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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을 다루는 기술/하진규 건설기술연구원장(굄돌)

    큰 강을 끼고 발달한 도시나 국가는 예외없이 물을 다루는 기술이 발달하였으며 풍부한 물을 바탕으로 문명의 꽃을 피웠다.그리스 철학자 탈레스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물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다.그러나 물은 때로 인간에게 큰 화를 입히기도 한다.대표적인 예가 홍수이다.최근 10년간 풍수해로 인한 재산피해가 연간 500억원이며 인명피해도 250여명에 이른다고 한다. 홍수에 대비하자면 제방의 축조나 다목적댐의 건설도 중요하지만 산업시설을 세우고 부지를 조성할 때 홍수에 대비한 대책도 반드시 수립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산업화하기 전에는 산의 나무와 풀,그리고 논과 밭이 빗물을 흡수하는 저수지 구실을 하였다.그러나 개발과 함께 논밭이 공장이나 아파트단지로 변하고 도시가 시멘트 콘크리트로 포장되면서 빗물이 땅 속으로 스며들지 못하게 되었다.심지어 하천제방까지도 포장돼 있어 물이 땅 속으로 스며들 여지가 없다.결국 포장된 도로 위로 물이 흐르고 그 물이 그대로 강으로 흘러들어가 홍수량이 가중되는 것이다.또한 물이 땅 속으로 스며들지 못해 지하수가 부족하게 되고 이에 따라 지반이 침하하거나 물의 흐름이 막혀 토목구조물과 도로의 붕괴사고를 일으키는 예도 있다. 따라서 도시의 공단이나 아파트단지 같은 지역에 떨어지는 빗물은 그 지역에서 바로 처리하여 하류의 홍수 부하량을 줄여주는 것이 필요하다.도시계획이나 공업입지계획을 수립할 때는 홍수피해를 받지 않도록 단지의 부지 높이를 올리고 투수성 재료로 단지를 포장한다든가 우수관거 등과 같은 지하 침수시설을 설치하고 학교운동장·공원·지하주차장 등에 빗물을 일시 저장하게 하는 등 사전에 종합적인 홍수대책을 세워야 하겠다.
  • 계간 현대사상 ‘1998 지식인 리포트’

    ◎‘위기의 실체’ 냉철한 진단/담론의 ‘사악한 의도’ 들춰내 비판/지식인 문화 현실 점검·혁신 처방 국제통화기금(IMF)시대를 맞아 사회 전반에 걸쳐 전대미문의 구조조정이 이뤄지고 있는 요즘,우리 사회에는 이른바 ‘위기담론’이 넘쳐나고 있다.너나없이 ‘위기’를 절감하고 자기의 위기만이 유일하고 절대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위기담론의 허위성이 극에 달하면,모든 위기들을 하나의 위기로 과장하고 은폐하려는 파시스트적인 편집증이 나타나기 마련이다.이같은 역작용을 막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위기의 실체를 여러 갈래에서 냉철하게 진단하는 일이 필요하다. 위기담론이 춤을 추는 이 시대,진짜 위기는 어디에 있으며 그 구체적 원인과 극복방안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계간 ‘현대사상’이 특별증간호로 낸 ‘1998 지식인 리포트’(민음사)는 한국 사회의 지식인들이 이 위기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그 대응 양상은 어떠한가를 생생하게 보여 주고 있어 관심을 모은다. 이 책은 주로 인문학과 그 주변 문제에 대한 지식인들의 고민을 통해 우리 사회의 위기담론을 조명한다.그럼으로써 우리 사회에 만연돼 있는 “자신의 기득권을 천세만세 이어가기” 위해 “모든 위기를 하나의 위기로 덮어버리”려는 “사악한 의도”를 밝혀내겠다는 것이 이 책의 의도다. 잡지 형식을 띤 이 책은 세 부분으로 이뤄졌다.1부는 ‘한국 지식인,무엇을 생각하는가’를 주제로 한 권두좌담으로 꾸며졌고 2부는 ‘대학사회의 내면 풍경과 혁신을 위한 진단’,3부는 ‘시대의 변화와 지식인의 성찰’이라는 제목 아래 아카데미즘 내부의 자기성찰 목소리를 담았다. 한국 지식인 문화의 현주소를 점검하고 진로를 전망하기 위해 마련된 좌담에는 저널리스트 고종석씨,소장 철학자 김영민씨,소설가 복거일씨가 참여했다.이들은 주로 기성체제 바깥에서 활동하는 독립적 지식인이라는 점에서 ‘아웃사이더 지식인’으로 불린다. 이들은 최근 한국 지식인 사회의 위기 특히 인문학의 위기는 안일한 교수사회와 정실주의,자의식 없는 글쓰기 태도,사상과 지식의 식민화 등에 그 원인이 있다고 강조한다.인문학의 위기론은 정보사회로 대변되는 지식의 변모과정이 지식인의 존재방식까지 바꿔놓을 수 있다는 데서 출발한다. 등가성과 환전성이 뛰어난 정보는 자본주의의 논리와 어울린다.그러나 정보는 “삶의 지혜를 찾고,인간의 무늬 즉 인문(人文)에 대한 이론적 배경을 구축하는 작업”(김영민)인 인문학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이런 점에서 볼 때 정보사회의 기능과 성격은 인문학의 자기 성찰적 지혜와 상호보완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지식인사회와 관련해 또 한가지 주목할 것은 ‘지식인의 아카데미화’현상이다.교육산업 특히 대학이 기업처럼 되면서 많은 지식인들이 대학이라는 제도에 흡수됐다.대학에 속해 있지 않으면 공적 토론에 참여할 길이없을 정도다.지식인의 발언공간이 아카데미 내부로 축소돼 독립적인 지식인문화가 형성되기 어렵게 된 것이다.이 책에서는 이런 대학사회의 치부를 대학 내부의 아카데미션들이 직접 나서 비판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소장 사회학자인 김찬호씨(연세대 강사)는 ‘대학,지성,시민적 공공성’이란 글을 통해대학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조망한다.그는 대학이 “합리와와 인간화,그 촉매로서의 시민적 공공성을 구축하는 것”을 교육적 소임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또 연세대 김호기 교수(사회학)는 ‘IMF시대의 사회학’이란 논문에서 “지난 40년간 우리 사회를 지배해온 패러다임이 생산지상주의였다면,사회학은 누구를,무엇을 위하여 그 패러다임이 존재해 왔는가를 숙고해야 한다”면서 “지금이야말로 우리 현실에서 실현 가능하고 지속 가능한 새로운 대안적인 패러다임을 찾아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오늘날 지식인 문화는 ‘값싼 지식의 시대’라는 말이 입에 오르내릴 정도로 뚜렷한 퇴조의 기미를 보이고 있다.일부에서는 IMF사태와 관련,“지식인들이 경고음을 발하지 않았다”는 식으로 지식인의 사회적 책임을 거론하기도 한다.이 책은 이같은 총체적 위기의 시대를 맞은 우리 지식사회의 혁신을 위한 종합처방전이라고 할 만하다.
  • ‘서울대 없애기’(朴康文 코너)

