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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휘자 임원식(이세기의 인물탐구:93)

    ◎26세에 지휘봉 잡은 “한국의 토스카니니”/46년 고려교향악단 창설… 4대교향곡 국내초연/서울 온 오사카필 등 단골 지휘… 일 TV서도 소개/서울예고·예원학교 설립… 7순넘긴 나이에도 “꼿꼿한 현역” 미국의 NBC교향악단이 세기적 거장 아르투로 토스카니니를 가지고 있었다면 우리에게는 「음악의 자존심」 임원식이 있음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그는 음악을 위한 수많은 업적을 남겼고 그의 이름은 음악사의 중앙을 가로질러 우뚝한 산맥을 형성하고 있다. 평생을 통해 그처럼 존경과 사랑과 선망을 한몸에 받은 인물도 드물 것이다.그리고 음악의 발전·보급과 그 질을 높이는데 지금도 식을줄 모르는 정열을 불태우고 있다. 첫째,그는 우리나라 교향악운동에 초석을 놓은 독보적 존재다.아직 새파랗게 젊은 나이인 26세에 하얼빈교향악단 지휘로 음악계에 데뷔,국내 최초의 고려교향악단을 창설하여 46년 서울 부민관무대에서 첫지휘봉을 잡았을 때 『혜성같이 나타난 젊고 아름다운 예술가에 대한 청중의 열광은 참으로 대단했다』『연주 때마다 객석은입추의 여지가 없었고 그날 입장하지 못한 관객들은 극장의 창문을 깨뜨릴 정도였다』고 그의 오랜 동료이자 바이올리니스트인 전봉초씨가 이를 증명한다.그로부터 10년후인 56년,KBS교향악단창단과 함께 그는 지금까지 「현역의 단정함」을 꼿꼿이 지키고 있다. 지난 94년 음악생활 50년을 기념하는 음악회에서 그는 베토벤 교향곡 1번·5번을 필두로 다섯차례나 암보지휘를 하여 노익장을 과시했다. 전에는 비교적 섬세한 해석이 눈에 띄었으나 해를 거듭할수록 큰 흐름을 붙들면서 「음률의 마디마디에서 거인의 숨결이 느껴지고 인간정신의 승리가 구가되는 한층 심화된 경지」를 펼쳐보였다.『그가 지휘봉을 드는 순간이 바로 음악을 이루는 순간』이라는 박용구씨의 평은 결코 과장일수가 없다. ○연주때마다 관객 만원 둘째,음악교육에서도 그는 미래를 지향하는 청사진을 제시하고 이를 몸소 실천해왔다. 그 대표적인 예가 서울예고와 예원학교를 만든 일이다.미 줄리어드 음악학교 유학시절 청소년예능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한 그는 이화재단 신봉조이사장과 의논하여 예술고교를 설립하는 한편 해외에 나가있는 재능있는 젊은이가 눈에 띄면 어떤 방해도 뿌리치고 국내무대에 진출할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음악계 일선에서 쟁쟁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서울시향의 상임지휘자 원경수를 비롯,이남수 박은성,피아니스트 백낙호 정진우 신수정 이경숙 백건우등등 연주자 성악인의 대부분은 그의 도움을 받아 발돋움한 이들이다. 우리나라에 클래식이 보급되는 역사와 더불어 그는 주옥 같은 명편을 직접 들려준 첫지휘자이기도 하다.이른바 4대교향곡으로 일컬어지는 차이코프스키의「비창」,드보르자크의「신세계」,베토벤의「운명」과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초연은 물론 음악애호가들이 탐닉해마지않는 모차르트에서 프로코피예프에 이르기까지 「특유의 이모셔널한 시심과 티없이 순수한 천상의 음악」으로 그때마다 지식층의 청중들을 일시에 혼도시키고야 말았다. 그는 지방교향악단의 위상과 연주확대의 차원에서도 남이 넘볼수 없는 커다란 획을 긋고 있다.83년 인천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로 부임했을 때 동호인 그룹에 불과하던 이 악단을 3관편성의 풀오케스트라로 전열을 가다듬었고 지방시향으로선 엄두도 못낼 동남아및 미국순연으로 활기와 용기를 불어 넣었다.이런 면은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를 세계적 교향악단으로 성장시킨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에 비유되기도 한다. 이처럼 굵직한 공적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에 대한 행사는 떠들썩하게 소문내는 법이 없다.62년 이래 오사카필을 비롯,일본 NHK심포니·도쿄필하모닉의 단골지휘자였으며 지난 71년에는 서울에 온 오사카필을 지휘,내한공연을 갖는 외국교향악단을 최초로 지휘한 기록을 세웠고 77년 일본 도쿄와 삿포로에서 열렸던 아시케나지와의 협연역시 「아시케나지 특유의 탁월한 기교와 시적감성 표출을 절묘한 조화로 이끌어냈다」는 일본신문들의 특필이 있었으나 이를 과시하지 않고 평상적으로 지나갔다. ○유학도 국내진출 뒷받침 91년에는 레닌그라드필,다음은 러시아국립교향악단 객원지휘로 차이코프스키를 연주,「음 하나하나를 갈고 닦은 다이내믹한 쾌감과 가슴을 파고들게한 더없이 아름다운 거장의 선율」로 호평되었고 지난해엔 일본 마이니치 TV가 제작한 세계 최원로지휘자인 아사히나 다가시(조비나 융)다큐멘터리에 참가,이 프로그램은 다가시와 다가시의 후계자였던 그의 하얼빈교향악단 지휘 50년을 기념하는 동양음악사에 남을만한 내용이었다. 그의 성품이 바로 그렇다.폭이 넓고 대범하면서도 절도와 예의범절을 중시하여 어떤 경우에도 남에게 폐해를 끼치지 않는다.단지 싫고 좋은 것을 선명하게 가리는 까다로움 때문에 「카리스마적」이라든가 또는 「독선적」으로 몰아붙이는 예가 없지 않으나 이는 임원식 카테고리에 들지 못한 사람들의 질투심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면 간단해진다. 오히려 불의에 굽히지 않는 강건한 의협심은 작곡가 윤이상씨가 국가보안법에 관련되어 주변 사람들이 만나기를 꺼려할 때도 점심을 싸들고 구치소에 드나들며 「거대한 예술가」의 고뇌와 슬픔을 달래주고 예술혼을 격려한 것으로 유명하다.그래서 윤이상씨는 『임원식은 나의 유일한 은인』임을 자랑삼았고 바로 이런 정의감과 의리가 그의주변에 수많은 사람들을 모으는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그의 끈끈한 친화력은 다양한 층과 교분을 트고있는 사교맨이기도 하다.정·재계는 물론 체육계와도 깊이 관련되어 70년대엔 남자대학농구협회부회장을 지내는가 하면 바로 「농구의 노래」를 지은 장본인이기도 하다. 농구와의 인연은 그가 누구도 「못말릴 농구광」이기 때문이다.그가 얼마나 열렬한 농구광인가는 그가 있는 곳엔 반드시 어린이농구든 어머니농구든 농구경기가 열리고 있다고 짐작하면 정확하다. 그는 평북 의주의 독실한 개신교집안에서 태어났다.집안이 만주로 이사하는 바람에 봉천서 유년기를 보내고 하얼빈에 있는 제일음악학원에서 피아노와 이론을 사사,교회찬양대를 반주하면서 자연스럽게 음악과 접할수 있었다.편곡과 작곡에도 능하여 도쿄음악학교시절에 작곡한 파인 김동환의 「아무도 모르라고」는 지금도 폭넓게 애창되는 가곡의 하나다.가족은 플루티스트인 고순자씨와의 사이에 2녀1남,연극연출가 임영웅씨가 그의 조카다. ○각계각층 인사와 교분 토스카니니가은퇴해야 할 69세부터 87세까지 거장다운 황금시대를 누렸고 스토코프스키가 95세까지 7천회의 지휘로 금자탑을 쌓았다면 그는 지금 욕구와 절제,감성과 이성에 치우치지 않으면서 음악의 정수를 순수한 형태로 구현하려는 의지가 결집된 시기다.그의 열렬한 지지자의 한사람인 원경수는 「영원히 만족하지 않고 끊임없이 전진한다」는 점에서 『그는 파우스트적』이라고 말한다.그리고 날이 갈수록 『그의 피아니시모는 예리하고 그의 포르티시모는 누구보다 웅장하며 긴장되고 팽팽한 현의 울림,꽉차오르는 관의 장중한 볼륨은 거센 폭풍우를 분출시키면서 청중의 가슴속에 날카롭게 꽂힌다』고 경탄해 마지않는다. 올해는 그가 하얼빈서 돌아와 첫지휘봉을 잡은지 만50주년이 되는해,상대방의 내부에 음악의 혼을 심어준 「위대한 음악의 은인」에게 우리 모두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진심의 기립박수를 보낼 때이다. □연보 ▲1919년 평북 의주출생 ▲1942년 일본 동경고등음악학교 졸업 제정삼낭사사 ▲1945년 중국하얼빈심포니 지휘데뷔 ▲1946년 고려교향악단창단,초대상임지휘자 ▲1948년 줄리어드음악학교 수학 ▲1949년 탱글우드음악제서 러시아출신의 쿠세비츠키에게 지휘법사사 ▲1953년 서울예고 창립 ▲1954년 대한민국 예술원회원 ▲1956∼71년 KBS교향악단 창단,상임지휘자 ▲1961∼75년 서울예고교장 ▲1962년이래 일본 오사카·도쿄필,NHK교향악단 등 50여회 객원지휘 ▲1966년 한국음악협회이사장 ▲1971년 내한 오사카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서울시민회관) ▲1973∼86년 국제청소년 음악연맹 한국지부 회장 ▲1976년부터 서울예고 명예교장 ▲1978년 경희대 음대학장 ▲1981∼84년 예총부회장 ▲1984∼95년 인천시향상임지휘자 ▲1985년부터 추계예대교수 ▲1987년 인천시향 동남아순회연주 및 미국 샌프란시스코 등 3개도시 연주 ▲1991년 싱가포르 교향악단 및 레닌그라드필 지휘 ▲1994년 음악데뷔 50년 기념음악회 서울시향 「베토벤 교향곡전곡」지휘,러시아국립교향악단 지휘 ▲1995년 국제청소년음악연맹 한국지부회장 예술원회원,인천시향 및 서울아카데미심포니 명예지휘자 서울시문화상·방송문화상·오월문예상·대한민국예술원상·서독문화훈장·은관문화훈장·음악동아대상
  • 국립극단,내일부터 「반도와 영웅」 공연

    ◎인니 독립전쟁 참가 한인의 기구한 삶/전주출신 양칠성씨 모델 국립극단이 올해 첫 공연작품으로 연극 「반도와 영웅」(김의경 작·장진호 연출)을 29일부터 국립극장 소극장 무대에 올리고 있다. 「반도와 영웅」은 비교적 메시지가 무거운 창작극으로 제2차 세계대전 말기인 1943년부터 인도네시아 독립전쟁이 끝난 1950년까지의 격랑기에 이국땅에서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간 실존인물 「양칠성」을 소재로 한 작품.전쟁 말기 일본군에게 끌려나가 일본 남방군포로 감시요원으로 일하다 전쟁 직후 인도네시아 독립전쟁에 참전한 양칠성씨(최상설 분)와 그의 일본군 상관 아오키(이문수 분)사이에 펼쳐지는 인간관계를 다루고 있다. 일본군으로부터 갖은 박해와 수모를 받고 암울한 식민지 민중의 설움을 씹으며 살던 양씨는 일본 패망후에도 귀국선을 타지 못한채 인도네시아 독립군으로 변신해 정글을 누비게 된다. 그러나 그토록 죽이고 싶던 아오키가 전투중 부상당하자 양씨는 그를 구출하려다 끝내 네덜란드군에게 잡혀 1949년 8월10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만다. 이 작품의 밑바닥을 훑고 있는 메시지는 「전쟁이란 승자와 패자,가해자와 피해자 구분없이 모두를 황폐화시키는 굴레가 된다」는 사실. 1915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난 실존인물 양씨는 인도네시아 독립전쟁에서의 공적을 뒤늦게 인정받아 지난 75년 인도네시아의 가루트 영웅묘지에 안장돼 나라잃은 설움을 조금이나마 달래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갔다. 이번 공연에는 국립극단의 원로배우 백성희·장민호씨를 비롯,최상설·이문수·정상철·권복순·전국환씨 등 중견들이 총출동한다. 3월19일까지.평일 하오 7시30분,토·일 하오 4시.
  • 정치·사회적사건 무대에

