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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년간 ‘자녀 1171명’ 모로코 왕의 비결 (연구결과)

    32년간 ‘자녀 1171명’ 모로코 왕의 비결 (연구결과)

    과거 모로코의 통치자이자 ‘다산의 왕’으로 알려진 술탄 물레이 이스마일이 어떻게 많은 아이를 낳을 수 있었는지를 과학적으로 밝힌 연구결과가 공개됐다. 과학전문매체인 라이브사이언스의 25일자 보도에 따르면, 1672~1727년간 모로코를 통치한 물레이 이스마일(Moulay Ismail)왕은 평생 동안 1000명이 넘는 자녀를 낳은 것으로 유명하다. 기네스 세계기록에 따르면 이스마일의 ‘공식 자녀수’는 888명이다. 하지만 프랑스 외교관이자 모로코를 자주 여행했던 도미니크 버스놋의 기록에 따르면 그는 4명의 부인과 500여 명의 첩 사이에서 무려 1171명의 자녀를 뒀다. 마지막 자녀가 태어날 당시 그의 나이는 57세였으며, 총 32년간 끊임없이 자손을 ‘생산’해 낸 것으로 알려졌다. 오스트리아 비엔나대학교의 인류학자인 엘리자베스 오버차우허 박사는 물레이 이스마일 왕이 이토록 많은 자손을 낳을 수 있었던 ‘비결’에 의심을 품고 연구하기 시작했다. 오버차우허 박사 연구팀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이용해 실험한 결과, 그가 32년간 1171명의 아이를 낳기 위해서는 하루도 쉬지 않고 여성과 잠자리를 가져야 했다. 이 시뮬레이션은 다양한 변수를 기초로 한다. 예컨대 여성의 생리주기 및 이스마일 왕의 나이에 따른 정자의 건강상태, 난자와의 수정능력 등을 고려한 것이다. 이를 토대로 봤을 때 이스마일 왕은 하루 평균 0.83~1.43회 성관계를 맺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500명이나 되는 첩이 아니라 65~110명 정도의 여성에게서 1000여 명의 자손이 태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오버차우허 박사는 설명했다. 연구팀은 “비록 이번 연구는 시뮬레이션에 기초하지만, 그가 분명 남다른 능력을 가진 것은 확실하다”고 전했다. 한편 물레이 이스마일 왕의 통치기간은 모로코 역사상 가장 길며, 15만 명이 넘는 군대를 이끌고 강력한 통치를 했다. 무자비하고 잔혹하기로 악명이 높으며, 자신의 군대가 죽인 적군의 머리 400여 개를 도시 전체에 ‘진열’했다는 기록도 있다. 이번 연구는 미국 공공 과학도서관 학술지인 ‘플로스원’(PLos ONE)에 실렸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천국을 누비다…‘설국의 고장’ 日도호쿠 3현을 가다

    천국을 누비다…‘설국의 고장’ 日도호쿠 3현을 가다

    아오모리, 아키타, 이와테 등 일본의 3개 현은 혼슈의 동북 끝에 있다. 이 지역은 외진 곳인 데다 농업 외에 특별히 내세울 게 없어 해마다 인구가 줄고 있다. 그러나 일본 내 변방이라는 지리적 불리함은 한적함이라는 선물을 안겨주고 있다. 맑은 계곡과 울창한 수림, 쾌적한 환경, 잘 다듬어진 아늑한 시골 풍광은 생활에 지친 도시인들에게 위로와 안식을 주기에 충분하다. 국토교통성 동북운수국 국제관광과의 기무라 다카히로 전문관은 “이곳은 도시인들이 마음을 치유하기에 좋은 곳”이라고 말했다. [겨울왕국] 핫코다 설산서 5월까지 눈꽃 스키… 아오모리 시내선 벚꽃 만끽 겨울을 달궜던 설원(雪原)이 봄기운에 하루가 다르게 힘을 잃고 있다. 스키 마니아들은 못내 아쉽기만 하다. 그러나 아오모리시 핫코다(1584m) 산은 아직도 눈의 세계다. 아오모리는 연간 강설량이 426㎝에 이를 정도로 일본에서도 눈이 많은 지역이다. 하루 최대 적설량은 82㎝다. 여기에 낮과 밤의 기온차가 4~5도에 불과해 오랫동안 눈이 녹지 않는다. 일본 100대 명산 중의 하나인 핫코다 산 자락에 자리한 스키장은 5월 중순까지 스키를 즐길 수 있다. 아오모리현 관광국제전략국 관광교류추진과의 사카모토 슈헤이는 “스키장은 아오모리시에서 버스로 1시간 거리여서 4월이 되면 시내에서 벚꽃을 구경한 뒤 산에서 눈꽃을 볼 수 있다”고 자랑했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다 보면 멀리 바다가 보이고 정상부에서는 수빙(樹氷)이 반긴다. 수빙은 빙점 이하로 냉각된 짙은 안개가 나무에 달라붙어 형성된 하얀 얼음층으로 일명 ‘스노 몬스터’로 불린다. 말 그대로 기괴한 괴물이 이색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설질(雪質)은 수분이 적은 데다 입자가 고운 스노 파우더여서 최상이다. 슬로프를 타고 내려올 수도 있고 상급자의 경우 신고를 하면 수빙과 숲 속을 자유롭게 활강할 수도 있다. 인근에는 1954년 국민보양온천 1호로 지정된 스카유 온천이 있어 스키어들의 피로를 풀어 준다. 센닌부로(千人風呂)라는 혼욕 대욕탕이 유명하다. 아키타현 모리요시 산에 있는 아니 스키장은 슬로프가 삼나무와 너도밤나무 군락지 사이에 형성돼 있다. 눈을 이고 있는 삼나무의 푸른 잎과 알몸으로 겨울을 나고 있는 너도밤나무의 앙상한 가지가 대비된다. 스키장 정상에서도 수빙을 구경할 수 있다. [설국열차] 스토브열차 속 난로에 손 녹이고… 내륙열차 창밖 설경 보며 맘 녹이고 아오모리현의 스토브열차와 아키타현의 내륙열차는 완행열차다. 나카사토와 고쇼가와라 역을 왕복 운행하는 스토브열차에 오르면 객실과 승무원 모두 1950~60년대 모습 그대로여서 타임머신을 타고 옛날로 돌아간 느낌이다. 객실 가운데에는 석탄 난로가 설치돼 있어 오징어를 구워 먹을 수 있다. 종종 들려오는 신호등 소리도 한가하게 울린다. 내륙열차는 기타아키타시 다카노스역과 센보쿠시 가쿠노다테를 잇는 협궤 전철이다. 차창 사이로 아키타의 평화로운 시골 풍경이 쉴 새 없이 다가왔다 사라진다. 열차는 연간 2억엔(20억원)의 적자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관광객이 찾아 명백을 잇고 있다. 두 열차가 고속철 시대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빠름이 아닌 느림 때문이다. 빠름과 느림이 공존하는 풍토와 여유가 부럽다. 이와테현에 있는 히라이즈미는 201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불교 유적지다. 홋카이도·도후쿠 지방에서는 처음이고 일본 전체로는 16번째다. 히라이즈미 문화유산은 주손지 절(中尊寺), 모쓰지 절(毛越寺), 무료코인 유적지(觀自在王院跡) 등으로 이뤄져 있다. 주손지에는 일본 국보 1호인 곤지키도(色堂)가 보관돼 있다. 곤지키도는 아미타불, 관음보살 등 48개 불상을 금으로 장식한 것으로 이곳을 통치했던 후지와라가의 1대손 기요하라가 1124년 만들었다. 불상에다 변하지 않는 금을 입혔으니 영원불멸에 대한 간절한 바람을 읽을 수 있다. 모쓰지는 2대손 모토히라가 건립한 사원으로 ‘정토의 세계’를 표현한 정원이 복원, 정비돼 있다. 무료코인 유적지는 3대손 히데히라가 교토의 뵤도인 사찰을 본떠 만든 사원으로 현재는 연못 터와 초석이 남아 있을 뿐이다. 불교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한번쯤 둘러볼 만하다. [페스티벌] 메밀국수 먹기 대회선 추억 쌓고… 가마쿠라 축제선 소원빌며 情 쌓고 겨울은 관광 비수기다. 추워서 야외 활동을 하기가 좋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동북 3개 현은 아기자기한 축제로 집 안에 있는 사람들을 불러내고 있다. 이와테현 하나마키시에서는 매년 완코소바(메밀국수) 대회가 개최된다. 56회째를 맞는 올해 대회는 지난 11일 열렸다. 하나마키의 메밀국수는 에도시대 도쿄로 가던 영주 남부토시나오가 완(椀)이라는 작은 그릇에 대접받은 메밀국수가 너무 맛있어 여러 차례 더 먹었던 것에서 유래한다. 대회는 소년부, 일반부, 여자부 등으로 나뉘어 완에 담긴 메밀국수를 누가 얼마나 먹는가에 따라 순위가 정해진다. 많이 먹는 것을 자랑하는 것보다 미련한 짓이 없다지만 친구, 부모들이 북과 함성을 울리며 열띤 응원전을 펼치자 대회는 달아올랐다. 보통 여자는 50그릇, 성인 남자는 70그릇을 먹는데 역대 최고 기록은 254그릇이라고 한다. 승패를 떠나 참가자들에겐 즐거운 추억거리가 되고 시에서는 메밀을 홍보하고 비수기 특수를 창출할 수 있으니 서로에게 남는 장사다. 아키타현 요코테시는 인구 10만의 소도시지만 가마쿠라 축제가 열리면 이틀 동안 30만명의 관광객이 찾을 정도다. 가마쿠라는 눈으로 만든 눈집으로, 안에 물신(水神)을 모시고 집안의 평화와 안녕, 한 해의 풍작을 기원한다. 축제는 400년이 넘었으며 관광객들은 시내 곳곳에 설치된 가마쿠라를 순회하며 저마다의 소원을 빈다. 아오모리 고쇼가와라시에서는 해마다 8월 다치네푸타 축제가 열려 지난해에는 130만명의 관광객이 찾았다. 높이 24m, 무게 19t에 이르는 대형 무사 인형 3개를 앞세우고 춤과 노래를 추며 시내를 행진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축제는 여름에만 반짝하지 않고 사시사철 시민들과 함께하고 있다. 시내에 다치네푸타 상설 전시관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까이서 다치네푸타를 볼 수 있으며 제작 과정을 견학할 수도 있다. 글 사진 이와테·아오모리·아키타(일본) 임태순 선임기자 stslim@seoul.co.kr ■여행수첩 →가는 길 동북 3현을 가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비행기로 센다이로 간 뒤 기차를 이용하거나 아오모리와 아키타 국제 공항으로 바로 갈 수도 있다. 센다이는 아시아나항공이 월·수·금·일요일 주 4회 운항한다. 센다이공항에서 JR센다이역까지는 지하철로 25분 걸리며 센다이역에서 신칸센을 타면 이와테현 모리오카까지 44분 걸린다. 아오모리는 수·금·일요일, 아키다는 월·목·토요일 각각 주 3회 대한항공이 뜬다. 항공편수는 항공사 사정에 따라 조정되며 비행 시간은 두 시간이 조금 더 걸린다. →주변 볼거리 아키타현 도와다하치만타이 국립공원 기슭에 있는 유토온천은 역사가 300년이 넘는 유서 깊은 온천이다. 온천이 여러 개 있지만 학이 내려와 상처를 치유했다는 뽀얀 우유 빛깔의 쓰르노유 온천이 유명하다. 아오모리현의 오이라세 계곡은 울창한 수림에 맑은 물이 풍부하게 흘러 봄부터 가을까지 트레킹하기에 좋다. 도와다 호수의 겨울 축제도 볼 만하다. 눈 조각상을 구경할 수 있으며 눈으로 만든 얼음집에서 술과 음식을 즐길 수도 있다.
  • ‘北 장성택 애인’ 그녀, 미모 어떤가 봤더니 ‘충격’

    ‘北 장성택 애인’ 그녀, 미모 어떤가 봤더니 ‘충격’

    작년 말 처형된 북한 장성택 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애인이 최근 전격 체포됐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탈북자 인터넷 매체 ‘뉴포커스’(www.newfocus.co.kr)는 최근 ‘北, 김일성 별장 임대 중단’이라는 기사에서 ’장성택 애인 체포설’을 강하게 반박했다. 앞서 지난달 14일 한 국내 매체는 북한 소식통을 인용해 “김춘화 나선국제여행사 사장도 ‘장성택의 애인’이라는 이유로 체포된 것으로 전해졌다. 50세 전후의 김 사장은 젊은 시절 평양에서 근무하다 내려온 미모의 여성으로 지금까지 미혼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뉴포커스는 이에 대해 “나진·선봉 내에서 제일 높은 여성간부였던 관광관리국장이 잡혀가면서 그녀가 ‘장성택 애인’이라는 소문이 돌았지만 (우리 측) 통신원은 인물이나 나이로 봤을 때 가당치도 않는 대상이라고 설명했다”고 전했다. 현지 관광 총책임자가 체포된 것은 맞지만 이 인물이 장성택의 내연녀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얘기다. 뉴포커스 측은 12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평소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다양한 여성 편력으로 유명했던 장성택이 나이도 많고 외모도 뛰어나지 않은 여성을 첩(내연녀)으로 두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를 믿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뉴포커스는 이 기사를 통해 나진·선봉시에 대해 강화되고 있는 중앙당과 국가안전보위부의 검열 현황을 전했다. 이에 따르면 나진·선봉 시당위원장, 보위부장이 모두 장성택 사람들이기 때문에 최고인민회의 대의원회의가 진행되는 3월을 계기로 교체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고 한다. 또 나진·선봉의 국제 구락부는 장성택 사건 이후로 문을 닫아 중국인들의 왕래가 급격히 줄었으며 홍콩 투자기업인 엠페러 그룹이 임대사업을 했던 김일성 별장도 회수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일성 별장은 1970년대 김일성 전용의 휴가 특각으로 기념비도 세워져 있을 만큼 나진·선봉 지역의 명물이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2014년 영화계 ‘애들은 가라’