    ‘서울대 폐교론’이 이따금 나온다.서울대학교가 있어서 우리나라 교육이 뒤틀리고 있다고 진단하고 이 학교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한다.단순하고도 명쾌한 처방이다. 서울대학교를 없애기만 하면 고등학교들이 입시학원처럼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가.이 학교가 문닫으면,망국병으로까지 표현되는 과외학습 열병이 과연 저절로 숙어질까.서울대학교가 사라지면 또다른 ‘서울대학교’가 나타나지는 않을 것인가. 며칠전에 한 논자는 다시 서울대 없애기를 주장하면서 서울대 출신들이 과거 독재정권에 빌붙어서 나라를 망쳤다는 죄목을 덧붙였다. 물론,무력으로 정권을 잡은 군인들이 허약한 정통성을 ‘서울대 간판’ 인재들의 등용으로 테메우려 했으며,학문을 버리고 권력에 끌리어 간 서울대 출신 학자들이 있었다.비판받아 마땅하지만 이것을 학교 없앨 이유에 비끌어매는 것은 무리다. 그러면,육군사관학교 출신들이 헌정 질서를 깨고 민주주의를 짓이겼으니 육사도 폐교해야 하는가.정변의 지도자를 배출한 지역은 폐도(廢道)나 폐시(廢市)라도 할 것인가.하이데거가 나치를 찬양했다고 해서 이 철학자가 재직하던 대학을 없애자는 논의가 전후에 있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도쿄제국대학 출신들이 군국주의 일본 정부에서 많이 일했다고 해서 이 학교를 문닫게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서울대에 관해서라면 이보다는 다른 방향에서 이야기되어야 한다. 한국이 경제규모로는 세계에서 여나믄째 되면서도,세계 우수 대학을 꼽을때 국내 제일이라는 서울대는 수백 개 안에 들지 못한다.서울대로서는 참으로 각고분발해야 할 일이다.우수한 학생들을 몰아가다시피하면서 왜 세계적인 대학이 되지 못하는가. 그동안 국가가 서울대 육성을 위해 어느 정도나 노력했는가도 되돌아 보아야 한다. 관악산 응달에 유배된 듯한 이 학교의 강의실 건물들은 방음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충분하게 공사비를 들일 수 없었는지,성실하게 공사비를 집행했는지,거기 가 보면 국내 제일의 국립 대학교에 들인 국가의 정성이 너무도 가벼워 보인다. 서울대가 세계 수준이 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국내에서는 다른 대학들이 ‘도달해야 할’ 또는 ‘추월해야 할’목표가 되어 있다.이 때문에 서울대를 없애야 한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며 오히려 이것이 서울대가 있어야 할 이유라고 해야 할 것이다. 포항공대나 과학기술원처럼 서울대와 겨룰 수 있는 학교가 출현한 것은 다행이며 이 대학들이 어느 면에서는 서울대를 넘어섰다고 자부하는 것은 더 큰 다행이다. 없애야 할 것은 서울대가 아니라 바람직하지 않은 이런저런 ‘서울대 현상’일 것이다.그 현상의 원인을 고치지 않으면 서울대를 암만 없애도 소용없다. 대학원중심대학안 같은 것은 실행에 앞서 학부 없는 대학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적어도 부분적인 실험을 통해 검증해야 큰 시행착오를 막을 수 있다. 쌓기는 어려워도 허물기는 쉽다.서울대 없애기 주장이 “길이 있어서 교통 사고가 나니 길을 없애라”는 식의 성급한 단순논리여서는 곤란하다.
  • 진품 문화재 해외전시(쟁점)

    우리의 진품 문화재들이 6월7일부터 열리는 미국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한국실 개관기념전에 선보이기 위해 22·23일 나들이에 나섰다.한번 훼손되면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문화재의 특성.따라서 관련 학자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그러나 한국문화의 우수성을 홍보하기 위한 좋은 기회라는 것이 주최측인 국립박물관의 입장.任孝宰 서울대 교수와 鄭良謨 국립중앙박물관장의 의견을 들어본다. ◎찬/鄭良謀 국립중앙박물관장/문화유산은 나라의 자긍심 선진국들 상호 교류전 빈번/해외 문화투자 뒷날 빛 발휘 문화우수성 적극 홍보해야 문화재는 문화의 근간으로 한 나라의 정통성이며 자긍심이다.그 나라의 정신이 살아 숨쉬며 그 나라의 개성과 특성이 규정 지어진다.따라서 우수한 문화유산일수록 그 나라를 지탱해 나가는 위대한 힘의 원천이며 다른 나라사람들에게 새롭고 특별한 자극과 감동을 줄 수가 있다. 선진국들은 벌써 몇백년전부터 수많은 박물관을 설립하고 자국의 문화재는 물론이고 방대한 양의 외국 문화재를 수집·전시하고교육·홍보해왔다.자국문화재를 다른 나라 박물관으로 옮겨 빈번한 전시회를 갖는 것은 이를 통해자국 발전에 크게 이바지 하고자 함이며,외국 문화재를 자국에 전시하는 것은 자국 문화발전의 계기를 마련하고자 함이다.루블의 모나리자 그림이 일본에서 전시되었고 일본의 백제관음이 프랑스에서 전시된 것은 한 예에 불과하다.선진 각국에서는 매년 수십 회의 문화재 교류전이 열린다. 일본은 19세기말에 미국 샌프란시스코 골든 게이트 파크에 조그마한 일본의 정통정원을 개설하였다.지난 79년 현지에서 느낀 것은 문화투자야말로 먼훗날 큰 빛을 발휘한다는 점이다.그 조그만 일본 정원에 매일 물밀듯 관람객이 몰리고 미국 도처에 일본 정원이 생기고 일본 무사도를 소재로 한 영화가 번창하고 있었다.일본상품 전시를 선전하기 위한 가면극이 인산인해를 이루는가 하면 개인주택에도 일본정원이 등장하고 일식 스시가 최고의 요리로 대접을 받고 있으며 거리에도 일본상가와 훌륭하게 건설된 일본 문화 선전 빌딩이 줄을 잇고 있었다. 미국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은 단연 세계 제일의 박물관이다.우리는 미국측과 벌써 20년 전부터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한국실이 자리잡을 수 있도록 심도있게 협의해 왔으며,양측의 진지한 노력이 결실을 맺어 오는 6월7일 한국실이 개관하게 된다. 미인선발대회에는 정신과 육체가 모두 아름다운 후보가 나와야하며 납인형을 아무리 이상적인 미인으로 만들어 등장시켰다 해도 사람들의 감흥을 불어일으킬 수 없다.문화재를 전시할 때는 박물관내에서도 모든 스탭이 온갖 정성과 재능을 발휘하고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다.하물며 해외전시는 말할 것도 없다.우리 뿐 아니라 상대 나라에서도 우리 못지 않은 정성을 쏟는다.일반인은 상상도 못할 주의와 점검,포장과 운송 방식에 의해 전시회가 이루어진다.이번 전시회는 절대 안전하게 치루어질 것을 확신하며,온 국민들과 더불어 성공적인 민족문화 과시의 자리가 되기를 기원한다. ◎반/任孝宰 서울대 교수/문화재 출토지 전시때 진가 관리·보존높은 철학 가져야/훼손되면 돌이킬 수 없어 장기간 나들이 재고 바람직 대규모의 우리나라중요문화재가 미국으로 나들이를 떠났다.뉴욕 중심가에 있는 유서깊은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오는 6월7일부터 내년 1월까지 한국관 개관기념 전시를 위해서다. 필자는 그 박물관을 여러번 방문 하였고,그때마다 가슴에 커다란 상처를 받고 왔었다.아침부터 저녁까지 세계에서 온방문객들이 들끓고 있었지만,그 훌륭한 중국관이나 일본관을 나온 후 한국관이 어디인지 찾다보면 갈 곳을 잃었다.한국유물이 내쪼ㅈ겨나다시피 복도변에 있는 것을 보고는 서글픔이 더해졌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에 한국관을 새로이 만들어 세계속에 한국문화를 알릴 기회가 만들어졌으니,여간 경하할 일이 아니다.독일의 유명한 철학자 야스퍼스가 일본에서 한국계 목조미륵반가사유상을 보고‘인간이 창조한 최대의 걸작품’이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은 것이 생각난다. 이번 나들이에는 야스퍼스가 그처럼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목조미륵반가사유상과 쌍둥이라 할 수 있는 금동미륵보살반가상(국보83호)과 조선시대 최대의 풍속화가인 단원 김홍도의 작품 등을 포함한 국보 9점등모두 121점이 특별대여 형식으로 나선다.엄청난 대규모다. 그러나 여기서 잠깐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 있다.아무리 중요한 의미가 있는 행사라 할지라도,이들 모두가 한국인의 얼이 새겨진 진품이라는 점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지난 90년 서울서 개최되었던 옛 소련의 시베리아 맘모스전시회도 이번에 못지 않게 의미가 큰 양국의 행사였지만,전시된 유물의 대부분이 복제품이었다. 금년 1월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중국문화대전’에서는 1,200여점의 전시품 중 걸작품으로 소개되었던 것은 모두 복제품으로 무려720여점이 복제품이었다.이번처럼 대규모 진품의 해외전시는 선진국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우리도 당연히 중요문화재는 복제품으로 대신했어야 했다. 문화재는 출토지에서 전시되고 이를 찾아가볼 때,그 높은 가치를 이해할수 있게 마련이다.이런 면에서도 우리문화재의 장기간 해외 나들이는 앞으로 다시 생각하는 게 바람직하다.선진국으로 도약하는 길목에 있는 만큼,문화도이에 걸맞는 위치를 찾아야 할 때다.우리문화를 우리 자신이 가꾸고 관리·보존하는 높은 철학을 가질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정치권력의 한 도구로써 우리 문화재의 운명이 좌지우지되는 우를 범하는 일은 이제 막아야 하겠다.
  • 미술로 본 한국의 에로티시즘/이태호 지음(화제의 책)

