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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영욱, 10년간 전자발찌 부착… ‘연예인 지위 악용한 죄’ 첫 엄벌

    고영욱, 10년간 전자발찌 부착… ‘연예인 지위 악용한 죄’ 첫 엄벌

    미성년자 성폭행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된 가수 고영욱(37)씨가 징역 5년에 유명 연예인으로는 최초로 전자발찌 부착 명령을 받았다. 서울서부지법 형사11부(부장 성지호)는 10일 고씨에 대해 아동·청소년 성보호법 위반죄를 인정, 징역 5년을 선고하고 10년간 전자발찌 부착 및 7년간 신상정보 공개를 명령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청소년의 선망과 관심을 받는 유명 연예인으로서 그 지위를 이용해 범행을 했다”면서 “검찰 조사가 진행 중인 과정에서도 범행을 저지르는 등 왜곡된 성 인식을 가졌고 자제력도 부족해 보인다”고 밝혔다. 법원은 판결문을 통해 혐의를 부인하는 고씨 측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재판부는 “고씨는 2010년 13세에 불과한 A양에게 술을 권하고 자신과 단둘이 있는 오피스텔에서 범행을 했다”면서 “이 과정에서 구체적인 폭행이나 협박이 없었다고 해도 고씨가 건장한 성인 남성임을 감안하면 위력 행사를 인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또 습관처럼 성범죄를 저지르는 고씨의 성향과 재범 위험성을 들어 10년간 전자발찌 부착을 명령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의 이번 판결이 성폭행 혐의를 받는 배우 박시후(36)씨 사건 등 잇따른 성추문에 휩싸인 연예계에 경종을 울리는 의미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성 부장판사는 “유명 연예인을 공인으로 보고 더 많은 책임을 부담하게 할 수 있는지는 깊이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면서도 “피고인은 연예인에 대한 피해자들의 호기심을 적극적으로 이용해 간음·추행했다”고 지적했다. 고씨는 2010년 7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서울에 있는 자신의 오피스텔과 승용차 등에서 미성년자 3명을 4차례에 걸쳐 성폭행 및 강제 추행한 혐의를 받아 왔다. 고씨 측 변호인은 재판이 끝난 뒤 “고씨와 협의해 항소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고씨의 판결에 대해 네티즌들은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대중적 영향력이 큰 사람이 미성년자를 상대로 범행한 만큼 중형을 받아 마땅하다”며 대체로 고씨를 비판했다. 하지만 일부 네티즌들은 “여론에 휩쓸려 지나치게 중형이 내려졌다”는 의견도 내놓았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이상득, 건강문제 없다” 보석 신청 기각

    “이상득, 건강문제 없다” 보석 신청 기각

    저축은행 등으로부터 불법자금을 받은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된 이상득(78) 전 새누리당 의원과 정두언(56) 새누리당 의원의 보석 신청이 모두 기각됐다. 법원은 한 달가량 고심을 거듭했지만 이 전 의원과 정 의원에게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들은 계속 수감 상태에서 항소심 재판을 받게 된다. 서울고법 형사4부(부장 문용선)는 10일 “피고인들에 대해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특히 이상득 피고인의 경우 불구속 재판으로 진행할 정도로 건강이 악화됐다는 점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이 전 의원은 지난 2월 28일 “고령으로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구금이 계속되면 방어권 행사에 어려움이 있다”며 재판부에 보석을 신청했다. 변호인에 따르면 이 전 의원은 급성폐렴과 당뇨, 녹내장 등 복합적 증세를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 의원도 “현역 의원으로서 도주나 증거인멸 우려가 없다”며 보석을 신청, 재판부는 지난달 25일 항소심 첫 공판에서 두 피고인에 대한 보석 심문을 진행했다. 당시 재판부는 이 전 의원의 건강상태에 대해 여러 차례 질문을 하기도 했다. 앞서 이 전 의원은 1심에서 징역 2년에 추징금 7억 5000여만원을 선고받았다. 정 의원은 징역 1년과 추징금 1억 4000여만원을 선고받아 법정구속됐다. 이 전 의원과 정 의원은 1심에 이어 항소심 첫 공판에서도 혐의를 전면 부인한 바 있다. 이들에 대한 다음 공판은 오는 15일 오후 2시에 열린다. 최지숙 기자 truth173@seoul.co.kr
  • 고영욱, 연예인 첫 전자발찌 부착 명령…징역 5년 선고

    고영욱, 연예인 첫 전자발찌 부착 명령…징역 5년 선고

    미성년자 성폭행 혐의 등으로 기소된 가수 고영욱(37)이 국내 연예인으로는 처음으로 전자발찌 부착 명령을 받았다. 서울서부지법 형사11부(부장 성지호)는 10일 미성년자를 수차례 성폭행·강제추행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고영욱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징역 5년을 선고하고 전자발찌 부착 10년 및 신상정보 공개 7년을 명령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은 청소년들의 선망과 관심을 받는 유명 연예인으로서의 지위를 이용해 사리 분별력이 미약한 미성년자를 대상을 범행을 저질렀다”며 “피고인이 초범이고 일부 피해자와 합의한 점을 고려해도 엄히 처벌해야 마땅하다”고 밝혔다. 고영욱은 2010년 7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서울 소재 자신의 오피스텔과 승용차 등에서 미성년자 3명을 모두 4차례에 걸쳐 성폭행·강제추행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고영욱은 2010년 여름 자신의 오피스텔에서 A(13), B(17)양을 각각 성폭행, 강제추행한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던 중 구속 영장이 기각되기도 했으나 지난해 12월 C(13)양을 자신의 승용차에 태워 강제추행한 혐의로 또 경찰 조사를 받게 되면서 결국 구속됐다. 고영욱이나 검찰이 항소하지 않고 1심 형량이 그대로 확정될 경우 고영욱은 형이 종료 또는 면제된 직후 전자발찌를 부착해야 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펀드출자 관여, 인출은 안했다” 말 바꾼 최태원