    ◎날 보러와요­화성연쇄살인 조명/마담 민여옥­요정정치 이면 극대화 과거 세간을 어지럽게 했던 정치·사회적 사건을 소재로 한 연극 두편이 차례로 무대에 올라 관심을 끈다. 지난 80년대 중반 경기도 화성 일대에서 저질러진 의문의 연쇄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한 「날 보러 와요」(김광림 작·연출)와 과거 한국정치의 이면사를 장식했던 요정정치를 다루는 「마담 민여옥」(박구홍 작·황남진 연출)등 두 작품이 그것. ○문예회관 소극장서 20일 문예회관 소극장(744­7090)에서 시작된 「날 보러 와요」는 86년 9월 첫사건 발생이래 화성지역을 공포속으로 몰아넣은 뒤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영구미제사건으로 남아있는 「화성 연쇄살인사건」을 새롭게 파헤친다. 이 작품은 사건과 관련된 보도내용과 수사관계자와의 인터뷰,화성 일대에 대한 수차례의 현장답사를 통해 발견한 수사반 내부의 엇갈리는 시각들,매스컴의 무책임한 보도,몸을 사리는 이웃과 증인들의 모습등을 제시함으로써 사건해결을 가로막는 진정한 요인들이 무엇이었는가를 다시 들춰본다. 여기에 수사극이 주는 지루함이나 딱딱한 분위기를 피하기 위해 묵묵히 범인을 쫓는 형사와 다방종업원의 러브스토리를 끼워넣는가 하면 가려진 진실을 찾아내고자 고민하는 성실한 인물묘사를 통해 삶의 가치를 새롭게 인식시키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하오 4시·7시. ○대학로 정보소극장 오는 24일부터 대학로 정보소극장(3672­0309)에서 공연될 「마담 민여옥」은 요정정치의 베일속에 가려진 한 여성의 인생역정을 통해 한국정치 이면사를 재조명하려는 작품. 한국 현대정치의 실존인물인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씨 등 전직대통령들과 모윤숙·이순자·김옥숙씨 등의 실명을 그대로 사용하며 허삼수·허화평·허문도씨 등 이른바 「3허」와 장세동씨를 연상케 하는 배역도 등장한다. 이 작품은 또 남자출연자 10명을 뒷모습이긴 하나 전라로 등장시킴으로써 부정·타락선거등 파행정치로 인한 국민적 허탈감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며 힙합·레게·테크노댄스·재즈 등을 배경음악으로 사용,정치극 특유의 가라앉는 분위기를 피한다는 구상이다.이야기는 미군정 군사고문관의 정부로부터 시작해 역대 대통령과의 밀접한 관계속에 주인공 「민마담」이 겪는 파란곡절이 한편의 드라마처럼 엮어진다.평일 하오 4시30분·7시30분.일 하오 3시·6시.
  • 민속연구가 심우성(이세기의 인물탐구:91)

    ◎남사당패 쫓아 풍물 놀고 탈 만들고…/현장 찾아 자료 채집·기록… “발로공부” 평가 받아/1인극 「쌍두아」는 인형에 혼을 담은 산무대로/「꼭두각시 놀음」·「발탈」 무형문화재 지정에 큰몫 심우성(민속연구가) 「나는 얼굴에 분칠을 하고/삼단같은 머리를 땋아내린 사나이/초립에 쾌자를 걸친 조라치들이/날라리를 부는 저녁이면/다홍치마를 두루고 나는 향단이가 된다./……산넘어 지나온 저 동리엔/은반지를 사주고 싶은/고운 처녀도 있었건만/다음 날이면 떠남을 짓는/처녀야!/나는 집씨의 피였다./내일은 또 어느 동리로 들어간다냐/ 시인 노천명은 옛유랑 예인집단의 기약없는 인생과 서글픈 족적을 이렇게 노래부르고 있다.몇년전 타계한 예용해씨는 「일수가 좋으면 공청에나 또는 주막집 기역자 판을 끼고 잘때도 있지만 인심이 사나운 마을에서는 처마끝에서 비를 피해야 할 때도 있다」고 남사당패의 일상을 그의 저서에 쓰고 있다. 그러나 누더기에 걸식행각으로 밥을 빌어먹을 망정(걸양) 그들은 「꼭두각시놀음(우희)으로 관중을 웃기고 울리는 소박한 신명에 겨워 살다가」 「어느 낯선 고장에서 길섶 아침이슬처럼」 사라져버린다고 했다. 판소리나 춤이나 연극을 하는 예인들의 대부분은 설날 명절 때 동네에 찾아든 유랑극단이나 광대패의 공연을 구경하다가 그들의 연희에 반해 길을 따라나서거나 부모의 대를 이어받는 수가 흔하다.인형극연희자인 심우성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그러나 그의 예능 기질은 누가 시킨 것도 권한 것도 아니며 집안의 내력을 이어받은 것은 더욱 아니다.단지 그의 마음속에서 끝없이 일고 있던 불가사의한 「끼」에 의해 뒤늦게 연희자로 돌아선 케이스다. ○머슴살던 노인에 영향 그는 언제부턴가 남사당패의 삶을 쫓아 풍물을 놀고 탈과 인형을 만들고 「취발이」나 「미얄할미」나 허세부리는 샌님,미소를 머금은 백정의 탈을 쓴 온갖 인형을 조종하면서 때론 분노로 때론 질타로 어느 때는 주책없고 어느 때는 넉넉하게 인간사의 천태만상을 손끝에서 펼치더니 어느 날 스스로 연희자가 되어 직접 무대에 오르기 ○시작했다. 그가 민속연희중에서도 유독 인형극인 꼭두각시 놀음에 심취하게 된 것은 무대장치 안에서 벌어지는 상황과 무대밖의 공간이 연결되는 극적 공간의 자유로움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그리고 그의 무대는 혼자서 극중인물이면서 등장인물을 소개하는 해설자에다 산받이까지 도맡아 양반들의 어처구니 없는 횡포나 위선위귀를 징치하기도 하고 재난을 물리치는 홍동지의 기개를 앞세우는 등 지배층에 대한 세찬 비판을 표방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른바 「광대」란 역사속에 놓여진 동시대인들의 희로애락을 세상으로 되돌리는 영혼의 울림대이기를 자처한 사람이며 그는 자신의 역할에 완전히 만족하는 사람일 것이다. 그는 충남 공주의 만석지기 외아들로 태어나 서울에서 휘문중에 다니다가 6·25를 만나 고향인 공주군 의당면에 머물면서 김재철의 「조선연극사」를 읽은 것과 집안의 나이든 머슴인 정광진노인으로부터 남사당패들의 내력을 들은 것이 연희자가된 동기다. 한때는 소설가 신문기자가 될뻔도 했고 서울 중앙방송국 아나운서로 활약하기도 했으나 아나운서 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걸핏하면지방 방송국에 출장간다는 핑계로 옛 남사당패를 찾아 나섰고 거의 전국을 떠도는 뜬 광대노릇으로 서서히 잊혀져 가던 풍물놀이(농악) 버나(대접돌리기) 살판(땅재주) 어름(줄타기) 덧뵈기(탈놀음) 덜미(인형극 꼭두각시놀음)등 남사당놀이 여섯가지를 재현해 내는데 수많은 돈과 시간과 정열을 들여왔다.가족들에겐 의논도 없이 3년만에 방송국을 집어치우고 나서도 「어디어디 답사,무슨무슨 녹음 촬영」등으로 새벽부터 집을 뒤쳐나가는가 하면 여행과 술에 지쳐 며칠씩이나 대낮에도 이불을 펴고 눕는 것이 다반사였다.오죽하면 그의 부인(권숙현여사)이 「올해도 당신 작년처럼 그렇게 지낼거예요」했다는 말이 이를 단적으로 증명한다. ○방송국 아나운서 출신 그는 가뜩이나 쪼들리는 살림에서 부친이 마련한 집을 팔기도 하고 동해안 서해안으로 다니다가 간첩혐의를 받기도 하고 녹음기와 카메라와 어렵사리 찍은 필름을 빼앗기기도 했다.5·16직후에는 종로 YMCA강당서 남사당창단 기념으로 남사당놀이중 「덧뵈기」를 공연하려 했을 때 「남사당」이 정당이름인줄 잘못알고 종로경찰서에 연행되는 웃지못할 에피소드를 빚기도 했다.59년 8월,전국에 흩어져있는 남사당패를 모아 지금의 남산도서관 자리인 빈터에서 요즘의 약장사처럼 「꼭두각시 놀음」을 공연한 것이 본격적인 해설가의 출발이 되었고 그후 전국각지 순회공연으로 「꼭두각시 놀음」과 「발탈」을 공연한 것이 후에 이 놀이들이 중요무형문화재(3호 7호)로 지정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냈다. 그가 「책이 아닌 발로 공부한 사람」이란 평을 듣는 것은 자료수집에 혈안이 되어 현지에서 이를 확인보충하고 채집·기록한 공적과 실제로 수백여회에 이르는 연희를 주관하고 실연한데서 비롯된 것이다. 심우성.민속예술에서 괴팍한 개성을 보이지 않는 사람은 드믈다.틀이 번듯하고 아나운서 출신답게 우아한 말씨를 쓰지만 그도 어쩔 수 없이 광대기질을 타고난 사람에 틀림없다.이제 그 시절의 남사당패는 사라지고 없으나 유일하게 그 흔적과 체취를 물씬 풍기는 무대가 있다면 심우성의 1인무언극이 남아 있다고 할 수 있다. 『뒤늦게 나마 재혼하는 과부의 설렘으로 무대에 서렵니다』 비장한 인사말과 함께 그가 지난 80년 공간사랑 소극장무대에서 선보인 첫번째 1인극 「쌍두아」는 글자그대로 머리가 둘,손은 넷에다 발이 둘인 전남 구례지방 풍장굿의 비비새놀이에 나오는 접광대를 본뜬 것으로 음악과 인형과 자신의 몸짓만으로 두동강난 조국의 분단된 역사를 상징적으로 드러내고자 했다. 뒤에서 인형을 조종하던 그가 이렇게 무대에 나서게 된 것은 「속되고 다난한 편력으로부터 스스로를 정리하는 전기가 되고 그리고 인형속에 혼을 불어넣는 산무대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며 이는 「연희자가 무대에 나와 인형과 함께 춤춘 최초의 시도」로서 평론가 양혜숙은 「가면극이 인형극으로 거듭나면서 우리 예술사의 흐름을 크게 바꿔놓은 계기다 되었다」고 평하고 있다.지난 88년 초연이래 최근까지 공연되고 있는 「남도 들노래」도 「민족적 아픔과 통일에의 염원」을 담아 분단을 넘어 통일로 가는 길목에서 희생된 한 젊은이의 장례식을 치르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민속박물관 5월 개관 「민속이란 고전적이기 때문에 그것을 원형그대로 보존하라」는 강한 비판도 있었으나 그는 「민중의 습속이 시대따라 변하듯이 우리가 추구하는 민속극도 그 모습이 달라질 수 있고 옛 것을 재현하는 연극이 아니라 옛 것을 바탕으로 오늘의 것을 한다」는 의지다. 그는 지난해 고향인 공주에다 오랜 숙원이던 민속박물관 건립을 시작,각종 탈전시에서 모든 농기구에 이르기까지 민속과 관련된 자료전시관및 야외공연장을 오는 5월쯤 개관할 예정이다.가족은 노부모와 부부와 아들 하용씨(27·미캘리포니아대 경제학과 졸업)가 그를 돕고 있다. 호라티우스는 일찍이 「인간은 타인의 끄나풀에 조종당하는 인형 같이 움직인다」고 했지만 그의 인형은 「하나의 굳어버린 표정속에서 눈물을 흘릴 때 웃고 있고 웃어야 할 때 울고 있는」 아이러니와 시니시즘의 묘미를 그 때마다 능란하게 연출해낸다.오늘 그의 소원은 「타고난 광대의 운명」속에서 「피가 흐르고 살아숨쉬는 진짜 인형」이 되어 「인간이 가장 인간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가」를 관중을 웃기고 울리는 소박한 신명으로 핍진하게 이룩하려는 것이다. □연보 ▲1934년 충남 공주출생 ▲53년 서울휘문고졸업 ▲53∼56년 서울중앙방송국 아나운서 ▲58년 홍익대 신문학과졸업 ▲59년 남사당놀이패공연(남산) ▲60년 남사당놀이중 「덧뵈기(탈놀음)」공연(종로 YMCA강당) ▲64년 민속극회 남사당결성 ▲66년 한국민속극연구소 창설 ▲79년부터 극단 서낭당창단,전통인형극 「꼭두각시놀음」「발탈」「만석중놀이」,창작인형극 「홍동지의 나들이」「신경림의 농무」「청개구리는 왜 날이 궂으면 우는가」「우리산 우리강」외 김명수춤판,강만홍 인도무용,이동안 전통무용,이매방 민속무용,김숙자 무속무용,우옥주 만구대탁굿등 공연 ▲80년 1인극 「쌍두아」로 무대데뷔(공간사랑소극장) ▲83년 우리문화연구소장,인형극 「만석중놀이」(문예회관소극장) ▲85년 「문」(산울림소극장) ▲86년 서강대·한양대강사 ▲90년 인도 국제인형극제에서 1인극 「남도 들노래」 참가 ▲91년 프랑스·말레이시아·일본민속극제 참가 ▲93년 「판문점 별신굿」 공연 ▲94년 제주 4·3항쟁추념 「남도 들노래」및 동학농민혁명 1백주년기념 「새야새야」(문예회관대극장)등 3백여회 공연 현재=우리문화연구소장,민학회회장 「남사당패연구」(74년)이후 「한국의 민속극」「한국의 민속놀이」「전통무용용어의 연구」「마당굿 연희본 1·2」,평론집 「민족문화와 민중의식」「꼭둑각시놀음」등 20여권 서울시문화상(인문사회과학부문·79년)
  • 서울신문 선정 「올해의 문화인물」 10인