    2014년 영화계 ‘애들은 가라’

    갑오년 새해에는 어떤 영화들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까. 올해는 영화 관람객이 2억명을 돌파하며 한국 영화에 대한 안팎의 기대감이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새해 극장가를 호령할 키워드는 뭘까. ‘블록버스터급 사극’과 ‘19금(禁) 영화’다. 내년 영화계에는 제작비 100억원을 웃도는 블록버스터급 사극이 줄줄이 쏟아질 전망이다. 2012년 1000만 관객을 돌파한 ‘광해, 왕이 된 남자’의 여파다. CJ E&M, 쇼박스, 롯데엔터테인먼트 등 국내 3대 메이저 배급사들은 하나같이 대형 사극 카드를 준비하고 있다. 상반기에 선보일 ‘역린’은 노론과 소론으로 나뉘어 당쟁이 치열했던 조선 정조 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정치 드라마와 액션을 결합한 대작이다. 현빈의 군 제대 이후 컴백작으로 그는 비운의 왕인 젊은 정조 역을 맡았다. 드라마 ‘다모’의 이재규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여름 개봉 예정인 ‘명량:회오리 바다’도 눈여겨볼 만하다. ‘최종병기 활’로 2012년 여름 극장가를 강타했던 김한민 감독의 차기작으로 배 12척으로 330여척을 앞세운 왜군의 공격을 막아낸 명량해전을 다뤘다. 최민식이 이순신 장군을, 류승룡이 일본인 장군 구루지마 역을 맡았다. 여름 성수기인 7월 선보일 사극 대작 ‘군도:민란의 시대’는 양반과 탐관오리의 착취가 극에 달했던 조선 후기, 백성들의 편에 섰던 도적들의 활약을 그린 영화다. 하정우가 억울한 사연으로 도적 떼에 합류한 돌무치로 출연하고 강동원이 최고의 무술 실력을 갖춘 조윤을 맡아 군 제대 이후 처음 복귀한다. 내년 하반기까지 사극 열풍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150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은 고래 배 속으로 들어간 조선의 국새를 찾기 위해 대결하는 산적단과 해적단의 이야기를 그린 판타지 사극이다. 김남길, 손예진이 주연한다. 이병헌, 전도연도 고려시대 민란을 주도한 세명의 검객이 펼치는 애증과 복수를 다룬 ‘협녀: 칼의 기억’으로 스크린에 복귀한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임성규 팀장은 “사극의 친숙함에 액션, 판타지, 코미디 등 현대적인 요소를 결합한 장르적 다양화가 특징으로, 다양한 관객층을 흡수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쇼박스의 한 관계자는 “소재의 한계를 겪는 현대극에 비해 과거를 배경으로 한 사극은 창작의 여지가 크다는 장점이 있다”면서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현재를 반추하게 한다는 점에서 관객들의 공감을 얻기도 쉽다”고 말했다. 한동안 뜸했던 19금 영화도 봇물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과거 19금 영화가 선정성에 크게 기댔던 것과 달리 내년 유행할 영화들은 스토리를 강화해 중장년층 관객에게 호소하는 멜로가 주류를 이룬다는 점이 특징이다. 대표적인 작품은 송승헌, 조여정 주연의 파격 멜로 ‘인간 중독’이다. ‘음란서생’ ‘방자전’ 등을 연출했던 김대우 감독의 작품으로 1969년 베트남전의 전쟁 영웅이었던 대령이 부하의 아내와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다. ‘순수의 시대’는 조선판 ‘색, 계’로 불리며 일찌감치 영화계의 관심을 모은 작품이다. 조선 초기 태종 이방원의 ‘왕자의 난’을 배경으로 복수를 위해 한 남자의 첩이 된 여인이 점차 그 남자에게 빠져들면서 빚어지는 이야기다. 한국판 ‘섹스 앤드 더 시티’를 표방해 새해 2월 개봉할 ‘관능의 법칙’도 눈길을 끈다. 일도, 사랑도 화끈하게 즐기고 싶은 40대 여성들의 이야기로 문소리, 엄정화, 조민수가 주연을 맡았다. 이 밖에도 중국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정우성 주연의 ‘마담 뺑덕’도 파격적인 19금 멜로를 예고한다. ‘후궁: 제왕의 첩’을 제작했던 황기성 사단은 이번엔 불륜을 소재로 한 19금 현대극 ‘탐미주의’를 제작 중이다. 서로를 운명이라고 믿었던 연상연하 부부가 각자 새로운 사랑을 만나면서 겪는 이야기다. 19금 멜로의 고전 ‘정사’도 후속편인 ‘정사2’가 기획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 관계자들은 내년에 19금 영화가 쏟아지는 이유로 부가 판권 시장의 성장과 4050 중장년층 관객의 확대를 꼽고 있다. ‘관능의 법칙’ 제작사인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는 “올해 IPTV 등 부가 판권 시장의 수익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이 시장에서 인기 있는 19금 영화들의 기획이 늘었다”면서 “4050 관객들이 극장가의 핵심 관객층이 되면서 성인 취향의 콘텐츠가 증가한 것도 배경”이라고 분석했다. 또 다른 영화계 관계자는 “보통 소비 심리가 위축되고 경제가 어려울수록 19금 영화가 많이 제작되는데 사회 경제적인 압박과 불안을 영화를 통해 해소하려는 심리가 이런 트렌드로 연결된 듯하다”고 말했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철도노사 교섭 결렬…최연혜 사장 “12시까지 복귀” 최후통첩

    철도노사 교섭 결렬…최연혜 사장 “12시까지 복귀” 최후통첩

    철도노사 교섭 결렬…최연혜 사장 “12시까지 복귀” 최후통첩 철도파업 19일째인 27일 한국철도공사(코레일)와 전국철도노동조합(철도노조)의 노사간 실무교섭이 이틀간의 마라톤 협상 끝에 결렬됐다. 사측은 합의 도출에 실패했다며 이날 밤 12시까지 업무에 복귀하라고 최후통첩을 내린 반면 노조 측은 교섭 ‘일시 중단’을 선언하고 대화를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최연혜 코레일 사장은 이날 오전 서울 중구 사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어제 오후 4시부터 오늘 오전 8시까지 밤샘 마라톤 협상을 진행했지만 아무런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다”며 “오늘밤 12시까지 복귀해달라. 이때까지 돌아오지 않는 직원에 대해서는 복귀 의사가 없는 것으로 간주하고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할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최연혜 사장은 “코레일에서는 ‘파업을 철회할 경우 수서 KTX 법인의 공공성 확보와 철도산업발전을 위한 노·사·민·정이 참여하는 사회적 논의기구를 구성한다’는 진전된 대안을 제시했지만 철도노조는 ‘수서 KTX 법인 면허발급부터 중단하라’는 기존의 요구를 되풀이하면서 한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최연혜 사장은 “노조가 말로는 대화와 협상을 하자고 하면서 과연 협상할 의지가 있는지, 철도산업발전에 대한 진정성이 있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코레일은 이면 합의를 통한 어떠한 야합이나 명분없는 양보와 타협은 결코 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철도노조 관계자는 “전날 오후부터 교섭을 진행했지만 수서발 KTX 면허 발급과 관련해 노사간 견해차가 커서 아직 좁혀지지 않는 상황”이라며 “노조는 계속 교섭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노사는 각각 3명의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이날 오전 6시 15분부터 교섭을 재개했으나 1시간 40여분만에 중단됐다. 양측은 전날에도 오후 4시 20분부터 8시간 30분 가량 마라톤 협상을 벌였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정회를 선언했다. 노조 측은 수서발 KTX 주식회사 설립 결정 철회와 파업 조합원에 대한 고소·직위해제 중단 등 5가지 요구안을 제시했다. 교섭 중단 13일만에 재개됐던 전날 회동은 최연혜 코레일 사장이 조계사를 방문, 조계종 화쟁위원장 도법 스님의 중재로 박태만 철도노조 부위원장과 교섭 재개에 합의하면서 성사됐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혼·재혼·재산 다툼… 민초들 기록으로 만나는 조선의 민낯

    이혼·재혼·재산 다툼… 민초들 기록으로 만나는 조선의 민낯

    고문서, 조선의 역사를 말하다/전경목 지음/휴머니스트/383쪽/2만원 조선시대에는 이혼과 재혼이 불가능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가 하면 그 시대 대부분의 사대부는 융통성 없는 근엄한 표정의 인물들로 다가오곤 한다. 조선시대의 인물들과 사회는 많은 사서와 기록을 통해 전해지는 것처럼 그렇게 원칙의 굴레와 틀에 철저하게 매였을까. 흔히 관찬의 사료들은 대부분 권력층의 정치사에 바탕한 부침을 중심에 놓고 있다. 그래서 그 사회에 몸담아 울고 웃었던 일반의 진솔한 표정은 가려지기 일쑤다. ‘고문서, 조선의 역사를 말하다’는 이른바 고문서라는, 민초들이 남긴 1차적 사료를 통해 조선시대 역사 다시 쓰기를 시도해 신선하다. ‘조선왕조실록’이며 ‘승정원 일기’ 같은 관찬 기록에선 맛볼 수 없는 조선시대 사람들의 맨 얼굴과 생활 실상을 가감 없이 만날 수 있는 책으로 눈길을 끈다. 책은 한국학중앙연구원 고문헌관리학과 교수인 저자가 고문서에 적시된 짧은 기록들을 단서 삼아 조선시대의 인물과 사회상을 재구성한 게 특징이다. 이혼과 노름, 지방 관리와 중앙 서리, 처와 첩 등 개개인의 이야기를 비슷한 경우의 문집이며 수기, 족보 같은 기록들을 비교해 풀어낸다. 탐정이 사건을 수사하듯 사연의 배경과 전말을 추적해 당 시대의 풍습과 관념을 새롭게 바꿔놓는 과정이 독특하다. 책의 특장은 역시 통념을 뒤집는 역사와 사실의 재발견이다. 1602년 박의훤이 남긴 분재기(재산을 분배할 때 작성한 문서)는 불륜과 재혼이 반복된 당시의 결혼 생활을 들춰내 도드라진다. 박의훤은 다섯 명의 여자와 부부 관계를 맺었으나 전처 네 명이 모두 불륜 때문에 떠나자 당시 아내와의 사이에서 낳은 어린 두 아들에게 재산을 물려주기 위해 전처들의 비행을 낱낱이 고발하면서 분재기를 작성했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이혼을 현실로 받아들이면서 35냥을 받고 아내를 보내는 ‘최덕현의 수기’도 같은 맥락의 사연으로 들춰진다. 조선시대 평민, 천민의 이혼이 자유로웠음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이것 말고도 자신을 내쫓고 어머니에게 욕을 한 아내를 고발한 ‘김용갑의 탄원서’며 죽음을 앞두고 노름꾼 아들을 둔 아버지가 제 인생을 한탄하면서도 큰손자를 걱정하는 ‘양경원의 유훈서’처럼 평범한 사람들의 사연과 생각들이 새록새록 복원되는 과정이 흥미롭다. 고문서야말로 조선시대를 제대로 볼 수 있는 숨겨진 보물창고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저자는 그 고문서 읽기에도 주의가 필요하다고 경계한다. “거시사를 꿰는 기반 없이 고문서를 해독한다면 자칫 작은 사실이나 사건을 성급하게 일반화하는 오류를 저지를 수 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손현주의 계절 밥상 여행] 동해 꼼치국(물메기탕)

    [손현주의 계절 밥상 여행] 동해 꼼치국(물메기탕)

