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첫사랑
    2025-12-26
    검색기록 지우기
  • 호우
    2025-12-26
    검색기록 지우기
  • 송치
    2025-12-26
    검색기록 지우기
  • 치질
    2025-12-26
    검색기록 지우기
  • 동아리
    2025-12-26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610
  • [길섶에서] 수수꽃다리/오일만 논설위원

    동네 어귀, 봄바람에 실린 꽃향기가 코끝에 닿는다. 진원지를 찾아 발길 따라 가 보니 아담한 담장 너머 라일락 꽃이 정겹다. 바람결에 살랑대는 그 청초한 모습과 매혹적인 향기는 기억 저편에 잠자던 젊은 날의 추억 한 가닥을 끄집어내는 듯하다. 한참이나 향기에 취했다. ‘첫사랑’ 또는 ‘젊은 날의 추억’을 꽃말로 가진 라일락의 우리말 이름은 ‘수수꽃다리’라고 한다. ‘수수꽃’과 ‘다리’가 합쳐진 것인데 수수 이삭처럼 꽃이 한데 뭉쳐 탐스럽게 핀 모습에서 유래했다. 해방 혼란기 미국의 한 식물채집가가 북한산 백운대에서 얻은 수수꽃다리 종자를 미국에 가져가 지금의 라일락으로 개량했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우리가 이 꽃의 진가를 일찍 알아보고 공을 들였다면 세계 꽃시장에서 ‘수수꽃다리’로 불렸을지도 모른다. 가만 생각하니 살가운 우리꽃 이름이 한둘이 아니다. 해를 바라보고 방향을 튼다고 해서 붙여진 ‘해바라기’는 영어식 ‘선플라워’보다 정감이 있다. 가을 바람에 살랑대는 ‘살사리’라는 이름의 꽃이 우리에게 익숙한 코스모스다. 우리의 정서와 우리의 이야기가 담긴 이름이라 그런지 정겹다. 지금이라도 에델바이스를 솜다리꽃으로 부르고 아이리스를 붓꽃이란 우리말 이름으로 부르면 어떨까. oilman@seoul.co.kr
  • 복제인간 ‘서복’ 끊임없는 질문들, 인간의 어리석음 들춰내고 싶었다

    복제인간 ‘서복’ 끊임없는 질문들, 인간의 어리석음 들춰내고 싶었다

    청춘 멜로 영화 ‘건축학개론’(2012)으로 411만 관객에게 첫사랑 감성을 일깨웠던 이용주(51) 감독이 9년 만에 SF 신작 ‘서복’으로 돌아왔다. 15일 개봉하는 ‘서복’은 진시황의 명으로 불로초를 찾던 인물의 이름을 딴 ‘복제인간’을 소재로, 인간의 욕망과 죽음의 두려움에 대한 본질적 가치를 사유한다. 최근 화상으로 만난 이 감독은 “제 첫 작품 ‘불신지옥’(2009)에서 보였던 두려움을 확장하고자 했다. 그 근원을 찾다 보니 영생이 떠오르더라”며 “결과적으로 복제인간을 선택했지만 화려한 SF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다”고 소개했다. 이어 “영원한 삶을 추구하는 것은 바벨탑을 쌓는 것처럼 불가능한 일이라 멈추지 않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전달하고자 했다”고 강조했다. 영화는 전직 정보국 요원 기헌(공유 분)이 줄기세포 복제와 유전자 조작을 통해 만들어진 실험체 서복(박보검 분)을 이송하는 일을 제안받는 것으로 시작한다. 뇌종양으로 시한부 삶을 사는 기헌은 서복을 통해 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말에 선뜻 임무를 맡지만 서복을 노린 여러 집단의 공격을 피해야 하는 예기치 않은 일에 휩싸인다. 영화 속에서 서복은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던진다. 왜 자신을 만들었고, 왜 기헌은 살고 싶어 하고, 인간들은 왜 죽기 싫어하는지. 이 감독은 “두 남자의 험난한 여정 속에서 숙명과도 같은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함으로써 삶을 마주하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싶었다”며 “죽음을 앞둔 기헌과 인간을 넘어선 서복이 서로를 구원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브로맨스’에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초고를 쓰는 데만 3년이 걸리는 등 시나리오 작업에 6년이 소요됐다. 코로나19도 겹쳐 관객과 만나기까지는 또 시간이 걸렸다. 이 감독은 “‘건축학개론’이 흥행할지 전혀 몰랐는데, 흥행에 대한 강박관념이 생겨 시나리오를 쓰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며 “다음 작품은 좀더 편한 마음으로 밝은 주제를 선택하고 싶다”고 토로했다. 114분의 짧은 시간에 철학적 담론을 모두 담으려다 보니 베일에 싸인 연구원 임세은(장영남 분)의 비중이 작아 설명이 부족하다는 느낌도 있다. 이 감독은 “설명이 많아지면 개연성은 강화되지만 지루해질 수 있어 많은 부분을 편집했다. 모두가 만족할 지점을 찾기가 어려웠다”고 고백했다. 코로나19 여파로 수차례 연기된 끝에 결국 15일 인터넷 동영상(OTT) 플랫폼 ‘티빙’과 극장에서 동시 개봉하게 됐으나 아쉬움은 없었을까. 이 감독은 “기약 없이 개봉을 연기하는 것보다는 동시 공개가 최상의 선택”이라며 “많은 영화인이 오히려 ‘서복’의 성패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고 답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서복’ 이용주 감독 “영생 추구 인간의 어리석음 사유”

    ‘서복’ 이용주 감독 “영생 추구 인간의 어리석음 사유”

    청춘 멜로 영화 ‘건축학개론’(2012)으로 411만 관객에게 첫사랑 감성을 일깨웠던 이용주(51) 감독이 9년 만에 SF 신작 ‘서복’으로 돌아왔다. 15일 개봉하는 ‘서복’은 진시황의 명으로 불로초를 찾던 인물의 이름을 딴 ‘복제인간’을 소재로, 인간의 욕망과 죽음의 두려움에 대한 본질적 가치를 사유한다. 최근 화상으로 만난 이 감독은 “제 첫 작품 ‘불신지옥’(2009)에서 보였던 두려움을 확장하고자 했다. 그 근원을 찾다 보니 영생이 떠오르더라”며 “결과적으로 복제인간을 선택했지만 화려한 SF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다”고 소개했다. 이어 “영원한 삶을 추구하는 것은 바벨탑을 쌓는 것처럼 불가능한 일이라 멈추지 않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전달하고자 했다”고 강조했다. 영화는 전직 정보국 요원 기헌(공유 분)이 줄기세포 복제와 유전자 조작을 통해 만들어진 실험체 서복(박보검 분)을 이송하는 일을 제안받는 것으로 시작한다. 뇌종양으로 시한부 삶을 사는 기헌은 서복을 통해 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말에 선뜻 임무를 맡지만 서복을 노린 여러 집단의 공격을 피해야 하는 예기치 않은 일에 휩싸인다.영화 속에서 서복은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던진다. 왜 자신을 만들었고, 왜 기헌은 살고 싶어 하고, 인간들은 왜 죽기 싫어하는지. 이 감독은 “두 남자의 험난한 여정 속에서 숙명과도 같은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함으로써 삶을 마주하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싶었다”며 “죽음을 앞둔 기헌과 인간을 넘어선 서복이 서로를 구원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브로맨스’에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초고를 쓰는 데만 3년이 걸리는 등 시나리오 작업에 6년이 소요됐다. 코로나19도 겹쳐 관객과 만나기까지는 또 시간이 걸렸다. 이 감독은 “‘건축학개론’이 흥행할지 전혀 몰랐는데, 흥행에 대한 강박관념이 생겨 시나리오를 쓰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며 “다음 작품은 좀더 편한 마음으로 밝은 주제를 선택하고 싶다”고 토로했다. 114분의 짧은 시간에 철학적 담론을 모두 담으려다 보니 베일에 싸인 연구원 임세은(장영남 분)의 비중이 작아 설명이 부족하다는 느낌도 있다. 이 감독은 “설명이 많아지면 개연성은 강화되지만 지루해질 수 있어 많은 부분을 편집했다. 모두가 만족할 지점을 찾기가 어려웠다”고 고백했다. 코로나19 여파로 수차례 연기된 끝에 결국 15일 인터넷 동영상(OTT) 플랫폼 ‘티빙’과 극장에서 동시 개봉하게 됐으나 아쉬움은 없었을까. 이 감독은 “기약 없이 개봉을 연기하는 것보다는 동시 공개가 최상의 선택”이라며 “많은 영화인이 오히려 ‘서복’의 성패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고 답했다. 그는 “이제 극장과 OTT가 시장에서 주도권 다툼을 하기보다 각기 다른 시장의 폭을 넓혀 가는 건강한 변화로 봐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유부남 사랑했다가 부인에 납치당했다” 가수 문주란 후회

    “유부남 사랑했다가 부인에 납치당했다” 가수 문주란 후회

    가수 문주란이 불우한 가정사를 고백하며 어리석은 사랑을 했다고 고백했다. 문주란은 지난 5일 방송된 TV조선 ‘스타다큐 마이웨이’에 출연해 “엄마가 5세 때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성인이 되서 돌아가셨다. 내가 나이가 됐을 때 가시지, 너무 일찍 가셨다. 꿈에라도 나타났으면 하는데 안 나타난다. 아버지가 총 3번 결혼하셔서 계모를 2번 모셨다”고 가정사를 고백했다. 문주란은 음독사건에 대해 “남자의 ‘남’도 몰랐을 때다. 남진과의 스캔들이 대서특필 됐다. 말도 안 되는 얘기들이 나오니까 어린 마음에 자존심이 있어서 음독을 했다. 그때 보름 만에 눈을 떴다”고 말해 충격을 줬다. 20세가 넘어 만난 첫사랑은 유부남이었다고. 문주란은 “부모의 따뜻한 사랑을 못 받아 사람을 많이 사랑하게 되고 의지하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다”며 “그쪽 부인이 방송가까지 와서 (납치 당했다) 내게 첫사랑이었지만 남의 남자니까. 내가 그런 사람을 안 만났다면 다른 좋은 사람을 만나지 않았을까 한다”라고 후회했다. 문주란은 “(지금은) 혼자가 좋다. 사랑도 해봤는데 피곤하다. 사람은 운명이라는 게 있는데 나는 결혼해서 남편을 갖고 살 운명이 아닌가보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극장서 왓챠 엄선 영화 본다…CGV 새달 1일 왓챠관 운영

    극장서 왓챠 엄선 영화 본다…CGV 새달 1일 왓챠관 운영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왓챠’가 엄선한 영화들을 극장에서 만날 수 있게 된다. 왓챠와 CGV는 다음 달 1일부터 전국 14개 CGV 극장에서 왓챠가 엄선한 작품들을 상영하는 CGV 왓챠관을 운영한다고 26일 밝혔다. 우선 왓챠의 수입·배급작인 ‘리틀 조’와 ‘스왈로우’가 14개 모든 왓챠관에서 상영된다.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기묘한 꽃을 발견하고 나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리틀 조’는 에밀리 비첨에게 칸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안긴 작품이다. 미스터리 스릴러 ‘스왈로우’는 삼켜서는 안 될 것을 삼키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 여성 이야기다. 또 김보라 감독의 ‘벌새’를 비롯해 ‘소공녀’, ‘파수꾼’, ‘남매의 여름밤’, ‘최악의 하루’, ‘힘내세요, 병헌씨’ 등 6편을 다양성 영화 기획전으로 묶어 14개 상영관에서 2주씩 번갈아 재상영한다. 첫사랑의 설렘을 담은 영화 ‘건축학 개론’과 ‘늑대소년’,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 확장판도 다시 볼 수 있다. 왓챠관을 운영하는 상영관은 서울 강변·목동·왕십리·용산아이파크몰·신촌아트레온·영등포 등 서울 6곳과 의정부·일산·동수원·죽전·인천 등 경기·인천 5곳이다. 이밖에 충남 천안 펜타포트와 부산 서면·센텀시티 등이 있다. 박태훈 왓챠 대표는 “방대한 취향 데이터를 보유한 왓챠와 세계적 수준의 극장 인프라를 가진 CGV와의 협력으로 고객의 만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766억 기부’ 이수영 회장, 꿀 떨어지는 80대 신혼생활 공개 [EN스타]

    ‘766억 기부’ 이수영 회장, 꿀 떨어지는 80대 신혼생활 공개 [EN스타]

