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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경형 칼럼] ‘대한민국 공동체’ 정신 절실하다

    [이경형 칼럼] ‘대한민국 공동체’ 정신 절실하다

    연일 이어지는 노조 파업, 야당의 해임안 의결 강행에 따른 반쪽 국회를 보고 있으면 부아가 치민다. 북핵 위협이 날로 가중되고 전 국민을 공포에 떨게 한 경주 지진은 아직도 여진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국가 비상 국면에 그들만의 작은 이기주의에 파묻혀 무시로 힘자랑을 하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미 백악관 대변인은 지난 22일 “선제 군사행동은 미리 논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북한이 5차 핵실험에 이어 장거리 로켓 엔진 실험 성공을 발표한 이틀 뒤의 논평이었다. 미국은 1994년 북한 영변 핵시설에 대한 예방적 폭격을 하려고 했다. 그때만 해도 북한은 핵개발 초기 단계였으나, 지금은 핵탄두를 실전 배치하는 수준에 와 있다. 미 외교협회(CFR)도 북핵 동결, 핵실험 유예와 한·미 군사훈련 축소 등 북·미 간 협상이냐, 아니면 선제 타격이냐를 거론할 만큼 한반도의 안보환경은 엄중한 시점이다. 금융노조에 이어 철도, 지하철 등 공공운수노조가 무기한 파업을, 병원 등 보건의료노조는 순차적인 파업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성과연봉제 반대를 파업 명분으로 들고 있다. 노조는 성과급제가 쉬운 해고로 이어진다고 주장하나 금융환경이 급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케케묵은 연공서열제로 어떻게 경쟁력을 창출할 수 있을지 답답하다. 시중은행의 평균 연봉이 8800만원이고, 임금을 더 올려 달라고 파업을 벌인 현대차 노조의 평균 연봉은 9600만원에 이른다. 임금 상위 10%의 억대 귀족노조들의 ‘배부른 힘자랑’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비정규직 일자리라도 구하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청년실업자들의 안타까운 모습이 정녕 그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일까. 여소야대 국회도 노조 파업과 다를 바 없다. 4·13총선 민의는 20대 국회에 협치를 명령했지 다수의 아집으로 힘자랑을 하라고 하지 않았다. 야당이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취임하자마자 장관 직무와 상관없는 해임건의안을 밀어붙인 것은 다수라는 ‘근육질’을 뽐내는 것에 불과하다. 도대체 야당은 힘자랑으로 얻은 게 뭔가. 황금 같은 국정감사 기간을 사실상 허송세월하고 있다. 국방부는 주중에 사드 배치의 최종 후보지로 롯데 소유의 골프장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인근 주민들의 반대가 있을지 모르나 북의 고고도미사일에 대응하는 최소한의 방어 전력으로서 사드 배치는 불가피하다. 만약 북한이 핵탄두를 미사일에 장착하여 쏜다면 한반도는 전쟁의 불길에 휩싸인다.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성주니 김천이니 하는 특정 지역의 안보 님비(NIMBY)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줄파업, 해임건의안, 사드 님비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소리(小利)에 매몰되어 대의(大義)를 놓치는 것이다. 독일의 철학자 피히테는 1807년 ‘독일 국민에게 고(告)함’이라는 강연을 통해 독일 재건을 위한 애국심과 민족정신을 고취했다. 피히테는 나폴레옹의 프랑스 점령군에 짓밟힌 베를린에서 3개월간에 걸쳐 행한 연설에서 독일 국민에게 역사적 사명을 되새겨 주었다. 오늘의 부강한 독일도 피히테의 국민교육철학에 그 정신적 바탕을 두고 있다. 최근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는 ‘특혜와 책임’이라는 저작을 통해 한 시대를 이끄는 역사의 동력은 무엇인가를 분석했다. 송 교수는 “과거 산업화시대의 역사의 동력은 ‘적나라한 물리력에 기초한 강력한 리더십’이었다면 민주화 이후의 시대 동력은 대통령 1인의 빼어난 정치력이 아니라, 한국사회의 상층부를 구성하는 각계 지도층의 책임 의식과 희생정신과 실천, 즉 노블레스 오블리주”라고 설파했다. 만약 피히테가 살아 있다면 대의는 없고 작은 이익만 좇는 이 시대의 많은 한국 국민에게 고할 수 있는 말은 무엇일까. 송 교수가 지적한 각계 지도층 외에 나는 이 말을 덧붙이고 싶다. 많은 국민이 자신의 작은 이익보다는 나라 전체의 이익을 좀더 생각하고 우리 후손까지 살아가야 할 지속 가능한 한국을 늘 염두에 두면서 행동을 하자는 것이다. 이 시대야말로 ‘대한민국 공동체’ 정신을 새로이 가다듬는 일이 절실하다.
  • [서울광장] 댓글도 한번 안 보는 사람들/황수정 논설위원

    [서울광장] 댓글도 한번 안 보는 사람들/황수정 논설위원

    지난 추석 연휴 영남 지역의 으뜸 화제는 지진이었다. 다리 부러지게 차려진 차례상을 물리고서도 안줏거리는 따로 있었다. 시어머니에게서도 지진 후일담이 나왔다. 지붕이 내려앉는 줄 알았다며 시작된 이야기는 엉뚱한 데로 흘렀다. 북새통에 안부 전화가 줄줄이 걸려 왔는데 막내아들이 맨 먼저, 그다음이 둘째딸, 내가 세 번째였다는 거다. 다음 순서들이 뒤를 받쳐 줬지만 김은 샜다. 삼등은 보통의 비유법으로는 낙제다. 졸지에 나는 삼등 며느리가 됐다. 먹통 지진 경고에, 늑장 재난 방송 때문에. 여기까지야 농 삼을 수 있다. 하지만 살림집과 주변 건물들이 무너졌더라면 상황은 딴판이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는 하루아침에 가족사가 달라지는 비극이었을 이야기다. 여러 말 필요 없는 역동적인 나라에 우리는 살고 있다. 큐 사인이 떨어지면 무대가 통째로 바뀌는 연극판을 방불한다. 수많은 가족사를 바꿀 뻔했던 강진 후유증 극복에 한참 더 초점이 맞춰져야 상식이다. 그런데 그새 지진은 귀퉁이 신세다.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국회 해임 건의안에 들쑤셔진 벌집이다. 야당은 뚜렷한 사유도 없이 장관 해임안을 밀어붙였다. 대통령은 벌집 쑤셔질 줄 알면서 해임안을 즉각 거부했다. 집권당이 단체로 피켓 시위를 하고 이정현 대표는 ‘비공개’ 단식에 들어갔다. 사람들은 진심으로 궁금해진다. 장관 한 사람의 거취를 놓고 저렇게들 사생결단할 일인가. 내게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상식으로 납득되지 않는 정치 뉴스에는 스크롤을 끌어내려 댓글을 살피는 것이다. 쓸데없는 시간 죽이기라고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내 정치혐오증만 중증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 공간에서는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위안을 받는다. 댓글 나누기는 정치염증의 자가 처방쯤 되는 셈이다. 인터넷 댓글을 말장난 수준으로 보는 것은 현실감각 없는 편견이다. 지극히 상식적인 사람들이 카타르시스를 담은 촌철살인의 견해를 올리기도 한다. 얼마 전 어느 사회학과 교수한테서도 댓글의 효용에 대해 들은 적 있다. 간접 소통의 창구 기능이 기대치 이상이며, 속칭 ‘베댓’(베스트 댓글)의 위력이 방증한다는 것이다. 댓글 소통에 완전 동의한다. 누구도 우습게 볼 일이 아니다. 정치 댓글의 대세는 30~40대 남성 유권자들이다. 며칠째 장관 해임안 파동에도 나는 열심히 스크롤을 내린다. 새삼 의문. 국회는 국민이 여전히 장관의 효용을 굳게 믿고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래서 한쪽에서는 장관의 자질을 현미경으로 물고 늘어지는 척하고, 한쪽에서는 행정 공백을 걱정하는 제스처일까. 착각들이다. 민망하지만 정곡을 찌르는 댓글 하나를 옮긴다. “또 자기네끼리 기싸움판. 김재수를 조윤선(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바꿔 앉힌다 한들 대수라고?” 삽시간에 누리꾼들의 동의가 쌓인다. 민심이 이런 정도다. 여기까지 와 있다. 농식품부 장관과 문체부 장관이 내일 갑자기 자리를 바꿔치기해도 대세에 지장 없을 거라는 식의 회의주의가 깊다. 국민안전처 장관은 “활성단층 위에 원전이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고 말하고, 지진이 나도 장관의 밤잠은 깨우지 않는 것이 기상청의 매뉴얼이다. 풍자 개그에서나 나올 이야기를 실시간 쏟아내는 주인공이 현실의 장관들이다. 그런 정부에 이 순간에도 어떤 댓글 민심이 쏟아지고 있는지는 상상에 맡긴다. 재난도 각자 해결하는 DIY(Do It Yourself) 시대라고들 걱정이다. 국민안전처의 먹통에 겁이 난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움직인다. 정부 대신 지진 경고문을 띄워 주는 ‘지진희 알림’이란 것도 등장했다. 이미 4만명 넘게 가입한 커뮤니티로 1분에 20개 넘는 지진 글이 올라오면 즉시 경고를 보내 준다. 지난주 지진 때도 안전처보다 4분이나 빨랐던 모양이다. 민망한 현실의 이야기다. 이달 초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의 국회 대표 연설에 귀를 세웠었다. “국민이 삶의 현장에서 객관적으로 쓴 댓글은 어떤 철학자나 정치학자에게 배우는 것보다 진실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했다. 항상 댓글을 사냥할 것이며, 댓글 정치를 하겠다고도 했다. 이 대표는 벌써 그 약속을 까먹은 것 같다. 쏟아지는 댓글을 보고 있다면 저러고 있을 리가 없다. sjh@seoul.co.kr
  • 인류의 기억 디지털에 맡겨도 되나