    ◎전수천­베니스비엔날레 수상 이용우­광주 비엔날레 전시 기획 정명훈­금관문화훈장 받아 강수진­독서 발레리나로 활약 김아라­서울 연극제 석권 신경숙­여공시절 작품화해 호평 김종학­「모래시계」를 연출 박광수­노동운동가 전태일 영화화 최근덕­“유교 종교화” 주역 룰라­6회 서울가요대상 영예 「미술의 해」인 95년 우리 문화계는 엄청난 관객을 동원하며 외형적 성공을 거둔 광주비엔날레를 잘 치러냈다. 또한 광복50주년을 맞아 이를 기념하는 뜻있는 공연도 끊이지 않았다. 삼풍백화점 붕괴등 대형사건·사고와 노태우·전두환 전 대통령이 구속되는 정치적 격변속에서 문화계는 사상 유례없는 침체와 불황의 늪속에 빠져들기도 했다. 올해는 또 우리문학의 거장인 김동리선생과 세계적 명성의 원로조각가 문신씨,국악계의 보물 김소희여사,세계가 인정하는 현대음악계의 정상 윤이상선생이 유명을 달리하여 슬픔을 안겨주었다. 그럼에도 많은 문화인들이 올 한해 우리 문화마당의 전면 혹은 이면에서 한국의 문화역량을 확인시키는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올해 문화예술 각 분야에서 이름을 빛낸 10명의 문화인물을 통해 지난 1년간 우리 문화계를 돌아본다. ★전수천(47·설치미술작가) 지난 6월 세계최고의 미술제인 베니스비엔날레에서 한국관 개관 원년행사에 출품한 작품「방황하는 혹성들속의 토우­그 한국인의 정신」으로 특별상을 수상.1백년 전통의 이 미술제에서 한국국적 작가로는 첫 수상의 영예를 안으면서 세계적 작가로 부상했다.올해 국내 최고의 미술잔치인 광주비엔날레에도 특별전「한국 현대미술의 오늘전」에 수만마리의 누에고치를 소재로 한 설치작품을 출품,관람객이 가장 많은 관심을 보인 작품으로 꼽혔다.주로 일본과 미국에서 실험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해오다 지난 봄 국립현대미술관이 선정하는 「올해의 작가」로 뽑혀 국내에서도 역량을 인정받기 시작했고 베니스비엔날레 수상과 함께 올해 국내 미술계의 가장 떠오르는 작가로 부상했다.최근 정부로부터 은관문화훈장을 수여하는 영광을 안았다. ★이용우(46·고려대교수,광주비엔날레 전시기획실장 역임)한국의 문화역량을 빛낸 광주비엔날레 성공에 중추적 역할을 해낸 인물.일간지 미술기자를 거쳐 미술평론가로 등단하고 지난 93년부터 고려대 미술교육과에서 후학을 가르치는 학자로 변신한 그는 국내 미술평론가중 해외 미술무대에 여러 역할을 맡아 가장 진출을 많이 하는 인물로 꼽힌다. ★정명훈(42·지휘자) 명실공히 세계가 인정하는 현존하는 최고의 지휘자.지난해 프랑스의 묘한 정치적 알력에 휘말려 바스티유오페라단의 음악감독직에서 물러난 아쉬움을 만회하듯 고국에 쏟는 열정이 대단했다.지난 8월15일 잠실 올림픽경기장에서 광복50주년을 기념하여 열린 「축전음악회­세계를 빛낸 한국음악인 대향연」에서 지휘봉을 잡아 한국을 빛낸 기라성같은 음악인 20명과 함께 벅찬 감동의 무대를 연출했다.이로 인해 최근 정부로부터 문화인물로는 최고의 영예인 금관문화훈장을 수여하는 영광을 안았다.그는 또 고국에 기여하는 자세로 지난 5월 「음악을 통한 환경보호 캠페인」에 나서 환경뮤지컬 「오션월드」의 기획과 지휘를 맡아 환경보호에 대한인식을 제고시켰다. ★강수진(28·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원) 지난 10월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작품 「잠자는 숲속의 미녀」에서 통상 발레단의 최고무용수에게 돌아가는 시즌 첫 공연의 주역을 따내 월드스타로 발돋움했다.선화예고 1년에 재학중이던 82년 모나코 왕립발레학교로 유학을 가 85년 세계 3대 발레콩쿠르의 하나인 스위스 로잔콩쿠르에서 그랑프리를 차지,한국발레의 자존심을 높였다.「마적」「마타하리」「로미오와 줄리엣」등에서 프리마돈나로 이미 뛰어난 기량과 연기력을 인정받았으며 내년에 공연될 빈 국립오페라발레단의 「마타하리」객원스타,슈투트가르트의 내년시즌 공연작 「오네킨」과 「에드워드 2세」에서도 주요 배역을 내정받은 상태다. ★김아라(39·극단 무천 대표) 지난 10월 제19회 서울연극제에서 「이디푸스와의 여행」으로 영예의 대상과 연출상등 4개 부문을 석권,올해 국내 연극계에서 가장 두드러진 활동을 보였다.86년 「장미의 문신」으로 데뷔한 이래 「숨은 물」「메모렌덤」등 잇따른 우수작품으로 90년대 국내연극계를 주도해오고 있다.내년에도 4월 뉴욕에서 「이디프스와의 여행」 공연에 이어 10월에는 덴마크 오페라하우스 초청으로 유럽 및 아시아 3개국 배우들과 「리어왕」을 연출할 계획이다. ★신경숙(33·소설가) 장기적,전반적인 출판계 불황속에서 작가 신경숙씨의 약진이 유난히 두드러졌다.지난해 발표한 단편 「깊은 숨을 쉴때마다」로 올초 현대문학상을 수상했고 몇달 간격으로 펴낸 산문집 「아름다운 그늘」과 두번째 장편소설 「외딴 방」1,2를 나란히 베스트셀러에 올려 여전한 대중적 인기를 실감케 했다.뿐만 아니라 산업체 노동자 시절을 털어놓은 「외딴 방」으로 작품세계의 질적 성숙을 이뤘다는 찬사속에 그간 꼬리표처럼 따라붙던 「소녀취향」이라는 부담에서도 벗어났다.신씨의 부상은 다분히 90년대의 새로운 징후를 반영하는 현상으로 평가되고 있다. ★김종학(44·프로듀서) 올해 방송가 최고의 흥행작 「모래시계」를 만든 장본인.온 국민을 안방TV에 붙들어맬 정도로 인기를 누렸던 「모래시계」는 드라마의 차원을 넘어 「모래시계신드롬」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킨 하나의 사회현상이 되었다. 지난 77년 MBC에 입사,「영웅시대」「인간시장」「여명의 눈동자」 등 숱한 화제작을 제작한 김PD는 역사와 흥미를 적절히 결합한 작품으로 한국 드라마의 한 획을 그은 인물로 평가받는다. 「여명의 눈동자」로 93년 백상예술대상 연출상,방송대상을 수상한뒤 프리랜서를 선언,작가 송지나·음악 최경식등 「김종학 사단」을 이끌고 SBS와 계약을 맺었으며 이제는 영화쪽으로 본격 진출할 계획이다. ★박광수(41·영화감독) 올해 우리 영화계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연출한 박광수 감독을 화제의 인물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노동운동가 전태일 분신 25주기를 기념해 만든 이 영화는 무거운 내용임에도 불구,『진실의 힘을 일깨워줬다』는 평과 함께 매진사례를 보이기도 했다. 지난 88년 「칠수와 만수」로 데뷔한 이래 「그들도 우리처럼」「그 섬에 가고싶다」등 사회성 짙은 리얼리즘 영화를 주로 선보여온 박감독은 이번 작품으로 다시한번 투철한 작가정신을 인정받았다. ★최근덕(63·성균관장) 최근덕 성균관장은 유교를 현대화된 종교로 탈바꿈하기위해 종단을 새로 설립하고 종단의 대표를 총전으로 하는 유교 개혁안을 올해 11월에 확정했다. 지난해 4월 취임한 최관장은 1년 7개월동안 유교의 개혁안을 추진한것은 2천5백년된 유교가 현대에 적응하기위해서는 제사제도와 기구와 조직등을 과감히 현대화해야한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최관장은 지금까지 음력으로 지내던 공자의 탄신일과 기일인 춘계·추계석전제를 양력으로 확정하는등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을 했다. 최관장은 앞으로 전국 2백30여개 향교와 22만 유림들을 종교단체와 종교인으로 이끌기위한 전문인력을 육성하기위해 충남 천안에 유학학원을 신설할 계획이다. ★룰라(가수·댄스그룹) 김지현·채리나·이상민·고영욱 등 4명으로 이루어진 댄스그룹 룰라는 지난해 「백일째 만남」 「비밀은 없어」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데 이어 올해초 발표한 「날개잃은 천사」가 수록된 룰라의 2집 앨범은 올 한해동안 1백50여만장이 팔리는 엄청난 판매고를 올렸다. 룰라는또 지난 9일 열린 스포츠서울 주최 제6회 서울가요대상에서 영예의 최고가수상을 차지,국내 최고의 댄스그룹임을 입증했다.
  • 제11회 향토문화 대상/대상에 김정명 춘천문화원장

