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첫 당선
    2026-07-19
    검색기록 지우기
  • 을숙도
    2026-07-19
    검색기록 지우기
  • 하임
    2026-07-19
    검색기록 지우기
  • 공석
    2026-07-19
    검색기록 지우기
  • 학습
    2026-07-19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7,609
  • [열린세상]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식 해법/장제국 동서대 총장

    [열린세상]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식 해법/장제국 동서대 총장

    지난 6일 자정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날아온 소식은 온 국민을 감격과 성취의 기쁨으로 몰아 넣기에 충분했다. 두번의 처절한 좌절을 겪은 후 삼세번의 도전으로 얻어 낸 평창동계올림픽 티켓이기에 더욱 값지고 뜻이 깊었다고 하겠다. 참으로 오랜만에 국민들에게 안겨준 큰 선물임에 틀림없다.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로 떠들썩했던 지난주와는 대조적으로 이번 주부터 다시 평상으로 돌아와 지루한 한국 내 갈등이 언론매체의 주요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한나라당 내 계파 갈등, 민주당 내의 대북정책 노선 갈등, 반값 등록금을 비롯한 복지 문제를 둘러싼 국민적 혼돈, 한진중공업의 노사 갈등 등 뜨거운 논쟁으로 가뜩이나 무더운 여름을 더욱 달구고 있다. 감동과 갈등의 뉴스를 동시에 접하면서, 우리 사회의 갈등을 ‘평창 유치식 해법’으로 접근할 순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창식 해법이란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첫째, 국민들의 폭넓은 지지를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물론 내심 평창의 동계 올림픽 유치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사회 일각의 의견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형성된 광범위한 유치 찬성 분위기를 거스를 만한 영향력을 가지지는 못했다. 그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지금 우리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각종 갈등은 결국 정치권의 각종 주장과 정책이 국민 대다수를 납득시켜 대세를 형성시킬 만한 설득력을 가지지 못하는 데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몇몇 정치인의 ‘개인적’ 의견이 아닌 대다수 국민의 뜻이 반영된 정책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 주는 대목이다. 둘째, 평창식 해법에는 양보와 화합이라는 예술이 있었다. 예를 들면 부산은 2020년 하계 올림픽을 유치하고자 하는 목표가 있었다. 평창동계올림픽이 결정되면 부산의 꿈은 무산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지역이기주의를 내세우지 않고 평창을 위한 배려가 있었던 것이다. 부산의 지역 언론들도 평창 유치 소식에 대해서 환영 일색이었다. 정치도 대승적 양보와 배려가 있어야 한다. 대세가 아님을 뻔히 알면서도 자신의 주장만 일관하며 딴죽을 걸게 될 때 사회의 갈등은 증폭되고 소모적 정쟁만 계속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셋째, 평창식 해법에는 공통목표를 향한 유치위원회 각 구성원들의 다양한 역할이 있었다. 대통령은 국가의 대표로서 한국의 유치 의지를 강하게 표출했고, 김연아의 연설은 대한민국이 이미 겨울 스포츠의 강국이라는 것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또한 이건희 회장은 한국이 돈 많이 드는 동계올림픽을 감당할 능력이 충분히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고 볼 수 있다. 이렇듯 각자 역할이 있었고, 그 역할을 모두들 완벽하게 해냈다. 그러한 다양한 완벽성에 성공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 사회가 한번 더 선진적 전진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정치권을 비롯한 사회각계가 자신들이 펼치고 있는 수많은 주장들이 과연 정교성과 완벽성을 갖추고 있는지, 또한 국가 100년 대계의 관점에서 어떠한 함의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철저한 반성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본다. 어설픈 역할은 대한민국호의 항해를 방해할 뿐인 것이다. 넷째, 평창식 접근법에는 목표 달성을 위한 지도자들 간의 총화단결이 있었다는 점이다. 평창올림픽은 김진선 전 강원지사가 시작한 유치운동이다. 그는 두 차례 유치 실패의 쓴잔을 마셨고, 그 후 임기가 종료되어 지사직에서 물러났다. 최근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최문순 지사는 민주당 출신으로서 김 전 지사와는 정치적 성향이 맞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손을 잡고 평창 유치를 위해 함께 뛰었다. 김 전 지사의 경험과 전문성을 최 지사가 받아들이고 인정했다. 정치권도 국가 발전을 위한 일이라면 잘하는 사람에게 일을 할 수 있도록 부족한 자신을 잠시 숙일 수 있는 배포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평창식 접근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남기고 있다. 우리사회가 평창식 모델을 참고할 수 있다면 지금의 갈등과 소모전은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네 정치판에 평창식 모델 적용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일까?
  • “세종시 도심은 공원·외곽은 빌딩…亞 진출 노리는 외국대학들 관심”

    “세종시 도심은 공원·외곽은 빌딩…亞 진출 노리는 외국대학들 관심”

    “살고 싶은 것을 뛰어넘어 이 지역에 묻히고 싶을 정도입니다.” 최민호(55)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이하 행복청) 청장은 14일 내년 말로 다가온 국무총리실 이전 준비 등 세종시 건설에 총력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이렇게 표현했다. 전날 취임 60일째를 맞은 최 청장은 “오는 12월 20일에 첫 아파트 입주자를 맞는 만큼 매일 카운트다운을 하면서 실무를 챙기고 있다.”며 “단순히 건물을 짓고 도로를 내는 데 머무르지 않고 공무원이나 일반인들이 ‘정말 이사오길 잘했구나.’ 하고 느낄 수 있도록 소프트한 준비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특히 최 청장은 도시민 유입을 유도하기 위해 공무원뿐만 아니라 일반 입주자도 취득세를 면제해야 한다는 일부의 주장에 대해 “국가의 부름을 받아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삶의 터전을 옮기는 공무원에 국한해야 한다.”고 반대 의사를 밝혀 눈길을 끌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취임 두달째인데. -지금까지 도시 건설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제는 내년 7월로 다가온 세종특별자치시 출범 준비에 초점을 맞춘다. 12월 20일 입주가 시작되는데 지난 5일부터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예를 들어 내년 3월에 문을 여는 이곳 학교에 자녀를 입학시킬 때 아이나 학부모들이 행복감을 느끼고, 쾌적한 공기를 만끽하며, 쇼핑을 하더라도 저렴한 가격에 편리하게 이용하도록 ‘소프트한’ 측면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점에 착안하고 있다. →세종시가 다른 도시와 다른 점은. -다른 도시는 도심에 상권과 고층 빌딩이 있고 근교에 녹지가 있는데 여기는 거꾸로 도심의 중앙이 공원, 숲, 녹지다. 상가나 빌딩군이 외곽에 배치되고 이것을 숲과 그린벨트가 다시 감싸기 때문에 굉장히 쾌적하다. 아파트 단지에 들어서도 도시 같지 않고 전원 같은 느낌이 들어 도시의 익명성과 농촌의 전원성이 공존하게 된다. 건물들도 국내외 공모를 거쳐 엄선된 설계들이어서 대단히 아름답고 개성 있다. 도시 자체가 작품을 보는 느낌을 줄 것이다. →세종시에서 벌어지는 일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 -방향이 뚜렷하게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안·수정안 논란이 있었고 과학비즈니스 벨트 입지가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세종시를 적극 알리는 콘텐츠 잡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달라졌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동포나 외국인들도 많이 투자하고 입주할 수 있도록 적극 알릴 것이다. →연기군 등 이웃 지자체와의 협조는. -이제까지는 여러 기관들이 각자 업무에 충실했던 것 같다. 앞으로 세종시가 발족하고 이주민들이 오게 되면 연기군이다, 행복청이다 하는 기관의 구분은 의미 없게 된다. 공조하고 소통하면서 입주민들에게 최대한의 서비스를 하는 것이 소명이다. →세종시를 둘러싼 이슈를 정리한다면. -내년 12월 이주가 시작되는 공무원보다 올 12월에 들어오는 입주민에 대해 신경을 더 써야 한다. 내년 4월 치러지는 세종시장 선거는 정치적인 논리에 따라 진행하면 되고 우리가 신경 쓸 일이 아니라고 본다. 누가 당선되든 세종시가 훌륭한 자치단체로 출범할 수 있도록 밑그림을 그리고 대비하는 것이 임무다. 과학비즈니스 벨트 기능지구로 지정됨에 따라 교육과학기술부와 충남도, 대전시 등과 협조해 성공적으로 기능하도록 준비하는 것도 필요하다. →도시의 미래는 얼마나 낙관하나. -세종시 인구는 2015년에 20만, 2020년에 30만, 2030년에 최종적으로 50만명이 된다. 2015년의 목표는 9부 2처 2청의 중앙행정기관, 국책 연구기관, 과학비즈니스 벨트 지정에 따라 올 수밖에 없는 인원과 가족, 그들의 생활을 책임지는 주변 인구 증가를 계산하면 분명하다. 여기에 연기군 인구 8만명을 더하면 도시 발전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본다. 다만 2030년에 50만명이 될 것인지는 얼마나 매력 있는 도시를 만들고 세종자치시가 얼마나 많은 기업이나 시설을 유치하느냐에 달려 있다. →행정타운 바로 옆에 KAIST도 이주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외국 대학 유치 가능성은. -아시아 진출을 노리는 여러 대학들이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특히 정부가 인구 유입을 책임지는 점은 대학들의 관심을 붙드는 매력이라고 본다. 글 사진 연기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인터뷰는 15일 오후 7시 30분 방송되는 케이블채널 서울신문STV ‘TV 쏙 서울신문’에서 볼 수 있습니다.
  • 중구청장, 주민과 대화에 푹~

    중구청장, 주민과 대화에 푹~

    최창식 중구청장은 요즘 주민들과 대화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지난 4월 재선거를 통해 당선된 뒤 사무실이 아닌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지역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웃는다. 12일 중구에 따르면 최 구청장은 다양한 의견을 듣기 위해 매월 2·4주 토요일을 주민과의 대화인 ‘토요 해피데이트’로 정해 지난 9일 오전 10시 첫 만남을 가졌다. 이날 대화에서는 까다로운 민원이 쏟아졌다. 장충동에 사는 한 주민은 “집 뒤에 고시원을 짓는데 이로 인해 뒷산이 무너질까 겁난다. 먼저 옹벽을 설치해 달라.”고 말하자 건물주와 감리자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최 구청장은 “민원인과 건축주, 감리자에 대한 불신이 문제인 것 같다.”며 “도시관리국장과 건축과장이 직접 현장에 나가 옹벽과 담장을 바로 쌓을 수 있는지 판단하라.”고 지시했다. 민원인은 “구청장을 믿고 따르겠다.”며 장시간의 대화를 마무리했다. 을지로6가 평화시장 상인들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가장 바쁜 새벽 시간대에는 청계로 일대의 주차단속을 완화해 달라.”고 했다. 최 구청장은 “평화시장 주변은 항상 민원인들의 주차단속 요구가 많은 곳인 만큼 시장 자체적으로 주차질서 노력과 주차공간 확보가 선행돼야 한다.”며 교통흐름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내에서 밤 10시부터 새벽 3시까지 주차 허용구간을 선정해 이 시간대는 주차단속을 하지 않는 방안을 제시했다. 구는 매주 둘째주엔 개인 민원을, 넷째주엔 집단 민원을 듣는다. 데이트 신청은 감사담당관실을 방문하거나 구 홈페이지(www.junggu.seoul.kr)에서 하면 된다. 대상은 애로사항과 구정 전반에 대한 건의사항이다. 행정기관과 소송 중이거나 주차단속, 담배꽁초 등 단순한 행정처분에 대한 이의신청 절차 중, 또는 종료된 사안, 단순 제안이나 건의는 제외된다. 최 구청장은 “주중에는 각종 행사와 회의로 인해 직소민원실에서 민원을 듣고 있지만 아쉬운 점이 많아 이런 자리를 마련했다.주민들의 의견을 듣고 구정에 반영함으로써 구민들의 참여행정을 이끌겠다.”고 말했다. 글 사진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평창, 꿈을 이루다] 평창 15년 도전사

