회담을 갖고 양국 수교 문제를 공식 협의하는 등 한소 수교가 임박한 가운데 북한이 일본측에 오는 11월 국교정상화 협의를 공식 제의함으로써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 질서에 새로운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또한 방북중인 일본의 가네마루(김환신) 전 부총리 일행이 『북한과 수교 전이라도 배상 문제를 정치적 결단으로 해결하겠다』고 발언하는 등 일·북한 관계개선이 급진전하고 있는 것으로 비쳐지고 있다. 정부는 일·북한 관계 급진전 관련보도에 대해 깊은 우려의 뜻을 일본 정부측에 전달하는 한편 이 보도가 사실로 밝혀질 경우 강력한 대일 대응조치를 강구할 방침이어서 일·북한 관계개선 문제는 한일간 외교마찰을 불러일으킬 소지를 배제하지 않고 있다. 우리 정부가 일본의 대북한 관계개선에 반대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일·북한 접근 문제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추구하는 범위내에서 진행되어야 하며 특히 남북대화와 관계진전이 고려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7·7선언에서 북방정책 추진과 함께 한반도의 평화를 정착시킬 여건조성을 위해 북한이 미국·일본 등 우리 우방국과 관계를 개선하는 데 협조할 용의가 있음을 밝혔다. 정부는 북한이 대남 적화통일노선을 포기하거나 핵안전협정에 가입하지 않고 남북 관계개선이 진전되지 않는 상황에서의 일·북한간 급속한 접근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도리어 해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일·북한이 접근하게 된 근본 동인은 한소 수교인 것으로 외교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즉 한소 수교로 인해 일본과 북한의 「충족욕구」가 맞아떨어졌다는 것이다. 과거 독점적인 동맹국이었던 소련을 잃게 된 북한은 일본을 경제협력 파트너로 인식하게 됐으며 일본은 동북아의 주도권을 소련에 뺏기지 않기 위해 「북한카드」를 이용하게 됐다고 관측된다. 경제적 위기에 처한 북한이 남북대화를 통해 남북간 경제협력을 모색하지 않고 일본과 긴밀한 경제협력을 하게 되면 결코 남북 문제 개선과 한반도 평화정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정부관계자의 공통된 지적이다. 일본이 경제적 활로를 찾고 있는 북한을 이용,핵안전협정 가입 등 한반도 평화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대북 관계개선을 추구하는 것은 한일관계에도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지적되고 있다. 일본이 대북접근에 적극적인 이유로는 또 ▲미·중국 수교의 닉슨쇼크(70년초) 이후 북한과의 수교는 미국보다 먼저 하겠다는 내부방침 ▲경제력에 상응한 국제정치적 위상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데 대한 압박감도 들 수 있다. 더욱이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 한반도 4강중 내심 한반도 통일에 가장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이 일본인 점을 감안할 때 「북한 카드」를 활용해 정치대국으로 운신하고 한반도 문제에 대한 발언권을 강화하겠다는 속셈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일·북한 관계개선을 장기적으로 볼 때는 북한의 개방과 개혁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일·북한 관계 급진전과 관련,우려하고 있는 핵심은 현상황에서 북한에 일본의 돈이 들어가면 중단기적인 면에서 북한의 대화·개방에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소련의 원조 중단,중국의 대북 경제협력 한계성에 비추어 북한은 지금 상당한 경제적 곤경에 처해 있기 때문에 개방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이다. 이런 때에 일본과의 관계개선을 통해 돈이 들어가면 오히려 전반적인 대외개방보다는 김일성 노선의 고수 강화쪽으로 기울어질 공산이 큰 것이다. 우리 정부가 불쾌하게 생각하는 대목도 없지 않다. 가네마루 전 부총리가 북한과 수교전 배상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발언한 것은 지난 65년 한일 국교정상화 과정에서 보상 문제를 오랜동안 어렵게 처리했던점을 감안할 때 한일 관계를 고려치 않은 처사라는 지적이다. 북한측은 일본과의 국교정상화 제의에 대해 『그동안 견지해온 「1개의 조선」 정책의 변경』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북한이 교차승인과 2개의 조선 정책으로 전환했는지는 오는 10월16일 제2차 평양총리회담에서 그들이 어떤 태도로 나오는지를 보면 그 허구여부가 확연히 드러날 것으로 관측된다. 앞으로 일·북한 관계개선 속도조절 문제는 한일 양국간 첨예한 외교 문제로 부각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이 우호적인 한일 관계를 계속 유지하려면 대북 관계개선 속도를 상당히 늦출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이미 북한의 조속수교 의사를 읽은만큼 일단 대북관계 속도를 조절한 뒤 한소 수교 진전과정을 지켜보면서 대북 관계개선을 추진할 것으로 외교관계자들은 관측하고 있다.〈박정현 기자〉 ◎일 자민·사회당 대표 방북 4박5일/수교원칙엔 접근… 배상액수 등 난제/예상밖 성과로 되레 큰 짐 떠안은 셈 「가네마루 북한방문단」은 너무 많은 것을 안고 돌아왔다. 가네마루 신(김환신) 전 부총리와 다나베 마코토(전변성) 부위원장을 각각 단장으로 하는 일본의 자민·사회 양당 대표단의 출발 당시의 계산은 제18후지산(부사산)호 선원 2명의 석방과 쌍방의 연락사무소 설치만 합의되면 대성공이라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24일부터 28일까지 4박5일간의 짧은 교섭과정에서 대표단은 스스로 당황할 만큼 많은 것을 얻었다. 전혀 예상하지도 못했던 「국교정상화」 교섭 문제가 공동성명에까지 포함됐다. 가네마루 단장은 묘향산 초대소에서 이틀밤을 머물며 김일성 주석과 3차례의 회담을 가졌다. 기대 이상의 「성과」였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외교적 성과」로 치부한다는 것은 피상적 관찰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은 성과로 볼 수 없다. 오히려 북한측의 치밀한 「전술적 전환」에 타케트가 되었다고 보는 것이 더욱 정확하다. 「성과」란 하나의 목표를 놓고 대등한 입장에서 일진일퇴의 공방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다. 한쪽이 다른 목적을 갖고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것은,아무리 상대편이 원하고 있던 사항이라 하더라도 성과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상대방 전략에 대한 「대응의 필요」라는 짐만 지는 셈이다. 북한은 종래의 대일 파이프라인이었던 일본 사회당을 제치고 집권 자민당의 최고실력자 가네마루 전 부총리를 조준,전략의 카드를 마음껏 펼쳤다. 국제적 고립상황의 탈피,경제적 핍박의 해소,한국에 대한 견제 등 필요에 의한 카드였다. 어쨌든 이번 자민·사회 양당 대표단의 북한 방문결과는 엄청났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물론 국교정상화 제의였다. 김일성 주석을 비롯한 북한당국자들이 27일 여러 경로를 통해 일본과의 수교를 제의해온 것에 대해 일본 정부는 한때 당혹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으나 『원칙적으로 받아들인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다만 『한반도 전체의 안정,긴장완화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한국·미국과도 의견을 교환해가며 교섭을 진전시킨다』는 입장이다. 이번 북한 방문에서 가네마루 전 부총리는 자민당의 첫번째 대표단 단장으로서 김일성 주석과 회담했다. 이 자리에서 가네마루 전 부총리는 과거 식민지 지배를 사죄하는 가이후(해부)총리의 자민당 총재 명의 서한을 전달하고 충분히 보상하겠다는 뜻을 전달했으며,북한·일본 쌍방은 전면적으로 관계를 개선,새로운 우호관계를 수립한다는 데 인식의 일치를 보았다. 28일 하오 발표된 북한 로동당과 자민·사회 3당의 공동성명에는 국교정상화 교섭을 양쪽 정부에 요청한다는 것을 비롯,과거 식민지 지배에 대한 일본측의 사죄와 반성을 명기했으며 보상의 실현을 위해 정부간 교섭을 개시한다는 사실이 포함되어 있다. 또 일본 정부발행 여권에 북한 제외조항을 삭제한다는 사실,도쿄∼평양간 직행편 개설,연락사무소 설치,통신위성의 이용 등 현안도 명기됐다. 전문 8장으로 된 이 공동성명은 당초 28일 상오 발표될 예정이었으나 보상 문제에 의견이 엇갈려 난항을 거듭,이날 하오 5시 넘어 조인됐다. 기초작업은 자민당의 이시이(석정) 대표단 사무총장,사회당 야마하나(산화) 부서기장 및 북한 로동당 김양건 국제부 부부장 등 사이에 27일 밤부터 28일 상오 8시에 걸쳐 철야로 진행됐으나 결론을 보지 못했다. 이에 따라 가네마루 다나베 양단장과 로동당 김용순 서기가 대표자회의를 열어 조정했다. 이날 문제가 된 보상 문제에 대해 자민당측은 『앞으로 양국 정부간의 교섭을 개시,하루라도 빨리 실현에 노력한다』는 취지로 표현하자는 데 대해 북한측은 『실행해야 할 것은 당장 해야 한다』며 직접적 표현을 고집,가네마루 전 부총리의 정치적 결단을 요구했다. 북한측은 대일 국교정상화를 제안해놓기는 했으나 교섭의 본격화로부터 국교수립까지의 타임테이블이 불투명한 상태에서 보상 문제의 조기타결과 확약을 받으려 했던 것으로 관계자들은 분석하고 있다. 어쨌든 이번 「가네마루 북한방문단」은 많은 과제를 안고 돌아왔다. 특히 한일관계에 새로운 과제를 안겨주었다. 일본 외무성 관계자들은 『몇년 전 같았으면 한국으로부터 맹렬한 반발을 받았을 것이다. 이번에는 그런 일은 없겠으나,한국에 대한 배려 때문에 「황신호」의 서행운전을 해야 할 것은 틀림없다』고 말하고 있다. 이처럼 일본·북한 관계의 급속한 접근은 한국과의 관계는 물론,한반도 정세에 커다란 영향력을 갖는 미국·소련·중국 등 주변제국의 주목을 끌 것은 틀림없으며,일본 정부 자체로서도 일·소 관계 등과 관련되어 극히 어려운 외교교섭이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 남북한 총리회담 기조연설

