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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타이완 51년만의 정권교체]”모든 당 참여 초당적 연정구성”

    *천수이볜 총통당선자 인터뷰. 천수이볜(陳水扁) 타이완 총통 당선자는 18일 “홍콩이나 마카오처럼 하나의 국가 속에 다른 체체를 유지하는 ‘일국양제(一國兩制)’ 방식에 의한 중국의 통일방안을 거부한다”고 밝혔다. 또 빠른 시일 안에 모든 당이 참여하는 초당적 연합내각을 구성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당선이 확정된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 나라를 확고하게 지키는것은 우리의 단순한 과제가 아닌 의무”라며 “이같은 결심은 결코 흔들리지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천 총통 당선자는 그러나 타이완이 독립을 추진할 경우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중국측 위협을 의식,“타이완해협의 안정과 평화는 양안 국민들의 공통된 소망”이라며 중국과의 대화를 적극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양안문제의 우호적 해결과 상호협력을 증진시키기 위해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이나 주룽지(朱鎔基) 총리,왕다오한(王道涵) 해협양안관계협회장등 중국측 고위대표의 타이완 방문을 환영하며 자신도 아무 전제조건 없이중국을 방문할 용의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타임지와의 단독회견에서 “5월20일 취임 전에라도 당과 출신 지역을 초월한 초당적인 연합내각을 가능한 한 빨리 구성해 양안문제 등 현안을해결해나갈 계획”이라며 국민당 등과의 연합 의사를 밝혔다. 천 총통 당선자는 “미국과 일본,가능하다면 싱가포르 등을 방문해 안보 문제를 논의하고 싶다”고 말했다.천 총통 당선자는 “이번 선거는 51년간의국민당 일당지배에 종지부를 찍고 타이완의 새로운 미래를 선택한 국민들의역사적 결정이었다”며 “용감한 타이완 국민들이 사랑과 희망으로 두려움과악에 맞서 민주주의를 지켜냈다”고 선거의 의미를 부여했다. “이제는 개혁을 신속히 추진하고 1년여 동안 치열하게 벌어진 선거전 과정에서 빚어진 국론분열을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리덩후이(李登煇) 총통을 만나 국내 및 국제적인 현안들에 대해 조언을 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리 총통은 타이완의 민주주의 발전과 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며 업적을 높이 평가하는 일도 잊지 않았다. 타이베이(臺北) 김규환특파원·김균미기자. *천수이볜은 누구. 최초의 정권교체를 이루며 타이완에 새 시대를 연 천수이볜(陳水扁·49)은민주화를 향한 지치지 않는 결의와 뛰어난 머리를 바탕으로 한 효율적 행정처리로 국민당 일당독재를 끝낼 인물로 일찍부터 꼽혔다.여기에 그의 부인위수전(禹淑珍·46) 여사가 정치적 테러로 하반신마비가 돼 국민들 사이에정치적 신념을 위해 큰 희생을 치른 비극적 인물로 각인됐다. 51년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사탕수수농장 일용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으나초등학교과 국립타이완대를 수석졸업하는 등 명석한 두뇌로 빈곤을 벗어나대학 4학년때부터 변호사로 활동했다. 그의 정치 입문은 79년 민주화시위를 주동한 반체제잡지 ‘포모사’ 발행인의 변호를 맡은 것이 계기가 됐다. 81년 타이베이 시의회 의원에 뽑혀 야심만만한 변호사에서 정치인으로 탈바꿈했으나 85년 펑라이다오(蓬萊島)라는 반체제잡지 제작에 참여한 혐의로 8개월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출소 후 활동을 재개,89년과 92년 입법의원 선거에 연속 당선됨으로써 정치적 기반을 다졌다.94년12월타이베이 시장에 당선돼 차세대 지도자로 부상하면서 그해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21세기의 젊은 지도자 100명’에 선정됐다. 타이베이 시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타이베이의 윤락산업에 철퇴를 가하는가하면 만성적인 교통체증을 해소하고 범죄율을 크게 낮추는 등 큰 인기를 끌었다.그러나 그의 타협할줄 모르는 강경한 자세는 동지들로 하여금 그에게등을 돌리게 만드는 한편 많은 적을 만들어 98년 재선에 실패하는 또한번의좌절을 맛봤다. 지난해 홍콩의 ‘아시아위크’가 선정한 ‘차세대의 아시아 정치인 20인’에 오르기도 한 그는 98년의 실패를 자신의 외곬수적인 단점을 고치는 교훈으로 삼아 최대 약점으로 지적되는 타이완 독립문제에 있어서도 자신이 중국과의 전쟁을 부르는 말썽꾼이 아니라 평화주의자임을 내세우는 타협안을 들고나와 마침내 첫 정권교체라는 새 역사를 만들어냈다. 76년 부유한 의사의 딸이었던 위 여사와 결혼해 1남1녀를 두고 있다. 유세진기자 yujin@. *뤼슈롄 부총통 당선자. 타이완의 첫 여성 부총통뤼슈롄(呂秀蓮·56)은 타이완 민주운동과 여권운동을 최일선에서 이끌어온 강성(强性) 여성투사. 천수이볜(陳水扁)의 국립타이완대 선배로 대학을 수석졸업한 뒤 미 하버드대에서 법학석사 학위를 받았다.귀국 후 타이완의 야당 결성 운동에 참여,과격 민중노선을 대표하는 잡지인 메이리다오(美麗島)의 발간에 참여하면서 타이완 민주화 및 여성운동에 뛰어들었다.79년12월 ‘메이리다오 사건’에 연루돼 계엄통치 시절이던 이듬해 1월 군법재판소에서 징역 12년형을 선고받고복역하다가 85년 병 보석으로 석방됐다.독신인 그는 석방 후에도 85년 민진당 창당에 관여하고 메이리다오지 부사장직을 역임하면서 민주화운동에 적극참여했으며 페미니즘 문학을 전문으로 하는 출판사를 이끌어왔다. 98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는 타오웬 현장에 당선됐으며 총통부 국정 고문직도 맡고 있다.영어와 타이완 현지어에 능통하며 부패 일소와 외교 문제에 큰 관심을 보였다. 타이완의 유엔 재가입 및 중국의 타이완 침공시 독립 선포를 주장하는 한편“타이완은 부패 공직자들의 천국이 되서는 아니다”는 일갈로 국민당의 오랜 부패에 싫증을 느낀 국민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유세진기자. *51년 통치 끝난 국민당. 19일 오후 타이베이시의 국민당 중앙당사 앞에는 이틀째 총통선거 패배에격분한 지지자들이 몰려들어 당간부들의 차량 유리창을 부수고 경찰과 몸싸움을 하는 등 격렬한 항의시위를 벌였다. 국민당의 롄잔(連戰) 후보가 참패하고 민진당의 천수이볜(陳水扁) 후보가 총통에 당선, 1949년 중국대륙에서타이완(臺灣)으로 밀려난 이후 처음으로 야당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51년만에 야당으로 밀려난 국민당은 중국 현대사의 영욕(榮辱)을 대변하고있다.49년 중국대륙의 국공내전에서 패배한 장제스(蔣介石)가 휘하 군대와국민당 정부관료,200여만명의 피란민들을 이끌고 타이완섬으로 옮겨온 이후타이완은 그와 그의 후계자가 통치해 왔다. 1912년 쑨원(孫文)에 의해 중국본토에서 창당된 국민당은 삼민(민족·민주·민생)주의를 바탕으로 청나라 제정(帝政)을 무너뜨리기 위한 혁명조직으로출발했다. 25년 쑨이 사망하고통치권을 물려받은 장은 각 지역을 분할 통치하던 군벌에 대한 북벌(北伐)을 개시했다.28년 대륙의 대부분을 지배했으나,30년대 이후 마오쩌둥(毛澤東)이 이끄는 공산당과 대적했고,45년 일제가 패망하면서 치열한 국공내전을 벌였다. 49년 12월 국공내전에서 패배한 국민당 정부는 타이완섬으로 넘어와 계엄령을 선포하고 행정·입법·사법부 3권을 장악, ‘일당 독재’정치를 폈다.철저한 반공주의를 내걸고 54년 미국과 상호방위조약에 서명,미국으로부터 군사·경제원조를 받아 경제발전에 주력해 고도성장을 이뤘다.경제는 성장했지만 타이완인들의 기본권과 언론자유는 보장받지 못하고 크게 제한돼 왔다. 급기야 71년 10월 유엔 안정보장이사회(안보리) 상임이사국 지위를 중국에뺏기고 유엔에서 축출되는 외교적 수모를 맞본데 이어,세계 각국이 중국과외교관계를 수립하면서 국제사회의 ‘고아’신세가 됐다. 75년 장 총통이 사망하자 아들인 장징궈(蔣經國)가 총통에 올랐다가 88년 1월 숨지자,내성인(內省人) 출신의 리덩후이(李登輝)가 총통에 취임했다.리총통은 복수정당 허용 등 민주화 작업을 추진했으며,탄탄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아시아 금융위기에서 비껴나는 업적을 쌓았다.리 총통은 타이완성 주석직의 롄을 행정원장(총리)에 발탁하고 99년 3월 당내 최대 라이벌이던 쑹을 축출,국민당 총통후보로 그를 선출했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의 참패로 ‘양지에서만 자라온’ 국민당은 피할 수없는 분열 위기를 맞게 됐다.중국시보(中國時報)·연합보(聯合報) 등 현지언론들은 “쑹 후보가 이날 신당 창당을 선언함으로써 국민당내 쑹 지지자의신당 이동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는 데다,천 당선자도 안정의석 확보를 위해 국민당·건국당 등과의 연정을 모색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타이베이(臺北) 김규환특파원 hay@. *타이완 주요 정치사건일지. □1945년 일본의 50년 식민통치 종식. □47년 타이완인 봉기를 국민당 군대가 무력진압,수천명 희생. □49년 12월 장제스(蔣介石) 총통 국민당 국공내전서 패하자 망명정부 수립. □55년 미국과 상호방위조약 체결. □71년 유엔이 유엔대표권을 박탈하고 중국을 인정. □75년 장제스 총통 사망. □79년 미국,중국과 외교관계수립.미 의회는 타이완에 방위용 무기공급 약속. □88년 장징궈(蔣經國) 총통 사망으로 타이완 출신 리덩후이 총통 승계. □93년 중국과 싱가포르서 첫 대화.유엔 가입 시도. □94년 총통 직선제 도입. □95년 리 총통 미국 방문.중국이 보복으로 수차례 군사훈련 실시,양안 긴장 고조. □96년 3월 리 총통의 재선을 막기 위해 중국이 타이완을 겨냥해 한차례 미사일 발사,두차례 모의 전쟁연습.미국은 인디펜던스호와 니미츠호 등 항모 2척 타이완 해역에 급파. □2000년 3월18일 제10대 총통선거.민진당 천수이볜 후보 당선. □2000년 5월20일 천수이볜 당선자 취임.
  • [사설] ‘흑색선거전’ 국민이 막아야

