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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년전쟁」 터에 공영의 유러터널(박강문 귀국리포트:2)

    ◎영·불 과거의 애증 딛고 이젠 서로 존경·협조 프랑스 사람들은 영국 여왕을 영국 사람들 이상으로 좋아한다.다이애나 왕세자비도 「디 부인」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면서 뻔질나게 프랑스 대중잡지의 표지를 장식한다.프랑스인들이 영국을 부러워하는 것은 영국 왕실과 영어 두가지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미셸 사르두가 부르는 샹송 「사랑의 열병」에는 『영어 선생님의 천진한 매력이 교실 걸상에 앉은 어린 학생들을 들뜨게 하듯…』이라는 구절이 있다.어린 시절에 영어 선생이 꽤 멋있는 분으로 새겨졌던 모양이다. 프랑스와 영국 두 나라 국민들은 일반적으로 서로 호감을 지니고 있다.영국 사람들이 휴가 때 가장 많이 가는 외국은 프랑스다. 두 나라 사이가 늘 좋은 것만은 아니다.가까이 있으면 이해 마찰이 있게 마련이다.두 나라는 어업 문제로 가끔 티격태격하고 요즘에는 파리 남쪽의 오를리 공항을 영국 항공사 여객기에 개방하라는 영국과 이를 거절하는 프랑스측이 설전을 벌였다. 두 나라 애증의 역사는 11세기 노르만족의 영국 정복까지올라 갈 수 있다.노르만은 프랑스 북쪽해안에 침입해 살던 바이킹 족속이지만 프랑스 사람이나 한가지여서 영국의 주인이 되어서도 대대로 불어를 썼다.피지배층은 불어를 쓰는 지배자를 미워하면서 또한 존경했다. 노르만의 영국 정복 이후 영국 왕실은 본거지였던 프랑스의 노르망디에 대한 소유권이 있었다.두 나라 왕가는 혼인으로 혈연이 얽히게 되는데 이를 근거로 뒷날 영국 왕은 프랑스 왕위 계승권을 주장하며 프랑스를 공격해 전쟁이 시작된다.그 유명한 구국소녀 잔 다르크가 나온 것은 이 백년전쟁 때다. 전쟁이 백년이나 끌었으니 얼마나 지긋지긋했으랴.오늘날도 때로 프랑스 여인들은 달거리가 있을 때 「영국군이 상륙했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해외 식민지 획득 경쟁이 심할 때 북아메리카에서는 선점자 프랑스가 후발자인 영국에 거의 완전히 밀려났다.프랑스는 미국 독립전쟁이 일어나자 이를 지원하여 영국과 원수지간이 된다. 이런 역사 때문에 피차 편치않은 감정이 남아 있다.영국인들은 성병을 「프랑스 병」이라고 해 왔고 프랑스 남자들을 호색한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프랑스인들은 「영국 요리」라는 말로 맛대가리 없는 음식을 표현한다. 유럽 문화의 파수꾼을 자부하는 프랑스인들은 영국을 「미국의 꼭두각시」라고 욕하기도 한다.프랑스는 미국의 영향력을 함께 막음으로써 유럽의 독자성을 지킬 수 있다고 본다.반면에 영국인에게는 유럽 대륙과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영불 해저터널이 이제야 뚫리게 되는 것은 영국의 이런 태도 때문이기도 한데 그 개통으로 이제 두 나라 관계는 더 한층 가까워질 것이다. 양국민이 서로를 헐뜯는 감정은 두 나라 사이의 굳건한 신뢰와 협조 관계에 비하면 아주 대수롭지 않은 것이다.우리나라에 테제베라는 프랑스 고속전철의 기술을 파는 GEC­알스톰만 해도 영불 합작회사다. 두 나라가 오늘날 사이좋게 지낼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문화 수준과 국력에서 서로 꿇릴 바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국가 사이의 떳떳한 사귐은 개인에서와 마찬가지로 대등한 처지에서야 가능하다.프랑스인은 공화정과 불어에 대한 긍지가있기 때문에 영국 왕실과 영어를 좋아할 수 있다.
  • 말련/하(세계의 개혁현장:44)

    ◎공업발전 총력… 연평균 10.5% 성장/제조업이 실질 국내총생산 30% 차지/국영기업 사유화 등 성공적 제2도약 「인간 동력기」「속사포」. 이는 아세안의 슈퍼우먼으로 불리는 다토 세리 라피다 아지즈 말레이시아 대외무역 및 산업부(MITI)장관의 별명이다. 50세의 나이답지 않게 활발하고 항상 힘이 넘치는 듯한 건강미로 상대방을 자기편으로 만드는 친화력이 뛰어난 그녀는 이른바 「마하티르교」의 최고 부흥사로 알려져 있다. 콸라룸푸르 두타가 10블록에 있는 5개동으로 된 경제부처청사의 한 독립건물에 위치한 MITI의 15층,장관 집무실에서 만난 라피다장관은 기자가 방콕포스트에 보도됐던 「동남아의 슈퍼스타­수파차이 태국 부총리와 라피다 말레이시아 MITI장관」 기사내용으로 말문을 열자 『그런 기사가 난지 모르고 있었다』고 활짝 웃으며 『그 분은 나보다 훨씬 훌륭한 분』이라고 겸손해 했다. 마음좋은 이웃 아줌마 같은 편안한 인상의 그녀는 얘기가 정식 주제로 들어가자 단호한 어조로 또박또박 설명해나갔다.『비전2020이 목표로 하고있는 선진국 진입 여부는 공업분야의 성장에 달려있다.우선 2000년까지 공업분야의 연평균 성장률을 10.5%로 유지시켜 다른 모든 산업분야가 이를 기준으로 따라오도록 할것이다』 라피다장관은 또 『말레이시아는 아시아에서 가장 큰 수익을 보장받을수 있는 매력적인 투자장소』라면서 『마하티르총리의 신념에 국민들의 호응이 높아가고 있어 비전2020의 성공을 확신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말라야대학의 경제학교수 출신으로 87년 상공부장관으로 입각한 그녀는 비전2020의 실시에 앞서 90년말 그 주무부서로 상공부가 대외무역 및 산업부로 개편된 후에도 줄곧 장관직을 맡아 실질적으로 비전2020 추진의 야전사령관 역할을 해오고 있다. 74년 31세의 젊은 나이에 말레이시아 역사상 최연소 상원의원으로 정계에 진출한 그녀는 집권당인 Umno의 부총재를 맡고 있는 실력자이기도 하다.지난 11월 미국 시애틀에서 열린 APEC정상회담에 불참한 마하티르총리가 그녀를 대신 파견할 정도로 총리로부터도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다. 비전2020은 80년대 적극적으로추진되었던 마하티르총리의 동방정책이 내세웠던 국영기업의 사유화 및 민간업계에 대한 정부간섭의 대폭 축소등 경제에서의 민간부문 역할을 강조한 「말레이시아 주식회사」슬로건의 성공을 바탕으로 한 제2도약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동안 천연고무 원목등 1차산업 위주의 과거 산업구조에서 탈피,제조업과 중공업부문등의 강화를 통한 경제구조 다변화에 일단 성공했으며 산업진흥청(MIDA)을 통해 각종 투자장려제도등 적극적인 국내·외 자본유치 정책을 편 결과 92년에는 제조업이 실질 국내 총생산에 29.3%를 차지했으며 93년에는 30.9%로 더 높아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정부에서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정책분야가 수출 드라이브로 전환되면서 「말레이시아 주식회사」도 과거의 생산 주력에서 이제는 파는데 전력을 기울일 채비를 갖추고 있다. 2천만 인구가 채못되는 말레이시아의 좁은 국내시장으로는 산업발전을 이룰수 없다는 판단하에 적극적인 해외시장 개척을 추구하고 있다.이를 위해 지난 80년 설립됐던 MEXPO(수출진흥센터)를 지난 6월 MATRADE(대외무역개발공사)로 확대 개편,수출진흥을 위한 법적 제도적 개선뿐만 아니라 대외거래알선·해외정보수집·전시회개최등 종합적인 수출진흥업무를 수행토록 하고 있다. 물론 이 수출드라이브정책의 총 책임은 라피다장관에게 맡겨져 있다.한달에 보름 이상의 해외출장,하루종일 회의와 방문인사들을 접견해야 하는 그녀는 가정에서는 말레이시아 굴지 은행인 메이뱅크의 바시르 아마드 총재의 부인이자 세자녀의 어머니이다. 『누구나 진정으로 원하는 일이라면 이 세상에 하지못할 일은 없습니다』 보통사람이라면 한가지도 힘겨워 할 일들에 휩싸여 있으면서도 항상 밝은 표정,잔잔한 미소를 잃지 않는 이 「동방의 철의여인」에게서 「비전2020」의 실마리가 보이는듯 했다.
  • 공선옥 소설「떠도는…」/박철 시집「밤거리…(문학월평)

