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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新국토기행] 전남 담양군

    [新국토기행] 전남 담양군

    전남 담양군은 예부터 대나무가 많이 나서 ‘죽향’으로 불린다. 한때 죽제품과 죽물시장이 전국 상인을 불러들일 만큼 번창했으나 지금은 플라스틱 제품과 수입품에 밀리면서 쇠락을 거듭하고 있다. 군은 죽향을 널리 알리기 올가을 세계대나무박람회를 준비 중이다. 담양은 산과 물, 계곡이 어우러진 산자수려(山紫水麗)한 고장으로도 이름 높다. 주변을 둘러보면 호남정맥이 빚어낸 산성산, 추월산 등이 북서쪽으로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산과 계곡 곳곳엔 조선조 가사문학의 산실인 누정들이 산재한다. 자연과 역사 문화가 어우러진 천혜의 조건이다. 먹거리 역시 풍부하다. 영산강 상류의 실개천 등에서 나오는 미꾸라지·메기 등 민물고기 요리와 대통밥, 떡갈비 등도 전통음식으로 자리잡았다. ‘10경’, ‘10미’, ‘10 정자’의 고장으로 불릴 만큼 풍광과 맛, 역사의 현장이 즐비하다. 광주광역시와 남서쪽으로 경계를 이루며, 이런 입지 조건 때문에 휴양과 전원생활 배후단지로 떠오르고 있다. 담양은 1895년 이후 현재의 창평면인 창평군과 남원부 소속으로 양립하다가 1914년 담양군으로 통합됐다. 볼거리 ●연인들이 즐겨 찾는 대나무 정원 죽녹원 2003년 담양읍 향교리 성인산 일대에 31만여㎡ 규모로 조성된 대나무 정원이다. 주말엔 평균 2000여명의 탐방객이 찾는다. 블로그 등을 통해 전국에 알려지면서 연인들이 많이 모여든다. 죽녹원에 들어서면 분죽, 왕대, 맹종죽 등이 자생하는 울창한 대숲이 펼쳐진다. 운수대통길, 죽마고우길, 사랑이 변치 않는 길, 철학자의 길, 추억의 샛길 등 총길이 2.4㎞의 8개 테마별로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산책로는 왕대숲에 가려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여서 죽림욕장으로도 인기가 높다. 전망대에 오르면 담양천과 수령 300년이 넘은 고목들로 이뤄진 관방제림과 담양의 명물인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등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오는 9월 세계대나무박람회를 앞두고 생태전시관, 인공폭포, 생태연못, 야외공연장 등 시설물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이다. 정원 안에는 죽향정, 의향정, 예향정 등 한옥이 자리하고 있으며, 이곳에서 주말마다 대나무 잎에서 떨어지는 이슬을 먹고 자란다는 죽로차 시음 등 각종 체험 행사가 이어진다. 매년 5월엔 대나무축제가 열리는 등 전국의 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강과 숲이 어우러진 천연기념물 관방제림 영산강 상류인 담양천변에 쌓은 제방 숲이다. 천연기념물 제366호로 지정돼 있다. 조선조 1648년(인조 28년)에 강 주변 마을의 홍수 방지를 위해 축조한 제방으로서, 당시부터 나무 식재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곳엔 수령 350년의 느티나무, 푸조나무, 팽나무, 은단풍 등 177그루가 보호수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강과 숲으로 둘러싸인 관방제림은 아름드리 노거수 길이 어우러진 문화공간으로 자리잡았다. 제방의 산책로는 사계절 가족 나들이 코스로 인기 만점이다. 벚꽃으로 가득한 봄과 매미 울음소리 자지러지는 여름 등 언제 찾더라도 운치가 넘쳐난다. ●담양의 상징 ‘가장 아름다운 거리 숲’ 메타세쿼이아 길 이 길에 들어서면 마치 동굴을 지나는 느낌이다. 길 양편으로 곧추 자란 메타세쿼이아 나무가 터널을 연상케 한다. 담양읍~전북 순창 경계에 이르는 24번 국도 8.5㎞ 구간에 펼쳐져 있다. 이 가운데 담양읍 학동리 2.1㎞ 구간이 전용 숲길로 조성됐다. 우회도로가 생기면서 폐선된 구간을 산책길로 만든 것이다. 2007년 개봉한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 주인공 김상경이 택시를 타고 달리는 장면을 연출한 이후 방송국의 각종 예능 프로그램과 영화촬영 명소로 자리잡았다. 담양군이 1974년 가로수 조성사업을 하면서 선택한 수종으로서 40여년이 지난 지금은 높이가 30~40m에 이르는 아름드리 나무로 자랐다. 주변에 고속도로가 뚫리면서 이 길이 한때 사라질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주민들이 나서 지켜냈다. 산림청과 생명의 숲 가꾸기 국민운동본부가 ‘가장 아름다운 거리 숲’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정철 사미인곡 등 가사문학의 산실된 누와 정 담양읍~봉산면~고서면~남면 무등산 자락으로 이어지는 계곡과 광주호 주변 곳곳엔 조선조 가사문학의 터전인 누(?, 누각)와 정자(亭子)가 즐비하다. 봉산면 면앙정은 송순(1493~1582)의 면앙정가가 탄생한 곳이다. 당대의 지식인 그룹인 고경명, 기대승, 임제, 정철 등이 송순을 사사하며 교류했던 현장이다. 이곳과 이웃한 고서면 송강정은 1548년(선조 17년) 송강 정철이 대사헌을 지내다 당쟁으로 물러나 머물며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을 지은 곳이다. 무등산 북동 끝자락인 남면 식영정은 1560년 서하당 김성원이 장인인 임억령을 위해 지은 정자이다. 송강이 이곳에서 성산별곡을 지었다. 인근엔 양산보(1503~1557)가 조성한 한국의 대표적 정원인 소쇄원이 자리하고 있다. 소쇄원 입구 계곡 건너편엔 행정구역은 광주 북구이지만 이들 시인과 묵객들이 풍류를 즐겼던 환벽당을 만날 수 있다. 고서면 명옥헌 원림과 남면의 독수정 원림 등 선비들의 자취가 담긴 누정이 널려 있다. ●푸른 호수 보며 절벽길 만끽할 수 있는 추월산·산성산 추월산(해발 731m)은 산봉우리가 보름달에 맞닿을 정도로 높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전북과 전남의 도계인 담양군 용면에 있다. 산 전체가 깎아지른 듯한 기암괴석으로 이뤄져 있고, 절벽 사이로 보조국사 지눌이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 보리암이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다. 정상에 서면 담양호 전경과 금성산성, 백암산과 내장산, 무등산 등 호남의 명산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단풍나무, 노송군락, 참나무류, 느릅나무 등 활엽과 침엽수가 숲 터널을 이룬다. 담양호 동쪽 편엔 산성산(해발 603m)이 자리하고 있다. 삼국시대부터 축성과 중건과 보수를 거듭해온 성터는 역사 탐방코스로 인기가 높다. 정유재란 때 시체 2000구를 남문 아래 협곡에 옮겨 태웠다고 해서 이 계곡을 ‘이천골’(二千骨)이라 부른다. 이 산성은 시루봉(504m)을 정점으로 남문~노적봉~철마봉~서문~동문~운대봉~연대봉~북문~서문으로 계곡을 감싸는 포곡형이다. 외성과 내성으로 나뉘어 있으며, 특히 적이 침투하기 쉬운 서문 계곡은 옹성으로 쌓았다. 내성엔 동헌, 내아, 연환고, 보국사, 민가터 등이 남아 있다. 담양호를 사이로 우뚝 선 이들 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일출과 운무는 신비감을 자아낼 정도로 절경이다. 먹거리 ● 대나무 향기 그윽한 대통밥 읍내 웬만한 식당에서는 ‘대통밥’을 즐길 수 있다. 지름 10㎝의 왕대 속 부분에 쌀과 각종 씨앗류를 넣고 쪄내는 대통밥은 남녀노소가 좋아한다. 최근 웰빙 바람을 타고 대나무 향기가 스며든 ‘대통밥’이 인기를 더하고 있다. 대통을 감싼 한지를 벗겨 내면 쌀과 밤, 대추, 은행, 잣 등과 함께 막 쪄낸 밥이 입맛을 돋운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을 죽순 나물이나 산채류에 고추장을 더해 비벼 먹어도 일품이다. 한정식집이나 고깃집에서도 대통밥을 판다. 죽순 초무침과 산나물, 해물 등이 밑반찬으로 나오며, 특히 두부를 썰어 넣은 된장국과 잘 어울린다. ●혀끝에 달콤하게 달라붙는 떡갈비 청정지역에서 기른 한우를 엄선해 재료로 쓴다. 소고기를 갈아서 양파, 마늘 등 갖은 양념과 버무려 구워낸다. 식사 도중 잘 익은 고기가 식지 않도록 열에 달궈진 돌판 등에 얹어 내놓는다. 죽순 나물과 푸성귀 무침 등이 곁들여진다. 이가 약한 노인이나 어린이도 맘껏 즐길 수 있다. 양질의 단백질 식품인지라 무더위 보양식으로도 그만이다. ●전국적 명물 담양식 숯불 돼지 갈비 점심이나 해질 무렵 담양읍 반룡리 일대를 지나다 보면 구수한 고기 굽는 냄새가 구미를 당긴다. 이 일대는 숯불 돼지갈비집이 즐비하다. 언제부터인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숯불 갈비집이 한 집 두 집 생기면서 한곳으로 몰렸다. 담양식 돼지갈비는 갖은 양념에 버무린 갈비를 겉이 거뭇거뭇할 정도로 숯불에 구워 내는 방식으로 밥상이 차려진다. 구울 때 진동하는 구수한 냄새가 식욕을 부추긴다. 바싹 구워낸 갈비는 기름기가 거의 없을 정도로 담백하고 쫄깃하다. ‘담양식’이란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지친 발길 사로잡는 창평 시골장터 국밥 슬로시티로 지정된 창평 전통시장은 국밥집 천지이다. 어느 시골 장터나 국밥집은 성업했지만 창평 시장처럼 명맥을 이어가는 곳은 드물다. 5일, 10일 열리는 장날이면 국밥을 먹기 위해 광주, 곡성 등 인근 지역 주민들도 차를 몰고 일부러 찾아 나선다. 평일에도 국밥을 찾는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신선한 돼지 내장과 머리 고기, 암뽕순대 등을 이용한 푸짐한 국밥은 인기 만점이다. 몇 해 전부터 장터에 10여개의 국밥집이 자리하면서 ‘창평국밥거리’가 생겼다. 업소들끼리 원조를 내세우지만 맛은 엇비슷하다. 돼지 내장 특유의 냄새를 없애기 위해 한약재 등 각종 비법을 사용해 가마솥에 끓여 낸다. 찾는 손님이 많은 만큼 매일 공급되는 신선한 재료가 맛을 내는 비법으로 꼽힌다. 담양 투어를 마치고 들러 주린 배를 채우면 딱 좋다. 담양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송혜민의 월드why] 건강한 20대女의 안락사, 의사는 왜 OK 했을까

