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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약 적정가격기준 만든다/현시판가 도매의 10배 넘어/복지부

    ◎진찰·처방료 등 조사거쳐 고시 한의원과 약국에서 판매하는 한약의 적정가격 기준이 마련된다.약제별로 품질·등급별 원가와 함께 적정가격의 범위를 고시한다. 17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오는 7월까지 진찰료·처방료·조제료 인건비·관리비·이윤 등을 광범위하게 조사해 적정가격을 산정,고시하기로 했다.초기에는 권장사항으로 운영하고,시행과정에서 드러나는 문제점을 보완해 제도화한다. 복지부는 6월 중 많이 먹거나 보약성 처방을 포함한 한약조제 지침서의 1백개 처방을 중심으로 적정한 가격의 기준 마련을 위한 연구를 전문기관에 맡기기로 했다. 한약가격이 정상화되면 한약판매에 따른 초과이윤이 대폭 감소,한약을 조제하려는 약사의 한약시장 참여요인이 줄어든다.또 겸업 약국과 한의원,한약국간의 경쟁이 심해져 국민의 보건후생 증진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한의원이나 약국에서 판매하는 치료용 한약이나 보약의 값은 원료 도매가격의 10배를 넘는다.복지부가 지난 4월27일 한의원과 약국 9곳씩을 표본으로 선정,사용빈도가 높은 20개 처방의 한약값(20첩 기준)을 조사한 결과 보혈제인 오적산은 1제(20첩)에 한의원에서 12만∼15만원씩,약국에서는 6만원씩이었다고 밝혔다.그러나 원료의 도매가는 1만∼1만2천원이었다. 기와 혈을 보강하는 십전대보탕의 재료원가는 2만∼2만7천원이나 한의원에서는 10만∼12만원,약국은 6만원을 받았다.〈조명환 기자〉
  • 「학교종이 땡땡땡」 출간차 귀국/김메리 할머니 특별 인터뷰

    ◎“요즘 부모들 「가르침없는 자유」 주는게 문제”/「뭐든지 배워라」 어머님 말씀 내인생의 좌표/우리교과서 만들며 작곡… 50년 애창 큰 보람/20년만 젊어도 그림 배울텐데… 서울신문 초대에 감사드려요 □대담=임영숙 문화부장 「학교종이 땡땡땡 어서 모이자 선생님이 우리를 기다리신다」 우리 국민에게 애국가 다음으로 친근한 노래 「학교종」의 작사·작곡가 김메리할머니(92·미국 뉴욕거주).격동의 한 세기를 현대여성도 엄두를 못낼 도전과 모험으로 치열하게 살아 온 「영원한 젊은이」이기도 하다.자서전 「학교종이 땡땡땡」의 출판기념회와 어린이날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귀국한 김할머니를 2일 임영숙 문화부장이 만나 보았다.〈편집자 주〉 ­자서전을 단숨에 읽었습니다.재미있고 감동적이더군요. 『고마워요.할 이야기가 많아서 「속 학교종이 땡땡땡」을 써야 할까봐요.처음엔 영어로도 쓰려고 했는데….우리 딸 귀인(조귀인 미국 뉴욕타임스 매거진 편집국장보)이가 「학교종이 땡땡땡」을 영어로 다시 쓰기로 했어요.미국에서도 책이 나올거예요』 숙소인 남산의 힐튼호텔을 찾은 이날 상오,김할머니는 진분홍 꽃무늬가 돋보이는 하늘색 옷에 같은색 스카프,브로치를 단 흰 털실 베레모 차림으로 햇볕 가득한 방에서 일행을 맞이했다.뉴욕에서 서울까지 13시간의 비행에도 아랑곳없이 꼿꼿한 자세에 웃음을 잃지 않고 80여년전의 일까지 하나하나 기억해 얘기하는 모습은 거의 「소녀」에 가깝다.아직도 마음은 25∼29세라고 말했다. ○남산 신사참배 “생생” 『일제때 저 남산언덕배기에 학생들이 신사참배를 했어요.한달에 두번씩 신촌에서 이화학당 학생들 20여명이 함께 걸어와 저기서 절 한번하고 또 신촌까지 걸어갔습니다.지금 남산을 보니 그때 가슴아팠던 것이 사라지는군요.아주 시원해요』 ­한국이 많이 변했지요. 『나쁜쪽으로 보다 좋은쪽으로 변화가 더 많아요.이제 남은 것은 북한이 문제인데 통일도 곧 될거라고 생각해요』 ­지금 불리는 「학교종」의 가사가 원래와 달라졌다고 어제 공항에서 말씀하셨는데… 『아동문학가 윤석중씨가 나중에 바꾸었어요.문법상 문제가 있다면서.그래서 미국에서 전화를 걸어 「내가 한국에만 있었어도 가만두지 않았다」고 항의를 해서 사이가 멀어지기도 했죠.그러나 지금은 좋아졌어요.그리고 올해부터 미국 뉴욕주 국민학교 음악책에 「학교종」이 실리는데 종소리가 「딩딩딩(Ding)」으로 번역돼 좀 우스워요.』 ­해방직후 이화여전 음악과장 시절 현제명 김성태씨등과 음악교과서를 만들면서 20여곡을 작곡하셨다는데 「학교종」말고 다른 작품은 남아있지 않습니까. 『당시 교과서가 있으면 찾을 수 있을텐데 안타까워요.1950년 미국에서 내 손으로 직접 써서 출판한 「한국민요집」은 아직도 미시간의 도서관에 남아 있는데…』 「학교종」이 지난 95년부터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리지 않고 교사용 지도자료에만 소개되고 있다는 사실에도 매우 섭섭해 했다. ○김규식씨가 사촌오빠 ­「학교종이 땡땡땡」을 읽다 보면 나이와 조건에 구애받지 않고 항상 새로운 삶을 사는 선생님의 모습이 인상적입니다.구한말 명문가의 규수로서 결혼하기 싫다고 만주로 도망가고,이화여전을 졸업한 뒤 장학생으로 미국유학을 떠나 전공인 영문학대신 음악학으로 석사학위를 받고,귀국후 이화여전 음악과장이 됐다가 학칙을 어긴 고위층 자녀 학생을 유급시킨 일로 말썽이 나자 음악과장 자리를 박차고 다시 미국으로 떠나 화학과 미생물학 석사가 돼 49세부터 미국 병원실험실에서 임상병리사로 일하고,정년퇴직후 70세가 넘은 나이에 평화봉사단이 되어 아프리카로 떠나고,80세에 서예를 새로 배워 전시회를 열고….그런 에너지가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합니다 『살면서 어머니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어요.어머니는 늘 나에게 무엇이든 배우라 하셨어요.도둑질 빼고 무엇이든지요.항상 남을 도우라는 말씀도 하셨어요.또 그 시대의 여성치고는 개방적이어서 내가 하려는 일이 옳으면 막지 않으셨어요.소학교때 선생님의 얘기도 가슴 속에 살아 있어요.한 사람이 나뭇가지에 올라갔는데 그 나뭇가지가 약해서 부러지러 하자 빨리 그 옆의 든든한 가지로 옮겨 살았다는 거예요.우리의 삶도 「좀 더 나은길」을 찾아 부단히 움직야 합니다』 ­지금도 새로 하고 싶은 일이 있으신가요. 『하고 싶은 일을 거의 다 했는데 한가지만 아직 못했어요.그림 그리는 일이예요.79세때 뉴욕대학 평생교육 과정에 들어가 3년간 소설 쓰는법도 배웠어요』 ○공부하고 싶어 만주로 ­어린시절 이름은 지금과 달랐지요. 『셋째딸이라 해서 삼식이었지요.그러나 기독교신자인 어머니가 메리(Mary)라고 부르셨습니다.아버지(김익승)는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일본유학을 한 뒤 일본어,영어에 능통해 외무대신까지 지냈고 김규식박사가 사촌오빠됩니다.보통학교를 나온 뒤 배화학교를 다녔으나 졸업반이던 1919년 3·1만세운동이 일어나 졸업은 못했지요.그러나 그때 교사들이 잡혀가 보통학교 졸업반 학생이 임시교사가 됐어요.나도 15세 되던 해 논산의 보통학교에 교사로 부임했는데 17,18세나 되는 남자학생들이 가득찬 학교에 도착하니 「아기선생 왔다」며 놀려대는 것 아니겠어요』 ­지금까지 살아 오시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는 언제였습니까. 『만주에 3년간 있을때 였어요.논산에서 6개월만에 올라 오니 아버지가 결혼하라고 하시더군요.당시 궁중전의였던 다섯째 삼촌이 고종황제가 독살됐다는 소문을 역이용한 일본인들때문에 만주로 떠나게 돼 영어사전 하나만 달랑 챙겨들고 따라갔어요.삼촌의 병원 일을 도우면서 영어사전을 통째 외우고 교회에서 풍금반주를 하기도 했는데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없다는 것이 괴로웠어요』 ○74세에 아프리카 봉사 ­만주에서 돌아 와 이화학당에 입학하셨을 때의 동급생이나 후배들 얘기 좀 해주시죠. 『이화학당에서 영문학을 공부했는데 그때 동기중 이기붕씨의 부인이 된 박마리아가 있어요.1,2등을 다투는 라이벌이었죠.하지만 이씨와의 결혼은 내 중매로 이루어졌어요.게다가 한 학년 밑에는 모윤숙 백낙준씨의 부인이 된 최이권 등이 있었는데 이들도 여간 극성이 아니었어요.학생회장도 선배인 우리들을 제치고 서로 맡겠다고 난리였어요』 ­미국으로 다시 떠나서 뒤늦게 전공을 바꾸신 이유는…. 『안정된 직업을 갖기 위해서 였어요.70세까지 병원 실험실에서 일했어요.75년 남편(조오흥)이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이어 벙원에서도 정년퇴임 하고 나자 이제는 또 무얼할까 하다가 74세가 되던 1978년 미국 평화봉사단에 지원,아프리카 라이베리아로 떠났어요.2년동안 그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80년 4월 라이베리아에 쿠데타가 일어나 미국으로 돌아왔지요』 ­대단하십니다.건강유지의 비결은 무엇입니까. 『음식과 운동이예요.매일 동네를 3블록씩 산보하고 비가 오는 날은 집안에서 자전거등 운동기구로 운동을 해요.아침은 과일주스나 과일,보리죽과 볶은 가루에 우유를 타서 먹든지 달걀반숙을 먹어요.점심은 좀 양이 많은데 7첩반상으로 차려먹죠.맵지않게 만든 김치와 깍두기,생선,나물무침,전을 즐기지요.돼지고기,닭고기는 안 먹고 일주일에 세번 생선국,두번 야채국을 먹어요.외식은 안해요.또 뇌세포 생성을 돕기 위해 매일 TV 교양프로의 토론을 보며 받아쓰기도 하지요.아직 돋보기도 안쓰고 바느질도 직접 해요.지난 89년 뇌일혈로 한때 쓰러졌던 적이 있어요.그때도 기억력,시력을 그대로 유지해 의사가 「신비하다」고 말했어요.지난해 기억력테스트를 해보니 25∼29세 연령의 기억력으로 나오더군요.「호랑이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는 우리 옛말의 그 정신으로 삽니다』 ○주일학교 교사 맹활약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 『지금은 주일학교에서 한국인 어린이들의 교사로 일해요.「서로 사랑하고 용서하고 도와주면 좋은 인물됩니다」라는 노래를 직접 만들어 우리말,영어로 가르쳐주기도 하죠.월요일이면 하루종일 드러누워야 할 정도로 육체적으로는 힘들지만 가르치는 동안에는 생기가 나요.20년만 젊다면 더 많은 봉사활동을 할 수 있을텐데…』 ­마지막으로 할머니의 노래를 배우고 자라는 우리 어린이들과 부모님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요즘 한국이나 미국이나 어린이들이 가짜 동물,식물만 보면서 놀잖아요.그게 못마땅해요.자연에서 진짜 동물,식물을 보면서 놀아야 배우는 것도 많아요.그리고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자유는 무제한으로 주지만 지도를 안하는 것 같아요.지도하면서 자유를 주어야합니다』 ­서울에 얼마나 머무실겁니까 『2∼3주일 있을 생각이예요.떠나기전에 서울신문을 방문하겠습니다.서울신문에서초대 해 줘서 고마워요』〈정리=서정아 기자〉
  • “예술·학술적 업적 다채롭게 재평가/「위창 오세창전」을 보고

