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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신문 탐사팀 「철새낙원」 철원평야 가다

    ◎“두루미 군무는 한폭의 동양화”/창공엔 기러기떼·물위엔 청둥오리 “유유자적”/이방인 침입에 놀란 귀염둥이 쑥새 갈대숲으로 강원도 철원군 최북단의 사찰인 도피안사에서 민통선으로 접어들면서 펼쳐지는 철원평야는 여느 농가와 다름없는 시골풍경이었다.가을걷이를 끝낸 들판 곳곳에 흩어진 잔설이 겨울 정취를 더했다.평온함만이 가득 넘쳐보였다.북으로 불과 몇분만 더 가면 남북이 총구를 맞댄 철책선이 가로 막혀있다는 사실을 상상하기는 쉽지 않았다.뼈대만 남은 노동당사와 일제때 지어진 농산물 검역소만이 6·25당시 화염에 휩싸였던 이들 지역의 아픈 과거를 새삼 떠올리게 했을 뿐이었다. ○폐허곳곳에 「6·25」 상흔 북쪽으로 뻗은 비포장도로를 따라 차량으로 2분여 들어갔을까.도로 양쪽의 들판에는 겨울철새로는 이 지역의 터줏대감인 큰기러기가 「이방인」의 방문을 반겼다.차량의 소음을 듣자 수십∼수백마리씩 떼지어 앉았다 날았다하며 맴돌았다. 이따금 「끄악」 「끄악」하는 합창이 정적을 깼다.출입영농을 하는 농부의 손길이끊긴지 오래인 겨울 들녘은 철새들의 휴식처였다.충분한 낟알 곡식과 마른 풀등은 그들만의 차지였다. 기자가 차에서 내려 다가가자 한창 먹이를 찾느라 논바닥에 고개를 박고 있던 한떼의 기러기들이 고개를 곧추세웠다.새들을 놀래주고 싶은 짓궂은 마음에 한발 한발 더 다가섰다.불과 20여m로 거리가 좁혀졌다.순간 무리중 대장인듯한 한마리가 날개짓으로 신호를 보냈고 이어 나머지 새들이 지면을 박차고 비상했다. 올해는 예년보다 일찌감치 10월 초순부터 시베리아등지에서 2만여마리의 기러기가 이곳으로 날아들어 남방한계선 부근의 동송 저수지등에 자리를 잡았다.수천마리의 새떼들이 한꺼번에 무리를 지을땐 하늘은 일순간 먹구름 자락이 드리운듯 장관을 이뤘다. 기러기들은 저수지에서 농부들의 추수가 끝나기를 한달여 기다리다 12월이 접어들면서 들판 곳곳을 분할 점령했다. 남방한계선을 가리키는 철책이 멀리 바라보이는 쪽으로 1㎞쯤 더 들어갔다.철새도래지로 지정된 샘통지역의 심장부로 접어들었다.길 왼편 들판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두루미와 재두루미 수십마리가 불과 20∼30m의 거리를 두고 으젓하게 서있었다. 『이놈들 봐라,나 혼자 왔을 때는 그렇게 거리를 안주더니…』 취재팀과 함께 이곳을 찾은 동서조류연구소 이정우(54·조류연구가)소장이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두루미들은 다른 새들 보다 특히 예민해 1백m전방의 사람 움직임에도 여지없이 꽁무니를 빼고 날아가는 습성을 가졌다는게 그의 설명이었다. ○길가 양편에 도열하듯 그런 두루미들이 길양편 들판에 도열하듯 서 있는 모습에 30년이상 조류연구를 하고 있는 이소장도 자못 신기하다는 표정이었다.그는 『아예 사파리로군』하며 혀를 내둘렀다. 사진기자가 몰래 모습을 담기위해 카메라를 들이대자 두루미는 마침내 틈입자의 인기척을 발견한듯 성큼성큼 몇걸음 내딛다 눈이 부시도록 흰 날개를 펴고 하늘로 날았다. 걸음을 내딛는 모습은 마치 체조선수의 유연한 도약처럼 사뿐했다. 사진기자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만난 양 정신없이 셔터를 눌러댔다. 취재진을 태운 차량은 동쪽으로 난 좁은 농로를 따라 「아이스크림고지」로 방향을 틀었다. 평원 한 가운데에 야트막하게 서 있는 이 고지는 6·25당시 남북의 포격으로 정상부분이 마치 아이스크림이 녹아 내린것 처럼 남아있다.주위를 선회하는 새떼와 겹친 고지 참호의 모습은 을씨년스런 난공불락의 요새를 떠올리게 했다. 고지로 향하는 길가의 갈대수풀은 이 지역텃새로 귀엽기가 으뜸인 쑥새들의 서식처.참새와 크기가 비슷한 이 새들은 수풀더미에 몸을 숨기고 풀씨를 따먹다가 차량이 지날때마다 한꺼번에 날아 도망가는 통에 취재진을 놀라게 하곤 했다.길옆 작은 연못에는 녹색의 비단결같은 고운 빛으로 아름답게 치장한 한쌍의 청둥오리가 유유히 물위를 노니는 모습이 보였다.이밖에 철원평야의 식구인 찌르래기,황조롱도 취재진을 반기듯 주위를 어지럽게 날아다녔다. ○「남가식·북사숙」 생활 이소장은 『여름이면 이곳에 검은댕기 해오라기,후투티,꼬마물떼새,청호반새 등 수십종에 달하는 철새들로 또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아이스크림 고지를 둘러본 뒤 취재진은 다시 북쪽으로 방향을 틀었다.서쪽 지평선에 해가 걸릴 즈음 남방한계선 철책 턱밑에 위치한 드넓은 동송저수지를 마주할 수 있었다. 뚝방에 올라 남쪽을 바라보자 웅장한 철원평야의 모습이 시야를 꽉 채웠고 때마침 4마리의 두루미 가족이 노을을 받으며 북녘하늘로 비행하고 있었다. 『두루미는 낮에는 이곳에서 생활을 하다가 밤에는 북한쪽 철원평야에서 지내죠』 이소장의 설명이었다. 「남가식 북가숙」하는 이들 철새들이 남북분단의 비원을 풀어줄 전령처럼 가슴에 와닿았다. ◎미리가 본 본사 탐사 예정 지역/강화 말도 유도일대­물새 10종·해오라기 번식지로 유명/파주군 대성동­겨울철새·독수리떼 등 관찰지구로/고성군 명파리­칠성장어 유일한 서식지로 알려져 서울신문이 올해 「비무장지대 인접지역의 생태계 항구보존 캠페인」을 펼치며 탐사 예정인 지역은 원시림등이 보존된 강원지역에서 서해안의 도서까지 인공의 손길이 닿지 않은 광범위한 지역을 망라할 계획이다. 각종 야생동식물의 서실실태와 생태계변화현황 등과 관련한 정보를 독자들과 나누기위해 한햇동안 본사취재팀이 찾을 주요지역 몇곳을 미리 소개한다. ▲경기 강화군 말도·유도·소송도·대송도 등 지역=이 지역은 민통선의 서쪽 끝지점.말도에선 도요새,노랑부리 백로(여름철새) 등 물새 10여종을 볼 수 있으며 해상 비무장지대인 유도는 해오라기(여름철새)의 최대 번식지로 알려져 있다.소송도와 대송도는 천연기념물인 검은머리물떼새(텃새)와 이곳에서 집단서식하는 흰뺨검둥오리(텃새)의 장관을 관찰할 수 있다. ▲임진강 하류=많은 종류의 여름·겨울철새들이 계절별 이동때 들르는 철새경유지로 잘 알려진 곳.이 곳을 지나는 겨울철새로는 개리,기러기,두루미,재두루미 등이 있으며 여름철새로는 후투티,울새,꼬까참새 등 작은 조류가 주를 이룬다. ▲경기도 파주군 대성리일대=두루미,재두루미 등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겨울철새 관찰지역.특히 이곳에선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독수리떼를 관찰할 수 있다. ▲자유의 다리 건너 왼편 임진강 넘어 펼쳐진 갈대숲 지역=노루,족제비,너구리 등 포유류가 다수 서식하고 있으며 쇠물딱,개개비등 갈대 습지조류들이 살고 있다. ▲사미천 일대(의정부 지나서 적성부근)=노루,고라니 등 포유류 관찰지역. ▲강원도 고성군 명파리일대=동해안에 위치한 해변지역으로 희귀 물고기 관찰지역.칠성장어의 유일한 서식지로 알려져 있으며 연어의 모습도 볼 수 있다.또 조류로는 세가락갈매기,흰갈매기 등이 있으며 인근 화진포에선 혹고니도 관찰할 수 있다.
  • “북 도발 대응 한·미 체제 확고”/이 국방 전방순시

    이양호 국방부장관은 30일 상오 중서부전선 ○○부대를 방문,『북한 군은 최근 공군기와 다수의 장거리포를 전방에 배치하는 등 체제불안과 심각한 식량난으로 도발 가능성이 있다』면서 『우리 군은 확고한 한미연합 방위체제로 언제 어떠한 사태에도 신속히 대처할 수 있는 철저한 대비태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장관은 『북한의 도발여부는 우리의 대비태세 여하에 달려있다』면서 『우리 군은 내년 4월까지의 동계작전태세 기간동안 적의 어떠한 도발에도 단호히 대처해 나갈 것』을 강조했다. 이장관은 이어 철책선 근처 경계초소에 들러 아버지의 나라를 찾아 베트남에서 귀화해 국토방위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라이 따이한 최민호 상병(22)등 장병들을 격려하며 『국민들이 군을 믿고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맡은 바 임무에 최선을 다해 줄 것』을 당부했다.
  • 「북한군 이상동향」 우리측 대응은

