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철학자
    2026-03-11
    검색기록 지우기
  • 부적절
    2026-03-11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874
  • 럼즈펠드 문건 계기로 본 ‘매파’들의 실체 / 美제국 움직이는 ‘장막뒤의 新保守’

    |워싱턴 백문일특파원|베이징 3자회담을 앞두고 미 국방부가 북한 지도부를 교체해야 한다는 문건을 만들어 회람했다는 사실은 충격이다.북한의 정권교체가 미국의 목표가 아니라는 백악관과 국무부의 숱한 해명에도 이같은 문건이 나돈 것은 부시 행정부 내부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숨은 세력’들이 있음을 반영한다.이들은 단순히 매파로 불렸던 기존 공화당 보수주의자들과는 성격을 달리한다.이들은 ‘신보수주의자(neocon)’로 불리며 이라크 전쟁에서 보여줬듯이 국제사회의 여론과 관계없는 독자적인 선제공격론을 맹신한다.딕 체니 부통령과 폴 월포위츠 국방부 부장관을 필두로 백악관과 행정부 요직을 차지,부시 행정부를 지배하고 있다.9·11테러 이후 전면에 부상했으나 사상적 토대는 2세대에 걸쳐 5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영화 속의 주인공이라면 이들은 감독에 비유된다.때문에 미국을 꿰뚫고 있는 인사들은 부시 대통령의 연설보다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이목을 집중시킨다. 독설가들은 부시 대통령을 이들의‘꼭두각시’로 보기도 한다.친(親) 이스라엘계인 이들의 면면을 알고 나면 부시 행정부의 정책이 눈에 들어올 정도다.잇따라 터지는 대북 강경론도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으로 풀이된다.콜린 파월 국무장관이 한때 사의를 표명한 것 역시 네오콘들의 위세에 밀려서다. ●21세기 새로운 미 제국주의의 서막 1991년 3월 당시 체니 국방장관은 펜타곤에서 극비 보고를 받았다.냉전 이후 미국의 안보에 관한 새로운 전략이다.민간 전문가들로 구성됐으나 이를 주도한 인물은 당시 국방정책 담당 차관이었던 월포위츠다. 그는 브리핑에서 “가까운 장래에 미국의 군사적·경제적 ‘우월성’에 위협이 되는 국가나 세력들에 대해 예방적인(preventive) 행동에 나설 수 있는 정책이 채택돼야 한다.”고 강조했다.체니는 이듬해 이같은 개념을 수용한 ‘국방계획지침(DPG)’을 발표했다. 월포위츠는 1981년 이스라엘이 이라크의 오시라크 원자로를 기습했던 것을 모델로 삼았으며 미국도 이라크와 시리아 등 미래의 ‘적’들을 겨냥,강력한 군사력 행사를 주장했다.그러나 당시 브렌트 스코크로프트 백악관 안보보좌관과 제임스 베이커 국무장관 등은 이같은 선제공격 개념에 제동을 걸었다.특히 1992년 말 부시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함으로써 이 독트린은 수면밑에 가라앉았다. ●다시 기회 포착에 나선 네오콘들 1995년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의 암살을 계기로 네오콘들의 활동이 재개됐다.이번에는 헨리 잭슨 전 상원의원 보좌관 출신으로 유대계인 리처드 펄 전 국방자문위원장이 중심이다.그는 1969년 의회 무기통제에 관한 연구에서 월포위츠와 함께 일한 인연으로 신보수주의의 선봉에 섰다. 미국계 유대인 연구기관의 도움으로 그는 1996년 중동평화를 위한 오슬로 협정의 무용론을 피력하며 테러리스트에 강력히 맞서야 한다는 새로운 국가안보전략을 발표했다.오슬로 협정의 ‘확실한 중단(clean break)’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이스라엘의 안전을 위해 터키 및 요르단과 협력,시리아를 봉쇄하고 사담 후세인 정권을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그룹에는 찰스 페어뱅크스 존스홉킨스 국제대학원 교수,더글러스 페이스 현 국방정책 차관,로버트 로웬버그 선진전략·정치연구소(IASPS) 회장,미 기업연구소(AEI) 회장을 지낸 존 볼턴 국무부 군축협상 차관 등이 포함됐다. ●클린턴 행정부에서 공식적으로 내건 신보수주의의 기치 1997년 초 워싱턴 시내에 위치한 AEI의 5층 사무실에서는 ‘새로운 미국의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PNAC)’라는 싱크탱크가 출범했다.세금 감면을 위한 새로운 전선이라는 경제적 마인드를 내세웠으나 실제로는 클린턴 행정부를 압박해 전세계를 대상으로 미국의 일방적 정책을 위한 군사력 증강을 목표로 삼았다. ‘위크리 스탠더드’의 편집장인 윌리엄 크리스톨과 로버트 캐건 카네기재단 선임연구원이 주동이 됐다.창립멤버로는 체니 부통령,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월포위츠 부장관,페이스 국방차관,피터 로드맨 국방부 국제안보담당 차관보,엘리엇 에이브럼스 국가안보회의(NSC) 중동담당,루이스 리비 부통령 비서실장,젭 부시 플로리다 주지사 등이 포함됐다. 크리스톨의 하버드대 룸 메이트인 프란시스 후쿠야마 존스홉킨스대 교수,제임스 울시 전 중앙정보국(CIA) 국장,댄 퀘일 전 부통령 등도 가세했다.크리스톨과 캐건의 아버지인 어빙 AEI 연구원과 도널드 예일대 교수도 이들의 사상적 지주로 참여했다. 크리스톨과 캐건은 PNAC의 창립선언에서 미 외교정책의 지향점을 군사력에 우위를 둔 ‘우호적 글로벌 패권’으로 정의했다.크리스톨은 특히 200년간 유지돼 온 미국의 ‘반(反) 식민정책’을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19세기와 달리 미국은 유럽보다 강대하며 국제사회의 안보와 질서를 위해 미국이 적극 나설 것을 요구했다. 이의 일환으로 PNAC는 1998년 1월 클린턴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 이라크와의 전쟁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부시 행정부에서 부활한 체니·월포위츠 독트린 2000년 9월 부시가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기 직전 PNAC는 새로운 보고서 ‘미 국방의 재건:새로운 세기를 위한 전략과 군,그리고 자원’을 발표했다. 리비 부통령 비서실장이 주도했으며 1991∼93년 체니와 월포위츠가 내놓은 선제공격 개념을 재도입했다.이는 지난해 부시 대통령의 국가안보전략으로 공식 채택됐다. PNAC는 당초 공화당 후보 지명전에서 부시가 아닌 존 매케인 상원의원을 지지했다.그러나 지명전에서 승리한 부시가 체니를 러닝 메이트로 지명,전화위복이 됐다. 체니는 부시 대통령의 취임에 앞서 정권이양을 책임졌고 이를 통해 월포위츠 등 네오콘들을 대거 중용했다.반면 대선에서 부시를 도운 베이커 전 국무장관이나 스코크로프트 전 안보보좌관 등의 중도 온건파들은 철저히 배제됐다.부시 대통령의 외교적 경험이 일천해 실질적인 대통령으로 불리던 파월 국무장관과 실용주의적 현실주의자인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의 입지도 당연히 크게 좁아졌다.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1998년 미사일 확산을 경고하는 이른바 럼즈펠드 보고서를 냈으나 월포위츠와 울시 전 CIA 국장이 주도,네오콘의 골수로 분류되지는 않는다.다만 1969년부터 럼즈펠드의 참모를 지낸 체니의 추천으로 국방부의 좌장으로 나섰다.럼즈펠드는 처음 네오콘들의 독주에 사의까지 고려했으나 지금은 신보수주의편에 완전히 돌아섰다. ●대북 강경 대응 주문부시 대통령은 네오콘들에 둘러싸였으나 이들의 정책을 처음부터 적극 반영하지는 않았다.파월 장관보다 월포위츠의 ‘군단’들에 기울어진 게 사실이지만 이라크와의 전쟁을 계획할 정도는 아니었다.그러나 9·11테러는 네오콘들이 염원하던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한 외교정책을 현실로 옮기는 발판이 됐다. 때문에 한때 9·11테러의 음모설까지 나돌았다.오사마 빈 라덴의 능력만으로는 비행기 자살공격이 성공할 수 없으며 알 카에다가 아닌 미국내 보이지 않는 손의 방조가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최소한 이스라엘의 정보당국인 모사드의 관여설은 신빙성있게 나돌았다.실제 1998년 이스라엘 스파이의 네트워크인 ‘X 위원회’ 멤버를 추적한 결과 월포위츠와 리처드 펄,페이스 등이 거론되기도 했다. 이들은 ‘악의 축’이라는 표현이 나오도록 부시 대통령을 압박하고 설득했다.월포위츠 등은 9·11 직후 이라크 전쟁을 주장,받아들여지지 않았으나 결국은 1년6개월 만에 이를 관철시켰다.북한에 대해서도 미래의 위협으로 간주,강경책을 서슴지 않고 있다.사실상 대북 군사행동을 의미하는 ‘테이블 위에 놓여진 모든 옵션’도 이들의 아이디어다. mip@ ■사상적 배경·인맥 신보수주의자들은 1899년 독일에서 태어난 레오 스트라우스의 영향을 받았다.그는 실존주의 철학자이자 나치 당원인 마틴 하이데거의 제자였으나 히틀러의 유대인 박해로 미국으로 건너가 시카고 대학에서 그의 사상을 전파했다.프랑크푸르트의 유대계 좌파 학자들도 미국에 정착하면서 우파로 변신했다.그들은 이른바 ‘로마제국의 현대화’를 주창,세계 경찰국가로서 미국과 영국 등의 역할을 강조했다.월포위츠는 시카고대에서 스트라우스의 제자인 앨런 블룸 교수로부터 수학했다.후쿠야마 교수는 블룸 교수가 코넬 대학에 있을 때 제자가 됐으며 하버드 대학원에서는 크리스톨 편집장과 함께 역시 스트라우스의 제자인 하비 맨스필드 교수로부터 배웠다. 중국과 북한 등 동북아 전략을 논의하기 위한 ‘콕스 위원회’에서 강경론을 펼친 루이스 리비는 월포위츠가 예일대에 있을 때의 수제자다.스트라우스가 배출한 박사들은 100명이 넘고 이들의 제자들도 수십명을 헤아려 학계와 언론계,연구기관,행정부 등의 요직에 이들의 인맥이 뿌리내리고 있다.
  • [데스크 시각] 독성, 화, 그리고 걷기…

