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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환 1년… 딜레마의 홍콩 경제(해외사설)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이 중국 복귀 1주년을 맞는 홍콩을 잇따라 방문했다.클린턴 대통령은 중국을 방문해 장 주석과 정상회담도 가졌던 터다. ‘1국 2제도와 자치를 유지한다’는 중국의 약속이 지켜질 것인가라는 복귀 전의 불안은 두 정상의 방문을 보아도 당분간은 해소됐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장 주석에게 항의하는 데모도 허가되고 자치를 상징하는 입법의회 첫 회의도 열렸다. 1년전 중국에 복귀하면서 1만7,000발의 불꽃을 쏘아 올리며 찬란하게 축하 행사를 마련했던데 비해 두 정상을 맞는 분위기는 차분했다.표면적인 정치의 안정과는 대조적으로 경제사정은 어려워져 아시아 금융센터로서의 위치는 흔들리고 있다. 주가는 복귀 전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고 부동산 가격도 폭락했다.실업률은 2.4%에서 4.2%로 크게 악화됐다.주된 원인은 미국 달러화에 연동시킨 특유의 고정환율제를 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 금융위기로 각국의 통화 가치가 하락했기 때문에 홍콩 달러화도 가치가 떨어지면서 미 달러화에 대한 환율은 비싸졌다.통화가치의 하락을 막기 위해 고금리정책을 지속시킬 수밖에 없고 그 결과 비지니스 비용이 크게 오르게 됐다. 그렇다고 고정환율제를 포기한다면 홍콩 달러화 가치의 폭락은 불을 보듯 뻔하다.그리고 세계에서 모여든 자금이 홍콩으로부터 순식간에 빠져 나가 아시아 금융센터로서의 지위를 위협받게 된다. 이런 딜레마속에서 지난 5월에 실시된 중국 복귀 후 첫 입법의회 선거는 예상을 크게 뛰어 넘는 투표율을 기록했으며 선거에서는 ‘민주파’가 대거 당선돼 홍콩 주민들의 불만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무어라해도 아시아 금융센터인 홍콩의 본격적인 경기회복에는 아시아 경제 회복이 불가결하다.특히 일본 경제의 회복이 절실하다.둥젠화(董建華) 홍콩 행정장관은 클린턴 미국 대통령 환영 만찬회에서 “엔화 환율의 안정과 일본 경제의 회복은 아시아 금융안정 뿐만 아니라 세계경제로서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딜레마에 빠진 홍콩도 일본의 경기회복을 강하게 희망하고 있는 것이다.
  • 행자부 1급인사 ‘소문난 잔치’

    ◎예상밖 소폭… 출신 장벽없애기 무색 행정자치부가 25일 1급 3명의 자리를 바꾸는 인사를 단행했다.총무처 출신의 吳馨煥 기획관리실장(51·행시 8회)이 ‘내무부 자리’인 지방행정 연수원장으로,그 자리에 있던 내무부 출신 安載憲 관리관(50·행시 10회)이 과거총무처 몫인 국민고충처리위 상임위원으로 발령났다.金範鎰 국민고충처리위상임위원(48·행시 12회)은 기획관리실장에 보임됐다.金正吉 장관이 공언했던 ‘내무부와 총무처의 화학적 결합’이 첫 선을 보인 셈이다. 내부의 반응은 일단 ‘기대보다는 소폭’이라는 것이다.‘두 부처 출신을 뒤섞는 인사’라는 설명에 대해서도 고개를 갸우뚱하는 모습이다. 행자부가 인사권을 갖고 있는 1급 자리는 모두 9개.따라서 ‘혼합’에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이번 인사의 핵이 金 신임실장이라는 데에는 관계자들의 의견이 일치한다.金장관이 그동안 ‘능력위중’ ‘연공서열 탈피’를 외친 것도 金 신임실장을 중용하기 위한 정지작업이 아니었겠느냐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金 신임실장은 지난 연말 총무처 조직국장 시절 당시 金大中 당선자측의 정부조직개편 심의위원회에 차출됐다.이 때 이른바 ‘신(新)실세’들로부터 인정받아 새정부 출범과 함께 1급으로 승진한 데 이어 세달 만에 ‘당당히’ 본부로 입성한 것이다. 곧 있을 국장급 인사 마저 이번 처럼 ‘소문만 무성하고 먹을 것 없는 잔치’가 될 경우 이같은 추측은 ‘정설’로 굳어질 전망이다.
  • ‘구태의 틀’ 완전히 벗는다/국민회의 당선자대회 이후 진로

    ◎정치개혁없이 IMF 극복 불가능 인식/野大 허물고 정치·경제개혁 강력 시동 국민회의가 총제적 국정개혁의 ‘청사진’ 마련에 착수했다. 16일 金大中 대통령이 ‘21세기를 향한 총체적 국정개혁’ 단행을 천명함에 따라 ‘개혁의 견인차’로서 최일선에 나선다는 각오다. 辛基南 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金대통령의 개혁 의지와 국민의 여망을 받들어 거당적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천명했다. 최우선 과제는 정치개혁이다. 정치개혁없이 경제재건 등 IMF 체제극복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이다. 金대통령도 이날 올림픽 펜싱경기장에서 열린 국민회의의 ‘6·4 지방선거 당선자 대회’에서 치사를 통해 “정치권이 경제의 발목을 잡아 한치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며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원내 과반수를 확보하기 위한 정계개편이 첫 출발점이다. 이어 동서화합을 위한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 등의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金대통령이 “야당은 서쪽으로 여당은 동쪽으로 뻗어나가 전국적인 정당이 돼야 한다”고 밝힌 것도 이런 맥락이다. 이에 따라여권은 원내 과반수 의석을 확보한뒤 곧바로 15대 국회 후반기원구성 협상에 나서 ‘개혁의 토대’를 마련한다는 복안이다. 이는 단순한 정계개편에 머물지 않고 법과 제도개선에 총력전을 펼치겠다는 구상이다. 당면과제로 ▲국회제도 개선 ▲예산기구 단일화 ▲2단계 정부조직 개편으로 꼽고 있다. 당 지도부가 총동원,여·여(與·與)의 긴밀한 협조와 대야 협상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당장 오는 26일 국회제도 개선을 위한 공청회를 열어 폭넓은 의견을 모아 예결위 상설화와 국회의장의 당적이탈,복수 상임위 배정 등을 제도화한다는 계획이다. 이와함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국정 전반에 걸친 개혁 청사진을 제시,강력한 ‘개혁정책’을 도출하겠다는 계획이다. 정책위가 중심으로 당정협의에서 구체적인 개혁안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기업·금융개혁에 총력전을 펼친다는 각오다. 金대통령도 이날 “법테두리안에서 모든 노력과 힘을 동원하겠다”고 선언했다.
  • ‘野大’ 틀 깨고 개혁 드라이브/金 대통령의 향후 정국구상

