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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세인 “바르잔 지시로 주민 잡아가”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과 측근 7명에 대한 재판이 28일 바그다드 그린존 내의 이라크 특별법정에서 재개됐다. 후세인측 변호인단이 지난달 19일 변론준비 미흡을 이유로 재판일정 연기를 신청한 뒤 5주 만에 재개된 이날 재판은 그러나 오전 심리만 마친 뒤 또다시 다음달 5일까지 연기됐다. ●새달 5일까지 재판 또 연기 이날 오전에 진행된 재판에서 후세인과 측근 인사들의 기소범죄인 두자일 마을 주민 148명 학살사건에 관계된 증인의 첫 증언이 있었다. 이라크의 악명높은 정치범 수용소 책임자였던 와다 이스마일 알 셰이크는 비디오 증언에서 “바르잔(후세인의 이복동생 중 정보기관 책임자)의 지시로 군인들이 사람들을 잡아갔다.”고 증언했다. 셰이크는 지난달 첫 재판 직후 교도소 병원에서 비디오를 녹화했으며 그 후 얼마 안돼 숨졌다. 또 이날 심리에서는 1982년 당시 두자일 마을을 지나던 후세인 전 대통령이 암살시도 직후 차에서 내려 군인들에게 “(마을주민들을) 분리한 뒤 조사하라.”고 지시하는 육성이 담긴 비디오 장면도 증거물로 제출됐다. 두자일 학살은 1982년 7월 이 마을을 지나던 후세인이 암살공격을 받고 주민 148명을 약식재판을 통해 처형한 사건이다. 그러나 변호인단은 첫 재판 이후 변호인 2명이 피살되는 등 변호인단의 신변보장이 이뤄지지 않고 있고 변론준비가 덜 됐다며 재판을 3개월 다시 연기해줄 것을 요청했다. 아민 주심판사는 그러나 오전 휴회 직후 피고인중 한명인 타하 야신 라마단이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도록 재판일정을 다음달 5일까지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한편 양복을 차려입은 후세인 전 대통령은 코란을 들고 법정으로 들어섰으며 1차 재판 때와 마찬가지로 리즈가르 모함메드 아민 주심판사를 도전적인 태도로 몰아붙였다. 후세인은 특히 미군의 계호를 받으며 수갑과 족쇄를 찬 채 4층 계단을 올라왔다며 불만을 터뜨리는가 하면 펜과 종이를 압수하면 어떻게 스스로 변호할 수 있겠느냐고 큰소리를 쳤다. ●클라크 전 美법무 후세인 변호인으로 이날 재판에는 변호인단에 합류한 람시 클라크 전 미 법무장관이 처음으로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클라크 전 장관은 민주당 출신인 린든 존슨 전 대통령시절 법무장관을 지냈으며 최근 인권 변호사 및 운동가로 활동해 왔다. 후세인은 이 사건으로 유죄가 확정되면 사형선고를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이라크 주재 미국대사관은 미국인 1명을 포함해 구호단체에서 일하는 외국인 4명이 바그다드에서 납치됐다고 확인했다. 김균미기자 외신종합 kmkim@seoul.co.kr
  • “창당일, 행정도시 합헌 낭보”

    심대평 충남지사가 추진하는 중부권 신당인 국민중심당(가칭)이 24일 창당 발기인대회를 열고 공식 출범했다.‘충청발(發)’ 정계개편 논의가 본격화될지 주목된다. 심 지사는 이날 오후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창당 발기인과 국민대표 등 1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가진 발기인대회에서 “이념 갈등과 지역주의, 대결정치를 극복하고 대화와 타협의 정치,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정치를 구현하겠다.”고 창립 취지를 밝혔다. 그는 특히 “서울은 규제에 발목 잡혀 있고, 지방은 빈껍데기에 불과한 현실을 탈피해 중앙의 권한을 지방으로 대폭 이양, 지방정치를 살리는 분권형 정당제를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내년 5월 말 지방선거에 대해서도 “신선한 바람으로 선거 기적을 이뤄낼 것”이라면서 “수권 정당의 참모습을 보이며 우리 정치사에 성공신화를 기록하겠다.”고 의욕을 내비쳤다. 이날 발기인대회 도중 헌법재판소가 행정도시특별법 위헌소송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참석자들이 서로 얼싸안고 ‘만세’를 외치는 등 분위기가 한껏 고무됐다. 참석자들은 “창당 앞날을 예견하는 것”이라며 기뻐했다. 정치권에서는 국민중심당이 본격 창당돼 앞으로 정계개편 논의가 활발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첫 분수령은 6개월 앞으로 다가온 내년 5월 말 지자체 선거가 될 전망이다. 국회 의석 11석으로 원내 제3당인 민주당과는 지자체 선거에서 공동 공천 등을 통해 호남·충청권 표심을 공략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또 본인은 “정치인이 아니며, 그런 당들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잘라 말했지만 여전히 영입대상 0순위인 고건 전 국무총리에 지속적으로 러브콜을 보낼 수도 있다. 오랫동안 충청권 표심을 쥐락펴락했던 김종필(JP) 전 총재가 최근 “무언의 성원을 보태겠다.”고 힘을 실어준 것도 주목된다.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하나의 유럽’ 다시 시작하다

    한동안 주춤했던 유럽연합(EU)의 통합 작업이 다시 힘을 얻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EU 국가들에 공통적으로 적용될 법인세 과세 표준안이 작성되고 있고, 사회적으로는 EU 공통 형법 제정이 구체화되고 있다. 때맞춰 앙겔라 메르켈 신임 독일 총리는 취임하자마자 브뤼셀을 방문, 유럽 헌법 비준에 대해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 ■ EU, 법인세 과세 표준 마련 EU 집행위는 EU 소속 국가들에 공통적으로 적용될 법인세 기준을 마련, 올해 안에 발표할 계획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가 24일 보도했다. 라즐로 코바치 EU 조세담당 집행위원은 임기가 끝나는 2009년까지 EU의 기업 관련 세금 체계 전반에 대한 개혁을 목표로 하고 있다. 법인세 과세 표준 작성은 이 과정의 일부이며,EU 25개국 가운데 20개국의 지지를 얻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서유럽 국가들은 새로 EU에 가입한 동유럽 국가들이 외국 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낮은 법인세율을 유지하는 것에 불만을 토로해 왔다. 프랑스와 스페인·이탈리아 등의 법인세율은 30%가 넘는 반면 슬로바키아는 19%에 불과하다. 프랑스는 EU에 법인세율의 하한선을 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법인세 과세 표준이 마련되면 이같은 갈등이 줄어들고 궁극적으로 유럽국가들의 법인세 인하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코바치 위원은 “현재 법인세는 기업들에 지나치게 부담을 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EU 집행위는 처음으로 EU 국가들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형법 제정을 제안했다고 영국 더 타임스가 이날 보도했다. 국경을 뛰어넘는 유럽 차원의 범죄에 대해 구성 요건, 형량 등을 EU가 정하고 유럽사법재판소(ECJ)에서 재판을 받게 한다는 것이다. 우선 적용 대상 범죄는 유로화 위조, 신용카드·수표 사기, 돈 세탁, 인신매매, 컴퓨터 해킹 및 바이러스 유포, 민간분야의 부정부패, 해양 오염 등 7개 항목이다. 지적재산권 침해, 인종 차별, 장기매매, 공공분야 부정부패 등의 범죄는 후보군에 포함돼 있다. EU 공통 형법 제정이 이뤄지려면 유럽 의회 및 EU 국가들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신문은 “형법이 만들어지면 개별 국가들의 권한이 EU로 넘어가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장택동기자 taecks@seoul.co.kr ■ “유럽헌법 비준 재개해야” |파리 함혜리특파원|앙겔라 메르켈 독일 신임 총리가 취임 후 첫 날을 해외 순방으로 보내는 공격적인 외교 행보를 선보였다.23일 이웃 프랑스를 찾은 데 이어 유럽연합(EU) 본부가 있는 벨기에 브뤼셀로 건너갔고, 24일에는 런던에서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와 다음달 열리는 EU정상회담을 화두로 대화를 나눴다. 대외 일성(一聲)도 시원시원했다. 메르켈 총리는 23일 오후(현지시간) EU 집행위 및 유럽의회 지도자들과 만나는 도중 기자들에게 짬을 내 “유럽은 헌법을 필요로 한다. 우리는 헌법조약을 포기해선 안된다.”고 ‘소신’을 밝혔다. 유럽 헌법에 대한 이같은 의지는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독일 새 연정 정책합의문의 EU헌법 비준 부활 계획에도 잘 나타나 있다. 메르켈 정부가 순번제 EU의장국을 맡는 2007년 상반기에 헌법 비준의 부활을 시도할 것으로 알려져 이 발언은 더 주목받았다. 메르켈 총리는 “좀 더 생각을 가다듬기 위해 중단할 수는 있지만 EU헌법을 발효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할 것이란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주제 마누엘 바로수 EU 집행위원장과 만나 “이번 방문은 독일의 새 정부가 유럽통합을 적극 지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다짐했다. 이라크 문제에 대해서는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의 정책을 그대로 계승할 것이라고 밝혔다. 메르켈 총리는 야토 데 후프 스헤페르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사무총장과의 회담에서 “앞으로도 계속 이라크 영토 안에서 이라크군을 훈련시키는 데는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과 독일의 관계가 더 개선돼야 한다고 믿는다.”면서 다소 소원해진 양국 관계의 개선 의지를 밝혔다. 그는 나토 26개 회원국들이 이라크전에 서로 이견을 갖고 있지만 이제 공통의 정치적인 목표로 복귀할 것을 촉구했다. lotus@seoul.co.kr
  • 두산 비리 30일 첫 공판

    회삿돈 326억원을 횡령하고 수백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해 횡령 및 배임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박용성 두산그룹 전 회장 등 전·현직 임원 14명에 대한 비리 사건 첫 공판이 오는 30일 열린다. 21일 법원에 따르면 두산 비리 사건은 최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강형주 부장판사)에 배당돼 재판부가 기록 검토에 들어갔으며 공판은 30일 오전 10시 중앙지법 417호 법정에서 열릴 예정이다.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안귀옥 가족클리닉 행복만들기] 간통죄 고소하면 이혼해야 하나