    2000년 중반 서점가엔 ‘느림’ 열풍이 불었다.그 한 가운데에 있었던 프랑스 사회철학자 피에르 상소의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는 “인간의 불행은 단 한가지,고요한 방에 들어앉아 휴식할 줄 모른다는 데서 비롯된다.”는 파스칼의 말을 인용하며 시작한다. 느림이라는 화두가 날이 갈수록 더 우리를 붙잡는 것 같다.피에르 상소는 바쁘게 사느냐,느리게 사느냐 하는 것은 선택의 문제라고 했지만,이제 느림은 자본주의의 광풍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수 덕목이 아닌가 싶다. 소설가 박범신은 10년간 칩거했던 경기도 용인의 한터산방을 떠나며 최근에 낸 ‘사람으로 아름답게 사는 길’에서 자본주의적 ‘독성’이 빠져나가자 문학도 부활했다고 얘기한다.“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가장 혹독하고 잔인한 고문기술자는 경쟁이다.…우리는 아침마다 전사가 되어 거리로 나간다.…갑옷을 꼼꼼히 여미며 때론 내 ‘칼’을 들어 허장성세로나마 보여주어야…그러려면 독해야 한다.…참된 본성은 그래서 삶의 갑옷 속에 은폐된다.”(88쪽) 박범신은 홀로 있는 것이 견딜 수 없더라도 끈질기게 참고 있어보면,어느날 편안함을 느끼면서 내 상처,물집,또는 피고름이 사실은 하찮은 욕망으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된다고 말한다.그래서 본성이 회복되면 사랑도 살아난다.“내가 사랑을 믿지 않았다면 한터산방이 어찌 내 피폐한 영혼을 받아주었으랴.나는 이곳에 이르러 비로소 문학이 싸움보다 사랑인 줄 알았고…”(에필로그) 지난달에 나온 리처드 P 존슨의 ‘내 영혼의 리필’은 기독교적 삶을 제시한다.“사랑을 찾으려고 꾸준히 노력하지 않는다면 세상은 본질적으로 나쁜 곳이고 언제나 악이 승리하는 곳이며,살아남기 위해서는 마음을 중무장하고 살아야 하는 곳…”(35쪽) “하루 중에 짧게나마 사랑을 묵상하는 시간을 가져보라.”(50쪽) 요즘 전국의 대형 서점에는 틱낫한 스님의 여러 저서들이 베스트 셀러에 올라있다.스님은 ‘화(火)’에서 마음 속의 화를 씨앗과 감자,울고 있는 아기에 비유하며 보듬고 달래라고 충고한다.‘화’가 화를 다스려 내면의 평화를 구하는 방법을 얘기했다면,‘힘’에서는 이 순간에온전히 머무는 ‘깨어있는 마음(mindfulness)’이야말로 행복하게 하는 힘이라고 소개한다.스님은 우리는 늘 미래에만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지만 멈추는 방법을 배우고 나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고 말한다. 느림의 철학을 담은 책들은 한결같이 걷기를 권장하고 있다.피에르 상소는 발길 닿는 대로 풍경이 부르는 대로 한가로이 걸으라고 조언한다.박범신은 걷기가 본성으로 가는 길을 보여주었다고 했다.“(히말라야의) 빛나는 만년설 밑을 아무 생각없이 혼자 되어 걸을 때…너무나 하찮은 일들로 받았던 너무나 큰 상처들,너무 사소한 박탈감에 너무 악쓰면서 소리쳤던 분노들,…나의 ‘죄’를 나는 그곳을 걸으며 보고 확인했다.”(132쪽) 틱낫한 스님은 한걸음 한걸음 내디디면서 이 순간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걷기 명상’을 권유한다.미국의 문화비평가 레베카 솔닛의 ‘걷기의 역사’는 “장자크 루소는 홀로 산책하면서…자족적일 수 있었으며 자기를 배반한 것으로 여긴 세상보다 오래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소개한다. 자!이제 우리 걷기를 복권시키자.그리하여 다비드 르 브르통이 ‘걷기 예찬’에서 말했듯이,현대사회의 속도와 문명에 제동을 거는,생명의 예찬인 동시에 인식의 예찬임을 느껴보자. 황 진 선 문화부장
  • “시름 달래주는게 중세문학 정신”/ ‘중세 시인들의 객담’ 펴낸 이형식 서울대 교수

    “시름과 고통을 달래주는 게 중세문학의 정신입니다.어쩌면 이것이 진정한 문학의 본질이 아닐까요.” 최근 ‘중세 시인들의 객담’(궁리 펴냄)을 편역 출간해 ‘프랑스 중세 고전문학선’ 1차 작업을 끝낸 서울대 불어교육과 이형식(57) 교수.마르셀 프루스트 전공자인 그가 중세문학에 눈을 돌린 것은 프루스트 작품에 나오는 중세문학 표현을 이해하기 위한 단순한 동기였다.그런데 살짝 발을 들여놓은 그 세계는 너무 재미있었다.그러나 중세문학 작품이 알려진 게 드문 데다,그 형태가 현대에 들어서 일그러졌음을 알고는 교정작업에 나섰다. “정답고 슬픈,때로는 웅장한 내용을 담은 순수한 이야기가 중세 소설입니다.그런데 근대로 오면서 이념·철학 등 ‘이론적 담론’이 섞여 재미가 없어졌죠.프루스트나 사르트르,생텍쥐페리가 그 전형입니다.” 이런 문제의식은 2001년 ‘여우 이야기’로부터 시작해 ‘트리스탄과 이즈’ ‘중세의 연가’로 이어졌다. 이 교수가 번역하면서 가장 고심한 부분은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하는 것.그는 “굳이 불문학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고교생,혹은 시장에서 일하는 분들까지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정선했다.”고 역설한다. 이번에 나온 ‘중세 시인들의 객담’은 우리로 치면 일종의 음담패설과 풍자적 이야기들.당시 철학자들이나 신학자 등 점잔빼는 이들이 천한 것으로 박대하던 장르,즉 서민들의 문학이다.마을 사제나 수도사 등을 꼬집기도 하고 농사꾼들,부랑아들의 욕정과 물질적 탐욕,복수심리 등을 담고 있다. 이 교수는 “‘객담’은 문학용어로는 패설인데 풍자정신과 정제되지 않은 해학이 특징”이라며 “유럽문학사에서 이 작품들을 조명한 것은 오랜 세월 망각 속에 묻혔거나 소외됐던,소박한 문학형태에 대한 무의식적 그리움이 작용했다.”고 정리했다. 이종수기자
  • [열린세상] ‘가축의 복지’와 경제성

    우리집 마당 한편에 지금은 창고로 쓰이는 닭장이 하나 있다.작고하신 장인이 생전에 얼마동안 닭을 키웠던 곳이다.침실과 거실의 두칸으로 나누어,우선 침실은 어둡게 벽을 치고 횃대를 놓았다.한구석에 보금자리를 만들어 닭이 안심하고 달걀을 낳고 사람은 바깥에서 손만 넣으면 꺼낼 수 있도록 작은 문을 달았고,난방용으로 전구를 연결하기까지 했다. 거실 부분은 닭들이 놀 수 있는 공간을 두고 입구 쪽에 물과 모이를 먹을 수 있는 식사대가 있고,닭들이 모래목욕을 즐기도록 모래사장을 마련하였다.과연 닭을 위한 호화주택이라고 할 수 있다. 언젠가 패스트푸드 체인 치킨점에 공급되는 닭 사육공장에서 일어나는 산란·부화·사육·도축과정의 비정한 장면들을 사진으로 본 적이 있다.이렇게 해서 만든 닭고기가 얼마나 맛이 있을까,이것이야말로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의 발로가 아닌가 개탄한 적도 있다. 돼지콜레라가 만연하여 전국의 수천 마리의 돼지들이 병들어 집단으로 살육되고 때로는 생매장 당하고 있다. 축산농가의 경제적 손실은 물론 엄청난 환경적 재앙이 아닐 수 없다.전염병 방역체계에 문제가 있어서 이런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고 볼 수도 있다.하지만 좁은 축사에 과밀하게 수용된 돼지들을 짧은 기간 내에 살찌게 하기 위해 정량보다 많은 사료를 먹이고 서로 몸을 부대끼며 지내게 하니 어찌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 있으며 병들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람들의 과도한 욕심에 의하여 가축의 생활을 학대하고 생명을 약탈하는 태도를 바꿔,우리가 사육하는 동물들의 생활환경이 어느 정도 동물다운 삶이 되도록 배려할 필요가 있다. 인간 이외의 모든 생물을 인간의 욕망과 목적에 이용되는 도구로밖에 취급하지 않는 인간 중심적 가치관을 탈피해야 한다.이제 우리도 인간과 동물을 차별화하지 않고 평등한 윤리적 배려를 해야 한다는 생태 중심적 가치관을 받아들여야 한다.심층생태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가축을 인간과 완전히 동일시해 잡아먹지도 말자는 말은 아니다.가축들도 아픔과 고통을 느끼는 동일한 생명체라는 점을 인정하고 비록 그들의 삶이 인간의 생존을 위한 삶이라도 가능한 한 그들의 생육환경에 적합한 환경에서 살도록 하자는 것이다.나아가 도축과정도 죽음의 공포를 덜 느끼도록 배려하자는 것이다.최근 외국에는 가축의 자란 환경에 따라 등급을 부여하여 값에 차이를 두어 판매하는 제도가 있다고 한다. 우리도 품종별 혹은 부위별 등급과 아울러 자란 환경별 등급에 따라 가격을 매긴다면 생산자의 입장에서 볼 때 생육환경을 개선해도 경제적 채산이 맞을 것이다.인간 이외의 생명을 중요시하는 사상은 우리 고유의 유기체적 세계관에도 깊은 뿌리가 있다. 우리 화엄불교의 창시자 의상대사는 티끌 속에도 우주가 있다(一微盡中含十方)고 하여 우주만물이 모두 하나임을 밝혔고,조선중기의 기철학자 화담 서경덕은 사람과 그 외의 사물은 자연의 일부로서 서로가 서로를 돕는다는 상생적 관계임을 강조했다. 동물을 학대하고 척박한 환경에서 살게 한다면 인간과 우리의 생활환경에 나쁜 영향을 가져온다.집단적으로 과밀하게 사육하는 목장에서 나온 엄청난 양의 분뇨쓰레기는 우리의 강산과 하천을 오염시킨다.이런 환경에서항생제가 가득 들어간 사료를 먹고 스트레스를 받고 자란 후에 공포 속에서 도살당한,지방으로 가득 찬 육류는 우리 건강에도 해롭다.비록 인간과는 똑같지 않더라도 최소한의 생육환경을 배려하여 사람과 사람만이 아니라 사람과 동물이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우리 고유의 사상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는 인간복지만을 위한 경제 우위의 가치관을 버리고,모든 생명을 중시하는 가치관으로 바꾸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정립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 이 규 목
  • [길섶에서] 나잇값