    ◎개인적 좌절·사회적 운명의 비극적 조화/떠도는…/비리얼리즘적 기법으로 소설공간 활보/밤거리…/대책없는 염세주의를 거뜬히 뛰어넘어 공선옥의 중편 「떠도는 나무」와 박철의 두번째 시집 「밤거리의 갑과 을」은 우리 문학의 밝은 장래를 예감케 하는 작품들이다.「밝은」장래라고 했지만 사실 이 작품들에서 세계는 말할 수 없이 어둡고 쓸쓸하고 고통스럽다.속깊은 상처와 절망은,소설과 시라는 장르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작가의 작품을 가로지르는 공통의 정서이다.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그 상처와 절망을 드러내고 다스리는 두 사람의 태도이다.분노하되 격앙되지 않고 슬퍼하되 연민으로 흐르지 않고 절망하되 증오하지 않는다.그러할 때 드러나는 분노와 슬픔과 절망은 또 얼마나 큰 무게를 지닌 것이랴.두 젊은 작가에게서 우리 문학의 밝은 장래를 엿보는 까닭은 거기에 있다. 공선옥의 「떠도는 나무」는 그녀가 최근에 낸 첫 장편 「오지리에 두고온 서른살」이라는 작품집에 실려 있는데,나는 정작 표제작인 장편보다는 이 뒤의 중편이훨씬 좋다.「오지리에…」에서 작가의 손길은 어딘가 뻣뻣하고 딱딱하다.좋은 작품을 지어내야겠다는 작가의 굳게 다문 입술이 사건과 인물을 살아 숨쉬게 하는데에 오히려 제약으로 작용한듯한 반면에,「떠도는 나무」에서 작가는 그런 마음의 짐을 훌쩍 벗어던지고 소설의 공간을 자유롭게 활보한다.이 자유로운 활보는 『나는 지금부터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리얼리즘적으로 쓰련다』라는 작가 자신의 과감하고 파격적인 개입(따라서 지극히 비리얼리즘적인 기법)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는데,이 역설이 열어놓은 공간이야말로 좀 거창하게 말하면 이른바 주객 변증법이 아주 맞춤맞게 실현되는 공간이다.물론 작중화자인 작가 자신의 상처와 좌절,그의 개인사를 이루는 아버지와 그 아버지를 둘러싼 세 여인의 삶이라는 소재는 사실 새로울 것도 없는 것이고 묘사도 썩 능숙한 것은 아니다.그러나 소재로부터 자연스럽게 요구되는 형식을 찾으려는 작가의 노력은 그러한 약점들을 충분히 상쇄시키고 독자의 마음을 아프게 두드린다. 박철시집 「밤거리의 갑과 을」에서의 화자는 『교실에서도 강당에서도 차안에서도』『외진데로』『까닭없이 밀리어』산 인물이다.그러나 『나는 민중도 아니고 이 땅의 민족도 아니다』몸도 마음도 병들고 지친 『내가 섰는 자리는 이미 죽은 목숨』이다.낯선 나라의 도시 변두리에서 입맞추고 있는 젊은이들의 『삶의 한 가운데』서 있는데,시인은 그 『뒤켠에 앉아』『다리를 접고 고개를 묻고』울고 있다.「폭설」과 같은 절창에서 박철은 가히 김수영과 맞먹을만 하고 다른 많은 시편들에서는 기형도의 암울한 그러나 대책없는 염세주의를 거뜬히 넘어선다.이 도저한 절망과 그 깊이로부터 유래하는 세계에 대한 당당한 정관(정관)은 쉽사리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개인적 좌절과 사회적 운명의 비극적 조화야말로 문학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일지도 모른다.우리가 박철에게 그것을 기대해도 좋을 까닭은 이 시집에 실린 시들만으로도 충분하다.
  • 영 여성연극 2편 국내 초연/카릴 처칠작

    ◎「톱걸」 「클라우드 9」 5월26일까지/현대 여성문제 심도있게 조명 사회관심 불러/바탕골 소극장,동숭아트센터서 영국의 대표적인 여성극작가 카릴 처칠(55)의 대표작 2편이 동시에 국내 연극계에 소개돼 눈길을 끌고있다. 지난 17일부터 서울 바탕골소극장에서 공연중인 서울커넥션 제작·기획의 「TOP GIRLS(부제 철의 여인들)」과 연극집단 뮈토스가 25일까지 동숭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공연하는 「CLOUD 9」가 그 작품들. 여성해방론자임을 자처하는 카릴 처칠의 작품이 국내에서 공연되기는 이번이 처음으로 최근 몇년새 우리 문화계전반에 유행처럼 일고 있는 「여성주의문화」보다 한차원 깊게 여성들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작품들이어서 관심을 끈다. 오는 5월26일까지 공연되는 서울커넥션의 「TOP GIRLS」는 19 82년 런던에서 초연된 뒤 10년동안 세계 각지에서 공연되고 있는 화제작.사회적 성공을 꿈꾸는 직장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작품으로 특히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이 성공하기위해 겪게되는 개인적 시련과 사회적 몰이해를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이 연극은 「TOP GIRLS」라는 직업소개소의 부사장으로 승진한 마들렌드가 승진파티를 여는 것으로 시작한다.그런데 초대손님으로는 마들렌드의 친지들이 아닌 역사·문학·예술속에서 빌려온 역사적 전형들이 찾아든다.악마와 싸우는 여인들을 이끄는 부루겔의 그림속에 나오는 여인 그레트,남장을 하고 교황노릇을 했다고 전해지는 조안,영국작가 초서의 「켄터베리 이야기」에 나오는 순종적인 아내 그리셀다등이 그들이다.이들은 각자 자신들의 삶을 이야기 하면서 여성이 성공하려면 가정과 사회생활중에서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사회구조적 모순을 지적하고 있다.지난해 여성주의연극 「욕탕의 여인들」을 연출했던 김철리씨가 번역과 연출을 했고 이현순 김소숙 이연희등 7명의 여배우들이 출연해 16명의 여인역을 해낸다. 연극집단 「뮈토스」의 「CLOUD 9」은 지난 78년 영국에서 초연된 작품으로 처칠의 출세작이다.이 작품은 19세기 영국 빅토리아시대의 아프리카 식민지와 현재라는 두 시대를 넘나들며 성의 역할과 조건을 다루고 있다.1백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그동안 성의 문제를 바라보는 현대인들의 인식은 겨우 25년에 맞먹는다는 작가의 의도가 담겨있다. 두작품 모두 사회주의적 시각에서 여성문제를 심도있게 다루고 있고 신화와 역사속의 여자들을 현대적 전형으로 끌어내 현대사회의 모순을 지적하는 작가의 개성이 잘 나타나있다. 이 작품들의 국내공연은 여성연극 또는 여성주의연극에 대한 편협한 시각을 교정하고 여성문제의 현주소와 해결책강구가 얼마나 절실한 문제인가하는 여론을 불러일으키는 작은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 민주당 당권경쟁 본격화 조짐/조기전당대회 개최 움직임

    ◎이기택체제 예상에 신민계 강력견제/세다툼 심화땐 「개혁모임」 부상할듯 민주당의 이기택대표가 24일 기자간담회에서 전당대회 조기개최 의사를 비춤으로써 당권을 둘러싼 신민·민주계 사이의 「다툼」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당내부에서는 이미 「1인대표체제하의 최고위원 최소화」라는 지도방식에는 큰 이견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당내 서열변화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당 일각에서는 『신민·민주 양계보로는 민주시대에 부응하는 체질개선이 어렵다』고 보고 「모임」에 불과한 「민주정치 개혁모임」을 주축으로 한 「제3계보」의 탄생을 점치고 있기도 하다. 현재 차세대 대표자리를 놓고 거론되고 있는 당내 인물로는 이기택현대표최고위원을 비롯,신민계의 김상현·김영배·조세형·정대철·김원기최고위원 등이 우선 꼽힐 수 있다. 이대표는 통합당시의 명분,김대중전대표의 그동안 거듭된 후계지명,현대표라는 강점을 갖고 있다.이와함께 신민계 내부에서 뚜렷하게 부상하는 주자가 없고 전열정비가 되어있지 못하고 있는 것도 이대표의 유리한 여건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지도력과 계파장악력에 대해 신민계쪽은 오래전부터 회의를 가져왔고 이대표가 「대표」인 것은 선거때문이었지 명실상부한 대표로는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날 이대표가 『신민·민주계라는 지역개념을 뛰어넘어야 된다』『정치적 이념에 따라 주류·비주류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은 바로 신민계의 이같은 주장을 견제하기 위한 것으로 관측된다. 따라서 이대표가 당권을 완전히 장악할 수 있느냐는 전당대회까지 얼마만큼 신민세를 끌어들이느냐와 신민세가 얼마나 이대표체제를 「인정」하느냐 여부에 달려 있다. 신민계 최고위원 가운데 차세대 선두주자는 김상현최고위원.김최고위원은 최고위원 8명을 선출하는 지난 경선때 가장 많은 표를 얻었고 자타가 「공인」하는 동교동 직계라는 점이 최강점이다. 그러나 한때 김대중전대표를 떠난 전력이 있고 김전대표가 가진 이미지의 한계를 마찬가지로 갖고 있어 「새시대의 인물」로 적합지 않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김영배최고위원은 10·12·13·14대의원을 거친 중부권의 대표주자.신민당당기위원장,민주당·평민당 사무총장,평민당·신민당 원내총무를 두루 거친 장점이 있으나 치밀한 이론에는 강하지 못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4선인 김원기최고위원은 유일한 전북인사인데다 원내총무·사무총장등 당료경험이 풍부하다는 점에서,3선인 조세형최고위원은 어느 누구도 따르지 못하는 당이론가라는 점에서,정대철최고위원은 정발연멤버를 주축으로 한 지지세와 지역색과는 거리가 먼 「서울」인사라는 점에서 각각 「김대중이후」를 노리고 있다. 현재로선 이들가운데 뚜렷이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이 없는데다 신민계 내부에서 『두각은 곧 분열』이라는 의견이 만만치 않아 집단지도체제를 들고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밖에 「개혁모임」의 리더격인 이부영최고위원도 경선에는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이최고위원은 일단 신민·민주계의 샅바싸움의 판도를 관망할 태세이지만 당지도부 개편에 지역색이 심화되고 갈등이 예상외로 커질 경우 자연스레 입지가 부상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이최고위원이 소속된 「개혁모임」에는 현역의원 19명,현역 지구당 위원장이 57명에 이르는데다 참여인사 대부분이 의정활동과 사생활면에서 비교적 「높은 점수」를 따고 있다는 것이 중평이어서 이들이 정치세력화할 경우 하나의 「계보」로서 야권재편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대표」자리는 아니지만 김정길최고위원,한광옥 사무총장,홍사덕의원,이철의원등도 「차세대」를 위해 그 역량을 키워나가고 있다. 당 주변에서는 당직사퇴를 분명히 한 한광옥·홍사덕의원등은 최고위원 경선에 참여할 것으로 보고 있고 정대철·조세형·김원기·홍사덕의원등은 당직과는 관계없이 지방자치시대를 맞아 서울시장선거를 겨냥하고 있다는 얘기도 오가고 있다. 당일각에서는 분당사태를 막고 「강한 야당」을 위해 1∼2년 동안 「이기택총재­신민계 대표최고위원」체제의 가능성도 예견하고 있다.
  • 시인 정현종씨(이세기의 인물탐구)