    간통죄 폐지론이 대세라고 하는데,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답답합니다. 남편은 제가 첫 아이를 임신하고 입덧이 심할 때도 관계를 요구했습니다. 저는 아이가 잘못되지 않을까 걱정돼 거절했습니다. 처음에는 저를 이해해주던 남편이 언제부터인가 밖에서 성적인 욕구를 해소하는 것 같았습니다. 남편에게 항의할까 생각도 했지만, 제가 들어주지 못하는 것을 어쩌랴 하는 생각에 묵인했습니다. 남편은 그 이후로 아예 외도를 당연하다는 듯이 합니다. 남편을 말리기 위해 간통죄로 고소라도 하고 싶지만, 이혼을 하지 않고는 간통죄 고소를 못한다니 그냥 용서해야 하는지 고민됩니다. -진소라(37·가명)- 여성이 엄마가 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생리적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남편들이 많습니다. 여성들이 임신을 하면 신체적·생리적 변화를 맞습니다. 육체적으로 힘이 들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긴장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진소라씨뿐 아니라 많은 여성들이 임신했을 때 성관계를 가지면 자궁을 압박해 태아에게 해를 끼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많은 여성들이 임신 중에 금욕을 합니다. 하지만 과도하지 않다면 임신 중 성관계가 반드시 태아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가벼운 성관계는 여성들의 생리적·육체적 고통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진소라씨의 경우에는 엄마가 되는 성스러운 과정을 거치면서 남편의 성적 욕구를 받아주지 못한 것이 현재와 같은 힘든 상황을 불러온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의 상황을 극복할 수 있도록 남편과 충분한 대화를 하시는 것이 급선무인 것 같습니다. 남편이 외도를 하는 대상이 단순히 성욕을 해소하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연인관계로 발전된 상황인지 등을 파악해야 합니다. 상대여성이 독신녀인지 유부녀인지도 알아봐야 합니다. 모든 판단이 끝나면, 어떤 경우든 남편에게 현재 상태가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인식시키고 그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단순히 육체적 욕구해소를 위해 외도를 했다면 그래도 정리가 쉽지만, 연인사이로 발전한 경우이거나 아이까지 출산한 경우라면 여러 가지 정리해야 하는 문제가 많을 듯합니다. 다만 이 때 분명히 해야 할 것은 더 이상의 외도행위는 용납할 수 없다는 점을 남편에게 강하게 알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소라씨의 남편이 다시 가정으로 돌아올 것 같으면 더 이상 시비를 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겠지만, 회복 가능성이 없다면 이후에는 일체의 외도행위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간통죄로 고소할 수도 있다고 통보하세요. 간통죄 고소가 이혼소송을 전제로 하는 것은 절차상 어쩔 수 없지만, 이혼소송은 간통죄 고소에 따른 형사재판 종결시까지 언제든 취하할 수 있습니다. 다만 진소라씨가 가정을 지킬 생각이 있다면, 이 모든 과정에서 남편을 가정으로 돌아오도록 끊임없이 설득하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합니다. 진소라씨뿐 아니라 우리 부부들의 성생활에 대해서도 부부세미나 등을 통해 교육을 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가족간의 갈등해소방법을 몰라서 고민하시는 분은 사단법인한국행복가족상담소에서 상담을 통해서도 해결하실 수가 있습니다(032-867-7119/e-happyhome.or.kr)
  • [사설] 주목되는 토지 원가공개 첫 판결

    서울행정법원이 한국토지공사가 개발한 토지의 원가를 공개하라고 판결한 것은 영업비밀이라는 기업 이익보다 투명성 확보라는 공익이 더 가치가 있는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는 “정부투자기관의 행정 편의주의와 권한 남용 등으로 인한 폐해를 막기 위해서도 토지 조성원가가 어떻게 정해지는 것인지 투명하게 밝혀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판결문에서도 확인된다. 토지원가 공개를 처음으로 요구한 이번 판결이 집값, 땅값 부풀리기를 근원적으로 차단하는 전기가 될 것을 기대한다. 재판부도 인정했듯이 토지원가 공개는 집단민원을 야기하고 개성공단 개발 등과 같은 정책사업 추진에 어려움을 초래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껏 토공은 공익을 앞세워 땅장사에 혈안이 됐던 게 사실이다. 지난해 여론의 화살을 피하기 위해 당기순이익을 2100억원이나 줄이는 분식회계를 했다가 최근 감사원 감사에서 적발되지 않았던가. 재판부의 판단을 빌리지 않더라도 자연을 훼손해 얻는 개발 이익은 국민에게 돌려주는 것이 옳다. ‘8·31조치’로 전국의 땅값과 집값이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지만 아직도 과도할 정도로 거품이 끼어 있다는 게 우리의 판단이다. 갈수록 빈부격차가 커지고 있는 것도 폭등한 땅값과 무관하지 않다. 뻥튀기식 택지비와 분양가가 집값, 땅값 상승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어떤 형태로든 원가 공개가 이뤄져야 한다. 업계가 내세우는 영업비밀 논리는 집값, 땅값 상승에 따른 폭리를 독식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정치권은 법원 판단의 연장선상에서 토지와 주택의 원가를 공개하는 법적, 제도적 협의에 나서길 바란다.
  • “토공, 토지 조성원가 공개하라”

    한국토지공사가 민간에 공급하는 토지의 조성원가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라는 첫 판결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부(부장 권순일)는 3일 파주출판문화정보 산업단지 사업협동조합이 “산업시설용지 조성원가를 공개하라.”면서 한국토지공사를 상대로 낸 정보부분공개결정처분 취소소송에서 “토공은 토지 원가를 공개하라.”고 원고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토지 조성원가 내역이 공개되면 토지개발사업을 신속ㆍ원활하게 시행하는 데 불편을 겪으리라는 것은 쉽게 예상된다.”면서 “하지만 토지 조성원가 산출내역을 비공개해 얻는 편익과 정보공개를 통한 투명성 확보와 정부투자기관의 행정편의주의 폐해방지 등의 이익을 비교하면 정보 공개로 인해 피고의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개발사업을 통해 토공이 얻는 이익은 자연환경이나 사회·경제적 환경을 변화시킴으로써 발생하는 것으로 궁극적으로 국민 전체에 귀속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파주출판단지 조합은 지난 1998년 8월 토공과 17만여㎡의 산업시설용지를 300여억원에 공급받기로 계약을 맺었다.파주출판단지 조합은 지난해 4월 토공에 토지 조성원가의 산출내역을 공개하라고 요청했지만 토공이 거부하자 소송을 냈다.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시련의 부시

    ■ 민주·공화, 백악관 개편·대국민 사과 요구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미국 중앙정보국(CIA) 비밀요원의 신분을 언론에 유출시킨 이른바 ‘리크게이트’의 수사 결과가 28일(현지시간) 발표된 이후 오히려 정치적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유출 당사자로 지목된 딕 체니 부통령의 비서실장인 루이스 리비는 기소되자마자 사임했지만, 그것이 문제의 끝이 아니라 출발점이 된 것 같다. 민주당측은 조지 부시 대통령과 체니 부통령이 리크게이트와 관련, 아무런 반성의 빛을 보이지 않는다면서 대국민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또 특검의 조사를 계속 받고 있는 칼 로브 백악관 부비서실장의 사임도 촉구하고 나섰다. 민주당의 상원 원내대표인 해리 레이드 의원은 30일 ABC와 CNN에 출연,“부시 대통령이 리비 전 실장의 기소 직후 기자회견에서 그를 애칭인 ‘스쿠터’라고 부르며 법원 판결 전까지 무죄로 추정해야 한다고 두둔하는 모습을 보인 것은 특검수사 결과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라고 비난했다. 레이드 의원은 로브 부비서실장의 사임이나 해임을 촉구, 민주당측이 앞으로 로브에 대한 정치공세를 강화할 것임을 예고했다. 공화당 정권 내에서도 균열조짐이 드러나고 있다. 공화당의 척 슈머 상원의원 등은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 이란-콘트라 사건으로 인한 정치적 위기 당시 보여준 것처럼 백악관 내부 조사를 통해 잘못을 시인하고 초당적인 인물들로 백악관을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리크게이트의 여파로 부시 대통령이 가장 많은 말을 듣는 체니 부통령과 로브 부실장, 앤드루 카드 비서실장에 대한 신임을 다소 상실했다고 백악관 보좌관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타임은 이어 “부인 로라를 제외한 대통령의 모든 관계가 최근 훼손됐다.”면서 “신뢰를 잃지 않은 유일한 인사는 국내 정치와 무관한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라고 전했다. 한편 체니 부통령이 계속 조사 대상이 될 것이라는 소문이 워싱턴 정가에 나도는 가운데 인터넷 매체인 드러지리포트는 패트릭 피츠제럴드 특별검사가 리비 전 실장의 재판에 체니 부통령을 증인으로 출석시킬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dawn@seoul.co.kr ■ 아시아·중남미서 노골적 반미정책 확산 부시는 대외정책에서도 마음대로 되는 게 없다? 허리케인 카트리나 늑장 대처, 리크게이트 등의 여파로 국내정치에서 발목을 잡힌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대외정책에서도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미국은 연말까지 외교현안이 산적해 있지만 힘빠진 부시 정부가 헤쳐나가기엔 만만찮은 도전이라고 WSJ가 31일 지적했다.3년 전만 해도 냉전 후 유일 초강대국 미국의 전성시대를 여는 듯했으나 이제 중동, 아시아, 중남미할 것 없이 세계 곳곳에서 패권 유지에 고심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선 중동의 ‘눈엣가시’ 이란과는 최근 ‘대화를 통한 접근’ 정책으로 선회했지만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의 강경자세로 진퇴양난의 형국이다. 갈림길에 접어든 이라크전에서도 힘든 결정이 기다리고 있다. 이라크 제헌의회가 공식적으로 닻을 올린 후 ‘승리’를 선언하고 발을 빼든가, 아니면 몇년 이상 계속 미군을 주둔시켜 힘겨운 사후처리를 하든지 양자택일을 강요받고 있다. 오는 12월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에서 아시아 13개국이 “우리도 태평양국가”라고 주장해온 미국을 빼고 첫 동아시아정상회의(EAS)를 열 예정이지만 속수무책으로 쳐다만 보고 있다. 미국은 최근 중국의 약진으로 아시아 지역의 영향력에 타격을 입고 있는 상태다. 미국은 위안화 절상과 무역역조 시정 등 중국과의 현안 조정에도 애를 먹고 있다. 미국의 앞마당으로 불리는 중남미에서도 반미·탈미 움직임은 확산 중이다. 지난 5월 미주기구(OAS) 사무총장에 미국이 미는 후보가 처음 낙선한 게 대표적이다. 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한국경찰 첫 국제형사재판소 수사관