    [송혜민의 월드why] 건강한 20대女의 안락사, 의사는 왜 OK 했을까

    이제 막 인생의 꽃을 피우기 시작한 ‘건강한’ 20대 여성이 안락사를 요청하고 나섰다. 로라 라는 이름의 24세 벨기에 여성은 어렸을 때부터 “삶은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며 생(生)을 거부해왔고, 벨기에 의료진은 안락사의 방식으로 그녀의 뜻을 이룰 수 있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안락사는 이를 허용하지 않는 국가뿐만 아니라 허용하는 국가 안에서도 여전히 논쟁거리지만, 로라의 안락사 허용 사안이 더욱 ‘뜨거운 감자’가 된 것은 신체에 특별한 질환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허가가 내려졌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미 유럽의 몇몇 국가들이 적극적인 안락사를 허용한지 10년이 훌쩍 넘었지만 도덕적 논란은 여전하다. 과거와 현재를 불문하고 사람들은 끊임없이 병에 걸리고, 고통스러운 죽음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그때마다 안락사는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돼 왔고, 이러한 역사는 고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에도 안락사 논쟁은 존재했다 기원전 4세기, 그리스 의학자이자 현대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히포크라테스는 “나는 누구에게도 독약을 주지 않을 것이며 요청을 받더라도 그런 계획을 제안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당시 철학자들은 태생적으로 건강하지 않거나 고칠 수 없는 병에 걸린 사람은 치료하지 않는 것이 옳으며(플라톤), 삶에서 고통이나 쾌락을 느낄 수 없는 상태라면 살해되는 것이 생존하는 것보다 선하다(아리스토텔레스)고 주장했다. 본격적인 안락사 논쟁이 시작된 것은 기독교의 전파 이후다. 인간의 모든 생명은 하느님이 주신 것이라는 이유로 인간이 자신의 죽음 또는 타인의 죽음에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 팽배했다. 하지만 14~16세기 르네상스 시대에 들어서는 이를 허용하자는 움직임도 적극적이었다. 영국의 정치가이자 ‘유토피아’를 쓴 인문주의자인 토마스 모어는 “중환자 스스로 고통없는 자살을 선택할 수 있거나 성직자의 승인을 얻어 환자의 생명을 강제로 끊을 수 있는 사회”를 언급하기도 했다. 현재 안락사를 지지하는 나라는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스위스, 태국 등이다. 미국은 일부 주에서만 가능하고 프랑스에서는 현재 이와 관련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가장 먼저 안락사를 합법화 한 나라는 네덜란드(2002년)다. 네덜란드는 ▲불치병 환자 ▲환자가 이성적으로 안락사에 동의 ▲질병으로 인한 고통이 견딜 수 없을 만큼 심한 상태 등의 조건에 부합될 때 합법적으로 안락사를 허가한다. 이중 프랑스는 최근 ‘죽을 권리’를 두고 가장 치열한 논쟁이 벌어진 국가다. 7년 전 오토바이 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뱅상 랑베르(39)에 대해 아내와 의사는 “랑베르의 상태에 호전의 기미가 없다”며 소극적 안락사(연명치료 중단)를 요청했고 유럽인권재판소(ECHR)는 이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퇴원한 랑베르의 모습은 예상과 달랐다. 어머니의 목소리에 눈을 뜨고 반응하는 듯 보였다. 결국 그가 식물인간이 아닌 여전히 ‘살아있는 인간’이라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그의 부모는 아들의 안락사를 반대하고 나섰다. 이 사건을 계기로 프랑스 전역에서는 ‘죽을 권리’를 두고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는 상황이다. ▲스티븐 호킹 박사(찬성) vs 프란치스코 교황(반대) 영국의 물리학자인 스티븐 호킹 박사는 안락사를 지지하는 유명인사다. 그는 최근 BBC의 한 프로그램에 출연해 “끔찍한 고통을 겪는 사람을 무작정 살려두는 건 인간의 존엄성에 반하는 것”이라면서 “주변에 짐만 된다는 생각이 들면 조력자살(의사 혹은 타인이 약물처방 등으로 소생 불가능한 환자의 자살을 돕는 것)을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동물이 고통받는 것은 그냥 두고 보지 않으면서 사람이 아파할 때 내버려 두는 건 이상하다”는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반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안락사를 반대하는 대표 인물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안락사를 두고 “잘못된 동정심”이라고 표현하면서 “의사들은 생명의 존엄함을 존중해야 한다. 생명으로 장난치는 것은 창조주의 뜻에 반한다”고 강조했다. 시대가 변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고대에서든 현대에서든 ‘살인’이라는 말의 뜻은 똑같다. 존엄사는 병자와 노약자들을 사회의 하수구처럼 바라보는 것으로, 저 멀리 내쳐야 할 현대 문화의 나쁜 증상”이라고 비판했다. 전 세계에서 각 분야를 대표하는 인물들의 이러한 찬반 논쟁은 수치로도 대변된다. 2013년 3월 캐나다에서 진행된 설문조사에서 캐나다인의 63%가 의사의 조력자살을, 55%가 안락사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네덜란드에서는 2013년 한 해 동안 4829명이 의사의 도움으로 생을 끝내는 방법을 택했다. 네덜란드인 사망 '28건 당 1건 꼴'로 상당히 높은 편이다. 벨기에는 2013년 전체 사망자 가운데 안락사 비중이 4.6%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태국뿐만 아니라 일본, 베트남 등 아시아 국가에서도 암묵적 허용, 소극적 안락사 허용 등 다양한 방식으로 안락사의 범위를 넓혀가고 있는 반면 여전히 반대 의견도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안락사와 다른 한국의 존엄사법 지난 4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4년도 노인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의식이 없거나 생존 가능성이 낮은 경우에 의료행위로 연명치료를 하는 것에 대해 65세 이상 노인 가운데 3.9%만 찬성했다. 조사대상 88.9%는 성별, 거주지나 재산, 결혼상태, 교육수준 등을 가리지 않고 연명치료에 반대했다. 연명치료에 반대한다는 것을 안락사를 찬성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긴 어렵다. 국내에는 일명 ‘존엄사법’이 논의 중인데, 존엄사와 안락사에는 미묘한 차이가 존재한다. ‘소극적 안락사’로도 불리는 존엄사는 환자에게 영양 공급을 중단하거나 산소호흡기를 제거하는 등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것을 뜻한다. 반면 적극적 안락사는 전문가가 직접 약물 등을 투여해 곧바로 사망에 이르게 하는 방식이다. 한국에서는 소극적 안락사, 즉 존엄사를 인정한 사례를 가지고 있긴 하나 이것이 법으로 제정된 것은 아니다. 자신의 삶과 죽음을 직접 선택하고 ‘죽을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주장과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행동과 이를 돕는 행위는 자살‧살인에 불과하다는 의견이 팽팽하다. 안락사‧존엄사를 옳고 그름으로 판단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죽음에 대한 자기 결정권, 스스로 선택하는 존귀한 죽음 등 생의 마지막과 관련한 다양한 목소리들이 점차 커지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당신의 책]

    [당신의 책]

    행간(조르조 아감벤 지음, 윤병언 옮김, 자음과모음 펴냄) 과도하게 넘쳐나는 지식과 정보의 ‘빅데이터 사회’에서 매일 일상에서 부닥치는 현실은 타당하고 합리적으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모든 것을 숫자로, 하나의 담론이나 프레임으로 제한하거나 규정짓는 착오가 빈발한다. 책은 서양 문화의 근간을 이룬 ‘유령’이라는 테마의 얼굴을 분석해 현대인이 잃어버린 진정한 앎과 기쁨을 회복해 나가기 위한 길을 제시한다. 객관주의와 합리주의에 매몰된 채 정확하게 분석·예측하고 그것에 의지해 살아가는, 가장 현실적이지만 현실적이지 못한 현대인의 모습을 끄집어내 지적한다. 상품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세계 속에서 예술작품이 차지하는 위치 등을 통해 인류 문화가 당장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무엇, 즉 유령과 항상 관계를 유지하려 노력해 왔음을 설명한다. 아베로의 철학과 보들레르의 시, 단테의 시와 소쉬르의 기호학 이론, 중세 의학 이론과 라캉의 정신분석을 함께 도마에 올리기도 한다. 336쪽. 1만 7900원. 중국의 장사꾼들(양훙젠 지음, 정세경 옮김, 카시오페아 펴냄) 지난해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미국 다음으로 높았고 경제성장률은 7%대를 유지하고 있다. 20년 후 중국의 GDP가 미국을 앞질러 가장 강력한 경제대국이 될 것이란 예측도 있다. 중국의 눈부신 성장 배후에는 ‘동양의 유대인’이라 불리는 중국 장사꾼들이 있다. 책은 중국 본토와 세계 각지에서 엄청난 생명력과 경쟁력을 과시하는 중국 상인들의 기업 스토리를 공개한다. 어떻게 성공 기회를 잡고 투자했으며 위기를 넘겼는지, 어떤 전략으로 상권을 개척하고 시장을 점령했는지를 상세히 보여 준다. 그 ‘장사불변’의 법칙은 신용, 기회, 행동, 예상, 협력, 처세, 투자, 전략, 연마, 관리의 10가지로 압축된다. 중국 최대의 부자 리자청을 비롯해 샤오미, 알리바바를 제치고 중국 기업 브랜드 가치 1위를 차지한 QQ 메신저의 텐센트, 유럽 최대 화교기업 천씨 형제 회사의 천커웨이 등 50명이 넘는 중국 기업인들의 스토리가 흥미롭다. 440쪽. 1만 7000원. 박진영의 공룡 열전(박진영 지음, 뿌리와이파리 펴냄) 한반도에서 최초로 중생대 최대 ‘거대 도마뱀’ 화석을 보고한 고생물학자가 쓴 공룡 입문서. ‘쥬라기 공원’이후 22년 만에 개봉된 영화 ‘쥬라기 월드’에서도 보여 주지 못한 ‘진짜 공룡’의 세계를 그려 냈다. 티라노사우루스, 트리케라톱스, 브라키오사우루스, 이구아노돈, 데이노니쿠스, 스테고사우루스는 중생대 공룡의 각 분류군을 대표하는 스타 공룡들. 이 공룡들이 어떻게 생겨 자랐고 살았는지에 관한 연구 결과를 예리하게 분석했다. 티라노사우루스는 콧구멍도 후빌 수 없는 짧은 앞다리를 어디에 썼는지, 브라키오사우루스는 어떻게 세상에서 가장 긴 18m짜리 신경세포를 갖게 됐는지, 데이노니쿠스는 섬뜩한 갈고리 발톱을 어떻게 썼을지에 대한 궁금증이 풀린다. 20년간 이어진 티라노사우루스의 ‘시체청소부’ 대 ‘난폭한 사냥꾼’ 논쟁처럼 공룡 연구의 굵은 획을 그은 가설, 논쟁도 빼놓을 수 없는 읽을 거리들이다. 328쪽. 1만 8000원. 삶의 기술 사전(안드레아스 브레너·외르크 치르파스 지음, 김희상 옮김, 문학동네 펴냄) ‘삶을 음미하고 사유하라.’ 삶의 기술을 연구해 온 두 철학자가 인간의 일상과 감정을 철학 프리즘을 통해 들여다봤다. 60개에 이르는 삶의 상황과 감정들을 화두로 던져 그 정체와 숨은 면모를 차근차근 파헤진다. 철학이란 꼬인 일상의 실타래를 풀기 위한 나날의 사유라는 관점의 이야기들이 신선하다. 돈에 대해 ‘처분을 할 때에만 쓸 수 있는 물건’이라 일갈했던 칸트처럼 돈과 시간의 개념 뒤집어 보기가 대표적인 사례다. 돈을 벌고 쓰는 과정에서 시간은 자연스레 소멸하기 마련이며 아끼고 불리려는 욕망이 궁극적으로 그것을 잃게 만드는 딜레마에 빠진다고 역설한다. 568쪽. 1만 7500원.
  • 시한부 역사가가 돌아본 20세기 인류

    시한부 역사가가 돌아본 20세기 인류

    20세기를 생각한다/토니 주트· 티머시 스나이더 지음/조행복 옮김/열린책들/520쪽/2만 5000원 ‘20세기의 문제적 논객’이었던 말년의 역사학자는 스스로 ‘가석방 없이 진행되는 감금’, ‘한 주가 지날 때마다 6인치씩 면적이 줄어드는 감방’에서 살고 있다고 자신의 삶을 표현했다. 일종의 운동 신경세포 장애인 루게릭병을 앓고 있던 탓이었다. 근육들이 거의 마비 상태로 점점 쇠퇴했다. 겨우 대화를 나눌 수 있을 따름이었다. 병의 와중에 그는 자신보다 21살 어린 젊은 역사학자 티머시 스나이더 미 예일대 역사학과 교수를 만난다. 그리고 숨지기 얼마 전까지 20세기 인류 사회에 대한 자신의 사유를 구술하고 대화했다. 이미 ‘포스트워’, ‘기억의 집’, ‘재평가-잃어버린 20세기에 대한 성찰’ 등 역저들을 남겼던 토니 주트(1948~2010)의 마지막 유작 ‘20세기를 생각하다’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그가 평생에 걸쳐 천착하다시피 한 20세기는 흘러가 버린 과거로만 치부되기 십상이다. 새로운 세기는 이미 15년 전에 시작됐다. 하지만 20세기가 남긴 유산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는 게 분명하다면 엄정한 평가와 성찰은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소중한 과제가 돼야 한다. 역사가이자 철학자인 토니 주트는 이 지점에서 지성인으로서 치열함을 불태웠고, 기성의 가치와 싸움닭처럼 논쟁했다. 20세기는 인류의 새로운 사회체제에 대해 벌어진 거대한 실험의 처음과 마지막을 고스란히 목도한 세기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있었고, 1989년 공산주의 체제가 종언을 고했다. 이를 축으로 경제, 정치, 문화, 사회, 종교적 질서에 대한 새로운 입장이 정립되고 국가와 지역, 계급·계층 등에서 각자의 차이가 벌어졌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많은 비극을 낳았지만, 이 모든 지구 질서를 새롭게 재편하기 위해 중간에 벌어진 확인 과정이었다. 불안과 혼돈, 새로운 건설의 희망이 지역과 시기를 엇갈려 가며 계승하고 교차하고 공존했던 20세기였다. 그는 유대인, 영국인, 프랑스인, 미국인 사이의 경계인이었다. 반전체주의자였고 이성과 지성의 절대신봉자였으며 사회민주주의자였다. 그에 따르면 ‘악의 평범성’을 주창한 한나 아렌트는 동유럽 유대인의 고초 책임을 그들에게 돌리고 말았고, 사르트르는 공산주의 좌파에 대한 논의를 거부하고 말았다. 브레히트의 명시 ‘후손들에게’는 ‘악한 대의(공산주의)를 믿는 신자들을 격려한다는 이유로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치부됐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이광식의 천문학+] 우주는 왜 붕괴되거나 찢어지지 않는가? -벤틀리의 역설