    인류의 기억 디지털에 맡겨도 되나

    기억이 사라지는 시대/애비 스미스 럼지 지음/곽성혜 옮김/유노북스/348쪽/1만 5500원 인류의 정보는 디지털 시대에 접어들면서 기하급수적으로 ‘인플레이션’되고 있다. 전 세계 웹 데이터는 2012년 27억 테라바이트(TB·1TB=1024GB)에서 지난해 80억TB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반면 기억의 유통기한, 즉 ‘데이터 수명’은 찰나적이다. 인터넷이 전 세계로 확산되던 1997년 당시 웹 페이지가 존재한 시간은 평균 44일이었다. 2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그 시간은 불과 100일에 그친다. 현 인류의 속도감 있는 디지털 기억들은 사유를 위한 최소한의 ‘마찰 저항’조차 없이 우리의 기억을 기계화된 입력과 출력의 문제로 환원시킬 뿐이다. 신간 ‘기억이 사라지는 시대’는 급속히 증가하는 인류의 기억을 디지털에 위탁해도 되는지를 묻는다. 저자는 선사시대의 동굴 벽화부터 수메르인 필경사들이 창조해 낸 설형문자와 중세 인쇄술의 발명이 불러온 문자혁명 그리고 2010년 미국 의회도서관이 트윗을 보관하기로 한 결정까지 주요 역사적 지점마다 기억과 지식을 다뤄 온 인류의 방식을 ‘외주화’로 정의한다. 중세 이후 서구 사회는 지식 보급의 대전환이 일어났다. 값싼 목재 펄프 종이에 책을 대량으로 찍어내는 기술이 개발됐고 사진 촬영과 음향 녹음 기술은 인류로 하여금 훨씬 빠르게 정보를 기록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같이 지식과 정보를 저장하고 보존하는 기능은 인간의 두뇌가 아닌 별도의 장치에 외주화되면서 첨단화·고도화되어 왔다. 디지털 세례로 인해 인류는 컴퓨터와 구동 프로그램(OS), 파일, 심지어 전기까지 없게 되면 모든 일상이 마비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인류가 축적해 온 기억은 인간의 유전자(DNA)에는 내장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일찍이 문자의 발명을 탐탁잖게 생각했다. 그는 파피루스 두루마리에 인간의 생각과 경험을 쓰는 행위를 지식과 기억의 외주화로 여겼고, 인간은 지혜를 잃게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물론 소크라테스의 경고는 틀린 예측에 그쳤다. 인류는 그리스 로마 시대 이래 탁월한 문화적 성취를 문자로 기록했지만 지혜를 잃지는 않았다. 기억의 외주화는 인류의 원초적 욕망과 연관돼 있다. 4만년 전 호모 사피엔스가 남긴 벽화들도 따지고 보면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전하고 싶은 기억을 이미지로 남겨 놓은 흔적이다. 저자는 호모 사피엔스의 이미지들을 “존재를 증언하고 싶은 욕망, 시공간이 멀리 떨어진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싶은 인류의 욕망”으로 묘사한다. 이 같은 욕망에 불을 지른 첫 기억 혁명이 바로 문자의 발명이다. 문자는 기록 문화를 만들어 냈으며, 지식을 조직화했고, 근대의 유물론은 과학 기술 혁신의 분기점이 됐다. 이 책의 부제인 ‘디지털 기억은 인간의 운명을 어떻게 바꾸는가’라는 질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안다. 개인정보 침해와 우발적 삭제와 해킹, USB와 외장하드 같은 저장 기술의 취약점 등 역설적으로 디지털 시대 들어 인류의 기억이 더 큰 위기에 처해 있다는 점을 말이다. 특히 저자는 “개인적 기억과 정체성을 컴퓨터에 더 많이 위탁할수록 우리는 자율성을 잃는 데 대한 두려움인 ‘데이터 소외’가 더욱 증가한다”고 지적한다. 우리의 기억을 유일하게 읽어내는 존재는 이제 디지털 기계뿐이며 ‘구글이 무엇을 아는지 알기 위해 항상 접속되어 있어야만 한다’는 오늘날의 금언처럼, 인류의 통제력을 기계에 내어주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대안이 있을까. 저자는 인류의 집단적 기억을 저장·보존하고 개방하는 주체로 공공성을 제시한다. 구글 같은 사기업들이 이윤 추구 이상의 인류적 가치를 실행할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저자의 인식이다. 대신 세계 각지의 공공 도서관과 기록 보관소, 박물관, 인터넷 아카이브 등 공공 및 비영리 기관들을 통해 인류의 기억을 보존하자고 외친다. 그는 “지식에 대한 접근 가능성을 결정하는 일은 공익사업이 돼야 한다”며 “구글 같은 회사가 지식을 조작하게 내버려둔다면 인류는 집단 기억상실증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경고한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이광식의 문화유랑기] 퇴계가 사랑한 기생…그의 순애보