    우리나라 경찰관이 대량학살과 전쟁범죄자 등을 처벌하는 국제형사재판소(ICC) 수사관이 됐다. 경찰청 법무과에 근무하는 김상우(33) 경위는 다음 달부터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국제형사재판소 수사기획지원부 수사팀에 파견돼 국제 범죄의 수사를 맡는다.국제형사재판소는 국가간 사건만을 다루는 국제사법재판소(IJC)의 한계를 악용해 처벌을 피해 다니는 대량학살자와 전쟁 및 침략범죄자 개인을 단죄하는 국제기구다. 김 경위는 이곳에서 국제 범죄피의자와 목격자를 직접 조사하고 증거를 수집하는 역할을 한다. 국제형사재판소는 지난 4월 외교통상부를 통해 “한국경찰을 ICC 수사관으로 채용하고 싶다.”는 의사를 타진했다. 경찰은 지원자 6명을 심사해 김 경위를 뽑았다.ICC에는 상소심 재판부에 송상현 서울대 교수 등 한국인 4명이 재판관 등으로 근무하고 있지만 수사관은 김 경위가 처음이다. 김 경위는 경찰대 12기로 강남경찰서 수사과와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 등에서 경험을 쌓았다.2002년엔 영국 런던정경대학(LSE)에서 형법과 인권법을 전공해 국제법 석사 학위를 받았고 영국 4대 로스쿨중 하나인 런던 BPP로스쿨에서 공부해 영국 변호사 자격증도 얻었다.김 경위는 “이어지는 전쟁과 내전 속에 국제사회에는 소외받고 피해 받는 이들이 너무 많다.”면서 “한국 대표라는 생각으로 소외된 이들을 보호하는데 최선을 다할 생각”이라고 각오를 밝혔다.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코드로 읽는책] 결코 피할 수 없는 야스쿠니 문제/다카하시 데쓰야 지음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인 야스쿠니 신사가 비판의 대상이 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최근 일본 고이즈미 총리가 ‘개인 자격’으로 단행한 신사참배와, 지난 100년간 야스쿠니 신사에 방치됐다가 최근 고국의 품에 안긴 임진왜란 승전기록비인 북관대첩비를 보면서, 야스쿠니 신사의 존재와 의미를 다시한번 생각하게 된다. 그렇다면 일본 국민들, 특히 지식인들은 야스쿠니 신사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일본의 대표적인 양심적 지식인으로 손꼽히는 다카하시 데쓰야 도쿄대 교수가 쓴 ‘결코 피할 수 없는 야스쿠니 문제’(현대송 옮김, 역사비평사 펴냄)는 야스쿠니 신사를 여러가지 각도로 접근, 비판적인 시각으로 풀어냈다. 특히 고이즈미 총리의 최근 발언뿐 아니라, 관련 재판진술서, 언론기고 등 생생한 기록을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자기 주장을 자제한다. 읽는 이로 하여금 야스쿠니 문제의 핵심에 대해 스스로의 입장을 찾도록 하는 것이다. 저자는 야스쿠니 신사에 대한 피할 수 없는 진실을 파헤친다. 신사에는 조선인이 무려 2만 1000여명이나 합사돼 있으며, 타이완인도 2만 8000여명이나 있다. 한국이나 대만 유족들이 원하지 않는데도 야스쿠니가 일방적으로 계속 제사를 지내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런 상황에서, 왜 고이즈미 총리의 참배가 문제가 되는지, 야스쿠니의 본질은 무엇인지 등에 대한 실마리를 풀기 위해 논리적인 접근을 시도한다. 첫번째 접근은 ‘감정의 문제’. 저자는 야스쿠니 신사가 ‘감정의 연금술’에 의해 전사의 비애를 행복으로 탈바꿈시키는 장치에 불과하며, 전사자를 단순히 추도하는 것이 아니라 현창(顯彰)하는, 즉 드높여 받드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래야만 ‘기꺼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던질’ 병사들을 다시 천왕의 명예를 대가로 전장으로 끌어낼 수 있기 때문.‘역사인식의 문제’로서의 접근에서는 ‘A급 전범’을 분리시키는 것에 대한 정치적 타협성을 비판한다. 야스쿠니 신사에 대한 역사인식은 전쟁책임 문제를 넘어 식민주의 문제로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종교의 문제’에서는 헌법상 정교분리 문제를 논의하면서 ‘신사는 종교가 아니다.’라는 술수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검증한다. 오히려 국가신도(國家神道)라는 초종교를 만들어 신사참배를 국민의 의무로 설정한, 종교의 윤리적 위장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문화적 문제’는 야스쿠니에 대한 일본과 중국, 한국문화를 비교하면서 일본이 문화적 차이에 따른 야스쿠니 권리를 주장하는 것의 허구성을 지적한다. 마지막의 ‘국립추도시설의 문제’는 ‘제2의 야스쿠니’가 될 수밖에 없는 추도시설의 문제점을 점검한다. 이미 지난 4월 일본에서 출간돼 6개월 만에 30만부가 팔리며 베스트셀러 대열에 올랐다. 야스쿠니 문제를 대중화하는데 기여한 셈이다. 야스쿠니 신사를 생각하는 한국인과 일본인이라면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책.9800원.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혁신 공기업탐방] (28) 김송웅 수출보험공사 사장

