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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지문화 금지인생 이제야 말한다](끝)-리영희교수

    ‘진실을 안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오랫동안 주입되고 키워지고 굳어진신념체계와 가치관이 자기의 내부에서 무너지는 괴로움은 매우 큰 것이다.절대적인 것,신성불가침의 것으로 믿고 있던 그 많은 우상의 알맹이를 알게 된-잠을 캐우는-괴로움을 준다’(‘우상과 이성’(한길사)서문 일부). 70년대 중반부터 10여년동안 ‘지성의 전당’ 문턱을 넘은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대했을 문구다.그 속에는 단숨에 책을 읽은 뒤,뿌옇게 밝아오는 창문을 보며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며 부르르 떤 기억도 배어있을것이다. 리영희씨(70·한양대 대우교수)의 ‘우상과 이성’은 대학 새내기들에게 ‘껍데기를 벗는’ 아픔을 준 동시에 세상의 참모습을 보는 눈을 뜨게 해주었다.리교수 자신도 ‘전환시대의 논리’와 ‘8억인과의 대화’와 함께 가장아끼는 저서라고 말한다. “제 책을 읽은 많은 대학생들이 학생운동·감옥 등 예기치 못한 길로 접어든 사실에서 ‘도의적 미안함’같은 게 들 때가 있습니다.하지만 다시 그런상황이 오더라도 같은 선택을 할겁니다” 경기도 군포시 수리산 입구에 자리잡은 한양아파트.정체성 없는 삶이 싫어아파트에 문패를 달고 사는 ‘당대의 논객’은 여전히 꼿꼿했다. ‘대쪽과 선비’.리교수의 삶에 잘 어울리는 말이다.기자와 교수로서 두번씩 ‘잘린’ 기이한 인생역정은 현대사에서 양심을 지키려면 당연히 거쳐야하는 ‘통과의례’였다. “무슨 거창한 이념이 있었다기 보다는 ‘거짓’이 태생적으로 맞지 않아서 이렇게 살아왔나 봅니다.특히 대중을 속이고 바보로 만들면서 개인적인 치부나 향달에 몰입하는 권력집단의 거짓은 참을 수 없었습니다.그들은 전 국민을 비인간화하고 인간다운 권리와 정체성을 박탈하는 집단이죠” ‘거짓과의 싸움’.아주 쉬워 보이지만,그러나 실천하기는 어려운 이 소신을 지키기 위해 리교수는 값비싼 대가를 치렀다. 64년 11월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되면서 가시밭길 인생길이 열린다.‘대기자’의 꿈을 품고 57년 ‘언론계 공채 1호’로 합동통신에 들어간 뒤 7년만에 부딪친 첫 필화(筆禍)였다. “‘아시아 아프리카 비동맹회의 외상들이 남북한 대표를 동등하게 대우하고 유엔가입 문제를 논의한다’는 기사를 썼는데 ‘반공법 위반’의 올가미를 씌운거죠.해설기사도 아니고 있는 사실만 다루었는데 죄가 되었던 것은박정희가 서서히 군부독재를 강화하려던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감옥에서 몇 달을 보낸 뒤 선고유예로 나왔다.‘거짓’과 타협할 줄 모르던 ‘지성’은 마침내 68년 해직통보를 받았다.외신부장이던 당시 ‘베트남 파병’의 본질을 꿰뚫고 한국 언론계에선 유일하게 반대논리를 펴다가 회사와정부의 미움을 받았던 것. “정부의 압력으로 강제해직되었지만 사실 제 맘속에도 ‘염증’이 생겼습니다.신문사 간부라는 인텔리가 정권이나 체제의 앞잡이가 되어 국민을 속이고 진실을 가릴 능력을 박탈하는 것은 ‘죄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리교수는 이후 1년 6개월 동안 애써 ‘인텔리의 옷’을 벗으려고 노력했다. 할 수없어 ‘책 보따리’장수로 나섰다.소설가 고 이병주씨와 출판사를 차린 뒤 책을 팔려고 서울시내 중·고교를 발이 터지도록 다녔다.그러나 지식인의 때를벗는다는 게 얼마나 힘든가를 뼈저리게 느꼈다. “우선 먹고 사는 일이 힘들더라구요.여러 시도를 해보았지만 ‘지식’으로 먹고 살던 놈이 딴 일을 한다는 게 쉽지 않았죠.어쩌면 그 역시 ‘관념론’이었다는 반성을 하고 합동통신사로 다시 들어갔습니다” 어정쩡한 반지식인이 되기보다는 더 철저한 지식인이 되는 게 낫다고 판단하고 ‘극악한 권력’과 더 치열하게 싸우기로 한 것이다.결과는 두번째 옥고였다.71년 1월 박정희가 유신헌법의 고삐를 한창 조일 때 ‘지식인 64명서명’운동을 전개한 혐의다.다시 쫓겨났다.그러던 중 한양대에서 제의가 와 기사 대신에 강의로 양심의 소리를 이어갔다.비록 60만명의 독자는 없어졌지만 ‘우상’에 길들인 수많은 대학생들에게 ‘이성’을 들려주었다. 첫 결실이 ‘전환시대의 논리’(창작과 비평사 74년)였다.인식과 실천을 결합하려는 의지는 ‘8억인과의 대화’(창작과 비평사 77년) ‘우상과 이성’(한길사 77년)등 ‘화려한 금서’를 잇따라 터뜨렸다.감옥이라는 코스는 당연했다.만만하면 걸고 넘어지던 ‘반공법 위반’으로 2년을 쇠창살 속에서 보냈다. 당시 중앙정보부와 검·경찰의 합동작품인 ‘불온한 이념서적 30권’ 리스트에 리교수의 저서 3권 모두가 상위에 자리잡았음(전환시대의 논리’와 ‘8억인과의 대화’ 1,2위, ‘우상과 이성’ 4위)은 그의 위치를 증명한다. 그는 언변이 화려하지 않고 눌변이다.그러나 그 속에는 일관되게 ‘지성’을 지켜온 고집이 들어있다.더디지만 꾸준한 걸음이었기에 80년대 거세게 몰아닥친 ‘극좌’의 목소리에도 휩쓸리지 않았고 사회주의의 몰락과 더불어잽싸게 변신하는 ‘역풍’에도 초연했다.오히려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강조하면서 버티고 있다. “자본주의가 승리했다지만 실제는 절반의 승리와 패배가 공존합니다.이기심에 근거한 동기부여로 물적 생산력을 극대화하여 현실 사회주의에 이겼지만 인간의 가치를 물질의 하위 범주로 만들었거든요.인간을 더 중요시하는사회주의라는 ‘마이신’을 만들지 못하면 타락·부패합니다” 자본주의 논리가 득세하는 현실에 뼈아픈 일침을 가한 그는 마지막으로개인적 소망을 들려주었다. “이제 지적 활동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은 후배들의 몫이라고 봅니다.평생고생한 아내와 함께 여행도 하고 즐겁게 책이나 읽고 싶습니다.무엇보다 노욕(老慾)을 피하는게 최대의 목표입니다.‘리영희’라는 지식인이 추하지 않고 올곧게 사는게 후학을 격려하는 자세라고 봅니다”이종수기자 vielee@'금지문화' 시리즈를 마치며 지난 해 6월 13일 시작한 기획시리즈 ‘금지문화 금지인생-이제야 말한다’가 23회로 끝을 맺습니다. 대중음악·출판·문학·연극·판소리 등의 다양한 문화판에서 ‘말도 안되는 이유’로 탄압을 받았던 작품과 그것을 일군 삶을 조명하는 작업은 우리현대사의 기형적인 모습을 확인하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드러난 ‘금지인생’의 사연은 절절했고 탄압의 빌미는 어쩌구니 없었습니다. 그저 좋아서 부른 서정적 노래(양희은),국토에 대한 사랑(조태일),올바른역사 기술(‘해방 전후사의 인식’),전통 춤이나 소리로 현실을 읊은 것(이애주,임진택,김명곤)이 모두 금지당했습니다. 검열의 잣대도 다양했습니다.“앨범표지가 장발이다”(이정선),“대통령찬가를 만들지 않았다”(신중현),“노래 제목이 물고문을 연상시킨다”(한대수)….공통점은 ‘어이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부당한 방법으로 정권을 획득한 권력집단은 늘 ‘당근과 채찍’을 병행합니다.우리가 확인한 ‘금지인생’에는 정권의 당근을 거부하고 채찍을 자청한이들만이 뿜는 향기가 풍겨납니다. 시리즈를 연재하는 동안 ‘금지인생’이 가르쳐준 지혜도 많습니다.혹독한탄압으로도 ‘진실은 영원히 감옥에 가둘 수 없다’는 것과 역경을 헤쳐온이들이 결국 우리 시대의 문화주역으로 각자의 장에서 탄탄하게 뿌리를 내렸다는 것입니다.아울러 우리 사회가 진보했지만 여전히 다른 얼굴을 한 ‘금지’는 존재하고 우리의 주역들은 그것과 싸우고 있다는 것입니다.결국 이시리즈는 단순히 먼지 가득한 창고에서 케케묵은 과거를 들춘 게 아니라 오늘의 문제를 제기한 셈입니다. 그동안 바쁜 일상생활에도 취재에 협조해주신 여러 ‘금지인생’의 주역들과 시리즈에 관심을 표명해주었던 독자여러분께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이종수기자
  • ‘벚꽃동산’ 연출 전훈…“관객들 많이 웃어 안도”

