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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 여왕부처 오늘 금혼식/유럽 왕실인사 축하행사에 대거 참석

    ◎4자녀중 3명 이혼… 가정생활 낙제점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71)이 20일 필립공(76)과의 결혼 50주년을 맞는다. 다이애나의 죽음으로 신화같은 비극을 연출한 맏아들 찰스 왕세자를 비롯,맏딸 앤공주,둘째아들 앤드루 등 4자녀 가운데 3명이 모두 이혼을 함으로써 가정생활면에서 왕실의 모범을 보이지 못했던 엘리자베스 여왕.그래서 그녀의 금혼식은 더욱 세상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철저히 ‘여왕’으로 길러진 엘리자베스가 망명 그리스 왕실가족의 일원이었던 필립공과 백년가약을 맺은 것은 2차대전 복구가 한창이던 1947년 11월 20일.필립공이 다트머스해군대학 사관생도로 있을때 엘리자베스가 이 곳을 방문하면서 두사람의 만남은 시작됐다.엘리자베스가 스포츠로 단련된 매력적인 미남 필립공에게 첫눈에 반한 것으로 알려져있다.26살 필립과 21살의 이지적인 황녀 엘리자베스의 결혼은 전후 영국인들의 사기를 높이기에 충분했다. 여왕부부에게도 불화설이 없진 않았다.그러나 구체적인 사실들이 언론에 보도되지는 않았으며 분명한 것은 이들이 공적,사적 생활에서 서로에게 가장 충실한 지원자였다는 사실.필립공은 다른 사람들과 얘기할 때는 군주인 아내를 ‘여왕님’으로 지칭하고 사적인 자리에서는 ‘릴리벳’으로 부르는 것으로 전해진다.필립공은 측근들에게 자신의 임무가 ‘여왕이 쓰러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여왕을 애정으로 지원해왔다. 왕실은 여왕부부의 금혼식 행사로 19일 기념오찬회와 음악회,20일밤 윈저성에서 비공식 무도회를 열며 공식행사로 20일 오전 웨스트민스터사원에서 축하예배를 개최한다.웨스트민스터 행사에는 1952년 여왕 대관식 이래 최대 규모의 외국 왕실인사들이 참석할 예정.예배가 끝난 후에는 정부 주최의 공식오찬회가 열린다.
  • 휴일 전국이 ‘초겨울’/대청봉 어제 영하 10도

    ◎내일 하오부터 풀릴듯 휴일인 26일에도 초겨울 날씨가 이어진다. 기상청은 “26일 아침에도 대관령 영하 3도,춘천 영하 1도,서울 4도 등 전국이 영하 3도∼영상 7도의 분포로 추운 날씨가 될 것”이라면서 “낮기온은 10∼17도로 25일보다 더 낮겠다”고 예보했다. 이와 함께 전국이 구름이 많이 끼는 가운데 서해안 지방은 곳에 따라 비나 눈이 조금 올 것으로 예보했다. 추운 날씨는 월요일인 27일 아침까지 이어진 뒤 하오부터 평년 기온을 회복하겠다. 한편 25일 아침에는 설악산 대청봉이 영하 10.8도를 기록한 것을 비롯,철원 영하 3.6도,춘천 영하 2.5도 등 중부 지방 곳곳에서 얼음이 어는 초겨울 날씨를 보였다. 영서 지방의 전방고지인 대성산에서는 25일 하오2시쯤부터 첫눈이 내렸다. 서울 경희궁 내 기상대 관측소에서도 평년 보다 3일 빠르게 얼음이 관측됐다.바람도 강해 체감온도는 더 낮았다.
  • 첫눈에 내동생이라는 생각 들었다/훈 할머니·동생 일문일답

    ◎어머니 얼굴과 너무닮아 언니확신 대검 유전자 감식결과 ‘훈 할머니’의 여동생으로 밝혀진 이순이씨(61)는 29일 “언니를 만나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는데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훈 할머니도 “처음보는 순간 내 동생이라는 것을 느꼈다.꿈을 꾸는 것 같다”며 울먹였다. 다음은 훈 할머니와 이 할머니의 일문일답. ­이씨를 처음 본 느낌은. ▲보자마자 내 동생이라고 생각했다.기억은 잘 나지 않았지만 확실하게 내 동생이다. ­지금 심정은. ▲무슨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50여년 동안이나 가족을 그리워했다.정말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한국에서 살고 싶은가. ▲너무 뜻밖의 만남이라 당장 결정할 수 없다.일단 동생들과 함께 동생 집도 가고 고향인 진동에도 가 며칠 구경하고 싶다.(훈 할머니) 어떻게 훈 할머니를 찾아오게 됐나. ▲며칠전 올케언니가 “신문기자들이 찾아와 훈 할머니의 사진을 보여주었는데 그 모습이 시어머니와 너무 비슷했다”면서 “한번 가보자”고 해 찾아 왔다. ­언제 언니라고 확신했나. ▲오늘 아침 언니를 병원에서 보는 순간 뭐라고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직감적으로 언니라고 생각했다.
  • 뿌리 내리는 한국인(한·중 수교 5주년:중)

    ◎교민 3만여명 ‘차이나 드림’ 꽃피운다/도심 곳곳 한국제품 전문판매점 성업/4천여업체 진출 ‘메이드인 코리아’ 각인/언론매체도 ‘한국의 장점’ 앞다퉈 보도 한국은 중국인에게 더이상 낮선 대상은 아니다.자동차로,VTR 등 가전제품으로,밀어닥치는 여행객들로,축구팀으로 한국과 한국인은 수교 5년만에 가까운 이웃으로 중국인의 삶과 생활속을 파고 들고 있다.북경의 관문,수도공항에 도착하면 비행기의 도착을 알리는 TV형 모니터와 개인용 짐수레에 부착돼 있는 한국기업 광고가 첫눈에 들어온다.공항을 지나 시내로 들어오는 고속도로에도,북경시내 중심가인 장안대가변에도 포항제철,삼성,대우,쌍용 등 국내 기업의 대형 광고판이 일본기업의 그것과 경쟁이라도 하듯 우뚝우뚝 솟아있다. TV를 틀면 한국 VTR과 CD플레이어 등을 선전하는 광고가 중국 시청자들의 망막과 청각을 때리고 있고 한국산 옷등 각종 한국제품 전문판매점이 대도시마다 문을 열고 있다.수교전 한국과 관련,대체로 부정적인 소식만 전하던 인민일보와 중앙TV(CCTV) 등 중국의 언론매체들도 한국의 좋은점과 긍정적인 면을 부각시키는등 한국관련 보도를 늘려나가는 추세다.일반인들도 한국에 대해 더 자세히 잘 알게되고 한국의 정치,경제문제에도 많은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밀어닥치는 한국 관광객의 쇄도속에 북경의 대표적 관광지 고궁(자금성)에선 7개 언어로된 안내 설명 통역서비스 가운데 한국어가 포함됐고 만리장성 꼭대기에도 ‘소매치기를 조심하라’는 한글로 된 중국 공안당국의 경고문이 영어,일본어와 함께 나란히 붙어있다.70만명∼80만명선을 넘어설 것으로 보이는(96년말 63만명)중국 방문객만큼 한·중 교류의 폭을 상징하는 것은 중국내 상주하는 한국인들의 증가다.주중대사관측 집계로는 중국 상주 한국인은 최소한 3만여명선.약4천여개의 크고 작은 회사들이 중국에 나와 한국상회를 구성했고 집계되지 않은 한국인과 한국회사들은 더 많다는 것이 주중한국대사관측 설명이다. 폭발적으로 늘어난 ‘한국수요’로 중국내 대학들에선 한국어과 개설이 유행처럼됐고 중국최고 명문안에 드는 상해의 부단대학,천진의 남개대학 등이 한국어과를 개설,기존에 한국어를 가르치던 북경대를 포함한 모두 26개 대학에서 1천6백여명의 학생이 한국어과에 적을 두고 한국말을 익히고 있다.강택민 주석,이붕 총리를 비롯,상당수의 지도층과 지식인들이 한국을 다녀왔고 한국의 제주도 한번 다녀오지 않은 사람은 이야기에 끼일수 없을 정도라고 중국내 한국 열기를 한 중국국무원 관리는 설명한다. 중국기자협회의 양가합 주임은 “중국시장과 중국대륙에 대한 한국인들의 진출과 도전이 두드러지고 있다”면서 “60·70년대 미국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시킨 한국인들이 이제 중국에서 차이나 드림을 실현시키려 시도하는 것 아니냐”며 한국인들의 활발한 대중국 진출을 평가했다.
  • 발해사 재인식(송화강 5천리:31)