    지역감정 자극과 색깔론 제기 등 흑색선거전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영남정권 창출론’과 ‘영도다리 집단 자살론’으로 노골화된 지역감정 부추기기는 마침내 ‘괴수론’에 이르러 위험수위를 넘어버렸다.자민련 김종필(金鍾泌)명예총재는 엉뚱한 ‘71년 지역감정론’을 주장한 데 이어 시대 착오적색깔론까지 들고 나와 국민의 비난을 사고 있다. 새 천년 새 시대를 여는 16대 총선이 이렇듯 상대 정당이나 후보에 대한 헐뜯기로 치닫는 데에는 몇가지 원인이 있다.가장 먼저 지적할 것은 정치인들의 ‘변화 거부증’이다.사회 각 부문이 새로운 시대에 대비해서 나름대로개혁과 변화를 추진해오고 있으나 정치권은 개혁을 외면한 채 구 시대적 발상으로 국민의 표만 노리고 있다.시민단체들이 후보 부적격자로 지적하자 강력하게 반발하는 작태가 그것을 말해준다.다음으로 지적할 것은 선거전선(戰線)의 혼란이다.말이 ‘1여3야’ 대결이지 누가 우군이고 누가 적군인지 정확히 가릴 수 없는 상황이다.한솥밥을 먹던 정당간의 공방이 더 거세기 때문이다.2년 동안 공동정부를 운영해오던 자민련이 총선을 앞두고 야당을 선언하고 민주당을 공격하고 나온다.또한 한나라당 일부 정치인들이 뛰쳐나와 당을 만들어 한나라당을 모질게 공격하는 마당이다. 선거전이 이렇게 된 데에는 우리 정치의 망국적 병폐인 지역 구도가 작용하고 있다.의석수가 적은 충청권을 지지 기반으로 하고 있는 자민련은 이번 총선에 사활을 걸고 있다.게다가 민주당 이인제(李仁濟)선대위원장과 한나라당이회창(李會昌)총재의 연고권(緣故權)주장이 자민련의 위기감을 높였다. 김명예총재의 극단적인 언동도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영남권의 종주권을 놓고 벌이는 한나라당과 민국당의 쟁투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지역감정 자극은당장에는 표를 얻을지 모르나 결과적으로 국민 화합을 깬다는 데 망국적 죄악성이 있다. 흑색선거전이 비난을 받는다는 것은 정치인들도 알고 있다.그러나 표를 모으는 데는 무엇보다 효과적이라고 믿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검찰은 지역감정 선동 행위를 법으로 다스리겠다고 하나 실제로는 법리상 처벌이 어렵다고한다.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국민이 나서서 정치인들의 구 시대적작태에 철퇴를 가해야 한다.총선시민연대와 각 지역 시민단체들이 지역감정선동 행위에 대해 전면전을 선포하고 나섰다.국민주권을 자각하고 있는 유권자라면 이같은 운동에 적극 동참할 일이다.언론 또한 흑색선거전에 대해서는가차없이 냉혹한 비판을 보내야 한다.
  • [중국 ‘제2부패와의 전쟁’] ‘간 큰 관리’급증

    *실태와 대책. 중국 정부가 고질적인 부정부패의 사슬을 끊기 위해 칼날을 세웠다.90년대후반부터 부패척결 운동을 지속적으로 펴왔으나,수그러들기는 커녕 만연돼 21세기 초강대국 도약에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주룽지(朱鎔基) 중국 총리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제9기 3차회의 개막일인 5일 보고를 통해 “지금까지의 반부패 운동이 효과를 거두고 있지만,인민들은 아직 체감하고 있지 못하고 있어 부패와의 전쟁을 벌이겠다”고 단호한 의지를 보였다. 이같은 방침은 부정부패에 연루된 관리들이 늘어나는 데다,날로 집단화·조직화 양상을 띠는 등 전방위로 확산되는 탓.홍콩의 빈과일보는 현재 부패에연루된 성(省)급 고급관리만도 17명이 조사받고 있으며,99년 한해동안 13만2,400여명의 관리들이 조사를 받았다고 6일 보도했다. 중국 최고인민검찰원의 발표에 따르면 97년 이후 적발된 부정부패사건은 10만3,000여건.이중 행정기관이나 사법기관이 관련된 사건만도 7,600여건에 이른다.특히 건설 현장의 부패현상은 더욱 심각하다.95년 이후 준공됐거나 현재 진행중인 50만위안(약 6,500만원) 이상의 공사 21만5,400여건중 40%가 부실공사로 드러났다. 중국 관리들이 부정부패에 쉽게 빠져드는 것은 개혁·개방 이후 시장경제체가 도입되면서 ‘돈이 최고’라는 황금만능 풍조의 확산이 그 이유.물신주의 풍조가 사업 인·허가과정의 복잡한 규정과 맞물리면서 부정부패의 온상이되고 있는 것이다.상하이(上海)의 한 기업인은 “중국에서 사업을 하려면 적어도 20개의 관청을 상대해야 한다”며 “관리들이 꼬투리를 잡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고 귀띔한다. 이 때문에 부정부패 현상은 중국인들의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현안으로등장했다.여론조사 결과 부정부패 현상이 95년 이후 처음으로 실업문제를 제치고 중국인들의 가장 큰 사회 관심사로 꼽고 있다고 관영 영자지 차이나데일리가 보도했다. 따라서 중국은 부정부패를 일소하기 위해 4가지 반부패 유형에 대해 철퇴를 내리기로 했다.반부패 유형은 관리들의 관료주의와 형식주의,도덕적 해이와 비효율성,호화사치 풍조,직권을 이용한뇌물·향응 요구라고 중국 당국은지적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 발생한 광둥(廣東)성 잔장 및 푸젠(福建)성 샤먼(厦門)위안화(遠華)그룹 밀수사건.잔장사건은 시위서기와 세관장 등 250여명의 정부 관리가 연루됐는데,규모는 무려 110억위안(약 1조4,300억원)으로 드러났다.조사중인 샤먼 위안화사건은 지금까지 200여명의 관리가 체포돼 조사받고 있으며,규모는 무려 800억위안(10조4,000억원)에 이른다. 중국 정부의 대책은 비교적 단순하다.일벌백계로 다스린다는 것.잔장사건에 연루된 전 당서기 천퉁칭(陳同慶) 등 200여명의 관리중 천 전 당서기 등 14명이 사형을 선고받았고,3명은 곧바로 사형이 집행됐다.저장(浙江)성 인민은행 닝보(寧波)분행장 쑨마오번(孫茂本)은 70만위안(9,100만원) 수뢰혐의로사형선고를 받았고,역시 부패·수뢰혐의로 체포된 밀수방지 책임자 리지저우(李紀周) 공안부(副)부장도 사형선고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 새로운 정풍(整風)운동인 산장(三講·학습과 정치,의기를 논하자)교육을 통해 의식개혁을 실시하고,중앙·지방정부의 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것도 부정부패 일소 대책중의 하나이다. 김규환기자 khkim@. *부패 사례. 중국의 대표적인 부패스캔들은 ‘신(新)중국 건국 이래 최대의 부패스캔들’로 불리는 푸젠(福建)성 샤먼(厦門) 위안화(遠華)그룹 밀수사건과 광둥(廣東)성 잔장시 밀수사건이다. 샤먼 위안화그룹 사건은 규모가 무려 800억위안(약 10조4,000억원)에 샤먼시 공안부 쉬간루 출입국관리국장 등 당·정 간부를 포함,관련자만도 200여명에 이른다.자동차·전자제품·석유를 수출입하는 과정에서 샤먼시 고위관리와 세관직원 등이 광범위하게 연루된 대규모 권력형 비리로 드러났다.이스캔들로 구속되거나 조사받고 있는 고급간부는 리지저우(李紀周) 공안부 부부장 등 수십명에 이른다. 잔장 석유밀수사건은 광둥성 잔장시 전 당서기 천퉁칭(陳同慶)과 그의 아들 천리성(陳勵生) 등이 밀수업자들과 짜고 석유를 조직적으로 밀수하다 적발된 것으로,규모는 110억위안(약 1조4,300억원)에 이른다.앞서 ‘담배왕’으로 불리던 중국의 전설적인 기업인추스젠도 부패사건에 연루돼 무너졌다.79년 윈난(雲南)성 쿤밍(昆明)의 담배회사 훙타사 사장으로 취임한 그는 생산량·수출량·품질·납세액 등에서 중국내 1위를 차지하는 등 아시아 최대의 담배회사로 성장시켰다.추스젠은 그러나 공금 355만달러(약 39억7,600만원) 유용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건설현장 부패스캔들도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검찰원에 적발된 뇌물수수죄 10만건중 부실공사 관련이 무려 62%에 이른다.지난해초 충칭(重慶)시의차이훙(彩虹) 다리가 무너져 40여명이 사망·실종됐고,98년 양쯔(揚子)강 대홍수로 장시(江西)성 주장(九江)시 주제방이 붕괴돼 엄청난 인명,재산 피해를 냈다. 김규환기자
  • [공직탐험] 검찰지청장(3)