    이수영, 김창홍 부부가 ‘아내의 맛’에 출연해 80대 시니어 커플의 신혼 생활 스토리를 전격 공개한다. 16일 방송되는 TV조선 예능 프로그램 ‘세상 어디에도 없는, 아내의 맛’(이하 ‘아내의 맛’)에서는 카이스트 역대 최고 766억 기부로 화제를 모은 광원산업 이수영 회장과 변호사 김창홍 부부가 전격 출동, 유쾌하고 따뜻한 80대 ‘반전 신혼의 맛’을 선사한다. 무엇보다 86세에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수영 회장은 모두가 잠이 든 늦은 밤까지 서재에서 홀로 일에 몰두하며 카리스마를 폭발시키는 모습으로 모두를 감탄케했던 상황.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열일에 빠져있던 이수영 회장은 일과 후 치매 예방을 위해 누구나 손쉽게 즐길 수 있는 가벼운 ‘회장님표 놀이법’까지 공개, 이목을 집중시켰다. 더욱이 이수영-김창홍 부부는 주거니 받거니 달콤한 모습들로 180도 다른 반전 모습을 선보이며 보는 이들을 놀라게 했다. 이수영 회장은 숨겨진 요리 실력을 발휘해 오직 남편만을 위한 보양식 ‘붕어매운탕’ 요리를 선보이고, 남편 김창홍 변호사 또한 이수영 회장에게 직접 양말을 신겨주고 밤을 까서 입에 넣어주는 등 ‘스윗 본체’의 면모를 보였다. 반면 뒤늦게 찾아온 행복한 신혼을 즐기느라 다툼 따윈 없을 것 같아 보이던, 달달한 이수영-김창홍 부부에게 위기가 발발, 긴장감을 드리웠다. 홈쇼핑 덕후 이수영 회장이 택배들을 한가득 쌓아둔 채 또 다른 물건을 구매하는 홈쇼핑 삼매경에 빠진 모습으로 김창홍 변호사를 놀라게 한 것. 과연 두 사람이 눈앞에 닥친 쇼핑 전쟁을 어떻게 극복했을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이후 이수영-김창용 부부는 새로운 가족으로 맞이할 강아지를 입양하기 위해 유기견 보호소를 찾았다. 이수영 회장이 각각의 가슴 아픈 사연을 가진 강아지들을 보며 눈을 떼지 못한 가운데, 최근 피붙이나 다름없던 반려견을 떠나보낸 슬픈 사연이 밝혀져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그런가 하면 이수영-김창홍 부부가 로맨틱한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를 즐기던 도중, 갑작스럽게 이수영 회장의 첫사랑 논쟁이 시작되면서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을 가진, 60여 년을 돌아 돌아 만난 두 사람의 특별한 이야기는 무엇일지,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제작진은 “카리스마 넘치는 기부 천사 회장님의 달달하고 낭만적인 신혼 생활이 유쾌하면서도 따뜻한 힐링을 안겨주게 될 것”이라며 “더불어 이수영 회장이 직접 스튜디오서 밝히는 첫 사랑 스캔들은 무엇일지, 아맛팸들을 초토화시킨 스토리의 전말을 기대해 달라”고 전했다. 한편, TV조선 ‘아내의 맛’은 이날 오후 10시에 방송된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年 수백만병씩 팔린다 … 우린 왜 ‘칠레 카소’에 빠졌나

    年 수백만병씩 팔린다 … 우린 왜 ‘칠레 카소’에 빠졌나

    세상에 와인처럼 다채로운 맛을 내는 과실주는 와인뿐입니다. 와인이 ‘신의 물방울’로 불리는 건 ‘포도’라는 단일 과일을 발효시켜 양조했을 뿐인데, 완성된 와인 한 잔에선 포도를 뛰어넘는 상상 초월의 맛의 스펙트럼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포도 품종에 따라, 포도가 자란 땅의 특성(테루아)에 따라, 숙성 방식에 따라 천차만별의 맛을 내는 와인을 하나하나 알아 가는 재미에 푹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와인 마니아도 많죠. 우리가 각 와인에 어울리는 음식을 매칭해 식사를 즐길 수 있는 것도 와인의 다양성 덕분이고요. 이토록 다양한 맛의 세계를 자랑하는 와인이지만 유독 한국 시장에선 특정한 와인 스타일이 불티나게 팔린답니다. 바로 ‘칠레산 카베르네 소비뇽’(카소)인데요. 묵직한 보디감, 강렬하고 풍부한 과실향, 약간의 단맛, 섬세한 오크향, 부드러운 타닌 등이 특징인 칠레산 카소는 국내 와인 시장이 막 형성되기 시작했던 199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 오랜 시간 절대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제품이 ‘국민와인’으로 불리는 ‘몬테스 알파’입니다. 칠레 카소인 이 와인은 코로나19의 영향으로 홈술 열풍이 불었던 지난해에만 무려 120만병이나 팔렸습니다. “와인은 몰라도 몬테스 알파는 안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죠. 이 와인을 생산하는 현지 와이너리의 수출량도 한국이 1위라고 하네요. 같은 스타일의 ‘1865’ 와인 또한 전 세계 판매량 순위가 한국이 2위입니다. 이 정도면 한국인의 칠레산 카소 사랑은 국제적으로도 인정을 받았다고 볼 수 있겠죠. 대체 한국인은 왜 수많은 와인 가운데 ‘진하고 강렬한’ 칠레산 카소를 좋아하는 것일까요? 전문가 및 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크게 세 가지 요인이 꼽힙니다. 먼저 음식 문화의 영향입니다. 한국 음식은 대체로 양념이 진하고 강한 편입니다. 매콤한 고춧가루를 듬뿍 뿌리거나 풍미가 깊은 참기름, 들기름 등을 아낌없이 넣은 메뉴가 많습니다. 이런 음식에 길들어 있다 보니 음식에 지지 않는 강렬한 캐릭터의 와인을 선호하게 됐다는 겁니다. 반면 와인 시장의 규모가 아시아에서 가장 큰 일본에선 여리여리하고 가벼운 캐릭터의 피노누아와 소비뇽블랑 와인이 가장 인기가 많습니다. 일본 음식에 해산물이 많고, 음식에도 강한 양념보다는 부드럽고 담백한 양념을 더 많이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자유무역협정(FTA)인 한국·칠레 FTA의 영향도 한몫했습니다. 한국에 와인 문화가 본격적으로 형성된 시기는 1990년대 후반입니다. 이 시기 칠레도 국가적으로 와인 산업을 키우기 위해 프리미엄 와인을 만들고 협회를 조성해 적극적인 해외 프로모션을 시작했죠. 국내에선 소수의 와인 수입사들이 신생 국가 칠레의 가성비 좋은 와인을 들여와 소개하고 있었고요. 그러던 중 2004년 FTA가 체결됐고, 칠레 와인에 대한 관세가 철폐되면서 한국 소비자들 사이에선 “칠레 와인=가성비 뛰어난 와인”이라는 인식이 생겨나게 됩니다. 인생의 첫 와인으로 칠레산 카소를 고르는 데 주저하지 않는 소비자가 대폭 늘어났죠. ‘세대적 요인’도 있는데요. 초창기 국내 와인 시장을 이끌었던 소비자는 40대 이상의 남성이었고, 주로 4060 남성들이 진하고 강렬한 캐릭터의 술을 좋아하는 성향이 있어 칠레산 카소가 한국 와인의 표준으로 자리잡았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물론 환경은 변화하고 트렌드도 바뀝니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홈술 열풍이 불면서 ‘와인 대중화’ 시대가 활짝 열렸죠. 과거보다 훨씬 더 다양한 와인을 쉽고 저렴하게 구할 수 있게 된 덕분에 요즘 소비자들은 더이상 칠레산 카소만을 고집하진 않는답니다. 가볍게 집에서 마실 수 있는 화이트와인의 소비량도 지난해 전년 대비 27% 증가했고요. 칠레산 레드와인보다 오크향이 강한 미국 와인, 타닌이 강한 보르도 와인 등을 찾는 와인 마니아도 늘어났습니다. 하지만 ‘첫사랑’은 잊히지 않는 법이죠. 처음 마셨던 와인, 언제 어디서 누구와 마셔도 즐겁게 마실 수 있는 와인, 와인에 대한 호기심을 돋우는 와인. 한국에서 태어나 자랐다면 칠레산 카소가 우리의 ‘소울 와인’이 아닐까 합니다. macduck@seoul.co.kr
  • “고구마 없는 동치미 복수극”…‘미스 몬테크리스토’로 뭉친 절친들

    “고구마 없는 동치미 복수극”…‘미스 몬테크리스토’로 뭉친 절친들

    KBS 2TV 일일드라마 오늘 첫 방송이소연 “독하게 연기 변신 하고 싶다”최여진 “역할 위해 이소연과 거리 둬”둘도 없던 친구가 하루 아침에 원수로 돌변한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절친 배우’ 이소연과 최여진이 KBS 2TV 일일드라마 ‘미스 몬테크리스토’에서 욕망과 복수를 두고 대립하는 두 주인공으로 만났다. 드라마는 시청률 20%(닐슨코리아 기준)을 넘기며 종영한 ‘비밀의 남자’ 후속으로 15일 저녁 7시 50분 첫 방송한다. 프랑스 소설가 알렉상드르 뒤마의 원작 제목이 연상시키듯이 한 여성의 복수를 다룬다. 가장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을 당하고 모든 것을 빼앗긴 이후, 순수했던 여인이 복수를 통해 자신의 인생을 되찾는 과정이 처절하게 펼쳐진다. 이날 온라인 스트리밍으로 진행한 제작 발표회에서 박기호 PD는 드라마가 잘 짜여진 복수극임을 강조했다. 그는 “원작 완역본으로 2000쪽이 넘는 ‘몬테크리스토’는 복수극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족극”이라며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직전에 지옥으로 떨어졌던 주인공이 가정 이룬 옛 원수들의 허점을 하나씩 파고들게 된다”고 설명했다. 동대문 ‘완판 여신’이라 불리는 열혈 디자이너에서 친구의 배신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는 복수극의 주인공 고은조는 이소연이 맡았다. KBS ‘루비반지’(2013~2014) 이후 일일드라마로는 8년 만에 돌아온 그는 “복수극은 연기하는 사람으로서는 힘든 부분이 많지만, 오랜만에 독하게 연기 변신을 하고 싶어 선택했다”고 출연 배경을 밝혔다.질투와 탐욕에 휩싸여 친구를 배신하는 제왕그룹의 외동딸이자 영화배우 오하라는 최여진이 열연한다. 그동안 트렌디한 역할이나 CEO 등 도시적인 이미지를 주로 연기해 온 그는 “즐겁고 행복하지만 다 풀리지 않은 듯한 찜찜함이 가슴속에 있었고 제대로 폭발해보고 싶었다”면서 “카타르시스를 줄 수 있는 악역으로 국민 욕받이가 되겠다”고 각오를 전했다. “고구마 없는 동치미 스토리”라고 작품을 소개한 최여진은 평소 사적으로 자주 만나고 운동도 같이하는 이소연과 일부러 거리를 뒀다고 밝혔다. 그는 “친하면 독이 될 것 같아 연기적으로 거리두기를 했다”면서 “전화 통화 대신 메신저로 대화하고 애인처럼 서로 의지를 많이 한다”고 했다.두 주인공과 ‘러브 라인’을 형성하는 경성환(차선혁 역)과 이상보(오하준 역)도 작품에 대한 기대감을 밝혔다. 은조의 첫사랑이자 해바라기 같은 남자를 표현하는 경성환은 “수개월간 한 역할을 끌고 가는 게 쉽지는 않지만 심호흡과 명상으로 부담감을 푼다”고 했고, 이상보는 “재벌 3세라는 점만 제외하면 나와 싱크로율이 매우 높다. 100회가 넘는 긴 호흡의 드라마를 꼭 해보고 싶었다”며 각오를 더했다. 박 PD는 “이소연, 최여진의 불꽃 튀는 연기 대결과 두 사람 때문에 천국과 지옥을 오가게 되는 두 남자의 이야기가 관전 포인트”라며 “‘비밀의 남자’와는 차별화된 복수극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배우 선우용여, 이황의, 경숙, 오미희 등도 출연한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근대광고 엿보기] 근대 대표 출판사 겸 서점 ‘박문서관’

    [근대광고 엿보기] 근대 대표 출판사 겸 서점 ‘박문서관’