    ◎92년 대규모 ‘무덤떼’발굴 연구 본격화/무기류 등 2천여점 출토/중 10대 고고발굴로 평가 중국에서 발해사 연구는 사실상 도외시 되어왔다.그런데 90년대 들어 시각이 바뀌어 발해사연구가 본격화하기 시작했다.1992년부터 1995년까지 4년에 걸쳐 흑룡강성 영안시 발해진 칠색송어장 부근에서 발굴한 발해무덤떼가 그 계기를 이루었다.국가 관계기관으로부터 1995년 중국 10대 고고발굴로 평가된 이 무덤떼는 이른바 칠색송어장무덤군으로 호칭되고 있다. 이들 무덤은 용암언덕 모래땅속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돌무덤을 비롯,벽돌무덤,돌과 벽돌을 함께 써서 축조한 무덤 등 형태도 다양했다.4만㎡에 이르는 넓은 면적에서 발굴한 유적은 323기의 무덤과 7기의 제단으로 되어있다.생활용품과 무기류,말갖춤,장신구를 포함한 2천여점의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무덤 323기·제단 7기 그러나 관광객들이 쉽사리 대할수 없는 유물이다.칠색송어장무덤군 출토유물 뿐아니라 중국에서 다른 발해유물도 찾아보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관광객들에게 개방한 유물이있다면 발해진 중앙대가에 자리한 흥륭사 경내의 석조유물 정도가 고작이었다.남대묘라고도 부르는 흥륭사 용암돌담을 돌아 큰 대문옆 쪽문을 들어서면 가지가 휘휘 늘어진 고목이 길손을 맞았다.300년을 자랐다는 고목의 버드나무는 제법 그늘을 드리웠다. 그 나무밑에서 쉬노라니 큰 돌거북 대석구가 첫눈에 들어왔다.지난 1976년 8월12일 발해진 발해소학교 울안 1.2m 땅속에서 나온 유물인데,이 절로 옮겨온 것이다.높이 58㎝,길이 1m의 돌거북은 높이 32㎝,길이 1.36m의 대석에 올라앉았다.돌거북은 희한하게도 용머리와 용발을 했다.그러니까 용두용족의 거북인 것이다.매우 아름다운 조형물인 돌거북이 왜 용머리와 용발을 했는지는 아무도 모르고 있다.절 맨 뒤쪽에 들어앉은 대웅보전 앞뜰에는 석등탑이 우뚝했다.용암을 쪼아서 만든 석등탑은 높이가 6m에 이르고 있다.기단은 4개의 큰 돌을 이어서 붙여 놓았다.그리고 활짝 핀 연꽃무늬를 새겼다.발해의 제3대 왕인 문왕이 승려를 서천에 보내 불경을 구한 뒤에 세웠다는 석등탑은 애절한 전설도 간직했다.문왕대에 만든 걸작의 대석불도 이 절에 있다.옛 기록을 보면 석불의 높이는 3길이었다.그런데 건륭연간인 960∼963년 사이에 불두가 떨어져 나갔다는 것이다.지금은 복원되어 1963년에 새로 지은 대웅전에 모셔놓았다.이 석불 역시 전설을 안고 있다.경박호에서 고기잡이를 하는 어부 하나가 살았다.하루는 고기를 싣고가는 수레에 웬 스님이 올라탔다.한참을 가다가 뒤를 돌아보았더니 스님이 오간데가 없었다.고기를 내리고 돌아오는 길에 스님이 사라졌던 지점에 이르렀을때 근엄한 여래석불이 앉아 있더라는 것이다.바로 오늘날 흥륭사의 대석불이라는 이야기다.이 절에 오는 사람들은 누구나 대석불앞에 넙죽 엎드렸다.이는 석불에 얽힌 전설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물고기를 내려주고 돌아가던 길에 여래석불을 만났던 어부는 그 자리에 넙죽이 엎드려 소원을 빌어 부자가 되었다는 내용이 전설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발해유적에서 벽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그러나 길림성 화룡시 정효공주묘와 같은 중요 고분벽화는 감히 들여다 볼 수가 없다.유적보호를 위해 일반에는 절대 공개하지 않은지가 오래되었다.이와는 달리 누구라도 아무때나 볼 수 있는 바위그림이 흑룡강성 해림시 임구현 고려정촌에 있다. 고려정촌은 목단강시에서 75㎞가 떨어졌다.본래는 조선족 마을이었으나 지금은 조선족이 모두 마을을 떠났다.그래서 한족 70가구가 사는 한족 마을이 되었다.조선족과 큰 우물이 있는 마을이라 해서 고려정촌이라 불렀던 마을이다.하지만 조선족들이 모두 떠나고 우물마저 메워버렸으니,고려정촌이라는 마을 이름은 무색하게 되었다. ○흥륭사 대석불 전설 역사는 어차피 세월과 함께 흘러가는 옛날의 이야기인지 모른다.그래서 역사를 붙잡아 둘 수는 없는 것이지만,읽고 가꾸는 기록으로라도 남겨야한다는 집념의 사람들이 있다.흑룡강성 벌리현 향수향 행선촌 최금산선생과 임승환선생이 그들이다.두 분은 3년여에 걸쳐 대하역사소설 ‘해동성국 발해전’을 합작으로 탈고했다.조사비 등 10여만원의 돈을 들인 이 대하소설은 10부작으로 2백50만자에 이르는 엄청난 분량이다. 최선생은 경박호변 남호두가고향이고 임선생은 상경용천부가 고향이니까 모두 발해진 태생이라 할 수 있다.최선생은 대흥구 중학교를 다닐때 학자였던 하숙집 주인때문에 발해와 인연을 맺었다.하숙집 주인으로부터 발해에 대한 이야기를 2년동안이나 들었다.이야기를 들을수록 새로웠다는 최선생은 ‘발해연의’를 100회나 쓴 적이 있다.그리고 임선생은 조선족과 만족,몽골족과 함께 살면서 그들속에 남아있는 발해설화와 신화 80여편을 수집 정리한데 이어 ‘발해전’120회를 썼다. ○대하소설 합작 탈고 그들은 발해라는 고대왕국을 소재로 이미 작품을 썼다는 사실을 서로 알고 쉽사리 합작을 약속했다.두 분의 대하소설 ‘해동성국 발해전’은 고왕 대조영이 698년 오늘의 요령성 조양땅인 영주에서 나라를 세워 926년 망하기까지 229년간의 역사를 그렸다.오늘의 중국 동북3성은 물론,러시아의 연해주와 한반도 동북부를 잇는 영토확장을 위해 숨가삐 달린 발해의 영욕이 담겨있다.자그마치 300명 인물이 등장하는 이 대하소설은 발해의 정치,군사,경제,외교,문화 등 여러 분야의 발자취가 실감나게 묘사되었다.
  • 대선주자들의 산행/조정원 경희대 총장(시론)

    산은 살아 숨쉬는 자연이다.산이 살아숨쉬는 모습은 계절마다 그 색깔과 모습을 달리한다.녹음이 우거진 7월의 산은 기슭에서 정상까지 울창한 숲과 나무들의 푸르름이 가득하고,골짜기 구석구석을 끊임없이 씻어내리는 맑은 계곡 물은 청정함이 배어난다. 이런 까닭에 주말이면 많은 사람들이 산을 찾는 것이리라. 그러나 산을 찾는 사람들의 양태는 저마다 다양하다.산이 있으니 그저 한번 올라가 보자는 순진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산에 오르는 것을 남에 대한 자기건강의 과시수단으로 착각하는 사람들도 있다.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산에 오를 준비가 전혀 안된 옷차림으로 나타나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오르려는 산에 걸맞지 않게 요란한 옷차림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다양한 유형의 산행가들 필자는 산을 좋아하기 때문에 교수들과 어울려 산에 오르는 기회가 많다.그러다보니 산에 오르는 사람들마다 유형에 따라 특징을 가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어떤 사람들은 날씬한 체구와 상큼한 복장으로 보아 첫눈에 상당한 등산가라는 인상을 준다.복장에서그러하듯이 그들의 자세 역시 진지함이 돋보인다.관조하듯이 묵묵히 산을 오르는 그들의 모습에서는 차라리 경건함마저 느끼게 된다.그러나 산행이 시작되자마자 숨을 헐떡이며 뒤처져서 그 모습이 대열의 후미에서 가물거리는 사람들이 나타난다.이런 사람들은 초보자임에 틀림이 없다. 어떤 사람들은 산에도 제법 오르면서 이산 저산에 대한 등산경험이나 등산중의 일화를 자랑삼아 얘기하기도 한다.나름대로는 유머를 발휘한다고 우스개소리를 꺼내기도 하고 앞서 가는 사람을 천천히 가자고 소리쳐 부르는가 하면 뒤처진 사람에게는 꾸지람도 서슴지 않는다.이런 사람들은 산행의 경험자이기는 하지만 산에 오르는 기본 정신과 자세는 갖추어지지 않은 사람들이다.그리고 때로는 말과 행동이 지나쳐 다른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주고 산의 경건함을 해치기조차 한다. ○산을 아는 전문가 자세로 그러나 산을 아는 전문가는 우선 자기가 오르는 산을 알고,산에 대해서 겸손하며 산에 오르는데 필요한 체력을 안배할 줄 안다.정상까지의 지형과 지세를 감안하고 힘을 비축해야 할 지점과 비축한 힘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지점을 안다.산세가 밋밋하다고 경거하지 아니하고 산세가 험하다고 몸을 움츠리지도 않는다.산행을 하다보면 산세가 험하지 않아도 바윗돌 위에서의 실족은 치명적일수 있고,정상으로의 험난한 코스도 인내와 투지로 극복하면 산정에 서는 기쁨과 감사함을 누릴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대선정국이 너무 미리부터,또 오랫동안 소란스럽게 우리 국민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대선주자들은 어떤 유형의 산행가들일까 생각해 본다.정치판에 오래 머물렀다는 이유만으로 전문가 행세를 하는 주자들은 없는가.경건한 마음과 겸손한 자세로 산을 오르기 보다는 남을 헐뜯고 비방하면서 산을 욕되게 하는 주자들은 없는가.그럴듯한 인상과 말 솜씨로 혹시나 하는 기대를 모으지만 곧 오르막 비탈길에서는 숨을 헐떡거릴 허약한 주자들은 없는가. ○“유권자는 험준한 산이다” 유권자 한사람 한사람은 말없는 나무요 숲이요 산이다.산의 위엄을 알고 그 뜻을 거스르지 않을때 산은 산행가들의 입산을허용하는 것이다.대선주자들이 어떠한 유형의 산행가이든 산은 그들을 지켜 볼 것이다.정치판에서의 나이만으로는,실속없는 산뜻한 외양만으로는,어중한한 경험만으로는,유권자라는 저 높은 산정에는 감히 올라서지 못할 것이다.경험이 많은 산행가일수록 산에 들어서기 전에 자신의 마음을 추스르고 겸손하며,마음을 비우듯이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유권자를 경외하며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게 될때,비로소 그는 무사하게 산의 정상에 오를수 있게 될 것이다. 대선 주자들에게 녹음 우거진 7월에 혼자만의 조용한 산행을 한 번 권하고 싶다.
  • 노벨 문학상 비슬라바 심보르스카

    ◎“인간 진실의 조각 섬세하게 풍자”/공산체제에서도 정신적 독립·영혼 중시/「베토벤과 모차르트를 결합한 시인」 평가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폴란드 시인 비슬라바 심보르스카(73)는 「풍자적이고도 섬세한 언어로 인간의 작은 진실들이 역사적,생물학적 문맥속에 살아나는 시」라는 작품세계 평과 함께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스웨덴 아카데미는 그녀를 「베토벤과 모차르트를 결합한 듯한 시인」이라고 극찬했다.그녀는 「쿼바디스」의 셍키에비치(1905),「농민」의 레이몬트(1924),「한낮의 밝음」의 밀로즈(1980)에 이어 폴란드인으로는 네번째 노벨문학상 수상자.여성으로는 아홉번째 수상이다. 스웨덴 아카데미는 그녀의 작품세계를 잘 나타내는 시(시)로 1980년작 「유일한 것(nothing twice)」을 인용했다.『웃음과 키스로,우리는 별들 아래 합일을 찾는다.우리가 두 줄기의 물방울처럼 다를 지라도(우리는 일치한다)』라는 내용. 28년 폴란드 중서부 지방 태생인 그녀는 46년 「나는 언어를 찾는다」로 데뷔한뒤 50년대 초반 처녀 시집 「그래서우리는 산다」(52년)를,2년뒤 두번째 시집을 잇달아 펴내면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옹호하는 시들을 썼다.하지만 공산주의 검열이 무력화된 57년이후 존재와 인간내면의 문제에 시선을 돌려 본격적으로 시세계를 꽃피우기 시작한다. 그의 문학세계는 실존적 문제를 정교하면서도 섬세한 언어에 담아 표현하는 것이 특징이다.서정시인이지만 단순한 미학주의에 빠지지 않고 윤리적·도덕적 문제를 줄곧 파헤쳐왔다.인류,사랑,죽음 등 인생의 중요한 문제를 다루면서도 언어의 결을 최대로 살리기 때문에 까다롭지만 유럽 10여개국에 번역본이 나와있을 만큼 중요한 작가로 대접받고 있다.정신적 독립과 영혼의 문제에 천착하는 그녀의 시는 지식인층에서 새시대의 징표로 받아들여지면서 폴란드 전후세대를 사로잡았다. 그녀는 최근작인 93년의 「끝과 시작」까지 50여년의 시작생활동안 10여권의 시집을 펴냈다.또한 수많은 비평서,프랑스시 번역본 들을 내면서 평론가 겸 학자로도 활약해왔다.53∼81년에는 문학잡지 「지시에 리테라키에」의 논설위원으로도 일했으며 조용한 생활을 즐기는 수줍은 성격으로 알려져있다.폴란드 감독 키에슬로프스키의 삼색연작 영화의 하나인 「레드」는 그녀의 시 「첫눈에 느낀 사랑」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작품. 현재 폴란드 크라쿠프 시에 살고있는 심보르스카는 남부의 휴양지 자코파네에서 수상소식을 듣고 폴란드 전국라디오방송 제트(ZET)를 통해 『상을 기대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믿기 어렵다.매우 행복하고 놀랍다.이제 얼마 살 것 같지 않다』고 소감을 밝혔다. 외대 폴란드어과 정병권 교수는 『심보르스카는 인류 보편의 문제를 섬세한 언어로 그려왔으면서 특히 스토아 철학의 영향을 받은 실존적 시세계가 특징』이라고 말했다.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에게는 역대 최고인 1백12만달러가 수여된다. □심보르스카 연보 ▲폴란드 시인,번역가,문학비평가 ▲23년 7월2일 포즈난 근처 프로웬트­브닌에서 태어남 ▲크라크푸에 있는 야골레니언대학 졸업 ▲45년 문단 데뷔 ▲52∼83년 폴란드 작가협회 회원 ▲53∼81년 문학주간지 「지시에 리테라키에」 논설위원 ▲91년 괴테상 수여 ▲대표시집으로 「자신에게 하는 질문」,「모래알 전경」,「다리위의 사람」,「소리,느낌,생각:70편의 시」,「끝과 시작」 등이 있음. ◎내가 본 심보르스카/외대 폴란드어과 코바리크 교수/폴란드 현대작가중 첫손 꼽히는 문인/10여개국서 번역돼… 교과서에도 수록 폴란드 크라크푸 야골레니언대학 교수로 재직하다 지난 94년부터 한국외국어대 폴란드어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야드비가 코바리크씨(Jadwiga Kowalik·여·56)는 『심보르스카의 노벨상 수상은 셍키에비치 밀로즈 레이몬트 이후 문단에서 노벨상을 기대하고 있던 폴란드 사람들에게 큰 기쁨을 줬다』고 말했다. 그녀는 자신이 교수로 있던 야골레니언 대학의 국제 현대문학 심포지엄과 크라크푸시에서 매주 수요일 열리는 문학가 모임에서 그녀를 만날 기회가 많았다고 말했다. 노벨상 수상소식을 들은 직후 폴란드의 집으로 전화를 해봤지만 통화에 실패,대신 문학하는 친구들과 기쁨을 나눴다는 그는 심보르스카가 비록 나이가 들었지만 변치않는 아름다운 외모와 친절한 마음씨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시인이라고 했다. 그는 특히 심보르스카가 폴란드 현대작가 가운데 첫손 꼽히는 작가로 유럽에서만 독일을 비롯,20개 나라에서 그녀의 시집이 번역됐고 폴란드 고교 교과서에 많은 시가 수록돼 있어 그녀는 남녀노소 구분없이 폭넓게 사랑받는 시인이라고 말했다. 또 심보르스카는 70년대 초 남편과 사별한뒤 크라크푸에서 혼자 살고 있으며 자녀는 없다고 했다.
  • 금세기 최고 테너들의 주옥같은 목소리/색다른 음반2개 국내 상륙

