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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야권통합 갈수록 “안개속”/평민·민주 방법론 갈등의 언저리

    ◎주도권 잡으로 「선 통합」 고수 평민/「당대당」 겨냥,시간벌기 작전 민주/양당 견해차 커 9월국회이전까진 난망 평민·민주 양당의 야권통합에 대한 견해차가 크게 벌어져 통합전망이 더욱 불투명해지고 있다. 이같은 통합노선의 차이는 3일 평민당이 당무지도회의에서 「선 통합선언 후 이견조정」 원칙을 결의한 반면 민주당은 이날 열린 총재단회의에서 「선 협상·이견조정 후 창당선언」 원칙을 재확인함으로써 극명하게 드러났다. 평민당측은 「의원직사퇴 정국」의 분위기를 최대한 활용,평민당 중심의 통합을 이루기 위해 「올코트프레싱」 전법으로 민주당에외압을 가하고 있는 반면 민주당측은 당대당의 대등한 통합을 이루기 위해 「시간벌기」 작전을 펴고 있는 형국이다. 야권통합을 둘러싸고 흐르는 양당의 미묘한 기류차이는 최근 양당의 행보와 당 분위기에서 충분히 감지된다. 평민당측은 당초 김대중총재가 공언한 8월중 조기통합성사 기미가 보이지 않자 조윤형국회부의장·정대철총재특보·김원기 통합협상대표간사 등 중진들을 총동원해민주당측에 「총체적 설득공세」를 펴고 있다. 다시 말해 김원기간사가 지난 1일에 이어 4일 민주당의 김정길간사와 접촉하는등 공식협상채널 이외에 2일 조부의장이 민주당의 이기택총재·박찬종부총재 등과 만난 데 이어 정대철특보가 민주당의 이철사무청장및 김광일·노무현의원 등과 접촉하는 등 비공식협상 채널까지 총동원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평민당측은 민주당에 비해 상대적으로 교감의 폭이 넓은 재야를 끌어들여 우회적으로 「선 통합선언」의 외압을 가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난달 31일 통추회의의 김관석상임공동대표가 이기택총재와 만난 자리에서 「선 통합선언 후 지도체제정비」 방식을 제시하면서 3자회담을 촉구한 것이나 3일 부산 국민연합의 박순보공동대표와 친평민당 성향의 부민련측이 통합열기를 지속키 위해 조기 장외집회 개최를 민주당측에 요청한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다. 이같은 평민당의 속전속결전략은 9월 정기국회직전 야권의 국회등원에 대한 국민적 여론이 비등할 때까지 통합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진퇴양난의 곤경에 빠질 우려가 크다는 입장에 기초하고 있다. 이에비해 민주당측은 원외 위원장들이 김대중총재 2선후퇴론을 전면에 부각시킨 지난달 26일 지구당위원장단회의를 기점으로 「선 이견조정 후 통합」 노선으로 선회하면서 통합협상보다는 당사 이전·하위당직 인선 등 창당 뒷마무리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이총재는 평민당측의 김총재나 통추회의의 김대표의 3자회담 제의에 대해 『15인 통합추진기구부터 가동하자』며 단호히 거절하고 있다. 또 재야측의 부산·광주 등에서의 장외집회 요구에 대해 『8월의 폭염을 피해 민자당 단독국회등 쟁점이 부각되는 9월 정기국회 개원을 전후한 시기가 옥외집회의 적기』라며 반대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 따라서 오는 8일 첫 모임을 갖는 「통합정당 15인 추진기구」에서의 협상도 이같은 양당의 현격한 입장차이로 적어도 9월 정기국회 전까지는 별다른 진전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민주당의 세대교체론과 평민당의 김총재 2선후퇴불가론은 근본적으로 상충되는 입장인 데다 대안으로 생각할 수 있는 「동등지분에 의한 실질적 경선」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뿐더러 평민당측이 받아들일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또 창당기간 뿐만 아니라 창당기간후의 3자 공동대표제를 전제로 통합선언을 할 경우는 우선 민주당의 상당수가 잔류를 선언해 결국은 「부분통합」으로 그칠 공산이 크다. 이밖에 다른 대안으로 이철의원등 민주당의 통합적극론자들이 거론하고있는 잠정기간 동안의 「제3자 대표추대론」은 평민당쪽에서 받아들일 가능성이 별로 없을 뿐만 아니라 창당후 내분이 증폭될 소지가 크다는 지적들이다. 민주당은 70개 원내외 지구당위원장들이 공동대표제라면 괜찮다는 입장에서부터 김총재의 완전한 2선퇴진이 없는 한 절대불가라는 「통합스펙트럼」상의 극심한 편차를 보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같은 민주당의 사정과 김총재가 차기 대권레이스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대전제를 함께 고려한다면 향후 야권통합논의는 「부분통합」으로 전락하거나 아니면 차기 총선이후로 이월되는 것으로 판가름날 수밖에없을 것 같다. 그리고 이같은 갈림길에서 가장 큰 변수는 한때 「경상도에서 배신자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정치를 그만둔다는 각오로」 야권통합을 추진하겠다면서 적극성을 보이다가 다시 통합신중론으로 「U턴」한 이총재의 「계산」이라고 볼 수 있다. 이총재가 일찍부터 양김 이후를 노려온 인물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평민당과 제휴를 통해 향후 정치적 입지를 마련하느냐 아니면 줄곧 세대교체론을 주창하면서 차기 총선에서 민주당을 발판으로 부상을 노릴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다.〈구본영기자〉
  • 몽고 인민혁명당 과반 확보/29일 결선투표

    ◎첫 자유총선… 야 예상밖 선전 【울란바토르 AFP 연합】 몽고 공산화이후 처음 실시된 자유총선 예비선거에서 집권 인민혁명당(공산당)이 당선이 확정된 7백99명중 4백명을 포함시킨 것으로 24일 공식 집계됐다. 선관위는 이같이 중간 개표결과를 공개하면서 인민혁명당외에 갓 창당된 공산화후 최초의 야당인 민주당이 당초 예상보다 많은 1백1명의 당선자를 냈으며 나머지 2백98명은 무소속으로 분류됐다고 밝혔다. 샤라빈 군자도르 총리는 앞서 당선 확정자중 7백3명이 일부 무소속 출마자를 제외하고 대부분 집권당 후보라고 주장했다. 예비선거에서 당선이 확정된 이들 7백99명은 오는 29일 4백30개의 의석을 놓고 결선투표에 들어간다. 비공산계의 야당연합은 수도 울란바토르등 도시지역에서는 어느정도 지지를 받았으나 농촌지역에서는 참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 5ㆍ16­유신등 헌정 굴곡 한몸에/윤보선 전 대통령의 정치 역정

    ◎군사혁명에 “올 것 왔다” 이듬해 퇴진/대권경쟁 2번 실패… 반 박정희 투쟁 93세의 일기로 타계한 해위 윤보선. 그는 고집의 거목정치인이었다. 그의 일대기는 40년 헌정사의 점철된 굴곡을 그대로 투영해 주고 있다. 이 나라 최후의 구 정치인 1세대의 보루를 지켜온 그는 해방후 손꼽히는 과묵한 선비형 정치가로 입신하다가 조병옥박사를 잃어버린 민주당구파가 그를 보스로 추대하면서부터 무섭도록 고집센 지도자가 되었다. 4ㆍ19혁명후 민주당정권시절 실권은 없지만 국가원수인 대통령의 지위에 오른 그는 5ㆍ16군사혁명을 만나 고독한 몸부림으로 대처하다가 박정희씨와 두차례나 대권경쟁을 벌여 패했고 만년에 이르러서는 반독재의 강기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1961년 5월16일 상오 9시30분 윤대통령은 혁명군지도자 박정희장군과 첫 대좌를 하게되자 그 유명한 『올것이 왔구나』하는 탄식을 지었다. 훗날 해위는 이 대목과 관련,군사쿠데타가 오기를 기다린 것이 아니라 『온다고 걱정하던 일이 마침내 현실로 나타났구나』하는 탄식조의 말이었다고 해명했다. 그의 생애중 가장 긴 날은 5ㆍ16 새벽부터 17일 밤까지 40여시간이었다. 윤대통령은 매그루더 미8군사령관의 쿠데타군 진압작전의 승인요청에 『적이 집결하고 있는 휴전선을 눈앞에 두고 아군끼리 피를 흘릴 수는 없다』며 거절한 것은 유명한 얘기다. 그는 1897년 8월26일 충남 아산군 음봉면 신정리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매우 부유했으며 그의 조부는 육군부장으로서 삼남도포사를 지내는등 무골의 집안이었다. 그는 조부를 따라 서울로 와 소학교를 마친 후 17살때 일본으로 건너가 현 경응대학 전신 중학부에 들어갔다. 20살때 몽양 여운형을 따라 상해로 가서 독립운동의 실황을 알리는 진단보를 주보로 발간하기도 했다. 22살때 영국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대로 유학을 가 3년동안 공부를 하면서 영국과 영국국민성을 배웠다. 그는 언제나 단추 3개가 달린 전통적인 영국식 신사복을 착용하기를 즐겨했는데 이같은 격식도 이때 몸에 익힌 것이라고 한다. 에든버러대를 졸업한 후에도 수년간을 유럽대륙등을 여행하며 세계정세를 살펴본 뒤 35살되던 해인 1932년 여름 16년만에 고국에 돌아왔으며 이때부터 침묵의 칩거생활을 시작했다. 1945년 8ㆍ15해방이 되자 아놀드소장이 군정장관으로 있는 미군정청 농상국고문으로 일했다. 48년 제헌국회의 5ㆍ10선거에 고향인 아산에서 출마했으나 고배를 마셨고 이승만박사가 국회의 초대의장으로 당선되자 국회의장 비서실장으로 발탁되기도 했다. 정부수립이 되고 이승만대통령이 조각을 하면서 서울시장에 그를 임명했는데 이는 그에 대한 이대통령의 각별한 신뢰감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그는 일찍이 19세때 치렀던 민씨와의 혼인은 처음부터 결합이 되지 않았고 민씨에게 딸들이 있었으나 모두 출가시켰기 때문에 서울시장이 된 그로서는 매우 외로웠다. 그는 주위의 권유에 따라 지금의 공덕귀여사(당시 한국여자신학교 교수)와 연분을 맺었다. 서울시장을 6개월여 맡은 그는 다시 임영신장관 후임으로 상공장관으로 전임된다. 6ㆍ25동란중 국민방위군사건이 터지자 당시 대한적십자사 총재였던 그는 이대통령에게 그가 본 처참한 정경을 보고했으나 이대통령은 귀담아 듣지 않고 오히려 역정을 내자 이때부터 이박사와는 인연을 끊고 야당운동에 적극 나섰다. 그는 부산 정치파동을 계기로 야당인 민국당(한민당 후신)에 몸을 담고 54년 5월 제3대 국회의원선거에 입후보하였다. 그는 종로갑구에서 박순천ㆍ주휘한ㆍ장후영ㆍ유석현씨 등 쟁쟁한 인물과 한판 승부를 겨뤄 윤씨이외의 12명 입후보자들의 득표수를 모두 합한 것보다 더 많은 표를 얻어 압승했다. 56년 5월 정ㆍ부통령선거에서 민주당 대표최고위원이자 대통령후보였던 신익희씨가 급서하자 민주당은 당을 개편,조병옥박사를 대표최고위원으로 선출했고 이때 윤보선씨는 당내 구파이면서도 신파의 지지를 얻어 중앙위원회 의장으로 선출되었다. 59년 가을 다음해에 있을 정ㆍ부통령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은 후보자지명을 위한 전당대회를 개최,대통령후보에 조병옥박사,부통령후보와 대표최고위원에 장면박사를 선출했고 해위는 신파의 곽상훈ㆍ박순천씨와 함께 최고위원에 선출됐다. 그는 구파보스인 조병옥박사가 대통령선거 한달을 앞두고타계하자 조박사의 정치적 유산을 이어받으면서 지금까지의 「과묵한 영국신사」에서 「행동하는 투사」로 변신하게 된다. 4ㆍ19학생의거와 이승만정권의 몰락으로 4대 민의원선거에서 민주당은 압승을 했고 신ㆍ구파간의 불꽃튀는 협상끝에 그는 60년 8월12일 민ㆍ참의원 양원합동회의에서 제2공화국의 대통령에 당선된다. 그는 국무총리지명을 하면서 신파의 장면씨 대신에 자신과 같은 구파이 김도연씨를 지명했으나 신파의 벌떼같은 반발로 과반수에서 3표미달로 인준안이 부결되자 하는 수 없이 2차에 장면씨를 지명했다. 그는 5ㆍ16군사혁명 사흘뒤 대통령직 사임을 결심,하야성명까지 발표했으나 이를 번의,이듬해 물러났다. 그는 63년 10월 5대 대통령선거에 민정당후보로 공화당의 박정희후보와 맞서 15만여표로 고배를 마셨으나 스스로를 「정신적 대통령」이라고 서슴없이 말하면서 박정권과의 극한대결에 앞장섰다. 박정권이 65년 타결한 한일협정을 매국이라고 단정,흡사 「아파치족의 추장」처럼 싸웠고 같은해 한일협정 준비파동이 절정에 달할 무렵 의원직 사퇴에 미온적인 민중당 온건파와 손을 끊고 탈당,의원직을 사퇴했다. 67년 4월 6대 대통령선거에서 신민당 대통령후보로 다시 박정희후보와 숙명의 대결을 벌였으나 1백10여만표차로 패배했다. 그후 그는 정치2선으로 물러났으며 박정권의 유신체제아래서 재야의 거두로서 박정권의 비정을 공격했다. 10ㆍ26으로 박정권이 붕괴되고 5공화국이 출범하자 그는 전직대통령의 위치에서 전두환대통령에게 이따금 조언을 하는등 박정권때와는 다른 우호적 태도를 보였고 노태우대통령의 6공정부에 대해서도 같은 자세를 취해왔다. 해위,그는 60년대 한국정치사에서 대여 극한투쟁의 화신이었다. 굳은 신념에 불퇴전의 강경노선을 견지한 그는 박정권과의 투쟁 당시 이렇게 말했다. 『정책대결이 정당정치의 원형임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나 우리네와 같은 군사독재와 부정부패와 정보정치아래서는 무기력한 대안제시와 무원칙한 타협을 앞세워서야 야당의 사명이 말살되고 만다』 그는 훗날 또 이렇게 말했다. 『싸우는 게 최선이 아니고 싸우는 게 유일한방법일 때 싸워야 한다,정권을 무너뜨리는 게 민주투쟁은 아니다』
  • 새 실록 6ㆍ25 김학준:하

