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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북 정상회담/ 적막한 판문점에 고향 꿈 심어

    “이 길로 내 고향 영변까지 내달렸으면 좋으련만,그리고 돌아올 때는 약산에 흐드러진 진달래꽃을 한아름 꺾어 안고 오고 싶어.” 11일 판문점을 견학하기 위해 자유로를 달리는 버스안의 평안남도부녀회 회원 71명은 고향이라도 가는 듯 들떠있었다.고향이 있어도 가보지 못하고 어느덧 할머니가 돼버린 이들에게 전날의 남북정상회담 소식은 수없이 꿈속에서 소리쳐 본 통일의 메아리로 들린다. 할머니들은 버스 안에서 ‘고향의 봄’‘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소리 높여불렀다.모란봉,진남포의 금제련소,흥남 부두,광량만의 질 좋은 소금,평양한복판에 우뚝 섰던 화신백화점….할머니들의 고향 얘기는 그칠 줄 몰랐다. 그러나 버스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으로 들어서자 할머니들의 표정은 이내굳어졌다.철책선과 적막을 깨는 북한의 선전방송은 할머니들의 가슴을 얼음장으로 만들었다. 남쪽 자유의 집과 마주 보고 있는 북쪽 통일각,대성동 마을에서 펄럭이는태극기와 기정동 선전마을에 높게 게양된 인공기,판문점 회담장 건물 사이를가로지른 노트북 컴퓨터두께의 콘크리트판을 사이에 두고 얼어 붙은 듯 서있는 남과 북의 병사 등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은 분단의 현실을 대변한다. 판문점 견학 코스에서 가장 높은 곳인 제3초소. 북쪽에서 불어오는 세찬 바람에 김경옥(金景玉·65)씨의 흰 머리카락이 휘날렸다.“아버지는 숨을 거둘 때도 ‘네 고향은 강동이다.평양에서 50리 떨어진 강동이란다’라며 차마 눈을 감지 못하셨어요.이 바람이 강동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아닐는지요.”김씨는 충혈된 눈으로 돌아오지 않는 다리 너머북쪽 마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할머니들은 희망을 접지 않았다. 군사회담장의 테이블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전화선을 만지작거리던 송경복(宋敬福·72)부녀회장은 “이까짓 전화선 하나를 못넘고 죽을 순 없지.정상회담에서 아무래도 큰 선물이 나올 것 같아”라며 활짝 웃었다. 4남매를 모두 실향민 집안과 결혼시킨 평남 성천 출신의 오보길(吳寶吉·70)할머니는 1·4후퇴 때 흥남에서 내려온 안사돈 최금순(崔金順·65)씨와 두딸,두 며느리를 모두 데리고 판문점에 왔다. 오씨가옆자리에 앉은 최씨에게 “사돈의 칠순 잔치는 흥남에서 해야지요”라고 말하자 최씨는 “제 칠순은 서울에서 지낼지 몰라도 사돈의 팔순 잔치는 꼭 성천에서 하게 될 겁니다”라며 오씨의 손을 꼭 잡았다. 3시간의 짧은 견학을 마친 할머니들을 태운 관광버스는 북녘 땅에서 자꾸멀어졌다.하지만 할머니들의 마음은 통일이 돼 고향을 달리고 있었다. 이창구기자 window2@
  • ‘동식물 낙원’ DMZ 훼손 경고

    분단의 상흔이 짙게 남아있는 비무장지대(DMZ)의 역사와 식물생태를 종합한 보고서가 최근 나왔다.차종환 미국 UCLA대학 객원교수,제성호 통일연구원북한인권센터 소장,김병우 상지대 교수 등 3명이 펴낸 ‘한국 비무장지대의식물생태’(예문당). 저자들은 직접 남측 비무장지대를 조사했으며 김일성대학 관계자로부터 북측자료를 제공받아 연구에 포함시켰다. 책에 따르면 DMZ는 두루미 열목어 사향노루 등 멸종위기에 처한 동식물의피난처가 되고 있다.몇년만 지나면 울창한 원시림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고,이렇게 되면 동식물 자체가 커다란 자원이 되고 있는 21세기에 더욱 가치가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미리 보전정책이 준비되지 않으면 남북통일 과정에서 모처럼 조성된생태서식지가 급격히 파괴될 가능성이 높다는게 저자들의 주장이다. DMZ 가운데 특히 눈여겨 볼 곳은 철원,대암산 및 두타산 지역과 향로봉 일대등 3곳. 강원도 철원의 경우 두루미 등 철새의 생태도래지와 역사고적지가 넓게 퍼져있어 인위적인 개발을 막아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 대암산 두타산의 경우 두타연과 용늪이 중요한 곳이다.이 지역에는 천연기념물인 열목어 검독수리 수달 하늘다람쥐 등이 살고 있다.그러나 용늪 일대는 군사보호시설의 확장 등으로 육지화되고 있어 대책이 시급하다. 향로봉 산맥은 설악산과 금강산을 잇는 생태통로의 역할을 하는 곳이다.이곳 역시 철책과 스키장 등에 의해 생태계 파괴가 진행되고 있다.외국처럼 지상 또는 지하터널로 생태통로를 만들어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 저자들은 이같은 지역 특성을 감안,이곳을 기본적으로 자연 그대로 둔채 역사탐방,안보교육,생태교육장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강구할 것을 요청한다.특히 남북교류 이전에 이런 일이 이뤄져야 무분별한 개발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김병우 교수는 “비무장지대는 역사적 문화유산이자 세계적으로 귀중한 천연자원”이라면서 “보고서는 21세기를 맞기 위해 주요지역인 DMZ의 과거 현재를 살펴보고 미래를 준비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한 기초자료로서 마련됐다”고 말했다.값 3만원. 박재범기자
  • 국민회의 공개질의 내용

    국민회의는 19일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가 예비역 장성들에게 보낸신년 서신의 내용과 관련,이총재에게 6개항의 공개 질의서를 냈다.다음은 공개질의서 요지. 이총재의 서신은 정부와 군,군과 국민 사이를 이간시키고 안보에 대한 국론분열을 야기시키는 위험한 발언으로 가득차 있다. 현정부의 안보 정책을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것에서 나아가 철책선을 지키고있는 군인들의 안보태세마저 마구 흔들어 놓을 수 있는 이총재의 망언들에대해 경악과 개탄을 금할 수 없다. 첫째,간첩을 쫓던 사람이 그 간첩에 의해 백주에 쫓겨 다니는 신세가 됐다는데 그가 누구인지 밝혀야 한다.둘째,안보가 위태롭다는 등의 무책임한 망언을 하는 저의가 무엇인지를 밝혀라.셋째,이총재의 두 아들이 병역기피의혹을 받고 있는 마당에 이총재 스스로 안보에 대한 말을 꺼낼 수 있는 자격이있는가.넷째,군의 사기를 떨어뜨린 망언에 대해 사죄하라.다섯째,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 안보를 희생시키고 국가적 혼란을 조장하여 정치적 이득을얻으려는 술책을 중단하라.여섯째,국가보안법 폐지를 과대선전한 이유와 몇통의 편지를 전·현직 장성들에게 보냈는지 여부를 밝혀야 한다.
  • 이회창총재 신년서신 파문 확산

    여권은 19일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가 최근 예비역 장성들에게 보낸서신내용을 ‘국가안보를 위태롭게 한 행위’로 규정,국회 국방위를 소집해서신내용과 배경 등을 따지기로 해 파문이 예상된다. 국민회의는 오전 당8역회의에서 “이총재의 서신은 정부와 군,군과 국민 사이를 이간하고 국론을 분열시키려는 위험한 발언으로 차 있다”는데 의견을모으고 “내용의 중요성을 감안,국방위를 소집,철저히 진상을 밝히기로 했다”고 이영일(李榮一)대변인이 전했다. 이대변인은 “이총재의 서신은 현정부의 안보정책을 일방적으로 매도하는것에서 나아가 철책선을 지키고 있는 군인들의 안보태세마저 흔들어 놓을 수 있는 것으로 경악과 개탄을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국민회의는 ‘간첩을 쫓던 사람이 간첩에 의해서 백주에 쫓겨다닌다고 하는데 그가 누구인지 밝힐 것’ 등 6개항의 공개질의서를 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탈북자 7명의 북한 강제송환으로 불거진 외교정책의 무능과 햇볕정책의 문제점을 호도하기 위한 궁여지책”이라고 반격했다.이에 앞서 이회창 총재는 올초 예비역 장성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목숨 걸고 간첩을 쫓던 사람이 그 간첩에 의해 백주에 쫓겨 다니는 신세가 되고,전방의 군인들은 무엇을 위해,누구를 상대로 싸워야 하는 것인지 혼란을 느낄정도”라는 식으로 현정부의 안보정책을 비판했다. 유민기자 rm0609@
  • 고엽제 피해자 하소연 잇달아

    지난 68∼69년 비무장지대(DMZ)에서 고엽제를 살포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전국에서 고엽제 피해 주장이 잇따르고 있다. 특히 상당수의 피해자들이 원인을 알 수 없는 피부병에다 2세까지 후유증으로 보이는 기형과 질환을 앓고 있다며 대책마련을 호소했다. 강원도 양구에서 하사관으로 근무했던 대구시 서구 비산2동 강모씨(54)는“지난 68년 7월쯤 소대장으로부터 같은 중대 3개 소대와 함께 ‘살초작업을벌일 것’을 명령받고 이틀간 노란색 액체를 철모에 받아 비무장지대에 뿌렸다”고 말했다. 그는 “70년 제대후 5년 뒤부터 지금까지 여름마다 등에 심한 물집이 생긴다”며 “올해 28살인 큰딸을 비롯해 딸 3명 모두가 사춘기를 전후해 이같은증상을 보이기 시작,나환자 전문 피부병원까지 찾았으나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또 70년부터 3년간 강원도 철원지역 철책선에서 사병으로 근무했던 대구시달서구 월성2동 이모씨(51)는 “제대후 피부병으로 시달린데다 왼손과 다리가 마비됐으며 딸은 머리에 악성 종양이 생겨 고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전북 군산시 구암동 오모씨(51)는 “69년부터 19개월동안 비무장지대에서복무하면서 7차례 맨손으로 살초제를 뿌렸다”며 “제대후 2급 시각장애인이 됐으며 아들은 골수 위험성 증후군까지 앓고 있다”고 후유증을 호소했다. 이모씨(56·예비역 소령·경기도 용인시)는 “지난 68∼71년 경기도 파주등지에서 화학장교로 근무할 당시 살초작업에 참여한 뒤 69년 낳은 딸이 기형이었다”며 “고엽제로 인한 후유증에 시달리는 전역 인사들이 여러명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이밖에 68년 연천 근무때 맨손으로 약품을 손으로 뿌렸다는 박모씨(53·전남 고흥군 도양읍)는 제대후 저혈압 등의 증세를 보이고 있으며,68년 21사단에서 하사로 근무할때 철모로 약품을 뿌렸다는 강모씨(52·경남 김해시 구산동)도 제대후 확장성 심근병과 고혈압에 시달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국내 고엽제 피해자들의 소송을 지원하기 위해 지난 18일 창구를 개설한 ‘월남전 고엽제 후유증 전우회 대구지부’ 등에는 최근 중년 50대의 남자들로부터 고엽제 피해보상문제에 대한 문의전화가 잇따르고 있다. 전국종합 * “주한미군 건의로 고엽제 사용했다”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미 국방부는 18일 한국에서의 고엽제 사용은 한국정부가 요청한 것이 아니라 주한미군의 건의에 의해 미국정부가 한국에 제안,이뤄진 것이라고 밝혔다. 미 국방부의 해명은 지난 16일 한국정부의 요청에 의해 이뤄진 것이라는 발표와는 정면 배치되는 내용이다.다음은 크레이그 퀴글리 미 국방부 대변인(해군소장)과의 일문일답. ●한국언론에서는 미국정부가 에이전트 오렌지의 사용을 명령하거나 요구,또는 압력을 가해 사용했다고 주장하는데 미국의 입장은. 이틀전 내가 이자리에서 밝혔던 내용에 정정 혹은 명확히 할 사항이 있다. 그것은 에이전트 오렌지의 고엽제 사용은 주한미군이 제안해 이뤄졌다는 것이다.낙엽제거의 목적으로 한국정부에 제시된 방법 가운데 하나였다.낙엽제거를 위해 불을 지르거나 초지를 갈거나 혹은 쟁기질,그리고 고엽제 사용 등여러가지가 고려됐고,몇가지가 실제 적용됐다. 고엽제 사용은 한국정부에 의한것이 아니고 우리쪽,주한미군에 의해 적어도 초목제거 임무의 일부로 제안됐다. ●그렇다면 미국은 정부 입장에서 명령하거나 요청하지는 않고 다만 제안만했다는 것인가. 우리가 이것(고엽제 사용)을 제안(initiated)했다.우리는 ‘자,여기 당신이쓸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는데 써보시죠’라고 말한 것이다. 요구할 위치에있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제안했던 것이고 한국 군당국과 정부내에서 검토돼 승인됐다.그리고 단기간,2년이라고 믿어지는 기간동안 사용됐다. ●사용이 중지된 이유는 한국정부의 자금 때문이었나. 그렇다.나는 그렇게 알고 있다.다른 두가지 약품이 섞여 사용됐다는 기록이있지만 얼마만큼 사용됐는지는 찾을 수 없다.
  • “고엽제살포 美軍이 먼저 제의”