    ◎한­미 방어력 증강… 북위협 만반대처/미­인도·태평양 항모전투단 한국행/한­전군훈련 강화… 신제공작전 수립 미국이 내년초 인도양과 태평양 등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1개 항공모함 전투단을 한국에 보내기로 한 것은 정례적인 순항훈련을 넘어서 최근 고조되고 있는 북한의 군사위협에 쐐기를 박으려는 뜻을 담은 것으로 풀이된다.미 군당국도 다량의 미그기와 전폭기·장사정포를 휴전선 근처에 계속 증강·배치시키고 있는 북한의 움직임을 심상지 않은 것으로 판단한 결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미 항모전투단은 1척의 항공모함과 구축함·잠수함·최신예 전투기 등을 갖춘 탁월한 전투능력을 갖추고 있어 유사시 투입되는 미 본토병력과 함께 한반도 전쟁을 억제하는 효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된다. 항모전투단은 정례적으로 인도양 등을 거쳐 우리의 동해에서 순항훈련을 하고 있으나 지난해 연말 북한 핵위기가 고조됐을 때 훈련시기를 조정,우리나라에 온 것으로 알려졌다.따라서 내년초의 항모전투단 파견도 북한의 위협상황을 고려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우리 군의 대비태세도 최근 부쩍 강화되고 있다. 이달초 전군 주요지휘관회의를 통해 동계작전태세 강화지시가 내려진데 이어 겨울철,특히 야간전투에 강한 북한군의 기습에 대비해 야간훈련을 강화하고 있다. 북한군은 올들어 저고도 비행기인 AN­2기를 이용한 특수부대의 훈련을 크게 늘려 남한과 유사한 지형의 함경북도에서 공중침투훈련을 실시하고 있다.이들 특수부대는 유사시 후방이나 산악지역에 침투,공군기지등 주요시설 파괴 및 후방지역 혼란등 비정규전을 수행하는 임무를 띠고 있다.특히 총경비국의 인민경비대 10개 여단을 인민무력부 소속으로 전환시켜 정규군화 하는 점도 위협요소로 대두되고 있다. 특히 우리 군당국을 긴장하게 하는 북한의 군사동향은 황해도 태탄 등 휴전선에서 불과 30∼40㎞ 떨어진 예비기지에 배치하는 미그기 등 공군기의 지속적인 증강이다.지난 10월말 85대에서 이달초 95대로,최근 다시 20대를 늘려 1백15대가 됐다.이들 비행기는 발진에서부터 수도권 진입까지 5∼6분 밖에 걸리지 않는데다 유사시 임무가 8분거리에 있는 주력기 투입 때까지 아군의 전투기나 주요시설을 「가미가제」식으로 파괴하는 데 있어 가장 심각한 위협요소로 지적되고 있다. 이와 관련,공군은 이날 주요지휘관회의를 열어 야간 저고도 항법장비인 「랜턴」을 장착한 우리 공군기와 함께 미군의 U­2기를 동원한 한·미 공중감시활동을 크게 늘리기로 했다. 이날 회의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유사시 다단계 공중전략인 「신방어 제공작전」의 수립이다. 이 작전은 1단계로 일본의 미 공군기지에서 미군의 최신예 F­15기 등을 긴급발진시켜 적의 방공망 등 사전에 계획된 목표물을 초토화시킨 뒤 2단계로 우리 공군기가 적기를 무력화하고,마지막 단계로 적 후방에 대한 공격을 하는 개념이다. 합참의 한 관계자는 『대규모 부대이동이나 철책제거 등 전쟁발발의 뚜렷한 징후는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으나 북한이 「이판사판식」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면서 『한국과 미국의 군 수뇌부는 이같은 상황에 인식을 같이하고 있으며 그 어느 때보다 한·미간 결속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 “북 대남전략 불변… 철통방위를”/김 대통령

    ◎어제 새벽 임진강서 무장침투 북한군 1명 사살 【밴쿠버=이목희 특파원】 캐나다 밴쿠버를 방문중인 김영삼 대통령은 17일 낮(이하 한국시간) 북한의 무장공비 침투사건에 대한 보고를 받고 『이는 북한의 대남전략에 변화가 없다는 산 증거』라며 『북한이 남북대화에 응할 수 있도록 인내를갖고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대통령은 이날 숙소인 팬 퍼시픽호텔에서 공로명 외무장관 등 공식수행원들과 비공식 만찬을 한 자리에서 김동진 합참의장으로부터 무장공비 침투사건을 보고받고 『북한이 무장공비를 침투시키는 등 대남 호전적인 자세를 계속 취하고 있는만큼 우리는 국토방위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도주자 있는 듯 17일 새벽 2시20분쯤 경기도 파주군 임진강 하류 자유의 다리 남쪽 1.5㎞ 지점에서 남측지역으로 침투하려던 무장 북한군 1명이 아군경계병에 의해 사살됐다. 통합방위본부(본부장 김동진 합참의장)는 이날 『임진강 철책초소(GOP)에서 경계근무 중이던 모사단 소속 정인제 상병과 이종훈 이병 2명이 북한군으로 추정되는 잠수복차림의 남자 1명을 사살했다』고 발표하고 『아군 피해는 없었다』고 밝혔다. 합참 작전참모부 작전차장 정화언 소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사살 현장에 이들이 신고온(수중 수영용) 오리발 자국이 여러개 나있는 점으로 보아 도주한 북한군이 1∼2명 있을 것으로 보고 대침투 경계태세 「진돗개 하나」를 발령,임진강 주변과 강물속을 수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들은 만조 때 임진강 하류에서 물길을 따라 수중침투한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전방 아군병력 및 무기체계 배치현황과 유사시 침투로 확보등을 위한 정찰조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주한유엔사령부는 이날 군사정전위 비서장 옴즈대령을 포함,군정위 소속 요원 5명을 현장에 보내 조사에 나섰으며 사체의 신원이 확인되는대로 북한측의 명백한 휴전협정 위반행위를 공식항의할 방침이다. 정차장에 따르면 경계근무 중이던 정상병등은 상오 1시35분쯤 나무가 흔들리는 이상한 소리를 듣고 이를 추적하던중 2시20분께 적의 모습을 발견,수류탄 2발을 투척하고 10여분간 K­2소총 75발을 쏘았다는 것이다.북한군은 전혀 응사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단사령부는 즉각 「위기조치반」을 가동,수색 끝에 상오 7시15분쯤 숨진 북한군 사체 1구와 장비등을 발견했다.
  • “무장북한군 발견서 사살까지” 장병들은 말한다

    ◎숨바꼭질 50분만에 수류탄 투척/새벽 “바스락” 소리에 초긴장 경계/안개속 희미한 물체보고 일제 사격 『철책 앞에 무언가 움직이는 순간 반드시 잡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17일 새벽 임진강 하류에서 수중침투하려던 북괴군 1명을 사살,철통방어태세를 실감케 해준 이종훈(20·충남 금산 제원면)이병은 군생활 4개월의 신병답게 『사수인 정상병님이 시키는대로 한 것이 큰 일을 하게 됐다』면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이병은 이날 밤 사수 정인제(21·부산 북구 만덕동)상병과 함께 임진강 강안초소에서 경계근무중 이상한 느낌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이 때가 새벽 1시25분쯤.0시10분쯤 철야경계근무를 위해 초소에 투입된 이들은 5m앞도 보이지 않는 짙은 안개속에서 사격을 끝내기 까지 1시간여를 긴장속에 보냈다. 정상병은 『평소 듣던 물소리와는 달리 초소 왼쪽 낭떠러지 쪽에서 나뭇가지를 밟는 듯한 소리가 들려 귀를 기울이고 있는데 소대장 강혁준(학군 33기)소위가 순찰중 초소에 들러 즉각 보고,상황대비에 나섰다』고 말했다. 정상병은 소대장에게 보고한 직후 초소 바로 앞에 2m 높이로 쳐 있는 철책선으로 다가가 소리나는 장소를 살펴보았다. 또 강소위는 초소 지붕위로 올라가 휴대용 탐조등인 「제논」을 강으로 비추었으며 이이병은 소대장을 따라온 전령 박준규(20)일병과 함께 초소밖 왼쪽 철책 틈으로 사격자세를 취했다. 이이병은 『우리가 움직이면 소리가 멈추고 우리가 가만이 있으면 조금씩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는등 이런 상태가 50여분쯤 반복됐다』고 말했다. 마침내 새벽 2시20분쯤 강속에서 희미한 물체가 낮은 포복자세로 뭍으로 나타났다. 이 물체는 강변에서 30여m 낭떠러지 위에 위치한 초소까지 로프를 타고 기어 올라왔다. 정상병등은 물체가 초소 8m 앞쯤 다가와 수류탄을 던지는 동작을 취하자 순간 이이병등과 함께 철책 너머로 수류탄 2개를 던지고 일제사격을 시작했다. 이로써 1시간여에 걸친 긴박한 순간이 마무리됐다. 날이 밝자 수색작업에 나선 군은 초소 앞 갯벌에서 비닐봉지에 싸인 M­16소총 2정과 오리발·배낭등을 발견했고 강속에서 한국군 중사 차림의 북한군 사체를 찾아냈다.배낭속에는 소총 탄알 2백10발,미제 수류탄 3개,9㎜ 캐나다제 브로잉 권총 2정,카메라 2개와 필름 4통,중국제 초콜릿 10개와 이틀분 압축식량등 비상식량,아스피린등 의약품등 46종 4백여 품목이 가득 들어있었다.숨진 북한군은 왼쪽 관자노리등 2곳에 총을 맞은 것으로 확인됐다. 정상병은 『초소에는 지휘관이 따로 없다는 이강언 사단장의 가르침에 따라 임무를 수행했다』면서 『남쪽으로 침투하려는 북한 특수군을 잡아 흐뭇하다』고 말했다. 신세대 사병들의 각종 군기사고에 대한 우려를 말끔히 씻어낸 빛나는 전공이었다.
  • 본사팀,러 핵도시 첫 취재 성공/지하 3백m「K­26」현장 르포