    “신구 서적 만종(萬種)과 문방구를 완비하고 특별 대염가로 도매 소매하오니 다소(多少) 불구하고 주문하시오. 일어 영어 사전 자전 각종도 구비함.” 한국의 근대 출판을 대표하는 출판사 겸 서점인 박문서관의 광고 내용이다. 박문서관의 창업주 노익형(1885~1941)은 몹시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14살 때부터 육의전의 하나인 저포전(苧布廛) 점원, 객주집 거간 일을 하고 잡화상을 차렸지만 오래가지 못했다고 한다. 그랬던 그가 지인의 권유로 경성 남대문통 3정목(현 남대문로 3가) 상동교회 앞에서 자본금 200원으로 작은 서점 박문서관을 연 것은 22세 때인 1907년이었다. 한일병합으로 총독부에 역사 서적을 몰수당하는 고초를 겪었지만, 봉래동을 거쳐 1925년 종로로 서점을 옮기고 출판사도 겸하면서 사업은 확장일로로 들어섰다. 박문서관은 안국선의 금수회의록을 약 4만부 팔았고, 춘향전·심청전·조웅전·유충렬전 등 구소설을 1년에 약 3만~4만부 판매하는 등 규모를 키워 갔다. 1920년대에는 ‘짠발쟌 이야기’ 등의 번역·번안물과 이광수의 ‘무정’, ‘첫사랑’ 등도 히트작이었다. 염상섭의 ‘견우화’, 현진건의 ‘지새는 안개’ 등도 출간했다. 큰돈을 번 노익형은 대동인쇄소까지 인수해 경영하며 출판, 서적, 인쇄 3대 부문의 패자(覇者)가 됐다. 인쇄소는 종로 YMCA 바로 뒤에 있었다. 서점 판매보다 더 많은 돈을 벌어 준 것은 오늘날의 온라인 판매와도 같은 통신판매였다. 1935년 무렵에 그는 신구 소설 등 1000여종의 책 판권을 갖고 있었고 매출의 70%를 통신판매로 달성했다고 한다(매일신보 1936년 5월 14일자). 박문서관은 문학도서 외에 문세영의 ‘조선어사전’ 등 사전류도 펴냈고, 무엇보다 박문문고라는 휴대하기 좋은 문고본을 발행해 독서의 저변을 넓혔다. 1938년에는 월간 문예지 ‘박문’을 발행해 쟁쟁한 문인들의 수필을 실었다. 그러나 노익형은 일제에 협력하고 창씨개명을 해 친일인명사전에 올라 있다. 광복 후 박문서관은 박문출판사와 박문서점, 박문인쇄소로 분리됐다. 노익형 사후 유일한 혈육인 노성석씨를 거쳐 성석씨의 고교 선배인 이응규씨가 총괄 사장을 맡아 운영했다. 문을 닫은 것은 1957년이었다. 출판사와 서점 경영이 어려워진 것은 6·25 전쟁 때 인쇄시설이 폭격을 당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60평쯤 되던 박문서점이 있던 곳은 종로2가의 옛 고려당 바로 옆 건물이었는데 2002년에 없어진 종로서적의 지척이었다. 폐업 당시 박문서점은 영창서관, 덕흥서림과 함께 서울의 3대 서점으로 꼽혔다. 1972년에 설립된 고시·수험 서적 전문 출판사 박문각과 박문서관의 연관성은 찾을 수 없다. 박문서관의 목판 691장은 2013년 근대문화재로 지정됐다. 손성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그를 닮은 듯 처연한 거리… 하이얀 위로가 나빌레라

    그를 닮은 듯 처연한 거리… 하이얀 위로가 나빌레라

    ‘하얀 나비’ 광주 김정호 거리를 가다 광주광역시에 ‘김정호 거리’가 조성된다는 신문 기사를 접했다. 2019년 6월의 일이다. 손가락 꼽아 가며 기다렸던 완공 소식은 지난해 11월 들려왔다. 서울의 ‘배호 길(道)’, 대구의 ‘김광석다시그리기길’에 이어 국내 세 번째다. 광주가 고향인 김정호는 1970~1980년대를 풍미했던 싱어송라이터다. 젊은이들에겐 영화 ‘수상한 그녀’에서 배우 심은경이 불렀던 ‘하얀 나비’의 원작자라고 해야 더 알기 쉬울 법하다. 그는 ‘음유시인’이라 불릴 만큼 서정적인 노랫말과 비장미 가득한 목소리로 당시를 살아내던 국민들에게 깊은 위로를 안겨 줬다. 그의 발자취를 따라 광주와 전남 담양 여기저기를 쏘다녔다. 각각 ‘육신의 탯자리’와 ‘음악의 탯자리’였던 곳이다. 정열적으로 활동하던 당시처럼, 지금도 그는 여전히 아웃사이더였다. 그를 추모하는 공간들이 어쩌면 그렇게 하나같이 구석지고 쓸쓸하던지. 코로나19 탓에 소외되고 덜 알려진 곳들을 찾아가는 발걸음들이 늘고 있다던데, 김정호 추모 공간 역시 그런 점에서 각별히 보듬어야 할 공간인 듯했다.담양과 광주를 찾던 날, 눈이 펑펑 내렸다. 김정호(1952~1985·본명 조용호)의 부인 이영희의 생전 회고에 따르면 “남편이 돌아가던 날(11월 29일)에도 흰 눈이 펑펑 내렸다”고 한다. 그는 역시 화사한 호랑나비보다 어딘가 처연한 느낌의 하얀 나비가 어울리는 사내이지 싶다. 그를 뭐라 불러야 할까. 우리 음악계엔 그를 표현할 적당한 문구가 없다. ‘국악에 바탕을 둔 신고전주의 포크 음악의 창시자’ 정도가 맞을까? 담양의 명창 ‘이날치’가 소환되고 ‘범이 내려온다’가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는 현재의 대중음악 지형에서조차 국악과 접목한 대중음악은 여전히 비주류다. 차갑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김정호는 스물한 살이던 1973년에 ‘이름 모를 소녀’로 데뷔했다. 그 이전에 포크 듀오 ‘사월과 오월’의 멤버로 잠깐 활동하긴 했지만, 음악계에선 솔로 데뷔를 공식 데뷔로 인정하는 분위기다. 그야말로 혜성처럼 가요계에 등장한 그는 폐결핵으로 요절할 때까지 ‘하얀 나비’, ‘저 별과 달을’, ‘날이 갈수록’, ‘님’ 등 수많은 히트곡을 만들었다. 당시 인기 남성 듀오였던 어니언스의 ‘작은새’와 ‘편지’, 투에이스(금과 은)가 히트시킨 ‘빗속을 둘이서’ 등 서정성 짙은 곡들도 그의 오선지에서 탄생했다. 김정호는 아주 강렬한 인상의 뮤지션이다. 갓 입학한 초등학생 시절, 두 눈을 지그시 감고 ‘하얀 나비’를 부르던 그를 ‘브라운관’(TV)을 통해 잠깐 본 게 전부였지만, 그 첫인상은 화인(火印)처럼 지워지지 않는 기억으로 남았다. 아마 당대를 살아낸 이들 가운데 그의 음악적 문신이 새겨진 이들이 꽤 많을 것이다. 그는 진정한 의미의 1세대 싱어송라이터였다. 얼추 60곡에 달하는 자신의 노래 대부분을 스스로 만들었다. 록에 국악을 접목해 혁신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서태지의 ‘하여가’(1993)류의 노래를 이미 20여년 전에 만들어 내고 있었다. ‘천재 뮤지션’이란 상찬이 과하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다.다만 그를 포크의 범주에만 묶어 두기는 어려워 보인다. 몇몇 음악계 인사들은 “그의 음악이 동시대의 통기타 음악을 주도한 김민기의 음악세계와 달랐고 한대수나 송창식, 윤형주 등 포크 스타들의 지향점과도 달랐다”고 했다. 단지 그가 활동하던 시기가 포크의 시대였을 뿐이란 거다. 그의 음악 밑바닥엔 당시를 살아냈던 세대들의 서글픈 달관, 정한 같은 것이 깔려 있다. 그는 이를 아리랑과 국악에 가까운 음조로 풀어냈다. 포크의 신고전주의라 할까. 시인이자 문화비평가인 천세진은 그를 “미국 포크의 주류에서 벗어나 독자적으로 한국 포크의 장을 연 한국적 포크의 창시자”라고 했다. 김정호가 활동하던 1970년대 당시 대중가요 시장은 트로트와 포크가 양분하고 있었다. 어른들은 트로트, 학생 등 젊은이들은 포크였다. 그런데 김정호의 노래는 달랐다. 포크 팬들은 물론 어른들의 감성까지 휘어잡았다. 김정호 헌정앨범을 기획, 제작한 최규성 음악평론가는 “그의 노래는 학생층만 선호했던 포크 음악을 온 국민이 공감하도록 대중화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정호가 태어난 곳은 북구 북동이다. 그는 생가와 인접한 수창초등학교를 2학년까지 다닌 뒤 서울 교동초등학교로 전학 갔다. 그가 어린 시절에 즐겨 찾았을 공간들은 지금 나라를 대표하는 명소가 됐다. 그의 발자취를 따르다 보면 광주 금남로와 5·18민주광장, 담양 메타세쿼이아 숲길 등이 튀어나온다. 광주시는 김정호가 남긴 문화자산을 도심 재생에 활용하겠다는 생각이다. ‘김정호 거리’에서 대인시장~예술의 거리~5·18민주광장~아시아문화전당을 거쳐 무등산까지 연결하는 문화벨트를 조성한다는 것이다. 수창초등학교와 북동성당 뒤 생가터 등으로 이어지는 1.3㎞를 ‘김정호 거리’로 조성한 건 그의 일환이다.‘김정호 거리’는 수창초등학교 뒤 담벼락에 붙어 있다. 정확히는 그의 동상과 조형물들이 조성된 ‘김정호 동산’과 ‘김정호 거리’가 합쳐진 공간이다. 김정호 동산은 작다. ‘중앙동산’이란 곳에 옹색하게 세들어 있는 모양새다. 곤궁했던 그의 삶과 판박이다. 동산 가운데엔 그의 동상이 있다. 다리를 꼬고 앉아 기타를 연주하는 모습이다. 동상 주변엔 다양한 형태의 나비 모형과 ‘하얀 나비’ 악보로 만든 조형물, 그의 노래가 흘러나오는 음악상자 등이 설치됐다. 그의 생가터가 있는 북동성당 방향의 담벼락엔 다양한 벽화도 그렸다.생가터 바로 앞은 북동성당이다. 어린 김정호가 수시로 드나들었을 법한 공간이다. 지번은 북동 33번지. 분당 33과 3분의1 회전하는 레코드판 속도와 같은 지점에서 멈춘, 그의 33년여의 삶과 닮은 숫자다. 북동성당은 1938년 세워진 광주 최초의 성당이다. 5·18 등 역사의 고비마다 지역의 아픔을 보듬어 온 곳으로 유명하다. 2015년 30년 만에 제자리로 돌아온 5·18 시계탑, 유네스코 기록유산인 ‘5·18 항쟁 관련 기록물’이 보관된 5·18민주화운동기록관(옛 가톨릭센터) 등을 지나면 ‘전일빌딩245’다. 벽면에 5·18 당시 총탄 흔적이 245개 남아 있다는 건물이다. 지금은 복합문화공간으로 변모했다. 건물 옥상은 전망대 ‘전일마루’다. 옛 전남도청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등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압도적인 건물 규모가 인상적인 곳이다. 지면 아래에 세워진 것도 독특하다. 건물 안팎에서 열리는 전시 등도 볼만하지만, 건물만 둘러봐도 서너 시간은 훌쩍 지난다. 외부 시설이긴 해도 밤 10시까지만 출입할 수 있다.김정호 ‘음악의 탯자리’ 담양 광주가 ‘육신의 탯자리’라면 이웃한 담양은 ‘음악의 탯자리’라 해도 틀리지 않을 곳이다. 담양은 김정호의 외가다. 그가 가졌던 외가의 기억에 대해선 알려진 게 거의 없지만, 그의 음악적 바탕이 외가에서 생성된 건 분명해 보인다. 그의 외할아버지는 현대 판소리계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명창 박동실이다. 이날치 등을 거쳐 내려온 남도 서편제의 법통을 고스란히 이어받았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김정호와 각별한 친분을 유지했던 가수 하남석은 “(김)정호가 평소 어린 시절 이야기는 거의 안했는데, 자신의 외할아버지만큼은 ‘국악계 최초의 싱어송라이터’라고 불렀다”며 “우리나라 국악의 혼은 담양에 있다는 말도 했다”고 전했다. 어릴 때 접했던 외가의 음악적 분위기가 그의 음악 세계 형성에 깊은 영향을 줬다는 의미일 터다. 어머니 박숙자(한국콘텐츠진흥원 자료에는 박희숙이라 표기돼 있다) 역시 담양을 대표하는 소리꾼 중 한 명이다. 그가 이청준의 소설을 영화화한 ‘서편제’의 주인공인 ‘송화’의 실제 모델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모도 명창이었고, 외가 쪽 아저씨 뻘인 박종선은 아쟁 산조를 체계화한 명인이다. 평소 “외가의 DNA가 나의 음악적 토양이었다”고 했다던 김정호의 말 이면엔 이런 배경이 깔려 있다.국악에 대한 그의 관심이 잘 녹아든 노래 중 하나는 ‘하얀 나비’다. 그는 이 노래를 통틀어 도레미솔라 다섯 음계만 썼다고 한다. 우리 가락에 보편적으로 등장하는 ‘궁상각치우’와 같은 음계다. 그가 의도했던 건지, 자신이 생전에 말했던 것처럼 “여지껏 음미했던 나만의 그 적은 테두리”가 무의식적으로 발현된 것인지에 대해선 전문가들 사이에서 의견이 엇갈린다. 분명한 건 정통 국악에서 보면 장르의 변질일 수 있지만 대중음악계에서 보면 자생적인 새 음악의 탄생이었다는 것이다. 담양 메타세쿼이아길에 김정호 노래비가 세워진 건 이런 사연들 때문이다. 노래비는 2014년 완공됐다. 호남기후변화체험관 옆, 일부러 찾지 않으면 쉬 눈에 띄지 않는 위치에 서 있다. 담양 군민들이 앞장 섰고, 유족들과 가수 하남석, 이필원, 백순진, 임창제, 홍민, 채은옥, 소리새 등 김정호와 인연이 깊은 가수들이 노래비 조성에 참여했다. 노래비 가운데엔 그의 동상이 앉아 있다. 광주에서처럼 다리를 꼬고 통기타를 치는 모습이다. 각진 턱 탓에 더 차갑게 느껴지는 입에선 금방이라도 ‘하얀 나비’ 노랫말이 울려나올 듯하다. ‘음 생각을 말아요 지나간 일들은/ 음 그리워 말아요 떠나갈 님인데/ 꽃잎은 시들어요 슬퍼하지 말아요/ 때가 되면 다시 필 걸 서러워 말아요 음’ 광주의 ‘김정호 거리’는 아직 썰렁하다. 대중문화가 ‘과거의 시간’에 호의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오래 전 고인이 된 가수를 ‘현재의 무대’로 불러오는 건 더더욱 쉽지 않을 터다. 담양 메타세쿼이아길의 김정호 노래비도 상황은 비슷하다. 한 가수를 추모하는 공간을 조성하는 건 예산만으로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그 공간을 완성하는 건 시민들의 발걸음이다. 여럿의 온기가 모여야 추모 공간이 따스해지고, 주변에도 온기를 나눠줄 텐데 아직은 갈길이 멀어 보인다. 남도의 혼을 가진 가수를 남도 스스로 너무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거다. 추모사업 추진 과정에서 유족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내지도 못했던 듯하다. 이제 김정호도, 그의 첫사랑이던 아내도 2019년에 가고 없다. 두 딸만 남았다. 원인이 무엇이었든, 앞으로 진행되는 사업들에선 유족들의 참여가 꼭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가요계의 동참을 이끌어내는 것도 절실하다. 평소 김정호와 친분이 있었던 가요계 인사들은 ‘김정호 거리’에 대해 적잖이 서운한 감정이 쌓여 있는 듯하다. 조성 과정에서 받은 소외감 때문이지 싶다. 지방자치단체와 주민들이 주도적으로 ‘김정호 거리’ 사업을 이끌어가는 것은 당연하지만, 가요계 선후배 동료들의 참여는 활성화에 필수 자양분이다. 최규성 평론가는 “배호, 김광석 등과 달리 김정호는 팬덤이 두텁지 않은 편”이라며 “독특한 그의 음악세계가 후대에 이어지고 ‘김정호 거리’가 활성화 되려면 주민뿐 아니라 가요계 선후배들이 참여하는 (전국적인 규모의) 가요제를 만드는 게 필수”라고 충고했다. 아, 가수 하남석 소식 하나 더. 그가 최근 14집 앨범을 새로 냈다. 무려 8년간 공들인 앨범이다. 정규 앨범 제작을 꺼리는 요즘 풍토에 비춰보면 대단한 모험이 아닐 수 없다. 앨범 제목은 ‘황혼의 향기’다. 신곡 10곡에 자신의 히트곡 ‘밤에 떠난 여인’의 리메이크 버전 등 총 11곡을 담았다. 신곡은 모두 자작곡이다. 그는 “비정규직 노동자였던 고 김용균을 추모하는 ‘천화’ 등 사회성 짙은 노래도 담겨 있다”며 은근하게 자부심을 드러냈다. 글 사진 광주·담양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1초 빠른 여자 1초 느린 남자… 시간을 멈추면 사랑이 보인다

