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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대선 궁금증 문답풀이

    미 대선의 절차부터 특색까지 문답풀이 형식으로 알아본다. ■선거인단은 어떻게 구성되나 주별로 상·하원 의원수 합계만큼 배정된다.연방 상원의원은 주마다 2명씩이므로 여기에 각주 하원의원수를 보태면 주별로 최대 54명에서 최소 3명까지.연방의원이 없는 워싱턴 DC 몫 3명을 합산한 전체 선거인단은 538명이다.과반인 270명이상을 확보하는 후보가 당선된다. ■선거인단 선출 방식의 특색은 대부분의 주에서 선거인단을 승자에몰아주는 승자독식(winner-takes-all)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한표라도 더 얻은 후보가 그 주의 선거인단을 싹쓸이해 가는 것. ■가장 큰 변수는 전체의 10%인 부동표 향배에 따라 결과가 갈릴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40년만의 최대 접전인지라 유권자 투표결과와 선거인단 투표결과가 갈리는 등 이변이 연출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비기면 어떻게 하나 선거인단이 538명이기에 이론적으로 양후보가269대 269씩 확보하는게 가능하다.이같은 유례없는 결과가 나올 경우하원으로 넘어가 과반수 표가 나올 때까지 투표를 계속한다. ■승자는 언제쯤 알수 있나 땅덩어리가 워낙 큰 미국은 주별로 투표소 개장 시간,공휴일 지정여부,출구조사 허용여부가 다 제각각이다. 서부 해안지역보다 3시간 빠른 동부 해안지역이 먼저 문을 열지만 동부쪽에서도 투표시간 등이 천차만별.96년에는 7일 밤 7시(한국시간 8일 오전 9시) 전후 대세가 결판났으나 일대 혼전양상인 올해의 당락은 8일 동부시각 기준 새벽 1시(한국시간 오후 3시)나 돼야 판가름날전망.이에 따라 동부지역 신문들은 마감시간 연장 및 별도 배달수단확보 등에 비상이 걸렸다. ■대선 택일은 어떻게 하나 1845년 의회에서 11월 첫 월요일 다음의화요일로 결정된뒤 지금껏 고수돼 왔다.당시 평일의 첫·끝머리인 월·금,독립이전 영국 선거일이던 목요일 등이 일차 배제됐고 회계처리로 바쁜 초하루에 선거가 치러지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첫 월요일다음의 화요일로 잡힌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손정숙기자 jssohn@
  • 2000 미 대선/ 조지 W 부시…배짱좋고 활기찬 텍사스 사나이

    부시 후보에게는 ‘핏대’와 ‘입심’이라는 두 개의 별명이 있다. 모두 그의 성품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별명들이다. ‘핏대’는 직설적인 성격 탓에 얻은 것.‘입심’은 60년대초 고등학교 시절에 붙은 별명.당시 그는 우등생은 아니었지만 운동,행사 등에서는 본능적으로 그 중심에 섰다.‘입심’은 친구들이 어떤 일에나자기 주장을 당당하게 늘어놓는다고 붙여준 별명이다. 부시는 좋은 가문에서 태어나 일류 고교,일류 대학을 다닌 엘리트다.조부 프레스콧 부시는 상원의원,부친 조지 부시는 미국 대통령을 지냈다.그리고 부친의 뒤를 이어 명문 예일대와 하버드대 비지니스스쿨을 졸업했다.하지만 그를 부잣집 맏아들에 책상물림이나 하는 엘리트로 생각하는 유권자는 많지 않다. 선거운동 초기 앨 고어 진영에서는 젊은 시절 그의 음주벽,마리화나흡입 문제를 물고 늘어졌다. 하지만 얼마 안가 이를 중단했다. 자칫고어의 ‘융통성 없는 모범생’ 이미지와 대비되면 득될 게 없다는계산 때문이었다. 그는 1978년 첫 공직으로 텍사스에서 공화당 후보로 연방하원의원직에 도전,고배를 마셨다.당시 그의 측근들은 그가 세밀한 안건을 다루고 정교한 정치기술을 요하는 하원의원보다는 폭넓은 경영능력이 요구되는 주지사 자리가 더 적합할 것이라는 충고를 했다고 한다. 이후 그는 1989년 친구들과 공동투자로 텍사스 레인저스 프로야구단을 인수해 큰 돈을 벌었다.이를 밑천으로 1994년 텍사스 주지사에 당선됐고 4년 뒤 재선됐다.주지사 재임중 특히 교육,보건정책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이러한 복지중심 정책은 중산층과 소수인종 유권자들의 호감을 얻었고 대선 구호인 ‘인정어린 보수주의(Compassionate Conservatism)’를 탄생시킨 기반이 됐다. 그의 주변에는 배짱좋고 활기찬 태도,사람을 푸근하게 만드는 유머감각을 가진 ‘의리의 텍사스 사나이’에 반해 항상 사람이 모였고이것이 그의 가장 큰 정치적 자산이다. 이기동기자 yeekd@
  • [대한광장] 美·中의 한반도 정책과 통일

    한반도문제의 근원은 지정학적인 것에서 비롯된다.지정학적으로 볼때 한반도는 미·일·중·러 등 4대 강국의 이해관계가 교차하는 동북아시아의 전략적 요충지이다.따라서 19세기 말부터 있었던 청일전쟁,러일전쟁,그리고 미국과 중국이 직접 대결했던 한국전쟁 등 세 개의 주요한 국제전이 한반도의 주도권을 둘러싸고 벌어졌다는 사실은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한반도 분단은 내쟁형(內爭型)과 국제형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따라서 우리의 통일문제는 남북한 당사자가 해결해야 한다는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남북한 당사자들의 의지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복잡한 문제들이 많이 있다.주변 강대국들이 한반도문제의 남북한 당사자 해결구도를 표면적으로는 모두 찬성하는 것 같지만 내면적으로는 현상유지를 바라면서 ‘2개의 한국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동북아지역에서 세력각축을 벌이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대 한반도정책은 통일한국으로 가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보인다. 한반도문제에 대한 남북한 당사자 해결구도가 정착되면 한반도에 있어 미국의 영향력은 축소되고 반면에 중국의 영향력이 확대될가능성이 높다.따라서 남북정상회담 이후 미·중의 대 한반도 영향력 경쟁은 치열해지고 있다.최근 미국의 국무장관과 중국의 국방장관이 동시에 평양에서 외교경쟁을 펼친 것이 미·중의 대북한 영향력경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하겠다.북한은 냉전시대 중·소 등거리정책을 통해 양국으로부터 경쟁적인 지원을 받았듯이,탈냉전시대에 있어서는 미·중 양국의 대북한 영향력 경쟁관계를 잘 활용하면 양국으로부터 경쟁적인 지원을 얻어낼 수 있을 것이란 판단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역설적이게도 한반도문제의 남북한 당사자 해결을 위한 첫 남북정상회담이 주변 4강의 대 한반도 영향력 경쟁을 촉발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남북정상회담을 통해서 한반도문제의 당사자 해결 구도의 틀을 마련한 우리로서는 주변 국가들의 국가이익 또는 세계전략에 따라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한반도문제가 처리되지않을까를 걱정하게 된다. 특히 7일 미국대선 결과에따라 공화당이 집권할 경우 미국의 대 한반도정책이 크게 바꿔지나 않을지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전통적으로 미국의 외교정책은 정권이 바뀐다고 해서 급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걱정하는 것은 그동안 미 공화당 일부 의원들이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에 대해서 불만을 표시해 왔고,현재 추진중인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부시 후보가 승리하더라도 미국의 대 한반도 정책은 크게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왜냐하면 공화당의 요청에 의해서 만들어진 ‘페리보고서’에 따라 북-미간에서는 현안문제에 대한 협상과 타협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1999년 9월 15일에 부분적으로 공개된 페리보고서는 핵과 미사일 등북한의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북-미 수교를 장기적 목표로 하는 대북 포용정책이 적절하다는 점을 강조했다.페리보고서는 미국정부의 향후 대북정책을 북한의 미사일 재발사 자제 유도와미국의 대북제재 일부완화(단기),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중단 보장유도(중기),한반도 냉전종식(장기)등 3단계로 추진해야 한다고 건의하면서 대북 포용과 억지의 병행을 제안했다. 1999년 9월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를 유예하는 조건으로 미국이 대북 경제제재 완화를 약속한 북-미 베를린합의 이후 ‘페리 프로세스’는 진행중에 있다.북·미 양국은 페리 프로세스에 따라 단기목표인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를 유예시키고 중기 목표인 북한의미사일개발 중단에 관한 ‘포괄적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1일부터진행중인 미사일 전문가 협상이 잘 마무리되면 클린턴의 방북도 이뤄질 것이다. 만약 공화당 부시 후보가 당선될 경우 대북정책에 대한 재검토가 이뤄지겠지만,이미 공화당의 의견이 반영된 페리프로세스가 진행중에있기 때문에 제네바합의의 틀을 깰 정도의 무리수를 두지는 않을 것이다.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미국의 차기 정부가 우방국이자 한반도문제의 당사자인 한국정부의 의견을 무시하고 대북 강경정책을 추진하기는 어려울 것이다.페리보고서 작성과정에서 그랬듯이 이번에도 미국 차기정부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반영시킬 수 있는 다각적인 외교적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 고 유 환 동국대 교수·북한학
  • 대한매일 첫直選 편집국장 崔弘運씨

