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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일성대학 출신의 엘리트계층/망명 2인은 누구인가

    ◎정갑렬씨­음향연구소 소장… 권력다툼서 밀려나/장해성씨­중앙방송 드라마작가… 혁명 유가족 북한의 인텔리계층인 과학자 1명과 방송작가 1명의 망명요청사건은 북한의 체제위기를 수위를 가늠하는 지표로 볼 수 있다. 아직 이들에 대한 신병인도절차 및 조사작업이 완결되지 않아 30일 현재까지 이들의 정확한 망명동기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다만 관계당국을 통해 이들의 신원 일부가 드러나고 있을 뿐이다. 망명을 신청,현재 홍콩 당국의 신병보호를 받고 있는 이들은 북한의 메아리사 음향연구소 소장 정갑렬씨(44)와 북한 중앙방송 산하 문예총국 라디오드라마 방송작가 장해성씨(52)다.두명 모두 김일성종합대학 출신의 인텔리다. 정씨가 맡고 있다는 음향연구소는 통일원이 확보하고 있는 북한국가과학원의 공식 기구표에는 나와 있지 않다.조총련 2세인 김일룡이 운영하는 「메아리음향사」 소속으로 돼 있다.따라서 그가 과학원내에서 그리 비중있는 역할을 맡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고교 때 고체물리 전문가로 3급연구사가 된 이후 북한내에서 촉망받는 인물이었다.81년부터 86년까지 국가과학원연구사로 일하는등 탄탄대로를 달리던 그는 이후 북한학계내의 헤게모니싸움에 휘말려 이후 1년간 무직상태로 지내는 등 좌절을 겪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당시 정씨는 준박사 단계를 마치고 박사신청을 했으나 같은 과학도였던 전처(김경애)의 언니의 모함에 휘말렸다.결국 박사학위도 좌절되고 격렬한 부부싸움 끝에 아내와 이혼했다.87년부터 89년까지는 평양대극장 음향기술실험실 연구원을 지내기도 했다. 작가인 장씨의 망명은 북한당국자들에게 더 큰 충격을 던졌을 것으로 보인다.중앙방송에서 라디오드라마를 집필하면서 북한체제 선전의 전위대로 활약해왔을 것이라는 점에서 그렇다.또 북한 중앙통신 부사장이었던 이수근이 위장귀순한 이후 당성이 강한 인물군으로 채워진 북한방송 종사자로선 첫 귀순이다. 장씨는 6·25때 전사한 아버지를 둔 이른바 혁명유가족으로 76년 3대 혁명소조원으로 일하다 79년 중앙방송 기자로 발탁된 것으로 알려졌다.이후 글을 잘 쓴다는 평가를 받아 탈출전까지 2급 작가의 직책으로 라디오 드라마용 원고를 집필해 왔다.〈구본영 기자〉
  • 비자금 싸고 「불꽃공방」 펼듯/전씨 공판 검찰·변호인단 면면

    ◎정통 수사통… 노씨사건으로 노하우 축적­검찰/법조·재야서 두루 경험 쌓은 중량급 포진­변호인 26일 열리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에서는 검찰과 변호인단의 「격돌」도 주목거리다. 검찰측은 정통 수사통으로,변호인단은 재조·재야에서 두루 경험을 쌓은 중량급으로 진용이 짜여졌다.상대적으로 젊은 검사들의 「패기」와 변호사들의 「노련함」의 한판 승부로 표현된다. 검찰쪽에서는 서울지검 특수3부가 공소유지를 맡았다.김성호 부장검사를 비롯,최찬영·홍만표·임상길 검사 등 4명이다.임검사를 뺀 3명은 지난번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사건때 대검에 파견돼 수사를 맡기도 했다.충분히 「노 하우」를 쌓았다는 평가다. 김부장검사는 이철희·장영자 사건,명성그룹 어음부도사건에 이어 문민정부 초기 대검중수부에서 사정을 주도,이름을 날렸다.한번 잡은 「먹이」는 끝까지 놓치지 않아 「악바리」란 별명이 붙었다. 최검사도 마찬가지.지난해 서울시 구청 세무비리사건 때 중하위직 공무원들을 수십명 옭아넣었다.공무원 사이에서는「악명」이 익히 알려진 상태다. 홍검사는 의정부지청 검사로 있으면서 인지사건의 실적을 가장 많이 올려 특수부로 발탁됐다.노씨 비자금사건때 능력을 인정받았다. 변호인단 10명의 면면도 화려하다. 5공 말기에 청와대 사정수석을 지낸 이양우 변호사를 비롯,부산지법원장·대법관 출신의 전상석 변호사,대검 특수3과장을 역임한 석진강변호사 등 5명이 전씨의 법정 대리인으로 나온다.김유후·한영석 변호사 등 두 명을 선임한 노씨보다 3명이 많다.그만큼 「총력전」을 예고한다.이 가운데 이변호사는 5공청산 때부터 8년여동안 전씨 곁을 지켜온 핵심측근.12·12 및 5·18사건 재판에서도 「주역」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나머지 피고인 5명의 변호인들도 재조시절 쟁쟁했던 인사들이다.안무혁 전 안기부장의 변호인은 서울고법원장을 지낸 윤승영 변호사와 서울고법 부장판사 출신의 이보환 변호사.이들은 노씨 재판때 동아그룹 최원석 회장과 삼성 이건희 회장의 변론을 각각 맡아 치밀한 변론을 펼쳤다. 「검찰의 꽃」이라는 서울지검장과 대전고검장 출신의 전재기 변호사와 서울지법 형사수석부장을 지낸 정상학 변호사는 각각 사공일 전 재무부장관과 안현태 전 경호실장의 변호인으로 나온다. ◎법정·공판절차/재판장이 호명후 피고인 차례로 입정/모두 진술이어 검찰 1백60개항 신문 26일 상오 10시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 법정 경위가 『일어서십시오』라고 외친다.1백90석을 가득 메운 방청객들이 일제히 일어서고 재판장인 김영일 부장판사와 주심 김용섭판사,좌배석 황상현판사가 입정한다. 김재판장이 「96고합12 피고인 전두환」을 호명하자 검사석 옆 피고인 출입구를 통해 엷은 하늘색 수의를 입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경위의 부축을 받으며 들어와 피고인석 왼쪽 끝에 선다. 안현태 전 청와대경호실장 등 5명의 피고인도 재판장의 호명에 따라 차례로 입정한다. 이때 사진기자들은 40초 동안 쉴새없이 플래시를 터뜨린다. 전씨의 비자금 사건에 대한 첫 공판이 시작된 것이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이름과 생년월일,주소 등을 일일이 묻는 인정신문을 한다.피고인의 신원을 확인하는절차다. 이어 피고인들의 모두진술.피고인들이 혐의사실에 대해 의견을 밝히는 기회다.모두진술이 끝나면 검찰의 직접신문.전 전대통령이 재임 중 받은 돈이 뇌물임을 입증하려고 준비한 1백60개 신문사항이 열거된다.전 피고인은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뇌물이 아닌 성금이었다』고 주장한다. 검찰이 직접신문을 마치자 재판부는 변호인 반대신문을 2차 공판으로 연기해달라는 변호인측의 요구를 받아들여 재판을 끝낸다.
  • 북 「베트남식 대미수교」 꿈꾸나/북한군 고위관계자 첫 방미

    ◎“미군 유해 송환” 매개 지원 더 얻기 속셈/군 이상징후 내막알수 있는 기회 될지도 북한과 미국이 내년 1월9일부터 13일까지 미국 하와이에서 유해송환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군 관계자간 접촉을 가질 계획이어서 시선을 모은다.북한군 관계자들이 미국을 공식방문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물론 이같은 북·미 접촉은 대북 경수로지원 협상이 완료됨에 따라 조만간 북·미간 연락사무소 개설 및 외교관계 수립문제가 논의될 전망이어서 대단한 정치적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다.그러나 북한의 군사적 동향이 심상치 않은 상황에서 어떤 성격이든 북·미 군인사간 접촉이 이뤄진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으는 것이다. ○군관계자 접촉 관심 이번 회담은 6·25때 실종된 미군 유해송환과 관련한 신원확인 기술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것이다.지난 87년 북경에서 실무급 외교관 접촉으로 시작된 양국간 유해송환 협상은 89년 뉴욕회담으로 이어졌으나 정부차원보다는 북한 유엔대표부와 미국내 한국전참전용사회간 협상이라는 제한적 성격을 벗어나지 못했었다.특히 미국무부가 『유해송환협상은 정전협정에 따라 판문점 군사정전위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기본입장을 밝힌 이후 협상은 정전위를 통한 대화로 계속돼 왔다.이번 하와이 접촉도 이같은 맥락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하와이에는 미국의 유해감식전문기관인 미 육군중앙신원확인연구소(USA CIL)가 있다.때문에 이번 접촉에서는 유해의 진위를 확인하는 전문적 감식기술이 주로 논의될 전망이다.북한은 지난 90년이래 유해송환을 미국에 대한 미소작전용 또는 외화획득용으로 이용해왔다.휴전 직후인 54년 1천8백69구의 유해를 송환한 뒤 지난 90년부터 보내온 20여구의 유골에는 동양인,심지어는 동물의 뼈까지 섞여있어 미국측을 당혹케 했었다.미측은 이번 기회에 유해의 진위 논란을 종식시키고 아울러 북·미 공동의 유해발굴 작업을 본격화하려는 생각인 것으로 추측된다. ○공동발굴 추진할듯 그러나 식량난과 내부 동요등 어려움에 처한 북한 지도부는 어떤 성격이든 미 정부와의 접촉을 미측 지원을 얻어내고 나아가 북·미 수교를 앞당기는 기회로 활용할 속셈인 것으로 보인다. 회담에 참석할 북측 대표단의 수석대표가 장관급인 군축평화연구소장 김병흥이란 점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31차례의 유해송환 협상 끝에 미국이 베트남과 수교한 사실이 북한에 어떤 기대를 갖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편 우리 군 당국은 북측 대표단을 통해 북한 내부의 상황을 보다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북이 이상 군사동향을 보이고 있는 시점에 이뤄지는 북·미 군사접촉이라는 점에서 이래저래 주변국의 시선이 집중될 전망이다.
  • “유개공은 국영기업 아닌줄 알았다”/노씨 재판­법정 「문제진술」

    ◎CD인지 수표인지 모르고 액수만 신경/퇴임뒤 국가위해 큰일하려 2천억 남겨 노태우 피고인은 18일 첫 공판에서 간혹 억지논리를 내세워 방청객들의 실소와 빈축을 사기도 했다.노피고인의 「문제진술」을 간추려 본다. ▲(90년 11월 청와대 관저 준공기념회식에서 LG그룹 구자경회장의 『과거정권은 모두 군사독재 정권』이라는 취중발언에 진노하지 않았느냐는 검찰측 신문에)『그런 정도를 극복하지 못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될 수 있겠느냐』고 반문. ▲(노피고인은 민간기업을 제외한 국영기업체나 금융기관장 등으로부터 돈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부인한 뒤 석유개발공사 유각종사장이 58억여원의 거액을 만들어 헌납한 사실에 대해서는)『당시에는 국영기업체가 아닌 것으로 착각했기 때문에 돈을 받은 것』이라고 「상식밖」의 답변. ▲(대통령 재임기간에 정경유착의 병폐를 없애기 위해 청와대 특명사정반을 운용하면서도 기업체로부터 거액의 금품을 받은데 대한 심경을 묻자)『현재의 잣대로서는 잘못됐지만 당시로서는 잘못됐다고 생각지 않는다』고주장. ▲(돈을 낸 기업체가 이를 만회하기 위해 변칙회계처리를 일삼아 결국 그 부담이 부실공사와 대형사고 등으로 이어져 국민이 피해를 입지 않았느냐는 추궁에)『기업주 개인에게만 부담이 갈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답변.(두세차례 검찰의 추궁이 이어지자)『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고 언급을 회피. ▲(금호 박성용회장으로부터 70억원을 양도성예금증서로 받은 것은 은밀한 부탁을 들어주기 위한 것이 아니었냐는 물음에)『양도성예금증서인지 수표인지는 모르고 그저 액수에만 신경을 썼을 뿐』이라고 답변. ▲(한보 정태수회장으로부터 1백억원을 받은 것은 수서사건과 관련해 뇌물을 받은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아니다.정회장이 철강사업이 무지무지 잘된다고 하면서 1백억원을 내놓겠다고 했다』고 부인. ▲(대호건설 이진 회장을 통해 대립으로부터 70억원을 받았고 이과정에 동생(재우씨)이관여한 것이 사실이라고 인정한 뒤 이씨와 어떤 사이냐는 질문에) 『동생과는 친한 사이이나 나와는 그렇지 않다』며 수뢰 원인을 동생에게 미룸. ▲이밖에 『경영사정이 좋은 기업들을 선별해서 성금을 받았다』『퇴임후에도 2천억원의 거액을 남긴 이유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 큰 일을 하기 위해서였다』라고 진술. ◎노씨 첫 공판 각계 반응/비자금사건 진상 낱낱이 밝혀야/“부정행위 누구든 처벌” 교훈으로 노태우씨에 대한 첫 공판이 열린 18일 각계 각층의 인사와 시민들은 한결같이 공정하고 엄격한 재판으로 이번 비자금 및 뇌물수수사건의 진상이 낱낱이 밝혀지기를 촉구했다. ▲이세중(변호사·부정부패추방시민연합 공동대표)씨=그동안 권력층은 부정을 저질러도 그냥 넘어가곤 했다.그러나 이제는 대통령의 부정부패 척결 의지와 국민적 합의로 부정을 저지르면 누구를 막론하고 용납되지 않는다는 좋은 선례를 남기게 됐다. ▲이창복(전국연합 상임의장)씨=국민을 대표했던 전직 대통령이 재임 기간의 독직과 비리 혐의로 법의 심판을 받는다는 사실은 대단히 부끄러운 일이다.노씨는 대통령의 선처를 바라며 입을 다물기보다는 국민에게 마지막으로 자신의 소임을 다한다는 입장에서 92년대선자금의 전모를 공개해야 할 것이다. ▲유재현(경실련사무총장)씨=오늘은 우리나라가 법치사회로 들어가는 이정표가 되는 날이며 노씨의 첫 공판은 이제 전직 대통령을 비롯해 누구든지 법앞에서는 성역이 없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상징적인 사건이다.앞으로 더 이상 법이 무시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며 전직 대통령이 법정에 서는 불행한 사태 역시 다시는 생기지 말았으면 한다. ▲이연숙(한국여성단체협의회 회장)씨=노씨의 법정공판을 보면서 누구든지 죄를 지으면 죄인으로 벌을 받게 된다는 민주사회의 평범한 진리를 새삼 깨닫게 됐다.이제 국민들은 전직대통령이라는 신분에 감성적으로 동정할 것이 아니라 냉정하게 재판을 지켜봐야 할 때이다. ▲안재환(39·도산아카데미연구원 국장)씨=전직대통령이 법정에 섰다는 것은 국민들 모두의 수치다.그러나 법의 심판대에 오른만큼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독립적인 판단을 기대하며 또한 이를 계기로 정치지도자들이 국가발전을 위해 열심히 일해 주었으면 한다. ▲김상민(35·회사원·서울 서초구양재1동)씨=한마디로 착잡하다.그렇게 「보통사람」으로 자처했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수의를 입고 법정에 섰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국민을 우롱한 대가를 치른다는 점에서 동정의 여지가 없다.이를 계기로 기존 정치인들도 결코 성역이 될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하고 깨끗한 정치를 펼쳐야 할 것으로 본다. ◎법정용어 풀이/인정신문­재판부가 피고인 신원 확인/모두진술­검찰·피고인 상호입장 피력/재주신문­검찰의 공소사실 확인 절차 18일 노태우 전대통령의 1차공판에선 생소한 법정용어들이 눈에 띈다.다음은 이같은 용어들에 대한 설명이다. ▲인정신문=재판부가 피고인의 신원을 확인하는 절차다.판사는 피고인이 검찰에 의해 기소된 당사자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이름,주민등록번호,본적,주소 등을 묻는 것이다. ▲모두진술=검찰과 피고인이 본격적인 신문진행에 앞서 재판에 임하는 입장 등을 알리는 것으로 검찰은 통상 공소장요지 낭독으로 대신한다.반면 피고인은 자기 입장이나 신념을 밝힌다.노씨는 이날 재판부가 『다음기회에 하라』는 권유에 따라 진술을 하지 않았다. ▲재주신문=모두진술이 끝난뒤 검찰에 의해 진행되는 절차다.흔히 주신문이나 직접신문이라고 불린다.검찰은 이때 피고인의 공소사실을 문답을 통해 확인한다. ▲반대신문=검찰의 재주신문에 이어 시작되는 변호인측의 신문이다.변호인은 피고인과의 문답을 통해 피고인에게 유리한 내용의 진술을 하도록 유도한다.노씨의 경우 2백50여개에 이르는 검찰의 재주신문사항에 많은 시간이 걸려 반대신문은 진행되지 않았다. ▲구치감=구치소에서 재판을 받기 위해 법원에 호송된 피고인이 재판전 대기하거나 재판뒤 구치소로 돌아가기전 머무는 장소이다.노씨는 이날 상오 9시25분쯤부터 10시 재판이 열리기전까지 구치감에 있었다.
  • 노태우씨 비리 수사­금진호씨 뭘 밝혔나