    ◎본상 개인 5명·단체 1곳 선정/새달 1일 시상식 서울신문사가 전통문화 계승과 지역문화의 창달에 힘써온 숨은 일꾼을 찾기 위해 제정한 제11회 향토문화대상 수상자가 22일 결정됐다. 전통문화부문과 현대문화부문으로 나누어 전국의 시·군 문화공보실과 문화원·예총·향토사학자들이 추천한 단체 및 개인을 대상으로 심사한 결과 영예의 대상에는 김정명 춘천문화원장(75)이 선정됐다. 본상중 전통문화부문에는 ▲김상곤(남원애향운동 본부장·58·전북 남원) ▲대구향토문화연구소(대표 김택규·66) ▲최종덕(양양 오색국교교사·52·강원 양양)씨등 3명이,현대문화부문에는 ▲이윤수(시인·82·대구시) ▲이은구(이천문화원장·52·경기 이천) ▲심우성(극단 서낭당 대표·62·충남 공주)씨등 3명이 뽑혔다. 대상에는 상금 3백만원,본상에는 각각 2백만원씩의 상금이 주어진다. 올해 심사는 구상(시인)·차범석(극작가)·임동권(중앙대 명예교수·민속학)·정영호(한국교원대 교수·역사학)·이중한(서울신문 논설위원)씨등 5명이 맡았다. 서울신문사 주최,LG전자 협찬,문화체육부 후원으로 열리는 이번 향토문화대상 시상식은 오늘 12월 1일 하오 4시 한국프레스센터 20층 내셔널프레스클럽에서 열린다. ◎대상 수상자 김정명 춘천문화원장/「소양제」 부활·예술행사 활성화/민속자료실 만들고 삼악산성 복원 앞장 『큰 상을 받은 것을 계기로 지역에 묻혀버린 향토문화의 발굴,보존에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대상 수상자로 결정된 강원도 춘천문화원장 김정명씨(75)씨는 『선인들의 얼이 담긴 향토문화를 보존하고 전승하는 작업이 너무 미흡해,후손으로서의 도리를 하려고 애썼을 뿐』이라고 겸손해 했다. 양구군수·강릉시장·도청 상공국장,중소기업 협동조합 도지부장 등을 거쳐 지난 87년 춘천문화원장으로 부임했다.그 때 문화원은 봉의동 도청 앞의 건물에 3평짜리 사무실를 임대해 쓰고 있었다.인원은 여직원 한명과 원장 뿐이었다. 문화재를 간수하는 유일한 기관인 문화원의 당시 역할과 위상을 말해주는 사례이다.『조상들의 발자취와 손때 묻은 유품들을 추스리려는 노력이나 의지가 전혀 없었습니다』 때마침 시립도서관이 새 건물을 짓자,문화의 중요성을 역설해 사무실을 도서관으로 옮기고 민속자료실과 영상오디오 자료실·미니 도서실 등을 만들고 지역의 예술·문화 행사를 활성화하기 시작했다. 『흐지부지됐던 춘천의 향토문화 축제인 「소양제」를 77년부터 부활하고 정월 대보름 놀이와 청소년 유적답사 등도 알차게 추진했습니다』 향토문화를 지키고 가꾸려면 주민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일이 시급하다고 보고 솔선하기 시작했다.스스로 강원도 전역을 누비며 선조들의 생활도구와 유물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이렇게 모은 베틀,소 구유,재래식 쥐틀 등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6백여점의 유물들을 의상,음식,생활,생활방식,습관 등으로 나뉘어 민속자료실에 전시했습니다』 대부분 지금은 볼 수 없는 물건들이다.학생들과 주민들이 문화원을 향토문화의 학습장으로 활용할 때마다 보람을 느낀다. 요즈음은 스러져가는 산성 복원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다.『춘천 덕두원리에 10여m 정도만 남아 있는 고대 맥국의 마지막 유적인 삼악산성의 복원 작업을 서두르고 있습니다.맥국은 삼국시대 이전의 고대 왕국으로 강원도의 뿌리입니다』 춘천,나아가 강원도의 뿌리인 맥국의 보존을 위해 3년 전 조사위원회를 만들었고,오는 연말까지는 신북읍 발산1리에 맥국터비를 세우기로 했다. 이에 앞서 몽고 침략에 맞서 결사적으로 싸웠던 항몽터전으로,허물어져 자취를 잃어가는 봉의산성을 2차례에 걸쳐 복원했다. 『국립 강원박물관을 세우고,지역 인사 17분이 모여 한일합방에 반대하는 시를 읊던 국사봉에 망배도 세워 선조들의 참된 얼을 배우고 잇는 곳으로 활용토록 하겠습니다』 정선아리랑 등 전통문화를 12분야로 나눠 책으로 펴내기 위해 서두르는 등 제 2문화운동을 펼치고 있는 김원장은 『강원도에 제 2의 김유정과 이효석이 배출될 수 있는 문화의 터전을 만들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춘향제」를 전국규모의 축제로/김상곤 남원애향운동본부장 지난 85년 춘향문화선양회를 발족해 해마다 춘향제를 창의적으로 유치,전국적인 규모의 축제가 되도록 했다.91년 춘향제부터는 춘향문화대상(학술·예술·여성·언론분야)을 제정해 올해까지 상을 시상해오고 있다.92년 춘향제 때는 「춘향제 60년사」를 발간했으며 93년에는 「춘향전 관계사 학위논문선집」「춘향전 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발간했다. 투철한 향토애를 바탕으로 남원의 문화전통을 가꾸고 남원인의 품위향상을 위해 애쓰는 것은 물론 현재 춘향제를 세계적인 관광문화축제가 되도록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남사당 놀이」 등 문화재지정 공헌/심우성 극단 서낭당 대표 59년 사라져 가던 「남사당 놀이」의 연희를 수합해 재연한 이래 특히 전통 인형극과 탈놀이의 발굴조사를 통해 무형문화재의 지정에 공헌해 왔다. 저서로 「남사당패 연구」「무형문화재 총람」「한국의 민속극」「한국의 민속놀이」「민속문화와 민중의식」「탈」등이 있으며 「조선무속의 연구」「역과 점의 과학」「연극의 역사」등 20여권의 역저가 있다. 현재는 문화체육부 문화재 전문위원,극단 서낭당 대표,한국민속연구소 소장,공주민속극박물관 관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69년 창립… 「향토문화」 회지 발간/대구향토문화연구소 69년 6월 향토사 및 향토문화의 조사연구에 관심있는 교수와 향토사가들이 모여 창립됐다.같은해 12월 회지인 「향토문화」를 육필사본으로 간행하는등 연구회의 발전을 꾀했으며 85년 7월부터는 대우학술재단의 지원을 받아 모임을 활성화 하고있다. 현재 회지는 제7집까지 간행됐으며 조사보고서로는 「경상감사 도임행차순력 복원」「화랑문화의 신연구」「낙동강 유역사」등을 출간할 예정이다.이밖에도 향토사 사료 윤독회,향토사적 답사 등으로 대구 경북지역의 향토문화연구에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87년부터는 각 지역의 향토문화 연구단체를 결집해 우리 문화유산을 발굴·보존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76년 청파요 개설… 도예발전 헌신/이은구 이천문화원장 우리 전통도예의 맥을 이은 분청사기의 장인으로 76년 이천읍 사음리에 청파요를 개설해 도예문화 발전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해 왔다. 91년 1월 이천문화원장에 취임한 이래 각종 문화사업을 통해 지역문화 발전은 물론 지방문화원의 위상을 높이는데 크게 공헌했다.특히 이천문화원이 해마다 10월에 개최하는 이천도자기축제를 국내외 관광객 유치를 위한 문화관광축제로 적극 육성,올해 제9회 이천도자기축제의 경우 외국인 1만5천명을 포함한 25만명의 관광객 유치에 성공했으며 4억3천만원의 도자기 판매실적과 함께 도예작품전·한국의 잔 특별전·도자기 제작실연등 각종 행사를 마련해 도예문화 보급에 크게 기여했다. ◎농악대 구성… 전통민속 보존 힘써/최종덕 양양 오색국교 교사 63년 교육계에 투신한 이래 투철한 교육관으로 전통민속예술과 우리 뿌리찾기 교육에 열과 성을 다해왔다. 전통민속예술의 창달 및 계승발전을 위해 사라져 가는 향토민속의 발굴에 힘써 강원도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종합최우수상 3회,종합우수상 2회와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문화체육부장관상을 3차례 수상했다. 양양군 전통민속보존회와 어린이·청년·노인 농악대를 각각 구성해 농악보급 및 보존에 힘쓰고 있으며 청소년 어울마당 지도교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또한 여름 피서철에는 해수욕장에서 고장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전통민속을 공연함으로써 볼거리를 제공하고 향토민속을 관광자원화해 주민소득 증대에도 기여하고 있다. ◎광복뒤 첫 월간시집 「죽순」 창간/이윤수 시인 지난 45년 「죽순시인구락부」창립 이래 현재까지 대표로 있으면서 46년 광복 최초로 월간 동인시집 「죽순」을 창간했다.48년 한국문단 최초로 「상화시비」를 대구달성공원에 건립했으며 50년에는 문총(현 예총)구국대 경북지부를 조직했다.79년 동인시집 「죽순」을 복간했으며 83년에는 「전선시첩」1·2·3 합본을 발했다. 85년 상화시인상을 제정,올해로 10회째를 맞고 있으며 90년부터는 상화시 전국백일장을 해마다 실시하고 있다.92년 2월부터 한동안 서울신문에 「향토시인 이윤수 특집」이라는 글을 게재해 필력을 과시했으며 지난해 5월에는 한·일 국교수립후 처음으로 한·일 친선합동시화전을 주일 한국총영사관 초청으로 열었다.
  • 부끄러운 밤/고인수 포항공대 교수·물리학(굄돌)

    한 도시의 문화를 가늠하는 척도로 흔히 서점을 꼽는다.물론 대부분의 책방이 특성이나 주제가 없는 우리나라의 경우는 예외이겠다.11월 첫주에 학회참석차 다녀온 미국의 시카고는 필자가 처음으로 여행하는 도시이다.미국에서 몇년을 살아본 경험으로 미루어보면 캘리포니아처럼 기후가 좋은 곳에는 스포츠에 관한 책이 많고,뉴욕에는 연극과 음악관련 서적이 많이 있었던 것같다.이번에 방문한 시카고의 서점에는 서구의 고전문학에 관한 책들이 서가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그런책들을 보고 있었다.그동안 시카고는 야구나 농구,미식축구 등의 프로구단이 유명하여 운동을 좋아하는 곳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번 여행중 시카고의 서점을 둘러보고 나의 선입견이 잘못된 것임을 알게 되었다. 더욱 인상적인 일은 학회 참석자들에게 베풀어지는 만찬을 시카고 미술관에서 가진 것이다.만찬 시작전 2시간동안 미술관 중앙의 큰 홀에 마련된 다과와 포도주로 명화를 감상할 수 있도록 계획된 칵테일 파티는 나에게 대단히 놀라운 것이었다.그날 특별히 기획전시된 명화는 세기의 전시회라 불려도 손색이 없을 모네의 유화 150점이었다.모네의 수련으로 둘러싸인 홀을 거닐던 그 경험은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이었다. 명화의 향기속에서 만찬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면서 우리가 지금 같아서 과연 문화민족이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그리고 그날밤 뉴스시간에 CNN이 보여주는 우리의 치부는 참으로 부끄럽고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다.
  • TV 3사 비연기자 드라마 출연 러시

