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첨성대
    2025-12-14
    검색기록 지우기
  • 대통령 수사
    2025-12-14
    검색기록 지우기
  • 기러기 아빠
    2025-12-14
    검색기록 지우기
  • 세이프가드
    2025-12-14
    검색기록 지우기
  • 아이돌
    2025-12-14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94
  • 기우는 첨성대(외언내언)

    세계적 유적도시인 그리스의 아테네도심에서는 지난 4월10일부터 차량통행이 전면 금지되고 있다.2천수백년전의 문화유적이 자동차홍수의 대기오염으로부터 부식되는 것을 막기 위한 특별조치였다.연간 수백만명의 관광객이 몰려 드는데도 「차없는 도심」을 선포한 것이다.오죽했으면 그랬을까. 우리나라의 경주 첨성대 인접도로에도 7월1일부터 차량통금이 전면 실시된다.차량의 진동과 매연으로 큰 길가에 세워진 석조구조물인 첨성대가 기울고 산화현상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윗쪽이 1·19도가량 서쪽으로 기울었으며 중간부분 석재도 5㎝정도 이탈되고 있다는 것.상부와 기단의 중심도 일치하지 않는다. 1천3백여년전에 세워진 동양최고의 천문대가 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원통형으로 몸통을 쌓아 올리고 그 정상부에 우물정자의 가구를 설치한 첨성대는 불국사와 더불어 경주의 상징.「정」자가 정확한 방위를 가리키고 있어 신라인의 높은 천문기술을 입증하는 과학문화재이기도 하다.오랜 풍상에 훼손되는 거야 어찌할 수 없지만 자동차의 진동과 매연때문에 훼손된다면 대책을 세우지 않을 수 없는 일. 진동과 매연에 의한 문화재훼손이 어디 경주의 첨성대뿐이겠는가.차량 2백만대의 서울은 훨씬 심각한 상황일 것이다.70년대초 지하철1호선 공사가 진행될 때 국보1호 남대문과 보물1호 동대문밑을 지하철이 통과하도록 된 공사를 반대하는 여론이 높았다.지하철진동이 문화재의 기단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우려때문이었다.수시로 진동측정을 한다는 양해하에 건설은 강행되었다.개통21년이 지난 오늘 진동의 측정은 하고 있으며 피해는 어느정도인지 알 길이 없다. 파고다공원의 원각사 10층석탑은 아황산가스에 의한 침식이 현저하게 나타나고 있다.경주는 경부고속철도가 통과하게 된다.고속철도의 엄청난 진동을 어떻게 할 것인가.큰 문제가 아닐수 없다.
  • 4월 「과학의 달」 행사 다채/광복50돌 맞춰 「과거∼현대」재조명

    ◎TV 특별프로 편성·학술행사 마련 4월은 「과학의 달」.과학의 달을 맞아 과학기술에 대한 국민 이해를 넓히고 과학기술 혁신분위기를 확산시킬수 있는 각종 행사들이 준비되고 있다.올해 「과학의 달」행사는 광복50주년에 초점을 맞춰 과거와 현대 국내 과학기술을 재조명하고 21세기의 꿈과 희망을 줄수 있는 행사가 집중적으로 준비되고 있는게 특징.주요행사를 소개한다. ◇4월의 문화인물 「최무선」기념행사=고려말 화약의 발명자인 최무선을 4월의 문화인물로 선정,향리인 경북영천에 기념비를 건립하고 기념학술세미나(6일 하오2시 KOEX소회의실),기념강연회(15일 하오2시 서울과학관),자료전시회(1∼30일 국립중앙도서관 로비)등 기념행사가 다채롭게 펼져진다. ◇TV과학프로그램 상영=▲최첨단 헬리콥터 ▲채소기름으로 달리는 차 ▲초고속운전 ▲우주로부터의 리포트 ▲항법장치 고속도로등 첨단과학지식과 재미가 담긴 과학기술 프로그램 9편이 소개된다.한국과학기술진흥재단 협조로 EBS에서 매주 금·토요일하오 7시45분에 전파를 탄다. ◇학술행사=선조들의 독창성을 확인할수 있는 「전통과학기술의 재발견」세미나가 22일 상오10시부터 국립중앙과학관 세미나실에서 열린다.▲경주 황남동 출토 유리용융도가니및 유리구슬에 대한 연구 ▲한국수공예 공구에 관한 연구등 논문 6편이 발표된다.그밖에도 79건의 학술행사가 집중적으로 열린다. ◇청소년을 위한 프로그램=17일부터 23일까지 과학주간중 국립중앙과학관과 서울과학관이 무료로 개방되고 23일 대전 엑스포과학공원에서는 어린이와 학부모가 함께 참여,모형첨성대쌓기등 13종류의 과학실험과 공작놀이를 즐길수 있는 「과학축전」이 열린다.▲조류·포유류 표본전시회(17∼30일 국립중앙과학관) ▲마르코니 라디오발명1백주년기념 특별전시회(15∼30일 서울과학관) ▲우주인 초청 강연회(16일 서울대) ▲별의 축제(15일 한강둔치)등 청소년의 과학 탐구심을 키울수 있는 행사도 마련된다.
  • 투루판분지 고창고성(서역 문화기행:5)

    ◎서한군이 지은 토성… 내·외성 2중구조/성복판에 망루… 인도식 원형불탑 남아/서쪽 사막지대엔 고분 5백여기… 고대문서·미술품 등 유물 20년간 1만여점 출토 아테네가 로마의 폐허에 들어서면 보이느니 돌기둥에 돌계단이지만 서역의 폐허에 들어서면 모두가 흙의 덩어리요 흙의 동굴이다°그 황색의 폐허는 중국의 감숙·섬서는 물론 산서·하북·하남·산동 등 황하가 흐르는 그 언저리였다. 걸핏하면 토성의 자드락길이요,때로는 치열하게 활싸움을 벌였던 보루의 주춧돌이었다.그런 흔적들을 보면 흙은 먼지가 아니라는 사실과 그러한 폐허가 결코 앙상하지 않다는 것도 알게된다.투루판에는 그러한 역사의 현장으로 두군데의 고성이 있다.하나는 서쪽 13㎞지점에 있는 교하고성이요,다른 하나는 동쪽 40㎞ 지벙에 있는 고창고성이다. 고창고성은 바로 베제크리크천불동이 있는 무르룩계곡을 빠져나와 승금구에서 약간 남쪽의 언덕위,그러니까 멀리 화염산이 병풍처럼 북쪽을 가린 나직한 오아시스에 세워진 성곽이다. 교하고성과 비슷한 역사배경을 지닌 고창고성은 교하보다 1세기,차사왕국에 주둔한 서한둔전부대가 축조한 것이다. 그곳은 적어도 한 두개의 사단 병력이 훈련을 받다가 세워총을 하고 휴식중인 연병장을 방불케 했다.5㎞의 둘레에 2백20만㎡의 넓이,바로 그러한 광장인데 그 유적들은 모두 올망종망한 높이로 유적과 유적사이의 길조차 좁고 꼬불꼬불 하였다.그것은 교하의 토성이 흙 자체의 판축인데 반해 고창의 것은 흙벽돌의 축조라서 무너지기로 말하면 와르르 붕괴되었기게 그렇다. ○외성엔 4개문 설치 그들 설계의 구도도 달랐다.