    31일 실시된 대한매일 편집국장 첫 직선투표에서 편집국 최홍운(崔弘運·50) 부국장이 당선됐다.4명의 후보가 입후보한 이번 선거에서최 국장은 투표자 221명 가운데 92표를 얻었으며,2위 득표자인 김영만 후보는 59표를 얻었다. 선거관리위원회는 후보자 가운데 과반수 득표자가 없을 경우 상위득표자 2명을 발행인 사장에게 추천,발행인이 임명한다는 노사합의에따라 이들 2명을 추천하였고 발행인은 최 국장을 새 편집국장에 임명했다. 신임 최 국장은 77년 구 서울신문에 입사,사회부장·논설위원·부국장을 거쳤으며 지난 88년 2대 서울신문 노조위원장을 지냈다. 한편 외부인사에게도 문호를 개방,언론계 내외의 관심을 모은 가운데 치러진 이번 선거는 97.8%라는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다. 정운현기자 jwh59@
  • [기고] 북미회담과 한반도 평화

    북한과 미국이 워싱턴회담을 통해 반세기동안 지속되어온 적대관계를 종식하고 동반자적 관계개선을 이룩함으로써 한반도 평화의 걸림돌을 제거하는 데 성공하였다.이는 6·15 정상회담에서 남북 간에 합의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대한 핵심적인 국제적 보장이 이루어졌다는 의미를 지닌다. 국제적 냉전체제의 해체와 함께 소련이 붕괴하고 중국이 개방을 가속화했을 때 북한의 대응은 통미봉남이었다.한국을 배제한 채 미국과관계를 개선하여 북한체제 수호에 대한 보장을 받겠다는 것이었다.이에 대해 한국과 미국은 일관되게 미국과 관계를 열기 전에 먼저 한국과 대화를 할 것을 북한에게 종용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 미국과의 직거래를 트기 위해 노력했으나 한국이 동의하지 않는 북미 직접 협상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 마침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6.15 남북정상회담에서 통미봉남을 폐기하고 한국을 통해,그리고 한국의 협력과 지원하에 대외적인 개방을하겠다는 정책의 대전환을 세계의 언론 앞에서 공개적으로 선언하였다.김정일 위원장은 통미봉남 정책의 좌절을 통해 한국을 우회하여세계로 나가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학습한 뒤,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방향전환을 하였고 한국은 이에 화답하여 미국으로 가는 길을열어줌으로써 북미회담이 한국의 축복 속에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북미 워싱턴 회담을 통해 우리는 탈냉전기의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경제재건에 대한 북한의 구상과 전략을 엿볼 수 있다. 첫째,북한은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개방정책의 핵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것이다.남북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정에서 중국의역할이 증대하고 미국의 위상이 퇴조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전망이있었으나 이번 북미회담은 북한이 미국을 핵심적인 파트너로 하는 한국,북한,미국간의 3자 공조체제의 구축을 바탕으로 개방전략을 마련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북한의 개방전략은 미국이 주도하는 동북아 질서 속에 편입되는 것이다.왜냐하면 북한은 탈냉전기에 북한의안전을 실질적으로 보장해 줄 수 있는 나라는 단일 헤게모니 국가로남은 미국 밖에 없으며 북한경제의 재건에 필요한 국제적 금융지원도미국의 승인과 도움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인식한 것이다.그래서 김정일위원장은 남북정상회담에서 주한미군의 주둔을 사실상 인정하였을 뿐 아니라 탈냉전기에 동아시아 평화유지군으로서의미군의 역할을 인정하는 발언까지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대북관계에 있어서 미국의 이해는 북한의 핵개발,미사일 발사,테러방지와 같은 군사안보적인 문제에 있었다.김정일 위원장은 바로 이 점을 염두에 두고 북한 군부를 대표하는 조명록 차수를 미국과의 회담 대표로 파견하였던 것이다.말하자면 김정일은 북한의 군부대표로 하여금 공개적으로 군복을 입고 대미 적대관계를 종식하고 평화의 시대를 열 것을 서약하게 함으로써 북한이 진심으로 평화를 원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둘째,김정일위원장은 다가올 미국의 대선을 고려하여 북한에 대해포용정책을 펴고 있는 클린턴 행정부의 임기 내에 미국과 획기적인관계개선을 이룩함으로써 설사 대북강경론자인 공화당의 부시후보가당선되더라도 북미관계를과거의 냉전적 대결관계로 되돌릴 수 없는불가역적인 것으로 만들려는 전략적인 시기 선택을 하였다.클린턴 행정부는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방북에 이어 클린턴대통령의 방북을약속함으로써 이에 화답하였다. 예상을 넘어서는 북미회담의 성공으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가장 핵심적인 국제적 조건이 충족되었다.그러나 지금 한반도가 세계가 주목하는 화해의 장으로 부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대북화해협력정책을 둘러싸고 속도조절론이 나오고 있다. 속도조절론이 외정과 내정이 균형을 이루어야한다는 고언이라면 어느 정도 수긍할 측면이 있다. 그러나 북미회담이 보여주듯이 국제사회가 우리의 냉전의식으로는상상할 수 없는 수준으로 빠르게 한반도의 냉전해체를 위해 움직이고있는 상황 하에서 우리만이 속도를 조절한다면 우리는 한반도 문제해결에 있어서 주변적 행위자로 밀려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할 것이다. 임혁백 고려대교수·정치외교학
  • 김대통령 노벨평화상/ 사선넘어 민족화해의 물꼬 트다