    ◎이땅의 성풍속·성문화 변모 추적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 역사 속에 드러난 에로티시즘을 조망한 책.문화적 정체성에 바탕을 둔 한국식 성담론은 찾아보기 힘들다.한국의 성풍속과 성문화의 변모양상을 추적하고 있는 이 책은 그런 점에서 한층 의미가 있다. 미술사학자인 지은이는 선사시대 암각화 등에 묘사된 나신상에서부터 신라 토우와 안압지 출토 목제 남근,성행위가 묘사된 고려 동경을 거쳐 조선후기 풍속화와 춘화에 이르기까지 한국미술사에 나타난 성표현을 폭넓게 살핀다.또한 남근 조형물과 자연물 성기신앙 등 ‘성신앙터의 조형물’,위도 띠뱃놀이의 짚인형과 남사당패 꼭두각시극의 홍동지 등을 예로 들어 공동체 놀이문화와 성을 고찰한다. 우리 전통문화에서 성은 생각보다 매우 개방적이라는 게 이 책의 결론.이땅에서 오랜 세월동안 형성된 성문화와 풍속에는 공동체적인 건강성과 역사발전에 따른 근대적 성의식의 긍정적 면모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농경문화를 중심으로 다산과 풍요를 동일하게 여기면서 형성된성신앙적 조형물이나 민중예술은 우리 민족의 미의식과 심성을 그대로 보여준다.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는 현대사회의 바른 성윤리관을 그리스인들의 성의식에서 찾았다.이 책 역시 우리시대 성윤리의 모범을 우리의 옛 성문화전통에서 찾는다.여성신문사 1만4,000원.
  • ‘그리스 신화의 세계’펴낸 외국어대 유재원 교수

    ◎“신화는 역사… 시간 초월한 진리”/인문학 관점서 神의 상징적 의미 고찰/정신분석학 접근으론 본질 파악 못해 “‘신화란 재미있는 거짓말’이라는 생각은 틀린 것입니다.신화는 허구가 아니라 진실이고 역사예요.그리스도교인들에게 예수가 진정한 하느님이고 숭배의 대상이듯이 고대 그리스인들에게는 올림포스의 신들이그러한 자리를 차지했던 것이지요.우리가 신전이라 부르는 고대 유적들은 단순한 유적이 아니라 신자들이 기도하고 예배드리는 경건한 교회당이었습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언어학과 유재원 교수(49)가 그리스 신들의 상징적 의미를 인문학적 관점에서 쉽게 풀어 쓴 ‘그리스 신화의 세계’(현대문학)를 펴냈다.이 책은 월간 ‘현대문학’에 97년부터 1년여 동안 연재됐던 내용을 단행본으로 엮은 것이다. 그리스 신화란 시인 호메로스가 활동하던 무렵인 기원전 8∼9세기부터 ‘이교세계’가 끝나는 기원후 3∼4세기까지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여러 지방에 널리 퍼져 있던 온갖 불가사의한 설화와 전설을 총칭하는 말.1천년이 넘는 세월속에서 그리스 신화는 변화를 거듭했다.호메로스 시대에는 신화의 모든 내용이 진실이었다.그러나 불과 삼사백년이 지난 플라톤 시대에 이르면 신화는 공화국에서 내쫓아야 하는 존재로 전락한다.그리스도교가 세력을 얻게된 고대 세계 말기에는 신화란 부도덕한 이야기로 가득찬 백해무익한 거짓말로 간주됐다.우리는 과연 어느 시대의 관점에서 그리스 신화를 이해해야 할까. “고대 그리스 문명이 절정에 달했던 기원전 4∼5세기는 서양사상을 이해하는 데 아주 중요한 시대입니다.소피스트와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 등 철학자와 에스퀼로스·에우리피데스·소포클레스 같은 비극작가,헤로도토스·투키디데스 같은 역사가들이 활동하던 시기죠.이 시기에 신화는 굳건한 믿음의 대상이었습니다.그러나 현대인과 고대 그리스문명 사이에는 그리스 문화를 왜곡한 로마시대와 중세가 가로놓여 신화에 대한 이해를 방해하고 있어요.우리가 진정으로 그리스 신화의 세계를 이해하려면 로마와 중세를 뛰어넘어 올림포스 신앙의 본질을 밝혀내야 합니다” 그래야만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이 알고 있던 살아있는 신들의 신화를 되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신화에 관한 우리의 이해수준은 그리 높지 못하다.신화의 본질을 꿰뚫지 못하고 문학적인 원형을 찾거나 정신분석학적으로 접근하는 정도가 고작이다.그러나 신화를 문학작품으로 다루거나 정신분석학의 응용대상으로 보는 한결코 신화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는 게 유교수의 지적이다.신화는 거대한 세계관이요 사상체계이기 때문이다.유교수는 이 책에서 서양문화의 지적 원형으로서의 신화를 요령있게 보여 준다.신화는 탈(脫)역사화 공간이다.그 신화 속에는 시간을 초월한 진리가 숨어 있다.그 진리를 얼마만큼 자기 것으로 만드느냐는 전적으로 독자의 몫이다. 그리스 아테네 대학에서 ‘그리스어의 시제일치 현상에 대하여’란 논문으로 언어학 박사학위를 받은 유교수는 한양대에서 신화학도 강의하고 있다.그는 어쩌면 신화학을 위해 언어학을 전공했는지도 모른다.언어학과 신화학은 쌍태(雙胎)관계인가.“현대 신화학을 창시한 독일의 막스 뮐러는 언어학자였습니다.또 ‘그림 동화집’으로 유명한 그림 형제도 사실은 인도­유럽 비교 역사언어학의 대가였어요”
  • 수하르토 下野의 교훈/具本永 국제팀 차장급(오늘의 눈)