교하의 그것이 남북의 중앙대로를 중심한 동서의 정연한 분포임에 비추어 고창의 그것은 불규칙한 정방형의 외성이 있고 한 복판에 내성이 있는 이중구도로서 그 내성의 주위로 사원이나 민가들,다시 변두리로 무덤들이 산발적으로 분포된 것으로 보였다. 온전한 외성은 12m의 높이며,그 두께도 넉넉했다.그동안 출토된 기록에 따르면 외성 4면에 「현덕문,「금복문」,「금장문」,「건양문」,「무성문」등의 성문이 가설되었다고 한다.과연 외성의 풍모는 당당했다.내성 어디쯤으로 보이는 복판에 국기대나 첨성대인양 높다란 축대가 솟았는데 거기에 규칙적으로 뚫린 구멍으로 보아 당시 둔병을 총지휘하던 교위의 청사나 말대쯤으로 쓰였을지 모른다.보다 분명한 유적은 동남쪽과 서남쪽에 남은 불사의 폐허였다.동남쪽의 그것이 인도식 불탑의 원형층탑이라면 서남쪽의 그것은 사각의 튼튼한 기초위에 원형의 건물이다.그 언저리로 널따란 마당에 우두커니 선 필자에게 적어도 천년전 서로 다른 피부에 서로 다른 언어와 복장들이 오락가락하면서 희희낙락했을 그 소리들이 들리는 듯 했다. 명나라 초엽의 명시인이었던 진성의 「화주성」이란 시가 바로 이 자리서 쓰였을 것으로 보인다. 「고창구치월씨서, 성곽숙조시사희. 유적상존당제도, 거인쟁도한관의. 범궁영락류금상, 신도류량와석비. 정마불지풍토이, 격화유자인시」. (고창은 옛날 월씨의 도성 너녘, 성곽은 썰렁한채 저자도 한산해. 폐헤엔 아직도당나라 법도, 주민들은 다투어 한관을 쳐다보네. 절터엔 스산하게 공부처가 뒹굴고, 신도엔 황량스레 돌비석이누웠네. 전마는 달라진 풍토에 영문 모른채, 꽃 그늘에 사람보고 소리지르네) ○현장법사도 머물러 지금부터 6백년전의 작품으로 보이는데 그때만해도 성곽이나 사원은 무너졌어도 유물은 즐비한데다 아직 주민들이 살았음을 짐작케 한다. 여기서 고창의 역사를 거슬러 보면 고창성을 다스렸던 회골의 마지막 고창국왕인 훠츠할(화적합이)이 몽골군의 위공에 못견디어 전사하고 그 전화로 소실되던 1275년까지 고창은 1천4백년동안 때로는 군현의 치소로,때로는 와국의 서울로 그 나름의 번영과 웨세를 부렸던 곳이다. 기원전 1세기는 서한 둔병들의 주둔지로,기원 327년엔 전향(전량)의 군현으로,기원 460년엔 원주의 함·장·마·국씨 등이 서로 번갈아 「고창국왕」을 1백40년이나 누리다가 640년에는 당나라의 군현으로,840년에는 회골족이 와국을 세워 가장 강력한 왕권을 부리다가 훠츠할에 다다른 것이다. 무덥고 낮은 투루판에도 많은 와국이 엎치락 뒤치락 흥망을 반복했지만 가장 오랫동안 흥성했던 와국으로 두말할 것 없이 서로 쿠처(고차),동으로 하미(합밀),북으로 천산의 북록 창지(창길)까지 넓은 영토를 4백년이 넘게 떵떵거렸던 회골의 「고창왕국」을,그리고 가장 흥성했던 군형시기로 한·당(한·당)두 조대를 들수 있겠다.그것은 고창이란 지명이 곧 한나라때 대완국을 원정하던 이광장군에 의해 명명된 것으로 「지세가 높고 넓은데다 백성이 창성하다(지세고창 인서창성)는 뜻으로 미뤄보아 그렇고,당나라 때인 630년 2월경 현장법사가 인도로 가던중 고창왕 국씨의 요청으로 한달이나 머물면서 불법을 강론했다는 데서도 문물이 성행했음을 알게한다. 당나라와 당나라 이전의 문물이 출토되어 「투루판문서」로 불리는 지하박물관은 바로 고창고성의 서단 하라허줘촌 사막에 있었다.이름하여 「아스타나(아사탑나)고분」.50년대말에서 70년대까지 계속된 발굴탐사에서 드러난 5백여 고분은 10여㎦의 넓은 모랫벌에 묻혀 있었다. 그것은 흡사 우리나라 한강변 고수부지에 쌓아 둔 동그란 모래 둥지 같았다.도시 이토록 삭막한 사막에 무덤은 웬 일이며 더구나 거기서 2천7백여점의 고대문서를 포함한 만여점의 미술품·농기구·생활구등이 쏟아져 나왔다니 정말 믿어지지 않았다. ○대부분 부부합장 묘 필자가 답사한 세걔의 무던은 그 구조가 대체로 비슷했는데 지상에서 비스듬히 팬 1·20m의 묘도를 따라 묘실에 들어가면 안창에는 묘주의 시신,그 중간에는 두개 혹은 네개의 이실이 사랑방처럼 양쪽에 설시되어 있었다.삼면의 묘벽에 벽화를 두르고 누운 시신은 대체로 부부,그것도 미라로 누웠고 그 미라 가운데로 장난감같은 헌금함,그 뒤로 삶인지 죽음인지 알수 없도록 희미한 불빛에 묘실을 지키는 소년이 졸고 있었다. 무섭지 않느냐고 물었다.소년은 웬걸『시원해서 좋다』며 빙그시 웃었다.하긴 서역 사막에서 미라를 만나기가 그리 어렵지 않았다.건조한 기후와 토질 때문에 시신도 얼른 수분을 뺏긴 채 건시로 남는다 했다. 진나라에서 당나라때까지 고창 주민들의 공동묘지였던 아스타나무덤에는 뜻밖에 북량의 장군으로부터 당나라의 도호같은 고관도 끼어 있었는데 그들은 대부분 부부합장,혹은 가족합장이었고,관목보다는 초석이나 목판같은 간소한절차를 따랐음에도 그 속에 벽화와 문물을 시설허가너 부장한 것이 특기할만 했다. 특히 필자가 보았던 인물화나 동물화같은 벽화는 진·남북조시기의 사실적이면서 전원적인 생활의 단면이 생동하게 표현되어 있었다.그것들은 어쩌면 무덤의 주인이 살았을 때의 생활이요 윤리였을 것이다. 아스타나고분에서 투루판으로 돌아오는 도중,투루판 동쪽 2㎞지점에 있는 훤칠하고 준수한 건축물인 「에민탑(액민탑),속칭 소공탑을 답사했는데,1777년 투루판 군왕이었던 에민의 수복을 빌기 위해 그의 아들 수라이만(소래만)이 청대의 이름난 위구르족 건축사 이푸라인(이포랍음)을 시켜 세운 높이 37m 72단 사다리의 이슬람식 탑이다. 커다란 강당크기의 예배당 입구에 우뚝 솟은 탑신에는 삼각·물결·꽃잎·마늘덩굴등 열몇가지 무늬가 적갈색으로 새겨져 있는데 얼핏 단조로운듯 하면서도 근엄한 분위기를 뿜으면서 멀리 천산산맥의 만년설을 마주보고 있다.이 탑은 그 탑기에 새긴 비문이 한문과 위구르문자인 것처럼 또 한가지 성공적인 동서 융합이었다.
  • 「천문엽서」 시리즈 첫 발간/천문대/천체사진전 입상작품 담아

    다양한 천체의 모습을 담은 「천문엽서」시리즈가 국내최초로 발간됐다. 천문대(대장 박홍서)가 과학의 대중작업의 일환으로 발간한 천문엽서시리즈는 소백산천문대에서 촬영한 「아령성운」,「오리온대성운」,「달·금성·그리고 천문대」등의 사진을 비롯,지금까지 개최된 천체사진전에서 입상한 작가들의 작품을 담고 있다.제1회 사진전에서 대상을 받은 김성호씨의 「고니자리 은하수」를 비롯,첨성대와 헬리혜성과의 만남을 극적으로 촬영한 「76년만의 재회」(제1회 은상·정희광),63빌딩과 달이 지는 모습을 다중노출로 잡은 「아리수에 지는달」(동상·김명주),「북아메리카 성운」(제2회 은상·이혁기),「통영만의 일출」(동상·정인수),「삼열성운」(동상·김광은)·「궁수자리은하수」(동상·심명근)등의 다양한 사진이 규격엽서에 실려있다.