    ◎“비자금 599억 한보에 중개” 시인/1백2억 김우중 회장에 실명화 부탁/리베이트 수수·비자금 조성등엔 함구 노씨 비자금을 재벌에 실명전환토록 중간다리역할을 한 민자당의 금진호 의원(63·경북 영주·영천)이 7일 검찰에 출두함에 따라 금의원을 상대로 한 검찰수사내용과 사법처리여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금의원은 그동안 소문으로만 나돌던 재벌들을 상대로 한 노씨측의 「사채놀이 알선자」였음이 사실로 드러나 사법처리될 경우 이는 노씨 사법처리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검찰은 이날 금의원을 상대로 △노씨 비자금을 실명으로 전환하게 된 경위 △비자금조성에 관여한 정도를 집중추궁했다. 금의원은 노씨 비자금 5백99억원을 한보그룹을 상대로 실명전환하는데 중개역할을 한 부분은 대체적으로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93년9월 한보그룹 정태수 총회장을 찾아가 『이름을 빌려주면 5백99억원을 5년거치 연리 8.5%로 쓸 수 있다.상환은 5년뒤부터 원금과 이자를 포함,매달 1백억원씩 한보그룹이 발행하는 어음으로 하자』는 제안을 했다는것이다. 당시 한보그룹은 아산만 철강단지 부지매립공사에 의욕적으로 매달리고 있었으나 자금난에 허덕이고 있었다. 금의원은 또 금융실명제 실시직후인 지난 93년 노씨의 비자금 3백억원이 입금돼있던 중앙투자금융의 가명계좌를 대우그룹 김우중회장을 찾아가 실명화를 부탁했다는 혐의에 대해서도 수긍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금의원이 이 과정에서 재벌들로부터 별도의 리베이트를 챙겼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추궁했다. 금의원은 그러나 리베이트수수와 비자금조성혐의에 대해서는 묵묵부답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검찰은 금의원을 노씨에게 돈을 준 기업인들과 함께 소환한 사실에서보듯 금의원이 비자금 실명전환뿐만 아니라 조성에도 깊이 개입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재계에는 금의원이 이원조전의원과 함께 6공 비자금조성의 주역이라는 소문이 파다한 실정이다. 이때문에 검찰의 금의원에 대한 사법처리여부가 관심사다. 검찰은 우선 업무방해혐의적용은 검토대상에서 제외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금 의원의 실명전환알선행위가 금융기관의 업무를 방해한 것으로 위법사항이나 「금융실명거래에 관한 긴급제정명령」에 변칙실명전환을 처벌할 법규가 없기 때문이다. 검찰이 스위스 은행의 비밀계좌에 노씨 비자금이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작성한 친·인척 21명의 명단에 금의원을 포함시킨 것은 앞으로 금의원에 대한 검찰의 사법처리방향을 암시하는 중요한 단서다. ◎스위스계좌 수사/친인척 21명 누구 누군가/사건 단초 제공한 소영씨 부부 우선 추적대상/아들 재헌씨 부부와 사업가 동생 재우씨 주목/노씨 사촌동생 성우씨 사기 전과로 구설수에 검찰이 지난 6일 노태우 전 대통령의 스위스 은행 비밀계좌보유설과 관련,노씨의 친·인척명단 21명을 외무부에 통보하고 비밀계좌여부를 스위스정부에 확인해줄 것을 요청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우선 이들 21명은 「수사대상」에 올라있는 셈이다.검찰은 친·인척이라고만 밝힐뿐 명단을 공개하지 않아 21명의 신원은 다 알 수 없다.그러나 여려가지 정황으로 대략 짚어볼 수 는 있다. 우선 이 사건의 「단초」를 제공한 노소영­최태원 부부를 꼽을 수 있다.최씨는 최종현 선경그룹 회장의 아들이다.따라서 노전대통령과 최회장은 사돈관계가 성립된다. 최회장은 「재계대통령」이라는 전경련회장을 맡고 있다.양사돈이 성격이 다른 「대통령」을 지낸 셈이다. 다음으로는 노전대통의 아들인 재헌­신정화씨 부부를 들 수 있다.신씨는 신명수 동방유량회장의 딸이다.노씨는 신회장과도 사돈을 맺어 재계와의 연결고리를 완성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물론 노전대통령과 김옥숙씨도 포함되어 있을게 틀림없다. 사업가로 알려진 동생 재우씨도 주목받고 있는 인물중의 하나다.87년 대선당시 태림회회장을 맡아 대선자금을 모금하는 과정에서 이권개입소문이 파다했었다.최근에는 장남인 호준씨가 대주주로 있는 법인명의로 시가 1백억원대의 동호빌딩을 93년 매입한 사실이 드러나 의혹을 받고 있다. 이밖에 노씨의 사촌동생 성우씨도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올해 초 주택건설업체 한성개발(주)을 설립한뒤 첫사업으로 경북 포항시에 대규모 아파트단지를 만들고 있으나 사업자금출처와 관련,구설수에 올라있다.그는 93년 구속된 사람을 풀어주겠다면서 거액을 챙겨 변호사법위반혐의로 구속된 전력도 있다. 현재까지 노씨의 처가쪽에서는 거론되는 사람이 별로 없다.다만 동서인 금진호 의원이 7일 검찰에 소환돼 눈길을 모으고 있다. 금의원은 노씨의 부인인 김옥숙씨의 동생인 정숙씨의 남편으로 노씨와는 동서지간이다. 김옥숙씨의 오빠인 김복동 자민련 수석부총재와 김씨의 고종사촌동생인 박철언 자민련 부총재는 노씨의 비자금사건이 터지자 『잘못했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고 단호한 입장을 취하거나 『비자금에 한번도 관여한 바 없다』고 주장하는등 비자금연루설을 일체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 「삼풍」 피고인 25명 첫 공판 이모저모

    ◎이회장 “붕괴진실 가려달라” 아리송한 주문/금속탐지기 동원,방청객 소지품 등 점검 사상 최악의 사상자를 낸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로 구속기소된 이준(73)회장 등 관련 피고인 25명에 대한 1심 첫공판이 30일 하오2시 서울지법 대법정에서 열려 8시간30분동안의 뜨거운 법정공방끝에 하오 10시30분쯤 검찰측 직접신문만 끝낸뒤 폐정됐다. ○…이날 공판이 열린 417호 대법정은 조계사 폭력사건,성수대교 붕괴사건등 사회적으로 이목이 집중된 대형사건들만 열렸던 곳으로 유가족,보도진 등 3백여명의 방청객들로 꽉 메워졌으며 8시간이 넘는 마라톤공판에도 불구하고 한사람도 도중에 자리를 뜨지 않은 진지한 분위기속에서 진행. 흰색 상의를 입고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법정에 들어선 이회장은 모두진술을 통해 『수많은 사망자와 부상자를 낸 이 사고의 모든 책임은 전적으로 나에게 있으며 모든 죄를 달게 받겠다』고 입을 뗀뒤 『건물이 무너지게 된 원인을 법정에서 정확히 밝혀 피해자 가족들에 대한 배상등 제가 져야 할 모든 책임을 지게 해 달라』고울먹이는 목소리로 10여분동안 진술. 그는 또 『철근과 콘크리트로 지어진 건물이 마치 책을 쌓듯 차곡차곡 무너져 내린 붕괴현상은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일』이라면서 『붕괴원인에 대한 각양각색의 보도가 있었으나 부디 재판장님은 삼풍백화점의 「붕괴의 진실」을 꼭 가려내 달라』고 참사에 대한 「반성」과 붕괴원인에 대한 「의문」을 동시에 표출했다. ○…재판장인 이광렬 부장판사는 검찰신문에 앞서 이례적으로 『피해자 가족들의 아픔은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겠으나 지금은 법률적인 책임을 규명하는 단계』라고 밝히고 『피고인의 진술의 자유가 최대한 보장되어야만 공정한 재판이 이뤄지기 때문에 비록 유가족들의 정서에 어긋나는 진술이 나오더라도 질서를 지켜달라』고 주문했다. 이부장판사는 또 조남호 서초구청장에 대한 폭행사건을 의식한 듯 『피고인의 권익보호를 맡은 변호인들도 「공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변호인들에게 행패를 부리는 불상사가 빚어져서는 절대 안된다』고 거듭 요청했다. 한편 법원측은 통상 강력사건 공판때만 동원하는 청원경찰 10여명을 법정주위에 배치,검색대에서 금속탐지기로 일일이 방청객들의 몸수색을 하고 가방을 열어 소지품을 검사하는등 각별한 신경을 썼다. ◎「실종처리 43명」 사망인정 그후/「사체없는 사망자」 50명 넘을듯/국과수 감식 21구도 거의가 사체 일부분/「사망자로 확인된 피해자」와 중복 가능성 삼풍백화점 붕괴참사와 관련,서울시가 그동안 실종처리한 43명을 「사체 없는 사망자」로 인정키로 해 유가족과 당국 사이의 실종자시비는 일단락됐다.그러나 이 43명과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21구의 사체등 사망자 64명 가운데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정밀감식을 거치더라도 50여명은 「사체 없는 사망자」로 남을 전망이다. 서울시가 29일 제2차 실종자심사위원회에서 잠정적으로 사망을 인정한 64명 가운데 고객등 일반인은 15명쯤에 불과하고 나머지 49명안팎은 삼풍백화점이나 입주업체 직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고객등 일반인은 사고현장에서 유류품이나 유실물이 발견된 사람으로 주부가 대부분이다. 그러나정작 문제는 64명의 사체를 찾는 것이다.서울시는 현재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정밀감식작업을 벌이고 있는 21구의 사체를 제외한 43구의 희생자에 대해서는 사체확인작업이 거의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그나마 21구도 완전한 형태를 갖춘 시신은 거의 없이 머리·몸통 등 부분사체가 대부분이어서 감식결과 여러 점이 동일한 피해자의 분리된 사체로 확인될 수도 있고 일부는 이미 사망자로 확인된 피해자의 것일 가능성도 높다.따라서 국과수 감식결과 추가로 확인될 신원은 20명에도 훨씬 못미칠 전망이다. 이들에 대한 감식결과는 빠르면 내달초 나올 예정이지만 이와는 별도로 현장에서 발굴된 뼛조각등 1백90여점의 「사체흔적」에 대해서는 주인을 찾아주는 작업에 상당한 시일이 걸릴 예정이다.더구나 「사체흔적」으로 추가확인되는 신원은 거의 없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결국 사망자로 인정받았다 하더라도 유류품이나 유실물만 남긴 「사체 없는 사망자」가 50여명에 이를 것으로 보여 유가족의 아픔은 여전히 남아 있다.
  • “기술 배운다더니…” 두딸잃은 모정 통곡/「경기기술학원」 참사현장