    [이광식의 문화유랑기] 퇴계가 사랑한 기생…그의 순애보

    두향의 남자, 퇴계의 여자 중국 개화기의 대표적인 사상가 양계초(梁啓超)가 “아득하셔라, 이부자(李夫子) 님이시여”라며 거리낌없이 성인이라 칭한 퇴계 이황. 이 근엄 무쌍한 도학자에게 실로 가슴 아픈 러브 스토리가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그것도 이팔 청춘 한창때가 아니라, 불혹(不惑)을 훌쩍 넘긴 나이에 맞닥뜨렸던 가슴 아픈 사랑이었다. 그 상대 여성은 그럼 누구였던가? 되도록이면 팩트에만 근거하여 퇴계의 러브 스토리를 재구성해보도록 하자. 내가 더듬어본 자료에 의하면, 퇴계의 사랑과 그 상대 여성이 일반에게 알려진 계기는 정비석의 '명기열전'인 것으로 보인다. 그가 두향(杜香)이라는 단양 기생과 퇴계 사이에 있었던 러브 스토리를 소설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단양기 두향’편을 씀으로써 퇴계와 두향의 슬픈 사랑을 세상에 알린 것이다. 단양에 두향이라는 명기의 슬픈 사랑 인연이 있었다는 사실을 정비석이 안 것은 오래 전의 일이었지만, 그 상대 남자가 누구인지는 모르고 있었다. 작가가 단양에 내려갈 때마다 이 사람 저 사람 붙잡고 물어보고 자료를 뒤져봤지만, 종내 그들의 사연을 알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고서를 뒤적이다가 우연찮게 두향의 무덤에 관한 한시 두 수를 발견하게 된다. 그중 한 수는 조선 후기에 우리나라에 고구마를 처음으로 전파시킨 이광려(李匡呂)라는 실학자의 작품으로, 그가 두향묘를 참배하고 지은 시라 한다. 孤墳臨官道 국도변에 외로운 무덤 하나 頹沙暎紅萼 물가 모래에 어리는 붉은 꽃 杜香名盡時 두향이란 이름 잊혀질 때야 仙臺石應落 강선대 바위도 사라지리라 이로써 ‘두향’이 ‘전설’이 아니라 ‘실화’임을 확신할 수 있었을 뿐더러, 시편에서 풍기는 가락으로 보아 두 사람의 사랑이 예사롭지 않은 거라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아니면, 한낱 기생의 무덤을 두고 대시인들이 이런 시를 남겼을 리 만무한 노릇 아닌가. 그뿐 아니다. 400년도 더된 무덤이 아직까지도 보존되고 있어, 한때 이 무덤을 찾은 노산 이은상이 다음과 같은 소회를 그의 기행문 속에 남겼던 것이다. '내 비록 풍류랑은 아닐망정, 그 무덤 앞에 꽃 한 송이 못 놓고 가는 것이 어떻게나 서운한지 모르겠다.' 이 무덤의 주인 두향의 남자는 누구일까? 작가는 우연찮은 기회에 마침내 ‘그 남자’를 알아내게 됐는데, 정말 이럴 수가? 입이 딱 벌어지는 사실이었다. 작가가 전하는 전말은 다음과 같다. 퇴계학 관련자들과 함께 기차를 타고 안동 도산서원으로 내려가던 중 기차가 단양을 지날 때, 작가가 단양 명기 두향의 남자를 몇 해째나 찾아봤지만 알아내지 못했노라고 푸념처럼 말하자, 동행하던 한문학자 이가원(李家源) 교수가 불쑥 이렇게 말하더라는 것이다. “두향의 상대 남자는 바로 퇴계 아니오.” 이 교수는 퇴계학의 권위일 뿐 아니라 퇴계 14대 후손이기도 하다. 어찌 믿지 못하리오. 알고 보니 이미 오래 전부터 퇴계 문중에서 두향묘를 관리해오고 있다고 한다. 이 교수 역시 몇 년 전에 두향묘를 찾아, 무덤 한가운데 소나무 한 그루가 나 있는 걸 보고는 마을 사람에게 베어달라고 하면서 돈까지 주고 왔다는 것이다. 이로써 퇴계와 두향과의 관계는 의심할 수 없는 사실로 확인된 셈이다. 정비석은 안동에서 올라오던 길에 우정 단양에서 내려 강선암 아래 쑥대밭 속에 누워 있는 두향의 묘를 주민의 도움으로 찾았다. 과연 무덤 한가운데는 이가원 교수가 말한 대로 소나무 그루터기 하나가 박혀 있었다. 의심할 바 없는 퇴계의 여자 두향의 묘였다. 작가는 한 길 넘는 쑥대밭 속에 누워 있는 두향에 대해 창연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어 주머니돈을 털어 촌민에게 건네며 표석 하나만이라도 세워달라는 부탁을 하고는 귀로에 올랐다고 한다. 매화, 시, 음률로 맺어지다 퇴계가 단양 군수로 온 것은 명종 3년(1548년) 정월, 그의 나이 48살 때였다. 그때 단양 관기인 두향의 나이는 18살, 30년이란 세월이 두 사람 사이를 흐르고 있었지만, 둘 사이에는 공유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세 가지였다. 첫째가 매화, 둘째가 시, 셋째가 음률이었다. 퇴계는 대철학자이지만, 동시에 빼어난 시인이기도 했다. 그는 특히 매화를 깊이 사랑하여 생전에 백 수가 넘는 매화시를 지었을 뿐만 아니라, 매화시만으로 ‘매화시첩’을 만들기도 한, 그야말로 매화 마니아였다. 아래의 시는 그가 얼마나 감각적인 시인인가를 한눈에 보여주는 가작이다. 步躡中庭月趁人 뜰을 거닐으니 달이 사람 좇아오네 梅邊行遼幾回巡 매화꽃 언저리를 몇 번이나 돌았던고 夜深坐久渾忘起 밤 깊도록 오래 앉아 일어나길 잊었더니 香滿衣巾影滿身 꽃내음 옷에 스미고 그림자 몸에 가득하네 또한 퇴계는 일종의 음악론인 ‘금보가(琴譜歌)’를 쓰기도 할 만큼 음률에도 밝았다. 그렇다면 두향이 사정은 어떤가? 일단 미모에 대해서는 별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아 미인급에는 못 미치는 듯하지만, 아주 귀한 재주를 가지고 있었는데, 다름아닌 양매(養梅)와 거문고의 고수였던 것이다. 게다가 시에도 밝았다. 그러니 퇴계와 두향은 유효 거리 내에서는 언제든지 화학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활성 원소와 다름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당시 퇴계는 두 번째 부인 권씨를 잃은 지 2년이 지난 홀아비 신세였음에랴. 퇴계가 두향을 만났을 때는 권씨가 세상을 떠난 지 이태가 지난 뒤였다. 이래저래 활성 기체 같았던 두 남녀의 첫 얽힘에 대해서는 상상으로나 그려볼 수 있을 뿐, 어차피 기록은 없다. 그러나 매화와 음률, 시 등으로 두 사람이 30년 세월과 신분을 훌쩍 뛰어넘어 서로에게 침잠했을 거라고 짐작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듯하다. 교양과 기예, 재능과 학문을 갖춘 젊은 여인의 향기 속에 퇴계는 속절없이 빠져들었을 것이다. 전하는 얘기에 의하면, 양매의 고수인 두향이 집에서 애지중지 키우던 30년 묵은 백매와 청매 두 분(盆)을 퇴계의 거처에 옮겨두었다고 한다. 퇴계가 특히 매화를 혹애한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 백매와 청매는 참으로 기품 높은 나무로, 고수는 서로 한눈에 알아본다고, 퇴계는 한눈에 그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챘을 것이다. 그 무렵 매화를 읊은 퇴계의 시가 여러 편 전하는데, 다음의 시가 두향의 매화를 보고 지은 것으로 보인다. 獨倚山窓夜色寒 홀로 산창에 기대니 밤기운 차가운데 梅梢月上正團團 매화나무 가지 끝에 둥근 달이 걸렸구나 不須更喚微風至 구태여 소슬바람 다시 불러 무엇하리 自有淸香滿院間 맑은 향기 저절로 온 뜰에 가득한데 퇴계는 두향이 어린 나이임에도 깊은 인품과 내명(內明)한 자질을 지닌 여인임을 알고는 여러 번 감탄했다고 한다. 더욱이 퇴계는 남녀상열지사에 대해서는 상당히 열린 마음의 소유자였다. 청상이 된 며느리를 재혼하라면서 친정으로 돌려보내기까지 한 휴머니스트였다. 단양은 벽지이지만 산수가 빼어나기로 이름 높은 고장이다. 예로부터 단양에 부임해오는 원님들은 모두 울며 왔다가 울며 간다는 말이 전해진다. 올 때는 궁벽한 곳으로 간다고 눈물짓지만 갈 때는 아름다운 고장을 떠나기 못내 아쉬워 운다는 것이다. 명승으로 꼽히는 곳을 들자면, 먼저 정도전의 전설이 얽혀 있는 도담삼봉을 비롯해, 석문(石門), 사인암(舍人巖), 상·중·하선암(下仙岩), 구담봉(龜潭峰) 그리고 옥순봉(玉筍峰) 등 팔경을 앞세울 수 있고, 그밖에도 기암괴석, 옥류가 곳곳에 널려 있다. 퇴계와 두향은 이 절경들을 둘러보면서 꿈결 같은 생의 한때를 보냈을 것이다. 지금 흔히 말하는 ‘단양팔경’은 퇴계의 아이디어로, 그때 두향과 같이 다니면서 퇴계가 스스로 이름 붙이고 정한 것이다. 그렇다고 퇴계가 공무를 뒤로 하고 매양 놀기만 한 것은 물론 아니다. ‘성(誠)’이라면 둘째 가기 서러워할 퇴계 아니던가. 그는 단양이 물이 많은 고장임에도 자주 가뭄이 들어 백성들이 굶주린다는 사실을 직시하고는 최초로 물을 가두는 보를 쌓는 등, 뛰어난 치적을 올린 지방관이었다. 이 보가 생긴 이후로 단양에서는 굶는 사람이 없어졌다 한다. 지금 충주호를 보면 4백 년 전 퇴계의 선견지명을 능히 알 수 있다. 이 보의 이름은 복도소(複道沼)라고 한다. 이 보가 완공되었을 때 퇴계는 준공기념으로 ‘복도별업(複道別業)’이라는 네 글자를 크게 써서 부근의 바위에 새기게 했는데, 그 각자는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다. 또 남아 있는 퇴계의 글이 하나 더 있는데, 그것은 퇴계가 아침마다 세수를 한 곳에 새겨져 있는 ‘탁오대(濯吾臺)’ 세 글자다. 퇴계와 두향은 특히 남한강 가 강선대(降仙臺) 위에서 자주 거문고를 타고 시를 읊으며 노닐었다. 강선대는 백 명이 올라가 놀 수 있을 만큼 너른 너럭바위로, 지금은 충주호에 잠겨 있지만, 갈수기에는 가끔 그 모습을 물 위로 드러내기도 한다. 두 사람은 단양팔경 속을 거닐며 그렇게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맞았다. 그러나 퇴계와 두향의 단양 시절은 가을이 미처 다 가기도 전인 시월에 갑자기 막이 내린다. 불과 아홉 달 만에 두 사람이 헤어지게 된 것은 퇴계의 넷째 형 이해(李瀣)가 충청도 관찰사로 부임하게 된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형이 자기의 직속상사로 온 것이다. 공사가 엄격했던 퇴계는 이를 피하기 위해 인근 고을인 경상도 풍기 군수로 옮겨가게 되었다. 두향과의 이별은 피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짧은 인연 뒤에 찾아온 갑작스런 이별은 두 사람 모두에게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들의 감정이 얼마나 절절했을 것인가는 미루어 짐작할 수밖엔 없다. 단양을 떠날 때 퇴계의 짐은 책 두어 궤짝과 괴석(怪石) 두 개뿐이었다고 한다. 단양을 떠나 한 나절쯤 가면 풍기와의 경계인 죽령에 이른다. 두 사람은 아마 거기에서 작별한 듯하다. 그리고 그로부터 21년 후 퇴계가 70살로 눈을 감을 때까지 두 번 다시 서로 만나지 못했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에 편지 왕래는 있었던 모양이다. 두향에게 보낸 다음의 시를 보면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黃卷中間對聖賢 옛 책 속에서 성현을 만나보며 虛明一室坐超然 빈 방안에 초연히 앉았노라 梅窓又見春消息 매화 핀 창으로 봄소식 다시 보니 莫向瑤琴嘆絶絃 거문고 마주앉아 줄 끊겼다 한탄 마라 퇴계의 나이 52세 되는 해(1552년)의 작품이다. 그러니까 두향과 헤어진 지 4년째 봄을 맞아 쓴 시이다. 시문의 끝 구절에 "거문고 마주 앉아 줄 끊겼다 한탄 마라"는 두향의 마음을 위로하는 내용임이 분명해 보인다. 두향은 이 시 한 편을 받고 평생을 거문고 가락에 실어 노래로 불렀으리라. 퇴계와 헤어진 후 두향은 기적에서 몸을 빼내 이듬해 봄, 강선대가 눈 아래 굽어보이는 적성산 기슭에 움집을 짓고는 평생 홀로 살았다고 한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세월을 두 번씩이나 보낸 두향이 이 초당을 떠나게 된 것은 퇴계의 부음을 들었을 때였다. 두향은 바로 집을 나서 죽령을 넘어가는 험란한 200릿길을 단신으로 걸어 나흘 만에 안동 도산서당이 있는 도산면 토계리에 도착했다. 그러나 빈소에는 찾아가지 못하고 멀리 상가가 보이는 산기슭에서 소복한 차림으로 망곡하며 하룻밤을 지새울 수밖에 없었다. 두향과 헤어진 후 퇴계는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풍기군수를 일년 남짓한 퇴계는 병을 이유로 사직했다. 하지만 그 뒤로도 조정에서는 계속 퇴계를 불러, 부제학, 공조판서, 예조판서 등을 역임했지만, 이미 벼슬에는 뜻이 없는데다 병약한 퇴계는 번번이 사직서를 내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가 평생 동안 사직서를 쓴 것만도 80여 회나 된다고 한다. 말년엔 안동에 서당을 지어 은거하며 제자들을 가르쳤다. 퇴계의 학문적 성취는 대개 두향과의 이별 이후인 50대~60대에 이루어진 것이다. 그는 자연과 학문 속에서 위안을 찾으며 살아갔던 것으로 보인다. 인근의 명산인 청량산을 특히 자주 찾았고, 때로는 며칠씩 산에 있다가 내려오기도 했다. 교과서에 실리기도 한 그의 명시조 '청량산 육륙봉'은 그래서 태어난 것이다. 청량산 육륙봉을 아는 이 나와 백구 백구야 헌사하랴 못 믿을손 도화로다 도화야 떠지지 마라 어주자 알까 하노라 퇴계에게 또 하나의 큰 위안은 매화였다. 죽을 때까지 매화를 가까이하며 뜰에도 심고 방안에서도 가꾸던 퇴계는 마치 매화 대하기를 사람 대하듯 했다고 한다. 매선(梅仙)이라 하기도 하고 매형(梅兄)이라 부르기도 했다. 병으로 몰골이 심히 초췌할 때엔 매화 보기가 부끄러우니 다른 방으로 옮기라고도 했다. 세상을 떠날 때 퇴계의 마지막 말은 자신이 사랑하던 매화를 보며 ‘저 매화분에 물을 주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저물녘이 되자 누워 있던 자리를 정리하게 한 후, 제자들이 일으켜 앉히자 앉은 채로 숨을 거두었다. 1570년 음력 12월, 향년 70세. 바깥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죽기 전 퇴계가 손수 지어놓은 묘비명 끝 구절은 다음과 같은 글이었다. 근심 속에 낙이 있었고, 즐거움 속에 근심이 있었네(憂中有樂 樂中有憂) 조화를 좇아 사라짐이여, 다시 무엇을 구하리오(乘化歸盡 復何求兮) 이보다 더 아름답고 완벽한 종결이 있을까. 강선대 위 초막으로 돌아온 두향은 이듬해 봄 거문고와 서책 등을 모두 태운 후 스스로 목숨을 끊어 퇴계의 뒤를 따랐다. 자료에 따라서는 강물에 뛰어들었다고도 하고 부자차를 끓여 마시고 죽었다고도 하는데, 증거는 없지만 아마도 후자가 아닐까 싶다. 깔끔한 성품의 두향이 강물에 빠진 시신을 수습하는 폐를 남에게 끼치고 싶진 않았으리라. 유언은 그녀가 생전 퇴계와 노닐었던 강선대 아래에 묻어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무덤은 전 충주호가 생겨나면서 수몰을 피해 200m쯤 위로 묘가 옮겨졌다. 두향이 죽은 뒤 퇴계의 제자인 이산해가 해마다 제사를 지내주었고 한다. 지금도 퇴계의 후손들과 유학자들은 퇴계의 제례를 지내고 나면 충북 단양의 강선대로 와 두향의 묘를 참배한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두향을 향한 퇴계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그의 시 한 편을 읽는 것으로 퇴계와 두향의 슬픈 사랑 이야기를 끝내기로 하자. 前身應是明月 내 전생은 응당 밝은 달이었으리 幾生修到梅花 몇 생애나 더 닦아야 매화가 될까. 글·사진 이광식 통신원 joand999@naver.com
  • “인간에게만 있는 ‘직관’ AI가 넘을 수 없는 부분”

    “인간에게만 있는 ‘직관’ AI가 넘을 수 없는 부분”

    “철학자로서 생각하기에 인간의 지능과 지성은 단순히 지식을 생산하며 이성적인 것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지성에는 직관적이고 감정적인 부분이 분명히 포함돼 있습니다. 인공지능(AI)이 결코 따라올 수 없는 부분입니다.” 경희대가 개최하는 ‘피스 바 페스티벌 2016’에 기조연설자로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에르빈 라슬로 부다페스트클럽 회장은 20일 서울 성북구 홀리데이인성북에서 기자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21일부터 오는 23일까지 진행되는 피스 바 페스티벌은 매년 9월 21일 ‘유엔 세계 평화의 날’을 기념하기 위해 열리는 학술행사로, 올해로 35회째를 맞았다. 과학철학자이기도 한 라슬로 회장은 “AI에 대한 지나친 낙관주의와 비관주의는 AI가 인간을 대체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지적하며 “AI는 현재 사람들이 하는 일들의 부담을 덜어 주기 위한 수단으로 가치를 가져야지 AI 개발 그 자체가 목적이 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교통 시스템을 예로 들면서 현재 교통경찰이나 지도, 내비게이션 등은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기 위한 수단이며 그것을 쓰는 것은 사람들이 원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사람이 만든 기계나 시스템은 우리에게 어디로 가라고 말해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딘가로 편하게 이동하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일 뿐입니다. 위험은 인간의 목적을 위해 쓰는 AI가 사람에게 목적을 정하게 만드는 순간 닥쳐오게 되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AI에 대해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도 없고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인류 사회의 문제 해결과 현존하는 성장의 한계를 넘어서는 방법을 고민하기 위해 전 세계 저명인사들이 모인 부다페스트클럽 회장으로서 라슬로 회장은 현재 인류가 처한 가장 큰 도전과제는 ‘지구 환경의 지나친 착취’라는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기후변화나 식량 문제, 빈곤 문제는 인간이 환경을 지나치게 착취하면서 생기는 분배의 위기라는 말이다. 라슬로 회장은 “지구에 있는 기본적인 자원은 특정 국가나 기업, 소수에게 독점돼서는 안 되며 모든 사람을 위해 공평하게 분배돼야 하는 동시에 필요 이상으로 이용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환경 보전은 물론 평화 유지도 사람들이 얼마나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며 대학과 미디어의 역할을 강조했다. 라슬로 회장은 “20세기 말 동유럽과 구소련이 무너지면서 냉전체제가 사라지게 된 것도 정보의 개방과 교육 덕분”이라며 “현재 한국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도 그런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정보의 중요한 역할은 반대편의 장벽을 허무는 것으로, 지도자들의 이상이나 생각만으로는 불가능하며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때 가능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장수철의 생물학을 위하여] 모든 생물은 조상으로부터 왔다, 최초의 한 번만 빼고

