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첫 재판
    2026-04-20
    검색기록 지우기
  • 기회
    2026-04-20
    검색기록 지우기
  • 건물
    2026-04-20
    검색기록 지우기
  • 기적
    2026-04-20
    검색기록 지우기
  • 대형 SUV
    2026-04-20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0,637
  • 日 징용 조선인 재산권 소멸법 한국정부서 제정 묵인

    일본정부가 태평양전쟁 당시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인·군속·노무자들의 미불(未拂)임금 청구권 등 개인재산권을 소멸시키기 위해 한·일기본조약체결 직후인 65년 12월 별도의 특별조치법을 제정했다는 사실이 밝혀진 가운데 한국정부가 이 법의 제정을 묵인한 것으로 드러나 ‘제2의 매국행위’라는 비난이 일고 있다(대한매일 1999년 12월 17일자 26면 보도).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김종대 회장은 17일 “일본 법무성에 공탁돼 있는조선인 군인·군속·노무자들의 미불임금 청구권은 지난 65년 체결된 한·일기본조약의 부속조약인 ‘청구권협정’으로 소멸된 것이 아니라 직후에 일본정부가 별도로 제정한 특별조치법(법률 제144호)에 의해 소멸된 사실이 재판과정에서 드러났다”고 밝히고 “만약 미불임금 반환소송이 패소할 경우 한국정부에 책임을 물어 대대적인 소송을 전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한국정부가 조선인 희생자들의 재산권 박탈을 골자로 한 일본정부의 특별법 제정을 묵인했다면 이는 월권 차원을 떠나 ‘제2의 매국행위’나 마찬가지”라며 “한국정부는 공탁금관련 자료 일체를 일본정부에 요청,이제라도 문제해결에 보다 적극적인 태도를 취해야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외교통상부 동북아1과 이혁 과장은 “일본정부의 특별법 제정과관련,당시 한국정부가 항의,또는 묵인했는지 여부는 당시의 외교문건 자료를 찾아보면 확인이 가능할 것”이라면서도 “양국간에 기본조약이 체결된 상태에서 한국정부가 (조선인 희생자들에 대해)외교적 보호권을 행사하는 것은 곤란한 상황이었을 것” 이라고 말했다. 한편 일본 후생성에서 보관중인 공탁금명부를 비공식적으로 확인한 바에 따르면,조선인 전체 24만2,000여명(기업체 징용자 제외)의 공탁금 총액은 9,000만엔 정도.변호인단은 “56년간의 물가인상분을 감안,7,773배를 요구할 경우 총 12조8,000여억원을 주장할 수 있다”고 밝혔다. 지난 91년 12월 첫 제소 이래 9년째 진행중인 공탁금반환소송은 이달 31일제33차 결심공판이 열릴 예정이며 선고공판은 3월말경으로 예정돼 있다. 정운현기자 jwh59@
  • 민주당 PK에 첫 깃발

    여권 신당인 새천년민주당이 한나라당 텃밭인 부산·경남에서 본격 전열정비에 나섰다. 민주당은 10일 오후 경남 사천에서 부산·경남의 첫 지구당 창당대회를 열어 총선 필승을 다짐했다.11일에는 부산으로 옮겨 영도와 중·동구 지구당대회를 갖고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민주당은 영남 출신 영입인사의 총선 승패가 전국 정당화의 명암을 가를 것이라는 판단에 따라 잇따른 지구당대회를 계기로 지역공략을 가속화할 계획이다. 이날 사천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창당대회를 통해 연사들은 지역감정 청산과지역개발,비리 정치인 퇴출을 위해 여당의 젊은 일꾼을 뽑아줄 것을 호소했다.국민회의 이만섭(李萬燮)총재권한대행은 인사말을 통해 “몇억씩,몇십억씩 먹고도 뻔뻔스럽게 국회에 앉아 큰일이라도 하는 것처럼 가면을 뒤집어쓰고 거물정치인 행세를 하는 정치풍토를 없애야 한다”면서 “이번 선거를통해 오염되고 부정에 관련된 정치인을 퇴출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이대행은 특히 “재판에 관련되지 않더라도 누가 봐도 부정에 연루되고 더러운돈으로 정치하는 사람은 이번 선거에서 반드시 퇴출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이대행의 발언은 최근 논란을 빚고 있는 시민단체의 비리정치인 낙선운동과 관련,소신을 피력한 것이어서 주목된다. 경남도지부장인 김태랑(金太郞)의원은 축사에서 “망국적 지역감정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전제한 뒤 “깨끗한 여당후보를 뽑아야 지역이 발전할 수있다”며 지지를 당부했다. 농민운동가 출신인 황장수(黃壯秀) 신임 사천지구당 위원장은 “인적 청산과 개혁을 통해 민생 지역정치의 선봉에 나서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사천 박찬구기자 ckpark@
  • 각계인사 신년사

    ◆朴浚圭 국회의장 지난 천년 동안 인류는 우여곡절 끝에 경천동지할 만한 변혁을 이룩했지만우리의 지난 백년은 분열과 대립,알력과 정체의 한스러운 한 세기였습니다. 국민의 피땀어린 노력으로 행복의 언덕을 찾는가 싶더니 IMF 위기라는 암흑의 터널에서 고통을 겪었습니다.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우리 모두 다시 한번곰곰이 생각하고 새로운 각오를 다져야 하겠습니다. 새해에는 총선거가 있습니다.새 세기를 여는 총선거인만큼 국민의 주권행사에 한층 더 신중을 기해야 하겠습니다.무책임한 선동이나 달콤한 교언영색,허망한 공약(空約)이나 물질적인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선거권 행사를 통해새 시대에 걸맞은 정치를 가꾸어 나가야 하겠습니다.이번 총선거가 우리의운명을 결정한다는 자각을 한번 더 일깨워 주시기 바랍니다. ◆崔鍾泳 대법원장 국민 여러분께 새해인사를 드립니다.명실상부한 세계의 중심국가로 웅비하는 새 천년이 되기를 바랍니다. 21세기는 정보와 문화,지식 중심의 시대,경제적 국경이 허물어져 세계가 하나의 무대가 되는 무한경쟁시대가 될 것입니다.우리 모두 시대적 변화를 인식하고,세계 속의 경쟁에서 뒤떨어지지 않도록 분발해야 합니다. 사회가 전문화되고 모든 분쟁이 더욱 복잡해짐에 따라 법의 지배의 필요성이 한층 증대될 것입니다.국가권력의 행사에 대해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하는 일 역시 여전히 중요한 과제입니다. 모든 국민이 공정하고 신속한 재판을 저렴한 비용으로 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겠습니다.국민들이 법원을 보다 쉽게 이용할 수 있고 누구나 평등하게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李萬燮 국민회의 총재대행 세기를 넘어,천년을 넘어 새로운 아침이 밝았습니다.새 세기는 모든 사고와 발상의 대전환이 이뤄져야 하며,일찍이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세상이 펼쳐질 것입니다.모든 구태와 관습이 빠른 속도로 재편되고,오직 진취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사고와 발상만이 살아남는 격동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모든 문명의 발자취가 그러했듯이,위기와 전환의 시대에는 국가 구성원 모두의 진취적 기상과 헌신이 요구됩니다.개인의 앞길은물론 나라의 앞길 역시,희생적 정신과 개척자적 행동만이 국가의 전도를 밝게할 것입니다.모두합심하여 개인보다는 사회를,또 공동운명체인 국가의 밝은 미래를 위해 대승적 화합의 첫 출발이 되기를 소망합니다.희망의 새 천년,새시대를 맞아 나라를 위한 새로운 헌신을 호소드리며,국민 모두의 건승을 빕니다. ◆朴泰俊 자민련총재 새천년의 문빗장을 여는 오늘 정치권이 과연 이러한 시대적 책무를 인식하고 있는 것인지 국민 여러분들께 참으로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을 금할수 없습니다.지구촌 곳곳에서 철조망이 걷히고 있는 세계화시대에 정치권은 오히려 ‘마음의 철조망’을 상호간에 굳게 둘러치고,난폭한 언설들을 거침없이생산해 내고 있습니다. 지역패권주의에 안주하고자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는 것이 지금 이 시간의솔직한 정치권의 모습입니다.이러한 오늘의 정치현실은 천년을 송구영신하는 이 시점에 기필코 버리고 가야 할 ‘구시대의 것’입니다.금년은 국민이 정치권을 심판하는 총선거의 해입니다.잘못된 정치상을 바로잡고 국민에게 희망의새 시대를 열어 드리고자 노심초사했던 우리 당의 의지와 집념이 정당한 평가를 받을 호기입니다. ◆李會昌 한나라당총재 지난 20세기는 우리 민족에게는 수난과 영광을 동시에 가져다 준 한 세기였습니다.이제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는 우리에게 또 다른 도전이 거세게 닥치고 있습니다.무엇보다 정치권이 대오각성해야 합니다.21세기 국가발전에 커다란 걸림돌이 되고 있는 지역주의와 권위주의의 낡은 정치구도를 혁파하고참된 민주주의를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상극의 정치를 청산하고 상생의 정치를 반드시 실현해야 합니다. 새로운 정치는 새로운 리더십과 새로운 정치세력이 등장할 때 가능합니다.지금부터라도 정치권이 자기반성과 혁신을 통해 부단히 거듭나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21세기에는 반드시 민족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의 시대를 활짝 열어나가야 합니다.채찍과 당근을 균형있게 구사할 때 비로소 북한도 변해 나갈 것입니다.
  • 軍가산점 배제후 첫 재사정 대구 지방직 전원 여성 합격