    ◎불에 탄 일기장엔 애절한 사연 절절히/사물함속 “생일축하” 꽃다발만 외로이 ○…『이런데인줄 모르고 기술학원이라고 해서 교육시키라고 딸자식들을 맡겼더니 이게 무슨 날벼락입니까』 졸지에 두딸 정숙(18)·정아(16)양을 모두 잃은 이모씨(38·상업·서울 광진구 성수동)는 성적이 나빠 고등학교 진학을 못하고 방황하던 딸들을 입교시킨뒤 성숙한 모습으로 돌아오길 바랬던 소박한 꿈이 어처구니없는 비극으로 끝맺자 믿어지지 않는 표정이었다. 두딸의 장래를 근심하던 이씨는 친구로부터 학원에 대한 얘기를 듣고 미용기술을 배우게 하기위해 지난 봄 두 딸을 학원에 입소시켰다. 『입소전에는 그토록 명랑하던 애들이 점점 얼굴에서 웃음을 잃고 바보처럼 변해갔습니다』 이씨는 아이들이 학원에서 선배들에게 구타와 욕설을 당하며 생활했다는 사실을 두딸이 사망하고 난뒤 이날 비로소 알게 됐다. 이씨는 『언젠가 면회를 갔는데 큰딸 정숙이 오른뺨에 손바닥자국이 나있었다』며 『그 때 이유를 알았더라면…』이라고 말끝을 잇지 못했다. 그러나무언가 이상하다 싶어 그때부터 딸들을 두번씩이나 퇴소시키려 했었지만 입소때 쓴 서약서때문에 학원측에서 허락하지 않았다. 이씨는 『지난 20일 둘째딸 생일이었고 오늘이 첫딸 생일인데도 아이들이 경비원이 무서워 면회온 부모에게 생일선물을 얘기하지 못한 것 같다』며 『이곳에서 나갈 수만 있다면 다른 학원을 다니며 착실하게 살겠다는 딸들의 울음섞인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며 복받치는 울음을 터뜨렸다. ○…화마가 삼키고 간 2층짜리 기숙사 건물의 2층 복도와 방에는 불을 끄며 뿌린 물이 흥건히 괴어 있고 원생들의 곰인형과 색종이로 접은 종이학 다발,일기장,편지 등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어 사고당시의 참혹함을 짐작케 했다. 또 한원생의 사물함에는 「너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종이리본과 함께 원생이 직접 만든 것으로 보이는 20송이의 장미다발이 주인을 잃고 흩어져 있어 주위의 눈시울을 붉히게 했다. ○…희생자들의 빈소가 차려진 수원 아주대병원,동수원병원,성빈센트병원,수원의료원 영안실에서는 사고 소식을 듣고 달려온 유가족들이 『새사람이 되어 밝은 표정으로 돌아오길 기다렸는데 이게 웬일이냐』며 오열,눈물바다를 이루었다. 전북 김제에서 사고 소식을 듣자마자 딸의 생사도 확인하지 못한 채 상경한 이순자씨(53·여)는 딸 배모양(17)의 시신을 붙잡고 『앞길이 구만리 같은데 벌써 가면 어떡하느냐』며 통곡. 한편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때와는 달리 대부분의 희생자들은 곧바로 신원이 확인돼 가족들에게 연락이 됐으나 일부 시신은 잠옷을 입고 자다 변을 당하는 바람에 신원확인이 늦어져 주위를 안타깝게 하기도. ○…원생 가족 70여명은 이날 하오 3시쯤 경찰이 생존한 원생 78명을 격리시킨뒤 가족들과의 면회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고 항의하며 사고현장앞 4차선도로를 점거하고 10여분동안 연좌 농성. 조카를 찾아온 장기수(53)씨는 『보도를 듣고 새벽 6시30분부터 현장에 나와 조카를 만나려 했으나 당국이 아무런 설명없이 출입을 통제해 만나지 못하고 있다』고 발을 동동.
  • 「작전」동료 보복살해 집중수사/Y증권 입사동기 L씨 소환조사/경찰

    ◎숨진 이씨 배신으로 손해 입은듯/전주 청부살해·재산노린 범행 가능성도/증권거래소 공성통신주 매매심리 나서 동방페레그린증권 대리 이형근(32)씨 피살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경기도 고양경찰서는 18일 숨진 이씨가 지난 4월부터 공성통신 주식의 시세조작을 하는 이른바 「작전」을 벌이다 혼자서 주식을 먼저 팔아 단기차익을 챙기면서 「작전」에 함께 참여했다가 피해를 본 동료의 원한을 사 보복살해됐을 가능성이 가장 큰 것으로 보고 이 부분을 집중조사하고 있다. 경찰은 그러나 ▲이씨에게 주식투자를 일임했다가 큰 손해를 본 전주에 의한 청부살해 ▲이씨의 4억∼5억원 짜리 차명계좌에 이름을 빌려준 사람에 의한 범행 ▲10억원이 넘는 이씨의 재산을 노린 범행 등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수사를 병행하고 있다. 경찰은 우선 이씨의 첫 직장 Y증권 입사동기로서 공성통신의 주가조작 「작전」에 참여했으면서 사건 당일 고양시 한 식당에서 새벽까지 함께 포커를 했던 L씨(30·I증권 대리)의 승용차에 있던 장갑및 반바지·슬리퍼 등에서 혈흔이 발견됨에 따라 L씨를 여러차례 소환 조사했다. 그러나 L씨는 18일 조사에서도 범행사실을 완강히 부인했다. 경찰은 숨진 이씨와 L씨 등이 지난 4월25일부터 1만1천5백원까지 거래가가 내려간 공성통신 주식에 함께 「작전」을 벌인 결과 지난달 24일에는 3만4천4백원까지 상한가를 기록했으나 지난달 28일부터 주가가 매우 빠르게 하락,1만8천원대까지 다시 떨어졌으며 이 과정에서 지난달 28일부터 한쪽에서는 계속 팔려고 내놓고 다른 쪽에서는 주가를 반등시키려는 움직임이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따라서 경찰은 숨진 이씨가 공동으로 「작전」을 벌이다가 혼자서 큰 몫을 챙기려고 배신하는 바람에 크게 손해를 본 「작전동료」들의 원한을 샀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이씨가 살해되기 얼마전부터 「이형근이 크게 다칠 것이다」라는 루머가 증권가에 나돌았다는 점을 중시,원한에 의한 범행부분에 무게를 싣고 있다. 경찰은 또 이씨가 거의 맨손에서 10억원 이상의 재산을 불리는 과정에서 꾸준하게 전주들을 동원했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주가조작 「작전」에서 거액을 잃은 전주가 앙심을 품고 청부살해했을 가능성도 캐고 있다. 이밖에 경찰은 이씨가 주식거래를 위해 5억원짜리 차명계좌를 만들어 놓았다는 주변 사람들의 말에 따라 이름을 빌려준 사람이 이를 탐내 범행을 했을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고 이 계좌와 차명인신원 파악에 나섰다. 이씨는 경기 성남시 분당구 50평짜리 아파트를 비롯,수억원의 차명계좌,증권투자동료와 공동명의로 된 충남 온양시 땅 1천5백평 등 젊은 나이에 상당한 재산을 모았다. L씨의 장갑 등에 남아있는 혈흔과 숨진 이씨의 왼쪽손에 쥐어져 있던 머리카락 30여개에 대해 검사하고 있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21일쯤 검사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서울지검 특수1부는 숨진 이씨와 식당에 함께 있었던 L씨는 지난 4월 증권감독원이 고발해온 주가조작 파동과 관련,이미 검찰에 나와 조사를 받았으며 계속 수사대상에 들어있었다고 밝혔다. L씨는 지난해 7월부터 J증권 K씨등 증권사 간부 6명과 함께 로케트전기 주식에 대한 「작전」에 뛰어들어 같은해 9월까지 로케트전기 주식 20억8천만원어치 6만2천주를 산 뒤 되팔아 2억∼3억여원의 매매차익을 남겼다는 것이다.이 때문에 L씨는 회사로부터 정직 3개월의 징계 처분을 받았다. ◎불공정여부 확인 동방페레그린증권 직원 피살사건과 관련,관심을 모으고 있는 공성통신 주식에 대해 증권거래소가 매매심리를 벌이고 있다.증권거래소는 18일 주가가 지난달에 두배 이상 급등하는 등 이상매매 의혹이 있는 공성통신 주식에 대해 불공정거래 여부를 확인하는 매매심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 시위대가 장갑차 포위하자 장교 첫발표/「5·18」수사 의문점 규명