    ◎“핵투하도 불사”… 미 으름장에 DMZ설정 동의/“휴전 지체할 수 없다”… 투르먼,맥아더 해임/반공포로 석방으로 한­미 방위조약약 가조인/아이크 대통령 당선ㆍ스탈린 사망후 「정전협상」급진전 ▷제4기◁ 중국군의 남진이 계속되자 맥아더는 과감한 보복조치를 마련했다. 그는 50년 12월30일 본국의 합동참모본부에 대해 ①중국해안의 봉쇄 ②중국본토의 군수산업시설 폭격 ③장개석 군의 파한 ④장개석 군의 중국본토에 대한 견제공격을 건의했다. 그는 미국이 이러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한반도에서 전면철수한다면 중국군의 침공위협은 보다더 중요한 지역에 대해 가중될 것이며 그 결과 보다 많은 전력의 투입이 요청될 것으로 내다보았다. 그러나 합참은 『일본의 방위와 국련군의 전력 보존에 주로 유의하면서 막대한 손실을 방지하기 위해 철수가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까지 축차적인 방어작전을 수행하라』고 답변할 뿐이었다. 맥아더는 이 답변을 「명백히」 이해하기 어렵다고 주장하면서 『국련군의 전면철수를 피하기 위해 중국에 대해 보복조치를 취하든지,아니면 일본의 방위와 국련군의 전력보존을 위해 한반도를 포기하든지 양자택일해야 한다』고 맞섰다. 이에 대해 트루먼은 51년 1월13일 『공산군의 침략행위가 시정될 때까지 미국은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침략의 결과를 결코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세계에 밝혀야 한다』고 전제한 다음 『최악의 경우 국련군은 제주도와 같은 남한 연안의 섬으로 철수해 전투를 계속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후임에 리지웨이대장 맥아더와 본국정부 사이에 이견이 오가는 사이 국련군은 전세를 수습하고 공세로 돌아섰다. 그리하여 국련군은 51년 3월 초순 이후 전선의 주도권을 장악했고 3월15일 서울을 재탈환했으며 3월30일께까지는 38도선까지 밀고 올라갔다. 이로써 한국전쟁을 국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 전황이 국련군에게 어느 정도 유리하게 전개되고 무엇보다 전전원상의 회복이 이루어질 것으로 내다보이면서 국련에서는 다시 휴전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한국전쟁에 참가한 서방진영의 국가들도 국련군의 38도선 재북상에 반대하면서 만일 미군이 단독으로라도 재북상하기로 결정한다면 자신들은 한국에서 철수하겠다는 의사마저 나타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트루먼은 중국과의 정치적 협상을 통해 휴전을 성립시키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3월20일 맥아더에게 그러한 취지의 성명이 가까운 장래에 발표될 예정임을 통고했다. 맥아더는 트루먼의 이 결정을 좌절시키기로 결심하고 3월24일 본국정부와의 아무런 협의없이 중국에 대한 공식성명을 발표했는데 중국대륙에의 전면적 확전으로써 한반도문제를 해결지을 수 있을 것임을 암시함으로써 트루먼이 추구하려는 중국과의 협상을 사실상 어렵게 만들었다. 이 성명에 뒤이어 맥아더는 4월5일 하원 공화당 원내총무 조세프 마틴의원이 자신에게 보낸 3월2일자 편지에 대한 답장을 공개하여 트루먼을 더욱 격분시켰다. 아시아 중시정책을 강조하면서 논평을 요구한 마틴의 서한에 대한 이 답장에서 맥아더는 우선 트루먼의 유럽 중시정책을,그리고 유럽을 중시해야 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아시아를 경시하는 경향을 비판했다. 결론적으로그는 『우리는 승리하지 않으면 안된다. 승리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맥아더의 3월24일자 공식성명을 보고 그의 해임을 결심했던 투르먼은 더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그는 4월10일 라디오방송을 통해 맥아더의 해임을 발표하면서 『우리가 한반도에서 추구하고 있는 목표는 제한전에 의한 제3차대전의 방지』라고 선언했다. 맥아더의 후임으로는 8군사령관 리지웨이 대장이 임명됐다. 맥아더의 해임은 미국이 휴전을 향해 움직인다는 명백한 의사의 표시였다. 한편 공산군은 51년 4∼5월 춘계대공세를 폈으나 인명의 큰 손실을 겪었을 뿐이고,이 시점에서 전선은 완전히 교착됐다. 전선이 교착된 51년 5월 중순부터 미국과 국련에서 휴전논의가 활발히 일어났다. 특히 5월17일 에드윈 존슨 미국 상원의원이 국련이 휴전을 이끌도록 촉구하는 결의안을 제출하고 이 제의가 소련의 신문과 방송에 크게 보도된 것을 계기로 휴전논의는 더욱 활기를 띠었다. 예컨대 국련에서 리 사무총장과 캐나다의 레스터 피어슨 외무장관 및 미국의 애치슨 국무장관이 각각 전전원상의 회복이라는 선에서의 휴전안을 제의했다. 소련도 드디어 6월23일 국련대표 말리크의 연설을 통해 휴전에 동의했다. 통일을 염원하던 남­북의 한인들에게는 유감스런 일이었지만 쌍방의 참전국가들의 거의 예외없이 휴전을 바라고 있었다. ▷제5기◁ 이러한 배경에서 미국과 소련이 정전의 원칙에 합의함에 따라 7월8일 개성의 중심지 북방에 있는 지난날 유명했던 유곽에서 국련군쪽과 공산군쪽의 연락장교단에 의한 예비회담이 열렸다. 이어 7월10일 개성에서 본회담이 열렸다. 국련군쪽의 수석대표는 미해군 극동사령관 조이 제독이었다. 리지웨이 총사령관이 직접 뽑았다. 정전회담에서 공산군 대표들이 국련군 대표들을 자극해 국련군 대표들로 하여금 공공연하게 화를 내게 하여 회의장을 뛰쳐나가게 만드는 「충동작전」을 쓰거나 정반대로 몇시간씩 끌면서 지치게 만드는 「권태전술」을 쓸 것이라고 계산한 리지웨이는 따라서 국련군 수석대표는 어떠한 도발적 언동에 대해서도 침착하면서도 강경하게 맞설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고판단했다. 즉 『6시간정도 앉아 있으면서도 눈 한번 깜짝하지 않고 오줌누러 갈 생각조차 하지 않는』협상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리지웨이에게 조이는 적임이었다. 조이는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많은 훈장을 받았고 공산주의자들과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증오하고 있었으며 적을 굴복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적을 파괴하는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ㆍ소에 “전면전”통첩 조이 수석대표를 보좌할 대표로 리지웨이는 2차대전의 베테랑들로부터 뽑았다. 유럽전선에서 보병연대를 지휘했었고 이때 미8군 참모차장으로 있던 호지스 소장,북아프리카에서 공중전을 지휘했었고 이때 미극동군 부사령관으로 있던 크레이기 소장,태평양전쟁에서 구축함전투를 대담하게 지휘해 용맹을 떨쳤었고 이때 미극동해군 참모차장으로 있던 버크제독이 선발됐다. 한국군으로부터는 제1군단장 백선엽소장이 선발됐다. 공산군쪽 수석대표는 남일중장이었다. 남일중장을 보좌하는 북한군대표는 전선사령부 총참모장 이상조 육군소장이었다. 정전회담에서 그는 파리가 얼굴에 앉아도 꼼짝 않고 앉아 「강철같은 자기억제」를 보여주려고 노력한 사람으로 알려졌다. 또 한 사람의 북한군 대표는 북한 육군 제1군단 총참모장 장평산 소장이었다. 중국군에서는 사방 소장과 등화 중장이 대표로 참가했다. 이들 가운데 사방이 사실상의 수석대표였고 남일은 이름이 수석대표였지 실제에 있어서는 사방의 지휘를 받는 것 같다고 국련군 쪽에서는 보았다. 회담도중 그는 동료 대표들과의 상의없이 발언했고 선전적인 문구 같은 것도 사용함이 없이 직설적으로 말했다. 양쪽 대표단들은 신경전을 거쳐 7월26일 다음과 같은 의제에 합의했다. ①전투행위를 정지하는 기본조건 아래 양군 사이에 비무장 지대를 설치하기 위해 군사분계선을 설정하는 문제. ②정전감시기구의 구성과 권한 및 기능을 포함하여 정전을 성립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조처들을 결정짓는 문제. ③포로에 관한 결정. ④외국군대의 철수와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관해 쌍방에 관련된 나라들의 정부에 권고하는 문제. 의제에 대한 합의와 더불어 7월28일 첫번째 의제에 대한 토론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합의가 쉬울 것 같아 버크 제독 같은 이는 본국의 아내에게 『가을이 되어 사과가 익었을 때는 나는 과수원이 있는 이곳에 있지 않을 것』이라고 썼는데 회담은 길어지면서 10월25일부터 회담장소를 판문점으로 옮긴다는 것 정도에 겨우 합의할 수 있었다. 회담이 이렇게 길어지면서 서방 참전국들은 초조해졌다. 이점을 간파한 공산군쪽은 자신들이 유리한 입장에 있다는 자신감에서 국련군쪽 대표들에게 모욕적인 용어마저 썼다. 호지스 소장을 「거북이 알」이라고 불렀고 조이 수석대표에 대해서는 『이름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떻든 수석대표인 사람』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리지웨이는 견디기 어려웠다. 『이처럼 공개적으로 모욕하고 나오는 적에게 양보를 해야 한다는 말인가. 우리에게는 부드러운 비단보다 강한 쇠가 필요하다』라고 본국정부에 호소했다. 이에 미국은 소련에게 『공산군쪽이 협상에 진전을 보이지 않는다면 미국은 만주의 공산기지를 폭격하고 중국의 해안을 봉쇄하여 필요하다면 소련과 전면전에 돌입할 것』이라는 「공갈」을 전달했다. 이와 동시에 트루먼은 중국에 대해 핵무기를 쓰는 문제를 검토했다. 미국의 이와 같은 강경한 자세를 보면서 공산군쪽은 한발 물러서 『현재 쌍방의 접촉선을 군사분계선으로 삼는다는 원칙아래 앞으로 체결될 정전협정이 지정하는 시간에 쌍방은 이 분계선으로부터 2㎞씩 철수하여 그 지역을 정전 동안 비무장화 한다』는 국련군쪽 제의를 받아들였다. 이때가 52년 1월27일이었다. 이처럼 군사분계선에 관한 합의가 일단 이루어졌다는 것은 한국전쟁의 전체 흐름속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군사분계선 문제에 매듭이 지어지면서 쌍방은 「외국군대의 철수와 한반도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관해 쌍방에 관련된 나라들의 정부들에 권고하는 문제」를 다뤄 나갔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합의가 쉽게 이뤄졌다. 즉 정전회담 발효 3개월 안에 쌍방에 관련된 나라들의 정부사이에 「고위 정치회담」을 열기로 한 것이다. 정전의 세부사항에 대한 협상에서도 진전이 있었다. 52년 5월2일 양쪽은 스웨덴ㆍ스위스ㆍ폴란드ㆍ체코슬로바키아의 네 나라로써 중립국 감시위원단을 구성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공산군쪽은 소련을 중립국이라고 우기면서 중립국 감시위원단에 포함시키려고 애를 썼으나 끝내 좌절되고 말았다. 나머지 문제는 포로교환의 문제였다. 정전이 성립되면 포로교환은 당연히 쉽게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에 중요한 문제들이 모두 해결된 이 마당에 이 문제는 빨리 매듭지어져 정전협정이 곧 체결될 것으로 기대됐다. ○2년 1개월만에 매듭 국련군쪽은 우선 「자발적인 송환」의 원칙을 제의했다. 국련군에 포로로 잡힌 공산군에게 돌아갈 것인지 남을 것인지 선택할 권한을 주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공산군쪽은 「자동송환」의 원칙을 내세웠다. 모든 포로들은 포로 개개인의 의사에 관계없이 무조건 송환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공산군쪽은 이 원칙을 관철시켜야 국련군쪽에 잡혀 있는 자신들의 장병들이 서방세계를 선택하지 않고 전원 돌아올 것이라고 계산했기 때문이다. 협상이 오래 끌면서 공산군쪽은 국련군쪽이 세균전을 펴고 있다는 선전전을 벌이기도 했다. 한편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는 공산포로들이 포로수용소 사령관 도드 준장을 납치하는 사건을 일이키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국련군쪽은 북폭을 강화하기도 했다. 협상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미국에서는 52년 11월 대통령선거가 치러져 「조기정전」을 내세운 공화당의 아이젠하워가 당선됐다. 이로써 53년 1월 공화당 행정부가 출범하게 되었으며,휴전협상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소련에서는 53년 3월 스탈린이 죽으면서 정전을 향한 발걸음을 빨리 했다. 정전협상의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자 이대통령은 통일의 기회가 사라진다는 실망감 속에서 6월19일 국련군에 수용되어 있는 공산포로들 가운데 송환을 거부하는 반공포로 2만5천여명을 극비의 작전을 통해 과감하게 석방했다. 이대통령을 무마하기 위해 미국은 국무부 극동담당 차관보 로버트슨을 대통령 특사로 파한했으며 이대통령이 요구하는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가조인하게 했다. 한­미간의 합의가 성립됨으로써 정전협정의 체결을 위한 길은 완전히 열렸다. 그리하여 7월27일 휴전협정은 판문점의 「평화의 천막」안에서 조인됐다. 2년 1개월 여의 긴 시간동안 5백75회의 공식회의를 갖고 1천8백여만 단어를 소비한 다음에야 매듭지어진 것이다.
  • 발칸 3국의 민주화 진통(사설)