    제대군인 가산점 부여에 대한 헌법재판소 위헌 결정 이후 대구시가 처음으로 실시한 지방공무원 필기시험 재사정에서 합격자 전원이 여성으로 채워졌다. 대구시는 29일 사회복지직 9급 공무원 시험 합격자 7명 전원이 여성이라고발표했다.지난 19일 치러진 필기시험에는 남자 35명과 여자 128명 등 모두 163명이 응시,23대1의 높은 경쟁률을 보였었다. 지난 23일 오전 실시된 사정에서는 합격자 7명 가운데 남자 응시자 2명이포함됐으나 같은 날 오후 헌법재판소 판결 이후 제대군인 가산점 5%를 배제한 채 재사정한 결과 남자는 모두 탈락했다. 대구시 곽대훈(郭大勳)자치행정국장은 “여성 전문직 공무원인 간호직 등을 제외하고 남녀가 공동응시한 공무원 시험에 여성만 합격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시험은 헌법재판소의 결정 이전에 치러진 데다 이미 한달전에제대자에게 가산점을 부여하는 조건으로 시험공고됐기 때문에 공고 당시와달리 채점한 이번 조치에 대해 논란이 일 전망이다. 대구 황경근기자 kkhwang@
  • 趙亮鎬회장 혐의시인 ‘대한항공 탈세’ 첫 공판

    629억원의 세금을 포탈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대한항공 회장 조양호(趙亮鎬)피고인에 대한 첫 공판이 16일 서울지법 형사합의30부(재판장 李根雄부장판사) 심리로 열렸다. 이날 공판에서 조 피고인은 “외국 항공기 구매과정에서 받은 리베이트 중일부를 세금 납부 등 개인용도로 빼돌려 법인세 등 629억원을 포탈했다”는검찰의 공소사실을 대부분 시인했다. 이상록기자 myzodan@
  • 고엽제 피해소송 막올랐다

    베트남전 참전 국내 고엽제 피해자 1만7,000여명이 미국 고엽제 제조사 두곳을 상대로 낸 5조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 첫 재판이 16일 서울지법 민사합의13부(재판장 柳元奎 부장판사) 심리로 열려 본격적인 공방이 시작됐다. 원고측 변호인단은 이날 제네바 의정서,젠킨스 보고서 등 4,000여쪽의 고엽제 관련 자료를 제출했다.재판부는 원·피고측에 쟁점을 정리해 서면으로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양측 변호인들은 재판 직후 “그동안 가처분 신청 재판을 통해 소멸시효나재판관할권 등 쟁점에 대해 충분하게 논의된 만큼 가처분 결정 결과에 따라본안 소송도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비무장지대(DMZ) 고엽제 피해자들이 제기한 손해배상소송도 내년 3월미국 법원에서 심리된다. 휴전선 고엽제 피해자들의 소송을 대행하고 있는 마이클 최(한국명 최영)변호사는 15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동부지구 연방법원이 예비재판 일자를내년 3월3일로 확정했다. 예비재판이란 정식 재판에 앞서 원고측 소송 취지와 피고측 방어 논리를 법정에서 각각 개진하고피해 규모와 증빙 자료 등을 확인하는 기회로 담당 판사의 판단에 따라 정식 재판,기각,법정밖 중재 등으로 결정된다. 이상록기자·워싱턴 최철호특파원 hay@
  • 집행유예 구형제 도입

    내년부터 검사의 집행유예 구형제도가 도입된다. 대검 공판송무부(부장 金圭燮 검사장)는 13일 전국 5개 고검 및 33개 지검·지청 공판담당 부장검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전국공판부장검사회의를 열어기소 후 합의 등 사정변경이 있을 경우 적정한 양형 의견을 개진하는 차원에서 내년부터 전국적으로 집행유예 구형제도를 실시키로 했다. 지금까지는 법원이 집행유예를 선고할 것이 확실시되는 피고인에 대해서도검사는 의례적으로 실형을 구형해왔다. 회의에 참석한 검찰 관계자는 “형이 지나치게 가벼워진다거나 법원의 양형에 간여한다는 우려가 있긴 하지만 경직된 구형 관행에서 벗어나 구체적이고타당성 있는 의견을 개진할 필요가 있다는데 의견을 모았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피해자와 합의한 경미한 과실범이나 일부 경제사범 등에 대해서는 결심 공판때 검사가 집행유예를 구형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함께 무죄율이 지난 96년 0.07%에서 올 상반기 0.1%로 점차 증가함에따라 공판 인력을 확충,‘1검사 1재판부’ 방식으로 공판기능을 강화키로 했다. 이밖에 첫 공판 전 수사기록을 법원에 일괄 제출하는 지금까지의 관행이 비밀·신용정보 등의 유출 위험성이 있다고 판단,조직폭력·신용훼손사건 등은증거서류를 분리해 순차적으로 제출키로 했다. 이종락 이상록기자 jrlee@
  • 대법 ‘황혼이혼’ 첫 불허

    “남편이 가부장적 권위를 앞세워 부인을 핍박하고 이유없이 부인의 불륜을 의심한 것은 인정되지만 혼인 당시의 가치기준과 남녀관계를 종합해볼 때이를 이혼사유로 인정할 수 없다” 70대 할머니가 80세가 넘은 남편을 상대로 낸 황혼이혼 소송에 대해 대법원이 “이혼을 불허한다”는 첫 확정판결을 내렸다.최근 급격히 늘고 있는 황혼이혼으로 인한 가족 해체 현상에 법원이 제동을 건 것으로 해석된다. 중학교 교사 출신인 A할머니(76)는 지난 46년 남편 B씨(84)를 중매로 만나결혼,4남매를 뒀다.그러나 남편은 결혼초부터 경제권을 쥐고 할머니에게는생계를 겨우 유지할 정도의 생활비만 줬고,할머니는 하숙을 하거나 손수레보관소 등을 운영해 어렵게 살림을 꾸려나갔다.남편은 또 할머니의 교사생활도 그만두게 했고 나이가 들면서는 의처증과 치매증세까지 보여 할머니를 괴롭게 했다. 참다못한 할머니는 지난 97년 5,300만원을 들고 큰딸 집으로 가출했다가 남편으로부터 절도혐의로 고소까지 당했다.결국 할머니는 남편이 ‘망상장애’라는 병원소견서를첨부,이혼소송을 냈고 지난해 6월 법원으로부터 “남편은할머니에게 위자료 등으로 7억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아냈다. 그러나 남편은 이에 불복,항소했고 2심 재판부는 “남편이 부당대우를 한사실은 인정되지만 혼인당시의 가치기준 등을 감안할 때 이혼사유로 볼 수는 없다”면서 “오히려 할머니는 정신장애 증상을 보이는 남편을 돌볼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할머니는 이에 불복,상고했지만 대법원은 8일 “이유없다”며 기각했다. 그러나 여성단체들은 이번 판결에 대해 ‘법원이 가부장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여성의 행복추구권을 박탈했다’며 반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상록기자myzodan@
  • 외국인전담재판부 생긴다