    ◎21일 전남도청앞 충돌전 장교위주 실탄분배­발포경위/전교사령관­31사단장 계통밟아 군병력 투입­군지휘권/광주시내 시위대처 급급… 병력운용 여유없어­무기피탈 방치/인명피해·뚜렷한 피탄흔적·파편 등 확인안돼­헬기 기총소사/8명의 사체서 자상 발견… 대검 사용 인정­대검등 사용/정지불응 미니버스에 총격… 10여명 사망­광주외곽 피해/「신원·사망경위 불명」 많아 확정 불가능­사망자수 검찰이 18일 「5·18」사건의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그동안 베일에 가려졌던 의문점들이 밝혀졌다.검찰수사 결과 드러난 발포경위 및 헬기 기총소사 여부,대검과 화염방사기 사용여부,사망자 수,무기피탈 고의방치 여부,광주 파견부대 지휘권의 2원화 여부 등 7가지 의문점을 정리해 본다. ▷발포경위◁ ▲공수부대의 발포는 5월20일 하오11시쯤 광주역 앞에서 시위군중에 발포하면서 계속되었는데 21일 하오1시쯤 도청 앞에서의 집단발포의 형태는 시위대의 차량돌진을 저지하기 위한 자위목적의 우발적 사격이 아니라 사전에 계획된 명령에 따라 이뤄졌다는 주장. ­광주에서의 최초발포는 5월19일 하오5시쯤 광주고부근에서 있었던 바,당시 사직공원을 수색하고 복귀하던 11공수여단 63대대 배속 장갑차가 이 학교 부근에 이르렀을 때 시위대가 장갑차를 포위공격하면서 불붙은 짚단을 던져 불을 붙이려 하자 장갑차에 타고 있던 한 장교가 장갑차 문을 열고 공포를 쏘고 다시 위협사격하는 과정에서 주위에 있던 고등학생 1명이 총격을 받아 부상당했음. 또 20일 하오11시쯤 3공수여단이 광주역일대에서 시위대와 공방을 벌이던 중 트럭·버스 등 시위대의 차량돌진으로 사상자가 발생하는 등 수세에 몰리자 3공수여단장은 경계용 실탄을 예하대대에 전달하고 대대장은 이를 장교 위주로 분배해 자신들을 향해 돌진하는 차량을 향해 발포했으며 광주역으로 실탄을 전달하러 가던 특공지원조가 시위대와 마주쳐 진로가 막히자 위협사격을 하는 한편 21일 다시 전남대 앞에서 장갑차·경찰가스차 등 시위대의 차량돌진공격에 대응해 발포,사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이는 광주시민의 공분을 고조시킬 목적으로 사전에 계획된 의도적인 발포였다고는 할 수 없음. 이와 함께 21일 전남도청 앞에서의 발포경위에 대해 그동안 국회 청문회 등에서는 시위대의 1차 장갑차공격후 도청에서 철수하던 31사단 병력으로부터 공수부대가 소량의 실탄을 인수하여 장교들에게 분배한 상태에서 다시 시위대가 차량공격을 해오자 장교들이 자위적 차원에서 발포한 것이라고 주장돼왔으나 이번 수사결과 11공수여단 61·62대대는 도청 앞 금남로에서 시위대로부터 차량공격을 받은 후 시위가 소강상태에 들어간 20일 밤 12시쯤 대대장이 대대장 지프 등에 통합보관하고 있던 경계용 실탄을 대대장의 명령에 따라 위급시에만 사용하라는 지시와 함께 중대장이상 장교에게 15발들이 1탄창씩 분배하고 63대대는 21일 상오10시30분쯤 실탄을 분배함으로써 같은 날 하오1시쯤 시위대의 차량공격이 있기 전에 이미 장교 위주로 실탄이 분배돼 있었음이 확인됐음. 또 당일 하오1시쯤 시위대가 장갑차등으로 공수부대에 돌진,공격해오고 병사 1명이 장갑차에 깔려 사망하자 이에 대응해 첫 발포가 있었으며 다시시위대가 장갑차와 버스 등 차량돌진을 계속하자 공수부대 장교들이 집단적으로 발포했고 이와 비슷한 시점에 7공수여단 35대대도 철수하던 31사단 병력으로부터 실탄을 인계받아 이를 장교들에게 분배하는 한편 돌진하는 차량을 피해 인도와 인근 건물로 산개했던 공수부대원중 일부가 도청 및 주변건물 옥상에 올라가 경계를 하고 있다가 접근하는 시위대를 향해 발포한 사실이 확인됐음. 따라서 이같은 발포는 대대장이나 여단장이상의 상급지휘관이나 별도의 지휘계통에 있는 특정인의 구체적인 발포명령에 따라 행해진 것이거나 광주시민의 공분을 고조시키기 위해 사전에 계획된 의도적인 것으로 인정할 수 없고 현장지휘관인 공수부대 대대장들이 차량돌진 등 위협적인 공격을 해오는 시위대에 대응해 경계용 실탄을 분배함으로써 이를 분배받은 공수부대 장교들이 대대장이나 지역대장의 통제 없이 장갑차 등의 돌진에 대응해 자위목적에서 발포한 것으로 판단됨. 그러나 그 이후 계속된 발포중에는 비록 시위대가 무장을 했다 하더라도 도로에 나와 단순히구호를 외치거나 총상자들을 구호 또는 호송하려 하거나 심지어는 시위현장 부근에서 구경하기 위해 나타난 경우 등 군에 대해 직접적 위협을 가하지 아니한 상태에까지 발포가 이뤄진 사실을 인정할 수 있어 당시 실탄 및 사격통제에 상당한 문제점이 있었음이 확인됐음. ▷군 지휘권◁ ▲광주에 투입된 공수부대는 상급지휘관인 계엄사령관·2군사령관·전교사령관·31사단장의 정상적인 지휘계통하에 있지 아니하고 별도세력의 사전계획에 의해 지휘되고 있었다는 주장. ­7공수여단 2개 대대를 전남대 등 3개 대학에 배치한 것은 소요예방과 진압을 이유로 육본이 전국 92개 대학에 계엄군을 배치하는 조치의 일환으로 취해진 것이므로 이때 이미 군병력의 시위진압투입은 전제돼 있었다고 할 수 있으며 5월18일 하오 7공수여단 2개 대대가 광주시내 시위진압에 나선 것은 계엄확대선포후 전국에서 유일하게 광주시내에서 시위가 벌어졌고 경찰이 군의 투입을 요청하고 있는 상황에서 계엄사령관→2군사령관→전교사령관→31사단장의 계통에서 군병력 투입을 결정한 사실이 인정됨. 11공수여단의 추가투입이 광주시내에서 공수부대원들과 학생들이 충돌하기 전인 18일 하오2시쯤 결정된 것은 사실이나 이는 광주 시위상황을 보고받은 육본에서 군병력의 증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다만 공수여단중 적절한 파견부대의 결정을 위해 특전사령관의 의견을 들어 11공수여단을 증원하기로 결정한 것임. 또 초기에 7공수여단을 시위진압에 투입한 후 5월18일 야간에 공수부대를 광주시내에 거점배치하고 19일 11공수여단의 추가작전통제에 다라 책임지역을 구분해 시위진압에 투입했으며 20일 3공수여단의 추가투입에 따라 다시 책임지역을 구분,시위진압에 투입하고 21일 공수부대를 시외곽으로 철수시키는 등 일련의 부대운용에 관한 지휘를 실제 31사단장과 전교사령관이 행한 사실이 인정됨. 21일 하오4시 31사단장의 2개 공수여단에 대한 작전지휘권이 전교사령관에게 전환된 후 광주 재진입작전은 전교사령관이 계엄사령관의 지휘를 받아 특전사령관 등의 자문과 조언을 참고해 그의 책임하에 수행한 것이 인정되며 군부대간의 오인사격은 전교사와 공수여단 및 전교사 예하 각 부대간에 상호 상황전파 및 통제의 미숙,단위부대 지휘관들의 상황판단미숙과 침착성 부족 등에 기인해 발생한 것으로 이를 두고 지휘권 이원화의 결과라고 할 수는 없음. 물론 광주에 파견된 3개 공수여단이 전교사령관이나 31사단장의 작전통제하에 있었음에도 31사단 등과는 무전교신체계가 상이한 상태에서 특전사 일부장교가 전교사에서 전용 무선 발수신장치를 설치해 각 공수여단과 별도로 교신하면서 상황을 파악하고 특전사령관이 11공수여단과 3공수여단의 증원결정에 의견을 제시하고 수시로 광주를 방문하면서 공수여단 지휘관들을 격려하고 광주 재진입작전인 상무충정작전을 수행함에 있어 특공부대를 선정하는 데 관여한 사실 등이 인정되나 이를 가지고 당시 공수여단에 대한 지휘권이 이원화됐다고 할 수는 없는 것임. ▷무기피탈 방치◁ ▲사전에 계획된 시나리오에 따라 광주 재진입작전의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시민으로 하여금 무기고를 습격,무장을 하도록 상황을 유도했을 가능성이 높으며 그 근거로 광주시민이 광주 외곽지역에서 무기고를 습격하고 무기를 탈취해 광주로 돌아오는 동안 아무 제지를 받지 않았고 이후 외곽도로가 봉쇄되었다는 주장. ­광주에서 시위대에 의한 무기탈취는 19일 하오3시15분쯤 시위대가 기독교방송국을 점거하는 과정에서 31사단 경계병력으로부터 M16소총 1정을 탈취한 것이 처음으로 이 소총은 곧 회수됐으며 그후 20일 하오11시쯤 광주세무서 방화,점거시 지하실 무기고에서 칼빈 17정을 탈취했고 21일 하오1시쯤 광산 하남파출소에서 카빈 9정이 탈취됐으나 시위대가 본격적으로 무기탈취에 나선 것은 21일 하오1시쯤 전남도청 앞에서 공수부대의 발포가 있은 후로 시위대는 광주 인근지역으로 진출,화순·나주 등 지방의 지·파출소와 화순광업소·한국화약 등 방위산업체 등에서 대량의 무기와 실탄을 탈취했음. 당시 조기진압의지와는 달리 시위가 급격히 확산됨으로써 경찰과 군병력이 광주시내 시위에 대처하는 데만도 급급한 상태였고 지방경찰 병력도 대부분 광주시내로 차출돼 인근지방으로까지 진출해 무기를 탈취하는 시위대를 사전에 막기는 어려웠던 상황이었으며 특히 21일에는 전남대에서 3공수여단이,전남도청 앞에는 7공수여단과 11공수여단이 시위대와의 치열한 공방전 끝에 결국은 전남도청 등을 포기하고 시외곽으로 철수하는 형편이었으므로 군이나 경찰이 병력운용에 여유가 있는 상태에서 의도적으로 무기고 습격을 방치하였다고 보기는 어려움. ▷헬기 기총소사◁ ▲광주에서 무장헬기의 공중사격으로 많은 인명피해가 야기됐다는 주장. ­군관계 자료상으로는 21일 2군사령부가 전교사에 수송용 헬기인 UH­1H 10대,무장헬기 AH­1J(코브라) 4대를 지원하고 사태기간중 헬기가 모두 48시간동안 무력시위를 했다는 기록외에 실제공중사격 실시여부에 대해서는 아무 기록을 발견할 수 없었음. 조비오신부가 헬기사격의 피해자라고 지목한 홍란은 검찰조사에서 부근 건물옥상에 있던 계엄군의 소총사격에 의해 다쳤다고 진술했으며 정낙평은 21일 하오2시쯤 광주경찰서 상공에서 기종미상의 헬기가 기관총 사격하는 것을 목격했으며 부근 진주다방의 종업원이 옥상에서 헬기가 쏜 기관총을 맞고 죽었다는 말을 들었다고 진술했으나 진주다방 종업원인 심동선씨(30)에 대한 검시조서에 의하면 사인이 M16소총에 의한 관통총상이고 당시 빌딩옥상에 있던 공수부대원의 사격에 의한 피격이라는 취지의 증언이 있음. 아놀드 피터슨목사는 헬기가 선회하고 상공에서 총소리가 들려 헬기에서 기총사격을 한 것으로 믿고 있으나 헬기사격 자체를 목격하지는 않았다는 것이고 피터슨목사가 사격장면을 촬영한 것을 검찰에 제출한 사진상의 헬기 하단 불빛은 기관총사격시 발생되는 섬광이 아니라 헬기에 부착된 충돌방지등 불빛임이 확인됐음. 이와 함께 광주시내 적십자병원·기독병원·전남대병원의 당시 진료기록부와 응급실 관계자들의 진술을 검토해도 그 당시 각 병원에 헬기총격에 의한 피해자가 들어왔거나 입원·치료를 받은 사실을 확인할 수 없었고 광주시위 관련 사망자 1백65명에 대한 광주지검 사체 검시기록에서도 특별히 헬기기총사격에 의한 사망이라고 인정할 수 있는 근거를 발견할 수 없었음. 또한 AH­1J헬기의 장착무기인 토미사일,2.75인치 로켓,20㎜ 발칸포(1분당7백50발 발사),500MD헬기의 장착무기인 2.75인치 로켓,7.62㎜ 6열 기관총(1분당2천∼4천발 발사)에 의한 표적사격의 경우 나타나는 대규모 인명피해와 뚜렷한 피탄흔적·파편 등이 확인되지 않았음. ▷대검등 사용◁ ▲계엄군이 시위진압과정에서 대검과 화염방사기를 사용했다는 주장 ­당시 광주일원에 투입된 계엄군은 착검상태에서 트럭을 타고 위력시위를 하다가 시위대로부터 투석공격 등을 받으면 착검상태로 하차해 시위대를 추적,체포한 사실이 인정되므로 그 과정에서 대검으로 인한 피해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음. 실제로 사망자 손옥례·권근립씨등 8명의 사체에서 자상이 발견됐고 부상자 하헌남·최승기씨 등이 자상을 입은 점 등을 종합할 때 당시 시위진압현장에서 지휘관의 의사와 상관없이 공수부대원에 의해 대검이 사용된 사실이 인정됨. 군관계자들은 화염방사기가 토치카 또는 장갑차 공격용이므로 인체에 화염방사기를 직접 사용할 경우 전신 중화상으로 대부분 사망했을 것이라는 점 등을 들어 당시 광주에서 화염방사기가 사용되지 않았고 다만 소용진압용 작용제(CS분말)나 소요군중 식별용 유색수를 살포하는 데 화염방사기를 이용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계엄군이 화염방사기로 화염을 방사했거나 화염방사기에 의한 화상사망사실을 인정할 만한 자료를 발견치 못했음. 5월21일 광주시청 앞에서 시위대의 장갑차를 몰고가다 화염방사기 공격으로 화상을 입은 것으로 광주민중항쟁사료전집에 기록된 최강식씨(87년 사망)의 보상금지급 관련서류를 조사한 결과 최씨는 당시 광주시 중흥동의 한 건축현장에서 계엄군에 체포돼 전남대·광주교도소·상무대로 이동하면서 전신을 구타당하고 화상을 입은 것으로 파악됐음. 또 같은 날 전남대 앞 시위에서 계엄군의 화염방사로 안면화상을 입은 것으로 기록돼 있는 최병옥씨(당시 21)의 경우 당시 계엄군에 쫓겨 전남대부근 가정집의 화장실에 숨어 있던 중 화장실 환기창문으로 불꽃이 들어와 얼굴에 화상을 입었으나 그것이 화염방사기에 의한 화염인지는 목격하지 못했다고 검찰조사에서 진술하는 등 다른 피해사례나 목격담에 대한 조사에서도 화염방사기 사용사실을 확인하지 못했음. ▷광주외곽 피해◁ ▲5월21일 공수부대가 전남대와 전남도청 앞에서 광주시 외곽으로 철수하여 5월27일 재진입작전을 할 때까지 시외곽 봉쇄 및 도로차단 등과 관련해 여러 건의 민간인 피해사례가 있었다는 주장. ­이같은 주장 가운데 3공수여단 5개 대대는 5월21일 광주교도소로 철수하는 과정에서 시위대 수십명을 천막등으로 덮은 트럭에 실어 호송하면서 더운 날씨에도 불구,과다한 인원을 탑승시킨 상태에서 최류탄을 터뜨려 화상환자를 발생시켰고 교도소 도착당시 트럭에는 질식 등으로 인해 5∼6명이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음. 3공수여단은 또 같은 달 22일 하오10시쯤 광주교도소부근을 통과하던 김성수씨일가를 시위대로 오인,총격을 가해 가족 3명에 총상을 입히고 그중 김씨의 처 김춘아씨가 후유증으로 사망케 하는 등 24일까지 광주교도소를 방호하는 과정에서 무장시위대와 수차례 교전을 했고 이같은 교전및 부상자치료,철수과정에서 사망한사체 12구를 교도소부근에 가매장한 사실이 확인됐음. 광주∼목포간 도로를 차단하기 위해 효천역부근에 배치됐던 20사단 61연대 병력은 5월22일 상오5시40분과 9시쯤 2차례에 걸쳐 시위대로 오인하고 민간인에 총격을 가해 왕태경 등 2명이 사망하고 5명이 부상했음. 5월22일 하오5시쯤에는 20사단 62연대 2대대가 광주통합병원을 확보하기 위해 민가를 사이에 두고 무장시위대와 교전하는 과정에서 인근주민 이매실·함광수씨 등이 총상을 입고 사망 또는 부상했고 23일에는 해남에 주둔하고 있던 31사단 93연대 2대대와 시위대간의 2차례 교전과정에서 박영철씨 등 민간인 2명이 사망했음. 11공수여단 62대대가 매복하고 있던 주남마을 앞 광주∼화순간 국도에서는 23일 상오10시쯤 정지신호를 무시하고 달리던 미니버스에 총격을 가해 박현숙씨 등 10여명이 사망했고 남자 중상자 2명이 후송도중 다시 총격에 의해 사망했음. 24일 하오1시30분쯤에는 주남마을에서 송정리비행장으로 이동하던 11공수여단 병력과 시위대 10여명이 송암동부근에서 총격전을 벌이던 중 공수부대의 난사로 전재수 등 어린이 2명이 사망했고 또 전교사 보병학교 교도대 병력의 오인사격을 받고 격분한 63대대 병력이 피격지점부근를 수색해 시위대를 체포하는 과정에서 무장시위대원 1명과 권근립씨 등 주민 4명이 총격을 받고 사망했음. ▷사망자수◁ 정부 관련 자료에 근거한 광주시위 관련 사망자수는 군인 23명,경찰 4명,민간인 1백66명등 모두 1백93이고 이에 광주시위 관련 행방불명자로 인정돼 보상금이 지급된 사람이 47명임. 그러나 광주시위기간에 발생한 사체 가운데 신원및 사망경위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고,목격자 진술 등에 의해 사망자가 확인된 경우에도 당시 사체가 발견돼 확인됐는지 여부와 신원불상 사체와의 동일성 여부 등에 대한 판단이 현재로서는 곤란해 광주시위 관련 사망자수를 확정짓는 것은 불가능함.
  • 북 베일속 실세/김철수는 김영주 아들

    ◎김일성사후 권력서열 20위로 급부상/김정일 족벌체제 강화위해 등용한듯 지난달 25일 오진우 인민무력부장 장례식에서 일약 북한 권력서열 20위로 자리매김된 「미지의 인물」 김철수는 김일성의 친동생인 김영주부주석의 아들인 것으로 밝혀져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5일 『김일성 사망 이후 급부상한 김철수가 누구인지를 알아내기 위해 줄곧 신원을 추적해왔다』면서 『최근 제3국의 고위인사를 통해 그가 김영주의 친아들이자 김정일의 사촌동생임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관계당국은 70년대초까지 조카인 김정일과 후계경쟁을 벌였던 김영주의 친아들이 급부상하고 있는 배경을 분석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관계당국은 김철수의 부상을 두가지 각도에서 관찰하고 있다. 첫째는 족벌체제를 확고히 다지기 위해 일가의 총동원체제를 구축토록 김일성이 유훈을 남겼을 것이라는 가설이다.즉 김정일이 체제안정을 위해 김철수를 등용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다른 하나는 김정일의 권력승계 공식화가 뚜렷한 이유없이 늦어지고 있는것과 연결,김영주가 실질적으로 득세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다.김영주가 70년대초까지 10년동안 북한의 핵심요직인 노동당 조직지도부장을 맡으면서 후계자수업을 했기 때문에 현재 당·정·군에 걸쳐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그러나 궁금증을 더하는 것은 북한당국이 계속 김철수의 신원에 대해 철저한 보안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북한의 방송·신문등 선전매체들은 권력서열을 거명할 때 유독 김철수에게만 아무런 직함도 붙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 「베일속의 실세」가 김영주의 친아들임이 드러나면서 그의 신원도 한 꺼풀씩 벗겨지고 있다.정부의 한 관계자는 『김철수는 상장(중장) 또는 대장급 군장성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이 관계자는 또 『현재까지의 여러 정황으로 보아 국가안전보위부장을 맡고 있거나 호위총국에서 김정일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직책을 수행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 국회정보위 93결산심사 표정(의정초점)