    설설 끓는 국물 만큼 한국인들 언 속을 달래주는 음식도 없을 것이다. 어찌 보면 우리가 유럽여행에서 음식 고생을 하는 것은 매운 고춧가루가 아니요, 밥도 아닌 목젖을 타고 짜르르 내려가 속을 훑어 내리는 뜨끈한 국물을 만날 수 없기 때문인 듯싶다. 우리에게 국물은 내림 유전자다. 그래서 콧등 도리는 겨울날, 바닷가 여행지에서 만나는 뜨끈한 물메기탕 한 그릇의 위안은 크고도 아름답다. 하니 술꾼들은 겨울만 되면 흐물흐물 물메기탕을 떠올리며 바닷가로 숨어드는 것이다. “에잇, 기분 나빠.” “텀벙.” 10여년 전만 해도 어부들은 그물에 이 못생긴 생선 물메기가 올라오면 재수없다고 여겼다. 그래서 다시 물속에 던졌다. 그때 ‘텀벙’ 소리가 나니 생선이름은 고민할 필요 없이 물텀벙이가 되었다. 흔했던 아귀도 마찬가지다. 머리가 반이나 되는 이 흉측한 생선 또한 물속에 아무렇게나 버려졌다. 그래서 서해안 사투리로 물메기는 물텀벙이고, 아귀 또한 같은 물텀벙이다. 사람들은 헷갈린다. 대체 어떤 생선이 물메기냐고. 따져보면 물메기 만큼 사투리가 많은 생선도 드물 듯하다. 메기를 닮아 ‘물메기’이고 움직이는 모습이 곰을 닮았다고 하여 ‘물곰’이고, 물곰에 김치를 넣고 끓이니 ‘물곰치’ 혹은 ‘곰치’라 불렀다. 지역으로 보면 충남 서해안에서는 ‘물텀벙이’로, 인천이나 여수, 통영에서는 ‘물메기’, 마산과 진해는 ‘물미거지’로 부른다. 이렇듯 사투리가 많은데다 물메기가 아닌 실제 곰치가 잡히는 지역에서는 혼동될 수밖에 없다. 보편적으로 우리가 해장국으로 즐기는 이 바다 생선의 정식 명칭은 쏨뱅이목의 꼼치과로 ‘꼼치’로 불러야 옳다. 동해에서는 물메기를 곰치라고 부르는데, 실제 곰치는 다른 생선이다. 울진 이북에 사는 미거지(학명:Liparis ingens)가 우리가 곰치, 물곰으로 알고 있는 ‘꼼치’다. 진짜 곰치는 바위틈에 살면서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포악한 생선이다. 갯장어같이 생겼다. 주로 문어나 작은 물고기를 먹고산다. 하지만 물메기는 머리가 둥글고 크며 꼬리는 납작하다. 크기는 약 50㎝ 정도 된다. 수심 1000m 깊이에 살다가 산란기인 겨울철 연안으로 나온다. 동해와 남해안에서 나오는 것으로 알지만 서해에서도 많이 잡힌다. 이즈막 포구에 가면 시멘트 바닥에 혼비백산 널브러져 있는 생선들을 만나는데, 거의가 물메기이기 십상이다. 살은 흐물거리고 껍데기는 질기며 코처럼 느른한 분비물이 몹시도 기분 사납다. 그러니 지난날 어부들이 밭 거름으로 쓴 것은 당연해 보인다. 물메기가 겨울 해장국으로 사랑받기 시작한 것은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다. 요리하는 방법은 지역차가 있다. 필자는 고향이 안면도인데, 겨울이면 그물을 따는 앞집 아주머니가 백사장항에서 한 자루 이고 와 서너 마리씩 나눠 줬다. 어머니의 요리 방식은 단순했다. 김치찌개와도 흡사하다. 묵은지에 삼겹살 서너 점을 넣고 쌀뜨물로 물을 잡아 보글보글 끓였다. 여기에 껍데기 벗긴 물메기를 넣은 후 고춧가루 한 수저와 파를 송송 썰어 넣었다. 별스러운 재료 없이 김치의 양념 맛으로 비린내 없는 시원한 물메기국이 되었다. 오래 끓이면 살이 부서져 한소끔 익힌다. 순두부처럼 희고 보드라운 살과 김치의 칼칼한 국물 맛이 어우러져 겨울철 아버지 최고의 해장국이었다. 지역별 물메기탕 끓여내는 방법은 세 가지다. 신 김치를 넣고 얼큰하게 끓이는 것은 삼척 등 주문진 이남의 강원도 남부 쪽이 많다. 하지만 강원 북부 쪽은 무 등 채소만 넣어 맵고 시원하게 끓여낸다. 그 아래 영덕과 포항 쪽 경상도로 가면 무나 호박, 콩나물을 넣고 담백한 싱건탕을 내놓는다. 시린 겨울날 다시 동해안에 들어간다. 포구 젓갈가게 뒤편에 있는 그녀의 식당은 오늘도 문이 닫혀 있다. 사연 없는 사람이 있을까마는 물메기탕 팔아 번 비린 돈을 새서방에게 뜯기고, 버림받고, 번번이 앓아눕는 통에 얼큰한 해장 한 냄비 생각하며 무작정 찾아온 서울손님들은 애가 탄다. 이제나저제나 문을 열까, 괜히 명란젓 한 통을 사고 마른오징어를 옆구리에 끼고는 그녀의 식당주변을 힐끔거린다. 결국은 포기하고 옆 자매집에 들어서기 일쑤지만, 그녀가 끓여내는 국물이 얼마나 칼칼한지 한 번 맛을 본 사람은 단박에 단골이 된다. 때를 놓쳐 다시 물메기탕을 먹으려면 1년을 기다려야 한다. 산란기인 겨울이 제철인데다 살이 물러 냉동하면 맛이 떨어지니 추울 때 외에는 만날 수 없다. 운처럼 밝게 웃는 그녀를 만나 물메기탕 한 냄비 얻어먹는 날은 낭만마저 끓어오른다. 수저로 살점을 가로로 떠내며 후룩후룩 정신없이 퍼먹는데, 꼭 그런 날 흰 눈은 정신없이 쏟아져 발을 묶어 버리더라지. 애주가들의 겨울여행은 기실 이 물메기가 빠지면 재미없다. 찬 갯바람에 꾸들꾸들 말려 쌀뜨물에 끓인 다음, 양념을 하여 쪄 낸 물메기찜은 술안주로 으뜸이다. 게다가 속 울렁거리는 이튿날 아침 시원한 물메기탕 후후 불며 떠먹으면 속이 확 가라앉으니 이런 날 마누라보다 고마운 것이 바닷가 식당 아주머니다. 글 사진 음식평론가 손현주 marrian@naver.com ●여행수첩 →가는 길 수도권에서 영동선 강릉 방향을 타는 것이 옳다. 영동고속도로 확장으로 동해나들이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가족과 함께 해찰하며 느리게 간다면 영동고속도로에서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영주를 거쳐 울진 쪽으로 진입하는 방법도 있겠다. 하지만 느닷없이 갇히게 되는 소사휴게소 근처의 폭설은 겨울 동해여행의 변수다. 춥기도 하거니와 체인 등 안전무장 필수. 어디든 4시간 안에 주파하겠다는 욕심은 버리자. →제철 맛집(033) 옥미식당(속초, 635-8052), 마차식당(주문진, 661-1172), 바다횟집(삼척, 574-3543), 우성식당(울진, 783-8849), 청송식당(영덕, 733-4155, 싱건탕)
  • 젊은 여자 80명 산 제물로…4000년 전 中 유적지 발견

    젊은 여자 80명 산 제물로…4000년 전 中 유적지 발견

    중국에서 4000여 년 전 산 채로 제물이 된 젊은 여성들의 유골이 발견돼 학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신화통신, CCTV 등 현지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중국 산시성 남부의 유적터에서 발견한 이 유골은 총 80여 구에 달하며, 대부분은 제물로 바쳐진 것으로 추측된다. 현지 고고학자들은 신석기 시대였던 4000여 년 전 이곳에 새로운 터를 잡은 부족이 터의 안녕을 빌기 위해 산 사람을 제물로 바친 것으로 보고 있다. 산시성 고고학유물담당 부서의 관계자는 “당시 부족 간 싸움이 잦았고 포로를 생포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은 대부분 산 채로 제물이 되어 죽임을 당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유골들은 도시 외곽 건축과 관련이 있으며, 포로로 잡힌 젊은 여성들은 해당 부족이 거주할 만한 터가 완공되기 전 살해당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젊은 여성으로만 이뤄진 유골무덤이 발견된 곳은 1976년 최초로 모습을 드러낸 유적지이며, 이들 유골들은 나란히 같은 패턴으로 매장돼 있었다고 현지 전문가는 전했다. 또 현장에서는 붉은색과 노란색, 검은색, 주황색 등 다양한 색깔로 그려진 기하학적 도형의 벽화 수 점이 발견돼 곧 정밀한 연구가 시작될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사람이 산 채로 바쳐진 흔적이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중국의 고대 황제들은 사망 전 혹은 사망 직후 자신이 거느리던 첩과 하인 등을 함께 생매장하도록 명령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자료사진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김희옥 생각과 실천] 혼인의 순결

    [김희옥 생각과 실천] 혼인의 순결

    혼인은 가족을 구성하는 제도로 서로 혼인을 하겠다고 하는 남녀 양 당사자의 자유로운 의사에 의해 성립되고 유지된다. 헌법 제36조 제1항은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돼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고 하여, 개인의 존엄과 양성평등에 기초한 혼인과 가족생활의 보장 및 순결, 혼인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다. 제헌헌법 이래 제4공화국 헌법까지 ‘혼인의 순결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 권리’로 규정했다가 현행 헌법에서는 ‘혼인의 순결’에 관한 명문규정은 없으나 제36조 제1항에는 ‘혼인의 순결’ 보장도 당연히 포함돼 있다. 혼인의 순결은 일부일처 제도를 말하는 것이다. 일부다처제나 중혼, 축첩 제도는 인정되지 않는다. 혼인에 관하여 역사상 또는 지역적으로 다양한 형태의 결합이 있었으나, 인류의 가장 선진적이고 보편적 형태는 남녀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한 일부일처제이다. 복수 배우자 사이의 결혼, 일부다처제, 일처다부제 등이 있고, 심지어는 혼인제도가 남성과 여성의 권리를 침해하는 억압과 의무의 굴레라는 주장도 있으나, 인류의 문명에 부합하는 형태는 혼인의 순결, 일부일처제의 유지이다. 니체는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순결에 관해 말하기를 “순결은 어떤 사람에게는 미덕이지만, 많은 사람들에게는 거의 악덕이다. 순결이란 어리석은 것이 아닌가. 그러나 이 어리석은 것이 우리에게 찾아온 것이지 우리가 그에게 다가갔던 것은 아니다. 이제 그는 우리 곁에 머무르고 있다. 마음 내키는 대로 오래오래 머물러 있으려무나”라고 순결 지키기의 어려움을 냉소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우리 사회는 정조를 지키는 일과 절개에 대해 큰 가치를 부여해 왔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가야국 출신의 강수(强首) 이야기, 신라 제42대 흥덕왕과 정목왕후 이야기, 백제의 도미(都彌)와 그 부인 이야기, 삼국유사에 나오는 신라 제17대 내물왕 때의 박제상과 그 부인 이야기 등 혼인의 순결에 관한 무수한 미담 전승이 그 사례다. 혼인은 국가와 사회의 기초가 되는 가족생활의 바탕을 이루므로 개인의 욕구만으로 형성되지 않는다. 그것은 전통과 문화에 기반을 둔 소중한 사회제도이다. 배우자 일방이 혼인의 순결을 깨뜨리는 것은 자유로운 의사에 기하여 스스로 형성한 혼인관계의 성적 성실의무를 위배하는 행위로 단순한 혼인계약의 위배를 넘어 부부 사이의 근본적 신뢰를 무너뜨린다. 혼인의 순결은 헌법적 가치를 가진다.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개인의 존엄과 양성평등에 기초한 혼인과 가족생활이 유지될 수 있도록 국가가 보장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한편으로 혼인의 순결을 깨뜨리는 가장 대표적 행위인 간통죄의 보호법익은 성적 풍속으로서의 성도덕 또는 가정의 기초가 되는 제도로서의 혼인이다. 그런데 간통행위의 태양은 매우 광범위하고 다양하다. 간통 및 상간행위의 유형 중에는 현재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선량한 성도덕과 가정의 기초가 되는 제도로서의 일부일처주의 혼인제도의 유지 및 가족생활의 보장, 부부간의 성적 성실의무의 수호라는 관점에서 단순히 도덕률이나 민사적 제재 등 다른 제재의 영역에 맡기기 어려운 부분도 존재한다. 근간에 우리 사회에서 몇몇 지도층이나 공직자가 혼인의 순결과 관련하여 논란이 되었다. ‘사회 지도층이나 공직자는 몸가짐이 반듯해야 한다’고 말하기 이전에 우리 헌법이 혼인의 순결을 보호한다는 점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고전소설 ‘채봉감별곡’은 김 진사가 관직을 얻으려 권력자인 허 판서에게 거액을 제공하고 게다가 자신의 외동 딸 채봉을 그의 첩으로 보내려 하지만 채봉이 이를 극복하고 사랑하는 연인 강필성과 혼인의 순결을 지킨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해피엔딩이다. 불륜의 막장드라마가 너무도 많이 소비되는 요즈음,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한 중요한 해답의 하나를 여기에서 본다. 동국대 총장
  • ‘성기 희화 발언’ 경찰 간부 문책성 인사

