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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외 항일전적지를 찾아서] (9)샌프란시스코·LA

    ◆ 美洲 독립운동 거점 샌프란시스코·LA. 샌프란시스코는 미주지역 조국독립운동의 중심지였다.한인들이 ‘상항(桑港)’이라고 부른 풍광이 아름다운 이곳에는 구한말 이래 하와이군도의 노동이민을 비롯,많은 한인들이 찾아들어 자리를 잡거나 로스앤젤레스 등 각 지방으로 진출하는 ‘거점’이 되었다. 샌프란시스코는 한국민족운동사상 첫번째 ‘의열투쟁’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페리부두에서 장인환(張仁煥)·전명운(田明雲) 두 의사가 대한제국정부의 외교고문의 직함을 가지고 일제 한국침략의 앞잡이 노릇을 한 미국인 스티븐스를 처단한 현장이다. 이 지역 최초의 한인단체 ‘상항친목회’가 1903년 9월 페리부두 인근의 스트리트 차이나타운에서 발족한 것을 시작으로 미주 한인사회최초의 민족운동기관으로 발전한 공립협회(公立協會)가 1905년 4월차이나타운 왼쪽 퍼스픽 스트리트 938번지의 회관에서 출발했다.공립협회는 기관지 ‘공립신보(公立新報)’에 이어 ‘신한민보(新韓民報)’를 발행하면서 국권회복운동을 벌였다. 두 의사의 의거직후인1909년 2월 미주본토의 공립협회와 하와이의합성협회 등 모든 한인단체를 통합,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를 창립하고 페리 스트리트 232번지에 중앙총회본부를 두고 기관지로 국내외 항일민족언론을 주도한 ‘신한민보’를 발행했다.영문명으로 ‘The New Korea’라고 표기한 ‘신한민보’는 1914년까지 5년동안 232번지 건물에서 발행하다가 1937년 로스앤젤레스 제퍼슨거리에 중앙회관을 건립,그곳에서 한국전쟁때까지 40년여년동안 한번도 결간없이 발행하면서 민족해방과 통일이념을 구현하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대한인국민회 중앙회관과 ‘신한민보’의 발행처로 사용되었던 페리스트리트 232번지 건물은 도시계획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 그 위치를 가늠하기가 어렵다.북가주 광복회장 이하전(독립유공자)옹과 중립화 통일운동에 열정을 보이는 최봉윤옹,이정순 한인회장등이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고자 애쓰고 있다. 장인환·전명운 두 의사가 일제의 한국침략 앞잡이로 활동한 미국인 스트븐스를 총살·응징한 것은 1908년 3월24일 상오 9시 10분이다. 스티븐스가 페리 정거장에 도착하여 승용차에서 내려 페리빌딩으로들어서려는 순간,대기중이던 전명운이 먼저 권총 방아쇠를 당겼다.그러나 불발이었다.뒤이어 전 의사가 스티븐스의 얼굴을 총두(銃頭)로갈기는 순간 장 의사가 권총 3발을 발사,일본의 주구는 쓰러졌다가이틀뒤 절명했다.두 의사가 우연스럽게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서 거사에 나서 성공한 것이다. 장 의사는 1909년 1급 살인혐의로 구속돼 25년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중 1919년 국민회의 가석방 청원서가 수락되어 석방되었다.석방후독립운동에 헌신하던 그는 1930년 생활과 병고 등으로 향년 54세로이곳에서 자살하였다.전 의사는 사건발생 97일만에 구속되어 재판을받다가 무죄로 석방되었다.전 의사는 석방이후 미국에서 불우한 삶을 보내다가 1947년 63세로 세상을 떴다.두분 다 불우한 여생을 마친것이다. 샌프란시스코한인사회는 지난 3월23일 의거92주년 기념행사를 가졌다.지난해 이어 두번째인 이 행사는 의거장소인 페리부두가 현장여건상 개최가 어려워 한인회관에서 열었다.지난해는 ‘한미수교1백주년기념조각’이 있는 자스틴 허만광장에서 거행되었다.한인 지도자들은 이곳에 두 의사의 동상을 세우고자 성금을 모으고 본국의 지원을 바라고 있다.현재 페리부두의 육중한 3층짜리 페리빌딩은 역사기념물로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다.두 한인의사를 기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1896년에 건립된 지역 대표적 건물인 까닭이다. 초기 한인들의 정신적 지주역할을 해온 ‘상항한인연합감리교회’는 1904년 안창호·이대위 등이 친목회를 조직하고 가정예배를 드리기시작해 1907년 캘리포니아거리에 있는 3층 주택을 임대해 예배를 보는등 시련끝에 1994년 쥬다거리에 교회건물을 구입이전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98년에 현재 건물을 신축하여 감리교회당과 역사자료실 부설로 운영하고 있다.현 건물은 독립운동과 직접 관련이 없지만 이곳한인들의 믿음과 각종 독립운동 자료들을 보존하고 있다. 미주 항일독립운동의 선각자 도산 안창호선생의 발자취는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레스 곳곳에 남아있다.특히 로스앤젤레스 제퍼슨 거리 1938번지 대한인국민회 중앙회관앞 거리는 로스앤젤레스시가 1994년2월 ‘도산 안창호광장’으로 이름지을 만큼 도산의 업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도산은 1902년 샌프란시스코에 도착,LA를 오가면서 항일민족운동을 주도했다.대한인국민회와 흥사단을 중심으로 미국은 물론 멕시코·원동지방의 시베리아,만주등지에 대한인국민회 지방총회를조직할만큼 광범위한 조직을 만들어 항일구국투쟁을 벌였다.흥사단의 단소(團所)인 중앙회관은 LA 벙커 힐에 있던 것을 얼마후 피게로아스트리트 106번지의 2층 목조건물로,1932년에는 남(南)카타리나 거리 3421번지의 땅을 구입해 2층 유선양옥을 지어 옮긴 것이 오늘에 이른다. 미주 독립운동의 정신적 산실인 대한인국민회중앙회관은 1936년 LA 36 스트리트에 있었으나 얼마후 제퍼슨거리 1368번지로 옮겼다.대한인국민회 회관은 퇴색한 단층건물이 철책담으로 둘러싸여 제퍼스 큰길과 만나고 현관 벽 위에 ‘대한인국민총회’라는 현판이 선명하게 부각되어있다.LA 연합장로교회 소유인 이 건물은 지금도 매년 3·1절과 광복절에는 교포들이 모여 기념예배를 본다. 한인회 간부들은 한인회와 정부가 합동으로 교회로 부터 건물을 구입,보수하여 민족운동박물관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LA 한국문화원 최규학영사와 현지언론 피플뉴스 발행인 민병용씨 등 많은 사람이 민족운동박물관건립운동에 발벗고 나서고 있다. 1937년부터 1946년까지 도산가족이 살았던 남가주대학 구내 도산 사가(私家)는 당시 건물(1937년)그대로 보존돼 있다.현재 ‘The Ahn Family Residence’라고 쓰인 동판표지물이 설치돼 있다.올해 3·1절행사때 한국을 방문한 셋째딸 안수산 여사가 노구를 이끌고 방문자들을 친절하게 안내한다.도산의 많은 유물은 보는 이를 숙연케 한다.하나같이 조국 독립운동의 얼이 배인 것들이다. 샌프란시스코·로스앤젤레스 김삼웅주필 kimsu@
  • 김포 대명포구 철책선 개방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대명리 대명포구 해안이 30일부터 개방된다. 김포시는 22일 그동안 군사지역으로 민간인 출입이 통제돼온 대명포구 해안철책선 가운데 250m 구간을 군과 협의해 시민들에게 개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개방시간은 일출 1시간 후부터 일몰 1시간 전까지이며,대명포구를찾는 시민들은 철책선 안으로 들어가 낚시·관광 등을 즐길 수 있다. 조선조 말 형성된 대명포구는 쭈꾸미·낙지(봄철),병어ㆍ밴댕이ㆍ준치(여름),꽃게ㆍ새우(가을),숭어ㆍ삼세기(겨울) 등 계절에 따라 싱싱한 생선을 맛볼 수 있다. 김포 김학준기자
  • 박청호 장편 ‘갱스터스 파라다이스’

    이 땅에 태어난 작가들은 상상력의 박토에 집단추방당해 있다는 말이 있다.역사와 풍속이 상상의 날개를 달아주기는커녕 굴레로 작용해창작의 쟁기 날들이 박하디 박한 땅에 부딪쳐 부러지기 일쑤라는 뜻이다.그래서 작가들은 다소 허무맹랑한 공상의 나라로 ‘도망치곤’한다.독자들은 이런 일탈을 못마땅해 하면서도 상당한 역설적 진실과위무를 발견하곤 한다. 박청호의 장편소설 갱스터스 파라다이스(문학과지성사)는 비무장지대(DMZ)와 개인의 총 소유에 대한 우리의 현실과 인식을 뒤집고 있다.66년생의 이 작가는 지금까지 분단의 비극적 현장이란 레테르로 고착된 채 방치된 비무장지대를 50여년의 분단의 시간이 만들어낸 신성한 새 공간으로 보면서 이 지역을 ‘공상적’으로 활용한다.주인공은이 지역을 영원한 낙원으로 보존하기 위해 총을 들고 갱이 된다. 주인공은 총과 폭발물을 마음대로 휘두르면서 돈을 털고 위선적인 지도층 인사들을 살해하고 환경보존 자금마련을 위해 한국은행을 털 계획을 세운다.또 철책선 부대로 동료 여자를 데리고 가 친구인 군인과섹스를 즐기게 하고 비무장지대로 기어들어가 앳된 북한 병사와도 섹스를 하게 한다는 식이다. 제5회 문학동네신인작상 수상작인 이지형의 망하거나 죽지 않고 살수 있겠니(문학동네)는 일제 식민지 시대인 1930년대의 서울을 지금까지의 통념과는 전혀 다른 세계로 드러내고자 한다.74년생의 이 신인작가가 시도한 뒤집기는 전체적으로 꼭 합당했다고 보기 어려우나눈에 띠는 새 색깔로 칠했다는 점에서 죽은 회색빛 일색으로 단정해버렸던 시대를 부활시킨 공이 있다. 김재영기자 kjykjy@
  • 치악산 神林 ‘서낭’