    ◎사물의 핵심 꿰뚫는 파격적 시어 계발/「도시기질」 집착… 신선한 지적감수성 돋보여/자제된 행동·감정처리… 「침묵의 미」에 눈뜬 사색형/생명있는 모든것 포용할 자세로 시작몰두 「특이한 지적 예리성」과 「황홀하게 축제화된 미적 감동의 세련된 형상화 작업」­. 65년3월 까다롭기로 유명한 시인 박두진씨의 화려한 추천사와 함께 정현종이 문단에 등단했을 때는 그는 당장 젊은 평론가들에게 둘러싸여 「경쾌한 에피큐리안」으로 지칭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빛나며 아름다웠던 추천시 「독무」는 젊은 날의 추억처럼 우리들의 가슴에 남겨져 잊을수 없는 명시의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그후 신촌역 부근이나 태평로 순화동 인사동 남산길등 그가 생계를 위한 직장을 전전하던 무렵 그는 서울의 어느 길목에 서있어도 당황하며 망설이는 모습,겨울날 빈들에 홀로선듯 눈가에 외롭고 춥고 공허한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그런 그의 눈을 보고 시인 고은씨는 「수묵같은 눈동자」라 했고 평론가 김현은 「깨끗하고 맑은 눈」이라 했다. 눈끝이 치켜올라간,그러나 사납거나 날카롭거나 속된 기미는 찾아볼 수 없이 단순하게 「마음의 창」같은 눈이었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사색의 깊이를 짚어볼수 없는 신비감 때문에 그 속에 너무 많은 것을 담아 남에게 나를 드러내보이지 않으려는 겸허인지 아니면 의도적인 명철의 기색인지는 짐작되지 않았다. 시간이 오래지나 여전히 싱싱한 탄력성을 지닌 시들이 「샘처럼 솟아나고 꽃처럼 피어나자」그의 눈빛은 허공 한 끝을 스치는 짧은 허무나 명철의 멋이 아닌 인간과 사물을 향해 직관으로 치닫는 눈빛,그래서 그의 시마저도 머리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그의 눈빛에서 빛으로 비쳐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형이상학적 초월 추구” 그가 사랑해 마지않고 또 그를 끈질기게 지켰던 김현도 「정현종은 형이상학적 초월을 꿈구는 에피큐리안」이라 했고 이 「에피큐리안」속에는 그의 시적 공간과 구조의 한계를 밝히려는 의혹이 다분히 숨겨져 있었으나 「한 시인이 자기특유의 시적 표현방법을 가지고 시적으로 높은 경지를 달성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그런 의미에서 정현종은 「한국 현대시의 표현법과 소재 면에서 큰 충격을 준 시인」이라고 결론짓고 있다. /사막에서도 불 곁에서도/늘 가장 건장한 바람을,한끝은/쓸쓸해 하는 내 귀는 생각하겠지,/생각하겠지 하늘은/곧고 강인한 꿈의 안팎에서/약점으로 내리는 비와 안개,/거듭 동냥 떠나는 새벽거지를,/심술궂기도 익살도 여간 무서운/망자들의 눈초리를 가리기 위해/밤 영창의 해진 구멍으로 가져가는/확신과 열애의 손의 운행을,/…. 「곧고 강인한 꿈」 「약점으로 내리는 비」 「확신과 열애의 손의 운행」등등 파격적 시어들은 서정시와 향토시에 익숙해있던 독자들에게 느닷없는 경이를 안겨주면서 「사물에 대한 신선한 감수성과 독특한 서구적 조사법」이란 김현의 호평에 한결같이 공감대를 형성해갔다. 정현종은 전에도 그랬지만 후배들과 그의 제자들의 존경을 받고있는 지금도 「그의 유년시절을 완강하게 숨기고」그의 시의 고뇌가 주는 배경을 설명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때 이미 문학에서 「침묵에 가장 가까운 것은 시」이며 「시는말이 배제되지 않는 침묵의 공간」임을 알고 있었거나 「시는 시 자체일뿐」시를 이루는 배경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뜻으로 이를 묵살했는지도 모를 일이다.어쨌든 그는 어느 장소에서도 그의 시외엔 다른 말들은 별로 늘어놓지 않으려 들었다. 그는 서울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경기도 고양군 화전에서 보냈다.대광중때부터 다시 서울에 올라와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그이전 10여년을 서울 변두리에서 농촌생활을 했다고는 하지만 시골에서 와서 도시에서 세련되어 가는 사람들과는 달리 시어선택에서 보듯 완강하게 도시기질을 고집하는 형이다. 꾸밈없이 깍듯한 예의,낯선사람에 대한 낯가림,그러면서 자신의 할 바를 과장하지 않고 단정하게 해낸다. 집안은 엄격한 가톨릭 가문으로 가톨릭 본명은 알베르토.그러나 대학시절 채풀시간을 자주 걸러 칼바르트와 니버에 관한 리포트를 추가로 제출하여 뒤늦은 정식졸업을 한 에피소드가 있다. 중학교 시절에 살았던 만리동고개,카바이트 불을 밝혀놓고 책을 빌려주는 서점에 드나들면서 그는 보들레르의 「여인들의 술」처럼 「달랠길 없는 뜨거운 섬망」의 술대신 왕성한 독서에 빠져 그의 손가락이 넘기는 책장은 「슬기로운 회오리바람의 날개」였으며 그는 그 날개를 타고 「몽상의 천국」을 마음껏 누비는 사춘기를 보냈다. 종로2가 르네상스 음악실에선 바하의 「마태수난곡」에 탄복하여 무릎꿇었고 영화 「로얄발레」를 보고는 「육체가 저렇게 아름다울수 있는가」란 충격에 그는 「그 충격이 번개처럼 와서 내 자신의 육체에 우뢰로 흐르다가 감동의 전율」에 눈물을 펑펑 쏟았다고 말한다. 그는 지금도 발레에 미쳐 「이사도라 던칸 자서전」서문을 써주는등 춤은 마침내 「꽃의 침묵」이기를 기원하고 있다. ○음악·춤에 심취하기도 그러나 춤이나 음악에 대한 감동은 문학소년시절 누구가 접할수 있는 흔한 경험이겠지만 연대 숲에서의 그의 존재와 우주에 관한 이야기만은 이 시인만의 특징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일 수가 있다. 그는 수줍어하는 성격탓에 결핏하면 혼자서 울창한 숲속을 거닐었고 그날도 우연히 그속에 앉아있다가 돌하나를 집어 숲 저쪽으로무심하게 내던졌다고 한다. 「숲 위쪽에서 던진 돌은 저아래 어디엔가 떨어졌다.돌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지구무게만한 어떤 느낌이 마치 지진처럼 내속으로 지나가는걸 느꼈다.즉 내가 방금 던진 돌에 의해,나에 의해,여기서 저기로 옮겨진 돌에 의해 우주의 공간이 달라졌다는 느낌이 그것이었다.내가 던진 돌하나가 우주의 균형을 바꾼다!」 그 소리는 그의 귀를 「깊이」열어주었고 그의 마음속에서 아마도 그의 육체가 땅에 떨어질때까지 그 소리를 듣게 되리란 것이다. 그는 부모님 타계후 집에서 나와 신촌에서 혼자서 자취를 했다.이 자취방에서 김현 김치수 김승옥과 어울려 거의 매일이다시피 꽁치안주와 소주에 빠져 그들은 문학을 논했던 것같다. 그러다가 72년 첫시집 「사물의 꿈」을 민음사에서 펴냈다. 이 시집으로 인해 그는 문단데뷔이후 처음,아니 난생처음으로 말할수 없는 감격의 순간을 맛보게 됐다고 자랑한다. ○자아·우주에 대해 사색 이 시집은 김현 김치수와 김병익 김주연 이청준 홍성원 황동규 황인철등 평론가 작가 시인 친구들과 「잿빛먼지 황급하게 불어대는 좌절감의 청량리 부근」에서 밤마다 술잔앞에서 내통해 마지않던 문단선배 고은씨가 돈을 모아서 내준 것이기 때문이다. 고은씨는 그가 시를 쓰지않으면 「시 쓰기가 얼마나 힘드는가」를 알면서도 그를 미워할만큼 「우리시대의 언어의 정령」과 만나고 있음을 자축하기 위해 그가 시집내는데 앞장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는 요즘도 술을 마신다.문지(문학과 지성사)사람들과,또는 동료교수들과 학생들과 호프집에도 간다. 단지 좋아하는 술을 평생동안 즐겨마시기 위해 폭음,폭주는 삼간다. 또 어느 자리에서나 두드러지지 않으려 든다.처신하는 바를 적절히 자제하고 운신의 폭을 파급시키지 않는다.웃음소리도 말소리끝에 「하,하,하,하」라고 문장을 읽는 것처럼 시늉만 할 뿐이다. 기계에 대해선 도무지 무지하여 다른 작가 교수들은 수년전부터 컴퓨터를 사용하지만 그는 오래지녀온 만년필 「쉐퍼」로 글을 쓴다.17년쯤 살고있는 동부이촌동 렉스아파트에서 신촌까지 운전을 할줄 몰라 버스나 택시를 타고있다.가족은 부인 이유미씨와 그리고 아들 민우(연대4). 이렇게 감정내색을 좀체 하지않는 그도 89년 대학후배이자 제자인 시인 기형도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을땐 서대문 적십자병원 영안실에서 남들이 다 돌아간 뒤에도 새벽 2시까지 남아 허공에 잠깐 눈을 돌리는듯한 문단초기의 공허한 그늘을 눈가에 드리워 보였다. 다음해 그의 친구 김현의 죽음은 너무나 허탈하여 도무지 실감할수 없는 듯,「너는 아프냐…너는 아프구나」를 되풀이하더니 이른바, 맥주거품은 늘 왕관모양!/구름모양!부풀어 올랐고/그야 우리는 왕관부터 구름을 마셨으며/…의 김현을 위한 유명한 「황금취기」시리즈를 남기고 있다.김현은 문단의 「별」이었으며 그의 죽음은 문단전체의 통한이었다. 본래 익살스럽거나 짓궂은 구석은 없으나 그는 날이 갈수록 술을 마셔도 말을 줄이고 있다.그는 시인으로 사는동안 「상투적으로 사고하지않고 사물의 핵심을 투철히 바라보는자」 「불가능을 꿈꾸는자」이고자 꿈꾸는지도 모른다.또는 크리슈나무르티의 명상록을 번역하는 동안 말이 말하고자 하는 한계를 알게되었고 말의 그런 모습에 절망한 나머지 「침묵」의 아름다움을 누리고 싶은건지도 모른다. 그의 두 눈은 이제 「아는것」으로부터 마음껏 자유로워져 요즘은 인간과 사물과 그 주변을 둘러싼 모든 생명있는 것을 사랑하는 인류애의 눈빛,눈빛으로 비쳐오는 시가 아닌,삶에 대한 분노와 파란과 비애의 극복이 담긴,심장을 울리는 뜨거운 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연 보 ▲1939년 12월 서울 용산 출생 정재도씨와 방은련여사의 3남1녀중 셋째(차남) ▲65년 연세대 철학과 졸업 현대문학지를 통해 시 「독무」「화음」「여름과 겨울의 노래」로 데뷔 ▲66년 「사계」동인 (황동규·박이도·김화영·김주연·김현) ▲70∼73년 서울신문사 기자 ▲74∼75년 미아이오와대 국제창작프로그램 자작시 「고통의 축제」영역 참가 ▲75∼77년 중앙일보기자 ▲77∼82년 서울예전 교수 ▲82년 스웨덴 스톡홀름대·핀란드 헬싱키대 개최 「현대문학 포럼」참가 ▲90년 샌프란시스코 휘트랜드재단주최 「문학회의」참가 ▲82년∼현재 연세대국문과교수 ▲72년첫시집 「사물의 꿈」(민음사),제임스 볼드윈 「또 하나의 나라」번역 출간,로버트 푸르스트·예이츠시선집 번역 ▲74년시선집 「고통의 축제」 ▲75년산문집 「날자 우울한 영혼이여」 ▲78년시집 「나는 별아저씨」(민음사) ▲79년크리슈나무르티 「아는것으로부터의 자유」번역 출간(정우사) ▲82년시론집 「숨과 꿈」(문학과 지성사) ▲84년시집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문학과 지성사) ▲89년 시집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세계사),산문집 「생명의 황홀」(세계사),파블로네루다 「스무편의 사랑의 시와 한편의 절망의 노래」(세계사) ▲92년 시집 「한 꽃송이」(문학과 지성사·이 시집으로 이상 문학상수상)
  • “부활 획책 공산주의 결국은 몰락”/내한 대처 전 영총리