    서울 일선 경찰서의 경정급 간부가 직원들 앞에서 성희롱에 가까운 부적절한 발언을 했다가 전보 조치됐다. 24일 경찰청 등에 따르면 서울 한 경찰서에서 여성·청소년과장으로 근무하던 A 경정은 지난 7월 부하 직원 8명과 북을 치는 난타 연습을 했다. 관내 학교 청소년과 소통을 위한 공연 준비였다. A경정은 연습 중 한 남성 직원에게 더 힘있게 치라는 취지로 남성 성기와 관련된 언급을 했다. 그 자리에는 여성 직원도 있었다. 이어진 을지연습 훈련 기간에는 한 단체로부터 위문품 명목으로 통닭 몇 마리를 받았다. 첩보를 입수한 서울경찰청은 문제가 있다고 보고 A 경정을 다른 경찰서로 문책성 인사조치했다. 경찰청도 이달 20일 징계위원회를 열어 국가공무원법에서 규정한 성실 의무에 위배되는 행위를 한 것으로 판단해 A 경정을 경징계했다. 경찰 관계자는 “해당 발언은 성희롱에 이를 심각한 수위는 아닌 것으로 보이고 자신도 농담조였다고 말하지만 부적절한 발언이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큰 비난을 받을 정도는 아니지만 위문품 수령 등 비위가 더해졌고 여성·청소년 관련 업무를 이어가는 건 부적절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A경정은 이 같은 조치에 반발하며 “내가 했던 발언의 뉘앙스는 성희롱과 아무 상관이 없었고 단지 남자 직원의 힘을 북돋워주려는 것이었다”며 “위문품이라는 것도 훈련 기간에 야식 지원을 받은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그는 “왜곡된 사실이 많아 억울하다”며 “명예 회복을 위해 소청심사위원회에 소청심사를 청구하겠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손현주의 계절 밥상 여행] 충남 태안 게국지와 내포 우거지김치

    [손현주의 계절 밥상 여행] 충남 태안 게국지와 내포 우거지김치

    간밤에 서리가 하얗게 내렸다. 농부들 맘은 조급해졌다. 뒤란에 와르르 쏟아진 은행은 물론이고 콩이며 감 등 남은 곡식을 거둬들여야 할 시기이기 때문이다. 속이 꽉 찬 김장배추를 얻으려면 날 잡아 짚으로 묶어주는 일도 잊지 말아야 한다. 무는 단맛을 채우면서 굵어가고 아낙들은 포구를 어슬렁거리며 젓갈준비를 한다. 황석어를 달여 놓고, 까나리액젓, 새우젓, 조개젓이 집안 물림대로 준비된다. 서리 두어 번만 더 내리면 김장을 해 부칠 참이다. 한데 태안 아낙들은 1년 내내 ‘겟국’을 모으며 ‘김장 그 후’를 기다렸다. ‘그 후’라는 것이 허접한 시래기뿐일 텐데 왜 사내들은 막걸리 잔을 상상하며 빈 밭에서 갈배추를 줍고 아낙들은 연중 겟국을 모을까. 태안이 감춰 둔 그 맛이 무엇일까. 그들에게 게국지는 과거부터 내려온 어머니의 향수이자 냄새로도 구별되는 유전자 같은 음식이다. 태안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 사철 해산물이 풍부하다. 싱싱한 갯것을 즉석에서 굽거나 끓여 먹기도 하지만 냉장고가 보편화되지 않았을 때에는 천일염을 툭툭 뿌려 말리거나 염장을 했다. 그래서 태안에서 흔한 꽃게나 박하지, 능쟁이, 농게를 소금물에 담가 먹는 일은 흔한 일상이다. 살펴보면 이렇다. 본래 태안에서의 꽃게 장은 간장이 들어가지 않는다. 대체로 고춧가루를 빨갛게 이겨 즉석에서 담근 ‘무젓’을 즐긴다. 재료가 싱싱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꽃게는 간장게장 맛만 한 것이 없다. 하지만 양조간장이 나오기 전, 집 간장은 귀했다. 미역국을 끓이거나 나물을 무칠 때 아껴 넣을지언정 헤프게 게장을 담가 먹지는 못했다. 해서 태안에서는 천일염으로 소금 장을 만들었다. 짭조름하게 간을 맞춘 소금물을 설설 살아 움직이는 꽃게에 부었다. 사나흘 지난 후 게에 간이 배면 소금장을 따라내 와르르 끓였다. 완전히 식혀 다시 꽃게에 붓는다. 두어 번 반복하면 게장은 맛이 든다. 지금 간장게장에 비하면 짜고 비린 듯하지만 밥도둑이 따로 없었다. 꽃게를 담갔던 소금장은 버리지 않고 다시 게장을 담글 때마다 소금 한 줌을 넣고 끓이기를 반복, 연중 사용했다. 그러니 10월 가을 꽃게 때부터 시작된 이 소금장은 달여서 다음 해 5월, 장이 노랗게 밴 암꽃게에도 부어졌다. 여름이면 꽃게 금어기다. 이때는 갯벌에서 잡은 황발이, 즉 농게에 이 겟국을 부었다. 밥맛이 없는 여름철 최고의 반찬이었다. 게 맛을 아는 태안 사람들에게 농게는 일품이다. 능쟁이, 칠게가 이품이면 꽃게는 미안하게도 삼품이다. 이렇게 달여 붓기를 반복하는 동안 소금장은 색이 검게 되며 게에서 빠져나온 온갖 미네랄과 칼슘, 아미노산이 소금장에 고스란히 녹아든다. 늦가을. 모양 좋은 배추는 포기김치를 담그고 우거지와 밭에 뒹구는 갈배추를 거둬들일 차례다. 갈배추는 머리만 툭툭 쳐서 함지박에 넣고, 노랗게 익은 호박을 착착 썰고, 덜 익은 끝물 고추와 마늘, 생강을 이겨 게국지로 간을 한다. 새우젓을 더 넣는 경우도 있으나 이렇게 허드레 배추와 겟국을 넣고 아무렇게나, 막 버무린 김치가 본래의 태안 게국지다. 사나흘 지나 간이 배면 냄비에 담아 보글보글 지져 먹는다. 짭조름한 게국지의 묵은 맛과 호박의 들큼함, 배추의 달게 씹히는 맛이 어우러져 기막힌 시절김치가 된다. 금방 먹어야 질기지 않으나 좀 짜게 담가 늦봄에 삭았을 때 지져 먹는 맛 또한 특별하다. 게국지는 냄비에 김치와 쌀뜨물을 부어 아궁이 잔불로 자글자글 끓이기도 하지만 향수를 떠올리는 옛사람들은 가마솥에 찐 게국지가 으뜸이라고 말한다. 밥이 우르르 끓으면 양재기에 이 김치를 담고 솥 귀퉁이에 넣어둔다. 그러면 밥물이 적당히 들어가 부드럽고 간이 잘 맞는 게국지가 된다. 밥 한 술 떠서 시래기를 쭉쭉 찢어 숟가락에 얹으면 천상의 음식이 부럽지 않다. 이 게국지와 비슷한 것이 내포 쪽 ‘우거지김치’다. 김장을 한 함지박에 시래기를 넣고 남은 양념으로 그릇을 씻어내듯 버무려 항아리에 넣어 둔 김치다. 좀 짜게 담가 봄에 먹는다. 봄볕이 들면 시래기는 하얗게 꽃가지가 핀다. 그런데 이 곰팡이 냄새가 지독한 시래기를 지져 먹는 맛이라니. 항아리 위쪽의 두어 포기를 걷어내고 폭 삭은 김치를 보시기에 꺼내면 이 ‘군둥내’로 온 동네가 소란스러웠다. 이 우거지김치는 사람 손이 닿으면 금방 삭아서 항아리를 여는 즉시 이웃들과 나눠 먹었다. 요즘 주거환경에서는 냄새 때문에 적응하기 힘들지만 옛사람들의 지혜가 담긴 건강한 발효식품이다. 어떤 음식이든 방송을 타면 소란스러워진다. 게국지도 마찬가지여서 태안, 안면도 권을 여행하다 보면 식당마다 게국지 간판이다. 김치에 꽃게나 대하를 넣어 김치찌개처럼 끓이거나 해물탕처럼 내놓는 ‘유사 게국지’가 많다. 1년 삭힌 게국을 구하기 힘들 뿐더러 요즘 사람들이 맛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김치냉장고가 생기면서 김장이 빨라졌다. 그러나 여전히 서리 먹은 무와 배추가 달고, 김장은 추울 때 해야 제맛이다. 단맛이 밴 무를 채로 쳐서 그 해 해팥을 삶아 무시루떡을 하던 김장하는 날. 그리고 그 김장의 편린 태안 게국지. 삭혀 군둥내 나는 과거의 힐링 음식들이 식탁에서 사라져가니 아쉽고 그립다. 심하게 편두통을 앓던 어느 겨울날. 뜨끈하게 끓여낸, 짜디짠 할머니의 게국지 한 사발로 힘을 얻었던 적이 있다. 바닷바람이 허름한 천막을 들추며 솨솨 거리면서 들어왔고, 등이 굽은 할머니가 비척거리며 끓여 주던 영혼의 음식. 그 오랜 기억 속의 게국지가 그리운 만추다. 천일염과 가을 바람 태안의 우럭과 만나 시원한 젓국이 되니 우럭은 보리누름이 최고라는 말이 있다. 4~6월 산란기 때 살이 올라 달고 기름이 끼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닷가 사람들은 봄과 가을 두 철이라고 말한다. 교미기간인 가을 또한 영양분이 올라 살이 단단하고 달다. 게다가 갓 잡은 우럭을 찬바람에 두어 날 말리면 배때기에 기름이 노랗게 올라 찌거나 탕을 끓였을 때 감칠맛이 빼어나다. 생선은 갓 잡아 신선한 것도 좋지만 천일염을 뿌려 두어 날 바람에 말린 것이 가장 맛있다. 태안에서는 연중 우럭이 올라온다. 과거 우럭을 잡는 토속적인 방법은 독살이다. 바닷가에 오목하게 함정을 파놓고 돌로 담을 쳐 놓아 밀물 때 들어온 생선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 전통 어로방식이다. 지금도 남면 등 해안가에 독살이 남아있다. 독살에서 우럭이 많이 잡히면 “진미 났다” “꽃이 난다”고 외치며 동네 사람들과 나눠먹었다. 이렇게 흔하니 태안의 제사상에는 우럭포가 올라간다. 포를 쪄 상에 올렸다가 음복 후 술안주로 살을 발라 먹는다. 이때 남은 머리와 뼈를 쌀뜨물에 넣고 팔팔 끓여내면 국물이 뽀얗게 올라온다. 제사상에 올렸던 두부부침을 넣기도 했는데, 다진마늘 정도만 곁들였다. 새우젓이나 천일염으로 간을 한다. 이렇듯 가을에 잘 말린 우럭포로 젓국을 끓이면 비리지도 않고 담백하여 그 시원한 맛이 속풀이로 일품이다. 태안 미식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아침상 차림은 역시 우럭젓국이다. 글 사진 음식평론가 손현주 marrian@naver.com ●여행수첩 →가는 길 서해안고속도로 홍성 나들목으로 빠지면 철새들의 은신처인 서산AB지구를 지나 태안북부와 안면도로 빠지는 사거리를 만나게 된다. 어느 쪽으로 빠지든 태안여행은 바다와 소나무 숲을 낀 느린 성찰이 가능하다. 무작정 아무 포구나 숨어들어도 해산물이 풍부하여 식도락의 즐거움은 크다. 요즘 꽃게, 대하, 굴이 많다. 근래 저녁놀이 곱다. →제철 맛집(041) 솔밭가든(안면도 673-2034, 게국지, 우럭젓국 정식), 곰섬나루(남면 675-5527, 점심 예약제), 토담집(태안시내 674-4561, 우럭젓국, 간장게장), 향토꽃게장(태안시내 674-5591, 우럭젓국, 간장게장), 진국집(서산시내 665-7091, 게국지 백반)
  • [손현주의 계절 밥상 여행] 부산 짚불 곰장어와 고갈비