    ◎정국 주도권 확보… 사회 전반 쇄신/경제회생 정지작업 연내 마무리 14일 귀국한 金大中 대통령의 ‘정국구상’에 정가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정계개편을 둘러싸고 ‘꼬인 정국’을 金대통령이 어떻게 푸느냐는 것이다.金대통령의 방미 기간중 여야간 감정은 더욱 악화됐다.정계개편과 국회 후반기 원구성 문제 등을 놓고 연일 설전을 벌였다.정계개편 공방은 여여간 내각제 공방으로도 이어졌다.‘개혁 차질’이라는 위기감도 나돈다. 이같은 위기 국면은 金대통령이 정국 주도권을 직접 틀어 쥐면서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15일 金대통령은 여야 총재들을 만나 ‘개혁의 불가피성’을 설명한다는 방침이다.아울러 범국민적인 ‘개혁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도록 초당적으로 협력해 줄 것을 당부할 계획이다. 金대통령은 16일에는 국민회의가 주관하는 ‘지방선거 당선자대회’에 참석,정국구상을 밝힌다.이른바 ‘미국 구상’이다.개혁에 대한 ‘상당한 결심’과 ‘결연한 의지’가 담길 것으로 알려졌다.국민에게 알릴 것은 알리고 이해를 구함으로써 정국을 주도하겠다는 계산이다. 이 구상의 핵심은 두 가지다.하나는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걸친 개혁을 동시다발로 추진한다는 것이다.다른 하나는 개혁의 효과를 극대화하자는 것이다. 야당의 협력이 여의치 않으면 국민에게 직접 호소하는 배수진을 친다는 각오다. ‘미국 구상’의 첫 단계는 야대(野大)의 틀을 깨고 개혁 입법을 관철하는 것이다.중장기적으로는 ‘여서야동’(與西野東)과 같은 지역구도를 깨는 일이다.야당 일부세력과의 통합이나 지역연합,대연정(大聯政) 등 다양한 방안이 모색되고 있다. 金대통령의 ‘미국 구상’은 한시적이 아니라 임기내 지속적으로 추진할 광범위한 개혁 프로그램이다.일단 정국 주도권을 확보하면 국회와 선거·정당제도를 포함한 일련의 개혁을 과감히 추진하겠다는 것이다.여기에는 국회의 연중 개회,복수 상임위제 도입 등 국회 상임위 활동의 활성화,독일식 정당명부제의 도입 등 선거제도 개혁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기업의 대대적인 구조조정도 중요 부분이다.金대통령은 “구조조정만이세계 경쟁에서 이기는 길”이라는 점을 국민과 기업들에 ‘각별히’ 각인시키겠다는 의지다.경제회생을 위한 이같은 모든 정지작업은 올해 안에 매듭짓는다는 방침이다.그러나 ‘사정’(司正)은 국민 통합의 상징성을 고려,신중히 접근할 것으로 보인다.
  • 국민회의 영남권 첫 발판/울진 申丁 후보 현 군수 물리쳐

    ◎“金重權 시장 지원” 알려지면서 승기 【울진=李東九 기자】 영남권에서 첫 국민회의 소속 단체장이 탄생했다. 경북 울진군수에 출마한 국민회의 申丁 후보(57)가 현 군수인 한나라당의 田光瞬 후보를 물리치고 당선됐다. 申후보는 개표 3시간만인 하오 10시부터 田후보를 10% 이상 앞서 나가 일찌감치 승세를 굳혔다. 申 당선자는 선거전 초반부터 육군 소장 출신이라는 화려한 경력에도 불구하고 ‘TK정서’바람으로 선거기간 내내 고전했다.그러나 선거가 임박하면서 고향 친구이자 출마를 권유한 것으로 알려진 金重權 청와대 비서실장이 지지한다는 사실이 유권자들에게 알려지면서 승기를 잡았다. 申 당선자는 “경북지역에서 지역감정 해소와 동서화합을 위한 교두보 역할을 다하겠다”고 밝히고 “울진 발전의 새 틀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申당선자는 육군사관학교(20기)를 졸업하고 2군 부사령관을 역임한 뒤 지난 3월 국민회의에 입당했다.
  • 전국유일 국민신당 단체장/田鎰珣 논산시장 “녹색바람” 뚫고 영광

    ◎“망국적 지역감정 씻은데 자부심” 【논산=李天烈 기자】 전국에서 유일한 국민신당 기초단체장이 탄생했다.그것도 ‘녹색바람’이 몰아친 자민련의 텃밭에서다.화제의 주인공은 충남 논산시장으로 당선된 田鎰珣(65·현 시장) 후보.국민신당 李仁濟 상임고문의 고향인 이곳에서 그는 자민련 金甲生(62) 후보와 막판까지 접전을 벌이다 영광을 안았다. ‘李仁濟 바람’이 金鍾泌 국무총리가 일으켜온 거센 자민련 바람을 누른것이다.李 상임고문은 자신의 고향을 정치적 재기의 발판으로 삼고 田 후보를 지원하는데 모든 당력을 모았다.이틀에 한번 꼴로 이곳에 내려와 田 당선자를 지원했다. 田 당선자는 “망국적 지역감정이 휩쓸고 있는 가운데서도 시민들이 행정력과 도덕성을 모두 갖춘 나를 밀어줘 고맙다”고 말했다. 지난 61년 논산군 은진면에서 면서기로 공직생활에 첫발을 내디딘 뒤 논산·부여·예산 등 부군수를 역임하다 지난 95년 자민련 후보로 나서 첫 민선시장에 당선됐었다. 李 상임고문은 서울 중앙당에서 TV로 田 후보의 당선 사실을 확인한 뒤 전화로 “당선을 계기로 깨끗하고 새로운 정치세계를 만들어 가자”며 축하했다.
  • 여성정책 담당관 첫 공채 선발/교육부 南承希씨·농림부 朴聖子씨

    교육부 초대 여성교육정책담당관(4급상당 별정직)에 명지전문대 부교수 南承希씨(45·여)가 선임됐다.南씨는 3일 교육부의 공개모집에 응모한 12명의 쟁쟁한 후보를 제치고 겸임 발령을 받았다.앞으로 교수와 공무원으로 1인 2역을 해야 한다. 여성교육정책담당관은 여성교육정책의 수립·조정,여학생 진로교육,여교사 권익보호,여성의 사회진출과 교육참여 확대 등을 총괄하는 실무책임을 맡게 된다. 南씨는 “여성들도 남성들과 당당하게 실력을 겨룰 수 있는 풍토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대구 출신으로 이화여대 불어불문학과를 나와 미국 인디애나대학에서 교육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명지전문대 부교수로 있으면서 한국여성사회교육회 부회장,청소년보호위원회 위원 등을 지냈다. 남편은 고려대 생명과학부 朴永仁 교수(47)이며,대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는두 아들이 있다. ◎농림부 朴聖子씨/미혼의 재야 농민운동가 “여성농업인 목소리 반영” 농림부의 첫 여성정책담당관(별정직 4급)에 농촌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미혼의 재야 농민운동가가 임명됐다.朴聖子씨(44)가 주인공.농림부의 공개모집에 대학교수와 민간연구소의 박사 출신 연구위원 등 7명의 쟁쟁한 후보들이 몰렸지만 이들을 모두 제치고 ‘당선’의 영광을 안았다. 朴 담당관은 서울여대 공예학과를 졸업하고 84년부터 전북 부안에서 미취학 어린이를 대상으로 어린이집을 운영하면서 농촌과 인연을 맺었다.기독교농민총연합 간사,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부회장 등을 거치며 농촌문제를 본격적으로 파고 들었다.15년여동안 현장에서 농촌의 ‘현실’을 지켜봐 농촌과 관련된 어떤 현안에 대해서도 훤하다는 평이다. 재야운동가에서 공무원으로 신분을 바꾼 朴 담당관은 앞으로 여성 농민들의 지위와 복지 향상을 위해 일하게 된다.3일 金成勳 농림부장관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으면서 “현장 경험을 토대로 여성농업인들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 부산·경남 票心잡기/국민회의 애타는 求愛/당지도부 부산방문 배경

    【부산=姜東亨 기자】 국민회의가 6·4지방선거에서 취약지역으로 꼽히는 부산·경남지역에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한 관심은 남다르다. 趙世衡 총재권한대행,金元吉 정책위의장 등 당지도부가 이 지역에서 23일 첫 정당연설회를 가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이는 야권에 열세인 곳에서 외롭게 뛰는 이 지역 단체장후보들에 대한 중앙당 차원의 애정어린 지원의 의미도 강하지만,그 보다는 앞으로의 정계개편 및 정국운영에 무게가 더 실려 있다고 할 수 있다.또 당선이 확실시되던 강원지사 후보를 자민련에 양보하고,취약지역인 부산과 경남으로 눈을 돌린 것도 지역정당의 한계를 탈피하겠다는 원려가 깔려 있다. 당 지도부는 정당연설회,지역 상공인들과의 만남,그리고 사석에서 이 지역 유권자를 향해 노골적인 구애작전을 폈다. 趙 총재대행은 “국민의 정부는 부산시민과 경남도민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우리가(국민회의) 이 지역에 관심과 사랑를 가지고 있는 만큼 솔직히 말해 사랑을 받고 싶다”는 직접화법을 구사했다. 국민회의 경남도지부 관계자는 선거가 끝난 뒤 “무소속 당선자를 영입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이는 우리가 얼마나 득표하느냐에 달려있다”고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 車和俊·沈完求·宋哲鎬/여·야 울산시장 후보 비교