    서울 예술의 전당 서예관에서 지난 7일까지 열린 「위창 오세창전」(서울신문사·예술의전당 공동주최)은 서화계에서는 물론,근대사학계에서도 크게 환영된 매우 뜻깊은 기획전시였다.이번처럼 학술적이고 본격적인 규모와 내용의 위창전 조직이 일찍이 없었기 때문이다.더구나 여러 연구가와 전문가의 서문 및 논문,그리고 작품해설이 곁들여진 도록이 간행되기까지하여 관람자들의 호응이 연일 대단했다고 한다. 그러한 반응은 말할 것도 없이 위창의 다채로운 역사적 생애와 빛나는 업적에 대한 각계의 인식과 평가가 그만큼 넓혀져 있음을 반증한 것이다.전시내용은 위창의 고격한 전서와 예서 중심의 글씨를 비롯하여 전각의 탁월한 경지를 보여주는 여러 형태의 돌도장및 그 실인과 인보들,그리고 한국 서화사 연구의 가장 빛나는 선구적 업적인 「근역서화미」(1928년 간행)의 초고 원본,그밖에 필적 등으로 구성됐었다.그 전시품들은 대부분 유족들이 보존하고 있는 것들이었으나,사회각계와 개인의 귀한 소장품들이 나온 것도 상당수였다. 한편으로 사람들이 익히 알고있는 위창의 선친인 역매 오경석 형제들의 문인적인 서화 유품들과 역관으로 청국을 왕래하며 관심갖게 되었던 역매의 금석학 연구 실적의 「삼한김석녹」원본 등도 전시되어 눈길을 끌었다.관람자들은 위창의 글씨·전각·금석학 및 한국 서화사 연구가 그러한 가문의 배경과 깊이 연관된 것임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위창에 대한 더 폭넓은 관심을 가진 이들은 이번 전시를 통해 한층 각별한 감동과 어떤 사회적 요망을 느꼈을 것으로 생각된다.유족측이 적극 협조하여 예술의 전당이 꾸몄던 이번 위창 재조명의 전시품들이 소장자들에게 되돌려지면,앞으로 또다른 특별전시 기회가 없는한 보기 어렵다.그것이 사회적으로 안타까운 것이다. 위창은 앞의 전시내용 이상으로 두드러지고 다채로운 역사적 활동과 예술적 내지 학술적 업적으로 빛나는 근대 한국의 뚜렷한 인물이다.국운이 기울던 구 한국시대에는 언론인,개화사상가,우국지사,민족계몽가로 활약했다.일제에게 국권을 빼앗긴 뒤의 3·1독립운동 때에는 33인의 민족대표에 가담하여 선두에섰다.그로인해 옥고를 치른 뒤에는 고매한 서예와 전각 및 명품 고서화 감식의 권위로 생활하면서 한편으로 역대 서화가 기록 및 작품의 조사정리와 연구에 전념하였다. 그는 1921∼1936년의 민족사회 서화협회전람회에서는 상징적 구심점이 되어 해마다 참가하기도 했다.그 사이,이미 언급한 최초의 한국서화가사전인 「근역서화미」출간외에 「근역인누」(역대 서화가와 문인이 사용한 동장의 날인(날인)을 방대하게 모은 자료.현재 국회도서관 소장,1968년 출판),진필편화 수집첩인 현재 서울대학박물관 소장의 「근역서휘」(37첩)와 「근역화휘」(천·지·인 3첩),그밖의 또다른 수집서화첩인 「근묵」(34권) 등이 위창의 필생의 서화연구 업적물들이다. 위창 생애의 그 역사적 전모와 공적을 사회적으로 깊이 칭송하는 「위창 기념관」,아니면 어느 미술관의 상설특별실이라도 없어진다면 사회교육적으로 의미가 클 것이다.그런 생각을 이번 위창전에서 많은 사람이 했을 법하다.나의 마음도 그렇다.
  • 첩 자식 입적 양육 양친관계 불성립/서울지법 판결

    남편의 첩이 낳은 자식을 호적에 올린 뒤 장기간 키웠다 하더라도 양친자 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지법 가사 4단독 유병옥판사는 10일 동거남과 사이에서 난 어린 자식들을 버리고 가출했던 양모씨(50)가 아들 이모씨(23)와 이씨의 호적상 어머니인 박모씨(63)를 상대로 낸 양친자 관계 부존재 확인 소송에서 『호적상 어머니 박씨와 아들 이씨 사이에는 양친자 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 조강지처 이야기(송정숙 칼럼)

    한때 북한 김정일궁의 내실을 차지하고 그 혈통 이을 아들도 낳아주어 호강스런 생활을 누렸던 성혜임여인과 언니 혜랑여인 자매의 망명화제는 한동안 우리를 흥분시켰다.그중에서도 그들의 육성과 그것이 풍기는 『의외로 부르주아적인 분위기』는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도스토예프스키를 인용하고 20세기의 철학적 거봉 「버트란드 러셀」을 빌려가며,망명한 아들을 신칙하는 어머니로서의 혜랑여인은 인상적이다.러셀을 인용할때 그는 경칭호를 빼놓지 않았고 「내가 좋아하는」이라는 수식을 붙였다.러셀은 「경」칭호를 이어받은 영국 귀족집안의 자손이다.한때 소련의 공산혁명에 호감을 보였지만 초기의 소련을 방문했다가 레닌과 트로츠키 스탈린 등에 실망하고는 『그들의 파벌성과 잔인함이 내 피를 꽁꽁 얼렸다』며 볼셰비즘에의 환상을 버린 러셀을,혜랑여인은 『좋아한다』는 것이다. 자식을 타이르면서도 세계적 석학이나 문호를 인용하는 「인텔리 취향」을 지닌,그런 지적 선민의식과 그들의 삶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그들 모자간의대화에서는 『내가 그 사회(남쪽세계)를 좀 알지않니』하는 대목도 나온다.자신이 남쪽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자부심으로 지니고 있는 듯하다.그러나 그들은 열서너살에 남쪽을 떠났다.그나마 해방직후의 혼란과 가난만 팽배했던 혼미한 시기에 부모를 따라 월북한 그들이다.안들 뭘 그리 많이 알겠는가.그런데도 이 자신만만한 지남파행세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아마도 그것은 그가 북쪽 삶에서도 그것을 우월감삼아 지켜온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들의 부모는 당대의 전형적인 인텔리 남녀였다.개화기 한국의 대표적인 인텔리여성과 대지주의 호화자재인 동경유학생의 만남으로 그들은 태어났다.그시절 대개의 남성의 경우처럼 그 아버지에게는 어린날 부모가 짝지어준 조강지처가 고향에 있었다. 그 시절의 아들들은 비록 마음에 안드는 아내라도 부모가 정해준 지어미를 버리지는 못했다.그래서 그들은 그 처지를 역으로 활용했다.그런 아내를 고향 부모곁에 두고 아이를 기르며 칭칭시하의 시집살이를 감당하고 봉제사며 대가의 온갖 어려운 살림을 이끌도록짐지워 두었다.그리고 자신은 신여성과 자유연애를 나누며 딴 살림을 차리고 사는 실리를 차지했다.남편들에게는 너무도 편리한 조강지처였다. 그래도 죽어도 「그집 귀신」이 되어야 한다는 도리를 율법으로 알았던 「고향의 아내」들은 인종으로 그 삶을 지켰다.그런 아내에게 돌아가는 보상은 적실의 자격이었다. 성씨남매의 모친같은 신여성들중에는 그런 개화한 남자들과 만나 개화의 동지 혁명의 동반자로 반려가 된 경우가 많았다.그런 신여성아내는 족보나 호적에 등재되는 본실의 자격은 주어지지 않았다.어디까지나 측실,그러니까 첩이었다 자존심 강한 신여성에게 그것은 굴욕이었다.태산같이 완고한 전통과 인습의 벽앞에서 만나는 커다란 좌절일 수밖에 없었다.그래서 많은 경우 연인들은 남자를 졸라 어딘가 먼곳으로 탈출하고 싶어했다.현해탄에서의 정사도 유혹하고,당시의 겉멋든 많은 젊은이들이 홍역삼아 치르는 이념에의 환상을 좇아 혁명대열에 열정을 퍼붓게도 했다.충남의 한 명찰 앞에서 여관을 하며 산 조강지처를 놔두고 젊은 화가지망생 제자와 파리로 탈출했던 한국화의 거장도 그런 경우에 속한다. 성씨남매의 아버지인 작가 성유경씨도 그런 경우에 들겠고 성혜림의 첫남편이었던 이평의 부친 작가 이기영도 그랬다고 할수 있다.「법적 아내」 자리를 뺏을 수는 없고 어딘가 그런 불명예를 문제삼지 않는 곳으로 가서 새로 시작해보고 싶었던 「신여성 작은댁」들.성씨네의 북행이 그런 결과라면 다음 세대의 탈출로 그들은 50년만에 원점에 돌아온 셈이 된다. 『거지도 부자가 될수 있다.일단 손안에 들어온 돈을 쓰지 않으면 된다』-도스토예프스키를 인용하며 아들에게 「돈」의 교훈을 넣어주려고 필사적인 어머니 성혜랑여인의 모습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치맛바람을 일으키며 살아온 남쪽의 보통 어머니들과 너무 흡사하다.인민의 절박한 기아만을 남긴 최후의 공산주의 집단 안에서 만들어진 너무도 「부르주아」적인 가족,성씨일가의 운명적인 종점은 우리에게 많은 숙제를 안겨준다.
  • 원로 신학자가 쓴 사모곡/안병무 박사 어머니 기린 「선천댁」