    [평창, 꿈을 이루다] 평창 15년 도전사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결정되기까지 ‘3수생’ 평창의 15년 도전사는 눈물의 대하드라마였다. 2010년(밴쿠버)과 2014년(소치) 도전 당시 눈물은 ‘분루’였다. 하지만 마지막 눈물은 달콤했다. 평창의 이 야심 찬 도전은 1996년 시작됐다. 초대 민선 도지사를 지낸 최각규 전 지사가 동계올림픽이 낙후된 강원도를 획기적으로 발전시킬 것으로 판단, 검토에 착수했다. 하지만 곧 불어닥친 ‘외환위기’로 유치 논의는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다. 2018평창유치위윈회 특임 대사로 활약한 김진선 전 지사가 민선 2기에 당선되면서 다시 본격화됐다. 2000년 10월 2010동계올림픽 유치를 공식 선언했다. 당시 평창의 경쟁 도시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와 캐나다 밴쿠버였다. 2003년 7월 3일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평창은 예상을 뒤엎고 1차투표에서 최다 득표했다. 유효 투표수의 과반에 3표가 모자랐다. 하지만 밴쿠버와의 결선투표에서 평창은 53-56, 불과 3표 차로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 가능성을 본 평창은 차기 2014년 대회에 다시 도전장을 던졌다. 2004년 평창은 2014대회 국내 후보 도시로 다시 확정됐다. 당시 경쟁 도시는 잘츠부르크와 러시아의 소치. 2007년 과테말라 IOC 총회에서 평창은 또다시 불운의 눈물을 쏟았다. 1차투표에서 36표를 얻어 역시 1위로 통과했지만 과반 득표에 실패, 34표를 얻은 소치와 결선 투표에 들어갔다. 결국 평창은 47-51, 4표 차로 소치에 역전패를 당해 4년 전 악몽을 되풀이했다. 평창은 3번째 도전에 나섰지만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았다. 그럼에도 김진선 당시 지사는 2007년 9월 4일 2018년 동계올림픽 유치를 다시 선언했다. 정치 생명을 건 결단이었다. 마침내 6일 남아공 더반의 IOC 총회에서 사상 첫 동계올림픽 유치의 쾌거를 일궜다. 더반 김민수 선임기자 kimms@seoul.co.kr
  • [씨줄날줄] 척당불기(倜儻不羈)/이춘규 논설위원

    김부식이 편찬한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광개토왕 편에는 ‘광개토왕의 휘(諱)는 담덕(談德)이고 고국양왕(故國壤王)의 아들이다. 나면서부터 씩씩하고 당당한, 영웅스러운 위엄을 갖추었으며 척당(倜儻)의 뜻을 품고 있었다(生而雄偉 有倜儻之志).’라며 ‘고국양왕이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가시자 춘추 겨우 29세에 백제를 쳤다.’라고 적혀 있다.  척당(倜儻). 이에 대해 한(漢)나라 허신(許愼)이 작성한 설문(說文)에는 “척당은 불기(不羈)다.”라고 했다. 사기(史記)에서는 “불기(不羈)란 재주와 지식이 높고 원대하여 가히 묶어둘 수 없음을 말한다(不羈言才識髙遠不可羈係).”라고 했다. 송나라 때 정탁(丁度) 등이 수정한 집운(集韻) 권 8에는 “척당은 큰 뜻을 말하며 혹은 희망이라고도 한다(倜儻大志一曰希望也).”라고 했다. 지금은 척당불기(倜儻不羈) 로 쓰인다. 기개 있을 척, 빼어날 당, 아니 불, 굴레 기 자를 쓴다.  결국 척당은 “남보다 뛰어나고 원대한 의지나 자세”를 뜻했다. 광개토대왕이 품었던 척당지지(倜儻之志)는 고조선으로부터 이어져 온 천손사상을 이어받아 주몽이 꿈꾸었던 다물(多勿·옛땅을 되찾음)을 실천해 하늘의 규범인 홍익인간, 제세이화(濟世理化·세상의 어지러움, 어려움에서 구하여 다스리다) 이념을 세상에 펼쳐 보고자 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만주 벌판에 태평성대를 완성하고자 했던 광개토대왕의 웅혼한 뜻이 엿보인다.  척당불기는 일본 에도바쿠후에서도 교육사상으로 유행했다. 메이지유신의 기초를 닦은 사카모토 료마를 포함한 변혁가, 교육자, 정치가들이 이 정신을 강조했다. 정치인·종교인으로 일본 도시샤대 설립자인 니이지마 조(1843~1890)는 유언을 통해 척당불기를 주문했다. 확고한 신념을 갖고 스스로의 책임 아래 독립해 권력에 구속되지 않는 자유로운 인간이 되라고 말했다. 현재도 도시샤대는 척당불기를 중시한다. 1996년 타계한 인기작가 시바 료타로도 척당불기를 예찬했다.  우리나라의 다수 정치인들은 새해나 중요한 시기에 4자성어로 각오를 다진다. 홍준표 한나라당 새 대표는 ‘척당불기’ 정신을 강조한다. 뜻이 크고 기개가 있어 굽히지 않는 정신이라고 한다. 그는 당 대표 당선 첫 기자회견에서도 “당의 위기를 척당불기 정신으로 헤쳐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의원회관 사무실 액자에도 걸어놓고, 새해 등 필요할 때마다 척당불기를 강조하는 홍 대표. 청와대에 대해서도 당당하게 나설 것으로 보여 주목된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與 전당대회 6인의 성적표

    與 전당대회 6인의 성적표

    한나라당 7·4 전당대회에서 유승민·나경원·원희룡·남경필 후보는 대표직을 거머쥐는 데 실패했지만 지도부에 입성해 정치적 입지를 넓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쉽게 낙선한 후보들도 당 안팎의 인지도를 넓히며 재도전을 기약해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 7·4 전당대회에서 유승민·나경원·원희룡·남경필 후보는 대표직을 거머쥐는 데 실패했지만 지도부 입성으로 총선을 앞둔 중요한 시점에 정치적 입지를 확보했다. 아쉽게 낙선한 후보들도 당 안팎의 인지도를 넓히며 재도전을 기약해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2위를 차지한 유승민 최고위원은 “홍준표 대표가 말한 참보수, 내가 말한 용감한 개혁을 통해 한나라당이 민심을 되찾길 바란다.”며 “함께 당선된 최고위원들과 함께 역대 어느 때보다 팀워크가 훌륭한 지도부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나경원 최고위원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당심에서 조금 선택을 받지 못해 3등에 머물렀다. 한나라당이 하나 되는 데 앞장서 홍 대표와 함께 총선과 대선 승리를 위해 당을 힘차게 이끌겠다.”고 말했다. 원희룡 최고위원은 “많은 분에게 계파를 넘어 하나가 돼야 한다는 당부를 많이 들었다.”며 “어떤 위치도 마다하지 않고 가장 낮은 자세로 일하겠다.”고 밝혔다. 남경필 최고위원은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우리가 바꿔야 할 것들이 많다.”며 “친이·친박 계파부터 없애고 새롭게 시작하자.”고 강조했다. ‘친박(친박근혜)계’의 조직력으로 2위에 오른 유승민 최고위원은 박근혜 전 대표의 비서실장을 지낸 핵심 측근이다. 1958년 대구에서 출생한 유 최고위원은 유수호 전 13·14대 국회의원의 아들이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87년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해 2000년까지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재직한 당내 대표적 경제통이다. 그는 2000년 2월 이회창 전 총재에 의해 영입돼 여의도연구소장을 맡으며 정치에 입문했고 2004년 17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선출됐다. 이후 2005년 박 전 대표의 비서실장을 지낸 뒤 2007년 17대 대선 당시 박 전 대표 캠프의 정책메시지단장으로 활동하며 전투력을 과시했다. 경선 패배 뒤로는 칩거에 가까운 생활을 하며 정치적 활동을 자제했지만 이번에 친박계 단일 후보로 나서 화려하게 중앙정치 무대에 컴백했다. 나경원 최고위원은 이번 전대에서 유일한 여성 후보였다. 하지만 ‘여성 몫’이 아닌 ‘자력’으로 지도부 입성에 연거푸 성공하며 정치적 입지를 굳혔다. 나 최고위원은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여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해 사시 34회에 합격해 판사로 활동하다가 이회창 전 총재에게 발탁돼 정치계에 입문했다. 17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첫 번째 배지를 달았고, 18대 총선에선 서울 중구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나 최고위원은 17대 국회 당 대변인 및 이명박 대통령 후보 중앙선관위 대변인으로 활동하면서 대중적 인지도를 쌓아왔다. 그는 지도부 입성에 성공했던 최근 두 차례의 전당대회 일반 국민 여론조사에서 연이어 1위를 기록했다. 원희룡 최고위원은 소장 개혁파의 원조 격이다. 이번 전대에선 친이(친이명박)계 구주류의 대표주자로 나섰다. 1964년 제주에서 태어난 그는 대입시험과 사법시험을 수석으로 합격한 수재로, 3년간 검사 생활도 거쳤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국회에 입성한 뒤 18대까지 서울 양천갑에서 내리 3선에 성공했다. 2002년 한나라당 미래연대 공동대표를 맡으며 개혁파의 중심에 섰고, 남경필 의원,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함께 ‘남·원·정’이란 개혁 브랜드도 얻었다. 그러나 6·2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에 도전했다가 실패한 데 이어 이번 경선에서 총선 불출마라는 배수진에도 불구하고 4위에 머물며 정치적 입지에 상당한 타격을 입게 됐다. ‘영원한 소장파’, 4선의 남경필 최고위원은 부친인 남평우 전 국회의원이 작고하면서 치러진 1998년 경기 수원시 팔달구 보궐선거를 통해 국회에 입성했다. 재선 의원 시절인 2000년 당내 소장파 모임인 ‘미래연대’ 공동대표를 지냈고 이후 당 대변인, 원내수석부대표, 경기도당위원장,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장 등 요직을 거쳤다. 4선을 지내면서도 특정 계파에 속하지 않은 채 중립 성향을 고수하며 꾸준히 개혁적 목소리를 내 왔다. 그러나 당내 신주류로 떠오른 소장파 대표 주자라는 입지를 감안하면 ‘턱걸이’는 기대 이하의 성적이다. ‘보수 본능’을 자처했던 박진 의원은 6위로 석패하면서 지도부 입성에 실패했다. 그러나 계파색을 드러내지 않고 당 정체성만을 강조하는 등의 개인기로 얻어낸 성적이어서 의미가 남다르다.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돼 실추됐던 명예도 어느 정도 회복하는 효과를 얻었다. ‘천막 정신’을 강조하며 친박계의 지지를 기대했던 권영세 의원은 인지도 면에서 뒤처져 저조한 성적을 냈다. 최고위원과 사무총장을 지냈던 권 의원에게는 대중성이 가장 큰 과제로 남겨졌다. 홍성규·허백윤기자 cool@seoul.co.kr
  • 친박에 의한… 친박을 위한…