    [이광식의 천문학+] 우주는 왜 붕괴되거나 찢어지지 않는가? -벤틀리의 역설

    만유인력의 법칙을 밝힌 뉴턴의 '프린키피아'는 1687년에 출간되었다. “나는 이제 세계의 기본 얼개를 선보이겠다”는 뉴턴의 자랑스런 선언을 담고 있는 이 책은 뉴턴 물리학을 집대성 것이었다. '프린키피아'에서 뉴턴은 행성의 운동을 비롯하여, 조석의 움직임, 진자의 흔들림, 사과의 낙하 같은 다양한 현상들을 단일한 원리로 통일하고, 다시 그것을 수학적으로 완벽하게 제시했다. 신과 같은 이 놀라운 솜씨는 마침내 지상의 물리학과 천상의 물리학을 하나로 통합했던 것이다. 이것은 일찍이 갈릴레오가 그토록 이루기를 갈망했으나 끝내 성공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뉴턴 이전에는 땅의 세계와 하늘의 세계가 엄격히 구분돼 있었다. 땅의 세계는 불완전한 사멸과 변화의 세계고, 천상의 세계는 비물질적이며 완전하고 불변하는 신의 세계였다. 그러나 뉴턴으로 인해 우주에서 비물질적이고 관념적인 것들은 모두 제거되고 하나의 법칙으로 통합되었으며, 인류는 문명사 6000 년 만에 비로소 우주를 이성적으로 사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 뉴턴이 찾아낸 만유인력의 법칙은 한마디로 우주 안의 모든 것들이 하나의 법칙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며, 그것을 문장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모든 물체는 각기 질량의 힘으로 서로 끌어당긴다. 이 힘은 두 물체의 질량의 곱에 비례하며, 두 물체 사이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 이를 수식으로 나타내면 허망할 정도로 단순하다. F = G m1 m2/r^2(F는 인력, G는 만유인력 상수, m1, m2'는 두 물체의 질량, r은 두 물체 사이의 거리) 이 간단한 방정식 하나로 우주 안의 만물은 서로 감응한다. ‘나’라는 존재도 온 우주의 만물과 서로 중력을 미치며, 사과 한 알이 떨어져도 온 우주가 감응한다는 뜻이다. 뉴턴 역학이 전하는 복음은 분명했다. 한마디로, 이 세계는 모두 우주 역학의 결과이며, 모든 천체들이 고유한 중량과 그것들의 운행에서 나오는 힘들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행성운동은 말할 것도 없고, 우주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은 원자들의 상호관계에서 일어나는 역학의 결과이다. 그러므로 이 세계 안에 우연이란 것은 없다. 말하자면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는 '결정론적 우주관'이다. 이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프린키피아'는 출간되자마자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그중에는 ‘우주는 유한한가, 무한한가’라는 유서 깊은 논쟁도 있었다. 예리한 논리로 ‘우주는 태어난 지 오래지 않다’라고 추론했던 고대 로마의 철학자 루크레티우스(BC 96년경 ~ BC 55)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사려깊은 결론을 내린 바 있다. “우주는 모든 방향으로 무한히 뻗어 있다. 만일 우주에 끝이 있다면 그 끝을 이루는 경계가 있어야 하고, 이는 곧 우주의 바깥에 또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 그런데 우주를 이루는 모든 차원들은 아무런 방향성도 없고, 그 바깥에 무언가 존재한다는 것도 확인된 바 없으므로 우주는 끝이 없어야 한다.” 뉴턴의 중력 이론은 우주가 유한하든 무한하든 모순을 피할 수 없게 된다. 리처드 벤틀리라는 한 성직자가 뉴턴에게 편지를 보내 이 점을 지적했다. "중력이라는 것이 작용거리가 무한하고 한 방향으로만 작용하는 힘이라고 할 때, 만약 우주가 무한하다면 별들은 각기 임의의 물체를 중력으로 잡아당길 것이고, 그렇다면 우주는 각자의 방향으로 찢어져 혼돈에 찬 종말을 맞이할 것입니다. 만약 우주가 유한하다면 별들은 서로의 중력에 의해 끌어당길 것이고, 우주는 결국 하나의 점으로 붕괴되어 충돌하는 처참한 종말을 맞이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중력이론을 우주에 적용할 때 나타나는 역설적인 결과를 최초로 지적한 ‘벤틀리의 역설’로, 올베르스의 역설과 함께 천문학 역사상 유명한 역설에 속한다. 뉴턴 역시 중력 이론의 모순을 알고 있었다. 심사숙고 끝에 내놓은 뉴턴의 대책은 이런 것이었다. “우주공간에 떠 있는 하나의 별이 무한히 많은 다른 별들에 의해 당겨지고 있다면, 오른쪽으로 끌어당기는 힘과 왼쪽으로 끌어당기는 힘이 서로 상쇄될 것이다. 모든 별들이 이런 식으로 균형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정적인 우주가 유지된다. 그러려면 우주는 무한하며 균일해야 한다.” 그러나 이 정적인 균형은 위태로운 것이다. 별 하나만 요동쳐도 일시에 균형이 와해되어 파국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해법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것을 안 뉴턴은 이런 대형사고를 피하기 위해 신의 자비를 구하며 다음과 같이 편지를 마무리했다. “태양과 항성들의 중력에 의해 한 점으로 붕괴되지 않으려면 주기에 따라 태엽시계에 시간을 돌려서 맞추듯이 우주의 시계에도 전지전능한 신의 도움이 가끔씩은 필요할 것입니다.” 지금에서 보면 황당한 얘기처럼 들릴 수도 있는 말이지만, '프린키피아' 자체를 인간에게 신의 길을 가르치기 위한 노작으로 보는 뉴턴으로서는 무난한 결론이기도 할 것이다. 오히려 과학이란 단지 물리적 우주를 이해하려는 시도일 뿐이라는 현대의 견해를 뉴턴이 듣는다면 크게 놀랄 것이 틀림없으니까. 어쨌든 뉴턴은 이 만유인력의 발견으로 모든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천재, 마호메트와 예수 다음으로 인류 역사를 바꾼 인물로 평가받는 과학자가 되었으며, 인류는 뉴턴 역학으로 인해 우주에 대해 깊은 이해에 도달할 수 있는 열쇠를 갖게 된 것이다. 지금도 지구 궤도를 돌고 있는 수많은 인공위성들의 궤도 계산이나 로켓 발사, 그리고 우주 탐사선의 우주 여행 등이 모두 300여 년 전에 확립된 뉴턴의 이론적 모델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뉴턴의 공적이 얼마나 큰 것인지 알 수 있다. 이러한 이유 등으로 사람들은 뉴턴을 가리켜 ‘신의 마음에 가장 가까이 간 사람’이라 평하기도 한다. 자, 이제 '벤틀리의 역설'의 정답을 말해보자. 정답은 첫째, 은하 내의 별들이 중력을 거슬러 서로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은 은하 중심을 공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행성들이 공전함으로써 태양과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둘째, 은하들이 한 점으로 붕괴되지 않는 것은 '빅뱅 우주론'에 의한 우주팽창 때문이다. 여기에는 물론 암흑 에너지도 한몫한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우주는 결코 뉴턴 생각처럼 정적이 아니며, 인력에 반하는 팽창력이 척력으로 작용함으로써, 은하나 별들이 한 점으로 붕괴되거나 찢어지는 일 없이 지금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천하의 천재인 뉴턴도 상상하지 못한 일일 것이다. 우주란 얼마나 오묘한가! 이광식 통신원 joand999@naver.com 
  • [서울대 지망생의 책장-읽어라, 청춘] 장하석 ‘과학, 철학을 만나다’

    [서울대 지망생의 책장-읽어라, 청춘] 장하석 ‘과학, 철학을 만나다’

    극심한 취업난과 기업의 이공계 선호로 문과보다 이과를 선택하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수학이나 과학에 그다지 흥미가 없는 학생들조차 취업이 더 잘된다는 이유만으로 이과를 선호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대기업들이 신입 사원을 뽑을 때 전형적인 스펙보다는 인문학적인 소양을 더 중시한다니 사회 전체가 인문학 인재 열풍에 들썩이고 있다. 기업이 선호하는 인재상은 인문학도와 공학도를 융합한 것이다. 학생들은 이제 국문과에 지원하려 해도 수학과 과학을 잘해야 하고 컴퓨터학과에 가서도 인문 고전을 읽어야 한다.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인문학 관련 책과 강의가 인기를 끌고 있다. 대부분 고전을 요약, 발췌했거나 인문학이 왜 중요한지 원론적 이야기를 하는 것들이다. 조금이라도 지적으로 보이고 싶으면 이런 책이라도 읽어 무식함을 티 내지 않아야 한다. 기업 대표들조차 인문학 강좌 프로그램을 이수했음을 자랑으로 여긴다. 정부에서도 인문학을 살리기 위해 엄청난 돈을 쏟아부을 계획이라고 한다. 얼핏 보면 이런 사회적 분위기는 반겨야 할 것 같지만 사실은 성급한 성과주의의 연장에서 멀리 벗어난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이러한 사회 흐름이 대세인 가운데 경제적 가치에 기반을 둔 기술적 응용만 생각하면 순수과학이 지니는 문화적 가치를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과학철학자 장하석의 주장은 시사하는 바가 커 보인다. 미국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칼텍)에서 물리학과 철학 공부, 스탠퍼드에서 철학 박사 학위 취득, 28세의 나이로 영국 런던대 교수 임용, 케임브리지 과학철학부 석좌교수 등의 화려한 이력이 주는 후광 효과만으로도 그의 말은 다 설득적일 텐데 과학을 인간적이라 말하며 어려운 과학 공부는 가라고 하니 들어 보지 않을 수가 없다. ‘장하석의 과학, 철학을 만나다’의 시작은 교육방송(EBS)의 특별기획 프로그램에서부터였다. 방송을 보며 고교 시절이 떠올랐다. 화학 시험을 볼 때 주기율표를 외워 시험지를 받자마자 시험지 여백에 그려 놓고 문제를 풀었다. 그것만 외우고 있으면 많은 문제를 풀 수 있었기 때문이다. 화학에 관한 탐구는 전혀 없는 암기력 테스트였다는 생각이 든다. 방영된 12강 모두가 책으로 출판됐다. 다시보기로 강의를 보며 책을 읽었다. 책의 내용이 훨씬 충실하지만 실험 부분은 방송을 직접 보는 것이 이해가 더 잘 됐다. 이 책은 과학 지식과 과학 탐구가 갖는 문화적 의미와 중요성에 대해 설명하는 내용으로 서문과 3부로 구성돼 있다. 1부(1~6장)에서는 철학의 인식론적 관점에서 과학이 어떻게 지식을 얻어 내는가에 대한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진다. 일반적으로 과학 지식이 어떤 한계를 지니고 있고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극복해 나가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과학철학계의 거장들이 주장했던 여러 아이디어를 소개한다. 과학이란 무엇인가, 과학 지식의 기반이 되는 관측을 믿을 수 있는가, 이 관측을 가지고 이론을 증명할 수 있는가, 과학 지식은 축적되는가, 혁명적으로 개편되는가, 과학적 진리란 무엇이며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인가, 과학은 어떤 의미에서 진보하는 것인가 등을 다룬다. 현대 과학은 개념의 수량화에 의존하므로 측정이 중요하다. 측정을 위해서는 기준이 필요한데 최초의 기준을 정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온도, 길이, 질량, 시간 등 기본 물리량 외에도 측정의 기준을 잡는 일은 난해한 작업이다. 그래도 측정 기준은 필요하므로 단순하고 간편한 체계를 기반으로 탐구를 시작하고 탐구 결과를 기반으로 다시 기준 자체를 수정하고 개선해 나간다. 장하석은 처음에 믿고 시작한 전제들을 유지·반복하지 않고 매 단계별로 재검토하고 지식을 쌓고 개선하는 과정을 되풀이하는 것을 ‘인식적 반복’이라 정의했다. 과학은 이런 과정을 통해 발달한다. 2부(7~10장)에서는 과학사의 일화를 자세히 소개해 과학 연구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한다. 과학 연구의 구체적 모습을 이론적·실험적·역사적·철학적 관점에서 소개함으로써 과학의 실천에 대한 감각을 키울 수 있도록 격려한다. 산소는 어떻게 발견했으며 왜 산소라 부르는가, 물은 늘 섭씨 100도에서 끓는가, 일상에서 많이 쓰고 있는 건전지는 어떻게 발명했으며 거기에서 전기는 어떻게 생기는가를 설명한다. 비교적 이해가 쉽고 직접 실험해 볼 수 있는 수준에서 과학사의 일화들을 고르다 보니 18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중반까지의 사건들로 모아졌다. 라부아지에에서 월라스턴에 이르기까지 이 시기 과학자들의 배경은 다양했다. 귀족 출신에서 노동자의 아들까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 엘리트 교육을 받은 사람도 있었고 평생 학교 근처에도 못 간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에겐 그저 순수한 호기심으로 과학적 탐구에 몰두했다는 공통분모가 있었다. 과학 발전에 기여해서 유명해지겠다는 야심이나 돈을 많이 벌겠다는 욕망은 없이 그들이 법학자였든 사업가였든 독자적 연구에 몰두했다. 우리가 그동안 받았던 과학 교육은 ‘누가, 무엇을’에 집중됐을 뿐 ‘어떻게, 왜’는 없었다. 저자는 교과서가 가르치는 정답에만 골몰하지 말고 과학자들이 탐구했던 길을 따라가며 의문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우리 나름의 생각도 커질 것을 기대한다. 이런 기대는 자신이 그러한 길을 갔던 경험을 통해 과학에서 철학적 깨달음을 얻고 실천하는 과정이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충분히 느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이다. 3부(11장과 12장)에서는 과학철학이 과학을 어떻게 하면 더 잘하게 하고 더 효과적으로 지원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로 전체 강의를 종합하는 성격을 띤다. 과학 지식을 창조하는 과정과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교육 이야기, 과학에서 다원주의가 필요한지, 유용한지에 대한 논의를 펼치며 자신의 철학 핵심을 설명한다. 저자는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에는 특별한 길이 없지만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 내는 창의성은 ‘정상 과학의 퍼즐 풀기를 열심히 하다 위기에 처하면 필요에 의해 생긴다’는 쿤의 주장을 빌려 설명한다. 우리 교육 현실에서 학생들이 자신의 문제에 직접 부딪칠 기회를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고 일침을 놓기도 한다. 창의력이 있는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다원주의를 실행하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그는 과학에서의 다원주의를 과학의 한 분야에서 가능한 여러 실천 체계를 발달시키고 유지하는 것이 좋다는 입장이라고 정의한다. 다원주의 과학의 지식 체계는 가능하면 한 분야 내에서도 여러 가지를 발달시키고 유지하는 것이 과학의 여러 목적(그 목적이 무엇이 됐든)을 달성하는 데 유리하다. 몇 가지 체계를 동시에 유지하면서 얻을 수 있는 관용과 상호작용의 이점을 추구함으로써 인간의 창의성을 최대로 발휘하고 자연의 가르침을 최대로 받을 수 있다. 다원주의는 과학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이루어져야 하고 많은 이들이 생각하지 않았던 질문을 던지는 철학은 다원주의를 이루는 데 유용하다고 결론을 맺는다. 사상·문화 등을 중심으로 인간의 가치와 관련된 제반 문제를 연구 영역으로 삼는 것이 인문학이라면 첨단 과학기술 시대를 사는 현대인에게 과학의 실천적 차원을 인식하고 즐기도록 하려는 시도 또한 인문학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다. 지식과 정보를 나눌 수 있는 영역이 사물 간 통신(IoT)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이렇게 급변하는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해 개인과 사회를 이롭게 하는 데 과학의 탐구 정신은 쓸모가 많다. 세상살이가 문과 이과로 나누어지지 않듯 어떻게 하면 더 인간답게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데 인문학과 과학의 구분은 쓸데없다. 하지만 ‘장하석의 과학, 철학을 만나다’는 오늘날 인문학의 영역 확장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는 점에서 소용이 닿는다. 최영주 한우리독서토론논술 책임연구원 ●‘읽어라 청춘’은 격주로 게재됩니다.
  • 살릴水도 죽이氣도