    지난 68∼69년 휴전선 비무장지대 고엽제 살포 주체에 관한 한·미 국방부간의 주장이 엇갈려 책임 소재를 놓고 공방이 예상된다. 국방부 김태영(金泰榮) 정책기획국 차장은 17일 “국방부의 68년 1월12일자 언론발표문에는 ‘휴전선으로 침투하는 간첩을 막는 방책의 하나로 전방 철책 주변에 살초제 사용을 결정하고,유엔사에 4만5,000갤런을 요청했다’고돼 있다”면서 “당시 주한 미군은 예하 부대의 건의와 비무장지대 경계작전의 어려움을 감안해 미 국무부를 통해 한국 정부와 제초제 사용문제를 논의,승인을 얻었다”고 밝혔다. 국방부에 따르면 68년 4월15일∼5월30일 1차로 연인원 2만6,639명의 장병이 투입돼 총 1만8,150에이커에 ‘에이전트 오렌지’ 2만1,000갤런,‘에이전트 블루’ 3만4,375갤런,‘모뉴론’ 7,800파운드를 살포했다.69년 5월19일∼7월31일 2차 살포 때는 총 2,644에이커에 ‘에이전트 블루’ 3,905갤런,‘모뉴론’ 1,377파운드가 뿌려졌다.주요 살포지역은 민통선 북방∼남방한계선이남 일대,남방한계선 전방 철책 근처 100m 구간,OP(전방관측소) CP(지휘소) 근처,주요 전술도로 옆 30m 구간이다. 그러나 미 국방부의 크레이그 퀴글리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고엽제 살포) 결정은 당시 한국 정부와 군부가 내렸다는 사실이 기록에 남아있다”면서 “한국 정부가 미국측에 대금을 지불하고 고엽제를 구입해 한국군이 수작업으로 뿌렸으며,살포작업은 단기간 지속된 뒤 한국측의 재정적 이유로 중단됐다”고 주한 미군이 고엽제 살포를 제의했다는 우리 국방부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한편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국내 고엽제 피해자들의 미 연방정부 및 고엽제제조회사를 상대로 한 소송을 맡고 있는 재미교포 마이클 최 변호사는 “한국 정부가 고엽제가 인체에 해롭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면 한국 정부에법적 책임을 묻기 어려울 것”이라면서 “미 연방정부와 다우케미컬,유니로열 등 고엽제 제조회사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득정기자 djwootk@
  • 철원평야 일대 안보관광·탐조여행

    철새의 귀족 두루미.아침 햇살에 더욱 빛나는 고고한 자태의 두루미들이 철원평야 위를 유유히 난다.토교 저수지에서는 20여만 마리의 기러기떼가 굉음을 내며 비상한다.가을 걷이가 끝나 황량하던 철원 들녘이 철새들의 멋진 군무를 위한 거대한 야외 무대로 바뀐다.비행편대를 이루며 철원평야를 돌던철새들이 비무장지대(DMZ)로 날아간다.분단 반세기동안 문명의 발자국이 닿지 않은 그 곳은 철새들의 낙원.철새들은 자유롭게 군사분계선을 넘나든다. 그러나 그 자유는 그들만의 자유다.DMZ는 분단의 아픔을 증언하고 있는 비극의 현장.강원도 철원에 가면 분단의 비극을 체험할 수 있는 ‘안보관광’도하고 겨울 철새들도 만날 수 있다.철새들의 합창을 들으며 안보관광을 떠나보자. ■철원평야와 비무장지대 철원평야의 아침은 철새들의 합창으로 열린다.철원은 겨울 철새들의 낙원.두루미·청둥오리·기러기·독수리 등 겨울 철새들이 가을이 깊어지면 철원으로 날아든다.겨울에도 얼지 않는 천연 샘물이 솟아나는 샘통지역(0.5ha)은 철새들의 도래지로서 73년천연기념물 245호로 지정됐다.겨울에도 얼지 않는 물과 늪,토교·동송 저수지 등 담수호,철원평야에떨어진 벼이삭,사람들의 출입 제한 등 철새들의 서식지로 천혜의 환경이 갖추어져 있다. 민통선 안에 있는 토교 저수지와 강산리에 있는 동송 저수지 등에는 수십만 마리의 철새들이 모여든다.그들이 한꺼번에 날아 오르는 모습은 어느 예술작품 못지 않은 감동적인 장관이다.그들의 힘찬 비상의 굉음은 철원평야의정적을 깬다.세계적으로 희귀한 두루미를 만나는 것도 큰 즐거움.우아한 모습의 재두루미와 흰두루미떼들이 날아다니거나,숲이나 논에 있는 것을 쉽게볼 수 있다.철원군은 탐조여행을 위해 하갈리에 있는 아이스크림 고지에 철새 전망대를 만들 계획이다.내년에 착공 2001년 완공 예정.늦가을부터 봄까지 철새를 만날 수 있다. ■제2땅굴 1975년 3월19일 발견된 북한의 남침용 지하 땅굴.북한의 서방산에서 시작된 땅굴은 3.5km.땅굴 입구에서 108m를 내려가면 북한이 화강암을 뚫고 만든 땅굴을 만난다.500m까지만 공개.땅굴속에는 먹고 자고 쉬던 ‘광장’이 있다.그 광장에 서서 북한쪽을 바라보면 땅굴을 팔 때 동원됐던 북한인들의 고통스러운 신음소리가 땅굴 저편에서 아직도 들려오는듯 하다. ■철의 삼각 전망대와 월정리역 남방 한계선에 인접한 전망대에 오르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뜻밖에도 고라니 한쌍이었다.고라니 한쌍이 철책선주위를 한가롭게 거닐고 있었다.6·25 때 격렬한 전투로 ‘죽음의 땅’이었던 비무장지대는 자연의 위대한 복원력으로 지금은 울창한 숲으로 바뀌었다.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숲속에서 산새와 짐승들은 그들의 낙원을 이루고 있다.숲도 잔인한 비극의 역사를 모른 채 평화스럽다.그러나 그것은 긴장된 평화다.전망대에 오르면 김일성 고지와 피의 능선 등 북녘땅도한눈에 들어온다. 월정리역은 경원선의 남쪽 마지막 역.6·25때 폭격으로 부서진 열차의 잔해가 앙상한 골격만 남긴 채 누워 있어 분단의 아픔을 증언하고 있다. ■백마고지 전적비와 기념관 한국전쟁의 전설로 역사의 한 장을 장식하고 있는 백마고지 전투.12번이나 고지의 주인이 바뀐치열했던 전투의 상흔들이기념관에 전시돼 있다.너덜너덜한 철모가 전쟁의 비극성을 고발하고 있다.중공군이 심각한 타격을 입고 패한 백마고지는 비무장지내 안에 있다.전적비와 기념관은 지난 90년 철책선 근처 철원군 대마리에 만들어졌다. ■노동당사 해방후 북한이 공산독재의 정권강화와 국민통제를 위해 소련식공법으로 완성한 무철근 건축물.6·25전까지 북한 노동당 철원군 당사로 쓰이며 반공인사들을 탄압하던 현장.지붕이 없어지고 일부 벽도 무너져 내렸다.벽에 남아 있는 수많은 탄흔은 치열했던 당시의 전투상황을 생생하게 증언하는 듯하다.참담한 모습의 노동당사는 분단의 슬픈 역사의 유산으로 이념의장벽처럼 서 있다. 철원(강원도) 이창순기자 cslee@ ■여행안내 탐조여행과 안보관광은 철원에 있는 고석정 국민관광단지에서 부터 시작.고석정에 있는 철의 삼각지 전적관 관리사무소 2층 접수실에서 신청서를 작성한후 접수시킨다.신분증 필요.외국인은 여권 또는 ID카드. 출입은 9시30분,10시30분,11시30분,13시,14시(3월∼10월은 마지막 출입시간이 14시30분) 등 하루에 5회.화요일 휴무.자동차나 관광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전적관에 있는 안내인의 가이드에 따라 고석정을 출발,6검문소를 통해 민통선 안으로 들어간다.(렌즈가 100mm 이상인 사진기는 검문소에 맡겨야 한다). 103초소를 지나 제2땅굴에 도착.제2땅굴을 본후 다시 103초소를 거쳐 철의삼각 전망대와 월정리역 도착.그 이후는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다.백마고지전적비를 거쳐 노동당사를 방문하는 것이 편리.오후 5시까지 여행을 마쳐야한다.식당이 없어 점심을 준비해 가는 것이 좋다. 입장료는 어른 1,500원(단체 1,400원),청소년 1,200원(800원),어린이 800원(500원).주차료 소형 2,000원 대형 4,000원.관리사무소 (0353)455-3129,3577,450-5558,5559. ■가는길 43번국도를 타고 의정부-포천-운천-신철원-문혜리(좌회전)-승일교-고석정.
  • 수해복구 이틀째 표정(I)

