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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서양 문학공존 가능한가/비교문학자 짱 롱시의 ‘도와 로고스’

    ◎두 사상의 핵심개념 통한 본질적 유사성 확인/맹자­바르트 등의 문학해석학 전통 비교 분석 독일 철학자 헤겔은 중국의 역사를 정체성의 역사로 규정했다.나아가 중국사를 세계사의 한 부분에서 제외시켰다.이와 유사한 논리가 문학에서도 등장한다.독일의 문호 괴테는 세계문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지만 정작 자신의 세계문학이 포괄하는 범주는 유럽문학에 국한된 지극히 비좁은 것이었다.동·서양 문학의 진정한 화해와 공존은 유토피아에 불과한 것인가. 최근 국내에 번역 소개된 ‘도와 로고스’(도서출판 강,백승도 등 옮김)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동·서양 문학간의 대화의 가능성을 모색한 문학연구서로 관심을 모은다.지은이는 미국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 주립대 비교문학 교수인 짱 롱시(장융계).중국계 미국인인 그는 이 책에서 도(Tao)와 로고스(Logos)라는 동·서양 사상의 핵심개념을 통해 동·서 문화의 저변에 깔린 ‘동질성’을 확인한다. 생각하기와 말하기,그리고 글쓰기의 형이상학적 위계질서는 서양뿐 아니라 동양에도 존재하며,로고스 중심주의(logocentrism) 또한 서양적 사유방식으로만 볼 수 없다는게 지은이의 견해.의미가 말을 지배하고 말이 글쓰기를 지배하는 형이상학적 위계질서의 예로 이 책은 고대 중국의 고전 ‘주역정의’와 프랑스 철학자 데리다의 초기저작인 ‘그라마톨로지’의 한 대목을 인용한다.“서불진언 언불진의”라는 ‘주역정의’ 의 말은 “로고스의 시대는 매개의 매개로 간주되고 의미의 외면으로 전락한 것으로 인식되는 글쓰기의 가치를 떨어뜨린다”는 데리다의 지적과 일맥상통한다는 것.데리다에 따르면 형이상학적인 개념화는 언제나 위계질서에 의해 진행된다. 이 책은 ‘동양에 대한 서양’ 혹은 ‘서양에 대한 동양’이라고 하는 불완전한 상대주의적 입장을 뛰어넘어 두 세계의 본질적인 유사성을 고찰함으로써 동·서간의 통합된 세계관을 보여준다.동양,그 중에서도 중국과 서양 사이의 유사한 문학전통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특히 중국의 은자시인 도연명의 ’영도적 글쓰기’ 양식을 ‘상징적 사회저항 행위’로 파악하는 짱교수의 비평안은 빛나는데가 있다. 짱교수는 동·서양의 문학해석학적 전통을 폭넓게 고찰한다.작품해석에 있어 시인과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을 최상의 경지로 간주했던 ‘시언지’ 개념에서부터 작가의 의도와 작품의 역사적 문맥 복원을 강조했던 맹자의 의도주의 옹호론,그리고 천년에 한명 이상적인 독자가 탄생한다는 극단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았던 문예평론가 유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중국문학론을 살핀다. 서양의 해석학 전통과 관련,짱교수는 허쉬·인가르덴·가다머·바르트 등을 인용하며 ‘감추면서 동시에 드러내는’ 언어의 이중적 본질을 검토한다.또한 ‘말이 다할때 그것의 의미가 무한으로 뻗어나가는’ 일종의 선과 시의 융합을 언급하면서 롤랑 바르트가 말하는 이른바 ‘작가적 텍스트’의 중국적 사례를 제시한다.짱교수는 끝으로 중국문학의 전통에서 볼 때 텍스트에 대한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은 일찌기 인식되어 왔다고 강조한다.그는 동중서,심덕잠,왕부지 등의 구체적인 작품을 예로 들어 이 점을 증명해 보인다.
  • 불 철학자 들뢰즈의 ‘프루스트와 기호들’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분석 1995년 11월 자신의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자살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겨준 프랑스의 철학자 질 들뢰즈.행동파 좌익인사들이 상당수인 프랑스 지성계에서 들뢰즈는 비교적 철학에만 몰두한 ‘예외적인’ 인물이었다.그는 동시대 프랑스의 철학자인 자크 데리다와 함께 ‘차이’의 철학을 주창했으며 실존주의를 비판했고 헤겔적 마르크스주의와 구조주의에 도전했다.‘철학자 중의 철학자’ 들뢰즈의 초기 저작에 속하는 ‘프루스트와 기호들’(서동욱·이충민 옮김)이 최근 민음사에서 나와 관심을 모은다. ‘프루스트와 기호들’은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등장인물과 사물들을 하나의 기호체계로 분석한 연구서.들뢰즈는 마치 암호를 해독하듯이 이 소설에 접근한다.바로 이 지점에서 들뢰즈만의 새로운 프루스트 읽기가 시작된다.‘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마르셀이라는 문학청년을 주인공으로,시간의 파괴력 앞에 무력한 자신과 주변인물들의 모습을 치밀하게 그린 1인칭시점의 소설이다.이 작품은 종종 과거에 대한 소설로 간주되어 왔다.그러나 들뢰즈는 소설의 통일성을 화자 마르셀의 기억이나 추억에서 찾지 않는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본질은 마들렌 과자나 포석들 안에 있지 않다.들뢰즈에 의하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단순한 회상의 노력이나 기억의 되찾기가 아니다.기억은 일종의 견습의 수단이며,탐구의 도구일 뿐이다.요컨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과거를 지향하는 소설이 아니라 미래를 바라보는 한편의 도제소설인 것이다. 들뢰즈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네개의 기호체계를 찾아낸다.사교계의 기호들,사랑의 기호들,감각 경험의 기호들,그리고 예술의 기호들이 그것이다.들뢰즈는 이 네가지 형태의 기호체계들을 이집트학 학자처럼 해독,기호와 의미를 종합하는 진정한 영원성으로서의 시간,즉 절대적 원초의 시간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은 바로 예술기호라는 결론에 도달한다.이 책은 무엇보다 들뢰즈 사상의 발전과 관심의 이동경로를 그 싹에서 열매에 이르기까지 발생학적으로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 장 그르니에 철학에세이 3권/객관적 거리에서 짚어본‘삶과 죽음’

    ◎긴장·까다로운 감수성 지닌 ‘불 산문의 정화’/제자 알베르 카뮈와의 인간적인 교유 회고 프랑스의 작가이자 철학자,그보다는 알베르 카뮈의 스승으로 더 잘 알려진 장 그르니에(1898∼1971)의 에세이 선집이 도서출판 민음사에서 나왔다.모두 4권으로 기획된 이 선집 가운데 이번에 선보인 것은 ‘섬’‘카뮈를 추억하며’‘어느 개의 죽음’ 등 3권.나머지 한권인 ‘일상적인 삶’은 11월 말 출간될 예정이다.특히 이번 판본은 그르니에 특유의 간결하고 깊이있는 어투를 우리말의 맛을 살려 번역,철학에세이의 지루함을 걷어낸 점이 돋보인다. 그르니에의 대표작인 ‘섬’(김화영 옮김)은 삶에 대한 작가의 강렬하면서도 그윽한 시선을 그대로 반영한다.‘공의 매혹’‘고양이 물루’‘케르겔렌 군도’‘행운의 섬들’‘부활의 섬’‘상상의 인도’‘사라져버린 날들’‘보로메의 섬들’ 등 8편의 글을 통해 그르니에는 감각적인 현실속에서 우리가 느끼는 ‘젊은 불안’이 어디서 오는 것인가를 성찰한다.이 책에 나오는 에피소드식으로 구성돼 있는 상징의섬들이 준 충격을 카뮈는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이 한 세대에 끼친 충격에 견줬다. ‘카뮈를 추억하며’(이규현 옮김)의 스토리는 그르니에가 알제 고등학교에서 철학강의를 할때 제자로 찾아온 카뮈와의 첫 대면에서부터 시작된다.삶의 좌절과 고통을 냉담함으로밖에 표현할 줄 몰랐던 한 고등학생과의 인간적인 교유가 인상적이다.그르니에는 스승과 제자의 차이,산 자와 죽은 자의 차이,사회적 성장배경의 차이 등 자신과 카뮈 사이에 놓인 실존적 간극을 날카롭게 인식한다.그런만큼 그의 글은 더욱 치밀해질수 밖에 없다.그르니에는 증언한다.“‘부당하게 상처입은 짐승의 울부짖음’이 카뮈의 모든 작품에서 들려온다”“카뮈는 ‘빨리 가야할’ 필요가 있었고 쫓기면서 인생을 살았다”“카뮈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 창작을 택했다”….그의 증언들은 카뮈와의 동일시 환상을 불러 일으킬 만큼 사실적이다. ‘어느 개의 죽음’(지현 옮김).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작가의 글쓰기는 사랑하던 한 존재의 소멸에서 비롯된다.한 장이 한 페이지로이루어진 90개의 장과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 대한 짧은 글’로 구성된 이 책은 개의 죽음을 다루면서 신의 구원에 대한 불만과 기원을 이야기한다.두 눈에 눈물을 가득 담은채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개의 모습에서 작가는 삶의 기쁨을 주는 손과 앗아가는 손이 같은 존재라는 것을 발견하고 분노를 느낀다.그러나 작가는 이내 마지막 고통 때문에 일생의 기쁨을 송두리째 부정해서는 안된다고 자신을 추스린다.그리고 객관적 거리에서 죽음을 관조한다.한줄기의 잠언처럼 다가오는 이 글을 통해 그르니에는 신과 인간,삶과 죽음,밝음과 어둠의 이분법적 세계를 넘나들며 그 소통가능성을 모색한다.나아가 부정과 초극의 변증법을 보여준다. 프랑스의 일간지 ‘르 몽드’는 그르니에의 작품에 대해 “그의 작품은 긴장과 까다로운 감수성을 지니고 있다.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평온함을 띠고 있어 독자들로 하여금 무중력상태에 빠진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고 평했다.그르니에는 이 작품들을 통해 거창한 철학을 이야기하려고 하지 않는다.다만 자기를 잃고 사는오늘의 현대인에게 ‘인간과 삶에 대한 사랑’이라는 화두를 시적 명상에 실어 전해주고 있을 뿐이다.
  • 소크라테스 최후의 13일/모리모토 데츠로 지음(화제의 책)