    1초 빠른 여자 1초 느린 남자… 시간을 멈추면 사랑이 보인다

    14일 개봉하는 대만 영화 ‘마이 미씽 발렌타인’(2020)은 기다리던 데이트를 앞두고 감쪽같이 사라진 밸런타인데이를 찾아 나선 여성과 비밀의 열쇠를 쥔 남성의 사랑을 다룬 로맨틱 코미디다. 단지 달콤한 사랑을 즐기는 전형적 ‘로코’에 그치지 않고, 시간에 대한 참신한 상상을 바탕으로 인생에서 잊어버린 소중한 것을 상기시키는 여운을 남긴다. ●엇갈리는 시간 속 치밀한 구성… 기존 로코와 차별 우체국에서 일하는 샤오치(리페이위 분)는 남들보다 모든 게 1초가 빠른 여자다. 샤오치는 사랑도 자신의 눈앞에서 빨리 지나가 버린 게 아닌가 생각하지만, 어느 날 공원에서 만난 ‘훈남’ 류원썬(저우췬다 분)과 사랑에 빠진다. 류원썬과 밸런타인데이 데이트 약속을 잡은 샤오치는 당일 아침 “어제가 밸런타인데이였다”는 말을 듣고 황당해한다. 하루를 통째로 잃은 샤오치는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고, 이 시점에서 주인공은 타이(류취안팅 분)로 바뀐다. 버스 운전기사인 타이는 샤오치와 대조적으로 모든 것이 1초 느린 남자다. 운전 도중 우연히 학창 시절 첫사랑이던 샤오치를 발견한다. 그러던 중 밸런타인데이 아침에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이 멈춰버리는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지고, 그는 샤오치와의 특별한 비밀을 지니게 된다. ●중화권 3대 영화제 금마장 5개 부문 석권 천위쉰 감독이 연출은 맡은 이 영화는 중화권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제57회 금마장에서 장편영화상, 감독상 등 주요 5개 부문을 석권했다. 엇갈리는 시간 안에 두 주인공을 배치하면서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시차 로맨스’로 기존 로코와 차별점을 뒀다. 남들보다 빠른 샤오치가 하루를 통째로 잃어버리고, 남들보다 느렸던 타이가 24시간을 벌게 된다는 설정은 인생은 공평하다는 메시지를 주는 듯하다. 다른 속도로 인생을 살아오던 남녀 캐릭터를 엮는 이야기 구성이 치밀하면서도 아기자기하다. 무엇보다 아무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여성이 자신이 사랑받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여정을 애틋하게 표현해 관객의 몰입도를 높였다.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한 한국인들에게도 현재 자신의 삶에서 잊고 지낸 것은 없는지 성찰할 기회를 준다. ●1980~90년대 향수 부르는 아날로그적 요소 눈길 영화 속 찰나의 순간을 담아내는 필름 카메라, 오래된 라디오, 시골 우체국 사서함, 사서함 속 첫사랑의 러브레터 등 아날로그적 요소들은 1980~1990년대의 아련한 향수와 추억을 일깨워 준다. 야자수가 아름다운 대만 농어촌의 목가적 풍경은 여행 본능을 자극한다. 다만 타이가 잊지 못할 첫사랑을 해변으로 데려가 함께 한 시간을 보여 주는 장면은 개인의 욕심 때문에 상대에게 원치 않는 추억을 만드는 게 아닌가, 다소 작위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카메라 속에 둘만의 추억을 담는 장면은 영화 ‘타이타닉’(1997)의 선상 위 포옹을 패러디한 장면으로 여겨지면서도 식상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상영시간 119분. 12세 관람가.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영화리뷰] 빠른여자-느린남자의 ‘시차 로맨스’...‘마이 미씽 발렌타인’

    [영화리뷰] 빠른여자-느린남자의 ‘시차 로맨스’...‘마이 미씽 발렌타인’

    14일 개봉하는 대만 영화 ‘마이 미씽 발렌타인’(2020)은 기다리던 데이트를 앞두고 감쪽같이 사라진 밸런타인데이를 찾아 나선 여성과 비밀의 열쇠를 쥔 남성의 사랑을 다룬 로맨틱 코미디다. 단지 달콤한 사랑을 즐기는 전형적 ‘로코’에 그치지 않고, 시간에 대한 참신한 상상을 바탕으로 인생에서 잊어버린 소중한 것을 상기시키는 여운을 남긴다. 우체국에서 일하는 샤오치(리페이위 분)는 남들보다 모든 게 1초가 빠른 여자다. 샤오치는 사랑도 자신의 눈앞에서 빨리 지나가 버린 게 아닌가 생각하지만, 어느 날 공원에서 만난 ‘훈남’ 류원썬(저우췬다 분)과 사랑에 빠진다. 류원썬과 밸런타인데이 데이트 약속을 잡은 샤오치는 당일 아침 “어제가 밸런타인데이였다”는 말을 듣고 황당해한다. 하루를 통째로 잃은 샤오치는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고, 이 시점에서 주인공은 타이(류치안팅 분)로 바뀐다. 버스 운전기사인 타이는 샤오치와 대조적으로 모든 것이 1초 느린 남자다. 운전 도중 우연히 학창 시절 첫사랑이던 샤오치를 발견한다. 그러던 중 밸런타인데이 아침에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이 멈춰버리는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지고, 그는 샤오치와의 특별한 비밀을 지니게 된다.천위쉰 감독이 연출은 맡은 이 영화는 중화권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제57회 금마장에서 장편영화상, 감독상 등 주요 5개 부문을 석권했다. 엇갈리는 시간 안에 두 주인공을 배치하면서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시차 로맨스’로 기존 로코와 차별점을 뒀다. 남들보다 빠른 샤오치가 하루를 통째로 잃어버리고, 남들보다 느렸던 타이가 24시간을 벌게 된다는 설정은 인생은 공평하다는 메시지를 주는 듯하다. 다른 속도로 인생을 살아오던 남녀 캐릭터를 엮는 이야기 구성이 치밀하면서도 아기자기하다. 무엇보다 아무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여성이 자신이 사랑받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여정을 애틋하게 표현해 관객의 몰입도를 높였다.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한 한국인들에게도 현재 자신의 삶에서 잊고 지낸 것은 없는지 성찰할 기회를 준다. 영화 속 찰나의 순간을 담아내는 필름 카메라, 오래된 라디오, 시골 우체국 사서함, 사서함 속 첫사랑의 러브레터 등 아날로그적 요소들은 1980~1990년대의 아련한 향수와 추억을 일깨워 준다. 야자수가 아름다운 대만 농어촌의 목가적 풍경은 여행 본능을 자극한다. 다만 타이가 잊지 못할 첫사랑을 해변으로 데려가 함께 한 시간을 보여 주는 장면은 개인의 욕심 때문에 상대에게 원치 않는 추억을 만드는 게 아닌가, 다소 작위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카메라 속에 둘만의 추억을 담는 장면은 영화 ‘타이타닉’(1997)의 선상 위 포옹을 패러디한 장면으로 여겨지면서도 식상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상영시간 119분. 12세 관람가.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연기의 소중함 눈뜨게 해준건 스무살 슬럼프