    [장수철의 생물학을 위하여] 모든 생물은 조상으로부터 왔다, 최초의 한 번만 빼고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개똥벌레가 영롱한 아침이슬에서 생겨났을 것이라 했고, 가톨릭의 한 추기경은 오리가 조개껍질에서 태어난다고도 했다. 심지어 데카르트도 생물을 만드는 데에는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아 자연스레 생물이 형성된다고 생각했다. 뉴턴은 혜성 꼬리에서 식물이 나왔을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무생물로부터 특정 생물이 생긴다는 주장을 ‘자연발생설’이라고 한다. 이런 생각들이 말도 안 된다는 것을 요즘은 초등학생들도 안다. 그렇지만 오래된 고깃덩어리에서 구더기가 나오고 창고 한 구석에 말아 둔 넝마에서 생쥐가 나타나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생물은 자연발생을 할까? 그렇지 않다. 이 답을 얻기 위해 많은 과학자들이 연구를 했는데 프랑스의 과학자 파스퇴르가 결정적 증거를 제시했다. 그는 백조 목처럼 구부러진 긴 관이 연결된 플라스크를 만들었다. 이 플라스크와 관이 없는 플라스크에 각각 고기 국물을 넣고 팔팔 끓였다. 며칠 후 관이 없는 플라스크에서는 세균과 곰팡이가 자라 고기 국물이 썩었지만 관을 부착한 플라스크에서는 고기 국물이 처음 그대로였다. 고기 국물을 끓일 때 생긴 수증기가 관 아래쪽에 물로 응결돼 세균을 비롯한 미생물들이 통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외부로부터 생물들의 침입을 원천적으로 차단했더니 생물들이 출현하지 않았다는 사실과 함께 생물의 자연발생설이 틀렸음을 명확하게 보여 준 실험이었다. 던져 둔 고깃덩어리에서 구더기가 생기는 것 같은 현상은 눈으로 볼 수 없는 세균, 포자, 씨, 알, 애벌레 등이 붙어서 성장해 눈으로 관찰할 수 있을 정도로 큰 생물체가 된 것이다. 그럼 자연발생설은 전혀 의미가 없는 것일까? 지난주는 햇과일과 햇곡식으로 조상들에게 차례를 지내는 추석이었다. 우리는 부모에게서, 부모는 또 그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이렇게 계속해 거슬러 올라가 추적하다 보면 약 20만년 전의 호모 사피엔스 조상, 약 600만년 전의 다양한 호미닌 종들의 조상, 유인원의 조상, 영장류의 조상, 포유류의 조상, 양서류의 조상, 바다동물의 조상, 동물의 조상, 진핵생물의 조상, 결국 약 37억년 전의 세균 조상에까지 이르게 된다. 이 조상 세균들도 조상이 있었을 것이라 추측하는데 과학자들은 이 조상을 원시세포라 명명했다. 그렇다면 이 원시세포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46억년 전에 막 탄생한 지구는 수많은 운석이 떨어지고 지각활동이 활발한 ‘뜨겁고 격렬한’ 행성이었다. 그러다가 39억년 전 이후 운석의 충돌이 멈췄고 지구는 암모니아, 수소, 황화합물, 메탄, 이산화탄소와 질소 등 가스로 가득 차게 됐다. 이런 조건에서 생명체가 나타날 수 있을까? 1953년 밀러는 원시지구 성분을 사용한 실험에서 생물을 구성하는 많은 종류의 단순한 유기분자를 합성할 수 있었다. 그 결과는 2008년에 더 발전된 분석기술에 의해 다시 확인됐고, 생물 합성이 심해 열수구에서 일어났을 가능성도 설득력 있게 제기됐다. 지구로 떨어진 탄산질 운석을 분석해 보면 단순한 유기분자들이 발견된다. 이는 생물을 구성하는 유기분자가 지구 내에서만 생기는 특별한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작고 간단한 유기분자는 단백질, 핵산 등 크고 복잡한 거대 분자 합성에 쓰이고 이 거대 분자들은 인지질 막 속에 모여 원시세포를 형성했을 것이다. 이런 가상 시나리오는 많은 연구자들의 실험 결과를 통해 증거로 축적되고 있다. 게다가 염색체를 이용해 세균을 합성하는 현대의 연구들은 물질의 합성에서 생명의 탄생이 연결될 수 있음을 강하게 시사한다. 결론적으로 ‘자연발생설’도 초기 지구에서 최대 수억년 동안 이루어진 화합물의 합성과 원시세포 탄생이라는 측면에서는 참이라 할 수 있다. 현재의 지구에서 생물의 자연발생은 불가능하지만 원시의 지구에서는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는 말이다. 생물의 출현을 위해서는 적어도 한 번의 자연발생은 반드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다.
  • [아하! 우주] 인류의 오랜 호기심, 우주는 얼마나 클까?

    [아하! 우주] 인류의 오랜 호기심, 우주는 얼마나 클까?

    -1920년 4월 26일 섀플리 - 커티스 논쟁 20세기 초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우리은하가 우주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1920년대 후반 미국의 한 천문학자에 의해 우리은하 뒤로도 무수한 은하들이 늘어서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우리은하는 우주 속의 조약돌 한 개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 발견 하나로 일약 천문학계의 영웅으로 떠오른 사람은 미국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이었다. 그는 얼마 뒤 다시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놀라운 발견을 하여 인류를 경악케 했다. 그러니까 우주란 상당히 오래 쓰여진 말 같지만, 그 진정한 뜻은 20세기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밝혀지게 된 셈이다. 허블의 발견이 있기 전에도 사람들은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미리내(은하수)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이미 300년도 더 전에 갈릴레오가 자신이 만든 망원경으로 들여다보고는, 어마어마한 별무리들이 뭉쳐 있는 게 은하수라고 인류에게 고한 바가 있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백년 뒤 칸트라는 18세기 독일의 철학자는 은하수에 대한 놀라운 추론을 내놓았다. 회전하는 거대한 성운이 수축하면서 원반 모양이 되고, 원반에서 별들이 탄생했으며, 은하수가 길게 한 줄로 보이는 것은 우리가 원반 위에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들어 보아도 입이 딱 벌어지는 해석 아닌가. 칸트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우리 은하 바깥으로도 무수한 은하들이 섬처럼 흩어져 있으며, 우리 은하는 그 수많은 은하 중의 하나일 뿐이라는 '섬우주론'을 내놓았던 것이다. 이 섬우주론이 끈질기게 살아남아 200년 뒤 미국에서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1차대전의 연기가 채 가시기도 전인 1920년, 우주를 사색하는 일단의 사람들이 한 장소에 모여 세기의 대논쟁을 벌였다. 장소는 워싱턴의 미국과학 아카데미, 주제는 '우주의 크기'였다. 그리고 그 크기를 결정하는 시금석은 안드로메다 성운이었는데, 그 성운이 우리은하 안에 있는가 바깥에 있는가 하는 문제였다. 논쟁은 두 논적을 축으로 하여 불꽃을 튀었는데, 하버드 대학의 할로 섀플리와 릭 천문대의 히버 커티스로, 둘 다 우주에 대해서는 내로라하는 일급 천문학자였다. 두 사람의 이력서를 잠시 살펴보면, 먼저 섀플리는 1919년 최초로 우리 은하계의 구조와 크기를 밝히고, 우리 태양계가 은하계 속에서 자리하는 위치를 찾아냄으로써 태양계가 은하 중심에 있을 거라는 종전의 생각을 뒤집어놓았다. 그리고 안드로메다 성운은 우리 은하 안에 있는 것이 틀림없다고 선언했다. 태양계가 우리 은하의 중심에 있지 않다는 섀플리의 우리 은하 모형은 학계에 큰 파문을 일으켰고 우주관에 큰 변혁을 가져왔다. 이는 지구 중심설을 몰아낸 코페르니쿠스의 업적에 버금가는 업적이라 할 수 있다. 가난한 농가 출신인 섀플리는 특이한 내력을 지닌 사람이었는데, 그가 천문학을 공부하게 된 것도 꽤나 터무니없는 이유 때문이었다. 언론학을 전공하려고 대학에 갔는데, 그 학과 개설이 1년 지연되는 바람에 다른 과를 찾기 위해 전공분야 안내 책자를 뒤적였다. 처음에 'archaeology(고고학)'가 나왔지만 읽을 수가 없었다. 책장을 넘기니 'astronomy'가 나왔다. 그건 읽을 수 있었다. 이게 섀플리가 천문학을 공부하게 된 이유의 전부다. 그는 나중에 천문대장이 되어 관측을 하지 않는 낮에는 천문대 밖에 나와앉아 개미를 관찰하는 일에 열중하여 개미에 관한 논문을 쓰기도 한 괴짜였다. 이러한 섀플리의 반대편에 선 커티스는 허셜-캅테인 모형을 받아들여 칸트의 섬우주론을 지지하는 쪽이었다. 허셜-캅테인 모형이란 우리 은하 구조를 최초로 연구한 허셜의 이론과 캅테인의 이론에서 나온 우리은하 모형으로, 우리은하의 모양은 지름 4만 광년의 타원체이며, 태양은 그 중심에 가까운 곳에 위치한다. 이 모형을 받아들인 커티스는 안드로메다 성운까지의 거리를 50만 광년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섀플리 모형에서 주장하는 우리은하 크기를 훌쩍 넘어서는 거리였다. 즉, 커티스는 안드로메다 성운은 우리 은하 안에 있는 성운이 아니라, 우리 은하 밖의 외부 은하임이 틀림없다고 결론 내린 것이다. 대논쟁은 승부가 나지 않았다. 판정을 내려줄 만한 잣대가 없었던 것이다. 해결의 핵심은 별까지의 거리를 결정하는 문제로, 예나 지금이나 천문학에서 가장 골머리를 앓던 난제였다. 그러나 판정은 엉뚱한 곳에서 내려졌다. 3년 뒤 혜성처럼 나타난 신출내기 천문학자 허블에 의해 승패가 가려졌던 것이다. 안드로메다 성운은 우리 은하 밖에 있는 또 다른 은하였다. 이로써 칸트의 섬우주론은 200년 만에 다시 화려하게 등장하게 되었다. 논쟁의 진정한 승자는 칸트였던 셈이다. 허블로부터 안드로메다 성운까지의 거리를 결정한 편지를 받았을 때 섀플리는 "이것이 내 우주를 파괴한 편지다"라고 주위 사람들에게 말했다. 그러고는 이렇게 덧붙였다. "나는 판 마넌의 관측 결과를 믿었지. 어쨌든 그는 내 친구니까." 섀플리는 당시 윌슨산 천문대에 있던 동료이자 친구인 판 마넌의 관측값에 근거해 논문을 썼던 것이다. 여담이지만, 섀플리는 학문적으로 반대편에 섰던 허블에게 여러 차례 거친 말로 모욕당한 적이 있었지만 끝까지 허블에게 관대하게 대했다. 뿐더러 "허블은 뛰어난 관측자다. 나보다도 몇 배는 더 훌륭하다" 고 상찬했다니, 섀플리는 대인배였던 모양이다. 평생을 은하 연구에 바쳤던 새플리는 1972년 콜로라도주의 한 노인 요양원에서 영면했다. 향년 87세. 그는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우리는 뒹구는 돌들의 형제요, 떠도는 구름의 사촌이다." 이광식 통신원 joand999@naver.com
  • ​​[이광식의 천문학+] 세기의 대논쟁-’우주는 얼마나 큰가?’