    서울신문 「시베리아대탐방」 취재팀이 러시아 최대비밀핵기지가 들어서 있는「크라스노 야르스크­26」(이하 K­26)시를 한국언론사상 처음으로 방문,취재했다. 시베리아 중부 크라스노 야르스크에 있는 K­26도시는 스탈린시대의 구소련이 미국과의 핵무기 개발 경쟁을 하면서 비밀리에 만든 군사과학도시의 하나로 옛소련이 붕괴된 뒤에도 지금까지 외국인은 물론 현지인들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고 있는 곳이다. 인구 3만명의 이 도시는 지하 3백m에 핵폭탄제조용 플루토늄 재처리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이밖에 화학공장,위성제조공장 등이 있다.이 도시는 지상은 평범한 아파트들이 들어선 주거도시처럼 꾸며져 있으나 지하에는 핵제조시설들이 들어서 있으며 도시 주변은 철책으로 외부와 철저히 차단돼 있었다.
  • “고속철 우리 지형에 맞춰라”/건교부·건설공단 안전점검 나서

    ◎산악지역 많고 태풍·호우·폭설 잦아/20㎞마다 기상이변 탐지장비/레일온도·장애물 검지장치도 「경부고속철도를 한국지형에 맞춰라」 건설교통부와 한국고속철도건설공단이 선로와 노반이 자주 유실되고 산사태 및 낙석의 위험이 많은 우리나라의 기후와 지형 특성을 감안,「안전하고 편안한 경부고속철도 만들기」작업에 나섰다. 최고시속 3백㎞까지 내는 고속철도가 산악지역이 대부분이고 기후변화가 심한 국내에서 운행될 경우,대부분이 평야지대인 프랑스와는 달리 자칫 대형사고를 일으킬 위험이 있다며 우리지형에서 안전이 확보되는 한국형 고속철도를 건설해야 한다는 기술자들의 지적에 따른 것이다. 이에따라 건교부는 1일부터 한국고속철도건설공단과 함께 지난달 마련한 「경부고속철도 선로 안전대책 설비안」의 안전성 점검작업에 들어갔다.계약당시 이 부분의 예산도 이미 포함되어 있어 우리의 추가부담은 없다. 안전대책은 크게 안전장치 설치와 지형굴곡에 따른 설계상의 안전확보 등 2가지이다.안전장치는 ▲재해대책 설비 ▲레일온도검지장치 ▲장애물 검지장치 ▲안전 스위치설치 등이 있다. 이중 재해대책설비와 레일온도 검지장치는 프랑스의 TGV에는 없던 것으로 기후변화와 지형의 굴곡이 심한 경부고속철도에 처음 설치된다. 재해대책 설비는 태풍,집중 호우,폭설로 인한 선로 붕괴 위험을 사전에 알 수 있는 장비.강풍,강우,강설 등 분야별 검지기가 있다.20㎞ 간격으로 설치될 예정이다. 레일온도 검지장치는 레일이 구부러지는 것을 막기 위한 장비이다.곡선 부문레일이나 햇빛이 잘드는 곳,통풍이 안되는 곳 등 온도가 조금만 바뀌어도 레일에 변화가 생길 수 있는 지점에 필요하다. 그리고 장애물 검지장치는 철도위를 횡단하는 고가도로가 있거나 낙석 및 토사 붕괴가 우려되는 지점에 설치된다.자동차나 돌 등 장애물이 선로를 막으면 이를 사전에 감지해 열차를 감속시키거나 정지시키는 역할을 한다. 또 순회 점검원이 위험상황에서 운행열차중인 열차에 정지신호를 보낼 수 있는 안전 스위치는 전선로에 2백50m 간격으로 설치키로 했다. 설계상의 안전대책이 세워진 곳은 산을관통하는 터널 지역.터널 출입구는 위가 무너져 내리는 것을 막기 위해 터널을 일반철도보다 길게 해 자연경사를 그대로 살리는 등의 방법으로 경사를 완만하게 할 계획이다. 터널위에는 방지공도 만든다.터널 입출구 위에 돌이나 토사가 흘러 내리는 것을 막는 철책 등의 구조물이다. 건교부는 교량도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미국 버클리대학 펜진 박사팀이 제안한 교량 구조를 우리지형에 맞게 일부 변경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터널구조는 대한터널협회와 영국 던디대학 앨런 바디박사팀의 자문을 받은 결과 설계에 문제가 없다는 진단이 나와 손대지 않는다.건교부와 고속철도공단은 고속철도 용지중 아직 매수하지 않은 1천2백29만여㎡(필요용지의 72%)중 세부노선의 부분적인 변경이 가능한 지역은 안전성이 높은 곳으로 바꾸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 “개성있는 언어” 산문집 4권 눈길

    ◎유년시절 고백·분단현실 등 소재 다양/신경숙 「아름다운 그늘」/김하기 「마침내 철책끝…」/함광복 「DMZ… 아니다」/고종석 「고종석의 유럽통신」 한국문학의 지도에서 산문의 위치는 모호하다.붓 가는 대로 쓴 수필로서 감상적인 여고생이나 주부의 심심파적 정도로 치부되기도 하고 시나 소설에서 맛볼 수 없는 깔끔한 언어로 삶에 대한 직접적인 통찰을 드러내는 글로 대접 받기도 한다. 감상적인 수요층을 노골적으로 겨냥,감미료를 잔뜩 친 수필집들이 서점의 에세이 진열대를 가득 메우고 있는 가운데 최근 독특한 산문집 4권이 나왔다.작가 신경숙씨의 「아름다운 그늘」을 필두로 김하기 산문집 「마침내 철책 끝에 서다」,함광복 산문집 「DMZ는 국경이 아니다」,고종석 산문집 「고종석의 유럽통신」등이 그것.이 책들은 주제와 스타일은 다르지만 개성적인 언어로 산문정신의 본질인 「삶의 진실」을 추구하고 있다. 젊은 여성작가 중 가장 주목 받고 있는 신경숙씨의 「아름다운 그늘」은 마음의 떨림을 섬세한 언어에 담아온 소설가의 사적인고백.농촌에서 식구들과 부대끼며 자란 유년시절,글쓰기와 문단 친구들 이야기 등을 특유의 섬세한 문체로 속삭이며 작가는 언어로 드러나지 않는 삶의 비의에 가 닿고자 한다.이 책의 소제목인 「말해질수 없는 것들」이란 말은 그의 감성의 세계를 한마디로 드러내면서 유행어가 돼버렸다. 「마침내 철책끝에 서다」는 지은이가 휴전선을 따라 여행하며 통일에 대한 염원을 담은 기행문.백령도·강화도·민통선을 거쳐 최전방 철책 끝에 이르기까지 서로 대치하고 있는 민족의 고단한 운명을 보며 한층 불댕긴 지은이의 민족애가 열정적으로 뿜어져 나온다. 「DMZ는 국경이 아니다」역시 분단 현장인 DMZ을 글감으로 한 글.하지만 사회부 기자의 글답게 DMZ의 생태계와 거주지·역사 등에 대한 방대한 보고서의 성격이 짙다.천연기념물의 보고로서,주말 외출한 군인들이 애인과 어울리는 최소한의 삶의 터전으로서,그리고 예술가가 월북하고 남북이 정치적으로 충돌했던 역사의 현장으로서 DMZ의 중첩된 의미가 간결하고 차분한 문체에 실린다. 「고종석의 유럽통신」은 현재 파리에 체류중인 신문기자출신 지은이가 한국의 선후배·동료들에게 띄우는 편지글 형식.1백23년전의 실패한 파리 코뮌,일본인의 노벨문학상 수상,대선을 앞둔 파리의 분위기 등 현안을 보는 소감과 현지에서 본 앙리 레비의 영화,반 고흐,생텍쥐페리 등에 대한 여러가지 상념이 지은이의 두터운 문학적 소양과 사회를 보는 매운 눈에 걸러져 명쾌하게 드러나 있다. 문학동네 차창룡 편집차장은 『산문집이라면 이미 발표한 글을 모으는 것으로 흔히 알려져 있지만 최근엔 시골로 내려가서 산문집에 실을 글을 따로 쓰는 시인도 있다』면서 『산문이 푸대접받는 시대라지만 산문을 통해 아름답고 정확하면서도 감각에 맞는 국어에 도전하고자 하는 젊은 문인들도 적지 않은 듯 하다』고 말했다.
  • 통일염원의 뜨거운 몸짓 영상화