    내년부터 주한 외국인들의 민·형사사건을 맡는 전담재판부가 설치되고 판사임용 때 인성검사가 실시된다.또 소액사건 처리절차를 개선,첫 재판 전 당사자들 간의 조정·화해를 유도해 재판없이 사건을 끝내는 ‘이행권고제’가시행된다. 대법원은 6일 최종영(崔鍾泳) 대법원장 주재로 전국 법원장 회의를 열어 향후 6년간 사법제도 운영개선 방안을 연구·추진할 사법발전계획추진위원회(사발추위)를 구성,내년 2월까지 시행 방안을 마련키로 했다. 최 대법원장은 이날 회의에서 “공정한 재판을 위해 신속성이 다소 희생되더라도 충실한 심리가 이뤄질 수 있도록 원칙을 확립하라”고 지시했다. 대법원은 ▲화해조정 활성화 ▲구속 전 법관 대면권 보장 ▲계좌추적 및 감청영장 엄격 통제 ▲양형 적정화 등의 재판 원칙을 일선 법원에 시달했다. 대법원은 판사업무 중 일부를 사법보좌관(법원 직원)에게 위임하는 방안을검토하고,판사 수를 현행 1,500명 선에서 2005년까지 2,000명 선으로 늘리는수급계획을 마련했다. 판사 임용심사 때 면접을 강화하고 사법연수원에서 인성·적성검사를 하는방안을 추진키로 했다.판사들의 재충전을 위해 일정기간 근무 후 재판업무를면제·감경하는 법관안식년제와 연구법관제도 도입할 방침이다. 김명승기자 mskim@
  • 이근안씨, 김근태의원 고문 시인

    ‘고문기술자’ 이근안(李根安·61) 전 경감은 납북어부 김성학(金聲鶴·48·강원도 속초시)씨 고문혐의에 대해서는 부인했지만 공소시효가 지난 김근태(金槿泰)국민회의 부총재에 대한 고문혐의는 시인했다. 이전경감은 25일 오전 10시 수원지법 성남지원 1호 법정에서 형사합의1부(재판장 具萬會부장판사)심리로 열린 납북어부 고문사건 첫 공판에서 “지난85년12월 간첩혐의자에 대한 수사 관행상 김씨를 불법 연행,70여일 동안 감금한 것은 사실이지만 폭행하거나 고문을 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이 피고인은 또“당시 상부의 빗발치는 요구로 김씨를 철야조사하는 과정에서 잠을 제대로 재우지는 못했으나 김씨가 혐의사실을 순순히 자백해 고문을할 이유도 없었고 경기도경찰국 대공분실에는 전기고문을 할 만한 시설이나기구도 없었다”며 고문혐의를 부인했다. 이피고인은 그러나 공소시효가 만료된 김근태 국민회의 부총재에 대한 고문혐의를 묻는 백오현(白五鉉)공소유지 담당변호사(특별검사)의 신문에는“지난 85년9월 5∼13일까지 당시 김근태씨 수사 팀장을 맡고 있던 박처원 전 치안감의 지시를 받고 차출된 뒤 4차례 조사과정에서 처음으로 전기고문을 했다”고 고문사실을 시인했다. 이피고인은 전기고문 기술을 익힌 경위에 대해“85년6월 중순 직원들이 AN2모형비행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소형 전동기를 구했는데 전동기를 통해 감전된 경험이 있었다”며 “실험결과 위험하지도 않고 짜릿짜릿한 점에 착안,처음 사용했다”고 말했다. 전기고문 방법에 대해서는“전동기에서 나온 전선을 사람 발가락에 한줄씩묶고 회전축을 돌려 전류를 통하게 했으며 전기 막대기는 사용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날 법정에는 납북어부 김씨와 민주화실천운동가족협의회(민가협)회원 등70여명이 나와 재판시작 전부터 붐볐으며 일부 민가협 회원들이 소란을 벌여 재판이 20여분 동안 중단되기도 했다. 다음 재판기일은 12월16일 오전 10시. 성남 윤상돈기자 yoonsang@
  • 李根安씨 오늘 첫 재판

    ‘고문기술자’이근안(李根安·61)전 경기도경 대공분실장에 대한 첫 재판이 25일 오전 10시 수원지법 성남지원에서 열린다. 성남지원 형사합의2부(재판장 具萬會부장판사)심리로 열리는 이날 재판에서는 인정신문과 납북 어부 김성학(金聲鶴·48·강원도 속초시)씨에 대한 불법감금 및 가혹 행위 여부에 대한 심리가 진행된다. 성남 윤상돈기자 yoonsang@
  • 北 생화학전 도발땐 미군투입/한미군사위 안보협 합의

    [워싱턴 우득정·최철호 특파원] 한국과 미국은 북한이 생화학전을 도발하면 미국의 화생방전 방호부대를 한국에 긴급 배치키로 합의했다.또 북한의미사일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현재 주한미군이 보유한 패트리어트 2개 대대외에 2∼4개 대대를 추가로 수도권 전방 등에 배치키로 했다. 한국과 미국은 지난 68∼69년 휴전선 비무장지대(DMZ) 일대의 고엽제 살포문제와 관련,고엽제의 사용 경위,독성인식 여부 등을 확인하기 위해 미국측이 보유한 관련자료를 한국측에 금명간 넘기기로 했다. 한국과 미국은 23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조영길(曺永吉) 합참의장과 헨리 쉘튼 미 합참의장이 참석한 한·미 군사위원회(MCM)와 조성태(趙成台) 국방장관과 윌리엄 코언 미 국방장관이 참석한 한·미 연례 안보협의회(SCM)를열어 이같이 합의했다. 한국과 미국은 이날 회담에서 북한이 전면전 또는 국지전을 도발하면 항공모함과 전투기 등을 동원,북한의 깊숙한 지역까지 타격을 가하는 한편 신속전개군의 한반도 배치 시한도 최대한 앞당기기로 했다.지금까지 전개시한은전투기 13시간,항공모함 14일이었다. 한·미 양국은 북한의 생화학전에 대비,미국이 개발한 최첨단 생물학전 조기 탐지장치인 ‘포털 쉴드’를 한국의 주요 지역에 배치키로 했다. 양국은 노근리 문제의 처리방향에 대해 내년 상반기까지 철저한 진상규명을 마무리한다는 목표 아래 다음달 13일과 내년 1월 중 미 육군 실무조사단과진상조사위원회 자문단이 한국을 방문토록 했다. 지난 5월 협의가 중단된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 문제와 관련,형사재판권 관할 문제 등을 조기에 타결짓기 위해 협의를 재개키로 합의했다. 한국과 미국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할 경우 미국측이 동원하는 민간자산은 전액 미국이 부담하고 정부자산도 가능한 한 미국이 부담하는 ‘전시지원협정(WHNS)’에 잠정 합의했다. 이밖에 한·미 양국 국방부 국장급이 참여하는 ‘21세기 한·미 안보대화실무협의체’와 한·미·일 국방차관보급회의를 지원하는 ‘연구협의체’를구성,12월 중 서울에서 첫 회의를 갖기로 했다. djwootk@
  • 홍석현씨 첫 공판 공소사실 대부분 시인

    증여세 등 25억여원의 세금을 포탈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보광그룹 대주주이자 중앙일보회장인 홍석현(洪錫炫)피고인에 대한 조세포탈사건 첫 공판이16일 오후 2시 서울지법 형사합의21부(재판장 金二洙부장판사) 심리로 열려검찰과 변호인단 신문이 진행됐다. 이날 검찰 신문에서 홍 피고인은 “모친에게 물려받은 주식 등을 현금화하면서 결과적으로 증여세를 내지 않고 불법적으로 자금을 조달한 것은 잘못”이라며 공소사실을 대부분 시인했다. 그러나 변호인 반대신문에서는 “가족 공동재산을 실무자들이 맡아 관리했기 때문에 증여세와 양도소득세를 내지 않은 것은 국세청 조사과정에서 처음알게 됐으며 세금포탈 의도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홍 피고인은 “이번 사건을 언론탄압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재판부의 이례적인 질문에 “국세청 조사에 대해서는 뭐라 말할 수 없지만 고발 이후 검찰수사나 기소 단계에서는 문제가 없었다”고 대답했다. 이상록기자 myzodan@
  • [의열 독립투쟁] (11)박열 의사