    [손현주의 계절 밥상 여행] 부산 짚불 곰장어와 고갈비

    그때도 깊숙한 가을날이었지 싶다. 친구와 난 무작정 부산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목표는 바다와 자갈치시장이었고, 더 큰 목표는 연탄불에 뭔가 냄새를 피우며 노릇노릇 굽는 것이었다. 젊은 우리 눈에 비친 부산은 생각보다 어수선하고 넓었다. 우산이 애매할 만큼 가랑비가 어설프게 뿌렸다. 버스를 타고, 걷고, 어렵게 찾아간 자갈치시장의 오후는 비린내가 진동했다. 기웃거리다가 인심 좋아 보이는 아주머니 포장마차로 숨어들었고, 우린 굶주린 짐승처럼 주문을 외치기 시작했다. “아지매, 곰장어도 굽고요, 고등어도 굽고, 오뎅 국물은 무료죠? 일단 소주 한 병!” 연탄불에 곰장어가 요동을 치고 연기는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둘이 소주를 두 병 동내며 말도 안 되는 스무살 갓 넘은 지지배들의 인생 얘기가 해운대 푸른 바다처럼 때론 가볍고 때론 심오하게 넘실댔다. 그런데 나이 들어도 그때 하얗게 피어올라 연신 기침을 불러내던 생선 굽는 연기가 잊히지 않았다. 그러니 음식은 향수인 것이 분명하다. 해서 작정하고 그 냄새의 근원을 찾아 떠난 가을날 부산 ‘노릇노릇 연기여행’. 부산은 이미 그때의 부산이 아닌 게 분명하다. 탄 기름에 튀겨내는 생선조차 그 맛이 아니고 곰장어는 가스불판 위로 올라간다. 하지만 여전히 부산은 몇 가지 코드로 미식가들을 불러 모은다. 짚불에 요란하게 던져 굽는 곰장어와 지금은 거의 사라진 고갈비 골목 생선구이, 과일향이 나는 밀면, 아침 해장으로 기막힌 돼지국밥과 비빔잡채, 어묵, 유부주머니, 단팥죽, 씨앗호떡 등 시장통 간식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1970, 80년대까지 광복동 일대에는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서민과 학생들이 고등어 한 마리 구워 소주잔을 기울이던 고갈비골목이 형성되어 있었다. 용두산의 그림자가 길어지면 청년들은 약속이나 한 듯 연기를 따라 골목으로 숨어들었다. 갈비 대신 고등어를 뜯으며 시대의 울분을 토하고 호기를 사르던 애수의 골목이다. 지금은 ‘남마담’과 ‘할매집’ 단 2곳만 남아 있다. 1974년 문을 연 남마담 집은 7080세대에는 여전히 향수 가득한 청춘의 아지트다. 어머니는 타닥타닥 소리만 들어도 고등어 익은 상태를 안다. 큼지막한 고등어를 껍질은 바삭하고 속은 야들야들하게 구워내는 노련한 솜씨는 시대를 뛰어넘어 사랑받아 왔다. 흰 살점을 뜯다 보면 다른 반찬이 필요 없다. 달랑 미역냉국 한 가지로도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게 된다. 지금 고갈비집은 자갈치시장에 더 많다. 시장통 생선전으로 들어가면 고등어며 갈치, 빨간고기 눈뽈대 등을 수북이 쌓아 놓고 허기진 배를 유혹한다. 가격이 싼 편이 아닌 데다 기름이 깨끗하지 못하고 미리 구워놔 딱딱하니 맛과 만족도를 거론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불판에 빨갛게 구워주는 곰장어와 함께 허출한 시장통의 한 끼로는 제법 낭만적이다. 곰장어는 죽은 듯이 가만히 있다가도 손으로 집으면 꼼작꼼작 움직인다고 하여 이곳 사투리로 ‘곰장어’다. 여름부터 10월 중순까지 맛있는 철이라고는 하지만 사철 불판은 돌아간다. 어쩌면 날이 선선해지면서 ‘굽는’ 행위가 더 탄력을 받는지도 모른다. 해서 날 저물면 곰장어 애호가들은 기장 쪽으로 넘어간다. 불내 확확 번지는 짚불 곰장어 집들이 몰려 있기 때문이다. 기실 짚불 곰장어는 징그럽다. 손질하여 양념구이로 불판에 내오면 모른 체하고 여성들도 집어 먹지만, 짚불 곰장어는 살아서 날뛰니 경악한다. 구워서 둘둘 말아 내온 생김새를 봐도 영 눈과 손이 안 간다. 그래도 굽는 모습이 보고 싶어 주방을 기웃거리다가 들킨 강아지처럼 어색하게 ‘기장곰장어’ 주인 김영근씨와 마주쳤다. 김씨는 가문 대대로 120년간 곰장어 요리를 해 왔다며 자부심이 컸다. 그는 직접 구워 맛을 보여주겠다며 연기 그을린 부엌으로 안내했다. 예전에는 마당에 짚으로 모닥불을 피워 곰장어를 던져 구워냈다. 지금은 굽기 좋도록 석쇠를 얹은 전용 아궁이를 만들었다. 슬쩍 둘러보니 고무 대야에 곰장어가 한 가득이다. 짚가리가 차곡차곡 쌓여 있다. 김씨는 능숙하게 볏짚을 내려 불을 붙였다. 대야에서 딱 먹기 좋다는 ‘돌돌 말아 한 입 크기’의 곰장어가 순식간에 김씨 손에 잡혔다. 불은 활활 타오르고 곰장어가 던져졌다. 요동을 친다. 지옥이다. 음식이라지만 차마 제대로 볼 수가 없다. 한소끔 불길이 지나가고 움직임이 멈췄다. 김씨는 애벌 익은 곰장어를 손으로 돌돌 말아 똬리처럼 모양을 잡았다. 그리고 다시 짚불을 붙여 더 익혔다. 새까맣다. 훈기로 익었다고 했다. 김씨가 한 마리를 잡더니 가운데를 툭 분지르듯 휜다. 슬쩍 당기니 껍데기가 고스란히 벗겨지고 속살이 나온다. 넋 놓고 있는 사이 곰장어 한 마리가 내 입으로 쑥 들어왔다. 엉겁결에 받긴 했는데 아찔하다. 눈을 꼭 감고 씹었다. 쌉싸래하고 해초의 짠맛이 입 안 가득 고인다. 오도독오도독 씹힌다. 정신없이 씹어 꿀떡 삼키고 나니 김씨가 “맛있죠” 하며 웃어 젖힌다. “곰장어는 생김새가 뱀을 닮았어요. 눈이 없고 몸 양 옆에서 자신의 몸을 보호하는 흰 진액을 뿜어냅니다. 다른 생선이 곁에서 같이 살 수가 없어요. 흉물스럽다고 양반들에게 천대받았으니 오히려 서민들에게는 고마운 생선인 거죠.” 조선시대 말, 극심한 흉년이 들고 보릿고개가 찾아왔다. 서민들은 허기졌다. 생김새가 요상하여 부자들은 거들떠보지 않으니 곰장어는 고맙게도 그들 차지였다. 산과 들 아무데서나 볏짚에 불을 피워 곰장어를 던졌다. 껍질 벗겨 깨끗한 속살 서너 마리만 먹으면 탈이 나지 않고 며칠 굶어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 한국전쟁 때도 부산으로 피란 온 사람들 허기를 달래준 고기가 짚불 곰장어다. 삶아도 먹고 방아 잎을 넣어 된장국과 매운탕을 끓여낸다. 귀한 영양식이다. 불을 피워 연기를 내는 음식은 뭐든 맛있다. 건강에 안 좋다고 소란을 피우지만, 다 따지고 떼어내면 먹을 것 없는 세상이다. 아궁이 잔불 꺼내 시커먼 천일염 툭툭 뿌려 굽는 생선 맛을 어찌 외면할까. 연탄불이며 짚불이 주는, 적당히 태워진 음식이 주는 냄새는 과거로 이어지는 통로이며 우리를 다시 젊은 날로 돌아가게 하는 시간여행이다. 마침 부산에서 고등어축제가 열린다. 푸른 바다 한 잔 술 삼아 푸른 등 뒤적거리며 불을 피우러 부산에 가자, 당신과 나 단 둘이서. 글 사진 음식평론가 marrian@naver.com 여행수첩 →가는 길 전국을 일일 생활권으로 만들어 놓은 KTX는 당일치기 부산 여행을 가능하게 했다. 하지만 부산은 2박 3일 알차게 둘러봐도 볼 것과 먹을 것이 너무나 많은 도시다. 짝퉁과 불량식품이 혼재하는 시장과 다국적 거리들. 카메라 들고 감천마을 골목길을 둘러보는 재미도 좋다. 오는 25일부터 27일까지 사흘간 송도해수욕장 인근에서 고등어축제가 열린다. →제철 맛집(051) 남마담(246-2148, 고갈비구이), 기장곰장어(721-2934, 곰장어 짚불구이, 매운탕), 마산식당(631-6906, 돼지국밥)
  • [씨줄날줄] 혼외 자녀/손성진 수석논설위원

    축첩(蓄妾·첩을 거느림)을 인정한 조선시대에 혼외 출산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양반들은 첩을 몇명씩 두고 혼외 자녀를 낳았다. 왕실에서도 혼외 출산이 성행했다. 왕은 왕후 외에 후궁을 둘 수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 자녀를 20명을 넘게 둔 왕도 6명이나 된다. 가장 많은 자녀를 낳은 왕은 태종으로 아들이 12명, 딸이 17명이다. 성종은 16남 12녀를 두었다. 물론 후궁 소생도 포함된 숫자다. 성종의 후궁 숙의 홍씨는 10명의 자녀를 낳았고 태종의 후궁 신빈 신씨는 9명을 출산했다. 아들을 낳지 못하는 왕비도 있었기에 서자들도 왕이 될 수 있었다. 최초의 서자 출신 임금은 선조였고 그의 아들 광해군도 공빈 이씨와의 사이에 태어난 서자다. 영조도 아버지 숙종이 무수리 출신 숙빈 최씨에게서 얻었다. 인조, 정조, 순조, 철종, 고종도 서자 출신이다. 혼외 출생으로 왕위에 오른 인물들인 셈이다. 혼외 자녀 문제로 많은 권력자나 재벌, 유명인들이 회자된다.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 정일권 전 국무총리, 임택근 전 아나운서가 그렇고, 최근에는 소설가 이외수씨가 친자확인소송에 휘말렸다. 친자확인소송은 필경 돈과 연결된다. 10여년 전 여성 편력으로 유명한 A재벌의 C회장은 탤런트 어머니를 둔 여성 2명에게서 친자확인소송을 당했다. 더 전에는 B재벌 K총수와 요정 마담 사이에 태어났다는 K씨도 소송을 냈었다. C그룹의 S회장은 유명 탤런트와의 사이에 낳은 딸을 입적시키고 계열기업 운영권을 넘겨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화가 피카소는 법적인 자녀가 댄서 출신 부인에게서 낳은 아들 1명뿐이었지만 1973년 사망할 무렵 다른 여인 2명에게서 3명의 혼외 자녀를 둔 사실이 밝혀졌다. 프랑수아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은 혼외 딸을 20년이나 숨겼다. 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 아들 논란으로 시끌시끌하다. 논란은 사생활 보호로 번지고 있다. 금태섭 변호사는 처음 보도한 조선일보가 4년 전 칼럼에서는 친자확인소송을 당한 A장관을 다룬 언론을 ‘하수구 저널리즘’에 비유했다고 꼬집었다. 칼럼 내용은 이렇다.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에게 혼외의 딸이 있다는 사실이 보도되자 유력 일간지 ‘르몽드’는 이렇게 반문했다. “그래서 어떻다는 말이냐?” 프랑스 언론의 고참기자들도 대부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생활 문제이니 보도하지 않는다는 암묵적 합의가 있었다. 오래된 불문율을 ‘파리 마치’라는 주간지가 깼다. 파파라치가 찍은 미테랑 부녀의 사진을 게재한 것이었다. 현직 대통령의 숨겨진 자식을 보도한 대특종이었지만, 잡지에 쏟아진 시선은 냉랭했다.> 손성진 수석논설위원 sonsj@seoul.co.kr
  • 우윳빛 보드라운 온천수 푸르러 고즈넉한 숲그늘