    온갖 풍상(風霜)과 비운(悲運),그리고 좌절과 고난….흔히들 다섯번에 걸친 죽을 고비와 6년간의 감옥살이,55차례의 연금,10년의 망명생활로 부른다. 그런 고통의 세월을 견디어,‘인동초’로 불리는 섬마을 소년이 한민족으로는 처음으로 노벨상을 받았다.그것도 세계 평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은 자랑스런 평화상을.민주주의와 인권,한반도의 평화를향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긴 여정을 세계가 노벨평화상이라는값진 명예로 보답한 것이다. ◆유년시절과 정치입문 제 79대 노벨평화상의 주인공인 김 대통령은1925년 12월3일 한반도 서남단의 작은 섬 하의도에서 가난한 농부였던 아버지 김운식(金雲植)과 어머니 장수금(張守錦) 사이의 네형제중둘째로 태어났다.그는 5년제였던 목포상업학교를 43년 졸업한 뒤 일제의 강제징집을 피하기 위해 해운회사에 취직한다.해방되던 45년 해운회사를 차려 불과 4∼5년만에 화물선 15척을 소유하는 상업수완을발휘,목포신문사까지 인수하는 촉망받는 청년실업가로 급성장하게 된다. 학창시절,웅변에 능했던 그는 정치에 뜻을 두고 54년 해운노조의 지지를 받아 3대 민의원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하나 낙선의 고배를 마신다.어찌보면 불운으로 점철된 그의 정치역정은 이 때 이미 예고되어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30대 초반이었던 그는 두번의 실패 끝에 61년 5월 강원 인제 보궐선거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되나,겨우 사흘만에 5·16 쿠데타로 국회가해산되는 바람에 당선 무효,정치규제라는 불운을 맞게된다.박정희(朴正熙)가 대통령에 당선된 63년 민주당 대변인이었던 그는 고향인 목포로 지역구를 옮겨 6대 의원에 당선,정연한 논리와 합법적인 의정투쟁으로 주목받는 정치인의 길을 걷는다. 그의 정치인생에서 커다란 절정중 하나는 라이벌인 김영삼(金泳三)전 대통령을 꺾고 40대에 제1야당인 신민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된 일.끝내 박정희(朴正熙)후보에게 패했지만,그의 정치적 위상은 당선에버금갔다. ◆정치적 고난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집권층의 탄압을 받게되는 고난의 신호탄이기도 했다.대통령 후보로 기자회견에서 언급한 통일정책과 남북한 동시 유엔가입 등 한반도외교정책은 뒷날 탄압의 빌미를제공하고,그 때부터 덧칠해진 ‘정치조작’은 그를 평생 괴롭히는 낙인으로 붙어다니게 된다. 국회의원 지원유세 도중,트럭 암살기도로 다리에 고관절 장애를 입었고,유신철폐를 주장하다 73년 여름에는 도쿄 납치사건으로 죽을 고비를 넘긴다.79년 이른바 ‘서울의 봄’에는 민주화를 이루려다 신군부의 집권으로 군사법정에서 내란음모 혐의로 급기야 사형을 언도받게 된다.당시 수형생활 도중 부인 이희호(李姬鎬)여사와 가족들과 2년여동안 나눈 엽서는 뒷날 ‘김대중의 옥중서신’으로 출간돼 수감문학의 백미(白眉)로 꼽힌다. 국제여론과 미국 정가의 압력으로 특별감형된 그는 가족과 함께 미국 망명길에 올라 미국내 ‘한국인권문제연구소’를 개설했고,하버드대 국제문제 연구소 객원연구원 생활을 하면서 ‘대중참여 경제론’을 완성한다. 85년 2월8일 미 망명생활을 청산하고 귀국길에 오른 그는 미 각계지도자 20여명과 트랩에서 내리자마자 곧바로 연행돼 가택연금 상태에놓이게 되나 김영삼 전대통령과 민추협 공동의장을 맡아 민주화운동을 주도한다.87년 6월항쟁으로 직선제를 쟁취했으나 야권후보단일화실패로 대선에서 패했고,5년뒤에는 3당합당으로 여당후보로 출마한김영삼 전대통령에게 패배,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영국 케임브리지대로유학길에 오른다. ◆수평적 정권교체와 IMF극복 통일방안 연구를 하다 93년 귀국,아태재단을 설립한 그는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 승리하자 95년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정계에 전격 복귀한다.이후 IMF 파고에서 ‘준비된대통령’이란 구호로 당선돼 헌정사상 첫 수평적 정권교체의 위업을달성,3전4기의 신화를 낳는다. 그러나 당선 다음날부터 ‘6·25 이후 최대 국난’인 IMF위기와 싸운다.외자유치를 위해 당선자 시절부터 외국인들을 만났고,취임 이후에도 그런 생활의 연속이었다. 200만명에 육박한 실업자들이 노숙자로 변했고,경제위기는 계속됐다.하지만 그의 헌신성은 사상 유례없는 ’금모으기 운동’을 이끌어냈고,금융·기업·공공부문·노사 등 4대 개혁을 강도높게 추진했다.또취임사에서 대북 3원칙을 천명하고,북한에 대한화해·협력정책을 일관되게 폈다. 하지만 소수정권의 한계는 취임초부터 정치불안정이 계속됐고,원내 안정의석 확보의 필요성을 느껴 민주당을 창당했으나 지난 4월 총선에서도 원내 제1당이 되지못해 여전히 정치적 어려움에봉착해 있다. 하지만 그의 열성적인 노력은 IMF 구제금융에 들어간 지 1년반만에약속대로 외환위기를 극복했고,현재 외환보유고는 1000억달러에 육박하고 있다.또 98년말 무역흑자가 사상 최고액인 400억달러를 돌파했고,국제신용기관의 한국의 신용등급은 상향조정되기에 이른다.실업자수도 80만명 선으로 줄어들었다. ◆남북정상회담 대북 햇볕정책 또한 결실을 맺기 시작해 금강산 관광에 이어 지난 6월에는 역사적인 평양 남북정상회담이 열려 ‘6·15공동선언’이라는 남북관계 대장전을 마련했고,남북이산가족 상봉,시드니 올림픽 공동 입장,비전향 장기수의 북송,경의선 복원공사 착수,남북 장관급 및 국방장관 회담으로 발전시켰다.한반도에 더이상 전쟁이 일어날 수 없도록 만들었다. 20세기 마지막 냉전지대인 한반도에화해와 협력의 물꼬를 튼 것이다.그가 평생을 준비해 온 3단계 통일정책의 1단계 완성을 향해 숨가쁜 걸음을 재촉하고 있는 셈이다. 양승현기자 yangbak@
  • [발언대] 지자체 보궐선거 진정한 지역일꾼 뽑길

    오는 26일 여러 곳에서 보궐선거가 실시된다.민주주의의 꽃이라 할수 있는 제도가 바로 자유로운 선거제도와 투표참여라고 할 수 있다. 1948년 5월10일 첫 선거를 시작으로 대통령선거 15회,국회의원선거 16회,부통령선거 5회,지방선거 13회,국민투표 6회 등 재보궐선거를 제외하더라도 55회에 해당하는 선거를 치렀다. 또한 초대 국회의원선거에서 투표율은 95.5%,13대 75.8%,14대 71.9%,15대 63.9%,지난 16대 국회의원선거에서는 사상 최저인 57.2%를 기록하여 갈수록 투표율이 낮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국민들의 의식수준과 생활수준 향상,투표 편의시설,교통망 발달 등모든 여건이 나아지고 있는데 투표율은 갈수록 낮아지는 이유는 무엇일까.그것은 정부수립 이후 50여년이 지났지만 오직 변하지 않은 정치권·정치인에 대한 불신 때문이라고 생각한다.이러한 요인이 투표참여 기피로 이어지는 것으로 생각된다. 더욱이 민선 지방자치단체장의 선거실시 이후로 지방재정을 고려하지 않고 각종 선거를 겨냥한 선심성 행사를 주관·개최하고 경쟁적으로 무리한 한건주의식 공사발주를 하는 등 각 지방자치단체가 적지 않은 부채를 갖고 있는 것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번 보궐선거는 그동안 실시·추진해온 각종 사업을 내실있게 추진하고 주민을 위한 합리적 행정을 펼칠 수 있는 인사가 당선될 수 있도록 해당지역 주민이 적극 참여하여야 할 것이다. 물론 정치인이나 선량들이 잘해야 되겠지만 이제는 우리 스스로 적극 참여하는 것이 우리 스스로의 부담을 더는 지름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올바른 선택과 투표참여는 우리의 미래를 우리 스스로 밝히는등불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배명일[대전광역시 서구 갈마동]
  • 2000 美 대통령 선거/ D-32 판세