    ◎사랑에 빠진 10명의 테너들­「물망초」 등 고전적 분위기… 16곡 수록/스페인 하늘 아래서­도밍고의 노래 모음집… 9월중 출시 금세기를 대표하는 테너들의 주옥 같은 목소리를 감상할 수 있는 색다른 음반 2개가 나왔다. BMG클래식스가 최근 인터내셔널판에 이어 국내 발매한 「사랑에 빠진 10명의 테너들」(10 Tenors In Love)과 소니클래식스가 이달초 영국에서 인터내셔널판으로 제작한 플라시도 도밍고의 「스페인 하늘 아래서」(9월 중순 국내 출시예정). 「텐 테너스 인 러브」는 RCA레이블 소속 테너 10명이 사랑을 주제로 하는 오페라 아리아와 가곡을 노래한 음반.모차르트곡에서 느껴지는 「첫눈에 반한 사랑」에서부터 베르디가 표현한 「자살에 이를 만큼 비극적 사랑」,비제의 「우울하고 희망 없는 사랑」,레하르가 전하는 「그저 즐겁기만 한 사랑」 등 거장 작곡가가 선율로 만든 사랑의 여러 감정을 엔리코 카루소·프리츠 분더리히·루치아노 파바로티 등 20세기 오페라 무대를 빛낸 전설적인 테너와 최근 떠오르는 신진들이 절절하게 토해낸 것이다. 따라서 이 음반을 통해 전성기 성악가의 목소리가 시대를 달리하는 연주분위기와 어우러져 빚어내는 주옥 같은 사랑의 노래를 감상할 수 있다.20세기 최고 테너로 꼽히는 카루소가 1910년대 LP로 녹음한 플로토의 「마르타」중 「마파리」,데 크레센조의 「첫 애무」,40∼50년대 이단아로 불리면서도 한 시대를 장식한 마리오 란자의 「물망초」등은 음질은 좋지 않지만 고전적인 분위기를 그대로 전해준다. 수록된 노래는 모두 16곡.도니체티의 「사랑의 묘약」중 「남 몰래 흐르는 눈물」과 비제의 「카르멘」중 「그대가 던져준 이 꽃은」,레하르의 「미소의 나라」중 「그대는 나의 모든 것」,베르디의 「아이다」중 「청아한 아이다」 등 오페라 아리아와 그리그의 「그대를 사랑해」등 주옥 같은 사랑의 소품들이다. 「스페인 하늘 아래서」는 세계 톱 테너 가운데 따뜻하고 정열적인 목소리로 대중성을 확보하고 있는 플라시도 도밍고가 자신의 조국 스페인의 모습을 노래한 음반.스페인 마드리드 출신인 도밍고가 멕시코 출신이면서 프랑코정부로부터 스페인 명예시민권을 부여받을 정도로 스페인을 사랑하고 스페인을 노래한 대중가요작곡가 오거스틴 라라(70년 사망)의 노래 12곡을 담았다. 영국 음반잡지 「클래식 CD」 8월호가 플라시도 도밍고를 커버 스토리로 다루며 『55세의 나이인 그가 여전히 최고 테너인 이유를 알 수 있게 하는 음반』으로 소개할 정도로 주목받는 CD다. 수록곡은 팝가수뿐 아니라 오페라 무대가수의 애창곡으로 자리잡은 「그라나다」를 비롯,「톨레도」「마드리드」「송아지 투우사」「내 기타의 코드」「세비야의 카네이션」 등.플라시도 도밍고의 따뜻한 음색과 부드러운 톤,진지한 음성이 스페인의 환희와 태양,투우의 정열,로망스 등과 어우러지는 음반이다.〈김수정 기자〉
  • 「한국역사의 이해」등 22권선정/출협,청소년들이 읽어야할책 발표

    대한출판문화협회(회장 나춘호)는 청소년의 달을 맞아 청소년들이 읽어야 할 좋은 책 22권을 발표했다.출협 청소년도서 운영운영회가 지난해 12월부터 올 3월 사이에 발간된 책들 가운데 선정한 이달의 청소년도서는 다음과 같다.(괄호안은 지은이 및 엮은이·출판사명)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베르나르 베르베르 열린책들) ▲해리의 발견 1,2(황경식 열림원) ▲한국윤리의 재정립(김태길 철학과현실사) ▲튀는 인생이라야 산다(웨인다이어 보성출판사) ▲21세기를 여는 상상력의 창조자들(이동욱 여성신문사) ▲성공적인 뉴리더십(김창원 서울프레스) ▲북한 50년(이병용외 연합통신) ▲책읽는 사람이 세계를 이끈다(김영진 웅진출판) ▲96 우수단편소설모음(김석희 등 삼문) ▲살아 있는 느낌을 위해(D H 로렌스 훈민정음) ▲첫눈송이에 관한 전설(롤랑 뮈블러 새로운 사람들) ▲연어(안도현 문학동네) ▲중국현대단편선(루쉰 등 혜원출판사) ▲우리말 바로 써야 한다 1­3(박갑수 집문당)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환경상식 백가지(구자건 현암사)▲즐거운 과학산책(강건일 학민사)▲성의 기원(김학현 민음사) ▲자연의 슈퍼모델(현원복 동아출판사)▲한국역사의 이해(이성무 집문당) ▲삼국유사의 현장기행(이하석 문예산책) ▲까레이스끼 또 하나의 민족사(정동주 우리문학사) ▲문화의 산길 들길(정재훈 화산문화)
  • 김소진씨 「자전거 도둑」·한창훈씨 「바다가 아름다운 이유」 출간

    ◎30대가 본 밑바닥 인생의 소외된 삶/「자건거 도둑」­무너진 아버지상 통해 없는자 아픔 노래/「바다가 아름다운 이유」­무지렁이들의 심사 반고백체로 드러내 밑바닥 소외된 삶을 끈질기게 다뤄온 63년생 젊은 작가 둘이 나란히 신작 소설집을 펴냈다. 김소진씨의 「자전거 도둑」(강)과 한창훈씨의 「바다가 아름다운 이유」(솔)가 그것. 이 작가들은 가난하고 추레한 삶의 겉과 속을 뾰족한 희망이 없으면 없는 그대로 탄력있게 형상화한다.이 점은 소외된 민중을 대변해온 많은 다른 또래 작가들이 90년대 사회변화속에서 꺾이거나 길을 잃은것과 대조적이다.앙상한 민중의 이념이 아니라 그 삶의 무궁한 구체성에서 자양분을 얻는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을 이들은 지니고 있는것 같다. 지난 91년 등단해 이미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을 비롯,세권의 소설집을 낸 김씨와 92년 등단해 첫 소설집을 묶는 한씨의 작품세계는 공통점이 많다.소재면에서의 기층민중에 대한 일관된 애착은 말할것도 없거니와 문체에시도 이들은 젊은 작가로서는 드물게 토속어며비어 구사에 자유자재롭다.이들의 감칠맛나고 넉살맞은 우리말 어휘들은 첨단추종과 감각적 문체의 홍수속에서 특히 값져보인다. 9편의 단편을 싣고 있는 김씨의 작품집에 뚜렷이 드러나는 것은 아버지 콤플렉스다.주인공의 회상속 아버지거나 화자 스스로 아버지로 되어 나타나거나간에 소설속의 아버지들은 하나같이 나약한 심사에다 허세로 어처구니없는 짓들을 저지르곤 한다. 「자전거 도둑」에서 구멍가게 한칸에 목을 매고 살아가는 아버지는 도매상에서 훔친 소주 두병이 발각나자 죄를 아들에게 뒤집어씌워 흠씬 두들겨팬다.「원색생물학습도감」에서의 아버지는 정상적 육식을 못하게 되자 벌레를 잡아먹으며 연명한다.「아버지의 자리」「첫눈」 등에서도 이처럼 제 구실을 못하는 무능력자 아버지가 등장한다. 표제작에 소개된 바에 따르면 동명영화 「자전거 도둑」은 포스터붙이는 직업에 꼭 필요한 자전거를 도둑맞은뒤 남의 것을 훔치려다 아들앞에서 실컷 망신만 당하는 가난한 아버지의 이야기.작가는 인간을 인간답지 못하게 하는 환경의 비인간성을 무너진 아버지상을 통해 거듭 문제제기하고 있다. 이에 견줘 한씨의 책엔 밑바닥 무지렁이들의 심사가 반고백체로 드러나는 작품이 많다.중편 「바다가 아름다운 이유」에서의 늙은 부랑아 황씨는 대표적인 주인공.그는 임신한 아내를 난산끝에 잃고 술집 하녀에게 사기당한 낯세울것 하나없는 「왕년」이나마 주섬주섬 털어놓는다.이밖에 트럭 한대로 떠돌며 계란행상을 하는 용표(「오늘의 운세」)며 잡역부 남편의 쥐꼬리 수입으로 도시변두리에서 네남매 살림을 꾸리는 또순이 소라댁(「증인」)등 별볼일없는 주인공들의 사연이 그 무엇보다 절박하게 부각된다. 작가는 마치 이들의 입이라도 된듯 소외되어 찍소리없이 가슴에 묻혀있던 억울하거나 안타까운 사연들을 끄집어낸다.지향점이나 인물의 층위는 좀 다르지만 걸쭉한 진품 토속어로 민중의 심사를 대변한다는 점에서 한씨에게선 작가 이문구의 영향이 적잖이 엿보인다.〈손정숙 기자〉
  • 사고력 키우는 미 초등교육(G7로 가는 길:8)