    “일반 형사사범에 대한 사정(司正) 뿐만 아니라 지역민들을 두루 살피는게 중요합니다” 수원지검 평택지청 박영수(朴英洙·48)지청장은 지난해 6월 취임 이후 ‘지역에 기여하고 지역주민에 가까이 가는 검찰이 되자’는 복무지침을 내세웠다.지역검찰의 역할이 형사권 행사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역개발에 참여하고 지역정신을 선도하는 것이라는 박지청장의 소신을 반영한 것이다. 박 지청장은 취임하자마자 평택항과 포승 공단이 들어서는 이 지역에 개발을 둘러싼 인·허가 비리와 부동산 투기조짐이 보이자 전담 수사팀을 결성,타지에서 온 부동산 전문 브로커들을 제압했다.또 청정지역인 안성 지역에는 공해산업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폐기물처리업자 44명을 사법처리하고 이 중4명을 구속했다.기지촌과 사창가가 형성되어 있어 강력사범이 많았던 이 지역에 마약류 사범 단속을 벌여 47명을 구속하기도 했다. 예에서 보듯 지역 사정업무의 최고 지휘 사령탑인 지청장은 지역주민의 생활을 침해하는 범죄에 철퇴를 내리는 동시에 지역개발을 선도하는 데막중한 임무를 맡고 있고 실제로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강원도 모 지청장을 지낸 K모 검사는 “지청장의 사정 방향과 강도에 따라지역사회의 분위기가 달라진다”면서 “사정업무의 방향을 설정할 때는 지역적 특성과 주민들의 의식이나 전통 등을 고려해 사정의 강도를 조절해야 될때도 많다”고 지적했다. 지청장은 또 청의 수장(首長)으로서 검사들이 처리하는 각종 경찰 송치,검찰 인지,고소 사건 등에 대한 지휘·결재권을 행사한다.특히 차장 검사가 없는 부치(部置) 이하 지청장은 구속·불구속 사건,고소장,진정·내사사건 등을 직접 배당하기도 한다. 관내 최고의 기관장으로서 지역유관단체 행사에 참여해야 함은 물론 검찰내에 검사와 일반직 직원간의 보이지 않는 갈등을 보듬어야 되는 것도 지청장의 빼놓을 수 없는 임무다. 여기에다 지청장은 예산집행 업무에 대한 지휘와 결재권도 가진다.지청장이 임의로 사용할 수 있는 예산은 대부분 인건비인 검찰 운영비와 수사비로 지청 규모에 따라 월 400만∼1,000여만원 정도에 이른다.몇년 전부터 수사출장비와 교통비가 현실화돼 공식 운영비로 지청의 살림살이를 꾸려나가는 데는별다른 어려움이 없다는 게 일선 지청장들의 한결같은 얘기다. C모 지청장은 “예전에는 운영비가 모자라 지역 유지들의 도움을 받거나 지청장이 사재(私財)를 터는 경우도 비일비재했지만 요즘은 돈에 대한 부담에서는 자유스러운 편”이라고 말했다. 이종락기자 jrlee@
  • 정진섭 컴퓨터수사부장 “해커 잘못된 윤리의식에 철퇴”

    “해킹을 일삼는 네티즌들의 저급한 의식을 끌어올리고 디지털 범죄에 대한법의 잣대를 세우는 데 주력하겠습니다” 지난 21일 발족한 서울지검 컴퓨터수사부 정진섭(鄭陳燮·44) 부장은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컴퓨터 수사의 토대를 마련하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정부장은 “해커들은 처음에는 개인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선에서 출발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국가기관이나 기업의 컴퓨터 망을 파괴하는 등 윤리의식이 결여된다”며 “해커들의 무질서한 의식에 철퇴를 내리겠다”고 말했다. 현재 컴퓨터 수사부의 시스템 구축에 주력하고 있는 그는 8명의 검사를 포함한 31명의 수사팀과 컴퓨터 수사기법을 개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해킹과바이러스 등을 이용한 사이버 테러,인터넷 사기, 인터넷 음란·도박,소프트웨어 절도 등 유형별로 컴퓨터 범죄를 분류한 뒤 이에 맞는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해 분주하다. 지난 94년 대검찰청 전산 담당관으로 재직하면서 컴퓨터와 인연을 맺은 정부장은 부장검사 서열에선 단연 ‘컴퓨터 박사’로 통한다.사무실이나 집에서 항상 컴퓨터와 씨름하며 ‘사이버 수사’에 대한 연구와 기획에 몰두하고있다. 그는 “컴퓨터 범죄가 전파의 신속성과 국경을 넘나드는 광역성 때문에 어떤 범죄보다도 영향력이 크다”면서 “범죄자들에 대한 처리방향과 기준마련에 힘써 사이버 시대에 부응하는 사정기관의 면모를 보이겠다”고 말했다. 현재 전국 6대 도시 지방검찰청에 컴퓨터 범죄수사반이 구성되어 있지만 부단위의 규모로 출범하기는 서울지검이 처음이다. 이종락기자 jrlee@
  • [매체비평] 조선일보 김대중 주필, 시민단체에 2중 잣대

    조선일보 김대중(金大中)주필은 현역언론인 가운데 가장 영향력있는 인물로꼽힌다. 작년 10월 ‘시사저널’이 창간 10주년을 맞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그는 ‘가장 영향력있는 언론인 1위’로 선정된 바 있다. 그러나 김 주필의 ‘1등’은 ‘보통 1등’이 아니다.시사저널에 따르면,김주필은 10년째 1등 자리를 지켜왔으며,특히 신문·방송은 물론 ‘글쟁이’와언론사주까지를 망라한, 범언론계의 ‘통합챔피언’이라고 한다.언론이 ‘대통령만들기’를 자처하는 우리의 현실에서 10년째 ‘챔피언’ 자리를 지켜온그의 영향력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러나 ‘당대 최고의 논객’이라는 김 주필에 대한 평가는 의외로 부정적이다.전북대 강준만교수(신문방송학)는 그를 ‘국가안보를 상품화하는 칼럼니스트’,‘처세의 달인’등으로 혹평한다.또다른 언론학자는 “김 주필은대통령·야당총재·청와대가 아니면 상대를 안하는,교묘한 칼럼쓰기에 능숙하다”면서 “스스로를 거물로 만들려는 고도의 전략으로 보인다”라고 꼬집었다. 명성·영향력에 비해 그에 대한 평가가 이처럼 극도로 부정적인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최근 그 ‘물증’ 하나가 발견돼 언론계 안팎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물증’은 바로 ‘김대중칼럼’.지난해 8월 28일자 조선일보에 쓴‘내년 총선때 보자’라는 칼럼에서 그는 “한국의 유권자들은 국회의원들의오만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면서 “우리가 그런 의원들에게 철퇴를 가하지 않는 한 한국정치는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다”고 토로했다. 이어 “다가오는 4월 총선거-여기에서 우리는 일대 유권자 혁명을 시도해야한다”고 주장하고 “많은 시민단체들은 이런 운동에 앞장서는 것이 진정한NGO정신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적었다. 그가 본문중에서 열거한 ‘떨어뜨려야 할 국회의원’의 기준은 총선시민연대 등이 발표한 공천반대자 선정기준과 흡사하다.이러한 점에서 “시민단체들의 낙천·낙선운동을 김 주필이 부추긴 게 아니냐”는 ‘음모론’이 나올법도 하다.그런데 그런 김 주필이 최근 ‘음모론’제기론자들의 앞에 나서진두지휘하고 있다. 지난 1월 15일자 ‘낙선운동감상법’이란 칼럼에서 김 주필은 “시민운동단체들의 ‘낙선운동’은 법을 어기면서라도 하겠다는 강도(强度)로 보아 결코 범상한 일이 아닌 것 같다”고 ‘우려’를 표명하고 “낙선운동을 각론적으로 관찰하면 거기에서 특정 정치세력의 결과적인 부상(浮上)을 읽을 수 있다”며 총선시민연대 등 시민단체의 낙천·낙선운동이 마치 특정 정치세력과연계된 것처럼 ‘음모론’의 연기를 피워댔다. 특히 김 주필은 “시민단체가 낙선운동이 어느 정도 소기의 목적을 이룰 수있다면 이들은 시민운동의 주도권을 잡으면서 특정 정치세력의 후원자를 넘어 조종자로 변모할 수도 있다는 것을 눈여겨 봐야 할 것”이라며 전 국민의80% 이상이 지지를 보낸 시민단체의 낙천운동과 향후 행보에 대해 ‘삐딱한시각’을 내비쳤다. 불과 5개월전에는 ‘선구자’처럼 나서 시민단체들이 ‘유권자혁명’의 깃발을 드날려야 한다고 외치던 그가 이제는 오히려 딴죽을걸고 나선 것이다. 마지막으로 김 주필은 “이제 한국정치는 정당인,정치인들만의 것이 아니며그렇다고 말 그대로‘시민’들의 것도 아닌 상황으로 가고 있다”며 글을끝맺었다.그렇다면 김 주필이 주장한 ‘낙선운동’은 과연 어떤 것이며,지난해 8월 28일자 칼럼에서 거론했던 ‘유권자’와 지난 1월 15일자 칼럼에서지칭한 ‘시민’은 어떻게 다른 것일까.언론계 안팎의 궁금증이 한층 높아지고 있다. 정운현 특집기획팀 차장jwh59@
  • 언론계 인적청산 본격제기