    ​​[이광식의 천문학+] 세기의 대논쟁-’우주는 얼마나 큰가?’

    -1920년 4월 26일 섀플리 - 커티스 논쟁 20세기 초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우리은하가 우주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1920년대 후반 미국의 한 천문학자에 의해 우리은하 뒤로도 무수한 은하들이 늘어서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우리은하는 우주 속의 조약돌 한 개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 발견 하나로 일약 천문학계의 영웅으로 떠오른 사람은 미국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이었다. 그는 얼마 뒤 다시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놀라운 발견을 하여 인류를 경악케 했다. 그러니까 우주란 상당히 오래 쓰여진 말 같지만, 그 진정한 뜻은 20세기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밝혀지게 된 셈이다. 허블의 발견이 있기 전에도 사람들은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미리내(은하수)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이미 300년도 더 전에 갈릴레오가 자신이 만든 망원경으로 들여다보고는, 어마어마한 별무리들이 뭉쳐 있는 게 은하수라고 인류에게 고한 바가 있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백년 뒤 칸트라는 18세기 독일의 철학자는 은하수에 대한 놀라운 추론을 내놓았다. 회전하는 거대한 성운이 수축하면서 원반 모양이 되고, 원반에서 별들이 탄생했으며, 은하수가 길게 한 줄로 보이는 것은 우리가 원반 위에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들어 보아도 입이 딱 벌어지는 해석 아닌가. 칸트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우리 은하 바깥으로도 무수한 은하들이 섬처럼 흩어져 있으며, 우리 은하는 그 수많은 은하 중의 하나일 뿐이라는 '섬우주론'을 내놓았던 것이다. 이 섬우주론이 끈질기게 살아남아 200년 뒤 미국에서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1차대전의 연기가 채 가시기도 전인 1920년, 우주를 사색하는 일단의 사람들이 한 장소에 모여 세기의 대논쟁을 벌였다. 장소는 워싱턴의 미국과학 아카데미, 주제는 '우주의 크기'였다. 그리고 그 크기를 결정하는 시금석은 안드로메다 성운이었는데, 그 성운이 우리은하 안에 있는가 바깥에 있는가 하는 문제였다. 논쟁은 두 논적을 축으로 하여 불꽃을 튀었는데, 하버드 대학의 할로 섀플리와 릭 천문대의 히버 커티스로, 둘 다 우주에 대해서는 내로라하는 일급 천문학자였다. 두 사람의 이력서를 잠시 살펴보면, 먼저 섀플리는 1919년 최초로 우리 은하계의 구조와 크기를 밝히고, 우리 태양계가 은하계 속에서 자리하는 위치를 찾아냄으로써 태양계가 은하 중심에 있을 거라는 종전의 생각을 뒤집어놓았다. 그리고 안드로메다 성운은 우리 은하 안에 있는 것이 틀림없다고 선언했다. 태양계가 우리 은하의 중심에 있지 않다는 섀플리의 우리 은하 모형은 학계에 큰 파문을 일으켰고 우주관에 큰 변혁을 가져왔다. 이는 지구 중심설을 몰아낸 코페르니쿠스의 업적에 버금가는 업적이라 할 수 있다. 가난한 농가 출신인 섀플리는 특이한 내력을 지닌 사람이었는데, 그가 천문학을 공부하게 된 것도 꽤나 터무니없는 이유 때문이었다. 언론학을 전공하려고 대학에 갔는데, 그 학과 개설이 1년 지연되는 바람에 다른 과를 찾기 위해 전공분야 안내 책자를 뒤적였다. 처음에 'archaeology(고고학)'가 나왔지만 읽을 수가 없었다. 책장을 넘기니 'astronomy'가 나왔다. 그건 읽을 수 있었다. 이게 섀플리가 천문학을 공부하게 된 이유의 전부다. 그는 나중에 천문대장이 되어 관측을 하지 않는 낮에는 천문대 밖에 나와앉아 개미를 관찰하는 일에 열중하여 개미에 관한 논문을 쓰기도 한 괴짜였다. 이러한 섀플리의 반대편에 선 커티스는 허셜-캅테인 모형을 받아들여 칸트의 섬우주론을 지지하는 쪽이었다. 허셜-캅테인 모형이란 우리 은하 구조를 최초로 연구한 허셜의 이론과 캅테인의 이론에서 나온 우리은하 모형으로, 우리은하의 모양은 지름 4만 광년의 타원체이며, 태양은 그 중심에 가까운 곳에 위치한다. 이 모형을 받아들인 커티스는 안드로메다 성운까지의 거리를 50만 광년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섀플리 모형에서 주장하는 우리은하 크기를 훌쩍 넘어서는 거리였다. 즉, 커티스는 안드로메다 성운은 우리 은하 안에 있는 성운이 아니라, 우리 은하 밖의 외부 은하임이 틀림없다고 결론 내린 것이다. 대논쟁은 승부가 나지 않았다. 판정을 내려줄 만한 잣대가 없었던 것이다. 해결의 핵심은 별까지의 거리를 결정하는 문제로, 예나 지금이나 천문학에서 가장 골머리를 앓던 난제였다. 그러나 판정은 엉뚱한 곳에서 내려졌다. 3년 뒤 혜성처럼 나타난 신출내기 천문학자 허블에 의해 승패가 가려졌던 것이다. 안드로메다 성운은 우리 은하 밖에 있는 또 다른 은하였다. 이로써 칸트의 섬우주론은 200년 만에 다시 화려하게 등장하게 되었다. 논쟁의 진정한 승자는 칸트였던 셈이다. 허블로부터 안드로메다 성운까지의 거리를 결정한 편지를 받았을 때 섀플리는 "이것이 내 우주를 파괴한 편지다"라고 주위 사람들에게 말했다. 그러고는 이렇게 덧붙였다. "나는 판 마넌의 관측 결과를 믿었지. 어쨌든 그는 내 친구니까." 섀플리는 당시 윌슨산 천문대에 있던 동료이자 친구인 판 마넌의 관측값에 근거해 논문을 썼던 것이다. 여담이지만, 섀플리는 학문적으로 반대편에 섰던 허블에게 여러 차례 거친 말로 모욕당한 적이 있었지만 끝까지 허블에게 관대하게 대했다. 뿐더러 "허블은 뛰어난 관측자다. 나보다도 몇 배는 더 훌륭하다" 고 상찬했다니, 섀플리는 대인배였던 모양이다. 평생을 은하 연구에 바쳤던 새플리는 1972년 콜로라도주의 한 노인 요양원에서 영면했다. 향년 87세. 그는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우리는 뒹구는 돌들의 형제요, 떠도는 구름의 사촌이다." 이광식 통신원 joand999@naver.com
  • [당신의 책]

    [당신의 책]

    폴 리쾨르의 철학(정기철 지음, 시와진실 펴냄) 생존 당시 자크 데리다(1930~2004), 위르겐 하버마스(1929~)와 더불어 ‘살아 있는 3대 철학자’로 불렸던 폴 리쾨르(1913~2005)의 방대한 사상을 인간·해석·윤리라는 세 가지 핵심 주제 맞춰 체계적으로 해석했다. 리쾨르는 서양 고대 철학, 독일 관념론, 실존주의, 현상학, 해석학, 구조주의, 정신분석학, 기독교 신학 등 현대의 모든 사상의 흐름을 소화하면서도 독특한 변증법으로 융합해 왔다. 이 책의 장점은 리쾨르 사상의 배경과 동기를 궁금해하는 독자들에게 친절히 설명해 준다. 특히 리쾨르가 어떻게 그의 철학적 사색의 출발점인 ‘악 문제’를 종말론적 용서 윤리로 극복했는지 보여 주는 4부가 흥미롭다. 624쪽. 3만 8000원. 마르지 않는 붓(자유칼럼그룹 지음, 두리반 펴냄) 언론인, 문필가, 외교관, 의사, 화가 등 각 영역에서 활동 중인 글쟁이들이 힘을 모아 쓴 대한민국의 지난 10년 이야기다. 자본, 권력, 인연 등의 구속을 벗어나 자유롭게 글을 쓴다는 취지로 2006년 시작된 ‘자유칼럼그룹’이 쓴 3000여편의 글 중 74편을 추렸다. 총 5부로 구성된 책은 1부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통찰을 담았고, 2부는 각각의 저자가 경험한 ‘나와 내 주변의 소소한 이야기’를, 3부는 ‘대한민국의 초상과 우리의 위치’, 4부는 특별한 인연들을 소개한다. 마지막 5부는 미래에 대한 비전을 함께 나눈다. 저자들은 이 책을 통해 우리의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읽을 수 있다고 자신한다. 340쪽. 1만 4000원. 제1세계 중산층의 몰락(폴 크레이그 로버츠 지음, 남호정 옮김, 책공방초록비 펴냄) 미국의 경제학자이자 독립 언론인인 저자가 글로벌 경제 체제에서 제1세계로 불리는 선진 경제권의 빈곤 문제가 왜 번져 가고 있는지, 유럽 국가의 정치·경제적 혼란을 실증적 방식으로 진단한다. 로버츠는 주류 경제학자들이 떠받드는 글로벌리즘이라는 ‘신경제’의 동력인 ‘규제 철폐’와 ‘역외 이전’이 제1세계에는 중산층의 몰락을, 제3세계에는 환경파괴와 빈부격차를 가져오고 있다고 경고한다. 특히 저자는 주류 경제학의 실패한 이론들이 막대한 규모의 정책 실패를 불러일으켰으며, 오늘날의 경제학은 제1세계와 제3세계를 막론하고 전 세계를 파탄시키고 있다고 비판한다. 308쪽. 1만 5000원. 책을 읽을 때 우리가 보는 것들(피터 멘델선드 지음, 김진원 옮김, 글항아리 펴냄)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눈이 하는 가장 정신 나간 짓이 ‘독서’라고 했다. 하지만 이 책은 독서삼매에 빠진 우리가 어떻게 책 읽는 행위를 하는지 그 최대한의 상상치를 실감 나게 그리고 있다. 그래픽 디자이너인 저자는 책을 읽을 때 일어나는 과정을 낱낱이 해부한다. 책 읽는 사람은 각자 고유의 방식으로 책을 연구하지만 저자는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세부 과정을 이미지와 타이포그래피 디자인으로 구현해 설명한다. 독서를 풍부한 방식으로 분해하면서 우리의 독서가 삶을 풍요롭게 하는 비법을 터득할 수 있다. 책을 읽듯 세상도 읽어 내는 능력을 키우면 어떨까. 444쪽. 1만 9000원. 조선을 탐한 사무라이(이광훈 지음, 포북 펴냄) 2018년은 일본에서 메이지유신이 일어난 지 150주년이 되는 해다. 이 책은 일본 근대화의 중심이 된 고장인 야마구치현과 가고시마현의 사무라이들을 분석한다. 저자는 현지 유적 탐방과 자료 조사를 통해 상투를 자르고 미래를 위해 투신한 사무라이 정신이 근대화의 뿌리가 됐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특히 요시다 쇼인을 주목한다. 그를 사사한 인물 중 한 명이 이토 히로부미였다. 저자는 “초야의 이름 없는 사무라이들이 근대화를 향한 열정으로 목숨을 던졌고, 그 죽음으로 나라는 살았다”며 “조선은 일본과 같은 치열한 내부적 갈등과 혁신의 몸부림이 상대적으로 매우 약했다”고 말한다. 500쪽. 1만 8000원.
  • [수요 에세이] 창의성과 검찰 개혁/한상훈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수요 에세이] 창의성과 검찰 개혁/한상훈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창의성이 사회의 화두다. 정부, 관공서, 기업, 유치원, 초·중·고교, 대학, 연구소 등 사회의 모든 곳이 창의성과 창조경제를 강조한다. 창의적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교육 시스템도 바꾸려 하고 있다. 경제, 문화, 과학기술, 사회 등 각 부문에서 선진국으로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 그리고 ‘패스트 팔로어’에서 ‘퍼스트 무버’가 되기 위해 창의성이 필요하다는 점에 동의한다. 다행히 케이팝, 드라마, 영화 등은 상당한 창의성과 예술성, 대중성을 보여 주면서 아시아와 유럽, 북·남미 등에서 큰 호응을 받고 있다. 삼성전자나 LG전자와 같은 기업이 스마트폰, 텔레비전, 가전 등의 분야에서 애플 등과 경쟁하는 것도 반갑다. 그러나 그늘도 적지 않다. 경제, 과학, 법·제도, 학문 등에서는 아직도 선진국과 많은 격차가 느껴진다. 사실 창의성은 억지로 기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이라고 생각된다. ‘창의력은 내면의 깊숙한 곳에 연결돼 있는 인격의 힘이다’라는 한 철학자의 성찰도 있다. 그런데 이러한 유년 시절의 호기심, 상상력, 창의성이 공교육의 암기식·주입식 수업으로 오히려 억압되는 것 같다. 또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창의성이나 천재성을 기억력이나 수험 능력과 혼동하는 경향이 있다. 끊이지 않는 각종 비리에 연루된 법조인이나 공직자를 설명할 때 대학교 재학 중에 사법시험에 합격한 비상한 천재라는 수식을 종종 접하게 된다. 하지만 기억력이나 학습 능력은 이미 다른 사람이 발견해 정리해 놓은 것을 배우고 익히는 능력을 말한다. 필요한 능력이긴 하지만 새로운 것을 연구하고 찾아내는 창의성이나 천재성과는 방향이 다르다. 특히나 천재성이란 한 사람이 이룩한 위대한 창의적 업적에 대한 찬사일 것이다. 법조문과 판례를 잘 외우고 학습 능력이 좋거나 사법시험에 일찍 합격했다고 천재라고 한다면 언어의 오용이자 천재성의 폄하라고 할 것이다. 사실 법조인과 토론을 하다 보면 답답함이 밀려올 때가 있다. 기득권이나 이해관계가 걸려 있을 때는 더욱 그렇다. 2006년 무렵 필자는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의 일원으로 사법 개혁을 위한 법안을 성안하고 있었다. 검찰 개혁과 관련된 체포, 구속제도, 피의자 신문 조서의 증거 능력, 국민참여재판 등이 주요 주제였다. 미국, 독일, 일본 등의 법제도를 검토한 뒤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맞춤형 제도를 도입해 보자는 한 제안에 대해 어떤 검사는 “그런 국적 없는 제도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적이 없는 것이 아니고, 한국의 실정에 맞는 독특한 제도가 될 것”이라는 진지한 설명에 “외국 제도를 그대로 도입하지 않을 바에는 차라리 바꾸지 말자”는 답변이 되돌아왔다. 미국의 배심제와 독일의 참심제를 참고해 한국식 국민참여재판 제도를 성안한 것은 그래도 다행이었다. 그렇게 만든 ‘국적 없는’ 한국형 국민참여재판 제도는 미국, 일본, 대만 등 외국의 많은 학자와 실무가들이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한국의 독특하고 창의적인 제도가 됐다. 외국의 제도를 그대로 모방했다면 국제적 관심을 받기는커녕 웃음거리가 됐을 수도 있다. 마치 애플의 아이폰을 베끼면 카피캣으로 조롱을 받듯이 말이다. 최근 논의되는 검찰 개혁,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 검사장승진심사위원회 설치 등에 대해서도 기득권층은 ‘옥상옥’이라거나 외국에 유례가 없다는 식으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무소불위의 과잉 권력을 갖고서 부정부패가 끊이지 않는 우리나라의 검찰에 대수술이 필요하다는 점은 애써 외면한다. 올해만도 벌써 여러 건의 대형 법조비리가 터졌다. 더이상 검찰 개혁을 미룰 수 없게 됐다. 지난 경험에서 떠오른다.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개인의 창의성인가, 아니면 창의성을 평가하고 아이디어를 실천할 수 있는 사회의 용기인가. 우리 앞에 닥친 검찰 개혁이 사회에 준엄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 [김욱동 창문을 열며] 농장과 공장사이