    ‘벚꽃동산’을 연출한 전훈(34)은 연극이 시작한 지 8일이 지난 16일이 되어서야 안도의 숨을 쉬었다. 관객들이 보여준 감정의 폭이 예상보다 컸던 것이다.진지함과 웃음의 낙차가 크다는 것은 자신이 해석한 체호프의 희극성이 통했다는 증거라고 느꼈다.주목받는 30대 연출가의 한 사람이지만 대극장에서의 첫 연극공연이라는 부담에서 벗어나는 순간이기도 했다. “‘벚꽃동산’은 체호프가 ‘내가 쓴 것 중 최고로 웃기는 작품’이라고자평할 정도의 희극이었는데 스타니슬라프스키가 초연때 비극으로 바꾼 뒤주로 진지하게 해석돼왔거든요.저도 원작을 읽으며 배꼽을 잡고 웃은 ‘소극(Farce)’이어서 웃음에 무게를 많이 두었는데 우리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했거든요”. 그는 지난 해 ‘체호프 연극제’를 주관할 정도로 ‘체호프 광(狂)’이다. ‘연극계의 러시아 유학 1호’로서 쉬예프킨연극원에서 접한 체호프의 작품은 ‘리얼리즘의 보고(寶庫)’였다. “인간 심리나 인생의 의미를 잘 표출하는 탁월한 작가지요.한점의 과장도없이 있는 그대로 상황을 설정하여 살아 있는 인물을 묘사하는 실력에 매료되었죠”. 그렇다고 딱딱한 현실만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96년 귀국하여 ‘월요 연극’등을 주도하다가 넌 버벌(Non Verbal,대사가 없는)작품인 ‘난타’를 연출할 만큼 파격성도 보여주었다.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재충전을 위한 것이고 뿌리는 ‘리얼리즘’을 지향한다.그것도 우리 정서에 딱 들어맞는 ‘한국식 리얼리즘’이다.뜻맞는 동료들과 ‘극단 노리’를 만든 것도 연장선에 있다. 최형인 정동환 여무영 박봉서 등 대선배들이 많아 연출하는데 힘이 들지 않았냐고 묻자 “일반적으로 선배들과 작업하는게 쉽지 않은데 이번에는 오히려 네분 선배들이 많이 도와주었다”면서 “외형적으로는 조연출이 없는데 알고보면 그 네분들이 막강한 조연출 노릇을 톡톡히 해냈다”고 밝혔다.이어 이번 무대의 경험이 오는 2004년 ‘벚꽃동산’공연에 큰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문화회관 소강당 객석에 가면 늘 그를 만날 수 있다.29일까지.(02)399-1645이종수기자
  • [인터뷰]새달 인터넷방송국 개국 탤런트 변우민

    ‘너무 잘 생겨서 매력없다’는 탤런트 변우민(36).데뷔한지 10여년이지만스스로 대표작이라 내세울 것도 없다는 이 오만한 ‘딴따라’가 새로운 일을 벌인다.오는 5월1일 인터넷방송국 ‘Playcat’(www.playcat.com)을 개국하는것.이를 위해 지난 1월 한국인터넷방송협회(KWN)에 방송국 등록을 했다. 인터넷 방송이란 21세기의 새로운 매체로 각광받고 있는 컴퓨터 방송.변우민은 ‘깜짝이벤트’가 아니라 진지한 ‘도전’을 하고 있다며 심각한 표정이다.8mm 카메라로 자체 제작한 10여개의 프로그램을 매주 바꿔 새로운 내용으로 24시간 동영상 서비스할 계획이다.방송의 개념을 완전히 바꿔놓을 것이라 한다. 프로그램은 연예계 소식을 비롯,시청자참여 여론조사를 통해 젊은이의 여론을 반영하는가 하면 사이버 스쿨에선 댄스 교실과 누드 크로키,연애학 교실등 강의도 준비되어 있다.또 변우민의 리얼한 스타인터뷰,개봉전 영화표 예매코너도 있다. 이런 엉뚱한 일을 벌이는 것은 ‘대본대로 움직여야 하는’연기자로선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할 수 없기 때문이란다.“4년전 한 케이블TV의 프로그래머로 일할때 할리우드의 영화제작자들과 만날 기회가 있었어요. 배우로서 이만큼 활동하고도 개인 사이트가 없다는 것에 무척 놀라더군요.창피해서 돌아오자마자 컴퓨터를 샀어요” 이렇게 컴퓨터에 입문,몇 해 전부터 시나리오를 쓰거나 이메일로 사진을 전송하는 등 컴퓨터와 친해졌다.그의 프로그램 중 가장 큰 기대를 걸고 있는것은 ‘사이버 대통령후보 퍼펙트 맨 선거운동본부’다.21세기를 이끌어 갈가상의 대통령상을 젊은이들이 만들어 가는 것으로 이를 통해 대화와 설득의 방법을 배우게 하겠다는 것이다.“우리는 흑백논리와 편가르기에 익숙하지않습니까? 젊은 세대들이 밝고 정정당당하게 자신의 뜻을 밝혀나가고 즐기면서 배우는 매체가 되게 할 겁니다” ‘정치에 관심있느냐’는 질문이 나올 정도로 확신에 찬 목소리지만 그의목표는 오로지 영화제작.이미 영화사 ‘시네 아이’에도 출자,공동 주주가됐다.살던 집을 팔아 벌인 인터넷 방송 일은 국내외에 자신을 알린 후 외국시장에 영화를 제작·판매하겠다는 꿈의 실천을 위한 첫 걸음이다. 울산공대 화학공학과-일어과를 거쳐 중앙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그는 결혼에 ‘안주’하는 대신 전세계 60여개국을 마음껏 ‘방랑’했다.직접 체험하며 살고 싶다는 그의 꿈을 담은 인터넷 방송은 ‘일단’ 무료라면서 팬들의방문을 권했다. 그래도 영원한 본업은 연기자.MBC‘하나뿐인 당신’에 출연중인 그에게 KBS‘사람의 집’에 밀리고 있는데 어떠냐고 슬쩍 긁으니 “두고 봐야 한다”는 대답으로 전에 없는 성숙함과 느긋함을 보인다.세계를 향해 섰기 때문일까?그의 연기도 좀 달라졌다. 허남주기자 yukyung@
  • ‘머리통 상해사건’ 공연…2세대 연우인들 홀로서기 ‘시험무대’

    창단 22년을 맞은 극단 연우무대의 김종연 손기호 등 ‘2세대 연우’들이‘홀로서기’에 나섰다.이상우 김광림 정한룡 등 연우무대 1세대가 교수직진출, 새극단 창단 등으로 극단을 떠나자 이들 젊은 후배들이 선배들의 도움없이 독자적으로 ‘머리통 상해사건’(장우재 작·김종연 연출)을 준비 중이다.1세대의 연극은 대상이 뚜렷했다.시대가 일그러져 있었기에 민주화나 풍자 등 비판에 초점이 맞춰졌다.그러나 관심분야가 다양해지면서 후배들의 작업은 방향을 돌려야했다. ‘머리통 상해사건’(장우재 작·김종연 연출)은 이러한 모색의 첫 결실. 소재는 미용실에서 일어난 사소한 사건이다.미용사가 단골의 머리를 자르다 실수로 머리를 찌른다.마침 옆에 있던 록가수가 이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자신의 신곡 앨범표지로 사용하면서 사건이 엉뚱하게 번진다.노래가 크게 인기를 끌면서 사진 속 모습을 모방한 범죄가 잇따르자 검찰과 경찰은 이를 막으려고 가상의 시나리오를 짜고 선정적 소재를 갈구하는 방송을 이용한다. 김종연은 “극의 해설자를 설정하지않고 다양한 암전과 정지장면으로 관객이 자연스럽게 극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겠다”면서 “사라져가는 연극의 현장성을 되살리기 위해 무대 한켠에서 라이브 연주를 들려주고 속도감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고 말한다. 젊은 연우인의 신선한 바람은 3일부터 16일까지 문예회관 소극장을 휘감은뒤 1주일 정도 쉬고 친정인 연우극장에서 5월까지 계속된다.(02)744-7090李鍾壽
  • 4월 2∼4일 ‘괴테 탄생’ 250돌 기념영화제

    독일의 대문호 괴테 탄생 250주년을 맞아 오는 4월 2∼4일 ‘괴테 심야 영화제’가 서울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서 열린다. 그의 문학적 향기를 담은 영화 8편을 상영하는 이번 영화제는 독일문화원이 오는 26일부터 4월11일까지 마련하는 괴테 탄생 기념행사의 하나. 영화제 외에 연극,시낭송회,도서 및 우편 전시회,가곡제 등 다양한 기념행사가 예술의 전당에서 개최된다. 영화제 첫날인 2일은 괴테의 동명 소설과 희곡을 바탕으로 한 ‘파우스트’(60년)와 ‘클라비고’(70년)가 밤 11시부터 잇따라 상영된다. 이어 3일 밤 11시에는 ‘젊은 베르테르의 눈물’(75년)이 상영된다.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원용한 이 영화는 주인공 에드가 위버가 유치원교사 찰리에게 사랑을 느끼면서 소설 속의 베르테르와 자신을 동일시한다는줄거리이다. 마지막날인 4일 오후 6시에는 괴테의 소설 ‘친화력’을 주제로 삼은 ‘타로’(86년)가 선보인다.이 영화는 4명의 젊은 남녀가 우연히 서로 짝을 맺는 과정을 다룸으로써 인간관계의 의외성을 보여준다.또 자신의 어머니가 괴테를 직접 만난 적이 있다고 주장하는 104세 노부인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든 다큐멘터리 ‘괴테를 직접 본 여인의 딸’ 등도 상영된다.입장료 2,000원.(02)580-1300,1700
  • 메마른 소극장에 봄은 오는가