    인도네시아 수하르토 대통령의 하야는 세기의 대사건답게 우리에게도 가르침을 남겼다.수하르토의 하야를 불러온 직접적인 원인을 벌이는 논쟁이 좋은 교재다.반체제세력들은 당연히 수하르토 32년 장기집권과 필연적으로 파생된 부패구조와 경제정책 실패 등을 지목한다. 수하르토에 동정적인 인사들은 당장 반박하고 나선다.대규모 항의시위를 촉발시킨 물가폭등은 국제통화기금(IMF)이 무모하게 요구한 개혁프로그램 때문이라고 진단한다.65년 쿠데타로 집권한 이래 연평균 7%의 경제성장률을 이룩해온 공적을 치켜 세운다. 반체제인사들도 이 대목만은 인정한다.수하르토 체제를 앞장서서 비판해온 회교지도자 아미엔 라이스도 “국가통합과 경제발전이 빛이라면 족벌정치와 부패는 그늘이었다”라고 양비론을 폈다. 이웃인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총리도 수하르토에 동정적이다.“IMF가 경제적 구조조정의 사회적 비용에 대해 무감각했다”며 인도네시아 정부에 기름값과 전기료에 대한 보조금을 줄이도록 강요한 IMF를 비난했다.가난한 상태에서 보조금 삭감은 민중봉기를 유발하게 된다는 진단이다. 얼핏 혼란스럽기 짝이 없는 논란이다.그러나 모든 사회문제는 복잡한 가정보다 건전한 상식에 의거해 판단해 보면 쉽게 명쾌한 해답이 나온다.중세의 영국 철학자 이름을 딴 ‘오컴의 면도날 법칙’의 골자이기도 하다. 인도네시아호(號)를 IMF 늪으로 빠뜨린 수하르토 정권의 책임을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일련의 유혈 소요와 수하르토의 하야 결심이 바로 이를 뒷받침한다. 한국에서도 최근 IMF 위기의 원인에 대한 논쟁이 한창이다.혹자는 불투명한 금융제도와 정경유착 및 재벌의 상호지급보증 등 불합리한 관행과 경쟁력 상실을 주범으로 꼽는다. 다른 한편에서는 미국이 중심이 되어 ‘아시아권 길들이기’에 나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대 정권들의 경제운용 실패 책임은 분명한 것 같다.IMF 위기의 이면에 국제자본의 전략이 숨어 있다 하더라도 개혁과 세계화를 통해 이를 막지 못한 책임마저 면책될 수는 없는 탓이다.오컴의 법칙은 한국의 경제위기 책임논쟁에도 적용해야할 듯 싶다.
  • 너무∼ 너무∼/박명욱 지음(화제의 책)

    ◎비주류 아티스트들의 삶과 예술 평면적인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늘 자기갱신을 통해 새로움을 추구했던 예술가들의 삶과 예술을 조명.세계의 역사를 훑어보면 많은 예술가와 사상가들이 시대와 도덕의 광기 혹은 폭력에 희생당했음을 알 수 있다. 도덕적 편견과 예술적 몰이해 때문에 생애의 대부분을 정신병원에서 보내야했던 카미유 클로델,예술적 천재성으로 인해 역시 말년을 정신병원에서 보내야 했던 잔혹극의 기수 앙토넹 아르토가 그렇다.또 독일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철학자이자 문예이론가인 발터 벤야민의 경우는 어떤가.그는 나치치하에서 탈출,갖은 고초를 겪으며 도보로 프랑스를 횡단해 스페인 국경에 이르렀지만 독일군에게 넘겨버리겠다는 국경수비대원의 농담에 그만 약을 먹고 죽음을 결행했다. 지은이는 이러한 희생자들의 명부에 17명의 ‘비주류’ 아티스트들의 이름을 덧붙인다. 그 중의 한 사람이 이탈리아 출신의 영화감독이자 시인이었던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1922∼1975)이다.불꽃같은 그러나 위험한 삶을 살았던 파졸리니는 우리에게는 좀 생소한 인물이다.그의 유작 ‘살로 혹은 소돔의 120일’이 한때 상영돼 물의를 빚기도 했지만 그의 영화는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된 적이 없다. 하지만 파졸리니의 본령은 어디까지나 시이다.파졸리니는 ‘성당의 나이팅게일’‘장미꽃 모양의 시’‘우리 시대의 신앙’‘그람시의 유해’등 많은 시집을 냈다.지은이는 이러한 예술가들의 사유와 작품을 질료로 자신의 예술관을 토로하기도 한다.그는 파졸리니에게서는 집단적인 악과 고투하는 개인의 도덕적 아름다움을 읽어낸다.이를테면 레몬을 ‘태양의 황금빛 트럼펫’이라고 말한 움베르토 에코가 물상(物象)을 다른 물상에 빗대 명료한 마음의 풍경을 보여주는 그런 식이다.박가서·장 1만원.
  • 남산이 북산을 보고 웃네/동서양 역사인물들 삶과 죽음

    삶과 죽음을 사시(四時)의 운행으로 담담하게 풀이한 동양 철학자,‘죽음보다는 철저한 삶을!’이라며 생을 강조한 서양철학자.어느 것이 옳고 어느것이 그른가.중견수필가인 맹란자씨(58)는 “남산이 북산을 보고 그저 방긋이 웃는 것만 같다”고 말한다. 그가 최근 펴낸 ‘남산이 북산을 보고 웃네’(세훈출판사)는 동서양 역사인물들의 죽음에 얽힌 이야기들을 다룬 인문교양서다. 세네카와 네로,광해군과 부의,사약을 독촉한 소크라테스와 송시열,소강절과 서화담,카미유 클로델과 나혜석,두보와 김삿갓,이상과 카프카,클레오 파트라와 명성황후 민비,우미인과 양귀비,사도세자와 소현세자,공초 오상순과 양관선사…. 이책의 특징은 이처럼 동서고금을 망라해 유사한 인물들을 묶어 그들의 삶과 죽음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그러면 어떻게 죽을 것인가.이 지점에서 지은이는 가슴 한 켠에 고이 간직하고 있는 독일시인 릴케의 시구를 한자락 인용한다.“저마다 자신의 죽음을 죽게 하소서”‘빈배에 가득한 달빛’이란 수필집을 내기도 한 그는 현재 강남에서 ‘동양서숙’이라는 글방을 운영하고 있다.
  • 高大 김화영 교수 ‘문학 상상력의 연구’ 재출간

    ◎시인으로 거듭 난 카뮈/문학 상상력으로 작품세계 고찰/‘이방인’ 분석통해 낭만성 재발견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의 작품세계를 문학 상상력이라는 방법론에 입각해 고찰한 김화영 교수(고려대 불문과)의 저서 ‘문학 상상력의 연구­알베르 카뮈의 문학세계’가 (주)문학동네에서 나왔다.김교수의 박사학위 논문이기도 한 이 책은 지난 82년 문학사상사에서 첫 선을 보인 뒤 한동안 절판됐다가 이번에 새롭게 고쳐 재출간된 것이다.‘카뮈를 시인으로 다시 태어나게 한 문학 상상력 연구의 결정판’이란 평가를 받은 역작이다.이 책은 단순한 개별 작가론에 그치지 않는다.무엇보다 문학 상상력 이론과 미학을 체계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이 이 책의 미덕이다. 카뮈의 작품세계에 접근하는 김교수의 방법론은 색다른 데가 있다.그는 프랑스의 현대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의 상상력 이론을 원용한다.그 이론을 토대로 금세기의 대표적인 고전주의 작가로 인정받는 카뮈에게서 온갖 색깔의 상상력을 지닌 낭만적인 ‘시인(詩人) 카뮈’를 발견해낸다.카뮈는 실존주의 철학의 지주이자 장식없는 문체의 소유자였다.이 책은 그러한 카뮈에게 놀랍도록 아름다운 시적 세계가 숨겨져 있음을 그의 문제작 ‘이방인’에대한 분석을 통해 보여준다. 문학 상상력이란 무엇인가.그것은 프랑스의 가스통 바슐라르와 질베르 뒤랑에 의해 그 이론적 골격이 완성되고 롤랑 바르트와 장 피에르 리샤르가 미슐레·말라르메 등의 작품을 분석함으로써 가능성의 문을 연 문학연구의 한분야다.문학 상상력은 정적이거나 형태적인 상상력이 아니다.그것은 세계라는 질료를 자신의 욕망에 의해 새롭게 만들어내는 물질적이며 역동적인 상상력이다.그 상상력은 작품이라는 총체적 세계를 매개로 작가의 상상력과 독자의 상상력이 마주쳐 울림으로써 깊이를 획득한다.문학 상상력 연구는 흔히 주제비평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상상력의 혼융에 의해 작품의 주제로 향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김교수는 카뮈의 모든 글을 하나의 닫혀진 총체로서 바라보며 그 중심적 주제를 찾아내는 데 몰두한다.그 작업의 중심동력이 되는 것은 이미지다.카뮈의작품을 분석해 추출된 주제는 동적 이미지로 확대된다.이렇게 확장된 이미지들이 나타나는 모든 문단을 모으고 그것을 포갠 뒤 그 이미지의 의미상을 밝혀내는 게 김교수의 문학 상상력 연구론의 핵심이다. 문학평론가 고(故) 김현은 김교수의 카뮈론과 관련,“카뮈의 작품을 지배하고 있는 주제는 태양과 바다이다.태양과 바다를 원초적 질료로 확대해 빛과 물로 확산시킨 뒤,그것을 포함한 모든 문단을 포개본 결과,그 이전의 연구에서는 드러나지 않은 돌의 주제가 나타난 것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그 돌이야말로 카뮈 상상력의 중심이다.요컨대 김교수는 물과 빛과 돌의 이미지를 분석,카뮈의 문학적 상상력을 설명함으로써 카뮈를 소설가의 자리에서 시인으로 다시금 태어나게 하고 있는 것이다.
  • 디지털시대의 글쓰기/脫문자사회의 철학적 규명