    [김욱동 창문을 열며] 농장과 공장사이

    우리말에 “‘어’ 다르고 ‘아’ 다르다”는 말이 있듯이 어떤 낱말은 모음 하나 차이로 뜻이 크게 달라진다. 자음도 마찬가지다. 가령 ‘농장’과 ‘공장’은 자음 ‘ㄱ’과 ‘ㄴ’밖에 다르지 않은데도 의미에서는 엄청난 차이가 난다. 사전에서는 농장을 농사지을 땅과 농기구·가축·노동력 따위를 갖추고 농업을 경영하는 곳이라고 정의한다. 밀 농장, 돼지 농장이니 하는 곳이 바로 그것이다. 공장은 원료나 재료를 가공해 물건을 만들어 내는 설비를 갖춘 곳이다. 한마디로 농장이 살아 있는 식물이나 동물을 기르는 곳이라면 공장은 생명이 없는 물건을 만들어 내는 곳이다. 최근 애완용 강아지를 대량 공급하는 이른바 ‘강아지 공장’에 대해 정부가 전수조사에 착수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강아지 공장의 동물 학대 문제가 논란이 되자 실태를 파악하겠다는 것이다. 얼마 전 농림축산식품부는 20마리 이상을 키우는 전국의 개 번식장 4천여 곳에 대해 석 달 동안 실태 조사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농식품부는 조사에서 미신고 영업 같은 위법 행위가 발견되면 계도를 거쳐 벌금이나 과태료 부과 등 행정 조치를 취할 방침이라고 한다. 정부의 이번 조치는 얼마 전 방영된 한 공중파 TV 프로그램이 계기가 됐다. 전남의 한 개 번식장에서 개를 강제로 임신시키고, 수의사도 아닌 농장주가 마구잡이로 제왕절개를 하는 장면이 방송된 것이다. 이후 동물보호단체 등이 ‘강아지 공장 철폐 서명 운동’을 주도했고 무려 30만명 이상이 동참했다. 사정이 이 정도라면 강아지를 사육하는 ‘농장’이 아니라 차라리 만들어내는 ‘공장’이라고 불러야 마땅하다. 도대체 왜 강아지 공장이 생겨났을까. 두말할 나위 없이 소비자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인형이 어린이들이 갖고 노는 장난감이라면 강아지는 이제 어른들에게 반려동물로 사랑을 받는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에서도 반려동물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면서 길거리나 공원에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반려동물 인구가 무려 1천만명에 이른다. 한때는 보신탕용으로 개를 사육하더니 이제는 반려동물로 개를 사육하는 것이다. 반려용 개를 기르는 사람이 많다 보니 공급이 달리고, 공급이 달리다 보니 무리하게 공장에서 강아지를 생산해내는 것이다. 이왕 ‘강아지 공장’이라는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서양에서 개를 비롯한 동물을 생명체가 아닌 기계로 처음 간주한 사람은 다름 아닌 프랑스의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였다. 근대 철학의 아버지인 데카르트는 소나 개 같은 동물한테는 인간과는 달리 영혼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의 이분법적 논리에 따르면 영혼이 없는 동물은 기계와 다름없다. 소는 우유를 만드는 기계일 뿐이고, 소가 ‘음매’ 하고 소리 내어 우는 것은 기계가 기능 장애를 일으켜 ‘끼익’ 하고 소리를 내는 것이다. 데카르트의 논리대로 한다면 개는 생명을 지닌 존재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인간의 친구가 되어 주는 인형 같은 존재일 뿐이다. 그러니 그의 관점에서 보면 강아지를 공장에서 만들어 내는 것은 하나도 이상하지 않고 오히려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만약 데카르트가 지금 문제가 된 ‘강아지 공장’ 이야기를 듣는다면, 기계를 공장에서 생산하지 그러면 농장에서 생산하느냐고 되레 따져 물을지도 모른다. 데카르트의 반대편에는 “신은 죽었다”고 부르짖은 19세기의 이단아 니체가 서 있다. 니체가 이탈리아 투린 지방을 여행할 때다. 호텔 문을 막 나선 니체는 마부가 채찍으로 말을 때리는 모습을 목격한다. 아무 말 없이 말에게 다가가 목덜미를 잡고 눈물을 흘린다. 그러더니 갑자기 땅바닥에 나뒹군다. 니체의 전기 작가들은 이 순간부터 니체가 정신착란을 일으키기 시작했다고 지적한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아마 마부한테 채찍을 맞는 말을 보고 눈물을 흘릴 리 없기 때문이다. 인류는 이제 데카르트 편에, 아니면 니체 편에 설 것인가 하는 갈림길에 놓여 있다. 하루가 다르게 지구상에서 생물이 사라지는 지금 답은 명약관화하다. 그 어느 때보다 생물 다양성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할 때다. 20대 국회의원들이 동물 보호를 넘어 동물 복지를 내세운 개정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니 여간 다행스럽지 않다.
  • 달려오는 열차, 아이의 선택은?

    달려오는 열차, 아이의 선택은?

    두 갈래로 갈라지는 철길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쪽 철길에는 5명이, 다른 한쪽에는 1명이 누워 있습니다. 열차는 둘 중 한 곳을 선택해 무조건 달려야만 합니다. 만약 당신이 기관사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습니까? 미국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 실려 화제가 된 실험입니다. 이 실험을 한 아이를 상대로 진행한 영상이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지난달 31일 유튜브에 게시된 영상에는 한 남성이 자신의 아들을 상대로 진행한 실험이 담겨 있습니다. 그는 위와 같은 실험을 장난감 철길로 바꿔 진행했습니다. 영상 속 아이는 흥미로운 반응을 보였습니다. 아이는 철길에 혼자 누워있는 인형 하나를 다섯 개의 인형들이 누워 있는 철로로 옮깁니다. 그리곤 열차로 그대로 밀고 지나갑니다. 영상을 게재한 아이의 아빠는 심리학을 가르치는 교사라고 밝혔습니다. 그는 “아들에게 윤리적 딜레마에 봉착하는 실험을 진행했다”며 “트롤리 딜레마에 대해 아들의 반응을 기록해 토론 수업에 활용할 예정”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앞으로 사람들을 올바르게 치료하는 방법에 대해 꾸준히 이야기 나눌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사진 영상=E.J. Masicampo 영상팀 seoultv@seoul.co.kr
  • 집념의 동양고전연구회 24년 만에 ‘사서’ 완역