    물이 빠지면서 수해지역이 원래 모습을 되찾은 5일 수재민들과 자원봉사자,군 장병 등은 따가운 햇볕 아래 복구작업에 굵은 땀방울을 흘렸다. 인천시 강화군 수해현장에는 ‘사단법인 월남 고엽제 후유증 인천지부’회원 31명이 불편한 몸으로 복구작업에 나서 감동을 주었다.이들은 이날 아침 일찍부터 내가면 고천4리에서 포도밭의 토사를 걷어내고 도로를 복구하는 일을 했다. 북한강 상류인 화천에서 세열수류탄과 크레모아 등이 유실된 것으로 확인되자 3년 전 수해 복구작업 중 발목지뢰 피해를 본 철원군 주민들이 불안에떨고 있다.주민들은 철책선 들판과 산간지역 곳곳에 묻힌 미확인 지뢰를 찾는 탐지작전을 펴 줄 것을 군 부대에 요구하고 있다. 동물들도 수해의 고통을 겪고 있다.지난 2일 오후 4시쯤 철원군 와수3리와수천에서 탈진한 채 강물에 떠내려 오던 천연기념물 361호 노랑부리백로가 농민 박기모씨(46)에 의해 발견됐다. 해병대사령부는 파주시 통일전망대 앞 경기만 북한쪽 지역 갯벌에 반쯤 묻혀 있는 준설선을 예인하기 위해 유엔군사령부에 협조를 요청했다.준설선은파주시 파평면 두포삼거리 앞 임진강변에 정박해 있다가 지난 1일 폭우로 떠내려간 것으로 3일 오후 해병대 경비병에 의해 발견됐다. 전북 익산군 왕궁면 동촌리 최두성씨는 과수원 복구비를 마련하기 위해 집에서 키우던 백사(白蛇)를 1,000만원 가량에 팔겠다며 공개했다.백사는 지난달 31일 최씨가 자신의 과수원에서 가지치기를 하다 발견한 것으로 내장이들여다보일 만큼 투명한 데다 토끼처럼 빨간 눈을 갖고 있다. 파주·동두천·포천의 골프장에는 고급 승용차를 탄 수백명의 골퍼가 몰려 수재민들의 눈총을 받았다.파주시 광탄면 용미리 S골프장은 이른 아침부터원색의 옷을 입은 골퍼 200여명으로 붐볐고,포천군 내촌면 소학리 B골프장과 포천군 일동면 기산리 N골프장에도 100∼200명의 골퍼가 몰렸다. 특별취재반
  • [사설] 끝나지 않은 6·25

    우리 민족사에서 일찍이 없었던 6·25 동족상잔의 비극이 일어난지 마흔아홉돌이 됐다.남과 북이 155마일의 철책선을 사이에 두고 대립과 긴장속에 살아온 세월이었다.잠시 갔다 다시 돌아오겠다며 떠나온 이산가족들이 고향산천과 부모형제를 그리워하며 살아온 단장의 세월이기도 했다.이처럼 6·25동족상잔은 우리민족에게 너무 깊은 상처와 손실을 안겨 주었다.민족 자존에치욕만 남긴 무모한 전쟁이었다.장구한 민족의 정통성이 무너지고 남북간 심각한 불신을 야기시켜 통일에 결정적 장애의 벽을 만들어 놓았다. 이 모든 전쟁의 상흔들은 반세기가 흘렀지만 아직도 가시지 않은 안타까운현실이다.따라서 6.25 마흔아홉해를 맞으며 우리가 깊게 되새겨야할 교훈은앞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두번 다시 동족간의 상잔은 결코 있어선 안된다는것이다.만약 앞으로 한반도에서 또다시 6·25와 같은 전쟁을 치른다면 민족자체의 파멸을 초래하는 무서운 결과를 가져올 것이 자명하다.특히 현재 남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화력(火力)을 6·25당시와 비교해보면 무기는 15배로늘어났고 위력은 8배,파괴력은 무려 120배에 달하고 있다.이같은 무기들이앞으로 전쟁에 동원된다면 그 결과는 민족구성원 50%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국토의 90%가 파괴되는 그야말로 ‘회복불능의 상처’를 남겨 놓게 될 것이 틀림없다.무슨일이 있더라도 전쟁만은 없어야한다. 통일은 조금 지연되는 경우가 있어도 평화를 유지하며 단계적으로 달성해야 할 것이다.더욱이 한반도의 안보환경은 조그마한 충격에도 붕괴될 수 있는위험성과 불확실성을 지니고 있다.최근 서해교전사태에서 보는 바와 같이 북한의 무력도발 야욕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반도 평화는 북한에 의해서언제라도 파괴될 수 있다.아직도 6·25는 끝나지 않았다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따라서 당면한 최우선 민족적 과제는 6·25동족상잔의 상처를 하루빨리 치유하고 체제와 이념을 초월하여 남북이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평화체제를 구축하는 일이다. 6·25전쟁으로 인한 남북간의 상호불신을 해소하고 이질화현상을 극복하여민족의 정통성을 회복해야 한다.이같은 과제가해결돼야 진정한 의미에서 6·25를 종식시킬 수 있다.이와관련,우리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 기조는 6·25의 상흔을 제거하는 현실적 대안으로 평가된다. 남북화해와 협력을 증대하고 남북관계를 발전시켜 나간다는 것이 대북 포용정책의 기본 목표다.때문에 북한은 무모한 군사적 패권주의를 포기하고 민족공존공영의 기틀을 마련하는 민족화합 대열에 적극 동참토록 촉구한다.
  • [외언내언] 백령도

    동(東)에서 서(西)로 비스듬히 남북을 갈라놓은 155마일 휴전선이 서해에이르면 다시 북쪽으로 올라간다.그 끝 최북단에 자리잡은 섬이 백령도(白翎島).여의도의 다섯배인 45.4㎢에 5,000여명의 주민이 살고있는 우리나라 9번째 크기의 섬이다.행정구역으로는 인천광역시 옹진군 백령면. 겉보기로는 여느 섬과 다를 것이 없는 평화로운 섬이지만 24시간 팽팽한 긴장속에 싸여있다.바다위 군사분계선을 따라 나란히 늘어서있는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 우도와 함께 북쪽 땅을 마주보는 최전방이기 때문이다.바다라 철책선이 없다뿐이지 긴장감은 육상의 전선보다 오히려 더하다.73년 서해 5도사태와 비슷한 남북 대치상황에 대비하여 군은 물론 일반 주민들까지 항상경계상태이다. 백령도 주민들의 생활권은 인천이다.뱃길로 9시간이나 걸리고 그나마 기상이 조금만 나쁘면 끊기던 불편은 92년부터 편도 4시간의 쾌속여객선 취항으로 크게 나아졌다.그러나 위도상으로는 개성과 비슷한 위치이며 생활권인 인천(173㎞)보다는 평양(143㎞)이 훨씬 가깝다.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위해공양미 300석에 몸을 판 효녀 심청이 물속에 뛰어들었다는 인당수를 앞에 둔 북녘 땅 장산곶이 코앞에 보인다.서해상에서의 북한 군사활동을 크게 제약하고 있는 전략적 요충지이며 그만큼 북한으로서는 목에 박힌 가시같이 신경 쓰이는 곳이다.최근 들어서는 뜸한 편이지만 바다와 하늘에서 수시로 긴장상태를 조성한다. 백령도에는 지금 뒤늦은 봄기운이 완연하다.바닷가 절벽에는 세계적인 희귀조 가마우지들이 둥지를 틀고 새끼를 품고있으며 천연기념물인 바다표범들이 바위들을 뒤덮고 있다.생각보다 넓은 들판에는 모내기가 한창이다.갖가지형상의 기암절벽들이 둘러있어 제2의 해금강으로 불리는 두무진이나 천연 활주로로 사용할 수 있는 세계 2곳뿐이라는 사곶 백사장,옥석같이 아름다운 콩만한 자갈들로 뒤덮여있는 콩돌해안등에는 관광객들의 모습도 보이기 시작했다. ”아직도 긴장상태는 마찬가지이지만 이전보다는 훨씬 나아진 편입니다.”주민의 말이 아니더라도 백령도에도 분명 변화의 바람은 불고 있었다.서해의 최전방 진지(陣地)정도로만 알려졌던 이곳에도 여름이면 하루 3번 왕복하는 쾌속선의 표를 구하기 어려울 정도로 관광객이 몰리고 이들을 맞을 편의시설의 건설도 활발하다.한반도에 일고있는 대결속의 화해·협력 분위기 탓이아닐까.금강산 관광선이 오가는 동해와 같이 서해의 뱃길도 하루빨리 뚫렸으면 싶다./장정행 논설위원
  • 강화군에 노천 통일전망대

    강화군 송해면 도로변에 국내 최초의 노천 통일전망대가 건립된다. 인천시는 18일 해안순환도로가 건설되고 있는 강화군 송해면 당산리∼돌머루간 10㎞구간에 황해도 개풍군 남단지역을 육안으로 볼수 있는 노천 통일전망대를 2001년까지 해안 철책선을 따라 만들기로 했다. 노천 통일전망대는 북한지역이 내려다 보이는 산등성이에 설치된 경기도 파주와 강원도 고성의 통일전망대와는 달리 차를 타고 이동하거나 걸으면서 망원경 없이도 북한지역을 볼 수 있도록 길가에 조성된다.이곳은 개풍군 해창리와 불과 2㎞남짓 떨어져 있고 산 등 시야를 가리는 장애물이 없다. 노천 통일전망대 설치에는 84억원의 예산이 투입돼 2곳의 주차장을 비롯,2차선 도로변을 따라 1.75m의 자전거도로와 편의시설이 설치된다. 시 관계자는 “노천 통일전망대는 벼농사를 하는 북한 주민들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북한에 가깝다”면서 “안보교육장인 강화도를 대표하는 관광명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화 l 金學準hjkim@
  • MBC 5부작 특집다큐멘터리 ‘통일’

    통일 이후 남북의 통합과정에서 벌어질 일을 가상으로 엮은 MBC 5부작 특집다큐멘터리 ‘통일’(연출 박신서,정호식,김학영)이 오는 11일∼15일 밤11시 방송된다. 흡수냐 무력이냐 등 아직도 논란이 분분한 통일의 방식은 논외로 건너뛰었으며 통일 한국이 독일,예멘,베트남 처럼 시장경제의 길을 걷는다는 전제에따라 프로그램을 제작했다.가상시나리오의 시작은 북한최고인민회의의 무조건 통일선언.역대합실에서 TV를 보던 남한시민들은 환호성을 지르고 북한주민들도 기쁨에 들뜬다.그러나 낭만적인 축하분위기는 잠시.이질적인 두 체제가 통합하는 길목마다 경제,사회,문화 등 전방위적으로 엄청난 변화의 소용돌이가 일어난다. 실향민들은 서둘러 고향땅을 밟으려하지만 북한주민의 대거 남한이주를 우려한 정부는 당분간 휴전선 철책을 유지한다. 2∼4부는 통일이 말처럼 간단하지도,감상적이지도 않음을 갖가지 가상 상황을 통해 보여준다.이는 80여개 통일관련 연구소와 귀순자 100명의 인터뷰를토대로 했다.이와함께 1부에서는 외국의 사례와 통일의 순기능등을 짚어보고,5부에서는 통일비용 산정과 부문별 통일준비를 점검한다. “통일은 일시적 사건이 아니라 과정으로 접근해야 하며 빠른 통일보다는바른 통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것이 박신서 책임프로듀서의 설명이다.李順女 coral@
  • 외언내언-관광상품‘DMZ철조망’