    ◎기업인 현상윤·가수 김창완씨 등 직업 다양/“서툰 연기 오히려 신선”… 극중 감초역에 눈길 비연기자 출신들의 드라마 출연이 부쩍 늘고 있다. 현재 각 방송사의 드라마에서 주역이나 조연으로 출연하고 있는 대표적인 사람들은 KBS­2TV 아침드라마 「여울」에서 유지인의 첫 남편역을 맡은 현상윤씨(38)와 MBC 「연애의 기초」에 출연할 예정인 가수 김창완씨(41),개그맨 정재환씨(34),그리고 SBS 「옥이이모」에 나오고 있는 무대감독(FD)지종구씨(29) 등이다.이들은 극의 중심을 잡는 주역 내지는 감칠맛나는 조연 연기로 시청자들의 시선을 「은근히」 잡고 있다. 현상윤씨의 현재 직업은 스티커 원단제조업체인 (주)세림의 업무담당 이사.원래 연극인 출신으로 지난 74년 KBS­TV 단막극에 출연하기도 했던 그는 77년 「먹고 살기 위해」 연극을 그만둔 이래 20여년만에 외출했다.우연한 기회로 출연하게 됐다는 현씨는 「여울」에서 유부남임을 숨기고 유지인과 결혼,아이까지 낳게하는 악역을 맡았다. 김창완씨는 본업을 의심케 할 정도로 최근 안방극장에 단골손님으로 등장하고 있는 대표적인 인물.지난 70년대 「산울림」이란 그룹을 결성,가수로서 독보적인 이미지를 팬들에게 심어준 그는 주로 단막극의 조역으로 출연해오다 최근 MBC 새 미니시리즈 「연애의 기초」(극본 황선영,연출 황인뢰)에 주인공으로 캐스팅됐다. 한편 「옥이이모」에서 좌천댁 머슴 「오복이」로 나와 짓궂은 캐릭터를 선보이고 있는 지종구씨는 한국영상예술원 연기과 12기생.이 드라마에서 그가 보여주는 약간은 서툰듯한 연기가 오히려 풋풋한 느낌을 줘 캐스팅이 「비교적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얻고 있다. 보통 방송드라마에서 연기자가 아닌 사람들이 출연하는 경우는 해외촬영시 한국인 엑스트라가 모자라는 등의 불가피한 상황에서가 대부분.그러나 최근에는 드라마의 효과를 위해 연출자가 의도적으로 「보통얼굴」을 출연시키는 예가 잦다는 것이 방송가의 얘기다. SBS 운군일 부장은 『스타덤에 올라 시청자들에게 어느 정도 이미지가 박혀있는 얼굴보다 드라마 성격에 따라서는 오히려 평범한 얼굴을 기용하는 것이 신선한 효과를 줄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고 비연기자출신 기용의도를 설명한다.
  • 러시아 연극계 「페테르부르크」 극단 선풍

    ◎50년 창단… 품격 높은 연기 펼쳐 신선한 충격/소 무너진뒤 번성… 미·이·일 등 순회서 극찬 페테르부르크의 한 극단이 품격 높은 연기로 모스크바 연극계를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주말인 21일 하오1시 모스크바 중심가의 유서깊은 타간스카야극장 앞.연극을 보러왔으나 미처 표를 구하지 못한 사람이 삼삼오오 모여 행여나 표를 구할까 두리번거리며 극장입구를 막고 있다.암표상도 함께 판을 친다.이 극장이 붐비는 것은 바로 최근 몇년 사이에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페테르부르크의 「말리극장」 소속 극단이 모스크바에 와 첫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날이기 때문이다. 이즈베스티야등 현지 언론도 「말리가 모스크바 중심부를 강타하다」라는 제목으로 연일 문화면의 톱기사로 보도하고 있다. 1950년대 창단된 「말리극단」은 소련이 무너진 뒤 오히려 화려하게 번성해가는 유일한 지방극단.수도인 모스크바조차 대부분의 연극계가 경영난에 허덕이며 파산하고 있는 데 비한다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말리극단의 명성은 8년전인 87년부터 뉴욕·파리·도쿄등을 돌며 순회연기를 펼치면서 쌓여졌다.예술총감독 레브 도딘의 천재성,단원들의 절제된 연기,연기를 통해 조용하게 드러내지는 시대정신은 언제나 이들 극단을 일컫는 단골찬사였다 특히 이날부터 올려지는 「형제와 자매들」이란 작품은 미국·일본등 모두 10여개국 도시에서 대호평을 받았다.표트르 아브라모프의 소설을 각색한 이 작품은 소비에트 농촌을 무대로 펼쳐지는 「평범한 사람들의 진솔한 삶」을 담아낸 이들의 처녀작이자 성공작이다. 지난 83년부터 감독을 맡은 도딘은 연극에 대한 재능뿐만 아니라 지칠 줄 모르는 정력,영민한 예지와 통찰력으로 관객을 사로잡아왔으며 말리극단의 오늘의 명성 역시 그가 이룩해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이다. 도딘은 이어 90년 소비에트군생활을 폭로한 세르게이 칼레딘의 중편 「공병대」를 각색,「가우데아무스」를 무대에 올렸고 이듬해 91년에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악의 꽃」을 각색해 무대에 올려 연달아 히트시켰다. 「가우데아무스」는 라틴어 「환락」에서 따온 것으로 탐욕으로 가득한소비에트군생활을 낱낱이 꺼내 폭로한 역작으로 평가받고 있다.모두 19토막으로 구성된 이 극에서 배우들은 각기 「육체적 솜씨」와 음악적 재능을 한껏 뽐내고 있다.전작 10시간짜리인 「악의 꽃」은 19세기 거의 모든 나라의 젊은이 사이에 팽배해 있던 「죄의 씨앗」인 「혁명가의식」을 리얼하고도 절제 있게 그려냈다는 평이다.앞으로 3주간의 모스크바일정에서는 안톤 체호프의 「체리농장」과 러시아 현대소설가의 작품을 모은 「폐소공포증」도 함께 올려진다.이 모두는 94년에 처음 선을 뵌 작품이다.지난해 파리에서 처음 올려진 「폐소공포증」은 배우들의 누드와 외설스러움으로 가득한 연극이라며 비평가의 엇갈린 평가를 받기도 했다.르 몽드를 비롯한 파리의 언론은 『파리의 극장에서 본 가장 정열적인 무대였다』는 평가를 내린 반면 뉴욕 타임스등 미국의 언론에서는 『인기가 좋긴 했지만 춤과 노래,배우들의 쓸데없는 큰 소리로 어울어진 「잡기」였다』고 혹평하기도 했다.이 「폐소공포증」은 처음 무대에 올려진 페테르부르크의 관객조차 성나게 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모스크바 연극계에서는 이번 말리극단의 모스크바순회연기가 1년전 그루지아에서 온 루스타벨리극단이 모스크바에 준 「신선한 충격」이상의 바람이 몰아닥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 명성황후 1백주기… 재조명 활발

    ◎추모식·숭모제·뮤지컬·TV 다큐 등 기념행사 다양 오는 8일은 조선조 말 역사의 회오리 속에서 비극적으로 삶을 마친 명성황후의 1백주기가 되는 날.일본인들에게 무참히 살해당한 그 넋을 기려 다채로운 기념행사가 열리는 한편 그동안 부정적으로 평가돼 온 그의 역할에 대한 재평가 움직임이 일고 있다.명성황후 현창회(회장 민영복)가 5일 추모식을 가진데 이어 한국여성예림회(회장 이온순)는 8일 비극의 현장 경복궁 녹원에서 숭모제를 열고 「독립정신」에 실린 명성황후의 사진을 바탕으로 황후복을 입은 초상화 영정(그림 권오창)을 제작,발표한다.KBS­1TV는 7일 「명성황후 시해의 진실」이라는 특집방송을 하며 뮤지컬 전문 제작사인 「에이콤」은 뮤지컬 「명성황후」를 11월 공연할 예정이다. 역사학자 박성수 교수(정신문화연구원)의 기고문과 뮤지컬·특집방송의 내용을 소개한다. ◎뮤지컬 「명성황후」/일제에 맞서다 참변 당한 국모로 묘사 명성황후(민비)시해 1백주기를 맞아 「국모로서의 민비」에 초점을 맞춘 뮤지컬 한편이 선보인다.소설가 이문열씨의 첫 창작희곡「여우사냥」을 노래위주의 뮤지컬로 꾸민 「명성황후」(11월17∼26일 서울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 이씨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소설 「사람의 아들」이 연극으로 공연된 적은 있지만 이씨가 본격적으로 쓴 창작희곡이 무대화되기는 이번이 처음.이씨는 4년전부터 뮤지컬 전문 제작사인 「에이콤」(대표 윤호진)과 함께 올해로 1백주년이 되는 민비시해 사건을 소재로 한 뮤지컬 공연을 준비해왔다. 희곡「여우사냥」은 이씨가 지난 94년 문학전문지「세계의 문학」봄호에 2백자 원고지 7백장 분량으로 발표했던 것으로 이번 공연을 위해 한국예술종합학교 김광림 교수가 새롭게 각색했다.고종황제의 드센 아내,시아버지 흥선대원군에 맞서는 며느리로서의 민비라는 기존의 도식을 거부하고 민비를 프랑스의 잔 다르크처럼 조국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조선의 국모로 그리고 있는 것이 특징.작가 이씨는 작중인물인 다이장군의 입을 빌려 『온몸으로 껴안으려 한 조국으로부터/오히려 버림받고/홀로 강한 외적과 맞서다/불꽃속에 사라져 간 조선의 잔 다르크』라고 명성황후를 칭송하고 있다. 연출을 맡은 윤호진 교수(단국대 연극영화과)는 『이씨의 창작희곡에서 대사부분을 모두 없애고 이를 노래로 처리해 마치 한편의 오페라처럼 만들어 보고 싶다』면서 『외국의 뮤지컬도 음악과 노래 위주로 흘러가고 있는 추세인 만큼 우리 뮤지컬의 선진화를 위해서도 이런 시도는 바람직한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화씨가 타이틀 롤을 맡았으며 영화 「전태일」을 촬영중인 젊은 연기자 홍경인,뮤지컬 전문배우 김민수,성악가 윤치호씨 등이 출연한다.평일 하오4시·7시30분,토·일 하오3시·6시 공연.3452­9055 ◎K­1TV 다큐 「명성황후 시해의 진실」/사건당시 현장도·증언 통해 진실 추적 1895년 10월 8일 새벽.세계사의 큰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 있던 조선 왕조의 국모 명성황후가 일본낭인들에 의해 무참히 시해된다. 1백년을 맞는 이날을 기해 KBS­1TV「역사추리」팀은 그동안 일본에 의해 왜곡된 그날의 현장을 재연하고 명성황후에 대한 재평가 작업을 시도한다.「명성황후 시해의 진실」편으로 방송시간은 7일 하오 8시.제작진은 일본정부에 의해 조직적으로 저질러진 시해사건의 진실을 당시 영국 공사 실리어가 확보하고 있던 「사건현장도」「경복궁 습격도」,시해당시 「일본군위치도」등을 바탕으로 컴퓨터 그래픽화면으로 생생히 되살린다.이를 통해 여전히 시해책임을 부인하고 있는 일본정부의 기만성을 폭로한다는 의도다. 특히 제작팀은 이노우에와 이토 히로부미,야마가타등 당시 일본 천황의 직권을 대행하고 있던 수뇌들이 미우라를 조선에 부임시키고 이어 시해전후 활발한 접촉을 벌인 사실을 증언과 자료집을 통해 제시,일본정치권의 치밀하게 의도된 범행임을 제시한다. 또 당시 미국 다이 장군의 자문으로 활약한 러시아의 건축가 사비틴의 시해당일 상황 증언 테이프를 시청자들에게 공개할 계획.장해랑 PD는 『사비틴 증언의 경우 이미 알려진 사실이지만 시청자들이 그동안 일본역사관에 의한 왜곡된 사실에 너무나 익숙해있기 때문에 이를 수정하기 위해 되도록 많은 증언,사진들을 보여줄 생각』이라고 설명한다. 이와관련,1895년 명성황후 시해전 일본신문에 게재된 삽화 몇점도 소개된다.일종의 「풍속화」로 고종과 함께 외국공사를 알현하는 명성황후를 여우의 얼굴을 한 꼭두각시로 폄하하거나 아예 기모노차림을 한 일본여자로 묘사한 것들이다. 프로그램 중간에 삽화형식의 드라마와 함께 김자영 아나운서가 명성황후 연극현장과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명성황후가 누워 있는 「홍릉」을 찾아 리포트한다. ◎명성황후 1백주기를 맞아/“드센 여자·족벌정치가” 일서 왜곡/한국침략에 방해… 장애물 없애려 살해/박성수 정신문화연구원 도서관장 「중전이 밤중에 적도의 독검에 맞아 시해되었다.세상 천지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저상일월) 지금으로부터 꼭 100년전인 1895년 10월8일 밤 경복궁 구중궁궐 안에서 국모가 일본군에 살해당한다는 엄청난 사건이 일어났다.우리나라 역사상 처음 있는 변란이었다.그러나 실제로 일어나고 말았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돌이켜 보면 1895년은 동학란이 일어나고 청일전쟁이일어난 이듬해로서 지방에는 민란과 콜레라의 병란이 일어나고 중앙에는 일본군이 가득차 마침내 경복궁을 습격하는 변란이 일어나고 말았다. 사변이 일어난지 1세기가 지난 오늘 살인범의 정체가 누구인지 이미 백일하에 들어났다.다름 아닌 서울 남산에 자리잡고 있던 일본 공사관의 주인공들이 범인이었다.일본 공사 미우라(삼포오루)란 자는 살인 전문가였고 하수인인 구마모토파 깡패는 일본 제일의 야쿠자였다. 그러나 아직도 풀리지 않은 것이 있으니 처참하게 살해당한 민비(명성황후로 추존)자신에 대한 우리들의 역사적 평가이다.오랫동안 민비는 시아버지 대원군과 싸워서 정권을 잡은 비정의 며느리요 민씨 일족을 권좌에 앉혀 온갖 부정부패를 자행하게 만든 족벌정치가로서 비난받아 왔다.심지어는 그녀를 청국말년의 여걸 서태후에 비기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혹평 뒤에는 일제 침략자와 이에 뇌동한 친일파들의 모함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그래서 민비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다시 하여야 한다는 의견이 나와 호칭부터 명성황후로 고치고 경복궁 안 침소 옥호루(현재 경복궁 안 민속박물관 옆)자리에 조난비를 세워 그날의 참사를 잊지 않게 하고 일제 침략의 희생자로서의 민비상을 국민에게 보여주고 있다.특히 금년은 광복 50주년으로서 그녀의 위상을 다른 누구보다 바로 잡아야 하게 되어 있다. 먼저 생각할 것은 일제가 왜 민비를 죽이려 들었는가 하는 점이다.동학란을 구실로 한국에 파견한 일제는 처음부터 한국 침략의 야욕을 품고 있었다.즉 청일 전쟁을 도발하기 전에 각의에서 한국의 주권을 빼앗기로 결의했다.그러나 전쟁에는 이겼으나 열강의 강한 견제로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되자 민비를 죽여 한국에 있어서의 일본 세력을 만회하려 했던 것이다.간단히 말해서 민비가 침략에 장애물이기 때문이었다. 민비는 당초에 강화도 조약을 맺고 개항을 결심했던 인물이고 일본에 대해서 처음에는 우호적이었다.그러나 1894년의 갑신정변 이후 일본의 침략 야욕을 간파한 민비는 반일정책을 쓰기 시작했다.일제 침략을 막기 위해서는 청국과 러시아의 힘을 빌릴 수 밖에 없었다.민비의 이러한 대외정책을 지지하는 세력을 수구파라 하고 친일세력을 개화파 또는 독립당이라 부르고 있으나 명칭부터가 잘못되었다. 흔히 구한말 국제정세를 요즘의 국제환경에다 비겨 4강+2약 운운하나 당시의 침략세력은 유일하게 일본이었다고 보아야 한다.친일 개화파는 누가 진정한 적국인가를 알지 못하고 급진적인 개혁을 부르짖어 나라안의 정치싸움을 격화시켰고 외적에게 침략의 틈을 보이고 말았다. 민비가 참살당한 뒤 친일 개화당이 다시 정권을 잡고 단발령을 선포하게 되니 나라안은 뜨거운 솥끓듯 달아 올랐다.그러지 않아도 동학란과 청일전쟁으로 국토가 완전히 폐허로 변했는데 설상가상으로 필요없는 개혁을 시도하여 나라를 어지럽히니 이 나라의 망국이 시작되었다고 모두가 개탄하였다.그래서 전국의 선비들이 무기를 들고 있어났으니 을미의병이었다.을미의병은 독립전쟁의 시작이었다. 만일 민비가 죽지 않고 살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그리고 나서 최근에 나온 「여우사냥」등 소설을 읽어보아야할 것이다.
  • 한국에선/일본어 배우기(한국속의 일본,일본속의 한국:24·끝)