  • 경주 동악미술관에 「구면천정천문도」·「혼상」복원 전시

    ◎“신라의 옛 하늘을 보여 드립니다”/구면…/637년 별모습 1,319개 인조다이아로 새겨/혼상/360도 회전… 계절변화 알리는 하늘의 시계 국내 과학계와 한 독지가가 세계 최초의 구면천정천문도와 혼상을 복원,전시해 주목을 끌고 있다. 국내 최초로 신라 전통과학실험의 장을 마련한 경주시에 위치한 동악미술관 천문지리실이 바로 그것. 경주시 민속공예촌 안에 자리잡고 있는 동악미술관(관장 석우일)은 연세대 나일성교수팀,세종대 강영훈교수팀,그리고 충북대 이용삼교수팀등 국내 천문학계의 무보수 도움을 받아 제작비 2억원을 들여 세계최초의 구면천정천문도와 혼상을 완성했다. 천면천정천문도는 조선시대 천문학자 남병길의 성경(1861년판)을 신라 제27대 선덕여왕 6년인 서기637년의 별자리 위치로 세차 계산한 것으로 2년여의 제작기간을 거쳐 완성된 것이다.미술관 2층 천장에 지름 6m의 반구를 만든뒤 1천3백19개의 별로 이루어진 2백90개의 별자리를 하나하나 새겨 놓았다. 특히 1천3백19개의 별을 6등급으로 나누어 인조 다이아몬드로 모두 장식,신라시대의 밤하늘의 별이 영롱한 모습으로 빛나 관람객의 눈길을 황홀하게 한다. 또한 지름 1m크기로 복원한 혼상은 하늘의 별들을 보이는 위치에 따라 천구면에 표시한 것으로서 평면에 그린 천문도와는 달리 일주운동에 따라 회전하면서 별들이 지평선에 뜨고 지는 것을 보여주어 계절의 변화를 알려주는 하늘의 시계 역할을 한 고대의 위대한 천문기기였다. 지난 26일 열린 개관식에 참석한 성신여대 명예교수 전상운박사는 『경주는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과학기술문화 유산의 본고장일 뿐 아니라 신라의 상징적 유물인 첨성대를 인류공유의 세계 고대 천문학의 유산으로 알릴수 있는 실험주의 방법을 유감없이 발휘한 것이며 후세의 교육효과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호평했다. 이 구면천정천문도와 혼상 제작을 총괄 지휘한 나일성교수는 영국·일본·중국등에서 관련학자들이 한국을 방문할 때면 천문도와 혼상을 전시할 경주에 그들을 초청,조언을 구하는데 앞장 섰다.이 가운데는 영국 더햄대 스티븐슨교수(과학사학자),중국 북경 고관상대최석죽대장,북경 천문관 최진화관장,서안천문대 리치완박사등 10여명의 외국 학자들이 방문,의견을 내놓았다. 나교수는 『석관장과 천문학자들의 의견수렴을 위해 거의 1년이란 세월을 보냈다』며 『우리나라도 세계인을 향해 내보일 수 있는 매우 훌륭한 전통과학실험의 장을 마련한 것』이라고 말했다. 대지 4백평 규모에 연건평 1백50평의 동악미술관 2층에 자리잡고 있는 천문지리실에는 천장에 장치된 구면천정천문도와 바로 아래에 혼상을 설치한 이외에 5분의 1과 10분의 1로 축소한 첨성대 모형 3기가 전시돼 있다.한국과 중국의 고대 천문도 2점과 국립 경주박물관에 소장된 신라시대 해시계 파편을 완전히 복원한 작품이 전시돼 있다.그리고 조선시대 앙부일구를 비롯해 중국의 혼천의와 적도의 축소 모형등이 전시돼 있어 한국이 전통과학 기술 뿐만 아니라 중국의 전통과학기술까지도 감상 할 수 있다. 한편 천인감응사상을 부르짖는 석관장은 중앙벽 전면에 천정천문도를 펼쳐놓은 듯한 크기인 가로 6m,세로2.5m크기에 신라의 도읍지 경주를 한눈에볼수 있는 왕경도를 사학계의 도움을 빌려 제작,「하늘에는 천문도,땅에는 왕경도」를 입체 전시하고 있다.
  • “한국말 배워 고유문화 이해 넓힐것”/미테랑대통령 서울·대전 견문

    ◎엑스포장선 물시계·해시계에 큰 관심/다니엘여사 현란한 옷차림 시선 끌어 프랑수아 미테랑대통령은 방한 이틀째인 15일 상오 대전엑스포를 관람한 뒤 하오에는 국회에서 연설을 했으며 서울 신라호텔에서 방한을 결산하는 내외신 기자회견을 가졌다. 미테랑대통령은 이어 예정에도 없이 청와대를 방문,김영삼대통령에게 프랑스가 소장해온 조선시대의 고서를 전달했다. ▷고서전달◁ ○…김영삼대통령은 이날 하오7시15분 고서전달을 위해 청와대를 방문한 미테랑대통령을 본관 현관에서 반갑게 맞이하고 곧바로 접견실로 올라가 대담. 김대통령은 『바쁘신 가운데도 직접 와주신것을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고 미테랑대통령은 『프랑스가 보관중인 책을 건네는것은 여러 의미가 있다』며 나머지 도서의 「반환」도 외무장관을 통해 협의토록 하겠다고 약속. 5분여의 대화를 나눈 미테랑대통령은 가져온 책상자를 김대통령에게 직접 건네며 굳은 악수를 나누었고 전달식이 끝나자 곧 청와대를 떠났다. 김대통령은 미테랑대통령을 전송하고 난뒤 『책의 상태를 보니 우리 한지의 우수성은 물론 문화의 수준을 말해주는것 같다』고 언급. 김대통령은 대기중인 전문가를 통해 이 책의 내용·의미등을 곧 분석·발표하겠다는 이민섭문화체육부장관의 보고에 『아주 중요한 도서이니 꼭 끌어안고 자도록 하라』고 말해 한때 폭소. ○이의장,불어로 소개 ▷국회연설◁ ○…미테랑대통령은 하오3시30분 의사당 현관에 도착,기다리고 있던 이만섭의장의 안내로 2층 의장실로 직행. 미테랑대통령은 방명록에 서명한뒤 이의장의 소개로 김종필 민자당대표,이기택 민주당대표,황락주 허경만 국회부의장,김영구 민자당총무,김대식 민주당총무 등과 악수.이의장은 불어로 이들을 소개했다. 이의장은 『남북이산가족의 재회와 북한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강조한 각하의 14일 청와대 만찬사에 큰 감명을 받았다』면서 『특히 우리 유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한다는 말을 듣고 나도 오늘부터 불어를 배우기로 결심했다』고 미테랑대통령의 방한기간중의 어록에 깊은 관심을 표명. 이의장은 이어 『이미 「아모르(사랑)」 「콩비치온(신뢰)」이라는 두 단어를 이미 배웠다』면서 『한국과 프랑스가 세계인류의 공동목표를 향해 손잡고 나가는데는 이 두가지가 매우 중요하다』고 양국의 협력증진 필요성을 재차 강조. 미테랑대통령은 이의장의 불어 구사가 다소 의외라고 생각한 탓인지 본회의 연설도중 양국간의 이해 제고를 강조하는 대목에서 『이의장은 불어로 맞이해 주었는데 나는 한국말을 모른다』면서 『한국말을 배우려고 노력하고 또 프랑스 젊은이들이 한국의 문화와 언어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제공하겠다』고 약속. ○…미테랑대통령은 이어 이광로 국회사무총장의 안내로 본회의장에 도착,자신의 세계관,한·불 양국및 한·EC간의 협력 강화,한반도정세및 국제사회에서의 한국의 역할등을 주제로 30여분간 연설. ○「한국역할」 주제 연설 부인 다니엘여사는 이의장부인 한윤복여사,장선섭주불대사와 함께 단상 좌측 국무위원석 맨앞줄에 앉아 미테랑대통령의 연설을 경청했으며 유행의 첨단을 걷는 프랑스의 퍼스트레이디 답게 현란한 색상의 옷차림으로 시선을 모았다.이날 국회 본회의장에는 여야의원 대부분이 참석했으며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 한국의 입장을 적극 지지하겠다」는 등 양국의 우호를 강조하는 대목에서 여러차례 힘찬 박수로 호응. ▷대전엑스포관람◁ ○…미테랑대통령은 이날 상오11시55분 당초 예정시간보다 15분 늦게 리무진 버스편으로 부인 다니엘여사와 함께 대전엑스포장에 도착,오명 엑스포조직위원장의 영접을 받고 정부관 방명록에 서명. 엑스포 홍보사절 임수지양의 안내로 내부 전시물들을 돌아보던 그는 첨성대와 물시계·해시계등 우리의 고대 과학문명과 전통인쇄물제작 실연등에 깊은 관심을 표명. 프랑스관 정부대표 마르쉘 갈르탱씨가 테제베고속전철 모형앞으로 미테랑 대통령을 인도하자 사진기자들의 카메라 프레시가 일제히 터져 나와 테제베에 쏠린 양국간의 관심도를 반영.