    [혁신 공기업탐방] (28) 김송웅 수출보험공사 사장

    중소업체 A사는 지난 5월 영국 수입업체로부터 황당한 전화를 받았다.A사가 수출한 도어클로저(Door Closer)가 빡빡해 수입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미 같은 제품을 수년동안 수출한 A사는 영국 수입업체의 횡포를 이해할 수 없었다. 수출대금 10만달러를 받지 못하면 자금압박이 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 A사는 800달러를 내고 수출보험에 가입했다. 때문에 A사는 지난 8월말 한국수출보험공사로부터 5만달러를 가지급금으로 우선 지원받았다. 자금난 숨통도 트였다. 김송웅 한국수출보험공사 사장은 24일 “수출보험을 몰라 어려움 겪는 중소기업이 없도록 하는 것이 내 임무”라면서 “중소기업의 수출경쟁력이 국가경쟁력의 근간을 이루는 만큼 앞으로도 중소기업을 사업의 중심에 두겠다.”고 밝혔다. 서울신문 오풍연 공공정책부장이 김 사장을 만나 독특한 경영기법을 들어봤다. ▶한국수출보험공사를 모르는 사람도 많다. 어떤 일을 하는 기관인가. -수입자의 계약파기, 파산, 대금지급지연·거절 등 신용위험과 수입국에서의 전쟁, 내란, 환거래제한 등 비상위험으로 수출자, 생산자 또는 수출대금을 대출해 준 금융기관이 입게 되는 불의의 손실을 보상해 주는 수출보험을 운영하는 기관이다. 수출보험으로 수출을 지원해 궁극적으로는 수출을 진흥하는 것이 공사의 목적이다. ▶최근의 실적으로 기관을 설명한다면. -지난해 수출보험으로 62조 9000억원의 지원실적을 달성했다. 이 중 43% 가량이 중소기업 지원액이다. 올해 목표는 69조원이다. 지난해 국내 수출기업의 수출보험이용률은 약 19%였다. 지원실적으로는 선진 5대 수출보험기관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수출보험사상 첫 138억 흑자기록 ▶공사가 87개 정부산하기관을 대상으로 한 정부의 경영평가에서 종합 1위를 차지했는데 비결이 뭔가. -전년대비 지원실적이 25% 이상 증가하고 수출보험 사상 최초의 흑자를 이룬 것이 주된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지난해 공사의 지원실적은 63조원으로 2003년 50조원보다 월등히 높았다.63조원은 우리나라 총수출의 19%를 지원한 액수다. 공사가 1992년 설립된 이래 사상 최대의 성과다. 특히 지난해 사상 최초로 138억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이러한 흑자는 수출보험사업이 1969년 시행된 이후 처음이다. ▶공사가 발상전환을 했기 때문에 흑자를 봤다고들 하는데. -종전까지 우리 공사는 중소기업의 수출위험을 덜어주는 사업을 하기 때문에 손실이 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수지균형을 목표로 성장잠재력이 큰 우량 중소기업에 대해 지원을 확대하고 리스크 관리를 강화해 사업건전성을 높이도록 노력했다. 또 해외채권 회수대행사업, 신용정보업 등 신규 지원사업을 도입해 해외수입자로부터의 채권회수에 주력함으로써 흑자를 이룰 수 있었다. #공사설립 13년만에 생산성 16배 이상증가 ▶실적이 좋아진데는 특별한 경영방침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나부터 변화하자.’라는 ‘혁신주도형 성장전략’과 이러한 경영방침을 따르는 직원들의 적극적인 동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우리 공사는 전 직원이 370여명인 작은 조직이다. 하지만 작은 규모만큼 급변하는 대내외환경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탄력적인 조직이기도 하다. 지난해 1인당 지원실적은 1767억원이다. 이는 공사가 설립된 1992년의 107억원에 비해 16배 이상 생산성이 증가한 것이다. 이러한 성장을 계속적으로 이어가기 위해 올해의 경영목표는 ‘상시적 경영혁신을 통한 고객가치 극대화 및 국민경제 기여’로 설정했다. 이를 통해 ‘국민에게 사랑 받는 공기업’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자는 것의 올해의 목표다. #혁신적 조직문화… 나눔경영 실천 ▶올해의 경영목표를 뒷받침할 실천목표는 뭔가. -다섯 가지를 정했다. 첫째는 과감한 경영혁신을 통해 공사업무의 패러다임을 근본부터 바꾸고, 업무의 경쟁력을 높이는데 조직역량을 집중하는 것이다. 둘째는 고객중심의 제도와 업무프로세스를 강화하는데 업무 역량을 집중하고 특히 규정을 내세우기보다는 고객과 입장을 바꿔 함께 고민해 보고, 고객이 오기 전에 먼저 찾아가서 문제를 해결해 주는 ‘발굴하고 찾아가는 서비스’를 제공하자는 것이다. 셋째는 운영시스템의 혁신을 통하여 저비용(Low Cost), 고성과(High Productivity) 경영체계를 강화하는 것이다. 넷째는 수출보험공사가 지켜온 청렴경영의 전통 위에 혁신적 조직문화를 뿌리내려 신바람 나는 일터를 만드는 것이다. 마지막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나눔경영 실천이다. ▶윤리경영을 특별히 강조하는 이유라도 있나. -근면·정직·성실을 바탕으로 하는 윤리경영이야말로 세계 초일류 수출신용기관으로 가기 위한 기본 덕목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특히 우리 공사가 국민으로부터 사랑받는 공기업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더욱 높은 생산성과 고객만족을 달성해야 할 것이며, 그러한 고객만족의 첫 걸음은 기업 윤리에서 출발한다고 본다. ▶드라마를 통해 수출보험을 알린 PPL은 신선했다는 평가다. 공공정책에 대한 최초의 PPL인 것 같다. -우리 공사는 수출보험 홍보에 전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아직도 많은 수출기업들이 수출보험을 이용하지 않고 있으며, 그 때문에 수출보험의 주 지원대상인 중소기업이 최근 상당한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는 게 우리의 판단이다. 지난 2월16일부터 4월7일까지 모 방송국에서 방영한 드라마 ‘홍콩익스프레스’에서 수출보험을 자연스럽게 알리도록 한 것도 이같은 홍보전략의 일환이다. #정부주도형서 시장주도형 체제로 ▶지난 6월 TF를 구성해 마련한 전사적 혁신추진방안을 설명해 달라. -수출보험 환경이 변화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정부주도형 경제체제에서 벗어나 점차 시장주도형 경제체제로 나아가고 있다. 수출보험 분야에 있어서도 적극적인 수출지원정책을 확대해야 하는 공공성 측면과 한계기업을 선별하고 위험을 효과적으로 관리해 사업운영의 건전성을 높이는 상업성 측면을 적절하게 조화시키도록 요구되고 있다. 그래서 ▲전략 비즈니스 중심의 사업운영 ▲업무효율화를 통한 생산성 제고 ▲성과중심의 평가제도 강화 ▲성과와 역량중심의 공정한 인사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혁신안을 마련했다. 대담 오풍연 공공정책부장 정리 강충식기자 chungsik@seoul.co.kr ■ 해외 투자보험 등 발상깬 신상품 대박 87개 정부산하기관 가운데 지난해 경영실적이 가장 좋은 곳은 한국수출보험공사다. 지난 6월 말 발표된 경영실적 평가에서 수출보험공사는 15개 연·기금운용 유형에서 1위를 차지했을 뿐만 아니라 87개 전체중에서도 1위를 기록했다. 반에서 1등을 하고, 전교에서도 1등을 한 셈이다. 그 결과 수출보험공사 임원은 기준월봉의 88%, 직원은 185%의 성과급을 각각 받았다. 실적이 가장 좋지 못한 기관의 임원은 21%, 직원은 101%의 성과급만을 받는데 그쳤다. 수출보험공사가 전년대비 25%의 실적증가를 기록해 종합 1위를 차지한 것은 종전 보험상품의 단점을 보완한 보완상품과 경제환경 변화에 맞춘 신상품이 잇따라 대박을 터뜨렸기 때문이다. 수출보험공사는 종전의 대표적인 상품인 단기수출보험 상품을 보완, 현지법인도 이용할 수 있는 재판매보험을 내놨다. 또 지난 2000년 2월에는 환변동보험을,2003년 3월에는 신뢰성보험을 개발했다. 고객들의 눈높이에 맞춰 그들이 원하는 것을 파악해 이를 상품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올해도 지식서비스수출보험과 해외투자(자원개발)보험 등 2종류의 신상품을 내놨다. 지식서비스수출보험은 고부가가치 첨단산업인 문화콘텐츠, 소프트웨어, 시스템통합 등의 지식서비스 수출을 지원하기 위한 상품이다. 중국, 일본 등 아시아에서 불고 있는 한류 열풍에 딱들어맞는다. 해외투자(자원개발)보험은 석유 등 주요 자원의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확보을 위해 해외자원개발을 효과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상품이다. 이처럼 수출보험공사는 종전의 개념을 깨는 발상전환으로 새로운 블루오션을 개척해 나가고 있다. 수출보험공사는 경영외적인 측면에서도 호평을 받고 있다. 윤리강령을 개정해 구체화하고, 금융사고 예방대책을 완료한 노력으로 지난해 10월 33개 공기업과 120여개 민간기업 가운데 윤리경영 우수기업으로 선정됐다. 중소기업 지원실적도 전년대비 27.5%의 높은 증가율을 기록해 지난 5월에는 중소기업청이 주관한 ‘2005년 전국중소기업대회’에서 중소기업 지원우수단체 대통령표창을 수상하기도 했다. 강충식기자 chungsik@seoul.co.kr ■ ‘수출보험의 산증인’ 김송웅사장 한국수출보험공사 김송웅 사장은 수출보험의 산증인이다. 김 사장은 지난 1969년 한국재보험공사 사원 시절 우리나라 최초의 수출보험기금을 정부로부터 받아 관리했다. 신입사원 때부터 CEO가 될 때까지 오로지 수출보험과 인생을 같이한 셈이다. 지난해 5월에는 수출보험공사 최초의 내부승진 사장에 올랐다. 김 사장은 ‘나부터’를 강조한다. 혁신과 변화는 자신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기업 CEO로서 경영자인 자신부터 변해야 기업도 변화할 수 있고, 직원들에게도 자신부터 달라져야 기업이 변화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김 사장은 취임 이후 대대적인 경영혁신을 추진했다. 가장 먼저 경영혁신 TF를 구성하고, 시스템 선진화를 위한 조직점검을 실시해 조직구조를 상품위주에서 고객위주로 개편했다. 특히 ‘중소수출기업 연구실’을 신설해 고객에게 보다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기반을 닦았다. ▲서울(63) ▲경기고·외국어대 영어과 ▲한국재보험공사 사원 ▲한국수출입은행 홍콩사무소장 ▲한국수출보험공사 LA 사무소장·이사·부사장 강충식기자 chungsik@seoul.co.kr 사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 판사님들 목요일마다 日만화 빠지는 까닭은

    판사님들 목요일마다 日만화 빠지는 까닭은

    서울가정법원의 법원장실에 딸린 소회의실에는 매주 목요일 오후 5시쯤이면 이동흡 법원장과 판사·직원 등 20여명이 모인다. 가사·소년 사건 사례를 연구하는 스터디 그룹이다. 교재는 일본 만화 ‘일본가사재판소 사람들(家栽の人)’이다. 이 만화는 우리로 치면 가정법원인 일본 가사재판소에서 실제로 취급한 가사·소년 사건을 극화한 것이다. 원예가 취미인 구로다 판사를 중심으로 사건을 식물의 성장에 빗대어 그린다. 편마다 소제목도 장미, 엉겅퀴, 백합, 동충하초 등이다. 국내에 번역본이 없어 이 법원장이 원서를 읽어준 뒤 관련 사건에 대해 토론을 벌인다. 지난 20일에는 19세 소년범이 20대 여성을 강간·살해한 사건을 그린 ‘백합’편을 읽었다. 작품 속에서 소년범의 실명을 보도한 기자는 신체적으로 성숙한 소년범을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형을 감해주는 게 옳은지 묻는다. 구로다 판사는 기자에게 백합을 보여준다.“알뿌리 식물인 백합은 뿌리 한 조각만으로 꽃을 피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성장은 더디지요.”사람마다 성장의 속도가 다르니, 사회가 그들의 성장을 기다려줘야 한다는 취지다. ●강독보다는 토론이 인기 가사4단독 고연금 판사는 “어쩔 수 없이 일본 교재를 쓰지만 이 모임은 일본어 연구모임이 아니다.”라면서 “모임의 진짜 매력은 만화를 본 뒤 이어지는 난상토론”이라고 귀띔했다. ‘백합’편을 읽은 뒤에는 소년범 재판이 화제가 됐다. 가사 조사관과 소년 사건 조사관을 같은 수로 배치하는 일본에 비해 소년 조사관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소년부 판사는 “사건 처리 수가 많아 충분한 심리가 이루어지지 않고, 첫 기일도 늦게 잡힌다.”면서 “사건 발행 후 5∼6개월 만에 첫 기일이 잡히면, 소년범이 가출해 잠적해 버리기 일쑤”라고 말했다. 반면 학교에 적응하다가 재판으로 다시 상처를 건드리는 일도 많다고 설명했다. 가사부 판사들은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부분이다. 가사부 사건에 대한 만화를 읽는 날에는 담당 판사들의 발언 횟수가 늘어난다. ●“우리 사례로 연구했으면…” 지난 8월 임명돼 업무파악을 위해 책을 보다가 사례 연구모임을 만들었다는 이 법원장은 “실제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그려진 만화이기 때문에 현실적이면서도 심도깊은 논의가 가능하다.”면서 “법관과 직원이 함께 토론하며 의사소통이 활발해진 것은 예상하지 못한 이점”이라며 웃었다. 모임에 참석한 가사1부 김매경 판사는 “책이 나온 지 시간이 흘러 약간 구닥다리인 부분도 있지만, 가사·소년 사건을 다루는 진지한 자세에서 배우는 점도 많다.”면서 “만화가 아니더라도 국내 사례를 정리, 연구할 필요를 느낀다.”고 말했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후세인 ‘두자일 학살’ 재판시작

    후세인 ‘두자일 학살’ 재판시작

    사담 후세인(68) 전 이라크 대통령에 대한 ‘세기의 재판’이 19일 바그다드 대통령궁 안에 마련된 특별재판소 법정에서 시작됐다. 재판이 열리기에 앞서 법정이 설치된 바그다드 중심부 그린존(안전지대)에 두발의 박격포탄이 떨어졌지만 사상자는 발생하지 않았다. 두시간 남짓 진행된 첫 공판에서 재판부는 칼릴 알-둘라아미 변호사가 변론준비 미흡을 이유로 제기한 심리연기 요청을 받아들여 11월28일까지 휴정키로 결정했다. ●테러 우려 증인·재판관 비공개 후세인은 예정보다 2시간 가량 늦은 이날 정오(현지시간)쯤 특별법정에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양복에 흰색 와이셔츠를 받쳐 입은 후세인은 이슬람 경전인 코란을 들고 법정에 나왔다. 후세인은 성명 등 인적사항을 묻는 리즈가르 모함메드 아민 주심판사의 인정신문에 도전적인 목소리로 “당신은 이라크인이고 내가 누군지를 안다. 당신들이야말로 도대체 누구냐?나는 이라크 대통령으로서의 헌법상 권리를 갖고 있다.”며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5명으로 구성된 재판부와 신경전을 벌였다. 이라크 TV방송은 재판 모습을 녹화해 30분 시차를 두고 방영했다. 후세인과의 기싸움에서 ‘약한 모습’을 보인 아민 판사는 쿠르드족 자치지역 출신이다. 다른 4명의 재판관 이름과 얼굴은 보안을 이유로 공개되지 않았다. ●유죄땐 교수형 가능 후세인과 3명의 핵심 참모,4명의 옛 바트당 지역 책임자 등 8명의 피고는 1982년 후세인 암살을 기도한 데 대한 보복으로 두자일 마을에서 143명의 시아파 교도들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부는 인정신문이 끝난 뒤 8명의 피고에게 바그다드 북쪽의 두자일 학살 사건에 관계된 살인, 고문, 불법감금 등의 범죄혐의를 고지하면서 유죄 인정 여부를 집중 추궁했다. 그러나 후세인을 포함한 모든 피고인들은 무죄를 주장했다. 후세인은 앞으로 1988년 발생한 쿠르드족 5000여명 독가스 학살,1991년 걸프전 이후 발생한 시아파 봉기 유혈 진압 등 여러 건의 반인륜 범죄혐의와 이란, 쿠웨이트 침공 등 전쟁범죄 혐의에 대한 재판도 받게 된다. 유죄가 입증되면 최고 사형(교수형)을 선고받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이라크에 재건팀 파견 하지만 변호인단은 미국이 배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이유로 특별법정의 위법성 문제를 집중적으로 따지고 있어 지루한 법정 공방전이 예상되고 있다. 검찰측은 12가지의 후세인 죄목을 정리하고 있는데 이번 재판은 두자일 학살 건만 다루고 여기서 유죄가 결정되지 않으면 차례대로 기소해 법정에서 심리하게 된다. 아랍권에서는 이번 재판이 ‘미국의 재판’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미국은 후세인 재판이 이라크 전쟁의 정당성을 되찾아 주고 저항세력도 위축시키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내길 희망하고 있다. 그러나 이라크내 종파간 갈등을 부추기는 등 재판이 가져올 역풍도 만만찮을 전망이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은 19일 다음달 이라크에 재건팀을 파견, 관개 사업 등 국가 재건에 필요한 핵심 활동을 도울 것이라고 밝혔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정치적 변화보다 법률 따라야”