    ◎“한국 급속성장 자질 소유”/고대서 명예박사 받고 연설 영국 최초의 여성총리로 「철의 여인」등으로 불렸던 마거릿 대처 전 영국총리(66)는 방한 이틀째인 3일 하오 고려대에서 명예이학박사학위를 받은데 이어 「21세기와 산업민주주의의 미래」란 주제로 기념강연을 했다. 대처 전 총리는 이날 강연에서 『공산주의가 몰락했다고 하지만 공산주의자들은 아직도 민족주의자라는 옷을 입고 부활을 꿈꾸고 있다』고 지적하고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이념 또는 사상이라는 전장에서의 투쟁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대처 전 총리는 또 『사기업의 경험이 거의 없었던 소련등에 비해 한국과 홍콩,대만 등은 곧 급속한 성장을 이룰 수 있는 자질을 갖고 있다』면서 『공산주의가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이 진실이며 결국에 가서는 패배하고 말 것』이라고 말했다. 인촌기념회 등의 초청으로 2일 하오 부군 데니스 대처경과 함께 내한한 대처 전 총리는 4일 롯데호텔에서 한차례 더 강연을 한뒤 울산의 현대중공업등 산업시설을 돌아보고 5일출국한다.
  • 대형건물 냉방 26도미만땐 과태료/동자부,7천5백곳 대상/내일부터

    ◎백화점 식품판매장·관광호텔객실등은 제외 오는 13일부터 대형건물의 냉방 기준온도가 섭씨 26∼28도로 의무화돼 이를 어길경우 3백만원의 과태료를 물게 된다. 대상건물은 ▲연면적 3천㎡ 이상의 업무시설(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청사·금융기관·사무소·신문사·오피스텔등)및 판매시설(도매시장·산매시장·백화점등) ▲연면적 2천㎡ 이상의 숙박시설(관광호텔·여관·여인숙)등이다. 이 건물들은 겨울철의 난방온도도 섭씨 18∼20도로 유지해야 하며 이를 어기면 역시 과태료를 내야 한다. 동자부는 에너지이용합리화법에 따라 대형 건물의 냉·난방 기준온도를 이같이 공고,이 내용이 관보에 실리는 13일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기준온도는 에너지 절약을 위해 지난 89년부터 권장해 온 것인데 지난 연말 에너지이용합리화법이 개정된데 따라 이날부터 의무사항이 됐다. 그러나 백화점의 식품판매장,관광호텔의 객실,기계보호를 위해 항온·항습장치를 설치한 특수구역,시·도지사가 특수한 용도로 인정하는 시설등은 대상에서 제외된다.기준온도를지켜야 하는 대형 건물은 공공건물 1천여개와 상업용 건물 6천5백여개를 합해 전국적으로 모두 7천5백여개이다. 기준온도는 대상건물의 3개 층에서 각 층별로 3개 지점을 선정,바닥으로부터 1.5∼2m 높이에서 5∼10분간 측정한다.
  • 정치태풍 몰고온 「철의 여인」 산티아고

    ◎인기조사때마다 수위… 대중기반 “탄탄” 필리핀의 대통령선거 투표함에서 여성후보인 「산티아고」태풍이 몰아치고 있다.7명의 출마자 가운데 가장 어리고 배경이 약한 미리암 산티아고후보가 6명의 쟁쟁한 기성 정치거물들을 제치고 선두에 나선 것이다. 국외는 물론 필리핀 경계에서조차 신인에 지나지 않는 미리암 산티아고가 초반 리드를 지켜 과연 필리핀대통령 자리에 오를 수 있을는지는 아직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수도 마닐라에서 일기 시작한 산티아고 태풍은 자칫하면 전근대적 봉건주의에 갇혀있는 필리핀 농촌지역의 배타적 지방색 앞에서 맥없이 사라져버릴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산티아고후보의 부상은 현재의 필리핀과 필리핀정치에 관해 많은 것을 시사해주고 있다. 미리암 산티아고는 여러면에서 다른 출마자들과는 대조적인 후보로서,필리핀정치의 이종이자 개혁신품이라 할 수 있다.46세의 그녀는 판사,귀화청장및 농업개혁부장관의 손색없는 경력을 갖고 있으나 이는 다른 6명의 관록이나 지명도에 비하면 한참 떨어지고무엇보다 다른 후보들의 배경인 상류엘리트계층의 기반이 없다.필리핀대를 졸업하고 미 미시간대 박사학위를 취득한 산티아고는 지난 88년과 89년에 아키노 현대통령에 의해 앞의 각료직에 발탁됐지만 두차례 입각 모두 해당부서의 기존세력들에게 「미움」을 받아 단명에 그쳤다.부정부패 척결과 서정쇄신의 칼을 가차없이 휘두른 탓이었다. 이번 선거전에서도 그녀는 타협없는 「물갈이」개혁 공약을 줄기차게 내세워 그녀의 「신인」면모를 드높였다.선거전의 유혈사태로 가려지긴 했지만 지난 2월 출마표명이후 수차례 실시된 후보별 전국 인기도 조사에서 산티아고는 매번 1위를 차지해와 대중적인 지지가 아주 탄탄함을 보여주었다.직선적인 태도와 거침없는 독설로 「동양의 철의 여인」이라는 별칭이 붙는 산티아고는 당선여부와는 상관없이 동남아지역의 「슈퍼우먼」맥을 잇는 여걸이라 할 수 있다.
  • 외언내언