    D-32.백악관의 주인을 결정하는 미 대선이 한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민주당의 앨 고어 부통령과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텍사스 주지사 모두 지금까지 3억달러 가까이 선거자금을 모금,이중 1억8,000만달러를쏟아부었지만 현재까지의 여론조사 결과는한치의 앞을 가늠할 수 없는 백중세로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지난 3일(현지시간) 벌어졌던 첫 후보자 TV토론 결과는 고어가 48대 41로 부시보다 조금 잘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부시 후보도 예상과는 달리 의외로 선전을 펼쳐 현저한 차이를 드러내지 못했다. ■독립성향 유권자 향배=한달 앞으로 다가온 선거의 승패는 약 30%에달하는 독립성향 유권자의 향배에 달려 있다. 1차 토론 결과 어느 후보를 지지할지 결정못한 30%의 유권자 가운데 3%만이 마음을 새로 결정한 것으로 나타난 반면 나머지 97%는 아직도 결심을 유보하고 있어 여론조사는 토론이 모두 끝나 유권자들이결심을 하는 순간까지 앞으로도 시소게임 형태를 보일 전망이다. 올 미 대선전이 유례없는 백중세를 보이는 것은 1년 전부터 계속 부시에 뒤쳐져오던 고어진영의 선전이 일차적 주요 원인이다. 고어 진영은 선거 공약 제시에서 철저히 민생우선 정책을 펼치고 있다.2015년까지 예상되는 25조달러에 달하는 누적 재정흑자를 바탕으로 한 사회보장제도 확충과 교육제도 개선을 내건 호소가 최고 18%포인트까지 보였던 부시와의 격차를 줄이는데 기여했다. 반면 부시는 ‘따뜻한 인간미를 가진 공화당’이란 구호를 내걸어기존 보수성향을 탈피하려 애썼지만 경제호황 국면으로 유권자들이정치에 냉담해져 부시가 내건 공약에 잘 주목하지 않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두 후보의 상승세=부족 원인 고어가 뒤쳐졌던 지지도를 만회하는데는 성공했지만 부시를 큰 차이로 따돌리지 못하고 치열한 경쟁을 펼치는 배경에는 식상한 인물이라는 원초적인 결함에 간간이 터져나오는 클린턴 시대 스캔들과의 관련성이 차별성을 떨어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전통적으로 민주당 쪽이었던 블루칼러 근로층들이 클린턴 때와 같은 열렬한 지지를 보내지 않는다는 점,그리고 끊이지 않는선거자금관련 스캔들이 작용하면서 상승세에 탄력을 받지 못하고 있다. 고어는 2대 1의 비율로 근로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지만 클린턴의 업적으로 자랑한 중국과의 항구적정상무역관계(PNTR) 체결과 외국인 근로자 비자발급 확대 등 정책이 근로층의 지지 열기를 다소 식게 만들었다. 또한 연설과 토론에 뛰어난 능력이 일부 유권자들에게 교활함으로비쳐지는 것도 고어로서는 부담이다. 반면 부시는 처음 대선무대에 등장한 뒤로 점차 베일이 벗겨지면서참신하게 보이던 어눌함이 결국 지도자로서의 면모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부정적인 판단으로 나타나고 있다. 현재 두 후보가 획득할 것으로 예상되는 선거인단 수에서도 고어가148대 132로 부시에 다소 앞서고 있으나 과반수인 270명에는 훨씬 미치지 못하고 있어 과반수를 넘기 위한 두 후보의 행보는 앞으로 더욱빨라질 전망이다.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hay@. *美부통령 후보 TV 토론.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미 대선관련 TV토론 두번째 순서는 부통령 후보끼리의 맞대결.5일 밤 9시(한국시간 6일 오전 10시) 켄터키주 덴빌시 센터칼리지에서 민주당 러닝메이트인 조셉 리버먼 상원의원과 공화당 딕 체니 전국방장관이 논쟁을 벌인다. 대선 토론 1차 때와는 달리 자유토론 형식으로 열리는 부통령 토론회는 답변 3분,반론 2분,추가반론 1분 등 시간에 묶인 채 번갈아 마이크를 쥐던 전통적인 방식이 아니라 자유토론 형식으로 진행된다. 이미지를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하는 대선토론과는 달리 부통령 토론은 이미지보다는 실무능력과 경험이 중시되는 경향이 있는 만큼 리버먼-체니 격돌은 더 치열할 것이 예상된다.형식이 자유토론인 만큼 두후보는 언제든지 상대방을 공박할 수 있으며 주제 또한 마음대로 유도해 낼 수 있는 상황이어서 유권자들은 토론에 관한한 대선 1차토론때보다 더 흥미와 긴장감을 느낄 수 있으나 후보들은 혹독한 곤욕을치러야 한다. 더욱이 부통령 토론은 단 한번 밖에 없는 자리이기 때문에 두 사람은 토론 시작부터 각자의 구상대로 후보를 유인하거나 공박하는 적극적 전략을 사용할 것으로 보여 열기는 더욱 뜨거울 전망이다. 이상열기를 감지했는지 4일 리버먼은“나는 인신공격에 호소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방패막을 치는 모습이었다.체니 역시 “미국인과의 대화를 할 작정”이라고 예봉을 감추었다. 경력에 관한한 체니는 88년 상원의원에 당선된 리버먼 보다 한수 위.하원의원과 백악관 실세,행정부 관료 자리를 두루 거친 그는 특유의무기인 차분한 논리력으로 감성에 호소하는 리버먼을 파고들 것으로보인다. 그러나 리버먼의 무기는 청렴성과 도덕성.하원의원 시절 남아공화국넬슨 만델라 석방결의안 반대나 학교급식 지원 반대 등 체니의 극우보수성향 이력은 리버먼의 표적이 돼 공박받을 공산이 크다.
  • 후지모리 ‘억지 권력’ 무너지는가

    알베르토 후지모리 페루 대통령의 10년 아성이 무너졌다.후지모리대통령은 16일(현지시간) 대통령 선거와 의회 선거를 새로 실시하되자신은 출마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혀 권좌에서 물러날 뜻을 표명했다.선거의 구체적 시기는 밝히지 않았지만 후지모리의 퇴진은 기정사실화한 것. 후지모리 대통령은 야당의원 매수 사건으로 물의를 빚은 국가정보부(SIN)를 해체하고 당국에 철저한 수사를 지시했다고 밝혔다.그러나야당의원 매수의 장본인인 블라디미로 몬테시노스 SIN 부장의 거취문제는 언급하지 않아 군부 쿠테타를 포함한 갖가지 추측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후지모리 대통령이 이끄는 ‘페루 2000’은 4월 총선에서 120석의의석 중 53석 획득에 그쳤으나 이후 야당의원 영입을 통해 70석 가까운 절대 과반수 의석을 획득,야당측으로부터 공작정치를 중단하라는끊임없는 시위에 시달려왔다. 그런 가운데 후지모리의 최측근인 몬테시노스 정보부장이 야당인 ‘페루의 가능성’ 소속 루이스 알베르토 쿠오리 의원을 돈으로 매수하는 장면이 15일 현지 케이블 TV에방영된 것.공개된 58분짜리 비디오 테이프에는 몬테시노스 정보부장과 쿠오리 의원이 매수금액과 탈당시기를 놓고 흥정하는 대목 등이 담겼다. 야당은 테이프가 공개되자 “후지모리 정권의 밀실정치와 철권통치및 부정부패의 실상이 분명히 드러났다”며 대통령의 즉각 사임과 정보부장의 구속,과도정부의 구성 등을 주장했다.당시 1만5,000달러를현금으로 받은 것으로 알려진 쿠오리 의원은 TV 방영 직후 “돈을 받았지만 빈민자들에게 생선을 나눠주기 위한 냉동트럭 구입용으로 1만달러를 빌렸을 뿐”이라고 수뢰를 부인했다.그는 야당인 ‘페루의 가능성’ 소속에서 지난달 후지모리가 이끄는 여당 ‘페루 2000’으로당적을 옮겼다. 후지모리 대통령이 TV 방영 하루만에 선거를 다시 실시하겠다고 밝힌 것은 10년 철권통치에 비하면 극히 이례적이다.국민과 야당의 요구에 굴복한 셈이지만 선거 일정 등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아 일각에선 쿠테타가 일어나 축출됐을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야당 의원들은 “군부의 지지를 받았더라면 후지모리가 방송연설을하지 않았을것”이라고 말했다. 페루는 5월 치러진 대선의 부정의혹 시비로 최근까지 시위가 끊이지 않다 미주기구(OAS) 등 국제사회의 요구에 따라 여야간 민주화 일정에 합의한 뒤 정국은 소강상태에 빠졌다. 리마 시민들은 후지모리의 연설 이후 수천명이 거리로 몰려나와 “독재가 무너졌다”며 승리의 환성을 지르고 자동차 경적을 울렸다.경찰들도 이들을 제지하지 않았다. 지난 대선에서 야당후보로 나섰던 알레한드로 톨레도는 새 대통령선거에서는 야당 단일 후보를 내세워야 하며 대통령의 퇴진 결정에어떠한 외부요인도 가로막아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백문일기자 mip@. *몬테시노스는 누구. 몬테시노스 국가정보부(SIN) 부장(53)은 지난 10년간 SIN 부장으로재직하면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 ‘대통령인 후지모리를 능가하는 권력자’라는 평을 들어온 인물. 92년 친위쿠데타 당시 의회 해산과 법원 봉쇄 과정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95년 후지모리의 재선 성공뒤에도 그의 능수능란한 공작정치가 있었다.96년 코카인 밀반출을 묵인해주는 대가로 매달 5만달러씩 받았다는 폭로 이후 끝없는 마약조직과의 연루설에 시달려왔으나 매번 사법당국의 철저한 보호로 위기에서 벗어났다.그가 후지모리에 관한 정보를 너무 많이 갖고 있어 사실상 제거가 불가능하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77년 육군 대위 시절 미 정보요원에 국가기밀을 팔아넘긴 혐의로 불명예제대했다. 유세진기자 yujin@. *후지모리 대통령은 누구. [리마 연합] 알베르토 후지모리(62) 페루대통령은 일본인 이민 2세출신으로 대통령에 3번이나 계속 당선됐다. 지난 5월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결선투표를 강행,3선에성공한 그에 대해서는 ‘정치·경제적 안정을 달성한 실용주의자’,‘철권통치를 자행한 독재자’ 등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2차대전이 일어나기 전 페루로 이민온 나오치 후지모리와 마츠에 이노모토 부부의 5남매중 차남인 그는 리마 출생으로 대학총장을 지냈으며,대학총장연합회장으로 피선된 것을 계기로 정치에 입문했다. 1990년 ‘캄비오(개혁) 90’이라는 신당을 급조,같은 해 실시한 대선에서 여당후보인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를 근소한 표차로 따돌리고권좌에 올랐으며 95년에는 유엔 사무총장 출신인 하비에르 데 케야르후보를 물리치고 재선됐다. 그는 첫 임기 중반이던 92년 정국불안이 심해지자 군부의 지지아래계엄을선포,친위쿠데타를 일으켰으며 에콰도르와의 국경분쟁이 발생하자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등 철권대통령으로서의 이미지를 굳혔다. 1996년 좌파 반군들이 4개월간 일본 대사관저를 점거했을 당시 군대를 진두지휘,인질 71명을 구출함으로써 전세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정계진출 선언으로 파문을 일으킨 부인 수사나 히구치 여사의 영부인 자격을 박탈,딸 케이코를 영부인으로 임명한 뒤 부인과 이혼했는가 하면 97년에는 자신의 3선 연임에 걸림돌이 되는 헌법재판관 3명을 제거했을 정도로 앞뒤를 가리지않는 냉정하고 권위적인 독재자의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하기도 했다.
  • 27~30일 ‘밀레니엄 종교청년 문화축제’