    아흔 살 노모를 기쁘게 하기 위해 칠순 아들이 색동옷 입고 재롱을 떤다.언젠가 TV 장수마을 프로그램에서 본 장면이다.효(孝)란 ‘이 나이에' 하는 거드름 없이 부모가 원하면 주저없이 하는 것이란 메시지가 담겼던 것 같다. 지난 주말 한 모임에서의 일이다.육십대의 선배가 “왜 인사를 안 하느냐.”고 후배를 나무란다.‘오랜만이어서 잘 몰라 봤다.’며 사과하는 데도 막무가내로 하대를 하자 “나도 낼 모레면 쉰살”이라며 대거리를 한다.‘나이가 벼슬’인 양 서로 ‘나이 대접’을 해달라는 이 실랑이에서 ‘사오정’(사십오세 정년)이니 ‘오륙도’(오십육세까지 직장에 있으면 도둑)니 하는,나이·서열·기수 파괴의 바람 앞에 불안해 하는 중장년층의 불편한 심사가 느껴졌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나이가 들수록 부끄러움을 알고,‘나잇값’ 하게 하는 어른의 길은 어디에 있을까.초등학생들 사이에 유행했다는 ‘아기철학자’ 시리즈가 생각난다.“산다는 건 뭘까.나도 곧 7살이 되는데.우리 나잇값 좀 하고 살자.” 김인철 논설위원
  • ‘호치민 평전’ - 미국을 이긴 유일한 제3세계 지도자, 호치민의 삶

    공산주의자일까 민족주의자일까 호치민 평전 수배자서 위대한 혁명가 되기까지 美베트남전문가 30년 조사끝 펴내 유고의 티토,리비아의 카다피,쿠바의 카스트로,칠레의 아옌데….모두 제3세계의 위대한 지도자들이지만 이 가운데 아무도 미국이란 초강대국에 대항해 승리한 사람은 없었다.오직 호치민만이 승리를 거뒀다.그는 전쟁을 통해 제국주의의 침략을 물리치고 조국 해방을 이룩한 유일한 제3세계 지도자다.미국의 세계적인 베트남 문제 전문가인 윌리엄 J.듀이커의 ‘호치민 평전’(정영목 옮김,푸른숲 펴냄)은 베트남 공산주의 운동의 지도자 호치민의 삶을 본격적으로 다룬 전기다.30년동안 베트남과 중국,러시아,미국에 있는 문서보관소를 뒤지고 수많은 관련자들을 인터뷰한 끝에 모은 자료들을 토대로 했다. 저자는 신비에 싸인 호치민이란 인물의 객관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자신의 해석을 유보한다.대신 호치민의 삶의 내력을 있는 그대로 충실히 전한다.유교적 소양을 쌓으며 어린 시절을 보낸 호치민은 스물한 살 때 프랑스 식민지배에 대한저항활동으로 수배된다.그는 할 수 없이 조국 인도차이나를 떠나 여객선의 요리사 보조 노릇을 하며 유럽,아시아,아프리카,남아메리카 등 세계 곳곳을 떠돈다.호치민의 혁명적 삶의 초석은 바로 이 시기에 마련된 것이다.책은 호치민이 베트남 공산주의 운동의 지도자로 비상하는 과정,쉰 번이나 이름을 바꿔가며 혁명을 배우고 선전하던 시절,수감과 탈출,조국의 초대 주석으로 분열을 일삼던 동료들을 화해시키고 영감을 불어넣던 모습 등을 세밀하게 그린다. 저자가 특히 관심을 갖고 다루는 것은 호치민이란 인물에 대한 성격 규명이다.호치민은 민족주의자인가 공산주의자인가.성자 같은 소박한 이미지는 진짜인가 책략인가.호치민은 지지자들에겐 혁명적 인도주의의 상징이었다.사심이 없어 보이는 이미지는 엄청난 호소력을 발휘해 적국인 미국에서까지 베트남혁명과 독립투쟁에 대한 광범위한 지지를 이끌어냈다.반면 반대파들은 호치민이 오랜 세월에 걸쳐 스탈린의 요원이었다는 점을 지적하며 그의 애국적 동기에 의문을 제기한다.호치민의 민족주의 이미지는 혁명적 대의에 대한 지지를 끌어내기 위한 책략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볼셰비키 혁명이나 중국 내전의 경우 개인의 역할은 무엇보다 중요했다.마찬가지로 호치민 없는 베트남 혁명은 상상하기 어렵다.호치민은 빈틈없는 전략가이자 재능있는 조직가로서 ‘절반은 레닌,절반은 간디’라고 할 만큼 복합적이고 역동적인 인물이었다.미국의 철학자 시드니 훅의 표현을 빌리면 ‘사건을 만드는 인물’이었으며 ‘위기의 자식’이었다. 평자들은 종종 호치민이 자신의 비범한 지도자적 재능을 결함 많은 이데올로기에 바친 것을 ‘호치민의 비극’이라고 지적한다.저자에 따르면 호치민의 철학적 신념은 마르크스나 레닌의 이상보다는 서구의 이상과 더 잘 어울리는 부분들이 많다.호치민은 동료들에게 자신을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로 내세우려 했지만 교의적인 문제엔 거의 관심이 없었던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호치민은 죽은 지 30년이 지난 지금도 베트남에선 국가적 숭배의 대상이다.그러나 최근엔 ‘혁명적 미덕의 귀감’이란 호치민에 대한 공식적 관점이 ‘과오를 범할 수 있는 인간’이란 좀더 현실적인 이미지로 대체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만만찮다.그렇다면 저자는 과연 역사학자다운 엄정한 자세로 이 책을 썼을까.‘호치민 평전’은 한 위대한 혁명지도자에게 바친 ‘계시적인 초상화’란 느낌이 들지만,저자 자신의 시각 혹은 특정한 집단의 관점을 강요하는 삼류전기가 아님은 분명해 보인다.3만8000원. 김종면기자 jmkim@
  • [기고] 뇌지식 기반으로한 교육 이뤄져야

    한국뇌학회와 한국뇌신경학회 등은 최근 뇌주간을 맞아 서울대·포항공대 등에서 ‘두뇌의 인공지능과 인식기능’을 주제로 강연회를 가졌다.뇌의 신비와 연구에 관해 전문가의 글을 싣는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창조물은 뇌에 의해서만 실체를 표현할 수 있다.이는 뇌의 구조가 어떻게 돼 있느냐에 따라 좌우된다.뇌의 구조는 창조물과 창조물,인간과 인간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뇌는 인간의 정체성을 결정하고,생명의 최고 가치일 뿐만 아니라,마음,정신,의식,감정을 나타내는 주체이자 우리 신체를 컨트롤하는 중심이다.‘나는 뇌이며 뇌가 곧 나’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뇌는 신경세포와 신경섬유로 구성된 생물학적 존재다.동시에 고도의 정신활동의 근원이 되는 소우주로 불릴 정도로 복잡하다.실로 우주연구에 비길 정도로 어렵고 끝이 없다.앞으로의 세기에는 크게 두 가지 문제가 과학적 과제로 대두될 것으로 본다.하나는 우주의 신비를 밝히는 것이고,다른 하나는 내(內)우주라 할 수 있는 인간의 뇌에 대한 신비를 밝히는 작업이다. 뇌를 연구하는신경과학연구에는 70년대 이후 새로운 연구기법들이 많이 도입돼 혁신적인 발전이 이뤄지고 있다.예컨대 유전자 차원에서 연구하는 분자생물학의 발전으로 미지의 상태로 남아있던 많은 신경정신기능 관련 유전자와 질병유전자가 밝혀지고 있다.첨단 공학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뇌의 형태는 물론 기능까지도 영상으로 볼 수 있는 자기공명촬영기법(MRI)과,양전자방출단층촬영술(PET)이 개발돼 뇌의 고차적인 기능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영상시대가 다가왔다. 이러한 신경과학 연구에 철학·심리학·언어학 등의 인문사회과학과 신경회로망·인공지능·로봇을 연구하는 공학분야가 연계됨으로써 뇌 연구는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하고 모든 학문에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최근 OECD CERI(교육혁신센터)에서는 OECD 각국이 공동으로 뇌연구를 수행하여 교육혁신에 이용하려고 노력하고 있다.우리나라도 뇌지식을 기반으로 한 교육(뇌기반교육)이 하루빨리 이뤄져 무모한 양적 교육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본다. 이런 신경과학계에서의 발전을 뒷받침하기 위해 최근 미국에서는 국가적 차원에서 10년간 뇌연구 촉진법인 ‘뇌연구 10년 법안’을 마련해 연간 10조원 이상 국가에서 지원하고 있다.때늦은 감은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1998년 ‘뇌연구촉진법’을 제정·공포해 뇌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뇌는 유전적 소인에 따라 기능하고 있지만 유전자는 환경 속에서 발현되어야 하고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뇌는 전기·화학적으로 작동되며,사회·문화적 세계와의 끊임없는 교감을 통해 작동한다.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는 뇌에 관해서 이야기한 적은 없지만,“존재하고 있는 대로 일들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며 마음(뇌)의 메아리를 통해 여과되는 것만을 경험한다.”고 했다.뇌의 구조와 작동,그리고 이 세상의 부분으로서 우리 자신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것 사이에는 직접적인 관계가 있음을 암시한 것이다.대부분의 신경과학자들이 지금 믿고 있는 바와 같이,우리 뇌의 작동으로부터 자연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그러니 21세기에 뇌에 관해 배우는 것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이겠나. 신경과학의 발전 추세와 미래를 예측해 볼 때 우리나라에서도 이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은 국가적 차원에서 당연한 과제이다.무한경쟁시대에서 국가적 생존,나아가 선진국 진입의 목표를 달성하자면 신경과학 분야가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본다.신경과학의 발전은 21세기 과학기술의 중요한 핵심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서 유 헌 서울의대 교수
  • [공직자 에세이] 한 그루 나무를 심는 마음

