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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신 대법관 엄중경고 의미 새겨야

    이용훈 대법원장은 어제 촛불재판 개입의혹을 받아온 신영철 대법관의 부적절한 행동을 엄중경고하고 재판에 대한 국민의 신뢰 손상을 초래한 점에 대해 유감을 표했다. 사법 사상 첫 대법원장의 대법관에 대한 경고조치이다. 신 대법관의 서울중앙지법원장 재직시 행동이 재판 관여로 인식될 수 있는 부적절한 행위이지만 제도적 장치 미비 등을 이유로 경고 또는 주의조치를 주문한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 권고안을 수용한 것이다. 다만 소장 판사들의 반발을 감안, 한걸음 더 나아가 엄중경고에 유감표명을 보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장의 이 같은 입장표명이 일부 소장 판사를 중심으로 촉발된 법원 내부의 반발기류를 잠재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들은 오늘 단독판사 회의를 열어 신 대법관 문제를 논의한다. 다른 법원 판사들도 동참할 태세다. 소장 판사들은 윤리위와 대법원장의 미온적인 결정을 용인할 경우 앞으로 법관의 재판상 독립이 보장되지 않을 것이라고 여기는 듯하다. 신 대법관에 대한 후배 판사들의 ‘집단 불신임’이 자칫 사법파동으로 번질 수 있는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사법부는 신 대법관의 무조건적 용퇴를 주장하는 일부 소장 판사나 법원노조의 전유물이 아니다. 우리는 그동안 신 대법관 개인의 명예도 중요하며 징계위 회부는 가혹하다고 주장해 왔다. 문제가 된 재판 개입을 막을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더 중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신 대법관은 이날 법원 내부 전산망에 “심려 끼쳐 송구하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으나 거취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법원 내부의 의견도 엇갈리는 만큼 용퇴를 강요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위기의 사법부를 구할 슬기로운 대처가 필요한 때다.
  • “쌍용차 존속 가치가 더 커 청산보다 3890억 많아”

    “쌍용차 존속 가치가 더 커 청산보다 3890억 많아”

    법정관리 중인 쌍용자동차가 청산되는 것보다 유지되는 쪽이 더 가치가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파산4부(수석부장 고영한)는 6일 삼일회계법인에서 쌍용차의 재산 상태와 기업가치 등에 대한 조사 결과를 제출 받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앞서 지난 2월 쌍용차에 대한 회생절차 개시 결정을 내리면서 삼일회계법인에 회계 실사 명령을 내린 바 있다. 조사 결과, 쌍용차가 유지될 경우 얻을 미래의 수익을 따진 계속기업가치는 1조 3276억원으로 지금 당장 쌍용차의 재산을 분리 처분할 때 가액을 합산한 청산가치 9386억원보다 3890억원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자산도 2조 1272억원으로 부채 1조 6936억원보다 4336억원 많았다. 하지만 이는 회사가 제시한 구조조정 및 경영정상화 방안을 계획대로 실행하고, 구조조정 비용과 ‘C200’ 신차 개발비용 등에 필요한 신규 자금 2500억원이 원활하게 조달되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다. 2500억원은 주거래은행인 산업은행 등에서 신규대출한다는 것이 쌍용차의 계획이다. 쌍용차의 계속기업가치가 청산가치보다 높은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에 재판부는 통합도산법에 따라 오는 22일 첫 번째 관계인집회를 개최하고 쌍용차에 회생계획안 제출을 명령하기로 했다. 관계인집회에는 담보권자, 채권자, 주주 등이 참여한다. 이들은 한두 차례 더 관계인집회를 열어 쌍용차의 회생 계획을 수용할지 여부를 의결한다. 법원은 이에 대한 최종 인가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韓-캐나다 ‘쇠고기 분쟁’ 7일부터 협의 돌입

    한국과 캐나다 정부가 오는 7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캐나다산 쇠고기 수입금지 문제에 대한 협의를 시작한다. 이는 캐나다가 세계무역기구(WTO)에 우리나라를 제소한 데 따른 것으로, 협의는 WTO 분쟁 해소 절차의 첫 과정이다.농림수산식품부 관계자는 3일 “캐나다산 쇠고기 수입을 금지하고 있는 한국의 조치나 가축전염병예방법 규정이 WTO 동식물검역회의(SPS) 관련 규정에 비춰 정당한지가 쟁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캐나다 측은 “가축전염병예방법이 광우병 발생국으로부터의 쇠고기 수입을 너무 어렵게 해 사실상 캐나다를 다른 나라와 차별하고 있다.”면서 불만을 표시해 왔다.두 나라는 7일부터 60일 이내에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 실패할 경우 WTO 회원국들이 구성한 일종의 재판부인 ‘분쟁해소 패널’을 통해 본격적인 분쟁 절차에 돌입한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협의 과정에서 합의를 끌어내 패널 분쟁까지 가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고홍주 , 첫 아시아계 美 대법관 되나

    고홍주 , 첫 아시아계 美 대법관 되나

    │워싱턴 김균미특파원│미국 역사상 최초로 한국계 대법관이 탄생할 수 있을까. 미국 연방 대법원의 데이비드 해켓 수터(69) 대법관이 오는 6월 은퇴 의사를 밝힘에 따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지명하게 될 후임 대법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측은 지난해 11월 당선된 뒤 대법관 후보들 명단을 추려 왔다. 미 언론들은 가장 최근에 지명된 3명의 대법관이 모두 백인 남성이었기 때문에 수터 대법관 후임은 여성 또는 소수 인종에서 나올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같은 관측을 토대로 2일 고홍주(54·해럴드 고 ) 예일대 법대 학장 등 수터의 후임 대법관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 10명을 사진과 함께 실었다. 국무부 법률고문(차관보)에 지명돼 미 상원 인준 청문회를 마치고 표결을 기다리고 있는 고 학장이 대법관에 임명된다면 미 역사상 최초의 아시아계 대법관이 된다. 일부 보수진영에서는 고 학장의 이번 상원 인준 청문회를 앞두고 법률적인 견해가 지나치게 진보적이고 비주류의 법률사상을 대변한다며 집중적으로 공격해 왔다. 고 학장은 평소 미국이 국제형사재판소에 자발적으로 참여해야 하며, 미국의 법률에 국제적 인권기준이 적용돼야 한다는 지론을 펴왔다. 이에 대해 보수진영은 다른 나라의 법률에 미국의 사법체제를 종속시킬 위험이 있다고 비판해 왔다. 미 언론들은 고 학장이 대법관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 중 한 명이지만 법관으로 활동한 경력이 없고, 국제법 분야 전문가라는 게 단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는 오바마 대통령의 하버드 법대 동창들과 시카고대 교수 및 학생들을 인터뷰한 결과 후임 대법관은 진보 성향이되 국민들의 실생활에 미칠 파장을 충분히 고려할 줄 아는 실용적인 인물을 지명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한편 워싱턴포스트가 유력 후보군으로 꼽은 10명 가운데 7명이 여성이다. 나머지 3명에는 고 학장 이외에 히스패닉과 흑인 남성이 한 명씩 포함돼 있다. 200년이 넘는 미국 대법원 역사상 지금까지 대법관을 지낸 110명(현직 포함) 가운데 흑인은 2명, 여성도 2명에 불과하다. 히스패닉과 아시아계는 한 명도 배출하지 못했다. 따라서 미국 내 최대 소수인종 지위를 굳힌 히스패닉계의 정치적 영향력을 고려할 때 히스패닉계 대법관 후보가 지명될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높다는 견해가 주를 이룬다. 히스패닉계 여성 법조인인 소니아 소토메이어 제2 연방항소법원 판사와 킴 매클레인 워들로 제9 연방항소법원 판사와 루벤 카스티요(남성) 일리노이 북부지구 판사가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이유다. kmkim@seoul.co.kr
  • 용산참사 재판 파행

    용산 남일당 건물에서 점거농성을 벌이다 불을 질러 경찰관을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철거민들의 변호인단이 검찰이 수사기록을 전면 공개할 때까지 법정 출석을 거부, 재판에 차질이 예상된다. 1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 한양석) 심리로 열릴 예정이었던 용산 4지구 철거대책위원회 이충연 위원장 등 농성자 9명에 대한 공판은 피고인들의 변호인들이 출석하지 않아 오는 8일로 연기됐다. 변호인단은 “법원의 수사기록 열람·등사 허용 결정 이후에도 검찰이 여전히 일부 수사기록에 대한 열람·등사를 거부하고 있다.”면서 “비공개 기록에는 용산 참사의 책임을 철거민들에게만 지우는 공소사실과 상반되는 증거나 경찰이 무리한 진압을 결정하게 된 경위 등이 드러나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또 재판부에 “수사기록 공개 전에는 용산 참사의 수사나 공판이 공정하다고 말할 수 없는 만큼 변호인단이 기록 전부를 받을 때까지 공판을 중지해 달라.”고 요구했다. 앞서 법원은 지난달 22일 열린 첫 공판기일에 “검찰이 주지 않은 수사기록 등에 대해서는 향후 증거로 신청할 수 없도록 해 형사소송법에 따른 불이익을 받게 할 것”이라고 고지했다. 검찰은 이에 대해 “변호인단이 요구하는 기록은 불기소 처분한 경찰에 대한 수사기록으로 이번 사건과는 연관성이 없다.”면서 “기록을 공개하지 않더라도 변호인단이 경찰 수뇌부를 증인으로 신청한 만큼 공판 과정에서 신문을 통한 충분한 증거조사가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형사소송법은 피고인이 질병으로 출석할 수 없거나 의사결정을 할 능력이 없는 경우 등에만 공판 절차를 정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검찰의 수사기록 비공개는 공판을 중지할 수 있는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셈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처럼 피고인이 구속되거나 사형, 무기징역 또는 단기 3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처해지는 죄로 기소된 경우는 ‘필요적 변호 사건’으로 변호인 없이는 개정을 할 수 없다. 변호인단이 계속해서 출석을 거부하면 재판부가 직권으로 변호인을 선정해야 한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노무현 게이트] “돈 갚았다, 안 받았다”… 박연차 진술 흔들기