    젊은 종교인들이 종교간 화합과 새 종교문화를 창출하기 위해 나섰다.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회장 최창규 성균관장) 청년분과위원회는오는 27∼30일 연강홀과 장충동 경동교회내 여해문화공간에서 제 1회‘밀레니엄 2000 종교청년 문화축제’를 연다.이번 종교청년 문화축제는 기성 종교인들이 그동안 추진해온 종교간 화합과 협력 노력이일반 신자 등 하부조직까지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착안,젊은 종교인들이 자발적으로 나선 첫 행사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미래 종교계를 이끌어갈 청년 종교인들이 문화축제라는 계기를 통해우리 사회와 종교계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평화적인 실천방안을 제시하기 위해 젊은 종교인들만의 행사로 마련했다고 주최측은 설명한다.따라서 축제는 개신교 불교 원불교 유교 천도교 천주교 6대 종교의 청년 및 중고교생 연령의 청소년들이 철저하게 공동참여하는 형식으로 진행돼 만남의 장을 형성하면서 각 종교간 네트워크를 형성한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특히 이같은 공연예술장르 공동참여를 통한 공동체 생활을 경험하면서 ‘화해와 평화의 메신저’라는 새천년의 청년상을 부각시킨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새천년 평화의 물결이 한국에서 세계로’를 주제로 한 문화축제는27일 오후7시 여해문화공간에서 개막식을 시작으로 노래극공연(27∼28일 오후7시30분 여해문화공간)과 청소년 푸른영화제(29∼30일 여해문화공간),콘서트(30일 오후7시 연강홀) 등으로 진행된다.개막식에선원불교 풍물패의 길놀이를 시작으로 중고생 힙합그룹 타이탄의 축하공연,평화메시지 낭독이 있을 예정이다.노래극 공연은 한국종교가 꿈꾸어야할 평화는 무엇이며 어떻게 만들어가야 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예비성직자와 대학생 등 청년 회원들이 공동으로 대본과장면을 만들었다. 청소년 푸른영화제는 영상기술이나 제작방식 보다는 청소년들이 품고있는 생각과 느낌들을 영상을 통해 서로 만나고 나누자는 뜻을 담은 행사.10분 내외의 단편영화 16편이 이틀간 상영된다.일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폭력과 소외의 문제를 ‘평화’라는 잣대로 들여다보면서 평화로운 세상과 삶의 모습들을 청소년 특유의 상상력으로 표현해보는 게 특징이다.마지막날 폐막식에선 불교 풍물패의 길놀이로 시작해 영화제 수상작 주요장면 상영과 각 종교 연합청년들의 집단 퍼포먼스 ‘우리가 꿈꾸는 평화,우리가 소망하는 세상’이 열린다.콘서트는 각각의 종교를 배경으로 음악활동을 하고있는 아마추어 언더그라운드 계통의 젊은 록 뮤지션들이 참여하는 자리.가톨릭대 그룹사운드우니타스, 원불교 그룹사운드 ‘하늘사람들’ 개신교 청년노래패 ‘그루터기’가 음악을 통해 평화의 메시지를 던진다. 한편 행사기간중엔 ‘종교청년 새천년 평화의 다리놓기’ 홈페이지제작경연대회도 열린다.종교청년들이 새천년 피스 메이커 역할을 하기 위해 사이버 공간의 담론 마당을 개설하는 것으로 당선작품은 행사가 끝난 뒤에도 이웃종교간의 다양한 의견과 대화를 나누고 정보를교환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된다. 김성호기자 kimus@
  • 타이완 “黑金정치 청산”

    [베이징 김규환특파원] 50년동안 깊게 뿌리내린 타이완(臺灣)의 ‘헤이진(黑金·검은 돈) 정치’가 청산될 수 있을까.건강 악화로 칩거중이던 탕페이(唐飛) 타이완 행정장관(총리)이 취임 후 일성으로 ‘헤이진 정치와의 전쟁’을 선포했기 때문이다. 탕페이 행정장관은 31일 내외신 기자회견을 갖고 타이완의 헤이진정치가 정치·경제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지적하고 앞으로 헤이진 정치를 근절하는데 모든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강조했다.그는 특히 헤이진 정치를 뿌리뽑으려면 증권시장 침체 등 단기적인 아픔을 동반할 수 있지만 타이완의 21세기 도약을 위해서는 이를 참아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타이완의 헤이진 정치는 지난 반세기동안 정치·경제·사회 전반에걸쳐 깊게 뿌리를 내렸다.국민당이 중국 대륙에서 공산당에 패배,타이완으로 쫓겨온 고(故) 장제스(蔣介石) 총통 집권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49년 타이완에 건너온 뒤 장 총통의 국민당은 일본 제국주의가 남기고 간 적산(敵産)기업들을 모두 인수,당재산으로 만든 뒤 엄청난 돈을 주무르기 시작한 것이다. 국민당은 쓰러져가는 기업들에 돈을 빌려주고 실질적인 경영권을 지배하는 방법 등을 동원,닥치는대로 돈을 끌어모았다.이렇게 모은 국민당의 재산은 지난해 무려 200억달러선(약 22조원)에 이른 것으로알려졌다.이 때문에 세계 언론들로부터 ‘정경유착의 표본정당’,‘타이완 최대의 기업은 국민당’이라는 불명예를 얻었다. 타이완 정부가 헤이진 정치에 메스를 들이대는 것은 51년만에 여야정권교체를 이룬 천수이볜(陳水扁) 정권이 정통성을 확보하기는 커녕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해지고 있는 탓이다.취임 초기 80%선을 넘던 천 총통의 통치력에 대한 만족도는 최근 70%선으로 곤두박질치고 있다. 특히 야당인 국민당을 사실상 해체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는데다,대외적으로 ‘청렴정치 구현’이라는 모토를 내건 국가 이미지에 흠집을 내면서 금융위기를 부를 수 있는 원인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는 점도 작용하고 있다.따라서 개혁 이미지로 당선된 천 총통이 사실상 첫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khkim@
  • 자민련 당직개편

    자민련 김종호(金宗鎬) 총재권한대행은 1일 사무총장에 오장섭(吳長燮),원내총무에 이양희(李良熙) 의원을 각각 임명했다. 대변인에는 변웅전(邊雄田) 전의원이 임명됐으며,정책위의장 인선은보류됐다. 부총재는 김종호 대행을 비롯,강창희(姜昌熙)·조부영(趙富英) 의원과 한영수(韓英洙)·이태섭(李台燮)·권해옥(權海玉)·황산성(黃山城) 전의원,신은숙(申銀淑) 위원장 등 8명이 선임됐다. ◆오장섭 사무총장 사업가 출신.14대때 첫 당선된 3선 의원.외유내강(外柔內强)형.16대 원 구성 이후 원내총무로서 여야를 오가면서 추진력과 협상력을 인정받았다.부인 인계선(印桂善·51)씨와 2남1녀.충남예산 출신(53)으로 한양대를 졸업했으며,국회 재해대책특위 위원장을지냈다. ◆이양희 원내총무 95년 자민련 창당 부본부장을 맡아 창당을 주도한김종필(金鍾泌) 명예총재 직계의 재선 의원. 6공때 청와대 정무비서관과 정무1차관을 지냈으며,97년 12월 대선후대통령직인수위 경제1분과와 정책분과위원으로 활동했고 당 대변인을역임했다.부인 김영자(金鍈子·54)씨와1남1녀.대전 출생(55)으로 대전고,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변웅전 대변인 아나운서 출신으로 15대 총선때 첫 당선돼 정계에입문,지난 4·13 총선때 전국구 6번으로 재선을 노렸으나 자민련의총선 참패로 좌절됐다.부인 최명숙(崔明淑·54)씨와 2남.충남 서산출생(59)으로 서산고,중앙대를 졸업했다. 황성기기자 marry01@
  • 최고위원 예우·의전 고심