    ◎“검은돈 없는 안기부살림 확인”/“예산 부족한것 아니냐” 의원들 걱정/창문마다 검은 커튼… 기밀보호 신경 국회가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국가안전기획부의 「살림살이」에 대해 실질적인 첫 심사를 벌였다. 국회정보위원회(위원장 신상우)는 26일 전체회의에서 안기부 소관 93년 세입세출결산과 예비비지출승인건을 심사했다.물론 회의는 철저한 보안속에 비공개로 진행됐다.언론에는 신상우정보위원장이 전체적인 분위기를 전달하는 정도의 발표만 있었다. 여야정보위원들도 심사내용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한결같이 『안기부의 예산이 명료하게 집행되고 있더라』고 입을 모았다.특히 몇몇 야당의원들로부터는 『예산이 방만하기보다는 오히려 정보의 국제화시대에 부족하지 않느냐』는 걱정도 나와 달라진 시대상을 반영해 주기도 했다. 김덕안기부장도 『시대가 변했으니 안기부가 변하는 것도 당연하다』면서 『이런 형태로 국회에 보고하게 되니 감회가 깊다』고 인사했다. ○…정보위가 새로 마련한 회의장은 이제까지의 상임위 회의실과는 달리처음으로 타원형으로 좌석을 배치해 양쪽에 신위원장과 김부장이 앉고 좌우로 여야의원들이 앉는등 달라진 모습을 연출.의원들은 이같은 좌석배열을 환영하면서 『여야의원들이 섞여서 앉았으면 좋겠다』고 즐거운 표정.그러나 회의장은 다른 상임위와는 달리 창문마다 검은 커튼이 드리워져 국가기밀을 다루는 현장임을 상징. 이날 회의에 안기부측에서는 김부장과 황창평1차장,이병호2차장,김기섭기조실장만 참석했고 다른 직원들의 접근이 금지됐으며 국회에서도 신원조회가 끝난 전문위원등과 속기사만 입장. ○…신위원장은 회의가 끝난뒤 기자들과 만나 『지금까지 안기부의 보고에서는 여야의원들의 관심사항인 검은 돈이나 예산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면서 『오히려 너무 맑은데서 고통이 있는것 아니냐는 격려도 있었다』고 분위기를 소개.신위원장은 『낭비성 예산집행이나 타부처 은닉예산등 검은 돈을 심사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면서 『그러나 93년결산을 보니 타부처 은닉예산도 완전히 배제했고 예산도 단순화시켰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설명.신위원장은 『안기부의 예산은 법적으로는 타부처에 계상할 수 있음에도 실제로 은닉한 예산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결산에는 불용액도 여러 항목에 나타나는등 낭비흔적도 없어 새정부출범후 안기부가 건전예산집행에 노력한 것같다』고 언급. 민주당의 강창성의원은 『우리의 국력은 세계 15위정도인데 정보위가 생긴것은 세계에서 3번째』라면서 『국민들이 정보위를 만들도록 요구한 것은 너희들(정보위원)이 봤으니 우리(국민)가 안봐도 되도록 해달라는 주문』이라고 정의.강의원은 이날 심사에 대해서는 『과거보다 진일보한 내용이었다』고 평가.
  • 여죄·공범 못밝힌채 “어정쩡한 종결”/경찰의 지존파 수사가 남긴것

    ◎허술한 초동수사 관할다툼 여전/무기밀거래단 규명 과제로 남아 「지존파」의 연쇄납치살인사건을 수사중인 경찰은 사건을 27일 검찰에 송치함으로써 지난 19일 범인검거이후 1주일간에 걸친 수사에서 공범이나 여죄를 밝히지 못한 채 사실상 수사를 종결한다. 경찰은 이날 지존파에 대한 수사결과를 발표,『범인들에 대한 분리심문등을 통해 공범이나 여죄여부를 집중추궁했지만 뚜렷한 혐의점을 찾아내지 못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그동안 두목 김기환(26)등 지존파가 지난해 7월 조직결성이후 15개월남짓 소윤오씨부부등 5명을 연쇄살해한 사실을 밝혀내고 일당 7명을 구속한데 이어 이들에게 백화점고객명단과 가스총등을 팔아 넘긴 이주현씨등 2명을 추가로 구속했다. 경찰은 이번 사건수사를 통해 자칫 대량살상으로 이어질 뻔한 조직범죄를 뒤늦게나마 차단했으나 그동안 끊임없이 제기돼온 공범과 여죄여부에 대한 의문점들을 속시원히 밝히지 못한 채 수사를 종결해 한계를 드러냈다. 경찰은 또 피해자 소씨의 실종당시부터 수사관할을 서로 떠넘겨공조수사에 허점을 드러냈고 「지존파」로부터 압수한 승용차를 닷새동안이나 방치해 결정적인 증거물들을 뒤늦게 찾아내는등 초동수사에 문제점을 드러냈다. 당초 이들에게 납치됐다가 풀려난 이모씨(27·여)로부터 「지존파」에 대한 행각을 신고받은 서울 서초경찰서는 이들의 전남 영광군 아지트에 도착하기까지 만49시간여나 영광경찰서에 협조나 수사공조요청을 하지 않아 신속한 현장수사가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비난을 샀다. 일부에서는 경찰의 해묵은 공다툼으로 인한 늑장수사로 희대의 연쇄납치살인행각을 벌인 범인들을 놓칠 뻔했다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경찰수사가 초기부터 이러한 문제점들을 노출시킨 가운데 경찰은 범인들의 자백내용을 토대로 한 짜맞추기식 수사에 급급함으로써 이들의 행적이나 범죄공백기간에 대한 의문등을 속시원히 풀지 못했다. 당초 93년8월의 2차범행과 지난 8일의 3차범행 사이의 1년2개월의 기간에 이들이 여죄를 저질렀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예상됐지만 경찰은 이들이 대전과 분당에서 집단으로 막노동을 한사실만 확인했을뿐 당시 이들의 구체적인 행적에 대해서는 명확히 밝혀내지 못했다. 이와 관련,당시 이들을 목격한 근처 인부들이 구속된 일당외에 40대남자등 1∼2명이 함께 어울려 다녔다고 제보함으로써 공범가능성에 대한 단서를 제공했으나 경찰은 송치날짜를 의식,수사종결에만 급급한 인상을 남겼다. 또 「지존파」에게 범행물품을 제공하는등 이들의 범죄에 깊이 연루된 것으로 밝혀진 브로커 이주현씨의 진술이 계속 엇갈리는 부분도 이들이 드러나지 않은 공범을 숨기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씨가 물품구입장소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다며 정확한 진술을 회피하고 있는 점이나 당초 지난 8월 명단을 건네줄 당시 「지존파」의 범행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가 지난해 6월부터 이들의 정체를 어느정도 파악하고 있었다고 진술을 번복하는등 진술에 일관성이 없는 부분등은 또다른 공모자나 여죄의 개연성을 더욱 짙게 하는 부분들이다. 특히 이씨의 동거녀 강모씨의 통장에 「지존파」일당이 영광아지트를 건축한 시기인 지난5월 중순 무기밀매지역으로 의혹을 사고 있는 부산등지에서 양모씨등 2명의 명의로 모두 6백여만원이 입금됐다가 다음날 바로 인출된 사실은 또다른 공모자의 자금공급가능성을 가장 강하게 제기하고 있는 부분인데도 경찰은 이를 도외시했다. 이와 함께 지난해 「지존파」 두목 김에게 김현양을 소개해준 인물의 신원이 아직 밝혀지지 않은 점도 의문으로 남아 있다. 결국 지난 1주일동안 국민들을 충격과 경악속에 몰아넣은 「지존파」의 연쇄살인사건에서 의문점으로 남은 공범및 여죄부분,전문무기밀매단의 실체등은 검찰에서 풀어야 할 과제로 넘겨지게 됐다. ◎지존파수사 이모저모/길가다 희생 최미자씨가족 “망연자실”/제보 이양에 서초서통해 금일봉 전달/강동은 “이제 후회”… 뒤늦게 삶에 애착 ○…지존파 일당의 검찰 송치를 하루 앞둔 26일 낮 일당 중 한명인 강동은의 형(27)과 누나,매형 김모씨(35) 등이 서초경찰서로 찾아와 면회. 처음 검거됐을 당시 『야타족 등 아직도 죽이지 못한 사람이 많다』고 하는등 살의에 가득찬 말을 거침없이 내뱉었던 강은 이날 10여분동안의 면회에서 가족들에게 『살아나갈 수만 있다면 신부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등 처음과 달리 생에 대한 강한 집착을 드러냈다. 강은 또 형과 누나에게 『엄마와 애인 이경숙을 잘 보살펴달라』면서 『어린 마음에 엄청난 일을 저질렀지만 이제는 후회된다』고 말해 심경의 변화를 크게 일으키고 있다는 것. 또 이경숙의 친척오빠인 박모씨(34),백병옥의 아버지(54),이주현의 아버지(58)와 어머니등도 각각 범인들을 면회. 특히 백의 부모는 면회를 마치고 나와 『지난해 7월 돈을 많이 벌어오겠다며 집을 나가더니 이렇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면서 『공부를 제대로 못시키고 어릴적 배부르게 못해준 것이 한』이라고 눈물. ○…이주현씨와 김현양이 학교 선후배사이로 친하다는 사실을 숨기는 등 범인들이 이씨를 감싸고 돈 점을 경찰이 제대로 추궁하지 않은 것도 수사를 더이상 확대하지 않으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주변의 분석. 이미 중형을 각오한 범인들이 이씨를 보호하려 한 것은 이씨가 공범 또는조직원이거나 다른 공범자가 있을 가능성을 시사해주는 것인데도 경찰은 이 부분에 대해 조사를 하지 않았다는 지적. ○…지존파의 「살인실습」 첫번째 희생자였던 20대 여자의 신원이 최미자양(당시 23세·충남 논산군 두마면 두계리)으로 밝혀지자 최양의 아버지 최모씨(48)등 가족들은 믿어지지 않는듯 충격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 최씨는 『미자에게 설마 큰일이야 있겠느냐는 생각에 지금까지 연락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려 왔다』며 망연자실한 표정. ○…김화남경찰청장과 박일용서울경찰청장은 이날 「지존파」일당으로부터 필사적으로 탈출,결정적 제보를 한 이모씨(27·여)에게 감사와 위로의 뜻을 전하고 서초경찰서장을 통해 금일봉을 전달. ○…이주현씨가 지난 8월부터 일해왔던 세운상가 G오락기판매점 주인 김모씨(24)는 『주현이는 서울에 친구가 별로 없었고 평소 말수도 적었지만 성실했으며 술도 잘 못했고 일이 끝나면 곧바로 집으로 가는 등 착실한 사람이었다』며 이씨가 무기브로커였다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
  • 범인차 트렁크서 유골 발견/지존파 수사

    ◎불에 탄 1㎏… 제3의 희생자 가능성/수첩·밧줄 등 12개 증거물도 수거/경찰,닷새 방치했다 뒤늦게 찾아/김기환,“부친·백부유골” 주장 【영광=최치봉기자】 「지존파」일당의 또다른 범죄행위여부를 밝힐 수 있는 두개골조각등 인골과 증거물이 추가로 발견됐다. 전남 영광경찰서는 23일 지존파에 대한 검거작전이 전개된 지난 19일 이들로부터 압수한 전남 1러 1239호 르망승용차 트렁크에서 인골·나침반·철사줄·수첩등 12개 품목의 증거물을 수거,공개했다. 이 차는 19일 상오9시쯤 김현양과 이경숙이 경찰의 추적을 피해 불갑지서에서 8㎞쯤 떨어진 영광읍 학정리까지 달아날 때 사용한 두목 김기환소유 승용차로 경찰은 이같이 중요한 증거물이 들어 있는 차를 경찰서 뒷마당에 닷새동안이나 방치해두었었다. 경찰이 이날 공개한 압수품목은 검은 비닐봉지에 들어 있는 두개골조각과 불에 탄 인골 1·04㎏과 이들에게 살해된 소윤오씨의 것으로 보이는 수첩 1개,김현양의 수첩 1개,나침반,현금 5만4천원이 든 지갑,성분이 밝혀지지 않은 이물질이 들어있는 박카스병 1개,길이 3m의 철사줄,대검집등이다. 소씨의 것으로 추정되는 수첩에는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간절한 사연이 기록돼 있었다. 지난 13일 납치된 직후 범인들에게 건네주기 위해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이 글에서 소씨는 『긴급으로 마련할 수 있는 금액은 4천3백만원뿐이며 현금으로 준비할 테니 선처바랍니다』라고 쓴 뒤 『경찰에도 알리지 않겠으니 제 아내와 딸들을 해치지 않겠다고 약속해주시오』라고 애원했다.소씨는 또 범인들이 요구한 듯 서울 중화동 자신의 집 약도와 회사운영상태가 적힌 울산공단내 회사약도,두 딸의 이름·나이·학교와 부인의 이름등을 상세히 적어놓았다.이 수첩에는 또 범인들이 써넣은 것으로 보이는 예금주 「이주현」이름의 국민은행계좌번호와 적외선망원경·소총·탄환·일본도·도청장치·무전기등 범행도구의 가격이 적혀 있었다. 또 김현양의 수첩에는 『넉넉한 생활 한번 못해보고 일생을 마감한다는 것은 너무나 억울하고 불공정한 세상이다』라는 독백이 적혀 있었다. 경찰은 이번에 발견된 인골이 주범김기환의 부친과 큰아버지의 것으로 묘소이장을 위해 발굴,함께 분쇄해 섞은 뒤 가지고 다녔다고 범인들이 진술하고 있어 진위여부를 가리기 위해 국립과학연구소에 정밀조사를 의뢰했다. ◎지존파에 첫 희생/여인신원 곧 확인 【대전=최용규·이천렬기자】 지존파 일당의 살인연습 첫번째 희생자로 살해·암매장된뒤 지난 22일 현장검증에서 드러난 20대여자의 신원이 곧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대전서부경찰서는 23일 신원미상의 20대 여자는 대전시 유성구 세동 노적산 기슭의 암매장 발굴 현장에서 5㎞쯤 떨어진 곳에 사는 최기성씨(47·충남 논산군 두마면 두계리 140의 1)의 셋째딸인 미자양(당시 20세)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최씨의 혈액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보내 발굴된 유골과 비교 감식을 의뢰했다.
  • 송광사 방장,미서 팩스위임장“눈길”/긴박감 넘치는 조계사 주변표정