    [노무현 게이트] “돈 갚았다, 안 받았다”… 박연차 진술 흔들기

    ■ 朴회장 돈 받은 피고인들 법정 반격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게서 불법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들이 기소 근거가 된 박 회장의 ‘진술 흔들기’로 반격에 나섰다. 검찰의 최대 무기라고 할 수 있는 박 회장의 진술 신빙성이 타격을 입기 시작하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판정승’ 가능성은 그만큼 높아진다. 2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 심리로 열린 첫 공판에서 송은복 전 김해시장은 불법정치자금 수수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검찰은 송 전 시장이 2006년 박 회장 집 인근 도로에서 5억원, 2008년 부산 사상구 백양터널 앞길에서 5억원을 수수했다고 공소사실을 밝혔다. 하지만 송 전 시장은 “2006년 4월 초에 박 회장에게 5억원을 빌렸다가 며칠 뒤 돌려줬을 뿐”이라면서 “2008년 백양터널 앞에서 불법자금을 받은 것이 아니고, 2006년에 돈을 빌릴 때 건네받은 장소가 백양터널 앞”이라고 지적했다. 박 회장이 시기와 돈을 준 명목을 착각해 검찰이 기소를 잘못 했다는 것이다. 이정욱 전 한국해양수산개발원장 역시 첫 공판에서 2005년 4월 노건평씨를 통해 2억원과 3억원을, 선거자금 책임자를 통해 2억원을 받았다는 검찰쪽 공소사실을 부인했다. 이 전 원장은 선거자금 책임자를 통해 2억원을 받은 사실만 인정하면서 “이 돈과 건평씨가 건넸다는 2억원이 중복된 것 같다.”고 반박했다. 이는 검찰이 박 회장의 진술에 근거해 범죄사실을 입증하려 한다는 점을 역으로 이용, 기억에 의존한 진술은 부정확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해 무죄 판단을 얻어내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범죄의 입증이 충분하지 않으면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형사소송법상의 대원칙에 따라 무죄를 선고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반격이 먹혀들어 재판부가 박 회장의 진술을 ‘의심’하게 된다면 노 전 대통령은 법정 싸움이 시작되기 전부터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게 된다. 검찰이 노 전 대통령을 기소할 근거 역시 다른 피고인들 때와 마찬가지로 박 회장의 진술과 정황증거가 전부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노 전 대통령은 측근과 가족이 박 회장에게서 돈을 받은 사실을 전혀 몰랐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검찰이 아무리 “아들, 부인이 수백만달러를 받았다는 사실을 몰랐을 리 없다.”고 ‘상식’을 강조한다고 해도 범죄의 입증 책임은 전적으로 검찰에 있는 만큼 재판부가 유죄 판단을 내리기는 어려워 보인다. 노 전 대통령이 서면 답변에서 ‘피의자의 권리’를 강조한 것 역시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진술에 아무리 구체성이 있다고 해도 그를 뒷받침할 물증이 없고 양쪽 입장까지 엇갈린다면 재판부로서도 유죄판단을 내리기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부고] 日 첫 국제형사재판관 별세

    │도쿄 박홍기특파원│일본 사이가 후미코(65) 국제형사재판소(ICC) 재판관이 24일 네덜란드의 한 병원에서 심부전증으로 숨졌다.사이가 재판관은 지난 2007년 11월 일본인으로서 처음으로 네덜란드 헤이그에 본부를 둔 ICC의 재판관에 선출된 뒤 지난 1월 재선됐다. 아시아 출신 여성으로서도 첫 재판관이었다. 지난 1966년 외무성을 시작으로 사이타마현 부지사, 유엔대표부 및 노르웨이 대사, 초대 인권담당대사 등을 역임했다. 최근 콩고를 비롯, 아프리카의 전쟁 범죄를 담당하고 있었다. 특히 여성 차별 철폐 및 지위 향상에 힘썼다.hkpark@seoul.co.kr
  • [노무현-박연차 게이트] “없다”… 공소내용 부인 바람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게서 금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정·관계 인사에 대한 본격적인 재판 절차가 시작됐다. 검찰은 대부분의 혐의에 대해 주로 박 회장의 진술에 의존하고 있어서 이를 부인하는 피고인쪽과 유·무죄를 다투는 치열한 법정공방이 불가피하다. 24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 심리로 열린 박정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첫 공판에서 박 전 수석은 2004년 12월17일 서울 S호텔 중식당에서 당시 중부지방국세청장이었던 김정복씨의 사돈인 박 회장에게서 상품권 1억원어치를 받은 사실 자체는 시인했지만 돌려주려다 여의치 않아 보관 중 부인이 사용한 만큼 대가성이나 직무관련성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판세에 영향을 미칠 새로운 사실도 튀어 나와 긴장감이 돌고 있다. 이날 공판에서 검찰은 노건평씨가 검찰 조사 과정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박 회장의 사돈인 김씨의 국세청장 인사청탁을 했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전날 형사합의23부 심리로 열린 재판에서 이광재 민주당 의원은 박 회장과 정대근 전 농협중앙회 회장에게서 불법정치자금 2억여원을 받았다는 검찰쪽 공소사실을 모두 부인했다. 이 의원은 2004년 5월쯤 미국 뉴욕의 한인식당에서 박 회장의 지시를 받은 식당 주인에게서 2만달러를 받았다는 혐의에 대해 “뉴욕에 간 일 자체가 없다.”고 반박했다. 또 태광실업의 베트남 현지법인인 태광비나에서 박 회장에게서 5만달러를 받은 혐의에 대해서도 “공항 통과의 위험을 감수하고 돈 받을 국회의원이 어디 있겠느냐.”고 강하게 부인했다. 박 회장에게서 금품을 받은 이들에 대한 재판은 모두 부패전담 재판부인 형사합의22·23부에서 진행하게 된다. 오는 28일에는 이정욱 전 한국해양수산개발원장·송은복 전 김해시장, 29일에는 추부길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과 장인태 전 행정자치부 2차관의 첫 공판이 예정되어 있다. 법원은 사안이 중대한 만큼 관련사건들을 집중심리하겠다는 입장이라 재판 진행과정에서 박 회장의 진술과 검찰 주장, 피고인쪽 입장이 평행선을 그릴 경우 노 전 대통령 일가를 포함한 관련자들이 무더기로 증인석에 서게 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우리 역사 제대로 알지 못하면 나라가 거꾸로 갈 수 밖에 없어”

    “우리 역사 제대로 알지 못하면 나라가 거꾸로 갈 수 밖에 없어”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90주년을 기념하는 학술대회가 열린 지난 10일 오후 서울역사박물관 강당. 주제발표가 한창이었지만, 청중은 아무리 넉넉하게 헤아려도 50명이 넘을 것 같지 않았다. 행사를 준비한 김자동(81)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장은 “그래도 90주년인데 하는 기대도 없지 않았다.”면서 “특히 젊은이들이 많이 와서 들었으면 했는데….”라고 섭섭함을 숨기지 않았다. 김 회장은 “젊은이들에게 임시정부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지를 물으면 대부분 김구 선생이 주석이었다는 것 정도”라면서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은 교육이 문제”라고 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정의로운 선조들에 관한 교육을 아주 안 하는 것은 아닌데 제대로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예를 들어 사법시험은 법률 조목과 판례를 다 외워야 한다지만 컴퓨터로 검색하면 금방 알 수 있는 시대 아니냐.”면서 “민족의식과 역사의식이 있는 사람이 제대로 재판도 할 수 있는데, 법조인의 태반이 그걸 모르니 출세와 돈만을 지향하고, 현실에 아첨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 회장의 가족사는 임시정부의 역사이다. 그의 할아버지 동농 김가진 선생은 한일합병 이후 국내에서 항일비밀결사인 조선민족대동단을 이끌다 임정이 있던 중국 상하이로 망명했다. 대한제국 시절 병조참판과 공조판서를 지낸 동농 같은 거물이 임정에 참여함에 따라 일제는 커다란 타격을 받았다. 동농은 당시 맏아들인 김의한 선생을 데리고 망명했고, 김 회장은 1928년 상하이의 프랑스 조계에서 태어나 김구·이동녕·이시영 선생 등 독립운동가의 품에서 자랐다. 김 회장은 2006년부터 임시정부기념관 건립 사업을 벌이고 있다. 그는 “중국여행을 해보니 남경학살박물관이 있더라.”면서 “일인들이 중국 사람 수십만명을 학살한 사건을 설명해놓았는데, 가장 열심히 박물관을 돌아보는 사람들은 일본 관광객들이었다. 우리도 그런 장소를 만들어 일본의 후세들이 보고 반성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일본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지금도 임시정부기념관 건립에 써달라고 적지 않은 국민들이 성금을 보내주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은 기념관 건립과는 거리가 먼 액수라고 했다. 이제는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1946년 국내에 들어온 뒤 조선일보와 민족일보 기자 등 언론인으로 일했다. 임시정부기념사업회로 범위가 넓어지기 이전에는 무려 50~60명이 일제에 붙잡혀 징역살이를 한 조선민족대동단을 기념하는 사업을 추진했다. 그는 그때 ‘항일투쟁하면 3대가 못살고, 친일하면 대대로 잘 산다.’는 말을 실감했다고 한다. 일년에 한 차례쯤 모여 식사라도 같이하는 조촐한 모임을 생각했지만, 대동단의 후손 가운데 회비라도 낼 수 있는 중산층으로 분류할만한 후손은 단 한 사람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13일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90주년 기념일. 지난해 이른바 뉴라이트 진영과의 ‘건국 60주년’ 논쟁과 관련해 김 회장에게 정부에 가장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역대 정부도 마찬가지지만 이번 정부도 첫단추가 잘못 끼워진 것 같다.”면서 “정부의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우리나라의 역사쯤은 알아야 한다. 잘된 점이든, 잘못된 점이든 자기 과거의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거꾸로 가는 나라가 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후지모리 前 페루 대통령 25년형