    민주당이 8·30 전당대회를 통해 선출 또는 지명된 12명의 최고위원에 대한 예우와 의전 문제를 놓고 고심하고 있다. 모든 최고위원들이 공평한 예우를 받는다는 게 민주당의 공식 입장이지만,아무래도 경선 최고위원들의 득표순위와 당내 위계질서 등을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최고위원회의때 좌석배치 문제다.민주당은 주 2회 최고위원회의를 연다는 방침이다.당사 3층 대표실과 3층 회의실을 사용하게 된다. 대표실의 회의용 테이블은 원탁이어서 도착 순서대로 자연스럽게 앉으면 된다는 입장이지만,최고위원들은 내심 서영훈(徐英勳)대표와의거리를 의식할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3층 회의실은 ‘ㄷ’자형 구조여서 어느 위치에 앉느냐를 놓고 신경전이 벌어질 공산이 적지 않다. 31일 첫 최고위원회의에서 최고위원간에 좌석 신경전이 펼쳐진 것도이런 기류와 무관치 않다. 당내에서는 1일 오후 청와대에서 당총재인 김대중(金大中)대통령 주재로 열리는 최고위원회의가 좌석배치의 기준이 되리란 전망이 우세하다. 당사에 별도의 사무실을 배정하는문제도 골칫거리다.경선 최고위원들은 “고생 끝에 당선됐는데 방이 없어서야 되겠느냐”며 은근히 사무실 배정을 바라고 있다.당헌상 당3역보다 ‘윗선’이라는 점도 덧붙인다. 당은 그래서 절충안을 모색중이다.먼저 대표실 옆 이인제(李仁濟)상임고문실을 최고위원들이 공동 이용하는 ‘최고위원 휴게실’로 만들겠다는 것이다.또 권노갑(權魯甲)김중권(金重權)장을병(張乙炳)신낙균(申樂均)최고위원 등 원외 4명에게는 개별 사무실을 제공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원내 최고위원은 의원회관을 사용하면 되지만,원외 최고위원은 업무를 처리할 마땅한 공간이 없다는 점에서다. 이럴 경우 권 최고위원은 그의 당내 위상을 감안해 당사 8층의 상임고문실을 그대로 사용토록 하고,나머지 3명은 평수가 조금 작은 방이배정될 것으로 관측된다. 한편 최고위원들은 당규에 따라 원내는 100만원,원외는 50만원씩 매달 당비를 내야 한다.대표는 월 150만원이고 총재는 월 500만원이다. 주현진기자 jhj@
  • 올림픽대교에 성화대 상징물 ‘영원한 불’ 설치

    서울 올림픽대교에 88올림픽을 상징하는 횃불 모양의 조형물이 내년4월까지 설치된다. 서울시는 한강다리 모습 바꾸기를 위한 첫 사업으로 올림픽대교 주탑 꼭대기와 사장교 케이블에 조형물 및 조명을 설치하기로 하고,국내 주요 대학에 작품을 공모한 결과,한국예술종합학교 윤동구교수의‘영원한 불’이 당선작으로 선정됐다고 25일 밝혔다. 당선작 ‘영원한 불’은 성화대 모양의 올림픽대교 주탑 상부에 높이 12m,직경 8m의 스테인레스스틸 및 알루미늄 재질의 횃불을 선(線)적으로 설치,조형성과 심미성을 강조했다. 또 주탑 상단부 사방 모서리와 올림픽대교 중앙분리대에는 오륜을상징하는 5색 조명시설을 설치 조형물과 케이블의 입체감을 살린다. 서울시는 당선자와 계약을 체결,9월에 제작설계에 착수해 내년 4월까지 조형물 설치를 마칠 계획이다. 한편 시는 내년부터 매년 3∼4개의 한강 교량에 조형물을 설치,2004년까지 17개 전 교량에 대한 조형물 설치 사업을 마칠 계획이다. 또 2003년까지 마포·양화·한남·잠실대교와 광진교에 교량 양쪽으로 폭 2m,길이 6m의 테라스식 전망대를 설치,시민들에게 보다 친숙한한강교량이 되도록 할 방침이다. 임창용기자
  • 민주 최고위원 경선…중진‘엎치락 뒤치락’

    민주당 8·30 전당대회를 일주일 앞두고 최고위원 경선 후보들의 우열이 드러나고 있다.절반을 넘긴 합동연설회가 변수가 되고 있다.일부 소장파들이 강세를 보이면서 중진들과 긴장관계가 조성되고 있다. [선두다툼과 연대논쟁] 한화갑(韓和甲)후보와 이인제(李仁濟)후보가대의원 지지율 60%대에서 불을 뿜는 1위 경쟁을 하고 있다는 관측이다.당초 한후보의 낙승이 기대됐으나 이후보의 추격세가 맹렬하다. 한후보측은 아직도 이후보를 안정적으로 앞서고 있다고 주장한다.지금까지 각종 여론조사에서 한번도 1위를 빼앗긴 적이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후보측에서는 한후보와 오차범위내에서 추격전을 펼치고 있으며역전도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양진영의 신경전도 치열하다.한후보측은 “당 핵심인사(權魯甲상임고문)의 이후보지원이 지나치다”며 불만을 나타냈다.이후보측에서는 “영남지역에서 김중권(金重權)·김기재(金杞載)후보와 한화갑 3자연대는 불행한 사태를 가져 올 수 있다”고 비난했다. [중상위권 다툼과 연설효과] 김중권 김근태(金槿泰) 박상천(朴相千)후보의 3자 구도에 40대 기수론을 주창하고 있는 정동영(鄭東泳)후보가 가세,4파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당안팎에서는 이들이 30∼40%대의지지를 얻고 있는 것으로 보고있다. 김중권 후보는 설득력있는 연설로 대의원들의 호감을 얻고 있다.영남권을 대표하는 후보라는 점도 강점이어서 상대후보의 견제를 받고있다. 정동영후보는 합동연설회의 덕을 가장 많이 본 후보로 꼽힌다.지지율이 거품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정후보측은 선거혁명을 기대하고 있다.최근 한 여론조사에서는 3위에 올랐다. 김근태후보는 후보연설회에서 득보다는 실이 많은 것으로 보고있다. 그러나 솔직하고,연설 내용이 좋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개혁성향의 원내외 위원장 등 조직력이 발판이 되고 있다. [7위 혼전] 당선권 마지막 턱걸이 한자리를 놓고 혼전양상을 보이고있는 느낌이다.김민석(金民錫)·추미애(秋美愛)후보와 김기재 정대철(鄭大哲)이협(李協)후보가 대의원 지지율이 15∼25%대에서 경쟁하고있는 것으로 관측된다.경쟁이 치열해 우세를 점치기가 어렵다.‘소장파 강세’에 역점을 두는 측에서는 김민석·추미애후보의 당선 가능성을 높게보고 있다.그러나 영남권후보인 김기재후보의 선전을 꼽는인사들도 많다. 당 중진들은 그러나 “정대철후보를 눈여겨 보라”고 주문한다.합동연설회에서 목소리는 크지 않지만 가장 인상에 남는 연설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이협후보도 마찬가지다.이밖에 조순형(趙舜衡)김태식(金台植)안동선(安東善)김희선(金希宣)후보 도 7위 안착을 나름대로자신하고 있다. 강동형기자 yunbin@. * 민주 경선 충청 합동연설회. 23일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 경선 충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상위권후보들은 ‘강한 여당’과 ‘정권재창출’을 거듭 강조한 반면,중하위권 후보들은 ‘경륜’‘동지’ 등을 내세운 구애 전략을 펼쳤다.특히 일부 후보들은 이번 전당대회를 자민련과 결별하는 계기로 삼자고목청을 높이기도 했다. 김중권(金重權)한화갑(韓和甲)후보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의 대화록과 인연을 소개하며 자신이 진정한 ‘대통령의 적자(嫡子)’임을강조했다. 이인제(李仁濟)후보는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와 일대일로 붙으면 압도적으로 승리하는 것으로 나온다”면서 “충청도에서도 탁월한 지도자가 나오면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충청도 대통령론’을 역설했다. 정대철(鄭大哲) 후보는 “DJP연합에 너무 의존해 당이 정체성을 잃었다”며 “JP와의 작별 의식을 예비하는 전당대회가 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의원들의 표심(票心)을 잡기 위한 눈물겨운 호소도 이어졌다.“대권을 겨냥한 사람들은 대선후보전에 나가지 왜 여기 나와서 중도 약세 후보들을 울리느냐”(李協 후보),“전북출신 세 후보 가운데 가장고생 많이 하고 빨리 죽을 맏아들인 내가 먼저 당선되는 게 도리”(金台植 후보),“개혁파니 여성파니 하며 별 사람이 다 나오는데 여당은 뿌리가 튼튼해야 한다”(安東善 후보),“나처럼 항상 지도부에 직언하는 사람이 돼야 한다”(趙舜衡 후보)는 등 다양했다. 추미애(秋美愛) 후보는 “한나라당 부총재 경선에서 2등을 한 박근혜(朴槿惠)의원은 엄밀히 말해 1.5선”이라고 전제,여성의원 가운데여야 통틀어 재선의원은 자신뿐이라며 민주당의 대표적 여성 기수로뽑아달라고 호소했다. 청주 주현진기자 jhj@. *민주 정당사상 첫 전자투표. 민주당 8·30 전당대회 최고위원 경선에서 정당 사상 처음 도입되는전자투표는 어떤 방식으로 진행될까. 민주당은 23일 많은 이들의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여의도 당사에서 공개시연회를 열었다. 이에 따르면 전국 대의원 9,484명은 신원 확인절차를 거쳐 전자투표권을 지급받는다.이어 대의원들은 기표소에 들어가 전자투표 단말기에서 자기가 선택한 후보 4명의 사진에 터치버튼 형식으로 투표를 하게 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전자투표권을 단말기에 넣는다→후보자15명의 이름과 사진이 나타난다→후보 4명을 선택하고 이를 확인한다→전자투표권 회수 및 투표 완료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자연히 기존의 수기형 투표방식보다 투표시간이 크게 단축된다. 투표와 동시에 개표가 진행된다는 점도 주목할 부분.투표 종료 즉시개표결과가 집계됨으로써 투·개표시간의 대폭 단축과 함께 선거비용및 선거 관리인력의 감축 효과도 기대된다. 또 종전처럼 투표를 위한 대기행렬을 크게 줄일 수 있어 대의원들의투표참여 분위기가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개표화면은 최고위원 당선자,순위별 득표현황,막대그래프를 이용한 후보자별 득표현황 등 3가지로 구성된다. 이처럼 전자투표는 공개적이고 투명한 투·개표현황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디지털 선거문화의 커다란 전기가 될 전망이다. 디지털 선거문화는 궁극적으로 전자국민투표와 연결된다. 한종태기자 jthan@
  • 고어·부시 TV토론 신경전