    국민의 희망을 안은 새 정부가 힘차게 출범했다.나라 안팎이 많은 어려움에 싸여 있는 이때 참여정부가 안고 있는 과제는 그 어느 때보다 중차대하다. 국내적으로는 대구 지하철 참사,민족적으로는 북핵문제,세계적으로는 미국과 이라크의 전쟁 여부로 불안해진 우리 미래를 과연 어떠한 희망으로 바꾸어 내야 할까.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것,평화로운 나라를 이루는 것,희망적인 경제발전을 지속하는 것 모두 쉽지 않지만 우리 스스로 뼈를 깎는 자성과 노력으로 반드시 이루어내야 할 과제들이다. 걱정과 희망이 중첩되는 이때 “내일 세상의 종말이 온다 해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한 네덜란드 철인(哲人)의 경구가 이 시대에 매우 적합한 메시지가 아닌가 한다. 스피노자의 범신론적(汎神論的) 사고가 함축된 이 말은 세상의 종말이라는 우주적 사건보다 사과나무 한 그루에 구현되어 있는 자연적 생명을 더 가치 있게 여김으로써 자연의 모든 생명을 신적 존재로까지 격상시키는 지극한 생명존중의 마음가짐을 엿보게 한다. 우리가한 포기의 풀도,한 그루의 나무도 이렇게 아끼는 마음이었다면 지하철에 탄 200여명의 고귀한 생명을 사지(死地)에 방치하거나 얼마간의 예산을 아끼기 위해 안전하지 못한 자재를 사용하는 어리석음은 범치 말았어야 하지 않았는가 깊이 반성하게 된다. 둘째,이 말은 주위 여건이 어떻게 심각히 변한다 하더라도 자신의 행동철학을 끝까지 견지하겠다는 의미로 스피노자의 강한 사상적 일관성을 알 수 있게 한다.실제 스피노자는 그의 범신론적 철학 때문에 생존 당시 종교권력자와 타 철학자들로부터 심한 비판과 파문을 당했음에도 굽히지 않았다. 국가정책과 대외관계에서의 일관성은 개인의 일관성보다 훨씬 중요하다.그것은 궁극적으로 국가적 신뢰를 불러일으켜 우리가 원하는 평화를 정착시키는 가장 중요한 지렛대가 될 것이다.‘세상의 종말’을 두려워하는 가벼운 행동은 결코 우리를 이롭게 하지 않는다. 셋째,그가 일생을 통해 ‘미래에 대한 불변의 희망’을 깨달았다는 뜻이기도 하다.개방된 경제체제에서 우리 경제가 외부의 불확실한 여건으로 요동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모든 국민이 우리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고 신뢰를 가지고 내실을 기한다면 어떠한 불확실성도 충분히 이겨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얼마 있으면 식목일이다.이미 남부 지역에서는 나무심기가 시작되었다.올 봄에도 ‘내 나무 심기’ 캠페인을 벌여 국민과 함께 총 5400만 그루의 나무를 전국에 심을 계획이다.국민 1인당 1그루가 좀 넘는다. 바라건대 올해 나무심기에서는 우리 모두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과 변하지 않는 자세와 미래의 희망을 믿는 마음으로 한 그루의 나무를 정성껏 심었으면 한다.분명 올해 우리가 심은 나무는 훗날 지금의 많은 어려움을 훌륭히 극복하여 안전하고 평화로우며 아름답고 풍요로운 나라를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주었다는 산 증인이 되어 줄 것이다. 최 종 수 산림청장
  • 이런책 어때요/ 정의론 외

    ◆정의론 존 롤즈 지음 황경식 옮김 / 이학사 펴냄 ‘하버드의 성인’이라 불리는 미국 철학자 존 롤즈가 밝히는 정의의 철학.저자는 기본적인 자유를 평등하게 나눠가져야 한다는 ‘정의의 원칙’을 토대로 하되 최소 수혜자의 처지를 개선하기 위한 한도 내에서 약자를 우대하는 사회 경제적 불평등은 허용해야 한다는 ‘차등의 원칙’을 제시한다.또한 결과의 평등을 거부하며 기회의 균등을 중시한다.당연히 분배적 정의보다는 절차적 정의를 강조한다.저자는 분석철학이 풍미하던 20세기 영미 철학계에서 사회철학과 윤리철학을 되살린 인물로,스스로를 ‘현실적 이상주의’라고 부른 낙관주의자다.2만 8000원. ◆베토벤 평전 갈등의 삶,초월의 예술 박홍규 지음 가산출판사 펴냄 베토벤은 “나의 예술은 가난한 사람들의 행복에 이바지해야 한다.”고 했다.예술가를 위한 사회주의적 후원제도인 ‘예술상점’을 제안하고,계몽주의자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헌정하기도 했다.진보적 법학자인 저자(영남대 교수)는 이 책에서 새로운 베토벤 상을 제시한다.베토벤을“박해받고 경멸당한 음악노동자”로 규정한다.베토벤은 일반 대중이 알기 쉬운 음악을 만들었지만,클래식이란 미명 아래 대중과 유리됐다는 게 저자의 설명.베토벤은 죽음,파괴,불안 등 공격적이고 해체적인 힘을 받아들이고 동시에 그것을 초월하려는 의지를 음악에 담았다.1만 1000원. ◆카오스와 코스모스 요아힘 부블라트 지음 임영록 옮김 / 생각의 나무 펴냄 혼돈(카오스)이론은 상대성이론,양자역학에 이어 20세기 물리학의 세번째 혁명으로 평가된다.혼돈이론은 고전물리학의 결정론을 거부한다.독일의 과학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실증적인 방식으로 혼돈이론의 복잡한 사유모델들을 소상히 설명한다.우리는 무질서의 섬 위에 살고 있으며 예측불가능한 혼돈에 에워싸여 있다.우주의 거대한 상호관련성을 들여다 보면 ‘모든 질서는 덧없으며 혼돈이 바로 규칙이다.예외는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혼돈의 예는 날씨에서 찾아볼 수 있다.아기 예수란 뜻의 엘니뇨는 기후의 불가해한 특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2만 9000원. ◆절대를 찾아서 윌프레드 세시저 지음 이규태 옮김 / 우물이 있는 집 펴냄 저자가 사하라 사막 다음으로 넓은 아라비아 사막 남부지역인 ‘엠프티 쿼터(Empty Quarter)’를 돌며 쓴 여행기.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원작인 로렌스의 ‘지혜의 일곱 기둥’과 더불어 아랍 여행기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작품이다.아라비아 사막에서 사는 베두인들의 생활에 대해 상세히 그렸다.낮과 밤의 극심한 온도 차,때론 낙타를 죽여 식량으로 삼아야 할 만큼의 혹독한 배고픔,아랍 부족들간의 습격과 약탈,그에 따른 추적과 보복이 펼쳐진다.저자는 거대한 사막에서 시간을 초월한 ‘절대문명’이 숨쉬고 있음을 발견한다.1만 7000원. ◆원세개 허우 이제 지음 장지용 옮김 / 지호 펴냄 한족 출신인 원세개는 첩의 자식으로 태어나 삼촌의 수양아들이 된 서자였지만 젊은 나이에 출세해 9명의 첩과 17명의 아들,15명의 딸을 거느린 가부장적인 가장이었다.그는 24세의 나이에 조선에 와 위세를 떨치며 고종을 협박한 인물이며,우리 나라에 화교를 퍼뜨린 장본인이기도 하다.국내에 거주하는 화교는 대개원세개와 그의 군대를 따라온 산둥 출신들이다.원세개 시대의 중국은 서구 열강의 침략과 계속된 민란으로 바람 앞의 등불 같은 시기였다.이 책은 난세의 영웅 원세개의 정치역정을 통해 중국 근현대사 100년을 들여다 본다.1만 5000원. ◆예술가와 뮤즈 유경희 지음 아트북스 펴냄 뉴멕시코의 황야에서 아흔아홉 살까지 수도자 같은 말년을 보냈던 조지아 오키프는 미국의 대표적인 모더니즘 화가임에도 불구하고 미술사의 주변부에서 다뤄졌다.그 이유 중 하나는 오키프가 남편 앨프리드 스티글리츠 사진의 누드모델로서 대중들에게 섹슈얼리티의 대상으로 주목받았기 때문이다.스티글리츠에게 있어 오키프는 사진에 대한 창조력에 불을 붙여준 ‘뮤즈’였다.저자는 이처럼 세기적인 예술가들에게 창조의 영감을 준 매혹적인 뮤즈 이야기를 들려준다.오키프를 비롯해 프란시스코 데 고야,오노 요코,갈라 등 13명의 인물이 등장한다.1만 6000원.
  • 책꽂이/설득,마음을 움직이는 전략 외