    ◎문자의 역사와 미래 에세이로 분석 【金鍾冕 기자】 마샬 맥루한이 ‘활자시대의 종말’을 선언한 지 30여년,컴퓨터와 영상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과연 글쓰기의 미래는 있는가.문자와 글쓰기로 이루어진 ‘구텐베르크적 문화’로부터 컴퓨터와 디지털 코드로 대변되는 이른바 ‘텔레마틱 문화’로의 이행기에 우리의 사고와 가치는 어떻게 변해야 할까.이러한 물음에 대해 우리는 체코 태생의 유태인 철학자 빌렘 플루서의 ‘디지털시대의 글쓰기’란 책으로부터 적잖은 암시를 얻을 수있다.플루서의 주요저서로 꼽히는 ‘디지털시대의 글쓰기’(윤종석 옮김,문예출판사)가 국내에 처음 소개됐다.이 책은 ‘책 없는 세상’에 관해 다루지만 단순히 책의 종말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플루서는 이 책에서 현대적인정보 테크놀로지를 토대로 한 인간의 대화와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새로운 철학을 펼쳐보인다. 올드미디어와 뉴미디어에 관한 철학적 해명작업을 시도해 사회적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플루서는 ‘텔레마틱 유토피아’란 개념을 내놓아 디지털사상가로도 불린다.텔레마틱이란 텔레커뮤니케이션(Telekommunikation)과 정보학(Informatik)을 합친 신조어로,그가 주장하는 텔레마틱 유토피아는 자동조절장치에 의해 작동되는 미래의 정보통신 사회를 가리킨다.플루서는 이 책에서 문자와 글쓰기 행위에 대해 현상학적으로 분석하는 한편 문자의 역사와 미래를 지적이고 화려한 비유가 숨쉬는 한편의 철학에세이로 풀어간다.그에 따르면 문자이전 그림의 시대는 전(前)역사,문자의 시대는 역사,문자이후 디지털코드의 시대는 탈(脫)역사의 시기다.탈역사 혹은 포스트역사란 문자의 지배가 끝나는 상황으로 알파벳적인 선형적·단선적 사고로는 이해가 불가능한 카오스 상태를 말한다.그것은 정치적으로는 텔레마틱과 사이버네틱에 의해조절되는 사회다.요컨대 우리는 이제 점(點)단위로 사고하며 ‘계산적’으로 사고하게 되었다는 것이다.여기서 플루서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커뮤니케이션과 역사의 구조변혁이다.뉴미디어들의 대화적 네트워크화에 대한 그의 이념이나 텔레마틱 사회에 대한 모델 역시 이같은 변혁을겨냥한 것이라고 할수 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대화편 ‘파이드로스’에서 당시로서는 뉴미디어인 문자에 대해 살아있는 정신의 직접적인 교류에 방해가 된다고 비판했다.문자에 대한 플라톤의 이같은 비판에서 우리는 문자를 통한 지식의 대중화와 당시 아테네 민주주의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귀족적 보수주의를 읽어낼 수 있다.이러한 보수적인 문자관과 오늘날 뉴미디어를 거부하고 문자의 형태를 고집하는 휴머니즘적 문화비판론이 같은 맥락이라는 점은 매우 역설적이다.플루서는 뉴미디어를 거부한 채 문자만을 고집하는 이들에 대해 “종이를 파먹는 흰 개미같은 존재들”이라고 비아냥거렸다.하지만 그 역시 문자문화와 글쓰기의 종말에 대한 아쉬움을 떨쳐버리지 못했다.그는 생전에 컴퓨터 대신 낡은 타자기로 글을 썼다.그에게는 여전히 ‘휴머니즘적 에세이스트’란 말이 어울린다.
  • 冊을 읽자/이세기 사빈 논설위원(외언내언)

    책은 기쁘거나 슬플때 우리를 도와주는 마음의 양식이다. 마음이 가파르고 비천하면 책을 멀리한 자에 틀림없다고 단정해도 무방하다. 갑자기 튀어 나오는 말속에 그 사람의 인품과 지성이 숨겨져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세설신어(世說新語)’는 “사흘 독서를 하지 않으면 말씨에 아치(雅致)가 없어진다”고 했다. ‘고문진보(古文眞寶)’도 “가난한 자는 책으로 인해 부자가 되고 부자는 책으로 말미암아 존귀(尊貴)해진다”고 전한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독서의 계절을 따로 정하지 않아도 사계절을 두루 독서하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대형서점에 가보면 성수기와 관련없이 국민의 태반이 책을 읽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막상 한국출판연구소가 실시한 ‘제5회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이 한해에 읽는 책은 평균 9.5권, 한달에 한권도 못미치는 것으로 일본인의 연간 평균 19.2권에 비하면 절반에 불과하다. 그대신 평일 TV시청률은 134분, 독서시간 40분에 비하면 3배 이상이 넘는다. 5년전 독서실태조사때보다 우리사회가 점점 더 정신적으로 피폐화·궁핍화되어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미국의 경우는 1년내내 독서와 관련된 행사가 끊임없이 열리고 있다. 인쇄술이 발명된 것을 기념하는 ‘인쇄주간’에서 ‘시(詩)의 달’과 작가 비평가 철학자 역사가의 날들이 있고 ‘사전(辭典)의 날’이니 ‘출판인의 날’‘도서관원의 날’도 있다. 4월2일인 내일은 덴마크의 동화작가이며 시인인 안데르센(1805∼75)의 생일을 기념하는 ‘국제어린이 도서의 날’이다. 독서가 정신에 미치는 영향은 스포츠가 육체에 미치는 영향보다 크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출판의 위기가 운위되는 지금이야말로 캠페인성 대책이 아닌, 독서문화를 끌어올릴 다양한 방안들이 모색돼야 할 시점이다. 그래서 책속에서 참다운 행복과 마음의 부(富), 정신의 양식을 찾아낼 수 있도록 독서열기를 고취시켜 줘야 한다. 아무리 어렵고 가난해도 책을 읽으면 책속에 ‘기쁨과 슬픔’을 순화시키는 영양소가 깃들여 있기 때문이다. 어느덧 상춘(賞春)시즌이다. 밖에서 어수선하게 지내지 말고 안에서 정신을 풍요롭게 살찌울 때다.
  • 편안하게 풀어쓴 그리스철학사/伊작가 루치아노 데 크레센초 대표작