    ◎자민련 車和俊/국회의원 경력의 경제전문가 부각 자민련 車和俊 후보는 경제차관보를 지내는 등 경제기획원에서 잔뼈가 굵은 경제전문가이다. 5공화국 때 경제기획원을 떠나 LG화재해상 사장 등을 맡아 전문 경영인으로서도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다. 14대 총선 때 국민당 후보로 울산 중구에 출마해 현 한나라당 金泰鎬 의원을 11표의 근소한 차로 누르고 금배지를 달아 정계에 진출했다. 민자당으로 출마한 15대 총선에서는 낙선의 쓴잔을 들었다. 지난 대선 때는 국민신당으로,최근에는 다시 자민련으로 옮겨 여당 연합공천 후보가 됐다.힘있는 여당의 후보가 시장이 돼야만 대형사업을 차질없이 추진할 수 있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자치행정을 이끌어 나가는데는 중앙 정치 경험까지 갖춘 경제 행정전문가가 적격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울산지역은 지난 대선 때 여당지지율이 15.4%에 그쳤다.여당 연합후보이기는 하나 지지 기반이 약해 어려움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한나라 沈完求/첫 민선시장… 지명도 높아 재선 자신 한나라당 沈完求 후보는 현직 시장이라는 지명도와 프리미엄을 최대한 활용해 재선의욕을 다지고 있다. YS인맥이라 다소 불리하지만 그동안 굵직 굵직한 사업들을 성공적으로 이끈 공로가 인정돼 당선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沈 후보측은 선거란 끝가지 가봐야 안다며 겉으로 매우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다. 沈 후보는 12,13대 두차례 국회의원을 지낸 경력을 비롯,풍부한 정치경륜을 지닌데다 지난 3년 동안 초대 민선시장으로 행정경험까지 두루 쌓았다.이 점이 沈 후보의 강점이다.한번만 더 시의 살림을 맡겨주면 ‘큰 울산’건설을 확실하게 마무리 하겠다고 강조한다. 울산광역시 승격과 울산 신항만 건설 착공,2002년 월드컵축구 경기 울산유치 등과 같은 대형 사업 성과에 시민들이 좋은 평가를 내려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옳다고 판단되면 과감하게 밀고 나가는 강력한 뚝심의 추진력이 장점이라는 평가이나 이 때문에 때로는 독선적이라는 말도 듣는다. ◎무소속 宋哲鎬/인권변호사 활동… 노동계 지지 기대 무소속 宋哲鎬후보는 두차례 민주당 후보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 경력에다 오랫동안 인권변호사로 활동해 나름의 폭넓은 지지기반을 갖고 있다.지역 노동계와도 가까운 관계다. 이 때문에 시민단체와 노동계 등으로 부터도 만만치 않은 지지를 얻고 있다. 최근 여러 여론 조사에서 沈후보를 바짝 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어 득표력에 관심이 쏠린다. 부산에서 태어나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부모의 고향인 전북 익산에서 초 중등학교를 졸업했다. 이것이 지난 총선때 지역감정으로 악용돼 손해를 봤다고 주장한다.당시 현 한나라당 金泰鎬 의원에 2천600여표 뒤져 낙선했다.총선과 지방선거에 잇따라 출마하는 것에 대해 참신성을 깍아내릴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무소속 한계를 극복하고 개인 인기를 얼마나 최대한 표로 연결하느냐가 과제다. □여야 울산시장 후보 비교 ◇차화준 정당:자민련 나이:63 출생지:울산시 울주군 학력:울산공고,연세대 정외과 주요경력:경제기획원 차관보(79년) LG화재해상보험(주) 사장(81년) 고려증권 사장(86년) 고려종합경제연구소 대표이사(89년) 국민신당 울산 시지부의원장,울산공고 총동창회장(현) 가족:부인 김경애(58)씨와 1남3녀 별칭:차신저 재산:23억4천9백만원 병역:육군의가사 제대 ◇심완구 정당:한나라당 나이:60 출생지:울산시 남구 야음동 학력:부산고,성균관대 경제학과 주요경력:신민당 울산·울주 지구당 사무국장(72년) 12대 국회의원(84년) 신민당 원내부총무(86년) 13대 국회의원(88년) 민자당 원내부총무(90년) 한국전력공사 경영담당 상임고문(93년) 초대 민선울산시장(95년) 가족:어머니 엄길주(82)씨와 1남1녀 별칭:작은 거인 재산:3억6천6백77만6천원 병역:육군상병 제대 ◇송철호 정당:무소속 나이:49 출생지:부산시 중구 보수동 학력:부산고,고려대 행정학과 주요경력: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 위원(86년) 민주당 울산시 중구지구당 위원장(92년) 울산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회 위원장(94년) 울산광역시 쟁취시민운동본부 공동본부장(95년) 울산포럼 법문화 분과위원장(현) 한국장애인가족협회 고문변호사(현) 가족:부인 홍영혜(45)씨와 2남2녀 별칭:없음 재산:4억8백만원 병역:육군상병 제대
  • “노조원 선거출마중 無給”/經總 지침

    ◎專任 자격 박탈… 당선땐 무급휴직 재계는 단위노조 조합원이 지방선거에 출마할 경우 선거운동기간 동안 급여를 주지 않기로 했다.노조 전임자가 출마하면 전임자격을 박탈키로 결정했다. 한국경영자총연합회(회장 김창성)는 20일 힐튼호텔에서 ‘주요기업 인사·노무담당 임원회의’를 열고 이같은 내용의 경영계 지침을 마련,전국 4천여개 사업장에 배포했다.이 지침은 통합선거법 개정에 따라 노동조합의 정치활동이 허용된 이후 첫 선거인 6·4 지방선거를 앞두고,노동계의 예상되는 요구사항을 검토한 끝에 재계가 마련한 첫번째 대응책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지침은 또 선거출마자가 당선되면 무급휴직 처리하고 휴직기간을 계속근로 시간 산정에서 제외토록 하고 있다.선거출마자가 아닌 조합원에 대해서는,근로시간 중은 물론 사업장에서의 선거운동과 모임을 금지했다.선전물 게시도 사측의 허락을 받도록 제한했다. 경총은 이밖에 출마 조합원에 대한 사용자의 정치자금 제공을 금지하는 한편 노조기금이 정치자금으로 흘러들 경우 선관위 등에 고발조치키로 했다고 밝혔다.경총 관계자는 노동조합원의 정치활동에 대해 사업장 별로 다르게 대응할 경우 생길 혼란에 대비,이같은 조치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지방선거 후보등록 마감 하루 전인 19일 현재 노동계에서는 모두 162명(노총 104,민노총 58)의 출마자가 등록을 마쳤다. 회의는 노동계 총파업 움직임에 대한 대책도 논의,노동계에 자제를 당부하고 정부에 대해서는 엄정한 법집행을 촉구하기로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회의에는 이계안 현대그룹 부사장,김대기 SK 전무,김흥기 금호그룹 상무 등 주요 기업 임원 25명이 참석했다.
  • “서울 교통량 20% 줄이겠다”/崔秉烈 후보 관훈토론