    ●설득,마음을 움직이는 전략(게리 스펜스 지음,이순주 옮김,세종서적 펴냄) 가장 훌륭한 설득의 무기는 ‘나 자신’이다.어떻게 하면 설득에 카리스마와 힘을 더할 수 있을까.미국 최고의 변호사로 꼽히는 저자는 맘대로 울고 웃는 어린애처럼,구구대는 비둘기처럼,반가워 꼬리치는 강아지처럼,있는 그대로를 표현하는 것이 설득의 요체라고 말한다.1만 2000원. ●한·일 국가기구 비교연구(정용덕 지음,대영문화사 펴냄) 198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 한국과 일본의 국가기구를 실증적으로 비교 분석한 연구서.다원주의적 시각·엘리트론적 시각·개인주의적 시각·자본주의적 시각 등으로 나눠 접근한다.1만 6000원. ●이야기 고사성어(장연 엮음,동방미디어 펴냄) 중국 3000년의 역사와 지혜가 녹아있는 고사성어의 유래를 풀어 썼다.초패왕 항우와 한나라 유방의 싸움의 승패를 결정지은 사면초가.진시황의 법치주의와 수구세력의 갈등이 빚은 분서갱유,초나라 한신의 이야기에서 나온 토사구팽,공자의 도덕정치 실현에의 꿈과 좌절을 말해주는 상가지구,당송팔대가중 첫째가는 한유의 기백을 나타낸 태산북두 등 300여개를 대상으로 했다.9000원. ●미디어와 쾌락(강준만 등 지음,인물과사상사 펴냄) 넷세대에게 미디어는 존재 그 자체다.그들은 ‘미디어제국’에 파묻혀 산다.휴대전화 알람으로 눈을 떠 인터넷 서핑을 끝으로 잠자리에 든다.이 책은 넷세대의 ‘미디어소비’에 대한 기록이자 그들의 삶의 실상을 보여주는 사회사다.1만원. ●엥케이리디온(에픽테토스 지음,김재홍 옮김,까치 펴냄)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의 가르침은 제자이자 역사가인 아리아노스에 의해 모두 8권의 ‘담화록’이란 책으로 정리됐다.그러나 지금은 네 권만 전한다.이 책은 그 ‘담화록’을 한 권으로 간략하게 압축한 도덕교본이다.기독교적인 금욕주의와 도덕주의가 일치하는 점이 많아 특히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널리 읽혀온 책이다.1만 1000원. ●중국 근현대 사상의 탐색(조경란 지음,삼인 펴냄) 중국 근대 30년의 사상은 서양이 300년에 걸쳐 이룬 근대사상의 압축판이다.그런 만큼 그것은 일상으로 경험한 것이라기보다는 주의로서만 경험한 측면이 강하다.이 책은 중국 근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논쟁의 전선을 형성하며 긴장을 연출해온 이들의 사상을 살핀다.캉유웨이,량치차오,리다자오,리쩌허우,옌푸,첸무,후스,장둥쑨,장빙린,덩샤오핑 등이 그들이다.1만 2000원. ●포커 MBA(그레그 딘킨 등 지음,송대범 옮김,럭스미디어 펴냄) 포커는 인생과는 달리 제로섬 게임이다.돈을 버는 사람이 있으면 누군가 돈을 잃는다.이 책은 비즈니스를 위한 교육방법으로 포커게임만한 게 없다고 말한다.포커게임은 사업과 마찬가지로 위험을 측정하고 초를 쪼개는 순간적인 판단능력이 관건이다.1만원. ●사람이 중요하다(홍성민 지음,바움 펴냄) 한 문제 때의 이광은 적진에서 주인처럼 행세해 위기를 모면했고,제나라의 전단은 적뿐만 아니라 아군까지 속임으로써 상황을 역전시켰다.이렇듯 사람을 움직이려면 먼저 그 사람이 뭘 원하는지부터 파악해야 한다.저자는 “성공의 공식 중 가장 중요한 요소는 다른 사람과 잘 지내는 방법을 아는 것”이라는 미국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말을 인용,인간관계의중요성을 역설한다.9000원. ●노빈손의 남극 어드벤처(박경수 지음,뜨인돌 펴냄) 고대 그리스 철학자 파르메니데스가 “지구 남쪽에 몹시 추운 거대한 땅덩이가 있다.”고 예언한 지 2500여년.그러나 남극은 200여년 전에야 비로소 그 모습을 드러냈다.이 책은 미지의 땅 남극에서 벌어지는 모험담이다.시간여행을 통해 주인공 노빈손은 100여년 전 ‘영웅시대’의 남극에 도착,목숨 걸고 남극을 탐험한 섀클턴,아문센,스코트와 동행하며 좌충우돌 모험을 펼친다.7900원. ●독일 담시론(안진태 지음,열린책들 펴냄) 독일의 시문학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담시문학.담시는 민담이나 동요,또는 특기할 만한 사회적·역사적 사건을 주로 다룬다.게르만 민족의 민족성과 역사에서 비롯된 문학으로 매우 관념적인 것이 특징이다.담시(譚詩)에 대해 학문적으로 정리했다.1만 6000원. ●한국의 이공계는 글쓰기가 두렵다(임재춘 지음,마이넌 펴냄) 영어는 한 문장에 16∼20개 이상의 단어를 쓰지 말라고 권한다.한 번의 숨으로 무리없이 읽을 수 있는 길이가 적당하다는 것이다.우리도 신문은 한 문장을 40∼60자 이내로 쓸 것을 권하니 영어와 비슷한 길이다.과학기술부 원자력실장을 지낸 저자는 특히 이공계 출신들을 위해 실제적인 글쓰기 방법론을 제시한다.8000원.
  • [길섶에서] 느림을 위하여

    정부 중앙부처 고위공직자인 K씨.K씨는 요즘 극도의 허탈감에 빠져 있다.행정고시 3기 아래인 고교 후배가 차관으로 발탁됐기 때문이다.최연소 승진 기록을 남기며 승승장구했던 K씨로서는 상상조차 못했던 악몽이 현실화된 것이다.참여정부 장·차관 인사에서 ‘파격’이 이어지면서 K씨와 같은 고위공직자가 한두명이 아니라고 한다.이들은 새삼 엘리트 중심의 기존 질서 파괴를 실감하면서 앞과 위만 보며 달려온 자신들의 인생에 회한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느림의 철학자’ 피에르 상소는 우리에게 강렬한 목표의식을 버리라고 요구했다.뛰는 대신 걷고,카페인이 든 커피를 마시고 깨어있기보다는 알코올이 든 포도주를 마시고 긴장을 풀라고 했다.그는 “즐기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면 무엇 때문에 사느냐.”고 물으면서 “삶을 즐기려면 속도를 줄이라.”고 주문했다. 또 다른 K씨가 되지 않으려면 상소에게서 삶의 지혜를 배워야 하지 않을까. 우득정 논설위원
  • 책꽂이/묵계월 경기소리 연구 外

    ●묵계월 경기소리 연구(류의호 지음,깊은샘 펴냄) 경기소리와 서도소리는 오랫동안 서울과 평양을 중심으로 경기도와 황해도,그리고 평안도 지방에 사는 사람들이 즐겨 부른 우리 소리다.언제부턴가 이 두 소리를 합쳐 경서도소리라고 부르며,실기인들 사이에서도 서로 넘나들고 있다.이 책은 중요 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소리’ 예능보유자 묵계월과 경기소리에 관한 본격 연구서다.1만 5000원. ●경험과 기억(정진홍 지음,당대 펴냄) 종교현상학을 전공한 저자의 종교문화 틈새읽기.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지금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 종교를 인식하는 틀이 될 때 스스로 정직해지고 자신에게 의미있는 종교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미국의 대표적 종교사가인 멀치아 엘리아데를 사사한 저자는 종교학을 신학일변도의 주변학문에서 인간을 이해하는 인문학의 지위로 끌어올렸다는 평을 듣는 원로종교학자다.2만원. ●들뢰즈의 생명철학(고이즈미 요시유키 지음,이정우 옮김,동녘 펴냄) ‘20세기 형이상학의 완성자’라는 평을 듣는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에 대한 입문서.저자에 따르면 들뢰즈는 차이를 긍정하는 철학자다.차이를 부정이나 결여로 대체하는 사고습관을 버리지 않는 한 긍정적인 차이를 인식할 수 없다는 것이다.들뢰즈 사유의 수학적·생물학적 측면을 밝힌,흔치 않은 저작이다.8000원. ●나를 사랑하는 법(엔도 슈사쿠 지음,한은미 옮김,시아출판사 펴냄) ‘침묵’‘여자의 일생’ 등의 작품으로 잘 알려진 일본의 ‘국민작가’ 엔도 슈사쿠의 행복론.그 요체는 간단하다.“약점이란 아직 개발되지 않은 장점이며,행복은 그 약점을 적극적으로 끌어안는 데서 온다.” 참된 자기사랑만이 행복에 이르게 한다는 것이다.8700원. ●포토몽타주(돈 애즈 지음,이윤희 옮김,시공사 펴냄) 20세기 초 사회풍자와 정치선전의 새로운 장을 연 포토몽타주의 세계를 고찰.포토몽타주는 1,2차 세계대전의 격동기 속에서 다다이스트들이 발견한 새로운 가능성이었다.사진을 잘라 신문 조각이나 드로잉 등과 함께 붙여 만드는 것으로,무질서하면서도 폭발적인 이미지는 현실을 끌어들이는 강렬한 에너지를지닌다.리하르트 휠젠베크,라울 하우스만,한나 회희,게오르게 그로츠,존 하트필드 등이 이 기법을 활용했다.1만 5000원. ●주희의 문화 이데올로기(이용주 지음,이학사 펴냄) 주희의 문화론은 동아시아적 문화전통의 출발점이자 동아시아 문화담론의 원형이다.오늘날 주희의 문화론 내지 문화정체성 이론이 새삼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인가.저자(성균관대 교수)는 주희에게서 위기의 시대를 극복하는 지식인의 투철한 학문정신을 발견한다.학문은 지식 쪼가리의 집적이 아니라 삶에 방향성을 제시하는 이정표 만들기라고 생각하는 저자의 태도는 주희 읽기의 관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1만7000원. ●마돈나(앤드루 모튼 지음,유소영 옮김,나무와숲 펴냄) 스타가수 마돈나의 출발은 알려진 바와 같이 보잘 것 없다.이탈리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성공의 꿈을 안고 뉴욕에 도착했을 때 그의 주머니엔 단돈 35달러밖에 없었다.전문 댄서가 되기 위해 여러 무용단을 전전했지만 성공은커녕 먹고 살기도 힘들어 누드모델이 되기도 했다.왜 아직도 마돈나인가.그의 삶의 궤적을 좇는다.1만 5000원. ●고중숙의 사이언스 크로키(고중숙 지음,해나무 펴냄) 과학에 대한 감수성을 일깨워주는 과학칼럼집.블랙홀의 정체,공룡의 멸종원인,평범한 회사원으로 2002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다나카 고이치의 단백질 질량분석법 등 일반인들이 궁금해하는 과학상식들을 다뤘다.저자는 속도와 속력의 의미를 비교하며 벡터와 스칼라를 설명한다.일상용어와 전문용어간의 괴리현상도 밝힌다.1만 6000원. ●한국의 부자들(한상복 지음,위즈덤하우스 펴냄) 북미 아이스하키 리그의 살아있는 전설 웨인 그레츠키에게 기자가 물었다.“어떻게 그렇게 아이스하키를 잘 할 수 있나요?” 그레츠키는 이렇게 대답했다.“특별한 비결은 없습니다.퍽이 오는 곳에 미리 가서 기다리고 있으면 됩니다.” 저자의 입장 또한 그레츠키와 똑같다.부자들은 돈을 좇지 않고,돈이 오는 길목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1만 1000원.
  • ‘걷기의 역사’ 思惟를 따라 걸어본 적 있나요