    ◎“무지하지만 강인한 삶에서 민중모습 발견” 원로 신학자 안병무 박사(74)가 어머니의 삶을 기린 책 「선천댁」을 최근 냈다(범우사 출간). 「○○댁」이란 결혼한 여성을 고향에 따라 구분해서 부른 이름,곧 가부장제 아래서 여성의 자아는 사라졌음을 상징하는 말이다.안박사의 어머니 선천댁도 그 시절 여성들이 흔히 겪은 삶을 살았다. 열여섯살에 한의사이자 유학자 집안으로 시집온 선천댁은 학교교육은 전혀 받지 못한 무지한 여인.시아버지의 엄명 때문에 남편은 내놓고 공부하지 못하고 선천댁에게 망을 보게 하고는 밤늦게 한문을 익힌다. 이같은 도움으로 한의사 면허를 딴 남편은 그러나 새 여자와 함께 만주로 도망치려 한다.남편을 배웅하러 역에 나가 우연히 이 사실을 알게 된 선천댁은 망설임 끝에 무작정 남편을 따라나서고,이를 계기로 「인간」으로 거듭 난다. 이후 선천댁은 ▲독립군에 대한 비밀 지원 ▲첩을 가진 남편에 결별 선언 ▲회의에 빠진 맏아들(안박사)를 몰아붙여 독일유학을 보내는등 어려운 고비를 당당하게 헤쳐나간다.마흔여섯이나 돼서야 결혼한 맏아들에게서 손자를 얻은 직후 선천댁은 굴곡많은 70평생을 마감한다. 안박사는 자기 어머니 이야기를 책으로 엮은 까닭을 스스로 신학적 과제로 삼은 「민중이란 무엇인가」란 문제를 풀기 위해서라고 밝혔다.따라서 여성으로서 자존심이 계속 짓밟혀도 약해지거나 후퇴하지 않고,일어나고 또 일어나 맡겨진 일을 해낸 선천댁,곧 무지하지만 강인했던 어머니 이야기에서 민중의 구체적인 모습을 찾아낸 것이다. 그래선지 안박사는 「어머니」「나」와 같은 단어는 철저히 배제해 감정을 일체 드러내지 않은 채 제3자 입장에서 「선천댁」을 그려내고 있다. 그는 『참 민중,참 역사의 담지자는 절대로 먼 데 있지 않고 당신 곁에 숨쉬고 있다.다만 그것을 찾아내는 눈만이 문제일 것』이라고 말한다.그리고 『선천댁­이 세상에 무한히도 많은 선천댁­우리의 산실이요,품인 선천댁…』이라고 결론짓는다.
  • 30대 작가 두 개의 신작장편 눈길

    ◎이순원 「수색,그 물빛 무늬」/성석제 「왕을 찾아서」/수색…­모성에의 끝없는 그리움 토로/왕을…/시골깡패의 권력구조 작품화 30대 남성작가 둘이 나란히 신작장편을 내놓았다.이순원씨(39)의 「수색,그 물빛 무늬」(민음사)와 성석제씨(36)의 「왕을 찾아서」(웅진출판)가 그것. 독특한 이야기꾼으로 꼽히는 두사람은 여성작가들이 휩쓸다시피 하는 최근 소설문단에서 어느새 소수가 돼버린 남성의 목소리를 모처럼 시원스레 털어놓고 있다.또한 신세대 작가들의 감수성 경쟁에 대들기라도 하듯 잘 풀린 이야기며 감칠맛 나는 문장으로 흔치않은 독서의 재미를 안겨준다. 90년대 초반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압구정동엔 무지개가 뜨지 않는다」등 세태를 풍자한 잇단 압구정동 시리즈로 관심을 모았던 이씨는 새 작품에선 「가족사」를 파고들고 있다.이 소설은 지난 93년 「현대문학」6월호를 필두로 2년여간 여러 문예지에 분재됐던 여섯편을 묶은 연작소설. 소설은 작가인 남성주인공이 현재 겪고 있는 부부간 불화를 어릴적 친엄마로 알고 따랐던 「수호엄마」에 대한 추억과 엮어짜는 형식으로 진행된다.수호는 소설 주인공인 작가의 이름.하지만 알고보면 수호엄마는 수호의 친어머니가 아니다.아버지의 첩을 거둬들인 어머니가 슬하의 5남매중 나이로 봐 가장 맞춤한 세째아들을 정붙이로 그녀에게 짝지어준것.그녀는 2년여를 같이 살다 주인공에게 애매한 서자의식만을 남긴채 떠나버린다.수호엄마에 대한 그리움은 주인공에게 원래 그녀가 살던 곳,수색을 향한 아련한 갈망으로 바뀌어 나타난다. 이같은 작품을 통해 지은이는 모든것을 품어안는,자궁속같이 따뜻한 여성성을 그리워하고 잃어버린 모성을 안타까워 하는것 같다. 이에 견줘 「권력」의 세계를 다루고 있는 성씨의 작품「왕을 찾아서」는 훨씬 아버지의 세계에 가깝다.지난 86년 「문학사상」으로 등단,91년 시집까지 상재한 시인의 이력이 이 작품 곳곳의 치밀하면서도 선연한 세부묘사에 그대로 나타나 있다.지난 94년 이미 성씨는 첫 작품집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민음사)를 통해 콩트와 잠언 어느쪽에도 속하지 않는 함축성있는 짧은 소설들을 선보였다. 시골깡패들의 잡다한 패권다툼을 다루고 있는 이 소설을 영웅담의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것은 이를 바라보는 화자의 눈이다.「지역」이라 불리는 작은 시골마을에서 자라나 도시에서 터를 닦은 나 장원두는 한때 지역의 지배자였던 마사오가 죽었다는 소식에 급거 귀향한다.나의 회상속 마사오는 실제 대단한 싸움꾼이긴 했지만 그를 지배자로 만드는데는 실증되지 않거나 미화된 입소문들이 더 크게 작용했다.소설은 이 권력자를 둘러싼 군웅들의 도전과 권력찬탈을 기본축으로 깡패들의 다양한 세력과시방법,영웅에게 따르기 마련인 여성편력 등을 패기차면서도 아기자기하게 엮어낸다. 이처럼 파고드는 바는 서로 다르면서도 이 두 작품은 남성들 속에 공존하는 두가지 욕망을 동전의 양면처럼 보여주고 있다.어머니의 푸근함을 그리워하면서도 아버지의 힘을 갈망하는 장년남성들은 두권의 책을 통해 평소 자신의 심리가 그대로 드러나있는 것을 읽고 무릎을 칠지도 모른다.하지만 모든것을 껴안는 포용력 있는 품엔 인고가,군림하고픈 권력욕을 채우는데는 복종이 뒤따라야 한다.그리고 그 인고와 복종의 주체는 여성이기 쉽다.그런점에서 이 책들은 누구의 욕망이든 다른 이의 희생으로 채워져서는 안되는것 아닌가 하는 점도 다시 생각해보게 만든다.
  • 철령의 성주 이씨들(압록강 2천리:24)