    “펀드출자 관여, 인출은 안했다” 말 바꾼 최태원

    횡령, 배임 등의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된 최태원(53) SK그룹 회장의 항소심 재판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이전의 진술을 번복하고 다른 논리를 제시했기 때문이다. 서울고법 형사4부(부장 문용선) 심리로 8일 열린 최 회장 형제 등 4명에 대한 항소심 첫 공판에서 최 회장은 “앞선 재판에서 펀드 출자에 관여한 바 없다고 잘못 말씀드린 점 사죄드린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며 고개를 숙였다. 동생 최재원(50) SK그룹 수석부회장도 “법적 책임이 약할 것으로 판단해 제가 ‘방어막’이 되기로 하고 수사기관과 재판에서 거짓말을 했다”고 밝혔다. 최 회장 측 변호인은 “최 회장이 펀드 출자금 조성에 관여한 사실은 있지만 인출 및 송금과는 무관하다”면서 “이 사건 범행은 김원홍(52) 전 SK해운 고문이나 김준홍(48) 베넥스인베스트먼트 대표가 기획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자신은 펀드 출자 조성에 관여한 바가 전혀 없다며 동생 최 부회장을 탓했던 1심과 완전히 달라진 주장이다. 하지만 항소심 승소를 위해 말을 바꾸며 또다시 ‘책임 떠넘기기’만 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검찰은 1심에서 무죄로 판단된 최 회장의 비자금 조성 혐의와 최 부회장의 범행 가담 사실에 대해 유죄가 인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최 회장은 횡령, 비자금 조성, 감옥에 대신 갈 바지사장 고용 등 비리 백화점의 행태를 보이고도 여전히 범행을 부인하고 황당한 진술 변경을 하고 있다”면서 “재벌이란 점을 이용해 약자인 양 검찰이 표적수사를 하고 있다고 강변하지만 온 국민이 그 진위를 알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늘색 수의를 입고 법정에 출석한 최 회장은 담담한 표정으로 앉아 검찰의 항소 요지를 들었다. 오히려 1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최 부회장은 초조한 얼굴로 변호인과 함께 서류를 검토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날 공판에는 최 회장의 부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 김창근 SK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을 비롯한 SK그룹 주요 계열사 사장들도 참관해 재판 과정을 지켜봤다. 최지숙 기자 truth173@seoul.co.kr
  • 아베天下 100일…지지율 70% 돌파 했지만 축배 아직 이르다

    아베天下 100일…지지율 70% 돌파 했지만 축배 아직 이르다

    일본의 아베 신조 정권이 4일로 출범 100일을 맞았다. 아베 총리는 ‘아베노믹스’(아베 총리의 경제정책)로 대표되는 대담한 경제정책과 치고 빠지는 대외정책을 앞세워 70% 전후의 높은 지지율을 구가하고 있다. 아베 총리가 2007년 집권 1기의 참담한 실패 요인을 치밀하게 분석하고, 각종 정책 아이디어를 다듬은 ‘오답 노트’를 만들어 와신상담한 게 주효했다는 평가다. 아베 정권이 이처럼 탄탄대로를 내닫는 이유는 우선 아베노믹스가 꼽힌다. ‘윤전기를 돌려서라도 돈을 풀겠다’는 대담한 금융완화 정책으로 인해 주가는 40% 오르고, 달러 대비 엔화 가치는 20% 가까이 하락했다. 엔저를 통해 경제의 숨통을 틔우겠다는 1차적 목표가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13조 1000억엔(약 153조 6500억원)의 추가경정 예산 편성 등 정부 지출을 통한 경기부양과 대담한 금융완화 정책을 강격히 밀어붙여 시장에 기대심리가 일면서 엔저와 주가 상승으로 연결됐다. 아베노믹스의 신봉자인 구로다 하루히코를 중앙은행인 일본은행 총재로 앉혀 더욱 강력한 금융완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구로다 총재는 3일부터 이틀간 취임후 처음으로 금융정책결정회의를 열어 과감한 금융완화 방안을 협의중이다. 아베 정권은 높은 지지율을 바탕으로 미국 주도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유럽연합(EU)과의 경제동반자협정(EPA),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 등 무역장벽 철폐 협상을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하는 자신감도 내비치고 있다. 요즘 같은 분위기에서는 오는 7월 참의원(상원) 선거에서도 아베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의 낙승이 예상된다. 지난해 12월 중의원(하원) 선거에서 의석수 480석중 294석을 획득, 압승을 거둔 아베 정권이 참의원 선거도 승리하면 평화헌법 개정과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 우경화 행보는 더욱 빨라질 전망이다. 실제 아베 총리는 최근 유엔군 참여를 위해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언급하거나 도쿄 전범재판이 ‘승자의 재판’이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외교 측면에서도 중국을 상대로 좀처럼 밀리지 않는 모습이다.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주변 수역에서 중국 군함이 일본 자위대 헬기와 함정에 사격 통제용 레이더를 비춘 사실에 대해 집요하게 외교 공세를 벌이는 한편 동남아시아, 미국, 몽골 등을 순방하며 중국 포위 외교를 공식화했다. 지난 2월 취임후 첫 해외순방국으로 미국을 방문, 견고한 동맹관계를 재확인했다. 하지만 아직 아베 총리의 성공을 속단하기엔 일러 보인다. 우선 아베노믹스의 대표 정책인 과감한 양적완화가 가계 소득 향상과 실수요 창출 등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낼지가 관심이다. 또 1차 내각 때 그의 발목을 잡은 건강 문제(궤양성 대장염)도 여전히 변수라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도쿄 이종락 특파원 jrlee@seoul.co.kr
  • 아베시대 100일 지지율 70% 돌파… 축배, 아직 이르다

    아베시대 100일 지지율 70% 돌파… 축배, 아직 이르다

    일본의 아베 신조 정권이 4일로 출범 100일을 맞았다. 아베 총리는 ‘아베노믹스’(아베 총리의 경제정책)로 대표되는 대담한 경제정책과 치고 빠지는 대외정책을 앞세워 70% 전후의 높은 지지율을 구가하고 있다. 아베 총리가 2007년 집권 1기의 참담한 실패 요인을 치밀하게 분석하고, 각종 정책 아이디어를 다듬은 ‘오답 노트’를 만들어 와신상담한 게 주효했다는 평가다. 아베 정권이 이처럼 탄탄대로를 내닫는 이유는 우선 아베노믹스가 꼽힌다. ‘윤전기를 돌려서라도 돈을 풀겠다’는 대담한 금융완화 정책으로 인해 주가는 40% 오르고, 달러 대비 엔화 가치는 20% 가까이 하락했다. 엔저를 통해 경제의 숨통을 틔우겠다는 1차적 목표가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13조 1000억엔(약 153조 6500억원)의 추가경정 예산 편성 등 정부 지출을 통한 경기부양과 대담한 금융완화 정책을 강격히 밀어붙여 시장에 기대심리가 일면서 엔저와 주가 상승으로 연결됐다. 아베노믹스의 신봉자인 구로다 하루히코를 중앙은행인 일본은행 총재로 앉혀 더욱 강력한 금융완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구로다 총재는 3일부터 이틀간 취임후 처음으로 금융정책결정회의를 열어 과감한 금융완화 방안을 협의 중이다. 아베 정권은 높은 지지율을 바탕으로 미국 주도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유럽연합(EU)과의 경제동반자협정(EPA),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 등 무역장벽 철폐 협상을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하는 자신감도 내비치고 있다. 요즘 같은 분위기에서는 오는 7월 참의원(상원) 선거에서도 아베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의 낙승이 예상된다. 지난해 12월 중의원(하원) 선거에서 의석수 480석 중 294석을 획득, 압승을 거둔 아베 정권이 참의원 선거도 승리하면 평화헌법 개정과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 우경화 행보는 더욱 빨라질 전망이다. 실제 아베 총리는 최근 유엔군 참여를 위해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언급하거나 도쿄 전범재판이 ‘승자의 재판’이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외교 측면에서도 중국을 상대로 좀처럼 밀리지 않는 모습이다.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주변 수역에서 중국 군함이 일본 자위대 헬기와 함정에 사격 통제용 레이더를 비춘 사실에 대해 집요하게 외교 공세를 벌이는 한편 동남아시아, 미국, 몽골 등을 순방하며 중국 포위 외교를 공식화했다. 지난 2월 취임후 첫 해외순방국으로 미국을 방문, 견고한 동맹관계를 재확인했다. 하지만 아직 아베 총리의 성공을 속단하기엔 일러 보인다. 우선 아베노믹스의 대표 정책인 과감한 양적완화가 가계 소득 향상과 실수요 창출 등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낼지가 관심이다. 또 1차 내각 때 그의 발목을 잡은 건강 문제(궤양성 대장염)도 여전히 변수라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도쿄 이종락 특파원 jrlee@seoul.co.kr
  • 임신중 사체지문 채취 유명… 여성·청소년범죄 척결 대모