    장 자크 루소는 ‘고백록’에서 이렇게 말했다.“나는 걸을 때만 명상에 잠길 수 있다.걸음을 멈추면 생각도 멈춘다.나의 마음은 언제나 나의 다리와 함께 작동한다.” 걷기를 처음으로 신성한 이데올로기로 만든 루소에게 걷기는 곧 존재 방식이었다.홀로 산책하면서 그는 사유와 몽상에 잠긴 채 살아갈 수 있었고,자족적일 수 있었으며,자기를 배반한 것으로 여긴 세상보다 오래 살아남을 수 있었다.걷기와 사유에 대해 할 말이 많았던 또 한 명의 철학자는 쇠렌 키에르케고르다.“지금 거리 저 아래에서 풍각쟁이의 노랫소리가 들린다.멋지다.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우연하고 사소한 것들이다.”라고 한 그는 일기에서 모든 작품을 걸으면서 구상한다고 고백했다. 미국의 문화비평가이자 환경운동가인 레베카 솔닛이 쓴 ‘걷기의 역사’(김정아 옮김,민음사 펴냄)는 사유의 방편이자 영감의 원천인 걷기의 역사를 본격적으로 다룬 인문교양서다.저자는 걷기와 생각하기,걷기와 문화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아내며 속도 위주의 현대인에게 걸을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함을 역설한다. 걷기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보다 오래됐다.하지만 걷기를 의도적인 문화적 행위로 본다면 그 역사는 불과 몇 세기 전 유럽에서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저자는 헤겔이 걸었다는 하이델베르크의 필로소펜베크,칸트가 매일 산책했던 쾨니히스베르크의 필로소펜담,키에르케고르가 언급한 바 있는 코펜하겐의 ‘철학자의 길’ 등을 따라가며 걷기와 철학의 관계를 짚어나간다. 걷는 행위는 단순한 이동수단에서 산책이란 문화적 개념으로 발전했다.누구보다 열정적으로 걷기를 즐겼던 인물은 영국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걷기는 그의 삶과 예술의 중심이었으며 세상을 대하는 방식이자 시를 쓰는 방편이었다.그의 시는 대부분 길을 거닐며 친구나 스스로에게 큰 소리로 읊으면서 지은 것이란 얘기도 있다.워즈워스 이후 걷기는 19세기 낭만주의자들을 규정하는 징표가 됐다.그러나 18세기까지만 해도 걸어서 여행하는 사람은 야만인이나 기인 취급을 받았다. 걷기는 종종 내면의 투쟁을 상징적 행동으로 옮기는 방식이 되기도 했다.소금을 만들어 영국의 세제법을 이겨낸 간디의 ‘소금행진’이나 ‘마틴 루터 킹 암살 30주년 추모행진’,프란체스코 수도회가 이끈 ‘네바다 사막체험’,핵폐기물 처리장 건설을 반대하는 인디언 부족의 ‘영혼의 달리기 대회’,농민조직을 결성한 케사르 차베스의 탄생을 기린 ‘정의를 위한 행진’ 등에서 보듯 걷기는 다양한 문화적·사회적·정치적 의미를 갖는다. 20세기 초는 걷기 클럽의 황금기였다.미국의 ‘시에라 클럽’은 생태계를 파괴하는 국가정책에 저항했고,오스트리아의 ‘자연의 친구들’은 귀족의 공유지 독점에 반대했다.그리고 중세의 방랑학자와 음유시인을 모방한 독일의 ‘소년 방랑 철새회’는 권위주의에 저항했고 포크송을 부활시켰다.정치색에 상관없이 걷기를 즐겼던 이들은 세상을 담장 없는 정원으로 만들었다.갈 곳을 잃은 사람들에게 사회적 결속감을,산업화로 인한 비인간적 흐름에 저항력을,사회 변화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유토피아적 이념을 제공했다.이렇듯 자연에 대한 열정과 맞물린 걷기는 사회적 해방과 긴밀하게 연관돼 있다. 이 책은 각 도시를대표하는 작가들의 삶을 보여준다.그리고 도시의 역사와 걷기의 역사를 나란히 펼친다.19세기 영국엔 무기력한 군중이 넘쳐났다.당시의 도시 보행 문제를 철저하게 파헤친 작가가 찰스 디킨슨이다.뉴욕을 남성적인 도시로 간주하는 저자는 휘트먼,긴즈버그,오하라,보즈나로빅츠 같은 게이 시인들이 뉴욕 거리를 찬양한 것을 자연스러운 일로 본다.센트럴 파크엔 배회하는 길이 있었다.이곳은 게이들의 배회 장소로 ‘결실의 들판’이란 별명이 붙었다. 파리는 위대한 보행자들의 도시다.파리를 ‘19세기의 수도’라고 부른 발터 벤야민은 ‘만보객(漫步客)’을 학문의 주제로 삼았다.‘파리를 거니는 예민하고 고독한 남자’의 이미지를 풍기는 만보객의 특징은 여유.파리에선 거북을 데리고 산책하는 것이 유행하기도 했다.1920년대 말 파리에 정착한 벤야민은 자신이 좋아한 문학작품의 한 조연처럼 일생의 대부분을 떠돌며 살았다.위대한 도시의 방랑가였다. 여성의 걷기는 사회적으로 적잖은 제약을 받았다.제인 오스틴의 소설 ‘오만과 편견’은 그 정황을 생생히 보여준다.저자는 여성이 걷기 위해 치러야 했던 숱한 희생을 보여준다. 19세기 말 영국 여성들은 밤에 부적절한 거리를 걸어다녔다는 이유만으로 창녀로 몰려 경찰서에서 ‘의학검사’를 받았다.거부하면 감옥에 갇혔으며 검사 결과 처녀인 경우에만 풀려났다.당시 프랑스에서도 경찰은 노동계급의 여성을 임의로 체포할 수 있었다.체포된 여성들은 대부분 유죄판결을 받아 생라자르 감옥에서 혹사당하거나,매춘부로 등록해야만 풀려날 수 있었다. 현대에 들어서도 사정은 크게 달라진 게 없다.미국 시인 실비아 플래스는 열아홉 살 때의 일기에 “여성으로 태어난 것,그것이 나의 끔찍한 비극”이라고 적고 있다.저자는 제인 오스틴에서 버지니아 울프,실비아 플래스까지 여성 작가들이 남성작가들과 달리 협소한 주제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같은 여성의 제한된 걷기와 무관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오늘날 ‘걷기의 상실’을 안타까워한다.그저 러닝 머신 위에서 시시포스처럼 똑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현대의 군상.저자는 그 무기력한 ‘박제인간’의 모습을 떠올리며 다시금 걷기의 활력을 회복하자고 호소한다.1만 5000원. 김종면기자 jmkim@
  • 철학 읽어주는 남자/ 복권·패션 등에 담긴 철학 이야기

    철학 읽어주는 남자 탁석산 지음 / 명진출판 펴냄 대중에게 잊혀진 철학은 의미가 없다.생활을 벗어나 뜬구름 잡는 이야기만 잔뜩 늘어놓는 게 철학이라면 영원히 대중의 관심을 돌릴 수 없을 것이다.“철학의 위기는 철학자의 잘못 탓이며,우리 철학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꾼이 없다.”고 말해온 탁석산씨가 새 책을 냈다.‘철학 읽어주는 남자’(명진출판 펴냄)에서 그는 철학이 어째서 우리 일상과 동떨어졌는지를 조목조목 뜯어봤다. 무엇보다 우리 철학에서 현장감을 앗아간 주범은 철학의 ‘교양주의’.보통사람들에게는 암호문이나 다름없는 ‘순수이성비판’같은 책이 교양서로 둔갑하는 학문적 편견이 1920년대 일본으로부터 물건너 와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는 것.철학은 고도의 이해력이 필요한 전문지식이건만 이를 아무런 여과없이 대중 앞에 내놨으니 결국 외면당할 수밖에 없었다는 논리다. 그렇다면 이제라도 철학을 현실로 돌이킬 방법은 없을까.지은이는 철학자들의 역할에서 해답을 찾는다.보통사람들이 물리학을 몰라도 휴대폰이나 퍼지 에어컨을잘만 쓰듯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생활속 철학을 가공해 내놓는 것은 철학자들의 몫이란 주장이다.행복,운명,사랑,섹스,패션,성형수술,복권,스포츠….평범한 삶 속의 15가지 테마를 골라 쉽고 재미있는 철학적 해설을 펼쳐보인다. 서양철학의 기세에 밀려 왜소해진 한국철학의 가치를 돌아보게도 한다.1만 2000원.
  • [편집자문위원 칼럼]겸손하고 친절한 신문

    우리에게 겸손이나 친절이라는 덕목은 나날이 그 빛을 잃어가고 있다.언론도 예외가 아니다.수시로 거만하고 불친절하다.로마의 철학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서로에게 겸손하고 친절한 것이 정의로운 것이라고 했다.영국의 사상가 버트런드 러셀은 베이징을 방문하고서 동양은 서양사회가 잃어버린 겸손과 친절을 가지고 있다고 칭찬하였다.서양인이 감탄해 마지않는 우리의 덕목을 우리 손으로 버려서야 되겠는가.신문방송은 마땅히 겸손과 친절의 선두에 서야 할 것이다. 자기주장과 사실보도를 언론의 두 역할이라고 한다면 그 중에서도 후자인 충실한 사실보도가 주역할이다.언제부턴가 우리 언론들은 나름의 영향력 확대와 더불어 자기주장에 보다 매력을 갖게 된 것 같다.어떤 사설이나 칼럼을 읽고 있으면 지나친 독단으로 위압감이나 불쾌감마저 느끼게 된다.누가 이 사람에게 이런 전횡을 할 수 있도록 해줬던가? 언론은 사실보도와 진실추구의 본래 사명으로 돌아가야 한다.마침 대한매일이 3월1일부터 ‘주장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현상을 전달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신문본연의 자세를 지키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겸손하고 친절한 신문이 되는 것은 복잡하지 않다.기사 하나하나에서 사실에 충실하고 정보에 인색하지 않으면 된다.그리고 선악과 정오의 판단은 독자에게 맡기라. 예를 들어보자.2월28일자 1면에서 ‘콘텐츠’라고 쓰지 않고 ‘콘텐츠(내용)’라고 설명을 병기한 것이나,25일자 1면 중국 지진소식에서 지도를 넣어 위치파악을 용이하게 한 것이나,27일자 20면 일본의 여행지 니가타(新潟)를 소개하면서 인명과 지명에 간간이 한자를 같이 써 독자의 이해를 도운 것은 친절한 자세다.그러나 24일자 6면에서 ‘CEO칼럼’까지는 몰라도 (다행히 25일자 10면에서는 CEO를 최고경영자라고 병기하여 CEO가 Chief Executive Officer임을 밝혀주었다.) 26일자 2면의 ‘인권 태스크포스’를 ‘인권문제를 다루는 특별위원회로서의 인권 태스크포스’라고 풀어 적거나 ‘인권 태스크포스(task force)’로 영자표기라도 하지 않은 것은 무성의해 보인다. 그리고 27일자 25면의 가수 조용필씨 기사 중 ‘아내의유산’에서는 그의 ‘아내’의 이름을 독자에게 밝혀 줬어야 한다.유산의 주인공은 조씨가 아니라 타계한 그 여성 아닌가.같은 면의 기사에서 배재대 총장의 퇴장이 왜 아름다운지 설명이 부족하다.또 24일자 3면의 노무현 정부의 청와대 실장과 수석,보좌관의 학력란은 부실하다.필자의 정보만으로도 그 중 몇 사람은 해외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것으로 안다.그 학력을 빠뜨린 것은 무슨 이유인가.확인하기 귀찮아서 그랬다거나 국내학력만 쓰겠다는 자세라면 둘 다 문제가 있다.어떤 이유이건 일반독자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친절한 자세는 못된다.겸손과 친절을 잃는 것은 의식적이든 무의적이든 독자를 무시하는 행위다. 새 정부는 국민이 참여하고 국민과 함께 개혁하는 정부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대한매일도 부디 독자가 참여하고 독자와 함께 개혁하는 신문을 만들어 주기 바란다.하루가 다르게 대학과 기업,연구기관의 질적·양적 순위가 바뀌고 있다.노력여하에 따라서 대한매일이 최정상의 신문이 되는 것은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우선겸손하고 친절한 신문이 되자. 황 필 홍
  • 책꽂이/경험으로서의 예술 外