    ◎사형선고후 독배받기까지 사색 소설화 소크라테스가 사형선고를 받은뒤 독배를 받고 죽기까지 13일 동안의 사색을 소설적으로 재구성.소크라테스 사상의 기본주제인 ‘혼’‘무지의 지’‘상기설’ 등을 대화·사색 등을 통해 구체적으로 살핀다.또한 아테네의 도시풍경과 아고라를 중심으로 한 시민들의 생활 등을 상세히 묘사,고대 그리스의 시대상과 아테네라는 폴리스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해준다.이 책은 소크라테스의 인간성에 관해 설명한 크세노폰의 ‘소크라테스에 관한 추억’,젊은 날의 소크라테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 ‘구름’,소크라테스의 재판을 다룬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명’과 ‘크리톤’,독배를 받던 그 날의 일들을 속속들이 그린 ‘파이돈’ 등을 참고자료로 삼았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운명에 대해 사색을 거듭했다.“테세우스의 제사가 끝난뒤 델로스 섬에서 배가 귀항하면 나는 죽는다.우연치고는 너무나 잘 맞아떨어지지 않는가.나의 운명은 신탁이 예언하고 있다.나는 오로지 운명의 여신 모이라이가명하는 대로 행동해왔다” 소크라테스는 운명의 힘은 거역할 수 없는 것으로 믿었다.그는 또한 혼의 불멸을 믿으면서도 윤회와 전생을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자신의 박약한 사고력을 애석해했다.소크라테스의 현대적 의미는 무엇일까.‘삶의 연구’’사무라이 마인드’ 등의 저서를 낸 지은이는 소크라테스가 죽음과 정면으로 마주선 최초의 철학자였다는 점,즉 ‘죽음의 현자’였다는데서 그 단서를 찾는다.양억관 옮김 푸른숲 7천800원.
  • 하버마스/정호근 등 지음(화제의 책)

    ◎하버마스와의 비판적 대화 시도 논문집 독일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제2세대 사회학자이자 철학자인 위르겐 하버마스(1929∼)와의 비판적 대화를 시도한 논문집.‘하버마스와 더불어 하버마스와 대항해서’ 사유한다는 것이 이 책의 모토다.‘현대의 마지막 거대이론’‘정치적 실천의 차원’‘신사회운동의 지평’등 모두 3부로 이뤄졌다.1부에서는 하버마스 이론의 기본개념과 이론적 구조,철학적 배경을 살피고 2부와 3부에서는 하버마스 이론의 정치적 함의와 신사회운동의 다양한 경향들을 검토한다.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의 제자인 하버마스의 학문적 정향은 ‘의사소통행위이론’으로 집약된다.이 이론은 구조로부터 행위자로,현상으로부터 도덕과 규범으로 관심의 표적을 전환시킨다.나아가 그 전환의 방식을 보여줌으로써 경험주의 사회이론의 피상성과 목적론적 실천이론의 의도적 오류를 치유하는 길을 제시한다.이 책은 인문 사회과학 거의 전 분야에 걸친 하버마스 연구의 목적은 ‘의사소통이론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이라는 하버마스 자신의 ‘이론적 전략’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또한 하버마스가 이성의 ‘도덕적 잠재력’을 복원하는데는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자신의 이론을 지나치게 일반화시킴으로써 노동을 중심으로 점화되는 현실정치적 갈등을 등한시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주장한다.목포대 정호근 교수는 “하버마스의 사유는 이론적 엄밀성의 요구에 충실하면서도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현실에 대한 관심을 잃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개입적 사유’”라고 지적한다.나남출판 1만2천원.
  • 철학자 왕양명의 여요(중국문학의 고향을 찾아:20)