    ◎“지일 지름길” 일어자격지 연1만명 응시/PC에 원어연극에… 학습방법 다양/공학·패션·디자인전공은 「필수」처럼 공부/교재 3백종… “껄끄러운 나라말” 인식 변화 인천 신포동에 사는 주부 송영우(35)씨는 지난 20일부터 일본어 회화를 함께 공부할 회원을 수소문하고 있다.좀 더 정확히 말하면 애써 익힌 일본어를 잊지 않기 위해 틈틈이 일본어로 대화하는 시간을 갖기 위한 것이다. ○전사원 위탁교육 송씨는 지난 88∼89년 일본 도쿄의 시부야일본어학교와 한 미용전문학교를 수료한 뒤 귀국,인천에서 미용업에 종사하고 있다.일때문에 종종 일본을 드나들고 있기도 하다. 『일본어 특유의 존대법이나 여성스러운 표현 등을 정확히 구사하며 품위있게 이야기하려면 지속적인 연습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송씨에게서 우리사회 구석구석까지 퍼지고 있는 일본어 학습열기의 단면을 볼 수 있다.직장인이나 대학생들 사이에서 일본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은 이미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이제는 학습방법도 영어의 그것 못지 않게 고도화된 단계에 접어 들었다. 지난 24일 상오 11시 서울역 부근의 일본어전문 S학원 5층 강의실에서는 6주동안 강도높은 일본어교육을 마친 삼성자동차 신입사원들의 최종평가 시험이 치러졌다.이른바 「롤 플레이 테스트」이다.5인1조의 팀별로 직접 각본을 짠 10여분 길이의 촌극을 공연하면서 그동안 배운 일어실력을 자랑하는 자리이다.첫번째로 무대에 오른 윤종대(31)씨등 5명은 유창한 일본어로 「한국인 김상민씨가 일본에 가서 거래업체의 사토상을 만나 상담하기까지의 과정과 에피소드」를 연출했다.연기에 몰두한 이들의 표정에서 미래에 대한 자신감을 읽을 수 있었다. 『일본인의 말과 문화를 알아야 그들의 기술과 정보도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지 않느냐』는 게 이들이 일어공부에 열을 올리게 된 공통된 동기였다.삼성자동차는 일본 닛산자동차와 기술제휴를 하고 있는 만큼 모든 신입사원에게 위탁교육을 통해 일어공부를 시키고 있는 것이다. ○서울대 강좌 개설 기업은 물론 각 대학에서도 일본어 특강이 일년내내 끊이지 않는다.일어일문학과가 설치되지 않은서울대에서도 부설 어학연구소 주관으로 해마다 6개의 일본어강좌를 개설하고 있다.이번 여름방학에도 2백여명의 학생이 무더위 속에서 강의를 들었다고 한다. 이같은 추세를 반영하듯,일본정부의 후원을 받아 국제교류기금이 실시하는 「일본어자격시험」에 대한 관심도 부쩍 커졌다.영어의 토플이나 토익시험에 해당하는 이 시험을 치르면 일본어 실력을 공인받을 수 있는 데다 일본에 유학하려면 반드시 그 점수를 제출해야 하기 때문이다.승진을 앞둔 사원들에게 일정 등급이상의 판정을 받도록 요구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한해 1차례씩 치러지는 이 시험의 지난 해 응시자는 등급별로 1급 5천6백여명,2급 4천여명,3급 2천4백여명,4급 9백여명에 달한다.93년에 비해 무려 5천여명이나 늘어난 숫자이다. 일본어 학습교재도 수요자들의 다양한 요구를 반영하느라 백가쟁명의 시대를 맞고 있다.3백여종이 시중에 나와 있으며 이 가운데 상당수가 스테디셀러의 반열에 올라 있다.호황을 틈타 올해만도 10여개의 출판사가 일본어 교재에 새로 손을 댔다. 첨단 정보통신매체인 PC통신의 세계에서도 일본어 배우기가 한창이다. 일본어에 관심있는 직장인 및 대학생들이 PC통신 「천리안」의 일본어동호회(JPN),「하이텔」의 일본어동호회(JBBS),「나우누리」의 일본어연구회(JLS)등 동호회를 만들어 정보를 나누고 있다.JPN의 경우 일본인 30여명을 포함,2천4백41명의 회원을 자랑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30%는 유학이나 관광을 통해 일본을 체험한 이들이다.회원들은 일본어 지식 및 일본 체험을 교환하는 것은 물론 해마다 두차례씩 일본의 동호인들과 한·일 공동모임도 갖는다.이 모임을 이끄는 최원규(31)씨는 『전공인 전자공학 분야에 대한 최신정보를 빨리 입수하는데 일본어만큼 도움되는 게 없다』고 가입 이유를 설명했다. 공학을 비롯해 상품정보,연구개발,경영전략,패션,디자인 등 상당한 분야에서 일본어가 영어보다 오히려 필수적인 언어로 평가받고 있다.바로 이 점이 많은 사람들을 일본어 학습붐으로 몰아 넣는 원인이다. 여기에 세계경제에서 일본이 차지하는 비중 만큼이나 국제사회에서 일본어의 지위도 높아져 유럽을 여행하면서도 일본어를 알면 불편함을 크게 덜 수 있는 정도가 됐다.프랑스 파리의 몽마르트 거리에서 여행객들을 상대로 초상화를 그려주는 무명화가들마저 동양인이 지나가면 천연덕스럽게 일본어로 호객행위를 하더라는 경험담도 들린다. ○“영어 일색 지양을” 한국외국어대 일본어과 학과장 한미경 교수는 『미국·유럽·호주 등 서구사회에서도 일본어 학습자가 크게 늘고 있고 국내 학계에서도 일본어의 실용성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지고 있다』고 소개하고 『최근 세계화의 물결을 타고 너도나도 외국어 학습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지나치게 영어 일색인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S일어학원 강사 조자왕(41)씨도 『세계화가 곧 서구화나 영어화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는 말로 일본어를 평가한다.일본을 단지 우리와 껄끄러운 과거를 지닌 이웃국가로만 보는 단계를 넘어 국제사회의 한 주체로 바라봐야 하는 오늘,「세계화의 관점에서 일본어를 바라보자」는 그의 말을 상업적인 발로라고만 여길 수는 없을 것 같다.
  • 큰 배우 백성희(외언내언)

    열여덟살에 첫 무대에 선 이래 52년동안을 연극속에 파묻혀 살아온 연극배우 백성희씨.올해 고희를 맞기까지 4백여편의 작품에 출연한 우리 연극사의 살아 있는 증인이자 대모이기도 하다.『한번도 나이 때문에 연극을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고 할 정도로 지금도 정정한 모습으로 무대에 서는 그를 연극인들은 「고독한 무대지기」라 부른다. 그녀의 무대생활 반세기는 연기자 개인의 위대한 성취일 뿐만 아니라 우리 연극계의 온축이 깊고 넓어졌음을 의미한다.그만치 유장한 호흡과 전통을 우리 연극계가 갖게 된 것이다. 백씨의 연극에 대한 사랑과 정열은 신앙에 가깝다.『욀 대사가 한마디만 있어도 무대에 선다』는 게 그의 신조다.『모래알만큼의 연기를 위해서 우주만큼의 생각을 해야 하는 것이 연극배우』라고 그는 생각한다.따라서 연극에 대한 그의 치열한 장인정신은 구도의 경지에 가깝다.연극인 백성희를 후배연극인들이 존경하고 따르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토록 많은 작품에 출연해온 원로이면서도 『첫날 공연 막이 오르기 전에는언제나 가슴이 두근거리고 떨린다』고 술회한다.매너리즘을 거부하는 노연기자의 순수한 열정이 외경스럽다.배역을 맡으면 작중인물을 끝없이 탐구하여 마침내 자신과 완전히 일치시키는 그녀의 노력은 비범하고 치열하다.백성희 연기의 비결이 그속에 묻혀 있을는지 모른다. 카랑카랑한 금속성 목소리로 무대를 압도하는 백씨는 『지팡이를 짚고라도 언제까지 무대에 서고 싶다』는 꿈을 지니고 있다. 그의 연극인생 52년을 기념하는 무대가 1일부터 서울 정동극장에 마련됐다.나이를 잊은 원로연기자의 의욕넘치는 무대에 관중은 아낌없는 박수를 보낼 것이다.「무대지기 52년」의 외길인생,그 역정이 우리 연극계를 풍요하게 가꿔온 것이다.
  • 한국 영화사(외언내언)