    동유럽 발칸 3국의 민주화 개혁이 진통을 거듭하고 있다. 작년 후반 동유럽의 장기공산 독재정권들이 연이어 붕괴되는 민주화 개혁이 시작되었을때 세계는 흥분하면서도 그 순조로운 진행과 성공에 일말의 불안을 지울 수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세계는 성원을 아끼지 않으면서 그 진행을 예의 주시해 왔던 것이다. 그것은 공산 북한의 체제향방과도 무관할 수 없다는 점에서 우리에게도 비상한 관심사가 아닐 수 없는 것이었다. 동유럽의 민주화 개혁은 작년 12월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 축출을 끝으로 기존 장기공산독재 체제를 파괴하는데 성공했으며 금년에 들면서는 파괴된 체제를 대신할 새 자유민주체제를 어떻게 출범시킬 것인가 하는 것이 중요 과제였다. 지난 3월 동독을 시작으로 10일의 불가리아까지 금년 상반기중에 일제히 실시된 동유럽 각국의 사상 처음이 되는 자유총선은 바로 그러한 새 자유민주체제를 출범시키기 위해 거쳐야 하는 첫 관문이자 필요한 절차였다. 대체로 성공적인 것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나 진통을 겪고 있는 것이발칸반도의 루마니아ㆍ불가리아ㆍ유고슬라비아 3국인 것이다. 가장 심각한 곳이 구체제의 파괴에서도 유혈의 희생을 치른 루마니아로 많은 사상자가 난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루마니아사태의 근본 원인은 차우셰스쿠를 축출했는데도 그 추종세력과 공산당 잔존세력이 여전히 새로운 체제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는데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대통령 당선자 일리에스쿠와 그의 지배를 받는 구국전선조직이 새로운 자유총선에서 승리를 거두었지만 그들은 이름만 바꾼 전공산당 간부이자 조직이란 것이 반발세력의 주장이다. 이들은 지난 4월22일부터 부쿠레슈티대학앞 도로를 점거하고 총선연기,언론민주화,공산당원총선 배제 등을 요구하며 농성시위를 벌여왔다. 이를 무시하고 실시된 총선에서 일리에스쿠는 승리를 거두었으며 이 승리가 유혈진압의 기폭제 역할을 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루마니아 외에 갈등을 빚고있는 불가리아와 유고슬라비아의 경우도 공산당의 완전청산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데 대한 국민적 불만이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유고의경우는 공산당 축출을 위한 다당제 자유총선 조기실시를 요구하는 시위가 가열되고 있는 정도이지만 불가리아의 경우는 44년만에 실시된 자유총선의 결과 당명만 사회당으로 바꾼 구공산당이 승리를 거두게 되자 민주화 개혁세력의 반발이 시위사태로 폭발하고 있는 것이다. 금년 상반기중에 실시된 동유럽 자유총선에서 이름을 바꾼 구공산당이나 공산당계가 승리를 거둔것은 루마니아와 불가리아 뿐으로 서방세계는 이를 이례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대개의 경우 10%에 미달하는 공산체제 수혜계층의 지지밖에 못얻는 부진을 보였던 것이 발칸반도에선 의외의 승리로 나타나 민주개혁 세력을 실망시키고 있는 것이다. 공산당세력이 구체제 파괴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든가 그들이 선거를 주관했으며 대항민주세력이 조직화되기 전에 총선이 서둘러 치러졌기 때문등의 이유들이 열거되고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으로는 서구적 민주정치전통의 유무가 지적되고 있다. 동독 체코 헝가리 폴란드 등 중부지역 각국의 경우 비교적 순조로운 정치ㆍ경제 개혁이진행되고 있는 것은 서구적 민주정치와 시장경제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란 것이다. 발칸 3국의 경우 그렇지 못하며 그래서 개혁의 시작도 늦었다는 분석이다. 그것은 앞으로의 민주화개혁 진행 과정에서도 발칸반도쪽에서 마찰음이 더 높을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진통을 보면서 실망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3백여년의 역사가 만든 민주정치를 1년 사이에 배우고 정착시킨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2차대전 이후 우리를 포함한 많은 신생국들의 민주정치도입의 진통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중요한 것은 시작했다는 사실이며 필요한 것은 세계의 지원이다. 시작도 못하고 있는 북한이 안타까울 뿐이다.
  • “야당운영에 권위굴레 벗겠다”/민주당 초대총재 이기택씨

    ◎“후보공천ㆍ정책결정 등 새 면모 보일 것/창당대회 경선은 당민주화의 첫 걸음” 『여권이 5공으로 회귀하는 것을 막기 위해 우리당은 6월 임시국회에서 국가보안법등 악법개폐에도 관심을 기울이겠지만 무엇보다 지자제선거를 조속히 실현시키기 위해 전력을 쏟겠습니다. 특히 내각제개헌 기도를 철저히 저지하겠습니다』. 15일 창당대회에서 「가칭」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공당으로 출범한 민주당의 초대 총재로 선출된 이기택총재는 실질적 창당주역인 자신의 당선을 의심치 않았다면서도 상기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당의 모습을 갖추기도 전에 총재단 선출방식을 놓고 지도부내에 이견을 드러내 창당이후 당의 분열상이 우려되는데. ▲총재선출문제와 관련해 사전에 대화와 타협을 통해 의견을 집약하려고 했으나 무산됐다. 그러나 우리나라 정당사에서 창당대회에서의 총재경선이 전무했던 만큼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실험무대가 됐다는 점에서 향후당내 민주주의를 통한 진정한 단합에 보탬이 되리라고 본다. ­창당으로 국민적 요구인 야권통합이더 어려워졌다고 보는 견해도 있는데. ▲시대적 과제인 야권통합은 우리당의 창당정신이며 나는 이 정신에 따라 창당을 주도해 왔다. 그러나 독선과 이기주의 무책임한 자세가 통합을 가로막고 있으며 통합이 실패로 끝나면 우리는 민자당 영구집권의 공범자가 될 것이다. 당의 모든 기구가 정비되는 대로 평민당및 재야세력과 통합협상을 통해 의견을 접근시켜 나가겠다. ­신 야당으로서 민주당의 성공가능성이 어느정도라고 보는가. ▲창당준비위 발족이래 우리당은 일찍이 없었던 당내 민주주의를 경험해 왔으며 나는 지난날 권위주의적인 야당체제하에서 최대로 고통을 받아온 희생자이기 때문에 당내 민주주의와 체질개선의 필요성을 온몸으로 절감하고 있다. 민주당은 후보공천ㆍ인재등용ㆍ정치자금ㆍ당정책결정에 있어 과거 야당과는 다른 모습을 보일 것이다. 그렇게 될 경우 국민은 거여에 맞설 수 있는 수권정당으로서 민주당을 선택할 것으로 본다. 이총재는 고대총학생회장출신으로 4ㆍ19세대의 기수중 1인으로 일찍부터 3김이후를 노려온 야심가. 29세때 7대 국회에 등원한 이후 이번 13대까지 모두 6선의 관록. 매사에 합리적이지만 지나치게 앞뒤를 재는 성격으로 지난 1월 3당통합직후 청와대만찬에까지 참석했다가 나중에 민자당합류를 거부하는 등 결단력이 부족하다는 평도 받고 있다. 구 신민당시절 신도환계로 사무총장을 지낸 이후 독립계보를 형성하면서 구 신민당부총재,신한민주당부총재,통일민주당부총재ㆍ원내총무,국회 5공특위위원장 등을 섭렵하면서 야당인으로서 드물게 순탄한 정치역정을 걸어온 편. 올해 53세인 이총재는 부인 이경의씨(44)와의 사이에 1남3녀를 두고 있다.
  • 의장 박준규ㆍ부의장 김재광씨/민자 첫 단독국회