    한때 ‘영웅’으로 추앙받았던 알베르토 후지모리(70) 전 페루 대통령이 감옥에서 남은 생을 보내게 됐다. 7일(현지시간) 페루 특별재판부는 대규모 학살 혐의로 그에게 징역 25년을 선고했다. 이날 1심 재판에서 재판부는 후지모리가 ‘암살대’ 창설을 승인, 2001~2002년 25명이 죽은 2건의 학살사건 등 살인, 납치에 책임이 있다고 판시했다. 1980~90년대 반군과 정부군의 내전에서는 7만명이 희생됐다. 선고를 메모해가며 듣던 후지모리는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주 마지막 변론에서 “내가 물려받은 페루는 지옥 그 자체였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유죄 소식이 전해지자 수도인 리마의 재판정 밖에서는 지지자 500여명과 유가족 30여명이 “후지모리는 무죄”, “후지모리는 살인자”란 구호로 맞서며 폭력사태를 빚었다. 인권단체들은 “남미 인권문제에 역사적 전환점을 가져왔다.”며 환영했다. 2007년 12월부터 15개월간 160차례에 걸쳐 80명의 증인을 소환하면서 진행된 이번 재판은 페루를 양분시키며 정계에 ‘돌풍’이 될 것으로 보인다. 후지모리는 2011년 대선에서 유력 후보로 꼽히는 딸 게이코(33) 의원이 출마하면 상황을 역전시키겠다는 셈법을 갖고 있다. 게이코 의원도 자신이 당선되면 아버지를 사면하겠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알란 가르시아 현 대통령이 아직도 인기가 식지 않은 후지모리를 정치적 해결책으로 이용, 사면할 수도 있다고 관측했다. 이미 그는 권력남용으로 6년 징역형을 받았으며 2건의 부패사건에도 기소된 상태다. 일본계 이민 2세로 중남미 첫 아시아계 대통령인 후지모리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갈린다. 1990~2000년 재임시 그는 경제적 혼돈에서 나라를 건져냈다. 좌익 게릴라에 맞서 ‘테러국가’란 오명도 벗었다. 1996년 12월 반정부조직 투팍아마루가 리마 소재 일본 대사관에서 외교관 등 인질 72명을 붙잡고 동료들의 석방을 요구하자 반군을 전원 사살한 사건이 대표적 예다. 그러나 이후 게릴라 소탕을 이유로 학살을 방조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부정부패도 그의 발목을 잡았다. 92년 의회를 강제해산하고 헌법을 고쳐 95년 재임한 후지모리는 이후 선거부정으로 2000년 세번째 대통령직을 꿰찼다. 그러나 부패 사실이 드러나자 같은 해 11월 일본으로 도주, 팩스로 사퇴를 통보했다. 이후 2005년 ‘정계 복귀‘를 꾀하려 개인비행기로 칠레에 갔다가 2007년 체포, 페루로 압송되면서 재판에 회부됐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오락실 비리 경관 6명 파면·해임

    오락실과 관련해 부적절한 행위를 한 경찰관들이 무더기로 파면과 해임조치됐다. 내부비리 척결에 대한 경찰의 강력한 의지로 풀이된다. 경남지방경찰청은 최근 10일 새 마산과 김해에서 오락실과 관련, 부적절한 행위를 한 것으로 추정되는 경찰관 4명을 파면하고 2명을 해임 조치했다고 3일 밝혔다. 이 같은 조치는 경찰청이 최근 경찰비리 근절과 조직역량 강화를 위해 부적격 경찰관 단계별 퇴출, 비리 첩보 내사 전담팀 설치 등 ‘경찰기강 확립 및 비리척결 대책’을 마련하고 감찰활동에 들어간 이후 나온 첫 조치여서 일선 경찰관들을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 경남경찰청에 따르면 마산 중부경찰서는 2일 징계위원회를 열어 A(39) 경위와 B(38) 경사 등 3명에 대해 파면 조치를 내렸고 C(43) 경사와 D(35) 경장 등 2명을 해임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들은 지난해 10월부터 지난 1월까지 단속 대상인 오락실 관계인과 5~160회 통화하는 등 경찰관으로서 부적절한 처신을 했으며 이 과정에서 일부는 단속 정보를 사전에 알려준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은 완강하게 부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김해 중부경찰서 소속 E(33) 경사는 2007년쯤 오락실 업주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로 검찰의 내사를 받자 지난달 25일 파면 조치됐고 해당 경찰관은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경남청 감찰 담당은 “이전에는 적발된 비위 경찰관에 대해 일단 직위 해제나 대기 발령을 내린 뒤 향후 재판 결과에 따라 파면 등의 조치를 취했지만 지금은 곧바로 파면 등 강력한 조치를 내리고 있다.”면서 “내부비리를 근절하기 위해 일벌백계 차원에서 이러한 분위기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전국 시·도지방경찰청은 내부비리 척결을 위해 ‘비리내사 전담반’을 설치하는 등 고강도 감찰활동에 들어갔다. 창원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아르헨 첫 女대통령은 ‘지각 대장’ 구설수

    아르헨티나의 첫 여성대통령인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 대통령(사진). 미모의 이 대통령이 상습적으로 약속시간에 늦거나 아예 바람을 맞혀 국제적인 유명세(?)를 타고 있다. 최근 카타르 도하에선 제2회 남미·아랍국가 정상회의가 열렸다. 마지막 날인 지난달 31일 정상들은 기념사진을 촬영하기로 했지만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 대통령은 끝내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아르헨티나 정부 관계자는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체포영장을 발부한 오마르 알-바시르 수단 대통령이 정상회의에 참석했기 때문에 그와 사진을 찍기 싫어 일부러 행사장에 나가지 않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미 쌓인 화려한 전과(?)를 보면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고의적으로 불참을 한 것인지 아니면 또 지각을 해 사진촬영을 포기한 것인지는 판단하기 힘들 정도다.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약속을 어긴 건 지난해 5월부터 약 10개월 새 벌써 5번째다. 2008년 5월 15일 페루에선 제 5차 남미·유럽연합 정상회의가 열렸다. 개막에 앞서 사진을 촬영하기로 했지만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약속시간을 한참 넘겨서야 나타났다. 회의를 개막하지 못한 채 정상들은 그를 기다려야 했다. 이어 지난해 11월 15일 워싱턴에서 열린 G20 금융정상회의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또 지각을 했다. 기다리다 못한 19개국 정상이 사진을 찍고 회의장으로 발걸음을 돌릴 때서야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모습을 드러냈다. G20 정상들은 다시 줄을 서서 사진을 찍어야 했다. ’지각대장’ 대통령은 올해도 습관을 버리지 못했다. 지난 2월 9일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취임 후 처음으로 스페인을 국빈방문했다. 카를로스 1세 스페인 국왕부부는 자국을 첫 방문한 아르헨티나 대통령에게 성대한 만찬을 베풀었다. 하지만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날 지경이었다.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만찬장에 약속시간보다 40분이나 늦게 나타난 때문이다. 대통령이 ‘국왕’을 기다리게 하는 무례를 범했다고 스페인 국민들은 버럭 화를 냈다. 아르헨티나 현지 언론은 “대통령이 가는 곳마다 약속시간을 지키지 않고 있다.”면서 “국가 원수가 국가이미지에 먹칠을 할까 걱정된다.”고 한숨을 내쉬고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수능성적 시군구 단위 월말 첫 공개

    이달 말부터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성적이 시·군·구 단위로 공개된다. 학력차가 드러나게 되면서 학교간, 지역간 서열화 논란 등 부작용이 예상된다.교육과학기술부의 엄상현 학술연구정책실장은 19일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의 요청에 따라 수능 성적을 제한적으로 공개하기로 했다.”면서 “수능생의 개인정보와 학교명은 삭제하고 232개 시·군·구명은 열람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자료를 열람한 후 분석 가공한 결과 자료만 외부로 가져갈 수 있다.”고 덧붙였다.이에 따라 수능을 주관하고 원자료를 보관하고 있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수험생의 이름과 수험번호 등 개인정보와 학교 이름 등은 밝히지 않고 지역별로 일련번호만 붙여 이달말쯤 원자료를 공개할 예정이다. 국회가 평가원을 방문, 자료를 열람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교과부의 이번 결정은 지난해 9월 한나라당 조전혁 의원이 연구목적으로 자료 공개를 요청한 이후 내부 검토를 거쳐 이뤄진 것이다.지금까지 수능성적은 전국 단위를 기준으로 공개됐으나 시·군·구단위로 공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 공개에 이어 지역별 수능 성적이 외부로 공개되면서 학교간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가 외부로 가져갈 수 있는 자료를 제한한다고 하더라도 자료를 열람한 국회의원은 해당 시·군·구가 어느 곳인지 알 수 있는 데다, 학교의 경우에도 실명만 드러나지 않을 뿐 기호로 처리돼 있어 시·군·구내 학교간 격차도 알 수 있게 된다.한편 이번 교과부 결정과는 별도로 대법원에 계류돼 있는 수능 성적 공개 소송이 확정되면 성적 공개는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수능 성적 공개 소송에서 1, 2심 재판부는 “수능 정보를 공개하라.”고 판결했으며 현재 대법원 판결만 남아 있다. 박현갑기자 eagleduo@seoul.co.kr
  • 독도 첫 사업자 탄생

    ‘우리 땅’ 독도에 제1호 사업자가 탄생했다. 대구지방국세청 소속 포항세무서 울릉지서는 최근 독도에 거주하는 김성도(69·울릉군 독도리 산20)씨에게 사업자 등록증(사업자번호 506-99-○○○○○)을 발급했다고 19일 밝혔다. 김씨에 대한 사업자 등록증 발급은 김씨가 1965년 3월 독도에 거주한 최초의 주민 고 최종덕씨와 함께 1970년대부터 독도에서 전복과 미역 등 수산물을 채취, 판매하며 생활해 온 이후 30여년 만이다. 김씨는 앞으로 독도에 가판대를 설치, 방문 관광객을 상대로 수산물은 물론 기념용 사진이나 우편엽서·메달 등의 기념품 판매를 할 수 있게 됐다. 대구국세청 관계자는 “독도에 사업자가 생겼다는 것은 앞으로 일본과 영유권 분쟁이 확대돼 국제사법재판소로 넘어가는 일이 생길 경우 독도가 우리 영토임을 확인해 주는 중요한 증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대구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사법개혁 이것만은 고치자] (상) 자의적인 임의 배당