    집념의 동양고전연구회 24년 만에 ‘사서’ 완역

    국내 동양철학자들이 참여한 ‘동양고전연구회’가 24년 동안 주석을 달고 번역한 중국 고전 ‘논어’, ‘맹자’, ‘대학’, ‘중용’ 등 ‘사서’(四書)가 민음사에서 완역 출간됐다. 논어는 1992년 시작해 꼭 10년 만인 2002년 역주본으로 출간됐다. 이번 책은 개정본판이다. 중용과 대학은 8년이 걸렸고 맹자는 3년 만에 종료됐다. 논어를 제외한 나머지는 첫 역주본들이다. 고전인 사서의 우리말 번역은 400여년 전 언해본 출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늘날 논어의 경우 번역서만 최소 100여종, 해설서까지 포함하면 700여종에 이르지만 주석에 따라 의미가 다르거나 생소한 고어들이 적지 않아 읽기가 쉽지 않았다. 동양고전연구회는 1992년 6월 이강수 전 연세대 철학과 교수를 중심으로 한국·중국 철학 전공자들로 구성돼 동양 사상의 근본 문헌이자 유학의 경전인 ‘사서’를 첫 번역 작업 대상으로 정했다. 동양철학자 12명이 24년간 매달린 완역 작업은 방대한 주석을 종합하고 경전의 원 뜻을 최대한 살리는 데 노력을 다했다. 번역문은 격렬했던 토론을 거쳐 합당한 뜻과 용어를 찾아 오역을 예방했고 사서 모두 현대적 언어로 풀어 썼다. 편집에서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논어와 맹자는 원문과 주석을 왼쪽 면에, 번역문과 해설은 오른쪽 면에 배치했다. 대학과 중용은 번역 전문을 실었다. 2002년 동양고전연구회가 펴낸 논어는 당시 ‘교수신문’이 선정한 ‘최고의 고전 번역서’로 꼽힌 바 있다. 20여년의 완역 작업 중 연구자들이 바뀌면서 최종 12명이 참여하게 됐고 김병채 한양대 명예교수는 지난해 고인이 됐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결혼, 그 아슬아슬하고도 처절한 일상의 민낯

    결혼, 그 아슬아슬하고도 처절한 일상의 민낯

    롤러코스터를 탄 듯 하루도 안온하지 않고 지뢰밭을 걷는 듯 위기의 연속이다. 어떤 날은 ‘미친 여자와 결혼했다’는 공포가 잠식하고, 어떤 날은 ‘영혼의 짝’을 ‘잘못된 인연’으로 결론 내기도 한다. ‘일상의 철학자’ 알랭 드 보통(47)이 들여다본 결혼의 적나라한 민낯이다. 그의 새 소설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은행나무)에서 결혼은 이처럼 낙관보다 비관이 넘쳐 흐른다.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 ‘우리는 사랑일까’, ‘키스 앤 텔’ 등 연애 3부작 이후 21년 만에 쓴 소설은 작가가 결혼 이후 쓴 첫 소설이기도 하다. 그래선지 작가는 결혼이라는 ‘도박’에 나선 이후 진행되는 모든 사건들을 특유의 성찰과 위트를 첨가해 능숙하게 해설해 나간다. 주인공 라비와 커스틴의 시작은 상대에 대한 매혹과 열망으로 뭉친 ‘낭만주의’ 그 자체였다. 하지만 결혼이라는 활시위가 당겨진 이후 두 사람 사이에는 서서히 균열이 일어난다. 잘 때 창문을 닫느냐 마느냐, 이케아에서 어떤 컵을 사느냐로 사활을 건 싸움을 시작한 부부는 육아에 매달리면서 섹스에 활기를 잃고 불륜까지 저지른다. 결혼 16년차, 신용카드 대금을 두고 말다툼을 벌이던 두 사람은 의자를 부수면서 부부 상담을 받기에 이른다. 보통은 소설과 에세이가 거듭 교차하는 특유의 화법으로 결혼 생활에 대한 예리하고도 위트 넘치는 통찰을 전한다. ‘대부분의 러브스토리를 기준으로 본다면 우리 자신의 실제 관계는 거의 다 하자가 있고 불만족스럽다’고 전제하는 그는 ‘가끔은 서로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고, 몇 번은 자기 자신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 바로 러브스토리’라며 현실을 일깨운다. “사랑은 감정이라기보다 기술”이라며 “낭만주의를 박차고 나오라”는 그의 주문은 그런 현실에 땅을 디딘 만큼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이야기 사이 불쑥불쑥 등장하는 그의 잠언은 남편인 라비의 시선으로 쓰인 만큼 여성 독자들에겐 불편할 수도 있겠다. ‘사랑과 섹스의 분리가 친밀함이 만든 무거운 짐들을 완화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거나 ‘배우자에게 깊은 관심이 있기 때문에 불륜을 벌인다’는 식의 주장들이다. 결말은 오랜 시간 축적된 앙금과 부풀려진 균열을 급히 봉합하는 느낌이 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는 일’이 또 결혼이 아니던가. 작품을 “낭만주의에서 현실주의로의 이행”이라고 압축하는 역자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순간이다. 보통에게 결혼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싶다면 카카오 하트펀딩을 찾으면 된다. 1일부터 열리는 하트펀딩 페이지(알랭 드 보통에게 ‘사랑 이후’를 묻다)에 질문을 남기면 작가가 이달과 다음달 두 차례 답을 건네줄 예정이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알랭 드 보통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알랭 드 보통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롤러코스터를 탄 듯 하루도 안온하지 않고 지뢰밭을 걷는 듯 위기의 연속이다. 어떤 날은 ‘미친 여자와 결혼했다’는 공포가 영혼을 잠식하고, 어떤 날은 ‘영혼의 짝’을 ‘잘못된 인연’으로 결론내기도 한다. ‘일상의 철학자’ 알랭 드 보통(?사진?·47)이 들여다본 결혼의 적나라한 민낯이다.  그의 새 소설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은행나무)에서 결혼은 이처럼 낙관보다 비관이 넘쳐 흐른다.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 ‘우리는 사랑일까’, ‘키스 앤 텔’ 등 연애 3부작 이후 21년 만에 쓴 소설은 작가가 결혼 이후 쓴 첫 소설이기도 하다. 그래선지 작가는 결혼이라는 ‘도박’에 나선 이후 진행되는 모든 사건 다툼들을 특유의 성찰과 위트를 첨가해 능숙하게 해설해 나간다.  주인공 라비와 커스틴의 시작은 상대에 대한 매력과 열망으로 뭉친 ‘낭만주의’ 그 자체였다. 하지만 결혼이라는 활시위가 당겨진 이후 두 사람 사이에는 서서히 균열이 일어난다. 잘 때 창문을 닫느냐 마느냐, 이케아에서 어떤 컵을 사느냐로 사활을 건 싸움을 시작한 부부는 육아에 매달리면서 섹스의 활기를 잃고 불륜까지 저지른다. 결혼 16년 차, 신용카드 대금을 두고 말다툼을 벌이던 두 사람은 의자를 부수면서 부부 상담을 받기에 이른다.  보통은 소설과 에세이가 거듭 교차하는 특유의 화법으로 결혼 생활에 대한 예리하고도 위트 넘치는 통찰을 전한다. ‘대부분의 러브스토리를 기준으로 본다면 우리 자신의 실제 관계는 거의 다 하자가 있고 불만족스럽다’고 전제하는 그는 ‘가끔은 서로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고, 몇 번은 자기 자신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 바로 러브스토리’라며 현실을 일깨운다. ‘사랑은 감정이라기보다 기술’이라며 ‘낭만주의를 박차고 나오라’는 그의 주문은 그런 현실에 땅을 디딘 만큼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이야기 사이 불쑥불쑥 등장하는 그의 잠언은 남편인 라비의 시선으로 쓰인 만큼 여성 독자들에겐 불편할 수도 있겠다. ‘사랑과 섹스의 분리가 친밀함이 만든 무거운 짐들을 완화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거나 ‘배우자에게 깊은 관심이 있기 때문에 불륜을 벌인다’는 식의 주장들이다. 결말은 오랜 시간 축적된 앙금과 부풀려진 균열을 급히 봉합하는 느낌이 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는 일’이 또 결혼이 아니던가. 때문에 작품을 “낭만주의에서 현실주의로의 이행”라고 압축하는 역자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에게 결혼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싶다면 카카오페이지를 찾으면 된다. 1일부터 카카오페이지에 질문을 남기면 보통이 이달과 다음 달 두 차례 답을 건네줄 예정이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농사가 범죄를 막는다…美 주민 참여 농장 화제

    농사가 범죄를 막는다…美 주민 참여 농장 화제

    “도서관과 정원만 있으면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진 셈”이라는 고대 로마 철학자 키케로의 명언처럼, 실제로 ‘정원’을 사용해 지역사회의 삶의 질을 향상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미국 텍사스주(州) 일대에서 일어나고 있다. 샌안토니오에서 시작된 소규모 농장 ‘가도피아’(GARDOPIA)는 이름 자체가 정원을 뜻하는 ‘가든’과 ‘유토피아’의 합성어인 것에서 알 수 있듯 지역 주민 모두의 건강과 복지, 나아가 농장 일을 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몸에 배게 되는 ‘교육’을 소중히 하기 위해 시작한 비영리조직(NPO)이다. 책상 앞에만 앉아 있는 것은 ‘교육’이 아니라는 것. 이뿐만 아니라 또 다른 목적은 지역 사회의 ‘범죄율 감소’에도 있다고 한다. 스티븐 루케 가도피아 대표는 인카네이트 워드 대(UIW) 재학 시절 ‘영양과 빈곤의 관계’에 대해 배운 것을 계기로 ‘균형 잡힌 식사가 삶의 개선으로 이어진다’는 생각을 하게 돼 이 농장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그리고 어른부터 어린이까지 지역 주민 모두가 이 농장에 참여할 수 있게 하자 기대 이상의 효과를 낳았다고 한다. 농장이 있는 교차로 일대는 원래 치안이 위험하다는 평판을 갖고 있었지만, 농장이 생긴 뒤 3년간 네 블록 반경 내의 범죄율이 50% 이상 떨어졌다. 즉 농장은 건강한 채소를 수확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지역 사회의 치안도 훌륭하게 개선했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표정에서도 볼 수 있듯이 모두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다. 물론 아직은 그저 작은 운동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흥미로운 점은 이 농장에서 교훈을 얻은 아이들이 모두 흙을 만지고 건강한 채소를 먹으며 성장해 지역 사회의 훌륭한 일원으로 참여해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루케 대표는 “농장에 있을 때는 모두가 평등하다. 여기에 차별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이는 모두가 손에 흙을 묻히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진=가도피아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길섶에서] ‘선한 사마리아인법’/구본영 논설고문

    누구나 뉴스의 홍수 속에 살 수밖에 없는 사회다. 지난주 운전 중 의식을 잃고 죽어가는 택시 기사를 승객들이 내버려둔 채 사라졌다는 소식을 접했다. 근래 가장 충격적인 뉴스였다. 사고 현장을 담은 블랙박스 화면을 보니 씁쓸하다 못해 허탈했다. 운전기사가 의식을 잃자 승객 2명이 앞좌석으로 갔으나 응급 처치를 하려는 게 아니었다. 차 열쇠를 뽑아 트렁크를 열고 자신들의 골프가방만 꺼낸 뒤 다른 택시로 떠난 것이다. 철학자들은 인간의 본성을 둘러싸고 성선설과 성악설로 나뉘어 논쟁을 벌여 왔다. 인간의 본성은 본래 착하다는 입장에 선 이들조차 이 뉴스를 듣고 잠시 성선설에 회의를 품었을 법하다. 골프 여행을 위한 비행기를 놓치지 않으려고 사경의 이웃을 방치했다니…. 오죽하면 어느 의원이 긴급구조 조치를 의무화하는 ‘선한 사마리아인법’을 만들려고 하겠나 싶다. 폭염을 밀어내는 소슬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선한 사마리아인법’이 필요 없을 만큼 가을 바람보다 더 청량한 미담이 기다려지는 요즘이다. 그래도 우리 사회엔 자신의 안위 못지않게 곤경에 처한 이웃을 챙기는 성경 속 사마리아인 같은 이들이 더 많다고 믿기에…. 구본영 논설고문 kby7@seoul.co.kr
  • [식품 속 과학] 식품 속 중금속, 총노출량이 문제/ 박선희 식품의약품안전처 식품기준기획관