    살릴水도 죽이氣도

    물/베로니카 스트랭 지음/하윤숙 옮김/반니/292쪽/1만 5000원 공기/피터 애디 지음/임지원 옮김/반니/328쪽/1만 5000원 기원전 5세기경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정치가, 시인, 의학자였던 엠페도클레스는 이 세상이 공기, 물, 불, 흙의 4대 원소로 이뤄졌으며 이 물질들의 사랑과 다툼 속에서 세상 만물이 생겨났다고 주장했다. 지구와 인류의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요소들이지만 수시로 인류를 위험에 빠지게 하는 요인으로 둔갑할 수 있음을 꿰뚫어 본 셈이다. 꺾일 줄 모르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전국을 타들어가게 하는 극심한 가뭄은 공기와 물의 위협적인 측면을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다. 신간 ‘공기-신비롭고 위험한’과 ‘물-생명의 근원, 권력의 상징’은 공기와 물의 실체를 과학이론은 물론 지리, 역사, 문화, 예술 등 다각적인 방식으로 탐구한다. 책은 특히 공기와 물을 장악하려 했던 인간의 욕망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 두 가지 기본적인 자원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지구적 고민을 촉구한다. 공기는 눈에 보이지도 않고 실체가 잡히지도 않는다. 하지만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를 존재하고 유지하게 하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이런 공기의 수수께끼 같은 특성은 오래전부터 인류의 호기심을 자극해 왔고, 공기를 이해하고 탐구하고 응용하고 장악하려 했던 수많은 시도들을 낳았다. 질소 78%, 산소 21%, 아르곤 0.96%와 기타 기체나 원소 0.04%로 이루어진 공기는 휘발성, 유동성, 압축성, 전도성 등 놀라운 특성을 갖는다. 영국지리학자협회와 왕립지리학회의 사회·문화 지리학연구 의장을 맡고 있는 피터 애디 런던대 교수는 그것이 훌륭한 메타포가 되어 인류의 과학과 사회, 예술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본다. 공기를 인류문명의 동반자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는 저자는 “공기는 단순히 놀라운 물질이나 흥미로운 자연현상, 혹은 기술적 성취로 보지 않고 항상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며 지탱하게 해 주는 존재”로 바라본다. 책은 고대부터 20세기까지 다양한 시대, 장소, 배경을 무대로 공기의 발견, 연구, 이용, 표현에 관해 탐구해 온 개척자들의 발자취를 더듬어간다. 공기는 자연철학, 의학, 철학, 화학, 물리 연구에 불을 지피고 산업혁명과 프랑스 혁명의 촉발제가 된다. 19세기 산업화·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도시의 공기가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다. 공기를 통해 질병이나 전염병이 퍼져나가는 현상을 설명해 주는 ‘독기이론’이 등장하고 사람들은 건강과 치료에 도움이 되는 공기의 순기능에 대해서 알기 시작하면서 신선한 공기에 대한 열망도 높아졌다. 자본주의 발달과 함께 공기는 욕망의 대상이 된다. 물질을 운반하고 어디든 이동할 수 있는 공기의 성질은 돌이킬 수 없는 최악의 무기를 낳았다. 방사능의 발견과 핵무기의 발명이다. 방사능 낙진에 의한 오염은 복잡하고 불확실하고 비선형적이며 우리가 숨쉬는 대기를 무기로 탈바꿈시킨다. 심각한 수준의 미세먼지와 호흡기 전염병은 인류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더램대학의 베로니카 스트랭 교수가 쓴 ‘물’은 물과 인간의 관계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탐구한다. 고대로부터 인간은 다양한 문화적 잣대로 물을 숭배했다. 물을 다스리는 치수는 정치권력에 필수적이었다. 물을 차지하기 위해 수많은 전쟁을 치렀다. 농경사회가 시작되면서 인간은 물을 좀 더 주도적으로 사용하게 됐지만 인구팽창은 사회와 정치조직에 영향을 미쳤고 권력관계에도 불균형을 가져왔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 물의 흐름을 바꿨고 이는 재앙으로 돌아왔다. 지금도 한쪽에서는 엄청난 물을 가둬놓고 있지만 10억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안정적인 식수공급을 받지 못하고 수질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이제 인류는 어떤 물도 마음 놓고 마실 수 없는 상황이다. 자연 속에서 흐르던 물은 사라졌고 댐에 갇혀 썩어가는 물에 인류는 역공을 받고 있다. 모든 물이 모이는 바다조차도 기후변화와 오염의 압박을 받고 있다. 물은 인류와 지구상의 모든 유기체 사이를 흐르며 이어주는 연결고리다. 그러나 인간 사회와 생태계를 거치면서 지구 곳곳을 돌아다니는 물의 흐름은 무질서해졌다. 이는 곳곳에서 나타나는 엄청난 쓰나미, 지진, 가뭄 등의 자연재해로 엿볼 수 있다. 저자는 “사회는 물이 정말 무엇인지, 무엇을 의미하는지, 왜 중요한지를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면서 “실용주의적인 환원주의를 버리고 물을 시간과 기억과 운동과 흐름으로 인식하는 태도를 지녀야 한다”고 제안한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문화 유랑기] 퇴계 이황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묘비명‘

    [문화 유랑기] 퇴계 이황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묘비명‘

    '세상에 건네는 마지막 인사'라는 묘비명. 내가 본 묘비명 중에서 가장 위트가 넘치는 것 중 하나는 영국 작가 버너드 쇼의 묘비명이다. 아시다시피, “어영부영하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니까” 라는 묘비명. 노벨 문학상을 받은 문호요, 100살 가까이 천수를 누린 이가 이런 말을 했다니, 나 같은 필부로서는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 경지다. “일어나지 못해 미안하네”라는 헤밍웨이의 묘비명이나, “에이, 괜히 왔다”는 중광 스님의 묘비명도 재미있지만, 멋스럽기로는 영국 시인 예이츠의 묘비명이 인상적이다. "Cast a cold Eye On Life, on Death. Horseman, pass by.(삶과 죽음에 차가운 눈길을 던져라. 말 탄 이여, 지나가라)" 시인은 이처럼 아름답고 멋스런 표현을 좋아하지만, 나는 싱거부리한 산문투로 이렇게 풀이한다. -내 무덤에 넋 놓지 말고 담담히 보시게나. 자네 삶도 담담히 보고. 여기서 그만 얼쩡거리고 어여 가서 자네 일이나 보시게나. 철학자 칸트(1724~1804)의 묘비명도 음미할 만하다. 놀라운 직관과 예지로 그 시대의 어느 누구보다 우주의 진면목에 다가갔던 당대 최고의 우주론자이자 대철학자인 칸트의 묘비명은 우주와 인간을 아우르는 아름다운 내용으로, 다음과 같다. “생각하면 할수록 내 마음을 늘 새로운 놀라움과 경외심으로 가득 채우는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내 위에 있는 별이 빛나는 하늘이요, 다른 하나는 내 속에 있는 도덕률이다.” 하지만 이 모든 묘비명을 압도하는 것을 우연찮은 기회에 만나게 되었으니, 바로 조선의 유학자 퇴계 이황의 묘비명이다. 퇴계의 기록물을 찾아서 읽던 중 발견하게 된 것인데, ‘자작’ 묘비명이라는 점이 눈길을 끌어 찬찬히 보게 되었다. 퇴계가 자신의 묘비명을 스스로 짓게 된 것은 자신이 죽은 후 제자나 지인이 쓸 경우, 꾸미고 과장되이 지어 남세스러움을 살까 저어한 때문이다. 묘비명은 대철학자답게 자신의 생애를 4언 24구, 96자로 압축한 것으로, '조그만' 돌에다 새기게 했다. 生而大癡 壯而多疾 中何嗜學 晩何叨爵 學求愈邈 爵辭愈嬰 進行之跲 退藏之貞 深慚國恩 亶畏聖言 有山嶷嶷 有水源源 婆娑初服 脫略衆訕 我懷伊阻 我佩誰玩 我思古人 實獲我心 寧知來世 不獲今兮 憂中有樂 樂中有憂 乘化歸盡 復何求兮 나의 짧은 한문 실력으로 완벽한 해석을 한다는 것은 애시당초 불가능한 노릇이라, 여러 사람의 풀이를 참고하고 나름대로 꿰어맞춰 보았지만, 몇몇 구는 끝내 만족할 만한 풀이를 얻지 못해, 혹 오자가 아닐까 싶어 몇 해 전 남행길에 안동 도산서원에도 들를 겸 안동까지 퇴계묘를 찾아 확인해보기도 했다. 특히 저 넷째 줄 '아회이조 아패수완(我懷伊阻 我佩誰玩)'이란 문구는 도저히 해석이 안되는 대목이었다. 문자 그대로 풀이하자면, 내 회포 여기서 막히니 내 패옥을 누가 즐겨하리' 정도이지만, 이걸로는 앞뒤 문장이 잘 연결되질 않는다. 그래서 고심하며 여기저기 전공자들의 자료들을 뒤적여봤지만, 저 부분이 전혀 생경하게 따로 노는 해석뿐이었다. 예컨대, '나의 회포 여기서 막히니 나의 패옥을 누가 만져주리'라든가, '나의 품은 뜻 이로써 막힘에, 나의 패물은 누가 완상해줄까', 또는 '내 생각 제 모르니 내 즐김 뉘 즐길까 등등의 풀이다. 어느 것이나 앞뒤 문장의 뜻이 잘 연결되지 않는 것은 매일반이다. 나는 이 퇴계 묘비명 원문을 복사해 꼬깃꼬깃 접어서는 지갑 속에다 갈무리해 다녔다. 어디서건 한문 고수를 만나면 꺼내놓고 물어볼 요량이었다. 하지만 그런 고수를 만난다는 것도 쉽지 않은 노릇이라, 종이는 몇 년째 세월과 함께 내 지갑 속에서 나달나달 해어져갈 뿐이었는데, 어느 날 우연히 그 문장을 다시 꺼내 읽어보니, 비로소 딱 짚히는 바가 있었다. 아, '아회이조'는 퇴계가 가정법을 쓴 것이로구나! 그렇다면 이렇게 풀이되는 문장 아닌가. '내 품은 생각 여기서 막힌다면, 누가 내 패옥(학문)을 즐겨하리.' 아직은 자신의 학문이 미완이라는 뜻이 된다. 이렇게 하면 앞뒤 문장의 맥이 그대로 이어지지 않는가. 그래서 위 묘비명을 모두 풀이해보면 대략 다음과 같이 된다. 편의에 따라 단락을 나누었다. 나면서 크게 어리석었고 자라서는 병이 많았다. 중년에 학문을 좋아하게 되었고 느지막에 벼슬길에 들었네. 학문은 갈수록 멀어지고 벼슬은 마다해도 자꾸 내려지네. 나아가기가 어려우매 물러나 은거하기로 뜻을 굳혔네. 나라의 은혜 생각하면 심히 부끄러우나 진실로 성현의 말씀이 두려웠네. 산 높디높고 물 쉼 없이 흐르는 곳. 벼슬을 벗어던지고 돌아오니 뭇 비방이 사라졌구나. 내 품은 생각 여기서 그친다면 누가 내 패옥을 즐겨하리오. 내가 고인을 생각하매, 고인이 먼저 내 마음을 얻었으니, 오는 세상에서 어찌 오늘의 내 마음을 모른다 하리. 근심 속에 낙이 있었고, 즐거움 속에 근심이 있었네.조화를 좇아 사라짐이여, 다시 무엇을 구하리오. 대철학자 퇴계가 도달한 경지를 일개 필부가 헤아리기는 어려운 노릇이지만, 퇴계 묘비명의 마지막 구절은 두고두고 여운을 남기는 명문이라 하겠다. 조화를 좇아 사라짐이여, 다시 무엇을 구하리오. 안심입명의 경지다. 이보다 더 아름다운 종결미를 보여주는 묘비명이 다시 있을까. 퇴계는 임종 직전 일어나 기대앉아 자리를 정리하게 하고, 마지막으로 자신이 평생을 두고 사랑하던 매화를 보며 "매화분에 물을 주라" 하고는 앉은 채 숨을 거두었다 한다. 저물녘이었고, 어둑신한 하늘에서는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1570년 12월 8일, 향년 70세. 임진란이 일어나기 22년 전이었다. 이광식 통신원 joand999@naver.com  ​
  • [문화 유랑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묘비명 -퇴계 이황의 ‘자작 묘비명’

    [문화 유랑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묘비명 -퇴계 이황의 ‘자작 묘비명’