    연기의 소중함 눈뜨게 해준건 스무살 슬럼프

    성인 캐릭터 한계 느껴 한때 고비‘펜트하우스’ ‘모단걸’ 연기로 희열 “악행 덜 밉게 통통튀게 표현해요”“스무 살에 고비가 한 번 왔었어요. 보여 드리고 싶은 모습은 많은데, 캐릭터에 한계가 있는 것 같아서요.” 지난 6일 화상으로 만난 배우 진지희는 담담하게 자신의 슬럼프를 털어놨다. 2003년 네 살 나이에 드라마 ‘노란 손수건’으로 데뷔한 후 ‘연애시대’(2006) 조은솔,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2009~2010)의 해리로 활약한 그였기에 다소 의외의 답이었다. ‘잘 자란 아역’으로 불리지만, 성인 연기자로 전환하는 시기 그에게도 고민이 찾아왔다. 17년 동안 거의 쉬지 않고 작품을 해오면서도 ‘어떻게 하면 여러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왜 어렵고 잘 안 될까’ 하면서 의심하고 좌절했다. 속앓이를 하던 그에게 지난해는 ‘고마운’ 한 해였다. KBS 드라마스페셜 ‘모단걸’과 최근 종영한 SBS 드라마 ‘펜트하우스’에 출연하면서 다시 연기의 소중함을 깨닫게 됐기 때문이다. 진지희는 “완전히 다른 두 캐릭터를 하면서 난 연기가 아니면 안 되겠구나, 이만큼 희열을 주는 것은 없구나 느꼈다”면서 “미래를 기대하며 긍정적인 자세로 노력하는 저로 돌아왔다”며 웃었다.1930년대를 배경으로 한 ‘모단걸’에서 진지희는 양반 가문 여성으로 학교에 입학한 뒤 선생님에게 운명적인 첫사랑을 느끼는 경성의 신여성을 소화했다. 반면 ‘펜트하우스’에서는 실력보다 욕심이 큰 성악 전공 고등학생이자 부잣집 딸 제니로 ‘밉상’ 연기를 보여줬다. ‘펜트하우스’의 제니는 다른 아이들과 로나(김현수 분)를 괴롭히지만 마지막회에 그에게 샌드위치를 건네며 미안한 마음을 표현한다. 어찌 보면 “빵꾸똥꾸”라고 소리를 지르면서도 뒤로는 신애에게 잘해주던 해리와 닮았다. 진지희는 “제니는 악행을 하지만 단순하고 밝은 면도 있어서 밉지만은 않게 보이고 싶었다”면서 “대사를 통통 튀게 처리하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매력을 많이 표현하려 애썼다”고 설명했다.높은 시청률을 기록했지만 ‘펜트하우스’는 집단 괴롭힘 등 과도한 폭력 묘사로 거센 비판을 받기도 했다. 진지희는 이에 관해 “설아(조수민 분)를 봉고차에 감금한 건 아이들의 악랄함을 한 번에 보여주는 장면이었다고 생각한다”며 “시청자 입장에서 저도 늘 놀라고 ‘부들부들’하면서 드라마를 시청했다”고 돌이켰다. 오는 2월 방송될 시즌2에서는 더 성숙한 제니가 나올 것 같다는 예상도 덧붙였다. 다시 열정을 확인한 만큼 그는 올해 더 다양한 작품에 도전하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걸크러시’나 시크한 매력을 뽐내는 작품들, 수사물 같은 장르물도 해보고 싶어요. 로맨스물도 잘할 수 있고요. 흔들리지 않고 끈기 있게 연기하며 한 단계 성장하고 싶습니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 블랙(ABOUT THE DARK)/우솔미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 블랙(ABOUT THE DARK)/우솔미