    ◎호기심 자극… 묻는 것부터 가르친다/끊임없이 질문 유도… 스스로 결론 얻게/모든 분야 1등보다 한 분야 “최고” 육성 우리나라 상사직원이 많이 살고 있는 미국 뉴저지의 포트리 제2국민학교.우리의 조그만 읍내 시골학교와 비슷한 곳이다.전교생 4백70명 가운데 한국학생이 자그만치 1백70명이나 된다.교실복도에는 아이들이 그린 그림이 가득하다.한국어린이의 이름이 붙은 그림은 사실과 가깝고 자세한 데 비해 미국어린이의 그림은 모두가 제각각이다. 미국학생의 그림은 나무색깔과 땅색깔이 반대로 칠해져 있기도 하고 나무모양을 동그랗거나 네모지게 그린 것도 있었다.첫눈에 미국 학생과 한국 학생이 좀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들의 학습태도 역시 많이 다르다는 게 이곳 교사의 설명이었다.사안에 대한 접근방법에 있어 미국 어린이는 끊임없이 묻고 이해하려는 태도를 보이는 반면 한국학생은 있는 그대로를 수용하려는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다.특히 한국에서 온 지 얼마 안되는 학생일수록 그 정도가 더하는 것이다. ○한국학생 암기력탁월 이 학교 6학년의 어느 학급.이 학급은 미국학생 19명에 한국학생이 8명이었다.사회과목시간 다소 시사성이 강한 「유엔의 실패와 성공」을 배우고 있었다.유엔이 안고 있는 문제점의 하나로 교과서는 이렇게 적고 있다.「최근 신생국가들이 대거 회원국에 참여함으로써 종종 미국의 이해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으며 새로운 유엔회원국들은 총회에서 역사가 오래된 민주국가들을 표로 이길 수 있게 됐다.이런 이유 때문에 많은 미국인은 최근 유엔이 더이상 민주주의의 목적에 부합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 대목에 이르자 학생들의 질문이 쏟아진다.『유엔을 가장 많이 지원하는 미국이 유엔에 내는 돈은 얼마냐』 『뉴욕에 있는 유엔빌딩의 임대료는 얼마이며 누가 부담하느냐』하는 식이다.결국 이날 유엔공부는 대부분 쏟아지는 학생의 질문에 답하는 것으로 끝났다. 「묻는 것부터 가르친다」는 미국 초등교육의 현장이다.학생의 창의성을 자극해 미국의 이익을 최대한 끌어내겠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그런데도 한국 학생들은 별호기심을 느끼지 않는다는 듯 앉아 있기만 했다. 올해는 미국에선 대통령선거가 있는 해다.때문에 국민학교 상급학년 사회과목의 숙제는 「선거」에 관한 것이 많다.선거에 앞서 미리 신문등을 보고 스스로 도표를 만들어 후보자의 정책을 비교추적하게끔 한 뒤 모의투표를 시키곤 한다.어느 후보가 무슨 정책을 내놓았길래 찍었는가를 설명하게도 한다.결과중시가 아니라 과정을 중시하는 교육의 한단면이다.각자의 독창성을 바탕으로 후보의 장단점을 파악하게 하는데 놀라운 것은 국민학교의 「모의투표」결과가 실제 결과와 그렇게 어긋나지 않는다는 것이다.교과서 중심의 교육방법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혼자서 생각해야 하는」 학습을 통해 창의성을 기르고 있는 것이다. 국민학교 4학년 산수책을 살펴보자.얼핏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수준이 낮다.그러나 우리처럼 산수수준은 높지만 숫자만 나오는 평범한 것이 아니다.역사적 사실이 있고 지도가 있고 만화그림이 나오며 위인의 이야기도 등장한다.모두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이다.0.5센트짜리 동전그림이 나오면서 「0.5센트 동전은 1793년부터 1857년까지 사용된 동전이었다.이 동전은 몇년동안 사용됐는가」하고 묻는 식이다.산수문제에서 역사도 배우는 것이다.동전의 역사는 이어 다양한 화폐의 역사로 옮겨가게 마련이다. 숫자공부에 있어서도 그저 기계식으로 더하거나 빼는 게 아니다.「6+6=12다.그렇다면 6+7과 6+8,6+5 6+4는 얼마인가」.한국 학생이 보면 문제같지도 아닌 문제일 수도 있다.그러나 6을 중심으로 하는 논리를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학습방법의 차이는 특히 과학과 실험실습에서 뚜렷하다.실험을 진행시키는 방식에 있어서 한국학생은 창의성 부족으로 일찍 손을 드는 학생이 많다.몸에 밴 암기식 학습방법으로 실험진행방식을 스스로 터득하기 힘들기 때문이다.한국 학생은 어떤 실험의 진행방식을 물으면 참고서에서 답을 베낀 듯 천편일률적인 답을 내는 데 반해 미국학생의 답은 제각각이라고 한다. 독후감도 마찬가지로 한국 학생은 책의 첫부분과 끝부분을 인용해 책의 내용과 비슷하게 쓰지만 미국 어린이는 지은이와 전혀 다른 느낌을 적어올 때도 있다는 것이다. ○과정 중시 학습방법 이 학교 6학년 G반에서는 최근 1백여개가 넘는 화학원소를 원소기호와 함께 이름을 외도록 했다.여기서 한국 어린이는 탁월한 「능력」을 발휘,미국 교사들을 놀라게 했다.한국에서 갓 온 한 학생은 아직 영어도 모르면서 화학원소에 관한 네번의 시험을 모두 만점을 받았다.미국 학생은 잘했어도 2∼3문제는 틀렸는데도 말이다. 그러나 포트리 제1국민학교의 주디스 히시카와 이중언어교사는 『한국과 일본에서는 암기식·주입식 교육으로 학생이 좋은 점수를 받고 있는데 궁극적으로는 독창성개발에 주안점을 두는 교육이 사회와 국가에 기여하는 교육방식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동부지역 재미 한인학교협의회장인 이광호뉴저지엘리자베스한국학교장도 『한국 학생이 고등학교까지는 두각을 나타내나 대학에 가면 적응하기 힘들어하는 것은 학습방법의 차이에서 오는 것 같다』고 말하고 『모든 분야에 있어 천재를 만드는 교육보다는 창의성을 바탕으로 한가지 일에 전념시키는 교육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뉴욕 컬럼비아대 교환교수로 와 있는 유승희대구교육대교수는 『미국의 교육이 다 좋은 것은 아니지만 미국은 학생이 스스로 생각하게끔 하는 교육을 시키는 경향』이라면서 『우리도 국민학교 고학년과 저학년에 미국처럼 학년담당제를 도입해 경험 많은 교사가 학년의 발달에 맞는 각종 교육자료를 제시,학생에게 창의력을 길러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점에서 일본인이 미국인이 싫어하는 김냄새를 숨기고 개발한 「캘리포니아 롤」은 특히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캘리포니아 롤」도 분명히 김으로 만들었지만 김이 밥을 마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밥이 김을 말고 있다.「거꾸로의 사고」가 적중해 미국인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음식의 하나가 된 것이다. ◎전문가 인터뷰/포트리 제2초등학교 교장 도로씨 S 스타인메츠/수많은 학생에 동일한 지도방법은 잘못/문제점 스스로 생각하고 해결토록 도와줘야 포트리 제2국민학교의 도로씨 S 스타인메츠 교장은 『창의적 교육은 학생들의 적성과 능력이 제각기 다르다는 점을 감안,개개인의 학생에 맞는 방법으로 지도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면서 『수많은 학생을 대상으로 한 동일한 지도방법은 교육의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교사로서 7년,교장으로서 23년등 모두 30년을 초등교육에 봉직하고 있는 스타인메츠교장은 교육의 창의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학생들이 스스로 깨우치고 스스로 결론을 만들어내는 노력이 선행돼야 함을 강조했다.「예스」와 「노」만을 가르치는 교육으로는 학생들의 창의성을 개발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 그의 체험이라고 했다. ­학생들의 창의성을 제대로 개발하기 위해선 교육이 어때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가능한한 학생들에게 많은 기회를 줘 스스로 생각하게 해 창의성을 자극해야 한다.사고를 통한 문제해결방식이 한 단계씩 높아짐으로써 우리가 노리는 창의성을 발휘시킬 수 있다고 본다.학생들이 우선 자기 스스로 생각하고 거기서 자기 의견을 내게 하는 교육적 환경이 필요하다. ­한국학생의 창의성에 문제는 없는 지. ▲한국학생은 대부분 능력이 있다.내가 알기에는 한국학생은 암기에 특히 강하다.그러나 암기를 하고 있는 내용을 이해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선생이 이론등을 설명하면 그것을 단지 외우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됐는 지를 먼저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단순히 저장했던 것을 되살려내는 것만으로서는 학습에 발전이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창의성이 강조되는 과학과 실험실습 같은 과목은 어떻게 하고 있는가. ▲학생들로 하여금 스스로의 방식대로 과제에 접근하고 실험을 하도록 하고 있다.교과서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결론을 내도록 하는 방법을 권장하고 있다.결론이 틀리면 왜 그것이 틀렸는 지를 스스로 알게끔 하는 것이다.단지 결과적 사실만을 알아서는 의미가 없다. ­「묻는 것부터 가르친다」는 미국의 초등교육은 어떤 교육적 장점이 있는지. ▲미국의 초등교육 목적은 어린이의 능력을 개발시켜 사회에 봉사하고 사회의 좋은 구성원이 되도록 하는데 있다.물론 교과서도 교육에 있어 중요한 부분이지만 완전한 것이 아니다.학생들의 관심은 너무도 다양하므로 교사들이 유연성과 자율성을 갖고 적절히 대처함으로써 창의성을 유도해 낼 수 있다. ­암기식에 익숙해 창의력이 떨어질 것으로 여겨지는 한국학생의 창의력 보완에 조언이 있다면. ▲한국학생이 쉽게 미국의 교육환경에 적응하기 때문에 큰 어려움은 없다.한국학생에게 「스스로 하는 공부」를 하도록 더 많은 기회를 줘 나가겠다.능력있는 한국학생의 창의적 노력과 교사들의 지도로 좋은 결실을 거둘 것이다.
  • 모유우량아 선발대회/간호협회,100명대상 예선거쳐 본선 30일에