    문화기획가 강준혁(99 서울연극제 축제위원장)과 뮤지컬연출가 김민기가 새로운 형태의 ‘대학로 소극장 문화’찾기에 나선다. 80년대 초 소극장 ‘공간 사랑’에서 전통·실험 예술의 상설 무대 등으로주목받은 바 있는 강준혁의 기획력과 ‘한국 뮤지컬’의 자리매김을 줄곧 고민해온 김민기가 만나 ‘학전 봄 풍경 32547’(강준혁 기획·김민기 연출)무대를 꾸민다. 25일부터 김민기가 대표로 있는 학전그린 소극장에서 펼쳐질 이번 무대의주역은 김덕수와 이광수,이애주,안숙선,남긍호,김대환과 이혜경,김영준,김혜란 등이다.이들은 한국과 서양의 다양한 예술장르에서 모두 한가락 하는 ‘문화 일꾼’.하루씩 번갈아 나온다. ‘이야기가 있는 예술가들의 무대’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이번 공연에서 공연자들은 직접 자신의 작품세계를 설명한다.소극장을 사랑방처럼 꾸며 관객과의 경계를 허물고 함께 호흡하는 자리를 만든다.강준혁이 손수 공연자와관객 사이에서 길라잡이로 나서 관객과 공연자의 대화를 이어준다.강준혁은“소극장만이 펼칠 수 있는 재미있는 공연거리를 만들어 보자는 제의에 출연진도 흔쾌히 동의했다”면서 “이번 공연을 계기로 죽어가는 소극장문화를살릴 수 있는 전환점이 되었으면 한다”고 전했다. 김민기는 “소극장에 어울리는 다양한 무대를 실험했지만 단발성이어서 효과가 적었다”면서 “보다 밀도높은 볼 거리로 관객과 직접,정직하게 만날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절벽에 몰린 소극장의 숨통을 틀 수 있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고 밝혔다.이어 “이번 무대는 금난새씨가 예술의 전당에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야기가 있는 클래식’을 성인·가족용으로 시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두 사람은 “이번 무대가 좋은 반응을 얻어 해마다 상설 공연으로 자리잡기를 바란다”고 입을 모았다. 첫 무대(25일)는 김덕수와 이광수가 흥겨운 사물놀이 장단으로 열어젖힌다. 다음 날엔 이애주교수(서울대·중요 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예능보유자)가‘승무’‘살풀이춤’ 등 우리 춤의 아름다움을 ‘한 수’ 보여주면서 그 속에 깃든 전통문화의 건강함을 들려준다.또 경기민요의 김혜란과판소리의 대중화에 애쓰는 명창 안숙선은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를 노래한다(4월2,3일) 이에 뒤질세라 타악기의 귀재 김대환과 전통무용가 이혜경은 지난 해 지난해 7월 프랑스 아비뇽연극제에서 폭발적 인기를 끌었던 ‘한국의 밤’ 공연을 재현한다(3월29일).이밖에 세계적 프리 섹소폰 연주자 강태환과 바이올린의 김영준,프랑스에서 마임 활동을 했던 남긍호,‘재즈 피아노로 본 봄’을연주할 김광민 등이 ‘관객과 어우러진 무대’에 가세한다.4월27일엔 대부분의 출연자가 한꺼번에 나와 마지막 무대를 꾸민다. 강준혁의 소프트웨어와 많은 공연 경험을 자랑하는 ‘학전’의 하드웨어가만나 어떤 화음을 빚을지 관심이 높다.아울러 이 공연이 소극장문화의 모델로 자리잡아 ‘문화의 공간’을 되살리는 불씨가 되었으면 하는 게 공연계의바람이다.(02)763-8233
  • 청와대에 ‘문화사랑 모임’

    청와대내에 이색 동호인 모임이 생겼다.문화를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의모임인 ‘문화마을’이다.15일 낮 창립총회를 갖고 첫 행사를 가졌다.이날오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안숙선·김덕수’공연을 단체로 관람했다. 이들은 앞으로 매월 한차례씩 영화·연극 등 문화행사를 관람하고 이에 대한 토론을 벌이기로 했다.또 문화계의 애로사항을 수렴,해결하고 지원책도강구하기로 했다. 창립총회에서는 曺圭香교육문화수석이 초대회장으로 선출됐다.曺수석은 “21세기는 문화의 세기이고,문화행사 종사자들과 청와대 직원들간의 교류를 통해 문화대통령으로서 이미지를 제고시키는데 기여하자”고 말했다. 회원은 50여명이며 공연관람권은 일체 외부지원을 받지 않고 회비로 구입할 예정.모임의 아이디어를 낸 鄭恩成 공보비서실 통치사료비서관이 초대 간사를 맡았고,李允宰재경·李元雨교육문화·李奉祚통일·李仁錫건교비서관과 張錫日의무실장이 부회장으로 선출됐다. 梁承賢
  • [화제의 책]천안문/살아있는동안은 날마다 축제/공간과 시간의역사

    ■인물 통해본 중국 현대사 미국의 대표적인 중국 전문가인 조너선 스펜스 예일대 역사학과 석좌교수가 쓴 ‘천안문’은 중국 근대 100년 역사의 대하 드라마다.(정영무 옮김) 지은이는 청일전쟁 직후인 1895년부터 세계질서에서 중요한 국가로 등장한1980년까지의 중국 현대사를 다양한 등장인물의 삶을 통해 조명하고 있다. 중요한 3명의 주인공은 19세기 말 청조가 쇠퇴할 무렵 급진적 개혁의 대변자 역할을 하다 정치적 좌절에 빠진 유학자 캉유웨이(康有爲),중국 근대문학의 아버지 루쉰(魯迅),새로운 중국을 대표하는 여성작가 딩링(丁玲)이다. 정치적으로 중요한 쑨원(孫文),마오쩌뚱(毛澤東),장제스(蔣介石),저우언라이(周恩來) 등도 등장하지만 그들은 조연에 머문다. ■문화게릴라 이윤택 수필집 이윤택은 스스로를 ‘문화 게릴라’라고 부른다.극작가·연출가로 잘 알려진 그에게 장르의 벽은 없다.시·연극·TV드라마·영화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든다.전방위 예술가 이윤택이 ‘살아 있는 동안은 날마다 축제’라는 책을냈다. ‘문화 게릴라 이윤택의세상 읽기’라는 부제의 이 책은 권태로운 일상을거부해 온 그의 바쁜 삶과 예술을 담고 있는 첫번째 에세이집이다. 그는 제2부 어머니 편에서 팔순 노모의 잔소리와 치열한 삶을 살았던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려준다.그의 어머니는 지난 27일부터 정동극장에서 자신의연출로 공연되고 있는 연극 ‘어머니’의 모델이다. ■인간의 時空인식 입체탐구 그레이엄 클라크 영국 케임브리지대 고고학 교수의 ‘공간과 시간의 역사’는 사회발전 과정에서 사람들이 시간과 공간을 어떻게 인식했나를 인류학적이고 역사적인 관점에서 입체적으로 탐구하고 있다.(정기문 옮김) 지은이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들이 자신들이 처한 환경 속에서 공간과 시간을 성공적으로 이용한 정도에 따라 번성했다”고 말한다. 그는 특히 인간이 영장류중에서 지금과 같은 절대적 지위를 확립한 여러가지 방법 중 하나는 더 넓은 영역으로 공간에 대한 인식을 확대하고 더 긴 시간을 인식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클라크 교수는 “이 책의 목표는 자연 세계가 인간의 이익을 위해서 창조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 ‘어머니’ 27일부터 정동극장서