    총선시민연대 등 시민단체의 공천 부적격자 명단공개가 일대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다음 ‘명단공개’ 대상으로 언론계를 지목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이는 시민단체의 명단공개 이후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한 ‘음모론’을 일부 언론이 여과없이,또는 오히려 증폭시켜 보도한 것이 계기가 되고 있다. 물론 언론계내 ‘문제인물’에 대한 인적청산 주장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현정권 출범 직후에도,지난해 ‘중앙일보사태’가 한창 논란일 때도 나왔다.그러나 명단발표에 앞장서야 할 언론계가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는’데다이 일에 ‘총대’를 메겠다고 자처하는 곳이 없어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지못했다.그러나 이번은 상황이 좀 다른 것같다. 언론계 일각에서는 ‘정치인 낙천·낙선운동이 성공하면 다음은 언론 차례’라는 전망이 공공연히 나도는 가운데 최근 몇몇 언론(인)의 낙천운동 ‘딴죽걸기’는 자기보호본능의 결과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언론개혁의 전도사’를 자임하는 강준만 전북대(신방과) 교수는 지난 3일자경향신문 ‘정동칼럼’에서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하고 있는 ‘음모론’의 배후는 일부 언론”이라면서 “언론을 바꾸지 않고는 정치개혁은 절대 불가능하다”는 평소의 소신을 거듭 강조하고 ‘언론계의 인적청산 운동’에불을 지폈다.이보다 앞서 지난 1일 언론개혁시민연대(언개연·상임대표 김중배)는 언론계나 언론정책 담당부처 출신 전·현직 의원과 전직 관료 가운데공천 부적격자 12명의 명단을 작성,총선시민연대측에 전달했다.이 명단에는지난 80년 언론인 대량학살을 주도한 허문도씨와 한나라당 공주지구당 위원장 이상재씨를 비롯해 언론인 출신도 더러 포함됐다.범언론계 차원이긴하나문제인물의 ‘명단공개’는 처음이다. 한편 한겨레신문 손석춘 여론매체부장은 대상자를 현역언론인으로 국한하는 대신 목소리의 강도를 훨씬 높였다.한겨레 1월 27일자 ‘손석춘의 여론읽기’에서 그는 “추락하는 정치인 못지않게,아니 그 이상으로 마땅히 추락해야 할 언론인들이 권세를 누리고 있다”고 지적하고 “총선시민연대에 참여한언론관련 시민단체들은적어도 수구언론인들이 캄캄한 밀실속에 숨긴 ‘증거물’에 빛을 비춰야 한다”며 명단공개 문제를 본격 제기하였다. 손 부장은 그 대상자로 ▲국보위 참여자 ▲군사정권에 추파를 보낸 자 ▲민주화 운동가들을 난동자·소영웅주의자로 매도한 자 ▲학생운동 대표들을 향해 “철퇴를 내리라”고 주문한 자 ▲노동자들을 용공분자 또는 빨갱이로 내몬 자 등을 구체적으로 거론하였다.이는 시민단체의 공천부적격자 선정기준을 언론인에 그대로 적용한 것이다.여기에 추가하자면 ▲사주나 대주주의 사적 이익에 영합하여 왜곡·편파보도를 일삼은 자 ▲총선·정권교체기 등 격변기에 시세에 영합한 곡필자 ▲특정 정치인·정파의 하수인 노릇을 한 소위 ‘○○장학생’ ▲기타 부정·부패언론인 등도 대상에 포함돼야 할 것으로지적된다.김주언 언개연 사무총장은 “문제언론인에 대한 명단공개는 관련자료가 풍부해 별 어려움은 없다”며 “적절한 공개시점을 찾고 있다”고 밝혔다. 정운현기자 **
  • 체육 특기생 비리 ‘소문이 사실로’

    지난 5일 아마야구 감독들이 무더기로 구속되면서 새해 벽두부터 체육특기생 입학 비리가 또다시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98년 아이스하키와 축구에서 10여명이 사법처리 된 이후 정부는 각종 대책을 내놓았지만 체육특기생 비리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 단적인 사례였다.검찰의 잇단철퇴와 정부대책에도 불구하고 해결되지 않고 있는 특기생 비리 실태와 처방,정부대책 등을 알아본다. ■실태와 원인 일선학교는 학교체육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턱없이 모자라다 보니 학부모의 주머니를 털지 않으면 체육부를 유지할 수 없다고 푸념한다.결국 모든 문제는 여기서 비롯된다. 운동으로 자식들이 명문대학에 입학하기를 바라는 학부모들은 고교 감독을통해 대학 감독에게 떳떳하지 못한 돈을 건네게 되는 구조가 문제인 셈이다. 이 때문에 순전히 학부모의 주머니로 운영되고 있는 학교 체육구조가 특기생 입학 비리의 원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육부는 98년 대학 감독의 독단적인 체육 특기생 선발권을 박탈하고 사전스카우트를 금지하는 등‘특기생 입시부정 방지책’을 발표했으나 효과를거두지 못했다.정부가 학부모의 입김을 배제하고 직접 학교체육을 주도하지않는 한 처음부터 성공할 수 없는 정책이었다는게 일반적 시각이다. 대학을 나와야만 ‘행세’하는 일반의 인식도 문제로 작용한다. 이와 관련,일부 부유층에서는 특기생 입학을 명문대학 입학에 교묘하게 악용한 사례도 드러났다. 예컨대 승마의 경우 공부가 뒤처지는 자녀에게 잠깐 잠깐씩 ‘벼락 교습’을 시켜 대학 특기생 모집 때 지원하는 수법이 쓰이고 있다. 특기생 입학 대상자가 전국의 특기생 지원자를 모두 합쳐도 모집정원을 밑돌아 힘들이지 않고 대학 문을 들어서게 하는 맹점을 파고든 것이다. 이처럼 만연한 비리를 말해주듯 어떤 지도자는 입학 알선을 제대로 못한다는 이유로 ‘왕따’ 당하는 웃지 못할 경우도 더러 있었다. 이번 사건에 연루된 H고 야구 감독 출신의 L모씨(36)는 “학부모들의 강압이 워낙 거세 끝내 수렁에 빠지게 됐다”며 고개를 떨궜다.이 감독은 결국 학교를 그만두었다고 말했다. H대학 감독을지낸 P씨(44) 등 다른 피의자들은 하나같이 “왜 우리만 속죄양으로 삼는 지 모르겠다”며 짐짓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그만큼 비리가 만연해 있다는 반증이다. 송한수기자 onekor@ ** 체육특기생 비리 정부대책은교육부와 문화관광부,대한체육회 등 정부 및 관련 단체는 체육특기생 입학비리를 뿌리뽑기 위해 본격적인 종합대책 마련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기본 골격은 ●차후에 비리가 발견돼도 입학취소 등 강력한 행정조치를 단행하고 ●대학자율에 따라 60∼80점으로 돼 있는 수능최소학력 기준을 상향조정하고 ●예·체능계 입시처럼 대학입시평가위원회를 별도로 두어 교차심사토록 하는 방안 등이다. 장기적으로는 유명무실해진 체육발전위원회를 활성화시켜 초등학교에서 대학까지의 체육특기자 육성·선발과 체육교육에 대한 종합적인 지도계획을 전담토록 하는 방안도 마련중이다. 이미 정부는 지난 98년 특기생 입시부정을 막기 위해 체육특기생 사전 스카우트 전면금지 등의 내용을 담은 ‘체육특기생 입시부정방지대책’을 확정했었다.그러나 막상 비리가 발견돼도 대학측이 감독이 임시직 또는 계약직임을 내세워 발뺌하는 사례가 많았다.따라서 보다 구체적이고 근원적인 대책마련에 나서게 된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새로 추진중인 대책 중 일부는 자칫 학교체육을 전반적으로위축시킬 우려가 크다는 지적도 있다.특히 수능점수 강화로 우수한 자질을가진 특기생들이 성적 부진으로 대학에 못가게 됨으로써 운동에만 전념해온학생이 진학에 어려움을 겪는 반면 성적요건만 갖추면 로비에 의해 대학에갈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줄 우려도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교육부는 “어차피 기량이 뛰어난 선수는 학업성적이 낮아도 실업 또는 프로로 진출할 수 있기 때문에 별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판단 아래이같은 방침을 고수할 뜻을 내비치고 있다. 박성수·류길상기자 ssp@ *체육과학연구원 안민석씨 “클럽활동 활성화를” 체육특기생 입학 비리를 막는 길은 무엇일까. 최근 ‘체육개혁 모임’을 발족시킨 체육과학연구원 안민석 선임연구원(37)은 “국가체육 발전이라는 대명제 아래 길게 내다보는 대책이 필요하다”고말한다.그는 단기적으로 보아 각 대학에서 특기자를 최대한 공정한 방법으로 선발·관리하도록 만드는 장치가 필요하지만 현체제에서 큰 줄기를 바꾸는데는 원초적인 장애가 존재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그는 ‘고양이와 생선론’을 제시했다.성적 지상주의가 판치는 마당에 대학(고양이)은 기량이 나은 선수(생선)를 선호할 수밖에 없고 이는 어떻게든 자녀를 진학시키려는 학부모의 뜻과 맞아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는 문제점 치유의 궁극적인 방안을 체육시스템 변화에 둔다.엘리트 체육이 주축인 우리 현실에서 선수란 운동만 하는 ‘기계’로 취급돼 학교조차‘공부와 담을 쌓아야 하는 사람’ 쯤으로 인식하기 때문.결국 선수는 실업팀에 입단해서도 오로지 ‘메달 메이커’로 취급받는다는 주장이다.이를 타개하기 위해 그는 지역별로 체육공동체를 이루는 클럽 단위의 활성화가 가장 바람직하다고 강조한다.학생이 학교생활은 학교생활대로 하면서 별도로 훈련받는 관리체계이다.참가자의 회비로 팀이 운영되면 재정독립이 이뤄져 지금처럼 개인(감독)이나 특정기업(후원자) 등으로부터의 강압이 없어진다는얘기다. 그는 최근 전임 지도자 등 재야 축구인들이 펼치고 있는 클럽활동 등이 좋은 본보기라면서 특기생 비리를 없애기 위해서는 엘리트 체육정책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송한수기자
  • 부채 200% 넘는 기업 ‘3단계 철퇴’/채권단 제재 어떻게