    ◎강영훈 총리 연설 요지 이제부터 나는 남북 고위급회담에 임하는 우리측의 기본입장을 밝히고자 합니다. 귀측도 잘 알다시피 남과 북의 예비회담 대표들은 「남북간의 정치 군사적 대결상태 해소와 다각적인 교류 협력 실시문제」를 본회담에서 토의ㆍ해결해야 할 의제로 합의ㆍ채택하였습니다. 이것은 남북 쌍방 당국이 남북 관계개선을 통해 평화와 평화통일의 기반을 다져나가야 한다는 공통된 인식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책임과 권한을 갖고 있는 쌍방 정부 당국이 앞장서야 합니다. 만약 쌍방 당국이 대결적 자세와 적대적 태도를 그대로 견지해 나간다면 남북간의 관계개선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으며 민족적 화해와 평화통일도 이룩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쌍방 당국은 마땅히 대결이 아니라 화해의 자세로,적대가 아니라 협력의 정신으로 민족내부의 갈등과 분열을 해소해 나가야 합니다. 이러한 견지에서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것은 남북 쌍방이 상호체제인정과 존중의 정신에 입각하여 상호 관계를 개선하며 그 기초위에서 통일을 향한 공존공영의 관계를 이루어나가는 일입니다. 나는 이러한 입장에 따라 남북의 쌍방 당국을 대표하는 고위책임자들이 자리를 같이한 이 회담에서 남북 관계개선을 위한 기본합의가 반드시 이루어져야만 한다고 생각하면서 이에 대한 우리측의 합의서(안)을 다음과 같이 제안하는 바입니다. ▷남북 관계개선을 위한 기본합의서(안)◁ 남과 북은 분단된 조국의 통일과 민족의 화해를 염원하는 온 겨레의 뜻에 따라 신뢰구축과 긴장완화를 통해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평화통일을 성취하기 위한 공동의 노력을 경주할 것을 다짐하면서 다음과 같은 기본 사항에 합의하였다. 1.남과 북은 통일을 이룰때까지 서로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며 존중한다. 2.남과 북은 상대방을 비방ㆍ중상하는 일체의 행동을 중지하며 상대방 내정에 대해 간섭을 하지 않는다. 3.남과 북은 상호간에 야기되는 의견대립과 분쟁을 당국간의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평화적으로 해결한다. 4.남과 북은 상대방을 파괴ㆍ전복하려는 행위를 일체 하지 않는다. 5.남과 북은 자유로운왕래와 다각적인 교류와 협력을 실현하고 사회를 개방하며 민족적 유대를 회복하기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한다. 6.남과 북은 군비경쟁을 지양하고 무력대치상태를 해소하기 위하여 군사적 신뢰를 구축하고 군비감축을 실현해 나간다. 7.남과 북은 국제무대에서의 불필요한 경쟁과 대결을 중지하고 서로 협력하며 민족의 이익과 자존을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한다. 8.남과 북은 현 휴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고 평화적 통일을 이룩하기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한다. 1990년 월 일 대한민국 국무총리 강영훈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무원 총리 연형묵 나는 남북 관계개선을 위한 이러한 기본합의를 바탕으로 할때 남북 고위급 회담의 의제로 합의한 남북간의 정치ㆍ군사적 대결상태 해소와 다각적인 교류협력 실시문제가 쉽게 풀려 나갈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특히 1천만 이산가족들의 자유로운 상호방문과 재결합을 실현하는 것은 분단의 상처를 아물게 하는 절박한 과업입니다. 이러한 인도주의 사업의 조속한 해결 없이는 결코 마음속 깊이 자리잡고있는 남북간의 불신과 적대감을 해소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나는 이상과 같은 입장에서 교류 협력 실시에 관한 10개항의 우리측 방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다각적인 교류 협력 실시방안◁ 1.흩어진 가족ㆍ친척들을 찾아주며 이들의 자유로운 방문과 재결합을 조속히 실현한다. 60세 이상 이산가족들의 고향방문은 즉각 실현한다. 2.설날,단오,광복절,추석 등 민족 명절과 기념일을 전후한 일정기간을 설정하여 민족대교류를 실현하며 고유세시풍속 민속놀이 등 문화행사를 교환 개최한다. 3.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 등 모든 분야에 걸쳐 남북 동포들간의 교류와 협력에 관한 구체적 방안을 상호 협의하고 이를 실현한다. 4.민족내부교류 차원에서 교역문호를 개방하고 서로 필요로 하는 물자를 교류한다. 남북간의 간접교역을 직교역으로 전환하기 위해 거래당사자간 접촉을 주선한다. 5.자원의 공동개발,합작투자 등 제반 경제협력을 실현하며 경제분야에서의 공동 대외진출과 공동 대외협력사업을 추진한다. 6.관광자원을 공동개발하고 관광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한다. 설악산∼금강산의 남북 관광코스를 연결하며 이 사업의 추진을 위해 남북 공동으로 관광합작회사를 설립한다. 외국관광객의 남북 직접왕래를 허용한다. 7.남북간에 끊어졌던 철도와 도로를 복원하고 해로와 공로를 개설한다. 경의선은 1991년 8월15일 복원ㆍ연결토록 한다. 8.남북간에 우편물을 교환하고 전신,전화를 개통하여 모든 사람이 이용하도록 한다. 9.다각적인 교류 협력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통행ㆍ통신ㆍ통상에 관한 합의서를 채택한다. 10.남북 경제회담에서 이미 합의한 바 있는 부총리급을 책임자로 하는 경제협력공동기구를 설치한다. 다음으로 나는 정치 군사적 대결상태 해소문제에 관한 우리측의 입장과 그 구체적 방안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정치 군사적 신뢰구축 방안◁ 1.상호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바탕 위에서 상대방에 대한 지명공격,비방ㆍ중상,전단살포 및 휴전선 일대의 확성기 방송을 일체 중지한다. 2.민족성원들이 서로 상대방의 실상을 잘 알 수 있도록 신문ㆍ라디오ㆍTV및 출판물을 상호 개방한다. 3.상호 긴밀한 협의와 연락을 통하여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평화와 통일의 기반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하여 서울과 평양에 상주연락대표부를 설치한다. 4.군인사의 상호 방문 및 교류를 실시한다. 5.군사정보를 상호 공개하고 교환한다. 6.특정규모 이상 군부대의 이동 및 기동훈련을 사전에 통보하며 상대방을 초청ㆍ참관케 한다. 1991년 1월1일을 기해 여단급 이상의 부대이동 및 기동훈련에 대해 45일전에 상대방에 통보한다. 7.우발적 무력충돌을 예방하고 이것이 확대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대한민국 국방부장관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인민무력부장간에 직통전화를 즉각 설치ㆍ운영한다. 8.비무장지대의 진정한 비무장화를 실현하며 이를 평화적 목적으로 이용한다. 이상과 같은 방안들을 통해 정치 군사적 신뢰구축을 이룩하며 무력행사와 모든 종류의 폭력행위를 포기하는 불가침선언을 채택하여야 할 것입니다. 나는 남북간의 군비감축은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북간의 군비감축 추진방향◁ 1.공격형 전력구조를 방어형의 전력구조로 전환시켜야 합니다. 군사력을 공격형으로 편성하고 전개해 둔 채로 평화의지를 확인할 수 없으며 전쟁재발을 방지할 수도 없습니다. 따라서 쌍방이 보유하고 있는 공격형 전력부터 먼저 감축해 나가는 원칙을 지켜야 하며 그래야만 기습공격 또는 전면공격에 의한 전쟁재발을 방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2.상황 동수보유원칙을 적용하여 군사력의 상호균형이 유지되도록 해야 합니다. 어느 한편의 군사력이 많고 다른 한편의 군사력이 적어 균형을 상실할 경우 전쟁발생의 위험이 높아지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군사력을 많이 보유한 측이 적게 보유한 측의 수준으로 먼저 감축하고 상호 동등수준으로 되었을 때 동수균형감축 방식으로 추진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3.무기감축에 따라 병력을 감축해 나가되 상비전력감축에 상응하여 예비전력과 유사 군조직도 함께 감축해 나가야 합니다. 4.군축과정에서의 합의사항 이행을 보장하기 위하여 반드시 현장검증과 감시를 할 수 있도록 하여야만 합니다. 이를 위해 남북은 공동검증단과 상주감시단을 구성ㆍ운영해야 할 것입니다. 5.쌍방 군사력의 최종 유지수준은 통일국가의 군사력 소요를 감안하여 쌍방 협의하에 결정해야 할 것입니다. 이상과 같은 방향으로 남북간에 군비감축이 진보됨에 따라 현 휴전체제를 남북간의 평화체제로 전환시키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입니다. 나는 쌍방 총리를 수석대표로 하는 남북 고위급회담이 쌍방 최고위당국자가 만나는 남북 정상회담으로 발전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북 정상회담이 개최된다면 온 겨레가 염원하는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이룩하는 길도 훨씬 앞당길 수 있게 될 것을 확신하며 귀측의 긍정적인 호응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연형묵 총리 연설 요지 근 반세기를 이어오는 국토의 분단은 우리 민족에게 헤아릴 수 없는 재난과 고통을 가져다주고 막대한 희생과 소모를 강요하였으며 대대로 화목하게 살아온 우리 민족내부에 일찍이 없었던 가장 심각한 불신과 대결상태를 조성하였습니다. 