    어머니라는 말은 아늑함과 가슴 찡한 느낌을 동시에 떠오르게 한다.시대가어려울 수록 복합적인 감정의 울림이 커진다.지난 17일 ‘어머니’(이윤택작·연출)의 연습장인 서울 정동극장.마냥 포용하는 모성의 넉넉함은 난방이 없는 무대를 훈훈하게 덮혀준다. “어머니는 영원한 테마잖아요.자식 키우는 에미로서 내용이 가슴에 와닿습니다”.정동극장과 20년 장기공연 계약(본지 1월15일자 보도)을 맺은 손숙씨의 말엔 27일부터 시작되는 공연에 대한 ‘흥분’이 실려 있다. 내로라하는 여배우를 설레게 한 ‘어머니’의 삶에는 찢어질 듯한 가난,일제시대와 해방기의 혼란,한국전쟁의 상흔 등 우리 현대사가 고스란히 녹아있다.연극은 일순(손숙)의 현실과 회상을 넘나들면서 펼쳐진다. 일순은 사사건건 논리적으로 따지는 신식 며느리(송정화)와 마찰이 잦다.그래도 방송작가 아들(김학철)에 거는 기대와 토끼같은 손자 손녀의 재롱에 웃음을 감추지 못한다. 어느날 죽은 남편 돌이(원용부)를 꿈에서 만나면서 한많은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낸다.만약 “글만 배웠더라면 ‘노베르(노벨)상’도 떼어놓은 당상일기막힌 내용”들이다.징용으로 끌려간 첫사랑 양산복(김경익).논 서마지기에 팔려온 결혼생활.밖으로만 내돌며 집안일은 아랑곳 하지 않는 남편.무뚝뚝하지만 ‘핍박받는 여성’이라는 공통점으로 속내를 터놓고 지내는 시어머니와 주렁주렁 달린 자식들이 유일한 낙이었다. 피란 중 학질에 걸려 죽은 아들(첫 사랑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을 놓고통곡하는 장면은 눈물의 절정.온몸으로 흐느끼는 일순의 아픔은 손숙씨의 것으로 체화된다.“연습 때마다 눈물로 범벅이 되는 진지한 모습에 다른 연기자들이 모두 숙연해진다”고 김학철은 귀뜸한다. 그렇다고 눈물만 있는 것은 아니다.경남 밀양지방의 설화와 민요,옛날 시골아이들의 놀이와 창가를 재현해 볼거리가 풍성하다.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도재미를 키운다.절로 입가에 미소를 띄우게 한다.연출을 맡은 이윤택은 익숙한 풍경을 참신하게 조리해낸다.환상과 현실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특기를 맘껏 펼쳐 극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깔끔하고 재미있는 작품입니다.현실과 회상을 따로 놔두면 지루해지는데이를 피하기 위해 꿈과 안보이는 세계를 섞었습니다.연극적 재미라는 점에무게를 두었습니다”. 그는 일순과 남편 영혼의 대화 장면에서 배경음악과 사투리의 운율을 맞추느라 핏대(?)를 올린다.2∼3차례 되풀이하자 대사와 음악이 3박자 운율을 갖추고 감칠 맛 나게 태어난다. 가슴에 와닿는 사연의 힘은 이윤택의 체험에서 비롯된다.연극 속 일순의 원형은 그의 어머니였다.나아가 30∼40대 성인들 모두의 어머니일지도 모른다. 거친 세파를 건너온 어머니를 모신 아들에겐 정동극장 무대가 반가울 것이다.모든 어머니의 가슴 속에 맺힌 매듭을 잠시나마 풀어 드리기에 제격인 연극이다.4월25일까지.평일 오후 7시30분,주말 오후 4시·7시30분,화·금 쉼.(02)773-8960李鍾壽 vielee@
  • 금지문화 금지인생 이제야 말한다(19회)

    ■배우·연출가 김명곤 ‘광대와 투사’ 연극·영화배우이자 연출가인 김명곤(47)을 따라다니는 두가지 이미지다.좀더 정확히 짚어보자면 거친 시대상황 때문에 ‘영원한 광대’가 꿈인 그의이름앞에 ‘투사’라는 꾸밈말이 붙었다고 봐야 한다. 72년 우연히 연극반(서울사대)에 들렀다가 ‘대타 배우’로 나서면서 연극과 인연을 맺었다.교내공연이 불허돼 이화여대 옆 가톨릭회관에서 ‘선우교수댁’(김국태 작·연출)을 띄우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경찰이 들이닥쳐 셔터를 내린 것이다. “연극과의 첫 경험이 ‘금지’였습니다.이후 당국과 주류 연극계의 곱지않은 시선과 맞서는 아웃사이드 인생이 이어진거죠” 애초 그에게 연극반은 투쟁이나 이념의 공간이 아니었다.좋은 선배가 있었기에 발길이 잦았고 그곳에 술과 토론이 있어 좋았던 것이다.무엇보다 잘 곳이 없고 끼니 떼우는 게 힘들던 그에겐 라면을 먹을 수 있었고 잠자리를 해결해 주었던 ‘천국’이었다. 공연이 허공으로 날아가는 걸 보면서 ‘왜’라는 의문이 들었다.여기서 그의 삶은 큰 전환점을 맞는다.한번 고개를 든 의문은 교사극단 ‘상황’시절증폭된다.‘아벨만 이야기’(이근삼 작·연출)와 ‘뻐꾹 뻐 뻐꾹’ 공연을이어가던 중 79년 남민전 사건으로 극단이 와해된다.함께 활동하던 이재오(현재 한나라당 의원)등이 연루되면서 ‘빨갱이 극단’으로 둔갑한 것이다.‘왜’라는 관념이 질곡과의 싸움으로,광대가 투사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이후 ‘예술이 정치에 종속되어서는 안된다’는 신념은 내면으로 가라앉았다.그 자리에 이어지는 탄압에 대한 공연으로서의 대항이 싹을 틔웠다.김지하 황석영 임진택 채희완 김민기 등과 ‘놀이패 한두레’를 이끌어 갔다.연우무대패들과도 어울렸던 이 시기를 이렇게 말한다. “노동극 ‘밤하늘의 별처럼’을 연출했는데 역시 공연 허가가 나지 않더군요.평소 가까이 지내던 사람 30여명을 몰래 불러 수색 근처 야산에서 공연하기도 했지요.연우무대 시절엔 ‘나의 살던 고향은’(임진택 연출)을 공연하는데 한 대학생이 삐라를 뿌려 공연이 6개월 중지되기도 했습니다” 이후 ‘장산곶매’(80년 이상우 연출)‘장사의 꿈’(81년 황석영 작·임진택 연출) ‘민달팽이’(82년 김명곤 작·연출) ‘멈춰선 저 상여는 상주도없다더냐’(82년 김민기 연출) ‘나눔굿’(85년 이애주 안무) 등 주옥같은작품으로 연기 인생을 꽃피웠다.특히 ‘장사의 꿈’에선 10여명의 배역을 혼자 소화해 화제를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민중문화운동의 초창기였고 제가 젊고 도전적이던 때라 사회개혁과 우리것 찾기에 대한 열정을 맘껏 터뜨릴 수 있었습니다.대학생이나 노동자를 대상으로 연극과 민요도 가르쳤습니다.물론 공연도 병행했지요.대본 심사가 워낙 엄격해서 ‘통과용 따로 공연용 따로’ 만들어야 했던,그야말로 연극 1편만드는 게 투쟁이라는 심정으로 뛰어다녔습니다” 숨가쁜 발길은 문화운동으로서 연극운동의 방법론을 놓고 치열한 논쟁을 목도하면서 ‘제3의 길’로 돌아선다.86년 극단 아리랑을 창단하고 소극장 한마당을 세워 이론보다는 ‘연극 현장’을 열었다. “예술이냐 사회운동이냐는 이분법적인 논쟁보다 중도적 입장을 택하고 싶었습니다.무엇보다 무대가 좋았구요.이 시절 장산곶매가 만든 영화 ‘파업전야’를 상영하자 ‘닭장차’가 집결하기도 했습니다.결국 극장은 영업정지,극단은 등록취소의 운명을 맞았죠.물론 법정투쟁 끝에 승소했죠” 87년 민주화 열기로 직접적인 금지가 완화되었다.하지만 김명곤에겐 또 다른 ‘금지’가 가로놓여 있었다.연극계 내부의 보수적인 인식과 ‘고리타분한’ 잣대가 그것.91년 서울연극제에 참가하기로 예정됐던 ‘격정만리’(김명곤 작)에 당시 연극협회 원로들이 ‘친북’의 올가미를 씌웠다. “‘격정만리’는 한 연극배우의 일제시대에서 6.25전쟁까지의 삶을 다룬작품이었죠.그런데 극중극 형태로 삽입한 친일 배우의 삶이 ‘연극계의 치부를 건드렸다’고 신경이 곤두선 거죠.물론 대외적인 참가불허 이유는 월북배우의 삶을 다루었다고 해서 ‘빨갱이 연극’이라는 거였죠” 연극협회와의 이 갈등을 토론을 제의해 ‘연극논쟁’을 전개함으로써 해결했다. 김명곤은 이분법적 사고를 싫어한다.‘투사’보다 ‘광대’를 더 좋아하는것도 여기서 비롯한다.쉼표없는 ‘광대살이’의여정에서 무대극과 마당극의 논란을 거부한 것이나 영화냐 연극이냐를 둘러싼 ‘한우물 지조론’에 관심이 없는 것도 같은 연유에서다.그저 그가 지향하는 예술적 목표를 이루면 족한 것이다. “내용 면에선 인간의 원초적 문제를 시대상황과 공감대를 이뤄내면서 그것을 담는 그릇인 형식은 다양하고 유연성을 담보해야 합니다.이를 위해서 끊임없는 자기발전과 새로운 시도를 찾아가야 합니다” 지난 90년 펴낸 수필집 ‘꿈꾸는 퉁소쟁이’(고려원)에서 김명곤은 시대상황에 몰두한 나머지 예술로서의 본질적 주제를 소홀히 했다는 자성을 토로한 적이 있다. “어릴적 내성적이고 늘 혼자 놀곤해서 ‘방안퉁소’라는 별명이 붙었는데70∼80년대의 격변기를 겪으면서 민중과 반독재 투쟁을 향한 ‘바깥퉁소’로 바뀌었다.그런데 처음엔 사람들이 즐겁게 듣더니 언제부턴가 ‘바깥퉁소’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방안퉁소’에 소홀한 탓이다”안팎 퉁소의 통일을 꿈꾸는 그는 ‘천상 광대’이다.이 길에 남겨진 두가지 과제를들려주면서 ‘과천 마당극잔치 비상대책위원회’모임으로 향했다. “내용면에서 간섭과 금지는 간접적이고 최소화 되었지만 관 주도 문화행정이 주는 제도적 구속은 아직 남아있습니다.그리고 더 무서운 ‘금지’는 타성에 젖어가는 저의 모습이죠.그놈은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고 나태해져,열정이 사위어 가는 추한 얼굴로 변해가고 있습니다”■그의 길▒52년 전주 출생.▒71년 서울사대 독어교육과 입학 ▒77년 ‘뿌리깊은 나무’기자 ▒78년 배화여고 교사 ▒79년 ‘밤하늘의 별처럼’출연·연출 ▒82∼83년 영화 ‘일송정 푸른 솔은’‘바보선언’‘과부춤’ 등 출연 ▒ 86년 극단 아리랑 창단 이후 ‘갑오세 가보세’‘점아 점아 콩점아’‘배꼽춤을 추는 허수아비’등 작·연출 ▒93년 영화 ‘서편제’각색·출연 이후 영화 ‘태백산맥’‘영원한 제국’등 출연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현대연극상 최우수작품상·연출상 수상 ▒ 97년 전국마당극협의회 의장. 李鍾壽 vielee@
  • 리뷰-극단 현빈의 ‘선택’