    ◎버스노선 재배치·자동차주행세 도입/김종필 총리서리문제 조속 처리해야 한나라당 崔秉烈 서울시장후보가 19일 한국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를 통해 중견 언론인들의 공개 검증을 받았다.崔후보는 정당연설회로 쉰 목소리였지만 손짓을 섞어가며 거침없이 소신을 토해냈다. 이날 토론회는 崔후보의 첫 무대.때문에 부동산 보유와 세금납부 현황,94년 서울시장 재임시 단국대 풍치지구 해제 배경,90년 공보처장관 시절 언론사 공권력 투입 경위 등 신상과 경력에 대한 까다로운 질문이 쏟아졌다. 당선가능성에 대해선 “3년전 서울시장 선거때 첫번째 여론조사에서 朴燦鍾후보가 44%,趙淳후보가 6%였다”면서 “문제는 지금부터”라고 자신감을 피력했다.崔후보는 서울의 교통난 해소방안을 묻자 “버스노선 재배치와 자동차 주행세 도입 등을 통해 교통량을 20% 줄이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앞서 崔후보는 기조연설에서 “金鍾泌 총리서리 문제는 빠른 시일안에 처리해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다.토론회에는 任英淑 서울신문 논설위원 金周彦 한국일보 사회부차장 吳明哲 동아일보 사회부차장 郭成文 문화방송 해설위원 許元齊 서울방송 전국부장 등이 패널리스트로 참가했다.
  • 6·4 지방선거 D­15/선거의 의의

    ◎풀뿌리 민주주의 뿌리내릴 계기로/DJP 공동정권 100일 중간평가 의미/선거결과 따라 정치권 지각변동 올듯 19일 후보등록을 시작으로 6·4지방 선거전이 공식으로 막이 올랐다. 이번 선거는 표면적으로 지역일꾼을 선택하는 ‘통과의례’이며 민선(民選) 2기 시대 개막를 뜻한다.95년 6·4 지방선거가 지방자치 시대의 서막이라면 이번 선거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착근(着根)’여부를 결정하는 계기인 것이다. 하지만 내용적으로 한국정치의 앞날을 가늠하는 ‘폭발력’을 곳곳에 함축하고 있다.우선 50년만의 정권교체 이후 첫 전국규모 선거라는 점에서 중대한 정치적 의미를 갖는다.또 6월4일로 金大中 대통령정부 출범 1백일을 맞는 ‘DJP공동정권’에 대한 국민적 평가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권은 ‘국민의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이자,한나라당에 대한 ‘민의의 심판’으로 규정하고 있다.한나라당 역시 현정권의 인사편중과 표적수사,실업대책 미비 등 경제실정을 앞세워 ‘준엄한 심판’을 내리겠다는 기세다. 하지만 이번 선거는 무엇보다정계개편과의 함수관계라는 점에서 강력한 폭발력을 갖고있다.선거결과에 따라 여대야소 구도의 와해 등 정치권의 지각변동 가능성이 내재해 있는 것이다. 여권은 ‘선거승리=정계개편’이란 공식을 노골화하면서 승리의 여세를 몰아 정치개혁에 착수하겠다는 의지다.수도권 압승으로 지역당에서 벗어나 명실상부한 전국당,집권당으로의 위상 재정립을 노리는 것이다. 반면 한나라당은 이번 승리로 침체된 당의 활력을 되찾고 원내 제1당으로서의 정국 주도권을 확실하게 장악하겠다는 각오다.역으로 선거에 패배하면 영남 지역당에로 전락은 물론 당의 존립자체도 장담할수 없다는 위기감이 역력하다. □6·4 지방선거 주요일정 ­5월20일 후보자 등록마감 선관위 피선거권 조사 합동연설회 일시·장소 결정 ­21∼27일 선거인 명부 누락자 등재 신청 ­23일까지 선전벽보·선거공보 제출 ­24일까지 부재자 투표소 설치 허가 신청 투표서 명칭·소재지 공고 ­25일까지 부재자 투표용지 발송 ­26일까지 선거공보 발송 부재자 투표 참관인선정·신고 ­28일까지 투표용지 모형 공개 ­28일 선거인 명부 확정 ­28∼30일 부재자 투표소 투표 ­29일까지 투표안내문 발송 ­30일까지 개표소 공고 ­6월1일까지 투표사무원 위촉·공고 개표사무원 위촉·공고 ­3일까지 투표용지·투표함 송부 투·개표 설비 투·개표 참관인 선정·신고 ­4일 투·개표 ­5일∼ 후보자별 득표수 계산·공표 당선인 결정·공고·통지,당선증 교부 ­24일까지 선거비용 회계 마감 ­7월4일까지 선거비용의 수입과 지출보고서 제출 ­11일까지 선거비용의 수입과 지출보고서 열람 및 이의신청
  • 위란토·라이스/역사의 주사위는 어디로/印尼 ‘포스트 수하르토’

    ◎위란토­軍 사령관… 군부·학생 평판 좋아/라이스­反政 리더… 회교세력 절대 지지 수하르토 정권의 퇴진이 불가피한 것으로 예상되면서 다음 단계엔 어떤 상황이 전개될 것인가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인도네시아 정국 향방에 최대변수로 작용하는 군부와 미국의 태도가 변화의 모습을 보이기 시작,이런 관심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첫번째로 떠올릴 수 있는 상황은 수하르토가 시위가 격화된 상황에서 한발물러나 수렴첨정(垂簾聽政)을 한다는 것.현재로선 불가피한 시나리오다. 이 경우 그가 가장 믿을 수 있는 후계자로는 역시 자녀나 친인척일 수 밖에 없다.이 그룹에서는 장녀 시티 하르디얀디와 사위인 프라보우 전략예비군사령관이 유력하나 바로 수하르토와의 관계 때문에 시위세력으로부터 동의를 얻어내지 못할 것이 확실하다. 그렇다면 가장 유력한 후계자는 위란토 군총사령관이다.수하르토 부관 출신인 그는 학생들 사이에서도 합리적이란 평가를 받고 있고 개혁성향도 가진 인물로 알려져 있다.그는 현재 반정부인사와 접촉을 하며 개혁을 위한 특별팀을 운영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수하르토 일가로서도 인도네시아 곳곳에 움켜진 부를 지키는데 위란토의 도움이 절대 필요하기 때문에 이를 적극 추진하려 할 것으로 보인다. 하비비 부통령도 후계자의 유력한 후보로 꼽을 수 있다.과학기술장관을 지낼 정도의 테크노크라트로 수하르토가 부통령으로 지목한 하비비는 합리적이란 평가를 받고 지식도 풍부하나 수하르토 측근으로 알려진 것이 걸림돌이 될 수 있다.그러나 수하르토가 의도하지 않은 인물이 전면으로 부상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방송국이 시위대에 점령되는 마당에 돌아선 민심을 되돌리기 위해 군부가 2천4백만 회교도 절대다수의 지지를 받는 회교지도자 아미엔 라이스를 내세운다는 것도 예상된다. 라이스는 일찍부터 수하르토의 하야를 요구하는 등 학생운동세력들로부터 지지를 받아왔다.그가 전면에 등장한다는 것은 수하르토일가의 완전퇴진을 뜻하기 때문에 상당한 혼란이 뒤따를 수 있다.그러나 라이스는 반면 막강한 힘을 자랑하는 군부와의 제휴를 통해 수하르토집권세력을 몰아내는데 따른 혼란을 최소화시키면서 군부와 권력을 잠시 분점하게 될 것 같다.수카르노 전 대통령의 딸이자 가장 인기있는 재야지도자로 부상한 수카르노푸트리 여사는 그러나 어느 경우에도 상징적 인물로 남을 가능성이 커보인다.최대변수인 군부가 그녀는 절대 용인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 연표 ▲45년 8월=독립선언.수카르노,초대 대통령에 취임 ▲65년 9월=쿠데타 미수사건 발생. ▲10월=수하르토,육군장관겸 군사령관 취임 ▲68년 3월=수하르토,2대 대통령에 취임 ▲97년 7월=동남아 금융위기 발생 ▲10월 31일=IMF와의 교섭에서 경제구조개혁안 합의 ▲98년1 월9일=자카르타 대학생들,수하르토 퇴진 요구 시위 ▲3월10일=수하르토 7선 당선 ▲3월12일=수라바야 시위에서 경찰과 학생들 첫 충돌 ▲4월8일=경제구조개혁안 IMF와 최종합의 ▲5월4일=공공요금 대폭인상 발표.곳곳에서 폭동 발생 ▲5월6일=메단서 경찰 발포로 사망자 발생 ▲5월12일=자카르타 시위서 경찰 발포로 학생 6명 사망 ▲5월14일=수하르토 사임 용의 발표
  • 5·10 제헌국회총선 의미/徐仲錫 성균관대 교수·사학(특별기고)