8.15와 더불어 시작된 이 민족적 수난과 치욕의 력사는물론 외세에 의하여 빚어진 것이지만 역경에 처한 나라의 운명을 제때에 바로잡지 못하고 오늘까지 통일을 이룩하지 못한 것은 우리 민족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조국통일의 주체는 우리 민족입니다. 조국통일에 가장 절실한 리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도 우리 민족이고 통일을 책임지고 성취해야 할 담당자도 우리 민족이며 통일된 조국에서 살게 될 주인도 우리 민족입니다. 나는 제1차 고위급회담이 열린 이 마당에서 쌍방 대표단이 민족앞에 지닌 공동의 책임에 대해 다시금 강조하면서 이제부터 회담에 대한 우리의 기본립장과 의정에 따르는 기본문제들에 대하여 말하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통일은 절대로 어느 일방에 의한 통일로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거듭 강조하여 온 바와 같이 조국통일문제는 본래 누구를 먹거나 누구에게 먹히는 문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북과 남이 하나의 민족으로 단합을 이룩하는 문제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사회주의제도가 비할바 없이 우월한 제도라고 확신하고 있지만 이것을 남측에 강요할 생각이 없으며 군사적이든 정치적이든 우리에게만 유리한 일방적인 통일을 추구할 생각이 없습니다. 나는 이러한 견지에서 본회담 의정에 대한 토의를 앞두고 쌍방 사이에 서로 모호한 점이 없도록 일치한 입장과 견해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하면서 이러한 입장과 견해를 구현한 다음과 같은 세가지 문제를 회담 전과정에서 준수해야할 원칙으로 확정하자는 것을 제의합니다. 첫째,쌍방은 1972년 7ㆍ4 남북공동성명에서 천명된 자주,평화통일,민족대단결의 조국통일 3대원칙을 재확인하며 이를 철저히 준수한다. 둘째,쌍방은 문제토의에서 일방의 리익보다 민족공동의 리익을 우위에 놓는다. 셋째,쌍방은 회담의 분위기를 흐리게 하거나 회담의 진전에 저촉되는 일을 하지 않는다. 다음으로 본회담의 의정으로 제기되고 있는 「북남사이의 정치ㆍ군사적 대결상태를 해소하며 다방면적인 협력과 교류를 실현할데 대하여」의 테두리안에서 협의 해결할 기본문제들에 대하여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오늘 우리가 통일을 지향해나가는데 가장 큰 내부적 장애요인은 호상 불신에 있습니다. 이러한 불신은 정치적으로 또는 군사적으로 상대방이 자기를 먹으려 한다는 인식과 판단에서 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여 북측은 남측에서 미군과 함께 북침하려 하며 이른바 「자유의 바람」을 불어넣어 「승공통일」을 하려 한다고 생각하면서 남측을 불신하고 경계하고 있는 것이며 남측은 북측이 「남침」이나 「적화전략」을 꾀하고 있다고 하면서 북측을 불신하고 경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치ㆍ군사적 대결상태를 해소하는데 선차적이며 본질적인 의의를 부여하는 리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취지로부터 본회담 의정의 테두리안에서 정치ㆍ군사적 대결상태를 해소하기 위한 문제를 기본으로 토의할 것을 기대하면서 다음과 같은 방안들을 제의하는 바입니다. ▷정치적 대결상태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 1.호상 비방을 중지하며 대결을 고취하는 정치행사를 하지 않는다. 2.민족적 단합과 통일에 배치되는 모든 법률적 제도적 장치들을 제거한다. 3.상대방을 소개하는 출판의 자유와 상대방의 사상을 신봉하는 사상의 자유를보장한다. 4.북과 남을 갈라놓고 있는 물리적 장벽을 제거한다. 5.각 정당ㆍ단체들과 각계각층 인민들의 자유로운 래왕과 접촉을 실현한다. 6.국제정치무대에 북과 남이 공동으로 진출하고 협력한다. 정치적 대결상태를 해소하는데서 지금 우리들 앞에는 시급히 해결하지 않으면 안될 두가지 문제가 나서고 있습니다. 그 하나는 유엔가입과 관련된 문제입니다. 우리가 알기에는 귀측에서는 북과 남이 유엔에 별개로 동시에 가입하거나 남측만이라도 단독으로 들어갈 것을 주장하면서 유엔가입을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유엔에 북과 남이 동시에 가입하자는 것이나 남측만 단독으로 가입하려는 귀측의 노력이 북과 남의 화해와 단합을 위한 공동의 지향에 부합되지 않으며 오히려 조국통일의 전도를 더욱 흐리게 하는 것이라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군사적 대결상태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에 대하여 말하겠습니다. ▷군사적 대결상태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 ▲북남 신뢰조성 1.북과 남은 군사훈련과 군사연습을 제한한다.①외국군대와의 모든 합동군사연습과 군사훈련을 금지한다. ②사단급 이상 규모의 군사훈련과 군사연습을 금지한다. ③군사분계선 일대에서 일체 군사연습을 금지한다. ④자기 령내에서 외국군대의 군사연습을 허용하지 않는다. ⑤군사연습을 사전에 호상 통보한다. 2.북과 남은 군사분계선 비무장지대를 평화지대로 만든다. ①비무장지대 안에 배치한 모든 군사인원들과 군사장비들은 철수한다. ②비무장지대 안에 설치한 모든 군사시설물들을 해체한다. ③비무장지대를 민간인들에게 개방하며 평화적목적에 리용하도록 한다. 3.북과 남은 우발적 충돌과 그 확대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취한다. ①쌍방 고위군사당국자 사이에 직통전화를 설치 운영한다. ②군사 분계선 일대에서 상대측에 대한 일체 군사적 도발행위를 금지한다. ▲북남 무력축감 4.북과 남은 무력을 단계적으로 축감한다. ①병력축감은 쌍방사이에 군축안이 합의된 때로부터 3∼4년 동안에 3단계로 나누어 실시한다. 첫단계에서는 쌍방이 각각 30만명선으로,둘째단계에서는 다시 각각 20만명선으로 축소하며 세번째 단계가 끝날 때에는 쌍방이 각각 10만명 아래 수준에서 병력을 유지하도록 한다. ②단계별 병력축감에 상응하게 군사장비들도 축소 폐기한다. ③정규무력축감의 첫단계에서 모든 민간군사조직과 민간무력을 해체한다. 5.북과 남은 군사장비의 질적 갱신을 중지한다. ①새로운 군사기술장비의 도입과 무장장비의 개발을 중지한다. ②외국으로부터 새로운 군사기술과 무장장비를 반입하지 않는다. 6.북과 남은 군축정형을 호상 통보하며 검증을 실시한다. ①무력축감정형을 호상 상대측에 통지한다. ②상대측 지역에 대한 호상 현지시찰을 통하여 군축합의 리행정형을 검증한다. ▲외국무력의 철수 7.북과 남은 조선반도를 비핵지대로 만든다. ①남조선에 배비된 모든 핵무기들을 즉각 철수시키기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한다. ②핵무기를 생산,구입하지 않는다. ③핵무기를 적재한 외국비행기,함선의 조선경내에로의 출입과 통과를 금지한다. 8.북과 남은 조선반도에서 일체 외국군대를 철수시키기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한다. ①남조선주둔 미군과 그 장비들이 북남무력축감에 상응하게 단계적으로 완전 철수되도록 한다. ②미군철수에 상응하게 남조선에 설치된 미군사기지들도 단계적으로 철폐되도록 한다. ▲군축과 그 이후의 평화보장 9.북과 남은 군축과 그 이후의 평화보장을 위한 조치를 취한다. ①군사 분계선 비무장지대안에 중립국 감시군을 배치할 수 있다. ②군비통제와 북남사이에 있을 수 있는 군사상의 분쟁문제들을 협의 해결하기 위하여 쌍방 군총참모장급을 책임자로 하는 북남 군사공동위원회를 구성 운영한다. 북과 남이 채택할 불가침선언에서는 서로 상대방을 무력으로 침공하지 않을데 대하여 확약하는 동시에 그를 위한 실질적인 담보를 예견하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불가침선언의 구성요소로서 최소한 다음과 같은 문제들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인정합니다. 그것은 첫째,상대방을 반대하여 호상 무력을 사용하지 않을데 대한 문제. 둘째,의견상이와 분쟁문제들을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평화적으로 해결할데 대한 문제. 셋째,불가침의 경계선을 확인하는 문제. 넷째,상대방에 대한 외국의 침략과 무력간섭에 가담하지 않을데 대한 문제. 다섯째,불가침을 확고히 담보하기 위한 조치로서 북과 남의 무력축감과 미군철수를 비롯한 기본적인 군사적 대책을 확인하는 문제입니다. 오늘 우리 나라에서 군사적 대결상태를 해소하고 긴장을 완화하는데서 나서는 가장 긴절한 문제는 남조선에서 진행되는 「팀스피리트」 합동군사연습을 중지하는 것입니다. 다서
  • “통일길 엽시다”… 남과 북 한목소리/총리회담 첫날 이모저모