    일제 강점기 항일투사들의 최대 목표는 국적 일왕(日王)을 처단하는 일이었으나 철통같은 경비를 뚫고 일왕을 처단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그러나 항일투사들은 틈을 노렸다.그 중 한 분이 1932년 1월8일 관병식을마치고 돌아가는 히로히토에게 도쿄 사쿠라다몬 앞에서 수류탄을 던진 이봉창(李奉昌) 의사이며,이보다 앞선 의거는 박열(朴烈·1902∼1974) 의사가 일왕 부자(父子)의 처단을 준비하다가 체포된 거사이다. 박의사는 1923년 9월 일본 왕세자 결혼식 날에 일왕 부자를 한꺼번에 폭살하려고 폭탄입수를 계획하다가 비밀이 누설되어 검거되었다.일왕 부자 폭살기도사건으로 일본인 부인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여사도 함께 구속된다.두 사람은 사형선고를 받고 무기징역형으로 감형되어 수감 중 가네코 여사는의문의 죽음을 당하였고,박의사는 일제가 패망할 때까지 23년을 일제 감옥에서 보냈다. 박의사의 옥중생활을 날수로 따지면 8,091일,햇수로는 22년 2개월 1일이 된다.세계감옥사에 전과범의 옥중 생환자 중에 일수를 따져 22년의 생환기록은 있으나 ‘대역사건’이라는 일죄일범(一罪一犯)으로 햇수로 23년이란 감옥생활을 일관한 혁명가가 살아서 나온 기록은 당시까지만 해도 유례없는 일이다. 흔히 박의사를 ‘무정부주의자’라고 부른다.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인 일왕을 처단하여 조선의 자주독립으로 만민평등의 사회를 만들겠다는 것이 박의사의 생각이자 사상이었다.박의사는 이 계획을 추진하기 위해 의열단원 김한(金翰)을 통해 상해 의열단측으로부터 폭탄을 입수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못했다.다시 일본인 선원 스기모토에게 부탁했으나 역시 뜻을 이루지 못하자 자신의 추종자이며 같은 ‘불령사(不逞社)’회원인 김중한(金重漢)에게 부탁했는데 이것이 사전 발각의 빌미가 되었다. 김중한의 일본인 처가 경찰에 밀고하여 관동대진재의 와중에 박의사와 가네코를 비롯,불령사 동지들이 체포돼버린 것이다.일제강점기에 수많은 항일투사가 일제의 법정에 섰지만 박의사 부부처럼 당당하게 자신들의 소신,즉 일제타도의 당위성을 피력한 사람은 흔치 않았다.그것도 적도(敵都) 도쿄법정에서. 박의사 부부는 1925년 9월 이른바 ‘대역사건’의 주범으로 일본 대심원 특정법원에 섰다.박의사는 공판에 앞서 4가지 조건을 법원에 제시했다.첫째,조선민족을 대표하는 입장에서 조선의 왕관·왕의를 착용토록 할 것.둘째,법정에 서는 취지를 선언토록 해줄 것.셋째,조선어를 사용토록 통역을 준비할 것.넷째,피고의 좌석을 일인 판사의 좌석과 동등하게 만들 것 등이었다.박의사가 제시한 4가지 조건 중 일제는 첫째,둘째 조건은 들어주고 셋째는 거부,넷째는 재판장의 간청으로 철회했다. 이렇게 하여 박의사는 조선의 국왕을 상징하는 의관을 갖추고 법정에 서서일왕 부자 폭살의 이유를 진술하여 일본열도를 소용돌이에 몰아넣었다.긴 재판 끝에 박의사 부부에게 사형이 선고되고 이어 무기로 감형되었다.옥중의‘괴사진’사건으로 일본내각이 붕괴되는 등의 파란을 겪으면서 가네코는 옥중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고 박의사는 일본에서도 가장 심하다는 아키다형무소 등에서 복역하다가 일제 패망과 함께 맥아더사령관의 정치범 석방조치로1945년 10월27일석방되었다. 석방 이후 일본에서 신조선건설동맹위원장 등 민단 건설에 노력하던 박의사는 48년 8월 정부수립 기념행사 참석차 귀국했다가 6·25 때 서울 장충동에서 인민군에 납북되었다.납북 후 북한에서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회장 등을 역임하다가 1974년 1월18일 74세로 타계,평양 근처 애국열사능에 안장되었다. 박의사는 1902년 2월 경북 문경에서 태어나 경성고등보통학교 때 3·1 만세운동에 참가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신문배달,막노동꾼 등의 일을 하면서 세이소구(正則)영어학교에 다녔다.이 무렵 일본의 사상가이며 아나키스트인 오스키,이와사의 영향을 받아 자신의 인생관과 사회관을 형성하게 되었다. 3·1운동을 전후하여 일본에는 한국인 노동자·유학생이 4만여명에 달했다. 유학생은 매국노 자제를 비롯한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노동하면서 공부하는고학생이 대부분이었다.박의사도 고학을 하면서 정태성·조봉암 등과 진보적 사회단체인 ‘흑도회(黑濤會)’를 조직,재일한국인의 권익옹호와 조국해방운동에 나섰다.조직을 ‘흑로회(黑勞會)’‘흑우회(黑友會)’로 바꿔가면서 항일운동을 벌인 박의사는 부인과 ‘현사회’와 ‘불령선인’ 등 기관지를발간했지만 일본경찰은 닥치는 대로 압수·소각했다. 박의사의 ‘대역사건’이 발표되자 일본의 언론은 대서특필로 이를 보도하고 도쿄의 조선유학생 학우회가 총궐기 태세로 수감중인 박의사를 지원하고나섰다.그러나 국내언론은 검열과 통제로 사건내용을 구체적으로 보도하지못했다.박의사의 일왕 부자 폭살계획은 폭탄의 입수과정에서 차질과 정보누설로 좌절되었다.또한 이것이 관동대진재의 와중에 정치적으로 이용되어 ‘대역사건’으로 포장되고,조선인 대량학살을 호도하는 데 악용되었다.남쪽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항일운동을 하다가 북쪽에서 사망한 박의사는 20세기 민족사의 비극을 상징한다.89년 3·1절에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지만 아직도 그의 독립투쟁과 아나키즘사상에는 ‘흑도(검은 파도)’가 덮여있는 실정이다.생가나 향리 어디에도 박의사의 추모비 하나가 세워져 있지 않다.비운의 애국투사이다. 김삼웅 대한매일 주필·‘박열 평전’저자 kimsu@*박열 의사 부인·후손들 박열 의사의 첫 부인이자 아나키즘운동의 동지였던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여사는 박의사와 함께 대역죄 혐의로 1926년 3월 사형선고를 받고 복역 중열흘 후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그런데 이로부터 4개월 후인 7월 가네코 여사는 형무소에서 의문사하였는데 유해는 경북 문경 박의사의 선산에 안장됐다.지난 73년 일본측에서 가네코 여사의 유해를 옮겨가려고 했으나 정화암·양일동 선생 등 아나키스트들의 반대로 무산됐다.박의사와 가네코 여사는 정식 결혼식을 올리지는 않았으며 슬하에 자식도 없었다. 박의사가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린 부인은 지난 76년 타계한 박의숙(朴義淑·본명 張義淑)여사이다.두 사람이 결혼한 것은 1947년.당시 박여사는 도쿄여대 일어과를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로 일본 국제신문 기자로 근무했는데 출옥 1주년 맞아 박의사의 인터뷰를 갔다가 인연이 돼 결혼하게 됐다.박의사는 47세,박여사는 29세였다.박여사는 결혼 1년 만에 장남 영일(榮一·51·육군 준장)씨를,이듬해에장녀 경희(慶姬·현재 일본거주)씨를 낳았다.그러나 행복도 잠시,6·25 와중에 박의사는 납북됐고 가족들은 다시 일본으로 건너갔다.이때 박여사는 남편의 뜻을 따른다는 뜻에서 성을 장씨에서 박씨로 바꾸었다.장남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당시 북한에 있던 박의사로부터 장남을 한국으로 데려가 교육시키라는 편지를 받고 박여사는 장남을 육군사관학교에 입학(67년)시켰다.박의사의 장남 영일씨는 현재 군 정보계통에 근무중이며 97년 장성으로 진급했다.현재 영일씨의 가족은 서울에 살고 있다. 정운현기자 jwh59@
  • [베를린 장벽 붕괴10돌] (중) 베를린市 축하행사 이모저모