    우윳빛 보드라운 온천수 푸르러 고즈넉한 숲그늘

    이 아름다움을 뭐라 표현해야 할까요. 봄의 청순함도, 가을의 화려함도, 겨울의 단아함도 없었습니다. 여름의 짙푸름마저 끝물이었습니다. 어정쩡한 계절에 민낯으로 만난 아키타(秋田)는 그러나 치장하지 않은 아름다움을 갖고 있었습니다. 적요했고 평온했으며 절정이 아니어서 더욱 정겨웠습니다. 일본 안에서도 가장 빈한한 축에 속한다는 아키타현을 우리에게 알린 것 가운데 하나가 트램핑입니다. 트레킹과 캠핑의 합성어로, 걷다 지치면 텐트 치고 쉬어 간다는 개념이지요. 어떤 단어를 들이댄다 해도 아키타를 가리키는 방향은 늘 하나입니다. 바로 치유지요. 아키타현은 북위 40도선에 걸쳐 있다. 북한의 함흥, 신의주 등과 비슷하다. 그러니 벌써 가을이 시작됐다 해도 이상할 게 없다. 억새가 꽃을 피웠고 벼는 노릇노릇해졌다. 그야말로 가을(秋) 들녘(田)이다. 아키타현은 일본 내에서 미인의 산지로 유명하다. 이를 빗대 ‘아키타 비진(美人)’이라 일컫는다. 이는 피부와 관련된 표현일 듯싶다. 아키타는 일조량이 적다. 그 때문에 여성들의 피부가 희다. 온천도 한몫 거들었다. 유황 향기 가득한 온천수가 흰 피부를 더욱 보드랍게 만들었다는 거다. 아키타는 온천으로도 이름났다. 현 안에만 유명 온천마을이 14곳이나 있다. 아키타현과 이와테현 경계 지역에 도와다하치만타이 국립공원이 있다. 이 국립공원 아래로 몇 개의 온천마을이 매달려 있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게 뉴토 온천향이다. TV 드라마 ‘아이리스’에서 이병헌과 김태희가 온천욕 즐기는 장면을 찍었던 곳이다. 엉큼한 남성이라면 이름을 듣자마자 눈을 희번득댈 터. 하긴 그럴 법도 하다. 온천을 둘러싼 뉴토산(1478m)의 모양새가 여인의 가슴 언저리를 닮았대서 혹은 온천수 빛깔이 맑은 우윳빛을 하고 있대서 나온 이름이라니 말이다. 뉴토 온천향엔 서로 다른 성분을 가진 온천 7개가 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쓰루노유 온천이다. 학이 다친 날개를 치료했다는 전설이 담긴 곳이다. 일본인들 사이에서 이웃한 아오모리현의 쓰가유 온천과 더불어 늘 인기 수위를 다툰다. 온천 초입의 낡은 건물들이 인상적이다. 억새, 띠 등으로 인 지붕과 거무튀튀한 바람벽 위로 수백년 세월의 흔적이 더께로 내려앉았다. 쓰루노유 온천은 탕치(湯治)를 위해 역대 아키타 번주들이 즐겨 찾았던 곳이다. 건물은 바로 번주를 호위하고 온 무사들이 숙소로 사용했던 본진(本陣)이다. 요즘엔 본관 숙박동으로 쓰인다. 현지 관계자는 “6개월 전에 인터넷으로 객실 예약을 받는데, 단풍이 절정인 10월의 경우 4월 첫날 10분 만에 객실이 동난다”고 했다. 온천을 둘러친 풍경이 그윽하다. 너도밤나무 가득한 숲과 연푸른 우윳빛의 온천수 그리고 낡은 건물이 수묵화처럼 어우러졌다. 너른 로텐부로(露天風呂·노천온천)는 남녀 혼탕이다. 북규슈 지역 온천에 드물게 남아 있는 옛 풍속이다. 건물 안엔 여성 전용탕도 마련돼 있다. 쓰루노유 온천 주변에 6개의 온천이 더 있다. 저마다 다른 수질과 숙박시설을 갖췄다. 예컨대 다에노유는 금과 은 2개의 온천으로 구성됐는데 매일 저녁 8시가 되면 남녀탕을 바꾼다고 한다. 가장 위쪽은 구로유다. 가을철 단풍이 들 때면 사방이 불붙은 듯하다는 온천이다. 11월까지만 영업한다. 겨울엔 눈에 파묻혀 문을 닫는다. 구로유에서 센다쓰 계곡을 따라 5분쯤 내려가면 마고로쿠 온천이 나온다. 이처럼 뉴토 온천향은 걸어서 한 시간 안쪽에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온천탕들이 몰려 있다. 일본인들 또한 종종 트레킹 삼아 계곡을 걷다 온천욕을 즐기곤 한단다. 너도밤나무가 짙은 숲그늘을 이룬 산자락엔 캠핑장도 조성돼 있다. 캠핑과 온천욕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셈이다. 아키타현에선 이런 캠핑장을 흔히 볼 수 있다. 뉴토 캠핑장의 경우 규카무라 온천과 차로 불과 5분 거리다. 아키타현에서 운영하는 아스피아 캠핑장은 후케노유 온천과 가깝다. 해발 1100m의 하치만타이 산자락에 있는 비탕(秘湯)이다. 아스피아 캠핑장 또한 면적이 무려 19만㎡에 달해 직장인 등의 단체 캠핑에 적합하다. 뉴토 온천향에서 좀 더 아래쪽으로 내려오면 다자와코다. 공항 등 아키타현 곳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진, 그러니까 ‘아이리스’에서 김태희와 이병헌이 포옹하는 장면이 촬영된 곳이다. 지금은 이 사진이 아키타 관광의 아이콘처럼 여겨지고 있다. 다자와코는 일본에서 가장 깊은(423.4m) 호수다. 둘레는 약 20㎞. 물빛은 삼색이다. 물가는 바닥의 색을 닮아 붉은 황톳빛이다. 호수 가운데로 나갈수록 물빛은 연초록에서 파란 잉크빛으로 변해 간다. 현지 가이드는 “물속에 함유된 알루미늄 성분 때문에 파란빛을 띤다”고 했다. 호수는 한겨울에도 얼지 않는다고 한다. 물가 한쪽에 황금빛 여인상이 서 있다. 다쓰코라는 전설 속 소녀의 동상이다. 영원한 아름다움을 갖기 위해 다자와코의 물을 마셨던 다쓰코가 용으로 변해 호수의 수호신이 됐다는 게 전설의 얼개다. 한데 이보다는 구니마스란 물고기 이야기가 더 현실적이다. 다쓰코의 죽음을 애통해하던 어머니가 가져온 횃불이 변했다는 물고기다. 구니마스는 다자와코에만 서식하던 희귀종이다. 70년 전 멸종이 공식 선언됐다가 2010년 야마나시현의 사이코에서 발견돼 일본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아키타 동북쪽, 하치만타이 산자락엔 너도밤나무숲이 조성돼 있다. ‘일본 숲 100선’ 가운데 하나로 꼽힌 곳. 겨울철 ‘아스피린 스노’(최상의 눈)로 유명한 앗피 스키리조트에서 차로 10분 거리다. 숲은 깊다. 100만ha 정도 된다. 이 너른 공간이 죄다 너도밤나무다. 흔하지는 않지만 인적이 드문 시간엔 곰이 내려와 쉬어가기도 한다. 숲을 알리는 나무이정표를 찢어 놓은 것도 녀석의 짓이다. 앗피리조트의 명물 가운데 하나가 요쿠르트와 아이스크림 등 유제품이다. 리조트내 목장에서 직접 생산된 것들이다. 부드럽고 들척지근 하지 않은 맛이 일품이다. 아키타 남부의 가쿠노다테도 빼놓지 말아야 할 코스다. 1620년 에도시대에 세워진 사무라이 마을이다. ‘작은 교토’로 불릴 만큼 고풍스러운 저택들이 밀집해 있다. 가장 오래된 저택인 이시구로가와 정원, 무기장(武器臧) 등 볼거리가 많은 아오야기가 등은 관람료를 받는다. 드물게 일본 우익의 흔적과 마주하기도 한다. 일행 중 한 명은 아오야기가에서 욱일승천기와 마주하기도 했다. 가쿠노다테에서 걸어서 5분 거리인 히노키나이 강 제방도 산책 코스로 좋다. 수령 200년이 넘은 수양벚나무가 즐비하다. 이 가운데 무려 152그루가 천연기념물이라고 한다. 글 사진 아키타(일본) 손원천 여행전문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 →가는 길:대한항공이 서울-아키타 직항편을 월, 목, 토요일 주 3회 운항한다. 2시간 정도 소요된다. 에어포트라이너가 아키타 공항에서 뉴토 온천향(2시간 10분)과 다자와 호수(1시간 30분), 가쿠노다테(50분) 등 주요 관광지를 오간다. →현지 이동:뉴토 온천향에선 ‘유메구리 수첩’이 요긴하다. 일종의 통합권으로, 순례 버스를 타고 온천 7곳을 모두 이용할 수 있다. 1500엔. 유효 기간은 1년이다. →별미:아키타현의 대표 음식이 기리탄포다. 갓 지은 햅쌀밥을 삼나무 꼬치에 꽂은 뒤 히나이라는 토종닭 육수에 채소를 넣고 끓인다. 일반 마트에서 포장 완제품을 쉽게 살 수 있다. 기리탄포에 일본의 3대 우동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이나니와 우동을 넣어도 맛있다. 지역 특산품으로 꼽히는 훈제 단무지도 별미다. →패키지:일본 개별 여행 전문 여행사인 에나프투어(www.enaftour.com)에서 다양한 유형의 ‘릴렉스 캠핑 & 피싱’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일본 10대 캠핑장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아스피아 캠핑장과 쓰루노유 온천, 다자와코 호수 등에서 캠핑과 온천, 카약 등을 즐기는 여행 상품이다. 특히 계류낚시가 포함된 상품이 이채롭다. 오보나이카와 등 포인트가 즐비한 계류를 오가며 플라이 낚시를 즐길 수 있다. 일본어 전문 가이드가 늘 동행하고 쇼핑 등 불필요한 일정이 없어 알차게 여행을 즐길 수 있다. (02)337-3088, 3070. 호도트레킹도 4일짜리 캠핑 투어 상품을 운용하고 있다. (02)753-0777. 취재 협조 아키타현(akita.or.kr), 앗피리조트(www.appi.co.kr)
  • [추석선물세트] 예비신부 윤대리도 욕심 낼 혼수 ‘칠첩반상기’

    [추석선물세트] 예비신부 윤대리도 욕심 낼 혼수 ‘칠첩반상기’

    한국도자기㈜는 추석과 가을 혼수 시즌을 맞아 다양한 디자인의 혼수예단 제품을 선보인다. 이번 시즌 출시된 ‘초충도 칠첩반상기’는 시어른께 드리는 예단으로 적격인 제품이다. 초충도 칠첩반상기는 여뀌, 가지, 부용화, 양귀비를 주제로 고전미를 그대로 살려서 더욱 눈에 띈다. 조선시대 대표 여류 예술가인 신사임당의 초충도를 현대적으로 재해석, 지난해 굿디자인어워즈에서 우수 디자인으로 선정돼 호평을 받았다. 필요에 따라 단반상기, 보석함, 뚜껑머그도 구입할 수 있다. 예단용에 그치지 않고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어서 더욱 실용적이다. 한국도자기 매장에서는 예단 구매고객을 위해 팥과 찹쌀을 넣고, 고급 보자기로 감싸며 격식을 갖춘 포장 서비스도 제공한다. 가을 예식을 앞둔 신혼부부에게는 현대적인 감각의 테이블웨어로 2013 디자인 협업 제품인 ‘올리브 마켓’이 어울린다. 올리브 마켓은 딜리셔스 TV인 ‘Olive’와 협업해 만든 제품으로, 캐주얼하면서도 세련된 디자인이 돋보이는 라인이다. 블루베리, 올리브, 호박 등 다양한 자연물을 스케치해 친환경적인 느낌을 강조했다. 개성을 중시하는 젊은 세대의 취향에 맞춰 일률적인 디자인과 구성에서 벗어나 북유럽식 샐러드볼(원형)과 피자 접시 등 색다른 구성으로 출시한 점도 눈에 띈다. 초충도 단상반기(4P)의 가격은 13만원, 칠첩반상기(21P)는 39만 6000원. 올리브 마켓 홈세트(20P)는 34만 2000원, 홈세트(30P)는 53만 2000원이다.
  • 산속에 안긴 중국 오지마을… 원석 같은 사람과 자연을 만나다

    산속에 안긴 중국 오지마을… 원석 같은 사람과 자연을 만나다

    “7할은 산이요, 1할은 물, 나머지 2할은 전답(田畓)이다.” 거대한 중국 대륙 안에서 손바닥처럼 좁은 저장성은 예부터 ‘숨은 보석’으로 불려 왔다. 대륙 동남쪽 연해에 자리해 산이 많고 자원이 풍성했기 때문이다. 이런 저장성은 살아있는 자연 박물관으로도 일컬어진다. 수려한 풍경으로 보는 사람을 압도하는 자연, 첩첩산중에 자리한 소박한 마을과 때 묻지 않은 사람들…. 다양한 이야기를 품고 고유한 전통을 이어 가는 매력적인 여행지다. EBS는 26~29일 밤 8시 50분 세계테마기행 4부작 ‘대륙의 숨은 보석, 저장성’을 연속 방영한다. 박현규 순천향대 중어중문학과 교수가 여행 큐레이터로 나선다. 제1부 ‘치유의 길을 걷다, 쑤이창’에선 저장성 안에서도 오지로 꼽히는 쑤이창현을 찾아 첫 여정을 시작한다. 해발 1000m 이상의 산으로 둘러싸인 쑤이창현에는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여 산다. 푸른 삼림과 신비로운 운무 속에서 나타난 작은 마을 다컹춘은 가파른 산비탈을 따라 다닥다닥 모여 앉은 수십 채의 가옥들로 이뤄졌다. 외부와의 교류가 적은 탓에 지금도 외지인을 만나면 경계심 어린 눈빛을 보내지만 이내 순박한 모습을 드러내곤 한다. 다컹춘은 우리네 시골과 많이 닮은 모습이다. 조용한 마을에 사람들이 모여들어 북적이는 시기는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가문 땅에 비가 내리길 기원하는 기우제를 지낼 때다. 조상 대대로 용신에게 기원을 드려 온 다컹춘만의 전통 기우제를 소개한다. 첩첩산중 쑤이창의 또 다른 오지 마을은 훙싱핑. 산 몇 개를 넘고도 배를 타야만 들어갈 수 있다. 때 묻지 않은 청정 그대로의 자연이 살아있는 훙싱핑 마을에서 소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만난다. 제2부 ‘103개 섬들의 고향, 둥터우 열도’에선 저장성의 2000여개 섬들을 조망한다. 이 중 100여개의 섬들이 모여 있어 ‘섬들의 고향’이라 불리는 둥터우 열도를 방문한다. 특별한 볼거리는 어부들이 잡아 온 물고기를 보관하고 팔기도 하는 수상시장으로, 이른바 ‘어부들의 집’이다. 둥터우에서는 광활한 갯벌에서 수월하게 작업을 하기 위해 만든 특별한 배 ‘갯벌썰매’가 특히 눈길을 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14세 남장소녀, 규방 넘어 금강산을 보다