    땅거미가 내려오는 저녁,마을 어귀를 지키고 선 당나무가 무서워 쩔쩔매던 어릴 적 기억이 한 움큼씩 남아있을 것이다. 개발의 발자국에 짓밟혀 그 자취를 찾기조차 힘들게 된 성황당(城隍堂)과 당나무,모골이 송연한 느낌을 안겨줬던 서낭집,여러 나무들을만조백관처럼 거느려 자신의 영험한 기운을 내뿜던 서낭숲. 조선조 오악 가운데 동악으로 대접받던 치악을 왼쪽으로 흘려보내며중앙고속도로 치악휴게소를 지나 내쳐 달리면 신림(神林).그 이름에상서로운 기운이 그득하다.그 길을 여러 차례 지나다닌 이들도 이 땅이름이 성황,혹은 서낭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서 무릎을 친다. 신림나들목에서 직진,주천과 영월로 향하는 지방도로를 버리고 까치의 보은전설로 유명한 상원사에 이르는 길에 들어선다.성남교를 지나쳐 오른쪽에 번듯산 숲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키 큰 소나무로 에둘러싸인 그 숲은 원형이 잘 보전된 몇 안되는 서낭숲.마을사람들은 당숲이란 명칭에 더 애정을 나타낸다. 철책을 둘러치고 그 위에 나무넝쿨이 우거져 숲은 햇빛 한자락깃들일 여지없이 습하고 어둡다.언뜻 보아 3,000여평,넓게는 4,000평이될 법한 숲에 융단을 깔아놓은 듯 솔이끼밭이 펼쳐져 있다. 널찍한 큰 길이 나있다.어인 일일까.몇년전만 해도 산판차량과 버스등이 지나다녀 숲이 훼손됐었단다.원래 이곳은 윗서낭.성남교 500m아래쪽에는 아랫서낭이 있지만 훼손돼 서낭숲의 본래 기능을 상실했다. 윗서낭쪽은 그런대로 서낭숲의 원형이 보전돼 있다. “사람들이 몰려와 개잡아먹고 난리를 피웠지.사람도 몇 죽고,주민들이 막아달라고 청원해서 우리도 마음대로 출입을 못해.”논에서 피를 뽑던 촌로는 혀를 끌끌 찬다.출입을 막은 덕인지 숲은우거질 대로 우거져있다.숲에 들어서려면 당국의 허가를 받거나 김경진 할아버지(033-763-5421)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서낭신은 토지와 마을을 지켜주는 신.매년 4월초파일과 9월9일 마을사람들이 추렴해 당제를 올린다.제사를 준비하는 집을 도가라 칭하며 금줄을 쳐 잡스런 것들의 접근을 금하고 부부관계도 멀리해 신을 만날 마음을 다스렸다.정성이 각별한 것. 서낭이란 말은 고대 중국 성읍의 수호신인 성지신에서 유래된 것으로 우리나라에 고려때 전해져 조선시대 육조때부터 성황이라 부르게 됐다.그러나 자생적으로 마을 주민들이 가꾸어온 서낭은 관제 성황과는 다른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녔다. 당국이 천연기념물 93호로 이곳을 지정한 이유도 다른 곳에서 찾기힘든,온대성 활엽수림의 가치 때문.물봉선과 산괴불주머니 부처풀 등 아름다운 우리 들꽃을 쉬 찾아볼 수 있다. 낭집 오른쪽으로 30m 높이의,상채기 하나 없이 꼿꼿한 전나무가 하늘을 감싸안을 듯 가지를 벌리고 서 있다.보통 서낭숲의 주인은 소나무가 맡는데 이곳은 치악에서 흘러내린 주포천 두갈래가 숲을 휘감아습지에 강한 전나무가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윗서낭이 남편이고 아랫서낭이 아내요,반대편 음나무 역시 전나무의 아내노릇을 하고 있다니 음양이치의 적용이 ‘장난’아니다. 숲을 나와 500여m를 올라 상원사 가는 길을 버리고 왼편으로 꺾어돌면 한창 전원주택을 짓고 있는 현장이 나온다.아슬아슬한 고개를 넘으면 절골. 비포장도로를 5분동안 참을성 있게오르면 고추밭 옆 비탈길에 소나무 숲이 보이고 가지 사이로 당집 지붕이 보인다.고추밭에서 김매던할머니는 “올 2월에 당집을 새로 단장하고 길도 냈지라”하고 자랑한다. 맑고 찬 개울을 건너면 절골서낭.성황림에 비해 출입이 자유로운 이곳이 어쩌면 서낭숲의 본모습을 더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 같다.이곳 역시 절골 바로 위에 있는 3단폭포에서 쏟아져나온 계류가 숲을 휘감고 돌아 습지식물들이 눈에 많이 띈다. 성황림 입구에는 주민들의 플래카드가 나붙어 있다.한 아낙은 “철책을 두른 뒤부터 나무들이 이유없이 죽어나간다”고 탄식한다.그는 덧붙여 “숲이 사람의 온기를 잃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서낭숲 출입을 금지한 당국의 조처에 반대해 주민들은 최근 아랫서낭의 바리케이트를 해체하기도 했다. 무조건 사람들의 발길만 차단해 놓았지,숲을 제대로 가꾸려는 노력마저 봉쇄했다는 것이다.생태계가 차단된 것도 마찬가지. 지금도 이곳에는 목발을 짚고 나무의 영험한 기운을 빌어 병을 고치겠다는 이들의 발길이 이어진다고한다.그들이 철책 사이로 당나무를 향해 기도를 올리는 모습을 보며 주민들은 안타까움조차 느낀다고전한다. 당나무는 우주수(cosmos tree)로도 불린다.우주의 호흡을 전했던 이곳 서낭숲이 그 문을 온전히 열어제쳐 우주와 구차한 이곳 세상을 연결할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해 보았다. ◆가는 길과 숙박=열차나 고속버스로 원주까지 오면 신림행 시내버스가 1시간마다 다니고 신림에서 상원사입구까지 마을버스가 운행한다. 성황림 근처의 산수민박(033-763-3833)과 한오백년(033-762-8074),절골에 치악산장(033-763-7111)이 깨끗한 편이다. 글·사진 신림 임병선기자 bsnim@
  • 주한미군과 환경문제/ 협상테이블 韓·美 입장과 전망