    ◎화가 하용석씨 민통선내 12곳서 벌인 퍼포먼스 기록전/철책앞에 사과나무 심고 북쪽향해 걷고…/회화·설치·판화 등 하씨 작품도 함께 전시 한 작가가 휴전선 1백55마일, 전 전선을 가로 지르며 그의 온몸을 던진 행위예술을 통해 국민의 통일여망을 쏟아 냈다. 지난 6월15일부터 25일까지 「휴전선 1백55마일­철마는 달리고 싶다」란 이름아래 작업을 펼친 하용석씨(38).당시 모든 작업을 담은 비디오영상과 오늘이 있기까지 그의 회화·설치·판화작품들을 발표하는 전시회가 사단법인 한국사회 문화연구원(회장 한완상) 주최로 오는 25일부터 9월3일까지 서울역앞 갤러리아트빔에서 열린다. 『통일을 조금이라도 앞당기는데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고 휴전선으로 떠난다』고 했던 하씨는 6박7일동안 폐허가 된 북한 노동당 철원군 당사,태풍전망대등 민간인의 출입이 어려운 민통선지역내 12곳에서 각기 다른 주제의 퍼포먼스를 펼쳤다.그가 통일을 염원하며 펼친 퍼포먼스의 주제는 「DMZ는 살아 움직인다」 「당장통일 1」 「한계시점­통일 연기나르기」 「당장통일 2」 「무명계곡」 「철마는 달리고 싶다」 「궁극공간」 「우리의 소원은 통일1」 「잡초속에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2」 「사과나무」 「그날이 오면」 등이다. 포탄과 총알 자국이 생생하게 남아 있는 철원군 노동당사에서 그는 해골을 껴안고 뒹굴기도 하고 최전선 철책앞에서 내일의 희망을 상징하는 사과나무를 심기도 했으며 연기가 피어 오르는 지게를 짊어 지고 북쪽을 향해 걷기도 했다.또한 송현리 통일전망대에서 가진 「DMZ는 살아 움직인다」는 퍼포먼스에서는 흰 석고가루를 허공에 뿌리고 온몸에 흰 천을 감은채 휴전선지역의 맑은 바람과 햇빛속에서 몸부림쳤다. 보통사람들의 시각에서 보면 도저히 제 정신이 아닌 사람으로 보일 그의 행위예술은 그러나 통일을 바라는 뜨거운 열망을 담은 작가의 온몸작업이었다. 갤러리 아트빔에서 열릴 「통일염원­하용석 미술작품전」은 그의 이같은 작업들을 기록으로 보여주는 전시회가 된다. 홍익대 대학원 서양화과 출신인 하씨는 지난 10여년간 그의 작업생활 내내 상업주의에휩쓸린 국내 화단에 도전해 온 작가.지난 91년 제4회 개인전에선 임대한 화랑 벽면에 그림하나 걸지 않은채 「미술의 죽음」전을 가져 오늘의 미술현실을 풍자했고 지난해에는 고급스러운 분위기의 화랑가인 청담동의 한 화랑에서 돼지와 인간이 동거하는 「돼지와 인간」전을 벌여 화단의 눈길을 모았다. 지난 93년엔 미국 뉴욕 미술계가 해외작가들을 뽑아 1년간 작업실을 제공하는 연수프로그램인 「P S I뮤지엄 국제스튜디오」에 한국 대표작가로 선발된 바도 있다.
  • 미군 헬기 2대/DMZ 월경 “위기일발”/지형훈련중 실수로

    ◎아군측 신호탄 발사로 회항 지난 27일 상오7시40분쯤 동부전선 군사분계선 상공에서 주한미군 항공여단소속 UH­60 헬기 2대가 실수로 북측지역으로 월경하기 직전 아군측 경계병의 신호탄 발사로 회항한 사실이 29일 밝혀졌다. 이 헬기는 이날 상오 지형숙지 훈련을 위해 비행금지구역을 통과,계곡을 따라 군사분계선 쪽으로 접근하던중 우리측 철책 뒤쪽 1백m 상공에서 되돌아왔다. 군사분계선 주변 지역에는 헬기의 월경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철책선 이남 30∼3백m 지점에 5백m간격으로 노란색의 대형 월경방지판이 설치돼 있다. 그러나 이 헬기들은 이 방지판을 지나쳐 계속 비행하던 중이었다. 이 헬기에는 B모준위등 3명의 미군이 탑승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고는 지난 연말 미군 헬기의 북한지역 월경사고로 1명이 사망하고 1명이 생포됐던 이후 또 다시 월경 직전의 상황까지 되풀이됨으로써 미군 조종사들의 교육강화가 시급한 것으로 지적된다.
  • 북한군/의도적 정전협정 위반빈발/이달 우리관할 2차례 침범

    ◎국방부/“재발땐 강력대응”경고전문 국방부는 최근 북한군이 휴전선 이남 남측 관할지역을 침범하는 정전협정 위반행위를 두차례 저질러 이에 대해 엄중항의하는 경고전문을 군사정전위를 통해 북측에 전달했다고 27일 밝혔다. 국방부는 북한군이 지난 19일과 23일 두차례에 걸쳐 군사분계선을 5백m∼1㎞쯤 넘어 우리측 철책선까지 다가왔으며 우리군의 경고에 따라 북한군은 철수했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이에 따라 유엔사령부와 함께 「앞으로 이같은 정전협정 위반행위가 재발될 경우 발생될 사태에 대해서는 북한이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내용의 대북경고전문을 작성,지난 24일 유엔사 정전위 비서장 옴스대령 명의로 북측 비서장 박임수대좌에게 발송했다. 국방부는 또 주한미군과 함께 26일 정전위비서장회의를 개최할 것을 북한측에 요구했으나 북한측이 응답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국방부의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북한은 최근 주야간에 휴전선 18개지역에서 40여차례 정찰활동을 펼치면서 두차례나 명백히 정전협정을 어기는 행위를 저질렀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이번 북한의 행위가 평소와 달리 대낮에 공공연히 이뤄졌고,전체 전선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자행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아군의 대응을 유도해 정전체제를 와해시키고 긴장을 고조시키려는 활동으로 분석되나 북·미간 핵협상과 남북대화 등을 고려,즉각 대응은 자제했다고 말했다. ◎북 잦은 도발 뭘 노리나/19.23일 5∼6명씩 떼지어 분계선 침범/「정전협정 무력화」… 대미대화 통로 트기 최근 북한군의 두차례에 걸친 군사분계선 이남 우리 관할지역 침범은 경수로 막바지 협상이 진행되던 미묘한 시기에 발생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우리 군당국은 북한군이 대낮에 거의 비무장으로 「월경」해 유화적 제스처를 쓰다 우리 군의 경고에 따라 복귀하는 이상한 행동을 보인 것은 고도로 계산된 심리전술에 따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이들의 「월경」사건은 경수로 협상의 「1차 목표시한」이었던 21일을 전후해 일어났다. 지난 19일 상오 북한군 군관 인솔아래 6명의 북한군 병사가 철원북방 자신들의 관측소에서걸어나와 남측으로 내려왔다.이들은 6·25때 설치된 군사분계선 푯말 주위에서 한동안 서있다가 남하하기 시작했으며 우리측이 경고방송을 하자 「내일 만나자」는 뜻의 손동작을 하고는 북으로 되돌아 갔다.이들은 2명만 개인화기로 무장을 했으며 완장 등 정전협정에 따른 표시는 전혀 하지 않았다. 23일에는 바로 옆 북한군 관측초소에서 비무장 군관 1명과 단독무장 병사 4명 등 모두 5명이 군사분계선 남쪽 1㎞쯤에 설치된 우리측 철책으로 다가와 철책에 걸려있는 비닐봉지를 떼어갔다. 군은 이같은 북한군의 행동이 정전협정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으로 보고 있다.군은 그러나 이때 북한군이 공격태세를 갖추는 등 적대자세를 보이지 않은 점으로 미루어 도발과는 다른 정치적 의도를 갖고 있는 행동으로 판단하고 있다. 군의 한 관계자는 『북한군은 28일부터 열리는 평양축전에 대비,전군 경계태세 강화조치를 취하고 있다』면서 『경수로 막판 협상이 진행되고 또한 북한내부에서 중요한 행사가 치러지는 마당에 고의로 정전협정을 어기는 행위를 한 진의를 분석중』이라고 말했다. 군은 북한측의 이번 행동이 정전협정의 무력화와 북·미 대화통로 개설을 노린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정전협정에서 금지하고 있는 행위를 일부러 감행함으로써 정전협정이 무력화됐음을 내외에 과시하고 한국측의 대응조치로 부상이나 사망자가 발생했을 경우 「비무장」을 강조하며 국제사회의 시선을 모으려 한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군의 한 관계자는 『군은 당초 정부의 경수로 관련 입장을 지원하고 안보의식을 다지기 위해 강경대응하려 했으나 자칫 그들의 전술에 휘말려 큰 전략적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에 따라 정전위 채널을 통해 문제를 해결키로 했다』고 말했다.
  • 케냐/“야생동물 낙원” 관광대국 탈바꿈(아프리카 기행:1)