    친박에 의한… 친박을 위한…

    한나라당 7·4 전당대회에서는 조직표가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했으며, 사실상 친박(친박근혜)계의 표심이 승부를 갈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첫 번째표 ‘유’ 두 번째표 ‘홍’” 분석 신임 홍준표 당 대표와 유승민 최고위원 당선을 계기로 친박계가 당의 새로운 중심축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상대적으로 친이(친이명박)계의 세 위축은 불가피해 보인다. 조직력의 힘은 2위에 오른 유 최고위원을 통해 여실히 증명됐다. 일반인 대상 여론조사에서는 9.5%로 7명의 후보 중 5위에 머물렀지만, 선거인단 투표에서 2만 7519표로 홍 대표(2만 9310표)의 턱밑까지 추격했다. 이번 전대에 친박계는 유 최고위원 외에 다른 후보를 내지 않았다. 앞서 지난해 7·14 전대에서 4명의 친박계 후보가 난립하면서 응집력에 의문이 제기됐던 당시와는 정반대 상황이 연출됐다. 실제 전날 선거인단 투표에서 전체적으로는 25.9%의 저조한 투표율을 보였지만, 친박계가 중심축을 형성하고 있는 영남권에서는 30~40%대의 높은 투표율을 기록한 것도 이를 방증한다. 특히 친박계의 첫 번째 표는 유 최고위원, 두 번째 표는 홍 대표를 향한 것으로 분석된다. 홍 대표가 전대 기간 내내 “박근혜를 야당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할 전사”라는 점을 강조한 게 톡톡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홍 대표는 일반인 여론조사에서도 25.2%로 2위를 차지해 대중적 이미지와 조직표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것으로 평가된다. 반면 최종 순위 3위를 기록한 나경원 최고위원은 일반인 대상 여론조사에서 30.4%를 얻어 1위를 차지했지만, 선거인단 투표에서는 1만 4819표로 4위에 그쳤다. 선거인단 투표는 당원·대의원 등 대부분 조직표와 연결돼 있으며, 게다가 투표율 저조로 조직력의 효과가 커졌다는 게 중론이다. 나 최고위원 입장에서는 민심의 선택은 받았으나 당내 조직 기반이 없어 당심을 얻는 데는 실패한 것이다. 황우여 원내대표 역시 친박계와 쇄신파가 연합해 옹립했다는 평가를 받는 만큼 친박계로서는 대표와 원내대표 모두와 우호 관계를 정립했다는 점에서 당 운영 과정에서 목소리를 키울 것으로 전망된다. ‘미래 권력’인 박 전 대표의 향후 행보에도 친화적인 환경이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표는 전대 결과에 대한 소감을 묻는 기자들에게 “새 지도부가 당을 잘 이끌어 주시길 바란다.”고 짧게 말했다. ●박 前 대표 “당 잘 이끌어 주시길…” 이혜훈 의원은 “당과 국민이 미래지향적 투표를 한 것”이라면서 “4·27 재·보선 이후 당의 무게중심이 박 전 대표로 옮겨왔다는 점을 이번에 재확인했다.”고 평가했다. 반면 친이계는 원내대표 경선에 이어 이번 당 대표 경선에서도 연거푸 완패하면서 당내 입지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친이계 양대 축인 이재오 특임장관과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은 친이계 재결집에 따른 역풍을 우려해 전대에 개입하지 않는다고 거듭 밝혔었다. 그러나 홍 후보의 당권 획득을 막기 위해 막판 조직을 총가동해 밀었던 원희룡 최고위원이 4위에 그친 것은 친이계의 쇠락을 보여주는 결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 친이계 의원은 “친이계 입장에서 이번에 받아든 성적표는 심각한 수준”이라면서 “사실상 친이계가 분화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우려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홍준표 대표 “서민 속으로 가는 정당 대부이자율 내리겠다”

    4일 선출된 한나라당 홍준표 신임 대표는 “저를 대표로 뽑은 것 자체가 한나라당의 변화”라면서 “이 위기를 돌파하고 국민과 서민 속으로 들어가라는 국민과 당원의 요구에 부응해 분골쇄신하겠다.”고 밝혔다. 다음은 홍 대표와의 일문일답. →대표에 취임한 뒤 당 개혁을 위한 첫 번째 과제는. -계파를 타파하겠다. 내년 총선까지만이라도 계파 없이 당을 운영하고 이후 대선 후보 경선할 때는 각 계파 진영으로 돌아가서 일하도록 하겠다. →여야 이견은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 -제가 원내대표를 할 때 여야 관계가 가장 치열했다. 그러나 결국은 민주당과 전부 합의 처리했다. 더 이상 위원장석을 점거하는 행위가 없도록 한나라당 황우여 원내대표, 민주당 지도부와 함께 잘해 나가겠다. →가장 먼저 추진할 서민정책은. -지난 10개월간 당 서민정책특위 위원장을 하면서 추진하지 못한 과제가 있다. 당의 중지를 모아 택시 대책, 주거 대책, 대부업계 이자율 인하 등을 추진하겠다. 이번에 변칙적으로 처리된 대부업계 이자율을 다시 끌어내리겠다. →내년 총선의 공천 원칙은. -오늘 공천 이야기를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공천은 내년 설 전에 하면 되는 거고 자기 밥그릇 싸움 아닌가. 공천에 대한 기본 원칙은 이미 말했다. 상향식 공천, 개혁 공천, 이기는 공천의 원칙 아래에서 하겠다. →원내 지도부가 쇄신 정책을 이끌면서 당내에서 정책 노선에 대한 우려가 있다. 지도부 내에서도 이견이 있는데 어떻게 조율할 건가. -지금 뽑힌 최고위원들과 제 생각이 별반 다를 바 없지만 방법상의 문제다. 우리는 정부 여당이다. 정부와 상의 안 하고 불쑥불쑥 내지르는 것은 야당이 하는 것이다. 정부가 당의 요구에 응하지 않을 때에는 치고 나가야 한다. 서민특위 위원장을 겸직하겠다. →무계파로 당선됐다고 하는데 신주류인가, 구주류인가. -신주류, 구주류도 아니고 한나라당 주류다. →선거 과정에서 껄끄러웠던 원희룡 후보와의 관계 설정은 어떻게 할 것인가. -아까 포옹하면서 할 이야기 다 했다. 선거 과정에 있었던 이야기는 오늘 (선거) 끝나면 종료된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탁신 아바타’ 이미지 벗고 반대세력 포용 과제

    사상 첫 여성 총리라는 기쁨을 누리기도 전에 태국의 잉락 친나왓은 ‘탁신-반(反)탁신’으로 찢긴 사회의 통합과 불안정 해소라는 과제에 직면했다. 무엇보다 잉락 당선자는 오빠인 탁신 전 총리의 ‘아바타’, ‘꼭두각시’라는 비난 속에서 왕실·군부·중산층으로 대변되는 반탁신 세력과의 타협과 협력을 이끌어내야 한다. 4일 푸어타이당의 잉락 당선자는 찻 타이 파타나당과 찻 파나타 푸어판딘당, 팔랑촌당, 마하촌당 등 4개 군소 정당 지도자들과 만나 연립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이로써 의회 전체 의석 500석 가운데 60%에 이르는 299석을 확보, 안정적인 주도권을 쥐게 됐다. ●4개 군소정당과 연정… 299석 확보 이번 선거에서 여당인 민주당의 아피싯 웨차치와 전 총리와 제1야당인 푸어타이당의 잉락 모두 국가 통합을 선결과제로 내놓았다. ‘다행스럽게’ 5년 전 탁신을 쫓아내는 등 태국 정치에 개입해 온 군부가 또 쿠데타를 일으킬 것이라는 우려는 어느 정도 완화됐다. 4일 프라윗 옹수완 국방장관은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군부는 선거 결과를 받아들이기로 했다.”면서 “국민들이 뜻을 확고히 했기 때문에 군대는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며 쿠데타 가능성을 일축했다. 2006년 쿠데타를 주도했던 전직 육군 참모총장 손티 분야랏글린도 방콕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대중의 의견을 존중해야 하기 때문에 쿠데타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잉락 당선자가 오빠 탁신의 관심사를 공격적으로 요구하지만 않으면, 군대도 푸어타이당 정권과 공존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했다. 고비는 탁신의 귀국 및 정계 복귀 문제다. 태국 엘리트층, 즉 반탁신 세력은 아랍에미리트연합 두바이에 망명 중인 탁신이 돌아올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엘리트층은 탁신을 포퓰리스트이자 부패의 상징으로 보고 있다. 또 그가 입헌군주제를 공화정으로 전복시킬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그가 귀국하거나 죄를 사면받으면 차기 정부와 군부와의 관계 단절은 물론 친탁신-반탁신 간 대결과 시위 촉발이 불가피할 것으로 걱정하고 있다. 탁신 전 총리의 귀국이 국론 분열의 도화선이 될 것이라는 우려다. 탁신과 푸어타이당 측은 “쿠데타에 대해 보복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정부가 지난해 방콕을 봉쇄한 레드셔츠(친탁신 시위대)를 진압하면서 유혈 사태를 일으킨 군 장군 등에 대한 사법 절차 등은 여전히 가능성이 있어 군과 집권당 지도자들을 불편하게 하고 있다. 이 같은 기득권 세력의 우려를 어떻게 다독일 것인지가 새 정부의 주요 과제다. 중국의 영향력을 견제하기 위해 동남아 관계 개선에 주력하고 있는 미국은 일단 선거 결과를 존중하면서 군부의 자제를 주문하고 있다. 한편 푸어타이당의 압승에 이어 연정 구성 소식에 시장은 일단 반색했다. 4일 태국의 SET지수는 전날보다 4.7%가까이 급등한 1090.28로 장을 마감했다. 경제전문가들도 태국 경제의 중단기적인 ‘맑음’을 점쳤다. 푸어타이당의 압도적인 승리로 일단 정치적인 불확실성과 불안정이 해소될 것으로 본 것이다. WSJ에 따르면 홍콩 크레디트 에그리콜 CIB의 프란시스 청은 “태국 국민의 다수를 대변하는 푸어타이당의 승리는 (시장의) 환영을 받고 있고, 떠났던 외국 투자자들이 이른 시일 내에 돌아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태국 증시가 하반기 들어 최대 19%가량 반등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증시 하반기 최대 19% 반등 전망 국내적으로도 총선 이후 새 정부가 공약 이행을 위해 지출을 늘리게 되고 시중에 돈이 돌아 증시도 강세를 보일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총선 이후 새 정부가 선심성 공약을 이행하면 태국 경제에 현금이 풍부해질 것”이란 분석이다. 푸어타이당은 물론 집권 민주당도 총선을 앞두고 경제 성장을 위해 지출을 늘리겠다고 공언해 왔다. 하지만 2002~2006년 탁신 집권 당시 연평균 5.7%의 경제성장을 이뤘으나 가계부채는 급증하고 빈부 간 소득 격차도 제자리걸음에 그쳤음을 비춰볼 때 낙관은 금물이다. 일본 고쿠사이 자산운영의 다카히데 이리무라는 “푸어타이당의 승리가 정치 불안정을 완전히 씻어낸 것은 아니며 이 점을 투자자들은 잊지 않고 있다.”며 “향후 새 정부의 정치적 타협과 통합정책 여부가 상황을 크게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석우·정서린기자 jun88@seoul.co.kr
  • 첫 女총리 축제전야? 군부의 쿠데타 전야?