    2일과 3일 서울에서 열린 한·미 주둔군 지위 협정(SOFA)개정 협상에서 주한 미군에 의한 환경 오염은 형사재판권 관할,노무 분야와 함께 주요 안건이다. 미국은 매향리 사격장 소음 피해 및 포르말린 한강 무단 방류 등으로 반미감정이 고조되자 “협상에서 형사재판권 관할 문제만 논의할 수 있다”는 소극적 태도에서 벗어나 “환경·노무 분야도 고려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환경 분야는 형사재판권 문제가 타결된 뒤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고수하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은 아직 주한 미군에 의한 환경 오염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한·미 양국은 지난 95년 11월부터 96년 9월까지 7차례나 SOFA에 환경조항을 신설하는 문제를 놓고 협의했으나 별 진전을 보지 못했었다. 이번 협상에서 송민순(宋旻淳) 외교통상부 북미국장을 수석대표로 한 우리정부는 독일 수준의 환경 기준 준수를 SOFA에 신설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프레데릭 스미스 국방부 아·태 부차관보를 단장으로 하는 미국 대표단은 난색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우리측은 미국측에 탄력적으로 대처할것을 요구했지만 입장 차가 워낙 커 협상 진전을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 관계자에 따르면 미국측이 이번 협상에서 우리 요구를 받아들일 경우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다른 나라에서도 똑같은 요구가 나올 것을 우려하고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우리측도 들끓는 여론을 의식해 요구했을 뿐 큰 기대는 걸지 않는 눈치다. 환경부 관계자는 “미군이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는 세계 85개 나라와 맺은 SOFA 가운데 환경조항이 포함된 곳은 독일 뿐”이라면서 “한·미 SOFA에만환경조항이 없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이 관계자는 “현재 협상이 진행중인 곳도 일본 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독극물인 포르말린 한강 방류 등으로 국민들이 분개하는 것은 이해되지만,그렇다고 해서 당장 SOFA에 환경조항을 신설하도록 미국을 압박할 수만은 없다는 설명이다. 문호영기자 alibaba@. *주한美軍 환경오염 실태. 최근 부각되고 있는 주한 미군에 의한 환경 오염은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아니다.오래 전부터 광범위하게 이루어져 왔을 뿐 아니라 정보가 잘 공개되지 않는 군의 특성상 알려진 것보다 더 심각할 수 있다는 것이 환경부와 환경단체들의 분석이다.주한 미군에 의한 주요 환경 오염 실태를 소개한다. ◆매향리 사격장 소음 피해 경기도 화성군 매향리 일대는 지난 55년 미 공군의 사격장으로 공여된 뒤 주민들이 극심한 소음에 시달리고 있다.인도주의실천의사회 조사에 따르면 주민들은 소음에 의한 수면·청력 장애,스트레스,기억 감퇴 등 증상을 보이고 있다.혈중 납 농도도 1㎗당 3.42㎍으로 납에 노출된 노동자 2.03㎍/㎗보다 높다.아주대 의대가 측정한 소음도는 하루 평균 41.7∼97.9㏈,1시간 평균 44.1∼104.9㏈,주민피해대책위원회가 대전대에 의뢰해 실시한 소음도 측정에서는 실내 61.2㏈,실외 133.7㏈로 조사됐다.녹색연합 등 환경단체의 조사에 따르면 매향리는 포탄에 포함된 중금속에 의한 토양 오염도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산비행장 소음 및 오·폐수 부적정 처리 매향리와 마찬가지로 주민들이소음으로 인한 피해에 시달리는데다 비행장에서 나오는 정화되지 않은 오·폐수 때문에 농사에 지장을 받고 있다.미 공군은 지난해 12월 오·폐수를 군산하수처리장으로 보내 처리하기로 군산시와 합의했으나,최근에도 오·폐수를 무단 방류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동두천 폐기물 불법 매립 지난 97년 6월 미 2사단이 동두천시 걸산동 일대공여지(500평) 및 부대 내 하천 변에(200평)에 건축 폐기물 1,000t을 버린사실이 밝혀졌다.건축 공사에서 나온 폐아스콘·폐콘크리트를 전문처리업체에 맡기지 않고 마구 버렸다.미군측은 지난 1월 재활용이 가능한 폐기물은재활용하고 나머지는 민간 업체에 맡겨 처리했다고 밝혔지만,현장을 확인하겠다는 동두천시의 요청은 묵살하고 있다. ◆의왕시 메디슨기지 기름 유출 지난 97년 3월 경기도 의왕시 백운산에 있는미 8군 통신부대 메디슨기지에서 난방 보일러용 저유황 경유 200갤런이 유출됐다.소형 기름탱크의 배관이 파손되면서 기름이 쏟아져 백운산 계곡을 오염시켰다.백운산 계곡은 기름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아 지금도 비가 오면 기름이계곡을 따라 흘러내린다.미군측은 오는 9월부터 미생물을 이용해 기름을 제거할 예정이지만,메디슨기지 100m 이내 지역은 경사 50도 이상의 가파른 지형이라 토양 복원작업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전문가들은 토양이 광범위하게 기름에 절어 앞으로 100년이 지나도 완전 회복이 불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평택 K-55기지 기름 유출 지난 7월22일 집중호우 때 평택시 서탄면 금각리 K-55기지의 지하 기름탱크 2개가 침수돼 약 3,700갤런(약 1만4,000ℓ)의항공유가 유출됐다.유출된 기름은 배수로를 따라 금각2교∼부대 철책 약 5㎞를 뒤덮었다.미군측은 사고 발생 3일이나 지난 7월25일에야 이같은 사실을공식 발표했다. ◆용산기지 포르말린 한강 방류 녹색연합에 따르면 지난 2월9일 용산기지 영안실에서 시체 방부처리용 포르말린(포름알데히드) 228ℓ(475㎖ 짜리 480병)가 하수구를 통해 방류됐다.이같은 사실은 지난 7월13일 용산기지에 근무하는 한국계 직원의 폭로로 세상에 알려졌다.포르말린은 미국에서 사용이 엄격히 제한되는 발암물질.미군측은 7월14일 75ℓ를 방류해다고 시인했다.그러나기지 내 오수처리시설에서 1·2차 처리된 뒤 서울시 난지도 하수종말처리장을 거쳐 한강에 방류됐기 때문에 환경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이라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이 때문에 녹색연합 등 환경단체로부터 “진상 규명을위한 노력보다는 진실 회피와 여론 무마를 위한 형식적 조사”라는 비난을받고 있다. 문호영기자. *盧富鎬 환경부 정책총괄과장인터뷰. “국민들이 보기에는 미흡하지만 주한 미군의 환경 오염에 대한 미국의 태도에 변화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2일과 3일 서울에서 열린 SOFA 협상에 환경분야 대표로 참가한 노부호(盧富鎬) 환경부 정책총괄과장은 “주한 미군도 그들의 환경관리규정을 준수하기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노 과장은 주한 미군 용산기지의 포르말린 한강 방류가 5개월여 지난 7월밝혀지는 등 미군이 사실을 은폐하려 했다는 비난에 대해 “군의 특성상 정보가 잘 공개되지 않다 보니까 의혹이 의혹을 낳는 악순환이 계속된 측면이없지 않다”면서 “주한 미군이 환경 오염에 대한 정보 공개를 제도화하는쪽으로 환경관리규정을 정비하도록 유도하겠다”고 말했다. 노 과장은 이번 협상에서 뚜렷한 합의가 도출되지 못한 데 대해 “협상이라는 게 본래 상대방이 있으므로 우리 쪽에 유리한 주장말 할 수는 없다”면서 “정부가 결코 미온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해 달라”고당부했다. 노 과장의 이같은 언급은 ▲주한 미군 기지 내 환경 오염에 대한 우리 환경법규 적용 ▲원상 회복 및 손해 배상 명시 ▲환경 오염과 관련된 사전 협의및 사전 통보 의무화 ▲환경 조사를 위한 시설 및 구역 접근 보장 등 환경단체의 주장은 향후 협상에서 우리측의 입지를 강화해 주는 효과는 있겠지만,모두 관철시키는 것은 쉽지 않다는 뜻으로 읽힌다. 노 과장은 “SOFA 규정에도 주한 미군이 우리 법을 존중하도록 돼 있다”면서 “가까운 장래에 SOFA에 환경조항이 신설될 수 있도록 미국측과 꾸준히접촉하겠다”고 밝혔다. 문호영기자. *주둔군협정 독일의 사례. 독일은 지난 93년 통일 뒤 SOFA에 환경조항을 신설했다.59년 8월에 51년 6월 체결된 NATO(북대서양조약기구)-SOFA를 보완하는 보충협정(supplementary agreement)을 맺은데 이어 71년·81년·93년 3차례에 걸쳐 개정했다. 독일의 보충협정의 환경조항은 ▲파견국(미국)이 환경 보호의 중요성을 인식한다는 선언적 규정 ▲파견국 군 당국이 환경수용체(주둔국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고 오염 때 복원 조치를 취한다는 내용 ▲파견국 군대가 독일 환경 규정에 따라 저공해 연료 등을 사용하고 소음·배기가스 배출기준을준수하도록 한다는 내용 등으로 구성돼 있다.우리 정부 관계자들은 주독 미군이 독일의 환경기준을 준수하도록 한 규정에 ‘지나치게 부담스럽지 않은정도까지’라는 단서가 붙기는 했지만,독일이 이 정도까지 관철할 수 있었던데 내심 ‘감탄’하고 있다.또 환경단체들은 독일의 예를 들어 2·3일 한·미 SOFA 협상에서 이같은 수준을 요구할 것을 정부에 촉구하고 있다.이 때문에 우리 정부 관계자들이 당혹해하는 것도 사실이다.특히 환경조항에 복원의무를 삽입하라는 요구에 대해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다.현실적으로불가능할 뿐 아니라,남의 나라를 지켜 주는 미군의 역할을 전혀 도외시할 수없다는 설명이다. 문호영기자
  • [대한시론] 이제는 사이버 전쟁이다

    6·15 남북 정상회담에 따른 여러가지 후속 조치들이 진행되고 있다.이를보는 시각이 보는 이에 따라 무척 다르다는 것을 쉽게 발견하게 된다.세대간의 격차는 차치하고라도 이북에 가족을 두고 있는 경우에는 이를 논리적·이성적으로 바라보기에 앞서 우선 감정이 앞서고 객관적으로 냉정히 판단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한편으로 반세기에 걸쳐 우리를 철저하게 지배하였던분단 냉전 논리에 익숙해져 있는 대부분의 전후세대에게는 너무도 급속하게전개되는 일련의 후속조치들이 그저 혼란스럽고 불안하게 느껴지는 것 또한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굳게 닫혀있던 휴전선이 이제 열릴 수 있다는 가능성 하나만으로도그동안 금기시되어 왔고 논의조차 불가능했던 많은 문제들이 전혀 새로운 차원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음을 모두 공감할 것이다.특히 20세 전후 젊은이들의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대학인들에게는 졸지에 우리앞에 다가온 엄청난 변화의 가능성에 가슴이 벅차 오름을 억누르기가 힘들 지경이다.그 이유는 분단 50년에 걸쳐서 우리 모든 젊은이들의 삶과 꿈을 3년여 기간동안 송두리째 휴전선 철책선에 붙잡아 매어야 하는 실로 암담한 상황에 변화가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기대 때문이다.그들의 폭발적이고 무한한 힘과 잠재력을이제는 실로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지식전쟁,정보전쟁,사이버전쟁에 보다본격적으로 동원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바로 그것이다. 인터넷의 급속한 확산을 통해 만들어진 사이버공간,일명 온라인(On-line)의 세계는 가시적·물리적 공간,일명 오프라인(Off-line)의 세계에서 통용되는 법칙이나 질서·통념과는 크게 다르다.시공(時空)을 뛰어넘어 그 규모와 영역이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하면서 오프라인의 가시적 영역을 무서운 속도로잠식하고 있을 뿐 아니라 전혀 새로운 영역을 만들어 가고 있다.아직은 어디까지 잠식해오고 어디까지 확대되어 갈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제는 철책선을 방어하고 해안선을 지키는 것보다는 사이버공간을 만들고확대하고 이를 지키는 것이 더더욱 중요한 국가안보의 요소가 되고 있다.지금의 이 상황은 실로 전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이러한 사이버공간에서의 국가간의 치열한 전쟁을 어떻게 승리로 이끌 수 있느냐가 21세기 세계의 판도를 결정할 것이 자명하다. 문제는 이 전쟁을 치를 수 있는 전사는 30대,40대가 아니다.어려서부터 PC에 익숙한 10대,20대들이다.그들에게 M16소총을 들려서 철책선에 보내는 일을 일시에 중단할 수는 없으나,그들을 영어로 무장시키고 손에 마우스를 들려 사이버전쟁에 대거 투입하여야 한다.지식산업사회,정보화사회에서 대학은 사이버전사를 양성하는 훈련소가 되어야 하며,나아가 치열한 사이버전쟁의현장이 되어야 한다. 최근 모 과학고등학교를 방문하여 강연을 할 기회가 있었다.강연 후에 가진 질의응답 시간에 한 학생으로부터 “포항공대에 진학하면 군대에 빠질 수있는 길이 열립니까”라는 질문을 받고 너무도 당혹스러웠던 경험이 있다. 그들이 가야할 길이 사이버전사로서 사이버전쟁터라면 이를 빠져나갈 길을찾겠는가 생각해 본다.온라인으로 방향을 바꾸기만 하면 그들이 갖고 있는잠재력과 힘은 가히 폭발적이지 않겠는가. 김대중 대통령이 해외 언론사와 가진 최근 인터뷰에서 남북정상회담의 합의를 바탕으로 통일을 이루는데 20년 정도는 걸릴 것으로 예측하였다고 한다. 지금 국가적으로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사이버전쟁은 20년 이내에 분명 결판이 나고야 말텐데 그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면 애시당초 이야기하지 않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白 聖 基 포항공대 부총장
  • 우리가 가꿔가야할 한반도/ DMZ