    [사법개혁 이것만은 고치자] (상) 자의적인 임의 배당

    ‘촛불재판 재촉 파문’으로 사법부의 고질적 병폐가 오롯이 드러났다. 법원 수뇌부가 합리적인 기준도 없이 특정 사건을 특정 법관에게 임의 배당해도 견제할 방법이 없고, 법원장이 재판 내용에 간섭해도 법관이 문제를 제기할 공식 통로가 없다. 대법원장이 인사권을, 법원장이 근무평정을 독점하면서 사법 관료화가 굳어졌다. 서울신문은 사법부의 구조적 문제를 짚고 대안을 제안하는 ‘사법개혁 이것만은 고치자’ 시리즈를 3회에 걸쳐 싣는다. 1984년 8월3일, 김형기 대법원 판사(현 대법관)의 집으로 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 간부가 찾아왔다. 간부는 보름 전에 임명된 신임 대법원 판사에게 ‘송씨일가 간첩사건’의 기록을 건넸다. 1년 전, 이일규 대법원 판사가 주심을 맡아 안기부의 불법 구금이 인정된다며 무죄 취지로 판결, 고등법원에 돌려보낸 그 사건이었다. 유태흥 대법원장이 이번에는, 안기부의 요청에 따라 사건을 김 대법원 판사에게 ‘임의 배당’했던 것이다. 국정원 과거사위에 따르면 김 대법원 판사는 ‘짜여진 각본대로’ 같은 해 11월 유죄 판결을 내렸다. 25년이 지난 올해, 서울고법은 사법부 과거 청산의 일환으로 송씨일가 사건을 다시 재판하고 있다. 송씨일가 사건에서처럼 어떤 판사가 사건을 맡느냐에 따라 유·무죄까지 뒤바뀔 수 있다. 때문에 배당의 원칙은 접수 순서에 따라 기계적으로 재판부에 배분하는 것이다. 대법원 예규에도 ‘사건 배당은 재판부 배당 순서에 따라 한 건씩 배당한다.’고 나와 있다. 문제는 단서 조항에서 열어둔 임의 배당이다. ‘다만 쟁점이 동일하거나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큰 사건은 배당 주관자가 적절히 배정할 수 있다.’ 배당권자가 중요 사건이라고만 판단하면 얼마든지 특정 법관에게 특정 사건을 보낼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이 기준에 따르면 송씨일가 사건의 임의 배당도 문제가 안 될 수 있다. 촛불사건의 경우 106건 가운데 62건이 기계식 배당, 44건이 임의 배당이었다. 19건은 특정 법관을 지정하고, 22건은 특정 법관을 배제하고, 3건은 특정 법관으로 범위를 좁혀 배당했다. 배당권자인 신영철 대법관이나 허만 형사수석부장은 여러 차례 배당기준을 바꿨다는 사실을 언론의 비판이 나올 때까지 대법원에조차 알리지 않았다. 사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대법원 예규 어디에도 그런 의무사항을 두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원하는 재판 결과를 얻으려고 배당권자가 자칫하면 임의 배당을 남용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번에도 단독판사의 문제 제기나 진상조사단의 조사가 없었다면 촛불사건 배당의 사법행정권 남용이 드러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제2, 제3의 ‘신영철’이 얼마든지 가능한 게 현실이다. 부장판사 출신인 문흥수 변호사는 “사건 배당은 재판의 첫 단추이기에 선진국에서는 당연히 재판권으로 판단하고 법관의 동의를 받는 게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때문에 임지봉 서강대 교수는 “배당권자의 자의적 판단이 들어가지 못하게 임의 배당할 수 있는 사건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임의 배당의 이유를 서면으로 남기도록 해야 한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김용담 법원행정처장은 “문제점이 드러난 만큼 대법원 예규 등을 고칠 방침”이라고 밝혔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사법부 인적쇄신 뇌관되나

    신영철 대법관의 촛불재판 압력 의혹이 여야간 정쟁을 넘어 전·현 정권 사이의 보·혁 갈등으로 비화하는 양상이다.신 대법관의 자진 사퇴를 종용하고 있는 민주당은 정작 신 대법관의 이메일에 등장하는 이용훈 대법원장이나 이강국 헌법재판소장의 연루 의혹이 확대될까 안절부절하는 모양새다.반면 한나라당은 이명박 정부 들어 임명된 신 대법관에 대한 야당의 공세에 “진보 진영의 공격”이라며 ‘색깔론’까지 거론하면서도 비교적 관망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때문에 여야가 서로 엇갈린 셈법을 하고 있다는 말이 정치권 곳곳에서 나돌고 있다. 표면적으로 여야는 “‘최후의 보루’인 사법부가 정쟁의 대상이 되어선 안 된다.”는 원칙론을 앞세우고 있지만 속으로는 ‘사법부 인적 쇄신’이라는 폭탄이 터질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것이다.실제로 민주당 내부에선 자칫 신 대법관과 관련된 의혹이 참여정부 때 임명된 사법부 수뇌부로까지 불똥이 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번지고 있다. 특히 민주당은 신 대법관이 지난 10일 대법원 진상조사팀 첫 출석일에 “생각할 시간을 달라.”며 무언가 중요한 결정을 내리려 하다가 다음날 다시 조사에 응한 사실을 놓고 속사정이 무엇인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일각에선 신 대법관이 용퇴를 결심하고 윗선에 사퇴의사를 밝혔다가 어떤 이유 때문인지 만류를 당했다는 소문도 들린다. 지난해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참여정부 당시 임명된 대법원장이나 헌재소장 등에 대한 인적 쇄신 문제가 거론됐던 게 이번 사건을 계기로 현실화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곁들여지고 있다.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인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12일 당 안팎의 우려에 대해 “안 그래도 여러 소리를 듣고 있다. 하지만 설마 정부와 여당이 그렇게(사법부를 흔들려고)까지 하겠나.”라고 말했다. 박 의원은 그러면서도 “이명박 정부가 모든 현안을 게임논리로 풀려고 하다가 나라를 곤경에 빠뜨렸는데 사법부 문제까지 게임논리로 풀어가려 한다면 굉장히 위험한 사태를 불러올 수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도 이날 당 제1정조위원회 주최로 열린 촛불재판 개입 사건 관련 정책토론회에서 “신 대법관은 스스로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고 적절히 처신하는 것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란 것을 자각해야 한다.”며 거듭 신 대법관의 조속한 사퇴 결단을 촉구했다. 신 대법관의 사퇴로 이번 사태가 마무리되길 바라는 민주당 내부의 기류를 반영한 것으로 읽혀진다.여야의 엇갈린 셈법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한 법조인은 “사법부의 문제를 정치적 잣대로 판단해선 안 된다.”면서 “사법부 문제는 사법부 스스로 풀어가야 하는 게 원칙”이라고 강조했다.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미네르바 옥중보고서…‘유동성 함정’이 걱정