    지난해 굿을 처음으로 연극화해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선택’이 다시 문예회관 소극장 무대에 올랐다.여성을 비하하는 주제로 ‘반페미니즘’ 논쟁을 불붙게 했던 이문열의 동명 소설을 소재로 한 작품. 첫 공연 때 벌어진 논쟁의 앙금이 남은 탓일까.주인공 장씨부인의 넋이 들려주는 얘기는 ‘반페미니즘’에 대한 우려를 말끔히 씻어낸다.대신 요즘 사위어 가는 ‘어미의 아름다움’에 대한 ‘일갈’이 굿판을 채우고 있다.지난 공연 때는 ‘소박이냐 현모양처냐’를 놓고 둘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제하는 극단적 상황을 설정해 여성계의 반발을 불렀었다.이번에는 선택의 문제를 아예 피하고 대신 동서고금을 아우르는 ‘자식키우기’라는 보편적 미덕을 강조한다. 장고 해금 징 바라의 우리 가락이 흐르는 가운데 장씨부인(이용이)은 시종일관 판을 압도한다.흐드러진 춤과 함께 때론 나무라고 때론 눙치는 대사로관객을 자유자재로 울렸다가 웃긴다.‘사람됨을 키우는 모성’이 사라져간다고 따금하게 꼬집기도 한다.‘남자 황진이’를 맡은 이원종의 걸죽한연기와 만신(여자 무당)역을 맡은 김영화 김연재 김경숙 등의 추임새도 굿판으로의 몰입을 돕는다. 구경꾼은 둘째 마당에 이르면 객이 아니라 주인이 된다.만신의 떡을 사거나 나눠 먹은 뒤 무대로 나가 같이 절하고 춤춘다.더불어 어울리는 신명 나는거리(굿의 한 장면)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어느덧 굿판은 장씨부인의 극락천도를 비는 ‘베가르기’ 장면에 이른다.시간 가는줄 모르고 있다가 막바지에 다다른다.관객이 장씨부인을 따라 베를가르며 서서히 나아가는 길은 ‘겸허’로 이어진다.“햄버거와 피자가 제사상에 오를지도 모르는 세상”에서 “사람이나 귀신이나 나눠먹는게 도리”라는 장씨부인의 넋두리는 요즘 사람들의 자세를 꾸짖는 것이다.굿판은 21일까지 이어진다.(02)764-6010李鍾壽
  • ‘신의 아그네스’ 80년대 신화 재현한다

    지난 83년 8월15일 첫 공연에 나선 ‘신의 아그네스’.불볕더위를 단숨에날려보낼 만큼 돌풍을 일으켰다.6개월동안 초만원.두달전 예매하지 않으면표를 구할 수 없을 정도였다.바로 이 ‘사건’으로 연극에 예매제가 도입됐다.국내 연극사상 최장기 공연(300여회)의 기록도 수립했다.‘연극 르네상스인가 일시적 거품인가’ 등의 수많은 화제와 논란을 일으킨 진앙지(震央地)였다. 그 때의 주역 윤소정(55),이정희(52),윤석화(44) 등 3명이 다시 뭉쳤다.‘아그네스’의 신화를 재현하려는 것이다. 지난 3일 대학로 들꽃컴퍼니 연습장 공기엔 설렘과 부담이 동시에 섞여 있었다.앞선 의욕으로 대사가 잘 외워지지 않는 듯 막간마다 담배를 피워대거나 벽에 기대 머리를 감싸쥐곤 했다.흥분을 삭이는 기색이 역력했다. 16년만에 호흡을 맞춰서인지 해프닝도 벌어졌다.윤소정은 자신의 담배 피는 모습을 넋을 잃고 바라보는 이정희가 우스웠는지 “왜 너도 담배피는 장면을 넣어줄까”라며 폭소를 터뜨렸다. 연출을 겸한 윤석화는 가상 세트와 비교하며 윤소정 등 두 선배의 자리를일일이 고쳐나갔다.때론 선배들에게 애교섞인 따금한 지적도 곁들인다. 이들은 ‘아그네스’를 창고에서 꺼낸
  • 오늘의 눈-마당극잔치 판깨는 과천시

    “남의 집이 커보이면 진다”는 바둑 격언이 있다.정상적 수순으로 상대 집을 서서히 옥죄지 않고 덜컥 쳐들어가면 대국을 그르치게 된다는 말이다.최근 과천시가 둔 무리수는 이 격언을 연상시키는 전형적인 사례다. 지난 97년 첫 발을 디딘 ‘과천 세계마당극 큰잔치’는 매년 17만여명의 관객을 불러 모으는 성황을 이뤘다.잔칫집이 커보였을까.행사 주최자에 머물렀던 시가 판에 직접 끼어들겠다고 나섰다.주관 권한을 요구하고 집행위 산하의 사무국에 공무원 10명을 파견하겠다는 것이다. 집을 지키려던 임진택 집행위원장은 “행사를 잘 이끌어 가자는 토끼인줄알았다가 이리나 늑대를 만난 꼴”이라고 비유한다.임위원장의 고군분투에한국연극협회와 전국민족극운동협의회 양 단체가 6일 기자회견을 열고 힘을모으면서 반상의 전투가 커졌다.관 주도의 발상을 바꾸지 않으면 과천에서의 잔치를 깨겠다는 강력한 수로 버틴 것이다. 미지근하게 판을 끌어가던 과천시도 급기야 ‘오해였다’‘집행위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했다’는 내용의 해명서를 돌렸다.무리수임을 깨닫고 빠져나오려 했으나 명분상 대세가 기울었다. 더 큰 문제는 겉으론 ‘해명’ 운운하지만 조직체계에 ‘행사지원본부’를새로 만들어 집행위를 흔들 여지를 남겨 놓았다는 것이다.마땅히 돌을 던지고 일어서야 옳건만 죽은 말(馬)을 질질 끌고 있다. 사태가 여기까지 이른 데는 과천시가 잔치의 열매만 보고 뿌리를 보지 못한 데 있다.관 주도로 밀어붙이면 되지 않겠느냐는 어림셈도 한몫했으리라. 문화정책의 영원한 과제로 ‘지원은 하되 간섭은 않는다’라는 게 있다.물론 정부도 공식적으로 표명한 입장이다.하지만 최근 벌어진 광주비엔날레 전시총감독 해촉이나 과천마당극 파문을 보면 먼 얘기로 들린다.정부라는 산을 넘으니 지자체라는 더 험한 ‘간섭의 산’이 가로막고 있다. 간섭없는 문화정책은 불가능한가,연극인을 비롯한 예술인들의 창의성을 야금야금 갉아 먹으려는 구태는 언제까지 되풀이될까,모처럼 쌓은 마당극잔치의 명성을 이으려면 올 대회 준비를 빨리 시작해야 하지 않나274.파문을 지켜보며 쌓인 의문이다.vielee@
  • ‘약속’ 조연으로 스타덤에… 신인배우 정진영(인터뷰)