    제헌국회총선거가 오는 10일로 50주년을 맞는다.1948년 5월10일 치러진 5·10선거는 분단을 고정화하였다는 점에서 부정적 측면을 가짐과 동시에 역사상 최초로 보통선거를 통하여 민주공화국을 탄생케 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역사상 첫 보통선거 1947년 미국과 소련의 대결이 치열해짐에 따라 모스크바 삼상회의 결정에 의한 통일 임시정부 수립이 어려워지자 그해 9월 미국은 한국문제를 국제연합에서 다룰 것을 제안하였다.그리하여 국제연합 총회에서는 11월14일 남북 총선거를 통한 한국정부 수립안과 가급적 조속히 가능하다면 90일 이내에 미소 점령군이 한반도에서 철수할 것을 결의하였다.그러나 예상한대로 소련과 북측은 국제연합 한국임시위원단이 38도선을 넘는 것을 거부하였기 때문에,국제연합 소총회에서는 1948년 2월26일 가능한 지역에서만의 선거 실시를 건의하여,미군정에 의하여 5월10일 선거가 치러지게 되었다. 5·10선거에는 각 정치세력의 폭넓은 참가가 이루어지지 못했다.한국은 그때까지 분단을 경험한 적이 없어 한반도에는 하나의 단일 민족국가만이 존재하여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고,통일정부의 수립만이 우리 민족의 살길이라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었다.좌익은 단선단정 반대운동을 격렬히 벌였다.金九 金奎植 등 민족주의자들은 남한만의 선거는 미소가 획정한 38도선을 국제적으로 합법화시키는 행위이고,따라서 남과 북에 들어서는 정부는 미소의 영향력 아래서 자주성을 갖기가 어렵고,참혹한 동족상잔을 초래할 수 있다고 하여,5·10선거를 반대하고,4월에 평양에서 열리는 남북협상에 참여하였다.그러나 일부에서는 이 선거에 통일운동세력도 참가해 제헌국회에서 통일과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라고 주장하였다. 曺奉岩과 지방의 중도파 민족주의자들은 부분적인 현상이었지만 이 선거에 입후보하였다.金九 金奎植같은 지도자들은 평생을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싸웠기 때문에 해방이 분단으로 귀결된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고, 또 민족의 대의를 위해서도 통일운동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그런데 국제관계로 분단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면,이 선거에는 되도록 각 정치세력이 많이 참여하여새 정부에 대한 지지를 폭넓게 할 필요가 있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李承晩·한민당 세력은 중도파 민족주의자들이 출마하는 것에 대하여 민중은 그들의 정체와 야욕을 간파하여야 할 것이라고 선전하였다.그만큼 그들은 편협성 편파성이 강하여 자신들이 권력을 독점하고자 하였고 그것은 새 정부와 자유민주주의에 짙게 암영을 드리우는 것이었다. ○전체유권자 75% 투표 5·10선거에서는 만 21세 이상의 남녀에게 선거권을 부여하였고,상당한 지위에 있었던 친일파를 제외하고 25세 이상이면 피선거권이 있었다.선거는 소선거구제로 치러졌고,제헌국회였기 때문에 임기는 2년으로 제한하였다. 의원후보자는 선거인 명부 등록자 200인 이상의 서명 날인이 있는 추천장을 첨부하여야 했는데,이 제도는 李承晩이 출마한 동대문구에서 악용되었다.5·10선거에는 8백13만여명의 유권자중 7백84만여명이 선거인 명부에 등록하고,그중에 7백48만여명이 투표한 것으로 발표되었다.전체 유권자의 75%가 투표한 것이다.제주도의 두 지역에서는 선거가 제대로 치러지지 못하여 198명이 당선되었다.북측에서 선출할 의원 100명은 공석으로 놔두었다. 이 선거에서는 한민당이 미군정 시기에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위세가 대단하였기 때문에 다수 의석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되었다.그러나 개표 결과 한민당 이름으로 나온 후보들은 불과 29명밖에 당선되지 못하였고,李承晩을 영도자로 한 독립촉성국민회의가 55석을 차지하였으며,무소속으로는 85명이 당선되었다.우리나라 선거는 이변이 적지 않은데,바로 첫 번째 선거가 예상을 뒤집은 것이었다. ○우리선거사상 첫 이변 5·10선거에서 시행된 보통선거에 대해서 그것의 의미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많은 정치학자들은 이 선거가 미국에 의하여 이식된 것이라고 말한다.선거도 민주주의도 모두다 이식된 것이라는 주장이다.그렇다면 이 선거가 보통선거가 아닌 제한선거로 치러질 수 있었을까.1910년 일제가 한국을 강점한 이후 한국인은 다른 나라에 비하여는 놀랍게도 일찍부터 민주공화국을 세우려고 생각하고 있었다.일제침략기에 왕정복고를 생각한 사람은 극소수였다.또 공화국은 보통선거로 수립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독립운동세력한테는 일반적이었다.이미 상해임시정부가 만들어질 때부터 그것은 등장하였고 趙素昻의 삼균주의에서 정치의 평등이란 보통선거를 가리켰다.일제시기에 사회주의자들은 처음에는 민주공화국을 상정하였다가 나중에는 인민공화국을 내세웠고,1930년대에는 소비에트 체제까지 구상하였다. 해방후의 혁명적 분위기에서 모든 정치세력은 당연히 보통선거를 실시할것을 주장하였다.이러한 분위기에서 보통선거를 실시하지 않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였을 것이다.다만 李承晩·한민당세력은 나이 먹은 사람들일수록 보수적이고 봉건의식이 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선거권자의 연령을 높이려고 입법의원때부터 노력하였지만,그것도 성사될 수 없었다.따라서 한국인은 선거할 자격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한국전쟁 이후 독재자들의 지나친 권력욕때문에 선거가 요식행위나 치장물에 불과하게 되었다는 비판을 듣게 된 것이다. ○소장파의원 발언 강화5·10선거 이후 제헌국회에서 소장파들의 발언이 강화된 것도 주목하여야할 것이다.정부수립 얼마후부터 ‘소장파 전성시대’라는 말을 듣게 되거니와,소장파의원들은 金九 金奎植과 입장을 같이하여 통일운동을 벌였고 친일파 처단을 올바로 하여 민족정기를 세우고자 하였다.그들은 농민위주의 농지개혁을 위하여 보수세력과 싸웠고,민주주의적인 지방자치법을 통과시켰다.그러나 제헌국회내 소장파 의원들은 金九 선생 암살이 있었던 시기에 일어난 국회프락치사건으로 무력해졌다.이로써 의회민주주의는 중대한 위협을 받게 되었다. 1948년 5월31일 소집된 국회는 제헌국회라는 이름 그대로 헌법제정에 힘을 쏟았다.권력형태는 李承晩의 고집으로 하루밤 사이에 내각제에서 대통령중심제로 바뀌었다.이 헌법은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실현시키기 위한 경제조항이 들어가 있는 것도 특색이다.한마디로 헌법자체는 서유럽의 그것에 별반 손색이 없었다. ○민중 우습게 알면 안돼 7월17일 헌법이 공포된후 제헌국회에서는 대통령에李承晩,부통령에 李時榮을 선출하였다.국회의장은 申翼熙,대법원장은 金炳魯가 되었다.8월15일 정부수립이 공포되었다.金九 金奎植은 만감이 교차하는 가운데 착잡한 심정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는 6월4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는 지금 5·10선거는 두가지의 교훈을 주고있다.그것은 정치인들이 민중을 우습게 알거나 기만해서는 안 된다는 것과 선거는 결코 말의 유희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 朴泰俊 총재 TK 세확산 시동