    김종빈 검찰총장은 17일 오후 퇴임식 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말을 아끼며 “눈앞에 안개를 거두니 가을단풍이 아름답다.”고 28년 검찰직을 떠나는 소회를 밝혔다. 이에 앞서 퇴임식장에 들어선 그의 표정은 평상시처럼 온화했다. 식장에 모인 검찰 간부 200여명의 굳은 표정과 대조를 이뤘다. 그러나 김 총장의 퇴임사는 첫마디부터 강한 어조였다. 김 총장은 “수사지휘는 검찰의 독립성을 해치는 부적절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천정배 법무장관의 수사지휘를 수용하면서도 부적절성에 대해서는 국민이 판단할 것이라던 입장에서 한발 더 나아간 셈이다. 청와대가 검찰총장의 처신을 비난한 데 대해서도 반박했다. 강정구 동국대 교수 구속수사 결정에 대해 김 총장은 “구체적인 사건 처리는 정치적인 상황 변화에도 불구하고 헌법과 법률에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자신의 사퇴와 검찰에 대한 여권의 비난을 의식한 듯 “검찰이 정치권력에 흔들려 신뢰가 떨어진 게 사실”이라면서 “검찰의 정치적 중립은 검찰조직의 이기주의에서 나온 게 아니라 국민들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지켜야 되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검찰의 현안인 사법개혁 논의와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떠나게 된 것은 짐으로 남는 듯했다. 그는 “논의들이 권력기관간 권한 배분이나 정치세력간 타협의 산물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김 총장은 오전에 이용훈 대법원장과 천 장관을 잇달아 방문해 퇴임인사를 했다. 천 장관을 5분쯤 독대한 김 총장은 “이번 사태가 감정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면서 “검찰 조직은 급속히 안정될 것이며, 일선 검사들도 자숙하고 성숙한 모습을 보일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검찰은 “검찰의 정치적 독립을 지키고 대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김 총장의 퇴진은 ‘명예로운 퇴진’으로 검찰사에 남을 것”이라는 말로 김 총장을 배웅했다.홍희경 박경호기자 saloo@seoul.co.kr
  • 후세인 재판 시작…이라크 새변수

    사담 후세인(68) 전 이라크 대통령에 대한 재판이 19일 시작된다. 헌법안 가결이 확실해지는 가운데 후세인 추종세력인 수니파의 저항 강도에 어떤 영향을 줄지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재판 생중계 불투명 후세인 전 대통령과 측근 7명은 바그다드의 옛 대통령궁인 ‘안가’에서 삼엄한 경비 속에 재판을 받을 것으로 알려졌다. 라이드 알 주히 수석판사는 당초 TV 생중계를 약속했지만 재판부 5명 전원의 합의를 얻어내지 못해 실현 여부는 불투명하다고 BBC는 전했다. 테러 위협 속에 재판부 신상이 미공개된 가운데 증인도 스크린 뒤에서 증언한다. 첫날 재판에선 신분 확인 등 형식적인 절차만 진행된다. 후세인의 첫번째 혐의는 시아파 학살 사건.1982년 바그다드 북쪽의 시아파 마을 두자일에서 후세인이 암살 공격을 받았는데 이후 두자일 주민 140여명이 정보기관 및 바트당원에게 살해됐다. 1980년 이란 침공과 1988년 할라브자 마을의 쿠르드족 5000명에 대한 독가스 학살,1990년 쿠웨이트 침공 등 반인륜·전쟁 범죄 10여건에 연루된 혐의도 있다. 이와 관련, 타리크 아지즈 전 이라크 부총리가 자신의 석방 조건으로 후세인의 ‘범죄 지시’를 증언할 것이라고 영국의 선데이 텔레그래프가 보도했으나 아지즈의 대변인은 부인했다고 AP통신이 16일(현지시간) 전했다. 후세인은 두자일 사건 하나만 유죄를 선고받아도 사형에 처해질 수 있다. 한편 국제엠네스티와 휴먼라이츠워치(HRW)는 후세인 재판의 불공정성을 우려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HRW는 사형을 감형하지 못하게 하고 최종심 30일 내에 처형할 수 있도록 한 새 법령이 국제기준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재판 효과 미지수 후세인 재판의 ‘효과’에 대해선 관측이 엇갈린다. 후세인의 범죄가 속속 드러나면 반전 여론이 수그러들 것이란 전망도 있다. 그러나 시아파와 쿠르드족에 대한 수니파의 박해 사실이 부각되면 오히려 고립된 수니파의 결집을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후세인은 24년간 이라크를 철권 통치해 오다 지난 2003년 고향 티크리트 인근에서 체포됐다. 박정경기자 외신종합 olive@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양그룹(1)-창업주 김연수家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양그룹(1)-창업주 김연수家