    [베를린 남정호 김규환특파원] 베를린 장벽 28년.전세계를 가로지르고 있던 이데올로기적·정신적 분단의 벽을 육체의 벽으로까지 전이(轉移)시켰던 그 세기의 장벽은 마침내 허물어졌다.그리고 또 10년이 흘렀다.베를린시는 8일 그 제일의 주역중 한 사람인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에게 명예시민증을수여했다. 에버하르트 디프켄 베를린시장은 이날 명예시민증을 전달하는 자리에서 “베를린시가 어렵던 시절 영국과 프랑스 등과 함께 연합국의 일원으로 서베를린시의 자유를 지켜줬으며,전후(戰後) 베를린 세대에게 민주화와 문화를 꽃피우게 했고 안정된 생활을 보장해줬다”며 “부시 전 미 대통령에 대한 베를린 명예시민증 수여는 전체 미국시민들의 영예”라고 밝혔다.그는 “독일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장벽 붕괴에 따른 동서베를린 통합에 공로가 큰 부시 전 미 대통령은 오늘부터 베를린 시민”이라고 강조했다. ●지금까지 베를린 명예시민증을 받은 사람은 모두 108명.지난 1826년 콘라드 리벡이 첫번째 명예시민이 된 이후,독일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콘라드아데나워·빌리 브란트·헬무트 콜 전 총리,리처드 폰 바이츠제커·로만 헤어초크 전 대통령 등도 포함됐다.부시는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 등 미국인으로서는 다섯번째이다. ●지난 89년 11월4일 100만명의 동베를린 시민이 모여 민주화와 서독으로의여행자유화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던 알렉산더 광장에는 장벽 붕괴 10주년을맞아 시민들이 자신의 감회를 적어 붙이는 게시판이 등장,시민 및 관광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이 게시판에는 ‘동독 인민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사회·정치적 변화를 일궈냈다.행운이 있기를’‘베를린 장벽 붕괴는 하느님이 주신 선물이다’‘고르바초프 전 소련대통령과 콜 전 총리에게 감사한다’는 등 각양각색의 문구가나붙어 이채를 띠기도. ●대부분의 독일인들은 독일통일이 올바른 결정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옛 동독인들(90%)이 서독인들(83%)보다 통일에 대해 더 긍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독일 은행협회가 최근 베를린 장벽 붕괴 10주년을 맞아 조사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독일인의 85%가 ‘옳은 결정’이라고 응답.한편 옛동독인들은통일 자체에 대해서 긍정적인 견해와는 달리,그들중 70%가 아직까지 ‘2등국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돼 옛 서독인들에 대한 심리적 열등감을 표출하기도. ●베를린 장벽붕괴 10주년을 맞아 옛동독 정권에 관련돼 유죄판결을 받은 동독 마지막 서기장 출신 에곤 크렌츠,동독의 비밀경찰 조직 슈타지 첩보실장출신의 마르쿠스 볼프 등의 사면을 놓고 베를린 정가에서 설왕설래. 로타르 드 메지에르 기민당 부당수는 이날 “새천년을 맞는 만큼 20세기의잘못은 묻어줘야 한다”며 이들의 사면을 건의.이에 대해 헬무트 콜 전 총리는 과거 잘못은 심판을 받아야 한다며 “사면은 시기상조”라고 일축. ●독일 언론은 89년 11월9일 베를린 장벽 붕괴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3인 주역들의 회고담을 게재해 눈길.콜 전 총리는 베를린 장벽 붕괴사건을 확인하는 순간 마치 다른 행성에 있는 것처럼 느꼈다고 회고했다. 부시 전 미 대통령은 미국이 잘못 움직이면 소련의 군사개입을 유도할 수있어 자제했다고 회상.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은동독 친구들이 국민들에게적대 조치를 취하지 않고 국민들의 의지를 수용한 것은 매우 올바른 결정이라고 격려했다고 반추. khkim@ *당시 駐서독美대사 회고기 1989년 서독주재 마지막 미국대사로 부임해 베를린 장벽 와해와 독일통일을 지켜본 버넌 월터스대사가 8일 아시안 월스트리트 저널에 당시를 회고하는기고를 실었다.그의 기고문 ‘내가 목격한 혁명’을 요약한다. 89년 1월 조지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주독일 대사로 임명받았을 때 나는 이미 72세였다.고령을 이유로 사양했으나 부시대통령은 “독일에서 지금 중대한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당신같은 노련한 외교관이 가야 한다”고 말했다. 나도 마찬가지 예감을 가졌던 게 사실이다.소련과 동유럽에서는 변화의 조짐이 드러나고 있었다.폴란드에서는 레흐 바웬사가 대통령에 당선됐고,소련은아프가니스탄에서 무조건 철수를 결정했다.그해 4월 22일 독일에 부임했을때 독일통일이 임박했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나는 부임 첫 회의때대사관 직원들에게 내가 대사로 있는 동안 통일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공언했다.독일 정부관리들을 만나서도 같은 이야기를 했다.아무도 내 말을 믿으려들지 않았다.헬무트 콜총리만 예외였다.콜총리는 “내가 바라는 것도 바로그것이며 우리도 그걸 위해 노력중”이라고 화답했다. 헤럴드 트리뷴지는 나의 발언을 반박하며 머릿기사로 “지금은 무분별한 독일통일 논란을 벌일 때가 아니다”고 썼다.그러나 동유럽의 변화는 폭풍처럼 밀어닥치기 시작했다.수천명의 동독 난민들이 폴란드,체코,헝가리,오스트리아로 밀려들어갔다.라이프치히 등 동독 도시들에서는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대 숫자가 점점 더 불어났다. 그 무렵 어느날 나는 운터덴린덴가에 있는 동독주재 소련대사 관저에서 그대사와 오찬을 했다.그는 “베를린장벽은 앞으로 100년은 끄떡없이 그대로있을 것”이라고 호언했다.나는 그것은 현실을 모르는 소리라고 반박했다.소련은 당시 3,900억달러에 달하는 국방비 부담에 짓눌려 더이상 미국과 경쟁할 여력이 없었다.동독의 시위대는 점점 더 과격해졌다.서독 국기가 시위대에 등장하기 시작했다.마침내꼭 10년 전인 89년 11월9일 밤.본에 있던 나는 베를린 미국대표부로부터 전화보고를 받았다. 장벽 검문소 한곳이 열려 동독 주민들이 물밀듯이 밀려나온다는 보고였다.다른 검문소들에도 주민들이몰려들고 있다고 했다.나는 곧장 베를린으로 달려가고 싶었다.하지만 소련의 반응이 어떨지 알수 없었다.소련이 무력진압에 나설 경우에 대비해 나는 독일정부가 있는 본에 남아있기로 했다. 24시간 뒤 나는 베를린으로 가 헬기로 도시를 한바퀴 돌아보았다.서베를린으로 통하는 도로마다 자동차와 인파로 가득찼다.동독국가의 한 구절인 “하나인 우리의 조국 독일”이라는 외침이 거리마다 울려퍼졌다.그날밤 베를린상점들은 문을 닫지 않았다.동베를린 주민들은 상점진열장에 쌓인 오렌지,바나나 같은 과일들을 신기한듯 바라보았다.소련으로부터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수천명의 주민들이 망치를 들고 장벽을 찍어내기 시작했다. 나는 독일통일을 예상했지만 이렇게 빨리 공산체제가 무너지리라고는 예상못했다.압제와 자유의 오랜 싸움은 이렇게 끝났다.자유가 승리한 것이다. 정리 이기동기자 yeekd@ * 당시 東獨지도자들 근황[베를린 김규환특파원] 베를린 장벽 붕괴 10주년을 맞아 장벽이 무너질 당시 동독 지도자들의 근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베를린 장벽 붕괴 직전인 지난 89년 10월 에리히 호네커 공산당 서기장 체제가 와해되면서 권좌에서 함께 물러난 20명의 옛 동독 공산당인 사회주의 통일당(SED) 정치국원중 11명은 아직 생존해 있다. 이들 생존자 대부분은 은퇴한 뒤 베를린에서 칩거하고 있으나,89년 호네커후임에 선출된 에곤 크렌츠 공산당서기장(62)과 귄터 샤보프스키 전 동베를린 SED 지구당위원장(70)만이 가끔 인구에 회자(膾炙)되고 있다.이 두 사람은 동서독 국경 탈출자들에 대한 사살명령을 내렸다는 혐의로 지난달 27일부터 연방대법원에서의 상고심이 열린데 이어,8일 결심 공판이 열리기 때문이다. 89년 10월10일 실각한 호네커는 90년 1월 구속됐다가 풀려난 뒤 모스크바 도망중 베를린으로 송환돼 동서독 국경 탈출자에 대해 사살명령을 내린혐의로 구속됐다.이후 암투병을 이유로 93년 1월 석방돼 칠레로 망명했으나이듬해 5월 그곳에서 사망했다.옛 동독 총리를 역임한 한스 모드로프(71)는장벽 붕괴 뒤인 90년 실시된 총선에서 메클린부르크-포어포메른주에서 당선돼 연방 하원의원으로 활동했다.그러나 거짓 증언 등을 이유로 연방하원 의원직을 박탈당한 뒤 칩거하고 있다. 동독의 비밀경찰조직인 슈타지(국가보위부) 첩보실장 출신인 마르쿠스 볼프(76)는 첩보활동을 한 죄로 재판에 회부됐으나 자신의 과거 행적에 대해 일체 함구하고 있다.비공산당원 출신으로 90년 3월부터 동서독 통일이 이뤄진그해 10월3일까지 동독의 마지막 총리를 지낸 로타르 드 메지에르는 기민당부당수로 아직까지 정계와 연을 맺고 있다.호네커의 후계자로 선출된 크렌츠는 장벽 붕괴 이후 TV 토크쇼에 출연,생계를 이어왔다.특히 91년 ‘장벽이무너진다면’이라는 책을 펴내 2만마르크의 인세를 받은데 이어 신문에 장벽붕괴 당시의 상황을 시리즈로 게재,10만마르크를 벌기도 했다.91년부터 금융중개업에 뛰어들어 매달 5,000마르크를 벌고 있다. 97년 베를린지방법원에서 동서독 국경탈출자에 대한 사살명령 혐의로 6년6개월형을 받아 한때 구속되기도 했다.그는 상고심에서 ‘냉전체제의 희생물’이라고 강변하고 있다.샤보프스키는 97년 크렌츠와 같은 혐의로 기소돼 베를린 지방법원에서 3년형을 선고받았으며 현재 상고심이 열리고 있다.
  • 신창원 첫 공판