    ‘미네르바’가 옥중에서 다시 한국 경제의 앞날에 대한 걱정을 털어놓았다.  인터넷 포털 다음의 아고라에서 ‘미네르바’란 필명으로 활약하다 검찰에 의해 구속 기소돼 17일 첫 공판을 앞두고 있는 박대성(31) 씨가 변호인을 통해 한국 경제를 전망하는 19쪽 짜리 글을 재판부에 제출했다고 인터넷한겨레가 11일 보도했다.  박씨는 최근 며칠치 신문과 하루 1시간씩만 시청할 수 있는 텔레비전 방송을 참 고해 공책에 이 글을 썼으며 변호인이 타이핑해 법원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한국경제 진단 글이 공개된 것은 지난 1월 검찰에 검거된 직후에 이어 두 번째.  박씨는 글에서 개방도가 높은 한국 경제가 전지구적 달러 강세 속에서 환율불안 피해를 계속 입을 가능성이 높고,기준금리를 낮춰도 돈이 돌지 않는 유동성 함정의 징후들을 보이고 있다고 경고했다.그는 “실질소득 감소에 따른 소비구매 여력은 과연 정부가 어떤 식으로 상쇄시켜 주느냐에 따라 경기 회복속도가 2009년 연내일지 2011년으로 대폭 장기침체로 빠지는지가 결정되기 때문에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의 재정지출을 통한 가시적인 효과가 나오는 2009년 3/4분기와 맞물려 국내 경기 리싸이클의 회복 속도가 결정된다.”며 “그에 따라서 개인적 차원에서 경기방어전략이 달라진다.”고 결론내리고 있다.  박씨는 이 글과 함께 자신에게 적용된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1항에 대한 위헌심판제청 신청서를 함께 제출했다.  다음은 ‘보고서’란 제목으로 법원에 제출된 글의 전문.    미네르바 ‘옥중 보고서’  현재 글로벌 경제 위기에 따른 한국 경제의 위기라는 걸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1997년 제 1차 IMF 사태가 왜 발생하게 되었는가 하는데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 이유는 지금의 한국 경제 상황이라는 것은 1997년 제 1차 IMF의 연장선에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IMF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와 그 후의 한국에서의 IMF사태, 그리고 현재 동유럽 사태에 대한 상호 연관성의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 IMF 탄생 배경  1997년 하반기 한국경제는 IMF 사태라는 특수한 경제 위기 상황을 겪게 된다. 그래서 한국 국내에서는 IMF사태라는 것이 일종의 고유명사로 사용된다. 하지만 현재의 위기상황의 뿌리와 그 근원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IMF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약간 진부한 이야기부터 시작을 해야 한다. 때는 1929년 미국 대공황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1930년대 대공황 이전에는 미국과 유럽간의 통제 받지 않는 무제한적인 자본의 상호 이동이 가능하였다. 그 당시에는 이런 상호 자본 이동에 제한이 없을 때에만 비로소 그에 따른 시장이윤 창출이 극대화 될 수 있다는 것이 종교적 신앙처럼 뿌리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브레튼우즈 체제의 모태가 되는 케인즈는 그렇게 보지 않았다. 그 이유는 그 당시의 시대적 배경에 기인한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초토화 된 유럽에 투하된 자본이 당시 무역 흑자국이던 미국에서 → 유럽으로 흘러 들어가지 않고, 유럽에서 → 미국으로 역류하는 현상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하여 실물경제 재건에 사용되어야 할 자본이 미국시장으로 역류하게 되는데 이를 케인즈는 투기자본이라고 불렀다.    이런 문제점들을 지켜보면서 1944년 미국 뉴햄프셔에서 소위 브레튼우즈 체제라는 것이 만들어 지게 된다. 브레튼우즈 체제의 핵심은 모든 회원국들의 통화는 달러에 대한 고정환율로 정하고, 이는 결과적으로 막대한 유동성 자본에 대한 족쇄로 제약과 통제가 따랐지만, 이것은 자본왕래에 따른 이윤 창출의 제한이 엄청난 성장률을 보이는 국제 상품 무역으로 보완이 되는 결과로 나타나게 된다.    이 브레튼우즈 체제로 인하여 파생된 보완장치 성격의 기관이 IMF 국제통화기금이라는 것이다. 즉 케인스가 유도하고자 하였던 국제 자본 유동성에 따른 폐해를 고정 환율의 안정적인 통화시스템 하에서 상품교역으로 보완하고, 이 과정에서 IMF(국제통화기금)는 대규모 무역적자와 국제 수지적자를 겪는 나라에 다시 신용대출을 해 줌으로써 무역 당사자간 국제 무역 수지의 불균형 밸런스를 조정하는 완충기구로써 만들어진 기구였다.    이로써 이 브레튼우즈 체제 이후 25년간 G7내의 주요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3 ~ 4%대를 육박하고 경제 규모는 3배 이상 확장하게 된다.    그래서 1953년 전후 한국경제가 1973년 브레튼우즈 체제의 파기 시점까지 폭발적인 수출 신장세와 고도의 경제 성장률을 구가할 수 있었던 뿌리가 시스템적 관점에서 브레튼우즈 체제로 인한 유동성 자본 규제에 따른 상품교역의 보완이라는 측면이 적용하게 된 것이다.    이와 함께 GATT체제 하에서 이른바 개도국 특권에 따라서 한국, 대만과 같은 나라는 고도의 경제 성장을 구가하게 되는데, 이는 1995년 WTO 체제 이후 그 성격을 달리함에도 불구하고 한국경제 모델에 기반한 아시아적 모델을 가리키는 말로 재포장되어 불리게 된다.    ▶ 체제의 붕괴  1969년 베트남 전쟁의 발발로 인한 막대한 전비지출의 필요성으로 미국 중앙은행은 결국 전비 지출을 위해서 대대적인 발권력을 동원하게 된다. 그로 인하여 전 세계적으로 달러 유동성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이러한 과잉 통화 유동성으로 미국 국내의 인플레이션을 유발시킴과 동시에 달러 가치는 하락하게 된다.    달러 가치의 하락으로 은행은 유럽 내 주요 기업에 싼 이자로 달러를 빌려주게 되었고, 기업은 고정환율로 달러 → 마르크를 교환했다. 그 결과 독일의 마르크, 프랑을 비롯한 유럽 내 주요국 통화는 달러 대비 통화 절상 압력을 받게 된다.    그래서 그 당시 서독 연방은행은 계속 마르크로 달러를 사들여 달러 대비 마르크화의 통화 절상 압력을 상쇄시키려고 했으나 중앙은행의 인플레이션 압박요인과 재정적 지원을 더 이상 충당하기 불가능해지게 되는 단계가 오자, 1973년 브레튼우즈 체제는 공식 파기 된다.    그 당시 서독 중앙은행 차원에서는 인플레이션 상승 부담 때문에도 파기가 불가피했다. 전통적으로 독일은 1920년에 살인적인 하이퍼인플레이션의 피해를 당한 당사국이기 때문에 서독 중앙은행 차원에서의 제1차 정책목표가 물가 안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 위기의 시작  1973년 브레튼우즈 체제의 붕괴 이후 그 전까지 제한을 받던 유동성 자본이 수면위로 올라오게 된다. 기존 금융권 내에 있던 은행, 보험, 펀드를 포함한 최일선 기업들까지 총망라한 모든 경제 주체들에 대한 외환, 채권지대의 제약이 전면 해제되었다.    그로인하여 1998년 기준으로 채권거래는 1973년 대비 230배가 증가한 20조~24조 달러, 외환거래는 1일 기준 1조 2천억 달러의 유동성 자본으로, 금융산업 분야는 폭발적인 성장세를 구가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 하에 1973년 ~ 1982년 사이에 총 1조 달러를 넘는 해외 대출이 발생하게 된다. 이중 전체 포지션의 50%가 남미로 가게 되는데 이를 기반으로 산업화 플랜을 단행하게 된다.    하지만 1982년 문제가 터지게 되는데 당시 1982년 미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기준 금리를 20% 이상 올리게 된다. 그 이유는 제 ‘2차 오일쇼크’의 여파에 따른 비용증가, 인플레이션을 상쇄시키기 위한 조치로 이 조치로 인하여 해외 대출이 투입된 남미를 포함한 이머징마켓은 일대 타격을 받고 경기 후퇴를 하게 된다.    이러한 고이자율 정책은 주요 달러 채무국들의 이자비용을 3배 이상 증가 시켰는데 미국의 이러한 조치로 인하여 주요 유동성 화폐 자산이 투입된 곳은 기존 통화 포지션이 달러로 교체된다.    그 결과 1980년대 초반 미국 달러 통화는 G7내 주요국 통화대비 평균 35% 절상된다. 동일기간 멕시코 폐소화는 반년만에 -60% 폭락하게 된다.    결국 남미 부채위기의 핵심 원인은 80년대 초반 미국 통화정책의 고이자율로 3배 이상 커진 이자 부담과 달러포지션 변경에 따른 자본의 해외 도피 → 그로 인한 미국 통화의 급격한 환율 인하에 기인한다.    1982년 당시 미국 FRB(연방준비제도이사회)와 미 재무부는 미국 국내은행의 남미 크레딧 라인에 문제가 생기면서 발생한 멕시코 사태 수습을 위한 즉각적인 재정 투입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예산 집행에는 반드시 미 의회의 사전승인 없이는 불가능해지자 IMF를 간접 이용하여 브리지론(Bridge Loan)이라는 IMF 고유기능을 IMF 가맹국이 아닌 범위로 확장을 통해 지원 프로그램을 하게 된 배경이 이것이다.    원래 IMF의 기존 역할은 창설시 가맹국에 공여하는 브리지론 (Bridge Loan)을 중재하는 것이었으나, 고정 환율제가 변동환율제로 바뀌면서 브리지론 중재 필요성은 상실 되었다. 그 후 멕시코 사태가 터지면서 브리지론의 필요성이 미국 FRB와 미 재무부의 필요에 따라 상황에 맞게 용도가 리모델링이 되어 변경된 것이다.    문제는 멕시코에 IMF 지원을 해주면서다. 멕시코의 자본시장 국유화, 국영기업 민영화, 국내시장 개방 → 국가 지출의 극단적인 삭감 → 변동 환율을 안정시키기 위해 달러보다 폐소화에 투자하는 것이 이익이 될 정도로 폐소화의 이자율 상승, 결국 이러한 극단적인 이자율 상승은 국내 산업 붕괴와 은행 시스템 붕괴를 동반하면서 독자적인 자본시장 형성이 불가능해졌고, 고이자율에 따른 → 해외자본유입 = 해외 자본 종속으로, 결론적으로 경제 발전은 정체되고 부채 증가로 이어지게 된다.    1980년대 이후 많은 남미, 아프리카 국가들이 IMF 지원 프로그램을 받게 되는데 미국은 IMF를 이용하여 자본의 접근 통로를 장악하고 IMF의 영향력 확대를 노릴 수 있었다.    그 이유는 사회 간접 자본(SOC) 건설을 위해서는 해외 차관이나 개발원조금은 IMF 조건과 연계시키면서 승인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에 이러한 자본 통제력으로 액수가 문제가 아니라 IMF가 주체가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IMF 구제 금융을 통한 IMF 체제에 있을 경우 해외자본을 유지하려면 차관 제공자는 상대국가와의 계약체결에 앞서서 반드시 IMF나 세계은행의 사전 승인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조건부 차관』이 문제가 되기 때문에 2008년 하반기 IMF 지원을 한국 먼저 받으라는 제안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결국 미국 국채 보유국의 달러 국채 물량이 시장에 나오는 걸 사전에 막기 위해서는 FRB 달러 스왑 국가가 아닌 나라도 임시 달러 스왑 지정국으로 지정해서 각 보유 국가의 달러 국채 보유 물량 비용 대비로 인출을 해 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100억, 500억 달러도 아닌 300억 달러인 이유가 바로 이런 이유인 것이다.    ▶ 아시아 위기  한국이 태국, 인도네시아 등의 아시아 이머징마켓들은 높은 수입 관세를 통해 국낸 산업을 보호 육성하고 외국과의 자본지대는 무역을 위한 결제에만 국한 시켰다 국가가 직접 개입해서 조달한 차관을 배당하고 대기업을 육성하면서 폭발적인 성장률을 구가하게 되었다.    1994년 한국은 OECD 가입을 통해서 유럽, 일본, 북미 시장에 쉽게 진입을 하려 했으나 일반 무역 통상 부분 이외에 금융시장 부분은 정부의 통제 하에 두려고 했다.    이는 국내 저축된 재원만으로도 산업개발을 위한 재원 도달에는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당시 김영삼 정부는 정치적 이유로 그 당시 대통령 본인이 OECD 가입을 기정사실처럼 떠들고 다녔다.    그 후에는 OECD내에서 미국의 거부권 행사로 인해 금융시장 개방 부분의 문제는 미국의 의도대로 해외 차관 수용과 유가증권의 거래 등에 대한 국가 통제는 붕괴된다.    그로 인하여 1994년 3/4분기 이후부터 3개월 만기 달러차관 도입을 허용하게 되는데 한국의 높은 경제 성장률상 그로인해 수반되는 인플레이션 상승 압력에 대해서 한국의 중앙은행은 통화 긴축 정책을 유지해서 인플레이션을 통제 하고자 하였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하게 된다. 높은 이자율에 도달되고 통제 받던 원화 크레딧보다 그 당시 달러 크레딧이 역으로 더 싸지면서 (조달비용 = 원화 크레딧>달러 크레딧)인 상황에서 그 당시 유럽에서의 조달비용에 0.3% ~ 0.5%미만의 가산 금리로 계속 달러 크레딧을 기업에 제공하게 되었다.    이 상황에서 이 단기 차관을 기업들은 대규모 시설 투자가 동반되는 5년 ~ 10년 만기의 장기리스 산업에 단기차입금으로 동원하게 된다.    왜냐하면 1997년까지는 국내에 있는 단기 달러 차입금은 매달 규칙적으로 롤오버가 되면서 만기 연장도래가 있었고 이미 국내에 충분히 많은 달러가 돌고 있었던 상황에서 크게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 때 태국에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한국, 대만을 포함한 동아시아 이머징마켓들은 자국의 수출 경쟁력을 유지, 확보하기 위해서 태국의 바트화 공격으로 인한 환율 폭락 즉시 주변국가의 자국 통화 절하 압력을 받게 된다.    이는 달러 채무에 대한 금융비용이 극단적으로 상승하게 된다. 한국을 포함한 신흥 국가들이 달러 크레딧 가운데 60%정도가 단기 채무였다. 이 경우 크레딧 라인(신용한도)철회시 달러 유동성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그리하여 정부 차원에서 IMF에서 달러 크레딧을 조달해 유동성 문제를 해결하려 하였으나 IMF는 82년 멕시코 사태의 경우와 똑같은 해결책이 제시되었다.    그 중 하나가 고이자율 정책이었다. 결국 각국 중앙은행의 국내 이자율은 20% 이상 유지되었다.    이것은 IMF의 의도대로 신규달러 차입을 유도하지 않고 역설적으로 기업과 은행 파산을 동반하면서 내수 시장 붕괴에 따른 대대적인 경기 침체를 불러오게 된다.    대량해고와 투자 설비, 소비재 판매가 수직하강하게 된다. IMF는 고이자율과 국영기업 민영화 국내기업에 대한 외국인 지분 참여 제한 철폐, 노동시장 유연화 조치를 포함한 모든 규제 철폐, 특히 자본투자자들에 대한 규제철폐가 핵심이었다.    이것이 현재 한국 시장이 이머징 마켓 중에서 가장 외국인 자본거래가 자유로울 수 있었던 이유다.    문제는 대외 시장 변수에 국내 경제가 연동된다는 것이다. 태국과 멕시코, 인도네시아를 포함한 IMF지원 프로그램의 문제점이 노출되던 상황에서 그 의심스런 처방은 한국에 그대로 적용하게 된다. 즉 한마디로 알고 했다는 것이다.    그 후는 모두 알고 있는 IMF프로그램이라 불리는 고통스러운 진행과정이 진행되게 된다. 한국 국내의 만기 달러 차관의 상환은 미국 FRB와 미재무부의 중재를 통해서 3년 이상 상환이 연장되게 된다.    그 당시 IMF는 필리핀, 태국, 인도네시아, 한국에 지원프로그램이 발표될 당시 한국의 경우는 510억 달러의 크레딧 원조를 해 주겠다고 하였으나 이 금액을 모두 지원할 필요도 없었다.    이것은 표면상의 발표수치이고 일본+독일 중앙은행이 그 후 즉시 한국에 100억 달러의 유동성 자금을 공급하고 미국은 만기연장만 해 주면 자동으로 끝날 일이었다. 극히 간단한 일이였다.    그 후 환율에 따른 수출도 들어온 달러와 외국은행들이 신용 대출금 회수를 중단하면서 위기는 종식이 되었다. 이때 채권은행들은 만기 연장된 모든 신용 대출에 대해 국가 보증을 요구하면서 추가 이자 부담요구안이 나오게 된다.    3년 기한의 상환 연장의 경우는 리보 +2.7 ~ 3%가산 금리의 이자 부담을 지게 되면서 저렴하게 차입된 단기 달러 채무가 고금리의 3년 기한 미만으로 롤오버 되면서 연장된다. 이것은 매력적인 장사가 되었다.    그 후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외환위기를 겪고 있는 나라가 채무를 갚기 위해서는 달러나 엔화를 계속 차입해 와서 채무를 갚는 길 뿐이었다. 이를 위해서 남은 마지막 수단은 그 동안 수십년 동안 산업화 과정을 통해 조성한 국내 자본재를 해외 기업이나 투자자들한테 파는 길 뿐이었다. 그에 따른 세금 인하를 포함한 모든 특혜조치들이 이루어 졌다.    