    일반인들에게 ‘삼양설탕’(현 ‘큐원설탕’)으로 익숙한 삼양사는 한국 근대경제사를 주도한 명문 기업이다. 호남 거부의 후예인 김연수(金秊洙) 창업주는 일제하인 1924년 순수 민족자본으로 기업을 설립, 한국기업의 명맥을 이었다. 김 창업주는 형인 인촌(仁村) 김성수씨가 동아일보를 설립하고 꾸려가도록 뒷받침했고, 여러 차례 재산을 털어 고려대와 고려중앙학원의 기틀을 마련하도록 뒤에서 도왔다. 그러나 김 창업주는 일제하에 기업을 경영함으로써 최근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사인명사전을 편찬하면서 친일인사로 선정하는 등 사후에 ‘친일’ 시비에 휘말리고 있기도 하다. 때문에 근대 한국경제의 산증인인 김 창업주의 삶은 굴곡 많은 우리 근대사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병약했던 어린 시절 김 창업주는 1896년 10월1일 전라도 고부군 부안면 인촌리에서 부친 김경중씨와 모친 장흥 고씨 사이에서 2남으로 태어났다. 형의 호인 인촌은 바로 두 형제가 태어난 동네 이름을 따온 것이다. 김 창업주의 부친은 1만 5000석 지기의 호남 최대 거부였고 학문에도 조예가 깊었다. 부친은 일제하에서 나라가 영영 없어지는 것으로 알고 당시 저명한 사학자들을 몰래 불러 ‘조선사’를 17권이나 엮을 정도로 민족애가 투철했다는 게 삼양그룹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김 창업주는 어린 시절 외롭게 지냈다. 김 창업주의 부모는 그가 태어나기 전 세 명의 아들과 한 명의 딸을 일찍 잃었다. 여기에다 한 명뿐인 형인 인촌이 큰아버지인 김기중씨가 대를 이을 아들이 없자 양자로 보내졌기 때문이다. 어릴 적 김 창업주는 몸이 허약했다. 폐가 약했으며 위도 튼튼하지 못해 일찍이 폐와 소화기 계통의 질병으로 자식을 잃은 경험이 있는 부모의 애를 끓게 했다. 이런 이유로 개구쟁이처럼 장난이 심하고 활발했던 인촌과는 달리 김 창업주는 조용한 것을 좋아했고, 과묵하고 내성적인 성품을 지녔다. ●27세에 경영인으로 출발 김 창업주는 15세 되던 1910년 12월8일 자신보다 두 살 위인 박하진씨와 혼인을 맺었다. 결혼 이후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쳐 한국인 최초로 교토제대 경제학부를 졸업했다. 그는 고국으로 돌아온 이듬해인 1922년 형의 권유로 경성직뉴와 경성방직의 전무와 상무에 취임, 경영인의 삶을 시작했다. 김 창업주는 고무신과 ‘태극성표’ 광목을 대히트시킴으로써 일본자본과 맞서는 최대의 민족회사를 일궜다. 집안 내력을 잘 아는 김재억 삼양사 상임감사는 “30년대 경성방직은 우리나라 금융거래 절반을 담당할 정도의 민족 최대 기업이었다.”고 말했다. 김 창업주는 또한 농촌재건을 위해 소작농을 협동농업 형태로 결합한 근대영농을 시작했다. 이를 발판으로 1924년 삼수사(三水社)를 설립해 호남 일대의 소유농토에 대한 근대화 작업에 나섰다. 장성, 줄포, 고창, 명고, 신태인, 법성, 영광농장을 차례로 개설해 기업형 농장으로 탈바꿈시켰다. 간척사업에도 눈을 돌려 손불농장과 해리농장의 2개 지역에 1070정보의 농토를 만들었다. 이 시기에 상호가 삼양사(三養社)로 바뀌었다. 어느 날 한 작명가가 찾아와 ‘물 수’(水)를 ‘만인의 양식’이라는 뜻인 ‘기를 양’(養)으로 바꿀 것을 권했다고 한다. 김 창업주는 만주벌 개척에도 나섰다.5개 협동농장을 개설한 데 이어 봉천에 남만방적을 설립했다. 남만방적은 한국기업 최초의 해외생산법인이다. 그러나 1945년 해방으로 만주의 사업장들을 고스란히 놓고 철수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제당업으로 재기에 나서 해방공간을 겪으면서 반민특위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김 창업주는 한국 전쟁 이후 해체상태에 놓였던 삼양사 재건에 나섰다. 그는 재기의 발판으로 제당업과 한천제조업을 선택했다. 당시 설탕은 수입에 의존해온 대표적인 외화소비 품목이었기 때문이다. 울산 바닷가를 메워 그곳에 제당공장과 한천공장을 건설했다. 그는 1956년 삼양을 제당으로 키우면서 주식회사 삼양사를 출범시켰다. 자신이 대표이사 회장에 취임했고, 사장에 3남인 상홍(83), 상무에 5남 상하(80)를 앉혔다.3남과 5남이 삼양사를 맡는 전통은 3세에도 그대로 이어져 삼양그룹은 현재 상홍씨의 장남 윤(53)씨와 상하씨의 장남 원(48)씨가 삼양사 회장과 사장을 맡고 있다. 둘째 아들들인 량(51)씨와 정(46)씨도 각각 삼양제넥스 사장과 삼남석유화학 부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당시 삼양사보다 수익률이 높았던 해리염전을 삼양염업사라는 별개의 회사로 독립시키고 맏아들 상준(작고)을 사장에 임명해 경영을 맡겼다.3공화국때 문교부장관과 5공화국에서 국무총리를 역임한 차남 상협(작고)에게도 삼양염전의 지분 25%를 떼어주어 형제간 경영권을 일찌감치 교통정리했다. ●재계의 거목으로 김 창업주는 1962년 설립한 삼양수산을 통해 다양한 어종을 가공, 수출하는 등 한때 냉동선만 21척을 보유할 정도로 수산업에도 주력했다. 이처럼 제당과 수산업으로 재기에 성공한 그는 4·19혁명으로 자유당 정권이 무너지자 한국경제협의회(현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에 취임, 한국 재계의 얼굴이 되었다. 경영이 본 궤도에 오르자 김 창업주는 전주방직을 인수, 삼양모방(주)을 설립했다. 이어 1969년 전주에 대단위 폴리에스테르 공장을 건설했다. 이로써 70년대 들어 삼양은 국내 초창기 산업의 중심이었던 제당으로 확고한 제조업체로의 변신을 이룩했다. 이 당시 삼양은 매출액에서나 기업선호도에서 상위를 차지하는 국내 정상급 기업으로 우뚝 섰다. 김 창업주는 사업에 투신한 지 만 53년이 되던 1975년 회장을 상홍에게, 사장에 상하를 임명하는 등 ‘2세경영’을 출범시키고 은퇴했다. 그의 나이 80세일 때였다. 그는 은퇴 후 농촌으로 돌아가 마지막 열정을 쏟다가 1979년 84세의 일기로 생애를 마감했다. ●교육사업도 아낌없는 지원 그는 기업경영에만 몰두하지 않았다. 고려대와 고려중앙학원의 운영기금을 출연한 것을 비롯해 양영회와 수당장학회를 설립, 교육사업에도 힘썼다. 문성환 삼양사 부사장은 “창업주는 두 재단을 통해 대학생 2만여명에게 대학등록금을 비롯해 하숙비, 책값, 소정의 용돈까지 장학금으로 대줬다.”고 회고했다. 이런 김 창업주의 혜택을 받은 대표적인 인물로는 한덕수 경제부총리, 오세철 연세대 교수 등이 꼽힌다. 경성방직의 회계를 맡아 김 창업주를 도왔던 국어학자 이희승 박사는 “수당(秀堂·김 창업주의 호)은 돈 쓰는 데도 일가견을 가진 사람으로 만금을 쓰면서도 기업경영에는 한 푼을 아꼈다.”고 그의 용전(用錢)철학을 전했다. 김 창업주는 경쟁회사에도 관대했던 묵묵한 성격의 경영인으로도 정평이 나 있다.1966년 삼양의 경쟁회사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운영하던 한국비료가 이른바 ‘사카린 밀수사건’으로 곤혹을 치렀다. 임원들이 ‘사카린 없는 삼양설탕’이라는 문구로 대대적인 광고전을 벌이자고 수차례 건의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은 사례는 그의 성품을 읽는 일화로 경영인들에게 지금껏 회자되고 있다. ●방대한 혼맥…사회 각 분야와 사통팔달 김 창업주는 부인 박씨와의 사이에 7남6녀 13명의 자녀들을 두었다. 아들로는 장남 상준(작고), 차남 상협(작고),3남 상홍(83),4남 상돈(81),5남 상하(80),6남 상철(70),7남 상응(작고) 등 7남과 장녀 상경(79), 차녀 상민(78),3녀 정애(75),4녀 정유(73),5녀 영숙(72), 막내 희경(66) 등 6녀를 두었다. 김 창업주 가문의 혼맥은 정계·관계·학계·언론계·재계·교육계 등과 거미줄처럼 얽힌 방대한 혼맥을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김 창업주의 성격이 소탈해 자식들에게 정략 결혼을 요구하기보다는 평범하고 무난한 결혼을 시켰다는 게 대체적인 평이다. 김재억 감사는 “창업주의 생활철학이 권세를 배격하는 것이어서 자식들이나 3세들의 결혼에도 사돈 될 집안의 내력과 상대방의 성실성을 먼저 봤다.”고 회고했다. 김 창업주는 특히 자녀들의 대부분은 중매결혼으로 짝지웠지만 사위와 며느리를 맞는 데서는 당시로는 상당히 진보적인 입장이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는 사위를 고를 때는 가문을 따지지 않고 사람됨됨이와 능력을 위주로 보았고, 며느리는 후덕한 집안 출신으로 신식교육을 받은 신여성이기를 원했다. 특히 사돈가의 위치를 보고 정혼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해 그의 직접 사돈 가운데는 정관재계의 거물은 눈에 띄지 않는다. 김 창업주의 며느리들 가운데 위로 세 명은 이화여전 출신 등으로 당시의 김 창업주가 원했던 신여성들의 표본이 많았다. 반면 창업주의 형인 인촌 성수씨도 9남4녀를 두어 대가를 이뤘는데 장남인 상만(작고) 전 동아일보 명예회장의 직계 자손들은 화려한 혼맥을 자랑하고 있다. 고려대 이사장이자 동아일보 전 회장인 장손 병관씨는 장남 재호(41·동아일보 대표이사 전무)씨를 이한동 전 총리의 차녀인 정원(38)씨와 결혼시켰고,2남 재열(37·제일모직 상무)씨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차녀인 서현(32·제일모직 상무보)씨와 결혼했다. 김연수 창업주 자녀들의 혼맥을 살펴보면 장남 상준씨는 당시 집안과 각별하게 지내던 이화여대 총장 김활란 박사의 소개로 이뤄져 1943년 구영숙씨의 맏딸 연성(85)씨를 부인으로 맞았다. 상준씨는 보성전문 상과를 나와 조흥은행에 근무할 때였고 연성씨는 이화여전 음대를 졸업한 직후였다. 상준씨는 3명의 딸을 출가시켜 정·관·재계 인맥을 형성했다. 장녀 정원(62)씨의 부군은 고려대와 국가대표팀에서 축구선수로 활약했던 김선휘(68·삼양염업사부회장)씨다. 축구를 좋아하던 상준씨는 모교인 고려대 축구팀을 지원했는데, 이 일로 선휘씨가 상준씨 집에 드나들면서 자연스럽게 혼사가 맺어졌다. 차녀 정희(58)씨는 5공시절 당시 거물 정치인이었던 김진만씨의 맏며느리로 보내 동부그룹 회장인 김준기(64)씨를 사위로 맞았다.3녀 정림(57)씨는 전 문교장관 윤천주씨의 장남 대근(59)씨와 결혼했다. 대근씨는 현재 동부아남반도체 대표이사 부회장과 동부그룹 소재분야 부회장을 맡고 있다. 상준씨의 장남 병휘(60)씨는 한양대 자연과학대 자연과학부 수학전공 교수로 재직하고 있고, 차남 범(52)씨는 독신으로 지내며 개인사업을 하고 있다. 차남 상협씨는 해방 직후 고려대 부교수 시절, 의사 김준형씨의 2남3녀 가운데 맏딸 인숙(82)씨와 연애결혼에 성공했다. 인숙씨도 니혼조시 대학을 나온 당시 보기 드문 일본 유학 신여성이었는데 상협씨의 도쿄제대 동창 부인의 소개로 만나 연애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장녀 명신(58)씨를 송진우 전 동아일보사장의 아들인 상현(65) 서울대 법대교수와 혼인시켰다.2녀 영신(56)씨는 정태섭 전 변호사의 아들 성진(58)씨와 결혼했다. 외아들 한(52)씨는 메리츠증권 부회장으로 있다. 3남 상홍(83)씨는 구 치안본부 재직시절 수원갑부 차준담씨의 2남2녀 가운데 맏딸 부영(79)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부영씨는 이화여고와 이화여전을 나온 재원이었다. 상홍씨는 2남2녀 가운데 장남 윤씨를 전 서울신문사 김종규 사장의 딸 유희(46)씨와 혼인시켜 벽산그룹 김인득 회장과 한 다리 건너 사돈이 됐다. 또 차남 량씨는 장지량 전 공군참모총장의 막내딸 영은(46)씨와 백년 가약을 맺었다. 영은씨의 오빠 장대환씨는 매일경제 신문 창업주 정진기씨의 사위로, 현재 매일경제신문 대표이사회장 인쇄인 겸 발행인과 현 매일경제TV 대표이사 회장이다. 장녀인 유주(56)씨를 사업가 윤주탁씨의 2남 영섭(59·고려대 상대교수)씨에게 시집 보내 윤주탁씨와 직접 사돈간인 박태준 전 민자당 최고위원과 연결되고 있다. 영섭씨의 남동생인 영식씨가 박 전 위원의 장녀 진아(48)씨와 결혼했다. 4남 상돈씨는 6·25 직후 김유황 전 광장㈜ 부사장의 딸 용옥(73)씨와 결혼했다. 상돈씨는 맏형인 상준씨의 중매로 장남 병진(52)씨를 축구협회 부회장과 축구대표팀 감독을 지낸 한흥기씨의 딸인 혜승(45)씨와 맺어줬다. 차남 영로(50)씨는 사업을 하던 정형식씨의 딸 은미(46)씨와 혼인했다. 외동딸 희진(45)씨는 전 대한항공 이사 오명석씨의 외아들 광희(49)씨에게 시집갔다. 광희씨는 전 나이스정보통신 전무이사를 역임했다. 5남 상하씨는 삼양사 설탕공장 설립관계로 일본에서 일하고 있던 1953년 아버지의 부름을 받고 귀국, 바로 박상례(75)씨와 혼인을 맺었다. 상례씨는 공무원 출신인 박규원씨의 딸로 김 창업주의 친구가 중매를 섰다. 외동딸인 영난(44)씨를 송하철(45·주식회사 항소 사장)씨와 결혼시켜 송남석 모나미 회장의 막내며느리로 보냈다. 장남 원씨를 배영화 경희어망 회장 딸인 주연(45)씨와 맺어 줬다. 차남 정씨는 안상영 전 부산시장의 딸인 혜원(39)씨와 결혼했다. 6남 상철(70)씨는 사업을 하던 우근호 씨의 딸 정명(63)씨를 부인으로 맞았다. 7남 상응(작고)씨는 공무원 생활을 했던 권오경씨의 5녀중 셋째딸 명자(53)씨와 결혼했다. 장녀 상경(79)씨는 아폴로박사 조경철씨와 결혼 후 이혼해 조서봉(필립), 조서만(조지) 등 두 아들을 두고 있다. 차녀 상민(78)씨의 남편은 이두종(작고)씨로 활발하게 삼양사의 경영에 참여했다. 온양 지주의 아들로 자란 두종씨는 1956년 삼양사 과장으로 입사해 이 회사의 대표이사 부사장까지 올랐다.1984년 회사를 떠난 뒤에도 삼양그룹이 운영하는 재단법인 양영회와 수당장학회 이사장을 역임했다. 3녀 정애(75)씨는 교육계에 몸담았던 조종립씨의 아들 석(작고)씨와 결혼했다. 석씨는 서울대 상대 출신으로 결혼 후인 57년 삼양사에 사원으로 입사, 총무부장·경리부장·이사·상무·대표이사 부사장을 거쳐 전 삼양제넥스 상임고문까지 역임했다. 4녀 정유(73)씨의 남편은 전 서울대 부총장인 김영국(작고)씨다. 그는 인천에서 사업을 하던 김덕창씨의 8남매 가운데 3남으로 인천이 낳은 천재로 불리었다. 이들은 김 창업주 친구의 소개로 결혼했다. 영국씨는 서울대 정치학과 총동창회장을 지낸 상하씨의 후배이자 매제인 셈이다. 5녀 영숙(72)씨는 미국인 스테푸친과 결혼, 딸 페기, 아들 프랭크를 두고 미국에서 살고 있다. 막내딸 희경(66)씨도 교육자였던 김종규씨의 아들 성완(68·삼양사 의약사업 고문)씨와 결혼,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 성완씨는 미국 유타대학 석좌교수로 인공심장 분야의 권위자다. jrlee@seoul.co.kr ■ 창업주의 친일논란 민족문제연구소는 지난 8월29일 친일인사인명사전 편찬을 앞두고 수록예정자 명단 3090명의 이름을 공개했다. 이 명단에는 삼양사의 창업주 김연수씨도 포함됐다. 김씨는 전쟁협력 분야에서 ▲1939년 만주국 명예 총영사 ▲1940년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연맹 이사 ▲조선방적 이사장 ▲1940∼1945년 중추원 참의(자문위원)를 지냈다는 이유로 선정됐다. 이에 대해 삼양그룹측은 대응을 일절 자제한 채 구체적인 언급을 회피하고 있다. 다만 그룹의 한 관계자는 “창업주가 일제의 압제에 죽음으로 항거하는 등 깜짝 놀랄 만하게 대항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나름대로 일제의 폭거에 맞서 민족자본을 형성했다.”며 “후세에 역사가들이 올바른 평가를 내릴 것”이라고 비교적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보다 반일 감정이 팽배했던 1949년 반민특위 재판에서도 창업주는 무죄를 받았다.”고 해명했다. 또 창업주는 창씨 개명도 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김 창업주의 일대기인 ‘한국 근대기업의 선구자’에는 일제시대 그의 행적이 상세히 수록돼 있다.6부로 구성된 전기에는 4부 ‘고난의 시절’ 편에 일제에 협조할 수도, 항거할 수도 없었던 고심의 일단들이 실려 있다. 김씨는 중추원 참의 임명과 관련해 1940년 5월 조간신문에 자신이 칙임참의에 임명됐다는 기사를 보고 내무국장 우에다키에게 항의하러 갔지만 결국 그의 완력에 굴복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그는 이후 ‘설사 내가 지녔던 일제치하의 모든 공직이나 명예직이 스스로 원했던 것이 아니고 위협과 강제에 의한 것이었다고 할지라도 일단 그런 직함을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조국과 민족앞에 송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며 통렬한 자기반성의 글을 실었다. 김 창업주는 반민특위에 검거돼 7개월간 수감됐지만 이런 반성의 자세가 참작됐는지 재판에서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당시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는 경성방직을 경영함에 강력히 일본자본과 싸웠고, 항상 한민족을 위한 경제적 기반확립에 노력했고, 경성방직의 상표를 태극기에서 모방한 것으로 보아 피고의 행위는 많이 참작할 곳이 있으며, 그 외의 관직 및 명예직은 일제의 압력에 못이겨 피동적으로 맡은 것이라고 증명되며, 또 피고는 한국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많은 학생에게 원조를 해 그의 혜택을 본 자의 수는 현재 수백명에 달하는 것이니 이 점으로 피고가 남긴 공적은 크다고 할 것이며, 기타 증인의 증언을 통해 볼 때 피고를 단순히 친일 및 반민족행위자라고 규정할 수 없을 것”이라고 판시했다. jrlee@seoul.co.kr ■ 형 김성수와 동생 김연수 ‘한 배에서 태어난 형제가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인촌(仁村) 김성수와 수당(秀堂) 김연수를 아는 주위 사람들의 한결같은 평가다. 인촌과 수당은 호남갑부 김경중씨의 두 아들이었지만 성격은 딴판이었다. 수당은 어릴 때부터 말수가 적고 침착하고 내성적인 성격이었다. 반면 형 인촌은 활달하고 외향적이었다. 여기에 형제는 다섯살이나 터울이 져 어린 시절엔 서로 어울리는 일이 적었다. 그런데도 두 사람은 평생을 친한 형제로 지냈다. 인촌은 수당이 근대적 교육을 받도록 인도했다.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동생을 일본으로 가게 해 중·고등학교와 교토제대 경제학부를 졸업하도록 도왔다. 수당은 일본에서 유학생활을 하며 일찍이 ‘기업인’이 될 것을 결심했다. 오사카의 공장지대에서 받았던 강렬한 인상이 결단의 계기였다. 이처럼 수당의 행적은 형 인촌의 행적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실제로 수당이 기업가로서 길을 걷는 데는 인촌이 설립하고 인수한 기업의 경영을 맡음으로써 시작됐다. 수당이 경영인으로 첫 발을 내디딘 것도 1922년 형이 운영하던 경성직뉴와 경성방직의 경영인을 맡고부터다. 이후 수당은 경영인으로서 성공하자 인촌을 적극 도왔다. 생전에 인촌은 수당이 없었으면 교육사업을 비롯한 자신의 활동이 어려웠을 것이라고 곧잘 술회했다. 수당은 언제나 인촌에게 돈 걱정은 하지 말고 마음껏 뜻을 펼치라고 말했다. 인촌이 설립한 고려중앙학원이나 고려대, 경성방직과 동아일보 등 모두 동생의 재정적인 지원을 받지 않은 것이 없었다. 특히 수당은 1940년대까지 고려중앙학원과 고려대에 기부한 재산이 연 평균 250만원에 이르렀는데, 이를 현 시가로 어림잡아 환산하면 1000억원(쌀값 기준)을 훨씬 넘는 액수다. 그러면서도 동생은 형이 하는 일을 뒤에서 묵묵히 돕기만 했다. 그는 “모든 것을 형님이 알아서 하시니까 나는 재정적인 지원만 하면 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형을 만날 때마다 “형님은 교육과 문화사업을 하세요. 저는 뒤에서 돈을 대리다.”라며 든든한 후원자를 자임했다. jrlee@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사설] 이념 한계 보여준 검찰총장 사퇴파문