    ◎특유의 경쾌함­비판정신 결합/‘암호문같은 말잔치’ 탈피 고심 “밀레토스는 기원전 1000년경 크레타 섬과 그리스 본토,그리고 불타버린 트로이아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이 세운 도시다.그리스의 역사가중에서 가장 재미있게 역사를 기록한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당시 밀레토스로 몰려온 침입자들은 여자들을 데리고 오지 않았기 때문에 부모를 죽이고 강탈한 카리아 지방(오늘날의 터키 일부로 에게해 연안)의 여인들을 아내로 삼았다.당시 이곳에 도착한 이들은 마치 ‘사비니의 약탈자’처럼 전형적인 침략자의 모습을 보여준 셈이다” 이탈리아 작가 루치아노 데 크레센초는 ‘만능 지적 엔터테이너’라는 이름에 걸맞게 철학을 대중화하는 데 발군의 솜씨를 보여준다.최근 국내 출간된 그의 대표작 ‘그리스 철학사1·2’(김홍래 옮김,리브로)는 이런 그의 재능이 압축돼 있는 대중 철학서다. 데 크레센초는 이 책에서 특유의 경쾌함과 진지함을 뫼비우스의 띠처럼 독특하게 결합,그리스 철학에 대해 말한다.1권에서는 물의 사나이 탈레스,콩을 먹지 않은 피타고라스,파르메니데스의 조연배우였던 제논,원자에 미친 사나이 데모크리토스,대중연설의 대가인 소피스트 등 소크라테스 이전의 그리스철학자들이 소개된다.또 2권에서는 기회가 생기면 헤타이라 곧 교양과 기예를 갖춘 고급 매춘부들과 사랑을 나눴다는 소크라테스를 비롯,동굴의 현자 플라톤,고물수집가 아리스토텔레스,정원의 현자 에피쿠로스,주랑의 사나이스토아학파,신(新)플라톤주의자 등 아테네와 헬레니즘의 철학자들을 다룬다. 데 크레센초의 비판정신에는 심오한 해학이 깃들여 있다.그는 이 책에서 진지한 수학자요 철학자로 알려진 피타고라스가 당시 명문대학 사제들에게가르침을 받기 위해 추천장과 뇌물의 힘을 빌렸다고 빈정거린다.그런가하면 소크라테스의 가정문제를 언급하면서 세기의 악처로 기록된 크산티페를 변호하기도 한다.또 플라톤의 이상국가와 이데아의 세계,영혼의 불멸성에 대해 말하고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과 논리학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이 자연을 연구했던 것과는 달리,소크라테스 이후 인류의관심은 인간과 도덕의 문제로 옮겨가게 되었다는 것이 지은이의 지적이다.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철학은 마치 과학과 종교의 중간에 있어서 양쪽으로부터 공격을 받는 ‘주인 없는 땅’같은 것이라고 했다.그러나 데크레센초에게 있어서 철학은 더이상 블랙홀에 빠져버린 듯한 느낌을 주는 난해한 학문도 암호문같은 말잔치로 가득한 ‘구름 잡는 이야기’도 아니다.그의 철학책들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는 이내 그가 차린 철학카페에 와서 그가 연출하고 주연한 ‘대중’을 위한 철학쇼의 관객이 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한 예로 고대 그리스 철학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일곱 현인에 대해 그는 이렇게 소개한다.“칠현인(七賢人)은 일곱이 아니라 스물둘이었다.탈레스,피타코스,비아스,솔론 등 네 사람만이 주전이었고 나머지 셋은 무려 열여덟 명의 후보선수들 중에서 그때그때 결정됐다” 이 책은 이탈리아뿐 아니라 ‘철학의 왕국’이라는 독일에서도 장기간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작품이다.
  • 18세기 불 사상가 디드로 ‘라모의 조카’ 번역판 나와

    ◎모든 합리적인 것들을 부정하는 ‘광기’/피카레스 소설 ‘전형’/대혁명 부른 시대정신 붕괴/지식인의 분열­와해 묘사 18세기 프랑스의 대표적인 계몽주의 사상가이자 문학가인 드니 디드로(1713∼1784)의 장편소설 ‘라모의 조카’(세계사)가 고려대 불문과 황현산 교수의 번역으로 나왔다.디드로는 튀르고·볼테르·루소·몽테스키외·케네 등과 함께 프랑스 ‘백과전서파’의 중심을 이루는 인물.특히 이번에 국내에 처음 소개된 ‘라모의 조카’는 풍자문학의 걸작으로 디드로의 사상적 면모뿐 아니라 문학적 정신까지 아우러 살펴볼 수 있는 묵직한 작품이어서 주목된다.디드로의 소설 가운데 현재 우리말로 번역된 것은 ‘운명론자 자크’‘수녀’ 정도가 고작이다. ‘라모의 조카’는 한 건달 예술가의 삶을 그린 피카레스크소설(악한소설) 유형에 속한다.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진지한 철학소설로도 읽힌다.디드로는 바로 이 소설의 틀을 빌려 자신의 사상적 적수들인 반계몽주의자들을 날카롭게 풍자한다.그의 풍자의 화살은 권력에 아부하고 기생하는어용문인들은 물론,당대 사회와 풍속,예술,학문,교육 등 사면팔방에 미친다. 소설은 철학자 디드로가 어느날 장기 두는 사람들을 구경하기 위해 카페에 들렀다가 유명한 음악가 장 필립 라모의 조카인 장 프랑수아 라모를 만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장 프랑수아는 명색이 음악가이지만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지 못한 채 온갖 직업을 전전하며 하루하루 불안정한 삶을 이어가는 무뢰배 신세다.그는 ‘평생에 단 한번 상식을 가졌던 탓’에 이제까지 몰상식한 아첨꾼과 광대놀음을 하는 대가로 편안하게 살고 있던 집에서 쫓겨난다.이에 대한 앙심으로 그는 자신의 옛 보호자들과 그들의 집에 드나드는 식객들을 헐뜯는다.그런 한편 틈틈이 철학자 디드로를 상대로 다양한 지적 토론을 벌인다.억지소리가 뛰어난 통찰로 이어지고,신세 한탄이 예리한 자기반성과 얽혀들며,익살스런 재담에 매혹적인 판토마임이 뒤섞이는 가운데 때마침 오페라 개막을 알리는 저녁 종소리가 울린다.장 프랑수아는 “마지막에 웃는 자가 잘 웃는 자”라는 말을 던지고 떠난다. 디드로는이 소설에서 지식인의 철저한 자기와해와 분열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한 시대가 정신적으로 허물어지는 정황을 생생하게 드러낸다.이 정신의 와해 끝에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난다.이 소설은 헤겔의 ‘정신현상학’과 미셸 푸코의 ‘고전주의 시대의 광기의 역사’에 적잖은 영감을 줬다.헤겔은 ‘정신현상학’에서 정신이 부정에 이르는 어떤 순간,즉 ‘순수사유’와 퇴폐의 순간을 설명하기 위해 이 작품을 이용했다.또 ‘고전주의 시대의 광기의 역사’에서 푸코는 ‘의도적인 미친 짓의 세계’와 ‘광기의 세계’ 사이의 단절을 나타내는 작품으로 ‘라모의 조카’를 소개했다.‘라모’의 광기어린 재치와 디드로의 백과사전적인 박식을 따라가기에 숨찼다고 번역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황교수는 이 작품에 유달리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한다.“무질서를 질서의 체계로 만든 이 소설은 모든 합리적 체계가 의혹의 대상이 된시대,바로 우리 시대의 텍스트이다”
  • 화폐불임/우홍제 논설위원실장(외언내언)