    ◎지구당위장 맡아 6·4지방선거 진두지휘/현장 뛰어들어 정면승부… 자존심 회복 별러 자민련 朴泰俊 총재는 8일 국회 총재실에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극동 국립대의 블라디머 총장을 만났다.일본 경단련의 이마이 회장 예방도 받았다.이어 포항으로 직행,지역 유지들과 저녁을 함께 했다.9일 포항북지구당 개편대회를 하루 앞두고 정지(整地)작업의 일환이다. 이날 대회는 朴총재가 정계 입문후 처음으로 갖는 행사다.그는 4선(選)의원이다.제11,13,14대 때는 모두 전국구였다.지난해 7월 보궐선거에서는 무소속으로 당선됐다.지난해 11월초 자민련 총재로 취임한 뒤에도 지역구를 맡지 않았다.그러다가 이번에 지구당위원장으로 첫 진출하게 된 것이다. 朴총재는 ‘중앙정치인’이다.명실공히 제2여당의 총재다.지구당위원장을 맡는 것쯤은 별다른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다.하지만 6·4지방선거를 앞두고 사정이 달라졌다. 자민련은 충청권과 대구·경북권을 두 축으로 하고 있다.그러나 지난 4·2재보선에서는 대구·경북권 탈환에 실패했다.이번에도 지면朴총재는 ‘TK맹주’로서 체면에 적지 않은 손상을 입게 된다.따라서 이곳에서 정면승부를 걸려고 직접 현장에 뛰어든 것이다. 자민련은 또 현역의원에게 지구당위원장 보장 원칙을 세웠다.朴총재가 이를 한번더 못박음으로써 영입을 활성화하려는 의도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자민련은 이날 행사를 포항 남·울릉지구당개편대회와 함께 치른다.이어 하오에는 울산시장후보자 선출대회를 갖는다.대구·경북에서부터 자민련바람을 일으키겠다는 전략을 담고 있다.朴총재가 이례적으로 선거대책위원장을 직접 맡은 것도 이런 의지를 반영한다.
  • 공명선거풍토 이뤄내자(사설)

    6·4 지방선거가 꼭 한달 앞으로 다가왔다.여야(與野)는 4일 각각 중앙선거대책위원회를 발족시키고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 후보를 확정한 것을 비롯,이번 주내로 후보공천작업을 마무리하는 등 본격적인 선거전에 돌입한다고한다.선거일이 가까워오면서 동시에 우려되는 점은 바로 탈법·불법이 난무하는 혼탁선거양상이다.벌써부터 그런 조짐들이 곳곳에서 보이고 있어 관계당국의 철저한 공명선거 의지가 요구된다 하겠다.아울러 불법 선거운동을 벌이는 후보자들에 대한 유권자들의 엄정한 감시활동이 절실한 시점임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선거는 지난 95년 6월,풀뿌리 민주주의의 기치아래 지방자치단체장선거제가 도입된 이래 두번 째 임기의 단체장 선출을 포함하고 있다는 큰 의미를 지닌다.아울러 헌정사상 처음으로 수평적 정권교체가 이뤄져 국민의 정부가 들어선 지 100일만에 실시되는 첫 전국 규모의 선거이기도 하다.지금은 또 국제통화기금(IMF)한파로 수많은 국민들이 직장을 잃고 방황하며 나라전체가 엄청난 시련을 겪고 있는 때다.따라서 그 어느 때 보다 깨끗하고 돈안드는 선거가 되어야함은 물론,이 난국(難局)을 극복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지닌 사람들이 당선돼야 한다.불법선거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자신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들이다.그런 사람들이 공직을 맡게되면 자신의 영달(榮達)만을 위할 뿐,어려움에 처한 주민과 지역사회,나아가 국가 전체의 문제에 소홀할 것임은 짐작키 어렵지 않다. 현행 선거법에는 오는 19일 부터 공식적으로 선거운동을 할 수 있게 명시되어 있으나 이를 지키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처럼 전해지고 있어 안타깝다.심지어 여야의 후보공천과정에서 부터 금품살포와 과당경쟁,불공정 시비에 따른 경선불복 등 혼탁·과열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공천잡음은 주로 각 당의 우세지역에서 많은 것으로 전해진다.구태(舊態)를 벗지 못한 정치권의 한심한 작태가 아닐 수 없다.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지금까지 사전선거운동을 한 216명의 후보예정자들을 적발,검찰에 고발 또는 수사의뢰하거나 경고조치했다고 한다.대부분 금품살포와 향응제공,선심성 관광,인쇄물 배포 등이다. 지금은 여야를 초월해 국력을 한데 모아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야할 때다.그런 의미에서 이번 선거는 국난극복의 일대 전기(轉機)가 되도록 공명선거풍토의 조성을 위해 국민 모두가 힘껏 노력해야할 것이다.
  • 국민회의 공천심사위 첫 회의

    ◎일부 기초장 내정자 경력 초라… 내심 곤혹/최종 공천기준 제시… 대의원 반발이 변수 국민회의의 지방선거 후보 공천심사위가 본격 가동됐다.金令培 국회부의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9인 공천심사 위원회는 29일 여의도 한 음식점에서 첫 회동을 갖고 심사 작업에 착수했다. 이날 심사위원들은 최근 기초단체장 후보 내정자들이 학력과 경력 면에서 ‘하향 평준화’ 추세를 보이고 있어 곤혼스러운 분위기가 역력했다는 후문이다. 특히 6·4 지방선거의 최대 분수령이 될 수도권에서 유권자들의 최종 심판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9인위원회는 이날 최종공천 기준을 ▲도덕성 ▲당선가능성 ▲개혁의지 ▲행정능력 등 4가지로 잡았다.鄭均桓 사무총장은 “조만간 현지 조직감사를 실시,광범위한 여론조사에 착수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위원회의 집중 논의대상은 광주,부천시장과 서울의 몇몇 구청장후보가 될 전망이다. 원칙은 정했지만 심사위원회의 고민도 만만치 않다.민주정당으로서 대의원들의 ‘표결결정’을 뒤엎을 만한 명확한 근거 제시가 어렵다.이에 심사위원회는 후보 선출과정에서의 금품 살포 등 대의원 매수의혹 지역에 대해 집중 조사를 실시할 계획이다.이는 분명한 부정·해당행위인 만큼 1차적으로 선별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趙世衡 권한대행도 간부간담회를 통해 “후보자 선출과정 도중 분규가 발생했던 지역에 대해서는 엄중히 대처하겠다”며 강력한 의지표명을 했다. 하지만 심사위원회가 아무리 엄격한 기준을 제시한다 해도 현지 대의원들의 ‘반란’이 중앙당의 낙하산 인사에 대한 반발과 소외감에서 비롯된 만큼 ‘불협화음’을 완전히 잠재울 수 있을지 미지수다.
  • 존 F.케네디(美國의 대통령 문화:19)