    태국은 신데렐라와 쿠데타를 함께 맞이할 것인가. 3일 태국 총선에서 탁신 친나왓(61) 전 총리의 막내 여동생 잉락 친나왓(44)의 총리 당선이 유력한 가운데 집권세력인 군부가 이 결과를 수용할지 태국 안팎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그녀가 탁신의 여동생이라는 점에서 5년 전 탁신을 쿠데타로 축출한 군부가 가만있겠느냐는 관측이다. 일각에서는 쿠데타 가능성을 점치기도 한다. 태국 제1야당인 푸어타이당 후보로 나선 잉락은 정치 경험이 두 달도 채 안 되는 초보 정치인이지만 빼어난 외모에 대중친화적인 언변을 자랑한다. 오빠의 지지층인 빈민, 농민은 물론 중산층까지 아우르며 각종 여론조사에서 아피싯 웨차치와 현 총리를 제친 상태다. 태국 치앙마이대학교에서 정치·행정학을 전공한 잉락은 미국 켄터키주립대에서 행정학 석사 학위를 받은 뒤 부동산·통신회사 대표 등을 지냈다. 기업인 아누손 아몬찻과의 사이에 아들 1명을 두고 있다. 아랍에미리트연합 두바이에 머물면서 재기를 노리고 있는 탁신 전 총리는 여러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푸어타이가 승리하더라도 2006년 쿠데타에 대한 복수는 하지 않을 것”이라며 군부에 화해의 손짓을 보내고 있다. 이와 관련, 프리드리히에버트재단 방콕 사무소의 마크 색서 소장은 “탁신은 푸어타이당의 승리와 함께 정치자금을 끌어모으기 위해 (반대세력인) 엘리트층과의 ‘그랜드바겐’을 준비하려는 양면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탁신 진영의 진화책에도 불구하고 태국 군부는 막판까지 잉락의 당선을 저지하는 데 부심하고 있다. 쿠데타를 시도할 것이라는 관측을 일축하면서도 “푸어타이를 지지하는 것은 태국 왕정을 거스르는 것”이라며 공개적으로 ‘잉락 총리’ 저지에 나섰다. 탁신 남매의 재산 은닉 혐의를 부각시키면서 잉락이 당선될 경우 자칫 총리직을 수행할 수 없는 상황이 될 수 있다며 지지층을 압박하고 있다. 5년 전 군부의 쿠데타 이후 태국과 관계가 틀어졌던 미국도 총선 향방에 긴장을 풀지 않고 있다. 자칫 태국의 정국이 혼란으로 치달을 경우 중국을 견제해야 하는 자국의 동남아시아 전략이 차질을 빚을 수 있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 정부 당국자들이 물밑 외교채널을 통해 태국 정부와 군부에 총선 결과를 수용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美 ‘공천장사’ 철퇴… 前주지사 유죄

    “나는 사실만 들으려고 했어요. 우리는 그의 말을 믿지 않았어요.”(배심원 140호) “그는 매력적인 사람이에요. 그 점을 우리가 배심원으로서 해야 할 일과 분리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배심원 103호) “보통 사람들의 일상에서도 막후 거래는 있죠. 하지만 국민을 대표하는 사람이 그러는 것은 금지선을 넘는 행위예요.”(배심원 146호) 미국 국민은 끝내 부패한 공직자에게 관용을 베풀지 않았다. 27일 라드 블라고예비치(54) 전 미 일리노이 주지사에 대한 연방법원 재심(항소심)에서 무작위 추첨된 시민으로 구성된 배심원단 12명(여자 11명, 남자 1명)은 20개 혐의 중 수뢰, 금품강요, 갈취, 금융사기 등 17개 혐의에 대해 유죄 평결했다. 유죄 혐의에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으로 공석이 된 일리노이주 연방 상원의원직을 돈 받고 판 혐의도 포함됐다. 재판장은 오는 8월 선고공판을 열어 형량을 선고한다. 이 사건은 대법원 재판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실형이 선고되면 블라고예비치는 바로 교도소로 들어가야 한다. 산술적으로는 최대 300년 형까지 선고가 가능하나, 전문가들은 현실적으로 10년 안팎의 형을 예상한다. 지난해 8월 첫 재판(1심)에서 배심원단은 증거 부족과 블라고예비치의 현란한 말솜씨에 밀려 연방수사국(FBI)에 허위진술한 혐의를 제외한 나머지 혐의에 대해서는 유·무죄 판단을 내리지 못했었다. 그러나 항소심에서는 검찰이 블라고예비치의 범죄 발언이 녹음된 기록 등을 제시하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변호인은 “녹음된 블라고예비치의 발언은 단지 생각이었을 뿐 이를 현실에 옮긴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으나 이미 FBI에 대한 허위진술 혐의를 스스로 인정한 블라고예비치의 말을 배심원단은 신뢰하지 않았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블라고예비치는 아내의 손을 잡고 법정을 나오면서 기자들에게 “솔직히 충격을 받았다. 집에 가서 두 딸(8살, 14살)에게 이 일을 설명해야겠다.”고 말했다. 패트릭 피저럴드 검사는 “5년 전 전임자가 부패 혐의로 유죄 평결을 받았을 때 배심원단은 더 이상 부패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인데 블라고예비치는 그것을 무시했다.”고 말했다. 블라고예비치의 전임자인 조지 라이언 전 일리노이 주지사는 6년 6개월 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블라고예비치를 포함해 1973년 이후 4명의 주지사가 부패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는 등 일리노이는 미국에서 대표적인 ‘복마전’으로 꼽힌다. 현 주지사인 패트 퀸은 “더 이상 주지사가 감옥에 가지 않도록 정부를 개혁하라는 사명으로 새기겠다.”고 했다. 공화당 소속 일리노이주 연방상원의원 마크 커크는 “오늘 평결은 누구도 법 위에 군림할 수 없다는 경고”라고 했다. FBI 시카고 지국장 로버트 그랜트는 “미국의 사법 정의는 느리지만 결국 진실을 찾는다.”고 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사설] 의원들 공약이행 내년 총선 잣대 삼자

    서울신문이 매니페스토본부와 공동으로 18대 국회의 지역구 의원들을 대상으로 공약 이행 평가를 실시했다. 이를 통해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해 냈다. 무엇보다 임기가 10개월도 남지 않았는데도 선거 때 내걸었던 공약(公約) 대다수는 공약(空約)에 머물고 있다. 32.20%에 이르는 76명은 아예 이행 정보를 공개하지도 않고, 평가받기도 거부했다. 이런 것들을 모아 내년 총선은 물론 그 이후에도 심판의 잣대로 삼아야 한다. 지역구 의원 236명에게 선거공보에 실린 공약 처리 현황 자료를 제공하고, 홈페이지에 공개해 달라고 요청한 결과 160명만이 응했다. 나머지는 국민에게 한 약속을 검증받기조차 거부하는 무책임한 행태를 보였다. 전체 임기의 4분의3이 훨씬 지났지만 완료된 공약이 전체 3328개 중 28.76%인 957개에 불과했다. 일부만 추진되거나, 아예 폐기 또는 보류된 공약은 25.57%인 851개로 대부분 개발 관련 내용이다. 의원들이 임기 내에 완료가 가능하다고 주장한 공약은 43.90%인 1461개에 이르지만 이 역시 무산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그들에게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해야 마땅할 것이다. 선거 때 표로 심판하면 된다. 내년 총선에서 여의도 국회 진입을 꿈꾸는 모든 후보들에게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확고한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그래야만 그들도 헛된 약속을 남발하지 않게 된다. 이명박 정부는 대선 공약 가운데 일부를 지키지 않거나, 방향을 틀었다가 수차례 뼈아픈 대가를 치렀다. 국회의원들은 종합적으로 공약 이행을 검증하는 기회를 갖지 못해 어물쩍 넘어가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더 이상은 곤란하다. 선거 때 선심성 공약을 남발해도 당선되면 그만이라는 식의 ‘오리발 정치’는 이제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공약 이행 공개와 평가를 거부해도,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살아 남을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을 끊어줘야 한다. 내년 총선을 첫 단추로 잘 꿰야 한다.
  • “대선? 그때 가서 결정” 출마가능성 배제 안해