    ‘휴전선 155마일은 생명의 녹색띠’ 서해의 끝섬(末島)에서 동해의 명파리까지 길이 248㎞,남북으로 폭 2㎞씩 3억평에 이르는 비무장지대는 한반도의 허리에 선명한 녹색띠를 두르고 있다. 비무장지대는 자연보존실험의 성소(聖所)이다.무려 반세기동안 인적이 끊긴자연상태로 있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한반도에 서식하는 식물 2,900여종 가운데 3분의 1,포유동물 70여종중 절반,조류 320여종중 5분의1이 발견되고 관찰됐다.한반도 유일의 생태계 보고(寶庫)이다.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으로 통일의 문이 서서히 열리고 있다.굳게 가로막힌철책이 뚫릴 날도 멀지 않았다. 세계문화유산으로,평화공원으로 보존하자는목소리가 높다. 대한매일은 지난 96년 한해동안 ‘비무장지대 생태계보존캠페인’을 통해보존필요지역을 선정,탐사보도한 바 있다.당시 보도는 비무장지대 생태계보존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훼손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 일으켰다. 탐사지역은 ▲철새낙원 철원평야 ▲연천군 사미천 철새도래지 ▲대암산 용늪 ▲두타연 ▲향로봉 ▲건봉산 고진동및 오소동계곡 ▲고성군 거진읍 냉천리 건봉사 ▲백령도 등이었다.이밖에 강화군 말도,유도,소송도,대송도 등 해상비무장지대와 임진강하류 철새경유지,파주군 대성동 겨울철새 관찰지역,강원도 고성군 명파리와 화진포 등을 전문탐사진과 함께 소개했었다. 학계보고와 본사 탐사결과 등에 따르면 비무장지대에서 관찰된 식물은 모두1,220종.북한 백두산 이외에는 대암산에서만 발견되는 비로용담, 특산식물인금강초롱, 습지에서 초여름에 꽃을 피우는 큰방울새란,가칠봉에 군락을 이루는 ‘한국형 에델바이스’ 왜솜다리,향로봉의 해란초,금강산이북과 지리산에만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대암산에서 발견된 도깨비엉겅퀴 등이 대표적이다. 곤충의 경우 건봉사주변과 대암산 용늪주변,서해안 석모도 등이 비교적 좋은 환경을 유지하고 있었다.특히 건봉산에서는 세계적인 희귀종인 고려집게벌레가 발견됐다. 민물고기의 경우 산천어,버들가지,금강모치 등이 관찰된 건봉산 고진동계곡과 열목어,쉬리 등이 살고 있는 두타연을 비롯, 임진강변인 연천군 중면 야촌리일대가 보존가치가 높은 지역으로 지적됐다. 철새 등 조류보호를 위해서는 세계적인 두루미 월동지역인 철원분지와 김화일대,대성동 및 유도일대,강화도·영종도 일대,세계 최대의 노랑부리백로 집단 번식지인 신도와 백령도 등의 보호지구 지정 및 확대 필요성이 제기됐다. 또 비무장지대에는 35종의 포유동물이 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주목할점은 늑대,여우,표범,호랑이가 극소수나마 비무장지대안에 서식하고 있을 가능성이다.곰,사향노루,산양 등 멸종위기에 놓인 동물을 밀렵꾼으로부터 보호하는 일과 백령도 및 석모도에서 살고 있는 물범과 ‘해충구제의 명수’ 박쥐류의 보호가 시급했다. 5년이 흐른 요즘 비무장지대는 인간의 훼손앞에 신음하고 있다. ‘철새낙원’ 철원평야의 동송저수지,샘통,토교저수지 등에는 여름철새가더 이상 군락을 이루고 있지 않았다.비무장지대안으로 난 도로가 포장되고길이 넓혀지면서 철새들이 다른 곳으로 둥지를 옮긴 곳이다. 조류학자 이정우 삼육대 교수는 “비무장지대의 생태변화로 철새들의 군락지 이동 등의현상이 두드러지는만큼 새로운 번식지와 군락지를 찾아 보존지역으로 지정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말했다.특히 철원군 동송과 연천군 일부철새도래지가 경작지화하면서 매년 찾아오는 철새의 수가 줄고 있다고 안타까워 했다. 1년에 1㎜씩 4,000∼4,500여년동안 쌓여 형성된 국내 유일의 고층 습원지역인 대암산 용늪도 해당 군부대가 초병들을 ‘환경지킴이’로 임명,경계를 강화하고 있지만 곰취 등을 채취하러온 주민 등에 의해 난 상처를 회복하는 작업은 더디게 진행되고 있었다. 천연기념물 217호로 남한지역에 수십마리만 남은 산양이 살고 있는 건봉산고진동 계곡에서도 산양의 모습을 좀처럼 목격하기가 어려워졌다. 식물학자 이은복 한서대 교수는 “막연하게 비무장지대가 생태계의 보고라는 환상에서 깨어나야 한다”면서 “군부대 등이 자리잡고 있는 비무장지대는 잦은 시계청소 등으로 이미 심하게 훼손된 실정이므로 관광지 등으로 개발하려는 욕심을 버리고 생태계보호지역으로 지정,엄격하게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철원‘양구 노주석기자.*여름철새 뜸한 도래지들. 매년 이맘때면 백로 등 여름철새들로 장관을 이루던 강원도 철원군 동송일대의 철새도래지가 요즘 텅 비었다.어린 백로와 왜가리 몇 마리만 드문드문눈에 띌 뿐이다. 백로는 매년 3∼4월이면 필리핀,캄보디아 등 동남아지역에서 어김없이 날아와 이곳에서 여름을 난 뒤 10월 하순쯤 되돌아가는 여름철의 진객. 안내장교는 “최근 들어 이 지역에서 백로와 왜가리를 찾아보기가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철원평야를 하얗게 수놓던 백로떼는 과연 어디로 간 것일까.왜 떠난 걸까. 백로떼를 찾아 천연기념물 245호 철새도래지로 지정된 샘통(泉桶)으로 발길을 돌렸지만 마찬가지였다.따뜻한 샘물이 사시사철 솟아나 철새들의 행렬이끊이질 않는다는 이 곳에서도 논 위를 한가로이 걸어다니는 백로 몇 마리만목격했을 뿐이었다. 의문은 곧 풀렸다.이 지역 철새연구가 진익태씨가 “백로들은 고석정 냉정저수지부근으로 서식지를 옮겼다”고 귀띔해 주었기 때문이다. 비무장지대 남쪽으로 10여분 길을 달려 백로들을 찾아나섰다.고석정부근 포천군 관인면 냉정1리 냉정저수지초입의 소나무숲에서 비무장지대안에서 사라진 백로떼를 발견할 수 있었다. 작은 운동장만한 야트막한 소나무숲에서는 중대백로,중백로,쇠백로 등 백로들과 황로등 3,000여마리가 뒤섞여 군무(群舞)를 추고 있었다. 숲안으로 들어가자 소나무마다 둥지를 튼 백로들의 날개짓소리와 울음소리가 진동했다.깃털이 날리는 숲속은 마치 눈이 내리는 듯했다. 이정우 삼육대 교수는 “해마다 여름이면 철원평야를 찾던 백로를 비롯해검은댕기 해오라기,후투티,꼬마물떼새,청호반새 등 수십종에 달하는 철새들이 떠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이 교수는 그 이유로 비무장지대의 먹이부족과 관광객 및 교통량의 증가를 꼽았다. 이 마을에서 40년을 살았다는 황균익씨(75)는 “5∼6년전부터 백로들이 이곳에 모여들었다”면서 “백로들은 새벽이면 전방으로 떼지어 날아간 뒤 오후 4∼5시쯤이면 다시 날아들어 저수지의 물고기나 우렁이,달팽이,개구리를잡아 먹는다”고 말했다. 환경부는 백로들의 새로운 서식지로 자리잡은이 지역을 생태계보전지역으로 지정할 방침이다. 노주석기자
  • [사설] 한국전쟁 50년