    ◎뉴 프런티어정책 편 美 상징적 지도자/평화봉사단 창설… 후진국 교육·영농지도/蘇의 쿠바 미사일 배치 기도 ‘힘’으로 봉쇄 【보스톤(美 메사추세츠주)=羅潤道 특파원】 “국가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해줄수 있는가를 묻지 마십시요.당신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수 있는가를 물으십시요.” 1961년 1월20일,43세의 나이로 미역사상 최연소의 기록을 세우며35대 대통령에 취임한 존 F.케네디 대통령(1917­1963)의 취임사는 냉전체제에 대한 염증 때문에 강한 개인주의적 성향을 보이던 미국민들에게 신선한충격으로 다가왔다. 63년 11월21일 댈러스에서의 총성으로 최고의 전성기에 역사의 뒤안으로 물러서게 된 케네디는 불과 2년10개월(1천37일)의 짧은 집권기간에도 불구하고 미국민에게 가장 사랑받는 대통령으로 남아 있다.그래서 그는 죽어서도 포토맥강 건너 알링턴 국립묘지 한복판,워싱턴 시가지가 내려다 보이는 중앙 언덕에 ‘불멸의 불꽃’(eternal flame)으로 살아 미국민들의 마음속에 타오르고 있다. 첫 20세기 출생 대통령인 그는 많은 업적을남겼다.‘뉴 프런티어’라고 불린 그의 정책은 루즈벨트의 ‘뉴 딜’에 버금가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평화봉사단’을 창설,미국의 젊은이들로 하여금 세계 구석구석 후진국을 찾아가 교육과 영농을 지도케하는 인류애적 차원의 일에 적극 나섰다.흑인인권 보호를 위해 흑백차별을 금지하는 민권법안도 만들었다.소련보다 한발늦기는 했지만 선구자적인 의지로 우주개발계획을 추진,미국이 최초의 달정복 국가가 되도록 했다. ○흑백차별금지법 제정 대외적으로도 소련의 베를린 봉쇄에 대한 강력한 대처,쿠바내 소련의 미사일 배치를 저지키 위한 쿠바 봉쇄 등 ‘힘’으로 소련을 굴복시킨 그의 강력한 대외정책은 미국민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는 것은 물론 국제적인 관심또한 불러 일으켰다.비록 쿠바침공 실패로 국제적 망신을 하기도 했지만 60년대 들어 대중문화의 급속한 확산과 함께 미국적 이상을 실현할 젊고 용기있는 지도자의 출현을 기대하고 있던 미국민들에게 케네디는 ‘미국의 상징’으로까지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그는 탁월한 두뇌의 소유자도 아니고 강력한 의지력을 갖춘 인물도 아니었다.더우기 정계 입문에서 대통령이 되기까지 정치적 성장과정이 백만장자 아버지 조지프 케네디의 금권을 앞세운 적극적 개입에 의한 것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그러나 그가 강력하고 진보적인 정책을 펼수 있었던 것은 겸손하고 노력하는 자세 때문이다.그는 사려깊고 여러 사회문제들에도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으며 특히 민주주의 원칙의 수호자로 이미지를 심었다. 1917년 보스턴 교외의 브루클린에서 아일랜드 이민의 후손으로 백만장자가 된 조지프와 로즈 케네디 사이의 9남매중 둘째 아들로 태어난 케네디는 병약하고 그다지 학교성적은 좋지 않았으나 사람을 사귀기 좋아했고 스포츠를 좋아했다.부친이 루즈벨트 행정부때 영국대사를 지내 런던대학에도 잠깐 재학한 일이 있는 그는 하버드에 입학,광범위한 여행을 즐겼다. 그러나 상급 학년으로 올라가면서 그는 점차 학업에 흥미를 보였다.영국의 나치 독일에 대한 대응 실패를 다룬 그의 졸업논문은 ‘왜 영국은 잠을 잤는가’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판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이어 1942년 진주만 폭격 직전 미해군에 입대해 PT(어뢰정)지휘관으로 활약,일본군과 싸운 공로로 은성훈장을 받기도 했다.45년 디스크 수술로 전역한 그는 부친의 권고로 46년 민주당 소속으로 연방하원에 출마,당선됐다. ○57년 퓰리처상 수상 52년 3선의원인 케네디는 35세의 젊은 나이로 상원의원에 당선됐다.이듬해 그는 조지워싱턴대를 나오고 워싱턴타임스­헤럴드의 런던특파원 이던 24세의 재클린 부비어와 결혼했다.지성과 미모를 갖춘 재클린과 미남 총각 상원의원과의 결혼은 커다란 화제를 불러 일으켰지만 겉보기와는 달리 두사람의 결혼생활은 케네디의 바람기로 원만치 못했다. 57년 미의회에서 훌륭한 업적을 남긴 의원들의 이야기를 엮은 ‘용기있는 사람들’이라는 책을 저술,퓰리쳐상을 받은 케네디는 바른 이상을 가진 정치인으로 호평을 받았으며 TV토론이 처음 실시된 60년 대통령선거에서 닉슨을 근소한 차이로 따돌릴수 있었다. 백악관에 들어간후 재클린은 훌륭한 참모이자 동반자 역할을 했으며 특히 63년 8월 2살바기 아들 패트릭이 죽은 후에는 두사람의 금슬이 상당히 좋아진 것으로 전해졌다.그러나 이 좋은 금슬도 케네디의 피격으로 3달밖에 지속되지 못했다.케네디 가문은 대통령과 3형제 상원의원을 내는 등 미역사상 가장 번성한 집안의 대명사가 됐지만 두아들이 총에 맞아죽고 아들과 딸들이 사고로 죽는 비운의 가문으로도 남아 있다. 서거 35주년이 되는 오늘날까지도 그는 미국민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대통령으로 남아있으며 보스턴항 남부의 컬럼비아 포인트에는 케네디도서관이 우뚝 서 케네디 대통령 당시 각종 자료 및 유물을 집대성하고 있다.또 브루클린에는 그의 생가,히아니스항 인근에는 하계별장 등이 잘 보존돼 있다.
  • 한나라 내부갈등 본격화 조짐

    ◎총무 경선 승리 비당권파 “힘겨루기 이제부터”/대치정국속 강공드라이브 수준 싸고 시각차 【韓宗兌 기자】 비당권파 단일후보였던 河舜鳳 의원이 첫 직선 원내총무가 됨으로써 향후 한나라당의 대여협상을 둘러싼 당권파와 비당권파간의 주도권다툼이 치열해질 전망이다.외견상으론 일단 당권파와 비당권파가 힘의 균형을 이룬 상태다. 당권파가 당 살림을 책임지는 총재와 사무총장 등 주요당직을 장악한 반면,당무운영 못지 않게 비중이 큰 국회대책을 책임지는 원내총무 자리는 비당권파가 수중에 넣었기 때문이다.특히 당무운영에서 소외돼온 비당권파가 원내 문제에 관해 충분히 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언뜻 보기에는 비당권파가 활로를 개척함으로써 양측간의 갈등기류도 잠복기에 들어갈 것으로 비쳐진다.그러나 좀더 들여다보면 양측의 힘겨루기는 ‘이제부터’인 것 같다.경선이 신승으로 결판난 것도 양측의 치열한 신경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당권파는 계파갈등 증폭을 우려,사실상 河의원의 당선을 팔장을 끼고지켜본 것이나 마찬가지인 만큼 원내대책 마련에는 입김을 행사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비당권파는 당무와 원내대책의 이원화를 주장한다.당권파는 당무를 관장하되,국회문제는 비당권파가 우월적 지위로 풀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더구나 신임 河총무는 자신을 당선시켜준 李會昌 명예총재와 金潤煥 부총재의 절대적 영향권아래 놓여 있을 수 밖에 없다.河 총무가 李명예총재 등의 입장을 감안치 않고 독자적으로 행동하기는 무척 힘들다는 얘기다.이를 개별 사안에 대입시키면 보다 분명해진다. 당장 최근의 대치정국과 관련,어느 수준까지 강공으로 밀어붙일 것이냐는 문제를 놓고도 두 진영은 시각차가 있는 것같다.만약 河총무가 비당권파의 ‘총의’를 관철시키려 한다면 당권파 지도부의 거센 반발에 부딪칠 게 뻔하다. 15대 국회 하반기 원구성도 문제다.비당권파는 총무 장악을 계기로 국회의장단과 상임위원장단 구성에 있어 5대 5 동등배분을 주장할 공산이 짙다.그러나 당권파가 난색을 표시할 것은 뻔하다.때문에 양측은 이 문제로 한바탕 격돌을피할 수 없을 것 같다.또 경선과정에서 일부 후보가 상품권을 돌렸다는 소문은 양측의 긴장관계를 더 고조시킬 수도 있다.
  • 제임스 녹스 폴크(美國의 대통령 문화:17)