    특수도주죄와 특수강간죄 등 15개 죄목으로 추가 기소된 부산교도소 탈주범신창원(申昌源·32)에 대한 첫 재판이 5일 부산지법 103호 법정에서 열렸다. 부산지법 제2형사부(재판장 柳秀烈부장판사)심리로 열린 이날 재판에서 신은 검찰의 공소내용을 대부분 시인했으나 지난 98년 7월 청주 가경동 부녀자 김모(30)씨 강도·강간 혐의는 완강히 부인했다.도주과정에서 경찰관과 격투를 벌일 때 회칼을 갖고 있었다는 대목도 전면 부인했다. 신은 재판에 앞서 “교도소측이 변호인의 접견과 서신 교환을 제한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탈옥이후 자신의 신분이 미결수임을 의식한 듯 부산구치소로 이감을 재판부에 요구했다. 2차공판은 12월 3일 열린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kdai
  • [의열 독립투쟁] (10)田明雲·張仁煥 의사

    국권이 이미 기울 대로 기운 1908년 3월23일 이른 아침.미국 샌프란시스코페어몬트호텔 앞에서 한 한국 청년이 몸을 숨기고 호텔 안의 동정을 살피고있었다.이 시각 한 대의 승용차가 호텔 정문에 정차하자 일본인 관리로 보이는,실크 모자를 쓴 두 사나이가 호텔 안으로 들어가더니 트렁크 몇개를 들고나와 승용차에 싣는 모습이 보였다. 순간 무언가를 직감한 이 한국인 청년은 급히 인근 페리 정거장으로 향하였다.그는 오전 9시30분 정각에 발차하는 미국 대륙횡단열차와 관련해 ‘볼 일’이 있는 듯했다.이윽고 9시 15분경 열차가 기적을 울리며 플랫폼으로 들어서자 역 구내 한 쪽에 모인 일본인 무리에서 ‘반자이(만세)’ ‘반자이’하는 함성소리가 터져나왔다.그들은 한 미국인의 전송차 나온 일행들이었다. 함성소리에 싸여 한 미국인이 탄 승용차가 정거장 앞에 멈추어서자 샌프란시스토 주재 일본총영사 고이게 조소(小池張造)가 먼저 차에서 내렸다.뒤따라 내린 미국인은 얼굴에 상처투성이였다.9시20분 개찰이 시작되자 승객들이역사를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그 미국인도 열차를 타기 위해 플랫폼으로 나서자 이때 철탑 뒤에 몸을 숨기고 있던 한국인 청년이 품에서 권총을 빼들고 그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나 첫 발은 불발이었다.다시 두번째 방아쇠를 당겼으나 이 역시 ‘찰칵’소리만 날 뿐 불발이었다.자신의 권총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한국인 청년은 권총을 거꾸로 고쳐잡고 차에 오르려는 미국인을 맹타하기 시작했다. 급습을 당한 미국인이 몸을 피해 도망가려는 순간 어디선가 세 발의 총성이 울렸다.첫 발은 한국인 청년의 오른쪽 어깨를 빗맞고 지나갔고 두번째,세번째 탄환은 미국인의 등과 허리에 명중했다.두 사람은 땅바닥에 쓰러졌다.쓰러진 미국인은 친일파 스티븐스과 한국 청년 전명운(田明雲·1884∼1947)의사였다.총을 쏜 사람은 또다른 한국 청년 장인환(張仁煥·1876∼1930)의사였다.이른바 ‘스티븐스 처단의거’로 불리는 이 사건은 한국의 애국청년들이이국 땅에서 이룩한 쾌거였다. 전명운 의사는 서울 출신으로 일찍 양친을 여의고 불운한 청소년기를 보냈다.가업인 포목전을경영하던 장형의 도움을 받아 성장한 전 의사는 약관 20세인 1904년 2년제 신식학교인 한성학원을 수료하면서 시국과 개화에 눈뜨기 시작했다.어릴 때부터 의협심이 강하고 용맹투사로 소문나 있던 전 의사는노상에서 한국인 부녀자를 희롱·모욕하는 일본인들을 응징한 뒤 신변에 위협을 느껴 천주교 신부의 도움을 받아 상하이로 망명하였다. 상하이에서 다시 신부의 주선으로 미국 화물선 스타피시호의 취사장 인부로 고용된 전 의사는 대만·일본 등을 거쳐 그해 9월 하와이에 도착했다.이곳에서 1년간 농장 인부로 일하던 전 의사는 이듬해 1906년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하여 부두노동자,철로공사장 노동자,채소 행상 등을 하면서 생계를 꾸려갔다.당시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이민노동자와 몇몇 유학생,우국 망명가들이 모여 1905년 4월 공립협회(共立協會)를 창립,기관지 ‘공립신보’를 통해 교민들의 세력을 규합하는 등 항일활동을 전개하고 있었다.전 의사 역시 공립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한편 1908년 3월 한국통감부의 외교고문이자 친일파인 미국인 스티븐스가워싱턴을 방문하는 길에 샌프란시스코를 경유한다는 정보가 교민사회에 입수되었다.스티븐스의 귀국은 대외적으로는 일제가 다년간의 공로를 인정,특별휴가를 준 것으로 돼 있었지만 내면적으로는 일본 외무성과 한국통감부의 밀명을 띤 귀국이었다.당시 미국 내에서 일본인 노동자들에 대한 배격운동이격화돼 미 의회에서 관련 법 제정을 추진하자 일제가 그를 긴급 파견,미 국회의원과 유력자들을 만나 법안 제출·통과를 저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3월3일 요코하마를 출발해 귀국 길에 오른 스티븐스는 선상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항구적인 동양 평화를 위하여 한국은 독립을 포기하고 일본의 보호 아래 그 일부로 편입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했으며 3월20일 샌프란시스코 도착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는 “일본의 한국 지배는 한국에 유리하다”는 등 친일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이같은 내용은 미국 신문에 보도돼 재미교포 독립운동가들의 격분을 샀다. 공립협회 회원들은 스티븐스가 머문 페어몬트호텔로 찾아가 발언내용 취소를 요구하며항의했으나 거절당하자 그를 응징했다.이날 저녁 샌프란시스코 교민들은 스티븐스 구타 경과보고를 겸한 모임을 갖고 대책을 숙의했는데 이자리에서 전 의사는 자신이 스티븐스를 처단하겠다고 선언하였다. 그 자리에 있던 장인환 의사는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전·장 두 의사는 23일 아침 일찍 워싱턴으로 가는 대륙철도를 타려던 스티븐스에게 세 발의 탄환을 날렸다.피격 후 스티븐스는 병원으로 이송되어 긴급 치료를 받았으나이틀 뒤인 25일 복부 탄환 제거 수술을 받다가 사망하였다. 3월27일 전 의사는 병상에 누운 채 살인미수 혐의로,장 의사는 계획에 의한 일급 모살 혐의로 각각 샌프란시스코 경찰법원에 기소되었다.교민사회에서는 두 의사의 무죄 석방을 위해 백방으로 호소하는 한편 변호사 비용 등 경비 모금에 나섰다.공립협회 회원이자 두 의사 후원회 임시서기인 송종익(宋鍾翊)은 현지 신문인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지에 두 의사의 스티븐스 처단은 한국의 독립 쟁취를 위한 투쟁이라고 밝히고 재판 과정을 독립전쟁의과정으로 인식해줄 것을재판부에 호소하였다. 