    '세상에 건네는 마지막 인사'라는 묘비명. 내가 본 묘비명 중에서 가장 위트가 넘치는 것 중 하나는 영국 작가 버너드 쇼의 묘비명이다. 아시다시피, “어영부영하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니까” 라는 묘비명. 노벨 문학상을 받은 문호요, 100살 가까이 천수를 누린 이가 이런 말을 했다니, 나 같은 필부로서는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 경지다. “일어나지 못해 미안하네”라는 헤밍웨이의 묘비명이나, “에이, 괜히 왔다”는 중광 스님의 묘비명도 재미있지만, 멋스럽기로는 영국 시인 예이츠의 묘비명이 인상적이다. "Cast a cold Eye On Life, on Death. Horseman, pass by.(삶과 죽음에 차가운 눈길을 던져라. 말 탄 이여, 지나가라)" 시인은 이처럼 아름답고 멋스런 표현을 좋아하지만, 나는 싱거부리한 산문투로 이렇게 풀이한다. -내 무덤에 넋 놓지 말고 담담히 보시게나. 자네 삶도 담담히 보고. 여기서 그만 얼쩡거리고 어여 가서 자네 일이나 보시게나. 철학자 칸트(1724~1804)의 묘비명도 음미할 만하다. 놀라운 직관과 예지로 그 시대의 어느 누구보다 우주의 진면목에 다가갔던 당대 최고의 우주론자이자 대철학자인 칸트의 묘비명은 우주와 인간을 아우르는 아름다운 내용으로, 다음과 같다. “생각하면 할수록 내 마음을 늘 새로운 놀라움과 경외심으로 가득 채우는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내 위에 있는 별이 빛나는 하늘이요, 다른 하나는 내 속에 있는 도덕률이다.” 하지만 이 모든 묘비명을 압도하는 것을 우연찮은 기회에 만나게 되었으니, 바로 조선의 유학자 퇴계 이황의 묘비명이다. 퇴계의 기록물을 찾아서 읽던 중 발견하게 된 것인데, ‘자작’ 묘비명이라는 점이 눈길을 끌어 찬찬히 보게 되었다. 퇴계가 자신의 묘비명을 스스로 짓게 된 것은 자신이 죽은 후 제자나 지인이 쓸 경우, 꾸미고 과장되이 지어 남세스러움을 살까 저어한 때문이다. 묘비명은 대철학자답게 자신의 생애를 4언 24구, 96자로 압축한 것으로, '조그만' 돌에다 새기게 했다. 生而大癡 壯而多疾 中何嗜學 晩何叨爵 學求愈邈 爵辭愈嬰 進行之跲 退藏之貞 深慚國恩 亶畏聖言 有山嶷嶷 有水源源 婆娑初服 脫略衆訕 我懷伊阻 我佩誰玩 我思古人 實獲我心 寧知來世 不獲今兮 憂中有樂 樂中有憂 乘化歸盡 復何求兮 나의 짧은 한문 실력으로 완벽한 해석을 한다는 것은 애시당초 불가능한 노릇이라, 여러 사람의 풀이를 참고하고 나름대로 꿰어맞춰 보았지만, 몇몇 구는 끝내 만족할 만한 풀이를 얻지 못해, 혹 오자가 아닐까 싶어 몇 해 전 남행길에 안동 도산서원에도 들를 겸 안동까지 퇴계묘를 찾아 확인해보기도 했다. 특히 저 넷째 줄 '아회이조 아패수완(我懷伊阻 我佩誰玩)'이란 문구는 도저히 해석이 안되는 대목이었다. 문자 그대로 풀이하자면, 내 회포 여기서 막히니 내 패옥을 누가 즐겨하리' 정도이지만, 이걸로는 앞뒤 문장이 잘 연결되질 않는다. 그래서 고심하며 여기저기 전공자들의 자료들을 뒤적여봤지만, 저 부분이 전혀 생경하게 따로 노는 해석뿐이었다. 예컨대, '나의 회포 여기서 막히니 나의 패옥을 누가 만져주리'라든가, '나의 품은 뜻 이로써 막힘에, 나의 패물은 누가 완상해줄까', 또는 '내 생각 제 모르니 내 즐김 뉘 즐길까 등등의 풀이다. 어느 것이나 앞뒤 문장의 뜻이 잘 연결되지 않는 것은 매일반이다. 나는 이 퇴계 묘비명 원문을 복사해 꼬깃꼬깃 접어서는 지갑 속에다 갈무리해 다녔다. 어디서건 한문 고수를 만나면 꺼내놓고 물어볼 요량이었다. 하지만 그런 고수를 만난다는 것도 쉽지 않은 노릇이라, 종이는 몇 년째 세월과 함께 내 지갑 속에서 나달나달 해어져갈 뿐이었는데, 어느 날 우연히 그 문장을 다시 꺼내 읽어보니, 비로소 딱 짚히는 바가 있었다. 아, '아회이조'는 퇴계가 가정법을 쓴 것이로구나! 그렇다면 이렇게 풀이되는 문장 아닌가. '내 품은 생각 여기서 막힌다면, 누가 내 패옥(학문)을 즐겨하리.' 아직은 자신의 학문이 미완이라는 뜻이 된다. 이렇게 하면 앞뒤 문장의 맥이 그대로 이어지지 않는가. 그래서 위 묘비명을 모두 풀이해보면 대략 다음과 같이 된다. 편의에 따라 단락을 나누었다. 나면서 크게 어리석었고 자라서는 병이 많았다. 중년에 학문을 좋아하게 되었고 느지막에 벼슬길에 들었네. 학문은 갈수록 멀어지고 벼슬은 마다해도 자꾸 내려지네. 나아가기가 어려우매 물러나 은거하기로 뜻을 굳혔네. 나라의 은혜 생각하면 심히 부끄러우나 진실로 성현의 말씀이 두려웠네. 산 높디높고 물 쉼 없이 흐르는 곳. 벼슬을 벗어던지고 돌아오니 뭇 비방이 사라졌구나. 내 품은 생각 여기서 그친다면 누가 내 패옥을 즐겨하리오. 내가 고인을 생각하매, 고인이 먼저 내 마음을 얻었으니, 오는 세상에서 어찌 오늘의 내 마음을 모른다 하리. 근심 속에 낙이 있었고, 즐거움 속에 근심이 있었네.조화를 좇아 사라짐이여, 다시 무엇을 구하리오. 대철학자 퇴계가 도달한 경지를 일개 필부가 헤아리기는 어려운 노릇이지만, 퇴계 묘비명의 마지막 구절은 두고두고 여운을 남기는 명문이라 하겠다. 조화를 좇아 사라짐이여, 다시 무엇을 구하리오. 안심입명의 경지다. 이보다 더 아름다운 종결미를 보여주는 묘비명이 다시 있을까. 퇴계는 임종 직전 일어나 기대앉아 자리를 정리하게 하고, 마지막으로 자신이 평생을 두고 사랑하던 매화를 보며 "매화분에 물을 주라" 하고는 앉은 채 숨을 거두었다 한다. 저물녘이었고, 어둑신한 하늘에서는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1570년 12월 8일, 향년 70세. 임진란이 일어나기 22년 전이었다. 이광식 통신원 joand999@naver.com  ​
  • 예외란 시대의 모순을 드러내는 탐침봉

    예외란 시대의 모순을 드러내는 탐침봉

    예외/강상중 등 9인 지음/문학과지성사/324쪽/1만5000원 이충형 경희대 철학과 교수가 내놓은 문제다. ‘이번 겨울 독감A가 유행할 확률은 90%, 독감B가 유행할 확률은 10%다. 두 독감 모두 치사율은 100%다. 두 백신을 모두 맞으면 부작용으로 사망하게 되니 하나만 맞아야 한다. 당신은 독감A의 백신을 맞을 것인가, 독감B의 백신을 맞을 것인가.’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독감A의 백신을 맞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합리적인 선택을 했는데, 10% 확률로 독감B가 유행하고 말았다면? 인류는 절멸이다. 그때 예외적으로, 사실은 비합리적으로, 독감B 백신을 맞은 이들이 있다면 그를 통해 인류는 지속될 수 있게 된다는 것이 이 교수의 설명이다. 삶은 정해진 길에서 벗어나기 일쑤다. 세상은 규칙대로만 돌아가지 않는다. 인류의 진화와 과학기술의 발전과정을 돌아보면 예외적인 선택에서 비롯된 일들이 허다하다. 공자와 예수, 부처는 법과 제도 등 당대의 사회질서에 순응했던 이들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규칙에 맞서고 기존의 가치를 전복하며 새로운 예외의 영역을 개척했던 이들이었다. 예외가 보여준 긍정적 기능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어떨까. 4년 전 동일본 대지진과 원전 사고, 지난해 세월호 참사 등을 예외적인 사건일 뿐이라며 근본적 변화와 대책 마련 등을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 ‘예외’가 오히려 보편성, 일반성의 존립 근거를 공고히 하기 위해, 그것들을 옹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적극 활용된 대표적 사례들이다. 예외(例外). 책은 ‘경계와 일탈에 관한 아홉 개의 사유’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강상중 도쿄대 명예교수, 김기창 고려대 법학대학원 교수, 김항 연세대 HK교수,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 등 9명의 필진이 ‘예외’라는 하나의 키워드를 놓고 과학, 역사, 정치, 사회, 철학 등 각자가 익숙한 창을 통해 세월호, 유신체제, 통합진보당 해산 사태, 지역주의 문제, 돌연변이, 양성인 존재,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역사 속에서 탐구한 결과는 큰 흐름에서 볼 때 예외는 시대의 모순을 드러내는 탐침봉이었다는 사실이다. 또한 김항 교수는 이탈리아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73)이 전쟁, 내전, 소요사태 등 체제를 위협하는 긴급 상황에서 비롯된 법률 개념으로 제시한 ‘예외상태’를 들며 1970년대의 박정희 정권의 유신체제를 설명했다. 깊고 다양한 접근을 통해 내린 결론은 예외를 막을 수도 없지만 예외를 잊어서도 안된다는 것이다. 또한 ‘예외’의 개념과 사유를 주체적으로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현대사회 움직이는 불안의 양면

    현대사회 움직이는 불안의 양면

    불안들/레나타 살레츨 지음/박광호 옮김/후마니타스/294쪽/1만 6000원 ‘불안’은 현대사회를 특징짓는 단어이자 정신분석학에서 가장 핵심적인 개념 가운데 하나다. 철학자이자 사회학자로 슬로베니아 정신분석학파의 일원으로 맹활약하는 레나타 살레츨은 정신분석학적 통찰로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겪는 다양한 변화와 이로 인한 불안한 마음을 들여다본다. 그의 저작 ‘불안들’은 프로이트와 라캉의 이론을 빌려 생생한 사례들과 함께 불안의 정체와 그 책임이 과연 어디에 있는지를 분석한다. 전쟁, 노동, 사랑, 모성, 권위 등 다섯 가지 주제를 통해 불안의 논리를 탐구하는 책의 핵심은 불안이 반드시 ‘없애야 할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많은 참전 군인들은 전후에 우울증에 빠지고 때로 불안발작을 일으킨다. 심한 경우 이런 외상후증후군들은 자살을 유발하기도 한다. 살레츨은 군인들의 불안을 다루는 군 정신의학의 조치과 전후에 군인들에게 나타난 실제 외상후증후군 사례를 통해 주체가 불안을 느끼게 되는 메커니즘과 사회가 이를 다루는 방식을 분석한다. 제4차 중동전에 참전했던 이스라엘 병사 아미는 자신을 전쟁 영화 속에서 군인을 연기하는 배우라고, 관광이나 영화 촬영을 나왔다고 상상하며 불안을 극복했다. 그러나 그런 그의 환상은 시체들이 뒤엉킨 현실을 마주한 후 붕괴되고 극심한 신경쇠약을 촉발했다. 이처럼 주체는 자신에게 설득력 있는 시나리오, 즉 환상을 만들어 불안을 막는다. 군 정신의학에서는 살인을 사냥으로 제시하는 등 인위적으로 환상을 만들어 냄으로써 전투를 독려하는 방법을 써 왔으며, 불안을 경감하거나 기억을 지우는 약을 개발 중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불안은 불편한 느낌이지만 단순이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만은 아니다”라며 “불안에는 주체를 준비상태로 만들 수 있는 힘이 있고, 따라서 주체가 자신의 환상을 산산조각 냄으로써 신경쇠약이나 트라우마를 유발할 만한 사건을 마주하는 경우 무기력해지거나 놀라는 정도를 줄여 줄 수 있다”고 피력한다. 오늘날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는 삶의 모든 것이 선택의 문제이고, 주체의 자유의지에 따라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삶에서 향락을 추구하는 데는 제한이 없다고 사람들을 부추긴다. 그러나 이런 선택의 풍요는 새로운 불안, 죄책감, 부족감을 야기한다. 하이퍼 자본주의는 이를 마케팅에 활용하고, 미디어는 이런 불안심리를 확대 재생산한다. 사랑과 불안에 대한 저자의 접근도 흥미롭다. 라캉에 따르면 사랑하는 사람은 상대방에게 없는 것을 원하기 때문에 사랑은 늘 얼마간의 불확실성을 수반한다. 양육은 특히 불안을 일으킨다. 편집증적 양육으로 불리는 오늘날의 문화에서 ‘어머니’는 상징적 역할에 끊임없이 불안을 느끼고 제대로 아이를 키우지 못한다는 죄책감을 느낀다. 사람들은 여러 가지 원인으로 인한 불안을 없애고 스스로를 호감 가는 페르소나로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과 싸우며 명상을 하거나 자기계발서를 보고, 멘토나 구루를 찾아간다. 보다 빠른 해결책으로 항우울제에 의존하는 사람도 상당수에 이른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불안을 없애거나 적어도 통제해야 하는 무엇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불안을 느낀다는 것은 사회가 정신병화되지 않았다는 징후”라며 “불안은 사람들을 마비시킬 수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세계와 관계를 맺는 데 매개가 되는 바로 그 조건이기도 하다”고 강조한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다음달 7~8일 G8 정상회담이 열린 독일 엘마우 성, “나치 군인의 휴양지였다”

    다음달 7~8일 G8 정상회담이 열린 독일 엘마우 성, “나치 군인의 휴양지였다”

    오는 6월 7~8일 제41회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가 열린 엘마우 성(Schloss Elmau)다. 독일 남동부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에 위치해 있다. 엘마우 성은 지난 1916년 건축됐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선에서 물러난 나치 군인들의 휴양지로 쓰이던 곳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독일 나치 정권의 과오를 반성하는 의미로 당시 독일군의 휴양지로 이용되던 고성을 택했다. 전후에는 미군 병원으로 바뀌었다가 홀로코스트 생존자와 난민 거처로 이용되기도 했다. 메르켈 총리는 지난해 장소 선정과 관련, 엘마우성 소유주가 2차대전 당시 모순된 행동을 보였던 원 건물주의 행동에 대해 속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나치 정권의 잘못을 인정한 모범사례라고 성명을 통해 강조했던 터다. 엘마우 성을 지은 개신교 신학자이자 철학자인 요하네스 뮐러는 아돌프 히틀러가 독일의 새로운 세력으로 떠오르자 충성을 맹세한 인물이다. 종전 후 히틀러를 찬양한 혐의로 기소됐으며 호텔 소유권도 박탈당했다. 그러나 뮐러는 나치의 광적인 반(反)유대주의에 대해 ‘독일의 수치’라며 공개적으로 비판, 판결은 아직도 논란에 휩싸여 있다. 엘마우 성은 알프스 산기슭에 자리해 시위대의 접근이 어려운 장소로도 꼽힌다.
  • [당신의 책]