    연말까지 부채비율 200%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 채권단은 어떤 수순으로 기업들을 제재하나. 채권금융기관은 연말에 ‘불이행정도의 심각성’에 따라 제재조치를 선택하게 된다.점검결과 계획대로 구조조정이 진행되고는 있는데 세부적인 진행일정에 차질이 빚어질 경우 채권단과의 협의 하에 2개월 정도 시간을 벌 수 있다.반면 불이행정도가 심각하고 이행의지가 없다고 판단되면 내년 1월에 채권단은 곧바로 제재에 들어간다. 채권단은 1단계로 수정요구를 한뒤 2단계 신규여신 중단,3단계 기존여신 회수 순으로 단계적으로 제재의 강도를 높여나갈 계획이다.먼저 1개월 안에 이행하도록 요구하고 이행되지 않을 경우 2회 추가 요구를 한다.그 이후 신규여신 중단과 벌칙금리 부과,기존여신 회수,워크아웃 대상으로의 선정이라는수순을 밟게 된다. 그러나 반드시 단계별로 제재를 가하는 것만은 아니다.정부 관계자는 대우그룹을 예로 들면서 불이행정도가 심각할 경우 수정요구라는 단계를 밟지 않고 곧바로 2 또는 3단계 제재조치로 건너뛸 수 있다고 설명했다.정부 관계자는 “5대 그룹의 경우 지난해 말 체결한 수정재무구조개선약정에 제재기준이 포함돼 있고 상징성이 크기 때문에 철저하게 기준을 적용할것”이라면서 “그러나 아직까지는 대우를 뺀 5대 그룹이 모두 목표달성에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6대이하 그룹의 경우 재무구조개선약정에 제재기준이 명시돼 있지는 않지만 채권은행단이 관례에 따라 5대그룹과 마찬가지 수순으로 제재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균미기자 kmkim@
  • 신세기통신 엉터리 무료통화 서비스

    신규 패밀리요금제 이용자에게 무료통화시간을 제한해 부당한 요금을 징수한 신세기통신(017)이 통신위원회로부터 철퇴를 맞았다. 통신위원회(위원장 尹昇榮)는 4일 제51차 통신위원회를 열어 이용약관상 불명확한 규정을 내세워 패밀리간의 무료통화에 이용요금을 부과한 신세기통신에 대해 1억3,000만원을 반환토록 명령하고 패밀리 추가가입을 제한한 행위에 대해 5,0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신세기통신에 대한 조치는 ‘소비자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이 신세기통신이 패밀리 무료요금 가입자에 대해 요금을 부당하게 물리고 있다며 조사를 요청해온데 따른 것이다. 조사 결과 신세기통신은 지난번 10월4일 이용약관을 개정,신규 패밀리 가입자에게 무료통화 시간을 월 200분으로 개정하면서 무제한 통화가 가능한 기존의 패밀리요금 가입자가 패밀리 구성원을 추가하는 것을 부당하게 금지하거나 방해했다.또 이용약관의 불명확한 규정을 내세워 기존 패밀리요금 가입자와 신규 패밀리간의 무료 통화를 월 200분으로 제한한뒤 초과통화분에 대해 1억3,000만원의 요금을 부당하게 부과했다. 통신위는 또 5개 이동전화 업체들이 패밀리 요금제를 악용해 가입비를 면제하는 등 이용약관을 위반한 사실을 적발하고 SK텔레콤(011)에 대해 1억4,9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것을 비롯,한국통신프리텔(016) 4,300만원,신세기통신 4,000만원,LG텔레콤(019) 3,900만원,한솔PCS(018) 3,600만원 등 모두 3억7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가입비 할인 또는 면제건수를 보면 SK텔레콤이 3,604건으로 가장 많았고 신세기통신 49건,한솔PCS 115건,한통프리텔 66건,LG텔레콤 20건 순이다. 통신위는 이와 함께 LG텔레콤이 ‘수퍼클래스’ 가입자를 모집하면서 이용약관에는 의무가입기간을 설정할 수 없도록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컴퓨터를 3년 할부로 제공하면서 이동전화를 해지할 경우 컴퓨터 할부금을 일시에납부하도록 하는 등 해지권을 부당하게 제한한 사실을 밝혀내고 이를 중지할것을 지시했다. 통신위는 또 한국통신이 ADSL 서비스에 대해 최고 8Mbps의 속도가 가능하다고 광고했으나 실제로는 30분의 1 이하인 256kbps에 불과하다며 허위내용을광고하는 행위를 중지하고 시정명령을 내렸다. 조명환기자 river@
  • 사개위 발표 개혁안/재정신청 확대‘특검제 효력’

    사법개혁추진위원회(사개위)가 7일 발표한 개혁안 중 눈에 띄는 것 가운데하나는 재정신청(裁定申請) 대상 범죄를 확대한다는 것이다. 이 제도가 제대로 정착만 되면 정치권과 법조계에서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특별검사제를 대체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검찰이 특검제 도입을 저지하기 위해 재정신청 범위 확대를 양해했다는 분석도 있다. 재정신청은 현행 형법 제123∼126조에 공무원의 직권남용,불법체포·감금,폭행·가혹행위 등 3개 범죄로 국한되어 있다. 이런 이유로 재정신청은 ‘장식용’이라는 비판까지 받았다. 그러나 이번 사개위 개혁안은 공무원의 직무와 관련된 모든 범죄와 지방자체단체나 국회의원 등 선출직 공무원이 저지른 모든 범죄로 확대했다. 따라서 공무원의 독직사건은 물론 뇌물수수·횡령 등에 대해서도 재정신청을 통해 기소할 수 있게 된다. 특히 선출직 공무원이나 국회의원의 모든 범죄로까지 재정신청 대상을 확대한 것은 검찰의 정치적인 결정에 철퇴를 가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만 고위공직자나 국회의원이 아닌 ‘정치인’에 대해서는 검찰의 불기소처분에 대한 ‘대안’이 없다는 지적도 있다. 이종락기자 jrlee@
  • [대한광장] 마비된 안전의식

    동네에 도시가스가 시설되고 난 몇달 후였다.무엇이 잘못 됐는지 배관이 묻혀 있는 대문앞 4미터 도로가 걸핏하면 파헤쳐져 차량출입이 금지되고 길에서 파낸 시멘트 파편들이 길을 메워 통행을 어렵게 했다. 무엇보다 시멘트를 부수는 굴착기 소음에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지고 먼지또한 집주변을 덮쓰듯 해서 참지 못하고 대문을 박차고 나갔다.그리곤 “처음부터 철저하게 잘했으면 이렇게 두번 세번 파헤치지 않을 것 아니냐”하고 음성을 높였다. 그들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미안하다는 말도,자기들이 첫 공사를 하지 않았다는 책임회피의 어떤 변명도 하지 않았다.주민들의 질책에 면역이되어버린 사람들처럼 무표정에 무반응이었다.순간,섬뜩한 느낌이 왔다.YS정부 때의 엄청난 대형사고들이 떠오르고 사건이 터질 때마다 부르짖던 ‘안전’이 결국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저렇듯 무감각 면역만 생기게 한 것이 아닌가 싶어서였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들이지만 열차탈선,비행기 추락,배 침몰 거기다 땅속 가스폭발까지 하늘 땅 바다를 넘쳐 캄캄한지하로까지 뻗쳐지는가 싶더니,이듬해에는 멀쩡해 보이는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삼풍아파트가 종이 구겨지듯 붕괴하는,그야말로 귀신도 경악할 대형참사가 터지면서 수백명의 소중한생명이 비명에 사라지지 않았던가. 사건이 연발할 때마다 모든 입달린 사람들은 안전을 부르짖고,또한 피맺히게 우리의 안전불감증을 성토했다. 성토의 기세가 워낙 크고 절실했기 때문에 이후부터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제반 시설물에는 안전규칙이 필히 지켜질 것이라 믿었다.안전불감증에 고질화된 중증환자라 해도 나라가 흔들릴 만큼의 대형사고를 겪었으니 스스로 깨달아 변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을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불과 몇 년 후 또다시 가슴을 에이는 대형참사가 일어났다.돈독이오른 어른들의 상혼(商魂)과 행정 관계자들의 무책임한 처리로 가건물 컨테이너가 철골조 정상건물로 둔갑되어 억만금 같은 어린 생명들을 화염으로 앗아가게 하고 말았다. 고사리손의 어린아이들이 얼마나 숨막히고 뜨거웠을 것이며 공포에 떨었을까 생각하면 명치께가 난자당하듯 저며지고 그들을 사지(死地)에 몰아넣은죄책감으로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다.부모의 심정은 어떨까 싶으면 그만 말이 막힌다. 그간 우리들의 안전불감증에 어떤 변화도 생기지 않았던 것이다.불과 수년전의 참사들을 TV드라마 시청하듯 건성으로 구경하고 세월따라 까맣게 잊어버렸다는 것인지,아니면 불감증이 불치의 질환으로 전신을 마비시킨 것인지실로 멍할 뿐이다. 세계의 방송 언론들은 한국을 당연히 교통사고 세계 1위에다 대형사고 1위국으로도 부상시켜 놓고 있다.누구의 자조(自嘲)처럼 과연 우리 민족은 북한의 게릴라 수출,마약밀매 기술 등과 함께 세계에서 유별난 특성의 종족인 것인지 새삼 음미해 보게도 된다. 물론 안전불감증이 불치의 질환이 아님은 자명한 사실이다.새로 태어나듯새 삶을 시작하듯 기초부터 완벽하게 원칙을 고수하는 ‘다지기교육’을 받을 자세만 되어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변화·완치의 가능성은 있는 것이다. 어른들의 무자비한 횡포로 비명에 스러진 어린 원혼들의 피울음을 이번에야말로 망각해서는 아니 되리라는 생각이다.얼굴을 붉혀 부끄러워하면서 최소한의 어른 자존심을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타인에게 피해를 주고 그것을 기억하고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음은 아직도순수한 인성(人性)을 지녔다는 것이고 존경받을 수 있는 인물됨으로의 여백이 있다.사람답게 살 만한 세상의 가능성 또한 펼쳐져 있는 것이다. 무감각 무반응의 섬뜩한 마비와 납빛 면역현상은 지구의 황폐화 초래와 인간되기 거부의 자초 외에 더는 아니기에 씨랜드 아기들 참사사건은 어른들뇌리에 깊숙이 각인되어 자기 단근질의 철퇴로 영원히 살아 남았으면 싶다. 필자만의 바람일까만은. [김지연 작가]
  • [외언내언] 6월 항쟁