    임신중 사체지문 채취 유명… 여성·청소년범죄 척결 대모

    우리나라 경찰이 창설된 1945년 이래 사상 첫 여성 치안정감이 탄생했다. 경찰에 따르면 정부는 29일 이금형 경찰청 경무인사기획관을 치안정감 보직인 경찰대학장에 임명하는 등 경찰 치안정감 인사를 했다. 치안정감은 치안총감(경찰청장·1명) 다음으로 경찰 계급 중 ‘넘버2’에 해당하며 전체 경찰관 10만명 가운데 5명뿐이다. 경찰대학장으로 부임하게 된 그는 “딸만 셋인데 이제 108명의 아들과 12명의 딸을 새로 얻게 됐다”면서 “학생들이 4대 사회악(성폭력·가정폭력·아동폭력·불량식품)을 척결하는 데 앞장설 수 있도록 이론과 현실을 겸비한 경찰 간부로 양성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나는 여성이자 고졸, 순경 공채 등 3대 약점을 극복했다. 마이너리티(소수파)에 속하는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그는 충북 청주 출신으로 만 19세인 1977년 순경으로 경찰에 입문했다. 1985년 경찰청 감식과 소속 감식관이었던 그는 둘째 아이를 임신한 채 토막 난 사체의 썩은 손목을 씻으며 지문을 찍은 일화가 전해질 정도로 36년동안 경찰로서 정도로 앞만 보고 달렸다. 고시 출신이 4번의 승진으로 오르는 치안정감 계급을 순경 공채 출신인 그는 9번에 걸쳐 올랐다. 경찰서장급인 총경을 단 것은 여경 중 세 번째였고, ‘경찰의 별’로 통하는 경무관은 두 번째였다. 재직기간 동안 주로 여성·청소년 분야 등에서 활동했다. 2005년 성매매특별법 시행 당시 경찰청 여성청소년과장으로서 ‘성매매와의 전쟁’을 주도했고, 영화 ‘도가니’로 촉발된 광주인화학교 성폭력 사건 당시 특별수사팀을 꾸려 성폭력 교사 14명을 형사입건했다. 이 경찰대학장은 치안정감 승진 예정자 신분으로,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인 이철규 전 경기청장 등 치안정감 보직 공석이 나오면 최우선으로 공식 치안정감에 오르게 된다. 서울경찰청장에는 김정석 경찰청 차장, 경기청장에 이만희 경찰청 기획조정관, 경찰청 차장에 안재경 광주경찰청장, 부산청장에는 신용선 강원청장을 각각 내정 발령됐다. 이에 따라 국가정보원 여직원의 댓글 의혹 사건 수사와 관련해 대선 개입 의혹을 받았던 김용판 서울경찰청장은 경찰 조직을 떠나게 됐다. 이번 인사에서는 경찰대 1명, 간부후보 1명, 고시 2명, 순경공채 1명 등 입직 경로별로 고르게 배분됐다. 출신 지역별은 강원 1명, 충북 1명, 전남 1명, 경북 1명, 경남 1명 등이다. 김정은 기자 kimje@seoul.co.kr
  • ‘그룹섹스 살인’ 무죄 여대생, 자서전 나온다

    ‘그룹섹스 살인’ 무죄 여대생, 자서전 나온다

    이탈리아에서 룸메이트를 살해한 혐의로 복역하다 무죄판결을 받은 여대생 아만다 녹스(25)의 재판이 다시 열리게 됐다. 지난 26일(이하 현지시간) 이탈리아 대법원은 2011년 2심에서 녹스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재심 명령을 내렸다. 이에따라 재판은 원점에서 다시 시작될 예정이나 녹스가 2심 판결 후 고향인 미국으로 돌아가 재판을 받기위해 이탈리아로 떠날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러나 이탈리아 법원이 향후 녹스를 유죄로 확정할 경우 미국에 범죄인 인도요청을 할 수 있어 양국 간의 외교적인 문제로 확산될 가능성도 있다. 그간 녹스의 아름다운 외모와 막장 내용으로 ‘천사와 악녀’ 논쟁을 일으킨 이 사건은 지난 2007년 발생했다, 당시 교환학생으로 페루자에서 학교를 다니던 녹스는 영국인 룸메이트에게 집단성교를 강요했으나 이를 거부하자 잔인하게 살해한 혐의로 복역 중이었다. 4년 후 2심에서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나 미국으로 돌아온 녹스는 유명세에 힘입어 무려 400만 달러(약 44억원)에 자서전 출판 계약을 마쳐 화제를 뿌렸다. 한편 지난 26일 녹스의 변호사인 로버트 바넷은 재심 판결에 아랑곳 없이 다음달 녹스의 자서전이 예정대로 출판된다고 밝혔다. 바넷 변호사는 “녹스의 자서전(Waiting to be Heard)이 이탈리아 법원의 결정과 상관없이 다음달 출판된다.” 면서 “다음달 30일에는 그녀의 첫번째 TV 인터뷰도 예정대로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자서전에는 녹스가 겪었던 사건의 전모, 재판 과정, 수감 생활 등 알려지지 않은 내용들이 생생히 담겨있다.”고 덧붙였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화학적 거세 1호 철회해 달라”

    ‘화학적 거세’(성충동 약물치료)의 확대 적용 논란이 뜨거운 가운데 국내 처음으로 화학적 거세 명령을 받은 30대 남성이 항소심에서 이를 철회해 달라며 정신감정 재실시를 신청했다. 서울고법 형사10부(부장 권기훈)의 심리로 26일 열린 표모(31)씨의 항소심 첫 공판에서 변호인은 “표씨는 성도착증(성욕과잉장애) 환자로 볼 수 없다”면서 화학적 거세 명령을 철회해달라고 밝혔다. 표씨는 미성년자 5명을 상습 성폭행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5년과 함께 성충동 약물치료 3년, 신상정보공개 10년, 위치추적장치(전자발찌) 부착 20년 등을 선고받았다. 앞서 지난해 8월 검찰은 ‘성폭력 범죄자의 성충동 약물치료에 관한 법률’ 시행 후 최초로 표씨에 대한 화학적 거세 명령을 청구했다. 표씨 측은 “혼자 노모를 부양해야 하기 때문에 형량에 유리할 줄 알고 약물치료에 동의했는데 중형이 선고됐다”면서 “치료 후 성 불능 등 임상결과가 불분명한 상태에서 국내 1호 화학적 거세 대상자가 되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전문적인 심리치료를 받는 것이 왜곡된 성 의식 조절과 재범 방지에도 효과적”이라면서 다른 전문의에 의한 정신감정 재실시를 요청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검토할 필요는 있다”면서도 “당장 재감정을 하기보다는 기존 감정서 작성인을 소환해 의문점을 질의한 뒤 해도 늦지 않다”고 답했다. 재판부는 성도착증 판단에 필요한 자료들을 검토한 뒤 다음 기일에 심리 방향을 결정하기로 했다. 최지숙 기자 truth173@seoul.co.kr
  • 버티던 유통재벌 2세들 ‘뒤늦은 반성’