    세계의 언론들은 영국의 전총리 대처 여사를 「철의 재상」으로 표현했고 필리핀의 전대통령 미망인 이멜다여사를 「철의 나비부인」이라고 불렀다.동·서양 두 여걸의 대명사앞에 「철」을 갖다 붙인 것은 강심장의 소유자들이기 때문.그러나 이 여인들의 강심장은 정반대의 개념이다.◆이른바 노조병으로 파탄위기에 직면했던 영국의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과감한 정책을 단호하게 추진했던 강심장이 대처의 것이라면 병약한 남편을 부추겨 악명높은 독재자로 만들고 자신은 그 그늘에서 엄청난 부를 쌓아 가난한 조국을 더욱 피폐하게 했던 강심장은 이멜다의 것이다.우리나라에도 장영자니 조춘자니 엉뚱한 강심장의 여인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멜다에 비하면 족탈불급.◆이멜다가 남편 마르코스와 함께 필리핀에서 쫓겨나 하와이로 망명한 것은 86년.이들이 말라카냥궁을 떠난 뒤 이 대저택의 지하실에는 3천켤레의 구두,수백벌의 의상,1천여개의 핸드백이 산처럼 쌓여 있었고 이를 구경하던 한 가난한 시민이 졸도까지 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지금도 이멜다는 세계 곳곳의 은행예금과 부동산 그리고 필리핀 모처에 숨겨놓은 금괴 등 약2백억달러에 달하는 재산을 갖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그런데 최근 필리핀정부가 그녀의 귀국을 허용하면서 이를 둘러싼 갖가지 추측과 루머가 난무하고 그녀 자신도 귀국을 해야될 것인지 말아야 할 것인지 망설이고 있다는 소식.◆이멜다의 귀국을 허용한 필리핀 정부나 귀국여부를 놓고 고민하는 그녀의 속셈이야 서로 딴판이겠지만 그 줄다리기를 지켜보는 우리로서는 그저 딱하기만 하다.「철의 나비부인」이멜다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지만 부정축재한 재산을 국가에 모두 바치고 용서를 비는 것만이 남편의 넋을 위로하고 그녀의 여생을 위해서도 편안한 길이 될 것 같다.
  • 외언내언

    일본 만큼 자국에 대한 비판을 관대히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나라도 없을 것이란 말을 흔히 듣는다. 칭찬하는 말보다는 비판하는 말에 더 귀를 기울이고 교훈을 삼는 것이 미덕인 나라라는 인상마저 주는 것이 일본이다. 덕분에 일본은 그 패전의 폐허 위에 오늘의 경제대국을 건설할 수 있었는지 모른다. ◆그 일본이 최근 들어 좀 달라지고 있는 것 같다.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이란 저서가 베스트셀러가 되더니 걸프전을 계기로 한 일본군 해외파병 합법화 움직임이 활발하다. 그 동안 오래 자숙했으니 이제 돈도 벌 만큼 벌었고 더 이상 기죽어 지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분위기가 느껴진다. 자숙과 겸손을 잊고 다시 오만과 만용으로 나갈 조짐인가. ◆경계해야 할 일본의 변화 움직임이 아닐 수 없다. 프랑스 총리의 최근 일본 비판에 대한 대응도 그런 심증을 깊게 한다. 프랑스판 「대처」요 「철의 여인」으로 불리는 크레송 총리는 반일 강경파로 유명. 일본 신문들은 프랑스의 첫 여재상 탄생보다 반일 총리의 등장에 초점을 맞춘 보도를 했다. 예상대로 그녀는 취임하자마자부터 노골적인 일본 비판을 서슴지 않고 있다. ◆취임 다음날인 5월16일 TV회견에서 『일본이 약탈자 같은 행동을 계속하는 한 일본과 협력할 수 없다』고 포문을 열었고 19일에는 『일본은 우리와 전연 다른 세계이며 그것은 문자 그대로 정복을 추구하는 세계』라고 비판. 「일본인에 대한 정말의 선전포고」라는 것이 일본 신문의 제목이었다. 「일본은 적」이라고까지 했던 전력으로 미루어 예상되었던 공격이다. ◆그러나 일본정부의 대응은 이전과는 달랐다. 29일 주일 프랑스대사를 불러 강력히 항의하는 전례없는 반응. 『일본을 적대시하는 발언을 공공연히 되풀이하는 데 놀라움을 금할 수 없으며 계속될 경우 양국의 우호관계에 악영향이 있을 것을 우려한다』고 경고. 크레송 총리가 말을 들을지는 미지수. 그 동안의 일본이라면,그리고 그녀가 미국 대통령이었다면,일본이 이런 반응을 보였을까 하는 것은 관전평자의 의문. 반일의 수단인지는 몰라도 그녀는 친한파라는 것. 귀추가 흥미거리다.
  • 불 로카르총리 전격 사임/후임에 크레송 전 유럽담당 장관

    【파리 UPI 로이터 연합】 미셸 로카르 프랑스 총리가 15일 총리직에서 사임했으며 이에 따라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은 그 후임으로 에디 크레송 전 유럽담당 장관(여·57)을 지명,프랑스 사상 최초로 여성 총리가 탄생했다고 위베르 베르뎅 엘리제궁 대변인이 밝혔다. 베르뎅 대변인은 이날 『미셸 로카르 총리가 미테랑 대통령에게 사직서를 제출했으며 이 사표는 수리됐다』면서 『대통령은 크레송 여사를 후임 총리에 지명했다』고 말했다. 로카르 총리의 사임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런 발표가 없지만 일부 평론가들은 이번 총리 경질을 통해 미테랑 대통령과 로카르 총리 모두가 실익을 얻을 것으로 분석했다. 미테랑 대통령은 최근 일련의 정치문제로 궁지에 빠져 있는 로카르 내각에 책임을 물어 총리를 새로운 인물로 경질한다는 명분을 얻을 수 있고 아울러 로카르 총리도 총리직에서 물러남으로써 오는 95년도 대통령 선거에 대비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충분히 가질 수 있게 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프랑스 첫 여성총리 크레송/61년 입각,요직 두루 거친 「철의 여인」 미셸 로카르의 후임으로 15일 프랑스 최초의 여성총리가 된 에디 크레송은 실패에 굴하지 않고 정상을 향해 뛰어온 프랑스판 「철의 여인」. 경제정책과 관련,로카르 전 총리와 의견충돌을 빚은 후 유럽담당 장관을 사임한 지 불과 8개월 만에 일약 총리에 임명된 크레송은 지난 81년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의 취임 후 농업장관을 시작으로 각료생활을 시작했다. 올 57세로 매력적인 황갈색 머리칼을 자랑하는 그녀는 농민의 80%가 노조에 가입하고 있는 프랑스의 현실로 볼 때 농업장관직이 결코 호락호락한 자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82년 한햇동안 프랑스의 농가소득을 10%나 증가시키는 등 뛰어난 능력을 과시했었다. 그후 대외무역장관으로 임명된 크레송 총리는 프랑스의 오토바이가 일본제에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프랑스제 스쿠터를 타고 파리 시내를 돌아다니는 등 일본제품 수입에 맞서 싸웠으며 브뤼셀의 유럽공동체(EC) 본부에서는 그녀의 독설이 공포의 대상이 되기까지 했었다.
  • 메이저 노선 색깔 드러내/파리=김진천(특파원코너)