    1995년은 영화가 태어난지 꼭 1백년이 되는 해.1895년 프랑스의 뤼미에르 형제가 시네마토그래프라는 촬영기와 영사기를 만들어 「활동사진」을 찍은 것이 그 효시다.우리나라에 영화가 처음 들어온 것은 1903년.이후 서울 종로의 단성사와 우미관 등에서 서양영화와 일본영화를 상영,인기를 모았었다. 한국인이 만든 첫 영화는 1919년 신극좌의 김도산이 제작한 「의리적구투」.그러나 이것은 정식영화가 아니라 연쇄극용 영화로 연극을 하면서 무대에서 처리하기 어려운 야외장면들을 영화로 비춰주는 식이었다.이로부터 4년후인 1923년 윤백남이 감독한 최초의 극영화 「월하의 맹서」가 탄생됐다. 한국의 무성영화를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사람은 나운규.그는 1926년 「아리랑」에서 주연을 맡아 탁월한 재능을 보여주었고 그후 「풍운아」「벙어리 삼룡」등에서 직접 메가폰을 잡아 새로운 경지를 개척해 나갔다.우리나라 최초의 발성영화는 1935년 이필우가 제작한 「춘향전」.이때부터 한국영화도 발성영화시대로 접어들었다.그러나 일제의 탄압으로 해방이 될때까지 한국영화는 질식상태를 면치 못했다. 해방이후 처음으로 만들어진 영화는 1946년 최인규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자유만세」.당시 자유중국으로 수출된 이 영화를 시사회에서 본 장개석총통이 「자유만세·대한민국만세」란 휘호를 보내와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의리적구투」이후 지금까지 제작된 한국영화는 4천7백여편.이중 대부분의 필름이 한국영상자료원(이사장 신우식)에 보관돼 있다.영상자료원은 광복50주년을 맞아 오는 8월2일부터 9월6일까지 「광복50년 한국영화50편」이란 특선 영화제를 갖는다.이 영화제는 해방이후 지난해까지 제작된 한국영화중에서 50편을 골라 일반에게 공개하는 「좋은영화 다시 보기」축제.이 영화제를 계기로 우리 모두 한국영화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했으면 한다.
  • 한얼공연예술단 창단공연「한여름밤의 피크닉」

    ◎정신병환자 8명의 이상·현실관리/춤·음악 곁들인 총체적 연극 한얼공연예술학교(대표 박정희)가 자체 예술단인 「한얼공연예술단」(예술감독 장두이)을 창단,첫 작품으로 「한여름밤의 피크닉」을 26일부터 8월27일까지 대학로 한얼스튜디오에서 선보인다. 지난해 9월 포피스 공연예술제작연구소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한얼공연예술학교는 올해 1월 대학로로 자리를 옮겨 성좌소극장 3층에 스튜디오를 마련한 국내 최초의 민간예술학교.무대예술의 개념교육과 공연예술 전분야의 창작실습,실제 공연 등으로 짜여진 1년간의 교육과정을 통해 무대행위자를 배출하는 사설교육기관으로 구미의 아트 스쿨과 같은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연극인 장두이씨가 구성·연출한 「한여름밤의 피크닉」은 어느 여름날 저녁 소풍길을 떠난 8명의 정신병동 환자를 매개로 신세대 젊은이들의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퍼포먼스형식의 춤과 음악 등을 통해 총체적으로 담아낸 작품.「행복은 어디 있나요」등 우리 노래 4곡과 미국의 팝스타 라이오넬 리치의 「헬로우」에 맞춰 추는재즈 댄스,의자를 이용한 현대무용 스타일의 움직임,그리고 동물들의 우화를 중심으로 스토리보다는 이미지 위주로 꾸며진다. 한편 한얼공연예술학교 대표 박정희씨는 예술단의 운영방안과 관련,『1년에 네번 정도 창작극 위주의 정기공연을 통해 연극예술이론을 직접 검증해 볼 수 있는 실천의 장으로 가꿔나갈 것』이라고 말했다.수∼토 하오8시30분 공연.문의 747­51 93
  •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연극무대에

    ◎스칼렛 오하라의 파란만장한 인생행로/현대극장 창단 20주년 기념공연… 29일부터 세종회관서/78년·80년 이어 2번째… 제작비 7억원 투입/주인공 버틀리·오하아역에 이덕화 박상아 클라크 게이블과 비비안 리가 주연한 영화로 잘 알려진 마거릿 미첼 원작「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다시 한번 연극으로 복원된다. 내년으로 창단 20주년을 맞는 극단 현대극장(대표 김의경)은 기념공연으로 이 작품을 오는 29일부터 8월2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강당 무대에 올린다. 「바람과…」는 지난 78년과 80년에 무대화된 바 있으나 이번에는 호화 캐스팅과 대기업(대홍기획)의 첫 연극 직접투자 및 공동제작으로 연극계 안팎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제작비는 총 7억여원. 미국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스칼렛 오하라라는 한 여성의 파란만장한 인생행로를 그린 이 작품은 전세계 20개 국어로 번역 출판돼 현재 2천만부 이상이 팔린 영원한 고전.정일성씨 연출로 극본은 원로연극인 차범석씨가 맡았다. 15년만에 새로 선보이는 이번 무대는 암전이 전혀 없이 모두 38개의 장면 전환을 통해 영화보다도 빠른 이야기 전개를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영화같은 연극」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 특징.특히 무대위에 세워진 4개의 호화저택을 배경으로 19세기 미국 상류사회의 화려한 파티 장면을 비롯,피비린내 나는 전장,불타는 시가지 사이로 달리는 마차,스칼렛이 계단 위에서 구르는 장면 등을 기술적으로 재현하는 등 무대예술의 역동성을 살리는데 역점을 뒀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번 공연이 눈길을 끄는 것은 출연진의 화려한 면면이다.세상물정에 밝고 능글맞기 짝이 없지만 가슴만은 따뜻한 남자 레트 버틀러 역은 만능배우 이덕화가 맡았다.『뮤지컬이 아닌 정통연극에 출연한게 벌써 10년이 넘는 것 같다』는 이씨는 『너무나 잘 알려진 배역인만큼 가장 정통적인 해석으로 접근하겠다』는 말로 극중 레트 역을 설명한다. 여자 연기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탐낼만한 역이 스칼렛 오하라.그 활화산같은 대지의 여인은 KBS 탤런트 박상아가 열연한다.『가녀린 몸에서 뿜어나오는 오만함에도 불구하고 결코 밉지않은 스칼렛을 만들어내겠다』는 것이 그녀의 각오.여기에 국회의원 탤런트 강부자는 15년전과 똑같이 스칼렛의 흑인유모 마미 역으로 무대에 서 스칼렛의 충실한 그림자 역할을 해낸다. 이번 무대의 또하나의 히어로는 현대극장 아카데미생 1기 출신인 김갑수다.먼 발치에서 사랑을 지켜보기만 하는 젊은 이상주의자 애슐리 윌크스 역이 그의 몫.78년 초연 당시 「말」앞다리 역으로 얼굴없이 출연한 경험이 있는 그는 『현대극장과의 18년의 인연끝에 애슐리 윌크스 역을 맡게 된 것은 엄청난 신분상승인 셈』이라며 의욕을 보인다.이밖에 탤런트 이주경이 이지적인 모성의 소유자 멜라니 해밀튼으로,중견배우 김길호가 미드 박사로 호흡을 맞춘다.한편 톱 디자이너 앙드레 김이 스칼렛의 의상을 전담,화사한 무대를 꾸민다.하오3시·7시30분 공연.문의 762­61 94.
  • 국제연극축제/97년 창설/불 아비뇽축제 맞먹는 규모로 구상

    ◎연극협,국제극예술협회 서울총회 맞춰 첫 개최/장소 경기 가평·용인중 택일 한국연극협회(이사장 정진수)는 오늘 97년 8월 서울에서 개최될 국제극예술협회(ITI)세계총회에 맞춰 서울근교의 경기도 가평이나 용인가운데 한곳을 택해 아비뇽 페스티벌을 모델로한 국제적인 연극축제를 창설키로 했다. 이와 관련,연극협회는 정진수 이사장과 문석봉 상임이사를 비롯,김우옥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원장,류민영 예술의 전당 이사장,임영웅 극단 산울림 대표,심정순 숭실대교수,김상열 극단 신시대표등 연극계 인사 7명으로 세계연극제추진위원회를 구성,지난 19일 ITI서울총회 기간중 이국제연극축제를 열기로 원칙을 정했다. 또 연극협회는 협회 관계자와 연극인,그리고 가평군 관계자등 모두 20여명으로 구성괸 95년 아비뇽 페스티벌 참관단을 오는 23일부터 30일까지 프랑스 현지에 보내 97년 우리나라에서의 국제연극축제 개최에 앞서 축제의 성격,진행요령등에 관한 기초자료를 수집하기로 했다. 정진수 연극협회이사장은 「가평이나 용인의 군관계자들이제시하는 여러조건과 입지등 제반 여건을 감안,최종적으로 개최지를 졀정할 계획」이라며 「매년 정기행사로 꾸며 프랑스 아비뇽페스티벌을 능가하는 세계적인 연극축제로 가꿔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연극협회는 현재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열리고 있는 95년 ITI세계총회가 끝나는대로 ITI한국본부(회장 김의경)에서 선정한 대표 7명을 포함,세계연극제 추진위를 확대구성,국제연극페스티벌의 개최방안을 계속 논의해 나갈 예정이다. 한편 ITI한국본부는 연극협회가 추진하고있는 국제연합축제와는 별개로 97년 서울에서 열릴 ITI세계총회에 맞춰 한달동안 서울시내 전 공연장과 서울인근 임시 옥내외 공연장등에서 △외국의 5개 정상급 공연단이 참여하는 특별초청공연 △국내 20개,국외 20개의 대표적 공연예술작품으로 이뤄지는 공식참가공연 △국내외 50개 실험적 공연예술작품들이 참여하는 자유참가 공연과 각종 전시회,강연회등을 중심으로 세계연극제를 진행한다는 세부방침을 확정했다. 연극계 일각에서는 이 국제연극축제가 우리연극의 세계화와 지방연극의 활성화는 물론 개최지역의 문화예술 명소화등 기대효과가 커 환영할만한 일이지만 예산확보등 어려움이 큰 만큼 실현여부는 미지수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김종면 기자〉
  • 옛 국립극장/“문화재로 지정 보존을”