    14세 남장소녀, 규방 넘어 금강산을 보다

    “금강산과 바다를 본 것은 천하를 다 본 것이나 다름 없다.” 14살 소녀는 금강산을 유람한 뒤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시를 써 ‘이제 알겠다. 하늘과 땅이 아무리 크다 해도(方知天地大)/ 내 한 가슴속에 담을 수 있다는 것을(客得一胸中)’이라고 했다. 소녀가 금강산을 여행한 것은 조선 후기인 1831년으로 여성의 문밖 출입이 어렵던 시절이다. 아무리 남장을 했다 하더라도 잘 상상이 가지 않는다. 강원도 원주에 살던 금원(錦園·1817~?)은 어린 시절 제천·단양 일대의 호(湖)와 동(東)쪽의 금강산·관동팔경·설악산, 조선의 낙양(洛陽)인 한양을 둘러보고 1845년쯤에는 의주 부윤 김덕희의 부실로 관서(關西)의 의주를 다녀온다. 1850년에는 여행기와 문집을 묶어 ‘호동서락기’(湖東西洛記)를 낸다. 일종의 자서전이자 회고록인 셈이다. 여성사를 공부한 지은이는 그녀의 책을 해부해 19세기 생활사, 문화사, 풍속사를 추적한다. 금원은 제천·단양 등을 구경한 뒤 한강 수계를 이용해 춘천으로 올라와 김화를 거쳐 금강산에 당도한다. 당시로선 가장 일반적인 금강산 여행 경로였다. 산을 봤으니 바다도 봐야 한다며 관동팔경 순례에 나선 소녀는 총석정과 낙산사 일출에 감동을 먹는다. 바닷가에 우뚝 솟은 4개의 돌기둥을 보고선 “돌 무더기가 어찌 이렇게 고르고 가지런할까”라며 감탄한다. 낙산사 해돋이엔 “나도 모르게 깜짝 놀라 미친 듯 기뻐 펄쩍펄쩍 뛰며 춤을 추고 싶었다”고 한다. 서울 구경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갈 땐 한결 성숙해진다. “군자는 충족한 것을 알면 그칠 줄 알지만 소인은 그렇지 못하다”면서 “아름다운 경치를 보려던 숙원이 보상되었으니 여기서 그침이 마땅하다. 다시 본분으로 돌아가 여자의 일에 종사하는 것이 옳다”고 했다. 금원에게 ‘여자의 일’은 무엇일까. 지은이는 그녀가 한 해 뒤 기생으로 입적돼 기녀가 되고 그녀의 어머니 역시 기생 출신의 양반가 첩일 것으로 추정한다. 조선시대는 자녀 신분이 어머니를 따르는 종모법(從母法) 사회이고 서녀인 양반가 딸의 기생 대물림도 많았다. 기녀는 낮은 신분의 천한 직업이었지만 한편으론 가무 등이 뒷받침돼야 하는 전문 직업인이었다. 평양 기생의 일상을 소개한 녹파잡기(波雜記)를 보면 기생 경패는 13살 어린 나이에 서울로 가 노래와 춤을 배울 정도로 성취욕이 강하다. 기생은 시와 문장, 가무를 갖춰야 한다는 점에서 예술인이기도 하다. 그런 만큼 그들에겐 어느 정도의 자유와 독립성이 부여돼 있다. 아마 이런 전후 사정이 그녀의 파격을 가능하게 했을 것이다. 그녀는 “눈으로 산하의 넓고 큼을 보지 못하고 마음으로 온갖 세상사를 겪지 못하면 변화무쌍한 이치에 통달할 수 없어 생각과 식견이 좁아진다”고 말해 여행의 본질을 꿰뚫어 봤다. 그러면서 ‘여자라고 해서 규방에 들어앉아 여자의 길을 지키는 것이 옳은가’ 하고 반문한다. 금원은 말년에 삼호정시사라는 모임을 만들어 기생 출신의 명문가 소생 4명과 문재를 주고받는다. 남자 중심의 양반 사회에서 첫 여성 시동호회다. 삼호정은 한강변 용산에 있는 정자로 지금의 용산성당 일대로 추정된다. 그녀는 호동서락기에 동호인들의 시 26수를 남기지만 더 이상의 행적은 전하지 않는다. 임태순 선임기자 stslim@seoul.co.kr
  • 필리핀 7000여개 섬 중 가장 낭만적인 섬 보라카이

    필리핀 7000여개 섬 중 가장 낭만적인 섬 보라카이

    지도에서 그 섬을 찾기란 쉽지 않다. 너무 작아 그려 넣을 수 없었기 때문일 터다. 하지만 명성은 대단하다. 고운 모래와 파란 바다를 꿈꾸는 세계인들의 시선이 쉼 없이 쏟아진다. 7000여개 섬으로 이뤄진 필리핀에서도 가장 낭만적이라는 상찬을 받는 섬, 보라카이다. 전 세계 여행 가격을 비교하는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7월 중순을 기준으로 동남아 유명 휴양지의 체재 비용을 조사해 최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100만원 이하의 예산으로 일주일간 남부럽지 않게 여름휴가를 즐길 수 있는 곳’ 가운데 1위가 보라카이였다. 일주일간 머물 경우 여행 경비는 약 60만원 선이었다. 한국인의 필리핀 수요가 늘고, 많은 항공사들이 신규 취항하거나 증편하면서 항공권 가격이 낮아진 게 주요 원인이라고 이 사이트는 분석했다. 쉽게 정리하자. 보다 저렴한 예산으로, 필리핀의 섬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낭만적인 섬으로 꼽히는 보라카이에서, 남부럽지 않은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얘기다. ‘보라’는 현지어로 바람, ‘카이’는 벽을 뜻한다고 한다. ‘바람을 막아주는 섬’이라는 뜻이다. 풍수지리에 문외한이더라도 이게 ‘명당’을 뜻하는 말이란 것쯤은 단박에 알 수 있다. 실제 지도를 봐도 보라카이는 비사야 제도의 여러 섬들 사이에 안온하게 자리 잡고 있다. 보라카이의 매력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밀가루처럼 고운 모래밭, ‘크리스털 블루’로 표현되는 물빛, 그리고 사방을 주황빛으로 물들이는 강렬한 해넘이 풍경이다. 섬의 둘레는 12㎞다. 한데 해변 길이가 7㎞다. 섬이 곧 해변이나 다름없다. 높은 건물도 없다. 섬의 건축규제가 무척 ‘생활밀착형’이기 때문이다. 코코넛 나무 크기 이상의 건물은 지을 수 없단다. 주변 경관과 조화를 이루라는 뜻이다. 파도가 밀려오는 지점을 기준으로 300m 이내에도 건물을 지을 수 없다. 우리나라였다면 벌써 고슴도치처럼 건물들이 솟구쳤을 터. 보라카이는 그래서 더 넉넉하게 느껴진다. 보라카이가 세계적인 관광지 반열에 오른 데는 화이트 비치가 큰 몫을 했다. 미국 ‘내셔널지오그래픽’이 화이트 비치를 세계 3대 해변으로 선정한 이후 세계인들의 관심이 급격히 쏠렸다. 화이트 비치의 자랑은 희고 고운 모래밭이다. 무려 4㎞에 걸쳐 뻗어 있다. 현지 주민들은 산호초가 부서진 모래라 맨발로 다녀도 뜨겁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다만 화이트 비치의 모래를 해변 밖으로 가지고 나가는 건 금지돼 있다니 주의해야겠다. 너른 모래밭 너머로는 파란 바다가 넘실댄다. 섬에서 멀어질수록 바다는 연둣빛에서 초록과 짙은 파란색 옷으로 갈아입는다. 화이트 비치는 ‘발라바그 비치’와 ‘불라보그 비치’를 합쳐 부르는 이름이다. 발라바그 비치엔 3㎞ 길이의 모래 해변을 따라 리조트와 레스토랑 등이 늘어서 있다. 불라보그 비치는 수심이 얕아 카이트 보딩과 윈드 서핑 애호가들이 즐겨 찾는다. 섬 북쪽 끝의 ‘푸카 셀 비치’는 호젓하게 해수욕을 즐기기 좋은 곳. 호객꾼이나 상점 등이 드물고, 야자수 숲에 둘러싸여 한결 조용하다. 어로 작업을 준비하는 원주민의 모습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우기 때도 비교적 바람과 파도가 잔잔한 편이라고 한다. ‘호핑투어’(hopping tour)도 인기다. 섬과 섬을 뛰듯이(hop) 넘나들며 낚시와 스노클링, 스킨스쿠버 등 해양 레포츠를 즐긴다. 필리핀의 전통배 ‘방카’로 섬 주변을 일주하다 포인트에 정박 후, 배 위에서 낚시를 즐길 수 있다. 예전부터 ‘다이빙 포인트’로 명성을 날렸던 곳이니 만큼 스노클링은 반드시 체험하는 게 좋겠다. 작고 앙증맞은 열대어들의 유희를 보고 있자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다만 단순히 ‘체험’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충분히 즐기려면 미리 가격협상을 해두는 게 좋다. 저녁이 되면 화이트 비치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저 유명한 ‘일몰’을 보기 위해서다. 누가, 어떤 카메라로 찍어도 작품이 되는 매력적인 풍경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마닐라에선 인트라무로스를 반드시 찾아야 한다. 1571년 스페인 정복자들이 세운 성벽 도시로, 당시 정치·군사·종교의 중심지였던 곳이다. 군사 요충지였던 산티아고 요새, 필리핀에서 가장 오래된 마닐라 대성당 등이 5.4㎞ 길이의 성벽 안에 빼곡히 들어찼다. 특히 마닐라 대성당은 꼼꼼하게 둘러보는 게 좋겠다. 1581년에 건축된 이후 전란과 대지진 등을 겪으면서도 432년을 견뎌낸 교회다. 인근에 스페인 식민 역사가 서린 리잘 국립공원도 있다. ■여행수첩 ▲화폐는 페소를 쓴다. 1페소는 약 26원. 소액권을 많이 환전해 가는 게 좋다. 팁을 주거나 물건값 등을 계산할 때 요긴하다. 공항이용료(550페소)는 반드시 현금으로 준비해야 한다. 국제선 출국 시에만 받는다. ▲필리핀에선 우리나라 여름 휴가철인 7~8월이 우기다. 이 기간에 필리핀을 방문하는 한국 여행객들이 다수지만, 다른 기간에 찾는 이들도 점차 느는 추세다. ▲필리핀 항공이 인천~보라카이(칼리보) 직항노선에 25일 재취항한다. 인천에서 매일 오전 8시 30분 출발해 점심을 보라카이에서 먹을 수 있는 일정이다. 인천에서 칼리보까지는 약 4시간 정도 소요된다. 칼리보 공항에서 카티클란 항구까지 버스로 1시간 30분쯤 이동한 뒤 필리핀 전통 배 ‘방카’를 타고 15분 정도 가면 보라카이 섬이다. 부산에서도 칼리보까지 직항편이 운항된다. 필리핀항공 1544-1717. 현지에선 온필(www.onfill.com)이 운영하는 라운지를 찾을 것. 무료 인터넷폰 전화와 아이패드 인터넷 서핑 등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각종 레포츠 프로그램 예약도 할 수 있다. ▲보라카이에선 트라이시클이 주요한 이동 수단이다. 일종의 택시인데, 탑승 전 가격 흥정을 잘해야 한다. 예컨대 시내 숙소에서 푸카 비치까지는 왕복 150페소 정도가 적당하다. 지불 수단이 달러가 아닌 페소라는 것도 분명히 해둬야 한다. 글 사진 보라카이·마닐라(필리핀) 손원천 여행전문기자 angler@seoul.co.kr
  • 전주全州 부채 이야기- 초여름, 바람이 분다