3차에 걸친 예심을 마치고 6월27일 전 의사는 증거 부족으로 석방되었으나장 의사는 8개월 동안의 재판 끝에 12월23일 ‘애국적인 발광(發狂) 환상에의한 2급 살인죄’로 판정,극형은 면하고 이듬해 1월2일 열린 언도공판에서금고 25년형을 선고받았다.장 의사는 1919년 1월17일 가출옥으로 석방됐으며1924년에는 자유의 몸이 됐다. 전 의사보다 8세 연상인 장인환 의사는 1876년 평양 출신으로 장 의사 역시 조실부모하고 청소년기를 불우하게 보냈다.각지를 전전하며 상점점원 노릇을 하기도 하고 잡화상을 경영하기도 했던 그는 평양에 살면서 청일전쟁을직접 체험하였다.1904년 하와이로 이민,사탕수수 농장에서 2년간 일하다 1906년 캘리포니아로 옮겨 노동자생활을 하던 장 의사는 일제가 ‘을사조약’을 강제로 체결,국권을 박탈하자 ‘대동보국회’ 가입을 계기로 항일 대열에동참하였다. 한편 전·장 두 의사의 의거는 항일독립운동사에서 특별한 의미의 성과로기록되고 있다.우선 두 의사의 ‘스티븐스 처단’은 국내 민족진영에활기를 불어넣어 일시 수세에 있던 의병투쟁을 공세로 전환시켰다.또 두 의사의 의거·재판을 모두 독립전쟁의 일환으로 국내외에 인식시켰다는 점이다. 의거 이후 전 의사는 러시아령 연해주로 망명,현지에서 안중근(安重根)의사와 교유한 적이 있는데 전 의사의 의거 이듬해인 1909년 안 의사의 이토(伊藤博文) 처단은 전 의사의 영향을 받은 결과라는 주장도 있다. 이역만리 미국 땅에서 미국인 친일파를 처단,한국 청년의 기개를 세계 만방에 드날린 두 의사는 모두 불행한 말년을 보냈다.의거 후 재판에서 무죄 석방된 전 의사는 일제의 감시와 암살 위협 등의 압박감에서 이름마저 ‘맥 필드’로 바꾸고 9월 연해주로 일시 망명했다가 1919년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다.그때 부인과 양자로 입양한 조카를 만났으나 두 사람 모두 1927년 사망해 두 딸을 어렵게 길렀다.태평양전쟁이 일어난 후 한인국방군 편성계획을 미육군사령부에 제출,노년까지 항일활동을 하던 전 의사는 해방 이듬해인 1947년 11월18일 63세로 LA 노인아파트에서 타계해 갤버리 천주교묘지에묻혔다. 94년 전 의사의 유해는 봉환돼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장 의사는 전 의사보다 비극적인 노년을 보냈다.1919년 1월 가석방된 후 실의와 병고를 이기지 못한 장 의사는 1930년 5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샌프란시스코 공동묘지에 묻혔던 장 의사의 유해는 75년 국립묘지로 이장돼 사후 45년 만에 영원한 안식처를 갖게 됐다.두 의사는 모두 지난 62년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대통령장(2등급)을 추서받았다. 정운현기자 jwh59@ *田·張의사가 처단 스티븐스는... 전명운·장인환 두 한국 청년이 처단한 미국인 스티븐스는 어떤 인물인가. 처단될 당시 일제 한국통감부의 외교고문으로 있던 미국인 스티븐스는 1852년 미국 오하이오 태생으로 19세때 오버린학교를 졸업하고 뉴욕 컬럼비아대학 법리과·외교학과를 졸업했다.처음 미 국무부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그는 1882년 주일 미국공사관에서 1년간 근무한 것이 인연이 돼 일본과 인연을맺게 됐다. 이듬해 이곳을 사직한 그는 주미 일본영사관의 서기관으로 변신하였고 이듬해 다시 일본 외무성고문으로 채용되어 본격적인 일제의 침략외교를 자문하기 시작했다.그가 한·일 외교무대에 처음 등장한 것은 1882년에 일어난 갑신정변의 결과로 체결된 ‘한성조약’ 체결때이다.일본측 전권대사인 이노우에 가오루(井上馨)를 따라 내한한 그는 이노우에를 뒤에서 자문한 공로로 욱일장(旭日章)을 받았다. 스티븐스는 이후에도 영·일동맹과 뒤이은 포츠머드 강화조약에서 일본이한국을 ‘병합’할 수 있는 길을 트는 데 크게 기여했다.이같은 공로로 그는 1904년 한·일간 체결된 ‘외국인 고문에 관한 규정’에 근거,대한제국 정부의 외교고문(1905년 ‘을사조약’ 체결 이후에는 한국통감부 외교고문)으로 초빙됐다. 그는 ‘몸’은 미국인이었지만 ‘마음’은 일본을 위하는 자였다.일제가 대한제국의 국권을 침탈한 1905년 ‘을사조약’ 체결시는 물론 1907년 ‘헤이그 밀사사건’ 이후 고종의 강제 퇴위와 ‘정미 7조약’ 체결때도 그는 배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이후 그는 한국의 민족진영으로부터 처단 대상으로 지목됐고 전·장 두 의사에게 처단될당시 그의 나이 55세였다. 샌프란시스코 성프란시스병원에서 수술 도중 사망한 그의 사체는 4월2일 이 병원을 출발,6일 워싱턴에 도착됐다.장례는 8일 교회에서 기독교식으로 치러졌으며 워싱턴 온비루묘지에 묻혔다.이튿날 거행된 추도식은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의 조화와 일황의 조전 및 조화,그리고 200여명의 조문객이 참여한가운데 거행됐다. 일본 정부는 장례식에서 스티븐스에게 훈1등 훈장을 추서했으며 유족에게조의금으로 15만원을 전달했다.사후 발견된 그의 예금통장에는 2만6,000여원의 거금이 입금돼 있었는데 이 돈은 그가 일본 정부로부터 친일 대가로 받은것이었다. [정운현기자]
  • 주가조작 현대증권 벌금100억 구형

    시민단체들은 21일 검찰이 현대전자 주가조작 사건 첫 공판에서 현대증권에 벌금 100억원을 구형한 데 대해 “너무 경미하다”며 재판부에 엄중한 처벌을 주문했다. 참여연대는 이날 담당 재판부인 서울지법 형사 제3단독에 진정서를 내고 “현행법상 주가조작에 따른 부당이득의 3배까지 벌금을 물릴 수 있는데 1,500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현대증권에 100억원을 구형한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참여연대는 “재판부는 구형량에 얽매이지 말고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 등관련자들과 현대증권을 엄중 처벌해야 한다”면서 “희대의 경제사기 범죄인 이 사건의 처리 방향에 따라 우리 기업과 시장,경제가 투명하고 공정해질것인지,아니면 지금처럼 후진성을 면하지 못할 것인지 결정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위평량(魏枰良)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책부실장도 “경제사정을 감안한다는 등의 이유로 ‘봐주기 처벌’이 계속된다면 지금까지 되풀이돼온 각종 경제·금융범죄와 부정부패가 종식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하고 “검찰이 자본주의시장 질서를지키고 가꿀 의지가 있는 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이창구기자 @
  • [인터뷰] 제프리 존스 주한 美상공회의소 회장