    ◎강총리,“자주 만나면 끊겼던 통로 복구”/만찬 대기실 요담 15분… 독대는 불발/연총리,“회담 많이 했지만 이번엔 유망” 북에서 온 「손님」들은 4일 서울 하늘아래서 체류 첫날을 보내며 남과 북은 하나라는 명제를 새삼 확인했다. 연형묵총리등 북한대표단 7명과 수행원 33명,기자단 50명 등 일행 90명은 이날 상오 판문점을 통과,승용차 10대와 버스 3대에 나눠타고 임진각을 떠나 통일로∼구파발∼불광동∼서대문로터리∼마포대교∼강변북로∼반포대교∼올림픽대로∼영동대로를 거쳐 회담장 겸 숙소인 인터콘티넬탈호텔에 도착,여장을 풂으로써 온겨레와 세계의 이목은 서울로 쏠리고 있다. 북한 대표단은 이날 저녁 강영훈국무총리가 힐튼호텔에서 베푼 만찬에 참석,우리측 각계 초청인사들과 만나 한핏줄의 뜨거운 정을 느꼈다. 북한대표들단들은 만찬이 끝난후 숙소 근처 무역전시관에서 문화영화 「한국의 전통문화유산」을 관람하며 문화적 동질감에 젖기도 했다. ▷환영만찬◁ ○…이날 저녁 서울 힐튼호텔에서 강총리가 연총리 등 북측 일행을 위해 베푼 환영만찬은 시종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 예정시간을 30여분 넘겨 2시간 가까이 진행. 강총리는 이날 만찬사에서 『잡초를 갈라 길을 내듯,길없는 길을 오시느라 애쓰신 여러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한다』고 전제,『만나고 또 만나노라면 잡초 우거지고 비바람에 끊겼던 통로라도 반드시 복구될 수 있을 것』이라며 대화의 지속을 강조. 이어 연총리는 답사에서 『우리 대표단 일행중에는 이전에 서울에 와본 사람들도 있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은 초행길』이라고 소개하면서 『그러나 우리 일행에게는 서울로 오는 길이 결코 생소한 감을 주지 않았으며 만나는 동포형제들마다 낯선 감도 없었다』고 말하고 그 이유는 동포의 정때문이라고 언급. 강총리와 연총리는 각각 만찬사와 답사를 끝낸 뒤 포도주(마주앙)로 상대편의 건승과 행운을 비는 건배를 교환. 연총리등 북측 일행은 이날 저녁 7시5분쯤 힐튼호텔에 도착,미리 와 기다리던 강총리의 영접을 받았으며 두 총리는 칵테일장소가 정리되기 전 만찬장소인 그랜드볼룸 옆의 대기실(오크룸)에서 15분여간 요담. 우리측은 이날 만찬전 요담이 두총리의 단독요담으로 이루어져 심도있는 얘기가 오가길 원했으나 림춘길ㆍ최봉춘씨 등 북측 수행원들이 『우리도 들어가야겠다』고 문을 밀고 들어가는 바람에 총리간 단독회동은 무산. 북한 대표단들은 만찬이 끝난 뒤 홍성철통일원장관,정호근합참의장,김종휘 대통령외교안보보좌관 등 우리측 대표와 함께 밤 9시50분부터 한국종합전시장(K0EX) 4층 국제회의실에서 1시간가량 문화영화를 관람. 「우리의 보배」라는 이 영화는 구석기시대부터 조선말기까지의 우리 역사를 설명하는 내용으로 북측 기자단대표 김천일은 관람이 끝난 뒤 『이북 내용은 하나도 없었다』고 촌평하며 다소 불쾌한 표정. ▷숙소환담◁ ○…연총리 일행을 인터콘티넨탈호텔 현관에서 영접한 강총리는 우리측 대표단과 함께 북측 대표단을 연총리 숙소인 3229호실로 안내한 뒤 연총리 숙소에 마련된 접견실에서 10분동안 환담. 남북총리는 『악수좀 나눠주시지요』라는 사진기자들의 요구가 있자 『또』라는 말을 약속이나 한듯 동시에 연발하며자리에서 일어나 접견실안은 한때 웃음. 남북 보도진들에 대한 포즈를 취한 뒤 홍성철통일원장관이 『우리측 대표들은 판문점에서 모두 소개해 드렸으니 북측 대표단을 강총리께 소개해 달라』고 하자 연총리는 이름없이 직책만 호칭하며 북측 대표단을 일일이 소개. 인사가 끝나자 연총리는 『TV에서 여러번 뵌 것 같다』고 강총리에게 말을 건넸고 이에대해 강총리는 『연총리와는 전생에 특별한 인연이 있는 것 같다』 『우리 모두 비슷한 시기(88년말)에 총리가 됐고 총리가 된 직후 북측에서 부총리회담을 요구해 왔을 때 우리측에서 총리회담으로 하자고 수정 제의하자 이를 수락하지 않았느냐』고 응답. ○“우린 2년간 편지교환” 강총리의 전생 연분론에 연총리는 『동감이다』고 짤막하게 답한 뒤 『그러다 강총리와는 2년여동안 편지를 주고받지 않았느냐』고 해 양측 대표단들은 모두 웃음을 터뜨렸고 강총리는 『쓸때마다 간절한 마음으로 썼다』고 응수. 연총리는 이어 『이런 큰 회담을 준비하느라 고생이 많았지요』라고 회담준비를 맡은 우리측의노고를 위로했고 강총리는 『피차 마찬가지지요. 승강기내에서 얘기드렸지만 지금까지 비가 내리다 연총리께서 도착하니 날씨가 쾌청해지는 걸로 보아 연총리가 복이 많은 모양』이라며 『날씨도 쾌청하니 회담도 잘 될 것』이라고 화제를 회담쪽으로 유도. 회담얘기가 나오자 연총리는 『내가 복을 갖고 서울에 왔다니 기쁘다』면서 『남북회담이 여러차례 있었지만 그렇게 잘 되지는 못했다』고 지적한 뒤 『그러나 이번 회담 전망은 유망할 것』이라며 역시 관망적 견해를 피력. ▷호텔도착◁ ○…북측 대표단 일행은 이날 낮 12시2분 숙소 겸 회담장인 인터콘티넬탈호텔에 도착,로비에서 영접차 기다리고 있던 강영훈국무총리와 반갑게 인사. 두 총리는 이번 회담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생각해서인지 모두 상기된 표정이었으며 강총리가 악수를 건네며 『안녕하십니까』하고 말하자 연총리가 『반갑습니다』라며 화답. ○…이날 북측 대표단과 수행원들은 인터콘티넬탈호텔에 도착한 뒤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하는 숙소에 머물러 있었으나 북측 보도진들은 호텔 2층에 마련된 북한 기자실을 둘러본 뒤 우리측 기자실로 몰려와 안병수 북한대표단대변인의 서울 도착성명이 있으니 취재를 하겠다고 준비. ○북기자,회담장 답사 북한 보도진들은 그러나 우리측 기자들이 『소감이 어떠냐』 『취재계획은』 등 갖가지 질문을 쏟아붓자 몇번은 대답하다가 일부 북한보도진들이 『기자가 기자를 취재하느냐』 『나가자』며 모두 밖으로 나가 한때 어색한 분위기. 그러나 이들은 20여분후 다시 우리측 기자실로 들어왔고 장내정리가 어느 정도 된 뒤 안 북한대표단대변인이 도착성명 낭독을 시작. 안대변인은 도착성명에서 『뜻이 같으면 길도 열린다는 것처럼 통일에 뜻을 둔 우리는 평양과 서울의 길을 열었다』며 상당히 우호적 내용의 입장을 밝혔으나 성명말미에 문익환ㆍ임수경씨 등 방북건으로 구속당한 사람들의 가족과 친척을 방문하고 싶다는 엉뚱한 뜻을 피력해 북측의 저의를 드러내기도. ○프레스센터 ○우리측 차석대표인 홍성철통일원장관은 이날 하오 2시 프레스센터에서 내외신기자 회견을 갖고 이번회담 우리측대변인으로 첫 브리핑을 실시. 홍장관은 먼저 연정무원총리등 북한대표단의 판문점 영접과 관련,『본인을 비롯한 우리측 대표단 6명(강영훈국무총리를 제외한 전원)이 판문점에 나가 북한측 대표단을 따뜻하게 맞이했다』면서 『우리 대표단은 북한측 대표단과 함께 승용차에 동승,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서울에 도착했다』고 아침 상황을 보고. 홍장관은 이어 『북한측 대표단이 회담장 겸 숙소인 인터콘티넨탈호텔로 오는 도로상에서 약간의 불미스러운 사고가 발생했다』고 운을 뗀 뒤 『마포에서 강변대교입구 사이의 지점에서 비행사차량이 대표단차량에 끼여드는 바람에 접촉사고가 일어났다』고 사고경위를 소개하고 『북한측 대표단에게는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피력 홍장관은 특히 이 사고와 관련,『강총리가 우리측을 대표해서 연총리를 직접 방문,사과의 뜻을 전달할 예정이었으나 연총리가 『잘하려고 하다가 그런 사고가 난 만큼 굳이 올라오실 필요가 있느냐』고 사양해 강총리의 직접방문은 취소됐다』면서 『오늘 만찬에서 반드시 이같은 사과의 뜻을 전달할 예정』이라고 소개. ○문의ㆍ격려전화 빗발 ○…북한대표단의 숙소인 인터콘티넨탈호텔에는 4일 오후부터 이산가족의 안부를 묻는 문의전화와 회담에 대한 격려전화가 쇄도. 일반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밤늦게까지도 시민들은 『회담이 잘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는 격려와 문의전화를 계속 걸어 왔는데 이날 야간당직지배인 김광철씨는 『주로 실향민들이 고향의 이산가족을 찾기 위해 북측 대표들을 통해 안부를 전할 방법이 없느냐고 묻는 전화가 많았다』고 소개.
  • 서울에 올 북한대표의 얼굴

    ◎기술관료 출신… 북한 권력서열 6위/연형묵 정무원총리 연형묵총리는 분단이후 최초로 한국을 공식 방문하게 되는 북한의 최고위급인사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1925년생으로 올해 65세인 그는 현재 북한내 권력서열 6위의 인물. 70대 고령의 혁명1세대인 오진우(73ㆍ3위ㆍ인민무력부장) 이종옥(79ㆍ4위ㆍ부주석) 박성철(76ㆍ5위ㆍ부주석)에 이어 김영남(65ㆍ7위ㆍ외교부장) 허담(65ㆍ11위ㆍ최고인민위원회 외교위원장) 등과 함께 북한의 권력핵심을 이루고 있는 60대중반의 혁명 2세대이다. 연형묵은 김일성대학과 소련우랄공대에서 금속ㆍ전기ㆍ전자 등을 공부한 대표적인 테크노크라트로서 북한의 행정부인 정무원의 총책임을 맡고 있을 뿐 아니라 당정치국원ㆍ당중앙위원 등을 겸직,노동당의 정책결정에도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1985년 정무원 제1부총리 겸 금속기계공업위원장을 맡아 정무원에 첫 진술한후 88년 12월 이근모의 후임으로 총리에 선임됐다. 83년과 84년 김일성을 수행,중국ㆍ소련ㆍ동구권 등을 방문하는 등 김일성의 신임이 두터우며 러시아어와 불어ㆍ일어에도 능통,국제감각도 뛰어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연형묵은 지난 5월24일 최고인민회의 제9기 1차회의에서 정무원총리에 재선됨으로써 김일성부자의 신임을 다시 확인했는데 경제실무에 밝으며 합리적인 사고를 가진 기술관료출신으로 고위급회담에서 어떠한 자세를 보일지 주목된다. ◎빨치산경력 군원로 비롯,경제엘리트도 연형묵총리와 함께 서울에 오게 될 북측 대표중 김광진 대장(77)은 오진우 김철만 김광 등과 함께 현직에 남아있는 김일성의 몇 안되는 빨치산동료의 한사람이다. 인민무력부 부부장 인민군 총참모 부부총참모장 등을 겸직하고 있는 그는 1913년 만주에서 태어나 소련군에 입대,소련 포병학교를 나온 포병장교 출신이다. 인민군 창설에 직접 참여한 군원로로 특히 포병화력 증강과 현대화에 기여한 공로가 커 김일성으로부터 신임을 얻고 있다고 한다. 6ㆍ25당시 민족보위성 후방총국참모장직을 맡았던 김광진은 군을 대표해 이번 회의에 참석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또다른 대표인 최우진(외교부순회대사ㆍ군축및 평화연구소부소장) 김영철(소장) 등과 함께 이번 회의의 주요의제가 될 남북한 군축문제와 관련,북한측의 입장을 대변할 것으로 보인다. 군대표 2인중 한사람인 김영철은 인민군 8사단장을 거쳐 인민무력부 부국장ㆍ구분대장을 맡고 있는 인물로 지난해 2월부터 남북 고위급회담예비접촉 북측 대표로 일해왔다. 가나주재대사를 역임한 최우진(57)은 군축문제와 관련,북한측 최고의 이론가이자 실무책임자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지난 7월5일 미국 스탠퍼드대학에서 있었던 「한반도 평화와 안보에 관한 학술회의」에 북한측 대표단장으로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남북 고위급회담준비관계로 불참하고 대신 이형철(평화군축연구소 연구실장)을 내보냈었다. 안병수(61)는 특히 조평통서기국장 명의로 종종 대남성명을 내놓고 있는데 지난 5월7일에는 홍성철통일원장관앞으로 김일성이 신년사에서 제의한 남북 정치협상회담을 재삼 촉구하는 전화통지문을 보내기도 했다. 정무원 참사실장 백남준(61)은 지난 73년 5월 남북적십자회담 자문위원 자격(당시 직업동맹부위원장)으로 서울에서 열렸던 남북적십자 제6차회의에 참석했던 낯익은 인물. 김정우(48)는 71년 김일성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한 후 80년부터 대외경제사업부부부장을 맡아오고 있는 신진 엘리트. 80년대 중반이후 북한의 경제대표단을 이끌고 소련ㆍ헝가리ㆍ이탈리아ㆍ스위스 등을 방문하는 등 북한경제의 현대화에 큰 몫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요르단,대이라크 무역제재동참선언/“유화”ㆍ“강경”엇갈리는 중동현장