    버티던 유통재벌 2세들 ‘뒤늦은 반성’

    국회 국정감사와 청문회에 불출석한 혐의로 약식 기소됐다가 정식 재판에 회부된 정용진(45) 신세계그룹 부회장과 정지선(41)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이 26일 뒤늦은 반성과 함께 선처를 호소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8단독 소병석 판사 심리로 열린 이날 공판에서 정 부회장은 “본의 아니게 물의를 끼쳐서 죄송하다. 앞으로 엄격한 잣대의 책임감으로 기업 경영에 매진하겠다”고 밝혔다. 같은 법원 형사9단독 성수제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공판에서 정 회장도 “국회의 출석 요구에 적극 협조하는 것이 국민의 도리인데 부득이하게 불출석해 죄송하다. 앞으로 비슷한 요구가 있으면 성실히 응하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들은 혐의를 인정하고 잘못을 빌면서도, 공통적으로 ‘당시 다른 임원이 대신 출석하도록 조치했고 해외 출장 등 부득이한 사정이 있었다’며 선처를 호소했다. 이에 대해 성 판사는 정 회장에게 “같은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들 모두 해외 출장을 이유로 불출석 사유를 밝히고 있다”며 “혹시 서로 연락을 주고받은 것은 아닌가”라고 꼬집기도 했다. 검찰은 이들에게 “국회 정무위의 요청에도 정당한 이유 없이 불출석했다”고 지적했지만, 약식기소 때와 마찬가지로 정 부회장에게 벌금 700만원, 정 회장에게 벌금 400만원을 각각 구형했다. 앞서 국회 정무위원회는 지난해 10~11월 정 부회장과 정 회장에 대해 대형 유통업체의 골목상권 침해와 관련, 국감 및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할 것을 요구했으나 이들이 해외 출장 등을 이유로 나오지 않자 검찰에 고발했다. 현행법상 정당한 이유 없이 국정감사 등에 출석하지 않은 증인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법원은 다음 달 11일과 18일 오전 10시에 각각 정 회장과 정 부회장에 대해 선고할 예정이다. 최지숙 기자 truth173@seoul.co.kr
  • 30대 엄마가 10대 딸 ‘성추행’ 왜?

    30대 엄마가 10대 딸 ‘성추행’ 왜?

    남편을 구타하고 자식을 성추행한 여자가 장기간 교도소 신세를 지게 됐다. 아르헨티나 지방 코르도바에서 34세 여자가 가정폭력 혐의로 기소돼 유죄판정을 받았다. 재판부는 악처이자 악모였던 여자에게 징역 17년을 선고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여자는 극악했다. 일찍 결혼해 19세에 첫 아이를 낳은 이 여자는 걸핏하면 남편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남편은 참다못해 집을 뛰쳐나가 결별을 선언했다. 여자는 그러나 뉘우치기는 커녕 악모로 변했다. 마음이 돌아선 남편을 다시 불러들이기 위해서였다. 여자는 남편에게 누명을 씌우기 위해 15살 된 첫 딸을 성추행했다. 딸을 성추행한 게 남편이었다고 몰아붙이면 약점을 잡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남편과 통화를 하면서 다른 자식들에겐 칼로 팔을 긋는 등 잔학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아파서 비명을 지르는 아이들에게 여자는 “아버지에게 돌아오라고 하라.”고 했다. 하지만 여자의 계획은 빗나갔다. 가정폭력 혐의로 기소된 여자가 법정에 서자 장녀가 “엄마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사실을 털어놓은 것이다. 재판부는 “여자의 죄질이 매우 나쁘다.”며 중형을 선고했다. 사진=자료사진 임석훈 남미통신원 juanlimmx@naver.com
  • [박근혜 정부 출범 한 달] 보안·원칙 고수… 정치인 박근혜의 장점이 대통령으론 독 됐다

    [박근혜 정부 출범 한 달] 보안·원칙 고수… 정치인 박근혜의 장점이 대통령으론 독 됐다

    25일로 박근혜 정부 출범 한 달을 맞는다. 새 정부도 역대 어느 정권처럼 호된 신고식을 피해가지 못했다. 51일 만에 국회를 통과한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 문제와 고위공직 후보자들의 잇따른 자진 사퇴 등 인사파문이 겹치면서 국정 표류의 양상은 더욱 심각했다는 평이다. 취임 초 국정운영의 최대 걸림돌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의 처리 지연이었다. 표면적으로 국회의 여야 정치력 부재가 빚어낸 결과지만 국정 최고지도자인 박 대통령의 리더십에 적지 않은 상처를 남겼다. 박 대통령의 원안고수 지침에 매달린 여당과 방송 장악 음모를 앞세운 야당의 지연전략이 충돌하면서 집권 초 천금 같은 한 달을 허송세월했다.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지난 22일 늑장처리되면서 제대로 된 국무회의 한 번 열리지 못했고 부처별로 주요 정책 입안이 늦어지는 등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떠넘겨졌다. 박 대통령의 고위직 인선이 검증 미비와 부실 인선 논란으로 확산되면서 새 정부 초기 동력을 크게 떨어뜨렸다는 지적도 많다. 박 대통령이 소위 친박 인사 등의 정치인 기용은 가급적 피하고 해당 분야 전문가나 내부 관료를 중용해 전문성을 강화하고 조직 안정을 꾀한 것은 긍정적 평가를 받는 대목이다. 하지만 보안을 중시한 박 대통령이 ‘나홀로 인선’에 치중하다 보니 검증 자체가 부실해졌다는 평가가 많다. 청와대에 허태열 비서실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인사위원회를 가동했지만 대통령 의중 살피기에 무게가 실린 분위기다. 소신을 갖고 보좌해야 할 청와대 참모진과 내각, 여당은 대통령 눈치보기에 급급했다. 일각에서는 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 등장과 남성 참모들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벽이 소통 문제로 이어진다는 분석도 나온다. 취임 직전 지명된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를 제외하고도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황철주 중소기업청장, 김병관 국방장관 후보자와 김학의 법무부차관 내정자 등 5명이 줄줄이 자진 사퇴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형준 명지대교수는 “국정 공백의 첫 번째 원인은 박 대통령의 정치적 리더십”이라며 “국민이 대통령의 인사에 감동하지 못하고 공감하지 못할 경우 국정운영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박근혜 인사’는 결과적으로 대선공약으로 내걸었던 ‘대탕평’ 원칙도 충족하지 못하고 소통 부재와 수첩 인사라는 불명예스러운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다. 청와대의 인사검증 시스템 자체에 커다란 문제점만 부각시킨 상황이다. 김용철 부산대 교수는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국민과의 소통 창구를 만들어 대공황을 극복했듯 박 대통령도 국민과의 대화나 국가지도자 연석회의 등을 정례화하는 등 국민 소통 시스템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근혜 정부의 과도한 민간 부문 개입, ‘정부 만능주의’와 ‘정책 지상주의’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전문가들은 “선거공약을 일방적, 절대적으로 고수하지 않는 유연하고 개방적인 자세를 취하며 국정운영에서 대화의 여지를 남겨야 한다”고 조언했다. 오일만 기자 oilman@seoul.co.kr
  • 법원 첫 공개변론… 생중계 중 댓글 200개