    올가을 미대통령선거 판세를 결정지을 후보간 TV토론을 놓고 앨 고어 민주당 후보와 조지 W 부시 공화당 후보 진영이 첨예한 신경전을벌이고 있다. ‘치밀한 논리’로 무장,토론에 능한 앨 고어 진영이 토론회 참여에 적극적인 반면,논리면에서 밀린다고 생각하는 부시진영은 소극적인입장.22일 공개된 워싱턴포스트와 ABC방송의 여론조사에서 50%의 지지율로 45%의 부시를 앞선 고어진영은 ‘토론회’호재를 활용,전당대회 이후의 지지세 확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대통령후보토론위원회(CPD)는 3차례 토론회 일정을 양진영에 제안해놓고 있다.10월 3일 보스턴,10월 11일 노스캐롤라이나주 윈스턴-세일럼,10월 17일 세인트 루이스 등에서 3차례 대통령 후보 토론을 열고10월 5일 켄터키주 댄빌에서 부통령 후보들간 토론회를 개최하자는내용이다. 일찌감치 CPD제안을 수락한 고어 부통령은 21일 ABC방송의 ‘굿 모닝 아메리카’에 출연,이를 재확인했다.반면 부시 후보는 토론회 참가원칙에는 찬성하나 시기와 방법에 대해서는 선택의 여지를 남겨두었다.고어 부통령은 “토론회가 TV주요 시간대에 개최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면서 부시측의 소극적인 자세를 은근히 꼬집고 있다.CPD가마련한 자리 대신 시청율이 저조한 시간대 등 자신에 유리한 토론회를 선택하기 위해 시간을 끌고있다는 것이 고어진영의 주장이다.이에대해 부시측은 “우리는 3차례 토론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며부시는 판에 박힌 사람(고어)보다 낫다”고 반박했다. CPD조사결과 미국 유권자들의 30∼40%가 TV토론을 통해 후보자 자질을 검증한다는 결과가 있을 정도로 TV토론은 미 대선 판도에 커다란영향을 미친다.1960년 러처드 닉슨 부통령과 존 F 케네디 상원의원사이에 열린 사상 첫 TV토론에서 지지율에서 뒤지던 케네디후보가 토론 후 판세를 뒤집어 당선된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김수정기자 crystal@
  • 민주 경선 대구·경북 연설회

    민주당 최고위원 대구·경북지역 경선합동연설회가 22일 대구 시민회관에서 열렸다.후보들은 선거과열에 대한 비난을 의식한 듯 이전과달리 상대 후보의 비방을 삼가는 모습을 보였다. ◆후보연대 논란 영남권 후보인 김중권(金重權)·김기재(金杞載)후보의 ‘윈윈’연대가 눈길을 끌었다. 많은 박수를 받고 등단한 김중권(金重權)후보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서는 전국정당을 만들어야 하고,영남을 껴안아야 한다”면서 지지를 호소했다.이어 “김기재 동지와 내가 낙선한다면 여러가지 문제가생길 것”이라는 지적도 곁들였다.김기재후보도 “이번 전당대회에서2명의 영남 후보를 당선시켜 명실상부한 전국정당으로 거듭나자”고강조했다.이에 박상천(朴相千)후보는 영남권 두 후보와 한화갑(韓和甲)후보의 물밑 연대를 의식,“나는 경상도 아가씨와 결혼했다”면서 “3인 연대니,4인 연대니 하는 것은 당내 민주주의를 무너뜨리고 대의원들의 고유권한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신경전을 폈다. ◆연설회 안팎 첫 연설자로 나선 정대철(鄭大哲)후보와 김민석(金民錫)후보 등은 정권재창출을 위해서는 자신이 당선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대구 출신 추미애(秋美愛)후보는 “고향에와 인사드린다”며 박수를유도한 뒤 정권교체를 위해 노력했던 지난 대선 때를 회고, 분위기를숙연케했다. 추의원의 연설 때 소장파 리더인 정동영(鄭東泳)후보가큰 박수를 보내,눈길을 끌었다.정후보는 “정동영을 당선시키는 선거혁명을 이뤄,국민의 눈이 번쩍 뜨이도록 해달라”고 호소했다. 김근태(金槿泰)후보는 “당내 개혁세력 민주세력을 대표하는 김근태를 지지해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화갑 후보도 지역경제활성화를 약속한 뒤 “핍박과 희생을 감수하며 정권교체를 이뤄냈던 영남지역 당원들에게 뜨거운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대구 강동형기자 yunbin@
  • [황석영의 맛따라 추억따라](12)낯선 땅에서