    ◎“깡패라는 캐릭터로 좋은 평가 받아요”/대학 연극반 출신 “성격파 배우로 크고 싶어” “이제야 영화배우가 됐다는 걸 실감하겠어요.그동안 뭘하는 사람인지 의심섞인 눈초리로 보던 이웃들이 영화상영 이후 달라졌어요” ‘약속’에서 조연으로 뛰어난 연기를 보인 정진영씨(35).배우로서는 늦깎이지만 사실 그는 ‘준비된 배우’인 셈.대학부터 연극반으로 활약했고 지난 92년 전교조 문제를 다룬 ‘닫힌 교문을 열며’에서 주연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그동안 시나리오도 쓰고 연극도 하다 ‘영화판’에 뛰어들어 감독의 심부름꾼인 연출부로 일하던중 예기치않게 ‘약속’의 조연을 맡았다. “깡패영화지만 역설적으로 ‘착하게 살자’는 단순한 메시지를 담고 있고 얘기 자체가 쉬워 관객동원에 성공한 것 같다”고 흥행성공 이유를 분석한 그는 “신인이라는 신선하고 맡은 배역의 캐릭터가 분명해 좋은 평을 얻었다”고 겸손해 했다. 그는 특히 “주인공인 공상두의 심복이지만 아마 전생에 그의 아버지였을 것이라고 마음속에 이미지를 설정하고 진심으로 좋아하도록 노력했다”고 말했다. “모든 배우가 그렇듯 나중에 보니 그다지 연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그는 “아직 영화를 잘모르지만 재능있는 동료배우와 감독을 만난 것은 큰 행운”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포부에 대해 “인물이나 키도 그다지 특출나지 않고 나이도 들어 멜로물 주연은 힘들거고 성격파 배우로 크고 싶다”면서 “배우란 무당이나 심리치료사처럼 다른 사람의 고민과 애환을 달래주어야 한다”고 나름대로 배우관을 펼쳤다. 이어 “반대평에 겸허하게 귀를 기울이고 더 나은 연기자가 되라는 채찍으로 삼겠다”면서 “맡은 역할이 무엇이든 삶의 풍요로움을 더해주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마지막 장면의 삭발 탓에 고수머리 차림인 그는 소박하게 웃는 모습이 이웃집 청년처럼 푸근했다.그는 약속의 돋보이는 연기에 힘입어 신은경과 함께 내년 3월 개봉될 ‘링’의 주연으로 선발돼 요즘 한층 바쁘게 지내고 있다. ‘링’의 주인공인 부검의에 익숙해지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부검장면을 지켜보느라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라고 말했다.부인 이성은씨(28)와 지난 10월16일 출생한 첫 아들이 있다.
  • 국립극단 ‘거북선아,돌아라’·성곡오페라단 ‘이순신’

    ◎충무공 발자취 연극·오페라로 본다/‘거북선아,돌아라’­인간적 면모·원균의 갈등도 그려/‘이순신’­서울서 첫 무대…한산대첩 추가 12월에 ‘이달의 문화인물’로 선정된 충무공 이순신.그의 순국 400주년인 올해를 마무리하면서 일대기를 그린 대규모 연극과 오페라가 서울에서 동시에 공연된다. 국립극단이 11∼16일 국립중앙극장 대극장에서 창작극 ‘거북선아,돌아라’를 선보이고 성곡오페라단은 오페라 ‘이순신’을 9∼12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 올린다.민족의 영웅 이순신을 그린 두 작품은 장르가 다르지만 영웅적 발자취는 물론이고,고통과 번민의 인간적 면모까지 고루 묘사한 대작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국립극단의 제180회 정기공연인 ‘거북선아,돌아라’는 작가 겸 문화관광부 종무실장인 이길융의 희곡을 서울예전 김효경 교수가 연출한 작품.어떤 시련이나 회유에도 굴하지 않고 오로지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백의종군하다 적탄에 맞아 삶을 접는 인간적 면모와 함께,그 반대편에 설 수 밖에 없었던 원균의 갈등,그리고 임진왜란 당시 주변국과의 역학관계 등을 다각적으로 표현한다. 이순신엔 연초 ‘굿모닝 솔로몬’으로 연출력까지 과시한 신인 연극배우 최원석이 나서고 SBS­TV 드라마 ‘홍길동’으로 낯익은 김석훈이 그의 아들 회역을 맡았다.국립극단 단원 출신인 심양홍과 주진모를 비롯해 극립극단원들과 서울예전 연극과 학생 80여명이 출연한다.국립국악관현악단 반주로 전래동요와 민요,강강술래 등 음악과 무용도 곁들였다.평일 오후 7시,토·일 오후 4시.(02)274­1151. 성곡오페라단의 ‘이순신’은 세계무대를 겨냥해 제작한 최초의 창작오페라란 점 때문에 지난 9월 현충사에서 초연할 당시 화제를 모은 작품.이 오페라단 백기현 단장과 대전지검 송민호 부장검사가 쓴 대본을 토대로 이탈리아 작곡가 니콜로 이우콜라노에게 위촉,국악 음계로 만든 오페라이다.꽹과리 북태평소 등 13가지 국악기를 반주부에 도입했으며 화관무,장군과 병사들의 복장 등 고유문화의 요소를 곳곳에 삽입해 우리 풍속을 알릴 수 있도록 했다. 서울에서는 첫 무대가 되는 이번 공연에서는그동안 지방공연에서 지적받은 사항을 수정 보완했다.전체적인 줄거리를 압축하고 2막1장에 한산대첩을 새로 넣어 극적 효과를 부각했다. 연출 이인영(서울대 음대 명예교수),바리톤 고성현 김재창 박경준(이순신), 소프라노 박정원 박미혜(방씨 부인),베이스 김요한 김인수(선조),테너 강무림 김상곤 김경(원균) 등 출연.부산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 곽승의 지휘로 부산시향,충남도립교향악단,성곡오페라국악단,대전시립합창단,공주문화대 무용단 등이 협연한다.서울공연이후 대전공연(22∼23일 엑스포아트홀)을 가지며 내년 하반기 중국 서안과 이탈리아 로마 공연을 추진중이다.오후 7시30분. (02)3487­2096.
  • 첫 판매금지 시집 林和의 ‘찬가’(변혁으로서의 문학과 역사:2)

    ◎美軍政 출판검열 규정 위반 1호/47년 2월 출판… 수록詩 ‘깃발을 내리자’ 문제삼아/“군정반대·불온한 선동” 규정 출판사에 삭제 지시/각계 잇단 항의성명에 해당詩 빼고 출판 결정 내려 질풍노도의 시대에도 시는 존재하는가. 자료에 의하면 미군정기 3년동안 발간된 시집은 90여종. 이중 문학사적으로 검증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불과 50여종이나 될까. 식민통치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구호와는 달리 미군정은 일제하의 각종 규제에 못지않게 꽤나 까탈스러운 출판검열조항들을 설정했다. 1946년 5월4일 공포된 법령 제72호는 출판물 검열의 기준이기도 했는데,제1조는 ‘군정위반에 대한 범죄는 1945년 9월7일부 태평양 미국군총사령부 포고 제2호 또는 현금까지 공포된 법령외 좌와 여히 규정함’이란 서두아래 82개 항목의 범법사항을 예시하고 있다. ‘전염화류병을 가진 부녀가 주둔군인에 대한 성관계의 유혹’같은 항목에 이르면 화류병이 없는 부녀자는 아무래도 좋다는 해석부터, 대체 그 시절에 적극적인 성적 유혹으로 윤리의식을 혼란시킨 장본인이 어느 쪽이었을까란 어리석은 의문도 생긴다. 이렇듯 까다로운 군정의 검열에서도 합법적으로 출판되었던 시집이 정부수립 이후 납월북 문인이란 이유로 금지조처가 내려진 게 30여종에 이른다. 덧부치자면 미군정 아래서 시집이 판매금지당한 것은 임화의 ‘찬가’가 그 제1호이자 마지막이었다. 문학평론가이자 시인,연극 영화인이요 운동가이며 혁명가에다 조직가,경영인이기도 했던 임화는 8.15 직후 가장 강력한 문학단체 결성에 성공한 뒤 정치적으로는 분명히 북로당이 아닌 남로당 노선을 지지했다. 유진오가 ‘인민의 계관시인’이었다면 임화는 ‘정당의 계관시인’역을 충실히 이행했다. 시집 ‘찬가’는 1947년 2월10일 백양사에서 초판이 발간되어 관례대로 공보부에 납본했었는데 그로부터 두달이 지난 3월말경 말썽이 나기 시작했다. 이유는 이 시집 51쪽에 실린 ‘깃발을 내리자’라는 시의 불온성이었다. ‘노름꾼과 강도를/잡던 손이/위대한 혁명가의/소매를 쥐려는/욕된 하늘에/무슨 깃발이/날리고 있느냐//동포여!/일제이/깃발을 내리자’ 고 화두를 잡은 임화는 이 시에서 ‘가난한 동포의/주머니를 노리는/외국 상관(商館)’과 ‘살인의 자유와/약탈의 신성이/주야로 방송되는’ 것이 당대적 현실이라며 후렴으로 ‘동포여/일제이/깃발을 내리자’ 고 세번이나 반복한다. 문제의 시가 처음 발표된 것은 ‘현대일보’ 1946년 5월20일자 제2쪽이었다. 기존 논문이나 자료들은 이 시가 마치 19일에 발표된 것처럼 쓰고 있는데,그것은 발표 당시 ‘1946.5.19’라는 시 제작 날짜를 명기한데서 연유한 듯 싶다. 그러니까 임화는 이 시를 쓰자마자 당대의 대표적 이론가의 한사람이자 문학평론가였던 박치우(朴致祐)가 발행인이고 작가 이태준이 주간으로 있던 ‘현대일보’(7월1일자로 주필 겸 편집국장에 평론가 이원조,정리위원에 평론가 김병규로 바뀜)로 갖다주었고,신문사측에서는 기사문보다 한 급수 더 큰 활자로 보기좋게 제2면 가운데에 상자로 게재했다. 이 작품은 시집 ‘찬가’에 실린 것을 그대로 인용,연구하고 있는데,원문과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원문에는 제목 ‘旗ㅅ 발을 내리자!’에서 보듯이 느낌표가 붙어 있고,‘가난한 동포의/주머니를 노리는/외국 商館의/늙은 종(奴隸)들이’로 되어있으나 시집에서는 괄호 안의 ‘노예(奴隸)’가 빠져있다. 이 시집에는 제1부에 8·15 이후의 작품 15편,2부에는 첫시집 ‘현해탄’(1938)이후 일제하에 쓴 7편이 실려있다. 5월24일 수도관구 경찰청 사찰과가 시집을 출판한 백양사 사장을 호출하여 문제의 시 삭제를 지시하자 이에 항의하는 성명서가 잇따랐다. ‘공보부에 납본된 츨판물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군정 반대나 불온한 선동이나 풍기를 교란하는 내용일 때에는 경찰은 적발하여 검찰청으로 고발할 수 있는 것이다’는 것이 기자단을 향한 장택상 경찰청장의 해명이었다. 7월18일 시인과 발행인은 경찰청으로부터 검찰로 불구속 송치되었는데,8월10일 문제의 시만 삭제하고 출판해도 좋다는 결정이 내려지는 것으로 시집 ‘찬가’필화사건은 형식적으로 끝나버렸다.
  • 드림웍스 공동설립자 카첸버그·킬머