    “대선? 그때 가서 결정” 출마가능성 배제 안해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2012년 총선 및·대선 출마 의사에 대해 “2012년에 벌어질 상황과 관련해 여러가지 가능성을 생각하고 있지만 아직은 (출마) 결정을 내릴 시기가 아니다.”면서 “그 때 가서 결정하겠다.”고 출마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문 이사장은 15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2012년 총선·대선 출마 여부, 참여정부의 공과, 친노 진영 잠재적 대선 후보들의 경쟁력 등에 대한 생각을 털어놨다.  문 이사장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계승하는 정치인이 누구냐는 질문에 “정치세력으로 보면 민주당이고, 개인으로 보면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라고 말했다.  인터뷰는 부산 연제 법조타운의 ‘법무법인 부산’ 사무실에서 이도운 정치부장과의 대담 형식으로 1시간 50분 동안 진행됐다. →최근 출간한 ‘운명’이라는 저서를 통해 노무현 정부를 회고했다. 노무현 정부는 성공했나, 실패했나. -성공을 넘어선 정부다. 성공은 말할 것도 없고 정치사에 새로운 획을 그은 정부다. 예를 들면 권위주의 청산이 대표적이다. 돈 안 쓰는 선거, 깨끗한 선거 같은 것이 당대에 가능할까 했지만 참여정부는 해냈다. →그러나 제도화되지는 못했다. -권위주의 해체 문제는 특별법 같은 걸 만들 수 없다. 문화의 문제다. 참여정부가 시도했다가 이명박 정부에서 단숨에 퇴행했다. 그래도 다음에 다시 괜찮은 정부가 들어서면 참여정부가 중단했던 지점부터 새롭게 할 수 있다. →아쉬웠던 점은 무엇인가. -양극화와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 더 잘했어야 했다. 두 가지 과제를 우리 사회문제로 인식하고 정책과제로 처음 제시했다는 의미는 있지만 더욱 많은 노력 기울여야 했고 정책적인 면에서도 우선순위에 뒀어야 했다는 후회가 있다. →노무현 정부는 김대중 정부를 계승했나. -민주주의와 복지, 남북관계 부분은 계승했다. 권위주의 해체는 김대중 정부를 넘어선 새로운 영역이다. 결과적으로는 김대중 정부를 계승하면서 한계도 벗어난 정부였다. →참여정부 공직자 가운데 업무 수행을 잘했다고 생각하는 분은. -경제 분야에서는 진대제 정보통신부장관이다. 우리나라 정보통신 수준을 세계 최고로 높였다. 사회 분야에서는 유시민 보건복지부장관이 훌륭했다. 개별적인 복지정책들을 패키지로 만들어냈다. 또 검찰의 정치적 중립이라는 면에서 강금실 법무장관도 큰 역할을 했다. →문성근 씨를 대북특사로 보낸 이유는 무엇인가. -북에서 신뢰하는 문익환 목사의 아들이고 해서 북쪽과 대화가 될 만 했다. →현재 정치인 가운데 노무현 대통령을 계승한 정치인이 있다고 보나. -상황이 아주 미묘한데... 세력으로 치자면 노 전 대통령 뜻은 민주당쪽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정치인 개인으로 치자면 노 전 대통령의 이념 철학을 가장 잘 계승한 분이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라고 생각한다. 유 대표는 다른 정당에 있어서 그 부분이 착잡하고 미묘하다. 그래서 야권이 통합해야 하는 이유도 된다. →유시민 대표가 노 전 대통령의 어떤 점을 계승했나. -노 전 대통령이 남긴 과제는 일종의 진보적 민주주의라는 거다. 진보적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내용은 복지국가다, 그런 면에서 유 대표가 노 전 대통령이 갖고 있던 지향과 이념을 가장 잘 계승하고 있다는 거다. 김두관, 안희정, 이광재 등 전·현직 지사 세 분도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대중에게 드러낼 기회가 없기 때문에 잠재된 상태다. →손학규 대표도 노 전 대통령의 가치와 과제를 계승할 만한가. -그렇다. 민주당 대표로서 당원들의 지지받고 있다. 또 손 대표 스스로도 노 전 대통령의 가치를 계승하겠다고 말하고 있어서 그리 평가하는데 손색이 없다. →김두관 경남지사가 내년 대선에 출마하길 기대하나. -아주 훌륭한 후보감이다. 참여정부 경력만 가지고도 아주 훌륭한데 거기에 경남도지사 경력도 갖췄으니 더 완벽한 경력을 갖췄다. 우리가 나아가야 하는 국정 의 큰 방향 중 하나가 지방화, 지방균형발전, 분권이다. 그런 면에서도 가장 앞서 있다. 다만 도지사 임기 초반이라 당장 다음 대선부터 큰 뜻 품을지, 아니면 그 다음 시기를 볼지는 본인이 판단할 문제다. 나와 김 지사는 라이벌이 아니라 서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제휴 대상자다. →김 지사가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참여정부 지분의 60%는 노 전 대통령, 나머지 40%는 이광재 전 지사와·안희정 지사가 갖고 있다’고 했다. 문 이사장과 유 대표는 지분이 없나. -한 후보를 중심으로 선거를 오랫동안 준비해왔던 그룹들은 동업자, 주주 같은 의식이 있다. 하지만 주주는 아니라도 전문경영인을 영입했다면 그 전문경영인이 지분 없고 주인이 아니라 말할 수 없다. 김두관 지사와 유시민 대표, 나는 영입에 더 가까울지 모른다. 그러나 참여정부에서 시기의 선후는 있겠지만 각자가 주인이라는 입장이다. →이광재 전 지사와 안희정 충남지사는 정치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갖고 있다고 보나. -두 분 다 노 전 대통령의 참모로만 알려졌지만 사실은 그 이전부터 각각 학생운동, 민주화운동에 헌신해온 분들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정치활동 시작하면서 노 전 대통령과 만나 동지적으로 결합하게 됐다. 2002년 대선 승리만으로도 훌륭한데 도지사가 되면서 이제는 정치인으로서 홀로서기도 훌륭하게 성공한 거다. →노 전 대통령은 지역주의 문제 해결에 집중했다. 문 이사장은 지역주의 문제에 얼마나 큰 관심을 갖고 있나. -노 전 대통령도 부산과 경남에 대한 애정은 대단했다. 그러나 맹목적이고, 비합리적이어선 안 된다는 거다. 그런 지역주의가 우리나라를 망치고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도 100% 공감한다. 서울 사람들은 문제의 심각성을 잘 모른다. 선거 때마다 균형이 갖춰지니까. 그런데, 부산을 보면 완전히 한나라당 판이다. 이게 정상적인가. 견제가 안 된다. 호남도 마찬가지다. 유권자 뜻을 받들 필요도 없다. 공천 줄 사람에게만 충성하면 된다. 지역에서 불합리한 모든 문제는 지역주의로부터 생긴다. →굳이 따지자면 영남과 호남, 어느 쪽의 책임이 크다고 보나. -책임은 영남이 져야 한다. 패권은 영남이 갖고 있었으니까. 영남이 우리 현대사에서 김대중 정부 시절 딱 한번을 빼고는 줄창 권력을 쥐고 있었다. 그런 후유증 있다. 마음을 열고 문제를 풀기 위해 더 앞장서야 하는 것이 영남쪽이어야 한다. →지역주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선거제도를 바꿔야 한다, 부산에서 한나라당 득표율 50%대밖에 안 된다. 그런데 전 의석을 석권한다. 나머지 50%는 무소속과 민주당인데, 대표를 전혀 못 낸다. 대의성도 왜곡돼 있기 때문에 비례 대표제를 생각해야 한다. 한편, 호남은 특정당의 득표율이 압도적이어서 비례대표로도 해결이 안된다. 그래서 노 전 대통령은 한 정당이 특정지역에서 3분의 2 이상 당선되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를 생각하기도 했다. 그렇게만 되면 지역주의는 빠르게 넘어설 수 있다. →내년 총선에 민주당 후보들이 부산에서 당선될 수 있을까? -원래 부산은 전통적인 야당 도시였다. 3당 합당 이후 20년 동안 한나라당을 지지했던 부산 시민들이 지겨워하기 시작했다. 괜찮은 후보가 나서서 잘하면 벽을 넘어설 수 있다. 작년 6·2 지방선거에서 김정길 전 장관이 44.5%를 득표했고, 4·27 김해 재·보선에서도 이봉수 후보가 높은 득표율을 올렸다. 결국 우리 쪽에서 얼마나 좋은 후보를 내느냐의 문제다. 인물만 괜찮으면 지역주의를 넘어선다.  그런 차원에서 문 이사장의 출마를 기대하거나 예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참 생각한 뒤) 현재 제가 갖고 있는 생각은 우선 다음 총선과 대선을 통해 정권교체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쪽에도 여러 후보들이 있다. 그런데 다 훌륭하지만 한분 한분 보면 한계가 있어서 ‘박근혜 대세론’을 못 넘어선다. 따라서 누구냐가 문제가 아니라 우리 쪽이 힘을 모을 수 있는 것이 가능해야 한다. 개인별로는 박근혜 후보에게 부족하지만 야권통합 후보에 대한 지지는 더 크다. 다음 총선과 대선은 통합이 가장 중요하다. 통합이란 부분에서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할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참여가 요구되고 역할을 하라고 하면 그건 해야 된다는 생각도 갖고 있다.  이광재 전 강원지사는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다음 대선에서 손학규 대표와 문 이사장이 경선하는 것을 보고 싶다고 했다. -우리 쪽의 선수들이 다들 좋지만 그분들만 갖고 ‘박근혜 대세론’을 넘어설 수 있다고 낙관하기 어렵다. 이 전 지사의 말은 선수군들이 풍부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당신도 나와서 틀을 넓혀주라고 한 말이다. 물론 그것도 필요한 일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러건 저러건 간에 가장 중요한 것은 선수군 확보보다 통합·연합연대가 되서 정권교체를 하는 것이다. 이게 안 되면 다 소용없다. →김정길 전 장관이 문 이사장과 김두관 경남지사는 대선 출마 안한다고 했다. 동의하나. -동의 여부의 문제가 아니라 그 분 나름대로 판단해 말한 것 아니겠나. 아마 김전 장관도 충분히 대선 경쟁 구도에 뛰어들 만한 분이다.(문 이사장의 첫 대답은 여기까지다. 그러나 다른 질문에 답하던 도중 다시 추가 설명을 했다.)나에 대해 김 전 장관이 그리 말한 것은 내가 쭉 (차기 대선 출마)안한다고 했기 때문에 그 말을 되풀이 한 것이다. 김두관 지사도 지금은 도지사 초기니까 아마도 이번은 아니지 않겠나라는 생각으로 한 발언이 아니겠나. →정치 참여를 망설이는 가장 큰 이유는 뭔가. -잘 못할 것 같으니까 그렇다. 내가 괜찮게 평가받고 좋은 이미지 갖고 있는 것은 고맙고 과분한 일이지만 결국 정치권 바깥에 있어서 그런거다. 막상 현실정치 들어서면 그게 아니지 않나. 그때는 착한 역할만 못한다. 현실정치에 필요한 자질과 능력이 있다. 나는 그런 것들이 여러가지로 부족하다는 생각 갖고 있다. 또하나는 정치를 한다면 원칙을 지켜나가는 정치를 해야 한다. 그런데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노 전 대통령이 절절하게 오랫동안 보여줬다. 나는 도저히 엄두가 안 나서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출마를 안하나, 아니면 아직은 결정 안 내린 것인가. -우선 대선을 예로 들었는데, 내가 나간들 문제없이 이기나. 나도 박근혜 전 대표에게 안 된다. 다 모여야 이긴다. 우선은 그런 노력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내가 선수로 나서는 건 아직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 →스스로 진보주의자인가 보수주의자인가. -본인이 대답한다고 그렇게 되는 건 아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진정한 보수가 거의 없다. 보수라고 하는 한나라당은 수구 아나면 극우 쪽이다. 이런 지형 속에서는 합리적인 보수, 진정한 보수만 추구해도 상대적으로 진보처럼 보인다. 그런 시각으로 본다면 나는 그보다는 조금 더 중간 쪽으로 한걸음 더 나간 진보일지는 모르겠다. →노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씨는 언젠가 정치할 것 같나. -그건 내가 말하기 적절하지 않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대세론을 인정하나. -대세론뿐만 아니라 지지율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도 대단하다. 원칙주의적 면모에다 복지에 대한 관심까지 표방하고 있다. 정치적 처세도 잘한다. 좋은 점이 많은 정치인이다. 문제는 민주주의에 대한 소신 분명치 않아 보인다. 그 부분을 넘어서고 나서 진보든 보수든 있는 법인데 박 전 대표가 해왔던 언행을 보면 민주주의에 대한 소신이 근본적으로 결여됐거나 부족하지 않나 싶다. →박 전 대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었다. 그것이 어떤 영향을 미칠까.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라는 건 결격 사유가 아니다. 박 전 대통령도 공과가 있는 정치인이다. 딸이라 하더라도 공은 계승하고 과는 극복하면 되는 것이다. 오히려 딸이기 때문에 더 할 수도 있다. 근대화나 경제 산업화에 대한 공로 이면에 민주화 가 유린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됐다. 아버지 시절의 일이라 더 가슴 아파하면서 반성하고 과거사 정리해나가는 자세를 더 가질 수 있는 것 아닌가. →저서를 읽어보니 이명박 정부에 대한 원망이 많이 담겨있더라. -우리나라의 국가 리더십은 너무 대결적이다. 여기서 벗어나려면 통합과 화합의 리더십이 필요한데, 이명박 정부는 그런 점이 없어 안타깝다. 대선에서 여유있게 이겼는데도 포용하지 못하고 왜 그리 강팍하게 적대하고 다시는 기회를 주지 않겠다는 식으로 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똑같이 복수하는 것이 무슨 복수겠는가. 노 전 대통령의 뜻대로 상생하고 통합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복수가 아니겠는가. →민주당과 참여당, 민노당은 통합 대상인가 연대 대상인가 -나는 민주당, 참여당 뿐만 아니라 민노당, 진보신당까지 포함해서 통합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다음 대선과정에서 힘을 모으는데도 가장 도움이 된다. 또 집권 이후 전체가 하나의 개혁을 추동하는 세력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내년 선거를 앞두고 야권이 통합하면 당적을 가질 생각 있나. -통합으로 가게 된다면 전체적인 흐름에서 그런 양상으로 일이 추진돼야 할지도 모른다. →2012년 대선에서 진보진영이 집권해야 할 역사적 당위성이 있는가. -집권세력이 지그재그로 바뀌면서 역사가 더 튼튼하게 발전할 수 있다. 서구의 사례를 연구해보니 보통 6~7년 마다 정권을 바꾸더라. 하지만 그렇게 보기엔 지금 상황이 너무 절박하다. 이명박 정부는 그냥 못한다는 차원을 넘어서서 퇴행이다. 적어도 민주주의만큼은 확실히 지켜야 한다. 정책은 다를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러나 지금 민주주의가 파괴되고 있다. 이런 식의 정권이 지속된다면 우리 국민이 받는 손상이 너무 크다. 그래서 한번 더 기회를 줄 여유가 없다, . →군 복무 시절 사진이 인터넷에 돌더라. 군 복무가 인생에서 큰 의미를 갖나. -젊고 감수성 예민한 시절에 3년을 보내는 것 아닌가. 공수부대라는 특수한 곳을를 다녀왔다. 난생 처음 겪어본 일들이 많다. 사격하고, 수류탄 던지고, 맨몸에 납벨트 메고 헤엄치고, 비행기에서 점프도 하고. 그런데 내가 근근히 그런걸 해내더라. 그래서 새로운 일을 맡을 때 피하는 것이 아니라 한번 부딪혀보자는 낙관적인 생각을 갖게 만든 것 같다. →요즘 어떤 책을 읽나. -요새는 책 쓰느라 못 읽은 책이 잔뜩 쌓여 있다.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의 ‘문화유산답사기’, 유시민 대표의 ‘국가란 무엇인가’를 읽고 있다. →TV도 보나. -‘나는 가수다’를 본 적이 있다. 임재범 씨가 아주 인상적이더라. 평소에 좋아하는 가수는 윤도현 씨다. 락 음악이 별로 대중성은 없는데, 경연을 시키니 좋더라. →자녀 교육의 원칙은 무엇인가 -아들 하나, 딸 하나 있다. 특별한 자녀교육 철학은 없다. 그저 자유방임으로 키웠다. 잘한 짓인가 잘 모르겠다.   정리 부산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건보법 무효·아프간 철군… 오바마 성토장