    휴전선의 녹슨 철조망이 통일염원을 담은 관광상품으로 부활했다.경기도 파 주시가 15일부터 휴전선 철조망을 관광상품으로 만들어 임진각에서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팔고있다.‘DMZ(비무장지대)녹슨 철조망251이란 이름이 붙여진 이 관광상품은 53년 휴전직후 판문점 일대에 설치된 철조망으로 지난 10월 자유의 다리를 공개하기 위한 준비작업때 45년만에 철거된 것을 상품화했다. 철조망 관광상품은 가로 30㎝ 세로25㎝의 직사각형 액자바탕에 한반도 지도 가 그려지고 휴전선 위치에 동·서 방향으로 3㎝의 녹슨 철조망을 고정시킨 형태로 만들어졌다.한개당 가격은 1만3,000원으로 판매 10일만에 1,200개가 팔릴 정도로 인기상품으로 자리가 잡혔다.분단의 상징인 휴전선의 녹슨 철조 망은 단순한 관광상품이라기보다 통일을 염원하는 차원에서 많이 구입한다는 것이 파주시 판매담당자의 말이다.휴전선 녹슨 철조망이 관광상품으로 등장 한 것은 많은 점을 시사한다. 독일의 경우 89년 베를린장벽이 붕괴되면서 90년 무너진 장벽의 콘크리트 조각이 분단의 상징물로 관광상품으로 판매된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베를 린장벽이 허물어지면서 게르만 민족의 통일을 가져다준,분단의 상징이던 벽 돌조각이 전세계 유명관광상품이 됐다는 것을 상기할 때 155마일 휴전선 철 조망의 일부가 관광상품으로 제작·판매됐다는 것은 많은 상징적 의미를 갖 는다. 지난 반세기 동안 단절과 통한의 이정표가 되고 있는 휴전선의 녹슨 철조망 은 우리 국민 모두의 가슴속에 비극의 징표로 남아있다.지금 이 순간에도 휴 전선 철책을 사이에 두고 180만명의 남북한 군대가 대치하고 있다.휴전선 10 m당 남북한 군대 54명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다.조그만 자극에도 군사적 충 돌을 몰고 올 수 있는 ‘화약고’다. 민족분단의 상흔이 엄존하고 있는 휴전선의 철조망이 관광상품으로 인기가 높다는 사실은 이같은 비극적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국민적 관심을 대 변한 것이라고 본다.아울러 북한에 고향을 둔 실향민들이 고향가는 길을 막 고 있는 원한의 철조망을 없애야 하겠다는 일념도 함께 작용한다고 본다.아 무튼 DMZ철조망이 관광상품으로 등장한 것을 계기로 민족의 염원인 통일이 앞당겨졌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 csj@daehanmaeil.com] **끝** (대 한 매 일 구 독 신 청 721-5544)
  • 육·공군 총장에 경고/미사일 오발­잇단 사고관련 문책

    ◎또 수류탄 폭발 사병 2명 숨져 최전방 초소에서 경계근무 중이던 병사 2명이 수류탄 폭발 및 총기 발사로 숨지는 군기 문란 사고가 또다시 일어났다. 9일 육군에 따르면 8일 오후 5시20분쯤 강원도 인제군 서화면 육군 모사단 철책 경계초소(GOP)에서 근무 중이던 張星國 상병(21)과 金承玟 이병(20)이 숨졌다. 육군 관계자는 “이들이 경계 근무중 시비 끝에 서로 총을 쏘고 수류탄을 던진 것으로 보고 정확한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8일 오전 10시50분쯤 경남 사천시 죽림동 사천가격장에서는 모사단 車만수 이병(21)이 사격훈련중 소총으로 자살했다. 한편 국방부는 이날 나이키 미사일 오발사고 등 최근 잇따른 군내 사고와 관련,육군과 공군 참모총장을 포함한 각군 지휘관 및 관련자들을 징계했다. 국방부는 무반동총 불발탄 폭발사고와 관련,예하부대 관리·감독의 책임을 물어 金東信 육군참모총장에게 엄중 경고하고 사단장 柳모소장과 연대장 孫모대령 등 2명은 징계위원회에 회부했으며 대대장 조모중령과 중대장 金모대위는 보직해임을 시켰다. 소대장 洪석봉 중위는 구속했다. 나이키 미사일 오발사고와 관련해서는 朴春澤 공군참모총장에게 경고조치를 내리고 방공포사령관 金모준장과 여단장 南모대령,장비정비반장 禹모준위와 결함정비반장 宋모준위 등 4명은 징계위원회에 회부했다. 대대장 秋모중령과 포대장 嚴모소령에게는 보직해임 조치를 내렸다.
  • 새벽 사격훈련중 오발

    지난 4일의 미사일 오발 사고,군 영내 불발탄 폭발사고에 이어 6일 새벽에는 군 조명탄 캡슐이 민가에 떨어져 주민 1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6일 새벽 2시40분쯤 경기도 고양시 일산구 구산동 韓길순씨(83·여) 집에 155㎜ 조명탄 캡슐이 떨어져 韓씨가 부서진 콘크리트 파편에 머리 등을 맞고 인근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길이 43㎝ 직경 13㎝인 조명탄 캡슐은 韓씨집 북서쪽 방향에서 날아와 25㎝ 두께의 옹벽,20㎝ 두께의 보일러실과 작은방 벽을 부수고 욕실에 떨어졌다. 문제의 조명탄 캡슐은 새벽 2시∼2시40분에 김포의 해병부대에서 조명탄 사격훈련을 하던 중 탄착지점 판단 착오로 훈련구역을 벗어나 5㎞ 가량 떨어진 韓씨 집에 떨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4일 밤 9시쯤에는 강원도 고성군 육군 뇌종부대 철책지역 소초(내무반) 옆 사병휴게실에서 90㎜ 무반동총 불발탄이 폭발,康彰元 상병(21) 등 사병 3명이 숨지고 李忠烈 일병(20) 등 5명이 중경상을 입고 국군수도병원과 국군강릉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육군은 “숨진 康상병이 지난 1일 제대병의 선물을 만들기 위해 공용화기 사격장에서 주워 몰래 보관해오던 무반동총 불발탄을 부대원들 앞에서 분해하다 사고가 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포병들 사이에서는 제대를 앞둔 고참병에게 포탄의 탄피를 깎아 제대선물을 만들어 주는 관행이 성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日軍 학병서 광복군까지(항일독립군 장정따라 6천리:上)

    ◎臨泉 軍訓地서 ‘광복꿈’ 회상/銅山路 日 부대터에 中軍병영/연병장·단층막사 ‘옛 그대로’/끌려간 日 병영탈출 감행 뿌듯 한국 독립유공자협회 회원들이 조국 광복을 꿈꾸며 젊은 날 이역만리에서 피 흘렸던 중국땅을 찾았다. 한국광복군 간부훈련반(韓光班) 출신 광복군 초급장교들로 흔히 광복군 마지막 세대로 분류된다. 일본군의 학병으로 끌려왔다가 탈출,독립을 위해 싸웠던 이들이 항일투쟁의 족적을 찾아 나선 것은 광복의 참뜻을 지금의 시대 정신으로 승화시키기에 충분했다. 중국 중부 장쑤(江蘇)성 쉬저우(徐州)에서 쓰촨(四川)성의 충칭(重慶)까지 장장 6,000리길. 일본군 탈출부터 광복군 훈련장,항일 지하공작 거점 등 열하루간 동행했던 이들의 답사 행로를 3회에 나눠 소개한다. ‘마지막 독립군’들의 첫 현장 답사는 장쑤성(江蘇省) 쉬저우(徐州)에서 시작됐다. 베이징(北京)서 814㎞. 기차로 8시간. 54년전에 거쳐온 길을 더듬기 위해 1시간 남짓한 비행기편도 마다했다. 1944년 2월초. 평양을 출발,기차에 강제로 실려 닿은 곳은 일본군과 중국군이 대치하던 최전방 쉬저우. 7월까지 쉬저우와 슈저우(宿州),푸양(阜陽)일대 전선에 배치됐던 이들은 그해 3월부터 7월까지 하나둘 일본병영을 탈출했다. “일본군이 되어 동포들의 가슴에 총을 겨누느니 차라리 탈출하다 죽기로 했다”고 50여년전 결의를 회상했다. “상당수는 우선 충칭에 있던 임시정부를 찾아가기로 했었습니다” 회고담은 이어졌다. 당시 쉬저우 주변에선 일본군이 밀집해 있었고 중국으로 끌려온 ‘조선학병’ 3,000여명의 대부분도 부근에 배치됐다. 때마침 텐진(天津)에서 시작된 진푸선(津浦線)철로가 쉬저우를 지나 상하이(上海),푸둥(浦東)쪽으로 향하는 모습을 보며 노 광복군들은 눈시울을 적셨다. 일본군은 철도와 주변을 점령,광대한 중국대륙을 ‘선’과 ‘점’으로 연결하는 전략을 펴고 있었기 때문에 끌려갔던 학병들은 대부분 철도역 주변에 주둔해 있었단다. 밤을 틈타 3m가 넘는 철책을 넘었다. 짧게는 2∼3일에서 일주일이상을 풀잎이나 과일로 연명하며 낮에는 수수밭에 숨어 있다가 밤이면 들판을 달렸다. 대개는 중국 유격대와 조우했고 당당한 광복군이 되었다. 44년 6월 ‘宿縣부대’ 제4중대에서 탈출했던 金柔吉 부회장과 全履鎬 회원은 슈저우역에서 2㎞쯤 떨어진 곳을 찾아 헤맨끝에 당시의 탈출지점을 찾아냈다. 지금은 ‘宿縣 付小樓 村庄’로 이름이 바뀌어 있었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2∼3층의 주택들이 병영을 대신하고 있었다. 이에 앞서 5월에 같은 부대 보병중대에서 津浦線을 넘어 탈출했던 石根永 회원도 슈저우에서 50㎞ 떨어진 구쩐(固鎭)역부근에서 병영터를 찾아냈다. 일본군은 철도가 파괴되거나 공격받으면 주변의 중국인을 몰살시켜 보복했다고 악몽같은 50년전을 떠올렸다. 중국 유격대원이 생포되기라도 하면 총검술 연습의 표적으로 삼아 살해하기도 했단다고 치를 떨었다. 대부분의 병영들은 푯말하나 남지않고 촌락 등으로 바뀌는 등 사라졌지만 尹慶彬 회장과 金永錄 회원이 탈출했던 쉬저우시 통산로(銅山路)의 부대터는 지금도 ‘중국 인민해방군’ 주둔지로 사용되고 있었다. 부대안을 돌아본 尹慶彬 회장 등은 연병장앞의 3층 본부 건물,검은 벽돌과 돌로 지어진 단층 막사가 옛 그대로라며 회상에 젖었다. 높은 천정의 막사안에는 시멘트바닥에 철로 만든 2층 침대 10여개와 간단한 사물함이 눈에 띄었다. 張俊河 선생 등과 함께 尹회장 일행 4명이 44년 7월7일. 일본군의 이른바 ‘중국침략 기념일’로 경계가 느슨해 틈을 타 ‘취침전 15분의 자유시간’을 이용했다. 일본군을 벗어난 이들은 이틀밤을 앞만 보고 달리다 먼저 탈출해 중국 유격대에 와 있던 金俊燁(전 고대 총장)씨와 해후했다. “중국의 여러 유격대에 흩어져 있던 탈출자들은 린촨(臨泉)로 모였지요. 린촨에서 군사훈련을 받으며 광복의 꿈을 키워 대일항전의 장정(長征)을 시작했습니다” 노 독립군의 회고는 덜컹거리는 비포장 도로를 따라 어느새 50년전의 린촨에 닿고 있었다. ◎독립유공자협회/항일전 참가 175명이 결성… 현 회원 220명 한국독립유공자협회는 광복회와 함께 항일투쟁의 일선에 섰던 독립운동가들의 양대 산맥. 81년 독립운동가 175명에 의해 발족됐다. 초대회장은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지낸 趙擎韓 선생. 한국전력 사장을 지낸 朴英俊 회장에 이어 尹慶彬 회장이 3대 협회를 이끌고 있다. 회원은 220명. 광복회가 독립지사의 유가족까지 포함하고 있는데 비해 항일투쟁을 벌였던 본인만이 가입할 수 있다. 회원 모두 건국훈장을 받았다. 일제말기 학병 등으로 중국전선에 끌려갔다가 탈출,광복군에 합류했던 독립운동의 마지막 세대가 협회의 주축. 金九 선생을 보좌,충칭(重慶) 임시정부서 일했던 마지막 생존자들이기도 하다. 대부분 70대후반에서 80대초반. 색이 바라가는 독립정신을 드높이기위한 연구,탐사 등 학술사업과 사회사업,독립운동 사적에 대한 복원운동을 벌여왔다. 3·1운동과 임시정부수립 80주년이 되는 내년 충칭시 광복군 총사령부건물 표지석 건립작업 등 후세에게 민족애국정신을 일깨우기 위한 각종 사업을 추진중이다. ◎광복군/임정 정규군… 美와 對日 공동작전 활약 광복군이 정규군으로 발족한 것은 40년 9월. 무력으로 조국을 되찾겠다며 중국으로 온 젊은이와 일본군에 끌려왔다가 탈출한 학병이 주축이 됐다. 총사령관은 李靑天 장군이었고 참모장 李範奭 장군.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는 한편 지하활동 등 갖가지 군사활동을 감행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군대였다. 3개의 직할부대로 구성되어 있었다. 특히 李範奭 장군이 지휘하는 2지대는 산시성(陝西省) 시안(西安)을 거점으로 일본군 전력을 교란시키는 활동에 주력했다. 최전방에서 일본군과 필사의 전투는 3지대의 몫. 안후이성 푸양에 본부를 두고 산둥성(山東省) 등 화북지역에서 지하공작 활동도 병행했다. 44년부터는 일본군에서 탈출한 학병들이 합류하면서 미국 첩보기구인 전략사무국(O.S.S)과 함께 일본군에 결정타를 가하기 위해 한반도침투 등 특수공작을 준비하기도 했다.해방직전 광복군은 700여명. 광복이 될 무렵에 중국에 거주하는 교포들로 30만여 군병력을 조직하는 계획에 착수하기도 했다. ◎임천사관학교/日軍 탈출한 한국인 광복군 간부 양성소 안후이성(安徽省) 린촨(臨泉)에 있던 ‘광복군 사관학교’. 더 정확히 말하면 44년 7월 린촨 중국 중앙군관학교 제10분교안에 설치됐던‘한국광복군 간부훈련반’,일명 한광반(韓光班)’. 중국정부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여 일본군서 탈출한 한국인을 광복군 간부로 양성하던 곳이다. 44년 7월에 들어온 첫 입학생들은 48명. 33명은 대학졸업후 일본군으로 징병돼 중국전선까지 끌려왔다가 탈출한 학병. 15명은 조국광복을 꿈꾸며 중국으로 건너왔던 애국청년들. 5개월 과정을 마친뒤 白正甲 등 25명은 6,000리 길을 걸어서 쓰촨성(四川省)충칭(重慶)의 임시정부를 찾아가 광복군본류에 합류한다. 나머지 8명은 최전방 안후성에 남아 정보수집 등 대일투쟁을 벌인다. 25명중 尹慶彬은 임시정부 경위대장으로,鮮于鎭은 金九 선생비서로 白凡 선생을 최후까지 보좌하게 된다. 또 張俊河,金俊燁,金柔吉 등 일부는 한·미군사협력으로 산시성(陝西省) 시안(西安)으로 가 한반도진입을 위한 특수훈련을 받는다. 현재 한광반 첫 수료생 가운데 국내엔 11명이 생존해 있다.
  • 민주열사 열전:12/‘녹화사업’ 의문사:하(정직한 역사 되찾기)