    그대는 가는가/어딜 가는가/그대 등 뒤에 내리깔린 쇠사슬을/마저 손에들고 어딜 가는가/이끌려 먼저 간 그대 뒤를 따라/4천만 형제가 함께 가야 하는가/아니다/억압의 사슬을 두 손으로 뿌리치고/짐승의 철퇴는 두 발로 차버리자/그대 끌려간 그 자리 위에/민중의 웃음을 드리우자/그대 왜갔는가/어딜 갔는가/그대 손목 위에 드리워진 은빛 사슬을/마저 팔찌 끼고 어딜 갔는가/ 87년 6월9일 교내 시위 도중 경찰이 쏜 직격최루탄을 맞고 쓰러진 연세대 이한열(20·경영학과 2년)군은 사고 전 자신의 운명을 예견이라도 한 듯 군사독재의 참담한 현실에 대한 자기성찰과 다짐을 담은 습작시를 남겼다. 그는 27일간의 혼수상태 끝에 7월5일 새벽 스무살의 짧은 생애를 거뒀다.민주제단에 온몸을 바친 것이다. 연세대에서 열린 영결식장에서 이군의 어머니 배은심씨가 단상으로 올라와“젊은이들이여!우리 한열이가 못다 이룬 민주화를 꼭 성취해주세요”라고울먹이면서“살인마 물러가라,살인마 물러가라”고 오열,영결식장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던 때가 어제같다. 이한열군을 필두로 수많은 젊은이들의 희생은 잠자던 국민의 양심을 일깨우고,봇물처럼 흘러넘친 민중의 힘은 마침내 독재의 철옹성을 깨뜨리는 데 성공했다.6월26일의 민주헌법쟁취국민평화대행진에 전국 33개 시,4개 군의 180만명이 참가하는 거대한 민중의 힘 앞에 독재세력은 6·29항복선언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6월항쟁은 1926년 6월10일 조선 마지막 임금 순종의 장례식을 기해 일어난독립만세운동과 함께 민족해방과 반독재민주화운동이 우연찮게 같은 날에 접목되는 우리 근현대사의 물줄기를 바꾼 날이기도 한다. 6월민주항쟁 12주년에 즈음하여 행사추진위원회(공동대표 김승훈 신부)는각계 610인 선언을 발표하고 정부에 강력한 개혁을 촉구했다.또 여러가지 행사를 통해 항쟁의 정신을 기린다.이와 함께 민주재단 및 민주화운동기념관추진위가 구성되어 지금까지 여러 갈래로 나누어진 민주화운동사업 추진 주체를‘민주화운동기념사업추진준비위원회’로 통합하고 기념관 건립과 민족민주열사 합동추모제,민주상 제정,연구소 등을 세워 민주화운동 계승과 민주인사 지원사업을 벌이기로 했다. 6월행쟁을 모태로 하여 태어난 김대중(金大中)정부는 개혁을 통해 그 정신을 잇고 각종 사업에 적극 협력해야 할 것이다.
  • 前하원의원 조나단 에잇컨

    영국 사법부가 6년동안 60여만원의 ‘향응’ 혐의를 부인해온 정치가에게철퇴를 가했다. 영국 고등법원은 8일 언론사와 명예훼손 소송 중인 조나단 에잇컨 전 하원의원(56)에 대해 위증죄와 재판방해 모의죄를 적용,18개월형을 선고하고 법정수감했다. 재판부는 에잇컨이 2년전 열렸던 재판에서 자신의 부인이 호텔 숙박비의 일부인 4,257프랑(약65만원)을 계산했다고 위증하는 한편 부인이 딸과 함께 파리에 머무르고 있었다는 허위 증언진술서를 작성,딸에게 서명케 한 사실이입증됐다며 이같이 선고했다. 에잇컨은 보수당 총리감으로 지목받기도 했던 전도유망한 정치인이었다.그러나 영국 가디언 지와 그라나다 TV의 ‘행동하는 세계’ 프로그램이 지난 93년 10월 당시 국방부 조달국장으로 사우디 왕가와 방산계약을 진행중이던그가 한달전 사우디 왕가소유의 파리 리츠호텔에서 주말을 보내고서 숙박비를 아랍 사업가에게 대납토록 했다고 보도하면서 그는 영락의 길을 걷게 됐다. 내각의 자체 조사에서 사업가가 아니라 부인이 숙박비를 계산했다는 에잇컨의 진술이 받아들여 지고 각료선물제한법 위반 혐의도 벗은 뒤 94년 7월 존메이저 총리에 의해 재무차관으로 임명되자 대납 의혹은 잠잠해지는 듯했다. 그러나 두 언론사는 그해 10월 에잇컨이 영국을 방문하는 아랍고객의 채홍사 노릇을 한 것은 물론 방산회사인 BMARC의 중역으로서 이 회사가 유엔제재를 무시하고 이란에 무기를 판매한 사실을 알았을 것이라고 보도했다.에잇컨은 95년 10월 명예훼손 소송을 냈다. 끈질긴 가디언지가 최근 에잇컨의 부인이 문제의 97년 6월 주말동안 파리가 아닌 스위스에 있었다는 새로운 증거를 내놓자 그는 무릎을 꿇었다.명문 이튼과 옥스포드를 졸업하고 보수진영에서 승승장구하던 그는 거짓말의 대가로막대한 법률비용 지출에 따른 파산과 이혼,굴욕만을 얻었을 뿐이다. 박희준기자 pnb@
  • 환타지 로드·서울88

    슬롯머신 업소는 지난 93년 슬롯머신업계의 대부 정덕진(鄭德珍)씨가 구속되면서 철퇴를 맞았다. 93년 12월에는 투전기업소의 신규허가를 중단하고 재허가를 금지하며 기존업소는 유효기간 동안만 영업을 허용하는 내용의 사행행위 규제 및 처벌에관한 특례법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슬롯머신 업소의 영업이 사실상 전면 금지된 것이다. 슬롯머신은 65년 5월 외국관광객 유치라는 명분으로 서울 워커힐호텔에 처음 등장했으며 70년대까지는 45곳에 불과했다. 그러다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전후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 93년에는 319곳이나 됐다. 슬롯머신의 신규영업이 금지된 지 2년3개월여 만인 96년 3월,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서울 중구 을지로 3가 천지호텔의 천지오락실이 문을 닫으면서 슬롯머신 업소는 완전히 사라졌다. 슬롯머신 대신 등장한 것이 게임오락장.현재 전국에 1만8,000여개의 업소가 운영되고 있다.명칭은 오락장이지만 상당수 업소가 사행성 기기를 설치해놓고 당국의 단속을 교묘하게 피하며 숨바꼭질식의 불법영업을 하고 있다. 업자들은 오락기기로 심의를 통과한 뒤 내부기기를 조작하거나 경품을 내거는 수법을 쓰고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된 ‘환타지 로드’와 ‘서울88’은 사행성이 확연히 드러난 빠찡꼬·슬롯머신류의 오락기기인데도 한국공연예술진흥협의회(공진협)의심의를 통과했다. 슬롯머신처럼 릴식 기기인 ‘서울88’은 동전을 넣고 게임을 통해 일정한점수를 얻으면 경품을 주는 형태라는 점에서 슬롯머신과는 차이가 난다. 다만 베팅 보너스 현금배당 등 지불형태가 복잡하다는 점에서 변형된 슬롯머신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번에 공진협이 문제의 오락기기를 허가해주었다고 하더라도 슬롯머신이나 빠찡꼬업 자체는 여전히 불법이다.슬롯머신·빠찡꼬 전문 업소는국내에서 영업을 할 수 없다. 특별취재반
  • 가격담합 맥주3사 과징금

    국세청의 행정지도를 핑계로 값을 똑같이 올렸던 맥주제조 3사가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과징금 부과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공정위는 26일 ㈜두산(옛 오비맥주)과 하이트맥주㈜,진로쿠어스맥주 등 3사가 98년 2월 병맥주와 캔맥주,생맥주 등 각 주종의 가격을 똑같이 올리는 부당공동행위를 해 총 11억4,600만원의 과징금을 물렸다고 밝혔다. 맥주3사가 가격담합 혐의로 과징금을 부과받기는 처음이다.행정지도를 핑계삼아 가격을 담합해 온 주류업계의 뿌리깊은 관행에 공정위가 철퇴를 가한것이다.과징금은 매출액 규모에 따라 두산이 2억3,800만원,하이트가 6억7,800만원,진로쿠어스가 2억3,000만원 등이다. 공정위는 “국세청이 맥주3사에 대해 평균 가격인상률이 한자릿수 이내가되도록 지도하긴 했으나 업체들이 종류별·규격별 인상률을 각각 8.5∼14.0%로 똑같이 한 것은 각 회사의 원가나 경쟁력을 무시한 것으로 위법성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김상연기자
  • 거리 불법광고물 살포에 ‘철퇴’

    서울 송파구(구청장 金聖順)가 주택가나 학교주변에 무분별하게 뿌려지는광고전단에 대해 철퇴를 가했다. 구는 19일 지난 3월부터 불법 길거리 광고전단에 대해 단속을 벌여 살포업자 30명을 적발,처음으로 폐기물관리법 위반혐의를 적용해 각각 10만원씩의과태료를 부과했다고 밝혔다. 구는 또 이가운데 유흥업소의 선정적인 전단이나 자동차를 담보로 한 대출안내 등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불법 광고물을 뿌린 20명에 대해서는 경찰에 광고물관리법 위반혐의로 고발조치했다. 행정기관이 불법광고물에 대해 대대적인 단속을 벌이고 행위자를 적발,처벌한 것은 처음이다. 이번 과태료 부과 및 고발고치는 현장에서 광고물 사진을 찍은 뒤 전화국을 통해 전화번호 주소지를 파악,청문을 거쳐 이뤄졌다. 송파구가 불법 광고물에 대해 단속에 나선 것은 가정집이나 차량 등에 유흥업소를 홍보하는 나체사진이 뿌려져 청소년들의 탈선을 부추키고 대출안내전단 역시 고금리로 가정파탄을 불러오는 등 사회적으로 문제가 많기 때문이다. 구는 이와 함께재활용과 직원 및 공익근무요원 등 13명으로 불법광고물 특별단속반을 구성,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단속을 벌일 방침이다. 전상영(全相榮) 재활용과장은 “주택가에 버려지는 쓰레기의 3분의 2가 불법전단”이라며 “주민의 정서를 해치고 거리를 더럽히는 선정적이며 퇴폐적인 광고물들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단속을 더욱 강화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조덕현기자 hyoun@
  • [제2공화국과 張勉](15)분출하는 욕구(下)/기고