    ●경험으로서의 예술(존 듀이 지음,이재언 옮김,책세상 펴냄) 예술은 모름지기 액자를 떠나 일상 속에서 체험돼야 한다고 주장한 미국 철학자 존 듀이.이 책에선 특정 개념이나 양식이 필요 이상으로 한 시대의 예술을 정의하고 있는 상황을 파헤친다.전통미학이 제시하는 미학적 내용들을 검토한다는 점에서 ‘미학에 대한 미학’의 성격을 갖는다.4900원. ●세계 최고의 여성 CEO 칼리 피오리나(조지 앤더스 지음,이중순 옮김,해냄 펴냄) 60년 전통의 보수적인 컴퓨터업체 휼렛패커드가 전격 발탁한 최초의 아웃사이더 CEO 피오리나의 도전과 승부를 기록.피오리나가 100대1의 경쟁을 뚫고 휼렛패커드 CEO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회사의 전략적 비전 결여와 ‘대기업병’인 무기력,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날카롭게 진단했기 때문이다.그는 ‘완벽’이란 그물에 걸려 적기를 놓치고 마는 잘못을 고치는 데 힘을 쏟았다.1만원. ●프란츠 카프카의 고독(마르트 로베르 지음,이창실 옮김,동문선 펴냄) 작가 카프카 작품의 유일한 주제는 그 자신이었다.카프카는 다민족 국가였던 오스트리아 제국에서 유대인이란 국외자의 운명으로 살아야 했다.카프카의 텍스트는 종종 불투명하고 설명을 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카프카 자신이 모든 면에서 ‘불가능한 글쓰기’를 시도했기 때문이다.이 책은 카프카가 어떻게 이런 문제를 극복해 가는가를 밝힌다.1만 8000원. ●자살의 미술사(론 브라운 지음,엄우흠 옮김,다지리 펴냄) 자살의 역사는 편견의 역사다.괴테는 영국인을 두고 매일 옷을 갈아입어야 하는 지루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살하기도 하는 민족이라고 비꼬았다.자살학자 찰스 무어는 앉아서 일하는 직업과 육식을 자살의 한 원인으로 봤다.미술은 자살이란 죽음의 형식을 어떤 이미지로 묘사하고 해석해 왔을까.자살의 시각이미지들을 살핀다.1만 5000원. ●내 영혼의 리필(리처드 존슨 지음,한정아 옮김,열린 펴냄) 영적 활력을 잃지 않고 살 수 있도록 유도하는 12편의 묵상 모음.저자는 작가 주디트 비올스트의 책 ‘꼭 필요한 상실’을 인용,우리는 무엇인가를 잃을 때에만 성장할 수 있다는 역설적 진리를 전한다.저자에 따르면나이듦은 ‘축소 속의 성장’‘분열 속의 조화’혼란 속의 평화’를 이루는 과정이다.7500원. ●시는 붉고 그림은 푸르네1(황위평 엮음,서은숙 옮김,학고재 펴냄) 선진시대부터 청말과 현대에 이르기까지 2000여년에 걸친 중국 시와 회화의 발전상을 보여주는 시화감상서.상하이 교육방송에서 방영된 프로그램 ‘시정화의(詩情畵意)’를 책으로 옮긴 것으로,학생이 질문하고 스승이 대답하는 대화형식으로 꾸몄다.주나라의 ‘시경’에서부터 청말 담사동의 시까지,중국 최초의 백화에서부터 부포석과 진자장의 그림까지 한자리에 모았다.1만 5000원. ●호모 파버(막스 프리슈 지음,봉원웅 옮김,생각의 나무 펴냄) ‘독일의 카뮈’로 불리는 스위스 태생의 작가 막스 프리슈의 소설.기계문명의 노예로 전락한 현대인의 절망과 사랑을 그렸다. 라틴어 ‘호머 파버’는 기계인간이란 뜻.호모 사피엔스,즉 예지의 인간과 대립되는 말이다.예지의 인간이 ‘생각하는 인간’을 뜻한다면,호모 파버는 실용적인 것,기술적인 것,계산적인 것을 중시하는 인간을 상징한다.영화‘양철북’의 명장 폴커 슐렌도르프 감독의 영화 ‘사랑과 슬픔의 여로’의 원작소설.9500원.
  • [길섶에서] 천사와 악마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라캉은 “인생은 탐욕이다.”라고 말했다.그의 말처럼 사람은 누구나 탐욕을 갖고 있다.인간의 삶이 현대화될수록 ‘탐욕과 욕망의 전차’는 더욱 빠른 속도로 질주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에게 탐욕만 있는 것은 아니다.도덕적 양심과 선한 마음도 있다.포르투갈 출신의 세계적인 작가 주제 사라마구는 그의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상황에 따라 바뀌는 인간의 마음을 잘 보여준다. ‘자동차를 운전하던 남자가 갑자기 눈이 멀었다.한 사람이 눈먼 남자의 차를 몰고 집까지 데려다 주었다.눈먼 남자는 주차장에 차를 세워달라고 말했다.그러나 그는 차를 몰고 도망갔다.차도둑은 처음부터 악한 의도를 가졌던 것은 아니다.오히려 관용과 이타심의 감정으로 눈먼 남자를 도우려했다.그러나 범죄의 유혹을 억제하지 못했다.’소설의 내용은 영화 ‘천국의 나날들’에 나오는 한 대사와 맥이 통한다.“인간의 마음속에는 천사와 악마가 절반씩 존재한다.”천사의 마음이 절반이라면 그것은 큰 위안이다. 이창순 논설위원
  • [씨줄날줄] 평화 만들기

    독일 철학자 피히테는 1807년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에게 점령당한 베를린에서 그 유명한 ‘독일 국민에게 고함’이란 연설을 통해 평화를 깨고 유럽 전역을 전쟁의 공포와 살육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나폴레옹에 대항해 단호히 싸울 것을 호소하고 있다. “나폴레옹의 정신에 도덕적 의무감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그는 인류의 구원자가 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그러나 그는 신의 손에 쥐어진 채찍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우리의 벌거벗은 등을 채찍 앞에 내어놓고 핏자국이 맺혀서 주여!주여!하며 청할 것이 아니라 그 채찍을 꺾어 버려야 합니다.”힘의 행동을 권고한 것이다. 인류를 전쟁의 공포에 휩싸이게 했던 아돌프 히틀러도 외교적 협상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무력으로써 목적한 바를 얻으려고 한다면 강해야 한다.그러나 협상으로써 그것을 얻으려고 하면 두 배로 강해야 한다.” 역시 힘의 논리다. 나폴레옹 시대가 지난 지 200년,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었던 지난 세기를 마감하고 새 시대를 맞았건만 전쟁과 테러의 공포에인류는 여전히 ‘벌거벗은 등을 채찍 앞에 내어놓고’ 떨고 있다.‘이에는 이,눈에는 눈’이라는 철저한 힘의 논리와 보복이 되풀이된다.새천년 벽두에 일어난 9·11테러와 그에 따른 보복 전쟁이 이어지고 있는 2003년 봄,우리 한반도도 예외가 아니다.북한핵 문제로 야기된 불편한 북·미 관계는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불안한 나날을 이어가게 한다. 민족상잔의 처절한 아픔을 경험한 이 땅에서 전쟁이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이런 염원을 모아 평화를 지키자는 운동이 시작돼 반갑다.불교,원불교,성균관,한국민족종교협의회,천주교,개신교,성공회 등 7대 종단이 모두 참여하는 한국종교인평화회의와 사회원로 92인은 지난주 ‘한반도평화만들기운동’ 세미나와 서명식을 가졌다고 한다.이어 3월 초 발대식과 함께 범국민운동으로 확산해 오는 7월27일 휴전 50주년일에 ‘한반도평화선언’을 채택하는 것으로 일단 막을 내린다.이들은 한반도의 평화는 세계평화와 직결된다고 보고 미국과 북한,국제사회에 대해서도 전쟁과 테러의 악순환이 없길 촉구하고 있다.우리 사회는 물론 세계도 귀기울이며 동참하면 좋겠다. 최홍운 hwc77017@
  •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묻지 맙시다 /전쟁·파시즘…해법은 없나

    움베르토 에코 지음 / 이세욱 옮김 신을 믿지 않는 자는 무엇을 믿는가,지식인은 오늘날의 전쟁에 관해 무엇을 말할 수 있으며,파시즘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참을 수 없는 것에도 정말 관용은 필요한 것인가. 이런 첨예한 질문들,현대적 세계의 도덕적 진실을 함축하는 명제에 대한 움베르토 에코의 대답은 간명하다.“정의와 자유에 관한 한 우리 모두가 공동책임자”라는 것이다. 이탈리아의 철학자이자 소설가인 움베르토 에코(71)가 전쟁,파시즘,신문,종교,관용 등 첨예한 현대의 도덕적 주제를 다룬 책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묻지 맙시다’(열린 책들,김운찬 옮김)는 에세이 집이면서도 지구촌이 직면한 문제에 대한 지성적 고찰의 전형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효한 텍스트이다. 책에서 그는 자신의 지성적이면서 도덕적인 사유체계를 가감없이 드러내 보인다.예컨대 “전쟁은 단지 낭비에 불과하며 생명과 자원의 고갈을 가져올 뿐”이라거나 “파시즘의 고유하고도 특징적인 요소들이 순수를 가장한 채 오늘날의 세계에서도 그 추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은 ‘모든 사람들이 세계사적 인식의 중심’이라고 믿는 그의 사유체계를 단적으로 드러내 보여 주는 단면들이다. ‘다섯 개의 도덕론’이 원제인 책은 에코가 1996∼98년에 발표한 것으로 ‘낯설게 하기의 즐거움’,‘무엇을 믿을 것인가’(이세욱 옮김) 등 다른 두 권과 함께 출간됐다.전 3권 각 7500원. 심재억기자 jeshim@
  • 확률&통계...인생역전 꿈꾸는 ‘인류의 게임’