    ◎양명학의 고장… 용천산 기슭엔 ‘강학소’가…/신석기유물 대량출토 한때 세계이목 집중/청초 3대사상가 황종의의 은거지·묘소도 1973년,항주만 남쪽 항만의 쓸쓸했던 나루터­하모도에서는 볍씨를 비롯,농경·축목·건축·방직에 쓰였던 7천년전의 문물이 출토됨으로써 여기 여요땅은 새로운 신석기시대의 유적으로 세계의 이목을 모은바 있다. ○선비의 고장 사현고리로 그동안 양자강문화는 그 실상을 몰라 수수께끼로 남았었다.황하유역은 척박한 황토에 걸핏하면 홍수가 범람함에도 5천년의 유구한 문화를 자랑했다.양자강유역은 기름진 땅에 수륙의 교통이 발달했음에도 겨우 2천몇백년이란 짧은 문화사를 지닌 역사의 불균형이었다.이러한 의문을 풀리게 하는 하모도 신석기유적이 바로 ‘선비의 고장’으로 알려진 여요시 관내에 있다. 한나라의 은사였던 엄광(자 자능)을 비롯,양명학을 완성한 철학자요 시인인 왕수인(1472∼1528),실사구시를 제창했던 주지유(호 순수·1600∼1682),공리공담을 배격하는 ‘절동학파(절동학파)’의 개조인 역사학자요수필가인 황종희(호 이주·1610∼1695)등이 모두 여요사람이다. 그래서 여요를 ‘4현고리’라 했다.그러니까 위의 네사람을 기리는 뜻이다.아닌게 아니라 여요에서 만난 주가룡 여요시정치협상회의)정정치협상회의·우리나라 지방의회에 상당)의장 또한 여요 시민의 긍지를 내세우면서 안내에 앞장을 섰다. ○걸작 ‘양명전집’ 남겨 여요시 한 복판에 돌올한 용천산은 비록 해발 100m에 미치지 못하는 동산이지만 그것은 4현을 기리는 자연기념관이다.그 산 허리에는 네사람을 기리는 비석이 일렬횡대로 선 외로 4개의 정자가 따로 섰다.‘용천산’이란 이름을 얻게한 샘옆으로 왕양명이 철학을 강론하던 ‘양명강학소’가 이 고장의 상징처럼 장중했다. 용천산 산기슭 남북으로 2현의 유적이 보존되어 있다.남쪽에는 ‘주순수기념당’이 지난 1994년,앞으로 요강을 굽어 보고 뒤로 용천산을 등진채 웅건한 풍모로 섰는데 그가 양명학의 고장에서 양명의 심리설을 비판하면서 경세치용을 제창했던 진보성과 그가 청나라에 항거,일본으로 망명해 일본에서 강론 20여년끝에 객사했다는 그 비장이 보이는 듯했다. 북쪽에는 왕양명의 생가 ‘서운루’가 마침 여요교통관리청 뒤편에 층층이 종열했다.대문을 들어서서 서향으로 계단을 올라서면 대청,대청 정면에는 ‘오심광명’이라는 액자,마음이 곧 이치라는 그의 중심철학을 극명하게 보여 주었다.그 뒤가 ‘서운루’,양명이 태어난 곳이다.근대의 사상가요 정치가였던 양계초는 양명을 ‘천고대사’로 추앙했으니 양명 태어난 곳을 서운이 일어난 집이랄 수 있겠다. 그는 동방의 순수이성론이랄수 있는 ‘치량지’설의 철학자요 교육가임에도 ‘상사기’나 ‘예려문’같은 애상적이고 인도적인 명문을 남겼거니와 시 599편을 포함한 ‘양명전집’의 걸작을 남겼지만 관운이 불우하여 남방에 유배되거나 출정됐다.끝내 열대의 광서에서 병을 얻고 귀향의 뱃속에서 절명,결국 항주에 묻혔으니,일대 철인의 말로는 비참했다. ○절동학파의 영주로 고염무·왕부지와 함께 청초 3대사상가로 불리는 황종희는 청병이 침노하자 의병을 규합,사명산에서 항쟁타가 실패하자 철학과 역사의저술에 전념했다.특히 그의 명저 ‘명이대방록’에선 천하에 가장 큰 장애는 오직 군주일 따름이다.’라는 반제와 ‘천하의 평정은 오직 백성의 평안’이라는 민주를 강조했고,그의 ‘황이주문집’에선 문학의 실사구시,곧 내용주의를 주장한 진보적인 문학가로서 결국 그는 절동학파의 영주가 됐다. 여요시에서 요강을 따라 동남쪽으로 10㎞,육부진을 만난다.여기서 우회전,화안산을 찾으면 거기 나즈막한 산기슭에 황종희의 무덤과 황종희가 생시 한때 은거했던 용호초당이 앞뒤로 좌성했다.여기서 또 북쪽으로 2㎞ 남짓 가면 포구촌,바로 황종희의 태생지가 된다. 여기 황종희의 태생지,은거지,유택의 공통점은 여느 곳과는 달리 평원이 아닌 구릉,그러니까 사명산의 맥락이 여기까지 뻗은 것이다.특히 ‘황공이주선생묘’란 묘표로 단장할 무덤은 필자같이 풍수를 모르는 사람의 눈에도 청룡백호가 분명하게 좌우를 포위하고 있고,오른쪽 겨드랑이에서 시내가 흘러 나와 동으로 굽이치고 있다.사실 오월지역의 문학유적을 답사하는 동안 이만한 풍수도 보기 드물었다.모두가 가도 가도 대평원이기에 말이다. 이렇게해서 여요가 낳은 4현의 유적을 둘러 보았다.다만 엄광의 것만이 그를 기리는 용천산상의 비석과 정자에 그쳤을 뿐이다.이제 역사를 뿌리조차 뽑히도록 7천년이나 거슬러 올린 그 현장으로 달려가고 싶었다.황종희 무덤에서 다시 요강을 따라 동남쪽으로 15㎞를 달리면 시원스럽게 시야가 트인 나강향의 나루터 하모도에 닿는다.여기서 강길따라 내려가면 영파를 지나 황해로 머리를 내민다. 하모도평원에는 어느 체육관을 방불케 삼각형 지붕이 뾰족뾰족한 건물 서너채가 동그마니 서 있다.바로 93년5월에 낙성한 ‘하모도유물박물원’이다.한마디로 1973년과 1977년 두차례에 걸쳐 2천800㎡의 땅에서 볍씨를 비롯,뼈·나무·돌·옥등의 생활도구,수륙 교통도구,건축물,예술 도안및 장식등 모두 6천700여점을 발굴한 것이다. ○하모도 유물박물원 건립 필자는 40여년 중국문화를 연구한 학도로서 커다란 의혹이 풀린 것이다.산수가 좋으면 사람이 모이고,사람이 모이면 문화를 낳는다는 문화발생의 원리가 여기서 또 한번 확인된다. 올 봄 중국 체신부에서는 하모도를 기념하는 우표 네가지를 발행했는데 그속에는 볍씨와 호미,강물과 노,흙과 울,태양과 새등을 도안으로 삼았다.이 네가지는 각각 농경,교통,주거,그리고 민간 신앙을 상징했는데 특히 새 두마리가 해를 옹대하는 ‘쌍조조양’의 상아조각은 차원높은 예술이요,토템신앙이다. 3시간쯤 7천년전의 생활과 문물을 관람하면서 두가지 생각에 잠겼다.하나는 우리 인류의 불가사의한 투지와 지혜요,또 하나는 중국 남방 문화에 대한 재평가과 재발굴이 획기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 사마르 칸드/아민 말루프 지음(화제의 책)

    ◎페르시아 철학자 하이얌의 일생그려 11세기 페르시아를 풍미한 시인이자 수학자,철학자였던 오마르 하이얌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그린 장편소설.레바논 출신의 프랑스 작가인 아민 말루프(48)는 메소포타미아의 예언자이자 화가였던 마니교의 창시자 마니의 일생을 다룬 장편 ‘마니’를 통해 지난해 국내에 처음 소개됐다.그는 우리에게는 아직 생소하지만 프랑스 문단에서는 ‘동방의 정신’을 대변하는 중량급 작가로 문학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얻고 있다. 소설의 전반부는 중세 이슬람문화의 환상적인 분위기에 초점을 맞춘다.후반부에는 19세기말 제국주의시대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해방과 혁명을 위해 투쟁한 페르시아 후예들의 모습을 그린다.그 수백년의 세월을 이어주는 다리는 이슬람문학의 백미로 꼽히는 하이얌의 4행시집 ‘루바이야트’다.소설의 배경은 ‘실크로드의 끝’으로 불리는 사마르칸드를 비롯한 사막의 오아시스 도시들이다.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민족간·종교간의 대립과 갈등을 관용과 화해의 정신으로 감싸안는 메시지를 전한다.10여년동안 아랍어권 주요 일간지의 국제부 기자로 활약한 그는 76년 종교전쟁에 휩싸인 조국 레바논을 떠나 현재 프랑스에서 활동하고 있다.이원희 옮김 정신세계사 7천800원.
  • 파라켈수스/에른스트 카이저 지음(화제의 책)

    ◎‘의학계의 루터’ 파라케수스 평전 스위스 태생의 의사이자 화학자,철학자인 파라켈수스에 대한 평전.‘의학계의 루터’라고 불렸던 파라켈수스는 쿠자누스·브루노와 함께 중세말∼르네상스 시대 초기를 대표하는 철학자로 꼽힌다.중세철학은 신의 존재,영혼불멸,신의 섭리,부활 등 초월적인 것을 주요 대상으로 삼았다.반면 르네상스 철학은 세계의 무한성,정신과 자연의 통일,개체의 해방에 관한 사상이 핵심을 이룬다.이 책은 의학자이기에 앞서 전형적인 인문과학자요 시인이었던 파라켈수스의 다채로운 사유세계의 전경을 살핀다. 파라켈수스의 세계상과 세계관은 그노시스(gnosis),곧 영지와 중세 유대교의 신비주의인 카발라(kabbala) 식의 신플라톤적인 사상이 주류를 이룬다.나아가 그의 사상은 종말신학에서 출발해 성사론을 거쳐 구세론,그리스도의 속죄설에까지 이어진다.이와 관련,스위스의 심리학자인 융은 “파라켈수스는 완전한 의미의 연금술 철학자였다.그의 종교적 세계관은 그 당시의 기독교적 사유 및 신앙과 날카롭게 대립했다”고 지적한다.“자기 자신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하인이 아니다”라는게 파라켈수스의 좌우명.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파라켈수스 평전으로 ‘한길 로로로’시리즈 17번째 권으로 나왔다.강영계 옮김 한길사 8천원.
  • 건축가 승효상(이세기의 인물탐구:136)