    법원 첫 공개변론… 생중계 중 댓글 200개

    “이번 사건은 부모 중 한쪽이 13개월 된 아이를 데려갔기 때문에 사실상 강제력을 행사한 것입니다. 국제결혼을 통해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던 중 갑작스럽게 자녀를 뺏긴 아버지의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미성년 자녀를 약취하는 것은 범죄행위입니다.” “피고인은 부부 갈등이 심화된 상태에서 자녀를 맡아 줄 사람이 있는 친정으로 데려간 것일 뿐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 부모의 보살핌이 필요한 시기에 있는 아이를 돌볼 사람이 없는 시댁에 두지 못했습니다. 이는 미성년자의 이익에 반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모니터 너머로 펼쳐진 법정에서는 변호사와 검사, 참고인들의 팽팽한 설전이 오갔다. 마치 법정 영화를 보는 듯한 이 상황은 21일 법원 사상 처음으로 열린 대법원 공개 변론의 한 장면이다. 대법원은 이날 오후 전원합의체 공개 변론을 열고 대법원 홈페이지와 한국정책방송(KTV), 포털 사이트 네이버 등을 통해 생중계했다. 한국인과 결혼한 베트남 여성 A씨가 이혼 후 남편 동의 없이 당시 생후 13개월 된 자녀를 데리고 출국한 사건에 대해 열린 이번 공개 변론에서는 A씨의 행동이 국외이송약취죄에 해당해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는지 등을 놓고 설전이 오갔다. 이건리 대검찰청 공판송무부장이 검찰 측 입장을 대변했고 김용직 변호사 등이 A씨를 변호했다. 곽민희 숙명여대 법대 교수와 오영근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각각 검찰과 변호인 측의 참고인으로 참여했다. 처음으로 진행된 생중계 재판을 직접 보기 위해 방청객 100여명이 찾은 법정은 북적였고, 변론이 중계된 포털 사이트에는 1시간 30분 동안 200여개가 넘는 댓글이 달리는 등 큰 관심이 쏠렸다. 그러나 다소 어려운 법률용어로 변론이 진행돼 일반 국민들의 이해가 어려웠고, 변론 중간에 마이크가 꺼지는 등 진행에서 미숙한 점 등이 보였다. 향후 보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헌재소장에 박한철… 첫 검찰 출신

    헌재소장에 박한철… 첫 검찰 출신

    박근혜 대통령은 21일 공석 중인 새 헌법재판소장에 박한철(왼쪽·60·인천)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지명했다. 재판관에는 서기석(60·경남) 서울중앙지법원장과 조용호(58·충남) 서울고등법원장을 각각 지명했다. 박 대통령은 또 황철주 내정자의 사퇴로 비어 있던 중소기업청장에는 한정화(오른쪽·59·광주) 한양대 경영전문대학원장을 내정했다. 박 후보자는 사법시험 23회 출신으로 대검 공안부장과 서울동부지검장을 지냈다. 검찰 출신이 헌재 소장으로 지명되기는 처음이다. 헌재 소장 후보자 지명은 이강국 헌재 소장이 지난 1월 21일 퇴임한 이후 60일, 이동흡 전 헌재 소장 후보자가 지난달 13일 사퇴한 이후 37일 만이다. 헌재 소장 공백과 22일 송두환 재판관의 퇴임으로 인한 사상 초유의 ‘7인 재판관 체제’는 가까스로 막게 됐다. 이지운 기자 jj@seoul.co.kr
  • 캠퍼스 법정서 ‘진짜 재판’ 열린다

    사법사상 처음으로 법원이 대학 캠퍼스에서 실제 재판을 진행한다. 지역사회에 위치한 대학에서 시민들에게 사법 교육 기회를 제공한다는 취지로 마련된 ‘캠퍼스 열린 법정 프로그램’을 통해서다. 서울고법(법원장 조용호)은 오는 28일 오전 10시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광복관 별관 모의법정에서 부가세 부과 처분을 다투는 행정소송을 진행한다고 20일 밝혔다. 서울고법 행정3부(부장 이태종) 심리로 열리는 이 재판은 현금자동입출금기(ATM)를 관리하는 ㈜한국전자금융이 “부가가치세 부과 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서울 마포세무서장을 상대로 낸 행정소송의 항소심이다. 90분간의 변론과 전문심리위원의 의견 진술, 최종 변론 등의 절차를 거쳐 이날 가급적 선고까지 내릴 예정이다. 재판 후에는 재판부가 직접 방청객에게 질문을 받고 답변해 주는 시간도 준비돼 있다. 법원은 수도권 권역 15개 로스쿨에 공문을 보내 미리 신청을 받았고 그 결과 11개 로스쿨이 참여 의사를 밝혔다. 연대 로스쿨은 이 중 신청 사유, 추진 의지, 행사 장소 적합성 등에 대한 종합 평가에서 최고 점수를 획득해 최종 선정됐다. 법원 관계자는 “로스쿨 재학생과 교직원, 주민이 재판을 접하고 법관과 소통하는 자리를 통해 재판에 대한 국민 이해도를 높이고자 행사를 마련했다”면서 “향후 기존의 ‘찾아가는 법정’과 이번 ‘캠퍼스 법정’ 프로그램을 이원화해 각각 정례화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서울고법은 지난해 11월 법정에 직접 오기 어려운 당사자들에게 재판 방청 기회를 주기 위해 전남 고흥에서 ‘찾아가는 법정’을 진행한 바 있다. 최지숙 기자 truth173@seoul.co.kr
  • [씨줄날줄] ‘백지’ 관보/정기홍 논설위원