    미국 대선 정국이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었다. 공화당은 13일(현지시간) 저녁 뉴햄프셔주 맨체스터에서 지금까지 출사표를 던진 7명의 후보들이 참석한 공개 토론회를 시작으로 내년 말 대선을 향한 17개월간의 대장정에 올랐다. ●선두주자 롬니 “경제회복 최적임”강조 CNN을 통해 2시간 동안 생중계된 토론회에는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 팀 폴렌티 전 미네소타 주지사, 미셸 바크먼 미네소타주 하원의원, 릭 센토럼 전 펜실베이니아주 상원의원, 론 폴 텍사스주 하원의원, 허먼 케인 ‘갓파더스 피자’ 전 최고경영자(CEO) 등이 참여했다. 보수 성향의 유권자단체인 티파티의 지지를 받고 있는 바크먼 의원은 토론회에서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며 인지도 상승효과를 노렸다. 토론회장은 예상대로 오바마 성토장이었다. 후보들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경제정책을 실패작으로 몰아세우고, 건강보험법을 무효화시키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4년 전 공화당 경선에 나섰다가 중도 사퇴했던 롬니는 성공한 사업가로서의 25년 경력을 거론하며 “경제회복과 일자리 창출의 최적임자”라고 강조했다.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의 철수를 주장했다. 폴렌티 전 주지사는 노동자 출신임을 강조하며 롬니와 각을 세웠다. 매사추세츠 주지사 시절 오바마 대통령의 건강보험 개혁과 비슷한 개혁을 성공시킨 롬니를 겨냥, ‘오밤니케어(오바마+롬니+메디케어)’라는 신조어를 끄집어내 만들어내며 건강보험 개혁을 비판했다. 지난 주말 참모진이 대거 사퇴해 내홍을 겪고 있는 깅리치 전 하원의장은 “정책 아이디어가 번뜩이는 후보”라는 점을 강조하며 “1400만명의 미국인이 일자리가 없다면 ‘오바마 대공황’에 마침표를 찍을 새 대통령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여성 첫 출사표 바크먼 티파티 힘입어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롬니와 함께 이날 관심은 여성으로는 첫 출사표를 던진 바크먼에 쏠렸다. 아직까지 출마 여부를 밝히지 않고 있는 세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 못지않게 열렬한 티파티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다. 티파티 내부에서는 바크먼이 페일린보다 정책이나 능력면에서 낫지만 인지도에서는 처진다는 평가다. 토론회에 나선 7명의 후보 가운데 어느 누구도 아직은 오바마 대통령에 대적할 만한 ‘파워’를 갖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관심은 페일린 전 주지사의 출마 여부와 출마 발표 시기에 쏠려 있다. ‘스타 파워’를 지닌 페일린 전 주지사가 가세한다면 ‘경선 흥행’에는 보탬이 될 것으로 보인다. 뉴욕타임스는 보수적인 공화당 지지층의 지지와 본선에서의 높은 당선 가능성을 동시에 갖춘 후보를 꼽기가 쉽지 않다는 데 공화당의 고민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균미기자 kmkim@seoul.co.kr
  • [내 정치를 말한다] (6)조승수 진보신당 의원

    [내 정치를 말한다] (6)조승수 진보신당 의원

    대학에서 군사독재 반대를 외치다 제적당하고, 공장에서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구속됐던 내가 시의원과 구청장을 거쳐 진보정당 최초의 지역구 국회의원까지 됐다. 단 한순간도 편한 적 없었던 내 인생 한가운데엔 짠 바다 냄새와 메케한 화약 연기가 뒤섞였던 고향 울산이 있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노동운동의 메카, 진보 1번지가 된 울산. 이곳에서 나는 사회과학 서점을 차리고 진보정당 운동을 시작했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가 불법 파견 철폐를 외치며 분신했던 봄날, 내 손을 잡고 “노동자는 하나.”라며 눈물을 글썽일 때 나는 다짐했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사라지는 그날까지 진짜배기 진보 정치인으로 서 있겠다고. 진보정치와 비정규직 노동자는 이렇듯 내 정치의 굳은살이 됐다. 어린 시절 난 평소에는 조용한 편이었지만 억울한 일을 당하면 앞장서 대드는 소년이었다. 그런 탓인지 동국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민주화 투쟁에 뛰어들었다. 군사독재를 반대하는 유인물을 돌렸고 1년간 감옥 생활을 했다. 뒤이어 인천에 있는 공장에서 노동조합 활동을 했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다시 한번 징역(징역 10개월, 자격 정지 1년)형을 받게 됐다. 1988년 울산에서 인문사회과학 서점(신새벽)을 열고 당구장을 개업하면서 새 인생을 시작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시민운동과 환경운동에 관심을 갖게 됐고, 울산 참여연대와 환경운동연합을 만드는 데도 참가했다. 활동을 할수록 ‘이제 정치를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32살의 어린 나이에 기초의원 출마를 결정했다. 1998년 최연소 구청장, 민주노동당 창당, 2004년 총선 당선. 조금씩 조금씩 진보 정치의 희망을 일궜다. 30대와 40대를 선출직 공직자로 살아가면서 한나라당, 민주당의 양당 구도가 다양한 정치적 견해를 담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800만명에 이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대변하지 못했다. 국회에서 에너지복지법, 하도급거래 공정화법, 사회복지세법을 만든 것은 작은 시작이다. 이제 진보정치를 향한 더 큰 꿈이 익어가고 있다.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 전국농민회총연맹, 진보적 교수 단체 등과 오는 9월까지 새로운 진보 통합 정당을 창당하려 한다. 한국 정치 구도를 보수, 자유, 진보로 나누기 위한 첫 발돋움이다. 아직 하고 싶은 일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다. 아들과 함께 ‘등록금 촛불 집회’에 앉아 있는 이 순간에도 ‘서민의 먹고사는 문제를 챙기는 정치’, ‘밥 먹여 주는 민주주의를 챙기는 정치’를 꿈꾼다. ● “참여당 한·미 FTA 반성 안하면 공조 못한다” →왜 정치를 하나. -(비정규직 노동자 등 어려운 이웃에 대한) 부채 의식 때문이다. 진보적 의제를 하나하나 이뤄갈 것이다. →최연소 시의원과 최연소(34세) 구청장이었다. 특별한 의미가 있나. -큰 선거에만 희망을 쏟지 말고, 지방선거에도 참여해 진보정치를 확산하자는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핵심 지지 기반인 현대차 노조가 비정규직 문제에는 소홀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지역 핵심 기반과 정치 핵심 의제가 상충하는 것 아닌가. -현대차 노조의 지지는 노동자 권리와 진보정치를 지킨 데 대한 응원이 아닐까. 현대차 노조에도 아쉬운 점이 있다. 하지만 현대차 노조의 산별 전환은 노동운동의 대의를 잊지 않았다는 증거다. 진보 전체의 책임을 개별 기업에 물어서는 안 된다. →진보 대통합 논의와 관련, 지난 11일 전국위원회에서 진통이 심했다. -독자파는 합의문 동의안을 상정한 뒤 기권했고, 통합파는 동의안이 성립 안 된다며 기권했다. 정치적인 의사 표현이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가 합의문을 왜곡한다며 조 대표를 비판했다. -결혼식 날짜 잡아 놓고 바람 피우는 것 아니냐는 표현까지 당내에서 나왔다. 부적절한 동맹에 대해 언급한 것은 부적절한 언행이다. →그럼에도 이정희 대표와 유시민 국민 참여당 대표가 거리를 좁히고 있는데. -부부가 재결합하려는데 유랑극단 3류 가수가 추파를 던져 불편하다. 유 대표가 진보정치를 소수파 전략으로 폄하한 것은 대단히 유감스럽다. 참여당이 신자유주의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성찰하지 않는 이상 동행하기 어렵다. →진보 대통합이 실패할 경우, 다음 진로는.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실패를 가정하고 싶지 않다. →민주당은 진보정당과 합의할 정책이 많아졌다는데. -한나라당과 민주당 사이엔 샛강이 있지만 진보정당과 민주당 사이엔 한강이 흐른다. 시간 낭비다. →분당 때 선도 탈당파였다. 지금 통합에 앞장서는 이유는. -민주당을 대안 세력으로 인정하지 않는 국민들이 많다. 진보 정치가 도약할 수 있는 기회다. →정치를 통해 이루고 싶은 최종 꿈은. -진보 진영 첫 광역단체장을 만들고 싶다(울산시장이냐고 묻자 부정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보스턴 마라톤에 도전하고, 목수가 돼서 내 집을 짓고 싶은 꿈을 갖고 있다. →노회찬·심상정 상임고문을 평가한다면. -노회찬 상임고문은 모든 사안을 대중적 언어로 풀어내는 능력이 있다. 심상정 상임고문은 당차고 친화력과 추진력이 뛰어나다. →야권의 유력 대선 주자를 꼽는다면. -조국 교수, 노회찬·심상정 상임고문,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등 진보 인사들이 국민경선으로 단일 후보를 결정하면 얼마나 좋을까.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조승수 진보신당 대표는 ▲1962년 울산 출생 ▲동국대 생명자원경제학과, 울산대 정책대학원 행정학 석사, 동국대 북한학과 박사과정 수료 ▲울산·인천 등에서 현장 노동자 활동 ▲울산 사회과학서점 ‘신새벽’ 운영 ▲민중당·진보정당추진위원회 활동 ▲울산광역시의원, 울산참여연대(준) 공동대표 ▲울산북구청장 ▲진보정치연구소장·에너지정치센터 대표 ▲17·18대 국회의원 ▲(현) 진보신당 대표
  • 전북 단체장 17년간 14명 낙마… 비리연루·선거법 위반 등 문제