    ◎이라크,미 대사관 상무부서 폐쇄령/페만행 미군수송기 추락… 13명 사망/미 7함대 기함 페만에… 일선 쿠웨이트 대사관 포기 ○…페르시아만에 있는 미군기지에 물자를 나르던 미군수송기 한대가 29일 추락해 13명의 미군이 사망했다고 미군 대변인이 밝혔다. 도그 무어 미군 대변인은 낮 12시30분쯤 C­5수송기 한대가 서독 서쪽에 위치한 람슈타인 미군기지에서 이륙한 직후 불이 붙어 추락했다고 말했다. 이 대변인은 사고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나 이 수송기는 다국적군을 지휘하는 미군에게 식량과 의약품 및 생활장비 등을 수송하기로 되어 있었다고 밝혔다. ○터키,식품요구 거절 ○…요르단 정부는 이라크에 대해 유엔이 결의한 무역제재조치를 적용할 것임을 통보했으며 이에 따라 이라크와의 모든 상업ㆍ금융활동은 물론 이라크를 향한 모든 수출도 중단할 것이라고 이곳의 권위있는 소식통이 29일 전했다. 이곳 관리들은 그러나 이같은 제재조치가 식량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한편 터키도 이날 유엔의 제재조치를 존중,의약품과 식품의 제공을 요구한 이라크의 제의를 거절했다. ○…이라크는 미국이 주미 이라크 대사관의 상무부서를 폐쇄한데 대한 보복 조치로 바그다드주재 미국 대사관의 상무부서에 대해 폐쇄를 명령했다고 이라크의 한 고위관리가 29일 말했다. 나지 알 하디티 이라크 공보처장은 이같은 사실을 발표하면서 미 대사관 상무부서의 폐쇄에 관한 자세한 내용이나 미국 외교관들이 미국의 이라크 외교관 36명 추방에 대한 대응조치로 추방될 것인지 여부는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여성인질 출국 지연 ○…이라크 당국은 29일 외국인 여성 및 어린이들의 즉각 출국을 허용했으나 실제로 이들의 출국은 30일이나 돼야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여성과 어린이들의 출국을 보장한다는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의 28일 발표에 따라 취해진 출국허용조치에 대해 영국은 환영의 뜻을 밝히고 이들을 「가능한한 빨리」 런던으로 직접 공수하기 위해 특별 민간 항공기를 주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같은 조치가 발표된 후 처음으로 바그다드를 떠난 첫 비행기에는 서방인질들이타고 있지 않았으며 승객들은 대부분 아랍인과 아시아인들이었으며 이중에는 유엔직원 가족 27명이 포함돼 있었다고 목격자들은 전했다. ○…쿠웨이트주재 각국 대사관들을 폐쇄하라는 이라크의 명령에도 불구,쿠웨이트내 대사관에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2명의 일본 외교관들이 대사관내 생활여건의 악화로 인해 29일 마침내 부임지를 떠났다고 일본 외무부가 발표했다. 한편 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 일본 총리는 이날 이라크와의 금수조치로 직접적인 피해를 입고 있는 중동국가들에 「상당한」 액수의 원조를 제공할 것과 1백명으로 구성된 의료진을 파견하는 등 첫 중동사태 지원방안을 밝혔다. 외무부의 한 대변인은 쿠웨이트 대사관은 이들 2명의 외교관이 식량부족과 생활여건의 악화 등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대피했다』면서 쿠웨이트주재 일본 대사관이 현재 무인상태에 있음에도 불구,『대사관은 원칙적으로 열려있는 상태』라고 강조했다. ○화학무기 위협 안돼 ○…이라크의 화학무기는 살상력에 있어 효율적인 방법이 못되며 실제상황이 발생할 경우미군에게 치명적인 위협을 가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2명의 화학자가 미 화학학회 연례회의에서 주장했다. 뉴욕 시립대학인 퀸스 컬리지의 화학교수 로버트 엘겔은 이라크가 보유하고 있는 겨자가스와 신경가스가 일반 시민이나 화생방 훈련을 받지않은 병력에 대해서는 매우 큰 살상력을 갖고 있으나 화생방 장비를 갖춘 목표물에 대해서는 살상효과가 매우 낮다고 말했다. ○「인질생방」 싸고 논란 ○…지난 28일 미 CNN­TV가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과 이라크에 억류된 서방인질의 대화장면을 생방송한 것과 관련해 미국에서는 『미 TV가 뉴스보도에 이같은 장면을 생방송해야 하는가』란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CNN의 생방송과 달리 NBC와 ABC,CBS 등 미국의 3대방송사는 이라크가 위성으로 쏘아올린 이 방송을 생방송으로 보도하지 않고 추후에 일부분만 녹화 방송. ○…일본 요코스카에 정박중이던 미 7함대의 기함 블루 리지호가 이라크 해상봉쇄작전에 참가중인 다국적함대와 합류하기 위해 29일 페만을 향해 출항했다. 이날 발표된 주일 미군의 한 성명은 블루 리지호가 당초 오는 9월 소련의 블라디보스토크항을 방문할 예정이었으나 쿠웨이트 사태가 돌발함에 따라 페만으로 급거 출동하게 됐다고 말했다. ○작전비용 25억불 ○…미국방부는 오는 9월말까지 미군의 사우디아라비아 배치에 소요되는 비용이 앞서 추산한 13억달러의 배가 되는 25억달러가 될 것으로 추산했다고 한 국방부 대변인이 28일 밝혔다. 페트 윌리엄스 국방부 대변인은 「사막의 방패」 작전에 소요될 비용이 이처럼 증가하게 된 이유는 예비군 및 방위군의 소집,함대와 항공기 작전의 증가,그리고 연료비의 증가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이라크가 중동에 파병된 미군에 화학무기로 공격할 것에 대비,화학무기 공격을 탐지할 수 있는 10대의 특수정찰차량을 제공해 줄 것을 서독에 긴급 요청했다고 미국의 군사전문주간지 디펜스 뉴스가 27일 보도했다. ○…오는 9월 북경 아시안게임에서 이라크와 쿠웨이트의 선수들은 이라크 국기 아래 단일팀으로 참가케 될 것이라고 29일 라시드 알 리파이 주일 이라크 대사가 주장.
  • 「범민족대회」 예비회담이 무산되기까지

    ◎“제의… 수용… 거부”… 입씨름 8시간/모두 7차례 접촉… 생트집 일관/정부­전민련 합의한 장소마저 끝내 거절 26일 하오 3시 서울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범민족대회 2차 예비회담은 북한대표단이 판문점 북측 지역인 판문각에 도착하기는 했으나 회담장소 및 숙소문제와 전민련의 동행안내 등에 관해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을 제시하는 바람에 이날 하오 4시까지 무려 8시간동안 모두 6차례의 연락관 및 간이접촉과 1차례의 직통전화 연결에도 불구하고 우리측과 타협점을 찾지 못해 끝내 무산. ▷판문점◁ ○…남북 쌍방은 이날 상오 7시30분쯤 판문점 중립국 감독위 회의실에서 연락관 2명씩이 참석한 1차 실무접촉을 갖고 ▲북측 참가자들의 숙소(회담장 포함)는 인터콘티넨탈호텔로 하고 ▲북측 참가자들은 우리측 정부가 제공한 차량을 이용하며 각 차량에는 우리측 안내관 1명씩이 동승하고 ▲편의제공및 신변안전보장문제와 관련된 일체의 사항은 정부대표인 국토통일원과 협의하며 ▲서울 체류일정은 북측과 전민련측이 협의해 결정한다는 등 8개항에합의. ○…예비회담 북측 대표들은 이날 상오 9시 판문점을 통과할 예정이었으나 평양의 폭우로 헬기가 이륙치 못해 상오 8시쯤 승용차편으로 출발,낮 12시쯤 판문점 북측 지역에 도착. 그러나 북측 대표들은 헬기로 개성 근처 황주에서 내린 것으로 알려져 이날 예비회담에 임하는 북한측 태도를 예고. ○…북한측은 상오 9시50분쯤 간이접촉을 갖고 『정부는 편의제공만 하고 전민련측이 안내를 하기 바란다』며 1차 실무접촉의 합의사항을 번복한 뒤 두차례의 추가 간이접촉에서도 똑같은 주장만을 되풀이. 쌍방은 이어 상오 11시쯤 2차 연락관접촉을 가졌으나 『전민련이 아카데미하우스로 회담장소와 숙소를 정했다고 했는데 어떻게 된거냐』며 전민련의 안내와 전민련이 정한 숙소를 고집하는 북측과 『연형묵정무원총리가 우리측 강영훈총리에게 신변안전보장을 요구한 만큼 신변안전을 위해 정부가 안내하겠다』는 우리측 정부입장이 팽팽히 맞서 10여분 만에 결렬. 이어 낮 12시25분쯤 가진 3차 연락관접촉에서 북측 전금철대표의 승용차에 전민련 상임고문이 동승할 것과 이해학 전민련 조통위원장등 전민련 대표 3명이 군사분계선까지 자신들을 영접하러 나올 것을 새로이 요구. 이에대해 통일원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북한측이 저렇게 트집을 잡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오늘 예비회담은 못 열리는 게 아니냐』는 예비회담무산론이 조심스럽게 대두. 정부는 3차 실무접촉의 북한측 요구를 수용,이를 북측에 전달했으나 북한측은 12시50분쯤 가진 실무접촉에서 우리측 정부와 전민련간 숙소문제에 대한 입장이 다른 점을 들어 전민련측이 안내할 것과 숙소문제에 대한 해결이 되지 않으면 예비회담에 참가할 수 없다고 주장. ○…전민련측은 하오 2시10분쯤 우리 정부측과 승용차 동승및 군사분계선 환영문제와 관련,오해가 생겨 기자회견을 갖고 판문점에서 철수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으나 취재기자들의 입회하에 정부측과 회의를 가진 결과 이 문제는 해명돼 철수발표를 철회하기도. 정부측은 전민련이 하오 3시50분쯤 『모든 문제는 정부측에 일임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함에 따라 회담 상설 연락사무소간전화를 통해 『모든 문제가 전민련과 정부측간 해결되었으니 부당한 입장을 더이상 고집할 것이 아니라 서울 실무회담에 참가할 의사가 있다면 하오 5시까지 분명한 답을 해주기 바란다』는 전화통지문을 북측에 전달. 그러나 북측은 전민련 안내와 숙소문제에 대한 우리측 입장이 바뀌지 않았다면 전화통지문을 받을 수 없다며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 결국 이날 예비회담은 무산. ○…우리측은 이날 하오 4시쯤 모두 6차례에 걸친 연락관접촉 이후 첫 전화접촉을 통해 북한대표단 파견문제에 대한 북측의 거부의사를 확인했으나 북측은 『전민련이 직접 안내하고 숙소도 전민련이 정한 곳이 아니면 갈 수 없다』는 입장만 밝힌 채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어 대표단 파견 의사가 없음을 표시. ▷아카데미하우스◁ ○…회담장소문제로 혼선을 빚고 있는 가운데 아카데미하우스측은 이날 북측 대표와 수행기자 15명이 투숙할 3층 객실 5개를 마련한 데 이어 이날 하오 해외동포 대표 6명이 도착하자 3층 객실 5개를 추가로 배정,아카데미하우스측은 이날 세미나 참석차 예약해놓은 KS콘크리트협회 회원들의 양해를 얻어 이들이 예약한 객실 5개를 양보받아 해외동포 대표용으로 할당. ○…범민족대회추진본부 6인 실무대표 가운데 1인인 신창균의장을 포함한 지선스님ㆍ문정현신부ㆍ임수경양의 어머니 김정은여사 등 추진본부 집행부 10여명은 이날 하오 10시쯤 해외동포 대표들이 묵고 있는 크리스찬 아카데미하우스에 도착,회담이 결렬된 경위등을 설명했다. 