  • 국제관/D­8일(대전엑스포’93)

    ◎선진국 항공·전자 첨단기술 총집합/빛과 온도따라 꽃피는 합금 현란/일본관/1ℓ로 3천㎞ 달리는 차량 전시/프랑스관 국제관을 통해 세계를 한눈에 본다.대전엑스포중에서 반드시 둘러봐야 할 전시관이 바로 국제관이다.국내 기업관은 박람회가 끝나도 계속 문을 열지만 1백6∼1백9개국이 참가하는 국제관은 대회기간인 93일동안만 전시된다.이 가운데 일본·미국·프랑스·오스트리아 등 선진국은 항공·전자 등의 첨단기술과 자원활용방안을 주로 전시하고 후진국들은 전통기술과 현대과학의 조화라는 주제로 고유문화와 예술을 소개한다. 한빛탑의 바로 오른쪽에 자리잡은 국제관은 A,B,C 3개구역으로 나눠지며 49개의 단독관과 8개의 공동관으로 구성돼 있다. 일본은 빛과 온도의 변화에 따라 동백꽃이 저절로 피었다가 다시 지는 형상기억합금을 전시했다.또 도공모습의 할아버지로봇이 6세기때 백제로부터 전수받은 일본도자기의 제작과정을 자세히 설명하고 시각장애인을 인도하는 맹도견로봇도 선보인다. ○1백만불 상금까지 프랑스는 1ℓ에 2천9백70㎞를 달릴 수 있는 세계최고의 초절약형 3륜자동차를 선보인다.또 물의 낙차를 이용해 끊임없이 회전하는 시계모양의 「혼돈속의 우물」이란 발명품도 전시한다.아직 그 원리가 밝혀지지 않아 프랑스는 원리를 발견하는 사람에게 1백만달러의 상금까지 걸었다. 미국은 우주왕복선 앰배서더호를 실물크기로 전시,우주개척의 선구자임을 나타냈고 노동자의 장갑·기계도구 등으로 아아치형 탑도 만들어 산업근로자의 화합을 강조했다.이에 맞서 러시아는 우주정거장 미르를 실물 그대로 재현했고 옐친대통령의 친서를 담은 캡슐을 소유즈우주선을 통해 우리 서해상에 떨어뜨려 박람회장에서 공개한다. 오스트리아는 음악의 나라라는 명성에 걸맞게 피아노의 건반이 컴퓨터의 지시에 따라 혼자 춤을 추며 클래식 등 1백가지의 음악을 연주하는 컴퓨터피아노(뵈젠도르페)를 전시,흥미를 끈다.이와 함께 관람객이 2㎞의 스키 슬로프를 타고 내려오는 듯한 경험을 하는 스키 시뮬레이터,오스트리아의 문화·역사·과학을 컴퓨터로 알아보는 디지털백과사전도 관심거리다. 또지난해 세비아박람회에서 우수전시관으로 각광받은 캐나다는 여객기의 실물모형을 전시,마치 비행기를 타는 듯한 느낌을 받도록 했다.신사의 나라 영국은 뉴턴에서 스티븐 호킹까지 세계 과학을 이끈 과학자들의 연구업적을 영상으로 처리했다. ○신비의 분위기 연출 76년부터 인공위성을 쏘아올린 중국은 지름 1.5m 크기의 반환식 위성을 직접 전시했고 내년에 쏘아올릴 최첨단 통신위성도 실물크기로 선보였다.제3세계국가를 대표하는 인도는 특수장치로 만들어진 그래픽전시관에 인도의 전통과 종교를 담아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남태평양지역의 파푸아뉴기니·통가·투발루·마셜제도·솔로몬제도 등 우리에게 다소 낯선 국가들이 참가한 남태평양공동관은 열대지방의 정열적인 문화와 토속전시물을 선보인다. 우리나라도 국제관구역의 한 가운데에 무게가 3.1t인 화강암을 수압으로 떠받치고 있는 환상구를 전시한다.환상구는 5마력의 수압차를 이용,수면 0.5㎜위에 화강암을 회전시킨다.우리나라에서는 처음,세계에서는 일본·독일·오스트리아에 이어 네번째로 개발됐다. ▷로봇 3총사◁ ◎안내·연주·화가 로봇… 우리기술진 개발 우리 기술로 만든 로봇들이 초상화도 그리고 연주도 하며 관람객의 안내도 맡는다.「꿈돌이 마스콧로봇」,「3차원 조각로봇」,「사물놀이로봇」등 이른바 로봇 3총사가 그들이다. 외국의 첨단로봇들과 우리의 자존심을 내걸고 한바탕 기술경쟁을 벌일 이 로봇들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 등 우리의 연구진들에 의해 제작됐다. 꿈돌이 마스콧로봇은 박람회사상 처음으로 선보이는 공식 안내로봇이다.박람회기간중 대회장을 누비며 행사안내를 맡을 이 로봇은 한국기계연구소의 지원으로 로봇제작업체인 한국미연이 만들었다.지름 2.7m,높이 1.7m의 타원형 우주선안에 꿈돌이로봇이 숨어 있다가 음악이 나오면 모습을 드러낸다.눈에 빛을 내며 자기소개를 한 뒤 행사장을 안내해준다.함께 사진촬영도 가능하며 앞뒤좌우로 자유롭게 움직인다. 정부관에 설치된 조각로봇은 화가로봇이다.관람객이 카메라 앞에 앉으면 컴퓨터는 한장의 사진을 찍는다.이 사진으로 로봇은 웃는 모습,우는 모습,찡그린 모습 등을 다양하게 그린다.관람객이 원하면 얼굴표정을 조각해준다.자리에 앉아 사진을 찍고 조각까지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20분남짓.한국과학기술원이 만들었다. 연주로봇인 사물놀이로봇들도 정부관에 설치돼 있다.징·북·꽹과리·장구 등을 각각 맡고 있는 4개의 로봇들이 사람의 실물모습으로 만들어졌다.느린 장단이 흐르면 고개를 끄덕이고 가락이 빨라지면 1초에 3번씩 꽹과리를 두들긴다. ▷한빛탑◁ ◎레이저·UFO쇼 주관… “길잡이 역할” 대전엑스포의 상징물인 한빛탑이 28일 개관식을 가졌다.한국의 빛,커다란 빛,영원한 빛을 뜻하는 「한빛탑」은 박람회장의 한가운데 자리잡아 관람객들의 길잡이역할을 한다.특히 각종 문화행사의 구심점역할을 하며 레이저쇼·UFO쇼 등을 주관한다. 한화그룹이 1백20억원을 들여 지난해 7월에 착공,1년만에 완공된 이 탑은 엑스포의 주제인 「새로운 도약의 길」을 시각화했다.