그로 인하여 산업계와 금융계를 포함한 은행, 보험 쪽을 비롯해서 외국인 투자 제한 철폐를 통한 싼 매물 수집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결국 한국 국내에서는 글로벌 스탠다드로 포장되고, 미국 상무부와 월스트리트에서는 10년 동안의 수익을 단 1년 안에 한국에서 뽑았다느니, 아시아 외환위기는 평생 한번 올까 말까한 포트폴리오 투자 기회라는 소리를 공공연하게 떠들고 다닐 수 있었던 것이다.    현재 S&P나 무디스나 한국 국내 은행들의 신용등급을 국가 신용등급에 맞추어 조정을 하는 이유는 이와 같은 과거에 학습된 내용을 기반으로 한다. 그래서 IMF사태라고 하는 것이 단순히 정책적 실패로 합리화되고 잊혀 지면 끝나는 수준이 아니라 반드시 책임 소재를 가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와 똑같거나 유사한 일이 순환 반복이 된다.    결국 1997년 제1차 IMF 사태의 핵심적이고 근본적인 뿌리는 OECD가입 당시부터였다. 한창 민감한 협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금융시장 부분협상을 할 경우 마지막으로 제시할 수 있는 카드가 대통령 개인의 정치적 목적에 따른 발언으로 OECD가입을 지정 사실화 시키는 바람에 최종 협상은 거기서 끝이 난 것이다. 그 후 과정을 거치면서 IMF단계를 거치게 되고 IMF는 82년 멕시코 사태부터 그 IMF 고유 기능의 변화와 확정을 거치면서 97년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을 거쳐 한국으로 전이되면서 유동 자본에 따른 이윤 극대화라는 것을 보여주게 된다.    ▶ 동유럽 사태의 발생  동유럽에 대해서 이해를 하기 위해서는 이 지역의 특수성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동유럽의 전략적 중요성은 과거 냉전체체 하에서의 군사적 측면에서의 나토 군사 안보적 측면에서의 대립을 통한 동.서방간의 유럽지역내의 완충지역이라는 성격에서 이제는 석유, 가스송유관의 중간 경유지로써의 경제적 관점으로 그 포커스가 옮겨지게 된다.    현재 유럽 연합내 서유럽에서 러시아에서 생산되는 가스의 90%가까이 소비가 되는 상황이며 2020년까지 50%이상 증가추세 속에서 유럽연합은 중동지역내의 에너지 의존도 축소와 북해에서 생산되는 원유.가스 생산량의 감소분을 메워줄 새로운 대안을 찾게 되는데 이것이 러시아다.    에너지 접근권에 대한 전략적 문제에서 동유럽의 정치.경제적 불안정은 곧바로 서유럽의 경제적 타격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지속적인 EU 편입노력과 그에 따른 차관제공을 통해 동유럽의 경제적, 전략적 가치는 올라가게 된다.    2006년 현재 러시아는 유럽에서 소비하는 가스의 25%, 2020년까지 70% 가스를 공급해 주는 주요공급원이기 때문이다.    총 조달 수요의 80% = 러시아 - 우크라이나 - 슬로바키아 - 체코 - EU공급라인(드 루바 라인), 20% = 러시아 - 벨로루시 - 폴란드- EU공급라인으로 통행료를 받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른 추가적인 복합적인 요소들과 맞물려 동유럽은 서유럽 자본의 대거 유입으로 연 10%에 가까운 고도성장을 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2008년 3/4분기 이후 제 1차 금융위기가 진행이 된다. 2007년 4,010억 달러의 자본유입액이 2008년에 오면서 670억 달러로 축소되면서 유가 폭락이 겹치면서 동유럽 주주의 주요통화 가치는 50% 이상 폭락하게 된다.    이것은 결국 일반외환자금으로 대출을 받았던, 가계의 부채로 직결되면서 금융시스템이 붕괴하면서 IMF에 헝가리, 우크라이나, 라트비아가 구제 금융을 요청하게 되었으며 폴란드와 체코가 검토에 들어가게 된다.    문제는 동유럽에 대출된 1조 5천억 달러가 서유럽 내 주요은행에서 대출이 된 구조가 최대 40배까지의 레버리지(Leverage: 대출금/자본금)를 높여서 대출이 이루어진 상황에서 대규모 부도 리스크 압력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동유럽에 대규모 구제자금을 쏟아 부을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는 유로론 내의 독일내의 금융시장 안정화, 은행 국유화가 검토가 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동유럽 은행의 총 부채 규모는 1조 5천억 달러 이상의 90%가 서유럽과 해외자본으로 구성된 상황에서 달러 대비 유로화 하락 압력은 유럽내 동시하락으로 이어지고 이는 선진국 증시를 거쳐 신흥시장으로 전이된다.    그 핵심적인 이유는 현재 2008년 9월 기준 한국의 총 외채의 60%가 유럽계 은행 포지션이다. 이 상황에서 동유럽에서 막대한 손실을 볼 경우 한국론이 만기연장에 문제가 생기거나 추가 가산 금리를 요구하게 된다.    또한 대규모 선박 금융 제공을 하고 있는 유럽계 은행들이 자금압박을 받게 되면 자금 압박으로 인한 선박 주문 취소와 대금지급 지연에 따른 만기 환율 하락요인이 발생한다. 또한 동유럽에 대한 한국의 수출 비중이 7~8% 내외인 상황에서 수출감소로 이어지는 상황이며 동유럽에 한국직접투자 FDI 비중이 90% 내외인 상황에서 동유럽내의 환율변동에 환차손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CDS 프리미엄의 상승과 기준금리 인하에 따른 단기 채권으로의 집중현상과 국내 미청산 엔케리 청산 압박으로 인한 자본유출로 환율의 추가 상승 압박을 받게 되는 것이다.    통상적으로 달러는 대규모 재정지출을 위해서 발권력을 동원해 돈을 찍어 내면 다른 준기축 통화인 엔화나, 유로화, 금 가격에 연동을 하여 달러 약세로 돌아서게 된다. 그러나 이런 것은 정상적인 시장 작동 상황에서만 그렇다.    극히 간단하게 말하자면 세계의 주요 경제 권역인 미주, 일본, 유럽연합의 통화 경제권에서 한쪽 경제권이 침체기거나 통화 정책 조정으로 통화 약세일 경우는 달러 약세 ↔ 엔화 강세가 성립이 되지만 미국, 일본, 유럽의 주요 경제란이 동시에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서는 상황에서는 기축 통화인 달러가 안전 자산으로 달러강세로 돌아서는 것이다.    이것이 역설적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2008년 3/4분기 이후 제1차 금융위기 당시 달러를 찍어 낼 때는 미국 경제에 대비해 일본 경제와 유로론은 상대적으로 경제 펀더맨탈이 견고하다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달러 발권력 동원에 따른 달러 약세는 당연하였으나, 2009년으로 바뀌면서 유로론의 동유럽 사태와 일본의 경제 성장률 하락과 1조엔에 달하는 무역수지 적자로 인하여 상대적으로 금과 달러가 안전자산의 성격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금은 인플레이션 방어성격의 자산이지만 현재 경제 성장률이 3대 경제권의 동시 다발적인 마이너스 성장으로 인한 디플레이션 압력이 달러를 찍어내면서 달러 화폐 유동성이 증가함에 따른 인플레이션을 상쇄시켜 버리는 것이다. 그로 인하여 금값이 올라가면서 달러강세가 지속되는 원인 중 하나가 이것이다.    결국 시장불안으로 인하여 안전 자산인 금과 미 국채로 자금 수요가 집중이 되는 상황에서 10년 만기 미 국채 수익률은 지속적인 하락세로 돌아서게 된다.    현재의 엔화 변동에 대한 이해를 하기 위해서는 1995년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1995년 당시 엔화는 79엔의 달러 대비 초강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 당시 일본 재무성 차관인 사카키 바라 에이스케는 미국에 가서 미국 달러 국채 매각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 논의를 하게 되었다. 통상적으로 1달러=85엔대 밑으로 떨어질 경우 일본 은행들은 신용 대출 결손으로 타격을 받는 구조였다.    이 상황에서 시장에 미국 국채 매물이 나올 경우 미국 국채 가격은 떨어지면서 채권가격 하각은 이자율 상승을 동반하게 된다. 그러면 미국 전체 자본 시장의 이자율이 올라가면서 미국 경제에 타격을 입히게 되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 일본, 유럽 중앙은행들의 공조하에 대규모의 달러 매입을 통한 환율 조정의 노력으로 1달러 = 100엔이 그해 4/4분기 이후 돌파되었고, 97년 까지 -60% 엔화가 평가 절하 되었다.    이는 2003년으로 넘어가면서 반전하게 된다. 장기간의 무역흑자에 따른 주적으로 엔화가치가 급등하면서 2002년 130엔 → 2004년105엔 대로 급상승하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일본 정부는 정부 차원에서 35조~40조엔을 투입하여 대대적인 달러 매수를 하여 엔화를 평가절하시킨다. 이때 매수한 달러가 미국 국채에 그대로 재투자 되었으며 2002년 - 2004년까지 매입한 미국 국채가 3,500억 ~ 4,000억 달러 수준으로 이때부터 일본에서 미국 국채를 사 모은다는 소리가 나오게 된 이유가 그것이다. 현재 5,800억 달러 상당의 미 국채 보유량의 상당부분을 사 모은 이유가 이것이다.    현재 80엔대에 육박하는 엔화가 97엔대 후반으로 절하되는 이유중 하나가 일본 경제 자체에도 있지만 현재 2조 달러에 달하는 미국 국채물량을 소화시키기 위해서는 국가간 공조가 필요하기 때문에 미 주무장관인 힐러리가 일본 방문시 이 이야기부터 꺼낸 이유가 이것이다.    이는 향후 두가지 변수에 따라 작용하는데 오바마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기간에 맞춘 추가 엔화 평가 절하와 미국 GM-크라이슬러의 자동차 구조조정에 따른 미국 국내 자동차 노조의 압력에 따른 추가 엔화 절하 타이밍을 잡는 것이다. 그래서 티모시 가이트너 미재무장관이 취임전부터 ?강한달러?를 떠들고 다닌 이유가 이것이다. 그것은 1995년 당시 미 재무장관이 로버트 루빈이 취한 액션과 똑같은 것이다. 강한 달러의 달러 강세를 만드는 것은 두가지 측면에서 봐야한다.    국제공조와 통제가 가능한 일본과는 다르게 달러 약세와 그로인한 달러대비 자산손실이라는 측면이 중국에서 심각하게 제기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의 총외환보유고는 1조 9천억 달러가 넘어가는 상황에서 중국에서는 닥치는대로 달러자산에서 실물자산으로 옮기는 이른바 자원외교도로 불리는 작업을 하는 이유가 반드시 자원확보 측면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부족한 천연자원을 싼 값에 확보하고 글로벌경기회복에 따른 차익기대측면도 있지만 핵심적인 이유는 미 부채 등 달러자산에 편중된 외환보유고 투자의 다변화가 핵심이다.    현재의 천문학적인 미 국채발행의 압력으로 미 국채수익률은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상황에서 달러약세로 달러표시 자산의 폭락은 중국입장에서는 재앙이다. 그래서 최소한 2009년도에 관해서는 자의든 타의든 달러강세기조로 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배경을 깔고 단기 달러강세가 기정사실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은 한국경제에 새로운 도전으로 작용하게 된다. 달러강세에 따른 국제원자재가격의 하향안정세는 단기적으로는 물가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 부담요인을 덜어준다. 그래서 한국은행에서 금리를 2%대까지 끌어내릴 수 있었던 핵심이유 중 하나가 이것이다.    하지만 달러강세 기조 속에 2조 달러에 달하는 미국국채발행과 중국, 일본의 자국경기부양을 위한 추가 국채발행은 한국을 포함한 주요 이미 이머징 마켓에 외환달러자금유동성에 심각한 제약을 가하게 된다.    이로 인하여 80%에 육박하는 무역의존도와 IMF로 인한 높은 대외 개방도로 인하여 외국인 투자감소와 자금이탈과 무역금융 감소에 따른 수출부진과 무역위축과 그에 따른 환율불안 등의 피해를 발생시킬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에서 추가로 금리를 내려서 유동성을 증가시키겠다는 것은 극도로 위험한 생각이다.    이 경우는 CP 매입을 통한 개입이나 회사채매입을 통해서 개입을 하는 선에서 조정이 되어야지, 이 상황에서 추가 금리인하는 환율상승의 추가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이미 지금 상황은 통화정책으로는 소비와 투자 활성화를 기대하기는 무리인 부분적으로 유동성 함정의 리스크 징후들이 보이기 때이다.    금리를 내리면서 CP금리가 떨어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일부 우량회사채를 제외한 회사채 금리는 떨어지지 않고 있다.    그와 더불어 금리인하에 따른 생산과 투자위축은 금리정책의 한계가 왔다는 걸 의미한다. 그래서 일반 재정지출 확대를 통한 경기부양을 시도하게 되는데 국채를 발행해서 재원을 조달할 경우 금리를 내려 원화유동성을 늘린 화폐 유통량이 국채발행을 통해서 유동성이 다시 역으로 흡수가 돼버린다.    그러면 회사채발행에 따른 기업운영자금 조달에 제약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정부가 대규모 국채들 발행하면 상대적으로 리스크가 높은 회사채 불량은 시장에서 소화가 거의 불가능해진다. 이래서 중앙은행의 국채직접매입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는 부차적인 최소한 부작용을 최소화시켜준다.    우량회사채의 발행물량은 시장에서 소화가 되지만 비유량회사채의 경우는 매수세가 몰리지 않으면서 양극화 현상이 벌어지게 된다. 결국 신용보증기금이나 기술보증을 통해서 자금조달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환율급등에 따른 일방적 납품단가 인하요구와 발주취소, 납품업체변경 등을 통한 피해 부분에 대해서도 소규모기업은 열외대상이며 고용보험료 연체에 따른 소액압류가 있어도 사실상 대출은 불가능에 가까운 상황이다.    결국 구조조정 지연을 통해서 2008넌 3/4분기 ~ 4/4분기에 걸린 3개월 ~ 6개월의 시간 소요를 통해서 선제대응 타이밍이 늦어짐에 따라 은행 자체적인 구조조정에 따른 대손충당금과 경기하강에 따른 기업, 개인연체율 상승에 따른 BIS비율하락에 대비한 자본적립을 통해 자금시장이 사실상 경색되었으며 이로 인하여 금리를 추가로 낮추어도 자금이 돌지 않는 유동성함정에 빠질 공간이 커지게 되는 것이다.    결국 대외적으로는 미 국채발행과 그로 인한 미국경제 경기부양을 통한 달러강세는 최소 2009년 하반기 ~ 2010년 1/4분기까지는 재원도달을 마련하기 위해 불가피한 상황이며 단기적으로 이와 연등하여 동유럽 리스크로 인한 달러 조달 금리 상승압력과 환율상승압력은 불가피한 상황에서 금리는 동결, 금리 추가 하락시 환율상승압박요인에 따른 자산포트폴리오의 부분적 변경으로 방어하는 전략이 유효하며 현재 한국 경제는 미국, 일본과 같은 디플레이션 방어성격의 통화정책이 아니기 때문에 이점은 각별히 주의해야한다.    미국, 일본, 중국은 디플레이션 초기 대응전략으로 기조가 가고 있지만 한국의 경우는 디플레이션이 아닌 디스인플레이션이라는 상황적 인식하에 경기하강과 -2% ~ -4%이하의 성장률을 겪는 이색적인 체험의 시간이 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실질소득 감소에 따른 소비구매 여력은 과연 정부가 어떤 식으로 상쇄시켜 주느냐에 따라 경기 회복속도가 2009년 연내일지 2011년으로 대폭장기침체로 빠지는지가 결정되기 때문에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의 재정지출을 통한 가시적인 효과가 나오는 2009년 3/4분기와 맞물려 국내 경기 리싸이클의 회복 속도가 결정된다. 그에 따라서 개인적 차원에서 경기방어전략이 달라진다.    중국의 경우도 경기부양자금으로 800조원이 풀렸다. 그로 인하여 중국증시가 올라가는 이른 바 시중에 돈이 많이 풀리면서 유동성장세에 따른 증시부양이라는 착시현상이 벌어졌다. 중국 역시 수출이 총 GDP의 40%를 차지하고 상당기업의 60%가 영업이익 적자를 통한 적자기업이었음에도 2009년 1월 기준 수출(전년대비): -17%, 수입: -43%로 수입감소량 ≫ 수출감소량을 능가하면서 대규모 무역흑자구조가 나는 것은 한국과 동일하다. 이는 결국 수입감소율이 증가한다는 것은 결국 소비가 급감하면서 내수가 망가지고 있다는 징후로 밖에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을 보면서 앞으로 어떤 생존플랜이 나오면서 개개인이 준비를 해 나갈지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게 될 것이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사찰 문화재관람료 반환 판결 논란 확산