지선스님은 『임진각과 판문점에 나가 있는 영접단과의 연락수단인 전화통화 사정이 낮 12시쯤부터 악화돼 돌아가는 상황을 제대로 알 수 없었다』며 『이에따라 회담준비등에 차질이 생긴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해외동포추진본부 은호기 미주대표등 해외동포 대표 6명은 북한측 대표가 되돌아감에 따라 이날 하오 9시 본관 1층 양식뷔페식당에서 임시집행부와 함께 만찬을 가질 예정이었으나 이들이 밤늦게까지 임진각에서 돌아오지 않자 학생등 1백여명과 함께 간단한 행사를 가졌다. 권형택추진위원이 사회를 맡은 환영행사는 「우리 함께 가자 이 길을」이라는 노래를 시작으로 전민련 박영모공동의장의 환영사,은대표의 인사 등의 순으로 진행. 은대표는 이 자리에서 『북한대표들이 회담에 참석하지 않아 안타깝다』면서 『그러나 대회성사를 위해 예정대로 일정을 마치고 8ㆍ15 이전까지 판문점에서 3자가 만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범민족대회추진본부는 26일 밤 북한측이 내일 상오 9시 판문점으로 다시 나오겠다고 밝혔다는 소문이 나돌자 회담무산으로 허탈해 하던 분위기속에 회담재개 가능성에 기대를 걸기도. 추진본부는 회담이 재개될 경우에 대비,이날 하오 11시30분쯤부터 아카데미하우스에서 임시집행위원회를 열어 27일 이후의 회담일정등 구체적인 준비상황을 논의했다. □시간대별 협상 요약 △7시30분:1차 접촉 8개항 합의 △9시50분:북측,「전민련 편의」 요구 △10시30분:「우리측 안내」 수용 제의 △11시35분:숙소 아카데미를 요구 △12시25분:전민련 차량 동승 요구 △12시50분:분계선 전민련 마중 요구 △16시00분:북측,전통문 접수 거부
  • 새 실록 6ㆍ25 김학준:하

    ◎“핵투하도 불사”… 미 으름장에 DMZ설정 동의/“휴전 지체할 수 없다”… 투르먼,맥아더 해임/반공포로 석방으로 한­미 방위조약약 가조인/아이크 대통령 당선ㆍ스탈린 사망후 「정전협상」급진전 ▷제4기◁ 중국군의 남진이 계속되자 맥아더는 과감한 보복조치를 마련했다. 그는 50년 12월30일 본국의 합동참모본부에 대해 ①중국해안의 봉쇄 ②중국본토의 군수산업시설 폭격 ③장개석 군의 파한 ④장개석 군의 중국본토에 대한 견제공격을 건의했다. 그는 미국이 이러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한반도에서 전면철수한다면 중국군의 침공위협은 보다더 중요한 지역에 대해 가중될 것이며 그 결과 보다 많은 전력의 투입이 요청될 것으로 내다보았다. 그러나 합참은 『일본의 방위와 국련군의 전력 보존에 주로 유의하면서 막대한 손실을 방지하기 위해 철수가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까지 축차적인 방어작전을 수행하라』고 답변할 뿐이었다. 맥아더는 이 답변을 「명백히」 이해하기 어렵다고 주장하면서 『국련군의 전면철수를 피하기 위해 중국에 대해 보복조치를 취하든지,아니면 일본의 방위와 국련군의 전력보존을 위해 한반도를 포기하든지 양자택일해야 한다』고 맞섰다. 이에 대해 트루먼은 51년 1월13일 『공산군의 침략행위가 시정될 때까지 미국은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침략의 결과를 결코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세계에 밝혀야 한다』고 전제한 다음 『최악의 경우 국련군은 제주도와 같은 남한 연안의 섬으로 철수해 전투를 계속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후임에 리지웨이대장 맥아더와 본국정부 사이에 이견이 오가는 사이 국련군은 전세를 수습하고 공세로 돌아섰다. 그리하여 국련군은 51년 3월 초순 이후 전선의 주도권을 장악했고 3월15일 서울을 재탈환했으며 3월30일께까지는 38도선까지 밀고 올라갔다. 이로써 한국전쟁을 국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 전황이 국련군에게 어느 정도 유리하게 전개되고 무엇보다 전전원상의 회복이 이루어질 것으로 내다보이면서 국련에서는 다시 휴전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한국전쟁에 참가한 서방진영의 국가들도 국련군의 38도선 재북상에 반대하면서 만일 미군이 단독으로라도 재북상하기로 결정한다면 자신들은 한국에서 철수하겠다는 의사마저 나타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트루먼은 중국과의 정치적 협상을 통해 휴전을 성립시키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3월20일 맥아더에게 그러한 취지의 성명이 가까운 장래에 발표될 예정임을 통고했다. 맥아더는 트루먼의 이 결정을 좌절시키기로 결심하고 3월24일 본국정부와의 아무런 협의없이 중국에 대한 공식성명을 발표했는데 중국대륙에의 전면적 확전으로써 한반도문제를 해결지을 수 있을 것임을 암시함으로써 트루먼이 추구하려는 중국과의 협상을 사실상 어렵게 만들었다. 이 성명에 뒤이어 맥아더는 4월5일 하원 공화당 원내총무 조세프 마틴의원이 자신에게 보낸 3월2일자 편지에 대한 답장을 공개하여 트루먼을 더욱 격분시켰다. 아시아 중시정책을 강조하면서 논평을 요구한 마틴의 서한에 대한 이 답장에서 맥아더는 우선 트루먼의 유럽 중시정책을,그리고 유럽을 중시해야 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아시아를 경시하는 경향을 비판했다. 결론적으로그는 『우리는 승리하지 않으면 안된다. 승리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맥아더의 3월24일자 공식성명을 보고 그의 해임을 결심했던 투르먼은 더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그는 4월10일 라디오방송을 통해 맥아더의 해임을 발표하면서 『우리가 한반도에서 추구하고 있는 목표는 제한전에 의한 제3차대전의 방지』라고 선언했다. 맥아더의 후임으로는 8군사령관 리지웨이 대장이 임명됐다. 맥아더의 해임은 미국이 휴전을 향해 움직인다는 명백한 의사의 표시였다. 한편 공산군은 51년 4∼5월 춘계대공세를 폈으나 인명의 큰 손실을 겪었을 뿐이고,이 시점에서 전선은 완전히 교착됐다. 전선이 교착된 51년 5월 중순부터 미국과 국련에서 휴전논의가 활발히 일어났다. 특히 5월17일 에드윈 존슨 미국 상원의원이 국련이 휴전을 이끌도록 촉구하는 결의안을 제출하고 이 제의가 소련의 신문과 방송에 크게 보도된 것을 계기로 휴전논의는 더욱 활기를 띠었다. 예컨대 국련에서 리 사무총장과 캐나다의 레스터 피어슨 외무장관 및 미국의 애치슨 국무장관이 각각 전전원상의 회복이라는 선에서의 휴전안을 제의했다. 소련도 드디어 6월23일 국련대표 말리크의 연설을 통해 휴전에 동의했다. 통일을 염원하던 남­북의 한인들에게는 유감스런 일이었지만 쌍방의 참전국가들의 거의 예외없이 휴전을 바라고 있었다. ▷제5기◁ 이러한 배경에서 미국과 소련이 정전의 원칙에 합의함에 따라 7월8일 개성의 중심지 북방에 있는 지난날 유명했던 유곽에서 국련군쪽과 공산군쪽의 연락장교단에 의한 예비회담이 열렸다. 이어 7월10일 개성에서 본회담이 열렸다. 국련군쪽의 수석대표는 미해군 극동사령관 조이 제독이었다. 리지웨이 총사령관이 직접 뽑았다. 정전회담에서 공산군 대표들이 국련군 대표들을 자극해 국련군 대표들로 하여금 공공연하게 화를 내게 하여 회의장을 뛰쳐나가게 만드는 「충동작전」을 쓰거나 정반대로 몇시간씩 끌면서 지치게 만드는 「권태전술」을 쓸 것이라고 계산한 리지웨이는 따라서 국련군 수석대표는 어떠한 도발적 언동에 대해서도 침착하면서도 강경하게 맞설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고판단했다. 즉 『6시간정도 앉아 있으면서도 눈 한번 깜짝하지 않고 오줌누러 갈 생각조차 하지 않는』협상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리지웨이에게 조이는 적임이었다. 조이는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많은 훈장을 받았고 공산주의자들과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증오하고 있었으며 적을 굴복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적을 파괴하는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ㆍ소에 “전면전”통첩 조이 수석대표를 보좌할 대표로 리지웨이는 2차대전의 베테랑들로부터 뽑았다. 유럽전선에서 보병연대를 지휘했었고 이때 미8군 참모차장으로 있던 호지스 소장,북아프리카에서 공중전을 지휘했었고 이때 미극동군 부사령관으로 있던 크레이기 소장,태평양전쟁에서 구축함전투를 대담하게 지휘해 용맹을 떨쳤었고 이때 미극동해군 참모차장으로 있던 버크제독이 선발됐다. 한국군으로부터는 제1군단장 백선엽소장이 선발됐다. 공산군쪽 수석대표는 남일중장이었다. 남일중장을 보좌하는 북한군대표는 전선사령부 총참모장 이상조 육군소장이었다. 정전회담에서 그는 파리가 얼굴에 앉아도 꼼짝 않고 앉아 「강철같은 자기억제」를 보여주려고 노력한 사람으로 알려졌다. 또 한 사람의 북한군 대표는 북한 육군 제1군단 총참모장 장평산 소장이었다. 중국군에서는 사방 소장과 등화 중장이 대표로 참가했다. 이들 가운데 사방이 사실상의 수석대표였고 남일은 이름이 수석대표였지 실제에 있어서는 사방의 지휘를 받는 것 같다고 국련군 쪽에서는 보았다. 회담도중 그는 동료 대표들과의 상의없이 발언했고 선전적인 문구 같은 것도 사용함이 없이 직설적으로 말했다. 양쪽 대표단들은 신경전을 거쳐 7월26일 다음과 같은 의제에 합의했다. ①전투행위를 정지하는 기본조건 아래 양군 사이에 비무장 지대를 설치하기 위해 군사분계선을 설정하는 문제. ②정전감시기구의 구성과 권한 및 기능을 포함하여 정전을 성립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조처들을 결정짓는 문제. ③포로에 관한 결정. ④외국군대의 철수와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관해 쌍방에 관련된 나라들의 정부에 권고하는 문제. 