    ◎애니메이션 ‘이집트 왕자’ 홍보차 내한/“첨단기법 활용 디즈니 왕국에 도전장” 애니메이션왕국 디즈니의 아성에 도전장을 낸 드림웍스의 ‘이집트 왕자’제작진이 최근 홍보차 방한했다.드림웍스의 공동설립자인 제프리 카첸버그는 제작 총지휘를 맡았으며,배우 발 킬머는 주인공 ‘모세’의 목소리를 연기했다. ­(카첸버그에게)드림웍스의 첫 애니메이션(‘개미’는 PDI와의 공동제작임)으로 ‘이집트 왕자’를 택한 이유는. △디즈니와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애니메이션을 하고 싶었다.공동설립자인 스필버그에게 ‘인디아나 존스’시리즈,‘터미네이터’같은 것을 만화영화로 만들면 어떻겠느냐고 했고,그가 성서의 모세 이야기를 제안했다. ­‘이집트 왕자’는 언제 개봉되나. △오는 12월18일(한국은 19일) 전세계 35개국에서 동시개봉한다.홍해가 갈라지는 장면 등 마무리 손질만 남았다. 한국을 시작으로 7주간 홍콩,대만,유럽,미국 등지에서 홍보설명회를 갖는다. 제일제당이 드림웍스의 주주(지분 13%)기 때문에 한국을 맨처음 방문했다. ­디즈니에 10년간 있으면서 ‘인어공주’등 흥행대작들을 만들어냈는데 디즈니와 드림웍스를 비교하자면. △디즈니를 존경하지만 계속 있고픈 마음은 없었다.귀여운 어린이용 만화영화가 아니라 첨단기법을 활용하고 격조를 갖춘 새로운 개념의 만화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킬머에게)목소리만으로 연기한 소감은. △일반 연기보다 인간적 리듬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연극에 가까웠다.다행히 연극을 한 것이 도움이 됐다.어린 시절 순수하고 솔직한 모세의 분위기를 살리는 목소리에 고심했다.
  • 30대 연출가 3인의 야심찬 무대

    ◎박상현 ‘사천일의 밤’·조광화 ‘미친 키스’·이성열 ‘파티’/예술의 전당 ‘우리시대 연극시리즈’/작품당 2,500만원씩 제작비 지원 시적 언어의 박상현,솔직함의 조광화,서정적인 이성열.독특한 개성으로 현실에 밀착된 어법을 사용,주목받아온 젊은 연출가 3명이 한무대에 선다. 이들은 11월4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시작되는 ‘98 우리시대의 연극시리즈’를 이끌어갈 주인공들.릴레이식 시리즈 8,9,10을 꾸민다.‘우리시대∼’는 창작극 활성화를 위해 예술의전당이 지난 93년부터 해마다 한차례씩 마련해온 기획 공연.올해엔 이 무대를 21세기 우리 연극을 이끌어갈 30대 연출가 3명의 신선함으로 채운다.예술의전당은 자유소극장과 대여계약 즉시 3개 공연에 각 2,500만원씩의 제작비를 지원,극단이나 연출가가 제작에만 전념토록해 완성를 높이도록 하고 있다. 그동안 이같은 시도의 작품들은 93년 ‘오구­죽음의 형식’(이윤택 연출)을 첫작품으로 94년작 ‘빈방 있습니까?’(최종률 연출),96년 ‘여우와 사랑을’(오태석 연출)등으로 작품성과 흥행에서 동시 성공을 얻어냈다. 이번 시리즈의 첫공연은 박상현(39)의 ‘사천일의 밤’.이성적이고 분석적이며 사회비판적인 성격이 강한 작품을 주로 다뤄온 연출가로 80년대 연극의 문학적 감수성을 어느 정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 특징.뒤늦게 서른두살의 나이인 91년 ‘해질녘’(연우무대)으로 데뷔,‘마지막 손짓’ ‘까페 공화국’‘키스’ 등 문제작을 연출했다.희곡까지 직접 쓴 이번 작품은 12·12사태때 남편을 잃은 한 여인이 실명,스캔들,그리고 의문의 죽음으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4,000일동안의 기구한 삶을 조명했다. 실화를 바탕으로한 이 작품을 통해 역사속에 감춰진 실존적 아픔을 채취해 극도의 관심과 방관이 어떤 결과를 빚어왔는지 경종을 울린다.11월22일까지 공연되며 ‘사천일의 밤’은 이영숙 유연수 김재건 이현순 박성준 등이 출연한다. 두번째 공연은 ‘남자충동’으로 96년 연극계에 돌풍을 일으킨 조광화(33)의 ‘미친 키스’.무거운 주제를 감각적인 그릇에 담아내는 재주가 탁월하다는 그가 채워지지않는 열정을 접촉으로해결하려는 현대인의 비뚤어진 정서의 한 단면을 그린다.구순기(口脣期)의 아이들처럼 입맞춤을 열망하는,접촉 중독자와 같은 등장인물을 통해 켜켜이 쌓여가는 도시인의 외로움을 코믹하고 감각적인 터치로 표현해낸다.11월27일∼12월13일.김수영 이남희 김기순 박선신 등 출연. 시리즈 마지막 작품은 이성열의 ‘파티’.한 가정이 외부의 힘에 의해 와해돼가는 과정을 코믹하고 신랄하게 그린 작품으로 현대인이 느끼는 막연한 불안감과 두려움을 세밀하게 묘사해낼 예정.첫공연을 12월31일 밤10시에 시작,99년 새해를 무대위에서 맞는다.내년 1월17일까지.출연자 아직 미정.(02)580­1234
  • ‘남촌별곡’ 27∼30일 국립국악원서

    ◎경기·서도 민요 어우러진 소리극 첫 무대/“어사지혜로 악덕부자 축출” 극화/창부타령·창작곡 20여곡 선보여/일제후 끊긴 다양한 ‘놀이굿’도 복원 맑고 청아한 소리의 경기민요와 격정적이고 호소력 강한 서도민요가 한데 어우러진 경서도 소리극 무대가 마련된다. 국립국악원이 27∼30일 오후 7시30분 국악원 예악당에서 공연하는 ‘남촌별곡’(김병준 극본,강영걸 연출). 남도소리는 그동안 전통창극 형태로 꾸준히 무대화됐지만 경기·서도창이 극화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경서도소리는 서울과 경기 지역에서 발전한 경기소리와 평안도·황해도 지방의 서도소리를 포괄해 일컫는 말. 경서도소리는 남도소리와는 색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경기소리 혹은 경기민요는 남도민요에 비해 한 글자에 여러 개의 음이 붙는 일자다음(一字多音)의 선율이 많다.그런 만큼 가락의 굴곡이 유연하면서도 다채롭고 명쾌하다. 한편 서도민요는 전체적으로 거의 두 옥타브에 가까운 넓은 음역으로 노래하는 것이 특징. 평안도지방의 민요가 애끓는 듯한 처절한 소리를 내는 반면 황해도 지방의 민요는 비교적 밝고 서정적이며 흥겨운 점이 돋보인다. 서도소리는 ‘수심가’나 ‘배따라기’ 등에서 볼 수 있듯이 불규칙장단에 의해 불려지는 것들이 많다. 이번 공연에서는 ‘창부타령’같은 전통 경기민요와 ‘누구를 의지하랴 누구를 믿으랴’‘가시는 임에게’ 등의 창작민요를 포함,모두 20여곡이 선보인다. ‘남촌별곡’의 무대는 조선후기 경기 남촌의 한 마을. 조실부모한 양반집 규수 소연과 마을사람들이 악덕부자 오동출의 횡포에 시달리다 감찰어사의 지혜로 마을의 평화를 되찾아 간다는 내용이다. 특히 천민이던 오동출의 출신이 발각되는 장면에선 경기소리와 함께 일제시대 이후 거의 자취를 감춘 다양한 놀이굿 양식들이 현대적으로 복원돼 눈길을 끈다. 경기창의 전통에는 원래 놀이형식이 있었다. 구한말 경기·서도소리의 명창 박춘재는 궁내부 가무별감이란 직책을 맡아 경기창과 함께 다양한 놀이굿 양식을 발전시켰다. 그러나 이 놀이형식이 일제 강점기이후 사라지면서 경기창에는 단순히 노래만 있는 것으로 인식돼 왔다. 이번 무대는 그동안 단절된 경기창의 놀이굿 전통을 창조적으로 계승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를 더한다. 작곡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김영재 교수가,작창은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보유자인 이춘희씨가 맡았다. 이춘희,유지숙,김광숙,이금미씨 등 국악인과 탤런트 김주승,연극배우 이원종씨 등 90여명이 출연한다. (02)580­3036
  • 작곡가 金正吉(이세기의 인물탐구:182)