    [당신의 책]

    아벨라르와 엘로이즈(아벨라르·엘로이즈 지음, 정봉구 옮김, 을유문화사 펴냄) 중세 수도사와 수녀가 주고받은 사랑의 편지. 파리의 이름 난 철학자 아벨라르는 성당 참사회원 퓔베르의 조카딸 엘로이즈의 가정교사였다. 둘은 22세의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빠졌고 아들을 낳은 후 비밀리에 결혼까지 했다. 그러나 퓔베르는 이들의 결혼을 폭로하고, 이에 항의하는 엘로이즈를 괴롭혔다. 아벨라르는 퓔베르의 학대로부터 피신시키기 위해 엘로이즈를 수도원으로 보냈고 퓔베르는 이를 가문의 모욕으로 여겨 아벨라르를 거세했다. 이 일로 아벨라르와 엘로이즈는 각각 수도사와 수녀가 된다. 아벨라르가 이런 내력의 편지를 친구에게 보냈고 엘로이즈가 이를 우연히 읽은 뒤 아벨라르에게 답장을 보내면서 이들 사이에 편지가 오간다. 책은 사람들에게 크게 주목받은 ‘사랑의 편지’ 전체와 ‘교도의 편지’ 일부를 담고 있다. 문학성 짙은 두 사람의 편지는 숱한 예술작품에 영향을 주었으며 두 사람이 합장된 묘지에는 참배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272쪽. 1만 2000원. 복잡한 세계 숨겨진 패턴(닐 존슨 지음, 한국복잡계학회 옮김, 바다출판사 펴냄) 복잡성 이론은 다양한 분야에서 생기는 예측불허 상황을 설명해 주는 이론으로 점차 주목받고 있다. 교통체증을 비롯해 주식시장 붕괴며 테러는 물론 암세포의 공격까지 망라한다. 복잡성 이론에 관심이 늘면서 많은 학자들이 연구에 뛰어들고 있지만 개념이 명확하지 않은 탓에 여전히 ‘완숙한 이론’을 갖지 못하고 있다. 책은 다양한 복잡성 연구로 이름 난 물리학자가 복잡성 이론을 쉽게 정리한 일종의 ‘가이드북’이다. 일반인들에겐 쉽지 않은 분야이지만 저자의 오랜 연구 덕분에 명쾌하게 풀어진다. 경제학, 생물학, 의학, 정치학 등에서 싹트는 복잡성 이론의 활용 가능성을 일반인도 이해하도록 설명한 게 특징이다. 저자는 복잡성 이론에 대해 “학계에 남은 가장 도전적이고 열린 과제를 품은 ‘거대과학’이자 매일 마주치는 생활이나 국제 안보까지 주요한 현실 문제를 다루는 학문”이라고 설명한다. 334쪽. 1만 8000원. 위기의 장군들(김종대 지음, 메디치 펴냄) 한국군의 장교·장군단은 국방과 한반도 평화, 국민 안전을 책임지는 중차대한 안보 세력이다. 하지만 요즘 군에는 성추행이며 집단폭력과 그로 인한 자살, 근무지 이탈이 횡행한다. 그런 일탈을 방지하고 해결해야 할 장교·장군단은 변명·보신에 급급하다. 책은 한국 장교, 특히 장군들의 비리·음모를 낱낱이 파헤쳤다. 무엇보다 YS 정권부터 현 정권까지 장군들과 권력층의 끈끈한 결탁을 볼 수 있다. 현대사의 중요한 시점에 장군들이 어떤 행태를 보이고 권력과 야합했는지를 수많은 전·현직 장교 인터뷰로 폭로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카멜레온처럼 변신하는 최고위 군 인사, 패권을 놓고 전쟁 아닌 전쟁을 벌이는 영호남 출신 장군들, 핵심 기밀을 언론에 넘기는 장군들, 사건·사고 때마다 장병 안위는 뒷전인 채 진실을 은폐하는 장군들…. 저자는 장교·장군단이 정치 논리에 초연하면서도 명예를 목숨같이 지키는 집단윤리를 세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326쪽. 1만 6500원. 로산진 평전(신한균·박영봉 지음, 아우라 펴냄) 기타오지 로산진(1883~1959)은 요리에 관심 있는 이들에겐 낯설지 않은 이름이다. 일본 요리를 세계 최고의 수준으로 끌어올린 주인공으로 만화 ‘맛의 달인’ 주인공 유잔의 실제 모델이다. 책은 그 로산진의 삶과 예술세계를 재미있게 다뤘다. 로산진은 남의 집 양자로 들어가 독학으로 한자를 익혀 요리의 길을 개척한 뒤 일본 요리를 예술로 승화시켰다는 평을 받고 있다. ‘재료가 가진 본래 맛을 살리라’는 요리 철학으로 유명하다. 자연의 맛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과도한 손질이나 조미료 사용을 자제할 것을 강조했다. 책에는 요리뿐 아니라 도자기, 서예, 전각, 칠기, 디자인에도 일가를 이룬 독특한 예술가로서의 발자취가 생생하다. 미국과 프랑스의 세계적인 요리를 혹평하는가 하면 ‘인간국보’(무형문화재 기술보유자)의 지정을 거부하는 등 형식과 권위에 거부감을 드러내 ‘20세기 최고의 망나니’로 불렸던 면모가 흥미롭다. 304쪽. 1만 6000원.
  • 세상 담은 그들의 그림엔 역사의 풍랑이 일렁인다

    세상 담은 그들의 그림엔 역사의 풍랑이 일렁인다

    시대를 훔친 미술/이진숙 지음/민음사/556쪽/3만원 ‘근대 유화의 완성자’라는 네덜란드 화가 렘브란트가 세상을 뜨기 직전 완성한 그림 ‘돌아온 탕아’(1669년)는 나눠준 재산을 탕진하고 병들어 돌아온 탕아가 아버지의 품에 안기는 장면을 담고 있다. 말없이 아들을 보듬는 아버지며 그 옆 불만 가득한 눈초리의 맏형을 보면 그저 어느 가정의 엉클어진 관계를 묘사한 작품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아들의 등을 어루만지는 아버지의 섬세한 손, 그 손끝에 전해지는 아들의 몸, 그리고 아버지와는 달리 동생을 원망하는 형의 표정은 가장 깊은 용서와 숭고한 화해의 순간으로 결정된다. ‘역사는 인류가 의미를 찾고, 의미를 살고, 그 의미의 핵심을 후대에 전하는 과정’으로 일컬어진다. 그 차원이라면 미술작품도 그저 장면의 단선 포착이나 유미적 묘사에 그칠 수 없다. 그래서 ‘아는 만큼 보인다’는 유명한 명제가 설득력을 갖는다. ‘시대를 훔친 미술’은 바로 그 점에 착안해 그림 이면의 그림을 알뜰살뜰하게 설명해 흥미롭다. 책은 유명 작가들의 회화를 시대별·언어권별로 그러모아 펼쳤지만 단순히 회화사나 작가의 연대기적 설명에 머물지 않는다. 그리고 그 감상의 매듭짓기는 바로 역사성의 강조이다. 중세 암흑기부터 르네상스, 종교개혁, 절대왕정 시대, 미국 독립과 프랑스 대혁명, 식민지 경쟁, 제 1·2차 세계대전…. 격랑 속에 부대껴 살았던 화가의 눈빛과 고뇌, 어두운 그늘이 다양한 회화에 얹혀 전해진다. 그리고 그 회화에는 어김없이 숨은 역사와 복안의 메시지가 담겼다. 독일 작가 에마누엘 로이체가 그린 ‘델라웨어 강을 건너는 워싱턴’을 들여다보자. 뉴욕 센트럴파크 인근 메트로폴리탄뮤지엄 미국관에 전시된 이 그림은 독립전쟁 중 영국군을 기습하기 위해 얼어붙은 델라웨어 강을 건너는 조지 워싱턴을 묘사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독립의 국제적 영향력을 보여준다는 작품속 강은 라인 강을 모델로 삼았다. 로이체가 미국 독립전쟁을 1850년대 독일과 연관 지은 것이다. 로이체는 당시 자신이 지원한 혁명이 실패로 끝났지만 독일 진보주의자들에게 용기를 불어넣기 위해 그림을 그렸던 것이다. 예술에 담긴 ‘언외의 지혜’는 바티칸의 교황집무실 기능을 했던 서명실 벽화에서도 묻어난다. 교황 율리우스 2세(재위 1503~1513)가 라파엘로에 의뢰해 그린 벽화는 천정의 시학·철학·법학·신학을 의인화한 그림, 마주 보이는 벽의 기독교적 테마가 담긴 ‘성체에 대한 논쟁’, 그 맞은편의 ‘아테네 학당’으로 구성돼 있다. 이교도 철학자와 신상들이 대거 등장한 셈으로 이는 교황청 스스로가 신학의 전일적 지배를 포기했음을 의미한다. 결국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주도했던 메디치가문 출신 교황과 세력 득세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림 주체인 화가는 세상흐름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책에는 순수를 고집한 부류와 세류에 가담하거나 지지한 인물들이 흥미롭게 비교된다. 16세기부터 시작된 유럽 확장정책에 편승한 ‘오리엔탈리즘’ 구현에 나선 앵그르의 ‘오달리스크’ ‘터키탕’이며 장 레옹 제롬의 ‘목욕탕’이 서구인들의 정복욕을 부추긴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탈리아의 제1차 세계대전 참전을 주장한 마리네티는 전쟁을 ‘인류의 유일한 위생학’이라며 전쟁 미화를 거들었고 카를로 카라는 ‘개입주의자 선언문’을 통해 전쟁 선동 구호를 내뿜는다. 그런가 하면 전 세계적으로 행해진 유대인 학살과 학대를 고발한 샤갈의 ‘하얀십자가’며 “민족에 영광을 가져다주겠다”고 외쳐대는 히틀러를 거대자본의 뒷돈을 받는 부패 정치인으로 묘사한 존 하트필드의 ‘작은 남자가 큰 선물을 요구한다’는 그 반대의 작품들로 다가온다. 저자는 프루스트의 말을 인용해 “예술에는 현실만이 아니라 그 현실을 극복하려는 의지도 함께 담긴다”고 말한다. 그리고 나쁜 현실을 극복하려는 의지와 꿈은 한 예술가의 것이 아니라 지지하고 함께한 공동체의 꿈이기도 하며 후대가 놓치지 않고 이어나가야 하는 꿈이라고 결론 짓는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50년 내 인생이 잔잔한 울림으로…40년 동고동락 부부로 산다는 건…