특히 「93년」을 부각시키기 위해 탑의 높이를 93m로 했고 탑신을 쌓는 데 사용된 화강암도 1천9백93개에 이른다. 한빛탑의 겉모습은 크게 세부분으로 나뉜다.아랫부분은 첨성대를 본떠 석벽으로 둥그렇게 꾸며 우리의 과학기술을 상징했다.우주선모습을 닮은 가운데 부분은 엑스포를 한눈에 내려볼 수 있는 전망대로 현재의 기술을,윗부분인 금속원뿔은 미래를 향한 한줄기 빛을 각각 표현했다.탑신이 세워진 지름 1백m의 원형광장은 무한한 우주공간을 나타내며 관람객들을 위한 휴식공간으로 활용된다. 한빛탑은 결국 슬기로운 과거를 바탕으로 현재와 미래를 잇는 인류의 희망이라는 의미를 함축했다.또 인류가 합심하여 우주로 도약하는 21세기의 비전을 나타냈다.한빛탑에는 높이 39m지점에 2백12평정도의 제1전망대가 설치돼 있고 55m지점에 14평크기의 제2전망대가 들어서 박람회장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 한국 8개관/D­9일(대전엑스포’93)

    ◎미래로 도약하는 우리모습 한눈에/움집·21세기 컴퓨터주택 등 선봬/주거관/48개기업 참여… 산업기술 현주소/번영관 대전엑스포가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9일 뒤면 30여개의 국내외 전시관이 일제히 문을 열고 93일간의 일정이 펼쳐진다.한밭벌 박람회장은 이미 크고 작은 각종 전시관들이 빽빽이 들어선 가운데 막바지 점검이 한창이다. ○로봇탈춤 어우러져 박람회장은 크게 국제전시구역과 상설전시구역으로 나뉜다.한빛탑의 오른쪽에 있는 국제전시구역은 엑스포의 얼굴이라 할수 있다.우리나라의 역사와 산업현장을 보여주는 정부관 등 8개의 국내관이 국제관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관은 이번 엑스포의 핵심이다.비상하는 새의 날개를 본뜬 정부관은 어두웠던 과거와 미래로 발돋움하는 우리의 모습을 한 눈에 보여준다.주제는 「새길을 찾아서」.1층에 들어서면 자연과 벗하며 평화롭게 살던 조상들의 농경생활이 나타난다.이어 첨성대·측우기 등 과학기술이 선보이고 6·25동란뒤의 암울했던 생활상과 경제의 재건과정이 당시의 천막학교·건설현장·자동차공장 등으로 재현된다.전쟁과 기아·마약·쓰레기·공해 등 인류가 해결할 문제를 진단한 뒤 해결점을 함께 찾는다.마지막으로 인류가 나갈 길을 영상으로 제시,「새로운 도약에의 길」을 보여준다.정부관이 얼굴이라면 서울시 등 14개 시·도의 특성을 담은 시도관은 바로 신체에 해당된다.고층빌딩 숲의 서울,우리 상품을 실은 부산호,광주 학생의거의 정신 등을 만날 수 있다.「전통공예와 현대과학의 만남」이란 주제처럼 북청사자춤과 로봇탈춤이 한데 어우러지는 마당도 있다. ○환상적 세계 연출 주거 환경과 돈의 역사를 보여주는 문화마당은 우리의 생활이다.「숨쉬는 집」이란 주제의 주거환경관은 박람회 사상 처음 시도된다.원시시대의 혈거생활에서부터 21세기의 컴퓨터주택을 꾀돌이 로봇이 직접 설명한다.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의 움집에서부터 파이프를 통해 각종 제품이 집으로 배달되는 컴퓨터 주택까지 여행한다. 조폐문화관에서는 세계 각국의 돈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다.돈과 관련된 퀴즈를 관람객이 컴퓨터로 풀어보기도 하고 세종대왕·링컨·파스칼 등 지폐속의 인물이 영상으로 위·변조 지폐의 판별방법 등을 알려준다. 갑천을 마주하고 박람회장의 남쪽에 자리잡은 「산업번영의 관」은 우리 산업의 현주소와 미래의 지표를 보여준다.이 가운데 5개의 중견기업이 각자의 기술을 뽐내는 도약관은 환상적인 세계를 연출한다.물이 없는 수조에서 헤엄치던 물고기가 손을 대면 순식간에 사라지고 진짜 물고기의 라이브 쇼가 펼쳐진다.인간을 괴롭히는 괴물과 직접 생사를 건 싸움도 치르며 깊은 숲속과 같은 자연향도 느껴본다.번영관은 우리의 산업기술의 현주소를 보여 준다.48개 중소기업이 참여,속옷에서부터 자동차 부품에 이르기까지 수백가지의 상품을 전시한다. ○컴퓨터 문답풀이도 컴퓨터와 인류와의 관계를 보여주는 한국후지쯔관과 IBM관은 우리의 두뇌이다.상상으로나 가능하던 식물의 광합성 및 동물의 근육운동을 입체화면을 통해 분자 단위로 보여준다.또 로봇이 샴페인 잔을 받들고 균형 감각을 배우는 곡예도 부리고 60개의 컴퓨터와 지구환경에 대한 문답풀이도 한다.이 관을 거치면 컴퓨터에 대한 두려움이 말끔히 가셔진다. □엑스포 특별취재반 △우홍제 편집부국장 △김앙섭 부국장급 △최홍운 전국부차장 △백문일 사회부〃 △박상렬 사회부〃 △최용규 전국부〃(대전) △이천렬 〃 (〃 ) △노주석 문화부〃 △김규환 과학부〃 △손남원 생활부〃 △남상인 사진부〃 △최병규 〃
  • 제주 방문… 원대복귀/모범용사 초대

    【경주=이동구기자】 서울신문사가 초청한 국군 모범용사 및 배우자 1백34명 일행은 26일 상오 경주시 방문을 끝으로 5박6일간의 산업시찰 일정을 모두 마치고 귀가했다. 이들은 이날 김정규시장으로부터 시현황을 듣고 석굴암·불국사·첨성대·박물관 등 유적지를 차례로 둘러 본뒤 박재우경주상공회의소회장이 보문단지 거구장에서 베푼 오찬회에 참석했다.