    고대와 중세 서양에서는 이자를 매우 죄악시한 것으로 전해진다.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화폐불임설을 주장하기도 했다.돈은 생명체가 아니므로 자식을 낳을수 없다는 식이다.이자를 가난한 자에 대한 악랄한 수탈수단으로 보고 이를 격렬히 비난했던 것이다.로마교회는 9세기에 아예 이자금지법을 제정,모든 그리스도교인들에게 이를 철저히 지키도록 엄한 칙령을 내렸다.교황 그레고리10세의 경우 고리대금업자에게 집만 빌려줘도 파문한다고 으름장 선언을 했을 정도다. 그렇지만 유태인만은 달랐다고 한다.유태인은 종교적으로 로마교회의 구속을 받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게다가 유태교는 이자받는 것을 허락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시절부터 이미 금융업과 상권은 자연 그들 손에 들어가게 된 것으로 서양경제사는 적고 있다.영국을 비롯,대부분의 중세 기독교국가의 왕실은 내탕금을 포함한 국고관리를 유태인들에게 맡겼다.이자놀이의 죄악은 유태인에게 떠넘기면서 돈을 불려 가는,눈 가리고 아웅식의 자기기만이라고나 할까.어쨌든 유태인은 이재술이 다른 민족보다 뛰어나게 됐고 수전노의 불명예도 붙어 다니게 됐다. 그러나 1090년부터 약 180년 동안이나 계속된 십자군전쟁에 의해 전비운반위험의 대가로 기독교세계에서도 점차 이자를 받는 것이 불가피해졌고 이러한 역사적흐름은 산업혁명후 근대자본주의 성립과 함께 금융업발달을 촉진시킨다.이처럼 다사다난의 과정을 거쳐 오늘날 국제금융동향을 결정하는 가장 긴요한 독립변수로 떠받들여지는 이자이건만 엄격한 코란경전의 율법이 지켜지는 중동에서는 아직 푸대접신세인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외환은행 바레인지점에 따르면 중동계 은행들은 “단기외채를 중장기로 전환할 경우 이자수수를 금하는 코란에 위배된다”며 한국의 외채상환연기협상에 난색을 보인다는 것이다.이들은 그동안 한달이내의 단기자금을 한국측 은행에 빌려주고 받은 돈은 이자가 아니라 상대방 편의를 봐주고 지급받은 수수료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그래서 자국민들의 예금·대출도 이자가 아닌 수익금과 수수료 등으로 취급하는 등 율법 우선의 금융관행이 지켜진다는 것이다.현대의 화폐불임이라고나 할까.
  • 존재와 시간/마르틴 하이데거 지음(화제의 책)

    ◎독 실존철학자 하이데거 대표작 20세기 독일의 실존철학을 대표하는 철학자 하이데거(1889∼1976)가 38세되던 해인 1927년에 펴낸 대표적 저서 ‘존재와 시간’을 완역.독일인들은 흔히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을 두고 다음과 같은 농담을 한다.“‘존재와 시간’이 왜 독일어로 번역되지 않고 있는냐”는 것이다.‘존재와 시간’이 독일어로 쓰여졌지만 독일인들도 이해하기 힘든 어려운 책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이 책은 정신과 외계를 확연하게 구분하는 극단적인 이원론의 데카르트주의와 서구 형이상학의 일면적이고 일방적인 이성중심 논리에 반기를 든다.그리고 가장 현세적이고 일상적이며 평범한 인간이 이 세계 안에서 구체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방식을 철학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하이데거는 전통철학을 철저하게 비판하는 가운데 전혀 다른 개념틀로 자신의 철학을 전개한다.서양철학에서는 ‘우리는 무엇을 알며,우리가 안다는 것을 어떻게 알며,안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인식론이 전통적으로 중심적지위를 차지해 왔다.그러나 이 책에서 하이데거는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존재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화두로 택한다.이 책은 인간 ‘현존재(Dasein)’의 ‘세계­안에­있음’을 체계적으로 분석,존재가 시간적으로 어떻게 인간에게 주어지며 인간이 어떻게 이에 응답하는가를 드러내 보인다.‘존재와 시간’의 관계에 주목하는 하이데거는 존재는 시간속에서 주어지는 것으로 간주한다.그런 만큼 모든 시대와 문화권에 보편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유일한 ‘존재’ 또는 ‘존재의 논리’란 없다는 것이다.역자인 외국어대 이기상 교수는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은 한마디로 삶의 문법을 과학의 논리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말한다.이기상 옮김 까치 2만5천원.
  • 장자철학/유소감 지음(화제의 책)

    ◎평민주의 철학자 장자의 사상 해부 공자가 창건한 유가학파가 맹자에 이르러 크게 빛을 발했다면,노담에서 비롯된 도가학파는 장자에 이르러 큰 발전을 이뤘다.장자는 도가의 거두로 그가 없었다면 도가는 유가와 버금가거나 공존할 수 있는 사상유파로 성장하기 어려웠을 것이다.그러나 유가의 인의예지신이라는 정치윤리가 세상을 지배한 이래 장자의 사상은 속세를 비웃는 일탈자의 변명으로 비난과 찬사를 동시에 받아왔다.그것이 과연 장자의 진정한 모습일까.이 책은 이같은 문제의식 아래 장자의 사상을 재건축한다. 선진철학과 도가철학을 전공한 지은이(싱가포르 국립대 교수)가 먼저 강조하는 것은 장자야말로 위대한 평민주의 철학자라는 점이다.전란이 끊이지 않던 전국시대 중기에 살았던 장자는 사회적 지위가 높지 않았다.기껏해야 옻나무 밭을 돌보는 관리를 지냈을 뿐이다.그러나 그 직위로 말미암아 그는 사회 상층부의 추악한 면을 꿰뚫어 보고,하층민과 조화롭게 어울려 지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다.장자는 참으로 변화무쌍한 얼굴을 가진사상가다.장자는 중국문학의 비조이자 예술철학자였으며 사회적 억압에 대한 항거자이기도 했다. 이 책은 장자철학의 무궁한 세계를 장자철학,장학의 변화,문헌연구 등 3편으로 나눠 살핀다.도와 천,명 등의 기본적인 범주에서부터 안명론·소요론·진지론·제물론 등의 학설 자체가 갖는 내재적 모순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다룬다.이밖에 ‘장자와 사르트르의 자유관’이라는 논문을 부록으로 실었다.이 논문에서 지은이는 동서양이라는 공간과 2천년이라는 시간을 뛰어넘어 두 자유인의 만남을 철학적으로 절묘하게 중매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최진석 옮김 소나무 2만1천원.
  • 자연/랠프 왈도 에머슨 지음(화제의 책)

    ◎19세기 미 사상가 에머슨 에세이 모음집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서 태어난 미국의 사상가 겸 시인 에머슨(1803∼1882)의 에세이 모음집.아내를 잃고 뒤이어 유니테리언파의 목사직을 사임한 후 비탄과 절망 속에서 쓴 초기 대표작 ‘자연’을 비롯,‘미국의 학자’‘초령’‘경험’ 등 4편이 실렸다.이 작품들엔 30대의 에머슨이 고향 콩코드의 자연을 사유의 동반자로 삼아 삶의 길을 모색한 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에머슨에 대한 여러 갈래의 비판적 반향은 그가 미국 지성사의 중심에 놓여있음을 보여준다.윌리엄 제임스는 에머슨을 가장 미국적인 철학이라고 할 수 있는 실용주의의 선구자로 보았다.또 페리 밀러는 에머슨의 초월주의를 ‘대각성 운동’의 주역 조나단 에드워즈의 청교주의 전통의 계승이라는 시각에서 살핌으로써 그를 이른바 ‘뉴잉글랜드 전통’의 적장자로 부각시켰다.한편 F.O.매티슨은 자신이 ‘미국의 르네상스’라고 부른 19세기 중엽 미국문학의 가장 중심적인 인물로 에머슨을 꼽았다.에머슨에 대한 최근의 평가 역시 다양하다.해롤드 블룸 같은 비평가는 에머슨의 비유적 언어와 간결한 문체에 주목,그를 미국적 상상력의 한 전범으로 파악했다.스탠리 카벨 같은 철학자는 칸트에서 니체 그리고 하이데거에 이르는 반체계주의 철학의 계보에 에머슨을 놓음으로써 그의 철학적 사유의 역동성을 강조했다.에머슨은 또한 미국적 개인주의의 이론가로,사회개혁주의자로,다윈의 선구자로,혹은 생태주의적 사유의 주창자로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에머슨주의’라고 불리는 그의 초월주의 사상을 엿볼 수 있다.뿐만 아니라 자유분방함과 절제가 절묘하게 균형을 이루는 그의 독특한 에세이 형식도 음미할 수 있다.신문수 옮김 문학과지성사 5천원.
  • 데리다와 해체주의/휴 J.실버만 엮음(화제의 책)