    ◎심신균형 발달엔 엄마젖이 최고/생후 6개월까지로 참가자격 제한 대한간호협회가 주최하는 제1회 「건강한 모유수유아 선발대회」가 보건복지부 후원으로 예선(20일·대한간호협회 강당)·본선(30일·쉐라톤 워커힐 호텔)으로 나누어 열린다. 얼핏 지난 70년대 요란스러웠던 「우량아 선발대회」를 떠올리게 하는 이 대회는 알고보면 그와 정반대의 배경에서 출발 했다.한 분유회사가 주관했던 과거의 우량아 대회는 제목 그대로 우량한 외모를 선발기준으로 삼았었다.이로 인해 포동포동 오른 분유살이 마치 아기 건강의 척도인양 알려져 은연중 분유가 모유보다 더 낫다는 인식을 조장했던 것. 그간 꾸준히 모유먹이기 운동을 펼쳐온 간호협회의 박현경 사업부장은 『국제간호협의회가 모유먹이기 캠페인을 주도하는가 하면 제4차 북경여성회의에서도 모유수유 행동강령이 채택됐다』면서 돌연사·감염 방지 및 엄마와 아기의 정서적 안정 측면에서 모유를 따를것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번 대회에서는 신청 아기중 선착순 1백명을 대상으로 예선을 거쳐 본선에서 가장 건강한 아기 1·2등을 가려뽑는다.호응이 낮을까 우려가 컸는데 신청기간 한달동안 1천여통의 전화가 쇄도,본업이 마비될 정도였다는게 박씨의 전언.모유아라고 첫눈에 딱 부러지게 알아볼 방법이 없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모유를 많이 먹이게 되는 생후 6개월까지의 아기로 자격을 제한,신뢰도를 높였다. 심사위원인 이근 이화여대 교수(소아과 전문의)는 『체중·신장 등 신체적 특성은 물론,엄마와의 관계나 영리함 등을 종합적으로 보게 될것』이라면서 『무조건 체중이 많이 나간다고 좋은게 아니라 발달상황이 또래 평균에 가깝고 단단해야 한다』고 건강한 모유아의 특성을 말했다.
  • 설악산에 첫 눈/작년보다 한달 빨라

    27일 상오 7시30분부터 8시까지 30분간 국립공원 설악산의 최고봉인 대청봉(해발 1천7백8m)에 올둘어 첫 눈이 내렸다. 이번 눈은 지난해 10월 22일의 첫눈보다 한달 가량 빠른 것으로 함박눈이었으나 내리자마자 녹아 쌓이지는 않았다.
  • 길림성 이도강촌(압록강 2천리:4)

    ◎해발 1,260m… “하늘아래 첫 동네”/일제때 독립군 순병지… 9월말이면 눈발/해방후 조선족 70가구… 현재 1천명 거주 길림성 장백현 용강향 이도강촌은 하늘 아래 첫 동네다.그토록 외지고 높은 고원의 산골이어서 일찍부터 일제에 항거한 독립군의 활동무대였다.1915년에 이미 독립군 군비총단이 들어와 둔병을 마련하고 자리잡은 지역이다.또 1936년에는 항일연군 제2군 제6사가 홍두산에 밀영을 세우고 일본군과 만주군을 호되게 족쳐댔다. 일본도 이에 질세라 서둘러 경찰서와 토벌대,산림경찰대를 만들고 헌병대까지 주둔시켰다.그리고 장백진으로부터 이도강까지 길을 냈다.1945년 이후 이 길을 넓히고 손질했으나 길은 여전히 험로였다.일제가 항일연군을 토벌하기 위해 닦아놓은 길을 버스가 구불부불 기어갔다.장백진에서 고작 28㎞ 밖에 안되는 지척인데도 이도강촌까지 2시간이 실히 걸렸다. ○후천적 고산족으로 장백현에서 조선족이 가장 많이 사는데가 용강현으로 전체인구 2천6백27명 중에 1천88명이 조선족이다.비교적 낮은 지역이라는 해발 1천2백60m의 이강촌을 중심으로 해발 2천12m나 되는 홍두산자락 여러 골짜기에까지 조선족들이 흩어져 살고있다.그러고 보면 용강현 조선족들은 후천적으로 고산족이 된 셈이다.백두산 천지와는 90㎞가 떨어져 있으나 쾌청한 날씨에는 흰눈을 머리에 인 백두산이 망망한 숲 위로 아련히 떠올랐다. 그런 고산지대인지라 서리가 내리지 않는 무상기래야 1년에 90여일이 고작이다.장백현의 다른 저지대에 비해 철이 한달 이상 차이가 나기때문에 벌써 가을을 느꼈다.눈이 빨리 내리면 9월말께 첫눈이 온다고 했다.마침 점심 때가 되어 향장,당서기와 어울려 간부식당을 찾았다.시금치국 한 사발에 만두와 김치 한 접시가 나왔다.식당 일을 하는 원채봉아주머니가 애써 식단내용을 설명했다. 『그래도 향간부들의 식사는 괜찮은 편이꾸마.이 시금치도 현성에서 사왔디요.아무 집에나 들어가 봅소.이만큼 먹나….고산디대라 옥수수나 콩도 안됩꾸마.봅소,벌써 긴팔 옷을 입고들 있지 않슴둥』 여름이 아무리 빨리 간다한들 설마 했던 것은 오산이었다.그날 밤에 향장의 안내로 마을 터주격인 허용학(73)노인을 만나러 가는 길에 한기를 느꼈다.장백진 여관에 맡긴 짐보따리 속의 두꺼운 옷이 그리웠다.노인의 집에는 이미 군불을 지펴놓아 한기를 녹였다.꿈과 젊음을 고산지대 이도강촌에 묻어둔 노인의 얼굴에는 산골 밭뙈기 이랑 같은 주름이 가득했다. 노인의 본래 고향은 이도강촌에서 멀다 할 수 없는 함경남도 삼수군(현재 북한지명은 양강도 삼수군)자산면이다.세살 때 모친이 세상을 뜨자 부친이 두 형을 데리고 장백현을 들어가면서 본인은 갑산 누이집에 맡겼다.18살 나던 해에 형님이 와서 장백현으로 데리고 와서 곧 바로 남의 집 데릴사위로 주었다.석달을 살고 장인허락을 얻어 조선으로 돈벌러갔다가 징병에 끌려 일본 규슈로 갔는데,해방 석달 전의 일이었다. ○민요 「사냥 아리랑」 구전 『일본에 있을 때 미군 비행기 무서운 꼴 봤꾸마.매일 폭격을 해대서리 부상까지 입었지비.그날이 7월2일인데 미군 비행기 수십대가 가물가물 떠와서 폭탄을 내리 퍼부었다 이거우다.해방 이듬해 3월 일본에 온 함남 대표를 따라고향을 들렀다가 이리 다시 와서 붙박혀 사우다』 해방 후에만 해도 이도강촌에는 조선족 70가구가 살았다고 한다.한족은 2가구 뿐이었는데,지금은 2백가구 중에 절반이 한족이다.모두가 농사랍시고 짓지만 고산지대라 소출은 보잘 것이 없다.보리는 1무(2백평)에 1백근(60㎏),귀밀은 1백50근,밀은 작황이 썩 좋아야 3백근을 먹는다.그러나 감자는 잘되는 편이다.지금은 짐승이 덜 하지만 10여년전만 해도 멧돼지와 곰 등쌀에 애를 먹었다.7월부터 돼지가 감자밭에 덤벼들면 온통 요절을 내버렸다.귀밀과 밀밭은 곰이 압발로 이삭을 끌어안고 훑어먹기 시작하면 잠깐만에 거덜이 났다. 그래서 사냥감 짐승들이 많다.겨울이면 마을 장정들은 너나없이 사냥을 떠나 용강향에는 「사냥 아리랑」이 지금도 구전되고 있다.「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우리 낭군 영을 넘어 사냥 가네/낭군님 무사히 돌아오세요/대보름 달빛 아래 술을 듭시다」라는 민요가 그것이다.허용학노인의 백두산 겨울철 사냥 이야기는 간이 큰 사나이들의 모험담으로 들렸다. 『한번은 돼디(돼지)사냥을 갔는데 모리꾼들이 돼디간다고 소리를 티데우.돼디 여러마리가 곧추내려오는데 던댕판(전쟁판)에 당꾸(탱크)돌격하듯 달려왔지비.다섯마리 사냥개가 걸구(큰돼지)뒷 다리를 물고 늘어지자 속도가 늦어뎠디우다.그 때 최길환이가 꺾음대(화승촌)를 탕 놓았디우.앞 섰던 놈이 쓰러디니까 뒷 놈들은 샛길로 도망쳤으니 말이디 그냥 달려왔으면 다 황천객 됐을 거우다.거 안포수란 사냥꾼은 곰을 쏘았다가 선불을 맞아 끌안았디우.같이 간 다른 포수가 곰의 머리를 쏘아 떼 놓았는데,곰한테 할퀸 안포수 머리가죽이 벗겨뎠디…』 사냥을 갔던 사람들이 돌아오면 마을에는 잔치판이 벌어졌다.아낙네들은 국수를 누르고 남정네들은 잡아온 짐승을 삶았다.그리고 술을 마시면서 함지물에 바가지를 엎어놓고 장단을 맞추었다.중국 전역이 한 장기판이라고 하지만 이도강촌 산골마을은 문화대혁명을 수월하게 맞았다.다른 지역에서는 이른바 대식품이라는 풀뿌리 나무껍질을 먹었지만 이도강촌 사람들은 감자를 갈아 떡도 해먹고 분을 내어 국수도 눌러먹었다는 것이다.○아직도 인정만은 부자 그러다가 조사라도 나오면 겨로 음식을 해서 대접하고 조사 나온 간부들이 돌아가면 감자는 배불리 먹었다.그래서 아는 사람들은 이도강촌을 20세기의 별천지라고 불렀다.아직도 인정 만큼은 부자다.다만 농사만으로 돈 벌이가 시원치 않아 금전적으로 빈자나 각박한 문명세계와는 다른 삶을 살고있다.흠이라면 입쌀이 없다는 것뿐이다.밀 1근 80전,귀밀 30전,감자 30전에 팔아 1근에 2원하는 입쌀을 사먹기는 사실상 힘이 겨웠다. 그럼에도 교육열은 대단했다.조선족과 한족 아이들이 같이 다니던 한조연합학교가 있었는데 지난 1988년 조선족기숙제소학교 하나를 더 만들었다.기숙생들의 한달식비 90원 중에 20원을 기꺼이 물면서도 조선족기숙제소학교를 세웠던 것이다.
  • 크라스노야르스크(시베리아 대탐방:30)