    ◎임란때 출병한 이여송은 성주 이씨 후손/부친 이성량은 요동일대 최고 군수권자/15세손 이영 홍무때 망명,철령에 터잡아/1994년 한국종친회서 소둔촌에 비석 세워 우리는 이여송(?∼1598년)이라는 역사인물을 기억하고 있다.명나라 제독으로 방해어왜총병관이 되어 군사 4만을 이끌고 임진왜란 때 조선에 출병한 무장이다.그런데 왜 이여송을 새삼스럽게 이야기하려는지 더러 의문을 가질 것이다.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그가 조선의 성씨인 성주이씨의 후손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그 성주 이씨들은 지금 요령성 철령시소둔촌에 많이 몰려 살고 있다.그리고 해마다 조상의 묘역에서 제사를 올리는데 추모 대상은 이여송과 그의 아버지 이성량(1526∼1615년)등이다.한반도에서 대대로 살아온 성주 이씨의 한 갈래가 압록강을 건너 중국으로 넘어 온 것은 명나라 연호로 홍무(1368∼1398년)연간이었다.성주 이씨 15대손 이영이 죄를 짓고 아들 4형제를 데리고 철령으로 피신해왔다는 것이다. ○소둔촌 주민 거의 이씨 이영의 망명 이후 제5대손이 이여송의 아버지이성량이다.이성량은 집안이 가난하여 선조들이 세운 군공을 계승하지 못한 채 한 시절을 백면서생으로 살았다.그러다 입신의 기회를 얻어 요동 험산참장이 되었다.또 융경원년(1567년)에는 한 난리를 평정한 공으로 요동부총병의 자리에 올랐다.그 후에 몽골과 여진족을 쳐서 승진을 거듭한 끝에 만력2년(1574년)에는 요동 최고 군사지휘자인 요동총병 지위를 차지했다. 이성량 사후에는 여송,여백,여정,여장,여매등 네 아들이 총병관을 지냈고 다른 네 아들은 참장에 이르렀다.이 가운데 여백과 여매는 임진왜란 때 여송과 함게 조선에 출병하여 전공을 세웠다.그렇듯 이씨 가문이 거머쥔 병권은 대단하여 그들을 모함하는 글발이 황제에게 전해지기도 했다.그들은 실제 도읍의 한 변방을 호령할 수 있는 실력자들이 틀림 없었다. 이씨 가문의 권세가 당시 어떠했는가는 요령성 철령시 소둔촌 이성량의 묘소에서 확인되었다.소둔촌에서 약간 떨어진 산기슭 그의 묘소 입구에는 돌조각 사자상이며 석인상이 두 줄로 가지런히 늘어섰다.규모는 비록 작아도 북경 팔달령에서 정릉으로 가는 사이에 자리한 선도를 연상케 했다.선도처럼 보이는 길이 끝나는 지점에 비석이 있다. 이성량을 기린 대리석 비석은 지난 1994년 한국의 이씨종친회가 세운 것이다.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지위가 오늘날 같이 높지 않았더라면 과연 비석을 세우도록 허락했을까.여기 사는 이씨들도 한국이 보잘것 없는 나라였다면 조상에 대해 별 집착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2백여 가구 1천여명의 주민들 가운데 70∼80%가 이씨라는 이 소둔촌에서 만난 사람들은 거의가 성주 이씨를 자청했다.그러면서 비록 한족으로 살아가지만 한국의 발전이 자랑스럽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철령현 당시 부현장 자리에 있다가 퇴직한 이유한(67)노인도 성주 이씨라고 했다.그래서 철령 이씨종친회 회장직을 맡고 있는 그는 떳떳하게 성주 이씨를 내세울 수 있게 된 오늘의 처지를 고맙게 여겼다. ○누루하치와 사돈지간 『나 자신도 그동안 뿌리를 숨기고 살았습네다.그저 한족으로 행세한 거디요.집안 노인들이 가끔 이성량을 이야기하면서 성주가 본이라고떠들면 핀잔을 줬지 뭡네까.그러다 서울 올림픽이 끝나고부터는 술자리에 앉기만 하면 절로 한국과 성주란 말이 튀어나옵데다.그 전엔 창피스럽던 것이 자랑스러워지더란 말입네다.그래서리 퇴직하고 나서 좌상들과 상의해서 종친회를 꾸몃디요』 소둔촌 이성량의 묘소는 어엿했다.봉분도 제법 커서 이성량이 묻혀있는 무덤이라는데 이의를 달 사람이 없을 것 같았다.그런데 선뜻 납득할 수 없는 몇가지 의문점이 머리를 스쳤다.이씨들이 조상에 관심을 둔 것도 근간의 일이고 역사적으로 청나라를 일으킨 누루하치가 이성량의 무덤을 파엎었다는 설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성량은 살아 생전에 누루하치와 떨쳐버릴 수 없는 악연을 맺었다.이성량이 요동총병관으로 제수되었을 때 누루하치는 15세 소년이었다.그런데 이성량은 자신의 수하장군이었던 누루하치의 할아버지 창안과 아버지 타거를 부하의 밀고로 죽여버렸던 것이다.그 해가만력11년(1583년),누루하치는 21세의 건장한 청년으로 자라있었다.천명3년(1618년)반기를 들고 마침내 명나라를 뒤엎은 누루하치는 「7대 원한」을 갚겠노라 선언했다.이성량이 첫째로 꼽힌 것은 물론이다. 그런데 이씨 가문과 누루하치는 사돈간이었다.이성량의 둘째아들 여백이 바로 누루하치의 조카딸을 첩으로 들였던 것이다.그러나 원한이 사무친 누루하치는 천명4년 철령성을 함락하고 이성량 일가를 붙잡아들였다.당시 해를 당한 이씨들 가운데 역사에 기록된 인물만도 24명에 이른다.누루하치 복수의 그물에 든 사람들은 죽고 더러는 도망쳤다.그래서 산동성 임저지구와 광동성 번우지구,사천성,북경 등지에도 성주 이씨들이 지금 살고있다. ○상당수 요직에도 진출 누루하치는 오늘의 중국 동북지방 쪽을 우선 통일하고 나서 수단을 바꾸었다.성주 이씨들을 등용하기 시작한 것이다.그 결과 강희(1662∼1722년)말년 청나라 왕조에서 7품 이상 벼슬을 한 성주 이씨는 자그마치 1백여명이나 되었다.요동시단의 삼노의 한 사람인 이개는 많은 시를 썼고 「상서」등의 역사책을 편찬했다.그의 저서들은 강희말년에 나온 거서「사고전서」에 수록되었다.그리고 태원지사를 지낸 이청서는 서예에 조예가 깊어 그의 「고보현당법서」네권은 지금도 중국 서법의 모범이 되고 있다. 성주 이씨들은 수 백년이 흐른 지금도 만만치 않은 존재이다.철령지구의 경우 현급 간부 14명,국급 간부 13명,과급 간부 18명이 성주 이씨로 되어있다.이들은 지난 1991년에 성주이씨 종친회를 조직하고 한국의 성주이씨 대종회와 정상적인 교류를 해왔다.그리고 「철령성주이씨보계」,「이성량종족역사기년」,「한국성주이씨중국파굴기」등을 펴냈다. 그래서인지 요령성 북령시에는 중국에서 성주 이씨를 명문으로 일으킨 이성량의 흔적이 그런대로 잘 보존되어 있다.이성량과 같은 봉건 착취계급의 유산이 문화혁명과 같은 난세를 견디어냈다는 사실이 의아스러울 정도였다.그 하나가 명나라 신종이 명하여 만력8년(1580년)에 세운 공적비 석방이다.높이 9m,너비 13m의 누각형인데 「진수요동총병겸 태자태보령원백 이성량」이라는 글발 등이 들어있다.그리고 용문을 뛰어넘는 잉어,여의주를 굴리는 용,사슴과 꽃 등을 새겨 석방은 호화롭기 그지 없다.명나라 때 중국대륙 동북방에는 분명히 「이성령의 시대」가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유적이기도 했다.
  • 달라진 혼인풍속(압록강 2천리:6)