    ‘사찰의 문화재 관람료 징수는 찻잔 속의 태풍.’의정부 지법이 소요산 자재암에 대해 ‘문화재관람료를 원고에게 반환하라.’는 판결을 내린 것과 관련해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등산객과 시민·사회단체는 ‘단순 통행객에 대해서도 무리하게 징수하는 문화재 관람료는 부당하다.’며 판결을 환영하고 있고 불교계는 ‘사찰 문화재의 유지·관리비 확보를 위한 불가피한 징수’라며 반발하고 있다. ●정부는 여론 의식한 채 관망 소요산 자재암은 의정부 지법의 판결이 있은 뒤 즉시 항소한 상태. 등산동호회와 시민·사회단체들은 항소심 판결에 대비한 대응방안을 준비하고 있고 불교계도 사찰 주지 모임 등을 통해 항소심 판결에 따른 대책 마련에 나섰다. 따라서 3~6개월 뒤 있을 항소심 판결은 또 한 차례 큰 파문을 몰고 올 전망이다. 이와 달리 국립공원 문화재관람료 징수와 관련한 주 당사자인 조계종 총무원과 환경부, 문화재청은 관망하고 있는 형편. 환경부와 문화재청은 판결 이후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고 조계종 총무원도 종단의 입장을 일절 드러내지 않고 있다. 당사자들이 이번 판결과 판결 이후의 논란에 대해 보이고 있는 이같은 관망 자세는 일단 사안 자체가 그동안 논란을 불러왔던 문화재 관람료 징수 문제의 본질과는 차이가 있기 때문. 원고인 소요산 자재암이 국립공원이 아닌 국민관광지로 분류돼 있는 데다 소송 자체가 사찰의 일부 지역에 국한된 소액재판이라는 점이다. 특히 국민관광지 소요산의 95%가 자재암 소유로 되어 있다. 조계종 총무원을 비롯한 불교계에 따르면 지난달 2월 서모씨 등 22명이 자재암을 상대로 문화재관람료를 돌려달라며 낸 부당이득금 반환청구소송에서 의정부 지법은 ‘자재암은 서씨 등에게 각각 1000원의 문화재관람료를 돌려주라.”며 원고승소 판결을 했다. 재판부는 판결에서 소액심판인 만큼 별도 판결문 없이 원고 승소판결만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관망 분위기와는 달리 항소심 판결에 대해선 적지 않은 마찰이 예상된다. 조계종 총무원과 환경부, 문화재청은 국립공원의 사찰 문화재관람료 징수와 관련한 실무협의체를 구성해 협의를 진행했으나 지난해 하반기 이후 사실상 협의가 중단된 상태. ‘사찰들이 문화재 보수비는 어느 정도 지원받고 있지만 평상시 문화재 유지·관리비 측면의 예산 책정과 집행이 따르지 않는다.’며 적극적인 개선책을 요구하는 불교계와 주무부서의 입장 차가 쉽사리 좁혀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자재암 항소심 결과는 자칫 큰 마찰을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불교계는 자재암 판결 사안의 경우 국립공원내 사찰은 아니지만 문화재관람료와 관련한 조처에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첫 결정인 만큼 사찰들의 대응 수위를 섣불리 예측하지 못한다. 정부 주무부서도 일반 여론을 의식한 채 판결의 향배를 살피고 있는 눈치다. ●조계종 “정부, 실질적 해결책 마련을” 조계종에 따르면 현재 문화재 관람료를 놓고 마찰을 빚고 있는 사찰은 국립공원 내의 사찰을 포함해 67곳. 2007년 국립공원 입장료 폐지 이후 소요산 자재암과 구례 천은사, 설악산 신흥사, 양평 용문사 등에서는 주로 우회 등산객들과 사찰측의 마찰이 이어졌다. 이번 자재암은 이 가운데 문화재 관람료와 관련한 법원의 첫 판결이란 점에서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조계종 총무원 관계자는 “사찰을 우회하는 일반 등산객들도 실질적으로 사찰을 들르거나 사찰 시설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정부가 자연자원을 고려한 생태 차원의 관리에 초점을 맞출 게 아니라 사찰의 역사 문화재 차원에도 관심을 갖고 실질적인 해결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서울신문 다른 기사 보러가기] 청소년 5만명 알코올성 간질환 ‘슬럼독’ 감동은 딱 3분의 2 석탄→석유 만드는 ‘청정 연금술’ 일본 WBC 꼼수 제 발등 찍었다? 160층 두바이타워에서 내려다보니
  • 이메일 받은 판사들 “심적부담 느껴”