    6·25동족상잔이 일어난지 반세기.155마일 철책선을 사이에 두고 남과 북이대립과 긴장속에 살아온 50년의 세월이었다.잠시 갔다 다시 돌아오겠다며 북녘땅을 떠나 온 이산가족들이 부모형제를 그리워하며 살아온 단장(斷腸)의 세월이기도 했다. 이처럼 6.25한국전쟁은 우리민족에게 너무 깊은 상처와 손실을 안겨 주었다.민족자존에 치욕만 남긴 전쟁이었다.장구한 배달민족의 정통성이 무너지고 남북간의 이질성이 심화돼 통일을 막는 마음의 장벽이 남북사이에 가로놓이게 됐다.이 모든 전쟁의 상흔들은 반세기가 흘렀지만 아직도가셔지지 않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한국전쟁 50주년을 맞으면서 남북이 함께 되새겨야할 교훈은 앞으로 어떤상황에서도 두번 다시 동족간의 무력다툼은 결코 있어선 안된다는 것이다.만약 앞으로 한반도에서 또다시 6·25와 같은 전쟁이 일어난다면 민족자체의파멸을 초래하는 무서운 결과를 가져올 것이 자명하다.통일은 다소 지연되더라도 평화를 유지하며 단계적으로 통일이 이뤄져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있다. 따라서 남북이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는 6·25전쟁의 상처를 하루빨리 치유하고 민족이 더불어 살아가는 평화체제를 확고하게 구축하는 일이다.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고 남북의 화해와 협력이 제도적으로 보장될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에서 6·25전쟁이 종식됐다고 말할수 있을 것이다.때문에 올해 6·25는 그 어느때보다 각별한 뜻을 지닌다.분단이후 최초의 역사적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민족화해와 한반도 평화보장을 위한 획기적 성과를 이뤘기 때문이다.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에 평화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는 점 또한 매우 긍정적인 변화다.휴전이래 하루도 빠짐없이 자행됐던 북의 휴전선 대남 비방방송이중단된 것도 긴장완화에 도움을 주고 있다. 특히 북한이 해마다 정치목적으로 치러왔던 7·27전승기념일(휴전협정일)행사를 올해 취소한 것은 남북대결구도 종식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측이 증오와 타도의 결의를 담은‘6·25의 노래’대신‘우리의 소원’을부르기로 결정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 더욱이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이 22일 판문점전화통지문을 통해 간접적으로 메시지를 교환한 것은 두 정상의 신뢰확인과회담성과 이행에 기대를 갖게하는 대목이다. 또한 우발적 군사충돌 방지를 위한 남북 군사직통전화도 개설될 것으로 보여 남북군사분야 신뢰구축이 급류를 탈 전망이다.남북한은 반세기만에 찾아온 화해와 협력분위기를 살려 아직도 끝나지 않은 6·25전쟁을 완전히 종식시키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 숨죽인 화약고 中東에 가다/(중)분단 현장 골란고원

    [메달샴즈(골란고원) 남정호특파원]이스라엘 북부 골란고원 최북단 정착촌메달샴즈 마을 뒤 시리아쪽 접경지역에 ‘절규(絶叫)의 계곡’이 자리잡고있다. 매주 금요일이면 67년 ‘6일 전쟁’과 73년 ‘욤 키프르 전쟁’ 때 헤어진가족과 친척들이 이 계곡에 모여 철책 경계선을 사이에 두고 수동 마이크를통해 절규하듯 서로 안부를 묻는 계곡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아랍어로 ‘떠오르는 태양’이라는 뜻을 지닌 메달샴즈 마을은 인구 6,500여명의 골란고원 지대 최대의 두르즈인 마을.이슬람 교도들과 같이 알라신을믿는 종파지만 언어도 땅도 없는 종족으로 골란고원 일대와 시리아,레바논일대에 흩어져 사는 사람들이다.비록 이스라엘 군대에 점령돼 있지만 두르즈인들은 아직도 친시리아적이며 이스라엘에 대단한 적개심을 갖고 있다. 메달샴즈에서 태어나 자란 후 현재 시내 중심가에서 환전가게를 운영하고있는 알람 슈피(55)씨는 자신도 금요일이 되면 시리아쪽에 살고 있는 친척을만나기 위해 절규의 계곡을 찾는다고 했다.그는 “메달샴즈는 전쟁이 가져온분단 비극의 관광무대가 되었다.금요일이 되면 이산가족들의 절규 속 상봉을 구경하려고 관광버스들이 몰려든다”고 말했다. 남북 길이 70㎞,동서 폭 25㎞에 넓이 450㎢에 달하는 골란고원은 1967년 이스라엘과 시리아간의 전쟁으로 이스라엘의 점령지가 되었고 1973년 전쟁 때점령지가 더 확대됐다.골란고원 일대는 드문드문 정착촌과 키부츠 마을만이눈에 띌 뿐 두차례의 전쟁으로 옛 시리아 마을들은 철저히 파괴되고 건물들에는 지금도 총탄 흔적이 벌집처럼 남아 있다.‘욤 키프르 전쟁’때 1,500대의 시리아 탱크 가운데 1,200대가 1주일 사이에 파괴된 곳이다.지금도 부서진 탱크의 잔해가 도처에 남아 치열했던 전쟁의 상흔을 말해주고 있다. 골란고원은 이스라엘과 시리아 양측에 전략적 요충지로 서로 양보할 수 없는 땅.67년 ‘6일 전쟁’ 때 이스라엘 군대는 골란고원 일대를 전격적으로점령해 버렸다.그러다 73년 시리아군이 영토 탈환을 위해 침공해오자 이스라엘군은 다마스커스를 향해 진격,골란고원 일대를 다시 손아귀에 넣어버렸다. 그 뒤 이지역에 이스라엘은 유대인들의 정착촌들을 넓히며 81년 이스라엘영토로 병합,오늘에 이르고 있다. 골란고원은 현재 이스라엘과 시라아와의 사이에 UN 평화유지군이 관장하는완충지대가 형성돼 UN군이 순찰을 하고 있다.에후드 바라크 이스라엘 총리가집권하면서 시라아와 평화협상을 추진하다 현재 봉착 상태에 빠져 있으나 팔레스타인과의 평화협상이 마무리되면 골란고원의 운명은 다음 협상테이블에 올려질 예정.그러나 이스라엘로서는 시리아측이 주장하는 골란고원의 완전반환을 받아들이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입장이다.이스라엘 정부와 의회내 강경파들은 전략요충지인 골란고원을 반환할 경우 안보에 큰 위협이 된다는 점을 들어 반환에 반대하고 있다. 이 구약과 신약성서의 발자취가 널려 있는 골란고원 일대는 점차 관광지로각광받고 있다.특히 이스라엘인들의 정착촌과 키부츠에서 재배하는 과일과포도주는 세계적 평가를 받고 있다.중부 골란고원의 베론 골란 촌락에 거주했었다는 모데사이 모르템(55)씨는 “요즘 골란고원 지역에 관광객 버스들이부쩍 늘어났다”면서 훌라계곡 쪽을 손으로 가르켰다. 전쟁과 평화가 공존하는 땅,이스라엘과 시리아가 한치도 양보하기 어려운골란고원의 운명이 어떻게 전개될지 세계의 이목이 항시 이곳에 쏠리는 이유는 이 지대가 중동지역의 화약고로 언제 어느 때 폭발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 고은 시인『대동강 앞에서』