    ◎평민몫 부의장선출은 유보/“국민신뢰 구축… 민주발전 앞장” 박의장/여,“직무유기” 야,“주권도전” 성명전 제149회 임시국회가 하루의 회기로 이일규대법원장,조규광헌법재판소장과 강영훈국무총리 등 전국무위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29일 하오 열려 이날로 임기가 만료되는 의장단 후임으로 국회의장에 박준규,부의장에 김재광 민자당의원을 각각 선출했다. 이날 국회는 평민당과 민주당(가칭)등 야권이 민자당의 국회단독 소집에 반대,등원을 거부함으로써 민자당 소속의원들만 참석한 가운데 파행운영됐다. 이날 야당측의 등원거부로 야당측에 할애된 부의장 1석은 평민측이 내정한 조윤형의원을 후보로 추천하지 않아 다음 임시국회 때까지 현 노승현부의장이 계속 맡게된다. 국회는 의장단선출에 앞서 대구서갑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문희갑의원(민자)와 전국구를 승계한 권오철의원(민자)으로부터 선서와 인사말을 들었다. 그러나 진천ㆍ음성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허탁의원(민주)은 민주당의 불참방침에 따라 본회의에 출석하지 않았다. 박준규 신임의장은 이날 의장에 선출한 뒤 인사말을 통해 『의장 재임기간동안 사심없이 공명정대하게 국회를 운영토록 최선을 다해 국민의 신뢰구축과 민주발전에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국회는 이날 개회후 평민당등 야당측의 등원을 유도키 위해 2시간여동안 정회를 한 뒤 민자당을 통해 대야 설득을 시도했으나 평민당측의 불응으로 설득에 실패했다. 한편 민자당의 박희태대변인은 야권의 회의불참과 관련한 논평을 발표,『평민당이 의장단선출에 반대하는 것은 어떤 명분으로도 합리화할 수 없는 직무포기이며 국회를 마비시키려는 의도』라고 비난했다. 평민당의 김태식대변인도 성명을 발표,『국회가 정부ㆍ여당의 소유물일 수 없다』면서 『의장단을 단독으로 선출한 것은 국민주권에 대한 도전이며 국회에 대한 모독』이라고 비난했다. 민자당은 오는 6월19일 제150회 임시국회를 다시 소집해 평민당이 내정한 조윤형의원을 부의장으로 선출한 뒤 상임위원장단도 선출하는 한편 각종 쟁점법안등을 처리할 방침이다.
  • 루마니아 대통령에 일리에스쿠 유력/어제 53년만에 첫 자유총선

    ◎“점진개혁 표방” 중도좌파 구국전선 승리 확실/80개 정당 난립… 과반확보 어려워 연정 불가피 민중혁명으로 차우셰스쿠대통령의 철권통치를 무너뜨린 루마니아의 자유총선이 53년만에 처음으로 20일 실시됐다. 동유럽의 대변혁이후 동독,헝가리에 이어 세번째 실시된 루마니아 선거는 대통령과 1백19명의 상원,3백87명의 하원의원을 동시에 선출하는는 자유총선이다. 이번 선거는 이온 일리에스쿠 임시대통령이 이끄는 중도좌파의 구국전선(NSF)을 비롯,무려 80여개의 정당이 난립했던 혼전이었다. 컴퓨터집계에 의한 선거결과 예상의 윤곽은 우리시간으로 21일 하오부터 드러나기 시작할 것으로 보이나 NSF와 우파의 전국농민당(NPP),진보적인 중도우파인 국가자유당(NLP)과 환경보호주의자 그룹등 4개 정당의 대결로 압축되고 있다. 최근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와 지난 15일간의 선거유세에서 나타난 1천6백만 유권자들의 동향을 종합해 볼 때 일리에스쿠의 대통령 당선과 함께 전 공산주의자,반체제인사 지식인들로 구성된 구국전선의 승리가 예상되고 있다. 이는 동독과 헝가리 선거에서 나타난 우파연합의 압승과는 크게 대조되는 것으로 선거를 통한 중도좌파 정권의 탄생을 의미한다. 동구를 힙쓴 개혁으로 사회주의체제가 붕괴됐음에도 불구하고 루마니아에서 중도좌파를 표방한 NSF가 유권자의 지지를 받고 있는 배경은 일리에스쿠 임시 대통령이 국민들의 폭넓은 신임을 얻고 있고 NSF의 점진적인 경제개혁 정책이 큰 호응을 받고 있는 것이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NSF는 자유경제체제를 지향하고 있으나 우선적으로 노동자의 임금과 농민들의 생활수준 향상에 역점을 두고 점진적인 시장경제 도입을 표방하고 있다. NSF의 이같은 정책은 갑자기 불어닥친 자유화 바람으로 인한 사회불안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는 많은 루마니아인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다른 동유럽국가들과는 달리 철저한 통제속에 살았던 루마니아인들은 서구사회와 접할 기회가 적었고 아직도 「본능적」으로 서구에 대한 불신이 남아 있다. 더욱이 급격한 변화에 불안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에 반해 NPP의 대통령후보인 이온 라티우와 NLP의 라두 캄페아누는 루마니아의 시민혁명후에 귀국,많은 사람들에게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핸디캡을 갖고 있다. 더욱이 이들은 「호화스러운」 망명생활후에 권력을 잡기 위해 돌아왔다는 비난도 받고 있다. 라티우후보가 이끄는 NPP는 강력한 반공산주의노선을 걷고 있으며 과감한 시장경제로의 개혁과 낙후된 국내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외국자본과 기술의 적극적인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또 서구식 진보주의를 표방하는 중도우파의 NLP는 급속한 사유화와 권력의 분권화를 주장하고 있다. NPP와 NLP의 이같은 정강정책은 그러나 NSF의 점진적 개혁정책에 비해 국민들의 호응도가 낮을 뿐만 아니라 이들 정당들은 급조된 상태로 조직조차 정비되지 않은 상태다. NSF가 유리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과반수 획득은 어려울 것으로 서방관측통들은 보고 있다. 따라서 대통령당선이 확실시되는 일리에스쿠는 야당과의 연정을 모색할 가능성이 높다. 일리에스쿠는 특히 낙후된 경제의 부흥과 장기집권에 따른 불신의 벽을 허물고 국민화합을 이루어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다. 루마니아의 신정부는 또 만연된 관리들의 부패 척결과 함게 악명높은 비밀경찰의 해체,민주헌법의 제정 등 민주화 조치를 계속 취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중도좌파정부의 등장이 확실시되어 있어서 루마니아의 완전한 민주화는 다른 동구국가들 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 농어민단체 「자력성장의 길」열다/중앙회장 경선을 결산하면

    ◎과열선거로 내분 유발… 후유증 심각/공약남발 등 막을 선거제도 개선 서둘러야 농어민이 처음으로 뽑는 농림수산관련 단체장선거가 지난 19일 수협중앙회선거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88년12월 농협법등 관계법이 개정됨에 따라 지난 1월19일 산림조합중앙회장선거를 시작으로 농지개량조합연합회,축ㆍ농ㆍ수협등 5개 농어민단체가 차례로 경선을 통해 모두 첫 민선회장을 갖게됐다. 농어민단체가 단체장을 조합원이 뽑은 조합장에 의해 선출하게된 것은 우리사회 전반에 민주화 자율화 추세가 확산됨에 따라 소외계층인 농어민의 자주조직인 각 협동조합이 조합원의 의사를 반영하고 권익을 옹호하는데 크게 미흡한데다 관치조합이라는 비판이 집중적으로 나온데서 비롯했다. 이에따라 88년12월말 농어민단체법이 개정,공포되기에 이르렀는데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회원조합장과 중앙회장 직선제도의 도입이었다. 당시까지 농어민단체는 중앙회장및 임원들이 정부에 의해 임명되는 것은 물론이고 임명되는 인물들이 대부분 각 단체와 무관한 군출신ㆍ공무원이었으며 그렇지않으면 각 단체의 지휘감독을 맡은 정부부처의 퇴직공무원들이 낙하산식으로 옮겨오기 일쑤였다. 이들 단체회장및 임원들은 따라서 정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고 단체도 농민의 자조ㆍ자립보다는 정부의 비호와 지원으로 성장해 왔기 때문에 정부 정책사업의 대행기관에 불과해 농어민의 불신을 받아왔었다. 이에따라 이번 민선 농어민단체회장은 과거의 관제회장과 달리 농어민의 이익보호를 위해 추곡수매가 결정,농수산물 수입개방의 대응등에서 정부와 국회및 각정당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수 있게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선거는 정부의 임명회장제에서 민선회장에로 바뀌면서 처음으로 실시된데 따른 산고때문인지 농어민단체를 꾸려갈 유능하고 덕망있는 경영자를 선출하기 위한 차분한 분위기가 잡히지 않고 과열로 치달아 후보들간의 인신공격을 비롯,지역감정을 부추기는 홍보전략과 금전살포설이 나도는등 정치권의 선거를 방불케했다. 이같은 어수선한 분위기에 맞물려 중앙회와 단위조합은 임ㆍ직원들도 선거막바지에접어들면서 후보자들과의 혈연ㆍ지연ㆍ학연등 연고에 따라 나누어져 내분ㆍ갈등까지 빚어졌고 이 와중에 정상적인 업무 일부가 소홀히 되는 상황까지 발생하는 등 그 폐단이 너무 컸다. 여기에 공정선거를 유도해야할 관련 부처 고위공무원들 가운데도 공공연히 특정후보자를 지원하는 어처구니없는 모습까지 나타났다. 또 정치권과 같이 인기에 영합하려는 공약남발도 적지 않았다. 이밖에 당선된 회장이 아닌 다른후보를 지원한 임ㆍ직원이나 조합장에 대해 보복인사내지 정책자금의 배분 등에서 보이지 않는 불이익을 주는 등 후유증도 우려되고 있다. 숱하게 뿌린 선거자금을 어떤 방식으로 회수할지도 걱정거리다. 물론 당선자들은 이는 절대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되는 일이라고 확언하고 있다. 이같은 선거결과와 부작용 내지 잡음등을 놓고 일부에서는 일본을 비롯한 세계 어느나라도 중앙회장을 경선으로 뽑지 않고 있다면서 현 선거제도를 개선ㆍ보완해야 한다는 다소 성급한 지적도 나오고 있다. 또 농어민단체중 농ㆍ수ㆍ축협중앙회장은 농어촌지도자일 뿐아니라 거대한 금융기관장의 성격까지 갖고 있다는 점에서 선거를 통해 선출하는 것이 타당하느냐에 논란이 없지 않다. 현선거제도 개선론자들은 중앙회장을 조합장중에서 각지역대표를 호선,이들로 위원회를 구성해 뽑거나 이들 대표가 돌아가면서 맡는 방안등을 내놓고 있다. 전문성이 요구되는 감사의 경우도 현행 선거에 의한 선출방식이 합리적이냐에 대해서도 의문이다. ▷외국의 제도◁ 일본은 농협중앙회장의 경우 18명으로 구성된 임원추천회의에서 추천돼 총회에서 투표가 아닌 거수에 의한 만장일치 방식으로 선임되어왔다. 부회장ㆍ감사ㆍ이사도 모두 중앙회장과 같은 간선방식으로 선출된다. 임원추천회의 위원 18명은 일본 전지역을 6개구역으로 나누어 각구역의 조합장중에서 호선된 지역회장 6명,지역회의 이사중 호선된 6명,6개지역 이외의 기타지역연합회 대의원중 호선된 6명등으로 구성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수협중앙회에 해당하는 일본어업협동조합연합회장도 조합장중 선거로 뽑힌 현(도)지회장이 모여 호선해 추대된다. 미국및 프랑스의 농협도 조합장중 호선된 지역대표로 구성된 이사회가 이사 중에서 회장ㆍ부회장을 선거없이 호선하고 있다. 서독ㆍ덴마크의 농협은 프랑스와 같이 구성된 이사회에서 중앙회장ㆍ부회장을 농과대학장이나,농과교수ㆍ농업전문가ㆍ경제전문가ㆍ농민단체장 중에서 추대한다. 대만도 농협의 경우 중앙회장은 이사회에서 호선되며 감사는 없고 감독관청이 감사를 맡고 있다.〈채수인기자〉
  • 수협 첫 민선회장 홍종문씨/2차투표서 56% 득표… 당선 확정