    ◎‘염세 자살’로 매도된 의문의 죽음들/이윤성­신검없이 징집… 제대 8일 앞두고 죽어/김두황­운동권 리더… ‘애인변심 자살’ 軍 강변/한영현­늑막염 앓아 軍면제 판정 불구 끌려가/최온순­가족 항의로 재수사해 자살 오명 벗어/한희철­새벽 4시 사망… 녹화사업중 고문 의혹 대학생들의 강제징집과 이들에 대한 정훈교육 계획이었던 녹화사업은 80년대초 연세대생 정성희를 비롯한 여섯명의 죽음과 결부되어 계속 거론되고 있다.대부분 염세 자살이라는 군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인권단체들과 가족들은 강제징집 및 녹화사업의 강제순화·관제프락치 공작활동이 이들 의문사의 직간접적인 원인이라고 주장한다.다섯명의 의문사를 차례로 알아본다.(정성희는 10월15일자 녹화사업 첫회에 보도) ▷이윤성◁ 81년 성균관대 역사철학 계열에 입학한 이윤성은 유복한 가정환경이었지만 사회·역사 전반에 대한 문제의식이 깊었다고 한다.2학년 때 인문과학연구회라는 동아리의 회장직을 맡았다.82년 11월3일 학생의 날 가두시위에 참가, 여러 학생들과 함께 경찰서로 연행됐다.조사 과정에서 동아리 회장이란 것이 밝혀져 11월7일 새벽 신체검사도 없이 군에 끌려갔다. 그는 부친이 60세가 넘은 고령인 3대 독자인데다 시력마저 나빠 상식대로 하자면 현역입대가 불가능한 조건이었다. 83년 1월10일쯤 친구들이 가족과 함께 면회갔을 때 이윤성은 건강한 모습으로 “내가 여기서 짬밥을 제일 잘 먹고 있으니 걱정말라”고 하는 등 어려운 환경에서도 잘 적응해 나가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뒤늦게 가정환경이 참작돼 5월말 의가사 제대가 결정되었다.제대가 8일밖에 남지 않은 5월4일 이윤성 부모는 아들이 이날 새벽 자살했다는 군당국의 통보를 받았다. 국방부는 88년 국정감사 자료에서 ‘이윤성은 군 수사기관의 조사기간 중에 사망했으나 이 조사는 학원소요와 관련된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국감 자료는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설명했다.‘이윤성은 83년 4월19일 소속대 인근에서 북괴가 살포한 월북용 안전보장증 등 불온전단 2매를 습득,본인의 철학개론 책자 속에 보관하다가 4월30일 소속대대 보안담당관 중사에 의해 관물함에서 적발됐다.5월3일 당시 지역 보안부대 대공계장 상사가 월북 용의성 및 전단휴대 경위 등을 조사하고 취침에 들도록 했으나 4일 새벽 2시 반경 용변본다고 밖으로 나가 부대 정구장 심판대에 군화끈 및 요대를 사용해 목매 자살했다.가족 입회 아래 부검을 실시했으며 구타 등의 타살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가족들은 지금도 그의 죽음에 관해 말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84년 국방장관의 국회보고와 마찬가지로 이 국감 자료도 이윤성이 자살할 당시 제대가 8일 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았다. ▷김두황◁ 80년 고려대에 입학해 경제학과 과대표와 경제학 동아리 회장을 맡은 김두황은 학내활동의 활성화와 민주화를 주도한 고대 운동권 리더의 한명으로 알려졌다.4학년이 된 83년 3월초 학내 학회,동아리 회장들과 호국단 선거,4·19행사 등을 논의하던 중 성북경찰서에 연행됐다.1주일간 조사를 받고 석방되었으나 곧 부모와 함께 다시 경찰서로 불려온 뒤 어쩔 수 없이 자원입대서에 서명했으며 즉시 군대로 끌려갔다. 3월18일 입대한 김두황은 3개월 뒤인 6월18일 밤11시 30분 자살했다고 가족들에게 통보됐다.그간 외출이 없었기 때문에 그의 군생활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으나 훈련 성적이 우수해 사단장상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시신은 두부가 없어진 참혹한 모습이었다고 한다.군 당국은 가족들에게 “동료 2명과 경계 근무를 서던 중 ‘소변보러 간다’고 한 후 잠시 있다가 총성과 함께 자살했다”고 설명했다.군은 가족들에게 사인에 대한 이의제기를 하지 않는다는 각서와 화장동의서를 받아낸 뒤 부검은 실시하지 않았다고 한다. 84년 국회에 보고할 때 국방부는 김두황의 사망 원인에 대해 ‘내성적인 성격으로 전방부대에 배치된 것에 불만을 표시하고 내무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군복무에 염증을 느껴왔으며 애인으로부터 편지를 받고 고심하다가 자신의 소총으로 자살’했다고 설명했다.그러나 그의 고대 학우들은 김두황의 적극적이고 쾌활한 성격 등과는 전연 어울리지 않는 ‘관제’ 사망원인이라고 반박해 왔다. 같이 강제징집된 뒤 죽음의 공포감이 엄습하는 녹화사업을 겪었던 친구 양창욱씨는 “두황이가 고대 운동권에서 차지했던 비중을 생각하면 나보다 훨씬 심한 녹화사업 대상이었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한영현◁ 81년 한양대 기계과에 입학한 한영현은 민속문화연구 동아리와 야학활동에 참가하던 중 83년 1월 부천 야학선배의 경찰조사 과정에서 이름이 나와 성동경찰서로 연행됐다.경찰서 조사후 4월1일 수원병무청에서 신체검사를 받았지만 늑막염으로 병종 판결,군대에 갈 수 없는 처지였다.그러나 이튿날 경찰서 출두명령을 받고 나간 뒤 행방불명되었으며 보름 후 그의 옷이 집으로 우송되자 가족들은 비로소 강제로 군에 끌려간 것을 알았다. 그는 입대후 훈련소에 가지 않고 4월10일부터 18일까지 군 수사기관에서 그간의 활동에 대한 조사를 받았다고 뒤에 말했다.6월18일 포상휴가를 나왔는데 그의 팔에 철사로 심하게 맞은 듯한 피멍이 선명했다고 한다.휴가중 그는 “정신력으로 모든 환경을 버틸 수 있다고 생각되나 자신이 없다” “기관의 어느 사람을 만나면 의가사로 10월이면 제대가 가능할 수 있지만 죄책감이 너무 크다”는 등의 말을 했다고 전한다. 귀대한 지 얼마 안되는 7월2일 부대로부터 전보로 자살 소식이 전해졌다. “불침번 근무중에 분대장의 탄입대에서 실탄 1발을 절취한 뒤 2일 아침 9시 경계근무를 서다 M16 소총으로 자살했다”는 것이다.국방부는 84년,88년 관련보고에서 모두 한영현의 ‘불우한 가정환경’을 강조했다.‘한영현은 모친이 부동산투기로 가산을 탕진하여 부친이 사우디 취업중 귀국해 불화 끝에 모친을 토막살해한 죄로 무기형 복역중이고 형도 소아마비인 것을 고민해 세상을 비관했다’는 것이다. 국방부는 마치 그의 아버지 사건이 당시에 일어난 것처럼 발표했지만 실은 3년 전인 고3 때의 일이며 한영현은 이 와중에서도 한대 기계과 장학생으로 입학했다.대학 학우들도 그의 학교생활이 아주 건강했다고 말한다. ▷최온순◁ 83년 동국대 사대 수학교육과 3학년이던 최온순은 시위예비 음모 혐의로 5명의 학우와 함께 경찰에 연행돼 1주일 간 조사를 받은 후 3월29일 강제징집 되었다. 4개월이 조금 지난 8월14일 군에서 급위독이라는 전보를 보내와 가족들이 급히 부대로 가보니 그는 벌써 새벽 4시경 숨을 거둔 뒤였다.헌병대에서 나온 사람이 자살이라고 통보했으나 가족들이 자살할 리가 없다는 확신을 갖고 강력히 항의하고 영안실의 사체를 며칠간 지키면서 재수사 및 진상규명을 요구했다고 한다.이에 군 수사대가 재수사를 하여 그 결과 고참병과 말다툼 끝에 피살되었다는 수정 통보를 얻어내 최온순은 자살이라는 오명을 벗고 대전 국군묘지에 안장되었다. 그러나 공식 군 수사기록은 가족의 항의 사실을 전혀 언급하지 않는 가운데 철책선에서 같이 복초를 서던 고참 상병이 ‘최온순의 자살을 주장했으나 17일 밤부터 18일 새벽까지 추궁하자 그의 우발적 살인 범행을 자백했다’고 기록하고 있다.84년 국회 보고서는 ‘최온순은 복초근무중 잠을 자다가 고참인 상병이 주의를 주자 이에 반항해 소총으로 가해하려다 상병이 소총으로 위협한다는 것이 잘못돼 오발로 사망’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강제징집된 뒤 최온순과 함께 훈련받았던같은 대학의 최석민씨는 “한대 때렸다고 해서 고참에게 총을 겨누기엔 그는 너무 밝은 성격이었다”고 아직도 못믿어 한다. ▷한희철◁ 빈한한 가정에서 79년 철도청 장학생으로 서울대 공대 기계설계학과에 입학했으며 4학년말인 82년 12월1일 군에 자진입대했다.서울대 가톨릭학생회와 성남 대학생연합회에서 지도적 역할을 하는 등 운동권 성향을 보이자 지도교수가 장학금을 주지 않겠다고 해 일단 휴학을 했다는 것이 가족들의 설명이다. 군 생활에 잘 적응해 포상휴가를 두번이나 받았고 83년 10월14일 보름간의 첫 정기휴가를 나왔다.친구들에게 “늦어도 한달 후에는 의가사 제대를 한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귀대한 지 한달 쯤 지난 12월11일 자살했다는 연락이 왔다.84년 국방부 사망원인에 따르면 ‘평소 가정빈곤으로 학업을 계속할 수 없음을 비관했고 입대전 의식화 동아리에 가입했으며 정기휴가 때 학원소요와 관련해 도피중인 친구의 주민등록 갱신을 위해 방위병인 다른 친구에게 용지를 훔칠 것을 부탁한 사실이 적발돼 조사를 받고 훈방된후 평소 불만과 주민등록증 절취모의 탄로로 고민하다 자살했다’는 것이다. 사망 당시 군 당국의 설명에 의혹을 떨구지 못한 부친 한상훈씨가 끈질기게 알아본 결과 한희철은 12월6일 당시 보안사령부로 연행돼 조사를 받고 10일 귀대한 것으로 드러났다.부친은 이때 전기고문이 가해졌고 주민등록증 용지 건뿐 아니라 심한 녹화사업 취조가 행해졌다고 주장하고 있다.그의 11일 새벽4시 사망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 민주열사 열전:11/‘녹화사업’ 의문사:상(정직한 역사 되찾기)