    전북 단체장 17년간 14명 낙마… 비리연루·선거법 위반 등 문제

    1995년 자치단체장 선거를 시행한 이후 전북지역에서만 무려 14명이 현행법 위반으로 중도하차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질이나 도덕성이 부족한 인물을 특정한 정당이 공천했다는 이유 등만으로 무조건 뽑아 준 탓에 주민들이 이런 불명예를 안고 말았다. 12일 전북도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5차례의 민선 단체장 선거를 진행한 17년 동안 도지사 1명, 시장·군수 13명 등 14명이 비리에 연루되거나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물러났다. ●이창승 前시장 첫 구속 사례 1996년 이창승 전주시장이 건설공사 입찰방해와 선거법 위반 혐의로 구속돼 시장직에서 물러났다. 그는 전국 단체장 가운데 첫 사법처리 사례로 기록됐다. 2000년 이형로 임실군수가 쓰레기매립장 부지 선정 과정에서 비리가 불거져 구속됐다가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으나 이후 자진사퇴했다. 2002년에는 3명이 잇따라 철창행이었다. 김상두 장수군수가 산림개발과 관련, 업자로부터 뇌물을 받아 구속됐고 이어 당선된 최용득 장수군수 역시 선거법 위반으로 사직서를 제출했다. 같은 해 국승록 정읍시장은 부인이 인사비리에 연루되면서 얼굴을 들지 못한 채 떠났다. ●이형로 前군수 자진 사퇴 2004년에는 유종근 전북지사가 ‘F1그랑프리’ 사업을 추진하면서 세풍그룹으로부터 4억원의 뇌물을 받아 구속됐다. 이철규 임실군수도 사무관 승진인사 과정에서 건당 3000여만원의 뇌물을 받아 쫓겨 났다. 2005년에는 강근호 군산시장도 승진을 미끼로 부하 직원들로부터 1억 6000여만원을 받아 구속됐고 2007년에는 이병학 부안군수가 정치자금법과 선거법 위반으로 실형을 선고받고 자리를 잃었다. 2010년에는 김진억 임실군수가 건설업자로부터 거액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돼 현재까지 복역 중이다. 올 들어서는 윤승호 남원시장과 강인형 순창군수가 선거법 위반 혐의로 각각 500만원의 벌금형이 확정되면서 중도에 물러났다. 전북에 유독 단체장들의 중도하차가 많은 이유는 우선 유권자들이 후보자의 됨됨이를 살피지 않고 출신 정당만 보고 투표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낙마한 단체장들은 대부분 민주당 공천을 받았다. ●유종근 前지사 4억 뇌물수수 또 선거에 출마하면서 거액의 선거자금을 사용한 당선자들이 당선 후 이를 보전하려는 수법으로 인사 비리에 휘말리거나 뇌물을 건네는 업자들과 검은 고리를 끊지 못한 것도 낙마의 주된 요인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선거전이 치열해지자 상대 후보의 선거법 위반 혐의나 비리를 들춰내는 데에만 주력하는 지역의 특징적인 풍토도 단체장들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미끄러지는 데 한몫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지방의회 부활 20돌] 지방의회 어떻게 다시 시작됐나

    우리나라 지방의회는 질곡의 세월을 보냈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첫 지방의회가 만들어졌고, 1961년 5·16 군사정변에 의해 중단됐다. 그러나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성과로 30년 만인 1991년에 부활했다. 자치단체장 선거보다 4년 먼저 부활한 것이다. 1991년 3월 26일 4304명을 뽑는 기초의원 선거는 평균 2.4대1의 낮은 경쟁률을 보였고,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면서 55%의 낮은 투표율을 보였다. 당시 기초의회 선거는 정당공천제가 아니어서 당선자는 모두 무소속이었다. 같은 해 6월 20일 866명을 뽑는 광역의원 선거는2885명이 입후보해 3.3대1의 경쟁률을 보였고, 투표율도 조금 올라가 58.9%를 기록했다. 광역선거에는 정당공천제가 적용됐는데 전국에서 민주자유당이 564석을 휩쓸어 이후 ‘1당 독주’ 현상을 보였다. 부활 후 첫 시의회 의장인 3대 의장은 종로 제2선거구에서 당선된 김찬회 전 서울시 부시장이 맡았다. 서울시의회의 경우 그해 7월 8일 의원 정수 132명으로 구성된 제3대 의회를 개원해 임시회 29회와 정기회 4회를 개회했다. ■설문 응답 지방의원 ●시의원 강감창(송파·한), 공석호(중랑·민), 곽종상(노원·민), 김덕영(교육위원), 김정재(비례대표·한), 김영철(강동·한), 김용석(도봉·민), 김정태(영등포·민), 김제리(용산·한), 김춘수(영등포·한), 김현기(강남·한), 남재경(종로·한), 박기열(동작·민), 박양숙(성동·민), 박운기(서대문·민), 성백진(중랑·민), 오승록(노원·민), 유광상(영등포·민), 윤명화(중랑·민), 이재식(은평·민), 이정훈(강동·민), 이행자(관악·민), 장정숙(비례대표·민), 전철수(동대문·민), 채재선(마포·민), 한명희(비례대표·민) ●구의원 강대호(중랑·민), 강성길(서초·한), 고기판(영등포·민), 공영목(광진·한), 권영애(성북·한), 김기대(성동·민), 김길영(강남·한), 김병민(서초·한), 김순애(송파·한), 김승애(노원·민), 김영원(서대문·한), 김영주(양천·한), 김용범(영등포·한), 김용운(도봉·한), 김원철(도봉·민), 김일영(성북·민), 김정재(용산·한), 김철식(용산·민), 나봉숙(송파·민), 나상희(양천·한), 노승재(송파·민), 류은무(금천·한), 류정숙(구로·한), 문영주(강동·민), 문오현(동작·민), 박경준(성동·민), 박노섭(종로·민), 박칠성(구로·민), 박태문(양천·한), 변녹진(서대문·민), 성임제(강동·민), 소남열(관악·민), 송도호(관악·민), 신복자(동대문·한), 신정일(동대문·한), 신창용(도봉·한), 안문환(광진·한), 안재홍(종로·민), 우성진(금천·민), 우영호(은평·민), 윤선근(강남·민), 윤수영(성동·한), 은승희(동대문·민), 이강길(양천·민), 이경애(송파·한), 이기돈(서대문·한), 이동영(관악·민노), 이복례(관악·한), 이상근(종로·한), 이영숙(도봉·민), 이윤재(중랑·한), 이재진(강남·한), 이정인(송파·민), 이필례(마포·민), 이한국(노원·한), 이혜경(중·한), 이혜숙(송파·한), 임옥연(양천·한), 임재혁(노원·한), 장현수(관악·민), 정도열(노원·민), 정인훈(종로·민), 조성명(강남·한), 조재현(양천·한), 주순자(관악·민), 천범룡(관악·한), 최경애(종로·한), 최성식(동대문·민), 최준화(성동·한), 최진표(양천·한), 한자선(강서·한), 홍길식(서대문·한), 황동혁(동작·한), 황용헌(중·한) <명단은 가나다순>
  • 한선교 의원 “나는 보통 놈 아니다…150만 관중 모을 것”

    한선교 의원 “나는 보통 놈 아니다…150만 관중 모을 것”

    “내가 보통 놈이 아닙니다. 두고 보십시오.” 한선교(52) 한나라당 의원이 새 한국프로농구연맹(KBL) 총재로 선출됐다. 한 의원은 3일 서울 논현동 KBL센터에서 열린 총재 경선에서 10개 구단 중 7개 구단의 지지를 얻어 전육(65) 현 총재를 누르고 제7대 KBL 총재에 취임하게 됐다. 한 의원은 오는 8월 말로 임기가 끝나는 전 총재의 뒤를 이어 9월 1일부터 3년간 KBL을 이끈다. 대일고와 성균관대를 졸업한 한 의원은 1984년 MBC 아나운서로 얼굴을 알렸다. 당시 농구대잔치 등을 중계하며 농구와 인연을 맺었고, 대우(현 전자랜드) 장내 아나운서를 맡기도 했다. 제17·18대 국회의원(경기 용인)에 뽑힌 뒤에도 농구장을 찾는 열정을 보였다. 상기된 얼굴의 한 의원은 “(어느 정도 당선을 확신했던) 국회의원 선거 때보다 KBL 총재 경선이 더 떨렸다.”면서 “3년 안에 관중 150만명 시대를 열겠다. 프로농구가 달라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열심히 뛰겠다.”고 말했다. 프로농구의 지상파TV중계를 늘리고, 외국·국내선수 신분 등에 관한 법·제도적 문제를 개선하겠다는 공약을 냈다. 3년 전에도 KBL 수장에 도전했던 한 의원은 “한국농구 역사에 지금 같은 위기는 없었다. 3년 임기에 무한한 책임감을 느낀다. 뛰는 만큼 결과는 나온다.”고 의욕을 보였다. 한 의원은 ‘뛰는’ 방법으로 팬, 구단, 언론과의 ‘세 가지 스킨십’을 강조했다. 한 의원은 “본부석을 차지하지 않고 관중석에서 팬들과 함께 호흡하겠다.”고 했고, “10개 구단이 반목·갈등하지 않고 동업자 의식을 가질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시즌을 가리지 않고 끊임없는 언론과의 접촉을 통해 꾸준히 어필하겠다. 지상파 중계 없는 플레이오프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국회의원 겸직 문제에 대한 우려에도 “KBL의 발전을 위해 법과 제도를 만드는 데 유리한 점이 있다. 내년 총선에 당선되면 국회 문방위원장을 맡아 KBL에 더 큰일을 하겠다.”고 말했다. 한 의원은 이날 국가대표팀 연습경기가 있던 안양체육관을 찾아 허재 대표팀(KCC) 감독과 선수들을 격려하며 ‘총재 당선자’로의 첫 행보를 시작했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저자와 차 한 잔]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한국영화 1001’ 펴낸 소설가 이세기

    [저자와 차 한 잔]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한국영화 1001’ 펴낸 소설가 이세기

    많은 영화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렇다. 1919년 발표된 최초의 한국 영화 ‘의리적 구토’(김도산 감독)부터 2007년 영화 ‘추격자’(감독·각본 나홍진)까지 다양한 의미로 한국영화사를 장식한 그 많은 영화들을 책 한 권에 소개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한국영화 1001’(마로니에북스 펴냄)은 영화인들조차 엄두를 못 냈던 일을 깔끔하게 해냈다. 한 세기를 관통하는 한국영화 대백과사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지난 25일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저자 이세기씨를 만났다. 어떻게 1001편을 선정했는지부터 물었다. “4년 전 집필이 결정되고 가장 먼저 한 일이 그동안 만들어진 한국영화가 얼마나 되는지 살펴보는 것이었습니다. 검색 결과 2002년 말까지 만들어진 영화가 6402편, 여기에 2003년부터 2006년까지 제작된 영화 360여편을 더해서 약 6800편, 그 중에서 1001편을 골라야 한다는 답이 나왔지요.” ●1919년 첫 영화부터 2007년作까지 어떤 기준에 의해 어떻게 선정할 것인가가 다음 숙제였다. 나름대로 기준을 정했다. 우선 해마다 국내에서 열리는 영화제 수상작 위주로 목록을 짰다. 문화관광부 선정 ‘우수영화’나 영화진흥공사의 ‘좋은 영화’ 선정 작품, 대종상·청룡상·백상예술대상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수상작을 연도별로 모았다. 여기에 각종 해외 영화제 수상작과 영화사전에 나와 있는 감독과 배우의 데뷔작 및 대표작을 추가하고 평론가들의 저서에서 비중 있게 거론된 작품들을 보탰다. 그것도 모자라 영화에 관심 있는 문화예술인 100명을 선정해 ‘잊을 수 없는 추억의 영화’ ‘일반적으로 잘 만들어졌다고 생각되는 영화’를 물었다. 선정작업과 자료조사에만 2년 가까이 소요됐다. ●국내외 수상작·원로 추천작 등 기준 이씨는 “개인의 취향에 치우칠 수 있다는 우려를 배제하기 위해서 최대한 객관적인 기준으로 선정했다.”면서 “결과적으로 책에 소개된 영화들은 문화예술계 원로들이 추천한 영화인 셈”이라고 말했다. 원고지 분량만 1만 1000장. 언론인 출신의 소설가인 이씨가 지금까지 쓴 글 중에서 가장 길다. 영상자료원에서 보지 못했던 옛날 영화들을 틈틈이 봐 가면서 바깥 출입도 되도록 삼가고 2년 가까이 정말 공을 들였다고 했다. 원고를 마무리하고 나니까 이 정도면 대하소설도 너끈히 쓰겠다는 자신감까지 생기더란다. ●“바깥출입도 자제… 알기 쉽게 썼어요” “글은 지극히 ‘객관적이고 평이하게’ 쓰려고 했습니다. 본격적인 비평은 평론가들에게 맡기기로 하고 신문의 영화리뷰를 근거로 저의 안목과 지식의 범위 안에서 영화를 소개하는 수준으로 썼습니다.” 개인적으로 김기영, 신상옥, 이만희, 유현목 감독의 흑백 작품을 좋아한다는 그는 “문학인으로 예술 다방면에 관심이 있지만 영화를 특히 좋아하는 이유는 대중적이고 보편적이어서 누구나와 대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라며 “이번 책이 한국영화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는 좋은 길잡이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두시간 십분’으로 당선돼 등단한 저자는 서울신문 논설위원으로 1999년까지 재직했으며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 세종문화회관 운영위원, 한국영상자료원 이사, 영상물등급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차범석 연극재단 이사와 영상물등급위원회 영화예심위원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창작집 ‘바람과 놀며’ ‘그 다음은 침묵’과 김옥길 평전 ‘자유와 날개’, 한국 명인 100인을 소개한 ‘빛을 가꾸는 에피큐리언’, 강선영 평전 ‘여유와 금도의 춤’ 등이 있다. 함혜리 문화에디터 lotus@seoul.co.kr
  • 韓·中작가 정지아·한사오궁의 ‘유쾌한 문학 대담’