    ◎사라진 전안례… 기러기 대신 통닭이…/신부는 치마·저고리에 서양식 너울 쓰고/교배례 생략 중국식 본떠 깍지걸이 건배/혼수감으로 가전제품은 필수… 사회문제로 장백조선족자치현 용강향 이도강촌에 머무르는 동안에 재수가 좋아서 결혼식을 만났다.신랑은 조선족기숙제소학교 이헌(46)교장의 아들 남일(24)군이고 신부는 이성숙(23)양이었는데,둘 다 소학교 교원이었다.말하자면 부부교원이 될 이들의 결혼식은 상오11시쯤 신랑과 신부가 승용차를 타고 신접살림을 차릴 집에 도착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후덕한 인심은 그대로 이들의 신접살림집은 그냥 빌린 것이다.이도강촌에서는 셋집이란 말이 통하지 않는다.돈을 내놓지 않고 살 집이니까 「빌려든 집」이 적절한 표현인지도 모른다.신랑 신부에게 집을 내준 집주인의 이야기 속에는 이도강촌 고산지대 마을의 후덕한 인심이 그대로 배어났다.도시생활이랍시고 연길에서 살아온 나 자신이 후덕한 인심 앞에 사뭇 왜소해질 뿐이었다. 『돈을 어찌 받겠습니께.아들 장가가면 들일라고 지은 집이라 지금은 어짜피 비울 집인데….사람 들어서 집 보아주면 좋지비.너 좋고 나 좋고인데 돈을 받는다는 게 말이나 되우.신랑 신부,이 집에서 돈 많이 모아 나가면 되지비.나 아무 생각 없수다』 이러한 인심 한 복판에서 베풀어지는 혼례인지라 산골마을이 온통 박신댔다.차에서 내린 신랑 신부가 쌍 희자를 거꾸로 오려 붙인 대문께로 다가서자 폭죽소리가 갑자기 진동했다.기다란 장대끝에 매달린 폭죽이 연신 터졌다.매캐한 화약연기가 사방을 덮고 폭죽 부스러기가 능지처참을 당한 꼴로 땅바닥에 너부러져 나뒹굴었다.폭죽소리에 액귀가 놀라 도망가는 대신 행복이 쌍을 지어 들어오라는 중국식 혼례풍습이 어느 사이 조선족사회를 비집고 들어온 것이다. 옛날엔 색시가 첫날 신에 흙을 묻히면 안된다고 해서 마당에 깔아놓은 멍석이나 짚을 밟고 지나갔다.그런데 지금은 신랑이 신부를 번쩍 안아들고 들어갔다.첫날 대낮부터 신랑품에 드는 행복을 만끽한다고나 할까.신랑은 양복을 입고 신부는 치마저고리차림을 했다.그러나 뒤집어쓴 너울에는 서양식 레이스가 달렸다.그리고 색동옷을 입은 동남동녀가 꽃바구니를 들고 꽃보라를 날리면서 신랑 신부를 인도해왔다.동서양 혼합절충식의 혼례였다. 신부가 신랑집 대반의 안내에 따라 방으로 들어가 사뿐히 자리를 잡았다.신부의 너울 뒤로 한쌍의 원앙을 수놓은 벽보가 보였다.원앙은 중국 한족들이 사랑의 상징으로 여기는 새다.오늘날 조선족 젊은이들이 쌍기러기를 원앙으로 착각하는 것처럼 이 혼례집에서도 원앙새가 기러기자리를 빼앗아버렸다.그러니 전통혼례에 반드시 들어가야 할 전안상은 물론 전안례도 생략되었다. 조선족 전통혼례식의 전안례는 고구려시대부터 유래되었다고 한다. ○기러기는 사랑의 상징 신랑이 신부를 맞을 때 흰 색깔의 산 기러기 한 마리를 품에 안고 가서 전안례를 치른 뒤 날려보냈다.그러다 번거로운 산 기러기 대신 나무기러기(목안)로 바뀌었다는 것이다.그런데 지금은 나무기러기마저 사라졌다.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전안례 발상지이자 고구려 강역이었던 압록강유역 조선족사회 혼례에서 나무기러기도 보이지 않고 있는 사실이….압록강유역에는 감동적으로 유전되는 전안례 전설이 있다.그 옛날 패수(압록강)벌에 살던 총각 길랑과 처녀 미월이 사랑을 맺었다.그들은 우연히 다리가 부러진 기러기를 구해다 키웠다.길랑이 과거를 보러가던 날 미월은 아리랑산까지 배웅하고 이별의 아리랑을 불렀다.길랑이 떠나고 해가 바뀐 어느 단옷날 그네 뛰는 미월의 미색에 반한 마을의 원 김호가 첩을 삼기 위해 납치했다. 미월이 말을 듣지 않자 옥에 가두었다.미월은 눈물어린 사연을 적은 쪽지를 자신이 보살피던 기러기 다리에 매달아 날려보냈다.길랑은 기러기편에 보낸 쪽지를 받았다.암행어사가 된 길랑은 귀로를 재촉하여 처형 직전의 미월을 구하고 김호를 처단해버렸다.「길림성 민간문학전집」 장백조선족 자치현편에 나오는 이 전설은 「아리랑」과 「춘향전」을 기묘하게 합성한 느낌을 준다.어떻든 기러기는 사랑과 믿음,화목과 정절을 의미하는 날짐승이라 할 수 있다. 전안례가 사라진 이도강촌 혼례상 위에는 부리에 고추를 문 삶은 통닭 한마리가 올라 있었다.웃음이 절로 났는데,삶은통닭은 소래기에 잔뜩 담아 놓은 팥속에 다리를 묻고 서 있는 포즈를 취했다.마을 총각 둘이서 상을 맞들어 움직여놓자 대반으로 앉은 아주머니가 포도주를 따라 상 위로 세번을 돌려 신부를 주었다.신부는 세 모금으로 꺾어 포도주를 마셨다.이어 신랑은 풍덩하게 생긴 주례격의 아주머니가 따라 준 술잔을 비웠다. ○바가지 엎어지면 아들 그리고 나서 주례격의 아주머니가 건네주는 바가지에서 과자를 꺼내 한 입을 물고 바가지를 내동댕이쳤다.바가지가 엎어졌다.그것을 바라본 하객들이 좋아라 하면서 손뼉을 쳤다.바가지가 엎어졌기 때문에 아들을 본다는 것이었다.아들이건 딸이건 조선족이 또 한번 생명의 씨앗을 뿌릴 수 있게되었다는 사실이 대견스러웠다.어느 틈에 신랑이 신부 곁으로 바싹 다가갔다. 신랑 신부는 오른 손에 술잔을 받아들었다.그리고 깍지걸이로 키스라도 하듯 얼굴을 맞대고 술을 마셨다.교배례를 대신한 모양이다.그럭저럭 혼례절차가 끝났다.대반을 맡은 아주머니가 신부집에 보낼 상을 챙기기 시작했다.아주머니는 우선 고추를 문닭목을 비틀어 빼고 나서 종이에 둘둘 말아 신부 치마폭에 싸주었다.신랑도 신부집에서 닭모가지를 얻어오는 것은 마찬가지다.혼속이 자꾸만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전안례나 교배례 같은 전통의식이 사라진 대신 신부 혼수가 자꾸 늘어나 딸가진 부모들의 걱정도 크다. 이날부터 신혼살림을 차릴 방에는 신부가 해가지고 온 혼수가 그들먹했다.윗방에 놓인 옷장과 이불장에는 신부 친정에서 마련한 이불이며 옷가지가 가득한 것은 물론 텔레비전과 전축·전기밥솥이 한쪽에 따로 자리를 차지했다.그래서 늘그막 남정네들 사이에 『장가 한번 더 갈걸…』하는 우스갯소리까지 생겨났다.
  • 불·영군,세계 공격 진지 구축/특공대 등 사라예보 집결

    ◎세계거점 팔레 공습설 【사라예보·팔레 AFP 로이터 연합】 유엔의 첫 출동명령을 받은 신속대응군 소속 영국군 병력이 24일 사라예보 외곽 이그만산에 도착,실전배치됐으며 프랑스 외인부대 병력도 이들 병력과 합류하기 위해 사라예보로 이동하는 중이라고 유엔 대변인이 밝혔다. 한편 보스니아내 세르비아계의 수도 역할을 하고 있는 거점인 팔레 상공에 정체불명의 비행기들이 선회한 뒤 5차례의 폭음이 들렸으며 이 지역에 비상경계령이 내려졌다고 목격자들이 전했다. 팔레에서는 지난 수일간 여러차례에 걸쳐 폭음이 들렸으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는 공습을 부인해 왔으며 회교 정부군에 의한 포격이 있었는지 여부도 확인되지 않고 있다. 앞서 프랑스의 리베라시옹지는 프랑스 공군의 미라주 전투기가 지난 23일 팔레를 폭격했다고 보도했으나 프랑스 정부측은 이를 「오보」라며 즉각 부인했다. 유엔대변인은 이날 아침 일찍 이그만산에 도착한 영국군 2개 포대 2백여명과 보병 1개 중대가 1백5㎜ 야포 12문을 배치하기 위한 진지구축 작업에 착수했다고 밝히고 프랑스 외인부대원 5백여명도 주둔지인 보스니아내 토미슬라브그라드를 출발,이그만산으로 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 병력은 이그만산의 고지에 배치돼 사라예보의 통로를 확보하고 유엔시설과 병력,수송행렬을 공격하는 세르비아계에 대한 반격작전을 벌이게 된다. 샤를 미용 프랑스 국방장관은 1백55㎜ 중포가 옛유고 지역으로 출발했다고 밝히고 『서방측 장성들이 현재 세르비아계 공격에 대한 응징방안을 검토하는 중』이라고 전하면서 향후 수일내에서 유엔 안전지대를 공격하는 세르비아계에 대한 반격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미·영·불,세계에 최후통첩 【사라예보 로이터 AP 연합】 미국,영국 및 프랑스 3개국은 23일 보스니아 세르비아계에 대해 유엔안전지대인 고라주데를 공격할 경우, 강력한 공습을 가하고 다른 안전지대에 대한 세르비아계의 공격을 묵과하지 않겠다는 최후통첩을 보냈다고 마이크 매커리 백악관 대변인이 밝혔다.
  • 미,세르비아계 공습 검토/유엔군,제파서 곧 철수

    ◎세계선 회교정부군에 최후통첩 【워싱턴·사라예보 로이터 AFP 연합】 미국은 유엔 안전지대에 대한 세르비아계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이들에 대한 공습을 검토하고 있다고 워런 크리스토퍼 미국무장관이 18일 밝혔다. 크리스토퍼 장관은 이날 빌 클린턴 대통령이 자신을 비롯,윌리엄 페리 국방장관,존 샬리카시빌리 합참의장,앤터니 레이크 백악관 국가안보담당보좌관,매들린 올브라이트 유엔주재대사 등 외교안보팀과 보스니아 사태에 대해 논의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브뤼셀·사라예보 AFP 로이터 연합】 보스니아 동부의 유엔 안전지대인 제파의 함락이 임박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 가운데 제파에 포위돼 있는 유엔평화유지군 소속 우크라이나 병사들이 곧 철수를 하게 될 것이라고 베르나르 장비에 옛유고 주둔 유엔군사령관이 19일 밝혔다. 장비에 사령관은 이날 아카시 야스시(명석강)유엔특사와 함께 브뤼셀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본부를 방문,각국 대사에게 보스니아 동부의 상황을 설명한 뒤 지난주 스레브레니차에서 네덜란드 병사들이 철수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 제파의 우크라이나 병사들도 철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팔레(보스니아)·브뤼셀 로이터 AFP 연합】 보스니아 세르비아계 지도자 라도반 카라지치는 19일 동부지역의 유엔 안전지대를 방어하고 있는 회교정부군에 대해 즉각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라는 최후통첩을 보냈다. 카라지치는 또 고라주데를 보호하기 위해 파견되는 서방군대나 항공기에 대해서도 국적이나 소속을 불문,무차별 공격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 중 정가/또 반부패투쟁 회오리/자살 왕보삼 비리발표 파장