    ◎범종추,「사퇴결의」 소식에 환호성/경찰,“사태 원만히 수습될것” 안도 ○…서의현총무원장의 사퇴와 종단개혁을 촉구하며 지난달 26일부터 중앙승가대 수양관 법당에서 단식에 들어갔던 승려 17명중 정목스님(36·중앙승가대 1년)이 단식 11일째인 5일 하오 1시쯤 탈진돼 서울 성북 성심병원으로 긴급 후송. 단식이 장기화되면서 탈진상태에 빠지고 있는 승려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으나 대부분의 승려는 『서총무원장의 사퇴가 멀지 않았으니만큼 종단개혁의 역사적인 순간을 기다리겠다』며 후송을 거부. ○…금산사 여산스님이 이날 중앙승가대에서 「양심선언」을 하자 「범종추」관계자와 중앙승가대 학생들은 『승가대 밖에 나가서 하라』며 여산스님을 밖으로 내모는등 자신들과 무관함을 애써 주장. ○…원로회의가 끝난 직후 혜암스님이 기자회견을 통해 종회무효,서원장 인준거부,전국승려대회개최결정등 회의결과를 공식발표하자 법당밖에서 기다리던 범종추소속 승려와 비구니1백여명은 박수를 치며 환호성. ○…「범종추」내에서는 이날 원로스님들의 결의사항에 대한 해석과 적법성을 놓고 설왕설래. ○…대한불교청년회등 불교관련단체로 구성된 「불교를 바로 세우기 위한 재가불자 연합」(공동대표 이문옥씨등 3명)은 이날 하오 7시20분 조계사에서 신도등 2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기원법회를 열고 서총무원장의 퇴진과 종단의 민주적 운영을 위해 종헌·종법의 개폐를 촉구. ○…이날 하오4시5분부터 시작된 원로회회의에는 해인사 방장 혜암스님 등 원로 8명과 통도사방장 월하스님을 대신해 부방장인 청하스님 등이 참석했고 서총무원장 퇴진과 관련,의견개진을 위해 범종추측 대표와 총무원측 대표가 참석하기로 했으나 총무원측에서는 참석하지 않았다. 특히 현재 미국에 있는 전남 송광사 방장 승찬스님은 이날 상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팩시밀리를 통해 「원로회 결정에 따르겠다」는 위임장을 보내 간접 참석했고 관음사 조실 운경스님도 위임장을 보내왔다. ○…이날 원로회 회의 결정에 따라 조계사 폭력사태의 상황이 급진전되자 그동안 폭력배검거를 중심으로 수사를 벌여 온 경찰은 『이번 결정으로 폭력사태로 집중됐던 여론의 방향이 바뀌어지지 않겠느냐』며 안도하는 모습. 수사본부가 차려진 종로경찰서의 한 관계자는 『폭력을 지시한 보일스님등도 반드시 검거돼 법의 처벌을 받아야 하지만 폭력의 피해자격인 범종추의 요구가 받아들여져 다행』이라는 반응. 신원이 확인된 폭력배들의 은신처에서 연일 철야 잠복근무를 벌여온 형사계 직원들도 『결국 이번 사태가 원만하게 마무리지어질 가능성이 많아진 것 아니냐』며 원로회 회의결과를 환영. ◎서원장 상대 “직무정지”등 민소 2건 계류중 조계사 폭력사태와 관련,서의현총무원장의 거취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가운데 서원장을 상대로 한 민사소송 2건이 법원에 계류중인 것으로 밝혀졌다. 서울민사지법에는 서울 관악산 연주암 주지였다가 지난 1월 해임된 종상스님이 대한불교조계종을 상대로 낸 주지해임 무효확인소송이 계류돼 있다. 종상스님은 지난달 9일 제출한 소장에서 『불교의 연혁을 볼 때 본사에서 말사가 파생,서로 상하복종관계에 있으므로 본사주지가 말사주지의 임명을 품신하는 것은 실질적인 임명에 해당한다』면서 『본사인 용주사 주지가 서총무원장에게 재임명 품신을 했는데도 이를 묵살한 것은 임명권 남용』이라고 주장했다. 종상스님은 이어 『89년부터 93년까지 연주암의 주지로 재임하면서 관악산 등반객 수천명에게 식사를 제공하는등 교세 확장에 크게 이바지했는데도 주지에서 해임한 것은 서총무원장의 전횡과 독재적 종무처리에 반대하는 조계종 개혁노력에 대한 보복적 조치』라고 강조했다. 오는 22일 첫공판을 앞두고 있는 이 소송은 조계사 폭력사태의 파장과 맞물려 있는데다 주지임명을 둘러싸고 금품수수가 관행이라는 주장이 쏟아져 나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이와함께 서울고등법원에는 홍성창씨(법명 도관)등 3명이 서총무원장을 상대로 낸 총무원장 직무집행정지 가처분신청사건 항소심이 진행중이다. 이들은 『서총무원장의 선출과정에서 원로회의와 총회의 의결을 거치지 않았으므로 무효이며 서총무원장은 불사음계를 어겨 총무원장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다. ◎불교용어 풀이/총림/3대 교육기관 갖춘 사찰… 총4곳/방장/총림의 최고책임자… 영향력 막강/조실/방장제외한 주지등 역임 큰스님 조계사 폭력사태를 계기로 원로회의·총림·방장등 일반인에게는 생소한 불교용어가 자주 오르내리면서 관심을 끌고있다.시사성 있는 불교용어의 뜻을 알아본다. ▲총림=불경을 집중적으로 수학·전수하는 강원과 선을 닦는 선원,계율을 전문적으로 학습하는 율원등 불교계 3대 교육기관을 종합적으로 갖춘 사찰을 일컫는다. 현재는 해인사·송광사·통도사·수덕사등 4곳의 사찰만이 3대 교육기관을 모두 갖추고 있는 총림이며 나머지 사찰은 강원·선원·율원 가운데 1∼2개의 교육기관만 두고 있다. ▲방장=조계종 25개 교구 본사 사찰 가운데 종합적인 불교교육 기관을 갖춘 총림의 최고 책임자. 따라서 해인사 해인총림 혜암스님,송광사 조계총림 승찬스님,통도사 영축총림 월하스님,수덕사 덕숭총림 원담스님등 4대 총림의 방장들은 사찰의 규모만큼 불교계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있다. 이들 가운데 혜암스님과 원담스님은 원로의원이다. 방장은 총림의 추천에 따라 중앙종회에서 추인한뒤 임명되며 임기는 10년. ▲조실=본래 3대 불교교육 기관의 하나인 선원이 있는 사찰및 암자의 큰스님을 일컬었으나 지금은 선원이 없는 사찰이라도 주지등을 역임한 큰 스님을 말한다. 조실은 신분의 높고 낮음을 나타내는 직급이 아니라 방장을 제외한 큰 스님의 총칭이며 추대절차를 거쳐 선임되는 자리가 아니기 때문에 행정적인 권한은 갖고 있지 않다. 종정인 서암스님도 봉암사 조실이었다. 송강사조실 일각스님,수덕사조실 응담스님,서암스님,파계사조실 고송스님,천왕사조실 비용스님,백양사조실 지종스님,관음사조실 운경스님,태고사조실 도천스님,대흥사조실 도견스님등 9명은 원로의원이기도 하다.
  • 한인밀집지역 강타… 엄청난 재산 피해/LA강진… 교민사회 이모저모

    ◎코리아타운 가게 생필품 순식간에 동나/약탈대비,재산보호 등 안전대책에 부산/“재난교민 돕겠다”… 거처·음식제공 자원쇄도 ○…17일 새벽 발생한 LA지진으로 한국교포 4명이 숨지고 한인 밀집지역인 샌퍼낸도 지역의 교포가옥 1백여채가 손괴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지진의 진앙지인 샌퍼낸도는 LA시 서북쪽 30㎞지역 일대로 한국교민 8천여 가구 3만여명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피해를 본 한인 가옥중 40∼50채는 크게 손괴됐고 40여채는 벽이 갈라지고 굴뚝이 무너졌으며 한 한인교회가 전소된 것으로 전해졌다. ○방송 7시간 중단 한편 지진대가 지나가는 LA시내 코리아타운은 지진이 발생한뒤 전역에 걸쳐 전화와 전기가 끊기고 7시간여동안 한국어방송이 중단돼 10만 교포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이번 지진으로 코리아타운에 거주하던 조중훈 한진그룹회장의 고모 나기봉 할머니(본래성 조·91)가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코리아타운의 올리브 노인 아파트에 살던 나할머니는 지진이 나자 1층으로 대피했다가 심장마비로 쓰러져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고. 또 진앙지에 가까운 노스리지시의 메도우스 아파트 거주 한국교포 3가구중 이필순(남·40대)씨 가족은 큰아들 하워드 이(15)와 이씨가 사망하는 큰 불행을 당했으며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남자아이가 밴나이즈의 아파트에서 사망했다. ○영사관 비상돌입 ○…이번 지진의 피해당사자이기도 한 LA 한국총영사관은 날이 밝자 영사관 5층 회의실에 대책본부를 설치하고 교민피해상황을 점검하는 한편 안전대책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총영사관은 비상 연락망을 가동하면서 교포 방범단체,청년단체등에 피해지역에 나가 구조활동을 펴줄 것을 촉구. 총영사관은 지진이 발생한 직후 전화선이 끊겼으나 17일 하오1시(현지시간)부터 통화가 가능해져 워싱턴대사관 및 서울과 연락을 취하는등 분주한 움직임. ○…LA시 가든 글로브 지역에서 사업을 하는 윤영곤씨(35·홀리토피아 필름 컴퍼니)는 『17일 새벽내 배를 탄것처럼 땅이 온통 울렁거리는 바람에 공포에 떨다가 날이 밝아 아파트 정원에 내려와보니 지진으로풀장에 가득 담겨 있던 물이 주변으로 넘쳐 흘러 절반도 남아있지 않더라』며 당시의 끔찍한 상황을 설명. 그는 『새벽에 갑자기 아파트 전체가 요람을 탄듯 흔들려 잠을 깨보니 천장이 갈라지고 벽에 걸어놓은 액자가 떨어지는 등 집안이 엉망진창이 돼 순간적으로 지진임을 느꼈다』면서 『그후에도 50여차례 여진이 계속돼 이불을 뒤집어쓴채 꼼짝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날이 밝을때까지 공포에 떨어야 했다』고 악몽의 순간을 회상. ○식수까지도 바닥 ○…17일 새벽에 덮친 지진으로 생필품 수요가 갑자기 늘어나면서 LA 한인촌의 슈퍼마켓 등 상점엔 순식간에 물건이 동이 났다고. 코리아 타운에 사는 교포 임은숙씨(30·나드리 여행사 대표)는 비상약과 비상식품뿐 아니라 건전지,식수까지도 날이 밝자마자 바닥났다고 전언. 임씨에 따르면 17일 새벽 4시30분께 첫진동이 있은뒤 하오3시20분쯤(현지시간)또다시 큰 여진이 있었고 전후 50여차례의 크고작은 여진이 이어졌다고.또한 여진이 계속되자 코리아타운에서는 하오5시부터 통행금지와 검문검색이 실시되고 외출을 삼가라는 안내방송이 나오는등 주방위군 경찰등의 약탈사태 방지조치가 취해졌다고. ○…워싱턴의 한승수주미대사는 17일 LA총영사관으로부터 수시로 상황보고를 받는등 교민피해상황 파악 및 대책수립에 부심.한대사는 피해지역이 교민들이 많이 사는 지역이어서 걱정이라며 코리아타운에서의 약탈행위 보도에 대해 『전기가 끊어지는 등의 틈을 노려 약탈행위를 하는 자들이 있다는 얘기는 있으나 한국교민피해는 아직 확인된바 없다』고 설명. ○…한인 중산층 1만여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는 LA시내의 고급 주택가 로스리지 지역에서는 지진피해를 입지 않은 집이 하나도 없을 것이라는게 교민들의 일치된 의견. 이 지역은 17일의 지진으로 한결같이 집이 통째로 넘어졌거나 벽이 갈라지는 피해를 입은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 ○…피해지역은 특히 전기가 나가 암흑세계를 방불케 했는데 코리아 타운 일대는 92년 흑인폭동때와 같은 약탈사태를 우려,값나가는 물건들을 안전한 곳으로 옮기느라 17일 하루내 부산한 모습. ○항공편 문의 빗발○…교포들의 탈LA 현상도 뚜렷했다.이날 KAL,아시아나 항공사에는 서울행 자리문의 전화가 빗발쳤고 마침 LA에 와있던 관광객들도 서둘러 다음 행선지로 떠나려는 모습들. ○…이번 재난중에 교포사회에 나타난 특기할 현상은 어려운 이를 돕겠다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점.이날 각언론사에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연결해달라는 전화가 적지 않았다고. 전화를 걸어온 이들은 거처를 잃은 사람들에게 방을 제공하겠다는 사람에서부터 음식을 제공하겠다는 사람,건물 경비를 맡아주겠다는 사람 등이었다고. ◎국내 여행업계·시민 움직임/관광단 일정조정·항공편은 정상운항/안부전화 평소의 10배… 10만여건 폭주 ○…국내여행사들은 미 LA지역의 지진발생에 따라 당분간 이 지역으로 관광객을 보내지 않을 방침. 18일 국내관광업계에 따르면 한진관광·롯데관광을 비롯한 국내 여행업체들은 지진발생으로 현지의 상황이 안전하지 못하다고 보고 이미 모집된 관광단 일정을 연기하고 신규 모집도 중단키로 결정. 한진관광은 거래호텔인 LA힐튼호텔의 경우 피해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으나 일부지역의 교통통제가 계속되고 있는 점등을 감안,앞으로 4∼5일동안 이 지역에 관광객을 송출하지 않기로 했으며 롯데관광도 LA행 관광단의 신규 모집을 잠정 중단. 또 대한여행사는 하와이등지를 거쳐 LA로 향하는 3∼4종의 패키지관광 상품의 판매를 중단하고 이미 모집돼 있는 관광객단의 출발일정을 조정하는 등의 긴급대책을 마련. 현재 LA에 있는 한국인 관광객의 피해는 지금까지 없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편 이번 지진으로 LA공항이 전기가 끊겨 한때 공항이 폐쇄되는 바람에 17일 하오 10시30분 현지를 출발할 예정이던 대한항공 083편 화물기가 3시간 40분이나 늦게 떠났다.그러나 서울발 LA행은 대한항공 002편 첫 여객기가 18일 상오 11시 55분 출발하는등 모두 정상적으로 운항했다. ○…강진이 발생한 미국 LA지역에는 17일 밤부터 교민들의 안부를 묻는 국내 가족·친지들의 국제전화가 쇄도했다. 한국통신에 따르면 지진발생후 LA와의 통화량은 자동통화(001)의 경우 하루평균 4천건 보다 20배 가까이 늘어난 7만6천건이 폭주했고 수동통화량도 평소보다 10배이상 증가한 5천4백건이 신청됐다. 또 데이콤 국제전화(002)도 17일 하오 10시부터 18일 상오 7시까지 미국지역으로 시도한 통화량이 평소보다 7배 늘어난 7만3천건을 기록. 한국통신은 LA로 통하는 국제전화 7백45회선 가운데 일부가 두절돼 18일 현재 1백46회선을 복구중에 있으며 LA시내의 213국,714국,818국,310국,909국번 지역만 불통이고 나머지 지역은 통화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 선내 시신 120여구 확인/여객선 참사