    [식품 속 과학] 식품 속 중금속, 총노출량이 문제/ 박선희 식품의약품안전처 식품기준기획관

    식품은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 공급원이다. 하지만 이따금 식품에서 납이나 카드뮴, 수은 등의 중금속이 검출돼 걱정되기도 한다. 중금속은 지구의 지각성분으로 토양, 하천, 해수에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물질이다. 식물은 생장에 필요한 영양분을 토양에서 얻으면서 중금속도 함께 흡수한다. 가축은 풀이나 사료, 어류는 하천이나 해수의 플랑크톤과 작은 수생 생물체를 통해 영양성분과 함께 중금속을 섭취한다. 이처럼 먹이사슬을 통해 일부 중금속이 생물체내에 쌓인다. 생물체내에 있는 미량의 중금속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광산이나 산업단지와 같이 고농도 중금속이 있는 환경에서 일하는 작업자나 거주자가 건강을 해치면서 중금속은 불안 요인이 되었다. 분석기술이 발달해 우리는 식품에 포함된 수십억분의1(ppb)의 중금속조차 검출할 수 있게 됐다. 그 결과 무결점 식품, 다시 말해 ‘제로리스크’는 존재할 수 없게 됐고 이제 중금속량의 허용 범위가 중요한 연구 분야가 됐다. 이러한 연구를 ‘위해성 평가’라고 부른다. 사람의 체내에 들어온 유해물질이 어느 수준에서 어떤 나쁜 영향을 일으키는지를 과학적으로 평가해 매일 섭취해도 건강에 이상이 없는 양, 즉 일일섭취한계량 같은 인체노출안전기준을 정한다. 식품 전체를 통한 총노출량이 인체노출안전기준을 넘지 않는다면 건강상 나쁜 영향은 없다고 판단한다. ‘국민건강영양조사’에서 우리나라 성인은 연간 1000종이 넘는 식품을 560㎏(하루 평균 1.5㎏) 정도 섭취하고, 이 가운데 쌀·배추·돼지고기 등의 다소비식품 30종이 60%를 차지한다. 95%를 차지하는 식품은 170종에 불과하다. 나머지 800종의 연간 섭취량은 각각 0.01%를 넘지 않는다. 따라서 0.01%도 차지하지 않는 식품에 중금속이 많다고 해도 총노출량에 대한 영향은 미미하다. 지금까지의 조사연구 결과로는 우리나라에서 식품을 통해 노출되는 중금속의 양은 건강에 해로운 수준이 아니다. 몸에 이롭다는 영양소도 과다 섭취하면 건강에 해롭기 마련이다. 당이나 나트륨 등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16세기 의사이자 철학자인 파라셀수스는 “모든 것은 독이며 독이 아닌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것을 무독(無毒)하다고 하는 것은 그 섭취량에 의할 뿐이다”라고 했다. 아무리 몸에 이로운 것도 과다 섭취하면 위험할 수 있다는 경고인 셈이다. 30년 전 사회학자 울리히 베크가 ‘위험사회’에서 지적했듯이 위험에 대한 지식 의존성이 날로 커지고 있지만 하나하나의 위험정보에 휘둘리지 않고 규칙적이고 균형 잡힌 식생활을 영위하는 지혜로움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 [최영미와 함께 읽는 세계의 명시] 아! 바이런

    [최영미와 함께 읽는 세계의 명시] 아! 바이런

    2010년 5월 3일, 아시아와 유럽을 나누는 터키의 다르다넬스 해협을 건너는 수영대회가 열렸다. 200년 전에 이곳을 헤엄쳐 건넌 어느 영국인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였다. 스물두 살의 나이에 에게 해와 흑해를 잇는 4㎞의 물길을 맨몸으로 헤엄쳐 수영을 스포츠의 하나로 만든 그는 영국의 귀족이며 시인인 바이런(1788~1824)이었다. 바이런의 무모한 도전 덕분에 오늘날 올림픽 종목에 수영이 포함됐다. 바이런도 생전에 자신의 가장 큰 성취는 (시가 아니라!) 다르다넬스 해협을 헤엄친 일이라고 자랑했다. 태어나면서부터 다리를 약간 절던 그는 땅에서는 누리지 못했던 자유를 누리며 거친 물살을 갈랐을 게다. 1810년에 4㎞를 1시간 10분 만에 헤엄쳤다고 하는데, 그로부터 200년 뒤인 2010년에 바이런을 흠모하여 폭이 5㎞인 다르다넬스 해협 횡단에 참여한 139명의 젊은이 중 최단기록은 1시간 27분이었다. 바이런은 수영뿐만 아니라 권투와 승마에도 능한 스포츠맨이었다. 바이런을 말하려면 하루 종일 떠들어도 모자란다. 그는 블레이크의 뒤를 이어 영국의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시인이며, 철학자이며(바이런은 버트런드 러셀이 저술한 ‘서양철학사’에 당당히 한 장을 차지한다), 당대 최고의 유명인사였고, 가는 곳마다 스캔들을 남긴 바람둥이였고, 그를 본 여자들은 숨이 막힐 만큼 아름다운 외모의 매력남이었고, 매일 밤 머리에 컬을 고정시키는 종이를 붙이고 잠을 자는 멋쟁이였고, 러다이트 운동을 열렬히 옹호한 사회개혁가였고, 그리스의 독립을 위해 직접 총을 든 영웅이었다. 그리스·터키 전쟁에 참전해 얻은 열병으로 36세에 죽음으로써 바이런의 신화는 완성됐다. 아시아와 유럽을 나누는 해협을 헤엄친 뒤에 영국으로 돌아온 바이런을 하루아침에 유명인사로 만든 시집, ‘차일드 해럴드의 순례’(Childe Harold’s Pilgrimage)에 실린 ‘이네즈에게’(To Inez)를 감상하며 바이런 찬사를 끝맺어야겠다. 아니, 우울한 내 이마에 미소 보내지 말아요. 아! 나는 다시 웃을 수 없으니. 그러나 하늘이 그대에게서 울음을 거두어 주기를, 아마도 헛된 눈물일 테지만. 즐거움과 청춘을 녹슬게 하는 어떤 내밀한 고뇌를 내 가슴에 감추고 있냐고 그대는 묻는가? 그대도 달랠 수 없는 이 깊은 고통을 알려고 헛되이 애쓰지 마세요. 나의 현재 상태를 견디지 못해, 내가 그토록 소중히 여겼던 것에서 날 떠나게 하는 것은 사랑도 미움도 아니지요. 천한 야심이 얻은 명예를 잃어서도 아니지요. 내가 만나고, 듣고 본 모든 것에서부터 솟아난 권태 때문입니다. 어떤 미인도 날 즐겁게 하지 않으니; 그대의 눈도 나를 매혹하기 힘들지요. ……(중략) 저주스런 추억 가득 안고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돌아야 하는 나; 내가 아는 유일한 위안은, 무슨 일이 일어나건, 이미 내가 최악(最惡)을 경험했다는 것. 그 가장 나쁜 일이 무엇이냐고 묻지 마세요- 연민이 있다면 알려고 하지 마세요. 남의 마음속을 들춰서 거기 있는 지옥을 엿보려 하지 말고, 다만 미소를 보내주세요. Nay, smile not at my sullen brow, Alas! I cannot smile again: ……(중략) It is not love, it is not hate, Nor low Ambition’s honours lost, That bids me loathe my present state, And fly from all I prized the most: It is that weariness which springs From all I meet, or hear, or see: To me no pleasure Beauty brings; Thine eyes have scarce a charm for me. ……(중략) Through many a clime ‘tis mine to go, With many a retrospection curst; And all my solace is to know, Whate’er betides, I’ve known the worst. What is that worst? Nay, do not ask - In pity from the search forbear: Smile on--nor venture to unmask Man’s heart, and view the hell that’s there * 아, 바이런. 저주받은 시인이여. 이런 노티 나는 시를 썼을 때 그의 나이 겨우 스물두 살이었으니. 바이런의 생몰 연대를 확인하고 나는 한숨짓는다. 이토록 깊은 회한을,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달랠 수 없는 고뇌를 이십대에 이미 알았으니 서른여섯 살에 낯선 땅에서 죽을 수밖에.
  • [씨줄날줄] ‘이민형 탈북’/구본영 논설고문

    [씨줄날줄] ‘이민형 탈북’/구본영 논설고문

    올 들어 탈북자가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고 한다. 탈북민 수는 연간 기준으로 2009년 2914명으로 정점을 찍었다. 이후 2011년 권력을 승계한 김정은의 강력한 통제로 2012년 1502명, 2013년 1514명, 2014년 1397명, 지난해 1276명으로 대체로 감소세였다. 더욱 주목되는 것은 탈북 동기가 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1990년대 후반만 해도 ‘생계형 탈북자’들이 대종이었다. 김일성 주석 사망 후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기에 굶주림을 견디지 못한 북한 변방 주민들이 북·중 국경을 넘으면서다. 그러나 최근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소위 ‘이민형 탈북’이 늘어나고 있다. 단지 ‘먹고살기 힘들어서’가 아니라 ‘자녀와 가족의 미래를 걱정해서’ 북한을 이탈하고 있다는 얘기다. 최근 태영호 영국 주재 북한 공사의 탈북이 그런 경우다. 그제 정보 당국은 “‘25세 이상 외교관 자녀 귀국령’이 태 공사의 귀순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가뜩이나 세습 체제에 염증을 느껴 왔던 그가 장남이 미래가 불투명한 북으로 소환되자 망명을 행동으로 옮겼다는 것이다. 근년 들어 경제적 곤궁으로 인한 탈북민들이 줄어들고 있다니 얼핏 뜻밖이라 여겨진다.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은 핵·미사일 개발로 유엔 등 국제사회로부터 강도 높은 경제 제재를 받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하지만 북한 전역에서 번창 중인 장마당의 존재를 떠올리면 어느 정도 의문은 해소된다. 애초에 암시장으로 출범한 장마당들이 식량 등 기본 생필품 배급이 끊긴 북한 주민들의 생명줄이 되고 있다니…. 그렇기에 북한 당국도 이를 묵인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장마당의 이런 기묘한 역설은 체코 철학자 슬라보이 지제크의 표현을 빌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결혼”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 같다. 태 공사가 자녀들의 미래를 생각해 한국행을 결행했다는 소식에 일선 기자 시절 비화가 생각났다. 1990∼1992년 수차례 남북 고위급회담을 취재할 때다. 평양에서 가진 한 만찬에서 김책공대에서 약전(弱電·반도체)을 전공하는 아들을 둔 북측 수행원이 남측 당국자에게 “통일이 되면 기술과목을 전공한 아들이 더 좋은 대우를 받지 않겠느냐”고 넌지시 물어 왔다고 한다. 빛바랜 취재 수첩에 적힌 이 멘트의 함의가 뭐겠나. 당시 핵심 계층 일각에서도 세습체제의 장래를 회의적으로 보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북한 체제가 아직 건재하고 있다면? 탈북자가 증가세라고 해서 김정은 체제의 붕괴가 임박했다고 보는 건 속단일지 모르겠다. “북한에선 소규모 시위도 불가능할 정도로 공안기관 같은 억압 기구들이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있다”(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는 견해도 그럴싸하다. 다만 당 간부 중심 ‘이민형 탈북’ 도미노 현상이 추세로 나타난다면 ‘김정은식 공포정치’로 체제 이완을 막는 데는 결국 한계가 있을 것임은 분명할 듯싶다. 구본영 논설고문 kby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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