    김종빈 검찰총장이 동국대 강정구 교수의 국가보안법 위반사건에 대한 천정배 법무부장관의 불구속 지휘와 관련, 지휘를 수용하는 대신 사의를 표명했다. 조직의 안정을 위해 지휘를 수용하되 ‘사상 첫 지휘권 수용’이라는 내부의 반발을 감안해 총장직 사퇴라는 결정을 한 것으로 해석된다. 천 장관은 김 총장의 사의를 반려할 뜻을 비쳤지만 검찰 조직과 정부는 강 교수 구속을 둘러싸고 극명한 시각차이를 보임에 따라 후유증도 적지 않을 전망이다. 이번 사건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근간을 부정하는 듯한 강 교수의 주장이 구속할 만큼 중대 범죄냐 여부가 논란의 핵심이다. 검찰은 강 교수를 불구속하면 국보법을 무력화하려는 시도가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판단하는 반면, 천 장관은 검찰이 과거의 경직된 ‘공안’ 잣대를 들이댄 것으로 보고 있다. 일부 정치권이 이번 사태를 보·혁 갈등으로 몰고가는 이유다. 하지만 강 교수 사건의 전개과정을 돌이켜보면 검찰도 별로 큰 소리칠 바가 못된다. 강 교수의 주장이 국기를 문란시킬 정도로 중대 범죄라면 검찰이 진작 수사에 착수했거나 경찰 수사에 지휘권을 발동했어야 옳다. 검찰은 경찰이 수사를 떠맡은 뒤에도 계속 뒷짐진 채 한발 비켜나 있지 않았던가. 경찰이 구속의견을 내놓자 검찰의 지휘를 받지 않고 궁지로 내몰았다고 항변하는 것은 궁색하기 짝이 없다. 송두율 교수 사건 때처럼 구속이 옳다고 판단했다면 좌고우면하지 않고 소신껏 법을 집행했어야 했다. 하지만 장관에게 지휘 품신을 해놓고 막상 지휘권을 발동하자 ‘검찰의 가장 소중한 가치인 정치적 중립 훼손’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 눈치를 보다가 자승자박한 꼴이 됐다는 비난이 제기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번 사건을 빌미로 검찰권에 생채기를 내려고 해선 안된다. 검찰권의 약화는 결국 국가적인 손실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천 장관이 강 교수에 대해 불구속 지휘를 했다고 해서 무죄로 해석해선 안된다. 다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구속 만능주의 풍토는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 무죄추정의 원칙이 수사와 재판에서도 명실상부하게 지켜져야 한다.
  • ‘존 로버츠號’ 방향타될듯