    ◎수습현장 UDT 대원 등 선체인양 준비/사체 부패 시작… 신원확인에 애로/유족 8백여명에 설명회 열기도 12일 상오 8시부터 실시된 서해훼리호 선체 및 사체인양작업은 예상보다 훨씬 어려웠다. 해군과 해경의 경비정 등을 타고 침몰지점에 도착한 해난구조대원(SSU)과 해경잠수요원들은 산소용접기와 해머 등 장비를 갖고 선체에 신속히 접근했다. 그러나 수심15m 아래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누운 상태에서 3분의 1쯤이 갯펄에 박혀있는 서해훼리호에는 로프 등이 선체 곳곳에 걸려있어 일일이 로프를 제거하고 사체수색에 나서야 했다. 한치앞을 분간할 수 없을 만큼 수중시계가 나쁜데다 2층 선실 유리창을 깨고 들어간 선실안은 화물과 사체가 뒤엉켜 있어 인양작업은 신속히 진전되지 못했다. 특히 선체안은 시정거리 제로의 칠흑같은 어둠이어서 손으로 더듬어가며 필사의 작업을 벌였다.수색결과 구조대원들은 선내에 1백20여구의 사체가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또 선체를 끌어내기 위한 준비작업으로 갯펄을 파내고 선체 앞뒤에 체인을 연결할 직경 2m의구멍을 뚫는 작업도 만만치 않았다. ○…상오 8시45분쯤 사고선박인 훼리호에서 첫 인양된 여자사체 1구 등 정오까지 모두 사체 10구를 검안한 목포작전사 소속 군의관 김현수소령(34)등 11명의 의료진들은 부패가 시작된 사체의 신원을 확인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사체및 선체인양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각종 미확인 소문들이 떠돌아 유족들이 사고수습본부등을 찾아 사실여부를 확인하는등 항의가 속출. 사고 현지인 위도와 격포,군산지역에는 「사체인양작업이 중단됐다.이는 사고원인을 은폐하기 위해서다」 「인양작업 지연으로 사체가 부패해 형체도 알수없다」는등 정체불명의 소문들이 꼬리를 물어 수습본부는 이를 해명하느라 곤욕을 치르고 있다. 이에따라 수습본부는 이날 상오 11시30분 운동장에서 8백여명의 유족들에게 사체와 선체 인양작업에 대한 설명회를 개최했다. ○…전북도 재해대책본부는 사망자 1인당 2백만원씩의 장례비용을 지급하기로 결정.이날까지 대책본부에 1백40여명,부안군 사고수습대책본부에 1백33명 등 모두 2백73명의 실종자신고가 접수됐으나 이들 가운데 60∼70여명이 중복신고된 것으로 드러났다.대책본부는 이날 생존자숫자를 67명에서 68명으로 정정했는데 이는 구조직후 곧장 귀가한 생존자가 뒤늦게 구조사실을 알려왔기 때문. 사망자 가운데 서순애(55·여) 송복순씨(40·여)등 위도 주민 2명의 장례식이 12일 위도면 치도에서 치러졌다.한편 이번 사고로 63명의 희생자를 낸 위도 주민 3백명은 이날 상오 9시30분쯤 위도 파장금항에 모여 위도∼격포간 운항을 위해 임시로 배치한 완도 카페리2호가 건조된지 오래돼 사고가 날 우려가 높다며 다른 여객선으로 바꿔줄 것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다 이곳을 방문한 정부관계자들로부터 최신형 여객선으로 교체해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해산했다. ◎황인성총리 등 성금 서해훼리호 침몰사고 유족을 돕기 위한 각계의 성금이 답지하고 있다. 전북도와 도내 19개 시군 2백68개 읍면동에 설치된 2백90개소의 성금 접수창구에는 12일 현재 5천2백15만원의 성금이 접수됐다. 이와함께 이날 황인성 국무총리와 김종필 민자당대표,황명수 민자당사무총장,이기택 민주당총재등이 유족들을 위해 써달라며 금일봉을 기탁했다. 또 이원종 서울시장과 직원일동이 5천만원의 성금을 보내왔으며 윤한도 경남도지사와 직원일동이 2천만원,이강년 전북지사와 도청직원 일동이 1천만원,노장탁 정읍군수등 직원일동이 1백15만원을 각각 기탁했다.
  • 약사회장직대 철야조사/검찰/휴업주도 간부등 53명도 전격소환

    ◎약사회관 3곳 어제 압수수색/공정위선 “부당행위” 검찰고발/난동사건관련 1명 첫 구속 약사들의 집단휴업사태를 수사중인 검찰은 대한약사회의 휴업철회결정과 관계없이 집단휴업을 결정한 주동자에 대해 사법처리키로 하고 본격수사에 나섰다. 서울지검 형사2부(김영진부장검사)는 25일 경제기획원 산하 공정거래위원회가 대한약사회 김희중회장직무대행과 김기성사무총장·한석원서울시지부장직무대리 등 3명을 고발해옴에 따라 이날 하오 10시쯤 이들을 전격 소환,철야조사를 벌였다. 검찰은 이들을 상대로 대한약사회가 휴업을 결의하게 된 경위 등에 대해 집중조사한 뒤 혐의 내용이 확인되는대로 26일중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구속할 방침이다. 검찰은 대한약사회가 집단휴업을 결의한 것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의 제26조 3항에 규정된 「사업자 단체가 그 구성원의 사업내용 또는 활동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행위」에 해당된다고 설명했다. 이 조항을 위반할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이나 1억5천만원 이하의 벌금을물리도록 규정돼 있다. 검찰은 또 지난 22일 약사회관에 들어가 회의도중 기물을 부수는 등 난동을 부린 대한약사회 경북 의성분회 부분회장 이필재씨(35)가 자수해옴에 따라 이씨를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혐의로 구속수감했다. 검찰은 이에 앞서 이날 법원으로부터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아 대한약사회와 약사회 서울시지부 등 2곳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회의록과 회원명부 등을 수거했다. 한편 검찰은 이날 하오 3시부터 9시까지 서울지검 본·지청의 검찰 수사관 80여명을 16개반으로 편성,문을 열지않은 서울시내 약국들에 대한 일제단속을 벌였으나 90% 이상의 약국이 영업활동을 재개한 것으로 확인했다고 말했다. 검찰은 그러나 문을 열지 않은 것으로 확인된 50여개의 약국에 대해서는 약사의 신원을 파악한 뒤 이들이 보사부의 고시를 무시한 채 계속 약국영업을 하지 않은 것인지 여부 등에 대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
  • 「실명은행」 월급찾기 장사진/“수표사절” 현금인출 러시

    ◎1백여명 줄서 돈찾는데 1시간/신원확인까지 겹쳐 종일 북새통/지점마다 임시창구 설치… 만원권 동나 「수표는 싫고 현금으로 주세요」. 금융실명제 실시이후 대부분 회사의 첫 월급날인 25일 각 시중은행창구에서는 월급을 찾으려는 고객들이 한꺼번에 몰린데다 거의 모두 현금으로 인출,사상 최대의 현금인출사태가 빚어졌다. 이때문에 일부 시중은행에서는 준비해둔 현금이 동나기도 했으며 일부 지점에서는 몰려드는 고객의 편의를 위해 임시 지급창구를 설치하기도 했다. 특히 고객들의 상당수가 돈을 찾으면서 동시에 실명확인을 받는 바람에 모든 은행창구와 현금자동인출기 앞에는 평소의 2∼3배가 넘는 30∼60명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바람에 돈을 찾는데 1시간이상 걸리는등 대혼잡을 빚었다. 또 남편의 주민등록증등을 갖고 나오지않아 돈을 찾지 못하고 되돌아가는 주부들도 많았으며 일부 주부들은 급하게 주민등록등본을 떼 오거나 의료보험카드를 이용해 현금를 인출해 가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은행관계자들은 『월급이 통장으로 입급되는 고객들은 물론이고 자체적으로 돈을 찾아 월급을 지급하는 기업들도 사원들의 요구에 따라 수천만원을 모두 현금으로 찾아가고 있다』면서 『이같은 현상은 27∼28일까지 계속 될 것으로 보여 현급수요는 더욱 늘 것』이라고 말했다. 조흥은행 서대문지점의 경우 종전에는 80∼90%가 10만원권수표로 찾아갔으나 실명제 실시이후 거의 모든 고객들이 현금을 요구한데다 고객도 2∼3배 정도 몰려 평소 월급날보다 2배이상 준비해놓은 돈이 거의 동났다. 기업체들이 많이 몰려 월급통장이 많은 한일은행 소공동지점에서는 지급창구를 4곳에서 6곳으로 늘렸는데 실명확인만도 평소의 배가 넘는 1천명이나 됐다. 동화은행 본점창구에서도 평소 한 창구에 50여명에 지나지 않던 고객이 1백50여명씩이나 몰렸다.이 은행의 한 창구직원은 어떤 중소기업에서는 직원들의 월급 2천만원 전부를 현금으로 인출해갔다고 말했다. 외환은행본점에는 지난달 25일의 배가 넘는 1천2백50명이 들이닥쳐 돈을 인출해갔는데 하오4시가 넘어서도 1백여명이상이 차례를 기다렸다. 국민은행여의도지점 노상호대리(40)는 『현금대량인출사태에 대비 평소보다 3억원이 많은 7억원을 준비했다』면서 『아침시간부터 월급날을 맞아 돈을 찾으려는 사람들로 붐벼 1분이라도 자리를 뜰수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 은행 신사동 지점에서는 가장 고객이 적은 점심시간 직전인 상오 11시부터 12시사이에만도 3백여명이 한꺼번에 몰리는등 하루내내 혼잡을 이뤘으며 지난달 25일보다 현금이 1억원이나 더 인출됐다. 이 은행 오병균대리(40)는 과거에는 수표로 찾아갔을 2백만∼3백만원도 모두 현금으로 찾아갔다』고 말했다. 하오4시10분쯤 중소기업은행 여의도지점에 돈을 찾으러간 이선희씨(20)는 『십만원정도를 찾으러 왔는데 평소 15분정도 걸리던것이 오늘은 30분이상 소요됐다』고 말했다.
  • 대한매일신보에서 서울신문까지(겨레의 맥박으로 89년:1)