의제에 대한 합의와 더불어 7월28일 첫번째 의제에 대한 토론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합의가 쉬울 것 같아 버크 제독 같은 이는 본국의 아내에게 『가을이 되어 사과가 익었을 때는 나는 과수원이 있는 이곳에 있지 않을 것』이라고 썼는데 회담은 길어지면서 10월25일부터 회담장소를 판문점으로 옮긴다는 것 정도에 겨우 합의할 수 있었다. 회담이 이렇게 길어지면서 서방 참전국들은 초조해졌다. 이점을 간파한 공산군쪽은 자신들이 유리한 입장에 있다는 자신감에서 국련군쪽 대표들에게 모욕적인 용어마저 썼다. 호지스 소장을 「거북이 알」이라고 불렀고 조이 수석대표에 대해서는 『이름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떻든 수석대표인 사람』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리지웨이는 견디기 어려웠다. 『이처럼 공개적으로 모욕하고 나오는 적에게 양보를 해야 한다는 말인가. 우리에게는 부드러운 비단보다 강한 쇠가 필요하다』라고 본국정부에 호소했다. 이에 미국은 소련에게 『공산군쪽이 협상에 진전을 보이지 않는다면 미국은 만주의 공산기지를 폭격하고 중국의 해안을 봉쇄하여 필요하다면 소련과 전면전에 돌입할 것』이라는 「공갈」을 전달했다. 이와 동시에 트루먼은 중국에 대해 핵무기를 쓰는 문제를 검토했다. 미국의 이와 같은 강경한 자세를 보면서 공산군쪽은 한발 물러서 『현재 쌍방의 접촉선을 군사분계선으로 삼는다는 원칙아래 앞으로 체결될 정전협정이 지정하는 시간에 쌍방은 이 분계선으로부터 2㎞씩 철수하여 그 지역을 정전 동안 비무장화 한다』는 국련군쪽 제의를 받아들였다. 이때가 52년 1월27일이었다. 이처럼 군사분계선에 관한 합의가 일단 이루어졌다는 것은 한국전쟁의 전체 흐름속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군사분계선 문제에 매듭이 지어지면서 쌍방은 「외국군대의 철수와 한반도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관해 쌍방에 관련된 나라들의 정부들에 권고하는 문제」를 다뤄 나갔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합의가 쉽게 이뤄졌다. 즉 정전회담 발효 3개월 안에 쌍방에 관련된 나라들의 정부사이에 「고위 정치회담」을 열기로 한 것이다. 정전의 세부사항에 대한 협상에서도 진전이 있었다. 52년 5월2일 양쪽은 스웨덴ㆍ스위스ㆍ폴란드ㆍ체코슬로바키아의 네 나라로써 중립국 감시위원단을 구성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공산군쪽은 소련을 중립국이라고 우기면서 중립국 감시위원단에 포함시키려고 애를 썼으나 끝내 좌절되고 말았다. 나머지 문제는 포로교환의 문제였다. 정전이 성립되면 포로교환은 당연히 쉽게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에 중요한 문제들이 모두 해결된 이 마당에 이 문제는 빨리 매듭지어져 정전협정이 곧 체결될 것으로 기대됐다. ○2년 1개월만에 매듭 국련군쪽은 우선 「자발적인 송환」의 원칙을 제의했다. 국련군에 포로로 잡힌 공산군에게 돌아갈 것인지 남을 것인지 선택할 권한을 주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공산군쪽은 「자동송환」의 원칙을 내세웠다. 모든 포로들은 포로 개개인의 의사에 관계없이 무조건 송환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공산군쪽은 이 원칙을 관철시켜야 국련군쪽에 잡혀 있는 자신들의 장병들이 서방세계를 선택하지 않고 전원 돌아올 것이라고 계산했기 때문이다. 협상이 오래 끌면서 공산군쪽은 국련군쪽이 세균전을 펴고 있다는 선전전을 벌이기도 했다. 한편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는 공산포로들이 포로수용소 사령관 도드 준장을 납치하는 사건을 일이키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국련군쪽은 북폭을 강화하기도 했다. 협상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미국에서는 52년 11월 대통령선거가 치러져 「조기정전」을 내세운 공화당의 아이젠하워가 당선됐다. 이로써 53년 1월 공화당 행정부가 출범하게 되었으며,휴전협상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소련에서는 53년 3월 스탈린이 죽으면서 정전을 향한 발걸음을 빨리 했다. 정전협상의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자 이대통령은 통일의 기회가 사라진다는 실망감 속에서 6월19일 국련군에 수용되어 있는 공산포로들 가운데 송환을 거부하는 반공포로 2만5천여명을 극비의 작전을 통해 과감하게 석방했다. 이대통령을 무마하기 위해 미국은 국무부 극동담당 차관보 로버트슨을 대통령 특사로 파한했으며 이대통령이 요구하는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가조인하게 했다. 한­미간의 합의가 성립됨으로써 정전협정의 체결을 위한 길은 완전히 열렸다. 그리하여 7월27일 휴전협정은 판문점의 「평화의 천막」안에서 조인됐다. 2년 1개월 여의 긴 시간동안 5백75회의 공식회의를 갖고 1천8백여만 단어를 소비한 다음에야 매듭지어진 것이다.
  • 미 CNN TV 지구촌 뉴스의 총아로(특파원코너)

    ◎개국 10년… 90국 지도자가 시청/챌린저호 폭발ㆍ상항대지진 등 숱한 특종/세계의 뉴스현장마다 빠짐없이 “출동” 미국의 뉴스전문방영 유선텔레비전인 CNN(Cable News Network)이 처음 방송을 내보냈을 때 험담가들은 「Chicken Noodle News」(닭고기국수 뉴스)라고 조롱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후 CNN은 무서운 경쟁자가 되었다. 1980년 6월1일 세계 최초로 24시간 영상뉴스서비스를 개시한 CNN은 지금세계 TV저널리즘의 주역,지구촌 정보혁명의 핵심 엔진으로 부상했다. CNN의 앵커가 위기 지역으로 달려가 그곳 지도자와 인터뷰를 하면 세계가 이를 지켜본다. 이 인터뷰가 끝나면 CNN은 다른 초점지대로 카메라를 들이댄다. 이처럼 CNN은 독특한 커뮤니케이션 방법으로 정보의 세계화 시대를 열고 있다. 소련과 동구의 민주화는 텔레비전 커뮤니케이션에 의해 촉진됐다는 것이 많은 학자들의 일치된 견해다. 「CNN 그 내부이야기」의 저자인 행크 위트모어는 『세계가 지켜 보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면 동구의 자신들 개혁에 대해 그런 낙관과 용기를 갖지못했을 것』이라며 『세계가 지켜 보는데 어떻게 유태인 학살이나 스탈린 시대 숙청과 같은 잔인한 사태가 일어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텍사스 A&M대 저널리즘 교수 돈 톰린스는 『CNN의 세계화가 바로 소련과 동구를 변화시킨 주요 요인의 하나』라고 주장한다. 『지구촌이 돌아가는 얘기를 알자면 제일 먼저 눈을 돌려야 할 곳이 CNN이다』라는 말이 많은 사람의 입에서 나올 정도로 CNN은 지구촌 뉴스의 열쇠로 자리를 굳혔다. 지난 35년간 빅 스리,즉 ABCㆍCBSㆍNBC의 싸움판이었던 미TV 방송시장에서 시청자들에게 「생기있는 새 채널」이란 인식을 심는데 성공한 것이다. 유선TV가 연결된 미국의 5천5백만 가정 가운데 야간에 CNN에 다이얼을 돌리는 가정은 21만9천∼38만4천에 지나지 않는다. 반면 ABC의 「오늘밤의 세계 뉴스」는 1천만 이상의 가정이 시청한다. 그러나 금년 1ㆍ4분기중 미국인들이 TV 뉴스 시청에 소비한 총 시간에서 CNN이 차지한 비중은 27%에 달했다. ABC는 28.3%,CBS는 27.5%,NBC는 17.2%였다. 샌프란시스코 지진,미국의 파나마 침공,중국 천안문 사태 등 보도에서 CNN은 숱한 특종으로 경쟁자들을 압도했고 쟁점을 부각시키는데 앞장 섰다. 그러나 CNN에 대해 뉴스처리에 깊이가 없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CNN은 미국 밖에서 각국의 유선TV 시청 가정 1천호와 호텔 25만개소,그리고 수많은 기업체 및 정부 청사ㆍ대사관ㆍ증권 거래소 등에 연결돼 있다. 극동과 중남미는 미국내와 같은 CNN 프로그램을 시청하고,유럽 소련 아프리카 중동 동남아에선 CNN의 해외보급 판매망인 CNNI(CNN International)가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시청한다. CNN은 세계 90개국의 정책결정자에게 중요한 뉴스 공급원이 되고 있다. 폴란드 자유노조지도자 레흐 바웬사,쿠바 수상 피델 카스트로,유엔 사무총장 페레스 데 케야르,요르단 국왕 후세인,리비아 국가원수 무아마르 카다피는 단골 시청자로 알려져 있다. 금년초 CNN이 소련 공산당서기장 고르바초프의 사임설을 보도하자 고르바초프가 직접 나서서 이를 부인해야 할 만큼 CNN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지난해 선거 참관차 파나마에 머무르고 있던 지미 카터 전미대통령은 호텔방을 나서면서 싸움이 벌어진 것을 보았다. 길 건너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그는 다시 호텔방으로 들어가 미 애틀랜타에서 방영되는 CNN을 틀었다. 지난해 여름 천안문 시위사태 때 부시 미 대통령은 CNN이 방영한 탱크와 시위 학생간의 대치상태를 보고 북경의 무력진압에 반대하는 경고 성명을 내놓았다. 개국 프로그램의 첫 광고 방송을 민권 지도자 버논 조단 암살기도사건에 관한 긴급 보도 때문에 중단했던 CNN은 그후 미상원 청문회 생중계,레이건 미대통령 및 바오로교황 암살기도,영왕실 결혼식,사다트 이집트 대통령 살해사건 등 인상적인 보도를 많이 남겼다. CNN은 1983년 KAL007기 피추사건,베이루트 미해병대 사령부폭파사건,미국의 그레나다 침공사건 보도로 언론상을 수상했다. 충격적인 첼린저호 폭발참사사건을 생중계로 보도한 유일한 방송도 CNN이었다. 미 애틀랜타에 본부를 둔 CNN은 지금 1천7백명의 종업원과 23개 지사를 거느리고 있다. CNN로고를 쓰지 않고 일반 보도물을 제공하는 자매회사로 있다. 일부 전문자들은CNN의 시청률이 한계점에 달했다고 말한다. CNN은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빅 스리의 저녁 뉴스에 대항하는 「오늘의 세계」와 추적 조사 프로를 개시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극적 결과는 낳지 못하고 있다. CNN의 뉴스담당 부사장 에드터너는 『「오늘의 세계」가 고정 시청자를 확보하려면 최소한 2년은 걸릴 것』이라고 여유를 보인다.