    ◎“EC통합 찬성”…「U턴」하는 영외교/“더 늦으면 유럽무대에서 소외”위기감/대처의 고집스런 고립주의서 탈피/“공동안보 가능할까”회의속 보수당 반EC파 반발 가능성 유럽통합에 대한 영국의 자세가 바뀌어 가고 있다. 반대에서 찬성쪽으로 방향전환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존 메이저총리는 지난 11일 독일 방문길에 아데나워재단 초청연설에서 『영국은 유럽의 중심에 속해 있다』고 강조하면서 『영국의 젊은 정치지도자들은 유럽공동체의 파트너들과 함께 미래를 건설해 나갈 준비를 갖추고 있다』고 역설했다. 메이저 총리는 이튿날 하원에서도 영국은 유럽통합에서 손을 떼든가 그대로 남아있으면서 질질 끌려가든가 아니면 능동적으로 참여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그의 구상은 물론 능동적 참여이다. 메이저 총리는 그뒤 좀더 구체적으로 현재 진행중인 EC(구공체)정치·경제통합을 위한 정부간 회담에도 적극 참여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메이저 총리의 이같은 언급들은 앞으로 영국이 EC통합과정에서 반대입장을 철회,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는 또한 EC통합에 대해 지금까지 독자주의·고립주의로 일관해 오던 대처리즘의 실질적인 종언을 선언한 것이며 영국이 앞으로 국제외교를 펼쳐나가는데 있어서 EC를 중심무대로 삼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영국의 이같은 입장전환은 지난해 11월 11년권좌의 마거릿 대처총리가 퇴장하면서 예견되어 오던 상황이었다. 사선의 고지까지 넘보던 「철의여인」대처가 스스로 물러날 수 밖에없었던 중요원인 중의 하나가 유럽통합문제였다. 대처는 EC의 경제통합 일정을 마련한 88년 6월 마드리드 정상회담 이후 정치통합 일정이 제시된 지난해 10월 로마회담때까지 줄곧 반대표만 던져왔다. EC통합에 대해 주권침해론을 내세워 원천적인 반대입장을 고수해온 것이다. 이 때문에 만장일치를 원칙적으로 하는 EC정상회담은 유럽통합문제에 관한한 항상 「결정」에 실패,의견을 모으는데 그쳤으며 영국을 제외한 나머지 11개국의 찬성만으로 지금까지의 통합작업이추진되어 왔다. 유럽통합에 대한 대처의 완강한 거부자세로 영국이 고립위기에 빠지자 이를 비난하는 여론이 들끊었고 당내 반발까지 불러 일으켜 끝내는 대처의 사임까지 몰고 갔던 것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평소 EC통합에 보다 적극적인 입장을 표명해 오던 메이저 총리의 등장으로 영국의 대EC정책의 전환이 점쳐져 왔었으며 취임 3개월만에 그의 외교적 색깔이 뚜렷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EC의 입장으로 봐서는 통합작업의 최대 걸림돌이 제거된 셈이다. 물론 영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경제·금융통합을 위한 7단계 조치는 이미 실행중에 있으며 유럽중앙은행 설립과 단일통화 창출을 골자로한 2단계 조치는 94년 1월1일부터 착수키로 하고 이를 위한 정부간 회의가 진행되고 있다. 또 정치통합 문제는 공동외교·안보정책의 추진을 목표로하여 현재 별도의 정부간 회의가 구성되어 있다. 이같은 제반 일정은 영국이 반대했지만 『궁극적으로는 찬성하게 될 것」이라는 전제하에 마련된 것이긴 하지만 영국이 거부의 입장을 고수하는한 순조로운 진행이 불투명했던게 사실이며 아울러 이번에 메이저 총리가 EC에 좀더 가까워지겠다는 의사를 밝힘으로써 EC통합 일정의 앞날에 보다 밝은 전망이 가능하게 된 셈이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영국의 입장전환을 명백히 가려내기 위해서는 좀더 기다려 보아야 할 것 이라고 신중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메이저 총리의 태도가 대처에 비해서는 괄목할 만한 진전이 있는게 사실이지만 그는 뚜렷이 선을 긋고 있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메이저 총리가 영국이 유럽단일통화 창출에 따른 부담을 수용할 수 없다는 점을 뚜렷이 하면서 EC의 정치·경제통합을 너무 서둘러서는 안될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는 점이 신중론을 뒷받침하고 있다. 정치통합을 위한 공동외교·안보정책의 추진문제에 대해서도 메이저 총리는 개념상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독일과 소련의 개별적인 관계,프랑스와 알제리와의 관계,또는 홍콩에 대한 영국의 책임문제 등을 예로 들면서 EC가 이를 죄지우지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공동외교·안보정책 추진은 우선 그 필요성에 대한 판단의 기회를 갖는게 중요하다는 점을 역설하고 있다. 따라서 영국의 자세전환 조짐은 보수당내의 반EC파 등에 의해 제동이 걸릴 가능성도 있으며 걸프전이후 새롭게 펼쳐지고 있는 국제외교 무대에서의 고립을 면해보려는 외교적 수사에 지나지 않는다는 냉소적인 평가를 내리는 이도 있다. 그러나 어느 경우이든 영국의 대EC통합 자세가 바뀌고 있다는 점은 아무도 부인하지 않는다. 유럽의 우방들은 『영국이 유럽의 중심에 자리잡을때 EC는 더욱 강해질 것이며 이것은 영국에게도 유럽에게도 다같이 좋은날이 될것』이라는 메이저의 말이 그대로 실현되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EC통합에 대한 영국의 새로운 진면목은 멸지않아 열릴 EC특별 정상회담에서 더욱 자세히 드러날 것으로 예측하면서 이것이 그대로 EC통합의 청신호로 연결되길 희망하고 있는 것이다.
  • 외언내언

    지하철이 과포화 상태여서 출퇴근길 승객들의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로 인해 늘 사고의 위험을 안고 있어 문제가 된 것은 이미 오래된 얘기. 그런데다 최근에는 이곳을 자살의 「장」으로 이용하는 사람까지 늘고 있고 그런가하면 철로위로 밀어 떨어뜨려 죽게하는 살인행위마저 벌어지고 있어 충격적이다. ◆최근의 경우만을 보아도 분명히 알게 된다. 지난 9월 부산에서의 전동차 추돌사고로 승객 70여 명이 부상한 사고는 브레이크 고장으로 인한 안전운행문제를 제기했고,10월 서울의 10대 소녀 승객 추락사,전철승객 5백여 명의 집단난동사건은 각각 전동차의 안전도·운행질서의 문제를 그대로 나타낸 좋은 실례. 지하철의 안전운행과 사고대비책의 필요성을 보게 된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경우도 지하철 문화가 형성되면서 이로인한 문제가 하나씩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 그중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 6일에 있었던 의문의 사건. 30대 여인의 팔이 잘린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뒤에서 밀어 일어난 의도적인 사건이라면 지하철의 안전대책이보다 강화되어야 한다는 문제를 부르게 된다. 그래서 조사결과가 주목된다. ◆10일부터 단속키로 한 총알택시는 어떤가. 사고의 위험을 안고 있기는 더하다. 난폭 과속운전·불법주차·합승행위는 정도를 넘고 있다. 지난 8월 시내 17개 지역에서 4일 동안 실시한 단속에서 무려 8천6백96건이나 위반사항이 적발됐다는 것에서도 이를 쉽게 알 수 있다. 화물트럭의 난폭운전,과적운행도 보통일이 아니다. 이런 것들이 시정되지 않는 한 교통안전이나 질서는 기대할 수가 없는 것이다. ◆지하철은 전동차 부족과 배차 횟수를 늘려 수송량을 확대하고 이에 필요한 기술적인 뒷받침을 해야 한다는 근본적인 문제 이외에 우리에게는 이같은 안전대책이 시급하다. 그것이 과제다.
  • 대처,“인생은 65세부터 다시 시작”

    ◎측근들과 송별연서 「철의 여인」다운 고별사/재단운영·회고록 집필 등 바쁜 일정 보낼 듯 영국역사상 가장 긴 11년간 총리직을 맡아온 마거릿 대처 전 총리가 다우닝가 10번지를 떠나는 절차는 신속하면서도 평범하다. 짐꾼들이 그녀의 사물을 끌어내고 있는 동안 대처는 새로 차릴 사무실용품을 사기 위해 쇼핑을 시작했다. 『어머니는 장차 회고록을 쓰시겠지요. 그렇지만 지금 당장은 이삿짐 빨리 꾸리는 법에 대한 안내서를 쓸 수 있을 거예요』­짐싸기를 거들던 딸 캐롤(37)은 TV기자가 대처총리의 장래계획을 묻자 이같이 말했다. 그러나 전임자들에 비하면 대처가 받아놓은 6∼8일 후의 이사날짜는 아주 느긋한 편이다. 대처가 밀어낸 노동당의 제임스 캘러헌 전 총리의 경우 지난 79년 5월3일 대처가 총리로 취임하자마자 하루도 안돼 관저를 비워줘야만 했다. 의회와 지척인 다우닝가 10번지의 17세기 건물을 채우고 있는 가구와 은제·식기·샹들리에·유화 등 값진 물건들은 대부분 국가재산이지만 11년반 동안이나 한 주인이 써온만큼 옷가지외에 물건도 늘어났다. 대처의 경우 가장 중요한 것은 수많은 상자에 차곡차곡 쌓인 개인문서들로 이는 모든 출판업자들의 꿈이라 할 수 있는 「철의 여인의 회고록」의 기초자료가 될 것이다. 이밖에 사퇴발표 후 전세계로부터 그녀의 문앞에 보내진 1천여개의 꽃다발과 하루 1천여통씩 쌓이는 지지자들의 편지도 새로운 이삿짐 목록으로 추가됐다. 대처 총리는 26일 밤 측근보좌관으로부터 청소부에 이르는 2백명의 총리실 직원들을 위해 송별연을 베풀었다. 이 자리에서 그녀는 『인생은 예순다섯부터 시작된다. 나는 이제 미래를 위해 일할 것』이라고 선언,사임을 발표하면서 눈물을 흘리던 때와는 판이한 면모를 과시했다. 세실 파킨슨 운수장관에 따르면 대처총리는 각료들에게 퇴진결정을 발표할 때 울었으며 다른 3명의 장관들도 따라서 눈물을 흘렸고 나머지 각료들은 침묵속에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는 것. 대처의 장래계획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추측만 난무하고 있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일에 빠지는 그녀의 성격으로 미루어 1만7천5백파운드(3만5천달러)의 연금이나 받으며 에드워드 히드 전 총리처럼 불만에 가득찬채 평범한 의원노릇을 하지만은 않을 것이란 점이다. 일각에서는 그녀가 여왕으로부터 백작부인 작위를 받고 상원에 나와앉아 지루한 의사일정을 지켜보고 있게 될 것이라는 추측도 있고 모유럽은행을 운영할 것이라는 소문도 있지만 보좌관들은 그녀가 런던 중심부에 개인사무실을 구해 대처리즘으로 불리는 자유시장 정치철학을 실현하기 위한 재단을 운영하지 않을까 전망하고 있다. 대처는 지난 85년 런던에서 동남쪽으로 약 11㎞ 떨어진 곳에 40만파운드(80만달러)를 주고 2층집을 장만,앞으로는 이곳을 거처로 삼게된다. 딸 캐롤은 「어머니가 지난 12년동안 한번도 슈퍼마켓에 가지 않았기 때문」에 식료품을 잔뜩 주문했다면서 『어머니가 총리직은 물러났지만 진짜 은퇴할 것으로는 생각지 않는다』고 말했다.
  • 「철의 여인」이후 어떻게 변할까(막내린 「대처 영국」:하)