    ◎왕 북경부시장때 공금횡령 등 공개비판/“진희동숙청 전주곡” 비주류파 전전긍긍 중국 정가가 반부패투쟁으로 다시 술렁이고 있다.5일 공산당 중앙의 진희동에 대한 경제비리관련 조사결정과 의문사한 왕보삼 부시장의 경제비리 조사 결과가 발표되자 중국 정·관가에 또 한바탕 소용돌이가 일고 있는 것이다. 중국 정가에선 이번 발표를 당 중앙에 의한 진희동 전북경시당 서기의 정치국원직 박탈 결정으로 해석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공식 발표가 임박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이에따라 국가주석과 총리 등 20인의 지도자로 구성된 중국최고의 정책결정기구인 정치국 구성원의 변동 등 권력구도의 변동이 불가피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또 후임 정치국원직을 놓고 지분확보를 위한 각 계파 사이의 암투가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중국 권부에서는 이러한 결정을 강택민을 정점으로 하는 주류세력이 반부패투쟁을 내세워 여타 세력에 대해 순종을 강조하는 경고로 받아들이면서 여파가 어디까지 미칠지 전전긍긍하고 있다.또 후임 정치국원 선출에 따라 권력변동과 후속 인사가 단행되지 않을까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공산당 중앙은 신화사통신을 통해 「진희동동지가 이 사건(왕부시장의 경제비리 사건)과 중대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조사 이유를 밝혔다.이와함께 이미 사망한 왕보삼의 공산당 당적 제명과 부시장직 파면 결정조치 등과 죄상을 공개했다.5일 인민일보 등 주요신문에 실린 왕보삼의 죄상은 신랄한 정도를 넘어 부관참시의 성격을 띠고 있다.「당과 국가에 끼친 해악이 크므로 죽어도 싸다」는 표현도 있다.그만큼 현 정권이 부패 행위 등에 대한 캠페인 성격의 경고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해석도 있다. 이 발표에서 당 중앙은 왕이 직권남용,공금유용,착복 등 엄중한 경제범죄를 저지른 부패분자라고 비난했다.25만위안(2천5백만원 상당) 및 외화 2만달러 횡령.1백만위안 및 2천5백달러의 공금으로 호화별장 구입.횡령한 돈으로 첩과 지내는 등 향락에 사용….일반적으로 일반에 대한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인민일보 등은 1면에 반부패 투쟁을 계속심화시켜나갈 것이란 제목의 논설을 싣는등 당중앙이 반부패 투쟁을 계속 확대·심화해 나갈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일반적으로 반대파에 대한 길들이기로 표현되는 강택민정권의 「반부패투쟁 운동」이 어떤 식으로 중국 정국의 방향을 바꾸어 나갈 수 있을지 안팎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 짝 못찾는 농촌 총각(두만강 7백리:15)

    ◎처녀·총각 빌율 1대25… 장가들기 “별따기”/“힘든일 싫다” 혼기찬 여자들 도시로 몰려/노총각 신세 면하려 한밤 과부 보쌈질도/딸가진 부모 섧다는건 옛말… 아들둔 부모들 한숨만 어느 날 하루 용정시 개산툰진 선구촌에 들렀더니 가던 날이 장날이라고 마을에 경사가 났다. 34살 노총각이 용정시 조양촌의 여인을 아내로 맞는 날이라 잔치로 떠들썩했다.그도 그럴 것이 몇해 사이에 딸들을 외지로만 내놓다 모처럼 여인 한 사람이 마을로 들어오게 되었으니 법석을 떨만한 일이었다. 그런데 선구촌에는 혼기가 찬 처녀가 단 1명 뿐이어서 우글거리던 노총각들도 경쟁자가 하나 줄어든 터라 이날 혼사가 사실상 기쁘기도 했다.하지만 노총각들의 기쁜 마음이란 어디까지나 제 생각들이었다.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 마시는 꼴이라고나 할까.요즘 세월에 귀한 딸을 농촌에 주려는 부모도 흔치 않거니와 농촌총각을 배필로 삼겠다는 처녀도 없기 때문이다.이날 맞는 신부도 남편 하나를 이미 거친 이혼녀인데다 그나마 다리를 저는 불구자이고 보면알만한 일이다. ○농촌 시집 생각안해 나이가 들면 시집가고 장가드는 것이 인륜대사이거늘 모두가 옛말이 되었다.연변의 시골 행정구역인 향진의 총각 처녀가 배필을 맞을 수 있는 적정비례가 깨져 25대1이라는 수치도 나와 있다.그래서 처녀가 아무리 박색일지라도 총각들을 줄세워놓고 이마를 튕길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거짓말이 아니다.시골치고 생활이 윤택하다는 용정시 대소 과수농장 총각들은 장가 못가는 근심이 없이 살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처녀들이 제 마을 총각들은 쳐다보지 않고 한 수를 높여 도시만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도시는 오히려 여성이 풍년이다.공장과 상점 등에 취직하기도 하지만 아무런 연줄도 없고 가진 재간도 없는 여성들이 쉽게 찾을 수 있는 직업은 음식점과 유흥장소이다.그녀들은 적지 않게 자의든 타의든 부모가 물려준 몸을 밑천으로 돈주머니를 챙긴다.잠깐 사랑이 50원이요,긴 밤 봉사면 1백원이 표준이다.그러나 통이 큰 사내들을 만나 성심 봉사로 나오면 돈 액수가 큰 폭으로 오른다.한달 수입이 보통 4천∼5천원,대개 젖가슴을 타고 넘는 사내의 수가 많을수록 수입이 많다. 매음이 성행하면서 도시에는 성병이 만연되고 성병환자가 불어나고 있다.성병진료소가 골목마다에 늘어섰다.공동변소,전선대,벽마다에 「일차성 제근」이라는 유혹으로 성병치료 광고판이 나붙는다.한국의 보따리 장사꾼들은 성병약을 가져다가 몇배의 값으로 도매하여 돈을 벌기도 했다.매음은 불법으로서 지하영업으로 되어 있다.일단 경찰에 잡히면 남자는 5천원 벌금에 행정처벌을 받고 여자는 벌금형에다가 15일 구류를 살아야 한다. ○도시 유흥가로 전전 유흥가에 발을 들여놓은 여성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남성들이 징그럽다는 것과 돈을 벌면 혼자서 살지언정 시집은 가지 않겠다는 것이다.그런데도 징그러운 남성들을 상대로 쉽게 돈을 벌면서 매춘을 후생수단으로 삼는 이들 여성은 귀향의 꿈은 아예 꾸지도 않는다.매춘을 일삼는 여성들 사이에는 착한 농촌총각 약혼자를 헌신짝 버리듯 팽개친 경우도 있다.유행가 가사같은 한 농촌청년의 하소연을 들었을 때참으로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제 이름 만큼은 밝히지 마시라우요.내래 3년을 사랑한 약혼녀가 있었습네다.그런데 장인될 양반이 중풍에 걸려 누었지 뭡네까.돈은 자꾸만 들고….생각다 못해 약혼녀가 돈을 벌러 연길로 나갔디요.그래서 내래 가시집 논밭까지 다 부쳤수다.나중에 알고봤더니 유흥가에 있었는데,파혼을 하자고 기래요.종당에는 거기서 만난 한국사람 기업가의 첩이 됩데다 그 한국사람이 아파트까지 사주었다니 어디 고향에 오갔시요.총각귀신이 되는 수밖에 없디요』 옛날에는 딸 가진 부모는 두번 섧다고 했다.낳아서 섧고 시집 보낼 때 섧고….지금은 세월이 바뀌어 아들을 둔 부모들이 한숨을 쉬게 되었다.대소 과수농장의 한송원(72)노인은 장가 못가는 사람들을 위해 과부 동여매 오던 케케묵은 이야기를 꺼냈다.노총각들이 장가 못가는 꼴이 하도 안쓰러워서였을 것이다. ○약혼녀에 배신당해 노인의 이야기는 대강 이러했다.마을에 공삼이라는 홀아비가 아들 둘을 데리고 사는 모양이 딱해서 과부 동여매 올 상논을 했다.마침 남평촌에 젊은 과부가 있다는 말이 나와 동여매오기로 하고 힘깨나 쓰는 장정들이 쳐들어갔다.과부를 이불채로 말아 메고 오는데 이로 물고 뜯고 앙탈을 부리다가 나중에는 지쳐 체념하는 눈치를 보였다.그제야 과부를 내려놓고 담배쉼을 하는데 여자가 말을 걸었다. 과부의 말인즉 『도대체 홀아비가 누군가 얼굴이나 보자』고 했다.당사자인 공삼이는 키도 작고 못생긴 터라 허우대가 좋은 한응호가 나섰다.과부는 마음에 들었는지 유순하게 업혀왔다.그런데 막상 신방을 차리고 공삼이를 밀었더니 과부가 『그 사람 아니다』라고 울며 행악을 부리더란다.마을 사람들은 『그 사람 맞다』며 억지로 첫날밤을 치르게 했다.거기서 새로 얻은 아이들이 커서 지금도 마을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과부 동여매오기 이야기가 나왔을까.연변농촌의 총각 짝짓기는 상상 이상으로 심각한 문제를 안고있다.
  • 일 데라우치 고문서 반화대상 목록/김생 서첩 등 562점 확인