    수협중앙회 첫민선회장에 홍종문전회장(61ㆍ사진)이 당선됐다. 19일 상오 10시 인천시북구 효성동 수협연수원강당에서 실시된 수협중앙회장 선거에서 홍전회장이 재적선거인 74명 전원이 참가한 2차 결선투표에서 과반수가 넘는 42표(득표율 56%)를 획득,32표를 얻은 이종휘전부회장을 누르고 당선됐다. 결선투표에 앞서 실시된 1차투표에서는 홍전회장이 31표,이전부회장이 21표,신석봉경남정치망조합장이 14표,박희재현회장이 8표를 각각 획득,모두 과반수 득표에 실패했다. 이에 따라 최고득표자와 차순위득표자인 홍전회장과 이전부회장을 대상으로 2차결선투표를 실시했다. 또 상임감사선거에는 고달익제조조합장(58)이 40표(54%)를 얻어 장필남현비상임이사를 누르고 당선됐다. ◇홍회장 약력 ▲강원도 삼척출신 ▲고려대 경제학과졸업 ▲해병대 준장예편 ▲부산공동어시장장
  • 농민위하는 민주농협으로(사설)

    민주화에의 열기 속에서 88년 개정된 농수축협법에 따라 각 단협 조합장 선거가 있었고 그들에 의해 중앙회회장 선거가 치러졌다. 13일에는 축협 회장이 선출되었고 18일에는 농협 회장이 선출된 데 이어 19일에는 수협 회장이 선출되었다. 지난날의 관선 회장에서 벗어나 첫 민선 회장들이 탄생한 것이다. 이 또한 민주발전의 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단위조합장 선출 때부터 일부지역에서는 금품 공세등 타락상을 보인것은 유감스러운 일이었다. 특히 농협회장 선거의 경우 상경하는 조합장들을 위해 특급 호텔을 예약하는등 선심공세를 펴다가 여론의 화살에 부딪쳐 취소하는 촌극까지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대체로 원만하게 치러진 선거에 의해 당선의 영예를 안은 세 회장들에게 축하를 드린다. 그러면서 민선 회장으로서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 줄 것도 아울러 당부하고자 한다. 그 가운데서도 농협회장의 임무는 실로 막중하다. 앞으로 4년동안 2백만 농민 조합원과 1천4백여개에 이르는 단협을 이끌어 나가는 것뿐 아니라 더 넓게는 8백만 농민들의권익옹호와 신장이라는 책무가 지워져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오늘의 농촌은 여러가지로 복합된 난제를 안고 있다. 그것을 어떻게 풀어 나가는지 지켜보고자 한다. 비대해진 농협에 대해서는 그동안 말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관선 회장이었을 때는 「정부의 시녀」라는 말을 흔히 들어왔고 과연 농민을 위해 존재하는 농협이냐 하는 비난을 들어왔음도 부인할 수가 없다. 농민들이 절실하게 요구하는 경제사업은 등한히 한 채 신용사업쪽에 치중해 왔음은 지난해의 국정감사 때도 지적된 사항이었다. 이때까지의 「정부 대리인」같은 역할로 해서 농민들은 불신의 눈길을 떼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같은 불신을 불식하여 진실로 농민의 농협,농민을 위한 농협으로 되도록 노력해야만 할 것이다. 오늘의 우리 농촌은 노동력이 부족하다. 노동력이 부족하다는 것은 곧 일삯이 비싸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보다 심각한 것은 지어 놓은 농작물이 제 값을 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는 앞으로 점점 더 심화되게 되어있는 것이 현실이다. 개방화의 물결 따라 농산물 수입개방의 폭은 더욱 더 넓어져 갈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 새 민선회장도 자체 무역회사의 설립,수입 개방 압력국에 대한 로비 활동,생산비 절감을 위한 노력 등으로 대처해 나갈 뜻을 밝히고는 있다. 하지만 대체작물의 지도등 수입개방에 따르는 피해의 최소화를 위해서는 보다 과학적인 안목으로 접근해 나가야 할 것이다. 사실 오늘의 우리 농민들은 무엇을 심어야 할 것인가를 두고 갈팡질팡하고 있다. 심을 때는 전망이 좋았는데 거두고 나니 품삯도 못 건지는 경우를 번번이 당해왔기 때문이다. 그것은 농협의 농민의식조사 결과도 말해주고 있다. 고민의 으뜸이 『작목 선택이 어렵다』로 54.6%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니 말이다. 심은 보람이 있게 하는 지도 노력은 그래서 더욱 더 절실히 요청된다. 어느 부문이고간에 민주화란 높은 책임성을 요구한다. 민주화한 농수축협이 과연 관치시대보다 낫구나 하는 말이 나올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그렇게 되도로 최선을 다해야 하고 또 그렇게 되지 않으면 안된다.
  • 축협중앙회장 첫 선거/명의식 현 회장 선출

    축협중앙회는 13일 전국 1백67개 조합장들이 참석한 가운데 중앙회장과 상임감사를 처음으로 뽑기위한 임시총회(사진)를 갖고 명의식현회장(56)을 새회장으로 선출했다. 88년12월 관계법의 개정으로 농어민단체장을 조합원들이 선거에 의해 뽑도록 됨에 따라 농ㆍ수ㆍ축협중 최초로 실시된 이날 선거에서 회장에는 명회장과 강성원전서울우유조합장(62)등 2명이 출마,명회장이 전체조합장 1백67명중 과반수가 크게 넘은 1백28표를 얻어 당선됐다. 또 상임감사에는 천병득현감사(49)와 유상열전이사(61)등 2명이 참가,천감사가 93표를 얻어 당선됐다. 농협회장선거는 오는 18일,수협회장선거는 19일 실시된다.
  • 후지모리 후보 예상밖 2위 득표/페루 일본계 대통령 나올까

    ◎점진 개혁ㆍ깨끗한 정치 표방 선거돌풍/좌파도 지지… 결선투표서 당선 가능성 「동방으로부터의 지진」. 페루의 정치분석가들은 지난 8일 실시된 페루대통령 선거에서 일본 이민 2세 알베르토 후지모리(51)가 중도우익의 민주전선연합 후보 바르가스 요사(54)에 이어 2위로 결선투표에 진출한 데 대해 이같이 놀라움을 표시하고 있다. 한달전 여론조사에서 불과 1% 지지율에 그쳤던 후지모리가 30.7%의 지지율로 14% 득표에 그친 집권사회민주 아프리타스당의 알바 카스트로 후보를 제치고 2위를 차지한 것만도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아프리타스당등 좌익세력이 33.8%의 지지로 1위를 차지한 요사 후보의 집권저지를 위해 후지모리를 지지할 것이라고 선언,오는 5월말 또는 6월초에 치러질 결선투표에서 남미 최초로 일본계 대통령이 탄생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점쳐지기에 이르러서는 「대이변」이란 말외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후지모리의 급부상의 배경은 여러 측면에서 분석되고 있다.〈관련기사 12면〉 첫째 연2천7백%를 넘는 높은 인플레와 10년에 걸친 모택동주의 게릴라 센데로 루미노소(빛나는 길)와의 내전,사회ㆍ경제위기를 부른 집권당의 실정에 대한 불만,둘째 요사 후보가 국영기업의 민영화등 충격요법을 내세워 요사가 당선되면 부유층에게만 혜택이 돌아갈 것이란 우려를 부른 것과는 달리 「점전적 개혁」이란 온건정책을 내세움으로써 국민의 호응을 받은 점,셋째 「정직ㆍ기술ㆍ일(HonestyㆍTechnologyㆍWork)이란 그의 선거구호가 그가 경제대국인 일본계라는 점과 함께 근면한 일본계 페루이민들의 좋은 이미지와 부합됐으며 그가 당선될 경우 일본의 지원을 받아 경제회복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과 넷째 깨끗한 정치를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워 경호원도 대동하지 않은 채 트랙터로 전국을 누비며 각 가정을 방문한 선거운동이 「보통사람」으로서 페루국민들의 가슴속에 파고든 점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후지모리 자신마저 놀랍게 받아들이는 이변을 낳게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후지모리가 결선투표에서 남미 최초의 일본계 대통령으로 탄생된다 해도 경험전무의 정치초년병인 그는 어떤 정치적 수완을 발휘,곤경에 처한 페루경제를 소생시키고 내전종식을 갈망하는 페루국민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것인가라는 힘겨운 숙제를 떠맡아야만 하기 때문에 앞날이 밝다고는 하기 어려운 것 같다.〈유세진기자〉
  • 개혁ㆍ경제난 타개의 주역을 뽑는다/헝가리등 3국,『선데이총선』열기

    ◎“민주포럼 우세”전망속 민주동맹 추격 헝가리/페루 대통령후보 9명… 요사,결선진출 확실/보수신민주당,과반득표에 관심집중 그리스 4월의 두번째 일요일인 8일 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공산주의 통치종식과 경제난및 정치적 교착상태 타개를 위한 총선 및 대통령선거가 실시됐다. 헝가리에서는 이날 개혁주도정당을 선택하기 위한 자유총선 2차투표가 실시됐으며 중남미 대륙에 선거열풍이 불고 있는 가운데 1천만 페루국민들은 연2천%에 달하는 인플레를 끌어 내려줄 차기 대통령을 뽑는 선거에 참여했다. ▷헝가리◁ 7백80만 헝가리 유권자들은 지난 3월25일의 1차투표에 이어 양대 보수정당인 헝가리민주포럼(MDF)과 자유민주동맹(SZDSZ)가운데서 2차대전 이래의 오랜 공산통치를 종식시키고 민주개혁을 확실하게 이끌어 나갈 정당을 선택하는 2차투표에 참여,신성한 한표의 주권을 행사했다. 특히 이날 투표는 3.25총선 1차투표에서 각각 24.73%와 21.39%의 지지를 획득하는 데 그친 이들 양대 정당이 이번 선거를 통해 연정이나 독자적으로 헝가리를 통치할수 있을만한 지지를 얻지 못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에 어느 때보다 높아진 국민들의 관심속에 진행됐다. 선거전 헝가리과학아카데미는 2차투표에서 MDF가 34.7%,자유민주동맹이 31%의 지지표를 얻을 것으로 전망했는데 MDF의 요제프 안탈의장은 이같은 조사결과를 근거로 할때 MDF가 이번 투표가 끝난뒤 청년민주동맹(FIDESZㆍ일명 독립소지주당)아니면 기독민주당과 연정을 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8일 첫 투표결과는 이날 하오(이하 현지시각)늦게,최종집계는 9일 하오 2시 공식발표될 예정이다. ▷페루◁ 대통령 및 상(60명)ㆍ하(1백80명)양원선거와 지방선거를 겸한 8일 총선에는 18세이상의 유권자 약1천만명이 참여 했는데 이번 대통령선거에는 좌ㆍ우익 정당의 후보9명이 난립,어느 후보도 당선에 필요한 과반수 이상의 득표가 불가능할 것으로 예상돼 2차 결선투표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한 여론조사는 지지율이 지난 3월의 45%에서 25%로 떨어지긴 했으나 세계적으로 유명한 소설가로 우익정당들과 제휴한 민주전선(FREDEMO)의 마리오바르가스 요사 후보(54)의 결선진출이 확실시된다고 밝히고 남은 2위 자리를 놓고 집권 아메리카 인민혁명동맹(APRA)당의 루이스 알바 카스트로 후보와 무명의 신생정당인 「변화90」의 일본계 알베르토 후지모리후보(52)가 경합할 것으로 전망했다. 분석가들은 지난 5주 사이 인기가 급상승한 후지모리 후보가 이번 대통령선거의 최대복병으로 2위로 결선에 진출할 가능성이 있으며 현재의 인기상승세가 지속될 경우 결선에서 바르가스 요사 후보에도 위협적인 존재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스◁ 이번 그리스총선은 지난 10개월 동안 3번째의 총선. 8백여만명의 유권자들은 보수파인 신민주당(NDP)과 범그리스사회주의운동당(PASOK)이 단독 정부구성을 위한 과반수 의석획득을 위해 치열한 득표전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이날 투표를 실시했다. 선거전문가들은 NDP가 이번 선거에서 승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지만 과연 과반수 의석을 차지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지난 11월 선거에서는 미초타키스영도하의 NDP가 총3백의석중 과반수에 3석이 모자라는 1백48석을 획득한 반면 파판드레우 전총리가 이끄는 PASOK는 2백28석 그리고 좌파진보연합이 21석을 각각 차지했었다.(이창순기자)
  • 양대보선 당선자 인터뷰