    ◎나이로비에서 케이프타운까지/국토 한가운데 적도… 평균기온 섭씨27도/나이로비 사가지 도로망 등 세련미 넘쳐/한국인경영 사파리파크호텔은 관광명소 국토의 한중간을 적도대가 가로지르고 지나는 열대의 나라.그러나 1천6백여m의 고원지대이기 때문에 더운 여름철에도 섭씨 27도를 넘는 일이 없는 온화하고 시원한 날씨를 갖고 있는 나라 케냐.그리고 상상을 뛰어넘는 수도 나이로비 시가지의 세련미 넘치는 도시미관,문명과 야성이 절묘하게 교차되고 있는 나라인 케냐.영어가 능숙하지 못한 반벙어리의 여행자라도 「잠보우」라는 인사말 한마디만 할 줄 알면 별 불편없이 여행할 수 있는 나라가 케냐이다. ○김포서 15시간 걸려 「동물의 왕국」이나 「꽃의 나라」로 일컬어지고 아프리카의 진주로 불린다.이 나라로 가는 길은 우리 국적의 항공기가 인도의 봄베이노선을 개척했으므로 우리에게 훨씬 가까워졌다.김포공항에서 저녁에 뜨는 비행기를 타면 8시간 뒤에 인도의 서쪽 항구 봄베이에 도착한다.한밤중인 공항에서 다시 케냐국적의 항공기로 바꿔타고 7시간을 비행하면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공항에 도착한다. 나에게는 케냐가 두번째의 방문이지만 이 공항에선 언제나 상오 11시쯤의 뜨거운 태양과 만나게 된다.구름 한점 없이 발가벗은 하늘에서 작열하고 있는 태양아래로 첫발을 내딛게 되면 오염된 환경에 일상적으로 중독되어 살았던 15시간 이전의 회색빛 서울이 불현듯 뇌리를 스친다.빛살의 무늬가 손에 잡힐 듯한 태양아래 노출되어 버린 나는 찌들고 구겨진 스스로의 모습에 희미한 모멸감조차 느끼게 된다. 허우대가 껑충한 흑인 운전사가 다가와 이 나라의 국어인 스와힐리어로 「웰컴」이란 뜻인 「잠보우」를 외치며 내겐 무거웠던 트렁크를 한손으로 번쩍 들어 미니버스에 실어주었다.버스는 곧장 공항을 벗어나 나이로비 국립공원을 끼고 시가지로 향해 달렸다.7년전의 여행때 공항과 마주 바라보이는 그 공원의 철책까지 다가선 기린떼들이 우리들이 탄 차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아 탄성을 질러댔던 기억이 있다.그처럼 케냐는 자연의 풍경과 그 풍경을 만드는 기후,그리고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동물들이 모두 한데 어우러져 지구상에서 보기드문 낙원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아프리카의 여러 나라 중에서도 가장 뒤늦은 19 63년에야 독립을 얻게 된 나라지만 독립후의 경제적 발전과 사회적 번영에 있어서는 단연 앞선 나라이기도 하다.홍차와 커피 수출은 아프리카의 으뜸이었지만 지금은 관광수입이 첫째로 꼽힌다. 드디어 차창 밖으로 시가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나이로비는 마사이(Maasai)족의 언어로 「물이 좋은 곳」이란 뜻이다.중심가의 도로는 12대의 마차가 나란하게 서서 달릴 수 있을 만큼 넓고 곳곳에 눈에 띄는 주차기록계는 이 도시의 현대화를 한마디로 대변하고 있었다.골목 시장과 난전,그리고 무역물자를 실어나르는 컨테이너 집하장을 보여주며 시가지를 관통하고 있던 버스는 키마치 스트리트 앞에서 잠시 멈추었다. ○인도인이 상권 장악 키마치에 세워진 기념탑은 19 50년대 마우마우 반란을 주도하였고 이나라의 종신 대통령이었던 조모 케냐타의 투쟁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다.50년대 아프리카 최대의 유혈해방투쟁이었던 마우마우 반란은 케냐 최대 부족인 키쿠유족이 주동이 되어 케냐의 영국인과 유럽인들을 몰아내려 하였던 반란이었다. 1907년 몸바사로부터 수도가 옮겨진 나이로비의 도로망은 이곳을 중심으로 서양의 장기판 같은 모양을 이루며 뻗어나 있다.동쪽은 주로 금융가가 차지하고 서쪽은 아시아계인 인도인들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나이로비 강변을 끼고 있다.나이로비 상권의 80%이상을 장악하고 있다는 이들 인도인들은 케냐가 영국의 식민지였을 때 건너온 사람들의 후예이다.케냐의 몸바사와 우간다의 키수무를 연결하는 철도부설공사의 노무자로 일하다가 그대로 눌러앉은 사람들로부터 태어났다.봄베이에서 나이로비로 나르는 항공기 객석에서 터번을 두른 인도인들을 숱하게 볼 수 있었던 까닭도 거기에 있었다. 웃음을 시종 잃지 않았던 운전사는 시가지를 가로질러 약 20분후에 카사라니지역에 있는 사파리파크호텔 앞에 내려주었다.호텔 로비 앞에는 그리스시대의 남자들이 어깨에 두르던 토가처럼 적갈색의 당카자락을 눈부시게 걸친 벨보이가 기다리고 섰다가 트렁크를 냉큼 받아들었다.첫인사는 역시 잠보우.창을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마사이족이 틀림없어 보였다. 케냐를 여행하는 유럽인들이나 일본인들은 언필칭 이곳 사파리파크호텔을 찾아내어 여장을 풀게 된다.저녁이면,「나미초마 야외식당」에서 「케냐 사파리 캐츠」무용단의 격동적인 전통민속춤을 관람하면서 멧돼지,얼룩말,기린,사슴,노루,악어,타조와 같은 일곱 종류의 통숯불구이 바비큐를 즐길 수 있는 호텔이다.나이로비의 유일한 명소라 한다.한국의 강영국 박사가 운영하고 있는 이 호텔은 설립자인 전락원씨의 탁월한 건축예술감각이 곳곳에 배어 있는 장소로서도 유명하다. ○앤소니 퀸 조각 눈길 아프리카의 토산인 가시나무를 주제로 건축된 호텔로 들어서면 누구나 집으로 돌아온듯한 착각과 만나게 된다.7백명의 종업원이 매일 가꾸어 정갈하게 다듬어진 잔디와 숲은 저마다 조화를 이루며 독립된 공간을 만들었다.그 축약된 공간마다 2층에 10개의 객실로만 구성된 전통 아프리카식 지붕의 가옥들이 고즈넉하게 들어앉아 있다.야자나무숲과 꽃길과아프리카식 건물 사이를 오묘한 굴곡을 이루며 흐르게 되어 있는 수영장의 예술적 조형미는 나이로비에서 가장 소문난 수영장으로 손꼽힌다. 객실의 탁자와 의자 그리고 손에 잡히는 소도구에까지 미쳐 있는 단순미와 소박한 터치는 나무를 주제로 한 건축이 안겨주는 안도감까지 미리 염두에 둔 것이어서 15시간 이상의 진한 여독을 순식간에 풀어주는 마력과 같은 효험이 있었다.이렇게 아름답고 편안함을 선사하는 호텔이 아프리카라는 멀고먼 오지에서 한국인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은 자긍심을 가지기에 충분한 것이었다.이 호텔의 남쪽 정문에는 회화에서도 독특한 자기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영화배우 앤터니 퀸이 제작하여 호텔에 기증하였다는 조각작품이 눈길을 끈다. 나이로비 교외에는 아직도 커피와 홍차나무를 기르고 있는 대단위 농장들을 발견할 수 있다.전형적인 농업국인 케냐가 그 수입의 원천이 관광산업으로 바뀐 것은 불과 몇년 전부터이다.그러한 대전환은 물론 남한 넓이의 거의 6배에 달하는 땅위에 펼쳐진 이 나라의 대자연에 어우러져 살고 있는 「동물의 왕국」이 제공한 선물이란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 백악관의 수난(외언내언)

    세계최고의 권부인 미국의 백악관이 무방비 상태에 놓여있다해서 요즘 화제가 되고있다. 지난 17일 새벽 대통령과 가족들이 취침중이던 백악관을 향해 4∼6발의 총탄이 날아들었다.그중 한발은 대통령이 자고있던 2층 발코니까지 침입했다.이번 사건은 지난 10월29일 마틴 듀란이란 청년이 대낮에 백악관을 향해 무려 30여발의 반자동소총을 난사한 사건이 있은지 두달도 안돼 일어난 총격사건이다.또 지난 9월 12일 새벽에는 정신병력을 가진 한 청년이 세스나 경비행기를 훔쳐타고 백악관 잔디밭에 추락한 사건도 있었다. 백악관피습사는 오랜 역사를 갖고있다.1812년 영국군 점령당시는 백악관이 온통 불길에 휩싸였으며 그때 남은 것이라곤 식기 몇점과 조지 워싱턴 대통령 초상화 뿐이었다고 한다.1828년에는 술취한 군중들이 앤드루 잭슨 대통령취임식장에 난입,기물을 마구 부셔대는 난동사건이 있었고 1950년 트루만대통령때는 푸에르토리코 분리주의자들이 블래어하우스를 습격하기도 했다. 1974년에는 한 젊은 육군사병이 헬리콥터를 훔쳐 백악관 정원으로 달려들었으며 76년엔 한 사나이가 픽업트럭을 타고 백악관정문으로 돌진하려다 붙잡히기도 했다.같은해 경호원의 제지를 무릅쓰고 백악관 철책을 뛰어넘으려던 괴청년이 사살된 사건도 있었다. 백악관 재난사는 이처럼 화려하지만 불행중 다행인 것은 이런 피습들로 대통령이나 그 가족들이 위해를 당한 일은 한번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이런 일들은 따지고 보면 백악관이 워싱턴시내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는데 그 원인이 있다고 할 수 있다.철책대신 높은 담장을 쌓을 수도 있고 일반의 백악관 접근을 막을 수도 있다.그러나 미국은 그렇게 하지않고 있다. 국민들의 대통령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다.그것이 더 강한 백악관 경호책일지도 모르겠다.
  • “헬기 너무 빠르게 북으로 비행”/미국방부 「불시착」배경 문답