    ◎문화예술계,대한투금 매각추진에 다양한 의견 제시/공연문화 산실… 정부차원서 매입해야/한전 부지와의 맞교환 주선도 바람직 대한투자금융이 15일 서울 명동의 옛국립극장(현 대한투자금융 사옥)의 철거를 1∼2년 유보하고,장기적으로 이 건물의 매각을 추진한다고 밝힌 것에 대해 문화예술계는 대체로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국연극협회 정진수 이사장은 『현재까지 확인된 대한투금측의 신사옥 건설계획 유보나 건물매각 추진 등의 방침은 일단 여론의 관심권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것이라는 인상이 짙다』면서 『대한투금이 이 문제를 적당히 넘기지 말고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하는 방안에 대해 보다 진지하게 대응해주기 바란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는 또 『서울시 차원에서 대토형식을 통해 해결하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을것』이라고 말했다. 또 연극계의 한 관계자는 『문화체육부,서울시 등 관련부처에 옛 명동 국립극장의 문화재 지정을 의뢰하는 등 보다 적극적인 보존방안이 강구돼야 할 것』이라며 문화유적지로서의 보존 자체에 무게를 두기도 했다. 광복이후 우리 공연문화의 요람이 되어왓던 옛명동 국립극장을 문화재로 정하는 것은 이와 비슷한 시기에 건축된 동숭동의 옛 서울 문리대 건물이나 고려대 본관,중앙고의 동·서관 드어이 이미 지난 81년 사적으로 지정돼 원형이 보족되고 있는 전례에 비춰볼때 오히려 늦은 감마저 있다는 것이다. 한편 문화계 일각에서는 옛 국립극장의 건물과 부지를 문화계의 모금활동을 통해 되사들여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 있게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대한투금측이 현 사옥을 매각한다하더라도 그 건물과 부지가 내무부 고시가로 6백억∼7백억이라는 엄청난 금액에 이르고 있음을 감안할때 그 현실성은 희박하다는 지적이 높다. 이와관련,옛 국립극장의 보존과 복합문화공간으로서의 활동방안에 대해 처음으로 문제를 제기한 「문화를 생각하는 모임」(대표 박용구)은 지난달 25일 첫 모임을 가진데 이어 10여명의 문화계 인사들을 중심으로 추진위(위원장 유재천)를 구성,이를 실현시킬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예정이다. 고려대 국문과 서연호 교수(연극평론가)는 『민간기업이 소유하고 있는 고가의 건물을 문화계 인사들의 힘만으로 매입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며 『옛 국립극장의 문화재적 가치가 충분한만큼 정부가 긴 눈으로 보아 과감한 투자를 하는 것도 검토할 만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밖에 옛 국립극장의 보존과 활용을 위해서는 대한투금 사옥과 인근 한국전력 부속건물 부지와의 맞교환을 주선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대한투금은 지난 2월 이곳에 10층짜리 건물을 신축키로 결정,이미 설계작업까지 끝냈으나 문화단체와 시민들의 반발여론에 부딪쳐 당초 계획을 수정하게 됐다. 1934년에 건립된 옛 명동 국립극장은 57년이후 16년동안 우리나라의 유일한 국립극장으로 연극 무용 등 문화예술의 산실 역할을 해왔으며 73년 현재의 장충동 국립극장이 문을 연 다음부터 76년 9월까지는 예술극장으로 쓰여져 왔다. 대한투금은 지난 76년 총무처로부터 이 건물을 매입,지금까지 본점 사옥으로 사용해 오고 있다.
  • 썰렁한 객석… 우울한 목공지씨(객석에서)

    『모두가 한 통속이야.왜 이런 일이 나한테만 벌어지는 거지?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어』 앙상하게 마른 한 남자가 허공을 향해 고통스럽게 중얼거린다.그의 이름은 목공지.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정체불명의 음모와 압박,폭력에 희생되고 마는 나약한 소시민이다. 극단 가교의 창단 30주년 기념공연 첫 작품으로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중인 「목공지씨 못봤소?」(22일까지)는 우매할 정도로 순진한 목공지씨(박종상 분)가 어떻게 소외되고 피폐해져 가는가를 보여줌으로써 부조리하고 비합리적인 현대사회를 고발하고 있다. 독일 출신의 초현실주의 작가 페터 바이스가 63년에 쓴 「목킨포트씨는 어떻게 고통에서 벗어났는가」를 원전으로 젊은 연출가 이송씨가 구성·연출을 담당한 「목공지씨…」는 11개의 독립적이며 짧막한 소극으로 구성된다. 각 장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한 패러디 혹은 풍자로 이해될 수 있다.예컨대 감옥은 법의 세계를,자기집은 애정관계를,직장은 경제생활을,병원은 의료사회를,민원실은 관료사회를,하느님은 종교를 상징한다. 연출가는 우화적이고 그로테스크한 익살극의 형식을 빌어 「조직사회에 대항할 수 없는 나약한 개인의 모습을 보여 주겠다」는 의욕으로 다분히 실험적인 무대를 시도했다.카스페롤(어릿광대 인형극)식 표현법 등 장면장면 참신한 아이디어가 반짝인다. 그러나 배우들의 열의가 부족했던 것도,연출력이 미진했던 것도 아닌데 무대위의 언어와 몸짓은 생동감을 잃고 있었다.어느 연극이나 마찬가지지만 이러한 종류의 익살극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관객이 없었던 것이다.출연배우 숫자(16명)의 절반밖에 안되는 관객으론 아무리 유능한 배우나 연출자도 의도를 살릴 수 없다. 고질적인 연극계 불황에,예술의 전당이라는 지리적 악재까지 겹쳐 배우나 연출가 모두 고전하고 있음이 역력했다.썰렁한 객석을 향해 이해 할 수 없는 세상을 한탄하는 목공지씨의 모습은 그래서 더욱 우울해 보였다.
  • 새봄 신생극단 “출생신고 붐”/“연극 중흥­관객 확보”내걸고 출발

    ◎20대연극인 주축 「인·혁」/탤런트 유인촌 극단 창단/연출가 김철리씨 「비파」/이만희·고인배씨의 「만」 올봄 연극계에 신생극단 창단이 붐을 이루고 있다.올초 20대 중·후반의 젊은 연극인들을 중심으로 극단 「인·혁」이 창단한데 이어 인기 탤런트 유인촌씨가 지난 달 말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유인촌 레퍼토리」 창단을 발표했다.이어 중견연출가 김철리씨가 극단 「비파」를,30대 초반의 젊은 연출가 채승훈씨가 극단 「창파」를 각각 창단했고 화제작 「불좀 꺼주세요」의 작가 이만희씨와 연극배우 고인배씨도 최근 의기투합해 기획 「만」을 창단하는 등 극단의 출생신고가 줄을 잇고 있다. 중심 인물의 연령이나 활동분야,공연 방향은 각기 다르지만 좋은 연극을 무대에 올림으로써 수준있는 관객을 확보하고 불황에 빠진 연극계를 중흥시켜 보자는 것이 새 극단들의 공통된 창단목표.이들은 의욕적인 창단무대를 마련,지나친 상업주의와 구태의연한 제작태도로 일관해온 기존 연극계에 자극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인간 혁명」의 준말로 극단명칭을 택한 「인·혁」은 연출가 이기도씨를 비롯해 작가,배우,스태프 모두 20대 중·후반의 신진으로 구성된 젊은 극단.지난달 학전소극장에서 50년대 말 유랑서커스단을 배경으로 한 창작극 「곡마단 이야기」(이해제 작·이기도 연출)를 올려 소외된 삶을 따뜻한 인간적 시각으로 접근했다는 평을 들었다. 유인촌 레퍼토리는 아예 처음부터 『「큰 연극」만 하겠다』고 밝혀 연극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은다.유씨는 『너도 나도 극단을 창단하는 것에는 기본적으로 반대입장이지만 지금의 연극계 현실에서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창단하게 됐다』면서 『조명이나 캐스팅,세팅 등 모든 것이 제대로 된 연극으로 연극계의 총체적 불황에 정면 도전하겠다』고 밝혔다. 유 레퍼토리의 창단공연작은 이윤택 작·연출의 「문제적 인간 연산」(6월16∼30일·동숭홀).유인촌 이혜영 김학철 정규수 황혜영 등 호화캐스트에 2억1천만원의 엄청난 제작비가 투입되는 정통 대형극이다.유씨는 우리 사극을 개발,외국에 소개도 하고 셰익스피어 정통극에 대한 재해석 작업등을 기획중이다. 정통 사실주의 연극을 추구해온 연출가 김철리씨가 창단한 극단 비파는 「진지한 관객을 위한 세계명작 연극만들기 운동」을 첫 사업으로 전개키로 했다.창단 공연작으로 아돌 후가드 원작의 「메카로 가는길」(5월3∼28일·성좌소극장)을 준비중이며 후속으로 입센의 「존 가브리엘 보크만」,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셰익스피어의 「리처드 3세」등 역시 묵직한 연극을 선보일 예정이다. 「쌍시」「햄릿머신」「거미여인의 키스」등으로 역량을 인정받은 연출가 채승훈씨가 창단한 극단 창파(창조를 위한 파격)는 극단 명칭이 뜻하는 바와 같이 진보적인 순수공연을 펼쳐나갈 계획. 기획 만은 이만희 원작의 「그래 우리 암스텔담에 가자」를 배우·작가 공동연출로 지난 5일부터 동숭동 인간소극장 무대에 올려 인간 존재의 의미를 깨닫게 하는 고급스런 연극이라는 평과 함께 관객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 나혜석/한국 첫 여류서양화가/선각자적 삶·예술 재조명

    ◎탠생 100주년 맞아 수원서 기념행사/15일부터 첫 추모예술제… 유작전 개최/예성계몽·독립운동의 생애 연극 공연 일제하의 암울했던 시대,여성계몽운동가이자 서양화의 선구자로 파란의 삶을 살았던 나혜석(1896∼1946).그의 탄생 1백주년을 맞아 선각자적 삶과 예술을 재조명하는 행사가 추진되고 있다.수원지역 예술인들이 힘을 모아 오는 15일부터 6월9일까지 수원 일원에서 꾸미는 「제1회 나혜석 예술제」가 그것. 나혜석은 1896년 4월16일 수원시 신풍동에서 태어나 도쿄여자미술전문학교에서 한국여성으로는 최초로 서양미술을 전공한 1세대 작가.도쿄여전을 거쳐 프랑스 파리에서의 미술수업 등 서구미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특유의 미술세계를 일군 그녀는 화가로서뿐만 아니라 시대의 선각자로서도 남다른 활동을 펴왔다.근대적 의미의 여권을 주장하는 글 「이상적 부인」을 비롯한 다양한 문학활동을 통해 당시 한국사회의 폐쇄적 관념과 제도를 고발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으며 여성 독립운동가로서도 몫이 컸다. 서양화가이자 한 여성으로서이처럼 시대를 앞서 살다 간 나혜석의 예술과 삶을 오늘의 시각에서 집중적으로 다뤄 새롭게 평가하고 우리것에의 올바른 정립을 꾀해보자는 뜻에서 마련된 것이 이번 예술제의 근본 취지. 전시행사는 물론 연극공연,학술심포지엄,문학의 밤 등으로 짜인 「나혜석 예술제」의 첫행사는 15일 상오 11시 수원성 화홍문에서 열리는 개막고사와 나혜석 추모 퍼포먼스. 이날 개막고사에는 운영위원,참여예술인,시민및 시관계자 등이 모여 나혜석 탄생 1백주년 축하와 예술제의 성공을 기원하며 퍼포먼스에서는 이경근·황민수·김석환·박창식씨 등 서양화가 4인의 행위미술과 수원 소재 극단 「성」의 행위연극,그리고 수원대학교 미대생 30여명의 집단 추모 한마당이 펼쳐질 예정이다. 이어서 15일부터 24일까지 경기도 문예회관 소전시실에서 나혜석의 유작과 연보별로 정리한 그림사진 등이 문학작품 발표연대와 함께 전시되며 나혜석의 삶을 다룬 KBS­TV의 「날지않은 새」를 1백인치 액정비전으로 방영할 계획이다.역시 같은 기간동안 경기도 문예회관 대전시실에서는 서울 인천 대구 광주 부산 등 지역별로 선정한 평면및 입체작가 60명의 작품이 전시되며 이와는 별도로 수원에서 활동중인 동·서양화가 40명의 작품도 전시될 예정이다. 또 「나혜석의 예술세계」를 주제로 한 나혜석 재조명 학술심포지엄이 윤진섭·김윤배·심정순 등 미술평론가와 시인,연극평론가 등이 참여한 가운데 15일 하오 3시 경기도 문예회관 국제회의실에서 열린다. 이밖에 「나혜석 문학의 밤」(5월6일 하오 7시 장안갤러리)이 마련되며 「나혜석 탄생 1백주년 기념공연 「나혜석」이 극단 「성」에 의해 무대에 올려진다(6월9∼11일·경기도 문예회관 소공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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