    1960년대 대학가에 ‘관보 대학생’이란 말이 등장했었다. 대학들이 정원을 초과해 신입생을 뽑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문교부가 “관보에 정원 내 학생 명단을 싣겠다”고 밝히자 이를 빗대 유행했던 용어이다. 이른바 ‘학사등록제’인 셈이다. 이후 문교부는 전국 대학의 재적생 현황 파악에 나섰고, 청강생 등 잉여 학생은 무려 3만여명이나 됐다고 한다. 교육 행정의 난맥상으로 인해 대학생 명단까지 관보에 실렸다니 먼 옛날의 이야기다. 관보(官報)는 말 그대로 정부에서 발행하는 기관지이다. 법령 개정과 부처 의결사항, 인사, 공고가 여기에 실린다. 내용이 난해하지만 그 시대의 정치와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첫 관보로는 조선 태조(1392년) 때 예문춘추관에서 발행한 ‘조보’(朝報)를 친다. 이후 1894년(고종 31년) ‘대한제국관보’란 제호로 발행되다가 정부수립 해인 1948년부터 ‘대한민국관보’라는 이름으로 맥을 잇고 있다. 관보는 왕조시대 길거리에 써 붙였던 방(榜)과도 궤를 같이한다. 세종실록에는 ‘대소 인원들이 그해(1429년)의 수교(受敎)한 것을 알지 못하여 범법한 자가 자못 많으니 금령조목(禁令條目)을 줄여 줄 친 게시판을 만들어 광화문 밖 등의 장소에 걸어 알려주게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처럼 60여년을 이어온 근대식 ‘종이 관보’가 좀체 보기 힘들어졌다. 지난 2000년 10월 전자관보시대를 열면서 병행해 발행되다가 지금은 딱 11부만 인쇄된다. 국가기록원 3부 외에 국회도서관, 법제처, 헌법재판소 등 8군데에 1부씩만 들어간다. 청와대에서도 종이 관보를 못 보는 정도이니 귀하디귀한 몸이다. 관보에 관한 뒷얘기는 더러 전해진다. 정부는 일반인이 알기 어렵다는 점을 이용해 민감한 사안은 관보에만 슬쩍 넣고 숨기려는 꼼수를 쓰기도 했다. 부지런하고 눈치 빠른 기자들은 기자실에 비치된 관보에서 특종을 낚아채기도 했다. 숨기려는 의도만큼 사회적인 파장은 컸다. 관보는 요즘에도 논란의 중심에 선다. 최근 청와대에서 비서관급 인사를 관보에만 싣겠다고 하자 ‘관보 인사’란 비아냥을 듣고 있다. 최근 암으로 사망한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병석에서 서명한 관보가 공개되자 그의 건강 상태를 놓고 설왕설래하기도 했다. 지난달 25일 새 정부 출범 이후 지난 6일까지 관보에 실린 법안과 조약이 단 1건도 없다고 한다. 지난해 하루 평균 법률 2건, 대통령령 3건이 실렸던 데 비하면 너무 초라하다. 정부조직법개정안 처리가 늦어지면서 나타난 부작용으로, 정치권은 눈꼴사나운 정쟁을 그만 접고 마비된 국정을 빨리 살려야 하겠다.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명사가 걸어온 길] 6. 민주화의 사제(상) 함세웅