    ◎강제순화·프락치 강요에 ‘비극적 저항’/정 烈士 시위현장서 곧바로 징집… 의문의 죽음/5공 군당국 부모에 ‘이의제기 포기’ 각서 간청 광주학살 등 폭력을 자행한 5공화국의 全斗煥정권은 80년대 초 국민을 혹독하게 탄압하면서 독재정권의 기반을 다졌다.공포의 경찰국가 같은 상황이었지만 대학의 ‘반독재 반군사정권’ 시위와 함성을 막을 수는 없었다.5공 정권은 대학 시위를 막기 위한 특별조치를 강구하기에 이른다.그중 하나가 대학생 강제징집과 ‘녹화(綠化)사업’이다. ○대학생 477명 강제징집 녹화사업은 강제징집된 대학생들에 대한 정훈교육 계획이라고 국방부는 밝혔으나 그 과정에서 여섯명의 의문사(死)가 나왔다.본래 군대갈 나이가 됐더라도 대학에 다니고 있으면 퇴학·휴학 등의 학적변동이 없는 한 신체검사와 입영이 연기된다.아울러 신검과 입영은 각각 20일,30일 전에 통지서와 영장이 송달된 뒤에 이뤄지도록 되어 있다.그러나 5공정권은 81년 11월부터 시위저지책의 하나로 학생들을 강제징집하기 시작했다. 당시 버젓이 대학내에 상주해온 정보요원에 의해 문제학생으로 지목됐으나 법으로 걸 만한 뚜렷한 혐의가 없던 학생,시위현장에서 붙잡힌 단순가담 학생들을 경찰서로 끌고와 구타와 함께 조사한 다음 집으로 돌려보내는 대신 곧바로 군부대로 끌고 갔다.병역법상의 사전통지 조항을 정면으로 무시했고 대학생 입영의 필수요건인 학적변동도 대부분 사후에 이뤄졌다. 6공이 들어선 88년 국방부 국정감사에서 뒤늦게 알려진 사실이지만 5공정권은 83년 말까지 2년 동안 이같은 강제징집으로 447명의 대학생을 억지로 군대에 보냈다.자진 휴학 등 정상적으로 학적이 변동되어 입대하는 경우와는 다른 이 ‘특수 학적변동’ 입대자들 가운데는 정상적인 신검을 받았을 경우 입대할 수 없는 신체상 결격사유나 가정환경의 학생들이 상당수 포함됐다.연령 미달자도 있었고 소아마비로 신체가 불편한 사람과 3대독자도 끌려갔다. ○장애자·3대 독자도 끌어가 강제징집은 강제징집으로 끝나지 않았다.당시 군 보안사령부가 입안한 ‘녹화사업’이 기다리고 있었다.‘녹화사업은 병역법에 의거,학원소요 관련 학사징계로 83년 11월까지 입대조치된 자 447명에 대한 정훈교육 계획’이라고 국방부는 88년 국정감사에서 밝혔다.문제학생들의 급격한 입대 증가 추세로 좌경의식의 군내 유입이 우려돼 보안사에서 이 ‘녹화사업’ 계획을 수립,많은 의식화 오염자들에게 올바른 시각을 갖게 했다고 이때 국방부는 덧붙였다. 그러나 강제징집되어 군에서 녹화사업에 동원된 학생들은 그렇게 보지 않는다.그들은 학생운동에 관한 정보를 빼내고 이를 탄압하기 위해 보안사가 펼친 강제순화 및 관제프락치 공작활동이라고 주장해 왔다.녹화사업은 정신적인 성장 과정에 초점을 맞춘 방대한 분량의 자술서 작성으로 시작된다.의식 상태를 면밀히 심사하고 체제를 긍정하도록 하는 의식 개조작업이 뒤따른다.소속 군부대 및 서울 보안사 분실에서 행해진 운동권학생들의 ‘빨간 물을 빼고 푸른 물을 들이는’ 순화작업은 보름에서 두달간 이뤄지는 것으로 파악된다. 녹화사업은 그러나 ‘순화됐다’는 맹세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순화’된 학생에게 이를 입증할 관제프락치의 임무를 부여하는 것이다.대개 휴가 형식으로 사회에 내보낸 뒤 대학 선후배 등을 만나 활동상황,특이 동향의 정보를 수집,보안대에 보고하도록 강요한다.갑자기 군에 끌려온 학생들은 이같은 녹화사업으로 심한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겪을 수 밖에 없다. 84년 초 강제징집된 6명의 대학생이 보안사 녹화사업 과정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는 소문이 학원가에 돌았고 곧 정치·사회문제화됐다.84년 6월 당시 尹誠敏 국방장관은 국회에 나와 ‘학적 변경과 관련한 입대자 중 81년이후 군에서 사망한 인원은 자살 4명(정성희 이윤성 김두황 한영현),군기사고 1명(최온순) 등 5명이며 자진휴학 지원입대해 자살한 1명(한희철)을 포함하면 모두 6명’이라고 밝혔다. ○선후배 활동상황 보고 강요 尹관은 이같은 인명 손실은 학원사태 관련 군입영자에 대한 차별대우로 야기된 결과가 아니라고 강조했다.물론 ‘강제징집’ ‘녹화사업’이란 말도 쓰지 않았다. 녹화사업이 82년 9월부터 84년 11월까지 265명에 실시됐다고 밝힌 88년 국감 때도 국방부는 의문사에 대해 같은 입장을 견지했다.다만 녹화사업이 정치문제화함에 따라 84년도에 녹화사업 업무를 중단하고 보안사 전담부서를 폐지했다고 밝혔다.관련 자료도 3년 보존기간이 지나 폐기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권단체와 가족이 제기하는 녹화사업 의문사는 심증만 있을 뿐 진상을 알기가 극히 난망한 실정이다.여섯명의 의문사 중 ‘강제징집 사망1호’인 정성희씨의 경우를 먼저 살펴본다.(나머지 5명은 다음 회에서 보도할 예정이다) 81년 연세대 영독불문학 계열에 입학했던 정성희는 대학생활 8개월 만인 11월25일 교내시위 현장에서 20여명의 교우와 함께 연행됐다.이중 15명이 강제징집당했다.연행 3일 후 가족에게 알리지도 못한 채 군에 강제로 입대한 그는 82년 6월8일 첫 휴가를 나와 친구,가족들에게 보안대의 감시 등을 이야기한 것으로 알려졌다.귀대한 지 달포 후인 7월23일 아침 갑자기 사망통보가와 가족이 전방으로 달려가자 이날 새벽 0시10분 철책근무 중 목에 M16소총 4발을 발사해 자살했다는 설명이었다. ○사망현장 답사요구 묵살 군당국은사고현장이 민간인 통제구역의 최전방이므로 현지답사가 불가능하다며 간단한 도면설명과 함께 자살임을 믿어달라고 간청했다고 한다.부모로부터 부검포기서와 화장동의서,그리고 사망사인에 이의없고 이후 법적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각서를 받고 사체를 처리했다.유서는 없고 ‘백양로를 한번 더 걸어보고 싶다.죽음 앞에서 내가 이렇게 담담하다니’ 등 8줄 정도의 낙서만 보여주었다고 한다. 84년 국방부가 국회에 보고한 사망원인에 따르면 입대해 평소 사회제도에 불만을 토로했으며 사고 당일 전방교육 실습차 입소한 대학생 1명과 복초근무를 하면서 “순수한 철학도의 소원을 이루지 못해 안타깝기만 하다”는 말을 남기고 자살했다는 것이다.88년 국감자료는 보안사 정훈교육 이전 사망자로 염세 자살했다고 기록하고 있다.그러나 정성희의 죽음은 단순한 ‘죽음’이 아니다.정성희와 다른 5명의 의문사는 민주화를 열망했던 학생들의 독재정권에 대한 비극적 저항이었다. □정성희 열사 연보 ▲1962년 인천 출생 ▲81년 부평고 졸업 연세대 영독불계열 입학 ▲81년 11월25일 학생시위로 연행 ▲81년 11월28일 강제징집 ▲82년 7월23일 사망 ◎당시 고려대생 양창욱씨 ‘녹화사업’ 회고/1주일간 심한 구타뒤 ‘감옥’‘군입대’ 택일 강요/보안대 조사땐 ‘감쪽같이 죽을수도’ 공포 엄습 현재 부천에서 ‘어린이 과학실험교실’을 내고 있는 양창욱(38)씨는 고려대 4학년 때인 83년 3월 문과대 시위주동자로서 성북경찰서에 연행됐다.다음은 그의 녹화사업 회고. 경찰서에서 1주일간 심하게 두들겨맞은 뒤인 3월7일 갑자기 부모를 불러오더니 ‘감옥에 보내겠느냐,군대에 보내겠느냐’며 양자택일을 강요했다.부모들이 군입대 각서에 서명한 직후 춘천 보충대로 가서 요식적인 신검을 치렀다.불러주는 대로 받아적는 서류작성에 불과했다. 동해에 있는 훈련단에 보내져 6주 훈련에 들어갔다.보름 만에 부친상을 당해 휴가를 나왔는데 서울에 도착하는 순간 슬픔도 슬픔이지만 해방감에 당황할 정도였다. 3개월쯤 지난 뒤인 6월 초 배치된 철책 초소에서 강릉 사단사령부 보안부대로 소환됐다.하룻밤을 묵으면서 행정고시 출신이라는 모 중위로부터 친구,학내 동향과 관련해 심문을 받았다.구타는 없었다.얼마 후 같이 강제징집된 친구 김두황의 죽음을 우연히 전해들었다. 10월 사단 보안대의 그 중위와 함께 서울 세운상가 뒤 아파트로 이동,녹화사업을 받았다.아파트 안은 오직 책상 하나와 백열등뿐이었고 매일 밤 10시부터 새벽 4시까지 조사가 진행됐다.1주일간 이곳에 혼자 갇혀 있으면서 16절지 300장에 달하는 자서전을 작성했다.옆 방에서 고문당하는 소리가 들렸으나 구타나 고문은 없었다. 그러나 아무도 모르는 이곳에서 쥐도새도 모르게 죽을 수 있다는 공포감이 가슴을 짓눌렀다. 순화교육이 끝났다는 표시로 태극기 아래서 사진을 찍더니 8일간의 휴가를 주면서 학교,서클과 관련해 몇몇 정보를 얻어 아파트로 다시 라는 프락치 임무가 주어졌다.큰 가치가 없어 보이는 정보 몇개를 가지고 갔더니 미진하다며 3일간의 추가 ‘프락치 휴가’를 주었다. 사흘 후 다시 가자 정보를 더 물어오라고 하지는 않았으나 ‘그동안있었던 일을 일절 입밖에 내지 않겠으며 이후 보안사와 긴밀한 협조관계를 유지하겠다’는 각서를 요구했다. 이같은 조사는 제대할 때까지 두번 다시 없었으나 사단의 중위가 3개월마다 직접 부대에 와 점검했다.
  • 팔당호 오염현장을 가다(4대강 上水源 긴급점검)