    ◎장식 아닌 생략·절제의 미 창조/김수근공간연구소 거쳐 빈 공대서 수학/작품철학엔 문학적 취향에 종교성 가미/‘빈자의 미학’ 선언… 건축계의 기린아로 건축가 승효상의 건축작업은 장식적이 아닌 생략과 절제의 묘미가 특징이다.건축철학 역시 그만의 독특한 문학적 취향과 함께 종교성을 포함시키는데 있다.일찍이 김수근이 이끌던 공간건축연구소에 소속되던 시절에는 외부공간과 외곽을 연결하여 아기자기한 내부를 꾸미는 수사성에 집착했으나 오스트리아 빈에 유학하면서 「장식성의 무의함을 절감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가 유럽시절 영향을 받은 것은 19세기말 「귀먹어리들아, 들어라!’라는 글로써 「장식의 죄악성’을 통박한 아돌프로스의 로스하우스를 접하면서부터다.빈 중심가에 자리잡은 이 건물은 아래층은 상가이고 위층부분은 아파트로 분리된 실용적 건물로 한때는 「눈썹없는 사람’이란 비난을 받기도 했으나 철학자 칼 크라우스가 「그것은 건축이 아니라 철학’이라고 호평하면서 20세기 모더니즘의 효시가 된다. ○스승에 “틀렸다” 직언도 빈에서 돌아온 승효상은 건축가가 완벽하게 분할하고 장식하고 구성하던 기존관념에서 벗어나 ‘프레임만을 정해주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개성과 취미와 생활을 담을수 있도록’ 선택의 여지를 남겨주게 되었다.그가 세우는 흰벽과 마당,그가 만들어 내는 공간들은 오브제적 아름다움과 고전적 비례감을 성취하면서 ‘이제까지의 미적통념에서 벗어난 과장과 축소로 우리의 일상을 진리의 세계로 연결시키고자하는 처절한 순례의 결과’라는 것이 건축가 민현식의 평이다. 승효상은 신사적인 건축예술가로 소문나 있다.대인관계가 원만하고 이해의 폭이 넓어서 누구에게도 쉽게 거부감을 주지 않는다.그러나 자신의 주장을 확실하게 피력하고 옳다고 생각하는 선에서는 무가내하일만큼 양보가 없다.만일 토론을 하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대방의 의사를 수용하는데 비해 승효상은 격론의 대상이 대선배나 스승일지라도 「틀렸다’고 맞서는데 주저하지 않는다.이른바 중앙청을 철거할때도 경복궁복원은 당연하지만 좀더 긴 논의와 철거의 타당성을토론으로 이끌었어야 한다는 주장을 철거가 끝난 지금도 멈추지 않을 정도다.그만큼 고집이 센편이다. 그가 말하는 엄밀한 의미의 건축적 요건이란 건축이 놓이는 ‘땅에 대한 장소성’이며 건축을 배경으로 하는 ‘시대성’,그리고 ‘집은 집답게’‘학교는 학교답게’‘교회는 교회답게’허세와 과시와 사치를 배격하면서 가장 인간적인 것을 건축속에 담아야 한다는 논리다. 이후 승효상은 참건축의 의미인 ‘빈자의 미학‘을 선언하면서 건축계의 주목을 받는 기린아의 이미지로 떠오르게 되었다.또 ‘건축가가 설계했다고 해서 그것이 모두가 다 건축이라고 할 수 없으며 오히려 건축가없는 건축이 더욱 살아있는 인간을 담은 건축적’이란 독설은 한동안 건축계에 긴장을 주기도 했다. 이처럼 건축을 향한 그의 정신은 한자리에 머무는 법이 없이 언제나 치열하다.그래서 ‘나는 고루한 인습에 묶여있지나 않은가’‘타협하기 위해 비겁하지 않았는가’를 자문하면서 「남이 믿는 것을 믿지 않고’‘남이 믿는 것을 자신도 모르게 따라가게 되는 모순’을 스스로 통제하기도 한다. 그가 이러한 투철한 건축을 추구하게 된데는 그의 성장과정이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는 평북 정주출신의 독실한 크리스천인 승병조씨(안디옥교회 장로)의 3남1녀중 장남, 부산피란시절에 부산에서 태어났다.이북에서 피란온 여러가구가 서대신동 꼭대기에서 함께 살게되면서 그는 벌써 나눔과 베품,남에게 주는 기쁨인 가족공동체를 체득할 수 있었고 허례와 과장이 아닌 실용적 공간을 추구하게 되었다.예를 들어 그는 에게해 산토리니섬의 벼랑끝에 다닥다닥 붙여지은 집들이라든가 아키펠라고의 군도적 삶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으로 손꼽고 있다. 그들의 삶은 선을 긋고 담을 쌓는 것이 아니라 남의 마당을 내 마당처럼 건너지르거나 남의 베란다를 나의 지붕으로도 쓸 수 있다는 여유와 낭만을 강조한다.그러나 그가 좋아하는 ‘달동네는 사실이기 때문에 아름다울수 없겠지만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는 측면과 흰눈이 내려 모든 것을 덮으면 사실은 안보이고 사실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역시 아름답고 인간주의적이라고 주장한다. 건축가 공일곤은 승효상의 건축이론은 「언제나 앞장서서 하나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열린 창의력으로 대담하게 무엇이나 시도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의 번뜩이는 재능과 미래를 바라보는 혜안은 기라성같은 서울대 선배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게되었고 ‘이 시대를 대표하는 걸작품을 탄생시키고야말 인물’로 지적되기도 한다.따라서 ‘그가 종종 사용하는 빈자의 미학은 이 시대가 필연적으로 갖춰야할 덕목이 무엇인가를 명쾌히 꿰뚫는 선언일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의 최근의 건축이 침묵하는 몸짓을 보이며 거추장스러운 군더더기를 제외하고 본질만의 뼈대로 구성되는 것은 세장하고 유약한듯 하면서도 엄청난 긴장과 압축의 미학에 접근된 자코메티의 구원의 빛과 비견되어 ‘물리적으로 빈한한 자의 어쩔수 없는 퇴행적 미학이 아닌 오히려 스스로 빈자이고자 하는 실천적 미학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실용적 공간미학 추구 이 정신은 ‘인간성이 피폐해가는 세기말적 징후들과 결연히 맞서보려는 의지로서 자연에 대한 경외,도에 대한 갈구,높은 안목,그래서 청빈한 삶을 생활화한 조선조 선비들에게서 흔치않게 발견되어지는 구도자적인 자세일 것이다.미대를 나온 부인 최덕주씨와의 사이엔 아들만 형제. 대장간에 칼이 없듯이 이 시대를 주도하는 주역답지 않게 둔촌동 주공아파트에 살고 있다.아침에 동숭동 샘터빌딩에 위치한 사무실에 출근하면 일과 두주불사로 자정직전에나 귀가,드로잉솜씨가 일품이고 모든 철학서적을 난독한다. 지적 감수성으로 보편적 세계를 바라보는 사람이 건축가라고 한다면 「빈자의 미학’을 구가하는 그의 건축철학은 「현대의 선비적 자세’에 틀림없다. □연보 ▲1952년 부산 출생 ▲74년 서울대 건축학과 졸업 ▲75∼78년 공간연구소(대표 김수근)근무 ▲80년 서울대 공대 대학원 졸업 ▲80∼96년 한양대 이대 등 출강 ▲81∼82년 오스트리아 빈공대 수학,마하르트 뫼비우스운트 파트너근무 ▲85∼현재 대한건축사협회정회원 ▲86∼89년 공간연구소 대표이사 ▲86∼현재 한국건축가협회 정회원 ▲89년 승효상건축연구소 대표 ▲90년 대한민국건축대전초대작가 ▲93∼현재 서울건축학교운영위원 ▲94∼현재(주)종합건축사사무소 이로재 대표이사,분당주택전람회 ▲97년 현재 서울대 공대 출강 〈작품〉 광복30주년기념전시관(75년) 국립청주박물관(79년) 미노리텐광장·국제경제센터(81년 오스트리아 빈) 서울대공원·차병원(82년) 서울법원청사·주미한국대사관저(84년 워싱턴DC)눌원빌딩(87년) 강남크리닉·초량오피스빌딩(90년) 학동 수졸당(92년) 문화공간예술종합관(93년) 천주교풍납동성당·순천향대 도서관(94년) 경주율동법당 등 다수 〈저서〉 「빈자의 미학」(도서출판 미건사)「한국현대건축산책」외 〈수상〉 대법원장표창(89년) 건축가협회상(91·92년) 김수근문화상건축상·대한민국건축문화대상 본상(93년)
  • 사라질 방학책(외언내언)

    누런 갱지로 만들어 돌돌 말릴만큼 얇은 책이지만 이 책을 받는 날은 하늘에 날아오르기라도 할듯 기분이 좋았다.신나는 방학이 시작됨을 알려 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곤충채집과 방학책 읽고풀기가 방학숙제의 전부였던 시절을 보낸 세대에게 특히 이 책은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교과서 이외의 책으로는 유일한 이 책에 실린 이야기와 삽화를 신기하게 들여다 보았던 일,집에 오자마자 책가방과 함께 던져놓고 방학동안 내내 놀다가 개학을 며칠 앞두고서야 책을 찾느라 부산떨던 일,열심히 문제를 푸느라 쓰고 지우다 보면 품질 나쁜 종이·연필·지우개의 합작으로 책에 구멍이 숭숭 뚫리던 일.요즘 아이들의 눈으로 보면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이야기다. 「여름공부」「탐구생활」「방학생활」 등 이름으로 불려온 초등학교 방학책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1947년.철학자이자 교육자였던 오천석 박사(1901∼1987)가 아이들에게 읽을거리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뜻에서 아이디어를 내 한국교총의 전신인 대한교련이 발행했다.61년 혁명정부가 들어선 이후 3년간 문교부 편수관실에서 방학책 발간 책임을 맡았다가 다시 대한교련으로 넘겨져 77년까지 이어졌고 78년부터 교육부 산하 교육개발원에서 간행하다가 95년부터 시도교육청으로 이관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79년부터는 무료 배포를 시작,서울시교육청의 방학책 발간 예산은 1년에 8억원 정도다. 지난 50년동안 초등학생의 방학친구였던 이 방학책이 사라지게 됐다.서울시교육청이 부교재채택 비리를 없애기 위해 정규수업시간 부교재 사용을 전면금지하면서 방학책도 「상징적」으로 없애기로 했다는 것이다. 지나친 숙제와 보충수업으로 방학이 「또하나의 학기」로 변질되고 있는만큼 방학책을 없애는 것은 원칙적으로 바람직한 일이다.50년전과 달리 읽을거리가 넘치는 이제 초등학교 방학책은 획일적이고 재미없는 과제물일 뿐이기 때문이다.그러나 방학책이 없는 방학을 보내는 학생들을 위한 지도방안이 먼저 마련돼야 할 것이다.
  • 「서양문명의 추락」/자크 아탈리 프랑스 철학자(해외논단)