    ◎“한국군,경고예광탄 발사못해”/조종사들 「체크포인트」 착각한듯 미국방부는 19일 북한 영공에서 불시착한 미군 OH­58C 헬기의 두 조종사는 최종 라디오 메시지에서도 한국상공을 날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고 밝혔다.다음은 이번 헬기사건과 관련한 국방부 고위당국자가 밝힌 배경설명의 요지이다. ­불시착 경위를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가. ▲17일 상오 10시 2분,캠프 페이지(춘천)를 이륙,라디오와 레이더 교신으로 사전 계획된 항로에 따라 북동쪽의 검문소(체크포인트)84로 비행할 계획이었다.헬기는 비행도중에 라디오에 의한 비행통제기관을 바꾸게 되며 이는 정상적인 것이다.조종사들은 적어도 30분마다 무선교신을 통해 자신들의 위치를 보고한다.10시 26분,레이더접촉이 끊어졌다.그러나 헬기가 레이더상에서 없어지는 것은 비정상적인 것이 아니다.지상에 가깝게 저공비행을 하면 레이더로서는 관찰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그러나 이 경우 레이더통제본부인 오산공군기지에 보고를 해야 한다.헬기는 계속 북동쪽으로 날았고 10시 36분에서 37분 사이에 교신이 왔다.그 이후 10시 38분에 비행금지구역(남쪽 철책선으로부터 5∼15㎞지역)을 통과하고 있는 것이 한국군의 관측자에 의해 발견되었다.그 다음 10시 40분 한국군 전방초소에서 헬기가 아주 낮은 고도로 군사분계선을 지나 북쪽으로 비행하는 것이 목격되었다.한국군의 관측병들은 계통을 따라 보고를 했다.헬기의 고도는 약 80∼1백피트였으며 시속 80∼1백노트로 비행했다고 관측병들은 보고했다는 것이다.상오 10시 43분 문제의 헬기에서 무선보고가 왔는데 그들은 「체크포인트 84」지점에 와 있다고 말했다.이 체크포인트는 비행금지구역 남쪽에 있는 곳으로 비행금지구역을 따라 정찰을 하는 출발점인 것이다. ­헬기가 실제 북한상공을 비행하고 있었던 지점과 그들이 착각하고 있었던 체크포인트84지점은 얼마나 떨어져 있나. ▲17㎞가량 떨어져 있었을 것이다. ­조종사들은 자신들이 남한상공에 있었던 것으로 잘못 알고 있었다는 뜻인가. ▲그들은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한두가지 덧붙일 것은 10시48분쯤 불시착한 것으로 보이는데북한측은 격추를 했다고 주장하나 우리들은 아직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일만한 증거를 갖고 있지 않다.또 하나는 지상의 관측초소는 항공기가 비행금지구역 북쪽으로 비행할 때는 예광탄을 쏘는 등의 방법으로 경고조치를 취해야 한다.그러나 우리가 갖고 있는 보고서에 의하면 헬기가 너무 낮게,그리고 빠르게 비행하고 있어 이같은 경고조치를 취하기 전에 북쪽으로 날아갔다는 것이다. ­한국초소에서 무선으로 헬기의 북한영공 진입사실을 전달할 수 없었나. ▲두 곳의 초소에는 전화만 설치되어 있어 헬기의 북쪽상공비행을 계통에 따라 보고했다. ­만약 북한측 항공기가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쪽으로 날아오는 경우 어떻게 대처하는가. ▲그 비행기가 적대적인 의도를 보이지 않는 한 격추시키지 않고 일단 착륙시키는 것이 한미연합사의 규정이다. ­OH­58 헬기의 임무는 무엇이며 무장정도는 어떤가. ▲아파치 헬기와 연계운영되며 아파치 헬기의 작전을 돕기 위해 정찰활동을 하는 것이 임무다.그러나 이 헬기는 비무장이며 조종사도 권총을 휴대하지않는다. ­휴전선 상공에 조기경보기(AWACS)가 늘 감시를 하고 있는가. ▲AWACS는 정기적으로 남한상공을 비행하고 있다.비록 산악지역에 붙어 낮게 비행하는 헬기를 관측하기는 어려우나 한반도에 대한 감시임무를 훌륭히 수행하고 있다.불시착 사고가 발생한 지난 17일에는 한국상공에 AWACS를 운용하지 않았으며 대개는 한달에 10∼15차례 이 지역을 감시하고 있다.
  • “군 정신무장 강화… 경계태세 만전”/김 대통령,전방부대 시찰

    ◎혹한 대비한 철저준비 당부… 장병 격려 김영삼대통령은 19일 중부전선 백골부대의 철책·수색대대를 잇달아 방문,격려했다. 백골부대는 6·25사변때 제일 먼저 3·8선을 넘고 중국과의 국경지대까지 간 전통 깊은 부대.김대통령은 이날 방뭉에서 북한군의 동태와 우리군의 경계태세등에 깊은 관심을 표시하면서 국토방위에 만전을 기하도록 당부했다. 김대통령은 헬기로 부대에 도착,김동진육군참모총장등 고위지휘관들의 영접을 받았다.대통령 일행은 육로로 군사분계선 근처 철책선에 있는 백골전망대로 이동,철책대대장으로부터 부대현황과 관할지역 주변의 북한군 동향에 대해 보고를 듣고 대화를 나눴다. 김대통령은 『북측과 아군 GP사이의 거리는 얼마나 되나』 『북한군의 동향은 어떤가』등 전방상황에 깊은 관심을 표명했다.이에대해 철책대대장은 『북측 GP와의 거리는 6백15m로 전방에서 가장 가깝다』고 설명하고 『북한군 특이동향은 없으나 겨울철을 맞아 진지보수와 땔감을 구하러 다니는 모습이 자주 관측된다』고 보고했다.그는 이어 『북한군은 지금도 하루 14시간 가량 대남비방방송을 하고 있고,비방의 강도도 예전과 변함이 없다』면서 『특히 남한이 북·미회담을 방해하고 있다는 내용이 많다』고 설명했다. 김대통령은 망원경으로 북측의 동향을 직접 살펴봤다.『북측에는 나무도 거의 없고 철책도 시원치 않다』는게 김대통령의 관측소감이었다.김대통령은 관측이 끝난뒤 대대장에게 차고 있던 시계를 선물로 풀어 주고 격려했다. 김대통령은 백골잔망대 앞에서 철책대대원 장병들과 기념사진을 직고는 이웃 수색대대에 들러 장병들과 오찬을 나누었다. 김대통령은 『오늘은 바로 2년전 문민대통령을 뽑는 우리 역사상 매우 중요한 날』이라고 상기시키고 『그런 날 최전방을 찾은 것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자유를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치고 있는 군에 대한 고마음 때움』이라고 관심과 애정을 표시했다.김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가장 중요한 책무가 국가를 지키는 것』이라면서 『그것을행동에 옮겨 주는 것이 바로 군인 여러분』이라고 군에 대한 신뢰감을 나타났다.김대통령은 이어 『시간은 우리편이므로 조급함 없이 정정당당히 나갈 때 민주주의와 우리가 소망하는 통일이 다가올 것』이라고 말했다. 부대를 떠나기에 앞서 김대통령이 장병들과 악수를 나누자 장병들은 관등성명대신 『자신있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중부전선 이상없습니다』등의 구호로 왕성한 사기를 과시했다. 김대통령은 주한 미군 제2사단을 거쳐 서울로 돌아왔다.
  • 동티모르인 이틀째 과격시위/인니군 87명 체포

    ◎시드니선 인니영사관 난입시도 【딜리 AP 연합 특약】 독립을 요구하는 동티모르 주민들의 시위가 이틀째 계속된 14일 인도네시아군은 시위주민 87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그러나 목격자들은 최소한 1백50명 이상이 체포됐다고 주장했다. 목격자들은 딜리시의 주요 공공기관 건물을 보안군들이 지키고 서있으며 딜리시내 거리에 13일 살해된 것으로 보이는 동티모르인의 시체 한구가 유혈이 낭자한 모습으로 그대로 방치돼 있다고 전했다. 딜리시의 상점들과 사무실,학교들은 문을 닫은 상태이며 경찰은 5백여명의 대학생들이 독립요구 시위를 벌이고 있는 대학을 포위,외부인들과의 연결을 차단하고 있다. 경찰은 이와 함께 동티모르 주민들의 정신적 지도자로 인도네시아 정부를 강력비판해온 카를로스 벨로 주교의 집도 포위하고 있다. 【시드니 AP 연합 특약】 50여명의 동티모르인들이 14일 시드니의 인도네시아 총영사관 앞에서 동티모르의 독립을 요구하며 총영사관에 난입하려다 이를 저지하는 경찰과 충돌을 빚었다. 이들은 경찰의 저지를 받자 곧 옆문 쪽으로 이동,철책을 넘어 총영사관 지붕위로 올랐으나 곧바로 경찰에 의해 끌어내려졌다.이 과정에서 체포된 사람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13일에도 일단의 동티모르인들이 멜버른의 인도네시아 총영사관에 난입하려다 6명이 체포되는 사건이 있었다. ◎동티모르 유혈사태 안팎/APEC총회 쟁점 부각/인니합병에 18년간 저항… 국제적 이목 집중/독립운동 탄압 받아… 희생자 15만명선 추정 수하르토 인도네시아 대통령에게 있어 동티모르는 항상 골치아픈 존재였다.선진국으로의 약진을 꿈꾸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총회를 유치한 이번에도 동티모르 문제는 미대사관 난입·점거 사건(12일)과 딜리에서의 유혈시위(13일)를 통해 셰계의 이목을 끌면서 APEC 총회의 본의제인 자유무역 구현 문제에 버금가는 관심거리로 부각됐다. 그러나 동티모르 소요사태는 이미 오래전부터 예고된 사건이었다.인도네시아의 「킬링 필드」라고 불릴 만큼 인도네시아의 대표적인 인권유린 사례였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을 비롯해 러시아·중국 등국제사회는 인구 1억9천만명을 가진 동남아의 강대국이자 자원부국인 인도네시아의 위상을 고려,동티모르 문제에 애써 눈을 돌렸었다. 이번 총회를 수개월 앞두고도 동티모르에서의 인권탄압을 중단하고 동티모르 지하독립운동가들과 대화를 가져야 한다는 촉구가 많이 있었으나 수하르토 대통령은 끝내 이를 거부했고 미국을 포함해 다른 아태지역 지도자들 역시 이번 회의의 의장국이자 비동맹운동의 지도국인 인도네시아의 입장을 고려,동티모르 문제를 외면했었다. 동티모르 문제의 핵심은 4백여년에 걸친 포르투갈의 식민통치로 주민들 대부분이 가톨릭 교도인 동티모르 주민들이 이슬람국가인 인도네시아의 통치를 받을 수 없다며 독립을 요구하고 있는 것.동티모르의 비극은 동티모르를 식민통치하던 포르투갈이 지난 74년 마카오를 제외한 모든 해외식민지를 포기한다고 선언하면서부터 시작됐다. 포르투갈의 식민통치 종식선언은 군사쿠데타로 좌파정부가 들어선데 따른 것.하지만 갑작스런 식민통치 포기는 동티모르에 즉각적 완전독립을 요구한 좌파성향의 프레틸린,인도네시아와 합병을 주장한 아포테리아,독립전까지 포르투갈과 연합을 주장한 UDT 등 3개의 정파가 생겨나게 했다. 이들 3당중 가장 많은 지지를 확보한 것은 프레틸린.정국을 주도한 프레틸린은 포르투갈 관리들의 철수가 끝난 75년11월 동티모르민주공화국의 선포를 선언했다.그러나 당시 수하르토 대통령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바로 군대를 보내 무력침공을 감행했다. 인도네시아군의 동티모르 주둔으로 76년 동티모르에는 수하르토 대통령이 조종하는 괴뢰정권이 탄생했고 수하르토는 이 괴뢰정권의 인도네시아와의 통합 요청을 받아들여 동티모르를 인도네시아의 27번째 주로 합병해 버렸다. 이후 프레틸린 민병대에 대한 인도네시정부군의 소탕작전이 본격화하고 이에 대한 동티모르주민들의 저항이 끊이지 않음으로써 91년11월12일 2백명 이상의 희생자를 낸 이른바 「딜리 학살사건」 등 많은 인권탄압 사례를 기록하게 됐다.세계 인권단체들 추계에 따르면 동티모르에서 희생된 사람들은 대략 10만∼20만명 선. 살아남은 프레틸린 민병대 2천여명은 대부분 산악지대로 흩어져 지금도 게릴라식 투쟁을 계속하고 있으나 역부족 상태이다.
  • 살아생전 북녘땅에 가볼수 있을는지…/통일염원록에 쌓이는 「망향」