    ◎廣州무허공장 100여곳 폐수 흘러 들어/廢페인트 등 유독물질 장마 틈타 몰래 버려/개발명목 주변 7개 지자체 환경감시 뒷전 ‘상수원 이대로 내버려 둘 수 없다’ 수도권 2,000만명의 시민에게 먹는 물을 공급하는 팔당호를 비롯해 대청호 금강 낙동강 주암호 등 전국 상수원이 몸살을 앓고 있다. 주변지역에 마구 들어선 음식점과 카페,공장 및 축산 폐수 등으로 강물이 날로 오염되어 가고 있다. 특단의 대책 없이 방치하다가는 물마저 마음놓고 먹지 못하는 사태가 빚어질 형편이다. 때때로 단속의 손길이 미치기는 하지만 환경당국과 관할 지방자치단체의 이해가 엇갈려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한강 영산강 낙동강 금강 등 전국 4대수계의 상수원 실태와 수질 보전방안을 시리즈를 통해 짚어본다. 3번 국도를 따라 경기도 광주군에서 용인군 모현면 쪽으로 가다 오른쪽으로 접어들면 광주읍 태전리가 나온다. 멀리서 보면 아파트와 상가 뿐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전혀 딴판이다. 야산 골짜기마다 들어선 공장들은 공업단지를 방불케 한다. 태전리 뿐 아니라 태전리 윗쪽 孟思誠묘 방향의 직리,태전교 왼쪽 목리에도 개천을 따라 야산 기슭에 공장이 빽빽이 들어서 있다. 2㎞쯤 되는 길 양쪽에 100개가 넘는다. 골짜기로 숨어들 만큼 영세한 공장도 있지만 제법 규모가 큰 공장도 여럿 있다. 공장이 밀집하다 보니 여느 시골길 같은 도로에는 자동차 행렬이 끊이지 않는다. 직리천과 목리천은 곤지암천에서 합류돼 경안천으로 흘러든다. 경기도 광주 용인 등에서 유입되는 경안천은 남한강 북한강과 함께 팔당호를 이룬다. 태전리 일대 공장에서 배출되는 폐수는 모두 팔당호로 유입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일대의 공장 가운데 폐수 처리시설을 제대로 갖춘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 광주군에서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무허가 공장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광주군청 환경보호과 직원도 공장이 모두 몇개나 되는지,업종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대답하지 못한다. 趙봉세 공업행정계장도 “공장 면적이 일정 규모를 넘으면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막연한 말만 되풀이할 뿐이다. 관할 자치단체의 행정이 이렇다 보니 단속의손길이 미칠리 없다. 한강 환경감시대 등 환경당국이 몇번씩 고발을 해도 버젓이 조업을 계속한다. 얼마전 페인트 폐기물을 그대로 하수구에 흘려보내는 장면이 TV에 보도돼 고발된 P가구공장도 여전히 가동 중이다. 소각한 폐기물을 공장 뒷편 직리천변 구덩이에 파묻었다가 적발된 K산업에서도 기계를 돌리는 소리가 들린다. 바로 얼마전 폐기물을 묻은 듯 뒤엎어진 검은 흙이 지금도 눈에 띈다. 또한 켠에 쌓아둔 ‘유독물질’ 표시가 된 폐페인트 통에서는 폐페인트가 빗물을 타고 새 나온다. 광주군은 태전리 일대 뿐 아니라 초월면 오포면 실촌면에도 공장이 많다. 성남과 분당이 개발되면서 그 곳에 있던 공장들이 대부분 광주로 옮겨 눈에 잘 띄지 않는 골짜기에 자리를 잡았다. 한강 환경감시대 金周熙 계장(53)은 “광주군은 골짜기란 골짜기가 다 공장지대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또 “광주군이 특히 심할 뿐 다른 팔당호 주변 다른 시·군도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팔당호에 바로 인접한 양평군과 남양주시도 광주군과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북한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양평군과 남양주시에는 음식점 카페 호텔 등 숙박·접객업소가 많다. 광주군 퇴촌면과 남종면 분원리 못지 않다. 양평군 서종면 문호리 수호교(橋)와 강 건너편 남양주시 조안면 삼봉리를 경계로 하류쪽 상수원 보호구역은 물론 상류쪽에도 근사한 카페와 호텔이 많다. 상수원 보호구역 바로 위에는 모터보트와 수상스키를 빌려주는 업소가 흐린 날씨에도 불구하고 성업 중이다. 낚시 뱃놀이 등 물을 오염시키는 일체의 행위가 금지된 상수원보호구역에서 채 100m도 되지 않는다. 구역 경계에 철책을 둘러친 것이 아니어서 특별대책지역에서 수상스키를 타다 상수원보호구역을 침범하는 일도 허다하다. 상수원 보호구역 경계에서 빤히 바라보이는 곳에는 군(軍) 도하(渡河)훈련장이 있다. 도하훈련 때 발생하는 오염물질이 고스란히 상수원으로 유입될 것이 뻔하다. 도하훈련장 맞은 편 서종면 수인리는 ‘카페촌’으로 불릴 만큼 마을 전체가 카페 일색이다. 또 도하훈련장과 수상스키 대여업소 사이 남양주시 화도읍 금남리에는H호텔 K오피스텔 등 비교적 규모가 큰 숙박업소가 있다. 이곳에서 나오는 폐수는 곧바로 팔당호로 유입된다. K오피스텔은 하수관이 팔당호로 고개를 내밀고 있는 것이 금세 눈에 띈다. 정화시설을 거쳐 걸러진 폐수가 배출된다고는 하지만 설겆이한 물과 화장실에서 쓴 물 등이 곧바로 식수원으로 흘러드는 것이다. 문호리 금남리 주변의 논밭에서는 농약 냄새가 코를 찌른다. 또 금남리 남쪽 남양주시 조안면 송촌리 유기농업단지에서는 닭똥 썩는 냄새가 난다. 비가 오면 농약과 닭똥이 팔당호로 흘러내린다. 팔당호의 수질 악화는 남양주시 용인시 이천시 광주군 양평군 가평군 여주군 등 주변 7개 자치단체의 무성의한 행정에도 원인이 있다. 시·군에서 환경파괴에 오히려 앞장서기도 한다. 환경부 鄭鎭勝 차관은 “언젠가 모 군수가 ‘한 토지 소유주가 군청 청사를 공짜로 줄테니 농림지를 준 도시지역으로 용도를 변경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고 전했다. 鄭차관이 거절해 무산되기는 했지만 일선 단체장들의 환경의식 수준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이들 시·군은 또 협의회를 만들어 환경부의 정책에 조직적으로 대응하고,심지어 주민들을 부추기기도 한다. 팔당호 주변 음식점과 카페는 주인이 모두 외지인들로 지역 주민들과 별 관련이 없다. ◎팔당호 수질과 개선책/경안천 BOD 7.5ppm “수질 최악”/완충지대 숙박·음식점 등 건축금지 수도권의 상수원인 팔당호는 5월 현재 생화학적산소요구량(BOD)1.8ppm으로 전체적으로 2급수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강의 남양주군 조안면 삼봉리,남한강의 양평군 강상면 교평리 양평교(橋),경안천의 광주군 퇴촌면 광동리 광동교(橋),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팔당댐 앞 등 4개 측정지점의 수질이 각각 다르다. 용인시 광주군 등의 생활·공장 폐수가 흘러드는 경안천이 7.5ppm으로 가장 나쁘고 남한강 2.0ppm,팔당댐 앞 1.8ppm,북한강 1.0ppm의 순이다. 팔당호는 갈수기에 해당하는 5월과 6월의 오염도가 제일 심하다. 팔당호의 오염은 개발 위주의 토지정책 때문이다. 94년을 기점으로 개발용도로 지정된 토지가 15.6%에서 57.3%로 크게늘었다. 상수원인데도 불구하고 전국 평균 42.7%보다 14.6%나 높다. 자연환경보전지역도 2.5%로 전국 평균 7%에 훨씬 못미친다. 수질 보전을 위한 특별대책지역내 건축 규모 제한도 음식·숙박시설 400㎡ 이하,주택 등 일반 건축물 800㎡ 이하로 규제가 약하다. 특별대책지역도 하수처리시설이 갖춰진 하수처리구역은 건축 제한이 없다. 환경부는 팔당호 수질 개선을 위해 팔당호 양안(兩岸)에서 500∼1,000m 이내를 수변 완충지대로 설정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완충지대로 지정되면 가축 사육,음식·숙박시설 신·증축,폐수배출시설 건축이 금지된다. 또 팔당호 주변의 녹지 훼손을 막기 위해 팔당호에서 일정한 거리 이내의 산림의 형질 변경을 전면 제한하는 안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음식점 카페 호텔 등 기존 오염원의 배출기준도 현재의 20ppm 이하에서 2배 이상 강화할 방침이다. 이와 함께 특별대책지역 내 7개 시·군에 대한 오염물질 총량 규제도 검토하고 있다. 시·군마다 배출할 수 있는 오염물질의 총량을 할당한다는 것이다. 오·폐수를 팔당호로 직접 방류하는 업소에 대해서는 정화에 드는 비용을 업주에게 직접 물리는 방안도 검토중이다.
  • 北 잠수함·잠수정 92척 ‘물밑작전’