    무엇하려 여기 왔는가 잠 못 이룬 밤 지새우고 아침 대동강 강물은 어제였고 오늘이고 또 내일의 푸른 물결이리라 때가 이렇게 오고 있다. 변화의 때가 그 누구도 가로막을 수 없는 길로 오고 있다 변화야말로 진리이다 무엇하러 여기 강물 앞에 와 있는가 울음같이 떨리는 몸 하나로 서서 저 건너 동평양 문수릿벌을 바라본다 그래야 한다 갈라진 두 민족이 뼛속까지 하나의 삶이 되면 나는 더 이상 민족을 노래하지 않으리라 더 이상 민족을 이야기하지 않으리라 그런 것 깡그리 잊어버리고 아득히 구천을 떠돌리라 그때까지는 그때까지는 나 흉흉한 거지가 되어도 뭣이 되어서도 어쩔 수 없이 민족의 기호이다 그때까지는 시퍼렇게 살아날 민족의 엄연한 씨앗이리라 오늘 아침 평양 대동강 가에 있다 옛 시인 강물을 이별의 눈물로 노래했건만 오늘 나는 강건너 바라보며 두고 온 한강의 날들을 오롯이 생각한다 서해 난바다 거기 전혀 다른 하나의 바닷물이 되는 두 강물의 힘찬 만남을 생각한다 해가 솟아오른다 찢어진 두 동강 땅의 밤 헤치고 신새벽 어둠 뚫고 동트는 아픔이었다 이윽고 저 건너 불근 솟아오른 가멸찬 부챗살 햇살 찬란하게 퍼져간다 무엇하러 여기 와 있는가 지난 세월 우리는 서로 다른 세상을 살아왔다 다른 이념과 다른 신념이었고 서로 다른 노래 부르며 나뉘어졌고 싸웠다 그 시절 증오 속에서 5백만의 사람들이 죽어야 했다. 그 시절 강산의 모든 곳 초토였고 여기저기 도시들은 폐허가 되어 한밤중 귀뚜라미 소리가 천지하고 있었다 싸우던 전선이 그대로 피범벅 휴전선이었다 총구멍 맞댄 철책은 서로 적과 적으로 담이 되고 물이되어 그 울안의 하루하루 길들여져 갔다 그리하여 둘이 둘인 줄도 몰랐다 절반인 줄도 몰랐다 둘은 셋으로 넷으로 더 나뉘어지는 줄도 몰라야 했다 아 장벽의 세월 술은 달디 달리라 그러나 이대로 시멘트로 굳어버릴 수 없다 이대로 멈춰 시대의 뒷전을 헤맬 수 없다 우리는 오랫동안 하나였다 천년 조국 하나의 말로 말하면서 사랑을 말하고 슬픔을 말하였다 하나의 심장이었고 어리석음까지도 하나의 지혜였다 지난 세월 분단 반세기는 골짜기인 것 그 골짜기 메워 하나의 조국 저벅저벅 걸어오고 있다 무엇하러 여기 와 있는가 아침 대동강 강물에는 어제가 흘러갔고 오늘이 흘러가고 내일이 흘러가리라 그동안 서로 다른 것 분명할진대 먼저 같은 것 찾아내는 만남이어야 한다 큰 역사 마당 한가운데 작은 다른 것들은 달래는 만남의 정성이어야 한다 얼마나 끊어진 목숨의 허방이었더냐 흩어진 원혼들의 흔적이더냐 무엇하러 여기 와 있는가 우리가 이루어야 할 하나의 민족이란 지난 날의 향수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지난날의 온갖 오류 온갖 야만 온갖 치욕을 다 파묻고 전혀 새로 민족의 세상을 우러러보며 세우는 것이다 그리하여 통일은 재통일이 아닌 것 새로운 통일인 것 통일은 이전이 아니라 이후의 눈시린 창조이지 않으면 안된다. 무엇하러 여기에 와 있는가 무엇하러 여기 왔다 돌아가는가 민족에게는 기필코 내일이 있다 아침 대동강 앞에 서서 나와 내 자손 대대의 내일을 바라본다 아 이 만남이야말로 이 만남을 위해 여기까지 온 우리 현대사 백년 최고의얼굴 아니냐 이제 돌아간다 한송이 꽃들고 돌아간다. 고은 시인은 남북정상회담에 특별수행원으로 참가, 이 시를 14일 밤 평양 목란관의 김대중대통령주최 만찬 석상에서 직접 낭송했다.
  • 잠실운동장內 녹지 2만여평 공원으로 단장

    서울시는 10일 잠실종합운동장내 녹지공간 2만1,500평을 새롭게 단장해 도심속의 소공원으로 시민에게 개방하기로 했다. 시 체육시설관리사업소는 서울올림픽 당시 테러방지용으로 설치한 높이 3m의 3단 철책 울타리 2,300m중 시민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수영장과 야구장사이 640m 구간을 1.3m 높이로 낮추고 그동안 폐쇄했던 출입구 6곳도 열어시민들이 언제라도 들어가 쉴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또 이 일대 보도 주변에 덩굴장미 1,280그루를 심어 봄부터 가을까지 형형색색의 꽃이 피는 장미의 거리로 조성할 계획이다. 임창용기자 sdragon@
  • [현장] 절규보다 반향 큰 매향리 평화시위

    “오늘보다 내일의 만남이 더 발전될수 있도록 함께 노력합시다.” 7일 오전 11시30분 경기도 화성군 우정면 매향1리 마을회관.미공군 쿠니사격장의 포격 및 사격훈련으로 피해를 본 주민들에게 국방부의 지원방안을 설명하는 공청회가 열렸다. 국방부 관계자들은 분위기가 험악해지지 않을까 긴장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러나 그것은 기우였다.주민들은 국방부 관계자가 설명하는 그동안의 추진상황과 앞으로의 이주대책 등에 대해 차분하게 경청했다.지난달 8일의 오폭사고에 대해 잘못을 시인하지 않으면서도 공병대를 투입,가옥 수리 등 대민지원을 하겠다는 모순된 발언에 대해 주먹을 불끈 쥐며 참았다. 고성이 나올 때면 뜻있는 주민들이 나서서 “끝까지 경청하자.성숙한 모습을 우리 군과 미군측에 보여주자”며 진정시켰다. 과거 50여년간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모처럼 찾아온 기회를 이번만은 살려보겠다는 의지가 분명했다. 주민들의 이런 다짐은 6일 오후 사격장 앞에서 열린 시위에서도 나타났다. 당초 경찰은 대규모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을 우려,사격장 주변에 26개 중대를 배치하는 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으나 집회는 시종 평화적으로 진행됐다.집회에 앞서 사격장 인근 마을 이장들은 주민피해 대책위 사무실에 모여 시민단체 대표들과 함께 평화적 시위를 벌일 것을 결의했다.폭력과 무질서가정당한 요구를 왜곡시킬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당초 계획했던 사격장 철책 철거와 사격장 점거농성도 하지 않았다.일부 집회 참가자들이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고 사격장 철책을 훼손할 때 주민들은이들을 만류하며 평화적인 시위 약속을 지켰다. 매향 5리 백성현(白成鉉·46)씨는 “대책마련을 요구하는 주민과 이를 외면하는 당국의 반목이 계속돼서는 안된다.오늘의 만남보다 내일의 만남이 더발전될 수 있도록 주민과 당국은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매향리 주민들이 보여주고 있는 성숙한 모습은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주민들의 절규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듯했다.깊은 강은 소리없이 흐른다는 말처럼. 김병철 전국팀기자 kbchul@
  • ‘성난 매향리’철책 넘어뜨리며 4시간 격렬 시위

    경기도 화성군 우정면 매향리 미공군 쿠니사격장 폐쇄를 요구하고 있는 주민피해대책위원회는 6일 오후 사격장 입구에서 4시간여 동안 대규모 항의집회를 가졌다. 집회 도중 대학생 등 일부 참석자들은 사격장 정문 현관에 페인트를 뿌리고철책 10여m를 밀쳐 넘어뜨리며 경찰과 대치했다. 참석자들은 그러나 사격장내부로 진입하거나 점거농성을 벌이지는 않았다. 대책위는 주민과 시민·종교단체 회원,대학생 등 2,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이날 집회에서 “사격장을 폐쇄하는 것은 물론 50여년간의 피해와고통에 대해 보상하고,지난 4일 구속된 전만규 위원장을 즉각 석방하라”고요구했다. 최용운 임시대책위원장(45)은 “기총사격장을 옮기겠다는 국방부의 대책은98년에도 추진됐으나 파편이 8㎞ 이상 날아가고 비행항로에 문제가 발생하기때문에 백지화됐었다”면서 “같은 대책을 다시 발표하는 것은 주민들을 우롱하고 여론을 호도하는 처사”라고 주장했다. 대책위는 이날 사격장 입구에서부터 대책위 사무실까지 1㎞ 구간에서 인간띠 잇기 행사를 열고 가두행진도 했다.대책위는 당초 사격장 철책을 철거하고 폭격훈련의 표적인 농섬을 점거하려고 했으나 경찰과의 물리적인 충돌을피하기 위해 계획을 취소한다고 밝혔다.대책위는 그러나 미공군측이 사격훈련을 재개할 경우 대규모 집회를 다시 열어 사격장 점거 계획을 강행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화성 김병철기자 kbchul@
  • ‘매향리사격장관련 후속조치’ 현지 주민 반응

    경기도 화성군 우정면 매향리 주한 미 공군 쿠니사격장의 피해주민들은 5일국방부 발표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주민들은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대책을 원하고 있는데 발표 내용에 알맹이가없다는 것이다. 매향5리 김영태(53)이장은 “피해부분에 대해 보상을 청구하면 적법절차에따라 조치해 준다고 했으나 오랜 시간이 소요될 것이 뻔하다”며 “시간만끌려고 하지 말고 50여년간 참아온 우리에게 납득할 만한 신속한 보상대책을마련해줄 것”을 촉구했다. 매향3리 김만흥(44)이장은 “국방부의 이번 발표는 이주를 원하는 주민들의입장만 반영했지 극심한 소음피해에 시달리고 있는 매향2·3리 주민들의 요구는 빠져있다”며 졸속대책을 비난했다. 매향1·5리 이외의 마을 주민들이 주축이 되어 구성된 주민피해대책위원회(비상대책위원장 최용운·45)는 “국방부의 발표 내용은 매향리 주민 뿐 아니라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로 6일 계획된 집회를 방해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최위원장은 “국방부는 어떤 기초자료에 의해 보상대상자를 선정했는지알수 없으며 개별적인 이주는 주민들을 타지역으로 몰아내고,삶의 터전을 빼앗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주민피해대책위원회는 “6일 예정대로 사격장 인근에서 대규모 집회를 개최할 것”이라면서 “그러나 사격장의 철책을 철거하고 농섬을 점거하는 등 과격한 행동을 자제하고 대책위 사무실에서 1㎞ 가량 떨어진 사격장 정문까지인간띠잇기 행사를 벌이는 등 평화적인 집회를 개최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경찰은 이날 집회에 2,000여명이 참여할 것으로 보고 이들의 사격장진입 등에 대비해 행사장 인근에 경찰병력 20개 중대(2,000여명)를 배치하기로 했다. 화성 김병철기자 kbchul@
  • 경찰 매향리 폭격항의 시민 ‘무더기 입건’