    ◎파주 오두산 통일전망대 실향민 발길 줄이어/16절지 1만여장에 가슴속의 응어리 줄줄이/김일성사망후엔 “김정일 각성하라” 문구도 『아버님 고향은 황해도 공포면이다.명절때면 임진각 철책너머로 눈길을 준채 눈물을 글썽이던 모습이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아버님을 모시고 살아 생전 저 북녘땅을 밟아볼수 있을는지….94년7월7일』김성년(39·서울 성동구 중곡3동). 『착잡한 심정과 답답한 마음이 발걸음을 옮길 수 없게 만든다.우리가 무얼 어떻게 하면 겨레의 염원인 통일이 이루어질까.8월20일』박동수·이정임·박상규·상우가족(부산시 해운대구 반송1동). 『너무 오래됐습니다.죽기전에 가보고 싶군요.8월』고운상(63·본적 평남 대동군 금제면). 『친구들과 북한으로 배낭메고 여행가고 싶다.8월28일』장소희(13·충남 연기군 조치원읍). 임진강을 사이에 두고 북녘땅과 마주하고 있는 경기도 파주군 탄현면 오두산 통일전망대에는 92년9월 개관한 이래 애달픈 사연을 가슴에 품은 실향민들과 민족분단의 아픔을 생생하게 체험하려는 전후세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방문객들은 이곳을 둘러본뒤 제2전시관내 「통일염원실」에 마련된 16절지 크기의 백지(통일염원록)에 각자의 통일염원과 뜻을 자유롭게 적어 한쪽 벽면의 게시판에 붙여 놓았다. 국민학생부터 80대노인에 이르기까지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생각을 소박하게 기록한 이 통일염원록의 내용들은 『하루빨리 통일이 됐으면 좋겠다』,『평화통일을 이루어야한다』는등 통일에 대한 기원이 대부분이지만 통일후 금강산,백두산등을 방문하기를 희망하는 내용도 적지 않다. 통일전망대 관리본부측이 최근 올들어 8월까지 모아둔 1만여장의 통일염원록 내용을 분석한 결과 통일을 기원하는 내용이 전체의 80%였으며 통일을 위해 정진하겠다는 결의표명이 4%,통일전망대에서 분단의 현실을 실감했다는 내용이 2%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밖에 지난 7월 김일성이 사망하기 전에는 『죽어라』『각성하라』『통일에 응하라』는등 김일성 개인에 대한 촉구성 내용이 많았는데 사망후에는 『김정일 각성하라』로 바뀌었으며 정부의 통일정책에 대한 불만등을 적은 경우도 있다. 또 이들 가운데는 『지금 이대로가 좋다』부터 『흡수통일하자』는 의견까지 다양한 견해를 보였으며 『분단의 아픔을 모르는 우리 X세대들은 정말 반성해야 한다』는 20대 젊은이의 자기반성도 적혀있어 방문객들에게 자연스럽게 자신의 통일관을 돌아보도록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개관이후부터 지난 9월말까지 통일염원록에 기록을 남긴 사람은 전체 방문객의 1%정도인 2만4천여명이다. 이봉우 관리본부장(51)은 『이곳을 방문할때는 가벼운 마음으로 온 사람들도 통일염원록을 쓸때는 진지하게 자신의 느낌을 적는다』며 『한장한장이 귀중한 역사자료기 때문에 버리지 않고 모두 보관하고 있으며 앞으로 소책자로 발간할 계획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 경주박물관학교 개교 40돌 기념잔치(문화현장)

    ◎「서라벌」 지키고 가꾸기 40년/54년 10월10일 진홍섭·윤경렬씨 등 4인 뜻모아 열어/경주역사·미래교육… 3천여명 수료/학교 발자취 한데 모은 전시회도 개막 경주는 고을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박물관이다.경주에서도 국립경주박물관은 문화유산의 보고이다.수많은 유물 가운데 국보로 지정된 성덕대왕 신종과 안압지에서 나온 나무배의 파편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중요한가를 따지는 일은 부질없는 일일 것이다. 경주에서 지나가는 사람을 붙들고 『경주박물관에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라는 질문을 던졌다고 하자.그러면 열사람 가운데 한두사람은 이렇게 대답할지도 모른다.『어린이 박물관 학교가 아닐까요』 이처럼 경주사람들에게 무엇보다 소중한 경주박물관학교가 10일 개교 40주년을 맞았다.이날 박물관에서는 그 시작만큼이나 조촐한 기념식이 있었다.이어 박물관학교의 산 역사로 개교때부터 지금까지 가장 중요한 일을 맡고있는 「마지막 신라인」 윤경렬옹이 학교의 지난날을 돌아보는 강연과 함께 그동안 어린이학교를 거쳐간 어른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학교의 발자취를 한데 모은 전시회가 개막됐다. 이날 기념식은 누구도 미래를 준비하지 못하던 6·25전쟁 직후 1954년 어린 꿈나무들에게 「경주의 미래」를 넘겨주려던 몇몇 선각자들의 높은 뜻을 다시 한번 기리는 자리이기도 했다. 참석자들은 「하늘도 내 교실 땅도 내 교실…」이라는 박물관어린이학교 교가를 오랜만에 따라 부르며 감회에 젖었다. 1954년 어느 여름날,진홍섭 당시 국립박물관 경주분관장과 윤옹,박일훈 학예연구사,이승을 문화고 교감 등 네사람은 『한주일에 한번쯤은 의미있게 모이자』고 약속하고 다음주의 주제를 「성덕대왕신종」으로 정했다. 그 다음 주의 주제는 「문화재 보호 목책」이었다.굵은 판자로 된 목책은 볼성사나운 흉물이었다. 이들의 의견은 『경주 시민들이 문화재의 참뜻을 안다면 목책이고 철책이고 필요없을 것』이라면서 『때묻지않은 어린이들에게 가르치면 시간은 걸리겠지만 자라서 어른이 됐을때는 이것이 가능해지지 않겠느냐』는 데로 모아졌다. 「하늘도 내교실…」이라는 교가는 이듬해 만들어진 것.윤옹이 가사를 써 진관장에게 건네주자 진관장은 이를 조지훈 시인에게 보여줬고 시인은 다시 이를 이제는 세계의 작곡가가 된 윤이상씨에게 보냈다.윤씨는 개교 1주년 기념식에 축하인사와 직접 교가를 부른 녹음테이프를 전해와 지금도 이 학교의 소중한 기념물이 되고 있다.이학교의 40년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50년대 초창기에는 박물관장실에서 경주여중 다시 미국으로 금관이 소개,되고 또 62년에는 경주 시립도서관으로 자리를 옮겨 이름도 「경주어린이향토학교」로 바뀌었다.75년 현재 박물관이 지어진뒤 다시 옛이름과 옛터를 되찾을 수 있었다.이학교는 82년 중·고등부와 성인부가 신설된뒤 「경주박물관학교」로 불린다. 이학교는 40년전 개교때 규칙대로 입학과 퇴학이 자유이다. 정식 수료증을 받은 사람은 3천명이지만 87년 34기 입학식에 2천5백여명이 몰려와 한바탕 소동이 빚어졌던일에서 보듯 50년대이후 경주태생은 거의 한 번쯤은 모두 이곳을 거쳐갔다. 그들이 지금 경주를 지키고 있다. 박물관학교의설립목표가 이루어진 셈이다.이제는 경주를 제대로 지키는 일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 수령목소리 흉봤다 이튿날 사형/“인권동토”북한의 실상/통일원보고서