    신영철 대법관의 ‘촛불재판 재촉’ 파문과 관련 현직 판사가 처음으로 신 대법관의 용퇴를 주장했다. 서울남부지법 김형연(43·사시 39회) 판사는 8일 법원 내부 전산망 코트넷에 ‘신영철 대법관님의 용퇴를 호소하며’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근무평정권 및 배당권을 가진 법원장이 특정 사건에 대해 여러 차례 처리 방향을 암시한다면 어느 판사가 부담감을 느끼지 않겠느냐.”면서 “신 대법관이 자리를 보전하고 있는 한 사법부는 정치 공방과 시민단체 비판에 눌려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 대법관의 이메일을 받은 상당수의 판사들도 이날 심적 부담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당시 형사단독을 맡은 A판사는 “근무평정을 매기는 법원장이 재판 독촉 메일을 받고 신경이 쓰였다.”고 말했다. B판사는 “단체메일의 내용은 잊었지만, (내 사건과 관련된) 개별 메일은 생생하다.”고 했다. C판사도 “(재판진행에 관한) 법원장의 발언을 재판과 연결시키지 않으려 노력했다.”면서도 “판사들이 내부 압력에 정신적인 부담이 크다.”고 설명했다. 반면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는 판사들도 있었다. D판사는 “단체메일이다 보니 읽지 않고 삭제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전했다. 개업한 E변호사는 “이메일 내용을 다 봤지만 재판 관여라고 느끼지 않았다.”고 말했다. 대법원 진상조사단은 7일과 8일 지난해 서울중앙지법 형사단독을 맡은 판사 22명 가운데 미국에 연수 중인 2명을 제외한 20명을 불러 추가 메일이 있는지, 당시 심적 부담을 느꼈는지 등을 집중 조사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9일부터 신 대법관과 허만 전 수석부장판사 등을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미네르바’ 변호인 “기자가 왜 법정에…”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인터넷 경제논객 ‘미네르바’ 박대성(31)씨의 재판에 나설 증인들이 채택되면서 이들이 어떤 증언을 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9일 서울중앙지법 재판부는 오는 17일 오후 5시에 열릴 첫 공판에서 검찰측 증인으로 기획재정부 손모 외화자금과장과 한국은행 이모 외환팀장,연합인포맥스 이모 기자를 증인으로 채택했다.또 변호인측 증인으로는 성균관대 경제학부 김태동(62) 교수를 채택했다.  ●변호인측 “검찰은 기자도 증인으로 부르네요”  형사5단독 유영현 판사 심리로 열린 이날 공판준비기일에서 채택된 증인들은 앞으로 박씨의 글이 한국경제 신인도를 저하했는가 여부를 놓고 팽팽한 공방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박씨의 변호를 맡고 있는 박찬종 변호사측은 “손 과장과 이 팀장의 출석은 이해하지만 이 기자가 법정에 나서는 것은 의외”라고 밝혔다.김승민 보좌관은 “이 기자는 그동안 검찰의 입장을 반영하는 기사를 써왔다.”면서 “기자가 법정에 증인으로 서는 것은 보기 힘든 일이다.기자 신분으로 왜 법정에 서는지 의아하다.”고 말했다.김 보좌관은 “우리도 박씨의 글이 국가 신인도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생각을 가진 기자들을 부를 수 있지만,(증언을) 요청하기는 좀 미안해서 요청을 하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그는 “현재 변호인측 증인은 김 교수 한 명뿐”이라며 “박씨의 글이 외환시장에 영향을 줬는지 여부를 묻기 위해 외환 딜러들에게 연락을 하고 있는데 대답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답답해했다.  김 보좌관은 또 언론·인터넷 등에 박씨가 진짜 미네르바가 아니라는 주장을 줄곧 하고 있는 네티즌들에 대해 “사건의 본질은 박씨가 인터넷에 글을 쓴 것이 국가에 위협을 미쳤는가”라며 “확인되지 않은 사실로 박씨를 비하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한편 재판부는 변호인이 신청한 전기통신기본법에 대한 위헌법률 심판제청과 박씨에 대한 보석 여부에 대해 검토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 씨는 지난해 7월과 12월에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에 ‘환전업무 8월1일부로 전면 중단’·’정부,달러 매수금지 긴급공문 발송’ 등 허위사실의 글을 차례로 올린 혐의(전기통신기본법 위반)로 구속기소됐다.  ●네티즌 ‘readme “김태동 교수 법정에 나가지 마세요”  앞서 이날 새벽 여러 차례 박씨가 진짜 미네르바가 아니라고 주장해온 네티즌 ‘readme’는 ‘아고라’에 올린 글을 통해 김태동 교수의 증인 출석을 철회해줄 것을 요구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김태동 교수님께 미네르박 증인 수락 철회를 촉구합니다’란 제목의 글에서 김 교수의 출석이 ▲가짜 미네르바를 진짜 미네르바로 만들게 하고 ▲김 교수가 ‘미네르바 버블’을 만들었다는 모함을 인정하는 결과가 된다고 주장했다.  “외국에서 오래 있느라 교수님의 존함을 일찌기(일찍이) 알지 못했다.”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진짜 미네르바의 말투는 시장 장돌뱅이의 그것”이라면서 “이론과 경험이 유리될 수 밖에 없는 대학에서 아카데미의 정도를 고아하게 걸어온 김 교수 같은 사람들에게는 이재학의 재빠름과 현란함이 동경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네르바의 경제지식을 “경제학이 아니라 축재술”이라고 정의한 그는 “미네르바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돈장사꾼의 오랜 생활이 녹아 있다.김 교수는 검찰이 서둘러 내세운 어떤 젊은이가 미네르바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는 진짜가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이어 “김 교수의 순수함이 검찰·변호사·언론의 간교함에 이용되고 있다.”면서 “김 교수의 출석 자체가 검찰과 변호인측의 진실 가리기를 방조하는 격이 될 것”이라며 거듭 만류했다.  아울러 박씨가 진짜 미네르바가 아니란 결정적 증거를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장소·매체를 통해서 밝힐 수 있다고 밝혔다.  글을 맺으며 readme는 “저의 진실성과 아이덴티티에 대해서는 위에서 말씀드린 옛 한국경제학회장을 지내신 원로 교수님께 여쭈어보시면 아실 수 있다.”며 “복원된 미네르바의 글 280편을 찬찬히 읽으시면서 진짜 미네르바가 누구인지 다시 한 번 느껴”달라고 주문했다.아울러 “이 글을 읽은 아고리언 중에 김태동 교수님과 가까우신 분은 교수님께서 이 글을 빨리 읽으실 수 있도록 성균관대학교에 메일이나 전화 연락을 취해 주셨으면 한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인터넷서울신문 맹수열기자 gun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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