    존 로버츠 신임 미 대법원장 앞에 첫 ‘블록버스터’ 판결 과제가 주어졌다고 언론 그룹 나이트 리더가 6일 보도했다. 연방 대법원은 미국에서 유일하게 불치병 환자들이 의사로부터 자살용 약을 건네받을 수 있도록 허용한 오리건주 법률과 관련, 법무부가 환자 자살을 도운 의사들을 처벌할 권리가 있는지에 대해 5일부터 심리하기 시작했다. 1997년 대법원은 불치 환자들이 의사의 도움으로 자살할 수 있는 헌법적 권리가 없다는 판결을 내렸지만 주 정부로 하여금 편안한 죽음을 선택해야 하는 환자들을 도울 다른 방법을 찾도록 여지를 남겨둔 바 있다. 이 법은 또 두차례나 주민투표를 통해 승인됐으며 97년부터 지금까지 208명이 의사로부터 치사제를 건네받아 편안한 죽음을 맞았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2001년 이 법이 연방 정부의 약물 규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소송을 제기, 이날 대법원 심리가 시작된 것이다. 내년 초 선고가 내려질 것으로 예상되는 이번 재판은 캘리포니아 등 다른 주들의 비슷한 법률 제정 움직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여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재판이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는 불투명하다. 후임자 해리엇 마이어스가 상원 인준을 통과할 때까지 심리에 참여하기로 한 샌드라 오코너 대법관은 오리건주 법을 지지하는 입장이지만 마이어스 지명자가 어떤 성향인지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이날 심리에서 “오리건주의 예외적인 법률을 인정하게 되면 다른 주들의 날림 입법을 조장하게 된다.”고 우려했고 안토닌 스칼리아 대법관도 처벌 가능 의견을 내놓았다.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삼성 ‘편법증여’ 유죄] 삼성 “무죄 확신했는데…” 당혹감

    [삼성 ‘편법증여’ 유죄] 삼성 “무죄 확신했는데…” 당혹감

    법원이 4일 에버랜드 전환사채(CB)증여는 불법이라고 선고하자 삼성그룹은 큰 충격에 빠져 대책을 세우느라 분주했다. 허태학, 박노빈 전·현직 에버랜드 사장과 삼성 관계자들은 충격을 받은 듯 재판이 끝난 뒤에도 텅빈 재판정을 한동안 떠나지 못했다. 허 전 사장과 박 사장은 고개를 떨구거나 천장을 쳐다보며 10여분간 말이 없었다. 허 전 사장 등은 삼성 직원들에게 둘러싸여 “법무팀과 상의해 항소 여부를 결정하겠다.”면서 “이건희 회장이 지시한 적은 없다.”는 말만 남긴 채 황급히 법원을 떠났다. ●삼성 당혹 속 대책 마련 고심 삼성은 검찰 수사가 이건희 회장까지 확대될 것으로 보여 초긴장 상태에 빠졌다. 삼성은 일단 법원 판결을 면밀히 검토해 항소 여부를 결정할 입장이지만 삼성의 경영권 승계작업에서 갖는 이번 사건의 중요성으로 볼 때 삼성이 항소하는 것은 기정 사실이다. 삼성 관계자는 “무죄를 확신했지만 이런 결과가 나와 무척 당혹스럽다.”는 말로 회사의 분위기를 전했다. 삼성은 특히 시민단체 등에서 이재용 상무 등의 삼성가 3세들의 에버랜드 CB 인수를 통한 경영권 승계를 더욱 문제삼을 것으로 예상돼 앞으로 더욱 곤란한 처지에 놓일 전망이다. ●“실권 관련 이사들 고발 검토” 반면 참여연대와 기업구조개선 운동을 펼친 시민사회단체들은 이날 법원의 판결을 환영했다.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최한수 팀장은 “이번 판결은 삼성의 편법적 경영권 승계가 타 회사나 주주에게 손해를 끼친 것을 인정한 첫 판례”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최 팀장은 “검찰은 약속한 대로 이건희 회장을 포함한 나머지 임원을 수사해 기소해야 한다.”면서 “당시 삼성 에버랜드 CB를 포기해 실권하도록 한 제일모직 등 다른 삼성 계열사의 이사들도 고발할지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윤순철 정책국장은 “이번 판결은 삼성이 아무런 법적 문제가 없다고 주장해온 편법증여에 쐐기를 박은 것”이라면서 “이번 판결이 삼성뿐 아니라 상속을 목적으로 불법을 저질러온 다른 기업에 경각심을 일깨우고 에버랜드 등 경영진의 불법 행위로 손해를 본 계열사 주주들의 소송도 잇따르게 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관심집중 법정 북새통 에버랜드 사건의 1심 선고공판이 열린 서울중앙지법 423호 법정에는 취재진과 방청객, 삼성 관계자 등 100여명이 몰려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피고인석에 검은 양복을 입고 나란히 선 허 전 사장과 박 사장은 이혜광 형사 25부 부장판사가 주민등록번호 등을 묻자 힘없이 답했다. 재판부가 이 선고에 앞서 두 피고인에게 “판결 이유를 읽으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니 앉아서 들으라.”고 말하자 법정 안에는 한때 긴장감이 흘렀다. 재판부가 약 40분간 판결 내용을 읽어가며 회사에 손해를 끼쳤는지 등 법적 쟁점들에 대해 “변호인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취지를 밝히자 법정 곳곳에서 짧은 탄식이 나왔다. 재판부가 결국 피고인들의 배임죄를 인정하자 결과를 예상치 못한 듯 메모하는 삼성 관계자들의 손놀림이 빨라졌다. 삼성 관계자는 “생각했던 것보다 세게 나왔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김경두 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 “일제 한센인핍박 치떨려 광복후에도 편견 여전해”

    “일제 한센인핍박 치떨려 광복후에도 편견 여전해”

    “사람 대접도 못 받던 우리를 위해 시대가 나섰습니다. 여러분, 오래 사세요. 지금 돌아가시면 안 됩니다.” 지난 24일 오후 한센인 요양시설인 경북 안동시 성자원 성당. 인근 칠곡농장과 삼애농원(김천) 등지에서 온 한센인 50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마이크를 쥔 한센인 인권단체 ‘한빛복지협회’ 임두성 회장의 목소리가 본당 내부를 울렸다. 이들은 1917년부터 1945년까지 일제에 의해 소록도에 강제로 수용됐던 사람들. 이날 자리는 앞으로 이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할 한센인 2차 보상소송을 설명하기 위해 대한변호사협회(변협) 주관으로 마련됐다. ●“이제 돌아가시면 안 됩니다” “맞아, 저기가 감금실이었어. 겨울에 저기 갇혔다가 죽은 사람들이 많았지.” 납골당·중앙공원 등 소록도를 담은 영상이 방영되자 곳곳에서 아픈 기억이 탄성으로 터져나왔다. 지난해 10월25일 한센인 117명은 일제의 소록도 격리수용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며 일본 정부에 첫 소송을 냈다. 일본 정부가 2001년 제정된 특별법에 따라 과거에 강제수용됐던 자국 한센인에게는 보상을 했지만 소록도 피해자들에게는 보상을 거부한 데 따른 것이었다. 그 선고재판이 정확히 1년 만인 다음 달 25일 열린다. ●소록도 삶 증명해야…1차소송보다 힘겨울 듯 지난해 1차 소송의 원고는 광복 후에도 계속 소록도에 남아 있던 사람들이었다. 반면 곧 제기될 2차 소송의 원고는 광복 후 소록도를 떠나 전국 각지에 흩어져 살아온 280여명이다. 변협은 소송 원고인단 모집을 위해 이날 성자원과 익산농원(전북 익산)을 시작으로 주말마다 전국 순회설명회를 연다. 익산농원에서도 첫날 78명에 대한 상담이 마무리됐다. 변협은 다음 달 17일까지 소송준비를 마칠 계획이다. 2차 소송은 피해자들이 일제 강점기에 소록도에 수용됐던 사실을 증명할 만한 문서가 거의 없어 1차 때보다 더 힘겨운 싸움이 될 전망이다. 하지만 음지에 숨어살던 한센인들은 소송을 통해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 자체로 기쁘다고 한다. 한빛복지협회 임 회장은 “세월과 고통 앞에 노쇠해진 한센인들이 소송을 내면서 더욱 건강해졌다.”면서 “이번 소송이 한센인에 대한 편견과 사회적 차별을 없애는 데 기여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변호인단 단장을 맡은 박영립 변호사는 “1차 소송 선고와 2차 소송 제기는 시작에 불과하다.”면서 “일본 정부에 대한 소송에 이어 국내 한센인 인권침해에 대한 실태조사 등을 통해 보상특별법 제정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소록도 나와서도 힘겨운 삶…관심 광복 이후까지 이어져야 1차 소송으로 사회적 관심이 모아지면서 한센인들은 한층 자신감을 얻었다. 피하고 숨어만 지내던 이들이 자기 권리를 위해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삼애농장에서 살고 있는 박모(81)씨가 대표적이다. 23세에 손톱과 눈썹이 빠지면서 한센병 발병 사실을 알게 된 박씨는 경찰서 창고에 3일간 갇혀 있다 소록도로 갔다. 광복이 되면서 고향인 경북 김천으로 돌아왔지만 이웃의 횡포에 다시 유랑생활을 해야 했다. 마을 외곽까지 쫓아와 다른 곳으로 가버리라며 천막에 불을 지르고 폭력을 가하던 동네사람들을 피해,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끼리 군수에게 청원해 국유지에 겨우 터를 잡았다. 하지만 ‘정상인’들의 마을에서 아이라도 한명 없어지면 마을에는 어김없이 경찰이 닥쳤다. 한센병 환자가 아이들을 잡아먹고 묻었다는 흉흉한 소문 때문이었다. 박씨는 “그때도 우리 마을엔 한센병을 겪은 병력자만 있었을 뿐 환자는 없었다.”면서 “말문이 막힌 우리에게 경찰은 ‘신고가 들어왔으니 수색 안 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회상했다. 특히 경상도 지역 한센인들에게 1991년의 ‘대구 개구리소년 실종사건’은 남모르는 상처로 남아 있다. 소년들을 납치해 약으로 쓰고 암매장한 것으로 지목된 칠곡농원은 공권력과 언론에 의해 마구 헤집어졌다. 박씨는 “이제라도 우리의 무죄가 밝혀졌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했다. 글 사진 안동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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