    ‘인생역전의 꿈’으로 전국을 들끓게 하는 로또 열풍,어느 때보다도 많은 여론조사가 등장했던 지난해 대통령선거.그 이면에는 확률 게임이 움직였다.벼락맞는 것보다 낮은 확률을 믿고 일확천금의 꿈을 꾸며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복권을 샀다.확률에 의한 대통령선거 표본조사는 투표함을 열기 전에 승자와 패자의 길을 갈랐다.통계와 확률의 역사와 응용사례 등을 한림대 수리정보과학부 이기원(정보통계학) 교수가 짚어봤다. 확률게임의 역사는 4만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대인들이 확률게임 도구로 사용했으리라고 생각되는 양이나 염소,사슴의 복사뼈가 등장한다.4면 주사위로 간주할 수 있었던 복사뼈는 이집트 제1왕조대에도 게임 도구로 사용됐는데,기원전 1800년경에 유행하던 게임인 ‘사냥개와 자칼’ 같은 것을 들 수 있다.이 게임은 복사뼈를 던져 나타나는 면에 따라 사냥개와 자칼을 각각 일정한 수만큼 전진시키는 게임으로 우리의 윷놀이와 비슷한 종류다. 리나라에서는 경주 안압지에서 발굴된 14면 목제 주사위가 가장 오래된 확률게임 도구다.이 주사위는 6개의 사각면과 8개의 삼각면으로 되어 있는데 각 면에는 ‘술 석잔 한번에 마시기’‘스스로 노래 부르고 스스로 마시기’‘술을 다 마시고 크게 웃기’ 등으로 해석되는 벌칙이 적혀 있다. 현대에 가장 대표적인 확률게임은 복권이다.로또를 포함한 복권은 세 가지로 분류된다.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것은 추첨식 복권이다.번호가 적힌 복권을 판매한 뒤 추첨해 동일한 번호에 당첨된 사람에게 해당 상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1400년대 네덜란드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우리나라에서는 1969년 9월15일 시작된 주택복권이 여기에 해당한다.초기 액면금액은 100원,1등 당첨금은 300만원이었다. 복권 중 가장 인기 있는 로또는 1530년 이탈리아의 제노아에서 처음 시작되었다고 한다.또한 우리나라에서 1990년부터 발행돼 인기를 끌었던 즉석식 복권(찬스복권)은 스위스에서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여러 겹으로 접힌 봉함 속에서 번호를 기재해 사전에 추첨한 당첨번호와 대조하는 방식과 긁어내기 방식이 쓰인다. 근대적인 의미의 확률이론을 처음도입한 사람은 이탈리아의 지롤라모 카르다노(1501∼1576)였다.의사,철학자,공학자,수학자 등 다양한 재능을 갖고 있던 카르다노는 그의 사후인 1663년에 발견된 책을 통해 확률이론의 창시자로 알려졌다.이 책은 4면 주사위라고 할 수 있는 복사뼈와 주사위의 차이점을 설명하면서 각각의 게임에서의 승률에 대해서 처음으로 논했다. 카르다노의 사후에는 갈릴레오-갈릴레이(1564∼1642)가 등장한다.그에게 던져진 문제는 3개의 주사위를 던져서 합이 9가 되는 구성(1-2-6,1-3-5,1-4-4,2-2-5,2-3-4,3-3-3)과 10이 되는 구성(1-3-6,1-4-5,2-2-6,2-3-5,2-4-4,3-3-4)은 6가지로 똑같은데 왜 실제 게임에서는 10에다 거는 쪽이 더 유리한지를 구명하는 작업이었다.갈릴레이는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세 개의 주사위를 던졌을 때 나올 수 있는 216가지의 경우가 모두 같은 정도로 나타날 수 있다고 생각하고,그 중에서 합이 9인 경우는 25가지 방법으로 나올 수 있고 합이 10인 경우는 27가지 방법으로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사실상 이전 사람들이 같은 확률로 나온다고 생각했던 조합들이 사실은 다른 확률로 나타난다는 것을 보인 것이다.예를 들어 1-2-6과 같이 모두 다른 값으로 합이 9가 되는 방법은 6가지가 있으나 1-4-4처럼 두 주사위가 같은 값이 나오면서 합이 9가 되는 방법은 3가지,3-3-3과 같이 모두 같은 값으로 합이 9가 되는 방법은 1가지밖에 없다.따라서 합이 9가 되는 방법은 6+6+3+3+6+1=25이지만 같은 식으로 계산했을 때 10이 되는 방법은 6+6+3+6+3+3=27이 된다. 릴레이의 풀이 이래 유명한 일화는 17세기 수학자 블레즈 파스칼과 피에르 페르마 사이의 정리다.‘슈발리에 드 메르(Chevalier de Mere)의 문제’라고 널리 알려져 있는 이 논의는 파스칼과 페르마의 사이에 오간 서신들을 통해 윤곽을 살필 수 있다.페르마의 답장 내용으로 미루어 이 당시에 이미 우리 고등학교 수준에서 다루고 있는 확률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은 이미 정립이 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문제의 핵심은 확률과 기댓값의 차이에 대한 명백한 인식이다.프랑스의 귀족으로 도박에 심취해 있던 드 메르의 문제 제기는 다음과 같았다. ‘주사위를 한번 던질 때 1이 나올 확률은 1/6이다.4번 던져서 최소한 한번은 1이 나올 확률은 2/3(=4×1/6)가 된다.또 주사위를 2개 던질 때 더블-에이스(둘 다 1이 나오는 것)가 나올 확률은 1/36(1/6×1/6)이니까 주사위 두개를 24번 던질 때 최소한 한번 이상 더블-에이스를 기록할 확률도 2/3(24×1/36)이다.그러나 실제로는 앞 경우가 아주 조금 더 자주 나오는 것은 왜일까.’ 이 문제를 갈릴레이 방식으로 풀기가 힘들다는 점은 그 경우의 수로부터 명백해진다.2개의 주사위를 24번 던질 때 나올 수 있는 경우는 2.2×10의 37승(=36의 24승)가지가 된다.이 문제를 요즘 방식으로 풀면 그 확률이 각각 51.8%와 49.1%로 계산돼 도박사들의 실제 경험이 옳다는 것을 알 수 있다.파스칼과 페르마는 근대적 확률계산 방식을 이용하여 이 문제를 풀어 의문을 해소시켰다.드 메르 등이 계산한 것은 주사위 한 개를 4번 던질 때 1이 나오는 횟수의 기댓값과 주사위 두개를 24번 던질 때 더블-에이스가 나오는 횟수의 기댓값에 불과하며 확률이 아니다. 또를 살펴보자.로또와 관련된 기댓값의 예로는 800억원이 넘는 1등 상금을 걸고 초미의 관심이 집중됐던 10회차 추첨에서 1등이 13명 나온 것을 들 수 있다.한번 베팅에 1등이 나올 확률은 814만 5600분의1로 알려져 있다.10회차 때 복권 총 판매량이 2100억원 가량이었으니까 이를 게임당 베팅금액 2000원으로 나누어 보면 총 베팅 횟수는 1억 500만회가 된다.따라서 1등으로 당첨되는 베팅은 모두 12.89(1억 500만×1/814만 5600),즉 13명의 1등 당첨자가 기대되는 것이고 이는 실제와 딱 맞아떨어졌다.같은 방식으로 11회차를 계산해봐도 비슷하다.복권 총판매량 919억원에 같은 방법을 적용하면 1등 당첨자는 5.6명으로 기대된다.실제로 11회차 1등은 5명이었다. 통계에 대한 연구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적절한 용어의 선택과 활용이다.지난해 대통령선거 여론조사와 관련해 등장했던 황당한 용어 중에 ‘당선가능성’이라는 것이 있었다.선거결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해당 후보 지지여부와는 전혀 상관없는 지표로서 쓸데없이 유권자들의 생각을 어지럽게만 할뿐이다.불확실성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불확실성을 재는 도구들인 확률과 통계에 대한 일반인의 수요가 늘어날 것이다. ★선거여론조사와 신뢰도-표본 공평할수록 예측 정확해진다 확률은 선거예측에서 중요하다.적정한 표본에서 높은 확률을 구해 결과를 정확히 예측하는 것이다.미국에서 오늘날과 같은 정밀한 여론조사의 틀이 갖춰지기까지는 역사에 남을 만한 2차례의 ‘망신’이 있었다.첫번째는 1936년 대통령선거 여론조사다.무조건 많은 표본을 모으면 되는 걸로 착각하고 있었던 리터러리 다이제스트사(社)는 1000만장이 넘는 설문지를 보냈고,이 중 회수된 240만장을 바탕으로 민주당 프랭클린 루스벨트 후보의 완패를 예측했다.그러나 결과는 완전히 반대였다.충격으로 그 회사는 몰락했다.두번째는 48년 대선이다.‘할당법’이라는 주관적인 조사방법에 의존하고 있었던 당시 여론조사기관들이 한결같이 민주당 해리 트루먼 후보의 패배를 예측했지만 결과는 역시 반대였다.이후 여론조사 결과가 불리하면 잘못된 조사결과가 실린 신문을 흔들며웃고 있는 트루먼의 사진을 내보이는 후보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두차례의 실패는 모두 확률론에 기초한 통계학의 기본원리를 제대로 적용하지 못한 결과다.통계학의 원리는 ‘표본추출의 공평성’이다.즉,여론조사 결과가 실제와 다르게 나오는 것은 표본추출이 공평하지 못했다는 반증이다. 표본이 모집단을 얼마나 잘 닮느냐 하는 문제는 표본의 크기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박빙의 대결이 아닌 한 선거결과 예측에 필요한 표본 크기는 1000명 내외로도 충분하지만 오차의 폭을 줄이려면 표본의 규모를 키워야 한다.오차를 절반으로 낮추기 위해서는 표본 크기를 4배로 늘려야 한다.이는 2000년 미국 대선 때 애초 1600명 내외의 표본으로 조사를 수행했던 갤럽이 선거 1주전 표본을 6000명 수준으로 늘린 데서 잘 나타난다.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지지율 예측에서 실패했지만…. 36년과 48년의 실패는 표본에 공화당 지지자들이 꾸준히 많이 반영되도록 설계돼 있었던 탓이었다.이는 여론조사에 확률적 방법을 도입하게 하는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이후로는대선 여론조사가 빗나가는 경우가 드물었는데,76년 지미 카터가 당선될 때와 2000년 갤럽의 해프닝이 전부다. 우리나라 대선 여론조사 역사는 15년 정도에 불과하지만 97년과 2002년 대선에서 보았다시피 상당히 정확한 예측력을 자랑한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