    경기도 화성경찰서는 지난 3일 화성군 우정면 매향리 미공군 쿠니사격장의폭격훈련 통보용 깃발을 찢은 주민피해 대책위원장 전만규(全晩奎·44)씨를군사보호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했다. 전씨는 지난 2일 낮 12시쯤 미 공군이 매향리 쿠니사격장에서 폭격훈련을재개하자 사격장 안으로 들어가 폭격훈련 시작을 알리기 위해 미군측이 게양한 붉은 깃발을 찢고 사격장 철책을 철거하려 한 혐의다. 경찰은 또 전씨의 긴급 검거에 반발해 2일 오후 5시부터 1시간여 동안 화성경찰서 앞 도로를 점거하고 시위를 한 혐의로 김모씨(29) 등 민주노총 노조원과 대학생 등 42명을 연행,조사하고 이중 24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매향리 주민과 SOFA개정국민운동본부,대학생 등 300여명은 당시 화성경찰서와 경기지방경찰청 앞에서 전 위원장의 석방과 쿠니사격장 폐쇄를 주장하며항의 시위를 벌였다. 한편 인도주의실천 의사협의회는 4일 경기도 화성군 우정면 매향리 미공군폭격연습 주민피해대책위원회 사무실에서 매향리 주민들에 대한 건강검진을실시했다. 화성 김병철기자 kbchul@
  • 매향리 폭격훈련 7일까지 중단

    경기도 화성군 우정면 매향리 쿠니사격장에서 2일 재개됐던 미 공군기들의사격훈련이 주민들의 반발로 잠정 중단됐다. 주한미군사령부는 이날 재개한 사격훈련을 오는 7일까지 잠정 중지키로 했다고 국방부가 밝혔다.토머스 슈워츠 주한미군사령관은 이날 오후 김종환 국방부 정책보좌관(육군 중장)과 만나 미공군 사격훈련 재개 문제를 협의,이같이 결정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매향리 주민과 시민단체가 오는 6일 쿠니사격장을 점거할 계획으로 있어 불상사가 우려되는데다 남북정상회담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차원에서 7일까지 사격훈련을 잠정 중지키로 했다”고 말했다.8일이후 사격훈련 재개여부는 7일 국방부와 미군이 협의해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미 공군은 지난달 15일 훈련을 중단뒤 19일만인 이날 훈련을 재개,주민들의 격렬한 항의를 받았다.미 공군은 이날 오전 7시 사격훈련을 실시한다는 표시의 붉은 깃발을 게양했으나 당초 예정보다 4시간 늦은 낮 12시부터 2시간여 동안 항공기 사격및 폭격훈련을 했다. 매향리 주민들은 미군과 국방부가 미공군 폭탄 투하로 피해가 없다고 발표,주민을 우롱한 데 이어 “마치위협사격하듯 미군이 훈련을 속개했다”고 분개했다. 한편 주민피해대책위원회(위원장 全晩奎·44)는 이날 오전 11시 대책위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주한미군은 사격연습을 즉각 중단하고 사격연습장을 폐쇄하라”고 촉구했다. 전위원장은 그러나 회견도중 사격장 철책을 끊고 들어가 사격훈련을 알리는붉은 깃발을 끌어내려 찢다가 출동한 경찰에 긴급체포됐다. 노주석 화성 김병철기자 kbchul@
  • “매향리 폭탄투하 직접피해 없다”

    주한미군의 폭탄 투하에 따른 매향리 주민피해를 조사해온 한·미 합동조사단(공동단장 李光吉 국방부 군수국장·마이클 던 주한미군 부참모장)은 1일국방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폭탄투하로 인한 직접적 피해는 없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현지 주민과 시민단체들이 이번 조사결과에 대해 수긍하지 않는 데다 2일 오전 9시부터 사격훈련을 재개하려는 주한미군의 방침에 반발,사격장 점거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진통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조사는 지난달 8일 주한 미공군기의 폭탄 투하후 매향리 주민들이 신고한 시설·가축피해 등 3,459건에 대해 실시됐다. ◆조사결과=지반이 연암층이고 폭탄 6개가 동시에 폭발했다는 최악의 가정을 해도 1,850m 떨어진 해안가에 미치는 충격은 초당 0.41㎝로서 주택에 최소의 피해를 주는 기준 충격인 초당 0.5㎝보다 적다.표본조사를 벌인 피해건물은 투하장소로부터 2,020∼4,750m 떨어져 있어 건물균열은 폭발에 의한 진동과 무관한 것으로 판단된다.파편에 의한 피해가능성도 없다, 그러나 수족경련·불면 등 주민들의 피해와 젖소의 유산 등 가축피해가 폭발음과 관련된 것인지는 판단하지 못했다. 주민이 선정한 민간전문회사인 경기안전진단공사의 서수원 대표는 “이번조사결과에 동의한다”면서 “다만 지난 50년간 누적된 피해에 대해서는 앞으로 구체적인 조사가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향후대책= 조사단은 매향리에 주민피해 신고센터를 설치,적법절차에 따라주민·시설·가축 피해에 대해 보상을 실시키로 했다.특히 매향 1,5리 주민이주대책과 사격방향 및 표적위치 조정 등 쿠니사격장 소음 최소화 대책을마련키로 했다. ◆문제점=경기안전진단공사측은 미흡한 부분을 독자적으로 계속 조사하겠다고 말해 합동조사의 객관성에 대한 논란이 예상된다. 주민들이 피해보상을 청구하면 적법절차를 거쳐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진단서 첨부 등 까다로운 조건이 붙어 보상까지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주민 및 시민단체의 반발도 거세 사태해결까지에는 난항이 예상된다. ◆주민반응=주민피해대책위원회 전만규(全晩奎·44)위원장은 “주민들의 요구는 지난달 8일의 오폭사고만의 문제가 아니라 수십년 동안 누적돼온 고통과 피해를 호소하는 것”이라며 “오는 6일 주민과 시민단체·대학생 등과함께 사격장 주변 철책을 제거하고 사격장을 점거하겠다”고 밝혔다. 노주석 화성 김병철기자 joo@
  • 17년전 ‘병영의 약속’ 지켰다

    “대대장님을 만난다는 설렘에 어젯밤 뜬눈으로 지새웠습니다.” “반갑네 김상병,사업은 잘되나.” 5일 낮 12시 서울 여의도고등학교 운동장에서는 17년 만에 만난 맹호대대전우 200여명이 반갑게 얼싸 안았다. 지난 83년 5월6일 동부전선 최전방부대인 육군 을지부대 맹호대대 연병장에서 맺은 약속에 따른 것이다. 당시 새로 부임한 대대장 신용수(辛容洙)중령은 ‘한번 맹호는 영원한 맹호,2000년 5월5일 낮 12시 여의도 광장에서 만나자’라는 글귀가 새겨진 열쇠고리를 대대원 450여명에게 나눠주며 “17년후 훌륭한 사회인이 돼 다시 만나자”고 제의했다. 을지부대 5대대였던 맹호대대는 소대 단위로 작전이 이루어지는 휴전선 철책근무의 특성상 대대 결속력도 형편없었고 병영사고도 끊이지 않았다. 신중령은 부대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 이같은 제의를 했고 대대 명칭도맹호로 바꿨다.장교와 사병들간에 의형제를 맺어 주기도 했다. 당시 대대장과 의형제를 맺었던 이등병 임대율(38·경북 포항시 해도동)씨는 “대대장님을 만나기 위해 새벽 비행기를 타고 왔다”면서 “부대생활에적응하지 못해 ‘고문관’으로 찍혔던 나를 친동생처럼 돌봐주셨다”고 회고했다. 14중대장이었던 류경현(43·현 육군교육사령부 중령)대위는 “대대장님은하루도 거르지 않고 병사들과 면담을 했다”면서 “중대장보다 중대원들의애로사항을 더 세세히 알고 있을 정도로 자상했다”고 말했다. 신대대장은 회사원·교사·경찰·사업가 등으로 변모한 부대원들에게 “이렇게 많이 모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면서 “젊은 날의 추억을 소중하게 간직하며 열심히 살자”고 당부했다. 육사 27기를 수석입학하고 대표화랑으로 졸업한 신대대장은 현재 비상기획위원회 종합상황실장(육군 대령)으로 근무중이다.17년 만에 맹호로 돌아간부대원들은 신대대장에게 힘찬 감사의 거수경례를 올렸다. 이창구기자 window2@
  • [시베리아 대탐방](17)하바로프스크의 관광상품