    50년 내 인생이 잔잔한 울림으로…40년 동고동락 부부로 산다는 건…

    시한부 판정을 받은 두 시인이 있다. 한 시인은 병마와 사투를 벌이며 생의 마지막 불꽃을 살라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시집을 냈다. 다른 한 시인은 온몸이 굳어가며 온기가 사라져 가고 있다. 꺼져가는 불꽃을 병상에서 바라보는 시인의 아내가 남편 생전 첫 시집을 냈다. ‘무엇을 남겨야 하나//생명보험을 들까 백만 불짜리//검사관이 오피스에 와서 피를 뽑는다/주사기에 기어들어 가는 나의 삶이 보인다//(중략) 아니다 새벽마다 꼿꼿이 앉아/생각의 조각에 시 한 편씩 꿰어보는 거다//그 모습을 남기는 거다’(생명보험) 윤석훈(55) 시인은 마지막 힘을 모아 50여년의 삶을 정리했다. 시집 ‘종소리 저편’(서정시학)에서다. 내적 사유와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 가치관에 대한 묵상, 그리움과 외로움 극복을 위한 영혼의 힘 등이 녹아 있다. 그는 “세상의 구석에서 따뜻한 미소와 잔잔한 울림이 될 수 있었으면 한다”고 소망했다. 시인은 2008년 4월 폐선암 3기 진단을 받았다. 7년째 투병생활을 하고 있다. 지난해 말 위험한 고비를 가까스로 넘기고 산소통에 의지해 살고 있다. “작년 말 죽음의 문턱에서 되돌아왔습니다. 주변에 저와 똑같은 진단을 받은 후배가 있는데 10개월을 못 넘겼어요. 그런 면에서 제게 주어진 시간은 덤으로 얻은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1997년 2월 도미했다. USC 치과대학 졸업 뒤 LA 실버 레이크에 정착, 치과 클리닉을 운영했다. 아내와 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 “아내가 곁에서 돌봐주고 있어요. 아내의 헌신적인 노력이 없었다면 오늘의 저는 없었을 겁니다.” ‘나무 같은 사랑 하나/목숨에 심고//어지러운 골목길/돌아 나오면//언제나 서 있는 당신//오후 세시가 지나도/울려 퍼질/종소리 저편에 서서//언제나 기다려 줄 당신’(나무/아내에게) 2003년 현대시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박덕규 문학평론가는 “잠잠한 침묵 같은 것 안에 아픔과 슬픔이 있다”고 했고, 나태주 시인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울리고 움직이게 하는 감동이 있다”고 평했다. 그는 “생명 다하는 날까지 시를 쓰고 싶다”고 갈망했다. “완치되지 않더라도, 산소통에 의지하더라도 목숨이 붙어 있다면 두 번째 세 번째 시집도 내고 싶어요. 투병 중에도 시 쓰기를 놓지 않은 건 병마와 싸우는 데 큰 도움이 됐다는 걸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병마를 툭툭 털고 일어날 그날이 속히 올 것이라고 믿으면서 시를 쓰려 합니다.” 김원옥(70) 시인은 시한부 남편의 병상을 지키며 지나온 삶을 되돌아봤다. 시집 ‘바다의 비망록’(황금알)에서다. 살아오면서 겪은 마음의 흔적들, 기쁨이나 슬픔 같은 온갖 마음의 변화들을 담았다. 부부의 연을 맺어 40년 넘게 동고동락하면서 겪은 남편에 대한 감정들도 곳곳에 녹아 있다. ‘언제부터였나/우리는 나란히 걸었다/땀 펑펑 쏟아지는/들판 한가운데로 난 철길 위로//(중략) 기차는 이미 지나갔다/아른아른 보이는 저 끝/40년 신은 닳고 닳은 신발 털어 신고/또 가자/곧은 길이라 여기며 걸어온 철로/돌아보니/굽은 허리였네’(내 생의 철길) 부부의 삶을 ‘원형 감옥’에 비유하기도 했다. ‘숨으려야 숨을 곳이 없는/이 둥근 무덤 속//(중략)당신은 눈으로/나는 귀로 붙잡는/서로는 포로//끝끝내 끊어지지 않는/질긴 생의 그물망’(판옵티콘) 판옵티콘(Panopticon)은 영국의 공리주의 철학자 제러미 벤담이 죄수를 효과적으로 감시할 목적으로 1791년 설계한 원형 감옥이다. 시인은 “부부란 서로가 서로에게 감시자가 되기도 하고 죄수가 되기도 하는 것 같다”며 “질긴 인연”이라고 했다. 시인의 남편도 시인이다. 이가림(72) 시인이다. 196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인하대 불문과 교수를 지냈다. 남편은 루게릭병이 진행 중이다. 2011년 발병했다. 온몸이 마비돼 음식을 삼키지도, 말하지도 못하고 걷지도 못한다. 인공호흡기에 생명을 의지하고 있다. “나이 들어선 잘 나타나지 않는다는데 희귀하게도 걸렸어요. 대학 정년퇴임 뒤 1, 2년 정도 강의도 하고 했는데 갑자기 발병했습니다. 수술해서 고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죽을 때까지 병이 계속 진행돼요. 1년 안에 죽는다는 사람도 있는데 남편은 4년을 버텼습니다.” 시인은 2009년 격월간 ‘정신과표현’을 통해 늦깎이로 등단했다. 매일 남편 병상을 지킨다. “세상의 속도가 아니라 제 나름의 속도로 살아왔어요. 아이 키우고 남편 내조하고 그러다 보니 등단도 늦었습니다. 옛날의 보통 부부들처럼 살았어요. 남편이 건강해지길 바랄 뿐 다른 건 바라지도 않아요.”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당신의 책]

    [당신의 책]

    평판 사회(김봉수 외 지음, RHK 펴냄) 지난 연말 뜨거운 이슈로 부각됐던 대한항공 ‘땅콩 회항’ 사건을 계기로 기업경영의 변모상을 짚었다. 책 제목 ‘평판 사회’는 기업에 사회적 명분과 사회적 가치, 사회적 관계가 요구되는 사회라는 뜻. 경제신문 기자와 기업 컨설턴트, 변호사들이 지금 우리 시대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로 삼았다. 책의 큰 테마는 ‘평판이 기업의 생존을 좌우한다’는 것이다. 기업이 사회적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할 경우 평판을 잃고 위기에 내몰린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로 ‘땅콩 회항’이 다뤄진다. 최근 화제가 됐던 ‘크림빵 뺑소니 사건’‘박태환 도핑테스트 양성 반응’‘LG-삼성전자 간 세탁기 갈등’ 또한 법리와 경영의 영역에서 평판이 실질적 힘의 논리로 작용함을 보여주는 평판 사회의 장면들로 등장한다. 국내외 유수기업의 위기관리 사례가 풍부하게 소개된다. ‘땅콩 회항’ 사건의 전말을 다룬 ‘땅콩 회항의 24개 국면들’도 참고자료로 붙였다. 352쪽. 1만 5000원. 철학이 있는 식탁(줄리언 바지니 지음, 이용재 옮김, 이마 펴냄) 요즘 TV방송을 통해 가장 흔하게 접할 수 있는 게 음식·요리 프로그램이다. 지나칠 만큼 성행하는 이 같은 방송을 보자면 뭔가 빠져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적지 않다. 철학자인 저자 역시 그 대목에 착안했다. ‘무엇을 어떻게 먹는가’에 대한 성찰없이 유행 따라 먹는 행동을 반복하는 모습을 통해 먹는 법과 관련된 도덕성과 윤리, 실천적 지혜를 짚는다. 그렇다고 도덕성과 금욕에 방점을 찍지 않는다. 그 대신 지역에서 생산하는 식재료며, 식량 자급자족, 채식주의를 비판한다. 즐겁고 맛있게 먹되 더 나은 삶이 되도록 식탁에 철학을 담자는 것이다. 먹는 일에 철학적으로 접근하면서도 ‘감량-의지력’과 ‘체중유지-겸손’ 같은 주제를 통해 현실과 밀접한 논의도 전개한다. 각 장이 ‘새로운 식생활의 제안’-‘이를 위한 실천적, 윤리적 덕목’-‘실용적 레시피’로 구성되며 저자의 주장을 모은 음식조리법으로 책을 마무리한다. 376쪽. 1만 7000원. 전쟁에서 경영전략을 배우다(김경원 지음, 21세기북스 펴냄) 전쟁 사례에서 건져 올린 경영전략의 성공 공식 13가지를 추렸다. 국운을 쥔 중대한 전투에서 세계적 명장들이 보였던 전략과 기업의 성패를 좌우한 경영자들의 전략을 함께 놓고 살펴 전략의 본질적 기원이라는 전쟁, 그리고 전쟁의 현대적 확장형태로 볼 수 있는 기업경영을 비교한 것이다. ‘적의 약점에 나의 강점 들이밀기’‘유능한 전략스태프 확보’‘전쟁 승리의 궁극적 요인은 사랑’‘과거의 성공전략 답습은 금물’‘현장 목소리와 판단 중시’‘최악 상황을 버틸 수 있는 내 한계 고려’…. 각각의 교훈을 전쟁·경영 사례로 풀어내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를테면 6·25전쟁 중 참모의 도움을 받지 못한 채병덕 장군과 혼다의 꿈을 실현시켜준 다케오를 연결한다. 그런가 하면 과거 성공 전술을 그대로 썼다가 낭패를 본 이스라엘군의 탱크 전술에 기존 사업 모델에 안주하다 몰락한 세계 기업 코닥과 노키아를 붙이기도 한다. 312쪽. 1만 5000원. 고독육강(쟝쉰 지음, 김윤진 옮김, 이야기가 있는집 펴냄) 현대사회에서 ‘마음의 큰 병’으로 불리는 고독에 대해 ‘미학의 대가’로 통하는 대만 시인 겸 소설가가 집중 탐구했다. 책에서 일관되게 강조되는 메시지는 ‘고독을 두려워하지 말고 완성하라’는 것이다. “고독은 또 다른 도전”이라는 저자는 무엇보다 고독은 피해야 할 어두운 그림자가 아니라 지금 현재를 살고 있는 나의 또 다른 모습임을 바로 보라고 말한다. 자신의 고독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람이 진정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으며 그런 사람만이 타인의 고독을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고독에 대한 사변 늘어놓기나 ‘고독은 나약한 마음의 징표’식의 설교에 머물지 않는다. 인간이 느끼는 고독 그 자체에 집중해 욕망의 결여와 소통 부재, 권력의 통제, 꿈의 상실, 관계의 거부, 집단의 폭력 등 6가지 테마로 설명한다. 문학과 철학, 미술, 영화, 중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도드라진다. 336쪽. 1만 5000원.
  • 법조 삼성이 새긴 양심 발자취

    법조 삼성이 새긴 양심 발자취

    한국 사법을 지킨 양심/법조삼성 평전 간행위원회 엮음/일조각/528쪽/5만원 힘과 욕심에 휘둘리지 않는 ‘법의 양심’은 사회를 건전하게 지탱하고 미래 발전을 견인하는 민주주의의 으뜸 요소로 꼽힌다. 하지만 요즘 법의 세태는 ‘권력과 진영논리’에 치우친 횡포와 군림의 주체로 더 인식된다. 그래서 ‘법은 법다워야 한다’는 원칙에의 요구가 공허하게 들리기 일쑤이다. ‘한국 사법을 지킨 양심’은 법의 세태와 세태의 법을 꼬집기라도 하듯 ‘법의 양심’을 지켜 살았던 법조인 세 명을 부각시킨 평전이다.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 최대교 전 서울고검장, 김홍섭 전 서울고법원장이 그 주인공으로 한국 법조계에선 ‘법조삼성’으로 일컬어지는 인물들이다. 모두 전라북도 출신인 ‘법조삼성’은 비단 법조계뿐만 아니라 민초의 존경과 애정을 받았던 ‘선비’ 면모를 갖춘 율사들이다. 국민으로부터 가장 존경받는 법조인으로 꼽히는 김병로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를 무료 변론했으며 해방 후에는 반민족특별법에 반대한 이승만 대통령을 공개비판한 일화로 유명하다. 화강 최대교는 서울지검장 시절 압력에 굴하지 않는 수사를 통해 검찰 양심을 지킨 법조인으로 평가받는다. 그런가 하면 천주교 신자였던 김홍섭은 청빈·검소한 생활로 법조계와 신앙계의 모범으로 숭앙된다. ‘법학을 가장 잘 배우는 길은 위대한 법사상가의 생애를 배우는 길’이라는 독일 법철학자 라드부르흐의 말 그대로 책은 사법권에 대한 외압과 회유가 만연하던 시절 법을 바로 세우기 위해 고뇌하고 몸부림쳤던 양심적 법조인들의 숨결과 발자취를 그대로 느끼도록 만들어졌다. 어릴 적 성리학을 배워 의병활동을 했으며 신학문을 익혀 법조인의 길에 들어섰던 김병로는 대법원장 시절 이 대통령과 갈등을 빚은 대목이 도드라진다. 서울지검장 시절 백범 김구 피격사건을 지휘한 최대교는 현직 장관을 기소해 자리에서 축출되는 과정이 드라마처럼 다가온다. 인간의 기본적 인권과 양심에 바탕한 재판을 진행하면서 수감자들을 사랑으로 돌본 ‘사도법관’ 김홍섭의 삶도 인상적이다. 전주지방법원 박형남 법원장의 제안에 따라 만들어진 평전은 역사·인문학 교수를 포함한 10명이 작업에 참여해 법을 잘 알지 못하는 일반인들도 이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도록 인문학적 요소를 가미한 게 특징이다. 그동안 ‘법조삼성’과 관련해 잘못 알려진 부분들도 상당수 바로잡았다고 한다. 물론 이들을 통해 책이 보여주고 싶은 으뜸의 메시지는 “고매한 인격과 대쪽 같은 성품, 청렴한 사생활, 법의 지배와 사법의 독립에 대한 신념과 용기”이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플라톤·니체… 그들이 생각한 죽음은

    플라톤·니체… 그들이 생각한 죽음은

    죽음에 관한 철학적 고찰/구인회 지음/한길사/324쪽/1만 8000원 장자(莊子)는 자기 아내의 시신을 앞에 두고서 항아리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물론 이는 잠시 우는 척하다 화장실 가서 키득거리는 우스갯소리 속 남편과는 차원이 달랐다. 장자는 왜 울지 않느냐는 친구의 물음에 “어둡고 희미한 사이에서 섞여 있다 변화해서 기가 나타나고, 기가 변해 형체가 되고, 형체가 변해 삶이 나타났다. 아내는 죽어서 변화하는 천지의 큰 집에서 편안하게 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내의 삶과 죽음은 천명이다”고 답했다. 장자의 마음속 슬픔이 전혀 없었는지 어땠는지는 짐작할 수 없다. 어차피 인간은 누구도 죽음을 직접 체험할 수 없다. 그저 더없이 가까운 이의 임박한 죽음 앞에 소멸과 공포의 심정을 공감하는 정도일 따름인 탓이다. 이렇듯 동서고금을 가릴 것 없이 철학적 사유의 출발은 의심과 공포였다. 인간의 존재와 삶의 근원을 의심했고, 그에 앞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품었다. 종교를 맹신하는 이유도, 신과 사후세계를 의심하는 배경도 모두 하나에서 비롯됐다. 책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시작해 니체, 하이데거 등에 이르기까지 죽음의 문제를 다뤄온 서양철학자들의 계보를 짚어 나간다. 신화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한 초기 서양철학에서 플라톤의 죽음관은 영혼이 불멸하고, 죽음은 육신과 영혼이 분리되는 것이라는 해석을 내린다. 그는 철학함을 죽음에 대한 불안과 관심으로, 또 연습과 준비로 규정짓는다. 생명윤리학을 전공하며 삶과 죽음에 대해 깊이 천착해온 구인회 가톨릭대 교수는 ‘철학은 끊임없이 죽음에 대해 묻는 학문’이라고 표현한다. 죽음이 무엇이며, 죽음에서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는가, 유한한 생명을 가진 인간은 무엇인가 등의 질문이 철학사 전반에 걸쳐 존재해 왔음을 설파한다. 결국 죽음에 대한 물음은 ‘어떻게 살 것인가’하는 문제와 분리될 수 없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죽음을 극복하고자 했던 철학자들의 노력은 죽음과 더불어 삶을 살아가는 법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지구 반대편 언저리, 오래전을 살아온 그들의 고민과 사유가 현재 한국사회 구성원들의 고민과도 그리 다르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 1년 전 차가운 바닷물 속 304명의 죽음의 문제를 애써 외면하려는 이들이 있고, 여전히 기억하며 죽음을 다루는 이들이 있다. 죽음을 기억하거나 외면하는 이 모두가 결국은 ‘지금, 여기’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됨은 당연한 이치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사유의 무대서 찾은 영화 속 인문학