    *농군집서 맛본 해남 별미 보리.매생이국엔 흙내음이. 해남은 공기는 물론 햇빛과 바람부터가 달랐다.아무리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도 볼에 닿으면 살랑대며 어루만져 주는 듯했고 햇빛은 마치석양이 그렇듯이 약간 비껴서 내리 쪼이는 것 같았는데 풀과 나무와꽃이며 땅이 제 색깔을 제대로 내는 것처럼 보였다. 비 온 뒤의 풍광은 더욱 투명해서 느끼한 유화가 아니라 묽게 채색된수채화로 아슴프레하게 그린 듯했다. 밤이면 댓잎이 서걱대고 댓가지가 서로 부딪는 소리가 밤새도록 들려왔고 비가 오나 하여 내다보면대숲을 지나는 바람 소리가 그렇게 들렸다. 미리 작정하고 찾아 내려간 터이라 나는 슬슬 농민들과 접촉을 시작했는데 이들이 힘을 얻으려면 읍내 중간층들의 두터운 후원이 있어야겠다고 생각을 바꾸었다.읍내에서 내가 사귈 사람은 일단 관리들과나이 든 사람은 빼고 학교 선생이나 의사 약사 아니면 대학을 나와도시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낙향하여 자영업을 하는 삼십대의 사람들을 정하였다.촌에서 사람을 사귄다는 것은 언제나 술 한 잔이 매개였는데 그래서 벼라별 것을 다 먹어 보았다. 농민들과의 접촉은 주로 장날에 이루어졌다.읍내에 장이 서면 주위의면과 리에서 농민들이 장을 보러 나오고 그들은 우리 집을 방문해서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하고 책도 빌려 보곤 했다. 나중에 시인 김남주나 전국 농민회 의장을 지내게 된 정광훈 형이며 동화작가 윤기현이 내 서재를 사랑방 농민학교로 만들어 장날마다 학습도 하고 토론도 하게 되었다.처음에는 집에서 대충 점심을 나누어 때우곤 하였는데 점점 많아지는 회원들을 감당할 수가 없어서 자연스럽게 방문자는 먹을 거리를 가져오게 되었고 그래서 더욱 정이 돈독해졌다. 내가 기현이를 알게된 것은 우연히 우슬재 넘어 어느 개척교회를 방문했을 때였다.어느 젊은 농민이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해주고 있었다.처음에는 뒷전에서 무심코 듣고 앉았다가 나도 모르게 그의 이야기에 빨려 들어가게 되었다.자리가 끝난 뒤에 그에게 어디서 그런 동화를 읽었느냐고 물었더니 그가 되물었다.‘동화가 뭣이다요?’ 하여튼그가 책에서 읽은 건 아니고 그냥 농사짓는 틈틈이 ‘아그들에게보탬이 되는 이야그를 머릿속으로 생각해’ 냈다는 것이다.나는 그에게 그런 얘기를 글로 써보라고 일렀고 초등학교를 다니다 말았다는그에게 맞춤법이며 원고지 쓰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얼마 안가서 그는 어느 잡지의 동화 현상공모에 당선 되었다.그의 첫 번째 동화 ‘개똥이’는 나중에 노래쟁이 김민기가 노래극으로 재구성해서 유명해졌지만. 그의 집을 방문했다가 전혀 낯설지만 대단히 맛갈스러운 것을 먹게되었다.서울에서 반도의 서쪽 끝자락인 전라도까지 천릿길이라 난생처음 먹어보는 음식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는데 그중 첫 번째가 보리국이다.보리국이라면 무슨 보리 곡식으로 국을 끓이는가 할테지만,천만의 말씀이다.보리는 다 알다시피 전 해 가을에 벼를 베고 추수를하고나서 다시 갈아 엎은 뒤에 씨를 뿌리는데 겨우내 추위와 눈보라에 시달리며 싹을 틔운다.그래서 시골 사람들은 겨울에 눈이 많이 오면 ‘올 보리 농사 풍년 들것네!’하고 얘기한다. 새 봄이 되어 햇볕이 포근해지고 밭두렁에는 아직 잔설이 덜 녹아서희끗희끗할 무렵이면 눈밭 사이로 파란 보리싹이 고개를 봉긋 내민다.바로 이 때에 보리를 잘라다가 국을 끓이는 것이다.먼저 쌀뜨물을받아 두고 다시를 내든지 아니면 홍어 ‘애’라고 부르는 홍어의 내장을 넣어 국물의 맛을 깊게 한다.보리는 된장에 무쳐서 맛이 배게두었다가 넣고 끓인다.아마도 봄의 생명력이 싱싱하게 들어있을 보리와 구수한 된장과 홍어애의 콤콤한 맛이 어우러져 전라도의 땅내음이배인 것 같았다. 국거리를 따진다면야 한 두 가지가 아닌데 이들 모두가 해장감으로도맞춤한데 그중에 매생이국이 있다. 매생이는 아주 여리고 부드러운해초다.톳이나 파래는 나물로 무쳐 먹고 그보다 가늘고 부드러운 감태는 장을 만들고 김도 장을 만든다.이들 모두가 해초인데 거의 김처럼 여린 매생이는 향기와 감칠 맛이 그만이다.조금이라도 더럽혀진바다에서는 자랄 수가 없으니 매생이는 남해의 맑은 연안에서 조금씩나온단다. 매생이국은 다시물을 내어 마늘과 무를 넣고 푹 끓여서 밭여내어 맑은 국에다 매생이를 넣고 살짝 끓여 낸다.너무 끓이면 아예녹아서 연약한 매생이가 물처럼 되어버린다고 한다. 거의 죽처럼 부드럽게 된 것이 제대로 된 것인데 입안에 호물딱 넣으면 저절로 녹아국이 되는 느낌이다. 장날에 읍내의 시장 모퉁이로 나가면 아주머니들이 이른바 ‘세발낙자’를 함지에 산채로 담아 팔고 있다.세발낙자라고 하여 무슨 다리가 셋이 달린 낙지인 줄 알기가 십상인데 발이 가늘고 몸통이 작은어린 낙지를 말한다.어리고 작기는 하여도 방금 갯벌에서 꼬챙이에패어져 나온 것들이라 흡판의 힘 세기가 보통이 아니다.여기 사람들은 다른 고장 사람들에게 먹는 방법을 가르쳐 주기 전에 언제나 잘못먹으면 죽는다는 엄포를 잊지 않는다. 심지어는 ‘요 얼마 전에’ 자기가 잘 아는 사람이 ‘숨이 막혀서’ 죽는 광경을 목격했노라고 덧붙이기까지 한다. 세발낙자를 먹을 때에는 우선 대가리를 잡고 한 손으로는 엄지와 검지로 낙지의 발가락들을 죽죽 훑어내린다.그러고나서 사정없이 대가리를 우적 깨물면서 두 손으로는 연신 낙지 발을 훑어내리면서 씹어먹는다.씹는 동안에도 흡판들이 간지럽게 볼따구니 안쪽과 혀에 간질간질 들러붙는다.도회지에서야 칼로 잘게 썰어놓은 산낙지 회를 먹는것만도 무용담꺼리가 되지만 세발낙자 먹기는 그야말로 엽기적으로보인다. 올림픽 때던가 국제 펜 클럽 모임 때에 수감된 문인들 석방시켜 보려고 해외 문인들과 몇 차례 자리를 같이 했었는데 누군가 짖궂게도 어찌하나 보려고 산낙지 회를 시켰다.그들이 소스라치던 얼굴이 생각나서 지금도 웃음이 난다.미국 회장이던 수잔 손탁이 비명을 지르면서도 호기심 때문에 먹어 보고는 연신 맛있다고 했다.수년 뒤에 뉴욕에서 만났을 때에도 다시 그때의 낙지 얘기를 꺼낼 정도로 기억에 선명했던 모양이다. 이 세발낙자를 국으로 끓인 것이 목포의 저 유명한 연포탕이다.연포탕은 무와 양파와 마늘을 넣고 푹 끓이다가 맑은 국물에 어린 낙지를넣고 살짝 끓여 낸다. 파를 쳐서 먹는데 시원한 국물 맛이며 발갛게익은 어린 낙지의 살이 오돌오돌 씹히는 것이 술국으로도 그만이다. 낙지 이야기가 나왔으니 그와 쌍벽이라고 할 수 있는 홍어를 빼놓을수가 없다.아니,홍어는 전라도에서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으뜸의 먹을 거리이다.경조사에서 홍어는 고기붙이 보다도 더욱 중요한품목이 된다.누군가 잔치에라도 갔다가 상에 홍어가 보이지 않으면그 집 잔치 먹을 것 없다고 투덜대고 홍어가 빠지지 않았으면 ‘잔치가 걸다고’ 만족해 한다.전라도 속담에 ‘만만하기는 홍어 거시기’라는 말이 있다.남에게 무시를 당하거나 욱박지름을 당하면 항의조로나오는 게 이 말이다. 황석영.
  • 아일윈 전 칠레대통령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

    [멕시코시티 연합] 파트리시오 아일윈 전 칠레 대통령이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될 예정이라고 칠레의 유력일간 엘 메르쿠리오가 2일(현지시간)보도했다. 신문은 루이스 리베로스 국립 칠레대 학장의 말을 인용,“피노체트의 군정직후 집권한 아일윈 전대통령은 칠레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각종 민주제도를앞장서 실천한 인물”이라며 “칠레 국민이 그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는 만큼 그를 노벨상 후보로 추천하겠다”고 전했다. 아일윈 전 대통령은 이에 대해 “리베로스 학장이 나와 전혀 상의없이 이런일을 추진해 놀라울 따름이지만 겸손하게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아일윈 전 대통령은 피노체트가 물러난 직후 첫 민선대통령에 당선돼 에두아르도프레이 후임대통령에게 정권을 넘기기까지 칠레 민주주의의 기초를 다진 정치인으로 알려져 있다.
  • 포커스 투데이/베네수엘라 대통령 재선 우고 차베스

    30일(현지시간)실시된 베네수엘라대선에서 집권연정의 우고 차베스(46) 현대통령이 야당연합의 프란시스코 아리아스(49) 후보에 압승을 거두고 재선에성공했다. 차베스대통령은 80% 가량의 개표작업이 진행된 이날 밤 11시 현재 총 유효득표수의 59%(289만 6,948표)를 얻어 37%(182만 8,583표)에 그친 아리아스후보를 제치고 임기 6년의 대통령에 당선됐다. 차베스 대통령은 1992년 2월1만명의 부하들을 이끌고 쿠데타를 일으켰던 카리스마적인 지도자이자 대중민주주의에 뿌리를 둔 정치인.1954년 베네수엘라 서쪽 농촌마을인 사바네타에서 태어났으며,육군사관학교를 나와 1975년 소위로 임관했다. 카를로스 안드레스 페레스 대통령 정부를 무너뜨리기 위해 1992년 쿠테타를감행했다 실패, 실형을 선고받고 투옥돼 2년을 보냈다.피델 카스트로 쿠바대통령을 열렬히 지지하는 그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사이에 ‘제3의 길’을주창하고 있다. 출옥한 직후 첫번째 부인과 이혼한 뒤 언론인 출신인 마리사벨과 재혼,4명의 자녀를 두었다.사회민주주의자인 부친 우고데 로스 레예스 차베스는 현재 바리나스 주지사이며 이번 지방선거에서 역시 재선에 도전했다. 멕시코시티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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