    ◎올해 돌아올듯 정부가 한일국교정상화 30주년을 맞아 일본측과 반환교섭을 벌이고 있는 일제의 초대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사내정의)소장문고는 고구려 광개토대왕비 탁본을 비롯,신라·고려시대의 서한집등 귀중 사료를 다수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조선,중국,일본의 고문서 서한문등을 모은 「데라우치 문고」중 조선 것만을 간추린 결과 고문서와 서책류 46종 4백32책,간첩류 38종 72첩,시첩류 13종 16첩,개인서첩 31종 32첩,서화첩 5종 6첩,기타 4종 4첩등 모두 5백62점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같은 사실은 이달초 일본정부가 전달해온 데라우치 문고의 전체 목록과 일부 자료의 마이크로 필름을 정부 문화재 관계자와 전문학자들이 정리·검증한 결과 밝혀졌다. 정부가 데라우치 문고목록을 토대로 작성한 자료에 따르면 고문서와 서책류에는 김정희의 「완당진묵」「추사진필」,한호의 「서담공유정록」,김상헌의 「청음시첩」,김생의 「해동명필」,정조대왕의 「첩왕서」,효종대왕의 「어제제명첩」「황희서축」등의 귀중한사료가 포함돼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또 「파한집」「보한집」「익제집」「동국통감」「동문선」「삼국사기」「성호사설류선」「동사강목」「지봉유설」「고려사」등도 포함돼 있다. 글씨와 그림을 법첩으로 만든 서화첩에는 순조의 왕세자가 태학에 입학하는 의식을 그린 「정축입학도첩」등이 포함돼 있다. 이 문고는 데라우치가 1910년 조선총독 부임시부터 중국,조선 일대에서 수집한 것으로 1916년 귀국시 일본으로 가져간 것이다. 한·일 양국은 지난해 데라우치 문고의 반환 원칙에 기본적 합의를 봤는데 이번에 목록이 확인 정리됨에 따라 우리측이 반환을 원하는 문화재를 통보하면,본격 협상을 통해 올해 안에 귀중 사료 일부가 돌아오게 됐다.
  • 중국/자본주의 바람 가치관 대혼란/고도성장 따른 「부작용」 심각

    ◎매춘·마약·사기 등 “위험수위”/경제특구 병리 전국에 확산/정부선 애국·전통윤리 강조… 치유효과는 미지수 『바람결에 지폐들 흩어져 날리고,우리에겐 아무런 이상도 없어……』중국 청소년들의 우상으로 떠오른 한 록가수가 그의 새 앨범에 올린 노래 가사의 일부다.우울한 허무의 느낌이 진하게 묻어나온다.사회주의적 낭만주의로 가득찬 선동가요들이 밀려난 자리에서 서구식 록음악이 불안한 실존의 피폐를 노래하는 이 상황은 오늘날 중국 사회에 드리워진 명과 암의 엇갈림을 한눈에 읽게 해준다. 문화혁명기의 홍위병들은 이런 시대가 오리라고 상상이나 했을까.근착 아시아위크는 이런 의문을 던지면서 급변하는 중국사회 뒤란에 널린 살풍경을 재빠른 스케치로 소개하고 있다. 북경의 한 백만장자 얘기는 가치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진 중국현실에 꼭맞는 예이다.전직 트럭운전수 징 이핑은 중국 시장경제체제가 낳은 스타다.아직 마흔이 채 안된 이 젊은이는 북경시내의 문화유적을 복원하는 사업으로 갑부가 됐다.보통사람의 연수입이 1천달러(80만원)안팎인 이 땅에서 그는 이 사업으로 연간 십만달러씩을 긁어들이고 있다.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그도 『먼저 부자가 되어라』는 등소평말씀이 떨어지기 무섭게 온갖 요령과 재주와 상술로 거부의 반열에 올랐다. 부자가 되는 길을 가르쳐준 사람으로 칭송받는 만큼이나 그는 다른 한편 사회를 병들게 하는 배덕자로 손가락질을 받기도 한다.돈더미에 올라앉자마자 그는 조강지처를 놔두고 따로 젊은 첩을 셋이나 얻었다.첩을 두는 것은 『부자에게 따르는 당연한 권리』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그러면서 그는 아내가 「딴생각」을 한다며 「버릇을 잡기위해」 주먹질도 서슴지 않는다. 중국을 경제대국으로 밀어올린 물질숭배 뒤켠에서 야금야금 썩어가는 중국인민의 정신을 보여주는 예는 이것만이 아니다.매춘·마약·사기·범죄같은,한때 정부가 자본주의적 악폐로 지목했던 것들을 빠짐없이 찾아볼 수 있다. 경제성장의 요충지로 이름난 해안도시들.줄줄이 늘어선 호텔과 식당과 상점들 사이사이에서 젊은 여자들이 웃음과 손짓으로,심지어 치맛자락을 들어올리며 행인을 꾀는 풍경은 이제 더이상 화젯거리가 아니다.정부의 발표로는 94년 현재 30만명의 여성이 몸을 팔고 있는 것으로 돼 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정부의 통계일 뿐이다. 하남성 정주시 교외의 리디안은 도박으로 명성이 드높다.정부의 도박박멸 의지를 비웃기라도 하듯 이곳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찾아드는 「꾼」들로 북적거린다.몇달치 봉급을 털어넣고 허탈감에 젖어 나가는 공산당간부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마약중독자의 숫자도 무서운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인민일보는 최근 중국내 마약환자가 88년 7만명에서 4년만에 25만명을 넘어섰으며 이 수는 계속 늘고 있다고 보도했다.이 신문은 동시에 마약주사기를 무분별하게 사용함으로써 AIDS확산이 우려된다면서 「마약과의 전쟁」을 촉구했다. 당과 정부 관료들의 부패는 이미 풍토병같은 것이 돼 버렸다.중국정부는 벌써 몇년째 부패를 뿌리뽑겠다고 호언하고 있지만 사회의 부패가 심해지는 것에 비례해 관료의 비리는 증가일로를 달리고 있다. 정치·사회의 부패와 퇴폐적 악습의 확산은 중국정부의 골치를 이만저만 썩이고 있는 것이 아니다.성장의 열매는 고스란히 거두고 거기에 기생하는 벌레만 없애는 방법은 없는가.생각끝에 정부가 내놓은 것이 애국주의와 전통윤리이다.모두 공산주의사상과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 지난 시절 호된 비판에 숨죽이던 관념들이다.중국정부는 유교덕목에 입각한 애국주의와 공산주의적 신조의 행복한 동거를 꿈꾸고 있지만 이것이 생각대로 이루어질지 지금으로서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 일의 「외국인 지방선거권 인정」 의미

    ◎재일동포 참정권 획득운동 “큰 진전”/지자­공직선거법 개정 등 난제 첩첩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재일동포에게 참정권획득의 길이 열리기 시작했다. 일본 최고재판소(대법원)는 28일 재일동포의 지방참정권과 관련된 소송에서 『정주 외국인에게 지방참정권을 부여하는 것은 헌법에 위반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판결,입법조치를 통한 지방참정권 부여의 길을 열어주었다. ○법적지위 향상 기대 이에 따라 그동안 재일한국민단과 동포들이 끈질기게 벌여온 지방참정권획득운동은 한걸음 나아가게 됐다.재일동포의 법적지위 향상에도 큰 역할을 할 것으로 평가된다.이같은 결과는 지난 91년 지문날인 반대운동에 이어 재일동포들이 참정권 운동을 끈질기게 벌인 결과다.이들의 노력으로 교토 등 13개 현단위 지방자치단체등 1백93개 지방자치단체의 의회에서 참정권 부여에 대한 요망서 청원서등이 채택된 바 있기도 하다. 이번 소송은 오사카의 재일동포 2세 김정규씨(53·출판업) 등 9명이 지난 90년 9월 오사카시 선관위 선거인명부에 자신들이 선거인으로 등록되어 있지 않는데 불복,제기했었다.김씨 등은 지역주민으로서 세금을 납부하는 등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있는데도 지방의원 선거권을 비롯한 지방참정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헌법에 위반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1심인 오사카지방법원은 김씨 등이 제기한 소송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를 표시하면서도 「헌법이 정주 외국인의 지방참정권을 부여하지 않고 있다」고 소송을 각하했다. 그러나 최고재판소는 오사카 지방법원의 원심판결을 유지하면서도 한발 나아가서 『영주권자에 대해서는 거주지역 지방 자치단체에 그 의사를 반영하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에 지방자치단체의 장이나 의원들에 대한 선거권을 부여하는 조치를 취하는 것이 헌법에 금지되어 있다고 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최고재판소는 이미 국정차원의 참정권은 헌법상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바 있다.참정권은 국정과 지방,선거권과 피선거권의 4차원이 있다.최고재판소 판결로 선거권은 정리가 된 셈이다.즉 국정선거권은 헌법상 부여할 수 없지만 지방선거권은 입법을 통해 부여할수 있게 된 것이다. ○피선거권 확보 먼길 피선거권과 관련해서는 아직 학설이 갈리고 있지만 일본에서는 부정적인 견해가 압도적이다.피선거권까지는 아직 갈 길이 먼 셈이다. 한편 지방참정권 부여를 위해서는 지방자치법과 공직선거법을 개정해야 하는데 일본행정부측은 ▲한국 국적과 북한 국적을 가진 사람들의 의견이 다르고(조총련은 언젠가 귀국한다는 점을 전제로 참정권운동에 소극적) ▲미국 프랑스 독일등 인정하지 않는 나라도 적지 않으며 ▲국민여론도 의견이 나뉘어 있다는 점등을 들어 소극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두드려라.그러면 열릴 것이다」라는 말을 이번 판결은 보여주고 있다.앞으로 참정권운동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 “이야기도 신토불이”/「오사리 잡놈들」/「흥부의 작은 마누라」