    ◎시장경제·민주주의 절대가치 아니다 서양에서 발전한 시장경제와 민주주의가 냉전이후 유일의 이데올로기로서 전 지구에 풍미하고 있다.프랑스의 유명한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인 자크 아탈리는 미국 카네기평화재단이 발행하는 「외교정책」 최근호에 서양의 이 두 가치관을 절대의 최고선으로 숭앙하는 현 시류를 비판했다.그의 「서양문명의 추락」을 요약한다. 냉전 종식과 소련 제국 붕괴로 시장경제 체제와 민주주의가 승리를 거둔 것처럼 보인다.전 지구적으로 칭송받으면서 이 서양의 두 주축 가치관은 이제 국제사회로의 합류나 국제 금융기관의 지원을 원하는 나라들에겐 필수적인 조건이 됐다.이 가치관들이 이처럼 지구 곳곳에서 채택되자 드디어 역사의 종착점에 닿았다느니 최소한 서양문명의 최종적인 승리가 확인됐다느니 하는 말이 들린다.서양의 가치관들이 아직 덜 정착된 곳이면 어디나 모두 이를 성취하기 하기 위해서 온몸을 불사르겠다는 표정들이다.미국 외교정책은 미국 이익에 도움이 될 경우에 한해서이긴 하지만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수출이 주임무인 것으로 보인다. 서양문명의 열렬한 찬양자들이 「오만」에 가깝게 자신만만해 하더라도 크게 건방져 보이지 않을 지경이다.수백년의 풍상을 거치면서 발전했고 특히 세계대전 와중의 20세기에도 튼튼하게 보존된 이 서양 가치관은 오늘날 경제 번영과 개인 자유의 기본 요소이자 인류가 이룬 몇몇 위대한 승리의 실질적 엔진으로 여겨지고 있다. ○모든 국가에 적용은 무리 더구나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는 「누이좋고 매부좋은」 식의 상호 선순환적 관계라고 역사는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하나가 없으면 다른 하나도 불가능한 것처럼 할뿐 아니라 시간과 함께 이 둘은 서로를 보강하는 냥 한다.시장경제는 사적 소유권,기업 체제,기술쇄신 등을 요구하며 이들은 사상,표현,이동의 자유가 없으면 발달할 수가 없다.민주주의는 사람들이 어디서 살고,무엇을 사고 팔며,어떻게 일하고,저축하고,부를 축적할 것인가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같은 선택은 산업의 집단 소유체제와는 양립할 수 없다.요컨대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는 서로 깊숙하게 엉켜있으며 특히 사적 소유권이란 근본 개념에 둘다 매여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둘을 열광적으로 옹호한다 하더라도 최근 미국 정책입안자들이 입에 올리고 있는 「시장 민주주의」란 것은 실제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다.러시아와 같은 옛 공산주의 국가를 튼실한 시장경제 체제로 발전시키는 일은 산업을 민영화하고 시장이 가격을 결정하도록 하는 것 이상의 것을 요구한다.또 전화에 찢겨진 캄보디아 같은 나라에 진정한 민주주의를 수립하는 일은 떠들석하게 축하받은 자유선거 이상의 것을 요구한다.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는 인류 진보를 이끌고 갈 영구 에너지 기계의 양쪽 날개라는 일반들의 쉬운 생각과는 달리 이 두 가치관은 실상 개념대로 하자면 스스로는 어떤 문명도 지탱해낼 능력이 없다.모두다 취약점 투성이며 시간이 지날수록 해체의 기운이 강해진다.서양,특히 그 스스로 리더라고 자처하는 미국은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부족한 점을 깨달아야 할 때다.그렇지 않으면 서양문명은 서서히 허물어져서 결국은 자멸하고 말 것이다. ○취약점 투성이… 허점 깨달아야 서양문명은 멋진 외관에 균열이 막 모습을 드러내는 참이지만 그 기초를 X레이 촬영하면 총체적 붕괴로 이어질 원천적 취약점이 발견될 것이다.이같은 대재앙을 피하기 위해선 서양은 민주주의와 시장체제 간의 결혼이란 것이 다음과 같은 3가지 근본적인 단점을 지닌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첫째,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주요 원칙들은 많은 서양사회에 응용될 수 「없다」.둘째,양자의 각 원칙들은 서로 모순되며 누이좋고 매부좋은 식으로 서로 손잡는 다기 보다는 서로 정면충돌할 가능성이 더 많다.세째,이들은 각각 스스로 내부에 자기파괴의 씨를 품고 있다. ○스스로 가치관에 겸손해야 시장경제와 민주주의 개념이 상호 충돌하면서 종래 민주주의는 시장경제 메카니즘과 부패한테 자리를 내주고 희미하게 사라지고 만다.이런 상황에 달한 서양문명은 붕괴할 수 밖에 없다.이같은 추락을 피하고자 한다면 근본적인 몇몇 질문에 정직한 답을 찾아봐야 할 것이다.주요 결정에서 과연 시민들의 진정한 영향력은 얼마나 되는가.여러나라의 민주주의 실상은 어떤 것인가.왜 항상 똑같은 승자와 패자인가.시장 메카니즘으로 빈곤이 극복될 수 있을까. 서양문명은 우선 스스로의 가치관에 보다 겸손해야 한다.시장경제와 계획경제 사이의 절충,민주주의와 권위주의적 결정 메카니즘 사이의 절충을 찾아볼 필요성을 인정해야 한다. 아시아 사회들이 시장과 민주주의 사이의 모순되는 원칙들에 대한 가능한 대답을 시사해준다.즉 시장적 경쟁이 주는 몇몇 위험에 대해 시민을 보호하도록 국가의 강력한 역할을 허용,이 사회들은 상호충돌의 힘에 균형을 잡고 있는 것이다.〈정리=김재영 워싱턴 특파원〉
  • 임마누엘 칸트/오트프리트 회페(화제의 책)

    ◎「무엇을 알수 있나」 등 3가지 물음 탐구 독일의 관념주의 철학자 칸트의 사상체계를 소개.기존의 칸트 입문서들과는 달리 분석철학과 영미권 학자들의 칸트연구 성과에도 주목,지적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점이 돋보인다.이 책은 칸트가 제시한 철학적 물음들,즉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나는 무엇을 희망해도 좋은가」라는 세가지 물음을 화두로 삼아 칸트의 사상에 접근한다.하나의 예로 이 책은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라는 물음 아래 「순수이성비판」을 다룬다.그 물음의 핵심은 「어떻게 선험적 종합판단이 가능한가」하는 것이다.칸트는 「순수이성비판」을 통해 존재자,즉 객관적 대상의 본성에 대한 철학적 이론은 존재자에 대한 인식론으로서만 달성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칸트는 정신사적으로 유럽 계몽주의 시대에 속한다.그의 입장은 많은 점에서 깨지기 쉬웠다.모든 사물은 지배될 수 있다는 생각이나 영속적인 진보에 대한 믿음 등 칸트의 이성낙관주의는 한마디로 유지되기 어려운 것이었다.하지만회페는 『칸트의 철학은 유럽 계몽주의 시대의 지성적 정점』이라고 단정짓는다. 문예출판사,이상헌 옮김,1만2천원.
  • 중국철학사4/북경대 철학과 연구실(화제의 책)