    1961년 2월4일 장면(張勉)총리는 반도호텔에서 열린 관훈클럽 창립4주년 기념모임에 초청받아 ‘언론의 자유와 그 책임’을 주제로 강연한다. 장면은 “약간 과장해서 말하면”이라고 전제한 뒤 “북한 괴뢰의 앞잡이들이 ‘조선인민보’나 ‘해방일보’를 발행하겠다고 등록신청을 해도 막을 도리가 없을 만큼 완전한 언론출판의 자유가 허용되고 있다”고 밝혔다.그러면서 ‘무책임하고’ ‘사실을 의도적으로 왜곡하며’ ‘독선적인’ 언론이 횡행하는 현실을 우려했다. 장면은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모든 압제에 반대해야 하는 것과 같이,자유가 자유 그 자체를 파괴하도록 방임해서도 안된다”는 말로 연설을 끝맺었다.무절제한 언론에 대한 이 경고를,관훈클럽은 훗날 발간한 ‘40년사’에서“언론에 경종을 울리는 진지하고도 의미심장한 내용이었다”고 평가했다. 이승만(李承晩)독재권력을 무너뜨리는 데 신문은 학생세력·민주당과 더불어 일등공신 노릇을 했다.자유당 정권은,비록 그후의 박정희(朴正熙)·전두환(全斗煥)시대만큼 가혹하지는 않았지만그래도 독재체제를 유지하고자 언론에 대해 탄압을 거듭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1959년 4월30일 경향신문을 폐간시킨 것이다.가톨릭계인 경향신문은 그 무렵 자유당 정권에 가장 비판적이었으며 장면이 대표하는 민주당 신파를 지지했다.따라서 60년 정·부통령선거를 앞두고 몇가지 꼬투리를 잡아 경향신문에 철퇴를 가했다. 그러나 도하 각 신문은 이에 굴하지 않고 자유당 정권의 비정(秕政)과 ‘3·15 부정선거’,그리고 이에 따른 학생·시민의 항거를 끊임없이 보도했다. 따라서 4월혁명후 언론은 명실공히 입법·사법·행정에 못잖은 ‘제4부’로떠올라 그 힘은 역사상 어느 때보다 강력했다. 언론계의 변화는 먼저 양적인 팽창으로 나타났다.1960년 3월31일 현재 국무원 사무처에 등록된 각종 정기간행물의 숫자는 그 변화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일간신문은 4·19 전의 41종에서 112종으로,일간통신은 14가지에서 274가지로,주간신문은 136종에서 476종으로 급격히 늘어났다.그야말로 ‘사무실 한평에 등사판 하나만 갖추면 통신사 간판을 내걸고 실업자 서너명만 모으면신문사 간판을 내걸 수 있는’시절이었다. 언론사가 급증하자 사이비기자가 판친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고 이에 따라강경·논산 등 일부 지역에서는 주민들이 “사이비기자 물러가라”며 데모하기도 했다.한국일보가 1961년 2월 말 연재한 ‘기자가 취재한 기자군(記者群)-공갈기자’시리즈를 보면 그들의 성분과 폐해를 짐작할 만하다. “‘공갈기자’와 ‘진드기기자’들에게는 전직이 있다.…연무대 주변에서진을 친 이들의 대부분은 전직이 헌병대 문관 아니면 형사,또는 CIC군관,이밖에 퇴역군인이다.그래서인지 ‘진드기기자’들의 취재 태도는 이미 일어난 사건을 그대로 보고듣는 것이 아니고 드러나지 않은 범죄를 탐색하고 사람을 취조하는-말하자면 ‘범죄수사’를 방불케 하는 것이었다.” 전통있는 언론사야 행태가 물론 달랐지만 그들 역시 정부 시책을 사사건건물고 늘어져 비난하는 것을 신문의 의무로 아는 듯했다.당시 언론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있다. ‘3·15 부정선거’의 주범 가운데 하나인 자유당 간부장경근(張暻根)이입원중인 병원을 탈출,일본으로 밀항한 사건이 발생한다.이에 서울일일신문은 “면이와 경근이 때문에 창피해서”라는 설명과 함께 두손으로 얼굴을 가린 사람을 그린 만평을 실었다.‘장씨 종친회’라는 제목의 이 만평은 국무총리 장면과 부정선거 혐의로 구속된 장경근을 한데 엮어 비난한 것이었다. 장총리의 공보비서관인 송원영(宋元英)이 서울일일신문의 이관구(李寬求)사장을 찾아가 항의하니 이사장도 “이건 너무했다”면서 윤전기를 멈추고 만평을 뺐다고 한다(송원영 회고록에서). 경향신문 정치부장으로 있다 바로 공보비서관이 된 송원영은 “모든 매스컴이 장면정권을 두들겨팼다.마치 언론자유는 장정권을 타도함으로써 완성되는 것처럼”이라고 회고했다. 한편 신문이 보도 면에서 신중과 자제를 잃어(宋建鎬 표현) 독자들에게 수난을 당하는 사태도 자주 일어났다.부산일보는 동아대 학생들의 습격을 받아 20일동안 휴간했으며,한국일보는 ‘혁명전야’라는 연재소설에서 작가 정비석(鄭飛石)이 연세대생을 모욕했다는 항의를 받자 연재를 중단했다.박태선(朴泰善)장로교회 신도 수천명이 대낮에 동아일보 사옥에 침입,난동을 부린일도 있었다. 장면정부는 언론의 이런 태도를 매우 못마땅하게 여겼으나 설득하는 이외의 방법은 쓰지 않았다.장면정부의 언론 주무장관인 정헌주(鄭憲柱) 국무원 사무처장은 “심지어는 없는 사실도 만들어서 쓰곤 했지만 그래도 정부로서는‘시간이 흐르면 스스로 자리를 잡겠지’하는 생각에서 일체 간섭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언론도 세월이 흐르면 책임을 깨닫고 스스로 바로 설 것이라는 그 자율기능을 믿은 것이다. 장면정부는 오히려 언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려고 애썼다.가끔 ‘대통령 유시’나 발표하고 기자회견은 1년에 한 두차례 하는데 그쳤던 이승만과는 달리 기자회견을 매주 한차례 정례화했다.그럴 때면 전 각료를 동원하다시피해 갖가지 질문에 답했다. 또 KBS라디오를 통해 ‘주례 국정보고’도 방송했다.매주 토요일 오후 7시30분에 시작한 이 방송에서 장면은 민주당 정부의 방침을 국민들에게 설득조로 이야기했다. 4월혁명을 이룰 때까지 민주당과 신문은 ‘동지’였다.그러나 장면정부가들어서자 어제의 동지는 ‘적’으로 돌변했다.5·16쿠데타후 신문은 장면정부를 망친 ‘3신(新·신문,민주당 구파가 분당한 신민당,신파 소장파 모임인 신풍회)’ 가운데 하나로 인구에 회자됐고 군사정권 아래서 모든 자유를 빼앗겼다. 이용원기자 ywyi@[기고] 언론자유 수호 自淨운동 싹 틔워4·19로 이승만(李承晩)정권이 무너진 후 한국 언론은 비로소 자유를 누릴수 있게 됐다.정부의 언론에 대한 간섭과 통제가 급격히 사라졌고,언론 스스로도 과거의 잘못을 청산하려고 노력했다. 허정(許政)과도정부는 1960년 7월1일 법률 제553호로서 ‘신문 및 정당 등의 등록에 관한 법률’을 공포했다.이로써 허가제를 규정한 미 군정법령 88호는 폐지됐고,이제 등록만 하면 누구나 정기간행물을 발행할 수 있게 됐다. 또한 과거 대통령 직속의 독립된 부서였던 공보실이 폐지됐고,국가보안법과선거법에 삽입된 언론통제 조항도 삭제됐다. 민주당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도 한동안 언론은 과거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자유를 누렸다.그러나 갑자기 언론자유가 주어지자 우후죽순처럼 정기간행물이 쏟아져 나와 일간지나 주간지가 4·19 전에 비해 3배 가량 늘어날 정도가 되면서 사이비 언론과 사이비 언론인들로 인한 폐단도 적지 않게 드러났다. 한편 1960년 5월 부산을 시작으로 하여 대구·서울 등지의 여러 신문사에서 노조가 차례로 결성됐고,KBS도 ‘방송중립화 운동’을 펼쳐 공정방송을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그리고 1961년 2월13일에는 일본 거류민단계의 조용수(趙鏞壽)가 중심이 되고 국내 혁신계 인사인 송지영(宋志英) 윤길중(尹吉重)고정훈(高貞勳) 등이 참여한 민족일보가 창간되어 혁신계 세력을 대변하게됐다. 이런 가운데 자신들에 관한 보도에 불만을 품은 일부 독자들이 신문에 대해 항의시위나 난입,그리고 불매운동을 벌이는 일도 생겼다.이같은 사태는 무책임하고 부정확한 보도를 한 언론에 일차적인 책임이 있지만,물리력을 동원해서라도 자신들에게 불리한 기사를 막으려고 한 일부 독자들의 잘못된 의식도 작용한 결과였다. 이렇듯 제2공화국이 들어서면서 언론자유가 급격히 신장됐지만,언론자유는점차로 제약되는 경향을 보였다.집권 이후 국민들의 요구를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한 민주당 정권은 언론규제 장치로 ‘외국 정기간행물 국내 배포에 관한 법률안’을 만들었다.이것은 신문이 등록제로 대체되면서 폐기된 미군정법령 88호중 제5조만 유효하다는 유권해석과 함께 그것을 대신하는 법령으로 만들어낸 것이었다. 또한 창간되기도 전에 민족일보에 대해 국회에서 조총련계 자금으로 제작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논란도 있었다.창간 이후 민족일보는 서울신문 공무국에서 제작됐는데,민주당 정권은 61년 3월 초에 서울신문에 압력을 가하여 이 신문의 조판과 인쇄를 하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이런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정권이 직접 언론에 대해 적극적인 개입과 통제를 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언론자유는 대체로 보장된 편이었다.또한 ‘신문망국론’이라는 비난이 나올 정도로 심각하던 사이비 언론과 사이비 언론인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언론계가 스스로 나서기 시작하였다. 제2공화국 시기는 한국에서 제대로 된 언론자유가 처음으로 허용됐고 또 이를 정착시키고 발전시키기 위한 언론계 스스로의 노력도 시작됐다는 점에서역사적 의의가 있었다. 그러나 모처럼 보장된 언론자유를 지키고 언론을 발전시키기 위한 자율적인 노력이 결실을 맺기도 전에 5·16쿠데타가 터졌다.5·16 이후 언론자유는말살되고,언론은 정권의 통제와 특혜 속에 제 몫을 하지 못하며 기업적 성장에만 집착하게 됐다. [박용규 상지대 교수·신문학]
  • [금지문화 금지인생 이제야 말한다](22)-창작과 비평사