  • 21세기 한국의 문을 여는 “이어령과의 대화”:11

    ◎병풍원리/탈경계­탈구축개념의 미래는/「벽속의 고립」 서구문명 한계에/초가식 「열린 자아」가 대안으로/바슐라르 표현대로 서양 문화는/서방이 벽면으로 싸인 지하실형/병풍속서 태어나 병풍속서 죽는 한국인 정서공간은 매우 신축적 □황규호문화부장=선생님께서 올림픽 개폐회식을 기획하셨을 때 그 주제를 「벽을 넘어서」라고 하셨는데 정말 그 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철의 정막이 무너지고 하였지요.오늘은 그 벽에 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새로운 세기를 전망해 보았으면 합니다. ■이어령전문화부장관=서구문화를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그것은 벽의 문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도시든 개인의 삶이든 모든 것이 두꺼운 벽을 기본으로 해서 이루어진 것이지요.가령 도시국가라는 것은 완전히 성벽안에 세운 도시지요.성벽밖에는 한데지요.유럽은 섬이 아닌 대륙인데도 일찍부터 고층화가 이루어진 것은 성벽이라는 제한된 구획속에 도시를 만들었기 때문에 그것이 커지려면 옆으로 퍼지지 못하고 위로 치솟아 올라갈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동서양의 성곽 달라 □동양도 마찬가지가 아닙니까.성벽으로 나라와 도시를 둘러친 것 말입니다.중국의 만리장성이 그렇구요. ■물론이지요.한자로 나라국자를 써보세요.국은 사각형의 구자로 싸여 있지 않습니까.그것이 바로 성곽이지요.그런데 자세히 비교해 보면 중국이나 한국의 경우에는 성밖이라고 해도 얼마든지 마을이 있고 자연의 숲이나 냇가에서 사람들이 퍼져 살지요.즉 성안과 성밖의 구획은 있어도 사람이 사는 곳으로 별 차이가 없습니다.그러나 서양의 도시국가 형태는 성밖과 성안은 인간의 공간과 인외경의 자연 공간으로 대립적 관계로 파악되었지요. □서양의 벽은 아주 뚜껍다는 것이군요.나라의 성만이 아니라 개인집의 벽도…. ■그래요.왜 우리는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하지 않아요.얼마나 벽이 허술하면 말이 이렇게 밖으로 다 새어나갑니까.그런데 서양의 속담에는 「벽에는 귀가 있다」고 하지요.벽이 아무리 두꺼워도 사람의 비밀이야기는 샌다는 뜻입니다.실제로 서양집은 적조식으로 돌이나 벽돌로 벽을 쌓아 만든 것이아닙니까.그러나 한국집은 가구식이라고 하여 기둥을 세워놓고 집을 지은 비내력벽으로 되어 있습니다.그래서 벽은 기둥과 기둥의 공간을 바른 것이지 가옥의 무게를 지탱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로 그렇군요.전통적인 한옥은 벽을 터도 무너지지 않지만 양옥집은 벽을 부수면 집 자체가 무너지고 말지요. ■그래서 첨성대같은 건축물이 가구적 한국의 건축양식으로 볼때 아주 예외적인 것에 속한다고 하지 않아요.첨성대는 기둥을 세우지 않고 돌을 쌓아 말하자면 벽을 쌓아올린 내력벽건축물이기 때문에 서구의 것과 같다고 할수 있어요. □결국 서양사람이 두꺼운 벽을 원했다는 것은 그만큼 고립적이고 개인의 자아중심적인 문화를 지향하고 있었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말씀이시군요. ■내 말이라고 하기 보다는 서양사람 자신들이 자기네들의 문화적 특성을 그렇게 표현하고 있지요.바슐라르같은 사람은 서양문화를 지하실적 문화라고 부르고 있는데 지하실은 사면이 벽이 아닙니까.그런데 지하에다 판 것이어서 그 벽은 땅과 직접 연결되어 있어서 절대로 허물수 없는 두께를 갖는 벽이라는 것이지요.서구에서는 문화예술도 정치도 온갖 음모와 형별도 이 지하실속에서 이루어 졌다는 겁니다.나치에 항거한 레지스탕스도 지하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할 수 있지요.반대로 나치의 온갖 만행­고문같은 것이 바로 또 이 지하실에서 감행되었지요.사르트르의 그 유명한 단편 벽을 보시면 이 벽이 얼마나 현실적으로 또 상징적으로 그러져 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한국의 전통적인 건축물에는 지하실이라는 것이 없군요. ■지하실 대신 개구멍이 있었지요.(웃음)담벽을 뚫는 것 그것이 개구멍이고 이 개구멍을 통해서 궁궐과 사가의 내통이 가능했고 이도령은 춘향과의 사랑을 가능케 한 것이지요.서양의 역사가 벽을 쌓는 이 지하실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면 우리의 역사는 거꾸로 벽을 뚫는 개구멍에서 비사가 이루어졌다고 해도 좋겠지요.농담이 아니라 옛날 시조를 보십시오.「십년을 경영하여 초로삼간지어내니 반은 청풍이요 반은 명월이로다.산천을들일 곳이 없으니 둘러치고 보리라」라는 시조에서 보듯 바람이 맘대로 들락 날락하고 달빛이 새어 들어오니 이집 벽이 어느 정도겠습니까. ○궁궐­사가 내밀통로 □산천은 들일 곳이 없으니 둘러치고 보리라고 한 것을 보면 담벽도 없는 것 같습니다.(웃음) ■그 종장을 특히 주목해서 읽어야 됩니다.둘러치고 보리라라고 하였는데 거기에서 우리가 연상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병풍이 아닙니까.이 병풍이야 말로 동양 특히 한국인의 마음과 의식의 지평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상징물이라고 할수 있지요.병풍이야말로 가장 가볍고 가변적이고 상황에 따라 신축성있게 적응하는 이 지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벽이지요.필요할때 펴면 벽이 되어 공간을 분할하고 또 필요가 없을 때는 접어서 개켜 버리면 형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콘크리트 벽같으면 야단나지요.한번 허물거나 또 쌓으려면 대 공사를 해야 하지요.그런데 서양에는 병풍과 같은 것이 없었나요. ■스크린이라하여 간단히 접어 세우는 나무판때기의 가리개가 있긴 하지요.그러나 병풍과는 개념이 다릅니다.병풍과 같이 신축성 있는 벽이 생긴 것은 천재적인 발명가로 알려진 백민스터 프라에 의해 1930년대에 이르러서야 실현되지요.우리가 왜 아코데온 벽이라고 부르는 것 말입니다. □그러나 병풍은 중국이 기원이고 일본에서도 많이 쓰고 있는 것 같은데요. ■그렇기는 해도 미국의 동양학자 맥쿤의 증언대로 이 지상에서 병풍을 가장 생활화 하고 현재에도 많이 쓰고 있는 민족은 단연 한국이라고 증언하고 있어요.생각해 보세요.우리가 처음 이 세상에 태어난 곳이 어디예요.병풍속이 아닙니까.그러다가 돌날이 되면 또 병풍을 둘러치고 돌상을 받지요.서양식으로 결혼을 해도 폐백을 드릴때만은 화조 병풍이 있어야되지요.환갑연이 돌아오면 또 병풍을 둘러치고 잔치상을 받습니다.그러다가 눈을 감고 세상을 떠날 때에도 병풍이 그 시신을 가려주지요.죽고 난뒤에도 병풍과의 인연을 끊지 못합니다.젯상을 받을 때 돌아가신 혼백들을 감싸주는 것이 바로 병풍이 아닙니까.이렇게 한국인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그 생의 장면들을 병풍으로 장식하고 죽고난뒤에까지도 병풍에 의존하게 됩니다.이렇게 쉽게 만들고 허무는 그 공간의 경계선처럼 한국인의 자아는 말하자면 「나와 너」「나와 세계」의 그 관계는 매우 신축성이 있습니다 ○군중속의 고독 낳아 □근대적인 자아란 콘크리트 벽처럼 두껍고 튼튼한 것이 아닙니까.그리고 거기에서 프라이버시가 생겨나고요. ■병풍식 자아는 타아와의 경계선이 애매하고 가변적인 것이어서 항상 상황에 따라 흔들리고 있지요.쉽게 나와 너의 공간이 하나가 되기도 하고 또 분리되기도 합니다.서구식 관점에서 보면,그리고 산업사회의 풍토로 보면 근대적 자아가 결여된 것처럼 보입니다.우리가 예사로 남의 프라이버시에 개입하기도 하고 침해하기도 하는 것은 우리의 자아가 병풍식이기 때문이라고 할수 있지요.아주 대조적인 것은 무엇인가 슬픈일이나 괴로운 일이 생기면 우리는 하소연을 하고 넋두리 같은 것을 하게 됩니다.남과 함께 자신의 고통을 나누려고 하지요.그러나 서양영화같은 장면에서 가장 많이 볼수 있는 장면은 우리와는 반대로 「I just want to be left alone」이라는 대사입니다.「날 좀 혼자 있게 해줘」즉 남과 세계를 향해 두꺼운 벽을 쌓고 그 안에 혼자 들어가 앉아야 마음이 가라앉고 생각이 정리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사막같은 사회,혼자서 지하실벽을 응시하고 있는 거꾸로 찍힌 활자의 고독,군중속의 고독같은 것이 생겨나는 것이지요.