    ◎절경의 스탈브이 자연공원… 기암 40개/일군 포로가 지은 스탈린식 건물 곳곳에/19세기 화가 「수리코프」는 이 고장의 자랑/예니세이강 유역에 목재 콤비나트 줄이어 목재산지 예니세이강의 도심 선착장 대합실은 49년 당시 소련에 억류돼있던 일본군 전쟁포로들을 동원해 지었다는 전형적인 스탈린식 건물이다.시베리아 전역에서 전쟁포로들을 동원해 지은 건물들을 많이 볼수 있었다.치타·연해주 등 동시베리아쪽에서는 일본군 포로들이 동원됐고 서부지역에서는 독일군 포로들이 동원됐다. 일제때 학병으로 끌려간 우리나라 사람들중에도 소련군포로가 돼 러시아땅에서 강제노역을 당한 사람들이 많다.김영삼대통령의 단골 러시아어 통역인 유학구씨도 학병으로 끌려갔다가 포로로 잡혀 하바로프스크에서 무려 4년여 강제노역을 했던 사람이다.그는 그곳에서 좌익활동을 해 전후 일본으로의 송환을 거부하고 소련시민이 됐다.이후 그는 소련의 연구소에서 한반도관계 일을 맡다가 한소수교 뒤 다시 한국국적을 취득해 지금 서울에서 살고 있다. ○유학구씨도강제 노역 그와는 달리 학술원회원인 동완 선생은 하바로프스크에서 유학구씨와 함께 포로생활을 했으나 일본으로 되돌아간 경우다.그는 어릴 때 부친을 따라 만주에서 성장하며 배운 유창한 러시아어 때문에 관동군 통역장교로 참전했다고 한다. 귀국 후 그는 오랫동안 한국외국어대 러시아어학과에서 후학을 가르쳤다.이 두 사람의 인생유전도 우리 근대사의 한 비극을 압축해 보여준다. 크라스노야르스크 동쪽의 이르쿠츠크는 시베리아 유형자들의 종착지였다.그래서 유형자들의 수도라고 불린다.따라서 그 직전 도시인 크라스노야르스크는 유형자들의 마지막 중간 기착지였던 셈이다.그리고 많은 유형자들은 이곳에서 유형생활을 마감하기도 했다.「파크로프스크(첫눈)」라는 이름의 18세기 사원을 지나면 시립 공동묘지가 있는데 데카브리스트(12월당원)들을 비롯,유형자들의 묘지가 대거 눈에 띈다.「파크로프스크」라는 이름은 첫눈 내리는 10월1일에 착공됐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보통 10월1일 첫눈이 내리면 이듬해 4월까지 겨울이 계속되고 1월 평균기온이 지금도 영하18∼20도로 내려간다.지난 겨울에는 예전같은 혹한은 줄어들었지만 대신 폭설이 많이 내렸다고 한다. 크라스노야르스크의 가장 자랑거리는 뭐니뭐니해도 자연공원 「스탈브이」봉이다.수력발전소로 가는 길 중간에 있는 약 40개의 기암 봉우리로 이루어진 자연공원이다.우리의 설악산에 비할바는 못되지만 산이 귀한 시베리아인들은 이 스탈브이를 한번 가보는 게 평생 꿈이라고 할 정도로 유명한 산이다.산세도 산세지만 사회주의 나라들의 공원은 역시 사람의 발길이 뜸해 오염되지 않은 게 제일 장점인 것같다.무료한 표정으로 앉아있던 공원입구 매표소 여직원은 엽서·안내책자 등을 종류대로 다 사고 싶다는 말에 신이 나서 먼지가 뽀얗게 쌓인 서랍을 이리저리 뒤졌다.이곳의 안내책자들은 사진기술은 괜찮은데 하나같이 종이질과 컬러 인쇄술이 조잡한 게 흠이다.얼음같이 찬 계곡물에 잠시 발을 담그니 쌓인 여행의 피로가 말끔히 씻겨지는 기분이다. ○유형자들 중간 기착지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특히 「클레시」라고 부르는 해충을 조심해야한다.작은 벌 모양으로 생겼는데 한번 물리면 뇌·신경조직에 치명적인 해를 가한다고 한다.공원 입구는 물론,크라스노야르스크 시내 곳곳에 클레시를 조심하라는 경고판이 나붙어 있다.스탈브이를 내려오면 예니세이강을 끼고 시내 초입까지 내내 목재 콤비나트가 줄줄이 들어 서 있다.뗏목으로 이동해온 목재들을 이곳에서 가공해 시베리아철도를 이용해 각 도시로 공급하는 것이다. 이곳 사람들의 문화적 자랑거리로는 19세기에 활동했던 이곳 출신 화가 수리코프를 빼놓을 수 없다.시내 한복판에 있는 전형적인 동시베리아 목재집을 박물관으로 꾸며 그가 쓰던 가구와 그림들을 전시해 놓았다.시베리아의 자연풍경과 여인·가족,특히 자연속의 사람을 즐겨 그린 수리코프에 대한 이곳 사람들의 자긍심은 대단하다. 크라스노야르스크가 우리에게 비교적 낯설지 않게 들리는 이유중 하나는 지난 88년9월 고르바초프가 이곳에서「크라스노야르스크 선언」이라는 새 아시아 군사외교노선을 천명한 때문이기도 하다.아시아에 탈냉전의 바람을 불어놓는 선언이라며당시 우리 언론들도 대서특필 했었다.고르비가 당시 이 선언을 발표했던 주당위원회 건물은 지금 주정부·주의회가 입주해 있고 정작 거리의 시민들은 이 선언에 관해 기억하는 사람이 없었다.하기야 고르비마저도 거의 잊혀진 인물이 됐으니. ○고르비 “탈냉전” 천명한 곳 시베리아에서 5월말은 졸업시즌이다.크라스노야르스크의 중심가인 칼 마르크스거리의 불러바르(도보)에는 졸업을 앞둔 여중생들이 들뜬 기분에 10여명씩 무리를 지어다니는 모습이 눈에 띈다.11학년제이니까 15∼16살쯤 되는 나이들이어서 화장도 짙게 하고 모두 숙성한 모습들이다.우리를 보더니 『우리는 졸업한다』『사진을 찍어달라』는 등 명랑하게 재잘거리며 지나간다. 러시아는 지금 학제도 큰 변혁기에 있다.지금까지는 국민학교 5년에 중학교는 6년,합쳐서 11년제였다.우리와 달리 국민학교·중학교가 따로 있는 게 아니고 같은 학교에 있으며 제도만 분리돼 있을 뿐이다.국민학교는 담임교사가 학급을 책임지고 모든 과목을 다 가르치는데 중학교로 가면 과목별 교사가 따로 있다.가장 큰 차이는 국민학교에는 시험이라는 게 전혀 없다가 중학교로 가면 과목별로 시험이 생겨난다는 점이다. 요즈음은 이 공립학교 대신 김나지움이나 리세라는 엘리트학교가 많이 생겨나고 있다.일명 「뉴(new)러시안」이라 불리는 신흥 부자들의 자녀들이 다니는 곳이다.시설도 좋고 교육의 질이 매우 좋지만 월학비가 5백∼1천달러에 이르니 일반국민들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이들 학교학생들과 일반 공립학생간의 위화감이 사회문제로 언론에 종종 등장하기도 한다. 중학교를 졸업하면 취직을 하거나 아니면 대학으로 진학한다.요즈음은 너도나도 취직하는 게 유행이다.대학은 우리같이 학부 4년,대학원 2년이 기본이다.그러나 의대의 경우는 예과 2년,인턴 2년을 합쳐 모두 7년제이고 공대 6년,법대 5년등 다양하다.이를 모두 미국·유럽학제로 일원화하는 문제가 요즘 큰 논란거리다.
  • 「윈도즈 95」/초보자도 컴퓨터 쉽게 다룬다

    ◎미 마이크로소프트사 개발… 이달말 시판/도스체제 탈피… 단시간내 PC와 친숙/드라이브·프린터·CD롬 자동 세팅/스타트버튼·마우스로 모든 것 “OK” 차세대 컴퓨터 운영체제의 총아 윈도즈95의 세계가 활짝 열리고 있다.미 과학전문지 파퓰러 사이언스 최근호는 곧 전세계 컴퓨터의 판도를 뒤흔들어 놓을 마이크로 소프트사의 윈도즈95에 대해 자세히 전하고 있다. 윈도즈95는 그야말로 컴퓨터사용자·업계 등의 기본 판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새로운 운영체제다.운영체제의 변화는 컴퓨터의 모든 부문에 영향을 끼친다.운영체제 없이는 워드프로세서·그래픽 프로그램 등 모든 응용프로그램이 작동되지 않기 때문이다. 윈도즈95발표에 따라 앞으로 전세계의 거의 모든 컴퓨터는 이 운영체제 없이는 컴퓨터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이 확실하다. 현재 가장 인기 있는 윈도즈 3.1의 후계자가 되는 윈도즈95는 그동안 수없이 발표시기를 늦춰왔다.그러나 이번 8월말에는 거의 확실하게 우리앞에 다가설 것으로 예상된다. 윈도즈95는 현재 사용되고 있는 윈도즈3.1과는 우선 전혀 다른 사용자환경을 제공한다.그러나 이러한 환경변화는 단순화에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쉽고 편리하게 운영체제를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즉 처음 윈도즈환경을 사용하는 사람도 단시간내에 이에 익숙해 질 수 있을 것이라는 뜻이다. 윈도즈95는 지금까지 16비트환경에 머물러 있던 컴퓨터환경을 이제는 완전한 32비트환경으로 끌어올린다.즉 응용프로그램의 수행속도가 2배나 되고 진정한 의미의 멀티태스킹(다중작업)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첫눈에 보기에 윈도즈95의 환경은 좀 썰렁해 보인다.일단 낯익은 프로그램매니저가 없고 그 대신에 작은 아이콘들이 화면 왼쪽에 나타난다.그리고 왼쪽 맨 아래 스타트버튼이 있는데 이를 이용해 각종 응용프로그램들을 수행시킬 수 있다. 눈에 띄는 것으로는 새로 생긴 「마이컴퓨터」창.이 창에서는 하드디스크·플로피디스크·CD롬드라이브에 어떤 내용이 들어 있는지를 한눈에 보여준다. 매킨토시가 자랑하는 운영체제인 「시스템」과 거의 같은 수준의 인터페이스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밖에 윈도즈3.1과 다른 점은 그전에는 마우스를 두번 눌러줘야 실행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이제는 한번만으로 가능하게 했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윈도즈95의 장점을 들자면 이른바 「플러그 앤드 플레이」의 완벽한 지원이다.기존 도스체제에서는 프린터·CD롬 드라이브 등 새로운 주변기기를 추가할 때마다 일일이 수작업으로 세팅을 해야만 했다. 그러나 윈도즈95는 이를 모두 알아서 자동으로 설정해준다.즉 갖다 끼우기만 하면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플러그 앤드 플레이 기능이 구현되는 것이다. 마이크로 소프트사는 이 새로운 운영체제를 1백달러 정도의 가격으로 시장에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윈도즈95를 돌리기 위한 최소사양은 386DX칩과 4MB의 주메모리 정도를 갖춘 컴퓨터면 되지만 좀더 확실한 효과를 체감하려면 8MB의 주메모리를 가진 486시스템이 좋다.
  • 한국전참전 미언론인 베이런 로버츠 회고