    ◎대구서갑 문희갑씨/“유권자의 뜻 국정에 반영”/서민 잘사는 풍토조성에 최선/경험부족ㆍ조직취약 힘들었다 『이번선거를 통해 드러난 유권자들의 뜻을 겸허하게 받들어 국정에 최대한 반영하도록 노력 하겠습니다』 대구서갑 보궐선거에서 승리한 민자당의 문희갑당선자는 4일하오 자신의 선거사무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당선소감을 털어놨다. 『이번 선거는 정호용씨의 사퇴파동 등으로 지나치게 과열됨에 따라 유권자들이 입후보자의 공약이나 정치적신념 등에 대해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지 못했다』고 밝힌 문당선자는 『처음부터 선거전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은 했지만 별다른 사고 없이 무사히 마치게 돼 다행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당선자는 당초 예상과는 달리 백승홍후보와 접전을 벌인끝에 어렵게 승리한 사실에 대해 『이번 선거는 정치적으로 지나치게 다양한 의미가 부여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특히 이번 보궐선거과정에서 후보를 사퇴한 정호용씨에 대해 『외유까지 나선 그분의 심정을 생각하면 지금도가슴이 아프다』면서 자신의 당선이 정씨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뛰어준 선거운동원들과 특히 정씨 지지자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이번선거를 치르면서 어려웠던 점은. 『처음 선거를 치러 경험부족으로 인한 어려움이 가장컸다. 특히 구민정당조직이 정후보측에 흡수돼 있어 조직을 복구하는데도 많은 곤란을 겪었다』 ­앞으로 정치활동 방향은. 『이번 선거운동을 통해 극빈층의 생활실태를 직접 목격하고 균형발전을 위한 개혁조치가 시급하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앞으로 의정활동에서 나의 전공인 경제정책분야를 적극적으로 활용,서민이 잘 살 수 있는 세상이 되도록 노력하곗다』 문당선자는 85년 12대총선때 당시 민정당의 전국구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으나 그해 7월에 바로 경제기획원차관으로 복귀해 6공초기인 88년말까지 장수하면서 각종 경제정책의 교통정리에 남다른 솜씨를 발휘했다.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긴 뒤에도 6공화국의 경제개혁정책을 뒤에서 밀고 때로는 앞에서 챙기는 등 경제정책에 대해 막강한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부인 정송자씨와의 사이에 두딸을 두고 있다.〈우득정기자〉 ◎진천ㆍ음성 허탁씨/“정치판도에 큰변화 확신”/골프장건설 저지에 온힘 쏟을터/민주당,야통합 구심점 역할 할것 『이번 보궐선거의 승리는 6공화국에 대한 중간평가인 동시에 3당통합에 대한 국민심판의 의미를 갖고 있다』 충북 진천ㆍ음성보궐선거에서 민자당의 민태구후보를 6천2백63표차로 따돌리고 승리한 허탁당선자(가칭 민주당)는 4일 새벽 당선이 확정되자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음성군청 개표장에서 당선소감을 밝혔다. ­당선소감은. 『당선시켜준 음성ㆍ진천유권자 여러분께 감사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지지해준 중앙당간부들과 어려운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준 지구당원 여러분께도 감사드린다』 ­이길 것을 예상했는지. 『처음에는 방대한 조직과 자금력을 갖고 있는 여당에 이기리라곤 생각 못했다. 그러나 유세가 시작돼 유권자의 여론을 감지한 지난달 28,29일쯤 승리를 확신했다』 ­앞으로 활동계획은. 『선거유세중 이지역에 골프장이 건설되는 것을 막겠다고 공약했는데 이를 관철 시키는 노력을 기울이겠다』 ­낙선한 민후보에게 하고 싶은말은. 『그동안 선거유세 과정을 지켜보니 민후보는 훌륭한 행정가로 보였다. 앞으로 지자제가 실시돼 도지사로 출마해 당선되면 다시 훌륭한 도백으로 일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번 승리가 민주당(가칭)의 위상에 미칠 영향은. 『정치판도에 큰 변화를 초래할 것이다. 내가 들어가더라도 민주당의원은 8명으로 원내교섭 단체조차 구성할 수 없지만 이번 승리를 계기로 과거 민주ㆍ공화당에 몸 담았던 의원들 가운데 우리 당으로 올 분들이 많을 것으로 본다. 그렇게 되면 원내교섭단체 구성도 가능할 것이고 야당통합의 구심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허당선자는 야당후보로 세번이나 낙선한 끝에 4번째 도전에 성공한 집념파 정치인. 10대때 통일당 후보로 나서 첫 고배를 마신후 11대때는 민한당후보로 출마했다. 좌절을 겪은데 이어 88년 4.26총선에서는 무소속으로 나섰으나 24.6%의 득표율로 3위를 기록. 충북 중원군 출신인 허씨는 현재 음성군생극중학교 재단이사장과 대한염업조합이사장을 맡고 있다. 부인 이계영씨(58)와 2남4녀.〈구본영기자〉
  • 진천 막판까지 땀쥔 시소게임/대구ㆍ진천 보선 이모저모