영국의 경우 가옥수는 많은 데도 주택난이 심한 것은 혼자서 집 한채를 차지하고 사는 독신자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합니다.극단적인 자아중심적 세계관은 무인도적 존재를 낳게 됩니다.그래서 근대 산업사회에서는 누구나 로빈슨 크루소가 되는 것입니다. □로빈슨 크루소와 같은 표류기가 우리나라의 소설에는 없지요. ■무인도의 발견·무인도에의 표류­그것이 근대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지요.로빈슨 크루소는 무인도에 혼자 표류했지만 그 속에서 농업과 산업을 이룩합니다.혼자의 힘으로 문명을 만들어 가는 것이지요.나중에는 프라이데이라는 노예까지도 두게 됩니다.이 소설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단순한 표류기가 아니라 로빈슨은 근대시민사회의 정신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로빈슨은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혼자의 힘으로 인류가 걸어온 문명의 역정을 그 무인도에서 재현하고 발전시킨 것입니다.이 개인의 힘,그 창조력과 자유에 토대를 둔 사회가 바로 근대 시민사회라고 하겠지요. 개척민이 만든 미국의 역사는 바로 로빈슨이 이룩한 그 표류도의 역사를 확대시킨 것이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우리가 표류기 없는 문학속에서 살아왔다는 것은 절대 자아가 없는 문화속에서 살아온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남북 분단으로 우리는 할 수 없이 이산 가족이 되었고 그 슬픔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지만 서양사람들은 스스로 이산가족이 되어 홀로서기를 합니다.가장 미국인다운 미국인의 원형이라는 마운틴 맨이 그렇습니다.깊은 산속에 들어가 혼자서 몇달이고 움막속에서 생활하면서 비바를 잡아 모피를 팔아 생활하는 사람들이지요.그리고 문학을 보아도 마크트웨인의 헉크핀의 모험에서 시작하여 멜빌의 백경,그리고 헤밍웨이의 여러 소설들은 모두가 가정에서 도망쳐 나오는 남자들의 이야기들이지요.그런데 이 두꺼운 자아의 지하실 벽들이 서서히 무너져 내려 앉는 소리와 그 서사극의 종말을 우리는 서구의 새로운 소설철학 그리고 실제의 현실속에서 목격하게 됩니다.이른바 「보더레스」(경계선없는)시대가 오고 있는 것입니다. ○국경없는 시대 도래 □보더레스라는 말은 주로 경제에서 많이 쓰이고 있는 말이지요.기술 자본 상품등 다국적 기업이나 자유무역 등으로 오늘날의 기업이나 산업은 국경이 없어져 가고 있습니다.가령 미국제 자동차라고 하지만 그 엔진은 멕시코에서 만들고 부품은 일본에서 그리고 차체와 디자인은 이탈리아가 맡는 식으로 말입니다.과연 그것은 미국제라고 할수가 있는지 의심이 갑니다.그러나 그것은 경제에서 끝나지 않습니다.인간의 자아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타자의 경계가 불투명합니다.경계침범이 수시로 일어나고 있지요.인간관계만이 아니라 사물도 그래요.우리가 믿고 있는 것처럼 사물들의 윤곽이란 것도 결코 그렇게 딱딱하고 분명한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지요.곤충을 잡아먹는 식물이 존재하는 한 동물과 식물의 경계선이라는 것도 확실치가 않습니다.우체통을 보십시오.우체통은 폐쇄된 공간이 아닙니까.그러나 우체통에다 편지를 넣으면 넓고 먼 세계로 그 편지가 운반됩니다.우체통은 폐쇄공간이 아니라 열려져 있는 넓은 공간이기도 한 것입니다.안과 밖이라는 개념도 그래요.호주머니를 흔히 내부공간이라고 믿고 있지만 자세히 관찰해 보세요.외부가 안으로 침범해 들어온 것이 바로 호주머니가 아닙니까.호주머니 속은 「안」이 아니라 「밖」의 것이 들어와 있는 것이지요. 이 탈구축의 이론을 통해서 우리는 서구 근대문명의 허구와 한계를 볼 수가 있습니다.그리고 이때 떠오르는 것은 병풍 같은 자아속에 잠재된 미래의 가능성입니다. □이야기가 어려워지는 것 같습니다.다음에 다시 계속하기로 하고 이 자리에 병풍을 두르도록 하지요.
  • “남북한 천문학 교류하자”/연대 나일성교수,과총에 대북제의 촉구

    ◎개성의 고려시대 「첨성대」 공동조사/한반도 대기오염관측망 함께 구성을/“세종때 물시계인 자격루도 같이 복원했으면” ◆DB편집자주:본문생략
  • 국보급 고분 20개… 고고학 상당 수준(북한 문화실상:8·끝)

    ◎문화재/1호는 평양 대동문… 선죽교도 포함/황초령 진흥왕순수비는 함흥 보간/금관·도자기는 “계급사회 유물”… 문화재 지정안해 북한 사회과학원 언어학연구소가 펴낸 「현대조선말사전」에는 「문화재」를 「문화적 가치가 있는 유물이나 유산들」이라고 적고 있다. 남한의 문화재개념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문화재라는 포괄적인 용어보다는 「물질문화유물」과 「역사유적」이라는 말을 흔히 사용하고 있다. 물질문화유물이란 우리의 동산문화재에 해당하며 역사유적은 건조물과 역사적 기념물을 총칭한다. 현재 북한에는 50건의 유물과 유적이 「국보급」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이밖에 53건이 「보물급」,73건이 「사적」,18건이 「명승지」,4백99건이 「천연기념물」로 각각 지정되어 있다. 이 가운데 천연기념물에는 동·식물뿐만 아니라 철원 원도와 선천 나비섬,통천 앞섬의 바다새 보호구 등 지리부문까지 포함되어 있는 것이 특징적이다. 북한의 국보급 유물·유적은 크게 고분유와 불교유물·유적유·건조물유로 나눌 수있다. 이 가운데 고분유는 국보급으로 지정된 50건 가운데 20건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북한은 해방직후인 1949년의 안악1∼3호분을 비롯해 80녀대까지 선사시대의 유적과 고구려고분을 다수 발굴해 고고학부문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북한이 이처럼 고분발굴에 국가적인 노력을 기울였던 것은 「주체사상」이 등장하기 이전 다양한 고분의 발굴이 소위 「유물사관적 사회발전 5단계 법칙」을 적용하는데 유용하다고 판단되었던데다 평양을 중심으로 한 한반도의 북쪽이 한민족사의 정통성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이에따라 북한의 국보급은 제1호인 평양 대동문과 제2호인 보통문을 제외하면 제20호까지가 고분으로 되어 있는 등 모두 20개의 고분이 국보급으로 지정되어 있다. 북한은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았음에도 의외로 모두 18건의 불교관계 유적이 국보급으로 지정되어 있다. 국보급 불교유적으로는 묘향산 보현사와 봉산 성불사 개성의 불일사와 통영사가 포함되어 있다. 이밖에 건조물유에는 개성 선죽교와 경성 남문,종성 수강루가 포함되어 있으며 국보급 제48호인 2개의 진흥왕순수비는 황초령비가 함흥 역사박물관에,마운령비가 함흥 본궁 본관에 옮겨져 보관되고 있다. 보물급 제1호는 조선 숙종때인 1716년 만들어진 평양종으로 대동문 문루에 걸려있다. 북한이 지정한 문화재의 특징은 금관이나 도자기등 소위 「물질문화유물」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이것은 「물질문화유물」이 과거 계급사회에서 특정계층의 전유물로 사치품이었다는 점에서 사회주의체제의 이상과 어긋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예품에 관한한 북한에서 출토된 유물이 질적이나 양적으로 모두 남측에 크게 뒤진다는 것도 공예품이 지정문화재가 되지못한 이유 가운데 하나였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북한에는 소위 「김일성 교시유적」이라하여 학술적 연구나 보존사업을 추진함에 있어 최우선적인 유적이 지정되어 있으며 여기에는 남한의 경복궁과 첨성대,다보탑과 석가탑,석굴암,황룡사 9층탑이 포함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북한의 문화재정책은 북한헌법이 규정한대로 『인민적이고 혁명적인 문화를 건설하는데 필요한 것으로 복고주의를 배격하고 사회주의현실에 맞게 계승 발전시킨다』는 명제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 사회주의 이념에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많은 문화재가 그동안 구태여 억지로 파괴하지 않았더라도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없어져 갔다는 것이 정설이다.