    [명사가 걸어온 길] 6. 민주화의 사제(상) 함세웅

    맑은 얼굴 맑은 눈/ 비 온 뒤라면 무지개 걸려/ 그러나 독재나 어떤 잔재 따위에는/ 진흙탕 싸움을 사양할 수 없다/ 그 아들은 한국 천주교회의 앞에서/ 지(知)와 신앙으로 집을 지었다/ 그는 도시의 신부다(고은 시인의 ‘만인보’ 중 ‘함세웅’ 편의 일부) ‘민주화의 사제’ 함세웅 아우구스티노. 1970~1980년대 불끈 쥔 주먹으로 독재에 맞서면서도 늘 기품을 잃지 않았던 그를 고은은 ‘도시의 신부’라고 불렀다. 서슬 퍼런 박정희 유신 정국 때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1974년)을 만들어 박종철군 고문 사망(1987년), 삼성 비자금 조성(2007년) 등 묻혀 있던 진실을 세상에 드러내며 질곡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부딪친 그였지만 이름 앞에 ‘명사’(名士)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이 영 어색하다고 했다. 겸허함을 지켜야 할 사제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거북하다고도 했다. 나이 일흔이 넘도록 흔한 회고록 한 권 내지 않은 이유다. 함 신부는 지난해 8월 사제 생활에서 은퇴했다. 하지만 인권의학연구소와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그는 매주 월요일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 시국미사에 참석하는 등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달려간다. 영원한 현역을 꿈꾸는 함 신부를 지난 8일 서울 마포구 도화동 인권의학연구소에서 만났다. 함 신부는 광복을 3년 앞둔 1942년 6월 서울의 용산구 원효로에서 태어났다. 유교적 가풍 때문에 가족 중에 가톨릭 신자는 없었지만 집 근처에 천주학당(현 성심여고)이 있어 가톨릭과 서양 문화를 자연스레 접했다. 여덟 살 되던 1950년 6·25가 터졌다. 소년 함세웅은 전쟁의 참상을 바라보며 어렴풋하게나마 신앙에 눈을 떴다. “어느날 집 앞에서 놀고 있는데 쾅 하는 굉음이 나는 거예요. 한낮인데 하늘이 시커매. 나중에 들었는데 B29 폭격기들이 한강 임시다리를 폭파하는 소리였대요. 너무 놀라 친구들과 어디로 우르르 몰려갔는데 거기가 성모병원이었어요.” 병원은 아비규환이었다. 피 칠갑을 한 환자들이 신음하고 있었고 수녀들이 그들을 간호하고 있었다. 인간의 탐욕이 빚은 전쟁, 그 속에서 생사의 경계에 섰던 사람들을 지켜본 경험은 그의 첫 종교적 체험이었다. 그때부터 가톨릭 신자가 됐다. “평범한 신자였던 제가 사제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중학교 2학년 때였어요. 성당에서 복사(천주교 미사 때 신부를 돕는 신자)로 활동했는데 그해 11월 2일 위령의 날 신부님과 함께 서울 잠원동, 논현동 일대의 공동묘지를 찾게 됐지요. 너른 터에 빼곡히 들어선 묘지는 정말 충격이었어요. ‘아, 누구나 다 이렇게 묘소에서 끝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6·25와 공동묘지의 체험이 겹쳐 결국 사제가 돼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셈이지요.” ‘천국에 온 것 같았다’는 회고처럼 신학교 생활은 그에게 더없이 잘 맞았다. 4·19 혁명이 전국을 휩쓴 1960년 가톨릭대에 입학한 그는 2학년을 마치고 육군 일반병으로 입대했다. “훈련소에서 헌병으로 차출됐어요. 이야, 이제부터 폼나게 군대생활 좀 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지요. 하지만 제가 배치된 곳이 부산과 광주(경기)의 남한산성 육군교도소였어요. 그곳에서 군생활을 꼬박 2년간 했지요. 군대는 대한민국 남성으로서 체험한 첫번째 모순의 사회였어요. 불합리한 일상을 겪으면서도 낙오하지 않으려면 숨죽인 채 순종해야 하는 곳이었습니다. 박정희 독재를 겪으며 ‘대한민국 모든 남성이 군에서 모순의 사회를 배우고 길들여졌구나’하는 생각에 마음 아팠지요.” 신학 교수의 꿈을 품은 함 신부는 1965년 가톨릭대학을 졸업하고 곧바로 이탈리아 로마로 유학길에 오른다. 당시는 4년 전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가 대통령으로 취임해 독재와 탄압을 본격화하던 때였다. 햇수로 9년을 로마에 머무는 동안 그의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나라 밖에 있다 보니 3선 개헌, 유신체제 선포, 학생과 민주인사들에 대한 투옥과 고문 등 뉴스를 외려 국내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빨리 접할 수 있었어요. 마음 아프고 부끄러웠어요.” 1973년 귀국해 마주친 조국의 첫인상은 낯설었다. 마포대교 등에는 헌병이 총을 들고 서 있었고 서울역에서는 중·고등학생을 동원한 반공 궐기대회가 수시로 열렸다. 그야말로 병영사회였다. 서울 연희동 성당에서 보좌사제로 있던 그를 세상 밖으로 끌어낸 결정적 사건이 1973년과 1974년 잇달아 터졌다. 김대중(1924~2009) 납치사건과 지학순(1921~1993) 주교의 구속이었다. 특히 1974년 7월 지 주교가 ‘민청학련 사건’과 ‘유신헌법 무효’ 양심선언으로 15년형을 받자 성난 사제들이 성당 밖으로 뛰쳐나왔다. 함 신부는 이 과정에서 젊은 신부들을 중심으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을 결성했다. 당시 사제단에 참여했던 문정현(73) 신부는 함 신부에 대해 “타고난 조율가이자 소통가”라고 평가했다. 문 신부는 “대표가 없는데도 사제단 전체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은 박학하고 판단이 빠른 함 신부 덕이었다”고 말했다. 함 신부는 지 주교의 구속에 대해 “돌이켜보니 은총의 사건이었다”고 말했다. 이 일을 계기로 사제들이 사회 참여를 시작하면서 유신체제의 모순에 대해 눈 떴다는 얘기다. 유신독재 타파를 외치며 정권에 맞서던 그는 1976년 3·1 구국선언에 참여했다가 구속됐다. 첫 투옥은 시련이자 기회였다. 서대문 구치소 등에서 1년여 옥고를 치른 그는 “제2의 신학교 생활 같았다”고 했다. 차디찬 감옥에서 자신의 인간 본성을 엿본 웃지 못할 촌극도 있었다. “중앙정보부에 체포돼 밤늦게 구치소에 갔는데 교도관이 제 방이라며 안내했어요. 근데 완전히 쓰레기통이야. 그래도 내가 살 방이니 의지를 갖고 아침에 청소를 깨끗이 하고 마음을 가다듬었어요. 근데 다 치워놓으니까 교도관이 ‘방 배치를 다시 해야 하니 나오라’는 거예요. 좀 억울하잖아요. 그래서 ‘싫다. 살 준비 다했으니 내 방이다’라고 하니까 교도관이 ‘교도소에 내방 네 방이 어디 있느냐’고 해요. 근데 옮겨 보니 새 방이 너무 깨끗한 거예요. 청소 좀 했다고 교도소 방 옮기기 싫어한 제 모습이 참…. 덧없는 소유욕이 드는구나 하는 생각에 혼자 웃었어요.” 함 신부는 교도소에서 고 김대중 전 대통령 등과 함께 꼬박 1년간 재판을 받으며 기도와 독서로 마음을 달랬다. 함 신부가 그 지긋지긋하고 끔찍했던 유신독재의 종말을 목격한 곳도 교도소였다. 1979년 미사를 집전하면서 농민 오원춘이 정보기관에 납치·감금당한 일에 대해 강론하다가 경찰에 연행돼 영등포 교도소로 끌려갔다. 두번째 옥살이가 시작됐다. 그리고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측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에 암살됐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는 “박정희 피살 소식을 접하며 성경에 나오는 이집트 노예 해방의 기적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함 신부는 김재규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유신독재의 핵심을 제거한 일은 높이 평가해야 해요. 그는 1979년 부마항쟁을 현장에서 지켜본 뒤 박 대통령에게 민심을 수습할 정책을 써야 한다고 건의했어요. 그러나 박 대통령은 경호실장 차지철과 나눈 대화에서 ‘그까짓것 100만~200만명쯤 죽여도 문제 없어. 3·15 부정선거 때 경무대 경호책임자인 곽영주가 발포 명령을 내린 죄로 처형당했는데 내가 발포 명령을 한다면 나를 어떻게 할 거야’라고 했다지요. 김재규는 이 말을 듣고 10·26 의거를 결행했다고 재판에서 진술했죠.” 그는 1970~1980년대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기적과도 같은 민초들의 힘을 경험했다고 말했다. “제가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조사 받을 때 피로를 못이겨 눈 감고 있었더니 혼자서 저를 감시하고 있던 중정 요원이 ‘신부님, 정신 차리세요. 소신껏 답변하셔야 해요’라며 응원하더군요. 힘이 불끈 솟았지요.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의 진실이 세상에 알려질 때 옥중에 있던 이부영 전 의원의 쪽지를 전달한 사람도 이름 없는 양심적인 교도관이었어요. 사도행전을 보면 감옥에서 천사들이 감옥 문을 열어 사도들을 내보내 줬다는 구절이 있잖아요. 그런 기적을 현실에서 체험한 거죠.” 1970년대 함 신부와 함께 군부독재 권력과 싸웠던 이들 중 지금은 뜻을 달리하는 사람들이 적잖이 있다. 이를테면 김지하 시인이나 김동길 전 연세대 교수 같은 사람들이다. “한 사람을 평가할 때는 시기별로 구별해서 봐야 해요. 인간은 원래 쉽게 변할 수 있는 존재니까요. 예컨대 김지하 시인도 1970년대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던 청년 김지하와 1990년대 이후 현실과 야합한 장년 김지하로 나눠 볼 수 있겠죠. 윤리신학적으로 봐도 사실 선과 악, 천사성과 악마성은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하거든요. 어느 쪽이 마음속 주도권을 잡느냐의 문제죠. 일제시대 때 최남선, 이광수 같은 분도 일면으로는 얼마나 훌륭했나요. 변절한 것은 시대적 한계를 넘지 못한 그들의 한계죠.” 함 신부는 잘못된 사회·정치 제도를 바로잡는 데 교회(종교)가 앞장서야 한다고 줄곧 강조해 왔다. 왜 하필 교회일까. 그는 “불의 없는 사회를 만들어 사람들이 양심껏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종교적 인간 구원의 핵심이기 때문에 종교가 사회 정화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꽤 오래 전의 일화 하나를 끄집어냈다. “1970년대 어느 부활절 때였어요. 자정 가까운 시간인데 국영기업에 다닌다는 한 40대 신도가 성당에 왔어요. 술에 취했는데 고해성사를 보겠대요. 그러면서 ‘신부님, 어차피 오늘 반성해도 내일 저는 똑같은 죄를 지을 수밖에 없어요. 그냥 저와 술 한잔 하시고 용서해주세요’하는 거예요. 또 ‘신부님은 세상을 모릅니다. 부정과 타협 안 하면 살 수가 없어요. 집에 노모까지 5명이 사는데 회사 월급만으로는 버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적당히 뇌물받아 아래, 위와 나눠 가져야 해요’라고 하더군요. 양심적으로 살려면 회사를 그만둬야 하고 그러면 당장 식구들이 굶어 죽는데 어떻게 할 수 있겠느냐고 묻더군요.” 함 신부는 당시 30대의 젊은 사제였다. 그 신자에게 ‘그래도 천주교 신자로서 양심껏 사세요’라고 도저히 말할 수 없었다고 한다. 아무리 좋은 메시지도 그 사람 스스로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라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신자들이 양심껏 살도록 도우려면 결국 옳지 못한 사회 구조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교(政敎) 분리는 사실 폭압자들의 논리예요. 종교의 이름으로 불의에 항거하면 ‘예배당, 불당에 가서 기도나 하세요’하는 식이죠. 성경에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 했잖아요. 그러려면 세상 한복판에서 세상을 껴안아야 해요.” (하편에서 계속)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反서방’ 케냐타, 케냐 대통령 당선