    3일 저녁부터 철야로 개표가 진행된 대구서갑및 진천ㆍ음성 보궐선거는 가칭 민주당후보들이 예상보다 선전,4일 새벽 늦게야 당락의 윤곽이 판명. 특히 진천ㆍ음성지역에서는 가칭 민주당의 허탁후보가 예상을 뒤엎고 진천지역에서의 우세를 바탕으로 4일 새벽부터 박빙의 리드를 보여 손에 땀을 쥐게하는 접전을 계속했다. 두지역 모두 투표율이 지난 4ㆍ26총선보다 7%포인트이상 낮아 이번 선거의 정치적 이슈 부재를 반영한 것이 특색 ◎야서 개표착오 확인 “무효다”거센 항의/문후보 초반부터 계속리드…민자선 당선장담/대구서갑 ▷대구서갑◁ ○…이날 개표작업은 당초 예상보다 약1시간 늦은 하오8시30분부터 시작됐으며 개표작업과정에서 유효표여부를 놓고 야당측 참관인들이 항의를 제기함에따라 이날밤 11시50분부터 4일 새벽까지 개표가 중단. 이날 개표작업에 앞서 부재자투표 1천7백44장을 개봉하는 과정에서 우의형 대구서갑 선관위원장은 『부재자투표용지중 84표가 이상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말하고 『이중 내봉투가 없는 13장은 무효,봉함이 안된 71장은 유효로 처리한다』고 선언. ○…개표초반 문후보측이 7대5의 비율로 앞서 나가다 평리2동 2투표구에서 백후보측에 1백60여표차로 지게되자 민자당 진영에서는 한동안 침울한 분위기. 민자당측은 예상외로 개표상황이 접전의 양상을 띰에 따라 당초 하오10시30분 예정했던 문후보의 당선 인터뷰를 연기하는 한편 예상표격차도 1만여표에서 6천∼7천표로 낮춰잡는등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 이날 백후보측에 패배한 투표구의 선거운동 책임자인 김진영의원은 침통한 모습을 감추지 못한 반면 유효득표의 50%이상을 획득,1천만원의 상금을 타게 된 김한규의원은 시종 웃음을 띠어 대조. 그러나 곧이어 진행된 상리동 3투표구에서는 문후보가 1백2표를 획득한 백후보를 1백51표차로 압승을 거둠에 따라 민자당측 선거본부는 다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등 개표결과에 따라 시종 희비가 엇갈리는 모습. ○…문후보가 백후보를 시종 근소한 차로 리드하고 있는 가운데 밤12시 현재 12개 투표함에 대한 개표결과 문후보 1만2천23표,백후보 9천2백80표,김후보 1천5백5표인 것으로 잠정집계. ○…이날 순조롭게 진행되던 대구서갑 보궐선거 개표작업은 밤11시50분쯤 평리4동 4투표구의 투표함을 검표하는 과정에서 백후보 지지표가 문후보 지지표속에서 발견돼 소동이 발생,개표가 중단. 백후보측 선거참관인은 백후보의 표1백장 묶음이 문후보 표속에서 발견된 사실을 들어 선거무효를 주장하고 나섰으며 개표장 뒤쪽에서 이를 지켜보던 백후보와 백후보측 참관인들도 이에 덩달아 흥분,의자를 집어던지며 일순간 아수라장을 연출. 선관위측은 개표종사원의 착오를 인정하면서 다시 검표할것을 백후보측에 종용했으나 백후보측은 『재선거를 실시해야 한다』며 계속 완강한 자세를 견지. 이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이기택 민주당(가칭)창당준비위원장을 비롯한 민주당측 선거운동원 50여명은 4일 새벽0시40분쯤 개표가 진행되고 있는 대구서구청 정문쪽으로 몰려가 선거무효를 주장하며 항의농성에 돌입. 이날 백후보측의 소란과 항의시위는 백후보측이 우세할 것으로 예상됐던 평리4동에서 의외로 문후보측이 큰 표차이로 앞서자 이에 대한 반발심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 ○… 이날 자정이 넘어서면서 문후보가 계속 비슷한 비율로 백후보르 앞서나가자 백후보측은 자신들의 승리를 장담하면서 미리 준비한 당선사례 유인물을 지역구 곳곳에 살포. 이와함께 문후보측 선거사무실에서는 선거운동원들이 술과 음식을 차려놓고 승리를 미리 자축하는 모습. ○…이날 하오9시10분쯤 내당1동 1투표구의 투표함에 대한 개표작업을 진행하던 도중 백후보자측 선거참관인이 『투표용지2장이 겹쳐진것으로 발견됐다』며 선관위측에 이의를 제기함에따라 약5분간 개표작업이 중단. 이에 선관위측은 『따로 투표된 2장이 우연히 겹쳐진 것으로 보여 유효표로 본다』고 지적. 결국 두장씩 겹쳐진 4장의 투표용지는 각각 문희갑후보 2표,백승홍후보 2표인 것으로 판명. ○…이날 내당1동의 4투표함과 부재자투표등을 합친 투표용지를 개표한 결과,문후보가 9백14,백후보가 5백61표를 득표한것으로 드러나자 백후보는 『부재자투표를 포함한 득표차가 이정도면 승리할것으로 확신한다』고 장담. 그러나 내당1동 1투표함에 대한 개표결과에서도 역시 비슷한 비율로 문후보가 1천2백22,백후보가 9백73표를 득표한 것으로 집계되자 백후보측진영은 실망하는 빛이 역력. 이번 보궐선거에서는 정호용씨의 후보사퇴파동에 영향을 받은 탓인지 첫번째 개표에서도 무효표가 1백31표가 나오는등 정씨에 대한 「추모표」가 의외로 높게 반영돼 이채. ◎허후보 주소지서 몰표…처음 민후보 앞질러/예상대로 여­음성ㆍ야­진천 우세 유지/진천ㆍ음성 ▷진천ㆍ음성◁ ○…이날 하오9시쯤부터 시작된 개표작업은 진천군청 회의실과 음성군청 회의실 두곳에서 동시에 진행 ○…음성ㆍ진천 보궐선거는 개표시작 4시간동안 민후보가 박빙의 리드를 지켜 나갔으나 4일 새벽0시30분 집계에서 처음으로 허후보가 앞지르기 시작하면서 시소게임. 이날 개표추이는 당초 예상대로 음성지역은 민후보가,13대 총선에서 야당바람이 거세게 일었던 진천지역은 허후보가 앞서가는 양상으로 진행. 민후보의 투표구인 음성군 제1투표구에서는 근소한 표차로 민후보가 앞선데 비해 허후보의 주소지인 생극면에서는 허후보가 무려 다섯배에 가까운 몰표를 얻으면서 파란. 이날 음성군청 개표장에 나와 관람하던 허후보측은 진천지역에서 허후보가 줄곧 민후보를 앞지르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이에 고무된듯 장기욱의원등 가칭 민주당측 참관인이 개표를 진행하는 검사원들의 사이를 누비며 일일이 개표과정을 감시. 반면 민자당측은 선거사무실에서 이에 당황한듯 TV앞에서 선거속보를 지켜보며 안절부절하는 표정이 역력. ○…이날 개표장에 나와 관람인석에서 개표상황을 지켜보던 가칭 민주당 김광일의원은 하오11시30분쯤 허탁후보의 우세가 나타나자 『양반의 고장 충청도로부터 민족의 횃불이 켜지기 시작했다』고 흥분. 또 13대총선때 청주시 을구 구민주당후보로 출마했던 정기호변호사(가칭 민주당창당준비위원)는 밤12시쯤 음성ㆍ진천의 미개표 투표구 유권자성향을 분석한뒤 『게임은 이미 끝났다』고 허후보의 승리를 주장하기도. ○…진천군의 개표는 군내32개의 투표소중 3분의2이상인 22개투표함이 도착한 하오9시 진천군 선관위원장인 최영용씨(30ㆍ청주지법 판사)의 개표 개시선언으로 하오6시40분쯤 제일 먼저 도착한 문백면 제4투표구 투표함과 군내8백53명의 부재자 우편투표함이 동시에 개함되면서 시작됐다. 개표가 진행되는 동안 개표장인 진천군청 정문과 청사주변에는 경찰관 1백10여명이 카빈소총과 가스총으로 무장,철저한 경비를 폈고 한전은 개표장에 자가발전시설을 설치,정전에 대비했다. 한편 두 후보측이 서로 『상대방이 불법선거를 자행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이곳 진천ㆍ음성선관위의 이경민위원장(33)은 『지난 총선에 비해 더 타락ㆍ불법선거라는 증거가 없다』고 언급. ○…음성군 맹곡면 인곡리 꽃동네(회장 오웅진신부)유권자 7백82명중 7백80명은 지난달 28일 부재자투표를 완료. 노환ㆍ정신질환자ㆍ행려병자들인 이들은 거동이 불편해 선거때마다 선거구내에 거주하면서도 부재자투표를 해왔는데 꽃동네가 천주교 사회복지시설인 탓으로 독실한 천주교신자(본명 바오로)인 민자당 민후보의 지지표가 압도적일 것이라는게 민후보측의 기대. ○…1시10분쯤 진천군 백곡면 갈월리 중로부락에선 민자당원 서완택씨(38ㆍ백곡면 구수리 546)등 2명이 지난달 28일 민자당원들에게 폭행당했다며 음성 순천향병원에 입원중 31일 수안보온천을 다녀온 민주당(가칭)의 박찬종의원을 비방하는 유인물을 돌리다 민주당 중앙당사무차장 김현중씨등 2명에게 백곡파출소로 끌려가는 등 소란. 민주당측은 유인물 배포가 선거법 위반이라며 민자당측을 고발한 반면,민자당원들은 서씨등으로부터 구타를 당했다며 폭행혐의로 맞고발.
  • 공명선거와 정당의 역할/이번 보선이 주는 교훈(사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대구서갑과 충북진천·음성등 두곳의 보궐선거일자가 드디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공명선거와 관련해 또 다시 많은 문제들을 야기하며 유권자들의 심판을 기다리는 마무리단계에 이른 것이다. 비록 선거가 끝나더라도 그 후유증은 만만치 않게 남을 것이 틀림없다. 선거 때마다 탈법과 폭력이 계속 된다면 정치발전이 이루어질 수 없음은 물론 국민의 정치불신이 커 질 것이다. 따라서 작금의 불미스런 선거풍토는 앞으로 시정되고 차단되어야 마땅하다. 이제 더 이상 머뭇거리지 말고 선거문화와 의식의 개선을 통해 정치발전의 중요한 과제로 삼아야한다. 이를 위해 우선 이번 보선에서 빚어진 여러문제점들의 인과를 반성을 해보고 이를 개선의 계기로 삼는 것이 필요하다. 선거의 공명과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정당의 역할임이 보선과정에서 새삼 드러나고 있다. 이번 선거에 참여한 정당들의 공명의지가 약했다는 얘기이다. 정당이 공천후보를 당선시키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폭력·타락등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당선시키는 것이 아니라「공명한 가운데」라는 전제가 붙는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이 전제가 경시된 느낌이다. 이번 보선은 3당통합으로 민자당이 발족된 이후 첫번째 선거이다. 따라서 선거풍토개선과 공명선거에 대한 기대가 그만큼 클 수 밖에없다. 민자당이 스스로에 대해 가장 크게 의미를 부여한「정치의 안정과 발전」이 선거문화의 개선과도 직결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자당은 이같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실망을 안겨주었다. 공명선거의 의지를 보이기보다는 자당후보의 당선에 더 비중을 둔 듯한 행동을 보였기 때문이다. 의석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거대여당으로서 1·2석에 연연할 것이 아니라 전체와 장래를 생각하여 공명한 자세를 선도했어야 마땅한데도 이를 외면한 것같아 아쉽다. 3당통합을 물고늘어지는 야당에 보선에서의 승리를 통해 그 정당성을 보여주려는 것이라면 더더욱 공명의지가 필요하다. 야당인 평민당이 스스로 후보조차 내지못했고 여당후보가 여러가지로 보아 유리한 상황에서 공명선거를 통한당선은 얼마든지 가능하고 값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찾아온 기회를 스스로 놓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또 보선에 의미를 부여하고 승리에만 집착하는 것도 문제이다. 보선은 그야말로 해당지역 출신의원을 보충하는 것이지 3당통합의 정당성 여부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제6공화국 들어와 실시된 동해재선거가 「축소중간평가」라는 의미 부여로,서울 영등포을재선거가「공안정국심판」이라는 야당의 의미부여로 과열 타락했던 사실을 알고 있다. 여야 모두가 앞날을 위해 깊이 생각해야 될 문제이다. 우리 이번 기회에 선거법을 만든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인들이 이 법을 지키려는 의지가 있는지 묻고 싶다. 이 법이 제대로 지킬 수 없을 만큼 엄격한 것이라면 현실에 맞게 고칠 용의가 있는지도 알고 싶다. 만약 고쳐야 된다면 총선에 임박해서 정략적으로 적당히 손보고 넘어갈 것이 아니라 최근의 총선과 재선·보선등에서 나타난 문제들을 잘 살피고 전반적인 개선을 강구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이제는 국민들 스스로도 공명선거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야 될 때가 왔다고 생각된다. 비록 보선이 특정지역에서 실시된다 해도 남의 일로 생각하지 말고 「공명」이라는 관점에서 다시한번 쳐다보기를 권유한다. 국민들이 관심을 두면 둘수록 과열과 혼탁,나아가 부정은 줄어들리라고 확신한다. 끝으로 선관위는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부정을 찾아내고 고발하는 노력을 벌여야 할 것이다. 폭력이나 금품 살포가 공공연히 이루어져서는 선거의 의미가 제대로 지켜질 수 없다. 선거가 끝난 후에도 선거의 실태와 문제점,그리고 법과 현실의 문제 등을 재음미해 앞으로의 정치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기틀을 다져야 할 것이다.
  • “D­2”…대구ㆍ진천 보선유세 이모저모

    ◎“부동표를 잡아라”…대세몰이 총력/굵직한 공약제시에 “경제실책”반격 대구/「운동원충돌」·「합당」 싸고 공방 치열 진천/단상의 열기에 비해 유권자들 의외로 차분 대구서갑과 충북 진천·음성보궐선거 막판 합동연설회가 31일 이현국민학교와 음성공설운동장에서 2만여명과 3천여명의 유권자들이 각각 참석한 가운데 열려 종반전에 들어간 선거전이 열기를 뿜었다. ▷대구서갑◁ ○…이날 하오2시 이현국민학교 운동장에서 열린 대구서갑보궐선거 2차합동연설회는 이번 보궐선거의 「태풍의 눈」으로 지목됐던 정호용씨가 후보를 사퇴한 탓인지 1차합동연설회때 보다 유세장의 열기도 다소 가라앉았으며 참석 유권자들도 1만여명이 줄어든 2만여명 수준. 이날 연설회에서 야당과 무소속 후보들은 최근의 경제난과 함께 정씨 사퇴과정에서 드러난 부도덕성을 집중공박했으며 민자당의 문희갑후보는 이에 맞서 야당측의 선전·선동정치술수를 비난하는 한편 경제전문가로서의 장점을 활용,굵직한 지역공약사업을 제시하며 유권자의 지지를 호소. 특히 이날연설회에서 무소속 김현근후보의 지지운동원 5백여명이 유세장 우측에 자리잡고 타후보들이 자신들의 지지를 호소할 때마다 유세장에 몰래 반입한 불법대형플래카드를 펼쳐들고 이에 반박해 눈길. 「방값올라 못살겠다」「민중후보 선출하여 독재야합 분쇄하자」로 지지운동원들의 열띤 호응속에 처음으로 등단한 김후보는 문후보와 민주당(가칭)의 백승홍후보를 인신공격성에 가까운 내용으로 맹공. 김후보는 특히 『경제실책의 책임자가 누구냐』『누가 전·월세값을 폭등시켰느냐』는 등 유권자들과의 문답식 연설로 문후보를 비난하는 한편 백후보에 대해서는 『보안사에 있을 땐 민주인사를 두들겨 잡다가 이제와서 민주투사를 자칭한다』고 좌충우돌식 공격. ○…이어 등단한 문후보는 자신을 지지하는 운동원들의 성원과 타후보 지지운동원들의 야유가 엇갈리는 가운데 『멋있는 일꾼이 되겠으니 일할 기회를 달라』고 지지를 호소. 문후보는 1차연설회에서 보였던 수세적 입장에서 탈피,공세적 자세로 전환하여 『정치발전의 발목을 잡고 뒷걸음치게 만든사람이 누구냐』고 반문하면서 『야당은 언제는 정선배가 출마해선 안된다고 했다가 이제는 사퇴해선 안된다고 한다』며 일관성을 가질 것을 요구. 문호보는 그러나 자신은 『정선배를 극진히 모시겠다』고 약속하고 『김희갑은 웃음으로 국민을 기쁘게 하지만 문희갑은 좋은 정치로 기쁘게 하겠다』고 호소. 문후보는 이어 경제전문가로서 자신의 장점을 거론하면서 ▲섬유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한 2백억원 지원 ▲내년 지하철 착공 ▲대구∼성주간 2차선도로의 4차선확장등 공약을 열거한 뒤 주어진 30분을 모두 채우지 않고 20분만에 하단. ○…마지막으로 등단한 백후보는 목청을 높여 3당통합을 성토한 뒤 『이것이 노대통령이 약속한 민주화냐』며 노태우대통령을 겨냥. 백후보가 이어 최근의 전·월세값폭등문제 등을 거론하면서 월세값 50만원을 마련하지 못한 주부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실을 거론하는 순간 하오 3시10분쯤 연단앞에서 백후보에게 야유를 보내던 문후보 지지운동원들과 백후보지지운동원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져 5분간 연설이 중단되는소동이 발생. 백후보는 다시 연설을 계속,금방 노대통령을 겨냥했던 자세를 바꿔 『노대통령이 전전대통령의 전철을 밟지 않고 민생치안문제,경제위기 등 현안을 정신차려 타개해 나갈 수 있도록 전통야당후보인 내가 당선돼야 한다』고 주장. 백후보가 이처럼 좌충우돌식으로 왔다 갔다하며 연설시간을 계속 소모하자 연단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김현규민주당(가칭)선거대책본부장이 「정호용문제」「진천­음성폭력사태」라고 쓴 쪽지를 잇달아 백후보에게 전달. 그러나 백후보는 『민자당은 2백17석도 양이 차지않아 반쪽짜리 2년 국회의원마저 차지하기 위해 정씨를 강제 사퇴시켰다』면서 『국군통합병원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는 정씨의 쾌유를 비는 의미에서 박수를 보내자』고 했으나 의외로 박수가 적어 이날 유세장에는 정씨 적극 지지세력이 오지 않았거나 정씨 지지열기가 식은 것으로 관측. ▷진천·음성◁ ○…31일 하오 음성공설운동장에서 열린 마지막(6차)합동연설회에서 민태구(민자당)·허탁(가칭 민주당) 두 후보는 마지막 유세임을 감안,선심성공약과 상대방에 대한 반박논리를 총동원하는 등 총력전 양상. 그러나 연설회에 나온 3천여명의 주민들은 단상의 열기에 비해 큰 박수나 야유가 없이 차분히 경청하는 분위기여서 대조적. 양후보진영은 이날 유세에 앞서 지명도 높은 당소속 현역의원들을 유세장주변에 배치하는등 막판 「바람몰이」에 안간힘을 쓰는 모습. 민자당은 이날 상오 김종필최고위원이 지구당사를 방문,민후보를 돕고 있는 이 지역의 구공화당 기간당원 40여명을 격려하는 등 측면지원하는 한편,정종택·신경식·안영기의원등 충청권의원 10여명이 유세장주변을 누비기도. 민주당(가칭)도 김광일·노무현·장석화의원등 이른바 「청문화스타」들을 내세워 유세장입구에서 유권자들에게 악수공세를 펴는등 맞대응. ○…합동연설회에서 민후보는 3당통합의 당위성과 2백88개에 달하는 지역개발공약으로 유권자의 지지를 호소한 반면,허후보는 3당통합의 부당성과 지난 28일 「감곡충돌사건」으로 여권을 공격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 첫 순서로 등단한 허후보는 박찬종의원과 민자당 당원과의 충돌사건에 언급,『이는 민자당이 패색이 짙어지자 최후수단으로 폭력을 동원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6공의 제일 큰 치적은 민생치안부재와 전세값폭등』이라고 공격. 이에 대해 민후보는 박의원사건과 관련,『선거법위반사례를 보고 지서로 같이 가자고 몸싸움하는 과정에서 생긴 해프닝』이라고 주장하고 『서울·부산지역의원이 뭣하러 음성까지 와서 불법선거를 자행하느냐』고 반박. 민후보는 『3당통합은 우리도 일본처럼 국민소득 2만달러를 성취하기 위해 강력한 정치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히고 ▲농공단지 유치 ▲농산물 가격안정 대책마련 ▲충주·청주에 대학생기숙사건립등 지역사업 공약을 열거.
  • 헝가리의 새선택 “중도우파”/“43년만의 자유총선”결과와 전망