    ‘북한 잠수정의 침투를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을까’. 미국이 공격형 핵잠수함과 순양함,P­3C 대잠(對潛)초계기 등 대잠 장비와 병력을 한반도에 급파,북한 잠수정의 동해 침투에 대비한 한·미 연합작전을 전개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지자 우리 군이 이를 계기로 ‘잠수정 노이로제’에서 벗어날 수 있을 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군사 전문가들은 ‘모래밭에서 바늘찾기’로 비유되는 북한 잠수정의 탐색 작전이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지만 해안선을 따라 침투하는 북한의 소형 잠수정을 찾아내기는 이론처럼 쉽지는 않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육지에서 가깝기 때문에 음파탐지기를 통해 적발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데다 70t 규모의 소형 잠수정을 확실하게 탐지할 만한 장비는 미개발 상태이다. 96년 강릉 무장간첩 침투 때와 최근 두 차례의 침투 사례에서 보듯 물속에 있는 잠수정을 찾기보다는 물위로 떠오른 잠수정을 탐지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확실한 방편이다. 이 점에서 민·관·군 통합방위 체제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는 있다. 북한의 해상침투 실태,우리 군의 대응 전력 및 전술,보완 대책 등을 점검해 본다. ◎북한의 해상침투 실태/대부분 노동당작전부 지휘받아/7∼9월 음력그믐 전후 집중/공해서 반잠수정 이용 침투도 관계 당국에 따르면 북한은 동해와 서해에 모두 6개의 해상 침투기지를 운영하고 있다. 이 가운데 노동당 작전부 313연락소가 동해의 원산과 청진,서해의 남포와 해주기지 등 4곳을,인민무력부 정찰국은 동해의 퇴조와 서해의 남포기지를 운영하고 있다. 북한은 1,400t 규모의 로미오급 잠수함정 26척,320t규모의 상어급 잠수정 19척,70t규모의 유고급 잠수정 47척 등 잠수함정 92척을 비롯,60∼70t규모의 공작선박 80∼90척 등 북한 해군이 보유한 함정 가운데 상당수를 이들 기지에 배치,대남 침투 도발에 사용하고 있다. 또 노동당 소속 공작원 1,500명 및 인민무력부 특수전부대 요원 2만여명을 평상시 대남 침투 특수요원으로 투입하고 있다. 북한군의 전시 대비 특수전 요원은 모두 12만명에 이른다. 최근 두차례의 북한 잠수정 침투는 모두 원산에 본부를 둔 노동당작전부에서 자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작전부 요원들만이 사용하는 체코제 기관권총과 사각수류탄 등이 나왔고 침투용 추진기도 발견됐다. 20일 간격으로 같은 부서에서 동일한 장비를 이용해 침투 공작에 나선 것이다. 군 당국은 속초 앞바다에 좌초한 장수정에서 ‘9·9절을 앞두고 충성의 선물을 드리자’는 편지가 나온데 주목하고 있다. 오는 9월9일 북한 정권수립 50주년을 앞두고 북한이 ‘선물 마련’ 차원에서 침투 공작을 되풀이할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이다. 노동당 작전부는 통상 2∼3개월씩 장기 체류하면서 고정간첩과 접선하고 지하망을 새로 구축하거나 기존 지하망을 확인·확장하는 게 주요 임무이다. 북한의 경제난에 따라 고정간첩의 충성심을 확인하는 것도 최근 밝혀진 이들의 주요 임무의 하나이다. 이에 반해 인민무력부 정찰국은 1∼2일 가량 짧게 체류하면서 침투지역의 군사표적을 정찰,군사첩보를 수집하고 무장공비 남파하는 게 주요 임무이다. 인민무력부 정찰국은 이를 위해 수중 침투전담 조직인 22전대를 운영하고 있다. 22전대는 지휘부와 1,2,3편대로 구성돼 있으며 인원은 1,2편대 45명씩,3편대 15명 등 모두 110명이다. 1,2편대에는 상어급 잠수정이 2척,3편대에는 유고급 잠수정 1척이 배치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96년 강릉 무장공비 침투는 인민무력부가 주도한 대표적인 사례이며 당시 좌초한 상어급 잠수정은 2편대 소속 1호함으로 94년 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분단 이후 60년대까지 2,187건,70년대 345건,80년대 205건,90년대 72건 등 모두 2,800여차례나 육상및 해상을 통해 대남 침투도발을 저질러 왔다. 60∼70년대에는 주로 개인 수영장비나 고무보트 등을 이용해 임진강 하류지역에서 김포반도와 강화도지역으로 침투를 시도했었다. 이어 어선을 위장한 공작선이나 8명이 타는 반잠수정 및 수중 추진기를 개발,침투해왔으나 이들 방식이 은밀성에서 뒤지고 침투지역이 제한되는데다 기동성이 떨어지자 90년대 들어서는 잠수함및 잠수정을 이용한 수중침투로 전환했다. 북한이 최근 집중 침투하고 있는 동해지역은 핵심 군사시설이 밀집해 있는 군사요충지다. 공군기지 및 해군 1함대사령부 등의 군사시설이 있다. 이곳이 점령되면 태백산맥 전체가 북한 수중에 넘어갈 위험이 있으며 태백산맥이 조기에 함락되면 기계화부대가 해안 국도를 타고 부산으로 진격할 수 있다는게 군사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북한 잠수정이 동해안에 집중 침투하는 시기는 7∼9월 사이의 달빛이 없는 음력 그믐 전후. 지난번 속초 침투에서 드러났듯 원산 등 동해기지로에서 출발한 소형 잠수정은 5∼7마일(8∼10㎞)밖에 떨어지지 않는 연안 해로를 따라 잠행,해군의 경계망을 피한다. 이어 고성에서 강릉 사이 해저에 안착한 뒤 심야시간대에 공작조를 침투시키고 있다. 어선을 위장한 공작선을 이용해 공해상에 도착,자선(子船)인 반잠수정에 의해 내륙을 침투하는 방법도 계속 사용하고 있다. ◎우리의 대응전략/민·관·군 통합 3중 그물 친다/취약지역 연안 정치어망 설치/대잠함·초계기 등 24시간 경계 “같은 지역에서 동일한 방법으로 두차례나 침투 당한 데 대해 울분을 금할 수 없다”. 합참의 고위 관계자는 잇따른 침투도발을 ‘군의 치욕’이라고규정,단호하게 대처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그러나 철책이 쳐진 휴전선 155마일은 말 그대로 ‘물샐 틈 없이’ 경계하고 있으나 동·서·남해안의 수중 침투에 대한 경계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크다고 실토했다. 군사 전문가들은 동해안에서 북한의 잠수정을 샅샅이 잡아내려면 이론상 100∼140척의 대잠(對潛)함정,50∼80대의 P­3C 대잠초계기를 수중 및 수상,공중에 깔아놓아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 해군의 동해 경비전력은 대잠함 10여척,P­3C 대잠 초계기 10여척,대잠헬기인 링스 10여척에 불과하다. 부족한 대잠 장비로 5,800㎞의 해안선 및 31만㎢의 바다를 완벽하게 지키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현재 북한잠수정 탐지률은 6%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동해안은 한·난류가 교차하고 수중 소용돌이 현상이 발생,음파를 이용한 잠수정 탐지가 곤란한 실정이다. 해저지형이 급경사에다 불규칙하게 분포돼 있어 ‘잠수함의 천국’으로 불리기도 한다. 많은 선박이 오고 가며 내는 소음으로 미국의 최신예핵잠수함이든 구식인 북한 상어급 잠수정이든 여간해서는 잘 탐지되지 않는,세계에서 대잠 작전이 가장 어려운 곳으로 꼽힌다. 군사 전문가들은 미국의 핵잠수함도 1,000t급 이상의 잠수정을 탐지,격퇴시키는데는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지만 70t짜리 북한잠수정이 바다 밑에 숨어버리면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게다가 95년 방위병 제도가 폐지되면서 해안경계 병력이 70%까지 감소,동해안의 평시 초소 간격이 최대 770m까지 늘어나는 등 육상경계도 느슨해졌다. 특히 주민들의 편익 증진을 위해 일부 해안경계 철조망이 제거되면서 거의 모든 해안선은 경계 취약지역이 되고 말았다. 군 당국은 이에 따라 북한 잠수정의 침투에 대비해 상근 예비역을 취약 해안지역에 배치하는 한편 취약지역 연안에 정치어망을 설치하고 민간 어선단을 구성,경계와 신고체계를 조직화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의 비정규적인 해상 침투에 완벽하게 대처하려면 엄청난 자원과 노력이 추가로 필요할 수밖에 없다. 군 당국은 이에 따라 군은 원칙적으로 정규전에 대비하고 비정규전에 대해서는 주민신고를 받아 신속하게 격퇴하는 민·관·군 통합 방위체제의 확립이 시급하다고 여기고 있다. 군 고위 관계자는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할 때 미국은 많은 양의 대잠전력 외에 바다에 그물망까지 설치하고 대비했는데도 5척의 일본 잠수함이 침투,어뢰공격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는 말로 대잠 작전의 어려움을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꽁치잡이 그물에 걸린 북한 잠수정을 어부가 발견해 신고,잠수정을 나포했듯이 그물망을 설치하고 주민신고 체제를 확립하는 게 최선의 방비책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대잠 장비를 확충,대잠 탐지능력을 향상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민 모두가 파수꾼으로서의 역할을 다해주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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