    ◎「진화론」 논쟁과 중 근대철학의 관계 1840년 아편전쟁부터 1919년 5·4운동 이전까지 중국 근대철학사상의 변천과정을 고찰.특히 근대 중국에서의 자산계급의 계급투쟁과 철학사상간의 관계를 살피는데 역점을 둔다. 아편전쟁을 계기로 중국에는 자본주의라는 경제형태가 등장했으며 새로운 계급인 자산계급이 생겨났다.이들 자산계급은 봉건 구문화에 반대했고 이러한 점이 철학에 반영돼 자산계급철학,즉 중국 근대철학이 탄생했다.마르크스주의 철학이 중국에 대량으로 흘러 들어오기 전,다시말해 근대 중국에 유입된 서양사상은 천부인권론·주권계약설 등의 정치학설과 진화론이었다.이 가운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이 진화론.대다수의 진보적인 중국 근대철학자들은 진화론은 자연계뿐 아니라 인류역사 발전에도 적용된다고 믿었다.중국의 근대철학은 바로 이러한 진화론 논쟁을 거치면서 발전했다.중국의 혁명적 민주주의자이자 자산계급 혁명민주파의 지도자인 손문의 삼민주의역시 진화론의 기초 위에서 세워진 것이다.요컨대 중국 근대철학의 역사는자산계급 세계관의 형성과 파산의 역사라는게 이 책의 요점이다.자작아카데미,오상무 옮김,1만2천원.
  • 해석이란 무엇인가/움베르토 에코 등 지음(화제의 책)

    ◎기호학자·실용주의 철학자 등의 「해석」 논쟁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실용주의 철학자 리처드 로티,탈구조주의자 조나단 칼러 등이 한데 모여 벌인 해석에 관한 논쟁을 소개.에코는 『텍스트의 의도가 해석의 무한성을 제한하며 적절한 해석과 지나친 해석의 기준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로티는 에코가 텍스트의 해석과 이용을 구분한 것에 반대,『텍스트를 가지고 독자가 할 수 있는 일은 텍스트를 자신에 맞게 이용하는 것뿐』이라는 견해를 편다.한편 칼러는 에코와 로티 양자의 입장을 모두 문제삼는다.해석의 기준은 작품의 의도가 아니라 문맥 그 자체이며,작품에 대한 분석보다는 텍스트의 메커니즘에 대한 분석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포스트 모던한 사고라는 것은 선사시대의 사고방식과 비슷하다』고 주장하는 에코는 텍스트의 초해석(지나친 해석) 문제에 대해서도 입장을 밝힌다.『단테의 작품에 나타나는 장미와 펠리칸,십자가 등은 단테의 이교도적인 사상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이탈리아 작가 가브리엘 로세티의 해석은 해석자의 의도에 따라 작품을 분해하고 조합한 초해석이라는게 에코의 견해.에코는 타당한 해석이란 텍스트 자체의 의도,곧 텍스트의 내적 일관성을 따라야 한다고 강조한다.열린책들,손유택 옮김,7천500원.
  • 인간속의 악마/장 디디에 뱅상 지음(화제의 책)

    ◎인간과 악마의 관계·삶과 사회에 끼친 영향 증오·복수·질병·공포·광기·전쟁 등 악을 주재하는 힘인 악마.악마는 실제로 존재하는가.존재한다면 인간과 악마는 어떤 관계이며 악마는 인간의 삶과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이것이 바로 프랑스의 생물학자이자 철학자인 뱅상이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다.악마 즉 사탄은 히브리어로 방해자 혹은 대적자를 뜻한다.사탄에 관한 사상은 「이 세상에 악이 존재하는가」를 윤리적으로 해석하는데서 비롯됐다.기독교적 정의에 따르면 악마란 「공중권세 잡은 자」이자 「이 세상 임금」이며 「이 세상 신」이다.중세시대에는 마니교,보고밀파,알비파 등을 사탄숭배의 부류로 여겼으며,15∼18세기에는 흑마술이나 마녀적인 요소들을 그같이 취급했다.사탄숭배 사상이 본격적으로 생겨난 것은 19세기 말에 와서다. 이 책은 진화론을 바탕으로 인간의 두뇌속에서 우리의 행동과 언어를 이끌고 인식능력을 지배하는 악마의 존재를 추적한다.뱅상의 논리의 핵심은 인간은 신의 피조물이 아니라는 것.그는 인간이신의 형상을 본따 만든 완성품으로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됐다는 성서적 해석을 배제,진화론적 시각에서 「선과 악의 생물학」을 전개한다.푸른숲,류복렬 옮김,8천500원.
  • 제철맞은 삼림욕 “자연을 마시자”

    ◎심신의 피로 풀고 정신집중에 탁월한 효과/소나무 등 낙엽송 숲이 제격… 피부노출 중요 철맞은 삼림욕 피로 풀고 정신집중에 효과 “그만“ 자연휴양림의 백미는 삼림욕이다. 삼림욕은 식물에서 발산하는 향기인「피톤치드」의 약리효과로 심신의 피로를 푸는 건강요법. 피톤치드는 나무들이 각종 박테리아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뿜어내는 것으로 사람이 마시거나 피부에 접촉하면 심신이 맑아지고 심리적 안정을 가져온다.삼림욕은 잎이 가늘고 긴 침엽수에 속하는 소나무,전나무,잣나무,측백나무,삼나무,가문비나무,낙엽송 등이 우거진 숲이 이상적이다. 삼림욕을 하기 좋은 계절은 녹음이 우거지기 시작하는 5월부터 10월까지며 시간대별로는 새벽 6시부터 정오까지가 좋다. 피톤치드 발생량이 오후보다는 오전이 많기 때문이다. 옷차림은 땀흡수가 잘되고 공기유통이 원활한 반바지,반팔을 착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다.챙이 있는 모자도 가져가면 좋다.산꼭대기나 산아래보다 숲이 우거진 산중턱이 효과가 높다. 자신의 체력에 맞게 등산이나 산책로를정하고 무리하지 않도록 해야한다.아무리 건강에 좋다는 것도 지나치면 부작용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한편 숲속에는 피톤치드와 함께 50종이상의 나무 향기가 난다. 이 향기는 사람에게 정신집중력을 가져다 준다.플라톤이나 칸트같은 철학자가 숲속길을 산책하면서 천재적 사고력을 발휘했고 루소가 숲속의 오두막에서 고전을 남긴 것이 이를 말해준다.
  • 서양 중세철학의 백미 아퀴나스 명저/신학대전 번역본 본격 출간

    ◎정의채 신부 14년만에 30권중 4권째 내놔/신의 존재와 본질·인간의 덕목 등 두루 다뤄 서양의 중세사상을 완성한 인물로 꼽히는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년)의 「신학대전」.전30권을 목표로 번역에 착수한 이 방대한 저술이 4권째 간행되었다.그의 이름과 「신학대전」은 우리 종교계와 학계에도 널리 알려졌지만 내용을 대한 사람들은 흔치 않다.원전이 라틴어라는 언어문제와 독특한 내용 때문에 쉽사리 소개되지 못했던 것이다. 이 저술의 번역은 원로 철학자이자 가톨릭의 사제인 정의채 신부(72)손에 이루어졌다.가톨릭대 총장을 역임하고 현재 서강대 석좌교수로 봉직중인 그가 「신학대전」 번역에 손을 댄 것은 지난 1983년.두 해 뒤인 1985년 9월 제1권을 내놓고 나서 이번에 제4권을 출간하기까지 꼬박 12년이 걸렸다.제5권은 현재 담당 출판사인 바오로딸이 인쇄에 들어갔다.그리고 제6권은 우리말로 절반쯤 옮겨놓았다. 「신학대전」은 토마스 아퀴나스가 1272부터 2년에 걸쳐쓴 대표적 저술로 원전은 3부로 되어있다.제1부에서는 신의 존재와본질·창조·천사·인간을 다루었다.제2부는 1,2편으로 나누어 인간의 목적과 행위·죄와 법을 골자로 한 도덕의 근본문제와 더불어 신앙과 사랑·정의와 용기·절제 따위의 덕에 관한 문제를 말했다.제3부는 그리스도론을 비롯한 신학문제를 들추어 냈다. 그러니까 신학 뿐이 아니라 인간의 근원과 목적을 밝혀주면서 인간의 실재를 다룬 「신학대전」은 고전중의 고전이라 할 수 있다.이 저술에 담긴 사상은 오늘날 유럽문화의 원천이 되었거니와 인류의 지적 유산으로 평가받는다.더구나 「신학대전」속에는 당시 유럽과 접촉한 그리스­로마와 아랍사상까지도 융화되었다.그의 사상에 세계성을 부여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 있을 것이다. 이번에 나온 번역본 제4권은 원전 제2부 1편에 해당한다.믿음을 비롯,희망·사랑·지혜와 정의의 덕,불의 등 8항목이 들어있다.각 항목의 테마에 반론과 본문을 제시하고,반론에 응답을 주는 형식으로 꾸몄다.믿음을 다룬 항목 한 절에서는 「홀로 또는 오직이라는 배타사가 하느님안에서 적합한가」라는 질문을 던졌다.그러나대답은 아니라는 것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니라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아리스토텔레스의 궤변론에 따르면 홀로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 같이 있지 않는 사람이다.그런데 하느님은 천사들과 거룩한 영혼들과 함께 하는 터라,홀로라 할 수 없다」.이 대목에서 보는 것처럼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되풀이만 한 것은 아니다.그리스도교 철학을 독창적으로 발전시킨 흔적이 「신학대전」곳곳에 나타났다.「신학대전」번역과 완간을 필생의 과제로 삼은 정의채신부는 『서구사상이 여러 손을 거쳐 전수되어서는 학문을 제대로 연구할 수 없다』고 말했다.그래서 원전에 충실하면서 이번 제4권은 라틴어와 우리말 대역본으로 내놓았다.중세철학연구로 유명한 로마 우르바노대와 그레고리안대 대학원에서 철학을 연구한 그는 우르바노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 피아니스트 백건우(이세기의 인물탐구:133)