    ◎여명기의 민족지/“항일구국” 염원안고 대한매일신보 탄생/국운 기울어 암울했던 1904년 창간/주권수호 앞장서며 숱한 고난/해방직후 서울신문으로 속간/초대사장에 오세창 취임… 권동진·홍명희 고문에 영입 「대한매일신보」에서 「서울신문」까지,그 시대는 고난으로 점철되었다.1904년 국운이 기울어가는 암담한 나라 운명속에서 한가닥 빛으로 창강된 대한매일신보.그 항일구국지가 1945년 서울신문으로 거듭 태어나기까지는 파란만장한 우리 근·현대사를 함께 살았다.당시 민족의 생존이 그렇듯 일제의 모질고 간교한 탄압에 쓰러진 대한매일신보의 맥락은 서울신문이 잇고있다.일제 강점기 사이에 변화도 없지 않았으나 서울신문의 뿌리는 분명히 대한매일신보에 두었다.그 위대한 항일구국지 창간 1세기를 불과 1년 앞둔 오늘,그 역사를 조명하여 서울신문의 연륜을 다시 헤아리고자 한다. 「대한매일신보」는 대한제국 말기 6년동안 항일언론의 최선봉에서 민족주권 수호의 기치를 높이 들었던 가히 전설적인 신문이었다.근대 언론사에서 「다시 없는민족의 대변기관」으로 평가 받는 이 신문은 나라 안팎이 매우 복잡한 시기에 발행됐다. 국제적으로는 동아시아의 새로운 세력으로 등장한 일본이 한국의 지배권을 열강으로부터 승인받아 한국을 실질적으로 장악하던 때이기도 했다.그리고 국내정세는 일본의 한국지배를 반대하는 민족운동이 불길처럼 치솟던 시기였다. 특히 나라안에서는 일본의 한국 황무지 개간권을 막으려는 민중운동과 함께 의병 무장투쟁,국채보상운동,애국계몽운동등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대한매일신보는 이러한 격동의 시기에 창간되어 항일구국의 가시밭길을 걸었다.창간한 사람은 영국인 배설(Ernest Thomas Bethell·1702∼1909년)이다. 러·일전쟁때 취재차 한국에 왔던 런던의 데일리 크로니클 특별통신원인 그가 한글전용인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 날짜는 89년전인 1904년7월18일로 돼있다.영문판 「코리아 데일리 뉴스」도 동시에 창간했다. 창간에 참여한 인사들의 면모를 보아도 쟁쟁하다.당대의 언론을 주도했던 논객이자 우국지사였던 양기탁을 비롯,박은식·신채호·옥관빈등이 그 주역들. 나중에는 안창호·이갑등 구국운동조직인 서북학회의 인사들도 뛰어들었다. 창간호(타블로이드판)는 한호의 지면이 6면으로 4면은 영문,2면은 한글전용의 2개국어 신문체제였다.그러나 이듬해 8월에는 국한문 혼용판과 영문판 「코리아 데일리 뉴스」(The Korea Daily News)를 분리,2종을 발행했다.1907년5월에는 한글전용 「대한매일신보」를 새로 창간,3종의 신문을 한꺼번에 펴 냈다.국한문·영문·한글등 3종의 신문이 발행되기는 한국 언론사상 초유의 일이다. 황실(고종)의 은밀한 재정적 뒷받침과 민족진영의 도움을 받았다.이러한 정황으로 미루어 대한매일신보의 논조는 처음부터 반일구국일수밖에 없었다.그 첫 지탄공격은 황무지 개간권 요구의 부당성을 지적하면서 시작됐다.이를 시발로 황성신문의 「시일야방성대곡」전재,샌프란시스코의 친일 미국인 스티븐스 저격사건보도,영국의 트리뷴지에 실린 고종밀서사진 전재등 기사와 논설로 항일언론의 횃불을 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의 입장에서는 이 신문의 강력한 반일논조야말로침략정책을 수행하는데 있어 가장 큰 저해요인이었다. 일본은 이에 대응,「경성일보」(일어)「Seoul Press」(영어)등 통감부의 기관지를 직접 발행하여 언론대응공세를 취하기 시작했다.또 한편으로는 「대한매일신보」에 대한 외교적 압력과 사법적인 탄압을 가했다.외교적 압력은 영국측에 대해 배설의 추방요구로,사법적 탄압은 통감부의 신문압수 형식으로 진행됐다. 그러나 「대한매일신보」의 항일언론 자세는 좀체 꺾이지 않아 국한문판 24차례,한글판 21차례의 압수를 당하면서도 여전히 지속됐다.민족진영의 언론보루로서 이처럼 항일언론을 펼칠수 있었던 것은 이 신문이 영국인 소유여서 치외법권을 누릴수 있었기 때문이었다.이 신문에 몸담고 있던 항일언론투사들의 민족사상과 구국정신이 그같은 논조를 주도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대한매일신보」가 남긴 족적중 또한 특기할만한 것은 이 신문이 주동이 되어 벌인 국채보상운동이었다.이는 을사보호조약이후 일본으로부터 얻은 나라의 빚 1천3백만원을 국민의 성금으로 갚아 일본의예속에서 벗어나려는 일대 구국운동이라 할 수 있다. ○우국지사 대거 참여 대한매일신보는 이 운동의 중심기관이 되던 시기에 사세를 크게 신장,발행부수가 1만부를 넘어섰다(1907년 9월3일 기준 국한문 8천,한글3천부).이같은 발행부수는 그때까지 한국언론사상 최고의 기록이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강경한 논조를 터뜨리던 이 신문은 일본 통감부의 집요한 탄압끝에 배설의 상해옥살이와 양기탁의 구속으로 물이 꺾이기 시작했다.그후 배설이 숨지면서 이 신문은 더욱 기울어졌으며 영국인 만성(Alfred Marnham)이 사장직을 인수받았다.그러나 영·일간의 외교문제를 꺼리던 주한 영국총영사 보나르(Bonar)와 통감부의 회유및 압력을 받아 1910년 5월21일 결국 통감부에 팔리고 만다.국권수호의 상징적 존재였던 「대한매일신보」가 마침내 비극적인 종언을 고한것이다.그때의 지령은 제1461호(국한문판)였다. 그리하여 「대한매일신보」는 한일합병 이튿날인 1910년 8월30일부터 제호가운데 국가를 상징했던 두글자 「대한」을 빼앗겨 버린다.「대한」이 없어진 「매일신보」는 결국 통감부의 기관지로 전락하는 것이다.그러면서도 「매일신보」는 그러나 「대한매일신보」의 국한문판 종간호인 제1461호(1910년 8월28일)의 지령을 계승,제1462호부터 국한문판을 발간했다.(한글판은 제939호부터) 이 날짜의 사설제목은 「동화의 주의」로 나온다.제국주의 36년간의 일본 전위역할을 이렇게 상징하고 일제 선전기관으로 얼굴을 바꾼 매일신보는 이틀만인 9월1일 대한제국의 기관지 성격이던 한양신문(전대한신문)까지 합병한다.국한문판과 한글판의 두가지 신문을 발행하는 유일한 한국어 신문이었지만 한국인이 만드는 한국의 소리는 담기지 않았다.이는 「일선융화와 세도인심의 감화유도」를 내건 일제의 어용언론활동의 전주곡이었다. 경영의 측면에서 경성일보사에 흡수통합,경일편집국의 한부서로서 철저하게 총독부기관지 역할을 수행한 매신은 그후 3·1운동의 결과로 일제의 무단정치가 표면상 문화정치로 바뀌면서 1920년 독립된 편집국으로 확대 승격됐다.그리고 1929년에는 한국인 편집국장이 임명된데 이어 1930년 한국인 부사장이 처음 기용되어 다소 편집제작의 재량권이 이루어지는듯 했다. 그러나 매신은 철저하게 일제의 입장에서 만들어져 편집방향은 「내선일체」를 고수했다.이러한 목적을 위해 총독정치의 선전과 홍보를 위주로 했으나 민족민간지들의 논조를 반박하거나 민족진영을 비난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일제의 비호속에 이같은 논조로 일관하던 매신은 기구를 확대,경성일보사에서 분리하게 됐다.1938년 4월16일 독립된 언론기관으로서 제호를 매일 「신」보로 고쳐 새로 출발한 것이다. 매신이 경일과 맞붙은 지금의 프레스센터 자리에 4층 콘크리트 사옥을 짓고 들어선 것은 바로 이때였다.하지만 경일은 매신의 주식 45%를 소유한 대주주로 남았고 여기에 총독부 소유의 주를 포함한다면 매신의 경일예속은 이전과 조금도 다를바 없는 셈이었다.매신의 일제옹호논조 또한 해방직전까지 변함없이 이어졌다. 그러나 일제는 패망했다.1945년 8월15일 마침내 조국광복을 맞았다.매신은 이러한 오욕의 역사를 청산하고 「해방조선의 대변기관」으로서의「서울신문」으로 거듭나기위해 대대적인 개편수술을 받게됐다.한반도에 진주한 미군정청이 그해 10월2일 매신을 접수,매신 한인주주총회를 열어 새중역진을 구성토록 종용했다.이에따라 10월25일 주총이 열려 「서울신문」이라는 새로운 제호와 오세창을 사장으로하는 간부진용이 결정됐다.이 무렵은 사장 이성근이 지난날의 과오를 전사원에게 사과하고 자퇴한뒤 사원자치위원회에 의해 신문이 발행되던 때였다. 경영간부가 없는 상태에서 신문을 만들어오던 6백명의 자치위는 그러나 주총의 간부진용결정에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다.주총결정은 자치위와 사전협의를 거치지 않은 것이라는게 그 표면적 이유였으나 실상은 간부진용에 우익인사가 너무 많은데 불만을 품은 때문이었다. 그동안 비교적 관망상태에 있던 미군정당국은 11월10일 재산조사를 이유로 매신에 정간명령을 내렸다.매신이 정간되던날 자치위는 「3천만 민중의 정당한 공기」로서 신문이 새롭게 출현해야 한다는 종래의 입장을 재확인 한뒤 일단 한발 물러섰고 이를 계기로 개편실무진과 자취위 사이에 얽혔던 매듭이 풀리기 시작했다. ○한때 총독부 기관지로 미군정당국으로부터 매신개편의 대업을 새로 위임받은 이관구와 하경덕은 재원확보문제와 함께 내외에서 모두 수긍할수 있는 권위있는 인사들로 경영·편집진을 구성하는 작업을 신속하게 추진했다. 초대사장에 위창 오세창이 추대됐다.근대 신문계의 선구자이자 지조높은 민족대표 33인중 한 사람으로서 그가 지닌 사회적·정치적 덕망은 새롭게 등장하는 서울신문의 이미지에 걸맞는 것이었다.위창과 함께 역시 민족대표 33인중 한 사람인 권동진과 당시 문단의 원로격인 홍명희가 고문에 영입됐다. 서울신문 탄생의 산파역을 맡은 저명교육자 하경덕이 부사장에,그리고 사려 깊은 논조를 감당할 주필에는 항일언론의 선봉에 섰던 이관구가 선임됐다. 이러한 일사천리의 준비작업은 21일 5층 옥상에서 가진 오세창사장의 취임식으로 그 결실을 보게됐다.해방의 감격과 함께 독립한 이 민족의 진실된 언론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자임하면서 서울신문이 마침내 그 첫 지면을 이 땅에 선보인 것이다. 이날이 1945년11월22일이었는데 신문은 11월23일자로 발행됐다. 이때의 서울신문 지령은 대한매일신보→매일신보→매일신보를 그대로 계승,제13738호를 기록하기에 이른다.그 고난의 역사를 마감하고 또 다른 시련의 역사를 향해 서울신문으로 거듭 태어난 것이었다. □연보 ◇대한매일신보(1904·7·18∼1910·8·28) ▲1904년 7월18일 창간 ▲편집겸 발행인 배설,총무 양기탁취임 ▲1910년 5월21일 통감부가 매수 ▲1910년 8월28일 국한문판 1461호,한글판 938호로 종간 ◇매일신보(1910·8·30∼1938·4·28) ▲경성일보에 흡수 통합,1910년 8월30일 매일신보로 개제발행(지령은 대한매신을 계승) ▲경성일보사장 길야태좌위문 취임(매일신보사장 겸임) ▲1912년 3월1일 국한문판과 한글판을 한글전용으로 합간 ▲1938년 4월28일 매신의 제호로 최종발행(지령11 012호) ◇매일신보(1938·4·29∼1945·11·10) ▲경일에서 분리독립,제호를 매일신보로 개제발행(지령은 매신을 계승) ▲사장 최린,부사장 이상협취임 ▲1945년 11월10일미군정에 의해 정간 ◇서울신문(1945·11·23∼현재) ▲1945년 11월23일 매신을 서울신문으로 개제발행(지령은 매신을 계승) ▲초대사장 오세창,고문 권동진 홍명희,부사장 하경덕,전무 김동준,주필 이관구취임
  • 까다로운 심사에 낮아진 경쟁률/민자 공천신청마감 결과 분석

    ◎청송­영덕 의성등 취약지구에 대거몰려/기업인등 20여명 구설수 우려 비밀신청/26일부터 3일간 합숙심사… 70%는 정리 끝난 듯 민자당이 21일 닷새간의 공천신청접수를 끝내고 14대 총선후보를 선정하는 작업에 돌입했다. 실무공천작업팀은 이날 저녁부터 합숙하며 공천자료정리를 시작했으며 앞으로 열흘후면 집권당 공천자가 확정된다. 여당 공천이 결정되면 일부 탈락자들의 야당행이나 무소속 출마 등 전체 선거구도가 잡히기 때문에 정치권의 관심이 민자당 공천과정에 집중되고 있다. 이날 마감된 민자당 공천신청접수결과 전체 경쟁률은 당초 예상을 밑돌았으나 여권 아성인 영남지역등은 상당수가 10대1에 육박하는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영남은 10대 1 육박 ○…이날 하오 늦게 문을 닫은 민자당공천신청 접수창구에서 집계된 공천경쟁률은 2·9대1로 집계돼 당초 예상보다는 다소 저조. 당관계자들은 이에 대해 『서울대 입학 경쟁률도 2대1밖에 되지 않는다』(조용직부대변인)라는등 공천신청자의 양보다 질에 주목해 줄 것을 요청. 당사무처에서는 구여당인 민정당의 13대 공천경쟁률(7대1)보다 크게 낮은 원인으로 ▲신청절차가 까다로워진 점▲당소속 현역의원이 많은 점을 적시.즉 13대 공천에서는 시·도지부에서도 공천신청을 받았기 때문에 「매명」을 노린 질낮은 지원자들이 대거 몰려든 반면 이번에는 과거 10년전까지의 전과 유무를 확인할 수 있는 신원등본 첨부를 요구하는등 신청요건을 대폭 강화했기 때문이라는 분석. 또 현역위원장의 위상이 확고한 지역은 경쟁률이 약한 반면 취약지구당으로 거론되는 지역에는 공천희망자들이 난립해 대조. 예컨대 ▲청송·영덕 ▲오산·화성 ▲거창(11대1로 전국최고) ▲동대문갑 ▲구로병 ▲예천 ▲의성 ▲충주·중원등이 모두 7대1을 웃도는 높은 경쟁률을 기록. 이에 반해 전북 익산에는 1명도 신청하지 않는 등 호남지역의 대부분 지역구에서는 경쟁률이 극히 저조해 이 지역에서 민자당의 취약성을 그대로 반영. 자신들의 공천탈락에 대한 감을 미리 잡은 권정달·이용택·김정남씨등 일부 5공인사 및 구민정당위원장들이 탈당을 선언한 것도 공천경쟁률을 낮추는 방향으로 작용. 한편 민자당관계자들은 강원 등 일부지역에서 「돈」에 매력을 느낀 일부 친여인사들이 정주영씨의 국민당쪽으로 선회한 것도 공천경쟁률을 떨어뜨린 요인으로 분석하면서 강원지역에 대한 총선대책이 시급함을 역설. ○…공천신청마감일인 이날 이종찬(종로)나웅배(영등포을)김덕용(서초을)의원등 서울지역 민정·민주계 핵심인사들이 나란히 신청서류를 접수. 청와대인사로는 김현동 전비서관이 첫날 청송·영덕에 공천을 신청한 이래 이날 임재길총무수석(연기)이양희정무비서관(대전동갑)곽순철민정비서관(서울 송파을)등이 차례로 공천신청. 곽민정비서관이 공천을 노리고 있는 서울 송파을에는 공화계의 조용직부대변인도 이날 공천신청서를 제출해 한판 격돌이 불가피할 듯. ○이명박씨 접수안해 영입인사로 거론되던 박희도 전참모총장,이연택 전총무처장관,강현욱 전기획원차관도 창녕,전주을,군산에 각각 공천신청서를 냄으로써 공천자로서 내정된 것이 확실시되는 상황. 당초 부산의 신설구인 강서구를 택할 것으로예상되던 민주계의 신상우의원이 북을에 신청서를 접수시킴으로써 민정계의 장성만 전국회부의장과 공천경쟁이 볼만할 것으로 예상. 박세직 전서울시장도 구미에서 출사표를 공식으로 던져 사촌형제간인 박재홍의원,박준홍씨간의 공천다툼에 끼어듦으로써 구미의 민자당공천방향도 한층 혼미해졌다. 공천신청 마감결과 경합자가 없는 단일 신청지역은 여권내 유력인사가 포진하거나 지구당 관리가 견실한 곳으로 알려진 ▲서울 용산(서정화의원) ▲부산 동(허삼수전의원) ▲충북 제천시(이춘구의원)등 모두 65곳으로 사실상 공천이 확정된 셈. ○…공천탈락시 구설수에 휘말릴 가능성을 우려하는 일부 인사들과 당지도부의 「교통정리」가 덜 끝난 지역구를 희망하는 일부 유력인사들은 비밀리에 공천을 신청해 눈길. 대구중,서을,달서등 3곳을 놓고 막판까지 저울질을 계속해오던 강재섭기조실장은 일단 이날 상오 공천신청서를 비밀접수시켰는데 당주변에선 대구 서을 지역구(최운지의원)에서 「낙점」을 예상하기도. 공천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강기조실장이외에도 공천탈락시 불이익을 염려하는 20여명의 기업경영인과 현직 고위 관리들이 비밀 접수. 한편 강남갑지역구 공천내정설이 나돌던 이명박전현대건설회장은 끝내 공개·비밀 신청을 모두 하지 않았는데 당주변에선 전직 장관등 유력인사들과 함께 공천신청과 관계없이 영입케이스로 서울 강남 일원의 지역구에 낙점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전망. ○…민자당은 공천심사위구성에 앞서 22일 당무회의를 열고 조직강화특위부터 구성할 예정. 이는 부산 사하,경남 김해및 진해·창원,전남 무안등 4개 미창당 지구당조직책임명을 위해서는 당헌상 조직특위구성이 필요하기 때문. 김해지구당 조직책으로는 이날 공천신청을 낸 김영일 청와대사정수서비서관,무안지구당위원장으로는 안희석명동극장대표가 각각 내정되어 있고 진해·창원의 새 조직책은 배명국전의원이 유력시되고 있다. 사하지구당의 경우 최용수 전민정위원장이 조직책으로 거론되고 있으나 무소속 서석재의원과 김영삼대표간의 특수관계를 고려,조직책임명을 보류할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 22일 당무회의에서 구성될 조직강화특위는 사실상 공천심사위원회로 이어질 전망인데 민자당은 공천심사위원합숙을 당초 예정보다 하루 늦춰 일요일인 26일부터 시작해 2박3일간 단기작업을 거쳐 28일 1차 공천자를 내정한뒤 29일 당무회의및 최고위원보고,30일 대통령재가를 받고 31일 최종공천자를 발표할 예정. ○오늘 조강특위 구성 공천심사위원들의 합숙장소는 13대때와 마찬가지로 외부 보안이 지켜지는 일반 가옥을 물색하고 있으며 대입시험출제처럼 철저히 외부와 차단시킬 계획. 공천심사위가동에 앞서 당기조국요원을 중심으로한 공천실무팀은 공천이 마감된 21일 저녁부터 모 호텔에서 합숙하며 심사자료 재정리를 시작. 민자당은 공천자가 확정되면 다음달 7일 청와대에서 노태우대통령이 주재하는 공천자대회를 가진뒤 당정치교육원에서 공천자들에게 선거지침및 편람을 시달할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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