    등장인물 수용 29세/ 벽을 허무는 집주인 이리 30세/벽을 허무는 집주인의 친구옥형(노파) 88세/벽이 허물어지는 집 아랫집 거주자 때2017년 어느 가을 곳수용의 집 무대 벽이 있다. 벽의 좁은 면이 관객을 향하고 있다. 벽을 가운데 두고 하수로 붉은 조명, 상수로는 햇살 같은 밝은 조명. 붉은 조명은 빌라 주민들이 삼삼오오 돈을 모아 만든 ‘특수학교 설립 반대’ 현수막의 붉은 천에 빛이 투과된 것이다. 무대 뒤쪽, 현관문이 벽과 같은 방향으로 있고 문과 이어지는 계단은 불투명한 박스와 닿는다. 박스는 사람 하나 충분히 들어갈 수 있는 크기로 옥형의 집이다. 옥형은 수용의 집 아래층에 사는 노파이지만, 우리가 만드는 것이 무대이니만큼 상상력을 발휘하여 수용의 집보다 위에 있다고 약속하자. 공업용 마스크를 낀 수용 하수 등장. 낡은 후드와 트레이닝 바지 차림의 수용은 어딘가 무기력해 보이지만 분무기와 김장비닐을 든 손에는 비장함이 은근하게 뿜어져 나온다. 수용, 비닐을 바닥에 깐다. 아주 꼼꼼히. 그사이 이리, 상수 등장. 붉은 천을 허리와 목에 두르고 양손에 커다란 망치를 하나씩 끌고 온다. 옆이 트인 롱스커트 사이로 보이는 다리와 팔뚝의 타투들과 붉은 천, 망치의 조화는 길거리 행위 예술가를 연상시킨다. 이리 (붉은 방을 둘러보며 기운을 한껏 느껴본다) 느껴져. 느껴져, 느껴져! 느낌이 팍! 온다, 와. 수용 … 이리 딱이야, 딱. 아주 먹고 죽기 딱이야. (손을 까딱거리며 허공에서 술잔을 넘긴다) 뭐랄까, 아주 옥보단스러워. 수용 일조권을 침해받는 참혹한 현장이야. 전혀 옥보단스럽지 않아. 이리 하루만 빌려줘라. 네가 우리 집에 가서 자. 수용 얼마 줄 건데. 이리 얘 봐라. 무슨 돈을 달래. 서울 살더니 양아치 다 됐다. 수용 나 원래 서울에서 태어났는데? 이리 서울시장은 뿌듯하겠어. 서울시민이 이렇게 우정보다 돈이 먼저인 양아치라서. 수용 (가만히 생각에 빠져든다) 뿌듯하기보다는 머리 아프지 않을까. 네 말대로 서울에 살면 돈만 밝히는 양아치가 되면, 서울시민은 곧 양아치란 말인데. 이 많은 양아치들을 다 관리하려면 시장은 최고의 양아치가 해야겠네. 이리 하여튼. 또 이상하게 진지해지지. 으, 진지충. 헛소리는 됐고, 하루만 빌려줘. 수용 (마스크를 하나 주며) 네 룸메 코 골아서 싫어. 이리 오랜만에 나비랑 오붓하게 시간 좀 보내 보자. 수용 나비? 이리 말 안 했나. 애인. 뉴 원. 수용 그새? 울고불고할 땐 언제고. 체력도 좋다. 이리 능력이 좋은 거지. 수용, 비닐을 다 깔고 일어서는데 비틀 이리 (곰곰이) 체력도 좋긴 해야겠다. 하여튼, 진짜 진지하게 말하는 거야. 하루만 빌려줘. 어? 알겠지? 수용 너 오늘 우리 집에 왜 왔어? 이리 네가 오라며 새끼야. 수용 내가 왜 오라고 했어? 이리 하, 진짜 장난치나. (가만 돌이켜보다 손에 망치를 보고) 아… 벽…! 수용 그래, 오늘이면 옥보단도 안녕인데. 뭘 자꾸 빌려 달래. 수용, 마스크를 끼고 벽 앞에 선다. 이리 진짜 하게? 수용, 이리에게 마스크 하나를 주고 망치 하나를 받는다. 심호흡. 수용, 벽을 내리친다. 엄청난 진동과 소음 그리고 뿌옇게 이는 먼지. 삭막함이 감돈다. 수용, 다시 벽을 내리치려는데 이리 말린다. 이리 야, 잠깐만. 수용 왜? 이리 아니, 아랫집에서 올라오겠어. 진동이 장난 아닌데? 수용 아랫집만 올라 오냐. 엄청 커다란 직사각형 박스 하나에 벽을 댄 게 다인데. 다 쫓아오겠지. 이리 그냥 저번처럼 해. (몸에 두르고 있던 붉은 천을 흔들며) 두 번 했는데 세 번은 쉽지. 수용 세 번짼 수선비를 청구하겠대. 이리 얼만데, 얼마면 되는데. 누나가 해결해 줄게. 멀쩡한 벽을 허무는 것보다는 수선비가 낫지 않냐. 수용 빛 없이 사는 삶을 네가 알아? 숲세권 남향에 사는 네가 빛이 없어서 사람이 바싹바싹 말라가는 기분을 알 리가 없지. 머리랑 마음이 건조해지다 못해 바스러지는 기분이야. 이리 빛이 많아야 바싹바싹 마르지 없는데 왜 말라. 그냥 문을 열어 놓고 살던가. 수용 문이라는 건, 열고 닫으라고 있는 거야. 그게 문의 역할이지. 한 번 열면 언젠간 닫아야 제 역할을 다하는 거라고. 닫히지 않는 문은 문이 아니지. 그럴 바엔 없는 게 나아. 이리 그럼 창문을 만들자. 수용 (벽을 치며) 만들고 있잖아. 엄청 커다란. 창틀도 없고 유리판도 필요 없는 실용적인 창문. 이리 극단적인 놈. 수용 뭐든 확실한 게 좋잖아. 수용, 다시 벽을 허물기 시작 이리 어떻게 세상이 모 아니면 도, 흑 아니면 백으로 굴러가. 너 그거 강박이야. 괜히 바짝바짝 마르는 게 아니라고. 그래도 뭐 마른 장작이 잘 탄다더라. (쿵) 수용 이렇게 살다 죽겠지 뭐. 이리 무모한 놈. (쿵) 수용 생각해 봤는데. 아무래도 나는 자살할 것 같아. 이리 또 데드타임! 웬일로 그냥 넘어가나 했다. 수용 데드타임? 이리 그래, 너 죽는다는 소리 하는 거. 수용 왜 사람들은 이름 짓길 좋아할까. 이리 언젠 병에 걸려 죽을 것 같다며. 수용 엄밀히 말하면 병이긴 하지. 내 죽음의 원인은 내 안에 우울이니까. 있지,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사람이 세상에 있대. 말이 돼?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세상을 그렇게 살아질 수가 있는 건가. 이리 오늘은 아니지? 수용 뭐가? 이리 데드타임. 수용 오늘은 벽을 허물어야지. 그때, 관리실 방송. 수용과 이리, 방송이 나오는 천장을 가만 본다. 방송 아아, 관리실에서 알려드립니다. 잠시 후 2시부터 특수학교 설립 반대 관련 7차 회의가 있을 예정입니다. 회의 후 시위가 바로 시작되니 참석을 희망하시는 모든 주민들은 2시, 아니 정정하겠습니다. 1시 50분까지 늦지 않게 관리실로…. 수용 다 저기 가느라 벽이 무너지는지, 빌라가 무너지는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신경도 안 써. 그러니까 오늘 끝내야 돼. 수용, 다시 망치질을 시작하고 이리, 소음과 먼지 속에서 분무기로 물을 뿌려 먼지를 잠재운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이리, 수용의 얼굴에 물을 뿌린다. 수용 야! 이리 바싹바싹 마른다길래. 그때, 무대에 노파 등장. 노파가 있는 곳은 수용과 이리가 있는 공간과 다른 공간. 지팡이를 짚고 느린 걸음으로 나오는 노파는 명절에 자식이 사준 듯한 빳빳한 꽃무늬 재킷에 펑퍼짐한 배바지를 입고 낡은 크로스백을 맨 채 천천히, 아주 천천히 무대를 둘러 계단으로 향한다. 이리 (창밖을 보다) 야, 근데 저기에 아랫집 할머니는 없는 것 같다? 수용 네가 아랫집을 알아? 이리 오다가다 몇 번. 그 할머니가 좀 인상적이잖아. 정제되지 않은 순수함이 있다고 해야 되나? 직설적이면서 약간 자기 방어적인 느낌이 물씬 나는 게 꽤 녹록지 않은 삶을 살았겠다 싶지. 괜히 과거를 상상하게 만들잖아. 수용 순수는 무슨. 그냥 괴팍한 할머니야. 아는 것도 없으면서 아는 척만 하는 딱 옛날 사람. 이리 와우. 노인 혐오야? 수용 무슨 내가 그런 몰상식한 사람이야? 이건 정당한 혐오야. 이리 (웃음이 터진다) 세상에 정당한 혐오도 있어? 수용, 상의를 걷어 올리자 시퍼런 멍이 배에 크게 있다. 이리 그래, 언젠가 너 맞을 것 같더라. 수용 야. 이리 누구야, 누가 이랬어. 남의 집 귀한 자식을…. 왜 맞고 다니냐 너는, 속상하게. 수용 정제되지 않은 순수함을 갖고 계신 분. 이리 할머니한테? 이게 할머니가 만든 멍이라고? 수용 어. 이리 역시 호기심을 자극한다니까. 아니 그렇잖아. 지팡이에 겨우 의지해서 걷는 할머니가… 또 네가 싹수없게 굴었지. 수용 내 싸가지도 가릴 건 가려. 이리 근데 진짜 왜 그런 건데? 수용 이름 석 자 부탁한 대가야. 이리, 한쪽에 놓인 빈 서명지를 들어 본다. 이리 자가인가? 수용 뭐? 이리 아니, 그 정도로 반대하는 거 보면. 강경한 표현이잖아. 수용 강경한 정도가 아니라 말 그대로 폭력적이지. 이리 너무 텅 비었다. 나라도 서명 해줄까? 학교 설립 찬성해. 수용 너는 우리 구민이 아니라서 소용없어. 빌라 주민들의 소란스러운 소리. 장애학교 반대 시위가 시작됐다. 이리 서명이라는 게 굉장히 순수한 방식이야. 동시에 직설적이기도 해. 굉장히 너답다. 수용 내가 순수하고 직설적이라고? 이리 나 이사 올까? 그럼 나도 지역구민 되잖아. 수용 됐어. 이리 나도 해본 말이다 뭐. 수용 불편과 불만을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 행동을 해야 해소되는 건 맞지. 그게 옳은 방향이야. 하지만… 그 사람들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지만, 과연 옳은 방향인가 의문을 던질 수는 있잖아. 저 사람들 제대로 가고 있는 걸까. 어떻게 확신하고 있는 거지. 저 확신은 대체 어디서 오는 건데. 나는 그게 무지라고 생각해. 그사이, 노파 집 앞에 도착해 가방을 뒤지고 깜빡깜빡하는 현관 비밀번호를 적어 놓은 노트를 찾는다. 이옥형이라 커다랗게 적힌 노트를 꺼내는데 노트 사이에서 날이 시퍼런 과도가 뚝! 떨어진다. 떨어진 건 작은 과도지만 운석이 떨어진 듯한 소리와 진동이 무대를 흔든다. 수용과 이리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아래로 향하고 잠시 사이. 노파가 과도를 주워 넣는 그사이, 무대에 흐르는 묘한 긴장감. 노파 천천히 과도를 집어넣고 비밀번호를 확인하곤 집으로 들어간다. 밖에 소리가 무대를 환기하고 이리 (창밖을 보곤) 열정적이네. 그래도 생각해 보면 너무 비난만 할 수 없는 문제이긴 해. (수용의 시선을 느끼고) 야, 레이저 나오겠다. 분명히 말하는데 옹호하는 거 아니야. 그냥 공감능력을 지닌 인간으로서 감정이입을 해보자는 거지. 사실 그렇잖아. 누가 좋아해, 동네에 특수학교가 들어서면 집값이 떨어진다는 말도 있고. 수용 부동산이 떨어진다는 실질적인 증거는 어디에도 없어. 집값이 떨어진다는 가설은 무지에서 시작된 삐뚤어진 믿음이야. 수용, 망치질을 시작한다. 이리 그래 좋아, 뭐가 됐든. 그 믿음이 아틀라스처럼 세상을 지탱하고 있잖아. 저 자리가 원래 학교 부지란 이유 말고 다른 이유는 뭔데. 학군 빵빵한 동네가 지하철로 네 정거장만 가면 되잖아. 그렇게 멀지도 않아. 공사부지 맞은편은 곱창에 포차, 막걸리 온갖 술집이 줄 서 있더만. 워싱턴 노래방 간판이 애들 하굣길을 밝혀 주겠지. 이 동네보다는 그 동네가 백 번 나아. 안 그래? 수용 …. 이리 기시감 들지 않아? 수용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이리 한국전쟁 이후 국가적으로 밀고 있는 꽤 전통적인 방식인데. 그놈의 낙수효과야말로 삐뚤어진 믿음 아니야? 이게 진짜 먹힐 거라고 생각하는 뿌리 깊은 믿음. 네 말대로 무지에서 비롯된 거지. 될 놈만 건지고 나머지는 버리겠다는 걸 그럴듯하게 이름 붙여서 포장을 해요. 항상 그럴듯해 보이는 게 사람 눈 돌아가게 만들잖아. 난 그놈의 낙수효과가 대한민국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해. 수용 가부장제의 근본이라 생각하기도 하고. 이리 야 너. 짜식, 평소에 내 말을 아주 허투루 듣는 건 아니었구나. 수용 그럼. 귀는 문이 아니잖아. 닫히질 않아. 이리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수용 가끔은 닫혔으면 좋겠지만…. 이리 삐뚤어진 세상을 바로잡는 건 중요해. 근데 이 망할 놈의 세상은 밑 빠진 독이라서 어딘가는 새게 되어 있잖아. 수용 왜 날 봐. 계속해. 이리 성장이 제1의 명분이 되는 시대는 흘러가고 있어. 이젠 희생의 이유도 살펴봐야 할 때가 왔다는 거지. 최소한의 납득과 보상은 있어야 한다는 말이야. 수용 애들만으로는 부족한 거야? 이리 뭐가? 수용 아이들이 배울 곳이 필요하다. 이걸로는 최소한의 납득과 보상으로 부족해? 이리 무엇보다 중요하지 수용 꼭 물질적인 보상이 아니더라도 인류애적인 충만함을, 정신적인 보상을 얻을 수도 있어. 안 그래? 이리 …. 수용 왜 아무 말도 안 해? 이리 것도 능력이야. 한 번에 양쪽을. 수용 양쪽을 뭐. 이리 아냐. (쿵) 이리 하여튼 지금은 어떤 이유도 저 사람들한텐 먹히지 않을 수도 있어. (쿵) 이리 (밖을 보며) 한껏 쫄아 있으니까. 나는 저 사람들의 확신이 무지에서 나온 게 아니라 이번에도 버려질 거란 공포에서 나왔다고 봐. (쿵) 수용 시끄럽지? 수용, 음악을 튼다. life is killing - type O negative 수용 소음에는 락이지. 소음은 음악소리에 묻히고 뿌연 먼지 사이로 둘, 망치질. 벽을 타고 온 진동이 노파의 아크릴 박스를 사정없이 흔든다. 노파, 공포에 질린 비명이 락에 묻히고 노파의 사정과는 별개로 망치질을 하는 수용과 이리의 모습은 오락실에서 게임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등록금 인상에 반대 시위를 하는 프랑스 청년들의 모습과 겹쳐 보이기도 하고 어느 삭막한 공사장의 인부 같아 보이기도 하다. 일순간 음악이 멈추고 노파가 있는 불투명 박스에 조명 노파 아주 발광을 허네! 수용, 노래를 멈춘다. 이리 왜? 수용 뭐라고 하지 않았어? 이리 아니. 수용 (귀를 파며) 아닌가. 이리 살살해, 스윙에 감정이 실렸다. 누구 생각해? 수용 여럿 (쾅) 생각하지. 이리, 분무기로 먼지를 잠재운다. 수용 사람들이 타격감에서 스트레스를 푼다고 하잖아. 복싱이나 야구공 치는 것처럼. 아무래도 난 때리고 (쾅) 던지고 (쾅) 치고 박으면서 (쾅) 스트레스 푸는 거엔, 적합한 사람이 아닌 것 같아. 수용, 손목을 턴다. 이리 (덥다. 옷을 펄럭) 너도 참, 손목 아프단 말을 장황하게 한다. 수용 (보곤) 옷 빌려줄까? 이리 아니, 됐어. 수용 먼지 엄청 붙었네. 이리 블랙이 적나라하지. 수용 하나 가져다줄게. 이리 아냐, 됐어. 수용 아냐 가져다줄게. 이리 아니 괜찮아. 수용 불편해 보여. 가져다줄게. 이리 진짜 괜찮다고. 수용 나도 진짜 괜찮아. 이리 아니. 괜찮다니까? 수용 왜 화를 내. 이리 화를 낸 게 아니라. 됐다고 했는데 못 알아들으니까. 크게 얘기 해준 거지. 수용 아니 그게 아니라 나는. 이리 남자들 종족 특성이야? 왜 노를 못 알아듣지? 강요하지 마. 수용 내가 언제 강요를 했다고 그래. 이리 방금. 수용 그냥 물어본 거잖아. 불편해 보이니까. 이리 필요 없다고 분명히 말했잖아. 일곱 번째로 말해줄게. 됐어. 필요 없어. 난 이 옷이 좋아. 불편하든 더러워지든 이미 나랑 한몸이라고. 네가 신경 쓸 거 아니란 거지. 알겠어? 수용 그래. 그럼. 이리, 망치질 이리 넌. 매사에 모든 걸 통제해야 속이 시원해? 왜 그래? (쾅) 이리 무지에서 나온 삐뚤어진 믿음? 웃기네. 야, 이름 짓기 좋아하는 건 나보다 네가 더해. 벽을 마구 치며 쏟아낼 대로 쏟아낸 이리, 숨을 고르고 이내 머쓱해진다. 수용 …. 이리 야. 미안하다. 수용 …. 이리 미안하다고. 수용 어. 이리 된 거지? 수용 …. 이리 미안해. 너도 알잖아. 내가 한 번씩 예민해지는 거. 수용 한 번씩이 아니잖아. 항상 예민해. 이리 항상은 아니지. 수용 맞아. 그리고 네가 알아둬야 할 게 있는데, 나도 너 못지않게 예민해. 난 화장실에 앉아서도 생각하는 걸 멈출 수 없어. 잘 때도 먹을 때도 머리가 빙글빙글 돌아서 미쳐버릴 것 같아. 어쩌면 이미 미쳐버린 걸지도 모르지. 차라리 미쳐버렸으면 좋겠다 싶어. 그게 더 확실하잖아. 어중간하게 미쳐 있는 것보단 명백한 환자가 되는 게 낫지. 이리 무슨 그런 말이 있냐. 수용 나는 그렇다고. 정상도 아니고 비정상도 아닌 경계에 서서 가랑이가 찢어질 것 같은 기분을 네가 알아? 이리 알지. 내가 여자 좋아하는 걸 알았을 때 그랬지. 수용 … 말이 나와서 말인데. 어머니한테 커밍아웃 언제 할 거야? 이리 갑자기 그 말이 왜 나와? 확실한 건 네 인생만, 내 인생은 내가 알아서. 수용 말이 나올 만하니까 하는 거야. 성 서방 밥은 잘 먹고 다녀? 불쑥불쑥 연락 올 때마다 무시도 못하고 답장도 못하고 얼마나 난감한 줄 알아? 3년이야. 이사 도와준 대가가 이렇게 부담스럽고 죄책감 드는 건 줄 알았음 도와 달라고도 안 했지. 커밍아웃을 하느냐 마느냐는 네 선택이지만 나까지 죄책감 들게 만들지는 말아 주라. 이리 … 말을 하지 그랬냐. 둘 다 입 꾹 다물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알아. 수용 나는 그렇다 쳐도 너희 어머니는 아니었을걸. 네가 보기에 내가 무모하고 강박적으로 보이겠지만 내가 볼 때 넌 무책임하게 도망만 다니는 걸로 보여. 시간은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아. 그냥 유예시킬 뿐이지. 편한 선택은 그만할 때도 됐잖아? 이리 내가 편하게 사는 것 같아? 수용 최소한 네 멋대로 사는 걸로는 보여. 이리 진짜 멋대로 사는 게 누군데. 세상이 어떻게 모 아니면 도로 돌아가. 불가능한 걸 바라면서 이게 왜 불가능하지 왜 이렇게 안 되지, 사람들이 왜 서명을 안 해 주지. 하루라도 징징거리는 걸 멈추고 저 사람들이 왜 저러는지 궁금해하긴 해봤어? 아니지. 네가 생각할 때 저 사람들은 나쁜 사람이니까. 안 그래? 그렇게 결론지었잖아. 왜? 그게 쉽고 편하니까. 수용 그래! 맞아! 왜냐고? 누구나 배울 권리가 있으니까! 이리 정신적 보상 같은 소리하고 있네! 누가 아니래? 수용 아니라잖아! 그러니까 저러지. 수용과 이리 사이에 침묵이 잠시 흐른다. 이리 내 말 듣긴 했니? 수용 내 귀는 문이 아니니까. 이리 칸트도 너보단 융통성 있을 거야. 알지 칸트? 골방에 틀어박혀서 글만 쓰던 외톨이. 제발 사람 좀 만나. 글로 배우지 말고. 그러다가 너도 청혼 승낙만 7년 고민하는 수가 있어. 결혼해야 하는 이유 354가지,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 350가지 쓰면서. 수용 … 내내 날 그렇게 생각했어? 이리 언제부터 내 생각이 중요했냐. 넌 너 이외의 사람들은 다 멍청하고 덜떨어졌다고 생각하잖아. 수용 내가 언제. 이리 자신을 한 번 돌아봐. 수용 … 그만 가주라. 이리 왜 도와 달라며. 아, 그래서 불렀니? 옛말에 무식한 놈이 힘세다고 이런 일엔 내가 나서야지. 수용 됐어, 가. 네 도움 필요 없어. 이리 정말? 수용 그래. 이리 후회 안 하지? 수용 그래! 정말 진짜로 필요 없어. 이리 그래 그럼! 이리, 돌아갈 채비 하는데 초인종 소리. 수용, 현관으로 가(계단의 문이 아닌 객석을 향해) 손님을 확인하는데 이리 간다 수용, 이리를 잡고 숨을 죽인다. 이리 왜? 문 두드리는 소리 이리 놔. 수용 (속삭이듯) 아랫집. 이리 이런 게 자승자박이란 거다. 이리, 문으로 향하고 수용 어디 가. 이리 가라며. 수용 할머니 가면 가. 이리 벽은 허물면서 저깟 문은 하나 못 여냐. 수용 그게 아니라. 손에 뭐가 있어. 이리 뭐? 수용 몰라. 뾰족하고 날카로운 걸 쥐고 있어. 송곳이나 드라이버 같아. 이리, 현관(객석을 향해)으로 가 보면 커다란 스크린에 할머니의 모습이 뜬다. 모니터로 보이는 노파는 인터폰 렌즈에 왜곡된 모습이다. 괴이하고 위협적으로 느껴진다. 이리 진짜네…. 수용 잘못하다간 오늘 피 보겠어. 이리 피는 무슨. 수용 말했잖아 전형적인 옛날 사람이라고. 이리 나도 난데 너 너무 고정관념으로 뚤뚤 뭉친 거 아니냐. 그냥 할머니야. 우리랑 똑같은 사람이라고. 수용 네가 안 맞아 봐서 그래! 이리 쫄았구만. 수용 … 얼마나 아픈데. 이리, 다시 현관으로 가 동태를 살피곤 이리 안 가시네…. 수용 그냥 없는 척하자. 층간소음에 살인도 난다잖아. 이리 그 난리를 쳤는데 없는 척이 돼? 수용 해보고 말해. 왜 안 해보고 그래? 이리 넌 이상한 데서 긍정적이다? 수용 넌 남 일에만 용기를 내잖아. 이리 그래, 알겠어. 집주인 마음대로 해. 말 그대로 집주인이 주인이니까. 이리, 가방을 대충 던지곤 의자에 털썩 앉는다. 가만 보던 수용은 멀찍이 떨어진 바닥에 앉는다. 이리 왜 바닥에 앉아? 수용 왜. 이리 지금 눈치 주냐. 수용 그건 무슨 피해망상이야. 이리 네가 나중에 또 뭐라고 할까 봐 그러지. 불만 있을 땐 말 안 하고 한참 지나서 말하잖아. 수용 내가 쌓아 두는 게 아니라 네가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거지. 이리 실수가 실순지 어떻게 알아, 말을 안 하는데. 수용 어떻게 몰라? 이리 넌 아니? 수용 당연하지. 내가 네 입장이었으면. 이리 그런 가정은 하지 말자. 넌 내가 아니잖아. 나도 네가 아니고. 수용 상식에 대한 얘기야. 이리 이젠 내가 상식도 없다? 수용 (난감하지만 거짓말을 할 순 없지) 가끔. 이리 너한테 난 대체 뭐냐? 수용 친구. 이리 원래 친구한테 이래? 아님 나한테만 이래? 수용 내가 뭘…. 이리 방금! 수용 조용히 해. 이리 내가 상식이 없다며 아까는 정상 아니라고 하더니 넌 상식도 없고 정상도 아닌 애랑 왜 친구 하냐. 노파 (문 쿵쿵) 안에 없어? 있지? 수용 가끔 그렇다고. 왜 이렇게 발끈해? 나도 가끔은 상식 없이 굴어. 이리 정말 박수를 보낸다. 노파 있네. 문 좀 열어봐, 총각! 이리 저 할머니 말귀 어두운 거 맞아? 별로 크게 말 안 하는데 다 들어. 수용 그래 내가 미안하다. 미안해. 이리 아이고, 엎드려 절 받기다. 수용 그래, 그것도 내가 미안해. 이리 할머니 아니었음 절대 안 했을 말이지. 노파의 문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수용, 무릎을 꿇는다. 이리 뭐하냐? 수용 미안. 이리 일어나…! 수용이 일어나지 않자 이리도 같이 무릎 꿇고 이리 뭐 하자는 거야. 수용 네 방식대로 사과하잖아. 이리 이게 무슨 내 방식이야. 수용 날 감정적으로 굴복시키고 싶어 하잖아. 이리 날 그런 쓰레기로 봤어? 수용 내 사과를 사과로 인정하질 않잖아. 이리 그건 맞는데. 수용 그것 봐. 이리, 노파가 만들어 내는 소음과 수용의 행동에 머리가 터질 듯하다. 이리 나중에 하자. 제자리걸음이야. 차라리 저쪽을 선택할래. 수용, 이리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이리 뭐해…! 수용 가지 마. 이리 왜 이래, 얘가…! 수용 이대로 나갔다가 무슨 일을 당할 줄 알고! 이리 하지 마. 기분 되게 이상해. 두 사람 잠시 실랑이를 벌인다. 그 순간 노파의 문 두드리는 소리가 멈춘다. 두 사람 문을 가만 바라보고 노파, 집 안 소리를 듣기 위해 문에 귀를 대 본다. 이리 봐, 조용해졌어. 수용 안 갈 거지? 이리 어! 수용, 이리를 놓아 준다. 이리, 문으로 향하니 수용은 움찔거리고 이리 안 가! 이리, 문에 귀를 대 본다. 수용 (조심스레) 갔어? 이리 (속삭이며) 몰라. 노파 이봐! 이리, 화들짝 놀라 되돌아온다. 수용 거 봐. 이리 오늘 무슨 날이냐. 미치겠네. 벽하고 말하는 것 같아. 수용 나 말하는 거야? 이리 총체적으로 다. 노파, 문틈에 종이 한 장을 끼워 놓고 돌아간다. 수용 내가 벽이면, 나도 이렇게 부숴버릴 거야? 이리 부수는 건 네 아이디어잖아. 귀찮게 뭐 하러 그래. 나였음 그냥 이사 갔어. 수용 … 지금 절교 선언한 거야? 이리 아니. 뭐래 정말. 지금 벽 얘기하던 거 아니었어? 수용 그래, 벽 얘기하고 있었지. 네가 벽이랑 얘기하는 것 같다며. 이리 아니, 내가 말한 벽은 이 벽이고, 나라면 그냥 이사를 갔을 거라고! 네가 말한 벽은 그러니까 너고 네가 벽이라면 나는 이사를 가는 게 아니라, 그냥 문을 하나 내든가 창문을 하나 뚫든가 어? 뭐가 이렇게 어렵지. 울어? 이리, 적잖이 당황스럽다. (이쯤 노파는 자리를 뜨고) 수용 …. 이리 미안해. 수용 네가 왜 사과하는데? 이리 내가 남자 눈물에 약하잖아. 몰라, 그냥 튀어나왔어. 넌 왜 우는데. 무슨 일 있어? 오늘이 그날은 아니지? 아까 분명히 아니라고 했다? 수용 무슨 날. 이리 데드타임. 수용 아니야. 그냥…. 조기 갱년기 같아. 이리 이제 스물아홉이 웃기네. 수용 아예 가능성 없는 얘기는 아니지. 요즘 애들 사춘기 일찍 온다며. 아니면 비타민D 부족 우울증이든가. 모르겠어. 세상에 거대한 벽이 느껴져. 이리 세상에 혼자 남은 것 같고? 수용 너도 그래? 이리 생리 전 증후군이 딱 그래. 너도 정신적 생리하니? 수용 장난치지 마. (사이) 나는 그냥 햇빛을 보며 살고 싶어. 내가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건가. 이리 내가 아까 했던 말은…. 수용 동구에 특수학교 설립이 2012년에 결정됐어. 근데 어떻게 된 줄 알아? 예정대로라면 올해 3월에 개교를 해야 했거든? 근데 아직 벽돌 한 장 못 얹었어. 여기는 그렇게 되면 안 되는데…. 희망이 안 보여…. 이리 희용소는 눈에 보이는 게 아니지. 수용 희용소? 이리 희망, 용기, 소망. 희용소. 수용 (한숨) 오늘은 그냥 아무 말도 하지 마. 이리 장난치는 거 아냐. (잠시 생각을 고른다) 사랑이 눈에 보이니? 느끼는 거지. 사람을 움직이는 건 생각보다 사소해. 아주 작은 떨림이면 충분하거든? 나는 내가 처음 좋아했던 애를 떠올리면 지금도 손끝이 떨려. 심장은 말할 것도 없지. 여기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파동이니까. 내가 그 애랑 잘되지 않았다고 해서 걜 사랑하지 않게 되는 걸까? 내 첫사랑은 지독한 이성애자고 나는 더 지독한 레즈비언이라서 영원히 평행선에 설 수밖에 없지만, 걘 여전히 내 첫사랑이야. 결과가 본질을 대변하지 않는다고. 희망도 똑같아. 느끼는 거지. 수용 그러면 더 확실하네. 왜냐면 내가 요 근래 느끼고 있는 건 절망과 인류에 대한 혐오뿐이거든. 이리 진동을 만들고 있어서 그런 거 아닐까. 네가 심장인가 보지, 네가 망치인 거야. 아까 망치질해 봐서 알잖아. 망치질하는 놈 손목은 아 나는 거라고. 그래서 네가 지금 힘들고 또 뭐냐, 절망과 인류에 대한 혐오를 느끼는 거야. 누군가는 네가 만든 진동을 느끼고 있어. 수용 … 희망사항이다. 이리 최소한 나는 느껴. 그러니까 너무 그러지 마. 이리, 수용의 곁으로 가 가만 안아 준다. 수용, 이리의 어깨에 머리를 가만 기댄다. 이리의 서툰 위로가 마음에 닿는다. 수용 내가 여자가 되면 날 사랑해 줄래? 이리 무슨 소리야. 수용 몰라, 그냥 튀어나왔어. 이리 난 널 사랑해. 네가 나에게 주는 스트레스와 삶의 충만함을 어떻게 외면할 수 있겠어. 수용 스트레스는 알겠는데 삶의 충만함은 뭐야? 내가 너한테 그런 걸 줘? 이리 응. 수용 …. 수용, 쿵쾅쿵쾅 뛰는 심장을 느끼며 일어서 문으로 향한다. 이리 왜? 수용 좀 덥지 않아? 난 좀 덥네. 이리 열게? 수용 어. 열어드리게. 이리 이제 안 무서워? 수용 아니. 어. 아니. 내가 언제 무서워했다고 그러냐. 그냥, 혼란스러웠던 거지…. 가신 것 같기도 하고. 아직 계시면 나한테 정말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걸 테니까…. 이리 갑자기 용감해졌네. 수용 도와주겠지 뭐…. 이리, 그런 수용을 보며 미소 짓고 수용, 머쓱하게 돌아서며 현관문(계단에 있는 문)을 연다. 무대 위 작은 무대, 노파는 종이 한 장을 날려 보낸다. 종이는 수용 앞으로 떨어진다. 특수학교 설립 찬성 서명서다. 이리 뭐가 적혀 있는데? 수용과 이리, 적힌 글을 보고 내가 배움이 짧아 글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알게 되어 늦게나마 표를 줍니다. 내 이름 석 자가 좋은 일에 쓰여 참 기쁩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아프게 해서 미안합니다. 이웃사촌 김옥형. 옥형이 있는 아래를 본다. 글쓰기 연습을 하는 옥형의 모습에서 암전.
  • 단 한 번 찾아온 ‘운명적 사랑’… 미래가 과거를 바꿀 수 있을까