    북·미 베를린회담 타결과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 일부 해제조치 이후 남북경협사업이 활기를 띠는 가운데 주한 미국상공회의소(AMCHAM)가 대북경협사업에 본격 합류,관심을 모으고 있다. 19일 서울 소공동 조선호텔에서 대북사업위원회 첫 모임을 가진 AMCHAM의제프리 존스회장은 “대북투자를 통해 단기적으로 큰 이익을 볼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면서 “장기 투자라고 생각하고 북한측의 개발계획에 맞게 북한에 도움이 되는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90년대 이후 북한의 대미수출은 1만1,000달러에 불과하며 미국의 북한투자도 거의 없었다”며 “처음 시도되는 역사적인 사업인만큼 북한의 개발계획과 지역별 타당성,가능성을 조사한 뒤 사업성을 보고 계획을 추진하기 위해 다음달 중 조사단을 파견하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말했다. 존스회장은 조사단의 방북과 관련,“아직까지 북한 당국과 합의한 내용은없지만 미국정부를 통해 UN 북한대표단에 알렸고 비공식적인 라인을 통해서도 접촉을 시도하고 있어 이달 안으로 북한측의 긍적적인답변이 올것으로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북한에 갈 경우 일주일 가량 머물면서 나진·선봉 특구 등 여러지역을 방문하고 싶다”며 “현대 등 대북사업을 벌이는 한국기업과의 협력도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한국기업들이 이미 북한에 진출해 있지만 아직 많은 위험부담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북한의 투자정책이나 송금수단,자산소유 방식,분쟁발생시 공평하게 재판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 등도 조사단의 중요한 임무가될 것”이라고 밝혔다. 존스회장은 “대북경협이 원만히 이뤄지기 위해 양국 정부와 긴밀한 협조아래 기업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할 계획”이라며 “북한이 남북경협을순수 경협이라기보다 ‘지원’측면으로 보는 것처럼 미국의 대북투자를 받아들이면서 조건을 제시할 경우 미국법에 위배되지 않는 범위에서 조건을 받아들인다는 방침”이라고 말했다. 함혜리기자 lotus@
  • [담배 종말은 오는가] 美 필립모리스社‘有害 시인’이후

    담배,더 이상 설 땅이 없다.50년에 걸쳐 법적분쟁을 벌여온 미국에서 흡연피해자들에게 유리한 판결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미국 최대담배제조업체인 필립 모리스가 지난 13일 담배의 유해성을 자인했다.흡연이 인체에 치명적이라는 불변의 진리앞에 완전히 백기를 든 셈이다.때를 같이해 전세계 국가들도 담배와의 전쟁을 본격화하고 있어 담배는 설 땅을 점차 잃어가고 있다. 14일 우리나라에서도 처음 제기된 흡연 피해 소송 첫재판이 원고중 외항선기관장 김모(56.부산 북구 금곡동)씨가 숨진 가운데 열렸다. ●백기 든 필립 모리스 세계 최대 담배제조업체인 필립 모리스의 해독성 인정은 대단한 상징성을 갖고 있다.미국내 담배시장의 53%를 차지하는 거대회사이자 세계담배시장을 주도하는 기업이기 때문이다. 브라운 앤드 윌리엄스와 같은 다른 회사들은 물론 세계담배 산업의 지각 변동을 가져올 것이 분명하다. 우선 흡연으로 인한 사망에 따른 배상소송 당사자들에게 유리한 판결로 이어질 것이 확실하다.이럴 경우 이들이 물어야 피해 배상금등은 엄청날 것으로 전망돼 업종전환이나 다른 회사와의 합병등을 통하지 않고는 헤쳐나갈 방법이 없다는 지적이다. 연매출액 4,000억달러 규모의 필립 모리스의 경우 이번을 계기로 계열회사인 크래프트식품이나 밀러 맥주 등 다른 분야를 더욱 주력하기 위한 업종비중 다변화를 꾀할 방침이다. 여기에 해독성 인정에 따른 법적인 규제도 몰려올 전망이어서 담배회사들의앞날은 한치 앞을 내다보기가 힘들게 됐다. ●담배와의 전쟁 미국에서 시작된 담배와의 전쟁은 전세계로 확전중이다.과테말라 등 6개국은 지난해 말 자국 내 담배 점유율이 높은 미국 담배회사를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프랑스에서는 의료보험청이 지난 6월 프랑스와 미국 담배회사 4곳을 상대로 흡연으로 인한 자국민 질병치료비 5,100만프랑을 배상하라는 소송을 제기해놓았다. 일본에서도 올 초 골초 남성 7명이 담배회사를 상대로 1인당 1000만엔씩 손해배상과 사과광고를 요구하는 소송을 도쿄지법에 냈다. 또 한국 호주 중국 등 세계보건기구(WHO)의 서태평양지역기구 34개 회원국은지난 8월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흡연·건강관련 책임자회의에서 담배산업을 원천적으로 봉쇄시키는 내용을 골자로 한 담배규제 행동계획안을 마련했다. 직·간접 흡연으로 인한 피해자가 담배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경우 회원국들이 소송비용을 분담하는 등의 공조체제를 갖추고 담배광고 제한 대상을 인터넷 판매까지 확대하기로했다. 또 면세점을 통해 담배가 싼값에 유통되는 것을 막기 위해 공항,항만,시내면세점에 납품되는 품목에서 담배를 제외하는 방안도 담았다.이와함께 담배생산 농가가 작목을 변경할 경우 자금을 지원해줄 계획이다. WHO본부도 이같은 추세에 맞춰 전 회원국들을 대상으로 한 담배규제 조약을추진중이다. 김병헌 기자 워싱턴 최철호 특파원 bh123@ * 한국의 흡연 실태·영향 성인 남성과 15세이상 남성 흡연율세계 1위.흡연 관련 사망자 연간 3만5,000명.직·간접 경제손실 연 6조원. 한국의 흡연 실태와 피해의 현주소는 심각한 수준이다.따라서 국내에서도 그에따른 담배의 유해성 관련 소송 또한 다투어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15일 보건복지부가 세계보건기구(WHO)에 최근 통보한 한국의 흡연실태보고에 따르면 15세이상 남성 (97년기준)의 흡연율은 68.2%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10명중 7명이 담배를 피운다는 얘기다.여성 흡연율은 6,7%였다. 미국.영국의 15세 이상 남성의 흡연율 28%의 2배가 훨씬 넘는다. 흡연가의 천국으로 알려진 일본의 59%보다도 높다.남고생의 흡연율도 35.3%나 돼 미국(18%),일본(22%)에 비해 훨씬 높다. 통계청과 의료보험연합회에 따르면 연간 3만5,000천명이 담배 때문에 사망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이가운데 폐암사망자가 9,500명이다. 흡연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의 경우 올해는 무려 6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건복지부는 추산하고 있다.경제손실은 비흡연자보다 흡연자가 더 부담하는 의료비,질병과 조기사망으로 인한 각종 손실,담뱃값 지출에 따른 기회비용 등을 고려한 수치다. 이같은 흡연으로 인한 피해 급증과 외국에서의 담배관련 소송증가는 국내에도 담배와 관련된 건강악화를 이유로한 피해보상 소송증가가 예상되고 있는가운데 14일 시작된 외항선원으로 근무하다 사망한 김모씨의 담배재판이 관심의 촛점이 되고 있다. 하루 두갑 정도의 담배를 피던 김씨는 자신의 폐암 발병원인이 흡연 때문이라며 병원진료기록을 증거로 담배인삼공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본인은 숨지고 가족들이 소송을 이어받은 가운데 열린 이번 재판은 ▲폐암과 흡연의 인과관계 ▲흡연위험 고지의무 ▲제조과정의 위법성 ▲담배판매 촉진정책의 문제점 등을 밝혀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김병헌기자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