    ◎42년만에 되살린 참전용사의 프라이드/기념비 제막계기 평가 새로이/「잊혀진 전쟁」서 이젠 「기념할 전쟁」으로 워싱턴에서 한국전 참전기념비가 제막되는 것을 계기로 이 기념비의 주인공인 참전미군에 대한 평가가 새로워지고 있다.미 보병25사단 일반병으로 한국전에 참전한 현직언론인 베이런 로버츠씨(워싱턴 타임스)의 한국전참전회고문을 소개한다. 한국전 참전 미군들에게 이번주는 아주 큼직막한 주간이었다. 「사격 끝」의 기념일이었고 워싱턴 중앙국립공원안 「기억의 연못」 옆에서 한국전 참전용사기념비가 제막되는 주였다. 그림자가 어리는 「기억의 연못」? 얼마나 어울리는 배치인가. 1950년대,아니 정확히 1950년6월로 거슬러올라가자.거기서 한국전은 시작한다.처음엔 전쟁도 아니었다.경찰적 용무라고 불렸다.1차세계대전·2차대전 또는 남북전쟁과 비교해보면 전쟁이 아니었던 것이다.그런 전쟁과 비할 때 첫눈에 이 전쟁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 전쟁은 3년이 걸렸고 5만4천명의 미국인 목숨을 앗아갔다.이 숫자를 바탕으로하면 베트남의 악전고투,소위 걸프전쟁,그라나다 모험,파나마 조련 등은 감히 상대가 되지 못한다.베트남전은 미군 목숨을 이보다 수천명 더 앗아가긴 했지만 그러기 위해서 9년이나 더 총격전을 벌여야 했었다. 페르시아만에서의 전쟁? 글쎄,잘해야 1백시간이나 걸렸을까.파나마는 거기에도 아주 못미친다.그라나다는? 아예 말도 꺼내지 말자. 그런 한국전을 미국에선 잊혀진 전쟁이라고 부른다. 이 전쟁은 아마 미국이 참전하고도 가장 잊혀져버린 진짜전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이라는 세계대전의 발꿈치를 밟아 터졌고 그때 마침 거개의 미국인은 50년대와 60년대의 붐을 준비하기에 바빠 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공장들은 하이테크로의 경이로운 이행을 배태하기 시작했으며 텔레비전이 수백만 미국인의 넋을 홀릴 즈음이었다. 냉전은 유럽에서 열기가 오르고 있었다.미국 위에 아련히 드리우는 몹쓸 그림자는 소련 곰이었지 북한도 중공도 아니었다. 한국전 기사는 한 1년쯤 미국신문 1면에 올랐으나 곧 거침없는 후퇴를 기록,3면·7면·18면·20면으로 밀려났다.텔레비전은 초창기인 만큼 훗날의 베트남전같이 한국전을 커버하지 못했다.영화의 뉴스시간도 그저 다루는 시늉만 냈다.사람의 관심은 딴 데 있었다. 한국은 몸이 오그라드는 강추위와 숨이 턱 막히는 무더위 속에서 전쟁을 치렀다.쉬지 않고 쏟아지는 비와 세찬 눈보라,질식할 듯한 흙먼지와 무릎이 그냥 빠져드는 진창에서의 전쟁이었다. 또 교착상태의 기나긴 전선,축축한 벙커,가시철조망의 전진기지 등이 주요인상이었고 끊임없는 수색조 임무,적들의 미친 듯한 인해전술이 끔찍한 기억을 남겼다. 전쟁이 끝나자 싸웠던 미군은 다른 모든 전쟁의 참전용사가 그랬던 것처럼 행복감과 약간의 신경과민상태로 귀환했다.그러나 차이가 있었다. 1차대전의 귀환장병은 진정한 영웅으로 퍼레이드와 축하연에 파묻혔다.2차대전 참전용사도 마찬가지였다.베트남 참전용사는? 고향에 돌아올 때 퍼레이드는 없었지만 현충일·재향군인의 날·독립기념일 날 워싱턴의 베트남참전기념비 부근에 가보라. 걸프전의 「사막의 폭풍」에 참전한 미군은 전국 방방곡곡에서 성대한 귀환 퍼레이드를 벌였다.단 1백시간만 싸우고도 슈발츠코프장군과 휘하 장병은 영웅대접을 톡톡히 받았다. 한국전 참전용사에겐 퍼레이드도 없었고 축하연은 더더욱이 없었다.옷가지를 쑤셔넣은 잡낭 하나만 달랑 들고 있었을 뿐이다.그리고 곧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몸소 참전한 전쟁에 대해서 긴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특히 외부인에게 그랬고,하더라도 같은 참전동료끼리 나지막한 소리도 주고받는 데 그쳤다. 베트남전이나 걸프전과는 달리 한국전 참전미군은 전쟁경험과 관련된 괴상하고 신비화된 후유증증상,혹은 그런 용어를 만들어내지 못했다.귀환해서 사회생활 속으로 융화되거나 표류해갔는데 기억과 참혹한 전쟁에 대한 상처는 혼자 말없이 간직했다.아마 그들은 중공군의 나팔소리와 뼛속을 파고드는 한기를 이따끔 머리에 떠올릴지 모른다.고지탈환을 위해 비명 같은 함성을 지르며 비탈을 지쳐오르는 장면을 기억할 수도 있겠다. 그렇더라도 그걸 장황히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전 참전미군이 이번 참전기념비를 자랑스럽게 여길 것이라고 기대해도 좋다.참전 퇴역군인은 말없이 참전비 옆에 서서 회상에 잠길 것이고 그새 눈물이 괴는 용사도 많을 것이다. 그들에겐 항상 이같은 조용한 위엄이 배어나온다.자신의 감정을 중인환시리에 떠벌리지를 않는다.말은 없지만 한국전 참전미군에겐 프라이드가 있다. 그렇다,42년이 지난 뒤이긴 하지만 이젠 기념할 때다.
  • 모성 주제 뮤지컬(브로드웨이 “새바람”:8)

    ◎서로 다른 어머니상 그린 세작품 대결/피의 형제/쌍둥이 아들 비극 안으로 삭이는 모정/그대에게…/자식 출세 애쓰는 돈많은 극장 여사장/이피게니아/남편죽인 비련의 여인… 아들에 살해돼 매일 브로드웨이 극장에서 공연되고 있는 수십편의 뮤지컬 가운데 관객들로부터 공연이 끝난후 기립박수를 받는 예는 극히 드물다.현란한 조명과 몸짓,그리고 기상천외의 무대장치들로 눈앞의 「재미」는 있을지언정 가슴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감동」을 자아내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브로드웨이 45스트리트 서쪽에 위치한 뮤직박스 극장에서 공연되고 있는 「피의 형제」(Blood Brother)는 공연 때마다 관객들로부터 기립박수를 받는 것으로 유명하다.지난 93년 4월 첫공연을 시작한 이래 2년동안 7백90여회의 공연을 해오면서 한차례도 기립박수가 빠진적이 없는 진기록을 자랑하고 있다. ○공연때마다 기립박수 영국 리버풀의 공장지대를 배경으로 빈부계층간의 갈등을 묘사한 이 뮤지컬은 화려한 무대장식도 없다.어려서 헤어진 쌍둥이 형제가 친구로 만났다 연적이되어 마침내 살인극까지 벌이게 된다는 삼류소설같이 내용도 단순하다.이렇듯 단순한 내용이면서 전해지는 감동이 크다는 점에서 이 뮤지컬을 35년째 롱런하고 있는 「팬태스틱스」에 견줘보는 사람들도 있다. 영국출신의 윌리 러셀이 자신의 소설을 각색하고 음악도 만들었으며 빌 켄라이트가 연출한 이 극이 감동을 주는 가장 큰 이유는 「어머니」,즉 모성애를 작품 전체의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인종·언어·노소를 초월해 어머니는 국제 공통언어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기에 충분하다. 막이 오르면 쌍둥이를 임신한 가난한 가정부가 아이를 못낳는 주인집 여자의 간곡한 부탁으로 아이들을 낳자마자 한 아이를 주인집으로 보내 주인여자가 낳은 것처럼 꾸미는 것으로 이 극은 시작된다. 아이들은 그 사실도 모른채 동네에서 함께 노는 친한 친구가 된다.그러나 생모인 가정부 존스톤부인(헬렌 레디)과 주인여자 리욘스부인(이바르 브로거)은 이들이 서로 놀지 못하도록 떼어놓는다.존스톤부인은 계속 그 집에 가정부로 일하며 아이의 커가는 모습이라도 지켜보기를 원했으나 어느날 리욘스부인은 그녀를 해고시키고 멀리 교외로 이사간다. 그러나 서로 보고 싶어하던 미키(필립 렐)와 에디(릭 라이더·주인집으로 간 아이)는 학생이 되어 다시 만나고 이들은 가정형편과 사회계층의 차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진실한 우정으로 사귄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에디는 런던의 대학으로 가고 미키는 공장에 취직한다.곧이어 미키는 친구였던 린다(사우나 힉스)와 결혼,어려운 생활을 꾸려나간다.그러나 불경기로 공장이 문을 닫자 갱단에 휩쓸리다 체포돼 징역을 살게 된다.한편 대학을 나와 고급관리가 된 에디는 미키를 찾았으나 그는 없고 그의 부인이 된 옛친구 린다를 만난다. 얼마후 출감한 미키는 부인 린다가 에디와 포옹하는 장면을 목격하고는 집에 감춰둔 권총을 꺼내들고 에디의 사무실로 향한다.존스톤부인은 미키를 뒤쫓아가 에디에게 총을 겨누고 있는 그에게 쌍둥이형제라는 사실을 말해준다.그러나 미키는 결국 방아쇠를 당기고 경찰의 총에 죽는다.영국판 「모래시계」라고나 할까.비극적 결말임에도극전개는 성인배우들이 반바지 차림의 아역을 무리없이 소화해내는 등 코믹하게 전개된다. 특히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주제곡 「I Don’t Know How To Love Him」을 히트시켜 작곡자 앤드류 로이드 웨버를 오늘날 뮤지컬의 황제로 만든 호주태생 여가수 헬렌 레디의 열연은 두시간 반동안 관객들을 완전히 그녀의 페이스로 몰아넣는다.존스톤부인역을 맡아 다정다감한 어머니로서 그러나 현실적인 가난 때문에 숱한 삶의 고통을 안으로만 삭여야 하는 그녀의 노래와 연기는 관람객들에게 제각기의 어머니 모습으로 와닿는다. ○헬렌 레디 여주인공으로 브로드웨이 슈버트극장에서 3년째 인기리에 공연되고 있는 뮤지컬 「그대에게 반했다오」(Crazy for You)는 또다른 모습의 어머니를 보여준다.현란한 의상과 무대장식,신기에 가까운 춤으로 관객을 몰아지경으로 빠져들게하는 이 뮤지컬은 「피의 형제」와는 정반대의 분위기로 진행된다. 「아가씨와 건달들」의 작곡자 프랭크 로서와 함께 미국을 대표하는 뮤지컬 작곡자로 추앙받는 조지 거슈인과 이라 거슈인 형제가 작곡하고 켄 루드빅이 대본을 쓴 이 뮤지컬은 「음악성」과「드라마」를 강조하는 영국 뮤지컬과는 달리 춤·노래중심의 「오락성」을 강조하는 전형적인 미국 뮤지컬이다. 전공보다는 브로드웨이의 배우를 꿈꾸는 법학도인 주인공 보비(제임스 브레난)는 은행가가 되기를 원하는 돈많은 극장주 어머니(제인 코넬)의 강권에 못이겨 네바다주 작은 사막 마을의 은행에 부임한다.마을의 유일한 극장인 게이티극장주인의 딸인 폴리(카렌 짐바)에게 첫눈에 반한 그는 빚때문에 폐관위기에 처한 극장을 살리기 위해 브로드웨이의 유명배우 벨라 쟁글러(브루스 애들러)로 변장,공연을 성공리에 이끌어 극장을 구한다. 여기에 진짜 쟁글러가 나타나 여러가지 해프닝을 일으키지만 결국 보비는 폴리와 결혼하고 어머니를 설득,브로드웨이의 극장을 물려받아 자신의 꿈을 펼쳐나간다는 해피엔딩의 스토리. ○그리스 신화를 극으로 이 극에서 어머니는 화려한 의상에 검은 승용차를 타고 다니며 자식에게 「무엇이든 해줄수 있는」능력과 사랑을 겸비한 이상적인 어머니상을 그려주고 있다. 그러나 이들같이 무엇이든 베풀어주려는 어머니와는 달리 자신의 야망에 가득차 자식으로부터 죽임을 당하는 또하나의 어머니상도 나타나고 있다.고전작품을 현대극화해 공연하는 오프브로드웨이 CSC극장에서 공연되고 있는 「이피게니아」(Iphigenia)가 그같은 내용을 주제로 하고 있다. 트로이전쟁을 배경으로 한 그리스신화를 극화한 이 연극은 미케네왕 아가멤논의 부인 클리템네스트라와 그들의 네자녀 사이의 얘기로 앨런 맥로그린의 희곡을 데이비드 에습존슨이 연출한 작품이다.막이 별도로 없이 사각 공간으로된 무대에 조명이 들어오면 오른쪽 벽에 매달린 어머니 클리템네스트라와 아버지 아가멤논에 의해 아르테미스신에게 제물로 바쳐진 큰딸 이피게니아와의 대화로 시작된다. 어머니 클리템네스트라는 전남편 탄탈루스와 이피게니아를 죽인 현남편 아가멤논에게 원한을 품고 전쟁에서 돌아온 그를 칼로 찔러 죽이고 자신이 미케네를 통치한다.그리고 후환을 없애기 위해 아가멤논과의 사이에서 출생한 아들오레스테스마저 죽이려 한다. 그러나 전쟁에서 돌아온 오레스테스는 정신적 강박관념에서 반미치광이가 된누나 엘렉트라로부터 어머니의 계획을 전해듣고는 먼저 어머니를 찔러 죽인다.그후 오레스테스는 아폴로신의 명령으로 타우리스섬으로 가서 그곳의 정령으로 살아있는 큰누나 이피게니아를 만난다.진한 가족애를 확인한 이피게니아는 남자를 잡아 아르테미스신에게 제물로 바쳐야하는 자신의 의무를 내던지고 동생 오레스테스를 데리고 섬을 탈출해 나온다. 브로드웨이는 이같이 인간상실,가족상실의 시대에 우리들에게 어머니의 존재와 가족의 참의미에 대한 몇가지 해석을 제시해주고 있다.
  • 캉자스먼쯔의 신산(서역 문화기행:6)