    韓·中작가 정지아·한사오궁의 ‘유쾌한 문학 대담’

    첫 만남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상대방의 작품을 전혀 읽지 않았다. 장편소설 ‘빨치산의 딸’로 잘 알려진 소설가 정지아(46)의 몇몇 작품은 영문으로 번역됐지만 중국 소설가 한사오궁(韓少功·58)에게는 낯설었고, 국내에 번역 출간된 한사오궁의 수필집 ‘산남수북’(山南水北), 장편소설 ‘마교사전’(馬橋詞典) 등 몇 작품 역시 정지아의 독서 편력에 해당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마치 맞춘 듯 서로 꼭 들어맞았다. 세상을 바라보는 낮고 겸손한 시선이 하나였고, 생명을 경외하는 열정도 마찬가지였다. 상업적 혜택을 받지 못하는 작가의 물질적 곤궁함 또한 다르지 않았다. 한국과 중국에서 눅진한 흙냄새 풍기는 농사꾼이자 치열하게 원고지 붙잡고 씨름하는 작가라는 사실이 언어의 다름, 경계의 차이를 넘어 둘을 스스럼없이 만나게 했다. 정지아, 한사오궁이 26일 서울 종로1가 대산문화재단 회의실에서 만났다. ‘세계화 속의 삶과 글쓰기’를 주제로 지난 24일 개막한 서울국제문학포럼이 계기가 됐다. 1시간 30분에 걸친 둘의 대화는 유쾌했고, 진지했다. 과학기술로 상징되는 현대 문명과 자본주의에 대한 선험적, 지성적, 비판적 통찰이 질문으로, 대답으로 오갔다. 둘은 통역을 제쳐 두고 만나자마자 영어로 자신을 소개했다. 정지아는 “부모님이 모두 남한 사회가 반대하는 이념을 가진 사회주의자였고, 그런 이야기들은 남한에서는 금기시된다.”면서 “사회주의 사상을 가졌던 이들이 변화한 세상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들의 신념은 지금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등을 작품에서 주로 다뤘다.”고 말을 건넸다. 한사오궁은 “오오, 그런가. 그러면 당신은 어떤가.”라고 슬쩍 되물었다. 정지아는 “사실대로 말하면 우리 사회에서는 아마 내가 감옥에 가야 할지도 모른다.”고 눙치더니 이내 “사회주의자는 아니다.”라고 말을 고쳤다. 이쯤에서부터 통역이 끼어들었다. 대화의 속도는 조금 더뎌졌지만, 더욱 깊어지고 묵직해졌다. 한사오궁은 “중국에서도 1980년대 이전 이데올로기 분쟁이 있었지만 이제는 돈을 버는 좌파와 우파, 돈을 벌지 못하는 좌파와 우파로 나뉠 뿐”이라면서 “돈을 벌 수 있으면 다 된다는 것이야말로 가장 무서운 이데올로기”라고 말했다. 정지아는 “기존의 이념을 뛰어넘어 세상이 시장과 자본의 이데올로기에 붙잡혀 있다는 말씀이지요?”라고 말을 받은 뒤 “한 선생님은 돈을 버는 좌파인가요?”라고 한 걸음 더 내쳤다. 그는 “100만~200만권씩 팔리는 베스트셀러 작가야 돈을 벌겠지만 나는 그저 10만~20만권 팔리는 정도”라면서 “그나마 중국 출판 시장이 크니까 겨우 살아가게는 한다.”고 받았다. 엄살에 가깝다. 그는 2002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문예기사 작위를 받고, 2007년 루쉰문학상을 받은 저명한 작가다. 현재 하이난성작가협회 주석이며 모옌(莫言), 위화(余華) 등과 함께 중국 문단에서 가장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꼽힌다. 그는 이 대목이 대화에 언급되자 손가락으로 ‘×자’를 만들며 “전혀 사실이 아니다. 믿지 말라. 노벨문학상은 올림픽처럼 계량해서 점수나 순위를 매기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어쨌든 이 또한 엄살에 가깝다. ●시골생활 예찬론자끼리 만나다 정지아는 “한 선생님의 포럼 발제문 ‘수요와 욕구’를 읽고 탐욕에 대한 경계 등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다.”면서 “10여 년 전에 시골에 내려가서 사신다고 하는데 저도 최근 시골로 내려갔다.”고 말했다. “어떤 연유로 시골로 내려가셨나. 고향인가.”라는 한사오궁의 질문에 정지아는 “시골에서 태어났고, 시골의 풍경이 핏줄기 속에 남아 있는 것 같다. 도시에서는 여러 욕망들을 버리기 쉽지 않았는데, 시골에서 흙 만지며 야채 키우다 보면 그런 것들이 절로 사라진다. 쾌적하고 평화롭다.”고 답했다. 한사오궁은 “맑은 날 열심히 농사짓고, 비오는 날 책 읽는 것이 가장 좋은 생활이라고 했다(청경우독·晴耕雨讀). 손과 발, 머리를 모두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자본주의, 특히 도시 사회에서 나타나는 인간과 사회의 관계는 건강하지 않다.”고 맞장구쳤다. 한사오궁의 수필집 ‘산남수북’은 루쉰문학상 수상 작품이며 ‘중국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라는 평까지 얻을 정도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배경이 된 후난(湖南)성 바시동(八溪洞)은 문화대혁명 시절 그가 청년 지식인으로 하방을 간 곳으로 11년 전부터 그곳에서 매년 4월부터 11월까지 지내며 농사짓는 곳이다. 한사오궁은 바시동을 ‘제2의 고향’이라고 불렀다. ●작가로서 실존적 고민을 나누다 정지아는 “근대문학의 위기, 시장의 변화 등으로 작가들이 괴로운 시절이다. 이런 시대에 작가로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말 고민스럽다.”고 내밀한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한사오궁은 계면쩍은 표정으로 “나도 같은 고통을 겪고 있다. 어떡하겠나. 계속 밀고 나가고, 그리고 기다리는 수밖에. 그리스 신화를 보면 끊임없이 돌을 굴렸다가 떨어진 돌을 다시 굴리기를 반복해야 하는 시시포스가 있지 않나. 사람의 인생도 똑같다. 작가의 인생은 더더욱 그러하다.”고 말했다. ‘교과서 중심으로 복습 철저’와 같은 식의 모범답안이지만 정지아는 진지하게 고개를 주억거린다. “끝없이 써야만 하는 것이 작가의 숙명이라는 말씀이네요. 그러고 보니 그동안 고향 인구가 계속 줄어들다가 2년 전부터 미미하지만 조금씩 늘어가기 시작해요.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부유한 삶이 행복의 충분조건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는 것 같아요. 희망은 살아있는 것이지요. 문학도 마찬가지일 것이고요.” 한사오궁은 “맞다. 나빠도 그 범위 안에서 나빠지고, 좋아도 그 범위 안에서 좋아진다. 욕망도 절망도 경계해야 한다.”면서 “목표에 도달하는 것은 어떻게 할 수 없더라도 그 과정은 우리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위로하며 서로 희망을 나눴다. 정지아는 우직하게 사실주의 기법을 틀어쥐며 작품 활동을 하는, 문단에 몇 남지 않은 작가다. ‘빨치산의 딸’뿐 아니라 ‘행복’, ‘봄빛’, ‘숙자 언니’ 등 자본주의사회에 남은 사회주의자들의 모습과 내면을 핍진하게 풀어가는 작품을 주로 썼다. 리얼리스트 정지아 역시 사회주의자들 못지않게 외로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사오궁은 “정 선생의 작품이 중국어로 번역된 것이 없다니 아쉽긴 하지만 영어로 된 책을 찾아 읽어 보겠다.”면서 “다음에 중국 오시면 꼭 연락해 달라. 내가 직접 마중나가고 또 직접 기른 토마토와 야채도 맛보여 주고 싶다.”고 말했다. 정지아가 활짝 웃으며 “혹시 노벨문학상 받은 뒤에도 여전히 유효한 약속인가.”라고 묻자 한사오궁은 “노벨문학상보다 직접 가꾼 토마토가 더 중요하다.”고 맞받으며 환하게 웃었다. 한사오궁은 정말 토마토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정지아는 각자 직접 가꾼 고추와 토마토를 나누자고 했다. 땅 일구는 이들은 보통의 도시 사람보다 조금은 더 욕망을 무화하는 능력이 탁월함을 두 작가가 보여 준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한사오궁은… 한사오궁은 중국 후난사범대학 중문과를 졸업하고 중국의 대표적 문예지 ‘줘자’(作家)로 등단했다. ‘뿌리 찾기’를 주된 내용으로 하는 심근문학(尋根文學)의 대표 주자로서 현대 중국문학의 거장이다. 작품 속에서 전통문화에 대한 반성과 재인식을 바탕으로 소재와 형식 등 중국의 전통을 재현하려 한다. ‘아빠, 아빠, 아빠’(爸爸爸), ‘유혹’(誘惑), ‘빈 성’(空城), ‘열렬한 책읽기’ 등의 작품이 있다. 하이난(海南)성 작가협회 주석이지만 후난성 바시동에서 살며 가을걷이가 마무리돼야 하이난다오로 돌아갈 정도로 시골 생활에 흠뻑 빠져 있다. 첫 중국인 노벨문학상 수상 유력 후보로 거론된다. 2000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오싱젠(高興建)은 중국 출신 프랑스인이다. ■ 정지아는… 정지아는 전남 구례가 고향이다. 중앙대 문예창작학과를 나왔다. 빨치산이었던 부모님의 실제 삶을 그려낸 장편소설 ‘빨치산의 딸’을 1990년 실천문학에서 펴내며 등단했다. 소설은 출간 직후 판매금지됐다. 작가 자신도 3년 가까이 수배 생활을 하는 등 혹독한 필화사건을 겪었다. 199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고욤나무’가 당선돼 안정적으로 ‘제도권’에 진입했다. 가족사적인 배경이 그러하듯 비극적인 현대사의 중심과 주변에서 역사를 직조했던 개인들의 상처와 희망, 불안 등을 주되게 다루고 있다. 이효석문학상, 한무숙문학상, 오늘의소설상 등을 받았다. 올 초 서울 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내려가 ‘연세(年貰) 200만원’에 집을 얻고 낮에는 밭 가꾸고 저녁에는 글쓰는 단출하고 정갈한 삶을 시작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