    [구트조브카 특별취재반] 자연림이 풍부한 시베리아에서는 사냥도 훌륭한관광 상품이다. 극동의 하바로프스크에는 사냥 전문 여행사가 있다.이곳은 주로 미국,캐나다에서 사냥 관광객을 모집한다.사냥 관광객들은 헬리콥터를 이용,숲으로 이동한 뒤 이틀간 사냥을 즐긴다.하지만 지금은 시베리아의 모든 주정부가 제한적으로 사냥을 허용하고 있다.매년 동물 종류에 따라 사냥 한도를 정해놓는다.물론 사냥터에 들어가려면 입장료를 내야한다. 취재팀이 만난 이르쿠츠크 주정부의 비쿠로브 유리 알렉산드로비치 대외경제고문도 사냥 매니어중 한명이다.그는 주로 이르쿠츠크에서 300㎞ 떨어진바이칼호수 중간지대로 가서 사냥을 즐긴다.현지어로 ‘바랄’이라고 하는사슴과 산양이 주로 사냥 대상이다.그는 “사냥을 하는데 드는 경비가 보통1인당 500루블(2만2,500원)이나 들기 때문에 자주는 못간다”며 “고기만을원한다면 시장에서 사먹는 것이 싸다”고 말했다. 취재팀은 하바로프스크에서 통역을 맡았던 고려인 정추광씨로부터 귀가 솔깃한 이야기를 듣고는곧바로 그곳을 찾았다.한 사냥꾼이 그동안 자신이 쏘아죽인 동물들에 대해 속죄한다는 뜻에서 어미 잃은 새끼들을 데려가 키우고있다는 것이었다. 하바로프스크에서 차로 2시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는 구트조브카에 정씨에게 들었던 ‘동물 건강회복 센터’가 들어서 있었다.야트막한 산의 절반가량을 차지하고 있었다.이곳 설립자의 딸이라는 예노토비트나야 코바카양이우리를 안내했다. 그녀는 호랑이 사냥꾼이었던 아버지가 은퇴해 연금생활자가 된 뒤 갑자기이 시설을 만든 배경을 자세히 설명해줬다.그녀의 아버지는 “어미가 죽으면새끼들은 홀로 살아남기 어려워진다”며 후배 사냥꾼에게 새끼들은 자신에게 가져오라고 부탁했다.그렇게 해서 그는 자신의 집에 가져온 새끼들을 잘키운 뒤 동물원에 넘기게 됐다.그런데 4년전에 문제가 발생했다.송곳니가 빠져버린 생후 9개월짜리 호랑이 새끼를 받아다 조금 키운 뒤 동물원에 넘기려했는데 동물원측에서 “송곳니가 없어 볼품이 없다”는 이유로 접수를 거부했다.결국 그는 그 호랑이 새끼를 키우기 위해동물건강 회복센터를 설립하게 됐다는 것이다.구트조브카 지역을 선택한 것은 이곳이 동물 키우기 좋은지역이었기 때문이다.예노토비트나야는 “지금은 이곳이 하바로프스크주에널리 알려져 새끼들을 많이 보내준다”고 말했다. 그녀의 안내로 동물 우리가 있는 지역으로 올라갔다.이곳을 만든 계기가 된호랑이부터 만났다.식사를 하는 도중에 방해가 됐는지 굉장히 으르렁거렸다. 철장이 다소 허술해보여 호랑이가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근접하기가두려웠다.송곳니를 잃은 이 호랑이는 연한 송아지 고기만 먹었다.또 ‘동물의 왕’답게 0.5㏊의 넓은 영역이 주어져 있었다.예노토비트나야양은 “원래두마리가 있었는데 한 마리는 숲으로 보냈다”고 말했다. 옆 우리에는 반달곰이 있었다.먹이를 주니까 일어서서 도는 등 재주를 부렸다.반달곰만 지금까지 16마리가 이곳에서 원기를 찾은 뒤 동물원에 보내졌다고 한다.여우와 너구리,살쾡이,산양,염소,사슴 등 15마리의 동물들이 현재이곳의 보호를 받고 있다. 취재팀은 문득 무슨 돈으로 이곳을 운영할까 궁금해졌다.사료비만 해도 엄청날 것이었기 때문이다.예노토비트나야는 “요즘 이곳을 찾는 관광객이 많기때문에 입장요금과 숙박요금,반야(러시아식 사우나)요금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했다.“주정부가 이곳을 보호지역으로 지정은 했지만 자금지원은 별도로 해주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산에서 내려와 보니 아담한 통나무집과 반야가 눈에 띄였다.통나무집에서는 하바로프스크 사범대생들이 단체로 놀러와꼬치구이를 파티를 하고 있었다. 일반 동물원과 차별화되는 이곳만의 특징은 자연스러움이다.동물 우리는 외부와 완전히 격리돼 있지 않고 철책만 둘러쳐져 있을 뿐이다.산과 동물과 사람이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이다.이 때문에 주말이면 단체 관광객을 태운 버스들이 많이 온다.예노토비트나야는 “요즘 외국인 관광객 숫자가 많이 늘었다”며 “한국인들도 많이 와줬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있다. oosing@. * ‘한국식 사우나’명물로 자리잡아. [하바로프스크 특별취재반] 취재팀은 통역을 맡은 고려인 정추광씨와 보름동안 함께 다니면서 고려인들의 생활상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머나먼동토(凍土)에 있지만 그들도 역시 한국인이었다. 사할린주 출신인 정추광씨는 노보시비르스크공대 졸업후 하바로프스크공대교수를 거친 엘리트로 현재 ‘러시아의 소리 방송’하바로프스크지국 과장이다. 6남매를 대학까지 보낸 그의 부모가 그랬듯 그도 두 아들에 쏟는 정성이지극했다.하바로프스크공대 졸업후 장남은 외국인회사,차남은 철도회사에근무중인데 정씨는 미혼인 두 아들에게 아파트를 사줬다.러시아인들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땅이 넓은 러시아에서는 아파트가 아니면 지역난방과 수도물공급이 안되기 때문에 아파트가 무척 비싸다.정씨는 직장 일과 통역을 병행하며 번 돈을 자식에게 모두 내줬다.정씨는 요즘 장남이 슬라브족 여성과 사귄다며 걱정하고 있다.“고려인 여성만큼 남편을 잘 챙겨주지도 못하고 정조관념도 미흡하다”는 게 그 이유였다.그러나 요즘 고려인 3세의 25%는 슬라브족과 결혼하는 추세다. 고려인들의 식단도 여전히 한국형이었다.취재팀은 귀국 전날인 199년 12월3일 정씨의 아파트에 저녁식사 초대를 받았다.중앙아시아 출신 고려인인 정씨 부인은 깍두기와 김치,국은 매일 저녁 꼭 준비한다고 말했다.물론 매운맛은 덜했지만 역시 한국식이었다.정씨는 “북한식당이 자금사정으로 문을닫아 아쉽다”고 말했다.실제로 취재팀이 찾아간 하바로프스크의 ‘평양식당’은 한국인과 고려인이 공동으로 인수한 곳이다.‘젬추지나’로 식당 이름도 바뀌었다.블라디보스톡의 유명한 식당 ‘모란각’은 문이 잠겨있었다. 고려인들은 개고기도 무척 즐긴다.그는 “매달 한번씩 고려인 친구들과 함께 개를 직접 잡아 탕과 수육으로 만들어 먹는다”고 말했다.친구들끼리 차를 몰고 조용한 시외로 나가서 개를 직접 잡은 뒤 여러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단독주택을 가진 친구집에서 ‘개고기 파티’를 연다.정씨의 차남 비타라씨도 “개고기 파티에는 부인과 자식들도 꼭 참석한다”고 말했다. *이곳의 고려인 생활. [하바로프스크 특별취재반] 한·러 수교 이후 수많은 우리기업들이 극동 시베리아에 진출했지만 그다지 성과를 내지 못했다.결국 IMF사태가 터지자 너도나도 다시 철수하고 말았다. 그러나 의외로 성공한 기업이 있다.러시아 유일의 한국식 사우나인 하바로프스크의 ‘달리 사우나’가 그 주인공.1999년 12월 4일 취재팀이 찾았을 때이곳은 수십명의 러시아인들로 붐비고 있었다.사우나뿐만 아니라 부대시설인 레스토랑과 오락실,안마실에도 러시아인들이 많았다.사우나 입장료가 1인당 800루블(우리 돈 3만6,000원)으로 비싼 만큼 부유층아니면 출입할 수 없는 곳이었다. 이 사우나는 지난 95년 한국인과 러시아인이 51대 49의 지분으로 합작 설립했다.당시 여기에 쓰이는 나사못 한개도 러시아에 없어 모든 것을 한국에서날라오느라 공사시간이 1년이나 걸렸다.한국인 사장인 김영진씨는 첫달부터흑자를 내 98년에는 이미 자신의 투자비 50만달러를 모두 회수했다.모스크바연방정부의 고관들이 하바로프스크에 오면 항상 이 사우나를 찾을 정도로명물로 자리 잡았다. 성공비결을 묻자 김사장은 “합작파트너를 속이지 않았고 투명하게 일을 한것이 가장 큰 비결”이라며 “이제는 모든 사우나관리를 나에게 일임했다”고 말했다.사우나안에 식당과 오락실을 차리는 식으로 이종(異種)사업들을병행한 것도 주효했다.위험분산과 시너지 효과를 누리게 됐기 때문이다.이와함께 처음부터 욕심을 부리지 않고 수요를 정확히 파악한 것도 힘이 됐다. 지금은 직원이 55명에 이르지만 처음에는 15명만 둬 1인 2·3역을 해야했다. 또 우리처럼 사우나가 일상화되지 않은 점을 감안,남·여탕을 따로 안차리고홀수날은 여자,짝수 날은 남자날로 정해 투자비용을 줄였다. 김사장은 “경쟁자가 적은만큼 중국보다는 러시아쪽이 기회의 땅”이라며“모스크바에서 사우나 설립 제의가 들어와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김사장은 이제 러시아를 넘어 유럽의 한국식 사우나를 꿈꾸고 있다.
  • 인천 아암도해변 일반개방

    인천의 명소인 연수구 아암도 해변이 친수공간으로 꾸며져 오는 29일 개방된다. 인천시는 12일 연수구 옥련동 아암도 일대 해변 1,241m에 너비 10∼12m의호안을 축조하는 공사가 완공됨에 따라 오는 29일 시민들에게 개방키로 했다고 밝혔다. 인천시는 그동안 군부대 철책때문에 시민들이 접근할 수 없었던 이 지역 해안을 친수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철책을 제거하고 호안의 너비중 5m 가량에컬러블록을 깔았으며 해변의 경사를 10∼15도로 만들었다. 또 식수대·파고라·벤치·매점 등 각종 편의시설을 설치, 시민들이 앉거나산책을 하면서 아암도를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인천 김학준기자 hj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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