    진시황은 책을 불태우고 학자들을 파묻었다.비정상적인 방법으로 권력을 앗은 자들은 늘 그러했다.저항을 부르고 수많은 ‘금지’를 낳았다.우리 현대사에도 ‘지상의 양식’을 지향하다 ‘잉크를 묻힌 죽은 물체’가 돼버린 옥고들이 많다. 시집 ‘신동엽전집’(75),‘국토’(조태일),‘타는 목마름으로’(김지하,82)‘대설 남(南)’(〃,82),‘8억인과의 대화’(리영희,77)…등도 그 대열에있다.당국의 붉은 딱지가 붙은 이 책들은 모두 모태가 같다.69년 등록한 출판사 ‘창작과 비평사’다. 저항의 첫 발은 약간 거슬러 올라간다.66년 서울 종로구 공평동 문우출판사에서 발행한 132면의 문예계간지 ‘창작과 비평’이 그것. ‘…대중의 소외가 혹심한 사회일수록 철저한 수준을 고수하는 소수 작가·지식인의 비중이 커지는 것 역시 그 때문이다.…국토분단과 기성사회의 모순을 유지함으로써만 자신의 특권을 간직할 수 있는 소수를 제한다면,적어도우리나라 사람으로서 잠재적으로나마 우리의 이상에 동조하지 않을 이가 어디 있겠는가…’(‘창작과 비평’창간호 권두논문 ‘새로운 창작과 비평의자세’의 일부).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공부하고 온 젊은 영문학자 백낙청교수의 의도에 공감한 국악인 황병기씨 등 지인들과 문우출판사 오영근사장 등이 쌈지돈을 모았다.‘비평의 정신’을 싹틔운 주역은 백교수와 소설가 한남철,서울대 문리대 철학과 조교 김상기,기자이던 임재경·이종구씨 등 5인이었다.목소리는 나지막했지만 어조는 단호했다. 69년 백낙청교수가 미국으로 공부하러 가면서 염무웅교수(영남대 독문학)가 편집장으로 바통을 이어받아 암울했던 70년대를 버텼다.염교수는 ‘창비의정신’을 이렇게 말한다. “사회과학이나 현실에 발딛고 기본 민주주의 성취,실학·국학시리즈로 민족 전통의 현대적 계승과 분단 극복 지향,기층 민주주의 역량성장에 이바지등 3갈래로 나눌 수 있습니다.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문학의 고유한 미적 가치를 최대로 추구하면서 이런 과제를 지향했다는 점에서 여타의 목적주의 문학이나 천박한 참여문학과는 차별성을 두었다는 점입니다” 이 시기에 발행한 ‘신동엽전집’(창비신서 10,75년)이 긴급조치 9호의 미움을 사면서 창비의 ‘화려한 금서 리스트’가 막을 연다.이어 77년에 ‘8억인과의 대화’(창비신서 18)로 편역자 리영희교수와 발행인 백낙청교수가 반공법 위반 혐의로 치안본부 대공분실로 연행돼 리교수는 구속되고 백교수는불구속 기소되었다. 수난속에서도 명맥은 유지하던 ‘창비’는 80년에 이르러 ‘절망적인 탄압’에 직면한다.7월말 국가보위입법회의로부터 계간 ‘창비’의 강제 폐간이라는 철퇴를 맞은 것이다. 암중모색하던 ‘창비’는 82년 김지하 시선집 ‘타는 목마름으로’(창비시선 33)로 새벽을 열려고 나섰다.이화여대·연세대 앞에서 불티나게 팔리던시집은 학원사찰팀의 눈에 띄여 판매금지·압수라는 공식적인 과정을 거쳤다.“압수된 책이 작두로 잘렸다”는 ‘창비인’들의 회고는 당시 검열의 상징이다.심지어 국세청 세무사찰로 추징금 1,000만원을 부과하는 비열한 수단도 동원했다.이에 굴하지 않고 ‘대설 남’ 1권을 내놓았으나 문공부가 판매금지하고 전량을 봉인했다. 끊임없이 ‘비판의무기’를 갈던 ‘창비사’는 85년 부정기간행물(무크)로 얼굴을 달리하여 ‘창비’ 57호를 간행했다.이번에는 서울시가 불법으로 정기간행물을 냈다는 꼬투리를 잡아 ‘출판사 등록 취소’로 탄압했다. 그러나 이제 ‘창비’는 혼자가 아니었다.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주언론운동협의회,민중문화운동협의회 등의 항의농성 및 성명발표와 ‘문학과 지성사’ ‘민음사’등 11개 출판사 대표의 항의성명이 이어졌고 문인·학계 인사가 중심이 돼 등록취소에 항의하는 ‘범지식인 서명운동’을 펼쳐 2,853명의 서명록을 문공부에 전달했다. 당시 발행인이었던 김윤수교수(영남대)는 “회사가 없어져 책임자로서 어깨가 무거웠다”면서 “‘창비’를 살리려고 문공부 담당국장과 10개월의 마라톤 협상에 들어갔다”고 밝힌다.그 과정에 당국은 ‘창비’ 회생조건으로 백교수가 손을 떼고 이름도 바꾸라고 강요했다. 어렵사리 사태를 수습한 김윤수 발행인은 86년 8월5일 ‘창작사’로 신규등록했다.87년 2월6일 부정기간행물 형태로 ‘창비 1987’(통권 58호)을 간행했다.그러나 ‘진실을 영원히 감옥에 가둘 수는 없다’는 말이 있듯 ‘창작사’는 87년 2월17일 ‘창작과 비평사’라는 출판사 이름을 되찾았고 다음해 계간 ‘창비’도 다시 제 얼굴로 돌아왔다. 그렇다고 평탄한 앞날이 보장된 것은 아니었다.89년 겨울호에 황석영의 북한방문기 ‘사람이 살고 있었네’를 실어 다시 수난시대로 접어든다.이시영주간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고 구속되었다. 이시영 상임고문은 “11월 23일 퇴근 길에 남산으로 끌려갔는데 안기부는그동안 저를 통해 최대로 민족문학작가회의와 문단에 대한 총점검을 하려고했다”면서 “‘창비’ 매호를 낱낱이 분석하고 필자들 성향까지 꿰뚫고 있었다”라고 전한다. 숨가쁜 ‘창비’의 발자취에는 일그러진 현대사의 모습이 오롯이 녹아있다. 그것은 우리 사회를 기름지게 한 거름이기도 하다.정해렴 김윤수 고세현씨등으로 이어지는 발행인을 중심으로 현대사의 주역들을 일궈냈다. 고은 조태일 김지하 신경림 이성부 이시형 김용택 곽재구 김남주 고정희 김명수 등이 시로 독재자에‘침을 뱉었다’.이문구 황석영 현기영 방영웅 김한수 등이 소설이라는 쟁기로 척박한 땅에서 리얼리즘의 열매를 일구었다.송건호 리영희 박현채 강만길씨 등은 우상을 깨고 이성을 외쳤다.‘창비’는이들의 ‘사상의 거처(居處)’였다. 이제 ‘창비’의 나이 33세.‘잔치를 끝내지 않으려’는 과제가 남아 있다. 지난 96년 ‘영원한 창비인’ 백낙청교수(하버드대 교환교수로 재미)가 창비 30년을 정리하면서 밝힌 입장에서 ‘창비’의 앞날은 여전히 튼실할 것임을 예고한다. “정말 중요한 일은 시장경제의 논리와 ‘창비’ 고유의 지향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혹은 아슬아슬한 긴장’을 유지하는 일이겠습니다”이종수기자 vielee@
  • 세모네모-취임2년 田공정위원장 토로

    “어휴,개혁하기가 이렇게 힘듭니까” 지난해 11월 24일 공정거래위원장실에서 만난 田允喆위원장(60)은 대답 대신 긴 한숨을 토해냈었다.그의 얼굴은 창백했다.전날 공정위가 포항제철과광양제철소 분리방안을 포함한 철강산업 경쟁촉진책을 내놓은 뒤 해당업계는 물론 산업자원부 등 정부부처까지 월권이라며 공정위에 집중포화를 퍼붓던때였다. 당시 공정위 직원들은 “포철 분리방안은 발표내용중 극히 일부분인데도 경쟁촉진책 전부가 문제인 것처럼 몰아붙인다”라며 억울해했다. 이 사건은 새 정부 들어 부쩍 강화된 공정위의 위상과 그에 따른 주변의 견제를 단적으로 보여준 예였다.더 좁혀서 말하자면 ‘개혁의 전도사’ 田위원장에 대한 견제라 할 수 있다. 지난 한해 “너무 튄다”는 이유로 시샘을 받을 만큼 종횡무진 활약했던 田위원장이 지난 6일로 취임 2주년을 맞았다. 田위원장의 재임기간이 유난히 관심을 끄는 것은 임기가 이제 1년 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는 과연 1년안에 부당내부거래를 근절하고 상호채무보증을 해소하는 등 재벌개혁을 마무리할 수 있을까. 그가 지금까지 올린 ‘실적’으로만 따지자면 목표를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지난해 공정위는 두차례에 걸쳐 5대재벌의 부당내부거래를 조사,914억원의과징금을 부과했다.6대이하 5개 재벌에 대해서도 부당내부거래 혐의로 217억원의 과징금을 물리는 등 철퇴를 가했다. 田위원장은 지난 6일에도 주변에 특별한 심경을 밝히지 않았다.하지만 애연가인 그가 30여년간 피워온 담배를 올초부터 끊은 데서 결연한 각오를 충분히 감지할 수 있다고 직원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金相淵 carl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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