    전주全州 부채 이야기- 초여름, 바람이 분다

    음력 5월5일, 단오端午다. 부채를 선물하던 풍속은 어디에서 왔을까? 1,000년 역사의 자존심을 간직한 가장 한국적인 고장. 바람을 일깨우는 자리, 전주에서 답을 찾았다. 전주 부채, 바람을 다스리다 전주의 수많은 자랑거리 중 부채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예부터 전주 부채는 전국 최고로 평가받았다. 질 좋은 한지와 곧고 단단한 대나무, 전주 사람들의 예술적 감각이 더해져 조선시대 임금에게 진상될 만큼 우수성을 인정받았다. 지금도 담양과 전주 일대의 대나무와 한지 산지를 중심으로 명맥을 잇는 장인들의 작품이 여전히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역사를 살펴보면 지금의 전라남·북도와 제주도를 관할했던 조선시대 전라감영에는 선자청이라는 부채를 제작 관리하는 관청이 있었다. 전라감영에 선자청을 두었던 것은 부채가 전주의 특산물로 단오 날 임금에게 올리는 진상품이었기 때문이다. ‘단오 선물은 부채, 동지 선물은 책력’이라는 속담에서 알 수 있듯 당시에는 단오가 가까워질 무렵에는 부채를 선물하고 동지가 가까워 오면 책력을 선물하는 풍속이 있었다. 이런 풍속은 조선말까지 이어져 해마다 공조에서 단오 부채를 만들어 진상하면 임금은 그것을 신하들에게 나누어주었는데, 전주 부채는 그중 가장 으뜸으로 쳤다. 이후 일제강점기, 단오 부채를 공납하는 제도가 없어지면서 선자청에서 일하며 부채를 만들던 경공장과 선자청에 납품하던 외공장의 장인들은 지금의 전주 중앙동에 터를 잡게 된다. 중앙동에는 부채를 도매로 전국에 공급하는 중간 상인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후 광복과 함께 외곽지역인 가재미골과 안골 등으로 장인들이 터를 옮겨 전주 부채는 장인들의 손끝에서 이어져 왔고 지금은 조충익, 김동식, 방화선 선자장이 전라북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맥을 이어가고 있다. 느림의 미학을 일깨우는 선자장 부채의 ‘부’는 손으로 부쳐서 바람을 일으킨다는 뜻이고, ‘채’는 가는 대나무 또는 도구를 의미한다. 즉, 손으로 부쳐서 바람을 일으키는 도구라는 뜻이다. 한자로는 ‘선자扇子’라고 하고 선자, 즉 부채를 만드는 장인을 ‘선자장扇子匠’이라 한다. 예부터 부채에 사용하는 대나무와 한지는 모두 음의 기운을 갖고 있다고 해서 선비들은 부채를 ‘첩’이라 부르며 애지중지하고, 선비들은 의관을 갖추고 합죽선을 들고서야 외출을 했다. 또 서민 여성들은 평평하고 둥근 형태의 단선을 사용했는데, 부들이나 왕골 같은 재료를 사용해 방석 대신 깔고 앉기도 하고 햇빛을 가리거나 불을 일으키고 곡식을 거르는 데도 사용했다. 부채는 크게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접선’과 자루가 달린 ‘단선’으로 나뉜다. 그 가운데 ‘방구부채’, ‘둥근부채’라고도 불리는 단선은 모양이나 용도에 따라 대표적인 태극선을 비롯해 공작선, 대륜선, 선녀선, 파초선, 학우선, 오엽선, 듸림선 등 다양하게 나뉜다. 단선은 부챗살이 손잡이 중심에서부터 방사형으로 퍼져나가는 모습 때문에 아침 햇살이 천지 만물을 일깨우는 형상을 지녔다고 표현되기도 한다. 또 부챗살이 자루 부분에 모아지기 때문에 윗부분은 얇고 자루 박는 부분은 튼튼해야 한다. 선풍기나 에어컨이 없던 시절 시원한 바람을 불러오던 옛 부채에 비해 현대의 부채는 예술적인 면이 강조되고 있다. 해서 단선은 단조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부챗살을 구부려 미적 감각을 창출하기도 한다. 부채 하나를 만들기까지는 온갖 정성과 숙련된 손길이 필요하다. 다른 부채에 비해 공간의 면 분할과 강한 색상대비가 돋보이는 태극선의 경우 2년 이상 묵은 왕대나무를 겨울에 베어내 1mm 두께로 부챗살을 만들고, 이에 고급비단인 양단을 붙여 응달에서 말린다. 그리고 각종 모양으로 끝을 오려내 한지로 테두리를 치고, 소나무 재질로 손잡이를 끼우는 등 일곱 단계의 공정을 거쳐야 비로소 완성된다. 전주에서는 예술성 뛰어난 선자장들의 작품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특히 한옥마을 안에 자리한 전주 부채 문화관을 둘러보면 인위적인 바람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부채의 아름다움과, 느리고 비우는 철학의 가치를 일깨워 준다. 글·사진 travie writer 이세미 취재협조 한국관광협회중앙회 02-757-7485 전주 부채에 바쳐 온 외길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10호 방화선 선자장 전주 소리문화의 전당 국제회의장 1층은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10호 선자장 방화선 선생의 작업실이자 대중들과의 소통공간이다. 40년 외길로 전통 부채를 제작해 온 방화선 장인은 부친이자 스승인 고故 방춘근 선생(대한민국 명장, 전라북도 무형문화재)으로부터 유년시절부터 단선기술을 익혀 가업을 계승했다. 방화선 장인의 작업은 전통의 멋을 충실히 재현하되 현대에 맞게 재조명해 격조 높고 고졸한 자태가 일품으로 평가받는다. 중국산이 밀려드는 중에 전통의 맥을 이어간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지만 최고의 재료로 더 다양한 부채를 만들고 싶다는 것이 방화선 장인의 소망이다. 방화선 선생의 태극선은 전래방법으로 수작업에 의존해 전통 한지로 만들어 고유한 빛깔과 질감이 뛰어나다. 방화선 장인에게 부챗살은 곧 자신의 뼈다. 그 뼈 위로 햇볕과 세월, 바람과 슬픔, 절망과 희망이 어우러져 부채로 탄생된다고 말한다. 방화선 선자장은 특히 올해 전주한옥마을 전통창작예술공간에 입주작가로 선정되면서 작품창작활동과 함께 1년간 기획전시와 아카데미운영, 부채 제작시연 등 대중들과 보다 다양한 소통을 다지고 있다. 이로써 전주를 찾는 관광객들과 시민들은 단선 부채의 단순함에 깃든 미학과 실용적 가치를 보다 가깝게 접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다. 부채 체험은 부채공예연구실과 창작예술공간 두 곳에서 모두 가능하니 사전에 문의하면 된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방화선 부채공예연구실┃주소 전주시 덕진구 덕진동1가 1-1 한국소리문화의 전당 국제회의장 1층 문의 063-277-7947 방화선 창작예술공간 | 주소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 3가 51-5 체험문의 010-6608-1790 선자장 방화선 쇼케이스 전시 | 5월24일부터 3개월간. 서울시청 앞 플라자호텔
  • [손현주의 계절 밥상 여행] 강원도 막국수

    [손현주의 계절 밥상 여행] 강원도 막국수

    “예전에는 손님이 찾아오면 꼭 밤참을 냈어. 막국수만 한 것이 없었지. 밀가루는 귀해서 생각도 못했고, 메밀로 국수를 뽑았어. 그런데 메밀은 찰기가 없잖아. 무릎 꿇고 엎드려서 녹진하게 치대야 해. 덩어리 덩어리 동그랗게 떼어 나무국수틀에 눌러 면을 빼내지. 반죽보다 중요한 것은 물 온도야. 팔팔 끓이지 않으면 퍼져서 죽이 되어 버리거든. 뜨거운 물에 들어간 면이 두 번째 올라올 때 건져 씻어야 해. 잽싸게 손을 움직여도 순메밀로 뽑은 면은 뚝뚝 끊어져서 올챙이국수처럼 수저로 먹어야 했어.” 팔순을 앞둔 강원도 춘천의 최명희(79) 할머니는 잠시 창가를 내다보았다. 메밀에 얽힌 배고프고 기막힌 과거의 시간들이 떠올랐기 때문일 것이다. “에효, 모든 것이 다 귀했지. 밤에 뽑은 메밀국수를 남겨놨다가 아침에 손님 떠날 때 다시 대접했어. 화롯불에 맑은 장국 끓여서 면 넣고 뜨끈하게 상에 올리면 속 훈훈하게 먹고 길을 떠났지. 전날 술이라도 마셨으면 면수(메밀국수 삶은 물)를 드렸어. 간장 타서 훌훌 마시면 속이 뚫려. 지금 식당에서 내는 면수의 전통은 그렇게 이어진 거야.” 할머니는 대를 잇고 있는 불혹의 아들을 든든하게 쳐다보면서도 고달팠던 시간들이 자꾸만 떠오르는 눈치였다. 어쩌겠는가, 그땐 그랬는걸. 시집오니 시어머니는 젊은데 입은 아홉이요, 땟거리가 없더란다. 식구들 굶기지 않으려고, 내 식구들 밥상 차려내듯 밤낮 모르고 밥장사를 했는데 그게 어느덧 44년. 세월은 가혹하여 새색시가 백발이 되었다. 어쩌면 강원도의 메밀음식은 할머니의 독백처럼 ‘한’이다. 의병활동하다 산으로 숨어들어 화전을 일궜던 산사람들이 장터로 들고 온 곡식이 메밀이었고, 서민들이 다랑이밭 천수답 농사에서 가뭄 들어도 두 달 지나 고맙게도 수확이 가능했던 작물이 메밀이었다. 기실 냉면과 막국수는 겨울에 먹어야 별미라고들 한다. 동치미가 제 온도에서 맛있게 익어가는 계절이 겨울이고 보면 겨울음식이 맞다. 하지만 김치냉장고의 등장으로 발효음식의 계절성은 모호해졌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난 여전히 여름 막국수가 좋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차가운 면은 냉면, 막국수, 밀면 세 가지다. 그 중 현대의 냉면과 막국수는 전분과 밀가루 등을 섞기도 하지만 메밀을 주로 쓰고, 부산 쪽에서 유명한 밀면은 진주식 해물육수에 밀가루 면을 쓴다고 보면 큰 테두리는 그어진다. 강원도권 막국수는 숙성 양념을 쓴 붉은 비빔면이다. 변수는 국물이다. 비빔을 기본으로 하는 막국수는 냉면보다 육수에 대한 관심이 덜하지만 여전히 동치미와 고기육수의 힘겨루기가 팽팽하다. 육수는 집안에 따라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꿩고기가 두루 쓰이고 동치미와 육수를 섞는 집, 오직 묵은 무만 고집해서 동치미를 담가 쓰는 집이 있다. 면은 메밀과 전분을 섞는데 메밀 함량이 많을수록 끈기가 덜하다. 간혹 순수 국산 메밀을 즉석에서 말아 주는 집이 있기는 하지만 대개는 메밀 70~80%를 쓴다. 강원도를 돌던 이날도 주춤주춤 하루 두 끼를 막국수로 먹게 되었다. 춘천토박이 손에 이끌려 간 곳은 외갓집처럼 한옥을 그대로 살려 오목한 마당이 있는 집이었다. 마루 기둥에는 거울이 걸려 있고 방마다 빈 상이 잔칫집처럼 많다. 으레 그렇듯이 막국수와 속 든든한 돼지고기 편육, 감자와 녹두전까지 시켜 놓고 탁주를 고민한다. 술을 부르는 편육 한 점의 애수는 커서 고기를 잘 삶느니, 삼겹살을 쓰다가 뒷다리 살로 부위가 바뀌었느니, 질겨졌다느니 말도 많고 집집마다 쉬쉬 하는 편육 삶기 비법경쟁이 치열하다. 심심하고 별 맛 없는 메밀면에 담백한 편육 한 점 싸 먹는 맛은 유별나기 때문이다. 국수에 풍미를 돋워줄 뿐 아니라 속도 든든히 채워 주니까. 미리 나온 면수를 홀짝홀짝 마신다. 붉은 빛이 돈다. 밍밍하지만 향이 짙다. 음식의 간이 세고 자극적인 것 투성이인 시대에 ‘네 맛도 내 맛도 아닌’ 면수의 맛이 어떻게 사람들의 향수를 파고들었는지 모를 일이다. 마시면서 익숙해질수록 그런 생각이 든다. 부침과 편육이 먼저 나왔다. 막국수가 나오기 전 고소한 전을 찢으며 세상 얘기 찧고 까부는 것이 국수집 재미이기도 하다. 시골어머니의 밥상이 생각나는 열무김치는 깊은 맛이 배어 있고, 배추김치는 고춧가루를 많이 넣지 않아 시원하며 아삭아삭 씹힌다. 막국수가 나왔다. 왜 대한민국의 막국수에는 모조리 김가루가 얹어지는지, 묵은 불만이 목젖까지 터져 나온다. 외양은 여느 집과 별반 다르지 않다. 대체로 양념은 양파와 배를 갈아 바탕을 잡고 여기에 물엿과 고추장, 간장, 설탕, 다진 마늘 등을 섞어 저온 숙성한 것을 쓴다. 갓 뽑은 면발 위에 양념을 두르고는 삶은 달걀이나 채소로 고명을 얹는다. 이곳 사람들은 막국수에 처음부터 육수를 흥건하게 부어 먹지 않는다. 퍽퍽한 면이 비벼질 만큼 육수를 넣고 기호에 따라 식초와 겨자를 곁들인다. 식초는 살균 효과가 있고, 메밀의 차가운 성질을 겨자가 잡아 주니 ‘찬 면’ 집에는 꼭 따라다니는 강력한 기호다. 여기에 거개 동치미를 곁들이는 이유는 무가 메밀의 독성을 잡아 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 시절에는 서민들의 애환이 깃든 음식이니 지금처럼 고명과 채소가 올라가는 호사는 생각도 못했다. 그저 면만으로는 별 맛 없으니 양념에 비벼 먹거나 동치미에 말아먹는 속 편한 음식이었고, 고추장이 들어가도 속이 화르르 자극적이지 않다. 입으로 물면 툭툭 끊어져 냉면이나 쫄면처럼 강하지 않고 담백하며 고소하다. 수육 한 점을 면에 감아 씹으니 삼겹살의 감칠맛이 배어 막국수 맛이 더 담백하다. 비벼진 국수가 거의 바닥을 드러낼 즈음 육수를 부어 양념까지 싹싹 비워 마시고 나니 세상일 아무런 욕심도 생기지 않는다. “막국수나 한 그릇 하세” 하는 이 욕심 없는 여름인사가 진정한 막국수의 마음일 것이다. 느리게 해찰할 새도 없이 국수가 나오자마자 붇기 전에 허위허위 젓가락질을 해야 하는 여름 밥. 문득 누군가에게 기별을 넣어 안부를 물어야 하지 않겠나. “덥지? 막국수 한 그릇 하세.” 글 사진 음식평론가 손현주 marrian@naver.com 여행수첩 막국수만큼 개인의 기호가 크게 작용하는 음식도 드물 것이다. 강원 5대 막국수니, 7대 막국수니 손꼽는 맛집은 그래서 조심스럽다. 육수와 메밀의 함량, 편육 삶기에 따라 막국수로드는 ‘미식가 열전’이다. 동해안은 고기육수를, 춘천과 강원 남부는 동치미와 고기육수를 섞어서 쓰는 경우가 많다. 지역은 다르나 고기육수를 쓰는 경기도 여주 천서리를 빼놓으면 섭섭하다. 계절맛집(지역번호 033) 춘천 ‘평양막국수’(257-9886) ‘샘밭막국수’(242-1712) ‘유포리막국수’(242-5168) ‘실비막국수’(254-2472) ‘남부막국수’(256-7859) ‘부안막국수’(254-0654) ‘명가막국수’(242-8443), 그 외 지역 양양 ‘영광정메밀국수’(673-5254) ‘범부막국수’(671-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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