    단 한 번 찾아온 ‘운명적 사랑’… 미래가 과거를 바꿀 수 있을까

    31일 개봉하는 일본 영화 ‘가을의 마티네’(2019)는 40대 기타리스트와 여기자가 인생에서 단 한번 찾아오는 운명적 상대를 만나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찾아가는 내용의 클래식 로맨스다. 히라노 게이치로의 소설 ‘마티네의 끝에서’를 원작으로, 기타 연주 선율처럼 자연스럽게 감정의 여운을 풀어 나간다. 40대에 접어든 천재 클래식 기타리스트 마키노 사토시(후쿠야마 마사하루 분)는 데뷔 20주년 기념 공연을 마친 뒤 공연을 보러 온 프랑스 RFP 통신사 기자 고미네 요코(이시다 유리코 분)를 만난다. 서로에 대한 마음을 간직한 채 각자의 삶으로 돌아간 뒤 마키노는 슬럼프에 빠지고, 요코는 테러 사건을 취재하다 동료를 잃고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파리로 찾아간 마키노는 요코에게 마음을 고백하고, 이들은 진심을 털어놓으며 함께할 것을 약속한다. 요코가 일본에 도착한 날 마키노의 매니저 사나에(사쿠라이 유키 분)가 둘의 만남을 방해하면서 이들의 인연은 끝난다. 4년 이상 세월이 지난 뒤 각자의 가정을 꾸린 마키노와 요코는 뉴욕에서 재회한다. 영화는 ‘용의자 X의 헌신’을 연출한 니시타니 히로시 감독이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의 주연 후쿠야마와 세 번째로 호흡을 맞춘 작품이라 관심을 모았다. 요코에게 마키노가 건넨 말 “과거만이 미래를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도 과거를 바꿀 수 있다”는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다. 둘이 선택한 미래뿐 아니라 되돌릴 수 없다고 생각했던 과거 또한 극복하고 나아갈 수 있음을 암시한다. 파리, 마드리드, 뉴욕의 영상미와 세계적 기타리스트 후쿠다 신이치가 음악감독으로 참여한 OST는 눈과 귀를 즐겁게 한다. 40대의 사랑을 주제로 한 만큼 풋풋한 첫사랑에서 느껴지는 활력 대신 전반적으로 차분한 분위기다. 시간이 흘러 엇갈린 사실을 알게 된 주인공들의 반응에서는 일본 특유의 절제된 감성이 느껴진다. 남녀의 운명적 사랑과 이에 훼방을 놓는 3자의 이야기는 할리우드 영화 ‘당신이 사랑하는 동안에’(2004) 등에서도 보듯 참신한 내용은 아니다. 영화에서 마키노와 요코가 6년간 세 번밖에 만나지 못했음에도 사랑에 빠지고 그리워한다는 건 현실감이 부족하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다. 다만 기타 연주를 하면서도 내면에는 격정의 소용돌이가 몰아치는 모습과 결단을 내려야만 하는 당사자의 내면을 세심하게 연출한 점은 돋보인다. 상영 시간 123분. 12세 이상 관람가.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이반 투르게네프 소설 ‘첫사랑’ 뮤지컬로… ‘붉은 정원’ 캐스팅 공개