    ◎재판절차 없이 구금·고문 예사로/당·보위부·안전부등서 3중감시 북한주민들의 참담한 인권 실태가 통일원이 귀순자들의 생생한 증언과 국제기구들의 조사결과 등을 종합해 펴낸 「북한의 인권실태」보고서에 의해 백일하에 드러났다. 통일원이 9일 국회 외무통일위에 제출한 이 보고자료는 최근 국제사면위가 폭로한 북한내 정치범수용소 수용자들의 비참한 인권유린 상황도 재확인하고 있다. ▷자유권적 인권 침해◁ 공정한 재판절차없이 피의자를 구금하거나 고문 등 비인간적 처벌을 자행하고 있다.특히 김일성부자의 지시나 당정책을 어겼을 때 처벌의 가혹함을 주민들에게 주입시키기 위해 인민재판식 공개재판을 실시하기도 한다. 정치범 및 그 가족들에 대한 처벌은 더욱 가혹해 「특별독재대상구역」이라는 수용소에 감금해 매일 12시간 이상 강제노동을 해야 한다. ▲사례=83년 김일성신년사 발표를 집단 시청하던 중 한사람이 김이 쉰 목소리를 내자 「돼지 멱따는 소리처럼 꽥꽥 거린다」고 무심코 내뱉었다.그는 다음날 소리없이 불려가 특수처리대에 의해 사형당했고 그의 가족까지 추방당했다(90년 귀순자 이덕남증언). ▷사생활비밀과 자유침해◁ 당·국가안전보위부·사회안전부 등 3중 감시체제로 주민들의 일상생활과 사상동향을 철저히 감시하고 무단침입해 점검하는 등 사생활 침해가 비일비재하다.5호담당제를 통해 5호담당 지도원이 각 세대의 동태를 감시한다. ▲사례=평양시의 한 젊은 부부의 집이 유일사상 검열원의 김일성부자 초상화와 도서에 대한 불시검열을 받게 됐다.이 때 3살짜리 아기가 싼 오줌때문에 김일성노작 맨 앞장의 초상화가 젖어 있는 것이 발견되는 바람에 불경죄에 걸려 산간벽지로 추방됐다(89년 귀순자 고운기 증언). ▷평등권 침해◁ 해방이후 여러차례에 걸친 주민성분 조사를 통해 주민들을 3계층 51개 부류로 세분했다.이에 따라 특권,식량배급,교육뿐만 아니라 일반범죄에 대한 처벌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차별대우가 적용된다. ▲사례=당정간부들은 직위에 따라 국가로부터 주택·가전제품·식료품 등의 일용품을 전용상점 등을 통해 보장받고 가족수와 관계없이아파트도 우선 배정된다.이들에게는 부정부패가 만연해 있어도 제대로 법적 규제가 적용되지 않는다.하지만 일반 노동자는 방 한칸에 한 세대가 살림을 하는 것은 보통이며 남의 집에 임시로 방을 만들어 살림을 하는 사람도 많다(88년 귀순자 소영식 증언). ▷직업선택의 자유 침해◁ 취업희망자의 의사보다는 당정기관의 조정·통제에 의해 이뤄진다. ▲사례=형제간이라도 직업때문에 어쩔수 없이 헤어지는 경우가 많다. 동생이 나이가 들어 군대에 나가게 됐을 때 형은 제대해 탄광으로 강제배치되는 등 형제간에도 군대갈 때쯤 헤어지면 다시 못만나게 되는 경우가 흔하다(90년 귀순자 신광호 증언). ◎북 「정치범수용소」 실태/탈출 기도자등 연15명 공개총살/하루 15시간 강제노역… 거의가 영양실조/「요덕」선 치료못받아 매년 40∼50여명 병사 북한이 정치범을 특별수용한 것은 지난 58년 연안파 숙청사건 연계자 및 그 가족을 교화소가 아닌 특정지역에 집단수용함으로써 시작됐다.북한식 수용소군도인 정치범수용시설을 북한당국은 「○○호 관리소」란 명칭을 사용하고 있으나 주민들간에는 「특별독재대상구역」「종파굴」「정치범집단수용소」「유배소」 등으로 불려지고 있다. 현재 수용소는 함남·함북·평남·평북·자강도 등 5개도에 12개소가 설치돼 있으며 수용인원은 20여만명으로 추정된다.도별로는 ▲함남에 요덕,단천,덕성 ▲함북에 온성(2개소),회령,화성,부령 ▲평남에 개천,북창 ▲평북에 천마 ▲자강도에 동신수용소가 있다.수용소의 면적은 각각 51∼2백50㎦로 5천명에서 5만명까지 수용되고 있다. 수용소는 통상 완전통제구역과 혁명화구역으로 구분돼 수용자의 죄질에 따라 격리된다.완전통제구역은 반당·반혁명분자,종파분자,해외도주 기도자 등을 종신수용하며 혁명화구역엔 불순 북송교포,당정책위반자,자유주의 성향자 등이 수용돼 일정기간(1∼5년)이 지나면 심사결과에 따라 출소가 가능하다. 수용소의 경비는 삼엄해 각 수용소엔 3∼4m 높이로 2,3중의 외곽철책선과 탈주가 용이한 곳에는 고압전기철조망과 지뢰밭이 설치돼있다.감시망루에는 AK자동소총과 수류탄 및 기관총으로 무장한 감시원이 군견과 함께 외곽순찰을 하고 있다. 수용소에 들어가면 공민증을 압류당하고 친지면회및 서신연락금지 등 외부와접촉이 차단된다.이와함께 선거권등 기본권이 박탈되고 배급및 의료혜택은 물론 결혼및 출산도 금지된다.수용자들은 상오5시반까지 아침식사를 하고 작업준비를 완료한후 5인조로 짜여져 하오9시까지 작업을 한후 10시부터 학습교육을 받는다.하오6시에 담당 보위원이나 감독,인민반장 등이 할당된 작업결과를 중간점검하고 미달시는 연장작업을 시킨다.작업과 학습시간을 제외하고는 2명이상 모여다니지 못하며 수용자로 위장한 정보원을 잠입시켜 행동을 감시하고 있다. 수용소안에서의 식량배급은 형편없어 대부분 영양실조에 걸려있다.게다가 중노동에 시달려 폐렴,결핵,간염,페라그라병을 앓는 사람이 많다.그러나 의사가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해 요덕수용소의 경우 해마다 40∼50명이 병으로 사망한다. 밤 10시부터는 통행이 금지되는데 적발되면 1개월간 중노동에 처해진다.도주기도자나 보위원구타자등 매년 15명가량이공개총살된다. 정치범수용소외에 모든 시·군에 설치된 각종 노동교화소에서 문제가 있다고 보는 주민들을 강제구금해 중노동을 시키고 있다.
  • 덕수궁/궁궐:9(서울 6백년만상:46)

    ◎함녕전 화재후 1906년 중건/고종,수옥헌을 거처로… 을사조약 체결도/석조전은 최초 서양식건물… 9년걸려 지어 덕수궁은 궁의 이름을 고종의 존호를 따온데서 알 수있듯이 고종과는 떼 놓을 수 없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고종41년(1904년) 4월14일 덕수궁 함녕전에서 불이나 대한문과 대분의 전각이 불에 탔다.중신들은 고종에게 경복궁이나 창덕궁으로 옮길 것을 권했으나 경복궁의 민비 참변사건과 창덕궁에서 갑신정변·임오군란의 쓰라린 경험때문에 옮기기를 꺼려했다.이에 고종은 화마를 면한 수옥헌으로 거처를 옮기고 중건에 착공,2년뒤 완공을 보았다. 오늘날 남아 있는 모든 전각들은 이때 지어진 것들이다. 고종이 거처를 옮긴 수옥헌에서 이듬해 11월18일 이등박문을 앞세운 일제의 강압과 이완용의 매국행위로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됐다.또 고종이 헤이그밀사사건을 계획했던 곳이기도 하다.결국 이 사건으로 고종이 왕위에서 물러나고 왕위를 이어받은 순종이 창덕궁으로 옮길때까지 거처로 삼았다.지금은 자취도 없이 사라졌으나 수옥헌은 정동교회를 조금지나 오른쪽으로 꺾어져 들어가 미대사관저와 인접한 곳에 있었다. 영국의 건축가 하딩이 설계,1900년에 공사에 착공한뒤 9년만에 완공한 석조전은 두개의 동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우리 나라 최최의 서양식 건물로 화강암으로 쌓아 올린 3층건물이다.임금의 거처로 쓰일 예정이었으나 완공을 못보고 국운이 기울어 빛을 보지 못했다. 석조전은 광복후 미소공동위원회 회의장으로 사용되기도 했으며 이후 국립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사용되다 지금은 궁중유물 전시관과 문화재관리국사무실로 쓰이고 있다. 덕수궁의 또하나의 현대식 유물은 석조전 앞의 청동 분수대.1937년 만들어진 이 분수대는 2차대전당시 일제에 의해 전시물자로 철거돼 콘크리트로 대체됐다가 지난 84년 복원됐다. 정문인 대한문을 들어서면 여느 궁궐과 마찬가지로 김천교라는 돌다리가 놓여있다.이 돌다리는 일제가 자동차 통행을 위해 흙으로 덮었두었으나 광복후 40년이 지나도록 존재자체를 모르다가 지난 86년에 비로소 복원되는 말못할 사연을 안고 있다. 일제에 의해축소되고 훼손된 덕수궁은 1960년대 들어 또한번 시련을 겪었다.태평로의 발전을 저해한다는 이유로 담장을 허물어 대한문에서부터 태평로 파출소까지 철책을 두른 것이다. 이때 오늘날 시민들의 만남의 광장으로 애용되고 있는 대한문과 문앞을 지키고 있는 두마리의 석수도 태평로의 도로가 넓혀진 만큼 뒤로 물러나는 설움을 받았다.이것도 모자라 서울시는 덕수궁을 시민공원으로 만든다는 발상아래 스케이트장을 만들고 상점과 음식점을 지었다.담장도 뒤로 물러 앉은 상태로 복원됐으나 궁궐내부는 옛모습을 많이 잃었다. 그러나 옛것과 새로운 것이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덕수궁안에 들어서면 언제나 유유자적했던 선조들의 정취를 맛볼 수 있어 좋다. 비록 옛 모습이 훼손되기는 했어도 서울의 궁궐 가운데 가장 도심에 자리잡고 있는 덕수궁의 규모는 1만8천여평.크기는 작지만 각박한 현실에 쫓겨 사는 서울시민들에겐 더없이 소중한 휴식공간으로 서울의 새로운 상을 만들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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