    ◎총투표의 75%획득… 집권사회당등 좌파참패/2차투표결과 나와야 제1당ㆍ연정 구성 판가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25일 헝가리 총선에서 중도우파가 압승을 거두었다. 1947년 8월31일 총선이래 여러 당이 참여한 첫 자유총선에서 공산당 개혁파가 새로 구성한 현 집권사회당 등 좌파정당들은 참패했다. 이번 선거에서 80%가 개표된 27일 현재 중도우파로 분류되는 헝가리 민주포럼(MDF)이 24.5%,자유민주연맹이 21%,소지주당이 12%,청년민주동맹이 8.77%,기독교민주당이 6.42%를 획득했다. 반면에 좌파정당인 집권사회당이 10.6%를 득표,4위로 밀려났으며 사회주의 노동자당과 농민당은 득표가 전체 유효표의 4%를 넘지 못했다. 헝가리 선거법에 따르면 전체 유효표의 4%를 넘지 못할 경우 비례대표의원을 낼 수 없게 돼 있다. 총유권자 7백80만여명 가운데 64% 가량이 투표에 참가한 가운데 나타난 이번 총선결과는 헝가리 국민들이 앞으로의 국가운영을 중도우파에 맡기기로 결정한 것을 의미한다. 헝가리 선거방식은 매우 복잡하다. 1백76석의 지역선거구,1백52석의 군비례대표,58석의 전국비례대표 가운데 앞의 정당별득표율은 군비례대표 득표율이다. 지역선거구의 경우 1차 투표에서는 5명의 당선자만 나와 대부분 4월8일 재선거를 치러야 한다. 따라서 아직은 어느당이 1당이 될지는 2차 투표가 끝나봐야 알 수 있지만 중도우파가 다수의석을 점할 것은 분명하다. 선거결과에 대해서는 대체로 3가지 원인분석이 따르고 있다. 첫째 헝가리 사회가 공산통치 하에서도 꾸준히 개혁ㆍ개방정책을 추진해 왔기 때문에 서구적인 가치를 상당부분 수용하고 있다는 점,둘째 공산당 개혁파들이 비록 사회당으로 변신했지만 아직도 스탈린식 정치체제의 억압적 성격과 경제적 낙후성이라는 이미지를 떨쳐버리지 못했다는 점,셋째 특히 민족주의적 색채가 강한 민주포럼의 경우 최근 루마니아에서 소수인종인 헝가리인들에 대한 박해가 가중되면서 민족주의 감정이 고양된 점 등이 유리했던 것으로 열거되고 있다. 현 시점에서 각 정당들은 2차 투표 승리를 위한 공천연합등에 주력할 것으로 보이며 연립정부구성 논의는 2차투표 결과가 나온 뒤에나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는 민주포럼과 자유민주동맹의 연정 가능성은 양측이 다 부인하고 있지만 2차 투표결과에 따라서는 그 가능성이 아주 없지도 않다. 앞으로 출범할 중도우파 정부가 맞닥뜨릴 문제도 만만치 않다. 우선 어느 정당도 사회당과의 연정 가능성을 배제하고 있어 통치경험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정부를 운영해야 한다. 공산주의 관료조직의 개편도 쉽지 않은 문제다. 둘째,경제의 자본주의화가 진척됨에 따라 25%에 달하는 인플레가 더 높아질 것으로 우려되며 경쟁력이 약한 기업들의 도산으로 실업문제가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 2백10억달러의 외채도 무거운 짐이다. 셋째,서방과의 유대를 강화하면서 소련과의 관계도 유지하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다. 또 중부유럽에서 헝가리가 독자적 위치를 확보하는 문제도 과제다 그러나 공산통치하에서도 헝가리 국민들이 꾸준히 개방ㆍ개혁정책을 추구해 온 점,커다란 혼란없이 중도우파노선으로 정치적 대변혁을 이룬점,그리고 정책방향이 중도우파로 단순화된 이점등 헝가리의 장래는 어둡다기보다 밝은편에 속한다.
  • 여권 내부갈등 수습… 정국 긴장해소/정호용후보 「사퇴」결심의 함축

    ◎노대통령 권위강화ㆍ분열 시련 극복/청와대 「부부회동」서 마음 굳힌듯/정씨 명예회복 위한 공직 배려 예상도 정호용 전의원의 대구 서갑보궐선거 후보사퇴가 확실시되면서 대구 보궐선거를 둘러싼 정국의 긴장상태가 극적으로 해소될것 같다. 정씨는 25일 전날 노태우대통령을 면담,후보사퇴를 종용받았다고 밝힌뒤 이날 하오 열린 1차 합동유세에 불참했다. 정씨는 26일 중 후보사퇴에 대한 자신의 최종입장을 밝히겠다고 했으나 유세에도 나오지 않은 상황등을 감안할 때 후보사퇴가 기정 사실화 되고 있다. 정씨가 후보를 사퇴한다면 그동안 정씨의 무소속 출마가 여권내 갈등표출,특히 통치권에 대한 도전 행위로 비쳐지는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던 민자당등 여권 핵심부는 큰 시름을 덜게 된다. 정씨의 무소속 출마는 그의 당선 가능성 여부를 차치하더라도 여권에 상당한 부담이 되었었다. 지난해말 당시 여권 4당이 정씨의 공직 사퇴라는 「희생」을 딛고 5공청산에 합의했고 여권은 이를 바탕으로 금년초 3당통합의 정계 대 개편을 이룩해냈다. 그러나 정씨가 보궐선거에 무소속 출마를 선언함으로써 정계개편이 이뤄질 수 있었던 논리적 기반을 흔들기 시작했다. 정씨의 출마가 이번 대구보궐선거를 당초 예상처럼 광주사태를 둘러싼 호남 대 영남의 지역대결 구도로 이끌었던 것이 아니라 정계개편에 대한 여권내 갈등을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했다는 것이 이러한 추론을 뒷받침한다. 여기에 지난해 5공청산 과정에서 「불이익」을 감수해야했던 일부 불만 세력들이 정씨에게 심정적 동조를 보냄으로써 여권은 심각한 분열양상을 맞을 위기에 처했었다. 정씨가 보궐선거에서 당선됐을 경우 여권은 자신들의 권력 시발지라 할수있는 대구에서 조차 「지지」를 받지 못했다는 따가운 질책을 면치 못하게 될 것이며 이에따라 3당통합등 6공의 정치구도가 전반적으로 부정적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케 된다. 반대로 여권이 총력을 경주한 혈전 끝에 정씨를 패퇴시킨다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깊어진 구 동지끼리의 갈등의 골은 치유키 어려울 정도로 악화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여권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카드는 정씨의 후보사퇴일 수 밖에 없었으며 노대통령은 두차레나 정씨와 직접 면담,후보사퇴를 설득했다. 특히 정씨의 후보사퇴에 가장 반발을 했던 인사가 정씨의 부인(김숙환씨)이었던 점을 감안,대통령부인 김옥숙여사까지 설득에 나섰다는 사실이 정씨의 사퇴를 향한 여권의 간곡한 노력을 대변한다 하겠다. 여권은 정씨가 후보 등록하는 것을 막지는 못했지만 선거중반 이전 조기 사퇴를 이끌어 냄으로써 선거전 자체뿐 아니라 앞으로 정국운영에 있어 안정적 토대를 견지할 수 있게 됐다. 선거 막바지에는 정씨가 사퇴 하더라도 그를 지지하는 표가 반발심리에서 민자당이외의 후보에게 돌아갈 수도 있었으나 이제는 이들을 무마할 충분한 시간을 확보했다고 볼수 있다. 대구보궐선거는 이에 따라 진천ㆍ음성의 경우처럼 「조용한」지역선거로 그 열기가 떨어질 것으로 관측된다. 그동안 다수 소속의원을 투입,대구보궐선거에 총력을 기울여왔던 여권은 3당통합후 닥친 첫 시련을 무난히 극복,내부 결속을 공고히 할 수 있게 됐으며 원외조직책 인선ㆍ전당대회준비 등 정상적인 마무리 합당절차에 진력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노대통령도 대구ㆍ경북(TK)지역의 집안싸움을 직접 나서 진화시킴으로써 통치권의 권위를 과시했고 더욱 확고한 지도체제를 갖출수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정씨는 비록 공직에 이어 다시 후보사퇴에 따른 인간적 좌절감은 맛보았겠지만 보궐선거에서 패했을 때 광주책임을 전적으로 뒤집어 쓸 수밖에 없는 위험부담은 피했다고 할 수 있다. 또 여권은 정씨에게 사퇴를 설득하면서 일정기간이 지난후 정씨의 명예를 회복시킬 수 있을 만한 공직을 약속하는등 「배려」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돼 그 이행여부가 관심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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