    이반 투르게네프 소설 ‘첫사랑’ 뮤지컬로… ‘붉은 정원’ 캐스팅 공개

    내년 2월 개막을 앞둔 뮤지컬 ‘붉은 정원’의 캐스팅이 공개됐다. 공연기획사 벨라뮤즈는 내년 2월 5일 서울 대학로 유니플렉스 2관에서 개막하는 ‘붉은 정원’에 배우 정상윤, 박은석, 김순택, 이정화, 최미소 등이 출연한다고 밝혔다. 2018년 초연 이후 3년 만에 개막하는 뮤지컬 ‘붉은 정원’은 러시아 작가 이반 투르게네프의 소설 ‘첫사랑’을 각색한 창작 뮤지컬이다. 이반 투르게네프의 서정적인 문체와 감수성이 담긴 원작의 특성을 살려 사랑의 설렘과 열정을 섬세하게 표현한 대사와 클래식한 음악들이 무대를 채운다. 초연 당시 좌석 점유율 96%, 유료 좌석 점유율 91%를 기록하며 호응을 얻었다고 제작사는 설명했다. 극 중 이성적이고 정중한 작가 빅토르 역은 정상윤, 박은석, 김순택이 캐스팅됐다. 치명적인 매력의 당차고 도도한 지나 역에는 이정화, 최미소와 2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공개 오디션에서 뽑힌 신예 전해주가 각각 이름을 올렸다. 첫사랑을 통해 사랑의 기쁨과 고통을 느끼기 시작한 소년 이반 역은 조현우, 곽다인, 정지우가 선발됐다. 제작사 측은 “원작에 대한 이해와 캐릭터에 맞는 캐스팅을 위해 공개 오디션을 통한 신인배우 발굴 등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여 최적의 라인업을 완성했다”고 밝혔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한 편의 인생 서사시 같은 ‘포토타임’

    대한문 앞 광장은 평소에도 온갖 정치 시위로 늘 시끄러운 곳이다. 광장은 지난 시대의 건물인 궁궐과 현대식 빌딩들이 솟아 있는 접점지대이다. 그곳에서 조선 시대의 군례인 수문군 교대의식이 재현된다. 늦깎이 작가 이중섭은 5년간의 덕수궁 수문군 경험을 바탕으로 장편소설 ‘포토타임’을 출간했다. ‘포토타임’은 기억에 대한 이야기다. 궁궐수문군 교대의식의 한 절차인 포토타임은 기억이 재구성되는 공간으로 활용된다. 자폐증을 가진 딸과 매일 전쟁을 치러내야 하는 원형은 수문군 교대의식에서 또 다른 시간 속으로 들어간다. 어느 날 포토타임에 젊은 시절 아련한 그리움을 가졌던 첫사랑과도 같은 여인이 찾아온다. 원형은 그녀와의 만남을 통해 모든 기억을 흡수하던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고 현재의 자신도 돌아본다. 그때와 지금 사이에는 별로 달라진 것은 없지만 어린 시절의 기억들은 흐릿한 흑백의 사진임에도 불구하고 행복하다고 속삭이고 있다. 오에 겐자부로의 작품에는 ‘나의 나무’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사람마다 자신의 나무가 있는데 그 나무뿌리에서 혼이 내려오고 죽으면 다시 나무에게 돌아간다. 그리고 어린 자신이 이 나무 아래에 오래 서 있으면 나이 먹은 자신을 만날 수 있다고 한다. 흘러간 세월은 시간이 지날수록 깎이고 소멸하고 남은 것들이 오롯이 모여 기억을 이룬다. 그것은 더러는 다시 살아나거나 강한 의지로 새롭게 만들어지기도 한다. 기억은 생물과 같아 태어나고 성장하다 결국은 소멸하는 과정을 겪는다. ‘포토타임’은 나무 아래에서 어른인 나를 기다리는 꼬맹이인 나 자신과 너 그리고 함께 송냇가 둑길을 걸었던 깨복쟁이 친구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N차 관람 불렀던 그때 그 열정… 늦가을 극장에서 다시 한번

    N차 관람 불렀던 그때 그 열정… 늦가을 극장에서 다시 한번

    늦가을 극장가에 뜨거운 열정을 그려낸 재개봉작들이 몰려온다. ‘열정’이라는 공통점으로 N차 관람을 부르는 영화들이다. 오는 28일 개봉하는 영화 ‘위플래쉬’(2014)는 ‘라라랜드’를 만든 천재 감독 데이미언 셔젤의 전작으로 잘 알려진 작품이다. 뉴욕의 명문 음악학교 신입생 앤드류(마일스 텔러 분)가 최고의 실력자인 동시에 폭언과 학대도 서슴치 않는 폭군 플레쳐(J K 시먼스 분) 교수를 만나 음악을 향한 집착과 광기를 발산한다. 천재를 훈육하는 폭압적인 과정, 심장을 두드리듯 빠르게 박동하는 재즈 드럼의 비트가 많은 이들의 감정선을 건드리며 큰 호응을 끌어냈다. ‘멜로의 바이블’이라 불리는 실화 바탕의 로맨스 영화 ‘노트북’(2004)도 다음달 4일 재개봉한다. 사랑하지만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커플 노아(라이언 고슬링 분)와 앨리(레이철 매캐덤스 분)의 사랑은 첫사랑의 설렘과 영원한 사랑의 위대함을 안긴다. 사랑스러운 매력을 뽐내는 로코퀸 레이철 매캐덤스와 ‘라라랜드’에서 잊을 수 없는 아련한 눈빛 연기를 선보였던 라이언 고슬링의 호흡이 환상적이다. 오는 29일에 다시 선보이는 영화 ‘불의 전차’(1981)는 1924년 파리올림픽 육상 금메달리스트인 해럴드 에이브라함과 에릭 리델 두 선수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우승만 바라보는 해럴드(벤 크로스 분)와 뛰어난 실력에도 종교 앞에 고민하는 에릭(이언 찰슨)이 펼치는 기적의 레이스다. 감동적인 스토리텔링으로 아카데미 4관왕, 칸 국제영화제 2관왕 등 유수의 국제영화제에서 크고 작은 상을 받았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김민재 “‘브람스’는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진심으로 연기하는 법 배웠죠”

    김민재 “‘브람스’는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진심으로 연기하는 법 배웠죠”

    “저희 친형이 드라마를 잘 안보는데, 이 작품을 보니 설레고 썸타고 싶다는 말을 하더라고요. 지인들도 연락이 많이오고, 주변에서 ‘간질간질하다’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올 가을을 촉촉하게 적신 SBS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 피아니스트 박준영 역을 맡아 열연한 배우 김민재.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이번 작품을 통해 이전과는 달라진 반응을 체감한다고 말했다. 그의 필모그래피 속에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이전과는 다른 존재감을 안겨 준 작품이다. “이번 드라마를 찍을 때는 ‘진심으로 이야기하자’는 생각을 가장 많이 했어요. 무언가를 꾸미지 말고 감정 상태 그대로 이야기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엄마 앞에서 우는 장면에서도 진심으로 이야기하다보니까 감정이 올라왔어요. 이번에 테크닉적인 것 보다 진심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터닝 포인트’가 된 작품으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김민재는 “배우로서의 성장도 좋았지만, 팬들의 댓글과 응원에서 사랑이 느껴져 용기와 자신감이 생겼다”고 털어놨다.김민재는 드라마 ‘조선혼담공작소 꽃파당’으로 주연을 꿰찼지만, 다시 ‘낭만닥터 김사부2’에서 조연을 맡아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는 “‘낭만닥터 김사부’는 제게 바른 사람, 옳은 사람의 기준을 알려준 작품이라서 한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시즌3’에도 출연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가 꼽는 작품 선정의 기준은 ‘재미’다. “재미는 메시지나 캐릭터나 관계 등 여러가지에서 찾을 수 있죠. ‘브람스’의 경우도 대본을 처음 봤을 때 분명히 잔잔하기는 한데 감정이 요동치는 것 같고, 부끄러움과 수줍음, 누군가에 대한 부채감 등 그런 여러가지 감정들이 제게는 연기하는 재미로 다가왔어요.” 극중 박준영은 유명 피아니스트이지만,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고민을 지닌 청춘이다. 그는 순수한 첫사랑의 설레는 감정과 내적 슬픔을 설득력있게 표현해 ‘김민재의 재발견’이라는 평가를 이끌어냈다. “저 역시 연기하면서 포기하고 싶고 지치고 힘든 순간이 많은데, 그런 때는 약간 모른척 하기도 하고 깊게 생각하지 않는 편이에요. 멜로 부분은 의도적으로 어떻게 만든다기 보다 준영이로서 감정을 많이 느끼려고 노력했어요. ‘이게 현실이라면 준영이와 송아는 어땠을까’라고 생각하면서...” 김민재는 자신에게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팬들의 사랑과 응원을 통해 자신의 일을 사랑하게 해준 작품이라고 말했다. “팬들의 응원을 체감하게 되는 순간이 이렇게 크게 다가올지 몰랐어요. 팬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드리고 싶은데, 제가 이 작품을 통해서 그런 용기를 얻었어요. 앞으로도 많은 분들이 믿고 보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유튜브 및 네이버TV <은기자의 왜떴을까TV>에서는 ’차세대 멜로 장인‘ 김민재가 직접 밝히는 연기 비하인드 스토리와 김민재가 직접 꼽은 심쿵 장면 BEST3 등을 공개합니다. 글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영상 김민지 기자 mingk@seoul.co.kr
  • 늦가을 극장가 몰려오는 다시 봐도 뜨거운 영화들

    늦가을 극장가 몰려오는 다시 봐도 뜨거운 영화들

    늦가을 극장가에 뜨거운 열정을 그려낸 재개봉작들이 몰려온다. 각각 스포츠와 음악, 사랑이라는 서로 다른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열정’이라는 공통점을 경유한다는 특징을 갖는다. 혹자는 ‘인생 영화’로 부르며, N차 관람을 마다하지 않는 영화들이다. 오는 28일 개봉하는 영화 ‘위플래쉬’는 ‘라라랜드’를 만든 천재 감독 데이미언 셔젤의 전작으로 잘 알려진 작품이다. 뉴욕의 명문 음악학교 신입생 앤드류(마일즈 텔러 분)가 최고의 실력자인 동시에 폭언과 학대도 서슴치 않는 폭군 플레쳐(J.K 시몬스 분) 교수의 가열찬 지도 속에서 본인을 한계까지 몰아붙이며 집착과 광기를 발산하는 내용을 다룬다. 천재를 훈육하는 폭압적인 과정, 심장을 두드리듯 빠르게 박동하는 재즈 드럼의 비트가 많은 이들을 흥분시켰다.‘멜로의 바이블’이라 불리는 실화 바탕의 로맨스 영화 ‘노트북’도 내달 4일 재개봉한다. 사랑하지만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커플 노아(라이언 고슬링 분)와 앨리(레이철 맥아담스 분)가 시간이 흘러 재회한 후 첫사랑의 설렘을 이어가다 다시 한번 선택의 기로 앞에 서게 되는 이야기를 다룬다. ‘어바웃 타임’, ‘퀸카로 살아남는 법’ 등에서 사랑스러운 매력을 뽐냈던 로코퀸 레이첼 맥아담스와 ‘라라랜드’에서 잊을 수 없는 아련한 눈빛 연기를 선보였던 라이언 고슬링의 호흡이 환상적이다.오는 29일에 다시 선보이는 영화 ‘불의 전차’는 1981년에 제작된 비교적 연식이 있는(?) 영화다. 1924년 파리 올림픽 육상 금메달리스트인 해럴드 에이브라함과 에릭 리델 두 선수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영화는 사회에 만연한 유대인 차별에 맞서기 위해 우승만 바라보며 훈련을 거듭한 해럴드(벤 크로스 분)와 누구보다 뛰어난 실력을 가졌지만 포기할 수 없는 종교적 이유로 선택의 기로 앞에서 고민하는 에릭(이안 찰슨)이 펼치는 기적의 레이스다. 감동적인 스토리텔링으로 아카데미 4관왕, 칸 국제영화제 2관왕 등 유수의 국제영화제에서 크고 작은 상을 받았다. 주인공 해럴드 역의 벤 크로스는 지난 8월 별세 소식이 전해져 안타까움을 더하기도 했다.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