    ◎국악·양악 환상조율 ‘오선지의 마술사’/대표작 ‘8주자를 위한 추조문’/추사 김정희 수묵화 보는듯/실용·기능 음악에도 정열/연극·무용 분야 등서 독보적 존재 金正吉의 마음은 열려있다. 그래선지 그의 작품세계는 크고 넓고 깊다. 모든 것을 이해하면서도 모든 것을 수용한다. 그러나 예술적 고집은 ‘숨이 막힐 정도로’ 철통같다. 음악평론가 이강숙씨는 ‘그 철통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가장 소중한것을 가슴속 깊이 숨겨두고 있다’고 말한다. 독일 하노버음대에서 尹伊桑 문하에서 함께 공부한 작곡가 강석희는 ‘그는 언제나 남들을 제껴두고 앞장서 달려간다’고 감탄하기도 한다. ‘나이 60을 넘겨서도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혼자 강의를 도맡아 건재를 과시하는가 하면 연극 영화 무용 행사음악등 손대지 않는 분야가 없으니 그 에너지의 자원이 어디에 도사리고 있는지 신기하기만 하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의 음악은 항상 새로운 모습으로 탐스러운 꽃을 피우고 튼실한 열매를 맺는다. 그는 국악기의 속성을 빈틈없이 꿰뚫어보고 국악의 선율과 음색을 제대로 살려내는 현대작곡가로 유명하다. 그중에서도 ‘8주자를 위한 추초문(秋草文)’은 대비(對比) 변화(變化) 기복(起伏) 조화(調和)를 고루 갖추면서 그의 손에 걸려든 음재료들은 횡적이든간에 종적이든간에 한 악구마다에서 찬란한 빛을 발하고야 만다. 중앙대 국악과 정인평교수에 의하면 ‘유장하게 흐르는 선의 멋은 추사 김정희의 수묵화에서 볼수 있는 고전적 아름다움과도 일맥 상통한다’고 평하고 있다. 묵화속에 농담(濃淡)이 깃들여있듯이 선율은 점차 굵어지거나 가늘어지기도 하고 갑자기 방향을 틀어 파격적 볼륨으로 전환되기도 한다. 또 서로 다른 국악기,같은 종류의 양악기를 능란하게 조합하여 국악의 조적 소재와 서양의 우연성,미니멀리즘과 아치 구조를 절묘하게 구사해 낸다. 대표작 ‘추초문’의 경우는 고요하고 장중한 가운데 한악기가 명상적인 분위기를 반복연주하거나 궁중음악의 정관적(靜觀的)인 성격으로 현대적 아악풍(雅樂風)을 성취해낸 것이 일품이다. 김정길 자신도 ‘나의 창작 작업중 가장 의미있는 작품’으로 ‘추초문’을 손꼽고 있고 이곡은 국내외적으로 수없이 연주되어 지난 85년 독일의 호리존테 음악제에서는 7차례의 커튼콜을 받기도 했다. 그외에도 호가 윤명노의 그림을 보고 쓴 하프곡 ‘얼레짓’은 옥쟁반에 구슬이 떨어지는 소리로 작가 자신의 내적 심정을 감아내거나 풀어내고 일랑 이종상의 그림에서 힌트를 얻은 ‘원형상(源形象)’시리즈와 춘추전국시대 월(越)의 미녀 서시(西施)가 하루종일 비단을 찢었다는 고사에서 착상한 ‘두개의 오보에와 오브리캇’도 명편으로 호평된다. 비단 찢는 소리,금속성의 긴 여운,지속적인 콩뿌리기로 불확정적인 리듬을 추출하여 소리로부터 해방될 수 없는 현대인의 소외를 그리고 있다. 그가 음악을 시작한 것은 영등포 양평동에서 태어나 부친 金壽一씨가 관여하고 있던 양평동교회에 다니면서부터다. 정식으로 음악교육을 받진 않았으나 교회에서 오르간을 치는 시간이 잦아지면서 초등학교 4학년쯤에는 찬송가를 4부로 칠수있게 되었고 양정중 시절엔 밴드부,이후 해군군악대에 입대했다가 미8군에서 재즈밴드 피아니스트로 일하면서 7년이나 뒤늦게 서울대 작곡과에 입학했다. 나보다 앞장선 친구들을 따라간다는 집념에서 대학졸업때 쓴 ‘바이올린 클라리넷 피아노를 위한 3중주’는 조선일보 신인음악회에 선정되어 남들보다 먼저 작곡가로 데뷔했다. 69년 당시 동백림사건으로 한국에 와있던 윤이상씨가 그의 재능을 눈여겨 보고 강석희 백병동과 함께 독일유학을 권유했으나 분주해진 국내 음악활동에 쫓겨 한학기나 지나서야 독일로 갔고 그때부터 주로 12음열을 만드는 기초적인 학습에 파고들었다. 나만이 할수있는 음악은 무엇인가. 그 무렵의 한국작곡가들의 작품에 ‘한국적인 티’만 있을뿐 ‘진정한 자신의 메시지’가 담겨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자 국악의 현대화를 앞세워 ‘위상공간’‘비(秘)’‘초립동’ 같은 한국적 곡들을 탄생시킬수 있었다. 그는 여기에 머물지 않고 ‘프로페셔널은 자기취향에 맞는 음악만을 고집해선 안된다’는 자세로 실용음악’ 기능음악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 첫 작품은 지난 74년 극단 산울림의 연극 ‘가위 바위 보’를 위해 쓴 ‘타악기를 위한 변주곡’. 창작음악이 연극무대에 사용된것은 그때가 처음인 셈이다. 한국 전통음악에서 유추한 음악언어로 황종·중려·임종의 3음음계,평조 및 계면조의 5음음계와 민요선율을 직접 인용하기도 하고 무속음악인 시나위의 불확정성과 즉흥성을 계산하여 ‘뛰어난 음악은 그 곡절이 반드시 평이하다(大樂必易)’는 유교적인 음악관을 그의 사상에 연결시키고 있다. 하나의 음정을 작품 전체의 모티브로 삼으면서 무절제하게 많은 음을 다루기 보다 박절적(拍節的)으로 분할되는 리듬이 두드러진 것도 그만의 특징이라 할수있다. 작품의 구조에 있어서도 폴리포니(多聲部)와 호모포니(單聲律)의 대비구조,단일악기로 구성된 이중구조,프래그멘트(파편)들의 반복과 배열을 중심으로 간결명료한 구조를 짜고있다.예술에서는 완벽주의자지만 생활력은 약한편으로 부인 朴昌淑 여사가 자매의 교육과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작품 구상을 위해 긴 명상에 잠기고 머리속에 그려지는 곡의 짜임새와 곡에 대한 입체도가 완벽하게 그려져야만 그는 비로소 오선보에다 작품을 폭포수처럼 써내려간다. 조각가 로댕이 ‘진정한 의미의 천재란 한방울 한방울 바위에 파고드는 물처럼 조용하면서도 끈질긴 집념’이라고 한것처럼 예술은 결국 자신과의 싸움이며 그는 백지 한장의 간극을 뛰어넘은 바로 ‘천재적 작곡가’에 틀림없다. 이제 작곡 인생 40년을 앞두고 자연의 심장까지도 음악으로 빚어내는 접신의 경지에서 그는 지금도 조요(照耀)로운 명작을 잉태하기 위해 지치지않는 정열을 활화산처럼 불태우고 있다. □그의 길 ▲1934년 서울 출생 ▲1962년 서울대 음대 작곡과 졸업,조선일보 신인음악회 ‘바이올린과 클라리넷, 피아노를 위한 3중주’ 선정 데뷔 ▲1972년 하노버음대 졸업,윤이상 사사 ▲1973년 ISCM(국제작곡가연맹)페스티벌 ‘세개의 플루트와 타악기를 위한 곡’ 입선 ▲1974년 극단 산울림 연극 ‘가위 바위 보’작곡외 연극음악 다수 1979년 ‘추초문(秋草文)’초연 ▲1980년 문교부장관 교육공로 표창 ▲1981년 임권택 감독 ‘만다라’ 작곡외 영화음악 다수 ▲1983∼ 현재 서울대 음대교수 ▲1986년 아시아경기대회 행사음악 및 문화축전 발레음악 작곡 ▲1987년 서울올림픽 음악감독, 88올림픽 개폐회식 팡파르 ▲1988년 예술의 전당 개관기념 ‘축전서곡’(KBS교향악단)연주, ‘올해의 음악가’ 선정 ▲1990∼92년 창악회 회장 ▲1994년 김정길 작품 발표회,미래악회 초대 ‘작곡가의 초상’연주 1996년 서울대 개교 50주년기념 ‘축전 서곡’작곡등 120여곡 한국음악협회 및 한국작곡가협회 부이사장,아시아작곡연맹 및 창악회,한국청년음악연맹 이사 한국연극영화예술상(74년) 대한민국작곡상(79년) 서울극평가그룹상·동아연극음악상(84년) 대종상음악상(86·92년) 서울시문화상(88년) 대한민국문화예술상(9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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