    ◎토박이 얘기책 2권 눈길/원로국문학자 이훈종씨,선조들 재담·풍속 모아 출간/사라진 풍습·고유의 말 재미있게 엮어 「이야기도 신토불이」.한국사람들의 토박이 이야기가 되살아났다. 원로 국문학자 이훈종 우리문화연구원장(77)이 최근 펴낸 「오사리 잡놈들」「흥부의 작은 마누라」(이상 한길사 펴냄)는 TV의 박제된 이야기들이 화제를 독점하는 요즈음 사라져가는 토종 「생짜이야기」들을 싣고 있어 관심을 끈다. 「흥부의 작은 마누라」「복날 견공이 수난받는 까닭」등 우리 선조들이 평소 일상에서 주고받았을 재담과 풍속을 묶은 이 책들은 사라진 우리 풍습이나 고유의 말,생활도구들을 소재로한 익살과 괘사(행동으로 웃기는 것)거리를 풍부히 담았다.따라서 이 책을 읽다보면 풀풀 날리는 선조들의 삶의 흥취를 엿볼 수 있고 우리 것에 대한 애착도 무럭무럭 솟아난다. 이 책에 소개되는 것으로 「흥부전」 연구학자들도 모르는 「흥부의 작은 마누라」 얘기는 이렇다.제비가 가져온 박에서 보물이 쏟아져 나와 부자가 된 흥부가 네번째 박을 켜니그 안에서 양귀비가 나왔다는 것.우리나라 사람들이 형편 좀 피었다 하면 첩을 얻는 세태를 비꼰 이야기다.이야기는 더 나아가 흥부가 양귀비를 얻은데 샘이 난 놀부가 박을 켜 「비」를 얻으려 한 장면으로 이어진다.그러나 놀부가 얻은 「비」는 양귀비같은 「비」가 아니라 삼국지에 나오는 장비여서 혼쭐만 난다는 것. 사돈에게 울지 못하는 수탉을 팔아먹고 능갈치는 이야기도 나온다.사돈이 찾아와 울지 못하는 수탉을 팔았다고 항의하자 사내는 사돈에게 암탉이 있느냐고 묻는다.사돈이 여러 마리 있다고 대답하자 사내는 『그 놈이 무어가 부족해서 울어?』하며 둘러댄다. 또 일본사람이 우리나라 사람을 죽일 요량으로 고추를 들여왔는데 오히려 기운을 펄펄 나게 했다는 얘기,미숫가루가 가장 더러운 음식인 이유,신혼 부부에게 「깨가 쏟아진다」고 말하는 연원 등도 들려준다.이같은 이야기들 속에는 선조들의 지혜와 날카로운 풍자가 문득문득 드러난다. 저자인 이훈종 원장은 『우리의 전통과 정서가 담겨져 있는 우리 이야기가 점점 사라져가는 것이 안타까워 책을 내게 됐다』고 밝혔다. 독자들에게 이원장의 구수한 입담으로 우리 이야기를 전하는 이야기마당도 출판사에 의해 마련되고 있어 관심을 더해주고 있다.26일 서울 신사동 강남출판문화센터 이벤트홀에서 열리는 이 행사는 청중들이 모인 앞에서 이원장이 이야기의 흥을 돋우는 고수의 추임새에 맞춰 이야기를 늘어놓는 공연형태로 진행된다.일반인들에게 신명나는 우리 이야기를 소개하는 한편 우리 이야기가 연희의 훌륭한 소재거리가 될 수 있음을 드러내보일 의욕이다.이 신토불이 「토크쇼」에는 국악인 임진택씨가 추임새를 넣는다. 한편 우리 선조들의 유머감각에 초점을 맞춘 이원장의 또다른 이야기모음집도 올해안에 출간될 예정이다.
  • 가족동반 불 방문땐 비자 함께 신청해야/불 입국 주의사항

    ◎별도 신청땐 2년간 초청 못해 프랑스에 장기체류하려는 유학생이나 상사 직원들은 앞으로 입국절차를 거칠 때 주의해야 한다.프랑스의 개정된 이민법이 지난 10월25일부터 발효됨으로써 입국이 까다로워졌기 때문이다. 프랑스에 가족을 동반하고 입국할 때는 3개월 이상짜리 비자(입국사증)신청에서부터 가족과 함께 비자신청을 하는게 좋다.그렇지 않으면 본의 아니게 가족들과 2년간 별거할 수도 있다. 이민법 개정안은 원칙적으로 가족과 함께 비자를 신청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가족과 별도로 비자를 신청할 경우 가족 초청제한 규정의 적용을 받도록 돼있다.제한규정은 당사자가 가족을 부양하기에 충분한 수입을 갖고 있어야 하고 2년동안 체류한 뒤에야 가족을 데려올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법은 한국인의 입국을 규제하기 위해서 개정된 것은 아니다.단신 입국한 뒤 처와 첩및 그 가족 등을 무더기로 데려오는 아랍인들의 무분별한 입국제한을 첫째 목적으로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한국인도 이 규정 때문에 비자발급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실제로 H사 프랑스지사에 근무하는 황모씨는 지난 9월13일 비자신청을 하고 부인 등 가족들은 약간 늦은 10월11일 비자신청을 했다. 황씨는 비자를 발급받아 단기체류증까지 받은 상태지만 가족들은 같은날 비자신청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비자를 발급받지 못했다.개정법 규정상 황씨가 2년동안 거주한 뒤에야 비자를 내줄수 있다는 것이 프랑스 출입국 당국의 답변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비자없이 3개월 가까이 리옹에 집을 얻어 함께 살다가 일시귀국한 그의 가족들은 당국의 선처가 없으면 2년후에나 체류할 수 있다.개정이민법에 따라 입국에 어려움을 겪는 한국인 1호에 해당된다. 프랑스 내무부는 외교경로를 통해 상사주재원인 그가 법적용 대상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가족의 비자발급에 긍정적인 답변을 주고 있다.그러나 유학생들의 경우는 상사주재원보다 가족의 비자발급이 더욱 까다로워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 「한국음식 큰잔치」 열린다/칠첩반상 등 전통음식 한자리에

    우리 고유의 전통음식을 한눈에 보고 배우며 맛 볼 수 있는 「한국음식 큰잔치」가 15일 상오 11시∼하오 1시 서울 중구 필동 한국의집에서 열린다. 한국문화재보호재단 주최로 마련되는 이 행사는 초조반상(죽상),낮것상­면상(장국국수),만두국상,떡국상,저녁상­칠첩반상,어른생신상 등 반가의 전통상차림과 돌상,초례상 등의 의례 상차림 및 신선로와 옛 궁중의 수라상 등이 궁중음식 기능보유자인 황혜성씨(궁중음식연구원 이사장)의 고증으로 전시된다.또한 그동안 한국의집에서 제공하던 호박찜·탕평채·갈비찜 등 뷔페음식 20종과 어만두·두텁떡·구절판·너비아니·염통구이 등 서울지방에서 즐겨먹던 음식중 보급이 가능한 전통음식 30여종을 새 식단으로 추가하여 선뵌다. 문의 (02)266­6359.
  • 「국제화대상 한국음식」 12종 선정

    ◎관광공사,인간문화재 황혜성씨 등 자문받아/신선로·3첩반상·한정식·전골정식 포함/해외주재공관 통해 각국에 요리법 등 홍보 한국음식의 우수성을 세계에 널리 알리기 위한 「국제화 대상 한국음식」 12종이 선정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국관광공사는 28일 한국방문의 해를 맞아 지난 4월 조선왕조 궁중음식 인간문화재 황혜성여사를 비롯,대학교수·식당경영인·외교관부인등 8명으로 발족한 「한국음식 국제화 자문위원회」의 연구결과를 토대로 12종의 국제화 대상 한국음식을 선정했다. 자문위원 황혜성씨는 『국제화 대상 한국음식 선정은 외국인들의 한국음식 선호도에 중점을 두어 뽑았다.특히 반찬을 간소화해 외국인들의 식습관에 맞게 개인용 세트메뉴의 상차림으로 꾸몄다』며 이들 음식이 한국과 한국문화를 소개하는데 손색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따라 공사는 30일 국립극장내 한식당에서 스페인대사 부처와 서울 외국인학교장,자문위원등 1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시식회를 갖는다.또 선정된 음식 12종의 표준조리법을 바탕으로 보사부·외무부등 관련부처,한국음식업협회및 한국조리사협회등 관련업계,공사 해외지사및 해외주재공관등을 통해 한국음식에 대한 홍보를 강화하기로 했다.국제화대상 음식및 표준조리법은 다음과 같다. ①잡채정식=쇠고기 오이 당근 버섯을 재료로한 잡채와 밥,두부조림 두부회 또는 두부를 튀겨 간장에 졸인 두부장아찌중 1가지,배추김치 맑은국. ②냉면=냉면국수는 질기지 않아야 하며 동치미국과 편육,무 오이등 냉면김치,삶은 계란을 준비한다. ③죽상=흰죽 야채죽 인삼을 넣은 닭죽 옥수수죽중 1가지와 다시마 잣등 매듭자반,북어포 물김치. ④신선로정식=국수와 작은 만두,쇠고기 두부 흰살생선 버섯 미나리 무 당근 사태 호두 은행 실백 계란등을 넣은 신선로,배추김치. ⑤3첩반상=밥과 닭국물을 이용한 맑은국 갈비찜 김치 2종,더덕구이 적 조림 전중 2가지,나물 생채중 1가지등 반찬 3가지. ⑥한정식=A코스는 냉채 빈대떡 생선구이 불고기 맑은탕 기본찬 5종,김치 2종,과일 식혜이며 B는 육포등 마른안주,잣죽 냉채 구절판 수삼중 1가지,대하찜 전유어중1가지,신선로 불고기 기본찬 5종,김치 2종,궁중병과 과일 화채또는 차. ⑦만두·국수=쇠고기 두부 숙주 김치 계란을 넣은 만두국 또는 국수와 배추김치나 동치미중 1가지. ⑧생선구이정식=밥 무국 생선구이,도라지 시금치 버섯등 삼색나물,배추및 물김치. ⑨비빔밥=흰밥 참기름 쇠고기볶음,오이 고사리 도라지 콩등 나물,다시마튀김 계란지단 볶은 고추장을 사용하고 콩나물국 물김치가 오른다. ⑩불고기정식=밥 완자탕 갈비 또는 불고기,겨자채 무생채 상치절이지중 1가지,배추및 물김치. ⑪전골정식=밥과 쇠고기 무 당근 양파 버섯 숙주 미나리 계란을 재료로 김치가 함께한다. ⑫후식=잣가루 밤고물등 단자류의 떡,약과 밤초등 과자,식혜 오미자화채등 찬음료,인삼차,과일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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