    ◎「고립외교」탈피… 유럽통합 적극 접근/“화합” 국제조류 발맞춰 전향적 대응 예고/부시의 대 유럽 정치영향력도 감소될 듯 윈스턴 처칠은 2차 세계대전의 영웅이었다. 그러나 종전 직후 실시된 선거에서 그는 패배했다. 전후 평화시대는 전쟁영웅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대처 총리의 사임도 그녀의 정치철학이 지금의 국내외 정세에는 적합치 않음을 말해주고 있다. 영국은 변화를 필요로 하고 있다. 때문에 대처 총리의 퇴진은 단지 대처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만이 아니라 영국은 유럽의 독자적인 세력으로 존재하려는 대처의 고립주의정책에서 탈피,화합과 통합의 새로운 국제조류에 보다 전향적인 자세로 대응할 것임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영국은 과거 수세기 동안 유럽의 세력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시대상황에 따라 외교관계를 변화시키며 유럽의 변천되는 여러 강대국과 대적해 왔었다. 대처 총리도 미국과의 밀월관계와 화려한 정상외교를 바탕으로 국제정치에서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며 영국의 독자적인 위상정립에 헌신해 왔다.그러나 대처 총리는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데 실패했다. 대처는 유럽의 통합시대가 도래하고 있음에도 유럽통합에 합류하기를 꺼려했다. 대처는 지난달 로마에서 열린 유럽공동체(EC) 정상회담에서 향후 10년내에 유럽중앙은행과 함께 유럽 단일통화를 창설하는 것을 골자로 한 유럽경제통합 일정에 합의하지 않았다. 통화통합을 반대한 나라는 12개 EC 회원국중 영국 뿐이었다. 대처 총리의 비타협적인 독자노선은 기업인들과 보수당내에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측근이었던 하우 부총리가 사임하고 보수당 지도부에서는 대처의 EC정책으로 영국이 새로 탄생할 통합유럽에서 고립될지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결국 대처는 국민과 당내의 압력으로 총리직을 사임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대처의 퇴임배경을 고려할 때 대처의 후계자는 대 유럽정책에서 보다 유화적이고 신축적인 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오는 27일 2차 당수경선에 출마한 허드 외무장관과 메이저 재무장관은 비록 대처주의자이긴 하지만 EC 통합에는 전향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헤즐타인 전 국방장관은 이들보다 더 적극적으로 영국의 유럽통합 참여를 주장해왔다. 영국정부의 반대로 유럽통합에 많은 어려움을 겪어온 다른 EC 회원국들은 대처 총리의 사임으로 EC 통합이 가속화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마르텐스 벨기에 총리는 대처의 사임은 영국 외교정책에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전망하고 유럽통합이 보다 빠르게 진전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롤랑 뒤마 프랑스 외무장관도 영국의 대 EC정책이 새총리 취임으로 변화되고 보다 신축적이며 전향적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대처의 사임으로 유럽의 경제적 통합은 예정대로 오는 92년까지 실현될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정치적 통합까지는 앞으로도 적지않은 난관이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많은 영국 국민들과 정치 지도자들은 정치적 통합문제에 대해서는 여전히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 유럽정책을 적극 지지해오던 대처가 퇴진함으로써 미국의 대 유럽 영향력 행사에 지렛대 역할을 하고 있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위상변화와 함께 미국의 대 유럽 영향력도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처는 미국과 함께 나토의 존속을 강력히 주장해 왔다. 그러나 미국은 나토존속의 열렬한 지지자를 잃게 됨으로써 유럽의 안보체제를 유럽안보협력회의(CSCE)체제로 대체하자는 소련의 구상이 예상보다 빠른 시기에 더 많은 설득력을 갖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영국이 유럽통합에 합류하고 동구의 경제적 불확실성의 시대가 슬기롭게 극복된다면 유럽은 안정되고 풍요로운 「황금기」를 맞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영국은 세계적인 정치지도자를 잃음으로써 독일과 프랑스가 주도하는 통합 유럽의 정치무대에서 다시 「해가 저무는 국가」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 대처총리의 사임(사설)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가 11년 권좌에서 물러났다. 영국 보수당 당수 경선 1차투표에서 비록 재선에 실패했으나 오는 27일의 2차투표에 출마해 끝까지 싸우겠다던 그였다. 그는 동료들과 광범한 협의를 거친 결과 사임을 통해 당내 동료 각료들이 보수당 지도부 선출투표에 나설 수 있도록 함으로써 당의 단합과 다가오는 총선의 승리에 더 기여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사임의 변을 밝혔다. 대처 총리는 취임초 혁명에 가까운 국내 경제정책 등으로 국민의 높은 신임을 얻었고 새로운 영국 이미지를 세우는 데 성공했지만 전제적인 통치스타일과 최근의 주민세 신설,인플레,더이상의 유럽 정치경제통합 반대 등으로 위기에 몰렸었다. 그의 퇴진으로 영국정부의 대외정책은 유럽문제 해결에 새 전환점을 맞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을 뿐 전반적인 큰 변화는 당장 예상되지 않고 있다는 게 일반적 시각이다. 따라서 우리의 관심은 그의 사임이 주는 몇 가지 중요한 의미에 귀착한다. 그는 당내 단합을 통해 차기 총선에서 승리를 이끌어낸다는 대의 앞에 당수에 연연하는 소아를 용기있게 포기했다. 큰 것을 위해 작은 것을 희생하는 대도를 택한 것이다. 그는 또 「대처가 창조한 신화는 사라졌다. 당을 위해 최후의 희생을 하면 명예롭게 물러날 수 있으나 그렇지 않을 경우 비극이 될 것」이라는 언론의 거센 비판과 당내 여론을 귀담아 듣는 포용력을 발휘했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유권자의 58%가 그의 퇴임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도 간과하지 않았다. 『세론에는 위험이 있다. 그것은 어떤 일에도 아무 견해를 지니고 있지 않은 사람들을 만족시키려는 시도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라던 그였지만 국민의 불신임 여론을 겸허하게 수용하고 이에 승복하는 정치적 결단력을 보인 것이다. 정치인이면 누구나 선택해야 할 진과 퇴를 그는 분명히했다. 이를 두고 우리는 그의 퇴진을 명예롭고 멋지다고 생각한다. 대처의 사임성명 가운데 우리를 주목케 하는 것은 동료 각료들이 당수에 도전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겠다고 밝힌 대목이다. 정치지도자로서 빠지기 쉬운 나밖에 없다는 식의 자기도취 관념을 과감히 떨쳐버리고 세대교체와 당내 민주화의 수범을 보여준 예라 할 수 있다. 그는 민주주의 본산 사람답게 당내 여론수렴의 표본을 스스로 보이는 결단을 내린 것이다. 대처 총리의 용퇴를 보면서 우리는 우리 정치풍토에서 대처처럼 나아갈 때는 나아가고 물러설 때는 미련없이 후퇴하는 정치지혜나 지도력·결단력을 찾아볼 수 있을지에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일부 정치지도자들이 식은 죽 먹듯 하는 진퇴행로의 불투명,나 아니면 안 된다는 아집,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는 당내 민주화,이로 인한 파행정국 등이 우리의 정치 현주소가 아닌가 한다. 대처 총리가 그동안 「철의 여인」이란 별명에 걸맞게 확고한 신념을 바탕으로 대정당과 대영제국을 이끌어왔다는 데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러한 그도 최근의 실정으로 정상에서 내려왔다. 정치를 잘못하면 국민은 결국 등을 돌린다는 평범한 진리를 그의 사임은 웅변적으로 말해준다. 대처는 이러한 사실을 분별할 수 있는 판단력을 지닌 여제상이었다. 때문에 우리는 그의 퇴진을 평가하는 것이다.
  • 용퇴로 더 빛나는 11년의 치적(막내린 「대처 영국」:중)