    ◎새 철학적 패러다임 ‘해체주의’ 고찰 데리다와 해체주의가 현대철학의 영역에 몰고온 새로운 철학적 패러다임을 고찰.데리다는 정통 프랑스인이라기 보다는 ‘아웃사이더’라는 점에서 사르트르나 푸코나 바르트와 같은 동료 프랑스인 석학들과는 얼마간 궤적을 달리한다.우선 데리다는 프랑스령 식민지였던 알제리아에서 태어난 유태계 프랑스인이다.그런 까닭에 그는 말 중심적이고 로고스 중심적이며 질서를 중시하는 헬레니즘적 세계관에 대항해,글과 비이성과 혼돈을 포용하는 헤브라이즘적 세계관을 제시하는 인물로 종종 묘사된다.그것은 마치 ‘오리엔탈리즘 이론’의 주창자인 팔레스타인인 비평가 에드워드 사이드의 경우처럼 그의 앎과 삶이 서로 긴밀하게 맞물려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이는 자신의 삶과 사상이 별개의 것으로 존재하는 현대의 많은 아류학자들과 크게 대비되는 점이다. 데리다는 ‘말’이 ‘글’보다 더 근원적 의미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서구의 오랜 통념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다.그는 ‘말’ 또한 ‘글’처럼 불완전한 2차 언어이며,서구인들이 ‘말’속에 현존해 있다고 믿어온 ‘근원적 의미’ 역시 처음부터 ‘부재’해 왔다고 말한다.그러므로 데리다에 의하면 우리가 ‘말’속에 현존해 있다고 착각하는 것은 ‘근원적 의미’ 그 자체가 아니라,다만 그것의 자취이자 모사일 뿐이라는 것이다.이 책은 바로 이러한 해체주의적 관점에서 데리다가 어떻게 철학사의 중요 인물들을 읽어냈는가를 고찰한다.특히 데리다가 깊은 연관을 맺고 그의 사유를 발전시켜온플라톤·마이스테르 에크하르트·엠마뉴엘 레비나스 등 12명의 철학자들과의 상호 영향관계를 깊이있게 살핀다.데리다의 철학적 사유를 지워버린 문학이론만으로서의 해체주의는 지나치게 피상적인 이해라는 게 이 책의 결론이다.윤호병 옮김 현대미학사 1만3천원.
  • ‘대학의 의무’등 3권/도널드 케네디 외(미래를 보는 세계의눈)

    ◎위기의 미 대학교육 원인은 뭔가/“교수 종신제·학문 비밀주의 폐단/돈벌이 연구 매달려 본분 망각/도덕·인격 중시 전통교육 회귀를” 【뉴욕=이건영 특파원】 대학교육은 앞으로 어떻게 발전해야 하는가.현 시대에 대한 대처능력을 상실,위기를 맞고 있다는 미국 대학교육의 현실을 진단하고 향후 좌표설정에 도움을 주기 위한 서적들이 최근 미국 대학자체 출판사에 의해 잇따라 출간되고 있다.‘대학의 의무’,‘고등교육에 대한 기본적인 절반의 진실들’,‘인문학 개발’등이다. 미국의 대학환경이 갈수록 열악해 지고 있는 데는 교수의 노령화와 연구개발비의 축소가 한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또 새로운 첨단기술의 발달은 대학으로 하여금 학생들과 자금을 유치하는 경쟁을 벌이도록 강요하고 있다.이 책들이 주목 받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도널드 케네디의 저서 ‘대학의 의무’는 미국 대학교육의 미래를 제시한 사실상의 첫번째 책이라고 할 수 있다.80년부터 92년까지 스탠포드대학 총장을 역임한 그는 대학의 책임보다는 대학의 자유를 더많이 주장한다.대학교수들에게 연구실적을 공개하고 잘 가르치며,대학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모든 학문적 도전을 뚫고 나갈 것을 강조하고 있다.그의 주장은 지금까지의 관례를 타파,교수들이 현재 무엇을 연구하고 있느냐를 공개하지 않고서는 대학사회에 대한 일반인들의 신뢰를 회복할 수 없다는 논리로 귀결된다. 그가 총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동안 스탠포드대는 연구개발비 지원에 대한 회계부실이 지적돼 시끄러웠다.결국 이 문제로 총장직을 물러난 그는 이러한 뼈아픈 경험에서 대학교육자들은 그들이 지금 무슨 항목으로 지원 받는지를 모르고 있으며,연구내용을 일반에 공개하는 것을 꺼리고 있다고 비판한다.대학학문의 비밀주의를 단호하게 배격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박사학위 준비자들을 가르치면서 대학의 의무를 실감했다는 저자는 현재의 교수진들은 과거처럼 은퇴연령인 65세가 됐어도 물러나지 않아 젊은사람들이 대학강단에 서는 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안타까워한다.교수의 노령화는 대학으로 하여금 정규직 교수 채용을 줄이고 시간강사수를 늘리게 하며 이는 대학의 책임성 결여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대학의 현안을 둘러싼 갈등을 대학의‘문화전쟁’으로 부르면서 개별분석을 통해 문화전쟁을 극복하기 위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현재의 대학의 명성과 위상이 교수들의 연구실적만 토대로 한 것이라면 학생들이 고품질의 수업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교수들이 ‘생명공학’같은 돈벌이 되는 연구계획만을 맡을 때 대학당국은 이를 어느 정도로 제어해야 하는가. 대학당국 자체가 그런 수익 높은 연구계획을 고집한다면 어떻게 되는가라는 원초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저자는 연구대학의 미래는 정부와 산업체와의 협력관계에 묶일 수 밖에 없지만 한계를 분명히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정부와 기업체간의 협력관계 속에서 대학의 역할을 찾는 노력이 선행되지 않고서는 대학의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러한 대학의 어려운 선택에 있어 역시 대학총장 출신인 ‘대학교육에 대한 기본적인 절반의 진실들’의 저자 조지 D.오브라이언은보수적인 방법을 제시한다.그는 한세기 전에 대학사회를 지배한 전통적인 대학교육의 체제로 회귀하자는 이색주장을 펴고 있다.학문적 발견과 다양성보다는 도덕적·인격적인 면을 중시해야 한다는 논리다. 그는 많은 미국학생들이 인문학을 소홀히 하면서 학습단위만 큰 첨단기술학문 쪽을 선호하고 있는 현실을 개탄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의 3천600개의 대학중 교양과목을 설치한 대학은 600개에 불과하다.저자는 또 현재의 대학사회가 교수집단이 아닌 관리자에 의해 좌지우지 되고 있다면서 교수의 수급 시장기능에 맞지 않는 ‘교수 종신제’는 마땅히 폐지돼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저자는 특히 대학은 다문화적인 여러가지의 학문연구보다는 각자 전문성과 독자성 제고에 치중함으로써 다양성을 살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인문학 개발’의 저자 마사 C.누스바움은 다문화적 학문연구를 지양하자는 오브라이언의 주장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있다.철학자이며 고전주의학자인 그는 미국의 전 대학을 순례하면서 대학의 다양성 부족을 목격하고 이의 폐단을 지적하고 있다.그는 일부 대학은 자신의 독자성을 강조한 나머지 지적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고 적고 있다.인문학 교육의 목적은 세계시민으로서의 자질을 향상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윤리학과 철학을 필수과목으로 지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미국의 대학들이 학문의 자유와 개방적 표현의 터전이란 명성을 얻은 것은 튼튼한 재정 때문이 아니라 광범위한 사회적 목적달성을 위한 추진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인 만큼 미국의 대학들은 이제 변화하는 사회를 계속 선도하기 위한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할 시점에 왔다는 것이 이들의 결론이다. 이 세 학자들의 문제제기는 최근의 미국 대학의 재정난과 관련해볼 때 음미할 점이 상당히 많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학의 의무’:원제 Academic Duty,하버드대학 출판,310쪽,29.95달러.‘고등교육에 대한 기본적인 절반의 진실들’:원제 All The Essential Half­Truths About Higher Education,시카고대학 출판,243쪽,19.95달러.‘인문학 개발’:원제 Cultivating Humanity,하버드대학 출판,328쪽,26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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