  • 북녘 사람들,“담쌓고 살순 없디요”(평양 92년2월:상)

    ◎김인철특파원 「화해의 길목」을 다녀오다/“체제수호·시장개방 함꼐”… 「북한식」 시도/작년 기자에 봉변주던 시민들 신중해져 곳곳에 나붙은 선전구호의 붉은 색과 가까이 다가서면 우중충한 빛이 확연한 도시 평양.시간의 흐름을 잊은 듯한 그 도시에도 이미 변화의 물결은 흐르고 있었다.그러나 그것은 제한된 틀속에서,엄격히 계산된 속도로 진행되는 「북한식」이었고 위로부터의 개혁과 개방이었다. 제6차 남북고위급회담 취재진이 지난18일부터 21일까지 3박4일동안 체험한 평양은 2,4차회담때 그러했듯 일부분에 지나지 않았다.마주해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사람들도 결코 우연히 만난 일반주민일 수 없었으며 그 수도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지난해 10월 4차회담때 남측 대표단에게 막무가내로 봉변을 안겼던 평양은 92년 2월 매우 신중했으며 「선별된」사람들의 목소리는 차분했고 대부분 오늘의 현실을 인정하고 있었다. 21일 상오 백화원초대소 2층 복도.서울행을 위해 방을 나서던 기자는 앳띤 모습이 눈길을 끌었던 북측 안내원에게 북한의 「변화」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불쑥 물었다. 조선학생위소속 연구원으로 평양외국어대 영어과를 졸업,국제관계 박사학위논문을 준비중이라는 30세의 이 안내원은 기다렸다는 듯 『5년전만해도 남과 북이 이렇게 오갈 수 있으리라고 상상할 수 있었겠느냐』며 『남북이 현재 「양보할 수 없는 이유」때문에 줄다리기를 하고 있으나 결국은 급속히 빠른 속도로 화해와 협력을 이뤄나갈 것』이라고 응수했다. 그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국제적 환경이 바뀐 이상 북한도 일본은 물론 미국과도 관계개선을 추진해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상오 10시쯤 기자는 평양을 떠나 개성으로 향하는 열차안에서 국제관계대학 법과교수라는 이모씨(48)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다. 『현 사회는 열린 사회이다.여러 민족간 교류와 협력은 시간이 흐를수록 발전되고 확대되어가고 있다.「원쑤」로 지목해왔던 미국이나 일본에 대해 자라나는 3세대들은 말만 들었지 체험을 못해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그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는데 무작정 담을 쌓고 살 수는 없지 않는가』다소의외의 대답이었다. 그러나 그는 한발 더 나아가 『동서독 통일후 동독의 주요 공직에 있다 실업자가 된 사람들이 적지 않으나 그들도 통일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하더라』며 『비록 개인적으로 안정된 생활이 파괴된다해도 후대들을 위한 통일에 반대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이렇듯 92년 2월에 만나본 북측 사람들은 남북관계의 진전에 대해,그리고 동구사회주의의 몰락과 미국을 축으로 재편되고 있는 국제정세의 변화에 대해 나름대로 이해하고 있었으며 자신들의 「당과 수령」이 현실인정 정책노선으로 전환을 꾀하고 있음을 인식하고 있었다.그들은 남북관계에서 사상과 제도보다 「조선사람은 조선사람일뿐이다.우리들의 성씨의 근본을 따지면 모두가 한뿌리다」라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북한당국이 인민들의 보다 잘사는 행복을 진정으로 보장하려면 폐쇄적 자립주의 경제노선을 탈피해야 한다』는 방문객들의 말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그들은 「과거의 원쑤들」이 자신들의 삶을 무시하면서 평양시내를 활보하게 될지도 모르는 미구의 모습에 불안해하며 자신들의 「당과 수령」이 합리적인 「속도조절」을 하고 있다고 믿으며 또 그렇게 하기를 바라는 듯했다.때문에 인구 1백20여만의 한적한 평양에서 눈에 띄는 광경일수 밖에 없는 남측 대표단의 긴 차량행렬에 애써 무심한 듯 고개를 숙이고 걸거나 어쩌다 얼굴이 마주치면 이내 못본듯 외면했다. 20일 상오 중앙역사박물관 3층 전시실.2∼3층에 모두 4천여점의 진품과 모조품 약간을 전시하고 있다는 전시실을 돌아보다 경주불국사의 다보탑과 석가탑,첨성대의 모형품이 전시된 것을 보고,강사겸 안내원인 김옥선(여·32)동무에게 역사유물은 남과 북의 동질성을 확인하는 주요한 문화자산이라며 남북간 역사유물교환전시회를 개최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이에 그녀는 『좋은 거면 빨리 앞당길수록 좋다고 생각한다』고 시원스레 대답한뒤 「아차」하는 느낌이 들었는지 『질문의 뜻이 교류를 우선하자는 것인가 본데 그에 앞서 정치·군사적 대결상태를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다.왜 임수향·문익환목사를 석방하지않느냐.리인모노인을 빨리 북으로 돌려보내라』는 등 역공세를 취했다.그녀가 보인 반응은 회담장앞 거리에서,인민대학습당에서,옥류관과 청류관에서 만났던 평범한 북한주민들의 일면 수긍,일면 반격의 태도와 대동소이했다. 이렇듯 평양에서 개성으로 오는 열차 창밖에 펼쳐져있던 텅빈 북녁의 들은 기대와 경계심에 떨면서 봄을 기다리고 있었다.
  • 소년ㆍ소녀가장 “자립만세”/뽀빠이 이상용씨 「강화여름캠프」 성황

    ◎전국서 43명 모여 자긍심 고취/“이젠 자심감 갖고 살아갈래요” 방학이 되어도 남들처럼 피서는 생각지도 못하던 소년소녀가장과 결손가정의 어린이들이 「여름방학캠프」에서 모처럼 시름을 잊고 활짝 웃었다. 11일 하오 경기도 강화군 길상면 「강화청소년심신수련장」. 뽀빠이 이상용씨가 회장으로 있는 한국어린이보호회가 10일부터 3박4일의 일정으로 이곳에 문을 연 「뽀빠이캠프」에 들어온 43명의 남녀어린이들은 불볕더위에 아랑곳없이 구슬땀을 흘리며 힘을 모아 진흙벽돌로 모형첨성대를 쌓고 있었다. 『언니ㆍ오빠들과 힘을 합쳐 모형을 만들다 보니 협동심도 배우고 즐거웠습니다』 3살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마저 집을 나가 천애고아가 된 강미영양(12ㆍ마산S국교 5년)은 진흙벽돌이 하나씩 쌓히면서 첨성대가 완성되자 신기하기만 한듯 박수를 그치지 않았다. 지난83년 가정형편이 어려운 모범어린이를 대상으로 시작,매년 무료로 실시돼온 이 캠프는 올해에는 특히 좌절하기 쉽고 자칫 빗나가기 일쑤인 이들 불우어린이들에게 자신감과자긍심을 심어주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이회장은 『불우한 환경에서 어렵게 생활하고 있는 어린이들에게 당장의 물질적인 도움도 필요하겠지만 자기자신에 대한 자긍심과 잠재력을 개발시켜줘 올바르게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대부분이 부모가 없는 어린이가장인 이들은 특히 핸드볼국가대표선수였던 김명순씨(28)가 찾아와 자신의 불우했던 어린시절을 얘기하자 두손을 힘껏 쥐며 각오를 다지기도 했다. 전남 신안군에서 뱃길을 타고 온 김현주양(16ㆍ신안B중3년)은 『부모님이 안계셔 괜히 기가 죽곤 했는데 언니의 고생담을 듣고보니 나도 누구 못지 않게 훌륭하고 떳떳하게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라고 말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