    사유의 무대서 찾은 영화 속 인문학

    씨네샹떼/강신주·이상용 지음/민음사/880쪽/3만 3000원 대한민국에서는 한 해 1억명이 영화를 본다. 그런 가운데 ‘영화도 인문학’이라는 도발적인 선언을 한 이들이 있다. 철학자 강신주와 영화평론가 이상용은 영화를 텍스트 삼아 그 안에서 인간을 둘러싼 의미망을 포착해 내려 한다. 1895년 최초의 영화가 탄생한 이래 세계 영화사를 빛낸 걸작 25편을 추렸다. 저자들은 지금껏 감상과 향유의 대상이었던 이들 영화를 사유의 시선 앞에 두고 그 안에 투영된 인간과 사회의 맨 얼굴을 성찰한다. 히치콕의 ‘싸이코’에서는 나를 보는 시선이 가져다주는 근원적인 공포를 이해하고, 김기영 감독의 ‘하녀’에서는 한국 중산층 가정의 욕망을 들여다본다. 유럽의 네오리얼리즘 영화를 통해서는 전쟁의 참상을 창조적인 현실 인식으로 타개하려는 움직임을 찾아내기도 한다. 각 영화마다 줄거리를 단편소설처럼 재구성한 시놉시스와 작가에 대한 설명을 실었으며 철학자와 비평가의 시각을 대조해 보여 줘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뤼미에르 형제에서 시작해 ‘밀리언 달러 베이비’(클린트 이스트우드)까지 유명하거나 다소 생소한 작품들을 쭉 훑다 보면 120년 영화의 역사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는 것도 이 책의 장점이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정진곤의 살며 생각하며] 걷기 좋은 도시를 만들자

    [정진곤의 살며 생각하며] 걷기 좋은 도시를 만들자

    시청 앞 청계광장에서 한양대까지 매주 청계천을 따라 걷습니다. 월요일 수업에 맞춰 평소보다 집에서 일찍 출발합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나 싶더니, 벌써 여름이 온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느 새 무더운 날씨가 되었습니다. 산수유, 매화, 벚꽃 등의 봄꽃들이 지고, 조팝나무 꽃들이 활짝 피어 있습니다. 송사리들이 떼 지어 헤엄쳐 다닙니다. 잉어들도 유유자적 무리지어 올라가고 있습니다. 연못에서 사람들이 키우는 잉어는 보았지만, 시냇물에서 이렇게 많은 잉어들이 자연스럽게 떼 지어 다니는 것은 처음 보았습니다. 오리들이 물속에서 먹이를 찾아 자맥질을 합니다. 왜가리는 돌 위에 앉아 먹이를 노리고 있습니다.  한양대 근처에 오니 청계천이 중랑천을 만나 한강으로 흘러갑니다. 매화나무와 대나무들이 벌써 무성하게 잎을 피우고 있습니다. 군데군데 모래사장도 있습니다. 순간적으로 섬진강변 매화마을에 와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가의 팻말에는 “이곳의 매화들은 광양의 매화마을에서 조성한 것”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서울의 도심 한 복판에서 맑은 시냇물, 수많은 물고기, 새와 나무와 꽃들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다니 놀라울 뿐입니다. 다음 주에는 냇가의 나무와 꽃들이 어떻게 달라질까요? 벌써부터 일주일 후의 청계천 모습이 궁금하고 보고 싶어집니다.    청계천을 걷기 전까지 서울 시내를 멀리까지 걸어서 다닌다는 것은 생각조차 해 보지 않았습니다. 시내를 갈 때는 항상 자동차나 전철을 타고 다녔습니다. 서울 시내는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곳이지 걸어 다닐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청계천을 따라 먼 길(?)을 걷고 난 후 나름대로 자신도 생겨서 서울시내 도심을 걸어보기로 했습니다. 신촌에서 시청까지 걸어갔습니다. 청계천이 나무, 꽃, 새들이 살아가는 곳이라면, 신촌에서 시청까지의 길은 인간 삶의 현장입니다. 길을 가는 사람들은 항상 바쁘고 무언가 화가 나있는 것 같습니다. 미국이나 유럽 사람들과 같이 잘 알지 못해도 ‘하이’하면서 손을 흔들거나 웃으며 인사를 하는 사람들을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우리나라와 서양의 문화적 차이인지 혹은 서울 사람들의 삶이 더욱 고달프기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길가에는 높다란 빌딩과 함께 작은 가게들이 많습니다. 김밥집, 돈까스집, 김치찌개와 된장찌개집 등의 작은 식당들과 가구점, 커피집, 옷집, 세탁소, 동물병원, 편의점, 미용실 등의 수많은 가게들이 길가에 늘어서 있습니다. 가게의 종류도 다르고, 외양과 인테리어들도 서로 다릅니다. 처음에는 모두 가게 안에 걸려있는 문구처럼 “비록 시작은 미약하지만 끝은 창대하리라”는 희망과 기대를 가지고 장사를 시작했을 것입니다. 가족과 친지들도 찾아와 잘 되기를 바라고 축하해 주었을 것입니다. 손님들이 많은 가게도 있지만, 아무도 찾아오지 않고 주인혼자 쓸쓸히 앉아 있는 곳도 있습니다. 도심을 거닐면서 수많은 가게들의 외양과 함께 주인들의 마음을 헤아려 보면서 길을 걷노라면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여러 모습과 삶의 속살을 훔쳐보는 것 같습니다.    똑같은 서울이지만 청계천의 냇가와 도심의 길거리는 너무도 다릅니다. 보이는 풍경도 다르지만, 걸으면서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은 놀라울 정도로 다릅니다. 몸으로 부딪혀 오는 바람결도 다릅니다. 도심을 걸을 때는 사람들을 보고, 그들의 삶의 모습에 관심을 가지게 되지만, 냇가를 걸을 때는 냇물과 나무와 새가 눈에 들어오게 됩니다.    자동차를 운전하고 갈 때는 사고 나지 않고 안전하게 그리고 어떻게 하면 목적지에 빨리 도착할 것인가만을 생각합니다. 달리다가 사고가 나게 되면 크게 다치거나 자칫하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에 항상 신경을 곤두세우고 긴장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다른 자동차가 자기 앞으로 끼어들게 되거나 방해하게 되면 신경이 곤두섭니다. 자동차가 막혀 지체하게 되면 짜증이 납니다. 주위 풍경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구경할 수 없습니다. 그저 곁눈으로 흘깃거리거나 스쳐 지나갈 뿐입니다. 운전을 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차 안에서 음악을 흘려듣는 일이 고작입니다.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하면 비로소 자동차에서 해방되어 안도의 한 숨을 내쉬게 됩니다.    자동차가 아닌 자신의 두 발로 걸어서 길을 갈 때에는 편안한 마음으로 전신의 감각을 열어놓고 주위 풍광을 구경합니다. 길 가에 심겨져 있는 나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꽃, 흐르는 시냇물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를 들이키고, 온 몸으로 느끼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목적지에 빨리 도달할 것인가 보다는 주위의 동물, 식물 그리고 사람들을 살펴보면서 느끼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그 아름다움과 장엄함에 감탄을 하기도 합니다. 두 발로 자신의 몸을 땅위에 곧추세우고 발밑에 밟히는 땅의 느낌과 숨소리를 듣게 됩니다.    ‘걷기 예찬“의 저자인 프랑스 스트라스부르그 대학의 사회학 교수인 다비드 르 브르통은 ’걷는다는 것은 세계를 온전히 경험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도시와 시골 등의 삶의 현장을 두발로 걸어 다니면서 그는 비로소 인류학자처럼 사람들의 얼굴, 표정, 걸음걸이를 새롭게 관찰하고 그들의 삶의 세계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이제까지 스쳐지나갔던 자연의 세계를 유심히 살펴보고 이름조차 알지 못한 나무와 꽃들에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겨울을 지나 봄이 되어 잎이 피고 꽃이 피며 나날이 자라나는 모습을 경이롭게 바라보게 됩니다.   브르통은 “자신의 몸을 땅과 수직으로 꼿꼿하게 세우고 걷기 시작하면서 인간은 비로소 자연과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게 되었으며, 인간과 우주의 새로운 질서가 탄생되기 시작하였다”고 주장합니다. 걷기 시작하면서 네발로 기어 다닐 때 보지 못하던 새로운 세계를 듣고, 보고, 느끼게 되었으며, 이제까지 보고 경험해 왔던 나무, 새, 동물, 하늘과 같은 자연세계들을 새로운 관점에서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브르통의 말을 이해하거나 실감할 수 없다면 어렸을 때 친구들과 함께 놀면서 했던 대로 두 손으로 땅을 짚고 가랑이 사이로 세상을 보면 그의 말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네발로 기어 다니는 것과 두발로 서서 다니면서 보고 느끼게 되는 세계와의 차이를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걷기는 오래전부터 청소년 교육의 중요한 수단이었습니다. 보이 스카우트, 반더포겔 그리고 우리나라의 국토기행 모임 등과 같은 여러 단체에서는 걷기를 통하여 청소년들에게 국토를 사랑하고, 나무, 풀, 꽃, 새들과 같은 자연에 대하여 관심과 지식을 가지고 사랑하도록 합니다. 국토기행 등을 통하여 인내심과 체력을 키우고, 동료 친구들을 아끼고 서로 도와주는 협동정신을 길러줍니다.  걷기는 또한 사색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제자들과 학내를 거닐면서(페리파테인) 인간의 본성, 윤리와 도덕, 정치학 등에 대하여 함께 토론하고, 그 내용을 정리하였습니다. 그가 제자들과의 산책을 통하여 남긴 ‘니코마코스 윤리학, 기하학, 논리학’ 등은 인류문명과 여러 학문분야에 지적인 기틀을 제공하여 주었으며 수천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학파를 ‘소요학파’라고도 부릅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그의 제자들과 함께 걸으면서 대화한 내용들이 그의 사상의 핵심을 형성하였기 때문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뿐만 아니라 수많은 철학자들과 작가들이 산책을 하면서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되고, 많은 아이디어를 얻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독일의 하이델베르그에는 ‘철학자의 길’이 있습니다. 하이데거가 이 길을 산책하면서 그의 철학을 정립하였고, 수많은 철학적 저서를 구상하고 아이디어를 얻었기 때문에 이 길을 ‘하이데거의 길’이라고도 부릅니다. 프랑스 혁명 사상의 기틀을 제공해준 장 자크 루소도 산책을 통하여 중요한 아이디어를 생각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보행에는 내 생각들에 활력과 생기를 부여하는 그 무엇이 있다. 나는 한자리에 머물고 있으면 거의 생각을 할 수가 없다. 내 몸이 움직이고 있어야 그 곳에 내 정신이 담긴다. 들판의 모습, 이어지는 상쾌한 정경들, 대기...그런 모든 것이 내 영혼을 청소해주고 내게 보다 크게 생각할 수 있는 대담성을 부여해...준다”고 말하였습니다. 키에르케고르는 1847년 제테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는 걸으면서 가장 풍요로운 생각들을 얻게 되었다“고 말하였습니다. 니체는 “나는 손만 가지고 쓰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들판을 건너질러서, 때로는 종이위에서 발은 자유롭고 견실한 그의 역할을 해 낸다”고 하면서 심오한 영감은 거의 예외 없이 오랫동안 걷는 길 위해서 떠올랐다고 말하였습니다.    뉴욕, 런던, 파리 등 세계 각국의 대도시들은 걸어 다니기 좋게 되어있습니다. 인도도 넓고, 쾌적하고, 아름답고, 안전합니다. 가로수들이 봄에는 새 잎을 피우고,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을 마련해주며, 가을에는 아름답게 물듭니다. 파리의 샹드리제를 걸어본 사람들은 누구나 아름다운 그 거리를 잊지 못할 것입니다. 보행자들이 마음 놓고 도시를 걸어 다닐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를 하고 있습니다.  런던은 오래된 도시라서 좁은 길들이 많습니다. 좁은 길은 아예 차들은 다닐 수 없고 사람들만 걸어 다닐 수 있습니다. 자동차로 도심을 통행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길도 좁고 주차장도 드물고 주치 비용도 매우 비쌉니다. 런던시내에서는 아예 자가용 자동차가 다닐 수 없습니다. 버스나 전철 등만 다닐 수 있습니다. 자동차보다 보행자들이 더 편안하고, 안전하게 다닐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나라의 도시들은 사람들이 걸어 다니기에 위험하고 불편합니다. 오토바이들이 인도를 거침없이 휘젓고 다니며, 포장마차가 가로막고, 매우 비좁습니다. 움푹 꺼지거나 패인길도 많습니다. 상인들은 인도에 상품 내놓고 있습니다. 국도에는 아예 사람들이 걸어 다닐 수 있는 인도가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우리나라의 도시들도 사람들이 마음 놓고, 즐겁고, 편안하게 걸어 다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걸어서 직장에도 가고, 친구도 만나고, 영화도 보고, 미술관도 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거리를 걸어 다니기 좋고, 아름답고 편안하게 만들어 놓으면 사람들은 아름다운 거리를 걸어가면서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를 자세히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도시와 길거리를 잘 알게 되고, 아름답고 깨끗한 도시를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할 것입니다. 거리에 심어져 있는 나무와 꽃 그리고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과 삶의 모습에 관심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하루에 만보만 걸으면 건강하게 살 수 있다고 합니다. 걷기 좋은 거리를 만들어 놓으면 사람들은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많이 걷게 되어 시민들의 건강증진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많은 철학자들이 주장했던 것처럼 사람들은 길을 걸으면서 마음의 여유를 가지게 되고, 정서적으로도 편안하게 되고, 여러 가지 것들을 깊이 있게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부터라도 시장과 공무원 그리고 시민들이 힘을 합쳐 ‘걷기 좋은 거리’를 만드는 일을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한양대 교육학과 교수(전 대통령실 교육과학문화수석) tiger@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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