  • 공로명 주모스크바 영사처장(인터뷰)

    ◎“한­소 관계정상화 시기가 문제”/양국,수교­경협 우선순위엔 견해차/「조소 협정」등 장애물 상존…. 성급한 기대 말아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취임후 가진 첫 기자회견에서 한국과 소련의 국교수립 전망에 대해 「내가 평가하기엔 좋다」고 말한데서 볼수 있듯이 방향은 분명히 결정돼 있습니다. 문제는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2일 모스크바에 부임한 공로명 주모스크바영사처장은 때마침 이곳을 방문한 김영삼민자당최고위원 일행을 맞아 더욱 분주한 모습이다. 23일 저녁(한국시간)모스크바 시내 중심지의 인터내셔널호텔 대연회장에서 열린 김최고위원 초청 리셉션이 끝난 뒤 공처장을 같은 건물에 있는 무역진흥공사 사무실에서 만나 한소관계의 이모저모를 물어봤다. ­첫 영사처장으로 부임한 이래 느낀 소감은. 『소련국민들의 한국에 대한 감정은 아주 좋은 것이 사실입니다. 한국하면 다들 「호라쇼」(좋다)라고 해요. 다만 정부쪽 사람들은 두가지 반응을 보이고 있어요. 이번 김최고위원 일행과 소련측 고위정책결정자들간의 대화에서 나타났듯이 우리와 관계를 증진,개선시켜 나가야 한다는 의견과 소련과 북한과의 역사적 관계,조약상 의무(조소상호협력협정)가 있는 만큼 시간을 두고 완충단계를 가지고 가야한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한소관계는 어느 단계에 와 있습니까. 『방향은 정해져 있지만 양국의 견해차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국교수립과 경제협력 가운데 어느쪽부터 우선적으로 해야하느냐 하는데 대한 차이 이지요. 우리는 국교수립부터 하자는 입장인 반면 소련측은 경제협력을 우선하자는 쪽 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소련측은 「양이 질을 변경할수 있도록」해야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국내 언론이 보도하는 것처럼 양국관계 정상화가 금명간에 이루어진다고 보는 것은 성급한…』 ­그러나 오늘 리셉션에서 마르티노프 IMEMO(세계경제 및 국제문제연구소)소장은 공처장이 가까운 시일내에 소련주재 전권대사가 될 것』이라고 했는데요. 『마르티노프소장같은 사람이 공개석상에서 그런 얘기를 한 것은 하여튼 방향은 결정돼 있다는 뜻이겠지요』 ­양국관계 정상화의 장애요인은. 『이번 김최고위원 방소단과의 접촉에서 소련측은 「극복못할 장애요인은 없다」고 하더군요. 국교와 경협의 우선 순위에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 국내법은 국교없이는 투자할 수 없게 돼있지 않습니까. 미수교국과는 과실송금을 보장할 수 있는 투자보장협정과 이중과세방지협정을 맺을 수 없으므로 의미있는 경제협력을 해나가기 위해서는 국교수립이 전제가 돼야한다는 입장입니다.』 ­소련측은 우리쪽이 경협에 소극적이라고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요. 『경제협력은 상당부분 진행되고 있습니다. 현대도 시베리아개발에 굉장한 관심을 가지고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번 방소단과의 회담에서 그들은 여기에다 과학기술협력,즉 군수산업의 민수산업화ㆍ신소재 개발ㆍ유전공학분야는 물론 우리가 코콤(대 공산권 수출금지 협정)의 규제를 받고 있는 컴퓨터분야까지 얘기할 정도입니다』 ­비경제분야에서의 협력문제도 얘기됐다는데요. 『문화예술ㆍ체육 등 모든 비정치적분야 뿐아니라 정당과 정당간의 교류,의회와 의회간의 교류까지도 얘기하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 이념적 측면에서 문제제기가 있을 가능성도 있지만 소련이 다당제를 채택하는 등 이데올로기의 희석으로 공산주의에 일대 수정을 가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새로운 발상을 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그러나 양이 질로 바뀌는 시기나 단계ㆍ수준을 어떻게 계량할 수 있느냐가 문제같은데요. 『그래서 오늘 시타리얀 경제담당부총리에게 외무ㆍ경제관계 정부실무자간의 회담을 갖자고 제의한 것입니다. 이제까지는 하나의 「바람」으로 몰고 왔지만 이제부터는 하나하나 「실」에 꿰어 물건을 만들어 갈때입니다. ­국내에선 연내 국교수립 전망이 강한데요. 『연내다 연내다라는 애길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가급적 빨리 한다는게 목표입니다. 국내 언론이 너무 과열되는 것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아요. 소련측은 최근 「한국이 그동안 경제협력의 축적후 수교를 하자고 하더니 최근에 왜 갑자기 정치(국교수립을 의미)를 앞세우느냐」고 부담스러워 하는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번 김최고위원의 방소가 수교에 어느정도 도움이 됐다고 보십니까. 『여러분들이 눈으로 직접 보시지 않았습니까. 이번에 소련측이 김최고위원 일행에게 「소련은 정치적으로 결단하겠다」고 한 것은 수교의 방향이 확실히 잡혔음을 보여준 것입니다. 남은 문제는 그 목표지점(시기)이 어디가 되는냐는 것 뿐입니다 (그는 그러면서도 「다시한번 냉정해야 한다」는 주의를 잊지 않았다). 소련은 블라디보스토크 선언이후 아시아 세력의 일원임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소련측이 북한과의 관계를 「주위할 점」이라고 얘기하고 있듯이 우리도 우리 나름대로 소련과 역사적 관계가 있으므로 이 단계에서 한번 냉정함을 유지하고 질서있는 고려를 해야할 때입니다』 ­정부 일각에선 이번 김최고위원의 방소를 회의적 시작으로 보는 것 같은데요. 『김최고위원의 방문은 우호친선적 성격이 강한 것으로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번 방문은 구체적인 문제의 협의가 아니라 커다란 틀을 잡는 성격으로 봐야 합니다. IMEMO측과의 공동성명에서도 그 점이 반영될것입니다』 ­구체적인 협의내용은 없었습니까. 『소련측은 매우 강하게 경제협력을 강조했습니다. 특히 그들은 이번 시베리아 개발에 대한 강한 의욕을 보였습니다. 우리는 현재 진행중인 것들만해도 상당한 수준이라고 생각해 왔는데,소련측이 어느정도까지를 생각하고 있는지 더 얘기를 해봐야 겠습니다. 또하나 소련측의 관심의 표적은 과학분야의 협력이었습니다』
  • 고르바초프,개혁정책 난관봉착도 시인

    ◎“소 민족분쟁 새 연방제로 해결”/개헌통해 「공화국 독립」 제도적 보장/분규지역엔 “전투중지” 최후통첩/크렘린 【모스크바 AP UPI AFP 연합】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공산당 서기장은 18일 『헌법개정에 의한 새 연방제 구축을 통해서만 문제해결이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날로 격화되고 있는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공화국간의 종족분규사태 및 발트3국의 반소운동 등을 정치적으로 해결할 의사를 가지고 있음을 시사했다. 고르바초프서기장은 이날 크렘린에서 1천명의 노동자 농민 및 지식인 대표들과 가진 긴급회의에서 남부지역의 유혈소요로 자신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 정책이 난관에 봉착해 있음을 시인하면서 사태수습을 위해 병력투입이 불가피했다고 강변했는데 소련연방정부는 두 공화국에 이미 2만9천명의 군대를 파견했다. 고르바초프는 사전발표 없이 소집된 회의연설에서 그러나 『공화국의 소연방탈퇴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헌법개정을 통해서만 문제해결이 가능할 것』이라고 지적,강경진압과 함께 정치적 해결노력도 포기하지 않을것임을 분명히 했다. 【모스크바 AFP 로이터 연합】 소련 지도부는 18일 종족분규로 전쟁상태에 이르고 있는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에 대해 전투를 중지하지 않으면 『결정적인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최후통첩을 발표했다. 프라우다지와 타스통신을 통해 보도된 당중앙위와 최고회의 간부회,그리고 각료위원회 명의의 이 성명은 분쟁지역 주민들에게 『이성을 되찾고 유혈사태를 중지하라』고 촉구하고 『오늘의 비극이 중단되지 않으면 내일은 국가적 재난으로 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성명은 또 『이 전투로 인한 첫번째 피해자는 부녀자들과 어린이,그리고 노인들이다. 다른 종족의 어린이와 병사들 뿐만 아니라 바로 당신의 아들들이 죽어가고 있다』면서 『우리는 이같은 범죄가 처벌받지 않고 넘어가는 것을 용인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타스통신은 또 미하일 고르바초프 공산당 서기장의 말을 인용,카프카스 이남의 상황이 악화되고 있으며 현재의 위기는 개혁을 와해시키기 위해 증오심을 부채질하는 과격분자들 때문에 벌어지고 있다고 비난했다. 고르바초프서기장은 이날 개혁에 관한 제2차 당지도부 회의에서 크렘린 당국은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두 공화국간의 분규를 종식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면 어떤 조치도 취할 태세가 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의 유혈사태는 과격분자들과 모험주의자들,그리고 아제르바이잔의 회교원리주의자들에 의해 야기된 것이라고 비난하고 『과격분자들에게는 페레스트로이카가 목의 가시같은 존재이나 이를 직접 반대할 수 없게 되자 종족문제로 인한 긴장을 이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타스통신은 현재 이들 지역에는 2만4천명의 내무부소속 보안군과 민병대가 파견됐다고 밝혔으나 정규군과 KGB(국가보안위원회) 국경수비대 병력의 규모는 밝히지 않았다. 한편 이들 두 공화국과 터키와의 인접지역에서 국경을 따라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오고 있으며 소련 내무부는 아제르바이잔 시위대가 17일 바쿠 남쪽 젤릴라바드스키 부근에서 이란 국경을 50㎞ 침범했다고 밝혔다. 바쿠의 민족주의 단체 소식통들은 시외곽에 중앙정부가 파견한군대의 접근을 막기 위한 바리케이드가 아직까지 설치돼 있으며 17일 시작된 파업이 18일 상오까지도 계속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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