    지난 4일(현지시간) 실시된 케냐 대통령 선거에서 우후루 케냐타(51) 부총리가 라일라 오딩가(68)총리를 제치고 제4대 케냐 대통령에 당선됐다. 9일 AP·AFP통신에 따르면 케냐 선거관리위원회(IEBC) 아메드 아이작 위원장은 최종 개표 결과 케냐타 후보가 617만 3433표(50.07%)를 득표해 534만 546표(43.31%)를 얻는 데 그친 오딩가 후보에 승리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케냐 사상 처음으로 부자 대통령이 탄생했다. 케냐타 당선인은 1963년 영국 식민지에서 독립한 케냐를 14년간 통치한 ‘국부’(國父) 조오모 케냐타 초대 대통령의 아들이다. 캐냐타는 이날 당선 수락 연설을 통해 “케냐를 이끌어가는데 라일라 오딩가와 협력할 것”이라며 “국민들에게 공평하게 헌신하겠다”고 밝혔다. 나이로비와 케냐타 후보의 지지 지역 주민들은 조명탄을 터뜨리고 나뭇가지를 흔들며 케냐타를 연호하는 등 축제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그러나 경쟁 후보인 오딩가 총리 측이 개표 결과에 불복해 법정 소송도 불사할 움직임을 보여 정국의 앞날이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선관위 개표 결과 발표 직후 오딩가 후보는 “이번 대선은 불법 행위가 만연했던 부정선거이며, 케냐의 민주주의가 시험대에 올랐다”면서 법원에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케냐타는 개표 시작 이후 줄곧 우세를 유지했으나 전날 오후 늦게까지도 득표율이 50%를 밑돌아 결선 투표 가능성이 높게 점쳐졌다. 특히 서방국가들과의 관계에도 적잖은 파장이 미칠 것으로 보인다. 케냐타 당선인은 2007년 말 1200여명이 사망한 대선 직후 유혈사태를 주도한 혐의로 국제사법재판소(ICC)에 기소된 ‘반(反)서방 성향의 인물’이다. 이 때문에 서방 국가들은 역내 이슬람 무장단체와의 전투에서 중요한 동맹국인 케냐와의 외교 관계가 복잡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를 의식한 듯 케냐타는 “국제사회와 긴밀히 협의하겠다”면서 “국제사회도 케냐의 자주권과 민주주의를 향한 의지를 존중해주길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구치소 어떻길래… “과밀수용 위헌” 첫 헌법소원

    구치소 어떻길래… “과밀수용 위헌” 첫 헌법소원

    천주교 인권위원회(인권위)는 7일 서울구치소가 좁은 공간에 지나치게 많은 미결수를 수용해 인간 존엄성을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인권위는 “구치소 과밀수용에 관한 헌법소원은 처음”이라고 밝혔다. 이번 헌법소원은 인권활동가인 강성준씨가 구치소에 갇혀서 실제로 측정한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이뤄졌다. 강씨가 수용된 방 표지판에는 ‘거실 면적 8.96㎡, 정원 6명’이라고 기재돼 있었지만 실측 결과 거실 면적은 싱크대와 보관대를 포함해 7.419㎡로 나타났다. 당시 6명이 수감된 것을 감안하면 1인당 1.24㎡(0.375평) 넓이로 성인 남성이 팔을 펴거나 발을 뻗기도 어려울 만큼 좁은 공간이다. 강씨는 “구치소가 턱없이 좁다고 생각해 실 면적을 측정하기로 마음먹었고, 줄자가 제공되지 않아 편지지로 측정해 석방된 뒤 자로 편지지 길이를 재는 방법으로 실 면적을 산출했다”고 설명했다. 인권위는 “교정·교화와 사회복귀라는 목적을 달성하려면 수용자들이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기 적합하고 자긍심과 자존감을 침해받지 않는 수준의 생활조건이 필요하다”면서 “마치 최저임금 기준을 정하는 것처럼 국가는 구금시설 수용자들에게 제공할 생활 조건의 기준을 정할 의무가 있다”면서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이에 앞서 부산지방변호사회는 교정시설 수형자들의 열악한 처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부산교도소를 상대로 국가배상청구소송을 공익소송으로 제기,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부고] 日전범 도조 히데키 체포한 ‘마지막 미군’ 별세

    1945년 2차 세계대전 전범인 도조 히데키 전 일본 총리를 체포한 미군 5명 가운데 마지막 생존자인 존 J 윌퍼스 2세가 별세했다. 93세. 4일(현지시간) AP통신에 따르면 윌퍼스 가족은 그가 지난달 28일 미국 메릴랜드주 개렛파크 자택 인근 요양시설에서 사망했다고 밝혔다. 윌퍼스는 일본점령군 최고사령관인 더글러스 맥아더로부터 도조 히데키 체포를 명령받은 5명의 군 정보요원 특수임무조 가운데 마지막 생존자였다. 1945년 9월 11일 윌퍼스 등 요원들이 도조를 체포하기 위해 도쿄 외곽에 있는 그의 자택에 급파됐을 때 도조는 권총으로 가슴을 쏴 자살을 시도했다. 이때 윌퍼스는 현장의 일본인 의사에게 도조를 치료하라고 했고, 의사가 이를 거부하자 윌퍼스는 그에게 총을 들이대며 긴급 진료를 명령했다. 이어 다른 의사를 불러 도조를 군병원으로 이송해 소생시켰다. 치료를 받은 도조는 전범 재판정에 서게 됐으며, A급 전범으로 사형을 선고받고 1948년 12월 교수형에 처해졌다. 윌퍼스는 이후 33년간 미 중앙정보국(CIA)에서 근무하면서 당시 일을 함구했다. 그는 당시 공을 인정받아 2010년 동성무공훈장을 받은 뒤 첫 언론 인터뷰에서 “명령받은 대로 했을 뿐”이라며 “전쟁을 멋진 것으로 묘사하고 싶지 않았다. 어떤 일이 있었든 다른 전쟁과 마찬가지로 유감스러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미경 기자 chaplin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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