    ◎끝없이 「대곡」에 도전하는 “건반의 거장”/미·불 등서 더 명성… 라벨·리스트 해석에 권위/고전적 기교·낭만적 선율로 청중 매료시켜 그는 음악의 화가,음악의 철학자, 음악의 시인이다.한편의 시를 쓰기 위해 무수한 어휘의 바구니속에서 하나의 낱말을 골라내고 그 낱말이 다음의 낱말에 연결되어 어떤 이미지를 형성할것인가를 무한히 추구해 나간다.그리고 높고 낮고 험한 계곡과 계류를 지나 정상에 올랐을 때의 정복감과 승리감,완성과 사색을 동시에 안겨준다.그의 「메피스토 왈츠」는 마치 여러 대의 피아노가 협주하는듯한 역동성을 분출시킨다.또 「발렌슈타트 호반」은 금물결이 튕겨나오고 나뭇잎새에 맺힌 이슬방울이 수면에 아롱지는 섬세함의 극치다.고전적인 기교와 낭만적인 선율이 조화된 그의 연주는 때로는 넘치는 폭발력으로,때로는 심장을 후비는 미세한 서정성을 만들어냈고 잘게 부서지는 투명한 화음과 광풍같은 질주로 치닫다가 자지러질듯 소멸된다. 그는 방대한 레퍼토리를 넘나들며 난곡 대곡에 끝없이 도전한 마에스트로다.일찍이 라벨과 리스트 해석의 권위자로 떠올랐고 독일의 슈트겐슈미트는 『백건우보다 「밤의 가스파르」를 더 훌륭하게 연주한 사람은 없을것』이라고 단언한다.프로코피에프 무소르크스키 라흐마니노프에 이어 지난 92년 프랑스 단테사가 출반한 스크리야빈연주는 권위있는 디아파종 금상에 선정되었고 「놀라운 기량과 독특한 점층법으로 스크리야빈의 색소와 섬세함을 제압하고야 말았다」는 평을 받았다.프랑스의 음악평론가 알랭 코샤르는 「스크리야빈의 해석에 있어 호로비츠,리히터에 대항할 확실한 경쟁자가 나타났다」고 격찬,리스트의 「헝가리광시곡」에 대해서도 「천재적 해석의 결정판」으로 못밖는다. ○배재중 졸업후 단신 도미 지난해 가을 명동성당에서 국내초연한 「아기 예수를 바라보는 20개의 시선」은 그의 수많은 연주중에서도 단연 명연주의 백미다.올리비에 메시앙의 이 피아노대곡은 연주시간 2시간 30분 길이에다 기교적으로도 대단한 난곡이어서 이를 완주한 피아니스트는 손꼽을 정도다. 이곡을 들은 사람들은 무엇을 만날지 알수없는 소리의 힘에 이끌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아기예수의 이미지가 다이아몬드의 다면체처럼 반짝거리는 신비로운 상념을 체험할수 있었다. 성당안은 음이 뿜어내는 눈부신 광휘로 가득찼고 별들이 일으키는 우주의 천둥소리에 청중은 전율했다.그는 화음의 각음을 연속적으로 연주하는 아르페지오의 연쇄와 폴리포니(다성음악)로 장대한 음악의 성전을 구축해 낸것이다.「변화무쌍한 리듬,찬란한 화성,소용돌이치는 음의 진행」속에서 소리는 빛의 다발이 되어 객석을 온통 얼어붙어버렸고 연주가 끝나자 청중은 한동안 침묵,문득 깨어나 전원 기립과 긴 박수로 열광했다.메시앙이 「나는 음악을 듣고 작곡할때 움직이는 모든 색채를 본다」고 했듯이 그는 다채로운 음의 변화를 작가자신이 되어 되살려낸 것이다.청중은 더이상 바랄것이 없었다. 그는 서울에서 태어나 어릴때부터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칠수있는 분위기에서 자라났다.장충국민학교 3학년때 벌써 김생려씨가 지휘하는 서울시향과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주제를 위한 랩소디」협연으로 「천재성과탐구성」의 기미를 보이더니 배재중 졸업후 혼자서 도미,맨손으로 세계음악의 중심에 뛰어들어 고독한 방황끝에 어떤 음악을 어떻게 연주할 것인가를 터득하여 「건반위의 순례자」가 되었다. 일년내내 꽉찬 스케줄속에서 연주여행으로 끝없이 움직이는 가운데도 그는 음악을 말할때 두눈을 반짝인다.지금도 순수무결한 소년같은 모습이지만 연습에 들어가면 숲을 조감하는 매처럼 날카로운 안광을 번뜩이며 건반을 낚아채고 찍어낸다.그리고 건반 깊숙이 숨어있는 미지의 보석들을 얼마든지 캐낸다.앉은 자세 하나만으로도 피아노 장악력이 느껴질만큼 그의 모든 분위기는 이미 음악이다. ○여우 윤정희와 결혼 또 엄격주의자로서 보수적인 편이지만 지휘자나 오케스트라와의 곡해석에서 의견이 다를때는 상대방의 무한한 가능성에 요구하기보다 제한된 능력을 빠르게 파악하고 적응해나간다. 지난해 차이코프스키 볼쇼이교향악단과 BMG(RCA레드실)가 제작하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완주녹음에 들어갔을때 그는 명상적인 순간을 길게 가져간데 비해 페도세예프는 열혈적인 슬라브의 민족성을 몰아붙이듯 빠르고 강한 템포로 오케스트라를 지휘,그러나 페도세예프는 「라흐마니노프의 선율이 가진 난해한 깊이를 어려움없이 끌어내는 백건우」를 이해하여 두 사람은 마법에 걸린듯 호흡과 개성을 맞춘 뒷얘기를 남기고 있다. 폭넓은 통찰력과 감각적 기교를 겸비한 그는 곡이 갖고있는 고유한 색채를 가장 자연스럽게 전달하는 「피아노의 시인」「피아노의 건축가」로서 그의 음악은 맑게 정제된 영롱성으로 화창감을 성취하는 것이 특징이다.그의 연주에 감동받은 브리짓드 마셍은 「르마뗑」지에다 「백건우의 리스트연주는 한마디로 신비로운 여행이며 청중들을 작품의 심장부로 끌어들여 원초적인 맥박의 경험과 그 깨달음을 전해준다」고 했다.그와 절친한 피가로지의 피에르 페티도 「만약 리스트가 현재 살아있다면 틀림없이 백건우와 같이 빈틈없는 테크닉과 순수하고 경이로운 음악적 해석으로 연주했을 것」이라고 평한다.이런 모든 증명처럼 그의 음악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먼저 「시적 심상」을 떠올리게 하는 매력이 76년 파리에서 결혼한 영화배우 윤정희와의 사이엔 바이올린을 공부하는 딸 진희양(20)이 있다.음악외엔 그림과 영화를 좋아하고 사진실력은 수준급,무대예술에 관심이 많아 그방면의 책과 대화를 즐긴다. ○권위의 디아파종상 수상 이제 그는 세계적으로 일급연주자만을 엄선하는 RCA의 전속으로 미국과 러시아 프랑스 등에서 그의 음악을 집중적으로 녹음하고 있다.이른바 세계적 음악가로서 입지를 굳힌 셈이다.또 수많은 대곡을 정복하고 다음 대곡의 정상에 도전한다는 점에서 그는 에베레스트를 탐험하는 산악인에도 비유된다.그러나 「피아노 비루투오소」「그레이트 카리스마」로 불리는 시기이지만 어떤 찬사에도 쉽게 현혹되지 않는다.음악에서의 완성이라든가 원숙은 있을수 없다는 주의다.그래서 연주할 때마다 언제나 새로 시작하는 자세,건실한 학구적 태도를 고집스럽게 지킨다. 무궁무진한 음악의 광활한 세계에 파고들어 다음은 어떤 신세계를 펼쳐낼 것인가.그리고 새롭게 캐낸 수많은 음과 리듬을 내부에 양성시켜 어느날 일진광풍을일으킨다.누군가 「1세기에 몇명 나오는 예술가의 한사람」이라고 한 말은 「건반위의 명상자」인 마에스트를 두고 너무나 적중된,당연한 찬사다. □연보 ▲1946년 서울 출생 ▲61년이후 뉴욕예술고와 줄리어드음악학교 동시입학,로지나 레빈 일로나 카보쉬 빌헤름 켐프사사 ▲65년 뉴욕 카네기홀 데뷔 연주 ▲69년 미레벤트리트 콩쿠르 특별상 ▲70년 이부조니콩쿠르 금메달 ▲71년 미 나옴버그피아노콩쿠르 대상 ▲72년 뉴욕 링컨센터연주 ▲74년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모리스 라벨 1875­1937」제전 피아노전곡 탄주자 초청 ▲75년라벨탄생 100주년 기념음악제 연주,광복 30주년기념 음악제 귀국연주 ▲82년 리스트연속연주(파리) ▲84년 라벨­스크리야빈­무솔그스키의 작품 전곡 4차례연주(파리) ▲86년 리스트 100주년기념 음악제 독주자초청연주 ▲87년 런던 프롬나드 페스티벌 100주년 기념공연 라스트연주 ▲88년 파리 단테사 전속계약 ▲89년 리스트콩쿠르 심사위원, 영국 버진사에서 리스트 「헝가리 광시곡」 등 10매의 음반 출반 ▲91년 KBS홀 개관기념 연주 ▲92년 디아파종상 금상 및 대상 ▲93년 누벨아카데미 디스크상, 피가로지 「베스트 레코드」선정, 그리그 탄생 150주년기념연주,라흐마니노프 탄생 120주년 및 서거 50주년기념완주(3일연속),서울독주회 ▲96년 메이저사인 BMG와 4년간 독점계약,올리비에 메시앙의 「아기예수를 바라보는 20개의 시선」(명동성당서 3일간연주) 등 연 60회 연주 ▲97년 라로크 단테룸에서 프로코피에프연주(유럽전역에 실황중계) 〈현재〉 프랑스 디나르 에머럴드 해변축제 음악감독 런던필 런던필하모니 BBC교향악단 베를린필 프랑스국향 스위스로망드관현악단 등 셰계적 교향악단 수백여회 협연
  • 북경대 진고응 교수의 「노장신론」/도서출판 소나무간