    ◎붉은 암벽에 모계사회 생식숭배 그림/기원전 2∼3세기 카자크족 원주민들이 새겨/무도회·인구번식회에 인물 2백명… 여성이 대부분 우고,그들과 싸워서 이기기 위해서라도 생식의 필요는 절실하다. 수렵과 유목을 위해서는 심산유곡과 만경초원이 안성맞춤이다.우랄·알타이산맥 남쪽으로 천산산맥과 곤륜산맥을 등지고,팔카스호 동쪽으로 아라호·아이피호·이리강·카스강·마나스강등을 낀 신강의 서북지대가 바로 최적의 지대로 꼽힌다. 그 지대를 기원전 7세기부터 누빈 것은 오손(오손)·강거(강거)·엄채등 돌궐어족인데,그들은 모두 오늘날 하사크족의 원조민족이었다.지금도 중국 서역에는 백만명을 헤아리는 카자크족이 신강의 서북지역을 물 따라 풀 쫓아 유목하고 있다. 그 유목하는 곳엔 카자크족이 살고 카자크족이 사는 곳,그러니까 팔카스호 동쪽의 초원에는 암화(암화)가 많았다. 지금 독립연합국의 하나인 카자흐스탄을 비롯,신강의 이리강과 초하유역인 쿨자파스산상에는 기원전 6세기에서 3세기로 추정되는 동물암화가 많다.다시 동쪽으로이동하면서 비록 연대는 기원전 3세기 이후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리강유역의 훠청(휘성)현 베이간(북간)계곡을 비롯,니러커(이근극)현의 훙광목장등 하미(합밀)의 남산에 이르기까지 적어도 50여군데에서 발견되었다. ○초원에 천마 노닐어 그중에 위민(유민)현 팔타쿨(파이달고이)과 후투비(호도벽)의 캉자스먼쯔(강가석문자)의 암화도 포함되었지만 여느 암화와 다른 모계사회의 생식숭배를 보였다 한다.특히 최근에 발견된 캉자쯔먼즈의 그것이 보다 사실적인 데다 화면이 또렷하다는 신강사범대학 중문과의 황천(황천)주임의 권고와 안내로 그곳으로 머리를 돌렸다. 우루무치에서 캉자쯔먼즈까지 1백50㎞.위구르말로「도깨비 고을」이라는 후투비까지 70㎞는 시원한 아스팔트길이었지만,후투비에서 그 이름도 시골스런 추이얼거우(최예구)향에 있는 현장까지는 험한 산허리를 뚫고 천산산맥 서쪽의 어디쯤을 덜컹거릴 수 밖에 없었다. 깔딱 어느 고개를 넘어설 때,황주임은 별안간 차를 멈추게했다.일행이 내려서 멀리 산맥을 굽어 보았다.시뻘건 바위산맥이 서남쪽으로 꿈틀거리며 이어져 있는데 그 기상은 수십척의 함대가 파도를 가르며 행진하는 모습이었다.그 산맥은 적어도 20∼30㎞를 쪽빛 하늘밑으로 이어져 있는데 그 한복판에 활짝 열린 대문을 방불케 웅장한 바위가 보였다.그것이 바로 생식 숭배의 암화 현장이라했다.결코 소풍하는 산등성이가 아니라 출렁이는 산맥,어디를 보아도 기운이 넘치는 그러한 암맥들이었다. 후투비에서 거의 80㎞를 달려서 이윽고 골짜기의 초원에 도달했다.초원에는 낙타와 천마들이 떼를 지어 풀을 뜯고 있었다.신산의 어귀에 갔을 때,동그랗고 커다란 눈에 텁수룩한 수염을 기른 청년이 길을 막았다.입장하는 표를 사라했다.아직은 알려지지 않아서 관객은 물론 관리자도 없을 줄 알았는데.그들의 재빠른 상혼이 놀랄만 했다. 문제의 암화가 있는 바위는 깎아 세운듯한 암벽이었다.그 암화는 비록 동서 14m,상하 9m의 크기,화면면적이 1백20㎡쯤되어 보이는 분사암에 그려졌지만,그 암화의 모체는 동서 1백50m쯤에 상하 50여m의 엄청난 바위였다. 필자는 마치 방을 보는 수험생처럼 고개를 들고,마치 숨은 그림을 찾듯 훑었다.거기에 등장하는 인물은 족히 2백명은 넘었다.보이는 대부분이 여성으로 이곳이 모계중심의 사회였음을 알게 했다.높은 모자를 눌러 쓰고 모자위에는 두개의 깃털을 꽂은 여성이었다.풍만한 가슴에다 둥실한 엉덩이,갸름한 얼굴에 높은 코,커다란 눈에 작은 입술,가느다란 목에 끊어질 듯한 허리,긴 다리에 섬섬옥수.첫눈에 모던한 서구의 처녀들을 연상케했다. 그 화면은 무질서하게 많은 군상이 여기저기 불거져 나왔는데 가만히 살피면 몇가지 화폭으로 분별할 수 있었다.약간 좌측엔 아홉명의 여인이 한결같이 오른팔은 올리고 왼팔을 내리면서 춤의 동작을 보였는데,어찌보면 벌거숭이요,어찌보면 오늘의 발레복처럼 성감적인 복장이었다. ○남자는 까까중머리 윗 그림을 「누드의 무도회」라 한다면 그 좌측으로 「혼무도(혼무도)」에 상당한 그림이 있었다.남녀 각각 10여명씩 춤을 추는데 여성은 위에서와 마찬가지지만 두팔을 모두 내렸고 남성은 모자도 깃털도 없이 까까중머리에다 홀쭉한 배에 뾰족한 그것을 기운 차게 달고 있었다.여기 저기 동체가 달아난 얼굴이 몇개 있는데 가필한 그림이거나 다른 상징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보다 특기할 일은 남성의 가슴과 여성의 가슴에 각각 한 사람의 이성을 품고 있는가 하면 그러한 혼무의 마당을 향해 호랑이 두마리가 달려들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의 선명한 주제의 그림이 우측 가장자리에 보였다.한 사내가 발기된 길고 둔탁한 그것을 한손으로 들면서 계집의 하체에 조준하고 그 아래로 성숙한 여인 하나와 50명의 꼬마가 상하단으로 나뉘어 마치 기차놀이하듯이 이열 횡대로 서 있는 그림이었다.인구의 번식을 노골적으로 기구하는 강렬한 포스터같았다. 암화에 등장하는 여성은 대체로 갸름한 얼굴에 깊은 눈,높은 코,가는 목,긴 다리,그리고 높은 모자에 깃털,남자는 높은 코에 기다란 생식기,가냘픈 하체에 긴 다리,두건식의 모자에 동그란 얼굴이 인상적이었다.이러한 외모와 복식으로 미루어 한(한)족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카자크의 체모에 가장 근사할 뿐 아니라 그러한 암화가 아직도 카자크족의 집거 부락에서 발견되고 있었다. ○금속도구 이용 음각 마지막 궁금한 것은 연대였다. 현지의 문화국이나 박물관에선 아직 뚜렷한 연구결과를 발표한 게 없다지만 카자흐스탄 팔카스호 동쪽에서 발견되고 있는 카자크족의 암화,그 대부분이 기원전 6세기에서 3세기 사이,더구나 동점(동참)하였다는 사실 외에도 캉자스먼쯔의 암화가 금속도구에 의한 음각이란 방법으로 미루어볼 때 신석기시대의 말기에 시작해서 청동 및 철기시대였음을 단정할 수 있겠다.그렇다면 기원전 2,3세기의 작품으로 추정하는데 무리가 가지 않는다. 이러한 암화를 작품시하는 데도 그 나름의 의의가 있다.첫째는 그 구성이 부호나 도안처럼 단순하지만 감성적이고 질박하다는 것이요,둘째는 그 표현이 비록 과장적이지만 주장이 선명하다는 것이요,셋째는 그 내용이 조잡하지만 당시의 생활을 생생하게 반영한 역사의 단편들이란 점이다. 필자는 돌아오는 길,캉자스먼쯔 바위에 생식 숭배를 그림으로 새긴 그 후손들을 만나고 싶은 충동이 있었다.조금전 들어갈 때,인민폐 몇푼을 쥐어 준 그 청년을찾기 위해 돌아오는데 난데없이 「시집 가는 날」을 만났다.말 세필에 영감과 할멈이 혼수를 실은 행렬.어쩌면 선발대격인듯,영감은 앞에서 말을 끌고 할멈은 말을 타고 깡마른 언덕을 넘고 있었다. 그 청년은 서른여덟살의 마이무라치라고.형제가 다섯인데 모두 분가해서 한마을을 형성했다 한다.조심스럽게 재산정도를 묻자 스스럼없이 대답했다. 『염소 1백50마리에 낙타·말·황소를 합해서 50마리』라고. 그리고 염소 한마리의 값은 큰 것은 2백위안(한화 2만원상담). 짓궂게 통혼사정을 묻자 그 대답은 자못 단호했다. 위구르족이나 회족,시부족과 통혼할지언정 한족과의 통혼은 싫다고 했다.왜냐면 한족은 이슬람교를 믿지 않기 때문이란다. 주인은 우리 일행을 그들의 흙집에 안내했다.사방이 흙벽,마루나 침대가 따로 없다.물론 안방과 건넌방의 구별도 없이 밋밋한 헛간 비슷한 구조였다.
  • 전국 25일께 첫눈/서울지역 예년보다 1주일 늦어/기상청 예보

    오는 25일쯤 전국에 첫눈이 내릴 것으로 보인다. 기상청은 20일 주간기상예보를 통해 『오는 24일 기압골의 영향으로 전국이 흐리고 비온 뒤 25일에는 기온이 떨어지면서 산간지역을 중심으로 눈 또는 비가 오겠다』고 예보했다. 서울지역의 첫눈은 지난해의 경우 11월 21일 0.7㎝가량 내렸고 평년에는 11월 19일 내렸다. 한편 기상청은 11월 기상전망을 통해 중부와 호남지방은 중순쯤,영남지방은 하순쯤 첫눈이 내릴 것으로 내다봤으나 당초 예보보다 중부·호남지방의 경우 많게는 열흘쯤 늦게 내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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