    ◎단호한 외교·내치로 「대영긍지」 회복/포클랜드전 승리·북아일랜드 이탈 저지/국영기업 민영화… 80년대 번영 구가 마거릿 대처 영국총리의 사임이 발표되던 날 영국증권시장에서는 주가가 올랐고 유럽외환시장에서 파운드화가 모처럼 강세를 보였다. 대처의 사임이 증시에서 호재로 작용되고 있는 것이다. 뭔가 좀 풀리지 않겠는가 하는 기대감 때문이라고 증권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이는 다시 말해 대처로 인해 영국사회가 막히고 죄어있었다는 얘기로 풀이할 수 있다. 주민세의 신설,실업률의 증가,인플레,국제수지적자누증­이런것들이 대처집권 11년의 공과를 평가하는 데 있어 과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이다. 지난 88년 사회보장제도를 개혁하면서 노동자들에게 없던 세금을 하나 더 물렸는데도 그때는 별일없이 넘어갔는데 올봄 주민세법을 만들면서는 대대적인 저항에 부딪혔다. 야당인 노동당은 주민세를 「새로운 인두세」라고 몰아붙였고 거리에서는 연일 반대시위가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대처는 특유의 고집으로 이를 그냥 밀어붙였다. 그리하여 대처의 인기는 그녀가 집권한 이래 최악의 상태인 23%선으로 급락했다. 이번에 대처의 당권에 도전,파란을 일으킨 장본인인 마이클 헤즐타인의 대표적인 집권공약이 「주민세의 즉시 전면재검토」인 것을 보면 말썽많은 주민세의 강행이 결국은 화를 부른 것임을 잘알 수 있다. 또 그럭저럭 견뎌 나오던 대외교역사정도 나빠져 지난해에는 2백70억달러의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나라살림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같이 내치부문에 형성된 악조건들과 함께 외치에서는 유럽(EC)통합과 관련한 대처의 유연하지 못한 대응자세가 지적사항으로 기록되고 있다. EC통합에 원천적으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대처는 다른 회원국들이 한걸음씩 EC통합을 위해 새로운 단계를 밟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보조 맞추기를 거부해 왔다. 안으로는 나라살림에 주름살이 잡히기 시작했고 국민생활이 다시 빛을 잃어가고 있으며 대외적으로는 자칫 잘못하다가는 고립된 섬나라로 내동댕이쳐질 염려가 있다는 주장들이 대처사임 당위론의 줄거리이다. 하지만 그런저런이유만으로 총리가 바뀌어야 하는가에 대해 아쉬움을 표시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대처 11년에 대한 평점을 공쪽에 더 많이 쳐주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른바 「영국병」으로 만신창이가 된 영국을 다시 일으켜 국민들에게 자부심과 긍지를 되살려준 게 바로 대처리즘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누누이 강조하고 있다. 대처의 사임이 발표된뒤 한 런던시민은 『대처리즘을 박물관에 넣기는 너무 이르다』고 했고,보수당 중진인 존 윌킨스 의원은 『영국사람들 모두가 서운하게 생각한다』고 전했다. 대처는 집권기간동안 「전쟁」으로 표현되는 큼직한 과제들을 강철같은 의지와 신념과 추진력으로 밀고 나가 멋진 해결책을 찾아내곤 했다. 그는 집권하자마자 좌익 노동당의 장기집권으로 찌든 국가사회를 바로잡기 위해 자유시장경제를 바탕으로 하여 과감한 개혁조치를 단행했다. 그동안 사회주의 경제체제아래서 국영으로 운영되던 영국석유회사,브리티시 에어라인,브리티시 텔레콤 등 굵직한 회사들을 민영화했다. 정부를 쥐고 흔들던 노조에 정면대결을 선언,1년여씩이나 끌던 장기파업에도 불구하고 노조의 파워를 약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포클랜드전쟁에서의 승리(82년)는 영국사람들의 사기를 한껏 드높였음은 물론이다. 북아일랜드 분리주의자들이 보수당 전당대회장에 폭탄을 터뜨려 자신을 암살시키려 했고 단식투쟁으로 그들이 10명씩이나 목숨을 끊어도 눈하나 깜짝 않았다.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첫 손님이기도 했던 대처는 고르바초프는 물론 로널드 레이건,조지 부시,프랑수아 미테랑,헬무트 콜 등 거물들과 수시로 만나고 어깨를 나란히 함으로써 국제정치무대에서 자신의 위상은 물론 영국이 차지하는 위치를 한껏 고양시켜 왔다. 이같이 대처 11년이 쌓아온 업적들은 최근에 지적되는 몇몇 악재들을 상쇄하고도 남는다는게 대처의 퇴임을 안타깝게 여기고 있는 사람들의 주장인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정변도 아니고 총선에서 패배한 것도 아니며 돌이킬 수 없는 실정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도 스스로 권좌에서 물러난 대처의 행동은 또한번 「철의 여인」다운 용기와 결단력을 보여준 것이라고 평하고있다.
  • 대처의 “위대한 퇴진”/곽태헌 국제부기자(오늘의 눈)

    「철」은 녹이 슬기를 거부했다. 「철의 여인」인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 그녀는 역시 비범한 정치인이었다. 대처는 22일 보수당 당수직 사임의사를 천명,15년간의 당수 및 11년간의 총리 재임에 종지부를 찍는 용단을 내려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대처 총리는 지난 20일의 보수당 당수 경선에서 2백4표를 획득,1백52표를 얻은 마이클 헤즐타인 전 국방장관의 도전을 52표차로 따돌렸으나 2위와 15%의 표차를 내야 된다는 규정에 밀려 재선에 실패했었다. 물론 대처는 오는 27일의 2차투표에 나설 경우 승리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었으나 현직 총리가 1차투표에서 이기지 못한 데 대한 정치도의적 책임을 지고 스스로 물러난 것이다. 「상처뿐인 영광」보다는 자신과 보수당,나아가 영국을 위해 출마포기라는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대통령의 임기에 제한이 있는 우리의 대통령제와는 달리 영국의 의원내각제에서는 총리의 임기에 대한 제한이 없으며 총선에서 승리할 경우 계속 집권이 가능하다. 대처가 집권하기 전 영국은 재기불능의 나라처럼 보였다. 「대영제국」의 영광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늙고 병든 땅이었다. 심한 인플레와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되는 「영국병」 노조파업으로 경제는 파탄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더욱 큰 문제는 국민의 사기였다. 1등국민의 자존심은 사라진 지 오래였으며 미국 등지로 이민하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었다. 대처는 집권하자 단호하고 강력한 리더십으로 노조와 전면대결을 벌였다. 그는 끝내 「영국병」을 치유하는 데 성공했고 82년 포클랜드전쟁에서의 승리는 영국민의 사기를 되살려주었다. 국영기업의 과감한 민영화와 자유시장경제 시책으로 경제에 활기를 불어 넣었으며 로널드 레이건 전 미 대통령과 함께 신보수주의를 대변하는 쌍두마차로 자유세계를 이끌었다. 그런 대처도 시대의 흐름을 이겨내지는 못한 것 같다. 동구가 무너지고 독일이 통일되며 유럽이 한지붕 아래 모이는 역사의 격랑 속을 헤쳐나가기에는 「대영제국의 영광」만으로는 부족했는지 모른다. 이제 「철의 장막」의 해체와 함께 「철의 여인」도 밀려나고 있다. 이것이 역사의흐름이란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물러나야 할 때 물러날 줄을 안 위대함을 다시 한 번 보여주었다. 지금 기자는 우리의 「이승만」과 「박정희」,그리고 오늘의 정치지도자들을 생각하고 있다. 이 겨울이 지나면 이 땅에도 봄이 오리라.
  • 11년간 대영 이끌어온 “철의 여인”/총리직 물러나는 대처

    ◎철저한 원칙론자로 영국병 치유/34살때 의회 진출… 80년대 신보수주의 주도 영국 보수당 선출을 위한 2차투표를 5일 앞두고 사임을 발표한 마거릿 대처총리는 영국의 첫 여성총리이자 금세기 최장의 재임기록을 세운 입지전적 인물이다. 「철의 여인」「철나비」「보수당안의 유일한 남성」 등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그녀의 별명답게 대처총리는 4천여일 동안 「대영제국」을 억척스럽게 이끌어 왔다. 그녀는 누구도 손대기 어려울 것으로 믿었던 「영국병」을 일거에 치유해낸 영국 최대의 여걸이기도 하다. 철두철미한 원론주의자로 정평이 난 대처총리는 지난 79년 총리직에 취임했으며 그후 엄격한 도덕주의를 표방,『영국과 영국인의 사는방법뿐만 아니라 생각하는 방법까지도 바꾸어 놓겠다』고 호언하며 강력한 정신개혁운동도 펼쳐왔다. 대처총리는 『나에게는 영국에 전환점을 가져올 비전과 꿈 그리고 의지가 있다』고 외치며 「대처리즘」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탄생시켰다. 1925년 10월13일 잉글랜드 중부 링컨시어에서 태어난 대처는 어린시절채소장수인 아버지의 엄격했던 가정교육에 큰 영향을 받았다. 옥스퍼드대학에서 자연과학을 전공하며 줄곧 장학금을 받았던 그녀는 1946년 보수당 당원이 되었으며 1950년에는 처음으로 의회선거에 출마했으나 고배를 마셨다. 그후 그녀는 1959년 34살의 나이로 의회에 진출,정치가로서의 명성을 쌓기 시작했으며 61년에는 연금 및 국가보험장관으로 입각했다. 「정직하게 하루를 살아 보상받는다」는 생활철학을 신조로 보수당내에서 지지기반을 닦은 대처는 1975년 보수당 당수선거에서 당시 당수였던 히스를 누르고 보수당 당수에 취임했으며 79년 총선에서 승리,「대영제국」의 총리직에 올랐다. 그러나 대처는 총리가 된 후 자신의 엄격성으로 인해 「총리가 곧 정부」라고 느끼게 할 만큼 위압적인 정치영역을 구축,적지않은 반발을 일으켰다. 『각료회의는 각료들의 의견을 취합하는 곳이 아니라 내가 동의를 얻는 곳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그녀는 철저하게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은 밀어붙여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이 때문에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과 함께 80년대 내내 서방의 신보수주의 물결을 주도해 왔던 대처 총리는 집권 10주기를 맞던 지난해부터 인기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영국의정 사상 한때 처칠에 비견될 정도로 인기가 높았던 대처총리는 사임직전 국민들로부터 「노망난 할머니」라는 혹평까지 받았으며 보수당내에서도 심한 거부감을 일으켰다. 대처는 51년 사업가인 데니스 대처씨와 결혼,현재 쌍둥이인 1남1녀를 두고 있다. 82년 포클랜드섬을 침공한 아르헨티나에 맞서 군사력을 동원,격퇴시켰던 대처총리,20세기 후반의 영국을 새로운 모습으로 바꾸어 놓는 일을 자신의 운명으로 느끼며 영국을 이끌어왔던 대처도 이제 정상에서 내려서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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