    ◎“중 철학사상 중심은 노장의 도가”/최초의 철학서 「노자」로 개념·범주·체계 완성/「독존유술」 기존 「유가」의 철학사 서술을 비판 『유학을 중국 철학의 중심으로 보는 것은 한무제이후 오직 유가학설만을 존중하는 이른바 독존유술현상에서 비롯된 것으로,이같은 입장은 역사적·학파적인 편견에 불과하다』 중국 철학사상의 중심은 유가가 아니라 도가라는 주장이 담긴 색다른 철학서가 국내에 번역·소개됐다.노장철학의 세계적 권위자인 북경대학의 진고응 교수가 쓴 「노장신론」(최진석 옮김,도서출판 소나무).지은이는 이 책에서 무엇보다 형이상학적 지식론이나 방법론 등을 무시하고 철학적 의미를 축소시킨 기존의 유학중심의 철학사 서술을 비판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중국의 「철학적 혁명」은 노자에서 시작됐다는게 지은이의 견해.중국철학은 노자에 의해 비로소 개념과 범주 및 체계가 세워졌다는 것이다.문헌자료에 따르면 노자는 중국 최초의 철학자이며,노자 자신이 편찬한 「노자」는 완정된 이론체계를 갖춘 중국 최초의 철학서다.「학문이 개인 차원으로 내려온 것」 역시 노자 당시에 이미 유행하던 일로,「개인의 저술」로서도 노자가 공자보다 빠르다. 이 책은 노학이 공학보다 앞선다는 사실을 두 사람의 사상을 구체적으로 비교해 살핀다. 독일 철학자 헤겔은 공자를 도덕철학자로,노자를 사변철학자로 규정했다.물론 강단철학의 관점에서 보면 두 사람의 사상은 성격이 너무 달라 단순비교하기는 쉽지 않다. 노자와 공자는 철학의 주요 영역들,이를테면 형이상학이나 인식론 혹은 사유방법 등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노자는 상당히 완벽한 형이상학체계를 세웠지만 공자는 우주론과 본체론 방면에 있어서는 공백이었다.또 노자는 「정관」이나 「현람」 등의 인식방법을 창도했지만,인식론 방면에 있어서 공자는 빈곤하다. 중국철학은 장자에 이르러 한층 학적 정밀함과 깊이를 더하게 됐다.이 책은 「장자」 내편의 해설을 통해 장자의 「경지의 철학」에 접근한다.특히 어느 것에도 구속됨이 없는 마음을 그린 「소요유」,만물의 평등과 자아중심의 타파를 역설한 「제물론」,정신적 생명력의 중요성을 강조한 「양생주」 등은 수양의 경지와 방법적 차서를 보여주는 것으로 주목된다.지은이는 『노장의 철학사상은 중국문화의 심층구조에 삼투되어 있을뿐 아니라 중국철학의 영혼을 이루는 존재』라고 말한다.
  • 도서출판 장원간 단편집 「사랑의 죄악」

    ◎「성애문학의 거장」 사드의 문학세계/「팍스랑즈­혹은 야망의 죄」·「플로르빌과 꾸르발­혹은 숙명」 등 5편 담아/불 혁명 전야 부패·혼란의 시대상 배경 새디즘이란 용어를 낳은 성애문학의 거장 사드(1740∼1814).프랑스 프로방스의 명문 출신으로 「사드 후작」이라 불렸던 그는 「7년전쟁」에 종군했으며,프랑스 대혁명때는 혁명세력에 가담했다.이런 이력은 그에게 줄곧 「위험인물」이라는 낙인을 안겨줬으며 생의 끝순간까지 감옥생활과 도피생활을 반복,정신병원에서 최후를 맞게 했다.「근대의 저주받은 작가」 사드의 진면목을 한눈에 읽게 하는 사드 대표단편집 「사랑의 죄악」(이형식 옮김,장원)이 최근 출간됐다. 수록작품은 「팍스랑즈­혹은 야망의 죄」「플로르빌과 꾸르발­혹은 숙명」「도르쥬빌­혹은 미덕 때문에 죄를 짓게 된 사나이」「상쎄르 백작부인­혹은 딸의 연적이 된 어머니」「으제니 드 프랑발」등 5편.사드가 바스티유 감옥에 유폐돼 있던 시절에 주로 씌여진 것으로,간특하고 위선적인 사회에 반항하는 다양한 인물군상이등장한다.혁명전야의 부패와 혼란이 소용돌이 치던 루이왕조 말기가 시대배경이다. 이 단편집에는 사드의 문학세계를 형성하는 핵심주제들이 망라돼 있다.그의 작품의 주된 모티프는 「운명의 잔혹한 작위」와 「사회통념에 대한 반항」이다.가엾은 사람들에 대한 연민때문에 친누이와 부부관계를 맺게 되는 도르쥬빌의 어이없는 운명이나,비할데 없이 아름답고 미덕이 넘치는 플로르빌이 근친상간·친자모살해에 이어 결국 자살로 일생을 마치는 이야기 등은 사드의 문학적 화두가 얼마나 강렬한 것인가를 짐작케 한다.또 『인간의 평온이란 오직 무덤속 암흑에서나 찾을수 있는 것.지상에 살아있는한,이웃들의 사악함과 자기정열의 무절제 그리고 운명의 불가피성은 그 평온을 영원히 거부한다』(「플로르빌과 꾸르발」)는 대목에서는 운명의 실체를 직시하는 작가의 비극적 세계인식을 그대로 느낄수 있다.도덕과 규율,종교,이데올로기 등 사회가 인간에게 덧씌운 모든 관습과 법칙은 「인간」과 「숙명」이라는 실존적 문제 앞에서 한갓 허울일 뿐.사드는 선악의가치판단을 철저히 부정함으로써 역설적이게도 가장 비극적이고 숭고한 소설미학을 이룩한 셈이다. 사드의 소설은 미풍양속을 해치고 범죄와 반종교적인 사상을 고취한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금서로 취급돼왔다.그러나 금세기초부터 사드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내려지기 시작했다.사드야말로 계몽주의에 종언을 고한 철학자이며 라마르틴,발자크,플로베르,바타이유 등 낭만주의 이후 초현실주의 문학에 이르기까지 프랑스 문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 소설가였다는 것.이번에 나온 사드 단편집은 지나치게 시대를 앞서간 탓에 부당하게 왜곡돼온 한 작가의 진실한 내면과 문학성을 엿보게 하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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