    ◎美 영토 2배로 확장해낸 ‘전쟁 영웅’/멕시코와 3년전쟁서 텍사스州 등 7개州 점령/중앙銀 개설­관세인하 등 국가재정 안정 주력 【콜럼비아(美 테네시주)=羅潤道 특파원】 “인내의 술잔은 이제 비었습니다.멕시코는 우리의 영토를 침범했고 미국인의 피를 미국 땅 위에 흐르게 했습니다.” 1846년 5월12일,텍사스병합을 위해 멕시코의 선공을 기다리고 있던 11대 미국대통령(1845­1849) 제임스 녹스 폴크는 선전포고를 위해 의회에 보낸 교서의 앞부분에서 이같이 단호한 결의를 나타냈다. 미역사상 유일하게 하원의장 출신인 그는 미국의 기존 영토를 두배로 확장,서부 경계를 미시시피강에서 대서양으로 바꾸어 놓았으며 동시에 미국을 대륙국가로 만든 용감하고 뚝심있는 대통령으로 미국민들에 기억되고 있다.폴크는 7대 대통령으로 대중의 시대를 개막시키고 영토확장의 불을 당겼던 앤드루 잭슨의 열렬한 추종자로 ‘영 히커리’(Young Hickery)라는 애칭으로 불렸다.잭슨의 강인함을 히커리나무에 비유해 붙여졌던 ‘올드 히커리’에서 따온 것이었다.○40세때 연방하원의장 피선 1795년 노스 캐롤라이나주 멕킨버그 카운티에서 스코틀랜드인 후손 농장주의 아들로 태어난 폴크는 10살때 아버지를 따라 테네시주 콜럼비아로 옮겨살게 됐으며 그후 노스 캐롤라이나 대학을 다닌 것을 제외하고는 줄곧 이곳을 무대로 활동했다.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그는 다시 테네시로 돌아와 당시 하원의원이던 필릭스 그룬디의 지도로 법학을 공부,24세에 변호사 자격을 획득하여 콜럼비아에서 개업했다. 폴크는 스승이 앤드루 잭슨의 친한 친구였던 것을 계기로 잭슨과 교류를 갖게 됐으며 민주당에 입당하게 됐다.그는 주하원의원을 거쳐 연방하원의원에 당선된후 1835년에는 하원의장에 선출됐다.나이 40세때 였다.168㎝로 미국인으로서는 작은 키에 체격이 다부져 ‘땅딸보 나폴레옹’이라는 별명도 갖고 있던 그는 7선의원으로 두차례 하원의장을 역임한뒤 39년에는 테네시주지사에 당선됐다.그는 자연스레 반 뷰렌 대통령후보의 러닝메이트로 지목됐으나 지명도가 낮다는 이유로 민주당 전국전당대회는 그의 후보지명을 거부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그는 연거푸 주지사 선출에서 고배를 마시게되자 마치 그의 정치생명은 끝난듯이 보였다.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노력했으며 마침내 44년 볼티모어 민주당 전국전당대회가 그에게 행운을 안겨주었다.당시 치열한 접전을 벌이던 반 뷰랜과 루이스 캐스가 끝내 승자를 가리지 못하자 9차 투표에서 당의 화합을 이룰 인물로 폴크가 극적으로 부상,후보로 지명됐던 것이다. 정치생명이 끝난 것으로 알려져 있던 폴크의 지명에 대해 헨리 클레이를 후보로 지명했던 상대편인 휘그당은 해보나마나한 게임이라며 냉소를 보였다. 그들은 ”제임스 녹스 폴크가 누구지?”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폴크가 대통령에 부적격자라는 점을 집중 강조했다.반면에 폴크는 당시 미국민들의 영토확장 욕구를 간파,“텍사스와 오레곤의 병합”을 구호로 내세웠다. 그리고 자신은 단임으로 그 약속을 이룰 것임을 공약했다. 선거결과는 예상과는 달리 폴크의 승리로 끝났다.대통령에 당선된 그는 취임사에서 ‘한 당의 대통령’이 아닌 ‘국민의 대통령’임을 강조,소신있는 통치를 위해 당의 영향력에 분명한 선을 긋는 단호함을 보였다. 그는 취임 이듬해부터 3년간 계속된 멕시코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텍사스에 이어 뉴멕시코,아리조나,캘리포니아,네바다 유타주까지 승승장구를 거듭한 것은 물론 멕시코시티까지 함락했다. ○스페인령 쿠바도 구입 시도 폴크는 멕시코 전체를 미국령으로 만들고 싶은 욕망까지도 있었으나 48년2월 강화조약으로 전쟁은 끝났으며 멕시코정부는 1천500만달러라는 헐값에 오늘날 미국땅의 7분의1에 달하는 1천300만㎢의 땅을 미국에 양도해야 했다. 폴크는 스페인으로부터 쿠바를 구입,멕시코만을 내해로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성사단계에 이르렀으나 의회의 반대로 쿠바 구입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오늘날 미국사가들이 당시 폴크의 선견지명을 따랐다면 오늘날처럼 미국이 쿠바로 인해 골치를 썩이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중간선거 이후에는 여소야대 정국으로 휘그당이 다수당이 되는 바람에 집권 후반기 정국운영에 많은어려움을 겪어야 했다.그런 가운데서도 그는 관세 인하를 위한 새 관세법과 워싱턴에 중앙은행,주요도시에 국유은행을 설치하는 독립은행법을 통과시키는등 국가의 재정안정을 위해서도 노력했다. ‘일벌레 폴크’라고 불릴 정도로 몸을 돌보지 않고 일에만 몰두하는 스타일의 폴크는 1849년 대통령 퇴임후 콜럼비아의 사저로 돌아와 3개월만에 과로와 콜레라로 54세의 나이에 숨을 거두고 말았다. ◎“19세기 상류층 생활용품 집대성”/임기중 최초 우표발매­첫 야구경기 개최도/존 스탠위치 폴크 박물관 큐레이터 【콜럼비아(美 테네시주)=羅潤道 특파원】 테네시주 주도(州都) 내슈빌에서 남쪽으로 60㎞ 떨어진 인구 3만의 콜럼비아시는 11대 대통령 제임스 폴크의 체취가 곳곳에 서려 있다.웨스트 스트리트 7가에 위치한 폴크 대통령의 사저는 폴크 생전의 유품들을 잘 정리해놓고 있었으며 큐레이터 존 스탠위치씨는 폴크 관련 22개소의 위치와 사연을 기록한 ‘폴크 따라 걷기’라는 소책자를 주며 한차례 돌아볼 것을 권했다. ­먼저 이 소책자에 관해 설명해달라. ▲시내에 산재한 폴크가(家)와 관련된 유적들을 걸어다니면서 체계적으로 볼수 있게 만든 것이다.폴크가의 집들과 부친 새뮤얼 폴크가 딸인 나오미의 결혼기념으로 선사한 집.폴크의 변호사 사무실,당시 법원,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돌아온 폴크의 환영대회가 열렸던 스테이트 뱅크 앞 광장,그들이 출석하던 교회,학교 등 모든 것이 나타나 있다. ­박물관으로 꾸며진 사저의 소장품은 어떤것들이 있나. ▲이 집은 1816년 폴크가 노스 캐롤라이나 대학에 공부하러 가있을때 지은 집으로 폴크가 대통령 퇴임후 돌아와 숨질때까지 살았다.퇴임후 백악관에서 가져온 집기들과 19세기 테네시 상류층이 사용하던 생활용품들이 잘 보관돼 있다.그 가운데 특히 폴크가 부인에게 선사한 취임기념 부채,폴크의 선거포스터 등은 매우 귀중한 것이다. ­부인 사라 폴크는 어떤 유형의 퍼스트 레이디 인가. ▲사실상 폴크의 보좌관으로 매우 적극적인 활동을 했다.폴크 못지 않게 부인도 일을 좋아했다.그들이 백악관에 들어온후 백악관 내에서 술과 파티와 카드가사라졌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이들은 오락은 일에만 탐닉했다. ­소개할만한 폴크의 또다른 업적은. ▲잘 알려지지 않은 그의 업적이 많다.스미소니안 박물관 개관,최초의 우표 발매,미국내 최초의 야구시합 개최 등도 그의 임기중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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